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8'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4.18 [지백천년] 제 5장 피로 물들다 2
  2. 2020.04.18 [환골탈태] 제 12장 마두속출
  3. 2020.04.18 [자객일지] 제 24장 거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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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피로 물들다 (2)

 

--- 더 많이 알고 싶다.

 

이것은 현천록이 생사탄을 나오기 전에 보초에게 했던 말이다.

어쩌다보니 생사탄과 구장심조에 대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진양진인을 만나게 되었지만,

현천록은 그 의문들은 의문들이고 일단은 무엇이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은 배워야 뒤에 변신할 수 있다.

현천록은 머지않아 자신도 먼저 생사탄에 들게 되었던 사람들처럼 생사탄과 구장심조의 궁극적인 비밀을 캐기 위해서 세상을 떠돌게 될 것임을 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먼 곳의 일처럼 느껴지고, 당장은 인생이 회색으로 변하지 않게 마음 속에 즐거움을 유지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진양진인이 시키는 대로 그의 장검을 가지고 현천록은 동굴 입구를 무너뜨려 막았다.

구장심조는 무공과 비슷한 것이기는 하지만 힘을 더해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보검의 힘을 빌리지 못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동굴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반시간 정도 노력해서 동굴은 입구에서 삼장여 깊이까지 완전히 내려앉았다.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소리도 밖에서 생기는 어떤 소리도 그 깊이를 뚫고 오가지는 못한다.

입구가 막히고 모닥불이 꺼지자 동굴 속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자기 손가락도 볼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진양진인은 현천록에게 자기를 안고 동굴 안쪽으로 더 들어가도록 시켰다.

그들이 숨은 동굴은 금릉 현무호 동쪽의 자금산 이름모를 골짜기에 있다.

어둠 속에서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은 동굴 속을 걷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무질서한 돌뿌리들과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바위들, 그리고 움푹꺼진 웅덩이와 벼랑들이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징그러운 벌레나 독충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뒷발에 중심을 두고 앞발로 더듬게. 그리고 천천히 중심을 이동시키며 나아가야 하네.]

진양진인이 말했다.

그 말을 듣기 전에도 현천록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앞을 막은 바위를 가볍게 타고 넘었다.

진양진인의 말했다.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자네는 몸이 아주 가볍군.]

현천록은 암흑 속에서 실풋 미소를 지었다.

진양진인이 가둔후에 도망쳐온 일곱째 장군묵과 현천록이 똑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기절초풍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몸이 가벼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게가 없다시피 한 것을.

현천록이 말했다.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합니까?]

진양진인이 말했다.

[눈을 감게. 시각이란 참으로 번다한 것이네. 사람의 감각은 아주 특이해서 가장 분명한 것 같은 것이 실은 가장 둔한 것이라네.]

현천록은 그의 말에 어떤 현기(玄機)가 깃들어있음을 느꼈다.

즉시 눈을 감았다. 어차피 감으나 뜨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진양진인이 계속 말했다.

[눈보다는 귀가 더 정확하네, 귀보다는 코가 더 확실하고, 그보다 더 정확한 건 바로 감각을 넘어서서 느끼는 것이라네. 실상 속된 경지를 벗어나려면 오감에 의지하는 버릇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지.]

진양진인은 노래를 읊듯이 나직하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며,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지려 하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여 내 속에 받아들이네. 내가 나의 존재함을 껍질 밖에 알리니,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도 모두 내게 그들이 있음을 알려오네.

 

현천록이 말했다.

[물 냄새가 나는군요.]

진양진인이 말했다.

[아주 총명하군. 그럼 이제 자네 코앞에 있는 튀어나온 바위를 조심하게.]

현천록은 진양진인을 안은 채 동굴 속에서 삼리는 족히 걸었다.

거리는 겨우 삼리정도지만 그 어려움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양진인이 말하는 대로 눈을 감고 그렇게 걷고 있는 동안, 현천록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였다.

암흑 속의 모든 상황이 마치 자기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점점 감각을 가리고 있던 뿌연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진양진인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한 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현천록은 물이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곳으로 암흑을 헤치며 걸어갔다.

감각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감각이 주위를 느낄 때마다 참기 힘든 미묘한 흥분이 일어난다.

그것은 기쁨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희열이었고 맺혀 있던 무엇이 풀어지는 해방감이기도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속 벼랑을 뛰어 넘어 좀 더 아래로 내려간 현천록은 마침내 물가에 도착했다.

멈추어 섰지만 솔직하게 말해 더 걷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굴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두 팔에 들리운 상태에서 손가락 두 개로 현천록의 손등을 가볍게 누르고 있었다.

현천록은 물이 어둠보다는 밝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둠 속에서 물은 희게 보였다.

그리고, 자기가 선택해서 들어왔고 진양진인이 원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그 동굴이 범상한 동굴이 아님을 알았다.

동굴 속에 있는 물은 물이지만 엄청나게 거대한 물이었다.

물은 작은 강을 이루고 소리없이 흐른다.

강의 폭은 이십 장 정도고 깊이는 짐작할 수가 없다.

아무 소리도 없는 중에 그 엄청난 물이 발 앞에서 흐른다는 사실이, 그것을 느낀다는 사실이 현천록에서 숨이 막히는 어떤 희열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소리가 없어서 장엄함이었다.

진양진인은 현천록이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오로지 감각을 향수(享受)할 뿐이지만 마음은 무심에 가까워져 있고 발은 뿌리를 내린 듯이 굳건해져 있다.

 

소리없이 흐르는 지하의 강물처럼 시간도 조용히 흘러갔다.

현천록은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편평한 바위에 진양진인을 내려놓았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자넨 자네 감각을 해방시켜주었네. 지금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곧 보이지 않는 감각이 확장됨을 느끼게 될 것이네.]

