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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의 눈동자 (1)

 

 

동굴은 허리를 숙여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너구리같은 작은 짐승의 굴인 것 같았다.

임청우는 청강사자검을 뽑아 앞쪽으로 세운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심주은은 임청우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야생 짐승의 몸에서 나는 노린내를 맡고 얼굴을 찌푸렸다.

(짐승의 똥이 많이 있으면 어쩌지? )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머리를 푹신한 곳에 부딪혔다. 앞서 들어가던 임청우가 멈추는 바람에 그의 엉덩이에 코를 박고 만 것이다.

왜 갑자기 멈추고 그래?”

임청우의 엉덩이에 박았던 얼굴을 급히 떼며 심주은은 눈을 부라렸다.

온몸을 팽팽히 긴장시킨 임청우가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안에 짐승이 있다. 맹수인지도 모르겠어.”

동굴 안쪽에서 파란 빛을 내뿜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임청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이 동굴 안에는 무언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필 이런 때에...)

임청우의 어깨 너머로 눈동자들을 본 심주은은 초조와 긴장에 휩싸여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굴 밖에서 들려오던 귀를 찢을 듯하던 휘파람 소리도 어느덧 뚝 그쳤다. 노파와 중이 동굴 근처까지 온 모양이다.

그런데도 앞쪽에 무언가 있어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뒷덜미에 칼이 날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급해진 심주은은 전음으로 빠르게 말했다.

찔러버려! 찔려서 죽여 버려!”

심주은의 재촉을 받은 임청우는 청강사자검으로 가슴과 머리를 보호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호랑이의 몸에서는 노린내가 난다고 한다.

임청우는 노린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안쪽에 있는 것이 호랑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혹 호랑이라 하더라도 무섭지는 않다.

임청우는 자신의 몸속에 쌓여있는 공력이 누구도 경시하지 못할 가공한 수준임을 알고 있었다.

(기걸승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안쪽에 있는 짐승을 죽이더라도 소리는 내지 말아야 한다.)

들키지 않으려면 눈앞에 있는 시퍼런 눈동자를 지닌 괴물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야한다.

결심을 한 임청우는 온 정신을 청강사자검에 모아서 앞으로 내질렀다.

번쩍!

푸른빛이 뇌전처럼 두 개의 눈동자 사이로 쏘아져 나갔다.

한데 검봉(劍鋒;검의 끝)이 찌르는 순간 눈동자들은 깜빡하더니 사라져버렸다.

좁은 동굴 안이라 무언가 움직였다면 공기의 요동이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임청우는 깜짝 놀랐다.

청강사자검을 아래위로 내저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눈동자들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 귀신?)

섬뜩한 전율이 임청우의 머리끝에서 일어나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그때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그놈을 찾았는가?”

늙은 노파의 음성이었다.

아직은 눈에 띄는 게 없소.”

사내의 음성이 이어졌다. 기걸승중 중의 목소리다.

그 놈의 새끼가 둘째의 몸뚱이를 완전히 부셔 놨어. 잡아서 모가지를 끊어버려야 속이 풀리겠어.”

으으으..."

노파의 살기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아마도 노파가 상처 입은 거지를 안고 있는 모양이었다.

임청우는 발소리를 죽이고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신처럼 사라진 눈동자 따위는 밖에 있는 잔혹한 노파와 중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심주은도 소리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중이 다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저께서 이 근처에 있는 것은 분명하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구려.”

만리향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니냐? 멀리 있으면 쉽게 맡을 수 있지만 정작 가까이 있으면 잘 파악하기 어려운 게지.”

노파의 음성이 이어졌다.

의심스러운 데가 있으면 무조건 때려 부수고 봐, 아가씨를 잡아간 그놈의 무공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니 조심하고...”

대답대신 꽝! 하는 벼락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중이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장력으로 쓰러뜨렸던 것이다.

중은 만리향의 향기가 남아있는 일대의 나무들과 바위들을 모조리 부셔버릴 심산인 것같았다.

! 콰드드!

중의 양손을 갈쿠리같이 오그리고 한 번씩 내저을 때마다 시뻘건 강기가 회오리치면서 뻗어나가 나무와 바위들을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임청우와 심주은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한 사람이 손발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소리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갑자기 꽝 소리가 들리며 심주은은 등쪽에서 찬바람이 확 이는 것을 느꼈다.

빨리 들어가!”

심주은은 임청우를 떠밀면서 급히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기다!”

노파가 소리치며 동굴을 향해 날아왔다.

그녀는 땅에 닿을 듯 낮게 날아서 그대로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

심주은은 임청우에게 다급히 전음으로 말했다.

움직이지마! 숨도 쉬지마.”

그러나 임청우는 검을 들고 앞으로 한 바퀴 구른 다음에 입구쪽으로 드러누웠다. 그 바람에 그의 머리는 심주은의 두 발 사이에 들어갔다.

날아 들어오는 노파를 베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한데 바로 그 직후였다.

스스스!

갑자기 심주은의 몸이 뿌연 안개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이내 거무스름한 바위벽으로 변해버렸다.

임청우는 심주은이 기이한 술법을 쓰는 것을 몇 번 목격하기는 했지만 올려다보고 있는 사이에 사람의 몸이 석벽으로 변해버리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임청우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데 앗! 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며 심주은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

노파는 수평으로 날아 들어오다가 심주은의 등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만리향의 향기가 동굴 안에 가득하건만 석벽이 가로막고 있을 뿐 심주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직선으로 뚫린 굴이라 어디 숨을 만한 데도 없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기어야 할 정도로 낮은 곳이니 천장에 붙을 수도 없다.

심주은이 동굴 속에 있는 게 틀림없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지만 찾을 수가 없어진 노파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셋째, 네가 들어와 봐라! 이 안에 숨어있는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하지요.”

중은 몸을 기괴하게 구부리더니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꾸물거리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노파가 옆으로 비켜서자 중이 자연스럽게 지나치며 막다른 석벽에 다다랐다.

바로 이곳이군요.”

중은 심주은의 등에 손바닥을 붙이면서 말했다.

안이 비어있습니다.”

부우웅!

말하는 중의 손바닥이 진동을 일으켰다. 그는 공력으로 석벽을 부셔버릴 심산이었다.

헌데 중의 손바닥이 막 심주은의 등을 때리려고 할 때였다.

안돼!”

!

임청우가 대갈일성을 발하며 청강사자검으로 중의 배를 찔렀다.

!”

중은 황급히 자신의 아랫배를 움켜쥐고 물러섰다. 그의 승포자락을 타고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중은 내심 크게 놀랐다.

