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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미녀를 부르는 퉁소소리 (3)

 

 

바로 그 순간 청년은 무슨 영문인지 눈살을 찌푸렸고,

현천록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고무공처럼 날려가 담장에 부딪혔다.

!

휘익!

현천록의 머리 위로 누군가가 바람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현천록의 귓속으로 한 줄기 전음이 들렸다.

[네가 이긴 것으로 해주마. 노도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다. 다음에 반드시 약속대로 해주마.]

진양진인의 목소리였다.

그는 신궁 오무한으로 변신한 상태로 물 속에서 숨을 쉬기 어려워지자 그대로 귀식대법을 펼쳤다.

그후 현천록이 이끄는대로 우물까지 와서 다시 귀식대법을 풀었지만 현천록에게 들키지 않았었다.

그는 기회를 틈타서 소천성수로 현천록을 공격하고 도주해버린 것이었다.

현천록의 손에는 진무검도 사라지고 없었다.

청년이 현천록에게 다가왔다.

현천록은 옷을 툭툭 털면서 일어섰다.

흠뻑 젖은 옷에 흙까지 묻어버려 도포가 아주 뻑뻑하다. 조금 있으면 얼어서 완전히 뻐득뻐득해져 버릴 것 같다.

청년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장력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다니... 도장은 금강불괴에 달했군.]

현천록은 쓴 입맛을 다셨다.

습관적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느새 다섯 명의 소녀들이 비수를 들고 그를 애워싸고 있었다.

청년이 말했다.

[신법도 바람을 탄 것처럼 자연스러우니 도장은 정말 듣던 것보다 훨씬 고명한 인물인 것 같소.]

현천록은 나몰라라는 듯이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교활한 진양진인에게 또 당하고 보니 어지간히 속이 상했다.

눈 앞에 있는 사람들 생각보다는 이번엔 무슨 수로 진양진인을 붙잡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하니 앉아 있는 그 모습은 바보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청년이 손가락을 뻗었다.

번쩍!

소리없이 빛줄기가 현천록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현천록에게는 약간 따끔거리는 정도의 느낌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청년이 소녀들에게 말했다.

[이 도사는 이상하오. 무공도 그렇게 마음도 보통과 다른 듯하니 그냥 둘 수는 없겠소.]

소녀들 중 하나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 오늘따라 간섭이 심하군요. 그걸로 당신 잘못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예요. 아가씬 안에서 당신이 하는 말을 다 들었으니까요.]

청년이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녀와 나의 문제니 당신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오. 일단은 저 도사를 뇌옥에 가두는게 나을거요.]

돌아서서 걷는 청년의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한 소녀가 현천록의 혈도를 몇 군데 거듭 찌르더니 오라로 온몸을 꽁꽁 묶었다.

두 손과 두 발도 하나로 묶였지만 현천록은 내버려두자는 심정으로 몸을 맡겨버렸다.

다른 소녀가 장대를 가져와 두팔사이로 끼워들었다.

현천록은 원시인들한테 잡혀가는 돼지새끼마냥 들리웠다.

앞에서 장대를 든 소녀의 엉덩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눈을 어지럽게 한다.

세상이 거꾸로 보이고 피가 머리에 모이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상쾌한 새벽 공기, 그리고 그의 몸에 묻었던 물기가 증발되면서 모락모락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같은 안개...

현천록은 세상을 거꾸로 보면서 알듯 말듯한 펼쳐지는 요지경을 보았다.

소녀들은 몇 개의 건물을 이리저리 돌아 갔다.

건물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건물들 너머로 우뚝한 탑이 하나 보였다.

이리저리 일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소녀들의 모습, 이따금씩은 나이든 중년 여인들이 뭔가를 들고 가는 모습,

그곳은 조용한 가운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현천록은 탑 아래에 있는 뇌옥에 그냥 던져졌다.

소녀들은 그의 몸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품을 뒤져보지도 않았다.

뒤쪽은 석벽이고 앞쪽은 듬성듬성한 쇠창살로 된 뇌옥이다.

현천록이 던져진 칸 외에도 한 사람씩 들어있는 칸이 세 개, 아무도 없는 빈 곳이 두 개가 더 있었다.

현천록의 맞은 편에 있던 사람이 나가는 소녀들에게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현천록은 신경쓰지 않아서 무슨 욕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

소녀들이 재빨리 나가고 문을 쾅 닫는 소리만 들렸다.

욕을 하던 사람은 사십 쯤 되어보이는 서생인데 얼굴이 아주 훤한 미남이었다.

뇌옥에 갖힌지 꽤 된 듯 차림새는 꾀죄죄하지만 이상하게 얼굴만은 반들거렸다.

그리고 보니 그 양 옆에 있는 칸의 사람들도 얼굴만은 반들반들했다.

현천록의 앞에 있는 사람이 말을 건네왔다.

[도장! 도장도 재수없는 년들한테 걸렸구려.]

현천록은 빙긋 웃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전까진 진양진인 만이 그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침울한 얼굴의 청년이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도장도 재주가 아주 용한 사람이오. 하하하하! 우리야 세치혓바닥과 반지르르한 얼굴을 앞세워 계집을 호리지만 도장은 무슨 수법을 쓰는거요?]

현천록이 고개를 들고 빤히 보았다.

앞에 있는 중년인이 말했다.

[거 사람 싱겁게 말게 서로 통성명이나 합시다. 여기 잡혀오는 사람은 다 똑같은 죄를 짓고오는데 부끄러워 할 게 뭐있소?]

중년인인 자기의 왼쪽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저 친구는 화양일음도(華陽一淫盜) 모청(毛鯖)이오. 하하하! 수고스럽게 남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소. 전문적으로 처녀만 골라가며 길을 내줬으니 뒷사람이 얼마나 고마워했겠소.]

현천록이 멀뚱하게 중년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중년인이 또 다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저 친구는 잡식성이오. 치마두른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하는데... 쩝 문제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종종... ... 아무튼 나도 따라가지 못할 사람이오. 음약에 관한한 저 친구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거요.]

잡식성이란 사람이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지금 죽겠네. 방금 전의 고 감질나는 것들이 들어왔다 가는 통에 몸이 달아서 미칠지경이네.]

중년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당연한 소린 집어치우게.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기회가 있을 테니까. 아참 이제 내 소개를 해야겠군. 난 채음신(採陰神) 목요봉(穆耀峯)이네. 주로 채음보양을 하지.]

현천록이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좋지 않은 사람들이군.]

세 사람이 껄껄 웃었다.

[도사도 여기까지 잡혀온 걸보면 만만치 않을 텐데 뭘 그러시오? 도사는 무슨 수법을 쓰는지나 말해보시오.]

[혹시 참배하러 온 여인들 방을 몰래 덮치는 치졸한 수법을 쓰는 건 아니오?]

[여기 여주인은 천하절색이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혹시 도사한테는 몸을 허락할 지도 모르겠소.]

음탕한 소리를 주고 받으며 세 음적은 여자의 어디가 어떻게 어떤 여자는 거기가 어떻는데 어떻게 절묘하고, 자기가 뭘 어떻게 했는데 여자가 아주 음탕하여 무슨 수법을 요구했느니 하는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반쯤은 현천록을 떠보는 것 같기도 하고 반쯤은 현천록을 놀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적으로는 음담패설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현천록은 화를 내며 백금퉁소를 꺼내들었다.

음담패설이 뚝 그쳤다.

현천록은 양의신공의 공력을 실어서 백금퉁소를 검처럼 휘둘렀다.

쉬이이이익!

철창살이 한꺼번에 네 대가 소리없이 베어졌다.

세 음적이 겁에 질려 주춤 물러섰다.

현천록은 창살을 휘어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중년인을 가두고 있는 창살을 베어버리고 들어가며 말했다.

[당신같은 사람은 내가 죽이나 죽이지 않으나 마찬가지지만 그냥가지는 못하겠소.]

중년인이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 도사님! 소인들은 그저 심심하다보니...]

현천록은 퉁소를 뻗어서 중년인의 가슴을 겨냥했다.

투툭! !

뼈가 부르지는 소리가 들렸다.

중년인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서 뒤로 넘어갔다.

죽지는 않았지만 폐인이 되어 혼자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현천록은 다른 두 사람도 똑같은 꼴로 만들어 놓고나자 속이 후련했다.

아주 즐거운 일을 한 것처럼 통쾌했다.

[하하하하!]

한바탕 실컷 웃고 나서 철문을 밀어보니 철문 만은 열 도리가 없었다.

공력을 모두 실어서 퉁소로 내리쳐도 철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하마터면 손이 울려서 퉁소를 망칠 뻔했다.

현천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일났다. 동굴에 갇혔다가 나온지 금방인데 이번엔 뇌옥에 갇혔구나. 내가 무슨 마음으로 순순히 여기까지 잡혀왔지?)

스스로 자기 머리를 꽉 쥐어 박았다.

그리고 보니 번쩍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그 침울한 얼굴의 청년 때문이었다.

진양진인은 놓쳐버렸고 청년이 묘한 힘으로 그를 묶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현천록은 자기가 어떤 것에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고 사는 것도, 갇히거나 풀려나는 것도, 죽이는 것이나 살리는 것도, 현천록에게는 조금도 심각하거나 큰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냥 오른쪽길로 갈까 왼쪽 길로 갈까 선택하는 단순한 선택문제 같이 느껴졌다.

오로지 호기심만이 그에게 점점 더 큰 비중으로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되고 있었다.

현천록이 생사탄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에 생긴 변화였다.

잠시 후, 현천록은 철문 아래 계단에 앉아서 퉁소를 불기 시작했다.

진양진인에게 배운 광릉산이었다.

칙칙한 뇌옥안에 부드럽고 아름다운 퉁소소리로 가득찼다.

세 사람의 음적도 그 혼이 반쯤은 빠져서 음률이 만들어내는 환상 속에 빠져들어 버렸다.

광릉산은 대륙을 가로지는 장강과도 같아서 어떤 곳에서는 급하고 어떤곳에서는 유유히 흐르며 어떤 곳은 한없이 높아지고 어떤 곳은 몸을 허물어뜨릴 만큼 낮아졌다.

광릉산의 열두 소절 중에서 일곱 소절이 끝나고 여덟 소절이 막 시작될 때였다.

갑자기 둔중한 철문이 덜컹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리고 하얀 옷을 입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소녀가 우아한 자태로 들어왔다.

허리가 아주 가늘고 목도 가늘어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진 듯하다.

그윽한 향기가 일순간에 뇌옥을 감돌고 소녀의 백옥처럼 희고 고운 손이 시선을 끌어당겼다.

현천록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소녀의 전신에 어려있는 이상한 기운이, 이상한 아름다움이 그를 질식하게 했다.

갑자기 온 몸이 둥둥 뜨는 것 같았다.

퉁소소리가 뚝 끊어졌다.

소녀가 현천록 앞에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고인이 왕림하신 줄 모르고 누추한 곳에 모셨습니다.]

사람의 입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음성이 나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천록은 퉁소를 내리며 속으로 말했다.

(내가 미색에 빠지고 말았구나!)

소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고 해도 두 말않고 바칠 것만 같았다.

현천록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속이 떨려왔다.

강렬한 두근거림. 소녀의 체향, 귓속을 맴도는 목소리, 사그락거리는 옷자락소리. 가늘게 들리는 숨소리. 잘게 흔들리는 소녀의 속눈썹...

그 모든 것이 현천록을 포위하고 사로잡아버렸다.

얼굴은 보지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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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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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쓰러지는 八絶

 

 

 

핏빛 선풍(旋風).

드디어 팔절(八絶)에게도 떨어지다.

무림은 술렁였다.

도대체 선풍마존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선풍마존은 얼마만큼이나 강한 것일까?

 

고죽검신(枯竹劍神).

팔절의 일인, 아울러 검법에 있어 당대 최고라는 인물.

헌데, 그런 고죽검신이 선풍마존의 검에 쓰러진 것이다.

무림인들은 떠들었다.

 

팔절(八絶)은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된다. 사폐(四覇)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대에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된다. 사퍠(四覇)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대에 선풍마존을 당할 고수는 없다. 오직 전대의 삼마(三魔), 삼괴(三怪)정도만이 선풍마존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선풍마존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런중에, 팔절(八絶)중 나머지 철인과 사패(四覇)가 급히 모임을 갖았다.

선풍마존을 상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각자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모임은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일말의 불안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정주(鄭州).

이곳은 무림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왜냐하면 이곳에 팔절(八絶) 중의 일 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천신도(驚天神刀) 제갈현.

그자이다.

그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무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몇 년 전부터 위명을 날려 팔절 중에 끼게 되었다.

그의 거처는 정주교외의 신도장(新刀莊)이었다.

경천신도, 이자는 바로 천년기전중의 폭혈참신도보(爆血斬新刀譜)를 얻었던 것이다.

이제 경천신도는 도법(刀法)에 있어서는 무림제일로 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가 경천신도의 목을 조여들어 오고 있었다.

물론, 경천신도 본인은 그것을 알리 없다.

 

이곳은 정주로 통하는 관도.

휘잉!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초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정오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그 때문에 길가의 다루(茶樓)는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대부분이 여행중인 듯한 사람들 뿐이다.

다루의 구석.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노파가 구석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파의 얼굴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고 머리결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노파에게는 한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먼저, 간간이 치켜뜨는 노파의 두눈에서 섬전같은 신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안목있는 자라면 노파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절정의 공력을 지닌...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노파의 살결이었다.

노파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노파의 왼쪽 소매가 약간 접혀 있다.

헌데, 살짝 드러난 노파의 팔목 위의 살결이 그렇게 희고 탄력이 있을 수 없었다.

도무지 주름 투성이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피부였다.

한편, 노파는 한쪽 좌석에 앉은 인물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인물은 노파와 두 개의 탁자를 격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다만, 죽립(竹笠)으로 깊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일견하기에도 그 청년의 일신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그 기운은 가슴을 섬칫하게 만드는 냉기였다.

동시에 골수까지 스미게 하는 싸늘한 살기가 풍겨지고 있었다.

그 청년은 무엇인가 길쪽한 것을 천으로 싸서 안고 있었다.

청년은 자기 앞의 찻잔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또 한편, 또 다른 구석에서는 한 명의 청삼노인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노인은 조용히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간간이 청년과 노파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언뜻 청삼노인의 눈에 살기가 흐르고 지나갔다.

두 명의 노인이 자기를 관찰하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두두두

돌연,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일었다.

노파는 고개를 들었다.

관도 저편에서 뿌연 먼지가 일면서 몇 필의 기마가 달려왔다.

노파의 두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기마의 선두에는 두 필의 준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측에는 한 명의 장한이 말을 몰고 있었다.

허리에는 묵직한 보도를 걸고 있는 그 장한은 매우 위맹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부릅뜬 한 쌍의 호안에서 전광같은 안광이 발해지고 있었다.

공력이 절정에 달한 때문이다.

중년장한의 옆에는 왜소한 노인이 말을 달리고 있었다.

일신에 회의를 걸친 노인의 두눈은 쉴새없이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그다지 심기가 바른 자는 아닌 듯한 노인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십여 필의 준마를 몰고 장한들이 따르고 있었다.

"경천신도(驚天神刀) 제갈대협이시다."

다루에 있던 몇몇 무림인들이 외쳤다.

그러자 죽립의 청년이 죽립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끔찍한 살기를 실은 안광이 번뜩임을 노파와 청삼노인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웬지 두 노인은 동시에 흠칫 몸을 떨었다.

두두두

중년장한, 즉 경천신도 제갈현 등이 탄 준마들이 다루로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돌연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 노랫소리는 어디서 들리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천세의 고혼이 구천에 떠돌다.

장검에 이는 일진 선풍으로 장혼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여기 저기서 경악성이 터졌다.

"... 선풍비가(旋風悲歌)."

무림인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히히힝

그와 함께, 경천신도 일행이 급히 말의 고삐를 당겼다.

그곳이 마침 다루의 앞이었다.

경천신도와 회의노인의 안색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뒤이어, 거창한 일갈이 터졌다.

"웨액으윽!"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폭갈에 실린 공력에 기혈이 뒤집힌 것이다.

동시에, 죽립청년이 벌떡 일어섰다.

쐐애액

청년의 손이 번뜩이자 쓰고 있던 죽립이 대기를 갈랐다.

맹렬한 기세로 경천신도를 향하여 밀려간 것이다.

단순한 죽립이지만 날아가는 기세가 엄청났다.

만일 그대로 맞는다면 몸이 두 동강나고 말 것이다.

"차핫!"

그러나, 경천신도도 어엿한 팔절 중 일인이었다.

뜻하지 않은 기습이었으나 다급히 장을 쳐들었다.

위잉!

한 줄기 산악같은 경풍이 죽립을 후려쳐간 것이다.

"흐음!"

파파팟!

죽립이 산산이 부서져 튕겨 나갔다.

그러나, 죽립에 실린 경기는 경천신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경천신도는 죽립을 후려친 우수가 부서져 나가는 듯한 통증에 신음을 터뜨렸다.

그의 손은 파열되어 선혈이 낭자했다.

츠츠츠

정신 차릴 사이도 없었다.

죽립이 부서지자 마자 금찍한 도기(刀氣)가 경천신도의 허리를 잘라왔던 것이다.

"!"

경천신도는 다급히 비명을 질렀다.

그는 촉망중에 보도를 도집채 들어, 날아오는 도세(刀勢)를 막아갔다.

카앙!

"크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피가 확 퍼졌다.

경천신도는 청년의 단 일도(一刀)에 허리가 끊어져 즉사했다.

경천신도의 보도(寶刀)는 도집채 두 동강이 나있었다.

휘익!

단번에 경천신도를 도륙낸 청년은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전광석화!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도록 일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멈춰랏! 악도!"

이내 회의노인이 폭갈을 지르며 몸을 띄웠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청년은 백여 장 밖을 달리고 있었다.

"..."

중인들의 입이 딱 벌렸다.

그사이 회의노인과 선풍마존은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중인들은 경천신도의 시신을 둘러싸고 웅성거렸다.

그 틈에서 예의 노파가 조용히 빠져나왔다.

"과연 무섭구나. 폭혈참신도법(爆血斬神刀法)을 익힌 경천신도가 손도 못써보고 당하다니... 물론 다분히 승천마라도(昇天魔羅刀)의 예리함이 있기도 했으나 역시 무서운 자다."

노파는 나직이 혼잣말로 중어거렸다.

휘이익

어느정도 중인들로부터 멀어지자 노파는 몸을 날렸다.

삽시에 노파는 십여 리를 달렸다.

쾅콰릉!

"?"

노파는 두눈을 번뜩였다.

멀지않은 곳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린 것이다.

스스스

노파는 폭음이 들리는 곳으로 소리없이 다가갔다.

그곳은 관도옆 숲 속의 공지였다.

쾅파웅!

지금, 그 공터에서 선풍마존과 회의노인이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굉렬한 폭음이 터지며 아름드리 거목들이 허리가 꺾여져 쓰러졌다.

펑콰릉!

"크윽"

요란한 폭음이 터지며 회의노인은 비칠비칠 물러났다.

아무래도 회의노인은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되었다.

노인도 팔절(八絶)중의 일인이지만 공력이나 초식 등 어느 것 하나 선풍마존에 미치지 못했다.

"차핫!"

청년, 선풍마존은 숨돌릴 틈도 주지않고 회의노인을 향해 휩쓸어 갔다.

위이잉!

회의노인은 맹렬히 장을 쪼개내었다.

노인의 공세는 선풍마존의 하복부를 짓쳐갔다.

"!"

선풍마존은 별 수 없이 장을 회수하며 몸을 휘돌려 떠올랐다.

"흐흐흐."

회의노인은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차앙!

그와함께 노인의 손에 한 쌍의 비륜(飛輪)이 들려졌다.

그것은 직경 반자 가량의 크기로 외곽에 날카로운 톱니가 파여 있었다.

(저 늙은이는 이제보니 신류비마(神輪飛魔) 정노괴였군.)

숨어서 관전하던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륜비마(神輪飛魔).

그자도 팔절의 일인이다.

그자의 비륜(飛輪) 공부는 신륜천왕(神輪天王)의 것이다.

"흐흐... 죽어랏!"

신륜비마는 음소를 터뜨렸다.

쌔앵

그와 함께 면철로 만든 비륜이 선풍마존에게로 폭사되어 갔다.

"차핫!"

쩌엉!

선풍마존은 급급히 승천마라도로 비륜을 막아갔다.

기이잉

그러나, 비륜은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그리고, 더욱 빠르게 선풍마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

선풍마존은 흠칫 몸을 떨었다.

위이잉

재차 승천마라도가 비륜을 막아갔다.

쌔애앵

그 순간, 텅빈 선풍마존의 배를 노리고 또 다른 비륜이 날아갔다.

"!"

선풍마존의 두눈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흐흐..."

신륜비마가 득의하여 웃었다.

그러나, 일순간 선풍마존의 몸은 검붉은 광채로 둘러싸였다.

창창!

두 마디 맑은 금속성이 일었다.

한 쌍의 비륜이 검붉은 호신강기에 튕겨진 것이다.

"죽어랏!"

뒤미처, 선풍마존의 승천마라도가 신륜비마의 몸을 갈라갔다.

"!"

파앗

신륜비마는 다급히 피했다.

그러나 피가 튀며 그의 옆구리가 갈라졌다.

휘청 하는 순간 한 쌍의 비륜은 다시 신륜비마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월락대지(月落大地)!"

신륜비마의 입에서 폭갈이 터졌다.

사력을 다해 신륜천왕(神輪天王) 최대의 초식을 펼친 것이다.

위잉!

츠츠츠

거대한 환형(環形)의 경기를 일으키며 한 쌍의 비륜이 떨어져 내렸다.

"()!"

선풍마존의 안면에 짙은 냉기가 깔렸다.

동시에 그의 양 소매에서 한 쌍의 검은빛 비륜이 폭사되었다.

"... 파천마륜(破天魔輪)!"

신류비마가 실색을 하며 외쳤다.

그렇다. 그 검은 비륜은 신륜천왕의 병기이던 파천마륜이었다.

!

파삭!

요란한 금속성이 일었다.

검은 기류에 부딪힌 신륜비마의 비륜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이다.

휘익!

그 순간, 신륜비마는 몸을 휘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 어딜!"

그러나, 선풍마존의 냉갈과 함께 파천마륜이 신륜비마를 쫓아갔다.

"아아악!"

신륜비마는 처절한 비명을 토했다.

전력을 다해 막아 보려고 했으나 파천마륜이 신륜비마의 목과 허리를 절단하며 날아간 것이다.

차악!

선풍마존은 되날아온 파천마륜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신륜비마늬 시신으로 다가갔다.

면 텬간 무림최고의 고수 들 중 일인으로 군림하던 신륜비마.

종국에 와서는 시신도 온전히 보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선풍마존은 신륜비마의 몸에서 한 권의 비급을 꺼냈다.

"!"

그순간, 몸을 펴려는 선뭉마존에게 신랄한 두 줄기 경기가 날아 들었다.

"차핫!"

선풍마존은 일갈하며 몸을 지면으로 바짝 붙여 암격을 스쳐 보냈다.

휘익!

뒤이어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위잉!

그가 채 몸을 바로 잡기도 전에 한 줄기 청영(靑影)이 그의 앞으로 쇄도하여 들어왔다.

지독히도 빠른 경공이었다.

선풍마존은 다급히 장을 내쳤다.

콰릉!

우렁찬 폭음이 일었다.

창졸간에 장을 쳐낸 선풍마존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사이 이미 청영은 공지를 가로 지른 후였다.

!

"흐읍!"

강맹한 경기가 선풍마존의 등을 가격했다.

다음 순간 청영과의 일장을 교환한 직후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쿵쿵!

그는 지면에 내려서서 도 삼사보 앞으로 나간 후에야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위잉!

촤웅!

또다시 골수가지 에이는 살벌한 경기가 선풍마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 줄기는 그의 목을 노렸고 또 다른 한 줄기 경기는 그의 허리를 파고 들었다.

처음맞은 일장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지라 선풍마존은 당황했다.

"환마(幻魔)!"

선풍마존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츠츠츠...

그러자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콰르릉

두 줄기 경기는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가랏!"

동시에, 예상도 못한 방위에서 선풍마존의 폭갈이 들렸다.

위이잉

폭풍같은 경기가 장내를 휩쓸었다.

그를 암습한 두 명은 최고의 경공을 지닌 자들이다.

그러나 너무나 강맹한 위력의 경풍이라, 두 사람은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맛보아야했다.

파앗!

그순간 선풍마존의 모습이 유령같이 공지의 상공에 나타났다.

그의 눈에는 두 명의 인물이 급급히 피하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은 예의 노파이고 다른 한 명은 다루에 나타났던 청삼노인이었다.

"신풍도객(神風盜客)! 무영괴파(無影怪婆)! 잘 걸렸다."

선풍마존이 살기띈 일갈을 터뜨렸다.

두 노인, 바로 팔절중의 두 사람이었다.

신풍도객(神風盜客)은 신풍무영(神風無影)의 진전을 얻은 대도(大盜)이다.

그리고, 무영괴파(無影怪婆)는 공령천존(空靈天尊)의 공령비경(空靈秘經)을 연마했다.

사실 팔절 사패중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이들 두 사람인 것이다.

"가랏!"

선풍마존은 버럭 폭갈을 터뜨렸다.

콰르릉!

거창한 장경이 양인을 휩쓸어갔다.

"차핫!"

"이얏!"

신풍도객과 무영괴파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쳐나갔다.

퍼엉!

콰르릉!

"으음... ..."

"!"

삼인은 다같이 휘청 하며 물러섰다.

"흐흐... 제법들이구나!"

한 걸음 물러선 선풍마존은 살기를 발했다.

삽시에 그의 일신에 패도적인 경기가 뒤덮였다.

(! 받을 수 없다!)

무영괴파의 안색이 홱 변했다.

선풍마존이 막강한 절공을 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

선풍마존은 벼락치듯이 쌍장을 후려패 내었다.

쿠아앙!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宏音), 파앗!

너무나 끔찍한 위력이었다.

무영괴파와 신풍도객은 전력을 다해 몸을 빼었다.

양인 모두 경공의 독보적 존재들이라 일시에 십 장 밖으로 피해갔다.

콰르릉!

"크아악!"

그러나, 무영괴파는 간신히 피했지만 신풍도객은 피하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토했다.

그의 등은 완전히 풍지박산이 되었다.

휘익!

무영괴파는 섬전같이 공터를 빠져나갔다.

"서랏!"

선풍마존이 폭갈을 지르며 쫓아갔다.

그러나, 그가 공터를 벗어 났을 때는 여디에도 무영괴파는 없었다.

"이런... 가장 까다로운 적을 놓쳤군. 장안은신술(帳眼隱身術)로 몸을 감출 여유를 주지 말았어야 할 것을...}

선풍마존은 혀를 찼다."

장안은신술은 공령천존의 공령비술중 하나이다.

일단 장안은신술이 펼쳐지면 누구도 숨은 자를 찾아낼 수 없다.

"별 수 없지."

선풍마존은 돌아서 공터로 돌아갔다.

휘익!

한 줄기 선풍과 함께 선풍마존은 사라졌다.

신륜천왕의 비급을 회수해서 사라진 것이다.

흔들!

잠시 후, 문득 바위가 움찔 하였다.

그러더니 바위사이에서 무영괴파의 모습이 유령같이 나타났다.

"... 너무 강하다. 팔절과 사패 전체가 힘을 합해야 스러뜨릴 수 있는 강적이다."

무영괴파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팔절중 고죽검신, 경천신도, 신륜비마, 신풍도객이 격살되었으니 이제 나와 천음인(天音人), 혈사신마(血沙神魔), 신필수사(神筆秀士)만이 남았구나. 무슨 방도를 취하지 않으면 팔절과 사패가 차례로 당하겠는데..."

무영괴파는 혼자 침중히 중얼거렸다.

"흐훗! 하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야 본 신분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니까. 우선은 저자의 정체부터 밝혀 보아야지."

스스스

무영괴파는 소리없이 몸을 날렸다.

그녀가 가는 방향은 선풍마존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장내는 다시 적막 속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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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동굴이 있는 절벽 위. 어떤 인물이 서서 하늘을 보고 있다.

크로즈 업. 독검사랑이다.

독검사랑; (명심해라 이청풍!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독검사랑; (네가 회천반혼대법을 펼치고 있는 것을 흡정마고에게 들키거나 반격의 기회를 주면 끝장이다.)

독검사랑; (네가 실패하면 흡정마고를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육갑자가 넘는 내공을 지닌 그 마녀를 누가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독검사랑; (설령 섭장천이 건강한 상태라 해도 지금의 흡정마고를 이기긴 쉽지 않을 것이다.)

<네가 너무 약해서 방심한 지금이 유일하게 흡정마고를 죽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초조한 표정으로 하늘 보고 있는 독검사랑의 모습 배경으로

 

#163>

다시 동굴 속의 밀실. 여전히 흡정마고가 청풍의 위에 네 다리로 엎드린 자세로 정기를 흡수하고 있는데. 벌린 입으로 청풍의 정기를 흡수하는 그년의 정수리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청풍의 정수리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헌데

흡정마고; (... 이상하다.) 피곤한 얼굴로 찡그리고

흡정마고; (벌써 한 시간 가까이 흡수하고 있는데도 이놈의 몸에서는 정기가 끊이지 않고 뿜어져 나온다.) (게다가...)

흡정마고; (어쩐지 피곤하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청풍의 어깨를 잡고 있는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흡정마고; (이런 경우는 백년 내에 한 번도 없었는데...) 초췌해진 얼굴로 이마 찡그리고

흡정마고; (안되겠다.) ! 입을 다물려 하고

흡정마고; (일단 흡정대법을 멈추고 몸 상태를 확인...) + [!] 고개를 들다가 비명을 지르고

슈우! 그제서여 자신의 정수리에서 기운이 빠져나가 청풍의 정수리로 스며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흡정마고.

흡정마고; [회천반혼대법!] 비명 지르며 다급히 청풍의 몸에서 뛰어 일어나려 하고. 하지만

콰직! 그년의 팔 위쪽을 강하게 움켜잡는 청풍의 양손. 이어

청풍; [어딜 가시려고?]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눈을 뜨고 올려다보며 말하고. 양손으로 흡정마고의 양쪽 팔을 움켜잡은 채로

흡정마고; [... 네놈...] 몸부림치며 이를 갈고.

흡정마고; [나의 내공을 노리고 일부러 접근했었구나.] 우두둑! 몸부림치지만

청풍; [아는 게 늦었다 흡정마고!] 역시 필사적으로 흡정마고의 팔을 잡고 놓치지 않고

청풍; [네년의 악행을 오늘로 종지부를 찍개 해주겠다!] 지지지! 머리로 빨아들이는 기운이 더 강해지고

흡정마고; [... 안돼!] [아아아악!] 정기를 빼앗기며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164>

[!] 절벽 위의 독검사랑. 흠칫! 놀라고

<아아악!> 여자의 비명이 들린다.

독검사랑; (계집의 비명! 이청풍이 해냈구나!) !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휘익! 절벽 아래의 동굴 입구에 내려서고

! 검을 뽑으며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독검사랑의 검은 검날이 검은색이다. 독이 묻어있어서

 

#165>

[주지스님!] 비명 지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세 비구니.

[아아악!] 철문 안쪽에서 이어지는 비명.

중년 비구니; [주지스님! 무슨 일인가요?] 탕탕! 철문을 밖에서 두들기지만

[끄으으윽! ... 안돼!] 비명 소리만 들리고

중년 비구니; [사단이 났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철문을 열려 하고. + [예 총관님!] 젊은 비구니들도 철문을 열려 하고

[그렇게는 안되지!] 비구니들 뒤에서 들리는 음성. 눈 부릅뜨는 비구니들

[!] [누구냐?] 깜짝 놀라 돌아보는 세 비구니. 직후

! 서걱! [!] [!] 검은 섬광이 종횡으로 스치면서 젊은 비구니들은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등이 제대로 베어졌고

중년 비구니; [!] ! 옆구리를 검은 섬광에 베이며 비명과 함께 옆으로 휙 날아간다.

스슥! 철문 앞에 나타나는 독검사랑. 검은색의 검을 휘두른 자세고. 그 앞에서 젊은 비구니들이 쓰러지고 있다.

중년 비구니; [... 웬놈이냐?] 콰득! 우두둑! 쌓여있는 해골들 위로 날아 내리면서 비틀하지만

푸시시! 그년의 베어진 옆구리에서 연기가 난다. 그걸 돌아보며 기겁하는 중년 비구니

중년 비구니; [... 독이 묻어있는 검...] [네놈은 바로...] 연기가 나는 옆구리를 움켜잡고 비틀거리고

독검사랑; [살인상단 지자급 자객 독검사랑이 바로 나다.] 스릉! 검은색 검을 다시 칼집에 꽂으며 말하고. 젊은 비구니들은 쓰러져 있다.

중년 비구니; [... 검에 독을 바르다니... 악독한...] 얼굴이 검게 변해 비틀하다가

퍼억! 해골들 사이로 처박히는 중년 비구니. 이년은 이 장면에서 죽지 않았다. 죽은 척 하는 것이고

독검사랑; [사돈 남말 한다더니...] 혀를 차고

독검사랑; [이런 무참한 짓을 해온 주제에 누구보고 악독하다는 것인가?] 주변을 둘러보며 냉소하면서 철문으로 가고

[끄으윽! ... 제발... 끄윽!] 철문 안쪽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독검사랑; (이청풍이 확실히 승기를 잡았군.) ! 철문 앞에 놓인 의자중 하나에 앉고. 근처에서는 두 젊은 비구니들의 몸뚱이가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고 있다.

독검사랑; (내 역할은 일이 끝날 때까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방해를 막아주는 것뿐이겠구나.) 느긋하게 앉고

독검사랑; (이번 일로 단주의 안목이 남다르다는 걸 본단의 상하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검사랑; (무공을 익힌 지 겨우 반년 밖에 안된 애송이로 하여금 육갑자가 넘는 내공을 지닌 강적 중의 강적을 척살하게 했으니...)

 

#166>

퍼억! 침대 아래로 나뒹구는 흡정마고. 완전히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변했다. 미이라가 가운을 걸치고 있는 듯한 몰골이고

청풍; [허억!] 털썩! 청풍도 헐떡이며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몸에서 열이 펄펄 나는 모습이고

청풍; [... 끝났다.] 헉헉 대고. 슈우! 온몸에서 강한 열이 나는 모습이고

청풍; (측량할 수도 없는 엄청난 힘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온몸에서 열이 나고

청풍; (저 마녀가 백여 년의 세월동안 흡정대법으로 쌓은 내공이 모두 내 몸으로 옮겨진 것이다.) 미이라처럼 변해서 침대 아래 나뒹군 흡정마고를 보며 상체를 힘겹게 들고

청풍; (그 때문에 몸속의 모든 경맥이 당장이라도 펑 터져버릴 것만 같다.) 비틀! 억지로 일어나 앉고

우둑! 우두둑! 청풍의 몸에서 뼈가 엇갈리는 소리가 나고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청풍; (단기간에 수용 능력을 초과한 내공을 흡수한 때문에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몸에서 열이 펄펄 난다

청풍; (급한 대로 내공심법을 일주천해서 날뛰는 내공들을 통제해보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아랫배 쪽에 대고

슈우! 청풍의 몸에서 강렬한 열기가 뿜어지고

청풍; (음양진기(陰陽眞氣)... 내가 익힌 유일한 내공심법...) 고통으로 얼굴이 심하게 이지러지고

청풍; (익히기는 쉬웠지만 그리 심오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음양진기로 이 엄청난 공력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화악!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는 청풍의 몸이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고

청풍; (가급적 빨리 상승의 심법을 구해 익히지 않으면 오히려 이 공력들이 나를 망칠지도 모르겠구나.) 슈우우! 운기조식하는 청풍의 모습. 헌데

꿈틀! 침대 아래로 나뒹굴었던 흡정마고의 미이라같이 변한 몸이 움직이고

츠으! 감았던 눈을 뜨는 흡정마고. 눈에서 빛이 나고

흡정마고; (... 죽일 놈...) 곁눈질로 침대 위의 청풍을 보고

흡정마고; (감히... 감히 내가 백년 넘게 고생해서 모은 내공을 훔쳐?) 깡마른 두 손을 모아 합장 하고.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는 자세로

흡정마고; (어떤 놈들인지 무공을 익힌 지 얼마 안된 놈에게 회천반혼대법을 익히게 한 후 내게 접근시켰다.) 츠으! 합장한 손바닥 사이로 빛이 나고

흡정마고; (그 때문에 방심해서 내공을 몽땅 빼앗겼지만... 아직 반격의 기회는 있다.) 이를 부득 갈고

흡정마고; (강호경험이 일천한 놈답게... 내 숨통을 확실히 끊어놓지를 않았다.) (덕분에... 난 죽지 않았고...) 우둑! 마주 댄 손에 힘을 주고

흡정마고; (몸을 움직일 수 잇을 정도의 내공만 끌어 모으면... 운기조식 하느라 정신이 없는 저 저놈을 죽일 수 있다.) 츠츠츠! 마주 댄 손바닥 사이에서 생긴 빛이 온몸으로 번져 나간다.

흡정마고; (저놈이 운기조식을 끝내는 게 빠른가 내가 최소한의 공력을 모으는 게 빠른가로 생사가 결정될 것이다.) 온몸이 흐릿한 빛에 덮이고

 

#167>

철문 밖. 타들어가는 비구니들의 시체 옆에 의자를 놓고 앉은 독검사랑. 눈을 감고 있다. 그러다가

독검사랑; (그러고 보니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며 이마 찡그리고

독검사랑; (천고에 다시없을 기재니 뭐니 해도 이청풍, 이놈이 실전 경험이 없는 티를 내는구나.) !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나 철문쪽으로 돌아선다.

 

#168>

침대에 앉아 운기조식하는 청풍. 온몸에서 열기가 치솟고.

우둑! 우두둑! 뼈가 엇갈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다가

스으... 불룩거리던 근육들의 경련이 가라앉는다. 이윽고

청풍; [휴우...] 긴 한숨 쉬며 운기조식을 끝내고

청풍;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 되었다.) 눈을 뜨고

청풍; (빈약한 내공심법이긴 하지만 음양진기가 야생마처럼 날뛰던 공력들을 어느 정도 통제...) + [!] 눈 부릅뜨는 청풍

흡정마고; [죽엇!] 슈학! 바로 앞에서 미이라 몰골의 흡정마고가 한 자루 칼을 두 손으로 쳐들어서 청풍을 내리치려 한다.

청풍; (아차!) 경악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팔을 들어 막으려 하고. 하지만

퍼득! 청풍을 칼로 내리치려던 흡정마고의 몸이 경직되고

청풍; (왜 공격을 멈춘 건가?) 들었던 팔을 내리며 놀라고

흡정마고; [끄윽...] 신음하며 자기 가슴 쪽을 보는 흡정마고. 푸시시시! 그년의 명치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어

푸시시! 가운이 타면서 가슴 부분이 드러나는데 검은색의 검이 등에서 심장 부분으로 뚫고 나와 있다. 물론 독검사랑의 검이다. 다만 흡정마고의 몸은 타지 않고 옷만 타는 것으로 묘사. 흡정마고는 몸 속에 피독주를 품고 있어서 독이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죽은 것은 독검사랑의 검이 심장을 관통한 때문이다.

청풍; (독이 묻어있는 검! 그렇다면...) ! 놀라며 침대에서 옆으로 내려설 때

독검사랑; [이번 한번 뿐이다. 뒤처리를 해주는 것은...] 흡정마고의 등에 독검을 찔러넣은 자세로 말하고. 독검사랑 뒤쪽의 문은 조금 열려있다.

청풍; (지자급 자객 독검사랑!) + [면목이 없습니다.] 포권하고

독검사랑; [표적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자객이 엄수해야할 철칙임을 잊지 마라.] ! 흡정마고의 등에서 독검을 뽑고

퍼억! 침대로 쓰러지는 흡정마고의 시체.

푸시시! 독검에 찔린 흡정마고의 시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다만 옷이 타는 것이지 살이 타는 게 아님. 옷이 타버리며 드러난 흡정마고의 등에는 찔린 상처만 있고 살이 타진 않았다.

청풍; (여기까지 오는 내내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강호경험이 일천한 내가 걱정된 소수마녀가 독검사랑을 딸려 보냈구나.) 검을 칼집에 끼우는 독검사랑을 보며 생각하고

독검사랑; [오해는 하지 마라. 나는 단순히 널 보호하기 위해 따라온 게 아니다.] 품속에 손을 넣고

독검사랑; [받아라.] 다시 꺼낸 독검사랑의 손에 편지가 한통 들려있고

독검사랑; [네가 죽여여할 두 번째 표적에 대한 지령서다.] 내밀고

청풍;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받고

독검사랑; [명심해라. 누군가 널 도와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돌아서며 말하고.

독검사랑; [세번째 표적에 대한 지령서는 두 번째 표적을 해치웠을 때 누군가가 전해줄 것이다.] 철문으로 가고

청풍; (과연 내가 죽여야 하는 두 번째 인물은 누구인가?) 봉투를 열고

봉투 안에서 여러 장의 종이를 꺼내는 청풍.

종이의 내용을 읽는 청풍. 헌데

청풍; (맙소사!) 경악하며 흡정마고의 시체를 보고

청풍; (두번째 표적을 죽이기 위해 이 마녀를 먼저 죽이게 했구나.) 옷이 타며 연기가 나는 흡정마고를 보며 경악하고.

 

#169>

밀실 입구. 철문은 열려있고. 두 젊은 비구니의 시체는 이제 살이 녹아 뼈만 남아있다. 연기는 피어오르는 중이다.

열린 철문에서 나오는 청풍. 열이 오르고 몸에서 주체 못할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 머리카락과 옷이 저절로 펄럭인다. 헌데

청풍의 왼손에는 구슬이 하나 들려있다. 계란만한 구슬인데 빛이 난다

청풍; (피독주(避毒珠)...) 구슬을 내려다보고

<존재하는 모든 독을 막아준다는 마교의 보물...> 청풍의 손에 들려진 구슬 크로즈 업

청풍; (마교가 멸망할 때 사라졌던 이걸 흡정마고가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몸의 민망한 어딘가에...) 쓴웃음 지으며 동굴 입구로 가고

청풍; (이걸 꺼내기 위해 끔찍한 짓을 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청풍; (두번째 표적을 척살하기 위해서는 피독주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했으니...) 동굴 입구에 거의 도착하고. 동굴 밖에는 파도가 치고 있다.

청풍; (이곳 상해에서 금릉까지는 팔백여리...) (서두르면 내일 밤쯤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동굴 입구에서 돌아서며 절벽 위를 보고

청풍; (두번째 표적을 척살하기 전에 금릉으로 가서 만나볼 인간들이 있다. 우리 집안에 크나큰 빚을 지은 자들이...) 벽소소와 이세창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가는 청풍.

! 동굴 입구에서 절벽 위를 향해 날아오르고

동굴에서 사라지는 청풍. 헌데

청풍이 사라진 직후

투둑! 철문 주변에 쌓여있던 시체들 중 하나가 들썩이더니

중년 비구니; [끄윽...] 얼굴이 검게 변한 채 시체들 사이에서 고개를 든다

중년 비구니; [... 살았다!] 헐떡이며 상체를 일으키는데

푸시시... 독검사랑의 검이 스친 옆구리에서 연기가 난다. 헌데 그 부분의 살이 크게 찢어져 있다.

중년 비구니; [... 독검사랑의 독검에 베인 부분의 살을 즉시 뜯어낸 덕분에 독이 깊이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헐떡이며 시체들 사이에서 기어 나오고. 하지만

푸시시! 뜯겨진 상처에서 연기가 난다.

중년 비구니; (다만... 독이 퍼지는 기세가 워낙 맹렬해서 내장으로 스며드는 걸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겨우 일어나고. 연기 나는 옆구리를 움켜잡은 채

중년 비구니; (빨리... 빨리 해독을 하지 못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비틀거리며 동굴 입구로 가고

중년 비구니; (살인상단의 지자급 살수중 으뜸가는 실력자라는 독검사랑에게 당했으니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이를 갈며 동굴 입구로 가고. 옆구리를 누르지 않은 손은 품속에 넣으면서

중년 비구니; (하지만 죽더라도... 그냥 죽지는 않는다.) 덜덜 떨리는 손이 다시 품속에서 꺼내지는데. 작은 피리가 하나 들려있다.

중년 비구니; (흡정마고님을 해친 놈들이 누군지... 가주님께 보고하고 죽어야만 한다.) 삐이! 피리를 부는 중년 비구니

삐이! 삐이! 동굴 입구를 밖에서 본 배경으로 피리소리가 멀리 퍼진다.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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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천주산> . 먹장구름

<-은일곡> 폐허가 되어있으며 잡초가 무성하다. 건물들이 탄 잔해들이 널려있고

그 은일곡이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무덤이 하나 있다. 무덤 앞에는 <葉氏一族之墓>라는 글이 수직으로 새겨져 있다. 은일곡 식솔들 시신을 화장한 재를 묻은 무덤. 무덤 앞에는 크지 않은 향로가 하나 놓여있다. 향로에는 거의 다 탄 향이 꽂혀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고

 

스악! ! 돌들이 섬광에 스쳐 무처럼 잘려나간다.

화장이 치러졌던 은일곡 중앙 광장. 사람 키만한 바위들 수십 개가 세워진 중앙에서 검을 휘두른 자세로 서있는 섭아연. 상복을 입었고 머리에 띠를 둘렀다. 왼쪽 허리춤에 칼집을 차고 있다. 살기어린 표정이고

! 스륵! 섭아연 주변의 돌들의 윗부분이 미끄러지더니

털썩! 퍼억! 바닥에 나뒹구는 바위들. 하지만 섭아연 주변의 바위들만 베어지고 조금 떨어진 곳의 바위들은 잘리지 않는다

섭아연; [...] 불만스러운 듯 찡그리며 검을 내리는 섭아연

이어 잘리지 않은 바위로 다가가 살펴보는 섭아연

바위에 금이 가긴 했지만 완전히 잘리지는 않았다. 절반 정도만 잘린 상태

이를 악무는 섭아연.

! 살펴보던 바위 윗부분을 왼손 손바닥으로 강하게 치는 섭아연.

콰직! 절반쯤 잘렸던 바위의 윗부분이 부러져 뒤로 날아간다.

털썩! 바닥에 떨어지는 잘려진 바위. 그걸 불만스런 표정으로 보는 섭아연.

섭아연; (어림없다.) 입술 깨물고

섭아연; (지금의 내 무공은 아버지에게도 한참 못 미친다.)

섭아연;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그 많은 원수들을 척살한단 말인가?) 절망

섭아연; (은일곡에서 변고가 생긴 후 한 달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부님은 나타나지 않으셨다.) (분명 누군가 조부님께 알렸을 텐데도...) 하늘 올려다보며 섭장천을 떠올리고

섭아연; (어쩌면 조부님의 신상에도 변고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섭아연; (결국 복수는 온전히 내 힘으로 해야 한다는 건데...) 생각할 때

스윽! 갑자기 섭아연의 뒤쪽에서 사람 그림자가 유령처럼 덮쳐오고

섭아연; [감히!] 스악! 벼락같이 돌아서며 검을 수평으로 휘두르는 섭아연. 검에서 긴 섬광이 내뻗치고. 하지만 그 직후

! 누군가의 손가락 두 개가 검날을 잡아버렸다

섭아연;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맨손으로 칼날을 잡는 수법)!) 놀랄 때

위진천; [어이쿠!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뻔 했소이다.] 웃으며 서있는 위진천. 자기 목으로 날아들던 검의 날을 손가락 두 개로 잡은 채. 그 직후

설렁! 위진천의 목 주변의 머리카락이 잘려서 흩날리고

섭아연; [죄송해요 위공자! 절 노리는 적인 줄 알았어요.] 고개를 조금 숙인다. 검을 내뻗은 자세로

위진천; [아니오. 소저를 놀래키려고 했던 내 잘못이오.] ! 웃으며 검날을 놔주고

섭아연; [마침 잘 오셨어요. 그렇잖아도 위공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스륵! 검을 왼쪽 허리춤에 찬 칼집에 꽂으며

위진천; [말씀해보시오.]

섭아연; [솔직하게... 숨김없이 말씀해주세요.] 찰칵! 검을 완전히 칼집에 꽂으며

섭아연; [지금의 제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위진천; [소저의 검법은...] 말하다가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섭아연

위진천; [실망하시더라도 사실대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으쓱하고

섭아연; [저를 위해서라도 그리 해주세요.] 고개 조금 숙이고

위진천; [말씀드리기 전에 이것부터 보여드리지요.] 스악! 돌아서며 자기 주변의 돌기둥들을 향해 손을 수직으로 내리긋는다. 장난같이 긋고 아무런 기척도 없는데. 다음순간

! 서걱! 위진천 주변의 모든 바위들이 일제히 수직으로 갈라지더니

콰쾅! ! 두 쪽이 된 바위들이 좌우로 넘어진다

섭아연; (맙소사!) 그걸 보고 전율하고

섭아연;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열 개 이상의 바위가 쪼개졌다.) 쪼개져서 나뒹구는 바위들을 보고

위진천; [우리 가문에 전해지는 무영삭도(無影削刀)라는 무공이외다.] [이름 그대로 기척도 없이 강기(罡氣)의 칼날을 날려서 표적을 베는 수법이지요.]

섭아연; [놀랍고도 치명적인 무공이로군요.]

위진천; [하지만 이 무영삭도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대가 무림에는 최소한 백명 이상 있다고 봐야하외다.]

섭아연; [공자 정도의 실력자도 무림백대고수(武林百大高手) 안에 들지 못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놀라고

위진천; [백대고수에 드는 것은 언감생심이지요. 천대고수(千大高手)라면 혹시 모를까...] 어깨 으쓱 하고

섭아연; [공자의 실력으로도 천대고수에 겨우 든다니 믿기지가 않는군요.] 찡그리고

위진천; [그만큼 강호에는 기인이사가 모래알같이 많다는 뜻입니다.]

위진천; [하물며 정파백도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구대문파와 삼문육가(三門六家)의 주인들의 실력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섭아연; [복수...] 하늘 보고

섭아연; [아무래도 저는 부모님의 복수를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처연하게 웃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그런 섭아연을 보는 위진천.

 

#31>

무덤 앞. 섭아연이 무릎을 꿇고 있고 그 뒤에 위진천이 두 손을 모은 채 서있다. 무덤 앞의 향로에는 향이 꽂혀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고

섭아연; [조부님의 검법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절대무적의 위력을 지녔어요.] 무덤 앞에 세워진 <葉氏一族之墓>라 적힌 비석을 보면서 말하고

위진천; [영조부께서 검성이라 불리시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지요.] 끄덕

섭아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아버지나 저의 무공이 평범한 게 이해가 가지 않으실 거예요.] 한숨

위진천; (사실이 그렇다.) + [이유가 있겠소이다.] 눈 번뜩

섭아연; [조부님의 비기인 절대삼검(絶代三劍)은 그 위력이 막강한 대신 수련하기가 극히 어렵다고 해요.]

섭아연; [오의(奧義)를 깨우치려면 죽음을 경험해야한다고 할 정도예요.]

위진천; [한번 죽었다 살아나야 깨우칠 수 있는 검법이라니...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이 가지 않소이다.] 진짜 놀라고

섭아연; [그래서 조부님은 아버지에게 절대삼검을 전수하실 엄두를 내지 못하셨다고 해요.]

섭아연; [또 절대삼검에는 천도(天道)를 거스르는 면이 있기도 해서 당신이 돌아가시면 함께 세상에서 절전되기를 바라셨다는군요.]

위진천; (천도를 거스르는 면이라...) 눈 번뜩

위진천; (섭장천이 멸신창에 심장을 궤뚫리고도 즉사하지 않은 이유와도 관련이 있겠군.) 섭장천이 멸신창에 몸이 관통당한 장면 떠올리고

섭아연; [결국 조부님은 아버지에게 일반적인 검법만을 전수하셨는데...]

섭아연; [그나마도 아버지의 재질이 평범한 탓에 채 일할도 익히지 못하셨다고 해요.] 한숨 쉬고

섭아연;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서 검법을 배운 저의 실력도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머물렀지요.] 우울하게

위진천; [저의 생각은 자질의 문제보다는 배우신 검법 쪽에 더 문제가 있는 것 같소이다만...]

섭아연; [검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시는 건...] 돌아보고

위진천; [검성께서는 아마 정종(正宗)의 검법만을 영친에게 전수하셨을 것입니다.] 진지하게 말하고

위진천; [잘못된 무공을 익힐 경우 주화입마를 당하거나 마성에 빠질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섭아연; [그렇다고 들었어요.] 끄덕

위진천; [헌데 대부분의 정종무공에는 오랜 수련이 뒷받침이 되어야 제 위력을 발휘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위진천; [소저가 익힌 검법도 대단한 위력을 지녔겠지만 최소한 십년 이상은 쉬지 않고 수련해야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섭아연; [십년...] 우울하게 무덤을 보고

섭아연; [참고 견디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로군요.] [과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 지도 모르고...]

위진천; [소저의 사정이 딱해서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만...] 오른손을 품속에 넣으며 말하고

섭아연; [어떤...] 돌아보고

위진천; [마침 제 손에 들어온 검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다시 꺼내는 손에 낡은 책이 한권 들려있다. 표지에는 <修羅七式>이라는 제목이 적혀있고

위진천; [이 검법을 수련할 경우 짧으면 반년 안에 죽이지 못하는 인간이 없게 될 것입니다.] 책을 들어 보이고

섭아연; [반년... 반년 안에 죽이지 못하는 인간이 없게 되는 검법!] [그런 게 정말 존재하는지요?] 불신

위진천; [천잔수라(天殘修羅)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소이까?]

섭아연; [불구로 태어난 탓에 성격이 비뚤어져 평생 십만 명 넘게 죽였다는 전설적인 살인마 아닌가요?]

위진천; [천잔수라는 구대천마중 파천검마(破天劍魔)에게 죽었소.] 끄덕

위진천; [헌데 그 과정에서 파천검마도 하마터면 천잔수라에게 죽을 뻔 했었다고 하오.]

섭아연;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말하다가

섭아연; [혹시 그 비급이...] 위진천이 들고 있는 낡은 책을 보고

위진천; [천잔수라의 살인검법 수라칠식(修羅七式)이 수록된 비급이오.] 내밀고

섭아연; [... 수라칠식!] 흥분하며 두 손으로 받는 섭아연. 표지에 <修羅七式>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위진천; [천잔수라는 팔 다리를 하나씩 못 쓰는 불구의 몸이었소.] [만일 그가 성한 몸으로 수라칠식을 펼쳤다면 어땠을 것 같소?] 섭아연의 표지를 들추고 내용을 읽는 것을 보면서 묻고

섭아연; [파천검마도 천잔수라 손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겠어요.] 흥분하며 책을 보고

위진천; [수라칠식은 위력이 가공할 뿐 아니라 속성으로 연마하는 것도 가능한 검법이오.] 그런 섭아연을 보며

위진천; [검성의 손녀인 소저라면 아마 반년 내에 구사하실 수 있을 거요.] [익히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수라칠식을 소저에게 드리겠소이다.]

섭아연; [염치없지만 잠시 이 비급을 빌리도록 하겠어요.] 다시 비급을 덮으면서 고개를 조아리고

위진천; [돌려주실 필요는 없소이다. 세상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는 법이니...] 사람 좋게 웃고

섭아연; [고마워요 공자님!]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어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위진천; [별 말씀을...] 마주 포권하고

섭아연; (수라칠식! 어쩌면 구대천마중 파천검마조차 능가했을지 모르는 전설적인 살인귀의 검법...) 비급을 보며 흥분

섭아연; (위공자 말대로 수라칠식만 익히면 정피백도의 위선자들을 멸절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기어린 표정으로 비급을 보고

위진천; (쉽군! 너무도 쉬워!) 그런 섭아연을 보며 히죽 웃는 위진천

위진천; (수라칠식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마성을 촉발시키는 힘을 지녔다.) (그 때문에 일단 익히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머잖아 무림에는 복수심에 미쳐 날뛰는 마녀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현장 모습 배경으로 위진천의 생각 나레이션

 

#32>

<-북경>

황금전장으로 통하는 길에 사람들이 좌우로 모여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 황금전장 쪽이 아니라 반대편을 보고 있다.

황금전장 쪽으로 오던 상인 차림의 사내 둘이 인파를 보고 어리둥절

사내1; [무슨 일 났소?] + 사내2; [왜 이렇게 모여 있는 거요?] 길가에 서있던 사람들에게 묻고

사내3; [일이 나긴 났지요.] + 사내4; [글쎄 황금전장의 소장주가 이번 달에 치러진 과거에서 삼등급제를 했다지 뭐요?] 길가에 서있던 사람 둘이 신이 나서 대답하고. 둘은 가게 주인 분위기

사내1; [황금전장 소장주가 과거에 급제를 해? 그것도 삼등으로?] + 사내2; [허어! 천하삼대부호가문의 후계자면서 과거에 급제까지 하다니...]

사내3; [그래서 난리가 난 거요.] + 사내4; [황금전장에 경사가 생겼으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뭔가 좋은 일이 있지 않겠소?] 기대하는 표정

사내1; [세상 참 불공평하구만. 엄청난 부자면서 관계에까지 진출하고...] + 사내2; [냉혈전호 벽장주의 소원이 가문을 명문가로 만드는 거라던데 드디어 소원성취 했군.] 대화하며 걸어갈 때

삘릴리! 삘릴리! ! ! 나팔소리, 징치는 소리가 두 놈이 온 방향에서 들린다. 이어

[온다!] [벽공자가 오고 있어!] [자금성에서 과거급제의 사령장(辭令狀)을 받고 돌아오고 있어!] 사람들 환호하며 한쪽을 보고. 사내들이 온 방향

사내1과 사내2도 걸음 멈추고 돌아보고

삘릴리! 삘리! ! ! 와아! 와아! [감축드립니다 소장주!] [삼등급제 축하합니다!] [이제부터는 탐화랑(探花郞)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징소리, 나팔소리 사람들의 환호를 배경으로 황금전장을 향해 다가오는 행렬. 관복을 입고 긴 어사화 두 가닥이 달린 관모를 쓴 채 벽세황이 백마를 탄 채 오고 있다. 벽세황의 복장은 우리나라 과거에 급제했을 때 입는 복장으로 묘사. 백마의 고삐는 황금수라의 부영반인 귀견수가 잡고 있다. 벽세황이 탄 백마 뒤로는 십여 명의 하인들이 두 줄로 따라오는데 하인들을 인솔하는 건 이세창이다. 이세창은 두 손으로 쟁반을 하나 받쳐 들고 있는데 쟁반에는 두루마리가 하나 얹혀져 있다. 하인들은 각자 커다란 통을 가슴에 메고 있는데 통에서 동전을 꺼내 좌우로 뿌린다

동전을 연신 뿌리는 하인들. 그 동전을 주우려고 사람들이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고

[벽공자!] [벽공자!] [과거급제 감축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소장주!] 사람들의 환호에 한손을 들어 답하는 벽세황. 입이 귀에 걸렸고

이세창; (소장주는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올라갈 수 있는 것같은 기분이겠지.) 뒤에서 그걸 보며 좀 비웃고. 두 손으로는 두루마리가 얹혀진 쟁반을 든 채

이세창; (하지만 관계에 들어가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절감하게 될 것이다.)

이세창; (관계야말로 가장 끔찍한 악머구리들의 소굴이니...)

이세창; (그래도 눈치가 빠른데다가 황금전장이라는 막강한 배경이 있어서 어찌 어찌 버티긴 할 것이다.)

이세창; (그나저나 청풍이 놈은 생각할수록 대단하다.)

이세창; (이목이 집중되는 걸 피하기 위해 장원으로는 급제하지 않겠다더니 정말 삼등급제를 했다.)

이세창; (학문의 재능으로만 따지면 청풍이 놈을 능가하는 자는 당금 천하에 존재하지 않겠지.) 생각할 때

앞쪽에 항금전장의 정문이 보인다. 정문 주변에도 엄청난 인파가 모여있다. 구경꾼 뿐 아니라 황금전장의 식솔들도 다 나와 있다. 정문 앞에는 벽초천과 마은혜 부부, 벽옥령이 서있고 주변을 황금수라와 황금나찰들이 경비하고 있다. 벽초천 일가 뒤쪽 문 안쪽은 황금전장 식솔들로 가득 차있다.

