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5

 

              피로 물들다. (1)

 

 

 

이매봉은 양피지로 묶인 얇은 비급을 넘겨보았다.

겨우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글씨가 작기는 하지만 한번 읽으면서 그녀는 비급 속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을 다 기억했다.

[휴우! 그럼 그렇지! 역시 별 것 아니었어! 금강불괴를 깨뜨리는 것보다도 훨씬 쉽잖아.]

이매봉은 어깨에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심하려면 한 번 쯤은 실험을 해봐야겠지.]

이매봉은 동의를 구하는 듯 고개를 숙여 한 사람을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정말 키가 작은 소인(小人)이 무릎을 꿇고 않아있었다.

얼핏보아서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정교한 밀랍인형 처럼 보였다.

앉아있는 키는 한자가 조금 안되니 선다한들 한 자 반이나 될까말까할 정도다.

그러나 여타 난쟁이들과는 확연하게 달란다.

어느 하나가 기형적으로 크거나 작지 않고 사지는 비례를 잘 이루고 있었으며 오관이 반듯하여 멀쩡한 사람이 그대로 작게 비쳐보이는 것 같과 마찬가지였다.

얼굴로 짐작해볼 때 소인의 나이는 스물 다섯 쯤 된 것 같다.

이매봉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상관숭(上官崇)! 그렇지 않아?]

소인이 말했다.

[속하 상관숭은 오직 명에 따를 뿐 어떤 판단도 하지 못합니다.]

이매봉이 깔깔 웃었다.

[멍청이! 그럼 조용히 따라와.]

상관숭은 나직히 존명을 외쳤다.

키가 보통사람과 똑같다면 상당한 미남자 소릴 들었을 얼굴이다.

이매봉이 창밖으로 날아가며 말했다.

[일단 그녀석을 찾아야겠어.]

 

x x x

 

인시(寅時)가 지나면서 현무호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 둘씩 은밀히 호변에 모여들던 사람들은 묘시(卯時)가 되면서는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살기를 속으로 갈무리하며 서로 눈치만 살피면서 계명사를 힐끗힐끗 살피는가 하면 어떤 자는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수공을 펼치기도 했다.

동녘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호수 면에 어리는 물안개는 현무호를 용왕의 수정궁(水晶宮)처럼 보이게 했다.

땅은 아직 어둡지만 하늘이 먼저 밝아 온다.

그리고 부지런한 잡새들이 모이를 찾아 나는 소리가 들린다.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도 어언 삼백 여를 헤아릴 정도가 되었다.

한데 어느 순간,

 

--- 파앙!

 

어디서 터져나온 소리 때문인지 대기(大氣)가 문풍지처럼 진동했다.

아주 먼곳에서 들려온 폭죽소리 같기도 하고 바로 곁에서 터져나온 큰 소리 같기도 했다.

 

---파앙!

 

이미 경직되어버린 고막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저기닷!]

누군가가 소리치며 몸을 솟구쳤다.

 

---으하하하하하하!

 

미친듯한 웃음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는 곳에서 신기루처럼 한 채의 누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활몽루!

사라졌던 활몽루가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휘휘휙!

휙휙!

군웅들이 병기를 뽑아들고 활몽루를 향해서 날아갔다.

번득이는 검광과 살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다.

번쩍! 번쩍!

활몽루에서 한 거인이 허공을 밟고 걸어나왔다.

[미천한 것들!]

활몽루와 함께 사라졌던 일곱째 장군묵이었다.

[목을 바쳐라!]

장군묵은 고함치며 검을 휘두르는 자의 머리를 낭아봉으로 날려버렸다.

퍼억!

그자의 머리는 산산조각나서 흩어졌다.

[옥황빙서(玉皇聘書)를 내놔라!]

한 노인이 장군묵의 등에 일장을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벌써 장군묵의 왼손에 있는 낭아봉은 노인의 배와 가슴을 찢어발기고 있는 중이었다.

[으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를 끝으로 노인의 시체는 현무호로 떨어져 버렸다.

장군묵은 평지를 밟듯이 허공을 밟으며 걸어갔고, 다시 옥황빙서를 외치는 자가 창으로 장군묵의 목을 찔렀다.

장군묵은 사방은 물론이고 아래 위까지 몰려드는 군웅들로 인해 포위당했다.

[버러지같은 놈들!]

장군묵의 얼굴에 잔인한 웃음이 걸렸다.

창으로 그를 찔렀던 자는 두 개의 낭아봉에 찢어져 형체도 남기지 못했다.

참혹한 모습에 군웅들은 치를 떨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장군묵을 공격했다.

장풍과 검광이 풍우처럼 몰아쳤다.

그러나 장군묵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장군묵은 한줄기 바람처럼 군웅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사람들의 찢어진 살점들을 가득 물고 있는 낭아봉이 춤을 추고, 그가 스쳐간 곳에는 찢어져 버린 시체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낭아봉에 죽는 자들은 공포 외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고, 비명은 아직 살아있는 자들이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장군묵을 보고 질렀다.

죽은 자들의 피를 뒤집어쓴 거인 장군묵은 그 자체로 지옥에서 도망쳐나온 악귀같았다.

살신(殺神)이었다.

공포가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옥황빙서를 외치며 달려들던 자들은 콩튀듯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군묵은 이미 그들 모두를 죽이기로 작정한 듯 달아나는 자들부터 쫓아가 몸을 짓이겨 죽였다.

! !

[으아아아아!]

도망치면서 공포에 질려 고함치는 자들, 하지만 그 고함소리가 끝나는 순간에 그들의 목숨도 끝나고 있었다.

일각도 채 지나기 전에 현무호는 생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삼백여 시체들이 호수와 호변에 흩어져 있고 호수 물은 그들의 붉은 피가 흘러들고 있었다.

 

x x x

 

[소협은 능히 자기를 지킬 만한 무공을 지녔는가?]

진양진인이 속을 뻔히 짐작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현천록이 말했다.

[없습니다.]

다시 진양진인이 말했다.