그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릴 수 있는 것은 유가술(愉加術)을 익힌 덕분이다. 이 유가술을 펼치고 있는 동안에는 몸이 비단결보다도 더 질기고 부드러워 어떤 예리한 병기로도 상하게 할 수가 없다.

그런 그의 몸이 석벽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검에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피까지 흘리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검이기에...)

중이 경악할 때였다.

스스스!

갑자기 눈앞에 서있던 석벽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

중이 귀신에 홀린 듯이 어리둥절 하자 그자의 뒤에서 노파가 떠밀면서 소리쳤다.

환술이다! 놈을 잡아!”

 

***

 

임청우는 심주은을 등에 업고 무작정 동굴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심주은은 죽은 듯이 그의 등에 업혀 있었다.

바닥에 누워있던 임청우가 중의 배에 청강사자검을 찔러 넣은 직후 심주은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었다.

이에 임청우는 급히 심주은을 안고 동굴 안쪽으로 피한 것이다.

(언젠가는 저 중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겠다. 아무 곳에서나 마음대로 살수를 휘두르다니...)

임청우는 분노하고 있었다. 심주은이 중의 일격에 중상을 입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임청우의 오해였다.

심주은은 노파가 날아 들어오면서 등을 머리로 받았을 때 이미 심한 내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임청우와 자기의 목숨이 자신이 펼치고 있는 환술에 달려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었었다.

그러다가 중이 등에 손바닥을 댄 직후 피를 토하며 쓰러졌었다.

임청우가 중에 의해 심주은이 내상을 입은 것으로 오해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동굴은 상당히 좁다.

뒤쪽에서 검이나 도, 아니면 장력이라도 날아온다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임청우는 앞으로 무작정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쉬익!

중과 노파는 땅에 닿을 듯 말듯 낮게 날면서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임청우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견딜 수 있겠어?”

...”

심주은의 대답은 견딜 수 있겠다는 건지 못 견디겠다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도망 가보았자 막다른 곳만 나올 뿐이라는 생각에 임청우는 그녀를 내려놓고 눕게 한 다음에 자기도 반듯하게 누웠다.

청강사자검의 검광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옷자락 아래로 검을 감추었다.

중과 노파가 자기의 위로 날아가려 할 때 아래에서 베어버릴 심산이었다.

동굴 안은 칠흑같이 어두우니 중과 노파도 쉽사리 자신들을 발견하진 못할 것이다.

휘릭!

한데 앞서서 날아오던 중이 갑자기 임청우에게서 일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어 섰다.

무슨 일이냐?”

하마터면 중에게 부딪힐 뻔한 노파가 소리쳐 물었다.

피 냄새요. 아마 놈이 앞에 있는 모양이오.”

중은 신중하게 가슴 앞으로 손을 모으면서 말했다.

임청우는 속으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중을 찔렀던 검에서 피를 닦아내지 않았을 뿐인데 중은 그 피 냄새를 맡고 자기가 그곳에 있는 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쉽게 죽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노파가 소리쳤다.

통채로 날려버려!”

그랬다가는 동굴이 무너질 것이오. 너무 깊이 들어왔소.”

중은 고개를 저으며 품속에서 황금으로 된 상자를 하나 꺼냈다.

그자도 임청우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누워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주인께서 우리가 떠나올 때 주신 혈승(血蠅)이 있소.”

중은 금합(金盒)을 열면서 말했다. 금합 속에는 손가락 한 마디만한 크기의 시뻘건 파리 수십 마리가 들어있었다.

혈승은 만리향을 싫어하니 소저껜 아무 해가 없을 것이오.”

혈승이란 피를 빠는 파리를 말한다.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독충으로 떼를 지어 날면서 스치는 것은 무엇이거나 뼈를 남기지도 못하고 죽게 된다.

심주은은 중의 말에 크게 놀라 자신이 심한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급히 전음으로 임청우에게 말했다.

나를 끌어 당겨서 몸 위에 올려! 어서!”

그러나 임청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혈승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몸을 움직일 때 나는 옷자락 소리는 중과 노파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임청우는 자기대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중이 혈승이란 말을 하자 자기는 왜 품속에 있는 독중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금관혈린사 척포를 생각하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중이 그로 하여금 그같은 생각을 일깨워 준 셈이었다.

임청우는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 품에서 몽선도를 꺼냈다.

중은 금합 속에서 잠들어 있던 혈승들을 주문을 외워 깨웠다.

혈승들이 한 마리 두 마리 깨어나며 왱왱소리가 조용한 동굴 속을 울리기 시작했다.

몽선도에서 척포가 머리를 내민 것도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척포의 머리에 달려있는 황금빛 뿔이 금합과 같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가랏!”

중은 척포의 뿔을 보고는 큰 소리로 외치며 혈승들을 날려 보냈다.

! !

혈승들은 구름떼처럼 날아올랐으나 척포를 향해 가지는 않았다. 비록 미물이기는 하지만 천적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척포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쏴아아!

척포의 입에서 하얀 독기가 뿜어져 나왔고 혈승들은 소리없이 녹아내렸다.

심지어 중이 들고 있던 금합까지도 척포의 독기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

중은 괴성을 지르며 금합을 던져버리고 뒤로 몸을 날렸다.

으앗!”

노파도 뒤로 튕겨 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에 임청우는 재빨리 일어서서 심주은을 업고 동굴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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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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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납치극

 

 

 

종남산(終南山)!

 

중원의 오대도가성지(五大道家聖地) 중 하나인 종남산은 가을빛에 물들어 있다.

한없이 푸른 가을 하늘에는 두둥실 구름이 몇 점 떠가고 있다. 만학천봉(萬壑千峯)은 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있고 종남산의 넉넉한 산록(山麓) 아래 펼쳐진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 채 이따금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아름답게 율동하고 있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선인봉(仙人峯)을 병풍처럼 등지고 한 채의 웅장한 장원이 서 있다.

 

<혈검산장(血劍山張)>

 

성문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정문에는 금박이 화려한 편액이 걸려 있다. 붉게 칠해진 둥근 고리[]를 배경으로 쓰여진 글은 웅혼하고도 패도적인 기상이 느껴진다.

이 장 높이의 위압적인 돌담 너머로는 수백 채의 전각 지붕이 거친 바다의 파도처럼 끝이 보이지 않게 추녀를 잇대고 있다.

이곳이 바로 강호에서 서패천(西覇天)으로 불리는 혈검산장이다.

본래 당금 무림에는 사패천(四覇天)이라 불리는 네 개의 강대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혈검산장은 바로 그중 서패천으로 불리는 가문이다.

 

금사혈검(金蛇血劍) 막고천(莫高天)!

