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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북경>

<-황금전장> 여전히 북적

 

벽세황; [고금제일검?] 놀라는 표정. 이때의 나이는 19. 건장하고 오만한 인상의 청년이 되어 있다. 정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누군가에게 묻는다.

풍뢰검왕; [그렇게까지 불리는 인물이 당금 무림에 존재한다네.] 역시 차를 마시며 끄덕인다. 풍뢰검왕은 도사 복장의 검객. 캐릭터는 196 참조. 한 두 번 나올 조연. 노인이고 상당한 고수다. 무기는 검이고

사방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연무장. 연무장 한쪽에 자리한 정자에는 벽세황과 청풍과 풍뢰검왕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벽세황이 검법 연습을 하다가 쉬는 중이고. 벽세황 앞의 탁자에는 검이 한 자루 얹혀져 있다. 풍뢰검왕은 자기 검을 차고 있고. 청풍의 나이는 이때 17. 이제 완연히 청년 분위기가 난다. 여전히 체격은 호리호리하다. 키는 보통 이상으로 크다.

벽세황; [놀랍소이다 사부!] [우리가 고금제일의 검객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니...] 흥분하며 찻잔을 내려놓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소장주 벽세황 19>

청풍; (그 인물을 말하는 거겠지.) 누군지 짐작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이청풍 17>

벽세황; [그래서 고금제일검이 누군지 어서 말씀해주시오 사부!]

풍뢰검왕; [검성(劍聖), 또는 절대검성(絶代劍聖)으로 불리는 인물일세.] 대답하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화산파 장로 풍뢰검왕(風雷劍王)>

벽세황; [절대검성!]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짐작이 갑니다.] 흥분한 표정으로

벽세황; [헌데 그토록 대단한 인물의 존재를 제자는 어째서 지금까지 몰랐을까요?]

풍뢰검왕; [이유는 검성께서 이미 삼십여 년 전에 은퇴를 했기 때문일세.]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는 검성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지.]

청풍; (다만 나는 장경각에 남겨진 기록으로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벽세황; [오래 전에 은퇴한 인물이었군요.] 아쉬운 표정

벽세황; [만일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었다면 아버지를 졸라서 사부로 초빙해봤을 텐데...] 입맛 다시고.

청풍;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는 돈이면 뭐든지 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쓴웃음을 짓고

풍뢰검왕; [검성의 지도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운이 없겠지.] 역시 쓴웃음을 짓고

풍뢰검왕; [검성을 잠깐 만나 가르침을 받은 것만으로도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벽세황; [은퇴를 했다고 하셨는데... 어딜 가면 검성을 만날 수 있습니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풍뢰검왕; [그분의 소재는 아무도 모른다네.] 고개 젓고

풍뢰검왕; [강호의 은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퇴를 한 것이라 철저하게 종적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

벽세황; [정말 아쉽습니다.] 입맛 다시고

벽세황; [어디 있는지 알기만 하면 기필코 검성을 사부로 모셔올 수 있었을 겁니다.] 아쉬워하고

이하 나레이션

 

<-검성 섭장천(葉長天)! 일갑자 전부터 천하무적의 위업을 유지해온 절대고수다. 사문이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섭장천과 맞서 삼초(三招)를 견딘 인물이 없다.> 다른 작품의 철면무제 섭장천 캐릭터의 인물이 검을 늘어트리고 있고. 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검을 겨누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절대삼검(絶代三劍)으로 알려진 섭장천의 검법은 신묘하면서도 막강하여 고금의 어떤 검법도 비견되지 못한다고 한다.> 위 장면의 연속. 무릎을 꿇고 머리 조아리는 사람들의 모습. 모두 피를 토하고 있고. 섭장천은 검으로 그들을 겨누고 있다.

 

청풍; (내가 읽은 기록대로라면 검성은 이미 검이 필요 없는 무검(無劍), 살기로 적을 살상할 수 있는 심검(心劍)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청풍; (그토록 대단한 인물이라면 나도 한 번 만나보고 싶구나.)

풍뢰검왕; [비록 은퇴하셨지만 검성이란 존재 때문에 지난 삼십여 년간 무림은 평화를 유지해올 수 있었다네.]

벽세황; [어떤 야심가라도 검성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습니다.]

풍뢰검왕; [그래서 소소한 다툼은 있었어도 대량의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충돌은 없었네만...] 말끝을 흐리고

벽세황;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까?] 눈 번뜩

풍뢰검왕; [혈세사패라는 이름은 들어봤는가?] 청풍과 벽세황을 번갈아 보며

벽세황; [사부님도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제가 무림의 은원에 엮이는 걸 금해오셨습니다.] 고개 젓고

벽세황; [그래서 강호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풍뢰검왕; [황금전장을 이어야하는 소장주가 굳이 무림과 깊이 엮일 필요는 없겠지.] 끄덕이고. 이어

벽세황; [혈세사패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풍뢰검왕; [지옥갱! 백살파! 환마루! 쾌활림!] [몇년전부터 돌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세력들을 혈세사패라 부른다네.]

벽세황; [혈세사패라는 이름만으로도 그자들이 좋은 인간들은 아님을 알 수 있겠습니다.] 눈 번뜩이고

풍뢰검왕; [결코 좋은 인간들이 아니지!]

풍뢰검왕; [그자들은 일단 시비가 붙으면 상대 세력을 기필코 몰살을 시켜오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어.]

풍뢰검왕; [지난 몇 년간 혈세사패에게 멸문지화를 당한 문파나 가문이 백 개를 훌쩍 넘길 정도지.]

벽세황; [저런 악독한 놈들이 있나?] 분노

청풍도 미간을 모으고

벽세황; [검성이야 은퇴했으니 그렇다 치고..] [관부나 무림의 명문대파들은 왜 혈세사패의 만행을 보고만 있는 것입니까?]

풍뢰검왕; [관부는 무림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고...]

풍뢰검왕; [우리 화산파를 비롯한 구대문파에게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네.] 한숨

청풍; (구대문파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변고가 생긴 모양이로구나.) 눈 번뜩

벽세황; [사부님이 보시기에 지금의 제 무공은 어느 정도입니까?]

풍뢰검왕; [소장주의 무공 수준이라...] 난감하고

벽세황; [제자는 철이 든 이래 무수한 영약을 먹었고 또 사부님처럼 뛰어난 기인명숙들을 초빙해서 무공을 배워왔습니다.]

벽세황; [최소한 제자의 지금 무공수준은 무림을 통틀어도 서열 백위 안에 들지 않을런지요?] 으쓱

청풍; (소장주의 저 근거 없는 자존망대(自尊妄大;잘난 체)...) 쓴웃음

풍뢰검왕; [무림에서의 서열을 메긴다는 건 난감하고도 허망한 일이네만...] 쓴웃음

풍뢰검왕; [화산파의 장로이기도 한 노부조차 무림 서열 백 위 안에 든다고는 장담하지 못한다네.]

벽세황; [그렇습니까?] 실망한 표정

청풍; (이번에 소장주가 사부로 초빙한 풍뢰검왕은 무공 실력을 떠나 솔직한 성격이어서 존경할만한 분이다.) 끄덕이며 풍뢰검왕을 보고

풍뢰검왕; [무림 서열 백위 안에 들고 싶은가?] [그럼 먼저 노부를 검법으로 이겨야할 걸세.] 웃고

청풍; (소장주를 도발하여 의욕을 고취시키기도 하고...) 웃고

벽세황; [좋습니다!] 벌떡 일어나고. 앞에 놓여있던 검을 잡고

벽세황; [잠시 쉬었으니 다시 한 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검을 잡고 정자에서 연무장으로 나가고. 풍뢰검왕도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고

풍뢰검왕; [자네는 무공을 배워볼 생각이 없는가?] 청풍의 옆을 지나가며 묻고

청풍; [노사께서 보시다시피 저는 무공 수련에는 적합하지 않은 약골인지라...] 웃으며 고개 젓고

풍뢰검왕; [약골이라...] 쓴웃음 지으며 지나가고

풍뢰검왕; [아쉽구먼. 아쉬워.] 혀를 차며 정자에서 나간다.

청풍; (내가 일부러 무공을 익히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구나.) 생각할 때

연무장 가운데에서 마주 서며 서로 검을 겨누는 풍뢰검왕과 벽세황. 이어

벽세황; [차핫!] 도약하며 검을 휘두른다

마주 검을 내밀어 막는 풍뢰검왕

! 카캉! 날고 뛰며 풍뢰검왕을 공격하는 벽세황. 사납고 격렬한 기세. 하지만

여유있게 벽세황의 공격을 막는 풍뢰검왕

청풍;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다.) 차를 마시며 그걸 보고

청풍; (소장주는 글공부보다 무공 수련을 더 좋아하고 재주도 있지만...)

<무공을 배우는 재주도 아주 특출 난 게 아니다.> 벽세황이 풍뢰검왕을 공격하는 것을 배경으로

쓴웃음

청풍; (글공부도 무공도 아니면 일찌감치 장사 기술이나 익히는 게 최선인데...) 쓴웃음 지으며 차를 마시고. 시선은 연무장을 향한 채

청풍; (장주님의 욕심 때문에 소장주의 인생도 참 피곤하구나.)

벽옥령; [청풍오빠가 보기에도 세황오빠의 검법은 영 아니지?] 갑자기 청풍의 옆에서 속삭이는 벽옥령. 뒷짐 짚고 몸을 앞으로 숙여서 청풍의 귀에 대고 말하며 연무장을 보고 있다. 이때 벽옥령의 나이는 16.

청풍; [아가씨!] 고개 조금 돌리며 찻잔을 내려놓고

벽옥령; [또 아가씨래!] 눈 흘기며 청풍의 옆 자리에 앉고. 의자를 청풍의 옆으로 붙인다.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옥령 십육세>

벽옥령; [단 둘이 있을 때는 이름을 부르기로 약속했잖아.] 옆으로 옮긴 의자에 앉아서 눈 흘기고

청풍; [미안하다.] 억지로 웃고

청풍; (무공 수련의 자질은 아가씨... 옥령이가 타고 났다.) 자기 옆에 붙어 앉는 벽옥령을 보며 생각하고

청풍; (나 정도는 아니어도 아무리 어려운 것도 쉽게 쉽게 익혀내는 재주를 지녔다.)

