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5'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4.15 [지백천년] 제 4장 천록여의 2 1
  2. 2020.04.15 [환골탈태] 제 9장 동분서주
  3. 2020.04.15 [자객일지] 제 22장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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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천록여의 (2)

 

머릿속으로 찬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장검을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을 때의 충격도 이처럼 크지는 않았다.

도깨비 장난을 본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장난의 깊숙한 곳에 자기가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상의 상식을 초월한 일이 그의 앞에서는 너무도 태연하게 계속되고 있다.

심장이 격하게 뛰면서 진정되지 않았다.

활몽루가 사라지는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자꾸만 생사탄이 연상되었다.

현천록은 일곱째인 장군묵도 자기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삼년이나 기다려서 진양진인을 만나려 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활몽루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고, 그 속에서 무슨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관자재보살...]

뒤에서 목탁소리와 함께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란한 소리에 놀라 달려 나온 계명사의 중들이 활몽루가 사라졌음을 보고 꿇어앉아 염불을 하고 있다.

부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 모두가 두려워하며 경건하게 염불을 왼다.

현천록은 그 자리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중들과 맞닥뜨리면 아직 자기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는데 또 새로운 시비에 말려들 것만 같아서다.

시간은 이경하고도 반은 지났을 것이다.

현천록은 낙엽처럼 날아올라 대웅전 지붕 위에 내려섰다.

활몽루만큼은 아니지만 대웅전의 지붕에서 보는 현무호의 밤도 아주 아름다웠다.

한데 대웅전의 지붕에는 현천록보다 먼저 와있는 선객이 있었다.

황색가사를 걸치고 회색바라를 진 중이었다.

현천록보다 더 작은 키에 몸은 민간에 팔리는 나한상(羅漢像)처럼 둥글고 납작한데 웃고 있는 얼굴에서는 도무지 나이를 읽을 수가 없었다.

오십을 넘은 듯도 하지만 탱탱한 살 때문에 주름살이 보이지 않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중의 입은 움직이지 않는데 목소리가 현천록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시주도 활몽루가 사라지는 걸 봤는가?]

불가에 비전되어 온다는 혜광심어(慧光心語)라는 고절한 무공이다.

현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웃고 있는 중의 입안에는 이빨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의 혜광심어가 다시 들려왔다.

[노납은 진양이란 도사를 만나러 왔네. 하지만 무슨 연고인지 스스로 문을 닫아버렸으니 다시 열 때까지 이 근처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됐어.]

현천록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스님께서 진양진인이 만나기로 했다는 분이시군요.]

중이 이빨 없는 입속을 들어내 보이며 웃는다.

[말이 좋아 만나는 것이지. 그냥 한판 싸워 삼년 전에 맺지 못한 승부를 가르면 되지. 한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구먼. 진양 그 소코같은 도사가 노납을 포기할 리 없는데.]

그때 계명사의 승려가 현천록과 중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사람이 있다!]

중이 껄껄 웃었다.

[잠시 피하세나.]

스윽!

중은 허깨비처럼 다가와 현천록의 손을 잡고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불을 머금은 종이풍선이 허공에서 흔들리는 것 같은 신법이다.

[자금산(紫金山)에 가면 먹을 만한 풀뿌리들이 숨겨져 있는 곳을 알고 있네. 이것도 삼세의 인연이니 함께 가지 않겠나?]

중이 계명사를 벗어나며 말했다.

현천록은 중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저는 잠시 들려야 할 데가 있습니다. 장소를 알려주시면 찾아가도록 하지요.]

중은 현천록이 자기의 손을 놓고도 공중에서 아무런 저항없이 떠있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했다.

[으하하하하! 대단한 시주였군. 나는 포두화상(葡頭和尙)일세. 영곡사(靈谷寺)에 와서 날 찾게나. 기다리고 있겠네.]

중은 뚱뚱한 몸에 믿기지 않는 속도로 자금산을 향해서 날아가버렸다. 마치 한 마리 거대한 붕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

 

현천록은 다시 성안으로 돌아왔다.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성문을 날아넘고 태평북로(太平北路)의 번화가로 들어갔다.

삼경이 가까운 시각이었지만 아직도 불을 훤하게 밝혀두고 있는 점포들이 있다.

현천록은 악기(樂器)를 파는 점포를 찾아 들어갔다.

점포에는 각양각색의 퉁소와 피리, 앵금, 거문고, 비파, 소고(小鼓) 등이 여기 저기 놓여있었다.

현천록은 대나무 퉁소를 하나 집어들고 점원에게 물었다.

[이건 얼마지요?]

점원이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말했다.

[한냥입니다.]

현천록은 점원이 자기의 화려한 옷차림을 보고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는 걸 알고 속으로 웃었다.

장사라면 진작 이골이 난 현천록이었다.

현천록은 대나무 퉁소를 내려놓고 조잡하긴 하지만 벽옥을 깎아 만든 퉁소를 들고 물었다.

[이건 얼맙니까?]

점원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스무냥입니다. 하지만 공자님께 어울리는 물건이라곤 할 수가 없군요.]

점원의 눈이 은근 슬쩍 한쪽 구석에 있는 퉁소를 향했다.

백금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얇게 뽑아 무겁지 않은 퉁소였다.

[삼백오십 냥입니다. 저희 가게에서 최고의 물건일 뿐 아니라 금릉에서는 이만한 물건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게는 겨우 두냥닷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걸로 주시오.]

현천록은 손을 내밀었다.

점원이 무명수건으로 백금퉁소를 닦은 후에 내주었다.

백금퉁소에는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현천록은 퉁소를 입에 대고 불어보았다.

[! !]

하지만 바람소리만 날 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점원이 의자를 내와서 앉게 하며 말했다.

[공자님께선 아직 퉁소를 배우지 않으셨군요. 헤헤... 소리를 내려면...]

점원은 대나무퉁소를 하나 집어들고 입을 대는 위치부터 가르쳐 주었다.

 

---부우!

 

대나무 퉁소에서 맑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현천록은 점원이 했던 것과 똑같이 흉내냈다.

백금이 흐느끼는 듯 맑고 청아한 소리가 퉁소를 잡은 손 끝에 잔떨림을 남기며 울려나왔다.