 

그가 서패천 혈검산장의 당대 주인이다. 막고천이 한 자루 사형혈검(蛇形血劍)으로 펼치는 사형검법(蛇形劍法)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무림의 최절정고수들에는 부족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막고천이 이끄는 혈검산장의 위세는 섬서(陝西), 감숙(甘肅) 등 중원의 서방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막고천의 탁월한 용인술(用人術)과 교묘한 심모원려(深謨遠慮)의 결과였다.

 

막고천은 석 자[三尺]의 검보다 세 치[三寸]의 혀가 더 무섭다!

 

그 같은 비아냥이 공공연히 무림에 떠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놓고 막고천에게 시비를 걸지는 못한다. 그의 막하에는 구름 같은 고수, 달인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일단 막고천의 눈 밖에 난 자는 늘 비참한 최후를 당해 왔기 때문이다.

 

때는 저녁 무렵이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혈검산장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하하하!]

[까르르!]

혈검산장의 정문 앞에 펼쳐진 공터에서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재잘대며 놀고 있었다.

질 좋은 비단옷을 입은 아이, 허름한 베옷을 입은 아이, 일견해도 신분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뒤섞여 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야 신분의 고하는 큰 문제도 아닐 것이다.

커다란 돌사자 두 마리가 버티고 선 혈검산장의 정문 앞에는 우락부락한 장한 네 명이 무료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혈검산장의 무사들말고도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또 한 쌍 있었다.

[...!]

혈검산장으로 통하는 길목에 서 있는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에는 언제부터인가 초라한 몰골을 지닌 초로의 노인이 나무 뿌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오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이 노인은 뛰어 노는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하고 등은 구부정하게 굽어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길을 가다 지친 늙은 여행객으로 보인다. 혈검산장이 무사들도 노인의 그 같은 행색에 그를 별로 유의하지 않고 보아 넘겼다.

(틀림없다! 바로 저 아이다!)

하지만 고개를 움츠린 노인의 눈빛은 뜻밖에도 형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인의 그 눈빛은 한 소년에게서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노인이 보고 있는 소년은 열 서너 살 쯤 되어 보인다. 일신에 깨끗한 비단옷을 입고 있으며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것이 한눈에도 귀한 신분의 아이로 보였다.

그러나 아깝게도 소년은 병색(病色)이 완연했다. 키도 작은 데다가 얼굴이 창백하고 팔다리가 빈약한 것이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그대로 쓰러질 듯이 보였다.

그 때문에 소년은 원래 나이보다도 한 참 어려 보인다. 사실 소년의 나이 올해 열 여섯 살이지만 병약한 체질 때문에 두 세살 가량 어려 보이는 것이다.

[...!]

병약한 소년은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 한구석에 놓인 돌 위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신이 나서 겅중거리는 다른 아이들을 보는 소년의 눈에는 부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아주 허약한 몸을 지녀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에 찬다. 당연히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노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상영(祥英)을 막고천, 그 짐승에게 빼앗긴 것이 십오 년 전의 일이었지. 그때 상영은 뱃속에 아이를 갖고 있었다! 그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면 바로 저 나이일 것이다!)

소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점점 형형해졌다. 사실은 열 여섯 살이지만 병약한 때문에 잘 해야 열 네 살가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소년의 모습이 노인으로 하여금 그가 바로 자신이 찾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멀리서 소년의 병약한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며 노인의 나무껍질 같이 메마른 안면에는 파르르 경련이 스쳤다.

(막고천! 그놈은 만삭인 상영을 납치해다가 짐승 같은 야욕을 채웠다. 저 아이가 저렇게 병약한 것도 제 에미 뱃속에 들었을 때 에미가 난행을 당한 결과일 것이다!)

노인의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려졌다.

(복수를 하고 싶었으나... 놈의 주위에는 지켜 주는 개들이 너무 많아 번번이 실패했었지! 이제 나도 복수는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피맺힌 한은 우리의 아들이 대신 갚아줄 것이다!)

노인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옆구리에 찬 물건을 꽉 움켜쥐었다.

 

호로(壺瀘)!

 

그것은 은은히 황금빛 서기가 나는 한 개의 호로병이었다. 사기로 구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호로병인데 가운데가 잘룩하여 끈으로 묶어 허리춤에 찰 수가 있다.

그 호로병을 움켜쥔 노인의 깡마른 손에 핏줄이 불끈 돋았다.

(놈을 이길 만한 무공을 찾아 헤매던 노부는 천우신조로 금강옥액(金剛玉液)을 얻게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마셔 무적 공력을 얻은 뒤 막고천 그 악적을 때려죽이고 싶지만... 이것은 저 아이의 것이 되어야 한다!)

병색 완연한 소년을 보는 노인의 눈이 뜨거운 부성애로 물들었다.

헌데 금강옥액이라니! 정녕 노인이 차고 있는 호로에 청구이보(靑丘二寶) 중 하나인 금강옥액이 들어 있단 말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노인은 천하에 다시없을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겠는가?

(내 아들에게 금강옥액을 먹여 무엇으로도 해칠 수 없는 금강신체(金剛神體)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로 하여금 네놈 막고천을 쳐죽이게 하리라!)

노인은 격동을 감추려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

그리고 다음 순간 노인의 깡마른 몸이 돌연 용수철처럼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쐐액!

허공으로 튀어오른 노인은 질풍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아이들이 놀고 있는 혈검산장의 앞마당으로 날아들었다.

[어엇! 저 늙은이가...!]

[... 무림인이었다!]

무료하게 하품을 하고 있던 혈검산장의 무사들이 질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가자!]

파팟!

[! 왜 이래요!]

단번에 마당을 가로지른 노인은 바위에 힘없이 걸터앉아 있던 병색 완연한 소년을 병아리처럼 낚아챘다.

쐐액!

소년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그와 노인의 몸은 다시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비강(比强) 도련님!]

[둘째 도련님을 내려놔라!]

혈검산장의 무사들이 악을 쓰며 달려왔다.

 

막비강(莫比强)!

 

이것이 그 병색 짙은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바로 금사혈검 막고천의 둘째 아들이었다.

[막고천이란 짐승에게 전해라! 나 곡강(曲姜)이 아들을 찾아간다고!]

화라락!

노인은 한 마리 천마처럼 단숨에 혈검산장 우측의 송림을 뛰어넘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경신술은 너무나 신쾌하여 혈검산장의 무사들이 마당 중간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 쫓아가자!]

[총관께도 알려라! 삼공자가 납치되었다고!]

한 명의 무사는 도로 장원 안으로 달려들어가고 나머지 셋은 이를 악물고 노인이 사라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오래지 않아 혈검산장 안에서는 수많은 무사들이 놀란 메뚜기 떼처럼 날아올라 노인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마당에서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만이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

 

쐐애액!