[바람보다 빨리 달아날 수는 있는가?]

현천록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진양진인이 빙그레 웃었다.

[소협은 오늘 정오가 지나기 전에 죽을 것이네.]

진양진인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현천록이 흥미진진한 듯 눈을 반짝이며 쳐다본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활몽루를 보았다면 노도가 궁여지책으로 그곳에 가둔 마왕(魔王)도 봤을 것이네.]

현천록이 말했다.

[창허진인은 도장의 윗 어른이 아닌가요?]

진양진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노부 나이가 일백하고도 서른 두 살이네. 무당에 노도보다 더한 선배가 어디있단 말인가?]

현천록이 말했다.

[그럼 신선이 된 장삼봉 진인은 도장의 후배입니까?]

진양진인은 일순 말이 막혔다.

(이놈이 정말 만만찮구나. 은근히 내 욕을 하다니.)

진양진인은 다시 한 번 웃고 말했다.

[장삼봉조사께선 승천하시고 속세를 계시지 않으니 선배라고 할 수도 없네. 하여간 그자는 마왕이랄 수 있네. 여러 곳의 무공을 훔쳐 배웠으며 또한 나이를 짐작할 수없지. 더구나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쯤으로 아는 자네.]

현천록이 미소를 지었다.

진양진인이 계속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한 두 시간만 지나면 내가 만든 결계를 깨뜨리고 다시 뛰쳐나올 것이네. 집요하게 노부를 찾아올텐데 자네를 그냥 둘 리가 없지. 노부와 함께 낭아봉에 찢겨 죽고 말걸세.]

그는 득의만면하여 말했다.

[자네가 노도를 낚았으나 먹고싶은 어떤 요리도 하기 전에 우린 함께 죽는단 말이네. 노도야 살 만큼 살았으니 죽는게 뭐가 아쉽겠나만 자네는 허허허... 조금 억울하겠군.]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억울할 수도 있겠지요.]

진양진인이 얼굴을 굳히면서 말했다.

[결국 자네가 노도를 데려온 건 실수였네. 무슨 목적이 있었던 간에 결과는 이처럼 끔찍하게 나타날 테니까.]

현천록이 모닥불에 장작을 하나 더 던져 넣었다. 진양진인의 말에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진양진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네. 지금부터 서두른다면 우린 완전히 그 마왕의 손을 벗어날 수도 있네. 자네가 노도한테 묻고 싶은 건 그 후에 다시 의논하면 되지.]

현천록이 말했다.

[도장! 그럼 내기를 하나 하도록 합시다.]

진양진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 녀석은 역시 어리다. 상황을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철없는 소리만 하는구나. 하지만 지금은 노도가 너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으니 들어주마.)

진양진인은 한심하다는 듯이 탄식하며 말했다.

[어떤 내기인가? 우린 시간이 없네.]

현천록이 말했다.

[먼저 도장이 생각한 방법대로 한 번 해봅시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으로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데 걸겠습니다.]

진양진인은 껄껄 웃었다.

[노도가 이만큼 살았지만 자네처럼 명랑한 소년은 처음이네. 하지만 자네는 노도를 너무 모르고 있군. 노도는 계책을 생각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세.]

현천록이 말했다.

[도장이 실패하고나면 그때는 내 방법을 쓰도록 하지요.]

진양진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조건은 어떤지 한 번 들어보세.]

현천록이 웃으며 물었다.

[분명히 자신있겠지요?]

진양진인이 껄껄 웃고 말했다.

[노도가 입밖에 낸 건 모두 자신있는 것들 뿐이네.]

현천록이 말했다.

[도장이 이길 경우에는 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도장이 나을때까지 돌봐주겠습니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자네가 이길 경우에는?]

[내가 묻는 말이 어떤 것이든간에 무조건 대답해주십시오.]

진양진인의 얼굴이 미미하게 실룩거렸다.

현천록이 말했다.

[어쩌면 도장의 금기(禁忌)를 깨야하는 대답도 있을 것입니다.]

현천록의 눈이 그래도 과연 내기를 하겠느냐는 듯이 바라본다.

진양진인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방법도 없군. 노도는 오직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좋네.]

[맹세하십시오.]

현천록이 말했다.

진양진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노도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다 맹세일세.]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도장의 계책을 말해보십시오.]

진양진인이 자기 옆에 끌려져 있는 장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일은 단순하지 않네. 자네가 내 지시에 아주 잘 따라 주어야 하네.]

현천록이 말했다.

[필요하다면 따라야겠지요.]

진양진인이 말했다.

[그럼 저 입구부터 무너뜨리게!]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1

 

            벽화 속의 비밀

 

 

 

(방주라고?)

막비강은 들려온 함성만으로도 이번에 나타난 인물의 내공이 매우 정순함을 깨닫고 자세히 바라보았다.

새로 등장한 인물 역시 전신에 누더기 옷을 걸친 거지였는데 눈이 부리부리하고 구렛나루가 양쪽 뺨을 덮고 있어 아주 위맹한 인상을 풍기는 중년인이었다.

비록 이 인물의 나이가 금릉삼로보다 이삼십 살 가량 적어 보였으나 일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삼로를 전부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삼엄했다.

이 중년거지는 어깨에 여덟 개의 자루를 메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개방의 방주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당금 강남개방의 방주인 호면개(虎面丐) 도금(都金)이로구나!)

막비강은 상대가 누군지 알아보고 내심 긴장했다.

위맹한 인상의 중년거지가 바로 개방의 정통을 이어받은 강남개방의 방주 호면개 도금이었다.

호면개 도금은 강남개방의 제일대 방주였던 적족신개(赤足神丐)의 제자였다. 적족신개는 궁가방의 개파조사인 궁신 여불초의 사제였다. 그러면서도 개방의 방주로 지명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하지만 적족신개는 이십 년 전 의문의 실종을 당해 버렸다. 그 때문에 구결(口訣)로만 전해지던 개방의 숱한 진산절기가 실전되어 개방이 당금의 처지로 조락하는 이유가 되었다.

