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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부는 황성 화백 필명의 무협만화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2018년 12월에 시나리오를 탈고 하였고 2019년에 만화로 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선부라는 전설 속의 문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암투와 인간군상들의 갈등을 묘사하였습니다.

황성 화백의 만화로도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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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부 -神仙府

                                                  

 

<설정>

무림에는 신선부라는 신비한 문파가 있다. 가공할 힘을 지녔지만 이름 그대로 신선의 도를 추구하는 문파라 무림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신선부의 힘은 300년 전 돌연 세상에 드러난다. 구대천마라는 가공할 마두들이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들자 신선부에서 두 명의 고수들을 내보내 물리친 것이다. 그때 이후로 신선부는 모든 무림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헌데 신선부에서 변란이 일어난다. 무림진출 건으로 강경파와 온건파가 충돌하게 되고 강경파의 영수인 위극존이 온건파의 영수이며 신선부의 부주인 이복형 위극겸을 암살하고 자신이 위극겸으로 위장한 것이다. 그리고 마수를 무림으로 뻗어 전 무림을 장악해간다.

이에 위극겸의 아내인 온유향은 딸 위상영과 함께 은밀히 무림의 세력을 규합하여 신선부와 맞서게 되고 위상영과 운명적으로 만나 위상영에게 마음이 빼앗긴 청풍은 위상영을 위해 신선부의 무림 정복을 저지하게 된다.

청풍은 탁월한 무공과 리더십으로 무림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신선부에 맞서고 신선부의 전위 세력을 대부분 궤멸시킨다. 드디어 무림에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청풍을 시기질투한 명문가의 인간들에 의해 청풍은 모함을 받고 무림을 떠난다.

그후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낸 신선부에 의해 무림은 파멸을 맞게 되고. 청풍은 사랑하는 여인들과 친구들의 간절한 부탁으로 다시 검을 잡고 무림으로 나와 신선부에 맞서게 되는데...

 

<등장인물>

청풍; 중원삼대부호 가문중 하나인 황금전장의 하인이다. 비록 신분은 천하지만 영특하여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재주를 지녔다. 황금전장의 장주 냉혈전호 벽초천은 외아들 벽세황을 과거에 급제시키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벽초천은 궁여지책으로 청풍을 아들로 위장시켜 과거에 내보내는데 청풍이 덜컥 장원 급제를 해버린다. 하지만 벽세황은 학문에 재주가 없어 곧 밑바닥을 드러내고 대리 시험의 의심을 받게 된다. 일이 커지자 벽초천은 청풍을 제거하려 하는데. 청풍은 절체절명의 순간 기연을 만나 절세 고수가 된다.

청풍에게는 숨겨진 신분이 있다. 유약한 황제 헌종 성화제의 아들인 것이다. 성화제는 요부 만귀비에게 휘둘리며 산 것으로 유명하며 만귀비는 자신 외의 비빈들이 낳은 아이들을 남김없이 독살해버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성화제의 후궁 백현비의 아들도 그렇게 독살 당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충성스러운 환관에 의해 빼돌려졌었다. 하지만 환관은 곧 만귀비의 수하들에게 따라잡혔고 절망적인 순간 청풍은 강물에 던져버렸다. 강물에 떠내려가던 청풍을 구한 것이 황금전장의 하인 이적이었으며 청풍은 그의 아들로 자라게 된다.

기연을 만나 절세고수가 된 청풍은 무림을 주유하다가 신선부의 소부주인 위상영을 만나게 되며 그녀의 미모에 반해 신선부가 무림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저지하게 된다.

위극존; 신선부의 당대 부주. 야심이 큰 인물로 이복형이며 신선부의 부주인 위극겸을 시해하고 위극겸으로 위장하여 신선부를 장악한다. 신선부 원로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소장파들을 무림에 내보내 무림 정복을 시도한다.

위진천; 위극존의 아들. 백부 위극겸으로 위장한 부친을 대신하여 신선부의 무림정복을 총 지휘한다. 사촌지간인 위상영에게 흑심을 품고 있지만 위상영은 위진천의 본성을 알고 있어서 필사적으로 피한다. 천적인 청풍에게 번번이 야심이 가로막혀 증오하게 된다.

위상영; 위극겸의 외동딸. 어머니인 온유향을 도와 신선부의 무림 정복을 저지하려 애쓴다. 구파일방은 이미 신선부에 장악당해 있으므로 삼문육가를 포섭하여 호천맹을 결성, 신선부에 맞서고 있다. 지혜롭지만 몸이 약해서 직접 싸우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절대검성 섭장천; 당대의 천하제일인. 특히 검법으로는 고금삼대고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고금삼대검객중 한명이며 구대천마에 속하는 천잔검마의 검법을 얻어서 더욱 발전시켜 절대삼검을 만든다. 신선부 입장에서는 무림정복의 가장 큰 장애물이고 그래서 비겁한 수단을 써서 섭장천을 암살한다. 하지만 살아남아 청풍의 스승이 된다.

냉혈전호 벽초천; 천하삼대부호 가문 중 하나인 황금전장의 장주다. 하지만 벼락부자라고 손가락질 당한다는 컴플렉스가 있다. 그래서 아들 벽세황을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시키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하인이면서도 영특한 청풍을 벽세황으로 위장시켜서 과거를 보게 하는데 청풍이 덜컥 장원급제 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청풍이 적당히 과거에 급제했으면 벽세황이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장원급제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결국 후환이 두려워 청풍을 제거하려 한다.

벽세황; 황금전장의 소장주. 글 공부보다는 무공에 더 관심이 많다. 부잣집 아들답게 망나니다. 청풍의 영특함을 질투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 위해 청풍을 대신 과거에 내보낸다. 글공부에는 취미가 없지만 무공은 좋아하고 자질도 상당하다. 황금전장의 재력으로 사모은 영약과 비급으로 제법 고수 소리를 듣게 된다. 나중에 청풍의 정체를 폭로하여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벽세황 자신도 변을 당하는데...

벽옥령; 벽세황의 누이동생. 착하긴 하지만 허영심이 있고 종인 청풍을 깔본다. 나중에 황금전장이 청풍의 것이 되는 데 역활을 한다.

우유라; 삼문육가중 신기보의 안주인. 남편이 실종되어 대신 보주 노릇을 한다. 호천맹의 군사 역할을 하고 연하인 청풍을 진심으로 아끼고 지지한다.

마귀동; 마인들의 성지. 구대천마의 무공은 마귀동에서 흘러나왔고 신선부의 숙적이다. 신선부가 은인자중하며 무림에 나오지 않은 이유가 사실은 마귀동의 존재 때문이다.

혈세사패; 구대천마의 후손들이 세운 문파. 위극존에게 제압당해 신선부의 전위가 된다.

삼문육가; 구파일방과 함께 무림을 이끌어온 명문가들. 온유향과 위상영 모녀의 설득으로 신선부에 맞서기 위한 호천맹을 결성한다.

#1>

<-신선부(神仙府)! 오래 전부터 전설이나 신화처럼 무림인들의 입에 오르내려온 신비한 문파다.> 아주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험하지만 산수화 같이 경치가 좋은 산이다.

<이름 그대로 신선부는 신선(神仙)의 도()를 추구하는 방사(方士)들의 문파였다. 하지만 신선의 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공을 창안하여 세상에 적수가 없게 되었다.> 그 산을 향해 멀리서 새처럼 날아오는 두 명의 사내. 작게 보이는데 달리는 게 아니라 정말 새처럼 날아온다.

<-세속지사(世俗之事) 불상관(不相關)! 세속의 일에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선부의 으뜸가는 계율이었고 그 때문에 신선부는 강호 무림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두 사내의 모습 크로즈 업. 앞장 선 인물은 패기만만한 인상의 중년인이다. 이름은 위극존. 캐릭터는 008. 그 뒤를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이 뒷짐 짚고 따라온다. 위극존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아보이는 인물. 다른 작품의 위극겸 캐릭터. 위극겸은 신선부의 당대 부주다. 위극존은 위극겸의 이복동생이다.

<하지만 삼백여 년 전, 신선부가 무림에 그 가공할 힘의 일단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구대천마(九大天魔)라는 전대미문의 마인들이 나타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으며, 그들을 막기 위해 신선부에서 두 명의 고수가 파견된 것이다.> 위극존과 위극겸의 모습 크로즈 업.

<흑백신귀(黑白神鬼)라고 알려진 신선부의 고수들은 인간이 아닌 것같던 존재들인 구대천마를 간단히 패퇴시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다른 작품의 흑백신귀 캐릭터인 노인들이 광소를 터트리고 있고. 그들 앞에서 사방으로 달아나는 아홉명의 남녀들. 모두 중상을 입은 모습이다. 아홉 명이 구대천마이지만 대충 묘사. 자세히 보여주지는 말고. 아홉 명 중 여자가 세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흑백신귀가 신선부의 최고 고수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흑백신귀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은 칠단(七段)으로 이루어진 신선부의 계급 중 겨우 삼단(三段)에 속한다는 것이다.> 흑백신귀가 단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는 어떤 인물에게 포권하는 모습.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은 여자라는 걸 암시

<그 일로 인해 강호에서의 신선부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구대문파를 비롯하여 그 어떤 세력도 감히 신선부에 비견되지 못한 것이다.> 다시 위극존과 위극겸 형제의 모습. 험준한 절벽 위를 달리는 두 사람

<그와 함께 무림인들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것은 신선부를 찾아내어 가입하거나 그들의 무공을 단 한 가지라도 얻어서 익히는 게 그것이었다.> 앞을 가리키는 위극존. 위극겸도 앞을 보고

<물론 삼백 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신선부를 찾아낸 인물은 물론 그들의 절기를 한 조각이라도 얻어서 익힌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형제의 앞쪽은 절벽이 끝나는 곳이다. 절벽 아래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는 계곡. 절벽 중간에 안개가 걸려있다. 그 절벽 끝에 비석 같은 형태의 바위가 하나 서있다.

위극존; [여기입니다 형님!] 휘익! 비석 같은 바위 앞에 내려서고.

위극존; [이게 바로 소제가 발견한 흑백신귀(黑白神鬼) 조사님들의 흔적입니다.] 바위를 가리키고

위극존; [지난 번 강호순행 중 화산(華山)에서도 가장 험하다는 이곳 창천애(蒼天崖)를 구경하러 왔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말없이 바위 앞으로 가는 위극겸을 보며 말하고

바위 크로즈 업. 평평한 앞면이 갑골문자 같은 문양들로 덮여있다. 이끼도 덮여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글자로 보이지 않는다

위극겸; [이건...] 흥분하며 살펴보고.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신선부 부주 위극겸(威極謙)>

위극존; [소제도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생긴 균열인줄 알았습니다.] 위극겸의 뒤에 서서 눈 번뜩이며 설명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위극겸의 동생 위극존(威極尊)>

위극존; [하지만 뒤덮여있던 이끼를 떼어내고 자세히 살펴보니 상형문자들이었습니다.] 위극겸 뒤에서 음산하게 눈을 빛내며

위극겸; [천애협로(天涯狹路)...] 바위의 굴곡들을 만지며 흥분하고.

위극겸; [우리 신선부를 상징하는 표어(標語)로 문장이 시작되고 있다.] 위극겸이 만지는 그 굴곡이 <天涯狹路>라는 글과 비슷하다.

위극겸; [그렇다면 극존 네 말대로 이 바위에 글을 새긴 것은 흑백신귀님들일 가능성이 높다.] 집중해서 다른 글들을 읽고

위극존; [삼백여 년 전, 흑백신귀 조사님들은 구대천마를 패퇴시킨 후 신선부로 돌아오지 않고 실종되셨었지요.] 위극겸의 뒷모습 보며

위극겸; [그리고 두 분이 마지막으로 날려 보낸 전서구에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의 유적을 발견한 것 같다.>였지.] 글을 읽으면서

위극존; [원시천존은 우리 신선부 뿐 아니라 숙적 마귀동(魔鬼洞)의 시조이기도 한 고금제일인!] [그분의 유적을 발견했다면 흑백신귀께서 귀환을 미룬 것도 설명이 됩니다.] 음침한 표정으로

위극겸; [그렇긴 하다만...]

위극겸; [이 바위에 적혀있는 내용은 너무 모호하다.] 바위를 만지며 찡그리고

위극겸; [천재지중(天在地中) 욕등투천(慾登投天)...] [하늘은 땅 속에 있으니 오르길 원하면 하늘로 몸을 던져라?] 글을 해석하며 갸웃

위극겸; [하늘이라는 장소는 원시천존과 관련이 있는 장소일 텐데...] [그 하늘이 땅 속에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바위를 들여다보며 골똘하게 생각하는데

위극존; [소제도 그 글귀가 전혀 이해가지 않아서 형님을 직접 모시게 된 것입니다.] ! 위극존이 눈을 번뜩이며 왼쪽 소매에서 비수를 하나 꺼낸다. 칼날 길이가 한 뼘 정도인데 전체가 검은 색인 비수다. 검은 칼날에는 귀신 문양이 새겨져 있고 손잡이도 귀신 머리 형태를 하고 있고

위극겸; [원시천존은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전의 장소인 혼돈경(混沌境)을 발견하여 신선이 되는 힘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위극존이 비수를 뽑는 것도 모르고 비석의 글을 해독하는데 전념하고. 그 뒤에서 두 손으로 비수를 잡는 위극존

위극겸; [천재지중이라는 이글은 혼돈경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 두 손으로 쥔 비수로 전력을 다해 위극겸의 등을 찌르는 위극존

위극겸; [!] 눈 부릅뜨고. 칼날이 등에 조금 파고 든 상태다. 동시에

위극겸; [네가!] 바웅! 웅크리며 기합 넣는 위극겸의 몸에서 충격파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비수를 막으려 한다. 하지만

빠지지직! 위극존의 비수는 그 충격파를 뚫고 들어가서

! 위극겸의 등에 깊이 박히고. 다만

! 위극겸의 몸에서 터진 충격파에 타격을 받고 뒤로 홱 날아가는 위극존

위극겸; [!] ! 피를 왈칵 토하며 한 손으로 비석을 잡고

후두둑! 비석에 위극겸이 토한 피가 뿌려지고

위극존; [!] 휘릭! 역시 피를 토하며 내려서는 위극존. 위극겸의 10미터쯤 뒤에

치치치! 바위를 잡고 벌벌 떠는 위극겸의 등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비수가 깊이 박힌 위극겸의 등 부위에 상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고

위극존; [하하하 역시 형님의 천선탄벽(天仙彈壁)은 대단합니다.] [하마터면 소제의 몸뚱이가 피곤죽이 될 뻔 했습니다.]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웃고

위극겸; [극존...] [네놈... 네놈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돌아보고.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 표정이고. 이하 위극겸은 절벽을 등진 자세다.

