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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단지회 총단> 단지회 건물. 건달들이 긴장한 채 경비 서고 있고

창고 같은 건물. 건달들이 지키고 있고

그곳으로 오는 소수마녀와 사우. 검마녀와 도마녀가 뒤따라온다.

건달들이 긴장하며 인사하고. 한 놈은 급히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우와 소수마녀. 검마녀와 도마녀는 입구에 서서 주변을 경계하고. 건달들은 두 여자의 눈치를 보고

소수마녀가 사우를 따라 들어간 창고 건물 내부. 중앙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죽 진열되어 있다. 장롱, 주방용 그릇, , 반짓고리, 신발 등등. 바로 청풍의 집에 있던 물건들이다.

사우; [막내가 말한 대로 이청풍의 집 살림살이를 모두 옮겨놓았네.] 물건들이 진열된 중앙으로 가며 아부

소수마녀; [이게 전부인가요?]

사우; [얼마 안되지?]

사우; [워낙 궁핍하게 살던 인간들이라 갖고 있는 게 별로 없었어.]

소수마녀; [그렇군요.] 물건들을 살피고

사우; [그런데 궁금한 게 있네 막내.] 눈치 보며 말하고

소수마녀; [말해보세요.] 허리 숙여서 반짓고리 뚜껑을 열고

사우; [대체 이런 잡동사니를 왜 옮겨놓으라고 한 건가?] 소수마녀가 반짓고리 뚜껑을 여는 걸 보며

소수마녀; [왜일까요?] 반짓고리 안의 물건들 살피고. 바느질 도구와 함께 몇 가지 싸구려 패물이 들어있다. 반지, 목걸이, 비녀, 머리 장식등

사우; [종적이 사라진 이진진이란 년과 그 어미를 찾아낼 단서를 얻기 위해서?]

소수마녀; [틀렸어요.] ! 화려한 꽃 장식이 달려있는 머리 핀을 하나 집어들고

소수마녀; [이것들이 장차 우리 암흑마가를 천하의 주인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답니다.] 머리핀을 살펴보며 차갑게 웃고

 

#127>

험준한 산. 신비로운 무산과 달리 음침하다.

덜컹! 덜컹! 그 산속의 험한 길을 가고 있는 마차 한 대 두 마리씩 짝 지어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인데 상당히 크고 전체가 강철로 만들어졌으며 창문은 없다. 좁으면서 옆으로 긴 환기창이 지붕 근처에 드문드문 나있고.

마부석에는 죽립을 눌러쓰고 망토를 두른 음침한 인상의 마부 두 명의 앉아있다. 마부들 중 한명은 <신마유희> 등에 나온 자객 독검사랑이다. 이 작품에서도 독검사랑. 검을 차고 있고. 고삐는 다른 인물이 잡고 있다.

 

#128>

흔들리는 마차 내부. 어둑한데 바닥에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 누워있다. 구석에 웅크린 채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남녀가 뒤섞여있는데 모두 20살 아래의 소년 소녀들이다. 여자들은 숫자가 적어서 5명 정도.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 중 한명 크로즈 업. 바로 청풍이다.

흔들리는 마차 바닥

[!] 무언가 느끼며 정신이 돌아오는 청풍. 하지만

청풍; [...]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고

청풍;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눈 감은 채 생각하고

청풍; (믿기지 않지만... 정신을 잃은 사이에 몸의 상처가 모두 나았다.) (누군가 대단한 효과를 지닌 영약을 먹여주었다는 건데...) 생각할 때

끼익! ! 드드드! 무언가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청풍; (바퀴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마차 안이겠구나.) 눈 감은 채 생각하고. 이어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기억. #113>에서 소수마녀가 말하던 장면들이다.

 

소수마녀; [맹세부터 해라! 구명지은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차갑게 말하고

소수마녀; [지금의 그 맹세, 잊지 마라.] ! 손을 하나 내밀어 펴고.

검은 옷을 배경으로 새하얀 손이 펴지고

회상 끝

 

청풍; (그 여자로부터 맹세를 강요당한 후 기억을 잃었었다.)

청풍; (그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고 또 어머니와 진진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 모른다.)

청풍; (만일 그 여자 때문에 어머니와 진진이에게 불행한 일이 생겼다면...) 이를 악물고

청풍;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바득!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고. 그러자

[자기는 정말 한이 많은 것같네.] [정신이 들자마자 이를 갈아대는 걸 보면...] 머리맡에서 누구의 말이 들리고.

청풍; (내 또래 계집의 목소리...) 눈을 뜨며 머리맡을 올려다보고. 직후

청풍; [!] 움찔! 놀라고

청풍의 머리맡. 마차의 벽에 기대 여자가 앉아있는데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있고. 그 바람에 청풍의 머리는 여자의 벌린 가랑이 사이에 위치해 있다. 치마를 입고 있긴 해도 아랫도리가 들여다보이고

청풍; (이런...) 급히 고개 돌리고

정정; [순진한 척 할 거 없어.] [살인상단(殺人商團)에 팔려올 정도의 인생이라면 닳고 닳아서 모르는 게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웃는 정정의 얼굴 처음으로 보여주고. 직전 작품 <신마유희>에 나온 정정 캐릭터. 그때보다는 나이가 어리다. 18세로 청풍과 동갑이다. 마차 안이 어두워서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이년은 사대마가중 번뇌마가가 살인상단에 잠입시키려는 간세다.