뒷짐 진 벽초천은 무표정. 반면 마은혜는 좋아 죽으려 하고. 벽옥령은 시큰둥.

마은혜; [상공! 세황이 좀 보세요.] 흥분하며 앞을 가리키고. 귀견수가 고삐를 잡은 백마가 이제 20미터쯤 앞으로 다가왔다.

마은혜; [관복을 입고 어사화(御史花)를 꽂은 관모를 입은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지 않는가요?]

벽초천; [그렇구려.] 무뚝뚝

벽옥령; (잘 어울리기는...) 샐쭉

벽옥령; (산적같은 오빠에게 관복이 어울릴 리 없잖아. 천생 선비인 청풍오빠라면 또 몰라도...) 코웃음을 치고

마은혜; [이런 날이... 우리 아들이 관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고. 그때

벽세황을 태운 백마가 마침내 5미터쯤 앞에 이르렀다. 귀견수가 백마의 고삐를 틀어쥐어 백마를 멈추게 하고

즉시 말에서 내리는 벽세황. 이세창이 서둘러 다가오고. 이어

벽세황; [아버지! 어머니!] 이세창이 내미는 쟁반에서 두루마리를 집어들며 벽초천과 마은혜를 보고

벽세황; [소자, 폐하로부터 직접 삼등급제의 사령장을 하사받고 돌아왔습니다.] 두 손으로 두루마리를 들고 벽초천과 마은혜에게 다가오고

마은혜; [수고했다 세황아!] 달려 나오고

마은혜; [장하다! 수고했어 내 아들!] 벽세황을 와락 끌어안으며 감격하고

[감축드립니다 소장주님!] [벽장주님! 축하드립니다.] [황금전장에 경사가 났어!] 와아! ! 짝짝! 주변 모든 사람들 박수치고 환호하고.

마은혜와 함께 사람들의 환호에 답하는 벽세황. 손을 흔들고. 마은혜는 두루마리를 품에 안고 좋아 죽으려 하고. 반면

벽초천;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심각한 표정

벽초천; (막강한 재력을 지닌 우리 가문이 관계에까지 진입했으니 치열한 견제와 시기가 난무할 것이다.)

벽초천; (앞으로 펼쳐질 아수라장을 헤쳐나가려면 재력에 더해 인맥(人脈)도 필요한데...) 힐끗 벽옥령을 보고. 벽옥령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벽세황과 마은혜를 보고 있다

벽초천; (생각할수록 아깝구나. 옥령이 저것을 이용하면 든든한 인맥을 구축할 수 있을 텐데...) 소리없이 한숨 쉬고

 

황금전장 정문 안쪽. 환호하는 황금전장 식솔들 사이에 숨듯이 서있는 타노

사람들 틈으로 벽초천 일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타노의 시점

타노; (결국 장주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타노; (하지만 장주가 과연 신의를 지킬지는 미지수다. 딱 봐도 생각이 많아진 얼굴이니...) 한숨

타노; (아무쪼록 청풍이가 상처를 입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숨

 

#33>

황금전장 정문 상황이 원경으로 보인다. 이제 벽세황이 벽초천에게 인사하며 두 손으로 두루마리를 바치고 있다.

황금전장 근처의 3층 건물. 창가에 어떤 여자가 의자에 앉아서 황금전장 입구쪽을 보고 있다. 절세미녀인데 병약한 인상이다. 위극겸의 딸 위상영이다. 다른 작품의 위상영을 젊게 묘사. 절세미녀고 병약해 보이지만 좀 도도한 인상. 나이는 18세 가량. 품에는 검은색의 비파를 안고 있다. 이 검은 색 비파의 이름은 이혼비파. 강력한 위력을 지닌 보물로 위상영의 무기다. 근처에 의자가 하나 더 있다.

[...] 뭔가 생각하며 창밖을 보는 위상영.

두루마리를 펴서 읽어보는 벽초천. 그 앞에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벽세황의 모습 크로즈 업

위상영; [저자가 정말 과거 시험에서 삼등급제를 했단 말인가요?] 황금전장 쪽을 보며 누군가에게 묻고. 그러자

일교; [틀림없사옵니다 아가씨.] 뒤에 서서 말하고. 위상영의 뒤에는 얼굴이 똑같이 생긴 서양미녀 두 명이 서있다. 다른 작품의 <색목쌍교>. 일교는 무기가 휘어진 긴 칼이며 등에 원형의 방패를 짊어지고 있다. 반면 이교는 자기 키만한 양날 도끼다를 들고 있고 방패는 지니지 않았다. 색목쌍교의 나이는 20대 초반

일교; [황금전장의 소장주 벽세황!] [저자는 며칠 전 치러진 전시에서 삼등급제, 즉 탐화(探花)를 했사옵니다.] 앉아있는 위상영의 어깨 너머로 창밖을 보며

위상영; [그런가요?] 여전히 창밖을 보며

이교; [아가씨 보시기에는 그만한 재목이 아닌 모양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고

위상영; [영특하다기보다는 기민한 인상... 게다가 순발력은 제법 있지만 지구력은 엿보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혼잣말처럼 말하고

위상영; [어떻게 보아도 진득하니 학문에 매진해온 인물은 아니로군요.]

일교; [아가씨의 관상(觀相) 보는 안목은 틀린 적이 없으니 정확하겠지요.]

이교; [그럼 혹시 매관(賣官)을 한 게 아닐까요? 황금전장이라면 관직을 살 재력이야 충분하고도 넘치니...]

위상영; [매관을 했든 대리시험을 치게 했든 뭔가 수단을 썼을 거예요.] 끄덕이고

일교; [하여간 세상은 썩지 않은 곳이 없군요.]

이교; [오죽 했으면 우리 선조들께서 세상을 벗어나 곤륜산(崑崙山)에 신선부를 만드셨겠어?] 일교에게 말하는데

지링! 위상영이 안고 있는 비파의 현이 저절로 조금 울리고.

<환우십보중 하나인 이혼비파(離魂琵琶)가 울었다!> 놀라는 색목쌍교. 그러자

위상영; [손님이 도착하셨어요. 맞을 준비를 하세요.] 비파를 쓰다듬으며 말하고.

[예 아가씨!] 급히 대답하며 돌아서는 색목쌍교. 그 직후

[수고할 거 없다 색목쌍교(色目雙轎)!] 스윽! 뒤쪽 어둠 속에서 거지가 한명 아메바처럼 빠져나오며 말하고. <무쌍일지>에 나온 독두신개. 이 작품에서도 이름은 독두신개. 캐릭터 060. 대나무 지팡이를 들었고 허리춤에는 호로병을 하나 차고 있는 것으로 묘사. 이 거지는 개방의 태상장로인 독두신개. 개방 방주의 사숙이다. 또한 당금 무림의 최고 고수들인 우내사절중 한명이기도 하다.

독두신개; [호천맹(護天盟)의 군사(軍師) 일로 피곤할 너희 주인을 늙은 거지 때문에 번거롭게 해선 안돼.] 어둠 속에서 완전히 나오는 독수신개

일교; (놀라운 은신술!) + [독두신개(禿頭神丐) 호법님을 뵈옵니다!] 포권

이교; (과연 개방(丐幇)의 태상장로이며 우내사절(宇內四絶)의 일인답다.) + [어서 오시옵소서 호법님!] 역시 포권하며 내심 놀라고

위상영; [원로에 노고가 많으셨사옵니다.] 고개 조금 숙이며 일어나려 하고

독두신개; [앉아있게나 군사.] 고개 저으며 다가오고

위상영; [결례를 하겠사옵니다.] 다시 의자에 앉고

위상영; [하온데 호법께서 직접 저를 찾아오신 걸 보니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겠사옵니다.] 마주 보며

독두신개; [맞네.] 위상영 맞은편 의자에 앉고

독두신개; [환마루에 잠입시킨 본방의 제자가 보고를 해왔는데... 환마루와 백살파의 잡것들이 오늘 밤 북경 외곽에서 회합을 한다는구만.]

위상영; [지존회(至尊會)가 황실을 노리고 꾸미는 음모의 일환이겠군요.]

독두신개; [본디 무림은 황실과 엮이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지존회 놈들이 먼저 움직였으니 묵과할 수 없지.] 끄덕이고

독두신개; [이 기회에 지존회와 지존에게 한방 제대로 먹여 보세나.] 히죽 웃고

 

#34>

<-장경각(藏經閣)> 황금전장 내부. 장경각. 근처에는 인적이 없다. 모두 정문으로 달려가서

그곳으로 오는 20대 중반쯤의 하녀. 두 손으로 작은 쟁반을 들었다. 쟁반에는 뚜껑이 덮여있는 죽 그릇과 수저가 하나 얹혀져 있고. 이 하녀는 #8>에 나온 하녀 강혜분이다. 그 새 나이가 들어 완숙해졌다. 어른 여자 분위기.

장경각 이층을 올려다보며 입구로 다가가는 강혜분

 

#35>

장경각 내부. 높은 책꽂이들이 늘어선 사이에 놓여있는 책상. 상당히 넓은 책상 위에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다. 청풍이 그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빈 책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주변에 있는 책들을 가끔 들춰보면서, 그러다가

멈칫! 붓을 움직이던 청풍의 손이 멈칫하고

<와아! 와아!> <감축드립니다 소장주님!> <삼등급제를 축하드립니다.> 멀리서 환호성이 청풍의 귀에 작게 들린다.

한숨 쉬는 청풍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때

[역시 여기 있었네.] 누군가 책꽂이 사이로 나타나며 말하고.

돌아보는 청풍.

강혜분; [하긴 청풍이 네가 안보일 경우 찾을 수 있는 곳은 장경각 외에는 없겠지.] 쟁반을 들고 다가오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하녀 강혜분(姜惠芬)>

청풍; [혜분 누님!] 돌아보며 고개를 좀 숙이고

강혜분;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고 들었어.] 다가오고

강혜분; [그래서 연실(蓮實) 죽을 끓여왔으니 한술 뜨도록 해.] 쟁반을 청풍의 앞쪽 책상 위에 놓고

청풍;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걸 보며 난감

강혜분; [어떻게 신경을 안 쓰니? 함께 황금전장에서 자라온 남매같은 사이인데...] 달칵! 옆의 의자에 앉으며 죽 그릇의 뚜껑을 열고

강혜분; [그릇 가져가게 어서 먹어.] 뚜껑을 옆에 내려놓고

청풍; [고맙습니다.] 수저를 들고

곧 죽을 먹기 시작하는 청풍

강혜분; (모든 게 원하는 대로 되어 가는데...) 말없이 죽을 먹는 청풍을 보며 생각하고

강혜분; (어째 청풍이의 표정은 밝지가 않네.) 소리 없이 한숨. 그러다가

책상 위의 책들을 보는 강혜분

강혜분; (책상 위의 이 책들...) 그 중 한 권을 집어들며 놀라고

책 표지에 <流雲步法>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강혜분; (유운보법(流雲步法)...) 책의 제목을 읽고.

강혜분; (그러고 보니...) 책상 위의 다른 책들을 둘러보고

강혜분; (지금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은 모두 무공과 관련된 것들이야.) 생각할 때

청풍; [누님도 무공을 배우셨지요?] 죽을 먹으며 묻고

강혜분; [본장 내원의 하녀들은 유사시를 대비해서 모두 무공을 배우게 되어있어.] 고개 끄덕이고

강혜분; [그러다가 재능이 있는 것으로 판정나면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해서 여자 경호무사인 황금나찰(黃金羅刹)이 되는데...]

강혜분; [네가 보다시피 난 자질이 평범 이하라 그냥 마님의 몸종 노릇을 하고 있단다.] 어깨 으쓱

청풍; [그래도 내공 수련은 꾸준히 해오셨지요?]

강혜분; [무공 때문은 아니고... 내공을 수련하면 나이 먹는 게 늦어진다고 해서...] 얼굴 약간 붉히고

청풍; [확실히 누님은 여전히 십대소녀처럼 보이십니다.] 달칵! 웃으며 수저를 쟁반에 내려놓고

강혜분; [얘는 농담도 잘해!] ! 부끄러워서 청풍의 어깨를 손으로 치고. 헌데 그 순간

휘익! 강혜분의 몸이 허공으로 홱 떠오른다. 다리가 천장을 향하게. 손은 청풍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고

강혜분; [엄마야!] 거꾸로 선 자세가 되어 비명 지르고.

청풍; [놀라셨지요?] 웃고

청풍; [내려드릴 테니 안심...] + [!] 움찔 하고

스륵! 거꾸로 서는 바람에 강혜분의 치마와 속치마가 아래로 흘러내리며 아랫도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가죽신을 신은 발과 미끈한 다리. 삼각 빤스 같은 속옷으로 가려진 사타구니 일부까지

강혜분; [!] 비명 지르며 급히 나머지 한손으로 사타구니쪽의 치마를 밀어서 아랫도리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게 하고

청풍; (아차!) + [... 죄송합니다.] ! 얼굴 좀 붉어진 채 강혜분의 손이 붙어있는 어깨를 움찔하고. 그러자

슈욱! 거꾸로 섰던 강혜분의 몸이 다시 원래 자리쪽으로 내려져서

털썩! 의자에 앉혀지는 강혜분. 한손으로 치마를 사타구니에 밀어넣은 자세로 놀란 표정이다.

청풍; [용서하십시오. 제가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 멋쩍게 웃는 청풍의 어깨에서 강혜분의 손이 떨어지고

강혜분; [... 어떻게... 어떻게 한 거니?] 손을 청풍의 어깨에서 떼며 놀라 달달 떨고

강혜분; [내손이 네 어깨에 닿는 순간 강한 흡인력이 일어나서 뗄 수가 없었어.] [그후에는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고...] 흥분하며 몸을 떨고. 두 손으로 치마를 끌어내려 아랫도리를 가리며

청풍; [이화접목(移花接木)이라는 수법입니다.] [상대의 힘을 끌어들여서 내 것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무공이지요.] 멋쩍게 웃고

강혜분; [청풍이 너 무공도 익혔구나!] 놀라고

청풍; [익힌 건 아닙니다. 내공수련은 한 적이 없으니까요.] 고개 젓고

청풍; [다만 이화접목은 내공이 없어도 쓸 수 있어서 한번 구사해본 것뿐입니다.]

강혜분; [놀래라. 네게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어.] 한손으로 가슴 누르고

청풍;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이화접목은 제가 장경각에 있는 무공 비급들을 참조해서 만든 무공입니다.] 책상 위의 책들을 둘러보고

강혜분; [무공을 직접 만들었어?] 또 놀라고

청풍;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관통하는 이치는 대동소이합니다.] 끄덕

청풍; [그 이치를 응용해서 만들어본 게 이화접목입니다.] 멋적게 웃고

강혜분; [청풍이 넌 정말 말도 안되는 괴물이로구나. 약관도 안된 나이에 직접 무공을 만들기까지 하고...] 흥분. 얼굴 발개지고

청풍; [다른 사람이 알면 번거로워지니...] 손가락을 하나 입술에 대고. + 강혜분; [걱정하지마.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테니..]

청풍; [감사합니다.] ! 말하며 여러 권의 책들 중 한권을 뽑아내고. 최근에 지은 책이고 얇다. 제목은 없고

청풍; [놀라게 해드린 배상으로 이걸 드리겠습니다.] 내밀고

강혜분; [혹시...] 놀라며 두 손으로 받고

청풍; [이화접목의 수련비결입니다.] 건네주며 웃고

청풍; [그걸 수련하시면 아무리 힘 센 상대라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혜분; [고마워! 열심히 수련할게.]

청풍;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언제고 이화접목이 누님에게 필요한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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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느닷없는 봉변

 

 

 

광풍진천장 역시 청구상인의 절기 중 하나로써 만일 절정의 경지에 이르면 작은 동산 하나는 뿌리 채 날려보낼 수가 있다.

다만 광풍진천장은 내공 소모가 극심한 단점이 있어 연달아 펼쳐내지 못하는 것이 흠이다.

[끝장을 내자!]

꽈르릉!

광풍진천장으로 기선을 잡은 막비강은 질풍노도같이 낙성신마를 공격해 갔다.

막비강은 비록 금강옥액을 마시고 청구단서를 익혔다.

하지만 가르쳐 주는 스승이 없어 전적으로 혼자 무공을 배워야만 했다.

그런 탓에 그의 청구절학은 아직 채 오성(五成)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 바람에 청구절학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우내사마 정도의 인물도 압도할 수 없었다.

! 퍼펑!

막비강은 자신의 이 같은 사정을 잘 아는지라 일단 선기를 잡자 놓치지 않고 격렬한 공격을 가해 갔다.

홍의소녀는 만면에 경악의 빛을 머금은 채 막비강이 낙성신마를 몰아붙이는 것을 구경하였다.

설마 약관의 청년이 백여년 년 전부터 악명을 떨쳐 온 거마를 이토록 쉽게 궁지로 몰아넣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홍의소녀는 다시 녹의소녀와 분면색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헌데 이때 녹의소녀와 분면색마도 싸움을 중지하고 넋 잃은 사람처럼 막비강과 낙성신마의 격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막비강의 신위에 경악과 찬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홍의소녀가 녹의소녀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녹의소녀는 깜짝 놀라며 돌아보더니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언니!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마!]

[혼비백산하는 꼴이 우습구나. 저 음적이 기습을 하면 어쩌려고 넋을 잃은 채 구경하고 있는 거냐?]

분면색마는 불과 일 장도 되지 않는 거리에 서 있는지라 홍의소녀의 말을 알아듣고는 음험하게 웃었다.

[소생은 저들이 승부를 가리는 것을 본 다음에 당신들 자매를 즐겁게 해줄 테니 너무 서둘지 마시오.]

홍의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음적! 쓸데없는 주둥아리는 그만 놀리고 죽음이나 받아라!]

추학!

그녀는 장검을 휘둘러 분면색마를 공격해 갔다.

분면색마는 갑자기 홍의소녀에게 기습을 받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연달아 후퇴하기에 급급했다.

바로 그때였다.

퍼펑!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이 일어나고 모래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두 개의 인영이 각기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홍의소녀와 분면색마는 갑작스러운 폭음에 깜짝 놀라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

[저런...!]

여기저기서 경악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섯 개의 인영이 각기 낙성신마와 막비강에게로 달려갔다.

막비강은 비록 일장으로 낙성신마를 격퇴시켰지만 자신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자욱이 피어오른 먼지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화락! 스슷!

홍색과 녹색 두 개의 날렵한 인영이 동시에 막비강 앞에 도착하여 관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다치지 않았어요?]

막비강은 간신히 몸을 가누었지만 얼른 숨을 고를 수가 없어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만 가로저었다.

녹의소녀가 홍의소녀를 돌아보며 급히 말했다.

[언니, 그에게 소환단(小還丹)을 한 알 줘!]

홍의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조그만 옥병을 하나 꺼냈다.

옥병 속에는 붉은 기름종이에 싸인 대추알만한 환약 두 알이 들어 있었다.

이 환약이 소림사(少林寺)에 전해지는 절세의 영약인 소환단이다.

아무리 심한 내상이라도 한 알의 소환단이면 금방 완쾌될 수가 있다.

어린 소녀들이 어떻게 소림사의 요상영단을 갖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 이걸 먹어요!]

언니에게서 소환단을 받은 녹의소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막비강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막비강은 진기를 돋우어 한바퀴 순환시켜 본 결과 기혈만 약간 뒤틀렸을 뿐 별 지장이 없는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의는 고맙지만 귀한 단약(丹藥)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홍의소녀가 눈을 치켜 뜨며 약간 성이 난 음성으로 말했다.

[이미 꺼냈는데 다시 집어넣으란 말인가요? 빨리 받으세요!]

막비강은 그녀의 화내는 모습이 귀여워 녹의소녀에게서 소환단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녹의소녀가 그걸 보고 물었다.

[왜 먹지 않으세요?]

[아껴 두었다가 정말 부상을 당했을 때 먹으려고 합니다.]

모래먼지가 흩어지자 장풍이 마주쳤던 지면에 길이가 오 장 가량 길게 갈라지고 깊이는 석 자 정도로 파여 있는 것이 드러났다.

낙성신마는 움푹 파인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운기조식을 하고 있으며 그의 좌우에는 천수인마와 화색쌍요가 서서 그를 보호하며 막비강 일행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막비강은 그자들에게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두 자매에게 물었다.

[낭자의 성이 전씨라면 혹시 전포라는 분을 아십니까?]

녹의소녀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분은 우리 백조부(伯祖父)님이세요.]

[그만둬!]

홍의소녀는 동생의 입빠른 것을 꾸짖는 듯이 눈을 흘겼다.

막비강은 홍의소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급히 말했다.

[낭자께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긴한 일로 그분 어른을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당신은 누군데 우리 큰할아버지를 뵈려는 거죠?]

홍의소녀가 경계를 풀지 않으며 물었다.

[제 이름은 곡능천이라 합니다.]

[! 천면신룡이 바로 당신이었군요.]

녹의소녀가 반색을 했다. 그녀는 어느덧 막비강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약관밖에 안 된 젊은 나이에 우내사마를 물리치는 신위를 본 순간 소녀의 방심은 여지없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이야앗!]

쐐액!

갑자기 날카로운 외침 소리와 함께 세 줄기 인영이 동시에 막비강 일행에게 날아들었다.

기회를 엿보던 천수인마와 쌍요가 동시에 공격을 발동한 것이다.

퍼펑!

특히 쌍요는 악독하게도 먼저 한 무더기 분홍색 독분(毒粉)을 퍼뜨려 시야를 가린 뒤 장력을 날려 왔다.

[두 분! 빨리 후퇴하시오!]

꽈르릉!

막비강은 다급히 전씨 자매에게 외치며 쌍장을 휘둘러 청구상인의 최강절기인 치우강기를 천수인마와 쌍요를 향해 펼쳐냈다.

퍼펑!

[!]

[크흑!]

다음 순간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천수인마와 쌍요가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또한 막 물러서려던 홍의와 녹의 두 자매까지도 날려 나가 땅바닥에 곤두박질했다.

그뿐 아니었다.

[!]

십여 장 밖에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던 낙성신마조차도 치우강기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치 호박처럼 오 장 밖으로 굴러 나갔다.

[!]

그러나 막비강도 선혈을 한 모금 토해내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래 치우강기는 위력이 강한 대신 심대한 내공의 소모를 동반한다.

헌데 막비강은 방금 전 낙성신마와의 격돌로 기혈이 흔들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치우강기를 펼쳐내게 되었다.

그 바람에 체내의 기혈이 완전히 뒤틀려 버린 것이다.

막비강이 발휘한 치우강기는 비록 대부분이 앞으로 발출되었지만 옆에 서 있던 두 자매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나뒹굴었다.

[... 무서운 무공이야!]

[청구상인의 치우강기가 천하제일의 신공이라는 소문이 정말이었구나!]

그녀들은 바닥에 쓰러졌다가 가까스로 일어났다.

[크으...!]

그런 그녀들의 시야로 돌풍에 휘말려 뒹굴었던 낙성신마가 악을 쓰며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이런 때 저 노마가 덤벼들면 큰일이다!)

두 자매는 내심 가슴이 덜컥해졌다.

[빨리 여길 떠나자!]

파앗!

홍의소녀는 급히 인사불성이 된 막비강을 등에 들쳐업고 몸을 날렸다.

녹의소녀도 막비강을 들쳐업은 언니를 호위하며 전력을 다해 질주해 갔다.

[... 거기 서라!]

뒤쪽에서 낙성신마의 악에 받친 폭갈이 들려 두 자매는 한층 힘을 내서 몸을 날렸다.

 

***

 

반 시진 가량 질주하였을까?

두 자매는 추격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두 자매가 멈춘 곳은 은밀한 계곡 안쪽이었다. 계곡 위로는 숲이 우거져 아주 은밀했다.

[언니, 잠시 쉬었다 가!]

녹의소녀가 할딱이며 말하자 홍의소녀는 한옆에 뚫린 동굴을 가리켰다.

[그자들이 쫓아올지도 모르니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가 쉬자.]

두 자매는 곧 동굴 안으로 들어가 막비강을 바닥에 내려놓고 상세를 살폈다.

막비강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홍의소녀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을 했다.

[이 사람은 살아나기 어렵겠는데 어쩌면 좋지?]

[소환단을 그에게 먹여.]

[상세가 몹시 엄중하니 너의 대환단(大還丹)도 한 알 먹여라!]

홍의소녀의 말에 녹의소녀도 품속에서 호두알만한 환약을 하나 꺼냈다.

밀납으로 포장된 그 환약 역시 소림사의 영약인 대환단이다.

대환단은 그 약효가 소환단보다 더 신효하여 숨이 끊어지지만 않았으면 어떤 중상이라도 고쳐 준다.

뿐만 아니라 한 알을 먹으면 이십 년 참선 수련한 것에 필적하는 내공을 증진시켜 주기도 한다.

두 자매는 대환단과 소환단을 한 알씩 꺼내어 망설이지 않고 막비강에게 먹였다.

사실 두 자매는 막비강이 낙성신마를 몰아붙이는 광경을 본 순간부터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었다.

당금 강호에서 약관밖에 안 된 나이에 우내사마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내가 막비강말고 또 있겠는가?

다른 혼인 적령기의 소녀들처럼 두 자매도 능력 있는 배우자를 원하고 있었고 그런 면에서 막비강은 최고의 배필감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음인지라 두 자매는 자신들이 지닌 영약을 아낌없이 막비강에게 먹였다.

뿐만 아니라 약효가 빨리 돌도록 정성을 다해 그의 전신 혈도를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양옆에 앉아 막비강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두 자매는 은근히 서로를 곁눈질로 살폈다.

유감스럽게도 자신들은 둘인데 배필감은 하나다.

은근히 경쟁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중원의 법도상 같은 핏줄을 타고난 자매가 한 남자를 남편으로 모시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명문가일수록 여러 자매가 한 남편을 섬기는 것이 은연중에 권장되기도 한다.

그것이 가문의 재산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 또 처첩들끼리 분란을 일으켜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 남자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은 여자의 본성이다.

두 자매는 경쟁적으로 막비강의 몸을 문지르고 주무르는 데 정성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자매는 막비강의 은밀한 부위에까지 손이 닿게 되었다.

탄탄한 허벅지를 주무를 때 스쳐 가는 손길에 막비강의 순양지물이 느껴지곤 한다.

두 자매는 당연히 아직 처녀의 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건장한 청년의 단단한 몸을 주무르게 되어다.

하지만 남성의 상징이 손끝에 느껴지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곧 약효가 도는지 막비강의 숨결은 급격히 정상을 회복해 갔다.

두 자매는 비로소 안도하며 추궁과혈하던 손을 멈추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막비강은 숨결은 본래대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으으...! 헉헉!]

오히려 거친 호흡을 내쉬며 연신 야릇한 신음을 흘리지 않는가?

[... 어찌된 걸까?]

[혹시 주화입마에라도 빠진 것이 아닐까?]

두 자매는 당황하여 막비강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 순간 막비강의 얼굴은 마치 숯불같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또한 전신에서 비지 같은 땀을 흘려내며 연신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실 막비강은 지금 치솟는 욕화로 전신의 혈맥이 터질 지경이었다.

방심하던 차에 분면색마가 날린 최음독분을 다량 들이킨 때문이다.

두 자매가 먹인 영약은 내상은 치유해 주었지만 최음독분의 독기는 해독해 주지 못했다.

게다가 두 자매가 약효를 돋우어 준다고 야들야들한 손으로 추궁과혈을 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소녀의 순음지기가 오히려 막비강의 몸 속의 양정을 격발시켜 최음독분의 독기를 가일층 빠르게 확산시킨 것이다.

[몸이 불덩이 같애! 주화입마에 빠진 게 틀림없어!]

하지만 순진한 홍의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섬섬옥수로 막비강의 이마를 짚었다.

번쩍!

바로 그 순간 굳게 감겼던 막비강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시뻘건 안광을 흘려내었다.

[어멋!]

막비강의 눈빛은 흡사 굶주린 야수의 그것과 같아 순진한 전씨 자매도 무언가 깨닫고 깜짝 놀라 물러서려 했다.

[크아!]

그러나 다음 순간 막비강은 야수같이 부르짖으며 벌떡 일어나 두 자매를 덮쳐 갔다.

녹의소녀는 급히 막비강의 손길을 피했으나 좀 더 가까이 있던 홍의소녀는 미처 빠져 나가지 못했다.

[아악! 왜 이래요?]

막비강의 우악스런 손길에 잡힌 홍의소녀가 놀라 비명을 질러대었다.

하지만 연약한 그녀의 힘으로 불 맞은 황소 같은 막비강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홍의소녀의 나이답지 않게 풍만한 교구를 감싸고 있던 적삼이 찢겨지며 벗겨져 내렸다.

[...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동굴 입구로 달아났던 녹의소녀가 언니의 비명을 듣고 다시 달려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막비강의 몸 아래 깔려 바둥대는 것을 보고는 두 눈에서 분노의 불길을 토했다.

[바득! 이 짐승 같은 놈! 기껏 살려 줬더니...!]

!

그녀는 검을 뽑으며 달려들어 막비강을 내리치려 했다.

[흐윽!]

하지만 다음 순간 녹의소녀는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이 굳어졌다.

그녀는 막비강의 비밀을 본 것이다.

그것은 숫처녀인 녹의소녀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형상을 하고 있었다.

따당!

녹의소녀는 너무 놀라 빼 들었던 검을 떨구어 버렸다.

[()... 혜아야! 도와 줘!]

막비강에게 깔린 채 홍의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충격에 숨마저 멈춘 녹의소녀의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망연자실하여 막비강의 만행을 지켜보기만 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모두 꿈속의 일인 양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윽고 욕심을 채운 막비강은 굶주린 야수같이 시뻘건 눈을 녹의소녀에게로 돌렸다.

망연자실해져 있던 녹의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막비강이 그런 그녀를 덮쳐왔다.

(안 돼! 안 돼요, 제발!)

막비강의 무자비한 유린이 시작되었지만 녹의소녀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 저항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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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미녀를 부르는 퉁소소리 (2)

 

 

현천록이 오무한에게 물었다.

[두분은 우리 외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아무도 못봤습니다.]

현천록은 앞서 걸어가며 말했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갑시다.]

현천록은 일곱사람과 함께 진양진인에게서 태극혜검을 배웠던 곳으로 돌아왔다.

지하에 흐르는 강은 신비로움을 주고,

흘러오는 곳과 가는 곳은 모두 또 다른 동굴이었다.

현천록은 장군묵에게 여기서도 방위를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신궁 오무한이 지남철(指南鐵)을 꺼내 놓았다.

오무한은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항상 지남철을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물이 들어오는 쪽은 북쪽이고 나가는 쪽은 남쪽이었다.

자금산은 장강의 남쪽에 있으니까 물은 장강으로 들어가는 물이 아니라 장강에서 지하동굴로 흘러오는 물일 가능성이 많았다.

어느 쪽을 통하는 것이 나가기 더 수월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물속으로 가야하는 만큼 밖이 나올 때까지 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죽고 말 것이다.

천산삼로 중의 노대가 노삼을 물에 집어 던지면서 말했다.

[귀찮게 생각할 것 없다.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쳐라. 한 달이고 두달이고 간에 언젠가는 밖에 이르겠지.]

노이는 노대를 피해서 머뭇거렸다.

노대가 가까이 가자 노이가 급하게 말했다.

[노대! 내 검은 독검이오. 물에 들어가면 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모조리 죽고 말거요.]

노대가 코웃음을 쳤다.

[쓸데없는 걱정마라. 주머니가 이렇게 많은 데 무슨 걱정이냐?]

노대가 노이의 독검을 뺏었다.

그리고 벼락같이 오무한의 등줄기에 칼집채로 내리박았다.

[으악!]

오무한이 비명을 질렀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서 현천록도 장군묵도 막지 못했다.

옆에 있던 포두화상이 오무한을 옆으로 당겼다.

노대가 내려친 검은 오무한의 오른쪽 어깨를 강하게 쳤다.

오무한이 쓰러져버렸다.

[이 흉악한 마두!]

마춘보가 철연화를 유성추처럼 날리며 고함쳤다.

노대는 손에 들었던 검으로 철연화를 튕겨버리고 두 걸음 물러섰다.

노대는 오무한의 몸을 노이의 독검을 감싸는 도구로 쓰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오무한이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아주 놀라운 속도였다.

포두화상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저 시주 공력이 놀랍군. 뽑히진 않았지만 노대의 칼에 맞고도 멀쩡하게 움직이다니.]

순간 장군묵이 고함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멈춰라!]

추앙!

용이 뛰어든 듯 물이 높이 치솟았다.

현천록도 속으로 욕을 하며 물에 뛰어들었다.

(교활한 도사! 어쨌든 내가 빠져나가게 해주지. 하지만 당신은 나한테 졌다구.)

멀리 사라졌는가 했던 진양진인이 신궁 오무한으로 변장해서 가까이 숨어있었다.

어쩌면 나가려다가 동굴이 막혀버려서 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노대가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마각을 드러내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현천록은 장군묵보다 늦게 물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주 깊이 몸을 가라앉혔다.

자기가 진양진인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현천록은 물 속에서 미미하게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꾸륵! 꾸륵하는 소리도 들렸다.

초상감각에 눈을 뜬 현천록은 그 소리들이 무엇인지 즉시 알았다.

쿵쿵소리는 이내 사라지고 꾸륵꾸륵하는 소리만 미미하게 들려왔다.

심장소리, 그리고 내장이 움직이는 소리다.

현천록이 다가옴을 알고 심장은 느리게 뛰게 하거나 박동을 멈춘 모양이지만 내장이 내는 소리는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

현천록은 살그머니 손을 뻗었다.

쇠갈쿠리같은 억센 뼈마디가 현천록의 손을 휘감았다.

현천록은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아버렸다.

서로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위에서 첨벙이는 소리가 몇 번 들렸지만 한 덩어리가 되어 물밑 바닥에 가라앉은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현천록의 허파에 물이 가득찼다.

하지만 그다지 고통스럽지도 않고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얼마를 그렇게 있자니 발버둥치던 진양진인이 축늘어졌다.

현천록은 그제서야 진양진인을 겨드랑이에 끼고 물을 거슬러 헤엄치기 시작했다.

 

x x x

 

현천록은 한참 후에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었다.

하지만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되고 말았다.

무작정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그만 샛길로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또다른 동굴로 들어와버렸는지 사방은 꽉 막혀있고 위는 칠흑처럼 깜깜하다.

매끈한 사방은 어디 발이라도 올려놓을 만한 곳도 없었다.

다시 물 속의 미로를 헤엄쳐야 한다는 사실에 맥이 쭉 빠졌다.

그러나 일단 폐속의 물을 겨워내고 공기로 채우고 나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허파 속이 얼어붙는 것같은 묘한 느낌도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진양진인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찢어진 가죽부대에 담긴 술처럼 물이 저항없이 흘러나왔다.

현천록은 일단 그곳에서 조금 쉬기로 했다.

진무검을 들어서 석벽에 깊숙히 박고 자루에 진양진인을 걸어놓았다.

바로 그때 콧소리가 섞인 여자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여기서 얼쩡대다가 우리 아가씨한테 걸리면 뼈도 못추리고 죽을걸요?]

[다른 뜻은 없소. 난 다만 먼발치에서라도 소저를 한 번 뵙고 싶은 마음뿐이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의 음성이 들렸다.

현천록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하늘인가 저승인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버렸나?)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깔깔깔! 우리 아가씨가 어떤 분인데 당신한테 얼굴을 보이겠어요?]

[나는... 나는... 나는 다만...]

남자가 말을 더듬는 모양이다.

여자가 차갑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아가씨의 면사를 벗기려다가 실패해서 죽은 사람만도 서른이 넘어요. 한데 당신은 공짜로 몰래 숨어서 보려하다니 아주 뻔뻔스럽군요.]

남자가 말했다.

[나는... 나는 싸우고 싶지 않소. 하지만 소저는 꼭 보고 싶소.]

[웃기는 소리 말고 빨리 꺼져요. 삼년 동안 본 안면이 있으니 그냥 보내주겠어요. 자꾸 딴소리하면 내가 당신을 죽여버리겠어요.]

여자의 말소리가 얼음장보다 더 차갑다.

부드럽고 달콤하던 처음의 그 여자 음성이라고는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현천록은 여자는 정말 열두번도 더 둔갑한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한테 모욕을 당하고 참는 건지 분노하지 못하는 건지 몰라도 한심하게 느껴진다.

휘이익!

허공에서 무언가 맹렬한 바람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현천록은 급히 진양진인을 붙잡고 검을 거둔 후에 물속으로 들어갔다.

철퍼덕!

물위에 뭔가 떨어졌다.

현천록은 그 순간에 확연히 깨달았다. 자기는 네모난 우물 속에 들어있고 방금 떨어진 것은 커다란 두레박이라는 것을.

(마침내 동굴 밖으로 나왔구나!)

현천록은 두레박을 기울여 물을 쏟아버리고 진양진인을 넣었다. 보나마나 도르레로 움직이는 아주 큰 두레박이다.

드륵드륵!

두레박이 소리를 내며 올라간다.

현천록은 두레박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따라올라갔다.

말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렸다.

[좋게 말할 때 빨리 꺼져요. 난 아가씨한테 꾸중듣고 싶은 생각없으니까.]

목소리의 주인이 말하면서 보이는 호흡과 두레박이 올라가면서 보이는 박자가 동일하다.

남자의 목소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난 소저를 두려워하지 않소이다. 다만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을 뿐이오.]

여자가 소리친다.

[! 직접 나설 용기도 없는 작자가.]

드륵!

두레박이 끝까지 다 올라왔다.

열 여덟 쯤 된 소녀가 두레박을 끌어서 옮겨부으려고 했다.

현천록은 진양진인을 안고 위로 솟구쳤다.

휘익!

[!]

소녀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리고 현천록은 깜짝 놀라며 옆으로 몸을 돌려 다시 우물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

우물을 덮고 있던 지붕과 도르레를 받치듯 받침대가 박살나버렸다.

[웬놈이냐?]

소녀가 앙칼진 소리를 외치며 현천록을 향해서 공격해왔다. 손에는 다섯치 길이의 비수가 새파란 광망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천록은 검의 자루로 소녀의 손목을 치고 물러났다.

시비를 붙을 이유도 없고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미안하오.]

현천록은 정중하게 한마디 하고는 몸을 날렸다.

하지만 현천록은 자기 앞을 가로막는 희뿌연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며 멈춰섰다.

스물살 쯤 된 청년이 마치 허깨비처럼 공중에 서있었다.

현천록은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땅으로 내려설 수 밖에 없었다.

청년의 어깨에는 수실이 삭아버리고 가죽이 바랜 고검(古劍)이 걸려있고 청년의 얼굴은 희뿌연데 암울한 눈빛을 하고 있다.

청년은 어느 새 다시 현천록의 앞에 내려서 있었다.

현천록은 말 그대로 등골이 서늘했다.

청년은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다만 그의 앞을 가로막기만 했지만 현천록에게 아주 기묘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뒤에서 소녀가 현천록의 등을 공격해왔다.

현천록은 보지도 않고 칼집 채 휘둘러 소녀의 공격을 받았다.

소녀가 길길이 날뛰며 비수를 휘둘렀지만 현천록에게 다가설 수 조차 없었다.

현천록은 암울한 눈빛의 청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청년이 중얼거렸다.

[무당파의 진양도장이었군. 가보시오.]

청년은 어느 새 삼보 옆으로 비켜나 있었다.

말 그대로 부동이면서 동()인 미묘한 신법이었다.

하지만 현천록은 지나가지 못했다.

청년이 말했다.

[소저에게 불측한 마음을 품은 자인줄 알았소. 가도 좋소.]

[!]

현천록은 자기도 모르게 바보 도터지는 소리를 냈다.

우물에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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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천주산(天柱山)> 섭장천이 함정에 빠졌던 그 산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암자.

어느 건물

건물 내부. 침대에 가슴까지 이불을 덮고 누워 잠들어 있는 섭아연

섭아연; [으으으!] 신음. 식은땀. 악몽을 꾸는 중이다.

이하 섭아연의 꿈 내용

 

[아악!] [안돼!] [살려줘요!] 불타는 건물. 복면인들에게 학살당하는 은일곡의 식솔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차별 살상하는 복면인들. 신음하는 섭아연의 모습 배경으로 떠오른다. 이어

섭무궁; [두렵더라도 굳세게 견디거라. 네 조부님께서 반드시 구하러 오실 것이다.] 관의 뚜껑을 닫으려 하며 말하는 섭무궁. 관속에 누운 섭아연의 시점. 섭무궁은 피투성이가 된 채 관의 뚜껑을 닫으려 한다.

섭무궁; [사랑한다 아연아.] [다음 생에서도 아비의 딸로 태어나다오.] 스윽! 관 뚜껑을 닫으며 말하는 섭무궁

꿈 장면 끝

 

섭아연; (안돼요 아버지!) 눈물 흘리며 몸을 벌벌 떨고

섭아연; (아연이만 두고 가시면 안돼요.) 끄윽! ! 울고. 가위에 눌려 온몸을 벌벌 떨면서. 바로 그때

! 누군가의 손에 들려진 손수건이 섭아연의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그걸 느끼고 움찔하는 섭아연

섭아연; [!] 벌떡 일어나며 비명 지르고. 땀을 닦아주던 손의 주인이 흠칫! 하며 손을 떼고.

섭아연; [... 누구...] 급히 돌아보고

위진천; [놀라게 해드렸다면 미안하오 소저!]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손수건 든 손을 거두며 웃고 있고

섭아연; [!] 경계하며 반대쪽으로 피하면서 몸을 움츠리고

위진천; [안심하시오. 이 주변에 소저를 해칠 인간은 존재하지 않소.]

섭아연; [... 누구신가요?] 헐떡이며 경계하고

위진천; [소생은 위진천이라고 하외다.] [우연히 은일곡 주변을 지나다가 소저를 구하게 되었소이다.] 매력적인 표정으로 웃고

섭아연; [은일곡!] 비명 지르며 침대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하지만

! 현기증 느끼며 쓰러지려는 섭아연

위진천; [조심하시오.] 급히 일어나며 섭아연을 부축하고

위진천; [소저는 밀폐되어 공기가 통하지 않는 관에 갇혀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소.] 섭아연을 부축해서 다시 침대에 앉히고

위진천; [그 때문에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오.] 섭아연을 침대에 눕게 하며 말하고

섭아연; [은일곡... 아니 저희 부모님은 어찌 되셨는가요?] 침대에 누우며 간절한 표정으로 위진천을 올려다보고

위진천;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유감이오.] 엄숙한 표정으로 한숨 쉬고. 몸을 바로 세우면서

위진천; [은일곡에서는 오직 소저만 살아계셨소이다.]

섭아연; [흐윽!] 전율하고

위진천; [특히... 소저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두 분은 끔찍한 고문과 겁탈을 당한 끝에 돌아가셨소이다.]

섭아연; [안돼! 안돼요 아버지!] 오열하며 돌아눕고

섭아연; [어떻게... 아연이 혼자 어떻게 살라고 돌아가신 건가요?] 위진천에게 등을 보인 채 웅크린 채 울고

섭아연; [아버지! 어머니!] 웅크린 채 이불을 쥐어뜯으며 오열하고

위진천; (더 슬퍼하고 분노해라.) 그런 섭아연의 뒷모습 보며 음산하게 웃고

위진천; (그래야만 나 위진천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데 쓸모가 많은 무기가 될 테니...) 사악하게 웃는다.

 

#28>

<-은일곡(隱逸谷)> 섭무궁 가족이 살던 계곡.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은일곡 내부. 거의 모든 건물들은 불에 타서 형체를 잃었는데 은일곡 중심부인 광장에서 연기와 불꽃이 치솟고 있다

광장 중앙. 거대한 장작불이 타고 있고. 장작 위에는 수십 구의 시체가 얹혀져 있다. 그 시체들 중간에는 수의를 차려입은 섭무궁과 섭무궁 아내의 시체가 놓여있다. 장작불 주위에서는 비구니들이 서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우고 있고. 장작불 전면에는 상복을 입은 섭아연이 무릎 꿇고 앉아서 합장하고 있다.

불길에 휩싸이는 시체들

비구니들의 염불은 이어지고

섭아연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 고문당하고 죽은 섭무궁의 시체와 윤간 당하고 죽은 어머니의 시체.

섭아연; (용서... 용서하지 않겠다!) 합장한 채 이를 악무는 섭아연.

섭아연; (두 분을 해친 데 책임이 있는 인간들은 마지막 한 놈까지 내 손으로 죽이고 말 것이다.) 결심. 그때

섭아연 뒤로 다가오는 위진천. 손에는 얇은 책을 들었다.

위진천; [다시 한 번 조의를 표하겠소이다.] 섭아연 옆에 서며 고개를 숙이고

합장한 채 대꾸하지 않는 섭아연

위진천;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본문의 장로들께서 은일곡 식솔들의 사인(死因)을 검안한 결과를 정리해봤소이다.] 책을 내밀고

섭아연; [사인...] 눈을 뜨고

섭아연; [제 부모와 식솔들을 살해한 수법과 무공이 무엇인지 알아내신 건가요?] 흥분하며 두 손으로 책을 받고

위진천; [전부는 아니지만 특이한 흔적이 남는 무공은 식별해낼 수 있었소이다.] 책을 건네주며

섭아연; [어떤... 어떤 자들이 은일곡을 공격한 건가요?] 책을 펼쳐보며 이를 갈고

위진천; [소생도 처음에는 사마외도의 무리들이 범인인 줄 알았소이다.]

섭아연; [예상을 벗어났다는 말씀이신가요?] 돌아보고

위진천; [그렇소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이고

섭아연; [믿기지 않게도 영친과 자당을 비롯하여 은일곡 식솔들을 해친 무공은 대부분 정파백도의 것이었소이다.]

섭아연; [... 그런...] 충격

섭아연; [... 정파백도의 인간들이 왜 우릴 공격한 건가요?]

위진천; [아마도 은일곡에 소저의 조부... 절대검성님의 비급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소이다.]

섭아연; [... 그러니까 조부님의 무공비급을 노리고 정파백도에서 우리 은일곡을 공격했단 말이지요?] 이를 갈고

위진천; [영친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하고 자당을 무참하게 윤간한 후 죽인 이유도 비급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겠소이까?] 음산하게 웃고. 그러자

섭아연; [정파백도! 정파백도!] 이를 갈고

섭아연; [네놈들은 은일곡에서 흘린 피의 열 배 백배를 흘리게 될 것이다.] 으아아아아! 하늘 보며 악을 쓰고

염불 외우던 비구니들이 깜짝 놀라며 돌아보고

섭아연; [아버지! 어머니!] [구천에서나마 지켜봐주세오! 소녀 아연이가 어떻게 두 분의 복수를 하는지를...] 으아아아아! 악을 쓰는 섭아연

위진천; (좋아 아주 좋아!) 그걸 보며 사악하게 웃고

<섭아연! 저 계집 덕분에 내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도 정파백도를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으아아아! 거대한 장작불을 앞에 두고 악을 쓰는 섭아연의 모습 배경으로 위진천의 생각 나레이션

 

#29>

<-한 달후> 북경의 모습

<-북경> 북경 성내의 자금성의 모습

<-자금성> 자금성 내부의 모습. 건물들 사이의 넓은 광장. 수많은 책상들이 도열해있고 그 책상 옆에 사람들이 서있는 게 작게 보인다

<-전시(殿試) 과장(科場)> 위 장면을 자세히 묘사. 수백 개의 일인용 책상과 의자가 건물 앞마당에 놓여있고. 책상 옆에는 서생 차림의 사내들이 서있다. 과거 시험장의 모습. 응시생들은 어린 소년에서부터 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 모두 같은 복장이다. 서생 차림에 머리에는 사각형 모자를 쓴 모습. 책상에는 문방사우가 놓여있다. 관리들이 앞 열에서부터 응시생들의 신분을 확인중이다. 응시생들이 두 손으로 내미는 호패를 보고 서류와 대조하는 모습. 호패는 길이 한 뼘 정도에 폭은 5센티 정도 되는 얇은 판자. 그 위에 이름과 생년월일등이 새겨져 있다.

응시생들이 보고 있는 정면에는 웅장한 건물이 축대 위에 서있고. 그 축대 위에는 화려한 의자가 두 개 놓여있다. 건물과 의자 주변에는 화려한 복장의 위사들과 무기를 지닌 환관들 수십 명이 눈을 번득이며 주변을 경계한다. 화려한 복장의 위사들은 금의위 소속이다.

건물 앞 광장에 도열해있는 응시생들

그 응시생 사이에 서있는 청풍. 거의 맨 뒷열인데 서생 복장에 모자를 썼다. 모자를 이마가 다 가리도록 써서 가급적 얼굴이 노출되지 않게 했다. 두 손으로는 호패를 들고 있고. 앞쪽에서 관리들이 호패를 확인하며 청풍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청풍의 모습.

호패를 든 두 손 중 왼손 중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 주의. 청풍의 신분을 암시하는 두 마리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태의 금반지.

청풍; (오늘만 지나가면 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관리들을 보고

청풍; (직례의 향시는 차석(次席)으로 통과했고...) (오늘 치루는 전시에서는 삼등급제 정도가 되도록 답안을 조절하자.)

청풍; (아버지 말씀대로 장원급제를 했다가는 주변의 이목을 끌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생각하다가

[!] 흠칫 하며 앞을 보는 청풍

관리들이 웅성대며 뒤를 돌아본다.

수험생들 사이를 걸어오는 늙은 환관. 다른 작품의 늙은 환관 캐릭터 참조. 건장하고 눈빛이 날카로운 젊은 환관 두 명이 따라오는데 쌍둥이다. 이 젊은 환관들은 나중에 한 두 번 더 나옴. 주변의 관리들이 허리를 굽히며 눈치를 본다. 늙은 환관의 이름은 담길. 실존인물이고 동창의 책임자다.

청풍; (저 늙은 환관...) 눈 번뜩

<관리들이 극도로 긴장하는 걸 보면 지위가 높을 것이다.> 관리들이 굽신거리는 사이로 걸어오는 담길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그때

<저 양반이 누군지 알겠어! 동창(東廠)의 제독태감(提督太監)인 담길(覃吉)이야!>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 흠칫! 하는 청풍.

응시생1; [동창제독?] [정말인가?] 청풍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응시생 둘이 속삭이며 대화를 나눈다

응시생2; [틀림없네.] [담제독님은 몇 달 전 내 조부의 칠순잔치에 축하해주러 온 적이 있었어.] 부티나게 생긴 놈이 뻐기며 말하고

응시생1; [자네 조부께서는 예부(禮部)의 상서를 역임하셨으니 동창제독과도 아는 사이였겠지.] 부러운 표정으로

응시생2; [그날 나도 인사를 드려서 담제독님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뻐기고

응시생1; [그런데 동창의 책임자인 담제독께서 무슨 일로 과시(科試;과거)에 모습을 드러내신 것일까?]

응시생2; [전시에는 황상께서 친림(親臨;임금이 몸소 나옴)하시지 않는가?] [황상의 안위를 책임지는 동창에서도 당연히 관여를 해야지.]

응시생1; [듣고 보니 그렇구만.] 끄덕

청풍; (동창은 금의위(錦衣衛)와 함께 황실을 지키는 양대 세력이다.)

청풍; (황제가 곧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낼 테니 보안을 위해 동창이 관여하는 건 당연한데...) 다가오는 담길을 보며 생각하고. 담길은 다시 응시생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관리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다가온다

청풍; (설마 동창의 책임자인 제독이 직접 현장 시찰을 나올 줄은 몰랐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청풍; (눈에 띠여서 좋을 일 없으니 눈도 마주치지 말자.) 고개 가능한 깊이 떨군 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호패만 보고. 그때

관리1; [요패(腰牌)를 보이게.] 관리 중 한명이 청풍의 앞에 이르러 말하고. 한손에는 서류를 들고 한손에는 연필처럼 생긴 지필묵을 들었다. 이자는 나중에 한 두 번 더 나올 캐릭터이므로 특징 있게 묘사. 관리1로 표기

청풍; [...] 두 손으로 호패를 보이고. 글자가 관리1에게 보이도록

관리1; [성명 벽세황...] [병인년 칠월 십구일생...] 청풍이 내민 요패와 서류를 교대로 보며 확인하고. 그 뒤에 담길이 뒷짐을 짚고 서서 보고 있다. 담길 뒤에는 젊은 환관 두명이 서있고

담길; [...] 무언가 생각하며 청풍을 보는 담길. 청풍의 얼굴이 성화제와 닮아서 자세히 보고 있는 것

청풍; (이유는 모르지만 담길이 날 유심히 보고 있다. 조심해야한다.) 곁눈질로 담길을 보며 긴장하고.

담길; [...] 미간 조금 찡그리며 고개를 조금 갸웃하는 담길. 그때

관리1; [본인 확인이 되었네.] 서류에 체크를 하고. 이어

관리1; [요패를 보이게.] 청풍의 뒤에 서있는 응시생에게 다가가는 관리1. 호패를 내미는 그 응시생

청풍; (이번에도 신분 확인절차는 무사히 통과했다.) ! 쳐들었던 호패를 내리고. 그 사이에 담길과 두 명의 환관이 청풍을 지나가려 하고. 그때

담길; [!] 담길의 눈이 갑자기 번쩍. 청풍의 손을 본다

호패를 든 청풍의 두 손 크로즈 업. 왼손 중지에 반지가 끼어있는 것을 보여주고

청풍; (아마 저 관리도 장주에게 포섭되었을 것이다.) ! 오른손에 든 요패를 왼쪽 소매에 넣으려 하고. 바로 그때

! 갑자기 청풍의 왼쪽 손목을 잡는 깡마른 손

청풍; [!]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하고.

주변 사람들 모두 놀라 청풍을 돌아보고. 관리와 시험생들 모두

우둑! 강하게 청풍의 손을 쥐어쳐드는 담길. 강렬한 표정으로 청풍의 왼손을 보고. 그 뒤에서 젊은 환관들도 긴장하고

관리1; [... 각하!] 청풍의 신분을 확인했던 관리1이 사색이 되어 돌아오고

관리1; [... 그자가 혹시 부정행위라도 했는지요?] 식은땀을 흘리며 담길의 눈치를 보지만

담길; [...] 관리1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청풍의 손을 쳐들어서 중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는 담길

청풍; (아차!) 얼굴 굳어지고

이어지는 회상. #10>에서 타노가 주의 주던 장면

 

타노;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서는 안된다.] [너에 대한 것이 알려지면...]

타노; [너는 물론이고 아비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심각

회상 끝

 

청풍;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쌍룡패미환(雙龍敗尾環)...) 자기 왼손 중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며 긴장하고. 담길도 유심히 그 반지를 보고 있고

청풍; (철이 든 이래 한 번도 손가락에서 빼본 적이 없었던 탓에 무심코 끼고 왔는데...) 식은땀을 흘리고

청풍; (특이한 형태의 반지라 담길의 이목을 끈 것 같다.) 담길의 눈치를 보고

담길; [...] 뭔가 생각하는 담길. 그러다가

담길; [이 반지... 내력을 말해라.]

청풍; (둘러대야 한다.) +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입수한 것입니다.] 담길이 자기 얼굴 잘 보지 못하도록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고

청풍; [값은 그리 나가지 않지만 세공과 만듦새가 특이해서 늘 끼고 있었습니다.] 바닥을 보며 대답하고

담길; [골동품 가게에서 입수한 물건이라...] ! 잡고 있던 청풍의 손을 놔주고

청풍; [감사합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가리고

관리1과 주변의 응시생들 모두 안도하고

담길; [이름!] 왼손을 가리는 청풍을 보며 묻고

청풍; [소생은...] 대답을 하려는데. + ! 갑자기 어디선가 징 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러자

담길과 환관, 모든 관리들이 긴장하며 뒤를 돌아본다.

! ! 다시 징 치는 소리가 건물 뒤에서 들리고. 건물 주변을 경비하던 금의위 위사들과 무기를 지닌 환관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서며 경계하고 있고. 그러자

담길; [황상께서 친림하신다. 신분 확인을 서둘러라.] 돌아서서 건물쪽으로 가며 관리들에게 말하고.

[예 제독각하!] [서두르세!] 관리들 급히 돌아서서 아직 신분 확인이 안된 응시생들의 호패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청풍; (살았다.) 안도하고

청풍; (어쩔 수 없이 소장주의 이름을 말했으면 후환이 있을 뻔 했다.) 단상 쪽으로 가는 담길의 뒷모습 보며 생각하는 사이에

관리들이 신원 확인을 마치고 서둘러 뒤로 빠진다. 직후

담길; [황상께서 친림하신다. 모두 복배고두(伏拜叩頭;엎드려 머리를 조아림)하라!] 서둘러 단상으로 가며 외치고. 그러자.

[만세!] [만세!] 외치며 일제히 무릎 꿇고 고개 조아리는 응시생들. 응시생들과 달리 관리들은 고개만 숙인다.

청풍도 다른 놈들과 함께 무릎 꿇고 고개 조아리고.

그 상태로 기다리는 청풍과 응시생들. 잠시 후

! 다시 한 번 징이 울리고

[고개를 들라!]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청풍; (여자 목소리...) 생각하며 고개를 들고. 주변의 다른 응시생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무릎은 꿇은 채

청풍; (아마 그 여자겠지.) 고개를 들고 앞을 보고

! 단상에 나란히 놓인 화려한 의자 두 개에 일남일녀가 앉아있다. 사내는 40살 정도로 소심하고 온화한 인상인데 어딘지 청풍을 닮았다. 특히 코가 닮았고. 몸에는 곤룡포. 머리에는 면류관을 썼다. 황제인 성화제다. 청풍의 아버지. 성화제 옆에는 역시 중년의 나이인 미녀가 앉아있다. 대단한 미인이지만 체격이 커서 성화제 못지않다. 특이하게 몸에는 장군복을 입었고 머리에는 투구를 썼으며 한손에는 보검까지 들고 있다. 눈빛이 아주 강하다. 만귀비다. 나이는 성화제보다 많지만 여전히 젊고 아름답게 묘사. 단상 뒤쪽에는 수십 명의 환관과 궁녀들이 대기하고 있다.

청풍; (저 두 사람...) 눈 번뜩

 

<당금의 황제인 성화제(成化帝)와 성화제를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한다는 요녀 만귀비(萬貴妃)!> 나란히 앉은 성화제와 만귀비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이름이 만정아(萬貞兒)인 만귀비는 성화제를 어렸을 때부터 돌보아왔다.> 위씬의 두 사람 중 만귀비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어린 시절의 성화제는 부친인 정통제(正統帝)가 몽고의 포로로 잡혀간 <토목보(土木堡)의 변()>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던 시절이 있었으며 그때 성화제를 지켜준 것이 여장부중의 여장부인 만귀비다.> 20대 시절의 만귀비가 창을 들고 복면 쓴 자객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 만귀비 뒤에는 5살쯤 된 청풍 모습의 소년이 달달 떨고 있다. 소년은 물론 어린 시절의 성화제다.

<어렸을 때의 그 기억 때문인지 성화제는 만귀비에게 철저하게 의지하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만귀비는 황후마저도 자기 뜻대로 바꿔버리는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 만귀비의 눈치를 보는 성화제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성격이 냉혹할 뿐 아니라 질투심도 격렬한 만귀비는 자기 외의 비빈들이 성화제의 아이를 낳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수많은 비빈과 그녀들이 낳은 아이들이 만귀비의 독수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도도한 표정으로 성화제에게 뭐라 하는 만귀비. 억지로 웃으며 고개 조아리는 성화제

 

청풍; (성화제가 연상의 후궁 만귀비의 꼭두각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단상에서 뭔가 대화를 나누는 성화제와 만귀비의 모습을 보고

청풍; (나도 지금까지는 만귀비가 성화제를 일방적으로 조종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세상의 소문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성화제는 진심으로 만귀비를 사랑하는 것 같다.> 만귀비의 말에 헤벌쭉 웃으며 고개 끄덕이는 성화제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청풍; (만귀비를 총애한 성화제는 그녀를 황후로 삼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만귀비의 출신이 워낙 한미(寒微)해서 귀비로 책봉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한다.)

청풍; (비록 귀비의 신분에 불과하지만 황후도 만귀비의 눈치를 보며 산다던데...)