위극존; [비록 소제가 신선부의 이인자이긴 해도 형님과의 실력차이는 천양지차...] [전력을 기울여 암습을 해도 형님의 천선탄벽은 깨트릴 수 없었겠지요.] ! 피를 옆으로 뱉으며 웃고

위극존; [하지만 마귀동의 염왕아(閻王牙)를 쓴 덕분에 형님을 열조(烈祖)들 곁으로 조기에 보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극겸; [염왕아!] 눈 부릅

위극겸; [내 천선탄벽을 어떻게 뚫고 들어왔나 했더니...] [우리 신선부의 숙적인 마귀동의 마병 염왕아였구나.] 비틀거리며 뒤를 보고. 치치치! 비수가 박혀있는 등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위극존; [게다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염왕아에 오대극독(五大劇毒)까지 충분히 발라두었지요.] 태연하게 웃고

위극겸; [네놈이...] 분노하여 이를 갈고. 비틀거리는 얼굴이 검게 변하고 있고

위극존; [염왕아에 몸이 궤뚫린 데다가 오대극독에 중독당하기까지 하셨으니 목숨을 부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위극겸; [어째서냐?] 이를 갈고

위극겸; [어째서 나를 암살하려 든 것이냐? 남도 아니고 형제지간이면서...] 비틀거리며 위극존을 노려보고. 등에서는 연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고 피부색은 급격하게 검게 변하는 중이다.

위극존; [소제가 왜 이러는지는 형님도 짐작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태연하게 말하고. 그러자

위극겸; [... 출천파(出天派)가 나를 제거하기로 모의했구나.] 깨닫고 분노하고

위극존; [바로 그렇소이다.] 빠지직! 온몸에서 벼락을 일으키며 눈을 희번덕이고

위극존; [우리 신선부의 힘은 명실상부 천하무적!] [단 일할의 힘만 내보내도 강호 무림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우둑! 지지지! 불끈 쥐어 쳐드는 손이 벼락에 휩싸이고

위극존; [하지만 형님을 비롯하여 문중의 늙은이들은 케케묵은 율법만 내세우며 무림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못하게 억압해왔습니다.] 이를 갈고

위극존; [그래서 소제를 중심으로 한 출천파가 결성되어 무림을 정복할 계획을 진행해온 것입니다.] 광기 서린 표정으로 웃고

위극겸; [어리석은 놈...] 탄식하고. 이제 얼굴은 완전히 검게 변했고 등에서 치솟는 연기가 짙어졌다.

위극겸; [우리 신선부의 숙적인 마귀동이 어둠 속에 숨은 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르느냐?] 분노하고

위극겸; [신선부와 마귀동의 힘은 백중!] [그 때문에 먼저 실체를 드러내는 쪽이 반드시 패망하게 되어 있다.]

위극겸; [우리 신선부의 열조들께서는 그걸 알고 계셨기에 무림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 오신 것이다.]

위극존; [소제의 생각은 다릅니다.] 냉소하고. 온몸이 벼락으로 휘감기고 있고

위극존; [마귀동의 힘은 삼백여 년 전 구대천마의 실종으로 소멸되었다고 봐야합니다.] 눈 번득

위극존; [헌데 형님과 문중의 늙은이들은 있지도 않는 마귀동의 위협을 내세워 신선부의 젊은 제자들을 억눌러 온 것입니다.] 이를 부득 갈고

위극겸; [헛된 꿈꾸지 마라!] [나 하나 해치운다고 신선부를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절벽을 등진 채 비틀

위극존;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 손으로 얼굴을 덮고

위극존; [신선부를 영도하는 것은 여전히 형님일 테니 말입니다.] 스윽! 손을 아래로 쓸어내리고. 그러자

! 위극존의 얼굴이 위극겸으로 변했다. 진짜 위극겸의 피부가 검게 변했고 등에서 연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똑같다. 이하 가짜 위극겸은 위극겸(위극존)으로 표기한다.

위극겸; [... 역용술!] 절망 분노

위극겸; [... 나로 위장하여 신선부를 장악할 생각이로구나!]

위극겸(위극존); [비록 어머니는 다르지만 우리는 형제지간 아닙니까?] 자기 얼굴을 만지며 웃고

위극겸(위극존); [그 누구도 소제가 형님으로 위장한 것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위극겸(위극존); [형님의 정숙한 아내까지도...] 광기로 눈을 번들거리고

위극겸; [이 천벌을 받을 놈...] 절망하며 뒷걸음질

위극겸(위극존); [사정 설명은 충분히 해드렸으니 이제 그만 저 세상으로 가십시오.] 손바닥을 위극겸에게 내밀며 말하고. 그러자

지지징! 위극겸(위극존)의 손바닥 앞에서 겹겹이 원형의 파문이 쌓인다.

위극겸; [하늘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위극겸; [하늘이 네놈의 악행을 징벌할 것이다.] !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려 투신을 한다. 위극겸(위극존)을 마주 보는 자세로 몸을 날리는 것 주의. 그러자

위극겸(위극존); [투신...] ! 손을 내리며 절벽 끝으로 가고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있는 위극겸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하늘 보는 자세로 추락하고 있고. 그러다가

! 절벽 중간을 감고 있는 구름을 뚫고 내려가며 사라지는 위극겸

위극겸(위극존); [무공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을 했으니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겠지.] 끄덕

위극겸(위극존); [덕분에 친형을 내 손으로 죽이는 찜찜함은 면했다만...] 절벽 끝으로 가고.

위극겸(위극존); [혹시 모르니 내려가서 시신을 확인하자.] !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린다.

! ! 위극겸과 달리 절벽의 돌출 부위를 밞으며 아래로 내려가는 위극겸(위극존)

위극겸(위극존); [머잖아 천하는 신선부를... 아니 나 위극존을 주인으로 섬기게 될 것이다.] 흐흐흐! 웃으면서 절벽 아래로 멀어지는 위극겸(위극존)

 

#2>

비 오는 밤. 한쪽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강변.

번개도 치고

절벽 아래로는 거친 강물이 흐른다.

파팟! 절벽을 따라 달려오는 인물. 환관 복장의 중년인인데 체격이 건장하다. 캐릭터는 618. 품에는 강보로 꽁꽁 싸맨 아기를 안고 있다. 얼굴까지 강보로 싸서 커다란 럭비공처럼 보인다. 이 환관의 이름은 장민. 허리에 칼도 한 자루 차고 있다.

[! !] 거친 숨결을 몰아쉬며 달리는 장민. 등에는 몇 개의 화살이 박혀있다. 부러진 화살도 있고

장민; (삼황자(三皇子)...) 달리면서 강보를 내려다보고.

약간 틈이 벌어진 강보 사이로 잠이 든 아기 얼굴 일부가 보인다. 몸을 강보로 꽁꽁 싸맸지만 숨을 쉬도록 입고 코 부위의 천을 조금 열어 놨다.

장민; (소인 장민(張閔)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드릴 테니 안심하십시오.)

장민; (삼황자님의 모친이신 백현비(白賢妃)님께는 몇 번을 고쳐 죽어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다시 앞을 보며 달리고

장민; (그 막중한 은혜를 갚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삼황자님을 지켜드려야만 한다.)

장민; (하지만... 사실 삼황자님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장민; (당금의 황상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만귀비(萬貴妃)...) 기승스럽지만 아름다운 중년여인을 떠올리고. 나중에도 나올 만귀비 캐릭터

장민; (그 악독한 계집은 다른 비빈들이 생산한 황자들은 남김없이 독살해왔다.) (자신이 낳은 병약한 황태자(皇太子)의 지위를 위협할까 걱정해서인데...)

장민; (백현비님께서 생산하신 삼황자님도 만귀비의 독수에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장민; (그래서 병사한 것으로 꾸며 자금성 밖으로 빼돌렸지만...)

장민; (어떻게 알고 만귀비가 자객들을 보내 나를 추적하고 있다.)

장민; (다행히 비가 와서 자객들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장민; (비와 어둠의 가호를 받아 가능한 멀리 달아나야...) + [!] 눈 부릅뜨고. 피이잉!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장민; (화살이 나르며 내는 파공성!) ! 다급히 옆으로 방향을 틀며 몸을 날리고.

피피핑! 파팍! 여러 대의 화살이 장민이 날아가던 방향으로 지나치고 바닥에 박힌다.

장민; (이런...) 달려가며 돌아보는 장민.

뒤쪽의 빗속을 달려오는 복면을 쓴 자객들 십여명. 달려오며 활을 쏜다. 활을 쏘고 다시 화살을 뽑아 활에 재우고 있다

장민; (끈질긴 놈들! 그 새 따라붙었구나!) 파팟! 사력을 다해 달려간다.

피핑! ! 다시 활을 쏘는 자객들. 마지막 한 놈만 쏘지 않고 달려온다. 화살을 활에 재운 자세로. 이자가 두목. 허리춤에 카우보이들이 쓰는 것 같은 밧줄을 걸고 있다.

파팟! 다시 방향을 틀며 달리는 장민

투학! 그제야 두목이 활을 쏘고. 장민이 달리는 방향을 가늠해서

피핑! 퍼퍽! 이번에도 대부분의 화살들이 장민을 빗나간다. 하지만

! 두목이 날린 화살이 장민의 한쪽 허벅지를 궤뚫는다

장민; [!] 균형을 잃고 나뒹구는 장민.

철벅! 콰당탕! 나뒹굴면서도 강보에 싸인 아기를 품어서 다치지 않게 하고. 그때

[잡았다!] [노대(老大)께서 장가놈의 다리를 맞췄다!] 차창! ! 활을 버리고 칼을 뽑으며 쇄도하는 자객들. 거리는 30미터쯤이고. 두목만 다시 활에 화살을 재우고 있다

장민; (틀렸다!)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장민; (다리를 다쳤으니 더 이상 달아나는 건 무리...) 품에 앉은 강보의 아기를 내려다보며 뒷걸음질.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장민의 뒤는 절벽이다

장민; (그리고 저놈들의 손에 들어가면 삼황자님은 확실하게 살해당하신다.) 이를 악물며 뒤돌아서고. 절벽 쪽으로

장민; (그럴 바에야 요행을 바라는 게 났다.) 아기를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저 놈 혹시!] [멈춰라 장민!] [강으로 뛰어들려고 한다!] 다급히 외치며 쇄도하는 자객들. 그 직후

투쾅! 날아오며 다시 활을 쏘는 두목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장민. 하지만. 그 직후

! 등에 화살이 깊이 박히며 비틀하는 장민. 어깨 아래쪽을 관통한다.

! 그 바람에 강보에 쌓인 아기를 놓치는 장민

쐐액!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강보에 싸인 아기.

장민; [안돼!] 아기에게 손을 뻗으며 함께 뛰어내리려는 장민. 하지만

촤악! 날아든 밧줄이 장민의 목을 휘감아 조이고

! 급정거로 멈춰서며 두 손으로 밧줄을 휘두르는 두목. 활은 버렸고. 그자가 휘두르는 밧줄에 목이 감긴 장민의 몸이 허공으로 홱 날아오르고 있고. 다른 자객들은 절벽으로 쇄도한다.

파팟! ! 절벽 끝에 급정거하는 자객들. 하지만

절벽 아래로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거친 강물이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것만 보이고.

퍼억! 목이 조여진 채 바닥에 나뒹구는 장민. 하늘 보는 자세로 나뒹군다.

그 바람에 등에 박혀있던 화살들이 부러지거나 살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고

장민; [끄윽!] 고통에 벌벌 떨고

두목; [어떻게 되었느냐?] 패대기쳐진 장민에게 다가가며 절벽 끝에 선 자객들에게 묻고. 이자는 눈썹 사이에 점이 있다. 그 점이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니 확실히 표시

[애새끼는 강물에 빠진 것 같습니다.] [비가 오는데다가 밤이 깊어서 아래쪽의 상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자객들이 돌아보며 대답하고

두목; [하류로 따라 내려가라.] [삼황자의 시신을 가져가야 만귀비가 제대로 포상을 해줄 것이다.] 장민의 옆에 멈춰 서며 말하고. 장민은 일어나려 애쓰고 있고

[존명!] [가자!] 파팟! ! 절벽을 따라 달려 내려가는 자객들

그 사이에 장민은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지만

두목; [망할 환관 놈!] ! 강하게 장민의 가슴을 밟는 두목

우직!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두목의 발 아래에서 들리고

쿨럭! 고개 들며 피를 토하는 장민

두목; [애새끼를 강에 떨어트려서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 우둑! 발에 힘을 주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장민; [죽일 테면 죽여라 만귀비의 개!] 쿨럭! 주르르!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면서도 이를 갈며 올려다보고

장민; [만귀비와 네놈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는 하늘이 대신 내리실 것이다.]

두목; [그건 장민 네놈의 희망사항이고...] 피식! 웃고

두목; [죽기 전에 좋은 소식을 들려주마.] [네놈이 그렇게 떠받들던 백현비는 네놈보다 한 걸음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장민; [... 그런...] 경악 충격

두목; [네놈이 삼황자를 빼돌린 데 대한 분풀이로 만귀비가 백현비를 독살한 것이다.]

장민; [현비... 백현비마마께서 돌아가시다니...]

두목; [네놈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삼황자도 곧 뒤따라갈 테니 먼저 가서 백현비를 만나봐라!] 콰직! 발에 힘을 주고

퍼득! 장민의 몸이 퍼덕이다가

축 늘어지는 장민의 몸뚱이

두목; [날 원망하지 마라 장민! 네놈이 주인을 잘못 선택한 결과이니...] 휘익! 날아가며 웃고

으하하하! 장민의 시체를 배경으로 멀어지는 두목. 헌데

 

#3>

절벽 아래. 강물이 거칠게 흐르고 있고. 헌데 바위가 움푹 들어간 곳은 강물이 잔잔하다. 그곳에 배가 한척 정박해있다. 작은 선실이 달린 배인데 밧줄로 절벽의 돌출부에 묶여있다. 그리고

[...] 문이 열린 작은 선실에 앉아서 무언가 생각하는 중년의 꼽추. 전작인 <무쌍일지>에 나온 타노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타노. 이름은 이적. 그래도 타노라고 표기. 이때의 나이는 40살 전후. 헌데

타노의 품에 안겨있는 강보에 싸인 아기.

타노; (만귀비, 백현비, 삼황자, 환관 장민...) 곁눈질로 하류쪽의 절벽을 보고.

자객들이 절벽 아래를 살피며 하류로 달려가는 것이 작게 보인다

타노; (주인님의 분부로 서둘러 항주(杭州)로 가던 길이었는데...) 자객들이 멀어지는 걸 보며 생각하고

타노; (비가 오고 날이 어두워져서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정박하게 되었다.)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보고

타노; (그러다가 상상도 못했던 일을 겪게 되었다.) ! 강보를 적혀서 아기의 얼굴이 다 드러나게 만들고. 아기의 얼굴은 청풍의 어린 시절 얼굴이다. 콧날이 오똑한

<당금 황제의 셋째 아들이 죽을 위기에 처했으며... 요행히 내가 바로 아래에 있어서 추락하는 삼황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뱃머리에 서서 위에서 추락하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받으려던 타노의 모습 배경으로

타노; (이런 걸 인연이라 말하는 것일 텐데...) + [!] 아기를 보다가 눈 반짝

강보가 젖혀지며 드러난 청풍의 목 부분. 끈으로 대충 만든 목걸이가 걸려있는데 그 끈에 금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다. 두 마리의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무는 모습의 반지

타노; (이 반지...) 반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고

<두 마리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고 있는 쌍룡패미(雙龍敗尾)의 형상...> 반지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타노; (아마 이 아이... 삼황자의 신분과 관련이 있는 반지일 것이다.) (황제가 삼황자의 생모인 백현비에게 준 정표일 수도 있고...) 다시 목걸이를 강보 속으로 넣고

타노; (하지만 이 아이의 신분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 (이 아이가 살아있는 걸 만귀비가 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려 들 테니...)