상대가 개방 방주임을 알아본 막비강은 암암리에 일신 내공을 모두 끌어올려 악전고투에 대비했다.

그때 호면개 도금도 두 눈에서 살벌한 광망을 발산하며 막비강을 훑어보았다.

[철 호법, 당신들은 무슨 일로 싸움을 하게 되었소?]

이어 그는 한쪽 옆에 시립해있는 철 호법에게 물었다.

[이 소악적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방주님!]

철 호법은 타구봉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을 굽히는 자세로 자초지종을 아뢰었다.

개방 방주 도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막비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의 어리고 무지한 점을 생각해 놓아줄 테니 돌아가거라!]

과연 일방의 방주다운 도량이다. 전후 사정을 들은 호면개 도금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쓸데 없는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내심 감탄한 막비강은 손을 맞잡아 도금에게 공수의 예를 올렸다.

[방주님의 넓으신 아량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이어 그는 곡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때 도금이 막비강을 불러 세웠다.

[본 방주가 한마디 분부해 두겠는데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라! 만약 다시 찾아오면 네놈의 다리뼈를 분질러 놓겠다!]

[!]

막비강은 차가운 코웃음만 날리고 곡구 밖으로 나갔다.

그는 청구단서를 취득하여 절세의 무공을 연성해야 하므로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해도 포기할 수 없었다.

보통 희세기진(稀世奇珍)은 심산유곡에 숨겨져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 청구단서는 거대한 비석 밑에 숨겨져 있고 또 거대한 비석은 개방의 분타 소재지가 된 것이다.

개방은 그들의 소굴 지하에 이런 비급이 숨겨져 있는 줄을 모른다. 그리고 막비강은 비록 알고 있지만 어느 구석에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막비강 혼자 힘으로 거지 떼들을 모두 내쫓고 자세히 수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곡을 나선 막비강은 높이 솟아있는 석촉대(石燭臺)를 바라보며 한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는 무슨 영감이 떠올랐는지 빙긋이 웃었다.

(그래! 그 수법을 써야겠다.)

곧 그의 모습은 대석비곡 입구에서 사라졌다.

 

***

 

막비강은 금릉의 시장통에서 남루한 의삼과 자루, 향촉(香燭), 지전(紙錢) 등을 샀다. 그리고는 새벽무렵의 어둠을 틈타 금릉성에서 나와 황량한 공동묘지로 향했다.

공동묘지에 도착한 그는 남산의성 악불령의 역용환을 사용하여 전신의 피부색을 바꾸고 머리도 흐트려 지저분하게 분장했다.

그리고 약물을 먹어 목소리까지 변하게 한 뒤에 남루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새로 만든 무덤 앞에 강장, 신녀비, 호로, 진주, 은자 등을 옷에 싸서 깊이 파묻었다.

아침이 되자 막비강은 다른 사람의 의심을 방지하기 위해 그 무덤 앞에 향촉에 불을 붙이고 지전을 태우며 한동안 우는 척했다. 그런 후에 해가 중천에 뜨자 무덤을 떠나 몹시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묘화문 쪽으로 걸어갔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올라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거지보다 더 더럽게 분장한 막비강은 어떤 부호가 사는 집 대문 옆에 깨진 그릇을 들고 서있었다. 영락없이 하인들이 보고 불쌍히 여겨 먹다 남은 찬밥이라도 주길 기다리는 거지의 행색이었다.

헌데 오래지 않아 그의 등뒤에서 음침한 일갈이 들렸다.

[어린 녀석아, 누가 너더러 이곳에서 걸식을 하라더냐?]

막비강이 고개를 돌려보니 말을 한 사람은 중년거지였다.

그는 거지들의 규칙을 잘 알면서도 고의로 모른 체했다.

[집안에 갑자기 변고가 생겨 며칠씩이나 밥을 굶었소. 당장 배고파 죽게 생겼는데 누가 시켜야지 걸식을 하겠습니까?]

그의 말에 중년거지는 이마를 찡그렸다.

[사정이 딱하게 되었군! 그래, 향주(香主)에게 인사는 했느냐?]

[향주가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향주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면 밥을 얻으러 다니지 못한다.]

중년 거지의 말에 막비강은 눈을 부라리며 항의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놈이 어디 대고 토악질이냐?]

중년거지가 눈을 부라리며 막비강의 뺨을 후려쳤다.

막비강은 따귀를 한 대 얻어맞자 즉시 울음을 터뜨리며 떠들었다.

[내가 내 밥을 얻어먹는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사람을 때립니까?]

그러자 약이 오른 중년거지는 세게 발길질을 하여 막비강을 바닥에 넘어지게 한 후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을 때려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절을 해라.]

두 사람이 울고 욕지거리를 하자 길 가던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을 했다.

중년거지가 만면에 노기를 띤 채 또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땅바닥에 누워 죽은 시늉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 나와 함께 향주에게 가자.]

[매를 맞으러 가잔 말이냐? 구경하는 여러분이 평을 해보십시오. 나는....]

!

막비강은 또 중년거지의 발길에 엉덩이를 차였다.

비록 이것은 그가 자초한 고육지계(苦肉之計)이지만 중년거지가 지나치게 흉악하여 막비강은 화가 치밀었다. 분노한 그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중년거지를 노려보았다.

중년거지가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네놈은 그래도 순순히 따라가지 않겠느냐?]

[왜 너를 따라간단 말이냐?]

[이놈이 끝내 기어올라! 오냐! 내 네놈을 때려죽이고 말겠다.]

중년거지가 주먹을 휘두를 때 막비강도 지지 않고 머리로 힘껏 상대방을 받아 갔다.

곧 두 사람은 한데 얽혀 싸움질을 했다. 물론 내공을 사용하는 무림고수들과 달리 그저 주먹질 발길질만 하는 저자거리의 치졸한 싸움질이었다.

막비강의 머리에 들이받힌 중년거지는 독이 올라 두 주먹으로 그의 등을 마치 북 치듯이 마구 두들겼다. 그때였다.

[멈추어라!]