현천록이 말했다.

[이건 무공인가요?]

진양진인이 말했다.

[초상감각(超常感覺)이지. 상승무공을 익히는 기틀일 뿐이네.]

[초상감각...]

[이 감각을 얻는 자는 상승무공을 빨리 익힐 수 있으나 익히지 못하는 자는 백년을 수련해도 상승무공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지. 노도가 자네 자질을 잠시 시험해보려는 의도였는데... 자넨 아주 특이하군.]

현천록이 물었다.

[무엇이 그리 특이합니까?]

진양진인이 말했다.

[지금 자네가 달한 그 정도의 초상감각에 이르려 하면 자질이 뛰어난 사람도 삼년은 수양해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 정도일세. 그것도 무공을 상당히 지닌 상태에서! 한데 자네는 불과 한 시간 남짓 사이에 그런 경지에 달했으니... 아주 놀랍네.]

현천록이 웃었다.

[그렇게 칭찬할 것 없습니다. 도장과 내기를 했으니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테니까요.]

진양진인은 빈말이 아니었지만 현천록이 그렇게 말하자 그게 아니라고 우기기도 뭣했다.

화제를 돌렸다.

[우리를 쫓는 그는 정말 무서운 인물이네. 동굴을 무너뜨렸다고 하지만 반드시 우리를 찾아내고 말 것일세.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현천록이 말했다.

[어떤 방법을 씁니까?]

진양진인이 말했다.

[노도는 그의 손에 중상을 입었네. 노도의 공력이 전적으로 양의신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이미 찢어발긴 시체가 되었겠지.]

얼굴에서 쓴 웃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양의신공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로 노도가 살 수 있는 것은 스무날 남짓하네. 상처가 너무 엄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치유할 수도 없고 오직 양의신공을 익힌 사람이 도와주어야만 하네.]

현천록이 말했다.

[도장이 회복하는 것이 바로 그의 손을 벗어나는 방법인가요?]

진양진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멀쩡할 때도 하지 못했는데 이 몸으로 어떻게 그런 기적을 꿈꿀 수 있겠는가?]

현천록은 진양진인의 보검으로 근처에 있는 바위들을 벽돌처럼 재단하기 시작했다.

진양진인이 그의 뒤에서 말했다.

[노도는 원래 옛 친구와 활몽루에서 만나기로 했었네. 한데 그가 오지 않고 마왕같은 그가 왔었지.]

진양진인의 아주 오래전의 일을 회상하는 것같은 어조로 말했다.

[사실 그는 자네가 말한 대로 우리 무당파의 창허진인이었던 분이지. 이제 자네를 경계하지 않으니 그대로 말해주겠네. 창허진인은 본파에서만 전해오는 이름으로 강호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

진양진인은 자기가 윗대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창허진인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창허진인이 무당파에 들어온 것은 아주 옛날이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나이가 스물여섯이라고 했는데, 무공을 배우기에는 이미 근골이 굳어있어서 적당치가 않았다.

그러나 무당파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했고, 가장 기본적인 무공부터 배웠는데 배우는 속도가 놀랄만큼 빨랐다.

빨리 배웠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펼칠 수 있었고 타고난 신체적인 조건이 더해져 그 위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무당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은 모두 장삼봉 조사 이후로 최고의 인재가 등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창허진인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 무당파의 모든 무공을 다 익히도록 했다.

창허진인은 존장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익히면 익힐수록 진전이 더욱 빨라졌다.

삼년이 지나지 않아서 당시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고수인 장문인의 무공을 뛰어 넘었고,

다시 이년이 지났을 때는 장문인을 삼초 이내에 패배시킬 정도의 무서운 고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이년 쯤 무당파내에서 제자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었다.

첫 번째 소문은 좋은 소문으로 창허진인이 벌써 신선이 되었거나 아니면 이전부터 신선이었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당에 들어온 지 오년이 지났는데도 모습이 조금도 변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무공을 그처럼 빨리 익힐 수 있었겠는가 하는 추측이 그 소문의 근거였다.

장문인이나 장로들도 이 말에는 관심을 보였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도 어쩌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나 두 번째 소문은 달랐다.

창허진인이 장경각(藏經閣)에 숨겨져 있던 마공(魔功)들을 익힌다는 소문이었다.

무당의 장경각에는 무당파의 고수들이 마두들을 제압했을 때 빼앗아 봉인해놓은 마공비급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무당의 제자로 무당의 무공을 자기에게 허용된 이상으로 익히는 것은 다만 징계를 받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마공을 익혔다는 것은 발견되는 즉시 죽임을 당한 후에 파문된다는 것을 말한다.

당시의 장문인은 무당의 이십칠대인 광화도장(光華道長)이었다.

의혹을 그대로 묻어둘 수 있는 단계를 지나버리자 광화도장은 먼저 강호에 흩어져 있던 모든 제자들을 구월구일 중양절(重陽節)을 기해 무당산으로 소집했다.

광화도장은 창허진인을 전 제자들 앞에서 심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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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두속출

 

 

 

(이게 어찌된 일이지? 저 지독한 거지들이 귀신을 본 듯이 놀라 달아나다니...!)

막비강은 어리둥절하여 나타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인물은 백색 장포를 걸친 노인이었다. 헌데 야위기가 가죽이 뼈만 감싼 것 같았으며 움푹 들어간 눈에선 전광(電光) 같은 광망(光茫)이 번뜩였다. 흡사 무덤에서 방금 뛰쳐나온 강시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 사악한 무공을 익힌 자다!)

막비강은 비록 이 사람 덕분에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절로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백포노인은 막비강을 노려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흐흐흐! 어린 녀석아, 아까 네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냐?]

