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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구원의 손길

 

 

 

[크흑!]

막비강은 들끓는 욕화를 참지 못하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운기조식을 하여 필사적으로 치솟는 욕화를 억눌러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번 불붙은 욕화는 요원의 불길처럼 그의 전신으로 번져 갔다.

막비강은 너무도 강력한 욕화에 급격히 이성을 잃어 갔다

그의 순양지물은 극한대로 팽창하여 끊어질 듯이 아팠다.

지금 이 순간 막비강의 뇌리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서 아랫배에 그득한 채 들끓고 있는 용암을 어디론가 토해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방이 밀폐된 이 철실에서 그의 욕화를 풀어 줄 대상이 있을 리 없었다.

[으아아아!]

그는 치미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걸치고 있던 의복을 모두 훌훌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끊어질 듯이 아픈 일부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그러면서 그는 서서히 정신을 잃어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긍!

문득 밀실의 철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이어 하나의 날렵한 인영이 밖을 살피며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철문을 다시 닫았다

그 인물은 한 명의 중년미부였는데 무엇이 꺼려지는지 얼굴은 수건으로 가려 알아볼 수 없었다.

[...!]

실내에 들어선 여인은 상황을 살펴보다가 바르르르 몸을 떨었다

한구석에 전라의 몸으로 벌렁 누운 채 정신을 잃은 막비강을 발견한 때문이다

완벽한 균형을 이룬 막비강의 건장한 알몸은 중년여인을 전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순간 막비강의 몸은 전신의 혈관이 툭툭 불거진 채 끊임없이 잔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은 이미 까뒤집어져 허연 흰자위가 드러나 있고 입과 코에서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욕화가 기혈을 뒤집어 놓고 있다는 증거였다.

(가엾은 아이...!)

면사 속에서 여인의 두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녀는 막비강을 구하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주춤주춤 막비강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 막비강 옆으로 가까이 다가선 그녀는 숨을 죽였다

그의 하체 중심부에 불끈 치솟아 있는 일부를 발견한 때문이다.

막비강은 금강옥액을 복용한 덕분으로 양정(陽精)이 범인의 수십 배에 이른다

그 탓에 그의 실체도 평균의 배에 가까운 크기였다.

여섯 치가 넘는 막비강의 일부는 마치 무쇠로 만든 조형물처럼 강인해 보였다

여인은 살아오면서 두 명의 사내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막비강의 그것에는 비견될 수 없었다

특히 그 압도적인 굵기와 중량감은 상상도 못해 본 것이었다.

여인의 봉목은 갈등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네게 진 신세를 갚기 위해서다!)

여인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치마를 허리 위로 걷어 올렸다.

만지면 묻어날 듯이 새하얀 허벅지가 어둠 속에서 눈이 부셨다.

헌데 기이하게도 여인의 가랑이 사이의 계곡에는 성숙한 여자라면 당연히 깔려 있어야 할 음영(陰影)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백옥(白玉) 덩이같이 뽀얀 두덩과 그 아래로 탐스럽게 벌어진 균열이 보일 뿐이었다.

인은 흥분과 수치심으로 바들 바들 떨며 막비강의 몸 위에 쪼그려 앉았다.

그와 함께 떨리는 섬섬옥수가 용틀임을 보듬어 쥐었다

여인의 손안에 쥐어진 그것은 마치 뱀처럼 꿈틀대며 맥동했다.

(뜨거워!)

손안에서 요동치는 용틀임을 느끼며 여인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치마를 복부와 다리 사이에 낀 여인은 그 용틀임을 자신의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 정말 내가 강아와 이런 짓을 해도 좋을까?)

마지막 순간 여인은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막비강과 이런 짓을 해서는 결코 안 되는 사이였다.

인륜을 지켜야 한다는 망설임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머뭇거리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여인의 입술이 깨물리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이어 그녀는 육중한 하체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 아파! 그이하고의 첫날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찔한 통증을 느낀 여인은 입술을 악물었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여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막비강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흐윽!]

여인은 막비강을 완전히 수용한 뒤 무너지듯 그의 넓은 가슴에 넘어졌다.

아랫배에 가득 들어찬 채 연신 꿈틀대는 막비강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 내가 결국 강이와 ...!)

그 와중에도 참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흘러 넘친 여인의 뜨거운 눈물이 막비강의 가슴 위로 굴렀다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자신의 몸으로 순결한 막비강을 받아들인 것이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자신과 막비강은 완전히 한 몸이 되어 버렸다

남자와 여자로서 최후의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죄책감에 떠는 중에도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되었으니 네 마음껏...!)

여인은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본능에 몸을 맡겼다.

일단 분 뜨거운 열풍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 * *

 

(누구였을까?)

막비강은 망연자실하여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의 그는 온몸이 개운한 상태였다

아랫배를 그득 채우며 들끓던 용암은 이미 한 방울도 남김없이 외부로 방출된 후였다

치미는 열기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벗어 젖혔던 의복도 누군가에 의해 원래대로 입혀져 있었다.

(젊은 여자는 아니었어!)

막비강의 숨결이 절로 거칠어졌다.

그는 어렴풋이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욕화로 반쯤 혼절해 있었을 때 누군가 허연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자신의 몸 위에 걸터앉았었다는 사실을...!

그 여인의 몸에서는 참으로 좋은 냄새가 났었다

과일 냄새 같기도 하고 백합 향기 같기도 한 그 냄새는 아직도 코끝에서 맴돌고 있다.

급한 불을 끄고 나자 막비강은 능동적으로 욕구를 채웠었다

막비강이 짐승처럼 덤벼들자 여인은 슬픈 눈빛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막비강이 욕구를 채우던 중 여인이 얼굴에 쓰고 있는 면사를 벗겨버리려 하자 그녀는 돌변하여 격렬하게 저항했었다

끝내 면사를 벗기지 못한 탓에 막비강은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구한 여인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몸매로 보아 제법 나이가 든 여인이었으니 혈검산장의 비녀나 하녀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막고천의 처첩(妻妾)들 중 한 명이란 얘긴데...!)

막비강은 혈검산장의 여러 여인들을 떠올려 봤다

그러나 정조를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을 구해 줄 동기를 지닌 여인은 그녀들 중에는 없었다.

언뜻 막고천의 다섯 번째 첩인 냉상영의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역시 막비강 자신을 위해 그토록 큰 희생을 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언제고 알게 되겠지!)

막비강은 길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정의 철문은 열려 있었다. 누군가 밖에서 열쇠로 연 것이 틀림없었다.

헌데 함정을 나서려던 막비강은 문간에 떨어져 있는 한 짝의 귀고리를 발견했다.

(그 여인이 흘린 것이겠구나!)

막비강은 그 귀고리를 집어 소중히 품속에 넣었다.

 

혈검산장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모두 떠난 드넓은 장원에는 괴괴한 적막만이 흘렀다

막고천은 막비강이 한철로 만들어진 철문을 부수려 하자 질겁하여 달아났고, 다른 식솔들도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서패천(西覇天)이라 불리며 서북삼성(西北三省) 일대에서 위세를 떨치던 혈검산장은 삽시에 폐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네가 어디로 숨든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다, 막고천!)

막비강은 막고천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혈검산장을 떠났다.

 

 

***

 

쐐액!

막고천의 암계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정체불명의 여인의 희생으로 구사일생한 막비강은 마음속의 울분을 발설하기라도 하듯이 우주도철의 경신술 팔보간섬(八步間閃)을 극한까지 펼쳐 질주하였다.

반 자절 이상을 내쳐 달리자 수백 리를 주파하여 종남산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이윽고 종남산의 험준한 산 그림자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막비강은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으며 제법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막비강이 멈춘 곳은 야트막한 고갯마루였다.

[이제 어딜 가서 무얼 해야 하나?]

고개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막비강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그는 혈검산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막고천을 생포하여 통쾌하게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며 설사 그렇지는 못해도 최소한 생모 한경파를 구출하여 자기의 신세내력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막고천은 놓쳤고 생모조차 어디론지 잡혀가 버린 것이다.

(막고천! 네놈이 만일 나한테 당한 화풀이로 어머니를 괴롭힌다면 기필코 사로잡아 천참만륙해 버리겠다!)

막비강은 마음이 초조해져 이를 부득 갈았다. 생모 한경파의 안위가 못내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하지만 막고천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헌데 막비강이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두서 없는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였다.

화라라락!

고개 아래에서 하나의 작달막한 인영이 질풍같이 날아오는 것이 막비강의 눈에 들어왔다

그 인영은 한 명의 여인이었는데 단번에 고개 위로 날아올라오더니 막비강 곁을 스쳐 지나갔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황망히 달려가는 걸까?)

막비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본래 남의 일에 간섭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인이 펼쳐내는 경공술이 어쩐지 눈에 익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부인! 잠깐만 걸음을 멈춰 주십시오.]

막비강이 급히 부르자 여인은 고개는 돌리지 않았으나 예의 있게 대답했다.

[용서하세요! 가친(家親)께 위급한 일이 생겨 서둘러야한답니다.]

여인은 그렇게 외치며 전력을 다해 질주해 갔다

발끝이 가볍게 땅을 찍을 때마다 사, 오 장씩을 날아가는데 그 자태가 아주 가볍고 우아하다.

!

막비강은 여인의 이 같은 경신술에서 느껴지는 게 있어서 즉시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뒤쫓아가기 시작했다.

날 듯이 달려가는 여인의 경신술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껏 막비강이 본 어떤 무림 고수보다도 빠르고 경쾌했다.

하지만 막비강은 경신술로 유명한 우주도철의 팔보간섬을 연마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일년 동안 수시로 공청석유를 마시고 하수오를 상식(常食)했었다. 

덕분에 공력이 전보다 배 가까이 심후해진 상태다

막비강은 오래지 않아 여인의 바로 뒤로 따라붙을 수 있었다.

여인도 막비강이 삽시에 자신을 따라붙자 놀란 듯 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질풍같이 달리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막비강이 가까이 따라붙어 살펴보니 상대는 사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순후한 인상의 중년여인이었다

그다지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박속같이 하얀 피부와 온유하고 부드러운 표정이 절로 호감을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중년에 접어든 나이 탓에 비만해 보일 정도로 살이 올라 풍만한 몸에는 질박하나 깨끗한 베옷을 걸치고 있어 초탈해 보였다.

[아주머니는 남산의성(南山醫聖) 악 선배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막비강은 여인과 보조를 맞추어 달리면서 물었다

그는 이 풍만한 중년여인의 경신법이 바로 남산의성 악불령의 능운신보(凌雲神步)임을 알아본 것이다.

[소협의 존함을 말해 줄 수 있겠어요?]

화락!

막비강의 물음에 중년여인은 급히 걸음을 멈추며 반문했다.

[소제는 막비강이라 합니다.]

막비강도 따라 멈춰 서며 중년여인에게 손을 모아 보였다.

[이제 보니 막 소협이었군요. 제 이름은 악소궁(岳少宮)이라고 하며 남산의성께서는 저의 가친 되세요.]

중년여인이 반색을 하며 막비강의 손을 덥석 잡았다.

[! 악 누님이셨군요.]

막비강도 반색을 했다.

그는 이 년 전 악불령에게서 의술을 배울 때 그의 가족 사항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 푸근한 인상의 중년여인은 바로 남산의성 악불령의 외동딸인 악소궁이었던 것이다.

