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환락영웅(歡樂英雄)'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20.09.16 [환락영웅] 제 59장 백인장으로 돌아가는 길 (완결)
  2. 2020.09.15 [환락영웅] 제 58장 의견일치, 부자무적
  3. 2020.09.14 [환락영웅] 제 57장 청년의 야망 속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
  4. 2020.09.13 [환락영웅] 제 56장 피 뿌리는 어린도
  5. 2020.09.12 [환락영웅] 제 55장 황녹천의 제안
  6. 2020.09.11 [환락영웅] 제 54장 생기지도 않은 아들을 도박으로 날려버린 사나이
  7. 2020.09.09 [환락영웅] 제 53장 객점에 찾아온 신선
  8. 2020.09.08 [환락영웅] 제 52장 미녀를 땅에 묻고 땅 위에 쓰러지다
  9. 2020.09.07 [환락영웅] 제 51장 천하제일의 초식고수
  10. 2020.09.04 [환락영웅] 제 50장 혈기자의 변신
  11. 2020.09.03 [환락영웅] 제 49장 만남의 장소, 북경
  12. 2020.09.02 [환락영웅] 제 48장 사은상의 고백
  13. 2020.08.31 [환락영웅] 제 47장 공포의 마물, 탕마사십사객
  14. 2020.08.30 [환락영웅] 제 46장 친구가 된 한천이기
  15. 2020.08.29 [환락영웅] 제 45장 명문정파의 추적자들
  16. 2020.08.27 [환락영웅] 제 44장 주소아의 일초검공
  17. 2020.08.26 [환락영웅] 제 43장 광통거에서의 감정정리
  18. 2020.08.25 [환락영웅] 제 42장 백인장의 다섯 도객
  19. 2020.08.23 [환락영웅] 제 41장 허무한 죽음
  20. 2020.08.21 [환락영웅] 제 40장 주소아의 협박술
  21. 2020.08.19 [환락영웅] 제 39장 원로원의 사마귀
  22. 2020.08.18 [환락영웅] 제 38장 우수를 깨트리는 독충
  23. 2020.08.16 [환락영웅] 제 37장 충성수
  24. 2020.08.15 [환락영웅] 제 36장 등천마세에 들어가다.
  25. 2020.08.14 [환락영웅] 제 35장 영원한 사랑의 맹세
728x90

第 五十九 章

 

         百刃莊으로 돌아가는 길

 

 

 

등봉현에서 출발한 수십 대의 마차가 줄을지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제일 앞에선 마차에 붉은 비단으로 만든 하나의 기(旗)가 걸려있다.

 

백인무적 호정수신(百刃無敵 護正修身)!

 

바로 백인장의 구호였다.

마차에는 백인장의 고수들이 나누어서 타고있었다.

전승을 기념하여 소선풍이 특별히 배려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산의 백인장까지 갈 것이다.

각 마차 안 마다 서로의 무용담을 늘어놓느라고 입에 침을 튀기고 있었다.

소선풍이 탄 마차도 마찬가지였다.

이주용이 신나게 떠들고 있는 것이다.

[글세, 네 아버지가 왼쪽 동굴로 들어간 후 조금 있으려니까 갑자기 청의에 면사를 쓴 놈이 밖에서 쏙 뛰쳐 들어오지 않겠니?]

조예진은 생각하고 자기를 질책하려는 구나 싶어서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서요?]

주소아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인지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흥미있는 척 물었다.

[그래서, 그놈에게 어검술을 펼쳤는데 건방지게도 피해버리더군, 하지만 그놈도 죽음은 피하지 못했지. 이 사람이 돌맹이로 피하는 그놈의 머리를 깨어버렸거든,]

이주용이 못마땅한 듯이 조예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조예진은 얼굴을 들 수도 없었다.

사람을 잘못 죽인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금 또 그 일을 들고 나오니 괴로웠다.

[화가나서 그놈의 깨어진 머리를 발로 찼더니 면사가 훌렁 벗겨지는데 계집이었어. 그때 인자하신 소대협께서 나타나서 나를 마구 꾸짖었지.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고……]

[흠흠!]

소선풍도 마른 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이 죽였다고 소리쳤더니 쑥 들어가며 그만하자고 하더군……]

이주용은 조예진을 가리키며 말했는데 모두 킥킥 웃었다.

소선풍이 성격이 불같은 이주용 보다는 조예진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녹천이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거기서 죽었군요. 그는 마물들을 처치할 것을 도맡았는데……]

[황녹천? 그가 누군데?]

조예진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니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황녹천을 몰라? 하기사 나도 지금에서야 그놈이 황녹천인 줄 알기야 했지만……]

이주용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쏘아 부쳤다.

[엄청난 야심을 가진 여자였어요, 무림을 일통하여 다스리겠다는. 살려둬서는 안될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죽었다니 잘됐어요.]

소일초는 황녹천의 야심을 모두 말해주었다.

소선풍과 마차 안의 사람들 모두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조예진의 얼굴은 활짝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소선풍이 넋을 뺏기는 듯 했다.

그가 다짜 고짜 소일초와 며느리가 될 주소아와 사씨남매, 그리고 취풍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너희들 마차로 돌아가서 쉬도록 해라. 우리도 편히 쉬어야겠으니 올생각 말고……]

무슨 낌새를 눈치챈 여인들의 얼굴이 발갛게 익으며 웃음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소일초와 그녀들은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자기들의 마차로 돌아갔다.

소선풍이 마차에서 두 부인과 함께 무슨 일을 할지는 감히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입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소일초가 자기의 마차로 갔을 때 원천기와 한천녀가 와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소일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왔어? 특별한 볼일 없으면 네마차로 돌아가.]

[소일초!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왔더니 우리를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어? 좋다 좋아, 절대 백인장 따위에는 가지도 않겠다.]

원천기가 말하며 마차를 나갔다.

[그게 아니고,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객점에 들어가서 술 마시도록 하자. 무슨 일인지는 조금 후에 알게 될 거니까 너희들도 얌전히 마차 안에 있는 게 좋을 걸?]

소일초가 다급하게 말했다.

원천기에게 그동안 신세진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원천기는 한천녀와 함께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얼른 가버렸다.

 

소일초와 네 여자들만 남은 마차에서 그녀들은 소일초의 묘기를 보고 있었다.

뭐가 커졌다 작아졌다.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길어졌다 짦아졌다 하는 것을……

그 묘기 덕분이었는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백인장에는 두 명의 쌍둥이 여자아기와 세 명의 사내아기가 태어났다.

여자아기 남자아기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소일초가 만들어졌던 그 원영련무대법에 의해 태어난 작은 마동(魔童)들인지라 백인장의 식구들은 치를 떨었다.

급기야 그들에게 시달리던 비성성마저 남만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선풍이 원로들을 소집하고 회의를 한 후에 그 새끼 마동들과 그 어미 아비를 몽땅 내쫓아 버렸다.

북경으로 가는 마차 속에서 쫓겨난 네 명의 아기 엄마들 중의 두목이 요상한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아기들로 하여금 말썽을 피우도록 사주한 원흉이었던 것이다.

그후 그녀로 인해서 북경의 동선장은 제이의 백인장으로 변하게 되었다.

여산의 본가와는 아주 다른 성격을 지닌 백인장으로……

 

<大尾>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八 章

 

       意見一致 父子無敵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고 얼마전에만 해도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피를 구하는 마물이 되어 오직 살인과 파괴를 찾아 날뛰는 것들……

소선풍은 뇌옥 앞에서 백여 명이 넘는 마물들과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었다.

조예진과 이주용은 그의 뒤 멀찍이 떨어져 발만 동동구를 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폭풍같은 강기가 몰아치고 벼락같은 어린도의 도강이 사방을 헤집는다.

도강의 틈을 비집고 마물들이 날아다니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히는 대 혈투,

마물들의 무공은 놀라울 정도였고, 각기 고유의 무공을 펼쳐내며 소선풍을 공격했다.

이 놀라운 격전장으로 백인장의 고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천신과 같은 신위를 발휘하는 소선풍……

이미 쪼개져 널부러져 있는 것은 이십 여 명,

그리고 팔십 여 마물들을 절벽 쪽에 몰아놓은 채 하나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메뚜기처럼 날뛰며 검과 장, 권과 도를 비롯한 무기들로 일제히 소선풍을 공격하자 그 위력 또한 소선풍의 도법에 전혀 못하지 않았다.

소선풍의 도가 그 공격들을 막으며 잇달아 공격하고……

소선풍은 밀리고 있었다.

불과 삼 각에 불과한 시간동안 벌어진 혈투였지만 공력의 소모가 극심한 도법을 펼치고 있는 그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병상에 있는 동안 깨달아서 마도구식을 바탕으로 새로이 만든 신도이식(神刀二式)이 아니었다면 벌써 마물들은 그를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제일초 존천(尊天)이 펼쳐지면 하늘을 향해 들리워진 어린도에서 우박같은 도강의 편린(片鱗)들이 쏟아졌고,

제이초 감지(感地)가 펼쳐지면 땅에서 빛이 솟아오르는 듯 했다.

그가 하나라도 놓친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지 예상할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해 존천감지를 펼쳐 다시 수 개의 마물을 토막 냈으나 두 마물이 기어코 그의 도막(刀幕)을 벗어나 뛰쳐나왔다.

[이야앗-----!]

이주용의 검이 허공을 꿰뚫었고 한 마물의 걸레같은 몸도 꿰뚫었지만 그 마물은 그대로 덥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검으로 무시무시한 검기를 뿜으면서 이주용을 쪼개왔다.

[위험해!]

[피해요!]

두 마디의 절박한 외침이 들리는 순간,

이주용은 땅을 구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지만 전신이 떨려왔다.

그를 공격했던 마물과 뛰쳐나왔던 다른 마물은 두 조각이 나있었다.

소선풍이 그녀의 곁에 당도하여 힘겹게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물러난 만큼 마물들은 밀려왔고 장소가 넓어진 만큰 그들의 공격은 더욱 격렬해 졌다.

세 사람은 점차 물러났다.

소선풍의 도법은 눈에 띄게 약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마물들을 살상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들을 보호하고 마물들을 겨우 가둘 수 있을 뿐이었다.

둥둥둥-------!

어디선지 낮은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마물들은 그를 향한 공격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도막을 향해 지닌 바 무공을 다 펼쳐냈다.

예상치 못한 돌연한 행위였다.

팔십여 마물들의 합쳐진 힘에 의하여 도막은 찢어지고 그들은 사방으로 비산했다.

소선풍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순식간에 마물들이 오히려 그와 두 아내를 포위하고 나머지는 폐허가 된 환상림으로 날아갔다.

[여보! 이제 죽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소. 둘 다 어서 내 다리를 하나씩 잡고 일어서요.]

소선풍의 절규하는 듯한 외침이었다.

이주용과 조예진은 그의 다리를 잡고 일어서서 그들의 어깨위에 소선풍을 받쳐 놓은 듯 했다.

사람 말(馬)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소선풍의 도에 의해서 보호를 받으며 손으로는 자신들의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둥둥둥둥------!

어디선가 북소리는 들려오고 마물들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여보! 마물들이 환상림에서 누군가에게 가로막혔어요. 무공이 굉장해요.]

이주용이 환상림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소리쳤다.

그때,

[으합------!]

[이얏------!]

환상림에서는 두 마리의 묵룡이 허공으로 오르고 있었고 회몰아치는 두 가닥의 기류에 마물들이 휘말리고 있었다.

등천마룡과 두 개의 일초검공이었다.

주소아가 소리쳤다.

[고모부! 우리가 왔어요! 이리로 물러나도록 하셔요.]

소선풍과 조예진, 그리고 이주용은 맞붙어있는 서로의 몸에서 안도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살았다.

환상림을 가로막는 사람의 숫자는 속속들이 늘어났다.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다.

[갑시다. 이대로 앞으로 달려요.]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력을 다해 소선풍을 어깨에 태운 채 환상림으로 달려갔다.

앞에도 뒤에도 위에도 옆에도 마물들은 있었다.

벌떼처럼 그들을 가로막고 공격을 펼치고 소선풍과 두 여인은 마지막 한 방울의 힘을 짜내고 있었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는 마물들의 벽을 뚫고 손을 맞잡은 채 소선풍을 향해서 달려갔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일초검공에 마물들은 휩쓸려 들어가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소선풍의 도법보다는 마물들을 상대하는 데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하는 일초검공이었다.

이때 주소아는 난생처음 전력을 다해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에서 형성되는 기류는 마물들을 감싸자마자 분시해 버렸고,

소일초의 마황검에서 형성된 기류는 벌써 이십 명이 넘는 마물들을 휘말아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소리치며 마물의 공격에 쓰러질 듯 위태로운 소선풍과 그의 크고 작은 두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잇달아 주소아가 당도하고 그들의 검은 완벽한 합주를 이루며 사방의 마물들을 쓸어버렸다.

일초무적의 신위가 여실히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소선풍은 도를 놓았다.

그리고 소일초와 주소아가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두 부인과 함께 들어가 탈진한 상태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걸 잡수시게 하셔요.]

소일초는 검공을 펼치면서도 다른 손으로 품에서 옥병을 꺼내 이주용에게 주었다.

환상림 바깥 쪽에서는 일곱 명의 원로도객이 맹위를 떨치고 한천이기의 묵룡이 마물들을 쳐부수고 있었다.

등천묵룡은 한천이기가 천하제일의 무공이라고 생각했던 강기의 무공,

과연 상대를 바로 만나자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둥둥둥둥-------!

어디선가 북소리는 다급하게 들려오는데,

이미 마물들의 숫자는 사십이 되지 않았다.

그것들이 흉맹하다 하지만 소일초와 주소아가 펼치는 일초검공에는 상대할 수 없었다.

놓치지만 않으면 무엇이던 깨뜨려 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일초검공이다.

[태봉아! 네 아버지보다 훨씬 나은 무공이구나.]

이주용이 아들의 신위를 지켜보면서 큰소리로 칭찬했다.

그 아들을 자기가 낳은 것이다.

앙큼한 조예진이 기르기는 했어도…………

[아직 어떻게 아버지께 비교할 수 있겠어요.…………]

 

× × ×

 

흔적도 없어진 환상림에는 북소리마저 끊어졌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피, 또는 타인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물들은 모두 없애버렸지만 그 흉폭했던 모습에 모두들 치를 떨었다.

소선풍이 기력을 회복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두 봉공께서는 인원을 점검하시오.]

잠시 후 무심군자가 말했다.

[중상자가 삼십여 명, 그 중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자는 칠명, 경상자는 오십여 명입니다. 그리고 사망자는……]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없습니다!]

순간,

[와-----!]

하는 일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누군가 젊은 도객 한 사람이 외쳤다.

[백인무적 호정수신!]

그 소리에 맞춰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맞추어 외쳤다.

[백인무적 호정수신!]

[백인무적 호정수신!]

…………

[중상자들의 처리는 어떻게 되었소?]

소선풍은 백인장의 장주로서 전과(戰果)보다는 백인장 식구들의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지라 그들을 염려하여 물었다.

무심군자는 하늘을 가리켰다.

[비성성들이 분주히 산아래로 데려가 무산신의(武神醫) 서공화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소선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삼수를 처치하는 것만 남았군!]

[아버지! 삼수 중의 위청천과 사진성은 참회한 후에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대성화만 남았습니다.]

소일초가 말했다.

[좋다. 모든 일이 원래 생각과는 다르게 이루어지는 것. 어찌 되었던 자세한 말은 전승연에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대성화를 찾아야겠다. 그는 내손으로 죽이겠다.]

소선풍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 순간,

둥둥둥둥-------!

귀신을 부르는 듯한 북소리가 사방에서 울려왔다.

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마교칠십이절기 가운데 하나인 오욕음(五慾音)처럼 사람의 마음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때,

[대성화!]

소선풍이 내공을 결집시켜 한 곳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펑-----!

소리와 함께 북소리가 뚝 끊쳤다.

[나와라! 거기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소일초를 비롯한 고수들은 그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바위가 구르면서 벌떡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바위는 점차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버렸다.

[대성화!]

[이사형!]

여러 개의 외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는 대성화였다.

어깨에는 비스듬히 장검을 맸고 황의를 입었다.

손에는 찢어진 작은 북이 들려져 있으며, 우뚝 선 그의 몸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무형의 마기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마공을 사용하여 형성하는 것이 아닌 본연의 자세에서의 마기였다.

눈동자는 유리알처럼 반짝이는데 검은 동공은 보이지 않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는 분을 바른 듯이 가루라도 묻어날 듯 하다.

늘어뜨린 머리카락의 바람도 없는데 물결처럼 춤을 춘다.

마왕의 형상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모든 것이 공포스러웠다.

소일초의 왼손에 있는 자침단검의 끝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선풍, 용서하지 않겠다. 마인(魔人)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대신 마인들을 없앨 수 있는 힘을 가진 너와 백인장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

입은 열리지도 않고 사방을 회오리치는 음성……

느릿하면서도 사람을 흘리는 것 같다.

육합전성의 수법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비교할 수 조차 없는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물들은 그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 완벽한 악마가 되어버린 듯한 대성화에게는 천하도 뜻이 없다.

오직 천지파멸을 위해 피와 파괴만이 그의 전부였다.

그를 살려둔다면 무수한 마물들이 천하를 피로 씻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대성화!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간! 너 하나를 죽이면 천하가 태평할 것 같구나! 모두 물러서라.]

소선풍은 어린도로 그를 가리켰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왼쪽 겨드랑이로 어린도를 감았다.

순간,

그의 몸이 튕기듯이 대성화를 향해서 날아갔다.

어린도는 똑바로 그를 노리고 있는데 소선풍의 몸은 어린도를 따라가며 나선형을 그리고 있었다.

[마도구식!]

원로도객 동평선생이 나직히 부르짖었다.

슈악-------!

대성화의 몸이 어린도에 의해 비스듬히 잘렸다.

너무나 간단한 결말이었다.

한데……

대성화의 잘려진 상체의 얼굴이 섬뜩한 미소를 짓는 순간,

그의 몸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장환술!]

여러사람이 동시에 외치는 가운데 소일초가 뛰쳐나갔다.

그의 손에서 마황검이 뻗어나오며 소선풍의 등을 찔렀다.

순간,

[악!]

[앗!]

여러가지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동시에 소선풍의 어린도도 뒤로돌아 소일초를 찔렀다.

갑작스런 혈육상잔의 참극에 모든 사람들이 눈을 질끈 깜았다.

[으헉! 어……어린 놈이……장환마공을……]

돌연한 괴성에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소선풍의 어린도는 황의를 입은 대성화의 코를 뚫고 뒷머리로 빠져나와 있었다.

그리고, 소일초의 마황검은 그의 등에 수박보다 더 큰 구멍을 뚫어버린 채였다.

내장이 와르르 쏟아지며 대성화는 무너졌다.

장환술을 극대화시킨 마공도 두 부자의 협공에 깨어지고 만 것이다.

소선풍과 소일초는 마주보고 큰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하하----!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란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승리도 승리지만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을 감수(減壽)하게 하다니……

 

× × ×

 

아직도 연기가 치솟고 있는 정천보에는 어느 틈에 왔는지 구파일방의 인물들이 헤집고 다니며 아직 죽지 않고 신음하고 있는 정천보의 주구들을 죽이거나 잡거나 하고 있었다.

백인장의 인물들이 비웃음을 보냈지만 어색하게 웃을 뿐 그들은 계속 하던 일을 했다.

아마,

내일쯤에는 구파일방이 위선의 무리인 정천보를 멸망시켜 천하의 정기를 바로 세웠다는 소문이 천지를 진동할 것이다.

백인장은 그들의 일을 조금 거들은 정도일 테고……

명성을 길이 보전하는 방법은 이렇듯 고명하다.

그들의 무공보다 훨씬 더……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七 章

 

         靑年의 野望 속에는 惡魔가 도사리고 있다.

 

 

 

하늘을 치솟는 불꽃……

사방을 뒤덮는 연기……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과 비명……

정천보는 지옥을 연상시키고 있다.

곳곳에서 도광이 충천하며 피를 부르고 굴러떨어진 수급이 발에 걷어차인다.

백인도객은 과연 무적의 신위를 보이고 있었다.

정천보의 수하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 한 사람을 해치지 못하고 있다.

원천기의 지휘를 받는 등천마세의 인물들도 적지 않았다.

정천보의 우두머리는 보이지도 않는데,

정천보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 × ×

 

소일초를 태웠던 마차가 정천보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가까운 한 전각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었다.

그것을 신호로 정천보의 모든 전각은 불길에 휩싸이고 정천보의 일 만 여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불길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는 것은 백인도객……

한번 도가 번쩍일 때 마다 머리가 땅에 뒹굴었다.

백인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지켜온 초상화가 새겨진 백인도(百刃刀),

어느 누구하나 일파의 종주보다 못한 사람이 없는 백인도객이었다.

황녹천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이건 자네 작품인가?]

소일초가 말끔한 모습으로 걸어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야겠지……]

황녹천은 발을 굴렀다.

[나와 상의 한마디 정도는 있었어야지……이젠 걷잡을 수 없게 되었어. 그 마물들이 뛰쳐나오면 모두 끝장이야.]

[우리들의 합의는 아직도 유효해, 마물들은 네 차지가 아닌가? 빨리 움직여야지……]

[이런……제기……]

황녹천은 어디론가를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소일초는 치솟는 불길과 연기 속에서 간간히 백인도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황녹천이 대환단과 함께 주었던 자침이 달린 단검을 소에 들었다.

단검의 촉수와 같은 끝은 북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해는 맞은 편 소실봉에 걸려있다.

단검의 반응을 살피며 그는 혼란스러운 정천보의 고수들을 해집고 다녔다.

그가 지나는 곳마다 정천보의 고수들은 바람을 만난 풀잎처럼 쓰러졌다.

하늘에는 지금 비성성들이 정천보를 빠져 나갈 지도 모르는 삼수를 감시하기위해 떠있다.

소일초는 지금 사은상이 그린 정천보의 그림을 보지 못했었다.

삼수의 거처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사은상도 삼수의 거처가 어딘 지는 자세히 몰랐으나, 삼수의 거처가 아닌 곳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은 쉽게 압축해 갈 수도 있을 것이건만……

소일초는 한곳으로 방향을 정하고 안으로 안으로 달려갔다.

그저 깊은 곳에 은신하고 있으리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소장주님! 무사하셨군요. 우리 걱정은 헛것이었습니다.하하하……]

백인도객 중 한 사람이 여유가 있는 싸움을 벌이다가 소일초를 향해 큰소리로 소리쳤다.

[반갑소. 정도객! 인사는 끝나고 합시다.]

소일초는 소리쳐서 답했지만 어떻게 해서 그가 자기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는지는 몰랐다.

그런 일은 수 차에 걸쳐서 반복되었다.

그때,

[소장주님! 주아가씨와 친구분들이 모두 저쪽으로 가셨습니다.]

한 도객이 정천보의 무사를 벤 뒤에 도를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개속에 휘감겨서 날아갔다.

무중일전의 경신법이었다.

불타는 몇 채의 전각을 넘어서 달려가니 불붙지 않은 작은 석옥이 있었다.

그 근처에는 정천보의 무사들도 보이지 않고,

단지 특이한 백발의 한천이기와 주소아, 사은상과 사백상, 그리고 취풍녀와 사마귀가 모여서 석옥을 둘러싸고 있었다.

소일초는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여기 있었구나.]

그러나, 그들은 침중한 신색으로 그에게 기쁜 눈인사만 보낼 뿐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소일초도 그곳에 내려서자 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석옥에서는 숨을 막을 듯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소일초의 손에 들린 단검의 촉수가 석옥을 가리켰다.

단검을 왼손에 쥐고 모든 공력을 일으켰다.

[천천히 물러서, 아주 천천히. 나 혼자 상대하겠어.]

나지막하게 그들을 향해서 말했다.

한천이기 등은 그의 말에 따라서 천천히 뒤로 물러섰고,

주소아는 오히려 소일초의 왼편에 와서 섰다.

[엄청난 마기야! 조심해!]

원천기가 뒤에서 소리쳤다.

소일초는 머리를 약간 까닥해보였다.

주소아는 손에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있었고, 소일초의 오른손에도 어느새 마황검이 들려져 있었다.

한천이기와 사마귀 등도 그들의 뒤에 서 있었으나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갖췄다.

사은상이 말했다.

[이곳은 아마도 대성화가 있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순간,

으하하하하--------!

석실안에서 가공할 공력을 실은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사은상과 사백상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대사백(大師伯)!]

[사은상,사옥상! 너희들을 먼저 죽이겠다.]

웃음소리가 뚝 그치며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소일초가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위청천(衛靑川)인가?]

[그렇다. 너는 누구냐?]

[나는 소일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나오라! 싸우자!]

석옥 안에는 삼수의 우두머리 위청천이 있었다.

[세상에 무슨 소일초가 또 있단 말인가? 그 꼬마는 이미 죽은 지 오랜데……]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였다.

마기가 뒤섞여 있는 듯한 음성, 바로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사진성(史震聲)이다.

사은상과 사백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소일초의 안색도 침중해 졌다.

석옥 안에는 삼수가 다 모여 있을 지도 몰랐다.

[개소리 말고 나와라. 당신들의 사부께서 나에게 문호를 정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소일초의 외침에 돌연 석옥에서 마기가 걷히고 조용해져 버렸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석옥을 둘러싼 네 벽이 넘어가 버렸다.

자욱한 먼지가 이는데, 모두 긴장된 시선으로 석옥을 주시했다.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두 사람의 중년인이 석옥에서 나왔다.

멀리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리가 되는 데로 몸을 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장주께서 가신 곳으로 집결해라.]

거듭거듭 몇 번이고 소리는 들려 왔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적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석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기로 뒤덮여 있었는데,

위청천과 사진성의 몸 어디에서도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위청천이 말했다.

[정말 사부를 만났단 말이냐?]

[그렇다. 위청천! 나를 잊지는 않았겠지? 우리는 조부님을 만났다.]

주소아가 원독에 찬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위청천은 하늘을 보았다.

[그동안 이쁘게 자랐구나. 소아! 때를 잘 맞추었다. 하늘이 도우셨구나.]

위청천의 우수에 담긴 듯한 모습에 소일초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어리둥절해졌다.

사진성 역시 담담한 시선으로 사씨 남매를 지켜보고 있었다.

위청천과 사진성, 그들의 몸 어디에서도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서 말해야 할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단지!]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각이 미쳐 못된다.]

위청천은 슬픔이 베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가 중요한 말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형, 시간이 더 짧아질지도 모릅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습니다.]

사진성이 위청천에게 말했다.

위청천이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 말을 끊지 말고 듣기만 해라. 이것은 무림에 영원히 남아 만인을 경각시켜야 할 비사(秘事)고 모든 젊은이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사부를 떠나올 때 야심은 있었지만, 악인(惡人)은 아니었다. 막내가 백인장주에게 시집을 가버리고 난 후 우리는 야심을 위한 기틀을 준비하다 우리가 멸망시켰던 등천마교의 터전을 이용할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

[우리가 사부를 떠날 그 무렵 사부는 무서운 광기(狂氣)를 보이고 있었다. 소아 너를 잘못 키운 것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

[너를 막내가 데리고 가서 키우고 싶어 했지만 시집가는 여자가 아이를 데려갈 수는 없었기에 우리가 맡았던 것이다. 한데……]

[……?]

[장강 변에 있는 등천마교의 본단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지하밀실에 죽어있는 한 구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그 시신 역시 여느 시신이나 마찬가지로 사부님의 단장(短杖)에 의해 머리가 파열되어 흩어져 버리고 몸만 남아있는 것이었는데……그 옆에서 한부의 비급을 발견하였다.]

소일초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교칠십이절기였군……)

[그것은 소림의 칠십이절기와 이름을 서로 맞서서 지은 마교칠십이절기가 기록된 것이었다. 사부께서도 그것을 못 보셨을 리야 없겠지만, 당신께선 천하의 어떤 무공도 하찮게 보시는 고금제일인……]

[…………]

[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바뀌어 버렸다.]

[…………]

[사부를 떠난 뒤에 무학에 대한 열정을 어디서도 만족시키지 못하던 우리에게 마교칠십이절기는 어둠 속의 빛과 같았다. 모두가 절학이었으며 우리가 배웠던 것과는 근본부터 다른 것이었기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

[한데……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야망이 마공과 결합되면서 마성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피와 파괴를 점차 원하고 있었고, 등천마교의 교도들을 수 없이 죽였던 경험은 우리를 더욱 깊이 마성에 빠져들게 했다.]

[…………]

[삼성무림청을 세우고 야망을 이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었다. 그 와중에 생각해낸 것 중의 하나가 골격과 재질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소아 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주소아는 그때를 생각하는 지 지그시 이를 악다물었다.

[사부께 배운 무공과 마공을 절충하여 새로운 무공을 만들 수 있었는데, 생사보록이란 책에 기록하여 어린 소아로 하여금 익히게 했다. 소아의 오성은 놀라울 정도였고……우리는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소아를 천하의 대고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말을 듣는 살인기계인 대고수로……]

[…………]

[한데, 우리의 그 계획은 얼마가지 못해서 깨어지고 말았다. 막내의 남편 도왕 소선풍이 우릴 찾아온 것이었다.]

[…………]

[그는 우리를 사부에게 데려가려 했었고 우리는 거절했다. 사부를 만난다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다. 지나고 보면 그때 우리가 사부를 만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로서는 마공마저 익힌 상태라 마음속에 바른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강해지고 있던 때였다.]

[…………!]

[소선풍은 우리가 거절하자 소아(小阿)만이라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소아는 우리의 계획에 필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부로 부터 우릴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인질이기도 하기에 그마저도 당연히 거부했다.]

[…………!]

[점잔은 대협으로 소문난 그도 분노를 터뜨렸고, 급기야 우리와 일전을 겨루게 되었다. 아……그때 소선풍의 무공은 우리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의 무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그를 경시하고 있었는데……]

[…………]

[그의 무공은 세상에서 사부 외에는 당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둘이 합공해서야 그를 감당할 수 있었고, 셋이 합공해서야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

[한데, 도왕이라고 불리우는 그는 도를 사용하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거기다 그는 소아를 안고 상처입은 몸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우리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우리의 손에 의해 전신의 맥이 끊어질 정도의 상처를 입었었는데도 놓치고 말았지……]

[…………]

[우리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선풍이 몸을 회복하여 도를 들고 온다면 우리는 생명을 건지지 못할 것이었다. 단지 상처가 심하여 죽기를 바랐지만 그의 무공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드물었다.]

[사형! 일각이 지났습니다.]

사진성이 급하게 말했다.

위청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말했다.

[그 후 우리는 녹림맹에서 어처구니없이 세력의 팔할을 잃고 화산 옥녀봉에서는 다시 한 번 백인장의 저력을 실감하며 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

[뜻밖에도 녹림맹주이자 중원제일의 신비인인 황녹천이 둘째인 대성화와 때때로 관계를 가져왔던 그 여자였다. 그녀가 우리에게 구파일방을 손에 쥐게 해주겠다고 조건을 내걸었고 우리는 은신처를 도모하던 중이었기에 쾌히 승락했었다.]

[…………]

[그 여자는 무서운 여자였다. 약속대로 구파일방은 우리 손에 쥐어졌고 그녀는 우리와 동참했다. 한데, 그 후에 정천보를 만들 쯤에는 우리 모두에게 기현상이 나타났다.]

[…………]

[점점 마성에 깊이 빠져들면서 무수한 악행을 자행하는 데,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오히려 아주 맑은 정신이 찾아들고 모든 양심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때는 마성에 빠져 있을 때를 기억할 수 있지만 마성에 빠져 있을 때는 그때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

[그때부터 우리의 생활은 이중적으로 되어갔고 깊은 번민에 빠지게 되었다. 마성에 빠졌을 때는 극악한 마인으로 벗어났을 때는 지극한 선인으로 변함으로써 그때마다 극렬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우리가 사부로 부터 배웠던 정종무공으로 인해서였던 것 같다. 처음에 마공을 배웠을 때는 쉽게 사람에게 파고드는 마공으로 인해서 사부로 부터 배웠던 정종무공이 완전히 빛을 잃었다가……]

[…………]

[점차로 마공과 맞서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생겼던 것이다. 한데 마공이 더욱 강해지면서 우리가 맑은 정신을 회복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자각하고 있다.]

[…………]

[언젠가는 이 잠깐의 시간마저 영원히 없어져 버리고 영원한 마인이 되고 말 것임을……]

[…………!]

[한데, 둘째는 우리와 다르다.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완전한 마인이 되어버렸다. 둘째를 조심해라.]

[…………]

[소아야! 사부를 만나게 되거든 어리석은 제자들은 지옥으로 갔다고 전해다오. 그리고, 마음에 야망을 갖지 마라, 갖더라도 바른 것이 아니면 즉시 버려라. 청년의 야심 속에 악마가 자라고 있다.]

[사형! 시간이 멀지 않았습니다. 제게도 잠시 틈을 주십시오.]

사진성이 다급히 외쳤다.

[내말은 이제 다 끝났다. 할 말이 있거든 빨리 끝내거라.]

위청천이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사진성이 사씨 남매를 보고 말했다.

[너희들에게 내가 몹쓸 짓을 시켰던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바른 정신이 들 때마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무사한 것 같아서 마음이 적잖아 놓인다.]

[사부님……]

[아무말 말아라. 나는 악인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모든 악인이 바른 정신이 들게 되면 같은 말을 하겠지. 네 부모들은 북경에 계실 것이다.]

[……?]

[내가 마성에 깊이 빠져 들지 않았을 때, 왕옥산을 지나가다가 강도들이 마차를 터는 것을 목격했다. 두 노부부와 너희 두 자매가 타고 있었는데, 강도들을 죽이고 내가 너희들을 구했지만 너희들의 조부모는 구하지 못했다.]

[저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은상이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너무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데리고 와서 제자로 삼았지……무공을 가르치고……참으로 행복했던 때였다. 은상이는 아마 알 수 도 있을 것이다. 북경에서 네 집을 찾도록 해라. 부모님은 살아계실 지도 모른다.]

[이미 다 돌아가셨어요. 제가 전에 가보았어요. 그래서 우리에겐 사부님 뿐이었죠.]

사은상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의 욕심이 너희들의 생을 그르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구나.]

사진성이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사형!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그래!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위청천과 사진성이 서로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뚜두둑---뚜둑----!

그들의 몸은 둔탁한 음향과 함께 점점 수축되어갔다.

원천기가 탄식을 했다.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야망과 저주, 한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이렇게 되었으니……우리 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구나.]

모든 사건의 원흉으로 생각했던 삼수 중의 두 사람은 참회와 함께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사람이 가고난 지금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아마 죽어간 두 사람도 야망도 선악도 다 잊어버렸으리라.

소일초 등은 사은상의 뒤를 따라 뇌옥으로 달려갔다.

그곳으로 집결해라는 명령은 이미 이각 전에 떨어졌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六 章

 

           피 뿌리는 魚鱗刀

 

 

 

소선풍이 도를 들고 한걸음 다가서자 나무들마저 사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갑자기 강대한 바람이 일어나 그들의 옷자락을 찢을 듯이 몰아쳤다.

한 걸음을 다가서면 바람의 압력은 배로 강해지고 두 걸음 다가서면 네배로 강해졌다.

바람에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바람 속에서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호곡성이 들리고 모골이 송연하게 하는 비명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듯 했다.

바람속에서 조예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이곳이 환상림(幻像林)인 것 같아요. 빨리 빠져 나가야 해요.]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바람소리 속에 묻히면서 다른 괴이한 소리로 변해 두 사람의 귀에 들렸다.

공포의 환상림에 들어선 것이다.

직접 경험하기는 이것이 처음이지만 조예진은 사부로부터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진은 마음속의 자기가 적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기에 강한 사람 약한 사람 모두 자기의 환상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의 환상과의 싸움인데 쉽게 결판이 날 수도 없다.

결국은 기력이 고갈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길은 오직 한 곳 밖에 없는데 그들은 아주 잘못 들어온 것이다.

조예진의 마음은 다급했다.

소선풍의 옷자락을 당기면서 물러나자는 의사를 표시했다.

순간,

[아악!]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잡고 있던 소선풍은 어디가고 괴상한 나무모양의 괴물이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것이 아닌가?

환상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소선풍의 눈에 자기가 괴물로 보인다면 환상림을 모르는 그가 자신을 단칼에 죽일 지도 몰랐다.

순간,

[우하압--------!]

모든 환상을 깨뜨리는 상상치 못할 거대한 기합이 들렸다.

콰르르릉-------!

콰아아아-------촤아악------!

벼락치는 듯한 소리가 사방을 진동시켰고 땅마저 부르르 떨리는 듯 했다.

조예진의 눈에 어린도를 비켜들고 있는 정기 늠름한 소선풍의 모습이 확 들어왔다.

사방의 숲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이주용도 그 가공할 위력에 부르르 몸을 떨며 넋이 빠져 버린 듯 했다.

공포의 환상림도 상상을 초월하는 소선풍의 가공할 도법에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다.

[여보! 당신 무공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있군요……]

이주용이 새삼 처음으로 그의 무위를 보았다는 듯이 말했다.

[대단찮은 잔재주일 뿐이오. 어서 갑시다.]

조예진은 아직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잔재주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긴 공포의 환상림이에요.]

[환상림? 그게 뭐요?]

[저기 흩어지고 있는 푸른 연기 보이죠?]

조예진은 사그라지고 있는 푸른 연기를 가리키면 말했다.

[저 푸른 연기들은 여기 쓰러져 산산조각 나버린 이 나무들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사람을 자기만의 환상속에 빠져들도록 해요.]

환상림은 마풍수(麻風樹)라는 나무들로 이루어진다.

이 나무들은 잎에서 푸른 연기를 뿜어내는 데,

그 연기가 사람을 환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독이 아니기 때문에 만독불침의 몸이라 해도 소용이 없다.

이 마풍수가 일정한 진식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면 그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 인 것이다.

진식 안에서는 하늘도 뒤짚히고 땅도 뒤집히는 무서운 환상림인 것이다.

[죽었구나 싶은 순간에 눈앞이 확 걷히면서 당신이 보였어요.]

조예진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선풍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서둘렀다.

[자 대단치 않으니 어서 가기나 합시다.]

폐허가 된 환상림을 뒤로 하고 그들은 절벽에 접근했다.

과연,

하나의 동굴을 석문이 굳게 막고 있고 얼이 빠진 듯 그들을 지켜보는 무사들이 있었다.

환상림이 폭발하듯 사라져 버리고 나타난 사람은 겨우 일남이녀이니 넋이 빠질 만도 했다.

순간,

하압-----!

소리와 함께 이주용의 검이 날아가 두 사람의 몸을 꿰뚫고 돌아왔다.

어검술(馭劍術)이었다.

[삼 년동안 놀지는 않았죠?]

그녀가 비장의 기술을 선보이고 자랑스러운 듯 남편을 보았다.

[언니 대단해요. 언제 어검술을 익혔어요?]

남편은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고 조예진이 손을 치켜올리면서 칭찬했다.

그들의 뒤에서는 고함소리와 하늘을 태울 듯이 불길이 오르고 있었다.

마차가 마침내 정천보로 들어온 것이다.

[늦었소. 서두릅시다.]

소선풍은 어린도를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그의 어린도가 쭉 늘어나면서 십 장의 크기로 변해버렸다.

눈 앞에 아지도 남아있는 전천보의 나머지 무사들은 어린도에 두 동강이 나버렸고 소선풍은 이미 석문을 깨뜨려 버렸다.

쿠르르릉------!

이 장 두께의 두꺼운 석문은 종잇장처럼 베어져 무너지고 있었다.

세 사람의 몸은 빨려들 듯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동굴 안에는 두개의 갈림길이 있었다.

소선풍은 잠시 벽에 귀를 대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두 사람을 보았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소. 일단 당신 두 사람은 이곳을 장악하고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시오. 내가 먼저 왼쪽 길로 가보겠소. 기다리시오. 조심하고……]

두 사람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왼쪽 동굴로 날아서 들어가 버렸다.

가만히 있을 땐 태산같은 사람이었지만 움직일 땐 비호보다 더 빨랐다.

[흥! 핏, 우리보고 파수나 보라니……]

이주용이 투덜거렸다.

[우린 편안히 놀기만 하다가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조예진이 말했다.

이주용이 눈을 빛냈다.

[이쪽 동굴에는 뭐가 있는지 한 번 가볼까?]

조예진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랬다가 무슨 말씀을 들으려고 그래요? 얌전히 시키는 대로 여기나 지키고 있도록 해요.]

[늘 그렇게 하니까 우리 소대협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난 사랑받기는 틀렸나봐……성격이 이래서야……]

이주용도 자신의 성격이 나쁜 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한편,

왼쪽 동굴로 들어간 소선풍은 도중에 여러 명의 간수를 만났으나 눈도 깜짝 못할 사이에 어린도로 그들을 베어버렸다.

걸음마다 사방 벽에서 수십 가지의 기관이 작동하여 암기가 쏟아지고 독이 퍼부어졌지만 그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하고 모두 파괴되었다.

철로된 문을 찢어버리고 들어가니 악취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마침내 뇌옥이었다.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짐승처럼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져 있었다.

넓다란 장소에 단지 벽에 고정된 쇠사슬로 사람들을 개처럼 묶어놓은 것이다.

소선풍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목과 팔, 허리와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사십여 인물들이 그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백인장의 소대협 아니시오?]

흘러내린 머리칼 시꺼먼 얼굴……

소선풍은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 도리가 없다.

[맞소. 내가 소선풍이요.]

말을 하면서 그는 어린도를 움직여 사람들의 족쇄를 잘랐다.

와-----!

하는 함성이 뇌옥 안에서 울렸다.

순식간에 사십여 사람의 족쇄를 다 자른 그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미 풀려진 사람들은 먼저 나가고 있었다.

이때,

이주용은 청의면사인을 검으로 찌르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짜고짜 오른쪽 동굴로 다가들며 등에 진 물건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청의 면사인은 가까스로 검을 피하며 소리쳤다.

[시간이 없소. 방해하지 마시오.]

그의 음성은 어디서 들려오는 지 종잡을 수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육합전성……

바로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이었다.

그때 조예진이 소리쳤다.

[언니! 그 포대 안에서 화약 냄새가 나요.]

[이놈이 아예 우릴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내가 먼저 죽여주마!]

이주용은 살기등등하게 소리치며 검을 떨쳤다.

그러자 검은 빛살처럼 황녹천을 향해 날아갔다.

[어검술!]

황녹천의 경악에 찬 음성이 들리고 황녹천의 몸은 땅을 구르며 간신히 이주용의 검을 피했다.

[악!]

그러나 그는 조예진이 던진 돌은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깨어져 버렸다.

[이놈이 화약을 터뜨렸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그 사람까지 동굴 속에 묻혀버릴 뻔 했잖아!]

구멍이 뚫린 황녹천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순간, 훌렁하며 황녹천의 면사가 벗겨졌다.