청풍; (그나저나 기분이 조금 묘하다.) 단상의 성화제를 보며 생각하고

 

<억조창생의 주인인 성화제... 저 양반의 얼굴이 어째서 이리도 눈에 익은 것인가?> 만귀비와 대화를 나누는 성화제의 얼굴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청풍; (대체 저 얼굴을 전에 어디서 보았을까?) 갸웃. 청풍은 신분이 종인지라 자기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거울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성화제가 자기와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청풍; (본적이 있기 때문에 낯설지가 않은 것일 텐데...) 생각할 때

만귀비; [담길!] 단상의 만귀비가 담길을 부르고. 담길은 단상 아래에 대기하고 있다. 그 옆에 관리들이 서있는데 한명은 쟁반에 두루마리를 얹어서 들고 있다

담길; [소인 담길, 하명을 기다리옵니다.] 허리 숙이고.

만귀비; [과제(科題;과거 문제)를 제시하라.] 자기가 황제인 것처럼 명령하고.

담길; [복명하옵니다 귀비마마!] 허리 숙이고. 이어

관리들에게 돌아서는 담길. 쟁반을 든 관리가 서둘러 다가오고

쟁반에 대고 고개 조아리는 담길.

이어 쟁반에서 두루마리를 집어드는 담길

두루마리를 펴는 담길. 이어

담길; [성지를 받들어 금번 전시의 과제를 공표하노라.]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는다

담길; [조송(趙宋) 신법(新法)의 해악(害惡)을 논하고 개선(改善)의 방책을 제시하라.] 두루마리의 내용을 읽는다.

청풍; (조송, 즉 송나라의 신법..!) 일어나고

청풍; (신법은 송나라 신종(神宗) 때의 재상 왕안석(王安石)이 구습과 적폐를 타파할 목적으로 시행했던 법이다.) 의자에 앉고

청풍; (하지만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과격한 법이었던 탓에 기득권 세력인 구법당(舊法黨)의 공격을 받아 시행이 무산되었었다.) (그로 인해 송나라는 부흥의 기회를 놓쳤고...) 의자에 앉아 글을 쓸 준비를 한다.

청풍; (신법을 긍정하는 내 생각보다는 당금 명나라의 실정에 맞는 의견을 제시해야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청풍; (다만 장원으로 급제하면 곤란하니 논리에 적당히 파탄을 섞어야하고...)

<과거를 보면서 장원으로 급제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아마 나 외에는 없을 것이다.> 과거 시험장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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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상해(上海)> 해변의 항구 도시. 거대한 규모. 항구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있거나 드나들고 있고. 때는 저녁 무렵. 해가 지려는 시간

상해 교외. 험준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변에 서있는 절. 엄청난 규모인데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향해 서있고. <투천환일> <퇴마신협> <신마유희>등에 나온 진해관음사다. 이 작품에서의 이름은 사해용궁사.

수많은 신도들이 해수관음상 주변에 몰려있다.

높이가 30미터쯤 되는 거대한 해수관음상을 돌며 독경을 하는 일단의 비구니들. 그 비구니들을 향해 합장하거나 절하는 신도들.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비구니들을 보고 있다

비구니들의 맨 앞쪽에서 어린 비구니가 목탁을 치며 걸어가고. 그 비구니 뒤를 수십 명의 비구니들이 합장하며 따라가는데.

목탁을 치는 어린 비구니 바로 뒤쪽에서 합장한 채 따라가는 비구니가 절세미녀다. 비구니들의 우두머리. 나이는 서른 살 가량. 비구니면서도 색기가 넘치고 엄청난 글래머다. <마릴린 몬로>처럼 눈 꼬리가 좀 처지고 웃는 얼굴이다. 이 여자는 마교 구대마왕중 흡정마고다. 한번 나올 캐릭터지만 엄청 강하고 또 미인으로 묘사. 실제 나이는 백살이 넘었다.

[주지스님 소면관음(笑面觀音)께서 저녁 예불(禮佛)을 도신다.] [주지스님은 언제 봐도 관음보살님의 현신같애.] [저 자애로운 미소 좀 봐.] [소면관음님! 불쌍한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시옵소서!] 사람들 흡정마고를 향해 합장하거나 절하며 기원하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서서 흡정마고를 보고 있는 청풍. 귀공자 차림이고 손에 든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청풍; (저 여자가 내 자객행(刺客行)의 첫 번째 표적...)

<상해 교외에 자리한 비구니 도량 사해용궁사(四海龍宮寺)의 주지 소면관음을 죽여라.> 소수마녀의 말을 떠올리는 청풍

이하 회상

 

소수마녀; [소면관음은 도력(道力)이 높기로 상해 일대에 소문이 자자한 비구니다.] [특히 수십 년 전의 용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관음보살의 현신이라는 숭배를 받아왔다.] 소수마녀가 침실에서 잠옷 차림으로 마주 앉아서 말하던 장면. 책 한권과 향낭 하나를 밀어주며 말하고

소수마녀; [그 소면관음의 정체가 무엇이고 왜 죽여야 하는지는 이 책에 적혀있다,] ! 책과 향낭을 밀어주면서 말하고

소수마녀; [명심할 것은 책 안에 수록되어 있는 한 가지 심법을 완전히 숙지한 후에 척살을 시도해야한다 사실이다.]

회상 끝

 

<향낭(香囊)에 들어있는 천웅고(天雄膏)는 소면관음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테니 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소수마녀의 말을 떠올리며 허리춤에 찬 향낭을 만지는 청풍.

청풍; (여자를 죽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자객이 되어 첫 번째 임무로...) 다가오는 흡정마고를 보며 생각하고

청풍; (하지만 저 여자의 정체가 소수마녀의 말대로라면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생각할 때

청풍의 앞쪽을 지나가는 흡정마고의 옆얼굴. 절세미녀다. 헌데

예쁜 코를 벌름하는 흡정마고. 어떤 향기가 흡정마고의 코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이고. 이어

스윽! 자연스럽게 고개 돌려 사람들을 훑어보는 흡정마고

청풍; (걸려들었다!) ! 자연스럽게 얼굴 가리고 있던 부채를 내리는 청풍

청풍을 발견한 흡정마고의 눈이 약간 치떠지고

청풍; (소수마녀의 말대로 천웅고의 향기가 저 요부의 후각을 자극했다.) 합장하는 시늉을 하며 생각하는 청풍.

<양기가 가장 강한 수컷들의 체취를 농축시킨 천웅고의 향기는 여자, 특히 내공이 높아 감각이 예민한 여자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배시시 웃으며 마주 고개를 조금 숙이는 흡정마고를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그러자

[어흑 심장 떨려!] [... 날 보고 웃었어!] 청풍의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 중 장사치처럼 생긴 자들이 뿅 가는 표정이 되고

그 사이에 청풍의 앞을 지나가는 흡정마고.

사내들; [소문대로 이 절의 주지스님은 기가 막힌 미인이로구만.] [저런 절세미인이 무슨 사연으로 비구니가 되었을까?] 입맛 다시며 말하고. 그러자 주변 사람들 흘깃! 그놈을 보고

사내들; [비구니로 썩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미모야!] [황실에 들어갔으면 제이의 양귀비 소리를 들었겠구만.] 눈을 희번득이는 사내들. 주변 사람들이 돌아보며 화난 표정을 짓는다

사내들에게서 멀어지면서 야릇하게 웃는 흡정마고의 옆얼굴. 사내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때.

[무슨 죄 많은 소릴 하는 거요?] [이 사람들이 천벌을 받을 소릴 하는군.] [어딜 감히 주지스님께 불경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주변 남녀들 사내들에게 화를 내고

[... 왜들 이러슈? 아까 그 비구니가 절세미녀라 해본 소리인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 비구니만한 미녀는 천하를 뒤져도 없을 거요.] 사내들 겁에 질려 주춤거리고. 그러다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사내들을 노려보고

[... 가세!] [이거야 원 말도 마음대로 못하는구만.] 허둥대며 현장에서 멀어지는 사내들

[두 번 다시 오지 마슈!] [벼락이나 맞아라 이 못된 중생들아!] 사내들을 향해 삿대질하는 사람들. 그 배경으로 현장을 떠나 절의 본채로 가는 청풍

흡정마고; (본전(本殿)으로 가고 있네.) 합장한 채 해수관음상을 돌면서 곁눈질로 청풍을 보는 흡정마고

그 사이에 본전으로 간 청풍이 중년의 비구니에게 합장하며 뭔가 말하고. 마주 합장하는 중년 비구니. 중년 비구니는 사해용궁사의 총관. 곧 죽을 캐릭터지만 청풍의 정체를 알아내는 역할을 하는 조연이다.

그 중년 비구니의 안내를 받아서 본전으로 들어가는 청풍

흡정마고; (다행이네. 오늘 밤 본사에서 자고 갈 모양이니...) 배시시 웃는 흡정마고

흡정마고; (정말 오랜만에 가슴 울렁이게 만드는 시주를 발견했지 뭐야?) 좋아 죽으려는 흡정마고

 

#157>

. 보름달에서 기울어 반달에 가까워진 달이 하늘에 떠있다.

사해용궁사. 이제 해수관음상을 참배하는 사람들도 사라졌고. 절 건물의 대부분이 불이 꺼져 있다. 헌데

본전의 건물에는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고

본전의 내부.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는 불단 앞에 청풍이 무릎 꿇고 앉아서 합장한 채 눈을 감고 있다. 입으로는 중얼 중얼 불경을 외우고 있고

그런 청풍을 내려다보는 불상. 헌데

불상의 눈이 빛나고

 

#158>

어둑한 공간. 불상 머리 뒤의 공간인데 그곳에 무를 꿇고 앉아서 구슬에 눈을 대고 있는 흡정마고. 불상의 눈을 통해 불전을 보고 있다. 흡정마고의 뒤에는 청풍을 안내했던 중년 비구니가 무릎 꿇고 있다.

중년 비구니; [이름은 이청천(李靑天), 금릉에 사는 중생인데 급사한 아비의 극락왕생을 위한 밤샘 기도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사옵니다.] 무릎 꿇고 앉아서 눈치 보며 흡정마고에게 보고하고

중년 비구니; [시주도 넉넉히 내었으며... 무엇보다 위험한 구석은 발견되지 않는 중생이옵니다.]

흡정마고; [알아!] 귀찮다는 듯이 뒤로 손짓을 해서 말을 막고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내공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야. 잘 해야 삼년 면벽수련한 정도의 내공이야.> 합장한 채 불경을 외우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흡정마고의 말. 둥근 구슬을 통해 보이는 모습

흡정마고; [육갑자(六甲子;360)에 육박하는 내공을 지닌 나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 수준이지.]

중년 비구니; [하오면...] 눈치 보고

흡정마고; [오늘밤 내 봉사를 받을 행운아는 당연히 저 중생이야.] ! 불상의 눈에서 눈을 떼고

흡정마고; [먼저 가있을 테니 내 거처로 데리고 와!] 스스스!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중년 비구니; [분부 거행하겠사옵니다.] 절하고

<일진 뽑아본 게 좋게 나오더니 저런 보물덩어리가 제 발로 찾아왔구나.> 사라지는 흡정마고의 모습 배경으로 웃음소리가 들리고

 

#159>

불상 앞에 무릎 꿇고 합장하는 청풍

청풍; (기척이 사라졌다.) 눈 감은 채 생각하고

청풍; (천웅고의 향기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날 훔쳐보고 있었겠지.)

청풍; (썩 내키지 않지만 오늘밤 반드시 소면관음, 아니 흡정마고(吸精魔姑)를 척살해야만 란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무고한 청년들이 더 이상 희생당하지 않도록...) 합장하며 생각하고.

 

<-흡정마고! 마교의 구대마왕(九大魔王)중 한명으로 나이가 백살이 넘는 여마두다.> 합장한 채 해수관음상을 돌던 흡정마고를 배경으로 나레이션

<구대마왕은 천마세가를 제외한 삼대마가에서 세명씩 선정한 고수들로 마교의 수호가 사명이다.> 여자 셋 남자 여섯의 실루엣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하지만 삼십 여년 전 마교가 무림맹의 공격을 받을 때 그 사명을 완수한 것은 암흑마가 출신의 세명뿐이었다. 번뇌마가, 혈전마가 소속의 육대마왕은 사전에 종적을 감춰버렸던 것이다.>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악전고투를 치루는 모습을 배경으로

<흡정마고는 번뇌마가 출신으로 내공의 심후함으로는 구대마왕의 으뜸이었다. 심지어 내공만 따지면 구천마존이나 철면마제를 압도할지도 모른다고 알려져 있다.> 멀리 산봉우리 위에서 그걸 보며 웃고 있는 흡정마고. 삼십년 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같은데 다른 것은 당시에는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는 점

<흡정마고의 내공이 그토록 심후한 것은 배교(拜敎)에서 유래한 흡정대법(吸精大法)을 익힌 때문이다. 흡정대법을 써서 무려 일만 명이 넘는 젊은 청년들의 양정을 흡수한 덕분에 흡정마고는 영원한 젊음과 함께 무적의 내공을 지니게 된 것이다.> 수많은 해골 위에 요염한 자태로 누워서 웃고 있는 현재 모습의 흡정마고

 

청풍; (물론 지금의 내 무공으로 흡정마고를 죽이는 것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다.) (그 마녀가 손가락 한번만 튕겨도 내 몸뚱이는 물방울처럼 터져 버릴 것이다.) 기도하며 생각하고. 긴장한 표정

청풍; (하지만 내게는 소수마녀가 준비해준 두 가지 무기가 있다.)

청풍; (그중 하나는 천웅고다.) 허리에 차고 있는 향낭을 배경으로

청풍; (수컷의 양기 그 자체인 천웅고는 여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특히 내공이 심후할수록 더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청풍; (그 때문에 내가 회천반혼대법(回天返魂大法)을 펼쳐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청풍; (소수마녀가 흡정마고를 상대하기 전에 반드시 익혀야한다고 한 심법이 바로 회천반혼대법이었다.)

청풍; (회천반혼대법도 흡정대법의 일종인데 주도적으로 상대의 정기를 흡수하지는 못한다 게 차이다.)

청풍; (대신 상대가 내 것을 빼앗으려 하면 배로 돌려받는 장점이 있다.)

청풍; (물론 회천반혼대법을 펼치는 걸 들킬 경우 흡정마고 손에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만...)

청풍; (명색이 자객인 이상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만 한다.) 생각할 때

스으! 어떤 향기 같은 것이 청풍의 코로 스며들고

청풍; (시작되었군.) + [갑자기 졸음이..] 중얼거리면서

털썩! 쓰러진다. 그러자

덜컹! 불단 한쪽에 나있는 비밀 문이 열리더니

손에 작은 향로를 든 중년 비구니가 나온다. 그 향로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이어 두 명의 건장한 젊은 비구니들이 따라 나온다. 젊은 비구니들은 사내에 못지 않은 체격을 지녔다.

청풍에게 다가와서

손으로 청풍의 코에 대보는 중년 비구니

중년 비구니; [확실하게 잠이 들었다.] 끄덕이며 일어나고

중년 비구니; [주지스님의 거처로 옮겨가라.] 옆으로 물러서고

[예 총관님!] 대답하며 다가온 젊은 비구니들은

청풍의 양쪽 팔을 잡고 일으켜서

불단에 난 비밀 문으로 끌고 들어간다.

중년 비구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갸웃거리고

중년 비구니; (이미 오래 전에 육욕은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저 젊은 시주를 보니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뛴다.) 얼굴이 달아오른 채 비밀 문으로 들어가고

중년 비구니; (주지스님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고...)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구나.) ! 비밀 문을 닫는다.

 

#160>

사해용궁사에서 조금 떨어진 절벽 해변

쏴아! 철썩! 거센 파도가 절벽 하단을 때려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그 절벽 아래에 위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동굴이 하나 있다. 헌데

동굴 깊은 곳. 넓은 광장. 그곳에 수많은 해골들이 뒹굴고 있고. 그 해골들 너머에 철문이 하나 있다. 철문 앞에는 해골들이 치워져있고. 그곳에 중년 비구니와 두 명의 젊은 비구니가 의자를 놓고 앉아있다. 중년 비구니는 눈을 감고 있다

젊은 비구니1; [주지스님도 참 취향이 독특하셔.] [정기를 빨아먹고 남은 빈 껍데기들을 이렇게 모아두시다니...] 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의 해골들 보고

젊은 비구니2; [저걸 보면서 당신이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시는 걸 게야.]

젊은 비구니1;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혐오스러워. 섬뜩하기도 하고...] 중년 비구니를 보고. 중년 비구니는 눈을 감고 있다.

중년 비구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얼굴이 좀 발개졌고. 가슴이 두근 거리고

중년 비구니; (주화입마도 아닌데 가슴이 제멋대로 뛴다. 무언가에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인데...)

중년 비구니; (혹시 그 중생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닐까?) 청풍을 떠올리고

중년 비구니; (순리대로라면 주지스님에게 경고를 해야겠지만... 지금 방해했다가는 불벼락이 돌아올 수도 있다.)

중년 비구니; (무공도 별볼일 없는 수준의 중생이니 일단 추이를 지켜보도록 하자.)

 

#161>

철문 안쪽 화려한 침실. 침대에 누워있는 청풍. 옷을 입은 채 눈을 감고 있고

쏴아! 청풍의 귀에 들리는 물소리

청풍; (준비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군.) 눈을 감은 채 생각하고.

한쪽에 천으로 입구가 가려진 욕실이 있고. 그 욕실에서 누군가 앉아서 샤워하는 실루엣이 비친다.

청풍; (사내들의 양정을 흡수하기 전에 목욕재계를 하는 게 습관인 건가?) 쓴웃음

청풍; (나는 지옥십관중 독관(毒關)을 통과하기 위해 오독신공(五毒神功)이라는 독공을 수련했다.) (그 덕분에 어지간한 독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청풍; (당연히 비구니들이 날 재우기 위해 뿌린 몽혼향은 효과가 없었다.)

청풍; (잠든 척 한 나를 비구니들이 이곳으로 옮겨놓은 후 벌써 일각 이상이 지났는데 저 요부의 목욕은 끝날 줄을 모른다.)

청풍; (이러다가 지쳐서 정말 잠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품. 그때

사락! 욕실을 가린 천이 젖혀지고

청풍; (이크...) 급히 하품 하던 걸 멈추고

욕실에서 가운 차림으로 나오는 흡정마고. 가운의 허리띠를 묶으며 나오는데 물기에 젖은 모습이고

청풍; (드디어 결전의 때가 다가왔다.) 내심 긴장할 때

침대로 와서 청풍을 내려다보는 흡정마고

흡정마고; [볼수록 탐나는 중생이긴 한데...]

흡정마고; [왠지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이 중생을 닮은 사내를 어디서 보았더라?] 갸웃하고

청풍; (날 닮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건가?) 눈 감은 채 의아하고

흡정마고; [처음에는 착각인가도 생각했지만...] ! 침대로 올라와서 청풍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흡정마고; [착각이 아니야! 난 분명 이 귀염둥이를 닮은 누군가를 전에 본 적이 있어.] 청풍의 얼굴을 만지며 독백

청풍;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생각하고

청풍; (별 볼일 없었던 표사 출신인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내가 흡정마고같은 전설적인 마녀와 인연이 있을 까닭이 없다.)

청풍; (아마 이 마녀가 백살이 넘다 보니 망령이 들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생각할 때

흡정마고; [하긴 누굴 닮았던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 네발로 엎드리는 자세로 청풍의 몸 위에 자세를 잡고

흡정마고; [내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양정만 흡수하면 그만인데...] 청풍의 양쪽 어깨를 누르고 입을 청풍의 입에 가져간다.

흡정마고; [너의 순수한 양정, 잘 먹으마. 부디 극락왕생하거라.] 후욱! 청풍의 입 위에서 입을 벌려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시늉하는 흡정마고. 그러자

화악! 지지지! 청풍의 입이 벌어지면서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와 흡정마고의 입으로 흘러들어간다.

흡정마고; <... 최고야!> 지지지! 청풍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흡정마고의 몸이 벼락에 휘감기고

흡정마고; <백년 넘게 살면서 일만 명이 넘는 사내의 양정을 흡수했지만... 이놈처럼 농후하고 순수한 양정은 처음이다.> 청풍의 정기를 강하게 흡수하는 흡정마고. 청풍의 목이 젖혀지고

<네놈의 정기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흡수해주마! 그럼 내 미모와 목숨은 다시 십년 이상 늘어날 것이다.> 흡정마고가 청풍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모습을 배경으로. 헌데

슈우! 청풍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흡정마고의 매끈한 머리에서 안개같은 것이 흘러나와서

슈우! 다시 청풍의 정수리쪽으로 스며들어간다. 하지만 청풍의 입을 통해 정기를 빨아들이는 데 집중한 탓에 그걸 눈치 채지 못하는 흡정마고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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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旋風悲歌

 

 

 

콰르르릉

천지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우르르쾅!

그와 함께 거대한 석벽이 무너져 내렸다.

일시에 수만 근의 화약이 터진 듯한 힘이 석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핫하하..."

청아한 장소성이 일었다.

휘이익

그와함께, 날리는 사석을 뚫고 한 덩의 청삼청년이 높은 듯한 절벽 위로 날아 올랐다.

여인이 무색할 정도로 고운 피부와 섬세한 선을 지닌 영준한 모습의 청년, 그는 바로 철문영이었다.

그는 지금 청색경장을 걸치고 등에는 큼직한 피풍을 달고 있었다.

"하하... 화희. 어떻소?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의 위력이?"

철문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앞에는 화희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그녀는 잠깐 사이지만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복장이 부인의 복장으로 변해 있었다.

발끝까지 끌리는 장의는 매우 고혹해 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그녀는 머리를 부인들같이 높게 틀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녀의 눈길이었다.

그녀의 눈길은 예전과 달랐다.

전에까지만 해도 그녀의 눈빛은 어린 아이를 쫓는 어머니의 눈길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눈길은 더할 수 없이 조용하며 애틋하게 변하여 있었다.

마음 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철문영의 것이 되어버린 까닭이리라.

"놀랍사옵니다. 무공이라는 것이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고는 생각해왔아오나 이 정도로 끔찍한 위력이 있을 줄은 몰랐사옵니다."

화희는 조용하면서도 약간은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문영은 환히 웃어 보였다.

"화희, 더 강하고 신기한 무공들을 보여 줄테니 잘 봐요."

화희가 살며시 미소했다.

"첩신은 굉천참살강보다도 강한 무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철문영이 껄걸 웃었다.

"하하... 그럼 잘 보오. 이제 펼쳐 보이겠오."

철문영은 돌아섰다.

"차핫!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

철문영은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휘익!

그는 단번에 삼십여 장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파악!

그와 함께, 찬연한 은광이 사위에 떨쳐졌다.

그의 피풍 밑에서 얇은 면철로 된 날개와 같은 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

바라보고 있던 화희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것은 바로 철문영이 천세신전(千世神殿)에서 발견한 창룡철익(蒼龍鐵翼)이었다.

휘르르

얇은 면철로 된 날개가 활짝 펼쳐지자 철문영은 마치 거대한 대붕(大鵬)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한 차례 철익(鐵翼)이 크게 흔들렸다.

그와함께 그의 몸은 수직으로 날아 올라갔다.

위이잉, 뒤이어 까마득히 치솟았던 철문영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아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창룡철익의 모용이었다.

단 한 모금의 진기로 허공을 마음대로 비상하거나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창룡철익으로 펼치는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의 경공은 독보적이다.

휘익!

이윽고 철문영은 절벽 아래로 날아 내렸다.

촤르르

그러자 철익은 신속히 축소되어 피풍 속으로 들어갔다.

차앙!

맑은 용음(龍吟)이 일면서 철문영의 손에 한 자루 고색창연한 고검이 들려졌다.

그 검의 검명(劍名)은 천인(天刃), 바로 검군자(劍君子)가 사용하던 호신지물이다.

철문영은 고검을 들어 양손으로 굳게 쥐었다.

위잉위잉!

그러자, 고검의 푸르스름한 검신이 황색의 검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황룡무적천하(黃龍無敵天下)!"

돌연, 절곡을 뒤흔드는 폭갈이 터졌다.

촤웅!

동시에 맹룡(猛龍)의 포효같이 굉음이 터졌다.

그리고, 천인검으로부터 황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형상의 강맹한 기류가 뻗어 나갔다.

파악! 우르르

황색의 검기가 석벽을 강타했다.

그러자, 석벽의 전면이 깊이 십여 장으로 갈라져 나갔다.

"..."

화희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

철문영은 흡족히 웃으며 검을 회수했다.

위잉위잉!

뒤미처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채들은 끊임없이 그의 몸주위를 휘돌며 점차 고형화 되어갔다.

바로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이었다.

"극강참혼(極剛斬魂)!"

우렁찬 일갈이 터졌다.

콰웅!

검붉은 광채가 충천했다.

삽시에 천지가 검붉은 광채로 뒤덮였다.

콰르릉쾅!

뒤이어 화산이 폭발하듯 엄청난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극강참혼수가 떨쳐진 것이다.

"!"

날리는 사석 속에서 약간 답답한 듯한 신음이 일었다.

화희는 바짝 긴장하여 휘날리는 사석 속을 주시했다.

그리고, 이윽고 날리던 사석들이 가라 앉았다.

아보라!

장내에는 엄청난 변괴가 일어나 있었다.

마치 항아리와 같은 모양의 절곡의 한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인간의 힘이라 믿어지지 않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상공!"

화희가 걱정스럽게 불렀다.

철문영이 창백한 신색으로 눈을 감고 서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극강참혼수는 끔찍할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그러나, 그만큼 진력의 소모가 큰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휘익

뒤미처 철문영은 한소리 청아한 장소성을 터뜨리며 날아 올랐다.

"상공, 괜찮으시와요?"

화희가 급히 다가왔다.

"핫하... 괜찮소. 힘이 좀 들었을 뿐이지."

철문영은 말을 하며 화희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다.

"화희와 떨어져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문득 철문영이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말하자 화희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첩신은... 첩신은..."

화희는 철문영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지. , 장원으로 돌아갑시다. 헤어져 있을 동안을 위해 오늘부터 화희를 놓아주지 않겠오."

철문영은 힘있게 화희를 끌어안았다.

철문영의 품에 안겨 화희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핫하...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

철문영은 지면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파앗!

뒤이어 찬연한 은광을 발하며 철익이 넓게 펼쳐졌다.

휘익!

철문영은 한 줄기 선풍을 불러 일으키며 까마득한 허공으로 날아갔다.

더 없이 높고 푸른 하늘로,

 

X X X

 

천세(千世)의 고혼(孤魂)이 구천(九泉)에 떠돌다.

장검(長劍)에 이는 일진(一陣) 선풍(旋風)으로, 잔혼(殘魂)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선풍비가(旋風悲歌)>

 

전중원이 얼어 붙었다.

핏빛의 선풍(旋風)이 중원을 휩쓴 것이다.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울리면 누군가의 몸이 싸늘이 식어갔다.

선풍비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의 이름은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선풍마존(旋風魔尊),

 

중인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그가 혈풍을 몰고 다니는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최초로 선풍비가를 들은 것은 구대문파 중 공동(崆峒)의 장문인 청오자(靑烏子)였다.

그와 함께, 공동의 정영 일백이 삽시에 다시는 못올 길로 가고 말았다.

이로써 공동파는 완전히 구대문파에서 제명을 다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몇 달 사이에 네 개의 유수한 문파가 멸문당했다.

또한 내노라 하던 무림의 명숙 사십여 명도 선풍마존의 손에 쓰러졌다.

그들이 쓰러지기 전, 항상 한 줄기 선풍비가(旋風悲歌)가 울려 퍼지곤 하였다.

이렇게 되니 무림의 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전전긍긍하며 몸을 사렸다.

언제 죽음의 선풍비가(旋風悲歌)가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선풍마존이란 누구인가?

어떤 자이기에 흑백양도를 불문하고 무차별의 살수를 쓴단 말인가?

그리고, 십여 일 동안 선풍비가는 중원의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콰르릉, 번쩍

뇌성벽력(雷聲霹靂).

쏴아

장대발같은 빗줄기가 대지를 두드렸다.

번쩍

일섬전광(電光)이 번뜩였다.

어둠 속에 한 채의 장원이 드러나 보였다.

그 장원은 울창한 죽림(竹林)에 에워싸여 있었다.

쿠르릉쾅

재차 한 줄기 섬광이 암천을 갈랐다.

스스스

번뜩이는 섬광, 그보다도 빠르게 한 줄기 인영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내렸다.

일신에 검은 야행복을 걸친 괴인이었다.

괴인의 두눈에서 혼백을 얼릴 듯한 한광이 폭사되었다.

"고죽검신(枯竹劍神) 장학량..."

문득, 괴인의 입에서 한 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죽검신(枯竹劍神) 장학량!

 

팔절(八絶)의 일인, 강호제일검사(江湖第一劍士)로 불리는 인물이 아닌가?

헌데, 고죽검신 장학량이 어찌되었다는 얘기인가?

스스스

괴인의 신영이 뿌얘졌다.

그가 귀신같은 신법으로 죽림으로 날아들어간 것이다.

죽림 속에는 적지않은 고수들이 숨어 있었으나 누구도 괴인이 침입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웅장한 대전,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 어둠 속에 대전으로부터 밝은 불빛이 비쳐나오고 있다.

대전 안, 지금, 대전 중앙의 탁자를 마주하고 구인이 앉아있다.

상좌.

한 명의 초로의 노인이 수심에 찬 그색으로 태사의에 몸을 기대고 있다.

대체적으로 깡마른 모습이나 두눈의 안광이 날카롭다.

그 노인 옆의 탁자에는 한 자루 죽검(竹劍)이 놓여있다.

검신이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아 범사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노인, 그가 바로 고죽검신 장학량이다.

본시에도 뛰어난 검사였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제일검사의 칭호를 받고 있는 검의 달인이다.

노인 앞에는 여덟 명의 장한들이 앉아 있다.

하나같이 위맹해 보이는 자들이다.

이들도 각기 한 자루씩의 죽검을 지니고 있다.

 

고죽팔검(枯竹八劍).

 

고죽검신이 총애하는 제자들이다.

그들도 이미 강호에서 제법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문득, 맨 좌측의 장한이 입을 열었다.

그는 고죽팔검의 맏이인 사도장이라는 인물이었다.

"사부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사 그자가 천세문(千世門)의 후인이라고 해도 두려울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사부님게서는 이미 당년의 천하제일인이었던 검군자(劍君子)의 절기를 완벽히 연성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도장의 말에도 고죽검신은 안색이 풀어지지 않았다.

 

검군자(劍君子)!

 

천녀기전의 전통을 마련했던 인물, 구죽검신은 검군자의 신검경(神劍經)을 익힌 인물이다.

강호에서 가장 강한 인물 중 한 명인 고죽검신, 헌데 그의 얼굴은 짙은 암운으로 어두워져 있다.

"청오자 등은 변변히 대항도 못하고 피살되었다. 가벼이 볼 자가 아님에 틀림없다."

고죽검신이 침중히 입을 열었다.

"..."

고죽팔검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

"..."

무거운 암운이 아홉 사람을 짓눌렀다.

콰르릉번쩍,

우뢰성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대지를 밝혔다.

그순간이었다.

아홉 사람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들은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를 들은 것이다.

 

천세의 고혼이 구천에 떠돌다.

장검이 이는 일진 선풍(旋風)으로, 잔혼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고죽검신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 선풍비가(旋風悲歌)..."

그는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선풍마존(旋風魔尊)! 어디에 있느냐?"

사도장이 버럭 외치며 일어섰다.

그는 선풍비가가 들려온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죽검신 장학량, 천세의 원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선가 음산 냉혹한 음성이 들려왔다.

"... 역시..."

장학량은 부르르 떨며 외쳤다.

"에잇!"

사도장이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아! 위험하다."

장학량이 다급히 외쳤으나 사도장은 이미 대전 밖으로 날아나간 후였다.

"사부님 저희들이 나가보겠습니다."

나머지 일곱 명이 일어섰다.

"조심해라. 선풍마존은 너희들은 상대가 아니다."

"."

휘익

일곱 명은 대답을 하고 몸을 날렸다.

"크아악!"

그러나, 다음 순간 처절한 비명이 일었다.

"!"

장학량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병기인 고죽검(枯竹劍)을 집어들었다.

"이 얘들이 그자에게..."

장학량이 침중히 중얼거렸다.

번쩍다시 한 번 섬광이 번뜩였다.

"크아악아악!"

"으악!"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선풍마존! 네놈은...!"

고죽검신은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며 대전 밖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

그때, 검은 인영이 비틀거리며 대전으로 뛰쳐들어왔다.

"... 장아!"

고죽검신이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쿠웅!

그와 함께, 대전으로 들어온 인물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그자는 완전히 혈인(血人)으로 변해 있었다.

"... 이럴 수가..."

급히 다가간 고죽검신이 치를 떨었다.

그 인물은 고죽검신의 대제자인 사도장이었다.

헌데, 지금 사도장은 가슴이 완전히 부서져 숨이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고죽검신이 다가서자 사도장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피를 토하며 중얼거렸다.

"... 사부님... ... 분합... 니다. ... 그 자의... 모습도... 못보고... 당했습니다... ... 그놈은... 너무... ()..."

사도장의 목이 옆으로 떨어졌다.

"장아!"

고죽검신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그러나 사도장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놈! 선풍마존, 네놈을 각을 떠 죽이고 말리라!"

고죽검신이 벽력같이 외치며 일어섰다.

사랑하던 제자.

그 제자가 눈앞에서 죽어갔다.

고죽신검이 이성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고죽검신, 네게는 그럴 기회가 없다."

고죽검신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등뒤에서 냉혹한 일갈이 들려온 것이다.

"죽어랏!"

고죽검신은 발악하듯이 폭갈을 터뜨렸다.

쐐애액.

동시에 죽검이 태풍을 일으켰다.

"!"

그러나, 냉막한 코웃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고죽검신은 한 줄기 흑영이 귀신같이 움직이는 것을 언뜻 보았다.

그의 일검은 허공을 가르고 만 것이다.

""

고죽검신은 다급히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 네가 선풍마존(旋風魔尊)!"

고죽검신은 두 눈을 부릅떴다.

우웅!

그의 오른손에 들린 고죽검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원래부터 서 있었는 듯, 한 명의 냉막한 얼굴의 청년이 고죽검신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냉전과도 같은 눈길이 고죽검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죽검신! 각오는 되어 있겠지?"

만년빙동에서 불어 나오는 냉풍같은 일갈이 청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으드득, 좋다. 네놈의 심장을 꺼내 제자들의 원수를 갚고 말리라."

고죽검신은 이를 갈며 고죽검을 움켜 쥐었다.

우웅! 우웅

고죽검이 울리며 푸르스름한 검기가 피어 올랐다.

차앙!

냉막한 신색의 청년도 검을 뽑았다.

"... 그 검은..."

청년의 손에 들린 고검을 본 고죽검신은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 바로 검군자(劍君子)의 천인검(天刃劍)이다. 천인검으로 네 목숨을 끊어주마!"

청년, 즉 선풍마존은 냉갈하였다.

(...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많겠다. 고죽검으로 천인검(天刃劍)을 상대할 수는 없다.)

고죽검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는 수십 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노검사(老劍士).

마음을 가다듬으며 고죽검에 힘을 주었다.

"이얍!"

고죽검신은 폭갈을 치며 고죽검을 쪼개내었다.

파파팟.

검화가 피어올랐다.

신랄한 검세가 선풍마존을 쓸어갔다.

츠츠츠...

동시에 천인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악!

"크으!"

"!"

선혈이 튀었다.

고죽검신의 고죽검 끝이 갈라지며 그의 어깨가 베어진 것이다.

그러나, 고죽검신도 과연 팔절의 일인다웠다.

어느 틈엔가, 선풍마존의 소맷자락을 길게 그은 것이다.

선풍마존은 흘깃 소매 끝을 내려다 보았다.

마치 여인의 속살같이 뽀얀 손목에 발그레한 혈혼이 생겨 있었다.

츠츠츠쐐애액

고죽검신의 고죽검이 검기와 파랑을 일으켰다.

동시에 천인검이 섬칫한 광망을 그었다.

차앙!

위이잉

검기의 무더기가 대전을 가득 메웠다.

삽시에 삼십여초가 지났다.

고죽검신의 검세는 장강대하같이 쏟아졌다.

팔절 중 일절로서 손색이 없는 검세였다.

그러나, 선풍마존은 무난히 고죽검신의 검세를 받아넘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품마존은 고죽검신이 펼치고 있는 검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검칠십이로(神劍七拾二路).

 

바로, 검군자의 비전절예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제일의 겁법이라 불리던 신검칠십이로도 그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선풍마존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차악!

"크윽!"

피가 튀며 끊어진 고죽검의 한끝이 튕겨져 나갔다.

고죽검신의 장포는 피로 물들었다.

그의 가슴은 천인검에 길게 베어진 것이다.

"... 좋다. 어디 천인검강(天刃劍罡)을 받아보아라."

고죽검신이 이를 악물며 내뱉았다.

그는 고죽검을 단전에 갖다 붙였다.

츠읏!

그러자, 끊어진 고죽검 끝에서 일 장 가량의 유형검강(有形劍罡)이 쭈욱 뻗어나왔다.

"!"

이 모습을 본 선풍마존은 최초로 긴장의 빛을 띄웠다.

천인검강(天刃劍罡)이란 검군자 최후의 무공이다.

이는 너무나도 날카로워 능히 한 자 두께의 철벽은 관통할 수 있다.

우웅우웅

거의 동시에 천인검이 진동했다.

그와 함께 천인검이 휘황한 황색검기로 뒤덮였다.

"죽어랏!"

고죽검신이 발악하듯이 외쳤다.

파츠츳

유형의 검강이 대기를 갈랐다.

"황룡무적천하(黃龍無敵天下)!"

동시에, 선풍마존도 폭갈을 터뜨렸다.

콰웅!

용트림하는 듯한 소성이 일었다.

한 줄기 황색 검기가 신룡이 승천하듯 떨쳐졌다.

촤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쿠웅!

피를 뿌리며 고죽검신이 넘어졌다.

그의 가슴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져 있었다.

"으음!"

선풍마존도 휘청 하였다.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듯 하였다.

"... ... 이렇게... 허무하게 지... 다니..."

고죽검신은 고개를 쳐들려고 하다가 그대로 고개를 꺾고 말았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으음, 과연 팔절은 무엇인가 다르군."

선풍마존은 착잡한 시선으로 고죽검신의 시신을 내려다 보았다.

휘익

, 선풍마존은 내전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 있군!"

그리고, 그는 은밀한 서랍 속에서 한 권의 낡은 비급을 꺼내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스스스

그와 함께 그의 모습은 흐릿하게 변하여 갔다.

콰르릉콰릉!

뇌성과 함게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터졌다.

아마도 멀지않은 곳에서 낙뢰(落雷)가 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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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시 만난 마두들

 

 

 

동녘에선 어느덧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낙성신마와 천수인마는 밤을 새워 막비강을 추격했다.

남악 형산은 이미 쫓고 쫓기는 세 사람 뒤로 아득히 멀어진 후였다.

낙성신마와 천수인마가 속한 우내사마의 서열은 천하오기보다 앞에 있다.

하지만 밤새 추격했음에도 그자들은 막비강과의 거리를 조금도 단축시키지 못했다.

물론 막비강도 두 마두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강호일절이라는 우주도철의 경신술로도 우내사마에 드는 두 마두를 떨쳐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물론 막비강은 청구절학을 한 몸에 지닌지라 우내사마라 해도 그리 두렵진 않았다.

다만 그자들이 방향을 바꿔 악소궁을 추격할까 저어하여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헌데 문득 희미하게 밝아오는 아침 안개 속을 헤치고 전면에서 두 개의 인영이 달려오는 것이 막비강의 시야에 들어왔다.

달려오는 두 사람은 일신에서 사이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인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법의 쾌첩함은 전광석화 같아서 눈 깜빡할 사이에 막비강의 십 장 전면에 도착했다.

(저자들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두 인물의 모습을 알아본 막비강은 가슴이 덜컹했다.

그자들은 막비강이 일전 곤욕을 치른 바 있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화색쌍요(花色雙妖)!

 

그렇다! 그자들은 육요 중 둘인 분면색마(粉面色魔)와 도화요희(桃花妖姬)였던 것이다.

삼년 전 막비강은 그자들이 뿌린 최음제 때문에 헌원여호에게 동정을 빼앗겼었다.

그때의 일이 생각나자 막비강은 분노와 부끄러움이 치솟았다.

생각 같아서는 두 탕부탕녀를 당장 때려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적에게 쫓기는 입장인지라 그자들과 시비를 걸 여유가 없었다.

(오냐! 다음에 보자!)

막비강은 내심 이를 갈며 급히 옆으로 몸을 날려 그들을 비켜가려 했다.

그러나 막비강을 발견한 쌍요 중 분면색마가 질풍같이 앞을 가로막으며 제지했다.

[크크! 애송아! 너는 왜 도망치느냐?]

그자는 당연히 막비강을 알아보지 못했다.

분면색마가 청련사에서 막비강과 만났을 때 막비강은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분면색마가 막비강을 제지하는 사이 이마가 가까이 이르렀다.

[흐흐흐! 애송아! 네놈이 도망가면 어디까지 갈 테냐?]

화라락!

낙성신마는 막비강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앞을 가로막으며 징그럽게 웃었다.

막비강을 제지하던 분면색마는 비로소 낙성신마와 천수인마를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제 보니 사마 중의 두 분 선배 아니시오?]

[! 당신들은 화색쌍요...!]

천수인마와 낙성신마도 놀란 표정이 되었다.

(첩첩산중이로군!)

막비강은 쌍방이 서로 아는 사이임을 알고 내심 다급해졌다.

[비켜라!]

그는 화색쌍요 중 앞을 막고 있는 분면색마를 향해 맹렬히 일장을 격출했다.

[! 어린놈이...!]

분면색마는 강맹한 장풍이 엄습해 오자 코웃음을 날리며 맞받아쳤다.

퍼펑!

[어억!]

분면색마는 막비강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전신의 공력을 사용하지 않아 비틀거리며 연달아 다섯 걸음이나 후퇴했다.

화색쌍요 중 다른 한 사람인 도화요희가 안색이 일변하여 고함을 질렀다.

[거기에 털도 안 난 놈이 기습을 하다니!]

파팟!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오른손을 뻗어 막비강의 어깨를 잡아 왔다.

[요망한...! !]

막비강은 코웃음을 치며 반격하려다가 질겁했다.

도화요희는 여전히 속이 훤히 비치는 나삼을 걸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나삼 속에 아무 것도 걸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나마 나삼은 앞과 옆이 다 터져 있어 움직일 때마다 속살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가슴에 매달린 한 쌍의 젖가슴은 움직일 때마다 세차게 상하좌우로 출렁거린다.

그리고 몸을 날림에 따라 갈라진 치마 사이로 미끈한 다리와 허연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농염하고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여자의 몸에다가 무자비하게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독한 심보를 지닌 사내는 드물다.

하물며 도화요희는 고의적으로 비스듬히 몸을 날리며 다리를 활짝 벌리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막비강은 본의 아니게 그녀의 치부를 그대로 보고 말았다.

(!)

막비강은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사이에 도화요희의 날카로운 손톱이 어깨의 혈도를 움켜쥐려 했다.

막비강은 다급히 몸을 틀어 겨우 그녀의 공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해 어깨의 옷이 도화요희의 손톱에 걸려 길게 짖어진다.

화락!

(, 위험했다!)

위기를 넘긴 막비강은 찬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멀찍이 내려섰다.

[! 여기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직후 뒤쪽을 막고 서있던 천수인마가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왔다.

[오냐! 내 탕마일초(蕩魔一招)를 받아 봐라, 노마!]

일전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막비강은 벼락같이 쌍장을 뻗어내며 외쳤다.

초식은 평범한 것이었지만 치우강기가 실린 탓에 강맹하기 이를 데 없는 장력이 뻗어나갔다.

[! 이놈 봐라!]

청구절예는 과연 비범하였다.

퍼펑!

천수인마같은 전대의 거마도 막비강의 일장에 정면으로 마주치자 전신이 찌르르 울림을 느끼며 비틀 물러섰다.

천수인마를 물러서게 한 막비강이 주위를 돌아보니 전후 좌우가 강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막비강은 오늘의 상황이 결코 좋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가다듬은 후 호방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핫하하! 비겁한 요마들! 오늘 내가 천벌이 어떤 것인지 알려 줄 테니 전부 덤벼라!]

천수인마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흐흐흐! 이것은 네놈이 청구상인의 제자 된 벌이다. 사부 대신 네놈이 당년의 빚을 갚아야 한다.]

천수인마는 나이가 이 갑자가 넘는다.

그래서 젊은 시절 청구상인과 만났던 적이 있었고 또 못된 짓을 하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었다.

옛날의 원한을 떠올린 천수인마는 두 눈에서 살기를 발하며 말을 이었다.

[노부는 네놈에게 삼 초를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일단 말을 한 이상 약속을 지킬 테니 어서 출수해 봐라!]

막비강도 검미를 치켜 올리며 차갑게 코웃음을 날렸다.

[! 나야말로 선사의 유지를 받들어 네게 삼 초를 양보해야 마땅하다.]

[건방진 애송이놈!]

천수인마는 막비강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막비강 역시 위압당하지 않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크왓! 천수벽력장(千手霹靂掌)을 받아 봐랏!]

꽈르르릉!

천수인마가 사나운 고함을 지르며 쌍장을 내쳤다.

순간 사방이 수많은 손그림자에 뒤덮였다.

과연 천수인마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장공이었다.

[잘 왔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손그림자 속에서 막비강도 고함을 치며 마주 양손을 찔러 냈다.

쩌러렁!

순간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막비강의 양손에서 금색(金色)과 벽색(碧色)의 광망이 터져 나가 천수인마의 공격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이 수법은 세 권의 청구단서 중 연형편에 수록된 수공(手功)으로 전문적으로 호신강기를 파해하는 위력을 지녔다.

[허억! 청구상인의 벽금산수(碧金散手)!]

퍼펑! 꽈다당!

요란한 폭음과 짙은 모래먼지가 확 일어나는 중에서 천수인마의 신음 소리가 터졌다.

이어 천수인마가 방금의 일전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은 듯 쓰러질 듯 휘청이며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벽금산수에 의해 호신강기가 무너지며 기혈이 뒤집힌 것이다.

[이것도 받아랏, 노마!]

쐐액!

승기를 잡은 막비강은 사나운 외침 소리와 함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공중으로 십여 장이나 솟구쳤다.

[붕천멸압장(崩天滅壓掌)!]

꽈르르릉!

이어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그는 쌍장을 아래로 내리쳐 천수인마의 머리 위로 극히 막중한 압력을 가해 갔다.

[!]

스팟!

천수인마는 깜짝 놀라며 발끝을 힘껏 굴러 뒤로 육칠 장 가량 날아 나갔다.

하지만 정작 막비강의 장력은 천수인마가 섰던 곳에 이르자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변해 버렸다.

막비강의 이 일초는 진력이 들어가지 않은 허초였던 것이다.

막비강은 바닥에 사뿐히 내려선 후 얼굴에 경멸의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난 분명 삼 초를 양보한다고 했는데 노마는 어찌하여 일격도 받아내지 못하고 후퇴하느냐?]

비로소 자신이 놀림을 당한 것을 알아차린 천수인마의 안색이 썩은 돼지 간처럼 변했다.

낙성신마는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청구상인이 남긴 금강옥액이 아무리 신묘하기로서니 이갑자 이상의 공력이 실린 천수인마의 일장을 받아내지 못해야 정상인데...! 그렇다면 저 어린 놈이 벌써 치우강기를 대성했단 말인가?)

생각을 굴린 낙성신마는 직접 확인해 볼 요량으로 막비강 앞으로 나섰다.

[애송이놈! 노부는 네게 먼저 손을 쓸 기회를 주겠다.]

바로 그때였다.

[!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가 없구나! 비겁한 늙은이들 같으니...!]

화라라락! 스슷!

코웃음 소리와 함께 돌연 두 개의 가냘픈 인영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 둘은 각기 푸르고 붉은 옷을 걸친 십팔구 세쯤 된 소녀들이었다.

두 소녀는 같은 핏줄을 타고난 자매인 듯 전체적인 모습이 비슷했는데 한눈에 보아도 눈앞이 훤해지는 절색의 소유자들이었다.

두 자매 중 녹의소녀(綠衣少女)는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가냘픈 몸매에 쌀쌀맞은 인상이었다.

반면 홍의소녀(紅衣少女)는 나이답지 않게 몸매가 풍만한데다가 얼굴도 도화빛으로 화사했다.

[늙은 것들이 떼를 지어 젊은 사람을 괴롭히다니, 보아하니 너희들은 명성을 떨친 인물 같은데 어찌 이렇게 수치심도 없느냐?]

두 자매 중 녹의소녀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날카롭게 외쳤다.

천수인마는 마음속에 쌓인 울분을 발설할 길 없던 중 이런 말을 듣자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사타구니에 날 것도 안 난 어린년들이 감히!]

막비강도 두 소녀를 힐끗 돌아보았다. 녹색 경장과 홍색 의삼을 입고 등에 장검을 멘 두 자매의 모습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막비강 정도의 고수가 보기에 그녀들의 신법은 별로 고명한 편이 못되었다.

이에 막비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두 소녀의 신법을 보아하니 자기들의 안위도 보호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남의 일에 간섭하는구나. 그녀들의 출현으로 나는 도주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막비강은 침중하게 말했다.

[두 분 낭자는 어서 물러가시오! 이 마두들은 매우 무서운 자들이오.]

그러자 홍의소녀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코웃음을 날렸다.

[! 당신은 뭐가 대단하다고 그런 말을 하세요? 얌전히 우리 자매의 솜씨나 구경하세요.]

파팟!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쌍장을 휘둘러 마치 눈꽃이 날리는 듯한 장풍으로 천수인마를 공격했다.

천수인마는 홍의소녀의 장법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급히 옆으로 피했다.

[지마(地魔) 사도봉(司徒鳳)의 지라신장(地羅神掌)이로구나! 아이야! 우린 한 식구나 마찬가지니 어서 손을 멈추어라!]

막비강은 천수인마가 외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소녀도 우내사마의 후손인 모양이군! 한 통속인 늑대와 여우가 어울려 싸우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는걸!)

그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노마와 어린 마녀의 혈전을 관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막비강이 뭘 모르고 하는 생각이었다.

 

천마(天魔) 황보룡(皇甫龍)!

지마(地魔) 사도봉(司徒鳳)!

 

그들이 우내사마의 나머지 둘이다. 그리고 이들 두 남녀는 부부 사이다.

비록 같은 사마의 서열에 들긴 했으나 천지이마(天地二魔)는 천수인마나 낙성신마와는 천양지차로 격이 다른 인물들이었다.

왜냐하면 천지이마는 마도무림인들에게 종가(宗家)라고 할 수 있는 마교(魔敎) 출신이기 때문이다.

천지이마는 단지 마도에 속한 인물이라 낙성신마, 천수인마 등과 함께 우내사마로 불릴 뿐이다.

게다가 그들 부부는 낙성신마와 천수인마보다 나이가 한 참 어려 처음 강호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십여년 전이다.

비록 나이는 오십 살 이상 어리지만 천지이마의 무공 실력은 낙성신마나 천수인마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자들 뿐만 아니라 일선(一仙) 이불(二佛), 삼도(三道)까지도 천지이마에게는 한 수 양보할 정도였다.

홍의소녀가 방금 펼친 장법은 바로 그 천지이마 중 지마 사도봉의 절기였다.

지마 사도봉은 마교의 마공 중에서도 아녀자들에게 적합한 마공만을 전수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가 지마 사도봉의 무공을 사용하자 천수인마는 절로 꺼려지는 바가 있어 맞서 싸울 수가 없었다.

본래 지마 사도봉은 무공이 빼어날 뿐 아니라 성격이 아주 표독하여 자신에게 터럭만한 죄라도 지은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삼십 몇 년 전, 백도 무림의 대명사인 구파일방의 인물들이 오인하여 지마 사도봉의 친인(親姻)을 해친 적이 있었다.

이에 지마 사도봉이 무자비한 살수를 펼쳐 무려 열 배나 많은 구파일방의 제자들을 살해한 사건은 아직도 무림에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아무리 천수인마가 일세를 풍미한 거마이긴 하지만 감히 지마 사도봉에게 죄를 지을 용기는 없다.

그래서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으며 물러서려 했다.

[! 늙어빠진 영감아! 똑똑히 보고 주둥아리를 놀려라! 지마 사도봉만 마교의 무공을 사용하는 줄 아느냐?]

헌데 의외로 홍의소녀가 차가운 코웃음을 날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홍의소녀가 지마 사도봉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당연히 천마 황보룡과도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천수인마는 홍의소녀가 지마 사도봉과의 관계를 부인하자 어리둥절해했다.

방금 전 홍의소녀가 사용한 장법은 분명 지마 사도봉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 참 잘되었군!]

그러자 쌍요 중의 분면색마가 앞으로 나서며 음탕하게 웃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 채화음적은 두 자매가 나타나자마자 회가 동해 침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계집이 스스로 천지이마와 관계도 없다니 소생이 요리하겠소.]

듣고 있던 녹의소녀가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너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 하는 작자냐?]

[소생의 성은 관()가고 이름은 지()라고 하오.]

막비강은 나이 오십이 넘은 작자가 자칭 소생이라 칭하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녹의소녀는 상대방의 이름을 듣고 처음에는 얼굴을 약간 붉히더니 곧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비로소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것이다.

[네놈이 죽일 놈의 채화음적 분면색마였구나!]

!

그녀는 이를 갈며 벼락같이 검을 뽑아 휘두르며 분면색마를 덮쳐 갔다.

하지만 관지는 허리를 비틀며 녹의소녀의 검망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보기 좋게 펑퍼짐한 엉덩이를 살짝 만지며 음탕한 웃음을 머금었다.

[흐흐흐! 탄력이 매우 좋구나! 재미볼 때 요분질을 잘하겠어!]

[... 이 악적!]

녹의소녀는 부끄러움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쩌저정!

다음 순간 갑자기 그녀의 검끝에서 길이가 한 자 가량 되는 서릿발 같은 광채가 뻗어 나왔다.

바로 전설 속의 검강(劍罡)이었다.

그것을 본 관지는 안색이 일변하며 경악의 함성을 질렀다.

[그건 북산검호각의 추상검강(秋霜劍罡)!]

(북산검호각! 저 소녀들이 사패천 중 북패천으로 불리는 북산검호각의 제자란 말인가!)

막비강의 눈도 번쩍 빛을 발했다.

그는 악소궁에게서 북패천 북산검호각의 일족이 전()씨라는 말을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북패천 북산검호각의 위명은 실로 대단하여 그 음탕하던 분면색마도 이 순간만큼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츠츠츠!

그자의 손바닥은 어느덧 백옥(白玉)처럼 희게 변했다.

아마도 북산검호각의 검법에 대항하기 위해서 필생의 절기를 끌어올린 모양이었다.

그사이에 녹의소녀의 검법도 신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쩌러렁!

서릿발 같은 기운이 그녀의 검에서 번져 나와 분면색마를 무찔러 갔다.

! 퍼펑!

분면색마는 연달아 몇 장을 발출하여 녹의소녀의 검기를 흩뜨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녹의소녀의 검기는 더욱더 날카롭게 변해 분면색마를 공격했다.

막비강은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옆에서 관전하고 있는 홍의소녀에게 물었다.

[낭자, 당신들의 성은 전()씨요?]

홍의소녀가 흘겨보며 차갑게 대꾸했다.

[전씨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뭘 어쩌겠다는 것이 아니오. 낭자의 성이 전씨라면 내가 당신들을 도와 주겠소.]

막비강은 두 자매의 성이 전가라고 말하자 혹시 염라철장의 유서에 적힌 전포(田袍)란 인물과 모종의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두 자매를 도와 싸운 후 그녀들에게 전포의 행방을 묻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홍의소녀는 가소롭다는 듯이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웃기지 마세요. 당신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을 돕고 있는 거예요.]

막비강은 그녀와 다투고 싶지 않아 빙긋 웃었다.

[누가 누굴 돕든 지금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운명입니다.]

그러자 홍의소녀가 눈을 흘기며 차갑게 외쳤다.

[누가 당신과 같은 배를 탄 운명이란 말이에요?]

낙성신마가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애송이놈아! 아부를 하려면 똑똑히 해라!]

낙성신마는 히죽거리며 홍의소녀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이 계집애는 너의 호의를 받아들일 것 같지 않으니 우리도 한바탕 놀아 보자! 노부는 너를 인질로 삼아 악불령을 유인해야 하므로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마라!]

홍의소녀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외쳤다.

[늙은 작자야! 우선 나와 먼저 고하를 가늠하자!]

!

그녀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일장을 격출했다.

낙성신마는 홍의소녀의 성격이 불같은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어깨를 살짝 비틀어 공격을 피해 버렸다.

물론 홍의소녀는 낙성신마의 적수가 못 된다.

그래도 낙성신마는 그녀가 혹시 지마 사도봉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 손을 쓰는 것이 꺼려졌다.

대신 그는 벼락같이 막비강을 덮쳐 왔다.

막비강은 그렇지 않아도 홍의소녀가 낙성신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내 일장부터 받아랏!]

꽈르르릉!

그는 상대방이 초식을 발출하기도 전에 먼저 오른손을 뒤집어 일장을 뻗어냈다.

청구절학은 펼쳐내기만 하면 광풍이 휘몰아치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위력이 있었다.

즉시 짙은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라 펼치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허엇! 광풍진천장(狂風振天掌)까지...!]

낙성신마는 깜짝 놀라 연달아 여덟 걸음이나 후퇴하였다.

그런 후에야 가까스로 막비강의 흉맹한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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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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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墨血破雷罡

 

 

 

"으음!"

철문영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린 철문영은 벌떡 일어났다.

"!"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음을 느끼고 흠칫 했다.

그는 자신의 전신에 거대한 잠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힘은 상상할 수도 없이 막강한 것이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철벽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 이 괴인이 왜 죽어 있지?"

몸을 일으키던 철문영은 깜짝 놀랐다.

그의 옆에는 예의 괴인이 쓰러져 있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괴인의 몸은 바싹 말라있었다.

마치 물기가 빠진 나뭇가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이 봉서는..."

그러다가 철문영은 자기 옆에 한 장의 봉서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봉서를 집어들어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노부는 바로 네 전대 문주인 수군한(手君漢)이라고 한다. (중략)... 이제 노부는 네놈에 십이성의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을 주입시켜줄 것이다. 묵혈파뢰강은 천세절전(千世絶典)중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다음가는 기공이다. 네가 이 기공의 구결만 이해하면 즉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네 일신에는 노부의 원영진기(元嬰眞氣)와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 독혈용형삼(毒血龍形蔘)등이 용해되어 있다. 이는 족히 오갑자가 넘는 막강한 힘이다. 그러나 이것을 얼마나 네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는 너의 노력여하에 달린 것이니 무공연마에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수법을 남긴다. 이는 노부가 이곳에 갇혀 비동에 침입했던 자들의 인육을 먹으며 창안한 수법으로 너무 악독하다. 이 수법의 명칭은 극강참혼수(極剛斬魂手)라는 것으로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치 말아라. 마지막으로 만일 노부의 당라이가 살아있다면 네 사람으로 만들도록 부탁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수취란(手翠蘭)이며 팔꿈치 부근에 붉은 점이 있다. 이제 천세문 이천년의 역사가 그대의 어깨에 걸려 있다. 부디 본문의 영휘를 만세에 떨치도록 노력해 주기를 부탁한다.>

 

서신의 뒷면에는 한가지 끔찍한 위력의 수법이 적혀 있었다.

만일 묵혈파뢰강으로 그 수법을 펼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으음, 이분이 전대문주셨다니..."

철문영은 경악의 표정으로 괴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괴인의 시신에 삼배를 올렸다.

"편히 잠드십시오. 본문의 혈한은 기필코 소생의 손으로 글어 보이겠습니다."

삼배 후 그는 괴인의 시신을 들었다.

얼마전이라면 불가능 했겠지만 이제는 천근거석이라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수군한의 시신을 조사전에 안치했다.

"화희(花姬)의 걱정이 태산같겠군. 빨리가서 안심시켜 주어야지."

그는 벌거벗은 모습을 가릴 생각도 않고 달려나갔다.

곧 그는 화희가 기다리는 석실에 이르렀다.

"도련님!"

그가 들어서자 초조하게 서성이던 화희가 와락 달려들었다.

철문영이 벌거벗은 채였으나 화희는 개의치 않았다.

"도련님... 도련님..."

화희는 미친 듯이 철문영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안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문영은 화희의 가슴이 격심하게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희는 진심으로 철무니영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첩신은... 첩신은..."