병약한 소년 막비강을 겨드랑이에 낀 노인은 질풍처럼 동쪽으로 날아갔다. 몇 개의 산과 개울이 순식간에 노인의 발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소년은 그새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너무 놀란 데다가 병약한 몸이 자신을 안고 날아가는 노인의 엄청난 속도를 견디지 못한 때문이다.

(가엾은 녀석!)

노인은 달리면서도 소년을 측은한 눈으로 내려다보곤 했다.

(이 모두가 아비가 못나 네 에미를 막고천, 그 악적에게 빼앗긴 결과다! 하지만 걱정 마라! 금강옥액을 먹고 아비가 추궁과혈로 경락을 뚫어 주면 넌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노인은 염두를 굴리면서도 쉬지 않고 발길을 옮겼다. 이미 백여 리를 달렸으나 노인의 발걸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혈검산장의 세력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종남산이 자리한 섬서성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는 안심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하지만 노인의 발길은 늦춰질 줄 몰랐다. 노인은 밤이슬을 맞으며 다시 수십 개의 산과 강을 건넜다.

그리하여 다시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을 때 노인은 혈검산장이 자리하고 있는 섬서성을 벗어나 하남(河南)성 경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휴우! 이쯤이면 되겠군!]

그제야 비로소 노인은 땀을 닦으며 걸음을 늦췄다. 그가 멈춰선 곳은 하남성의 서쪽 끝에 자리한 험준한 산맥 웅이산(熊耳山) 근처였다.

(몇 번이나 방향을 틀었으니 혈검산장의 무리들도 쉽사리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노인은 자신이 지나온 곳을 흘깃 돌아보며 숲을 나섰다. 웅이산은 너무 험하여 지금까지처럼 길 아닌 길로 달릴 수만도 없다. 무림인인 자신이야 괜잖지만 병약한 막비강에게 험한 산길은 무리인 것이다.

다행히 숲에서 나오자 멀지 않은 곳에 동서로 뻗쳐 있는 관도(官道)가 거대한 뱀처럼 길게 가로누워 있었다.

(이제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 아이에게 금강옥액을 먹여 주면 된다!)

노인은 소년 막비강을 소중히 안고 관도로 들어섰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두두두!

돌연 뒤쪽에서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노인은 귀찮은 일을 피할 요량으로 길가로 물러서 걸음을 옮겼다.

두두두!

이내 네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노인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날 알아보는 자가 없는 것 같군!)

노인은 내심 안도하며 땅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 직후였다.

히히히힝!

[워워!]

돌연 그를 지나쳤던 네 필의 말이 급격히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들은...!)

슬쩍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던 노인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두두두!

그를 스쳐 지났던 말들이 천천히 그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 말들 위에는 일견하기에도 무림인들로 보이는 네 명이 올라탄 채 형형한 눈빛으로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필의 말들 중 맨 앞쪽의 갈색 말 위에는 우람한 체격의 백의노인이 앉아 있다. 이 노인은 온몸이 백색 일색이었다. 머리도 희고 수염도 백설같이 희며 입고 있는 의복과 얼굴색도 분을 바른 듯이 하얬다.

츠으!

백면노인의 움푹 들어간 눈동자에선 연신 남색(藍色) 광망(光茫)이 번뜩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백면노인 뒤쪽의 말에는 그와 정반대로 얼굴이 숯처럼 검은 흑면노인이 타고 있다. 그자는 뼈를 발라 놓은 듯 깡마른 체격의 소유자인데 입고 있는 의복도 먹물을 칠한 듯이 새까만 흑포였다. 만약 그의 눈동자에 약간의 흰빛 마저 없었다면 그저 한 덩이의 숯을 말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였으리라.

[으핫핫! 이게 누구요? 이제 보니 고명하신 염라철장(閻羅鐵掌) 곡 노사(曲老師)시로군!]

흑백의 두 노인 중 우람한 체격의 백면노인이 우렁찬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막비강을 납치한 노인, 염라철장 곡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필 이런 때에 흑백쌍살을 만나게 되다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구나!)

 

흑백쌍살(黑白雙煞)!

 

흑백의 두 노인은 하락(河洛) 일대에서 악명이 높은 마두들로서 얼굴 색깔에 따라 각기 백면살(白面煞), 흑면살(黑面煞)이라 불린다.

사실 흑백쌍살이 제법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자들이긴 해도 염라철장 곡강이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부류에 불과하다. 그것은 염라철장 곡강 자신이 무림에서도 이름이 쟁쟁한 강호칠절(江湖七絶)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정파백도의 가장 뛰어난 일곱 기인을 일컬어 강호칠절이라 하는 바, 곡강은 불의와 사마외도를 보면 가차없이 살수를 써서 염라철장이라는 무시무시한 별호를 얻게 된 인물이다.

평소의 염라철장 곡강이었다면 흑백쌍살을 만났어도 코방귀도 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틀렸다. 실로 십오 년 만에 되찾은 아들과 함께인 것이다. 도저히 남과 어울려 싸울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바람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흐흐!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십 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가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려. 정말 기쁘기 그지없소.]

백면살이 노골적인 살기를 드러내며 음산하게 웃었다.

염라철장도 도리 없이 아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흑백쌍살 형제분들이셨군. 보아하니 두 분은 지난날의 일장을 아직 잊지 못하고 다시금 고하(高下)를 가늠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오늘은 노부가 급한 일이 있으니 열흘 후 황산(黃山) 시신봉(始信峯)에서 만나 결판을 내는 것이 어떻겠소?]

염라철장은 평소의 불같은 성질을 누르며 억지로 좋은 얼굴을 꾸며 보였다.

[그럴 필요 없소, 곡 노사!]

그러나 얼굴이 검은 노인, 흑면살이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나 흑면살은 따로 날짜를 정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오. 오늘은 날씨도 시원하여 손속을 교환하기에 더없이 좋은데 열흘 후에 고생해 가며 험준한 황산을 올라갈 필요가 뭐 있겠소? 혹시 곡 대협은 황산에 명당 자리라도 잡아 두기라도 한 거요?]

흑면살이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굴뚝에 빠진 쥐새끼 같은 놈이...!)

염라철장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당년에 강호를 주름잡았던 이 살성은 평소 흑백쌍살 같은 자들은 눈에 두지도 않았다. 그러나 목전의 형세는 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은가? 그는 할 수 없이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오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당신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소. 이해하시오!]

그의 말에 백면살은 염라철장의 옆구리에 끼여 있는 막비강을 힐끗 바라보았다.

[곡 대협은 천하에 대명이 자자한 인물인데 어찌하여 어린아이의 요혈을 찍어 데려가는 것이오? 설마 유괴한 아이는 아니겠지요?]

