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태산북두(太山北斗)'에 해당되는 글 68건

  1. 2020.12.26 [태산북두] 제 55장 새로운 복지를 찾아서 (완결)
  2. 2020.12.24 [태산북두] 제 54장 피리소리가 끊기다
  3. 2020.12.22 [태산북두] 제 53장 경천동지할 대혈투
  4. 2020.12.20 [태산북두] 제 52장 바위를 잘 보아라
  5. 2020.12.19 [태산북두] 제 51장 선상에 흩어진 절세고수의 유해
  6. 2020.12.17 [태산북두] 제 50장 고불암의 야객
  7. 2020.12.15 [태산북두] 제 49장 구절반천평맥의 치료
  8. 2020.12.14 [태산북두] 제 48장 마왕의 정체
  9. 2020.12.12 [태산북두] 제 47장 분노한 천하제일인
  10. 2020.12.10 [태산북두] 제 46장 풀밭 위의 정사
  11. 2020.12.09 [태산북두] 제 45장 내가 바로 그 신승이다.
  12. 2020.12.07 [태산북두] 제 44장 검에 죽은 검신 2
  13. 2020.12.06 [태산북두] 제 44장 검에 죽은 검신 1
  14. 2020.12.04 [태산북두] 제 43장 팔인의 절대고수
  15. 2020.12.02 [태산북두] 제 42장 천하에서 가장 큰 도박판
  16. 2020.11.30 [태산북두] 제 41장 무림황제를 뽑는 자리
  17. 2020.11.28 [태산북두] 제 40장 학선평에 모인 천하의 고수들
  18. 2020.11.27 [태산북두] 제 39장 뜻밖의 구원자
  19. 2020.11.25 [태산북두] 제 38장 뜻밖의 만남
  20. 2020.11.24 [태산북두] 제 37장 삼절일천군단
  21. 2020.11.22 [태산북두] 제 36장 패배
  22. 2020.11.21 [태산북두] 제 35장 무제 임보산과의 결투
  23. 2020.11.20 [태산북두] 제 34장 현현궁
  24. 2020.11.18 [태산북두] 제 33장 구문제독 하후승
  25. 2020.11.17 [태산북두] 제 42장 낙일검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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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五 章

 

         새로운 복지(福地)를 찾아서

 

 

폐허가 된 소음곡이 있던 절벽 위‥‥‥

아무런 흔적도 남지않고 오직 거대한 바위들만 흩어져 있는데‥‥‥

한여인이 미친 듯이 바위를 던져내고 땅을 파고 있었다.

바로 조응경이었다.

[안돼‥‥‥그가 죽으면‥‥‥그는 틀림없이 살았을 거야‥‥‥]

그녀는 이성을 잃고 중얼거리며 손에서 피가 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바위를 파고 있었다.

돌연,

펑펑!

하나의 바위가 허공으로 날아올라 산산히 깨어졌다.

한데,

바위가 있던 곳 아래로 검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으로부터 몰골이 말이 아닌 남녀들이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황청청을 데린 주혜린과 황창설을 필두로한 계곡의 탈출자들이었다.

황군성과 진우란 등이 나오고‥‥‥

황군우와 전연옥이 나왔으며‥‥‥

금화선녀와 육천태가 나왔다.

또한,

가까스로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들과 합류했던 전무옥과 위지장천이 만신창이 된 몸으로 나왔다.

[아!]

조응경의 긴장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자연의 대 재앙앞에서,

인간은 나약할 뿐이고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자연과 맞서기 위해서는 인간은 힘을 합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존자들의 얼굴에는 엄청난 일을 경험한 뒤의 허탈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위지장천과 전무옥은 황창설에게 포권해 보인다음 힘없이 떠나갔다.

금화선녀는 정신이 나간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오지 못하다니‥‥‥그 사람이 나오지 못하다니‥‥‥어떻게 그럴 수가‥‥‥그럴 수가‥‥‥]

놀랍게도,

중얼거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늙어가고,

삼단같던 머리채는 검은 색을 잃어가며 백발로 변하고 있었다.

[어 어머니‥‥‥]

임단심이 안타까워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울먹였다.

[그가‥‥‥그가‥‥‥아! 여보‥‥‥당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줄 알았는데‥‥‥]

금화선녀의 중얼거림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애절한 심정이 그대로 담겨있어 주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모두가 큰 일을 겪은 후이라 힘이 있어도 기력이 없는 때인데‥‥‥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담담히 들려온 음성이 금화선녀를 사시나무처럼 떨리게 했다.

[부인! 당신은 평생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당신도 늙었구려‥‥‥]

절벽의 한쪽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는 애정을 듬뿍 담은 눈으로 금화선녀를 응시했고‥‥‥

[나도 용암을 뚫고 올라오느라 금강신(金剛身)이 파괴되어 버렸소.]

금화선녀와 임단심이 그를 향해 달려갔다.

 

× × ×

 

계곡을 똑바로 뚫고 올라왔던 임보산은 근처에서 한천사방객을 찾아서 타협을 본 후였다.

그의 뒤에는 그들이 서있었다.

진우란이 그들 앞에 가서 무릎을 굻고 처분을 기다렸다.

한천사방객 중 초사륭이 탄식하며 말했다.

[네째!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 여기게. 자네의 복수는 사신의 귀한 딸에게 우리 제자의 아이를 낳게 하는 것으로 끝내게나.]

단극린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한을 풀자고 제자에게 한을 줄 수로 없겠지요. 한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가 아닙니까. 저도 이 아이처럼 예쁜 아이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늙어버린 임보산과 육천태가 그를 칭찬하며 말했다.

[진정 훌륭하오. 원한을 이렇게 갚는 것은 훗날에도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오.]

진우란은 단극린에게 절하며 울먹였다.

[평생 아버님처럼 생각하며 모시겠어요.]

황군성은 사부들에게 연거푸 절하며 감사했다.

소음곡이 있던 절벽 위에는 모든 은원이 풀어지고 있었는데‥‥‥

오직 한사람 조응경만은 쓸쓸히 혼자 떨어져 서있었다.

그녀의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그녀 혼자 황군성을 구하려고 태산을 옮기려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였는데‥‥‥

 

황창설은 주혜린과 의논한 후에 그의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 문성무존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야 한다. 나와 청청이, 그리고 이사람은 강북 일대를 물색해 보겠다. 군성이는 강남을 맡고 군우는 사천 지방을 맡도록 해라.]

문성무존의 가족들은 다시 서천복지를 찾아 모이기로 약속하고 떠나가기 시작했다.

황창설 부부가 제일 먼저 떠나갔고 그 다음에 황군우가 전연옥을 데리고 떠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황군성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일행이 가장 많기에 제일 늦게 출발하는 것이다.

[이제 떠나게나.]

임보산이 말했다.

황군성은 조응경을 힐끗 돌아보고 고개를 돌려 앞장서서 걸었다.

조응경은 참담한 기분 속에서 하늘을 보고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 임단심이 말했다.

[아무래도 않되겠어요. 아버지! 육백부! 통심마고를 몸속에서 꺼낼 방법이 있어요?]

임보산도 육천태도 고개를 저었다.

[전륜법왕은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죽었으니 이제 아무도 그걸 하는 사람이 없어졌지.]

임단심이 황군성의 소매를 잡으며 소리쳤다.

[방법이 없다잖아요. 황오라버니 당신은 나를 죽일 참인가요? 왜 조소저를 데려와 죽지 못하게 지키지 않는 거예요? 그녀도 당신을 위해 손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임단심과 똑같은 모습의 조응경의 얼굴에 가득낀 먼지를 씻어 내리며 눈물이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세상에 태어난 후 어느 때 보다도 기쁨으로 가득 차있었다.

 

× × ×

 

하늘에 호생지덕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늘은 인간의 피를 좋아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고대로 부터 인간을 제물로 해서 하늘에 제사지냈겠는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림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것이고,

하늘은 그들이 또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잡아먹을 궁리를 할 것이다.

어떻게 요리할까 하면서‥‥‥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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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四 章

 

             피리소리가 끊기다.

 

 

 

끼익! 끽!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일어선 동피철골시들은 마치 군대처럼 정렬하고 있었다.

먼저 내려온 것들은 위치를 정하고 움직이지 않고,

뒤에 떨어진 것들은 그뒤로 나열하고 있다.

여인들은 이 기괴한 광경에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동피철골시는 오백 여구 정도 되었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목석처럼 정렬하고 있다.

골짜기에는 오직 두쌍의 싸움만 치열하게 벌어질 뿐,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동피철골시를 바라보고 있다.

 

× × ×

 

소음곡 절벽위,

언젠가는 마왕 하후승이 서서 은밀히 소음곡을 훔쳐보던 자리,

제갈공지가 마치 제왕같은 모습으로 치장하고 서있다.

그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면서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황혼이 그의 금포를 비치고 찬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제갈공지는 동피철골시의 위로 내려와 그들의 머리를 밟고 섰다.

[후후후후‥‥‥]

기이한 웃음을 날리며 뭇사람들을 오만하게 바라보는 제갈공지는 신검보에서 검신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있던 그때의 제갈공지가 아니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가만있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못떼고 있었다.

제갈공지가 말했다.

[안심하시오. 본 황(皇)은 문성무존의 무공과 영약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는 자신을 황이라고 일컫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고수가 너무 많소. 그래서 나는 이곳을 깨끗이 청소할 생각이오만‥‥‥]

위지장천이 무거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갈지공‥‥‥갈지공이었군. 결국은 모습을 드러내는군.]

제갈공지가 앙천광소를 했다.

[크하하하‥‥‥위지장천, 아니 혈주, 미안하게도 너무 늦게 알았소. 이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줘야 하오. 본 황의 무림대업을 위해서‥‥‥]

[이자들은 모두 삼장(三莊)을 찾았다가 실종된 고수들이겠군.]

[그또한 혈주는 너무 무심했지. 확실히 어리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과 통했으니까.]

바로 그때,

번쩍!

쾅쾅!

황군성과 남궁파가 충돌하고 떨어졌다.

한데 남궁파의 혈화창은 황군성의 복부를 관통하고 등뒤에까지 빠져나와 있었다.

진우란이 비명을 질렀다.

[악!]

하지만 땅에 내려선 황군성은 쓰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서서 막 내려서는 남궁파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남궁파의 몸이 발을 땅에 대는 순간에 종이조각처럼 힘없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뭉클뭉클‥‥‥

뜨거운 내장이 와르르 쏟아지고 그의 몸은 머리까지 정확하게 양분되어버렸다.

서로가 치명적인 일격을 추고 받았던 것인데 황군성은 살았고 남궁파는 죽었다.

황군성은 자신의 복부를 관통하고 있는 혈화창의 손잡이를 이를 악물고 힘껏 쳤다.

푸욱!

그의 등뒤로 혈화창이 빠져 나가면서 피가 솟구쳤다.

임단심이 달려가 구룡로를 갖다 댔다.

그녀는 황군성이 그 지경이 됐어도 안색도 변하지 않았다.

구룡로로 상처를 문지르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갈공지가 바로 신검보에서 내게 누명을 씌운 자예요. 어쩐지 그의 서재가 우리가 가보았던 삼성혈의 화운장과 비슷하다 싶었어요.]

황군성이 말했다.

[싸우면서도 저자의 말은 듣고 있었소.]

[위지장천의 표정을 보니까 동피철골시라는 게 보통이 아닌 모양이에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할 것같아요.]

임단심이 그렇게 속삭일 때,

황군성의 귀로 주혜린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내 말을 명심해라. 이건‥‥‥소음이 멈추면‥‥‥]

그녀는 황군우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황군성에게 했다.

황군성은 전신에 새로운 긴장이 팽배해짐을 느꼈다.

임단심의 말마따나 정말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황군성은 제갈공지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제갈군사, 축하하는 바이오. 호랑이가 없는 산에서 왕이 되시려 하는구려.]

그러자 황숭환이 소리쳤다.

[더 이상 다가가지 마라.]

제갈공지가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확실히 늙은이가 뭔가를 아는군. 그러나 다 끝났어! 이제 모두 죽어야지.]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바로 그때,

콰쾅!

마왕과 임보산의 경력이 맞부딪히며 방향을 바꾸어 제갈공지를 향해 밀려갔다.

쿠쿠쿠쿠-------!

제갈공지가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막아라!]

순간,

동피철골시들이 날아오르며 풍차처럼 회전했다.

콰콰콰쾅!

그들이 이룬 힘이 천년의 공력을 지닌 하후승과 임보산의 힘을 되 튕겨 버렸다.

임보산과 하후승은 충격을 받고 땅으로 떨어졌다.

동피철골시들은 내려서고 제갈공지는 오만하게 웃고있었다.

[크하하하‥‥‥모두 내 위력을 보았겠지.]

그는 쇠가 울리는 듯 쟁쟁하게 소리쳤다.

[모두 죽여라!]

동피철골시들은 벌떼처럼 산개하며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악!

아악!

비명이 터져 나오고,

어느 순간에 주혜린은 귀가 허전함과 동시에 소음(簫音)이 들려오지 않음을 느꼈다.

그녀는 빠르게 눈을 굴려 황창설을 찾았다.

그녀의 귀에 황숭환의 준엄한 외침이 들렸다.

[가라!]

주혜린은 황청청의 손을 잡고 날아올랐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다.

동피철골시는 괴물이었다.

그들은 진정 마물이었다.

우우우우------!

황군성은 용처럼 길게 부르짖으며 임단심과 조응경을 껴안고 날아올랐다.

그의 곁으로 진우란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이미 예언은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임단심이 목이 터져라 외쳤고,

금화선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날았다.

황군우와 전연옥도 날아오르는 중이었다.

날아오르는 자들의 뒤를 따라 동피철골시들도 튀어올랐다.

번쩍!

황숭환이 철인검을 펼쳐 그들을 공격하며 괴노 육천태와 임보산에게 소리쳤다.

[저들을 따라가시오.]

[조부님!]

황창설이 외치자 황숭환이 호통을 쳤다.

[뭣하는 게냐?]

황창설은 육천태와 함께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키야압!]

위지장천이 동피철골시의 틈을 뚫고 허리춤에서 긴 채찍을 펼쳐 휘둘렀다.

우우웅-----!

채찍은 영활한 뱀처럼 빈틈을 뚫고 제갈공지를 향해 날아갔다.

파파파팟------!

그의 채찍에서는 푸른 번개가 치는 듯했다.

동피철골시들도 그것이 두려운 지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그 사이에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위지장천의 자전편(磁電鞭)은 제갈공지의 코앞에 다가가 있었다.

[크흣! 자전편 따위‥‥‥]

제갈공지의 몸이 환상처럼 옆이로 이동하며 자전편을 피했다.

파파팍!

동피철골시들이 자전편을 휘어감았다.

순간,

제갈공지는 뇌호혈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 어이해 내가‥‥‥? 나 갈지공이‥‥‥]

본명 갈지공‥‥‥

제갈공지란 이름으로 이십여년을 살아온 그의 머리에는 뒤에서 부터 이마까지 작은 구멍이 나있었다.

동피철골시 하나가 뛰어오르며 그의 앞에 섰다.

한데,

괴물같은 얼굴을 떼어버리자 그는 전무옥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제갈공지를 감시하다가 마침내 기회를 봐서 무광검으로 죽인 것이었다.

위지장천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를 죽여서는 안돼! 이 마물들을 조종할 사람이 없어!]

그러나 이미 제갈공지는 허망하게 죽어버렸고,

그와 영성에 통제를 받던 마물들은 더욱 미친 듯이 날뛰었다.

황숭환과 살아남은 문성무존의 인물들은 마물들이 소음곡 안쪽으로 가지 못하게 치열하게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속절없이 죽어갔고,

마왕과 마물은 또한 그렇게 둘 다 미쳐서 어우러져 있고,

임보산은 가공할 무공으로서 황숭환을 도와 마물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는 이미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 먼저 안쪽으로 떠나간 사람들이 탈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떠나지 못하고 마물들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빠져 나가면 금방이라도 저지선은 무너지고 말것이기에‥‥‥

[여보‥‥‥! 빨리 와요!]

금화선녀가 천리전음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숭환이 소리쳤다.

[가시오! 당신의 무공이면 지금도 갈 수 있소.]

그러나,

임보산은 선뜻 몸을 빼지 못하고 있었다.

끼얍!

위지장천과 전무옥이 대신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저지선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라고 뜻이 통한 것이다.

문성무존의 생존자들은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뒤를 따라 잡으려는 마물들을 저지할 뿐이었다.

황숭환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가시오!]

순간,

쿠쿠쿠쿠쿠-------!

하늘이 우는가?

땅이 곡을 하는가?

지축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콰릉‥‥‥!

계곡 양쪽의 석벽이 무너지면서‥‥‥

쿠아아------!

시뻘건 용암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계곡은 비틀리고 계곡을 형성하고 있던 원래의 갈라진 두개의 절벽은 무너지면서도 합쳐지고 있었다.

아!

인간의 천인공노할 살겁에 마침내 태산도 분노한 것인가?

쿠르르르-------!

용암이 노도와 같이 쏟아지고, 집채만한 바위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면서 떨어져 내렸다.

콰르르르르------!

그 사이를 뚫고 한마리의 용이 꿈틀대듯 누군가가 승천해 올라갔다.

그리고‥‥‥

콰콰콰쾅‥‥‥‥‥‥

계곡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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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三 章

 

                驚天動地할 大 血鬪

 

 

 

문성무존의 밖으로 나오던 주혜린은 마왕을 보고 경악했다.

[구문제독 하후승!]

마왕의 유리알 같은 눈이 백열하면서 그녀를 보았다.

[크흐흐흐‥‥‥주혜린! 너는 내 것이어야 했는데‥‥‥크하하하하 하지만 복수하게 되었으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놀랍게도 마왕은 옛날 주혜린에게 눈독을 들였던 것이다.

가만 두면 자신의 아내가 될 가능성이 많았던 주혜린이었다.

헌데 황창설이 나타나 자신의 음모를 파괴했을 뿐 아니라 주혜린마저 데리고 사라져버리자,

한때 마왕은 모든 수하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던 적이 있다.

황군우가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느냐?]

휘루룽!

그의 손에서 음양합일신공이 마왕을 향해 뻗어나갔다.

[크흐흐‥‥‥]

마왕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일수를 내저었다.

순간,

슈콰콰콰------!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가공할 장력이 황군우의 음양합일신공과 부딪혔다.

위지장천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월음천마공!]

쾅!

[으윽!]

황군우의 몸은 이장이나 뒤로 튕겨나갔다.

월음천마공‥‥‥

스치는 것은 무엇이나 부수어버린다는 금단의 마공‥‥‥

전연옥이 재빨리 날아올라 황군우를 받아안으며 물었다.

[괜찮아요?]

[으음‥‥‥괜찮소. 충격을 조금 받았을 뿐이오.]

황군우는 그녀의 손을 밀면서 말했다.

그의 음양합일신공은 천의무봉(天衣無縫)한 것이라 내공에 있어서만 딸리지 않으면 천하의 어떤 무공보다도 못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월음천마공과 정면에서 맞부딪히고도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는 오직 황군우 한사람뿐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한줄기 뿌연 연기같은 선이 그어지며 마왕 하후승을 뒤에서 덮쳤다.

도신 범강이었다.

번쩍!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었다.

더우기 그 빠름과 강함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신 범강은 자신의 도가 마왕의 대추혈에 닿는 것을 느끼며 내심 소리쳤다.

(베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

카캉!

소리와 함께 그의 도(刀)는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고,

번쩍!

[큭!]

마왕의 손이 벼락처럼 뒤로 돌아가며 우악스럽게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하후승의 유리알 같은 눈은 심장을 얼려버릴 것같은 마기가 뿜어지는 순간,

툭!

도신의 목이 그의 손에 잘려지면서 수없이 흩어져 있는 시체들 위에 뒹굴었다.

마왕의 무공은 진정 경천동지, 오로지 경악 그 자체였다.

천하의 종주를 노리던 인물중의 하나였던 도신 범강이 기습을 하고도 마왕의 단 일초를 피하지 못하고 목이 잘려 죽었다.

이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황군우와 전연옥에게 주었다.

또한,

문성무존의 인물들 역시 대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같은 무공은 인간의 한계를 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왕‥‥‥

처음에는 그는 냉정한 듯했다.

그러나,

막상 무공을 펼치기 시작한 후는 완전한 살인마가 되어버렸다.

[크하하하‥‥‥]

괴성을 지르며 멋대로 장력을 날리면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성무존의 가족과 남궁파나 북혈마, 위지장천등을 가리지도 않았다.

슈콰콰콰-------!

스치면 무엇이나 부수어버리는 장력앞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었다.

오직 문성무존의 황숭환이나 황필민이 겨우 몇 수를 버틸 정도이고,

또한 남궁파만이 아무렇지 않게 유유자적 그의 장력을 피하고 막을 수 있을 뿐이었다.

[철인검!]

황숭환이 소리치며 검을 날렸다.

슈우우우-------!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순간에 그의 검은 마왕의 장력을 뚫고 들어가 그의 목에 꽂혔다.

하나,

캉!

소리와 함께 검은 부숴져 버리고,

황숭환은 벼락처럼 뒤로 물러섰다.

문성무존의 철인검 마저도 그의 몸을 벨 수 없었다.

그자는 진정 이름 그대로 마왕이었다.

 

싸움은 난전의 형세로 치닫고 있었다.

이제는 황숭환이 노구를 이끌고 남궁파를 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력이 딸려 그에게 연방 밀리고 있었다.

황군우는 북혈마를 몰아붙이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전연옥은 낙일검은 번쩍이며 위지장천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전부가 마왕 하후승 한 사람만을 공격하는데도 마왕은 끄덕도 없었다.

그의 손에 의해 피가 끊임없이 피가 뿌려지고 있었다.

문성무존의 여인들마저 나와 싸우는데‥‥‥

금단의 마공 월음천마공을 완성한 마왕을 어떤 수법으로도 죽일 수 없었다.

남궁파와 싸우던 황숭환은 점점 밀리고 있었다.

천하에 상대할 것이 없다고 자부하던 철인검도 천년의 공력을 지녀 금강불괴가 된 자를 베지 못했다.

문성무존의 멸망은 눈앞에 다가온 것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음곡을 무너뜨릴 듯이 들려오는 소리‥‥‥

아아아-------!

또한 이와 조화를 이루는 소리‥‥‥

우우우-------!

맑고 청랑하면서도 분노가 느껴지는 소리가 소음곡을 울렸다.

그리고,

칠인의 인물이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황군성과 임보산, 육천태, 금화선녀, 임단심, 진우란, 그리고 전륜법왕의 하인이었던 마타였다.

마왕이 임보산을 보더니 괴성을 지르며 흉폭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죽어라!]

그는 임보산에게 일장을 당한 기억에 그를 가장 강한 적수로 간주한 것 같았다.

임보산이 소리치며 손을 들어 가리켰다.

[마물! 월음천마공을 익히다니. 신주독존공을 받아라!]

그의 손이 하늘을 가리키다가 벼락처럼 마왕을 가리키자 강렬한 빛이 뻗어나갔다.

번쩍!

크윽!

마왕이 몸이 십여장 날아가 석벽에 부딪혔다.

진정 무제 임보산의 공력과 무공은 도저히 타인이 미칠 바가 못되었다.

그런 가공할 무공에 중인은 두려움과 함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크아!]

마왕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괴성을 지르며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북혈마!]

황군성은 내려서자마자 벽력같은 소리로 외치며 그를 향해 쌍장을 날렸다.

번쩍!

[크아악!]

북혈마의 몸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황군우와 대적하고 있던 그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황군성의 천년의 공력에 목게신공의 뒷받침을 받은 장력을 그로서는 받아낼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었다.

황군성은 즉시 방향을 돌려 남궁파를 향해 날아가며 소리쳤다.

[남궁파! 목숨을 바쳐라!]

펑!

남궁파와 황군성이 서로 한 걸음 씩 물러섰다.

남궁파는 소매 속에서 한자루의 단창을 꺼내들었다.

고금십대천병 중의 하나인 혈화창이었다.

그가 자신의 사부인 전륜법왕을 살해할 때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

황군성이 소리쳤다.

[그것으로 사부를 잘도 죽였겠다.]

그의 손에서 백색 광채가 뻗어나왔다.

번천도가 펼쳐진 것이다.

붉은 빛과 백광이 어우러지며 한폭의 찬란한 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스팟---------!

 

한편,

진우란은 전연옥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위지장천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손에는 지멸고가 들려있었다.

[삼성혈주! 이것이 뭔지 알아보시겠어요?]

진우란은 지멸고를 치켜들며 말했다.

위지장천이 전연옥에게서 물러섰다.

[지멸고‥‥‥당신이 사신‥‥‥?]

[그래요. 하지만 삼성혈을 쑥밭으로 만들고 지멸고를 빼앗은 사람은 바로 제 아버지였어요.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당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조금도 없어 져버렸어요.]

진우란은 비웃듯이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나 제 아버지께서 삼성혈에 간 이유나 뭐가 다르겠어요? 하지만, 지멸고는 돌려드리죠.]

그녀는 지멸고를 휙 던졌다.

위지장천은 자신의 기형괴검을 뻗쳐 지멸고를 받고는 묵묵히 서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소저의 말이 옳소. 나도 다를 것이 없었구려.]

침중하게 말하면서 등을 돌렸다.

방금전까지 문성무존에 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던 그지만,

물러설 때는 깨끗하게 물러서는 장부다운 일면이 있었다.

진우란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도 대장부였구나.)

 

펑펑!

마왕과 임보산은 팽팽한 대치를 이루고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의 몸을 격타하고 있었다.

임보산은 고금십대천병 중에서 금강신(金剛身)을 소유한 인물이고,

마왕 하후승은 월음천마공으로 불사불괴지체가 된 몸이다.

펑! 펑! 펑!

수 만근의 경력이 서로의 몸위에 떨어져도 그들은 끄덕도 없이 공격만을 해대고 있었다.

임보산이 일푼 정도 우세한 듯했지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의 싸움은 두 사람만의 싸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황군성과 임보산이 나타난 이후,

문성무존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미 반 수 이상의 가족이 죽었지만 그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터다.