갑자기 외마디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중년거지는 그 목소리를 듣더니 흠칫 놀랐다. 한 명의 풍채 좋은 늙은 거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오는 것을 본 때문이다.

[이거나 먹어라!]

막비강은 그 틈을 이용하여 머리로 중년거지를 받아 쓰러뜨리고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중년거지는 뒤로 벌렁 넘어졌다 일어나더니 나타난 노개를 향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제자가 그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그놈이 난폭해서... 보셨겠지만 그놈은 제자를 이런 꼴로 만들었습니다.]

노개가 차가운 코웃음을 날리고 냉랭히 말했다.

[! 홍삼(洪三), 너는 가는 곳마다 일을 저지르는구나. 빨리 분타로 돌아가지 못하겠느냐?]

노개는 홍삼을 쫓아 보낸 후 곧 막비강의 뒤를 따라 달려왔다. 노개의 발걸음은 늙은이 답지 않게 날렵했다.

[아이야, 잠시 걸음을 멈추어라!]

노개가 따라붙으며 말하자 막비강은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내 뒤를 쫓아오는 겁니까?]

[아이야, 네 이름은 무엇이냐?]

[하노대(何老大)라 부릅니다.]

[너는 나의 문하가 되고 싶지 않느냐?]

[할아버지는 누구죠?]

[나는 개방의 금릉삼로 중 범개선(范開先)이라고 한다.]

노개는 바로 어제 막비강과 한바탕 드잡이질을 한 바 있는 금릉삼로 중 범씨 성의 늙은 거지였다. 그의 별호는 청풍개(淸風丐)로서 금릉삼로의 우두머리였다.

청풍개 범개선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노부를 사부로 모시겠다면 본방의 절기를 전수하여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해주겠다.]

이거야말로 막비강이 바라던 전개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할아버지를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즉시 청풍개 범개선 앞에 큰절을 올렸다.

범개선은 포대에서 만두를 꺼내어 막비강에게 나누어주며 신세와 집안사정을 자세히 물었다. 막비강이 적당히 둘러대자 범개선은 정말인 줄 알고 그를 대석비곡으로 데려갔다.

 

개방 방주 호면개 도금과 금릉삼로의 다른 두 노개는 범개선이 한 명의 어린 거지를 데리고 들어오자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런 다음 어린 거지의 근골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는 양이(楊二)라 불리는 중년거지에게 막비강을 데려가 개방의 제반 의식과 규칙 등을 가르치게 했다.

막비강은 양이를 따라 방중의 선배 거지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는 도중 비석 아래의 구석구석을 유심히 살폈다.

원래 이 대비석은 산봉의 암석을 깎아 만든 것이라 비석 밑 부분이 모두 암석이며 구멍은커녕 조그만 빈틈도 없었다. 이런 곳엔 도저히 비급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막비강은 청구단서가 틀림없이 비석 밑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구단서를 찾을 수 있는 열쇠인 종이쪽지가 단호의 뚜껑 속에 그토록 은밀히 숨겨져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는 양이에게 하루종일 개방의 제반 의식을 배웠다. 하지만 고의로 우둔한 사람처럼 이것을 배우면 저것을 잊고 저것을 배우면 이것을 잊은 척했다.

화가 치민 양이는 혼자 나직이 투덜거렸다.

[범 장로께선 크게 실망하시겠구나. 네놈은 근골만 좋았지 기억력은 형편없으니 이래 가지고 무슨 무예를 배우겠느냐?]

 

* * *

어느덧 밤이 되었다. 그러자 곡내의 거지들이 분분히 밖으로 나갔다.

막비강은 곤혹을 금치 못하고 양이에게 물었다.

[밤에도 동냥을 하러 나갑니까?]

[모르면 주둥아리 닥치고 얌전히 있어라. 그들은 밖으로 나가 자칭 곡능천이라는 어린 망종을 잡기 위해 매복해야 한다.]

양이가 핀잔을 주었다.

[방주님도 어제 이곳에 난입하여 소란을 피운 애송이 놈이 혈검산장에서 용모파기를 돌려 찾고 있는 망나니 아들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아시고 포박하라 명을 내리신 것이다!]

막비강은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다.

(너희들의 계획도 고명하지만 나의 계책은 더욱 고명하다.)

그는 양이가 나가자 큰 포대를 두 장 끌어다 이불 대신 덮고 대비석의 큰 구멍 구석에 웅크리고 자는 척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 덮여 대석비곡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비석 밑의 석동도 비록 양면으로 맞뚫려 있지만 손을 내밀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때가 되었군!)

막비강은 살며시 포대자루를 젖히고 일어나 전신의 공력을 눈에 집중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사물이 희미하여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없이 주먹만한 돌을 주워 석벽과 지면을 가볍게 두드려 속이 빈 곳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는 한 칸의 석실을 모두 두드려 본 다음 석벽에 몸을 바짝 붙여 다른 석실에 가서 수색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가 석면을 거의 모두 두드려 보았지만 속이 빈 현상의 소리는 나지 않았다.

별수없이 그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자루를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곰곰이 비급이 숨겨져 있을 만한 장소를 생각해 보았다.

돌연, 그는 이 비석 중앙의 큰 석동 우측 벽에 한 폭의 거대한 벽화가 새겨져 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곳의 좌측 벽에는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노인의 좌상(坐像)이 새겨져 있었는데 노인의 눈은 맞은편 벽화에 새겨져 있는 둥근 달을 주시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고개를 숙여 지면만 조사하느라 벽화는 자세히 보지 않았다.

(청구비급이 혹시 그 벽화의 둥근 달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자기의 추리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져 급히 벽화가 새겨진 석동으로 갔다. 그리고는 맞은편 벽에 그려진 둥근 달 부분을 두드려 보았다.

한동안 벽을 두드린 그는 여전히 실망을 금치 못했다. 벽화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막비강은 실망하며 벽화에서 물러서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

난데없이 석동 밖에서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들리지를 않는가?

휘이잉!

막비강이 흠칫하는 순간 한 줄기 강맹한 경풍이 휘감아 왔다.