<이 아이는 가장 귀한 출생이지만 가장 천하고 낮게 길러야만 한다. 만귀비가 결코 찾아내지 못하도록...> 숨듯이 정박해있는 쪽배 배경으로 타노의 생각 나레이션

 

#4>

<-십년후.> 거대한 도시. 북경이다. 멀리 웅장한 자금성도 보이고

<-북경(北京)> 북경의 모습. 번화가. 넓은 대로 좌우로 수많은 상점들이 있고

<-중원 최대의 전장 황금전장(黃金錢莊)> 대로 끝에 웅장한 정문이 열려있는 장원의 모습. 장원 정문으로는 수많은 사람과 우마차들이 드나들고 있다. 대문 처마 아래에는 <黃金錢莊>이라는 글이 금박으로 적힌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다.

황금전장의 후원. 웅장한 이층 건물이 있다. 옆으로 긴 건물. 일종의 도서관. 정문에는 <藏經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람들은 많이 오가지 않는데 입구에는 황금 갑옷에 환금 투구를 쓴 건장한 무사들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이 무사들은 <자객일지>에 나온 황금수라들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이름은 황금수라.

 

#5>

! 누군가의 손이 책꽂이에서 책을 한권 뽑는데 가운데 손가락에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다. 바로 아기 시절의 청풍이 목에 걸고 있던 그 반지다. 두 마리의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의 금반지. 이 금반지로 청풍이 삼황자라는 걸 암시하고

청풍; [...] 까치발을 하고 책꽂이에서 책을 뽑는 청풍. 이 때 나이 10.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인데 몸이 좀 허약해 보인다. 비실비실. 걸치고 있는 옷은 낡고 초라하다. 주변에는 천장까지 닿는 높은 책꽂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뽑은 책 표지를 보는 청풍

<貞觀精要 第十三集>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책을 들고 돌아서는 청풍.

근처에 책상과 의자가 있고. 책상에는 오징어 말린 것 한 마리와 차 주전자가 놓여있다.

책상에 앉는 청풍. 책을 내려놓고

오징어 다리 하나를 입에 물면서 책을 넘긴다.

! ! 책을 천천히 넘기는 청풍의 손

눈이 좌우로 움직이고. 입은 오징어 다리를 질겅 질겅

! 마침내 책을 모두 넘겼고.

오징어 다리를 모두 입에 삼키고

차 주전자를 집어 들고

꼴꼴 고개 젖혀서 주전자의 물을 마신다. 바로 그때

[닥쳐라!] 누군가 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리고

멈칫! 기울이던 주전자를 멈추는 청풍의 손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여? 이 밥벌레 같은 놈들이!] 다시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주전자를 놓고 일어서는 청풍. 책을 집어들고

! 그 책을 원래 자리에 꽂는 청풍. [당장 찾아내라!] 그 배경으로 악을 쓰는 소리가 이어지고

[그분이 오실 때까지 못 찾아내면 네놈들은 전부 모가지다.] 누군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가는 청풍.

 

#6>

높은 책꽂이들 사이의 공간. 커다란 책상이 있고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불같이 화를 내는 중년인. 냉혈전호 벽초천이다. <자객일지>등 다른 작품의 냉혈전호 벽초천 캐릭터. 옷이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

벽초천 뒤에는 교활한 인상의 중년인이 서있다. 황금전장 총관인 이세창이다. 이세창 캐릭터도 <자객일지>에 나오는 황금전장 총관 이세창 캐릭터 차용

벽초천 앞에는 서생 차림의 중년인이 서서 사색이 되어 있다. 이자는 장경각 부사서인 조무상. 한 두 번 나올 캐릭터. 그냥 평범한 서생. 주변에서는 서생 차림의 사내들 십여명의 책꽂이들의 책을 살피며 허둥대고 있다.

벽초천; [변명을 하려면 그럴 듯한 변명을 해라!] 탕탕!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눈을 부라리고

벽초천; [장경각 총사서(總司書)인 우문(宇文)노인이 와병중이기 때문에 찾는 책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장주 냉혈전호(冷血錢虎) 벽초천(碧礎天)>

벽초천; [책의 소재도 모르는 놈들이 무슨 사서(司書)?] [내가 네놈들 먹이고 입히는 이유가 돈이 썩어나기 때문인 줄 아느냐?]

조무상; [... 죄송합니다 장주님!] 비지땀을 흘리며 굽신거리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장경각 부() 총사서 조무상(趙無想)>

조무상; [송나라 때의 명재상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취옹잡기(醉翁雜記)는 워낙 귀한 책이라 주요 장서를 보관하는 이 주변에 있을 것입니다.]

조무상; [부디 조금만 더 말미를 주십시오.] 비지땀을 흘리고

벽초천; [말미같은 소리!] 탕탕!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고

벽초천; [황상의 최측근인 수보(首輔;재상) 양정화(楊廷和)공께서 친히 우리 황금전장을 내방하시는 일이 매번 있을 것 같으냐?]

벽초천; [양수보께서는 구양수의 저작이 우리 황금전장으로 흘러들어온 걸 알고 한번 보기를 청했다.]

벽초천; [헌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서 보여드리지 못한다고 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느냐?]

벽초천; [양수보께서는 내가 자신을 깔보고 욕보인다고 생각할 거 아니냐?]

벽초천; [그리고 황상의 측근 중의 측근인 양수보가 분노하면 우리 황금전장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단 말이다.]

조무상; [... 죄송합니다.] 사색이 되고

벽초천; [죄송이고 나발이고 그분이 도착하시기까지 채 반 시진도 안 남았다.]

벽초천; [그 전까지 취옹잡기를 찾아내지 못하면 네놈들 모두 죽은 목숨인 줄 알아라!] 격렬히 화를 내고

조무상; [... 명심하겠습니다.] 굽신

조무상; [빨리... 빨리 취옹잡기를 찾아라! 빨리!] 다른 서생들에게 외치며 자신도 책꽂이를 향해 달려가고

허둥대며 책을 찾는 서생들

실수로 와르르 책을 쏟아내는 놈도 있고.

벽초천; [무능한 밥버러지들...] 벽초천의 눈치 보며 허둥지둥 쏟아진 책을 끌어 모으는 놈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고

이세창; (본장도 참 운이 없구나.) (하필이면 장경각의 모든 책을 관리하는 우문노인이 와병중일 때 양수보가 방문을 하다니...) 소리없이 한숨을 쉬고.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총관 이세창(李世昌)>

이세창; (돈놀이가 본업인 우리 황금전장의 특성상 권력자에게 잘 보여야 탈 없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세창; (최고 권력자인 양수보의 비위를 맞출 기회를 놓치면 뒷탈이 생길 게 분명하다.) 난감하고. 그때

[취옹잡기의 소재는 제가 알고 있어요.] 누군가의 말이 이세창과 벽초천의 귀에 들리고. 눈 치뜨는 두 사람

[!] [!] 부산하게 책장을 뒤지던 서생들도 일제히 돌아보고

벽초천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청풍.

벽초천; [저놈이 뭐라는 거냐?] 오만상

조무상; [청풍아!] 살았다는 표정으로 달려오고

벽초천; [애초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떻게 장경각에 들어와 있는 거냐?] 마뜩잖은 표정으로 청풍을 흘겨보고

이세창; [저놈 누구요?] 달려온 조무상에게 묻고. 시선은 청풍에게

조무상; [... 이청풍이라고... 본장의 하인중 한놈입지요.] 눈치 보고

벽초천; [총관! 자네도 모르는 놈인가?] 이세창에게 묻고

이세창; [죄송합니다.] [본장의 하인들은 천명이 넘어서 모두 기억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고개 숙이고

벽초천; [그럴 만도 하지. 하물며 아직 밥값도 못하는 어린놈이니...] 말하며 조무상을 보고. 조무상에게 말하는 표시

조무상; [청풍은 전대 장주님이 가까이 두고 부리던 충복 타노가 밖에서 낳아 데려온 아들입니다.] 눈치 보며 말하고

벽초천; [타노라면 알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신임하던 종이었으니...] 끄덕

벽초천; [헌데 타노 그놈 꼽추 주제에 재주도 좋군. 자식까지 싸지르고...] 피식 웃고

조무상이 당황하여 청풍을 보지만

청풍은 무표정하게 서있고

조무상; [청풍이는 기억력이 비상합니다.] 급히 웃으며

벽초천; [기억력이 좋다? 얼마나?] 심드렁

조무상; [한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그 때문에 책도 한번 쓱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다 기억할 정도입니다.]

벽초천; [사실이라면 제법 쓸모가 있겠군.] 자세 바로 한다. 흥미를 느꼈고

조무상; [믿지 못하시겠지만 청풍이는 장경각의 모든 책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만여 권의 장서 중 삼할 가까이를 읽었으며 그 내용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신이 나서

벽초천; [허어! 저 어린놈이 벌써 삼만 권 넘는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다?] 좀 놀라고

이세창; (조무상의 말이 사실이라면 괴물이라 할만한 놈이로군.) 역시 감탄하며 청풍을 보고. 청풍은 여전히 무표정

벽초천; [취옹잡기의 소재를 알고 있다고 했지?] 청풍에게

청풍; [그렇습니다.]

벽초천; [어디 있느냐?]

청풍; [원래는 병()열의 십삼호 서가 육()단에 있었지만...] 한쪽을 보며 말하고. 그쪽에 있던 서생들 흠칫!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쪽을 보고

급히 그쪽 서가를 살피는 근처의 서생들. 하지만

[여기에는 없습니다.] 고개 젓는 서생들

청풍; [한 달 전 쯤 사서중 한분이 필사를 한 후 위치를 착각해서 무()열의 십삼호 서가 육단에 꽂아두었습니다.] 좀 떨어진 후미진 곳의 서가를 보고. 그러자

급히 그곳으로 달려가는 서생들. 이어

[있습니다!] 그 중 한 놈이 책꽂이에서 책을 한권 꺼내며 환호하고

[구양수의 취옹잡기가 여기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달려오는 그놈

조무생; [틀림없습니다.] 그 책을 받아 살피고

조무생; [구양수가 저술한 취옹잡기 초판본입니다.] 두 손으로 책을 벽초천에게 넘기고. 책에는 <醉翁雜記>라는 제목이 큰 글로 적혀 있고 아래쪽 구석에는 <歐陽脩 書>라는 글이 좀 작게 적혀 있다. 하지만

벽초천은 책을 받는 대신 청풍을 보고 있다.

이세창; [내가 챙겨두겠소.] 대신 책을 받는데

벽초천; [이백(李白) 시선(詩選)!] 청풍에게

청풍; [()열 삼십칠호 서가 칠()단에 있습니다.] 즉시 대답하고. 그러자

눈치 챈 서생 한 놈이 달려가고

구석진 곳의 서가에서 책을 뽑는 그놈

[맞습니다.] 그곳에서 책을 든 채 외치고

이세창;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벽초천 대신 말하고

청풍; [()열 칠호 서가 삼()!] 즉시 대답하고

서생이 책을 뽑으며 끄덕이고

이세창; [사기(史記) 열선전(列仙傳)!]

청풍; [신열 이호서가 오()!] 즉시 대답하고

[열선전 여기 있습니다.] 서생 한 놈이 책을 뽑으며 외치고

이세창; [그럼 이번에는...] + 벽초천; [되었다.] 막고

이세창; [...] 고개 숙이고

벽초천; [이청풍이라고 했지?] ! 일어나고

벽초천; [여기 대기하고 있다가 부르면 내원(內院)으로 와라.] 걸어가며 말하고. 이세창이 따라가고

청풍; [...] 고개 숙이고. 서생들도 고개 숙이고

벽초천; (저런 보물이 우리 황금전장에 숨어있었단 말이지?) 청풍을 등지고 걸어가며 눈 번뜩이고

벽초천; (저놈을 이용하면 글공부와는 담은 쌓은 세황(世皇)이 놈에게 자극을 줄 수 있겠지.) 히죽 웃고

곧 책꽂이 사이로 멀어지는 벽초천과 이세창 그러자

[휴우!] [살았다.] 주저앉거나 안도하는 서생들. 조무상도 안도하고

조무상; [고맙다 청풍아! 네 덕분에 큰 고비를 넘겼다.] 청풍의 어깨를 다독이고

청풍;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장경각에서 살다시피하는 것을 허락해주신 데 대한 보답인 걸요.]

조무상; [어쨌거나 장주님 눈에 들었으니 앞으로 네게도 좋은 일이 생길 게다.] 청풍의 어깨 다독이고.

조무상; [자자 어질러진 책을 정리하자.] 다른 서생들에게 가며 말하고. 주저앉았거나 책꽂이에 기대고 있던 서생들 다시 일어나고

청풍; (좋은 일이라...) 창가로 가고

열린 창문을 통해서 벽초천과 이세창이 멀어지는 게 보인다. 두 명의 황금수라들이 뒤따라가고 있고

청풍; (아버지는 가급적 다른 사람 눈에 띠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청풍; (내가 장경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버지의 분부 때문이었는데...) 찡그리고

<장주의 이목을 끈 게 과연 좋은 일일지 모르겠다.> 무언가 생각하며 장경각을 등지고 걸어오는 벽초천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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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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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함정에 빠지다!

 

 

 

부악!

막고천은 이번 기회에 후환을 없앨 작정을 하고 전력을 기울여 장력을 날렸다. 그 기세는 처음의 일장 보다 배는 더 강력하고 악독했다.

[!]

그러나 막고천의 이번 공격은 막비강이 팔보간섬의 경신술로 슬쩍 피하는 바람에 헛것이 되고 말았다.

[불효막심한 놈! 빨리 꿇어앉아 죽음을 받아라!]

화가 치민 막고천은 이를 부드득 갈며 다시 막비강을 덮쳐왔다.

화락!

하지만 막비강은 그 순간 몸을 날려 명륜당 밖으로 내려섰다.

[막 노적! 자신 있으면 밖으로 나와라. 오늘 내 손으로 네놈을 때려죽이고 말겠다!]

뜰에 내려선 막비강이 막고천에게 삿대질을 할 때였다.

[! 날뛰지 마라!]

[호로자식이 어디서 감히...!]

휘휙! 화락!

막고천 대신 두 개의 인영이 동시에 날아 나왔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막고천 옆에 앉아 있던 고희의 노인들이었다.