싸우는 사람은 오직 황군성과 임보산 두 사람 뿐이고,

황창설 등은 가족의 시체를 한군데로 모으고 있었다.

황필민도 마왕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황자준, 황자걸, 황자웅 등도 모두 불귀의 고혼이 되고 말았다.

모두들 슬퍼하고 있는데도 황숭환은 불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닌데‥‥‥아닌데‥‥‥)

그의 말은 옳았다.

정말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음곡 절벽 위로부터 새까맣게 인영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문성무존의 사람들은 아득해 짐을 느꼈다.

주혜린은 황청청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말씀을 잊지 않았겠지? 절대로 내 곁을 떠나서는 않된다.]

황청청이 두려움에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음곡을 떠나려던 위지장천도 떠나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인영들을 보고 있었다.

한데,

떨어져 내리는 인영들은 마치 나무토막처럼 아무렇게나 떨어지며 소음곡 바닥에 쳐박혔다.

쿵!쿵!쿵!

마치 방아짓는 소리같은 음향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땅에 쳐박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같던 자들이 몸을 세우고 있었다.

위지장천이 경악에 찬 외침을 터뜨렸다.

[동피철골시(銅皮鐵骨尸)!]

 

일어서고 있는 자들‥‥‥

그들은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실혼인의 상태에서 약물에 달궈지고 특이한 종류의 금속을 복용하면서 이십 년이상을 살아온 자들‥‥‥

그들에겐 오직 명령을 내리는 대로 따라할 만큼의 단순한 정신 밖엔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이들은 불로도 독으로도 도검으로도 죽일 수가 없다.

또한,

이성이 없기에 잔인함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마음대로 손을 쓴다.

냉혹, 무자비, 그러면서도 빠르고 강한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이 동피철골시다.

그러나,

소음곡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동피철골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오직 위지장천 밖에 없었다.

이것은 삼성혈에서도 극히 비밀로 전해내려오는 대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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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二 章

 

           바위를 잘 보아라.

 

 

 

은은한 퉁소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곳,

태산의 정기가 한곳에 뭉쳐졌다는 소음곡이다.

소음곡 뒤쪽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밑,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이 뒷짐을 지고 배회하고 있다.

한쪽에는 지금 문성무존의 안살림을 맡아하고 있는 황창설의 처 주혜린이 황청청을 데리고 서있고‥‥‥

황숭환이 물었다.

[지금까지 몰려온 자가 몇이라고?]

주혜린이 대답했다.

[호수 안에 들어온 자들 만도 이천 명 정도입니다.]

[음‥‥‥발디딜 곳이 별로 없겠군.]

[지금 고조부님을 위시한 식구들이 가차없는 살수를 펼쳐 그들을 막고있습니다만‥‥‥흘러내린 피로 이미 호수가 붉게 물들었다 합니다.]

황숭환은 하늘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야. 피할 수 없는‥‥‥]

[할아버님!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살죠?]

황청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숭환은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스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아무 걱정할 것없다. 네 어미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말아라.]

[네!]

황숭환은 주혜린을 불렀다.

[얘야, 이리와서 앉도록 해라.]

그는 곁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문성무존이 대를 이어가고 못가고는 오직 네 손에 달렸다.]

황숭환의 말에 주혜린은 흠칫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너와 창설, 그리고 너희들의 세 아이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죽게될 것이다.]

주혜린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문성무존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황숭환이 앞일을 내다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필경은 그런 것이다.

[오늘로서 우리 문성무존의 소음곡에서의 생활은 끝날 것이다. 너와 창설이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문성무존을 이어가야 한다.]

[…………]

[오늘 적어도 일만 명 이상이 소음곡에서 죽어갈 것이다. 그 중에는 무공이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다.]

[…………]

황숭환은 황청청의 손을 꼭 잡은 후에 그녀에게 자신이 앉은 곳으로 부터 다섯걸음 나아가서 원을 그리게 시켰다.

그리고 주혜린에게 말했다.

[청청이가 그린 원을 잘봐둬라. 이곳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원안에 있는 것뿐이다. 저녁무렵, 갑자기 소음곡에서 소음(簫音)이 끊어지면 어디에 있던간에 무조건 이곳으로 달려와야 한다. 반드시 이곳이어야 한다. 잊지 말아라. 소음이 끊어지면‥‥‥]

[명심하겠습니다.]

[창설이와 군성, 군우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해라. 다른 식구들에겐 알릴 필요가 없다.]

황숭환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너는 총명하니까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애야. 하늘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단다. 그럼 우리도 가보자구나.]

황숭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황청청을 사랑스럽게 품에 안아들고 문성무존의 입구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혜린은 황숭환이 앉았던 바위를 거듭 눈여겨 보았다.

그것은 평소 황숭환이 즐겨 앉던 곳이기도 했다.

그녀는 주위의 원을 익힌 다음에 지워버리고 황숭환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황숭환이 말한 하늘은 사람의 피를 좋아한다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우리 가족은 인간세상에 산 것이 아니었어. 너무나 오랜 세월을 피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어. 하늘이 시기할 만도 해‥‥‥)

 

***

 

문성무존의 앞,

백발이 성성한 신선같은 노인들과 중년인들이 장검을 들고 길게 장사진(長蛇陳)을 늘어서있고,

그들의 맞은 편에는 각양각색의 무림인들이 병기를 번쩍이며 대치하고 있는데,

무림인들의 앞에는 시체가 마치 방죽처럼 쌓여있었다.

약 이천여명의 무림인들이 호수를 건너와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빽빽히 서있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섣불리 시체의 방죽을 넘어오려 하지 않았다.

문성무존의 문이 열리고 황숭환이 황청청을 안은채 밖으로 나왔다.

황청청이 무수한 시체들과 피를 보자 황숭환의 가슴을 얼굴을 묻고 보려하지 않았다.

황숭환이 그녀의 등을 다독거렸다.

장사진의 가운데 서있던 노인, 황필민이 허리를 굽히며 그를 맞았다.

바로 그때,

호수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목숨이 아까우면 비켜라!

----아악! 크악!

 

비명소리가 어우러지더니 무림인들 가운데로 길이 뚫리며 이십여 명의 사요(邪妖)한 모습을 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몸에서는 요상스런 기운이 일고 있었다.

그들은 걸리적 거리는 인물들은 모조리 베어버리며 시체의 방죽앞에 도착했다.

그들 중에 붉은 옷을 입은 삼십여세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시체를 밟고 올라서며 깔깔 웃었다.

[호호호호‥‥‥우리는 청해 신선동의 사람들이다. 영감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 순순히 길을 비켜주기바란다.]

청해 신선동‥‥‥

그러한 문파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검술에 요상스런 술법을 섞어서 사용하는 인물들고 한마디로 사파에서도 사파로 치우친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물었다.

[신선동이 뭐하는 데냐?]

[보잘 것없는 검술에 조잡스런 사술(邪術)을 섞어 사용하는, 눈여겨 볼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곳입니다. 우두머리는 스스로 구천미랑(九泉美娘)이라고 하는 여자인데 아마 저 여자 일듯 싶습니다.]

황창설은 무림에 나갈 때마다 외부의 기업에서 모아둔 정보를 통해 그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구천미랑은 그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으나,

방금 전과는 달리 내심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황필민이 구천미랑을 보며 말했다.

[이제보니 쓸모없는 물건이었군.]

구천미랑은 앙칼지게 소리쳤다.

[공격해라!]

그녀의 뒤에있던 이십여명의 인물들이 검을 번쩍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한데,

바로 그순간,

장사진을 치고 있던 문성무존의 식구들 중의 일부가 검을 휘둘렀고,

번쩍!

툭! 털썩! 털썩!

비명도 없이 날아올랐던 자들이 시체들의 방죽위에 떨어지면서 방죽을 높혔다.

구천미랑도 이미 그녀가 밟고 섰던 시체위에 포개져 있었다.

시체들의 방죽은 무림인들이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최후의 선이었던 것이다.

이런 정도가 되니까 이천여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서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문성무존은 쑥밭이 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문성무존의 가공할 무공을 본 무림인들의 탐욕은 더욱 커지고 있었으니‥‥‥

신선동의 요사한 무리들이 죽은지 채 일각도 되지 않았을 때,

호수 쪽에서 다시 소란이 일었다.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뒤이어 살벌한 음성이 들렸다.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라!

 

삼절일천군단은 말을 타고 작은 호수를 헤엄쳐 건너오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자들이 닥치는 대로 살인하기 시작했다.

 

----으악! 악!

----도망쳐라! 이들은 우리를 몰살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서 땅에는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비명이 끝없이 터져 나왔다.

으악!악!

번쩍! 우웅!

삼절일천군단은 불과 삼각이 되지 않아서 원래 그곳에 있던 이천여 명의 무림인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몰살시켜버렸다.

단주 염녹균이 말을 몰아 시체들의 방죽위에 우뚝서며 외쳤다.

[본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은 이곳 소음곡을 접수한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말했다.

[이 자들은 그래도 좀 낫군.]

[진법으로 싸우는데 특히 능한 자들입니다.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황창설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문성무존은 개인들의 무공은 발전시켰지만 집단 간의 싸움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에게 삼절일천군단은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

황필민이 차갑게 말했다.

[그럼 진을 펼칠 틈을 주지 말아야지.]

순간,

그는 말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절벽 위에서 부터 꽃처럼 날아 내리는 인영들이 있었다.

슈우우우------!

[드디어 강한 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모양이군.]

황필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날아 내리는 백여 명의 인물들 중 하나가 세찬 기세로 떨어져 내려왔다.

황필민이 손을 들어 빛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군성인가?]

[아닙니다. 군우입니다.]

떨어져 내린 인물은 황군우였다.

그는 내려서자 마자 무릎을 꿇고 황숭환에게 절했다.

황창설이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은?]

[아버님, 제가 거느린 사람들입니다.]

[그래? 그럼 이쪽으로 내리게 해라.]

황창설은 반가워하며 말했다.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부하들을 데리고 위급할 때 찾아왔으니 그가 기뻐지 않을리가 없다.

싱글벙글하는 그를 보며 황필민이 말했다.

[너보다 낫다.]

 

황군우는 현현궁의 용봉들이 날아 내리자 마자 명령을 내렸다.

[경천위지백인진을 펼쳐 적들을 섬멸하라!]

휘휘휙!

구십팔 명의 용봉들과 전연옥이 삼절일천군단의 사이로 날아들어가고,

황군우 자신도 그들 중에 합류했다.

이어서,

우르렁! 쿵쾅!

[크아아악!]

삼절일천군단과의 경천동지할 대결전이 벌어졌다.

숫적으로는 황군우측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그들은 개개인이 모두 우수한 고수들일 뿐 아니라,

경천위지백인진이란 절진을 펼쳐서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는데 비해,

삼절일천군단은 발대기도 비좁은 공간에 있으니 그들의 특기인 혈검천륙살진을 펼칠래야 펼쳐볼 수도 없었다.

말과 사람의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사람들은 시체를 밟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천여 명의 무림인을 몰살시킨 똑같은 그자리에서,

삼절일천군단은 똑같은 운명을 걷고있었다.

그들은 좁은 소음곡으로 들어온 자체가 실수였던 것이다.

전연옥이 휘두른 낙일검에 삼절일천군단의 단주인 염녹균은 일찌감치 종씨인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버렸고,

넓은 곳으로 뛰쳐나가 싸우려고 시체의 방죽을 넘었던 자들은 문성무존의 징계를 받고 그자리에서 시체로 변했었다.

아름답던 소음곡은 이제 오직 혈혈혈(血血血)‥‥‥

피와 죽음이 가득하고,

늘 푸르던 작은 호수는 붉게 변한 채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현현궁의 용봉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그들 중의 사할이 삼절일천군단과 함께 죽어갔다.

살아남은 그들은 황필민의 배려에 의해 문성무존에서 휴식을 취했다.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혈전이었다.

황군우는 들어가지 않고 전연옥과 함께 장사진에 합류하려 했다.

그때,

[작은 오빠! 이리와요. 어머니께서 기다리셔요.]

황숭환의 눈짓을 받은 황청청이 그와 전연옥을 데리고 주혜린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문성무존의 여인들은 모두 문성무존의 요소요소에서 경계하고 있었다.

주혜린은 전연옥을 데리고온 황군우를 반갑게 맞았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황군우는 겸면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었고,

전연옥이 절하며 말했다.

[어머님을 뵙습니다. 전연옥입니다.]

[우리 군우에게 과분한 아가씨구나.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우리 집안에 관한 것들을 들려주마.]

[예.]

전연옥이 절하며 물러섰다.

주혜린은 황군우를 응시하며 위엄있는 음성으로 나직히 말했다.

[이것은 제일 위 조부님 말씀이시니 절대로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황군우는 제일 위 조부님의 말이라는 소리에 바짝 경각심을 가졌다.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늘 앉으시던 바위를 기억하느냐?]

[폭포수 있는 데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그곳이다. 저녁 때가 되면 소음곡에서 소음이 끊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만사를 젓혀 두고 그곳으로 달려와야 한다. 이것은 절대로 잊어선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소음이 들리는지 아닌지 신경쓰고 있어야 한다.]

 

× × ×

 

휘이이-------

휘이이-------

문성무존의 장사진 앞에는 시간이 갈 수록 시체가 높이 쌓였다.

벌써 몇 차례나,

시체가 가득한 곳을 메웠던 무림인들이 죽어갔는지 모른다.

문성무존의 가족들에 의해서도 죽고,

자기들 끼리도 죽고죽였다.

평평했던 곳은 말 그대로 시체가 쌓여서 언득을 이루고,

피는 흘러서 내를 이루었다.

시간은 오후도 반이 지나버린 때다.

더 이상 소음곡안으로 들어오는 무림인들은 없을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곧,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절정의 고수들이 출현하리라는 것을‥‥‥

돌연,

[크하하하하‥‥‥]

가공할 내공이 깃든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오며 한 인물이 푸르스름한 기운에 휩싸인 채 소음곡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을 한 그는 북혈마였다.

그는 시산혈해에 우뚝 내려서서 형형한 눈초리로 장사진을 노려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본좌에게 저항하지 마라. 순순히 길을 비켜라!]

그는 임보산을 만난 후에 자신의 무공에 열등감을 느꼈던 것인데,

소음곡에 무수한 비급과 영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 총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황필민이 황창설에게 물었다.

[저 미치광이는 대체 누구냐?]

[소손은 모르는 자입니다.]

그때 전연옥과 함께 서있던 황군우가 말햇다.

[북혈마라는 자로 저희가 섬멸시킨 삼절일천군단의 주인입니다.]

[무공은 어떻냐?]

[소손에 비해 나은 것이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때,

허공에서 다시 한 명의 인물이 날아 내렸다.

얼핏 보기에도 그자의 무공은 북혈마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구름을 탄듯이 천천히 내려온 그는 남궁파였다.

고수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다시 기형장검을 둘러맨 위지장천이 내려왔고,

그의 뒤를 전신이 마기로 뒤덮힌 중년인이 내려왔다.

바로 마왕 하후승이었다.

그리고, 도신 범강이 뚝 떨어지듯 소음곡에 내려섰다.

황숭환의 눈이 남궁파와 하후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황필민은 이제 말하지 않았다.

눈앞에는 진정한 강적이 도달했고,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그의 아버지이자 문성무존의 최고 어른인 황숭환이 주도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온 자들과,

원래부터 있었던 자들은 한동안 말없이 대치하기만 하고있었다.

황숭환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 아들들아 손자들아! 이제 너희들이 죽어야 할때가 도래했구나. 검을 높이 들어 적을 맞도록 해라.]

바야흐로‥‥‥

소음곡의 운명을 판가름할 대 혈전의 서막이 올랐다.

지금 나타난 고수들은 먼저 죽어 시산혈해를 이루었던 그자들 모두를 합한 것 만큼이나 강한 자들‥‥‥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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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一 章

 

          船上에 흩어진 絶世高手의 遺骸

 

 

 

황하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포구 연운항(蓮雲港),

키가 큰 꼽추 하나가 갖가지 물건을 사들고 포구에 닿아있는 한척의 배위로 올라간다.

그는 바로 전륜법왕의 하인인 마타(魔駝)였다.

배위에 올라가 창고에 물건을 넣고 선실로 다가가던 그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몸을 날렸다.

쿵!

문이 떨어져 날아가고,

확!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찔렀다.

[주인님!]

마타는 크게 부르짖고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실로,

참혹한 광경이 선실안에 펼쳐져 있었으니‥‥‥

마타의 주인 전륜법왕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는 따로따로 잘려서 흩어져 있고,

머리는 뎅그라니 식탁위에 올려져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의자에 놓여있는 그의 몸통에는 예리한 것으로 난자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사람을 죽여도 이렇게 죽일 수는 없다.

개를 잡고 소를 잡아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마타는 분노로 치를 떨며 미친듯이 고함쳤다.

[으아아아아------!]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창고에서 부대를 가지고 와서 흩어져 있는 전륜법왕의 살점과 수족을 주워모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남궁파‥‥‥개같은 놈‥‥‥아니 개보다 못한 놈‥‥‥네놈은 살아있다는 것을 후회하며 죽게 될 것이다‥‥‥]

 

× × ×

 

[흐흐흐‥‥‥괴물같은 난장이 영감‥‥‥이게 순서지 순서. 큭큭‥‥‥]

한 야산에서 전신을 피로 뒤집어쓴 듯한 노인이 상처를 싸매면서 키들거리고 있었다.

한데,

이 노인이야 말로 마타가 저주를 퍼부은 그 남궁파가 아닌가?

[사부‥‥‥대단했소. 사부가 내게 준 이 혈화창이 아니었더라면 죽은 것은 아마 나였을 것이오. 큭큭‥‥‥]

남궁파는 옆에 놓여진 두척길이의 단창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 상황에서도 내게 반격을 가하다니 과연 사부는 천하의 무학종사였소.]

남궁파는 전륜법왕을 칭찬하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모를 어조로 계속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사부‥‥‥나 역시 배신은 내가 거둔 놈으로부터 배웠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써먹을 수 있었지만 사부는 배운 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갔구려.]

으드득!

그는 이빨을 갈며 분한 듯 소리쳤다.

[그놈! 황군우‥‥‥! 갈아마시고 말겠다.]

그의 눈에서는 줄기줄기 혈광이 뻗쳐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다시 음흉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흐흐흐‥‥‥비록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사부의 내공을 흡수했으니 나는 천년의 공력을 이루었다. 흐흐흐‥‥‥이제 누구도 나를 당할 순 없을 것‥‥‥크하하하‥‥‥]

그는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날아올랐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핏자국이 붉게 남았다.

사부를 죽이고,

그 내공을 흡수한 천인공로할 살인자의 앞날은 과연‥‥‥

 

× × ×

 

나는 듯이 날아가는 황군성 일행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누구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황군성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타난 사람은 넙죽 땅에 엎드리며 말했다.

[노복 마타올시다. 주인!]

황군성은 어리둥절하면서 그의 앞에 멈춰섰다.

[마타가 웬일이시오?]

황군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마타가 한때 수많은 여인을 간살했던 대마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금화선녀가 차갑게 말했다.

[마타! 간이 단단히 부었구나. 감히 내앞에 나타나다니‥‥‥]

그러나,

그녀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마타는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황군성을 향해 울부짖었다.

[작은 주인! 법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흉수는 남궁파‥‥‥처참하게 돌아가셨소이다.]

쿵쿵!

마타의 충심에서 우려나오는 음성이 황군성과 금화선녀, 임보산의 가슴을 격탕시켰다.

임보산이 탄식했다.

[그같은 인물이 제자의 해침을 받다니‥‥‥전륜법왕! 전륜법왕! 당신같은 무림의 일대종사가 너무 허망하게 갔구려‥‥‥]

[휴‥‥‥사형이 죽다니 믿어지지가 않군요. 남궁파 따위가 무슨 수로 사형을 죽일 수 있었을까요?]

금화선녀가 한숨을 쉬면서 임보산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혈화창을 가지고 있지 않았소? 아마도 그 혈화창에 해침을 받았을 것이오.]

[무제의 말씀대로입니다. 저희 주인님의 유해는 너무 참혹하여 남에게 보일 수 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마타는 전륜법왕과 수 십년을 살면서 그를 충심으로 따랐던 것이다.

강호의 은원을 모두 잊고 그를 따르면서 유유자적 신선같은 생활을 했던 그이기에 자신이 존경하는 전륜법왕을 죽인 남궁파에 대한 원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남궁파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하여 전륜법왕의 다른 제자가 된 황군성을 찾아 복수를 부탁하려한 것이다.

복수의 화신이 된듯 마타의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망연자실하던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사부! 당신의 그 괴벽스런 성격을 싫어했소만 인간적으로 미워하진 않았소. 사부의 복수는 기필코 하겠소.]

그의 마음은 굳은 결의로 가득차있었다.

(어쩌면 소음곡을 무림에 알린 원흉이 바로 남궁파일지도 모른다. 그건 누군가의 음모일 테니까. 남궁파‥‥‥네가 살길은 이제 어디에도 없어져 버렸다.)

가자!

태산으로‥‥‥

황군성은 앞장서서 지름길을 찾아 몸을 날렸다.

휘이익!

그의 몸은 한줄기 빛이 되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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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 章

 

             苦佛菴의 夜客

 

 

 

보화산의 밤,

별빛은 초랑초랑하고 은하수는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보화산의 중턱에 있는 고불암의 승려는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머리를 흔들면서 암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법당에 모셔진 일백팔 개의 고뇌불은 세상의 근심을 모두 얼굴에 담고있다.

법당으로 나란히 걸어가는 한쌍의 남녀.

칠척의 거구 황군성과 가날픈 몸매의 진우란이다.

진우란은 그의 손을 잡아끌며 고뇌불이 모셔진 법당으로 갔다.

일렁이는 촛불이 불상의 번뇌를 더하게 하는데‥‥‥

진우란은 합장을 한후에 불상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보면서 말했다.

[황오라버니‥‥‥ 이 불상들 옆에 서면 제가 백 아홉 번째 불상으로 보이지 않겠어요?]

황군성은 그녀의 심사를 알것도 같아서 묵묵히 있었다.

임보산이 그녀를 위해 나서준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마음이 편할 수 만은 없는것.

또한 그녀는 위지장천의 원수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질 않는가?

어쩌면 지금쯤 그녀의 부하들은 위지장천으로 부터 사냥당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황군성이 그녀의 어깨를 포근히 감쌌다.

진우란이 소리죽여 흐느끼며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내려갑시다.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니 모든 것이 잘될 것이오.]

 

임보산은 침상에 느긋하게 누워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참‥‥‥이거 귀가 가려워서라도 한천사방객을 빨리 만나 담판을 지어야 겠군. 틈만 있으면 훌쩍이는 것이 영 나들으라는 소리같아서 원‥‥‥]

[당신도 쓸데없는데 귀 기울여 젊은 사람들 얘기 엿듣지 말아요.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금화선녀가 그녀의 상징인 금화를 손질하여 머리에 꽂으며 말했다.

[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왜요?]

임보산의 말에 그녀가 물었다.

[분명히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그 녀석이 뭘 하는 소리를 엿들을 수가 없으니 이상하지 않소?]

[실없는 소리 말아요. 애들 들을까 겁나지도 않아요?]

갑자기 임보산이 귀를 쫑긋했다.

[응?]

[엿듣지 말래두 그러네.]

[그게 아냐 누가 오고 있는데? 젊은 여자군. 아주 젊어.]

[흥, 젊은 여자는 무슨‥‥‥]

말하든 금화선녀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군요.]

[거봐, 곧장 이리로 오잖소. 아마 날 찾아왔을 거요. 부인은 잠시 피해주구려.]

금화선녀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쳤다.

펑!

[흥! 만약 당신을 찾아온 여자라면 이번에야 말로 목을 비틀어 버리겠어요.]

꽝!

그녀는 문을 세차게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가끔 임보산이 말한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그녀였다.

금화선녀는 밖으로 나가 달려오는 그림자를 본 후에 후딱 임단심이 자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어본 즉 임단심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그녀는 훌쩍 몸을 날려 달려오는 그림자를 막아섰다.

달려오던 소녀가 걸음을 멈추면서 소리쳐 물었다.

[아주머니! 혹시 저와 똑같이 생긴 여자 보시지 않았어요?]

금화선녀의 눈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파릇파릇한 빛을 발했다.

[네가 조가라는 그 못된 계집애로구나!]

소녀는 그녀의 한기 풀풀 날리는 음성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물러났다.

[다, 당신은 누구세요? 무림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금화선녀는 임단심이 삼불대 밑으로 돌아온 날 이미 조응경에 대해 들은 바 있었다.

그 당시에 그녀는 조응경에 대해 심하게 욕설했었는데‥‥‥

과연,

그녀의 앞에 놀란 토끼 마냥 쫑긋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는 조응경이었고,

금화선녀는 보자마자 그녀를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흥! 무슨 마음으로 그 애를 찾아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당장 떠나는 것이 좋을 걸? 비록 후배에게 손쓰고 싶지는 않지만‥‥‥경우에 따라서는 쓸 수도 있으니까.]

살기등등한 금화선녀의 말과 거동에 조응경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물었다.

[부인께선 누구시죠? 어떻게 저를 알고‥‥‥]

[네 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내가 알아주겠느냐.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조응경은 몹시 두려웠으나 내심 임단심이 근처에 있음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부인이 그렇게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응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저는 그녀, 아니 꼭 그 사람을 만나야 해요. 부인께선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 혈룡도왕 황군성소협을 만나게 해주세요.]

금화선녀가 차디찬 음성으로 내뱉었다.

[말로해서는 도저히 들을 계집애가 아니군.]

그녀는 시위를 하는 듯 소매속에서 금화(金花)를 꺼내들었다.

번쩍!

금화가 폭발하듯이 터져 오르며 칠십두 개의 꽃잎이 빛이 되어 날아갔다.

[앗!]

조응경은 경악하며 전신의 공력을 다해 날아올라 연거푸 일곱 번을 구르고 땅에 떨어졌다.

[헉!]

조응경의 옷은 마치 국수처럼 갈기갈기 베어져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두치 정도의 폭으로 잘라진 베를 몸을 감고 있은 듯한 형국이었다.