점원이 뜻밖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천록은 손가락을 움직여 구멍을 막고 열고 하면서 소리를 변화시켜보았다.

여덟 개의 소리와 각각의 반음이 한 번씩 울리고 나서, 현천록의 백금퉁소에서는 너무도 애절하고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현천록은 지그시 눈을 감고 이따금씩 고개를 약간씩 아래위로 움직이며 퉁소를 불고, 소성(簫聲)은 태평북로를 넘어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점원은 숨을 죽이고 현천록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도 악기를 매매하는 상인인 만큼 음()을 아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현천록의 퉁소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했다.

[소인은 애상곡(愛傷曲)을 공자님처럼 연주하시는 분을 만나 뵌 적이 없습니다. 귀가 열리고 가슴에 막혔던 것이 뻥 뚫리는 듯 하군요.]

한데 백금소를 부는 현천록의 몸이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점원이 놀라며 땅에 엎드렸다.

[아이쿠! 신선님! 천상의 선재동자께서 강림하셨군요.]

현천록은 허공에서 몸을 바르게 폈다.

애절한 퉁소소리는 계속되고, 현천록은 신선이 승천하는 것처럼 밤하늘로 올라갔다.

 

x x x

 

붉은 안개가 발목을 축축하게 적시며 낮게 흐른다.

쌔액! 쌔액!

암흑의 동굴 속에는 상처 입은 야수의 것인듯 거친 숨소리가 흘러 나온다.

동굴 앞에 꿇어 앉은 여인의 무릎에는 벌써 피멍이 들었다.

[... 이제... 됐다! ... 계속... ... 말하라.]

사람의 음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탁한 음성이 동굴 속에서 흘러 나왔다.

여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공주님께선 정말 그런 무공이나 문파가 존재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셨습니다. 죽지 않는 몸을 지녔다면 무공의 끝에 달한 것이 아니냐면서...]

[허억! ! ... 결국 묻고 시 싶은 건... 그거 였...구만.]

[그렇사옵니다.]

동굴 속에서 쥐어짜는 듯한 음성이 계속되었다.

[죽지... 않는 인간... ...부도... 만난...적이 있다. 허억! ! 내 몸을 망가뜨린 바로 그 자였지.]

여인이 흠칫하며 머리를 숙였다.

[허어어억!]

동굴 속의 괴인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주 온화한 미풍같은 음성이 동굴 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노부는 그 이후에 쭉 그에 대해 연구해왔는데 얼마 전에야 겨우 실마리를 잡게 되었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여인이 절하며 말했다.

부드러운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노부가 너와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일각, 중간에 내 말을 끊지 말고 들었다가 한마디도 빠뜨림없이 공주에게 전해줘라.]

여인이 가만히 엎드렸다.

괴인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사(不死)는 능력이 아니라 상황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있지만, 어떤 자들은 특이한 상황을 만나게 되어 죽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지.

이건 무공의 높낮음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노부는 일찍이 천하의 모든 무공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고금의 무공에 통달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자의 손에 어이없이 패해서 불구가 되고 말았지.

내 목숨을 연장시켜 가는 것은 능력이지만 이 능력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마침내는 다하고 말 것이다.

노부는 아직도 그자나 또 다른 자들이 어떻게 불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마 그들도 모를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자들은 세상 밖에서 이 세상을 꿈꾸는 자들 같기도 하고, 우리가 어쩌다가 그자들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설마 그럴 수야 없겠지만 몹시도 비슷하다.

어쩌면 그들이 장주(莊周: 장자)의 숨은 비법을 우연히 알아버린 것일 수도 있고, 하늘과 수명과 같이 했다는 고대 현인들의 법을 얻었을 수도 있지.

그러나 그런 자들을 없앨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살았다고도 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니까 죽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방법으로 소멸시켜 버릴 수는 있다.

어째든 그들도 존재하는 것이니 만큼 그 존재의 고리를 끊어주기만 하면, 보통 사람들이 심장을 찔렸을 때 죽고 마는 것처럼 그들도 소멸하고 말겠지.

죽지 않는 자들, 그들이 언제부터 무림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무림의 이단자이자 이방인이기도 한데, 얼마나 많은 자들이 숨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러나 노부가 다시 나서는 날에는 무림에서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말겠다.]

동굴 속에서 책 한권이 천천히 날아나왔다.

[가져가서 공주에게 전해줘라. 그리고 요사스런 방사(方士)나 술사(術士)의 무리들은 조금도 염려할 것 없다고 말해라. 공주가 내가 적은 방법대로 한다면 어떤 자라 할지라도 능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니...]

여인이 책을 두손으로 받쳐들었다.

아주 지친듯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정작 공주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니라 철인련맹(哲人聯盟)이다. 그자들이야 말로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목소리가 점점 잦아졌다.

여인이 절을 하고 일어섰다.

[끄아아아아악!!]

더 이상 고통스러울 수 없는 인간의 비명이 다시금 동굴 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짙은 혈무(血霧)가 소용돌이치며 비명과 함께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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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분서주

 

 

 

헌원여호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막비강은 다시 비석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각지로 비석을 찾아다니면서도 틈틈이 헌원여호의 십팔초 도법도 수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비강이 하남성 동쪽 끝에 자리한 청양(淸陽)이란 지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청양현 교외의 관도를 지나다가 꼬불꼬불한 오솔길 끝에 큰 무덤이 하나 있음을 발견하였다.

명문가의 무덤인지 주위로 수천평의 묘역(墓域)이 잘 가꾸어진 무덤이다. 무덤을 에워싼 동백나무 숲의 동백나무들 하나 하나가 아람드리인 것으로 보아 이 무덤이 아주 오래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무덤 앞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높이가 무려 삼 장이 넘고 넓이는 여덟 자 가량이나 되었다. 그것은 막비강이 지금껏 본 그 어떤 비석보다도 컸다.

(! 정말 큰 비석이구나!)

막비강이 내심 기뻐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비석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황원현고위무대장군봉만호남궁공지묘(皇元顯考威武大將軍封萬戶南宮公之墓)>

 

무덤의 주인은 낭궁(南宮)성을 지닌 이 지방 출신 고위무장의 것이었다.