파파팟!

막비강은 내심 크게 놀라며 급히 몸을 비틀어 석동 밖으로 날아 나왔다. 이어 양발을 힘껏 굴러 비교적 작은 비석 위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애송이놈! 어디로 달아나느냐?]

콰아아아!

말소리와 함께 한 줄기 광풍이 휘감아 왔다.

막비강은 쌍장에 전신의 공력을 주입시켜 상대방의 장세를 봉쇄했다.

퍼펑!

순간 우렁찬 음향이 울려 퍼지며 맞은편 비석 뒤에서 한 명의 거지가 뒤로 주르르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그자는 바로 철 호법이었다.

[어엇!]

철 호법은 막비강의 강맹한 장력에 진탕되어 뒤로 후퇴하다가 허공을 밟아 비석 아래로 떨어졌다.

화르르르! 쐐애액!

그때 또 몇 개의 인영이 쏜살같이 막비강 쪽으로 날아왔다.

막비강은 급히 몸을 솟구쳐 최상의 경공신법을 전개하여 뒷산으로 질주해 갔다.

[어린 녀석아, 걸음을 멈추어라!]

헌데 막비강이 몸을 솟구쳤을 때 하나의 인영이 고함을 지르며 앞을 막아섰다.

[나를 막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

외마디 경악의 비명과 함께 그 사람은 삼 장 밖으로 날려 나갔다.

단 일장에 그 사람을 삼 장 밖으로 날려보낸 막비강은 곧장 뒷산을 향해 도주했다.

그러자 개방 방주 도금을 비롯한 금릉삼로, 철 호법 등 다섯 거지들은 일제히 그를 추격하며 고함을 질렀다.

[어린 녀석아, 너는 이제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없으니 걸음을 멈추어라!]

그러나 막비강은 그들의 고함을 들은 체도 않고 계속 신법을 전개했다.

도금과 네 명의 노개들도 경공신법이 대단하고 또 이곳 지리를 잘 아는지라 쌍방의 거리가 점차 좁혀졌다.

(... 이런!)

막비강은 전력을 다해 도주하다 말고 갑자기 놀라며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원래 전면의 삼 장 거리는 높이가 백 장이 넘는 낭떠러지였던 것이다.

콰아아아!

그 절벽 아래로는 양자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흐하하하! 네놈은 독 안에 든 쥐다!]

막비강이 걸음을 멈추자 다섯 명의 노개는 눈 깜빡할 사이에 가까이 추격하여 그의 일 장 거리에서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삼로 중 고죽개 학검성이 수중의 타구봉을 휘두르며 노성을 질렀다.

[어린놈아, 나는 오늘 네놈을 양자강의 고기밥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막비강은 이런 상황에서 다섯 명의 노개를 당해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모든 내막을 사실대로 말해 우선 이들과의 충돌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급히 옆으로 피하며 고함을 질렀다.

[할말이 있으니 잠깐 손을 멈추시오!]

학검성은 자신의 일격이 빗나가자 재차 공격을 가하려 했다. 그러나 청풍개 범개선이 얼른 나서 제지시켰다.

[우선 그가 누구며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봅시다.]

범개선은 막비강을 제자로 삼기로 마음을 먹었었고 또 다른 노개들보다 마음이 인자하여 막비강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학검성의 행동을 제지시킨 것이다.

개방 방주인 호면개 도금도 범개선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우리는 우선 이 어린 녀석의 신분부터 알아봅시다.]

호면개 도금은 막비강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어린 녀석아, 너는 도대체 누구냐?]

막비강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는데 나는 그제 귀방의 분타를 찾아갔었던 곡능천입니다.]

다섯 노개는 이 말을 듣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 뭐라고? 네놈이 바로 곡능천, 아니 막비강이라고?]

[그렇습니다.]

[막비강은 얼굴이....]

막비강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것은 제가 역용술로 변장했기 때문입니다. , 보십시오.]

그가 손바닥에 양잿물 가루를 발라 얼굴을 문지르자 곧 원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다섯 명의 노개는 막비강의 정교한 역용술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호면개 도금이 다시 물었다.

[네가 변장을 하여 본방의 본거지에 잠입한 의도는 무엇이냐?]

[그것은 청구상인께서 남기신 청구단서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섯 노개는 이 말을 듣고 경악과 격동의 빛을 금치 못했다.

[청구단서는 강호의 인물이면 누구나 얻고 싶어하는 무림기보인데 그것을 어찌하여 우리들 개방의 중지에 와서 찾느냐?]

[그 비급은 거대한 비석 밑에 있습니다. 거대한 비석이란 귀방의 분타가 위치한 그 비석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데도 거대한 비석이 얼마든지 많은데 왜 하필이면 우리가 거주하는 분타의 비석 밑에 그런 비급이 숨겨져 있다고 단정했느냐?]

[방주께서도 소문을 들으셨겠지만 나는 이미 대강남북에 산재해 있는 비교적 큰 비석은 모두 파헤쳐 보았습니다. 하지만 청구단서는 고사하고 종이쪽지 한 장도 없었습니다.]

호면개 도금은 이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라고? 그럼 근래 일어난 비석 도굴 사건이 모두 네 소행이었단 말이냐?]

막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점만 보아도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으므로 머지않아 이 소식이 강호에 퍼지고 그러면 귀방은 무서운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들 테니 빨리 돌아가셔서 대책이나 상의하십시오.]

막비강의 말을 들은 호면개 도금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죄가 없으나 구슬을 지닌 것이 죄가 된다더니... 이 일을 어떻게 하지?]

듣고 있던 학검성이 타구봉을 휘두르며 앞으로 뛰어나왔다.

[이놈! 쓸데없는 헛소문을 퍼뜨려 우리에게 화를 전가시키지 마라! 우리는 대석비곡에 수십 년을 거주했지만 비급따위는 보지 못했다.]

호면개 도금은 학검성의 이 말이 대석비곡의 안전을 위한 것임을 눈치챘다.