금화선녀가 마음만 먹었으면 찢어진 것은 그녀의 옷이 아니라 몸이었을 것이다.

쉬이이이--------!

한줄기 금빛이 모이듯 금화선녀의 손으로 꽃잎은 다시 모였다.

바로 그때,

[또 당신이었군.]

0아름답지만 한기가 풀풀 날리는 음성이 조응경의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스스슷!

금화선녀의 옆으로 세 사람이 환상처럼 나타났다.

임보산과 황군성, 진우란이었다.

조응경은 황군성을 보자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서릿발 같은 진우란의 눈도 보이지 않았다.

진우란이 한걸음 나서면서 말했다.

[홍심련주! 감히 내게 차도살인지계를 사용한 댓가를 보여주마!]

조응경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진우란이 바로 사신이라는 것을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단지,

지금 이순간에 황군성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간발의 순간에,

과연 황군성은 자신의 역활(?)을 잊지 않고 했다.

[휴! 진매, 멈추시오.]

[…………?]

[…………?]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로서는 그녀를 보호해야 할 입장이라오.]

진우란이 흠칫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설마‥‥‥]

황군성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오. 다만, 그녀와 임매는 통심마고로 영적으로 이어져 있소. 만약 그녀를 죽인다면 임매도 살지 못 할 것이오.]

금화선녀는 임단심으로 부터 들었던 말이 있는지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빨을 갈면서 말했다.

[괘씸한 사형! 만나기만 하면 족제비같은 수염을 왕창 뽑아버리겠어.]

그녀가 말하는 사형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통심마고를 펼친 전륜법왕이다.

그녀는 화를 부룩부룩 내며 객사로 돌아가 버렸다.

임보산도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진우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황군성의 행동을 지켜보는데,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조소저, 이곳은 왠일이요. 무엇 때문에 임매를 찾는 것이오?]

조응경이 입속 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무엇때문에 임단심을 찾겠어요? 당신을 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을 뿐이지‥‥‥]

그러나 그 말을 황군성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시 물으려는데 조응경이 거의 다 베어진 소매 속에서 너덜거리는 서찰을 꺼내들었다.

다행히도 서찰에는 길게 베어진 자국이 있기는 했으나 읽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같았다.

[현현궁주이신 청삼객께서 당신에게 보낸 거예요.]

휙!

조응경은 내공을 실어 서찰을 던진 후 그대로 몸을 돌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갔다.

서찰은 황군성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날아들었다.

황군성은 서찰을 받아드는 순간 격동으로 몸을 떨었다.

너무도 익숙한 글씨,

바로 그의 동생 황군우의 필체가 아닌가?

[조소저! 잠깐 멈추시오.]

그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조응경의 몸은 까마득히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진우란이 황군성의 기색을 남몰래 살폈다.

 

황군성은 황촉불 아래에서 서찰을 펼쳤다.

순간,

그의 안색은 크게 변해버리고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진우란이 다급히 물었으나 황군성은 대답없이 숨을 몰아쉬며 서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형님,

문성무존이 외부에 노출되었습니다.

무림인들이 영약과 비급을 얻기 위해 태산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음곡에서 다시 한번 학선평의 참사가 재현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먼저 태산으로 갑니다.

군우올림>

 

진우란은 물론, 어깨너머로 바라본 임보산마저도 미미하게 놀랐다.

문성무존‥‥‥

내일이면 육천태를 데리고 황군성이 가기로 한 그곳이 아닌가?

한데,

그 문성무존이 노출됐다‥‥‥

모든 무림인들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황군우가 학선평에서 기개를 널리 떨쳤던 현현궁주 청삼객이었다는 사실 정도에 비할 수 없는 사태인 것이다.

[빨리 가봐야지 않겠나?]

임보산이 염려스러운 듯 물었다.

황군우가 길게 한숨을 내쉰 후에 말했다.

[아마 소음곡으로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매가 정신을 차리면 출발하기로 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황군성의 마음은 초조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또한 사건은 급박하고 돌아가고 있었다.

 

× × ×

 

학선평의 참사가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림은 다시 술렁이며 태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태산에는 신선들이 사는 신비한 계곡이 있다.

-------그곳에는 온갖 영약과 무공비급들이 무진장 늘려있다.

-------들어가기만 하면 절세고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태산으로‥‥‥태산으로‥‥‥

 

영약과 비급이 무진장 감춰진 신선들이 사는 곳‥‥‥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전해진 소문은 무림황제를 추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흥분을 무림에 부여하고 있다.

영약과 비급은 명분이 아닌 실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 무림인들은 사람은 탐욕으로 죽고 새는 모이로 죽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알면서도 따르지 못하는 인물들‥‥‥

이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위험이 있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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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九 章

 

          九絶反天平脈의 治療

 

 

 

[그렇게 절망적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육노인과 잘 아는 편입니다.]

황군성이 발작적인 증세를 보이는 금화선녀에게 말했다.

금화선녀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황군성을 채근했다.

임보산은 마치 기도하는 듯한 모습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높히 쳐들고 말이 없고,

황군성은 진우란을 돌아보고 말했다.

[진매! 내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잘들었다가 절승곡(絶勝谷)에 가서 전해주시오.]

[말씀하세요. 황오라버니 분부대로 하겠어요.]

황군성은 육천태가 눈앞에 있기라도 하듯이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육노선배! 만약, 육노선배께서 임매를 살려주신다면‥‥‥저는 육노선배께서 그토록 궁금해 하셨던 제 가문에 대해서 상세히 밝힘은 물론, 직접 육노선배님을 모시고 가서 원하시는 만큼의 영약들을 얻을 수 있게 해주겠습니다. 또한 언제나 그곳에 출입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도 해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문성무존의 제 사십구대 주인이 될 사람으로서 맹세하는 바입니다.]

[육노선배!‥‥‥‥‥‥맹세하는 바입니다. 어디 틀린데는 없죠?]

진우란은 똑같이 한 번 외워 보인 후에 말했다.

황군성은 그 순간에도 한번 미소를 지어보인 후 빠르게 말했다.

[한마디도 틀리지 않았소.]

[그럼 다녀오겠어요.]

진우란은 임보산과 금화선녀를 향해 허리를 굽혀 보인 후에 절승곡으로 떠났다.

괴노 육천태가 이름을 숨기고 살고 있는 절승곡은 그들이 있는 고불사로부터 불과 이십여리 남짓한 곳에 있다.

황군성은 그곳에 머문 적이 있고, 진우란은 육천태로부터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진우란이 절승곡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나가고 난 후 얼마 있다가 임보산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육천태가 이곳 보화산에 은거하고 있었다니 뜻밖이군‥‥‥]

 

× × ×

 

뚜벅뚜벅!

실내를 거니는 발자국 소리가 불안스럽게 계속되고 있다.

무릎을 꿇고 앉은 한 여인의 주위를 돌고 있는 청년과 그녀를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미소녀.

이들은 객점에 들어온 황군우와 전연옥 일행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여인은 조응경이고,

황군우는 무언가를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이윽고,

[조소저! 그대가 형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이오?]

하고 청삼객의 차림을 한 황군우가 조응경에게 물었다.

그는 조응경이 그의 형 황군성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알기에 봉십삼으로 부르지 않고 조소저라 부른 것이다.

조응경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궁주님, 독봉 임단심소저와 저는 한 쌍의 통심마고에 의해 영적으로 이어져 있기에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로는 임단심을 찾으면 황군성은 당연히 그곳에 있으리라는 것이다.

[통심마고라‥‥‥세상에 그런 기이한 물건도 있었군‥‥‥]

황군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연옥이 말했다.

[저도 통심마고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묘강에 사는 특이한 벌레로 다른 고와는 달리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통심마고를 다룰 줄 아는 기인이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조응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통심마고를 펼친 분은 다름아닌 남궁파의 사부인 전륜법왕입니다.]

황군우는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는 것같지 않았다.

한동안 깊히 생각한 후에 한필의 서찰을 적어 조응경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럼 형님께 이것을 전해주시오. 이것을 전해 주기만 하면 알아서 하실 것이오. 빨리 가보시오. 참 그리고‥‥‥]

[…………]

[조소저는 굳이 돌아오지 않아도 되오. 현현궁에 얽매이지 마시오.]

황군우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가시오!]

조응경이 감격하며 읍했다.

[궁주님의 하해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뜻을 이루시고 전소저와 백년회로 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소식이 늦지 않게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오.]

황군우는 담담하게 말했고,

조응경은 몸을 날려 떠나갔다.

[마치 폭풍이 몰아칠 것같은 기분이군요.]

전연옥이 불안한 표정으로 황군우에게 다가섰다.

황군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렇소. 어쩌면‥‥‥어쩌면‥‥‥]

[떠나야죠?]

전연옥은 웃음 진 얼굴로 황군우를 대했다.

그녀는 남장여인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어떤 여인보다도 더욱 여인다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황군우는 그녀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면서 말했다.

[갑시다.]

한시가 급하다.

황군우의 마음은 콩이 튀듯 튈 것만 같은 정도인 것이다.

잠시 후,

일백 명의 영기발랄한 남녀 고수들이 바람과 같이 달려갔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태산(泰山)이 있는 쪽이었다.

 

× × ×

 

[구절반천평맥?]

육천태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재촉하는 진우란에게 반문했다.

[예! 구절반천평맥‥‥‥]

[그게 사람한테 나타날 수 있기는 있는 것이었나?]

육천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구절반천평맥에 걸렸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의학 이론상 그런 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정도일 뿐이었다.

육천태는 옥으로된 호로병 하나를 깊숙한 데서 찾아내더니 말했다.

[가자!]

[그것만 가지고 되겠어요?]

진우란이 불안스럽게 묻자 육천태는 미소를 지었다.

[명궁(名弓)이 한마리의 새를 잡는데는 화살 하나면 족함이 있고 신의(神醫)가 병을 치료함에는 일침이면 족하지. 그렇다고 내가 신의라는 것은 아니지만‥‥‥]

급한 환자가 있다는 데야 괴노 육천태도 더 물어 보지 않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내공이 상당히 늘었군! 내단이라도 복용한 겐가?]

오히려 자신을 앞질러 달려가는 진우란을 보고 육천태가 감탄하며 말했다.

진우란은 미처 그런 것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못들은 체 하고 달리노라니 금방 고불암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십리의 거리야 그녀와 육천태같은 고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뒷간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던 것이다.

진우란은 고불암 앞에 나와 있던 금화선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금화선녀는 그들 앞에 내려서며 말했다.

[육선생 어서 오셔요.]

육천태는 갑자기 금화선녀를 만나자 어리둥절하여 인사하며 물었다.

[부인께서 이곳에 어쩐 일이시오.]

그러자 갑자기,

금화선녀는 그에게 깊숙히 허리를 굽혀 절했다.

육천태는 황급히 옆으로 비껴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시오? 이 육모는 감당할 수 없구려.]

금화선녀가 애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육선생께서 제 딸을 치료해 주신다면 평생의 은인으로 알겠습니다.]

육천태가 고개를 돌려 진우란을 보고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녀석이 찾아다니던 임소저가 이 부인의 딸이란 말이냐?]

진우란은 속일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고약하군‥‥‥음‥‥‥]

육천태가 중얼거렸다.

[참으로 고약한 일이군‥‥‥임보산은 내가 자기의 딸을 치료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텐데‥‥‥]

금화선녀가 황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육선생, 그 사람도 감히 청하지 못할 뿐,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육천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구절반천평맥이라고 해도 그라면 능히 치료할 수 있을 텐데‥‥‥그럴 수가 있겠소?]

금화선녀의 표정이 울쌍이 되었다.

자기 남편이 얼마나 인심을 잃고 살았는지 능히 실감하고도 남았다.

심지어 도와주는 것까지 두려워할 정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육형! 이 임모를 용서해 주시오. 육형께서 소제의 딸을 치료해 주신다면 불을 지고 섶으로 뛰어들라고 해도 마다하지 않겠소.]

임보산이 탄식하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천태는 놀라서 눈이 둥그레졌다.

무제 임보산이 어떤 사람인데 스스로 자기를 낮춘단 말인가?

오히려 육천태가 당황스러워졌다.

그는 즉시 객사로 달려가며 말했다.

[임형! 이 육모가 지나쳤소. 그런 말을 듣자고 한 소리는 아니었소.]

[모쪼록 이 임모는 육형의 자비만 바랄 뿐이오.]

사랑하는 딸의 목숨 앞에서는 임보산도 그냥 평범한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육천태는 방을 들어서자마자 세사람을 보았다.

임보산의 모습은 초췌하여 삽시간에 십년은 늙어버린 것같았다.

육천태는 그의 심려가 얼마나 컸겠는가 싶어 위로하며 말했다.

[임형 염려마시오. 내가 얼마 전에 쌍두금구를 얻었기에 기뻐했더니 그게 실은 임형의 영애를 구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는가 보오.]

그는 즉시 임단심의 얼굴색을 살핀 후에,

품에서 작은 옥배(玉盃)를 꺼냈다.

그리고 검지를 옥배에 갖다 대자 검지가 갈라지면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옥배에 반쯤 채웠다.

다시 품에서 준비한 옥호로를 꺼내 몇 방울의 검붉은 액체를 떨어뜨렸다.

[이 쌍두금구의 정혈은 모든 기를 순화시키고 고르게 해주는 영험이 있소. 구절반천평맥같은 것에는 그야말로 특효라고 할 수 있소.]

임보산이 감격해하며 물었다.

[육형! 내가 도울 일은 없겠소?]

육천태는 옥배를 두 손바닥 사이에 넣고 살살 비비면서 말했다.

[목욕하기에 충분한 물이 있으면 좋겠소.]

그 말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진우란과 금화선녀가 크다란 목간통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 가운데는 물이 가득차있었다.

두 사람은 나가지 않고 육천태가 어떻게 치료하는지 한쪽에서 구경했다.

그때,

육천태의 옥배에서 한줄의 명주실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임단심으로 콧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옥배에 들었던 것은 모조리 없어졌다.

육천태는 임단심의 목에 손가락을 대보고는 말했다.

[내가 숫자를 셀때 마다 내력을 일푼식 거둬들이시오. 일‥‥‥이‥‥‥삼‥‥‥]

황군성과 임보산은 그의 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내공을 거둬들였다.

숫자가 일백에 다다랐을 때 육천태는 더 이상 헤아리지 않고 말했다.

[임소저의 몸에서 반발력이 느껴지는 순간에 손을 완전히 거두시오.]

황군성은 임단심의 몸 안에서 마치 곤두서있던 막대들이 넘어가는 것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쌍두금구의 정혈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그 쌍두금구의 정혈이 가진 효력은 황군성과 임보산의 힘이 맞닿아있는 아홉개의 맥에 까지 뻗쳐왔다.

순간,

황군성의 아홉개의 맥에서 일제히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것을 느끼며 황급히 손을 뗐다.

임보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붕!

임단심의 몸은 육천태의 공력에 의해 목간통으로 옮겨가 완전히 물속에 잠겨버렸다.

육천태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고비는 넘겼소.]

[육형 정말 고맙소. 내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으리다.]

임보산이 진심으로 육천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한테는 육형같은 도량이 없소. 나로서는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의 딸을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해 줄 수 없을 것이오.]

육천태는 속으로 큰 기쁨을 느꼈다.

그에게 무공으로 이기고자 했으나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육천태인데‥‥‥

단지 한번의 치료로 그토록 거만하던 임보산이 자기에게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니,

그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임보산과 그는 그동안의 감정을 떨쳐버리고 화해했다.

 

물속에 잠겨있는 임단심의 몸에서 나는 열기로 인해 통속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든 것이 잠잠해 지며 임단심의 몸이 떠올랐다.

구절반천평맥이 치료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육천태가 일어나며 말했다.

[임형! 우린 나가도록 합시다. 이제 옷갈아 입히고 푹자고 나면 내일 아침 쯤에는 거뜬히 일어날 거요.]

임보산이 쾌한 마음으로 그를 따라 나섰다.

 

방안에서는 금화선녀와 진우란이 임단심의 옷을 갈아 입히고,

육천태와 임보산, 황군성은 황혼을 바라보며 섰다.

육천태가 황군성을 보면서 웃고 말했다.

[자네는 정말 신통한 재주를 가졌군. 이 임형이나, 이미 죽은 진섭천이나 나를 가장 감탄시킨 두 사람인데 그들이 딸을 모두 차지 하다니‥‥‥]

[육형도 혼인해서 딸을 낳았더라면 뺏겼을 지도 모르지.]

[하하하하‥‥‥]

임보산이 하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육천태가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임소저가 이미 자네 처라니 하는 말인데, 진소저를 통해서 내게 한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

[기꺼이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임매가 완쾌되는 대로 함께 떠나도록 하지요.]

육천태는 크게 기뻐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절대 빈말은 아니겠지?]

 

일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는 범강과 함께 온 황군성을 만나본 후에 황군성이 여러가지 영약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기에 신기하게 여겨서 자꾸 물어보았었는데,

그만 황군성이 실수하여 소음곡에 대한 말을 흘리고 말았었다.

그때부터 육천태는 온갖 기화이초가 가득하다는 소음곡을 마음을 두고 그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황군성이 다급해지자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오겠네. 임형! 내일 보세나. 껄껄껄‥‥‥]

육천태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웃으면서 절승곡으로 달려가 버렸다.

달려가는 그는 속으로 연방 중얼거리고 있었다.

(삽도 몇 개 준비해야 하고‥‥‥약초를 담을 상자도 준비해야 하고‥‥‥)

황군성과 임보산은 그의 돌연한 행동에 어리둥절하며 동시에 내뱉었다.

[괴노‥‥‥]

괴상한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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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八 章

 

            마왕의 정체

 

 

 

북경(北京),

하후승의 구문제독부 가산 속,

[으‥‥‥그놈들‥‥‥모조리 죽여 버린다. 우아아아!]

와장창!

펑! 쿵쾅!

하후승이 기물들을 마구 때려부수며 발광하고 있었다.

태사의가 가루로 변해서 날아가고,

대전 안은 스물거리는 마기(魔氣)로 가득차 있었다.

[크흐흐흐‥‥‥그년, 그년만 있었으면 월음천마공을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하후승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하후승‥‥‥

그는 무림황제를 뽑는 대회에 정체를 숨기고 참가했다가 내공이 아주 고강해보이는 임단심을 납치했던 것이다.

그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녀가 임보산이란 천하제일인의 금지옥엽이었음을‥‥‥

임보산도 마왕이라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지만,

하후승도 암중의 천하제일인 임보산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임보산을 아는 자들이 많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그를 아는 자는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그 때문에 하후승은 천하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두고도 그를 알지 못했다.

월음천마공을 거의 완성하였기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마왕(魔王) 하후승‥‥‥

기실 그의 마왕이란 호칭은 그 자신이 얻었던 것이 아닌 물려받은 것이었다.

실제로 한천사방객의 우두머리인 궁월의 흉수는 하후승이 아니라 그의 사부였던 전대 마왕이다.

옛날,

궁월이 동해에 비밀리에 전해져 오는 파형도문(派形刀門)의 장문인이었을 때,

그는 우연히 바다 속 수중동굴에서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번천도와 그 비급을 얻었다.

그는 그후로 파형도문에서 두문불출 번천도를 익히기에 고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침입한 한명의 살인마가 번천도를 요구하며 파형도문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사건이 터졌다.

삼십여 명의 제자들을 모두 그자의 손에 죽었고,

궁월은 이성 수준으로 익힌 번천도로 그자와 맞섰으나 삼초 만에 일장을 맞고 말았다.

하지만,

제자들의 죽음에 한이 맺힌 궁월은 그에게 순순히 번천도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바다 위 절벽에서 내던졌다.

그 절벽아래에는 궁월이 번천도를 얻었던 그 동굴이 있고,

그는 다시 그곳으로 가서 상처를 치유했다.

하지만,

그의 상세는 엄중하여 도저히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궁월은 마지막 모험을 하여 동굴 속에서 암흑초(暗黑草)라는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독초를 먹게 되었다.

암흑초를 먹게 되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밝은 태양아래에 나설 수 없는 몸이 되고 만다.

게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몸은 점점 돌처럼 굳어지게 되는 데,

내공의 강함으로 일시적으로 회복할 수는 있지만 종국에는 돌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궁월의 마왕에 대한 한은 더욱 깊어졌고,

급기야는 동한객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가 번천도를 십성 수준으로 익혔을 때는 이미 마왕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고,

그는 태산의 어두울 절곡에서 돌이 되어가고 있었던 터‥‥‥

 

[그놈들‥‥‥흐흐‥‥‥반드시 죽이고 만다. 감히 나 마왕 하후승에게 상처를 입힌 놈들‥‥‥]

하후승의 눈은 악마의 눈빛과 같았다.

유리알처럼 하얗게 변해 동공이 사라진 눈‥‥‥

그는 임보산에게 일장을 맞고 황군성에게 일검을 맞았었다.

비록 큰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구성 수준의 월음천마공으로 인해 이미 상세는 완전히 회복된 터였다.

하후승은 밖을 보며 소리쳤다.

[계집! 계집을 데려와라! 내공만 강하다면 늙은 계집이든 중 년이든 상관치 않겠다. 월음천마공을 완성하고야 말겠다!]

누군가가 명을 받고 벌써 달려 나가고 있었다.

얼마 후,

구문제독부에서는 백 여명의 인물이 빠져나갔다.

그들은 무공이 높은 여승이나 여협을 잡으러 간 것인데‥‥‥

하후승은 가산을 나가면서 다시 소리쳤다.

[당장 쓸 계집도 데려와라! 궁녀든 뭐든 상관없다.]

그는 자신의 옷을 모두 찢어버린 채 도화원으로 나섰고,

태사의가 복숭아나무 숲 한쪽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두 여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하후승의 눈이 뒤집혔다.

슈우우욱!

그가 쌍장을 뻗자 가경할 흡입력이 생기면서 두 여인의 몸이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맛!]

[흐흐흐‥‥‥이년 내손에서 잘도 벗어났겠다.]

하후승은 두 여인 중의 하나를 임단심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월음천마공이 깊어진 결과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였다.

위지장천이 말하지 않았던가?

월음천마공을 익히게 되면 이성(理性)을 잃고 살인을 위한 도구가 되고 만다고‥‥‥

하후승은 입을 오무리고 오른손에 든 여자를 향해서 입김을 불었다.

휘휘휘휘-------!

순간,

그의 입에서 나간 바람은 마치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여인의 옷을 갈가리 베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여인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몸에는 상처하나 나지 않았다.

하후승의 흉물스런 남성이 하늘을 찌를 듯 벌겋게 충혈된 채 치솟아 있었다.

하후승은 왼쪽에 있는 여인마저 똑같은 방법으로 나신으로 만들었다.

요염한 두 여인의 백옥같은 나체가 그의 앞에 떨면서 서있었다.

두려워 하는 그 모습은 하후승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 할 따름,

[으왓!]

하후승이 동시에 두 여인을 안고 넘어뜨렸다.

[아아!아!아!아!] 

[아응!‥‥‥]

여인들이 비음을 지르고,

하후승은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움직였다.

 

 

[후‥‥‥다 끝났어. 이제 갖다 묻자고.]

건장한 사나이가 여인의 몸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다른 여인의 위에 올라가 있던 자가 말했다.

[조, 조금만 기다려‥‥‥으으‥‥‥]

그자는 마지막 힘을 쓰고 있었다.

[휴----! 됐어. 다됐어.]

그자도 일어서고,

무참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여인의 시체가 드러났다.

[제길‥‥‥계집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죽어버렸어.]

그는 툴툴거리며 여인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낄낄낄‥‥‥이곳에서는 그저 이 재미만 한 게 없단 말이야. 사흘이 멀다하고 양귀비같은 계집년들을 맛볼 수도 있고‥‥‥그게 조금 상하긴 했지만 낄낄‥‥‥]

지금까지의 다른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그 두 여인의 시체도 복숭아나무 아래의 거름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복숭아를 먹는 것인지?

복숭아 나무가 사람을 먹는 것인지‥‥‥

하지만,

여하튼간에 여승도 묻히고 늙은 여자 이쁜 여자 못난 여자 골고루 이렇게 묻혀가는 동안에,

하후승은 금단의 마공 월음천마공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 × ×

 

[뭐라고요? 내가 삼백 년의 공력을 줘버리면 할망구가 되고 말텐데 그래도 좋단 말이에요?]

금화선녀는 길길이 뛰면서 임보산에게 소리쳤다.

임보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속살은 팍삭 늙었으면서 겉만 번드르해 가지곤 하는 소리라는게‥‥‥죽어도 진작 죽었어야 할 할망구가‥‥‥]

[그렇게는 죽어도 못해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요.]

금화선녀는 앵돌아 앉으며 말했다.

임보산이 코웃음을 쳤다.

[흥! 딸이야 죽든 말든 그저 젊은 계집처럼 보이는 것만 중요하다는 말이지?]

[흥! 그러는 자기는 왜 백오십 년의 공력도 남에게 못줘? 자기가 주더라도 마찬가지잖아.]

금화선녀가 쏘아 부쳤다.

임보산이 말했다.

[당신이야 나를 의지하면서 살면 되겠지만 내 무공이 약해져 버리면 누가 전륜법왕이나 육천태같은 고수를 저지할 수 있어?]

[핑게대지 말아요. 꼭 당신이 그들을 저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임보산과 금화선녀의 말다툼은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일어났다.

임보산이 그녀더러 다짜고짜 황군성에게 삼백 년의 공력을 주라고 한 때문이다.

임보산의 공력은 구백년이 조금 넘는 정도이고 황군성은 육백 년이 조금 넘으니,

구절반천평맥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황군성과 임보산의 내공수위가 거의 같아져야 하는데,

임보산은 자신의 공력을 낮추긴 싫고 금화선녀에게 황군성의 공력을 구백년 수위까지 높여주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금화선녀의 꽃다운 미모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호호파파 할망구가 되거나 심할 경우 노쇠를 이기지 못해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응락할 리가 없다.

이미,

자신의 병에 대해 들어서 알고있는 임단심은 부모가 또 자기 때문에 다투자 화가 나서 다른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황군성은 그들 옆에서 감히 끼어들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한데,

진우란이 다투고 있는 그들 부부사이에 끼어들었다.