막비강은 이 비석 밑이야말로 무예비급을 숨기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라 단정하고 잠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윽고 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늘 갖고 다니던 곡괭이로 비석 밑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숱한 비석을 파헤치며 그의 땅 파는 재주는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비석 밑을 완전히 파헤쳐 비석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비석 밑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또 석 자 가량 더 팠지만 여전히 낡은 종이 한 장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무수한 비석을 보았지만 이 비석이 제일 큰데... 이것말고도 더 큰 비석이 어딘가에 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한 자만 더 파볼 요량으로 다시 또 비석 밑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이 간악한 도적놈!]

꽈릉!

등뒤에서 난데없이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등 뒤에서 한 줄기 경풍이 노도처럼 엄습했다.

돌연한 기습에 막비강은 깜짝 놀라면서도 본능적으로 허리를 비틀어 일 장 가량 피했다.

퍼펑!

순간 우렁찬 굉음이 울리며 비석이 세워졌던 자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누구요?]

위기를 모면한 막비강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그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붉은 얼굴에 흰 수염을 기르고 아주 위맹하게 생긴 노인이 눈에서 분노의 안광을 발산하며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붉은 얼굴의 노인은 자신의 일장이 빗나가자 더욱 더 노하여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애송이 도적놈아, 네 이름은 무엇이냐? 누가 감히 너더러 우리 선조의 묘비를 훔쳐오라고 시키더냐?]

막비강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노인장, 고정하십시오. 저는 결코 묘비를 훔치는 도둑이 아닙니다.]

[노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도 시치미를 떼려 하느냐? 훔칠 생각이 없다면 왜 묘비를 쓰러뜨렸느냐?]

[... 그것은 소문에 거대한 비석 밑에는 육령지(肉靈芝) 같은 것이 자라고 있다기에 이런 짓을 했으니 노인장께선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 육령지가 어째?]

붉은 얼굴의 노인은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그러다, 그는 문득 정광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막비강을 주시하더니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핫하하하! 이제 보니 바로 네놈이었구나! 혈검산장에서 아비의 보물을 훔쳐 도망친 망나니 녀석! 네놈을 잡아 혈검산장으로 끌고 가겠다.]

막비강은 노인이 한 눈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자 흠칫 놀랐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노인에게 손을 모아 보였다.

[노인장께선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비석을 쓰러뜨린 건 사실이니 원래대로 복구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전 혈검산장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왜 혈검산장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시는지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 대담하게 이름을 바꾸어 노부를 속이려 들어?]

막비강의 변명에도 노인은 차갑게 냉소를 지었다.

[네 아비가 무림의 여러 문파에 너의 용모파기(容貌疤記)를 두루 보내 체포를 부탁했다! 용모파기에 적힌 대로라면 네놈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그 단호(丹壺;붉은 호리병)가 네놈이 바로 막비강이란 패륜아인 증거다.]

막비강은 막고천이 자신의 용모파기를 무림에 뿌렸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하지만 그는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말했다.

[노인장께서 믿지 않으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군요. 제 이름은 곡능천이며 이 호로는 가친께서 술을 사서 담아 오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노인장께선 단호라 말씀하시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군요.]

[주둥아리 닥쳐라! 네놈은 혈검산장의 패륜아 막비강이 분명하다.]

[노인장은 이상한 말씀만 하시는군요. 곡능천이 막비강으로 변하고 호로가 단호로 변하다니 노인장께선 혹시 술을 많이 잡수신 것이 아닙니까?]

막비강의 비아냥에 노인은 화가 치밀어 그렇지 않아도 붉은 얼굴이 자색으로 변했다.

[네놈이 막비강이든 곡능천이든 상관없이 오늘 네놈을 때려죽이지 못하면 노부 남궁수방(南宮秀方)은 이곳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않겠다.]

(남궁수방!)

막비강은 노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늙은이가 바로 오대세가(五大世家)중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셋째 가주인 적면화룡(赤面火龍) 남궁수방이었다니...!)

본래 무림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세가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오대세가다.

사천당문(四川唐門), 하북팽가(河北彭家), 진주언가(秦州諺家), 남천뢰가(南天雷家), 그리고 하남의 토호(土豪)인 남궁세가가 바로 오대세가다.

 

적면화룡 남궁수방!

 

이 인물이 바로 하남(河南) 남궁세가의 셋째 가주다.

그리고 막비강은 몰랐으나 그가 파헤친 비석은 바로 남궁일족 선조의 묘비였던 것이다. 남궁세가가 하남 일대의 큰 토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무덤의 주인이 일찌기 비옥한 하남 땅에 많은 땅을 사놓았던 덕분이다.

(! 재수 없게 걸렸군!)

막비강은 지금의 자기 실력으로는 절대 상대방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삼십육계가 제일이지!)

화라락!

다음 순간 그는 재빨리 허리를 비틀어 묘역 밖을 향해 전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채 묘역을 벗어나지도 못했을 때였다.

[흐하하! 어디를 가느냐, 어린 도적놈아!]

맞은편에서 한 줄기 사나운 웃음소리가 들리며 한 명 얼굴의 푸른 노인이 쏘아 왔다.

(저자는...!)

막비강은 다급한 가운데서도 그 푸른 얼굴의 인물이 남궁세가의 둘째 가주인 청면수라(靑面修羅) 남궁중방(南宮仲方)임을 알아보고 대경실색했다. 하여 급히 방향을 돌려 묘역을 에워싸고 있는 울창한 동백나무 숲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동백나무 숲 속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핫하하! 이놈아, 너는 스스로 육임대진(六任大陣) 안으로 들어갔으니 이제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없다.]

남궁수방의 우렁찬 웃음소리와 함께 눈앞이 캄캄해지고 경물이 사라지며 운무(雲霧)가 확 피어올랐다.

(아차! 진 속에 빠졌구나!)

막비강은 자신이 기문진에 빠졌음을 알고 실색했다. 이 동백나무 숲에는 도굴꾼들을 사로잡기 위해 진법이 설치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때 다시 남궁수방의 흉험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흐흐! 네 아비 막고천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당장 때려죽였다. 노부는 네놈을 진식 속에서 배를 곯아 반쯤 죽도록 만든 다음 꽁꽁 묶어 네 아비에게 보내겠다.]