청풍; (만일 무공 연마에 전념하면 옥령이야말로 스무 살 전에 무림 백대고수 안에 들 가능성이 있다.) 생각할 때

벽옥령; [솔직하게 말해봐.] 앞을 보며

벽옥령; [세황오빠 영 아니지?] 청풍과 바짝 붙어 앉아서 앞을 보며 한숨 쉬고

청풍; [네 오빠는 황금전장의 후계자다.] [무공이 호신술 수준에만 이르러도 충분해.] 우회적으로 말하고

벽옥령; [결국 세황 오빠는 학문도 무공도 적성이 아니라는 얘기네.] 한숨 쉬고

청풍; [대신 셈이 빠르고 수완이 좋으니 황금전장을 물려받는 데는 큰 문제없을 것이다.]

벽옥령; [아버지도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는데...] 한숨

청풍; [머잖아 장주님도 깨닫는 게 있으실 것이다.] ! 은근히 손을 잡고

움찔! 하는 벽옥령

벽옥령; [... 그렇겠지?] 얼굴 붉히며 억지로 웃고. 시선을 앞으로 향한 채

청풍; (이러면 안된다는 거 알지만...) 곁눈질로 그런 벽옥령의 옆 얼굴을 보고

청풍; (자랄수록 예뻐지는 옥령이에게 마음이 기우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소리없이 한숨 쉬고

청풍; (글공부 때문에 내원을 드나들다 보니 이 말괄량이를 자주 보게 되었고...)

<결국 일 년 전 이 말괄량이로부터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고 몰래 사귀게 되었다.> 건물 뒤의 구석 진 곳에서 청풍의 품에 안겨 좋아하는 15살쯤의 벽옥령. 청풍도 당황하지만 벽옥령을 끌어안고

청풍; (주인집 고명딸과 종...) (우리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인데...) 벽옥령의 손을 잡고 연무장을 보며 한숨

<뻔한 결말이 보이는 데도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구나.> 정자안의 광경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헌데

 

#16>

연무장 근처의 높은 건물. 맨 꼭대기 창가에 누군가 서서 원통형 망원경으로 연무장을 보고 있다. 벽초천이다.

벽초천이 보고 있는 망원경에 잡히는 장면. 정자 안에 나란히 앉아있는 청풍과 벽옥령의 모습이다.

서로 잡고 있는 손이 크로즈 업 되고

벽초천; [...] 뭔가 생각하며 망원경을 내리고. 불쾌한 표정이고. 그때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겠소이다 장주.] 뒤에서 들리는 음성. 돌아보는 벽초천

우문술; [소장주의 지금 수준으로는 도저히 과거에 응시할 수 없소이다.] 탁자에 앉아서 종이 뭉치에 적인 글을 읽으며 한숨 쉬는 노인. 전형적인 서생. 캐릭터는 186. 좀 더 마른 것으로 묘사. 황금전장 장경각 총사서 우문노인이다. 본명은 우문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장경각 총사서 우문술(宇文述)>

우문술; [문장이 장황하고 서술이 화려하기만 할뿐 일관성과 논리는 찾아볼 수가 없소이다.] ! 종이 뭉치를 내려놓고. 다른 종이뭉치도 탁자에 있다.

벽초천; [지금 세황이의 수준은 어느 정도요?]

우문술; [전시(殿試;황제 앞에서 치루는 과거)는 언감생심이고...] [향시(鄕試;지방에서 치르는 예비 과거)도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소이다.] 고개 젓고

우문술; [아주 외진 변방에서 치르는 향시라면 어찌 어찌 급제할 수도 있겠지만...] 말 꼬리 흐리고

벽초천; [그건 아니 되오.] 고개 강하게 젓고

벽초천; [세황이는 반드시 직례(直隷; 황실이 직접 관할함)에서 급제해야만 하오.] [그래야 우리 황금전장이 명문가로 발돋음 할 수 있소.]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말하고

난감한 우문술

벽초천; [우리 황금전장은 삼대에 걸쳐 부를 쌓아 천하삼대 부호가문으로 꼽히게 되었소.] 자부심에 찬 표정

벽초천; [하지만 원래 천한 신분이었던 탓에 명문거족들에게는 홀대와 멸시를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오.] 치욕을 느끼는 표정

벽초천; [당연히 유서 깊은 가문과는 혼인도 불가하고...] [이런 수모에서 벗어나려면 세황이가 보란 듯이 과거에 급제하는 수밖에 길이 없소.] 주먹 불끈

우문술; [노부도 소장주를 가일층 혹독하게 가르치겠으나...]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 꼬리를 흐리고. 그때

다른 종이뭉치를 흘낏 보는 벽초천

벽초천; [청풍이놈의 답안지는 어떻소이까?]

우문술; [청풍이야 더 말할 것도 없소이다.] 종이 뭉치를 집어들고

우문술; [그놈에게는 향시가 아니라 전시의 시험문제를 주었는데...] [지난번 전시에서 장원급제한 놈의 답안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소이다.]

벽초천; [그렇소?] 눈 번뜩

우문술; [출신이 천해서 그렇지 청풍이는 과거에 응시하기만 하면 장원급제가 당연한 수준이오.] 감탄하며 종이뭉치의 글을 읽고

벽초천; (응시만 하면 장원급제라...) 뭔가 생각하는 벽초천.

 

#17>

경치 좋은 산.

휘익! 그 산을 날아가는 노인. 바로 검성 섭장천. 여전히 점쟁이 차림

섭장천의 손에는 편지가 한통 구겨진 채 들려있다.

<검성 섭장천노사에게 문안 인사 올리겠소이다.> 날아가는 섭장천의 모습 배경으로 편지의 내용 나레이션

<섭노사의 외아들 섭무궁(葉無窮)의 거처가 천주산(天柱山) 은일곡(隱逸谷)에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소이다. 그리하여 조만간 인사하러 갈 예정이라 부친이신 섭노사께 미리 통보하게 되었소이다. -지존(至尊)> 편지의 내용

섭장천; (노부는 명성이 높아진 만큼 원수도 많이 생겼다.) 심각한 표정으로 날아가고

섭장천; (노부야 칼날 위의 인생이라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만...) (어렵게 얻은 아들 무궁이의 안위에 대해서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섭장천; (그리하여 세상과 떨어진 은일곡에 무궁이의 거처를 마련해주었고... 노부는 세상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은퇴를 했었다.)

섭장천; (그후 무궁이는 짝을 만나 딸까지 하나 얻고 행복하게 살아왔거늘...) 초조한 표정이고

섭장천; (지존이라는 놈이 은일곡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섭장천; (필경 노부에게 원한이 있는 자일 텐데...) (부디 노부가 도착할 때까지 별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쐐액! 미사일처럼 날아가고. 하지만

[!] 눈 부릅뜨는 섭장천

멀리 산 너머에서 연기가 치솟는다

섭장천; (은일곡 쪽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눈 부릅

<한 걸음 늦은 것인가?> 쐐액! 미사일처럼 산을 날아 넘는 섭장천.

 

#18>

무릉도원같이 경치 좋은 계곡. 수십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제법 큰 장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건물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남자들은 살육당하고 여자들은 강간당하는 중이다.

복면을 쓴 자들이 건물에 불을 지르고

[아악!] [크악!] [... 이 마귀새끼들이... 아악!] [... 살려주세요!] 저항하는 남자들을 죽이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나이 든 여자나 어린 아이들을 죽이고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는 자들도 있다.

복면인1; [증거를 없애라!] [전부 죽이고 불 태워라!] 마당 끝에 서서 외치는 복면인. 이자가 리더다. 그자 뒤에는 두 개의 나무 기둥이 X자로 세워져 있고 그곳에 일남일녀의 시체가 매달려 있다. 둘 다 30대 후반쯤인데 지독한 고문을 당한 모습이고 특히 여자는 강간 당한 후 후 죽은 무참한 모습이다. 섭장천의 아들인 섭무궁과 섭무궁의 아내다. 마당에는 남녀노소 수십 명의 시체가 널려있고 한쪽에서는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는 놈들도 있다. 사람들을 마당으로 끌고 오는 자들도 있고.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크로즈 업

[아흑!] [아악!] 한쪽에서는 강간당하고 있는 여자들이 비명 지르고

복면인1; [개새끼 한 마리도 살아있으면 안된다.] [오늘 은일곡에서 일을 벌인 게 누군지 섭장천이 알면 안된다.] 외치고

[존명!] [전부 죽여라.] 푹푹! 으악! 아악! 끌고 온 남녀들을 죽이는 자들.

[으헤헤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통령(統令)!] [이년은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젊은 여자들을 단체로 강간하는 자들이 돌아보며 웃고

복면인1; [발정 난 새끼들!] [이런 상황에서도 재미를 보고 싶냐?] 혀를 차고. 그때

[통령님!] [보고 드립니다.] 휘익! ! 두 명의 복면인이 날아들고. 돌아보는 복면인1

복면인들; [섭무궁의 딸 섭아연(葉雅娟)의 행방은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년은 이미 은일곡을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포권하며 보고하는 복면인들

복면인1; [그럴 수도 있군. 이토록 철저하게 수색했음에도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끄덕이고

복면인1;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으니 철수한다.] [모두 죽여라!] 주변의 다른 복면인들에게 외치고

[존명!] [죽여라!] [크악!] [아악!] 학살이 자행된다. 사람들을 무차별 죽이는 복면인들. 강간당하던 여자들도 죽이고.