그의 말에 흑면살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형님은 참 눈치도 없소. 저 어린놈은 아마도 곡 대협과 지금은 막고천의 첩이 되어있는 냉상영(冷祥英)이란 계집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일 게요!]

[닥쳐라!]

순간 염라철장이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또 한 번 쓸데없는 주둥아리를 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염라철장의 일갈에 흑면살이 흉흉한 표정으로 대꾸하려 할 때였다.

[흐하하! 가만두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요?]

흑백쌍살 뒤에 있던 한 명의 중년 장한이 큰소리로 웃어젖히며 말을 받았다.

휘릭!

그자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동시 어깨에서 길이가 세 자 가량 되는 강추(鋼錐)를 뽑아 휘저어 예리한 파공성을 내며 앞으로 나섰다.

[곡 대협은 우리 형제를 안목에 두지도 않소?]

염라철장은 그자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귀하의 얼굴은 생소한데 나 곡강이 언제 어디서 귀하에게 죄를 범했소?]

[시침떼지 마시오. 우리는 태호쌍걸(太湖雙傑) 황웅(黃雄), 황렬(黃烈) 형제요. 당신이 우리 형제의 사형인 무영서생(無影書生)을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소?]

[! 당신들이 바로...!]

염라철장도 비로소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강퍅한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흐흐! 무영서생이란 작자는 한밤중에 비구니들만 사는 절간 담을 넘어 들어가 못된 짓을 하던 중에 내 손에 걸려 죽었지! 설마 그 패륜음적(悖倫淫賊)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겠지?]

그가 비웃음을 흘릴 때였다.

[바로 그렇다!]

투학!

사나운 함성과 함께 두 줄기 한광이 염라철장을 향해 엄습해 왔다. 황웅이 자신의 무기인 한 쌍의 강추를 느닷없이 무찔러낸 것이다.

염라철장도 황급히 오른손을 뻗어냈다. 창졸간에 취한 임기응변이었다.

카카캉!

맑은 음향이 일어나며 황웅의 강추 두 개가 서로 맞부딪쳐 버렸다. 염라철장이 내뿜은 암경에 휘말려 버린 결과였다.

[!]

황웅은 염라철장이 말하는 사이에 기습을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손목이 울리는 격통을 느끼고 비틀거리며 밀려나갔다. 염라철장의 공력이 이미 최상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결과였다.

(무서운 늙은이!)

(과연 강호칠절의 일인답다!)

흑백쌍살과 황렬은 이 상황을 보고 내심 놀랐다.

[모두 함께 공격하자!]

콰릉!

백면살이 일갈하며 먼저 장력을 뽑아내 염라철장을 후려쳤다.

[우우우!]

화라락!

하지만 염라철장은 사나운 장소성을 터뜨리며 맹렬히 허공으로 치솟았다.

[! 저 늙은이가!]

[달아나다니...!]

염라철장의 뜻밖의 행동에 네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염라철장은 어느 누구와 싸우든 절대 등을 보이지 않는 인물로 유명했다. 헌데 뜻밖에도 그가 먼저 등을 보이고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네 사람이 깜짝 놀라는 사이 염라철장은 이미 숲 속으로 몸을 날려 사라진 후였다.

[싸움을 피하는 것을 보니 부상이라도 당한 모양이다!]

[쫓아가자! 이 기회에 원한을 갚자!]

화라락! 쐐애애액!

백면살의 호통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다섯 사람은 쫓고 쫓기며 단번에 수십 리를 달렸다.

(빌어먹을...!)

웅이산의 험한 산중을 달리며 뒤를 돌아보던 염라철장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추격하는 네 사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네 사람과의 거리는 점차 단축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은 염라철장이 밤새 달린 탓이었다.

철인이 아닌 이상 밤새 천여 리를 달리고도 정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염라철장은 지금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떨쳐 버릴 수 없다면 더 늦기 전에 결판을 낼 수밖에...!)

내심 결심한 그는 급히 자신이 달리고 있는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멀지 않은 곳의 절벽 아래에 큼직한 동굴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라면...!)

화라라락!

염라철장은 눈을 번뜩이며 즉시 그 산동(山洞)으로 뛰어들었다.

[으하하! 스스로 독 안에 뛰어드는구나!]

뒤쪽에서 네 흉사(凶邪)의 흉악한 웃음소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시간이 별로 없다! 혹시 모르니...!)

염라철장은 흘깃 밖을 돌아보며 급히 품에서 지필묵을 꺼냈다. 그리고는 작은 종이에 총총히 몇 자 글을 적어 내려갔다.

글을 다 쓴 그는 그 종이를 허리에 차고 있던 황금색 호로와 함께 막비강의 품속에 쑤셔 넣어 주었다.

(부디 네가 그 글을 읽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저 네 놈의 생쥐가 내 적수는 못되지만 그래도 사람일이란 모르는 것이니...!)

염라철장은 뜨거운 부성애가 담긴 눈으로 소년 막비강을 내려다보았다.

화라라락! 스스스스!

그때 옷깃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추적자가 동굴 밖에 날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염라철장의 기습이 두려워 아무도 감히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곡가야! 자라 새끼처럼 석동 안에 숨어서 기어 나오지 않겠다면 독연기를 불어넣어 어린놈과 함께 죽여 버리겠다.]

백면살이 동굴 안을 향해 흉갈을 터뜨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헛소리 마라!]

푸학! 꽈르릉!

하나의 인영이 전광석화같이 석동 밖으로 튀어나오며 사나운 장력을 쏟아냈다. 물론 그는 염라철장이었다. 그의 쌍장이 휘둘러지자 세찬 광풍이 휘몰아치고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

[크악!]

퍼퍽! 콰드득!

이 흉맹무비한 장풍에 황씨 형제의 상체가 피모래로 흩어져 일 장 밖으로 날려 나갔다. 흑백쌍살은 그래도 고수답게 반응이 빨라 횡액을 면했으나 황씨 형제는 여지없이 참살을 모면하지 못한 것이다.

[죽어랏! 비겁한 놈들!]

염라철장은 여세를 몰아 급히 물러서는 흑백쌍살을 덮쳐 갔다.

꽈르릉!

염라철장의 쌍장이 검게 물들며 무시무시한 경풍의 소용돌이가 뻗쳐 나왔다. 그는 장기전으로 나가면 지친 자신이 불리함을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최강의 살수를 구사한 것이다.

[! 날뛰지 마라!]

[받아랏!]

흑백쌍살도 악을 쓰며 마주 장력을 내치며 염라철장의 장풍에 맞섰다. 하지만 염라철장이란 이름은 헛것이 아니었다.

파카카캉!