청풍; [살인상단?] 놀라고

청풍; [누굴 죽이는 행위를 물건처럼 파는 장사치들이 있는 거냐?] 고개 조금 돌려 정정의 얼굴 보며 묻고.

정정; [이름만 듣고도 살인상단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차리네.] 웃고

정정; [맞아. 살인상단은 천하 삼대살수조직 중 하나야.] [돈을 받고 누군가를 대신 죽여주는 걸 업으로 삼는 조직이지.]

청풍; (청부살인조직이란 게 실제로 있었구나.) + [그런데 살인상단에 팔려왔다는 건 무슨 뜻이냐?]

정정;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니?] 놀라는 표정.

더 말하지 않고 대답 기다리는 청풍

정정; [맙소사! 정말 모르는 표정이잖아.]

청풍; [모른다.] [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이 마차에 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정정; [납치를 당했다는 거야?]

청풍; [납치라면 납치겠지.] 말하며 #113>의 장면에서 소수마녀의 손이 하얗게 빛나자 정신을 잃던 장면 떠올리고

정정; [그건 좀 예외적인 상황이네.] [살인상단은 자객으로 키울 인간들을 돈 주고 사는 게 원칙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갸웃하고

청풍; [자객으로 키운다?] 놀라고

청풍; [그럼 이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 돌려 둘러보고

정정; [살인상단이 자객으로 육성하기 위해 사들인 불쌍한 인생들이지.] 쓴웃음

정정; [대개는 부모가 돈 받고 팔지만 큰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서 팔려오기도 해.]

청풍; (그러고 보니...) 깨닫고

<이 마차에 타고 있는 이십여 명은 모두 내 또래거나 더 어린 소년 소녀들이다.> 누워있거나 쪼그려 앉아있는 소년과 소녀들의 모습. 잠이 든 놈도 있지만 불안과 초조의 표정으로 깨어있는 아이들도 많다. 그중에는 특히 덩치가 큰 놈이 하나 있다.

정정;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들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평생 가난 속에서 비참하게 살다 죽든지 인간백정이 되어서라도 풍족하게 살던지 결정해야하니까.]

정정; [나도 사창가로 흘러들어가서 몸을 파는 대신 자객이 되기로 결심 한 거야.]

청풍; (제법 강단이 있는 계집아이로구나.)

정정; [그렇다고 누구나 살인상단에 제 몸을 팔 수 있는 건 아니야.] [자객이 될만한 자질이 있는지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하기 때문이지.]

정정; [그런 면에서 우린 자부심을 갖어도 돼.] [백명이 지원하면 겨우 한두 명만이 살인상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까.] 배시시 웃고.

철두; [젠장, 그만 좀 나불대라.]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 구석에 누워있던 덩치 큰 청년이 궁시렁거린다. 키가 2미터가 넘고 근육질인 이놈의 이름은 철두. 곰같지만 외모와 달리 영악하다. 정정처럼 이놈도 다른 세력이 살인상단에 잠입시키려는 간세다. 이놈의 출신은 사대마가중 혈전마가다.

정정; [시끄러우면 귀 틀어막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눈 흘기고

철두; [뭐라고?] 벌떡! 일어나며 눈 부라리고. 주변에 누워있거나 앉아있던 청소년들 기겁하며 물러나고

철두; [한 주먹 감도 안되는 년이 누구에게 대드는 거냐?] 눈 부라리고

정정; [덩치만 크고 머리는 텅 빈 놈에게 대든다. ?] 표독하게 맞서고.

철두; [? 머리가 어쩌고 어째?] 주먹을 들어 휘두르려는 자세. 그때

청풍; [내 이름은 이청풍이다.] 일어나 앉으며 말하고

[!] [!] 일촉즉발이던 철두와 정정이 멈칫! 하며 돌아보고

청풍; [자객이 되려면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할 게 분명하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우리 대부분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고

철두와 정정, 다른 청소년들도 얼굴 굳어지고

청풍; [그래도 서로 돕고 협력하면 조금이나마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느냐?] 청소년들 돌아보고.

누워있던 청소년들도 진지한 표정이 되며 일어나 앉고

청풍; [다 함께 살아남도록 노력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 둘러보자

정정; [맞는 말이야.]

정정; [내 이름은 정정(貞靜)이고 열여덟 살이야.] [자객이 되려는 이유는 여기 있는 다른 계집애들과 대동소이할 테니 생략할게.] 대여섯 명 있는 계집애들을 돌아보며

철두; [철두(鐵頭)!] [열 아홉살이다.] 무뚝뚝

정정; [쇠 대가리...] [이름 한번 제대로네.] !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노려보는 철두

정정; [다행인 점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는 거야.] 눈 흘기고

정정; [덩치가 산 만한 게 누나 누나 하고 따라다녔으면 부담스러웠을 테니까.]