복면인1; [떠나기 전에 건물들을 남김없이 불 태워라. 섭무궁의 딸년이 혹시 건물 안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 자행되는 학살을 보며 외치고. 바로 그때

번쩍! 슈학! 검의 형태를 한 기운들이 날아들어 복면인들을 궤뚫는다

[크악!] [!] [케엑!] 투명한 검의 형상에 궤뚫려 죽으며 비명 지르는 복면인들

복면인1; [! ... 심검(心劍)이다!] + 복면인들; [이게 무슨...] 기겁

[크악!] [케엑!] 장원 내의 다른 복면인들도 모두 검의 형상에 궤뚫려 몰살당한다.

복면인1; [검성... 검성이 벌써 왔다.] + 복면인들; [... 피해라!] [히익!] ! 쐐액! 공포에 질려 날아오르고. 하지만 그 직후

[크악!] [케엑!] 퍼퍽! ! 허공에서 비명 지르며 퍼덕이는 복면인1과 보고 하러 왔던 복면인들. 모두 투명한 검기에 머리나 가슴이 궤뚫린다

털석! 퍼억! 나뒹구는 복면인1과 다른 복면인들. 주변의 모든 복면인들도 이미 죽었고. 그 직후

휘익! 선풍을 일으키며 섭무궁 부부가 죽은 현장에 나타나는 섭장천. 몸에서 수많은 검의 형상들이 일어나 있고. 하지만

섭장천; [... 이런 짓을...] 현장을 보고 분노하는 섭장천

무차별 학살당한 남녀노소. 젊은 여자들은 발가벗겨진 채 죽었고

기둥에 매달려 죽어있는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섭장천; [용서할 수 없다!] [오늘 일에 책임이 있는 놈은 세상 끝까지 쫓아가 척살하고 말겠다.] 이를 갈며 섭무궁 부부의 시체로 다가가고

슈욱! 스악! 투명한 검의 형상들이 섭무궁과 겁무궁 아내의 손을 묵고 있던 밧줄들을 베어버리고

스륵! 휘익! 바닥으로 추락하는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하지만

눈 부릅뜨며 다가오는 섭장천. 그러자

스륵! 바닥에 처박히기 전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천천히 내려앉아서

스윽! ! 바닥에 나란히 눕혀지는 섭무궁과 아내의 시체. 쳐들렸던 팔도 바로 내려지고. 도포 같은 겉옷을 벗으며 다가오는 섭장천

섭장천; [미안하구나 아가야.] 탄식하며 알몸인 며느리의 시체에 자신의 겉옷을 덮어주려는 섭장천

섭장천; [네가 시집을 잘 못 와서 이런 끔찍한 일을 겪었구나.] 옷으로 며느리의 시체를 덮어주며 탄식하고. 그때

움찔! 섭무궁의 몸이 조금 움직이고. 돌아보는 섭장천

섭장천; [무궁아!] ! 손을 아들의 가슴에 누르고

! 섭장천의 손바닥에서 빛이 일어나고

[쿨럭!] 피를 토하며 눈을 뜨는 섭무궁. 눈에 초점은 없고. 이어

섭무궁; [... 아버지!] 초점 없는 눈으로 올려다보고

섭장천; [원수... 원수가 누구냐?] 이를 갈며 묻지만

섭무궁; [아연이는...] 대답 대신 다른 소리를 한다

섭장천; [아연이! 아연이는 무사한 것이냐?] 흥분

섭무궁; [사당...] 거기까지 억지로 말하고

섭장천; [아연이를 사당에 숨겼느냐?] 급히 묻지만. 그 직후

털썩! 고개 옆으로 떨구는 섭무궁. 절명했다.

섭장천; [무궁아!] ! 손바닥으로 더 강한 힘을 주입시키지만

주르르! 입과 코로 피를 흘릴 뿐 반응이 없는 섭무궁

섭장천; [영면하거라 아들아.] 손을 떼고

섭장천; [너와 네 처를 해친 자들은 아비가 반드시 씨를 말릴 것이다.] 주르르! 눈물 흘리며 일어나고. 이어

섭장천; [아연아!] 휘익! 날아오른다.

섭장천; [할애비가 왔다!] 장원 안쪽으로 날아간다.

 

#19>

장원의 외진 곳에 자리한 사당 건물. <祠堂>이라는 편액이 처마 아래 걸려있다. 사당 주변에도 복면인들 몇이 보이지 않는 검에 궤뚫려 죽어있다.

화악! 돌풍을 일으키며 사당 앞으로 날아 내리는 섭장천

두근! 두근! 섭장천의 귀에 들리는 심장 뛰는 소리

섭장천; (심장 뛰는 소리!) 눈 부릅

섭장천; (사당의 바닥이다.) 소리 없이 기합 지르고. 그러자

부악! 섭장천의 몸에서 수많은 검의 형상이 폭풍처럼 터져나가고.

! 그 검의 형상에 휩쓸린 사당 건물이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마치 강력한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퍼퍽! 후두둑! 콰아! 사당 건물이 알거에 쓸려나가며 돌을 깐 사당 바닥이 나타나고

눈 부릅뜨며 드러난 사당 바닥으로 다가가며 손바닥을 내미는 섭장천.

섭장천의 손바닥이 벼락에 휘감기고. 그러자

! ! 사당 바닥을 이루고 있던 돌 판들이 위로 터져 오르고

콰드드! 그 아래쪽에서 관이 하나 솟아오른다. 상당히 큰 중국식의 관이다.

! ! 다시 떨어지는 돌판 잔해들 배경으로 1미터쯤 허공으로 떠오르는 관

! 섭장천의 손짓에 따라

! 바닥에 내려앉는 관. 다가가는 섭장천

덜컹! 관의 뚜껑을 여는 섭장천

! 관 안에 눈 감고 누워있는 18세 가량의 절세미녀. 잠옷차림인데 벌어진 상의 사이로 젖가슴 사이에 나비 문양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나비 문양은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므로 반드시 묘사. 이 소녀는 섭장천의 손녀인 섭아연. 좀 도도한 인상. 캐릭터는 061A.

섭장천; [아연아!] 떨리는 손을 관 안의 섭아연의 얼굴 가까이 가져가고. 그러자

미약하게 숨을 쉬는 섭아연의 얼굴

섭장천; (호흡이 미약하고 심장 뛰는 것도 느리다.) 안도하며 손을 거두고

섭장천; (다친 건 아니고... 무궁이가 아연이의 수혈을 짚어놨기 때문이다.) 파팟! ! 섭아연의 가슴 혈도를 몇 군데 빠르게 찍는다. 그러자

섭아연; [!] 퍼덕! 몸을 떨며 깨어나고

섭장천; (내가 구하러 올 걸 기대하고 아연이를 숨겼겠지.) 손을 거두고. 그때

섭아연; [으으으...] 신음하며 눈을 뜨고

섭장천; [정신이 드느냐 아연아? 할애비다.] 관에서 섭아연을 나오게 하려고 상체를 부축하면서 묻고

섭아연; [으으으...] 눈에 초점이 없는 채로 벌벌 떨며 부축되어서 상체를 완전히 일으키며 신음하는데

섭장천; [할애비가 왔으니 이제 안심해라.] ! 두 팔로 섭아연을 관에서 안아서 꺼내고.

섭장천; [네 부모를 해친 것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 [!] 두 팔로 섭아연을 안은 채 말하다가 눈 부릅뜨고

섭아연; [끄윽...] 눈이 돌아간 채 신음하며 고개를 젖히고. 간질환자처럼 벌벌 떨며 입을 벌린 채 꺽꺽거리고.

섭장천; [아연아! 왜 그러느냐?]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급히 외칠 때

화악! 벌린 채 꺽꺽 대던 섭아연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확 뿜어져서 섭장천의 얼굴을 덮어씌운다. + 섭장천; [!] 불시에 뿜어진 연기를 얼굴에 덮어쓰며 눈 부릅뜨는 섭장천

화르르! 연기에 휩쓸린 섭장천의 머리카락에 불이 붙고

! 강력한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하는 섭장천

섭장천; [...!] 콰당탕! 섭아연을 떨구며 바닥에 뒤로 나뒹굴고.

털썩! 역시 나뒹구는 섭아연. 이하 섭아연은 인사불성.

섭장천; [... 독을 입에 머금고 있었구나!] 현기증에 휩싸인 채 바닥에 나뒹굴어 벌벌 떨고. 고개를 돌려 섭아연을 보며. 섭아연은 입에서 여전히 연기를 뿜어내며 벌벌 떨고 있고. 간질환자처럼. 바로 그 직후

화악! 부악! 세 방향에서 섭장천을 공격하는 세 놈. 바로 혈세사패의 두목들인 지옥혈부, 백일살신, 환마루주다. 지옥혈부는 물론 거대한 도끼를 내리쳐오고 백일살신은 양손에 찬 갈쿠리를 동시에 긋는데 갈쿠리에서 1미터가 넘는 섬광이 내뻗친다. 환마루주는 네 개의 수레바퀴만한 톱니를 몰고 들이닥친다. 수레바퀴들은 허공에 뜬 채 환마루주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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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의성의 딸

 

 

 

두 사람은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하여 사흘째 저녁 무렵에는 멀리 남악(南岳) 형산(衡山)이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헌데 형산에 도착한 두 사람은 거인같이 우뚝 솟아있는 어느 산봉우리 밑에서는 불기둥이 치솟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남산의성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자신의 집 근처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악소궁은 안색이 하얗게 변하여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 이미 늦어 버렸구나!]

막비강은 그런 그녀를 급히 부축했다.

[누님! 진정하십시오. 집에 불이 나긴 했지만 영존까지 해를 입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소제가 먼저 달려가 볼 테니 누님은 천천히 오십시오!]

악소궁을 위로한 막비강은 곧 팔보간섬을 극한까지 전개하여 불길이 치솟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어둠의 장막이 남악 형산 위로 드리워지고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쐐액!

문득 한 줄기 포물선이 밤하늘을 가르더니 한 명의 청년이 지면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물론 그 청년은 막비강이었다.

