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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나는 가까이 있으나 먼 곳에서 왔느니 2

 

휘익!

노대가 바위를 날아 넘어 이매봉 앞에 내려섰다.

[! 숨을 죽인다고 냄새까지 없앨 수 있을 줄 알았나?]

[노대! 진양이오?]

노이와 노삼이 뒤이어 날아왔다.

이매봉은 그들이 하는 짓이 총명한 것 같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찾던 사람이나 잘 찾아봐요. 난 웬 놈도 아니고 도사도 아니니 나를 찾진 않았을 거잖아요.]

노삼이 말했다.

[그건 그렇다. 하지만 넌 우리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니 죽어야겠다.]

이매봉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야기를 다 들었으면 죽어야 하는가요? 난 몰랐어요. 미리 알았으면 귀를 막고 듣지 않는건데...]

노대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우릴 놀릴 셈이냐? 어린 계집애가 앙큼하구나.]

이매봉은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했다.

[뭐가요?]

노대가 말했다.

[이른 아침에 산정에 왔다는 것도 놀라운데 흥! 이 근처의 눈 위에 네 발자국이 없다는 건 뭘 말하느냐? 적어도 설상비(雪上飛)보다 뛰어난 경신술을 쓸 줄 안다는 얘긴데 순진한 척 시치미를 떼려하다니.]

이매봉이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

[거참! 하는 수 없군요.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하지만 당신들은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사람들이겠죠?]

노삼이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 요즘 나 다니는 강호의 시러배 잡놈들과는 다르다.]

[호호호호!]

이매봉이 깔깔 웃고 말했다.

[정말 그렇군요. 확실히 좀 달라 보여요.]

노삼이 칭찬을 듣고 우쭐하는 표정을 지었다.

노대가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물었다.

[너는 누구냐? 무엇 때문에 여기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해라.]

이매봉이 말했다.

[말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노대가 말했다.

[고통없이 죽여주마. 시체도 손상시키지 않겠다.]

노삼이 말했다.

[만약 말하지 않으면 먼저 두 눈을 파내고 배에다 구멍을 낸 후에 사지를 자르고 송곳을 귀속에 넣어 두개골을 휘저어 죽이겠다.]

노이가 말했다.

[거짓말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휴~ 무서워라.]

이매봉은 정말 겁내는 것처럼 몸을 움추렸다.

노대가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갑자기 이매봉이 울먹울먹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으왕!]

노삼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노대! 울어버리는군요. 우는 아이는 어떻게 달래야하죠? 당장 죽여버릴까요? ]

노이가 말했다.

[우는 아이는 엉덩이를 까서 볼기짝을 두들겨 주는 법이야. 나도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 그렇게 맞았네.]

이매봉이 울면서 말했다.

[난 이제 죽게 되는군요. 흑흑! 너무 슬퍼요. 얼마 살지도 못했는데 죽게 되다니...흑흑! 이건 너무 억울해요.]

노삼이 말했다.

[노대, 이 아이가 억울하다는 군요.]

노대가 말했다.

[죽을 땐 누구나 다 억울한 법이야.]

노삼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죽인 놈들 중에선 억울하다고 한 놈이 하나도 없었는데...]

노삼은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마라! 그렇게 슬퍼할 것 없다. 노부가 직접 죽이면 너도 다른 놈들처럼 억울하지 않고 잘 죽을거다.]

이매봉이 말했다.

[왜 억울하지 않겠어요? 엉엉! 난 억울해요. 정말 억울해요. 당신들 말 다 들었으면 죽어야 된다고 해놓고 다 듣지도 못한 나를 죽이려면 어떻게 해요. 엉엉, 다 들었으면 죽어도 억울하지 않는건데... 엉엉.]

노삼이 아주 당황했다.

[그건... ... 노부가 그렇게 말했었군. 으음... 노부 일백사십 평생에 처음하는 실수다.]

노대가 소리쳤다.

[노삼! 입 다물어라!]

노삼이 말했다.

[하지만 노대, 이 문제는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

노삼은 노대의 살벌한 눈초리를 대하고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노대가 말했다.

[너는 누구냐?]

이매봉은 눈물을 닦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소녀의 이름은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노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네 아비나 사부의 이름은 뭐냐?]

이매봉이 말했다.

[그 또한 아랫사람이 허락없이 함부로 들먹일 수 있는 함자가 못되는군요.]

[방자한 것!]

노대는 섭선을 모아서 찌르는 시늉을 했다.

순간 섭선의 끝에서 칼날같이 예리한 바람소리가 났다.

쉬익!

이매봉은 깜짝 놀랐다.

(무형강기(無形罡氣)!)

몸속의 내공을 뭉쳐서 밖으로 발출하되 그것이 형체는 없으면서도 칼날처럼 예리하고 단단하다면 무형강기라고 부른다.

무형강기를 발할 수 있는 고수는 천하를 통틀어도 몇 명이 나올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물다.

피하지 않으면 금강불괴라 해도 온전하기가 힘들다.

이매봉은 즉시 옆으로 두걸음 비켜섰다.

한데,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서 번득하더니 어느새엔가 노삼이 그의 앞을 막아서 있었다.

!

무형강기는 노삼의 가슴에 격중했다.

[!]

노삼이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노대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죽고 싶어 환장했어?]

노삼이 말했다.

[노대! 생각해보니 이 아이가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소. 게다가 이 아이가 억울하면 우리가 우리 얼굴에 똥칠한 꼴이 되지 않겠소. 죽일 때 죽이더라도 듣고 싶은 말은 다 듣게해줍시다.]

노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삼 말이 옳은 것 같소. 노대 그렇게 합시다. 그래야 죽는 저 아이는 편안하게 죽을 거고 우리도 신용을 지키지 않겠소?]

노대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너희 둘은 완전한 바보 멍청이들이야. 그런다고 죽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을 것 같나?]