막비강은 비록 사실대로 말해도 상대방이 금방 찾아낼 수는 없다 여기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목숨을 구해 주어 고맙습니다 선배님. 방금 전에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좋다. 그럼 우리는 보물을 찾으러 가자!]

[그곳은 개방의 총단인데...!]

[흐흐흐! 그깟 거지 떼 따위가 무슨 장애가 되겠느냐?]

파팟!

백포노인은 음침한 웃음을 터뜨리며 막비강의 팔을 움켜잡더니 쏜살같이 대석비곡 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편, 다섯 거지는 얼마 도주하지 못했을 때 뒤쪽에서 세찬 파공성이 들려오자 깜짝 놀랐다. 그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백포노인이 막비강을 팔을 잡아끌고 이미 삼 장 밖에까지 쫓아와 있었다.

호면개 도금은 타구봉을 휘둘러 나머지 네 노개와 동시에 걸음을 멈춘 후 물었다.

[추명염왕(追命閻王) () 선배님은 무슨 일로 저희들을 추격하십니까?]

(이자가 흑도팔흉(黑道八凶) 중의 추명염왕!)

백의괴인에게 손목이 잡혀 있던 막비강은 깜짝 놀랐다.

 

추명염왕 곽여해(郭餘海)!

 

그자는 흑도에서도 악명이 높은 살인마들인 팔흉(八凶) 중 한 명이었다.

팔흉은 육요(六妖), 칠절(七絶)에게는 다소 손색이 있으나 일반 무림인들에게는 염라대왕이나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비록 호면개 도금이 개방 방주라 하지만 추명염왕 같은 거마에게는 발끝에도 못 미치는 형편이었다.

[흐흐! 본좌가 쫓아온 이유를 정말 몰라서 묻느냐?]

추명염왕은 음산하게 내뱉음과 동시에 일장을 격출했다.

다섯 명의 거지도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타구봉을 휘둘러 반격했다.

[!]

추명염왕은 재차 일장을 뻗어냈다. 그러자 다섯 명의 거지는 비틀거리며 각자 세 걸음씩 후퇴했다.

하지만 그들은 호면개 도금의 함성을 신호로 다섯 사람은 전력을 다해 또 타구봉을 휘둘렀다.

[네놈들은 죽음을 자초하고 있구나!]

추명염왕은 막비강을 내려놓고 쌍장을 동시에 휘둘러 냈다.

퍼펑!

[으악!]

[커억!]

다음 순간 다섯 명의 거지는 줄이 끊어진 연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떨어지더니 꼼짝하지 않았다. 한 때 천하제일의 대방이라 불리던 개방의 수뇌 다섯이 추명염왕의 일초를 받지도 못하고 몰살당한 것이다.

(... 무서운 자다!)

막비강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흘흘흘! 독하다, 독해! 과연 추명염왕이란 명호가 부끄럽지 않구나!]

난데없이 뇌성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막비강이 뒤를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난쟁이가 한 쪽에 서 있었다. 키는 채 넉 자가 못되지만 양팔이 땅까지 늘어져 있고 눈빛이 아주 음침한 노인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사악하고 음독한 인상이었다.

막비강은 그자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 본능적으로 옆으로 물러섰다.

추명염왕은 몸을 돌리며 음랭하게 웃었다.

[흐흐흐! () 난쟁아, 너도 이 일에 끼여들 생각이냐?]

[청구단서는 무림의 지보(至寶)인데 얻으려는 사람이 노부 한 명뿐인 줄 아느냐?]

난쟁이는 말하며 옆의 바위를 흘깃 바라보았다.

[흐하하하! 과연 천이통(天耳通) 삼촌정(三寸釘)의 이목은 놀랍소!]

화라락!

다음 순간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명 노인이 바위 뒤에서 날아 나왔다. 그자는 도포를 의젓하게 걸치고 등에 불진을 짊어진 노인이었다. 차림은 분명 출가인이지만 그 얄팍한 입술과 족제비 같은 눈빛은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 누군가 했더니 소면호(笑面虎) 고금(古今) 영감이었군!]

그자를 본 추명염왕이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내심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두 분은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오. 나 고()가도 이번 일에 한몫 껴야겠소.]

소면호 고금이라 불린 도인은 포권을 하며 능글맞게 말했다.

 

삼촌정 정발(丁發)!

소면호 고금(古今)!

 

그자들도 모두 추명염왕과 함께 흑도팔흉에 드는 거마들이었다.

소면호가 끼여들자 추명염왕은 얼굴을 굳히며 괴소를 터뜨렸다.

[낄낄! 고 영감, 아마 너는 이 일에 개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말에 소면호의 웃던 얼굴이 일변하여 음침하게 변했다.

[추명염왕, 너는 이제 염라대왕(閻羅大王)이라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나는 우선 정 난쟁이와 합세하여 너부터 황천으로 보낸 다음 대책을 강구하겠다.]

추명염왕은 상대방이 연합하여 덤비겠다고 말하자 흠칫 놀랐다.

[이리 와라!]

그는 즉시 몸을 솟구쳐 막비강을 잡아갔다.

[어딜!]

소면호가 날카롭게 외치며 재빨리 덮쳐 와 추명염왕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격출했다.

추명염왕은 도리 없이 전력을 다해 뒤로 일 장 가량 후퇴했다.

[소면호! 너는 정말 노부와 싸울 생각이냐?]

[그것을 말이라고 묻느냐?]

이때 난쟁이가 옆에서 말을 받았다.

[고 영감의 말이 옳다. 우리는 합세하여 먼저 그를 수습한 다음 다시 대책을 강구하자.]

막비강은 그들이 다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비급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싸움질부터 먼저 하다니... 이 틈에 빨리 도주해야지.)

화라라락!