막비강이 내려선 앞쪽에는 잿더미가 되어 버린 초가집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남산의성 악불령의 거처는 몇 채의 모옥(茅屋;초가집)으로 이루어진지라 불이 붙자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해 버린 것이다.

불타 버린 초가집의 잔해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돼지, 닭 등 가축이 불에 타 죽으며 내는 고약한 악취만 풍길 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보아하니 흉사(凶邪)들은 일을 끝내고 이미 현장을 떠난 것이 분명했다.

막비강은 남산의성 악불령과 그의 식솔들이 변을 당한 것같아 자신도 모르게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는 오른 손을 저어 한 줄기 광풍을 뿜어냈다.

화르르!

그러자 그때까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던 잔불과 연기가 모두 꺼져 버렸다.

막비강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잿더미 속으로 들어가 타다 남은 잔해들을 뒤척여 보았다. 남산의성 악불령 일가의 유골이나마 찾을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타 죽은 돼지와 닭 몇 마리만 나올 뿐 사람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악 선배님 일가가 도피하면서 적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고의로 불을 지른 게 아닐까? 아니면 흉도들이 사람들을 생포해 간 다음 화풀이로 잿더미를 만들어 버린 것일까?)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며 잿더미가 된 집 근처에서 악소궁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악소궁은 나타나지 않았다.

헌데 막비강이 불안해 하고 있을 때였다.

[크하하하하!]

돌연 멀리서 심맥을 진탕시키는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려 왔다.

막비강은 이 웃음소리의 주인이 남산의성의 원수들 중 한 명일 것이라 단정하였다. 그리고 흉수가 이제야 나타난 것으로 보아 남산의성이 화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적이 안심이 되었다.

이에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지금 그가 여길 떠나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면 뒤따라올 악소궁이 적의 손에 잡힐 것은 뻔한 일이다.

[카카카!]

막비강이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음산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첫 번째 웃음소리는 십여 리 밖에서 들렸는데 두 번째 웃음소리는 바로 지척에서 들린다. 그만큼 웃음소리의 주인의 경신술은 대단한 것이었다.

쐐액!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막비강은 한 줄기 흑선(黑線)이 밤하늘을 유성처럼 가르며 날아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우렁찬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거 참 시끄럽구만!]

그의 이 음성은 맑고 우렁차 음산한 웃음소리를 완전히 제압했다.

[크크크! 어린놈이 제법이로구나!]

화라락!

직후 음산한 일갈과 함께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장내에 내려섰다.

그자는 다른 곳도 아니고 잿더미 위에 내려서면서도 먼지 한 점 일으키지 않았다. 이같은 경공신법은 등봉조극(登峯造極)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하오기를 능가하는 고수다!)

막비강은 긴장하며 나타난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차림은 시골 문사 차림인데 긴 수염을 가슴까지 기르고 있었다. 머리는 백발이 희끗희끗한 반면 안색은 불그레한 것이 한창 나이의 젊은이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눈에서는 푸르스름한 녹광(綠光)이 번져 나와 사이하고 괴괴한 인상을 풍겼다.

녹안(綠眼)의 괴인은 바닥에 내려서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웃음소리를 압도한 음성의 주인이 뜻밖에도 약관의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갔느냐?]

녹안괴인은 막비강의 아래 위를 살펴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막비강은 나타난 사람이 소리장도 강용이 아니면 백독서생 이량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생소한 얼굴인지라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요?]

녹안괴인은 막비강을 응시하며 말했다.

[너는 악불령 집안사람이냐?]

[집안사람일 수도 있고 집안사람이 아닐 수도 있소.]

녹안괴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악불령은 어딜 갔느냐?]

막비강은 시종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건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오.]

막비강의 무례한 대답에 녹안괴인은 화난 표정을 지었다.

[애송이놈! 보아하니 빨리 죽는 게 소원인 모양이로구나.]

막비강은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누군지부터 말하시오. 그래야만 당신이 나와 싸울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소.]

그러자 녹안괴인은 음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낄낄낄! 네가 감히 노부 낙성신마(落星神魔)에게 싸움을 청할 생각이냐?]

[인마(人魔)가 아니라 신마(神魔)란 말이지?]

막비강은 상대가 천수인마가 아닐까 생각했다가 예상이 빗나가자 검미를 모았다.

[헌데 자칭 신마 양반! 당신은 여기 무엇 하러 왔소?]

[요놈이 영특하게 생겨서 봐주려고 했더니...!]

낙성신마라는 자는 대답하려다 말고 갑자기 옆의 울창한 고목 쪽을 홱 돌아보며 외쳤다.

[거기 어떤 쥐새끼냐?]

그자는 나뭇가지 위에서 경미한 음향이 이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막비강도 악소궁이 도착한 것으로 생각하고 급히 외쳤다.

[누님이십니까?]

그러자 나뭇가지 위에서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전해 왔다.

[! 누가 네놈의 누님이란 말이냐?]

화락!

이어 하나의 인영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바로 소리장도 강용이었는데 그자의 옆구리에는 혈도가 짚인 악소궁이 축 늘어진 채 끼어 있었다.

(누님이 어떻게 그에게 생포되었지?)

악소궁이 강용에게 잡힌 것을 본 막비강은 내심 놀라면서도 버럭 노성을 질렀다.

[악적! 빨리 그분을 내려놓아라!]

강용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네놈은 누구냐?]

이년의 세월이 지난 탓에 강용은 막비강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넌 그런 걸 물을 자격이 없다. 빨리 사람이나 내려놓아라!]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네놈도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이겠지만....]

[잔말이 많다!]

!

막비강은 강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번개같이 덮쳐가며 그자의 안면을 향해 일장을 격출했다.

[!]

강용은 안면을 향해 뻗어 오는 막비강의 벼락같은 일장에 기겁하며 피하려 했다.

하지만 사실 그자의 안면으로 날린 막비강의 이 일장은 허초였다.

!

막비강은 강용이 깜짝 놀라 허둥대는 틈을 타 그자의 겨드랑에서 악소궁을 낚아채 재빨리 후퇴했다. 그의 이 같은 동작은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내놔라!]

꽈릉!

얼떨결에 악소궁을 빼앗긴 강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막비강에게 일장을 격출했다.

그때였다.

[잠깐!]

낙성신마라고 자칭한 녹안괴인이 가볍게 손을 들어 강용의 일장을 봉쇄했다.

!

강용의 공력도 매우 심후한데 의외로 녹안괴인이 아무렇게나 휘저은 일장에 비틀거리며 세 걸음이나 후퇴했다. 그는 놀란 음성으로 녹안괴인에게 물었다.

[귀하는 누군데 노부의 일을 간섭하는 거요?]

순간 녹안괴인은 두 눈에서 섬뜩한 녹망을 발산했다.

[낄낄낄! 감히 내 앞에서 노부라 자칭하다니...! 네놈은 도대체 몇 살이나 처먹었느냐?]

녹안괴인의 말에 강용은 당황했다. 그는 비로소 상대가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인물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기회다!)

막비강은 녹안괴인이 강용에게 눈을 부라리는 틈을 타 재빨리 몸을 날렸다.

헌데 막비강이 막 몸을 날린 그 순간이었다.

[흐흐! 어림없다!]

꽈릉!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줄기 강맹한 경풍이 막비강의 면전을 향해 엄습해 왔다.

막비강은 흠칫 놀라며 일장을 마주쳐 냈다.

!

다음 순간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지며 한 줄기 선풍이 지면으로부터 모래먼지를 대동한 채 허공으로 뻗어 올랐다.

막비강은 기습해 온 상대의 공격에 제지당해서 다시 원래 위치에 내려섰다.

화라락!

직후 또 다른 인영이 그의 앞으로 날아 내리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애송아! 네놈이 노부의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번에 나타난 인물은 얼굴이 유달리 하얘 음침한 인상을 주는 중년문사였는데 다름아닌 육요(六妖) 중 백독서생 이량이었다.

상대가 백독서생 이량인 것을 알아본 막비강은 화가 치밀어 악소궁을 한쪽에 내려놓으며 버럭 노성을 질렀다.

[노독물! 너도 내 일장을 받아 보아라!]

꽈르릉!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막비강의 손바닥에서 강맹무비한 장풍이 노도같이 뻗어 나갔다.

백독서생 이량은 막비강의 막강한 장풍에 안색이 대변하며 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러면서 소리쳐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자 역시 막비강을 오랜 만에 만난지라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바로 천면신룡이시다!]

막비강은 사납게 외치며 재차 장력을 날렸다.

[이제 보니 네놈이...! 커억!]

! 후두둑!

백독서생 이량은 경악성을 토해내다가 막비강이 다시 격출한 일장에 강타당해 나뒹굴었다. 육요 중 한 명인 백독서생조차 지금의 막비강에게는 적수가 못되는 것이다.

막비강은 바닥에 나뒹굴어 피를 토하고 있는 백독서생 이량을 노려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하하! 노독물! 오늘 같은 날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놈이 정말 광오하군!]

또 다른 사람이 허공에서 음험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받았다.

화라락!

그 사람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장내에 내려섰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덮여 나이를 알 수가 없는 노인인데 양팔이 유난히 길고 검었다.

(이자가 우내사마 중의 천수인마겠구나!)

막비강은 새로 나타난 노인의 정체를 간파하고 내심 긴장했다.

그때 장내에 내려선 노인, 천수인마가 뒷짐을 지며 말했다.

[후학 중에 너같은 고수가 있다니 대견하도다! 해서 특별히 삼 초를 양보해 줄 테니 실력을 발휘해보거라.]

막비강도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늙은이가 바로 악명높은 천수인마겠구나. 헌데 노마는 정말 나의 삼 장을 반격하지 않고도 받아낼 자신이 있느냐?]

천수인마는 막비강이 단번에 자신의 신분을 간파하자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 노부가 누군지 알아보다니 기특한 놈이로다!]

바로 그때였다.