화희는 철문영의 얼굴을 받쳐들며 말문을 잊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주종관계이상의 강한 유대가 있었다.

그것은 친 남매의 그것보다도 강하여 마치 모자사이의 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화희, 미안해.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이상하게 강해진 느낌인걸."

철문영이 화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제야 화희는 철문영의 몸이 많이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마치 눈부신 주옥같이 아름다워졌을 뿐아니라 제법 우람해일 정도로 튼튼해져 있는 것이다.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화희의 말에 철문영은 흠칫했다.

"벌써 하루가 지났어?"

화희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했다.

", 그보다 어찌 되신 일인지 말씀해주세요."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보다 배가 몹시 고프단 말야. 먹을 것좀 주어. 옷도 좀 입혀주고."

화희는 살짝 볼을 붉혔다.

어릴 때부터 자기 손으로 길러온 철문영이지만 이제는 발가벗은 모습은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자란 것이다.

"첩신의 정신이 나갔군요. 하루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을 터인데... 자 나가세요. 빨리 음식을 장만해 드릴께요."

철문영은 화희의 팔짱을 끼고 석실을 나섰다.

 

마지막 밀실,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벽장의 뮨울 열었다.

그는 일신에 산뜻한 청색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 무복 실 한올에는 화희의 정성이 베어 있었다.

끼익!

벽장문이 열렸다.

그러자 철문영의 눈에 두 권의 두툼한 비급과 한쌍의 옥환(玉環)리 보였다.

청색과 홍색의 옥환, 그것은 천세문 문주의 신물(信物)인 동시에 비장의 무기였다.

이름하여 건곤쌍환(乾坤雙環),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철문영의 마음에 들었다.

이어 그는 두 권의 비급을 꺼내어 들고 석탁에 앉았다.

그는 우선 한 권을 집어들었다.

 

<무종중경(武宗重經)>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겉장을 넘겼다.

 

천세문주(千世門主)는 구류(九流)의 무공에 능통해야한다, 여기에 구류(九流)의 무공중 최강(最强)어거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공 아홉 가지을 적는다. 천세문주되는 자는 필히 여기에 적힌 아홉가지 신공을 연마하여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아홉가지의 기공이 적혀 있었다.

 

광령법신(光明法身).

 

불문제일신공(佛門第一神功)이다. 이를 완성하면 무적금강지체(無敵金剛之體)가 된다.

다만 한 가지 제약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단 시일내에 연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반갑자이상의 고련이 있어야 완성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연성은 못하더라도 이는 마음을 정()하는데 그 이상의 것이 없으니 필히 명심(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황룡무적검기(黃龍無敵劍氣).

 

도가제일검공(道家第一劍功)이다. 극에 이르면 검기(劍氣)만으로 백 장 밖의 적을 살상 할 수 있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

 

속가(俗家)의 제일신공이다. 광명법신(光明法身)만한 거세적인 위력은 없다. 그러나 신속한 연성이 가능하고 잔혹하게 패도적인 위력은 독보적이다.

 

표향전궁신강(飄香電弓神罡).

 

선문의 절개기공이다. 빠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독공(毒功)과는 상극의 기공으로 사악한 강기(罡氣)에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광막산영수(廣莫散影手).

 

현문(玄門)에서도 가장 현묘(玄妙)하며 복잡한 무공이다. 모두 삼백육십식으로 이루어지며 각식에 네 가지 변화가 있어 그 변화가 끝이 없다.

 

천뢰금강지(天雷金光指).

 

유가제일신공(儒家第一神功)으로 부족함이 없는 지공이다. 이는 강기(罡氣) 파해전문의 지공이다. 특히 적의 공력이 더 강하더라도 상대의 기공을 무너뜨릴 수 있다.

 

환마잠영술(幻魔潛影術).

 

마도제일의 마공은 못된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공중 하나이며 호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법이다. 일시간에 몸을 감출 수도 있고 적에게 접근하기에는 최적인 마공이다.

 

섭심미혼대법(攝心迷魂大法).

 

사도(邪道)의 사술에서도 가장 사이한 수법이다. 상대의 심령을 제압하여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사법이다. 이 사법에서 섭심술, 통령대법 등의 사법이 파생되었다. 그 만큼 사이한 수법이니 깊이 심취하는 것운 금물이다.

 

역변천환신공(易變千幻神功).

 

기문(奇門) 제일기공은 아니다. 그러나 신체를 자유로이 변형시킬 수 있고 용모는 한모금의 진기로 바꿀 수 있는 등, 강호행동시 필요한 기공이므로 무종구대중공(武宗九大重功)에 포함시킨다.

 

"이런 무종들이 있었다니..."

철문영은 무종중경(武宗重經)을 덮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무공들인 것이다.

철문영은 무종중경을 내려놓고 두 번째 비급을 집어들었다.

 

<천세절전(千世絶典).>

 

웅후한 필체가 금박으로 쓰여있었다.

"이것이 마교에서 노렸던 비급이란 말이지?"

철문영은 중얼거리며 겉장을 열었다.

이에는 천세문이 이천여 년에 걸쳐 구류만상경을 작성하여독가적으로 창안한 몇 가지 절대신공들이 적혀 있었다.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

 

양강함과 패도적인 면에서는 이에 비할 무공이 없다. 검붉은 광채가 번뜩이면 만년한철이라도 한줌 가루로 변한다. 그만큼 패도적이다. 또한 이는 최고의 호신강기(護身罡氣)이기도 하다. 묵혈파뢰강의 호신강벽은 어떤 호신강기 보다도 강하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인 것이다.

 

건곤멸겁파(乾坤滅).

 

이것이 천세절전에 적힌 두 번째 무공이다. 그러나 이는 한 번도 사람의 손에서 펼쳐져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무공이 필쳐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천세문 문주의 신물인 건곤쌍환(乾坤雙環)으로 펼치는 무공이다. 한 번도 시전되어 본적이 없으므로 그 위력도 미지수이다.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이것이 천세문 최후의 비결(秘訣)이다. 이는 약 팔할 정도 이루어진 하나의 신공구결이다. 하지만 이천 년의 세월이 걸렸으면서도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이 신공의 막중함은 짐작할 수 있다. 천세문의 오십 자 명 문주들이 구류만상경의 방대한 무공을 참수하여 완성시키려 하던 것이 바로 이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천자가 못되는 짧은 구결이지만 그안에 이천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능히 마교(魔敎)에서 노릴만한 가치가 있는 진결(眞訣)이다.

 

"휴우천외유천(天外有天)."

철문영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종중경(武宗重經)이 무공의 최고봉이라도 여겨졌다.

그러나, 천세절전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절감해야만 했다.

천세절전의 세 가지 무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장 약할 것 같은 묵혈파뢰강이라도 무림에서 상대가 될 무공이 없을 것이다.

철문영은 다시 천세절전을 들여다 보았다.

천세절전은 아직도 반정도 분량이 남아 있었다.

철문영은 그것들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나머지 반의 분량은 역대문주들이 광무천세결을 가다듬으며 얻은 심득(心得)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에는 언급안된 분야가 없었다.

또한 무공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에서부터 자세한 언급이 되어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무공을 처음 익히려는 철문영에게는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 이 심득들만 완전히 이해한다면 여타 무공을 익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철문영은 눈을 빛냈다.

그의 생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어떤 무공이든 그 근원은 같다.

, 잠재되어 있는 잠력을 불러 일으티는 것이다.

이것이 주로 내가공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마공(魔功)이든 신공(神功)이든 이 경우는 어디에든 적용된다.

다만 신공이 정당하고 전진적인 방법으로 잠력을 키우는데 반하여 마공은 급격하고 비정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른 뿐이었다.

나머지 초식(招式)이나 변화 등은 그저 내가공력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천세절전의 심득에는 이같은 내용이 정확히 지적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세절전의 심득만 이해하면 무공이든 속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심득(心得)부터 내것으로 만들어야겠구나."

철문영은 눈을 빛내며 난해한 심결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곧 삼매경에 빠져들어갔다.

널찍한 석실.

한 명의 여인이 석탁에 앉아 무엇인가 꿰매고 있었다.

그녀는 화희였다.

그녀는 더욱더 아름답고 푸근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지금 철문영의 장삼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휴우!"

화희의 가지런한 치아사이로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그녀는 일감을 놓고 천세비동으로 통하는 석문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의 연공이 언제나 끝나려는지..."

화희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들어오신지 벌써 이년, 무공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우신지..."

화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년(二年). 그렇다.

어느덧 이 년이 지난 것이다.

한 번 무공에 몰두하자 철문영운 완전히 무공에 미치고 말았다.

식사시간만 제외하고 하루종일 무공과 씨름을 했다.

하루에 한 번 운공을 하여 피로를 풀 뿐, 잠도 한잠 자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도시 이해 못할 일들이 일어났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컴에도 철문영은 전혀 허약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더 건강해져가는 것이다.

 

"그분이 좋아서 하시는 일,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일 아닌가?"

화희는 한숨을 쉬며 다시 일감을 잡았다.

철문영의 몸이 부쩍부쩍 자라는 동안에 화희는 몇 달 사이에 의복 전부를 새로 만들곤 해야했다.

그녀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한올 한올 실이 꿰어져감에 따라 그녀의 진한 정성이 의복에 배어나갔다.

끼익!

문득 석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 한 명의 헌헌장부가 나타났다.

알맞게 벌어진 체격, 더 할수 없이 영준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산뜻한 청색무복이 매우 잘 어울렸다.

청년의 옥안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하! 화희(花姬)!"

청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제야 화희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 도련님!"

환희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 올랐다.

청년은 바로 철문영이었다.

이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허약하기만 하던 소년을 당당한 장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화희! 드디어 끝났어!"

철문영이 외치며 팔을 벌렸다.

화희의 두눈이 뿌애졌다.

"... 정말이신가요?"

"핫하... 그래 드디어 묵혈파뢰강을 극한까지 익혔어!"

철문영은 다가온 화희의 허리를 감아 높이 들어올렸다.

"고마워! 이게 모두 화희 덕이야."

철문영이 꼭 끌어 안으며 말했다.

화희는 뿌애진 시선으로 철문열을 올려다 보았다.

"도련님, 축하드려요... 이제는 첩신이 돌보아 드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화희는 말을 하며 살며시 철문영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아니야, 난 아직도 화희가 필요해."

철문영이 말하자 화희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철문영은 흠칫 했다.

무엇인가 그녀의 고개질에서 단호한 것을 본 것이다.

(... 이제 내가 저분 곁에서 떠날 때가 되어 가는구나. 더 이상 저분 곁에 있으면 저분과 빙향공주님의 관계만 더욱 악화될 뿐...)

화희가 아련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철문영의 검미가 꿈틀 했다.

"환희... 설마... 내곁을 떠나려는 것은 아니겠지?"

철문영의 물음에 화희는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 정신적 유대가 강해 상대에게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환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도련님은 더 이상 첩신의 보살핌이 필요치 않으세요, 이이상 첩신이 도련임 곁에 있다는 것은 도련님께 누가 될 뿐이예요."

"그렇치 않아. 나는... 나는 화희가 없으면 견더 나갈 수 없을 게야!"

철문영이 소리쳤다.

그의 안색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 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그림자같이 옆에 있어준 환희와 떨어져 있는 것은 철문영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환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첩신을 잊으실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제 강호로 나가셔야 하잖아요."

그녀의 결심은 굳어진 것 같았다.

"아냐! 아냐! 내가 어떻게 화희를 잊어! 그건 불가능해! 제발 떠나려는 생각은 철회해줘!"

철문영이 외치며 환희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화희는 단호하면서도 슬픈 눈길로 철문영을 올려다 보았다.

"빙향공주님을 잊으셨나요? 그분과의 사이가 벌어지신 것도 첩신이 도련님 곁에 있었다는 이유가 크잖아요? 그리고 도련님께선 어차피 빙향공주님께 돌아가셔야 할 분, 이제 첩신은 잊어 주시와요."

철문영의 눈길이 흔들렸다.

그는 잘 알고 있다.

화희의 고집도 자신에 못지 않은 것을 말이다.

평소엔 극히 온유하나 한 번 마음먹으면 흔들림이 없다.

(안돼... 화희를 놓칠 수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화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철문영의 눈길이 번뜩였다.

(마지막 수단이다. 화희를 영원히 내게 구속시켜 놓으련면...)

일순, 철문영의 눈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눈길이 무엇을 뜻하는가?

화희는 금방 알아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도련님, ... 설마 첩신을..."

화희가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와르르...

그동에 만들고 있던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화희를 보낼 수는 없어! 영원히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테야!"

철문영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화희를 훑어보며 다가섰다.

"... 제발... 안돼요. ... 첩신은 도련님의 은... 총을 받을 만한 계집이 못돼요!"

화희는 계속 물러섰다.

그러나, 곧 그녀의 등이 벽에 닿았다.

"화희!"

그와 함께 철문영이 득달같이 덤벼들었다.

"... 도련님! ... 안돼요... 아흑!"

화희는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녀의 몸직은 너무나 무력했다.

부욱찌지직!

화희의 겉옷이 거칠게 찢겨졌다.

"아흑... 아아..."

화희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강한 힘이 자신을 짓눌러 온 것이다.

뒤이어 뜨거운 열풍이 화희를 휩쓸었다.

"... 안돼요! 아아..."

화희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 몸짓은 거칠은 폭풍을 막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기만 했다.

"나낟..."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이 일시에 멈추었다.

대지(大地)가 허물어자는 처절한 고통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꽈르릉쾅!

상상할 수도 없는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광풍폭우가 몰아치고 대지는 부서질 듯이 고통을 당해야 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은 끝이 없을 듯이 이어졌다.

한차례 대지를 무너뜨리고 나면 또다시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초토화 시켰다.

또르륵

그리고 한 방울 이슬이 진한 아픔과 형엄할 수 없는 환희(歡喜)를 아로 새기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이슬로서 또다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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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녀를 부르는 퉁소소리

 

 

 

 

 

현천록과 장군묵이 달려갔을 때 그곳에는 노삼과 뚱뚱한 중이 싸우고 있었다.

노삼은 천산육유장(天山六喩掌)을 펼쳐서 뚱뚱한 중을 몰아부치고 있었고 뚱뚱한 중은 합장을 한 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겨우 피하는 중이었다.

뚱뚱한 중은 현천록을 보자 반색을 하며 말했다.

[도장! 여기 있었구려. 어디 말좀 해주시오.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현천록은 그가 계명사에서 만났던 포두화상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포두화상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노삼의 천산육유장을 상대했다.

노삼이 소리쳤다.

[이 중놈아! 네가 그러지 않았어면 도깨비라도 그랬단 말이냐?]

장군묵이 버럭 고함쳤다.

[입닥쳐라!]

[...]

노삼은 귀속이 윙하고 울려 잠시동안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동굴 속도 노삼의 귀속처럼 한참동안 웅웅거렸다.

현천록은 장군묵의 소리에 기침을 크게 했을 때처럼 뼈마디가 시큰거리는 느낌이었다.

장군묵의 공력은 정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공력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강했다.

포두화상이 말했다.

[젊은 시주의 공력이 아주 놀랍네 그려. 사자후(獅子吼) 못지 않았네.]

장군묵은 포두화상을 상대하지 않았다.

현천록이 노삼에게 말했다.

[다른 분들은 어디 가셨소?]

노삼은 장군묵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제각기 흩어져서 출구를 찾는 중이오.]

현천록이 말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쓰면 금방 뚫을 수 있는 곳이 있소.]

노삼은 그의 말은 듣지 않고 어떻게 장군묵의 손에서 아직도 현천록이 무사한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포두화상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도장! 늙은 중이 약속에 좀 늦었소. 하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그만 용서하시오.]

현천록이 말했다.

[나는 대사와 싸우지 않겠소. 여기서 나가는데 힘을 모읍시다.]

포두화상이 껄껄웃었다.

[진작부터 그랬어야 옳은 일이오. 도장이 이제야 깨달았구려. 노납은 중이라 부처님이 계신 서방극락은 가보고 싶어도 옥황신전인가 하는 곳은 가고 싶지 않았다오.]

말을 끝맺기도 전에 포두화상은 머쓱해졌다.

현천록은 노삼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검을 돌려 주시오.]

노삼은 원래부터 자기 것이 아닌지라 현천록에게 순순히 진무검을 돌려주었다.

현천록은 검을 받아 칼집에 넣으며 물었다.

[아까 있던 그 네 사람은 어떻게 되었소?]

노삼이 말했다.

[노대가 시키는 대로 동굴을 조사하는 중이오.]

장군묵이 말했다.

[아니. 그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다.]

과연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노대와 노이가 연이어 도착하고 금전표 곽기와 수리전 형가운이 그 뒤에 도착했다.

노이가 말했다.

[틀렸다 틀렸어. 노삼! 우린 아주 지독한 놈한테 걸렸다. 꼼짝없이 여기서 죽을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됐어.]

노삼이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무슨 소리요. 길이 없으면 뚫으면 돼고 무너진 건 치우면 언젠가는 나가게 될 텐데 재수없는 소릴하는거요?]

노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에는 노이의 말이 옳다. 우린 기주인지 뭔지 하는 독한 놈한테 당해버렸다. 재수가 없어 남의 무덤에 들어와 죽는거지.]

현천록이 노대를 채근했다.

[자세히 말해보시오.]

노대가 섭선을 확 펼치며 말했다.

[늙은 도사야! 네놈을 쫓아왔다가 이지경이 됐으니 일단 네놈부터 죽여야 좀 들 억울하겠다.]

학이 날개짓을 하듯 섭선이 화려하게 춤을 추었다.

하지만 마치 예리한 도끼날 같은 기운이 팔방에서 현천록을 애워싼 채 몰려왔다.

현천록은 검이 없었다. 창졸간에 백금퉁소를 휘둘러 연달아 이검을 펼쳐 노대의 공격을 막았다.

추잇!

노대의 섭선이 더욱 변화를 부렸다.

하지만 갑자기 섭선은 걷히고 노대가 풀죽은 얼굴로 물러섰다.

현천록이 돌아보니 장군묵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쏘아보고 있었다.

포두화상이 노대를 알아보고 말했다.

[천산육유장에 천산백학선법! 시주들은 고명한 천산삼로들이셨군. 무슨 영문으로 우리가 나갈 수 없는지나 알아봅시다.]

그때 금전표 곽기가 말했다.

[이 종이가 바로 해답입니다.]

스윽!

포두화상은 소매를 흔들었다.

곽기의 손에 있던 종이가 포두화상의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포두화상이 큰소리로 읽었다.

[무너진 흙과 바위 더미 속에는 벽력탄이 들어있다. 함부로 치우려하다가는 폭사하고 말 것이다? 시주! 이건 누가 쓴 거요?]

뒤에 말은 종이에 없는 말이었다.

곽기가 의기소침한 어조로 말했다.

[대사님! 기주가 쓴 것입니다. 왼쪽 아래쪽에 보면 작은 깃발이 하나 그려져 있을 것입니다.]

포두화상이 곽기를 보더니 불쑥 말했다.

[왕년에 삼상에서 이름을 날렸던 금전표 곽시주로군. 이 몇 해동안 금전표에 죽은 시체들이 한해에 여섯 구식 꼭꼭 발견되더니 곽시주가 범인이오?]

곽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해마다 곽기는 기주의 명령에 따라 여섯 명씩을 죽여왔다.

하지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어떤 시체는 태우고 어떤 시체는 바다에 가라앉혔으며 어떤 시체는 산짐승에게 던져주기도 했는데 포두화상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곡을 찔려버리자 부인조차 할 수 없었다.

[... 소인이 범인입니다.]

포두화상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들은 모두 곽시주와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는데... 쯧쯔... 안타깝군.]

수리전 형가운은 포두화상의 눈이 자기를 훑자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포두화상이 말했다.

[시주는 수리전 형시주구먼. 형시주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한해에 여섯 식 죽였소? 수리전이 심장에 박히긴 했지만 등을 뚫고 나오지도 않고 가슴에 뒤가 남아있지도 않았으니 그런 수법은 오직 형시주만이...]

수리전 형가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포두화상이 말했다.

[죄과를 어찌 다 거두려고 그런 짓을 다 하셨소? 나무아미타불...]

금전표 곽기가 말했다.

[저희는 기주의 명을 어길 수가 없어 그런 죄를 저질렀습니다.]

포두화상이 또 말했다.

[석년에 구화산 명경곡(明鏡谷)에서 장씨 모자(母子)를 죽인 것도 명령 때문이었소?]

금전표 곽기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파랗게 변해버렸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조차 쉬지 못했다.

수리전 형가운도 포두화상이 저승의 사자처럼 두려워졌다.

곽기와 형가운이 포두화상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두화상이 나직하게 말했다.

[무슨 수로 그대들은 그대들의 죄과를 씻으려는고?]

곽기가 오른손으로 자기의 천령개를 내리쳤다.

!

수박이 깨어지는 소리가 나며 곽기의 머리가 깨어져 골수가 피와함께 흩어졌다.

형가운도 입술을 질끈 깨물고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심장에는 수리전이 박혀 있었다.

노대가 냉소하며 말했다.

[신통력이 대단한 중이군. 몇 마디 말로 두 사람을 자결케 했어.]

노이가 말했다.

[그 신통력으로 막힌 동굴도 뚫어보시오.]

포두화상이 나지막하게 경을 외우고 나서 말했다.

[세상이 원래 헛된 것이니 선과 악도 다 헛된 것이오. 자기의 진면목을 보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니 이들은 자기를 대할 수가 없었던 거요.]

노삼이 불쑥 말했다.

[나도 적지 않게 죽였소. 기분이 나빠 죽인 놈도 있고 힘도 없이 도전하길래 죽여버린 것도 있소. 어디 나도 한 번 죽게 해보시오.]

포두화상이 껄껄 웃었다.

[시주는 노납에게 감정을 갖지 마시오. 노납도 사람인지라 불쑥 객기가 치밀었던 거요. ! 어서 동굴을 빠져나갈 궁리나 합시다.]

신궁 오무한과 철연화 마춘보가 횃불을 들고 왔다.

오무한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무슨 내용이 적혀잇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노대가 포두화상에게 말했다.

[화상! 저 두사람도 죽여야 하지 않소?]

오무한과 마춘보는 그제서야 포두화상의 앞에 있는 두구의 시체가 곽기와 형가운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포두화상이 말했다.

[노납은 살생을 즐기지 않소. 내말이 틀렸소 진인?]

[! 옳고말구요.]

현천록은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다가 건성으로 말했다.

목소리는 진양진인의 목소리지만 말하는 투는 영락없이 어린아이의 말투였다.

노대가 말했다.

[당신이 기주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으려면 그 두사람도 빨리 죽여야지.]

오무한과 마춘보의 얼굴이 굳어졌다.

포두화상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시주는 노납이 그들의 죄를 알고 있다고 해서 의심하는 모양이구려. 그건 사실 그들이 말해준 것이오.]

노삼이 말했다.

[죽은 놈들은 계집처럼 입이 하나씩 더 달려있었소? 아니면 화상이 귓구멍이 하나 더 달려있어서 하지도 않은 말을 들었소?]

포두화상이 말했다.

[후자가 옳소. 노납은 종종 마음 속의 귀로 남의 마음을 옅듣곤 한다오.]

노대가 차갑게 말했다.

[소림사의 포두화상이 혜광심어를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 남의 마음 속에 말을 하는데 그 마음 속에 있는 걸 듣기도 당연히 들을 수 있겠지.]

포두화상이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나무관세음.]

[하지만 그걸로 화상 당신이 기주가 아니라는걸 증명할 수 있을까?]

노대가 은근히 비위를 건드리는 투로 말했다.

장군묵이 말했다.

[천산삼로의 첫째는 머리가 아주 총명하다고 들었는데 그럴 듯한 말을 하는군.]

포두화상은 자기의 등에 박히듯 하는 힘을 느꼈다.

[진양진인! 노납을 위해서 한 마디 변명도 해주지 않을 테요?]

현천록이 말했다.

[대사는 철인연맹(哲人聯盟)에 속해있는 분이시니 기주일리는 없겠지요. 더구나 이곳을 봉쇄하면서 남아있을 바보는 더더욱 아닐테고.]

포두화상이 호탕하게 웃었다.

[도우는 역시 노납을 잘 알고 있네 그려. 도우가 노납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면서도 이따금씩 만나는 것처럼 노납 또한 도우를 통해 옥황신전을 조금이라도 알까 싶어서 멀리가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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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월동문 안쪽. 화려한 건물이 있고 건물 주변에는 몇 명의 무사들이 경비서고 있다.

 

[사우! 위상영이란 계집이 정말 너를 찾아올 거라 생각하느냐?] 건물 내부를 배경으로 들리는 말. 건물 내부는 거실인데 사우가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열려있는 침실 문쪽을 향해 앉아있다

사우; [속하는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긴장해서 침실 안쪽에 있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대답

기절초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겠지?] 열린 문을 통해 침실의 침대 앞에 놓인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거실 쪽을 보고 있다. 기절초괴지만 밝은 거실과 달리 침실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워서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사우; [아시다시피 무림맹 소맹주 위진천의 하나 밖에 없는 누이인 위상영은 오 년 전 과부가 되었습니다.]

기절초괴; [한창인 나이에 홀몸이 되었으니 욕구불만에 차있겠군.] 히죽 웃고

사우; [그러던 차에 일 년 전, 속하가 낙양에 들렀을 때 속하의 연극을 보러 왔었습니다.] [속하는 그때 의도적으로 그년과 눈을 맞춰두었습니다.] 긴장하지만 비굴한 미소

기절초괴; [섭혼술(攝魂術)을 걸었다?] 실루엣인 상태에서 눈 번뜩

사우; [속하가 자연스럽게 구사한 섭혼술에 걸렸으니 위가년은 지난 일 년 중 단 하루도 속하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득의한 표정

기절초괴; [섭혼술을 써서 상사병에 걸리게 만들기도 하고...] [하여간 다른 건 몰라도 사우, 네놈의 계집 후리는 재주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구나.] 웃고

사우; [감사합니다 가주님!] 고개 조아리며 비굴하게 웃고

사우; [신분이 신분인만큼 위가년의 신변에는 엄중한 경호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납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만 합니다.]

사우; [철옹성에 살고 있는 그년을 잡으려면 제 발로 철옹성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수밖에...] 말할 때. + 기절초괴; [이런...] 웃으며 옆을 보고

사우; [혹시...] 목소리 낮추며 기절초괴가 보는 쪽의 창문을 본다

기절초괴; [준비해라. 네 손님 왔다.] ! 손을 젓고

끼익! 침실 문이 움직이고

사우는 서둘러 일어나고

! 닫히는 침실의 문

사우; (과연 가주님은 다르구나.) 거실의 의자에 앉고.

사우; (내 귀에는 이제야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미리 감지하셨다.) 책을 집어들고 읽는 시늉하고. 그 직후

[실례하겠어요.] 덜컥! 창문이 열리며 여자의 실루엣이 나타나고.

사우; (왔구나.) + [!] 놀라는 시늉하며 책을 떨구고. 직후

휘익! 바람처럼 안으로 날아드는 면사를 쓴 위상영

사우; [.,.. 소저는 뉘시오?] 겁에 질리는 표정

위상영;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해요.] ! 얼굴에 쓰고 있던 면사를 떼어내고

위상영; [공자님께 긴히 여쭐 게 있어 방문하였으니 잠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하옵니다.] 공손하게 허리 숙이는데

사우; [죄송할 거 없소이다.] 히죽 웃고

위상영; (표변(표변(豹變)!) (분위기가 갑자기 일변했다!) 오싹! 사우를 보며 소름이 돋는 표정이 되고

사우;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 진지한 대화를 나눠봅시다.] 포권하며 웃고

위상영; (위험한 인간이다!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뒷걸음질 칠 때

기절초괴; [향기가 좋구만!] ! 언제 나타났는지 위상영의 뒤에 나타나 손으로 위상영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웃고. 냄새를 맡는 시늉하며. + 위상영; [!] 소름이 돋아 눈 치뜨는 표정이 되고

기절초괴; [몸에서 저절로 향기가 나는군.] [네년같은 체질이 바로 사내를 보는 족족 잡아먹는다는 천향음신(天香淫身)이야.] 코를 위상영의 목덜미에 대고 냄새를 맡고

위상영; (... 언제 나타나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리고

기절초괴; [시집 간지 불과 반년만에 과부가 되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기절초괴; [남편이란 놈은 네년과 함께 있으면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들었을 테고...] [결국 마른 북어처럼 변해서 죽었겠지?] 혀로 목덜미를 핥기도 하고. 전율하는 위상영

위상영; (... 마치 본 것처럼 내가 과부가 된 내막을 알고 있어!) ! 겁에 질리고 놀라면서도 오른손을 왼쪽 소매에 넣고

기절초괴; [도저히 참을 수 없군. 소중한 인질이지만 써먹지 전에 맛을 좀 봐야겠어!] ! 허리를 끌어안고.

위상영; [... 죽어랏!] 스악! 수치심에 떨며 벼락같이 몸을 돌리면서 오른손을 휘두르는데 어느 틈에 비수를 한 자루 거꾸로 잡고 있다.

확 다가오는 기절초괴의 목덜미. 그곳으로 날아드는 비수

사우; [조심...] 기겁할 때

위상영; (죽였다!) ! 비수로 기절초괴의 목을 비수로 강하게 찌른다. 하지만

! 빠캉! 기절초괴의 목을 찌르는 순간 유리처럼 깨지는 위상영의 비수

사우; [!] 환호. 감탄

위상영; [!] + (강철도 자르는 내 비수가 유리처럼 깨지다니...) 경악하며 급히 뒤로 물러서려 하지만

기절초괴; [어림없다.] ! 한 팔로 위상영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고. + 위상영; [!] 허리가 안기며 비명 지르고

기절초괴; [본좌의 호신강기를 깨트릴 수 있는 무기는 천하를 통틀어도 다섯 개가 되지 않아.] 두 팔로 위상영의 허리를 안으며 키스 하려 하고

위상영; [... 안돼!] 두 손으로 기절초괴를 밀면서 상체를 뒤로 젖히지만

기절초괴; [비싸게 굴지마셔! 처녀도 아닌 과부 주제에...] ! 그대로 위상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덮어버리는 기절초괴

[!] 눈 치뜨며 필사적으로 기절초괴의 몸을 밀어내려 애쓰는 위상영. 하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키스하는 기절초괴. 그러자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는 위상영.

기절초괴의 몸을 밀어내려던 위상영의 손이 떨리더니

스륵! ! 힘없이 늘어지는 위상영의 손.

눈도 풀려버리는 위상영

사우; (끝났군.) 웃고

<저 계집은 가주의 흡정대법(吸精大法)에 음기의 상당한 양을 빼앗겼을 것이다.> 기절초괴에게 안겨 축 늘어진 위상영을 배경으로 사우의 생각 나레이션

사우; (섭혼술까지 함께 구사했을 테니 이제 위가년은 가주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생각할 때

! 이윽고 위상영의 입에서 자신의 입을 떼는 기절초괴

기절초괴; [역시 기가 막힌 계집이로구만. 입술을 맛본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니...] 눈에 초점이 풀린 채 축 늘어진 위상영을 내려다보며 웃고

사우; [살아있는 보물이라는 천향음신의 계집을 얻으신 것을 감축드리옵니다.]

기절초괴; [본심이 아닌 것 같은데?] [이년을 내게 빼앗겨 속이 쓰리지?] 사우에게 눈을 흘기고

사우; [... 아닙니다! 가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속하의 기쁨입니다.] 억지로 비굴한 웃음을 흘리고

기절초괴; [그렇다 치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위가장으로 편지를 보내라.] 위상영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기절초괴; [이 계집이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걸 원치 않는다면 위가장으로 흘러든 마교의 그 물건을 내놓으라고...] 사악하게 웃는 사우의 얼굴 크로즈 업

 

#154>

<-무산(巫山)> 역시 깊은 밤. 하늘엔 역시 완전한 보름달이 떠있다.

신녀문의 폐허. 헌데 그 폐허 중간에서 무언가 빛난다

폐허 중앙에 높은 단상이 있다. 탑의 윗부분을 싹둑 자른 것 같은 모습. 그 중앙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마법진 중앙에 누워있는 소녀의 몸이 밝게 빛난다.

크로즈 업. 잠옷 차림인 이진진이다.

츠으! 눈을 감고 있는 이진진의 몸이 빛나고.

사라라! 스스스! 달빛이 가루처럼 변해서 이진진의 몸으로 스며들어가고

스륵! 이진진의 몸이 무게 없는 깃털처럼 허공으로 조금 떠오른다.

 

근처의 높은 건물. 맨 윗층 창가에 서서 이진진을 보고 있는 두 여자. 바로 진삼낭과 운신장이다.

진삼낭; (신녀문의 월음천강대법(月陰天罡大法)...) 단상 위의 이진진을 보고

진삼낭; (보름달의 음기를 흡수한다는 저 술법을 수련하면 몸의 탁기(濁氣)가 모두 빠져나간다고 한다.)

진삼낭; (몸의 탁기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정신은 거울처럼 맑아지고 영혼은 납처럼 무거워진다고 했다.)

진삼낭; (그 상태가 되면 금천마장을 헤집고 들어가 혼천경을 꺼내올 수 있다고 하는데...) 문틀을 쥔 진삼낭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진삼낭; (실패할 경우 진진이도 신녀문의 역대 문주들처럼 금천마장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진삼낭; (과연 진진이에게 그런 위험을 무릅쓰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소리없이 한숨 쉬고

그런 진삼낭을 곁눈질하는 운신장

운신장; (벌써 여섯 번째 보름을 맞이했으면서도 여전히 진진이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고 있구나.)

운신장; (물론 어머니로서 당연한 걱정이겠지만...)

운신장; (내가 보기에 진진이는 월음천강대법을 완전하게 성취할 재목이다.) (몸에 탁기가 너무 많아서 실패했던 나와는 달리...) 단상의 이진진을 보면서

운신장; (수련한지 불과 반 년 만에 월음천강대법의 완성을 눈앞에 둔 경우는 신녀문의 역사를 통틀어도 없었다.)

운신장; (그리고 일단 진진이가 월음천강대법만 완성하면 금천마장을 깨트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삼낭을 곁눈질하며

운신장; (물론 그걸 설명한다 해도 이()부인에게 위로가 되진 않겠지.) 소리없이 한숨을 쉬고

운신장; (그나저나 이부인은 비밀이 많은 분이다.) 다시 진삼낭을 곁눈질하며 생각하고

운신장; (의식적으로 자신의 신세내력을 말하지 않고 있다.)

운신장; (내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게 분명하지만 추궁하기도 그렇고...)

운신장; (바탕이 나쁜 여자는 아니니 굳이 출신내력까지 알아낼 필요는 없겠지.)

<지금은 오직 진진이가 월음천강대법을 완성하는 것을 돕는 데 집중해야한다.> 단상에 누워 온몸에서 빛을 내는 이진진의 모습 배경으로 운신장의 생각 나레이션

 

#155>

낙양. 아침.

번화가의 규모가 엄청 크고 웅장한 장원. 높은 담장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정문은 굳게 닫혀있고. 문 밖에 무사들이 어쩐지 긴장한 표정으로 경비 서고 있고. 정문에는 <威家莊>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위가장(威家莊)> 위의 정문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전부 혀 물고 뒈져버려라!] 악을 쓰는 소리가 웅장한 건물 배경으로 터진다. 경비 서던 무사들과 오가던 하인 하녀들 공포에 질리고

섭비연; [상영이가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것도 몰랐다는 게 변명이 되느냐?] 무릎 꿇은 하녀와 무사들을 앞에 두고 분노하여 길길이 날뛰는 중년 여자. 손에 칼을 들었다. 나이는 40살 정도로 보인다. #1>에 나온 청풍의 엄마 섭아연과 닮았는데 좀 더 기승스러운 인상이다. 눈 꼬리가 올라가있다. 위진천과 위상영 남매의 엄마인 섭비연이다. 무림맹주인 섭장천의 조카이기도 하고. 위가장의 안주인이다. 옷이 아주 화려하다

섭비연; [대체 너희 년놈들에게 비싼 밥 먹이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 것이냐?] 악을 쓰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위가장의 안주인 섭비연(葉飛燕)>

섭비연; [주인 하나 지키지 못하고... 밥값 못하는 버러지들은 살아있을 자격도 없다!] 칼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분노하여 치를 떠는 섭비연 뒤에는 중년 사내가 의자에 앉아 찡그리고 있다. 다른 작품의 위극겸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위극겸이고 위진천의 아버지다.

한숨 쉬는 위극겸. 배경으로 나레이션. <-위가장 장주 위극겸(威極兼)>

섭비연; [만일 상영이가 손톱만한 상처라도 입은 게 확인된다면...] 이를 부득 갈고

섭비연; [상영이의 경호와 시중을 담당했던 너희 년놈들은 남김없이 찢어죽이고 말겠다!] 이를 갈고. 무시무시한 살기

달달 떠는 무사와 하녀들. 하녀들 중에는 위상영의 유모도 있고

위극겸; (무림맹주 철면무제님의 조카 아니랄까봐...) (부인의 저 격렬한 성격은 나도 감당이 안된다.) 한숨 쉬고. 그때

[... 보고 드립니다!] 건물 입구에서 누가 외치고.

무사 한명이 두 손으로 편지를 든 채 서서 눈치를 보고 있다.

섭비연; [뭐냐?] 버럭

무사; [... 아가씨를 납치했다는 자가 보낸 편지가 개방(丐幇)의 거지를 통해 도착했습니다.] 눈치 보며

섭비연; [납치범이 보낸 편지?]

위극겸; [!] 눈 번뜩

무사; [개방의 거지는 어떤 사내로부터 열 냥의 은자와 함께 이 편지를 전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합니다.] 눈치 보며 두 손으로 편지를 내밀고

섭비연; [가져와라! 빨리!] 고함. 칼을 휘두르며. 하지만

위극겸; [내가 확인하겠소.] 손을 들고. 그러자

! 무사의 손에서 편지가 세차게 빠져나와서

! 위극겸의 손에 잡히는 편지

무사; (장주님의 격공섭물(隔空攝物) 능력이 이 정도였다니...) 놀라고

편지 봉투를 여는 위극겸

섭비연; [조심하세요 상공! 편지에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어요.]

위극겸; [걱정마시오. 편지로 허튼 수작을 부린 것 같지 않으니...] 편지 봉투에서 접은 편지를 한 장 꺼내고. 다가오는 섭비연

편지를 읽으며 찡그리는 위극겸

섭비연; [무슨 내용인가요?] 궁금해 하는데

위극겸; [문 닫고 주위를 물려라.] 문간의 무사에게

무사; [예 장주님!] 대답하고. 이어

끼익! 밖에서 문을 닫고

덜컹! 문이 닫히며 외부와 차단되고

섭비연; [대체 편지에 무어라 적혀있기에 이목까지 차단하신 건가요?] 궁금

위극겸; [부인이 직접 확인하시오.] 편지를 내밀고

섭비연; [그러지요.] ! 칼을 바닥에 찍어 세우며 다른 손으로 편지를 받고

[!] 편지 읽으며 눈 부릅뜨는 섭비연

 

<곱게 키운 따님이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신세가 되는 건 원치 않으리라 믿소. 위가장으로 흘러들어간 마교의 보물 구룡로(九龍爐)를 갖고 항주(杭州) 교외 전당강(錢塘江)으로 와서 따님을 교환해가시오.> 편지의 내용

 

섭비연; [... 구룡로!] 경악하고

섭비연; [마교의 보물이라는 그 물건이 정말 우리 위가장으로 흘러들어왔었나요?] 위극겸에게 묻고

위극겸; (입이 싸기는...) + [그런 적이 있소.] 끄덕이며 실내에 있는 무사들과 하녀들을 곁눈질하고

섭비연; [그럼... 그럼 뭘 망설이세요?] [당장 그걸 갖고 가서 상영이와 교환해오세요.] 안달하지만

위극겸; [구룡로는 그렇게 간단히 남에게 넘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오.] 찡그리며 고개를 젓고

섭비연; [그럼 어쩌자는 건가요? 우리 딸이 끔찍한 일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건가요?] 분노하고

위극겸; [상영이를 포기하자는 게 아니고...] 난감해 할 때. + 섭비연; [듣기 싫어요!] 악을 쓰며 말을 막고

섭비연; [가엾은 상영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칵 죽어버리고 말 거예요.] 이를 갈며 눈물도 글썽이고

위극겸; (이 생각 없는 여자가...) 찡그릴 때

[진정해라 아가야.] ! 갑자기 위극겸의 뒤로 유령같이 나타나는 노인. 선비 스타일의 청수한 노인. 머리카락과 수염은 희지만 얼굴을 팽팽하다. 이 노인은 위극겸의 아버지인 위태무. 실제로는 번뇌마가의 가주 번뇌마야이지만 위태무로 표기.

섭비연; [아버님!] 급히 옷매무새 가다듬고. 그 앞에서 위극겸도 일어나고

위극겸; [어서 오십시오 아버지.] 고개 숙이고

섭비연; (저 양반이 어떻게 여기 나타났지? 문이 닫혀서 드나들 곳이 없는데...) 위태무의 눈치를 볼 때

위태무; [이야기는 오면서 들었다.] ! 위극겸이 옆으로 물러서 양보한 자리에 앉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위가장 전대 장주 위태무(威太武)>

위태무; [이번 일의 범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위극겸; [소자의 소견으로는...] + 위태무; [잠깐 기다리거라.] 손을 들어 막고

위태무; [주변 정리부터 하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자.] ! 손가락을 튕기고. 그러자

[!] [끄윽!] 눈을 까뒤집는 실내에 있던 하녀와 무사들. 벼락에라도 맞은 모습들이고

섭비연이 경악하며 돌아볼 때

털썩! 퍼억! 모두 숨이 끊겨 나뒹구는 하녀와 무사들

섭비연; (... 가공!) 전율

섭비연; (아버님의 무공이 손가락 한번 튕기는 것으로 수십명을 죽일 정도였다니...) 겁에 질려 위태무의 눈치를 보고

위태무; [오늘 본 건 입 밖으로 내지 말거라.] 놀라는 섭비연에게 웃고

섭비연; (... 위험해!) + [명심하겠사옵니다.] 겁에 질려 급히 고개 조아리고

위태무; [이제 말해 보거라.] 위극겸에게

위극겸; [상영이는 새송옥이라는 배우놈을 만날 목적으로 집을 몰래 빠져나간 후 실종되었습니다.]

위극겸; [그리고 소자가 급히 수하들을 풀었으나 새송옥이라는 놈은 이미 구주악극단에서도 모습을 감춘 후였습니다.]

위태무; [새송옥이라...]

위극겸; [정황상 그자는 암흑마가와 선이 닿아있는 게 분명합니다.]

위태무; [암흑마가라면 구룡로를 노릴 이유가 충분하지.] 끄덕이고

섭비연; [마교... 마교의 잔당들이 이번 일을 꾸몄단 말씀이시옵니까?]

위태무; [그런 것 같다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가야.] 웃고

위태무; [무슨 일이 있어도 상영이를 구해오도록 하마.] 음산하게 웃는 얼굴 크로즈 업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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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 가가강! 도끼, 갈쿠리, 톱니바퀴들이 섭장천의 몸을 강타한다. 하지만 그 직후

[!] [!] [!] 공격한 자세로 경악하는 지옥혈부, 백일살신, 환마루주. 허공에 몸이 떠있는 상태들이고

가가강! 카카캉! 세 사람의 무기는 쓰러져 있는 섭장천의 몸에 닿았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하고 무언가에 저지당하고 있다.

<이럴 수가...> <천하오대극독중 하나인 부심지독(腐心之毒)에 중독당하고도 공력을 잃지 않다니...> <우리들의 공격이 섭장천의 호신지력(護身之力)에 막혔다!> 지옥혈부들이 경악하며 다급히 다시 허공으로 치솟으려 할 때

! 부악! 섭장천의 몸에서 죽순처럼 돋아나는 검의 형상들.

[!] [검벽신공(劍壁神功)!] [위험하다!] ! 투학! 경악하며 다급히 도로 날아오르려는 지옥혈부 일행, 하지만

번쩍! 투쾅! 일어나 앉는 섭장천의 몸에서 수많은 검의 형상들이 터져 나와 지옥혈부들을 휩쓴다

[!] [!] [!] 부악! ! 사력을 다해 방어벽을 일으키며 날아오르는 지옥혈부 일행. 팔로는 얼굴과 목을 가리며. 하지만

퍼퍽! ! 그자들의 방어벽을 그대로 뚫고 들어오는 검의 형상들

[크악!] [!] [!] 푸학! 퍼퍽! 몸이 여기저기 궤뚫리며 허공에서 퍼덕이며 비명 지르는 지옥혈부 일행. 그래도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이어

퍼억! 콰당탕! 퍼억! 세 방향으로 나뒹구는 지옥혈부 일행

섭장천; [감히 아연이를 이용해서 노부를 함정에 빠트려?] 화르르! 온몸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완전히 일서서고. 수많은 검의 형상도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고

섭장천; [용서할 수 없다!] 온몸이 검의 형상으로 덮이며 이를 갈고. 머리에는 불이 붙었고 눈은 백열되어 마귀같은 형상이 된다.

[끄윽!] [지랄...] [명불허전이다! 부심지독에 중독된 상태에서도 우리 셋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급히 일어나려 하지만 힘들어 비틀거리는 세 놈. 검의 형상에 궤뚫린 상처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고

섭장천; [네놈들에게 죽어간 아이들의 숫자보다 열배씩 난도질 한 후 죽여주겠다.] 파츠츠츠! 온몸에서 일어나는 검의 형상이 더 많아지고. 입과 코로 피를 줄줄 흘려서 마귀같이 변한 채로

<... 이 정도였을 줄이야!> <이 늙은이가 고금제일검이라는 평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었다!> <혈세사패의 패주들인 우리 능력으로도 맞설 수 없는 상대다!> 공포에 질리며 주춤거리는 지옥혈부 일행. 바로 그때

휘익! ! 두 개의 구슬이 섭장천의 앞으로 날아들고

섭장천; [벽력탄?] 눈 부릅 뜰 때

콰쾅! !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두 개의 구슬. 연기와 불길이 섭장천을 뒤덮고

[벽력탄이라면 혹시...] [중독당한 상태라 호신강기도 많이 약해졌을 것이다.] [...] 기대하는 지옥혈부 일행. 하지만 그 직후

화악! 화르르! 흩어지는 연기와 불길. 그 안쪽에 사람 형상이 보인다

[설마!] [벽력탄도 통하지 않는 것인가?] [!] 백일살신과 환마루주의 경악

! 드러나는 폭발현장. 섭장천이 여전히 검의 형상에 뒤덮인 채 우뚝 서있고. 그 앞쪽으로 두 개의 구덩이가 생겼다. 벽력탄이 터진 흔적. 구덩이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고. 그 직후

[어머나! 정말 존경스럽네요!] 짝짝! 박수치는 소리가 들리고. 일제히 돌아보는 지옥혈부 일행

구미호리;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면서 벽력탄의 파괴력을 호신강기로 막는 게 가능했네요.] ! ! 박수치며 걸어오는 구미호리. 야한 차림인데 지옥혈부의 뒤쪽에서 다가온다. 돌아보는 지옥혈부

섭장천; [염라전(閻羅殿)으로 보낼 물건이 하나 더 늘었군!] 핏발이 선 눈으로 구미호리를 노려보고. 이어

섭장천; [자기소개를 해라! 그래야 염라대왕을 만났을 때 누굴 죽였는지 고할 수 있을 테니...]

구미호리; [그리하지요 섭노사!] 배시시 웃으며

구미호리; [신첩은 구미호리라고 해요. 쾌활림의 림주를 맡고 있답니다.] 절하는 시늉하며 말하고

섭장천; [쾌활림!] 눈 부릅

섭장천; [이제 보니 너희 년놈들은 근래 무림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는 혈세사패의 수괴들이로었구나.]

지옥혈부; [그렇소. 후배가 바로 지옥갱의 갱주 지옥혈부요!] 두 손으로 도끼를 불끈 쥐며 고개 끄덕

백일살신; [백살파의 파주를 맡고 백일살신이오.] 지옥혈부 쪽으로 이동하며 말하고

환마루주; [본좌가 환마루의 루주, 환마루주요!] ! 역시 지옥혈부쪽으로 이동하며 포권하고. 그자의 몸 주위로는 네 개의 톱니바퀴가 저절로 돌아가고 있고

섭장천; [혈세사패! 혈세사패!] 이를 부득 갈면서 자기 앞쪽에 늘어서는 네 년놈들을 노려보고

섭장천; [구대천마의 잔당들이라면 저승 길동무로는 부족함이 없구나!] 입과 코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노려보고

<우리가 누군지 한 눈에 알아봤다!> <볼수록 대단하고 무서운 늙은이다!> 지옥혈부 일행이 놀라고

구미호리; [후배를 또 감탄하게 만드시는군요.] 교태롭게 웃고

구미호리; [하지만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들은 섭노사의 저승 길동무가 되어줄 생각이 없으니 말이에요.]

섭장천; [네놈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 ! 양손으로 특히 긴 검의 형상을 뽑아내 움켜쥐며 이를 갈고. 휘어져 있어서 검이라기보다는 칼의 형태다

섭장천; [하늘 아래 노부를 거역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부악! 쩌억! 두 자루의 거대한 검의 형상을 지옥혈부등에게 휘두르려 한다.

<온다!> <조심해라!> <아차하면 죽는다!> 아연긴장하며 맞상대하려는 지옥혈부 일행. 하지만 바로 그 직후

덜컥! 양손으로 뽑아낸 검 형상으로 칼춤을 추려던 섭장천의 몸에 진동이 일어나고 눈을 부릅뜬다.

! 섭장천의 가슴 앞으로 삐져나온 빛으로 이루어진 창날.

지존; [처음 뵙겠소이다 검성!] 섭장천의 뒤에 서서 두 손으로 든 창을 찌르고 있는 지존. 이 창은 손잡이는 50센티 정도인데 그 끝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창날은 1.5미터쯤 된다. 이름은 멸신창. <무쌍일지>에 나온 <화염창>과 같은 것으로 묘사

[!] [휴우!] 안도하는 구미호리와 지옥혈부 일행

지옥혈부; (우리가 이목을 끈 덕분에 지존이 섭장천을 암습하는 데 성공했다.) 안도

섭장천; [... 지존이란 놈이냐?] 가슴이 궤뚫린 채 돌아보며 이를 갈고. 입과 코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지존; [그렇소이다. 본좌가 바로 섭노사에게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외다.] 치치치! 내민 멸신창에 힘을 주자 멸신창의 창날이 하얗게 백열된다.

섭장천; [... 멸신창(滅神槍)!] 끄윽!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고

츠츠츠! 그와 함께 섭장천의 몸을 덮고 있던 검의 형상들도 사라진다

지존; [역시 대단한 안목이시오. 수백 년 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멸신창을 알아보기도 하시고...] 웃고

지존; [이 창이 바로 환우십보(寰宇十寶) 중 하나이며 신도 죽일 수 있다는 멸신창이오!] 웃는데

화악! 웅크린 섭장천의 등에서 고슴도치같이 검의 형상들이 돋아난다

지존; [이크!] ! 멸신창을 급히 뽑으면서 뒤로 휙 물러나고. 멸신창이 뽑히는 섭장천의 등과 가슴에서 피가 뿜어지고

투쾅! 쩌억! 섭장천의 등에서 수십 개의 검의 형상이 터져 나와 미사일처럼 지존에게 날아간다.

구미호리; [조심...] 자기도 모르게 비명 지를 때

지존; [영차!] 휘릭! 물러서면서 앞으로 내민 멸신창을 빙글 돌린다. 창날 끝이 여러 개로 변해 원을 그리는 모습. 그러자

투콰콰쾅! 여러 개로 변해 원을 그리는 멸신창에 부딪힌 검의 형상들이 유리처럼 깨져 흩어진다

[!] [그러면 그렇지!] 안도하고 놀라는 구미호리 일행

섭장천; [!] ! 바닥에 앞으로 고꾸라지듯 주저앉으며 피를 토하는 섭장천

그런 섭장천의 가슴과 등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고

<심장을 궤뚫렸다!> <저래서는 신선이 아닌 이상 살 수 없겠지.> <드디어 검성 섭장천을 잡았다!> 안도하는 지옥혈부 일행.

지존; [끝까지 후배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구려 섭노사!] 섭장천의 검기를 깨트려서 막은 후 멸신창을 내리며 웃고. 섭장천은 돌아보고

지존; [중독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부심지독에 당하고 심장까지 궤뚫린 상태에서도 반격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입과 코로 피를 줄줄 흘리며 돌아보는 섭장천에게 말하고. 섭장천은 가슴과 등에서도 피가 뿜어지고 있다

섭장천; [네놈... 정체가 뭐냐?] 가슴의 상처를 누른 채 지존을 노려보고. 상처를 누른 손 사이로 피가 뿜어지고 있고

지존; [구대천마의 후손들인 혈세사패를 누가 종으로 부릴 수 있겠소?] 거만하게 웃고

굴육의 표정이 되는 지옥혈부 일행. 반면

섭장천; [... 신선부와 마귀동!] 눈 부릅 충격 받은 표정이 되고

섭장천; [네놈... 신선부(神仙府)나 마귀동(魔鬼洞) 출신이겠구나!]

지존; [궁금증을 해소하셨으면 이제 그만 아들 부부 곁으로 가도록 하시오.] ! 멸신창으로 겨누며 다가오고

동시에 섭장천의 뒤에서는 지옥혈부등이 반원형으로 포위하며 다가오고. 구미호리는 소매 속에서 긴 띠를 꺼내 채찍처럼 휘두른다.

지존; [본좌가 군림천하 하는 데 거의 유일한 장애물이 섭노사셨소.]

지존; [정면승부로도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함정을 파고 수하들을 부린 것이니 이해하시오.] 멸신창을 쳐들어 휘두르려 하고

지옥혈부등도 공격하려 하고. 바로 그때

섭장천; [지존... 네놈은 아마도 신선부 출신일 것이다.] 이를 부득 갈고

[!] 섭장천을 공격하려던 지존이 움찔하고

[!] [!] 지옥혈부들도 흠칫 할 때

섭장천; [군림천하하겠다?] 지직! 왼손이 벼락에 휘감기고

섭장천; [네놈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 왼손을 들었다가 강하게 바닥을 치는 섭장천. 그러자

! 섭장천 주변의 바닥이 그대로 폭발해서 치솟으며 지존들의 시야를 가린다.

지존; [어딜!] ! 멸신창을 찌르고

부악! ! 지옥혈부등도 전력을 기울여 흙먼지 속의 섭장천을 공격한다. 지옥혈부의 도끼, 백일살신의 칼쿠리에서 내뻗치는 섬광, 흙먼지 속으로 날아드는 환마루주의 네 개의 톱니바퀴, 구미호리의 긴 띠라 무언가를 휘감아가고.

! 화악! 다섯 사람의 공격에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 [!] 경악하는 지존 일행., 지옥혈부는 도끼를 내리찍은 자세

! 이미 섭장천이 앉아있던 현장에는 아무도 없다. 바닥만 박살나있고. 바닥에는 피가 뿌려져 있고.

<사라졌다!> <도저히 포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우리들의 공격을 피한 것인가?> 지옥혈부등의 경악. 그 직후

후두둑! 바닥에 뿌려지는 피

지존; [위다!] 고개 젖히며 고함. 지옥혈부등도 일제히 올려다보고.

! 쐐애액! 탄도미사일처럼 수백미터를 치솟았다가 옆으로 날아가고 있는 섭장천

구미호리; [맙소사!]

백일살신; [... 인간이 어떻게 백여장이나 도약을...] 역시 경악

지존; [추격한다! 저 늙은이를 살려보내면 안된다!] 쐐액! 미사일처럼 날아가고

휘익! ! 지옥혈부등도 몸을 날린다

멀리 사라지는 섭장천. 그 뒤를 따라 날아가는 지옥혈부등 네 사람

곧 장내는 조용해지고. 한쪽에 쓰러져 있는 섭아연만 남는다. 직후

스스스! 섭아연 곁으로 나타나는 인물. 바로 위진천

섭아연을 내려다보는 위진천

다시 기절한 섭아연. 눈을 까뒤집고 입과 코로 거품을 물고 있다. 가슴 부분에 나비 문양이 보이고

위진천; [쯧쯧! 아버지도 참 냉혹하시단 말이지.] [이렇게 어여쁜 계집을 한번 이용하고 버리시기나 하고...] 혀를 차며 한쪽 무릎을 꿇는다. 오른손을 품속에 넣으면서

위진천; [예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이 계집을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지.]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고

위진천; [섭아연! 섭아연!] ! 병 마개를 따고

위진천; [살려주는 대가로 너는 모든 것을 나 위진천에게 바쳐야만 한다.] 쪼르르! 섭아연의 입에 약병의 액체를 흘려 넣어주며

위진천; [충성은 물론 네 몸과 마음까지도...] 사악하게 웃는 위진천의 얼굴 크로즈 업

 

#20>

<-북경>

<-황금전장>

어느 화려한 건물. 벽초천의 집무실. 건물 주변에는 황금수라 십여 명이 지키고 있고. 지휘자는 귀견수. 엄중한 경비

 

[!] 놀라는 청풍. 뒤에는 벽세황이 서서 청풍의 눈치를 보고 있다.

벽초천; [청풍이 너도 짐작하고 있을 테니 솔직하게 말하겠다.] 서재 분위기의 집무실. 화려한 의자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 옆 조금 뒤쪽에는 우문술이 수수한 의자에 앉아있고. 커다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청풍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로 서있다. 청풍 뒤쪽 조금 옆에는 벽세황이 청풍의 눈치를 보고 있다. 청풍과 벽세황은 뒷모습

벽초천; [세황이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백년하청(百年河淸;황하가 맑아지기를 바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굴욕적인 표정이 되는 벽세황. 고개 떨구고

벽초천; [하지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황이를 관계(官界)에 들여보낼 생각이다.] 강렬한 표정으로 청풍을 보고

벽초천; [이에 대한 네 의향을 말해봐라.]

청풍; [장주님께서는 제가 소장주를 대신해서 과거를 보길 원하시는지요?] 신중한 표정으로 묻고

벽초천; [노사의 의견을 청풍이에게 말해주시오.] 대답 대신 우문술에게

우문술; [노부의 판단으로는...] 청풍의 눈치를 보며

우문술; [청풍이 너는 과거에 응시할 경우 향시는 물론 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급제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답하지 않은 청풍

우문술; [마침 한 달 안에 직례의 향시와 전시가 거푸 치러진다.] [남의 이목에 노출될 기간이 짧은 만큼 발각될 위험도 줄어들 것이다.]

청풍; [물론 그렇긴 하겠지만...] 난색을 표할 때 + 벽초천; [준비는 모두 해놓았다.] 끼어들고.

벽초천을 보는 청풍

벽초천; [청풍이 너는 그저 세황이의 요패(腰牌;신분증)를 지참하고 과거시험을 보기만 하면 된다.]

청풍; [말씀하신 대로 소장주의 요패를 지참하면 대리로 시험 보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무표정하게

청풍; [그러나 과연 뒤탈이 아예 없을런지요?]

우문술; (완곡하게 거절하는군.) 혀를 차고

벽초천; [뒤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개 젓고

벽초천; [이미 향시와 전시의 감독관들 대부분을 포섭해놓았다.] [네가 대리로 응시를 한 사실은 절대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청풍; (엄청난 돈을 뿌려 감독관들을 매수해놓았다는 건데...) 생각하면서도 입 다물고 있는 청풍.

벽세황; (청풍이 놈 성격상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다.) 곁눈질로 청풍을 보고

벽세황; (하지만 거절할 경우 아버지가 청풍이를 그냥 두지는 않을 텐데...) 걱정하고

우문술; (제발 승낙해라 이놈아. 목숨이 걸린 일이다.) 역시 긴장. 주먹 꽉 쥐고. 그때

벽초천; [물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대리시험을 치라는 건 아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몸을 앞으로 좀 세우고

벽세황; (역시 대리시험에 대한 보상을 생각해두셨군.) 안도

벽초천; [네가 세황이의 명의로 과거를 봐서 급제하면 너희 부자를 면천(免賤)시켜줄 뿐 아니라...] 말을 끊고.

여전히 대답이 없는 청풍. 그러자

벽초천; (어쩔 수 없군.) + [옥령이를 너와 짝지어주겠다.]

[!] [!] [!] 청풍, 벽세황, 우문술까지 모두 놀란다.