그는 세 사람이 서로 대치해 있는 틈을 이용하여 몸을 솟구쳐 전력을 다해 도주했다.

[게 섰거라!]

추명염왕은 막비강이 도주하자 날카롭게 외치며 몸을 솟구쳤다.

이때 난쟁이 삼촌정이 또 일장을 격출하여 추명염왕을 제지시켰다.

추명염왕은 추격을 제지당하자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난쟁아, 너의 이 행위는 무슨 뜻이냐?]

난쟁이 삼촌정이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네가 저 어린 녀석과 함께 비급을 찾으러 가려는 것을 모르는 줄 아느냐?]

[비급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어디 있긴 어디 있어. 대비석 밑에 있다.]

난쟁이 삼촌정의 말에 추명염왕은 체념의 표정을 지었다.

[너도 이미 알고 있었군. 그럼 우리는 먼저 대비석이 있는 곳으로 가서 비급부터 찾아낸 다음 누구의 소유가 될지 결정짓자.]

[그건 일리 있는 말이군.]

[그러려면 어린 녀석을 잡아야 한다. 비급이 숨겨진 정확한 장소를 아는 사람은 저 어린 녀석뿐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빨리 추격하자.]

합의를 본 세 마두는 일제히 몸을 날렸다.

 

막비강은 사오십 장 가량 달리다 고개를 돌려보니 세 개의 인영이 쏜살같이 추격해 오고 있음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는 상대방이 자기를 잡으려는 목적이 정확한 장소로 안내해 달라기 위함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비급을 찾지 못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게 뻔했다.

초조해진 막비강은 마침 길옆에 울창한 도림(桃林)이 있는 것을 보고 급히 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추명염왕은 도림 근처까지 추격하여 걸음을 멈추더니 날카롭게 외쳤다.

[어린 녀석아, 좋게 말할 때 나오지 않으면 나는 이 도림을 몽땅 태워 버리...!]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파라락!

갑자기 뒤쪽에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추명염왕이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난쟁이 삼촌정과 소면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전면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저놈들도 비급이 대비석 밑에 숨겨져 있음을 알고 있다. 아마 비석을 산산조각 내서라도 찾아내려 할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추명염왕은 더 이상 막비강을 잡으려 하지 않고 즉시 삼촌정과 소면호의 뒤를 쫓아갔다.

 

막비강은 도림 안에서 이 광경을 보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위험천만이었구나!)

그는 비록 목숨은 구했지만 비급을 탐내는 흉도들의 무공이 점차 고강한 인물들만 나타나는지라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일년 이상을 고생하여 가까스로 대비석의 소재지를 알아냈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하려 하니... 게다가 나 때문에 개방의 다섯 고인들이 개죽음을 당하게 되었구나!)

자책하던 막비강의 뇌리로 퍼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염라철장과 무협제원의 시신을 수습해주다가 그들의 절학이 담긴 비급을 얻었던 일이다.

(만약 천하의 기문절학을 모두 수집한다면 내 스스로 절세무공을 창안하지 못할 것도 없다. 타구봉법은 비록 천하무적의 절예는 아니지만 독특한 면이 있는 무공이다. 게다가 개방의 다섯 거지는 나 때문에 죽었으니 시체라도 안장해 주어야겠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티구봉법이 적힌 비급을 얻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막비강은 곧 도림 밖으로 나가 다섯 거지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어 그들을 차례로 살펴보니 금릉삼로 중 청풍개 범개선은 아직 체온이 식지 않았고 맥박이 뛰고 있었다.

(잘 하면 살릴 수 있겠다!)

막비강은 남산의성 악불령에게서 배운 응급치료법을 이용하여 범개선의 전신 혈도를 안마해 주었다.

약 뜨거운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범개선은 호흡이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고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뜬 범개선은 자기를 구해 준 사람이 막비강임을 알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고맙네. 수고스럽지만 내 주머니 속에서 약을 좀 꺼내 주게.]

막비강은 상대방의 주머니를 뒤져 몇 가지 환약을 꺼내어 범개선으로 하여금 스스로 약을 골라 복용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안마를 계속했다.

또 일각 가량 지나자 범개선은 간신히 일어나 앉더니 자기의 동문들이 모두 죽었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네 말대로 우리 개방은 결국 참화를 입었구나. 그런데 그 마두는 어딜 갔느냐?]

[그들은 대비석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범개선은 땅이 꺼질 듯한 장탄식을 했다.

[그 악랄한 마두가 달려갔다면 이제 우리 개방은 완전히 끝장났구나.]

그는 여기까지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막비강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방금 그들이라고 말했는데 그럼 추명염왕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었느냐?]

막비강은 지금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범개선은 그의 말을 듣더니 만면에 희색을 가득 머금었다.

[그 세 명의 마두가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야 될 텐데... 아이야, 방주의 몸에 우리 개방의 절기인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과 타구봉법의 비급이 있다. 노부가 방주를 대신하여 네게 기증할 테니 장래에 우리 개방의 원수를 갚아다오.]

하지만 막비강은 고개를 저어 사양했다. 범개선이 살아있는 마당에 낼름 개방의 비급을 받기가 염치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귀방의 제자가 아니니 개방의 절학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범개선은 막비강이 개방 절기가 실린 비급들을 사양하자 한층 더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네가 개방의 제자든 아니든 상관없다. 노부는 어차피 추명염왕의 독장(毒掌)을 맞아 앞으로 이삼 일밖에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막비강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른 호면개 도금의 시체 곁으로 가서 항룡십팔장과 타구봉법을 꺼내고 허리춤에서 방주의 신물(信物)을 끌러 범개선 옆으로 돌아왔다.

[이삼 일의 시간이면 충분하니 선배님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범개선은 만면에 곤혹의 빛을 가득 머금었다.