[! 당신은 천수인마 사마(司馬) 형 아니오?]

자칭 낙성신마라 하던 녹안괴인이 천수인마라는 말을 듣고는 다가왔다.

[으핫하하! 낙성신마 사공(司空) 형도 왔구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이십 년도 더 되었군 그래.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소.]

천수인마도 비로소 낙성신마를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한눈에도 그자가 낙성신마를 꺼려함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본 막비강은 웃으며 말했다.

[하나는 신마(神魔)고 하나는 인마(人魔)이니 당신들 이마(二魔)가 먼저 고하를 겨루어 보시오. 이긴 사람을 내가 상대해 주겠소!]

막비강은 그렇게 말하며 악소궁에게 다가가 재빨리 그녀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정신을 차린 악소궁은 장내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사색이 되었다. 소리장도 강용과 백독서생 이량, 거기에다가 우내사마 중 두 사람이나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절망의 표정이 되어 막비강에게 말했다.

[아우! 아우는 어서 여길 빠져나가게. 누이는 선친을 따라 지하로 가겠네.]

막비강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누님은 무슨 그런 말을 하십니까? 영존께서는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분의 뒤를 따라 지하에 가겠다는 겁니까?]

[집이 모두 타 버린 것으로 보아 가친도...!]

[뿐만 아니라 돼지도 몇 마리 타 죽었더군요.]

막비강의 말에 악소궁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네 말은 가친께서 살아 계신다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빨리 도주해야 하네.]

[조금 기다려 보십시다. 영존께서 왜 이런 계략을 세워야 했는지 저자들의 대화에서 알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막비강은 악소궁이 무사히 도주할 수 있도록 이마가 서로 싸우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마는 서로 상대방을 꺼려하는지라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고받을 뿐 싸울 의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신마! 설마 저 어린 놈과 일행은 아니겠지요?]

천수인마의 말에 낙성신마는 막비강과 악소궁을 힐끗 돌아보고 대답했다.

[노부는 악불령을 만나러 왔을 뿐 저 녀석과는 아무 관계도 없소.]

천수인마는 안도하며 다시 물었다.

[신마는 무슨 일로 악불령을 만나려 하시오?]

[늦게 얻은 딸내미의 괴질(怪疾)을 치료하기 위해서요. 보아하니 인마도 악불령을 만나러 온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오?]

낙성신마가 되묻자 천수인마는 소리장도 강용을 가리켰다.

[노부의 제자가 당년에 악불령에게 굴욕을 당했기에 빚을 갚아주기 위해 찾아왔소.]

낙성신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열흘 전 노부는 아랫사람을 통해 예물을 주며 악불령을 초빙했었소. 이런 사정으로 악불령은 현재 노부의 빈객이 된 상태니 인마는 그를 너무 난처하게 만들지 마시오.]

막비강이 옆에서 손뼉을 치며 말을 받았다.

[옳소. 사람[]은 마땅히 신()에게 양보해야 하오.]

천수인마가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애송이놈! 잠자코 있지 못할까?]

이어 그자는 다시 낙성신마를 돌아보았다.

[악불령이 집에 불을 지르고 줄행랑을 친 것은 신마가 그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군. 하지만 그의 무남독녀가 여기 있으니 이 계집만 잡아 두면 그가 아무리 멀리 도주해도 걱정할 게 없소.]

[누가 악불령의 무남독녀요?]

낙성신마가 눈을 번뜩이며 돌아보았다.

[애송이 뒤에 있는 계집이 바로 악불령의 외동딸 악소궁이란 계집이오.]

천수신마의 말에 낙성신마는 준엄한 표정으로 악소궁에게 말했다.

[악소궁! 이쪽으로 오너라!]

그러자 악소궁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려 했다.

막비강은 얼른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가면 안 됩니다, 누님.]

[잠깐!]

천수인마도 급히 낙성신마에게 말했다.

[노부는 악가 계집을 잠시 신마에게 양보하여 악불령이 영애의 병을 치료하게 하겠소. 그러니 영애의 병이 완쾌되면 그 계집을 석방하지 말고 노부에게 넘겨주시오.]

낙성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리하리다!]

악소궁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막비강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끼어들었다.

[당신네들끼리 함부로 결정하지 마시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겠소.]

[낄낄낄....]

낙성신마가 괴소를 터뜨리며 막비강을 훑어보았다.

[어린 녀석이 패기가 대단하구나! 하지만 너는 너무 늦게 세상에 태어난 탓에 일선(一仙), 이불(二佛), 삼도(三道), 사마(四魔), 오기(五奇), 육요(六妖), 칠절(七絶)의 이름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오기, 육요, 칠절은 들어 봤지만 일선, 이불, 삼도, 사마는 또 어떤 자들인가?)

막비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낙성신마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일선(一仙) 음양선옹(陰陽仙翁)은 은거해 버렸고 이불(二佛)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삼도(三道) 역시 오래전 부터 강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당연히 당금 무림에서 우리 사마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 사마 중 이마(二魔)가 이곳에 있는데도 네놈은 큰소릴 치느냐?]

막비강은 상대방이 천하오기를 다섯 번째 서열에 두자 내심 놀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오만한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은 한 사람을 빠뜨렸소. 마땅히 나 일룡(一龍) 천면신룡도 서열에 끼워야 했소.]

낙성신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부는 천면신룡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다.]

백독서생은 막비강의 일장에 격중되어 쓰러졌다가 지금까지 운기조식을 하여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운기조식하면서도 세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었는지라 몸을 일으키며 참견을 했다.

[저 어린 놈은 악불령의 기명제자이며 또한 우주도철의 양자이기도 합니다. 본명은 막비강이고 별명은 천면신룡입니다.]

그 말에 낙성신마가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렸다.

[껄껄껄, 악불령의 기명제자라면 더욱 놓아줄 수 없지.]

막비강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내가 여길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악 누님을 여기 두면 너희들이 행패를 부릴 것이 뻔하므로 먼저 누님부터 보낸 다음 다시 얘기를 하겠다.]

낙성신마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노부는 너희 둘을 모두 잡아 두겠다.]

막비강은 냉랭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날 잡아 두고 싶으면 어디 잡아봐라. 그러나 악 누님은 연약한 아녀자니 손대지 마라!]

낙성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마라. 누구든지 그녀에게 손을 대면 노부가 가만두지 않겠다.]

[남아 일언 중천금이다.]

막비강은 이렇게 말한 후 악소궁에게 전음으로 속삭였다.

[누님을 숲 속으로 던져 넣을 테니 제 걱정은 말고 전력을 다해 도주하십시오.]

악소궁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 평범한 자신은 이곳에 남아봤자 막비강에게 짐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때문이다.

흉사들은 막비강이 악소궁과 전음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지만 몇 마디 당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버려두었다.

[가십시오.]

그런데 막비강은 갑자기 악소궁의 몸을 번쩍 들더니 옆의 숲 속으로 힘껏 던졌다.

쐐액!

막비강이 전력을 다해 던진지라 악소궁의 풍만한 교구는 마치 유성처럼 숲 안쪽으로 날아들어갔다.

그것을 본 낙성신마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 감히 노부 앞에서 속임수를 써?]

그자는 분노하여 외치며 숲으로 날아드는 악소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핫하하! 노마의 상대는 나란 걸 잊었나?]

막비강은 대소를 터뜨리며 날아올라 쌍장을 밀어냈다.

[애송이놈! 죽고 싶으냐?]

대노한 낙성신마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마주 일장을 후려쳤다.

퍼펑!

다음 순간 막비강의 장력과 낙성신마가 쳐낸 장력이 충돌하며 요란한 폭음을 일으켰다.

쐐액!

헌데 서로의 장력이 부딪히는 순간 막비강의 몸은 쏘아진 화살처럼 뒤로 날아갔다. 막비강은 낙성신마와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자의 장력을 빌어 현장에서 이탈한 것이다.

[!]

낙성신마는 자신이 상대방을 전송해준 꼴이 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 놈은 청구상인의 문인이다. 저놈에게 감쪽같이 속았구나!]

천수인마가 급히 외쳤다. 그자는 언 듯 막비강의 장심에서 허연 강기가 번뜩이는 것을 본 것이다. 장력에 자유자재로 강기를 실을 수 있는 신공은 청구상인의 치우강기 외에는 없다.

[빨리 추격합시다!]

쐐액!

천수인마는 즉시 경공신법을 전개하여 막비강의 뒤를 쫓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낙성신마도 이를 부득 갈며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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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붉은 머리띠를 한 도사가 되어 (3)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장군묵은 출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마다 가봤지만 무너져 내린 바위더미 위에는 볼 수 없었다.

그것들을 다 뚫고 나간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기주인가 뭔가 하는 자에 의해 모두 막혀버린 것 같소.]

장군묵은 현천록을 허공에서 한바퀴 빙글 돌린 다음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장이 들어온 곳은 어딘가?]

현천록이 말했다.

[제일 먼저 무너졌소.]

장군묵은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만약 허튼짓을 하려한다면 두 손부터 날려버리겠소.]

현천록은 입을 삐쭉했다.

[내겐 그런 능력도 없소. 당신이 믿을 지는 몰라도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나도 꼭 알고 싶은 것들이오.]

장군묵이 묵묵히 현천록을 보다가 말했다.

[도장이 지난 세월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옥황빙서가 말해주는거요?]

현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진양진인은 팔십년 전부터인가 옥황신전에 들어가 옥황사자가 되었소. 삼년 마다 한 장식의 옥황빙서를 적임자에게 전해주는 역할이었소.]

현천록이 순순히 대답해버리자 장군묵이 어리둥절하는 표정이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하지만 옥황신전이 어디있는지 또 뭐하는 곳인지 물으면 할 말이 없소. 나도 아는 게 없기 때문이오.]

장군묵이 물었다.

[옥황빙서는?]

[그놈의 옥황빙서는 진양진인이 당신네 아홉째에게 줬소. 목숨을 요구하는 대가로.]