이매봉이 소리쳤다.

[그럴 것 같아요.]

노이와 노삼이 그것보라는 듯이 노대를 본다.

노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우린 여기에 있지만 먼곳에서 왔다. 이런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러 온게 아니란 걸 명심해라.]

이매봉이 말했다.

[어디서 왔는데요?]

노대가 말했다.

[바보짓을 하려면 천산(天山)도 족하지. 그 먼곳에서 여기까지 와서 바보짓을 할 건 뭐란 말이냐?]

노삼이 물었다.

[노대! 우리가 정말 바보짓을 한 거요? 억울함을 풀어주고 신용을 지켜 명예를 보전하려 했을 뿐인데...]

이매봉이 맞장구를 쳤다.

[옳아요!]

노대가 이매봉을 흘겨보았다.

이매봉은 슬그머니 노삼의 등뒤에 숨었다.

그녀는 노삼의 몸이 호리호리하긴 하지만 무형강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로 금강불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대가 말했다.

[강호가 험난 한 건 이래서 험난하다. 노인을 조심해야 하고, 어린아이를 조심해야 하고, 특히 이런 젊은 여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얼굴이 예쁘면 더욱 조심해야되지.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강호로 잘 나오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매봉이 말했다.

[당신은 예쁜 여자한테 속은 적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왜 예쁜 여자를 나쁘게 말하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다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데.]

노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노대는 절대로 남에게 속지 않는다. 노대도 우리같은 바본 줄 알면 안돼.]

노삼이 말했다.

[맞다. 노대는 바보가 아니지. 우리와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정말 똑똑해. 물론 우리한테 화를 잘 내고 짜증부리지만.]

이매봉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세 사람이 작당해서 나 하나를 괴롭히려 하는군요. 남자가 치사하지도 않아요? 비겁하게 여자 하나를 괴롭히려 하다니. !]

노삼이 머리를 긁으면 어쩔 줄 몰라했다.

[정말 야단났군. 이건 어른이 아이를 괴롭한다는 말에도 해당되고 남자가 여자를 괴롭힌다는 말에도 해당되는군. 역시 노대말씀이 옳아. 여자를 상대하는 건 머리가 아파.]

이매봉이 다그쳐 물었다.

[말해봐요. 당신들은 누구죠? 난 당신들 같은 사람이 있다는 소릴 못들었어요.]

노이가 이매봉을 상대하기로 결심한 듯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린 천산삼로(天山三老). 좋은 사람이라곤 할 수 없지만 딱히 나쁜 사람이랄 수도 없다.]

이매봉은 생각했다.

(천산삼로라? 덜 떨어진 것 같은 이들이 천산삼로라구? 세상에나... 멀쩡한 사람들은 다 뭘하고 이 사람들이 천산삼로야? 어쩐지 무형강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고 했더니...)

천산삼로는 오래 전부터 천산에 출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이름이 알려져 왔다.

천산일대의 녹림을 장악하고 있을 뿐아니라 개개인의 무공이 아주 특이하고 고강하여 천산에 갈 때는 항상 그들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해진다.

중원의 유명한 고수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낭패를 보거나 살해당한 인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구십년 전쯤에 무당의 탁월한 고수인 진양진인이 그들의 우두머리와 싸워 이겼다는 말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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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의부의 죽음

 

 

 

사람들이 사색이 되어 물러서는 것을 보며 우주도철은 광기가 번뜩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부는 백년을 넘게 살았으나 자식이 없어 고심하고 있었다. 헌데 이 아이는 정사 양파의 무학을 지녀 정파도 아니고 사파도 아닌 노부와 뜻이 같으니 노부에게 양보해라.]

말을 끝냄과 동시에 그는 장내로 걸어 들어왔다.

남산의성 악불령은 우주도철도 사람 쟁탈전에 가담하려 하자 내심 크게 놀랐다. 그는 막비강을 힐끗 돌아본 후 우주도철을 향해 포권의 예를 올렸다.

[() 선배님께 그런 마음이 있으시다면 이 아이의 홍복입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가 좋다고 할지 모르겠군요.]

남산의성의 그 마지막 말은 막비강에게 승낙하지 말라는 암시였다.

그러나 막비강은 악불령이 우주도철을 선배님이라 칭하자 얼른 다른 생각이 떠올라 웃으며 말했다.

[이 선배님과 호 선배님 모두 나를 양자로 삼으시려 하니 어느 쪽을 선택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두 분께선 먼저 실력을 겨루어 보십시오.]

백독서생 이량이 대노하여 고함을 질렀다.

[네놈이 감히 이간책을 쓰려 하다니...!]

하지만 우주도철은 큰소리로 웃어젖히며 말을 받았다.

[으핫하하! 이것은 가장 현명한 방법인데 어찌 이간책이라 하느냐?]

백독서생 이량은 화가 치밀어 얼굴빛이 푸르락붉으락하더니 날카롭게 외쳤다.

[누가 너 따위 미친 진사(進士)를 무서워할 줄 아느냐!]

이어 왼손을 확 휘둘렀다.

쏴아아!

그러자 마치 연기 같은 독장(毒瘴)이 그의 소매 속에서 쏟아져 나와 우주도철을 덮어씌워 갔다.

중인들은 이량이 독을 쓰자 분분히 장내에서 멀어졌다. 그 독연기는 피부에 슬쩍 닿기만 해도 온몸이 썩어드는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크크! 이런 잔재주는 애들에게나 써먹어라!]

하지만 우주도철은 만면에 경멸의 빛을 가득 머금은 채 입김을 확 불었다.

콰아아아!

그러자 갑자기 한차례 광풍이 일어나 백독서생 이량의 독장을 모두 되날려 버렸다.

[대단하다!]

막비강이 우주도철의 신공에 경탄할 때, 백독서생 이량도 흠칫 놀라더니 곧 십 성의 공력을 돋우어 연달아 장력을 발출했다.