우문술; [장주!] 놀라며 말하지만

손을 들어 우문술의 말을 막으며 청풍을 보는 벽초천.

벽세황; (옥령이를 청풍이에게 시집보내시겠다니...) 놀라고

벽세황; (아버지가 제대로 작정을 하셨구나.) 긴장하며 청풍과 벽초천을 보고.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벽옥령의 사랑스러운 모습. 연무장가의 정자에 나란히 앉아 서로 손을 잡고 있던 모습

청풍; (장주님은 내가 옥령이와 몰래 정분을 키워왔음을 알고 있었구나.) 자기도 모르게 침 꿀꺽. 그때

벽초천; [어찌 하겠느냐?] 청풍을 노려보고

움찔! 하며 정신을 차리는 청풍.

청풍;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다.) + [저는 그저 장주님의 분부를 따를 뿐입니다.] 허리 숙이며 말하고. 그러자

벽세황; [잘 생각했다!] ! 안도하며 청풍의 등을 두드리고

역시 안도하는 우문술. 반면

벽초천; [네가 제안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 무뚝뚝하게 말하며 세웠던 등을 다시 의자에 밀착시키고. 이어

벽초천; [향시가 며칠 앞이다. 돌아가서 준비를 해라.] 가라는 시늉

청풍; [예 장주님!] 포권하고.

이어 방문을 열고 나가는 청풍.

그런 청풍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벽초천.

! 닫히는 문. 이제 방안에는 벽초천과 벽세황, 우문술만이 남는다

 

#21>

문을 닫고 방에서 나오는 청풍. 문 밖은 복도. 방문 밖에는 총관 이세창이 등지고 서있다가 돌아본다.

이세창에게 고개 조금 숙이며 지나가는 청풍. 심각한 표정

복도 저편으로 멀어지는 청풍. 그걸 뒤에서 보는 이세창

이세창; (종놈 주제에 황금전장의 사위가 된다?) 질투의 표정으로 청풍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하지만 그다지 기쁜 표정은 아니군.>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청풍의 앞모습 배경으로 이세창의 생각 나레이션

이세창; (하긴 과거를 대신 보는 대가로 황금전장의 사위가 되는 게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겠지.) 비웃고

이세창;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할 비밀의 무게도 엄청날 테고...) 음침한 얼굴.

 

#22>

다시 방안. 찡그리며 생각에 잠긴 벽초천. 눈치를 보는 벽세황과 우문술.

벽세황; (아버지의 심사가 복잡하신 게 느껴진다.) 눈치 보고

벽세황; (애지중지 길러온 옥령이를 종놈에게 내주는 게 마뜩하실 리 없지.) + [죄송합니다 아버지.]

벽세황; [소자가 못나서 이런 심려를...] + 벽초천; [알면 되었다.] 무뚝뚝하게 말해서 벽세황의 말을 끊고

벽초천; [오늘 일은 절대 비밀로 하고...] [청풍이의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으니 너는 당분간 바깥출입을 하지 마라.]

볏세황;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벽초천; (옥령이를 청풍이 놈 따위와 짝지어 주어야하는 게 쓰리긴 하지만 이미 쏘아 보낸 화살이다.)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생각하고

<옥령이를 이용해서 청풍이로 하여금 대리시험을 치게 한 것은 최고의 투자가 될 것이다.> 서재 내부의 모습을 배경으로 벽초천의 생각 나레이션

 

#23>

황금전장 내의 청풍의 거처. 주변에는 하녀들이 오가고. 아이들이 뛰어논다.

청풍과 타노의 방. 밖에서 본 모습

 

[!] 찡그리는 타노. 청풍과 마주 앉아있다. 전보다 머리가 좀 더 희어졌을 뿐 외양은 큰 변화가 없다.

청풍;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아버지께 허락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치 보며 말하고.

청풍; [이토록 심각한 사안을 저 혼자 결정한 것을 용서하여주십시오.] 고개 숙이고

타노; [장주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셈이 확실한 분이다.]

타노; [그런 장주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대리시험을 치라고 하진 않았겠지?] 청풍을 지긋이 보며

청풍; [우리 부자를 면천시켜주겠다고 하셨고...] 눈치 보며 말하고

말없이 대답을 듣는 타노

청풍; [옥령아가씨를 소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얼굴 좀 붉어진 채 말하고

타노; [옥령아가씨와 짝을 지어주겠다?] 놀라고

청풍; [...] 눈치 보며 대답

타노; (대쪽같은 성격인 이놈이 대리시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가 있었군.) 쓴웃음을 지으며 청풍을 보고

타노; [보상으로 장중주(掌中珠)까지 내놓은 걸 보면 장주의 결의가 어떠한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심각한 표정을 쉬고

타노; [그러니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일...] [소장주 대신 과거를 보도록 해라.] 고개 끄덕이고

청풍;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도하며 고개를 숙이고

타노;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해라.] 엄숙

청풍; [세이경청 하겠습니다.]

타노; [향시와 전시 모두에서 절대 두각을 나타내면 안된다.] [주목을 끌게 되면 자칫 네가 대리로 응시한 게 들통 날 수도 있다.]

청풍; [...]

타노; [이등 급제인 방안(榜眼)나 삼등 급제인 탐화(探花)라면 모르지만 절대 장원(壯元)으로 급제하면 안된다.]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타노; (무슨 일이 있어도 황실과는 관계를 맺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고개 숙인 청풍을 보며 생각하고

<청풍이가 잠깐이나마 황실에 돌아가는 건 운명처럼 느껴지는구나.> 방안의 모습. 무어라 대화 나누는 청풍과 타노의 모습 배경으로 타노의 생각 나레이션

 

#24>

황금전장의 후원. 여자 무사들이 지키는 화려한 건물. 벽초천의 아내 마은혜의 거처다

 

마은혜; [무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상공?] 경악하며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자세. 거실에서 원형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벽초천과 마주 앉아 있다가 놀란 모습이다. 방안에는 두 부부만 있고. 탁자에는 다과가 차려져 있다.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초천의 본처 마은혜(馬恩惠)>

마은혜; [왕후장상에게 시집보내도 아까운 우리 옥령이를 종놈에게 주겠다구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실 수 있어요?] 분노해서 벌떡 일어난다.

벽초천; [진정하고 내 말을 마저 들으시오 부인.] 한숨

마은혜; [진정 못하겠어요.] 악을 쓰고

마은혜; [하나뿐인 딸을 종놈에게 시집보내다니... 신첩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요.] 치를 떨지만

벽초천; [부인은 지난달에 있었던 세황이의 혼담 건을 벌써 잊은 거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고

[!] 움찔! 하며 입을 다무는 마은혜.

벽초천; [상서(尙書;장관)도 아니고 일개 시랑(侍郞;부장관) 따위가 우리 황금전장의 혼담을 거절했었소.] 분노

벽초천; [그것도 천한 백정의 후손 따위에게 줄 딸은 없다는 폭언까지 하면서...] 이를 부득 갈며

! 입술 깨물며 다시 의자에 앉는 마은혜

벽초천; [천하삼대 부호가문중 하나이니 뭐니 거들먹거려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소.] 한숨을 쉬고

벽초천; [우리 집안은 여전히 권문세족들에게는 백정의 후손으로 멸시받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오.]

마은혜; [내세울 건 족보밖에 없는 버러지들이 감히...] 이를 바득 갈고

벽초천; [우리 후손들이 더 이상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세황이를 관계에 들여보내야만 하오.] 진지하게

벽초천; [그것도 음서(蔭敍;고관의 자손을 관리로 채용함)나 매관(賣官;돈이나 재물로 벼슬을 삼)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과거를 통해서!]

마은혜; [돈으로 벼슬을 사봐야 지금까지처럼 멸시를 받겠지요.] 납득하고

벽초천; [다행히 우리 집안의 종놈 중 하나가 천고의 기재인 게 확인되었소.]

벽초천; [한림학사 출신인 우문노인의 평가를 빌자면 청풍이놈이 실력은 장원급제도 문제가 안될 정도라고 하오.]

마은혜; [신첩도 그렇다고 들었어요.] 끄덕

벽초천;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겠소?] [청풍이 놈을 이용하면 세황이가 단번에 관계의 중추로 진입할 수 있는데...] 설득하고

마은혜; [알았어요!] 한숨 쉬고

마은혜; [정말 아깝고 아깝지만... 옥령이를 청풍이와 짝 지어주도록 하지요.]

벽초천; [잘 생각했소 부인!] 안도하고

벽초천; [포전인옥(抛塼引玉;벽돌을 던져 옥을 얻음. 작은 대가를 치루고 큰 이익을 얻음.)이오.]

벽초천; [딸 하나 희생해서 우리 집안을 명문가로 세울 수 있을 테니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이오.] 강렬한 표정

 

#25>

[!]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 치뜨는 벽옥령. 벽옥령은 벽초천과 마은혜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방 밖의 복도에 서있다. 바로 문 밖

<알았어요 상공! 정말 아깝고 아깝지만... 옥령이를 청풍이와 짝 지어주도록 하지요.> 마은혜가 문 안쪽에서 하는 말이 들린다.

벽옥령; (...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청풍오빠에게 시집을 보내시기로 하시다니...) 좋아 죽으려 하고

벽옥령; (고맙습니다 천지신명!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어요.) 하늘에 대고 기도하는 자세로 황홀한 표정

 

#26>

깊은 밤. 황금전장

외진 곳의 정원. 중앙에 정자가 있고. 월동문이 있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곳이다.

정자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청풍. 뒷짐 진 손에는 편지가 한 장 들려있고

<삼경에 늘 만나던 곳으로 갈게.>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는 청풍

청풍; (옥령이가 심복 하녀를 통해서 편지를 몰래 전하는 건 늘 있던 일이지만...) 좀 설레는 표정이 되고

청풍; (어째 오늘밤에 보자고 한 건 평범하게 느껴지지가 않는구나.) 생각할 때

타탁!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돌아보는 청풍. 월동문 쪽이다.

월동문으로 다람쥐처럼 달려 들어오는 벽옥령. 상기 된 표정

청풍; [옥령아.] 반색하며 마중 나가고

청풍;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날 보자고...] 말하다가 놀라고. + 벽옥령; [오빠!] 와락! 그대로 달려들어서 청풍을 끌어안는다. 청풍도 엉겁결에 마주 끌어안고

벽옥령; [들었어! 나도 들었어.] 청풍의 품에 안겨 몸부림치고

청풍; (소장주 대신 과거를 보는 대가로 자기를 나와 짝 지어주겠다고 한 얘기를 들었구나.) 깨닫고 쓰다듬고

벽옥령; [아직도...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 아버지가 나와 오빠 사이를 허락하시다니...] 눈물 글썽이며 청풍의 품에 안겨서 떨고

청풍; [너무 좋아하진 마라.] [내가 네 오빠 대신 과거 시험을 봐서 급제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으니...]

벽옥령; [싫어! 나 마음껏 좋아할 거야.] 고개 들며 응석 부리고

벽옥령; [오빠에게 과거 급제 따위는 일도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어.] 청풍의 허리를 마주 끌어안으며 할딱이고

청풍; [우문노사가 장담을 하시긴 했다.] 내려다보고

청풍;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결과가 나와 봐야...] + [!] 눈 치뜨며 기겁하고. 벽옥령이 갑자기 와락 목에 매달리며 입을 맞춘다.

청풍; [... 옥령아!] 당황하며 벽옥령을 떼어놓으려 하지만

벽옥령; [가만... 가만있어 오빠!] 청풍의 목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고

청풍; (거부할 수가 없다.) 혼망가며 마주 끌어안고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될 사이였던 것이다.> 열렬히 키스하는 두 사람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헌데

 

월동문 밖에 인기척이 있고

월동문 밖에 숨어서 안으로 보는 이세창

정자 앞에서 끌어안고 키스하는 청풍과 벽옥령의 모습이 보이고

이세창; (우라질...) 입술 깨물고. 주먹 불끈

이세창;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다.)

<장주의 고명딸 옥령이를 차지하면 나 이세창이 황금전장의 주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청풍과 열렬히 키스하는 벽옥령의 모습 배경으로

이세창; (하지만 이제는 그 기대가 백일몽이었다는 게 확인이 되었다.) 일술 깨물고

이세창; (청풍이 놈이 소장주를 대신해서 과거에 급제하면 옥령이는 완전히 내가 손을 댈 수 없는 존재가 되겠지.) 돌아서고

이세창; (허튼 기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입맛은 쓰구나.) 월동문을 등지고 걸어가며 이를 부득 가는 이세창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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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북경>

<-황금전장> 여전히 북적

 

벽세황; [고금제일검?] 놀라는 표정. 이때의 나이는 19. 건장하고 오만한 인상의 청년이 되어 있다. 정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누군가에게 묻는다.

풍뢰검왕; [그렇게까지 불리는 인물이 당금 무림에 존재한다네.] 역시 차를 마시며 끄덕인다. 풍뢰검왕은 도사 복장의 검객. 캐릭터는 196 참조. 한 두 번 나올 조연. 노인이고 상당한 고수다. 무기는 검이고

사방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연무장. 연무장 한쪽에 자리한 정자에는 벽세황과 청풍과 풍뢰검왕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벽세황이 검법 연습을 하다가 쉬는 중이고. 벽세황 앞의 탁자에는 검이 한 자루 얹혀져 있다. 풍뢰검왕은 자기 검을 차고 있고. 청풍의 나이는 이때 17. 이제 완연히 청년 분위기가 난다. 여전히 체격은 호리호리하다. 키는 보통 이상으로 크다.

벽세황; [놀랍소이다 사부!] [우리가 고금제일의 검객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니...] 흥분하며 찻잔을 내려놓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소장주 벽세황 19>

청풍; (그 인물을 말하는 거겠지.) 누군지 짐작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이청풍 17>

벽세황; [그래서 고금제일검이 누군지 어서 말씀해주시오 사부!]

풍뢰검왕; [검성(劍聖), 또는 절대검성(絶代劍聖)으로 불리는 인물일세.] 대답하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화산파 장로 풍뢰검왕(風雷劍王)>

벽세황; [절대검성!]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짐작이 갑니다.] 흥분한 표정으로

벽세황; [헌데 그토록 대단한 인물의 존재를 제자는 어째서 지금까지 몰랐을까요?]

풍뢰검왕; [이유는 검성께서 이미 삼십여 년 전에 은퇴를 했기 때문일세.]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는 검성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지.]

청풍; (다만 나는 장경각에 남겨진 기록으로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벽세황; [오래 전에 은퇴한 인물이었군요.] 아쉬운 표정

벽세황; [만일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었다면 아버지를 졸라서 사부로 초빙해봤을 텐데...] 입맛 다시고.

청풍;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는 돈이면 뭐든지 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쓴웃음을 짓고

풍뢰검왕; [검성의 지도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운이 없겠지.] 역시 쓴웃음을 짓고

풍뢰검왕; [검성을 잠깐 만나 가르침을 받은 것만으로도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벽세황; [은퇴를 했다고 하셨는데... 어딜 가면 검성을 만날 수 있습니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풍뢰검왕; [그분의 소재는 아무도 모른다네.] 고개 젓고

풍뢰검왕; [강호의 은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퇴를 한 것이라 철저하게 종적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

벽세황; [정말 아쉽습니다.] 입맛 다시고

벽세황; [어디 있는지 알기만 하면 기필코 검성을 사부로 모셔올 수 있었을 겁니다.] 아쉬워하고

이하 나레이션

 

<-검성 섭장천(葉長天)! 일갑자 전부터 천하무적의 위업을 유지해온 절대고수다. 사문이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섭장천과 맞서 삼초(三招)를 견딘 인물이 없다.> 다른 작품의 철면무제 섭장천 캐릭터의 인물이 검을 늘어트리고 있고. 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검을 겨누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절대삼검(絶代三劍)으로 알려진 섭장천의 검법은 신묘하면서도 막강하여 고금의 어떤 검법도 비견되지 못한다고 한다.> 위 장면의 연속. 무릎을 꿇고 머리 조아리는 사람들의 모습. 모두 피를 토하고 있고. 섭장천은 검으로 그들을 겨누고 있다.

 

청풍; (내가 읽은 기록대로라면 검성은 이미 검이 필요 없는 무검(無劍), 살기로 적을 살상할 수 있는 심검(心劍)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청풍; (그토록 대단한 인물이라면 나도 한 번 만나보고 싶구나.)

풍뢰검왕; [비록 은퇴하셨지만 검성이란 존재 때문에 지난 삼십여 년간 무림은 평화를 유지해올 수 있었다네.]

벽세황; [어떤 야심가라도 검성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습니다.]

풍뢰검왕; [그래서 소소한 다툼은 있었어도 대량의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충돌은 없었네만...] 말끝을 흐리고

벽세황;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까?] 눈 번뜩

풍뢰검왕; [혈세사패라는 이름은 들어봤는가?] 청풍과 벽세황을 번갈아 보며

벽세황; [사부님도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제가 무림의 은원에 엮이는 걸 금해오셨습니다.] 고개 젓고

벽세황; [그래서 강호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풍뢰검왕; [황금전장을 이어야하는 소장주가 굳이 무림과 깊이 엮일 필요는 없겠지.] 끄덕이고. 이어

벽세황; [혈세사패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풍뢰검왕; [지옥갱! 백살파! 환마루! 쾌활림!] [몇년전부터 돌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세력들을 혈세사패라 부른다네.]

벽세황; [혈세사패라는 이름만으로도 그자들이 좋은 인간들은 아님을 알 수 있겠습니다.] 눈 번뜩이고

풍뢰검왕; [결코 좋은 인간들이 아니지!]

풍뢰검왕; [그자들은 일단 시비가 붙으면 상대 세력을 기필코 몰살을 시켜오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어.]

풍뢰검왕; [지난 몇 년간 혈세사패에게 멸문지화를 당한 문파나 가문이 백 개를 훌쩍 넘길 정도지.]

벽세황; [저런 악독한 놈들이 있나?] 분노

청풍도 미간을 모으고

벽세황; [검성이야 은퇴했으니 그렇다 치고..] [관부나 무림의 명문대파들은 왜 혈세사패의 만행을 보고만 있는 것입니까?]

풍뢰검왕; [관부는 무림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고...]

풍뢰검왕; [우리 화산파를 비롯한 구대문파에게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네.] 한숨

청풍; (구대문파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변고가 생긴 모양이로구나.) 눈 번뜩

벽세황; [사부님이 보시기에 지금의 제 무공은 어느 정도입니까?]

풍뢰검왕; [소장주의 무공 수준이라...] 난감하고

벽세황; [제자는 철이 든 이래 무수한 영약을 먹었고 또 사부님처럼 뛰어난 기인명숙들을 초빙해서 무공을 배워왔습니다.]

벽세황; [최소한 제자의 지금 무공수준은 무림을 통틀어도 서열 백위 안에 들지 않을런지요?] 으쓱

청풍; (소장주의 저 근거 없는 자존망대(自尊妄大;잘난 체)...) 쓴웃음

풍뢰검왕; [무림에서의 서열을 메긴다는 건 난감하고도 허망한 일이네만...] 쓴웃음

풍뢰검왕; [화산파의 장로이기도 한 노부조차 무림 서열 백 위 안에 든다고는 장담하지 못한다네.]

벽세황; [그렇습니까?] 실망한 표정

청풍; (이번에 소장주가 사부로 초빙한 풍뢰검왕은 무공 실력을 떠나 솔직한 성격이어서 존경할만한 분이다.) 끄덕이며 풍뢰검왕을 보고

풍뢰검왕; [무림 서열 백위 안에 들고 싶은가?] [그럼 먼저 노부를 검법으로 이겨야할 걸세.] 웃고

청풍; (소장주를 도발하여 의욕을 고취시키기도 하고...) 웃고

벽세황; [좋습니다!] 벌떡 일어나고. 앞에 놓여있던 검을 잡고

벽세황; [잠시 쉬었으니 다시 한 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검을 잡고 정자에서 연무장으로 나가고. 풍뢰검왕도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고

풍뢰검왕; [자네는 무공을 배워볼 생각이 없는가?] 청풍의 옆을 지나가며 묻고

청풍; [노사께서 보시다시피 저는 무공 수련에는 적합하지 않은 약골인지라...] 웃으며 고개 젓고

풍뢰검왕; [약골이라...] 쓴웃음 지으며 지나가고

풍뢰검왕; [아쉽구먼. 아쉬워.] 혀를 차며 정자에서 나간다.

청풍; (내가 일부러 무공을 익히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구나.) 생각할 때

연무장 가운데에서 마주 서며 서로 검을 겨누는 풍뢰검왕과 벽세황. 이어

벽세황; [차핫!] 도약하며 검을 휘두른다

마주 검을 내밀어 막는 풍뢰검왕

! 카캉! 날고 뛰며 풍뢰검왕을 공격하는 벽세황. 사납고 격렬한 기세. 하지만

여유있게 벽세황의 공격을 막는 풍뢰검왕

청풍;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다.) 차를 마시며 그걸 보고

청풍; (소장주는 글공부보다 무공 수련을 더 좋아하고 재주도 있지만...)

<무공을 배우는 재주도 아주 특출 난 게 아니다.> 벽세황이 풍뢰검왕을 공격하는 것을 배경으로

쓴웃음

청풍; (글공부도 무공도 아니면 일찌감치 장사 기술이나 익히는 게 최선인데...) 쓴웃음 지으며 차를 마시고. 시선은 연무장을 향한 채

청풍; (장주님의 욕심 때문에 소장주의 인생도 참 피곤하구나.)

벽옥령; [청풍오빠가 보기에도 세황오빠의 검법은 영 아니지?] 갑자기 청풍의 옆에서 속삭이는 벽옥령. 뒷짐 짚고 몸을 앞으로 숙여서 청풍의 귀에 대고 말하며 연무장을 보고 있다. 이때 벽옥령의 나이는 16.

청풍; [아가씨!] 고개 조금 돌리며 찻잔을 내려놓고

벽옥령; [또 아가씨래!] 눈 흘기며 청풍의 옆 자리에 앉고. 의자를 청풍의 옆으로 붙인다.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옥령 십육세>

벽옥령; [단 둘이 있을 때는 이름을 부르기로 약속했잖아.] 옆으로 옮긴 의자에 앉아서 눈 흘기고

청풍; [미안하다.] 억지로 웃고

청풍; (무공 수련의 자질은 아가씨... 옥령이가 타고 났다.) 자기 옆에 붙어 앉는 벽옥령을 보며 생각하고

청풍; (나 정도는 아니어도 아무리 어려운 것도 쉽게 쉽게 익혀내는 재주를 지녔다.)

청풍; (만일 무공 연마에 전념하면 옥령이야말로 스무 살 전에 무림 백대고수 안에 들 가능성이 있다.) 생각할 때

벽옥령; [솔직하게 말해봐.] 앞을 보며

벽옥령; [세황오빠 영 아니지?] 청풍과 바짝 붙어 앉아서 앞을 보며 한숨 쉬고

청풍; [네 오빠는 황금전장의 후계자다.] [무공이 호신술 수준에만 이르러도 충분해.] 우회적으로 말하고

벽옥령; [결국 세황 오빠는 학문도 무공도 적성이 아니라는 얘기네.] 한숨 쉬고

청풍; [대신 셈이 빠르고 수완이 좋으니 황금전장을 물려받는 데는 큰 문제없을 것이다.]

벽옥령; [아버지도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는데...] 한숨

청풍; [머잖아 장주님도 깨닫는 게 있으실 것이다.] ! 은근히 손을 잡고

움찔! 하는 벽옥령

벽옥령; [... 그렇겠지?] 얼굴 붉히며 억지로 웃고. 시선을 앞으로 향한 채

청풍; (이러면 안된다는 거 알지만...) 곁눈질로 그런 벽옥령의 옆 얼굴을 보고

청풍; (자랄수록 예뻐지는 옥령이에게 마음이 기우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소리없이 한숨 쉬고

청풍; (글공부 때문에 내원을 드나들다 보니 이 말괄량이를 자주 보게 되었고...)

<결국 일 년 전 이 말괄량이로부터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고 몰래 사귀게 되었다.> 건물 뒤의 구석 진 곳에서 청풍의 품에 안겨 좋아하는 15살쯤의 벽옥령. 청풍도 당황하지만 벽옥령을 끌어안고

청풍; (주인집 고명딸과 종...) (우리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인데...) 벽옥령의 손을 잡고 연무장을 보며 한숨

<뻔한 결말이 보이는 데도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구나.> 정자안의 광경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헌데

 

#16>

연무장 근처의 높은 건물. 맨 꼭대기 창가에 누군가 서서 원통형 망원경으로 연무장을 보고 있다. 벽초천이다.

벽초천이 보고 있는 망원경에 잡히는 장면. 정자 안에 나란히 앉아있는 청풍과 벽옥령의 모습이다.

서로 잡고 있는 손이 크로즈 업 되고

벽초천; [...] 뭔가 생각하며 망원경을 내리고. 불쾌한 표정이고. 그때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겠소이다 장주.] 뒤에서 들리는 음성. 돌아보는 벽초천

우문술; [소장주의 지금 수준으로는 도저히 과거에 응시할 수 없소이다.] 탁자에 앉아서 종이 뭉치에 적인 글을 읽으며 한숨 쉬는 노인. 전형적인 서생. 캐릭터는 186. 좀 더 마른 것으로 묘사. 황금전장 장경각 총사서 우문노인이다. 본명은 우문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장경각 총사서 우문술(宇文述)>

우문술; [문장이 장황하고 서술이 화려하기만 할뿐 일관성과 논리는 찾아볼 수가 없소이다.] ! 종이 뭉치를 내려놓고. 다른 종이뭉치도 탁자에 있다.

벽초천; [지금 세황이의 수준은 어느 정도요?]

우문술; [전시(殿試;황제 앞에서 치루는 과거)는 언감생심이고...] [향시(鄕試;지방에서 치르는 예비 과거)도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소이다.] 고개 젓고

우문술; [아주 외진 변방에서 치르는 향시라면 어찌 어찌 급제할 수도 있겠지만...] 말 꼬리 흐리고

벽초천; [그건 아니 되오.] 고개 강하게 젓고

벽초천; [세황이는 반드시 직례(直隷; 황실이 직접 관할함)에서 급제해야만 하오.] [그래야 우리 황금전장이 명문가로 발돋음 할 수 있소.]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말하고

난감한 우문술

벽초천; [우리 황금전장은 삼대에 걸쳐 부를 쌓아 천하삼대 부호가문으로 꼽히게 되었소.] 자부심에 찬 표정

벽초천; [하지만 원래 천한 신분이었던 탓에 명문거족들에게는 홀대와 멸시를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오.] 치욕을 느끼는 표정

벽초천; [당연히 유서 깊은 가문과는 혼인도 불가하고...] [이런 수모에서 벗어나려면 세황이가 보란 듯이 과거에 급제하는 수밖에 길이 없소.] 주먹 불끈

우문술; [노부도 소장주를 가일층 혹독하게 가르치겠으나...]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 꼬리를 흐리고. 그때

다른 종이뭉치를 흘낏 보는 벽초천

벽초천; [청풍이놈의 답안지는 어떻소이까?]

우문술; [청풍이야 더 말할 것도 없소이다.] 종이 뭉치를 집어들고

우문술; [그놈에게는 향시가 아니라 전시의 시험문제를 주었는데...] [지난번 전시에서 장원급제한 놈의 답안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소이다.]

벽초천; [그렇소?] 눈 번뜩

우문술; [출신이 천해서 그렇지 청풍이는 과거에 응시하기만 하면 장원급제가 당연한 수준이오.] 감탄하며 종이뭉치의 글을 읽고

벽초천; (응시만 하면 장원급제라...) 뭔가 생각하는 벽초천.

 

#17>

경치 좋은 산.

휘익! 그 산을 날아가는 노인. 바로 검성 섭장천. 여전히 점쟁이 차림

섭장천의 손에는 편지가 한통 구겨진 채 들려있다.

<검성 섭장천노사에게 문안 인사 올리겠소이다.> 날아가는 섭장천의 모습 배경으로 편지의 내용 나레이션

<섭노사의 외아들 섭무궁(葉無窮)의 거처가 천주산(天柱山) 은일곡(隱逸谷)에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소이다. 그리하여 조만간 인사하러 갈 예정이라 부친이신 섭노사께 미리 통보하게 되었소이다. -지존(至尊)> 편지의 내용

섭장천; (노부는 명성이 높아진 만큼 원수도 많이 생겼다.) 심각한 표정으로 날아가고

섭장천; (노부야 칼날 위의 인생이라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만...) (어렵게 얻은 아들 무궁이의 안위에 대해서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섭장천; (그리하여 세상과 떨어진 은일곡에 무궁이의 거처를 마련해주었고... 노부는 세상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은퇴를 했었다.)

섭장천; (그후 무궁이는 짝을 만나 딸까지 하나 얻고 행복하게 살아왔거늘...) 초조한 표정이고

섭장천; (지존이라는 놈이 은일곡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섭장천; (필경 노부에게 원한이 있는 자일 텐데...) (부디 노부가 도착할 때까지 별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쐐액! 미사일처럼 날아가고. 하지만

[!] 눈 부릅뜨는 섭장천

멀리 산 너머에서 연기가 치솟는다

섭장천; (은일곡 쪽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눈 부릅

<한 걸음 늦은 것인가?> 쐐액! 미사일처럼 산을 날아 넘는 섭장천.

 

#18>

무릉도원같이 경치 좋은 계곡. 수십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제법 큰 장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건물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남자들은 살육당하고 여자들은 강간당하는 중이다.

복면을 쓴 자들이 건물에 불을 지르고

[아악!] [크악!] [... 이 마귀새끼들이... 아악!] [... 살려주세요!] 저항하는 남자들을 죽이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나이 든 여자나 어린 아이들을 죽이고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는 자들도 있다.

복면인1; [증거를 없애라!] [전부 죽이고 불 태워라!] 마당 끝에 서서 외치는 복면인. 이자가 리더다. 그자 뒤에는 두 개의 나무 기둥이 X자로 세워져 있고 그곳에 일남일녀의 시체가 매달려 있다. 둘 다 30대 후반쯤인데 지독한 고문을 당한 모습이고 특히 여자는 강간 당한 후 후 죽은 무참한 모습이다. 섭장천의 아들인 섭무궁과 섭무궁의 아내다. 마당에는 남녀노소 수십 명의 시체가 널려있고 한쪽에서는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는 놈들도 있다. 사람들을 마당으로 끌고 오는 자들도 있고.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크로즈 업

[아흑!] [아악!] 한쪽에서는 강간당하고 있는 여자들이 비명 지르고

복면인1; [개새끼 한 마리도 살아있으면 안된다.] [오늘 은일곡에서 일을 벌인 게 누군지 섭장천이 알면 안된다.] 외치고

[존명!] [전부 죽여라.] 푹푹! 으악! 아악! 끌고 온 남녀들을 죽이는 자들.

[으헤헤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통령(統令)!] [이년은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젊은 여자들을 단체로 강간하는 자들이 돌아보며 웃고

복면인1; [발정 난 새끼들!] [이런 상황에서도 재미를 보고 싶냐?] 혀를 차고. 그때

[통령님!] [보고 드립니다.] 휘익! ! 두 명의 복면인이 날아들고. 돌아보는 복면인1

복면인들; [섭무궁의 딸 섭아연(葉雅娟)의 행방은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년은 이미 은일곡을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포권하며 보고하는 복면인들

복면인1; [그럴 수도 있군. 이토록 철저하게 수색했음에도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끄덕이고

복면인1;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으니 철수한다.] [모두 죽여라!] 주변의 다른 복면인들에게 외치고

[존명!] [죽여라!] [크악!] [아악!] 학살이 자행된다. 사람들을 무차별 죽이는 복면인들. 강간당하던 여자들도 죽이고.

복면인1; [떠나기 전에 건물들을 남김없이 불 태워라. 섭무궁의 딸년이 혹시 건물 안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 자행되는 학살을 보며 외치고. 바로 그때

번쩍! 슈학! 검의 형태를 한 기운들이 날아들어 복면인들을 궤뚫는다

[크악!] [!] [케엑!] 투명한 검의 형상에 궤뚫려 죽으며 비명 지르는 복면인들

복면인1; [! ... 심검(心劍)이다!] + 복면인들; [이게 무슨...] 기겁

[크악!] [케엑!] 장원 내의 다른 복면인들도 모두 검의 형상에 궤뚫려 몰살당한다.

복면인1; [검성... 검성이 벌써 왔다.] + 복면인들; [... 피해라!] [히익!] ! 쐐액! 공포에 질려 날아오르고. 하지만 그 직후

[크악!] [케엑!] 퍼퍽! ! 허공에서 비명 지르며 퍼덕이는 복면인1과 보고 하러 왔던 복면인들. 모두 투명한 검기에 머리나 가슴이 궤뚫린다

털석! 퍼억! 나뒹구는 복면인1과 다른 복면인들. 주변의 모든 복면인들도 이미 죽었고. 그 직후

휘익! 선풍을 일으키며 섭무궁 부부가 죽은 현장에 나타나는 섭장천. 몸에서 수많은 검의 형상들이 일어나 있고. 하지만

섭장천; [... 이런 짓을...] 현장을 보고 분노하는 섭장천

무차별 학살당한 남녀노소. 젊은 여자들은 발가벗겨진 채 죽었고

기둥에 매달려 죽어있는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섭장천; [용서할 수 없다!] [오늘 일에 책임이 있는 놈은 세상 끝까지 쫓아가 척살하고 말겠다.] 이를 갈며 섭무궁 부부의 시체로 다가가고

슈욱! 스악! 투명한 검의 형상들이 섭무궁과 겁무궁 아내의 손을 묵고 있던 밧줄들을 베어버리고

스륵! 휘익! 바닥으로 추락하는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하지만

눈 부릅뜨며 다가오는 섭장천. 그러자

스륵! 바닥에 처박히기 전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천천히 내려앉아서

스윽! ! 바닥에 나란히 눕혀지는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쳐들렸던 팔도 바로 내려지고. 도포 같은 겉옷을 벗으며 다가오는 섭장천

섭장천; [미안하구나 아가야.] 탄식하며 알몸인 며느리의 시체에 자신의 겉옷을 덮어주려는 섭장천

섭장천; [네가 시집을 잘 못 와서 이런 끔찍한 일을 겪었구나.] 옷으로 며느리의 시체를 덮어주며 탄식하고. 그때

움찔! 섭무궁의 몸이 조금 움직이고. 돌아보는 섭장천

섭장천; [무궁아!] ! 손을 아들의 가슴에 누르고

! 섭장천의 손바닥에서 빛이 일어나고

[쿨럭!] 피를 토하며 눈을 뜨는 섭무궁. 눈에 초점은 없고. 이어

섭무궁; [... 아버지!] 초점 없는 눈으로 올려다보고

섭장천; [원수... 원수가 누구냐?] 이를 갈며 묻지만

섭무궁; [아연이는...] 대답 대신 다른 소리를 한다

섭장천; [아연이! 아연이는 무사한 것이냐?] 흥분

섭무궁; [사당...] 거기까지 억지로 말하고

섭장천; [아연이를 사당에 숨겼느냐?] 급히 묻지만. 그 직후

털썩! 고개 옆으로 떨구는 섭무궁. 절명했다.

섭장천; [무궁아!] ! 손바닥으로 더 강한 힘을 주입시키지만

주르르! 입과 코로 피를 흘릴 뿐 반응이 없는 섭무궁

섭장천; [영면하거라 아들아.] 손을 떼고

섭장천; [너와 네 처를 해친 자들은 아비가 반드시 씨를 말릴 것이다.] 주르르! 눈물 흘리며 일어나고. 이어

섭장천; [아연아!] 휘익! 날아오른다.

섭장천; [할애비가 왔다!] 장원 안쪽으로 날아간다.

 

#19>

장원의 외진 곳에 자리한 사당 건물. <祠堂>이라는 편액이 처마 아래 걸려있다. 사당 주변에도 복면인들 몇이 보이지 않는 검에 궤뚫려 죽어있다.

화악! 돌풍을 일으키며 사당 앞으로 날아 내리는 섭장천

두근! 두근! 섭장천의 귀에 들리는 심장 뛰는 소리

섭장천; (심장 뛰는 소리!) 눈 부릅

섭장천; (사당의 바닥이다.) 소리 없이 기합 지르고. 그러자

부악! 섭장천의 몸에서 수많은 검의 형상이 폭풍처럼 터져나가고.

! 그 검의 형상에 휩쓸린 사당 건물이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마치 강력한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퍼퍽! 후두둑! 콰아! 사당 건물이 알거에 쓸려나가며 돌을 깐 사당 바닥이 나타나고

눈 부릅뜨며 드러난 사당 바닥으로 다가가며 손바닥을 내미는 섭장천.

섭장천의 손바닥이 벼락에 휘감기고. 그러자

! ! 사당 바닥을 이루고 있던 돌 판들이 위로 터져 오르고

콰드드! 그 아래쪽에서 관이 하나 솟아오른다. 상당히 큰 중국식의 관이다.

! ! 다시 떨어지는 돌판 잔해들 배경으로 1미터쯤 허공으로 떠오르는 관

! 섭장천의 손짓에 따라

! 바닥에 내려앉는 관. 다가가는 섭장천

덜컹! 관의 뚜껑을 여는 섭장천

! 관 안에 눈 감고 누워있는 18세 가량의 절세미녀. 잠옷차림인데 벌어진 상의 사이로 젖가슴 사이에 나비 문양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나비 문양은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므로 반드시 묘사. 이 소녀는 섭장천의 손녀인 섭아연. 좀 도도한 인상. 캐릭터는 061A.

섭장천; [아연아!] 떨리는 손을 관 안의 섭아연의 얼굴 가까이 가져가고. 그러자

미약하게 숨을 쉬는 섭아연의 얼굴

섭장천; (호흡이 미약하고 심장 뛰는 것도 느리다.) 안도하며 손을 거두고

섭장천; (다친 건 아니고... 무궁이가 아연이의 수혈을 짚어놨기 때문이다.) 파팟! ! 섭아연의 가슴 혈도를 몇 군데 빠르게 찍는다. 그러자

섭아연; [!] 퍼덕! 몸을 떨며 깨어나고

섭장천; (내가 구하러 올 걸 기대하고 아연이를 숨겼겠지.) 손을 거두고. 그때

섭아연; [으으으...] 신음하며 눈을 뜨고

섭장천; [정신이 드느냐 아연아? 할애비다.] 관에서 섭아연을 나오게 하려고 상체를 부축하면서 묻고

섭아연; [으으으...] 눈에 초점이 없는 채로 벌벌 떨며 부축되어서 상체를 완전히 일으키며 신음하는데

섭장천; [할애비가 왔으니 이제 안심해라.] ! 두 팔로 섭아연을 관에서 안아서 꺼내고.

섭장천; [네 부모를 해친 것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 [!] 두 팔로 섭아연을 안은 채 말하다가 눈 부릅뜨고

섭아연; [끄윽...] 눈이 돌아간 채 신음하며 고개를 젖히고. 간질환자처럼 벌벌 떨며 입을 벌린 채 꺽꺽거리고.

섭장천; [아연아! 왜 그러느냐?]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급히 외칠 때

화악! 벌린 채 꺽꺽 대던 섭아연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확 뿜어져서 섭장천의 얼굴을 덮어씌운다. + 섭장천; [!] 불시에 뿜어진 연기를 얼굴에 덮어쓰며 눈 부릅뜨는 섭장천

화르르! 연기에 휩쓸린 섭장천의 머리카락에 불이 붙고

! 강력한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하는 섭장천

섭장천; [...!] 콰당탕! 섭아연을 떨구며 바닥에 뒤로 나뒹굴고.

털썩! 역시 나뒹구는 섭아연. 이하 섭아연은 인사불성.

섭장천; [... 독을 입에 머금고 있었구나!] 현기증에 휩싸인 채 바닥에 나뒹굴어 벌벌 떨고. 고개를 돌려 섭아연을 보며. 섭아연은 입에서 여전히 연기를 뿜어내며 벌벌 떨고 있고. 간질환자처럼. 바로 그 직후

화악! 부악! 세 방향에서 섭장천을 공격하는 세 놈. 바로 혈세사패의 두목들인 지옥혈부, 백일살신, 환마루주다. 지옥혈부는 물론 거대한 도끼를 내리쳐오고 백일살신은 양손에 찬 갈쿠리를 동시에 긋는데 갈쿠리에서 1미터가 넘는 섬광이 내뻗친다. 환마루주는 네 개의 수레바퀴만한 톱니를 몰고 들이닥친다. 수레바퀴들은 허공에 뜬 채 환마루주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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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의성의 딸

 

 

 

두 사람은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하여 사흘째 저녁 무렵에는 멀리 남악(南岳) 형산(衡山)이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헌데 형산에 도착한 두 사람은 거인같이 우뚝 솟아있는 어느 산봉우리 밑에서는 불기둥이 치솟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남산의성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자신의 집 근처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악소궁은 안색이 하얗게 변하여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 이미 늦어 버렸구나!]

막비강은 그런 그녀를 급히 부축했다.

[누님! 진정하십시오. 집에 불이 나긴 했지만 영존까지 해를 입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소제가 먼저 달려가 볼 테니 누님은 천천히 오십시오!]

악소궁을 위로한 막비강은 곧 팔보간섬을 극한까지 전개하여 불길이 치솟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어둠의 장막이 남악 형산 위로 드리워지고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쐐액!

문득 한 줄기 포물선이 밤하늘을 가르더니 한 명의 청년이 지면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물론 그 청년은 막비강이었다.

막비강이 내려선 앞쪽에는 잿더미가 되어 버린 초가집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남산의성 악불령의 거처는 몇 채의 모옥(茅屋;초가집)으로 이루어진지라 불이 붙자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해 버린 것이다.

불타 버린 초가집의 잔해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돼지, 닭 등 가축이 불에 타 죽으며 내는 고약한 악취만 풍길 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보아하니 흉사(凶邪)들은 일을 끝내고 이미 현장을 떠난 것이 분명했다.

막비강은 남산의성 악불령과 그의 식솔들이 변을 당한 것같아 자신도 모르게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는 오른 손을 저어 한 줄기 광풍을 뿜어냈다.

화르르!

그러자 그때까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던 잔불과 연기가 모두 꺼져 버렸다.

막비강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잿더미 속으로 들어가 타다 남은 잔해들을 뒤척여 보았다. 남산의성 악불령 일가의 유골이나마 찾을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타 죽은 돼지와 닭 몇 마리만 나올 뿐 사람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악 선배님 일가가 도피하면서 적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고의로 불을 지른 게 아닐까? 아니면 흉도들이 사람들을 생포해 간 다음 화풀이로 잿더미를 만들어 버린 것일까?)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며 잿더미가 된 집 근처에서 악소궁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악소궁은 나타나지 않았다.

헌데 막비강이 불안해 하고 있을 때였다.

[크하하하하!]

돌연 멀리서 심맥을 진탕시키는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려 왔다.

막비강은 이 웃음소리의 주인이 남산의성의 원수들 중 한 명일 것이라 단정하였다. 그리고 흉수가 이제야 나타난 것으로 보아 남산의성이 화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적이 안심이 되었다.

이에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지금 그가 여길 떠나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면 뒤따라올 악소궁이 적의 손에 잡힐 것은 뻔한 일이다.

[카카카!]

막비강이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음산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첫 번째 웃음소리는 십여 리 밖에서 들렸는데 두 번째 웃음소리는 바로 지척에서 들린다. 그만큼 웃음소리의 주인의 경신술은 대단한 것이었다.

쐐액!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막비강은 한 줄기 흑선(黑線)이 밤하늘을 유성처럼 가르며 날아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우렁찬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거 참 시끄럽구만!]

그의 이 음성은 맑고 우렁차 음산한 웃음소리를 완전히 제압했다.

[크크크! 어린놈이 제법이로구나!]

화라락!

직후 음산한 일갈과 함께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장내에 내려섰다.

그자는 다른 곳도 아니고 잿더미 위에 내려서면서도 먼지 한 점 일으키지 않았다. 이같은 경공신법은 등봉조극(登峯造極)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하오기를 능가하는 고수다!)

막비강은 긴장하며 나타난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차림은 시골 문사 차림인데 긴 수염을 가슴까지 기르고 있었다. 머리는 백발이 희끗희끗한 반면 안색은 불그레한 것이 한창 나이의 젊은이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눈에서는 푸르스름한 녹광(綠光)이 번져 나와 사이하고 괴괴한 인상을 풍겼다.

녹안(綠眼)의 괴인은 바닥에 내려서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웃음소리를 압도한 음성의 주인이 뜻밖에도 약관의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갔느냐?]

녹안괴인은 막비강의 아래 위를 살펴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막비강은 나타난 사람이 소리장도 강용이 아니면 백독서생 이량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생소한 얼굴인지라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요?]

녹안괴인은 막비강을 응시하며 말했다.

[너는 악불령 집안사람이냐?]

[집안사람일 수도 있고 집안사람이 아닐 수도 있소.]

녹안괴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악불령은 어딜 갔느냐?]

막비강은 시종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건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오.]

막비강의 무례한 대답에 녹안괴인은 화난 표정을 지었다.

[애송이놈! 보아하니 빨리 죽는 게 소원인 모양이로구나.]

막비강은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누군지부터 말하시오. 그래야만 당신이 나와 싸울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소.]

그러자 녹안괴인은 음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낄낄낄! 네가 감히 노부 낙성신마(落星神魔)에게 싸움을 청할 생각이냐?]

[인마(人魔)가 아니라 신마(神魔)란 말이지?]

막비강은 상대가 천수인마가 아닐까 생각했다가 예상이 빗나가자 검미를 모았다.

[헌데 자칭 신마 양반! 당신은 여기 무엇 하러 왔소?]

[요놈이 영특하게 생겨서 봐주려고 했더니...!]

낙성신마라는 자는 대답하려다 말고 갑자기 옆의 울창한 고목 쪽을 홱 돌아보며 외쳤다.

[거기 어떤 쥐새끼냐?]

그자는 나뭇가지 위에서 경미한 음향이 이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막비강도 악소궁이 도착한 것으로 생각하고 급히 외쳤다.

[누님이십니까?]

그러자 나뭇가지 위에서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전해 왔다.

[! 누가 네놈의 누님이란 말이냐?]

화락!

이어 하나의 인영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바로 소리장도 강용이었는데 그자의 옆구리에는 혈도가 짚인 악소궁이 축 늘어진 채 끼어 있었다.

(누님이 어떻게 그에게 생포되었지?)

악소궁이 강용에게 잡힌 것을 본 막비강은 내심 놀라면서도 버럭 노성을 질렀다.

[악적! 빨리 그분을 내려놓아라!]

강용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네놈은 누구냐?]

이년의 세월이 지난 탓에 강용은 막비강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넌 그런 걸 물을 자격이 없다. 빨리 사람이나 내려놓아라!]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네놈도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이겠지만....]

[잔말이 많다!]

!

막비강은 강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번개같이 덮쳐가며 그자의 안면을 향해 일장을 격출했다.

[!]

강용은 안면을 향해 뻗어 오는 막비강의 벼락같은 일장에 기겁하며 피하려 했다.

하지만 사실 그자의 안면으로 날린 막비강의 이 일장은 허초였다.

!

막비강은 강용이 깜짝 놀라 허둥대는 틈을 타 그자의 겨드랑에서 악소궁을 낚아채 재빨리 후퇴했다. 그의 이 같은 동작은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내놔라!]

꽈릉!

얼떨결에 악소궁을 빼앗긴 강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막비강에게 일장을 격출했다.

그때였다.

[잠깐!]

낙성신마라고 자칭한 녹안괴인이 가볍게 손을 들어 강용의 일장을 봉쇄했다.

!

강용의 공력도 매우 심후한데 의외로 녹안괴인이 아무렇게나 휘저은 일장에 비틀거리며 세 걸음이나 후퇴했다. 그는 놀란 음성으로 녹안괴인에게 물었다.

[귀하는 누군데 노부의 일을 간섭하는 거요?]

순간 녹안괴인은 두 눈에서 섬뜩한 녹망을 발산했다.

[낄낄낄! 감히 내 앞에서 노부라 자칭하다니...! 네놈은 도대체 몇 살이나 처먹었느냐?]

녹안괴인의 말에 강용은 당황했다. 그는 비로소 상대가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인물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기회다!)

막비강은 녹안괴인이 강용에게 눈을 부라리는 틈을 타 재빨리 몸을 날렸다.

헌데 막비강이 막 몸을 날린 그 순간이었다.

[흐흐! 어림없다!]

꽈릉!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줄기 강맹한 경풍이 막비강의 면전을 향해 엄습해 왔다.

막비강은 흠칫 놀라며 일장을 마주쳐 냈다.

!

다음 순간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지며 한 줄기 선풍이 지면으로부터 모래먼지를 대동한 채 허공으로 뻗어 올랐다.

막비강은 기습해 온 상대의 공격에 제지당해서 다시 원래 위치에 내려섰다.

화라락!

직후 또 다른 인영이 그의 앞으로 날아 내리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애송아! 네놈이 노부의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번에 나타난 인물은 얼굴이 유달리 하얘 음침한 인상을 주는 중년문사였는데 다름아닌 육요(六妖) 중 백독서생 이량이었다.

상대가 백독서생 이량인 것을 알아본 막비강은 화가 치밀어 악소궁을 한쪽에 내려놓으며 버럭 노성을 질렀다.

[노독물! 너도 내 일장을 받아 보아라!]

꽈르릉!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막비강의 손바닥에서 강맹무비한 장풍이 노도같이 뻗어 나갔다.

백독서생 이량은 막비강의 막강한 장풍에 안색이 대변하며 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러면서 소리쳐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자 역시 막비강을 오랜 만에 만난지라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바로 천면신룡이시다!]

막비강은 사납게 외치며 재차 장력을 날렸다.

[이제 보니 네놈이...! 커억!]

! 후두둑!

백독서생 이량은 경악성을 토해내다가 막비강이 다시 격출한 일장에 강타당해 나뒹굴었다. 육요 중 한 명인 백독서생조차 지금의 막비강에게는 적수가 못되는 것이다.

막비강은 바닥에 나뒹굴어 피를 토하고 있는 백독서생 이량을 노려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하하! 노독물! 오늘 같은 날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놈이 정말 광오하군!]

또 다른 사람이 허공에서 음험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받았다.

화라락!

그 사람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장내에 내려섰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덮여 나이를 알 수가 없는 노인인데 양팔이 유난히 길고 검었다.

(이자가 우내사마 중의 천수인마겠구나!)

막비강은 새로 나타난 노인의 정체를 간파하고 내심 긴장했다.

그때 장내에 내려선 노인, 천수인마가 뒷짐을 지며 말했다.

[후학 중에 너같은 고수가 있다니 대견하도다! 해서 특별히 삼 초를 양보해 줄 테니 실력을 발휘해보거라.]

막비강도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늙은이가 바로 악명높은 천수인마겠구나. 헌데 노마는 정말 나의 삼 장을 반격하지 않고도 받아낼 자신이 있느냐?]

천수인마는 막비강이 단번에 자신의 신분을 간파하자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 노부가 누군지 알아보다니 기특한 놈이로다!]

바로 그때였다.

[! 당신은 천수인마 사마(司馬) 형 아니오?]

자칭 낙성신마라 하던 녹안괴인이 천수인마라는 말을 듣고는 다가왔다.

[으핫하하! 낙성신마 사공(司空) 형도 왔구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이십 년도 더 되었군 그래.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소.]

천수인마도 비로소 낙성신마를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한눈에도 그자가 낙성신마를 꺼려함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본 막비강은 웃으며 말했다.

[하나는 신마(神魔)고 하나는 인마(人魔)이니 당신들 이마(二魔)가 먼저 고하를 겨루어 보시오. 이긴 사람을 내가 상대해 주겠소!]

막비강은 그렇게 말하며 악소궁에게 다가가 재빨리 그녀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정신을 차린 악소궁은 장내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사색이 되었다. 소리장도 강용과 백독서생 이량, 거기에다가 우내사마 중 두 사람이나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절망의 표정이 되어 막비강에게 말했다.

[아우! 아우는 어서 여길 빠져나가게. 누이는 선친을 따라 지하로 가겠네.]

막비강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누님은 무슨 그런 말을 하십니까? 영존께서는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분의 뒤를 따라 지하에 가겠다는 겁니까?]

[집이 모두 타 버린 것으로 보아 가친도...!]

[뿐만 아니라 돼지도 몇 마리 타 죽었더군요.]

막비강의 말에 악소궁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네 말은 가친께서 살아 계신다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빨리 도주해야 하네.]

[조금 기다려 보십시다. 영존께서 왜 이런 계략을 세워야 했는지 저자들의 대화에서 알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막비강은 악소궁이 무사히 도주할 수 있도록 이마가 서로 싸우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마는 서로 상대방을 꺼려하는지라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고받을 뿐 싸울 의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신마! 설마 저 어린 놈과 일행은 아니겠지요?]

천수인마의 말에 낙성신마는 막비강과 악소궁을 힐끗 돌아보고 대답했다.

[노부는 악불령을 만나러 왔을 뿐 저 녀석과는 아무 관계도 없소.]

천수인마는 안도하며 다시 물었다.

[신마는 무슨 일로 악불령을 만나려 하시오?]

[늦게 얻은 딸내미의 괴질(怪疾)을 치료하기 위해서요. 보아하니 인마도 악불령을 만나러 온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오?]

낙성신마가 되묻자 천수인마는 소리장도 강용을 가리켰다.

[노부의 제자가 당년에 악불령에게 굴욕을 당했기에 빚을 갚아주기 위해 찾아왔소.]

낙성신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열흘 전 노부는 아랫사람을 통해 예물을 주며 악불령을 초빙했었소. 이런 사정으로 악불령은 현재 노부의 빈객이 된 상태니 인마는 그를 너무 난처하게 만들지 마시오.]

막비강이 옆에서 손뼉을 치며 말을 받았다.

[옳소. 사람[]은 마땅히 신()에게 양보해야 하오.]

천수인마가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애송이놈! 잠자코 있지 못할까?]

이어 그자는 다시 낙성신마를 돌아보았다.

[악불령이 집에 불을 지르고 줄행랑을 친 것은 신마가 그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군. 하지만 그의 무남독녀가 여기 있으니 이 계집만 잡아 두면 그가 아무리 멀리 도주해도 걱정할 게 없소.]

[누가 악불령의 무남독녀요?]

낙성신마가 눈을 번뜩이며 돌아보았다.

[애송이 뒤에 있는 계집이 바로 악불령의 외동딸 악소궁이란 계집이오.]

천수신마의 말에 낙성신마는 준엄한 표정으로 악소궁에게 말했다.

[악소궁! 이쪽으로 오너라!]

그러자 악소궁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려 했다.

막비강은 얼른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가면 안 됩니다, 누님.]

[잠깐!]

천수인마도 급히 낙성신마에게 말했다.

[노부는 악가 계집을 잠시 신마에게 양보하여 악불령이 영애의 병을 치료하게 하겠소. 그러니 영애의 병이 완쾌되면 그 계집을 석방하지 말고 노부에게 넘겨주시오.]

낙성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리하리다!]

악소궁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막비강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끼어들었다.

[당신네들끼리 함부로 결정하지 마시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겠소.]

[낄낄낄....]

낙성신마가 괴소를 터뜨리며 막비강을 훑어보았다.

[어린 녀석이 패기가 대단하구나! 하지만 너는 너무 늦게 세상에 태어난 탓에 일선(一仙), 이불(二佛), 삼도(三道), 사마(四魔), 오기(五奇), 육요(六妖), 칠절(七絶)의 이름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오기, 육요, 칠절은 들어 봤지만 일선, 이불, 삼도, 사마는 또 어떤 자들인가?)

막비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낙성신마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일선(一仙) 음양선옹(陰陽仙翁)은 은거해 버렸고 이불(二佛)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삼도(三道) 역시 오래전 부터 강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당연히 당금 무림에서 우리 사마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 사마 중 이마(二魔)가 이곳에 있는데도 네놈은 큰소릴 치느냐?]

막비강은 상대방이 천하오기를 다섯 번째 서열에 두자 내심 놀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오만한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은 한 사람을 빠뜨렸소. 마땅히 나 일룡(一龍) 천면신룡도 서열에 끼워야 했소.]

낙성신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부는 천면신룡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다.]

백독서생은 막비강의 일장에 격중되어 쓰러졌다가 지금까지 운기조식을 하여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운기조식하면서도 세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었는지라 몸을 일으키며 참견을 했다.

[저 어린 놈은 악불령의 기명제자이며 또한 우주도철의 양자이기도 합니다. 본명은 막비강이고 별명은 천면신룡입니다.]

그 말에 낙성신마가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렸다.

[껄껄껄, 악불령의 기명제자라면 더욱 놓아줄 수 없지.]

막비강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내가 여길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악 누님을 여기 두면 너희들이 행패를 부릴 것이 뻔하므로 먼저 누님부터 보낸 다음 다시 얘기를 하겠다.]

낙성신마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노부는 너희 둘을 모두 잡아 두겠다.]

막비강은 냉랭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날 잡아 두고 싶으면 어디 잡아봐라. 그러나 악 누님은 연약한 아녀자니 손대지 마라!]

낙성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마라. 누구든지 그녀에게 손을 대면 노부가 가만두지 않겠다.]

[남아 일언 중천금이다.]

막비강은 이렇게 말한 후 악소궁에게 전음으로 속삭였다.

[누님을 숲 속으로 던져 넣을 테니 제 걱정은 말고 전력을 다해 도주하십시오.]

악소궁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 평범한 자신은 이곳에 남아봤자 막비강에게 짐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때문이다.

흉사들은 막비강이 악소궁과 전음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지만 몇 마디 당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버려두었다.

[가십시오.]

그런데 막비강은 갑자기 악소궁의 몸을 번쩍 들더니 옆의 숲 속으로 힘껏 던졌다.

쐐액!

막비강이 전력을 다해 던진지라 악소궁의 풍만한 교구는 마치 유성처럼 숲 안쪽으로 날아들어갔다.

그것을 본 낙성신마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 감히 노부 앞에서 속임수를 써?]

그자는 분노하여 외치며 숲으로 날아드는 악소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핫하하! 노마의 상대는 나란 걸 잊었나?]

막비강은 대소를 터뜨리며 날아올라 쌍장을 밀어냈다.

[애송이놈! 죽고 싶으냐?]

대노한 낙성신마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마주 일장을 후려쳤다.

퍼펑!

다음 순간 막비강의 장력과 낙성신마가 쳐낸 장력이 충돌하며 요란한 폭음을 일으켰다.

쐐액!

헌데 서로의 장력이 부딪히는 순간 막비강의 몸은 쏘아진 화살처럼 뒤로 날아갔다. 막비강은 낙성신마와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자의 장력을 빌어 현장에서 이탈한 것이다.

[!]

낙성신마는 자신이 상대방을 전송해준 꼴이 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 놈은 청구상인의 문인이다. 저놈에게 감쪽같이 속았구나!]

천수인마가 급히 외쳤다. 그자는 언 듯 막비강의 장심에서 허연 강기가 번뜩이는 것을 본 것이다. 장력에 자유자재로 강기를 실을 수 있는 신공은 청구상인의 치우강기 외에는 없다.

[빨리 추격합시다!]

쐐액!

천수인마는 즉시 경공신법을 전개하여 막비강의 뒤를 쫓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낙성신마도 이를 부득 갈며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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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붉은 머리띠를 한 도사가 되어 (3)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장군묵은 출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마다 가봤지만 무너져 내린 바위더미 위에는 볼 수 없었다.

그것들을 다 뚫고 나간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기주인가 뭔가 하는 자에 의해 모두 막혀버린 것 같소.]

장군묵은 현천록을 허공에서 한바퀴 빙글 돌린 다음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장이 들어온 곳은 어딘가?]

현천록이 말했다.

[제일 먼저 무너졌소.]

장군묵은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만약 허튼짓을 하려한다면 두 손부터 날려버리겠소.]

현천록은 입을 삐쭉했다.

[내겐 그런 능력도 없소. 당신이 믿을 지는 몰라도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나도 꼭 알고 싶은 것들이오.]

장군묵이 묵묵히 현천록을 보다가 말했다.

[도장이 지난 세월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옥황빙서가 말해주는거요?]

현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진양진인은 팔십년 전부터인가 옥황신전에 들어가 옥황사자가 되었소. 삼년 마다 한 장식의 옥황빙서를 적임자에게 전해주는 역할이었소.]

현천록이 순순히 대답해버리자 장군묵이 어리둥절하는 표정이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하지만 옥황신전이 어디있는지 또 뭐하는 곳인지 물으면 할 말이 없소. 나도 아는 게 없기 때문이오.]