현천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자기가 진양진인인데 남의 이야기하듯 하는 말이니까 언 듯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홉째? 아홉째를 만났단 말이오?]

현천록이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을 거요.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않으면 결코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도 들을 수 없을 거요.]

장군묵은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함부로 하면 현천록이 또 어떻게 나올지 몰라 잠시 보고 있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이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오. 조금 긴 이야기도 될 수 있소. 교활한 늙은 도사와 호기심 많고 해보고 싶은 것 많은 철부지 소년의 이야기요.]

장군묵은 호기심이란 말에 깊이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기심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힘이지.]

현천록이 말했다.

[당신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소. 한마디 물어보기 위해서 삼년을 기다리는가 하면 또 한 마디 물어보기 위해서 흉흉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한마디 물어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으니 말이오.]

장군묵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당연하지 않은가? 결과가 나온다면 백년도 기다리고 목적을 위해서면 만번이라도 싸울 수 있지. 하물며 그냥 두어도 언젠가는 죽을 인간을 죽이는 것 따위가 뭐 어떴단 말인가?]

현천록이 칭찬하며 말했다.

[정말 호탕하오. 대장부는 마땅히 그래야 할 거요. 당신은 멋있는 사람이오. 나를 죽이려 들지만 않는다면 말이오.]

장군묵이 냉소하며 말했다.

[나는 사람이 귀찮을 뿐이지. 사실 죽이는 것도 귀찮지. 하지만 그냥 두는 것이 더 귀찮을 때는 약간 덜 귀찮은 쪽을 택하오. 그쪽이 바로 죽이는 쪽이지.]

현천록이 안도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겠소.]

장군묵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천록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중원 어딘가에 칼이나 검, 방패, 창 따위를 잘 파는 꼬마가 있었소. 상당히 수완이 좋아서 단골 손님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소. 그런데 어느 겨울날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소.]

현천록이 힐끗보니 장군묵은 이야기에 끌리는지 몸을 현천록 쪽으로 약간 기울이고 있다.

현천록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꿈은 참 빨리도 이루는구나. 되고 싶은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했더니, 시체도 되어보고 순찰사자노릇도 해보고, 사기꾼 노릇에 퉁소쟁이까지 되었다가 도사가 되는가 했더니 이제 이야기꾼이 되는구나. 그래 멋대로 되라. 언젠가는 다 정리가 되겠지.)

재미가 없지는 않다.

자기 속에 얼마나 많은 모습이 있는지, 아니면 자기 속에 있는 것은 하나인데 아직 굳어지지 않아서 어떤 형태로든 상황에 맞춰서 변하는 것인지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현천록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자기의 이야기였다.

[지독한 노인이 하나 찾아왔는데 자기가 가진 검을 팔려고 했소. 검은 무당파의 진무검보다 못하지 않은 보검이었소. 하지만 다른 사람이 쓰기는 어렵고 그 노인의 몸은 딱 그검을 쓰기에 알맞았소. 몸과 검이 서로 닮아있었던 거요. 나는 아주 싸게 사려고 했소. 노인은 그걸 되사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하느냐고 물었소. 나는 그검을 다시 사려면 판 가격의 칠백배를 내야 된다고 말했소.]

장군묵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무 비싸군.]

현천록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비싸지 않았소. 오히려 내가 단단히 당했으니까?]

[도장이?]

장군묵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현천록은 급히 말을 바꾸었다.

장군묵은 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빨려들고 있는 중인데 흐름을 끊으면 산통도 깨어진다.

[그 꼬마가 당했단 말이오. 노인은 한푼도 받지 않고 검을 팔았소. 황당한 노릇이었지. 한푼도 받지 않았으니 칠백배 아니라 만배라도 똑같지 않소? 그냥 그 노인이 와서 다시 달라고 하면 나도 그냥 줄 수 밖에 없으니까. 꼬마는 그때서야 후회했소. 그럴 줄 알았다면 보관료를 아주 비싸게 책정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소.]

장군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현천록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 노인은 단서까지 달아놓았소. 검을 잃어버리거나 하여 자기에게 되팔지 못할 때에는 꼬마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소. 꼬마는 검을 들고 주인에게 가서 소상히 다 고했소. 주인은 그 검을 곰곰히 보고는 고독마검이라고 했소.]

장군묵이 코웃음을 쳤다.

[고독마검 불이태가 아직 살아있었군.]

현천록이 물었다.

[고독마검은 어떤 고수요?]

장군묵이 말했다.

[칠검동(七劒洞)의 제사검(第四劒)이지. 그 사이에 순위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만.]

현천록이 말했다.

[칠검동이라는 데도 있었군. 하여간 일은 그날 터졌소. 꼬마가 주인에게 고하고 자기 방으로 가는데 갑자기 눈 앞에 하얀 손바닥 하나가 보이지 않겠소? 그리고 꼬마는 정신을 잃어버렸소.]

장군묵이 말했다.

[그건 풍허객의 소월심인장(素月心印掌)이겠군. 상처도 없이 그냥 정신을 잃게 만들지.]

현천록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마 그럴거요. 꼬마는 맞은 것 같지도 않고 다친데도 없었으니까. 하여간 풍허객이란 사람이 나타났소. 그 꼬마를 제자로 삼겠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그만 꼬마가 갑자기 죽고 말았소.]

장군묵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풍허객이 죽였소?]

현천록은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소. 저절로 고개를 뒤로 휙 젓히며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죽어버렸소.]

장군묵의 얼굴이 굳어지고 그의 눈이 현천록을 빤히 현천록을 쳐다보고 있었다.

현천록은 장군묵이 그런 눈빛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건 구장심조의 첫 번째 껍질이 깨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한데 죽었으되 죽은 건 아니었소. 꿈인지 생신지 산건지 죽은건지 꼬마는 다시 정신을 차렸소. 삼년이 지났다고 하고, 온몸이 새까만, 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꼬마를 반겼소. 그 여인 이름이 아마 보초였을 것이오.]

순간 현천록은 목이 꽉 막혔다.

장군묵이 한손으로 현천록의 목을 쥐고 높이 치켜들며 말했다.

[생사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무당파 제자는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만 이제 그 맹세를 깨뜨릴 수도 있다.]

장군묵의 음성은 아주 무거웠고 숨이막힐 듯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현천록의 장군묵의 두 팔을 잡고 매달리며 겨우 말했다.

[이야기는 아직 남았소. 가만히 기다리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다 듣게 될거요.]

장군묵은 다시 그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조금전처럼 즐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검의 자루를 은근히 만지면서 허튼짓을 하지말라는 위협적인 행동도 포함되어있었다.

현천록은 한숨을 쉬었다.

장군묵은 필요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그 꼬마는 죽지 않는, 아니 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소. 구장심조라는 무공이면서도 아니고 아니면서도 무공인 이상한 힘 때문이었소.]

장군묵의 입이 실룩였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현천록이 계속 말했다.

[꼬마는 보초라는 분에게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생사탄의 비밀과 구장심조의 진정한 뜻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나다닌다고 들었소. 그말을 듣자마자 꼬마는 자기도 그런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았소. 그러나 그는 그 이전에 먼저 알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소. 자기 앞에 펼쳐질 운명을 믿고 있었던 것이기에 그는 일단 좀더 많이 알기로 작정했소.]

장군묵은 현천록이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자기네 아홉째의 일을 소상히 알고 있는지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다면 생사탄의 사람을 어떤 수단으로도 말하게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호기심이 걷잡을 수없이 피어올랐지만 현천록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천록이 계속 말했다.

[꼬마는 세상에 다시 나왔다가 일곱째를 만났소. 그리고 그날 밤에 현무호의 야경을 구경하다가 퉁소소리에 이끌려 계명사 활몽루로 갔소. 활몽루에는 어떤 도사가 퉁소를 불고 있었는데 그다지 좋은 인간이 아니었소. 그 때문인지 꼬마보다 먼저 일곱째가 그 도사를 혼내주려 했소. 한데, 도사가 요상한 수법을 부려서 활몽루를 사라지게 했소.]

장군묵의 눈에서 형형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현천록은 그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말했다.

[꼬마는 활몽루와 함께 그들이 사라져버리자 재빨리 성안으로 달려가 퉁소를 하나 구했소. 그리고 현무호 가운데 섬에서 퉁소를 불었소. 그 도사와 똑같은 곡이었소. 이윽고 허공에서 갑자기 도사만 나타났소. 호수에 떨어졌는데 퉁소소리에 이끌려 꼬마가 있는 쪽으로 나왔소. 꼬마는 도사를 포로로 잡았소. 그도 도사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었기 때문이오.]

꿀꺽!

장군묵이 침을 삼켰다.

현천록은 계속 말했다.

꼬마가 도사를 데리고 자금산의 동굴 속에 숨은 일과 그 도사와 내기를 한 일, 그리고 어떻게 태극혜검을 배우게 되었고 어떻게 암습을 당했으며 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그래서 그 꼬마는 졸지에 빨간 머리띠를 맨 도사가 되어버렸던 것이오.]

장군묵이 현천록의 손목을 덮썩 잡았다.

현천록은 가만히 있었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왼손을 보며 소리쳤다.

[미장! 정말 아홉째 너구나!]

현천록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묵심환이 나타나고 있었다.

현천록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나라고 하지 않았어요?]

장군묵은 화를 누르지 못하고 발로 땅을 굴렸다.

쿠웅!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동굴 전체가 울렸다.

[그 교활한 도사놈이 이런 짓을 꾸미다니! 아직 멀리 가진 못했겠지.]

현천록이 말했다.

[내 몸을 봐요. 남의 몸도 이렇게 바꿔버리는데 자기가 변신하는 건 더 쉽겠지요. 어떻게 알아보고 찾는단 말입니까?]

장군묵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네 몸에 펼쳐진 수법은 나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현천록이 놀라며 말했다.

[그럼 계속 이대로 있어야 된단 말예요?]

장군묵이 힐끗보며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허허허허!]