두 노인 중 동홍선생(冬烘先生;서당 훈장)처럼 생긴 자가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너 같은 불효막심한 자식은 노부가 대신 벌을 주어야겠다.]

막비강은 이 노인이 막고천을 능가하는 고수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거만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하는 거요?]

동홍선생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피를 섞어 시험했으니 친혈육임이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계속 난동을 부리는 네놈은 금수나 다름없다. 예로부터 금수같은 인간은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법! 노부가 오늘 장주를 대신하여 네놈의 버릇을 고쳐 주어야겠다.]

막비강은 냉소하며 말했다.

[! 당신은 나잇살이나 쳐먹어 놓고도 방금 전의 그 혼혈친인에 거짓 수작이 숨겨져 있음도 못 알아보시오?]

그때 중인들을 이끌고 명륜당에서 달려나오던 막고천이 그 말을 듣고 고함을 질렀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이 다 똑똑히 보았는데 무슨 거짓 수작이 숨겨져 있었단 말이냐?]

막비강은 검미를 치뜨며 대답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았으니 나와 피가 혼합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는 절대 너 같은 악적의 자식이 아니다. 자신이 있으면 나와 단독으로 혼혈친인을 해보자.]

막고천은 막비강이 단독으로 시험해 보자는 제의를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터라 당황했다. 대답이 궁색해진 그는 얼굴을 붉히며 노성을 질렀다.

[아비를 악적이라 욕하는 죄만으로 죽어 마땅한데 또 무엇을 시험하잔 말이냐?]

막고천은 분노하며 또 다시 막비강에게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막비강은 미리 방비하고 있었던 터라 가볍게 피해냈다.

[어머니!]

막비강은 막고천을 상대하지 않고 다른 여인들과 명륜당 입구까지 나와있는 어머니 한경파 곁으로 날아갔다.

[이제 저 악적에게 시달리실 필요 없습니다! 소자와 함께 여길 떠납시다.]

막비강은 팔을 뻗혀 어머니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한경파는 슬픈 표정으로 물러서며 손을 저었다.

[... 너나 빨리 여길 떠나거라 강아!]

[죽일 놈!]

! 퍼엉!

그 사이에 막고천이 다시 쫓아와 연달아 장력을 쳐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을 때려죽여 버리겠다!]

하지만 막비강이 팔보간섬을 전개하자 막고천은 이번에도 그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막비강은 막고천의 공격을 피하며 냉랭히 웃었다.

[나는 네놈을 일장에 격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상을 먼저 알고 싶어 손을 쓰지 않을 뿐이니 분수를 알고 멈춰라!]

막비강의 조롱에 막고천은 대로하여 고함을 질렀다.

[짐승보다 못한 놈! 나를 아비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 부친이 누구란 말이냐?]

[그건 내가 네게 묻고 싶은 말이다.]

이때 막고천의 장남인 막불계가 덮쳐 오며 외쳤다.

[둘째! 너는 끝까지 아버지를 모독할 테냐?]

막비강은 철이 들었을 때부터 막불계에게 수없이 괄시를 받고 매도 맞았다. 자연히 그는 지난날의 울분이 일시에 치밀어 냉랭히 대꾸했다.

[막불계! 네 모친도 이 악적이 남편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겁탈했을 텐데 뭐가 고맙다고 두둔하느냐?]

막불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무엄한 놈 같으니...! 뭐가 어쩌고 어째?]

!

막불계는 악에 바쳐 일장을 후려쳤다.

[! 그런 실력으로 내게 덤비다니!]

하지만 막비강은 어린 아이 손목 비틀 듯 그의 손목을 움켜잡아 던져 버렸다.

[어헉!]

막불계의 몸은 마치 줄이 끊어진 연처럼 삼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막불계는 비록 나이는 젊지만 혈검산장의 가전비학을 모두 연마했고 또 흑도의 거물들인 십악구흉, 칠열팔준들로부터 사사받아 젊은 층에선 제일인자라 불렸다.

그런 그가 미처 일초도 버티지 못하고 내 팽개쳐지자 중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막고천의 아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십대 후반의 중년부인이 눈에서 살기를 발산하며 한경파에게 노성을 질렀다.

[셋째 동서! 자네가 이 불효막심한 자식 놈을 따끔하게 벌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치도곤을 내리겠다.]

이 여인이 바로 막고천의 정실(正室)인 당숙경(唐淑瓊)이다.

막불계와 두 딸의 어머니인 그녀는 보통 여인들보다 체격이 큰 데다 상당히 살이 쪄서 몸매가 아주 당당하고 풍만하다.

그리고 피부도 깨끗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하여 여전히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기승스러워 보이는 것이 흠이었다.

혈검산장에서 막비강을 가장 못 살게 괴롭힌 사람이 다름 아닌 당숙경이다. 막비강이 자신의 다섯 시앗들이 낳은 아이들 중 유일한 아들인 탓인지 그녀는 노골적으로 그를 못 살게 굴었었다.

막비강은 그런 당숙경이 자신의 어머니 한경파를 윽박지르자 분노하여 이를 부득 갈았다.

[네가 날 어쩌겠다는 거냐 이 살찐 돼지야?]

[, 뭐야? 돼지?]

당숙경은 평소에도 자신이 다른 시앗들보다 살이 많이 찐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오고 있었다. 당연히 살찐 돼지라는 막비강의 욕은 그녀의 얼굴을 새빨갛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그 주둥이! 찢어버리겠다!]

당숙경이 악을 쓰며 막비강을 덮쳐왔다. 서패천 혈검산장의 안주인답게 그녀의 무공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래봤자 막고천도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는 막비강의 상대가 될 까닭이 없다.

[꺼져!]

막비강은 당숙경이 덮쳐들자마자 그녀의 하얀 손목을 잡아채 마당에 던져 버렸다.

[아이쿠!]

당숙경의 피둥피둥 살이 찐 몸뚱이가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비명과 함께 마당에 널부러졌다.

당숙경은 여러 바퀴 뒹구는 바람에 치마가 허리 위로 걷혀 올라가버렸다. 그 바람에 투실투실 살이 오른 중년여인의 허연 아랫도리가 그대로 드러나버렸다.

유달리 육덕이 좋은 그녀인지라 허벅지 하나가 한 아름이 넘어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우람한 허벅지들은 처녀같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

당숙경은 발라당 나자빠지는 바람에 가랑이를 벌린 자세로 넘어졌는데 흐드러진 허벅지 사이에는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살이 두둑히 오른 둔덕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살진 두덩이를 가린 작은 고의는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본의 아니게 당숙경의 사타구니를 본 막비강은 민망하여 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부친을 모독하고 형을 때렸으며 부친의 정실을 욕보였으니 막비강은 이제 패륜무도라는 오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

[저 놈을 잡아라!]

[이놈! 어디서 패악질이냐?]

막비강이 형인 막불계에 이어 큰 어머니인 당숙경마저 능멸하는 것을 본 혈검산장의 무리들이 분노하며 일제히 막비강을 덮쳐왔다.

[강아!]

십악구흉, 칠열팔준등이 분노하여 사방에서 아들을 덮쳐가는 것을 본 한경파가 비명을 질렀다. 육요 칠절에 버금가는 고수 삼십여명으로부터 합공을 받는 아들이 당장이라도 피곤죽이 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한경파가 우려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삼십 명이 넘는 고수가 공격한다 해도 일시에 막비강에게 들이닥칠 수 있는 인원은 너댓명 밖에 안된다.

그리고 막비강은 이미 육요 칠절정도의 고수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절정고수가 되어있었다. 육요 칠절이 아니라 천하오기라도 지금의 막비강에게는 몇 초 견디지 못할 정도다.

[꺼져라!]

막비강은 사납게 외치며 쌍장을 후려쳤다. 그의 이 일장은 염라철장 곡강의 염라장법이다. 당연히 혈검산장의 악도들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무공이다.

하지만 막비강이 펼친 지금의 염라장법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치우강기가 실려 있었다.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버리는 치우강기가 가미된 염라장법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퍼펑! 꽈르릉!

[케엑!]

[크악!]

무쇠망치로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처참한 비명이 일시에 터졌다.

치우강기에 정면으로 가격당한 혈검산장의 고수 다섯 명이 가슴과 머리통이 으깨져 즉사했다. 요행히 정면으로 얻어맞지 않은 자들도 치우강기가 실린 염라장법의 장풍이 스치는 순간 내장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허억!]

[, 저럴 수가!]

십악구흉, 칠열팔준중 단 번에 다섯 명이 즉사하고 일곱명이 피를 토하며 나뒹굴자 장내는 공포와 전율이 휩쓸었다. 이같은 결과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막비강도 일시 넋이 나갔다. 그는 막불계나 당숙경 모자를 상대할 때는 그래도 차마 살수를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막고천의 수하들이 떼로 덮쳐오자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치밀어 치우강기를 발휘하였다.

헌데 불과 삼성의 치우강기를 염라장법에 가미했을 뿐인데도 단번에 다섯 명의 절정고수를 죽이고 일곱명을 부상 입혔다. 이것은 막비강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막비강으로서도 최초의 살인이다. 아무리 죽어 마땅한 자들을 죽인 것이라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 보다는 치우강기의 가공할 파괴력이 그를 더욱 전율하게 만들었다. 청구단서가 왜 천하제일의 비급이고 청구상인이 어째서 무성(武聖)이라 불리는지 이 일장으로 증명된 것이다.

헌데 막비강이 스스로 벌인 살육에 넋이 나가 있을 때였다.

[이 짐승같은 놈!]

[죽어라!]

동홍선생과 또 다른 한 노인이 살기 어린 고함을 지르며 동시에 막비강을 공격해왔다. 과연 그자들은 육요 칠절을 능가하는 고수라 장풍이 닿기도 전에 숨 막히는 압력이 밀려온다.

넋을 놓고 있던 막비강은 움찔하면서 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퍼펑! 콰쾅!

그 바람에 빗나간 두 노인의 장력이 지면을 강타하여 깊은 구덩이 두 개를 만들었다. 일장을 날려 깊이 석자에 폭이 일장 가까운 구덩이를 만든 두 노인의 공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자들이다!)

막비강은 두 노인이 오봉도인이나 우주도철에 그리 뒤지지 않는 실력의 소유자들임을 알고 내심 긴장했다.

[흐흐흐! 그동안 막장주로부터 후대를 받은 값을 해야겠군!]

[낄낄! 청구단서의 무공이 결코 절대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마!]

두 노인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흘리며 좌우에서 막비강에게 다가왔다.

막비강도 이번에는 방심하지 못하고 양 손에 치우강기를 운집시켰다. 그때였다.

[, 그만 두세요!]

문득 겁에 질려 물러선 사람들을 헤치고 하나의 날렵한 인영이 달려나왔다.

[() 노선배님! () 노선배님! 천첩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이 아이를 해치지 말아 주세요.]

달려 나온 날렵한 인영이 두 노인을 가로 막으며 애원했다. 뜻 밖에도 그 여인은 막고천의 다섯 번째 부인인 냉상영이었다.

냉상영이 가로 막자 두 노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상대는 자신들을 식객으로 맞아준 막고천의 첩인 것이다.

헌데 그들이 난감해할 때였다.

[비키지 못하겠느냐 천한 계집!]

지켜보던 막고천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냉상영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가했다.

[!]

막고천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허리를 걷어채인 냉상영이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머니!]

보고 있던 냉상영의 딸 막영란이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넘어진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허리가 걷어채여 스러진 냉상영은 충격이 컸는지 운신을 못하고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린다.

[이 간악한 악적!]

이 광경을 본 막비강은 대로하였다.

꽈릉!

그는 분노한 나머지 일장에 치우강기를 실어 막고천을 후려쳤다.

[으악!]

다음 순간 막고천은 외마디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그런 그자의 왼쪽 다리가 치우강기에 맞아 그대로 으스러져 버렸다.

[!]

[장주님!]

십악구흉등 살아남은 자들은 경악성을 지르며 막고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급히 막고천의 혈도를 찍어 지혈해 준 다음 들쳐업고 후원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홍선생과 또 한 노인은 막고천 옆에 서 있었지만 막비강의 출수가 너무도 쾌첩한 탓에 미처 막아볼 엄두도 못냈다.

[이 개잡종!]

[죽어라!]

다음 순간 두 노인은 분노의 폭갈을 터트리며 막비강을 덮쳐왔다. 과연 이 노인들의 공력은 심후하기 이를 데 없어 그들이 일단 공세를 발동하자 막비강은 숨이 콱 막히는 압력을 느꼈다.

막비강은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두 절세고수의 합공을 받자 경시할 수 없어 치우강기를 최대한 끌어내 마주 장력을 후려쳤다.

! 꽈다다당!

쌍방의 장력이 맞닥뜨리는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난무하고 바닥에 깊이가 다섯 자가 넘는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

[크억!]

흩날리는 폭음 속에서 세 마디의 신음과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막비강은 기혈이 요동쳐서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반면 두 노인은 피분수를 뿌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두 노인은 치우강기에 진탕되어 내장이 위치를 바꾸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 가세!]

[, 괴물같은 놈!]

겨우 바닥에 내려선 두 노인은 사색이 되어 몸을 날렸다. 단 일합의 격돌이었지만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자신들조차도 막비강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달은 것이다.

막비강이 들끓는 기혈을 갈아앉혔을 때 명륜당 앞 마당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에 맞아 죽은 다섯 구의 시신만이 널려있을 뿐이었다.

혈검산장의 무리들은 막비강이 십악구흉등을 일장에 다섯 명이나 격살하고 막고천이 삼고초려하여 초빙한 두 명의 전대 기인조차도 간단히 패퇴시키자 공포에 질려 뿔불이 달아나 버린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 막비강은 그제서야 막고천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어머니 한경파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혈검산장의 무리들은 달아나면서 한경파와 냉상영등 여자들도 함게 끌고 사라진 것이다.

[막가야! 숨어도 소용없다!]

막비강은 사나운 고함과 함께 몸을 뽑아 올려 막고천 일행이 사라진 후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일단 생모 한경파를 막고천의 마수에서 구해내 혈검산장을 떠날 작정을 했다. 생모에게 상세한 내막을 물은 다음 부친 염라철장의 피맺힌 원한을 갚을 심산이었다.

 

* * *

 

(모두 어디로 사라졌지?)

헌데 후원에 들어선 막비강은 어리둥절해졌다. 그 짧은 사이에 막고천뿐만 아니라 생모를 비롯한 막고천의 처첩들도 모두 사라져 버려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주위에 내가 모르는 은밀한 밀실이 있구나!)

막비강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기다!)

이내 막비강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한쪽 옆의 담벼락 밑에 몇 방울의 핏자국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

콰쾅!

막비강은 즉시 그 담장을 향해 일장을 갈겼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담장이 왈칵 무너지며 과연 그 뒤쪽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 이젠 독 안에 든 쥐다! 막가 노적아!]

막비강은 온몸으로 살기를 토해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이 곧 끝나고 한 칸의 밀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출구가 없는 그 밀실은 텅 비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밀로가 있는 것일까?)