퍼퍼펑! 치치칙!

장풍이 난무하는 가운데 연무독장(煙霧毒瘴)도 그의 소맷자락 속에서 함께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우주도철이 아무렇게나 양팔을 휘젓자 백독서생 이량이 발출한 연무독장은 마치 무형의 담벼락에 부딪힌 것처럼 공중으로 상승했다. 그러다가 이내 모두 백독서생 이량의 머리 뒤로 떨어졌다.

백독서생은 흠칫 놀라다가 재차 독분을 날려 우주도철을 공격했다.

막비강은 두 절정고수의 대결을 보며 내심 곤혹을 금치 못했다.

(우주도철의 공은 백독서생보다 훨씬 고강한 것 같은데 왜 공세를 취하지 않을까?)

그는 우주도철이 여유 만만하게 상대방의 흉맹한 공세를 파해하는 것으로 보아 백독서생 이량을 죽이려면 손바닥을 뒤집는 일보다 쉬운 일임을 알았다. 하지만 우주도철이 수비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무림에서 보기 드문 격전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때였다.

스팟!

[!]

막비강은 갑자기 뒤통수로 한 줄기 강맹무비한 경풍이 엄습해 옴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몸을 앞으로 날렸다.

[쥐새끼 같은 놈!]

동시에 우주도철이 고함을 버럭 지르며 전광석화같이 일지를 퉁겼다.

[크아악!]

다음 순간 한 줄기 경풍이 막비강의 몸 옆을 스쳐 지나가며 외마디 처절한 비명과 함께 하나의 인영이 바닥에 쓰러졌다. 막비강이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소면호가 양다리를 허벅지에서 잘린 채 선혈을 샘물같이 쏟아내고 있었다.

우주도철이 경멸의 냉소를 날렸다.

[! 너 같은 피라미가 감히 노부 앞에서 기습을 가하다니. 만약 노부의 지난날 성격 같았으면 네놈은 뼈도 찾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소면호도 절정고수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우주도철의 무공을 채 일초도 받아내지 못하자 구경하던 군호들의 등골로 식은땀이 흘렀다.

(죽어 마땅한 영감 같으니...!)

막비강은 소면호가 자신을 암산하려 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는 소면호가 참변을 당하자 마음이 약해졌다. 비록 그것이 음모가 숨겨진 가르침이었지만 어쨌든 소면호는 지난 이십여 일간 자신에게 무예를 전수해 준 정이 있지를 않은가?

해서 막비강은 급히 우주도철 앞으로 달려가 포권하며 말했다.

[노선배님에게 상세를 치료하는 약이 있습니까?]

우주도철이 어리둥절하며 반문했다.

[너는 저자를 살릴 생각이냐?]

[다리가 잘린 징벌만으로도 충분하니 목숨만은 살려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좋다. 너의 체면을 봐서 그에게 만령단(萬靈丹)을 한 알 주겠다.]

우주도철은 말을 끝낸 후 주머니 속에서 단약을 한 알 꺼내어 막비강에게 건네주며 사용 방법도 말해 주었다.

남산의성 악불령은 막비강의 착한 마음을 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군호들이 막비강이 소면호의 상세를 치료하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스스스!

문득 한 명의 흑의노도(黑衣老道)가 영롱탑의 상층부에서 사뿐히 지면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마치 유령처럼 소리 없이 군호들의 후면에 도착했다. 그자는 바로 천하오대기인 중의 또 다른 한 명인 오봉도인이었다.

그사이에 막비강은 소면호의 치료를 끝냈다.

헌데 치료가 끝나는 순간 소면호는 갑자기 쌍장으로 땅바닥을 짚어 몸을 굴려 사도 인물들 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비급을 얻고 싶으면 저 어린 녀석을 놓치지 마라! 저놈이 천면신룡이다!]

[뭐라고?]

[천면신룡이 저 애송이라고?]

장내는 삽시에 벌집을 쑤셔놓은 격이 되었다.

막비강은 신분을 간파당하는 순간 안색이 일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파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정파 인물들도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면호가 배은망덕하게 고함을 지르자 급히 몸을 솟구쳐 장권 밖으로 질주했다.

바로 그때였다.

[섰거라!]

갑자기 인영이 번쩍하더니 한 명의 흑의노도가 그의 면전을 막아섰다. 그와 함께 한 줄기 경풍이 막비강의 가슴을 향해 뻗어 왔다.

막비강은 본능적으로 일장을 격출하여 반탄력을 이용하여 옆으로 피하려 했다.

퍼펑!

[!]

하지만 상대방의 장력이 너무 강맹하여 막비강은 연달아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다.

간신히 몸을 가눈 막비강은 상대방이 바로 천하오기 중 한 명인 오봉도인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어 그는 급히 방향을 바꿔 사력을 다해 도주하려 했다.

[아이야, 겁먹을 것 없다!]

화라라락!

그때 말소리와 함께 우주도철이 날아와 막비강을 옆으로 끌어당겼다. 이어 그는 오봉도인을 바라보며 괴소를 터뜨렸다.

[낄낄낄, 이 잡()도사야! 감히 노부의 양자를 괴롭히려 하다니....]

오봉도인도 음산한 눈을 빛내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다른 사람은 너 늙은 도철을 무서워하겠지만 빈도는 안목에도 두지 않는다.]

[잡도사! 감히 노부에게 덤빌 생각이냐?]

[네가 무엇이 두려워 덤비지 못한단 말이냐?]

막비강은 강적에게 포위당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우주도철에게 의지해야 무사히 빠져 나갈 희망이 있음을 알았다. 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불렀다.

[의부(義父)! 우리는 빨리 여길 떠납시다.]

그의 의부라는 말에 우주도철은 크게 기뻐하며 대소를 터뜨렸다.

[핫하하. 아이야,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가 가지 않아도 이제는 아무도 감히 너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오봉도인이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장내로 걸어 들어왔다.