악소궁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 세 살이다

그녀는 스무 살이 채 안되어 출가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몸이 되었다

즉 지금의 그녀는 과부인 것이다.

자식도 없이 청상과부가 된 악소궁은 별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도와 채약(採藥)과 연단(煉丹)에 몰두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의성 어르신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누님?]

막비강은 악소궁의 안색이 매우 초조한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악불령에게 사사(私師)한 인연이 있다

그래서 악소궁이 비록 어머니 나이뻘이었으나 스스럼없이 누님이라 불렀다.

악소궁도 막비강에 대해 부친에게서 들어 알고 있는 터라 그가 대뜸 자신을 누님이라 불렀으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삼년 전 뇌강서(雷鋼鋤)를 도난당한 일이었네.]

악소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도 상대가 자신의 사제뻘인 막비강임을 확인하자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소리장도(笑裏藏刀) 강용은 자기의 무공으로는 가친을 당해내지 못함을 알고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

막비강 역시 그 일은 알고 있다.

소리장도 강용은 위왕, 즉 조조의 무덤을 도굴할 목적으로 남산의성 악불령의 뇌강서를 훔쳤었다

그 과정에서 막비강은 소리장도로부터 도가의 상승 운기토납술인 태청정명운기법(太淸淨命運氣法)을 배우는 기연을 만났었다.

[도망다니던 강용은 가친이 경지하 강변에서 백독서생(百毒書生) 이량과 싸워 적대관계가 된 것을 알고는 많은 재물을 마련하여 그자를 찾아가 사부로 삼았다네.]

막비강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말을 받았다.

[백독서생 이량은 영존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데 강용이 그런 자를 사부로 삼은 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건 자네가 모르고 하는 말이야. 강용이 백독서생 이량을 사부로 삼은 건 무공이 아니라 아버님을 상대하기 위한 용독절학(用毒絶學)을 배우기 위해서였거든.]

[그렇군요!]

막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금 무림에서 남산의성의 의술에 상대될만한 것은 백독서생의 용독절학 밖에 없다.

말을 잇는 악소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강용은 전설적인 거마 천수인마(千手人魔)까지 사부로 모셔 절기를 배웠다고 하네. 그리하여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그자는 복수를 하겠다며 우리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데 천수인마도 강용과 동행한다더군.]

막비강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천수인마의 무공은 천하오기(天下五奇)에 비해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네.]

악소궁은 아미를 모으며 대답했다.

[천수인마는 백여 년 전부터 무림에 명성을 떨쳐 온 천(), (), (), ()의 우내사마(宇內四魔) 중 한 명이네. 강호의 일반적인 평판으로는 우내사마가 천하오기보다 좀더 강하다고 봐야겠지!]

막비강은 우내사마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본다

하지만 우내사마가 무려 백여 년 전부터 악명을 떨쳐왔다는 설명을 듣고 그자들이 천하오기보다도 더 무서운 인물들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비강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잘되었습니다. 소제도 영존을 만나 뵙고 어떤 사람의 행방을 물을 생각이었으니 함께 가시지요.]

[자네가 함께 가 준다면 천수인마도 감히 행패를 부리지 못할 게야.]

악소궁은 막비강이 함께 가자고 말하자 기뻐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당금 무림에서 천하오기 외에는 나를 추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 그런데도 단숨에 내 뒤를 쫓아온 걸 보면 자네의 무공이 천하오기를 능가한다는 걸 알 수 있겠네!]

말하는 악소궁의 표정이 밝아졌다.

실제로 악소궁은 다른 무공은 평범하지만 경신공부만은 아주 빼어났다

막비강은 그녀의 젊은 시절 별호가 남산비연(南山飛燕)이었음을 떠올렸다.

막비강도 악소궁이 자신을 높게 평가해 주자 내심 기뻤다.

[헌데 소협은 가친에게 누구의 행방을 물으려는 겐가?]

악소궁이 묻자 막비강은 침중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소제가 찾으려는 사람의 이름은 전포(田袍)라고 합니다. 혹시 악 누님은 이 이름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글쎄... 금시초문이구먼. 하지만 가친께선 알고 계실 것 같네. 워낙 발이 넓으신 분이니까.]

악소궁의 대답에 막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포가 무림의 고인이 아니라면 염라철장이 내게 전포를 만나 사정을 물어 보라고 당부할 리 만무하지.)

생각을 굴리던 막비강은 다시 악소궁에게 물었다.

[혹시 무림도상에 전()씨 성이면서 위명을 떨친 인물이 없습니까?]

[전씨라....]

악소궁은 이마를 모으며 생각하다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러고 보니 전씨 중에서도 무림에 명망을 떨치는 가문이 하나 있기는 하구먼!]

[그렇습니까? 그게 어느 가문입니까?]

악소궁의 말에 막비강은 급히 물었다.

[사패천 중 북패천(北覇天) 북산검호각(北山劍豪閣)이 대대로 전씨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네! 하지만 그들 일족은 중원의 북쪽 변방에 웅거한 채 외부인들과 교류가 적어 당금 북산검호각에 어떤 인물들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막비강은 악소궁에게서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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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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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붉은 머리띠를 한 도사가 되어 (2)

 

 

새로 온 사람이 버럭 소리쳤다.

[개똥같은 도사놈아! 모가지를 비틀어야 옥황빙서를 내놓겠느냐?]

현천록이 말했다.

[난 진양진인이 아니오. 난 현천록이오. 진양진인이 나를 이렇게 해놓았소.]

장군묵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튼 수작으로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해.]

장군묵은 슬쩍 손을 흔들었다.

순간 현천록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부드러운 기운이 자기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든 검이 휘둘러졌다.

번쩍!

그의 검은 장군묵의 부드러운 장력을 베어버리고 그의 왼쪽 눈을 찌르고 있었다.

태극혜검 중의 소경심매란 초식이다.

장군묵의 붉으스레한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현천록은 앗차 했을 때 벌써 자기도 모르게 장군묵의 눈을 찌르고 있는 중이었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반격에 다시 반격을 가했다.

검이 부딪혀도 챙강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불똥이 튀고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날뿐이었다.

현천록도 울며겨자먹기로 반격에 반격을, 그 반격에 다시 반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태극혜검은 원래부터 공수를 겸한 것이기에 반격을 반격으로 맞는다.

눈부시게 검광이 흐르고 불꽃이 뛰는 가운데 순식간에 사십여 초가 지나갔다.

현천록은 장군묵과의 싸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태극혜검 중의 수법들을 쥐어짜내며 겨우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장군묵이 사용하는 검법도 역시 태극혜검이지만 현천록이 미처 모르던 수법들도 섞여 있었다.

장군묵도 현천록이 자기의 검술에 검술로 당당히 맞서고 있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자기한테 입은 중상 때문에 공력도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태극혜검을 펼치는 진양진인의 공력이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잡다한 것 보다는 공력이 순수하면 순수한 만큼 강해진다.

공력에도 양이 아니라 질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태극혜검의 수법이 지난 밤에 싸웠을 때보다 오히려 더 정치(精緻)하게 느껴진다.

장군묵은 버럭 소리쳤다.

[재주를 숨기고 있었군. 하지만 그정도의 태극혜검으로 나를 놀라게 할 수는 없지.]

장군묵의 검에서 뿜어나오는 무형의 기운이 아주 강해졌다.

현천록은 진양진인에게 초상감각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다면 단 일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운들은 느끼는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겉으로 볼 때 현천록과 장군묵의 싸움은 눈부신 검광으로 인해 사람을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 였다.

[노대! 진양진인의 검술이 아주 대단하군요.]

나중에 온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코웃음을 쳤다.

[조금 늘었군. 하지만 저 청년이 더 대단해. 나이도 젊어보이는데 완전히 압도하고 있어. 진양은 보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야. 저 보검만 아니라면 벌써 끝장났을 걸?]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노대! 조금 이상합니다. 진양진인의 검술이 싸우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군요. 저 정도라면 저도 백초를 넘기기 힘들 것 같은데요.]

세 사람은 절벽 중간의 입구로 들어왔던 천산삼로였다.

그들이 들어왔던 동굴은 여우굴처럼 여러 개의 굴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노대가 이를 부드득 갈며 욕을 했다.

[빌어먹을 도사놈! 검술이 몸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 노이!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나도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구만.]

노삼이 물었다.

[노대! 검술이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뭐요?]

노대가 말했다.

[썩어빠질 놈아! 너는 사부한테 들은 말은 전부 똥통에 쳐박아버렸냐? 말 그대로 검술이 몸속에 스며들어 사람이 검이 되고 그 사람의 움직임이 바로 검술이 되는 그런 걸 말하잖나. 어떤 검술이 위력이 아니고 수법으로서는 최고에 달한 거야. 소위 검신(劍神)이 된 거지.]

현천록은 꼼짝없이 진양진인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과 목소리가 똑같을 뿐 아니라 태극혜검까지 썼으니 아무리 자기가 아니라고 해도 알아줄 리가 없을 것 같다.

함께 싸우고 있는 장군묵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

현천록은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장군묵은 진양진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사로잡으려는 것이다.

살수를 써야할 때도 상처만 입히는 가벼운 수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현천록의 짐작은 틀림없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똑같은 검술로 상대하는 현천록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길 수 없다.

잠시는 재롱삼아 봐줄지 모르지만 마침내는 장군묵이 손을 크게 쓰고 말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장군묵에게 잡힌다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고 자기도 알고 싶어하지만 모르는 사실을 말하라고 강박당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현천록은 진짜 진양진인이 되어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진양진인이 되어 도망치려면, 현천록은 진양진인이 자기를 속였듯이 장군묵을 속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더 이상 저항은 하지 말아야 한다.

비스듬히 떨어지는 장군묵의 검을 억지로 막고는 검을 떨어뜨려 버렸다.

피웃!

장군묵의 검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목에 쌍검을 가위처럼 교차시켜 걸쳤다.

조금만 힘을 주면 현천록의 늙은(?) 목은 순식간에 잘려질 판이다.

현천록이 저절로 나오는 진양진인의 음성으로 말했다.

[일곱째! 내가 졌소. 하지만 당신도 졌소.]

투투투툭!

장군묵이 장검으로 현천록의 몸에 여섯 군데 혈도를 찍었다. 그는 이번에야 말로 단단히 작정한 한 것 같았다.

[보검인데.]

천산삼로 중의 노삼이 현천록이 떨어뜨린 진양진인의 보검을 줏어들며 말했다.

노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금석을 두부자르듯 하는 신검이야. 어지간한 보검은 무베듯이 베어버릴거야.]

노대는 장군묵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무당파의 진산지보인 진무검(眞武劍)이다. 그나저나 자네는 태극혜검을 정말 잘 쓰는군. 젊은 나이에 아주 대단하네.]

장군묵은 피식 웃었다.

노대가 말했다.

[사실 난 진양진인을 혼자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무림엔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아주 뜻밖이야. 자넨 누군가?]

장군묵이 차갑게 말했다.

[꺼져라! 네 사부 천산일괴(天山一怪)와 안면만 없었다면 그냥 죽였을 거다.]

노삼이 나서며 말했다.

[그건 우리 보고 한 소리겠지?]

노이가 물었다.

[우리 사부를 알고 있나? 죽은지 백년도 더 됐는데.]

노삼이 말했다.

[미친 소리요. 젊은 놈이 어떻게 사부를 알아.]

장군묵이 현천록을 한손으로 들어올리며 서늘하게 말했다.