철두; [둘러대긴...] 궁시렁 대면서도 얼굴 풀리고

[정칠이다. 열일곱살...] [포곡령이다. 열 여덟살...] 사내 아이들이 말하고

난향; [난향이라고 해요. 열여섯살이구요.] 가냘프고 소심해 보이는 소녀가 눈치 보며 자기 소개를 한다. 난향이라는 이 소녀는 나중에 역할이 있으니 잘 묘사.

청풍; (큰소리는 쳤지만... 과연 저 아이들 중 몇이나 살아서 다시 세상을 보게 될지...) 아이들이 자기소개 하는 걸 보며 생각하고

청풍; (그 여자...) 소수마녀를 떠올리는 청풍

청풍; (날 황금수라들 손에서 구해준 대가로 요구한 게 자객이 되라는 것일 테지.) 이를 악물고

청풍;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살아남겠다.) (진진이와 어머니가 잘못 되었으면 대가를 받아내야 하니...)

[...] 야릇한 표정으로 그런 청풍을 보는 정정. 정정에게는 다른 신분이 있다.

 

#129>

마부석에 앉은 마부와 독검사랑. 마차는 좌우로 깎아지른 절벽인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정칠이다. 열일곱살...> <포곡령이다. 열 여덟...> <난향이라고 해요. 열여섯살이구요.> 마차 안에서 자기소개 하는 아이들 음성이 두 사람의 귀에 들리고

마부; [이번 회차의 아이들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독검사랑(毒劍死狼)...] 웃으며 마차를 돌아보고

독검사랑; [두고 봐야지. 과연 지옥십관(地獄十關)을 몇 놈이나 살아서 통과할지...] 음산하게 웃고

마부; [하긴 누구나 다 살아서 통과할 수 있으면 지옥십관이 아니겠지요.]

마부; [대신 지옥십관만 통과하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어엿한 자객이 되겠지요.] 마차를 몰며 말하고

<이청풍이란 아이를 주목하도록 하세요. 장차 우리 암흑마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으니...> 소수마녀의 말을 떠올리는 독검사랑

독검사랑; (이청풍...)

<과연 그놈이 단주(團主)의 기대에 부흥할지는 두고 봐야겠지.> 생각하는 배경으로 마차가 가는 앞쪽에 갑자기 길이 뚝 끊기고. 늪이 나타난다. 안개가 자욱한 늪인데 그 때문에 건너편은 안보인다. 안개 덮인 늪에는 고사목들이 여기저기 음산하게 서있고. 길은 늪에 의해 끊겨있다.

마부; [워워!] 고삐를 당겨서 말들을 세우는 마부

드드드 늪 쪽을 향해 멈춰서는 마차.

마부가 품속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서

삐이! 입에 물고 피리를 부는 마부

삐이! ! 새 울음 소리같은 피리소리가 늪지로 퍼지고

츠츠츠 갑자기 늪지 아래에서 무언가 길게 움직이더니

촤아! 이윽고 늪지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쇠로 된 다리.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 넓이다. 헌데

푸드득! 푸득! 늪지 위로 올라오는 철교 위로 길이가 일 미터가 넘는 뱀장어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다닌다. 전체 모양은 뱀장어인데 강철같은 갑옷으로 덮여있고. 길게 갈라진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돋아나있다.

푸드득! 첨벙! 수면 위로 올라오는 철교 위에서 꿈틀대던 뱀장어 같은 것들은 급히 늪으로 뛰어들고. 그러자

마부; [이랴!] 다시 말고삐를 채고.

다각 다각 늪지를 가로질러 생긴 그 철교 위로 가는 마차

마차가 지나가는 철교 좌우의 늪 속. 뱀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물론 수면 위로 올라온 철교 위에서 꿈틀대던 그 뱀장어같은 것들이다.

마부; (매번 지나갈 때마다 소름이 오싹 끼치는구만.) 곁눈질로 그 뱀장어같은 것들을 보며 긴장하고

마부; (흡혈독만(吸血毒鰻)...) (고대로부터 살아남은 공포의 뱀장어...)

<강철도 물어뜯을 정도로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데다가 그 이빨에는 지독한 독까지 묻어있다. 그 때문에 저놈들에게 물리면 사림이건 짐승이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빨 드러내며 걸죽한 늪속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뱀장어들

마부; (저 흡혈독만들이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살인상단의 비밀총단은 철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제 발로 살인상단에 죽으러 들어오는 인간은 없겠지만..> 따각 따각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마차. 그러자

촤아! 다시 철교는 늪지 속으로 갈아 앉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사라지는 철교. 철교가 있던 자리를 뱀장어들이 꿈틀대며 지나간다.

 

#130>

안개를 헤치고 철교를 통해 늪을 건너는 마차.

안개가 흩어지며 절벽이 나타나고. 그 절벽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다. 동굴 위에는 <殺人商團>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동굴 입구에는 얼굴에 <>자가 적힌 복면을 쓴 자들이 서서 절벽에 박혀있는 몇 개의 레버들을 조작하고 있다. 그 레버로 철교를 늪지에 갈아 앉혔다가 끌어올리는 것. 동굴 입구 조금 안쪽에는 아주 굵은 쇠창살로 루어진 문이 있는데 지금은 위로 올라가 있는 상태다.