[으핫하하! 늙은 도철아! 너무 큰소리치지 마라! 그 어린 녀석을 데려가려면 우선 빈도의 승낙부터 받아야 한다.]

우주도철은 백미를 치켜 올리며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네가 지옥에 가고 싶다면 그건 매우 쉬운 일이다.]

오봉도인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주위의 군호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수고스럽지만 여러분은 증인이 되어 주시오.]

이때 우주도철도 막비강에게 나직이 말했다.

[얘야, 내가 이 잡도사를 황천으로 보내 버릴 테니 뒤로 물러서거라.]

군호들은 천하오대기인에 속하는 두 인물이 싸움을 시작하면 치열하기 짝이 없을 것임을 알고 급히 뒤로 물러섰다.

비록 강적이 면전에 버티고 있지만 우주도철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오봉도인을 보며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

[잡도사! 노부는 네게 삼 초를 먼저 양보하겠다.]

오봉도인은 화가 치밀어 눈에서 분노의 화염을 발산했다.

[늙은 도철아, 양보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는 노갈을 터뜨리며 일장을 격출했다.

콰르르르!

그의 이 일장은 보기에는 조금도 힘이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장경이 다가들자 광풍이 노도같이 휘몰아치고 주위 십 장 이내는 온통 차가운 냉기로 가득 찼다.

우주도철은 몸을 뽑아 올려 상대방의 머리 위를 뛰어넘더니 오 장 뒤에 내려선 후 웃으며 말했다.

[잡도사야, 너는 삼십 년간 열심히 공력을 연마했는데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구나.]

오봉도인은 우주도철이 머리 위로 뛰어넘는 것을 보고 재차 장력을 발출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신법이 너무 쾌속하여 격중되지 않았다. 그는 우주도철의 이런 행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몸을 돌림과 동시에 오른팔을 휘둘렀다.

!

한 줄기 광염이 모래먼지를 공중으로 높이 솟구치게 하여 십여 장 밖에 서 있던 군호들의 의삼까지도 날려온 모래먼지에 맞아 무수한 구멍이 뚫렸다.

우주도철은 막 바닥에 내려섰을 때 오봉도인의 장경이 노도같이 휘말려 오자 할 수 없이 재차 몸을 뽑아 올려 강맹한 장풍을 발 밑으로 스쳐 가게 했다.

오봉도인은 교묘한 초식으로 상대방의 신법을 둔화시킨 후 즉시 절예를 전개하여 쌍장으로 쉴새없이 맹공을 가했다.

우주도철도 더 이상 상대방을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공중으로 오르내리며 장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각도에서 발출했는데 이상한 것은 그가 발출하는 장력은 바람도 일지 않고 경력도 없어 오봉도인의 강맹한 강세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두 고수는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덩어리가 되어 누가 누군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막비강은 전신의 공력을 눈에 모아서야 간신히 두 사람을 분별할 수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한편 기뻐하며 또 한편 내심 우려를 금치 못했다.

이때 소면호가 갑자기 또 고함을 질렀다.

[누구든지 청구단서를 취득하려면 먼저 저 어린 녀석부터 생포하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독서생 이량 등 사파의 인물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막비강에게로 덮쳐 왔다.

[멈추시오!]

남산의성 악불령이 급히 고함을 지르며 분분히 장력을 발출하여 그들의 행동을 제지시키려 했다.

[낄낄낄....]

헌데 갑자기 음산한 괴소 소리와 함께 흑영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콰쾅!

[으악!]

[크아악!]

이어 몇 차례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군호들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보니 막비강을 포위 공격하던 사람 중 네 명이 상체가 박살이 나 죽어 있었다.

[으하하하! 내 아들은 노부가 데려간다!]

쏴아아!

막비강은 이미 우주도철에게 구출되어 질풍같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서랏, 미친 늙은이야!]

오봉도인은 화가 치밀어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한 채 우주도철을 추격했다.

오대기인 중의 두 고인은 삽시에 중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중인들은 그저 그들이 사라진 곳을 닭 쫓던 개처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우주도철은 오봉도인이 틀림없이 추격해올 것을 알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는 주로 울창한 수림과 계곡 등 적이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장소만 골라 질주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오봉도인을 떨쳐 버렸다.

어느덧 달이 서산으로 기울고 동녘에는 일출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주도철은 밤을 새워 질주했는지라 비록 천하오기 중의 한사람이지만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만 쉬었다 가자!]

이윽고 그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의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곧 자신이 어느덧 천대산(天臺山)에 도착했음을 알고 비로소 막비강을 내려놓고는 땀을 씻었다.

[노부는 가까스로 너를 구출했구나. 그러나 정사 양파의 인물들은 청구단서를 취득하기 위해 불원천리 여기까지 추격해 올지도 모른다.]

우주도철의 안색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엄숙해졌다.

[노부는 천하를 수십 년간 종횡하여 이제 죽을 날도 머지 않았으니 청구단서 따위에는 관심 없다. 그러니 너는 행여 내가 나쁜 마음을...!]

헌데 우주도철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낄낄낄...!]

갑자기 수림 속에서 소름을 오싹 끼치게 하는 괴소 소리가 들리지를 않는가?

그 웃음소리를 들은 우주도철은 안색이 일변했다.

[어서 받아라! 강적이 가까이 왔다!]

그는 품속에서 조그만 보따리를 꺼내어 급히 막비강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내가 저자와 싸움을 시작하면 너는 숲 속으로 숨어야 한다.]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막비강도 사태의 엄중함을 깨달았다. 그는 보따리를 받아 품속에 넣으며 급히 물었다.

[의부께선 함께 가시면 안 됩니까?]

[저자는 나와 함께 천하오기 중에 드는 절정고수다. 평시였다면 두렵지 않지만...!]

우주도철은 말을 하다 말고 청색 인영이 번뜩이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일으키며 웃음을 머금었다.