[나는 젊었지. 늙지는 않았어. 세상에 있을 땐 진양의 사부의 사부의 사부가 나한테 사형이라고 불렀지.]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노삼과 노이가 미친 것처럼 웃으며 미친놈을 보듯이 장군묵을 본다.

하지만 노대는 장군묵에게 보통 사람과 다른 뭔가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진양! 그 사람 말이 정말인가?]

현천록은 동동 매달린 채 말했다.

[정말이오.]

!

노삼과 노이가 웃음을 멈췄다.

장군묵이 현천록에게 말했다.

[도장! 이제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

[잠깐!]

노대가 돌아서는 장군묵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자네가 진양의 태사숙조가 된다면 왜 진양에게 호칭을 그렇게 하는가?]

장군묵이 언찮은 표정을 지었다.

현천록이 재빨리 말했다.

[이분께선 이미 본파를 떠나셨소. 그래서 나를 대할 때도 본파의 어른으로서 나를 대하는 게 아니라 남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것이오.]

장군묵이 뜻밖인 듯 현천록을 힐끗 본다.

현천록은 빙그레 웃었다.

웃어야할 상황인지는 판단이 쓰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그 웃음은 꼭 자기가 잘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노삼이 나서며 말했다.

[그대가 옛날 도사였는지 지금도 도사였는지는 알바 없소. 우린 진양에게 물건을 얻으려고 왔는데 당신이 진양을 그냥 데려간다면 곤란하지 않겠소.]

현천록이 또 말했다.

[뭐가 곤란하다는 거요?]

노삼이 말했다.

[우린 천산에서 몇 달이나 걸려서 왔는데 헛걸음질치고 돌아가면 최소한 일년은 허송세월하는 셈이오. 우리 나이는 적지 않아서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데 일년은 적은 시간이 아니지.]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시간을 보상받고 싶으면 그 검을 가지시오.]

노삼이 말했다.

[아니! 아니! 진양! 나는 검을 쓰지 않으니 필요가 없소. 또 가진다 해도 노이에게 주는게 최선이오. 우리 중에서 오직 노이만이 검을 쓰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검을 돌려줄테니 당신이 갖고 있는 옥황빙서를 우리한테 주시오.]

하하하하!

현천록은 그렇게 웃었지만 허허거리는 소리가 되어 나왔다.

노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왜 웃는가?]

장군묵이 버럭 소리쳤다.

[닥쳐라!]

천산삼로도 입을 다물었고 현천록도 입을 다물었다.

장군묵이 손을 이상하게 한 번 썼다.

[어어!]

그의 앞을 막았던 노삼이 둥실 떠올라 동굴 벽에 부딪혔다.

장군묵이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도 보지 못했다.

[멈추시오!]

노대가 소리쳤다.

하지만 장군묵은 환상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신법이었다.

노삼이 욕을 했다.

[빌어먹을 작자! 감히 나를 집어던지다니. 똥통에나 빠져버려라.]

노이도 사라지고 없었다.

노대가 큰소리로 불렀다.

[노이! 돌아와라! 그를 따라갈 순 없다.]

휘이이익!

노이는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노대 앞으로 날아왔다. 그는 장군묵이 신법을 펼칠 때 함께 신법을 펼쳐 뒤쫓았던 것이다.

노대는 어둠 속에 대고 물었다.

[여기에 들어온 놈은 모두 몇이냐?]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우리 일행은 칠십 명이 들어왔소. 하지만 다 죽고 지금은 여기있는 네 명만 남은 것 같소.]

노대가 말했다.

[네 놈들도 옥황빙서를 노리고 왔느냐?]

신궁 오무한이 탄식하며 말했다.

[명령을 받고 왔을 뿐이오. 진양진인을 찾으라는.]

노삼이 코웃음을 쳤다.

[노대, 저놈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오. 진양진인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찾는데 칠십 명씩이나 동굴에 집어넣을 바보 멍청이가 있겠소?]

노대가 말했다.

[네놈들의 이름은 뭐냐?]

네 사람이 각기 대답했다.

[활을 좀 쏜다고 해서 신궁이라 불러주는 오무한이오.]

[금전표(金錢鏢) 곽기(郭基).]

[수리전(袖裏箭) 형가운(衡駕雲)이오.]

[철연화(鐵蓮花) 마춘보(馬春寶).]

노이가 말했다.

[노대! 모두 질 좋는 놈들이 아니오. 암기나부랑이나 쓰는 녀석들이오. 모두 죽여버립시다.]

금전표 곽기와 수리전 형가운, 그리고 철연화 마춘보가 찬바람을 들이켰다.

자기들이 무슨 수를 써도 괴상한 세 노인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꼼짝없이 죽는구나 싶을 때 신궁 오무한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리가 죽기를 원한다면 세 분이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소. 우린 그냥 둬도 여기서 죽게 될거요.]

노삼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 우리가 죽이지 않아도 죽는단 말이냐?]

오무한이 말했다.

[이미 동굴 입구는 다 무너졌소. 여기서 우리가 무슨 방법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소?]

노삼이 펄쩍 뛰면서 말했다.

[그 때문에 네놈들이 죽는다면 우리도 그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된다. 사실이냐?]

오무한이 말했다.

[기주는 이미 동굴을 무너뜨렸소. 혹시 뚫고 나간다고 해도 기주 손에 죽고 말것이오. 당신들은 우리 때문에 죽게 된 피해자요.]

노대가 물었다.

[기주란 놈은 또 뭐냐?]

오무한이 말했다.

철연화 마춘보가 말했다.

[기주는... 기주요.]

노삼이 고함쳤다.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금전표 곽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걸 어떡하겠소?]

노대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나머지는 여기를 나간 후에 알아보도록 하지.]

노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노대! 무슨 냄새를 맡았소?]

노대가 손을 저어 목소리를 낮추라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따라와. 이 동굴은 간단치 않아.]

노이와 노삼은 물론이고 신궁 오무한과 금전표 일행도 노대의 뒤에 따라붙었다.

노삼은 자꾸만 오무한과 금전표 등을 죽여버리고 싶은지 힐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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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神龍決心

 

 

 

소주(蘇州).

유유히 흐르던 장강이 크게 한 굽이 돌아가 생긴 첨형의 넓은 분지.

그 분지 위엔 한 채의 장원이 서 있다.

강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깎아 지른 듯한 절벽이다.

매우 조용하고도 아늑한 장소에 장원이 서 있는 것이다.

 

소주별원(蘇州別院).

장원의 이름이다.

소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장원의 주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신궁태자(神弓太子) 철문영(鐵文英).

 

당금 천하에서 황실을 제외하면 가장 큰 철사왕부(鐵師王府)의 소주인.

게다가 황상의 두분 공주 중 첫째 공주인 빙향공주(聘香公主)의 부마(駙馬)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신궁태자는 바깥 줄입이 극히 드물어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젊은 미공자이고 천하의 기재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때는 초하(初夏)의 오후.

이곳은 장강의 굽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이다.

울창한 수림이 들어 찬 숲속에 한 채의 정자가 서 있다.

정자 중앙에는 넓은 포단이 갈려 있었다.

포단 위에는 두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여인은 이십 육칠 세 정도 된 궁장 여인이다.

여인은 눈에 확 뛸만한 빼어난 미모로 몹시도 정이 많은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 여인은 자기 무릎 위에 한 명의 소년 공자를 누이고 있었다.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운 소년.

십 육칠 세 정도 되었을까?

한 번 본 사람이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영준한 소년이었다.

여인이 무색할 지경으로 뽀얀 피부와 섬세한 얼굴의 선 등이 마치 절세미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은 소년의 몸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이었다.

뚜렷한 병색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유약해 보였다.

소년은 궁장미인의 섬섬옥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문득 궁장미인의 입에서 조심스런 옥음이 흘렀다.

"왕부를 떠나신지 일 년이 넘었사옵니다. 왕야내외분들과 황상께서 심려 하심이 크실터이니 환부 하심이 어떠시온지요?"

소년은 잠시 무심한 시선을 강상으로 던지다가 입을 열었다.

"회희, 다른 일이라면 다 화희의 말을 따르겠으나 환부하는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줘."

소년의 말에 화희라는 여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쌍하신 분...)

여인의 눈길이 안타깝게 소년을 훑어 보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고우신 분에게 불치의 병이라니... 이분의 연세가 벌써 십칠 세. 약으로 버틴다고 해도 오년 후면...)

여인은 생각하기도 싫은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냐?"

소년이 약간 짜증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명의 시녀가 정자로 다가와 시립하였기 때문이다.

"... 사대선생께서 급히 태자(太子)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태자(太子)!

! 그럼 소년이 바로 신궁태자(神弓太子)였던가?

그렇다.

소년이 바로 소주별원의 주인인 신궁태자였다.

헌데, 부마도위(駙馬都尉)인 그가 어째서 혼자 이 소주에 내려와 있는 것일까?

 

철문영은 몸을 일으켰다.

"사대선생께서 돌아오셨단 말이냐?"

". 하오나..."

시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오나라니! 무슨 일이 있느냐?"

"사대선생께선 심하게 다치셔서 돌아오셨사옵니다. 급히 치료는 해드렸지만 매우 중하십니다."

철문영은 벌떡 일어섰다.

화희라는 여인이 따라 일어나 부축했다.

 

정자를 떠난 철문영은 곧 조용한 전각에 이르렀다.

몇 명의 시녀가 시립해 있다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철문영과 화희는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에는 수많은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책들 사이에 작은 침상이 놓여 있다.

지금, 그 침상 위에 안색이 밀랍같이 창백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

"사선생!"

철문영이 급히 다가섰다.

"... 전하..."

노인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 . 일어나 인사를 못드림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철문영은 노인의 앙상한 손을 잡으며 침상 옆의 의자에 앉았다.

"괜찮습니다. 헌데 사대선생께선 어쩌다 이 지경으로 다치셨습니까?"

철문영이 묻자 노인은 손을 저었다.

이에 방에 있던 시녀 몇 명이 밖으로 물러났다.

"전하. 언젠가 이 늙은이가 천세문(千世門)에 대해서 말슴드린 적이 있지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헌데 왜 그런 말씀을 지금...?"

소년 철문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의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노인은 철문영에게 있어 부모 다음으로 중요한 두 인물 중 하나이다.

그들은 바로 화희(花姬)라는 여인과 노인이다.

 

화희(花姬).

그녀는 고아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녀를 철문영의 생모가 거두어 길렀다.

그녀가 열살 때 철문영이 태어났다.

그리고, 철문영의 생모는 그를 낳은지 얼마 안 되어 신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생모를 잃은 철문영을 길러준 것이 화희, 그녀였다.

그런 그녀이기에 철문영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여인인 것이다.

그녀는 철문영에게 있어 누이이고 어머니이며 자기가 필요로 할 때 항상 옆에 있어주는 여인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철문영에게 있어 아버지 철사왕(鐵師王)만큼이나 소중한 여인이다.

 

사대선생(士大先生).

십여 년 전부터 철문영을 가르쳐 온 노문사였다.

그의 신분내력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그러나, 노인의 학문은 만박통지(萬博通知).

모르는 분야가 없는 기인이었다.

철문영의 끝없는 학구 의욕을 채워준 인물이 사대선생이었다.

노인은 비단 학문을 통탈했을 뿐 아니라 무림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어 종종 철문영에게 무림사를 이야기 해 주었다.

천세문(千世門)에 대해서도 언제인가 이야기 한적이 있었던 것이다.