막비강은 동백나무 숲 속에서 방향을 분별할 수 없게 되자 화가 치밀어 욕설을 퍼부었다.

[이 늙어빠진 노적아!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남궁수방이 냉랭히 대꾸했다.

[어린 녀석이 어른도 몰라보다니, 노부는 우선 네놈을 채찍으로 죽지 않을 만큼 때려 두 번 다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지 못하게 만들겠다.]

막비강이 재차 욕설을 퍼부으려 할 때였다.

[아이야, 그와 말다툼하지 마라! 노부가 이곳에 있는 이상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 없다.]

돌연 귓전에 생소한 음성이 전해 왔다. 그 음성은 너무나 가늘어 모깃소리 같았지만 똑똑히 들렸다.

막비강이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근에 고인이 숨어 있음을 알고 내심 크게 기뻐하며 고의로 몹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남궁중방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셋째, 나를 보자 자진해서 진 속으로 뛰어든 그 어리석은 놈은 도대체 누구냐?]

[형님은 놈이 막고천의 망나니 둘째 아들놈임을 모릅니까?]

[! 그놈이 바로 막비강이란 말이냐?]

[그 되먹지 않은 놈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그거 참 이상하구나. 내가 듣기로 막고천의 둘째 아들은 본래 병약하여 병아리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다고 하던데 어떻게 무게가 삼천 근이 넘는 우리 조상님의 비석을 넘어뜨릴 수 있었느냐?]

[듣고 보니 이상하군요. 하지만 소제는 그 놈이 막비강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김새나 지니고 있는 붉은 호리병이 막고천이 보내온 용모파기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선 사나흘 배를 곯려 놓은 뒤에 사로잡아 확인합시다.]

막비강이 상대방 두 사람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진다고 느꼈을 때였다.

[아이야, 내가 말하는 대로 걸음을 옮겨라. 앞으로 세 걸음... 우측으로 돌아 여덟 걸음... 좌측으로 돌아 한걸음... 앞으로 반걸음... 다시 좌측으로 돌아 열 걸음....]

귓전에 아까 그 모깃소리 같은 음성이 울려 왔다.

막비강은 시키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문득 눈앞이 탁 트이며 이미 동백나무 숲 밖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면전에는 육순 남짓한 의원 차림의 노인이 오른손에 약초를 캐는 호미를 들고 막비강을 향해 빙긋이 웃고 서 있었다.

[! 빨리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막비강의 반응도 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막비강은 미처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급히 그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의원 차림을 한 이 노인의 걸음걸이는 바람 같아 막비강은 달려야지만 간신히 따라갈 수 있었다.

약 반시간 가량 따라가자 노인은 녹음이 짙은 밀림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밀림 안에 들어서더니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며 히죽 웃었다.

[어린것이 제법 날래구나.]

막비강은 이 노인이 구출해 주지 않았다면 혈검산장으로 잡혀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임을 잘 아는지라 얼른 큰절을 했다.

[선배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았으면 후배 곡능천은....]

노인이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을 가로챘다.

[아이야, 네 이름은 정말 곡능천이냐?]

막비강은 은인에게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급히 또 포권의 예를 올렸다.

[후배의 본명은 막비강입니다. 그러나 집안이 변고를 당해 곡능천이라 이름을 고쳐 강호를 유랑하고 있습니다.]

[그럼 너는 혈검산장 금사혈검 막고천의 자식이 틀림없구나.]

막비강은 어쩔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노인이 곤혹의 빛을 띠며 물었다.

[너희 집에 무슨 변고가 발생했느냐? 그리고 네 부친 막고천은 무엇 때문에 사면팔방으로 사람을 풀어 너의 행방을 수색케 하고 있느냐?]

[이 일은 관계가 너무 중대하므로 당돌한 요청입니다만 노선배님의 존함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노부의 성은 악()가고...!]

순간 막비강은 혈검산장의 무사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한 분 기인을 떠올리고 얼른 말을 받았다.

[혹시 남산의성(南山醫聖) 악불령(岳不靈) 노선배님이 아니십니까?]

막비강의 말에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어찌 감히 의성이라 칭할 수 있겠느냐. 다만 몇 가지 약초에 대해 알고 있을 뿐이다.]

 

남산의성 악불령!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최고의 신의(神醫). 그의 재주는 죽은 자를 살리고 백골에 살을 붙일 지경이라 소문이 나 있었다.

또한 그는 의술뿐만 아니라 기문둔갑의 재주와 무공 방면에서도 일가를 이루어 강호칠절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다.

막비강은 급히 포권을 했다.

[후배가 미처 몰라 뵙고 실례했습니다. 사실 집안의 변고는 입을 열기 부끄럽습니다. 막고천은 후배의 생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집을 나온 것입니다.]

남산의성 악불령이 놀라 눈을 치뜨며 물었다.

[그게 사실이냐? 너는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었느냐?]

남산의성 악불령은 막비강이 눈물을 글썽이며 처연한 표정을 짓자 얼른 또 말을 이었다.

[말하기 싫으면 그만둬라! 노부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 묻겠는데 네가 남궁세가 조상의 묘비를 파헤친 의도는 무엇이냐?]

막비강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육령지를 찾아 공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악불령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이야, 너는 잘못 알고 있다. 육령지는 심산유곡에 들어가 찾아야지 어찌 남의 조상의 묘혈(墓穴)을 파헤쳐 얻으려 하느냐?]

악불령의 말에 막비강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악불령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전하는 소문에 의하면 당년의 무성(武聖) 청구상인께서는 자신의 청구단서를 지기(地氣)가 서린 한곳 용혈(龍穴)에 묻어 두었다는구나.]

(이분은 내가 비석을 파헤치는 이유를 이미 알고 계시는구나!]

막비강이 부끄러워할 때 악불령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현재 너의 무예로는 남궁세가의 세 가주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노부가 너를 도운다면 그들도 너를 어떻게 못할 테니 이 기회에 그것을 꺼내 오너라. 그러면 우리 두 사람에게 피차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막비강은 청구단서가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듣자 크게 기뻐했다.