[귀화상(鬼和尙)!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소?]

막비강도 고개를 들어 나타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대머리가 마치 거울처럼 번뜩이는 화상이었다. 몸은 마른 대나무같이 야위었으며 청색 승포를 입었는데 움푹 들어간 눈동자에서 형형한 녹광(綠光)이 발산했다.

스스스!

[킬킬킬!]

그 사람은 몸을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미 면전에 도착했다. 그는 우주도철의 일 장 전면에서 걸음을 멈추고 막비강을 힐끗 돌아본 다음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형은 현명한 사람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사실 빈승도 이 어린아이 때문에 찾아왔소. 하지만 당신과 나 사이에는 아직 상의할 여지가 있소.]

우주도철은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귀화상! 당신은 무엇을 상의하려는지 말해 보시오.]

[빈승은 당신이 이 아이를 양자로 맞이했음을 알고 있으니 뺏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소. 그러나 잠시 빌려주시오. 비급만 취득하면 곧 당신에게 돌려주겠소.]

[만약 노부가 빌려주지 않겠다면?]

[빈승의 말은 절대 신용이 있으니 빌려주지 않을 리 없지요.]

[미안하지만 노부는 빌려주지 못하겠소.]

[당신은 이 아이를 업고 밤새도록 달렸는데 빈승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소?]

그 사람의 이 말은 우주도철의 약점을 바로 찌른 것이었다. 그러나 우주도철은 천하오기 중의 한사람인지라 쉽게 굴복할 리 만무했다.

[! 기껏해야 두 사람 모두 패하고 부상을 입을 것이오.]

[좋소. 정 그렇다면 빈승은 당신을 저승으로 먼저 보내 주겠소.]

[받아라!]

우주도철은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함을 지르며 일장을 격출했다.

꽈르르릉!

그는 비록 밤이 새도록 달렸지만 역시 오기 중의 인물은 비범하여 이 일장에 돌 조각이 날고 세찬 강풍이 일어났다.

귀화상은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옆으로 삼 장 가량 미끄러져 우주도철의 강맹한 일장을 피한 후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흐하하하! 노형의 일신의 음유(陰柔)한 무학이 강맹한 장세로 바꼈군. 이것은 여력이 다했다는 증거이니 빈승도 물에 빠진 개에게 돌을 던지고 싶지 않소.]

파앗!

그자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번개같이 몸을 날려 막비강의 손목을 향해 잡아갔다.

막비강은 귀화상의 신법이 이렇게 쾌첩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눈앞에서 인영이 번뜩함을 느끼는 순간 이미 상대방에게 왼쪽 완맥을 붙잡혔음을 깨달았다.

퍼펑!

그러나 막비강은 진기를 한 모금 들이켜 전력을 다해 일장을 격출했다.

[놓아라!]

동시에 우주도철도 고함을 지르며 덮쳐 와 귀화상의 배심을 향해 일장을 격출했다.

[!]

귀화상은 막비강의 의지가 이렇게 강한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해 앞가슴에 일장을 맞고 말았다. 또 우주도철의 일장이 배심을 향해 엄습해 오자 할 수 없이 몸을 솟구쳐 옆으로 피했다.

[! 함부로 날뛴 벌이다!]

우둑!

하지만 그자는 몸을 솟구치면서 막비강의 손목을 힘껏 비틀었고 그 바람에 막비강의 손목뼈가 그대로 빠졌다.

[아얏!]

콰당!

막비강은 격렬한 통증을 참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기절했다.

[이 악랄한 땡추!]

우주도철은 대로하여 필생의 공력을 다해 공격을 가했다.

귀화상은 막비강을 끌며 싸우려니 행동하기가 불편했던지 막비강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이를 부드득 갈았다.

[오냐! 살고 싶지 않다면 빈승은 살수를 펼쳐내는 도리밖에 없다.]

콰콰쾅!

우주도철은 상대방을 쫓아 버리고 막비강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쉬지 않고 맹공을 계속 가했다. 그리하여 오대기인 중의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서 생사존망의 치열한 혈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동쪽 하늘에서 둥근 해가 떠오르고 아침 안개를 깨끗이 쓸어 갔다.

[! !]

[으음!]

천하오기의 두 고인은 기진맥진하여 강호의 일반 무사들보다 더욱 무력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손을 멈추지 않고 천천히 초식을 주고받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막비강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지만 왼쪽 손목에서 전신으로 퍼지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얏!]

그의 비명 소리에 혈전을 벌이던 두 고수는 정신을 번뜩 차렸다.

[받아랏!]

[죽어랏!]

퍼펑!

두 사람 중 한 명은 막비강을 탈취하기 위하여, 다른 한 명은 막비강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서로 상반된 심리 상태에서 동시에 고함을 지르며 각각 여력을 다한 일장을 발출했다.

퍼펑!

[으아아악!]

[!]

우렁찬 폭음과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 개의 인영이 각자 뒤로 굴러 나갔다. 그중 하나는 그대로 뒤쪽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다른 하나는 막비강의 곁으로 굴러와 그의 몸에 부딪혀 비로소 멈추었다.

[와악!]

굴러온 인물은 검은 피를 한 모금 토하더니 더 이상 꼼짝하지 않았다.

[의부!]

막비강은 통증을 참고 고개를 돌려보다가 깜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의 곁으로 굴러온 사람은 바로 우주도철이었다. 그리고 절벽으로 떨어진 자는 귀화상이었다.

막비강은 주위에 귀화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우주도철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그러나 우주도철의 맥박은 완전히 멎었으며 가슴을 만져보니 심맥(心脈)도 이미 끊어져 있었다.

[크흐흑! 의부! 저 때문에 돌아가시다니...!]

막비강은 우주도철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비록 만난 지 반나절밖에 안 되었으나 우주도철은 진심으로 그를 위해 주었고, 결국 그를 지키기 위해 강적과 동귀어진한 것이다.