막비강은 갸웃하며 사방의 벽을 두드려 보았다.

텅텅!

헌데 벽을 두드리자 둔중한 금속성이 나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방이로군! 사방 벽이 철벽(鐵壁)이라니...! 만일 누가 이 안에 들어왔을 때 문을 봉쇄해 버린다면 꼼짝없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막비강은 갑자기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을 느꼈다.

(설마 함정(陷穽)?)

막비강은 질겁하며 다급히 밀실 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한걸음 늦고 말았다.

쿠쿠쿵!

돌연 육중한 굉음과 함께 입구가 다섯 치 두께의 철문으로 막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야앗!]

막비강은 사색이 되어 맹렬히 장풍을 날렸다.

꽈릉!

하지만 굉음과 함께 먼지가 우수수 떨어질 뿐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이런!]

막비강은 비로소 자신이 막고천이 판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고 신음했다. 그때였다.

[크크크! 꼴좋구나, 망나니 녀석!]

어디선가 악에 받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막고천이었다.

막비강은 분노하여 외쳤다.

[이 악적!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나서라!]

[흐흐! 네놈은 죽어 마땅한 패륜아다! 그 안에서 아사 직전이 되면 꺼내 주마!]

[닥쳐라!]

콰르르릉!

막비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맹렬히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철실 전체가 무너질 듯이 진동하며 요동을 쳤지만 벽은 깨어지지 않았다.

[크크크! 발악해 봐야 소용없다! 그 방은 사면이 한철(寒鐵)로 주조되어 만 근의 화약으로도 깨뜨릴 수가...!]

꽈르르릉!

막고천의 득의에 찬 음성은 다음 순간 요란한 폭음에 묻혀 버렸다. 막비강이 이번에는 치우강기를 최대한 일으켜 철문을 후려친 것이다.

우두둑!

그러자 굉음과 함께 철문의 중앙이 움푹 우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십여 번만 더 치면 무너뜨릴 수 있다!)

막비강은 새삼 치우강기의 위력에 놀라며 재차 장력을 날렸다.

콰드득!

이번에는 좀더 큰 폭음이 터지며 문의 형상이 이지러졌다.

[... 괴물 같은 놈!]

어디선가 지켜보던 막고천의 음성이 공포로 물들었다.

[독무! 독무(毒霧)를 안쪽으로 내뿜어라!]

푸스스스! 쉬익!

막고천의 두려움에 질린 일갈에 이어 철실의 사방 모서리에서 자욱한 운무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비강은 천오주를 지닌 탓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헛수고라는 걸 알려 주마! 곧 나가서 죽여 주마!]

꽈르릉!

막비강은 독무는 무시하고 다시 철문을 부수는 데 전념했다.

[으으으! 만독불침이란 말이냐? ... 가자!]

겁에 질린 막고천의 음성이 급히 멀어졌다. 독도 무서워하지 않는 막비강의 모습에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으하하하! 지옥 밑구멍이라도 널 숨겨 두지 못한다!]

! 콰쾅!

막비강은 살기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장력을 후려쳤다.

헌데 그때였다.

(허억!)

막비강은 돌연 부르르르 몸을 떨었다. 갑자기 아랫배 깊은 곳에서 무서운 열기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 아차! 이놈이 다급한 김에 최음제(催淫劑)도 독무에 섞어 흘려보냈구나!)

막비강이 대경실색하여 호흡을 멈추었으나 이미 늦었다. 방심하는 사이 다량의 최음제를 들이마신 그의 전신은 삽시에 불덩이처럼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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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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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千世門崩壞

 

 

 

동천목산(東天目山).

기이절륜한 형상의 군봉들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눈앞의 손가락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어둠이었다.

스스스

돌연, 대지를 짓누른 암천(暗天)으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날아갔다.

그것은 놀랍게도 사람의 그림자였다.

이 깊고도 험한 천목(天目)에 웬 야행인인가?

휘르르!

! 한 명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또다시 검은 인영들이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십명... 이십명... 백명... 오백...

!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영들, 마치 소리없이 밀려드는 조수(潮水)와 같았다.

수천 명의 인영이 움직인다.

헌데,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인영들이 움직이는 데에도 조그만 소성하나 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뭇가지 하나 꺾이지 않고 조각들 하나 구르지 않았다.

이를 보아 야행인들이 모두 최상승이 내공을 지닌 인물들 임을 알 수 있었다.

휘익!

문득, 선두의 야행인이 높직한 바위 위로 날아올라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널직한 곡구였다.

헌데 허둠 속에서도 곡구전체가 부연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안개 사이사이로 수많은 돌무더기들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자연히 쌓인 돌무더기로 보일 정도로 무질서하다.

하지만, 기문진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즉시 돌무더기들이 오묘한 현기를 내포한 진을 이루고 있음을 알 것이다.

스스스

그대 십여 명의 몽면인이 앞으로 나와 조심조심 곡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반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돌연, 곡구에 깔렸던 현무가 소리없이 사라졌다.

휘익!

그와 함께 선두의 야행인이 곡구로 날아들어갔다.

스스슥스슥!

뒤이어 수천의 고수들이 곡구로 날아들어갔다.

이미 진식(陣式)은 그 힘을 잃은 듯, 야행인들의 전진에 장애가 되질 못했다.

"...!"

"...!"

곡구를 빠져나온 야행인들은 발길을 멈추었다.

휘이잉!

한 줄기 밤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야행인들 앞에 방대한 분지가 어둠에 잠긴 채로 나타났다.

헌데, 수만 장이나 되는 분지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고루거각들이 장엄하게 벌려있지 않은가?

깊디 깊은 천목산중(天目山中)에 이런 거창한 고루거각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한 일이다.

야행인들의 시선이 긴장으로 번뜩였다.

"시작하랏!"

야행인 중 한 명이 나직이 소리쳤다.

휘익휘익!

그러자 백여 명의 야행인들이 허공으로 날았다.

그들은 각기 커다란 뭉치를 안고 분지를 둘러싼 절벽 위를 달려갔다.

이를 본 중인들은 즉시 무엇인가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뒤이어, 분지의 사방절벽에서 흐릿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들은 기이하게도 불어오는 산풍에 흩날리지 않고 분지로 깔려들어갔다.

삽시에, 분지는 흐릿한 연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 연기들은 마치 악마의 손길같이 전혀 흩어지지 않으며 스물스물 분지의 곳곳으로 스며든 것이다.

"...!"

"...!"

중인들은 연기가 분지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며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이윽고, 다시 반각 정도가 지났다.

그때는 점차 연기도 사라지고 있었다.

"가랏!"

선두의 야행인이 나직이 외치며 분지로 날아들었다.

스슥스스슥!

그 뒤로 수천의 야행인들이 소리없이 분지로 뛰어들었다.

"누구냣?"

우렁찬 폭갈이 터졌다.

야행인들이 분지에 내려서는 순간 사방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여기저기서 많은 횃불들이 일어났다.

"쳐랏!"

한 소리 일갈과 함게 야행인들은 전면으로 덮쳐들었다.

"와아"

"적이닷! 적의 내습이닷!"

창창!

"크아악"

"아악!"

삽시에, 조용하기만 하던 분지는 아수라지옥으로 변해갔다.

수천의 야행인들은 질풍노도같이 휩쓸어 나갔다.

"크흑... 이럴 수가... ... 독이..."

분지를 지키던 인물들이 눈을 부릅뜨며 쓰러져갔다.

이미 자기도 모르게 중독당한 분지 내의 고수들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갔다.

그 무렵, 곡구부위의 절벽에는 한 명의 백포인이 나타났다.

전신에 하얀 백포를 걸친 그 인물은 초로에 접어든 중년인이었다.

그는 이미 공력이 초극에 이른 듯이 눈에서 신광이 사라져 있었다.

"천세문(千世門)... 안되었지만 그대들의 이천 년 기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중년인이 중얼거렸다.

아 천세문(千世門)!

분지의 대장원이 바로 천세문(千世門)이란 말인가?

이천 년 동안 신비 속에 싸여있던 천하제일비문(天下第一秘門).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을 만들었다는 신비대파!

지금, 그 신비의 대파가 무너지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말이다.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나 별 수 없다. 천하제패를 위해서는 필히 무너뜨려야 할 장애물이니까... 그리고 본교가 겪은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천세문에는 안된 일이지만 그들의 이천 년 정화가 모인 천세광무결(千世廣武訣)이 필요하다."

배포인은 중얼거렸다.

효웅(梟雄)으로서의 갈등이 그자의 얼굴에 떠올랐다.

휘익한 줄기 인영이 백포인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그자는 문사차림의 중년인이었다.

심기가 깊게 생긴 모습의 인물이다.

그자는 즉시 백포인에게 한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

"제자, 교주님을 뵙습니다."

백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인, 상황은 어떤가?"

중년유사가 공손히 대답했다.

"구대전주(九大殿主)라는 늙은이들과 그들의 직속 정예들이 제법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자들도 모두 단명미심향(斷命迷心香)에 중독 되어있는지라, 오래 저항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천세비동(千世秘洞)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수석진주인 기전주(奇殿主)만이 천세비동을 열 수 있습니다."

"좋다. 본 교주가 친히 가보겠다."

백포인은 몸을 날렸다.

스스스곧 중년유사도 그 뒤를 다랐다.

 

쾅콰르릉!

"크아악"

검광이 번뜩이며 혈화가 허공을 수놓았다.

수천의 군웅들은 질풍노도같이 밀려들어갔다.

외곽의 일진(一陣) 전각군들이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크아악"

촉망중에 대항하던 천세문도들은 허공을 거머쥐며 쓰러져 갔다.

이미 중독된 상태인지라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

군웅들은 단번에 최초의 방어선을 돌파, 곧장 오십여 장의 뒤쪽으로 서 있는 전각군들을 향하여 밀려갔다.

그들이 오십여 장 넓이의 공지를 가로지를 때였다.

슉슈슉

"으아악!"

갑자기 지면으로부터 수많은 강전(强箭)들이 튕겨졌다.

지면에 함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때문에 군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단번에 수백의 고수가 쓰러져 갔다.

그러나, 공지가 시신으로 뒤덮이자 강전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천세문의 용사들이여! 죽음으로 자기 위치를 고수하라."

한 마디 창노한 일갈이 터졌다.

뒤이어 한 명의 백발동안의 노인이 날아오며 소매를 휘둘렀다.

촤르르

수백 송이 화광(火光)이 노인의 소매에서 떨쳐졌다.

"아악"

단번에 군웅들의 전열이 무너졌다.

"그자가 천세문 기전주요. 하지만 그자도 중독된 상태이니 두려워할 것 없오."

중인들 사이에서 음교한 일갈이 터졌다.

"와아"

주춤 하던 군웅들이 벌떼처럼 밀려들었다.

"!"

그러나 비록 중독된 상태라 하여도 기전주라는 노인의 공력은 무서웠다.

"케엑"

수십 줄기 강기가 노인의 소매에서 튕겨지며 군웅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갔다.

"수석전주! 저희들이 왔습니다."

기전주가 군웅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데 두 줄기 인영이 날아들었다.

칙칙한 회인과 섬칫한 혈의를 걸친 노인들이었다.

"마전주(魔殿主), 사전주(邪殿主), 다른 곳의 상황은 어떻소?"

기전주가 쌍장을 휘두르며 두 노인에게 물었다.

"어협!"

마전주가 기합을 지르며 군웅들을 휩쓸어가 기전주는 사전주와 뒤로 물러섰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유전(儒殿) 휘하 백팔유사(百八儒士)와 불전(佛殿)휘하 칠십이금강(七十二金剛)은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나머지 칠개 전 휘하의 정예들은 폐사림(廢死林)에 최후의 저지선을 펴고 있읍니다만... 아무래도 폐관중이신 문주님을 출관하시도록 하여야할 것 같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주모님과 아가씨는 어찌하고 계시오?"

[, 두 분께선 사대신파와 소녀위대(少女衛隊)의 호위를 받아 비로(秘路)로 곡을 빠져 나가셨습니다."

", 다행이구려. !"

말을 하던 기전주의 안색이 홱 변했다.

어느틈엔가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세 사람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진을 이루고 있는데 그 진세가 심상치 않았다.

"! 억겁파라진(破羅陣)!"

마전주의 인상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와함께 기전주와 사전주도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억겁파라진(破羅陣).

 

이는 마교(魔敎) 최대의 걸진이다.

소림의 백팔나한진과 버금간다고 이야기될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실전되었던 진식이었다.

실전된 줄 알았던 마교 최대의 절진이 이곳에서 재현되었던 것이다.

"... 역시 본문을 친 것은 마교였군."

사전주가 부드득 이를 갈았다.

반면 마전주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구보다도 억겁파라진의 위력을 잘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함이 많겠소. 수석전주께서는 곧 천세비동으로 가서 문주님을 출관시켜야 하겠습니다. 이 상태라면 천세비동(千世秘洞)마저 위험합니다."

마전주가 침중히 말했다.

"알겠오. 허나 억겁파라진을 뚫고 나가기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오."

기전주의 말에 마전주의 눈에 한 줄기 결연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활로는 제가 열겠습니다. 그 뒤는 사전주가 막아주십시오."

기전주는 흠칫했다.

"설마, 마전주께선 최후인..."

마전주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헛허...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면 죽어야할 때에 죽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전주의 말에 기전주는 침통한 표정이 되었다.

위잉위잉!

그무렵 삼인을 포위한 억겁파라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삼인은 무형의 압력에 몸을 떨었다.

"수석전주 가십시오! 사전주 뒤를 부탁하오."

마전주가 이를 악물고 전면으로 뛰쳐나갔다.

"마전주!"

기전주가 처연히 불렀다.

"핫하... 내세에서나 보십시다."

마전주가 우렁차게 웃으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와함께 억겁파라진의 신형이 일시에 마전주를 무찔러갔다.

"크하하핫! 옥쇄마혼(玉碎魔魂)!"

마전주의 폭갈이 터졌다.

그리고

콰르릉파우웅 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크아악"

삽시에 억겁파라진의 일부가 허물어지며 허공으로부터 뜨거운 선혈이 쏟아져 내렸다.

"마전주!"

기전주는 침통히 부르짖으면서도 무너진 억겁파라진세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의 노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우우웅

그러나, 주춤 하던 억겁파라진이 다시 이어지려 했다.

"이곳은 제게 맡기시고 어서 가십시오."

사전주가 홱 돌아서며 외쳤다.

"사전주, 미안하오! 살아 남는다면 다시"

기전주가 분루를 흘리며 진세로 부딪혀갔다.

"크하핫! 사혼광멸(邪魂狂滅)!"

사전주가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콰르릉

끔찍한 사기(邪氣)를 띄운 기류가 억겁파라진을 휩쓸었다.

"크으윽!"

단번에 십여 명의 마존이 즉사했다.

휘이익

그사이로 기전주는 쾌첩하게 전면으로 쏘아나갔다.

제 이전각군을 빠져나가면 빽빽이 들어찬 고사림(枯死林)이 나타난다.