[저‥‥‥]

[뭐냐?]

금화선녀가 가시돋힌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딸의 씨앗이나 마찬가지인 진우란을 좋아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우란은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게 천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는 쌍두금구의 내단이 있어요. 이것으로 어떻게 안될까요?]

그녀가 품에서 꺼내놓는 구슬같은 내단을 냉큼 받아들며 임보산이 큰소리로 웃었다.

[되고 말고, 이것이면 충분하고 넘치지. 으하하하하‥‥‥]

 

황군성은 자신의 공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먼저 임보산과 금화선녀에게 각각 백년 씩의 공력이 가고,

진우란에게 사백 년의 공력이 전해졌다.

이로써 황군성의 대해와 같은 단전은 쥐어짜야 십여 년에 불과한 공력 만이 남고 텅텅 비어버렸으며,

진우란은 팔백 년, 금화선녀는 칠백 년, 임보산은 천년의 공력을 채우고 있었다.

이같은 내공은 무림에 거의 유래가 없는 것들이었다.

이내,

황군성도 쌍두금구의 내단을 복용하고 천년의 공력을 형성했으니 그의 무공은 완성의 경지에 접어든 셈‥‥‥

그들은 며칠 동안 연공하면서 그 공력들을 자신들의 몸에 익숙하게 하는데 애썼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임단심의 구절반천평맥을 치료하는 날이 왔다.

 

× × ×

 

임보산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임보산아 임보산아‥‥‥이제 너도 죽을 때가 된 모양이구나. 모든 것이 갖춰졌는가 했는데 천려일실로 말미암아 딸을 죽이게 됐구나‥‥‥]

그의 맞은 편에는 황군성이 침중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그 두 사람 사이에 임단심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임보산의 오른손은 임단심의 왼손 맥문을 쥐고 있으며,

그의 왼손은 임단심의 등밑에 자리한 명문혈에 닿아있다.

황군성의 왼손은 임단심의 오른손 맥문을 쥐었으며,

그의 오른손은 임단심의 단전에 닿아있는데‥‥‥

그들은 손을 떼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실패했다.

아니,

아직 임단심이 죽지 않았으니까 속단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성공하지는 못했다.

임보산은 모든 것을 고려했으면서도 정작 딸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임단심은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구룡로를 지니고 치구룡술이란 전 무림을 통틀어서도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무공을 익혔다.

치구룡술은 아홉마리의 용을 다스리는 것인데,

그 아홉 기운은 원래 구룡로에만 담겨있은 것이지만 임단심이 치구룡술을 익힘으로 인해서 그녀의 몸과 넘나들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몸속에 들어온 용의 아홉가지 기운은 그녀의 구절반천평맥과 만나 그녀의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아홉군데의 요혈에 각기 자리를 틀고 말았다.

그들이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자리를 틀었냐고 할 테지만,

기운들이 요혈을 움직이다가 완전하지 못한 요혈을 만나 완전히 흘러가지 못한채 조금씩 남았다가 뭉쳐져 강화된 것을 말한다.

그로 인해 원래부터 약하기 이를 데 없었던 아홉요혈은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단단하기만 했지 힘은 전혀 없었다.

임보산과 황군성이 원래의 계획대로,

한사람은 천천히 혈맥을 뒤집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받쳐주면서 완전한 혈맥으로 바꾸는 대법을 펼치게 된다면,

얇은 얼음조각처럼 변해버린 임단심의 구대요혈은 일제히 터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미 양쪽에서 황군성과 임보산이 공력을 주입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들은 섣불리 손을 뗄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들의 공력이 물러나게 된다면 그녀의 요혈에 잠복해 있던 아홉기운이 깨어나면서 요동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임단심의 몸은 한마디로 갈 때까지 거의 다가 있었던 셈인데‥‥‥

아홉기운은 그녀의 몸에 있어서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아마도 임단심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죽게될 것이다.

 

임보산과 황군성은 각기 일천 년에 이르는 내공을 지녔기에 임단심의 몸에 공력을 건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여력은 있었다.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은 물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지금같은 상태를 유지해 준다고 해도,

정신을 잃고 깨어날 줄 모르는 임단심은 어찌할 것인가?

임보산은 평생 지금같은 막막한 경우를 당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인데,

그는 탄식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객사 밖에서 호법을 쓰고 있던 금화선녀와 진우란이 달려와 물었다.

임보산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매인 음성으로 말했다.

[부인, 나 임보산 정말 부인에게 면목이 없소.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우리 단심이가 죽게 되었구려‥‥‥]

금화선녀의 안색이 밀납처럼 창백해졌다.

진우란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누르느라 목이 메였다.

금화선녀가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겨우 물었다.

[단심이는 죽었어요?]

[아직‥‥‥]

[당신이 구할 수 없다면‥‥‥단심이는 죽을 수 밖에 없겠군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누가 또 할 수 있겠어요‥‥‥]

금화선녀는 임보산의 뒤에 앉으며 말했다.

[여보! 이일은 아마 하늘의 뜻인 모양이에요. 당신의 잘못이 아닐 거예요. 아니 당신이 잘못했다 해도 그건 하늘의 뜻일 겁니다.]

그녀는 오히려 임보산을 위로했다.

임보산‥‥‥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천하제일인‥‥‥

그의 가슴은 진정 면도날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욱 쓰라릴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딸을 구하는데 실패를 했으니‥‥‥

금화선녀는 늘 그와 다투기만 했지만 실상은 그의 관대함에 기댄 어리광에 불과 했다.

지금이야 말로 그녀가 임보산을 위로하고 감쌀 때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묵묵히 있던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괴노 육천태 노선배! 혹시 그분이라면 무슨 수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 육천태!]

금화선녀가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진우란의 얼굴에는 희색이 감돌았고, 임보산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의술이라면 천하에 그를 당할 사람이 없지.]

[그럼 내가 그를 청해오겠어요.]

금화선녀는 벌떡 일어섰다.

임보산이 그녀를 불렀다.

[부인, 멈추시오. 육천태가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그는 오지도 않을 거요.]

[왜‥‥‥?]

[불과 얼마 전에 나는 그에게 또 상처를 입히고 말았소.]

금화선녀가 털석 주저앉았다.

[그럼‥‥‥우리 단심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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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七 章

 

             憤怒한 天下第一人

 

 

 

황혼녁!

청삼객은 전연옥을 데리고 다시 현현궁의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흔아홉명의 용봉들은 모두 서열대로 정열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전연옥을 보았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청삼객은 제일 앞에 선 용일과 봉일을 보면서 물었다.

[결정했느냐?]

순간,

[사부!]

구십구명의 용봉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저희들은 사부를 영원히 따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사부 만을 알뿐 남궁파라는 인물은 알지 못합니다.]

청삼객은 형형한 눈초리로 그들 전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있느냐?]

[기꺼이 사부를 위해 죽겠습니다!]

용봉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청삼객은 그들의 사이를 걸으면서 말했다.

[좋다. 그 뜻에 변함이 없다면 본좌는 그대들에게 알릴 것이 있다.]

[…………?]

[…………?]

[모두들 고개를 들고 나를 봐라!]

용봉들은 청삼객이 너무 젊었음에 놀랐다.

용봉들 중에서 서열이 빠른 자들보다 오히려 어려보였다.

[본좌는 그대들의 사부가 아니다. 이 모습을 알고도 나를 따르겠다면 그대들은 나를 궁주라고 불러라!]

잠시 얼빠진 모습으로 있던 용봉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궁주(宮主)!

 

황혼을 받고 서있는 황군우의 모습은 천하를 압도할 듯한 기상을 보이고 있었다.

현현궁은 완전히 그 성질이 변질되고 있었다.

남궁파가 황군우를 제물로 선택한 것이 실수였다.

 

× × ×

 

황군성은 산중에서 납치범의 종적을 잃어버렸다.

그는 마치 철판위의 개미처럼 허둥댔다.

임단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납치범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뒤쫓았는데 갑자기 종적이 묘연해진 것이다.

그는 그 주위로 불맞은 짐승처럼 뛰어다니며 부르짖었다.

[임매! 임매!]

임매‥‥‥임매‥‥‥

메아리가 다시 그에게 임매를 부르며 되돌아왔다.

그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있었다.

임단심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새삼 깨닫고 있었다.

바로 그때,

휘이이------!

그는 누군가 자신의 등뒤로 날아 내리는 것을 느끼며 검을 잡고 빠르게 몸을 돌렸다.

[황오라버니!]

임보산의 옆구리에 들려있던 진우란이 소리쳤다.

황군성은 앞이 캄캄했다.

(임매가 정체모를 고수에게 납치된데 이어 진매 마저 무제(武帝)에게 납치당하다니‥‥‥)

상대가 임보산이라면 그의 무공으로는 진우란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조부님들을 모시고 나오는 수밖에 없겠구나‥‥‥)

임보산이 그의 눈앞으로 다가들며 물었다.

[그애는? 그애는 어디있느냐?]

황군성은 그가 임단심마저 찾는 듯하자 분노하여 소리쳤다.

[노선배는 수치심도 없소? 노선배의 신분으로 어떻게 어린 소저를 납‥‥‥]

순간,

짝!

황군성은 눈에서 불이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두걸음이나 물러섰다.

임보산이 꽥 소리쳤다.

[내딸 단심이는 어디 있느냐 말이다!]

귀가 멍멍해지고 한참동안 메아리가 온산에 퍼져나갔다.

황군성은 말을 더듬었다.

[따 딸이라고‥‥‥?]

[그래 이놈아! 빨리 말해라. 빨리!]

임보산은 딸이 위험에 쳐해있다는 것을 알고 그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었다.

황군성은 그에게 목이 잡힌 채 가까스로 말했다.

[큭‥‥‥이 근처에서 그자를 놓쳤습니‥‥‥다.큭‥‥‥]

임보산이 황군성을 팽개쳤다.

[바보같은 놈! 제 여편네 하나 지키지 못해!]

그는 씩씩거리면서 주변을 번개처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황군성은 임보산이 임단심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놀라있었다.

임보산은 진우란이 자신의 옆구리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내려놓을 생각도 않고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순간 우뚝 멈추어서며 소리쳤다.

[찾았다!]

황군성은 빛살처럼 그의 곁으로 날아갔다.

임보산은 그가 다가가기도 전에 바위를 돌아서 날아가고 있었다.

황군성은 뒤따라가면서 전음으로 물었다.

[어르신, 임매는 어디에‥‥‥]

[밥통같은 놈! 네놈은 독도 모르느냐?]

임보산의 화난 음성이 그의 귀청을 뜨르르 울렸다.

황군성은 정신이 번쩍드는 것같았다.

독(毒)!

임단심은 독봉이 아니던가?

귀신같은 솜씨로 독을 쓰는 그녀가 납치되었다고 순순히 있었을리가 없다.

과연,

황군성도 은은한 사향냄새와 함께 부골독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임보산이 달려가는 곳은 여간 해서는 찾기어려운 좁은 골짜기였다.

그와 황군성은 비조처럼 골짜기로 날아들어갔다.

한데,

골짜기 안,

한채의 거대한 붉은 장원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괴기스런 운무가 장원을 감돌고 있는데,

밖에서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임보산은 무엇이 나타나리라고 예상했었는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장원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곳이건만 그는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다.

천하제일인인 그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황군성과 그는 장원의 가운데 있는 큰 전각 위로 내려섰다.

임보산은 벽력같이 소리쳤다.

[모두 나와라!]

웅웅웅------!

쿠르르릉!

몇 채의 전각이 그의 사자후에 무너져 내렸다.

전각 밖에서 움직이던 흑의인들이 피를 토하며 그자리에 고꾸라졌다.

임보산은 진우란의 몸을 내던지듯 내려놓으며 한채의 전각을 향해 날아갔다.

슈앙!

그곳으로 임단심이 뿌렸을 독냄새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우란과 황군성은 천신같은 무위를 보이고 있는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그들이 전각앞으로 다가갔을 때,

콰쾅------!

천각은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터져버렸다.

전각이 날아가고 난 곳에는 밑으로 뻥 뚤린 구멍이 있었다.

아마도 임보산이 장력으로 뚫은 듯했다.

콰앙!

또한번의 굉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황군성과 진우란은 지하로 뚤린 구멍으로 날아들어갔다.

순간!

[이놈!]

임보산의 분노에찬 일갈이 터져 나오고,

떨어져 내려가는 황군성과 진우란의 밑에서 붉은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록 솟구쳐 올라왔다.

[번천도!]

황군성은 검을 뽑을 틈도 없어 손안에 있는 번천도를 전개해 붉은 그림자를 베었다.

[크악!]

섬칫한 비명과 함께 번천도에 강한 반탄력이 전해졌다.

붉은 그림자는 어느새 그들을 지나 까마득히 사라져버렸다.

번천도에 상처만 입고 달아난 것이었다.

황군성과 진우란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바닥에 내려섰다.

풍지박산이 난 지하의 석실들 저쪽에 임보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 엉엉‥‥‥]

임단심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임보산은 딸을 껴안고 머리를 쓸어주며 위로하고 있었다.

[이제 괜찮다. 괜찮다. 애야‥‥‥그놈이 오늘은 도망갔지만 이 아비가 끝까지 쫓아가서 그놈을 죽여버리마. 얼마나 놀랐느냐?]

그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임단심을 달랬다.

황군성이 다가가자 임단심은 와락 그에게 안기며 울었다.

[엉엉엉‥‥‥]

그녀의 옷은 길게 찢어져 있었다.

그자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임보산이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더라면 그녀는 변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황군성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우란이 자신의 보따리에서 흰옷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

황군성은 임단심을 꼭 껴안아 진정시켜준 후에 임보산에게 무릎을 꿇고 절했다.

[제가 아버님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문성무존의 후손 황군성이 빙부(聘父)를 뵙습니다.]

임보산이 눈알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황군성은 일어서면서 읍하며 말했다.

[임매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놈아! 단심이는 내 딸이야! 네놈처럼 멍청한 놈에게 딸을 줘야 한다는 사실이 분할 뿐이다.]

임보산이 버럭 소리쳤다.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딸을 훔치더니 이제 하마터면 도둑맞을 뻔 까지 해? 한번 만 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아니 비슷한 일 만 벌어져도 먼저 네놈의 돌대가리를 부셔놓고 말겠다!]

그는 생각할 수록 임단심이 화를 당할 뻔 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황군성은 머리를 조아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휴‥‥‥]

임보산은 긴장이 풀어지는 듯,

하마터면 딸이 정절을 잃을 번한 침상에 걸터앉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진우란은 임보산을 보고 그녀의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다.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나를 저렇게 사랑해 주실텐데‥‥‥)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한 일도 서슴지 않았던 그녀의 아버지 사신 진섭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열두살 어린 나이에 사신각을 맡았던 그녀였으니 부모에 대한 정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놈이 도대체 어떤 놈인지 모르겠군.]

임보산이 중얼거렸다.

[그만한 무공이면 결코 이름없는 자가 아닌데‥‥‥어째서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까?]

황군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사신은 아닐까요? 그자는 비무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진우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임보산은 어이없다는 듯이 황군성과 진우란을 번갈아 보았다.

[도무지 자넨 멍청이야! 진섭천은 죽었고 그 딸은 자네 옆에 있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나?]

그를 제외한 세 사람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진우란의 몸은 학질에 걸린듯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사신이 황군성의 네 사부중 세째인 단극린의 원수라는 것을 이미 학선평에서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군성의 말소리가 떨려 나왔다.

[진 진매‥‥‥당신의 아버지가 바로 사신‥‥‥이었소?]

진우란은 입을 열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임단심이 그녀를 재빨리 부축했다.

[아! 이럴 수가‥‥‥]

황군성이 절망하며 벽을 짚었다.

임보산이 말했다.

[그애가 사신의 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갑자기 무슨 호들갑이냐?]

[아버지‥‥‥사신은 이사람 사문의 원수예요. 이일을 어쩌면 좋죠?]

임단심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임보산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닳은 것이다.

임보산은 원래가 잘못을 시인하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이렇게 드러난 실수를 하여 분란을 일으킨 꼴이 되었으니 딸을 위해서도 만회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온갖 음탕한 춘화(春畵)가 그려져 있고 기괴한 도해(圖解)가 벽에 붙어있는 석실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한참 생각한 임보산이 입을 열었다.

[자네 사부는 전륜법왕이 아니었던가?]

[전륜법왕 사부는 후에 모시게 되었고, 원래 사부는 한천사방객이라는 분들이었습니다.]

황군성이 허탈한 심정으로 말했다.

[음‥‥‥사신이 한천사방객과 원한을 맺은 게로군. 그도 남보다 특별히 많은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는데‥‥‥수단이 좀 독랄하기는 했지만 그저 보통 무림인들이 저지르는 정도였을 뿐이었는데 그참‥‥‥]

임보산은 사신에 대해서 변호하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자네가 직접 진섭천과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보산은 일어서면서 그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럼 이 일은 전적으로 내게 맡겨라. 내가 직접 한천사방객을 만나서 잘 설득해보마.]

황군성은 회의적은 표정이었다.

단극린의 사신에 대한 한은 하늘까지 닿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보산이 직접 나서겠다는 데 어떤 이의를 달 수는 없었다.

임보산이 말했다.

[그동안 저 아이를 전과 같이 대해주도록해라. 틀림없이 원한은 풀릴 것이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황군성은 속으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것은 희망으로만 끝나기 쉬울 것같았다.

하지만,

임보산은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다.

한천사방객을 만나서 한껏 설득해본 후에 정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조리 죽여버리거나 할 작정이었다.

그후에 그가 단극린이 사신을 용서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황군성으로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임보산은 사람의 목숨따위는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기인이니 한천사방객처럼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한 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조금도 양심이 거리낄게 없었다.

 

임보산은 눈을 돌려 석벽에 그려진 춘화들을 보았다.

남녀가 전라의 몸으로 뒤엉켜있는 있는 그림들을 살피더니 말했다.

[그놈은 월음천마공(月陰天魔功)이란 금단의 마공을 익히는 중이었군. 어쩐지 꽤 쓸만한 무공이다 했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어. 마기가 아주 강렬했어.]

월음천마공‥‥‥

과거 귀왕보의 보주 철사륵이 위지장천에게 익히기를 강요하던 그 마공이 아닌가?

한데,

뜻밖의 장소에서 그것을 거의 익힌 인물이 있을 줄이야‥‥‥

[나가자!]

임보산은 황군성등을 밖으로 내보내고 석실의 춘화들을 삼매진화로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니 전각의 뒤쪽에 큰 가마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여덟명의 건장한 흑의인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있었다.

이들은 모두 임보산이 처음에 지른 사자후에 죽은 것이다.

잠시후,

괴상한 장원은 완전히 초토화 되어버렸다.

무제 임보산의 손길에 의해‥‥‥

 

× × ×

 

보화산(寶華山) 중턱에 있는 고불암(苦佛庵),

이 크지 않은 암자에는 염화미소를 띤 석가여래가 아닌 고뇌하는 백팔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암자의 아래쪽에 있는 객사(客舍)에는 방금 도착한 손님들이 있다.

임보산과 황군성, 그리고 임단심과 진우란이었다.

그 객사들 중의 한 방,

[진매! 아버지께서 나서서 중재해주신다고 약속했으니까 아무 걱정할 것없어. 안심해. 무엇보다도 황오라버니가 너를 사랑하잖아.]

임단심은 진우란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방에서는 임보산과 황군성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임보산은 딸의 천형인 구절반천평맥(九絶反天平脈)을 치료하기 위해 황군성을 찾아다녔었다.

이곳 보화산 고불암은 그가 바로 그의 아내인 금화선녀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이니,

임보산은 이곳에서 황군성의 손을 빌려 딸을 치료할 생각인 것이다.

구절반천평맥‥‥‥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거듭 말해보기로 한다.

이것은 전신의 경략이 정상적인 사람보다 아홉군데가 더 돌출되어 떠있는 맥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또한 진맥을 해서도 무공이 극히 고강한 사람이 아니고는 발견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숨어있는 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이 맥은 전신의 혈기가 아주 왕성해 지는 시기가 되면 가볍게 떠있던 혈맥이 뒤집어지면서 극심한 고통속에서 죽어가게 되는데,

사람의 혈기가 가장 왕성해 질때는 대체로 이십 일이세 정도일때이고 보면,

선천적으로 구절반천평맥을 타고난 임단심은 그야말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절세적인 무공을 가진 사람이 뒤집어질 혈맥을 내공으로 바로 받쳐주는 것 뿐‥‥‥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공력은 가히 하늘을 거스를 수 있다는 천년의 공력에 달해야 하는데,

천하에서 가장 무공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임보산,

그도 천년의 공력을 갖지는 못했다.

또한 치료를 하고 나서 나은 사람은 엄청난 공력을 소유하게 되겠지만,

시술을 베푼 사람은 현격히 내공이 줄어들고 말게 되니‥‥‥

누군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임단심의 구절반천평맥을 고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또한,

한사람의 공력이 천년에 달하지 못한다면,

시술하는 두 사람의 공력은 엇비슷해야 하는 것이니‥‥‥

그런 고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보산의 말을 다듣고난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임매가 절학을 배우지 못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결국 저로 말미암아 일이 더욱 어렵게 되었군요.]

[삼백 오십년에 달하는 단심이의 공력을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일천사백 년에 달하는 공력이 있어야만 그아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게 되지‥‥‥]

하고 임보산이 말했다.

한데,

일천사백 년의 공력이라니‥‥‥

진정 까무라칠 정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옆방에 있는 임단심은 자신이 그런 절맥에 걸려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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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六 章

 

     풀밭위의 情事

 

 

 

진우란은 땅에 내려서자 마자 다시 황군성이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때,

[그녀석은 어디로 갔느냐?]

갑자기 등뒤에서 들린 소리에 진우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적으로 진기가 흩어지며 그녀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바위위에 내려선 그녀의 앞에는 어느새 무제 임보산이 서있었다.

그는 황군성이 임단심을 부르면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뒤쫓았던 것이다.

진우란은 임보산을 몹시 두려워했다.

사신이라고 불리던 그녀의 아버지도 이기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가 체면상 그녀에게 손을 쓸 리는 없지만 두려움은 어쩔 수없었다.

그녀도 임보산을 동정호 변에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두려움이라고는 몰랐는데‥‥‥

[그 녀석은 어디로 갔느냐?]

임보산이 역정을 내면서 다시 물었다.

진우란이 황급히 황군성이 달려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어요. 저쪽으로‥‥‥]

임보산이 물었다.

[언니라니‥‥‥단심이 말이냐?]

[그래요. 언니를 아시는군요. 빨리 좀 구해주세요.]

임보산의 안색이 홱 변했다.

[누가 단심이를 잡아갔단 말이냐?]

[네, 그래요.]

순간,

진우란은 자신의 몸이 까마득히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귓가로 새찬바람이 따갑게 스치고 지나갔다.

임보산이 딸이 위험하단 말을 듣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날아오른 것이었다.

임보산의 몸은 황군성이 사라져간 방향으로 까마득히 사라졌다.

 

× × ×

 

청삼객은 화탄속에서 벗어나자마자 현현궁의 일백여 제자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의 뒤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열풍이 몰아닥치고 있었다.

비무대 아래에 있던 화약이 폭발한 것이었다.

현현궁의 정확히 구십구명의 제자들은 그가 날아오는 것을 보자 동시에 몸을 날렸다.

청삼객이 소리쳤다.

[모두 내뒤를 따라라!]

현현궁의 제자들의 무공은 확실히 다른 자들보다 월등히 강했다.

그들의 무공은 그들 중의 하나인 조응경만 생각해보아도 능히 알만하지 않은가?

남궁파가 심혈을 기울여서 기른 자들‥‥‥

그들은 청삼객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학선평을 빠져나갔다.

남궁파는 원래 청삼객만 죽여 버리면 자신의 제자들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를 잃은 제자들에게 그가 다시 현현궁주로 복귀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들은 현현궁주는 알아도 남궁세가와 남궁파라는 인물은 모른다는 것이다.

청삼객이 살아남고 말았으니 그는 고스란히 자신의 제자들을 뺏긴 셈인데‥‥‥

 

청삼객은 학선평에서 이백여리 정도 달려서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멈추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도록!]

아흔아홉명의 현현궁 제자들은 한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그의 뒤를 잘 쫓아 왔었다.

털썩! 털썩!

그들은 냇가에 주저앉아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며 긴장을 풀었다.

그들은 이번 실패로 끝난 무림황제의 추대대회에서 청삼객이 보여준 태도를 깊히 존경하고 있었다.

실로 당당한 영웅의 풍모였고 마지막엔 남궁파의 음모를 발각하여 많은 사람들을 화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경모의 눈초리로 청삼객을 바라보았다.

그가 현현궁의 이대궁주가 되고나서 불만을 가졌던 자들도 아예 속에서부터 그런 씨앗을 없애버린지 오래였다.

조응경도 지금은 청삼객이 자신을 길렀던 일대 현현궁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대 현현궁주였으면 결코 그녀를 용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잠시 모두들 숨을 돌리고 나자 청삼객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말했다.

[본좌의 가까이로!]

스스슷!

아흔아홉 명이 그의 명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청삼객은 그들 하나하나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했다.

[본좌가 현현궁을 맡은지 불과 보름정도. 그러나 그동안 그대들에 대해서 알만한 것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본좌는 그대들의 의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현현궁의 제자들은 남자에게는 용(龍)을,

여자에게는 봉(鳳)을 그 서열앞에 붙여서 부른다.

서열 일번, 즉 용일(龍一)이 청삼객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사부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모든 것을 사부의 뜻에 따를 따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부께서는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아마도 남궁파가 음모를 꾸미지 않았다면 사부께서 무림황제가 되셨을 것입니다.]

봉일(鳳一)도 그녀의 뜻을 전했다.

청삼객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일 만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봉일은 방금 남궁파의 음모라고 말했는데, 그가 바로 그대를 기르고 무공을 가르친 전임 현현궁주였다면 믿겠느냐?]

[그럴리가‥‥‥]

봉일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청삼객이 못박듯이 말했다.

[본좌의 말은 사실이다. 나는 그와 계약에 의해 현현궁주가 되었을 뿐이다. 하나, 그가 먼저 계약을 어겼다!]