 

"전하... 이 늙은이가 바로 당시 천세문(千世門)의 기전(奇殿)을 맡았던 늙은이옵니다."

노인의 말에 철문영은 흠칫 놀랐다.

노인이 천세문에 대해 너무도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이 의아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노인이 바로 천세문 기전전주일 줄이야,

"허허... 그동안... 전하를 본의아니게 속여... 왔습니다. 용서... 하여주십시오."

사대선생, 아니 기전주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저었다.

"용서라니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상세가 중하시니 우선 조리를 하신 뒤에..."

기전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 니다. 지금이 아니면 말슴드릴...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늙은이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철문영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천세비동에서... 이 늙은이가... 배신자 모용인... 그자에게 암습을... 당한 것을 말씀드렸지요?"

"그렇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대 이 늙은이는 무방비 상태에서 모용인의 공격을 맏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숨을 건지기 위한 속임수였습니다."

"속임수라니요?"

철문영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허허... 기문(奇門)의 기공(奇功) 중에 쇄맥대법(鎖脈大法)이라는 것이 있지요. 이는 일시적으로 모든 신체 기능을 중단시키는 방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죽은 듯이 보이지요. 그러나 그 상태에서는 전신이 갈가리 찢기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기전주는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당시 중독되어 있던 몸인지라 모용인 그자를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주님께서 능히 천세비동을 지키실 것으로 기대하고 후일을 오모키 위해 구차한 목숨을 연명한 것입니다."

기전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대신 그의 얼굴에는 점차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졌다.

하지만 철문영으로서는 기전주의 말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

"과연 문주님께서는 천세비동을 봉쇄기키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이 늙은이 역시 목숨을 구했지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문주님께서 천세비동과 함께 최후를 같이 하신 것입니다."

철문영은 침중한 기색으로 기전주의 말을 들었다.

"그후, 노부는 천신마고 긑에 육성정도의 공력을 되찾고 강호로 나왔습니다. 강호에 나온 노부는 우연한 기회에 전하의 교육을 맡았으며 틈틈이 강호에 나가 몇 가지 일을 알아 보았습니다. 먼저 천세문이 화를 당할 때 천세문을 탈출하신 주모(主母)님과 아기씨의 행방을 찾아 보았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찾지 못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주모님과 아기씨 뿐 아니라 삼대신파와 삼십육 소녀위대의 행방마저 묘연해졌습니다."

기전주는 암울한 신색으로 말을 이었다.

"노부가 두 번째로 한 일은 본문의 뒤를 이을 인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천세문은 붕괴되었으나 천세비동이 존재하는 한 천세문의 맥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힘들군요. 천세비동은 내부에서 봉쇄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철문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인은 모르는 또 다른 밀로가 있습니다. 그 밀로는 문주와 수석전주밖에 모르며 그 밀로를 열 수 있는 것 또한 수석전주와 문주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언제라도 노부는 천세비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천세문을 이을만한 인재를 구하셨습니까?"

기전주는 암연히 고개를 저었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노부가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본문의 역대 문주님들의 영령을 어찌 뵈올지..."

기전주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세번째로 노부는 본문을 친 자들을 조사했습니다. 물론 본문을 친 자들의 주력은 마교(魔敎)였습니다만, 반수 이상은 중원무림의 고수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과가 있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철문영은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먼저 당시 본문을 친 마교는 두 가지 속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원제일의 거파인 본문을 무너뜨려 중원제패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자들은 본문의 한 가지 무공을 노렸습니다."

"마교라면 천세문과 걷는 길이 다를 터인데 무엇을 노렸단 말입니까?"

철문영이 물었다.

"본문에는 문주님만이 보실 수 있는 두 권의 비급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히 하늘을 가르고 바다를 뒤집어 엎을만한 신공절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천세절전(千世絶典)상의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은 본문 이천 년의 정화가 집결된 구결(口訣)입니다. 이는 한가지 신공의 구결로 지금은 미완성이나 완성되면 고금제일기공(古今第一奇功)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마교에서 군침을 흘릴만도 하지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알아낸 것은 당시 천세문이 붕괴될 때 탈출에 성공한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본문의 대붕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중 다른 자들은 별로 주목할 만한 자들이 못되나 열두명의 인물들은 누목할 만한 자들입니다. 그자들은 당시 천세비동에서 무림천년기전의 비급을 갖고 나와 지금은 무림의 최절정고수들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자들은 통칭하여 팔절(八絶), 사패(四覇)라 불리고 있습니다."

"팔절(八絶)과 사패(四覇)..."

철문영이 중얼거렸다.

"팔절(八絶)이란, 고죽검신(枯竹劍神), 신필수사(神筆秀士), 경천신도(驚天神刀), 혈사신마(血沙神魔), 무영괴파(無影怪婆), 천음인(天音人), 신풍도객(神風盜客), 혈륜비마(血輪飛魔)입니다. 그리고 사패(四覇)란 동보(東堡), 서장(西莊), 남곡(南谷), 북궁(北宮)이라 불리는 네 개의 문파입니다. 동보(東堡)란 산동(山東) 천양보(天楊堡), 서장(西莊)은 협서(陜西) 제왕장(帝王莊), 남곡(南谷)은 호남(湖南) 낙일곡(落日谷), 북궁은 하북(河北) 빙혼궁(氷魂宮)을 말합니다."

기전주의 얼굴은 완전히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였다.

그러나, 기전주는 말을 멈추려하지 않았다.

"노부는 이번에 동보 천양보(天楊堡)가 마교와 은밀히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천양보로 숨어들어가 천양보주인 천양신군(天楊神君)의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철문영이 침중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럼 천양신군이란 자가 사선생을 다치게 하셨습니까?}

기전주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노부의 공력이 육성 정도밖에 안되는 상태지만 그자 정도에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쩌다가 이런 중상을 입으셨습니까?"

철문영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천양봉 마교에서 나온 자가 있었습니다. 그자는 마교의 최고고수들인 팔대마령(八大魔靈) 중 한 자인 강령마왕(罡靈魔王)이라는 자였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검게 변했다.

이미 사신(死神)이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철문영은 안타까웠으나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었다.

"... 그자의 녹주환혼마강(碌柱換魂魔)... 정말로 강했습니다. 사력을 다했으나... 공력이 모자라... 그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기전주는 급히 가슴을 눌렀다.

""

기전주는 힘겹고 고통스런 기침과 함께 한 사발은 됨직한 사혈(死血)을 토해냈다.

"사선생"

철문영이 안색이 변해 외쳤다.

그러나, 기전주는 손을 저었다.

"이 늙은이 걱정은 마십시오. 이미 전신의 심맥이 모두 석어 문드러져 가망이 없습니다."

"사선생."

철문영은 기전주의 앙상한 손을 꼭 쥐었다.

(, 이분에게 힘든 짐을 지워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육체를 지탱하시기도 힘든 분인데...)

기전주는 착잡한 시선으로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 , 이 늙은이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지요?"

철문영은 기전주의 말에 기전주의 야윈 손을 힘주어 쥐었다.

"말씀해 보십시오. 사선생께서는 본인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만 본인은 사선생께 아무것도 못해드렸지 않습니까? 본인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겠습니다."

철문영의 말에 기전주의 혈색가신 노안에 미소가 감돌았다.

"고맙습니다. 부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저희 천세문의 대통을 전하께서 이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철문영은 흠칫 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선생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본인은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을 지니고 있어 이십 세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철문영이 암담히 중얼거렸다.

듣고 있던 화희도 암울한 표정이 되었다.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은 희귀한 절맥이다. 천 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할 정도로 극히 드물게 나타는 증세이기 때문이다. 이 절맥을 지닌 인물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양강지기(陽剛之氣)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하니 천하에 존재하는 어떠한 극음지기(極陰之氣)로도 치유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나이가 듬에 따라 그 양기가 더욱 강해져 이십세를 넘기지 못한다. 그 양기가 너무 강해져 전신의 심맥이 완전히 타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 이 절중을 치료하는 방법이 한가지 있기는 있다. 본시 하늘의 안배는 오묘한 것. 천라태양신맥이 세상에 나타나면 그와 함께 천고에 드문 극음지체(極陰之體)가 나타나는 것이다.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이것이다. 이 절맥만이 천라태양신맥의 양강지기를 융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넓고 넓은 천하에서 단 한 명의 상대자를 찾는다는 것은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철문영도 그런 까닭에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하... 전하께서는 단명하실 분이 아닙니다. 필시 인연이 닿아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천라태양신맥만 치유되신다면 전하께서는 능히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 되실 수 있습니다."

철문영이 괴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사선생. 지금까지 본인은 자포자기 상태로 있었습니다만 이제 마음을 바꾸겠습니다. 필히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고 천세문의 혈한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죽음이 드리운 기전주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고맙습니다, 전하. 전하께서 본문의 대통을 이어 주신다면... 이 늙은이는 안심하고 눈을... 감겠습니다."

기전주는 힘겹게 오른손에서 큼직한 보석이 박힌 지환(指環)을 뻬서 철문영의 손에 쥐어 주었다.

"... 이것이 밀로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밖의... 일에... 대해에서는 서가... 맨 아래칸의 비책(飛冊)... 기록해... 놓았으니 참고... 하십시오."

돌연 기전주의 얼굴에 반짝 하고 생기가 돌았다.

이는 생명의 불길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현상이었다.

"천세... ... 수천의... ... 령들이 전하...를 비호...하여 주시길..."

말을 하던 기전주의 머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사선생(士先生)!"

철문영이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미 기전주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

회희가 섬섬옥수로 옥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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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저녁 무렵. 해가 지기 직전. 여전히 황금전장

월동문이 있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건물. 건물 주변에는 갑옷을 걸친 여자 무사들이 지키고 있다. <자객일지>에 나온 황금나찰들이다.

월동문으로 들어오는 황금수라 한명. 수염을 길렀고 나이가 들어 보인다. <자객일지>에 나온 황금수라 부영반 귀견수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귀견수. 귀견수 뒤를 청풍이 따라온다

[()영반님!] 건물 입구를 지키던 황금나찰들이 귀견수를 보고 고개 숙이고

청풍; (본장의 내원을 지키는 여자 무사들인 황금나찰(黃金羅刹)...) 손 들어 아는 척 하는 귀견수를 따라가며 생각하고

청풍; (여자지만 개개인이 일류고수라던가?) 생각할 때

입구에 멈춰서며 의관 정제하는 귀견수. 청풍도 멈춰서고

귀견수; [장주님! 이청풍을 데려왔습니다.] 포권하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경호무사 황금수라(黃金修羅)의 부영반 귀견수(鬼見手)>

<들여보내라.> 건물 안에서 들리는 말

귀견수; [들어가라.] 옆으로 물러서고

귀견수; [장주님 가족에게 예의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고!]

청풍; [...] 대답하며 걸어가고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간다.

 

#8>

문 안쪽은 넓고 화려한 거실이다. 거실 중앙에는 화려한 탁자와 네 개의 의자가 놓여있고 그곳에 벽초천 가족이 앉아있다. 문을 향해 나란히 놓인 의자에 벽초천과 함께 드세 보이는 절세미녀가 앉아있다. 미녀의 이름은 마은혜. <무쌍일지>에 나온 황후 마은혜 캐릭터. 벽초천의 본처다.

탁자 좌우에는 소년 소녀가 앉아서 돌아본다.