현천록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변신을 하자고 했는데 너무 기가막힌 변신을 해버렸다.

빨간 머리띠를 맨 늙은 도사가 되어버렸다.

그때 펑펑! 하는 장력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강맹한 장력인지 현천록과 장군묵이 있는 곳까지 바람이 확 밀려왔다.

[이 미친 중놈아! 죽으려면 곱게 죽지 왜 동굴은 무너뜨리려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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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千 世 秘 洞

 

 

 

천목산(天目山).

우뚝 솟은 거대한 산봉 위에 커다란 분화구가 있다.

이 분화구의 모양이 마치 눈()과 같이 생겼다.

그 때문에 천목(天目)이라는 산명(山名)이 생겼다.

또한, 이 천목산은 거대한 준봉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동쪽의 산봉을 동천목(東天目)이라 하고 서쪽의 산봉을 서천목(西天目)이라고 부른다.

동천목의 서쪽 산록.

드넓은 산록의 분지에 한 채의 거대한 장원이 세워졌다.

이곳은 그 옛날 천세문(千世門)이 있던 곳에서 십여 리밖에안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인적이 없는 심산.

자연히 많은 의혹의 눈길이 번뜩였다.

특히 일단의 무리들은 장원의 주위를 배회하여 감시의 눈길을 번뜩였다.

그러나, 장원의 건립에 관부가 개입하자 무림인들은 관가의 충돌을 의식하여 장원에 접근하지 못했다.

특히 때때로 절강성주(浙江省主)가 직접 현장에 나타나 시찰하며 이 장원이 황실의 요인을 위해 지어지고 있다고 알려지자 장원 주위에서 무림인들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해 늦가을.

드디어 장원은 완성되었다.

, 장인들이 물러가고 근 백여 명의 하인과 사녀들이 막대한 량의 짐과 함께 장원에 도착했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따각따각

한 대의 사두마차가 장원으로 통하는 석도(石道)에 나타났다.

마차에는 중요한 인물이 타고 있는 듯 수십기의 관병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곧 마차는 장원 문앞에 이르렀다.

장원 문 앞에는 백여 명의 남녀들이 시립해 있었다.

사두마차는 열려진 장원 문 사이로 달려들어 갔다.

사두마차와 관병들이 들어가자 장원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마차는 장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한 채의 전각 앞에 멈추어 섰다.

끼이익!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사르륵

비단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이십대 후반의 여인이 내려섰다.

날아갈 듯한 궁장을 곱게 차려입은 절세미녀.

그녀는 바로 화희(花姬)였다.

"조심하시옵소서."

화희가 손을 내밀자 그녀의 섬섬옥수를 의지하여 한 명의 소년이 내렸다.

물론 신궁태자(神弓太子) 철문영이다.

화희는 철문영을 부축하여 전각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물러가거라. 부를 때까지 아무도 접근시키지 말도록."

화희가 조용히 시녀들에게 명했다.

"."

시녀들은 깊이 머리를 조아리고는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시녀들이 물러가자 화희는 문을 닫았다.

"여기가 맞지?"

탁자에 기대어 서 있던 철문영이 벽에 기대어 선 침상을 가리켰다.

", 틀림없사옵니다. 이 침상 밑으로 천세비동과 연결되는 밀로가 있습니다."

화희의 대답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선생, 선생의 심원을 헛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철문영이 중얼거렸다.

화희는 그윽한 시선으로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피곤하실터이니 오늘은 그냥 쉬시옵서서."

화희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선 한번 돌아보겠어."

철문영의 얼굴에 일별을 준 화희는 침상으로 다가섰다.

철문영의 성품은 무척 부드럽다.

그러나, 일단 마음이 정해지면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음을 화희는 잘 알고 있다.

끼기긱!

화희가 침상의 한 모서리를 돌리자 침상은 서서히 벽으로 들어갔다.

그와 함께 어두컴컴한 통로가 나타났다.

"이리 오시와요."

화희는 철문영을 부축하여 밑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어둑어둑했다.

그러나 곧 계단이 끝나고 두 사람 앞에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문고리를 좌로 삼회, 우로 오회 돌린 후 힘을 주어 밀어."

"알겠사옵니다."

화희는 철문영이 시키는대로 철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그것이 긑나자 철문영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큼직한 보석이 박힌 지환이 끼워져 있었다.

차알칵!

경쾌한 금속성이 일었다.

보석은 철문에 나 있는 홈에 적확히 박혔다.

끼익!

그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화희는 여기서 기다려. 혼자 들어갔다가 올게."

철문영이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화희는 미소를 지으며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

"혼자 보내드릴 수는 없어요. 첩신도 함께 들어가요."

"좋아, 같이 가봐."

철문영은 화희의 부축을 받으며 철문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의 안쪽은 무척이나 길고 긴 통로였다.

십여 자 간격으로 야명주가 박혀있어 걸어가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힘들지 않으시옵니까?"

일마 장 이상 걸었을 때 화희가 물었다.

철문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이 정도를 견디지 못해서야 어찌 일문을 짊어지고 나가겠어?"

두 사람은 다시 일마 장이 넘는 거리를 걸어갔다.

이윽고, 그들 앞에 제법 널찍한 석실이 나타났다.

석실에는 야명주가 환한 빛을 발하고 있어 매우 밝았다.

그러나, 석실에는 별반 시설이 없었다.

그저 큼직한 석상(石床)이 하나 덩그라니 놓여 있을 따름이었다.

"이 안쪽으로는 문주될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화희는 예서 기다려줘. 더 이상은 함께 갈 수 없어."

철문영의 말에 화희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어떤 변괴가 있을지 모르니 주의를 놓지 마시옵소서."

화희가 걱정스럽게 당부했다.

"하하, 걱정말아."

철문영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맞은편 석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도 그리 넓지 않은 통로였다.

그러나 그 통로는 짧았다.

십여 장을 걷자 또 다른 석문이 나타난 것이다.

끼이익!

석문은 별 어려움없이 열렸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다.

헌데, 그 석실에는 여러 군데로 통하는 석문들이 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왼쪽에 있는 석문으로 다가갔다.

 

조사전(祖師殿).

 

석문에는 금강지력으로 세치 깊이의 글이 적혀 있었다.

철문영은 조심스럽게 석문을 열었다.

"!"

석문을 열고 들어간 철문영은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곳은 길쭉한 장방형의 석실이었다.

석실의 한쪽으로 수십 개의 위패가 놓여 있으며 위패 뒤쪽으로 한 장씩의 화상이 걸려 있었다.

이는 역대 천세문 문주들의 위패인 것이다.

철문영은 우선 맨 좌측의 위패 앞으로 다가갔다.

 

<조사(祖師) 표운거사지위(飄雲居士之位)>

 

위패를 읽어본 철무니영은 위패 뒤의 화상을 바라보았다.

화상에는 선풍도골의 노인의 모습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철문영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위패를 향해 절을 올렸다.

"제 오십오대문주 철문영 삼가 조사님의 영전에 배알하나이다. 아울러 쇠잔해진 본 문의 부흥에 제자의 한 몸을 바칠 것을 맹세하나이다."

삼배 후 철문영은 엄숙히 축원을 올렸다.

비록 그가 지고무상(至高無常)한 부마(駙馬)의 신분이라지만 일단 천세문의 대통을 이어 받기로 한 이상 아랫 사람인 것이다.

철문영은 이어 각대문주인 위패에도 삼배씩 올렸다.

무공이란 익히지도 않은데다 본시 몸이 허약한 그인지라 절을 올리는 일도 큰 고역이었다.

그래서 오십삼대문주의 위패에 삼배를 하고났을 때 그는 허리가 부러지는 듯이 아파와 휘청거렸다.

위패는 오십삼대에서 끝이나 있었다.

철문영은 땀을 씻으며 조사전을 나섰다.

그는 조사전 옆의 석문으로 다가갔다.

 

<천세신전(千世神殿)>

 

두 번째 석실은 천세신전이라는 곳이었다.

석실로 들어선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대한 석실 전체가 수 많은 기진이물(奇珍異物)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개성을 살만한 가치를 지닌 보주(寶珠)들이 지천으로 뒹굴고 있다.

또한 속세에서는 천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영약(靈藥)들이 수도 없이 쌓여있다.

특히,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병기(兵器)들이었다.

천세신전에 비장되어 있는 병기들은 하나같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신병이기(神兵異器)들이었다.

그 중에 무림천년기인에 오른 열두 명 기인들의 병기도 있었다.

천인검(天刃劍), 옥령신필(玉靈神筆), 승천마라도(昇天魔羅刀) 등이 그것이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기진이보들이 쌓여 있었다.

피독주(避毒珠), 피수주(避水珠), 천참의() 등등 그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황궁(皇宮)의 보고가 무색할 지경이군."

철문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는 전에 황궁의 보고룰 구경해본 적이 있었다.

헌데 천세신전을 황궁의 보고에 조금도 못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또 뭐지?"

돌아 나오려던 그는 여러 가지 신병이기(神兵異器)들 사이에서 보퉁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상한 물건이군."

보통이를 펴본 철문영은 고개를 갸웃 했다.

보퉁이는 하나의 커다란 피풍이었다.

헌데 이상한 것은 피풍의 안쪽에 종이같이 얇고 가벼운 면철조각들이 차곡차곡 접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한 장의 양피지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창룡철익(蒼龍鐵翼),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기인 창룡선인(蒼龍仙人)께서 사용하시던 이기(利器)이다. 이의 사용법은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현문편(玄門篇)과 창룡선인의 무서(武書)인 창룡결원(蒼龍訣源)에 기록되어있다.>

 

"창룡철익(蒼龍鐵翼)? 이것으로 하늘을 날기라도 했단 말인가?"

철문영은 피식 웃으며 창룡철익을 내려 놓았다.

그는 천세신전을 나왔다.

그다음의 석문은 또 다른 통로였다.

그 통로를 지나니 방대한 석실이 나타났다.

"! 이것이..."