아흔여덟 명의 용과 봉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있었다.

오직 조응경만이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여러 사형사자(師兄師姉)와 사제사매(師弟師妹)들은 잠시 내말을 들어주셔요.]

[…………]

[사부의 말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용십삼과 함께 사부의 명을 받고 태상을 만나러 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태상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녀의 말은 이순간 청삼객의 말보다 더 위력이 있었다.

용과 봉들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삼객이 말했다.

[그는 계약을 어기고 나를 죽이려했다. 그는 악랄한 자이고 파렴치한 자이다. 이제 본좌는 그와 싸우려고 한다. 그대들은 나를 따라도 좋고 그를 따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

[그대들이 지금 전대 궁주의 은혜를 생각해서 나를 공격해도 탓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마도 뒤의 두가지 경우를 선택했을 경우 그대들 중 목숨을 부지한 자는 없을 것이다. 이미 그자는 무림의 공적이 되었으니 모든 무림인으로 부터 쫓길 것이니까.]

그 뒤의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의 경우 청삼객을 그들이 공격했을 경우 청삼객은 그들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낸 것이니까.

청삼객은 일어서며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대들은 신중히 숙의하길 바란다. 본좌는 해가지면 이곳으로 다시 오겠다.]

그가 떠나자 용과 봉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청삼객은 냇가에 흐르는 물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졸졸졸------!

물은 얉게퍼져 돌멩이를 굴리면서 흐르고,

걸어가는 청삼객의 옆으로는 물에비친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의 친구가 되었다.

불헌듯,

개울가 숲속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이 들려와 그의 아취를 깼다.

 

[히히히‥‥‥운수대통(運數大通)했는걸. 아마 기루에 가도 이런 계집은 흔치 않을거야. 히히히‥‥‥]

[야! 뜸들일 시간이 어디있어. 빨리 해치우자고. 이야 고것 참. 꿀꺽!]

[낄낄‥‥‥이 옥같이 하얀 살결을 한번 봐라. 죽인다 죽여!]

 

청삼객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마도 몇몇 파락호가 여인을 놓고 하는 이야기 인것같았다.

한데,

여인의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기절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청삼객은 숲속으로 몸을 날렸다.

휘익!

숲속에 들어선 그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세명의 농사꾼같은 시골뜨기가 눈동사를 궹하니 뜨고 있는 여인의 옷을 찢어내고 있었는데,

이미 한쪽 유방이 노출된 채 망연한 눈빛으로 청삼객을 바라보는 그 여인은 바로 전연옥이 아닌가?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청삼객‥‥‥]

시골뜨기 들은 청삼객이 나타난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이년이 무슨 소릴 하는 것야. 퍼런 삼이 뭐 어찌됐다고?]

그순간,

청삼객이 분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장 그 여인에게서 물러서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엇!]

[엇!]

시골뜨기들은 갑작스런 청삼객은 등장에 놀라워 하면서 전연옥을 가렸다.

청삼객이 소리쳤다.

[당장!]

시골뜨기 중 삐쩍 마르고 시커먼 자가 소리쳤다.

[글쟁이 놈이 어디서 큰소리냐! 당장 죽고싶으냐!]

그자는 새파랗게 날이선 낫을 집어들었다.

눈앞에 달같은 미인이 있는 데 죽어도 양보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두 놈도 낫을 집어들었다.

청삼객은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는 듯했다.

냉혹한 얼굴에서 냉혹한 말이 튀어나왔다.

[죽어야 될놈들이었군! 죽엇!]

죽엇‥‥‥

마치 명령하듯 외친 그 한마디‥‥‥

세 시골뜨기는 돌연 칠공으로 피를 흘리며 눈알이 튀어나왔다.

[크윽-----!]

[크으으----!]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엎어졌다.

한놈은 자신이 손에 들었던 낫에 의해 오히려 자신이 배를 깊숙히 베이고는 내장을 쏟아냈다.

청삼객은 냉혹한 눈초리를 그들을 바라본 후,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전연옥에게로 다가갔다.

찢어진 옷속에 드러난 그녀의 백옥같은 살결이 숲을 뚫고 들어온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연옥은 그녀의 유방을 가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힘없이 입술만 달짝거리며 말했다.

[청삼객‥‥‥검신은 어떻게‥‥‥ 되었소?]

청삼객은 그의 푸른 청삼을 벗어서 그녀를 덮어주며 말했다.

[소저는 천륜을 거역하지 않았소. 염려할 것없소. 검신의 마지막은 장렬했소이다. 그는 소저에게 짐을 지우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결했소.]

전연옥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청삼객은 그의 맥문을 잡아보았다.

그녀의 몸에서는 음양이기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원래,

전연옥은 황군우와의 화산에서 대결 후에 황군우가 막 이룬 음양합일신공에 의해 해를 입었었다.

음양의 기운이 몸안에 침투한 것이었는데,

그녀를 고통속에 몸부림치게 하다가 그 두 기운은 음교맥과 양유맥사이로 스며들어 굳어졌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이것은 한달이 지나야 다시 발작을 하는 것이었으나 그녀가 과도한 무공의 사용으로 인해 기경 팔맥 중의 두 맥인 음교, 양유에 있던 음양합일신공의 기운이 쏟아져 나오고 만 것이다.

그녀는 이곳 숲속에서 미친 듯이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는데,

그녀의 정신도 육체도 모두 피폐해진 까닭이다.

그때,

세 시골뜨기가 나타나 그녀를 보고 이게 웬 떡이냐고 달려든 것이었다.

 

청삼객은 그녀의 맥문을 놓으며 말했다.

[몸속에 있는 이 음양이기(陰陽二氣)를 몰아내거나 중화시키지 않으면 때때로 이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오.]

전연옥이 입술을 달짝거렸다.

[소용이 없소. 여러번 시도해 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했소.]

청삼객이 말했다.

[소저가 여자라는 사실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고있소. 그 딱딱한 말투 좀 버릴 수 없겠소?]

전연옥이 흠칫하며 그를 보았다.

(이자도 내 몸에 욕심을‥‥‥)

청삼객은 소매속에서 한가지 물건을 꺼냈다.

찬연한 백색, 두자정도의 길이‥‥‥

바로 낙일검이었다.

[소저의 물건이니 돌려드리겠소. 그리고 잠시 장소를 옮깁시다.]

그는 전연옥을 두 팔로 안으며 말했다.

낙일검은 가슴에 안은 전연옥의 교구가 가늘게 떨었다.

청삼객이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무성한 덤불들이 나왔고,

그 덤불들을 지나자 물이 고인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는 풀밭이 나왔다.

그는 전연옥을 웅덩이 옆의 풀밭에 뉘였다.

전연옥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소저, 당신에게 음양이기의 공력을 사용한 자를 기억하시오?]

전연옥은 고개를 까딱해보였다.

[만약에 그자를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청삼객의 물음에 전연옥은 망연히 푸른 하늘로 시선을 옮기며 생각하다가 힘없이 말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어요. 모두가 내 부질없는 독기(毒氣)때문이었는데‥‥‥]

청삼객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전소저‥‥‥만약, 만약에 말이오‥‥‥]

[…………]

[본좌가 이자리에서 전소저께 구혼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전연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크게 떠면서 청삼객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냉막하지만 그의 눈에는 진정이 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연옥은 바싹 마른 입술을 달짝 거렸다.

그러나 완전히 탈진한 후라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청삼객이 그녀의 맥문을 통해 한줄기의 뜨거운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녀가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며 말했다.

[나는‥‥‥원래 당신을 무림을 노리는 음흉한 마두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휴‥‥‥]

[맞는 말이오. 나는 무림에 야심을 가지고 있소.]

청삼객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전연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당신이 그동안에 보여준 태도는 어떤 영웅도 쫓아가지 못할 만큼 당당했어요. 학선평에 모여든 수만 명의 날고긴다는 무림인들이 모두 당신 한마디에 압도되었으니까‥‥‥]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당신에게 다른 여자가 없다면‥‥‥당신을 따르겠어요.]

그녀는 부모의 애환을 직접 몸으로 겪었기에 그점부터 조건으로 들었다.

청삼객의 눈에 기쁨이 넘치는 듯했다.

그는 전연옥의 양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내 나이는 겉보기 보다 아주 차이가 많소. 그래도 상관없소?]

전연옥은 눈을 떠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수백 살 먹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청삼객은 그녀를 껴안에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약속했소. 그럼 당신은 이제부터 내 아내요.]

전연옥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삼객 같은 영웅적인 인물의 구혼을 어느 여자가 거부할 수 있으랴 싶었다.

청삼객은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같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등불이 되고 있었다.

사랑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운명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인피면구요. 내 참모습을 보지 않겠소?]

[보고싶어요.]

청삼객은 한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갔다.

찌이익!

인피면구가 얼굴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훌렁 그의 머리채까지 통채로 벗겨졌다.

순간,

전연옥은 놀라 짧게 부르짖었다.

[당신!]

그녀의 눈앞에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

그가 누구이겠는가?

바로 황군우‥‥‥

음양합일신공을 대성한 황군우였으니‥‥‥

그의 입술은 전연옥의 앵두같은 입술을 순간적으로 눌러덮었다.

전연옥은 전신이 둥둥떠는 것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이것은 운명이야‥‥‥이 사람이 바로 그였을 줄이야‥‥‥아!)

그녀의 몸위를 덮고 있던 푸른 장삼이 옆으로 치워지고,

찌이익!

이미 반쯤 찢어져 속살이 노출된 그녀의 옷은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전연옥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다.

(그래‥‥‥아버지의 딸로서의 한스러운 내 인생은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끝났어. 이제는 이사람은 아내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그녀는 세차게 황군우의 혀를 빨면서 자신을 불사르고자 했다.

푸른 풀밭위에 하나둘 옷가지가 떨어지고,

게 중에는 웅덩이에 던져지는 것도 있었다.

전연옥은 완전한 나신이 되어 물고기 처럼 퍼덕거리고,

황군우 역시 벌거벗은 몸으로 그녀를 짓눌렀다.

[허억! 헉!]

전연옥의 가쁜 숨소리가 터져 나오고,

황군우의 손이 그녀의 탐스러운 두 육봉을 힘껏 움켜잡았다.

매끄러운 허리선‥‥‥

살짝 패인 배꼽‥‥‥

그리고 두 다리 사이에 은밀한 비밀의 숲‥‥‥

황군우는 숨이 막힐 것같았다.

그의 남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팽창했고,

두 다리를 한것 벌린 전연옥의 비지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하아! 하!]

눈을 감은 전연옥의 입에서는 단내음이 숨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고,

황군우의 남성은 마침내 전연옥의 붉은 석류같은 곳에 다다랐다.

전연옥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거‥‥‥거기가 아니‥‥‥]

그녀는 한 손을 아래로 내려 황군우의 우람한 남성을 잡았다.

그녀의 손안에는 떠거운 불덩어리가 느껴졌다.

(내 손목보다 굵어‥‥‥)

그녀는 순간적으로 와락 두려움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받아들일 수 있을까‥‥‥?)

황군우는 그녀의 몸속으로 그의 남성을 밀어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전연옥은 황군우의 남성을 자신의 여문(女門)으로 인도했다.

순간,

[악!]

불같이 떠거운 기둥이 그녀의 몸안으로 일시에 밀고 들어오면서 그녀는 극렬한 고통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누운 개구리처럼 뒷걸음질 치며 둔부를 뒤로 뺐다.

그러나,

이미 황군우의 남성은 그녀의 몸속 깊숙히 까지 들어와 있었다.

고통속에서도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을 것같은 포만감과 가슴벅찬 희열이 느껴졌다.

그녀는 숨도 쉴 수 없을 것같았다.

입술을 세차게 깨물며 고통과 신음을 참았다.

[으으으‥‥‥]

황군우의 남성이 그녀의 몸안에서 세차게 요동쳤다.

그녀는 도저히 이를 악물고 참을 수가 없었다.

[악! 악‥‥‥아아아아‥‥‥악‥‥‥헉‥‥‥]

고통속에서도 짜릿하게 퍼져나가는 희열에 그녀는 모순을 느끼면서 교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황군우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천상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아흐흐‥‥‥악‥‥‥아‥‥아아‥‥‥악‥‥‥으으‥‥‥]

[헉헉!]

황군우의 몸은 점점 세차게 움직였다.

[아아아‥‥‥아‥‥‥아‥‥‥]

전연옥의 고통은 점점 희열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황군우의 몸놀림 만으로는 자신의 정열를 다스리지 못한 전연옥은 그의 보조에 맞춰 격렬하게 둔부를 움직이며 그를 껴안았다.

[헉헉!]

그의 숨결이 귀에 와 닿으면서 더욱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아아아‥‥‥아‥‥‥더‥‥‥빨리‥‥‥]

황군우와 그녀는 어떤 목표를 향해서 미친듯이 움직였고,

마침내,

[아악!]

두 사람은 동시에 절정에 달하면서 아득한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전연옥은 자신의 몸에서 몇 번이나 거듭되는 세찬 분출에 돌에맞은 개구리처럼 달달떨며 황군우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태양이 부끄러워 눈을 가릴 순간이 지나가고,

전연옥은 부끄러움에 황군우의 시선을 피하며 웅덩이에서 몸을 씻었다.

처녀를 상징하는 피가 물에 풀리면서 점점 물어져 갔다.

풀밭 위에는 선선한 바람이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해는 하늘의 한쪽 가에 가있었다.

전연옥의 몸안에 있던 음양이기는 황군우와의 정사와 더불어 깨끗히 사라지고 말았다.

황군우는 청삼객의 인피면구를 다시 쓰고 전연옥의 나신을 뒤에서 안았다.

잠시간의 부드러운 애무가 있은 후에 그들은 숲을 나서고 있었다.

황군우의 청삼은 전연옥의 몸을 감싸고 있는 유일한 겉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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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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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五 章

 

           내가 바로 그 神僧이다.

 

 

 

검신의 시체는 전무옥의 품에 안긴 채 신검보의 제자들이 모인 곳으로 운반되어가고,

비무대에는 다시 육인의 고수가 올라갔다.

무림황제를 추대하는 비무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취옥성주 북혈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엔 본좌가 지명할 차례인가?]

그때 불쑥 황군성이 나서면서 말했다.

[성주께서 나를 지목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소.]

북혈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목을 한 것이 아니라 지목을 당한 것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때문이다.

기분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은 또한 그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기에‥‥‥

[건방진 꼬마놈! 죽기를 원한다면 죽여주지.]

[감사하오. 하지만 승부는 겨뤄봐야 아는 것 아니겠소?]

어리고 조그마해 보이는 그가 패기있게 푸른 머리를 한 북혈마를 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즉시 내려가고,

황군성과 북혈마는 대치를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북혈마도 큰소리는 쳤지만 황군성을 가볍게 보고 있지는 않았다.

황군성이 검을 앞에 세우면서 말했다.

[병기를 뽑으시오.]

[본좌는 평생 이 육장(肉掌) 외에 다른 병기를 써본 일이 없다.]

황군성은 목계신공을 일으켰다.

(철인검으로 승부를 짓자!)

 

한천사방객의 북한객인 냉천삭은 주먹에 땀을 쥐고 비무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평생의 원수‥‥‥

그를 한천사방객의 일원이 되도록 만든 그자가 지금 비무대 위에서 자신이 가르친 제자와 마주서 있는 것이다.

제자가 이긴다면‥‥‥

그는 필생의 한을 푸는 것이 될 것이고,

만약에 제자마저 북혈마의 손에 죽게 된다면 그의 한은 더욱 무거워지리라.

한편,

임단심과 진우란도 가슴을 졸인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단심의 손에는 구룡로가 언제라도 위력을 발휘할 준비를 하고 쥐어져 있었고,

진우란도 섬전사를 발출할 준비를 하고 손에 힘을 모은 상태였다.

일촉즉발의 상태,

갑자기 누군가가 비무대에 뛰어올라가면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잠깐!]

긴장은 삽시간에 흐지부지 되고,

중인들의 시선이 그자에게로 몰렸다.

그자는 여덟개의 포대를 짊어진 늙은 거지,

포대가 여덟개라는 것은 그가 바로 개방의 방주라는 것을 말하는데‥‥‥

그는 바로 입씨름 잘하기로 유명한 개방 방주 유세걸(遊說乞) 홍대구(弘大口)였다.

어째 지금까지 잠잠하다 했더니 기어코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건 뭔가 잘못됐소. 잘못됐소.]

그가 손을 마구 내저으며 말했다.

북혈마가 화가난듯 소리쳤다.

[뭐가 잘못됐단 말이냐?]

개방주 홍대구가 자신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찍어가면서 말했다.

[생각해보시오. 원래 이 무림황제를 추대하는 대회는 현현궁주의 의견에 따라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었소. 방파는 방파의 대표자를 내고, 개인은 개인으로 참가할 수 있었소. 한데 내말은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오.]

개방주 홍대구는 유세거지란 별호가 붙을 정도로 말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가 뭔가 말하려 하자 사람들은 또 무슨 해괴한 말이 나오나 싶어서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었다.

홍대구가 소리쳤다.

[그것이야 말로 조삼모사(朝三募四)의 얄팍한 수작으로 중인들을 농락한 것이오. 만약에 각 방파가 대표자를 내지 않고 모두 개인으로 출전했다 해도 지금과 결과가 무엇이 다르겠소?]

옳은 말이었다.

잠시 생각해보고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 소리쳤다.

[옳소! 맞는 말이오!]

홍대구는 자신이 붙는지 입을 함지박만큼 크게 벌리면서 떠들었다.

[또한, 무림에는 각 개인만이 존재하고 힘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오. 혼자일 때는 약하지만 둘, 셋, 그 이상이 뭉쳤을 때는 더할 수 없이 강할 수도 있소. 그런데 그 중에 고수가 없다고 하여 전체적으로는 강대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그 힘은 묵살되어 버린다면 어찌 불공평한 일이 아니겠소?]

[옳소! 와!]

[잘한다! 홍방주말이 맞소.]

출전자들이 탈락하고 그저 무림황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관전하던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홍대구는 손을 흔들어 그들을 진정시킨 후에 다시 말했다.

[그래서, 이 늙은 거지의 생각으로는 마땅히 방파들의 힘도 겨뤄보아야 옳다고 생각하오. 방파는 대표자의 무공으로만 그 강약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조용해져 버렸다.

그토록 시끌벅적하던 학선평이 방파들도 힘을 겨뤄야 한다는 한마디에 조용해져 버린 것이다.

방파들의 힘겨루기‥‥‥

그것은 바로 전쟁을 의미함과 무엇이 다른가?

북혈마가 냉냉하게 소리쳤다.

[감히 세력으로서 본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을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있단 말인가?]

[싸워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오. 삼절일천군단도 최강이라고 소문이 났을 뿐, 실제로 알려지지 않은 곳에 최강이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아니겠소?]

홍대구의 매끄러운 혀가 북혈마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그의 푸른 머리카락이 바람도 없는데 훨훨 날아올랐다.

[네놈들 구파일방이 인재가 매말라 고수를 내지 못하니 별 수작을 다부리는 구나. 만약 한마디만 더 지껄인다면 네놈의 혓바닥을 뽑아죽이겠다.]

바로 그때,

[누가 감히 구파일방에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가?]

웅웅-----!

학선평에는 메아리 칠 곳도 하나없는데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나왔다.

그 소리는 하도 웅장해서 하늘과 땅을 가득매우고 있는 듯했다.

북혈마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 목소리에 깃든 힘은 진정 초유의 것이었으니‥‥‥

황군성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결국 왔구나!]

도신, 위지장천, 청삼객, 남궁파 등의 고수들도 안색이 대변했다.

특히 남궁파의 얼굴은 숫제 흑빛으로 변해버렸다.

오직 한사람 임단심 만이 기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북혈마가 주위를 둘러보며 공력을 모아 소리쳤다.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윽!]

[크악! 지 지독한‥‥‥]

내공이 약한 자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하늘 한쪽에서 마치 천신처럼 하강하고 있는 한 중년선비를 볼 수가 있었다.

옷깃을 표표히 날리며 비무대를 향해 천천히 하강하는 중년인‥‥‥

일대 정마(情魔)라고 할까 보기만 해도 여인의 춘정을 우려나게 할듯한 얼굴을 하고있다.

그 헌앙한 기도가 탁월하여 가히 천신을 방불케하는 점이 있었다.

그는 비무대의 중간에 내려섰다.

황군성이 자신도 모르게 포권을 취해보였다.

천하제일인에 대한 경외심이 우러난 것이리라.

무제 임보산이 그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반가운 얼굴은 아니군. 게다가 하고 있는 꼬락서니하고는‥‥‥]

그는 황군성이 어린 소년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때 북혈마가 그의 뒤에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너?]

임보산이 느릿하게 몸을 돌리면서 반문했다.

북혈마로서는 네놈이라고 할 것을 최대한 양보하여 한 말이었다.

그의 실제 나이는 이백 이십여세.

누구를 보아도 하대하는 버릇이 생긴 터였다.

그러나 그는 상대를 잘못만난 것이다.

임보산은 따지듯이 물었다.

[북혈마! 나보고 한 소리냐?]

북혈마는 가슴이 섬칫해졌다.

자신이 북혈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한데,

눈앞의 중년인은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다는 북혈마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다!]

[건방진 놈! 그동안 얌전히 코 박고 있길래 귀찮아서 놔두고 있었더니 아주 기고만장하군. 몇 푼어치 되도 안한 무공을 믿고 있는 것이냐?]

임보산의 질책하는 듯한 말에 북혈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다시 임보산이 쏘아 부쳤다.

[구파일방에 인재가 없다고 한것만 해도 큰 죄이거늘 감히 내앞에서 까지 건방을 떨다니 죽어야겠구나.]

중인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중년인은 무림황제를 꿈꾸는 팔인의 절대고수 중 하나인 북혈마의 목숨을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곳곳에 숨어서 목을 움추리고 있던 전대의 흉마거마(兇魔巨魔)들 슬금슬금 비무대로 다가가 임보산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린 것이었다.

그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북혈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눈앞에 있는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어떤 절대자 임을 느낀 것이다.

임보산은 못마땅한 눈으로 북혈마를 쏘아보면서 한손을 들어 하늘 중간을 가리켰다.

그가 신주독존공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그때,

북혈마가 다급하게 물었다.

[당신은 구대문파와 무슨 연관이 있소? 당신은 중도 아니고 도사도 아닌데 어째서 그들을 그처럼 비호(庇護)하는 거요?]

그는 아예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그래, 본좌는 중도 아니고 도사도 아니다. 하지만 한때는 중도 되어보고 도사도 되어보았으며 거지도 되어보았다. 구파일방이 바로 본좌의 사문(師門)이거늘 사문을 모독하는 자를 어찌 그냥둘 수 있겠느냐? 이놈아!]

임보산은 화가 난 듯이 소리쳤다.

그러했다.

임보산의 무공의 근원은 무림의 정종(正宗)이라는 구파일방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림사를 비롯한 무당과 화산 등 구파일방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그들의 무공을 전부 익혔던 것이다.

홍대구 등 구파일방의 사람들은 임보산이 자기들의 동문이라고하자 전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임보산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림의 공성대사(空性大師)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미타불! 소승은 소림의 공성이외다. 시주께서는 구파일방이 사문이라고 하셨는데 그중에 본사도 들어가는지요?]

[소림사는 구파일방이 아니란 말이냐? 공성 너는 나를 본 적이 없어서 의심하는가 본데, 네가 알기로 지금까지 소림사에서 달마조사이후로 최고의 기재가 누구였느냐?]

임보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미타불! 조사이후로 육조께서 가장 뛰어나다고 전해졌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약 이백 년 전에 본사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젊은 신승(神僧)이 계셨다고 합니다. 한데 불행하게도 그분께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입적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장을 하려고 했는데도 몸이 전혀 불에 타지 않아서 탑림에 매장했다고 전해지는데‥‥‥]

공성대사가 소림의 영화를 되살리려는 듯이 길게 늘어놓는데,

임보산이 말을 끊었다.

[됐다. 내가 바로 그 신승 대우(大愚)다.]

충격이었다.

공성대사의 무릎이 허물어지듯 무너지며 부르짖었다.

[태사백조‥‥‥]

그의 뒤를 따라 소림의 전 고수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임보산은 대수롭지 않은 듯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북혈마를 보며 소리쳤다.

[아직도 죽지 않았느냐!]

북혈마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응대했다.

[당신이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소.]

임보산의 얼굴이 서릿발같이 변했다.

그의 하늘을 가리키던 손이 벼락처럼 북혈마를 가리켰다.

순간,

황군성은 번개같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 자는 제가 죽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임보산이 분노는 극에 달한 듯했다.

그는 말없이 황군성과 북혈마를 노려보았다.

딸이 남편이라고 한 자‥‥‥

생각같아서는 죽여 버리고 싶지만 딸이 무서워서 손을 못쓰고 있는 임보산이었다.

 

한편,

청삼객은 무제 임보산이 나타난 후에도 암중으로 끝없이 남궁파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남궁파는 임보산이 나타난 후 누군가를 향해서 전음을 보내는 것이 청삼객의 눈에 잡혔다.

그리고 남궁파는 지금 표 나지 않게 조금씩 단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단상‥‥‥

무림황제가 쓸 황금면류관과 참전한 모든 고수들은 최고 절학이 기재된 비단을 안감으로 댄 곤룡포가 있는 곳‥‥‥

감시하는 자도 없었지만 감히 무림의 어떤 도둑들도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그것들이 있는 단상‥‥‥.

황금관과 곤룡포는 유리로 만든 상자속에 들어가 있는데‥‥‥

청삼객은 남궁파가 다가감에 따라 등뒤에서 삼척길이의 각진 몽둥이같은 것을 꺼냈다.

문득,

이 대회의 주관자로서 비무대의 주위를 살피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는 비무대를 가운데 두고 남궁세가의 고수들이 이십여장의 거리에서 둘러서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이었고 은연중에 손을 모두 비무대를 향하게 하고 있었다.

불헌듯 청삼객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있었다.

(그자가 고수들을 모두 죽일 방법이라면‥‥‥화탄(火彈)‥‥‥)

청삼객은 즉시 소리치면서 남궁파를 향해 덮쳐갔다.