[어서 오십시오 독검사랑님!] 복면에 <>자가 적힌 복면인중 한명이 다가오는 마차를 향해 고개 숙이고.

***살인상단의 자객들은 지도층을 제외하면 신분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쓴다. 복면에는 계급 별로 <> <> <>이 적혀있고 가장 낮은 계급의 자객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복면을 쓴다. 독검사랑은 <>자급이다. 천자급은 몇 안되고***

독검사랑; [다른 조()들은 도착했나?]

[! 독검사랑님의 무()조가 마지막입니다.] 대답하는 복면인

독검사랑; [그렇군. 수고해라.] 마차를 타고 복면인들을 지나가고

레버를 조작하는 복면인들.

촤아! 그러자 철교가 완전히 늪지로 가라앉고

끼릭! 다른 레버를 내리는 복면인 한명. 그러자

그그긍! 위로 올라가있던 쇠창살문이 천천히 내려온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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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피로 물들다 (4)

 

 

 

현무호에 왔던 이매봉은 혀를 찼다.

[! 한 발 늦었어.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겠는걸.]

근처 바위 위에 서있던 상관숭이 시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는 이십년 전에 좌검우도(左劒右刀)로 이름을 날렸던 관부의 고수 황보전호(皇甫戰虎)군요.]

이매봉이 말했다.

[은거했다질 않았나?]

상관숭이 말했다.

[속하가 살펴본 스물일곱은 모두 강호에서 활동을 하지 않던 자들이었습니다. 뭣 때문에 다시 강호에 나와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군요.]

이매봉이 말했다.

[옥황빙서 때문이야. 죽은 놈들이 외치는 소리도 못 들었어? 멀리까지 들리던데.]

상관숭이 이매봉 앞에 날아내리며 말했다.

[옥황빙서는 전설입니다. 아직 누구도 그걸 가졌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일곱째라는 자가 옥황빙서라는 걸 가졌겠군. 그러니까 그처럼 대단한 척하겠지.]

이매봉이 말했다.

[그 괴물을 잡아놓고 한 번 확인해보자구. 어때 너하고 한 번 붙어볼 만 하겠어?]

상관숭이 머리를 저었다.

[이백 초를 넘기지 못하고 찢어질 것입니다. 그자는 무공에 있어서 이미 일대종사(一代宗師)입니다. 어느 누구도 무공으로는 그의 앞에서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매봉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어. 살며시 접근해서 실험만 해보면 되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하고 말 걸?]

상관숭이 말했다.

[금은동철석의 오보(五寶)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매봉이 말했다.

[한 녀석이 사기치길래 그냥 줘버렸어. 한 삼년 있으면 다시 구하게 되겠지.]

상관숭이 아주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이매봉이 활달하게 말했다.

[이봐! 너희들 오신검(五神劍)은 지금도 충분히 강해. 그리고 삼년 뒤에 다시 오보가 준비될 테니 서두르지마!]

[알겠습니다.]

상관숭이 머리를 숙였다.

금은동철석, 이 다섯 가지의 정화는 상관숭이 속해있는 오신검(五神劍)의 검을 다시 녹여 보강할 중요한 재료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할 검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검이 된다.

상관숭은 머리를 숙였지만 지난 삼년을 기다렸는데 다시 삼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이매봉이 말했다.

[오보는 그 녀석을 찾는 중요한 단서다. 우리 물건들에는 특이한 향이 들어있다는 걸 녀석은 모르고 있어.]

상관숭이 불쑥 말했다.

[그를 좋아하는군요.]

순간 이매봉의 손이 춤을 추었다.

짜짜짜자작!

상관숭의 양쪽 뺨에 불이 튀었다.

그리고 이매봉의 발이 상관숭의 턱을 걷어찼다.

상관숭은 허공에서 뒤로 한 바퀴 까뒤집어진 후에 눈 위에 떨어졌다.

이매봉의 발이 상관숭의 머리를 밟았다.

상관숭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매봉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상관숭! 본회주를 청루의 기녀쯤으로 아느냐?]

상관숭은 머리를 들래야 들 수도 없었다.

[속하의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이매봉이 소리쳤다.

[죽여 달라는 소리 대신 용서하라고?]

[죽여...주십시오.]

상관숭이 힘없이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이매봉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살아나긴 틀렸다 싶었다.

이매봉은, 상관숭이 아는 이매봉은 죽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망설이거나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가 이매봉을 두려워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들이 있다.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거칠 것 없이 행동하고 거슬리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이매봉이었다.

상관숭도 그녀의 입에서 무시무시하고도 중대한 결정들이 장난처럼 이루어지는 것을 숱하게 봤었다.

이매봉이 말했다.

[본 회주를 빈정거리거나 억누르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상관숭! 여기서 머리를 박살내고 싶지만 바꿔 신을 신이 없어 그냥 둔다. 하지만 즉시 돌아가라. 돌아가서 형극(荊棘)의 방에서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라.]

형극의 방...

상관숭은 앞이 캄캄해왔다.

형극의 방에 들어간다면 죽어나오거나 미쳐 나오는 두가지 경우 밖에 없다.