석실로 들어서던 그는 입을 딱 벌렸다.

벽면에 수십 개의 서가(書架)가 기대어 서 있다.

그리고 각 서가마다 다섯치 두께의 양피지로 만든 책자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 이것이...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철문영은 탄성을 질렀다.

그렇다.

서가에 꽂혀있는 수백, 수천의 책자들 그것 전체가 바로 구류만상경인 것이다.

무림삼대기서(武林三大奇書) 중 하나며 천세문 이천년의 심혈이 깃든 대 저술서인 것이다.

"말로는 들었으나 이토록 엄청난 분량일 줄이야..."

그는 탄성을 연발하며 그중 한권을 뽑아 들었다.

 

<현문편(玄門篇), 권십일(卷十一)>

 

표지에는 구류(九流)중 현문편인 열한번째 가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겉장을 넘기니 이시대 무공의 흐름에 대한 논평이 적혀있고 특이한 무공에 대한 지적이 적혀 있었다.

"참으로 천고에 다시 없을 대역사(大役事)구나."

철문영은 책자를 다시 꽂아 놓았다.

서가의 낮은 편에는 수천권의 비급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거기에는 하오문의 졸렬한 수법이 적힌 졸서에서 천하를 뒤흔들던 기인들의 무공비급들이 뒤섞여 있었다.

방대한 량의 비급들을 훑어본 그는 맞은편의 석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도 또한 서고(書庫)였다.

그러나, 그곳의 규모는 구류만상경이 있는 석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넓이도 수십배는 되려니와 장서의 량도 족히 백만이 넘을 듯한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름만 들었던 귀중한 고서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군. 천하의 모든 책자를 읽어보았다고 자부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구나."

철문영은 들뜬 기색으로 서가 사이를 걸었다.

본시 책을 좋아하던 그 인지라 다른 어떤 보물보다도 고서들이 좋았다.

한 동안 서고를 돌던 그는 다음 석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작은 석실로서 석실 한 쪽에 백여권의 비급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상한걸... 선생의 말대로라면 수십 명의 군웅이 이곳에 난입했다고 했는데 어찌 이리 깨끗할까?"

철문영의 눈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과연 석실은 너무도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었다.

전혀 군웅들이 난입했던 흔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무림천년기전들이 아닌가?"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렸다.

서가에는 만든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비급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누가 있단 말인가?"

철문영은 깨끗한 태령진해를 빼어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크크크..."

돌연, 음산한 웃음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였다.

"... 누구?"

철문영은 등골이 오싹하여 홱 돌아섰다.

"!"

다음 순간 철문영은 숨넘어가는 듯한 신음을 토하며 비칠비칠 물러섰다.

어느사이엔가, 한 명의 괴인이 철문영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한 팔은 끊어져 나가고 장발이 허리까지 드리웠다.

게다가 장발사이에서 맹수의 그것같은 소름끼치는 눈길이 철문영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이 신선한 피냄새, 오늘은 포식할 수 있겠는걸."

괴인이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귀하는 누구요?"

철문영은 섬칫하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쿠웅

그러나, 그의 등은 이내 벽에 닿았다.

"크크크..."

괴인은 흉칙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다음 순간, 철문영은 거대한 흡인력에 끌려 괴인의 손으로 빨려갔다.

그리고 다음순간 그는 전신이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흐흐흐..."

괴인은 입맛을 다시며 철문영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 이럴 수가..."

그러나, 이내 괴인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어 그는 철문영의 손을 들어 보았다.

철문영의 오른 손에는 기전주가 준 지환(指環)이 빛을 발하며 끼워져 있었다.

"... 이럴수가... 천라태양신맥이 이 아이에게서 나타나다니... 기저니주도 이 아이가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아와 만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텐데... 어쩌자고 이 아이를 다음대의 문주로 택했단 말인가?"

괴인은 정신이 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점차 그의 눈빛은 어떤 결의의 빛으로 변해갔다.

"기전주가 사람을 보는 눈은 틀림없다. 이 아이가 결코 단명할 상은 아니었을 것이라 선택했을 것이다."

괴인의 눈빛이 강렬하게 변했다.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 절맥이라고 하면 절맥이겠으나 일단 치유되면 고금제일인이 될 수 있는 신맥이 된다. 좋다 이 아이에게 천세문의 운명을 걸어보자!"

괴인은 철문영을 안아들었다.

휘익!

그는 바람과 같이 석실을 날아 나갔다.

곧 그는 두 개의 크고 작은 연못이 있는 광장에 이르렀다.

이어 그는 철문영을 내려놓고 다시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괴인은 얼마 안되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봉서와 옥함이 들려 있었다.

"천세문의 운명을 네 녀석에게 맡긴다."

괴인은 봉서를 내려놓고 옥함을 열었다.

옥함에는 하나의 작은 옥병 하나와 괴이한 형태의 붉은 삼왕(蔘王)이 들어 있었다.

옥병에는 우유빛의 액체가 반쯤 들어 있었다.

그리고 삼왕(蔘王)은 마치 피에 담근 듯이 시뻘건 모양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신효한 영약인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가 당분간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의 발작을 지연시켜 줄 것이다."

괴인은 옥병을 열었다.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

천지간에 가장 신효한 영약 중 하나이다.

한 방울만 복용해도 만병이 낳고 만독을 풀 수 있으며 무림인이 복용하면 지고무상한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액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극음의 영약이라는 점이다.

대지의 정기가 수만 년에 걸쳐 물과 같은 형태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다만 몇 년이라도 천라태양신맥의 발작을 지연시킬 수는 있는 것이다.

향긋한 향기가 서늘한 한기를 싣고 광장을 메웠다.

반병의 만년지령유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철문영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독혈용형삼(毒血龍形蔘)! 무쇠라도 녹이는 극독을 지녔으나 이제 너의 체질을 무쇠와 같이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괴인은 서슴없이 혈삼을 들어 터뜨렸다.

주르르

핏빛의 붉은 액체가 철문영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반인이라면 독혈용형삼이 닿기만 해도 한줌 혈수로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문영은 미리 만년지령유를 복용한 상태다.

아무리 강한 독성을 지닌 독혈용형삼이라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 독혈용형삼은 빈 껍질만 남았다.

괴인은 독혈용형삼의 껍질을 자기 입에 털어넣었다.

"천하에서 가장 영험한 지심영천(地心靈泉)이 약효를 신속하게 흡수시킬 것이다."

괴인은 철문영을 작은 연못에 담그었다.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철문영을 주시했다.

철문영의 안색은 점차 붉게 변해갔다.

그러다가 이내 우유빛의 뽀얀색으로 변해갔다.

"흐흐... 되었다. 이제 화골독천(化骨毒泉)만 견뎌내면 탈태환골(脫胎換骨)하게 된다."

일다경 정도 흐른 후 괴인은 철문영을 지심영천에서 꺼내어 옆의 새파란 물이 고인 웅덩이에 담그었다.

푸시식

그러자, 철문영의 전신에 걸쳐있던 의복이 그대로 녹아들고 말았다.

실로 지독한 독기였다.

이것이 바로 뼈조차 녹인다는 화골독천(化骨毒泉)인 것이다.

파파팍

철문영의 피부도 견디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괴인의 눈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철문영의 피부 및에서 새로운 살갗이 돋아났다.

그러자 갈라졌던 피부는 뱀의 허물과 같이 떨어져 나왔다.

파파팍

그리고, 새로 돋아난 피부도 다시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철문영의 전신에서 거무스름한 고름같은 것이 배어나왔다.

그의 전신 심맥에 끼어있던 불순물이 녹아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아홉 번이나 허물이 벗겨지자 더 이상 피부가 갈라지지 않았다.

"휴우"

괴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철문영의 피부는 마치 갓난아이의 그것같이 매끄러워졌다.

아울러 허약하기만 하던 그의 신체는 제법 튼튼한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흐흐... 이녀석이 강호에 나가면 꽤나 많은 계집아이들을 울리겠군."

괴인은 나직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쏴아

철문영의 몸은 무형의 경기에 들어올려져 화골독천에서 나왔다.

본시도 여인이 무색할 지경의 영준한 철문영이었다.

게다가 한 번 탈태환골하자 이제는 사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준하게 변했다.

아니, 차라리 아름답다고 해야 어울릴 모습이었다.

소년을 바닥에 누인 괴인은 그 옆에 앉아 운공에 들어갔다.

위잉위잉

괴인의 몸에서 검붉은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자 그 광채는 괴인의 머리 위에서 구()의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덩어리는 완전히 고형(固形)의 물체로 변하였다.

그 반면 괴인의 신색은 창백하게 변하여 비오듯 땀을 흘렸다.

이어 괴인이 천천히 쌍장을 들어 철문영 쪽으로 밀어냈다.

스스스

그러자, 검은 경기의 덩어리는 술술 끌려 철문영의 콧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지금, 괴인은 자기 일신에 쌍혀있던 한 가지 절세기공(絶世奇功)을 철문영에게 옮겨주고 있는 것이다.

스스슥!

이윽고 검붉은 기체는 완전히 철문영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

괴인은 힘없이 팔을 내려뜨렸다.

완전히 탈진한 기색이다.

"십이성의 묵혈파뢰강(墨血破雷)을 완전히 전해주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묵혈파뢰강을 네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괴인은 허탈하면서도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허허... 가는 마당에 한 모금 진원진기(眞原眞氣)라도 갖고 갈 수야 없지 않는가?"

괴인은 철문영의 기해혈(氣海穴)에 장을 붙였다.

이 방법은 공력을 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만 주화입마의 가능성도 크므로 좀체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다.

점차, 괴인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그는 지금 자신의 원영진기(元嬰眞氣)까지 끌어올려 철문영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원영진기란 무림인의 생명을 뜻한다.

연공을하여 얻을 수 있는 공력이란 모두 이 원영진기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철문영의 전신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윽고, 괴인의 안색이 검게 변하며 괴은은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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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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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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