한동안 서럽게 울던 막비강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갔다.

(귀화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혹시 부상을 입고 도주한 것이 아닐까? 만약 상대방이 상세를 치료하고 되돌아온다면 나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막비강은 눈물을 거두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손목뼈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빠진 것임을 알았다. 이에 그는 입술을 깨문 채 골절을 원상대로 끼워 맞췄다.

그리고 땅을 파서 일대기인 우주도철의 시체를 매장한 후 공손히 절을 한 다음 수림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우주도철의 조그만 보따리 속에는 한 권의 연무비록(練武秘綠)과 몇 알의 만령환이 들어 있었다.

막비강은 백약에 정통한지라 만령이라는 두 글자를 보는 순간 곧 독을 제거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성약(聖藥)임을 알고 한 알을 복용했다. 그러자 잠시 후 손목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상처가 치료되자 막비강은 연무비록을 펼쳐보았다.

우주도철의 연무비록에는 기공(氣功), 경공(勁功), 장공(掌功) 등 각가지 정묘한 절예가 기재되어 있었다. 도철식혼장(饕餮食魂掌), 우주일기공(宇宙一氣功), 일지참교룡(一指斬蛟龍)등의 절기는 하나 하나가 그 방면에서 짝을 찾아보기 힘든 빼어난 것들이다.

막비강이 이제껏 익힌 염라철장, 무협제원, 헌원여호, 남산의성등의 무공도 일반 무림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는 뛰어난 절기들이다. 하지만 우주도철의 무공을 접한 막비강은 염라철장 등의 무공이 너무도 초라해보였다.

(과연 하늘밖에 하늘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로구나!)

지금까지 익힌 무공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절기들은 막비강을 흠뻑 매료시켰다.

우주도철의 여러 무공들 중에서 막비강의 시선을 가장 잡아끈 것은 경신공부인 팔보간섬(八步間閃)이었다. 벼락 한 번 번쩍일 동안(間閃) 여덟 걸음(八步)을 간다는 이 경신술은 빠르고도 신묘했다. 막비강은 우주도철이 이 경신술로 같이 천하오기에 드는 오봉도인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던 일을 떠올렸다.

막비강은 비록을 한 차례 훑어보고 덮은 뒤 생각에 잠겼다.

(우주도철은 고귀한 생명을 희생해 가며 나를 구해 주었고 또 이런 절기들까지 남겼으니 그가 정파이든 사파이든 내게 베푼 은혜는 하해와 같다. 나는 기필코 그분의 피맺힌 원수를 갚고 말겠다.)

그는 귀화상이 이미 절벽으로 굴러 떨어져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막비강은 다시 청구단서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같이 고수가 구름처럼 몰려 있는 경지하 강변에서 청구단서를 취득하기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비급이 숨겨진 곳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정월 대 보름날 밤이냐, 아니면 팔월 중추절 밤 삼경이냐 하는 것이었다.

만약 중추절 삼경이라면 어젯밤에 많은 고수들이 경지하 물 속을 샅샅이 뒤졌을 테니 청구단서는 이미 어떤 고수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또 만약 정월 대보름이라면 아직도 석 달이 남았으니 그동안 우주도철의 절학을 연마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생각에 생각을 굴린 끝에 지금 경지하에 가 보았자 아무 소용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그는 근처 산 속에 한 채의 모옥(茅屋)을 짓고 그곳에 거주하며 우주도철의 절학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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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종남산(終南山)> 아주 깊고 험한 산. 산중에서 연기가 치솟는다

산중의 어느 계곡. 지면에서 타원형으로 푹 들어간 직경 1키로쯤의 계곡인데 안쪽에서 연기가 치솟는다. 마치 화산같고.

계곡 위 절벽에 비석이 서있는데 <毒龍谷 亡入者死>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문득

[우우우!] 계곡 안쪽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화악! ! 연기를 뚫고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치솟는 인물. 무림맹 사신장 중 용신장인데. 옆구리에는 호신장이 끼워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코 아래를 가리는 방독면 같은 것을 얼굴에 쓰고 있고.

화악! 포물선을 그리며 까마득히 치솟는 용신장. 하지만

휘청! 하는 용신장. 이어

쿨럭! 피를 토하고

쐐액! 추락하는 용신장. 절벽쪽이다.

확 다가오는 절벽 윗부분

눈 부릅뜨는 용신장

휘릭! 허공에서 몸을 뒤집고

콰당탕! 몸을 뒤집은 덕분에 충격을 완화하며 나뒹구는 용신장. 그 바람에 허리춤에 끼고 있던 호신장을 놓치고

털썩! 나뒹구는 두 사람

용신장; [... 제기랄...] ! 얼굴에 쓰고 있던 방독면 같은 것을 뜯어내며 일어난다. 입가로 피가 흐른다. 용신장의 얼굴은 18 년전보다 주름이 조금 늘고 반백이 된 것 외에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배경으로 나레이션 <-무림맹 사신장의 일인 용신장(龍神將)>

용신장; [()의원이 마련해준 방독면도 독룡곡(毒龍谷)의 지독한 독기에는 소용이 없었다.] 헉헉 대며 호신장에게 기어가고

! 호신장이 얼굴에 쓰고 있던 방독면도 뜯어내고.

드러나는 호신장의 얼굴.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기절했다. 호신장의 얼굴 역시 18년 전에 비해 크게 변하진 않았고 흰머리가 많아졌다.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사신장중 호신장(虎神將)>

용신장; [제발 이 해독약은 효과가 있어야할 텐데...]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유리병을 하나 꺼내고. 유리병에는 걸죽한 액체가 들어있다.

! 약병 뚜껑을 따고

호신장의 코를 한손으로 잡는 용신장

벌어지는 호신장의 입

쪼르르! 그 입에 약을 부어주는 용신장

절반쯤 부어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마시는 용신장. 이어

용신장; [허억!] 털썩! 호신장 옆에 쓰러지고.