벽초천 쪽에 앉아있는 소년은 청풍보다 두 살쯤 많아 보이는 거만한 인상의 소년. 나이에 비해 체격이 좋은 이 소년은 벽초천의 아들인 벽세황. 전형적인 금수저, 재벌이세 캐릭터.

벽세황 건너편에는 청풍보다 한 살 어린 소녀가 앉아서 보고 있다. 이름은 벽옥령인데 엄마를 닮아 도도하고 드센 인상이지만 예쁘다. <무쌍일지>의 주옥령 캐릭터

거실 구석에는 네 명의 시녀가 각기 두명씩 서서 시중 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중 한 시녀는 옷이 든 보따리를 들고 있다. 이름은 혜분. 나이는 10대 후반. 정이 많은 인상. 나중에 청풍과 썸씽이 있다. <무쌍일지>에 나온 강혜분 캐릭터

강혜분; (저 아이가 타노의 아들 이청풍...) 문을 닫고 들어서는 청풍을 보며 눈 반짝

강혜분; (몇 번 본 것도 같은데 딱히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는 평범한 아이네.)

청풍; [장주님!] 탁자 앞에 서서 포권하고.

청풍; [부르심 받고 대령했습니다.]

강혜분; (겨우 열 살이라는데 어른처럼 의젓하잖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옆의 시녀도 호감을 느끼는 표정. 그때

벽초천; [부인! 저 놈이 바로 이청풍이오.] 옆에 앉아있는 마은혜에게

마은혜; [저런 아이가 본장에 있는 줄은 몰랐어요.] 청풍을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보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초천의 본처 마은혜(馬恩惠)>

벽초천; [본장의 하인 숫자는 천명이 넘소.] [게다가 늘 장경각에 처박혀 있었던 탓에 저놈을 아는 사람은 얼마 안될 거요.] 마은혜에게 설명하고. 벽세황은 지루한 표정으로 힐끔거리고. 벽옥령은 눈 반짝이며 보고 있고

마은혜; [그렇겠군요.] 끄덕

마은혜; [글은 어떻게 배웠느냐?] 청풍에게

청풍; [철이 들 무렵 아버지가 천자문을 가르쳐주셨고...] [네 살 때부터는 장경각 총사서 우문노야로부터 학문을 배웠습니다.]

마은혜; [우문노인은 한림학사 출신이니 대단한 스승을 둔 셈이로구나.] 차갑게 웃고

청풍; (하인 주제에 한림학사 출신의 스승은 과분하긴 하지.) 쓴웃음

벽옥령; [무려 네 살 때부터 우문노야에게 배운 거야?]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천재잖아.] 짝짝! 감탄한 표정으로 손뼉 치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초천의 딸 벽옥령(碧玉鈴)>

청풍;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가씨.] 고개 숙이고

벽옥령; [난 옥령이고 아홉 살이야. 아가씨라 하지 말고 옥령이라 불러.] 얼굴 발그레 해져서

청풍; (나보다 한 살 아래로군.) + [소인이 어찌 감히 아가씨의 방명을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마은혜; [그 말은 맞다.] 도도

마은혜; [넌 앞으로도 옥령이를 아가씨라 불러라.] 청풍에게

청풍; [예 마님!]

벽옥령; [엄마!] 불만. 하지만

마은혜;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하는 법도가 있는 법이다.] [너나 저 애를 위해서라도 그 법도는 지켜져야 한다.]

벽옥령; [...] 삭 죽고

청풍; (맞는 말이다.)

청풍; (내가 아가씨와 터놓고 지내면 아가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만만히 여겨지고 나는 질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생각할 때

벽세황; [너 몇 살이냐?] 거만하게 눈 흘기며

청풍; [열살입니다.]

벽세황; [그럼 나보다 두 살 아래로군.] 히죽. 거만하게 웃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초천의 장남 벽세황(碧世皇)>

벽세황; [이것저것 가르쳐줄 테니 앞으로 내 시중 잘 들어라.]

벽초천; [배워야하는 건 청풍이 아니라 세황이 너다.] 엄한 표정으로 벽세황에게

벽세황; [배워요? 소자가 저놈에게?] 어이없고

벽초천; [우문노인이 쾌차해서 돌아오는 대로 너도 우문노인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수학을 해야 한다.]

벽초천; [그때까지는 청풍이와 공부를 해서 진도를 얼추 맞추도록 해라.]

벽세황; [아이 참! 난 글공부보다는 무공을 배우는 게 좋은데...] 짜증내다가

움찔! 하는 벽세황. 벽초천과 마은혜가 엄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벽세황; [... 분부 따르겠습니다.] 자세 바로 하며 부모의 눈치를 보고

마은혜; [이청풍!]

청풍; [예 마님!]

마은혜; [배움에는 귀천이 없고 나이 역시 상관이 없다고 했다.] [오직 누가 더 멀리 배움의 길을 갔는가로 선후(先後)가 정해지는 법이다.]

마은혜; [글공부는 세황이가 너의 후배이니 혹여 나태하면 즉시 내게 고하거라.]

청풍; [분부 받들겠습니다.] 포권하고

그러면서 곁눈질. 벽세황은 입이 댓발이 나왔고.

청풍; (장주의 눈에 뜨이는 바람에 소장주의 글동무가 되었는데...)

<어쩐지 고생문이 훤히 열린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실내의 모습. 마은혜가 청풍에게 뭐라 하는 장면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옥령은 초롱초롱한 표정으로 청풍을 보고. 벽세황은 삐진 모습이다.

 

#9>

해가 막 진 무렵. 여전히 황금전장

황금전장의 후미진 곳. 하인들이 사는 곳이다. 낮고 긴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고. 공동 우물이 있는데 그 주변에서 하녀들이 빨래를 하거나 음식 준비를 한다. 건물 들 사이에선느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고.

빨래하던 여자들 흠칫! 한쪽을 보고

건물들 사이로 걸어오는 청풍. 보따리를 하나 들고 있다. 시녀 강혜분이 들고 있던 그 보따리다. 뛰어 놀던 아이들이 힐끔거리지만 아는 척 하진 않고

[청풍이가 돌아왔어!] [타노 아들 청풍이야.] 여자들 수군거리고

여자들; [내원으로 불려갔었다던데 무슨 일일까?] [청풍이도 우리같은 천한 놈인데 장주님께서 왜 부르셨는지 모르겠어.]

여자들; [황금전장에서는 발에 채이는 게 하인이잖아.] [흔하고 천한 하인 주제에 장주님 눈에 들었다면 좋은 일이지 뭐.] 시기하는 여자도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길쭉한 건물들 중 어느 방으로 가는 청풍. 방 한 칸 짜리다.

청풍;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10>

청풍; [!]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흠칫! 하고

어둑한 방안. 불은 켜져 있지 않은데 타노가 의자에 앉아있다. 방에는 침대 두 개와 의자 두 개. 탁자 하나가 있다. 옷은 대충 벽에 걸게 되어 있고

청풍; [아버지!] 눈치 보며 문을 닫고

타노; [앉아라.]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고. 타노는 10년전과 거의 비슷한데 머리가 좀 더 희었다. 이제 반백이 되었고

청풍; [...] 탁자 위에 들고 온 보따리를 놓고 마주 앉고

타노; [장경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부() 총사서 조선생에게서 들었다.]

청풍; [...] 눈치 보고

타노; [장주는... 너의 능력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한숨

청풍; [기억력이 비상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까지만 알고 계십니다.] 눈치 보며

타노; [내원으로 불려가서 네가 할 수 있는 다른 능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느냐?] 굳은 표정

청풍; [!]

타노; [그렇다니 다행이다.] 한숨. 안도의 표정

타노; [앞으로도 너는 철저하게 공부재주만 있는 글벌레로 행세해야한다.]

타노; [행여나 네가 한번 본 건 글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된다.]

청풍; [명심하겠습니다만...] 말 꼬리를 흐리고

타노; [왜 아비가 너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걸 엄금하는지 궁금하겠지?]

대답하지 않는 청풍. 긍정하고

타노;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서는 안된다.] [너에 대한 것이 알려지면...]

타노; [너는 물론이고 아비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심각

청풍; [...] 대답하지만 미진하고

타노;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만 기다려라.]

타노; [그때쯤이면 너도 황금전장을 나가 독립할 수 있을 테고... 그럼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마.]

청풍; [알겠습니다.]

 

#11>

건물 밖의 모습. 시간이 좀 지났고

타노; [소장주와 글공부 동무라...]

청풍; [당장 내일부터 내원으로 와서 소장주의 공부를 봐주라고 하셨습니다.]

청풍; [이 옷은 내원을 드나들 때 입으라며 마님께서 주셨고...] 탁자 위에 놓인 보따리를 보며 말하고

타노; [소장주는 무공에는 제법 소질이 있지만 진득하게 학문을 할 수 있는 성격은 못된다.] [장차 네가 여러모로 힘들 게다.]

청풍; [각오하고 있습니다.]

타노; [비록 소질이 있다지만 소장주는 무공 방면에서도 아주 특출한 인재는 못되는데...] 생각하다가

타노; [장경각에도 무공과 관련된 서적들이 많이 수장되어 있겠지?]

청풍; [전체 장서의 대략 일푼 정도가 무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타노; [일푼이라 해도 천여권...] 말 끝을 흐리며 청풍을 보고

청풍; [그중 십에 팔은 읽었습니다.] 눈치 보며

타노; [그럴 거라 생각했다.] [사내아이들에게 무림인이 되는 것은 꿈이기도 하니...] 쓴웃음을 짓고

타노; [물론 읽기만 했겠지?]

청풍; [수련은 하지 않았습니다.]

타노; [네가 몸이 약해서 무공 수련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소문을 퍼트려 놨다.]

타노; [그러니 소장주와 어울리다가 헛바람이 들어서 내공심법을 수련한다던지 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거라.]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지만

청풍; (불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분부를 따르고는 있지만...) 내심 불만

<언제까지 이렇게 은인자중하고 나를 숨기며 살아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실내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12>

<-칠년 후> 험준한 산. 낮이지만 먹장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어둡고 음침한 날씨

우르릉! 먹장구름 속에서 천둥도 일고.

골짜기. 오래전에 버려진 절. 무너진 건물들. 잡초가 무성. 귀신이 나올 것같은 분위기

그나마 온전한 대웅전 건물

어둑한 내부. 세 개의 커다란 불상이 불단에 안치되어 있고.

번쩍! 밖에서 번개가 치고. 다음 순간

번갯불에 비쳐 대웅전 안쪽에 길게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입구에 서있는 거인. 키가 2미터 50쯤 되는데 보디빌더 같은 몸에 짐승 가죽을 둘렀고, 손에는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들었다. 이자는 신선부의 앞잡이인 혈세사패중 지옥갱의 갱주인 지옥혈부. 캐릭터는 168인데 무기만 도끼로 바꿀 것.

지옥혈부; [본좌가 첫 번째인 줄 알았는데... 한 걸음 늦었군!] 중얼거리며 대웅전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러자

<그리 늦지 않았소 갱주(坑主)! 본좌도 막 도착한 참이었으니...> 츠으! 말과 함께 대웅전 구석에서 흐릿한 빛이 떠오르더니

!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 인물. 흰 가면을 썼고 흰 옷을 입었다. 두 손은 양쪽 소매에 넣고 있고. 이자는 혈세사패중 백살파라는 살수조직의 수령이다. 별호는 백일살신. 캐릭터는 658.