[후배는 노선배님의 분부에만 따르겠습니다.]

[좋다. 그럼 노부는 우선 네게 몇 가지 진법과 내공의 입문공부를 가르쳐 주겠다. 그런 다음 보름 후 달 없는 밤에 다시 그곳에 가서 무덤을 파헤치자.]

막비강은 악불령이 내공심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자 황급히 큰절을 했다.

비록 막비강이 강호의 일류고수들인 염라철장과 무협제원등의 무공을 연마하긴 했지만 제대로 내공심법을 익히지 못해 그 위력을 모두 발휘할 수 없었다. 초식과 달리 내공심법은 이끌어주는 스승이 없으면 큰 성취를 보기 어려운 것이다.

막비강이 절을 하려 하자 악불령은 담담히 웃으며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노부는 너를 제자로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니 큰절까지 할 필요 없다.]

이어 그는 품속에서 두 권의 두껍고 얇은 책자와 환약이 든 봉투를 꺼내 막비강에게 주었다.

[노부가 보니 너의 자질이 뛰어난지라 내공심법 뿐만 아니라 특별히 노부의 진보약학(陣譜藥學)까지도 전수해 주겠다. 이 책자엔 노부가 연구하여 얻은 학문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보름 동안 빌려줄 테니 열심히 보도록 해라.]

두 권의 책을 건네준 악불령은 이어 여러 알의 환약이 든 봉투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이 약환은 역용환(易容丸)인데 각종 색깔이 모두 들어 있다. 한 알을 사용하면 약효가 보름간 지속된다. 사용할 땐 물 속에 풀어 피부에 발라라. 그리고 원래 면목을 회복하려면 양잿물에 씻으면 된다.]

막비강은 두 손으로 환약도 받아 품속에 넣고 물었다.

[노선배님께선 지금 어딜 가실 생각이십니까? 보름 후 후배는 어디서 노선배님을 기다릴까요?]

[여기서 기다려라. 그리고 그 책자들은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간직해야....]

악불령의 말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 교활한 가짜놈 같으니...!]

난데없이 나직한 코웃음 소리가 전해 왔다.

[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코웃음 소리를 들은 악불령은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이어 그는 벼락같이 몸을 뽑아 올려 십여 장 밖의 고목 위로 덮쳐 갔다.

와지직!

일순 무성한 나뭇가지가 강맹한 장력에 부러지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으며 악불령은 나무줄기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과연 강호칠절 중 한 분답구나!)

막비강은 의성 악불령의 고절한 무공에 내심 탄복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악불령은 상대방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한 듯 나무줄기 위에서 한바퀴 맴돌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막비강이 놀라고 있을 때 또 다른 방향에서 냉소 소리가 전해 왔다.

[!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노적 같으니...!]

악불령은 만면에 경악의 빛을 가득 머금은 채 날카롭게 외쳤다.

[어느 방면의 고인인지 모습을 나타내시오!]

그의 말이 막 끝났을 때,

[오냐! 원한다면 나타나 주마!]

냉랭한 일갈과 함께 하나의 인영이 예리한 파공성을 대동한 채 쏘아 왔다.

[! 당신은...!]

화라라락!

악불령은 안색이 일변하더니 황급히 숲 속으로 도주해 들어갔다. 그는 얼마나 급했던지 약초 캐는 호미까지 팽개쳐 두고 도망쳤다.

막비강은 잠시 머뭇거리다 허리를 굽혀 그 호미를 잡으려 했다.

바로 그때 늙으스레한 음성이 들려 왔다.

[아이야, 잠깐 기다려라!]

화락!

말소리와 함께 하나의 인영이 막비강의 면전에 내려섰다. 그 사람은 고희의 나이에 인자한 용모를 지닌 갈포(葛布) 노인이었다.

노인은 막비강을 보고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야, 너는 속았다. 하지만 노부는 너를 원망하지 않겠다. 가짜 악불령은 어디로 도망쳤느냐?]

막비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노선배님께선 왜 그를 가짜라 하십니까?]

[그것은 노부가 바로 악불령이기 때문이다.]

[예에? 선배님이 남산의성이시라구요?]

막비강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자의 이름은 강용(江庸)이고 별명은 소리장도(笑裏藏刀). 한 달 전 노부가 출타 중인 틈을 이용하여 노부의 채약 도구인 뇌강서(雷鋼鋤)와 약물감별필록(藥物鑑別筆綠)을 사취해 갔다. 노부는 사방으로 그를 찾아 헤맸는데 여기서 또 놓치고 말았구나.]

나타난 노인의 표정이 엄숙하게 변했다.

막비강은 강용이란 자가 도주할 때의 낭패한 모습으로 미루어 면전의 노인이 진짜 악불령이라 단정하고 강용이 주었던 물건들을 모두 꺼내 악불령에게 돌려주었다.

[악 선배님께서 잃어버리신 물건은 이것입니까?]

악불령은 두 권의 두껍고 얇은 책자를 받아 뒤적여 보더니 가벼운 탄식을 했다.

[너는 매우 정직하구나. 이 두꺼운 약전(藥典)은 노부의 물건이다. 그러나 이 기공입문법(氣功入門法)은 강용의 물건이다.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노부는 여기서 보름만 머물며 네게 기공입문공부를 전수해 주겠다. 네 의사는 어떠냐?]

[불감청이언정 고소언일 따름입니다!]

막비강은 얼른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강용을 만나게 된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악불령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노부의 약초 캐는 호미를 사취해 간 것은 이제 보니 청구단서가 숨겨져 있다고 소문난 위왕묘(魏王墓)를 도굴하기 위해서였구나.]

막비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위왕묘를 파는 데 왜 선배님의 약초 캐는 호미가 필요합니까? 다른 것으로는 파지 못합니까?]

[위왕묘는 사방이 한철(寒鐵)로 뒤덮여져 있기 때문에 보통의 도구로는 이가 먹히지 않는다! 오직 노부의 뇌강서만이 한철의 극성이라 도굴이 가능하지. 물론 간장(干將) 막야(莫耶)같은 보검으로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것으로는 많은 시간과 진력을 소모해야 한다. 위왕묘를 도굴하려면 노부의 뇌강서가 제일 적격이지. 하지만 위왕묘에 청구단서가 숨겨져 있다는 말은 믿지 못할 소문이다.]