파삭! 용신장이 놓쳐서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은 깨지고

용신장; (현기증이 급격히 사라지는 걸 보면 진의원이 만든 해독약은 효험이 있는 것 같다.) 헐떡이며 안도하고

[으으으!] 호신장이 신음하고. 돌아보는 용신장

호신장; [허억! !]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고

용신장; [정신이 드는가?] 억지로 일어나 앉고

호신장; [... 독룡곡은 빠져나온 건가?] 헐떡이며 하늘을 보고

용신장; [진의원의 방독면이 독기의 상당 부분을 정화시켜준 덕분이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방복면을 보고

용신장; [그렇긴 해도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나 역시 자네처럼 정신을 잃었을 걸세.] [그럼 독심귀의(毒心鬼醫)에게 사로잡혀서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신세가 되었겠지.]

호신장; [악귀같은 늙은이...] 이를 부득

호신장; [천대받던 제 놈을 맹주님께서 그토록 아끼고 우대해주었거늘... 은혜를 원수로 갚기나 하고...] [이래서 사마외도와는 상종을 하면 안되는 거야.]

용신장; [그 늙은이에 대한 소문은 무림맹의 형당 당주로 영입되기 전부터 안 좋긴 했네.] 쓴웃음

용신장; [자신이 만든 독을 시험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생체실험을 한다는 말도 돌았으니 말일세.]

용신장; [하지만 마교의 악랄한 독공에 대처할 수 있는 실력자는 그 늙은이 외엔 없었지.] [그래서 맹주님도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중용하신 것이고...]

호신장; [그러다가 어의(御醫) 출신인 진무륜(陳無崙) 노사가 맹주님의 전담 의원으로 영입되자 배신을 때린 거지.] 억지로 일어나 앉고

용신장; [독심귀의 딴에는 맹주님의 병환을 다스릴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고, 당연히 위세를 부려도 된다고 생각했을 걸세.] 비틀거리며 일어나 절벽 아래를 보고

용신장; [하지만 진의원이 맹주님의 병환을 돌보게 되자 그같은 자신감이 배신감으로 돌변한 게야.] 절벽 아래를 살피지만 연기가 짙어서 잘 안보인다. 다만 연기 속에 건물 같은 형상이 흐릿하게 보이고

호신장; [배배꼬인 성격의 그 늙은이는 결국 본맹이 보관하고 있는 마교의 보물과 함께 상파(祥芭)를 납치해서 독룡곡으로 숨어들어갔지.] 억지로 일어서고

용신장; [그 옛날 만년 묵은 독룡(毒龍)이 신라 출신의 신선 김가기(金可紀)에게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독룡곡...] 호신장과 함께 서서 독룡곡을 내려다보고

용신장; [독룡곡의 독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은 당금 무림에서 독심귀의 밖에 없을 걸세.] [그걸 알기에 독심귀의는 독룡곡으로 숨어들어갔을 테고...]

호신장; [진의원 말대로라면 마교에 전해지는 피독주(避毒珠)만이 독룡의 독을 해독할 수 있다던데...]

용신장; [피독주는 마교가 멸망할 때 종적이 묘연해졌으니 기대할 수 없고...]

용신장; [더 늦기 전에 상파를 구해야할 텐데 난감하군.]

호신장; [상파는 독심귀의, 그 악귀가 원수로 여기는 진의원의 양녀...] [무사하길 바라긴 어렵겠지?] 눈치 보며

용신장;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인 건 분명하네.] [그저 죽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지.] 끄덕이며 한숨

호신장; [진의원이 양녀를 구해달라며 만들어준 방독면과 해독약도 소용이 없으니 큰일이로구만.]

용신장; [이제 신녀문 출신인 운신장의 술법을 기대해볼 수밖에는 없게 되었네.] [술법의 종가인 신녀문의 술법이라면 공간을 도약한다든지 해서 뭔가 방법이 있을 테니...] 심각한 표정

호신장; [하지만 운신장은 현재 중원에 없지 않는가?]

용신장; [무산에 급한 볼일이 있다는 전갈을 남기고 종적이 사라졌다는군.]

호신장; [무산에 있는 신녀문은 오래전에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었는데...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용신장; [남의 사문 일이니 자세히 물어볼 수도 없는 일...] [그저 운신장이 빨리 일을 마치고 무산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독룡곡을 내려다보고. 헌데

 

#135>

짙은 연기에 덮여있는 독룡곡 내부. 상당히 큰 연못이 있고 그 연목 가운데에 정자 같은 건물이 한 채 서있다. 3층 건물인데 그 건물 일대만 연기가 없다. 연기가 뭔가에 밀려나는 모습. 독룡곡 내부는 황량하지만 연못 주변에는 각가지 풀과 꽃이 피어있다.

삼층 건물의 삼층 창가에 망원경을 세워놓고 위를 보고 있는 노인. 독심귀의다. 처음 나왔을 때보다 더 늙고 추악하게 변해있다.

망원경에 보이는 화면. 연기 너머로 절벽 위쪽이 보이는데 그곳에 용신장과 호신장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독심귀의; [클클! 닭 쫓던 개꼴이라는 게 네놈들의 지금 꼬락서니를 일컫는 것이겠지.]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웃고

독심귀의; [사신장이 아니라 섭장천 본인이 온다고 해도 절대 여기까지 이르진 못한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독심귀의; [결국 시간은 노부 독심귀의 편인 것이다.] 돌아보고

독심귀의; [진무륜의 양녀인 저년을 통해 천약탈태술(千藥奪胎術)에 성공하기만 하면 노부는 천하무적이 될 테니까.] 건물 안쪽을 보고

! 건물 내부는 실험실 분위기. 중앙에 하얀 돌로 만든 침대가 있고 그곳에 잠옷 차림인 절세미녀가 누워있다. 목과 팔 다리에 족쇄가 채워져 돌침대와 한 몸이 된 그 여자는 바로 진상파다. 헌데 침대 주변에는 수 십개의 사람 키만안 쇠막대들이 서있고 쇠막대마다 링겔 병같은 것이 걸려있으며 그 병에 든 액체들이 가는 관을 통해서 진상파의 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136>

<-무산> . 신녀문의 폐허. 하늘에는 달

<-신녀문> 신녀문 폐허의 어느 건물. 아담하고 심하게 훼손되지 않았다.