[네게 영지옥액(靈芝玉液)이라도 있단 말이냐?]

[아닙니다. 후배에게는 백독을 쫓을 수 있는 천오주가 있습니다.]

범개선은 눈을 번뜩 뜨며 급히 물었다.

[어디 있느냐?]

[후배가 선배님을 업고 천오주가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막비강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범개선을 등에 업은 후 곧장 소지품을 숨겨 두었던 무덤으로 달려갔다.

 

***

 

그러나 막비강이 무덤에 도착하여 파헤쳐 보니 소지품을 싼 보따리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막비강은 놀람과 조급함을 금치 못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느 좀도둑의 소행이지? 잡히기만 하면 다리뼈를 분질러 놓고 말겠다.]

그가 막 말을 끝냈을 때였다.

[? 좀도둑이 어째?]

휘릭!

돌연 앙칼진 외침과 함께 무덤 옆의 소나무 위에서 누군가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그 사람은 열 여섯 살 가량 된 귀여운 얼굴의 소녀였다.

소녀는 왼손에 조그만 보따리를 든 채 오른손으로 막비강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지저분한 녀석아, 너의 낡아빠진 물건들 여기 모두 있다. 나는 네가 어떻게 내 다리뼈를 분질러 놓는지 두고 보겠다.]

막비강은 상대방이 자기보다 어린 소녀인지라 웃으며 사정했다.

[착한 누님, 빨리 사람을 살려야 하니 구슬을 주시오. 나는 좀도둑의 소행인 줄만 알았지 누님이 장난으로 그랬는지 모르고 실언을 했소.]

소녀는 막비강이 누님이라 부르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너의 이런 물건은 귀신이나 가지려 할 것이다. 나는 빨리 가서 싸움 구경을 해야겠다.]

보따리를 막비강의 발 앞에 던져 준 소녀는 길게 땋아 내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는 듯이 뛰어갔다.

막비강이 잠시 멍청히 서 있다 정신을 번뜩 차리고 고맙다는 말을 하려 했을 땐 상대방은 이미 사오십 장 밖에 나가 있었다.

(이상한 아이로군!)

막비강은 가벼운 탄식을 하고 보따리에서 천오주를 꺼내어 범개선의 심장 위에 올려 독을 뽑았다.

반시간도 지나지 않아 범개선은 체내의 독이 완전히 제거되어 천오주를 막비강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너는 이런 보주가 있으면서 왜 휴대해 다니지 않느냐?]

막비강은 비급을 찾으려 개방에 들어가 신분이 탄로날 것이 염려되어 이곳에 숨겨 두고 역용 변장한 경과를 말해 주었다.

범개선은 이 말을 듣고 그의 총명함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막비강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또 다른 모습으로 변장한 후 말했다.

[아까 그 여자아이는 싸움을 구경한다면서 대석비곡 있는 방향으로 달려간 것으로 보아 정말 흉마들끼리 싸움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우리도 빨리 가서 결과를 알아봅시다.]

[그럼세!]

범개선은 즉시 막비강과 함께 경공신법을 전개하여 석비곡을 향해 질주했다.

 

[... 이럴 수가!]

얼마후 대석비곡에 도착한 범개선과 막비강은 놀라움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넓은 석비곡 안은 개방 제자들의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골통이 박살나 형상조차 구별할 수 없었고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은 고통의 신음을 발출하고 있었다.

범개선은 지니고 있는 약물로 이삼십 명의 제자를 죽음 직전에서 구제하여 물어 본 결과 추명염왕과 다른 두 사람의 소행임을 알았다.

그 다음 추명염왕 등 세 사람이 서로 혈전을 벌였는데 최후에 어떤 노부인이 나타나 그들을 쫓아 버렸다고 했다.

막비강이 개방 제자에게 급히 물었다.

[그들은 혹시 비석 밑에서 무슨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소?]

개방 제자들은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더니 모두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범개선은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죽은 제자들을 매장하게 하고 자기는 막비강과 함께 비석 근처를 구석구석 조사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막비강의 시선은 가장 석실의 석벽에 새겨진 한 수의 시구(詩句)에 꽂혔다. 그것은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된 시였다.

 

<가득 찬 달밤 삼경에 탑 그림자가 드리워져 경지하(傾脂河) 강변의 깨진 비석을 쓰다듬는구나. 영롱한 모습은 신산의 교묘함을 빼앗으니 계수나무 아래서 늦음을 후회 마라!>

 

막비강은 입 속으로 이 시를 몇 번이고 읽더니 돌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혹시 어디엔가 경지하라 불리는 강이 있는 게 아닐까?]

범개선이 옆에서 말을 받았다.

[있네. 소흥부(紹興府) 남쪽 약야계(約野溪) 부근에 있는 강이라네. 전설에 의하면 서시(西施)가 목욕물을 그 강에 버려 강물에도 지분(脂粉) 향기를 풍긴다더군. 석벽의 이 조각은 경지하의 경치와 흡사하고 강변에 영롱탑(玲瓏塔)이라는 탑이 있는데, 그럼 이 시구에는 깊은 뜻이 내포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선배님께선 후배와 함께 비급을 찾으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범개선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노부는 보물을 획득할 의향이 없네. 그러나 자네가 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분신쇄골이 되어도 최선을 다해 도와 주겠네.]

[한 권의 비급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니 선배님께선 가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후배는 이 벽화를 없애 버리겠습니다.]

막비강은 신녀비와 강장을 꺼내어 조각의 그림을 긁어냈다.

헌데 그가 벽화를 절반 가량 긁어냈을 때였다.

[흐흐흐! 선인의 유적을 훼손하다니...! 대담하기 짝이 없는 놈이구나!]

밖에서 난데없이 차가운 고함 소리가 전해 왔다.