[청구단서가 위왕묘 안에 있지 않으면 어디에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까?]

[어디에 숨겨져 있는진 노부도 모른다.]

악불령은 고개를 설레 저었다.

[너도 생각해 봐라. 청구상인이 죽은 지는 채 백년도 되지 않는다. 반면 위왕은 삼국시대의 효웅 조조(曹操)를 칭하는 게 아니냐? 두 사람의 시대가 천년 넘게 차이가 나는데 위왕묘 안에 청구단서가 있을 리 있겠느냐?]

[선배님 말씀이 옳습니다!]

막비강도 고개를 끄떡였다.

[강용이 어디서 주워들은 소문인진 모르겠지만 기관이 거미줄처럼 설치되어 있는 위왕묘에 들어갔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막비강은 이 말을 듣고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그는 청구단서가 비석 밑에 있다고 확신했다. 다만 이 비급은 그가 절예를 연성하고 피맺힌 원수를 갚는 데 중대한 관계가 있는지라 악불령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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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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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여전히 밤. 단지회 총단. #72>에 나온. 음침한 인상의 건달들이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환락가에 자리하고 있긴 해도 영업장이 아니라 주변이 북적거리진 않는다. 지키는 무사들은 대부분 손가락이 한 두 개씩 없다. 단지회의 건달들이다.

#72>와 달리 문은 닫혀있지 않는데 정문 처마에는 <斷指會>라는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장원 내의 어느 건물. 역시 건달 몇이 경비를 서고 있고 불이 켜져 있다.

건물 내부. 사무실 분위기. 소수마녀가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서 서류들을 보고 있다. 좌우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두 명의 여자가 서서 서류들을 분류하여 소수마녀에게 주고 있다. 한 년은 무기가 검이고 한 년은 무기가 칼이다. 소수마녀의 심복인 도마녀와 검마녀다. 탁자에는 분류된 서류들이 많이 쌓여있고. 소수마녀의 앞쪽에는 사우가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사우; (살 떨리는구만.) 소수마녀의 눈치를 보고

사우; (가주님 몰래 해먹은 돈이 적지 않은데... 숨긴다고 숨겼지만 들킬 가능성이 있다.) 침 꼴깍

<소수마녀 나유타(那由他), 가주의 조카이기도 한 저년의 눈썰미가 예리하다는 건 암흑마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무표정하게 서류를 검토하는 소수마녀의 모습 배경으로

사우; (들키기 전에 이실직고를 해야하나?) 눈치 보고. 그때

! 이윽고 마지막 서류를 내려놓는 소수마녀.

사우; [... 수고했네 막내.] 억지웃음

사우; [아랫것들이 실수를 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대강은 전에 올린 보고서 내용에 근접할 거라 생각하네.]

소수마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무표정하게 보고

사우; (할 수 있을 때까지 발뺌을 해야 한다.) + [물론 미심쩍은 부분이 있겠지만...] 거기까지 말할 때

<회주님! 보고 올립니다.> 밖에서 들리는 음성

사우; (살았다.) + [무슨 일이냐?] 문쪽을 돌아보며 신경질 부리는 척

<대경도장을 운영하는 정필이 급히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이어지는 음성

사우; [정필이 놈이 무슨 문제를 일으킨 거냐?]

<아비가 진 도박 빚의 담보로 잡아온 계집을 누군가 빼돌렸다고 합니다.>

사우; [겨우 계집 하나 놓친 것 때문에 날 귀찮게 하는 거냐?] 눈 부라릴 때

<... 죄송합니다. 하지만 놓친 계집은 경국지색이라 잘만 팔면 수만 냥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음성

사우; [수만 냥의 가치가 있는 계집!] 벌떡 일어나고. 과장되게 놀라는 척 하며

사우; [그럼 모른 척 할 수가 없지.] [본좌가 직접 추격에 나설 테니 어떤 상황인지 보고할 준비를 해둬라.]

<존명!> 문 밖에서 들리는 음성

사우; [이런 일이 벌어졌네.] 소수마녀를 돌아보며 간사한 표정으로 웃고

사우; [나머지 얘기는 급한 일 처리하고 돌아오는 대로 함세.] 문을 열고 나가며 말하고. 문 밖에는 건달들 십여 명이 서있다.

사우; [몇 만 냥짜리 상품이 달아났다면 묵과할 수 없다! 손이 빈 놈들은 전부 추격에 동참해라.] [다른 조직에도 협조를 요청하고...] 문을 닫고 나오며 외치고

[존명!]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회주님!] 일제히 대답하는 건달들

사우; [가자!] ! 날아가고. 건달 몇 놈이 함께 날아가고

 

문이 닫힌 방안. 무언가 생각하는 소수마녀

도마녀; [어찌할까요?] [최소한 삼만 냥 이상이 빈 것같습니다만...]

검마녀; [빚 담보로 잡혔던 계집이 도망쳤다는 것도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꾸민 조작일 수도 있사옵니다.]

소수마녀; [사우에 대한 처분은 가주님께 맡긴다.] [혐의를 정리해서 가주님께 보고서를 올려라.]

[!] 대답하며 다시 서류를 정리하는 도검마녀. 그러다가

[!] [!] 흠칫! 하며 돌아보는 두 년. 소수마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수마녀; [바람 좀 쐬고 오겠다.] [늦을지 모르니 먼저 자도록 해라.] 문으로 가며 말하고

[다녀오시옵소서!] 인사하는 두 여자를 등지고 건물을 나가는 소수마녀

밖에서 경비서다가 흠칫! 하는 건달들

소수마녀; [도망친 계집에 관해 아는 자를 불러라.] 걸어가며 말하고.

[존명!] 한 놈이 대답하고

걸어가는 소수마녀. 다른 곳으로 달려다는 대답한 놈

소수마녀; (아비가 진 도박 빚의 담보로 잡혀온 계집...) (어쩐지 남의 일 같지가 않게 느껴진다.) 걸어가며 생각하고

소수마녀; (굳이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만... 어떤 사정이 있는지나 알아보자.)