약한 자는 모두 죽었고 강한 자는 미쳤다.

하지만 명이 떨어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 회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상관숭이 다시 일어났을 때 이매봉은 사라지고 없었다.

상관숭은 바람처럼 달려갔다.

형극의 방에 들어가는 것도 늦는다면 그 뒤에 어떤 후환이 생길지 모른다.

회주 이매봉은 여자인 것이다.

여자의 앙심은 처음에 풀어놓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보복을 당한다.

남자 보기를 소 닭 보듯 하는 이매봉에게 실언을 했으니 처음부터 그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한다면,

상관숭은 오보가 새로 완성되기 전에 자기는 시체로 변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매봉은 다정다감한 듯 하면서도 서릿발 같은 여자다.

다정다감함에 잠시 경계를 늦추었던 것이 실수다.

더구나, 제멋대로 인듯하면서도 거대한 조직을 조금의 실수도 없이 이끌고 있다.

이매봉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상관숭이 달려가는 방향은 서쪽이다.

같은 시간 이매봉은 냄새를 쫓아서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매봉은 자금산을 향해서 달려갔다.

(현천록 그 녀석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현무호에 일어났던 혈풍도 녀석 때문인지도 몰라. 재미난 일이야. 녀석을 만나고부터 계속 이상한 일들이 생기니... 게다가 옥황빙서라니 후훗!)

머릿속에 현천록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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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머니를 닮은 여인

 

 

 

오봉도인의 물음에 추명염왕은 막비강을 가리켰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이 어린 녀석에게 물어 보시오.]

오봉도인이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빈도더러 어린아이에게 물어 보라는 거요?]

삼촌정이 옆에서 급히 말을 받았다.

[곽 형의 말이 옳소. 도장은 저 어린 녀석에게 물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오.]

[좋소. 그럼 빈도는 오늘 파격적인 일을 한 가지 하겠소.]

오봉도인은 여기까지 말하더니 막비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이야, 너는 빈도와 인연이 많을 것 같구나. 도대체 무슨 일로 그들과 이런 싸움을 하느냐?]

막비강은 겉으로는 청수하게 보이는 이 노도사의 무서운 내력을 모르는지라 솔직히 대답했다.

[이 노적들이 제게 청구단서의 행방을 알려 달라기에 이곳의 대비석 밑에 숨겨져 있다고 말했는데도 믿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다행히 저 분 할머니와 개방 사람들이 저를 도와 주었습니다.]

오봉도인은 무엇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년 남짓 사이에 각처의 큰 비석이 모두 파헤쳐져 있기에 빈도는 여기의 큰 비석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과연 내 추측이 맞았구나. 그래, 청구단서는 찾아냈느냐?]

추명염왕이 냉랭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흐흐흐! 비급이 비석 밑에 있었다면 우리가 벌써 꺼냈지 당신이 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 같소?]

[그럼 비급은 지금 어디 있소?]

추명염왕은 막비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어린 녀석에게 있소.]

막비강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노마는 무슨 근거로 비급이 내 몸에 있다고 하는 거냐?]

추명염왕은 징그럽게 웃었다.

[노부는 네 놈이 석벽의 조각을 파괴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만약 그 가운데 비밀이 없었다면 넌 왜 그 조각을 파손시켰느냐?]

오봉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그렇다면 당신들은 더 이상 다툴 필요 없소. 비급이 이 비석 밑에 없으면 개방과는 무관하니 이 아이를 빈도가....]

추명염왕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받았다.

[당신은 이 어린 녀석을 데려갈 생각이오?]

[? 염왕은 내 행동을 제지할 작정이오?]

추명염왕은 소면호와 삼촌정에게 눈짓을 하더니 오봉도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셋이 한꺼번에 오봉도인을 상대할 속셈인 것이다.

오봉도인은 빙긋이 웃으며 막비강에게 말했다.

[너는 잠시 뒤로 물러서 있거라. 빈도는 그들을 수습한 다음 너와 함께 비급을 찾으러 가겠다.]

이때 소면호가 날카롭게 외쳤다.

[나 고금의 일장부터 먼저 받아랏!]

!

말소리와 함께 한 줄기 강맹무비한 장풍이 격출되었다.

오봉도인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막비강을 붙잡고 옆으로 슬쩍 피했다.

하지만 삼촌정이 구르듯이 추격하며 일장을 뻗어냈고 추명염왕과 소면호도 옆에서 각각 협공을 가했다.

오봉도인은 얼굴을 굳히더니 소매 속에서 우선(羽扇)을 꺼내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스스스!

그러자 세 명의 절정고수가 격출한 장풍은 거짓말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의 침착한 태도와 오묘한 초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막비강은 오봉도인의 오 장 뒤로 물러선 후 내심 몹시 흠모했다.

(만약 이분 노도를 사부로 모신다면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강탈한 막가 악적을 충분히 죽일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날수선랑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어 막비강의 귓전으로 모깃소리 같은 작은 음성이 전해졌다.

[아이야, 빨리 여길 떠나라! 저 도인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막비강은 내심 흠칫 놀랐다. 날수선랑이 깨우쳐 주지 않았다면 오봉도인의 청수한 겉모습에 그대로 속아넘어갈 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비강은 그런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박수를 치며 오봉도인을 응원했다.