서로의 장력이 충돌하는 순간 염라철장의 장풍은 마치 무쇠의 창날처럼 흑백쌍살의 장풍을 여지없이 꿰뚫고 들어갔다.

[... 안 돼!]

[케에엑!]

[으하하!]

퍼퍼펑! 콰쾅!

비명 소리와 살기 가득한 웃음소리, 그리고 무언가 으깨지는 듯한 둔중한 소성이 한꺼번에 일었다. 염라철장의 창날 같은 장력은 흑백쌍살의 가슴과 머리통을 그대로 박살내 버린 것이다.

콰당탕! 퍼퍽!

머리가 박살난 백면살의 거구가 뇌수를 흩뿌리며 나뒹굴고, 뒤이어 가슴이 뭉개진 흑면살이 주르르 십여 걸음 밀려났다가 고꾸라졌다.

[으으음!]

과도하게 공력을 사용한 염라철장도 안색이 창백해져서 비틀거렸다.

[흐흐흐! 네놈들 스스로 자초한 횡액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염라철장은 사방에 널브러진 네 구의 시체를 돌아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하여간 내 아들이 애비의 유서를 읽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이로군!]

염라철장은 득의해하며 지친 몸을 석동 쪽으로 돌렸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카하하하항!]

돌연 멀지 않은 숲속에서 누군가의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살기에 찬 원숭이가 우짖는 듯 귀에 거슬리고 섬뜩한 것이었다.

(원숭이 울음소리 같은 광소성! 혹시 그자란 말인가?)

막 동굴로 들어가려던 염라철장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는 그의 숙적인 한 명 흉한의 것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염라철장이 숨을 죽이며 긴장할 때였다.

[카카카! 어떤 망종이 새벽부터 지랄을 해서 본좌의 단잠을 깨우느냐?]

화라라락!

불쾌한 악취가 풍기며 허공에서 한 줄기 인영이 공 튕겨지듯 뚝 떨어져 내렸다.

나타난 자는 온몸에 털이 숭숭 돋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인이었다. 검붉은 털이 온몸을 뒤덮은 데다 두 팔이 무릎 아래까지 뻗쳐 마치 한 마리 거대한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었다.

[!]

[! 네놈은!]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은 동시에 한걸음씩 물러섰다.

[염라철장 곡강!]

[무협제원(巫峽啼猿)!]

염라철장의 안색이 더할 수 없이 침중해졌다. 나타난 자는 바로 그가 떠올렸던 그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무협제원!

 

이것이 그자의 이름이었다. 염라철장이 당금 정파백도의 절정고수들인 칠절(七絶)에 속한다면 무협제원은 흑도무림의 최고수들인 육요(六妖)에 드는 절정고수였다.

사실 그자는 인간의 어머니와 성성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이었다. 무협 근처의 산골 마을에 홀로 살던 여자를 수백 년 묵은 원숭이가 무산(巫山)에서 내려와 겁탈한 결과 무협제원이 태어난 것이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인간의 여자와 원숭이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비정상적으로 팔이 긴 무협제원의 몰골을 보면 그가 원숭이의 자식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원숭이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사나운 성성이의 피를 이어받은 때문인지 무협제원은 맨손으로 황소를 찢어 죽일 수 있는 신력과 포악한 성격을 타고 났다. 거기에 더해 기연으로 어떤 상고기인의 비급을 얻어 일신에 고절한 무공까지 지니게 되었다.

무협제원은 이같은 자신의 힘과 무공을 믿고 무협 일대에서 갖은 횡포를 부렸었다. 그러다가 십년 전 염라철장과 시비가 붙어 그의 일장을 맞고 무협의 격랑에 떨어져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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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주방. 여전히 바쁜데. 주대육이 무사 한명과 대화 하고 있다

[!] 놀라는 주대육

무사; [그래서 장총관께서 직접 총주방장님을 뵈러 오시는 중입니다.]

주대육; [아니 날 만나고 싶으며 만찬장으로 부르면 되지 왜 직접 주방으로 온다는 건가?]

무사; [그러게 말입니다.] 눈치 보는데

주대육; [그 양반이 대단한 미식가라는 소문은 전부터 들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일 줄은 몰랐군.] 고개 설레 젓고.

[무슨 일이래?] [주빈인 무림맹 총관께서 직접 주방을 방문하겠다고 한 모양이야.] 청풍의 주변 요리사들 웅성. 청풍은 여전히 고기 써는데 집중하고 있고. 그때

[오십니다.] 요리사 한명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하고. 모두 돌아보는 사람들

이세창의 안내를 받아 오는 장세명. 장세명 뒤로는 황금수라들이 경호하며 따라오고

청풍; (,저 인물 혹시...) 장세명을 보고. 주대육이 서둘러 마중하러 가는 모습이 보인다.

청풍; (저녁 무렵, 날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었다.)

청풍; (주방을 직접 찾아온 게 혹시 나와 관련이 있는 건가?) 생각하며 고기 썰기에 집중하는 척하는데

요리사1; [이쪽으로 오신다.] 웍을 써서 요리하다가 긴장하며 말하고. 돌아보는 청풍.

장세명이 주대육의 안내로 다가오고 있다. 이세창과 황금수라들이 뒤에 따라오고

요리사들이 요리하던 걸 멈추며 장세명에게 인사하고. 하지만

요리사들의 인사는 건성으로 들으면서 지긋이 청풍을 보는 장세명

청풍; (어째 예감이 들어맞는 것같군.) 칼질을 멈추며 기다리고. 그때

주대육; [이 아이가 최근 제가 발견한 보물입지요.] 청풍을 장세명에게 소개하는 주대육

고개 숙여 인사하는 청풍

주대육;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고기 다루는 솜씨는 포정의 재래라 할만합니다.]

장세명; [주숙수의 자랑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내 혀로 확인했소.] 웃으며 청풍을 보고

장세명; [요리에 쓰인 모든 육류의 처리가 이제껏 본 적이 없을 만큼 완벽했었으니 말이오.]

주대육; [이름난 미식가인 장대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으니 영광으로 생각해라.]

청풍; [감사합니다.] 장세명에게 고개 숙이고

장세명; [자네의 칼솜씨를 한번 보여주겠나?]

청풍; [부족하지만 분부 따르겠습니다.] 칼을 잡고

고기를 써는 청풍

장세명; [허어! 신기로구만. 과연 주숙수가 포정의 재래라고 할만해.] 감탄하며 보고. 그러다가

장세명; [잠시 둘만 있게 해주지 않겠소?] [이 젊은 달인과 요리와 관련하여 긴히 할 얘기가 있소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흠칫! 칼질을 멈추는 청풍

[!] 이세창의 눈이 번뜩

주대육; [물론입니다.] 요리사들에게 손을 저으며 말하고.