[아니 무슨 계집이 이렇게 요상하고 독랄한 짓을 하려고 했을까?]

황녹천의 얼굴은 아직 삼십이 되지 않았을 여인의 것이었다.

주소아의 예측은 정확했지만 지금 조예진과 이주용은 그녀가 누군지를 알 길이 없다.

단지 요사스런 음성을 가진 동굴을 파괴하려한 독랄한 계집이라는 것 밖에는…

[그 여자는 누구요?]

그들의 뒤에서 중후한 음성으로 어느새 왔는지 소선풍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뛰어 들어오더니 이 동굴을 파괴하려 하잖아요. 그래서 죽여 버렸죠.]

이주용이 그렇게 말하자 소선풍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성미하곤,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죽였단 말이요?]

[아니! 그럼 다짜고짜 동굴을 파괴하려는데 어떻게 해요? 그리고 이번엔 내가 죽인 게 아니고 이 사람이 죽였다구요.]

이주용은 소리를 꽥 질렀다.

조예진이 아무말 못하고 고개를 숙이자 소선풍이 말했다.

[그만 둡시다. 이번엔 이쪽으로 가봐야겠소. 이쪽도 뇌옥일 듯 싶소.]

그는 다시 나는 듯이 오른 쪽 동굴로 들어가버렸다.

이주용이 씩씩 거렸다.

[그저 저 화상은 나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지, 어디 밤에 두고 보자.]

[언니 미안해요. 화풀어요.]

조예진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아! 나혼자 뿐이었을 때가 좋았는데……불쌍한 작은 마누라 신세여……!)

남몰래 한탄하는 그녀였다.

 

왼쪽 동굴에서는 짐승같은 모습을 한 수인(囚人)들이 밖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순간,

쿵----!

쿵-----쿵-----쿵!

동굴이 진동하고 있었다.

벽과 천정에서 돌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소선풍이 갑자기 오른 쪽 동굴에서 부터 뛰쳐나오면서 소리쳤다.

[빨리 빠져나가! 마물들이야!]

조예진과 이주용이 무슨 소린지 채 알아듣기도 전에 그가 달려들어 그녀들을 동시에 껴안고 동굴 밖으로 날아갔다.

동굴 밖으로 나온 그는 아주 다급해 보였다.

[누가 가서 빨리 일을 종결짓고 모두 이곳으로 오라고 해! 빨리! 저 안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어.]

소선풍은 언제나 말이 점잖은 사람인데 지금은 두 사람을 향해서 아주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이주용은 힐끗 조예진을 바라본 후 몸을 날렸다.

결코 소선풍의 곁을 떠날 그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선풍은 낮은 목소리로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말했다.

[뒤로 물러서 있어! 저들은 당신에 뒤지지 않는 고수들이야. 어떻게 해서 저런 괴물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조예진은 직감하고 있었다.

남편이 마물이라고 외쳤을 때 이미 사은상이 말했던 그런 것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소선풍은 하늘을 향해서 도를 치켜올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뇌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이미 폐허가 된 환상림을 지나가고 있는데……

꿍꿍-----꽝------!

동굴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나오면서 동굴을 일부 무너뜨렸어. 지금 그걸 뚫고 나오는 걸거야.오……!]

소선풍이 흥분을 가누며 말하다가 비명을 올렸다.

[동굴 앞의 그 화약! 그것만 생각했어도 완전히 매장할 수 있었는데……맙소사……]

그는 다시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가려고 했다.

[안돼요! 이미 늦었어요. 여기서 그들을 나오지 못하게 동굴을 더 부셔요.]

조예진이 그의 허리를 껴안아 저지시켰다.

소선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떼어놓고 하늘을 향해서 도를 높이 들었다.

순간,

그의 도에서 벼락치듯 우레 소리가 나며 사방의 공기를 압축시키는 엄청난 도강이 치솟아 하늘로 올라갔다.

도강의 길이는 족히 이십 장이 넘을 것 같았다.

갑자기 그의 도에서 도강이 자취를 감추었다.

꽝-----꽈르르르-------

도강들의 편린이 우박처럼 동굴을 향해서 폭사되어 동굴의 입구를 파괴해 버렸다.

환상림을 파괴했던 그 수법이었다.

[화약에 못지않아요. 정말 훌륭해요.]

[틀렸어. 위력은 몰라도……화약은 안에서 터지는 것이고 이건 밖에서 터지는 것이오. 동굴을 허물지는 못했어. 단지 막기만 했을 뿐……그 마물들은 곳 빠져 나올 것이오.]

[그렇게 무서워요?]

소선풍이 고개를 저었다.

[옛날에 삼수의 무공보다 그다지 뒤지지 않는 마물들이야……이들을 내보낼 수는 없어. 우리 식구들이 적지 않게 다치거나 죽을 거야.]

조예진의 그의 뒤에서 껴안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가 여기서 그들을 막아요. 사력을 다하면 곳 우리 식구들이 오겠죠. 그리고 당신과 함께인데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요.]

소선풍의 몸을 돌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나도 함께 죽어요. 두 사람만 같이 죽는다는 것은 분해서 못 봐요.]

이주용이 어느새 통보를 하고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곧이어,

꽝-----!

소리가 들리며 무너진 동굴에서 바위와 돌이 날아 나왔다.

[드디어……]

소선풍은 입을 굳게 다물며 도를 수평으로 겨누었다.

마침내,

일남이녀와 백 명이 넘는 마물과의 경천동지할 대 격전이 벌어졌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五 章

 

          黃綠天의 提案

 

 

 

태실봉의 정천보로 올라가는 길은 넓고 고르게 잘 닦여져 있었다.

이곳은 정천보가 있는 곳에서 십리도 되지 않는

 

하마령(下馬嶺),

 

정천보가 들어서기 전에는 길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악(五嶽)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나온 황제라 할지라도 말에서 내려야 하는 고개였다.

길은 좋아도 고개를 없애지는 못했다.

 

멈춰라-------!

사방에서 울리는 육합전성의 목소리,

바로 무적검을 잡아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중원제일의 신비인이자 녹림맹주인 황녹천이었다.

마차는 멈춰지고 황녹천의 말이 다시 들렸다.

[이곳 하마령에서 잠시 쉬어간다. 정천보가 눈앞이니 해지기 전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명령이 있을 때 까지 쉬도록…… ]

그제서야 사방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며 일천여 명의 고수들과 말들이 쉬기시작했다.

끼리릭------덜컹-----!

마차의 철문이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열렸다.

[무적검, 죽지는 않을 모양이군.]

황녹천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소일초는 등을 보이고 누워있었다.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 들어왔나?]

[천만에,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할까 싶어서……]

황녹천은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많이 컸군, 황녹천. 내가 발톱빠진 사자같은가?]

[그런 말은 하지 마세. 자네와 이야기만 잘 되면 나는 자네 몸을 치료해 줄수도 있네.]

황녹천은 예의 그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천보에 들어가기만 가면 제일 먼저 죽여버리겠다……)

소일초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소림사의 대환단이지, 이것 하나면 자네의 내상은 물론 외상도 어느정도 치료되겠지……]

황녹천은 작은 옥병에서 구슬만한 알약을 꺼내 보였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그의 말처럼 대환단인 모양이었다.

(이 계집이 무슨 수작을 하자는 거야?)

소일초는 그 전에 주소아로부터 황녹천이 여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계집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으면 자네는 정천보에 갈 것 없이 여기서 죽게되겠지……]

황녹천의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호한 음성이었다.

[나에게 유리한 이야기라면 마다할 리가 없겠지……]

소일초가 말했다.

[좋아 무적검! 솔직히 다 말하겠다. 나는 지금 삼수의 밑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조건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지. 나 역시 삼수를 죽이고 싶으니까……]

황녹천이 조건을 제시한다.

[네가 정천보를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그러면 너는 명실공히 정사무림을 일통한 무림의 제왕이 되겠지?]

[구미가 당기는군, 하지만 너는 무엇을 얻게 되지?]

[무림이 일통된다고 하더라도 정사가 뒤섞일 수는 없겠지, 필연적으로 분리해서 통치해야 할테고 그러면 최소한 두 명의 군왕(君王)이 필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되지 않은가?]

[그래야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중의 한 군왕이지.]

황녹천은 의미심장하게 소일초의 등을 보고 웃었다.

소일초는 여전히 처음의 자세대로 말만 주고받는다.

[왜 스스로 무림을 일통하고 제왕이 될 생각을 하지 않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머리만큼 무공이 따라주지 못해. 필연적으로 무공이 강한 자를 업고 있어야만 무림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 있지. 네 무공과 내 머리가 결합하면 천년의 무림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황녹천의 야심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컸다.

[대단한 야심가였군, 황녹천 너처럼 거대한 몽상을 가진 자를 난 만나본 적이 없다. 왜 그 야심을 삼수와 함께 하지 않나?]

소일초가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지. 아니 그 전에는 구파일방을 이용할 생각이었어. 구파일방의 수뇌들 중에서도 옛날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야심가들이 적지 않거든, 한데 그들 중에 진정 대단한 인물은 없었어.]

[…………!]

[모두가 그렇고 그런 정도였지, 조금 났다는 것이 소림사의 도봉이나 선인일검자나 홍건개 정도였으니까.]

[녹림맹주인 네가 어떻게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

소일초에게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였다.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의 신비가 벗겨지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구파일방의 세력이 위축된 만큼, 그들의 살림도 빈약했지. 그건 접근할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 그들에게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금과 은을 보냈지……]

[…………!]

[처음엔 적은 양이었으니까 별생각 없이 받더군, 그래서 점차 그 양을 늘려나갔지. 그들의 생활은 윤택해졌고 배에는 기름이 끼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이미 나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곤란하게 되었고……]

[…………]

[나의 존재에 상당한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 그것은 곧 나의 영향력의 증대를 의미했고 나는 그들을 배경으로 녹림맹을 천하의 종주로 만들려고 했었지.]

그의 말에 소일초가 의문을 제기했다.

[구파일방이 그렇게 어리석지만은 않았을 텐데…………]

황녹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삼성무림청과 우리 녹림맹의 싸움이후에 구파일방은 단교를 선언하고 나왔지. 자기들의 치부가 노출될까 싶어서 두려워한 것이었어. 그래서……]

[……?]

[화가 난 나는 그들과 지내면서 파악해 놓았던 것들을 토대로 그들을 삼수에게 팔아버릴 생각을 했다. 하늘이 나를 도와서인지 삼수는 옥녀봉의 결전에서 심한 타격을 받고 잠적할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었지……]

소일초가 빈정거렸다.

[정말 하늘이 도왔군……]

황녹천은 그의 말에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만 했다.

[삼수와 손을 잡고 구파일방의 우두머리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 지금의 인물들은 모두 가짜고 우리의 꼭두각시야.]

말을 하다 말고 황녹천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정말 기뻤지. 내 야망의 반은 달성된 듯 했으니까. 구파일방은 손아귀에 들었고, 삼수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어. 한데……]

소일초는 침을 삼켰다. 이제 진짜 중요한 대목인 것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고문으로도 다 들을 수 없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말로 진실이고 깊이 있게 이야기되는 첫사랑의 추억담과 같은 것이다.

황녹천이 말을 이었다.

[삼수가 미쳐버렸어!]

황녹천의 말은 던져버리듯이 튀어나왔고, 소일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근래에는 무림의 고수가 미치는 것이 무슨 추세라도 되는가?

마금석이 미치는 것을 본 적이 언제라고 또 삼수마저 미쳤단 말인가?

[셋 모두 말인가?]

[그래, 그들은 마공에 미쳐서 괴상한 짓을 서슴지 않았어. 무림일통 같은 것은 희미해져 버리고 파괴와 살인에만 정신을 쏟는 거야. 끔찍한 마물들을 만들어 가면서……]

소일초는 황녹천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삼수가 칠십이기재들의 한과 저주, 천지파멸의 뜻을 실행하려는 거야……)

끔찍한 일이다.

그들이 무림일통 정도가 아닌 천지파멸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그 참상은 측량할 수 도 없을 것이다.

삼수……

그들은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마교칠십이절기를 얻은 후에 자기들의 무공과 결합하여 더욱 가공할 무공으로 만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마공의 사악괴이한 수법들에 눈을 뜨면서 점차 깊이 빠져들어가서 칠십이기재들이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원했던 그런 마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직 피와 파괴만을 추종하는 천지파멸의 도구가 되어버린 샘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정통마교주들이 나온 것이었다.

이것은 칠십이기재는 물론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원천기가 옛날 같으면 제일 좋아할 일이겠군, 세명의 종자가 생겼으니……)

황녹천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너에게 죽은 세 마물들, 탕마령주와 혈군자, 그리고 마금석들은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었지. 천하의 무적검인 너도 정신없이 혼이 났을 정도니까……]

[…………!]

[지금쯤은 그런 마물이 아마 백여 개는 만들어 졌을 걸? 그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만들 수 있게 됐거든.]

소일초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경악했다.

그런 마물들이 백여 개라면……

백인장의 고수들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 아니 위험할 것이다.

[얼마 후 세상은 그들 마물들로 인해서 피에 젖지 않은 곳이 없어질 거야. 천하에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황녹천도 고개를 내저었다.

[두려운 일이야 두려운 일…………]

소일초가 말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너 역시 그 일에 동참하지 않았나.]

[그래,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무림의 패권에 동참하겠다는 것이지 세상을 깨뜨리려는 것에 동참하려는 것이 아니었지……]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추었어. 그건 바로 마장탑의 칠십이기재들의 뜻인 천지파멸을 위한 일이야. 그 뜻을 삼수가 이행하고 있는 것이지.]

황녹천이 소일초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너도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조금은……]

[상관없지. 아무튼 삼수를 제거해야겠어. 그리고 난 후에 그 마물들을 없애야겠어.]

[어떻게?]

[처음엔 너를 나의 명령만을 따르는 마물로 만들어 그들을 차례로 죽일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직접 너와 거래하기로 한 거야.]

소일초가 신중하게 물었다.

[삼수를 만나면 알아볼 수는 있는 건가?]

[그들은 신분을 감추는데 도가 튼 자들이지. 그래서 내가 만약의 경우에 그들을 알아보기 위해 내공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한옥패를 자철(磁鐵)로 만든 목걸이에 끼워서 선물했었지.]

[…………!]

[그들은 그 목걸이를 한 시도 떼어놓는 적이 없지, 내공을 높여준다는 무림기보인데 어찌 몸에서 뗄 수 있겠나?]

소일초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그걸로 삼수를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황녹천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물론, 금광을 찾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자침(磁針: 나침반)만 있으면 그들이 근처에 오는 즉시 알 수 있지.]

소일초는 황녹천이란 인물이 정말 야망을 품을 만큼 대단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림에 그가 깔아놓은 복선이 얼마나 많을 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대충 할 말은 다한 것 같군, 이 대환단을 먹고 상처를 치료하게, 삼수만 자네가 제거해 주면 내가 마물들을 제거하고 정천보를 장악해 자네에게 바치겠어. 그럼, 자네는 무림의 제왕이 되고 나는 무림의 군왕이 되는 거지. 사실……]

[…………]

[정천보 같은 반쪽의 주인이 되는 것 보다는 최초로 통일된 무림의 이인자가 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황녹천은 그의 등 뒤에 한 자루의 단검과 대환단을 놓고는 나가버렸다.

출발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서 마차와 함께 일천여 명의 사람들이 움직여갔다.

두두두두-------!

 

× × ×

 

소일초는 대환단을 품에 넣고 단검을 보았다.

단검의 끝은 다른 쇠를 붙여 만든 것이었다.

단검을 움직일 때마다 그것은 곤충의 촉수처럼 휘어지며 북쪽을 가리켰다.

교묘하게 만들어진 자침(磁針)인 것이다.

마차는 마침내 정천보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편,

정천보에는 은밀히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치밀한 경계망을 뚫고 그림자처럼 스며들며 정천보의 곳곳으로 흩어지는 그림자들……

소일초가 탄 마차를 추월해온 백인장의 고수들이었다.

 

-------모두들 잊지 마라. 마차가 정천보로 들어와 모든 이목이 그곳으로 쏠린 순간 방화한다.

 

입에서 입으로 말이 전해지는 동안에,

백인장의 고수들은 정천보의 모든 전각들을 각기 점거해 가고 있었다.

 

소선풍-------!

 

백인장의 장주이자 주소아가 무림인을 논할 때 주하운 다음가는 두번째의 고수라고 일컬었던 사람,

그의 어깨에는 어린도가 매여져 있고, 오늘 결전을 위해서 소매가 딱 붙은 백색무복을 입었다.

그의 뒤에는 이주용과 조예진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미 정천보의 깊숙이 들어온 그는 거침없이 당당히 자기 집 인양 걸어갔다.

[누구……윽!]

당당히 걸어오는 소선풍과 그의 두 부인을 보고 정천보의 한 무사가 물어보려다가 조예진의 지풍에 격중되어 황천길로 가버렸다.

소선풍은 힘차게 걸어가고 그의 두 부인은 그들의 앞을 막는 무사들을 가차없이 살해했다.

(마누라도 둘이 되니까 쓸데가 많군.)

소선풍은 속으로 뿌듯했다.

그들이 가는 곳은 정천보의 뇌옥이었다.

백인성의 좌봉공이자 무림 십이 대 고수의 하나로 허명(?)을 날렸던 무심군자의 작전에 따라 그들은 뇌옥을 파괴하려 하는 것이다.

방화와 살인, 그리고 뇌옥의 파괴가 삼박자를 이루어 거대한 정천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려는 것이다.

혼란의 와중에서 편안히 그들은 삼수를 찾고 살인을 저지르면 되는 것이다.

강력한 집중력과 전투력을 가진 백인도객은 천군이든 만마이든 상대해낼 것이다.

[이쪽길이 맞기는 맞소?]

소선풍이 누구를 향해서인지는 몰라도 두 부인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사은상 그 애가 그려준 그림에 따르면 저 안쪽 절벽 속에 뇌옥이 있어요.]

조예진이 말했다.

[그럼 빨리 움직입시다. 이러다간 우리가 제일 늦겠소.내 뒤를 쫓아오도록 하시오.]

말과 동시에 소선풍의 몸은 무엇에 끌려가기라도 하는 듯 쭉 앞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을 보고 뛰쳐나오던 정천보의 무사들이 그가 지나감에 따라서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그 뒤를 바짝 붙어서 이주용과 조예진이 달려갔다.

몇 개의 전각을 지나노라니 곳곳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백인도객들이 있었다.

그들은 품위유지 하느라고 꾸물거린 장주부부보다 더 빨리 자기들의 정해진 위치에 가 있었던 것이다.

전각들을 지나서 작은 관목 숲이 있었다.

소선풍은 암습이나 함정을 두려워하는 작은 고수가 아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 들어갔다.

그곳을 지나야 뇌옥이 있는 절벽이 나오는 것이다.

순간, 그와 그의 두 부인은 걸음을 뚝 멈추었다.

숲에 가득하던 키가 크지도 않던 나무들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숲에 진세(陣勢)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군.]

소선풍이 말하며 자기가 모르는 진세인지라 두 부인을 둘러보았다.

그녀들도 알 수 없는 진이었다.

소선풍의 옷자락을 잡고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었다.

소선풍이 조금 더 둘러보다가 어깨에서 어린도를 풀어들었다.

[보내주지 않으니 부수고 가야겠지.]

두 부인을 보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四 章

 

              생기지도 않은 아들을 賭博으로 날려버린 사나이

 

 

 

숭산 태실봉을 향하여 달리는 마차는 지나가는 땅마다 깊은 바퀴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겉모양은 보통 마차와 같았지만 그 속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하나의 작은 철옥(鐵獄)이다.

말을 타거나 경신술을 펼치며 마차의 사방에서 일천 명이 넘는 고수들이 달려가는데, 마차 안에서는 폐인이 되다시피한 청년이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 위쪽에는 험악하게 패여 두개골이 드러나 보이는 심한 상처를 입고 있으며, 갈라져 있는 옷 사이로 시뻘겋게 갈라져 아물지도 않은 긴 상처가 보였다.

바로 소일초였다.

혈군자의 장환술을 격파하지 못하여 두 사람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고 황녹천에게 잡혔던 그……

벌써 이틀 동안을 마차에서 보냈건만 그의 상처는 조금도 차도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일 먼저 걱정이 되는 것은 격전 중에 잊어 버렸을 백인장의 신물 청옥소도와 사부인 검마의 사리(舍利)를 원천기 등이 찾아 주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둘다 그에게 소중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나는 가문의 상징이고 하나는 자신을 주켜주었던 스승의 진체사리이다.

그것들이 가치없이 버려지거나 남의 손에 들어간다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청옥소도에는 백인장의 최고 절학인 마도구식이 숨어있기까지 하는 것이니 무림에 나돌면 능히 혈겁을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위험을 느끼고 다급히 깨어나지도 않은 사옥상을 땅에 뭍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숨은 쉴 수 있도록 해 놨으니까 질식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원천기 등이 돌아오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온다면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닐 그녀가 어떻게 할 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자기를 생포한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 역시 그의 의문 중 하나였다.

황녹천이 어떻게 해서 탕마사십사객과 함께 혈군자나 마금석같은 고수들을 데리고 자기를 공격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은상의 말로는 삼수가 구대문파를 장악하는데 황녹천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수 많은 의문들,

어느 하나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들과 더불어,

그의 생각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장환술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 하는 것이었다.

절세의 무공 일초검공도 상대가 어디 있는 지는 최소한 알아야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숨도 쉬지 않고 심장의 박동도 들리지 않으며 전혀 기척도 없이 보이지도 않는 중에 공격해 들어오는 것은 진짜 유령과 싸우는 짓이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흔적도 없이 도륙당했을 지도 모르지……)

[일초야 일초야 그 걸 어떻게 깨뜨린단 말이냐? 사부께서 가르쳐 주실 때 배워 놀 것이지 이제와서 그때를 후회한단 말이냐……휴……]

무학이 아주 깊은 경지에 이른 대 고수들은 장환술에도 대부분이 일가견이 있다.

장환술도 역시 무학의 한 분야이기에 연구하는 것이었다.

장환술……

환상을 만들어 내고 나약한 정신과 완고한 정신 등 모두 정신적인 틈을 파고들어가, 눈과 귀를 막음은 물론 심한 경우 수족을 묶어버리기도 하는 정신의 무공이었다.

환술이라고도 하는 것은 흔혹되지 않으면 되지만 그만한 수양을 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공과 결합되어 펼쳐지는 장환술은 아주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장환술을 깨뜨릴 능력이 없는 자라면……

[무공이 강하면 뭘하나……장환술은 깨뜨릴 방법이 없는데, 제길……반쯤 죽었을때 사부를 찾아서 다시 배워갖고 오는 건데……]

남만의 검마동에서 사부와 함께 있을 때였다.

검마는 비록 일초검공 하나로만 이름을 떨쳤지만 다른 무공에 대한 이해도 남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장환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깨뜨리기는 물론 펼칠 수도 있었다.

소일초에게 그가 말했었다.

[장환술을 깨뜨리자면 펼치는 사람에 응해서도 안되고 거부해서도 안된다. 시전자는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검마는 그에게 장환술과 깨뜨리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했으나 고집불통 소일초는 잡술(雜術)이라며 배우려 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장환술은 강력한 의지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변덕이 심한 그가 배우려면 얼마나 혼이 나야할 지 알 수 없었기에 이 핑계 저 핑계로 건너 뛴 것이었다.

검마는 그 당시 한숨을 쉬었다.

[배울 때 배워 놓지 않으면 언제가 후회할 때가 오는 법이거늘……]

[검은 천하병기의 으뜸이고 도에 이르기 가장 정통적인 방법이라 하셨죠? 그럼 검술 하나로도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전 안 배울래요.]

소일초는 자신있게 말했었는데 사부의 말은 사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마차는 정천보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그의 생각은 해답을 찾아서 달리고 있었다.

잡히지 않는 해결책……

[상대방에 응하지도 말고 거역하지도 않으면 깨뜨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순간,

만년한철로 된 마차의 한쪽에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도와줄까?]

소일초는 흠칫했다.

이 마차 안에 사람이 나타나다니……

창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데 한 모퉁이에 단정히 앉아있는 미남청년……

소일초는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이리저리 터진 몸을 가누고 넙죽 절을 했다.

[여기서 나가겠느냐?]

[아닙니다.]

[몸을 완전히 상했구나.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주하운이 손을 뻗어 그를 만지려 했다.

소일초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몸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보다 저……내기 도박 딱 한 번 만 하면 안되겠습니까?]

소일초는 뼈가 드러난 머리를 긁으며 히죽 웃었다.

주하운도 어처구니없는 그의 태도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견딜 만 하기는 한데 곤란한 점이 있는 모양이지?]

[네……]

[아까 중얼거리던 것 말이냐?]

[네……]

소일초는 싱글벙글했다.

저승에가서 사부를 모시오지 않아도 장환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 젊은 형씨가 모르면 천하의 누가 안단 말인가?

소일초가 처참한 모습으로 귀신처럼 웃는 모습을 주소아가 봤으면 평생 곁에 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도 내기로 결정하자. 나도 걸어야할 중대한 것이 하나 있으니 잘됐다.]

주하운은 소일초와 만나면 체면이고 뭐고 어디론지 반쯤은 달아나 버리고 그와함께 어울린다.

손녀 사위될 젊은이와 이런다는 것이 체통이 서는 일은 아니지만 누가 알라고?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할까요?]

소일초는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필승이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방법을 정하지.]

[그럼 제가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합니다.]

[좋아. 내가 원하는 것은 이번에도 한가지 뿐이야.]

주하운도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자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장환술을 깨뜨리는 방법을 금방 가르쳐 줄 수 있으면 내가 이긴 것이고 일 각 이내에 가르쳐 주지 못하면 네가 이긴 것으로……]

[그……그럼……]

소일초는 아주 당황했다.

설마 그런 내기를 걸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내기에서 이긴 조건으로 장환술을 가르쳐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벌써부터 자기의 넋두리를 다 듣고 있었는지 먼저 그걸 들고 나온 것이다.

장환술을 배우기는 하겠지만 주하운의 승리가 될테고 조건으로 무언가를 들어줘야 할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한 장환술을 깨는 비법을 귀를 막고 배우지 않을 도리도 없다.

소일초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지고 만 것 같습니다. 조건을 말씀해주십시오.]

하하하하------!

주하운은 크게 웃었다.

이제야 전에 당했던 앙갚음을 톡톡히 하게된 것이다.

속아서 무공 가르쳐 주고 거기다 열흘 동안 창산기슭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던 보복을 하는 것이다.

웃음소리가 컸지만 소일초도 걱정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가 있는 이상 그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웃음소리는 마차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내 조건은 간단해. 앞으로 소아가 낳는 아이들 중 두 번째의 사내놈에게 반드시 주씨성을 붙쳐주고 나한테로 보낼 것!]

[그……그건 제 아버지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요?]

[선풍이 그놈이 뭐라고 하면 내가 훔쳐가 버릴 테니 그렇게 알라고 해!]

[소아는 무공이 강해서 어쩌면 아기를 낳지 못할 지도 모르는 걸요……작은 어머니처럼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잘만 낳을 거야. 만약 딴소리하면 또 직접 백인장으로 가서 훔쳐서라고 가버릴 거니까 좋게 들어.]

소일초는 낳기는 커녕 만들어 지지도 않은 둘째 아들 놈을 도박으로 날려버렸다.

주소아가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할지 화를 낼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앞으로 마누라도 도박으로 날릴 놈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모를 일이었다.

 

낳지도 않은 아들은 예약되어버렸고……

마차는 달려가는데 어떤 장환술이건 간단히 깨어버릴 수 있는 비법은 전수되고 있었다.

[그 쌍둥이 처녀들 중 정신을 금제 당했던 아이도 네 여자냐?]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근래에는 무림에 기재들이 많이 나타나는 구나. 그 아이도 너와 소아, 그리고 소중이를 제외하고는 따를 사람이 없을 기재이더구나. 휴……]

[그 여자는 정신이 조금 모자라는……]

[어릴 때의 충격때문에 정신의 발육이 멈춰버렸었던 거야. 고쳐줬으니 그 값은 나중에 쳐서 받겠다. ]

그 말을 듣고 소일초는 질겁을 했다.

[또 아이입니까?]

[아이는 됐어. 다른 걸 생각해 봐야지. 소영감은 무슨 복이 많아서 후손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맺히고 나는 하나있는 손녀까지 빼앗겨 버려야 하나……그 영감이 아직도 한번 진 것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있나……]

그는 소일초의 조부(祖父)인 소호연(蘇昊硯)이 무척 부려운 듯 했다.

[나는 가마!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있더라. 네 물건들도 안전하게 회수한 모양이고……물가에서 고깃덩어리까지 잔뜩 가져온 모양이더군……에잇, 나는 그놈들이 보기 싫어서라도 이쯤에서 북경으로 가버려야 겠다.]

주하운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개처럼 흩어지며 마차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말하는 그놈들은 두말하지 않아도 삼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떠나는 주하운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뜻 밖에도 소일초가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별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고 자신의 배덕한 제자들은 소선풍 등이 알아서 제거할 것이다.

손녀도 만났고 귀엽던 조예진도 다시 만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백소중과 함께 북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백인장의 힘을 알기에 정천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 × ×

 

이 보다 앞선 시간,

백인장의 모든 고수들이 한 곳에 모아 놓고 원천기가 별채의 벽에다가 사람 키만큼 큰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키는 여섯 자가 될락 말락하고, 체형은 나와 거의 같소이다. 무게는 내가 아닌 여기 어느 분이 가장 잘 아실 것이고……]

킥킥킥------

여기저기서 주소아를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주소아의 얼굴이 발갛게 되어 원천기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모른 척하고 계속 말한다.

[눈은 장주님이신 소대협의 눈을 그대로 그리면 되겠고……볼은 심술기가 있으니까 아마……]

그는 더 말을 잇지는 않고 이주용을 힐끗 본 후에 그대로 그렸다.

우하하하-------!

이극송과 소선풍마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버리자 백인장의 사람들 모두가 기회다 싶어 마음놓고 웃었다.

이주용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는데, 주소아는 그 모습까지 소일초가 화날 때의 모습같아 보였다.

(어이구 시원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구나……)

남아있는 일곱 원로도객의 우두머리 동평선생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은 모든 원로도객들이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코는……귀는……턱은……

하면서 원천기가 재미나게 이야기 하면서 그려나가자 어느새 소일초의 그 얼굴모습이 되어버렸다.

소선풍과 이주용이 있었기에 더욱 완전하게 그릴 수 있었다.

부모를 닮지 않은 자식이 어디있어야 말이지……

원천기는 소일초의 변해버린 모습을 백인장의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이제 정천보에 들어가게 되면 마주치게 될 테니까 몰라보고 살수를 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백인장의 사람들과 그 친구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승리는 불을 보듯 분명한 것이었다.

그들이 병기를 점검하고 호기를 불태우고 있을 때,

하늘에서 커다란 검은 새가 두 마리 내려왔다.

그들은 비성성이었다.

현재 백인장의 사람들 치고 비성성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몇 년을 백인장의 가라앉은 섬에서 보낼 때 그들의 가장 재미나는 소일거리 중의 하나가 비성성들의 소동을 보는 것이었다.

그 비성성들은 사람들의 생활을 흉내 내려고 여러 가지 짓을 하곤 했었는데 엉뚱하고 괴상하여 우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조예진이 비성성의 말을 대충 알아듣고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마차가 이십 리 정도 달려갔다고 합니다. 지금 쫓으면 그들의 방심을 틈타서 쉽게 정천보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동은 즉시 이루어지고……

일백 삼십 여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백인도객(百刃刀客)……

백인장이 생긴 이래로 최초로 모든 백인도객이 한 곳으로 출동했다.

누가 이들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문파에서 이들의 힘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일천 명이 넘는 고수들에 둘러싸인 마차는 정천보에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의 뒤에서는 무림최강의 문파 백인장의 주력이 뒤따르고 있었다.

 

× × ×

 

마차 안에서 소일초는 정천보가 가까워 옴에 따라서 몸을 정비하고 있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정천보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정천보로 모여들고 있을 것이다.

주하운이 이미 그들을 만나본 듯하지 않았던가?

사은상의 증언에 의하여 삼수가 정천보의 우두머리임은 이미 밝혀졌으니 그들을 죽이는 일 만 남았다.

자기를 호송하고 있는 황녹천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무공으로 행세하는 자가 아닌 비밀과 음모로 살아가는 자이니까 무식하게 때려잡으면 될 것이다.

건방진 구파일방이야 삼수를 때려부순 후에 추궁해도 될 것이다.

소일초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릿가죽의 일부분이 찢어져 나가고 흰 두개골에 패여진 상처가 남아있었다.

혈군자의 섭선에 당한 흔적이다.

손바닥으로 슬금슬금 문지르자 뼈가 아물고 머릿가죽이 다시 덮여나왔다.

상처가 깊은 곳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금방 치료할 수 있다.

그의 몸속에는 백송균화의 힘이 있으므로 생명을 살리고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내상도 치료하고 외상도 치료했다.

만신창이 되었던 사옥상의 몸도 깨끗이 치료했는데 자기 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외상이 치료되고 나니 공력은 절로 되살아났고 마차의 문이 열리고 삼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손에서 붉은 마황검이 일렁이다 사라졌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三 章

 

          客店에 찾아온 神仙

 

 

 

 

사은상은 땅속에서 찾아낸 사옥상을 끌어안고 울었다.

눈 만 멀뚱거리는 사옥상은 완전한 백치가 되어있었다.

취풍녀와 한천이기 사마귀 등은 폐허로 변해버린 격전장에서 넋을 잃고 있었다.

사방 수 십여 장을 휩쓸고 부수고 뒤집어 버린 대 혈투는 어떤 것이었는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살점들과 뿌려진 피……

현장을 둘러보며 원천기는 중얼거렸다.

[소일초가 죽었단 말인가?]

그의 말에 취풍녀가 강한 도리질을 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는 결코 죽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소일초에 대한 철저한 신념이었다.

그때 문득,

[저기에 보물이 있어.]

투귀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곳으로 쏠렸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투귀는 다가가서 여러가지 물건들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귀와 지금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원천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모두 투귀에게 쏠리는데,

원천기와 한천녀, 그리고 도귀와 사은상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투귀의 귀신같은 눈이 무엇을 찾아냈는지 그들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취풍녀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울부짖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분이 돌아가실 리가 없어요. 얼마나 강한지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누가 그분을 죽일 수 있단 말이에요.……]

그녀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천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진정시키고 있을 뿐……

원천기가 겉옷을 벗어서 주변에 떨어져 있는 살점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기 시작하자 사마귀도 각자의 옷에 살점들과 뼈조각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우왝---왝-----]

사은상이 심한 구역질을 했다.

어둠 속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샅샅이 뒤지며 주운 살점들을 한 곳에 모으자 상당한 부피가 되었다.

불타는 처참한 인간의 잔해를 바라보는 그들의 볼에는 무림의 강호들답지 않게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취풍녀는 충격이 얼마나 심했는지 실신하길 거듭했다.

사은상이 재를 수습하여 원천기가 벗어준 겉옷에 싸서 손에 들었다.

 

× × ×

 

북경의 대운루(大運樓),

자금성으로 향하는 주작로 변에 있는 이 주루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왁작지껄한 가운데 무림인도 관리도 구분이 없다.

한데,

이 시꺼러운 곳에서 방금 만난 두 사람이 구석진 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잡혔다네……]

[그게 무슨 말인가? 무적검이라면 마도사상 최고의 기재라고 소문났던 그 아닌가?]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황녹천이 잡았다더군……]

[자넨 이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가?]

[지금 벌써 소문이 안 도는 곳이 없어……숭산 태실봉의 정천보로 데려가는 중이라더군……]

그들의 이야기에 주루에 앉은 무림인들 중 귀가 밝은 상당수의 인물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에는 준미한 소년도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살며시 다시 물어보았다.

사실이라고 한다.

어디서 부터 퍼지기 시작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방에 쫙 퍼졌다고 한다.

소년은 빠른 걸음으로 주루를 나가 어디론지 사라졌다.

 

× × ×

 

숭산 밑에는 지금도 유명한 무술의 고장 중의 하나인 등봉현이 있다.

이곳에서 소림사가 있는 소실봉으로도 갈 수 있고 정천보가 있는 태실봉으로도 갈 수 있다.

이곳 등봉현은 그 이름 만큼은 크지 않는 고을이었다.

주민이래야 고작 삼사 천에 불과한……

한데,

느닷없이 이 등봉현에 무수한 이방인이 모여들며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객점은 일찌기 만원(滿員)이 되고,기루마저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늘,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이곳을 지나는 것이다.

그리고,

등천마세의 고수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신분을 숨기고 포진해있기도 하다.

또한 정천보의 고수들이 무적검을 지키기 위해 집결하여 곳곳에서 등천마세의 고수들과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천보에서는 정예고수 일천명을 동원하여 그를 호송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고수들은 단지 외적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등봉현의 여러 객점 중의 한 객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에 의해 통채로 세를 주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천에 싸인 길죽한 물건을 등에 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사방을 방비하고 있었다.

그 객점의 가장 별채에는 이십여 사람이 모여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무림의 최강세력 백인장의 사람들이었다.

백인장의 요인들은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주인 도왕 소선풍과 그의 두 부인, 그리고 일곱 명의 원로도객과 좌우봉공이 있었다.

거기다,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과 검왕자 이수군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얼굴에 서릿발을 드리우고 있는 수척한 주소아와 한천이기, 그리고 취풍녀와 사씨자매, 사마귀가 배석하고 있었다.

이극송이 창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삼수가 도망칠까봐 그렇게 겁이나는가? 일초가 비참하게 끌려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빙장어른! 일초가 정천보에 들어가고 난 후에 손을 쓰도 늦지 않습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다시는 삼수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소선풍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내가 죽고난 후에 삼수나 찾아다니게. 나는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일초를 구하고 말겠네.]

[삼수는 그 동안 모든 무림의 혈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해 왔습니다. 이번에 뿌리를 뽑지 못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지 모릅니다.]

이때 주소아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제가 당돌하게 한마디 올리고자 합니다. 고모부! 고모부께서는 호정수신(護正修身)하는 백인장의 장주이시고 무림의 대협이시니 혈육의 정보다 정의를 표방하시는 것이 당연하십니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구나.]

[그러나, 고모부! 저는 무림의 대협도 아니고 정의를 숭상해온 협객도 아닙니다. 저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그 뿐입니다. 저 또한 검왕 할아버지처럼 혼자서라도 그를 구할 것입니다.]

[애야, 네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이란다. 하지만 일에는 대소가 있고 무리에는 우두머리가 있는 것이니 우리는 자중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조예진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고모! 지금 그는 오늘 괴물로 변해서 모습을 나타낼 지 내일 괴물이 돼서 우릴 죽이려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를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해요. 정천보로 들어가면 이미 늦을지 몰라요……엉엉……]

주소아는 마침내 울고 말았다.

그때,

[장주님, 소장주님의 친구분이라면서 찾아온 소협들이 계십니다.]

밖에서 도객 중의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선풍이 얼굴을 찌푸렸다.

백인장의 종적이 드러난 듯 해서 기분이 언찮았던 것이다.

[이리로 모두 모시고 오도록 하시오.]

백인장주는 백인장의 도객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을 항상 예로써 대해야 하는 것이 백인장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소선풍은 모두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했다.

일이 중요한 만큼 수상한 자이면 죽이거나 억류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문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림말학(武林末學) 백소중이 대협을 뵙고자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주소아와 한천이기 등이 백소중이라는 말을 듣고 맞이하기위해 일제히 일어섰다. 백소중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데, 문을 들어선 사람은 어리고 키가 작은 백소중이 아니고 훤칠한 미남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뒤를 백소중이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주소아와 한천이기의 표정이 환히 밝아지며 모든 근심이 가시는 듯 했다.

그리고 소선풍과 조예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절을 했다.

소선풍은 깊이 허리를 숙일 뿐이지만 조예진은 땅에 머리가 닿는 큰 절을 했다.

검왕 이극송은 사위와 사위의 둘째 부인이 일제히 청년에게 절을 하자 어리둥절했다.

백인장주의 신분이 아무에게나 허리를 굽힐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주소아와 한천이기도 절을 하고 있었다.

미남 청년은 주하운이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도깨비 장난 같은 일을 당해서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절을 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절한 후에 인사말 만 했다.

조예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신선께서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에……]

[너도 힘든 일을 많이 겪는구나. 그동안 그 곱던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주하운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모든 것이 제가 불민한 탓입니다.]

소선풍이 머리를 조아렸다.

청년은 아주 당연한 듯이 절을 받고 여러 사람들이 절을 했건만 그들의 표정은 모두 숙연했다.

무림에서 천하제일은 물론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되는 고금제일인이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대종사에 대한 당연한 예우요 존경의 표시였다.

[내 이미 모든 이야기를 다들어서 알고있다. 선풍이 너는 아무 염려하지 말고 네 뜻대로 하도록 해라.]

[신선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소선풍과 조예진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찼다.

이미 모든 일은 다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주하운은 다시 주소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아무걱정 하지 말아라. 편안한 마음으로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여라.]

[네……]

대답하는 주소아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부탁이 있는 게로구나. 말해보아라.]

너른 별채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단지 주하운의 잔잔한 음성과 그 음성에 답하는 다른 음성만이 존재할 뿐……

주소아는 손을 들어 사옥상을 가리켰다.

주하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오너라……]

그의 음성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며 흘려나왔다.

백치가 되어있는 사백상은 그 음성에 끌리듯이 일어서면서 주하운을 향해 갔다.

[너는 큰 일을 겪고 영(靈)이 아직 껍질 속에 갇혀 있구나. 천하에 너같은 기재(奇才)는 셋을 넘지 못하겠구나……]

주하운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스르륵 주저앉으며 잠이들고 말았다.

그녀의 몸은 부드럽게 허공으로 날아서 사은상의 품으로 가버렸다.

[깨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게다.]

사은상이 머리를 숙여 감사했다.

주하운이 조예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한가지 일 만하면 여기서의 일은 다 보는 것 같구나……]

조예진이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신선께서 어떤 처분을 내리시던 달게 받겠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벌할 수 있겠느냐? 일어나도록 해라……]

조예진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소중아! 인사 올리도록 해라.]

[백소중이 인사드립니다.]

조예진은 마주 답례했다. 그가 새로이 혈기문을 이어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했다.

[너희들은 자주 보았으면 좋겠구나.]

주하운이 한천이기를 보면서 말했다.

[이보다 더한 광영(光榮)이 없겠습니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크게 기쁘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이 머리를 들었을 때 주하운은 백소중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나가 허공으로 아득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극송이 소선풍에게 물었다.

[그가 정말 신선인가? 세상에 정말 신선이 있는가?]

[방금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소선풍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음으로 대답했다.

별채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는 아주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것 같았다.