막비강이 손을 멈추고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추명염왕이 석실 입구에 서 있었다.

추명염왕은 절반 가량 파손된 벽화를 힐끗 쳐다보더니 막비강에게 시선을 돌리며 징그럽게 웃었다.

[낄낄낄. 어린 녀석아, 비급은 어디에 숨겨져 있느냐?]

[나도 모른다.]

[노부도 네가 비급이 숨겨져 있는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너는 왜 이 조각을 파손하느냐?]

[남이야 조각을 파손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

[감히 본 염왕 앞에서 큰소리를 치다니, 네놈은 분근착골(分筋錯骨) 맛을 좀 보아야겠구나.]

막비강도 지지 않고 코웃음을 날렸다.

[! 노마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왜 내게 비급의 행방을 묻느냐?]

막비강은 자신이 거지의 모습에서 원래의 용모로 돌아온 것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추명염왕은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흐흐흐! 노부는 불에 타 재가 되어도 네놈을 알아볼 수 있다. 하물며 네놈의 목소리는 낭떠러지 아래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기까지 하다. 그러니 헛수작 말고 순순히 노부의 물음에 대답해라!]

추명염왕은 흉흉한 표정으로 천천히 막비강에게 다가섰다.

막비강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받아랏, 노마!]

피유웅!

돌연 석실 밖에서 여자아이의 날카로운 외침 소리와 함께 짧은 단전(短箭) 하나가 세찬 파공성을 대동한 채 추명염왕을 향해 날아왔다.

막비강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강장을 뻗음과 동시에 신녀비를 휘둘러댔다.

[받아랏, 노마!]

범개선도 개방 제자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쌍장을 동시에 격출했다.

[이 연놈들이...!]

추명염왕은 비록 절학을 지녔지만 강장과 신녀비, 그리고 단전이 동시에 엄습해 오자 감히 소홀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는 양어깨를 비틀며 몸을 풍차처럼 한바퀴 돌렸다.

!

그러자 밖에서 날아온 단전이 막비강의 강장과 부딪쳐 요란한 음향을 발출했다.

막비강은 그 틈에 수중의 신녀비로 검기를 형성하여 추명염왕에게로 덮쳐 갔다.

하지만 추명염왕은 슬쩍 그의 공세를 피해낸 뒤 석실 밖으로 몸을 날렸다.

[어린 녀석아, 우선 저 어린 계집년부터 수습한 후 다시 찾아오겠다.]

막비강은 석동 밖에서 들려 온 음성이 바로 자기의 물건을 훔쳤던 소녀의 목소리임을 알았다.

[어딜 가느냐 노마?]

그는 그 소녀의 무예가 아무리 고강해도 피독지보(避毒之寶)가 없는 한 추명염왕의 독장을 당해내지 못함을 알고 급히 고함을 질렀다.

위이잉!

그가 십 성의 공력을 돋우어 염라장법 중의 절초인 참호양망(斬虎揚茫) 초식을 펼쳐내었다. 그러자 한 줄기 강맹한 바람이 석동 안의 돌 조각을 휘날리며 밖으로 뻗어 나가 눈도 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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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이산하가 고문당하는 현장.

정필; [이놈을 재주껏 깨워봐라.] 칼로 이산하의 뺨을 툭툭 치며

정필; [회주님의 손속이 거칠어서 곧 삼도천을 건널 놈이지만 그 전에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내야한다.]

[맡겨주십시오.] [저희들의 무공이야 보잘 것 없지만 고문 솜씨는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산 채로 포를 떠서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겠습니다.] 건달들 단도를 뽑거나 칼을 뽑으며 잔인하게 웃고. 그 사이에 청풍이 가까이 오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정필; [최대한 오래 숨이 붙어있게 해야 한다. 우릴 엿 먹인 대가도 치러야 하니...] 웃으며 물러서고. 바로 그때

화악! 뒤에서 정필을 덮치는 청풍

정필; [! 네놈은...] 경악하며 다급히 몸을 돌려 피하려 하지만

정필; [이청풍!] + [!] 외치다가 경악. 그자의 바로 앞으로 내밀어지는 칼

! 청풍의 칼에 뛰어든 꼴이 되어 칼에 배가 궤뚫리는 정필

 

소수마녀;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상하고 칼을 내밀었다.) 놀라고

 

[!] [총관님!] [네놈이 왜 총관님을...] 다른 놈들 기겁하며 돌아볼 때

촤악! 정필의 배에서 칼을 뽑으며 돌아서는 청풍. 칼이 배에서 뽑히며 휘청하는 정필. 즉사는 아니다. 배에서 피가 뿜어지고. 주변의 다섯 건달은 놀라고 분노하며 칼을 뽑으려는 모습이고

스악! 칼을 뽑아 덤비려는 두 놈 사이로 뛰어드는 청풍.

건달들; (안돼!) (잘못하면 동료를 베게 된다.) 기겁하며 좌우로 물러서려는 두 놈. 동료가 다칠까봐 칼을 휘두르지는 못하고

스악! ! 좌우로 칼을 휘둘러 그 두 놈을 베는 청풍. [크악!] [!] 피를 뿌리며 쓰러지려는 두 놈. 정필은 그때서야 배를 끌어안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소수마녀; (간격이 좁은 놈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 놈들은 동료가 다칠까봐 공격을 망설였고 그 틈에 두 놈을 베어버렸다.) 또 놀라고

 

뭐라 악을 쓰며 일자로 청풍에게 덤비는 세 놈. 칼을 휘두르면서

! 몸을 굴려 그놈들 발치로 굴러들어가는 청풍.

세 놈의 칼질은 청풍의 몸 위로 스치고

구르는 자세로 칼을 휘둘러 세 놈의 다리를 베는 청풍

[크악!] [!] [... 다리가...] 두 놈은 다리가 하나씩 잘려 쓰러지려 하고 한 놈은 다리에 상처를 입고 펄쩍 뛰며 물러선다.