장군묵이 물었다.

[옥황빙서는?]

[그놈의 옥황빙서는 진양진인이 당신네 아홉째에게 줬소. 목숨을 요구하는 대가로.]

현천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자기가 진양진인인데 남의 이야기하듯 하는 말이니까 언 듯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홉째? 아홉째를 만났단 말이오?]

현천록이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을 거요.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않으면 결코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도 들을 수 없을 거요.]

장군묵은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함부로 하면 현천록이 또 어떻게 나올지 몰라 잠시 보고 있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이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오. 조금 긴 이야기도 될 수 있소. 교활한 늙은 도사와 호기심 많고 해보고 싶은 것 많은 철부지 소년의 이야기요.]

장군묵은 호기심이란 말에 깊이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기심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힘이지.]

현천록이 말했다.

[당신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소. 한마디 물어보기 위해서 삼년을 기다리는가 하면 또 한 마디 물어보기 위해서 흉흉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한마디 물어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으니 말이오.]

장군묵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당연하지 않은가? 결과가 나온다면 백년도 기다리고 목적을 위해서면 만번이라도 싸울 수 있지. 하물며 그냥 두어도 언젠가는 죽을 인간을 죽이는 것 따위가 뭐 어떴단 말인가?]

현천록이 칭찬하며 말했다.

[정말 호탕하오. 대장부는 마땅히 그래야 할 거요. 당신은 멋있는 사람이오. 나를 죽이려 들지만 않는다면 말이오.]

장군묵이 냉소하며 말했다.

[나는 사람이 귀찮을 뿐이지. 사실 죽이는 것도 귀찮지. 하지만 그냥 두는 것이 더 귀찮을 때는 약간 덜 귀찮은 쪽을 택하오. 그쪽이 바로 죽이는 쪽이지.]

현천록이 안도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겠소.]

장군묵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천록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중원 어딘가에 칼이나 검, 방패, 창 따위를 잘 파는 꼬마가 있었소. 상당히 수완이 좋아서 단골 손님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소. 그런데 어느 겨울날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소.]

현천록이 힐끗보니 장군묵은 이야기에 끌리는지 몸을 현천록 쪽으로 약간 기울이고 있다.

현천록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꿈은 참 빨리도 이루는구나. 되고 싶은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했더니, 시체도 되어보고 순찰사자노릇도 해보고, 사기꾼 노릇에 퉁소쟁이까지 되었다가 도사가 되는가 했더니 이제 이야기꾼이 되는구나. 그래 멋대로 되라. 언젠가는 다 정리가 되겠지.)

재미가 없지는 않다.

자기 속에 얼마나 많은 모습이 있는지, 아니면 자기 속에 있는 것은 하나인데 아직 굳어지지 않아서 어떤 형태로든 상황에 맞춰서 변하는 것인지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현천록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자기의 이야기였다.

[지독한 노인이 하나 찾아왔는데 자기가 가진 검을 팔려고 했소. 검은 무당파의 진무검보다 못하지 않은 보검이었소. 하지만 다른 사람이 쓰기는 어렵고 그 노인의 몸은 딱 그검을 쓰기에 알맞았소. 몸과 검이 서로 닮아있었던 거요. 나는 아주 싸게 사려고 했소. 노인은 그걸 되사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하느냐고 물었소. 나는 그검을 다시 사려면 판 가격의 칠백배를 내야 된다고 말했소.]

장군묵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무 비싸군.]

현천록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비싸지 않았소. 오히려 내가 단단히 당했으니까?]

[도장이?]

장군묵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현천록은 급히 말을 바꾸었다.

장군묵은 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빨려들고 있는 중인데 흐름을 끊으면 산통도 깨어진다.

[그 꼬마가 당했단 말이오. 노인은 한푼도 받지 않고 검을 팔았소. 황당한 노릇이었지. 한푼도 받지 않았으니 칠백배 아니라 만배라도 똑같지 않소? 그냥 그 노인이 와서 다시 달라고 하면 나도 그냥 줄 수 밖에 없으니까. 꼬마는 그때서야 후회했소. 그럴 줄 알았다면 보관료를 아주 비싸게 책정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소.]

장군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현천록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 노인은 단서까지 달아놓았소. 검을 잃어버리거나 하여 자기에게 되팔지 못할 때에는 꼬마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소. 꼬마는 검을 들고 주인에게 가서 소상히 다 고했소. 주인은 그 검을 곰곰히 보고는 고독마검이라고 했소.]

장군묵이 코웃음을 쳤다.

[고독마검 불이태가 아직 살아있었군.]

현천록이 물었다.

[고독마검은 어떤 고수요?]

장군묵이 말했다.

[칠검동(七劒洞)의 제사검(第四劒)이지. 그 사이에 순위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만.]

현천록이 말했다.

[칠검동이라는 데도 있었군. 하여간 일은 그날 터졌소. 꼬마가 주인에게 고하고 자기 방으로 가는데 갑자기 눈 앞에 하얀 손바닥 하나가 보이지 않겠소? 그리고 꼬마는 정신을 잃어버렸소.]

장군묵이 말했다.

[그건 풍허객의 소월심인장(素月心印掌)이겠군. 상처도 없이 그냥 정신을 잃게 만들지.]

현천록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마 그럴거요. 꼬마는 맞은 것 같지도 않고 다친데도 없었으니까. 하여간 풍허객이란 사람이 나타났소. 그 꼬마를 제자로 삼겠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그만 꼬마가 갑자기 죽고 말았소.]

장군묵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풍허객이 죽였소?]

현천록은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소. 저절로 고개를 뒤로 휙 젓히며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죽어버렸소.]

장군묵의 얼굴이 굳어지고 그의 눈이 현천록을 빤히 현천록을 쳐다보고 있었다.

현천록은 장군묵이 그런 눈빛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건 구장심조의 첫 번째 껍질이 깨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한데 죽었으되 죽은 건 아니었소. 꿈인지 생신지 산건지 죽은건지 꼬마는 다시 정신을 차렸소. 삼년이 지났다고 하고, 온몸이 새까만, 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꼬마를 반겼소. 그 여인 이름이 아마 보초였을 것이오.]

순간 현천록은 목이 꽉 막혔다.

장군묵이 한손으로 현천록의 목을 쥐고 높이 치켜들며 말했다.

[생사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무당파 제자는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만 이제 그 맹세를 깨뜨릴 수도 있다.]

장군묵의 음성은 아주 무거웠고 숨이막힐 듯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현천록의 장군묵의 두 팔을 잡고 매달리며 겨우 말했다.

[이야기는 아직 남았소. 가만히 기다리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다 듣게 될거요.]

장군묵은 다시 그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조금전처럼 즐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검의 자루를 은근히 만지면서 허튼짓을 하지말라는 위협적인 행동도 포함되어있었다.

현천록은 한숨을 쉬었다.

장군묵은 필요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그 꼬마는 죽지 않는, 아니 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소. 구장심조라는 무공이면서도 아니고 아니면서도 무공인 이상한 힘 때문이었소.]

장군묵의 입이 실룩였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현천록이 계속 말했다.

[꼬마는 보초라는 분에게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생사탄의 비밀과 구장심조의 진정한 뜻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나다닌다고 들었소. 그말을 듣자마자 꼬마는 자기도 그런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았소. 그러나 그는 그 이전에 먼저 알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소. 자기 앞에 펼쳐질 운명을 믿고 있었던 것이기에 그는 일단 좀더 많이 알기로 작정했소.]

장군묵은 현천록이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자기네 아홉째의 일을 소상히 알고 있는지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다면 생사탄의 사람을 어떤 수단으로도 말하게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호기심이 걷잡을 수없이 피어올랐지만 현천록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천록이 계속 말했다.

[꼬마는 세상에 다시 나왔다가 일곱째를 만났소. 그리고 그날 밤에 현무호의 야경을 구경하다가 퉁소소리에 이끌려 계명사 활몽루로 갔소. 활몽루에는 어떤 도사가 퉁소를 불고 있었는데 그다지 좋은 인간이 아니었소. 그 때문인지 꼬마보다 먼저 일곱째가 그 도사를 혼내주려 했소. 한데, 도사가 요상한 수법을 부려서 활몽루를 사라지게 했소.]

장군묵의 눈에서 형형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현천록은 그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말했다.

[꼬마는 활몽루와 함께 그들이 사라져버리자 재빨리 성안으로 달려가 퉁소를 하나 구했소. 그리고 현무호 가운데 섬에서 퉁소를 불었소. 그 도사와 똑같은 곡이었소. 이윽고 허공에서 갑자기 도사만 나타났소. 호수에 떨어졌는데 퉁소소리에 이끌려 꼬마가 있는 쪽으로 나왔소. 꼬마는 도사를 포로로 잡았소. 그도 도사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었기 때문이오.]

꿀꺽!

장군묵이 침을 삼켰다.

현천록은 계속 말했다.

꼬마가 도사를 데리고 자금산의 동굴 속에 숨은 일과 그 도사와 내기를 한 일, 그리고 어떻게 태극혜검을 배우게 되었고 어떻게 암습을 당했으며 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그래서 그 꼬마는 졸지에 빨간 머리띠를 맨 도사가 되어버렸던 것이오.]

장군묵이 현천록의 손목을 덮썩 잡았다.

현천록은 가만히 있었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왼손을 보며 소리쳤다.

[미장! 정말 아홉째 너구나!]

현천록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묵심환이 나타나고 있었다.

현천록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나라고 하지 않았어요?]

장군묵은 화를 누르지 못하고 발로 땅을 굴렸다.

쿠웅!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동굴 전체가 울렸다.

[그 교활한 도사놈이 이런 짓을 꾸미다니! 아직 멀리 가진 못했겠지.]

현천록이 말했다.

[내 몸을 봐요. 남의 몸도 이렇게 바꿔버리는데 자기가 변신하는 건 더 쉽겠지요. 어떻게 알아보고 찾는단 말입니까?]

장군묵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네 몸에 펼쳐진 수법은 나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현천록이 놀라며 말했다.

[그럼 계속 이대로 있어야 된단 말예요?]

장군묵이 힐끗보며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허허허허!]

현천록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변신을 하자고 했는데 너무 기가막힌 변신을 해버렸다.

빨간 머리띠를 맨 늙은 도사가 되어버렸다.

그때 펑펑! 하는 장력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강맹한 장력인지 현천록과 장군묵이 있는 곳까지 바람이 확 밀려왔다.

[이 미친 중놈아! 죽으려면 곱게 죽지 왜 동굴은 무너뜨리려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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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千 世 秘 洞

 

 

 

천목산(天目山).

우뚝 솟은 거대한 산봉 위에 커다란 분화구가 있다.

이 분화구의 모양이 마치 눈()과 같이 생겼다.

그 때문에 천목(天目)이라는 산명(山名)이 생겼다.

또한, 이 천목산은 거대한 준봉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동쪽의 산봉을 동천목(東天目)이라 하고 서쪽의 산봉을 서천목(西天目)이라고 부른다.

동천목의 서쪽 산록.

드넓은 산록의 분지에 한 채의 거대한 장원이 세워졌다.

이곳은 그 옛날 천세문(千世門)이 있던 곳에서 십여 리밖에안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인적이 없는 심산.

자연히 많은 의혹의 눈길이 번뜩였다.

특히 일단의 무리들은 장원의 주위를 배회하여 감시의 눈길을 번뜩였다.

그러나, 장원의 건립에 관부가 개입하자 무림인들은 관가의 충돌을 의식하여 장원에 접근하지 못했다.

특히 때때로 절강성주(浙江省主)가 직접 현장에 나타나 시찰하며 이 장원이 황실의 요인을 위해 지어지고 있다고 알려지자 장원 주위에서 무림인들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해 늦가을.

드디어 장원은 완성되었다.

, 장인들이 물러가고 근 백여 명의 하인과 사녀들이 막대한 량의 짐과 함께 장원에 도착했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따각따각

한 대의 사두마차가 장원으로 통하는 석도(石道)에 나타났다.

마차에는 중요한 인물이 타고 있는 듯 수십기의 관병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곧 마차는 장원 문앞에 이르렀다.

장원 문 앞에는 백여 명의 남녀들이 시립해 있었다.

사두마차는 열려진 장원 문 사이로 달려들어 갔다.

사두마차와 관병들이 들어가자 장원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마차는 장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한 채의 전각 앞에 멈추어 섰다.

끼이익!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사르륵

비단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이십대 후반의 여인이 내려섰다.

날아갈 듯한 궁장을 곱게 차려입은 절세미녀.

그녀는 바로 화희(花姬)였다.

"조심하시옵소서."

화희가 손을 내밀자 그녀의 섬섬옥수를 의지하여 한 명의 소년이 내렸다.

물론 신궁태자(神弓太子) 철문영이다.

화희는 철문영을 부축하여 전각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물러가거라. 부를 때까지 아무도 접근시키지 말도록."

화희가 조용히 시녀들에게 명했다.

"."

시녀들은 깊이 머리를 조아리고는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시녀들이 물러가자 화희는 문을 닫았다.

"여기가 맞지?"

탁자에 기대어 서 있던 철문영이 벽에 기대어 선 침상을 가리켰다.

", 틀림없사옵니다. 이 침상 밑으로 천세비동과 연결되는 밀로가 있습니다."

화희의 대답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선생, 선생의 심원을 헛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철문영이 중얼거렸다.

화희는 그윽한 시선으로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피곤하실터이니 오늘은 그냥 쉬시옵서서."

화희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선 한번 돌아보겠어."

철문영의 얼굴에 일별을 준 화희는 침상으로 다가섰다.

철문영의 성품은 무척 부드럽다.

그러나, 일단 마음이 정해지면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음을 화희는 잘 알고 있다.

끼기긱!

화희가 침상의 한 모서리를 돌리자 침상은 서서히 벽으로 들어갔다.

그와 함께 어두컴컴한 통로가 나타났다.

"이리 오시와요."

화희는 철문영을 부축하여 밑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어둑어둑했다.

그러나 곧 계단이 끝나고 두 사람 앞에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문고리를 좌로 삼회, 우로 오회 돌린 후 힘을 주어 밀어."

"알겠사옵니다."

화희는 철문영이 시키는대로 철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그것이 긑나자 철문영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큼직한 보석이 박힌 지환이 끼워져 있었다.

차알칵!

경쾌한 금속성이 일었다.

보석은 철문에 나 있는 홈에 적확히 박혔다.

끼익!

그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화희는 여기서 기다려. 혼자 들어갔다가 올게."

철문영이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화희는 미소를 지으며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

"혼자 보내드릴 수는 없어요. 첩신도 함께 들어가요."

"좋아, 같이 가봐."

철문영은 화희의 부축을 받으며 철문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의 안쪽은 무척이나 길고 긴 통로였다.

십여 자 간격으로 야명주가 박혀있어 걸어가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힘들지 않으시옵니까?"

일마 장 이상 걸었을 때 화희가 물었다.

철문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이 정도를 견디지 못해서야 어찌 일문을 짊어지고 나가겠어?"

두 사람은 다시 일마 장이 넘는 거리를 걸어갔다.

이윽고, 그들 앞에 제법 널찍한 석실이 나타났다.

석실에는 야명주가 환한 빛을 발하고 있어 매우 밝았다.

그러나, 석실에는 별반 시설이 없었다.

그저 큼직한 석상(石床)이 하나 덩그라니 놓여 있을 따름이었다.

"이 안쪽으로는 문주될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화희는 예서 기다려줘. 더 이상은 함께 갈 수 없어."

철문영의 말에 화희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어떤 변괴가 있을지 모르니 주의를 놓지 마시옵소서."

화희가 걱정스럽게 당부했다.

"하하, 걱정말아."

철문영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맞은편 석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도 그리 넓지 않은 통로였다.

그러나 그 통로는 짧았다.

십여 장을 걷자 또 다른 석문이 나타난 것이다.

끼이익!

석문은 별 어려움없이 열렸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다.

헌데, 그 석실에는 여러 군데로 통하는 석문들이 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왼쪽에 있는 석문으로 다가갔다.

 

조사전(祖師殿).

 

석문에는 금강지력으로 세치 깊이의 글이 적혀 있었다.

철문영은 조심스럽게 석문을 열었다.

"!"

석문을 열고 들어간 철문영은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곳은 길쭉한 장방형의 석실이었다.

석실의 한쪽으로 수십 개의 위패가 놓여 있으며 위패 뒤쪽으로 한 장씩의 화상이 걸려 있었다.

이는 역대 천세문 문주들의 위패인 것이다.

철문영은 우선 맨 좌측의 위패 앞으로 다가갔다.

 

<조사(祖師) 표운거사지위(飄雲居士之位)>

 

위패를 읽어본 철무니영은 위패 뒤의 화상을 바라보았다.

화상에는 선풍도골의 노인의 모습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철문영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위패를 향해 절을 올렸다.

"제 오십오대문주 철문영 삼가 조사님의 영전에 배알하나이다. 아울러 쇠잔해진 본 문의 부흥에 제자의 한 몸을 바칠 것을 맹세하나이다."

삼배 후 철문영은 엄숙히 축원을 올렸다.

비록 그가 지고무상(至高無常)한 부마(駙馬)의 신분이라지만 일단 천세문의 대통을 이어 받기로 한 이상 아랫 사람인 것이다.

철문영은 이어 각대문주인 위패에도 삼배씩 올렸다.

무공이란 익히지도 않은데다 본시 몸이 허약한 그인지라 절을 올리는 일도 큰 고역이었다.

그래서 오십삼대문주의 위패에 삼배를 하고났을 때 그는 허리가 부러지는 듯이 아파와 휘청거렸다.

위패는 오십삼대에서 끝이나 있었다.

철문영은 땀을 씻으며 조사전을 나섰다.

그는 조사전 옆의 석문으로 다가갔다.

 

<천세신전(千世神殿)>

 

두 번째 석실은 천세신전이라는 곳이었다.

석실로 들어선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대한 석실 전체가 수 많은 기진이물(奇珍異物)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개성을 살만한 가치를 지닌 보주(寶珠)들이 지천으로 뒹굴고 있다.

또한 속세에서는 천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영약(靈藥)들이 수도 없이 쌓여있다.

특히,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병기(兵器)들이었다.

천세신전에 비장되어 있는 병기들은 하나같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신병이기(神兵異器)들이었다.

그 중에 무림천년기인에 오른 열두 명 기인들의 병기도 있었다.

천인검(天刃劍), 옥령신필(玉靈神筆), 승천마라도(昇天魔羅刀) 등이 그것이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기진이보들이 쌓여 있었다.

피독주(避毒珠), 피수주(避水珠), 천참의() 등등 그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황궁(皇宮)의 보고가 무색할 지경이군."

철문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는 전에 황궁의 보고룰 구경해본 적이 있었다.

헌데 천세신전을 황궁의 보고에 조금도 못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또 뭐지?"

돌아 나오려던 그는 여러 가지 신병이기(神兵異器)들 사이에서 보퉁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상한 물건이군."

보통이를 펴본 철문영은 고개를 갸웃 했다.

보퉁이는 하나의 커다란 피풍이었다.

헌데 이상한 것은 피풍의 안쪽에 종이같이 얇고 가벼운 면철조각들이 차곡차곡 접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한 장의 양피지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창룡철익(蒼龍鐵翼),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기인 창룡선인(蒼龍仙人)께서 사용하시던 이기(利器)이다. 이의 사용법은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현문편(玄門篇)과 창룡선인의 무서(武書)인 창룡결원(蒼龍訣源)에 기록되어있다.>

 

"창룡철익(蒼龍鐵翼)? 이것으로 하늘을 날기라도 했단 말인가?"

철문영은 피식 웃으며 창룡철익을 내려 놓았다.

그는 천세신전을 나왔다.

그다음의 석문은 또 다른 통로였다.

그 통로를 지나니 방대한 석실이 나타났다.

"! 이것이..."

석실로 들어서던 그는 입을 딱 벌렸다.

벽면에 수십 개의 서가(書架)가 기대어 서 있다.

그리고 각 서가마다 다섯치 두께의 양피지로 만든 책자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 이것이...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철문영은 탄성을 질렀다.

그렇다.

서가에 꽂혀있는 수백, 수천의 책자들 그것 전체가 바로 구류만상경인 것이다.

무림삼대기서(武林三大奇書) 중 하나며 천세문 이천년의 심혈이 깃든 대 저술서인 것이다.

"말로는 들었으나 이토록 엄청난 분량일 줄이야..."

그는 탄성을 연발하며 그중 한권을 뽑아 들었다.

 

<현문편(玄門篇), 권십일(卷十一)>

 

표지에는 구류(九流)중 현문편인 열한번째 가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겉장을 넘기니 이시대 무공의 흐름에 대한 논평이 적혀있고 특이한 무공에 대한 지적이 적혀 있었다.

"참으로 천고에 다시 없을 대역사(大役事)구나."

철문영은 책자를 다시 꽂아 놓았다.

서가의 낮은 편에는 수천권의 비급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거기에는 하오문의 졸렬한 수법이 적힌 졸서에서 천하를 뒤흔들던 기인들의 무공비급들이 뒤섞여 있었다.

방대한 량의 비급들을 훑어본 그는 맞은편의 석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도 또한 서고(書庫)였다.

그러나, 그곳의 규모는 구류만상경이 있는 석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넓이도 수십배는 되려니와 장서의 량도 족히 백만이 넘을 듯한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름만 들었던 귀중한 고서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군. 천하의 모든 책자를 읽어보았다고 자부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구나."

철문영은 들뜬 기색으로 서가 사이를 걸었다.

본시 책을 좋아하던 그 인지라 다른 어떤 보물보다도 고서들이 좋았다.

한 동안 서고를 돌던 그는 다음 석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작은 석실로서 석실 한 쪽에 백여권의 비급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상한걸... 선생의 말대로라면 수십 명의 군웅이 이곳에 난입했다고 했는데 어찌 이리 깨끗할까?"

철문영의 눈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과연 석실은 너무도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었다.

전혀 군웅들이 난입했던 흔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무림천년기전들이 아닌가?"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렸다.

서가에는 만든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비급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누가 있단 말인가?"

철문영은 깨끗한 태령진해를 빼어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크크크..."

돌연, 음산한 웃음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였다.

"... 누구?"

철문영은 등골이 오싹하여 홱 돌아섰다.

"!"

다음 순간 철문영은 숨넘어가는 듯한 신음을 토하며 비칠비칠 물러섰다.

어느사이엔가, 한 명의 괴인이 철문영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한 팔은 끊어져 나가고 장발이 허리까지 드리웠다.

게다가 장발사이에서 맹수의 그것같은 소름끼치는 눈길이 철문영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이 신선한 피냄새, 오늘은 포식할 수 있겠는걸."

괴인이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귀하는 누구요?"

철문영은 섬칫하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쿠웅

그러나, 그의 등은 이내 벽에 닿았다.

"크크크..."

괴인은 흉칙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다음 순간, 철문영은 거대한 흡인력에 끌려 괴인의 손으로 빨려갔다.

그리고 다음순간 그는 전신이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흐흐흐..."

괴인은 입맛을 다시며 철문영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 이럴 수가..."

그러나, 이내 괴인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어 그는 철문영의 손을 들어 보았다.

철문영의 오른 손에는 기전주가 준 지환(指環)이 빛을 발하며 끼워져 있었다.

"... 이럴수가... 천라태양신맥이 이 아이에게서 나타나다니... 기저니주도 이 아이가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아와 만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텐데... 어쩌자고 이 아이를 다음대의 문주로 택했단 말인가?"

괴인은 정신이 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점차 그의 눈빛은 어떤 결의의 빛으로 변해갔다.

"기전주가 사람을 보는 눈은 틀림없다. 이 아이가 결코 단명할 상은 아니었을 것이라 선택했을 것이다."

괴인의 눈빛이 강렬하게 변했다.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 절맥이라고 하면 절맥이겠으나 일단 치유되면 고금제일인이 될 수 있는 신맥이 된다. 좋다 이 아이에게 천세문의 운명을 걸어보자!"

괴인은 철문영을 안아들었다.

휘익!

그는 바람과 같이 석실을 날아 나갔다.

곧 그는 두 개의 크고 작은 연못이 있는 광장에 이르렀다.

이어 그는 철문영을 내려놓고 다시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괴인은 얼마 안되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봉서와 옥함이 들려 있었다.

"천세문의 운명을 네 녀석에게 맡긴다."

괴인은 봉서를 내려놓고 옥함을 열었다.

옥함에는 하나의 작은 옥병 하나와 괴이한 형태의 붉은 삼왕(蔘王)이 들어 있었다.

옥병에는 우유빛의 액체가 반쯤 들어 있었다.

그리고 삼왕(蔘王)은 마치 피에 담근 듯이 시뻘건 모양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신효한 영약인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가 당분간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의 발작을 지연시켜 줄 것이다."

괴인은 옥병을 열었다.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

천지간에 가장 신효한 영약 중 하나이다.

한 방울만 복용해도 만병이 낳고 만독을 풀 수 있으며 무림인이 복용하면 지고무상한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액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극음의 영약이라는 점이다.

대지의 정기가 수만 년에 걸쳐 물과 같은 형태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다만 몇 년이라도 천라태양신맥의 발작을 지연시킬 수는 있는 것이다.

향긋한 향기가 서늘한 한기를 싣고 광장을 메웠다.

반병의 만년지령유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철문영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독혈용형삼(毒血龍形蔘)! 무쇠라도 녹이는 극독을 지녔으나 이제 너의 체질을 무쇠와 같이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괴인은 서슴없이 혈삼을 들어 터뜨렸다.

주르르

핏빛의 붉은 액체가 철문영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반인이라면 독혈용형삼이 닿기만 해도 한줌 혈수로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문영은 미리 만년지령유를 복용한 상태다.

아무리 강한 독성을 지닌 독혈용형삼이라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 독혈용형삼은 빈 껍질만 남았다.

괴인은 독혈용형삼의 껍질을 자기 입에 털어넣었다.

"천하에서 가장 영험한 지심영천(地心靈泉)이 약효를 신속하게 흡수시킬 것이다."

괴인은 철문영을 작은 연못에 담그었다.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철문영을 주시했다.

철문영의 안색은 점차 붉게 변해갔다.

그러다가 이내 우유빛의 뽀얀색으로 변해갔다.

"흐흐... 되었다. 이제 화골독천(化骨毒泉)만 견뎌내면 탈태환골(脫胎換骨)하게 된다."

일다경 정도 흐른 후 괴인은 철문영을 지심영천에서 꺼내어 옆의 새파란 물이 고인 웅덩이에 담그었다.

푸시식

그러자, 철문영의 전신에 걸쳐있던 의복이 그대로 녹아들고 말았다.

실로 지독한 독기였다.

이것이 바로 뼈조차 녹인다는 화골독천(化骨毒泉)인 것이다.

파파팍

철문영의 피부도 견디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괴인의 눈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철문영의 피부 및에서 새로운 살갗이 돋아났다.

그러자 갈라졌던 피부는 뱀의 허물과 같이 떨어져 나왔다.

파파팍

그리고, 새로 돋아난 피부도 다시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철문영의 전신에서 거무스름한 고름같은 것이 배어나왔다.

그의 전신 심맥에 끼어있던 불순물이 녹아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아홉 번이나 허물이 벗겨지자 더 이상 피부가 갈라지지 않았다.

"휴우"

괴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철문영의 피부는 마치 갓난아이의 그것같이 매끄러워졌다.

아울러 허약하기만 하던 그의 신체는 제법 튼튼한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흐흐... 이녀석이 강호에 나가면 꽤나 많은 계집아이들을 울리겠군."

괴인은 나직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쏴아

철문영의 몸은 무형의 경기에 들어올려져 화골독천에서 나왔다.

본시도 여인이 무색할 지경의 영준한 철문영이었다.

게다가 한 번 탈태환골하자 이제는 사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준하게 변했다.

아니, 차라리 아름답다고 해야 어울릴 모습이었다.

소년을 바닥에 누인 괴인은 그 옆에 앉아 운공에 들어갔다.

위잉위잉

괴인의 몸에서 검붉은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자 그 광채는 괴인의 머리 위에서 구()의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덩어리는 완전히 고형(固形)의 물체로 변하였다.

그 반면 괴인의 신색은 창백하게 변하여 비오듯 땀을 흘렸다.

이어 괴인이 천천히 쌍장을 들어 철문영 쪽으로 밀어냈다.

스스스

그러자, 검은 경기의 덩어리는 술술 끌려 철문영의 콧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지금, 괴인은 자기 일신에 쌍혀있던 한 가지 절세기공(絶世奇功)을 철문영에게 옮겨주고 있는 것이다.

스스슥!

이윽고 검붉은 기체는 완전히 철문영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

괴인은 힘없이 팔을 내려뜨렸다.

완전히 탈진한 기색이다.

"십이성의 묵혈파뢰강(墨血破雷)을 완전히 전해주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묵혈파뢰강을 네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괴인은 허탈하면서도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허허... 가는 마당에 한 모금 진원진기(眞原眞氣)라도 갖고 갈 수야 없지 않는가?"

괴인은 철문영의 기해혈(氣海穴)에 장을 붙였다.

이 방법은 공력을 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만 주화입마의 가능성도 크므로 좀체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다.

점차, 괴인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그는 지금 자신의 원영진기(元嬰眞氣)까지 끌어올려 철문영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원영진기란 무림인의 생명을 뜻한다.

연공을하여 얻을 수 있는 공력이란 모두 이 원영진기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철문영의 전신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윽고, 괴인의 안색이 검게 변하며 괴은은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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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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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구원의 손길

 

 

 

[크흑!]

막비강은 들끓는 욕화를 참지 못하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운기조식을 하여 필사적으로 치솟는 욕화를 억눌러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번 불붙은 욕화는 요원의 불길처럼 그의 전신으로 번져 갔다.

막비강은 너무도 강력한 욕화에 급격히 이성을 잃어 갔다

그의 순양지물은 극한대로 팽창하여 끊어질 듯이 아팠다.

지금 이 순간 막비강의 뇌리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서 아랫배에 그득한 채 들끓고 있는 용암을 어디론가 토해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방이 밀폐된 이 철실에서 그의 욕화를 풀어 줄 대상이 있을 리 없었다.

[으아아아!]

그는 치미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걸치고 있던 의복을 모두 훌훌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끊어질 듯이 아픈 일부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그러면서 그는 서서히 정신을 잃어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긍!

문득 밀실의 철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이어 하나의 날렵한 인영이 밖을 살피며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철문을 다시 닫았다

그 인물은 한 명의 중년미부였는데 무엇이 꺼려지는지 얼굴은 수건으로 가려 알아볼 수 없었다.

[...!]

실내에 들어선 여인은 상황을 살펴보다가 바르르르 몸을 떨었다

한구석에 전라의 몸으로 벌렁 누운 채 정신을 잃은 막비강을 발견한 때문이다

완벽한 균형을 이룬 막비강의 건장한 알몸은 중년여인을 전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순간 막비강의 몸은 전신의 혈관이 툭툭 불거진 채 끊임없이 잔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은 이미 까뒤집어져 허연 흰자위가 드러나 있고 입과 코에서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욕화가 기혈을 뒤집어 놓고 있다는 증거였다.

(가엾은 아이...!)

면사 속에서 여인의 두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녀는 막비강을 구하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주춤주춤 막비강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 막비강 옆으로 가까이 다가선 그녀는 숨을 죽였다

그의 하체 중심부에 불끈 치솟아 있는 일부를 발견한 때문이다.

막비강은 금강옥액을 복용한 덕분으로 양정(陽精)이 범인의 수십 배에 이른다

그 탓에 그의 실체도 평균의 배에 가까운 크기였다.

여섯 치가 넘는 막비강의 일부는 마치 무쇠로 만든 조형물처럼 강인해 보였다

여인은 살아오면서 두 명의 사내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막비강의 그것에는 비견될 수 없었다

특히 그 압도적인 굵기와 중량감은 상상도 못해 본 것이었다.

여인의 봉목은 갈등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네게 진 신세를 갚기 위해서다!)

여인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치마를 허리 위로 걷어 올렸다.

만지면 묻어날 듯이 새하얀 허벅지가 어둠 속에서 눈이 부셨다.

헌데 기이하게도 여인의 가랑이 사이의 계곡에는 성숙한 여자라면 당연히 깔려 있어야 할 음영(陰影)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백옥(白玉) 덩이같이 뽀얀 두덩과 그 아래로 탐스럽게 벌어진 균열이 보일 뿐이었다.

인은 흥분과 수치심으로 바들 바들 떨며 막비강의 몸 위에 쪼그려 앉았다.

그와 함께 떨리는 섬섬옥수가 용틀임을 보듬어 쥐었다

여인의 손안에 쥐어진 그것은 마치 뱀처럼 꿈틀대며 맥동했다.

(뜨거워!)

손안에서 요동치는 용틀임을 느끼며 여인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치마를 복부와 다리 사이에 낀 여인은 그 용틀임을 자신의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 정말 내가 강아와 이런 짓을 해도 좋을까?)

마지막 순간 여인은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막비강과 이런 짓을 해서는 결코 안 되는 사이였다.

인륜을 지켜야 한다는 망설임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머뭇거리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여인의 입술이 깨물리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이어 그녀는 육중한 하체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 아파! 그이하고의 첫날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찔한 통증을 느낀 여인은 입술을 악물었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여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막비강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흐윽!]

여인은 막비강을 완전히 수용한 뒤 무너지듯 그의 넓은 가슴에 넘어졌다.

아랫배에 가득 들어찬 채 연신 꿈틀대는 막비강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 내가 결국 강이와 ...!)

그 와중에도 참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흘러 넘친 여인의 뜨거운 눈물이 막비강의 가슴 위로 굴렀다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자신의 몸으로 순결한 막비강을 받아들인 것이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자신과 막비강은 완전히 한 몸이 되어 버렸다

남자와 여자로서 최후의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죄책감에 떠는 중에도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되었으니 네 마음껏...!)

여인은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본능에 몸을 맡겼다.

일단 분 뜨거운 열풍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 * *

 

(누구였을까?)

막비강은 망연자실하여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의 그는 온몸이 개운한 상태였다

아랫배를 그득 채우며 들끓던 용암은 이미 한 방울도 남김없이 외부로 방출된 후였다

치미는 열기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벗어 젖혔던 의복도 누군가에 의해 원래대로 입혀져 있었다.

(젊은 여자는 아니었어!)

막비강의 숨결이 절로 거칠어졌다.

그는 어렴풋이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욕화로 반쯤 혼절해 있었을 때 누군가 허연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자신의 몸 위에 걸터앉았었다는 사실을...!

그 여인의 몸에서는 참으로 좋은 냄새가 났었다

과일 냄새 같기도 하고 백합 향기 같기도 한 그 냄새는 아직도 코끝에서 맴돌고 있다.

급한 불을 끄고 나자 막비강은 능동적으로 욕구를 채웠었다

막비강이 짐승처럼 덤벼들자 여인은 슬픈 눈빛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막비강이 욕구를 채우던 중 여인이 얼굴에 쓰고 있는 면사를 벗겨버리려 하자 그녀는 돌변하여 격렬하게 저항했었다

끝내 면사를 벗기지 못한 탓에 막비강은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구한 여인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몸매로 보아 제법 나이가 든 여인이었으니 혈검산장의 비녀나 하녀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막고천의 처첩(妻妾)들 중 한 명이란 얘긴데...!)

막비강은 혈검산장의 여러 여인들을 떠올려 봤다

그러나 정조를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을 구해 줄 동기를 지닌 여인은 그녀들 중에는 없었다.

언뜻 막고천의 다섯 번째 첩인 냉상영의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역시 막비강 자신을 위해 그토록 큰 희생을 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언제고 알게 되겠지!)

막비강은 길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정의 철문은 열려 있었다. 누군가 밖에서 열쇠로 연 것이 틀림없었다.

헌데 함정을 나서려던 막비강은 문간에 떨어져 있는 한 짝의 귀고리를 발견했다.

(그 여인이 흘린 것이겠구나!)

막비강은 그 귀고리를 집어 소중히 품속에 넣었다.

 

혈검산장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모두 떠난 드넓은 장원에는 괴괴한 적막만이 흘렀다

막고천은 막비강이 한철로 만들어진 철문을 부수려 하자 질겁하여 달아났고, 다른 식솔들도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서패천(西覇天)이라 불리며 서북삼성(西北三省) 일대에서 위세를 떨치던 혈검산장은 삽시에 폐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네가 어디로 숨든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다, 막고천!)

막비강은 막고천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혈검산장을 떠났다.

 

 

***

 

쐐액!

막고천의 암계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정체불명의 여인의 희생으로 구사일생한 막비강은 마음속의 울분을 발설하기라도 하듯이 우주도철의 경신술 팔보간섬(八步間閃)을 극한까지 펼쳐 질주하였다.

반 자절 이상을 내쳐 달리자 수백 리를 주파하여 종남산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이윽고 종남산의 험준한 산 그림자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막비강은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으며 제법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막비강이 멈춘 곳은 야트막한 고갯마루였다.

[이제 어딜 가서 무얼 해야 하나?]

고개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막비강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그는 혈검산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막고천을 생포하여 통쾌하게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며 설사 그렇지는 못해도 최소한 생모 한경파를 구출하여 자기의 신세내력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막고천은 놓쳤고 생모조차 어디론지 잡혀가 버린 것이다.

(막고천! 네놈이 만일 나한테 당한 화풀이로 어머니를 괴롭힌다면 기필코 사로잡아 천참만륙해 버리겠다!)

막비강은 마음이 초조해져 이를 부득 갈았다. 생모 한경파의 안위가 못내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하지만 막고천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헌데 막비강이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두서 없는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였다.

화라라락!

고개 아래에서 하나의 작달막한 인영이 질풍같이 날아오는 것이 막비강의 눈에 들어왔다

그 인영은 한 명의 여인이었는데 단번에 고개 위로 날아올라오더니 막비강 곁을 스쳐 지나갔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황망히 달려가는 걸까?)

막비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본래 남의 일에 간섭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인이 펼쳐내는 경공술이 어쩐지 눈에 익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부인! 잠깐만 걸음을 멈춰 주십시오.]

막비강이 급히 부르자 여인은 고개는 돌리지 않았으나 예의 있게 대답했다.

[용서하세요! 가친(家親)께 위급한 일이 생겨 서둘러야한답니다.]

여인은 그렇게 외치며 전력을 다해 질주해 갔다

발끝이 가볍게 땅을 찍을 때마다 사, 오 장씩을 날아가는데 그 자태가 아주 가볍고 우아하다.

!

막비강은 여인의 이 같은 경신술에서 느껴지는 게 있어서 즉시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뒤쫓아가기 시작했다.

날 듯이 달려가는 여인의 경신술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껏 막비강이 본 어떤 무림 고수보다도 빠르고 경쾌했다.

하지만 막비강은 경신술로 유명한 우주도철의 팔보간섬을 연마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일년 동안 수시로 공청석유를 마시고 하수오를 상식(常食)했었다. 

덕분에 공력이 전보다 배 가까이 심후해진 상태다

막비강은 오래지 않아 여인의 바로 뒤로 따라붙을 수 있었다.

여인도 막비강이 삽시에 자신을 따라붙자 놀란 듯 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질풍같이 달리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막비강이 가까이 따라붙어 살펴보니 상대는 사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순후한 인상의 중년여인이었다

그다지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박속같이 하얀 피부와 온유하고 부드러운 표정이 절로 호감을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중년에 접어든 나이 탓에 비만해 보일 정도로 살이 올라 풍만한 몸에는 질박하나 깨끗한 베옷을 걸치고 있어 초탈해 보였다.

[아주머니는 남산의성(南山醫聖) 악 선배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막비강은 여인과 보조를 맞추어 달리면서 물었다

그는 이 풍만한 중년여인의 경신법이 바로 남산의성 악불령의 능운신보(凌雲神步)임을 알아본 것이다.

[소협의 존함을 말해 줄 수 있겠어요?]

화락!

막비강의 물음에 중년여인은 급히 걸음을 멈추며 반문했다.

[소제는 막비강이라 합니다.]

막비강도 따라 멈춰 서며 중년여인에게 손을 모아 보였다.

[이제 보니 막 소협이었군요. 제 이름은 악소궁(岳少宮)이라고 하며 남산의성께서는 저의 가친 되세요.]

중년여인이 반색을 하며 막비강의 손을 덥석 잡았다.

[! 악 누님이셨군요.]

막비강도 반색을 했다.

그는 이 년 전 악불령에게서 의술을 배울 때 그의 가족 사항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 푸근한 인상의 중년여인은 바로 남산의성 악불령의 외동딸인 악소궁이었던 것이다.

악소궁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 세 살이다

그녀는 스무 살이 채 안되어 출가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몸이 되었다

즉 지금의 그녀는 과부인 것이다.

자식도 없이 청상과부가 된 악소궁은 별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도와 채약(採藥)과 연단(煉丹)에 몰두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의성 어르신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누님?]

막비강은 악소궁의 안색이 매우 초조한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악불령에게 사사(私師)한 인연이 있다

그래서 악소궁이 비록 어머니 나이뻘이었으나 스스럼없이 누님이라 불렀다.

악소궁도 막비강에 대해 부친에게서 들어 알고 있는 터라 그가 대뜸 자신을 누님이라 불렀으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삼년 전 뇌강서(雷鋼鋤)를 도난당한 일이었네.]

악소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도 상대가 자신의 사제뻘인 막비강임을 확인하자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소리장도(笑裏藏刀) 강용은 자기의 무공으로는 가친을 당해내지 못함을 알고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

막비강 역시 그 일은 알고 있다.

소리장도 강용은 위왕, 즉 조조의 무덤을 도굴할 목적으로 남산의성 악불령의 뇌강서를 훔쳤었다

그 과정에서 막비강은 소리장도로부터 도가의 상승 운기토납술인 태청정명운기법(太淸淨命運氣法)을 배우는 기연을 만났었다.

[도망다니던 강용은 가친이 경지하 강변에서 백독서생(百毒書生) 이량과 싸워 적대관계가 된 것을 알고는 많은 재물을 마련하여 그자를 찾아가 사부로 삼았다네.]

막비강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말을 받았다.

[백독서생 이량은 영존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데 강용이 그런 자를 사부로 삼은 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건 자네가 모르고 하는 말이야. 강용이 백독서생 이량을 사부로 삼은 건 무공이 아니라 아버님을 상대하기 위한 용독절학(用毒絶學)을 배우기 위해서였거든.]

[그렇군요!]

막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금 무림에서 남산의성의 의술에 상대될만한 것은 백독서생의 용독절학 밖에 없다.

말을 잇는 악소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강용은 전설적인 거마 천수인마(千手人魔)까지 사부로 모셔 절기를 배웠다고 하네. 그리하여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그자는 복수를 하겠다며 우리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데 천수인마도 강용과 동행한다더군.]

막비강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천수인마의 무공은 천하오기(天下五奇)에 비해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네.]

악소궁은 아미를 모으며 대답했다.

[천수인마는 백여 년 전부터 무림에 명성을 떨쳐 온 천(), (), (), ()의 우내사마(宇內四魔) 중 한 명이네. 강호의 일반적인 평판으로는 우내사마가 천하오기보다 좀더 강하다고 봐야겠지!]

막비강은 우내사마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본다

하지만 우내사마가 무려 백여 년 전부터 악명을 떨쳐왔다는 설명을 듣고 그자들이 천하오기보다도 더 무서운 인물들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비강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잘되었습니다. 소제도 영존을 만나 뵙고 어떤 사람의 행방을 물을 생각이었으니 함께 가시지요.]

[자네가 함께 가 준다면 천수인마도 감히 행패를 부리지 못할 게야.]

악소궁은 막비강이 함께 가자고 말하자 기뻐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당금 무림에서 천하오기 외에는 나를 추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 그런데도 단숨에 내 뒤를 쫓아온 걸 보면 자네의 무공이 천하오기를 능가한다는 걸 알 수 있겠네!]

말하는 악소궁의 표정이 밝아졌다.

실제로 악소궁은 다른 무공은 평범하지만 경신공부만은 아주 빼어났다

막비강은 그녀의 젊은 시절 별호가 남산비연(南山飛燕)이었음을 떠올렸다.

막비강도 악소궁이 자신을 높게 평가해 주자 내심 기뻤다.

[헌데 소협은 가친에게 누구의 행방을 물으려는 겐가?]

악소궁이 묻자 막비강은 침중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소제가 찾으려는 사람의 이름은 전포(田袍)라고 합니다. 혹시 악 누님은 이 이름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글쎄... 금시초문이구먼. 하지만 가친께선 알고 계실 것 같네. 워낙 발이 넓으신 분이니까.]

악소궁의 대답에 막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포가 무림의 고인이 아니라면 염라철장이 내게 전포를 만나 사정을 물어 보라고 당부할 리 만무하지.)

생각을 굴리던 막비강은 다시 악소궁에게 물었다.

[혹시 무림도상에 전()씨 성이면서 위명을 떨친 인물이 없습니까?]

[전씨라....]

악소궁은 이마를 모으며 생각하다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러고 보니 전씨 중에서도 무림에 명망을 떨치는 가문이 하나 있기는 하구먼!]

[그렇습니까? 그게 어느 가문입니까?]

악소궁의 말에 막비강은 급히 물었다.

[사패천 중 북패천(北覇天) 북산검호각(北山劍豪閣)이 대대로 전씨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네! 하지만 그들 일족은 중원의 북쪽 변방에 웅거한 채 외부인들과 교류가 적어 당금 북산검호각에 어떤 인물들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막비강은 악소궁에게서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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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붉은 머리띠를 한 도사가 되어 (2)

 

 

새로 온 사람이 버럭 소리쳤다.

[개똥같은 도사놈아! 모가지를 비틀어야 옥황빙서를 내놓겠느냐?]

현천록이 말했다.

[난 진양진인이 아니오. 난 현천록이오. 진양진인이 나를 이렇게 해놓았소.]

장군묵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튼 수작으로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해.]

장군묵은 슬쩍 손을 흔들었다.

순간 현천록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부드러운 기운이 자기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든 검이 휘둘러졌다.

번쩍!

그의 검은 장군묵의 부드러운 장력을 베어버리고 그의 왼쪽 눈을 찌르고 있었다.

태극혜검 중의 소경심매란 초식이다.

장군묵의 붉으스레한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현천록은 앗차 했을 때 벌써 자기도 모르게 장군묵의 눈을 찌르고 있는 중이었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반격에 다시 반격을 가했다.

검이 부딪혀도 챙강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불똥이 튀고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날뿐이었다.

현천록도 울며겨자먹기로 반격에 반격을, 그 반격에 다시 반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태극혜검은 원래부터 공수를 겸한 것이기에 반격을 반격으로 맞는다.

눈부시게 검광이 흐르고 불꽃이 뛰는 가운데 순식간에 사십여 초가 지나갔다.

현천록은 장군묵과의 싸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태극혜검 중의 수법들을 쥐어짜내며 겨우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장군묵이 사용하는 검법도 역시 태극혜검이지만 현천록이 미처 모르던 수법들도 섞여 있었다.

장군묵도 현천록이 자기의 검술에 검술로 당당히 맞서고 있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자기한테 입은 중상 때문에 공력도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태극혜검을 펼치는 진양진인의 공력이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잡다한 것 보다는 공력이 순수하면 순수한 만큼 강해진다.

공력에도 양이 아니라 질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태극혜검의 수법이 지난 밤에 싸웠을 때보다 오히려 더 정치(精緻)하게 느껴진다.

장군묵은 버럭 소리쳤다.

[재주를 숨기고 있었군. 하지만 그정도의 태극혜검으로 나를 놀라게 할 수는 없지.]

장군묵의 검에서 뿜어나오는 무형의 기운이 아주 강해졌다.

현천록은 진양진인에게 초상감각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다면 단 일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운들은 느끼는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겉으로 볼 때 현천록과 장군묵의 싸움은 눈부신 검광으로 인해 사람을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 였다.

[노대! 진양진인의 검술이 아주 대단하군요.]

나중에 온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코웃음을 쳤다.

[조금 늘었군. 하지만 저 청년이 더 대단해. 나이도 젊어보이는데 완전히 압도하고 있어. 진양은 보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야. 저 보검만 아니라면 벌써 끝장났을 걸?]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노대! 조금 이상합니다. 진양진인의 검술이 싸우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군요. 저 정도라면 저도 백초를 넘기기 힘들 것 같은데요.]

세 사람은 절벽 중간의 입구로 들어왔던 천산삼로였다.

그들이 들어왔던 동굴은 여우굴처럼 여러 개의 굴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노대가 이를 부드득 갈며 욕을 했다.

[빌어먹을 도사놈! 검술이 몸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 노이!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나도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구만.]

노삼이 물었다.

[노대! 검술이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뭐요?]

노대가 말했다.

[썩어빠질 놈아! 너는 사부한테 들은 말은 전부 똥통에 쳐박아버렸냐? 말 그대로 검술이 몸속에 스며들어 사람이 검이 되고 그 사람의 움직임이 바로 검술이 되는 그런 걸 말하잖나. 어떤 검술이 위력이 아니고 수법으로서는 최고에 달한 거야. 소위 검신(劍神)이 된 거지.]

현천록은 꼼짝없이 진양진인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과 목소리가 똑같을 뿐 아니라 태극혜검까지 썼으니 아무리 자기가 아니라고 해도 알아줄 리가 없을 것 같다.

함께 싸우고 있는 장군묵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

현천록은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장군묵은 진양진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사로잡으려는 것이다.

살수를 써야할 때도 상처만 입히는 가벼운 수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현천록의 짐작은 틀림없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똑같은 검술로 상대하는 현천록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길 수 없다.

잠시는 재롱삼아 봐줄지 모르지만 마침내는 장군묵이 손을 크게 쓰고 말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장군묵에게 잡힌다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고 자기도 알고 싶어하지만 모르는 사실을 말하라고 강박당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현천록은 진짜 진양진인이 되어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진양진인이 되어 도망치려면, 현천록은 진양진인이 자기를 속였듯이 장군묵을 속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더 이상 저항은 하지 말아야 한다.

비스듬히 떨어지는 장군묵의 검을 억지로 막고는 검을 떨어뜨려 버렸다.

피웃!

장군묵의 검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목에 쌍검을 가위처럼 교차시켜 걸쳤다.

조금만 힘을 주면 현천록의 늙은(?) 목은 순식간에 잘려질 판이다.

현천록이 저절로 나오는 진양진인의 음성으로 말했다.

[일곱째! 내가 졌소. 하지만 당신도 졌소.]

투투투툭!

장군묵이 장검으로 현천록의 몸에 여섯 군데 혈도를 찍었다. 그는 이번에야 말로 단단히 작정한 한 것 같았다.

[보검인데.]

천산삼로 중의 노삼이 현천록이 떨어뜨린 진양진인의 보검을 줏어들며 말했다.

노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금석을 두부자르듯 하는 신검이야. 어지간한 보검은 무베듯이 베어버릴거야.]

노대는 장군묵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무당파의 진산지보인 진무검(眞武劍)이다. 그나저나 자네는 태극혜검을 정말 잘 쓰는군. 젊은 나이에 아주 대단하네.]

장군묵은 피식 웃었다.

노대가 말했다.

[사실 난 진양진인을 혼자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무림엔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아주 뜻밖이야. 자넨 누군가?]

장군묵이 차갑게 말했다.

[꺼져라! 네 사부 천산일괴(天山一怪)와 안면만 없었다면 그냥 죽였을 거다.]

노삼이 나서며 말했다.

[그건 우리 보고 한 소리겠지?]

노이가 물었다.

[우리 사부를 알고 있나? 죽은지 백년도 더 됐는데.]

노삼이 말했다.

[미친 소리요. 젊은 놈이 어떻게 사부를 알아.]

장군묵이 현천록을 한손으로 들어올리며 서늘하게 말했다.

[나는 젊었지. 늙지는 않았어. 세상에 있을 땐 진양의 사부의 사부의 사부가 나한테 사형이라고 불렀지.]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노삼과 노이가 미친 것처럼 웃으며 미친놈을 보듯이 장군묵을 본다.

하지만 노대는 장군묵에게 보통 사람과 다른 뭔가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진양! 그 사람 말이 정말인가?]

현천록은 동동 매달린 채 말했다.

[정말이오.]

!

노삼과 노이가 웃음을 멈췄다.

장군묵이 현천록에게 말했다.

[도장! 이제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

[잠깐!]

노대가 돌아서는 장군묵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자네가 진양의 태사숙조가 된다면 왜 진양에게 호칭을 그렇게 하는가?]

장군묵이 언찮은 표정을 지었다.

현천록이 재빨리 말했다.

[이분께선 이미 본파를 떠나셨소. 그래서 나를 대할 때도 본파의 어른으로서 나를 대하는 게 아니라 남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것이오.]

장군묵이 뜻밖인 듯 현천록을 힐끗 본다.

현천록은 빙그레 웃었다.

웃어야할 상황인지는 판단이 쓰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그 웃음은 꼭 자기가 잘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노삼이 나서며 말했다.

[그대가 옛날 도사였는지 지금도 도사였는지는 알바 없소. 우린 진양에게 물건을 얻으려고 왔는데 당신이 진양을 그냥 데려간다면 곤란하지 않겠소.]

현천록이 또 말했다.

[뭐가 곤란하다는 거요?]

노삼이 말했다.

[우린 천산에서 몇 달이나 걸려서 왔는데 헛걸음질치고 돌아가면 최소한 일년은 허송세월하는 셈이오. 우리 나이는 적지 않아서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데 일년은 적은 시간이 아니지.]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시간을 보상받고 싶으면 그 검을 가지시오.]

노삼이 말했다.

[아니! 아니! 진양! 나는 검을 쓰지 않으니 필요가 없소. 또 가진다 해도 노이에게 주는게 최선이오. 우리 중에서 오직 노이만이 검을 쓰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검을 돌려줄테니 당신이 갖고 있는 옥황빙서를 우리한테 주시오.]

하하하하!

현천록은 그렇게 웃었지만 허허거리는 소리가 되어 나왔다.

노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왜 웃는가?]

장군묵이 버럭 소리쳤다.

[닥쳐라!]

천산삼로도 입을 다물었고 현천록도 입을 다물었다.

장군묵이 손을 이상하게 한 번 썼다.

[어어!]

그의 앞을 막았던 노삼이 둥실 떠올라 동굴 벽에 부딪혔다.

장군묵이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도 보지 못했다.

[멈추시오!]

노대가 소리쳤다.

하지만 장군묵은 환상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신법이었다.

노삼이 욕을 했다.

[빌어먹을 작자! 감히 나를 집어던지다니. 똥통에나 빠져버려라.]

노이도 사라지고 없었다.

노대가 큰소리로 불렀다.

[노이! 돌아와라! 그를 따라갈 순 없다.]

휘이이익!

노이는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노대 앞으로 날아왔다. 그는 장군묵이 신법을 펼칠 때 함께 신법을 펼쳐 뒤쫓았던 것이다.

노대는 어둠 속에 대고 물었다.

[여기에 들어온 놈은 모두 몇이냐?]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우리 일행은 칠십 명이 들어왔소. 하지만 다 죽고 지금은 여기있는 네 명만 남은 것 같소.]

노대가 말했다.

[네 놈들도 옥황빙서를 노리고 왔느냐?]

신궁 오무한이 탄식하며 말했다.

[명령을 받고 왔을 뿐이오. 진양진인을 찾으라는.]

노삼이 코웃음을 쳤다.

[노대, 저놈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오. 진양진인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찾는데 칠십 명씩이나 동굴에 집어넣을 바보 멍청이가 있겠소?]

노대가 말했다.

[네놈들의 이름은 뭐냐?]

네 사람이 각기 대답했다.

[활을 좀 쏜다고 해서 신궁이라 불러주는 오무한이오.]

[금전표(金錢鏢) 곽기(郭基).]

[수리전(袖裏箭) 형가운(衡駕雲)이오.]

[철연화(鐵蓮花) 마춘보(馬春寶).]

노이가 말했다.

[노대! 모두 질 좋는 놈들이 아니오. 암기나부랑이나 쓰는 녀석들이오. 모두 죽여버립시다.]

금전표 곽기와 수리전 형가운, 그리고 철연화 마춘보가 찬바람을 들이켰다.

자기들이 무슨 수를 써도 괴상한 세 노인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꼼짝없이 죽는구나 싶을 때 신궁 오무한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리가 죽기를 원한다면 세 분이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소. 우린 그냥 둬도 여기서 죽게 될거요.]

노삼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 우리가 죽이지 않아도 죽는단 말이냐?]

오무한이 말했다.

[이미 동굴 입구는 다 무너졌소. 여기서 우리가 무슨 방법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소?]

노삼이 펄쩍 뛰면서 말했다.

[그 때문에 네놈들이 죽는다면 우리도 그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된다. 사실이냐?]

오무한이 말했다.

[기주는 이미 동굴을 무너뜨렸소. 혹시 뚫고 나간다고 해도 기주 손에 죽고 말것이오. 당신들은 우리 때문에 죽게 된 피해자요.]

노대가 물었다.

[기주란 놈은 또 뭐냐?]

오무한이 말했다.

철연화 마춘보가 말했다.

[기주는... 기주요.]

노삼이 고함쳤다.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금전표 곽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걸 어떡하겠소?]

노대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나머지는 여기를 나간 후에 알아보도록 하지.]

노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노대! 무슨 냄새를 맡았소?]

노대가 손을 저어 목소리를 낮추라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따라와. 이 동굴은 간단치 않아.]

노이와 노삼은 물론이고 신궁 오무한과 금전표 일행도 노대의 뒤에 따라붙었다.

노삼은 자꾸만 오무한과 금전표 등을 죽여버리고 싶은지 힐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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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神龍決心

 

 

 

소주(蘇州).

유유히 흐르던 장강이 크게 한 굽이 돌아가 생긴 첨형의 넓은 분지.

그 분지 위엔 한 채의 장원이 서 있다.

강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깎아 지른 듯한 절벽이다.

매우 조용하고도 아늑한 장소에 장원이 서 있는 것이다.

 

소주별원(蘇州別院).

장원의 이름이다.

소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장원의 주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신궁태자(神弓太子) 철문영(鐵文英).

 

당금 천하에서 황실을 제외하면 가장 큰 철사왕부(鐵師王府)의 소주인.

게다가 황상의 두분 공주 중 첫째 공주인 빙향공주(聘香公主)의 부마(駙馬)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신궁태자는 바깥 줄입이 극히 드물어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젊은 미공자이고 천하의 기재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때는 초하(初夏)의 오후.

이곳은 장강의 굽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이다.

울창한 수림이 들어 찬 숲속에 한 채의 정자가 서 있다.

정자 중앙에는 넓은 포단이 갈려 있었다.

포단 위에는 두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여인은 이십 육칠 세 정도 된 궁장 여인이다.

여인은 눈에 확 뛸만한 빼어난 미모로 몹시도 정이 많은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 여인은 자기 무릎 위에 한 명의 소년 공자를 누이고 있었다.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운 소년.

십 육칠 세 정도 되었을까?

한 번 본 사람이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영준한 소년이었다.

여인이 무색할 지경으로 뽀얀 피부와 섬세한 얼굴의 선 등이 마치 절세미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은 소년의 몸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이었다.

뚜렷한 병색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유약해 보였다.

소년은 궁장미인의 섬섬옥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문득 궁장미인의 입에서 조심스런 옥음이 흘렀다.

"왕부를 떠나신지 일 년이 넘었사옵니다. 왕야내외분들과 황상께서 심려 하심이 크실터이니 환부 하심이 어떠시온지요?"

소년은 잠시 무심한 시선을 강상으로 던지다가 입을 열었다.

"회희, 다른 일이라면 다 화희의 말을 따르겠으나 환부하는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줘."

소년의 말에 화희라는 여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쌍하신 분...)

여인의 눈길이 안타깝게 소년을 훑어 보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고우신 분에게 불치의 병이라니... 이분의 연세가 벌써 십칠 세. 약으로 버틴다고 해도 오년 후면...)

여인은 생각하기도 싫은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냐?"

소년이 약간 짜증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명의 시녀가 정자로 다가와 시립하였기 때문이다.

"... 사대선생께서 급히 태자(太子)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태자(太子)!

! 그럼 소년이 바로 신궁태자(神弓太子)였던가?

그렇다.

소년이 바로 소주별원의 주인인 신궁태자였다.

헌데, 부마도위(駙馬都尉)인 그가 어째서 혼자 이 소주에 내려와 있는 것일까?

 

철문영은 몸을 일으켰다.

"사대선생께서 돌아오셨단 말이냐?"