[모두 피하시오! 남궁세가가 화탄을 사용하려 하오!]

우르르르------!

그의 손에 들린 각진 몸둥이 같은 물건에서 어마어마한 경력이 쏟아져 나와 남궁파를 덮쳐갔다.

남궁파도 그와 거의 같은 순간에 몸을 곤룡포가 들어있는 유리상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또한,

핑핑핑핑!

그 순간에 사방에서 비무대를 향하여 무수한 화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피해라!]

비명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고,

남궁파는 청삼객의 경력을 만류귀종의 수법을 펼쳐 끌어당긴 후에 되돌리려했다.

하나,

청삼객은 경력은 특이하여 만류귀종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남궁파의 몸이 튕겨나갔다.

그는 대경실색하며 유리상자를 잡으려 했으나 그 순간에 청삼객의 두번째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청삼객의 손에 들렸던 각진 몽둥이 같은 것은 실상 거대한 부채였다.

촤앙!

펼쳐진 부채의 날이 환상처럼 남궁파의 목을 베어오고 있었다.

남궁파는 풍차처럼 몸을 돌리면서 허공으로 높이 솟구치며 비무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청삼객의 부채에는 피가 묻어나고 있었다.

남궁파의 가슴에 길게 상처가 난 것이다.

이 남궁파와 청삼객의 대결은 찰라의 순간이었다.

화탄은 날아들고 비무대 주변에 있던 고수들은 화탄을 뚫고 나가려하고 있었다.

펑펑펑!

화르르르‥‥‥

화탄이 터지고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다.

펑!

무림황제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상자가 박살나며 곤룡포에 불이붙었다.

고수들은 봄철의 메뚜기 뛰듯이 이리저리 뛰면서 화탄이 솟아지는 곳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뜨거워! 살려줘!]

사방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학선평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콰콰쾅!

비무대가 폭발하면서 허공으로 일백 장 가까이까지 불꽃을 쏘아올렸다.

남궁파는 미리 비무대가 설치될 장소 아래에 폭약까지 숨겨두었던 것이다.

아비규환의 초열지옥‥‥‥

비명이 끝없이 울려퍼지고 수 만 명의 무림인들이 질서없이 날아 내리고 있었다.

밟혀서 죽는 자,

앞이 가로막혀 다급함에 검을 빼어 휘두르는자,

또 그에 맞서는 자‥‥‥

서로 달아나려다가 머리를 부딪히는 자‥‥‥

길길이 뛰면서 서로 살길을 도모하다 오히려 죽는 학선평‥‥‥

지옥이 있다면 이곳 학선평이 바로 그 지옥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들은 그 와중에서도 청삼객의 재빠른 말로 인해 어렵지 않게 탈출했으니‥‥‥

 

황군성은 청삼객의 소리를 듣자마자 진우란과 임단심을 향해 날아갔다.

한데,

휙!

그보다 한발 앞서 누군가가 임단심을 나꿔채들고 까마득히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임매!]

그는 진우란의 손을 잡고 날아오르면서 소리쳤다.

임단심을 안고 달려가는 자는 기이하도록 빨랐다.

황군성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쳐지는 실력이 아니었다.

[임매!]

황군성은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그자를 뒤쫓았다.

삽시간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한줄기 빗살처럼 날아갔다.

황군성은 침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같았다.

진우란이 그의 품에서 전음으로 말했다.

[저를 내려놓고 쫓아가세요. 뒤따라 가겠어요.]

그녀는 황군성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황군성은 말할 틈도 없이 까마득히 달려가는 임단심의 납치범을 쫓아갔다.

진우란은 정신이 얼떨떨했다.

대체 누가 임단심을 납치해간단 말인가?

임단심의 무공도 아주 고강한데 어떻게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잡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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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장 

 

           검에 죽은 검신 (2)

 

 

 

휙!

한줄기 그림자가 비무대위로 날아올라갔다.

[아버지!]

부르짖으며 황급히 전득무를 껴안는 그는 전무옥이었다.

그때,

챙그랑!

전연옥의 발사이에 꽂꽂하게 서있던 전득무의 청강검이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전연옥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청강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알았던 것이다.

우연히 내던졌던 것같은 청강검은 검신의 노련한 경험과 절묘한 임기응변이 결합된 마지막 승부수였던 것이다.

한박자 느리게 어검술을 수법으로 전연옥의 복부를 관통했어야 할 청강검이었다.

전연옥은 청강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녀가 자신의 목을 노리는 힘을 느꼈을 때 이미 그녀의 복부도 위험아래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녀가 전득무에게 검기를 내쏘기 전에 먼저 솟아오르며 그녀의 배를 찔렀어야 할 청강검이 그 자리에 꼿꼿히 서있다가 쓰러진 것이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전무옥의 품에 안긴 전득무가 힘없이 말했다.

[그런 표정 지을 것없다. 네가 이겼으니 네 말이 옳다. 무슨 이유에서든 간에 너와 네 어미를 버린 것은 내 잘못이었다.]

전연옥은 멍하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서 물었다.

[그럼 왜‥‥‥?]

[조금 시간이 있을 듯하니 모두 말해주마. 너도 잘 들어라.]

전득무의 말에 전무옥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원래 쇠락해가는 신검보의 세째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신검보는 강호에서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군소방파 중의 하나에 불과했지. 나는 세째였지만 너희들의 할아버지는 내게 가장 기대를 걸고 있었다. 두 형의 자질은 평범한 것이어서 신검보를 중흥시킬 수 있는 재목이 아니었던 것이지.]

전무옥이 그의 명문혈에 진기를 주입시키면서 말했다.

[아버지만큼 뛰어난 인재가 또 어디 있었겠습니까?]

전득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 중 인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네 누이를 보아라. 어린 나이에도 이 아비를 이기지 않았느냐?]

전연옥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전득무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무대의 중간에 꽂힌 낙일검의 검집이나 마찬가지로 서있는 것이다.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신검보를 중흥시킬 대임을 맡기는 했지만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단다. 신검보의 검술은 당시 내가 생각해도 삼류에 불과했지. 강호에 나가 새로운 검술을 구하던 중에 만났던 사람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도신 범강 형이고‥‥‥]

도신과 황군성, 진우란, 임단심 등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도신이 말했다.

[전형‥‥‥! 따지고 보면 우리의 죄업이 적지 않소이다. 나 또한 필경은 전형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오.]

전득무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내 이야기를 끊지 말아주시오.]

그의 살아온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쓰러져가는 가문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범강을 만난 전득무는 그와 사귀면서 그의 재능에 크게 감탄하고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그때부터 서로가 필적할 만한 상대였던 것이다.

함께 무림을 돌아다니면서 무공을 구했으나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그들에게 손을 뻗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재능을 높이 산 것이다.

그자는 두 사람에게 제의하기를 자신을 위해서 일해준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무공비급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몇 가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들은 구파일방의 절예를 비롯한 강호 제파의 검법과 도법이 기록되어있는 것이었다.

전득무는 상대가 많은 것을 제시하는 만큼 요구하는 것도 많으리라고 생각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신도보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것에 잠시 눈이 먼 범강은 그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범강이 너무 쉽게 수락해버리자 전득무는 오히려 반발심으로 거절해버렸고,

범강은 그자를 따라가고 전득무는 홀로 다시 강호를 떠돌았다.

그런데 약 일년 쯤 지났을 때 우연히 북경에서 전득무는 다시 범강을 만났다.

범강의 무공은 이미 몰라볼 정도로 강해져 있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은밀한 곳에서 범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털어놓았고,

자신이 금제를 당해 그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했다.

[그때 범형은 그자가 반역을 도모하는 자라고 했지. 범형은 반대파를 척결하는 일을 맞고 있었던 것이고‥‥‥나는 범형을 통해서 그자에 대한 것을 세세한 것까지 알았다. 하지만 나는 범형만이 무공이 강해진 것에 또한 반발심이 생겨 이번에는 왕부에 몸을 의탁하고 말았지. 그자의 가장 강한 적수라는 영왕부에‥‥‥]

황군성은 깜짝 놀랐다.

(검신이 아버지가 말했던 그 전삼이란 고수였구나‥‥‥그자란 분명히 마왕을 말하는 것인데‥‥‥그럼 마왕은 황실에 있었단 말인가?)

전득무의 말이 이어졌다.

[한데 나는 영왕부에서 언감생심 감히 영왕전하의 금지옥엽이신 혜명공주(慧明公主)님을 뵙고 나서 그만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가문의 부흥이고 뭐고 모두 잊고서 오직 공주님 곁에서 죽을 때까지 섬길 수 있기만을 바랐지. 한데‥‥‥내가 모시던 공주님은 그자가 보낸 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때 호위무사들 가운데서 오직 나혼자만이 살아남았는데 공주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그자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떠났지.]

황군성은 생각했다.

(검신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줄로 알았구나. 그것이 장계취계의 나도 속이고 적을 속인다는 계략이었음을 몰랐구나.)

전득무는 가짜 주혜린이 죽는 것을 보고 상처입은 몸으로 떠난 후에 기연을 얻어 무광검을 얻게 되었다.

무광검은 한장의 양피지에 적혀진 검공(劍功)이었으니,

그는 그것을 암기한 후에 태워버렸다.

자신이 미약한 내공으로는 무광검을 완성하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범강을 찾아갔다.

정확하게는 범강이 섬기고 있는 마왕이란 자를 찾아간 것이다.

마왕은 그의 머리속에 금제를 심고는 그가 원하는 영약과 비급, 모든 것을 지원했다.

전득무는 무공이 깊어지면 마왕을 죽여 혜명공주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는데‥‥‥

전득무가 전연옥에게 말했다.

[마왕이 누구였는지 아느냐? 바로 네 어미의 오라버니인 구문제독 하후승(夏厚勝)이다.]

범강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구문제독 하후승‥‥‥

영왕과 쌍벽을 이루는 세도가로 대명의 모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전연옥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녀의 어머니이자 마왕 하후승의 동생이었던 하설지(夏雪芝)는 전득무를 보자마자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고,

전득무는 하후승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위해서도 그녀를 멀리할 수 없었다.

마왕의 휘하에서 범강과 전득무는 두개의 산맥과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하후승도 자신의 여동생 하설지가 전득무를 선택했다는 데 대해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하설지의 전득무에 대한 사랑은 간절한 것이었으나 전득무의 마음속에는 오직 혜명공주만이 있었고,

혜명공주를 위해 하후승을 죽여 복수해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크기가 같지 않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바퀴는 기어코 수레를 옆길로 가게 하기 마련‥‥‥

한편,

마왕은 전득무와 범강으로 하여금 강호에 신검보와 신도보를 다시 일으킬 것을 명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것은 모두 그의 무림장악을 위한 교두보였던 것이다.

하여튼,

마왕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무림에서 진반가반(眞半假半)의 대결을 해마다 벌임으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당당히 무림의 칠대세력에 들었고,

전득무는 부모의 강박으로 하설지가 모르게 옛날의 정혼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마침내 알게된 하설지는 전득무의 아내를 죽이고 임신한 몸으로 신검보를 뛰쳐나갔다.

전득무가 붙잡으려면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랑이라고는 없었던 그는 그녀를 보내고 말았다.

훗날 하설지와 똑같이 생긴 전연옥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도 그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기는 했으나 하설지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내심 꺼려지기조차 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전득무에게 한을 품고 있었으니‥‥‥

차라리 전득무는 그녀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고,

실제로 황군성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 죽을 것이라 예상하고 내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전득무의 말을 다들은 전무옥이 전연옥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 어머니는 내 어머니를 죽였는데, 그것도 모자라 너는 내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게 하느냐?]

전연옥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럼‥‥‥내가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것은‥‥‥누구‥‥‥누구 때문이었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왜‥‥‥왜‥‥‥? 그래도 아버진 어머니에게 잘못한 것은 있어. 죽어도 할말이 없을 거야‥‥‥하지만‥‥‥나는‥‥‥내가 뭘 잘못했어?]

그녀의 반문은 흐느낌과 절규로 높았다.

도신이 전무옥과 전연옥을 달랬다.

[사람의 일은 다 이런 것일세. 누구나 한을 가지고 있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다를 뿐‥‥‥자네들은 그래도 같은 아버지를 가진 남매일세. 더 이상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네.]

[으아아아-----!]

갑자기 전연옥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허공을 밟고 까마득히 날아가버렸다.

전득무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랑도 분수에 맞아야만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네. 범형, 나는 곧 죽을 것이네. 내 아들을 잘 돌봐주게나.]

범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단심이 말했다.

[검신께선 아직 살아나실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살아나신다면 따님이 부친을 살해했다는 죄를 범한 게 안되지 않겠어요?]

검신이 말했다.

[임소저에게 그런 방법이 있음을 믿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그 아이는 부친을 살해하지는 않았네.]

[…………?]

[…………?]

[범형은 내 뜻을 알것이오.]

범강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야.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기억하도록 해라.]

검신은 전무옥을 앞에 앉히며 전음으로 무형검의 구결을 빠르게 두번 읊었다.

그런데 그가 두번 째 읊을 때는 이런 말이 들어있었다.

 

-----제갈공지를 조심해라. 그가 네게 독을 썼던 자다.

 

전무옥이 어떤 표정의 변화를 드러내기도 전에 검신이 물었다.

[다 기억했느냐?]

[예‥‥‥아버지‥‥‥]

갑자기 검신은 두 손으로 전무옥의 얼굴을 와락 붙잡고 당겼다.

그리고,

마치 사랑하는 여인에게 하듯이 그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갖다댔다.

짧은 순간,

검신의 무형검의 검기와 내공이 전무옥의 몸으로 옮겨갔다.

그것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의 몸에서 녹아 그의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놀람속에서 입을 뗀 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들릴락말락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아이를 용서해라‥‥‥내 마지막 부탁이다‥‥‥]

그의 눈동자가 풀리며 범강을 응시했다.

범강은 탄식하면서 전득무의 사혈을 짚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의 달인 검신은 이렇게 죽었다.

자식에게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기위해 친구에게 마지막을 부탁했던 그‥‥‥

그의 죽음에 무림인들은 일세를 풍미한 절대고수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청삼객이 떨어져 있는 낙일검과 검집을 주워들며 중얼거렸다.

[낙일검‥‥‥태양을 떨어뜨린다는 낙일검‥‥‥조금도 그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주인의 아버지를 베었으니‥‥‥]

흔히 아버지는 해, 어머니는 달에 비유된다.

낙일검은 기묘하게도 해를 떨어뜨린다는 그 이름처럼 주인의 아버지를 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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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四 章

 

            劍에 죽은 劍神 (1)

 

 

 

황군성이 먼저 전음으로 말했다.

[궁주! 이렇게 나와주신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본좌는 황소협이 어떤 고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싶을 뿐이오.]

청삼객은 이미 황군성이 황삼객임을 서찰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황군성이 물었다.

[나는 며칠 동안 지켜보면서 궁주가 진정 영웅다운 풍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소. 내가 보기에 아마 궁주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오.]

청삼객이 냉막한 얼굴에 미미한 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과찬의 말이오.]

[하지만, 나는 궁주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소.]

[…………]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와 아주 가까웠던 사람같기도 하고‥‥‥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불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니 그럴리가 없고‥‥‥]

황군성은 그에게서 뭔가 조금이라도 발견하기 위해서 애쓰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궁주가 남궁세가의 노가주인 남궁파라고 생각했소. 한데, 남궁파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남궁파가 두 사람일수는 없고‥‥‥]

[남궁파?]

청삼객은 전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그렇소. 나는 믿을 만한 분으로부터 남궁파가 바로 현현궁의 궁주라고 들었소. 그것은 결코 잘못될 수 없는 정보였소. 한데 궁주는 남궁파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듯하니‥‥‥]

청삼객은 심각한 생각에 빠져든 듯했다.

황군성은 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은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청삼객은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같소. 이야기 잘 들었소이다. 그리고 늦었지만 쾌유를 축하하는 바이오.]

그는 황군성에게 포권을 해보이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황군성이 전음이 아닌 입으로 소리쳤다.

[잠깐!]

청삼객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다른 것을 말해주기 어렵다면, 내게 당신이 어떻게 내 어머니 함자를 알고 있는지만 말해주시오.]

황군성은 간곡한 음성으로 청했다.

청삼객의 몸이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그순간 황군성의 귀로는 그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잘 생각해보시오. 주혜린이란 이름을 알고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소. 또한 그분이 황소협의 어머니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본좌는 그런 사실을 충분히 알 자격이 있는 사람이오.]

황군성은 그의 전음을 되새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자격이 있다‥‥‥그럼 정말 나와 가까운 사이가 되지 않는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임단심과 진우란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뭐라고 했어요?]

진우란이 물었다.

[청삼객은 그런 자격이 있다고 하더군!]

황군성의 믿도끝도 없는 말에 임단심과 진우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비무대 위에 팔인이 둘러섰다.

청삼객, 황삼객, 검신, 도신, 북혈마, 위지장천, 전연옥, 남궁파, 이렇게 팔인이었다.

비무대 아래에서는 수 만 명의 무림인들이 숨을 죽인 채 그들의 벌일 대결을 고대하고 있다.

전연옥이 먼저 한이 풀풀 날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제일 먼저 팔인의 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싸울 사람도 제일 먼저 정하겠소.]

[동의하오.]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누가 먼저 지목을 하든, 누가먼저 싸우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대를 가려가며 싸워야 할 정도의 무공이라면 무림황제자리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무공이 강한 자들은 대개 자존심도 그만큼 강하기 마련인 법,

비열한 자라면 결코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힘들게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 보다는 훨씬 쉬운 방법을 택할 것이므로‥‥‥

황군성은 왔구나 싶었다.

자신이 전에 전연옥을 패배시킨 적이 있으니까 아마 자기에게 도전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강해졌다. 어떻게 해서 단 일년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 있을을까?)

황군성은 마음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그러나,

정작 치켜 올라간 전연옥의 손이 가리킨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검신 전득무였다.

검신 전득무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착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전득무! 당신과 제일 먼저 싸우겠소.]

[전형! 조심하시오.]

도신 범강이 전득무에게 말을 건내고 다른 고수들과 함께 비무대를 내려갔다.

전득무가 외팔로 검을 잡으면서 말했다.

[먼저 삼초를 양보하마. 그 이후에 너를 죽이겠다.]

전연옥이 차갑게 코웃음쳤다.

[내게 삼초를 양보할 능력이 당신에겐 없어. 당신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굴복시킨 뒤에 죽이겠어. 어머니와 나의 사무친 한(恨)을 풀기위해서‥‥‥]

그녀의 목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비로소 전연옥이 전득무에게 어떤 원한이 있었음을 알아챘다.

이신보 중에서 검신보의 고수들은 대부분이 그녀를 알고 있었다.

무적십이검 중의 우두머리였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와 전득무와의 얽힌 사연을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제갈공지뿐이었다.

심지어 전득무의 아들 전무옥조차 모르고 있었다.

전득무가 검을 중단으로 겨누며 말했다.

[내게 어떤 잘못이 있었다고 말하지 마라. 너와 네 어미에게 일어났던 일은 모두 네 어미가 자초한 일이었으니까.]

전연옥의 눈에서 파란 살광이 뻗쳐나왔다.

[그게 과연 아내와 딸을 버린 자의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심지어 돌아온 딸을 죽을 곳에 보내기까지 한 변명이?]

[…………]

전득무는 태산처럼 버티고 선채 말이없다.

전연옥은 그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수근거렸다.

전연옥이 말했다.

[이것은 당신을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는 절입니다.]

[저‥‥‥저럴 수가‥‥‥전옥이 전득무의 자식이었다니‥‥‥]

비무대 주위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전연옥은 다시 절했다.

[이것은 아버지와의 모든 인연을 끊는 절입니다.]

세번째로 절하며 말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천륜을 거역한 딸의 절입니다.]

비무대도‥‥‥

그 주위는 바늘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딸‥‥‥

천륜을 어기는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전득무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음성으로 내뱉었다.

[검을 뽑아라. 너도 무림인, 나도 무림인, 검으로 말하자.]

전연옥은 백색검집을 들어올려 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각오하라. 전득무!]

그녀의 음성에서 이미 격앙된 감정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고,

오직 강한 적수를 눈앞에 둔 고수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적막이‥‥‥

하늘도 땅도 바람도 수 만 명의 사람들도 숨을 죽인 적막이 학선평을 감돌았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움직일 수 없을 것같이 느껴지는 순간,

번쩍!

흰그림자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비무대 위의 두 사람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엉키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오직 십여 명의 초절정고수들만 분명하게 볼 수 있을 뿐.

황군성은 벌떡 일어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궁파와 청삼객, 북혈마, 위지장천 등 팔인에 속하는 고수들과,

비무대 위의 두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임단심, 진우란, 한천사방객 중의 삼인 및 몇몇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던 기인들도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눈에는 일종의 경이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득무는 아예 초식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처음에,

전연옥은 몸을 움직이는가 싶은 순간에 이미 백색 검집으로 그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전득무는 여유있게 검끝을 빙글 돌리며 백색 검집을 밀어내고 도리어 전연옥의 목을 노리려 하였다.

한데,

그가 검을 움직이는 순간에 이미 전연옥의 검집은 그의 목이 아닌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이것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전득무가 전연옥의 검집을 향해 손목을 내밀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분명히 처음에는 전득무의 목을 노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처음부터 그의 손목을 노린것 처럼 정확했다.

경악하며 전득무가 손목을 거둘 시간도 없이 보법을 밟아 가까스로 피했으나 이미 검기에 손목이 살짝스쳤다.

그것은 마치 일부러 그렇게 한 것같았다.

그러나 전득무는 아무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전연옥의 좌측으로 보법을 밟아간 그는 이미 자신의 옆구리로 들이 닥치고 있는 백색검집을 느껴야만했다.

그가 있는 몸의 자세로는 도저히 검으로 막을 수도 없는 위치였다.

즉,

틈이었던 것이다.

전득무의 몸이 반공에서 회전하며 뒤로 물러섰다.

백색검집은 이번에도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

전득무의 몸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부욱!

그의 검이 기이한 음향과 함께 반원을 그리자 푸른 검막(劍幕)이 방패처럼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연옥의 백색검집은 아래에서 솟구치며 그의 하반신을 베고 있었다.

황군성 등이 일어선 것도 바로 이때였던 것이다.

전득무의 몸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며 가까스로 검집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집이 그의 다리를 살짝 긋고 지나감을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수많은 초식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연옥의 공격은 모두 실날보다도 작은 그의 틈을 노린 것들이고,

이에 대한 대책은 오직 임기응변 외에는 있을 수도 없었다.

휘익!

전연옥이 멀찍이 물러나며 멈춰섰다.

전득무의 몸도 비무대위에 다시 우뚝섰다.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같았다.

그러나 전득무의 표정은 언제그렇게 당했냐는 듯이 무표정했다.

진정한 검도 고수의 풍모라고 할 수 있었다.

전연옥이 교갈을 질렀다.

[과연 누가 삼초를 양보했소? 자! 이제 목숨을 바치시오.]

그녀의 손목이 한번 비틀리는 순간,

팽!

백색검집이 날아가 비무대의 중간에 꽂혔다.

번쩍!

검집이 벗겨진 곳에는 백색검기를 뿜어내는 한 자루의 검이 있었다.

두자가 조금더 되는 길이‥‥‥

그 검기는 너무도 강렬해서 내리쬐는 햇빛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진정,

예기를 안으로 숨길 수조차 없는 절세의 보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의 주변으로 은은한 백색 무지개가 생기는 듯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놀람에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낙일검‥‥‥낙일검이 나타났다‥‥‥고금십대천병의 첫번째인 낙일검이‥‥‥]

그렇다.

그녀의 검은 낙일검이었던 것이다.

많은 무림인들이 이제 앉아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고 일제히 발꿈치를 돋우고 일어섰다.

황군성은 중얼거렸다.

[과연 낙일검이었구나. 하기야 낙일검이 아니고서야 천하의 검신을 상대로 그렇게 기이한 검법을 펼칠 수가 없었겠지‥‥‥한데 검신은 왜 무광검(無光劍)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무광검 또한 고금십대천병 중 서열 두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비록,

고급십대천병의 서열이 강함의 순서는 아니라고 할 지라도‥‥‥

 

비무대 위의 전득무는 이제 검을 상단으로 겨누고 있었다.

그의 자세가 아주 당당하여 과연 검신으로 추호의 손색도 없었으나,

백색무지개 같은 낙일검 앞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나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일순간,

백색무지개가 하늘로 피어오르는가 싶었다.

창!

전연옥의 낙일검과 검신의 청강검이 부딪혔다.

모두가 청강검은 무처럼 베어지고 검신은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낙일검은 검신의 청강검에 튕겨져 나왔다.

전연옥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낙일검이 청강검하나를 자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럼‥‥‥!)

전연옥은 입술을 깨물면서 생각을 바꿔먹었다.

일초에 검과 함께 베어버리려던 생각을 바꿔 검신만을 베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녀는 결투중에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특이한 심법을 배웠다.

상대가 펼치는 무공이 어떤 것이라도 그 순간적인 틈과 공격할 부위를 단숨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전연옥은 화산의 절곡에서 거대한 석상들로부터 익힌 검법을 펼쳤다.

한데,

공격을 펼치던 그녀는 깜짝 놀라며 낙일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방비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의 가슴을 노린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내 검신의 보이지 않는 공격은 그녀의 어깨를 노리고 있었다.

전연옥은 공격할 틈을 놓쳐버렸다.

갑작스런 기이한 공격에 방비하기에 바빴다.

만일 그녀에게 신기한 심법이 없었더라면 이미 시체가 되어 누웠을 것이다.

그녀는 검신이 아무리 기이한 공격을 하더라도 다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전연옥은 검신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그가 청강검으로 공격을 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다른 수법을 펼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청강검과 보이지 않는 공격을 동시에 막아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큰 부담이었다.

황군성은 머리를 끄덕였다.

(검신이 무광검을 대성했구나. 이미 보라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전연옥은 자신이 수세에 몰리자 기이한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의 극은 극대로 검신을 공격하면서 검의 손잡이 부분은 따로 움직이며 검신의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미미하던 공격이 점차 크지면서 그녀의 검법은 완전히 공수를 겸비하여 검신의 어떤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초식 한초식 순서대로 펼쳐내고 있었다.