털썩! 퍼억! 다리가 하나씩 잘린 놈들은 나뒹굴고. 그놈들은 신경 쓰지 않고 굴렸던 몸으로 다리를 다쳐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세 번째 놈을 덮치는 청풍

[지랄...] 스악! 다리 다친 놈이 악을 쓰며 칼질을 하지만

! 피하지 않고 마주 칼질을 하는 청풍

서걱! 청풍의 어깨를 훑고 지나가는 세 번째 놈의 칼. 옷과 살이 베어져서 피가 튀고. 하지만

! 청풍의 칼은 그자의 가슴을 반쯤 가르고 지나간다

 

소수마녀;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베이는 대신 뼈를 갈라 적의 목숨을 빼앗았다.) 다시 감탄

소수마녀; (냉철한 판단으로 자기보다 강한 적을 베어버렸다.) 감탄

 

<저 놈은 의심의 여지도 없는 최강의 살수(殺手) 재목이다!> 가슴이 갈라져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세 번째 놈과 그 앞에서 칼을 휘두른 자세로 비틀거리는 청풍.

퍼억! 나뒹구는 세 번째 놈의 시체.

! 청풍도 한쪽 무릎을 꿇으며 칼로 바닥을 짚고. 그때

[으으으!] [히이익!] 다리가 잘린 두 놈이 공포에 질려 기어가고

돌아보며 일어나는 청풍

기어가다가 기겁하는 두 놈

청풍이 핏발 선 눈으로 다가온다. 손에는 피 묻은 칼을 든 채

[... 살려다오!] [제발 목숨만은...] 돌아보며 애원하는 두 놈. 하지만

! 서걱! 냉정하게 두 놈에게 칼질을 하는 청풍

 

소수마녀; (저항능력이 있는 적을 먼저 처리하고 약해진 자들은 나중에 제거한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실로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청풍이 다리 다친 놈들에게 칼질하는 장면을 보며 눈 번뜩

소수마녀; (저 정도 재능이 있는 놈이 무공을 배우고 자객수련을 거친다면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가 되겠구나.) 흥분하고

소수마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우리 살인상단(殺人商團)으로 영입을 해야 한다.) 결심하고.

 

다시 마차 근처의 살육의 현장

털썩! 퍼억! 얼굴 바닥에 처박고 죽는 다리 잘린 두 놈

그놈들을 등지고 정필에게로 가는 청풍. 정필은 배에 구멍이 나서 배를 움켜쥔 채 기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청풍을 돌아보는 정필. 청풍이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흘리며 다가온다. 눈이 백열되어 있고

정필; [... 살려다오 이청풍!] [...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기어가던 자세로 돌아보며

청풍; [시키는 대로 했다?] ! 칼을 정필의 목에 대고

정필; [이세창... 황금전장의 총관 이세창이 시켰다.] 필사적으로 애원

[!] 눈 부릅뜨는 청풍의 뇌리에 이세창의 비열한 얼굴 떠오르고

정필; [... 이유는 모른다.] [이세창은... 네 누이를 사창가에 팔아버리는 대가로 천냥을 주었다.]

청풍; (그년이 이세창을 사주했겠지.) 이를 악물며 떠올리는 장면. #87>에서 감옥을 찾아온 벽소소가 웃던 장면이다.

 

벽소소; [네 사랑스러운 누이동생은 사창가에 끌려갔어.] [어쩌면 지금쯤 사내놈들에게 몸을 팔고 있을지도 몰라.]

회상 끝

 

정필; [... 다행히 네 누이가 사창가로 팔려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니 이쯤 해두고...] + [!] 말하다가 눈 부릅. ! 그자의 등을 찌르는 청풍

정필; [끄륵...] 고개 쳐들며 피를 토하고

 

소수마녀; (이청풍!) 눈 번뜩이고

소수마녀; (이제 보니 저놈이 바로 그저께 새벽에 사우와 드잡이질을 했던 그놈이었구나.) 깨닫고. 청풍은 정필을 난도질하고 있다.

소수마녀; (무림맹 소맹주와 혼담이 오가는 벽소소의 추문을 막으려고 황금전장에서 저 놈과 저 놈 가족을 해꼬지 하려 했겠지.)

소수마녀; (이 사실을 잘만 이용하면 이청풍, 저놈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을 할 수가...) + [!] 생각하다가 무언가 깨닫고

[!] 스스스! 사라지는 소수마녀. 직후

화악! ! 돌풍과 함께 근처로 나타나는 두 명의 인물. 얼굴에 가면을 쓴 황금수라들이다.

두 명 황금수라의 시점. 청풍이 달리 잘린 정필을 난도질 하고 있는 장면이 보이고

청풍의 마귀같은 얼굴

<찾았다!> 가면 속에서 눈 번뜩이는 황금수라들

 

털썩! 고개 떨구며 죽는 정필.

따당! 칼을 정필 옆의 바닥에 던지며 마차로 가는 청풍.

뒤집힌 마차 바닥에 두 손이 박힌 채 매달려 있는 이산하.

! 이를 악물며 이산하의 손에 박혀 있는 칼 하나를 뽑는 청풍

팔과 그쪽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쓰러지는 이산하.

이산하의 몸을 안아서 부축하고

! 다른쪽 손바닥에 박힌 칼도 뽑는 청풍

칼을 던져버리고

이산하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누이는 청풍. 그러자

천천히 눈을 뜨는 이산하.