 

#107>

도박장. 여전히 불이 환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건달들은 몇 명 안보이고 하인과 하녀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이진진이 잡혀있던 건물. 방안에는 여전히 건달5와 건달6의 시체가 있고. 그 앞을 건달4와 다른 한놈이 지키고 있다. 주변에는 하인과 하녀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다. 헌데

근처 다른 건물들 사이의 어둠 속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는 청풍. 복면은 벗었고 옷은 간수1의 옷이다. 허리춤에 칼을 한 자루 차고 있다.

청풍; (그러니까 이각(二刻; 30) 전쯤에 누군가 진진이를 구해갔다는 것인데...) 눈 번뜩이고

청풍; (아마 어머니일 것이다.) 끄덕

<가끔 여자답지 않은 힘을 쓴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어머니는 무공을 익히신 게 분명하다.> #11>에서 진삼낭이 이산하를 던지던 장면을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이하는 #11>의 장면

 

진삼낭; [닥쳐요!] 이산하를 확 뿌리치고. 그러자

! 이산하의 몸이 몇 미터를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집 전체가 흔들리고

회상 끝

 

청풍; (어머니가 한발 앞서서 진진이를 구해냈다니 다행이긴 한데...) 생각할 때

건달7; [너희들도 와라!] 건달 한명이 근처를 달려가며 외치고. 건물을 지키던 건달 4와 다른 건달이 흠칫! 돌아보고

건달7; [단지회 전체에 총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손이 비어 있는 놈들은 모두 도망친 년의 추격에 나서야한다.] 달려가며 외치는 그 건달.

[젠장 일이 커지는구만.] [가세.] 타탁! 건달4와 다른 건달도 궁시렁 대며 건달7을 따라 달려가고

청풍; (잘 되었다.) ! 그늘에서 나와 건달4 일행을 따라간다.

청풍; (단지회의 파락호들 사이에 슬쩍 끼어들면 어머니가 진진이를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 알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달4 일행의 뒤를 따라가며 생각하고

<물론 단지회에서 어머니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대경도장에서 달려 나오는 건달들 십여 명을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그자들 중에는 청풍도 끼어있다.

 

#108>

금릉성 밖의 빈민가. 아직 불이 환한 금릉과 달리 빈민가는 어둠에 잠겨있고

청풍의 집. 부서진 입구.

그곳에 서서 보고 있는 운신장

운신장; (여기가 진진이란 아이의 집이 분명한데...) 부서진 집 안을 들여다보며 생각

운신장; (아연아가씨의 아들을 찾으러 돌아온 김에 혹시나 해서 찾아와본 것인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운신장; (진진아.) 스으! 구름처럼 허공으로 떠오르며 이진진을 떠올리고

운신장; (정말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몽운연형호의 힘을 깨우도록 해라.) (그럼 그곳이 어디든 내가 달려갈 테니...) 구름처럼 변해 사라지는 운신장

 

#109>

황금전장. 깊은 밤. 불이 거의 다 꺼졌는데

뇌옥 근처만 밝다. 뇌옥의 문이 열려있고 안쪽에서 환한 불빛이 흘러나온다. 무사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안을 보고 있고

뇌옥 내부. 횃불이 여기저기 걸려있어 환한데

청풍이 갇혀있던 감방의 철문이 열려있고 철문 밖에는 몇 명의 황금수라들이 서있다.

감방 안쪽. 벽세황과 이세창이 서있고. 그 앞에서 귀견수가 간수1의 시체를 확인하는 중이다. 물론 간수1은 복면을 벗은 상태고. 감방 안에는 간수2, 3, 4가 두려움에 떨며 서있다.

귀견수; [상처는 크지 않지만 치명적이었소.] 간수1의 목 상처를 살피면서

귀견수; [뭔가 뾰족한 것으로 찔렀는데 경추 사이를 정확히 파고 들어가서 숨통을 끊어놓았소.] [이 정도로 치명적인 일격은 일류고수라도 쉽게 가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고

이세창; [이청풍, 그 새끼가 도축하던 솜씨로 간수장을 죽였군.] 이를 부득 갈고

벽세황; [할 말 있으면 해봐라.] 간수2, 3, 4에게

간수2; [... 이가놈은 쇠붙이로 벽을 긁어서 간수장의 신경을 건드렸습니다요.] 벽에 생긴 긁힌 흔적을 가리키며 말하고

간수3; [그 도발에 넘어간 간수장이 감방으로 들어오자 기습을 해서 죽인 것 같습니다.] 눈치 보며

간수4; [간수장을 죽인 이가놈이 간수장의 복면과 옷으로 갈아입고 빠져나가는 바람에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벽세황; [저놈들 끌고 가서 치워라.] 문쪽에 서있던 황금수라들에게 신경질적으로

[... 소장주님!] [... 제발 자비를...] 기겁하며 물러서는 간수2, 3, 4. 하지만

! ! 그자들의 목을 움켜쥐는 황금수라들. 눈이 돌아가며 말을 못하는 간수2, 3, 4

간수들의 목을 잡은 채 끌고 나가는 황금수라들. 목이 잡히는 바람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진 채 끌려 나가는 간수들. 긴장하며 보는 이세창

벽세황; [총관!]

이세창; [예 소장주님!] 눈치 보며 급히 대답하고

벽세황; [죽이든 살리든 상관하지 않겠소.] [이가놈을 끝장냈다는 증거를 가져오시오.] 이를 부득 갈고

이세창; [분부 받들겠습니다.] 포권하고. 이어

이세창; [... 가세!] 서둘러 뇌옥에서 나가며 황금수라들에게 외치고

귀견수와 황금수라들을 이끌고 서둘러 뇌옥 입구로 가는 이세창

벽세황; (아직 멀었다 벽세황!) 이를 부득 갈고

벽세황; (좀 더 모질었어야했다.) (이가놈을 바로 죽여 버렸으면 후환이 없었을 것을...) 간수장의 시체를 보고

벽세황; (앙심을 품은 그놈이 소소의 추문을 무림맹에 고자질하려 들 건 의심의 여지가 없고...) (소소를 이용해서 무림맹을 장악하려던 내 원대한 야망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벽세황; (기필코 이가놈을 잡아 죽여야만 한다.) 강렬한 표정

 

#110>

새벽. 인적 없는 강가의 길. 안개가 끼어있는 그 길을 달려가는 마차. 그리 크지 않은 마차를 모는 것은 물론 이산하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고

이산하; (아슬아슬하게 금릉을 빠져나오는 데는 성공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성문이 닫혀서 금릉을 벗어나지 못할 뻔했다.)