[하하하! 정말 오묘한 초식이십니다!]

그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오봉도인을 치켜 올렸다.

파앗!

그러다가 쌍방의 격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벼락같이 몸을 솟구쳤다.

[어엇! 저 애송이가!]

[거기 서랏!]

네 명의 마두가 실색했을 때 이미 막비강의 모습은 숲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

 

기지를 발휘하여 마두들의 추격을 따돌린 막비강은 곧 역용환으로 용모와 옷차림을 바꾼 후 소흥부(紹興府)로 향했다.

금릉에서 소흥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무림인이라면 경신술을 펼쳐 하루 이틀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막비강은 무려 닷새나 걸려 겨우 소흥부에 도착했다. 혹시나 마두들에게 자신의 행적이 노출될까봐 경신술을 펼치지 못한 때문이다.

덕분에 막비강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소흥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흥부에 도착한 막비강은 길을 물어 약야계(約野溪) 부근의 경지하를 찾아갔다.

경지하를 찾아간 막비강은 높직한 강변 언덕 위에 한 채의 칠층보탑(七層寶塔)이 보고 내심 크게 기뻐했다. 칠층보탑이 있는 강변의 풍경이 대석비곡의 석실에서 본 산수화 조각과 완전히 일치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탑이 바로 영롱탑이겠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더니 드디어 난 청구단서가 있는 곳을 찾아냈구나!)

헌데 그가 흥분하여 영롱탑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어머니! 저 보탑에서 밤이면 빛을 흘리는 게 요정(妖精)일까요 요귀(妖鬼)일까요?]

돌연 어디선가 은방울 소리 같은 소녀의 음성이 전해 왔다.

[세상에 요귀가 어디 있느냐? 그건 다 무림인들이 양민들로 하여금 겁을 먹고 접급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다.]

막비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두들이 여기까지 쫓아온 게 아닐까?)

막비강은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강변에 자리한 초가집의 대나무 울타리 뒤에 두 개의 크고 작은 인영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모녀(母女)로 보이는 두 여인은 영롱탑을 응시하느라 막비강 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군! 두 여자가 다 눈에 익잖은가?)

막비강은 두 모녀의 옆얼굴을 보며 갸웃했다.

모녀 중 딸 쪽은 열 일곱 살 가량 되어 보이는데 바로 대석비곡에서 자신을 도와 준 연아란 소녀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다만 다른 점은 연아가 활달한 편에 비해 이 소녀는 새침하고 쌀쌀맞아 보이는 것이 틀릴 뿐이었다.

(어머니를 닮았다!)

그리고 모녀 중 어머니 쪽을 본 막비강은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여인은 바로 막비강의 생모인 한경파와 판에 박은 듯 흡사했던 것이다.

다만 이 여인은 농사일을 하는 탓인지 피부가 좀 검다. 그리고 날씬한 한경파와 달리 상당히 살이 쪄서 풍만해 보이는 점이 차이일 뿐이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이라면 막비강의 생모 한경파가 늘 어둡고 쌀쌀맞은 표정인데 반해 이 여인은 아주 푸근하고 자애스러운 표정을 지니고 있다.

여인은 막비강이 진정으로 원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여인이 어머니라면 자신의 어리광이나 투정도 다 받아줄 것만 같다.

막비강은 한동안 망연자실해서 생모를 닮은 그 촌부(村婦)를 바라보다가 곧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넓은 세상에 닮은 사람이 한둘인가?)

막비강은 고소를 지으며 영롱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가 막 대나무 울타리를 지나치려 할 때였다.

[어머니! 저 사람이 영롱탑 쪽으로 가고 있어요. 혹시 저 사람도 요귀들의 일당이 아닐까요?]

소녀가 막비강을 보며 말했다.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다. 남의 집 귀한 도련님을 요귀의 일당이라니...!]

한경파를 닮은 촌부는 소녀를 꾸짖더니 곧 막비강에게 말을 건넸다.

[얘야! 너는 이 일대에 밤만 되면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도 못 들었느냐?]

막비강은 웃으며 포권을 했다.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소흥부에 처음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이한 일이 발생한 줄 몰랐습니다.]

[! 이 고장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어린 네가 혼자 나돌아다니면 집안어른들께서 걱정하지 않느냐? 네 이름은 무엇이냐?]

막비강은 본명이나 곡능천이라는 새 이름을 말하기 뭣해 대충 둘러대었다.

[저의 성은 능()가고 이름은 곡천(曲天)이라 합니다.]

그러자 소녀가 코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 당신은 왜 곡능천이라고 하지 않죠?]

막비강은 잠시 당황하다가 말을 이었다.

[부모가 주신 성을 어떻게 마음대로 고칠 수 있소?]

소녀가 또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성은 고칠 수 없다고요? 그럼 왜 고쳤다가 또 고치곤 하세요?]

[내 이름은 진짜 능곡천이오. 낭자에게 이름을 속일 필요가 뭐 있소?]