지금 그 고사림에서 처절한 난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일곱 무더기의 무사들이 자신들보다 수십 배나 많은 군웅들을 맞아 분전하고 있었다.

휘익!

기전주는 그 모습을 부면서도 이를 지그시 물며 앞으로 나갔다.

"저자가 기전주입니다."

문득, 두 명의 인물이 폐사림 앞에 내려섰다.

그들은 폐사림을 날아넘는 기전주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교주라는 자와 모용인이라는 중년유사였다.

"저 늙은이는 아마 문주를 불러내기 위해 가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 좋다. 네가 가서 저자를 속여 비동(秘洞)의 금제를 열도록 하라."

"!"

중년유사는 쾌첩하게 쏘아나갔다.

그뒤로 교주라는 자도 신속히 따라나갔다.

 

기전주는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이곳이 천세문 이천 년 역사가 비장된 천세비동이다.

"누구냣?"

막 철문으로 다가서던 기전주는 홱 돌아섰다.

"수석전주, 접니다."

한 명의 중년유사가 기전주 앞으로 날아 내렸다.

기전주의 안면에서 긴장의 빛이 사라졌다.

", 유전주였구려. 마침 잘왔소. 빨리 비동으로 들어가 문주님을 출관시키겠오."

"걱정마십시오."

기전주는 돌아서서 문고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찰칵

이어 그는 자기 오른손에 낀 지환(指環)을 철문의 흠에 끼워넣었다.

쿠르릉

둔중한 굉음이 일며 문이 열렸다.

그들 앞에는 야명주로 환하게 밝힌 깊은 동굴이 나타났다.

"유전주, 부탁윽!"

기전주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유전주가 돌연 기전주의 등에 일장을 후려친 것이다.

"모용인... ... 네놈이..."

기전주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이를 갈았다.

"흐흐흐... 수석전주, 본인은 배신한 것이 아니오. 본인은 마교 팔대마령(八大魔靈) 중 일인일 뿐이오."

"... 네놈이 마교의 첩자..."

기전주가 실색을 하였다.

"크흐흐... 문주도 뒤따라 갈터이니 늙은이 먼저 지옥에 가 기다리시구려!"

유전주는 일장을 후려쳤다.

기전주는 속수무책으로 날아오는 장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퍼엉!

"크악!"

가슴에 일장을 맞은 기전주는 붕 떠올랐다가 모질게 나뒹굴었다.

"흐흐..."

유전주는 음악하게 웃은 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십여 장을 들어가니 또 다른 철문이 나타났다.

끼이익

그곳에는 별반 금제가 없는 듯 철문은 둔중하게 열렸다.

"으음"

모용인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곳부터는 완전히 만년한철로 주조한 길 통로였다.

사방의 벽이 모두 철벽으로 되어 있어 어떤 압력에도 견딜 수 있게 되어있다.

"흐흐... 고맙게도 금제가 모두 해체 되어있군!"

모용인은 눈알을 굴리며 긴 통로를 빠져나갔다.

곧 그는 넓은 광장에 이르렀다.

헌데, 그곳에는 두 개의 웅덩이가 있었다.

일 장 넓이의 웅덩이는 맑디맑은 옥수가 고여있고 십 장 넓이의 웅덩이에는 푸르스름한 물이 고여 있었다.

모용인은 푸르스름한 물이 극히 두려운 듯이 조심조심 그곳을 빠져나갔다.

광장 맞은편에는 또 다른 석문이 있었다.

끼익!

석문이 열리자 종이냄새가 확 끼쳤다.

그곳은 방대한 서고(書庫)였다.

족히 수백만 권은 될 듯한 분량의 서적들이 삼 장 높이의 수백 개 서가에 가득히 꽂혀 있었다.

모용인은 수백만 권의 장서에 일별도 주지않고 앞으로 나갔다.

곧 그는 또 다른 석문에 이르렀다.

그다음에 나타난 석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석실 중앙에 높은 석대가 놓여 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 십단 높이의 서가가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서가를 훑어본 모용인의 눈에 탐욕의 빛이 번뜩였다.

서가는 하나같이 천하를 울리던 인물들의 신공비급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니 유전주, 어쩐 일로 예까지 왔는가?"

문득 맞은편 석벽이 갈라지며 한 명의 중년인이 걸어나왔다.

매우 청수한 모습의 인물이다.

모용인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사태가 위급하여 대죄를 무릅쓰고 비동에 들어왔아옵니다."

중년인, 즉 천세문주의 얼굴에 가벼운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기에 사태가 급하다는 얘기인가?"

", 본문의 전 제자들이 암중에 중독된 상태에서 마교를 중심으로한 수천의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아옵니다."

천세문주는 경악의 빛을 띄웠다.

", 알겠다. 곧 금제를 발동시키고 나가보자!"

천세문주는 급히 마지막 밀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리 넓지 않은 석실이었다.

중앙에 작은 석탁이 하나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끼이익

천세문주는 벽에 난 벽장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두 권의 비급이 나타났다.

천세문주는 비급들을 한쪽으로 밀쳤다.

그러자 벽장 뒷면에 두 개의 홈이 드러났다.

천세문주는 자신의 손목에 걸린 청홍쌍환(靑紅雙環)을 그 홈에 끼우고 지그시 눌렀다.

쌍환이 반즘 들어갔을 때였다.

슈슈슈

"!"

천세문주는 골수까지 에이는 살기에 기겁을 하며 돌아섰다.

동시에 그의 우장에서 시뻘건 혈기(血氣)가 폭사되었다.

"으악!"

"흐읍!"

선혈이 튀었다.

유전주와 천세문주는 똑같이 튕겨져나갔다.

천세문주의 가슴에는 어느사이엔가 손바닥만한 륜()이 박혀있었다.

"탈명비륜(奪命飛輪)! 네놈이 감히 본문을 배신하고..."

천세문주는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대갈을 터뜨렸다.

위잉!

무지막지한 강기가 쓰러진 유전주는 박살낼 듯이 쏟아졌다.

콰릉!

간일발의 차이로 모용인은 천세문주의 일장을 피했다.

!

그자는 이어 민첩하게 두 번째 석실로 달아났다.

"능지처참하리라!"

천세문준가 이를 갈며 쫓아갔다.

위이잉!

천세문주의 장력이 두 번째 석실을 빠져나가려는 모용인의 등으로 밀려갔다.

쾅콰르릉!

다음 순간. 또 다른 장력이 밀려와 천세문주의 장력과 충돌하였다.

"으윽!"

천세문주는 둔중한 신음을 토하며 비칠비칠 물러섰다.

그의 가슴에선 끊이지 않고 선혈이 흘러내렸다.

스스스

어느사이엔가 교주라는 자가 석실에 들어와 있었다.

"미친 수작 말아라!"

천세문주는 대갈했다.

그러나 내심으로 그는 오싹한 한기가 끼침을 금치 못했다.

마교주는 결코 자기보다 하수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은 치명적인 암습을 받지 않았는가?

(어떻게 하든 마지막 금제를 발동시켜야 한다.)

천세문주는 속으로는 얼음장같이 냉정해지고 있으나 겉으로는 대노한 것같이 보였다.

"받아랏!"

한 줄기 담담한 향기를 띄운 강기가 폭사되어 갔다.

마교주도 지체않고 마주 일장을 쳐내었다.

콰르릉

석실이 뒤흔들렸다.

중앙의 석대가 박살이 나며 서가에 곶힌 비급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읏강하다.)

양인은 동시에 휘청하였다.

천세문주는 마음이 급해졌다.

"타핫! 굉천참살강(轟天斬殺罡)!"

천세문주의 쌍장에서 시퍼런 강기가 폭음을 내며 쏟아졌다.

"! 천마혈인(天魔血印)!"

마교주도 지체않고 쌍장을 쳐들었다.

콰릉파앙!

석실바닥이 움푹 패여 날아갔다.

삽시에 오십여초가 지났다.

"와아"

양인이 대치하고 있는데 수십 명의 군웅들이 밀려들어 왔다.

"! 이것은 무림천년기전(武林千年奇典)! 낙일산화경(落日散花經)이닷!"

한 무림인이 바닥에서 한 권의 비급을 줏어들고 외쳤다.

"끄악"

다음 순간 그자는 피곤죽이 되어 즉사했다.

수십 줄기 장경이 그자를 후려친 것이다.

단번에 석실을 아수라지옥으로 변했다.

무림인들은 서가를 마구 뒤지고 무림천년기전 중의 비급을 탈취하려고 서로를 죽였다.

"괘씸한 놈들!"

천세문주는 대노했다.

콰르릉!

"아악!"

막 태령진해를 집어들던 자가 가슴이 뽀개져 즉사했다.

그러나, 고수들 사이의 사움에서 한눈을 파는 것은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

"으흑!"

천세문주는 마교주의 일장을 가슴에 맞았다.

!

그는 그대로 마지막 석실로 튕겨져 들어갔다.

휘익!

그러나 천세문주는 사력을 다해 몸을 뒤집으며 반쯤 박힌 쌍환을 힘껏 눌렀다.

우르릉!

그러자 비동이 금시라도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쉬이잉

백포인은 다급하게 천세문주의 등으로 일장을 후려쳐내었다.

퍼엉!

"크윽!"

천세문주가 다급히 막았으나 그의 왼팔이 으스러져 나갔다.

"실례하오!"

마교주는 급히 허공섭물의 공력으로 두 권의 비급을 끌어당겼다.

"어림없다!"

천세문주는 사력을 다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쩡쩡

거의 고형화된 검은 강기가 폭사되었다.

콰릉

"으음!"

마교주는 쌍장이 뽀재기는 듯한 통증에 비칠비칠 물러섰다.

천세문주도 가슴이 으스러져 쓰러졌다.

우르릉

그러나, 금제가 거의 발동한지라 마교주는 다급히 석실을 빠져나갔다.

콰릉콰르릉!

천지개벽.

천세문이 서 있던 분지 전체가 뒤흔들렸다.

콰릉쩌적

기어코 지면이 갈라지고 땅이 뒤집혔다.

휘익!

그사이로 수십 줄기 인영이 암천을 가르며 분지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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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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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단정관이로구나!> <지옥십관의 마지막 관문이 단정관인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 공포에 질리고.

<우리가 살려면 가엾은 난향이의 몸에서 살점을 발라 내야하는데...> <...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들 곁눈질로 난향이를 보며 갈등. 난향이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면서 울고 있고. 그때

청풍; [모두 내 질문에 대답해라.] 청풍이 입을 열고

아이들이 모두 돌아보고

청풍; [너희들은 자신이 인간이라 생각하느냐?]

정정; [당연한 걸 왜 물어?] + 철두; [물론 난 인간이다.]

다른 아이들도 끄덕이고

지자급1; (이청풍, 저 놈 설마...) 복면 속에서 눈 번뜩이고

청풍; [너희들은 자신이 인간이라는데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결코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는 법이다.]

청풍; [대가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할 수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청풍; [하지만 상대가 정을 준 대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정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 아이들 결연한 표정이 되어 고개 끄덕이고

청풍;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쨍그랑! 들고 있던 비수와 접시중 접시를 바닥에 내던져 깨트리고

난향; [!] 안도와 감격

청풍; [짐승이 아니라 인간으로 죽을 것이다.] 비수를 들고 복면인들 쪽으로 나서고.

지자급1; [이청풍! 오늘 여기서 죽겠다는 것이냐?]

청풍;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을 운명!]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을 뿐인데 무에 두렵겠소?] 비수로 지자급1을 겨누고.

정정; (저 벽창호...) 청풍의 뒷모습 노려보며 갈등하고

정정; (제멋대로 객기를 부리는 바람에 나까지 덤으로 인생 종치게 생겼잖아.) (잘하면 큰 공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속으로 궁시렁 댈 때.

지자급1; [네놈들도 이청풍과 생각이 같은 것이냐?] 다른을 아이들 돌아보며 눈 부라릴 때

쨍그랑! 파삭! 아이들이 대답대신 접시를 바닥에 내던져 박살낸다.

정정; (어쩔 수가 없네.) 파삭! 역시 접시를 떨어트려 깨트리고. 옆에서 철두도 접시를 던져 깨트린다.

지자급1; [이 새끼들이...] 분노

청풍의 뒤로 모이며 비수로 방어자세 취하는 아아들

지자급1; [아깝지만 어쩔 수 없군,] [전부 말살해라.] 인자급 복면인들에게 외치고

! ! 일제히 칼을 뽑으며 다가오는 복면인들. 청풍 일행을 완전히 포위한 채

청풍; (여기까지겠군.) 비수를 든 채 침통한 표정

청풍; (무공이 딸릴 뿐 아니라 여긴 살인상단의 심장부다.)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은 버려야만 한다.)

청풍; (진진이와 어머니의 안위를 확인하지 못하고 죽는 게 유일한 유감이다.) 웃고

지자급1; [쳐라!] 복면인들에게 명령하고

복면인들이 청풍과 아이들을 공격하려하고. 그때

[멈춰라!] 외치는 소리에 일제히 멈추며 돌아보는 청풍과 아이들과 복면인들

파면살주; [무기를 거둬라.]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파면살주. 파면살주 뒤로 소수마녀와 귀파파, 천살로등이 따라 들어온다.

소수마녀의 모습 크로즈 업. 전과 달리 머리에 꽃핀을 하나 꽂고 있다. 그 꽃핀은 단지회가 빈민가에 있는 청풍의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 중 하나

청풍; (저 계집이 나타났다.) 눈 부릅. 그때

[단주님!] [단주님을 뵙습니다.] 복면인들이 급히 소수마녀에게 인사한다.

청풍; (단주!) 경악하고

<저 계집의 신분이 범상치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천하삼대 살수조직중 하나인 살인상단의 단주였을 줄이야.> 소수마녀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파면살주는 멈춰서고. 그 뒤에서 귀파파와 천살로는 문을 닫고 있다.

소수마녀; [이청풍!] [너는 내게 맹세를 했었다.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내 요구 한 가지를 무조건 들어주겠다고!] 청풍과 5미터쯤 거리 두고 멈춰서며

정정; [뭐야? 청풍이 너 저 여자와 아는 사이였어?] 놀라 청풍에게 속삭이고

청풍; [하고 싶은 말이 뭐요?] + (어쩌면 저 계집이 나타난 게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소수마녀; [내 요구는 네가 자객이 되어 날 위해 일하는 것이다.]

청풍; [당신을 위해 뭔가를 해줄 수는 있소.]

청풍; [하지만 나로 하여금 마귀가 되라고 요구하진 마시오.]

소수마녀; [끝내 날 거역하면 죽일 수밖에 없다.]

소수마녀; [물론 널 따르는 아이들까지!] 차갑게 웃고.

청풍; [죽일 수 있으면...] ! 외치며 갑자기 비수를 천장에 달려있는 등들 중 하나에 강하게 던지고.

지자급1; [무슨 짓을...] 놀라며 허리에 찬 칼을 잡고

[!] [!] 귀파파등도 놀랄 때

! 등이 하나 청풍이 던진 비수에 맞아 꺼지고

청풍; [죽여보시오!] 파팟! 정정등 다른 아이들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아 연달아 던진다

! 파삭! 나머지 세 개의 등이 역시 비수에 맞아 깨지며 실내가 확 어두워진다.