". 하오나..."

시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오나라니! 무슨 일이 있느냐?"

"사대선생께선 심하게 다치셔서 돌아오셨사옵니다. 급히 치료는 해드렸지만 매우 중하십니다."

철문영은 벌떡 일어섰다.

화희라는 여인이 따라 일어나 부축했다.

 

정자를 떠난 철문영은 곧 조용한 전각에 이르렀다.

몇 명의 시녀가 시립해 있다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철문영과 화희는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에는 수많은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책들 사이에 작은 침상이 놓여 있다.

지금, 그 침상 위에 안색이 밀랍같이 창백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

"사선생!"

철문영이 급히 다가섰다.

"... 전하..."

노인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 . 일어나 인사를 못드림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철문영은 노인의 앙상한 손을 잡으며 침상 옆의 의자에 앉았다.

"괜찮습니다. 헌데 사대선생께선 어쩌다 이 지경으로 다치셨습니까?"

철문영이 묻자 노인은 손을 저었다.

이에 방에 있던 시녀 몇 명이 밖으로 물러났다.

"전하. 언젠가 이 늙은이가 천세문(千世門)에 대해서 말슴드린 적이 있지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헌데 왜 그런 말씀을 지금...?"

소년 철문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의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노인은 철문영에게 있어 부모 다음으로 중요한 두 인물 중 하나이다.

그들은 바로 화희(花姬)라는 여인과 노인이다.

 

화희(花姬).

그녀는 고아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녀를 철문영의 생모가 거두어 길렀다.

그녀가 열살 때 철문영이 태어났다.

그리고, 철문영의 생모는 그를 낳은지 얼마 안 되어 신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생모를 잃은 철문영을 길러준 것이 화희, 그녀였다.

그런 그녀이기에 철문영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여인인 것이다.

그녀는 철문영에게 있어 누이이고 어머니이며 자기가 필요로 할 때 항상 옆에 있어주는 여인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철문영에게 있어 아버지 철사왕(鐵師王)만큼이나 소중한 여인이다.

 

사대선생(士大先生).

십여 년 전부터 철문영을 가르쳐 온 노문사였다.

그의 신분내력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그러나, 노인의 학문은 만박통지(萬博通知).

모르는 분야가 없는 기인이었다.

철문영의 끝없는 학구 의욕을 채워준 인물이 사대선생이었다.

노인은 비단 학문을 통탈했을 뿐 아니라 무림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어 종종 철문영에게 무림사를 이야기 해 주었다.

천세문(千世門)에 대해서도 언제인가 이야기 한적이 있었던 것이다.

 

"전하... 이 늙은이가 바로 당시 천세문(千世門)의 기전(奇殿)을 맡았던 늙은이옵니다."

노인의 말에 철문영은 흠칫 놀랐다.

노인이 천세문에 대해 너무도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이 의아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노인이 바로 천세문 기전전주일 줄이야,

"허허... 그동안... 전하를 본의아니게 속여... 왔습니다. 용서... 하여주십시오."

사대선생, 아니 기전주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저었다.

"용서라니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상세가 중하시니 우선 조리를 하신 뒤에..."

기전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 니다. 지금이 아니면 말슴드릴...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늙은이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철문영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천세비동에서... 이 늙은이가... 배신자 모용인... 그자에게 암습을... 당한 것을 말씀드렸지요?"

"그렇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대 이 늙은이는 무방비 상태에서 모용인의 공격을 맏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숨을 건지기 위한 속임수였습니다."

"속임수라니요?"

철문영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허허... 기문(奇門)의 기공(奇功) 중에 쇄맥대법(鎖脈大法)이라는 것이 있지요. 이는 일시적으로 모든 신체 기능을 중단시키는 방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죽은 듯이 보이지요. 그러나 그 상태에서는 전신이 갈가리 찢기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기전주는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당시 중독되어 있던 몸인지라 모용인 그자를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주님께서 능히 천세비동을 지키실 것으로 기대하고 후일을 오모키 위해 구차한 목숨을 연명한 것입니다."

기전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대신 그의 얼굴에는 점차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졌다.

하지만 철문영으로서는 기전주의 말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

"과연 문주님께서는 천세비동을 봉쇄기키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이 늙은이 역시 목숨을 구했지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문주님께서 천세비동과 함께 최후를 같이 하신 것입니다."

철문영은 침중한 기색으로 기전주의 말을 들었다.

"그후, 노부는 천신마고 긑에 육성정도의 공력을 되찾고 강호로 나왔습니다. 강호에 나온 노부는 우연한 기회에 전하의 교육을 맡았으며 틈틈이 강호에 나가 몇 가지 일을 알아 보았습니다. 먼저 천세문이 화를 당할 때 천세문을 탈출하신 주모(主母)님과 아기씨의 행방을 찾아 보았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찾지 못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주모님과 아기씨 뿐 아니라 삼대신파와 삼십육 소녀위대의 행방마저 묘연해졌습니다."

기전주는 암울한 신색으로 말을 이었다.

"노부가 두 번째로 한 일은 본문의 뒤를 이을 인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천세문은 붕괴되었으나 천세비동이 존재하는 한 천세문의 맥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힘들군요. 천세비동은 내부에서 봉쇄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철문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인은 모르는 또 다른 밀로가 있습니다. 그 밀로는 문주와 수석전주밖에 모르며 그 밀로를 열 수 있는 것 또한 수석전주와 문주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언제라도 노부는 천세비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천세문을 이을만한 인재를 구하셨습니까?"

기전주는 암연히 고개를 저었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노부가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본문의 역대 문주님들의 영령을 어찌 뵈올지..."

기전주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세번째로 노부는 본문을 친 자들을 조사했습니다. 물론 본문을 친 자들의 주력은 마교(魔敎)였습니다만, 반수 이상은 중원무림의 고수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과가 있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철문영은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먼저 당시 본문을 친 마교는 두 가지 속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원제일의 거파인 본문을 무너뜨려 중원제패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자들은 본문의 한 가지 무공을 노렸습니다."

"마교라면 천세문과 걷는 길이 다를 터인데 무엇을 노렸단 말입니까?"

철문영이 물었다.

"본문에는 문주님만이 보실 수 있는 두 권의 비급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히 하늘을 가르고 바다를 뒤집어 엎을만한 신공절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천세절전(千世絶典)상의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은 본문 이천 년의 정화가 집결된 구결(口訣)입니다. 이는 한가지 신공의 구결로 지금은 미완성이나 완성되면 고금제일기공(古今第一奇功)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마교에서 군침을 흘릴만도 하지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알아낸 것은 당시 천세문이 붕괴될 때 탈출에 성공한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본문의 대붕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중 다른 자들은 별로 주목할 만한 자들이 못되나 열두명의 인물들은 누목할 만한 자들입니다. 그자들은 당시 천세비동에서 무림천년기전의 비급을 갖고 나와 지금은 무림의 최절정고수들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자들은 통칭하여 팔절(八絶), 사패(四覇)라 불리고 있습니다."

"팔절(八絶)과 사패(四覇)..."

철문영이 중얼거렸다.

"팔절(八絶)이란, 고죽검신(枯竹劍神), 신필수사(神筆秀士), 경천신도(驚天神刀), 혈사신마(血沙神魔), 무영괴파(無影怪婆), 천음인(天音人), 신풍도객(神風盜客), 혈륜비마(血輪飛魔)입니다. 그리고 사패(四覇)란 동보(東堡), 서장(西莊), 남곡(南谷), 북궁(北宮)이라 불리는 네 개의 문파입니다. 동보(東堡)란 산동(山東) 천양보(天楊堡), 서장(西莊)은 협서(陜西) 제왕장(帝王莊), 남곡(南谷)은 호남(湖南) 낙일곡(落日谷), 북궁은 하북(河北) 빙혼궁(氷魂宮)을 말합니다."

기전주의 얼굴은 완전히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였다.

그러나, 기전주는 말을 멈추려하지 않았다.

"노부는 이번에 동보 천양보(天楊堡)가 마교와 은밀히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천양보로 숨어들어가 천양보주인 천양신군(天楊神君)의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철문영이 침중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럼 천양신군이란 자가 사선생을 다치게 하셨습니까?}

기전주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노부의 공력이 육성 정도밖에 안되는 상태지만 그자 정도에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쩌다가 이런 중상을 입으셨습니까?"

철문영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천양봉 마교에서 나온 자가 있었습니다. 그자는 마교의 최고고수들인 팔대마령(八大魔靈) 중 한 자인 강령마왕(罡靈魔王)이라는 자였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검게 변했다.

이미 사신(死神)이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철문영은 안타까웠으나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었다.

"... 그자의 녹주환혼마강(碌柱換魂魔)... 정말로 강했습니다. 사력을 다했으나... 공력이 모자라... 그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기전주는 급히 가슴을 눌렀다.

""

기전주는 힘겹고 고통스런 기침과 함께 한 사발은 됨직한 사혈(死血)을 토해냈다.

"사선생"

철문영이 안색이 변해 외쳤다.

그러나, 기전주는 손을 저었다.

"이 늙은이 걱정은 마십시오. 이미 전신의 심맥이 모두 석어 문드러져 가망이 없습니다."

"사선생."

철문영은 기전주의 앙상한 손을 꼭 쥐었다.

(, 이분에게 힘든 짐을 지워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육체를 지탱하시기도 힘든 분인데...)

기전주는 착잡한 시선으로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 , 이 늙은이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지요?"

철문영은 기전주의 말에 기전주의 야윈 손을 힘주어 쥐었다.

"말씀해 보십시오. 사선생께서는 본인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만 본인은 사선생께 아무것도 못해드렸지 않습니까? 본인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겠습니다."

철문영의 말에 기전주의 혈색가신 노안에 미소가 감돌았다.

"고맙습니다. 부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저희 천세문의 대통을 전하께서 이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철문영은 흠칫 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선생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본인은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을 지니고 있어 이십 세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철문영이 암담히 중얼거렸다.

듣고 있던 화희도 암울한 표정이 되었다.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은 희귀한 절맥이다. 천 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할 정도로 극히 드물게 나타는 증세이기 때문이다. 이 절맥을 지닌 인물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양강지기(陽剛之氣)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하니 천하에 존재하는 어떠한 극음지기(極陰之氣)로도 치유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나이가 듬에 따라 그 양기가 더욱 강해져 이십세를 넘기지 못한다. 그 양기가 너무 강해져 전신의 심맥이 완전히 타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 이 절중을 치료하는 방법이 한가지 있기는 있다. 본시 하늘의 안배는 오묘한 것. 천라태양신맥이 세상에 나타나면 그와 함께 천고에 드문 극음지체(極陰之體)가 나타나는 것이다.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이것이다. 이 절맥만이 천라태양신맥의 양강지기를 융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넓고 넓은 천하에서 단 한 명의 상대자를 찾는다는 것은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철문영도 그런 까닭에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하... 전하께서는 단명하실 분이 아닙니다. 필시 인연이 닿아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천라태양신맥만 치유되신다면 전하께서는 능히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 되실 수 있습니다."

철문영이 괴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사선생. 지금까지 본인은 자포자기 상태로 있었습니다만 이제 마음을 바꾸겠습니다. 필히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고 천세문의 혈한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죽음이 드리운 기전주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고맙습니다, 전하. 전하께서 본문의 대통을 이어 주신다면... 이 늙은이는 안심하고 눈을... 감겠습니다."

기전주는 힘겹게 오른손에서 큼직한 보석이 박힌 지환(指環)을 뻬서 철문영의 손에 쥐어 주었다.

"... 이것이 밀로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밖의... 일에... 대해에서는 서가... 맨 아래칸의 비책(飛冊)... 기록해... 놓았으니 참고... 하십시오."

돌연 기전주의 얼굴에 반짝 하고 생기가 돌았다.

이는 생명의 불길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현상이었다.

"천세... ... 수천의... ... 령들이 전하...를 비호...하여 주시길..."

말을 하던 기전주의 머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사선생(士先生)!"

철문영이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미 기전주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

회희가 섬섬옥수로 옥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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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저녁 무렵. 해가 지기 직전. 여전히 황금전장

월동문이 있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건물. 건물 주변에는 갑옷을 걸친 여자 무사들이 지키고 있다. <자객일지>에 나온 황금나찰들이다.

월동문으로 들어오는 황금수라 한명. 수염을 길렀고 나이가 들어 보인다. <자객일지>에 나온 황금수라 부영반 귀견수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귀견수. 귀견수 뒤를 청풍이 따라온다

[()영반님!] 건물 입구를 지키던 황금나찰들이 귀견수를 보고 고개 숙이고

청풍; (본장의 내원을 지키는 여자 무사들인 황금나찰(黃金羅刹)...) 손 들어 아는 척 하는 귀견수를 따라가며 생각하고

청풍; (여자지만 개개인이 일류고수라던가?) 생각할 때

입구에 멈춰서며 의관 정제하는 귀견수. 청풍도 멈춰서고

귀견수; [장주님! 이청풍을 데려왔습니다.] 포권하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경호무사 황금수라(黃金修羅)의 부영반 귀견수(鬼見手)>

<들여보내라.> 건물 안에서 들리는 말

귀견수; [들어가라.] 옆으로 물러서고

귀견수; [장주님 가족에게 예의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고!]

청풍; [...] 대답하며 걸어가고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간다.

 

#8>

문 안쪽은 넓고 화려한 거실이다. 거실 중앙에는 화려한 탁자와 네 개의 의자가 놓여있고 그곳에 벽초천 가족이 앉아있다. 문을 향해 나란히 놓인 의자에 벽초천과 함께 드세 보이는 절세미녀가 앉아있다. 미녀의 이름은 마은혜. <무쌍일지>에 나온 황후 마은혜 캐릭터. 벽초천의 본처다.

탁자 좌우에는 소년 소녀가 앉아서 돌아본다.

벽초천 쪽에 앉아있는 소년은 청풍보다 두 살쯤 많아 보이는 거만한 인상의 소년. 나이에 비해 체격이 좋은 이 소년은 벽초천의 아들인 벽세황. 전형적인 금수저, 재벌이세 캐릭터.

벽세황 건너편에는 청풍보다 한 살 어린 소녀가 앉아서 보고 있다. 이름은 벽옥령인데 엄마를 닮아 도도하고 드센 인상이지만 예쁘다. <무쌍일지>의 주옥령 캐릭터

거실 구석에는 네 명의 시녀가 각기 두명씩 서서 시중 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중 한 시녀는 옷이 든 보따리를 들고 있다. 이름은 혜분. 나이는 10대 후반. 정이 많은 인상. 나중에 청풍과 썸씽이 있다. <무쌍일지>에 나온 강혜분 캐릭터

강혜분; (저 아이가 타노의 아들 이청풍...) 문을 닫고 들어서는 청풍을 보며 눈 반짝

강혜분; (몇 번 본 것도 같은데 딱히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는 평범한 아이네.)

청풍; [장주님!] 탁자 앞에 서서 포권하고.

청풍; [부르심 받고 대령했습니다.]

강혜분; (겨우 열 살이라는데 어른처럼 의젓하잖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옆의 시녀도 호감을 느끼는 표정. 그때

벽초천; [부인! 저 놈이 바로 이청풍이오.] 옆에 앉아있는 마은혜에게

마은혜; [저런 아이가 본장에 있는 줄은 몰랐어요.] 청풍을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보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초천의 본처 마은혜(馬恩惠)>

벽초천; [본장의 하인 숫자는 천명이 넘소.] [게다가 늘 장경각에 처박혀 있었던 탓에 저놈을 아는 사람은 얼마 안될 거요.] 마은혜에게 설명하고. 벽세황은 지루한 표정으로 힐끔거리고. 벽옥령은 눈 반짝이며 보고 있고

마은혜; [그렇겠군요.] 끄덕

마은혜; [글은 어떻게 배웠느냐?] 청풍에게

청풍; [철이 들 무렵 아버지가 천자문을 가르쳐주셨고...] [네 살 때부터는 장경각 총사서 우문노야로부터 학문을 배웠습니다.]

마은혜; [우문노인은 한림학사 출신이니 대단한 스승을 둔 셈이로구나.] 차갑게 웃고

청풍; (하인 주제에 한림학사 출신의 스승은 과분하긴 하지.) 쓴웃음

벽옥령; [무려 네 살 때부터 우문노야에게 배운 거야?]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천재잖아.] 짝짝! 감탄한 표정으로 손뼉 치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초천의 딸 벽옥령(碧玉鈴)>

청풍;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가씨.] 고개 숙이고

벽옥령; [난 옥령이고 아홉 살이야. 아가씨라 하지 말고 옥령이라 불러.] 얼굴 발그레 해져서

청풍; (나보다 한 살 아래로군.) + [소인이 어찌 감히 아가씨의 방명을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마은혜; [그 말은 맞다.] 도도

마은혜; [넌 앞으로도 옥령이를 아가씨라 불러라.] 청풍에게

청풍; [예 마님!]

벽옥령; [엄마!] 불만. 하지만

마은혜;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하는 법도가 있는 법이다.] [너나 저 애를 위해서라도 그 법도는 지켜져야 한다.]

벽옥령; [...] 삭 죽고

청풍; (맞는 말이다.)

청풍; (내가 아가씨와 터놓고 지내면 아가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만만히 여겨지고 나는 질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생각할 때

벽세황; [너 몇 살이냐?] 거만하게 눈 흘기며

청풍; [열살입니다.]

벽세황; [그럼 나보다 두 살 아래로군.] 히죽. 거만하게 웃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초천의 장남 벽세황(碧世皇)>

벽세황; [이것저것 가르쳐줄 테니 앞으로 내 시중 잘 들어라.]

벽초천; [배워야하는 건 청풍이 아니라 세황이 너다.] 엄한 표정으로 벽세황에게

벽세황; [배워요? 소자가 저놈에게?] 어이없고

벽초천; [우문노인이 쾌차해서 돌아오는 대로 너도 우문노인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수학을 해야 한다.]

벽초천; [그때까지는 청풍이와 공부를 해서 진도를 얼추 맞추도록 해라.]

벽세황; [아이 참! 난 글공부보다는 무공을 배우는 게 좋은데...] 짜증내다가

움찔! 하는 벽세황. 벽초천과 마은혜가 엄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벽세황; [... 분부 따르겠습니다.] 자세 바로 하며 부모의 눈치를 보고

마은혜; [이청풍!]

청풍; [예 마님!]

마은혜; [배움에는 귀천이 없고 나이 역시 상관이 없다고 했다.] [오직 누가 더 멀리 배움의 길을 갔는가로 선후(先後)가 정해지는 법이다.]

마은혜; [글공부는 세황이가 너의 후배이니 혹여 나태하면 즉시 내게 고하거라.]

청풍; [분부 받들겠습니다.] 포권하고

그러면서 곁눈질. 벽세황은 입이 댓발이 나왔고.

청풍; (장주의 눈에 뜨이는 바람에 소장주의 글동무가 되었는데...)

<어쩐지 고생문이 훤히 열린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실내의 모습. 마은혜가 청풍에게 뭐라 하는 장면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옥령은 초롱초롱한 표정으로 청풍을 보고. 벽세황은 삐진 모습이다.

 

#9>

해가 막 진 무렵. 여전히 황금전장

황금전장의 후미진 곳. 하인들이 사는 곳이다. 낮고 긴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고. 공동 우물이 있는데 그 주변에서 하녀들이 빨래를 하거나 음식 준비를 한다. 건물 들 사이에선느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고.

빨래하던 여자들 흠칫! 한쪽을 보고

건물들 사이로 걸어오는 청풍. 보따리를 하나 들고 있다. 시녀 강혜분이 들고 있던 그 보따리다. 뛰어 놀던 아이들이 힐끔거리지만 아는 척 하진 않고

[청풍이가 돌아왔어!] [타노 아들 청풍이야.] 여자들 수군거리고

여자들; [내원으로 불려갔었다던데 무슨 일일까?] [청풍이도 우리같은 천한 놈인데 장주님께서 왜 부르셨는지 모르겠어.]

여자들; [황금전장에서는 발에 채이는 게 하인이잖아.] [흔하고 천한 하인 주제에 장주님 눈에 들었다면 좋은 일이지 뭐.] 시기하는 여자도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길쭉한 건물들 중 어느 방으로 가는 청풍. 방 한 칸 짜리다.

청풍;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10>

청풍; [!]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흠칫! 하고

어둑한 방안. 불은 켜져 있지 않은데 타노가 의자에 앉아있다. 방에는 침대 두 개와 의자 두 개. 탁자 하나가 있다. 옷은 대충 벽에 걸게 되어 있고

청풍; [아버지!] 눈치 보며 문을 닫고

타노; [앉아라.]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고. 타노는 10년전과 거의 비슷한데 머리가 좀 더 희었다. 이제 반백이 되었고

청풍; [...] 탁자 위에 들고 온 보따리를 놓고 마주 앉고

타노; [장경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부() 총사서 조선생에게서 들었다.]

청풍; [...] 눈치 보고

타노; [장주는... 너의 능력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한숨

청풍; [기억력이 비상하고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까지만 알고 계십니다.] 눈치 보며

타노; [내원으로 불려가서 네가 할 수 있는 다른 능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느냐?] 굳은 표정

청풍; [!]

타노; [그렇다니 다행이다.] 한숨. 안도의 표정

타노; [앞으로도 너는 철저하게 공부재주만 있는 글벌레로 행세해야한다.]

타노; [행여나 네가 한번 본 건 글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된다.]

청풍; [명심하겠습니다만...] 말 꼬리를 흐리고

타노; [왜 아비가 너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걸 엄금하는지 궁금하겠지?]

대답하지 않는 청풍. 긍정하고

타노;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서는 안된다.] [너에 대한 것이 알려지면...]

타노; [너는 물론이고 아비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심각

청풍; [...] 대답하지만 미진하고

타노;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만 기다려라.]

타노; [그때쯤이면 너도 황금전장을 나가 독립할 수 있을 테고... 그럼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마.]

청풍; [알겠습니다.]

 

#11>

건물 밖의 모습. 시간이 좀 지났고

타노; [소장주와 글공부 동무라...]

청풍; [당장 내일부터 내원으로 와서 소장주의 공부를 봐주라고 하셨습니다.]

청풍; [이 옷은 내원을 드나들 때 입으라며 마님께서 주셨고...] 탁자 위에 놓인 보따리를 보며 말하고

타노; [소장주는 무공에는 제법 소질이 있지만 진득하게 학문을 할 수 있는 성격은 못된다.] [장차 네가 여러모로 힘들 게다.]

청풍; [각오하고 있습니다.]

타노; [비록 소질이 있다지만 소장주는 무공 방면에서도 아주 특출한 인재는 못되는데...] 생각하다가

타노; [장경각에도 무공과 관련된 서적들이 많이 수장되어 있겠지?]

청풍; [전체 장서의 대략 일푼 정도가 무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타노; [일푼이라 해도 천여권...] 말 끝을 흐리며 청풍을 보고

청풍; [그중 십에 팔은 읽었습니다.] 눈치 보며

타노; [그럴 거라 생각했다.] [사내아이들에게 무림인이 되는 것은 꿈이기도 하니...] 쓴웃음을 짓고

타노; [물론 읽기만 했겠지?]

청풍; [수련은 하지 않았습니다.]

타노; [네가 몸이 약해서 무공 수련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소문을 퍼트려 놨다.]

타노; [그러니 소장주와 어울리다가 헛바람이 들어서 내공심법을 수련한다던지 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거라.]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지만

청풍; (불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분부를 따르고는 있지만...) 내심 불만

<언제까지 이렇게 은인자중하고 나를 숨기며 살아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실내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12>

<-칠년 후> 험준한 산. 낮이지만 먹장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어둡고 음침한 날씨

우르릉! 먹장구름 속에서 천둥도 일고.

골짜기. 오래전에 버려진 절. 무너진 건물들. 잡초가 무성. 귀신이 나올 것같은 분위기

그나마 온전한 대웅전 건물

어둑한 내부. 세 개의 커다란 불상이 불단에 안치되어 있고.

번쩍! 밖에서 번개가 치고. 다음 순간

번갯불에 비쳐 대웅전 안쪽에 길게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입구에 서있는 거인. 키가 2미터 50쯤 되는데 보디빌더 같은 몸에 짐승 가죽을 둘렀고, 손에는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들었다. 이자는 신선부의 앞잡이인 혈세사패중 지옥갱의 갱주인 지옥혈부. 캐릭터는 168인데 무기만 도끼로 바꿀 것.

지옥혈부; [본좌가 첫 번째인 줄 알았는데... 한 걸음 늦었군!] 중얼거리며 대웅전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러자

<그리 늦지 않았소 갱주(坑主)! 본좌도 막 도착한 참이었으니...> 츠으! 말과 함께 대웅전 구석에서 흐릿한 빛이 떠오르더니

!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 인물. 흰 가면을 썼고 흰 옷을 입었다. 두 손은 양쪽 소매에 넣고 있고. 이자는 혈세사패중 백살파라는 살수조직의 수령이다. 별호는 백일살신. 캐릭터는 658.

지옥혈부; [백살파(白煞巴)의 파주 백일살신(白日殺神)!] [천하제일의 살수(殺手)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도끼를 든 채 포권하고

백일살신; [살인하는 재주라면 지옥의 살귀들이 모여 있다는 지옥갱(地獄林)의 주인 지옥혈부(地獄血斧)를 누가 능가할 수 있겠소?] 고개 좀 숙이고

백일살신; [안 그렇소? 환마루주(幻魔樓主)?] 불단에 있는 부처상을 보며 말하고. 지옥혈부도 흠칫! 하며 돌아보고. 그러자

<흐흐흐! 역시 천하제일살수의 이목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군!> 웃음소리가 불단에서 들리더니

츠츠츠! 불단에 안치되어 있던 세 개의 불상중 좌측의 불상이 흔들리더니

스스스! 그 불상에서 아메바처럼 빠져나오는 인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뒤덮은 인물. 눈 부위만 보인다. 백일살신과 다른 점은 백일살신은 가면을 썼고 이자는 복면을 쓴 점. 혈세사패중 환마루의 주인으로 별호도 환마루주다.

지옥혈부; (신묘한 환술(幻術)이 특기인 환마루(幻魔樓)의 주인 환마루주...) 눈 번뜩이며 보고

지옥혈부; (저자의 장기는 주변의 어떤 사물로든 변신할 수 있는 환술이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불단 앞에 서는 환마루주를 보며 생각하고

지옥혈부; (나중에 우리 혈세사패(血洗四覇)들 간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을 벌일 때 가장 조심해야하는 적이다.) 눈 번뜩이고.

세 방향에 서서 서로를 노려보는 지옥혈부, 백일살신, 환마루주. 그때

[어머나! 여기 분위기 왜 이렇게 살벌할까?] 갑자기 들리는 음성에 움찔하는 세 사람

구미호리; [지금 당장 결판을 내야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신경 곤두세우면 피곤하지 않는가요?] ! 문으로 들어서는 야한 여자.

! 여자의 모습 자세히 보여준다. 화려한 일본 여자 같은 복장과 장식을 했으며 얇은 옷을 입었는데. 벌어진 저고리 사이로 육중한 젖가슴의 형상이 보이고 옆이 터진 치마로는 하이힐을 신은 미끈한 다리가 드러난다. 손에는 곰방대를 들고 있는데 입에서 막 뗀 모습. 이 여자는 혈세사패중 쾌활림의 림주인 구미호리. 캐릭터는 074 075. 몸에서 꽃향기가 흘러넘치는 육감적이고 도발적인 분위기

<쾌활림(快活林)의 림주 구미호리(九尾狐狸)!> <저 계집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사내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는 소문이 사실이로군!> <위험한 체향! 저 년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자 정신이 혼미해진다!> 긴장하는 지옥혈부등 자신들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눈이 좀 풀리거나 충혈되고

구미호리; [어머나 정말 서운하네.] 눈을 흘기며 대웅전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고.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걸어오는데 갈라진 옷자락이 꼬리처럼 흐느적거린다

구미호리; [본녀를 마치 독사처럼 보시는 건 너무 하지 않는가요?] [본녀는 세분 문주님들을 해코지 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에요.] 대웅전 중앙으로 들어서며 세 사람에게 눈을 흘기고

환마루주; [오해하지 마시오! 우리는 림주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림주를 보호하려고 물러서는 거요.]

구미호리; [그건 또 무슨 요상한 논리인가요 환마루주님?]

환마루주; [우리들은 위험을 느끼면 반드시 살수를 쓰는 버릇이 있소.] 지옥혈부와 백일살신을 보며 말하고. 지옥혈부는 두 손으로 도끼를 움켜잡고 있고 백일살신은 양쪽 소매에서 약간 꺼내는 손에 갈쿠리가 보인다. X맨 울부린의 칼날 같은

지옥혈부와 백일살신의 모습

구미호리; [본녀의 유혹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차라리 죽여 버리겠다는 건가요?] 서운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고

환마루주; [림주의 노예가 되느니 눈물을 머금고 림주의 목을 치는 게 났지 않겠소?] 지옥혈부와 백일살신을 보며

말없이 고개 끄덕이는 지옥혈부와 백일살신

구미호리; [! 알았어요!] 스륵! 벌어졌던 저고리를 여며 젖가슴 감추며 눈을 흘기고

구미호리; [세분이 겁먹지 않도록 저의 색기(色氣)를 줄이는 수밖에...] 속살을 감추며 새침한 표정을 짓고. 그러자

안도하며 도끼를 내리는 지옥혈부

스슥! 소매 속에서 조금 뽑았던 손에서 갈쿠리가 사라지는 백일살신

구미호리; [사내가 되어서 여자를 무서워하기나 하고 말이야.] [나라면 가운데 달린 거 삭둑 잘라버리겠어.] 샐쭉거리고

쓴웃음 짓는 지옥혈부. 그때

환마루주; [다시 인사드리겠소!] [명성으로만 듣던 세분을 한 자리에서 뵙게 되어 영광이오.] 포권하고

지옥혈부; [혈세사패의 주인들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군.] 도끼를 든 채 포권하고

백일살신; [은밀히 사람을 죽이는 게 본업인지라 본좌도 타인 앞에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처음이오.] 역시 포권하고

구미호리; [물론 세분도 존귀하신 그분... 지존(至尊)의 호출에 응하신 거겠지요?] 교태롭게 웃으며 말하고. 그러자

<지존!> 지옥혈부들의 얼굴이 굳어지고

구미호리; (역시 지존의 존재감은 가공하네.)

구미호리; (한 때는 자신이 천하제일인이라고 뻐기던 저 인간들을 이름만으로도 얼어붙게 만드니...)

구미호리; (하긴 나도 지존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까무라쳤었으니 남 말할 처지가 아니지.) 두려운 표정으로 몸을 좀 움츠리고

구미호리; (과연 지존의 정체는 뭘까?)

구미호리; (어떤 대단한 배경이 있기에 우리들 혈세사패를 간단히 복종시킨 것일까?) 생각하고. 다른 세 사람도 침묵하는데

<수인사들은 나눈 것 같군!> 갑자기 누군가의 말이 들려 눈 부릅뜨는 내 사람

지존;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군!] ! 언제였는지 불단 앞에 화려한 의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곳에 한 인물이 다리를 꼬고 양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은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다. 몸에는 화려한 곤룡포를 걸쳤으며 얼굴에는 두 개의 뿔이 달린 귀신가면을 가면을 쓴 모습. <무쌍일지>의 십면혈신 캐릭터. 이 작품에서의 별호는 귀면지존. 보통 지존이라고도 불린다. 지존의 정체는 신선부의 패륜아 위극존인데 가끔은 위진천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 지존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그러자

<...언제 저기에...> <흐윽!> <의자채로 나타났다!> <술법을 써서 공간이동을 한 것인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서는 환마루주, 구미호리, 백일살신. 그때

지존; [혈세사패!] [본좌의 지시를 어찌 이행했는지 보고하라!] 강렬한 눈빛으로 말하고. 그러자

퍼뜩! 정신을 차리는 혈세사패의 패주들. 이어

[지존을 뵙소이다!] [지존께 충성을!] 일제히 한 무릎 꿇으며 포권하는 지옥혈부 일행.

지존; [인사는 됐고...] [도착한 순서대로 보고하라.] 거만하게, 그러자

백일살신; [지존께서 하사하신 일백종의 신병이기로 저희 백살파의 최정예 백일자객(白日刺客)들을 무장시켰습니다.] 포권하며

백일살신; [백종의 신병이기 덕분에 백일자객들의 살인능력은 혼자서 구대문파 장문인을 척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구대문파 장문인을 혼자서 죽일 수 있는 자객이 백명이나 되다니...> <백살파의 전력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로구나.> 지옥혈부와 환마루주가 놀라고

지존; [백살파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끄덕이고

백일살신; [과찬이십니다 지존!] 포권하고

시선을 지옥혈부에게 돌리는 지존

지옥혈부; [지존께서 하사하신 광마환(狂魔丸)으로 일천명의 지옥광전사(地獄狂戰士)를 길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옥광전사?> <이름만 들어도 섬뜩하네.> 구미호리와 환마루주등의 놀람

지옥혈부; [일단 광기를 일으키면 적이 죽든 자신이 죽든 결판을 내고야마는 지옥광전사!] [그놈들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당금 무림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에 찬 표정으로

지존; [대규모 살육전을 벌이기에 지옥광전사만한 적당한 놈들도 없겠지.] 끄덕이고.

이어 환마루주에게 고개 돌리는 지존

환마루주; [지존께서 하사하신 천변만화결(千變萬化訣) 덕분에 저희 환마루의 제자들은 어떤 누구로라도 변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마루주; [그리하여 지난 삼 년 간 강호의 거의 모든 문파와 세력에 환마루의 제자들을 잠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환마루주; [지존께서 하명만 하시면 환마루의 제자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무림의 모든 문파를 접수할 것입니다.]

지옥혈부; (환마루주! 저 놈에 대한 경계를 늦추면 안되겠군!)

백일살신; (어쩌면 우리 백살파에도 환마루가 침투시킨 가짜가 암약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곁눈질로 환마루주를 보고. 그때

지존; [표적이 된 세력은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끄덕이고

이어 구미호리를 보는 지존

구미호리; [저희 쾌활림의 자매들도 지존께서 하사하신 미혼대법(迷魂大法)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사옵니다.]

구미호리; [천하의 거의 모든 환락가에 침투해있는 쾌활요희(快活妖姬)들은 상대가 사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이옵니다.]

지존; [사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이 쾌활요희들이라고 할 수 있지.] 고개 끄덕이고. 이어

지존; [혈세사패!] [그대들이 본좌가 부여한 사명을 성실히 완수한 것같아 기쁘기 한량없다!] 둘러보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희 혈세사패는 오직 지존의 영광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할 것입니다.] 포권하며 아부하는 네 명

지존; [그리 말해주지 흡족하기 이를 데 없다.] 거만하게 웃고

지존; [모두 일어나라!] ! 의자에서 일어나고

[존명!] [감사하옵니다.] 일어나는 혈세사패 패주들

지존; [그대들의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무림정복의 대장정을 시작하자!] 강렬한 눈빛으로 말하고

<드디어!> 흥분하는 혈세사패 패주들

지존; [대장정의 첫 번째 표적은 정해졌다.] [지금부터 본좌와 함께 그 표적을 치러 간다.] 쿠오오! 온몸에서 강렬한 패기

환마루주; [첫번째 표적이라면 혹시!] 눈 번뜩

지존; [그대들이 짐작하는 대로다!] 끄덕

지존; [당대에 존재하는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이 그대들과 본좌가 쓰러트려야하는 첫 번째 표적이다!] 강렬한 표정

<고금제일검!> 지옥혈부, 백일살신, 환마루주, 구미호리의 긴장하는 얼굴 배경으로 나레이션

 

#13>

어느 도시.

번화가.

<>이라는 깃발이 걸려있는 작은 가게.

가게 안에는 손님이 없는데 늙은 점쟁이가 무언가를 종이에 쓰고 있다. 옆에는 점치는 도구인 산통이 놓여있다. 산통은 작은 나뭇가지를 여러 개 꽂아넣은 통. ,걸 흔들어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적힌 글을 보고 점을 친다.

종이에 무언가 쓰며 고민하는 노인. 바로 검성 섭장천이다. 머리에는 점쟁이들이 쓰는 팔각모를 쓰고 있고

섭장천; (대흉(大凶)...) 종이에는 복잡한 수식과 도형이 그려져 있다.

섭장천; (반복해서 점괘를 짚어봐도 노부는 물론이고 아들 내외도 대흉으로 나온다.)

섭장천; (그나마 아들 내외의 외동딸 아연(雅姸)이만 선흉후길(先凶後吉)로 나오는데...) 불길한 표정

섭장천; (오랜 세월 주역을 공부해왔지만 이런 점궤가 나온 적은 없다.) 붓을 내려놓고

섭장천; (아무래도 무슨 일인가 벌어지려는 모양인데...) 생각하다가 흠칫! 하고.

가게 밖에서 어린 거지가 기웃거리고 있다. 꾀죄죄한 차림의 전형적인 거지인데 손에는 바가지를 하나 들고 있다.

섭장천; [들어오너라.] [오전에 번 복채가 있으니 나눠주마.] 소매에서 동전을 꺼내는데

거지; [돈이라면 심부름 보낸 분으로부터 이미 받았어요.] 주춘 주춤 거리며 들어오고. 바가지를 든 채

섭장천; [누구 심부름으로 왔다는 것이냐?] 놀라고

거지; [어떤 잘 생긴 공자님이 이걸 노야에게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바가기를 내밀고. 바가지 안에는 봉투에 든 편지가 한통 들어있다.

섭장천; (편지!) 집어들고. + [수고했다.] 딸랑! 꺼내든 동전은 바가지에 넣어주고

거지; [고맙습니다 노야!] 굽신. 입이 귀에 걸리고

신나서 나가는 거지. 그 배경으로 편지를 개봉하는 섭장천

섭장천; (누군가 보낸 이 편지가 거푸 대흉으로 나오는 점궤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편지를 펼치고. 직후

[!] 눈 부릅뜨는 섭장천.

 

#14>

섭장천의 점집이 보이는 건너편 이층 주점.

창가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점집을 보는 청년. 위진천이다.

위진천;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검성으로 불리는 섭가 늙은이가 점쟁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음산하게 웃고

위진천; (딴에는 세상을 속이기 위해 점쟁이로 위장했겠지만... 전 무림에 이목을 풀어놀고 있는 혈세사패를 속이지는 못한다.)

위진천; (결국 저 늙은이도 신선부, 아니 나 위진천(威振天)이 천하무림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웃을 때

! 갑자기 점집의 지붕이 터지며 무언가가 미사일처럼 날아오른다.

[!] [...뭐냐?] 사람들 기겁할 때

쇄애액! 미사일처럼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는 섭장천

위진천; (시작되었군.) 술을 마시며 일어나고

위진천; (고금제일검께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마지막 여행이...) 스스스! 사라지는 위진천. 허공에 술잔만 남고

파삭! 바닥에 떨어져 박살나는 술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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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음침한 복도. 감옥이다. 복도 좌우에 철문이 달린 감방들이 있고. 인자급 자객들이 지키고 있다

어느 감방. 정정과 철두등 아이들이 벽에 기대 빙 둘러 앉아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고. 유일하게 느긋한 건 철두다. 철두 옆에는 정정이 무릎을 두 손으로 끌어안은 자세로 쪼그려 앉아있고

여자 아이들은 소리 죽여 울고 있다.

정정; (젠장! 어째 분위기가 암담하잖아.) 입술 깨물고

정정; (이러다가 위()공자님께서 맡긴 임무를 완수하긴 커녕 비명횡사할지도 모르겠어.) 어떤 사내, 즉 위진천의 실루엣을 떠올리며 입술 깨물고. 이년은 사실 위진천이 살인상단에 잠입시킨 간세다.

정정; (어떻게든 이 감옥에서 빠져나갈 방도를 강구해야하는데...) 생각할 때

[! !] [!] 한곳에 모여 있는 계집애들 세명이 숨 죽여 울고 있다. 이영자를 닮은 체형의 여자와 주근깨 투성이의 쌍둥이 자매

정정; [야 이년들아! 뚝 그치지 못해?] 돌아보며 버럭. 다른 아이들도 움찔하고

정정; [운다고 뭐가 달라져?] [그러고도 네년들이 자객이냐?] 노려보고

더 겁에 질려 우는 여자 아이들. 소리는 죽여서

정정; [죽게 된다면 죽을 팔자거니 생각하고 받아들여!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깔끔하게 죽는 것이 복일 수도 있잖아.]

철두; [그만해라.] 한숨

철두; [자객이니 뭐니 해봐야 저 애들도 반년 전까지는 철없고 순진한 계집아이들이었을 뿐이다.]

철두; [이 상황이 겁나는 건 어쩔 수가 없지 않겠냐?]

정정; [대범한 척 하긴...] 눈 흘기고

철두; [그래도 내가 너보다 한 살은 더 먹은 오빠 아니냐?] [속으로는 쫄고 있어도 겉으로는 대범한 척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웃고

정정; [나이 한 살 많은 게 무슨 벼슬이냐?] 궁시렁

철두; [사실 난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웃고

정정; [어이구 그러셔?]

정정; [그렇게 낙관하는 이유나 말해보세요 철두오라버니.] 비웃고

철두; [우릴 죽이려면 단정관에서 죽였다.] [굳이 가둬주는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정; [듣고 보니 그렇네.] 샐쭉.

다른 아이들도 흥미를 보이고

철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청풍이는 살인상단의 단주와 아는 사이같았다.] [덕분에 우리도 목숨은 부지할 가능성이 높다.]

정정; [그럴 수도 있겠네.] + (이 쇠대가리가 무식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머리가 팽팽 돌아가잖아.)

정정; (어쩌면 나처럼 다른 꿍꿍이를 품고 살인상단에 잠입한 인간인지도 몰라.) 생각할 때

철두; [걱정은 실제로 닥쳤을 때 하는 거다.] [그러니 모두 잘 될 거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려라.]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고.

고개 끄덕이는 아이들. 그때

철컹! 갑자기 철문이 열리고.

깜짝 놀라 돌아보는 아이들

복면인; [나와라! 너희들에게 손님이 왔다.] 인자급 복면인 한명이 철문을 열며 말하고

정정; [... 손님? 어떤 손님?] 펄쩍 뛰어 일어나고

청풍; [이런 손님이면 반갑냐?] ! 철문 밖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청풍.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었다. 귀공자 같고. 손에 부채도 하나 접어 들고 있다. 허리에는 향낭을 하나 차고 있다. 이 향낭은 중요한 소품

정정; [청풍아!] 외치며 달려 나가고

[!] [청풍이야!] [청풍오빠야!] [흐윽!] 사내아이들 환호하며 튀어 일어나고. 여자 아이들은 기뻐서 전율하고

정정; [흐윽!] 와락! 감방에서 튀어나와 청풍의 목을 끌어안고.

정정; [살아있었구나 청풍아! 네가 살아있었어!] 청풍의 목을 끌어안고 감격하며 떨고

청풍; [걱정해줘서 고맙다.] 다독이고

우는 정정. 몰려나오는 아이들

청풍; [진정하고 반가운 손님도 봐야지.] 옆을 돌아보고. 아이들과 정정도 옆을 보고

멀지 않은 곳에 난향이 서있다. 눈물 글썽이며

정정; [난향아!] 달려가고. 여자 아이들도 달려가고

정정; [너도... 너도 무사했구나.] 난향의 손을 잡고 울고. 달려온 여자 아이들도 난향을 둘러싸고 울고. 난향도 울고

철두;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감방에서 나오며 웃고. 돌아보는 청풍

청풍; [애들 다독이느라 고생했지?] 철두의 팔을 툭 치고

철두; [고생은 무슨... 다 큰 놈들인데...] 멋쩍고

청풍; (이래서 정이란 게 무서운 것이다. 지옥십관의 마지막 관문이 단정관인 이유가 있고...) 철두와 함께 서서 아이들이 난향을 둘러싸고 기뻐하는 걸 보며

<불과 반년을 함께 보냈는데도 끊기 어려운 정이 생기는 걸 보면...> 복도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148>

화려한 거실. 진수성찬이 차려진 큰 원탁을 청풍과 아이들이 둘러앉아있다. 난향을 포함한 여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끼리 모여 있고. 청풍의 좌우에는 정정과 철두가 앉아있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지만 음식에 손을 대는 아이는 없다.

청풍; [나는 곧 여길 떠난다. 첫 번째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둘러보고

정정; [벌써... 네게 벌써 자객일이 주어진 거야?]

청풍; [윗분들이 과대평가를 한 덕분이다.] 쓴웃음

정정; [누구... 어떤 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니?] 진지하게

[!] 철두도 곁눈질로 보며 관심을 보이지만

청풍; [기밀을 지키는 게 자객의 첫 번째 사명임을 잊지 마라.]

정정; [벌써 능숙한 자객 흉내 내는 거야?] 입술 삐죽

청풍; [누굴 죽이러 가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 [다만 쉽지 않은 임무라는 것만 알아두고...]

청풍; [시간 나면 북두칠성께 내 무운(武運)을 빌어다오.] 둘러보고

난향; [그럴게요 오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성을 드릴게요.] 건너편에서 애절한 표정으로 말하고

청풍; [고맙구나 난향아.] 웃고. 이어

청풍; [난 떠나지만 너희들은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정정; [혹시 우리가 널 묶어둘 인질이 된 거야?] 눈 흘기고

철두; [또 과대망상 도진다.] 건너편에서 흘기고

정정; [뭐야?] 철두를 노려보고

청풍; [인질은 아니고...] [사실 너희들을 당분간 이곳에 머물게 해달라는 부탁은 내가 한 거다.]

정정; [어째서?] 눈 부라리고

정정; [이 지옥같은 곳에 왜 우릴 묶어둔 거야?]

청풍; [지금의 너희들은 무자급 자객들보다도 약하다.] [이대로 임무에 투입되면 좋은 꼴 못 볼 게 뻔하다.]

청풍; [그래서 너희들을 지금보다 더 혹독하게 단련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정; [... 그건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닌데...] [지난 반 년간 구른 것만 해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구!] 울상

청풍; [앞으로 너희들은 자객 기술보다는 무공 위주로 수련을 하게 될 것이다.]

청풍; [아무쪼록 다시 만났을 때는 일류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 있기 바란다.]

철두; [그래 기대해라!] 큰 손으로 청풍의 어깨를 두드리고

철두; [머잖아 강호무림은 우리들 무조회(戊組會)의 위명에 벌벌 떨게 될 것이다.] 술잔을 들며 건배하고

[무조회! 이름 좋다!] [기왕 태어났으니 세상을 한번 들었다 놓자!] 다른 아이들도 술잔을 들며 환호하고. 청풍과 정정도 술잔을 들고

 

#149>

모니터가 죽 붙어있는 밀실. 소수마녀가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서 보고 있고 그 뒤에 파면살주가 서있다.

소수마녀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청풍과 아이들이 건배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걸 보며 뭔가 생각하는 소수마녀

파면살주; [단주의 의중을 알고 사실 매우 놀랐네.] 소수마녀의 뒤에 서서 함께 모니터를 보며 말하고

파면살주; [이청풍에게 적당한 목표를 줘서 경험을 쌓게 한 후 십적(十敵)을 죽이는 데 동원할 줄 알았어.]

소수마녀; [순리를 따르자면 그렇겠지요.]

소수마녀; [하지만 십적은 하나같이 한 방면의 최강자들이에요.] [원칙대로 했다가는 이청풍이 그자들을 죽이는 건 백년하청(百年河淸;오래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음)일 거예요]

파면살주; [그렇다 해도 천자급 여럿을 동원해도 죽일 수 없는 강적들의 척살을 초출내기에게 맡긴다는 건 영...]

소수마녀; [이청풍의 잠재력을 믿어봐야지요.]

청풍의 모습 크로즈 업. 허리춤에 향낭을 하나 차고 있는 걸 보여주고

소수마녀; [또 제 나름대로의 비밀병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구요,] 웃고

파면살주; [이미 결정된 사안이니 믿어볼 수밖에 없겠지.] 끄덕

소수마녀; (부디 살아남아라 이청풍!)

<모든 일은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 하지만 일단 그 고비만 넘기면 너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게 강해질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웃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소수마녀의 생각 나레이션

 

#150>

<-낙양(洛陽)>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래 된 도시. .

번화가. 사람들 북적. 헌데

! ! 삘릴리! 둥둥! 꽹과리, 피리소리, 북소리가 들려 오가던 사람들 돌아보고

거리를 오고 있는 악극단의 모습. 꽹과리 치는 사람, 피리 부는 사람. 북치는 사람. 횃불을 여러 개 저글링 하는 사람. 입으로 불을 뿜어내는 사람. 우스꽝스러운 광대들의 모습. 사람을 태운 코끼리도 한 마리 행진하고. 다시 그 뒤를 뚜껑이 없는 화려한 마차 몇 대가 따르고. 맨 앞의 마차에는 야한 차림의 여자들이 사방에 꽃을 뿌리고 있고. 그 뒤의 마차에는 거꾸로 서서 거대한 항아리를 돌리는 난장이와 사람처럼 꾸민 원숭이들이 타고 있다. 원숭이들은 길가의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하고. 마차에는 <九州樂劇團>이란 글이 적힌 깃발들이 여러 개 걸려있다.

[유랑극단이로구만.] [이번 달에 유명한 곡마단이 낙양에 들른다더니 저치들이었어.] 길가에 서서 보는 사람들.

[구주악극단(九州樂劇團)이라면 유명하지.] [기상천외한 묘기에다가 환상적인 연극으로 보는 사람들 혼을 쏟 빼놓는다잖아.] 사람들 말할 때

[꺄악!] [!] 갑자기 주변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좋아 죽으려 하고. 사람들 흠칫! 하며 마차 행렬을 보고

마지막으로 오는 마차. 마차 주변에는 경호원들이 따라오는데 마차에는 절세미남이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부채를 부치면서. 사우가 화장한 모습. 옷이 아주 화려하고 화장을 진하게 해서 절세미남으로 보이고. 사우 뒤에는 얼굴에 얼룩덜룩 문신을 한 경극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저기 오신다!] [새송옥(賽宋玉)! 사랑해요!] [여기 좀 봐 주세요 새송옥님!] 여자들 발광하고. 반면 주변의 남자들은 당황한다. 여자들은 마치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요즘 여자들 같다. 꽃을 흔들거나 <賽宋玉 最愛> <賽宋玉 天下一>등의 프랭카드나 판자를 들고 환호하기도 한다.

[... 뭐야? 이 처자들 왜 이래?] [어허... 망측하도다!] 꺄꺄거리는 주변의 여자들 보며 남자들은 당황하고

꺄아! 꺄아! [새송옥님이 날 봐주셨어!] [사랑해요 새송옥님!] 여자들 환호하고 난리. 여기저기에 대고 연신 손 키스 하거나 손 흔들거나 윙크하는 사우.

[저 배우놈 때문에 이 난리로구만.] [잘 생기긴 했어. 여자들이 보면 환장하겠구만.] [구주악극단이 자랑하는 배우인 게로구만.] 남자들 사우를 질투하며 혀를 차고

남자들; [새송옥이라는 저 배우 이름 들어본 적이 있네.] [그런가?] 사우가 다가오는 걸 보며 말하고. 주변에서는 여전히 여자들이 꺅꺅 거리고 있고

<전설 속의 미남인 송옥(宋玉), 반안(潘顔)에 못지않게 잘 생겼다고 해서 새송옥이라 불리는 배우야.> <기막힌 미남인 데다가 연기실력도 끝내줘서 가는 곳마다 아녀자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닌다는군.> 마차에 탄 사우가 여자들의 환호에 답하며 지나가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남자들; [구주악극단에 속해있긴 하지만 매번 공연에 참가하는 건 아니라는군.] [그 때문에 새송옥이 합류하면 구주악극단의 공연장은 미어터진다는 거야.]

[부럽구만. 같은 남자인데 누군 여자들에게 저렇게 인기가 있고...] [추남으로 낳아주신 부모님 탓이나 해야지 뭐.] 궁시렁거리는 사내들 앞을 지나가는 사우를 태운 마차. 여자들이 마차를 따라가며 꺅꺅 거리고 있고

사우; (그년들, 아주 발광을 하는구만.) 마차 주변으로 모여들어 비명 지르는 여자들 보며 웃고. 경호원들이 여자들의 접근을 막으려 진땀 빼고 있고

사우; (나 사우의 바탕이 원래 잘 생기기도 했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화장까지 해서 계집들을 환장하게 만들고 있다.) 음험하게 웃고

사우; (덕분에 맘에 드는 계집을 골라서 자빠트릴 수 있어 좋지만...) 곁눈질로 길가의 여자들을 보고

사우; (이번에 내가 낙양에 온 것은 대물(大物)을 낚기 위해서다.) 거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한 어느 장원의 삼층 건물을 보며 히죽 거리고

삼층 건물 3층의 창가에 어떤 여자가 밖을 보고 있는 걸 크로즈 업

<저 계집이 나로 하여금 전대미문의 큰 공을 세우게 해줄 복덩이 위상영(威霜英)이다.> 창가에 앉아서 거리를 보고 있는 여자 크로즈 업 배경으로 사우의 생각 나레이션. 다른 작품의 냉상영이나 위상영 캐릭터인데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위진천의 누나다. 한번 시집갔다가 남편이 죽어 친정으로 돌아온 과부다.

사우; (위상영은 하남(河南)의 부유한 토호(土豪) 위가장(威家莊)의 장녀다.) (집안이 부유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뿐인 동생 덕분에 더 중요한 신분이 되었다.)

사우; (바로 무림맹의 소맹주가 된 위진천이 저 계집과 남매 사이인 것이다.) 위진천을 떠올리고

사우; (위상영, 저 계집을 후려내기만 하면 황금전장의 벽소소, 그년을 농락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사악하게 웃는 사우

 

#151>

위상영의 시점. 사우를 태운 마차가 멀어지고 있다. 여자들이 구름처럼 따라가며 꺄꺄거리고

위상영; (새송옥...) (저 사람이 또 낙양에 왔네.) 얼굴 발개지고

위상영; (일 년 전, 친정으로 돌아온 직후 저 사람이 공연하는 걸 보았었다.) 숨도 좀 가빠지고

위상영; (과부가 된 후로 벌써 오년...) (오랜 독수공방으로 외로워진 때문이었을까?) 한숨읗 쉬며 가슴에 손을 대고

위상영; (일 년 전 그날 이후로 저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었다.) 가슴을 누른 채 흥분. 가슴이 두근 두근

위상영; (새송옥은 어떤 사람일까? 정말 연극에 나오는 그대로의 매력적인 인물일까?) 꿈꾸는 듯한 표정

위상영; (너무나 궁금하다.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았으면 여한이 없을 텐데...) 한숨 쉬고. 그때

[쇤네이옵니다 아가씨.] 달칵!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고. 움찔! 하며 창문에서 돌아앉는 위상영.

유모; [점심은 어디서 드실지...] [어머나!] 들어오다가 놀라는 여자. 나이는 중년으로 좀 푼수처럼 보인다. 위상영의 유모다

유모; [새송옥 때문에 난리가 났네요.] 창문을 보며 다가오고. <꺄아! 꺄아! 새송옥님 사랑해요! 여기 좀 봐주세요.> 창 밖에서 들리는 여자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리고

유모; [우리 위가장의 젊은 유모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답니다.] 창문으로 다가와서 밖을 보며

유모; [벌써 어떻게 하면 새송옥의 공연을 보러갈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잔머리들을 굴리고 있더라구요.] 열린 창문으로 고개 내밀며 멀어지는 사우 일행을 보고

위상영; [한 가지 알아봐줄 게 있어 유모.] 새침하게 말하고

유모; [! 말씀만 하세요 아가씨.]

위상영; [새송옥이 어느 객잔에 머무는지 알아내도록 해.] 얼굴이 좀 붉어졌으면서도 짐짓 새침하게 말하고

 

#152>

낙양. 깊은 밤. 대부분의 건물에 불이 꺼져있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실. 완전한 보름달이고 그 때문에 밤이지만 아주 어둡지는 않다.

번화가에 자리한 화려한 객잔. 역시 불이 꺼져있다.

월동문이 있는 담장.

그곳으로 살금살금 오는 여자. 이십대의 날라리같은 인상의 여자. 주변 눈치 살피면서 월동문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품에는 선물 상자를 안고 있다. 이년은 이번 씬에만 나올 엑스트라. 사우를 쫓아다니는 빠순이다.

여자; (투숙객으로 위장한 덕분에 여기까지는 무사히 올 수 있었어.) 흥분하고

여자; (점소이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알아낸 바에 의하면 새송옥님은 이 월동문 안쪽에 머물고 계셔.) 월동문으로 들어가고

여자; (오늘을 기필코 새송옥님께 내 마음을 전하고 말 거야.) + [!] 생각하다가 눈 부릅. ! 그년 앞을 가로 막는 검은 그림자들

! 흉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눈을 부라리며 앞을 막고 있다.

여자; (... 들켰어!) ! 겁에 질리면서도 사내들 사이로 돌진해서 빠져나가려 하지만

! ! 여자의 팔을 좌우에서 잡는 사내들

여자; [... 놔줘요!] 사내들에게 답싹 들리며 다리를 버둥대고

여자; [난 새송옥님께 꼭 전해드릴 게 있다구나!] + 사내1; [더 소란을 피우면...] 끌고 가며 눈을 부라리고

여자; [!] 겁에 질리고

사내1; [기루에 팔아넘긴다.] + 사내2; [허튼소리일 거 같으면 소란 피워봐라.] 여자를 끌고 가며 협박하는 사내들

여자; [으으으...] 겁에 질려 달달 떨며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여자를 끌고 멀어지는 사내들. 헌데

 

근처 다른 건물의 그늘 아래 숨어서 보고 있는 여자. 얼굴을 면사로 가린 위상영

위상영; (예상대로네.) 사내들이 여자를 끌고 멀어지는 걸 보며 눈 번뜩이고

위상영; (구주악극단은 어떻게든 새송옥에게 접근하려는 계집들을 막기 위해 여러 명의 무사들이 고용되었다.)

위상영; (담장 안쪽에는 최소한 여섯 명의 무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월동문이 있는 담장을 보고. <두근! 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위상영의 귀에 들리고

위상영; (평범한 계집들이라면 그들의 저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 어둠 속에서 나와 월동문 쪽으로 걸어가고

위상영; (난 결코 평범한 계집이 아니다.) 스스스! 모습이 흐려진다.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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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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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부는 황성 화백 필명의 무협만화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2018년 12월에 시나리오를 탈고 하였고 2019년에 만화로 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선부라는 전설 속의 문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암투와 인간군상들의 갈등을 묘사하였습니다.

황성 화백의 만화로도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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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부 -神仙府

                                                  

 

<설정>

무림에는 신선부라는 신비한 문파가 있다. 가공할 힘을 지녔지만 이름 그대로 신선의 도를 추구하는 문파라 무림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신선부의 힘은 300년 전 돌연 세상에 드러난다. 구대천마라는 가공할 마두들이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들자 신선부에서 두 명의 고수들을 내보내 물리친 것이다. 그때 이후로 신선부는 모든 무림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헌데 신선부에서 변란이 일어난다. 무림진출 건으로 강경파와 온건파가 충돌하게 되고 강경파의 영수인 위극존이 온건파의 영수이며 신선부의 부주인 이복형 위극겸을 암살하고 자신이 위극겸으로 위장한 것이다. 그리고 마수를 무림으로 뻗어 전 무림을 장악해간다.

이에 위극겸의 아내인 온유향은 딸 위상영과 함께 은밀히 무림의 세력을 규합하여 신선부와 맞서게 되고 위상영과 운명적으로 만나 위상영에게 마음이 빼앗긴 청풍은 위상영을 위해 신선부의 무림 정복을 저지하게 된다.

청풍은 탁월한 무공과 리더십으로 무림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신선부에 맞서고 신선부의 전위 세력을 대부분 궤멸시킨다. 드디어 무림에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청풍을 시기질투한 명문가의 인간들에 의해 청풍은 모함을 받고 무림을 떠난다.

그후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낸 신선부에 의해 무림은 파멸을 맞게 되고. 청풍은 사랑하는 여인들과 친구들의 간절한 부탁으로 다시 검을 잡고 무림으로 나와 신선부에 맞서게 되는데...