지옥혈부; [백살파(白煞巴)의 파주 백일살신(白日殺神)!] [천하제일의 살수(殺手)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도끼를 든 채 포권하고

백일살신; [살인하는 재주라면 지옥의 살귀들이 모여 있다는 지옥갱(地獄林)의 주인 지옥혈부(地獄血斧)를 누가 능가할 수 있겠소?] 고개 좀 숙이고

백일살신; [안 그렇소? 환마루주(幻魔樓主)?] 불단에 있는 부처상을 보며 말하고. 지옥혈부도 흠칫! 하며 돌아보고. 그러자

<흐흐흐! 역시 천하제일살수의 이목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군!> 웃음소리가 불단에서 들리더니

츠츠츠! 불단에 안치되어 있던 세 개의 불상중 좌측의 불상이 흔들리더니

스스스! 그 불상에서 아메바처럼 빠져나오는 인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뒤덮은 인물. 눈 부위만 보인다. 백일살신과 다른 점은 백일살신은 가면을 썼고 이자는 복면을 쓴 점. 혈세사패중 환마루의 주인으로 별호도 환마루주다.

지옥혈부; (신묘한 환술(幻術)이 특기인 환마루(幻魔樓)의 주인 환마루주...) 눈 번뜩이며 보고

지옥혈부; (저자의 장기는 주변의 어떤 사물로든 변신할 수 있는 환술이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불단 앞에 서는 환마루주를 보며 생각하고

지옥혈부; (나중에 우리 혈세사패(血洗四覇)들 간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을 벌일 때 가장 조심해야하는 적이다.) 눈 번뜩이고.

세 방향에 서서 서로를 노려보는 지옥혈부, 백일살신, 환마루주. 그때

[어머나! 여기 분위기 왜 이렇게 살벌할까?] 갑자기 들리는 음성에 움찔하는 세 사람

구미호리; [지금 당장 결판을 내야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신경 곤두세우면 피곤하지 않는가요?] ! 문으로 들어서는 야한 여자.

! 여자의 모습 자세히 보여준다. 화려한 일본 여자 같은 복장과 장식을 했으며 얇은 옷을 입었는데. 벌어진 저고리 사이로 육중한 젖가슴의 형상이 보이고 옆이 터진 치마로는 하이힐을 신은 미끈한 다리가 드러난다. 손에는 곰방대를 들고 있는데 입에서 막 뗀 모습. 이 여자는 혈세사패중 쾌활림의 림주인 구미호리. 캐릭터는 074 075. 몸에서 꽃향기가 흘러넘치는 육감적이고 도발적인 분위기

<쾌활림(快活林)의 림주 구미호리(九尾狐狸)!> <저 계집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사내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는 소문이 사실이로군!> <위험한 체향! 저 년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자 정신이 혼미해진다!> 긴장하는 지옥혈부등 자신들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눈이 좀 풀리거나 충혈되고

구미호리; [어머나 정말 서운하네.] 눈을 흘기며 대웅전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고.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걸어오는데 갈라진 옷자락이 꼬리처럼 흐느적거린다

구미호리; [본녀를 마치 독사처럼 보시는 건 너무 하지 않는가요?] [본녀는 세분 문주님들을 해코지 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에요.] 대웅전 중앙으로 들어서며 세 사람에게 눈을 흘기고

환마루주; [오해하지 마시오! 우리는 림주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림주를 보호하려고 물러서는 거요.]

구미호리; [그건 또 무슨 요상한 논리인가요 환마루주님?]

환마루주; [우리들은 위험을 느끼면 반드시 살수를 쓰는 버릇이 있소.] 지옥혈부와 백일살신을 보며 말하고. 지옥혈부는 두 손으로 도끼를 움켜잡고 있고 백일살신은 양쪽 소매에서 약간 꺼내는 손에 갈쿠리가 보인다. X맨 울부린의 칼날 같은

지옥혈부와 백일살신의 모습

구미호리; [본녀의 유혹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차라리 죽여 버리겠다는 건가요?] 서운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고

환마루주; [림주의 노예가 되느니 눈물을 머금고 림주의 목을 치는 게 났지 않겠소?] 지옥혈부와 백일살신을 보며

말없이 고개 끄덕이는 지옥혈부와 백일살신

구미호리; [! 알았어요!] 스륵! 벌어졌던 저고리를 여며 젖가슴 감추며 눈을 흘기고

구미호리; [세분이 겁먹지 않도록 저의 색기(色氣)를 줄이는 수밖에...] 속살을 감추며 새침한 표정을 짓고. 그러자

안도하며 도끼를 내리는 지옥혈부

스슥! 소매 속에서 조금 뽑았던 손에서 갈쿠리가 사라지는 백일살신

구미호리; [사내가 되어서 여자를 무서워하기나 하고 말이야.] [나라면 가운데 달린 거 삭둑 잘라버리겠어.] 샐쭉거리고

쓴웃음 짓는 지옥혈부. 그때

환마루주; [다시 인사드리겠소!] [명성으로만 듣던 세분을 한 자리에서 뵙게 되어 영광이오.] 포권하고

지옥혈부; [혈세사패의 주인들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군.] 도끼를 든 채 포권하고

백일살신; [은밀히 사람을 죽이는 게 본업인지라 본좌도 타인 앞에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처음이오.] 역시 포권하고

구미호리; [물론 세분도 존귀하신 그분... 지존(至尊)의 호출에 응하신 거겠지요?] 교태롭게 웃으며 말하고. 그러자

<지존!> 지옥혈부들의 얼굴이 굳어지고

구미호리; (역시 지존의 존재감은 가공하네.)

구미호리; (한 때는 자신이 천하제일인이라고 뻐기던 저 인간들을 이름만으로도 얼어붙게 만드니...)

구미호리; (하긴 나도 지존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까무라쳤었으니 남 말할 처지가 아니지.) 두려운 표정으로 몸을 좀 움츠리고

구미호리; (과연 지존의 정체는 뭘까?)

구미호리; (어떤 대단한 배경이 있기에 우리들 혈세사패를 간단히 복종시킨 것일까?) 생각하고. 다른 세 사람도 침묵하는데

<수인사들은 나눈 것 같군!> 갑자기 누군가의 말이 들려 눈 부릅뜨는 내 사람

지존;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군!] ! 언제였는지 불단 앞에 화려한 의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곳에 한 인물이 다리를 꼬고 양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은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다. 몸에는 화려한 곤룡포를 걸쳤으며 얼굴에는 두 개의 뿔이 달린 귀신가면을 가면을 쓴 모습. <무쌍일지>의 십면혈신 캐릭터. 이 작품에서의 별호는 귀면지존. 보통 지존이라고도 불린다. 지존의 정체는 신선부의 패륜아 위극존인데 가끔은 위진천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 지존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그러자

<...언제 저기에...> <흐윽!> <의자채로 나타났다!> <술법을 써서 공간이동을 한 것인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서는 환마루주, 구미호리, 백일살신. 그때

지존; [혈세사패!] [본좌의 지시를 어찌 이행했는지 보고하라!] 강렬한 눈빛으로 말하고. 그러자

퍼뜩! 정신을 차리는 혈세사패의 패주들. 이어

[지존을 뵙소이다!] [지존께 충성을!] 일제히 한 무릎 꿇으며 포권하는 지옥혈부 일행.

지존; [인사는 됐고...] [도착한 순서대로 보고하라.] 거만하게, 그러자

백일살신; [지존께서 하사하신 일백종의 신병이기로 저희 백살파의 최정예 백일자객(白日刺客)들을 무장시켰습니다.] 포권하며

백일살신; [백종의 신병이기 덕분에 백일자객들의 살인능력은 혼자서 구대문파 장문인을 척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구대문파 장문인을 혼자서 죽일 수 있는 자객이 백명이나 되다니...> <백살파의 전력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로구나.> 지옥혈부와 환마루주가 놀라고

지존; [백살파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끄덕이고

백일살신; [과찬이십니다 지존!] 포권하고

시선을 지옥혈부에게 돌리는 지존

지옥혈부; [지존께서 하사하신 광마환(狂魔丸)으로 일천명의 지옥광전사(地獄狂戰士)를 길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옥광전사?> <이름만 들어도 섬뜩하네.> 구미호리와 환마루주등의 놀람

지옥혈부; [일단 광기를 일으키면 적이 죽든 자신이 죽든 결판을 내고야마는 지옥광전사!] [그놈들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당금 무림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에 찬 표정으로

지존; [대규모 살육전을 벌이기에 지옥광전사만한 적당한 놈들도 없겠지.] 끄덕이고.

이어 환마루주에게 고개 돌리는 지존

환마루주; [지존께서 하사하신 천변만화결(千變萬化訣) 덕분에 저희 환마루의 제자들은 어떤 누구로라도 변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마루주; [그리하여 지난 삼 년 간 강호의 거의 모든 문파와 세력에 환마루의 제자들을 잠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환마루주; [지존께서 하명만 하시면 환마루의 제자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무림의 모든 문파를 접수할 것입니다.]

지옥혈부; (환마루주! 저 놈에 대한 경계를 늦추면 안되겠군!)

백일살신; (어쩌면 우리 백살파에도 환마루가 침투시킨 가짜가 암약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곁눈질로 환마루주를 보고. 그때

지존; [표적이 된 세력은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끄덕이고

이어 구미호리를 보는 지존

구미호리; [저희 쾌활림의 자매들도 지존께서 하사하신 미혼대법(迷魂大法)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사옵니다.]

구미호리; [천하의 거의 모든 환락가에 침투해있는 쾌활요희(快活妖姬)들은 상대가 사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이옵니다.]

지존; [사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이 쾌활요희들이라고 할 수 있지.] 고개 끄덕이고. 이어

지존; [혈세사패!] [그대들이 본좌가 부여한 사명을 성실히 완수한 것같아 기쁘기 한량없다!] 둘러보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희 혈세사패는 오직 지존의 영광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할 것입니다.] 포권하며 아부하는 네 명

지존; [그리 말해주지 흡족하기 이를 데 없다.] 거만하게 웃고

지존; [모두 일어나라!] ! 의자에서 일어나고

[존명!] [감사하옵니다.] 일어나는 혈세사패 패주들

지존; [그대들의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무림정복의 대장정을 시작하자!] 강렬한 눈빛으로 말하고

<드디어!> 흥분하는 혈세사패 패주들

지존; [대장정의 첫 번째 표적은 정해졌다.] [지금부터 본좌와 함께 그 표적을 치러 간다.] 쿠오오! 온몸에서 강렬한 패기

환마루주; [첫번째 표적이라면 혹시!] 눈 번뜩

지존; [그대들이 짐작하는 대로다!] 끄덕

지존; [당대에 존재하는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이 그대들과 본좌가 쓰러트려야하는 첫 번째 표적이다!] 강렬한 표정

<고금제일검!> 지옥혈부, 백일살신, 환마루주, 구미호리의 긴장하는 얼굴 배경으로 나레이션

 

#13>

어느 도시.

번화가.

<>이라는 깃발이 걸려있는 작은 가게.

가게 안에는 손님이 없는데 늙은 점쟁이가 무언가를 종이에 쓰고 있다. 옆에는 점치는 도구인 산통이 놓여있다. 산통은 작은 나뭇가지를 여러 개 꽂아넣은 통. ,걸 흔들어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적힌 글을 보고 점을 친다.