주하운을 아는 사람들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그가 누군데 자네가 그토록 존경하는가? 내가 보기엔 황제도 그런 존경을 받지 못할걸세.]

[더 이상 그분에 대한 말씀은 거론하지 말아주십시오. 혹시 실수라도 할까 두렵습니다. 우리로서는 감히 그분을 앞에서고 뒤에서고 부르지도 못합니다.]

소선풍은 말하고는 입을 다물고 다시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극송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문이었는데 주소아와 한천이기를 바라보아도 그들의 입조차 굳게 다물려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고 아는 사람들은 걱정을 버린채 마시고 노는 사이에 소일초를 실은 호송마차는 아무탈 없이 등봉현을 통과해서 태실봉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일천 명의 정천보 고수들에 둘려싸여서……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二 章

 

         미녀를 땅에 묻고 땅위에 쓰러지다.

 

 

 

발버둥치는 탕마령주……

소일초는 보면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 자기가 그처럼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던가?

전신이 욱신 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검에 갇혀있는 저 여인 또한 탕마사십사객보다 더 무서운 괴물일 것이다.

그의 검에서 면도날같이 예리한 기운이 움직여 탕마령주의 몸 사지근육을 절단해 버렸다.

살아는 있어도 수족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력을 움직여 그녀의 경골을 부수어 버렸다.

그리하여……

소일초는 분을 풀었고 탕마령주는 풀기없는 빨래처럼 전신에 검붉은 피를 흘리며 무너졌다.

괴물이고 뭐고 간에 그지경이 된 이상 몸밖에 꿈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목에서는 그륵 그륵 가래 끓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대체……어떻게 생겨먹은 계집이길래 그리 지독해.]

소일초의 손에서 장력이 격출되면서 탕마령주의 면사를 날려버렸다.

[헉……!]

오……세상에……

그녀는 그의 처음 짐작대로 정말 사옥상이었다.

얼굴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자신이 정천보에 잠입하여 구하고자 했던 그녀가 벌써 탕마령주라는 신분으로 마물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목소리마저 변해 버리고 태도마저 달라져 있었다.

사옥상은 두 눈에서 백색광채를 뿜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꺼르륵 소리가 새어나오는데……

소일초는 다급해졌다.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요월정을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취풍녀도 한천이기도, 사은상도……

사백상에게 두들겨 맞고 있을 동안 그들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그들이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사람을 이렇게 괴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란 말인가?]

그래도 몸을 산산이 흩어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랬더라면 탕마령주가 사옥상인 줄도 모르고 정천보에서 찾아 헤맸을 것이다.

사옥상이 그를 많이 때려서 화를 돋운 것이 어쩌면 잘 된 일이었다.

풀뿌리가 뽑혀서 날아가고 바위가 깨뜨려졌으며 땅이 패인 격전장에서 그는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처럼 덜렁이가 의술을 알리는 없다.

단지 그의 손에 있는 백송균화의 신비한 축복에 의존할 뿐이었다.

그는 먼저 사옥상의 체질을 바꾸어 놓은 약물을 제거하고 그녀의 체질을 정상대로 돌리는 데 착수했다.

그의 손은 생명을 담고 있는 손……

뜻에 따라서 사옥상의 체질은 바꾸어 지고 있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밤은 깊어 가는데 그의 일행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밤바람이 차가운데 마땅히 옮길 만한 장소도 근처에 보이지 않는다.

요월정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옥상의 체질을 돌려놓은 그는 그녀의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감히 몸을 다 치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기도 난감했다.

(이럴 때 소아가 있었으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다시 그녀의 몸을 완전히 치료하고 수혈을 짚어 버렸다.

이제 그녀는 마물이 아닌 것이다.

그녀의 체력은 급격히 감소하여 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동안 독과 약물을 복용해 왔었는데 갑자기 그 기운이 모두 제거되어 버린 때문이었다.

그는 자꾸만 사방을 둘러보면 일행을 기다리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들이 몽땅 어디로 꺼져버린 거야! 하나쯤은 남아있었어야지.]

이때,

한천이기와 오 인의 도객, 그리고 사마귀와 사은상, 취풍녀 등 소일초를 제외한 모든 일행은 사십여 리 떨어진 낡은 절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소일초가 사옥상과 싸우기 시작하자마자 나타난 흑의인들과 싸우면서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그들의 수효는 이백에 가까웠다.

거기에다 모두가 마물들이었다.

탕마사십사객만큼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몸체는 그들과 똑 같았다.

생사를 돌보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을 열 세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공격하여 백 수십 명을 죽였다.

다섯 명의 백인도객들의 도는 그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는 신위를 보였으며, 한천이기는 그들의 몸을 풍선처럼 터뜨리고 있었다.

이 싸움의 최고 수훈자는 백인도객들이었다.

한천이기의 방법도 공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이었기에 끝없이 펼쳐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백인도객들의 도는 신들린 것처럼 끝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마귀의 무공은 주귀를 제외하고는 마물들을 상대하기에 적당치 않았다.

그들의 매화지나 대자비수 등의 무공은 무용지물보다는 조금 나을 뿐이었다.

원천기가 소리쳤다.

[이건 아무래도 조호이산(鳥虎移山)같아. 지금 소일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어.]

[그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염려 놓아요……]

한천녀가 말했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그들도 우리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이봐요, 조형!]

한천녀가 소리쳐서 백인도객 중의 한사람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나머지 놈들을 당신들끼리 다 감당할 수 있겠소?]

[까짓 한 번 해보지요. 이 정도도 해결 못한데서야 어디 백인장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좋소, 그럼 우리는 먼저 가도록 하겠소. 빨리 뒤쫓아 오도록 하시오.]

원천기는 먼저 몸을 날렸다.

한천녀와 취풍녀가 잇달아 몸을 빼냈고,

사마귀는 도망한다는 소리에 기뻐서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은상을 붙잡고 부리나케 달려버렸다.

 

한편,

소일초는 툴툴대다가 갑작스런 정적을 느끼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장을 날려서 작은 구덩이를 파고는 갈대를 넣은 다음 사옥상의 몸을 엎어서 묻어버렸다.

그의 신경은 무서운 위험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사방에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가을의 그 흔한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강가에 서있는 삼 장 높이의 바위로 다가갔다.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중년인이 그 바위 옆에 서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보이지 않고 서있는 중년의 사나이……

적포(赤袍)를 몸에 걸치고 섭선을 접어 쥐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기도로 인해서 풀벌레 소리마저 끊인 듯 했다.

그리고……

바위의 다른 쪽에도 한 명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에 걸린 검……그리고 백의……

놀랍게도 그는 미쳐버렸던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었다.

신형검기(身形劍氣)를 익힌 검객,

그의 모습은 전과 같았으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없이 살기가 팽창하여 오르고……

소일초는 섭선을 든 적포인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가공할 기도는 마금석에 비해 오히려 나았기 때문이다.

마금석 역시 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치 강렬한 살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문득,

[무적검! 탕마령주까지 제거해 버렸다니 놀랍군……]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한 육합전성……

바로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의 음성이었다.

소일초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황녹천이 여기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중원의 정보상인이라는 황녹천……

그는 수많은 무림의 비밀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많은 이권을 챙기는 인물이었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소개하지. 적포인은 무림의 삼현 중의 한 사람인 혈군자라고 하지……, 그리고 그 옆의 검객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마금석이라고……]

황녹천의 말에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군자 같은 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겨날 리는 없는 것이다.

[아마 너는 여기서 뼈를 묻게 될 거야.]

[황녹천, 장담하지 마라.]

소일초가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녹천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무적검, 나를 알고 있었군, 아무튼 잘 싸워보게……]

그 말과 동시에 혈군자의 섭선이 펼쳐지며 그를 베어왔다.

환상처럼 사방의 모든 공간에 섭선이 가득 차 버리고 소일초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환상을 이용한 무공이었다.

실체는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천지를 갈라놓을 듯 예리한 검기가 섭선들 사이에서 그를 향해 쪼개왔다.

완벽한 합공이었다.

소일초의 손에서 마황검이 튀어나오며 일초검공이 빛을 발했다.

순간 그의 검에서 기류가 형성되며 모든 사방공간을 감싸는데……

환상이 걷쳐진 자리에 혈군자와 마금석은 보이지 않았다.

최초로 일초검공이 이름값을 하지 못한 것이다.

파아아--------

갑자기 그의 발밑에서 섭선이 솟아 오르며 그의 몸을 양분하려 했다.

뒤로 몸을 젖히며 섭선을 피하는 순간 등뒤에 싸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즉시 옆으로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윽!]

일초검공은 실패하고 등에 마금석의 일 검을 맞은 것이다.

등에서는 비스듬히 맞은 일 검에 피가 번지고 있었다.

금강체인 그도 마금석의 신형검도에 상처를 입고 만 것이다.

(혈군자는 장환술(障幻術)의 달인이었구나. 장환술을 깨뜨리는 방법이……)

그는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며 마황검에 모든 공력을 모았다.

일초검공으로 사방을 휘감아 초토화 시켜버리려는 것이다.

일초검공에 걸리기만 하면 살아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얍-----윽!]

기합과 함께 일초검공을 펼치려던 그는 묵직한 신음을 내뱉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허공에 떤 상태에서 어느새 등뒤에 혈군자의 일장을 맞은 것이었다.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떨어지는 그를 향해 다시 무시무시한 검기가 밀려오고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치 유령과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좋다. 보이건 말건 상관치 않겠다. 마구잡이 검으로 한번 잡아보마 이 쥐새끼같은 놈들……)

그의 마황검이 순간 일만 개의 그림자를 만들며 사방으로 뻗어갔다.

잇달아 휘둘러지면서 사방을 기류속에 몰아넣고……

눈마저 감아버리고 소일초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일초검공에 의해 생긴 기류는 사방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과연, 그의 마구잡이 전법은 효과가 있었다.

혈군자와 마금석의 공격이 잠시나마 뚝 끊겼던 것이다.

전후좌우상하 사방팔방으로 내키는 대로 전력을 향해서 검을 펼쳐내었다.

꽝------

쏴아아아------추앙-----

삼 장 높이의 바위가 박살나서 흩어지고 기류에 닿은 강물은 요동치며 솟아올랐다.

순간 소일초는 머리 위가 이상함을 느끼고 검과 머리를 동시에 돌렸다.

[윽!]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어느새 혈군자의 섭선에 두개골이 패일 만큼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하나, 혈군자는 그의 마황검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류에 휘말리며 허공으로 갈가리 찢겨져버렸다.

소일초의 얼굴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완전히 혈인(血人)이 된 듯했다.

지혈할 사이도 없었다.

일초검공이 멈추기만 하면 죽는 것은 자기일 것이다.

푸악-----

그의 검이 혈군자를 찢는 틈을 타서 그의 발밑에서 마금석이 검과 함께 치솟아 올랐다.

피하거나 어쩔 틈도 없었다.

그의 몸은 두 조각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속으로 크게 외쳤다.

(이환공!)

마금석과 그의 검은 소일초를 가르고 올라가 마황검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소일초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이환공이 펼쳐지기는 했으나 너무나 창촐간에 펼친 것이라 불완전 했던 것이다.

상처는 어깨 뿐만이 아니었다.

복부에서 어깨까지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긴 혈선이 그어졌고 내장은 심하게 다친 것이었다.

그의 내공은 흩어져 버리고 내장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금강체의 몸이 아니라면 벌써 죽었을 정도였다.

머리에서는 피가 빗물처럼 줄줄내리며 그를 흠뻑적시는데……

[황녹천……황녹천을 죽여야……하는데……]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마황검은 다시 그의 손으로 스며들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경천동지할 대결투가 몇 시간 사이에 두 번이나 벌어진 강변에는 다시 풀벌레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한 청의면사인이 솟아오르듯이 강변에 나타났다.

바로 황녹천이었다.

[무서운 놈……! 마물이 되어있는 그들을 해치워 버리다니……]

그는 소일초의 쓰러진 몸에 손을 대 보았다.

[아직 살아있으니……더욱 가공할 놈으로 만들 수 있겠지……]

그는 소일초의 처참한 몸을 옆에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강변의 그 격전장에는 소일초의 옷이 갈라지면서 흘러내린 그의 소지품들이 피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곳에는 한 사람 두 사람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一 章

 

         天下第一의 招式高手

 

 

 

숭산,

소실봉에 있는 대 소림사의 어느 밀실.

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여서 숙의를 거듭하고 있다.

[황녹천에게서 연락이 왔소. 무적검의 행방을 탐지했다고 하오.]

[그들은 무적검을 요격할 생각이겠지요?]

[그렇소. 무적검은 숭산으로 오고 있소. 대단한 위협이 아닐 수 없소.]

[그럼 우리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겠소?]

[그렇소. 우리가 비록 황녹천과 삼수의 힘을 빌린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린 정통의 명문정파요. 그들을 무조건 쫓아갈 수는 없소. 이쯤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거취를 확실히 정해야 할지도 모르오.]

[무적검의 능력은 어느 정도요?]

[제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의 무공은 추측이 불가하오. 단지 불패도라는 여인의 무공이 알려졌지만, 가공하여 우리중의 어느 누구도 일초지적이 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오.]

밀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숙연해졌다.

[음……! 우리는 그럼 일단 여기에서 몸을 사리도록 합시다. 그들 두 세력 모두 정파라고 할 수 없는 곳이 있으니 그들 중 약해진 쪽을 합공하여 사파로 몰면 무림의 정의는 우리가 지키는 것이 될 것이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가 없었다.

이미 절세고수가 나타나지 않는 구파일방이 계속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처세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 × ×

 

요월정(遙月亭),

 

달과 더불어 노닐 수 있다는 요월정은 늦가을 지는해를 내려다보고 서있었다.

황혼이 곱게 나래를 접고……

물가를 날아다니는 철새들은 제 집을 찾는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요월정의 내전에는 두 사람이 마주앉은 채 나직한 음성으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바로 과거 정천수호군주였던 왕혜려가 아닌가?

정천수호군주 왕혜려……

그리고 정천수호군의 부군주였던 북궁헌……

그들은 탕마사십사객의 마지막 두 명이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과거,

등마제에서의 참혹한 패배를 통감하고 스스로 탕마사십사객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했던 것으로 알려진 왕혜려……

한데,

지금 그녀는 한 사람을 향해 공손히 부복해 있는 것이 아닌가?

황혼의 붉은 후광을 등에 업고……

막연히 동정호의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면사인……

그는 일신에 눈처럼 흰 백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역시 눈처럼 희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한데, 그의 손,

섬세하며 아름다운 옥수는 분명히 여인의 손이었다.

그 손에는 백옥처럼 은은히 백광이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황혼에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없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끌어가는 묘한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녀의 투명한 눈망울 역시 백광을 띠고 있었다.

문득,

백의면사여인의 입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던가?]

독백하듯 중얼거린 그녀는 시선을 들어 멀리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대체 몇 명의 탕마객들이 그에게 당했는가……사십사객……]

이 물음에 왕혜려는 더욱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이미 반 수 이상이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 수 이상이?]

면사여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나……그를 척살하기 위해 탕마사십사객 중 이십 명이 함께 움직였으니……곧 좋은 소식이 오리라 기대가 됩니다.]

왕혜려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무적검……그 사내……텁텁한 분위기의 절세 미남자……나는 지금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최초의 남자……)

백의면사녀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너는 그를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

[권태로운 표정의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한 고수였습니다.]

[탕마사십사객의 최고수인 네가 그를 상대한다면?]

[얼마를 버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패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왕혜려는 깊이 부복하며 말했다.

이 백의면사녀는 그녀로서도 처음 대하는 탕마령주(蕩魔令主)이다.

정천보에서의 서열이 십위 이내인 지고한 인물이기에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정파의 모든 힘을 결집시킨 정천보에서의 서열이 십위 이내라면 실로 엄청난 신분의 인물인 것이다.

지금까지 왕혜려로서도 본 적이 없는 탕마령주인 것이다.

무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라는 존재도 엄청난 것이었다.

하나,

정천보의 진정한 힘에는 이렇듯 가공할 인물들이 상당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탕마령주의 독백과 같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무적검……그를 보고 싶다.]

[…………!]

[탕마사십사객들로서도 상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면……제 사십사객인 너도 필패를 장담하는 자라면……]

탕마령주의 눈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왕혜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령주께서 나선다면……무적검을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그 남자……무적검! 등천마세의 주인이라지만……령주는 탕마사십사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지 않은가?)

그녀는 탕마령주의 손과 눈빛에 감도는 백광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그리고, 탕마사십사객의 령주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죽겠지……내 마음에 한 자락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비록 왕혜려는 처음 대하는 탕마령주이었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신비한 기운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본 령주가 직접 상대할 것이다……그러니 그대들은 살아있는 탕마객들을 이끌고 그에게서 물러나도록 하라……]

면사인의 말은 상대를 짓누르는 힘을 담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말하던 면사여인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빛은 눈이 부셔져 버릴 듯한 백광,

왕혜려의 시선이 탕마령주의 눈을 따라 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강변이었다.

한데 그곳에 언제 나타났는지 한 사람이 저녁 강의 정경에 취한 듯 서 있었다.

백의를 표표히 날리며……

황혼을 가슴에 포용한 채 일렁이는 물결을 한 없이 바라보고 있는 청년,

누구이기에 탕마령주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인가?

왕혜려는 기겁할 듯 놀랐다.

(저사람……그 사람……어떻게 이곳에……한데 …… 령주께서 어떻게 그를 알아본단 말인가? 아아……)

탕마령주, 그녀는 마치 빨아들일 듯이 청년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과연 그녀의 두 눈에는 은은히 긴장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무적검!]

왕혜려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탕마령주의 시선은 계속 청년을 향해 머무른 채 동공에 떠올라 있는 백광을 강렬하게 발하고 있었다.

[느낄 수가 있다……저자야 말로 무적검일 수 밖에 없는 인물이며……아니라면……장차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수가 될 인물이다.]

무서운 본능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어찌 동물과 같은 이러한 본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쿠쿠쿵------!

요월정 지붕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자의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뭉뚝한 몸체,

반쯤 날아가 버린 머리, 절단된 사지……

끔직한 모습의 동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순간, 왕혜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럴 수가……무적검을 척살하기 위해 나섰던 북궁헌……]

충격이었다. 끔직했다.

그녀도 저와 같은 괴물의 몸이라니 절로 몸이 떨렸다.

그녀도 영혼을 잃은 탕마사십사객의 한 사람인 것이다.

등마제에서의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강제로 제령(除靈)당하고 눈앞에 꿈틀거리고 있는 북궁헌과 함께 약물로 단련되어진 마물인 것이다.

사태는 명확해졌다.

처참한 상태에서 바닥에 꿈틀거리고 있는 북궁헌은 무적검에게 당한 것이 분명하다.

황혼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는 청년, 그는 다름 아닌 소일초였던 것이다.

무적검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한천이기의 등천마세에 이름을 빌려주고 있는……

그는 느끼고 있었다.

바로 저 멀리 요월정에서 풍겨져 오고 있는 기운을……

(묘한 기분이 드는 군……마치 죽은 지 오래된 시체를 대하는 듯한 느낌……한천이기보다 더한데……)

탕마사십사객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느낌이었다.

의외의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탕마객들의 배후에 이런 인물이 도사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한 것이다.

문득,

그 시체같은 느낌의 인물이 요월정를 떠나 가까이에 접근하고 있음을 소일초는 느꼈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이미 그 인물은 등에 와 닿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가 바로 무적검인가?]

무심한 음성이 소일초의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바로 탕마령주라는 여인의 것이었다.

 

× × ×

 

돌연,

[움직이지 마라!]

무미건조한 이 음성은 바로 왕혜려의 등쪽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녀의 뒤에서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기운이 흘러오고 있었다.

태산을 바수어 버릴 듯한 강맹한 기운,

그녀는 단지 그것만을 느끼고 있었다.

검에 찔리는 것이나 심장을 관통당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탕마사십사객의 최고수인 그녀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걸음이라도 움직인다면 몸이 다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폭발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이것은 단지 느낌이었지만 그녀의 등쪽에 선 인물은 그만큼 가공한 기도를 풍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원천기였다.

그리고, 왕혜려의 앞에는 다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백발의 미녀와 다른 두 미녀……

그리고 사마귀와 다섯 도객……

그들의 무기와 손은 일제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탕마사십사객 중의 하나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무서운 고수들……탕마사십사객이면 천하의 어떤 세력보다 강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인생인지는 몰라도 그 인생의 종지부를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

히압-----!

그녀의 몸이 기합과 함께 뒤로 젖혀졌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원천기의 손에서 검은 묵룡이 뛰쳐나오면서 그녀를 휘감아 버렸다.

파아아아-----!

끼아아악-----!

섬칫한 비명과 함께 묵룡에 감긴 그녀의 몸이 피보라로 변하면서 묵룡과 함께 요월정 지붕을 뚫고 나가 밖으로 흩어졌다.

원천기는 아예 등천마룡으로 그녀의 몸을 분쇄시켜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여……

천하의 재녀 한 사람은 땅속에 스며들고 말았다.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피로서 점철된 그녀의 삶은 끝을 맺고 말았다.

모든 운명은 결국은 자기가 선택한 것인 것을……

그녀는 어느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인가……

요월정 주변의 꽃들은 그녀의 피와 기름으로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텐데……

그녀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사은상의 눈물 한 방울과 함께……

 

× × ×

 

[너는?]

[나는 탕마령주.]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무적검이다. 탕마사십사객의 뒤에 너같은 여자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너 또한 괴물이냐?]

탕마령주의 눈에서 하얀 광채가 쏟아졌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른다. 단지 이번에 무적검이란 자를 죽이기 위해 나왔을 뿐이다.]

순간,

그녀의 백옥같은 손에서 역설적으로 붉은 혈강이 뻗쳐나와 소일초의 머리를 쳐왔다.

[혈옥강!]

소일초의 놀람에 찬 외침이 튀어나왔다.

혈옥강……

이것은 혈옥수가 극에 이른 후에 다다를 수 있는 무공이었다.

혈옥수는 사백상의 무공이었다.

십이성에 이르면 동공과 뇌가 파열되고 혈맥이 가라진다는, 무림에서 오직 그녀만이 사용한 무공이었다.

신지가 부족한 그녀를 위해 사진성이 특별히 연구하여 익히게 한 무공……

그녀는 오직 동작을 통해서만 익힐 뿐 글과 말을 통해 익힐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공을 익히기에 아주 적합한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진성은 번거로움을 마다않고 키웠던 것인데……

[너는 사옥상이구나! 오! 맙소사, 벌써 마물이 되고 말았어……]

소일초의 머리를 사은상의 혈옥수가 관통하고 소일초는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탕마령주는 그의 괴이한 무공에 어리둥절 하더니 소매를 떨쳤다.

순간,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소매속에서 아홉개의 영롱한 구슬이 중간중간에 달린 채찍이 튀어나왔다.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며 채찍은 소일초의 목을 감아왔다.

소일초는 난감했다.

탕마령주가 사백상이 맞다면 죽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탕마령주일 뿐이라면 지금 단 일초로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인지와 중지를 모아서 검결을 맺었다.

뻗어오는 채찍은 그냥 말을 수는 없다. 피하든가 되돌리든가 해야 한다.

일초검공이 위력을 발휘하자 채찍은 방향을 바꿔버렸다.

순간,

탕마령주가 채찍을 놓아버리며 몸을 돌렸다.

한데, 놀랍게도 그녀의 오른 발 뒤축이 어느새 소일초의 머리를 찰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천하의 소일초도 간담이 서늘했다.

급히 몸을 숙여 일곱걸음이나 자리를 옮겨서야 탕마령주의 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탕마령주는 초식무공의 대가였다.

그 현란한 수법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찬란하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초식과 초식의 연결에 전혀 빈틈이 없었다.

적절한 초식은 절세의 무공이다.

그녀의 몸이 풍차처럼 돌아가며 권장지를 뻗어내고 거리를 측정할 수 없는 그녀의 기묘한 각법은 어느 일파에서 흘러나온 무공인지도 알 수 없었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심지어 머리와 어깨도 그녀의 무기가 되어 예상치 못한 기초를 발휘해 냈다.

발은 슬쩍 움직이면서도 땅에서 흙먼지와 함께 돌을 차보내기도 했고,

때로는 내공이 결집된 무서운 혈강이 초식과 초식사이에서 뻗어나오기도 했다.

소일초는 힘든 상대였다.

일초검공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없는 데……

검지로 펼치는 일초검공을 그녀의 현란한 수법이 교란시키면서 마치 몸이 수십 개인 듯 사방에서 소일초를 공격해왔다.

(서로 다른 초식무공과 기공을 이렇듯 배합하여 절묘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이 여자는 사옥상이 아니다. 사옥상이 이런 무공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녀의 경탄할 무공의 현란함에 넋을 잃은 채 탕마령주의 공격을 받아내던 소일초는 마음을 정했다.

자기도 일초검공을 포기하고 오직 초식으로만 맞서 보기로……

탕마령주의 일권을 피했다 싶은 순간 탕마령주의 스쳐지나간 몸에서 발이 밑에서 원을 그리며 치솟아 소일초의 가슴을 찼다.

일초검공을 포기하자 마자 나타난 결과였다.

[윽!]

충격이 크긴했지만 정통으로 격중되지 않아서 견딜 만 했다.

순간 탕마령주는 체바퀴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면서 두 손으로 그의 눈을 찔러왔다.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두 손가락은 그의 머리를 스치면서 머리카락을 날렸다.

마교칠십이절기고 혈기자에게 사기쳐서 배웠던 무공이고 간에 모두 사용해 볼 틈도 없었다.

바람처럼 움직이는 그녀에게 일초검공 외에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소일초도 그녀에게 강렬한 투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보고 듣고 배웠던 모든 수법들을 총동원했지만 두들겨 맞기만 했다.

그의 몸이 금강체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고 말았을 것이다.

탕마령주가 자신의 앞에서 튀어오르며 무릎을 세웠는데 공격은 팔꿈치로 했다.

그의 머리에 팔꿈치가 내려 찍힐 판이라 그의 몸이 수평으로 뉘여지며 탕마령주위 겨드랑이를 발로 찼다.

발은 허전한데 다시 자기의 명치에 꽂히는 그녀의 발……

소일초는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공격이 시작된 후 우박처럼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이러한 무공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기로 마음을 먹고 이환공을 일으켰다.

그 사이에도 탕마령주의 만근같은 공격을 수 차례나 받았다.

이환공이 효과를 발휘하여 탕마령주의 공격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신비의 무공 이환공도 잠시, 탕마령주는 떨어져 있던 채찍으로 그의 몸을 휘감았다.

신비의 무공 이환공의 최대 단점은 이순간에 드러나고 있었다.

잠시 동안 효력을 발휘한 후에는 불이 꺼지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인데 소일초는 아직도 그런 점을 모르고 있었다.

여태까지 소일초가 이환공을 오랫동안 펼쳐야 할 만큼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한 때문이다.

그는 다시 흠뻑 두들겨 맞으면서 몽롱하게 염두를 굴렀다.

(이 여자를 이기자면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틈을 주고 같이 치는 것이다.)

그는 수비를 풀면서 틈을 보였다.

탕마령주의 수족은 짜맞춘 듯이 그 틈을 파고 들때 그의 손도 똑같이 뻗었다.

그러나 그 수법도 허탕이었다.

자기는 맞아도 상대방은 맞아주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다. 일초검공아끼려다 소일초가 가겠다.)

[이얍-----!]

우렁찬 기합과 함께 그의 손에 마황검이 들려졌다.

마황검이 그의 몸을 한바퀴둘렀다.

마침내 일초검공이 발휘된 것이다.

검에서는 지금껏 맞은 분노가 폭출되는 듯 폭풍같은 기류가 일어나며 사방을 휘감았다.

탕마령주도 일초검공에는 깜짝 놀란 듯 검의 세력권 밖으로 벼락처럼 물러났다.

그러나……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

탕마령주는 일초검공의 세력권을 벗어나지 못해서 기류에 싸이고 말았다.

그녀는 기류안에서 발버둥 쳤지만 몸은 점점 조여들 뿐이었다.

일초검공……

과연 무적이었다.

소일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공에서는 딸릴 것이 없다.

마침내 바람같은 탕마령주를 검으로 가두어버린 것이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五十 章

 

          血旗子의 變身

 

 

 

주소아는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상당한 과장도 있어서 듣고 있는 주하운으로 하여금 손을 쥐게 했다.

그녀의 허풍도 주귀와 함께 다니는 중에 늘었는지 한천이기와 소일초는 번히 알면서도 주하운 앞이라 아무말 못하고 있었다.

주소아가 어떨 때는 소일초를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매도하여 주하운의 무서운 눈총을 받았고 한천이기를 싸잡아서 때려 줄일 년놈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주하운은 그저 그녀가 귀여운지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문득, 소일초와의 예전 일을 말하던 중에 주소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흑흑흑------]

[아니 왜그러느냐?]

주하운이 다급하게 물었다.

주소아는 더 큰 소리로 울면서 주하운의 어깨에 기댔다.

[무슨 일이냐? 네가 원하면 뭐든지 다해주마. 너에게 내가 뭘 아낄게 있겠느냐?]

주하운이 그녀를 달랬다.

[훌쩍……할아버지, 훌쩍……저 색마녀석이 그동안 내가 부모없는 고아라고 얼마나 괄시했다구요……훌쩍……]

[할아버지 그……그게 아니……아이쿠]

짝-----!

주하운은 다짜고짜 소일초의 뺨을 후려쳤다.

소일초가 뺨을 싸잡고 억울하다는 듯이 주소아를 보았지만 그녀는 혀만 날름거렸다.

[고찰(古刹)에서는 자기 무공이 조금 더 강하다고 나를 때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뭐했는지 아셔요? 엉엉……부끄러워서 남에게 말도 못해요……]

[무슨 일이 있었겠느냐? 너는 아직도 청결한 몸이고 저 녀석도 동정(童貞)을 보전하고 있는것 같은데……]

주하운이 연방그녀를 달래며 하는 말이다.

[말도 말아요. 훌쩍……저에게 얼마나 수모를 주었다구요. 그때부터 내가 다른데 시집갈 생각도 포기하고 하는 수 없이……훌쩍……구박받고 살았다구요.]

주하운의 눈이 다시 소일초를 향하자 소일초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거기다가 여자만 보면 눈이 뒤짚히는지……엉엉……벌써 저 말고도 셋이나 돼요……엉엉……]

[내가 무공을 다 전수해 주마! 다시는 저녀석이 너를 때리지도 못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도 돌리지 못하게 하마! 아니 내가 아예 저놈의 한 팔을 잘라버릴까? 그럼 무공이 비슷해 질것 같은데……]

주하운이 정말 그럴 것 같이 말하자 주소아의 울음이 뚝 끊쳤다.

[할아버진 제가 병신(病身)하고 같이 살기 원하셔요?]

[네가 저 녀석을 저렇게 싫어하니 그런 거지……아예 내가 황족이나 명문세가의 자식을 택해서 혼인을 시켜주랴?]

주소아와 소일초가 경악하며 동시에 외쳤다.

[안돼요!]

[그래! 항상 그렇게 입을 맞추어서 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주하운이 느긋하게 말했다.

주소아는 입을 다물고 벙어리가 되었고 한천이기가 킥킥대며 웃었다.

[저 녀석도 제 할아버지 대부터 우리 집안과 교류가 있었는데, 제 할애비를 봐서라도 내가 함부로 못해. 그 영감이 나하고 사생결단을 내자고 저승에서 뛰쳐나오면 곤란하지……]

주소아와 소일초, 그리고 한천이기와 더불어서 애기하는 주하운은 비슷한 또래의 청년같았다.

주하운……

당대의 세력가로 떠오르고 있는 한림원의 시강인 이 사람은 엉뚱하게도 천하제일인 혈기자였다.

무림세계에서 천하제일은 물론 고금제일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자식을 잃는 비애와 엄청난 혈겁을 경험한 이후로 무림을 떠나서 황궁에 투신한 것이었다.

반로환동한 그는 전혀 세상을 다르게 살리라 마음먹고 신분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혈기자를 마주친 소일초는 기겁을 하고 도망부터 쳤었지만,

한천이기와 주소아가 소리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눈치 빠른 혈기자 주하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쫓아와서 그의 덜미를 잡아버린 것이었다.

반항도 한번 못해보고 잡혀와 바닥에 던져졌던 그는 눈 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혈기자의 수법에 의해 전신이 굳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소아에게 할아버지라는 사실도 알려주지 못했었다.

주하운은 주소아에게 각별한 친근감을 느꼈지만 손녀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가 아무리 눈짓으로 표시하려고 해도 주소아는 자기의 뜻을 곡해하기만 하자 속이 탈것만 갔았다.

거기다 험악한 말이 나오고 급기야 주소아가 전력을 다해서 달려들려고 하자 급기야 그의 화가 기를 폭발시켜 주하운이 막아놓았던 제맥수법(制脈手法)을 풀고 소리쳤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약속의 반 이야기를 꺼내자 주소아도 자기의 조부인 혈기자인 줄 알아채서 갈등이 풀렸던 것이다.

그 와중에 영문도 모르고 한천이기는 주하운에게 절을 했지만, 훨씬 연상이고 천하의 대종사를 만나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었다.

밖에는 벌써 어둠이 밀려오는 데 주하운이 말했다.

[내가 제자를 잘못 키워서 세상을 어지럽혔으니 부끄럽기 한이 없다. 그들이 마공을 익혀서 인성을 상실한 대마두가 됐으니 나는 정식으로 그들을 파문하고 문호를 정리해야겠다.]

네 사람은 숙연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새로 소중이를 받아들여 마지막 제자로 키우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소중이가 그들을 제거하기란 아직까지 불가능한 일이고 십 년은 지나야 그들 중 하나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

[마땅히 문호 정리는 넷째인 예진이가 맡아야겠으나, 이미 한 남자의 부인이 된지 오래이니 강요할 바는 못 된다. 그래서 너희들이 그들 삼수를 제거하고 내 문호를 깨끗이 하도록 해라.]

주소아와 소일초가 머리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든 혈기문(血旗門)은 소중이가 이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많이 도와주도록 해라.]

[할아버지, 우리도 동선장에서 살게 될 거니까 앞으로 자주 보면서 살겠지요?]

주소아의 물음에 주하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절대로 나에게 혈기자란 말을 해서는 안된다. 누구도……]

[칫! 누가 할아버지보고 혈기자라고 부른다고 믿을 사람이나 있겠어요?]

하하하하하-----!

방안을 울려퍼지는 웃음소리는 잠시나마 그들 모두를 무림의 번잡한 혈겁을 모두 잊게 했다.

 

***

 

저녁을 먹은 후 유쾌한 기분으로 그들은 마차를 타고 백소중과 함께 돌아왔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침실 바로 앞에 있는 거실에 그들은 다시 모여 앉아있었다.

주소아의 수다를 들어줘야할 의무를 모두가 느끼고 있는 때문이다.

[한천녀! 내말이 맞았지? 세상에서 가장 무공이 고강하신 분을 만나본 소감이 어때?]

주소아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십 수 년 만에 헤어졌던 조부를 만나고 게다가 그가 천하제일인이니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

부모가 없어서 백인장의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했던 걱정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로서는 생애 최고의 날인 것이다.

[세상에 정말로 신선의 술법을 익힌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사실 전에는 네 말을 믿지도 않았어. 휴……]

[이제는?]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신선술이나 닦아요.]

주소아의 물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천녀가 원천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소일초가 꿈에도 생각 말라는 투로,

[너네들은 이름부터 바꾸기 전에는 아마 신선될 생각은 않하는게 좋을 걸?]

[너도 이름부터 바꿔야 겠더라. 일초가 아니라 무초(無招)로……손 한 번 맞대보지도 못하고 뒷덜미 잡혀오는 꼴이란……]

원천기의 말에 소일초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꼴불견이었을까?

[너라고 별 수 있었을 것 같아? 흥 너는 오줌이 지려서 도망도 못쳤을 거야.]

[그래서 내 이름은 일초가 아니라고, 뱃속에 거만만 잔뜩 들었다가 꼴 좋았지.]

원천기는 평소의 불만을 이때 틀어놓는 듯 했다.

소일초가 벌떡 일어났다.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싫다. 솔찍히 이길 힘은 없고 우린 신선술이나 닦아서 네가 늙어 죽기나 기다려야 겠다.]

원천기는 웃으면서 한천녀와 함께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닫고, 자기들의 방으로 가버렸다.

[오늘은 최악의 날이야……]

소일초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난 최고의 날인데……]

주소아가 말하자 소일초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적은 자기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누군가 말했지……]

취풍녀와 사은상이 물과 음식을 더 가지고 들어오다가 그 말을 듣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적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취풍녀의 말에 주소아가 대답했다.

[바로 거기……]

주소아의 손은 사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손의 의미를 알아챈 두 여인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백소중은 입을 막고 킥킥거렸다.

오랫만에 만난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옛날 보다는 기가 팍 꺾인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는 그의 작은 어머니만 무서워하는 것 같았는데……

주소아의 손이 두 여인이 가져온 물을 술로 바꾸고,

여인은 여인들끼리 두 친구는 친구대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 여인들도 어느새 백소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삼수(三手)중의 둘째인 대성화의 마공에 돌아가시고 나는 부모님과 백가장의 충성스런 수하들의 희생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지……]

백소중……

백가장의 장주이자 무림 십이 대 고수 중의 한사람이었던 백대선생의 손자였다.

운남으로 가던 길에 소일초를 만나 인연을 맺었던 그는,

백인장이 무림에서 사라진 후 강대하게 떠올라 일년 천하를 구가했던 백가장이 정천보에 의해 아무도 모르는 새 혈겁을 당할 때 수하들의 목숨을 바친 충성으로 인해 혼자서만 살아나올 수 있었다.

언제나 따라 다니며 잔소리하던 유모도 죽고 백가장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백가장의 무공만으로는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부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방랑했다.

그러다 북경 근처에 왔다가 한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게 되었는데 다짜고짜 그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 벼슬아치가 바로 주하운이었던 것이다.

주하운은 그의 골격을 알아보고 상승의 무학을 익힐 만한 기재라고 생각되어 백소중을 데려가 자기의 제자로 삼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백소중은 큰 관리 밑은 작은 관리로 행세하며 북경에서 생활해온 것이다.

[……오늘 사부께서 동선장주를 청해오라는 말을 듣고 왔다가 너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만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걸……]

주소아가 중얼거렸다.

그녀로서는 백소중이 할아버지의 제자이니 자기보다 오히려 배분이 높은 것이 불만이었다.

[지금 무림 일에 삼수가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추풍녀가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늘은 끝까지 최고의 날로 만들고 싶어……]

나지막히 말하는 주소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소일초 역시 강한 흥분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의 옷이 침상밑으로 흘러내려가고……

소일초는 미루어 두었던 상을 받고 주소아는 끝까지 그날을 최고의 날로 만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한 행복감과 포만감……

이것이었구나 싶은 두 사람이었다.

동선장의 밤은 그렇게 사랑 속에 깊어갔다.

 

침상 속에서의 밀어는 나직히 흐르고……

[숭산 태실봉의 정천보에는 네가 먼저 가. 나는 할아버지께 삼수를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을 배워서 갈테니……]

[나 혼자는 싫어. 함께 가자……]

[다른 사람들은 다 데리고 가, 취풍녀와 사은상도……]

[……?]

[이제는 내가 먼저 맛봤으니 독차지 할 수 없잖아.]

[그래도 나는 너만 좋은 걸……]

[다 벌이야. 책임질 짓을 했으니까 의무를 다하도록 해……]

[그럼 그전에 다시 한 번……]

…………

 

× × ×

 

<급보----

무적검 일행의 종적 발견. 현재 북경을 나서 숭산으로 향하고 있음.

총 인원은 십사 인, 남 십일 여 삼. 모두 고수들임.

탕마령주님의 결단을……

정천밀조(正天密組) 제 삼십사 호>

 

전서구는 첩지를 달고 서쪽으로 날아갔고……

북경에서 숭산으로 이르는 모두 길목으로 탕마사십사객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九 章

 

         만남의 장소, 北京

 

 

 

북경성 외곽에 있는 동선장은 갑자기 돌아온 주인으로 인해 떠들썩했다.

꼬마들이 뛰쳐나와 마차에서 내리는 주소아와 소일초, 그리고 한천이기에게 매달리며 재롱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며 심지어는 그들의 옷을 찢어놓기도 했다.

집사와 글 선생, 애들 돌보는 사람, 일제히 나와서 인사를 하고 아이들은 소일초 일행의 뒤를 우루루 몰려다니며 깔깔거렸다.

그 소란스런 광경에 백인장의 도객들과 사마귀, 그리고 취풍녀와 사은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림에서의 격전장도 이보다는 낫다 싶을 정도였다.

장충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 백인장의 애들은 얌전하기 그지없는 것 같아. 이 애들에 비하면 군자야 군자……]

주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백인장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이곳보다 더해지면 더해지지 못하진 않을 거야.]

[왜?]

[천하의 말썽꾸러기인 내 제자의 마누라들이 줄줄이 소마동(小魔童)들을 낳을 텐데 백인장 기둥이나 남아나겠어?]

[거기다 둘째 형의 작은 색귀도 한몫할 테고……]

투귀가 다시 색귀를 꼬집고 한마디 하자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과 같이 가던 취풍녀와 사은상은 우스우면서도 부끄럽기도 해서 고개를 들 수 없어 쩔쩔맸다.

과연,

주귀는 선견지명이 있어 그의 예언대로 백인장이 난장판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는 났는데……

그것은 불과 이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꼬마들의 천국(天國) 동선장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주인인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의 무사귀환(無事歸還)을 축하하고,

동선장의 식구들의 그간의 노고(勞苦)를 치하하며,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하고,

꼬마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연회가 성대하게 열려져 이웃의 사람들 까지 와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곳은 제이(第二)의 백인장이 될 거예요. 저 아이들의 제이의 백인도객이 될 거구요. 제가 직접 키우겠어요.]

주소아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백인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일초가 모든 사람의 궁금증을 대변하여 물었다.

[물론 가야지. 후에 네가 장주직을 물려받게 되면! 하지만 그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

[…………]

[음, 먼저 장주이신 고모부께서 아직 젊으셨고, 게다가 무공마저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시니 변을 당하실 리도 없고……그렇다 보면 네가 장주가 되려면 몇 십 년, 또는 백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 걸?]

[그야 그렇겠지.]

[그동안 우리가 백인장에 있으면 여전히 소장주고 소장주 부인일 뿐이야.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키워서 가르치면 우리가 제이의 백인장주고 장주부인이 되지.]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말이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언니! 그럼 부모님은 누가 모시고요?]

취풍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주소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럼 넌 백인장에 가서 부모님 모실래?]

취풍녀는 혹시 그녀가 자기만 백인장으로 쫓아 보낼까봐 슬그머니 꼬리를 말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주귀의 되먹지 않은 진짜같은 거짓말이 사람들의 배를 쥐고 웃게 만들었고 춤과 노래와 더불어서 주흥은 크게 일어났다.