 

<등장인물>

청풍; 중원삼대부호 가문중 하나인 황금전장의 하인이다. 비록 신분은 천하지만 영특하여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재주를 지녔다. 황금전장의 장주 냉혈전호 벽초천은 외아들 벽세황을 과거에 급제시키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벽초천은 궁여지책으로 청풍을 아들로 위장시켜 과거에 내보내는데 청풍이 덜컥 장원 급제를 해버린다. 하지만 벽세황은 학문에 재주가 없어 곧 밑바닥을 드러내고 대리 시험의 의심을 받게 된다. 일이 커지자 벽초천은 청풍을 제거하려 하는데. 청풍은 절체절명의 순간 기연을 만나 절세 고수가 된다.

청풍에게는 숨겨진 신분이 있다. 유약한 황제 헌종 성화제의 아들인 것이다. 성화제는 요부 만귀비에게 휘둘리며 산 것으로 유명하며 만귀비는 자신 외의 비빈들이 낳은 아이들을 남김없이 독살해버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성화제의 후궁 백현비의 아들도 그렇게 독살 당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충성스러운 환관에 의해 빼돌려졌었다. 하지만 환관은 곧 만귀비의 수하들에게 따라잡혔고 절망적인 순간 청풍은 강물에 던져버렸다. 강물에 떠내려가던 청풍을 구한 것이 황금전장의 하인 이적이었으며 청풍은 그의 아들로 자라게 된다.

기연을 만나 절세고수가 된 청풍은 무림을 주유하다가 신선부의 소부주인 위상영을 만나게 되며 그녀의 미모에 반해 신선부가 무림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저지하게 된다.

위극존; 신선부의 당대 부주. 야심이 큰 인물로 이복형이며 신선부의 부주인 위극겸을 시해하고 위극겸으로 위장하여 신선부를 장악한다. 신선부 원로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소장파들을 무림에 내보내 무림 정복을 시도한다.

위진천; 위극존의 아들. 백부 위극겸으로 위장한 부친을 대신하여 신선부의 무림정복을 총 지휘한다. 사촌지간인 위상영에게 흑심을 품고 있지만 위상영은 위진천의 본성을 알고 있어서 필사적으로 피한다. 천적인 청풍에게 번번이 야심이 가로막혀 증오하게 된다.

위상영; 위극겸의 외동딸. 어머니인 온유향을 도와 신선부의 무림 정복을 저지하려 애쓴다. 구파일방은 이미 신선부에 장악당해 있으므로 삼문육가를 포섭하여 호천맹을 결성, 신선부에 맞서고 있다. 지혜롭지만 몸이 약해서 직접 싸우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절대검성 섭장천; 당대의 천하제일인. 특히 검법으로는 고금삼대고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고금삼대검객중 한명이며 구대천마에 속하는 천잔검마의 검법을 얻어서 더욱 발전시켜 절대삼검을 만든다. 신선부 입장에서는 무림정복의 가장 큰 장애물이고 그래서 비겁한 수단을 써서 섭장천을 암살한다. 하지만 살아남아 청풍의 스승이 된다.

냉혈전호 벽초천; 천하삼대부호 가문 중 하나인 황금전장의 장주다. 하지만 벼락부자라고 손가락질 당한다는 컴플렉스가 있다. 그래서 아들 벽세황을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시키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하인이면서도 영특한 청풍을 벽세황으로 위장시켜서 과거를 보게 하는데 청풍이 덜컥 장원급제 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청풍이 적당히 과거에 급제했으면 벽세황이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장원급제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결국 후환이 두려워 청풍을 제거하려 한다.

벽세황; 황금전장의 소장주. 글 공부보다는 무공에 더 관심이 많다. 부잣집 아들답게 망나니다. 청풍의 영특함을 질투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 위해 청풍을 대신 과거에 내보낸다. 글공부에는 취미가 없지만 무공은 좋아하고 자질도 상당하다. 황금전장의 재력으로 사모은 영약과 비급으로 제법 고수 소리를 듣게 된다. 나중에 청풍의 정체를 폭로하여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벽세황 자신도 변을 당하는데...

벽옥령; 벽세황의 누이동생. 착하긴 하지만 허영심이 있고 종인 청풍을 깔본다. 나중에 황금전장이 청풍의 것이 되는 데 역활을 한다.

우유라; 삼문육가중 신기보의 안주인. 남편이 실종되어 대신 보주 노릇을 한다. 호천맹의 군사 역할을 하고 연하인 청풍을 진심으로 아끼고 지지한다.

마귀동; 마인들의 성지. 구대천마의 무공은 마귀동에서 흘러나왔고 신선부의 숙적이다. 신선부가 은인자중하며 무림에 나오지 않은 이유가 사실은 마귀동의 존재 때문이다.

혈세사패; 구대천마의 후손들이 세운 문파. 위극존에게 제압당해 신선부의 전위가 된다.

삼문육가; 구파일방과 함께 무림을 이끌어온 명문가들. 온유향과 위상영 모녀의 설득으로 신선부에 맞서기 위한 호천맹을 결성한다.

#1>

<-신선부(神仙府)! 오래 전부터 전설이나 신화처럼 무림인들의 입에 오르내려온 신비한 문파다.> 아주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험하지만 산수화 같이 경치가 좋은 산이다.

<이름 그대로 신선부는 신선(神仙)의 도()를 추구하는 방사(方士)들의 문파였다. 하지만 신선의 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공을 창안하여 세상에 적수가 없게 되었다.> 그 산을 향해 멀리서 새처럼 날아오는 두 명의 사내. 작게 보이는데 달리는 게 아니라 정말 새처럼 날아온다.

<-세속지사(世俗之事) 불상관(不相關)! 세속의 일에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선부의 으뜸가는 계율이었고 그 때문에 신선부는 강호 무림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두 사내의 모습 크로즈 업. 앞장 선 인물은 패기만만한 인상의 중년인이다. 이름은 위극존. 캐릭터는 008. 그 뒤를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이 뒷짐 짚고 따라온다. 위극존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아보이는 인물. 다른 작품의 위극겸 캐릭터. 위극겸은 신선부의 당대 부주다. 위극존은 위극겸의 이복동생이다.

<하지만 삼백여 년 전, 신선부가 무림에 그 가공할 힘의 일단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구대천마(九大天魔)라는 전대미문의 마인들이 나타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으며, 그들을 막기 위해 신선부에서 두 명의 고수가 파견된 것이다.> 위극존과 위극겸의 모습 크로즈 업.

<흑백신귀(黑白神鬼)라고 알려진 신선부의 고수들은 인간이 아닌 것같던 존재들인 구대천마를 간단히 패퇴시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다른 작품의 흑백신귀 캐릭터인 노인들이 광소를 터트리고 있고. 그들 앞에서 사방으로 달아나는 아홉명의 남녀들. 모두 중상을 입은 모습이다. 아홉 명이 구대천마이지만 대충 묘사. 자세히 보여주지는 말고. 아홉 명 중 여자가 세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흑백신귀가 신선부의 최고 고수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흑백신귀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은 칠단(七段)으로 이루어진 신선부의 계급 중 겨우 삼단(三段)에 속한다는 것이다.> 흑백신귀가 단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는 어떤 인물에게 포권하는 모습.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은 여자라는 걸 암시

<그 일로 인해 강호에서의 신선부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구대문파를 비롯하여 그 어떤 세력도 감히 신선부에 비견되지 못한 것이다.> 다시 위극존과 위극겸 형제의 모습. 험준한 절벽 위를 달리는 두 사람

<그와 함께 무림인들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것은 신선부를 찾아내어 가입하거나 그들의 무공을 단 한 가지라도 얻어서 익히는 게 그것이었다.> 앞을 가리키는 위극존. 위극겸도 앞을 보고

<물론 삼백 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신선부를 찾아낸 인물은 물론 그들의 절기를 한 조각이라도 얻어서 익힌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형제의 앞쪽은 절벽이 끝나는 곳이다. 절벽 아래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는 계곡. 절벽 중간에 안개가 걸려있다. 그 절벽 끝에 비석 같은 형태의 바위가 하나 서있다.

위극존; [여기입니다 형님!] 휘익! 비석 같은 바위 앞에 내려서고.

위극존; [이게 바로 소제가 발견한 흑백신귀(黑白神鬼) 조사님들의 흔적입니다.] 바위를 가리키고

위극존; [지난 번 강호순행 중 화산(華山)에서도 가장 험하다는 이곳 창천애(蒼天崖)를 구경하러 왔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말없이 바위 앞으로 가는 위극겸을 보며 말하고

바위 크로즈 업. 평평한 앞면이 갑골문자 같은 문양들로 덮여있다. 이끼도 덮여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글자로 보이지 않는다

위극겸; [이건...] 흥분하며 살펴보고.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신선부 부주 위극겸(威極謙)>

위극존; [소제도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생긴 균열인줄 알았습니다.] 위극겸의 뒤에 서서 눈 번뜩이며 설명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위극겸의 동생 위극존(威極尊)>

위극존; [하지만 뒤덮여있던 이끼를 떼어내고 자세히 살펴보니 상형문자들이었습니다.] 위극겸 뒤에서 음산하게 눈을 빛내며

위극겸; [천애협로(天涯狹路)...] 바위의 굴곡들을 만지며 흥분하고.

위극겸; [우리 신선부를 상징하는 표어(標語)로 문장이 시작되고 있다.] 위극겸이 만지는 그 굴곡이 <天涯狹路>라는 글과 비슷하다.

위극겸; [그렇다면 극존 네 말대로 이 바위에 글을 새긴 것은 흑백신귀님들일 가능성이 높다.] 집중해서 다른 글들을 읽고

위극존; [삼백여 년 전, 흑백신귀 조사님들은 구대천마를 패퇴시킨 후 신선부로 돌아오지 않고 실종되셨었지요.] 위극겸의 뒷모습 보며

위극겸; [그리고 두 분이 마지막으로 날려 보낸 전서구에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의 유적을 발견한 것 같다.>였지.] 글을 읽으면서

위극존; [원시천존은 우리 신선부 뿐 아니라 숙적 마귀동(魔鬼洞)의 시조이기도 한 고금제일인!] [그분의 유적을 발견했다면 흑백신귀께서 귀환을 미룬 것도 설명이 됩니다.] 음침한 표정으로

위극겸; [그렇긴 하다만...]

위극겸; [이 바위에 적혀있는 내용은 너무 모호하다.] 바위를 만지며 찡그리고

위극겸; [천재지중(天在地中) 욕등투천(慾登投天)...] [하늘은 땅 속에 있으니 오르길 원하면 하늘로 몸을 던져라?] 글을 해석하며 갸웃

위극겸; [하늘이라는 장소는 원시천존과 관련이 있는 장소일 텐데...] [그 하늘이 땅 속에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바위를 들여다보며 골똘하게 생각하는데

위극존; [소제도 그 글귀가 전혀 이해가지 않아서 형님을 직접 모시게 된 것입니다.] ! 위극존이 눈을 번뜩이며 왼쪽 소매에서 비수를 하나 꺼낸다. 칼날 길이가 한 뼘 정도인데 전체가 검은 색인 비수다. 검은 칼날에는 귀신 문양이 새겨져 있고 손잡이도 귀신 머리 형태를 하고 있고

위극겸; [원시천존은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전의 장소인 혼돈경(混沌境)을 발견하여 신선이 되는 힘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위극존이 비수를 뽑는 것도 모르고 비석의 글을 해독하는데 전념하고. 그 뒤에서 두 손으로 비수를 잡는 위극존

위극겸; [천재지중이라는 이글은 혼돈경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 두 손으로 쥔 비수로 전력을 다해 위극겸의 등을 찌르는 위극존

위극겸; [!] 눈 부릅뜨고. 칼날이 등에 조금 파고 든 상태다. 동시에

위극겸; [네가!] 바웅! 웅크리며 기합 넣는 위극겸의 몸에서 충격파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비수를 막으려 한다. 하지만

빠지지직! 위극존의 비수는 그 충격파를 뚫고 들어가서

! 위극겸의 등에 깊이 박히고. 다만

! 위극겸의 몸에서 터진 충격파에 타격을 받고 뒤로 홱 날아가는 위극존

위극겸; [!] ! 피를 왈칵 토하며 한 손으로 비석을 잡고

후두둑! 비석에 위극겸이 토한 피가 뿌려지고

위극존; [!] 휘릭! 역시 피를 토하며 내려서는 위극존. 위극겸의 10미터쯤 뒤에

치치치! 바위를 잡고 벌벌 떠는 위극겸의 등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비수가 깊이 박힌 위극겸의 등 부위에 상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고

위극존; [하하하 역시 형님의 천선탄벽(天仙彈壁)은 대단합니다.] [하마터면 소제의 몸뚱이가 피곤죽이 될 뻔 했습니다.]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웃고

위극겸; [극존...] [네놈... 네놈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돌아보고.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 표정이고. 이하 위극겸은 절벽을 등진 자세다.

위극존; [비록 소제가 신선부의 이인자이긴 해도 형님과의 실력차이는 천양지차...] [전력을 기울여 암습을 해도 형님의 천선탄벽은 깨트릴 수 없었겠지요.] ! 피를 옆으로 뱉으며 웃고

위극존; [하지만 마귀동의 염왕아(閻王牙)를 쓴 덕분에 형님을 열조(烈祖)들 곁으로 조기에 보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극겸; [염왕아!] 눈 부릅

위극겸; [내 천선탄벽을 어떻게 뚫고 들어왔나 했더니...] [우리 신선부의 숙적인 마귀동의 마병 염왕아였구나.] 비틀거리며 뒤를 보고. 치치치! 비수가 박혀있는 등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위극존; [게다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염왕아에 오대극독(五大劇毒)까지 충분히 발라두었지요.] 태연하게 웃고

위극겸; [네놈이...] 분노하여 이를 갈고. 비틀거리는 얼굴이 검게 변하고 있고

위극존; [염왕아에 몸이 궤뚫린 데다가 오대극독에 중독당하기까지 하셨으니 목숨을 부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위극겸; [어째서냐?] 이를 갈고

위극겸; [어째서 나를 암살하려 든 것이냐? 남도 아니고 형제지간이면서...] 비틀거리며 위극존을 노려보고. 등에서는 연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고 피부색은 급격하게 검게 변하는 중이다.

위극존; [소제가 왜 이러는지는 형님도 짐작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태연하게 말하고. 그러자

위극겸; [... 출천파(出天派)가 나를 제거하기로 모의했구나.] 깨닫고 분노하고

위극존; [바로 그렇소이다.] 빠지직! 온몸에서 벼락을 일으키며 눈을 희번덕이고

위극존; [우리 신선부의 힘은 명실상부 천하무적!] [단 일할의 힘만 내보내도 강호 무림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우둑! 지지지! 불끈 쥐어 쳐드는 손이 벼락에 휩싸이고

위극존; [하지만 형님을 비롯하여 문중의 늙은이들은 케케묵은 율법만 내세우며 무림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못하게 억압해왔습니다.] 이를 갈고

위극존; [그래서 소제를 중심으로 한 출천파가 결성되어 무림을 정복할 계획을 진행해온 것입니다.] 광기 서린 표정으로 웃고

위극겸; [어리석은 놈...] 탄식하고. 이제 얼굴은 완전히 검게 변했고 등에서 치솟는 연기가 짙어졌다.

위극겸; [우리 신선부의 숙적인 마귀동이 어둠 속에 숨은 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르느냐?] 분노하고

위극겸; [신선부와 마귀동의 힘은 백중!] [그 때문에 먼저 실체를 드러내는 쪽이 반드시 패망하게 되어 있다.]

위극겸; [우리 신선부의 열조들께서는 그걸 알고 계셨기에 무림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 오신 것이다.]

위극존; [소제의 생각은 다릅니다.] 냉소하고. 온몸이 벼락으로 휘감기고 있고

위극존; [마귀동의 힘은 삼백여 년 전 구대천마의 실종으로 소멸되었다고 봐야합니다.] 눈 번득

위극존; [헌데 형님과 문중의 늙은이들은 있지도 않는 마귀동의 위협을 내세워 신선부의 젊은 제자들을 억눌러 온 것입니다.] 이를 부득 갈고

위극겸; [헛된 꿈꾸지 마라!] [나 하나 해치운다고 신선부를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절벽을 등진 채 비틀

위극존;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 손으로 얼굴을 덮고

위극존; [신선부를 영도하는 것은 여전히 형님일 테니 말입니다.] 스윽! 손을 아래로 쓸어내리고. 그러자

! 위극존의 얼굴이 위극겸으로 변했다. 진짜 위극겸의 피부가 검게 변했고 등에서 연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똑같다. 이하 가짜 위극겸은 위극겸(위극존)으로 표기한다.

위극겸; [... 역용술!] 절망 분노

위극겸; [... 나로 위장하여 신선부를 장악할 생각이로구나!]

위극겸(위극존); [비록 어머니는 다르지만 우리는 형제지간 아닙니까?] 자기 얼굴을 만지며 웃고

위극겸(위극존); [그 누구도 소제가 형님으로 위장한 것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위극겸(위극존); [형님의 정숙한 아내까지도...] 광기로 눈을 번들거리고

위극겸; [이 천벌을 받을 놈...] 절망하며 뒷걸음질

위극겸(위극존); [사정 설명은 충분히 해드렸으니 이제 그만 저 세상으로 가십시오.] 손바닥을 위극겸에게 내밀며 말하고. 그러자

지지징! 위극겸(위극존)의 손바닥 앞에서 겹겹이 원형의 파문이 쌓인다.

위극겸; [하늘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위극겸; [하늘이 네놈의 악행을 징벌할 것이다.] !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려 투신을 한다. 위극겸(위극존)을 마주 보는 자세로 몸을 날리는 것 주의. 그러자

위극겸(위극존); [투신...] ! 손을 내리며 절벽 끝으로 가고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있는 위극겸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하늘 보는 자세로 추락하고 있고. 그러다가

! 절벽 중간을 감고 있는 구름을 뚫고 내려가며 사라지는 위극겸

위극겸(위극존); [무공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을 했으니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겠지.] 끄덕

위극겸(위극존); [덕분에 친형을 내 손으로 죽이는 찜찜함은 면했다만...] 절벽 끝으로 가고.

위극겸(위극존); [혹시 모르니 내려가서 시신을 확인하자.] !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린다.

! ! 위극겸과 달리 절벽의 돌출 부위를 밞으며 아래로 내려가는 위극겸(위극존)

위극겸(위극존); [머잖아 천하는 신선부를... 아니 나 위극존을 주인으로 섬기게 될 것이다.] 흐흐흐! 웃으면서 절벽 아래로 멀어지는 위극겸(위극존)

 

#2>

비 오는 밤. 한쪽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강변.

번개도 치고

절벽 아래로는 거친 강물이 흐른다.

파팟! 절벽을 따라 달려오는 인물. 환관 복장의 중년인인데 체격이 건장하다. 캐릭터는 618. 품에는 강보로 꽁꽁 싸맨 아기를 안고 있다. 얼굴까지 강보로 싸서 커다란 럭비공처럼 보인다. 이 환관의 이름은 장민. 허리에 칼도 한 자루 차고 있다.

[! !] 거친 숨결을 몰아쉬며 달리는 장민. 등에는 몇 개의 화살이 박혀있다. 부러진 화살도 있고

장민; (삼황자(三皇子)...) 달리면서 강보를 내려다보고.

약간 틈이 벌어진 강보 사이로 잠이 든 아기 얼굴 일부가 보인다. 몸을 강보로 꽁꽁 싸맸지만 숨을 쉬도록 입고 코 부위의 천을 조금 열어 놨다.

장민; (소인 장민(張閔)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드릴 테니 안심하십시오.)

장민; (삼황자님의 모친이신 백현비(白賢妃)님께는 몇 번을 고쳐 죽어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다시 앞을 보며 달리고

장민; (그 막중한 은혜를 갚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삼황자님을 지켜드려야만 한다.)

장민; (하지만... 사실 삼황자님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장민; (당금의 황상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만귀비(萬貴妃)...) 기승스럽지만 아름다운 중년여인을 떠올리고. 나중에도 나올 만귀비 캐릭터

장민; (그 악독한 계집은 다른 비빈들이 생산한 황자들은 남김없이 독살해왔다.) (자신이 낳은 병약한 황태자(皇太子)의 지위를 위협할까 걱정해서인데...)

장민; (백현비님께서 생산하신 삼황자님도 만귀비의 독수에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장민; (그래서 병사한 것으로 꾸며 자금성 밖으로 빼돌렸지만...)

장민; (어떻게 알고 만귀비가 자객들을 보내 나를 추적하고 있다.)

장민; (다행히 비가 와서 자객들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장민; (비와 어둠의 가호를 받아 가능한 멀리 달아나야...) + [!] 눈 부릅뜨고. 피이잉!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장민; (화살이 나르며 내는 파공성!) ! 다급히 옆으로 방향을 틀며 몸을 날리고.

피피핑! 파팍! 여러 대의 화살이 장민이 날아가던 방향으로 지나치고 바닥에 박힌다.

장민; (이런...) 달려가며 돌아보는 장민.

뒤쪽의 빗속을 달려오는 복면을 쓴 자객들 십여명. 달려오며 활을 쏜다. 활을 쏘고 다시 화살을 뽑아 활에 재우고 있다

장민; (끈질긴 놈들! 그 새 따라붙었구나!) 파팟! 사력을 다해 달려간다.

피핑! ! 다시 활을 쏘는 자객들. 마지막 한 놈만 쏘지 않고 달려온다. 화살을 활에 재운 자세로. 이자가 두목. 허리춤에 카우보이들이 쓰는 것 같은 밧줄을 걸고 있다.

파팟! 다시 방향을 틀며 달리는 장민

투학! 그제야 두목이 활을 쏘고. 장민이 달리는 방향을 가늠해서

피핑! 퍼퍽! 이번에도 대부분의 화살들이 장민을 빗나간다. 하지만

! 두목이 날린 화살이 장민의 한쪽 허벅지를 궤뚫는다

장민; [!] 균형을 잃고 나뒹구는 장민.

철벅! 콰당탕! 나뒹굴면서도 강보에 싸인 아기를 품어서 다치지 않게 하고. 그때

[잡았다!] [노대(老大)께서 장가놈의 다리를 맞췄다!] 차창! ! 활을 버리고 칼을 뽑으며 쇄도하는 자객들. 거리는 30미터쯤이고. 두목만 다시 활에 화살을 재우고 있다

장민; (틀렸다!)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장민; (다리를 다쳤으니 더 이상 달아나는 건 무리...) 품에 앉은 강보의 아기를 내려다보며 뒷걸음질.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장민의 뒤는 절벽이다

장민; (그리고 저놈들의 손에 들어가면 삼황자님은 확실하게 살해당하신다.) 이를 악물며 뒤돌아서고. 절벽 쪽으로

장민; (그럴 바에야 요행을 바라는 게 났다.) 아기를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저 놈 혹시!] [멈춰라 장민!] [강으로 뛰어들려고 한다!] 다급히 외치며 쇄도하는 자객들. 그 직후

투쾅! 날아오며 다시 활을 쏘는 두목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장민. 하지만. 그 직후

! 등에 화살이 깊이 박히며 비틀하는 장민. 어깨 아래쪽을 관통한다.

! 그 바람에 강보에 쌓인 아기를 놓치는 장민

쐐액!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강보에 싸인 아기.

장민; [안돼!] 아기에게 손을 뻗으며 함께 뛰어내리려는 장민. 하지만

촤악! 날아든 밧줄이 장민의 목을 휘감아 조이고

! 급정거로 멈춰서며 두 손으로 밧줄을 휘두르는 두목. 활은 버렸고. 그자가 휘두르는 밧줄에 목이 감긴 장민의 몸이 허공으로 홱 날아오르고 있고. 다른 자객들은 절벽으로 쇄도한다.

파팟! ! 절벽 끝에 급정거하는 자객들. 하지만

절벽 아래로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거친 강물이 굽이치며 흘러내리는 것만 보이고.

퍼억! 목이 조여진 채 바닥에 나뒹구는 장민. 하늘 보는 자세로 나뒹군다.

그 바람에 등에 박혀있던 화살들이 부러지거나 살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고

장민; [끄윽!] 고통에 벌벌 떨고

두목; [어떻게 되었느냐?] 패대기쳐진 장민에게 다가가며 절벽 끝에 선 자객들에게 묻고. 이자는 눈썹 사이에 점이 있다. 그 점이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니 확실히 표시

[애새끼는 강물에 빠진 것 같습니다.] [비가 오는데다가 밤이 깊어서 아래쪽의 상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자객들이 돌아보며 대답하고

두목; [하류로 따라 내려가라.] [삼황자의 시신을 가져가야 만귀비가 제대로 포상을 해줄 것이다.] 장민의 옆에 멈춰 서며 말하고. 장민은 일어나려 애쓰고 있고

[존명!] [가자!] 파팟! ! 절벽을 따라 달려 내려가는 자객들

그 사이에 장민은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지만

두목; [망할 환관 놈!] ! 강하게 장민의 가슴을 밟는 두목

우직!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두목의 발 아래에서 들리고

쿨럭! 고개 들며 피를 토하는 장민

두목; [애새끼를 강에 떨어트려서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 우둑! 발에 힘을 주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장민; [죽일 테면 죽여라 만귀비의 개!] 쿨럭! 주르르!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면서도 이를 갈며 올려다보고

장민; [만귀비와 네놈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는 하늘이 대신 내리실 것이다.]

두목; [그건 장민 네놈의 희망사항이고...] 피식! 웃고

두목; [죽기 전에 좋은 소식을 들려주마.] [네놈이 그렇게 떠받들던 백현비는 네놈보다 한 걸음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장민; [... 그런...] 경악 충격

두목; [네놈이 삼황자를 빼돌린 데 대한 분풀이로 만귀비가 백현비를 독살한 것이다.]

장민; [현비... 백현비마마께서 돌아가시다니...]

두목; [네놈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삼황자도 곧 뒤따라갈 테니 먼저 가서 백현비를 만나봐라!] 콰직! 발에 힘을 주고

퍼득! 장민의 몸이 퍼덕이다가

축 늘어지는 장민의 몸뚱이

두목; [날 원망하지 마라 장민! 네놈이 주인을 잘못 선택한 결과이니...] 휘익! 날아가며 웃고

으하하하! 장민의 시체를 배경으로 멀어지는 두목. 헌데

 

#3>

절벽 아래. 강물이 거칠게 흐르고 있고. 헌데 바위가 움푹 들어간 곳은 강물이 잔잔하다. 그곳에 배가 한척 정박해있다. 작은 선실이 달린 배인데 밧줄로 절벽의 돌출부에 묶여있다. 그리고

[...] 문이 열린 작은 선실에 앉아서 무언가 생각하는 중년의 꼽추. 전작인 <무쌍일지>에 나온 타노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타노. 이름은 이적. 그래도 타노라고 표기. 이때의 나이는 40살 전후. 헌데

타노의 품에 안겨있는 강보에 싸인 아기.

타노; (만귀비, 백현비, 삼황자, 환관 장민...) 곁눈질로 하류쪽의 절벽을 보고.

자객들이 절벽 아래를 살피며 하류로 달려가는 것이 작게 보인다

타노; (주인님의 분부로 서둘러 항주(杭州)로 가던 길이었는데...) 자객들이 멀어지는 걸 보며 생각하고

타노; (비가 오고 날이 어두워져서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정박하게 되었다.)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보고

타노; (그러다가 상상도 못했던 일을 겪게 되었다.) ! 강보를 적혀서 아기의 얼굴이 다 드러나게 만들고. 아기의 얼굴은 청풍의 어린 시절 얼굴이다. 콧날이 오똑한

<당금 황제의 셋째 아들이 죽을 위기에 처했으며... 요행히 내가 바로 아래에 있어서 추락하는 삼황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뱃머리에 서서 위에서 추락하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받으려던 타노의 모습 배경으로

타노; (이런 걸 인연이라 말하는 것일 텐데...) + [!] 아기를 보다가 눈 반짝

강보가 젖혀지며 드러난 청풍의 목 부분. 끈으로 대충 만든 목걸이가 걸려있는데 그 끈에 금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다. 두 마리의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무는 모습의 반지

타노; (이 반지...) 반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고

<두 마리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고 있는 쌍룡패미(雙龍敗尾)의 형상...> 반지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타노; (아마 이 아이... 삼황자의 신분과 관련이 있는 반지일 것이다.) (황제가 삼황자의 생모인 백현비에게 준 정표일 수도 있고...) 다시 목걸이를 강보 속으로 넣고

타노; (하지만 이 아이의 신분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 (이 아이가 살아있는 걸 만귀비가 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려 들 테니...)

<이 아이는 가장 귀한 출생이지만 가장 천하고 낮게 길러야만 한다. 만귀비가 결코 찾아내지 못하도록...> 숨듯이 정박해있는 쪽배 배경으로 타노의 생각 나레이션

 

#4>

<-십년후.> 거대한 도시. 북경이다. 멀리 웅장한 자금성도 보이고

<-북경(北京)> 북경의 모습. 번화가. 넓은 대로 좌우로 수많은 상점들이 있고

<-중원 최대의 전장 황금전장(黃金錢莊)> 대로 끝에 웅장한 정문이 열려있는 장원의 모습. 장원 정문으로는 수많은 사람과 우마차들이 드나들고 있다. 대문 처마 아래에는 <黃金錢莊>이라는 글이 금박으로 적힌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다.

황금전장의 후원. 웅장한 이층 건물이 있다. 옆으로 긴 건물. 일종의 도서관. 정문에는 <藏經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람들은 많이 오가지 않는데 입구에는 황금 갑옷에 환금 투구를 쓴 건장한 무사들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이 무사들은 <자객일지>에 나온 황금수라들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이름은 황금수라.

 

#5>

! 누군가의 손이 책꽂이에서 책을 한권 뽑는데 가운데 손가락에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다. 바로 아기 시절의 청풍이 목에 걸고 있던 그 반지다. 두 마리의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의 금반지. 이 금반지로 청풍이 삼황자라는 걸 암시하고

청풍; [...] 까치발을 하고 책꽂이에서 책을 뽑는 청풍. 이 때 나이 10.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인데 몸이 좀 허약해 보인다. 비실비실. 걸치고 있는 옷은 낡고 초라하다. 주변에는 천장까지 닿는 높은 책꽂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뽑은 책 표지를 보는 청풍

<貞觀精要 第十三集>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책을 들고 돌아서는 청풍.

근처에 책상과 의자가 있고. 책상에는 오징어 말린 것 한 마리와 차 주전자가 놓여있다.

책상에 앉는 청풍. 책을 내려놓고

오징어 다리 하나를 입에 물면서 책을 넘긴다.

! ! 책을 천천히 넘기는 청풍의 손

눈이 좌우로 움직이고. 입은 오징어 다리를 질겅 질겅

! 마침내 책을 모두 넘겼고.

오징어 다리를 모두 입에 삼키고

차 주전자를 집어 들고

꼴꼴 고개 젖혀서 주전자의 물을 마신다. 바로 그때

[닥쳐라!] 누군가 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리고

멈칫! 기울이던 주전자를 멈추는 청풍의 손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여? 이 밥벌레 같은 놈들이!] 다시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주전자를 놓고 일어서는 청풍. 책을 집어들고

! 그 책을 원래 자리에 꽂는 청풍. [당장 찾아내라!] 그 배경으로 악을 쓰는 소리가 이어지고

[그분이 오실 때까지 못 찾아내면 네놈들은 전부 모가지다.] 누군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가는 청풍.

 

#6>

높은 책꽂이들 사이의 공간. 커다란 책상이 있고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불같이 화를 내는 중년인. 냉혈전호 벽초천이다. <자객일지>등 다른 작품의 냉혈전호 벽초천 캐릭터. 옷이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

벽초천 뒤에는 교활한 인상의 중년인이 서있다. 황금전장 총관인 이세창이다. 이세창 캐릭터도 <자객일지>에 나오는 황금전장 총관 이세창 캐릭터 차용

벽초천 앞에는 서생 차림의 중년인이 서서 사색이 되어 있다. 이자는 장경각 부사서인 조무상. 한 두 번 나올 캐릭터. 그냥 평범한 서생. 주변에서는 서생 차림의 사내들 십여명의 책꽂이들의 책을 살피며 허둥대고 있다.

벽초천; [변명을 하려면 그럴 듯한 변명을 해라!] 탕탕!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눈을 부라리고

벽초천; [장경각 총사서(總司書)인 우문(宇文)노인이 와병중이기 때문에 찾는 책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장주 냉혈전호(冷血錢虎) 벽초천(碧礎天)>

벽초천; [책의 소재도 모르는 놈들이 무슨 사서(司書)?] [내가 네놈들 먹이고 입히는 이유가 돈이 썩어나기 때문인 줄 아느냐?]

조무상; [... 죄송합니다 장주님!] 비지땀을 흘리며 굽신거리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장경각 부() 총사서 조무상(趙無想)>

조무상; [송나라 때의 명재상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취옹잡기(醉翁雜記)는 워낙 귀한 책이라 주요 장서를 보관하는 이 주변에 있을 것입니다.]

조무상; [부디 조금만 더 말미를 주십시오.] 비지땀을 흘리고

벽초천; [말미같은 소리!] 탕탕!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고

벽초천; [황상의 최측근인 수보(首輔;재상) 양정화(楊廷和)공께서 친히 우리 황금전장을 내방하시는 일이 매번 있을 것 같으냐?]

벽초천; [양수보께서는 구양수의 저작이 우리 황금전장으로 흘러들어온 걸 알고 한번 보기를 청했다.]

벽초천; [헌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서 보여드리지 못한다고 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느냐?]

벽초천; [양수보께서는 내가 자신을 깔보고 욕보인다고 생각할 거 아니냐?]

벽초천; [그리고 황상의 측근 중의 측근인 양수보가 분노하면 우리 황금전장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단 말이다.]

조무상; [... 죄송합니다.] 사색이 되고

벽초천; [죄송이고 나발이고 그분이 도착하시기까지 채 반 시진도 안 남았다.]

벽초천; [그 전까지 취옹잡기를 찾아내지 못하면 네놈들 모두 죽은 목숨인 줄 알아라!] 격렬히 화를 내고

조무상; [... 명심하겠습니다.] 굽신

조무상; [빨리... 빨리 취옹잡기를 찾아라! 빨리!] 다른 서생들에게 외치며 자신도 책꽂이를 향해 달려가고

허둥대며 책을 찾는 서생들

실수로 와르르 책을 쏟아내는 놈도 있고.

벽초천; [무능한 밥버러지들...] 벽초천의 눈치 보며 허둥지둥 쏟아진 책을 끌어 모으는 놈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고

이세창; (본장도 참 운이 없구나.) (하필이면 장경각의 모든 책을 관리하는 우문노인이 와병중일 때 양수보가 방문을 하다니...) 소리없이 한숨을 쉬고.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총관 이세창(李世昌)>

이세창; (돈놀이가 본업인 우리 황금전장의 특성상 권력자에게 잘 보여야 탈 없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세창; (최고 권력자인 양수보의 비위를 맞출 기회를 놓치면 뒷탈이 생길 게 분명하다.) 난감하고. 그때

[취옹잡기의 소재는 제가 알고 있어요.] 누군가의 말이 이세창과 벽초천의 귀에 들리고. 눈 치뜨는 두 사람

[!] [!] 부산하게 책장을 뒤지던 서생들도 일제히 돌아보고

벽초천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청풍.

벽초천; [저놈이 뭐라는 거냐?] 오만상

조무상; [청풍아!] 살았다는 표정으로 달려오고

벽초천; [애초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떻게 장경각에 들어와 있는 거냐?] 마뜩잖은 표정으로 청풍을 흘겨보고

이세창; [저놈 누구요?] 달려온 조무상에게 묻고. 시선은 청풍에게

조무상; [... 이청풍이라고... 본장의 하인중 한놈입지요.] 눈치 보고

벽초천; [총관! 자네도 모르는 놈인가?] 이세창에게 묻고

이세창; [죄송합니다.] [본장의 하인들은 천명이 넘어서 모두 기억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고개 숙이고

벽초천; [그럴 만도 하지. 하물며 아직 밥값도 못하는 어린놈이니...] 말하며 조무상을 보고. 조무상에게 말하는 표시

조무상; [청풍은 전대 장주님이 가까이 두고 부리던 충복 타노가 밖에서 낳아 데려온 아들입니다.] 눈치 보며 말하고

벽초천; [타노라면 알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신임하던 종이었으니...] 끄덕

벽초천; [헌데 타노 그놈 꼽추 주제에 재주도 좋군. 자식까지 싸지르고...] 피식 웃고

조무상이 당황하여 청풍을 보지만

청풍은 무표정하게 서있고

조무상; [청풍이는 기억력이 비상합니다.] 급히 웃으며

벽초천; [기억력이 좋다? 얼마나?] 심드렁

조무상; [한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그 때문에 책도 한번 쓱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다 기억할 정도입니다.]

벽초천; [사실이라면 제법 쓸모가 있겠군.] 자세 바로 한다. 흥미를 느꼈고

조무상; [믿지 못하시겠지만 청풍이는 장경각의 모든 책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만여 권의 장서 중 삼할 가까이를 읽었으며 그 내용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신이 나서

벽초천; [허어! 저 어린놈이 벌써 삼만 권 넘는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다?] 좀 놀라고

이세창; (조무상의 말이 사실이라면 괴물이라 할만한 놈이로군.) 역시 감탄하며 청풍을 보고. 청풍은 여전히 무표정

벽초천; [취옹잡기의 소재를 알고 있다고 했지?] 청풍에게

청풍; [그렇습니다.]

벽초천; [어디 있느냐?]

청풍; [원래는 병()열의 십삼호 서가 육()단에 있었지만...] 한쪽을 보며 말하고. 그쪽에 있던 서생들 흠칫!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쪽을 보고

급히 그쪽 서가를 살피는 근처의 서생들. 하지만

[여기에는 없습니다.] 고개 젓는 서생들

청풍; [한 달 전 쯤 사서중 한분이 필사를 한 후 위치를 착각해서 무()열의 십삼호 서가 육단에 꽂아두었습니다.] 좀 떨어진 후미진 곳의 서가를 보고. 그러자

급히 그곳으로 달려가는 서생들. 이어

[있습니다!] 그 중 한 놈이 책꽂이에서 책을 한권 꺼내며 환호하고

[구양수의 취옹잡기가 여기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달려오는 그놈

조무생; [틀림없습니다.] 그 책을 받아 살피고

조무생; [구양수가 저술한 취옹잡기 초판본입니다.] 두 손으로 책을 벽초천에게 넘기고. 책에는 <醉翁雜記>라는 제목이 큰 글로 적혀 있고 아래쪽 구석에는 <歐陽脩 書>라는 글이 좀 작게 적혀 있다. 하지만

벽초천은 책을 받는 대신 청풍을 보고 있다.

이세창; [내가 챙겨두겠소.] 대신 책을 받는데

벽초천; [이백(李白) 시선(詩選)!] 청풍에게

청풍; [()열 삼십칠호 서가 칠()단에 있습니다.] 즉시 대답하고. 그러자

눈치 챈 서생 한 놈이 달려가고

구석진 곳의 서가에서 책을 뽑는 그놈

[맞습니다.] 그곳에서 책을 든 채 외치고

이세창;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벽초천 대신 말하고

청풍; [()열 칠호 서가 삼()!] 즉시 대답하고

서생이 책을 뽑으며 끄덕이고

이세창; [사기(史記) 열선전(列仙傳)!]

청풍; [신열 이호서가 오()!] 즉시 대답하고

[열선전 여기 있습니다.] 서생 한 놈이 책을 뽑으며 외치고

이세창; [그럼 이번에는...] + 벽초천; [되었다.] 막고

이세창; [...] 고개 숙이고

벽초천; [이청풍이라고 했지?] ! 일어나고

벽초천; [여기 대기하고 있다가 부르면 내원(內院)으로 와라.] 걸어가며 말하고. 이세창이 따라가고

청풍; [...] 고개 숙이고. 서생들도 고개 숙이고

벽초천; (저런 보물이 우리 황금전장에 숨어있었단 말이지?) 청풍을 등지고 걸어가며 눈 번뜩이고

벽초천; (저놈을 이용하면 글공부와는 담은 쌓은 세황(世皇)이 놈에게 자극을 줄 수 있겠지.) 히죽 웃고

곧 책꽂이 사이로 멀어지는 벽초천과 이세창 그러자

[휴우!] [살았다.] 주저앉거나 안도하는 서생들. 조무상도 안도하고

조무상; [고맙다 청풍아! 네 덕분에 큰 고비를 넘겼다.] 청풍의 어깨를 다독이고

청풍;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장경각에서 살다시피하는 것을 허락해주신 데 대한 보답인 걸요.]

조무상; [어쨌거나 장주님 눈에 들었으니 앞으로 네게도 좋은 일이 생길 게다.] 청풍의 어깨 다독이고.

조무상; [자자 어질러진 책을 정리하자.] 다른 서생들에게 가며 말하고. 주저앉았거나 책꽂이에 기대고 있던 서생들 다시 일어나고

청풍; (좋은 일이라...) 창가로 가고

열린 창문을 통해서 벽초천과 이세창이 멀어지는 게 보인다. 두 명의 황금수라들이 뒤따라가고 있고

청풍; (아버지는 가급적 다른 사람 눈에 띠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청풍; (내가 장경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버지의 분부 때문이었는데...) 찡그리고

<장주의 이목을 끈 게 과연 좋은 일일지 모르겠다.> 무언가 생각하며 장경각을 등지고 걸어오는 벽초천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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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함정에 빠지다!

 

 

 

부악!

막고천은 이번 기회에 후환을 없앨 작정을 하고 전력을 기울여 장력을 날렸다. 그 기세는 처음의 일장 보다 배는 더 강력하고 악독했다.

[!]

그러나 막고천의 이번 공격은 막비강이 팔보간섬의 경신술로 슬쩍 피하는 바람에 헛것이 되고 말았다.

[불효막심한 놈! 빨리 꿇어앉아 죽음을 받아라!]

화가 치민 막고천은 이를 부드득 갈며 다시 막비강을 덮쳐왔다.

화락!

하지만 막비강은 그 순간 몸을 날려 명륜당 밖으로 내려섰다.

[막 노적! 자신 있으면 밖으로 나와라. 오늘 내 손으로 네놈을 때려죽이고 말겠다!]

뜰에 내려선 막비강이 막고천에게 삿대질을 할 때였다.

[! 날뛰지 마라!]

[호로자식이 어디서 감히...!]

휘휙! 화락!

막고천 대신 두 개의 인영이 동시에 날아 나왔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막고천 옆에 앉아 있던 고희의 노인들이었다.

두 노인 중 동홍선생(冬烘先生;서당 훈장)처럼 생긴 자가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너 같은 불효막심한 자식은 노부가 대신 벌을 주어야겠다.]

막비강은 이 노인이 막고천을 능가하는 고수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거만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하는 거요?]

동홍선생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피를 섞어 시험했으니 친혈육임이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계속 난동을 부리는 네놈은 금수나 다름없다. 예로부터 금수같은 인간은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법! 노부가 오늘 장주를 대신하여 네놈의 버릇을 고쳐 주어야겠다.]

막비강은 냉소하며 말했다.

[! 당신은 나잇살이나 쳐먹어 놓고도 방금 전의 그 혼혈친인에 거짓 수작이 숨겨져 있음도 못 알아보시오?]

그때 중인들을 이끌고 명륜당에서 달려나오던 막고천이 그 말을 듣고 고함을 질렀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이 다 똑똑히 보았는데 무슨 거짓 수작이 숨겨져 있었단 말이냐?]

막비강은 검미를 치뜨며 대답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았으니 나와 피가 혼합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는 절대 너 같은 악적의 자식이 아니다. 자신이 있으면 나와 단독으로 혼혈친인을 해보자.]

막고천은 막비강이 단독으로 시험해 보자는 제의를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터라 당황했다. 대답이 궁색해진 그는 얼굴을 붉히며 노성을 질렀다.

[아비를 악적이라 욕하는 죄만으로 죽어 마땅한데 또 무엇을 시험하잔 말이냐?]

막고천은 분노하며 또 다시 막비강에게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막비강은 미리 방비하고 있었던 터라 가볍게 피해냈다.

[어머니!]

막비강은 막고천을 상대하지 않고 다른 여인들과 명륜당 입구까지 나와있는 어머니 한경파 곁으로 날아갔다.

[이제 저 악적에게 시달리실 필요 없습니다! 소자와 함께 여길 떠납시다.]

막비강은 팔을 뻗혀 어머니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한경파는 슬픈 표정으로 물러서며 손을 저었다.

[... 너나 빨리 여길 떠나거라 강아!]

[죽일 놈!]

! 퍼엉!

그 사이에 막고천이 다시 쫓아와 연달아 장력을 쳐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을 때려죽여 버리겠다!]

하지만 막비강이 팔보간섬을 전개하자 막고천은 이번에도 그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막비강은 막고천의 공격을 피하며 냉랭히 웃었다.

[나는 네놈을 일장에 격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상을 먼저 알고 싶어 손을 쓰지 않을 뿐이니 분수를 알고 멈춰라!]

막비강의 조롱에 막고천은 대로하여 고함을 질렀다.

[짐승보다 못한 놈! 나를 아비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 부친이 누구란 말이냐?]

[그건 내가 네게 묻고 싶은 말이다.]

이때 막고천의 장남인 막불계가 덮쳐 오며 외쳤다.

[둘째! 너는 끝까지 아버지를 모독할 테냐?]

막비강은 철이 들었을 때부터 막불계에게 수없이 괄시를 받고 매도 맞았다. 자연히 그는 지난날의 울분이 일시에 치밀어 냉랭히 대꾸했다.

[막불계! 네 모친도 이 악적이 남편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겁탈했을 텐데 뭐가 고맙다고 두둔하느냐?]

막불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무엄한 놈 같으니...! 뭐가 어쩌고 어째?]

!

막불계는 악에 바쳐 일장을 후려쳤다.

[! 그런 실력으로 내게 덤비다니!]

하지만 막비강은 어린 아이 손목 비틀 듯 그의 손목을 움켜잡아 던져 버렸다.

[어헉!]

막불계의 몸은 마치 줄이 끊어진 연처럼 삼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막불계는 비록 나이는 젊지만 혈검산장의 가전비학을 모두 연마했고 또 흑도의 거물들인 십악구흉, 칠열팔준들로부터 사사받아 젊은 층에선 제일인자라 불렸다.

그런 그가 미처 일초도 버티지 못하고 내 팽개쳐지자 중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막고천의 아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십대 후반의 중년부인이 눈에서 살기를 발산하며 한경파에게 노성을 질렀다.

[셋째 동서! 자네가 이 불효막심한 자식 놈을 따끔하게 벌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치도곤을 내리겠다.]

이 여인이 바로 막고천의 정실(正室)인 당숙경(唐淑瓊)이다.

막불계와 두 딸의 어머니인 그녀는 보통 여인들보다 체격이 큰 데다 상당히 살이 쪄서 몸매가 아주 당당하고 풍만하다.

그리고 피부도 깨끗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하여 여전히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기승스러워 보이는 것이 흠이었다.

혈검산장에서 막비강을 가장 못 살게 괴롭힌 사람이 다름 아닌 당숙경이다. 막비강이 자신의 다섯 시앗들이 낳은 아이들 중 유일한 아들인 탓인지 그녀는 노골적으로 그를 못 살게 굴었었다.

막비강은 그런 당숙경이 자신의 어머니 한경파를 윽박지르자 분노하여 이를 부득 갈았다.

[네가 날 어쩌겠다는 거냐 이 살찐 돼지야?]

[, 뭐야? 돼지?]

당숙경은 평소에도 자신이 다른 시앗들보다 살이 많이 찐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오고 있었다. 당연히 살찐 돼지라는 막비강의 욕은 그녀의 얼굴을 새빨갛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그 주둥이! 찢어버리겠다!]

당숙경이 악을 쓰며 막비강을 덮쳐왔다. 서패천 혈검산장의 안주인답게 그녀의 무공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래봤자 막고천도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는 막비강의 상대가 될 까닭이 없다.

[꺼져!]

막비강은 당숙경이 덮쳐들자마자 그녀의 하얀 손목을 잡아채 마당에 던져 버렸다.

[아이쿠!]

당숙경의 피둥피둥 살이 찐 몸뚱이가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비명과 함께 마당에 널부러졌다.

당숙경은 여러 바퀴 뒹구는 바람에 치마가 허리 위로 걷혀 올라가버렸다. 그 바람에 투실투실 살이 오른 중년여인의 허연 아랫도리가 그대로 드러나버렸다.

유달리 육덕이 좋은 그녀인지라 허벅지 하나가 한 아름이 넘어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우람한 허벅지들은 처녀같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

당숙경은 발라당 나자빠지는 바람에 가랑이를 벌린 자세로 넘어졌는데 흐드러진 허벅지 사이에는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살이 두둑히 오른 둔덕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살진 두덩이를 가린 작은 고의는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본의 아니게 당숙경의 사타구니를 본 막비강은 민망하여 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부친을 모독하고 형을 때렸으며 부친의 정실을 욕보였으니 막비강은 이제 패륜무도라는 오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

[저 놈을 잡아라!]

[이놈! 어디서 패악질이냐?]

막비강이 형인 막불계에 이어 큰 어머니인 당숙경마저 능멸하는 것을 본 혈검산장의 무리들이 분노하며 일제히 막비강을 덮쳐왔다.

[강아!]

십악구흉, 칠열팔준등이 분노하여 사방에서 아들을 덮쳐가는 것을 본 한경파가 비명을 질렀다. 육요 칠절에 버금가는 고수 삼십여명으로부터 합공을 받는 아들이 당장이라도 피곤죽이 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한경파가 우려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삼십 명이 넘는 고수가 공격한다 해도 일시에 막비강에게 들이닥칠 수 있는 인원은 너댓명 밖에 안된다.

그리고 막비강은 이미 육요 칠절정도의 고수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절정고수가 되어있었다. 육요 칠절이 아니라 천하오기라도 지금의 막비강에게는 몇 초 견디지 못할 정도다.

[꺼져라!]

막비강은 사납게 외치며 쌍장을 후려쳤다. 그의 이 일장은 염라철장 곡강의 염라장법이다. 당연히 혈검산장의 악도들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무공이다.

하지만 막비강이 펼친 지금의 염라장법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치우강기가 실려 있었다.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버리는 치우강기가 가미된 염라장법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퍼펑! 꽈르릉!

[케엑!]

[크악!]

무쇠망치로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처참한 비명이 일시에 터졌다.

치우강기에 정면으로 가격당한 혈검산장의 고수 다섯 명이 가슴과 머리통이 으깨져 즉사했다. 요행히 정면으로 얻어맞지 않은 자들도 치우강기가 실린 염라장법의 장풍이 스치는 순간 내장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허억!]

[, 저럴 수가!]

십악구흉, 칠열팔준중 단 번에 다섯 명이 즉사하고 일곱명이 피를 토하며 나뒹굴자 장내는 공포와 전율이 휩쓸었다. 이같은 결과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막비강도 일시 넋이 나갔다. 그는 막불계나 당숙경 모자를 상대할 때는 그래도 차마 살수를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막고천의 수하들이 떼로 덮쳐오자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치밀어 치우강기를 발휘하였다.

헌데 불과 삼성의 치우강기를 염라장법에 가미했을 뿐인데도 단번에 다섯 명의 절정고수를 죽이고 일곱명을 부상 입혔다. 이것은 막비강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막비강으로서도 최초의 살인이다. 아무리 죽어 마땅한 자들을 죽인 것이라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 보다는 치우강기의 가공할 파괴력이 그를 더욱 전율하게 만들었다. 청구단서가 왜 천하제일의 비급이고 청구상인이 어째서 무성(武聖)이라 불리는지 이 일장으로 증명된 것이다.

헌데 막비강이 스스로 벌인 살육에 넋이 나가 있을 때였다.

[이 짐승같은 놈!]

[죽어라!]

동홍선생과 또 다른 한 노인이 살기 어린 고함을 지르며 동시에 막비강을 공격해왔다. 과연 그자들은 육요 칠절을 능가하는 고수라 장풍이 닿기도 전에 숨 막히는 압력이 밀려온다.

넋을 놓고 있던 막비강은 움찔하면서 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퍼펑! 콰쾅!

그 바람에 빗나간 두 노인의 장력이 지면을 강타하여 깊은 구덩이 두 개를 만들었다. 일장을 날려 깊이 석자에 폭이 일장 가까운 구덩이를 만든 두 노인의 공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자들이다!)

막비강은 두 노인이 오봉도인이나 우주도철에 그리 뒤지지 않는 실력의 소유자들임을 알고 내심 긴장했다.

[흐흐흐! 그동안 막장주로부터 후대를 받은 값을 해야겠군!]

[낄낄! 청구단서의 무공이 결코 절대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마!]

두 노인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흘리며 좌우에서 막비강에게 다가왔다.

막비강도 이번에는 방심하지 못하고 양 손에 치우강기를 운집시켰다. 그때였다.

[, 그만 두세요!]

문득 겁에 질려 물러선 사람들을 헤치고 하나의 날렵한 인영이 달려나왔다.

[() 노선배님! () 노선배님! 천첩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이 아이를 해치지 말아 주세요.]

달려 나온 날렵한 인영이 두 노인을 가로 막으며 애원했다. 뜻 밖에도 그 여인은 막고천의 다섯 번째 부인인 냉상영이었다.

냉상영이 가로 막자 두 노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상대는 자신들을 식객으로 맞아준 막고천의 첩인 것이다.

헌데 그들이 난감해할 때였다.

[비키지 못하겠느냐 천한 계집!]

지켜보던 막고천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냉상영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가했다.

[!]

막고천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허리를 걷어채인 냉상영이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머니!]

보고 있던 냉상영의 딸 막영란이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넘어진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허리가 걷어채여 스러진 냉상영은 충격이 컸는지 운신을 못하고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린다.

[이 간악한 악적!]

이 광경을 본 막비강은 대로하였다.

꽈릉!

그는 분노한 나머지 일장에 치우강기를 실어 막고천을 후려쳤다.

[으악!]

다음 순간 막고천은 외마디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그런 그자의 왼쪽 다리가 치우강기에 맞아 그대로 으스러져 버렸다.

[!]

[장주님!]

십악구흉등 살아남은 자들은 경악성을 지르며 막고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급히 막고천의 혈도를 찍어 지혈해 준 다음 들쳐업고 후원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홍선생과 또 한 노인은 막고천 옆에 서 있었지만 막비강의 출수가 너무도 쾌첩한 탓에 미처 막아볼 엄두도 못냈다.

[이 개잡종!]

[죽어라!]

다음 순간 두 노인은 분노의 폭갈을 터트리며 막비강을 덮쳐왔다. 과연 이 노인들의 공력은 심후하기 이를 데 없어 그들이 일단 공세를 발동하자 막비강은 숨이 콱 막히는 압력을 느꼈다.

막비강은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두 절세고수의 합공을 받자 경시할 수 없어 치우강기를 최대한 끌어내 마주 장력을 후려쳤다.

! 꽈다다당!

쌍방의 장력이 맞닥뜨리는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난무하고 바닥에 깊이가 다섯 자가 넘는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

[크억!]

흩날리는 폭음 속에서 세 마디의 신음과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막비강은 기혈이 요동쳐서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반면 두 노인은 피분수를 뿌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두 노인은 치우강기에 진탕되어 내장이 위치를 바꾸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 가세!]

[, 괴물같은 놈!]

겨우 바닥에 내려선 두 노인은 사색이 되어 몸을 날렸다. 단 일합의 격돌이었지만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자신들조차도 막비강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달은 것이다.

막비강이 들끓는 기혈을 갈아앉혔을 때 명륜당 앞 마당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에 맞아 죽은 다섯 구의 시신만이 널려있을 뿐이었다.

혈검산장의 무리들은 막비강이 십악구흉등을 일장에 다섯 명이나 격살하고 막고천이 삼고초려하여 초빙한 두 명의 전대 기인조차도 간단히 패퇴시키자 공포에 질려 뿔불이 달아나 버린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 막비강은 그제서야 막고천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어머니 한경파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혈검산장의 무리들은 달아나면서 한경파와 냉상영등 여자들도 함게 끌고 사라진 것이다.

[막가야! 숨어도 소용없다!]

막비강은 사나운 고함과 함께 몸을 뽑아 올려 막고천 일행이 사라진 후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일단 생모 한경파를 막고천의 마수에서 구해내 혈검산장을 떠날 작정을 했다. 생모에게 상세한 내막을 물은 다음 부친 염라철장의 피맺힌 원한을 갚을 심산이었다.

 

* * *

 

(모두 어디로 사라졌지?)

헌데 후원에 들어선 막비강은 어리둥절해졌다. 그 짧은 사이에 막고천뿐만 아니라 생모를 비롯한 막고천의 처첩들도 모두 사라져 버려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주위에 내가 모르는 은밀한 밀실이 있구나!)

막비강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기다!)

이내 막비강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한쪽 옆의 담벼락 밑에 몇 방울의 핏자국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

콰쾅!

막비강은 즉시 그 담장을 향해 일장을 갈겼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담장이 왈칵 무너지며 과연 그 뒤쪽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 이젠 독 안에 든 쥐다! 막가 노적아!]

막비강은 온몸으로 살기를 토해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이 곧 끝나고 한 칸의 밀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출구가 없는 그 밀실은 텅 비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밀로가 있는 것일까?)

막비강은 갸웃하며 사방의 벽을 두드려 보았다.

텅텅!

헌데 벽을 두드리자 둔중한 금속성이 나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방이로군! 사방 벽이 철벽(鐵壁)이라니...! 만일 누가 이 안에 들어왔을 때 문을 봉쇄해 버린다면 꼼짝없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막비강은 갑자기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을 느꼈다.

(설마 함정(陷穽)?)

막비강은 질겁하며 다급히 밀실 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한걸음 늦고 말았다.

쿠쿠쿵!

돌연 육중한 굉음과 함께 입구가 다섯 치 두께의 철문으로 막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야앗!]

막비강은 사색이 되어 맹렬히 장풍을 날렸다.

꽈릉!

하지만 굉음과 함께 먼지가 우수수 떨어질 뿐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이런!]

막비강은 비로소 자신이 막고천이 판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고 신음했다. 그때였다.

[크크크! 꼴좋구나, 망나니 녀석!]

어디선가 악에 받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막고천이었다.

막비강은 분노하여 외쳤다.

[이 악적!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나서라!]

[흐흐! 네놈은 죽어 마땅한 패륜아다! 그 안에서 아사 직전이 되면 꺼내 주마!]

[닥쳐라!]

콰르르릉!

막비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맹렬히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철실 전체가 무너질 듯이 진동하며 요동을 쳤지만 벽은 깨어지지 않았다.

[크크크! 발악해 봐야 소용없다! 그 방은 사면이 한철(寒鐵)로 주조되어 만 근의 화약으로도 깨뜨릴 수가...!]

꽈르르릉!

막고천의 득의에 찬 음성은 다음 순간 요란한 폭음에 묻혀 버렸다. 막비강이 이번에는 치우강기를 최대한 일으켜 철문을 후려친 것이다.

우두둑!

그러자 굉음과 함께 철문의 중앙이 움푹 우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십여 번만 더 치면 무너뜨릴 수 있다!)

막비강은 새삼 치우강기의 위력에 놀라며 재차 장력을 날렸다.

콰드득!

이번에는 좀더 큰 폭음이 터지며 문의 형상이 이지러졌다.

[... 괴물 같은 놈!]

어디선가 지켜보던 막고천의 음성이 공포로 물들었다.

[독무! 독무(毒霧)를 안쪽으로 내뿜어라!]

푸스스스! 쉬익!

막고천의 두려움에 질린 일갈에 이어 철실의 사방 모서리에서 자욱한 운무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비강은 천오주를 지닌 탓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헛수고라는 걸 알려 주마! 곧 나가서 죽여 주마!]

꽈르릉!

막비강은 독무는 무시하고 다시 철문을 부수는 데 전념했다.

[으으으! 만독불침이란 말이냐? ... 가자!]

겁에 질린 막고천의 음성이 급히 멀어졌다. 독도 무서워하지 않는 막비강의 모습에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으하하하! 지옥 밑구멍이라도 널 숨겨 두지 못한다!]

! 콰쾅!

막비강은 살기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장력을 후려쳤다.

헌데 그때였다.

(허억!)

막비강은 돌연 부르르르 몸을 떨었다. 갑자기 아랫배 깊은 곳에서 무서운 열기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 아차! 이놈이 다급한 김에 최음제(催淫劑)도 독무에 섞어 흘려보냈구나!)

막비강이 대경실색하여 호흡을 멈추었으나 이미 늦었다. 방심하는 사이 다량의 최음제를 들이마신 그의 전신은 삽시에 불덩이처럼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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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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