종이에 무언가 쓰며 고민하는 노인. 바로 검성 섭장천이다. 머리에는 점쟁이들이 쓰는 팔각모를 쓰고 있고

섭장천; (대흉(大凶)...) 종이에는 복잡한 수식과 도형이 그려져 있다.

섭장천; (반복해서 점괘를 짚어봐도 노부는 물론이고 아들 내외도 대흉으로 나온다.)

섭장천; (그나마 아들 내외의 외동딸 아연(雅姸)이만 선흉후길(先凶後吉)로 나오는데...) 불길한 표정

섭장천; (오랜 세월 주역을 공부해왔지만 이런 점궤가 나온 적은 없다.) 붓을 내려놓고

섭장천; (아무래도 무슨 일인가 벌어지려는 모양인데...) 생각하다가 흠칫! 하고.

가게 밖에서 어린 거지가 기웃거리고 있다. 꾀죄죄한 차림의 전형적인 거지인데 손에는 바가지를 하나 들고 있다.

섭장천; [들어오너라.] [오전에 번 복채가 있으니 나눠주마.] 소매에서 동전을 꺼내는데

거지; [돈이라면 심부름 보낸 분으로부터 이미 받았어요.] 주춘 주춤 거리며 들어오고. 바가지를 든 채

섭장천; [누구 심부름으로 왔다는 것이냐?] 놀라고

거지; [어떤 잘 생긴 공자님이 이걸 노야에게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바가기를 내밀고. 바가지 안에는 봉투에 든 편지가 한통 들어있다.

섭장천; (편지!) 집어들고. + [수고했다.] 딸랑! 꺼내든 동전은 바가지에 넣어주고

거지; [고맙습니다 노야!] 굽신. 입이 귀에 걸리고

신나서 나가는 거지. 그 배경으로 편지를 개봉하는 섭장천

섭장천; (누군가 보낸 이 편지가 거푸 대흉으로 나오는 점궤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편지를 펼치고. 직후

[!] 눈 부릅뜨는 섭장천.

 

#14>

섭장천의 점집이 보이는 건너편 이층 주점.

창가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점집을 보는 청년. 위진천이다.

위진천;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검성으로 불리는 섭가 늙은이가 점쟁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음산하게 웃고

위진천; (딴에는 세상을 속이기 위해 점쟁이로 위장했겠지만... 전 무림에 이목을 풀어놀고 있는 혈세사패를 속이지는 못한다.)

위진천; (결국 저 늙은이도 신선부, 아니 나 위진천(威振天)이 천하무림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웃을 때

! 갑자기 점집의 지붕이 터지며 무언가가 미사일처럼 날아오른다.

[!] [...뭐냐?] 사람들 기겁할 때

쇄애액! 미사일처럼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는 섭장천

위진천; (시작되었군.) 술을 마시며 일어나고

위진천; (고금제일검께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마지막 여행이...) 스스스! 사라지는 위진천. 허공에 술잔만 남고

파삭! 바닥에 떨어져 박살나는 술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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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음침한 복도. 감옥이다. 복도 좌우에 철문이 달린 감방들이 있고. 인자급 자객들이 지키고 있다

어느 감방. 정정과 철두등 아이들이 벽에 기대 빙 둘러 앉아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고. 유일하게 느긋한 건 철두다. 철두 옆에는 정정이 무릎을 두 손으로 끌어안은 자세로 쪼그려 앉아있고

여자 아이들은 소리 죽여 울고 있다.

정정; (젠장! 어째 분위기가 암담하잖아.) 입술 깨물고

정정; (이러다가 위()공자님께서 맡긴 임무를 완수하긴 커녕 비명횡사할지도 모르겠어.) 어떤 사내, 즉 위진천의 실루엣을 떠올리며 입술 깨물고. 이년은 사실 위진천이 살인상단에 잠입시킨 간세다.

정정; (어떻게든 이 감옥에서 빠져나갈 방도를 강구해야하는데...) 생각할 때

[! !] [!] 한곳에 모여 있는 계집애들 세명이 숨 죽여 울고 있다. 이영자를 닮은 체형의 여자와 주근깨 투성이의 쌍둥이 자매

정정; [야 이년들아! 뚝 그치지 못해?] 돌아보며 버럭. 다른 아이들도 움찔하고

정정; [운다고 뭐가 달라져?] [그러고도 네년들이 자객이냐?] 노려보고

더 겁에 질려 우는 여자 아이들. 소리는 죽여서

정정; [죽게 된다면 죽을 팔자거니 생각하고 받아들여!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깔끔하게 죽는 것이 복일 수도 있잖아.]

철두; [그만해라.] 한숨

철두; [자객이니 뭐니 해봐야 저 애들도 반년 전까지는 철없고 순진한 계집아이들이었을 뿐이다.]

철두; [이 상황이 겁나는 건 어쩔 수가 없지 않겠냐?]

정정; [대범한 척 하긴...] 눈 흘기고

철두; [그래도 내가 너보다 한 살은 더 먹은 오빠 아니냐?] [속으로는 쫄고 있어도 겉으로는 대범한 척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웃고

정정; [나이 한 살 많은 게 무슨 벼슬이냐?] 궁시렁

철두; [사실 난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웃고

정정; [어이구 그러셔?]

정정; [그렇게 낙관하는 이유나 말해보세요 철두오라버니.] 비웃고

철두; [우릴 죽이려면 단정관에서 죽였다.] [굳이 가둬주는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정; [듣고 보니 그렇네.] 샐쭉.

다른 아이들도 흥미를 보이고

철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청풍이는 살인상단의 단주와 아는 사이같았다.] [덕분에 우리도 목숨은 부지할 가능성이 높다.]

정정; [그럴 수도 있겠네.] + (이 쇠대가리가 무식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머리가 팽팽 돌아가잖아.)

정정; (어쩌면 나처럼 다른 꿍꿍이를 품고 살인상단에 잠입한 인간인지도 몰라.) 생각할 때

철두; [걱정은 실제로 닥쳤을 때 하는 거다.] [그러니 모두 잘 될 거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려라.]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고.

고개 끄덕이는 아이들. 그때

철컹! 갑자기 철문이 열리고.

깜짝 놀라 돌아보는 아이들

복면인; [나와라! 너희들에게 손님이 왔다.] 인자급 복면인 한명이 철문을 열며 말하고

정정; [... 손님? 어떤 손님?] 펄쩍 뛰어 일어나고

청풍; [이런 손님이면 반갑냐?] ! 철문 밖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청풍.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었다. 귀공자 같고. 손에 부채도 하나 접어 들고 있다. 허리에는 향낭을 하나 차고 있다. 이 향낭은 중요한 소품

정정; [청풍아!] 외치며 달려 나가고

[!] [청풍이야!] [청풍오빠야!] [흐윽!] 사내아이들 환호하며 튀어 일어나고. 여자 아이들은 기뻐서 전율하고

정정; [흐윽!] 와락! 감방에서 튀어나와 청풍의 목을 끌어안고.

정정; [살아있었구나 청풍아! 네가 살아있었어!] 청풍의 목을 끌어안고 감격하며 떨고

청풍; [걱정해줘서 고맙다.] 다독이고

우는 정정. 몰려나오는 아이들

청풍; [진정하고 반가운 손님도 봐야지.] 옆을 돌아보고. 아이들과 정정도 옆을 보고

멀지 않은 곳에 난향이 서있다. 눈물 글썽이며

정정; [난향아!] 달려가고. 여자 아이들도 달려가고

정정; [너도... 너도 무사했구나.] 난향의 손을 잡고 울고. 달려온 여자 아이들도 난향을 둘러싸고 울고. 난향도 울고

철두;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감방에서 나오며 웃고. 돌아보는 청풍

청풍; [애들 다독이느라 고생했지?] 철두의 팔을 툭 치고

철두; [고생은 무슨... 다 큰 놈들인데...] 멋쩍고

청풍; (이래서 정이란 게 무서운 것이다. 지옥십관의 마지막 관문이 단정관인 이유가 있고...) 철두와 함께 서서 아이들이 난향을 둘러싸고 기뻐하는 걸 보며

<불과 반년을 함께 보냈는데도 끊기 어려운 정이 생기는 걸 보면...> 복도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148>

화려한 거실. 진수성찬이 차려진 큰 원탁을 청풍과 아이들이 둘러앉아있다. 난향을 포함한 여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끼리 모여 있고. 청풍의 좌우에는 정정과 철두가 앉아있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지만 음식에 손을 대는 아이는 없다.

청풍; [나는 곧 여길 떠난다. 첫 번째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둘러보고

정정; [벌써... 네게 벌써 자객일이 주어진 거야?]

청풍; [윗분들이 과대평가를 한 덕분이다.] 쓴웃음

정정; [누구... 어떤 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니?] 진지하게

[!] 철두도 곁눈질로 보며 관심을 보이지만

청풍; [기밀을 지키는 게 자객의 첫 번째 사명임을 잊지 마라.]

정정; [벌써 능숙한 자객 흉내 내는 거야?] 입술 삐죽

청풍; [누굴 죽이러 가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 [다만 쉽지 않은 임무라는 것만 알아두고...]

청풍; [시간 나면 북두칠성께 내 무운(武運)을 빌어다오.] 둘러보고

난향; [그럴게요 오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성을 드릴게요.] 건너편에서 애절한 표정으로 말하고

청풍; [고맙구나 난향아.] 웃고. 이어

청풍; [난 떠나지만 너희들은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정정; [혹시 우리가 널 묶어둘 인질이 된 거야?] 눈 흘기고

철두; [또 과대망상 도진다.] 건너편에서 흘기고

정정; [뭐야?] 철두를 노려보고

청풍; [인질은 아니고...] [사실 너희들을 당분간 이곳에 머물게 해달라는 부탁은 내가 한 거다.]

정정; [어째서?] 눈 부라리고

정정; [이 지옥같은 곳에 왜 우릴 묶어둔 거야?]

청풍; [지금의 너희들은 무자급 자객들보다도 약하다.] [이대로 임무에 투입되면 좋은 꼴 못 볼 게 뻔하다.]

청풍; [그래서 너희들을 지금보다 더 혹독하게 단련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정; [... 그건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닌데...] [지난 반 년간 구른 것만 해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구!] 울상

청풍; [앞으로 너희들은 자객 기술보다는 무공 위주로 수련을 하게 될 것이다.]

청풍; [아무쪼록 다시 만났을 때는 일류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 있기 바란다.]

철두; [그래 기대해라!] 큰 손으로 청풍의 어깨를 두드리고

철두; [머잖아 강호무림은 우리들 무조회(戊組會)의 위명에 벌벌 떨게 될 것이다.] 술잔을 들며 건배하고

[무조회! 이름 좋다!] [기왕 태어났으니 세상을 한번 들었다 놓자!] 다른 아이들도 술잔을 들며 환호하고. 청풍과 정정도 술잔을 들고

 

#149>

모니터가 죽 붙어있는 밀실. 소수마녀가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서 보고 있고 그 뒤에 파면살주가 서있다.

소수마녀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청풍과 아이들이 건배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걸 보며 뭔가 생각하는 소수마녀

파면살주; [단주의 의중을 알고 사실 매우 놀랐네.] 소수마녀의 뒤에 서서 함께 모니터를 보며 말하고

파면살주; [이청풍에게 적당한 목표를 줘서 경험을 쌓게 한 후 십적(十敵)을 죽이는 데 동원할 줄 알았어.]

소수마녀; [순리를 따르자면 그렇겠지요.]