취풍녀가 몸을 일으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제가 노래를 한 곡조 부르겠어요. 흉보진 않겠죠?]

[와----좋다. 아줌마 최고다.]

꼬마들이 소리를 질러 환호했다.

취풍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오랫만에 자기의 성명절기(姓名絶技)를 발휘했다.

전신의 몸으로는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춤을 추며 입으로 노래를 불렀다.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련만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련만

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위에 이끼만 푸르구나.

슬픔도 기쁨도 집어 삼키는 검은 구름

향촉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롭구나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돌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소금이 절여

바람 불고 눈보라치지 않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 막힐 마음 속에 어디 강물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마음에 들이노라

수만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어딘지 모르게 깊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가락이건만,

경쾌한 발놀림에 하늘거리는 춤사위로 주흥을 더욱 돋우었다.

한천이기는 가사에 깊이 빠지는 듯 얼굴이 침중하고 사은상의 얼굴에도 우수의 빛이 어렸다.

[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그녀는 나직히 음을 따라 읊어보았다.

누구가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눈으로 보는 듯이 그 서글픈 정경을 그려냈다.

[고향이 어디였지?]

소일초가 박수를 받으며 돌아온 취풍녀에게 물었다.

[천진이에요.]

[멀지 않은 바닷가로군……]

그때,

관복을 입은 한 소년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그들에게로 오는 것이 보였다.

나이는 불과 십 육칠 세 정도 되었으며 아주 영준한 얼굴이었다.

힘찬 걸음이 정종무공을 익힌 무가의 자손인 듯 하다.

집사가 먼저 와서 알렸다.

[한림원의 주시강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이곳의 모든 사람이 무림인이다.

관부와 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리둥절하여 벼슬아치 손님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데 사은상이 앞으로 나섰다.

[장주님께선 이곳에 계십니다. 이리로 드시지요.]

정중하게 젊은 관인을 맞아 자리로 인도했다.

사은상은 원래 북경의 관가에서 태어나 자랐던 것이다.

그녀가 사진성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소일초와 주소아 모두 일어서서 젊은 관인이 앉기를 기다리는데,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주시강나으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함입니다.]

젊은 관인은 일어선 채로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저희는 야인(野人)들이라 관의 예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젊으신 나으리께 양해를 구합니다.]

사은상이 말하자 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시강대감께서 말씀하시길 동선장이 세상의 귀감이 되고 있으니 마땅히 천자께 상신하여 상을 내리는 것이 옳으나, 그 전에 먼저 대감께서 동선장의 장주님을 청하여 치하하시고자 합니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장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동선장은 장주가 네 사람이나 됩니다. 더우기 세상의 일에 구속받지 않는 분들이시니 시강나으리께 감사하오나 가실 수는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여전히 대변인은 사은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화와 민간에서 쓰는 말은 다른 데가 있었고,

더우기 무림인은 천하를 돌아다니다 보니 말이 거칠고 여러 지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를 주기 쉬웠다.

사은상은 어려서 배웠던 말인지라 관화에 아주 익숙하다.

소일초와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능숙한 관화에 내심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야! 마누라 중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

젊은 관인은 사은상의 말에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모시고 오라는 것이 대감의 분부였는지라 아래사람으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함께 가주시길 바랍니다.]

이때,

소일초는 유심히 그 관인의 얼굴을 보고있는 중이었다.

상당히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점잖게 말할 자신이 서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궁금함을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말했다.

[너 백소중 아니냐?]

다들 눈이 둥그레 졌다.

그중에서도 젊은 관인의 눈이 제일 크게 뜨졌다.

[백가가 맞습니다. 어찌 제 이름을 아시는지……]

그가 그 말을 하자마자 소일초가 펄쩍 뛰어 상을 넘어오면서 소리쳤다.

[백소중! 맞았구나. 한데 네가 관인이 되다니……무슨 괴상망칙한 짓이냐?]

[뉘신지?]

[나야나! 신행마동 소일초. 나를 잊어 버렸단 말이야?]

백소중의 입이 다시 딱 벌어지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가 아는 소일초와 비슷하지만 그의 형인 듯 한 나이였다.

소일초는 자기와 같은 또래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던져줄까? 요즘은 유모를 데리고 다니지 않아? 마부는 밖에 있니?]

[일초! 정말 소일초구나. 내친구.]

백소중이 기뻐소리치며 어른이 돼버린 소일초를 끌어앉았다.

[죽었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몸은 또 왜그래?]

[죽었다던건 잘못알려 진거고, 몸은 우리 마누라가 약초를 잘못먹이는 바람에 커져버렸어?]

소일초는 다시 개구장이가 돼 버린 듯 했다.

이상해 보이는 그들의 상봉을 모두가 눈도 깜작이지 않고 보고 있지만 그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누라가 있어?]

[저기 저 여자가 내 마누라야. 그리고 여기 여기도 그렇게 될 거고……]

[넌 확실히 대단하구나. 난 아직 한 여자도 못 얻었는데……]

백소중도 자기가 무슨 일로 이곳에 왔던지 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넌 왜 관인이 됐지? 너도 대단한 꼬마였는데……]

갑자기 백소중의 얼굴이 침울해 지며 낙담했다.

[그동안 사연이 많았어. 몇 날 밤을 세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야. 그리고 나도 너에게 궁금한게 너무 많아.]

[그래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 하자.]

[오늘은 안돼. 깜박할 뻔 했는데 나는 이곳 동선장의 장주를 데려가기 위해서 왔어. 꼭 데려가야 해. 그런데 누가 장주시니?]

[그건 걱정마! 내가 책임지고 다 가도록 할께. 네 부탁인데 뭘 못해주겠어. 당장 가자. 시강인지 뭔지 하는 영감부터 만나고 우리 이야기나 하자.]

 

***

 

소일초는 가기 싫다는 한천이기를 억지로 마차에 태워서 주소아와 함께 당대의 세력가로 떠오르고 있는 한림원의 주시강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갔다.

마차 안에서 백소중이 말했다.

[소일초 네가 대단한 건 알지만 대감을 만나게 되면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해. 그분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야. 젊고 유능한 사람을 아주 좋아하시는데 너도 어쩌면 좋아하실지 몰라……]

[넌 진짜 관인이 돼 버렸구나. 벼슬아치 따위를 그렇게 말하다니……]

[그분은 달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분은 내 스승이시기도 해! 함부로 말하면 내가 곤란해.]

[그래 제기랄……알았어. 조심하지.]

 

소일초가 투덜대고 있는 사이에 마차는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저택으로 마차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리로 따라와.]

백소중이 먼저 가면서 길을 안내했다.

그뒤를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따라갔다.

[제길……무림의 방파들이 조금만 치장이 화려해도 황궁보다 낫다니 어쩌니 하는데 말짱 거짓말이야……시강의 저택이 이정도인데 황궁은 어떻겠어?]

그 저택 안은 그의 말대로 아주 웅장하면서도 화려했다.

작은 돌 하나 마저도 아무렇게 놓여있는 것이 없는 온갖 정성과 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백소중! 너 황제가 산다는 황궁에도 들어가 봤니?]

백소중이 기급을 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황제께서 사시는 북경이란 말이야. 함부로 무례하게 말하면 큰일 나……그리고 황궁은 여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찬란해.]

소일초가 주소아와 한천이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밤중에 황궁에나 한 번 가볼래?]

소일초의 대담한 말에 다들 입을 딱 벌리는데……

[황궁에도 고수가 상당해. 그들은 다들 무공을 드러내지도 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 중에는 절세고수도 있어. 무림에서 황궁을 못 건드리는 것이 뭐 군사들 수 때문만 인줄 알아?]

[…………!]

[함부로 날뛰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곳이 황궁이라구……심지어 환관이나 주방의 요리사조차도 절세의 무공을 숨기고 있는 기인일 수도 있어.]

[지금 내가 겁먹어야 하니 아니면 용기를 내서 부딪쳐 보겠다고 해야 하니?]

소일초는 완전히 어린애가 돼 버렸다.

그의 철부지같은 말과 행동에 한천이기는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만 주소아는 속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제 다 왔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들어가도록 하자.]

웅장한 한 채의 전각을 들어서면서 그들은 방명록을 적었다.

다른 사람이 안으로 통보를 하고 백소중은 그들을 데리고 시강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사부님! 저 소중(小重)입니다. 동선장주를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오느라.]

소일초는 그 목소리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서 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문 안으로 다섯 사람이 들어서자 등을 보이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이 보였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당당한 체구……

도무지 그들이 상상했던 늙은 영감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당한 체구에 백의를 입은 시강이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어서 오시오. 이사람이 시강인 주하운(朱河雲)이요.]

순간,

[앗!]

비명을 지르며 천하의 신행마동 소일초가 냅다 왔던 길로 바람처럼 도망쳤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백소중과 한천이기, 그리고 주소아가 합창을 하듯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소일초!]

그러자,

불과 이십사오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강 주하운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리고 그의 몸이 번뜩 하면서 사라지고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놈! 당장 게 서지 못해?]

한천이기와 주소아 백소중은 무슨 일인지 몰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정신없게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게 대체 몇 번 채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소일초가 또 일을 낸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막 사라져간 두 사람을 쫓아가려는데 흰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시강 주하운이 소일초의 덜미를 쥐고 들어왔다.

백소중의 표정은 소일초를 걱정하고 있는 듯 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경악으로 인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일초가 어떤 고수인데……

한참 도망간 후에 뒤 쫓아가서 순식간에 잡아오다니……

소일초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들은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경악하며 주하운과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주하운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서 소일초를 바닥으로 휙 집어던져 버렸다.

주소아가 달려가 받으려다가 주하운의 눈총을 받고는 꼼작도 못하고 멈춰버렸다.

꽈당-------

소리와 함께 소일초의 몸이 큰대자로 융단위에 뻗어서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소중이 너는 나가 있거라!]

주하운의 말이 떨어지자 백소중이 멈칫거리며 말했다.

[사부님! 그는 제 친구인데……]

[이놈이? 발은 꽤나 넓구나. 죽이진 않을 테니 걱정말고 나가 있거라.]

주하운은 약간 의외라는 듯이 소일초를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백소중은 죽이지 않는다는 말에 그냥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주하운이 죽이지 않는다면 죽이지 않는 것이다.

백소중은 소일초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본 후 방을 나가면서 한천이기와 주소아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절대로 그분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됩니다. 무조건 따르십시오. 경우가 없는 분은 결코 아니시니……]

[이놈! 쓸데없는 소리말고 빨리 나가기나 해라!]

주하운이 백소중을 향해서 일갈했다.

그는 남의 전음마저도 알아듣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백소중의 전음이 아니라도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가 반항도 못해보고 저지경이 될 정도면 소일초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들 셋이 다 뭉친다 해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을 보니 그의 눈은 간절히 그녀를 보았다가 주하운을 보았다가 한다.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기보고 주하운을 보라는 것인지 싸워서 물리쳐 달라는 것인지……

[이녀석! 중간에 기연이 있었구나.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하고 눈앞에서 놓칠 뻔 했다.]

주하운의 기세는 살기등등했다.

[먼저, 그 까불락거리는 팔다리를 몽땅 부러뜨려 열흘동안 쳐박아 놓아야겠다.]

[안돼요. 당신은 그럴 수 없어요. 내가 당신과 싸우겠어요.]

주소아는 소일초의 팔다리가 부러져 병신이 될 지경이 되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죽든 살든 달려들고 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소리치고 나선 것이다.

그녀가 나서자 한천이기도 자기들만 살겠다고 물러설 수 없어 결전태세를 갖추었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을 보니 마구 눈알을 돌리면서 감았다 떴다 한다.

[안심해. 너만 죽거나 병신이 되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테니……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맹세했었잖아.]

소일초의 눈은 더 빨리 구르고 감았다 떴다 하며 간절히 뭔가를 말하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는 것같았다.

[괜찮아. 어차피 네가 없으면 어떻게 나혼자서 살 수 있겠니? 내가 먼저 죽으나 네가 먼저 죽으나 마찬가지야.]

그녀는 주하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주하운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놈, 여복이 아주 많구나.저 아가씨의 정이 그토록 깊으니……]

[…………!]

[하지만 아가씨! 이놈이 너보다 더 어리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물론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제 나이를 알 수가 있어요?]

[당연하지. 비록 몸은 커졌지만 네 나이는 많아야 열여덟 적어야 열일곱 그 사이야. 달 수로 따지면 더 정확하겠지 너는 이백이십이 개월 되었으니 생일은 삼월이겠지?]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다시 놀라고 있었다.

주소아는 조예진이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삼월 초엿세가 생일이라고 했다.

주하운의 그녀가 무척 호감이 가는지 놀라는 표정을 보고 다시 말했다.

[네 옆의 두 애늙은이 나이도 쉽게 알 수 있지. 사내는 팔십일곱에서 여덟사이이고 계집은 팔십하나에서 팔십둘이지.]

사내와 계집으로 불리웠다고 해서 화낼 게재가 아니었다.

주하운의 계산은 한 치도 어김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저런 귀신같은 인간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 처럼 많다는 것이 실감나는 것이었다.

[저사람이 대체 당신에게 무슨 못할 짓을 했어요? 우리가 감당할 수 있으면 감당하고 감당할 수 없으면 함께 죽도록 하겠어요.]

주소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걸?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은 있어.]

주하운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그게 뭔가요?]

[아가씨가 나와함께 삼 년을 같이 보내는 거야?]

주하운의 말에 주소아와 한천이기는 분노했다.

[당신은 권력가라더니 남의 여자나 탐하는 오리(汚吏)에 불과한 자군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함께 죽겠어요. 저 사람도 그걸 바랄 거예요.]

[남의 여자를 탐한다? 그런말로도 들릴 수 있었겠군 그래, 내 말은 단지 여기서 삼 년만 보내는 것을 말한 것이었는데.]

주하운의 말에 한천녀가 차갑게 내뱉었다.

[결국은 같은 말이겠지. 여자의 틈을 엿보려는……당신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우리는 굴종만 하지는 않겠어.]

[늙은 한 쌍과 젊은 한 쌍의 우정이라……이것도 좀처럼 보기 힘든 거로군.]

주소아는 주하운이 보든 말든 소일초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고통스러운지 땀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무말 하지마. 죽일 수 없으면 우리가 죽으면 되잖아. 무림인의 삶이란 원래 이런 거겠지……]

그녀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전신의 세 곳에 분산시켜 놓았던 내공을 한곳으로 모을려고 했다.

죽고사는 마당에 아기를 낳고 못 낳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주하운의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띄고 있었다.

[탐이 나는 재목이야 당금 세상에서 저놈 말고는 필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자질이야……]

주소아가 전중혈에 묶어놓았던 내공을 스스히 풀기 시작했다.

그때,

[안돼!]

갑자기 사람의 혼백을 빼버리고 바위를 으스려버릴 듯한 엄청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한천이기와 주소아가 심한 충격을 받고 몸을 후들거리고 방안의 여러 기물이 부셔져 버렸다.

귀를 웅웅울리는 여운과 함께 소일초가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주하운은 여전히 여유있는 웃음을 짓고 그를 보고 있었다.

마치 손바닥위에 오른 개미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

[할아버지! 제가 여러 가지 약속 중 그래도 반은 지켰습니다. 나머지도 앞으로 이행할 테니 용서해 주십시오.]

소일초가 머리를 땅에 대면서 말했다.

방안에는 아직도 그의 고함이 만들어낸 여운이 감도는데 겨우 정신을 찾는 주소아와 한천이기는 주하운은 다시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새파란 청년이다.

할아버지라니……

집안의 어른이란 말인가?

순간,

주소아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모습에 한천이기는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반은 지켰다니……어느 반이란 말이냐?]

주하운 역시 격동하며 말했다.

[제가 주소아랍니다. 할아버지……]

주소아가 고개숙여 절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八 章

 

          사은상의 고백

 

 

 

소일초 일행은 길을 바꿔 마차를 타고 관도를 따라 북경으로 가고 있었다.

한대의 사두마차안에 열 명의 남녀가 각기 편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섯 명의 도객들 중 한 사람은 마부석에 있고 다른 사람들은 마차의 사방에서 호위하며 따르고 있다.

가을은 점차 깊어져 해가 있어도 바람이 쌀쌀했다.

관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무림인들이 호위하는 마차를 힐끗힐끗 보면서 지나치곤 한다.

마차는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마차 속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야기 도중에 품이 허전해서 살펴보면 어느새 찾던 물건들은 투귀의 손에서 놀고 있곤 했다.

주귀의 기가막힌 거짓말은 마차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한천이기와 주소아의 재치있는 말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취풍녀의 이야기가 소일초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天人)으로 착각했다는 데 이르자 모두들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그러나……

사은상의 이야기는 결코 웃음이라고는 흘릴 수 도 없는 것이었다.

 

삼수(三手) 중 한명인 사진성의 제자였던 그녀는 삼수에게 한을 품고 있었다.

화산 옥녀봉에서 소일초가 삼수에게 도전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사옥상에게 자신의 의정패를 주면서 소일초를 찾도록 했다.

의정패는 한쌍이 서로 교감을 하는 것이었으므로 소일초와 주소아가 역근천골공으로 변신을 하고 있어도 사옥상이 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일초는 여전히 결투를 감행했고 옥녀봉 정상에서 석평이 폭발과 함께 죽고 말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삼수는 전신에 심한 상처를 입고 삼성무림청으로 돌아왔다.

백인장의 도객들에게 당한 상처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삼수의 놀라움은 몹시 컸었다.

백인장의 원로도객들의 무서운 무공을 대하고서야 백인장이 어떻게 수 백년을 무림최강의 방파로 불리는지 알게된 것이었다.

만약 도왕 소선풍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더라면 자신들은 삽시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냉철한 판단이었다.

더우기 삼성무림청은 드러나 있었다.

백인장의 백인도객들이 일제히 몰려온다면 삼성무림청은 기와장하나 건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은 백인장의 눈을 피해 새로이 힘을 기르기로 했다.

그후 얼마 있지 않아서,

그들은 어떤 수단인지는 몰라도 구파일방에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언뜻 사은상 그녀가 사부로 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녹림맹주 황녹천과 연관이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어 삼성무림청은 구파일방의 그늘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몸을 숨긴 것과 때를 같이하여 백인장과 청옥검궁도 강호에서 사라져 버렸다.

삼수는 그들이 일제히 자기들을 찾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혈기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등천마교의 본단, 삼성무림청의 본단으로 사용했던 그곳에서 그들은 일찌기 등천마교의 조천수가 가지고 있었던 마교칠십이절기의 부본을 얻었다.

그것은 정통마교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었고, 등천마세의 오공천과 마금석 등이 익혔던 것은 부본의 부본이었다.

마교칠십이절기에 혈기자로 부터 배웠던 무공을 결합시켜 마공과 정공(正功)이 융합된 새로운 무공을 창출해낸 그들은 혈기자 마저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었지만,

백인장의 원로도객들에게 한번 당하고 나니까 혈기자에 대한 두려움까지 되살아났던 것이다.

더우기 인질 겸 살인병기로 사용하려고 했던 혈기자의 손녀 주소아마저 삼 년 전 도왕 소선풍에게 뺏겨 버린 지라 완전히 신분을 감추고 잠복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재정비하면서 마공을 더욱 연구했다.

급기야 탕마사십사객이라고 명명된 마물들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적지않은 실패작들이 폐기되고 더러는 탈출하는 일도 발생했었다.

그 탈출한 무리들 중의 하나가 바로 동선장에 침입한 흑의인들이었다.

그들은 탈출했다 해도 약물을 주입받지 못하면 삼 일 이내에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져 버리니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마침내 완전한 탕마사십사객이 만들어 졌을 때 그들은 정천보라는 이름으로 구파일방을 등에 업고 정파 무림을 통일해 버렸다.

그들이 그토록 쉽게 무림의 반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탕마사십사객이란 공포의 마물이 은밀히 활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은상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후 매사에 소극적이었는지라 삼수의 신임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삼수는 탕마사십사객보다 더 무시무시한 괴물을 연구해 냈고 사은상과 사백상을 상대로 실험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탈출을 감행하였는데 사백상은 일찍 발각되어 잡혀가 버렸고 그녀 만 탈출에 성공하여 소일초 일행을 만난 것이었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삼수마저 놀라서 도망치게 했던 백인장 만이 삼수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생각했기에,

백인장의 사람을 만나기만 기원했었는데 그녀의 소원을 하늘이 들어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탕마사십사객은 먼저 만들어진 것 보다 후에 만들어진 것일수록 더욱 신체도 강하고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최후에 만들어진 탕마사십사객은 정천수호군주였던 왕혜려로 그녀가 가장 무서운 상대라고 했다.

어쩌면 벌써 괴물로 변했을 지도 모를 사옥상을 생각하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구파일방은 철저한 그들 삼수의 수족입니다. 그들은 삼수를 덮고 있는 위장막이고 어쩌면 삼수에게 감쪽같이 속고있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사옥상의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모두는 숙연해져 있었다.

흔들리는 마차는 관도를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데……

한천녀가 그녀를 달래며 위로 했다.

한이란 가슴에 뭍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씻어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주소아를 힐끗 보았다.

주소아는 그녀의 표정을 애써 모른 척 하고……

 

× × ×

 

마차는 북경에서 이백여 리 정도 떨어진 임청(臨菁)으로 들어섰다.

큰 도시는 아니지만 작은 도시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남쪽에서 관도를 통해 올라갈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지난다.

그리하여 임청은 행려객을 위한 많은 객점과 주루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탕마사십사객의 공격은 전혀 없었다.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서 관도로 빠져 나온 것이 적중하여 그들은 아직도 광통거 주변을 뒤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상대는 정파무림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세력……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밤길을 달리면 늦게서야 북경에 당도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오늘 이 임청에서 자고 내일 밝을 때 북경에 들어가기고 의견을 모았다.

대로에 늘어선 주루를 돌아서 그 뒤의 작은 주루에 거쳐를 정했다.

오늘의 파수군은 한천이기……

그들은 객점의 지붕에 엎드려 무엇을 하든간에 모두를 지킬 것이다.

자기들 방으로 올라가려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보고 주귀가 큰소리로 불렀다.

[제자야! 술 좀 만들어 주고 가거라.]

[주루에 왔으면 돈주고 사먹을 생각을 해야지. 누구 장사 망칠 일 있어?]

소일초는 귀찮아서 한마디 쏘고는 주소아의 옷깃을 당긴다.

그러나 주소아는 자기가 했던 말이 있는 지라 다시 내려와서 여러 통의 술을 만들어 놓았다.

[역시 아름다운 우리 백인장의 젊은 여주인께서 마음씨도 최고야!]

[큰아저씨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 게 드물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주소아가 웃으며 소일초를 쫓아서 가버렸다.

주귀는 입맛을 적적다셨다.

[나도 참한 색시하나 구해 봐야지. 짝이 없으니 서러워서 원……]

[형님 그나이에 누가 시집오려고 하겠어요. 나처럼 미리 마누라는 만들어 놨어야죠.]

색귀가 은근히 백인장에서 수절하고 있다는 자기 마누라 아정(阿貞)을 자랑했다.

순간, 사마귀의 세 사람이 일시에 눈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 보았다.

[둘째형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형이 먹는 밥도 아까워요.]

투귀가 어지간히 독이 올랐는지 한마디 했다.

[그러는 너는 뭘 잘했었다고……네가 청옥소도만 훔치지 않았어봐! 어떻게 소대협이 다시 돌아왔겠어?]

색귀는 투귀의 잘못을 질책한다.

좀처럼 말이 많지 않은 도귀가 정색을 한다.

[두 형 다 말썽만 피워대면서 서로 잘했다고 하는거요?]

[그래! 네 무공이 좀 낫다고 아예 형들을 깔아 뭉게는 구나. 네가 형하고 아우하고 다해먹어라.]

투귀가 다시 도귀에게 말했다.

그때 주귀가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시꺼러! 막내 말이 맞기는 맞지. 세째 너나 아우해라.나는 아우할 생각은 꿈에도 없으니……]

소리가 높아지고 서로를 탓하는 말이 나오자 함께 술을 마시던 여러 도객이 그들을 달랬다.

때때로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들 네 사람을 여기까지 오면서 도객들이 벌써 몇 번이나 말렸는지 모른다.

옥신각신 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모든 일을 함께 감수하며 싸울때 말고는 늘 주귀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그들을,

백인장의 다섯 도객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다투고 말리고 하는 지금,

소일초의 방에서는 오랫만에 두 사람이 알몸이 되어 침상에 올라가 있었다.

이불도 덮지 않고 불도 꺼지 않은 채 침상에 휘장만 드리우고 있다.

무릎을 꿇고 마주 보며 서로의 몸을 애무하는 그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뜨거운 숨결이 서로의 귓전에 와닿고 뜨거운 손이 부드럽게 서로의 전신을 쓰다듬는다.

모든 세포는 살아서 움직이는 듯 하고 신경은 발끝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그리고……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주소아가 소일초에게 달려들어 꼭 껴안고 몸을 부르르 떤다.

몸을 몸으로 마찰하며 터뜨려버릴 듯이 껴안았던 그들의 몸은 침상에 눕혀지고 말았다.

격정에 몸부림치며 아래위로 번갈아 구르던 그들은 긴 입맞춤을 하면서 몸을 떤 후에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이제 그들의 사랑행위는 끝이 난 것이다.

하지만 지붕위에서는 두 사람이 몸살을 앓으며 여전히 끙끙대고 있었다.

바로 주소아의 청사무에 의해 수동적 교감을 갖게 된 한천이기였다.

기이하게도 아직도 동정과 처녀를 지니고 있는 주소아와 소일초가 사랑을 시작하면 그들도 교감을 갖게 되고 그들은 끝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주소아와 소일초는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희열과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역근천골공은 서로의 성기(性器)마저 조절할 수 있었기에 주소아가 열릴 때는 소일초가 줄어들고 소일초가 참을 수 없을 때는 주소아의 몸이 좁혀져 버리는 것이다.

주소아는 자기가 행위 중의 흥분으로 인해서가 아닌 진정으로 원할 때에 참된 관계를 갖기를 원하고 있기에 소일초 역시 존중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소아는 영원히 그의 사람이고 그렇기에 조급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의 절제를 통하여 그들의 정신은 더욱 성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절제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스승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은상을 어떻게 할거야?]

주소아가 소일초에게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소일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다면 거개의 경우 주소아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그녀는 오직 너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냉정하게 내칠 자신이 있어?]

[휴……나도 모르겠어. 그녀에게 못할 짓을 했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도 있기는 하지만……]

[내 눈치를 보겠다는 거야? 아니면 사은상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이야?]

[둘 다……악!]

[악!]

주소아는 소일초의 귀를 물어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 소일초의 금강체에 의해 그녀도 충격을 받아 비명을 질렀다.

피가 흐르진 않아도 선명한 이빨 자국이 그의 귀에 생겼다.

[그때 밤잠을 자지 않고 지켰어야 하는 건데……이 색마……치사하게 포로로 잡힌 여자한테 손이나 대고……]

주소아는 강짜를 부리고 있었다. 물었던 그 귀를 다시 손으로 잡아당겼다.

[아야……잘못했어. 앞으론 절대 그러지 않을께.]

[흥! 앞으로 다시 그랬다간 죽어버리고 말거야. 죽이기엔 내 힘이 딸릴 테고……그냥 죽어버리겠어.]

소일초는 주소아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그로서는 달래기위해 주소아가 만든 일초검공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취풍녀는 주소아가 먼저 나서서 허락한 여자였다.

주소아는 자기가 몸을 중시하는 만큼 소일초가 관계있는 여자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취풍녀의 여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도저히 저버릴 수 없어 먼저 손을 써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사은상도 사옥상도 다 소일초의 첩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되고 만다.

그녀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밤마다 끼고 자야할 하나 뿐인 서방이 장장 세 여자를 더 거느리게 되면 허전한 밤을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지금 그녀가 분통을 터뜨리는 방의 옆은 취풍녀와 사은상이 함께 들어있는 방이다.

그들은 벽에 귀를 대고 소일초와 주소아의 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 한마디에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판인 것이다.

[은상……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될 것같기는 해……나도 허락해 줬는걸……]

취풍녀가 낮은 소리로 사은상에게 속삭였다.

사은상은 얼굴을 붉힌 채 침상으로 돌아가버렸고……

취풍녀는 여전히 귀를 대고 있었다.

[설마 나와 만나기 전에 다른 여자를 손댄 건 아니겠지? 혹시 남만의 난장이나 빨간둥이가 있지는 않겠지……]

[절대 없어! 절대. 맹세코. 나에게는 소아뿐이야. 사은상, 사옥상과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을 뿐이었고……취풍녀는 네가 허락한 거잖아.]

[지금 그래서 잘했다는 거야? 당장 내가 시키는 데로 맹세해!]

소일초가 급히 하는 말이 들렸다.

[뭐든지 맹세할께. 말 만해……]

[좋아, 음……혹시 이 다음에 취풍녀나 사은상과 관계를 갖더라도 잠만은 반드시 내 곁에 와서 자야해. 이것만은 철저히 지켜야해.]

[알았어. 맹세할께.]

취풍녀가 벽에서 귀를 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은상이 그녀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가 그걸 보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일어나며 물었다.

[언니……뭐래요?]

[휴……! 혹시 우리 차례가 돌아오더라도 우린 베개나 안고 잘 수 밖에 없겠다.]

[……?]

[잠만은 항상 언니 옆에서 자겠다고 맹세를 하고 말았어……저분이……]

사은상도 성숙한 처녀다. 남녀의 일을 대충은 알고 있는지라 낯을 붉히면서도 은근히 걱정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무림에서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 초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벌써 잠자리 다툼이나 할거예요.]

사은상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七 章

 

       恐怖의 魔物 蕩魔四十四客

 

 

 

광통거를 통과하는 선박들과 선객들이 쉬었다 가는 물가에 정운루(停雲樓)라는 주루가 있다.

이곳은 소일초와 백인장의 다섯 백인도객들, 그리고 취풍녀가 모이기로 약속한 곳이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한천이기가 사은상을 데리고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먼저 당도해 있었다.

그리고……

밤은 깊어 삼경을 넘어가는데 탕마사십사객 중 구혼객이라는 괴물의 소동도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구혼객의 부서진 잔해로 인해 방을 옮긴 사은상의 새 방,

황촉불도 꺼지고 다만 창가의 달빛 만 희미하게 들어오는데……

사은상은 기이한 기분에 사로 잡혀있었다.

허전함,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대체 누구이기에 이렇듯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인가?)

사은상은 그들이 분명히 등천마세의 인물들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 자꾸만 이런 생각에 빠지고 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비밀을 노린다면……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나에게 편안함만을 주려고 한다.)

사은상은 이들 이상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신비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은 도무지 등천마세와는 상관없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에 지쳐 천천히 잠 속에 빠져 들어가 버렸다.

 

× × ×

 

[개별적으로 행동을 하던 탕마사십사객들이 일제히 이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어요……내말 듣고 있어요?]

한 별실(別室)에서 취풍녀가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말했다.

소일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쪽 침상에 누워있고, 주소아와 한천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구혼객이란 자가 그 아가씨의 침실로 침입했었어요.]

[사은상을 꼭 죽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

주소아가 취풍녀에게 물었다.

[언니 그것까진 물어보지 못했어요. 한데 하마터면 그 사은상이란 아가씨가 죽을 뻔 했죠.]

[넌 뭘했기에?]

[그들은 괴물이었어요. 분명히 내가 심장을 관통시켜 죽였는데……]

한천이기와 주소아는 취풍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심장을 관통당하고도 죽지 않고 머리가 부서져 없어졌는데도 계속 공격했다는 말에 치를 떨었다.

무서움이전에 끔찍함 이었다.

[탕마사십사객들 모두가 그런 괴물들인 모양이에요.]

취풍녀의 말을 침상에서 듣고 있던 소일초가 물었다.

[원천기! 뭐 집히는 게 없어? 그런건 네 전문이잖아……]

[약물과 마공으로 만들어진 괴물인 모양이야……몸도 아수라수에 겨우 부서질 정도 같으면 금강불괴에 가까운 거야. 보통 수법이나 도검으로는 흔적도 못 남기겠지……]

원천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주소아의 염려는 깊은 듯 했다.

그들은 일제히 정천보로 잠입해서 삼수를 찾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정천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공할 것 같은데……]

[취풍녀도 기습이 아니었고, 구혼객이란 자도 정면으로 당당하게 나섰었다면 이기기는 해도 상당히 힘들었을 거야……]

원천기는 침음성을 터뜨렸다.

취풍녀는 원래 등천마세에서 삼위에 해당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던 고수임에도 그들 탕마사십사객 중 하나를 겨우 상대할 수 있다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만약 주소아가 미리 취풍녀를 사은상의 머물고 있는 객실에 투입하지 않았더라면 사은상은 귀신도 모르게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간파된 이상,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은상을 죽이려 들겠지?]

[그녀가 아주 중대한 비밀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을 거야.]

한천녀가 주소아의 말을 받아서 했다.

소일초가 침상에서 내려왔다.

[탕마사십사객이 그녀를 노린다면 어차피 우리와 마주쳐야겠지. 그들이 괴물이고 마공을 익혔다면 반드시 삼수와 관련이 있을 거야……]

[이걸 정천보에 잠입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면 좋은데……]

주소아가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순간,

번쩍-------

원천기의 손에서 두 줄기 붉은 혈광이 번갯불처럼 피어 올랐다.

그 핏빛 화살은 정확히 천정을 향해서 폭출이 되었고……

다음 순간,

[크악!]

[헉!]

처절한 비명이 천정을 통해서 들려왔다.

순간,

한천녀의 몸이 연기처럼 천정을 뚫고 밖으로 사라졌으며……

그랬다고 느끼는 순간 그녀는 양쪽 옆구리에 한 사람씩을 끼고 들어왔다.

그들의 몸에는 원천기의 손가락에서 뻗어나간 지강에 의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던져버려!]

주소아가 갑자기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한천녀가 어리둥절 하는 순간 이미 소일초와 원천기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며 두 구의 시체를 낚아채 지붕 밖으로 던졌다.

동시에 소일초의 일초검공이 발출되고 두 구의 시체는 섬찟한 괴성과 함께 파열되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쥐었다.

한천녀도 자기가 무슨 일을 했던 가를 깨닫고 원천기 품에 안겨버렸다.

원천기가 발출한 지강에 격중하여 쓰러진 두 구의 시체를 한천녀는 무심코 가지고 들어왔던 것인데,

그때 그 시체들은 다시 되살아나 한천녀를 공격하려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들 역시 탕마사십사객들 중의 두 괴물이었던 것이다.

주소아가 재빨리 발견하고 소리를 치는 순간에 원천기와 소일초도 알아챘기에 한천녀가 살아날 수 있었다.

[정말 괴물이에요. 무서워요. 언니……]

취풍녀는 자기가 구혼객을 죽였다는 사실마저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죽었던 시체가 되살아나 다시 사람을 공격한다니……

순간,

원천기가 한천녀의 어깨를 다독거려 진정시켜 준 후 뚫어진 지붕으로 몸을 날렸다.

그에게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짐작이 맞지 않은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들어왔다.

[틀림없을 줄 알았는데……]

[뭐가?]

소일초가 물었다.

[그때 그……날, 동선장에 들어왔던 복면인들 생각나지……]

[그래,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나……]

[느낌뿐이기는 해도 그날 그 복면인들은 정천보에서 왔던 것 같아.]

[어떤 단서라도 있어?]

[생각해봐! 그때 그들은 영적으로 공감대를 갖고 있었어. 한데 이 탕마사십사객들은 마치 영혼이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아……]

동선장에 침입했다가 소일초의 손에 죽은 흑의인들 ……

그 주위에 수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함께 죽어 있었었다.

그 당시, 한천이기가 뒤늦게 내린 결론은 그들이 영적으로 서로 맺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람이 위기를 느끼면 그대로 죽음을 당함으로써 완전히 자신들의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데,

지금 탕마사십사객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아예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생각하고 움직이는 시체와도 같다.

이것은 양쪽 다 영혼을 다루고 있다는 데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천이기는 등천마세에서 그런 수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새로이 창조된 마공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탕마사십사객들이 그때의 복면침입자들과 같은 부류의 무리들이란 결론이 나오는 군요.]

한천녀의 말에 원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은 그때의 복면인들이 바로 정천보의 고수들이라는 것이지.]

[음……]

소일초가 다시 하나의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정천보에서 왜 그 당시에 흑의인들을 동선장으로 보냈을까?]

[혹시……그들의 비밀 근거지가 동선장 부근에 있는 것은 아닐까?]

주소아가 조심스럽게 추측을 말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모든 사실이 드러나고야 마는 법이니까……

[조아저씨와 사마귀에게도 알려줘! 대적하게 되면 그들의 몸을 반드시 분시(分屍)해버려야 한다고……]

주소아의 말을 듣고 취풍녀가 밖으로 나갔다.

[이제 너희들 방으로 가서 잠이나 자둬. 우리도 방을 옮겨서 자야겠어.]

[그래야겠지. 내일 보초는 우리가 될 것 같으니까……]

한천녀가 대답하고 원천기와 함께 그들의 방으로 갔다.

소일초와 주소아만이 실내에 남아 있다가 빈방을 찾아서 들어갔다.

주변을 열 명의 고수들이 경계하고 있을 테니 안심해도 될 것이다.

침상에 먼저 누운 소일초의 몸 위에 엎드리며 물었다.

[사은상을 만나고 나니 감회가 새롭겠지?]

[조금은……]

[내가 잠들면 몰래 사은상 만져보러 갈거야?]

주소아가 그의 눈을 빤히 보았다.

[어떻게 감히……]

소일초는 그녀의 허리로 팔을 두르면서 말했다.

그의 아랫도리가 팽창하며 주소아의 배를 압박하고 있었다.

[사은상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끝없이 쫓길 것 같은데……대체 그녀는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걸까? 우리가 옛날의 그 꼬마들이라면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아무래도 그녀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가봐.]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그래?]

말을 하면서 소일초의 손은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주소아가 그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오늘은 옷을 벗을 순 없어……그냥 이대로 있어.]

그리고, 그녀는 소일초의 머리를 잡으며 세차게 그의 입술을 빨았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참으로 사건이 많았던 길고 긴 밤이 물러가는 것이다.

소일초가 눈을 떴을 때 주소아는 얼굴 단장을 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멀리 광통거의 고요한 수면 위로 여명(餘命)이 움터오고 있었다.

소일초는 심호흡을 했다.

[좋은 아침이다.]

분명 좋은 아침이었다.

하나 그들에게는 좋은 아침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들의 주위에는 정천보의 최고살수 조직인 탕마사십사객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느 때 사은상을 죽이기 위해 뛰어들지도 모른다.

탕마사십사객은 지금도 사십일 명이 남아있고 소일초 측의 고수들은 회복된 사은상까지 해서 십오 명이다.

그 탕마사십사객의 무공이 고강하기는 하지만 개개로 보아 그들에게 질 사람은 사은상 외에는 없다.

단지 그들의 몸을 분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큰 부담이었다.

분시되기 전에는 끝없이 달려들 그 탕마사십사객들은 그들을 치 떨리게 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살수였다. 어디서 암습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 소일초 일행은 죽음을 등에 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좋은 아침이었다.

살인을 예고하듯 붉은 햇살을 보이며 가을해가 나타나있었다.

 

× × ×

 

북경(北京)의 동선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지 삼 일의 시간이 흘렀다.

소일초 일행은 번갈아 가며 경계를 하면서 천천히 북상하고 있었다.

백인도객과 사마귀, 그리고 취풍녀가 한 조가 되었으며,

한천이기가 다른 한 조 였고, 소일초와 주소아 역시 한 조 였다.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함께 가고 있는 사은상의 마음은 점차 초조해지고 있었다.

알려야 할 것은 있고 그 사람들은 만나지도 못했는데……

지금쯤 동생인 사옥상은 어떻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도무지 속셈을 짐작할 수 없는 경천동지할 고수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녀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도 한 객점의 방안에서,

그녀는 난초 향기 그득한 실내를 의미없이 돌고 있었다.

지난 삼 일 동안 다른 사람들은 자주 왔었지만 무적검은 단 세 번 그녀를 찾아왔을 뿐이었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와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말만을 짧게 던져 주고 사라져갔다.

(등천마세의 주인인 그……정말 무적검 본인이란 말인가? 그 자체마저 의심이 든다……어느 누구도 그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그를 무적검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

그의 뇌리에는 소일초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 동안 이들은 나에게 기밀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그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걸까?)

웬지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그들이 자신이 지닌 기밀에 대한 것을 물어 준다면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그녀는 지난 삼 일 동안 수십여 차례나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비명을 들었다.

그 비명소리는 거의 늘 자신에게서 멀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말해주지 않고 자신이 보지 않아도 잘알고 있었다.

그 비명소리들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선 탕마사십사객들의 것임을……

(사부가 진정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십수 년을 함께해온 나를 죽이기 위해 그들을 동원하기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자기의 사부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순간,

[차라리 이들에게 말해 버리자……그리고 도움을 청하자. 그 동안 보아온 이들은 도저히 마인이라고 볼 수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었지 않은가? 어차피 백인장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바에야 이들같은 고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옥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결심을 굳혔다.

[그래……그들은……도와 줄 거야!]

한데 그 순간,

[무엇을 그렇게 힘들어 해요? 언니……보고 있기도 힘들어요.]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성이 바로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사은상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주소아가 그녀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다.

[지금이 녹림맹 푸른 계곡에서 보다 더 힘들어요?]

사은상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나를……어떻게 그걸……설마……]

떨린다.

사은상의 몸이 말을 뱉어 내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떨린다.

그녀의 눈은 오늘 따라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이는 주소아의 얼굴에 못 박혔다.

[그래요. 나는 그 때의 주소아예요. 그리고 무적검은 그 어린 색마구요.]

[주……죽지 않았었단 말인가……오! 하늘이여……]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녀의 노을빛 얼굴에서는 줄기줄기 눈물이 흘렀다.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이 왜 그리 낯이 익은 것이었던지……

그들의 무공이 왜 본적이 있던 것이었는지……

두 꼬마의 사형들이 아닐까 까지 생각했던 그들이 그 꼬마들이었다.

주소아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닭고기와 음식을 녹림맹의 푸른성에서와 똑같이 준비를 했는데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그 천하에서 제일…… 악독한 두 꼬마가 이런 훌륭한 청년과 숙녀가…… 되었을 줄을 누가…… 어떻게 알겠어?]

그녀의 말소리는 여전히 떨렸고 몸은 감격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소일초는 자신의 몸을 낱낱이 다 만지고 비벼보고 했던 꼬마였다.

그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사옥상과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그로부터 고통을 받는 동안에 미운정 미운 사랑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지금 그가 살아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아주 어엿한 청년이 되어있다.