건물 내부의 침실. 두 개의 침대. 이진진과 진삼낭이 자고 있고

[으으...] 가위에 눌리는 이진진. 식은땀을 흘리고.

단양의 포구에서 단지회 건달들에게 포위당한 상황을 꿈으로 꾸고 있는 이진진

이진진; (안돼... 안돼!) 비지땀을 흘리는데

! 투명한 여자의 손이 이진진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이진진; [... 엄마?] 헐떡이며 눈을 뜨고

! 이진진의 이마를 쓰다듬던 투명한 손이 물러나고

눈을 뜨며 옆을 보는 이진진.

옆 침대에는 진삼낭이 곤하게 자고 있고.

이진진; (... 어떻게 된 거지? 어머니는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데...) 잠든 진삼낭을 보며 의아해하고

이진진; (방금 전에 누가 내 이마를 쓰다듬은 걸까?) 헐떡이며 생각하고

이진진; (꿈이라고 하기에는 손길이 너무도 생생했는데...) 생각하며 주변 둘러보고. 직후

! 이진진의 침대 옆에 서있는 어떤 여자. 운신장을 닮았는데 몸 전체가 반투명하여 형상이 뚜렷하지는 않다. 선녀같은 옷을 입었고 눈이 빛난다.

이진진; (...유령!) + [으으으...] 달달 떨고

스윽! 고개를 숙여서 무어라 말을 하려는 유령

이진진; [아아아악!] 자기도 모르게 비명 지르며 이불을 끌어안고

진삼낭; [진진아!] 깜짝 놀라 깨어나고

 

#137>

[!] 신녀문 폐허 위로 날아오다가 놀라는 여자. 운신장이다. <아아아악!> 멀리서 이진진의 비명이 들리고

 

#138>

다시 이진진과 진삼낭이 자는 건물

이진진; [엄마!] 비명 지르며 진삼낭의 침대로 도망쳐오고

진삼낭; [왜 그래? 무슨 일이니?] 일어나서 이진진을 끌어안고

이진진; [저기... 저기 유령이...] 진삼낭의 품에 안겨 자기 침대쪽을 손가락질하며 달달 떨고. 하지만

이진진의 침대 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진삼낭; [유령이라니... 아무것도 없는데...] 기웃

이진진; [아니에요! 분명 저기 무언가 있었어요.] [어떤 여자가 제 이마를 쓰다듬었다구요.] 달달 떨면서 울고

진삼낭; [진정하거라. 아마 가위에 눌려서 헛것을 본 겔 게다.]

이진진; [그렇지 않아요. 저 가위 눌린 게 아니에요.] 고개 젓고

이진진; [여자같은 유령이 제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다구요.] 울고. 바로 그때

[따님 말이 맞아요. 가위에 눌린 게 아니랍니다.] 달칵! 문이 열리며 어떤 여자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물론 운신장이다

이진진; [!] 비명 지르며 진삼낭의 품에 얼굴 묻고. + 진삼낭; [!] 역시 놀라며 이진진을 끌어안는데

운신장; [저희 신녀문의 선조중 한분께서 진진이를 어여삐 여기신 것 같군요.] 방안으로 들어서며 웃으며 말하고.

진삼낭; [... 소저는 뉘신데...] + [!] 묻다가 기겁하고

<무림맹 사신장 중의 운신장!> 다가오는 운신장의 모습 배경으로 경악. 운신장은 18년 전과 모습이 변하지 않아서 진삼낭이 한눈에 알아봤다. 대신 진삼낭은 어린 소녀였다가 아줌마가 되어서 운신장은 진삼낭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다.

진삼낭; (저 여자가 어떻게 여기에...) 긴장하며 덜덜 떨 때. + 이진진; [!] 흠칫! 하며 그런 진삼낭의 품에서 고개 들고

운신장; [내가 찾아오는 게 늦었지?] [내가 있던 곳에서 이곳까지는 오천여리가 넘어서 힘껏 달려왔는데도 열흘이나 걸렸단다.]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운신장

이진진; [... 선녀님?] 운신장을 알아보고 눈 치뜨고. 진삼낭은 운신장에게 정면 얼굴 보여주지 않으려 하며 곁눈질하고

운신장; [그래 나란다.] ! 미소 지으며 이진진이 누웠던 침대에 앉고

진삼낭; (운신장의 얼굴은 주안술 덕분인지 십팔 년전과 똑같다.) + [선녀님이시라면 혹시...] 모르는 척 묻고

이진진; [어머니! 이분이 바로 제게 몽운연형호를 주신 선녀님이세요.] 안도하며 진삼낭에게서 떨어져 일어나며 진삼낭에게 운신장을 소개하고

진삼낭; (반면 아줌마가 된 지금의 내게서 열일곱 살 때의 모습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쇤네, 은인께 인사 올리옵니다.] 일어나며 고개 조아리고

운신장; (이 여자가 진진이의 어머니일 텐데...) + [과례는 거두세요.] 목례하고

운신장;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다.) + [저도 진진이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어서 몽운연형호를 준 것뿐이랍니다.] 다가온 이진진의 손을 잡으며 말하고

이진진; [제가 선녀님께 도움이 될 일이 있는지요?]

운신장; [있고말고!] 미소

운신장; [당금의 천하에서 진진이 너 아니면 해줄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단다.]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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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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