그 역시 막비강을 죽이진 않더라도 생포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타구봉을 휘두르며 막비강을 공격했다.

그러자 나머지 노개들도 공격에 가담했다. 범개선은 비록 마음이 비교적 자상했지만 방주가 출수한 이상 그도 자연히 수수방관을 할 수 없었다.

[이 염치없는 늙은이들이...!]

막비강은 다섯 거지가 합공을 가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노성을 지르며 쌍장으로 단숨에 십여 장을 격출했다. 격노한 나머지 출수했는지라 그의 장세의 강맹하기가 산악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개방의 타구봉법은 절묘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방주인 호면개 도금이 펼쳐내니 그 위력은 더욱 강맹하여 막비강으로서도 도저히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점차 막비강은 낭떠러지 쪽으로 밀려갔다. 낭떠러지의 높이는 백 장이 넘고 그 밑은 양자강물이 도도히 흐르며 괴석이 즐비하여 떨어지면 목숨이 열 개라도 뼈를 찾기 어려울 실정이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손을 멈추어라!]

돌연 낭떠러지 옆에서 하나의 인영이 솟구치며 날카롭게 외쳤다.

쏴아아아!

외침 소리와 함께 한 줄기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장풍이 다섯 명의 노개에게 휘감아 갔다.

[!]

[... 당신은...!]

다섯 명의 노개는 나타난 사람을 보더니 경악의 함성을 터트렸다.

이어 그들은 사력을 다해 왔던 길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13>

이진진; [무림맹주의 따님이 어머니에게 맡긴 임무란 게 무엇이었나요?]

진삼낭; [그건...] 말하려 할 때. + 이산하; <꽉 잡으시오.> 마부석 쪽에서 이산하의 말이 들리고

[!] [!] 놀라고 긴장하며 마차 안의 손잡이를 잡는 진삼낭과 이진진

 

#114>

안개 낀 강가의 길에 서성이고 있는 건달들. , , 검 등의 무기를 지녔다. 숫자는 네 명이고. 단지회 소속이 아니라 다른 조직이라 옷이 좀 다르다.

건달들; [젠장! 신 새벽부터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지금쯤 춘향이 년을 끼고 단잠에 빠져있었어야 했는데...] 추워서 웅크린 채 궁시렁대는 건달들

건달들; [단지회 놈들이 급히 도움을 요청하니 생 깔 수도 없었어.] [공생하려면 그놈들이 아쉬운 소리 할 때 도와야만 해.] [상해가 거점인 우리 악어방(鰐魚幇)이 금릉에서 밀려나지 않고 있는 건 단지회의 도움 덕분이니...] 다른 놈들이 궁시렁 대는 놈들 설득하고.

건달들; [그런데 단지회에서 쫓고 있는 것들은 무슨 물건들이지?] [전서구까지 날려서 수색 요청을 한 걸 보면 짭짤하게 돈이 되는 물건들일 텐데...] 말하다가 흠칫하는 건달들

다각 다각 말발굽 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리고

건달들; [마차가 다가온다!] 일제히 돌아보는 건달들. 안개 속에서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가 천천히 다가온다. 무론 이산하가 모는 마차다

건달들; [멈춰라!] [이 새벽에 어디 가는 거냐?] 무기를 뽑으며 길을 막는 건달들

이산하; [왜들 이러시오?] 다가오는 마차 마부석에서 짐짓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하고. 마차를 몰고 오면서

건달들; [마차 안을 좀 보자.] [우리가 찾는 물건이 없으면 그냥 보내줄 테니 너무 겁먹진 마라.] 다가오고

이산하; [... 단양으로 아침 장사를 하러 가는 길이오.] [지체하면 안되니 제발 그냥 보내주시오.] 비굴하게 애원하고

건달들; [잠깐이면 된다.] [안을 한번만 살펴보고 가게 해주마!] 두 놈이 마차로 다가와 문을 열려 하고. 두 놈은 앞을 막고 있고. 바로 그 순간

이산하; [끼랴!] 철석! 말 엉덩이를 채찍으로 세차게 때리고. 그러자

히히힝! 비명 지르는 말

콰드드!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말

[!] [어이쿠!] 비명 지르며 나자빠지고 피하는 건달들. 마차 앞쪽에 서있던 놈들은 치일 뻔 했다

두두두! 나뒹굴었던 건달들이 보는 가운데 맹렬히 달려가는 마차.

[저 마차다!] [단지회에서 찾는 물건들이 저 마차를 타고 있다.] 급히 일어나는 건달들. 이어

삐익! ! 호각을 불며 마차를 따라 달려가는 건달들. 건달들은 무공이 대단하지 않아서 날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달려간다.

 

#115>

두두두! 안개에 덮인 강가의 길을 맹렬히 달려가는 마차.

마차 안에서는 진삼낭과 이진진이 손잡이를 잡고 있지만 몸이 마구 흔들리고

삐익! ! 뒤에서 다급한 호각소리가 들리고

이진진; [... 엄마!] 겁에 질리고

진삼낭; (행적이 발각되었다.) 입술 깨물고.

진삼낭; (단지회의 파락호들이 전서구를 날려 다른 흑사회 조직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진삼낭; (이대로 가면 단지회나 단지회에 협력하는 조직들에게 따라잡히고 만다.) 초조하고. 그때

<이야기 좀 합시다 진진엄마!> 마부석 쪽에서 들리는 이산하의 말

진삼낭; [말씀하세요.] 드륵! 마부석쪽으로 난 쪽문으로 다가가 열며 말하고

이산하; [행적이 들통 난 이상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요.] 마부석에서 마차 안을 들여다보며 말하고

진삼낭; [마차를... 버려야겠군요.] 입술 깨물고

이산하; [그것도 상책은 아니오.] 고개 젓고

이산하; [허약한 진진이에다가 다리가 불편한 나까지 마차를 버리면 오히려 더 쉽게 따라잡힐 거요.]