갑자기 전연옥이 크게 소리쳤다.

[받아라!]

순간,

지금까지 빠른 초식으로 대결하던 상황에서 그녀의 낙일검이 하늘로 수십장이나 치솟는 검기를 내뿜었다.

번쩍!

쉬아아아아!

바늘끝같은 검기.

이미 검강의 경지를 넘어선 또하나의 경지였다.

검기는 검신 전득무를 일도양단할 듯 했다.

검신 전득무는 청강검을 전연옥의 발아래로 집어던지며 하나뿐이 손을 무지개같은 검기를 향해 뻗쳤다.

파파파팟!

해를 떨어뜨린다는 낙일검의 검기는 기이하게도 전득무의 외팔에 가로막히며 흩어져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무형검에 의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득!

전연옥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는 힘을 느끼고 낙일검을 다시한번 떨쳤다.

번쩍!

찬란한 검기가 전득무를 뒤덮고,

[큭!]

전득무가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그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방비하지 못한 검기가 이미 그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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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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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三 章

 

         八人의 絶對高手

 

 

비무가 벌어진지 오일(五日)째,

중앙의 비무대를 둘러싸고 무수한 인물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비무대에 올라있는 두 사람 중의 한사람은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신성으로 황삼객이란 어린 소년이다.

그는 연거푸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여왔다.

오척단구의 키이지만 어깨는 딱 벌어졌고, 그의 모습은 준수하며 귀엽기까지 한다.

또한 자기의 키와 엇비슷한 장검을 무기로 사용하면서 그는 누구든 단 일초에 제압해왔다.

우리는 안다.

그가 바로 모습을 바꾼 황군성임을‥‥‥

한데,

지금 그와 마주선 자는 구파일방의 전 출전자 중에서 마지막 남은 자라고 할 수 있는 무당파(武當派)의 장로 철수검객(鐵袖劍客)이란 고수이다.

나이 칠십에 이른 그는 무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무당파 검술의 뛰어남을 여실히 보여주며 계속 이겨왔다.

황군성과 철수검객의 대결에 중인들의 시선이 모두 모여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비무대 아래에서는 승부를 점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삼객이 이길거야. 지금까지 계속 일초로 승부를 해왔어.]

[글쎄‥‥‥무당파 같은 검술 명문에도 그런 것이 통할 수 있을까? 일단 내공에서 밀릴 거야.]

[사제들, 그렇지 않다. 황삼객은 전혀 무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아. 진정 무서운자다. 어쩌면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킬 자인지도 모른다.]

 

평은 나이가 어린 황삼객 쪽이 우세하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철수검객은 무당파 비전의 양의검법을 시전할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소협! 먼저 공격하시오.]

황군성은 빙긋 웃으며,

[그럼‥‥‥]

전혀 사양하지 않고 자신의 키보다 조금작은 장검을 철수검객에게 겨누고 점점 다가갔다.

사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던 두 사람의 간격이 금방 이장으로‥‥‥

다시 일장으로 줄어들었다.

지켜보던 자들은 뜻밖의 사태에 놀라 모두 말을 잊었고,

철수검객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장검을 보면서 피해야 할지 막아야 할지를 잊어버렸다.

검은 이미 자신에게서 두자 떨어진 곳까지 가까웠다.

철수검개의 이미에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이럴수가‥‥‥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나는 일초도 펼칠 수 없다‥‥‥)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었다.

철수검객은 힘없이 검을 떨어뜨렸다.

챙그랑!

황군성의 칼이 철수검객의 목앞에서 멈췄다.

철수검객이 참담한 얼굴로 말했다.

[노부가 졌소. 소협의 검술은 사람으로선 당할 수 없을 것이오. 다시는 검을 잡지 않을 것이오.]

그는 검을 줍지도 않고 그대로 비무대 아래로 쓸쓸하게 내려갔다.

구파일방의 고수들의 얼굴의 그늘로 뒤덮혀 버렸다.

황군성은 철수검객의 뒤에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면서 겸손하게 말했다.

[소생이 한수 앞서기는 했지만 선배님의 당당한 검력에는 영원히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은 그의 태도에 뭇고수들은 물론 구파일방의 고수들 마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임단심은 진우란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점점 의젓해 지는 것같지?]

[그래요. 정말 당당해졌어요. 아주 세련되고 멋있어요.]

황군성은 비무대를 내려와 그녀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소곤거리는 거요?]

임단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욕하고 있었어요. 너무 잘한다고.]

그때,

비무대 위에서 청삼객이 나타나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것으로 출전자들은 팔 명 만이 남았소. 이 중에서 무림황제가 나올 것은 거의 확실한 바요. 여기서 본좌는 본좌를 제외한 일곱 분의 출전자에게 중대한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하오.]

청삼객을 제외한 일곱 명의 출전자‥‥‥

이천명에 달하는 고수들 중에서 한번 도 패하지 않고 올라온 자들이다.

관전하는 무림인들이 보기에 그들의 무공은 모두 백중지세 가공무쌍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로,

도무지 누가 무림황제를 차지할지 예측불허하게 하고 있었다.

 

그 팔인에 제일 먼저 든 사람은 뜻밖에도 전옥(全玉)이라고 이름한 약관의 미청년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모습은 진정 여인처럼 뭇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했는데,

정작 그의 손에든 백색의 장검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단 일초에 상대방을 제압하면서 팔인의 고수에 끼게 되었다.

한데,

그를 바라보는 청삼객의 눈과 황군성, 전득무의 눈은 모두 착찹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끼리는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전옥이라는 이름을 써며 나타난 미청년은 바로 전연옥이란 이름의 소녀로 고금십대천병중 서열일위인 낙일검(落日劍)을 익힌 그녀였다.

그녀는 종종 예리한 시선으로 검신 전득무를 노려보곤 했다.

 

두번째로 팔인의 고수에 들은 사람은 놀랍게도 신비에 가려져 있던 취옥성의 성주였다.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붉은 입술 흰 피부의 청년‥‥‥

그는 바로 북한객 냉천삭의 철천지원수인 북혈마(北血魔)였으니‥‥‥

냉천삭은 물론 황군성도 그의 특이한 외모로 인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림인 중에서 북혈마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단지 취옥성주라는 이름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역시 다른 출전자와 현격한 무공의 차이를 보이면서 오직 일수에 상대를 처참하게 죽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살인을 한 자이기도 했다.

 

세번째로 팔인의 위치에 오른 인물은 황군성의 의부(義父)이자 이신보의 대표로 출전한 도신 범강이었다.

그는 너무도 알려진 자신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기권하는 바람에 두번 밖에 싸우지 않고 올라왔다.

그 두번의 싸움도 시작하자마자 상대가 두려움에 질려 내려가 버림으로써 싱겁게 끝났는데,

그가 목계(木鷄)와 같은 마음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네번째로 팔인의 자리에 오른 자는 엉뚱하게도 남궁세가의 노가주인 남궁파(南宮坡)대협이었는데,

그가 비무에 출전한 것을 알았을 때 황군성과 임단심은 얼떨떨할 정도로 놀랐다.

그들은 청삼객이 바로 남궁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남궁파가 나타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청삼객이 남궁파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같은 고수가 또 나왔단 말인가?

황군성과 임단심의 가슴에 풀리지 않는 의혹이 또 늘어난 것이다.

남궁파는 남궁세가의 가전무공을 완벽히 통달한 듯,

앞서 팔인에 끼인 고수들에 전혀 못지않은 무공솜씨를 보여주며 팔인에 들었다.

 

다섯번째로 위지장천이 팔인의 고수에 끼게 되었다.

위지장천은 특이하게도 한번도 검이나 손을 쓰지않았다.

그는 오직 한발로 비무대를 굴리는 시늉을 할 뿐이었는데, 그러면 상대방은 마치 짚동 쓰러지듯 쿵, 쓰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그의 마술같은 무공에 숫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여섯번째의 고수는 현현궁주 청삼객이었다.

그와 마주친 고수들은 반은 기권해버렸고,

억지로 덤볐던 자들은 그의 일장에 밀려서 모조리 비무대 밖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부상을 입히지도 않고 가볍게 팔인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이번 대회를 진행하면서 그가 보여준 태도와 무공은 무림인들의 존경을 은연중에 끌어내고 있었다.

많은 무림인들이 그가 무림황제가 되었으면 바라고 있었다.

 

일곱번째는 검신 전득무였다.

그 역시 상대방의 기권을 받고 또한 외팔이지만 단 한수에 승리하면서 팔인의 대열에 든 것이다.

그는 전옥의 살기어린 시선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 여덟번째,

황삼객으로 분장한 황군성이었다.

그는 비록 모습을 바꾸기 전의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도신등은 그 무기를 한번 얼핏 본 적 밖에 없었다.

그가 도신등을 떠난 이후에 그의 아버지 황창설을 만나 얻은 것이기에 새로 만났을 때도 도신등은 그 무기를 별로 주의해서 보지 않았던 것이다.

황군성 그는 현재까지 멋지게 일인이역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비무에 참가할 때는 황삼객의 모습이지만 비무대에서 내려오면 곧장 본 모습을 회복하고 도신 등을 만나기 때문이다.

비무시간이래야 불과 일각도 되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도신 등은 혜성같이 나타난 어린 황삼객이란 고수에게 강한 경계심마저 지니고 있었다.

 

이렇듯, 제각기 다른 여덟 명의 고수들이지만,

완전히 일치되는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모두들 자신의 진정한 무공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삼객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들께서 동의하신다면 팔인의 고수는 상대를 지목하여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자 하오.]

웅성웅성!

정작 대답을 해야 할 사람은 청삼객을 제외한 칠인의 고수들이지만 관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그때,

[좋은 방법이오. 본 황삼객은 전적으로 찬성하는 바이오. 팔인은 각기 한사람을 지명하여 도전할 권한을 갖기로 하고, 승리자는 계속해서 도전할 권한을 보유하는 것으로 합시다.]

어디서 부터 들려오는 소리인지 모르는 음성이 학선평에 울려퍼졌다.

황군성의 변성된 목소리였다.

청삼객이 말했다.

[다른 분께서 다른 말씀이 없다면 본인의 의견에 동의하신 것으로 간주하겠소.]

그때,

[어차피 무림황제란 누구와 싸워서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싸울 수만 있으면 방법은 어떻든지 상관이 없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듯 차가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취옥성주라는 자였다.

이로써 팔인의 고수들의 대결방식은 바뀌었다.

그들은 지명도전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툭툭!

사람들 틈에 있는 황군성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있었다.

황군성은 고개를 돌려보고 소리쳤다.

[둘째 사부!]

그는 서한객 초사륭이었다.

초사륭은 그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전음으로 말했다.

[조용히 이야기 하자구나. 그래 황삼객이 바로 너냐?]

[네, 그렇습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 건데‥‥‥]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린 네가 꼭 출전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한데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은 의논한 것이 있어서다.]

[무슨 일이십니까?]

초사륭은 텅빈 비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남궁파 그자가 낯설지 않아. 도무지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황군성은 가슴이 찌릿함을 느꼈다.

(아차! 내가 말씀드리지 않았구나!)

[사부‥‥‥죄송합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자는 사부님의 원수입니다.]

초사륭이 멈칫했다.

하나 어느 정도 그도 짐작하고 있었는 듯 그다지 놀란 표정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랬었군. 확실히 그자였어. 그자를 이길 수 있겠느냐?]

황군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덟 명은 모두가 아직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무공이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만‥‥‥그들에게는 최소한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초사륭이 물었다.

[그럼 다른 자에겐 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냐?]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의 무공은 아직 천하제일인을 상대하기에 모자람이 많습니다.]

[그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 무림황제가 바로 천하제일인이 아니냐?]

[휴! 사부, 꼭 그렇지만도 아닙니다. 제자는 팔인의 고수들 중에는 두려워하는 자가 없습니다만‥‥‥오직 한사람, 천하제일인만은 이길 수 없습니다.]

초사륭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럼 무림에 따로 천하제일인이란 사람이 존재한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것도 오래 전부터‥‥‥]

[음‥‥‥처음 듣는 이야기군. 믿기 어렵다.]

황군성은 그를 생각할 때마다 뼈아픈 패배가 생각나는지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자는 애초에 무림황제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가 참석한다면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그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무림황제는 허명뿐일 것이니까요.]

[어쩌면 그가 여기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습니다.]

초사륭은 남궁파의 정체를 확인하러 왔다가 무림에 이미 존재한다는 절대자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는 낙담하여 돌아갔다.

그로서는 팔인의 무공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인데 그보다 훨씬 강한 고수가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초라해졌음이다.

그는 그저 제자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주기만을 바랄 뿐 아무 생각이 없었다.

 

× × ×

 

밤,

만월이 학선평위에 두둥실 떠올라 밤을 활기차게 하고 있었다.

학선평위에 모여든 무림인들은 아직까지 떠날 줄을 모른다.

무림황제의 탄생을 기다리며 절대고수들의 대결에서 한가지라도 무공의 비결을 옅보기 위해 눈을 밝히는 것이다.

현현궁의 막사 안,

청삼객이 태사의에 몸을 깊히 묻고 묵상에 잠겨있다.

황촉불이 오직 태사의 주변만을 밝혀주고 있는데,

막사안은 청삼객 뿐,

고요한 적막이 안개처럼 흐르고 있다.

(내일이 고비다. 이제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왔다. 순조롭다는 것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일은 계산대로 진행되었다는 것‥‥‥)

청삼객은 이순간 누구와의 밀계(密計)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나를 비롯한 팔인을 모두 죽이려 할 것이다. 무림에 강자는 그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팔인 중에서 만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우리들을 죽이려 할까?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청삼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기에 내가 이기느냐 그가 이기느냐의 모든 관건이 달려있다. 무공으로는 이제 그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를 제거하기만 하면‥‥‥백인으로 구성되는 경천위지백인진으로 삼절일천군단을 제거해버린다면 천하의 어느 누구도 내가 무림황제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청삼객은 몸을 일으켰다.

(일단은 그가 어디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를 죽여야 한다.)

그때,

푹!

빛살같이 빠른 물체가 천막을 뚫고 그를 향해 날아왔다.

청삼객의 손바닥이 뒤집어졌다.

[유치한 수작!]

그의 손에는 돌돌 말린 종이가 들어있었다.

청삼객의 눈동자에 은은한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은 아주 먼곳에서 던진 것이다. 한데 이같은 공력을 실고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사실 그가 종이를 받았을 때 손이 저린 것같은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청삼객은 종이를 펼쳤다.

용사비등(龍蛇飛登)!

날아갈 듯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청삼객의 눈에 반가운 기색이 어렸다.

 

× × ×

 

임담심은 불안한 기색으로 황군성에게 물었다.

[과연 그에게까지 날아갔을까요?]

[미덥지 않으면 약속장소에 나가봅시다.]

황군성은 웃으면서 말했다.

진우란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에게 만나자고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에요. 언니나 황오라버니 말에 의하면 청삼객은 남궁파여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니‥‥‥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요. 황오라버니 어머님의 함자를 아는 것도 그렇고‥‥‥]

임단심이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물었다.

[진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그를 만나자고 한 것인데‥‥‥]

[아니에요. 그냥해본 말이에요.]

진우란은 장난스런 몸짓을 해보이며 웃었다.

그들은 학선평 중앙에 있는 텅빈 비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비무대,

장차 무림황제를 탄생시킬 비무대는 싸늘한 달빛 아래에 스산한 모습으로 서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승부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찰 곳이지만,

이 순간만은 오직 풀벌레 소리가 그를 벗하고 있을 뿐이다.

한데,

언젠가부터 넓다란 비무대 중간에 한사람이 뒷짐을 지고 배회하고 있다.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황삼객! 어서오시오.]

순간,

비무대 위로 세개의 그림자가 올라왔다.

키가작은 소년하나와 아름다운 두 소녀.

바로 황군성과 임단심, 진우란이다.

마침내,

비무대의 중앙에서 황삼객이라 불리는 사람과 청삼객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만났다.

임단심과 진우란은 한쪽에 떨어져 있고,

그 두 사람은 잠시동안 서로를 바라볼 뿐 말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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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二 章

 

            天下에서 가장 큰 賭博板

 

 

황군성의 몸이 튕기듯 일어섰다.

그의 앞으로 빈소매를 펄럭이며 다가서는 노인‥‥‥

황군성은 몸을 던져 엎드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

그는 바로 한천사방객의 네째인 북한객 냉천삭이었던 것이다.

냉천삭은 그의 앞에 다가와 빈소매로 황군성의 머리를 스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네가 우리를 아주 잊은 것은 아니구나. 기우가 헌앙해 보이니 마음이 아주 흡족하구나.]

[사 사부‥‥‥]

황군성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전륜법왕의 강압에 의해서 스스로 사부를 져버린다는 맹세를 한 그가 아니었던가?

[소문에 내공을 잃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직접보니 마음이 놓이는 구나.]

[사부‥‥‥제자는‥‥‥]

[가슴이 아픈 이야기라면 아예 꺼내지도 마라. 누구나 한조각 쯤의 한(恨)은 가슴에 품고사는 것아니겠느냐.]

황군성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만 일어나거라.]

냉천삭은 빈소매로 그를 끌어 일으키며 말했다.

황군성은 저항하지 않고 일어났다.

[제 천막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때 황군성의 천막이 열리면서 임단심과 진우란이 옆으로 비켜섰다.

그들은 황군성과 냉천삭의 대화를 들었던 것이다.

냉천삭이 들어와 의자에 앉자 임단심과 진우란이 큰절을 했다.

 

[그럼 두째사부님과 세째 사부님도 이곳에 와계신단 말입니까?]

황군성이 물었다.

[어쩌면 내일이면 보게 될 것이다.]

냉천삭을 술잔을 소매로 말아올리면서 말했다.

[이번 기회는 아주 좋다. 우리의 숙원을 풀수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자들도 이미 이곳에 와있을 것이다. 허허허‥‥‥오만한 그자들이 무림황제에 욕심을 내지 않을 리가 없지.]

임단심과 진우란은 냉천삭이 말하는 그자들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한천사방객과 원한을 맺은 자이니 만큼 대단할 거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현현궁주 청삼객이란 자에게 감사해야 겠어.]

냉천삭의 말에 황군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부, 그 청삼객이란 자가 바로 둘째 사부의 원수입니다.]

탕!

냉천삭의 소매에서 술잔이 떨어졌다.

[그게 정말이냐?]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리가‥‥‥그자가 전륜법왕이라니‥‥‥그럴리가‥‥‥]

냉천삭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벌써 반로환동을 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사부,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그를 상대해 보겠습니다.]

냉천삭은 탄식했다.

[우리 한천사방객은 오직 네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무튼 이번은 아주 좋은 기회니 그들이 나타날 때마다 당당히 싸워서 죽이도록 해라.]

그는 품에서 작은 구슬하나를 꺼냈다.

영롱한 빛이 나는 진주같았다.

[그리고 이걸 받아라.]

[…………?]

[그것이 천년한옥부(千年寒玉符) 속에 있는 빙정(氷精)이다.]

황군성은 경악하며 손을 거두지 못했다.

천년한옥부,

냉천삭이 북혈마로부터 전 가족이 몰살당하는 혈겁을 겪은 것이 바로 이 천년한옥부 때문이 아니었던가?

[북혈마는 특이한 마공을 익혔다. 그래서 그 마공의 화를 중화시키고 불사지체(不死之體)가 되기 위해서는 북해에서 나는 만년빙정(萬年氷精)이 필요했는데 마침 그게 우리 집안에 전해내려 온 게 화근이었지. 나도 수십년이 지나서야 이 구슬이 천년한옥부에 있던 빙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가 지니도록 해라. 북혈마가 이 때문에 죽는 꼴을 보고싶구나.]

황군성이 빙정을 거둬넣자 북혈마는 총총히 떠나버렸다.

황군성이 그를 배웅하고 다시 들어왔을 때 임단심이 물었다.

[대체 북혈마가 누구죠? 처음 듣는 이름인데‥‥‥]

[무서운 자요. 북해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자이기도 하지.]

이번에는 진우란이 물었다.

[그분들의 원수는 대체 누구누구예요.]

황군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북혈마와 청삼객은 이미 알고 있을 테고, 나머지 두 사람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왕과 낮에 임매와 내가 만났던 사신(死神)이란 자요.]

진우란의 몸이 가늘게 떨었다.

[왜그러시오?]

[아 아무것도‥‥‥]

진우란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언니, 난 좀 나갔다가 오겠어요. 금방 올게요.]

그녀는 임단심의 대답도 듣지 않고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진매가 좀 이상하군요. 혹시 그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임단심이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황군성이 고개를 저었다.

[진매의 아버지는 무림의 기인인 진섭천이란 분이오. 그분은 괴노 육천태 노선배께서 보증하시는 분이니‥‥‥]

임단심은 의심을 떨쳐버리고 황군성의 품에 안겼다.

[어쨌든 당신은 내일 기필코 출전해야겠군요. 꺾어야 할 적이 많으니까. 참, 우리 이러면 어떨까요? 진매와 나, 우리 세사람 모두 출전하면‥‥‥]

황군성이 웃으며 말했다.

[임매의 구룡로가 돕는다면 무림황제가 될 수도 있겠는 걸?]

임단심이 꿈도 꾸지 말라는 듯이 피식웃었다.

[황오라버니의 무공은 아직도 멀었어요. 설마 자신이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무공의 고하(高下)로 무림황제를 뽑는다면 될 사람은 따로 있어요.]

황군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야말로 언감생신이지. 그를 깜박 잊고 있었어. 임매의 무공에 대한 안목이 아주 대단하군.]

[그라뇨?]

임단심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거요. 무제(武帝)라고‥‥‥이름은 임보산이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임매와 성이같군!]

황군성은 말하면서 임단심을 안고 있기에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이때 임단심은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같이 놀라고 있었다.

[휴! 나는 백년을 더 수련해도 그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거야. 청삼객의 무공도 대단했지만‥‥‥이건 해보나마나야. 누구도 그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아니지 혹시 우리 육대조부님이시라면 또 알 수 없지‥‥‥]

황군성은 불헌듯 문성무존의 조부들을 생각했다.

세상밖의 신선같은 분들‥‥‥

임단심은 더 이상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 계곡에서의 일을 물었다.

[한데 황오라버니, 어째서 청삼객이 준 약을 간단히 받아먹었어요? 주혜린이 대체 누구죠?]

황군성도 생각이 난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분은 내 어머니요. 지금도 그가 어떻게 내 어머님의 함자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은 데‥‥‥]

임단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륜법왕이 문성무존에 있다는 황군성의 어머니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가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을 알 수있단 말인가?

그때,

임단심의 입을 황군성의 입술이 덮었다.

그리고 깊숙한, 영혼마저 빨아들여버릴 듯한 긴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임단심은 정신이 아득해지고 자신이 하늘을 날고있는 것같은 기분을 느꼈다.

실로 오랫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불헌듯 임단심의 머리에 조응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황군성의 가슴을 밀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싫어요. 내가 이러면 조응경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임단심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면서 말했다.

아무리 조응경이 미운 그녀지만 조응경이 추태를 부리는 것이 여자로서 결코 하지 못할 짓이라 생각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녀와 조응경은 통심마고의 작용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데 만약 그녀가 황군성과 정사를 벌이게 된다면,

다른 곳에 있는 조응경이 어떤 일을 벌일지‥‥‥

[음음!]

갑자기 천막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진우란이었다.

 

황군성은 쫓겨나서 천막밖에서 이슬을 맞고 자야만 했다.

응당 그가 누웠어야 할 침상엔 진우란과 임단심이 누웠던 것이다.

 

× × ×

 

밤새 수 많은 천막들이 붉을 밝히며 기다린 아침이 드디어 밝았다.

해가 뜨자마자 각파의 수뇌들이 하나둘씩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홀홀단신으로 온 고수들도 그 근처로 모였다.

이번 모임의 주장이 된 현현궁주 청삼객이 준비된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의 의견은 똑똑한 사람들이 대부분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갈공지의 말은 청삼객의 말과 한치도 어김도 없이 똑같았다.

세력은 세력대로 대표자를 내고,

또한 개인의 자격으로 출전하고 싶은 자는 출전할 수 있었다.

승자승(勝者昇)의 원칙에 의해 결투는 진행되기로 합의가 되고,

또한 개인적인 도전도 허용되었다.

승부는 스스로 패배를 시인하거나 죽는 경우에 정해지게 된다.

 

청삼객이 손을 들자 그의 제자 한사람이 큰 통을 들고 왔다.

[여기엔 천자문(千字文)의 각 글자를 하나씩 적은 종이가 한쌍씩 들어있소. 출전할 자 중에서 같은 글자가 적혀진 것을 뽑은 사람끼리 대결하는 것이오. 첫번째 승리자들은 다시 반으로 줄어든 천자문으로 추첨을 하여 상대를 정하고, 그런 방법으로 최후의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대결하는 것이오.]

청삼객이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때 한사람이 소리쳤다.

[현현궁주! 질문이 있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는 네모난 얼굴의 노인으로 크고 두터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외가권(外家拳)을 익힌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청삼객을 그를 보고 말했다.

[황보세가(皇甫勢家)의 노가주(老家主)이신 황보탁(皇甫倬)! 황보가주였구려. 말씀하시오.]

현현궁주는 무림에 얼굴을 내놓지 않았었다.

한데,

한눈에 권법으로 유명한 황보세가의 노가주 황보탁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가 무림의 세세한 동정마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보탁이 말했다.

[궁주는 무림황제라고만 말했는데, 무림황제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이 있는 것이오?]

그렇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중요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림황제라는 이름에 혹해서 그것에 관해 자세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림황제‥‥‥

단순한 이름뿐이라면 그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 아닌가?

청삼객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보가주께서는 황제란 어떤 위치라고 생각하시오?]

[그야 만승지존이 아니오?]

[무림황제도 응당 그와같을 것이오. 자금성의 황제는 기껏해야 수백만의 허수아비 같은 군사들을 거느릴 수 있을 뿐이지만, 무림황제는 무림의 모든 고수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져야 함이 당연하지 않소?]