이산하; (그후 밤새 동쪽으로 달려 단양(丹陽)이 이제 멀지 않았다.) (단양에서 배를 타면 대운하를 통해 태산(泰山) 쪽으로 갈 수 있다.)

이산하; (태산에는 무림맹의 총단이 있다.) (태산 근처에만 가도 단지회 놈들은 겁을 먹고 추적을 포기할 것이다.)

이산하; (진진이엄마가 태산쪽으로 가자고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같기도 한데...) + [!] 생각하다가 눈 치뜨고

구우! 비둘기 몇 마리가 마차 위를 지나간다. 뒤에서 날아와 마차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모습이고

이산하;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날아다니는 비둘기라면 혹시...) 이마에 손을 대고 비둘기들을 올려다본다.

날아 지나가는 비둘기들의 발목에 천이 묶여있다.

이산하; (역시 전서구다!) 긴장으로 굳어지고

이산하; (우리와 상관이 없는 전서구들일 수도 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겠구나.) 무언가 생각하고

 

#111>

흔들리는 마차 안. 마차가 작아서 내부도 그리 넓진 않고. 의자나 탁자도 없다. 마부석쪽으로 작은 쪽문이 있지만 닫혀있다. 진행 방향으로 바닥에 앉아있는 진삼낭. 등을 벽에 기댄 채 앉아있고. 진삼낭의 무릎에는 이진진이 곤히 잠들어 있다. 이진진의 머리를 쓰다듬는 진삼낭.

진삼낭; (미안하다 청풍아.) 입술 깨물고. 청풍을 떠올리고

진삼낭; (네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만...) (지금은 진진이를 지키는 게 우선이로구나.) 애잔한 미소

진삼낭; (이래서 핏줄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말이 생겼을 텐데...)

진삼낭; (널 내게 맡긴 아연아가씨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한숨. 그때

깨어나는 이진진

이진진; [어머니...] 고개 들고

진삼낭; [더 자거라.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참 있어야한다.] 미소 지으며 이진진의 머리를 쓰다듬지만

이진진; [아니에요. 전 충분히 잤어요.] 일어나고

이진진; [어머니는 밤새 안 주무신 것같은데 눈을 좀 붙이세요.] 자세 바르게 하며 말하고. 하지만

진삼낭; [피곤하긴 하다만 잠을 잘 수 있을 것같지는 않구나.] 한숨

진삼낭; [곧 단양에 도착할 텐데...] [그곳에서 대운하를 통해 북경으로 가는 배에 타면 그때 자도록 하마.]

진삼낭; [다행히 네 오빠가 준 돈이 거의 다 남아있어서 배를 얻어 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게다.] 소매 속에 들어있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만지고

이진진; [북경에는 아는 사람이 있는가요?] 눈치 살피며

진삼낭; [북경에는 없지만 태산 근처 제남(濟南)에는 지인이 몇 있단다.]

이진진; [태산에는 무림이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무림맹의 총단이 있다던데...]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요.] 눈치 보며

진삼낭; [어미가 무림인이 아닐까 생각해왔겠지?]

이진진; [어렸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어머니는 무공을 익히신 것같았어요.] 끄덕이고

진삼낭; [무공...] [익히긴 했지.] [비록 내세울만한 실력을 못되지만...] 아련한 표정으로 독백하고

말없이 기다리는 이진진

진삼낭; [진진이 너도 다 자랐으니 어미의 비밀을 알 때가 되었구나.] 미소 끄덕

진삼낭; [사실 어미는 무림맹 사람이었단다.]

이진진; [어머니가 무림맹 소속이었군요.] 흥분

진삼낭; [그렇긴 하다만 그리 대단할 게 없는 신분이었다.] [무림맹 맹주 철면무제님의 유일한 핏줄이신 섭아연 아가씨의 몸종이었을 뿐이다.]

이진진; [몸종이라 해도 무림맹주님의 외동딸을 모셨으면 절대 보잘 것 없는 신분은 아니었겠어요.]

진삼낭; [무림맹 내의 은밀한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이긴 했다.] 끄덕

진삼낭; [다만 어미는 무공에 별 관심이 없어서 섭아연 아가씨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무공수련에 열심을 내진 않았단다.]

진삼낭; [그게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었지.] [무공만 제대로 익혔어도 그 후에 닥친 여러 번의 고난을 좀 더 쉽게 넘길 수가 있었을 텐데...] 한숨

이진진; (익힌 무공이 대단치 않은 것이라 오빠와 내게는 가르치지 않으셨겠구나.) + [헌데 어쩌다가 무림맹을 떠나시게 된 건가요?]

진삼낭; [어미는 섭아연 아가씨의 부탁을 받고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무림맹을 떠났었단다.]

진삼낭; [하지만 곧 원수들이 알아차리고 추적을 했는데...] [절체절명의 순간 네 아버지가 도와주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마차 앞쪽을 보며

진삼낭; [네 아버지가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된 것은 그때 어미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다친 후유증 때문이었다.]

이진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마부석 쪽을 보고

 

#112>

[!] 마부석의 이산하의 눈이 부릅떠지고

마차가 달려가는 멀리 앞쪽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산하; (이런...) 급히 말 고삐를 당겨 마차의 속도를 줄이고

이산하; (이른 새벽에 이런 외진 길가에 어슬렁거리는 놈들이라면...) 긴장한 채 머리 앞을 보고

<흑사회의 파락호들이다!> 네 명의 건달들이 길을 막고 서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습 배경으로 이산하의 생각 나레이션. 안개가 제법 짙게 끼어 있어서 그자들은 아직 마차를 발견하지 못했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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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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