서둘러 주변에서 멀어지는 사람들. 주대육도 다른 요리사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가고. 이세창도 힐끔거리며 황금수라들과 함께 멀어지고

청풍; [제게 가르침이 있으신지요?] 칼을 내려놓고. 공손하게

장세명;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어야겠네.] 청풍을 지긋이 보며

청풍; (일개 요리사인 내게 무얼 물어보려고 정색을...) + [그리하겠습니다.]

장세명; [자네는 용무린이란 인물을 아는가?] 강렬한 표정으로 묻고

 

#54>

주방 건물의 뒤쪽. 벽에 붙어서 주방 쪽을 보고 있는 벽세황.

벽세황의 시점. 청풍과 장세명이 뭔가 얘기 나누고 있다. 심각한 표정들이고.

벽세황;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손을 귀에 대고 기울이며 찡그리고

<장총관이 주변에 단음강기(斷音罡氣)를 펼쳐놓은 때문이다.> 청풍과 장세명 주위에 물방울같은 투명한 벽이 서려 있는 것 배경으로

벽세황; (남이 들으면 안되는 내용의 대화가 오고 가고 있다는 건데...) 노려보고

청풍이 장세명에게 뭐라 말하는 모습 크로즈 업

벽세황; (이청풍! 네놈 설마 소소가 사우란 놈과 놀아난 걸 장총관에게 고자질하고 있는 것이냐?) 이를 갈며 노려보고

 

#55>

청풍; [용무린...] [금시초문인 이름입니다.] 고개 젓고

장세명; [그럼 섭아연은?] 청풍을 지긋이 보며 묻고

청풍; [역시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장세명; (여기까지는 진실...) + [진삼낭이란 여자는 혹시 아는가?] 기습적으로 묻고

청풍;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지금 날 심문중이다.) + [모릅니다.] 고개 젓고

장세명; (미묘하군.) 약간 갸웃하고

장세명; (아주 순간적이었지만 망설임이 느껴졌다.) + [그렇군.] 끄덕이고

장세명; (이놈이 용무린과 아연아가씨 사이의 아들인가는 가슴에 나비 형상의 반점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되겠지만...) 청풍을 보며 생각

장세명; (보는 눈이 많으니 이 자리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주변을 곁눈질. 요리사들과 이세창, 주대육 등이 사방에서 보고 있다.

청풍; (뭔가 생각이 많은 표정이다.) 그런 장세명을 보며 생각하고

청풍; (게다가 무림맹의 총관쯤 되는 인물이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게 심상치가 않다.) 무표정하게

청풍; (호의를 품고 있는지 악의로 심문하는 것인지 모르니 내색하면 안된다.)

장세명; [무공은 배우지 않았군.] 청풍의 몸을 훑어보고

청풍; [배우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장세명; [그런데 어쩌다가 무공을 배운 자와 싸운 건가?] 청풍의 가슴을 보고. 옷을 여민 사이로 붕대가 보이는데 피가 좀 배어나왔다.

청풍; (내 몸 상태를 알고 있다.) + [금전 문제로 흑사회 인간들과 시비가 있었습니다.]

장세명; [의지력이 대단하군. 이런 몸 상태로도 내색을 하지 않고...] 청풍의 어깨를 만지며 감탄하고

 

#56>

[!] 숨어서 그걸 본 벽세황의 눈 번뜩

벽세황의 시점으로 장세명이 청풍의 어깨를 만지며 뭐라 말하는 장면.

벽세황; (정황상 이청풍에게 다친 경위를 묻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를 부득 갈고

벽세황;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 같다.) (다친 경위를 설명하려면 자연스럽게 소소와 사우의 야합을 거론해야할 테니...) 청풍과 장세명을 노려보고

 

#57>

장세명; (경이로운 자질을 지녔다. 맹주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 [무공을 배워볼 생각 있는가?] 청풍의 어깨를 만지며 좀 놀라는 표정으로

청풍; [기회만 되면 배우고 싶습니다.] + (오늘 새벽에 겪었던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공을 배워야겠지.)

장세명; [그렇다니 잘 됐군.] ! 끄덕이며 청풍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장세명; [나는 내일 오후에 무림맹으로 돌아갈 예정이네.] [결심이 서면 그 전에 날 찾아오게나. 좋은 스승을 소개시켜줄 테니...]

청풍; [생각해보겠습니다.]

장세명; [보는 눈이 많네.] 주변을 둘러보며 웃고.

이세창과 주대육과 요리사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보고 있다. 이세창의 표정이 심각하고

장세명; [나와의 대화는 주로 요리에 관한 것이었던 걸로 해두세.] [내가 자네를 무림맹으로 데려가고 싶어 한다고 말해도 되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고

청풍;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대화를 못 들었구나.) + [알겠습니다.] 끄덕

장세명; [자네의 기막힌 정육 솜씨 덕분에 만족스러운 식사였네.] ! 다른 사람들 들으라고 과장되게 말하며 돌아서는 장세명. 그와 함께 주변에서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사라지고

청풍; (우리 둘을 감싸고 있던 막 같은 것이 사라졌다.) + [별 말씀을...] 고개 숙이고

장세명; [내 제안을 잘 생각해보고 내가 떠나기 전에 답을 주게나.] 손 흔들며 주대육쪽으로 가고

청풍; (주변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들은 사람은 없겠구나.) + [그리하겠습니다.] 주대육의 등에 대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곧 주대육과 이세창과 웃으며 뭔가 얘기를 하는 장세명. 청풍의 주위로는 요리사들이 몰려오고

요리사1; [저분과 무슨 이야기를 한 건가?] + 요리사2;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이상하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다가와 살피는 표정으로 묻고. 다른 요리사들도 청풍의 주위로 몰려들고

청풍; [어떤 제안을 하셨는데... 지금은 말하기가 곤란한 내용입니다.] 칼과 도마 위의 고기를 정리하며 대충 대답하고

[오오! 이것 보게!] [이 친구 벌써 더 좋은 조건으로 영입 제의를 받은 모양이로구만.] [무림맹의 주방의 명성도 우리 황금전장 주방 못지않지.] 요리사들 흥분과 시샘, 축하의 표정을 지으며 호들갑

청풍; [그런 거 아닙니다.] 쓴웃음 지으며 정리하고

 

#58>

[...] 그런 청풍을 보는 벽세황. 여전히 숨어있고

호들갑 떠는 요리사들에게 둘러싸인 청풍의 모습

벽세황; (말하기 곤란한 제안을 받았다?) 이를 부득

벽세황;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장세명 쪽을 보고. 장세명은 이세창, 주대육과 이야기하며 주방 앞을 떠나고 있다. 황금수라들이 따라가고

벽세황; (장총관이 뭔가 낌새를 채고 이청풍을 회유한 게 분명하다.) (장총관도 나름대로 정보망을 지니고 있어서 소소의 행실에 대한 의혹을 품고 있었을 테고...) 멀어지는 장세명을 보고

벽세황;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한다.) 다시 청풍을 보고

벽세황; (저 놈이 어디까지 얘기했는지는 모르지만 장총관의 표정을 보면 결정적인 내용은 듣지 못한 것같다.)