소수마녀; [하지만 십적은 하나같이 한 방면의 최강자들이에요.] [원칙대로 했다가는 이청풍이 그자들을 죽이는 건 백년하청(百年河淸;오래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음)일 거예요]

파면살주; [그렇다 해도 천자급 여럿을 동원해도 죽일 수 없는 강적들의 척살을 초출내기에게 맡긴다는 건 영...]

소수마녀; [이청풍의 잠재력을 믿어봐야지요.]

청풍의 모습 크로즈 업. 허리춤에 향낭을 하나 차고 있는 걸 보여주고

소수마녀; [또 제 나름대로의 비밀병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구요,] 웃고

파면살주; [이미 결정된 사안이니 믿어볼 수밖에 없겠지.] 끄덕

소수마녀; (부디 살아남아라 이청풍!)

<모든 일은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 하지만 일단 그 고비만 넘기면 너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게 강해질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웃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소수마녀의 생각 나레이션

 

#150>

<-낙양(洛陽)>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래 된 도시. .

번화가. 사람들 북적. 헌데

! ! 삘릴리! 둥둥! 꽹과리, 피리소리, 북소리가 들려 오가던 사람들 돌아보고

거리를 오고 있는 악극단의 모습. 꽹과리 치는 사람, 피리 부는 사람. 북치는 사람. 횃불을 여러 개 저글링 하는 사람. 입으로 불을 뿜어내는 사람. 우스꽝스러운 광대들의 모습. 사람을 태운 코끼리도 한 마리 행진하고. 다시 그 뒤를 뚜껑이 없는 화려한 마차 몇 대가 따르고. 맨 앞의 마차에는 야한 차림의 여자들이 사방에 꽃을 뿌리고 있고. 그 뒤의 마차에는 거꾸로 서서 거대한 항아리를 돌리는 난장이와 사람처럼 꾸민 원숭이들이 타고 있다. 원숭이들은 길가의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하고. 마차에는 <九州樂劇團>이란 글이 적힌 깃발들이 여러 개 걸려있다.

[유랑극단이로구만.] [이번 달에 유명한 곡마단이 낙양에 들른다더니 저치들이었어.] 길가에 서서 보는 사람들.

[구주악극단(九州樂劇團)이라면 유명하지.] [기상천외한 묘기에다가 환상적인 연극으로 보는 사람들 혼을 쏟 빼놓는다잖아.] 사람들 말할 때

[꺄악!] [!] 갑자기 주변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좋아 죽으려 하고. 사람들 흠칫! 하며 마차 행렬을 보고

마지막으로 오는 마차. 마차 주변에는 경호원들이 따라오는데 마차에는 절세미남이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부채를 부치면서. 사우가 화장한 모습. 옷이 아주 화려하고 화장을 진하게 해서 절세미남으로 보이고. 사우 뒤에는 얼굴에 얼룩덜룩 문신을 한 경극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저기 오신다!] [새송옥(賽宋玉)! 사랑해요!] [여기 좀 봐 주세요 새송옥님!] 여자들 발광하고. 반면 주변의 남자들은 당황한다. 여자들은 마치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요즘 여자들 같다. 꽃을 흔들거나 <賽宋玉 最愛> <賽宋玉 天下一>등의 프랭카드나 판자를 들고 환호하기도 한다.

[... 뭐야? 이 처자들 왜 이래?] [어허... 망측하도다!] 꺄꺄거리는 주변의 여자들 보며 남자들은 당황하고

꺄아! 꺄아! [새송옥님이 날 봐주셨어!] [사랑해요 새송옥님!] 여자들 환호하고 난리. 여기저기에 대고 연신 손 키스 하거나 손 흔들거나 윙크하는 사우.

[저 배우놈 때문에 이 난리로구만.] [잘 생기긴 했어. 여자들이 보면 환장하겠구만.] [구주악극단이 자랑하는 배우인 게로구만.] 남자들 사우를 질투하며 혀를 차고

남자들; [새송옥이라는 저 배우 이름 들어본 적이 있네.] [그런가?] 사우가 다가오는 걸 보며 말하고. 주변에서는 여전히 여자들이 꺅꺅 거리고 있고

<전설 속의 미남인 송옥(宋玉), 반안(潘顔)에 못지않게 잘 생겼다고 해서 새송옥이라 불리는 배우야.> <기막힌 미남인 데다가 연기실력도 끝내줘서 가는 곳마다 아녀자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닌다는군.> 마차에 탄 사우가 여자들의 환호에 답하며 지나가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남자들; [구주악극단에 속해있긴 하지만 매번 공연에 참가하는 건 아니라는군.] [그 때문에 새송옥이 합류하면 구주악극단의 공연장은 미어터진다는 거야.]

[부럽구만. 같은 남자인데 누군 여자들에게 저렇게 인기가 있고...] [추남으로 낳아주신 부모님 탓이나 해야지 뭐.] 궁시렁거리는 사내들 앞을 지나가는 사우를 태운 마차. 여자들이 마차를 따라가며 꺅꺅 거리고 있고

사우; (그년들, 아주 발광을 하는구만.) 마차 주변으로 모여들어 비명 지르는 여자들 보며 웃고. 경호원들이 여자들의 접근을 막으려 진땀 빼고 있고

사우; (나 사우의 바탕이 원래 잘 생기기도 했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화장까지 해서 계집들을 환장하게 만들고 있다.) 음험하게 웃고

사우; (덕분에 맘에 드는 계집을 골라서 자빠트릴 수 있어 좋지만...) 곁눈질로 길가의 여자들을 보고

사우; (이번에 내가 낙양에 온 것은 대물(大物)을 낚기 위해서다.) 거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한 어느 장원의 삼층 건물을 보며 히죽 거리고

삼층 건물 3층의 창가에 어떤 여자가 밖을 보고 있는 걸 크로즈 업

<저 계집이 나로 하여금 전대미문의 큰 공을 세우게 해줄 복덩이 위상영(威霜英)이다.> 창가에 앉아서 거리를 보고 있는 여자 크로즈 업 배경으로 사우의 생각 나레이션. 다른 작품의 냉상영이나 위상영 캐릭터인데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위진천의 누나다. 한번 시집갔다가 남편이 죽어 친정으로 돌아온 과부다.

사우; (위상영은 하남(河南)의 부유한 토호(土豪) 위가장(威家莊)의 장녀다.) (집안이 부유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뿐인 동생 덕분에 더 중요한 신분이 되었다.)

사우; (바로 무림맹의 소맹주가 된 위진천이 저 계집과 남매 사이인 것이다.) 위진천을 떠올리고

사우; (위상영, 저 계집을 후려내기만 하면 황금전장의 벽소소, 그년을 농락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사악하게 웃는 사우

 

#151>

위상영의 시점. 사우를 태운 마차가 멀어지고 있다. 여자들이 구름처럼 따라가며 꺄꺄거리고

위상영; (새송옥...) (저 사람이 또 낙양에 왔네.) 얼굴 발개지고

위상영; (일 년 전, 친정으로 돌아온 직후 저 사람이 공연하는 걸 보았었다.) 숨도 좀 가빠지고

위상영; (과부가 된 후로 벌써 오년...) (오랜 독수공방으로 외로워진 때문이었을까?) 한숨읗 쉬며 가슴에 손을 대고

위상영; (일 년 전 그날 이후로 저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었다.) 가슴을 누른 채 흥분. 가슴이 두근 두근

위상영; (새송옥은 어떤 사람일까? 정말 연극에 나오는 그대로의 매력적인 인물일까?) 꿈꾸는 듯한 표정

위상영; (너무나 궁금하다.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았으면 여한이 없을 텐데...) 한숨 쉬고. 그때

[쇤네이옵니다 아가씨.] 달칵!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고. 움찔! 하며 창문에서 돌아앉는 위상영.

유모; [점심은 어디서 드실지...] [어머나!] 들어오다가 놀라는 여자. 나이는 중년으로 좀 푼수처럼 보인다. 위상영의 유모다

유모; [새송옥 때문에 난리가 났네요.] 창문을 보며 다가오고. <꺄아! 꺄아! 새송옥님 사랑해요! 여기 좀 봐주세요.> 창 밖에서 들리는 여자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리고

유모; [우리 위가장의 젊은 유모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답니다.] 창문으로 다가와서 밖을 보며

유모; [벌써 어떻게 하면 새송옥의 공연을 보러갈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잔머리들을 굴리고 있더라구요.] 열린 창문으로 고개 내밀며 멀어지는 사우 일행을 보고

위상영; [한 가지 알아봐줄 게 있어 유모.] 새침하게 말하고

유모; [! 말씀만 하세요 아가씨.]

위상영; [새송옥이 어느 객잔에 머무는지 알아내도록 해.] 얼굴이 좀 붉어졌으면서도 짐짓 새침하게 말하고

 

#152>

낙양. 깊은 밤. 대부분의 건물에 불이 꺼져있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실. 완전한 보름달이고 그 때문에 밤이지만 아주 어둡지는 않다.

번화가에 자리한 화려한 객잔. 역시 불이 꺼져있다.

월동문이 있는 담장.

그곳으로 살금살금 오는 여자. 이십대의 날라리같은 인상의 여자. 주변 눈치 살피면서 월동문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품에는 선물 상자를 안고 있다. 이년은 이번 씬에만 나올 엑스트라. 사우를 쫓아다니는 빠순이다.

여자; (투숙객으로 위장한 덕분에 여기까지는 무사히 올 수 있었어.) 흥분하고

여자; (점소이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알아낸 바에 의하면 새송옥님은 이 월동문 안쪽에 머물고 계셔.) 월동문으로 들어가고

여자; (오늘을 기필코 새송옥님께 내 마음을 전하고 말 거야.) + [!] 생각하다가 눈 부릅. ! 그년 앞을 가로 막는 검은 그림자들

! 흉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눈을 부라리며 앞을 막고 있다.

여자; (... 들켰어!) ! 겁에 질리면서도 사내들 사이로 돌진해서 빠져나가려 하지만

! ! 여자의 팔을 좌우에서 잡는 사내들

여자; [... 놔줘요!] 사내들에게 답싹 들리며 다리를 버둥대고

여자; [난 새송옥님께 꼭 전해드릴 게 있다구나!] + 사내1; [더 소란을 피우면...] 끌고 가며 눈을 부라리고

여자; [!] 겁에 질리고

사내1; [기루에 팔아넘긴다.] + 사내2; [허튼소리일 거 같으면 소란 피워봐라.] 여자를 끌고 가며 협박하는 사내들

여자; [으으으...] 겁에 질려 달달 떨며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여자를 끌고 멀어지는 사내들. 헌데

 

근처 다른 건물의 그늘 아래 숨어서 보고 있는 여자. 얼굴을 면사로 가린 위상영

위상영; (예상대로네.) 사내들이 여자를 끌고 멀어지는 걸 보며 눈 번뜩이고

위상영; (구주악극단은 어떻게든 새송옥에게 접근하려는 계집들을 막기 위해 여러 명의 무사들이 고용되었다.)

위상영; (담장 안쪽에는 최소한 여섯 명의 무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월동문이 있는 담장을 보고. <두근! 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위상영의 귀에 들리고

위상영; (평범한 계집들이라면 그들의 저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 어둠 속에서 나와 월동문 쪽으로 걸어가고

위상영; (난 결코 평범한 계집이 아니다.) 스스스! 모습이 흐려진다.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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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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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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