불과 삼 년이 지났을 뿐이건만……

그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의 복수와 사백상을 구하기 위해 백인장의 사람들을 찾았던 그녀였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六 章

 

        親舊가 된 恨天二奇

 

 

 

[물러가라……오늘은 그의 말대로 살생하고 싶은 날이 아니다.]

사위를 진동하며 울려오는 무거운 음성이 방향을 감지할 수 없이 들려왔다.

순간,

여섯 추적자은 이 새로운 출현자에 대해 흠칫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옆으로 백발의 아름다운 남녀 한 쌍이 허공에서 내려섰다.

바로 한천이기이었다.

원천기는 소일초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행복찾아서 간 줄 알았는데……웬일이야.]

소일초가 그들의 등장에 어리둥절하면서 물었다.

[가다가 생각하니 너에게 신세진 것이 한 둘이 아닌 것 같아서 빚을 좀 갚을 까 해서……]

원천기와 한천녀가 야망과 저주를 포기한 후에 남는 것은 그들의 사랑과 그동안의 소일초 주소아와의 우정이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자기들을 맺어준 사람도 그들이었고, 육십 년의 잠에서 깨운 것도 그들이었다. 게다가 목숨마저 살려주었으니……

그래서,

등천마세로 돌아가려던 그들은 다시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신세도 갚을 겸 쫓아온 것이었다.

[그동안 고락을 같이한 친구들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만 편할 수 있어야지……그래서 이 사람과 작으나마 자네를 좀 도울까 해서 왔어……]

원천기의 말에서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의 마음을 환히 읽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떠나서 친구로 지낸다면 그들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주소아가 웃었다.

[이제야 두 귀신이 완전한 사람이 되었군.]

와하하하하--------

호호호호호--------

포위망 가운데서 그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한천이기의 어디에서도 한과 저주가 비쳐지지 않았다.

마음이 바뀌자 사람이 모두 달라진 것이다.

[이들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원천기가 그들의 등장과 웃음에 놀라는 여섯 추적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포위라고 할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천이기가 나타남으로 해서 소일초의 편이 다섯이 된 때문이다.

[오늘 좋은 기분 망치지 않게 잘해요.]

한천녀가 남편인 원천기에게 부탁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원천기의 음성이 울렸다.

[그대들은 어리석다……이분이 무적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소일초와 주소아, 한천녀가 얼굴을 마주하고 미소를 지었다.

원천기가 소일초의 본명을 밝히지 않고 무적검이라고 그대로 부른 때문이다.

[그렇게 경거망동을 하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길이라는 걸 왜 모르는가?]

그의 말은 위엄이 담겨있었다.

등천마세의 진짜 주인으로서……

소림의 청년승 도봉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기를 따지자면 살려준다고 할때 물러나야 하는 것이나 그들이 추적하는 사은상은 놓쳐서는 않되는 것이다.

그때,

은소선자 남군미의 전음이 나머지 다섯 사람의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일은 탕마사십사객에게 일임하고 이곳을 물러납시다.]

도봉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원천기의 시선은 그들이 물러날 것을 바라며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었다.

휘이잉-------!

한 줄기 야풍이 스쳐불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봉이 허공으로 신형을 날리며 침중히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무적검 그리고 세 분……기억하시오……오늘 밤의 일로 인하여 그대들은 정파의 대대적인 추격을 받게 될 것이오………]

스스스……

다섯 사람의 신형도 도봉을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홍건개의 신형만이 느릿하게 허공을 가르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취한 것이야……저 불패도라는 계집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그 어린 계집애 얼굴이 떠오르는 것인지……취했어……확실히 취했어……]

그의 말소리는 웬지 애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놈 만은 죽였어야 하는 건데……]

소일초가 화가 나는 듯 했다.

[왜? 지금 쫓아가서 죽여버릴까?]

[저놈이 전부터 소아에게 흑심을 품었단 말이야……]

주소아가 픽 웃었다.

[나도 그럼 너한테 흑심 품었던 취풍녀를 죽여버렸어야 했겠네?]

[그건……곤란하지. 그녀는 이미 말 잘 듣는 착한 사람인데……]

소일초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는 너처럼 관대하지 못해, 만약 이 사람이 눈을 다른 데로 돌린다면 죽여 버리고 말거야……]

한천녀가 주소아에게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날 밤처럼 아예 머리를 부숴버릴 려고?]

주소아가 혀를 내밀면서 말하자 한천녀와 원천기의 얼굴이 벌개졌다.

그들이 처음 관계를 갖던 날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천녀가 얼굴을 풀면서 말했다.

[취풍녀도 너만은 못하지만 보통이 아니야. 게다가 아주 노련하니 신경많이 쓰야 할걸?]

[걱정할 것 없어. 취풍녀는 없어도 눈하나 깜짝 않할 사람이지만 내가 잠시라도 없으면 못살 사람이니까……]

주소아는 자신만만했다.

이들을 지켜보는 사은상은 기이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았다.

두 쌍의 남녀가 주고 받는 말은 전혀 격의가 없고 옆에있는 자기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천이기는 세상을 아주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고 소일초와 주소아 역시 정상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는 오히려 지금과 같은 행동들이 더 정상적인 것이다.

사은상은 도망치려고 생각했었으나 이들의 손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힘이 쭉 빠지며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가 깜빡 잊고 있어.]

주소아는 급히 사은상을 품에 안았다.

(아아……이들은 진정 등천마세의 사람들이란 말인가? 이들의 행동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럽고 자상한 것이 아닌가?)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움을 느꼈다.

주소아의 손이 자신의 수혈을 누른 것을 느끼며 그녀는 아득한 혼미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는 느낌 속에서 번쩍 눈을 떴다.

[…………!]

한 사람이 분명히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아주 낯익은 듯한 아름다운 사나이 무적검……

바로 소일초가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지 않은가?

소일초……

이때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사은상은 의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이자는 등천마세의 주인이란 무적검이다. 한데……왜……)

문득, 그녀는 자신이 여자임을 자각하며 몸을 떨었다.

(혹시……나를?)

그러나,

소일초는 왠지 깊은 추억에 잠겨있는 듯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일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두려움은 여전했다.

등천마세가 등천마교의 후신임을 알고 있기에 지금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삼수의 하나인 사진성의 제자인 것이다.

(혹시 이 자는 내가 지닌 비밀을 노리고 이런 가식적인 태도를……)

그럴지도 모른다.

하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적어도 상대방은 무적검이라는 거목이다.

그런 그가 이런 알량한 방법을 사용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이때,

소일초는 그녀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그는 사은상이 정신을 차린 것을 알지 못한 채 밖으로 걸어나갔다.

사은상은 자신의 몸을 점고해 보았다.

전신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상처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순간, 불패도라고 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하나의 옥쟁반을 들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탐스럽게 구워진 닭고기와 몇 가지 음식들이 놓여져 있었다.

[정신을 차렸으면 이걸 먹도록 해요.]

그녀는 의자를 끌어당겼다.

사은상이 누워있는 침상 곁에 바짝 앉으며 천천히 죽을 떠다 그녀의 입에 넣기 시작했다.

상당한 정성이 깃든 동작이었다.

그때 백발의 미녀가 또 문을 밀고 들어왔다.

[당신이 바로 사은상인가요?]

[흡!]

누워있던 사은상은 놀라서 떠거운 죽을 꿀꺽 삼켜버렸다.

두려워하던 일이 드디어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를 알고 있는 것이다.

[어머! 어째 뜨거울 텐데……]

주소아가 가련하게 쳐다보았다.

이때, 한천녀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무적검과 불패도를 알고 있어요?]

순간, 사은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얼굴이 낯이 익기는 하지만……전혀……]

주소아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수저를 놓았다.

이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사은상에게 말했다.

[안심하고 편히 쉬어요. 그리고 이곳에는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힐 사람은 없어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는 한천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미련없이 문 밖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혼자 남은 사은상……

수많은 상념이 어지럽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아늑한 실내였다.

황촉불이 은은히 타오르고 있는 이곳은 객점의 한 방인 듯 했다.

(무적검……그가 어찌 나를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 불패도 역시 나를 알고 있는 듯 했다. 한데……원수라고 할 수도 있는 나를 왜 죽이지 않을까?)

사은상은 침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은 가뿐했고, 내공은 더욱 높아진 것 같다.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들은 등천마세의 사람들……백인장 만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무림에서 오직 그들만이……)

그녀는 나직이 탄식을 토했다.

(난감하다. 누구에게 이 기밀을 말하고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누구에게 옥상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단 말인가?)

그녀는 허탈하게 웃는다.

사은상이 누구였던가?

자기의 신세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어야 했던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글프다.

한때는 삼성무림청의 공녀 중의 하나로 위세를 보이기도 했었다.

무형혈수로 무수한 사람을 죽이기도 했었다.

그녀의 일생은 어린 두 꼬마들을 만나면서 변해 버렸던 것이다.

마음이 변해버리고 행동이 변해버렸다.

사부인 사진성은 끝없이 그녀를 불신해 오다가 드디어 온갖 약물로서 괴물로 만들어 버리려 한다.

그의 상념은 한없이 이어졌다.

한데 그때였다.

스스스……

황촉불이 팍 꺼져버리고……

실내는 무서운 적막에 사로잡혔다.

(아아……)

사은상은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어둠에 동화된 듯……

본래 황촉불이 있던 장소에 고요히 서 있는 검은 그림자……

그를 보며 사은상은 전신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그대는……그대들마저……사부가 나를 그렇게까지……]

그녀의 음성마저 무섭게 떨리기 시작했다.

천하의 사은상이 이토록 경악하며 전율하고 있었으니……

문득,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가?]

최초로 검은 그림자는 입을 열었다.

죽음의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는 그런 어두운 음성이었다.

사은상은 한 걸음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몸은 이미 침상에서 내려와 벽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그대는 탕마사십사객 중 구혼객(求魂客)……]

[그래……아는군……이제 돌아갈 텐가 아니면……]

흑의인, 즉 구혼객이 소리없이 웃었다.

[나는 결코 돌아가지 않아. 이 괴물아……!]

[그렇다면……죽어야지………]

찰나,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렸다.

[누가?]

[크아악……]

갑자기 구혼객의 입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이 앞으로 엎어졌다.

털썩……!

이어 그의 몸이 썩은 짚단처럼 무너져 내리고 실내는 정적에 쌓였다.

사은상은 긴 숨을 몰아쉬었다.

이때,

[괜찮아요?]

예의 부드러운 여인의 음성이 들리며 실내는 다시 밝아졌다.

그러자, 사은상의 시야에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청의에 면사를 쓴 여인, 취풍녀였다.

사은상은 고개를 끄덕여 감사의 인사를 보였다.

순간,

[끼악----!]

쓰러져 있던 구혼객의 몸이 괴성과 함께 튀어 오르며 사은상을 향해 덮쳤다.

사은상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취풍녀가 맑은 기합을 질렀다.

[마왕수(魔王手)!]

그녀의 손에서 하나의 빛살같은 손이 뻗어나가 구혼객의 머리를 파괴해버렸다.

파아아아-----

[이럴 수가……]

순간적인 틈을 이용하여 사은상의 무형혈수가 구혼객의 가슴을 쳤건만 머리도 없는 구혼객은 그래도 움직이며 달려들고 있다.

다시 한 번 취풍녀의 손에서 아수라수가 격출되고 구혼객의 몸은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방안은 온통 피와 흩어진 살점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취풍녀는 아수라수를 격출했던 자신의 손을 감싸쥐고 있었다.

구혼객의 몸을 강타했을 때의 충격은 쇳덩이 보다 더 강했던 것이다.

취풍녀도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탕마사십사객 중의 하나예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사은상이 말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五 章

 

       명문정파의 追跡者들

 

 

 

희미한 어둠의 한 자락을 헤치며 사방에서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승(僧), 속(俗), 도(道)의 그들은 세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수려한 인물들이었다.

먼저, 불진을 든 해맑은 용모의 청년승(靑年僧)이 구름을 밟듯 허공을 두둥실 가로지르며 소일초와 주소아의 면전에 나타났다.

(도봉(渡峰)?)

소일초와 주소아는 두 눈에 이채를 피워올렸다.

그렇다.

연대구품의 경신술을 발휘하며 날아온 그는 바로 소림의 제일기재인 도봉이었던 것이다.

과거 녹림맹의 푸른 계곡에서 황녹천을 도와 소일초와 주소아를 핍박하려 했던 바로 그였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의 모습은 마장탑에 있었던 이후로 너무나 큰 변화가 있었기에,

그로서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

좌측에 나타난 인물은 청포를 걸치고 어깨에 비스듬히 검을 멘 한명의 도인(道人)이었다.

이십 사오 세 가량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 세상을 벗어난 듯, 아무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 듯한 탈속의 기운이 있었다.

바로 무당파의 젊은 장로(長老)인 선인일검자(仙人一劍子)이다.

이어,

심한 술냄새를 풍기며 머리에는 붉은 띠를 두른 걸인 청년이 나타났다.

(홍건거지……)

소일초와 주소아는 나타난 거지가 바로 개방의 팔결 장로인 홍건개임을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모습은 과거와 다를 바 없었다.

소일초가 가장 싫어하는 자가 있다면 그 중에서 이 거지가 제일 먼저 뽑힐 가능성도 있었다.

주소아를 넘보았던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욱 타락해 보였다.

그의 입에서 연신 쏟아져 나오고 있는 주절거림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한편,

나머지 세 명의 인물 또한 앞서 세 사람에 비해 손색없는 용모와 기도를 보이고 있었으니……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들 모두가 바로 명문정파의 최고 기재기녀들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었다.

그들 역시 강호에서 돌아다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강호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에도 무림인들에게 전설적인 존재로만 알려진 채 오랫 동안 활동을 하지 않던 구파일방이다.

한데,

그런 구파일방의 인물들 중의 몇 사람이 지금 소일초와 주소아의 면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놈의 구파일방은 나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가 져서 꼭 내앞에만 나타난단 말인가?)

소일초는 심히 못마땅했다.

스스스……

갈대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가운데 소일초와 주소아는 여섯 사람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도봉과 홍건개, 그리고 선인일검자(仙人一劍子)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

 

파옥검(破玉劍) 정지일(鄭指一),

서생차림의 그는 무림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문인에 가까운 부드러운 용모의 소유자인 그는 화산파의 자랑이었다.

 

은소선자(銀簫仙子) 남군미(南群美),

아미파의 속가제자였다. 은소를 병기로 사용하는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시는 무공을 펼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은소에서 흘러나오는 음률은 사람의 내공을 흩어버리는 것이다.

 

점창파의 제일기재는 점창비검녀(點蒼飛劍女),

일곱 자루의 칠성비검을 뜻대로 부리는 조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각 문파를 대표할 만한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그들 문파의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 소일초는 그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고……

주소아는 다시 태연히 사은상을 쓰다듬으며 치료해 주기시작했다.

철저히 여섯 명의 추적자들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이봐요……저들이 당신을 쫓는 사람들인가요?]

주소아의 물음에 사은상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미 급한 점창비검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멈추라고 하지 않았느냐?]

[목소리 큰 여자는 소박맞기 십상이지……내가 직접 목도한 바니까……]

소일초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점창비검녀는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소일초의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을 보면서 소리를 지를 자신이 없었다.

주소아는 하던 동작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은상의 눈이 불안하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주소아는 그런 그녀를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외상은 별게 아니지만 내상을 치료하자면 시간이 좀 걸려요.]

이 말에 사은상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아예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주소아와 소일초에게 맡게 버렸다.

문득,

그들의 이런 태도에 화산의 선인일검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아는가?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그의 음성은 부드럽게 울려나와 사람의 소리가 아닌 듯 했다.

스스스……

갈대는 야풍에 소리없이 흐느끼고, 선인일검자의 음성이 이어진다.

[지금 당신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인물은 정파무림을 배신한 여인이다. 어서 물러나라. 그 여인을 치료함은 곧 중원의 안위를 무시하는 것……]

이때였다.

도봉이 앞으로 나서며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미타불……시주……지금 들었다시피……그녀는 정파무림을 배신한 악녀요. 그녀를 돕는다는 것은 곧 사마의 무리를 돕는 것이나 진배가 없는 것이오.]

도봉의 음성은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도봉의 말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소일초는 무심히 어두운 하늘을 보고 주소아는 계속하여 사은상의 몸에 장심을 붙치고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젠장할……술이 취했는가? 그것도 아니면서 저 멍청한 년놈이 미쳐버렸는가?]

홍건개가 벌컥 술을 들이키며 소일초의 면전으로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는……

[어디 보자……그 얼굴……아니 그 면상……어떻게 생겼기에 이렇게 멍청하게 구는 것인지?]

다짜고짜 홍건개는 소일초의 턱을 잡아채려고 손을 뻗었다.

순간,

짝-----!

[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울리고, 홍건개가 뺨을 감싸며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홍건개! 그 무례한 버릇은 도무지 못버렸구나, 몇 해 전만해도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소일초가 차갑게 말하며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다섯 명의 추적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홍건개가 입에서 피와 함께 이빨을 뱉어냈다.

[확……확실히……내가……이 홍건개가 술이 취한……거야……그렇지 않고……서야……]

비틀비틀 그의 몸이 일어나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다섯 명의 나머지 추격자는 일제히 살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주소아가 사은상의 치료을 마치고 일어서서 소일초의 옆에섰다.

순간,

[아……!]

[음……!]

그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을 보며 그만 탄성을 억제하지 못했다.

주소아와 소일초 같은 천상의 남녀인 듯한 아름다운 남녀는 있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아닌가?

경악과 경탄과 의혹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어우러지고,

소일초와 주소아는 사은상을 뒤로 두고 여섯 추적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삐리리리……!

은소선자 남군미가 은소로 한 번 소리를 내며 그 맑고 신비로운 혜안을 굴렸다.

[다시 말하지만……당신들이 치료한 그녀는 정파무림의 배덕자예요. 필요에 따라선 그녀를 강제로라도 포박해야만 하니……당신들은 순순히 물러서도록 하세요.]

그녀 음성에는 듣는 이의 영혼을 은은히 다스리는 힘이 실려 있었으나 떨려나오고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옷자락을 표표히 날리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남자들은 남자들 대로 여인들은 여인대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단지 저자의 모습을 대하는 것만으로……내가, 이 남군미가 이토록 격동하고 있다니……)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새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데,

은소선자의말에 이어 떨어지는 소일초 대답……

[정파무림의 배덕자라……그런가?]

그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남군미와 점창비검녀의 가슴에 연분홍빛 야릇한 마음을 심어 주는 황홀한 미소였다.

[그렇다면……나의 이름으로 보아 나는 더욱 이 사람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순간,

최초로 사은상의 얼굴에 강한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섯 추적자들의 얼굴에 일제히 분노의 빛이 나타났다.

[아미타불……지금 시주의 말에는……뼈가 있는 것 같은데, 시주께서는 사문내력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소?]

도봉이 모두의 분노를 억누르며 합장의 자세로 물었다.

소일초는 여전히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말했다.

[나의 사문을 안다면 너는 그렇게 있을 수 없다. 이미 오래전에 너에게 말한 적도 있다.]

순간,

도봉은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그로서는 도무지 소일초와 주소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많이 변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이미 수 년 전에 화산 옥녀봉에서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여섯 추적자는 그의 안중에 두지도 않는 말에 분노를 터뜨렸다.

[무……무엇이……감히 우리를 모욕하다니……]

[건방진 자 이제……더이상 참을 수가 없다.]

소일초의 말에 분기탱천한 점창비검녀와 파옥검 정지일이 벼락처럼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덮쳐들었다.

점창비검녀의 소매에서는 어느새 일곱 자루의 단검이 돌아가며 쥐어지고 눈앞은 검광으로 가득찼다.

파옥검 정지일은 신검합일의 자세로 소일초를 쪼개오고……

소일초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만한 무공을 쌓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무조건 손부터 써고보는 그들의 경망스런 행동이 마치 자기들의 얼마 전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명문정파의 제자라는 것들은 자기외의 사람은 도무지 사람같이 보지도 않는 것이 아닌가?

[말은 힘의 사용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모양이지……]

주소아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하나 여전히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이봐요……피……피해……]

사은상의 다급한 음성이 터졌다.

이때였다.

소일초의 손이 주소아의 손에 닿고 주소아의 손에는 검이 들려지며 빛살처럼 퍼지며 짓쳐들어오는 일곱자루의 비검과,

검신합일로 자기를 쪼개오는 파옥검을 향해 뻗어갔다.

파옥검과 점창비검녀는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자신들의 공격이 완벽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다.

한 자루의 가볍게 찔러오는 검은 그들의 공격 앞에서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한데, 주소아의 손에서 뻗어나온 검은 빙글 돌면서 그들을 휘감는 기류를 형성시켜버렸다.

일곱자루의 비도도 그 기류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검신합일로 쪼개오던 파옥검의 검세도 방향이 비틀리며 두 사람을 한곳으로 몰아버렸다.

순간,

[피하시오……]

도봉과 선인일검자가 동시에 다급히 외치며 주소아를 향해 일장을 뻗었다.

파옥검과 점창비검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도봉의 염화옥장(捻花玉掌)과 선인일검자의 양의장(兩儀掌)은 양쪽에서 주소아를 향해 밀려들었다.

지금 주소아는 자기가 만든 일초검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불완전하나마 그녀가 오랫동안 고심해서 만든 것인데 겨우 이들의 공격에 무너질 리가 없다.

도봉과 선인일검자의 장력도 그녀의 검에서 퍼져 나온 기류에 휘말리며 오히려 파옥검과 점창비검녀에게 몰려갔다.

그들은 대경실색했다.

서로가 상잔(相殘)을 할 처지에 이른 것이다.

지금 주소아도 힘들었다.

그녀의 검공은 소일초의 검공과는 달리 조금더 유지하면 기류속에 휘말린 두사람은 공처럼 폭발해 버릴 것이다.

그녀는 검공을 풀고 검을 회수했다.

사람을 죽이기 싫은 것이다.

[으악-----]

[아악-----]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점창비검녀와 파옥검의 몸이 가랑잎처럼 날리면서 떨어져 내렸다.

붉은 피보라가 그들의 칠공에서 처절하리만큼 아름답게 쏟아져 내리고……

도봉과 선인일검자가 번쩍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그들의 몸을 받아들었다.

주소아가 펼친 검공이 형성한 기류에서 잠시나마 있었기에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물론 즉시에 풀지 않았다면 그들의 몸은 폭발해 버렸겠지만……

주소아는 검을 소일초에게 돌려주었고 소일초의 손에서 검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사은상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 주소아의 검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소아가 펼친 검공 역시 본 적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꼬마들의 사형과 사자들인가? 그들이 있어서 세상에 나왔단 말인가? 아……)

그녀는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아주 편안해 졌다.

…………

무서운 침묵이 흘렀고,

도봉을 비롯한 선인일검자와 홍건개의 얼굴에 떠오른 빛은 경악의 그것……

이때, 그들은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주소아의 신비하도록 가공할 무공을 그들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무서운 무공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가공할 무공이었다.

그들은 이 소일초와 주소아란 존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한데 그때였다.

[아아……확실히 내가 ……이 소화자가 취한 것이야……천하에 저런 정도의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로…… 정파의 배덕자를 보호하려는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자는 오직…… 무적검이라는 인물밖에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왜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그는 이빨이 부러져 깨지고 새는 음성으로 말했다.

개방의 인물이었기에 그는 천하의 인물들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환히 알고 있었다.

지금, 비로소 그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존재에 관하여 깨닫게 된 것이다.

이에,

도봉 등은 경악하고 말았다.

[아……무적검이라고……저 여인이?]

[무적검이 여인이었단 말인가? 그래서 이토록 무공이 강했더란 말인가?]

떨리는 음성이 그들에게서 흘러나왔다.

[천만에, 나는 불패도(不敗刀)일 뿐이야. 방금의 검은 빌려쓴 것이야. 무적검은 옆에 이 사람이지……]

주소아는 그들의 놀람을 일축하며 말했다.

그리고 소일초는 한소리 의미심장한 말을 흘러냈다.

[너희들은 이제야 내가 이 여인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았겠지?]

여섯 추적자는 세상에 무적검이라는 인물 만이 아닌 불패도라는 여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다시 놀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상을 입은 몸의 두 사람까지 다시 소일초와 주소아를 둘러싸고 들어왔다.

상대의 신분이 확인된 이상 절대적으로 사은상을 빼앗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은상이 정파무림의 최고의 기밀을 알고 있는 배덕자라면……

등천마세의 새주인으로 부각된 이 면전의 인물에게 사은상을 내어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이 두 사람을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단지 그들의 마음은 오직 살인멸구로 사은상을 제거하려는 것일 뿐이었다.

하나,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이 전율을 느끼고 있는 점은……]

바로 무적검이라는 인물이 이토록 젊은 데에 있었다.

무적검……

이 시대를 양분한 세력의 주인으로 부상한 무서운 인물이 아니던가?

그가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인물이라는 사실은 천하 무림인들에게 충격을 줄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불패도라는 여인……

무적검이란 이름보다 더욱 알려진 바 없는 신비의 미녀가 아닌가?

한편,

정작 이들보다 놀란 인물은 따로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정파무림의 배신자라는 사은상이었다.

(이 이자가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라니……나를 구한 이 자가……아아……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그녀는 또 한 차례의 절망에 사로잡혔다.

(하늘은 끝내 나를 외면하고 마는가? 등천마세의 인물이 결코 나를 살려두지 않을 것인데……내가 삼수의 제자였다는 것만으로도……)

넘을 수 없는 산을 하나 넘었다고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산을 넘자 그보다 더욱 높은 또 하나의 산이 버티고 있는 격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이미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단지 피로가 쌓였을 뿐……)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때,

여섯 추적자들은 일남이녀를 둘러싸고 천천히 돌고 있었다.

[오늘같은 날은 살인을 피하고 싶다. 돌아가라……]

소일초가 나직하게 하는 말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여섯 추적자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이 광통거를 아늑하게 하는데……

갈대는 여인의 마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이때,

돌연……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四 章

 

           주소아의 一招劍功

 

 

 

한천이기,

원천기는 한천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앞 오장 정도의 거리에는 소일초가 서있으며 그 뒤에 조금 떨어져서 주소아가 서있다.

살기는 팽배해 있었고 앞에선 소일초보다 주소아가 더욱 긴장해 있었다.

순간,

원천기의 뒤에 서있던 한천녀가 회오리처럼 돌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원천기의 머리위로 서서히 내려왔다.

원천기의 두 손이 한천녀의 두 발을 받쳐 든 순간,

고오오오-------

그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는 듯 하더니 한 마리 묵룡이 되었다.

바로,

그들이 천하제일의 무공이라고 자부하는 등천마룡(登天魔龍)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합격하여 펼쳐낸 등천마룡……

이는 한천녀와 원천기가 따로따로 펼쳐 보일 때와는 전혀 달라보였다.

사방 이십 장을 뒤덮는 거대한 묵룡(墨龍),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칠십이기개들이 자신의 꼭두각시인 정통마교주를 최후의 순간에 죽이기 위해 만든 비장의 무공이 바로 이것이다.

강기로 뭉쳐진 묵룡,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 무공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묵룡은 소일초는 물론 주소아까지 휘감아 갔다.

주소아의 안색이 변하며 소일초의 옆에가 섰다.

그러나,

소일초는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앉으라는 신호를 했다.

갈대와 광통거의 물결마저 묵룡의 위세에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순간,

소일초의 오른손이 다가오는 묵룡의 거대한 머리를 향해 죽 뻗어졌다.

뻗어짐과 동시에 그의 손에는 환상처럼 마황검이 치솟았다.

사부인 검마를 무적의 검객으로 만들었던 검공,

오직 일초로서 모든 무공을 파괴하고 적을 죽이는 공포의 검공이 펼쳐졌다.

마황검의 끝이 작은 원을 그리며 묵룡의 머리를 찔러갔다.

그 검의 끝에서 형성되는 기류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감아버릴 듯 하던 묵룡을 오히려 뒤집어 씌워버렸다.

그물 속에 갇힌 듯 묵룡은 발버둥 치고 소일초의 검은 묵룡을 가두고 있었다.

일초검공은 검으로서 공간을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검을 사용하는 수법은 한가지로 언제나 동일하지만, 그 똑같은 자세 속에 들어가는 요결에 따라서 수 많은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지금 소일초의 검은 묵룡이 움직일 공간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강기로 형성된 묵룡일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강기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이었다면 모두 가루가 되어서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묵룡이 순간적으로 소일초의 검에 의해 제압되어버리자 한천이기는 경악했다.

자신들의 몸에서 일어난 묵룡은 자신들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소일초의 검을 쫓아 이리저리 춤을 출 뿐이다.

소일초가 검으로 한천이기를 가리켰다.

순간 묵룡이 어지럽게 비틀리면서 한천이기에게로 날아갔다.

[헉!]

[헉!]

한천이기는 헛바람을 삼키며 전력을 다해 묵룡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통제력을 잃어 버린 후이다.

그리고, 묵룡의 그들의 원신을 섞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반항할 여력도 없다.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정통마교주……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등천마룡……

이 모든 것들이 자신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이미 늦었다.

묵룡은 날려서 오고 그들에겐 저지하거나 피할 힘이 없다.

원천기의 손바닥 위에 서있던 한천녀가 미끄러져 내려오며 원천기를 꽉 안았다.

그리고 두사람은 격렬한 입마춤을 하면서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묵룡이 땅을 스치며 지나갔다.

소일초의 검은 묵룡을 풀어주었고 묵룡은 다시 한천이기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주소아가 일어서며 소일초를 뒤에서 꼭 안고 그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무서운 정적이 감돌았다.

소일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한천이기가 서로의 포옹을 풀면서 소일초를 쳐다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함께 죽고자 포옹했던 그들의 표정은 이미 다른 사람인 듯 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먼저 원천기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왜 우리를 죽이지 않았소?]

이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의혹이었다.

소일초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죽이려고 했었지만 너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소아가 죽이지 않길 원할 것 같아서……]

한천녀이 역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인간의 무공으로 어떻게 등천마룡을 단 일초에 제압할 수가 있었습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무공이……]

쉴 새없이 그들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주소아가 소일초를 안은 채 말했다.

[이 사람은 소일초지 소일초……오직 일초(一招)면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있는 ……]

소일초는 그녀에게 팔을 두른 후 광통거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한천이기에게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늘이 높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다시는 사닥다리로 올라가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천기가 가만히 한천녀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두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일초……]

[징벌장(懲罰掌)을 실험해 보고 싶어서 그러나?]

소일초가 걸어가면서 말했다.

[아니……다시는 너 앞에서 무공을 쓰고 싶지 않다.]

[잘 생각했어.]

[우리를 살려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최근에 우리 일생중 가장 행복한 날을 보냈다. 오늘……]

원천기는 한천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너로 하여금 하늘에 정의가 있음을 느꼈다. 너희 정통마교주도 우리 손에서 만들어졌고 등천마룡도 우리에게서 나왔는데 오히려 모두가 우리를 죽이려 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소일초가 말했다.

[그렇다. 우리가 천지파멸의 악을 뿌리려 했기에 하늘이 우리 손으로 우리가 죽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찾겠다.]

[…………]

[한(恨)도 저주보다도 지금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됐군, 그럼 등천마세나 잘지켜, 몽땅 죽이지 말고……]

한천이기는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다정한 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 보았다.

진정으로 지키고 가꾸어야 할 것은 인간의 사랑이고 평화스러운 환경이라는 것을 느끼며……

 

× × ×

 

[동선장(童仙莊)의 꼬마들은 잘있을까 모르겠네……]

[집사가 잘 돌보고 있겠지……]

[그 애들에겐 내가 엄마처럼 생각되겠지?]

[얘들하고 별로 놀아주지도 않았으면서……아……]

주소아가 소일초의 코를 잡았다.

[엄마가 바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어두운 광통거변을 나란히 걸어가며 도란도란 하는 얘기에 지칠 줄 몰랐다.

[동선장에 들러본 후엔 곧장 정천보로 들어갈 거지?]

[그래야지, 정천보에 삼수가 숨어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소일초가 말했다.

[백인장에 통보했으니까 동선장에 들렀다 가면 정천보로 집결하는 날짜와 대충 비슷해질 거야.]

그렇다.

그들은 백인장에 그들의 무사함을 알리고 삼수가 숨어있을 정천보로 모든 고수들을 집결 시켜 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어쩌면, 소선풍을 위시한 백인장의 모든 고수들이 지금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삼수(三手)……

그들을 찾아서 복수를 해야만 한다.

그들 사부의 손녀인 주소아의 천재적인 재질을 탐내어 그들을 위한 살인병기로 만들려고 했던 그들을 벌해야 한다.

소일초는 그들을 반드시 제거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소아를 위해서 일망타진 해야 하는 것이다.

동선장을 찾아가는 것은 삼수와의 마지막 결전을 하기전에 주소아는 자기 손으로 모았던 아이들을 한 번 더 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까 그 일초검공 말이야……]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왜?]

[나한테 가르쳐 주면 안돼? 그건 도저히 보기만 해서는 배울 도리가 없어.]

소일초는 그녀에게 혀를 찼다.

[또 병이 도졌군, 사마귀한테 사백자요결(四百字要訣)배웠으면 이제 그만 만족해!]

[그것만 가르쳐 주면 더 배우려 하지 않을게, 응.]

주소아는 교태를 부린다.

[그래도 소용없어, 무공을 배우기만 배우고 이 핑게 저 핑게로 한 번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아기 못 가질 까봐서 그런 거지……그 일초검공 말이야……사실……내가 비슷하게 한 번 만들어 보기는 했는데……도무지 같은 위력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소일초의 눈치를 보면서도 주소아는 오직 무공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한다.

소일초는 그녀가 일초검공을 비슷하게 만들었다니 어리둥절했다.

일초검공은 드러난 것과는 달리 깊은 변화와 위력을 간직하여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요결을 모르면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이야, 일초검공을 혼자서 만들었다고?]

주소아의 뛰어난 머리를 알고 있는 소일초지만 잘 믿기지 않았다.

일초검공이 어떤 것인데……

[만들긴 했어도 네 것과는 같이 되지는 않아. 보고 지적좀 해줘……]

[그걸 어떻게 만들었어? 그렇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닌데……]

소일초의 표정은 심각했다.

일초검공을 보기만 하고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초검공을 절학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늘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음……먼저 겉을 꾸미고, 그 겉을 만들 수 있는 속을 꾸며나가는 방법으로 연역해서 만든 것인데……음……그 속을 만드는 모든 요결들은 내가 아는 무공들을 종합해서 만들다 보니 비슷하면 서도 네 것과는 아주 다른 것 같아져 버렸어……아직은……연결도 잘 되지 않고……]

주소아가 말했다.

그녀가 만든 일초검공이란 결과에서 원인과 수단을 유추해 들어간 방법으로 만든 것이니 검마가 수단과 방법을 종합해서 만들어낸 귀납적인 검공과 같을 리가 없는 것이다.

중간에서 조금만 달라도 아주 달라지는 것이 절정 무공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인 것이다.

소일초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거……이렇게 되면 정말 내가 영원히 밑에서 깔릴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은데……한 번 해봐……]

주소아가 불숙 손을 내밀었다.

[……?]

[난 검이 없잖아!]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역시 불숙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에는 마황검이 들려져 있었다.

[그것도 신기한데……언젠가 그 비밀을 밝히고야 말겠어.]

주소아는 소일초의 손에서 솟아오르듯이 튀어나오는 마황검을 손으로 받아들었다.

마황검은 아주 둔중하다, 족히 칠십 근은 될 것이다.

주소아는 처음 들어본 마황검이다.

신중하게 별빛이 내려있는 광통거 물결을 향해서 검을 뻗었다.

소일초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소아의 검을 쓰는 수법은 소일초의 일초검공과 완전히 동일했다.

뻗어나가면서 원을 그렸다.

순간,

십여 장 밖의 물에서 회오리가 일어나며 물기둥이 치솟았다.

물기둥은 주소아가 검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위로 올라가더니 둥글게 모이면서 터져버렸다.

팡------!

쏴아아아-------!

물은 그들의 머리로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엇차! 이게 무슨 짓이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이게 지금까지의 한계란 말이야.]

그들은 비맞은 새앙쥐 꼴이 되어버렸다.

온몸이 흠뻑 젖어서 옷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

몸의 굴곡이 옷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소일초가 공력을 움직여서 옷을 말리며 주소아를 안았다.

주소아 역시 옷을 말리느라 그들의 몸에서는 김이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이상하게 공력을 더 많이 써서 검의 기운을 움직이려고 하면 그것이 터져버린단 말이야……도무지 방법이 없어.]

주소아가 그의 품에서 하는 말이다.

[그건……음……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소아의 눈이 반짝 뜨였다.

[빨리 말해봐! 궁금해 죽겠어.]

[뭐줄래?]

[선물, 좋은 것! 이 번엔 진짜야. 진짜로 허락할게.]

주소아는 다급했다.

그녀의 최후의 무기가 나온 것이다.

전에도 사용했지만 소일초는 얻지 못했다.

주소아가 아무래도 안되겠다면서 후에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또 두 말 하기 전에 먼저 받고 가르쳐 줄께.]

소일초도 이번에는 만만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건 안돼! 그럼 내가 몸 파는 여자같잖아.]

[나한테 파는 건데 어때. 그럼 나도 안돼!]

순간,

그들의 대화가 뚝 끊어졌다. 눈을 마주 본 후 몸을 날렸다.

미세한 호흡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사사사사……

광통거 변의 갈대가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어둠의 공간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갈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문득,

갈대를 헤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곳에서 붉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분명 사람의 그림자였다.

어둠 속이었기에 그 그림자는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지만……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신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헉헉……]

날카롭고 거친 호흡소리가 적막한 어둠을 가늘게 울리고 있었고……

피투성이 붉은 여인의 아름다운 손이 다급하게 갈대를 헤치고 있었다.

붉은 그림자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드러난 홍의 여인의 얼굴은 붉으스레한 노을 빛이 었다.

하나, 그 얼굴은 이때 심하게 창백해져 있었고 피에 젖어 있었다.

그 얼굴……

바로 사은상이 아닌가?

차가운 얼굴의 얼음처럼 풀려나는 한기를 지녔던 그녀, 삼수 중의 하나인 사진성의 제자가 아니었던가?

[헉헉……사 ……살아야 한다.]

처연한 독백이 갈대에 떨어지고 있는 피만큼이나 처절해 보였다.

[아아……이대로……내가 ……주……죽을 수는 없다.……백인장으로 가야한다……아니 최소한 백인장의 사람이라도 만나야 한다.]

그녀가 무슨 일로 이렇게 쫓기면서 백인장으로 가려고 하는가?

이미 백인장은 무림에서 종적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데……

모를 일이다.

한데, 그녀가 백여 장이나 앞으로 나아갔을까?

돌연,

삐이익------!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성(簫聲)이 어둠을 가르며 들려왔다.

칼날처럼 인간의 몸을 후벼버릴 듯 울리는 이 소리는 분명 광통거의 물결을 타고 들려오고 있었다.

순간,

[아아……저들이 어느 새 이곳까지……]

사은상의 얼굴에 창연한 절망이 가닥가닥 풀어져 떠오른다.

[무……무서운 자들……이곳까지 이르렀거늘……끝까지 추격해 오다니……]

하나 사은상은 체념하지 않는다.

그녀는 더욱 빠른 몸놀림으로 무성한 갈대를 헤치고 있었다.

그녀의 가여린 체구는 여전히 빨랐다.

한데 그 순간,

또다시 그의 전면의 갈대밭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무량수불……]

사은상은 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틀렸어……]

울컥 한모금의 선혈이 토해졌다.

[아미타불……]

이번에는 불호가 좌측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젠장할……이 밤중에 이게 무슨 고생이람……]

이번에는 우측에서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심하게 취해 있는 듯 혀가 뒤틀린 소리였다.

사은상……

그녀는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허허……틀렸어……]

사은상은 마지막 희망이 사라짐을 느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헉헉……주……중원의 어디에도……백인장의 사람들은 찾을 수 없으니……]

달빛이 그녀의 눈에 아리게 파고 들었다.

[……하늘은……하늘마저……꼬마 너의 복수를 바라지 않는구나……귀여운 악동(惡童)……이제야 나도 네 곁으로 가는 구나……]

한데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한줄기 나직한 음성이 조용히 어둠 속에서 솟아 나와 사은상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사은상을 편안하게 하는 힘을 담고 있었지만, 사은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누구……)

중상을 입은 몸이지만 아직은 백 장 밖의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청력이 그녀에겐 있었다.

한데,

음성의 주인공은 기척도 없이 사은상의 가까이에 접근해 있는 것이다.

자기의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 무공의 소유자이리라……

사은상은 힘없는 시선으로 한 곳을 주시했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녀의 면전에는 한쌍의 남녀가 고요하게 서 있었다.

손을 서로 잡고 있는 그들은 결코 약관은 넘지 않은 듯 한 인물이었다.

희미한 달빛과 초롱한 별빛이 그자의 몸에 은가루처럼 부서지고 있는 가운데……

사은상은 아득한 심연의 충격을 맛보았다.

(아아……이 세상에 저토록 수려한 남녀가 있었다니……)

그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었다.

한 쌍의 남녀……그들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였던 것이다.

(한데……저 모습들은 어디선가 많이 대한 듯……)

사은상은 흐릿한 의식 저 건너편에서 부터 솟아 오르는 또 한 가지의 충격을 느낀다.

이번의 충격은 전율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자신의 앞에 선 이 생면부지의 남녀가 왜 이리 낯이 익단 말인가?

하나,

아무리 의식 저 편을 뒤져 보아도 그들을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녀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쫓기고 있단 말인가?

[상처가 심하군……우선 상처부터 치료해줘……]

소일초의 말에 주소아가 사은상의 곁으로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자,

[이봐요……가……가까이 오지 말아요……그리고……어서 이곳을 떠나……]

[그 사람은 마음씨가 착해서……아마 죽어가는 당신을 이대로 둘 수 없을 텐데……]

소일초의 말이다.

[아……안돼요……그러면 당신들도 죽음을 당해요……]

진심으로 사은상은 소일초와 주소아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주소아가 소일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은상도 많이 변한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소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더욱 가까이 접근해 왔다.

[천하의 누구도 우릴 죽일 수는 없어요. 걱정 말고 상처나 치료해요……]

[헉헉……그럴 수는……없어요. 당신들은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사은상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녀는 자신을 추적하는 무리들이 얼마나 가공할 인물들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주소아의 말을 단지 만용으로 받아 들이고있는 것이다.

이때,

[헉……]

사은상은 주소아가 어느새 자신의 팔을 잡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다.

(이런 수법은……전에 그 꼬마의……)

그녀는 소일초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손에 제압되던 그때를 생각해 내고 놀랐던 것이다.

주소아의 수법도 바로 그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새삼 주소아의 얼굴을 주시하며 불가사의함을 느꼈다.

주소아는 천천히 사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주소아의 손이 그녀의 상처를 쓰다듬으면서 지나가자 그칠 줄 모르고 흐르던 피가 사르르 멈추었다.