자애로운 인상의 촌부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얘야, 우릴 속일 필요 없다. 너의 본명은 막비강이지만 어떤 사정 때문에 곡능천이라고 개명했다가 금릉에서 다시 능곡천로 고치고....]

소녀가 얼른 말을 가로챘다.

[다음에 만나면 천능곡(天凌曲)이라고 바꿀 거예요.]

막비강은 이 말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면전의 이 촌부의 얼굴이 생모를 빼닮은 탓에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다.

촌부는 온화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너는 모르고 있겠지만 사실 너의 정체는 이미 천면신룡(千面神龍)이라는 이름으로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다. 더 이상 이름만 바꿔서는 남의 눈을 속이기 어려울 것이다.]

(내게 천면신룡이란 별호가 붙었구나!)

막비강은 비로소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음을 알았다.

천면신룡이라는 별호는 제법 마음에 든 막비강은 웃으며 물었다.

[아주머니는 누구신데 저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십니까?]

[내 성은 조()가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 딸로 장몽아(張夢兒)라 한단다. 이 아이에게 장연아(張燕兒)라는 말괄량이 동생이 있는데 너는 이미 만나 보았을 것이다.]

막비강은 그제서야 내막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날수선랑 송 할머니께서 아주머니께 말씀해 주셨군요. 어쩐지 금릉에서 고친 이름까지 아주머니께서 알고 계시더라니....]

[네가 여기 온 건 비급을 찾는 일과 관련이 있겠지?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많은 무림인들이 이 근처에 출몰하고 저 낡아빠진 탑에서는 밤마다 불빛이 흘러나오더구나.]

막비강은 무림인들이 출몰한다는 조씨부인의 말을 듣고 안색이 일변했다.

[아주머니, 어떤 인물들이 이곳에 찾아왔습니까?]

조씨부인은 칠층보탑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선 우리 집에 들어와서 얘기를 나누자.]

조씨부인은 사립문을 열고 막비강을 맞아들였다.

 

조씨부인의 집은 대나무 울타리로 둘러쳐진 여덟 칸짜리 초가집이었다.

비록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가지만 뒤로는 악야계의 그림같은 봉우리들을 등지고 있고 앞쪽에는 천하절경인 경지하가 흐르고 있어 빼어난 운치를 풍겼다.

막비강이 조씨부인의 안내를 받아 초가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집 뒤에서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말한 그 바보가 왔으니 어서들 나가 봐라!]

이어 세 명의 소동들이 왁자하니 뛰어나왔다.

일곱 살에서 열 두어살까지인 이 개구쟁이들은 장연아와 장몽아를 닮아서 그녀들의 친 동생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막비강은 아이들에 둘러 쌓인 채 집 뒤쪽을 보며 웃었다.

[내가 바보라고 해둡시다. 헌데 낭자는 어떻게 내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소?]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거라구요!]

집 뒤에서 장연아가 웃으며 나왔다. 새침 떠는 언니 장몽아와 달리 이 말괄량이의 얼굴에서는 생글생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당신이 없어지자 마두들은 싸움을 멈추고 당신을 추격해 갔어요. 우리도 즉시 따라가려고 했는데 범개선이 할머니에게 당신이 경지하로 갈 거라 말해주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이리로 달려왔지요. 우연인지 당신이 찾아온 곳이 우리 집 근처였지 뭐예요.]

장연아가 말하는데 조씨부인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얘기를 나누거라.]

막비강이 세 모녀를 따라 대청에 들어가니 십여 명의 남녀노소가 앉아 있었다.

날수선랑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칠순 가량의 노부인이 일가친척으로 보이는 어른들에 둘러 쌓여 앉아있다.

조씨부인은 막비강에게 그들을 차례로 소개시켜 주었다.

막비강의 어머니 한경파를 닮은 촌부 조씨부인은 막비강이 생각했던 대로 날수선랑의 딸이었다.

, 장씨 집안과 날수선랑은 사돈간인 것이다.

장씨 집안은 지금은 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한 때 표국을 운영했던 무가(武家).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조씨부인의 남편 장대일(張大日)이 표행을 나갔다가 흑도의 흉사들과 시비가 붙어 크게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사고로 장씨 일족은 표국을 그만 두었고 장대일은 얼마 안 가 부상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즉 조씨부인은 현재 과부(寡婦)인 것이다.

조씨부인은 막비강의 생모인 한경파보다 한 살이 아래인 마흔 두살이다.

하지만 결혼은 한경파보다도 먼저 했다.

조씨부인은 불과 열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남편 장대일과 금슬이 아주 좋아서 무려 일곱명이나 되는 자식을 두었다.

장연아 장몽아 자매 위로도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은 장성대(張成大)라고 하며 벌써 스물 여섯 살이나 되었다. 조씨부인은 첫 아들을 겨우 열일곱살에 낳은 것이다.

둘째 아들 장성일(張成日)도 막비강보다 세살이 많은 스물 두 살이다.

두 아들은 이미 장성하여 집안일을 이끌어 가고 있다.

듬직한 두 아들을 낳은 후에도 조씨부인은 꾸준히 아이들을 가져서 이남삼녀를 더 낳았다.

장몽아, 장연아를 연년생으로 낳고 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은 것이다.