벽세황; (하지만 다시 장세명을 만나면 이청풍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벽세황;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막아야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기서린 표정

 

#59>

어느덧 깊어진 밤. 이제 만찬은 끝났고. 그래도 아직 황금전장은 불야성. 만찬장을 하인과 하녀들이 정리한다.

벽초천의 집무실.

집무실 내부. 벽초천, 이세창, 벽세황이 모여서 회의중이다.

벽세황; [더 늦기 전에 손을 써야합니다.] 상좌에 앉은 벽초천에게 말한다. 이세창과 마주 앉아서

벽세황; [이청풍이 다시 장세명을 만나면 무슨 소릴 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이세창; [장주님께서 결단만 내려주시면 즉시 이청풍의 입을 막아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벽초천; [이청풍은 주대육이 공을 들여 영입한 인재다.]

벽초천; [이청풍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죽을 경우 뒷말이 있을 수 있다.]

이세창;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히죽

이세창; [이청풍을 제거해도 주대육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만들 방책을 이미 세워두었습니다.] 음산하게 웃는 이세창의 얼굴 크로즈 업

 

#60>

주방. 요리사들과 하녀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다.

청풍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서 주대육과 면담을 하고 있다. 다른 요리사들은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 도구를 정리하고 있고

주대육; [집에 가겠다고?] 탁자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서 청풍을 올려다본다. 모자와 앞치마를 벗어서 탁자 한쪽에 올려놨다.

청풍; [죄송합니다. 식구들이 걱정할 것 같아서...]

주대육; [사람을 보내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갈 거라 전해줄 수 있는데...]

대답하지 않는 청풍.

주대육; (고집하고는...) + [알았다.] 한숨

주대육; [집에 가서 쉬는 게 편하면 그리해라.] [대신 이거 한 가지는 명심해라.]

주대육;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내게 말해야한다.] 의미심장하게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그때

주방으로 들어오는 여자무사 한 년. 차갑고 도도한 인상. #33>에 나온 벽소소의 심복

<저 년은 안채를 경호하는 황금나찰(黃金羅刹)들의 부()단장 냉상아(冷祥娥)잖아.> <무공이 높은 만큼 성격도 도도해서 사내들을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다지?> <저 까칠한 년이 무슨 일로 주방에 발길을 한 건가?> 요리사들 곁눈질로 여자무사1을 보고. 주눅이 들어 정면으로 여자무사1을 보는 놈은 없다.

여자무사1을 발견하고 돌아보는 주대육과 청풍

여자무사1; [총주방장님!] 포권하고

주대육; [냉상아...] [이 시간에 자네가 웬일인가?]

여자무사1; [총관께서 이숙수를 보자고 하십니다.] 청풍을 보며 말하고

청풍; (총관이 날 보자고 한다?) 찡그리고

주대육; (청풍이가 장총관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심문할 생각이겠군.) + [안내해줘라.] 끄덕이고

여자무사1; [가시지요 이숙수!] 가자고 하고

주대육; [총관을 만난 후 다시 돌아올 거 없이 바로 귀가해라.]

청풍; [!] 고개 숙이고

도도한 자태로 문쪽으로 가는 여자무사1을 따라가는 청풍. 요리사들이 뿅 간 표정으로 여자무사1을 훔쳐보고 있고

[...] 여자무사1을 따라가는 청풍의 뒷모습 보며 뭔가 생각하는 주대육.

주대육; (총관이 황금수라가 아닌 황금나찰에 속한 계집을 통해서 청풍이를 불렀다?) 찡그리고

주대육;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지는군.) 불길한 예감을 느끼는 얼굴

 

#61>

벽초천의 집무실. 불이 켜져 있고 입구를 황금수라들 네 명이 지키고 있고.

그곳으로 오는 여자무사1과 청풍.

여자무사1; [이숙수를 데려왔어요.] 황금수라들에게

황금수라들; [수고했소 소저.] [헌데 어쩐다?] [총관님께서는 장주님의 부름을 받고 급히 나가셨소.]

여자무사1; [그랬군요.]

청풍;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황금수라들; [그럴 거 없네.] [총관님께서는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자네가 오면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네.]

여자무사1; [제 임무는 마쳤으니 가겠어요.] 돌아서고

[살펴가시오 냉소저.] [자주 들러주시오.] 눈 희번득이며 여자무사1이 돌아가는 모습 보는 황금수라들. 그러면서

황금수라들; [안으로 들어가게.] [총관님이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 올 걸세.] 청풍에게 건성으로 말하며 건물쪽을 손짓한다. 시선은 여자무사1을 향한 채

청풍; [그러지요.] 건물 입구로 가고.

청풍; (총관이 날 보자고 한 이유는 짐작이 간다.) 문고리를 잡고

청풍; (내가 혹시 큰 아가씨의 추문을 무림맹 장총관에게 흘렸는가 확인하려는 것일 텐데...) 끼익! 문을 열면서 주방에서 장세명과 대화하는 자신을 벽세황과 함께 노려보던 이세창의 모습 떠올리고

청풍; (자칫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말을 조심해야한다.)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62>

청풍이 열거 들어간 문 안쪽은 벽초천이 벽세황등에게서 보고 받든 거실 그대로인데 다만 아무도 없으며 탁자에 큼직한 상자가 하나 놓여있는 게 다르다. 상자는 딱 봐도 패물함인데 상당히 크다.

청풍; (우리 집보다도 몇 배 더 넓은 거실이로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며 둘러보고. 그러다가

탁자에 놓여있는 패물함을 보고

청풍; (웬 상자인가?) 패물함 보며 의자에 앉고

청풍; (딱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뭔가 귀중한 물건이 들어있겠구나.) 패물함을 보며 생각하고. 하지만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63>

건물을 밖에서 본 모습. 헌데

건물 근처 어둠 속에 서있는 여자무사1. 떠나지 않았다.

여자무사1의 시점. 건물이 보이고

여자무사1; (우릴 원망하지 마라 이청풍.) 차갑게 웃고

여자무사1; (아가씨의 눈 밖에 난 순간 네 운명은 정해져 있었으니...) 사악하게 웃고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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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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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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