진삼낭; [혹시...] 무언가 깨닫고 눈 치뜨고

이산하; [내가 마차를 몰고 놈들을 유인하겠소.] [당신은 진진이를 데리고 다른 길로 가시오.] 끄덕. 비장한 표정

이진진; [안돼요 아버지!] 비명 지르고

이진진; [미끼가 되셨다간 금새 따라잡힐 거예요.] 애원하지만

이산하; [미안하구나 진진아. 아비가 미끼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구나.] 웃으며 고개 젓고

이진진; [아버지...] 눈물

진삼낭; [그렇게 해요.] 단호하게

이진진; [어머니!] 비명 지르며 돌아보고

진삼낭; [최대한 멀리 놈들을 유인하시되... 적당한 곳에서 당신도 마차를 버리고 몸을 숨기세요.] 목이 메어 말을 잘 못하고

이산하; [그리 하겠소.] 억지로 웃고

이진진; [안돼요 아버지!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마부석으로 다가앉으며 울지만

이산하; [엄마 말 잘 들어라 아가야.] 손으로 이진진의 뺨을 다독이며 웃고

이진진; [아버지...] 말을 잇지 못하며 울고

이산하; [그동안 미안했소.] [진진이를 잘 부탁하오.]

이진진; (작별... 작별 인사야!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으로 입 가리며 울고

진삼낭; [진진이는... 걱정 마시고... 부디 무리 하지 마세요.] 억지로 웃고

이산하; [명심하리다.] 다시 앞을 보려는데

진삼낭; [여보...] 다시 부르고

이산하; [말씀하시오.] 다시 돌아보고

진삼낭; [십팔 년 전 처음 만난 이래... 당신께는 은혜만 입었어요.] 무릎을 꿇고

이진진; (... 무슨 말씀이시지?) 놀라고

이진진; (십팔 년 전에 처음 만나셨는데 어떻게 열여덟 살이 넘은 아들이 있을 수가...) + [!] 생각하다가 깨닫고

이진진; (청풍오빠는 두 분의 소생이 아니었던 거야!) 경악할 때

진삼낭; [당신에게 진 빚은 다음 생에서 반드시 갚도록 하겠어요.] 절하고

이산하; [아니오. 아니오 부인!] 웃으며 고개 젓고. 눈시울이 붉어졌고

이산하; [빚이라면 내가 당신에게 진 것이 몇 배, 몇 십 배 더 많소.] [비천한 나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준 것도 당신이었고...] 울며 웃고

이산하; [골백번 고쳐 태어나서라도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갚도록 하겠소.]

말없이 우는 진삼낭. 이진진도 울고

이산하; [곧 앞쪽에 모퉁이가 나올 거요.] 앞을 보며 말하고

이산하; [속도를 줄일 테니 진진이와 함께 내리도록 하시오.] 두두두! 고삐를 당겨서 말의 달리는 속도를 줄이게 하고

마차를 밖에서 본 모습. 강변의 모퉁이길을 돌면서 속도를 줄이는 마차. 모퉁이 길 옆에는 관목이 무성하고

덜컹! 마차의 문이 열리고. 한손으로는 마차의 문을 연 진삼낭이 다른쪽 팔로 이진진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이산하; [지금이오!] 모퉁이를 돌며 최대한 속도를 줄이고. 직후

! 이진진을 겨드랑이에 끼고 마차에서 밖으로 날아 나오는 진삼낭

콰직! 휘릭! 관목을 뚫고 내려서는 진삼낭

두두두! 멀어지는 마차

이진진; (아버지!) 관목 숲에 진삼낭과 함께 숨으며 멀어지는 마차 쪽으로 무릎을 꿇고

이진진; (부디 천지신명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빌겠어요.) 절하며 울고. 그 옆에 진삼낭도 무릎 꿇은 채 말없이 마차가 멀어진 쪽을 보고. 직후

타타타!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흠칫! 하며 몸을 숙이는 진삼낭

[젠장할! 잡히기만 해봐라!] [각을 떠버리겠다 개잡종아!] 헉헉 대며 길을 달려오는 네 명의 건달들. 삐익! ! 호각을 부는 놈들도 있고

타타탁! 진삼낭 모녀가 숨은 관목 숲을 지나 마차가 달려간 곳으로 달려가는 건달들

진삼낭; [가자!] 이진진의 팔을 잡고 일어나고

진삼낭; [가능한 길에서 멀리 떨어진 채 단양으로 접근해야한다. 힘들더라도 참거라.] 관목 숲을 헤치고 가며 말하고

이진진; [...] 따라가고

진삼낭; (걱정마세요 여보. 우리 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테니...) 이진진을 끌고 관목 숲으로 들어가는 진삼낭의 얼굴로 눈물이 흐른다.

 

#116>

아침. 해가 떴다. 강변의 길.

그곳으로 달려오는 다섯 명의 건달들. 맨 뒤에 청풍이 비틀거리며 달려온다.

청풍은 지칠 대로 지친 모습. 한손으로는 옆구리를 잡고 달린다.

옆구리를 잡은 손이 피로 물들었고.

옆구리뿐 아니라 입고 있는 옷에 여기저기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상처가 벌어져서 피가 나오는 것

[저 새끼 왜 저렇게 빌빌 거려?] 한 놈이 뒤를 돌아보며 오만상. 역시 지쳐서 숨이 턱에 찬 모습이다

건달들; [... 지칠만도 하지. 벌써 오십 여리를 쉬지 않고 달려왔잖아.] [니미 이게 대체 뭔 고생인지 원...]

건달들; [그런데 저 놈 못 보던 얼굴이구만.] [뭐 근래 우리 단지회에 가입한 신입이겠지.] [나이도 어려보이는 걸 보면 최근에 들어온 놈이 맞을 거야.]

건달들; [야 이 새끼야! 못 따라오면 두고 간다.] [흑사회에서 밥 벌어먹고 살려면 근성을 보여!] 외치며 달려가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며 비틀거리며 달리는 청풍

건달들; [그래도 기특하구만. 주저앉지 않는 걸 보면...] [그 정도 근성 없으면 거칠고 험한 흑사회에서 버티지 못하지.] 다시 달리는 건달들.