파면살주; [조심하게 단주!] 외치며 어둠 속에서 소수마녀를 덮쳐오고. 귀파파와 천살로는 입구쪽에 서있어 반응이 늦었다. 하지만

[멈춰라!] 어둠 속에서 외침이 들려 눈 치뜨며 급정거하는 파면살주.

[움직이면 이 여자가 죽는다!] 다시 들리는 음성. 직후

귀파파; [무슨 일이냐?] 덜컹! 외치며 닫혀있던 문을 다시 연다. 문 밖은 복도지만 등이 걸려 있어 환하고.

[!] [!] 복도의 불빛이 흘러들어 실내가 다시 밝아지자 경악하는 사람들

! 청풍이 소수마녀의 뒤에 달라붙어 비수를 소수마녀의 목에 대고 있다. 소수마녀는 전혀 움직이지 않은 모습이고. 파면살주는 놀라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있고

[단주님!] [! 저놈이 단주님을...] [... 멈춰라!] 복면인들 기겁하고

[!] [역시 청풍이다!] [잘 했어!] 환호하는 아이들. 하지만

정정; (찜찜하네.) 찡그리고

정정; (청풍이의 움직임이 기민했다고는 해도 살인상단의 단주쯤 되는 여자가 저렇게 쉽게 제압당하다니...)

청풍; [부단주! 여러 말 하지 않겠소.] 비수를 소수마녀 목에 바짝 댄 채 파면살주에게 말하고

청풍; [이 여자가 무사하길 바란다면 우리가 여길 무사히 떠날 수 있게 해주시오.]

파면살주; [이청풍! 이곳은 우리 살인상단의 심장부다.] 무뚝뚝

파면살주; [겨우 반년 익힌 무공으로 탈주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느냐?]

청풍; [물론 우릴 죽일 수 있겠지.] [하지만 당신들도 시체 한구를 더 얻게 될 것이오.] ! 소수마녀의 목에 비수를 바짝 들이밀고.

주르르! 그 바람에 비수 날이 소수마녀의 목에 조금 파고 들며 피가 비치고

귀파파; [... 조심해라!] 비명 지르지만

소수마녀; [이청풍!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차갑게 말하고

청풍; [과연 그럴지 두고 보면 알 거요.]

소수마녀; [네가 날 절대 죽이지 못한다는 증거를 원한다면 보여주마.] [내가 머리에 꽂고 있는 장식이 바로 그것이다.]

귀파파; (그러고 보니..) 놀라고. 천살로도 흠칫! 하고

<장신구를 일체 착용하지 않는 단주가 머리에 장식을 달고 있다.> 소수마녀의 머리에 꽂힌 머리핀 크로즈 업

청풍; [머리 장식 따위가 무슨 증거라고...] + [!] 말하며 소수마녀의 머리에 꽂힌 머리핀을 보다가 경악하고

청풍; (... 저 머리 장식은...) 경악하고.

<내가 진진이에게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다!> 자신이 그 머리 장식을 이진진의 머리에 꽂아주던 장면 떠올린다. 이진진은 집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수줍어하고

소수마녀; [이제 네가 왜 날 죽일 수 없는지 알았겠지?] ! 자기 목에 대어진 청풍의 비수를 손가락으로 잡아 떼어내고

청풍; [진진... 진진이를 어떻게 한 거요?] 저항하지 않고 소수마녀의 목에서 비수를 떼며 눈 부릅뜨고

소수마녀; [네 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 청풍의 손목을 잡고

소수마녀; [내게 무례한 대가부터 치러라.] 빠지직! 청풍의 손목을 잡은 소수마녀의 손아귀에서 벼락이 일어나고

빠지지직! 감전되어 온몸이 뻣뻣해지며 퍼덕이는 청풍

[... 청풍아!] [안돼!] 정정과 아이들 비명

파면살주; (왜 초보 자객에게 간단히 제압당했는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고개 끄덕. 안도하고. 그때

[끄으...] 온몸이 벼락에 휘감겨 기절하는 청풍

소수마녀; [버르장머리 없는 놈!] ! 바닥에 청풍을 패대기치고

소수마녀; [끌고 오세요. 다른 것들은 뇌옥에 가둬두고...] 입구로 간다.

파면살주; [그리함세.] 고개 좀 숙이고

소수마녀; (이청풍!) 차갑게 웃고

<넌 결코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귀파파, 천살로와 함께 나가는 소수마녀의 뒷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그 뒤에서 파면살주가 청풍의 팔을 잡고 일으키고. 지자급1과 복면인들이 아이들 손에서 비수를 뺏고 있다.

 

#146>

살인상단의 비밀 거점 외부 모습. 저녁 무렵.

입구 근처의 높은 절벽. 그 중간쯤에 창문이 나있다. 원형의 창문인데 유리와 쇠창살로 이루어져 있다.

 

절벽 안쪽의 복도.

복도 끝의 문. 도마녀와 검마녀가 지키고 있고

문 안쪽은 넓고 화려한 침실. 침실 한쪽에 직경이 2미터쯤인 원형의 창문이 있다. 밖에서 보이던 그 창문. 침실은 전형적인 여자의 침실. 가구와 화장대, 탁자와 의자, 여성스러운 그림등이 있다. 그림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한 쌍 남녀의 초상화다. 소수마녀를 닮은 서른살 가량의 미녀가 의자에 앉아있고 잘 생긴 사십살 정도의 중년인이 그 뒤에 서서 웃고 있는 초상화. 이 초상화의 남녀는 소수마녀의 부모들이다. 헌데

초상화를 크로즈 업

창가에 놓인 큰 침대에 청풍이 눈 감고 누워있다. 가운형의 잠옷 차림인데 가슴까지 이불을 덮고 있고.

근처 탁자에는 머리핀이 놓여있고

움찔! 하는 청풍.

쏴아! 물소리가 들리고

청풍; (물소리...) 천천히 눈을 뜨고

가만히 누워 상황을 살피는 청풍.

청풍; (향기로운 냄새도 그렇고... 여긴 여자의 침실이다.) 생각할 때

덜컥! 한쪽의 문이 열리며 누가 나온다.

돌아보는 청풍.

소수마녀; [지금쯤 정신 차릴 거라 생각했다.] 문 안쪽은 욕실. 욕실에서 가운을 입고 나오는 소수마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면서

소수마녀; [잠시만 기다려라.] [너를 보려고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먼지투성이가 되어서 목욕부터 해야만 했다.] 화장대로 가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청풍. 이불을 젖히고. 알몸에 가운 차림이다.

화장대에 앉아서 거울을 보며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 소수마녀. 가운 아랫자락이 벌어지며 미끈한 다리가 드러난다.

청풍이 탁자로 가는 게 거울에 보이고

탁자에 얹혀진 머리핀을 집어드는 청풍.

소수마녀; [네가 도축장에서 처음 일하던 해 누이에게 생일선물로 사준 것이라 들었다.] + (기절해있을 때 최면술을 써서 알아낸 사실이지만...)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말하고. 거울을 통해서 청풍을 보며

청풍; [진진이는... 무사한 거요?] 머리핀을 보며 말이 잘 안나오고

소수마녀; [위험한 상황을 겪긴 했다.]

소수마녀; [네 어머니는 단양에서 배를 타고 경항운하를 따라 태산쪽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이산하의 말. #119>의 장면

 

이산하; [서둘러서... 단양으로 가라.]

청풍; [단양...]

청풍; [어머니가 단양으로 향하고 있습니까?]

이산하; [그렇... .] [네 어머니의 최종 목적지는... 무림맹이 있는 태산인데...] 목소리가 흐려진다.

이산하; [단양에서 배를 타고 경항운하(京杭運河;북경과 항주를 잇는 대운하)를 따라 태산으로 갈 계획이었다.]

회상 끝

 

소수마녀; [배를 타려고 한 건 물론 현명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걸 미리 짐작하고 포구에서 기다리던 단지회의 파락호들에게 잡히고 말았지.]

소수마녀; [거기서 끔찍한 일을 당할 뻔 했지만 다행히 내가 도착하는 게 늦지 않아서 구할 수 있었다.]

청풍; [당신이 어머니와 진진이를 구했다는 거요?]

소수마녀; [네게 은혜를 한 번 더 입힐 생각으로 한 일이니 고마워할 건 없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서 묶으며

청풍; [어머니와 진진이는 지금 어디 있소?]

소수마녀; [안심해라. 연금 상태이긴 하지만 잘 대접받고 있다.]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는 걸 마무리 짓고

청풍; [내게 뭘 원하는 거요?] 탁자 앞의 의자에 앉고

소수마녀; [말했지 않느냐? 날 위해 자객이 되라고...] 돌아앉고

청풍; [먼저 어머니와 진진이를 만나게 해주시오.]

소수마녀; [가족을 만나고 싶으면 날 위해 열명의 인간을 죽여라.]

거리를 두고 앉아서 서로를 노려보는 청풍과 소수마녀. 이윽고

청풍; [솜씨 좋은 자객이라면... 당신네 살인상단에도 넘치도록 많지 않소?]

소수마녀; (바짝 날이 서있더니 조금은 수그러들었네.) + [물론 우리 살인상단의 자객들 중에는 대단한 실력자들이 많지.]

소수마녀; [문제는 내가 노리는 표적들도 그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방비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청풍; [그래서 허를 찔러 오히려 초보에 자객답지 않은 날 보내서 죽이려는 거요?]

소수마녀; [지금의 너는 약하다. 무공도 보잘 것 없고!]

소수마녀; [일정 경지 이상에 오른 고수들이라면 한눈에 그걸 알아볼 것이고...] [자연스럽게 방심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소수마녀; [그 틈을 이용하면 그자들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청풍; [열명... 열명만 죽이면 어머니와 진진이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오.] 어쩔 수 없이 타협

소수마녀; [약속하마.] + (실랑이가 겨우 끝났네.) 내심 안도. 표정에는 변화가 없고

청풍; [내가 죽여주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구요?]

소수마녀; [그자들이 누군지 알려주기 전에 내가 누군지부터 알려주겠다.] ! 의자에서 일어나고

이어 부부의 초상화로 걸어가고

소수마녀; [이분들이 누굴 것 같으냐?] 초상화를 보면서

소수마녀를 닮은 여자 크로즈 업

청풍; (부부중 아내쪽이 저 여자와 판박이다.) + [단주의 부모님인 것 같소이다만...] 넘겨짚고

소수마녀; [그렇다. 이분들이 내 부모님들이다.] 초상화를 쓰다듬고

소수마녀; [아버지는 전대 살인상단의 단주셨던 살인대작(殺人大爵)이셨다.] 부부중 남자쪽을 보며

청풍; (그래서 나이도 실력도 파면살주나 천자급 자객들에게 뒤지면서도 살인상단의 단주가 되었구나.)

소수마녀;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살인상단은 마교 소속이다.]

청풍; [그렇습니까?] 놀라고

소수마녀; [정확히 말하자면 살인상단은 마교를 이루는 사대마가중 암흑마가에 속한다.] 초상화를 보며

소수마녀; [그리고 어머니는 암흑마가의 전대 가주셨던 암흑수라(暗黑修羅)라는 분의 두 딸중 장녀셨다.] 초상화 속의 여자를 보며

청풍; (저 여자가 암흑마가 가주의 핏줄이었다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 거물이었구나!) 놀라고

소수마녀; [하지만 외조부, 암흑수라님은 삼십여 년 전 마교가 멸망할 때 무림맹주 섭장천과 싸우다 입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돌아서고

소수마녀; [문제는 외조부님에게 아들이 없으셨다는 점이었다.] 탁자로 오고

소수마녀; [그래서 두 명의 사위중 한명이 대를 이어야 했고...] [당연히 큰 사위인 아버지가 암흑마가의 가주가 되셨어야 했다.] 청풍의 건너편 의자에 앉고

청풍; [영친 신변에 불상사가 생긴 거요?]

소수마녀; [암흑마가의 가주로 취임하신 직후 아버지는 의문의 실종을 당하셨다.] 고개 끄덕이고

소수마녀; [이에 둘째 사위... 내게는 이모부가 되는 기절초괴(奇絶超怪) 패륵(覇勒)이란 인물이 암흑마가의 가주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다.]

청풍; (어쩐지 저 여자의 아버지가 실종된 데에는 음모가 개입되어 있는 것 같다.)

소수마녀; [아버지가 실종되시자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도 곧 세상을 등지셨는데...] [그때 내 나이 겨우 다섯 살이었다.)

청풍; (의외로 저 여자 나이가 많구나. 거의 어머니 또래일 것이다.)

소수마녀; [본론으로 들어가서...] [네가 죽여주어야할 자들은 암흑마가의 적들이다.] 탁자 건너편의 청풍을 지긋이 보고

청풍; [무림맹의 고수들을 죽여 달라는 거요?] 긴장

소수마녀; [물론 네가 죽여야할 열명 중에는 무림맹 소속도 있다.] 끄덕

소수마녀; [하지만 대부분은 마교를 멸망으로 이끈 배신자들이다.]

청풍; [배신자라면 사대마가중 다른 가문의 인간들이겠소,]

소수마녀; [삼십여 년 전 당시 마교의 교주셨던 분은 구천마(九天魔尊) 용백(龍伯)이란 분이셨다.]

 

<사대마가중 천마세가(天魔世家)의 가주이기도 하셨던 구천마존님의 무공은 무림맹주 섭장천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무시무시한 인상을 풍기는 노인이 철면무제 섭장천과 맞서 웃고 있는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마귀같은 인상의 노인이 구천마존 용백. <신마유희>의 구천마존 용백 캐릭터를 그냥 써도 됨

<오히려 본교의 중시조이신 천마께서 남긴 최강의 마병 천마묵장(天魔墨掌)까지 쓸 수 있었다면 섭장천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티니티 워>에 나온 타노스의 건틀렛 같은 장갑이 세워져 있는 것을 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다만 이 장갑은 검은 색이다.

 

청풍; [무림맹주와의 싸움에서 천마묵장을 쓰지 못했다는 말로 들립니다.]

소수마녀; [천마묵장은 그 마력이 실로 가공해서 보통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린다.]

소수마녀; [그래서 평소에는 천마뢰(天魔牢)라는 곳에 밀봉해서 보관해왔다.]

청풍; (얼마나 무시무시한 병기이기에 쓰지 않을 때는 밀봉을 해두어야 한단 말인가?) 놀라고

소수마녀; [천마뢰에는 천마께서 술법으로 펼친 금제가 걸려있다. 그 때문에 힘으로는 절대 열 수가 없고...]

소수마녀; [두개의 열쇠가 있어야 천마뢰를 열고 천마묵장을 꺼낼 수 있다.]

청풍; [혹시 배신이라는 것이...] 놀라고

소수마녀; [두개의 열쇠는 광명륜(光明輪)이란 팔찌와 생사교(生死橋)라는 칼이다.]