그녀의 손이 스쳐지나는 곳마다 마치 얼룩을 닦아내듯 사은상의 상처가 없어져 버렸다.

사은상은 주소아의 기적의 손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소아와 소일초의 백송균화에서 얻었던 신비한 능력은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데 그때,

[멈추시오……]

우렁찬 외침이 저멀리서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면전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三 章

 

        廣通渠에서의 感情 整理

 

 

 

-----등천마세의 새주인 탄생했다.

 

이 소문은 무리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급속도로 번져갔다.

등천마세가 사파의 하늘이었기에 소문은 보다 확실히 중원인들의 가슴을 파고 던 것이었다.

등천마세의 새주인,

그는 무적검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적검……

그리고 그에 대해 무림에 알려진 바는 전무(全無)하다.

전무하기에 더욱 무서운 느낌을 중원인들의 가슴에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중원은 특히 정파무림인들은 등천마세의 새로운 주인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전율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 동안 등천마세의 움직임이 지극히 잔잔했기에……

정파무림은 공존했고 폭풍전야 같은 정적을 잠시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던가?

비록 등마제가 무림에 소란을 일으키기는 했으나 일부에 국한 된 사실일 뿐이었다.

한데 등천마세의 힘을 일통한 인물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무림인들은 새로운 전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등천마세의 잠재력은 이 새로운 주인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중원의 처처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필연처럼 혈겁이 발생했다.

무림은 바야흐로 풍운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무림인들은 온 신경을 무적검이라는 인물에게 쏟기 시작했으며……

그에 대해 구구한 억측이 무림을 횡행하기 시작했다.

 

-------무적검……

그는 마도 사상 최고의 기재이다.

그는 마교의 교주라고도 한다.

그의 등장은 정도무림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필연처럼 정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충천하는 상황으로 돌변하게 될 것이다.

정천보가 등천마세를 멸하고 이 땅에 정의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을 지체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정천보는 지금 등천마세를 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천하는 등천마세에 먹히고 말 것이다.

 

이것은 뜻있는 강호인들의 애절한 충고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문이 무림을 강타했다.

 

------정천보는 이미 움직였다.

정천보의 실질적인 핵심부 인물인 탕마사십사객들은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탕마사십사객들은 정천보가 탄생시킨 최고의 살수(殺手)들로서……

그들은 각자가 한 시대를 패주할 수 있으리만큼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다.

지금 그들은 무적검을 척살하기 위해 움직였다.

 

탕마사십사객……

그들은 정파무림의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들의 최후 목적이 바로 정파무림의 운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정파무림인들의 시선은 그들의 움직임에 집중이 된 것이다.

정천수호군주 왕혜려……

그녀는 등마제의 참담한 패배에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탕마사십사객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무림은 풍운대격변에 휩싸인다.

 

× × ×

 

황하에서 장강까지 이어지는 수(隋)나라 때 만든 광통거(廣通渠)라는 운하(運河)가 지금까지 존재한다.

운하를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흐른다.

돌고 도는 역사의 영고성쇠를 침묵으로 지켜온 이 천년의 운하에,

언제까지나 그래왔을 황혼(黃昏)은 다시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천지는 노을에 잠기고……

만화백초(萬花百草)가 강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지금……

한쌍의 아름다운 남녀가 흐르는 물을 보고 앉아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는 다름아닌 소일초와 주소아였다.

천천히 한 잔의 술이 그의 입술을 적시고……

다른 잔이 주소아의 입술로 흘러든다.

부드러운 미소가 서로의 눈에서 눈으로 전해지고,

감미로운 사랑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사방을 포근히 감싼다.

이미 여러 순배의 술이 돌았는 듯,

주소아의 얼굴은 발그레하다.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훔쳐내며 병을 들어 소일초의 빈잔을 채워준다.

세상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는 한 쌍이라면 바로 이들일 것이다.

술기운이 도는 듯 조금식 흔들리는 주소아의 머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게 했는데……

그녀는 자리를 살그머니 옮겨서 소일초의 옆에 와 기댄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황혼에 붉어진 물결을 쳐다보며 손을 들어 소일초의 목뒤로 보낸다.

황홀한 사랑의 감정이 두 사람을 행복으로 이끌고, 가벼운 입마춤은 그들의 영원한 사랑의 맹세였다.

소일초의 손은 비스듬히 기대고 누운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고……

주소아는 그의 품에 얼굴을 뭍은 채 나지막히 얘기한다.

[어머니 보고 싶지 않아?]

[별로……언제나 나는 작은 어머니가 돌봐 왔는 걸……]

[너는 좋겠다……나한테는 한 분도 안 계신 어머니가 둘이나 있으니……]

[우리 어머니가 네 어머니도 되잖아. 부러워할게 뭐있어?]

[내가 부모도 없이 자랐다고 좋아하지 않으시면 어떡하지?]

주소아는 머지않아서 만나게 될 소선풍과 이주용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다.

그녀로서도 어른들의 반응이 두려운 것이다.

소일초의 사랑은 오직 자기뿐이지만 어른들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특히 소일초의 친어머니 이주용은 성미가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걱정돼? 너에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배경이 있는데……]

[할아버지? 어디 계신 지도 모르는 걸……]

[어쩌면 아버지는 알고 계실 지도 몰라. 그리고 이제 세상에 정식으로 이름을 알려야겠어.]

[할아버지께서 나를 찾아오시게?]

[그래……! 그리고 나는 그분의 독문표기를 알아.]

주소아가 머리를 들면서 물었다.

[뭔데? 바로 네 개의 혈기(血旗)야. 작은 어머니께서 전에 일러주신 적이 있어. 우리가 혈기를 사용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직접 찾아오시겠지.]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서로가 껴안고 갈대에 몸을 뉘였다.

[그런데 소아, 등천마세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가공한 것같지?]

[그래, 하지만 우리가 충성수를 다 해독해버리면 한천이기는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등천마세는 간단히 해체할 수 있어.]

그렇다.

그들이 얼마동안 등천마세에 있으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실질적인 등천마세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등마제가 바로 한천녀의 손에 죽어버린 등천마세의 대교주 오공천이 주도한 것이었다.

오공천(吳恭天)……

그는 등천마세의 안으로 잠재된 내분을 억제하기 위해 그 욕망의 분출과 새로운 고수들의 영입을 위해 등마제를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세월 동안 등마제로 인해 등천마세의 힘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것이었다.

[한천이기는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모든 것은 원천기가 주도할 거야. 그는 진정한 야심가거든……]

소일초가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그의 팔을 베고 누운 주소아는 한 손을 그의 가슴에 얹고 쓰다듬었다.

[원천기는 천지파멸보다는 아무래도 요즘 무림에 뜻을 더 두고 있는 것 같지?]

[그들은 우리를 영원히 수족처럼 부리고 싶어 안달하지. 이미 등천마세에서 권력의 맛을 본 그들이야. 야망은 이제 그들의 모든 것이 되었을 거야.]

소일초는 잠시 말을 끊었다.

[강한 무공, 냉철하고 뛰어난 머리, 충분히 천하를 넘볼 만 하겠지……]

[그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소아의 말에 몸을 일으키며 옆의 갈대를 꺽었다.

[이렇게!]

그는 지금이야말로 자신과 한천이기가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등천마세의 힘……

그것을 그들의 뜻대로 천지파멸에 사용하거나 무림을 피로 씻는 야망에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

그는 호정수신(護正修身)을 외치는 백인장의 차대 장주인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와 한천이기는 서로의 뜻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혈투를 벌여야 한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천이기와 어떻든 한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들도 그다지 밉지만은 아닌 인간들인데 혈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못된다.

때문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의 처리 문제로 고심해온 것이다.

소일초가 주소아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다음 순간,

그는 어두워 오는 하늘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한천이기……이제 그만 나오너라……]

소일초와 주소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허공에서 환상같은 그림자가 소일초와 주소아의 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눈처럼 흰 백발을 표표히 날리고 있는 두 사람……

하나 그들의 얼굴은 아직 이십 대,

바로 한천이기, 칠십이기재들 중 최후로 살아남은 인물들인 것이었다.

그들은 고요하며, 죽음같은 회색으로 빛나는 눈빛으로 소일초를 한 동안이나 주시했다.

[소일초……당신은 갈등해서는 아니되오……]

원천기의 말이었다.

그리고 한천녀의 말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이 땅에……이 하늘에……천지파멸의 뜻을 칠십이기재들을 대신하여 펼칠 것! 그것이 이 땅과 하늘에 만개할 때까지 당신은 우리와 뜻을 함께 해야합니다.]

소일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너희들의 뜻이지……나의 뜻은 아니다. 나는 너희들처럼 한(恨)도 깊지 않고 세상을 저주할 생각도 없다.]

[당신의 뜻이기도 합니다……당신이 정통마교주이기에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만 것입니다.]

한천녀의 말은 어떤 강력한 힘을 함축하고 있었다.

[정통마교주는 너희들이 붙인 말에 불과하지 않느냐? 한천녀, 너희들이 정통마교를 멸망시키고도 뻔뻔스럽게 그렇게 말하다니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너희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주소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역시 우리가 만든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힌 사람, 당신도 우리의 뜻을 따라야 하오.]

한천기는 강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소일초는 눈빛을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사람은 안다.

[나는 물론 소아도 너희들을 거부한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순간,

한천이기의 전신에 가는 경련이 일어났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자 했든 정통마교주는 결코 소일초와 주소아 같은 자들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들은 철저하게 천지파멸을 위한 앞잡이 정통마교주를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다.

정통마교주라면……

그들이 만든 정통마교주라면 완전히 인간의 이성을 상실한 악마의 화신이 되어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오직 그들 한천이기의 뜻에 따르는 살아있는 도구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데,

한천이기가 처음 깨어났을 때 부터 사건은 잘못 진행되고 있었다.

뜻 밖에도 두 사람의 남녀가 마장탑에 들어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혀버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벽하게 인간의 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해서 마장탑에 서려있는 마공들의 마기와 칠십이기재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마기들에 의하여 마성(魔性)에 물들지 않았는지는 자다가 깨도 모를 일이었다.

마성이 잠재해 있으리라고 까지 자위하면서 그들을 지켜봐 왔는데……

한천이기는 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 원천기가 타이르듯 말했다.

[소일초……너는 충성수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지금 까지 우리의 뜻대로 등천마세를 장악한 이상……계속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 주기 바란다. 허용되는 한도에서 너희들에게도 원하는 모든 것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충성수 따위 약물을 너무 믿는구나 원천기……]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원천기는 입을 다물었다.

한천이기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소일초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지……]

원천기의 말은 무겁게 떨어졌다.

[이제야 오랫만에 의견일치를 보는 군, 나는 마장탑에서 부터 내 비위를 건드리는 너를 죽이고 싶은 걸 참아왔다.]

소일초가 주소아를 뒤로 보내며 한 걸음 나섰다.

그의 눈빛은 오랫만에 대하는 적수로 인하여 강렬하게 타올랐다.

한천녀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군, 충성수도 충성수지만 우리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완벽하게 익혔을 뿐만 아니라, 정통마교주를 제압할 수 있는 극성무공(極性武功)인 등천마룡을 지니고 있는데……]

주소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소일초의 무공에 대해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죽는 것은 너희들이야. 직접 싸워보면 너희들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가를 알 수 있을 거야.]

[등천마룡을 능가할 수 있는 무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원천기가 냉소를 지었다.

[저 사람은 칠 세 때 이미 무림 십이 대 고수의 하나로 꼽혔어. 마장탑에서도 마교칠십이절기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지. 너희들이 무적이니 어쩌니 떠들던 그 수법들도 저 사람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어.]

주소아의 말에 한천이기가 눈이 소일초를 향했다.

그들의 눈은 사실인가를 묻는 듯 했다.

주소아가 잘라말했다.

[너희들의 무공이 당금 무림에서 십위 안에는 들겠지. 하지만 저 사람은 삼위는 차지하고도 남아!]

[나는 천하무적이다.]

원천기가 강경한 어조로 주소아의 말을 부정했다.

[무림에 상당히 어둡군, 바른대로 말하면 너희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는 헤아릴 수 도 없이 많아. 당금 무림에는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리웠던 분이 계신데 어떻게 너희 따위가 고수로 자처할 수 있을까?]

[고금제일인? 혈기자 말이냐?]

[그렇다. 그분의 무공은 추측할 수가 없다. 이미 신선이 되셔서 불사의 생명을 얻으셨다. 그리고……]

한천이기는 주소아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기로서니 신선이 되어 불사의 생명을 얻다니……

[그분 다음으로 고강하신 분은 백인장의 장주이신 도왕 소선풍 대협이시다. 그분은 무적의 도법을 연성하셨고 내공의 깊이는 측량할 수조차 없다. 수 백 년동안 최강의 세력으로 불리워진 백인장을 이끄시는 분으로 혈기대종사 외에는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분이시다.]

[…………]

[등천마교를 없애버린 고수들인 삼수마저도 그 분을 협공하고서야 겨우 동패구상을 당했을 정도였으니, 그분은 혼자서도 등천마교의 모든 힘보다 더 강하셨다고 할 수 있다.]

주소아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비록 그녀가 자기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 만을 거론할 지라도,

한천이기는 그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이 바로 저 사람이다. 먼저 말한 두 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저 사람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직접 싸워보면 실감하게 되겠지.]

[…………]

[사위부터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많은 고수들이 존재한다. 천하를 세세히 들여다보면, 너희들 정도 되는 고수들은 백 명도 더 될 것이다. 백인장에만 해도 백인도객 중 적어도 이십 명 이상은 너희들과 겨룰 수 있는 실력이 있을 거야.]

한천이기가 정말로 무림에서 백위 정도의 고수 일 리는 없다.

그리고 백인도객 중에서도 한천이기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고수가 이십 명 이상이 있을 리도 없다.

몇 명이라면 혹시 모를까?

단지 주소아가 그들을 위축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다.

믿든 말든 백위에 거론 된 후에 삼위에 거론 된 자와 싸운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일 수밖에 없다.

주소아는 자기의 조부를 당연히 제일로 꼽았고 다음으로 소선풍을 꼽았다.

그리고는 대뜸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인 소일초를 꼽은 것인데,

소일초가 진짜 삼위에 해당될지 안될지는 그녀도 모를 일이었다.

[한천이기 시작해 보자! 공부는 그만하면 됐다.]

소일초가 주소아의 말이 대충 끝난 것 같자 나섰다.

그때,

[한천이기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 잘해보라구……진정한 고수가 어떤 것인지 잘 봐두어야지 서열 백위 고수들……]

주소아가 한천이기의 기를 마지막으로 꺽는 말을 했다.

한천이기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소일초가 판 함정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소일초의 행동을 통제하겠다고 따라나선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二 章

 

          百刃莊의 다섯 刀客

 

 

 

얼마 전부터 무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 천하의 각 세력들 사이를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의 깊이는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 였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 중의 수 명은 이미 등천마세에도 잠입해 있었다.

어깨에는 비스듬히 걸린 도(刀)……

그들은 군중 속에 숨어서 등천마세의 주인이 바뀌는 대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공천의 처참한 죽음도 목격했고 미쳐버린 마금석도 보았다.

그러다 한 흑의인이 분해되어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도 보았다.

그런데……

한천이기가 무적검이라고 알려진 젊은 고수를 향해서 무심코 불렀던 이름,

그 이름이 그들을 일제히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그곳은 등천마세의 인적이 끊긴 곳, 바로 미쳐서 떠나버린 마금석의 전각이었다.

 

[틀림없이 소일초라고 불렀소. 그리고 무적검 역시 부인하지 않았소.]

여섯 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우선 나이가 맞지 않지않습니까?]

다른 한 명이 말했다.

[이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오. 비록 장주께서 우리에게 많은 재량을 주셨지만, 일단 먼저 보고하도록 합시다. ]

[좋습니다. 그럼 대정(大鼎)형께서 보고 하십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계속 그를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때는 무심히 흘려들었는데, 그 원천기란 청년이 주소아란 이름도 부른 것 같소. 바로 무적검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작은 주모님의 사질녀(師姪女)분의 이름과 같은 거요. 이건 보통 이상한 문제가 아닌 것 같소.]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소일초라는 이름은 아주 이상해서 보통사람이 지을 이름이 아닙니다.]

숙의를 거듭한 그들 중 한 사람이 빛살처럼 빠르게 등천마세를 빠져나갔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일제히 각기 다른 방향으로해서 소일초의 전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 ×

 

[한천이기의 충성수를 어떻게 상대하시겠어요?]

취풍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소일초가 대답 않고 덥석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런 그의 태도에 취풍녀가 당황하며 주소아를 보았다.

주소아는 못본 척 가만히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잠자던 취풍녀의 욕구가 손 잡힌 것 하나에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사마귀는 마금석이 미치는 것을 본 터라 소일초의 갑작스런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제기랄……! 정말이야, 너도 몸 속에 충성수를 가지고 있어.]

소일초가 투덜거렸다.

순간 취풍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얼마 전에 본 그 처참한 광경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럼……어……어떻게……하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일초는 다시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사마귀들의 손을 차례로 짚었다.

사마귀 역시 충성수를 마신 흔적이 있었다.

[이건 생각도 못했어. 그들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을 잘 이용한 거야. 멋지게 당했어.]

주소아가 말했다.

사마귀와 취풍녀는 조심스럽게 주소아와 소일초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일초는 천천히 방안을 걸어 다니며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소아! 등천마세의 모든 놈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나 아니면 구해주어야 하나?]

사마귀와 취풍녀는 의아했다.

자기들이 중독되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소일초는 등천마세 모든 사람들의 생사를 거론하는 것이다.

역시 주소아도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소아는 그의 눈을 빤히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듯 한 번 깜짝이지도 않고 있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살려주도록 하자……하지만 잘하는 지는 결정이 서지 않아……]

소일초는 주소아의 눈에서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죽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 왠지 나는 자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두려워 져. 네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그다지 좋게 생각되지는 않아……무공은 좋지만 피와 죽음은 싫어.]

주소아는 눈에 눈물을 담고 있었다.

소일초가 고개를 저었다.

[소아 너도 많이 변했어……나 역시,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문제로 고민할 우리가 아니었는데……]

[우린 많이 자랐잖아. 변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주소아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주소아……

그녀는 지금 가장 감상이 풍부할 나이에 이른 것이다.

비록 몸은 완전한 발육을 했지만, 한 조각 낙엽을 보고도 감상에 젖어들고 작은 일에도 울고 웃는 열여덟인 것이다.

이 점은 소일초 역시 마찬가지 였다.

생각이 많아지고 깊이 생각하는 일이 요즘 들어서는 부쩍 많아졌다.

동선장에서 그가 보던 책도 원대(元代)의 희곡인 고칙성의 비파기(琵琶記)였다.

그 비파기를 읽으면서 깊이 빠져 주인공의 행동과 처지 하나하나에 자신이 희비를 경험했던 것이다.

스스로 호걸로 자처하던 그 인지라 주소아에게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렀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이다.

[충성수를 해독할 수는 있는 건가?]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투귀가 참지 못하고 그들의 감상을 깨뜨렸다.

[네……간단히요. 세째 아저씨……]

주소아가 눈물을 지우며 방긋 웃었다.

와아-------!

사마귀와 추풍녀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소일초가 원천기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등천마세의 모든 인물들의 생사를 거론하자 아예 다 죽이고 함께 죽으려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털석털석------

사마귀는 의자에서 내려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죽었구나 하다가 긴장이 다 풀린 것이다.

그때,

주소아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러자면 배를 가르고 오장을 뒤집어서 깨끗한 물로 씻어야 해요.]

그말에 취풍녀와 사마귀는 넋이 나가 버렸다.

오장을 뒤집어서 물로 씻는다니……

그냥 죽인다는 이야기 아닌가?

정말인가 싶어서 모두 소일초를 바라본다.

소일초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언니! 우릴 속였군요.]

취풍녀가 자기보다 열살은 더 적은 주소아를 언니라고 부르며 달려들어 겨드랑이를 간질렀다.

사마귀는 긴박한 상황에서 깜찍스럽게 속이는 그녀가 기가 막히는지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큰아저씨한테서 배웠을 뿐이에요.]

[하하하하……]

방안가득 웃음이 흘러넘치면서 침울하던 분위기는 완전히 가셔버렸다.

 

× × ×

 

다섯 명의 신비한 도객들은 갑작스럽게 안으로 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당황했다.

지금, 무적검의 처소는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과 분노로 가득 차 있어야 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았다.

등천마세의 삼대금역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미 이곳에 운집해 있던 고수들은 한천이기의 거처로 된 등룡각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들어가서 부딪쳐 보자. 적의를 가지지 않은 이상 다른 변고는 없을 것이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왔군! 안으로 들어오시지……]

도귀가 웃음을 그치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다섯 도객들은 흠칫 놀라며 어깨에 걸린 도를 한 번 잡아본 후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무적검을 만나러 왔소.]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대표로 말했다.

소일초와 주소아 등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서로 담소하고 있었다.

단지 도귀만이 일어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무적검을 만나려는 사람이 상당히 많군, 앞서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모두 죽었다는 걸 알고 있을 지 모르겠군.]

[우리는 단지 무적검을 한 번 만나려는 뜻 밖에 다른 의도는 없소.]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이 마주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제히 소리쳤다.

[장충보(張充寶)!]

[장아저씨!]

도귀와 말하고 있던 도객은 망연히 그 두 사람을 보았다.

[조아저씨와 진아저씨,두 분 권아저씨도 오셨군요.]

주소아가 기뻐하며 달려가는 데 다섯 도객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어깨의 도를 끌러들었다.

사마귀의 안색이 확 변했다.

[백인장(百刃莊)!]

대뜸 투귀는 도망부터 치려고 했다.

백인장의 도객들의 도(刀)는 여러 가지 였으나 그 도신(刀身)에 새겨진 문장만은 동일했다.

바로 그 도를 사용한 초대 백인도객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어린도를 포함하여 백인장에는 초상이 새겨진 백자루의 도(刀)가 있고,

그 도 하나하나 마다 고유의 전래 도법이 있었다.

백인장의 수 백 명의 사람들 중에서 백인도객은 오직 백 명 뿐,

백인도객은 백인장의 자랑이고 자부심이며 모든 것이었다.

초상이 새겨진 도는 원로들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전에는 가졌겠지만 후손에게 물러주고 자기는 다른 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백인도객들을 본 사마귀는 자신들의 무공이 높다고 하지만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치려는 투귀의 덜미를 주귀가 잡아당겼다.

[우리는 백인장의 새로운 실력자를 믿으면 돼.]

그가 다른 세 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소아는 달려가다가 그들이 도를 뽑아 들자 딱 멈추어 섰다.

[우리는 당신들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고자 합니다. 가능하면 숨기지 말고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장충보가 도를 옆으로 비켜들고 신중하게 물었다.

그들은 지금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자신들의 추측이 사실로 나타나기를……

소일초가 그들의 앞으로 격동된 모습으로 다가갔다.

[장충보, 아니, 이제는 장도객이라고 불러야겠지? 오랫만이오. 신물을 보여드리겠소.]

그는 신중하게 말하며 품에서 청옥소도, 즉 패도구룡인을 꺼내어 높이 들었다.

청옥소도에서 맑은 푸른 빛이 어른 거리며 실내를 환하게 만들었다.

[오오……]

[오…………]

다섯 명의 백인도객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백인무적(百刃無敵) 수신호정(修身護正)!]

소일초가 청옥소도를 장충보의 앞에서 보였다.

[확인해 보시오.]

무릎을 꿇고 장충보가 두 손으로 받으며 말했다.

[관례에 따라 장충보가 확인합니다.]

그는 신중히 청옥소도를 살펴보았다.

과연, 아홉마리의 용이 휘감고 있는 청옥소도는 진품이었다.

정중히 두 손으로 받쳐서 소일초에게 돌려주었다.

무릎을 꿇은 채 긴장된 눈으로 장충보를 바라보던 네 도객이 일제히 외쳤다.

[조영후가 소장주님을 뵙습니다.]

[진관평이 소장주님의 무사하심을 ……]

…………

소일초는 청옥소도를 회수하여 품속에 넣었다.

그러자 다섯도객이 일어섰다.

[소장주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진관평이 일어나자마자 물었다.

[소아! 이제 인사하도록 해.]

[장아저씨, 진아저씨, 조아저씨……저는 주소아예요. 안녕하셨어요?]

다섯 명의 백인도객,

장충보, 진관평, 조영후, 그리고 권일화와 권일수 형제……

그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마지 않았다.

그리고, 소일초와 주소아는 백인장이 파양호 밑으로 숨어 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일부 선발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백인장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소선풍 도 건강을 되찾은 지 오래로 무공은 그전 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한다.

사마귀도 멋쩍게 다섯 도객들과 인사를 하고 거듭거듭 잘 부탁한다고 했다.

진관평이 색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색……]

[그냥 색귀라 부르시오.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터인데 서로 편안하게 부르도록 하시오.]

소일초가 진관평에게 말했다. 그는 이제 백인장의 도객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어 어투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백인장의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터에,

이렇게 성장한 지금도 어린애처럼 막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사마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색귀! 그래 우리 나이도 비슷한 듯하니 모두 친구처럼 지내세. 그런데, 자네 아정(阿貞)을 기억하나?]

색귀의 얼굴이 확 변했다.

어떻게 그녀를 모를 수 있는가?

백인장에 잡혀가 갇혀 있었던 것도 모두 그녀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인데……

[아직 잊지 않고 있는 모양이군, 그녀는 아직도 자네 부인이라면서 수절하고 있다네……]

색귀의 중후한 얼굴은 바닥을 향해 수그려졌다.

모두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색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둘째야! 이젠 너도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마침 그녀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하니 정착을 하려무나……]

주귀는 술을 들이켰다.

이런 남녀간의 문제는 누구도 개입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단지 색귀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진도객! 그녀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겠소?]

색귀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그럼! 용서하고 말고……자네같이 멋진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진관평이 그의 손을 잡았다.

주소아가 웃었다.

[이제는 멋지게 술이나 마셔요. 제가 솜씨를 부려볼게요.]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一 章

 

         吳恭天의 허무한 죽음

 

 

 

[오공천! 여기서 멈춰라.]

원천기가 고수들을 대동하고 오는 대교주 오공천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백발을 휘날리며 수십 명의 정예고수들과 오공천을 냉냉하게 처다보았다.

오공천이 입도 열지 않고 좌우에 있는 그의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무엄한 놈!]

[감히 누구 앞에서……]

먼저 직속호위들이 몸을 날려 한천이기를 공격했다.

순간,

그들의 벌떼처럼 날아드는 몸을 보면서 한천이기는 콧웃을 쳤다.

[가소로운 것들……참된 주인을 몰라보다니……]

한천녀의 손에서 강렬한 부채살 처럼 수영들이 뻗어나오면서 그들을 뒤덮었다.

고오오오----------

[캑------캐액------]

순식간에 숨막히는 비명과 함께 한천이기를 향해 날아들든 오공천의 수하들은 몸이 짓이개 져서 죽어버렸다.

[마왕수!]

경악에 찬 오공천의 음성이 터져나왔다.

그렇다.

한천녀는 마교칠십이절기 중 하나인 마왕수를 전개한 것이었다.

소림의 칠십이절기 중 하나인 대자비수에 대적할 수 있는 잔인수(殘忍手)가 일초에 응축되어 만들어진 천하제일의 수공,

[오공천!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그럼 이것도 한 번 구경해라!]

한천녀의 희고 가녀린 주먹이 앞으로 죽 뻗어나왔다.

한데,

그녀의 그 작고 가녀린 주먹은 그 순간 세상의 모든 파괴적인 힘을 모은 듯 잔인해 보였다.

살심을 절로 일으키는 한천녀의 주먹에 오공천을 위시한 모든 고수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간 그녀의 주먹에서 폭발하듯 권영이 폭출되었다.

우우우웅-------

기이한 음향을 동반한 한천녀의 권영은 오공천을 위시한 그의 수하들에게로 몰려가고,

퍽퍽퍽퍼퍽--------

둔중한 음향과 함께 오공천의 수하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이 부서져 죽고 말았다.

오공천은 그녀 무공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녀가 쓰고 있는 무공이 자신의 것과 같은 것이라는 데 더욱 경악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어떻게 해서 마왕수와 아수라권을 알고 있소?]

[너의 주인이다.]

오공천은 그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점차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삼수의 끄나풀이었군, 잘됐어.]

그는 마교칠십이절기의 부본을 가져갔던 삼수의 부하라고 한천이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삼수 따위가 어떻게 우리를 부릴 수 있겠나 오공천, 다시 말하지만 너의 주인이다.]

[으하하하하……두 가지의 무공을 가지고 그정도로 기고만장해 하는가? 애송이들……]

오공천은 극악한 기세를 일으키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이때는 이교주 마금석도 변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달려왔다.

[못 믿는군,]

한천기가 차갑게 말했다.

[마장탑을 아는가?]

[말은 들은 적 있다. 정통마교가 만들었다는 것을……]

오공천이 자신있는 표정으로 당당히 말했다.

[우리들은 마장탑에서 나왔다.]

꽝-------

오공천과 마금석의 머리 속에서 화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마장탑의 칠십이기재 중 가장 젊고 유능했던 우리가 살아서 나왔다.]

[그……그럴 리가……마장탑에서……왔다니……]

[증거를 보여주마.]

원천기의 두손이 모아지며 손바닥을 하늘로 보였다.

순간,

그의 손에서 선명한 묵룡이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뱀인양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등천마룡(登天魔龍)!]

오공천과 마금석이 경악을 터뜨렸다.

등천마룡(登天魔龍)……

이것은 등천마교의 상징이기도 했고 등천마세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칠십이기재가 만든 최후의 무공이기도 한 것이다.

마금석은 털석 무릎을 꿇었다.

하늘로 솟구친 묵룡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원천기가 물었다.

[믿겠느냐?]

[…………]

[너희는 등천마교의 후예! 우리는 등천마교를 만든 주역이다. 조천수와 등천구마존은 우리의 수족이었을 뿐……]

마금석은 무릎을 꿇고 있었으나 오공천은 경악하면서도 굴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이미 변했소. 당신들이 만든 등천마교는 이미 멸망하고 없소.]

[그래서?]

[등천마세는 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세력이요. 나는 당신들에게 굴복하지 않겠소.]

그는 자신의 모든 공력을 모으고 있었다.

한천녀가 말했다.

[오공천, 마교칠십이절기의 몇 가지를 익혔다고 세상이 네 야심에 굴복될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무공은 그게 그거요. 한 가지라도 충실하면 모든 무공을 다 상대할 수 있는 것이오. 마치 하나의 칼로 여러 마리의 짐승을 잡을 수 있는 것 처럼……]

오공천의 이 말은 근본적으로 검마 또는 소일초의 견해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오공천! 네 무공이 강하든 말든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없다. 우리는 너의 야망을 좋아하지 않기에 이미 너를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한천녀가 차갑게 말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공천은 위축되지 않고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무공은 비록 칠십이기재인 그들에게서 나왔을 지라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그들이 자기보다 나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오공천과 한천녀 사이에 무서운 살기가 흘렀다.

그들에게서는 넘쳐나는 마기 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오직 모든 힘이 내부에 결집되어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확실히 다른 고수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등천마룡에 의해 죽는 최초의 인물로 만들어 주마!]

한천녀의 손이 허공을 향해 올라갔다.

순간,

쇄애애애----------!

오공천의 몸이 허공에서 뒤집히며 두개의 발이 풍차처럼 돌면서 한천녀의 목과 허리를 찍어왔다.

어떤 무공에도 없었던 그만의 독특한 무공이었다.

머리를 사용한 박치기 같은 것이 위력이 강한 만큼 위험도 많지만 그의 각법은 박치기보다 더 강력하고 변화가 많았으며 안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발에서 발산되는 경력은 어떤 호신강기도 다 파괴해 버릴 것이다.

진정 기이한 괴초였고 묘초였다.

이러한 수법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몇 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러서서 피할 수도 없고 솟구쳐 피할 수 도 없으며 전후좌우상하가 완벽하게 공격권에 들어간 때문이다.

하나,

상대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직접 만든 사람들 중의 일 인이며 또한 그 무공들은 물론 최후의 무공인 등천마룡을 익힌 인물이었다.

오공천의 발이 한천녀의 허리와 목에 가까이 접근한 순간에,

아주 엉뚱하게도 한천녀의 하늘을 향한 손에서 묵룡이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등 뒤에서 나왔다.

묵룡은 그녀의 몸을 감고 돌아 나오며 오공천의 수평으로 뜬 몸을 휘감아버렸다.

 

으아악----

 

모골이 송연해 지는 비명과 함께 오공천의 몸은 묵룡에 의해 산산히 흩어져 사방으로 살점과 피가 뿌려졌다.

한천녀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비록 아슬아슬하게 오공천을 해치웠지만 오공천의 경력에 의해 턱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름 값은 하는 놈이었군!]

과연……

오공천은 이름 값을 한 것이었나?

가슴에 품은 야망을 다 펼쳐보지도 못한 채, 자신이 갈고 닦았던 절세의 무공을 다 드러내 보이지도 못한 채,

등천마교의 원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한천녀를 만나서 하늘을 원망하며 죽어버렸는데……

마금석은 넋이 빠진 듯 멍청히 있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릎을 꿇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휘청휘청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신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원천기가 소리쳤다.

[마금석! 이리와라!]

마금석은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그대로 걸어갔다.

원천기가 몸을 날려 마금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반항하려는 것이냐?]

마금석은 눈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은 누구요?]

순간, 원천기가 어리둥절했다.

그가 정상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원천기는 그에게 길을 내 주었다.

이 시대의 고수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마금석 마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미쳐버린 것이다.

마금석은 천천히 햇살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일곱 명의 남녀들 중 한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취풍녀였다.

그녀의 사형이자 첫 남자였던 오공천은 한천녀의 가공할 무공에 그 재주를 다 부려보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불과 얼마 전 등룡각 밀실에서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던 그 눈도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사형이자 한 때는 잠시나마 정을 주고받기도 했던 마금석은 오공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미쳐버렸다.

어찌 오공천의 죽음만이 그 원인이 됐으랴?

소일초의 처소를 넘보다 죽음같은 치욕을 느낀 것도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

이제 저 백발의 두 남녀는 자기들의 사부인 등천구마존 마저 없애버릴 것이다.

그녀의 몸을 번갈아가면서 유린했던 그 악마들을……

그리고 새로운 악마로 등천마세를 장악할 것이다.

아니 등천마세는 이미 그들의 손에 있었다.

[한천이기에게 마교칠십이절기 외에 다른 무공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게 되었군.]

소일초가 주소아에게 하는 말이다.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 발출 될 수도 있는 묵룡은 큰아저씨의 술로 만든 청룡보다 훨씬 고명하군요.]

주소아가 주귀를 돌아보았다.

[그 묵룡은 진기가 아니야. 강기로 만들어진 것이었어. 어떤 것으로도 그처럼 거대한 강기무공을 격파할 순 없어.]

도귀가 주귀에게 말했다.

[오공천의 무공도 저 여자에게 어떤 충격을 가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 오공천의 무공은 확실히 우리보다는 위에 있었어. 나라면 그 수법을 피할 수 없었을 거야.]

주소아가 웃었다.

[호호호……큰아저씨도 청룡을 부려서 똑 같이 처치하면 되지 않았겠어요?]

주귀는 머리를 저었다.

[그 짧은 시간에 청룡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만들었다고 해도 오공천의 회오리치는 강기에 산산히 부서져 버렸을 거야.]

그가 말하는 사이에 소일초는 성큼성큼 걸어서 한천이기에게로 다가갔다.

한천이기도 소일초 등을 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축하한다. 한천이기! 마침내 진짜 주인이 등천마세를 차지했구나.]

[우리는 나서지 않는다. 소일초! 네가 등천마세를 맡아줘야겠다.]

원천기가 말했다.

사방에서 한천이기가 끌어들인 수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모두가 충성수(忠誠水)를 마시고 충성을 맹세했던 자들이지만 오늘 진정으로 한천이기의 능력을 보고 강렬히 끌려들고 있었다.

이것이 사파의 생리였다.

강한 자를 무조건 추종하고 따르는 것……

왜 강해야 하는 지 조차 따질 필요도 없고 왜 따르는지 도 생각지 않는다.

무조건 강한 것을 좋아하고 강해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강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힘은 원초적인 무림에서 가장 강력한 법이다.

도덕도 의리도 모두 힘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무림인 것이다.

[계속 너희들의 꼭두각시를 하라고? 너희들이 등천마세를 장악했으니 이젠 서로 찢어져야지.]

소일초가 원천기의 말을 거절했다.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소일초, 그리고 주소아! 너희들은 영원히 우리의 수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모양이구나.]

[이 년놈들이……! 또 기어올라? 수족인지 아닌지 한번 해보자.]

소일초가 화가 나서 기세 등등하게 원천기의 앞으로 다가갔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소일초! 이미 너희들도 우리가 만든 충성수(忠誠水)를 마셨어. 그러니 곱게 말 듣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은 거야.]

[충성수? 그게 뭔데?]

소일초가 걸음을 멈추면서 물어보았다.

[직접 보여주지……]

원천기는 아무래도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손짓을 해서 가까이 있는 그의 추종자를 한 사람 불렀다.

[너는 충성수를 마셨느냐?]

불려온 흑의인이 충성으로 가득찬 음성으로 말했다.

[네! 저의 가슴은 주인님에 대한 충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스스로도 멋지게 아첨했다고 생각했다.

[좋아, 너는 지금 죽어야 겠다.]

원천기는 잔혹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순간, 흑의인의 안색이 확 바뀌면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원천기가 가만히 있자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흑의인은 몸을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천기의 손에서 강맹한 흡입력이 생기면서 흑의인을 다시 끌어당겨 놓았다.

흑의인은 죽기도 전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원천기의 소리없는 일 장이 기척도 없이 그를 향해 뿌려졌다.

모든 사람들이 긴장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원천기의 일장에 단번에 즉사하리라 생각했던 흑의인은 가만히 눈을 감고 서있었다.

원천기는 돌아서서 소일초에게 다가왔다.

[잘보고 결정하는게 좋을 거야. 어쩌면 네 운명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이니까?]

순간,

사방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경악에 찬 외침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앗……저……저럴 수가……]

[으으……어찌……]

원천기의 소리없는 일 장을 받았던 흑의인은 원천기가 가버리자 살았구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사람들의 비명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둘래둘래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공포에찬 모습만 보일 뿐 별 다른 것이 없었다.

[무슨……악!]

말을 하면서 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기절할 듯 놀랐다.

그의 바지 속으로 가득 흘러내린 것은 바로 그의 살이 아닌가?

그의 뼈가 허물을 벗고 있었다.

[으으으으……]

놀라움에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몸은 스스히 고통도 없이 살이 녹아내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스러졌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그의 해골은 가을 해를 내리쬐이고 있었다.

모골이 송연한 장면이었다.

고통도 없이 뼈에서 살이 분리되어 죽어가는 그 모습은 어떤 것보다 더 강한 두려움을 주었다.

주소아와 취풍녀는 얼굴을 돌렸다.

원천기가 득의 하면서 말했다.

[소일초, 우리 말을 듣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

[충성수를 마신 사람은 원래는 삼개월 후에 발작하게 되지만 나의 징벌장(懲罰掌)을 만나게 되면 즉시로 발작하게 되지……]

소일초는 치를 떨며 분노했다.

[원천기! 너를 진작 죽여버렸어야 하는 건데……아무래도 너를 살려둔 것이 나의 최대의 실수가 아닌가 싶구나……하나 지금도 늦지는 않겠지……]

소일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적할 준비를 했다.

분노했던 마음은 순간적으로 평온을 되찾았으며 몸에서는 추측할 수 없는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소일초의 표정은 결연했다.

원천기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소일초, 너 역시 충성수를 마셨다. 나의 징벌장의 기운에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분리되어 죽고 말 것이다. 잊은 것은 아니겠지?]

소일초의 결전에 임한 담담한 얼굴에는 비웃음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런 충……]

바로 그 순간이었다.

[더이상 말하지 마. 그의 요구대로 들어준다고 해.]

주소아의 빠른 전음이 그의 말을 끊었다.

소일초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주소아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음으로 말하는 경우란 거의 없는 그녀는 또다시 그의 살인을 저지한다.

금릉에서 은검삼형제를 죽일 때에도 그랬는데……

그가 가만히 있자 주소아가 나섰다.

[좋다, 너희들이 정 표면에 나서길 싫어한다면 우린 이름만 빌려주기로 하겠다. 대신, 우리의 행동을 간섭하지는 마라.]

원천기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래야지……그래야 그 아름다운 몸이 녹아내리지 않지……]

순간,

짝------!

원천기가 주춤주춤 세걸음이나 물러나며 눈에 혈광을 뛰웠다.

소일초가 그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

어떤 수법으로 자기의 뺨을 친 것인지 그는 보지도 못했다.

소일초의 무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까지 함부로 한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 너 따위 놈이 두려워서 양보하는 줄 알면 너는 모자라는 놈이다.]

[감히……감……]

[이미 너는 내 성미를 세번 건드렸다. 첫째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마장탑에서였고, 둘째는 우리 침실에서였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나를 협박했을 뿐만 아니라 내 마누라마저 희롱하려 했다.]

그는 등을 돌리고 주소아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자기의 전각으로 걸었다.

[세 번의 양보는 끝났다. 마장탑에서의 신세도 끝났다. 다시는 양보하지 않는다.]

한천이기의 분노는 극에 달했으나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서 소일초는 그들에게 아직까지는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소일초의 옆에는 사마귀와 취풍녀가 걱정스런 듯이 가고 있었다.

그렇든 말든,

등천마세는 그 주인이 바뀌었다.

실질적인 주인인 한천이기를 중심으로 등천마세의 힘은 결집되었으며, 표면적으로 이름만을 빌려준 무적검이 대외에 등천마세의 주인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천이기가 원래의 천지파멸의 계획을 실현할 것인지 자신들의 새로운 야망을 실현할 것인 지는 소일초등 도 모를 일이다.

주소아는 왜 그들에게 계속 양보하려 하는가?

무림은 술렁이고 있다.

등천마세는 무림의 반(半)이기에……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四十 章

 

            朱小阿의 脅迫術

 

 

 

등천마세의 삼대금역 중의 한 곳,

 

등룡각(登龍閣),

 

바로 등천대교주 오공천(吳恭天)의 처소이다.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살기가 맴돌고 있는데 등룡각 안의 지하밀실에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등룡각에 이처럼 많은 고수가 결집한 예는 등천마세가 창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등천마세 전체가 이로 말미암아 술렁이고 있었다.

등룡각에서의 살기와 긴장은 등천마세 전체로 번져나가 등천마세는 살기와 긴장이 충천하고 있덨다.

등룡각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사안(事案)은 오직 한가지였다.