청풍; (사우라는 자와의 싸움과 황금전장에서 당한 고문으로 생긴 상처가 벌어지고 있다.) 헉헉 숨이 턱에 닿고

청풍; (허기진 데다가 출혈까지 심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비틀비틀

청풍; (하지만 주저앉으면 안된다. 어떻게든 어머니와 진진이의 안전을 확인해야하니...) 생각할 때

<끄아아악!> 앞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린다.

깜짝 놀라는 건달들과 청풍

<끄으윽!> 앞쪽은 한 굽이 도는 모퉁이이고 근처에는 제법 높은 산이 있다. 비명은 그 모퉁이 너머에서 들리고

청풍; (... 비명 소리가 귀에 익다. 설마...) 비틀거리며 달려가고. 건달들도 속도를 내서 달려가고 있고

곧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지는 건달들

[!] 헐떡이며 모퉁이를 돌던 청풍의 눈 부릅

! 모퉁이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만행. 마차가 길가에 옆으로 나뒹굴고 있고. 말도 죽어서 쓰러져 있다. 헌데 마차의 바닥에 어떤 사람이 두 팔이 벌린 채 무릎을 꿇고 있다. 벌린 두 팔의 손목에는 검이 박혀있다. 그 검에 의해 몸뚱이가 마차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그 사람은 바로 이산하. 고개 떨구고 있고. 상체의 옷은 갈갈이 찢겨 있는데 이미 고문을 심하게 당해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이산하의 앞에는 사우와 정필과 몇 명의 건달들이 서있다. 고문하는 것은 사우다. 칼로 이산하의 배를 찌르고 있다. 배가 갈라져 창자가 흘러내리고 있고

이산하의 모습 크로즈 업

청풍; (... 아버지!) 경악과 충격으로 비틀. 그 앞쪽에서는 청풍이 따라온 다섯 명의 건달들이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청풍

이산하의 처참한 모습

청풍; (... 안돼!) 이를 갈며 기어가려는 청풍.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설 수가 없다.

 

#117>

고문이 이루어지는 현장. 사우가 칼을 이산하의 배에 찌르고 휘젓고 있는 중이다

사우; [어떠냐? 쇠 맛이 느껴지지?] 웃고

사우; [입으로 먹어서 느끼는 쇠 맛보다 창자로 직접 느끼는 쇠 맛이 더 확실할 것이다.] 변태처럼 웃고

이산하; [끄윽...] 고통에 몸부림치고

사우; [마누라와 딸년을 어디로 빼돌렸는지만 말해라. 그럼 이 고통을 끝내줄 테니...] 칼을 돌리며 협박하지만

이산하; [... 수작... 마라!] ! 침을 뱉으며 헐떡이다가

! 고개 떨구며 기절하는 이산하

사우; [끈기가 없는 놈이로구만. 일각도 못 버티고 기절하다니...] ! 혀를 차며 칼을 이산하의 배에서 뽑고.

정필이 다가가서 이산하의 목을 만져보고

사우; [죽진 않았지?] 칼을 옆에 서있는 건달에게 건네주며 정필에게 묻고

정필; [. 아직 숨은 붙어있습니다.]

사우; [그럼 넌 여기 남아서 그놈 입을 열도록 노력해봐라.] 돌아서고

정필; [회주님은?]

사우; [그놈의 마누라와 딸년이 어디로 튈지 짐작이 가는 곳이 있다.] [본좌는 그쪽으로 가볼 테니 넌 여길 맡아라.] ! 날아가고

정필; [맡겨주십시오 회주님!] 포권하고

정필; [너희들도 회주님을 따라가라. 여긴 나와 저기 오는 놈들이 맡겠다.] 현장으로 달려오는 다섯 놈을 보며 함께 있던 놈들에게 말하고.

[예 총관님!] [가자!] 사우가 달려가는 곳으로 달려가는 현장에 있던 건달들

 

#118>

길가 산 위에 서서 현장을 보고 있는 여자. 소수마녀.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서있어서 다른 사람들 눈에는 띠지 않는데

소수마녀의 시점. 넘어진 마차 앞에 서있는 정필. 그놈에게 달려오며 굽신거리는 건달들

달려오는 건달들의 인사를 받으며 끄덕이는 정필. 정필 앞에는 만신창이가 된 이산하가 마차 바닥에 두 팔이 벌린 채 박혀있고

소수마녀; (결국 아비가 희생을 했구나.)

소수마녀; (자신이 진 도박 빚 때문에 사창가로 팔려갈 딸을 구하려다가 죽음을 맞이한 아비...) (통속적이지만 비장한 결말이로구나.)

소수마녀; (못난 아비였지만 마지막에는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한 셈인데...) (어떤 계집인지 모르지만 저런 아비를 둔 년이 부럽긴 하구나.) 돌아서고. 그러다가

[!] 흠칫! 하며 다시 돌아보는 소수마녀

마차 앞에서 부하들에게 뭔가를 말하는 정필. 굽신거리는 부하들. 그곳으로 다가오는 청풍.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소수마녀; (뒤에 쳐졌던 저 놈...) 눈 번뜩이고

<무공은 익히지 않은 것같은데 일신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느껴진다.> 쿠오오! 비틀거리며 다가가는 청풍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치솟는 모습 배경으로 소수마녀의 생각 나레이션

소수마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인간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지독한 살기다!) 오싹! 소름이 돋고 숨이 멎은 듯한 표정이 되는 소수마녀

소수마녀; (소름...) 자신의 떨리는 하얀 손을 보고

소수마녀; (가주님조차 날 이렇게 전율하게 만든 적이 없었다.)

소수마녀; (틀림없다!) 다시 현장을 돌아보고. 청풍은 이제 현장에 거의 다 도착했다.

<저 놈은 한 세대에 한 명만이 나온다는 천살성(天殺星)이다!> 칼을 뽑으며 현장으로 가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소수마녀의 생각 나레이션. 청풍의 눈을 출혈되어 있고

 

#119>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0.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