막내딸인 장상아(張翔娥)는 조씨부인의 남편 장대일이 변을 당했을 무렵 아직 그녀의 뱃속에 있었다.

[엄마! 젖줘!]

올해 네 살인 이 귀여운 소녀는 사람들이 보는 중에도 자꾸만 엄마의 품에 파고 들어 젖을 찾는다. 전형적인 막내딸인 장상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엽다.

조씨부인은 손님인 막비강이 있는 자리건만 별 거리낌 없이 저고리 고름을 풀어 가슴을 들어내고는 막내딸에게 젖을 물려주었다.

물론 젖이 나올 리가 없다.

그래도 장상아는 맛있다는 듯 엄마 젖을 빨며 한 손으로는 엄마의 다른 젖을 쥐고 조물락거린다. 아마도 아버지가 없이 자란 응석을 이런 식으로 부리는 모양이다.

햇볕에 그을려 가무잡잡한 얼굴과 달리 조씨부인의 젖가슴은 너무도 희고 곱다. 갓 쪄낸 백설기같이 하얀 그녀의 젖가슴은 또 아주 풍만하고 탐스럽다.

큼직한 수박만한 살덩이 두 개가 거친 삼베 저고리 사이에서 털렁 드러나 출렁거린다. 나이가 나이인데다가 또 무려 일곱명이나 되는 자식을 젖을 먹여 키운 탓인지 조씨부인의 유방은 좀 늘어진 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탄력과 묵직한 중량감을 지녀 보기에 좋다.

막비강은 막내딸을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조씨부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니 한경파가 너무 쌀쌀맞은 탓에 막비강은 일찍 젖을 떼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모성, 특히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다.

자애스러운 표정으로 막내 딸을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조씨부인의 모습은 막비강이 늘 꿈꿔오던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딸에게 젖을 물리던 조씨부인은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이 딸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을 넋을 놓고 보는 막비강과 시선이 닿았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굳이 자기 젖가슴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막비강은 장씨 집안의 사람들을 전부 소개받았다.

장신을 차린 막비강도 자신이 혈검산장을 뛰쳐나온 사정을 실토했다. 어머니를 닮은 조씨부인때문인지 장씨 집안의 사람들이 남같게 느껴지지 않은 때문이다.

[가엾기도 하지! 이젠 그만 고생하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구나.]

조씨부인에게 시어머니 되는 노파가 막비강의 손을 꼭 쥐며 인자하게 말했다.

막비강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콧날이 시큰거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푸근한 가족의 정을 느낀 때문이다.

[할머니! 말씀은 고맙지만...!]

헌데 막비강이 막 대답하려 할 때였다.

[우우우!]

돌연 멀리서 날카로운 여자의 장소성이 전해 왔다.

그 장소성을 들은 장씨 일족 어른들의 안색이 일변했다.

[사돈어른이 또 그 마두들을 만난 모양이구나.]

조씨부인의 시어머니가 급히 지팡이를 들고 일어서려 했다. 비록 칠순은 넘었지만 젊은 사람처럼 정정한 것으로 보아 이 노파 역시 상당한 무공을 지닌 고수로 보인다.

하지만 막비강이 얼른 노파를 막았다.

[할머니께선 여기 계십시오. 마두들은 제가 다른 곳으로 유인하겠습니다.]

장연아가 얼른 끼어들었다.

[나도 함께 가겠어요.]

하지만 막비강은 얼굴을 굳히며 엄숙하게 말했다.

[안 되오. 나와 함께 나가면 이 집에까지 화가 미치게 되오.]

막비강의 말에 장연아는 입술만 삐쭉일 뿐 더 이상 우기지는 않았다.

[대신 이걸 좀 맡아주시오!]

막비강은 호로와 강장을 장연아에게 맡겨 두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

 

장씨 일족의 집을 나선 막비강은 외침 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얼마 안가 그의 눈에 추명염왕, 삼촌정, 그리고 소면호 등이 날수선랑을 포위 공격하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핫하하하!]

막비강은 마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큰소리로 광소를 터뜨리며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 저놈이 그놈이다!]

삼촌정은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에 날수선랑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는 쏜살같이 막비강 쪽으로 날아왔다.

[거기 서랏!]

추명염왕과 소면호는 삼촌정이 비급이 숨겨진 장소를 먼저 알 것이 염려되어 다투어 삼촌정의 뒤를 쫓았다.

날수선랑도 마두들을 유인해간 소년이 누군지 궁금하여 황급히 마두들을 추격했다.

 

막비강은 비록 일 갑자 가까운 내공을 심후한 지녔지만 이제까지 전심전력으로 무예를 연마할 시간이 없었다. 자연히 추명염왕같은 절정고수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십여리를 달렸을 때 마두들은 막비강의 바로 뒤에까지 따라붙었다. 이제 따라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지만 막비강은 나름대로 생각해둔 바가 있어 태연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들은 왜 나를 쫓아오는 거요?]

막비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추명염왕등을 돌아보며 물었다.

삼촌정이 맨 먼저 도착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앞에 서있는 소년의 얼굴은 처음 보는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막비강이 역용환을 이용하여 얼굴을 바꾼 것을 알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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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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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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