무적검을 이제는 공동대항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교주 오공천에게 고수들을 소집할 것을 요구했고, 오공천은 그들의 말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등천마세의 칠할을 잠식해 버린 것은 소일초가 아닌 한천이기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낯선 자에게 등천마세를 통채로 내주기 전에 대교주를 중심으로 뭉치려는 지금의 행동은 그들의 위기감이 얼마나 고조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등천구마존과 이교주 마금석, 그리고 삼교주인 취풍녀도 있었다.

바로 금포의 삼십대 사나이 앞에……

오공천이다.

등천구마존의 제자이면서도 일찌기 스승들의 경지를 훨씬 초월해 버린 기재,

등천마세는 그가 있었기에 창설될 수 있었고,

그가 있었기에 무림을 양분하는 거대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사부인 등천구마존마저 두려워 마지않는 대효웅,

이교주 마금석도 삼교주 추풍녀도 두려워하는 인물,

그는 묵묵히 사람들을 소집해 놓고 가만히 있었다.

지금 등룡각 밖에는 오공천을 추종하는 모든 세력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는 소일초에게 몰려있는 고수들이 있다.

오공천은 활동력이 왕성한 사람이 아니다.

야망은 헤아릴 수 없이 강하다.

그러나 행동의 거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지금까지 대외적인 일은 거의 모두 취풍녀가 해왔다.

그녀는 오공천의 철저한 수족이었고 종이었다.

그만큼 오공천은 무림에 드러나지 않은 신비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등천마세는 존재할 수 있었으니……

그는 오늘 등천구마존과 그의 두 사제인 마금석과 취풍녀, 그리고 사은자(四隱者)에게 소집을 요구했으나 사은자는 불참이다.

취풍녀는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명령에 의해 참석하기는 했으나 소일초의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도 무적검의 기치는 밀실 안에서 부터 더 높아가는데……

드디어 오공천의 입이 열렸다.

[나는 오공천! 두려워 마라. 그를 만나겠다.]

오공천은 말을 끝내고 일어서 밀실을 나갔다.

(대사형! 당신의 마지막 날도 멀지 않았어요. 내 일생을 파괴한 사람……)

취풍녀는 그의 뒷모습을 강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늘 이곳에 올때 죽음을 각오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소리높여 성토할 것이고,

그녀는 오공천에게 저주를 퍼푸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공천이 직접 나서겠다고 말한 이상 어느 누구도 더이상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오공천은 오공천이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은 추측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밀실에는 한 사람 두 사람 오공천의 뒤를 따라 사라지고, 야명주만이 밝게 내리 비치고 있었다.

 

× × ×

 

그들이 긴장을 하건 해장을 하건,

지금 소일초는 자신의 전각에서 술을 퍼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쪽도 자기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사마귀와 주소아도 함께 있었다.

[기가 막힌 재주야! 제자야 나에게도 제발 좀 가르쳐다오!]

주귀가 소일초에게 무엇인지 조르고 있다.

[아 글쎄, 주귀는 가르쳐 줘도 안된다니까 그러네……]

소일초는 주귀에게 막 대놓고 반말이다.

사마귀와 자기와의 사이는 거래에 의해서 성립된 관계라는 것을 철석같이 강조하는 소일초 였다.

또한 사마귀는 어쨌던 무공을 가르쳐 준 바 있으니 사부라고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소일초는 따로 사부를 모셨으니 사마귀가 사부가 된 것은 물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사마귀가 오히려 펄쩍 뛰었다.

먼저 사부가 된 사람이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서로가 제 좋은대로 부르고 있는데……

아무튼,

주귀는 소일초가 물로써 술을 만드는 것을 보고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좋다, 은혜를 모르는 박정한 놈아, 애야 그럼 네가 그르쳐 주지 않겠니?]

주소아에게 간절한 어조로 부탁한다.

주소아는 깔깔 웃었다.

[아저씨! 정말 아저씨는 배울 수 없어요.]

[너와 저 무정한 놈만 되고 왜 나는 되지 않는단 말이냐?]

주귀는 반드시 알고야 말겠다는 신념에 차있다.

주소아는 사마귀가 어쨌던 소일초와 깊은 관계가 있으니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친절하게 대하고 있었다.

투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세째 아저씨께 부탁해서 훔쳐달라고 하셔요.]

투귀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죽고싶지 않아. 그리고 내 신조도 어기고 싶지 않고……저녀석에게 뭘 훔치려 했다간 맞아 죽고 말거야. 그리고 훔치지 못하면 사람이라도 죽여야 하는 데 자신이 서지않아.]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제자야! 너는 참으로 복도 많구나. 나는 평생 이천 명이 넘는 여자들을 만났지만 네 마누라같이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다.]

색귀가 연방 주소아를 쳐다 보면서 하는 말이다.

소일초가 술잔을 놓고 색귀를 쳐다보았다.

[색귀! 난 네가 제일 맘에 걸려, 우라질 다른 놈이 그렇게 소아를 쳐다보기만 했어도 내 손에 작살났다구……]

[휴……나도 일찍 저런 여자를 만났으면 진작 정착했을 텐데……]

색귀는 혼자말 처럼 중얼거린다.

[큰아저씨, 궂이 되지도 않은 재주를 배우려고 애써지 않아도 돼요.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면 언제든지 제가 술을 드릴께요.]

[옳다! 그래야 겠다.]

주귀는 주소아의 말에 무릎을 치다가 안색이 확바뀌었다.

[안돼! 절대 안돼……]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을 대동하고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함께 가는 것이 불가하다고 하니 놀라서 쳐다 보았다.

[왜? 왜 안된다는 거야?]

[빌어먹을 둘째 녀석과 세째 녀석 때문이야.]

주귀는 색귀와 투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색귀와 투귀는 머쓱해져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못했다.

[무슨 일인데? 내가 도와주면 되잖아?]

소일초가 연거푸 물었다.

[그놈들한테 직접 물어봐! 무슨 소리가 나오나……]

[색귀! 무슨 일이야?]

색귀는 사방에서 눈총을 받고는 마지못해 입을 연다.

[한 이십 년은 됐을 거야. 소년협객 한 분이 여종을 데리고 강호에 초행을 하는 것이었어.]

[그땐 여종을 데리고 다니는 무림인도 있었어?]

소일초의 물음에 색귀는 여전히 멋적게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그런데……그 여종이 보통 미색이 아니라서 내가 그만……]

[발동이 됐구나……]

색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년협객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주귀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어떻게 돼긴, 그 여자를 후리고 도망가려다가 소년협객에게 걸렸지……]

[그럼 그 사람은 죽었겠네? 색귀 습관이 그렇잖아?]

소일초의 말에 색귀의 그 중후하고 기품있는 얼굴이 벌개졌다.

[거꾸로 죽을 뻔하고 겨우 그 여자를 데리고 살겠다는 맹세를 하고서야 용서를 받았지……]

주귀가 또 대신 말했다.

[그 사람 무공이 아주 강했었구나, 색귀가 그렇게 당하다니……]

[색귀만이 아니야……우리 모두 죽을 뻔했지……]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주귀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정말 훌륭한 협객이었지. 여종에게 이제 색귀를 따라가서 부덕(婦德)을 다해 섬기라고 한 후에 가버렸지.]

주귀가 투귀를 보면서 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 번엔 세째놈이 또 말썽을 피운 거야. 그분에게서 한 가지 물건을 슬쩍해버린 거야. 제 딴엔 복수한다고 한 짓인데 그분이 다시 화가 단단히 나서 돌아와 저놈의 멱살을 잡고 두 손목을 꺾어버렸지.]

투귀는 아무말도 못하고 머슥해져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바라보았다.

[그럼 투귀는 한동안 밥도 제 손으로 못 먹었겠네……]

[그분이 죽여버리려고 하다가 색귀 여편네가 된 그 여자를 보아서 한 번 더 용서해 주고 물건만 찾아서 떠나셨지……]

주소아가 궁금한듯 물었다.

[그 물건은 무엇이었어요?]

투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청옥소도(靑玉小刀)!]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 소년 협객이 누군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평생 그런 물건은 그때 처음 봤어. 대단한 보물이었지. 막내의 수정검우도 대단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았어.]

투귀는 자기가 훔쳤던 최고의 보물에 대해서 감회에 젖어 자랑한다.

[투귀! 정말 간도 크구나. 우리 아버지한테서 패도구룡인을 훔치다니……그건 백인장 최고의 신물인데……죽지 않은 게 이상하군……]

주귀가 탄식했다.

[그때 용서해 줄때 우린 버릇을 고쳤어야 했어…. 한데 둘째 저놈이 그 여자를 몇 달 데리고 있다가 내쳐버렸거든, 그 여자는 울면서 백인장으로 돌아가서 그 사실을 소대협께 알렸지……]

[이 나쁜 사마귀 우리 백인장을 상대로 일을 저질렀다니 속이 뒤집힐 일이구나.]

그 소년 협객은 강호 초행이었던 소선풍이었고 사마귀는 소선풍을 건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성품이 소일초와는 달리 중후한 소선풍은 백인장의 가족인 여종을 생각해서 두 번이나 그들을 용서해 주었는데 여종이 쫓겨오자 화가 날 대로 난 것이었다.

당장,

수혼도객과 무심군자를 보내 천하를 뒤지는 일이 있더라도 그들을 생포해 오라고 시켰고,

사마귀는 도망치다 도망치다 결국은 그들의 손에 포로가 되어 백인장으로 잡혀가고 말았던 것이다.

소선풍은 자신이 장주가 되고 난 후로 최초의 행동이 그들을 상대한 것이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자 대단히 화가 났던 것이다.

백인장에 잡혀온 그들을 보고 소선풍이 색귀에게 물었었다.

[다시 당신 부인을 데리고 살겠소?]

색귀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절대로 한 여자에게 매여서는 못사는 몸이니 차라리 죽겠다고 그랬다.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자 주귀가 색귀를 때려죽일 듯 했다.

[저놈이 그때 그 여자를 다시 데리고 살겠다고만 했어도 소대협께선 다시 한번 용서해 주셨을 거야.]

결국 사마귀는 정뇌의 제일 깊은 곳에 갇혀서 소일초가 탈출의 비책을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너희들과 함께 다니다간 다시 백인장에 냉큼 잡혀가고 말거야.]

[왜? 무공이 아주 강해진 것 같은데……]

소일초가 물었다.

주귀가 손을 저었다.

[우리는 예전에 있던 무공이 좀 발전하고 내공이 깊어진 것 일 뿐이야. 백인장의 그 늙은이들은 장담할 수 없어. 이긴다 하더라도 그들을 해친다면 우리를 지켰던 원로도객들이 쫓아올텐데 반드시 죽고 말거야……]

사마귀는 백인장에서 도망쳤을 때, 무림의 정보상인(情報商人)인 녹림맹의 황녹천을 찾아갔다.

황녹천은 구파일방과 모종의 관계에 있었고 어떤 정보라도 거래하는 숨겨진 장사꾼이었던 것이다.

또한 투귀는 원래 녹림에서 성장한 사람인지라 그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황녹천에게서 천산에 가서 숨으면 백인장의 고수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천산으로 갔다.

한데 뜻 밖에도 그들은 천산에서 기연을 만나 사백자(四百字)로 된 묘한 무공요결을 얻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정체되었던 그들의 무공은 급속하게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주소아가 주귀에게 말했다.

[큰아저씨, 제가 절대로 백인장에 잡혀가지 않도록 해드리겠으니 그 사백자무공요결(四百字武功要訣)을 가르쳐 주셔요.]

[그럴까? 그게 나을까?]

주귀는 그의 아우들을 바라보았다.

투귀와 색귀, 그리고 도귀까지 어서 가르쳐 줘버리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백인장에 갇혀 있어보았기 때문에 백인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수백 년을 최강으로 이어온 문파에 대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이다.

까짓 무공 줏어 배운 것 가르쳐 줘버려도 아까울 것 없었다.

백인장에 쫓기지 않게 된다면……

주소아가 머뭇거리는 주귀에게 다시 말했다.

[앞으로 백인장에서 제일 행세할 수 있는 사람이 저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요? 가르쳐 주신다면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백사인장(百四刃莊)으로 장을 고칠 수도 있어요.]

소일초가 그녀의 엉뚱한 말에 소리쳤다.

[소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백인장이 어떻게 백사인장이 될 수 있어?]

주소아는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아무말 하지 못하게 하고는,

[그렇지 않으면 백인장의 모든 고수가 아저씨들을 쫓게 될 거예요. 이미 백인장의 고수들이 무림에 다시 나왔는지도 모르죠.]

그녀의 협박에 주귀는 어쩔 줄 모르고, 색귀와 투귀는 안달이 나는지 빨리 줘버리라고 연방 그에게 눈짓한다.

소일초가 참지 못해서 다시 말했다.

[주소아! 안그래도 무공이 강해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으면서 어쩌자는 거야? 흥! 나는 아기 못 낳는 여자와 평생 살기는 싫어!]

[바보야! 어쩌면 무공도 강해지면서 아기도 낳을 수 있는 무공일지 어떻게 알아?]

그녀는 무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호기심때문에 스스로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주 소리친다.

그때,

[술마시고 놀시간이 없어요. 빨리 대비해야 해요.]

갑자기 문을 열고 날아들어 오면서 취풍녀가 소리친다.

[무슨 일이야?]

주소아가 안그래도 화가 나있던 참이라 그녀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저……언니, 오공천이 직접 이리로 오고있어요.]

그녀는 얼마전 부터 자기보다 훨씬 어린 주소아를 꼬박꼬박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

주소아가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오공천? 대교주 오공천? 잘됐다 화나는데 내가 상대해 버리겠어. 까짓 아기야 낳든 못 낳든 저 멍청이가 저러는데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어.]

주소아가 벌떡 일어서며 달려나가려 했다.

소일초는 기겁을 했다.

[안돼! 그러면 안돼!]

소리치며 주소아를 불끈 틀어앉아 자리에 앉혔다.

[이것 못놔?]

주소아는 길길이 뛰고……

사마귀와 취풍녀는 무슨 소린가 몰라서 어리둥절한다.

무공을 익히고 싸움을 하는 데 무슨 놈의 아기가 어떻단 말인가?

[사백자요결인지 오백자요결인지 다 익혀! 익히라구, 대신 아기는 낳을 수 있어야 돼! 알았지?]

소일초가 마침내 양보를 하고,

주소아가 배시시 웃으며 사마귀가 보든 말든 그의 목을 안았다.

[알았어……맹세할 수 있어.]

사마귀와 취풍녀는 주소아의 변덕이 얼이 빠질 지경이다.

그들에게는 소일초의 앞 날도 결코 평온할 것 만 같지는 않았다.

취풍녀가 초초하게 다시 말했다.

[오공천이 오고 있단 말예요.]

[걱정할 것 없어. 오공천을 잡을 사람은 따로 있어. 우린 구경이나 하러가면 돼.]

소일초는 느긋하게 취풍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오공천은 소일초의 전각으로 오다가 두 사람을 만나서 저지당하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三十九 章

 

           원로원의 사마귀

 

 

 

등천마세에는 세 개의 금역이 존재한다.

첫째는 대교주인 오공천의 전각이고, 둘째는 등천마세의 원로이자 삼교주의 사부들이 머무르는 등천원로각이며,

마지막 세번째는 최근에 생긴 것으로 바로 무적검이라고 불리는 소일초의 전각이다.

이곳들은 각기 외인들의 출입이 일체 금지되는 곳으로 그곳에 함부로 접근한다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것이 된다.

바로 얼마 전에 이교주 마금석이 세번째 금역인 소일초의 전각에 접근하다가 죽을 뻔 했었다.

그 사건으로 금역들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한데 이 밤,

두 번째의 금역으로 알려진 등천원로각에 네 사람의 흑의인이 접근하고 있다.

그들은 도둑 고양이 처럼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지도 않고 보무도 당당히 등천원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등천원로각에 소속된 무사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저지하려고 했지만 어느 틈에 소리도 없이 쓰러지고 만다.

삼십여 장을 걸어서 등천원로각의 문에 들어설 때까지 그들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일정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구층으로 된 등천원로각의 문이 열렸다.

여전히 그들은 보무도 당당히 들어섰다.

넓은 공간,

사방 벽에는 등불이 밝혀져 있어 대낯처럼 환했다.

[등천구마존을 만나러 왔다.]

네 사람의 흑의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의 허리에는 큼직한 호로병이 뚜껑없이 매달려 있었다.

[간이 부었군, 여기가 어디라고……]

희끗희끗한 머리의 초로 노인이 일층에 있다가 쳐다보지도 않고 느릿하게 말한다.

[천지인음양오행마존이 그렇게 대단한가? 우리가 만나볼 수 도 없을 정도로……]

다시 호로병을 찬 흑의인이 말했다.

[우리를 알고 있는 자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

초로의 노인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사마귀(四魔鬼)!]

[그렇다. 우릴 잊지는 않았군, 토마존(土魔尊)!]

네 사람의 흑의인……

그들은 바로 사마귀였다.

제일 좌측에 있는 호로병을 찬 사람이 주귀(酒鬼)로 언제나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는 자였다.

그의 주전신공의 뛰어남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리고, 불그스레하고 중후한 얼굴의 미남자는 색귀(色鬼)로 대자비수의 명인이며,

시원시원한 풍모의 깔끔한 사람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도둑질에 뛰어나다는 투귀이고,

가장 우측에 있는 무심한 얼굴의 사람이 철저한 도박사인 도귀(賭鬼)이다.

실질적으로 사마귀중 가장 뛰어난 무공을 소유했다고 알려진 자……

그리고 전설적인 무적검객 검마의 후손……

토마존은 갑작스런 그들의 출현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때였다.

[사마귀가 무슨 일로 야심한 밤에 우릴 찾아왔는가?]

위층에서 여덟 명의 노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주귀가 호로를 집어들며 말했다.

[천마존! 오랫만이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얼굴보기가 힘 드는군.]

[무슨 일인가 주귀! 이곳은 네가 함부로 올 곳이 못되는데.]

이때 도귀가 불숙 나섰다.

[그럼 먼저 한 판 벌여서 올 곳인가 못 올 것인가를 결정할까? 이곳이 올 곳이라는데 걸겠다.]

지마존을 얼굴을 찌푸렸다.

[도귀! 함부로 말하지 마라. 지난 정리를 보아 참고 있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지마존 너야 말로 함부로 나서지 마라. 내 아우의 말이 지당하다.]

주귀가 입에 술을 가득 물고 말했다.

[우리는 오늘 너희 구마존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

[좋다. 무엇을 묻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오늘 살려서 돌려보내지는 않겠다.]

천마존이 살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으하하하하------

갑자기 사마귀가 일제히 웃었다.

그러더니 뚝 그치고 주귀가 말했다.

[구마존! 우리에게 패해서 다시는 무림에 얼굴도 내놓지 않겠다든 너희들이 제자 잘 키워 지금 행세하려는 것이냐?]

일순 구마존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제일대 등천구마존의 뒤를 잇기 위해 이곳 서천목산에서 무공을 익히고 있던 도중 모두가 사마귀에게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는 사마귀도 백인장의 정뇌로 잡혀가기 전이었고 등천마교도 멸망하기 전이었다.

주색투 삼마귀의 무공은 그들로서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지만 도귀(賭鬼)의 수정검우(水晶劍羽)만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어 힘도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최고의 치욕이었던 것인데, 오늘 다시 그 일을 떠올리게 하자 결코 사마귀를 살려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구마존이었다.

이미 그들의 마공은 그때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고 천하의 강자로 자부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때도 수정검우만 아니었어도 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구마존은 일제히 몸을 날려 사마귀를 포위했다.

투귀가 차갑게 말했다.

[구마존, 너희들의 무공은 많이 발전했다. 아마 이전의 우리라면 아주 쉽게 이길 수도 있겠지……하지만,]

[…………!]

[우리 역시 예전의 사마귀가 아니야. 한 번 싸워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

색귀가 그의 일대 정마(情魔)로서 떨쳤던 부드럽고 중후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 만 들으면 조용히 가겠다.]

천마존이 침음성을 흘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은가?]

[삼수(三手)가 숨은 곳!]

도귀가 짧게 대답했다.

천마존은 일순어이가 없는 듯 했다.

[삼수가 어디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천마존, 바른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너희들이 삼수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온 것이다.]

주귀는 입 가득히 술을 머금고 있었다.

그 술은 어떤 조화를 부릴 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인가?]

구마존은 서서히 포위를 압축시키며 물었다.

[너희들의 등천마교는 삼수에게 멸망했다지? 그리고 나중에는 삼수가 본단에 있는 비급까지 찾아서 가 버렸다고 들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들과 철천지한이 있다.]

[우리 역시 삼수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

천마존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너희 사마귀는 백인장에 원한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만에, 백인장에는 우리가 잘못해서 잡혀간 것, 백인장에는 원한이 없다. 하나……]

[……?]

[삼수는 우리 제자를 죽였다. 이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도귀(賭鬼)의 자르듯 차가운 말에 구마존이 일제히 웃었다.

[도귀, 네 무공이 아주 독보적이라는 것은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삼수는 공포의 고수다. 누구도 대적하지 못하는 천하제일인 혈기자의 제자들이고 게다가 등천마교의 절대마공들을 익혔다.]

도귀는 코웃음을 쳤다.

[삼수는 셋, 사마귀는 넷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제자의 복수를 포기하고서는 사부의 자격이 없다.]

[아주 좋은 사부인데, 제자는 어땠는지 모르겠군.]

[우리 제자를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의 무공은 오히려 우리보다 강했다. 그리고 무림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주귀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그가 누구였는가?]

천마존이 몹시 궁금한 듯 물었다.

스승보다 강한 제자는 드문 것이다.

더우기 사마귀는 대단한 고수인데, 그들보다 강하다면 필시 무림에 이름 있는 고수였으리라 생각한 때문이다.

[먼저 삼수가 어디에 있는지 부터 말해라.]

[좋다, 우리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수하들의 소식에 의하면 삼수는 뜻밖에도 정천보에 잠입해 있는 것 같다. 자세한 소식은 전하지 못한 채 모든 수하들이 죽고 말았다.]

천마존은 사마귀 역시 삼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동질감이 느껴져서 순순히 알려 준것이다.

[음……정천보. 좋아, 우리 제자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신행마동이다.]

주귀의 자랑스런 말에 구마존은 깜짝 놀랐다.

신행마동,

무림의 골치덩어리 말썽꾼이면서도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존재가 아닌가?

최강의 세력이라고 알려져 온 백인장의 귀공자,

뛰어난 무공으로 삼수와 맞섰다가 목숨을 잃은 신행마동이 사마귀의 제자였을 줄이야……

사마귀가 제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원수를 갚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익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천마존, 고마웠다. 그럼 다음에 보자.]

사마귀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했다.

[잠깐!]

천마존이 소리쳐 불렀다.

[그냥은 못 간다. 오랫동안 묶은 감정의 빛을 갚겠다.]

사마귀가 느긋하게 웃었다.

[얼마든지……]

구마존이 사마귀를 둘러싸고 천천히 원을 그렸다.

그들의 몸이 점차 가지각색의 안개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마공을 일으킨 것이다.

치직-----

칙치익----

안개가 퍼져 나가면서 닿는 것은 무엇이거나 녹아내렸다.

사마귀는 긴장된 표정으로 다가오는 안개를 바라보았다.

도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주귀가 그를 저지시켰다.

[막내는 최후의 순간에 나서라 이 것은 내가 막겠다.]

순간 그의 입에서 뭉게뭉게 구름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언젠가 소일초가 선보인바 있는 바로 그 주정이었다.

주귀는 술이 부족한 듯 급히 더 들이키고 주정을 피워올렸다.

그의 입이 다물어지는 순간 주정은 거대한 청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색빛깔의 마기에 휩싸여 있던 구마존이 흠칫했다.

거대한 청룡은 주귀의 손끝을 따라서 사마귀를 에워싸고 돌았다.

순간,

치이이익-------

청룡과 오색의 마기가 부딪치면서 강한 마찰음이 일었다.

구마존은 경악했다.

옛날 주귀의 무공은 자기들 개개인과 비슷했는데 지금은 그들 모두를 동시에 상대해 내지 않는가?

주귀의 얼굴이 붉게 변한 것이 힘든 모양이었으나,

몰려오는 마기를 청룡이 몰아치며 막아내고 있었다.

구마존은 일제히 포위를 압출하며 들어왔다.

청룡은 감옥에 갇힌 듯 몸부림치며 돌았다.

그러나 구마존의 압력을 감당할 수 없는 듯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구마존은 점점 다가서고 청룡은 줄어들어 겨우 사마귀를 보호할 수 있을 뿐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마존도 함부로 더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귀중 남은 세마귀는 아직도 손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귀의 얼굴은 벌겋게 되어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순간, 색귀의 손이 번쩍 치켜 올라갔다.

[수강(手罡)!]

고오오오-------

구마존이 경악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색귀의 손에서 장력도 수영(手影)도 아닌 검기처럼 예리한 강기가 폭출된 것이다.

구마존은 그 상태에서 맞받을 수가 없어 마기를 수축시키며 일제히 손을 뻗어 수강을 맞이했다.

카카캉------

섬짓한 소리가 들리며 구마존과 색귀가 동시에 비틀거렸다.

[……어떻게 소림의 대자비수에서 수강이 나올 수가?]

지마존이 믿을 수 없는 듯 말했다.

[이 정도가 되지 않고 서야 삼수를 찾아갈 생각이나 했겠나?]

주귀가 청룡을 회수하고 있었다.

이제 서로의 탐색전은 끝나고 본격적이 대결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그들의 용쟁호투는 구름을 부르고 바람을 일으켰다.

도귀를 제외한 삼마귀와 구마존의 접전은 팽팽하게 치닫고 있었으며……

사마귀 중 가장 강한 도귀가 버티고 있으니 구마존은 심리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사마귀의 무공은 과연 놀라웠다.

무림에 알려져 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물론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들은 더욱 능숙하고 보완되었을 뿐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주귀의 주전신공과 색귀의 대자비수, 그리고 투귀의 매화지……

그러나, 그들의 수법은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높아져 있었다.

어떤 계기로 인하여 그들의 무공이 일제히 높아 졌음에 틀림없다.

갑자기 주귀가 소리쳤다.

[잠깐!]

그 소리에 구마존과 색귀, 투귀가 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냐?]

천마존이 붉은 안개 속에서 물었다.

주귀는 도귀를 돌아보며 말했다.

[막내야. 이제 네가 상대해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도귀는 대답하고 앞으로 나섰다.

색귀와 투귀는 물러서서 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구마존은 아연 긴장했다.

드디어 가장 염려했던 놈이 나선 것이다.

예전에도 도귀의 무공은 월등했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더욱 고강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구마존은 이미 자신들이 패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방은 자기들을 단지 무공을 실험해 보기 위한 상대 정도로 밖에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때,

[사마귀! 여기 숨어있었구나.]

갑자기 등천원로각의 문을 부수듯 열면서 날아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육척에 달한 훤칠한 키,

영준한 얼굴, 백의를 입은 소일초였다.

사마귀는 물론 구마존도 어리둥절했다.

퍽------

소일초는 구마존이 일으키고 있는 오색의 마기를 그대로 뚫고서 사마귀의 앞에 내려섰다.

구마존은 그 충격에 비틀거리며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관통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니……

사마귀도 그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을 느끼면서 공력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사마귀! 볼 때마다 어디 갇혀 있다니, 꼴좋구나.]

소일초는 신나게 떠들었다.

사마귀는 어리둥절했다.

도무지 만난 적도 없는 것 같은 청년이 눈앞에 나타나 친근감을 보이며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닌가?

[제기랄……내가 얼마나 찾았다구. 등천마세에 있다면서 이제서야 얼굴을 드러내?]

주귀가 도저히 알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 나를 몰라? 정말 기가 막히는데……]

소일초는 자신이 변한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사마귀를 갉는다.

그때,

[무적검!]

천마존이 경악하며 대답했다.

그는 수하들을 통해서 소일초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마귀도 눈이 번쩍 뛰였다.

그들 역시 등천마세에 있으면서 무적검의 소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귀가 소일초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만나서 반갑소. 언젠가 한 번 만나고 싶었소.]

[도귀! 무슨 어울리지 않는 말이야. 그리고 전보다 더 강해진 것같은데……그리고 보니 주귀 색귀 투귀다 몰라볼 정도로 강해졌는걸……]

사마귀는 입을 딱 벌렸다.

자기들을 정확하게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이 무적검이란 청년을 그들은 도무지 본 적도 없는데……

그때,

[이 멍청이! 내 이럴 줄 알았어. 저래서야 뭘 믿고 시킬 수가 있어야지……]

얼굴에 면사를 가린 늘씬한 몸매의 여인이 들어오며 넋이 빠질 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한다.

갑작스런 젊은이들의 잇따른 등장에 구마존과 사마귀가 정신을 못 차리는데,

그녀는 사마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당신들이 사마귀죠?]

[그렇소? 낭자는?]

어느 틈에 색귀가 얼굴을 돌리고 말한다.

그의 독문수법이 나온 것이다.

[호호호……]

소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데 무적검이란 청년이 색귀의 귀를 확 잡아당겼다.

[저 여자는 안돼!]

색귀가 그의 손을 의식하고 피하려 했지만 마음뿐 꼼짝없이 잡혀서 얼굴이 돌려졌다.

다른 삼마귀는 그 빠른 손놀림에 멍청해져 손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가도록 해요. 제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해드리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주소아가 상냥하게 사마귀를 향해서 말했다.

구마존은 어떻게 할 지를 정하지 못한 듯 멈칫멈칫했다.

소일초는 주소아가 이미 온지라 자신의 할 일은 길을 여는 것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구마존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신들이 구마존이라고?]

[그렇다.]

[잘됐어. 이미 당신들 주인이 이곳 어딘가에 와 있을 거야. 그가 나에게 소식을 알려 주어 이렇게 왔으니까?]

구마존은 무슨 소린 지 몰랐다.

[뭘해? 빨리 나와서 길이나 열어주지 않고?]

소일초가 소리쳤지만 사방은 조용하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당신들 주인이 나오기 싫은 모양인데……]

[……?]

[하는 수 없지 그럼, 당신들이 죽든 살든 보살피지 않는 주인을 원망하라구……]

천마존이 분노했다.

[미친 놈!]

소일초가 그를 바로 쳐다보았다.

[길을 열지 않으면 내가 저승길을 보여주겠다.]

순간, 주귀가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 말 한 번 좋구나.]

구마존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오색 마기가 더욱 짙어졌다.

[뭘 해! 빨리 가자.]

주소아가 독촉했다.

그러자, 소일초의 오른손이 앞으로 숙 뻗어졌다.

그의 몸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둔중한 마황검이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붉은 빛이 빛살처럼 퍼저나가며 마황검이 일 만개로 분리되는 듯 했다.

쇄애애액--------

[흐으윽……]

구마존의 몸에서 흘러나와 구름띠처럼 사마귀와 소일초를 애워싸고 있던 오색마기가 가닥가닥 잘리면서 흩어져 버렸다.

[사마귀 가자.]

하고 소리치며 구마존의 사이를 성큼 걸어나가는 소일초의 손에는 벌써 마황검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사마귀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그를 따라 갔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군……]

구마존은 지나가는 그들을 보기만 할 뿐 더이상 손을 쓰지 못했다.

자기들을 발가락 사이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소일초의 엄청난 무공에 완전히 질려버린 것이다.

천마존이 탄식을 했다.

[내일은 오공천에게 가봐야겠군……]

그것은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三十八 章

 

       憂愁를 깨뜨리는 毒蟲

 

 

 

등천마세,

가을을 맞은 등천마세는 이미 지난 여름의 등천마세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기적(時期的)으로는 소일초가 주소아를 안고 취풍녀와 함께 들어왔을 때부터이며,

내부적으로는 그들에게 몰래 묻어온 한천이기(恨天二奇)의 공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는 취풍녀가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소일초에게로 많은 고수들이 모여들어,

그는 등천마교 내의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삼교주인 취풍녀가 복종하는 소일초, 속을 알 수 없는 등천마세의 인물들은 그를 전혀 진정으로 무서운 인물로 생각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대교주 마저 밀고 일어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등천마세의 이교주 역시 나름대로 소일초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채 그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이란 그의 제거를 위한 움직임 일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소일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소아와 더불어 술마시고 놀며 온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데 타인에 의해 그의 주변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등천마세를 장악하는 것은 한천이기의 뜻이고,

등천마세를 이용하려는 것은 주소아의 뜻이다.

소일초의 뜻은 묵묵히 힘을 기르면서 모든 사실이 분명해질 때를 기다리고 싶은 것인데……

주변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사마귀는 아직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데……

 

× × ×

 

무적검(無敵劍),

이것이 현재의 소일초였다.

낙엽이 지는 정원의 나무 밑에서 침울한 시선으로 서천목산의 봉우리들을 올려보고 있다.

바람이 불때마다 낙엽의 그의 몸으로 떨어지며 날리는 데……

무딘 그의 감정은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 지고 있었다.

어딘가에 계실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부쩍 보고 싶어진 것이다.

주소아가 옆에 있으니 그가 신경쓰야 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취풍녀도 주소아에게 어떻게 혼이 났는지 소일초 앞에서는 전과는 달리 아주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게 대할 뿐 전과 같은 요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지내는 한천이기는 때때로 자신의 전각에서 머물고 가고,

버젓이 드러내 놓고 주소아와 소일초가 사용하는 침상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

그들도 아무튼 조금 사람같아지기는 했는데……

소일초는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그의 신분으로는 전처럼 아무에게나 시비걸고 장난친다는 것도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일 인 것이다.

도박을 하려가도 다른 놈들이 슬금슬금 피해버리고 상대를 해주지 않고,

술마시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주된 생활은 당연히 주소아와 더불은 그것이고……

소일초는 병이라도 날 것만 같다.

침울하게 일어서서 낙엽을 밟으며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온다.

그때,

윙윙윙--------

우웅웅--------

공기를 진동시키며 들려오는 소리에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잘게 흔들리고 입들이 떨어졌다.

소일초의 검미가 보일 듯 말 듯 꿈틀거렸다.

(또 뭐야? 가만 있는 날 죽이려는 놈들이 왜 이리 많아……나쁜 년놈 한천이기……나쁜 놈들……날죽이려는 것들……)

심심하면 찾아오는 자객(刺客),

이제는 귀찮을 지경이다.

지금,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려고 하는데 까마득히 하늘의 한자락을 뒤덮으며 무엇인가가 그를 향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맙소사! 저게뭐야? 이젠 별 수단 다쓰는 구나.)

구름처럼 몰려오는 것, 그것은 바로 메뚜기 비슷하기도 하고 여치같기도 한 것들로 그가 남만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독충이 아닌가?

그에게 독은 통할 리 없지만 그것들은 눈앞을 가리고 무리를 지어 행동하기 때문에 얼마나 성가신 것인 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들에 이미 오래 전에 질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독충 떼는 몰려오고

소일초는 냅다 도망쳤다.

죽여도 끝을 보기 힘들고 냄새는 또 얼마나 역겨운가?

그저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독충떼는 낙엽이고 나무가지고 스치는 순간에 앙상하게 만들어 버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일초를 알아보기라도 하듯 그것들은 소일초를 따라오는데……

소일초는 그의 전각을 향하여 날아가다가 딱 멈추어섰다.

(이렇게 되면 내 방이란 침대랑 모두 엉망이되고 말잖아. 저놈들은 어쩌면 전각까지 허물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멈추어 서는 바람에 독충들은 그에게 더욱 가까와 졌다.

더 생각 할 것도 없이 방향을 틀어 무작정 달렸다.

흰그림자를 그리면서 그의 몸은 무수한 전각들 사이로 달려갔다.

 

윙윙윙------

 

그의 뒤를 따라서 독충들이 날고……

등천마세는 발칵 뒤집혔다.

 

독충이다----

누군가 독충을 풀었다-----

 

비명과 함께 고함이 터져 나오고 소일초가 지나가는 전각마다 죽어자빠지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 가지각색이었다.

용감한 사람은 장력을 내치며 불로써 독충을 물리치려고 했고,

그 많은 독충떼에 질려서 대부분이 독충의 행로를 벗어나 도망치고 있었다.

문득,

소일초는 도망치면서 내심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그동안 너무 지겨웠는데 신나게 달리면서 법석을 떠니까 힘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우울한 마음도 갑갑함도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는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나 대교주와 이교주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을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수족이 아닌 그들인데 봐줄 것 없는 것이다.

(나쁜 놈들 잘 죽어봐라……날 죽이려다 등천마세 다 태울 것이다.낄낄낄……)

사방에서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그는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앞에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멈춰라! 이곳으로 오지마라.오……오……오지……]

소일초가 무시하고 달려들자 흑의인은 말을 하다말고 냅다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독충들을 오지 말라는 말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 흑의인이 도망치자 나머지도 덩달아 도망쳤다.

소일초는 독충들을 조금 앞서서 이끌고 달리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흑의인들은 미친 듯이 도망치지만 여전히 소일초는 자기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다.

[흩어져라, 흩어져.]

한 사람이 외치자 그제서야 방향을 달리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일초는 소리친 흑의인의 뒤를 끊질기게 쫓았다.

도망치는 흑의인은 미칠 지경이었다.

[왜 나를 쫓아 오시오? 다른 사람들도 많은 데……]

아무 대답없이 그의 뒤를 쫓기만 하자 다시 소리친다.

[오해가 있는 가 본데, 독충은 내가 풀은 것이 아니오.]

[…………]

[정말이요. 오독교(五毒敎)의 오독존자(五毒尊者)가 풀었소.]

[남만의 오독교 말인가?]

[그렇소. 빨리 그에게 가보시오. 그는 외당(外堂)에 있을 것이오.]

흑의인은 그를 떨쳐버리기 위해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대교주 휘하의 호위중의 하나요.]

[그럼 이 번에는 대교주의 수단이었군.]

소일초가 여전히 그를 바싹 쫓아가며 말하자,

[나는 말할 수 없소. 나는 그런 말 한 적은 없소.]

그는 말하면서 계속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소일초는 방향을 바꾸어 외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오독존자 이놈 당장 나와라.]

그는 외당으로 뛰어 들면서 소리쳤다.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곳으로 간다. 피해라……]

다른 사람들이 소일초의 행로를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외당에서 키가 자그마한 노인 하나가 뛰쳐나오더니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었다.

소일초는 그가 오독존자라고 생각하고 고함을 쳤다.

[이놈! 내가 너를 건드리지 않았는데 네가 나를 건드려?]

대꾸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오독존자,

소일초는 순식간에 그의 뒤를 따라잡았다.

한데,

오독존자의 앞에 언제 왔는지 까맣게 독충들이 모여 있었다.

[으왓! 속았구나.]

오독존자는 원을 그리며 도망쳐 독충들의 꼬리부분에 당도한 것이다.

오독존자의 꾀임에 빠져 그는 앞뒤로 독충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으하하하하-------]

오독존자는 득의만만하게 웃으며 작은 깃발을 움직여 그를 완전히 포위해 버렸다.

비릿한 독충의 냄새가 소일초에게 밀려왔다.

그 뒤를 독충들이 새까맣게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순간,

소일초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독충들 사이를 뚫고 오독존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끅……]

단숨에 그의 목을 꺽어버리며 깃발을 빼앗고 독충들에게 던져 버렸다.

 

오독존자는 자기가 키운 독충들에 의해 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정말 자기 한 몸 팔아서 독충 배 불린 것인데……

소일초는 깃발을 아무렇게나 휘둘러 독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깃발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수습할 수 있는지 몰랐다.

흔드는 것을 그만 두면 또다시 자기를 향해 달려 들테고……

마침내, 오독존자가 나왔던 전각 안으로 달려가 독충들을 들어오게 했다.

순식간에 전각안은 독충들로 꽉 차는 데……

소일초는 밖으로 빠져 나오면서 문을 닫고 전각에 불을 붙여버렸다.

더러 빠져 나오는 놈도 있었으나 몇 마리에 불과해서 힘을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메뚜기 꿉는 냄새를 내면서 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곤충들은 원래 불 가까이도 못가는 것이니 크지 않은 불과 연기에도 몽땅 죽어버린 것이다.

 

× × ×

 

소일초는 오래간만에 침상에 뒹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저녁 무릅에 신나게 달리고 소동피우고 거기에 불까지 질러 불구경했으니 속이 후련하고 통쾌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눈은 여럿 있었다.

바로 주소아와 한천이기 였다.

[당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불만이 적지 않소. 왜 그들까지 괴롭혔소?]

원천기가 말했다.

[누가 나를 따른다는 건가? 나를 따르는 건 불과 두 사람 뿐일텐데……그리고 지금 자네가 나에게 따지는 것인가? 많이 컸다 원천기.]

[…………]

[전에는 그래도 정통마교주니 뭐니 꼬박꼬박 붙이더니 요즘은 아예 당신이라 부르며 따지기 까지 하는 구나.]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무 핍박하지 마시오. 당신은 어차피 우리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안배에 따랐으니 우리의 뜻을 따라야 하오.]

원천기가 차갑게 말했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옆으로 다가서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원천기! 뚝하면 칠십이기재들의 뜻 이니 천지파멸의 저주니 하는데, 솔직히 네 마음에는 오히려 무림에 대한 욕망이 들끓고 있지 않느냐?]

한천녀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야망을 가지만 안된다는 말이냐?]

소일초가 얼굴을 굳히고 일어나 앉았다.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절대로 내위에 군림하려 하지 마라. 지금 내가 너희들의 뜻대로 여기에 있는 것은 나에게도 그럴 필요가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신하는 군!]

원천기가 말했다.

그들의 사이에 살기가 감돌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때 주소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한천이기! 한 번은 양보해 주마. 그렇지만 다음에 우리가 받을 것은 양보가 아닌 너희들의 목이다.]

한천이기는 어디론가 나가버렸고 소일초가 불만스러운 듯 주소아에게 말했다.

[왜 물러섰어? 그들이 대단하기는 해도 전력을 다한다면 나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그냥……이 번 만은 그러고 싶었어. 그리고 아무래도 며칠 내에 등천마세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아. 그들이 더욱 날뛰는 것으로 봐도 틀림없을 거야.]

[뭔 기미가 보여?]

[이미 전쟁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야. 취풍녀에게도 단단히 일러둬. 대교주와 대항할 때가 다 되었다고……]

소일초는 침상에 벌렁 누웠다.

[난 내키지 않아. 대교주보다 더 무서운 놈들에게 등천마세를 넘겨주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주소아가 그의 귀에 입을 대었다.

[다 계획이 있어. 조금만 기다려봐.]

 

× × ×

 

소일초의 전각을 멀리서 주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일신에 백의를 걸치고 있었다.

등에는 한 자루의 장검이 걸려있고 몸에는 달인 인양 조용한 기도를 뿌리고 있다.

바로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었다.

이때 그는 허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사형이 오독존자를 동원하고도 대실패를 하고 말았다. 오히려 수많은 수하들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는 가볍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어째서……그는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까지도 그런 방법으로 죽거나 다치게 했을까? 불안하다. 대체 이 불안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단 말인가? 무적검인가? 그가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고 있단 말인가?]