청풍;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이산하; [이상하구먼. 아직 이승인 것 같은데... 청풍이 네 얼굴이 보이다니...] 청풍을 보며 죽어가는 눈의 초점을 맞추려 애쓰고

청풍; [죄송합니다.] [제가 오는 게 늦었습니다.] 무릎 꿇은 채 고개 조아리고

이산하; [아니... 늦지 않았다. 늦지 않았어.] 웃고

이산하; [죽기 전에... 널 만났으니 결코 늦은 게 아니야.]

말없이 우는 청풍.

이산하; [서둘러서... 단양으로 가라.]

청풍; [단양...]

청풍; [어머니가 단양으로 향하고 있습니까?]

이산하; [그렇... .] [네 어머니의 최종 목적지는... 무림맹이 있는 태산인데...] 목소리가 흐려진다.

이산하; [단양에서 배를 타고 경항운하(京杭運河;북경과 항주를 잇는 대운하)를 따라 태산으로 갈 계획이었다.]

청풍; [어머니는 무림맹에 연고가 있는지요?]

이산하; [있지. 있고 말고...] 웃고

이산하; [왜냐하면... 너는 바로... 무림맹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눈빛도 잦아들고

청풍; [저도 무림맹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급히 묻지만

이산하; [서둘러서... 네 엄마와 진진이를 따라가서...] 말하다가

! 고개 떨구며 죽는 이산하

이산하의 목을 만져보는 청풍

청풍; (운명하셨다.) 이산하의 목에서 손을 떼고

청풍; (내가 무능해서... 아버지조차 지켜드리지 못했구나.) 절하며 울고. 그때

[애통한 심정은 알겠지만 우릴 너무 기다리게 하지는 마라.] 뒤에서 들리는 음성

[소장주님이 널 보자고 하신다.] [같이 가줘야겠다!] ! 청풍의 뒤에 서있는 두 명의 황금수라들. 하지만

말없이 이산하의 시체를 안아드는 청풍.

황금수라들; [이놈이..] [가자는 말 안들리냐?] 눈 부라리지만

이산하의 시체를 안고 비틀비틀 걸음 옮기는 청풍

[말이 말 같지 않냐?] ! 황금수라중 한 놈이 청풍의 뒤쪽 허리를 발로 차고

콰당탕! 이산하의 시체와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청풍

황금수라들; [번거롭게 했다 이거지?] [소장주님은 네놈을 굳이 살려서 데려오라고 하진 않으셨다.] ! 칼을 뽑으며 다가오는 두 놈

청풍은 일어나며 주변에 떨어져 있는 칼을 집어들고

황금수라들; [허튼 희망은 버려라. 우린 네 손에 죽은 파락호들과는 다른 존재들이다.] [도검이 불침하는 우리에게 네놈의 어설픈 칼질 따위는 이빨도 먹히지 않는다.] 비웃으며 청풍에게 다가서고.

[!] 칼을 그자들에게 겨누다가 움찔! 하는 청풍

스윽! 황금수라들의 뒤로 유령처럼 나타나는 소수마녀.

황금수라들; [지금이라도 칼을 버리고 우릴 따라간다면 죽이진 않겠...] + [!] 말하다가 눈 부릅뜨며 놀라는 두 놈

청풍의 조금 놀란 표정

<우리 뒤에 무언가 나타났다!> ! 홰액! 벼락같이 돌아서며 칼을 휘두르려는 두 놈. 하지만

! ! 두 놈의 가슴에 박히는 하얀 손바닥 자국

황금수라들; [! 이 무공은...] [... 소수인!] 피를 토하며 뒤로 비틀 물러서고

화악! 그런 두 놈에게 마녀처럼 덮치며 양손을 휘두르는 소수마녀

! ! 황금수라들의 이마를 치는 소수마녀의 새하얀 손

빠직! 빠각! 가면이 박살나고 가면 주변으로 피가 팍 터진다. 머리가 깨진 모습이고

[끄윽!] [지랄...] 피를 뿌리며 넘어지는 두 놈

퍼억! 털썩! 나뒹구는 황금수라들

스슥! 그 앞에 내려서는 소수마녀

퍼석! ! 황금수라들의 몸이 그제야 석고처럼 변해서 부서지고

청풍; (시체가 석고처럼 변해서 부서진다.) 조금 놀라고

소수마녀; [황금수라... 확실히 황금전장이 자랑하는 고수들답구나.] [소수인을 한번 써서는 죽이지 못한 걸 보면...] 부서지는 황금수라들의 시체를 보며 끄덕이고.

청풍;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다. 금강불괴나 마찬가지라는 황금수라들을 간단히 죽인 걸 보면...) + [뉘신지 모르지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포권하고

소수마녀; [네가 원한 바는 아니겠지만 나로부터 구명지은을 입은 사실은 인정하겠지?] 차가운 표정으로

청풍; [인정합니다.]

소수마녀; [그렇다니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겠구나. 은혜를 입은 보답을 하라고...] 서늘하게 웃고

청풍;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굳어지는 표정

소수마녀; [맹세만 한 가지 하면 된다.] [내가 하는 요구를 한 가지 들어주겠다고!] 강렬한 눈빛

청풍; [그 요구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소수마녀; [맹세부터 해라! 구명지은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차갑게 말하고

청풍; (막무가내인 여자다.) 찡그리고

청풍; (하지만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 [보은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포권하고

소수마녀; [지금의 그 맹세, 잊지 마라.] ! 손을 하나 내밀어 펴고.

검은 옷을 배경으로 새하얀 손이 펴지고

청풍; (손이 너무 희어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이마를 찡그리는데

화악! 소수마녀의 손이 커지면서 청풍의 시야를 다 가리고

청풍; (... 당했다!) ! 현기증을 느끼는 표정이 되고

<정신을 잃으면 안되는데... 어머니와 진진이를 구하러 가야하는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청풍의 모습. 주변이 모두 하얗게 변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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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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