청풍; (광명륜과 생사교!) 두근! 심장이 뛰고

청풍; (오늘 처음 듣는 이름들인데 어째서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뛰는 건가?)

소수마녀; [광명륜과 생사교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지닌 무기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의 진정한 가치는 천마뢰의 금제를 해제하는 열쇠라는 점이다.]

청풍; [누군가... 광명륜과 생사교를 빼돌렸겠습니다.] [그 때문에 구천마존은 무림맹주와의 결전에서 천마묵장을 쓰지 못했을 테고...]

소수마녀; [문일지십(聞一知十;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안다.)이라더니...] 조금 웃으며 청풍을 보고

좀 멋쩍은 표정 짓는 청풍

소수마녀; (순진하기도 하지) + [섭장천이 마교로 쳐들어오기 직전, 천마묵장과 함께 천마삼보(天魔三寶)로도 불리는 두 개의 열쇠중 생사교가 사라졌었다.]

소수마녀; [결국 구천마존께서는 천마묵장 없이 섭장천과 싸우게 되셨고...]

 

<원래의 구천마존님 실력이라면 섭장천을 이기진 못해도 지진 않으셨겠지만 생사교의 도난 건으로 심란해진 상태라 그만 패사(敗死) 하시고 말았다.> 쓰러진 구천마존을 보며 합장하는 섭장천. 섭장천도 온몸이 피투성이고. 주변에서는 쌍뇌신로, 사신장을 포함한 무림맹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

 

청풍; [결국 결전 직전에 생사교를 빼돌린 자가 마교를 멸망시킨 원흉인 셈이군요.] 끄덕이고

소수마녀; [우리 암흑마가의 짓은 아니다.] 고개 젓고

소수마녀; [외조부 암흑수라께서는 비록 마교도이긴 해도 잔꾀와 편법을 혐오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청풍; [다른 두 가문에 혐의가 있겠습니다.]

소수마녀; [번뇌마가(煩惱魔家)와 혈전마가(血戰魔家)는 무림맹과의 결전에 주력을 참전시키지 않았다.]

소수마녀; [덕분에 두 가문은 여전히 세력을 온존시키고 있다.] [이게 무얼 의미하겠느냐?] 강렬한 눈빛

청풍; [생사교의 도난은 두 가문의 소행일 가능성이 짙군요.] 끄덕

소수마녀; [번뇌마가와 혈전마가는 무림맹과의 충돌을 꺼려하여 암중에서 암약하고 있다.] 심각

소수마녀; [그래도 무림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몇 명의 전위(前衛)를 세상에 뿌려놓고 있다.] 살기 어린 눈빛

청풍; [단주가 날 이용해서 죽이려는 자들이...]

소수마녀; [바로 마교를 배신한 번뇌마가와 혈전마가의 악귀들이다.] 강렬한 표정으로 말하고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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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붉은 머리띠를 한 도사가 되어 (1)

 

 

 

동쪽 절벽은 아주 높고 컸다.

이매봉은 한시간이나 벽호공(壁虎功)을 펼쳐 절벽을 탄 후에야 천산삼로의 노이가 말한 그 동굴로 짐작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천산삼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일매향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괜한 짓을 했군. 녀석은 대체 어디 숨은 거야? 한가하게 그녀석을 쫓아다닐 시간이 없는데...]

천산삼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매봉은 동굴 입구의 바위턱에 걸터앉았다.

파란 하늘 아래 먹이를 찾아 날고 있는 매 한 쌍이 보인다.

눈에 덮힌 산등성이 주름진 여름 이불자락같고, 높이 솟은 소나무들은 눈으로 치장하고도 푸른 가시창날같다.

바람은 절벽을 만나 하늘로 올라가려 하고, 한 참 올라와버린 해는 겨울날의 미미한 자기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말해준다.

갑자기 허탈해졌다.

텅빈 속 때문인지 아니면 지난 밤에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천산삼로 중 둘째의 말 한마디에 이곳까지 와본 자기가 한심하기도 했다.

어쩌면 벌써 현천록은 바람을 타고 멀리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괘심한 마음이 든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주욱 같이 있게 될 것같은 기분이었는데, 단지 몇 시간 만이 주욱이란 기분인가 싶다.

이매봉은 품에서 물소뿔 모양의 나팔을 꺼내 힘껏 불었다.

 

---뿌우우우...

 

소리가 아주 멀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매봉이 다시 한 번 나팔을 불었을 때 절벽 위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까마귀처럼 깃털은 새까맣고 매처럼 날렵한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으며 머리는 닭과 비슷했다.

괴조(怪鳥)는 이매봉을 발견하고 동굴 앞으로 천천히 미끌어지듯이 내려왔다.

이매봉은 훌쩍 날아 괴조의 등에 올라 목 뒤의 깃털 속에 몸을 묻었다.

깃털 하나가 파초잎 만하다.

괴조의 체온이 이매봉의 몸을 훈훈하게 한다.

이매봉은 괴조의 등을 두드려주듯 손바닥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서안(西安)으로 가자.]

괴조는 한 번의 날개짓으로 높이 솟구쳐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서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자금산 정상에서 한 사람이 사라지는 괴조를 힐끗 본 후에 절벽으로 뛰어내려왔다.

수 십장의 절벽을 떨어져 내리던 그 사람의 몸은 마치 허깨비처럼 허공에서 둥실 멈추더니 동굴에 내려섰다.

황색가사를 걸치고 회색바라를 진 포두화상이었다.

나한상처럼 둥글고 납작한 얼굴에는 해픈 웃음이 걸려있지만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포두화상은 동굴 입구를 살펴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음의 새 환우마조(寰宇魔鳥)가 나타났다는 건 환우회의 회주가 왔었다는 이야기인데... 환우회마저 옥황빙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단 말인가?]

포두화상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

[환우회의 회주가 여기에 왔었다면 이 화상도 들어가보지 않을 수가 없지.]

포두화상의 몸이 구름을 밟는 듯 기우뚱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후, 세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절벽을 마치 평지처럼 치달려 올라와 동굴로 들어갔다.

비슷하게 생긴 천산삼로였다.

 

***

 

현천록은 생각했다.

(동굴을 되돌아 간다면 입구가 막혔으니 뚫고 나가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우같은 진양진인이 여기서 사라졌으니 그곳 말고도 출구는 있다. 물이 흐르고 있으니 물을 거슬러간다면 장강에 이를 수도 있을 테고, 이 동굴은 지하세계처럼 넓고 거대하니까 또 다른 출구도 있을 가능성이 많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막힌 곳을 뚫고 나가고 그 전에는 다른데를 찾아보자.)

암흑 속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많은 것들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현천록은 들어온 곳과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체중이 없는 그의 몸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흘렀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동굴 속 바람을 따라 얼마동안 갔을 때, 앞이 점점 밝아졌다.

그가 가는 앞쪽 어딘가에 불이 있었다.

일렁이는 것으로 봐서 횃불인 것 같았다.

현천록은 그와 진양진인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동굴 속에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출구가 또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현천록은 불을 향해서 다가갔다.

한데, 불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아니 백개도 넘을 것같은 횃불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 어른거리는 그림자들도 보였다.

두런 거리며 주고 받는 말소리도 들린다.

[난 이번일만 끝내고 나면 정말 무림을 떠날 생각이네.]

[뭘 할 텐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농사를 지으며 살겠어.]

[! 신궁(神弓) 오무한(吳武漢)이 사냥도 아니고 농사를 짓겠다고?]

나직한 탄식이 섞인 소리로 먼저 말한 자가 말했다.

[더 이상 죽이기가 지겨워졌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냥 좋은 일을 하고 싶어. 기르고 보살피는...]

[한심한 소릴 하는군. 이십년 동안 자네 활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와서 그런 소린가? 우리한테 다른 길은 없네. 그냥 살아왔던 그대로 살아가는 것뿐.]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옳은 이야기야. 지금 다르게 살아봤자 아무도 우리를 곱게 보지 않아.]

신궁 오무한이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심한 소리라는 건 아네. 하지만 이제 죽이고 빼앗는 건 너무 질렸어. 누구의 용서를 바라거나 동정을 기대하고 하는 건 아니라네.]

끼어든 목소리가 코웃음을 쳤다.

[답답한 소리군. 자네 활이 정말 신궁인지 의심이 다가는군. 자네는 가만히 숨어살고 싶겠지만 자네 원수들도 그냥있을까? 아마 끝까지 찾아가서 죽이려 들걸세.]

[난 이번 일로 패혼기(覇魂旗)에 진 빛을 다 갚게 되네. 살아난다면 말이지. 죽을 때 죽더라도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죽고 싶네.]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기주(旗主)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게. 비록 여기엔 패혼기에 얽매인 사람들만 들어왔다 하지만 조심하는게 좋을걸세.]

[이렇게 큰 동굴에 그자가 숨었다면 스스로 나오기 전에는 아무도 찾지 못할거네. 어쩌면 기주에겐 다른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지.]

바로 그때였다.

쿠쿵!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며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동굴 천장에서 돌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굉음이 동굴 속의 두런거리던 소리들을 모두 삼켜버린 듯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입구 쪽이다!]

누군가가 소리치며 횃불을 팽개치고 달려갔다.

가지런히 움직이던 횃불들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어떤 것은 몰려들고 어떤 것들은 멀어져갔다.

하지만 대체로 횃불들은 현천록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

다시 굉음이 들렸다.

이번엔 다른 쪽이었다.

현천록은 근처에 떨어진 횃불을 하나 집어들었다.

입구 쪽으로 달려가지 않고 머뭇거리던 불빛은 겨우 두세개 밖에 없었다.

현천록도 횃불을 들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동굴속이라 불이 있어도 얼굴은 거의 알아볼 수가 없다.

옆에 있는 사람이 치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주가... 기주가 우리 모두를 죽이려하고 있어. 동굴 속에 생매장하려고... 나쁜 노옴!]

다른 사람이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틀렸어. 기주는 우리가 다 덤벼도 이기지 못하는 자야. 우릴 죽이려 마음 먹은 이상 다 죽게 되겠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우린 모두 칠십명이다. 각기 지닌 재주가 다르니까 어쩌면 다른 출구를 찾아 나갈 수도 있어.]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네. 다만...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걸 알지 못했을 뿐.]

신궁 오무한의 목소리였다.

한 사람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럼 기주가 온 산을 다뒤져 진양진인을 찾으라고 한 것도 결국 우릴 여기에 들여보내 죽이려고 꾸민 일이란 말인가?]

[현무호에서 죽은 사람만해도 삼백 명이 넘네.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십중 팔구는 우리처럼 패혼기에 복종하고 왔을 걸세.]

오무한의 목소리는 아주 침중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가 말했다.

[산을 뚫고 나갈 수는 없을까?]

바로 그때 아주 길고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그곳에 있던 사람은 아무도 그처럼 처절한 비명소릴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시작이었다.

연이어 지옥의 아비규환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비명들이 공포가 되어 동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주다! 기주도 동굴에 들어와 있었다.]

휘익! 픽픽!

다른 사람들이 재빨리 자기들의 횃불을 꺼버리는 것을 보면서 현천록도 양의신공을 입으로 불어내 꺼버렸다.

[저렇게 빨리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오직 기주뿐이다.]

다른 사람도 말했다.

하지만 모두 혼란에 빠져버렸다.

기주도 동굴에 들어와있다면 대체 누가 입구를 파괴했단 말인가?

모두 호흡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비명에 이어서 마지막 비명이 들리는 것까지는 정말 찰라지간이었다.

꺼지지 않은 횃불들 중 어떤 것은 시체위에 떨어져 살을 태우는 지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현천록은 그 불빛 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양 손에 각기 하나씩의 검을 들었으며 검날을 타고 피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마터면 현천록은 입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바로 장군묵이었다.

두 손에 낭아봉 대신 검을 들었지만 틀림없는 장군묵이었다.

장군묵의 눈은 맹수처럼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장군묵은 검으로 현천록을 가리켰다.

밝은 곳에서도 어둠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신궁 오무한이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기주가 아니군. 젊은이! 자네는 왜 그들을 살해했는가?]

장군묵이 씨익 웃었다.

젊은이란 말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전음으로 오무한에게 주의를 주었다.

[기주는 아니지만 그 못지 않은 고술세. 움직일 때는 함께 하세.]

전음은 현천록의 귀에도 들렸다.

장군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신궁 오무한과 동료 세 사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 뒤로 물러섰다. 장군묵이 그들 앞 세자 거리에서 갑자기 나타난 때문이다.

쉬이이이익!

검광이 어둠을 양단했다.

신궁 오무한과 동료들은 폭포수같은 검광 앞에서 막을 생각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굳어져 버렸다.

죽음이 멀리 있을 때는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바로 앞에 있을 때는 압도당해서 공포조차 느끼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죽음이다.

 

---치지지직! !

 

찬물에 달군 쇠를 집어넣을 때 나는 소리가 오무한과 동료들을 깨웠다.

검과 검이 서로 부딪혔다가 미끌어지며 파란 불꽃을 튕겼다.

[후후후... 이번에도 태극혜검인가? 내가 낭아봉대신 검을 들었을 때는 당신한테 검술을 한 수 가르치려는 뜻이 있다는 걸 알았을텐데...]

장군묵이 쌍검 중 하나는 등 뒤로 돌리고 하나는 앞에 세우며 말했다.

현천록은 자기가 진양진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아혈을 제압해놓은 것은 금방 풀렸었지만 모습을 바꾼 것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장군묵이 믿고 안 믿고는 차후에 생각해볼 일이고 일단 말부터 꺼냈다.

[일곱째! 진양진인은 벌써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장군묵이 어리둥절했고 현천록은 깜짝 놀랐다.

장군묵은 자기가 일곱째라는 걸 진양진인이 어떻게 아는가 싶어서 였고, 현천록은 아혈이 풀렸기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늙수구레한 진양진인의 목소리가 나와서였다.

붉으스름한 장군묵의 눈이 현천록을 노려보았다. 안개같은 살기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현천록의 뒤에 섰던 네 사람은 본능적인 공포에 비칠비칠 물러섰다.

장군묵이 말했다.

[역시 당신은 뭔가 있어. 후후후... 그 이상한 행동에 이어... 내가 일곱째라는 것을 안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단 말인가?]

현천록은 당황했다. 이러다간 정말 진양진인의 의도대로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단났구나! 이사람은 나를 정말 진양진인으로 단정하고 있으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밖에 생각지 않겠구나.)

항상 여유를 갖고 즐겁게 지내려는 그의 정신상태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마음 속을 기쁨이 아닌 다른 침울한 것으로 채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뒤에서 신궁 오무한이 물었다.

[당신은 정말 진양진인이오?]

현천록이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아니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거냐? 개똥같은 도사놈아!]

먼저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네놈 목소리는 금방 알아듣는다.]

현천록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 설상가상이구나! 한 사람도 모자라서 두 명 세명이 이 가짜 진양진인한테 볼일을 보려하다니.)

그의 머리가 아주 오랜만에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여차했다간 정말 재수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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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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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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