그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문득 낙엽을 밟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그 낙엽에 소일초의 우울하던 모습이 진하게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는 다시 독백하듯 중얼거린다.

[하나……이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이 되든……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미 그의 세력은 강대하다. 그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등천마세는 물론 천하도 장악할 수 있다.]

천하……

그렇다.

이 사나이 또한 그 무공 만큼이나 야망또한 강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등천마세의 이교주이므로……

[무적검……반드시 너를 내 아래에 두리라……비록 네가 강하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수수수……

낙엽은 어둠 속에서 짙붉은 빛을 뿌리며 떨어져 내리고……

마금석 눈 역시 야망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너를 굴복시키는 것이……등천마세를 장악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면……어떤 수단이라도……]

순간,

그는 주위에 감도는 진한 살기를 느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최소한 열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가공한 살기……

그것은 마금석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음……엄청나다. 이 정도의 살기를 뿜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등천마세의 인물가운데서도 사십위 이내의 무공을 지닌 인물들……)

마금석의 눈빛이 어둡게 변했다.

(무적검……그가 벌써 이 정도의 인물을 포섭했단 말인가?)

소일초가 언제 고수를 포섭할 생각이나 했던가?

단지 한천이기가 보내온 인물들일 뿐이지……

하나 어쨌든, 그에게 살기를 뿜어내는 인물들은 단지 열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 수록 잠시간에 그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상대들에 대해 새삼 경각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분명히 등천마세의 인물들이다.

아니, 어쩌면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휘하에서 고개를 조아리던 인물일런지도 모른다.

살기는 점점 진해진다.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다가는 그들은 급기야는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마금석의 얼굴에 경악과 분노가 넘치고 있었다.

언제 이런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

몸에서 폭풍같은 신형검기를 일으켰다.

(이대로 걸음을 돌릴 수는 없다. 무적검, 그 자에게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베어야 한다.)

그렇다.

그가 이런 모욕을 받고도 참는다면 등천마교내에서 어떤 소문이 나돌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죽음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어두운 하늘을 주시했다.

검을 펼치기 전에 기를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순간,

[사형! 그냥 가세요.]

소리……

영혼을 촉촉히 적시는 여인의 음성이 있었다.

한때는 그가 수시로 몸을 탐하기도 했던 여인,

바로 그의 사매인 취풍녀의 음성이었다.

순간,

환상이었듯이 사라져 버리는 살기, 순식간에 마금석을 감싸고 있던 그 무서운 살기가 걷혀져 버린 것이다.

어둠의 한 편에서 취풍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감도는 죽음보다 정막한 정적……

마금석의 눈에 진한 패배의 그늘이 드리워 졌다.

취풍녀는 손을 저어 어둠속에 있는 인물들을 흩어버렸다.

[사형! 내 행복을 깨려고 하지 말아요.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내 사랑 내 행복을 지킬 준비가 되어있어요.]

마금석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취풍녀는 옛날의 취풍녀가 아니었고 등천마세는 옛날의 등천마세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두려워졌다.

야망은 아득히 멀어지고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소일초도 멀리있었다.

사형이 범하기 전에는 그도 진정으로 취풍녀를 사랑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은 몰라도 몸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그녀마저 꿈결처럼 날아가버렸다.

마금석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순간에 그는 노인이 되어버린 듯 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三十七 章

 

         忠誠水

 

 

 

파양호 물밑에 있는 어떤 섬,

위에는 잎이 상해버린 무수한 수목이 귀신처럼 흐물거리고 숲 안쪽에는 회색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석조건물이 있다.

수초들이 그 거대한 석조건물을 뒤덮고 있고,

물고기떼가 숲사이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석조건물의 안에서도 헤엄치고 있었다.

누가 물밑에 이런 건물을 세워놓았나?

마치 고대의 유적지를 보는 듯한 이곳,

불과 몇 년 전까진 파양호위에 유유히 떠있던 섬이었다.

바로,

수백 년의 세월을 최강의 문파로 이어온 백인장의 고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처량하게 물밑에 가라앉아 수초를 몸에 감고 있는 거대한 석조건물,

어이해 이곳에 가라앉아 버렸나?

한때 소선풍이 회복하기 위해서 몸을 눕혔던 곳도 이제는 물고기떼의 보금자리가 되어버렸는데……

가라앉은 부주(浮舟)의 석조건물 밑에는 또다른 공간이 있다.

거대한 광장이 있고 무수한 방들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사라진 백인장의 모든 가족들, 그리고 청옥검궁의 핵심요인들이었다.

어느 화려한 방안,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주! 이제 우리의 힘은 예전에 못지않게 회복되었소. 하늘을 향해 도(刀)를 높이 치켜들고 소장주와 먼저간 원로들의 복수를 할 때가 왔소이다.]

소리 높여 말하는 이 사람,

절정의 도객답지 않게 지혜로 충만하여 고요로운 눈빛을 가졌던 제일원로 동평선생(東平先生)이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성격마저 변해버렸는가?

그의 음성에는 조급함이 배어있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무림에 나가 삼수(三手)의 흔적마저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주용의 검에 찔려 죽을 뻔 했던 수혼도객 역시 이대봉공의 자격으로 재청하고 나온다.

그러나,

상석에 앉아 묵묵히 듣기만하고 있는 도왕 소선풍은 이 번에 그의 작은 부인인 조예진을 바라본다.

조예진은 다시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이주용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제 의견은 간단해요. 우리가 모두 죽는다고 해도 원수는 갚아야 한다고요. 하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급하지 않아요. 모든 결정을 당신과 언니, 그리고 여러 원로들에게 맡기고 단지 따르기만 하겠어요.]

이주용이 소선풍의 눈을 바로 보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제히 나가도록 해요. 우리 태봉(소일초의 어릴때 이름)이 원수를 갚아야죠.]

표정을 굳히고 원로들을 쭉 돌아본다.

[원로들께서도 저와 생각을 같이 하시겠지요?]

그녀의 말은 강요에 가깝다.

백인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전에는 소일초였고 지금은 화해하고 돌아와 있는 이주용이다.

이 모자(母子)는 사람괴롭히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인 것이다.

백인장에서 큰 마님인 이주용에게 잘못보이면 편한 세월은 다간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잔소리 쟁이 원로들도 그녀 앞에서는 항상 찔끔한다.

무슨 수단으로 자기들을 괴롭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원로들 역시 대부분이 밖으로 나가자는 데 찬성이지만 이주용의 눈길을 받고 의견을 낼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당연히 그렇소이다.]

제일원로인 동평선생은 그들을 보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밤낮 눈총만 받으면 아첨부터 하고보는 못난 녀석들……)

그는 먼저 의견을 냈기 때문에 눈총받지 않아서 그럴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때, 소선풍이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말은 강요지 어떻게 의견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소? 그만 두시오.]

[그럼 대체 당신 생각은 어떻단 말이에요? 삼수에게 한 번 당하고 나니까 겁이라도 생겼어요?]

그녀는 발끈하는 성미를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소선풍에게 달려든다.

원로들은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하고……

동평선생은 다시 중얼거린다.

(저 못된 성미……그저 성질대로라면……저러니까 쫓겨나고 법썩을 떨었지……그저 작은 주모 반 만돼라……)

소선풍이 이주용을 진정시키면서 무심군자에게 말한다.

[좌봉공, 우리가 계획했던 것이 몇 년 이었소?]

[오 년 입니다.]

[지금은 몇 년이 되었소?]

[불과 삼 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무심군자는 그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는 듯 차분하게 말해준다.

[좌봉공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다고 생각하시오?]

[먼저 장주께서 일어나셨으니 천하에 우리가 이기지 못할 세력은 없을 것이며 원로들께서 몇 분 남지 않으셨지만 원체 고강하신 분들이니 말할 것 없으며……]

무심군자의 차분한 말에 원로들이 미소를 지었다.

[주력인 백인도객 중에서도 절정에 도달한 인물들이 다수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백 십여 명에 불과 하지만 천군만마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주용이 다시 소리쳤다.

[그것 봐요. 지금도 얼마든지 된다잖아요.]

소선풍이 벌떡 일어섰다.

[그 정도의 힘은 언제든지 있어왔다.]

그의 큰 목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당신은 우리 백인장이 어떻게 해서 소수의 사람들로도 수 백년을 무림의 최강세력으로 존재해 올 수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다.]

[…………!]

이주용은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 그와 같은 일은 있기 어려운 것이었음에도 백인장은 신화를 이룩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백인장의 장주로서 수백 명의 식구들을 이끌어가는 가장(家長)이다. 백인장의 식구 어느 누구고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수백년을 함께 내려온 형제요 피붙이나 다름없다.]

[…………!]

[한데도 나는 삼 년 전, 내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 사람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여 치정에 따른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조예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원로십팔도객이 아무도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눈물로서 그들을 보냈다. 그때 생명을 잃은 그들은 나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인해 죽은 것이다.]

일곱명의 원로도객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장주, 당치않은 말씀이외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선단 말입니까?]

소선풍은 머리를 저었다.

[다행히 열 한 분의 살신성인으로 인하여 나머지 분들이나마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음에 대해 나는 하늘에 감사했소이다.]

소선풍은 이주용을 바로 응시했다.

[당신에게 우리 백인장의 힘이 수백년 동안 조금도 위축되는 법이 없이 보전될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해 주겠소.]

[…………!]

[백인장주는 절대로 백인장의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소. 그들을 죽을 장소로 보내는 일은 없었소. 장주는 오히려 그들을 위험으로 부터 보호해 왔소.]

원로들과 봉공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는 자기를 위하여 그들을 부리지 않았소. 그것이 우리 백인장이 수 백 년을 최강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요. 희생시키지 않기에 힘은 강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오. 강요하지 않기에 그들은 따르는 것이오.]

[…………!]

소선풍은 고개를 숙였다.

[한데……삼 년 전 그때 나는 수 백 년을 내려온 장주의 율법을 어기게 되었소.]

[장주……]

원로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로 인해서 백인장의 세력은 크게 줄게 되었으며 나는 이렇듯 잠적을 감행하게 된 것이오.]

소선풍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의 나는, 장담하건데 삼수(三手)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그들을 다 감당할 수 있소. 하나,]

[…………]

[그들의 세력으로 인해서 우리 백인장의 식구들 중에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오. 그들의 수하들은 삼 년 전에도 수 만을 헤아렸소. 우리 백 여 사람들 중에는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오.]

[…………]

[나에게는 장주로서 그들을 죽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가족이라도 더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소.]

그의 어조는 아주 단호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머리에 관을 쓴 금포노인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나라도 내보내 주게.]

그는 소선풍의 장인이자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그를 맞았다.

[갑갑해서 더는 이 안에서 못 살겠네, 나는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까 지금 나가서 죽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소선풍도 선뜻 결정을 못내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조예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우리가 직접 삼수와 부딪치지는 않더라도 강호로 나가서 활동해야 할 필요는 있지 않겠어요?]

그 말에 이극송이 껄껄웃었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걸세, 자네는 잘 생각해야 하네,]

[…………]

[내 성미도 자네 큰 마누라처럼 급하고 못된 데가 있다네. 만약 나가지 못하게 하면 이 부주를 깨뜨려 버릴 지도 몰라.]

그의 말에는 소선풍이 입이 막혀버렸다.

이렇게 하여,

백인장의 숨어있던 고수들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주력은 여전히 숨어있지만 일부나마 활동하게 된 것이다.

삼수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 × ×

 

분주히 돌아다니며 공작을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파양호에서 수 천리 떨어진 서천목산에 있었다.

바로 한천이기이다.

지금 그들은 한 명의 흑의노인과 한 명의 흑의청년을 보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지금 묘한 자세로 앉아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단검의 끝을 서로 맞대고는 다른 손은 뒤로 돌려 버린 다음에 한 손으로 단검을 밀고 있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조금이라도 상대방 단검의 끝에서 자기의 단검이 벗어날 경우 자기도 죽고 상대방도 죽는 것이다.

전력을 다해 밀고 있는 것이기에 검은 그대로 서로의 가슴을 꿰뚫어 버릴 것이다.

원천기가 그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두 사람의 뇌호혈에 올려놓았다.

[등천마세의 주인은 누구인가?]

[…………!]

[말하지 않으면……]

원천기는 두 사람의 몸을 흔들었다.

노인과 청년은 급히 검을 흔들리지 않게 조정하면서 땀을 흘렸다.

[등천마세의 주인은? 답하지 않으면 다시 흔들겠다.]

그가 다시 흔들려고 하자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대교주인데 무슨 소리야!]

화가 나서 말을 내뱉는 순간 기가 흩어지면서 그의 단검이 뒤로 밀렸다.

원천기는 이 번에는 청년의 몸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청년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듯 했다.

[바로 당신이란 말인가?]

이번에는 그의 검이 뒤로 밀리고,

원천기는 자기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노인의 몸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다급해진 노인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래 원천기다 원천기]

청년은 원천기가 자기의 몸을 흔들기도 전에 말했다.

[원천기, 원천기!]

원천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이 인정했으니 내가 어떻게 하든 내 말을 듣겠지? 그럼 당신들은 충성수(忠誠水)를 마시도록.]

그는 말을 하면서 그들의 뇌호혈에서 손을 떼고 품에서 작은 옥병을 꺼냈다.

순간,

청년과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쉭----!

쇄액---!

서로를 겨누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이 옆에서 옥병을 꺼내는 원천기의 목과 가슴을 노리고 찔러들어갔다.

근접한 거리, 빠른 공격, 예상키 어려운 상황, 기습이었다.

그러나……

원천기의 왼손이 환상처럼 움직이며 두 개의 단검을 소매로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의 발이 그들의 명치를 제각기 가격하자 그들의 입이 순간적으로 벌어지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원천기가 우수에 들었던 옥병의 충성수를 부어넣었다.

[헉!]

[윽!]

놀라는 사이에 이미 비명과 함께 충성수는 그들의 목으로 넘어가 버렸다.

짝짝……

원천기는 손을 털었다.

충성수가 목으로 넘어간 이상 일은 다 끝난 것이다.

두 사람은 무조건 그의 명령에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 달 후에는 전신이 살점이 떨어져 내려 뼈만 남은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이다.

물론 해약을 먹으면 괜찮겠지만……

원천기는 그들에게 무적검에게 복종할 것을 지시했다.

그들은 등천마세에서 서열 이십위 내에 드는 고수들이었지만 원천기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충성수……

이는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일종의 독약이다.

보통 물과 똑같이 보이고 맛도 같지만 삼 개월에 한 번씩 해약을 먹지 않으면 전신의 살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이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이미 무수한 등천마교의 고수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충성수를 마시게 했다.

그 만큼, 소일초의 밑으로 모여드는 사람의 수는 많아지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三十六 章

 

         登天魔勢에 들어가다.

 

 

 

등천마세------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천하의 이대세력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명성과 세력에도 불구하고 그 본거지가 알려지지 않은 신룡과 같은 단체,

이것은 뜻밖에도 절강성 서천목산(西天目山)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등천마세……

무림에 나타난 지 일년 만에 사마무림을 통일하고 천하를 양분한 초유의 잠재력을 지닌 그들……

지난 이년을 피로써 보낸 공포의 단체,그런 등천마세는 오늘 별난 손님을 맞고 있었다.

무적검이라는 이름을 지닌 덥수룩한 청년,

이 등천마세의 삼교주(三敎主)인 취풍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로 그의 정인이라 한다.

그리고,

그는 대교주의 친위처형대(親衛處刑隊)인 은검삼형제의 팔을 자른 인물로 등천마세에 새로운 강자의 한 사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처형을 명한 대교주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섰다고 했다.

이는 등천마세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림은 강자들의 땅, 특히 사마무림은 더욱 그러한 것……

등천마세 역시 강한 자가 쥐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등천마세의 많은 인물들이 오늘 찾아온 무적검이란 청년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 × ×

 

소일초,

그는 아주 천천히 청석 이루어진 길을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왼팔에는 귀여운 여아가 안겨져 있다.

이곳은 등천마세의 핵심부로 이르는 길……

그는 이미 취풍녀가 내준 한 채의 전각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전각에 이르기 까지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낯선 그에게 살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 무적검이란 청년고수가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등천마세로 들어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수한 전각들, 그리고 사람들, 등천마세는 과연 사마무림의 종주였다.

소일초가 대리고 있는 여아는 물론 역근천골공으로 몸을 줄여버린 주소아다.

주어진 전각에 들어가 탁자에 앉았다.

주소아가 맞은 편의 의자 앞으로 다가서더니 몸이 스르르 커졌다.

[엇, 옷 터져!]

소일초의 놀람에도 그녀는 생글거리며 그대로 역근천골공을 풀어버렸다.

그러나 소일초의 염려와는 달리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 걸치고 있던 작은 여아의 옷은 두겹으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몸이 커져버린 지금 두 겹의 옷은 한 겹의 크고 넓은 옷으로 변해 역시 그녀에게 꼭 맞았다.

소일초가 감탄을 발했다.

[감쪽같다. 아무도 조금전의 꼬마로 볼 수 없겠어.]

[이래야 아무데서고 몸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그때 금릉에서 네가 잘 때 잠한 숨 안자고 내 옷을 줄이고 겹쳐서 만들었던 거야.]

주소아가 말했다.

[그들도 어딘가에 들어와 있겠지?]

[그렇겠지. 그들은 이곳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소일초가 말한다.

[언제까지 그들이 하는 짓을 보고만 있어야 해?]

[아니, 그들이 이곳을 장악할 때 까지만, 그리고 이들 역시 삼수와는 철천지한이 있으니까 삼수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모르겠다. 나는 그저 소아가 시키는 대로만 하지. 도무지 귀찮아.]

주소아가 찻주전자를 흔들어보이며 말한다.

[우리 술이나 마실까?]

[좋아, 등천마세에 입성한 기념이다.]

주소아가 찻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러나, 부어지는 것은 향기로운 술이었다.

바로 백송균화의 신통력인 것이다.

이때,

취풍녀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당신, 이곳이 마음에 들어요?]

[괜찮아.]

취풍녀는 소일초의 옆으로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꼬마를 놓고 대작을 하다니 처량해 보이는 군요.]

[나에겐 가장 좋은 술상대야.]

소일초는 그녀에게 덤덤하게 말하며 주소아에게 술을 따라 준다.

취풍녀가 들어서는 순간에 다시 어린 여자아이로 변해버린 주소아는 취풍녀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술을 홀짝들이킨다.

[전에 마셔본 그 술이군요. 아주 좋아요.]

취풍녀는 술향기를 맡아보고 단번에 알아챈다.

그리고 주저않고 한 잔 마신 후 소일초에게 몽롱한 시선을 보내며 말한다.

[이곳에서 삼교주 다음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군지 아셔요?]

[……?]

[바로 사은자(四隱者)예요.]

취풍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어차피 당신은 대교주에게 도전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당신은 이 등천마세를 털도 뽑지 않고 삼키려는 지도 모르죠.]

취풍녀는 예의 퇴폐적인 어투로 말했다.

[만약 제 말이 맞다면 사은자(四隱者)를 포섭하셔요. 그들은 강해요. 그리고 우리 삼교주 외에는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르죠.]

소일초는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 이곳을 차지하고 싶은 생각 같은 것은 없어. 그리고 이 등천마세의 진짜 주인을 알고 있다. 뺏어도 그에게서 뺏지, 대교주 따윈 허수아비에 불과하게 될 걸?]

[등천마세의 진짜 주인 이라니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인데……]

취풍녀가 어리둥절한다.

[이미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야. 너도 살고 싶다면 그들의 말을 따르는게 좋아.]

[그런데 사은자는 누구지?]

주소아가 어리고 깜찍한 목소리로 물었다.

취풍녀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야 마나를 결정하려는지 소일초를 보았다.

소일초의 눈 역시 궁금하게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사마귀……]

[사마귀!]

소일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그토록 수소문 했는데 이곳에 쳐박혀 있었다니……)

사마귀(四魔鬼)……

그들은 등마제를 통하여 이곳에 들어왔다.

그러나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는 탁월한 무공으로 이곳에서 사은자를 자처하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라있었던 것이다.

사마귀……

이들은 도대체 연관이 되지 않는 곳이 별로 없다.

백인장과도 소일초를 통해 어느 정도 연관이 있으며 녹림맹과는 끊을 수 없는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등천마세에 몸을 틀고 있다니……

[그들을 알고 있어요?]

[알지. 아주 잘. 그런데 그들의 무공이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을 텐데?]

소일초가 회의적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그들은 무림에 알려진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요. 더우기 그들은 함께 행동하므로 넷이 모이면 대교주도 상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정도예요……]

[그럴리가……]

[정말이에요. 어쩌면 그들도 등천마세를 노리고 있을지 모르죠.]

등천마세 과연 사마의 인물을 끌어 모은 곳인지라 복잡다단했다.

강자가 여럿 존재하기에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는 아무래도 오합지졸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중심으로 힘이 합쳐지기만 하면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세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순간,

고오오-----!

사방을 진공상태로 만들면서 정적을 찢어 버릴 듯한 무서운 소리가 들리며 전각의 창문을 뚫고 소일초를 향해 폭사되어 오는 것이었다.

주소아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가공할 검기……)

동시에 소일초의 몸에서 무서운 검기가 일어났다.

갑자기 천지를 꿰뚫어 버릴 듯 다가오던 소리가 창문 앞에서 딱 그쳤다.

세 사람의 시선이 창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일초의 전각 밖 창문……

한 사람이 전각 안의 소일초와 일 장 간격을 둔 채 우뚝 서 있었다.

 

소일초와 대치한 채 창밖에 서있는 인물,

그는 일신에 희디흰 백의(白衣)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머리에는 질끈 흰 띠를 매고 있었으며……

등에는 비스듬히 검을 메고 있었다.

[무적검, 들어가도 되는가?]

문득 취풍녀가 몸을 일으켰다.

[이사형(二師兄)……오랜만입니다. 들어오셔요.]

창밖의 백의 중년인은 몸을 돌려 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빨아들일 듯이 소일초만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전신에 감도는 은은한 긴장의 빛……

소일초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도 않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좋아……대단하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그는 취풍녀을 향해 싱긋 웃어보인다.

[사매……훌륭한 사내를 택했군, 축하한다.]

그런 다음,

[무적검……잘해보게……]

소일초에게 한 마디 던진 그는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의 신형은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소리없이 꺼져버린다.

주소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자기의 흩어놓은 내공을 결집시키지 않으면 당해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소일초는 취풍녀를 주시하며 말했다.

[이교주 마금석이겠지?]

[맞아요……그가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지요……]

[음……]

소일초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 이교주 마금석……신형검기를 사용하고 있다. 구마존의 무공을 완벽히 보완하여 자신 만의 검공으로 만든 모양이군……그 정도면 칠십이기재의 한사람보다 처지지 않는 능력……)

신형검기(身形劍氣)……

이교주 마금석이라는 인물은 검장권지의 무공을 모두 넘어서 모든 것을 검으로 통일 해낸 것이다.

그가 장(掌)을 뻗어도 검이며 권(拳)을 뻗어도 검이다.

몸에서 발산되는 기도는 검기이며 전신이 완벽한 움직이는 검인 것이다.

그러나,

이교주 마금석은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었다.

소일초는 마교칠십이절기에는 얼렁뚱땅했지만 자신의 일초검공은 끝없이 발전시켜온 것이다.

마교칠십이절기의 장점들 마저 흡수하여 일초검공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었으니……

스스로 어느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단 일초에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몸으로 검기를 발산시키지는 않지만 바로 폭발치듯 일초검공을 펼쳐낼 수 있는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는 것이다.

이교주 마금석은 조금이라도 더 다가갔다가는 폭발해버릴 것 같은 소일초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취풍녀는 의기양양해 지고 있었다.

언제나 자기를 가볍게 보고 틈만 나면 덤벼들고 하던 마금석이 진땀을 흘리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소일초가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일어버린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분만 곁에 있으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나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의 삶을 찾는 거야.)

그녀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주소아가 긴장을 풀면서 말했다.

[대단해……무림의 열 손가락 안에 들 고수야. 당년의 사진성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야……]

소일초가 고개를 저었다.

[사진성 보다는 약해,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풍녀는 어린 주소아가 무공을 평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무지 다섯 살짜리 꼬마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은근히 그 어린 꼬마에게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알 수 없는 어떤 힘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 ×

 

[빌어먹을 사마귀 자식들……이곳에 엎드려 있었다니……천산갔다더니……]

소일초는 화를 내고 있었다.

사마귀의 도움을 받았으면 사파에 관해서는 훤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그들의 특별한 능력과 무공이었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사진성에게 역으로 당했을 때도 사마귀가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아예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마귀는 정뇌(井牢)를 탈출할 때 소일초에게 무림에 나오기만 하면 자기들을 찾으라고 했던 것이다.

녹림맹에 가면 자기들을 찾을 수 있다고 일러주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원제일의 신비인 이라는 황녹천을 찾아가 비밀을 까발리겠다고 허풍쳐서 그들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색귀는 그게 늘 서있다면서……]

주소아가 소일초의 귀에대고 묻는다.

[외간 남자 물건에 관심 갖는 건 정숙한 부인네가 할 짓이 아니야.]

[농담일 뿐이야. 그런데 사마귀가 이제 널 알아 볼 수도 없을 텐데 네말을 들으려 할까? 그리고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사부라고 큰 소리치면서 너를 부리려 할 지도 모르는데……]

소일초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한다.

[나에겐 비장의 수단이 있어, 그들은 결코 나를 거역하지 못해.]

[왜?]

[나는 백인장의 소장주(小莊主)야. 얼마든지 그들을 다시 잡아서 정뇌에 가두어 버릴 수 있어. 그들은 아버지에게 죄를 지은 게 있기 때문에 다시는 백인장 근처에 가려고도 하지 않아.]

주소아가 그의 몸위에 올라가며 말한다.

[그럼, 지금 한천이기에게 부탁해서 그들을 찾아달라고 할까?]

[나둬! 어차피 이곳은 한천이기의 손에 다 들어가게 돼, 이곳에 삼수가 없는 것을 알았으니까 빨리 다른 곳에 가볼 생각이나 해봐.]

 

× × ×

 

숭산 태실봉에 있는 정천보의 넓은 대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슬픔과 애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이런 애도의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인가?

대전에 가득 모인 무림인들은 무더위에도 아무 불평없이 모여있다.

그렇다.

그들은 단지 슬픈 것이다.

중원의 정기를 수호하고자 등마제에 잠입했던 수많은 중원의 젊은 혼이 누구를 위해 죽어갔단 말인가?

그들의 죽음이 그토록 숭고한 것이었기에……

그들의 넋은 무림인들의 뜨거운 슬픔을 받아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은 그들의 장례를 치르는 날,

각지에서 그들을 애도하기 위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 누군가가 단상에 올라서 죽어간 정천수호군의 용사들을 애도하는 애사를 낭독하고 있다.

 

------ 피끓는 협혼(俠魂)들아……

한 줄기 정의라도 지키고자 목숨마져 바쳤던 의협(義俠)들이여,

그대들은 죽었으나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있으니……

그대 죽어 슬픔 대신 영광을 얻으라……

그대은 이제 영원하 중원의 혼이 되었도다.

중원의 정의를 중토에 영원히 뿌리내리고……

살아남은 우리들은 그대들을 본받아 이 땅에서 사마(邪魔)의 무리를 영원히 제명하는데 한 목숨 다 바치리라.

 

정천수호군,

정의로 무장했던 젊은 의인(義人)들이 모였던 것……

등마제주와의 결전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칠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삼백 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등마제의 위세는 오히려 높아만 졌고,

무림인들은 정천보의 힘에 회의를 품게 하는 계기가 되기까지 했다.

허나,

그들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은 죽어서도 무림인들에게 숭고한 분향(焚香)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뜨거운 의혈(義血)을 가슴에 담은 중원의 정파인들은 아무말 없이 차례로 분향을 하고 있었다.

대전의 한쪽에 마련된 칠백여 개의 위패(位牌)……

그것은 정천수호단의 죽은 영웅들의 것이다.

대파산에서 회수해온 시신들은 그 신분을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짓이겨진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관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서로의 살점과 뼈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분향을 하는 무림인들의 표정은 허탈하고 침통한 것이었다.

한데 문득,

[소림사의 고승들께서 오셨습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과연, 서른 명 정도의 승려들이 가사차림으로 나직히 불호를 외우며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동안 분향은 중단되고,

스님들이 정천수호군의 위패 앞에서 나직하게 그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점점 그들의 합창 소리는 대전을 가득 매우고 분향객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었다.

얼마 후 분향은 다시 시작되었고 분향한 사람들은 정천수호군의 장렬함과 등마제주의 악랄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 네 사람의 영기발랄한 청년들이 단상으로 올라서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본 정천보의 위대하신 보주(堡主)님께서 잠시 후에 중대한 말씀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 분향객들께선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전안은 갑자기 조용해 졌다.

신비에 싸여있는 정천보주가 중인(衆人)들을 상대로 이야기 한 적은 지난 이 년 동안 한번 도 없었던 일이다.

일순 어디선가 잔잔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가 싶더니, 다음 말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 하고 다시 사방에서 들리기도 하는 신비로운 음성이었다.

[본좌의 불찰로 말미암아 원통하게 죽어간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신 무림의 영웅들께 감사드리오.]

물같이 잔잔한 음성, 세상을 달관한 듯한 어조……

대전의 모든 무림인들로 하여금 경복하게 하고 있었다.

[다시는 무림에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여러분 앞에 다짐하면서 본좌는 오늘 탕마사십사객(蕩魔四十四客)을 무림에 내보내겠소이다.]

그 음성은 듣는 이의 영혼을 맑게 씻어내리는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계속 들리는데……

[탕마사십사객은 오로지 피로써 악인들을 처단하게 될 것이외다.]

탕마사십사객……

대전에 있는 중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이 누군지를 모른다.

생소한 말이었다.

그러나, 신비하게 들려오는 정천보주의 음성으로 보아 그들은 일천 명의 정천수호군 보다 더 가공할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탕마사사객(蕩魔四四客)은 지금 당장 무림으로 떠나라. 마(魔)를 척결하고 이 땅의 정을 수호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라……]

더이상 정천보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분향객들은 새롭게 들려오는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명을 받듭니다.]

천지사방에서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합창하듯이 들려왔다.

탕마사사객이 출발한 것이리라……

 

정천보주……

그는 주소아의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는 인물인데……

그리고,

파양호의 깊은 호수속에서는 하나의 섬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주소아 그녀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알까 모를까?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第 三十五 章

 

      영원한 사랑의 맹세

 

 

 

[호호호……그래서 취풍녀가 지금 널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고있다는 거야?]

[그럼, 보기보단 영 멍청하더라구. 믿는 듯 하기에 풍을 더 쳤더니 영락없이 넘어가더라……]

주소아가 소일초의 몸위에 엎드려 있다.

[그러면 취풍녀를 좀더 이용해야 겠어. 네가 취풍녀를 구워삼아서 그들의 본거지로 가자고 해.]

[싫다. 이제 동선장으로 돌아가자. 응! 시키는 데로 다 해줬잖아. 등마제에도 참가했고 위에도 올려줬잖아.]

주소아가 눈을 흘겼다.

[모든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어? 어쩌면 이들의 우두머리가 삼수(三手)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들어?]

[삼수면 어때, 그들이 평생 신분을 감추고 산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그때 쳐부수면 되지.]

[아이구 이 태평, 고모부하고 고모는 생각지도 않지?]

소일초는 여전히 별 걱정 하는 눈치가 아니다.

[아무도 우리 백인장을 넘보진 못해, 다들 스스로 어딘가에 숨었을 거야.]

[…………]

[아버지가 병상에 계셨다 해도 원로들이 있는 한 백인장은 난공불락이야.]

주소아는 답답했다.

소일초가 고집을 부리고 취풍녀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면 이 집단의 깊은 비밀을 알아내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일초의 귀에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소일초의 눈이 갑자기 크게 뜨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정말이야?]

주소아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만 끄덕인다.

[두 말없기다.]

[그래! 약속은 지킬 테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나 해.]

[알았어. 뭐든지 시키기만 해. 대교주이건 소교주이건 몽땅 잡아 바치라해도 할께.]

 

× × ×

 

달빛이 은가루처럼 떨어져 내리는 밤이었다.

이 어둠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그렇듯이 밤의 거래는 이루어 지고 있었다.

사내와 여인 사이에……

침실이었다.

은은히 타오르는 황촉불을 뒤로 하고 침상에 걸터앉아 마주보는 두 사람이 있다.

[정말 부인을 만나고 오셨어요?]

[나는 거짓말 하지 않아.]

(불필요할 때는……)

[당신 정말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다 잊어 버렸어. 하지만 십칠팔 년 쯤 전에는 분명히 하늘에 있었어.]

소일초의 진짜같은 거짓말이 또 시작된다.

하기사 십칠팔 년 전에는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으니 말은 된다.

[당신 나이는 그럼 얼마예요?]

[내가 형씨라고 불렀던 사람이 지금은 백 수십살이야.]

취풍녀는 더욱 더 자극적으로 소일초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다.

소일초는 가만히 묵인하고 있다.

이윽고 취풍녀는 자신의 옷을 다 벗고 면사만을 쓴 채 소일초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그녀가 소일초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소일초의 손이 취풍녀의 손을 거부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너를 사랑까지는 몰라도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대하고 있었다.…한데……]

[?]

[지금……나는 너에게 아주 싫증이 나는 중이다.]

[당신 무슨 그렇게 섭섭한 말을……제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

취풍녀가 소일초의 손을 끌면서 말했다.

[말은 잘들어. 하지만 너무 많이 숨기고 있어……이러다가 어느 날 아침 또 불쑥 날 죽이겠다고 찾아오는 놈들이 있고 너는 옆에서 구경만 하게 될 거야.]

[이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맹세할께요.]

그녀는 면사속의 커다란 눈망울로 간절히 소일초를 보았다.

[그런게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무척 기분 나쁘거든.]

소일초는 다시 그의 손을 취풍녀에게서 빼오면서 말했다.

[지난 오일 동안…… 넌 오직 나의 몸을 가지고 놀았을 뿐……나에 대해서도 그다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너에 대해서도 거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어……오늘아침에 와서는 그런 수모를 주었지……]

소일초의 말에 취풍녀은 할 말을 잃은 듯 침묵을 지킨다.

그러다, 그녀는 슬그머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버린 소일초를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간절하게 소일초에게 뭔가 호소하는 듯 했다.

소일초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이 여자는 상당히 남자를 밝히면서도 순진해 빠진 것 같을까? 연극같지도 않은데……)

대체 이 여인의 정신구조를 파악해 낼 수 없었다.

(소아에게 물어보면 대충 알겠지……)

문득, 취풍녀은 자신의 면사를 슬며시 걷어올린다.

그리고, 그녀는 독백하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좋아요……당신이 원한다면 저의 모든 것을 보여 주겠어요……]

소일초는 그녀가 이런 행동을 돌연하게 보일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도 주소아의 쪽집게 같은 예측에 감탄하고 있었다.

취풍녀는 자기 앞에서 한번도 벗지 않았던 그 면사를 벗어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제 완벽한 알몸이 된 것이다.

나이는 이십 육칠 세 정도, 보면 볼수록 얼굴에 어떤 요사스런 기운이 어려 있는 듯 사람을 잡아 끌어당기며 점점 아름답게 보였다.

이런 여인이야 말로 한 번 관계하게 되면 남자가 평생 버릴 수 없는 그런 여인인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 보다는 세 번째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취풍녀……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것을 바치겠어요. 영혼까지 다 가지셔요.]

소일초는 찔끔하면서 힐끗 눈을 들어 천정을 보았다.

[그대신 당신도 저에게 완전한 사랑을 주세요.]

완전한 사랑……

그러자면 정신과 육체 다로 하는 남녀간의 사랑을 하자는 말,

무슨 뜻인지 알아챈 소일초가 잘라말했다.

[그건 안돼, 깊이 관계를 맺어 버리면 다시는 하늘로 돌아갈 수 없어.]

그가 말하는 하늘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주소아를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자기도 모를 것이다. 거짓말이니까.

[믿기는 어렵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것까지 바라진 않겠어요. 대신 다른 때와 같이만 해줘요.]

 

소일초는 취풍녀의 몸 위에서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꾸만 뒤통수가 건질 거리는 것을 느끼며……

취풍녀의 몸 구석구석을 색귀에게 배웠던 이론과 주소아와의 무수한 장난(?)을 통해 익힌 실재 기술로서 비벼대고 있는 것이다.

취풍녀는 황홀한 열락 속에서 무엇인가를 쉴 새없이 내뱉고 있다.

[아아……저는……등천삼교주 중 세번 째로……아…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 다시 말하고 있는 취풍녀……

그녀의 무색깔 요기스린 얼굴은 이때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채 할 때와는 또 다른 걸……)

소일초는 시간이 흐를 수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절묘하게 그녀를 다루고 있었으며,

취풍녀은 신음을 섞어가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중얼거렸다.

[헉헉……제 역할은 등마제를 통하여……아아……무림의 고수들을 끌어들이는 것……우리는…헉…등천마세의 세 주인……]

그녀를 절정에 달한 손놀림과 몸놀림으로 다루고 있던 소일초의 눈에 반짝 기광이 일었다.

등천삼교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등천마세와 관련이 있을 줄은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바로 그 세력의 삼인자라니 놀라운 사실이었다.

등천마세……

이 조직은 정천보과 함께 현세의 무림을 양분한 거대 세력이 아닌가?

취풍녀의 나신은 활처럼 휘어지며 신음과 같은 중얼거림을 계속 흘려내고 있었다.

[헉헉……등천마세의 실질적인 주인은 바로 대교주이고……그는 무림을 제패하려는 원대한 야망을 지니고 무림에……헉헉……]

소일초는 그녀가 하는 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의무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따가운 뒤통수를 의식하고 있었다.

취풍녀의 말을 귀담아 들을 사람들은 여럿 일 것이기 때문이다.

취풍녀는 이런 순간에도 심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은 다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교주……헉헉……바로 나의 첫남자이며, 대사형……아흑……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

취풍녀……

그녀는 등천마세에 관한 그녀가 아는 모든 사실을 지금 이야기 한다.

 

등천대교주 그는 또한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하며 무서운 지혜를 지닌 인물이다.

그러므로 당금의 고수들 어느 누구도 그를 상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교주 역시 무서운 야망을 지닌인물이다.

그러나, 대교주와 이교주 그들은 제각기 야망을 지니고 있기에 등천마세의 힘은 분산되어 정천보를 누르지 못하고 있다.

취풍녀 그녀는 대교주 오공천(吳恭天)에게 일찌기 무공을 익히다 몸을 빼앗긴 후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여 왔다.

오공천은 그녀의 몸을 필요할 때 마다 요구했으나 그녀를 아내로 맞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린 천생적인 요기로 인해 그녀는 향상 두 사형과 심지어 사부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았으며,

오공천에게 몸을 빼앗긴 후에는 이사형인 마금석(馬金錫) 역시 몸을 요구해 왔었고 사부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그녀보다 무공이 고강했기 때문에 반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번 무너진 그녀는 그들이 요구할 때마다 몸을 제공하는 여인이 되어버렸으며,

때때로 무림에 나와서 자신이 남자를 요구할 때도 있게 변해버렸다.

꿈은 사라지고 사내들에게 짓밟히고 자신이 더럽힌 육체만 남았다.

등천마세는 등천마교의 후신이다.

기적적으로 혈기대종사의 겁을 피한 인물들이 남몰래 등천마교의 옛터에서 흩어진 비급들을 발굴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단체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대의 인물들에 비하여 월등히 뛰어난 기재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다시 엄청난 위세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의 가장 큰 원수로 삼수를 꼽고 있다.

삼수가 등천마교의 무공, 그러니까 정통마교에서 가지고 나왔던 마교칠십이절기 중 상당수를 장강 변에 있던 등천마교 본단에서 찾아내어 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혈기자가 일으킨 혈겁의 주역들이 아닌가?

그러한 사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그들은 등천마세가 삼수가 만든 세력일 것이라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천마세를 건설한 주역들은 제이대 등천구마존들이었다.

제일대 등천구마존의 뒤를 잇기 위해 절지에 보내져 무공을 익히던 중이었기에 그들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좋아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소일초도 주소아도 아닌 한천이기인 원천기와 한천녀,

그들은 자신들이 기획했다고도 할 수 있는 등천마교의 후신을 찾았으니 아마도 다시 손에 넣고 그들의 천지파멸인가 뭔가에 사용하려 할 것이다.

소일초는 취풍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말이 흘러나오도록 하면서 연방 천정으로 신경을 모았었다.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꼬투리 잡을 지 모르는 감시자를 의식하며……

그러나,

이제는 아마도 잘 했으니 상을 받게 될 것이다.

 

 

× × ×

 

[다시는 너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어.]

주소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지금 그녀는 막 취풍녀에게서 돌아온 소일초를 씻기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는 눈물이 다 나왔어, 내가 시키고도 얼마나 후회했는데……]

그녀는 소일초의 몸을 한곳도 빠뜨리지 않고 씻고 또 씻었다.

얼마후,

그들은 나란히 침상에 누워 꼭 껴안은 채 도란도란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부턴 절대로 떨어지지 말자.]

[그래 우리도 살아선 연리지가 되고 죽어선 비익조가 되자.]

주소아가 백낙천의 장한가의 한 구절로 답한다.

몇 년을 함께하며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깊이 깨닫고 있는 그들……

그들은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아침……

소일초와 취풍녀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마차 안에는 소일초가 품에 다섯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아(女兒)를 안고 있었다.

귀엽고 앙증맞으며 깨물어 터뜨리고 싶을 정도의 여아였다.

취풍녀는 소일초가 아침에 어디서 데려왔는지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 와서 함께 가야한다고 할때 어리둥절했었다.

영문을 물어보고 누구냐고 물어봐도 얼버무려 버리고 무조건 자기가 데리고 있어야 할 아이라고 했다.

심지어는 그 여아가 옆에 없으면 자기는 죽고 말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취풍녀도 예쁜 아이가 싫지 않아서 그들은 지금 함께 가고 있었다.

한데,

곳 취풍녀는 행동의 제약을 그 여아로 인해 받아야만 했다.

도무지 소일초의 옆에 다가가지도 못하게 여아가 방해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가는 마차를 주시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안개 속에서 우뚝 서 있는 그들은 바로 한천이기였다.

한천이기……

그들은 언제나 이렇듯 소일초의 그림자처럼 그의 주위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천지파멸의 뜻이 이제보터 본격적으로 이 땅에 펼쳐지는 것이다.]

원천기의 말이었다.

그러자, 한천녀가 무감정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정통마교주가 될 것이다……우리가 등천마세를 거둠으로 인해서 그는 진정한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수족이 되는 것이다……군림보다는 복종하는 정통마교주가……]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이전버튼 1 2 3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