[…………]

[…………]

청삼객의 말이 이어졌다.

[본좌는 무림황제를 위한 황금관(黃金冠)과 곤룡포(袞龍袍)를 준비해 놓았소. 그리고 열 필의 비단도‥‥‥. 무림황제가 되기 위해 출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자신의 최고절기를 한가지씩 비단에 적어야 하오. 그것들은 모두 곤룡포안의 안감이 될 것이오. 그래야 무림황제로서 위엄이 서지 않겠소?]

무림황제가 되면 곤룡포를 갖게된다.

그 곤룡포 안에는 천하의 절기들이 모두 모이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어느 누가 무림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가 있겠는가?

약육강식의 강자존의 세계인 무림에서 힘보다 확실한 것이 또 있을 수 있는가?

어차피 무림황제가 되지 못한다면 그에게 복종해야 할 것은 당연지사.

차라리 자신의 무공을 기록하고 과감하게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무림인 다운 일이다.

뭇 사람들은 자신이 무림황제가 되기라도 한듯이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이제 정오가 되면 추첨이 있고 무림황제를 뽑기 위한 대결이 시작될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무공을 점검해보기 위해서이리라.

한데,

아침부터 사신각의 천막쪽에서는 마치 쥐죽은 듯 아무 기척이 없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살수들도 하나도 눈에 뛰지 않았다.

두런두런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사신각은 철수해버렸다.

----그들은 어둠속에 살아가는 살수들의 집단, 무림황제에 관심이 없다.

 

사신각이 천막을 놔둔채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충격이었다.

사신각의 주인인 사신은 그 이름을 아는 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인데,

그자가 무림황제를 포기하고 사라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단 한사람만은 완강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는 결코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진섭천‥‥‥그자는 이런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는 황군성의 세번째 사부인 남한객 단극린이었다.

사신과 철천지한이 있는 인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분개하고 있었으니‥‥‥

그는 바로 위지장천이었다.

사신에게 가문의 혈겁을 당한 또 하나의 인물인 그‥‥‥

펑!

그의 앞에 놓인 탁자가 산산조각 났다.

[사신‥‥‥네 놈만은 기필코 내손으로 죽이고 만다. 절대적으로‥‥‥]

우두둑!

손가락을 꺾는 소리가 잔인하게 천막 밖까지 들렸다.

 

× × ×

 

이신보의 천막안,

검신등은 황군성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하룻밤이 지나고 나니 한 여자가 불어난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같기도 했다.

검신이 천막안에 모인 이신보의 중진들을 향해서 말했다.

[어젯밤, 본인은 범형과 상의에 상의를 거듭한 끝에, 우리 이신보의 대표로는 도신 범형께서 출전하기로 했소. 본인은 개인의 자격으로 출전할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출전하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출전하도록 하시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아마,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하지 않은 사람은 출전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오가 되기를 기다리며,

임단심이 황군성에게 살며시 말했다.

[비단에 무공을 적을 때 엉터리 무공을 적으면 어떨까요?]

황군성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림황제가 된 자가 그정도를 몰라보겠소? 끝까지 쫓아다니며 죽이려 할거요.]

[소문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또 한사람의 신비인인 취옥성주도 출전할 거라지요?]

진우란이 말했다.

[물러설 수가 없겠지. 천하의 고수란 고수는 다 출전한다고 봐야지. 당금에는 어느 때보다도 고수가 많으니까.]

황군성은 말을 하고는 두 여인의 손을 잡았다.

진우란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임단심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한데 당신은 무공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출전하겠어요?]

[나도 그게 걱정이오.]

[그럼 당신도 변장을 하고 출전해보는 게 어떻겠어요? 음‥‥‥현현궁주가 청삼객이니 황오라버니 당신은 황삼객(黃衫客)정도로‥‥‥]

진우란이 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이 큰 덩치를 어떻게 숨겨요? 사람들은 한번 보기만 해도 알아차리고 말거예요.]

[아니 아니! 임매의 말은 아주 일리 있소. 키 따위는 이렇게 하면 되지 않소?]

스스슷!

말하는 황군성의 몸이 쏙 줄어들어버렸다.

장포는 헐렁해져버리고 그의 키는 진우란보다도 반뼘이나 작아져 버렸다.

황군성이 문성무존에서 익힌 바 있는 축골공(縮骨功)을 쓴 것이다.

임단심이 웃으며 말했다.

[밤새 아주 똑똑해 지셨군요. 하지만 머리는 조금더 줄이세요.]

황군성은 아주 딴사람으로 변해버렸다.

키는 오척단구에 몸은 빵빵하고,

안으로 똘똘 뭉쳐 차돌같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깨끗한 얼굴은 동안으로 황군성은 어린 소년같이 된 상태였다.

임단심은 그가 귀엽다는 듯이 껴안아 주며 말했다.

[이렇게 작은 무림황제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엄마 품에서 잠이나 자는 것이 어떻겠느냐?]

[풋! 나도 그러고 싶소.]

황군성의 말에 임단심은 자신이 말을 잘못했음을 알고 홍당무가 되었다.

진우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실은‥‥‥황오라버니가 무림황제가 될 수도 있어요.]

[뭣!?]

임단심이 눈이 동그랗게 되면서 물었다.

진우란이 소매안에서 밀납으로 싸인 오리알 같은 것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 괴노 육노선배께서 제게 주신 쌍두금구의 내단(內丹)이에요. 복용한다면 천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어요.]

천년의 공력‥‥‥

지금까지 누가 그같은 공력을 지닐 수 있었던가?

천년의 공력이라면 절기(絶技)가 없어도 능히 무림황제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황군성이 복용한다면 그가 무림황제가 될 것은 따논 당상이나 다름 없다.

황군성과 임단심은 멍하니 있었다.

어제는 만년빙정, 오늘은 쌍두금구의 내단이다.

황군성이 마음만 먹으면 무림황제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한데,

황군성이 진우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진매, 정말 고맙소. 하지만, 나는 무림황제가 될 욕심까지는 없구려. 내 힘닿는 데 까지 싸워서 승리한다면 모를까. 굳이 이물(異物)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소. 그건 훗날 꼭 필요할 때 사용하기로 합시다.]

몸이 작아진 그는 진우란을 오히려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마 나도 쉽게 패하진 않을 것이오.]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마음이 뜨거워진 진우란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말했다.

 

***

 

술렁술렁------!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어가는 것이다.

비무에 참석할 자들이 하나둘씩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필요한 만큼씩 비단을 잘라가서는 자신의 독문절학을 적어서 출전신청을 한다.

비단은 한쪽에 놓여진 단상아래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함속에 들어있던 추첨을 위한 천자문의 종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천 명에 가까운 숫자의 고수들이 출전신청을 했고 하루는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들 단상에 쌓여진 무공들을 탐욕의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감히 딴마음을 품을 수는 없었다.

천하의 고수들이 집결한 자리에서 허튼 수작을 부린다는 것은 자신의 비참한 종말을 부른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니까.

무림인들은 무림황제를 탄생시키기 위한 일념으로 학선평 중앙에 비무대를 만들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니지만 방종하는 자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곳에서는 목숨으로 댓가를 지불받게 될 터이니‥‥‥

 

무림황제를 뽑는 대회는 몇 일을 계속되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날이 밝음과 동시에 그 대회는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천(天)자를 뽑은 사람들로부터 비무는 시작된 것이다.

바야흐로 무림황제라는 가장 매력적인 자리를 놓고 천하의 무림인들이 벌이는 천하제일의 도박판이 막을 연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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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一 章

 

         武林皇帝를 뽑는 자리

 

 

 

[본좌는 현현궁의 궁주인 청삼객이오.]

하늘에서부터 학선평으로 부드러운 연인의 속삭임같은 음성이 울러퍼졌다.

크지도 않지만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 뚜렷하게 들리는 음성‥‥‥

[본좌의 초청에 바쁜 걸음을 해주신 무림동도 여러분께 먼저 감사드리는 바이오.]

그렇다.

청삼객은 무림전체에 공문을 돌려 이곳 학선평으로 모이게 한 것이었다.

칠파는 이곳으로 달려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고‥‥‥

청삼객의 인사말은 계속되었다.

허공에서 몸을 멈춘 채 목소리가 널리 퍼져나가도록 하는 기이한 공력을 지닌 그는 어조에서 조차 한점 변화가 없었다.

그의 인사말이 끝나고 핵심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이에 본좌는 무공의 고하로 무림황제를 추대하여 혼란스런 무림에도 질서와 평화를 부여하자는 것이오.]

경악이 번져 나가고‥‥‥

학선평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내일 각파의 수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청삼객은 사방으로 포권을 해보인뒤 천천히 걸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현현궁의 막사 앞에서 정확하게 발을 땅에 딪고 들어갔다.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한 분위기였다.

그들은 제각기 막사안으로 들어갔다.

노을은 검게 변하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학선평이지만 감히 경거망동하는 자는 없었다.

작은 소란이 얼마나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인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때문이리라.

 

이신보의 천막안,

[제갈공지! 말해 보아라.]

검신이 제갈공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제갈공지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한참 생각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현현궁주는 아마도 두가지의 방법을 택할 것같습니다.]

[어떤 방법인가?]

도신이 물었다.

[하나는 세력들을 위한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고수들을 위한 방법이라 사료됩니다.]

제갈공지가 신중하게 말했다.

[청삼객은 먼저 세력들을 무마하기 위해 각 방파에서 대표자를 뽑아 결전을 벌이게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한 각 개별 적인 고수들이 무림황제의 자리에 도전하도록 하게 하겠지요.]

[음‥‥‥그렇게 된다면 강한 파에서 많은 고수들이 있을 테니까 그들은 개인자격으로 출전하고, 또한 대표자는 대표자대로 출전하게 된다는 말이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겠군.]

도신이 머리를 끄덕였다.

검신이 침중한 안색으로 물었다.

[범형은 청삼객이란 자를 어찌 보시오?]

도신 범강은 나직한 한숨을 쉬고 말했다.

[대단한 자요. 천하의 무림정령이 다 모였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처럼 압도할 수 있다니‥‥‥솔직히 말해서 내 무공은 그에 미치지 못하오.]

검신 전득무도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다해 볼 수 밖에‥‥‥나도 자신은 없소. 황소협은 어떤가?]

황군성이 입을 열기도 전에 도신이 고개를 저었다.

[말할 것도 없네. 만약 공력이 온전하다면 한번 해볼만 하겠지만‥‥‥내공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니‥‥‥]

황군성과 임단심, 전무옥은 입조차 떼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신등은 황군성의 비밀을 모르고 있었다.

혈왕신공이 함유된 목계신공의 비밀을‥‥‥

황군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청삼객의 무공은 강하다. 아주 강하다. 하지만‥‥‥무제(武帝)보다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이외에 또다른 고수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림황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자리다. 나는 내일 출전해야 할까?)

그는 힐끗 임단심을 바라보았다.

(휴‥‥‥위지장천의 말은 맞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어리석은 짓만 했다. 내일이라고 별다른 짓을 할리가 없을 것같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그는 한참 번민하다가 결심을 했다.

(그래! 내공을 진짜로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하고 조용히 임매와 함께 소음곡으로 돌아가자. 무림황제 따위가 내게 무슨 소용인가? 내 행동마저 다스리지 못하는데‥‥‥)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속이 후련한 것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버님! 저는 이만‥‥‥]

도신 범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피곤할 텐데 그만 가서 쉬도록 해라. 너도‥‥‥]

임단심을 향해서도 눈짓을 해보였다.

황군성은 임단심과 함께 마련된 천막으로 가버렸다.

전무옥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그림자처럼 어렸다.

검신 전득무가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 가공하던 내공을 일시에 잃어버렸으니 쯧쯔‥‥‥]

그들은 계속해서 출전해야 할 고수를 정하는 데 고심하고 있었다.

밖에는 반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달빛은 삼성혈의 나부끼는 깃발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깃발이 마치 날아가기라도 할 듯이 힘껏 움켜잡고 있는 손이 있다.

등에는 기형장검을 맨 백색장포의 미청년,

바로 위지장천이다.

이곳에 모인 세력들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삼장의 후신인 삼성혈을 이끌고 있는 주인인 그‥‥‥

그의 어깨에는 마치 황군성이 그랬듯이 쓸쓸한 고독이 얹혀있었다.

오직 힘,

힘하나 만으로 그는 자신을 이용하려던 가신(家臣)들의 세력인 삼장을 장악했다.

이미 무림칠대세력 중 삼대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던 그들을‥‥‥

그에게 악마의 무공 월음천마공을 익히라고 강요한 귀왕장의 장주인 철사륵을 죽이면서 시작된 그의 반란 아닌 반란은,

그들과 결탁한 사신각의 살수들을 무수히 죽이고,

마침내 화운장(花雲莊)과 천음장(天音莊)마저 굴복시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면서 마무리 되었었다.

[하지만‥‥‥아직 화운장주 갈지공(葛智空)! 그놈을 죽이지 못했다. 내가 화운장에 들어갔을 때 그놈은 없었다. 가장 교활한 자‥‥‥]

위지장천은 하늘을 우러러 중얼거렸다.

그는 수하들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충성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힘! 힘! 오직 힘만이 그의 위치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고독한 것이다.

[청삼객! 그는 강하다. 하지만‥‥‥나도 그에게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지검이 있는 한 내 위에 설자는 없다.]

그는 등 뒤의 묵직한 기형괴검의 무게를 느끼며 새삼 뿌듯해 했다.

[가문의 원수 사신도 내일이면 내손에 죽겠지.]

그는 사신각의 살수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끓고 있었다.

 

× × ×

 

조그마한 천막,

작은 방파나 혈혈단신인 고수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다.

그 안에는 세명의 노인이 고개를 맞대고 숙의하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아이가 공력을 상실했다고 하오.]

헐렁한 양쪽소매를 가진 노인이 말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소. 내 혈왕신공을 익힌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오.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오.]

다른 노인이 말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 않소. 어쩌면, 아니 반드시 그자들도 이곳에 와 있을 것이오.]

얼굴에 푸르스름한 기가 도는 노인이 말했다..

그눈 눈에서도 청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말에 두 노인이 아주 숙연해졌다.

그자들‥‥‥

그들의 일생을 한에 사무쳐 살아오게 했던 그자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헐렁한 소매를 가진 노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전에 전해주지 못했던 물건을 전해주어야겠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그는 천막을 나가 달빛 아래로 나섰다.

천막 속에 있던 이들은‥‥‥

백년 전 무림을 종횡했던 전설적인 고수 한천사방객 중의 세사람이었다.

 

× × ×

 

[황오라버니, 당신은 그럼 이대로 소음곡으로 돌아가잔 말이에요?]

임단심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황군성은 탄식하며 말했다.

[임매! 나는 괴롭소. 나는 바보요. 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 무림에 나온 이후 줄곧 바보같은 짓만 했소. 조용히 소음곡에 쳐박혀 있었어야 했소.]

임단심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훌륭하신 분이에요. 만약 황오라버니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그건 아직 황오라버니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 거예요.]

그녀는 황군성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위로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아무 준비도 없이 무림에 던져졌어요. 어떤 정보도 없이 갓 태어난 어린애처럼 말예요. 무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데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었겠어요? 물론 처음부터 잘 하거나 잘 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지 않겠어요?]

황군성은 눈을 감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 일년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자책만 하신다면 너무 성급하지 않겠어요? 조금 더 있어 보도록 해요. 과연 무림황제가 탄생할지 구경도 해보구요. 당신의 무공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리가 있겠어요?]

황군성은 마음속으로 깊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바보같이 행동했다. 하지만‥‥‥앞으로는 얼마든지 잘할 수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임매가 옆에서 도와주면‥‥‥)

쪽!

그는 임단심을 안아올려 뺨에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며 말했다.

[임매! 정말 고맙소. 당신이야 말로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오.]

[이러다가 다시 저를 젓혀두고 다른 여자와만‥‥‥]

임단심이 말을 하다가 차마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황군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벌로 지난 일년간 당신만을 찾아 해맸지 않소. 용서해 주시오.]

임단심이 배시시 웃었다.

[벌써 용서했어요.]

[정말이지. 지금까지 나는 무슨 마음을 먹기만 하면 그것이 잘못되기만 했소. 패기를 가져서 뭔가 잘되나 했더니 당신이 떠나가고, 내단을 복용해서 내공이 깊어지나 하면 아예 내공이 묶여버리고‥‥‥늘 이런 식이었소.]

임단심은 그의 품에서 빠져 나오며 말했다.

[그럼 기분을 바꿀 겸 우리 술이나 마실까요? 제가 가져 올게요.]

[마다할 리가 있겠소.]

임단심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이신보는 대대적인 이동을 했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물론 술도 창고로 쓰이는 천막에 가득 있다.

[이게 적당하겠어.]

임단심은 작은 술통하나를 들고서 창고 천막을 나왔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는 영락없이 술도둑같이 보였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황군성과 자기의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언니 술인 모양이죠?]

그녀의 뒤에서 영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았다.

황색 옷을 입은 소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 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신보의 진중에는 남녀 고수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이 흑의를 입지만 개중에는 더러 색다른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임단심은 이신보의 제자들 중의 하나이거니 생각하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동생은 누구죠?]

[저는 진우란이라고 해요. 이름이 좀 바보스럽죠?]

소녀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임단심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쁜 이름이군요. 내 이름이야 말로 아주 촌스러운 편이에요.]

[언니 이름은 뭔데요?]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웃지 말아요. 음‥‥‥단심, 임단심이에요.]

임단심은 왠지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즐거웠다.

황군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그녀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소녀가 그녀의 곁에서 먼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단심‥‥‥단심‥‥‥휴‥‥‥얼마나 좋은 이름이에요. 조금도 촌스럽지 않아요. 차라리 제 이름이 단심이었다면 좋겠어요.]

그녀의 음성은 어떤 감정같은 것이 배여 있어 임단심은 약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녀는 나란히 걸으면서 즉시 말했다.

[진동생은 무슨 사연이 있군요. 내게 말해줄 수 있겠어요?]

진우란이 쓸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있다면 핑계 없는 무덤도 있어야겠지요. 아! 달도 밝은데 차라리 언니에게라도 내 심정을 털어놓고 싶군요.]

임단심은 그녀에게 깊은 동정심이 생겠다.

[내가 들어줄게요. 그런 마음은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있으면 병이돼요.]

[그럼 말할게요. 언니, 어떻게 이른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마음을 줬는데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이었지 뭐예요.]

[저런!]

임단심은 그녀의 불행한 애정에 동정을 표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진우란이 처량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겠어요. 정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거든가요? 하는 수 없이 그 사람만 따를 생각이었는데‥‥‥]

[그래요. 하! 정은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요. 무서운게 정이죠.]

임단심도 지난 일년동안 정에 몸부림쳤기에 자신도 모르게 한탄조로 말했다.

[한데 언니 이럴 수가 있어요? 세상에 절더러 자기가 묻지도 않은 걸 대답하지 않았다고 박대하는 거예요. 숫제 저를 믿지 못하겠다나요? 사랑은 일시라도 없어질 수 도 있겠지만 믿음이 없어지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어요?]

진우란의 음성에는 울음이 배여 있었다.

임단심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를 떠났어요?]

진우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그를 죽여버리고 나도 죽고싶어요. 흑!]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삼켰다.

임단심이 한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달랬다.

[동생, 나를 언니로 생각한다면 그런 마음은 먹지도 말아요. 어떻게든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이러지 말고 우리 천막으로 들어가요.]

때마침 천막이 불과 일장 앞에 있는지라 임단심은 억지로 그녀를 천막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임단심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서있는 황군성과 매섭게 황군성을 노려보는 진우란을 번갈아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진우란이 또박또박 한이서린 음성으로 말했다.

[언니, 이사람이 제가 죽이고 싶다던 그 사람이에요.]

혹시나 하고 불안해하던 임단심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굳어졌다.

황군성은 갑자기 나타난 진우란에게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임단심의 눈이 독기를 품고 황군성에게 다가갔다.

[황오라버니, 당신이 무림에서 어떤 멍청한 짓을 했던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여자문제에 있어선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어요.]

[임‥‥‥매!]

황군성은 어쩔 바를 모르면서 물러서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당신은 벌을 받아야 해요. 용서하세요.]

임단심은 냉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번쩍!

그녀의 소매에서 새파란 빛이 번쩍이더니 천막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억!]

황군성은 목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쓰러졌다.

[안돼!]

진우란이 재빨리 임단심의 손을 잡았지만 이미 황군성은 목석처럼 넘어지고 있었다.

쿵!

그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분수가 천막안을 붉게 물들였다.

진우란은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임단심의 손에는 피묻은 비수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진우란의 손에 비수를 쥐어주며 말했다.

[죽여요. 복수를 해요. 사내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 행위 하나가 한 여자의 인생을 얼룩지게 했다는 것을 보여줘요.]

[나 나나난‥‥‥]

진우란은 임단심이 쥐어주는 비수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임단심이 완강하게 쥐어주자 받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차라리 이게 잘됐어요. 괴로워하며 사느니‥‥‥]

그녀는 황군성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결국‥‥‥]

그녀의 손이 황군성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함께 살지 못할 바에야 함께 죽는 것이 훨씬 좋겠죠. 당신이 나를 의심할리도 없을 테고‥‥‥]

그녀의 말은 이제 놀람과 격동은 넘어서 오히려 담담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녀의 진정이 배여있었다.

임단심은 턱을 높이 치켜들고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진우란이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나때문에 언니의 행복마저 깨어져 버렸군요. 정말 미안해요.]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임단심이 대꾸하지 않자 그녀는 황군성 옆에 앉아서 그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본 후에 비수로 힘껏 자기의 배를 찔렀다.

번쩍!

바로 그 순간,

[뭘해요! 정말 그녀를 죽일 참이에요!]

임단심이 날카롭게 소리치고,

비수를 잡은 진우란의 손은 황군성의 우수에 잡혀있었다.

비수는 그녀의 배에서 불과 반치도 남지 않은 거리에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황군성의 피에 젖은 얼굴에 두눈이 번쩍 떠졌다.

진우란은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서며 부들부들 떨었다.

[귀 귀신‥‥‥]

아무리 사신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

귀신을 겁내고 강시를 두려워하는 나이였다.

너무 놀란 그녀는 수족이 얼어붙어버리고 입도 떼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황군성이 벌떡 일어났다.

[아악!]

마침내 진우란은 기절하고 말았다.

넘어지는 그녀를 임단심이 옆에서 가볍게 부축했다.

[흥! 연극 한번 잘하더군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목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베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요!]

임단심은 진우란을 침상에 갖다 눕히면서 황군성을 도끼눈을 하고 흘겼다.

황군성은 겸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았죠?]

임단심은 그에게 따져 들었다.

[진매가 당신을 속인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속이는군요.]

[말하려고 했소. 하지만‥‥‥]

[뭐가 하지만 이에요. 엉큼하게 내공이 회복됐다는 것까지 숨기고, 진매가 죽인다는 말에서 생각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속고 있었을 거 아네요?]

임단심은 황군성에게 바짝 다가들며 따지고 들었다.

그녀는 진우란이 황군성을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서야 비로소 황군성이 전날 검신의 검을 목에 맞고도 곧 회복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야 말로 속았다는 생각에 분이 나서 진짜로 그의 목을 찌르고 만 것이었다.

정말 여자는 무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황군성은 쩔쩔매매 그녀에게 빌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임단심이 다시 떠나버리기라도 한다면 여간 큰일이 아닌 것이다.

[옷이나 갈아입고 천막밖으로 나가요!]

황군성은 군말없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했다.

모르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잘못을 범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리라.

황군성은 뒤늦게 그러한 진리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피에 젖은 옷을 벗어버리고 임단심이 집어주는 장포를 걸치고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천막 밖에 나가 쭈그리고 앉았다.

달은 반달이지만 밝았다.

자신의 신세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왠지 즐거운 기분이들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두 여자가 자기를 비방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즐겁게 들리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왠지 그도 잘해낼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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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 章

 

       鶴旋平에 모인 天下의 高手들

 

 

 

계곡의 입구가 보이는 제법 넓은 곳,

급류하나가 흘러가며 계곡을 바깥세상과 분리하고 있는데,

부채꼴로 펼쳐져 있는 평지 양쪽으로 두 편의 인물들이 대치해 있다.

한쪽은 삼절일천군단,

그리고 다른 쪽은 검은 복면에 흑의로 전신을 가린 사신각의 살수들‥‥‥

두 세력의 중앙에는 죽어버린 말과 양쪽 편의 회수되지 못한 시체들이 있고,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듯하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후미에 또 다른 세력이 각각 기회를 노리고 있다.

어부지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야 말로 청삼객이 고대하던 것이기도 하다.

청삼객은 급류를 가로질러 소강상태에 접어든 격전장의 중간으로 내려섰다.

임단심과 전무옥은 황군성을 양쪽에서 부축하여 그의 곁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사신각 살수들의 뒤쪽에 있던 전신을 흑포로 가린 아름다운 눈 하나가 반짝 빛을 발했다.

청삼객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불구덩이나 마찬가지인 양 세력의 가운데를 느긋하게 걸으며 말했다.

[본좌는 현현궁의 궁주 청삼객이오.]

쿵!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내공이 깃든 그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어느 곳에서나 같은 크기로 들을 수 있었다.

현현궁의 궁주‥‥‥

일곱개의 세력을 거론할 때 가장먼저 거론되는 일궁(一宮) 현현궁의 궁주‥‥‥

무림에 전혀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던 그가 이곳 태행산의 이름모를 계곡에 나타났다.

삼절일천군단도 사신각의 살수들도 뒷꼭지가 당겨지는 듯한 팽팽한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던 현현궁이었다.

한데 그 궁주가 직접 나타나다니‥‥‥

사위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든 사람들은 현현궁의 사자라고 하는 자들의 무공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고 있다.

궁주의 무공은 측량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청삼객의 말이 이어졌다.

[본좌는 이미 이곳에 각파의 주인들 중 몇 분이 와있음을 알고 있오. 또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와 있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하오.]

‥‥‥‥‥‥

청삼객은 뒷짐을 지고 마치 정원을 산책하듯이 걸으며 말하고 있었다.

[본좌의 뜻은 무모한 소모전을 피하자는 것이오. 어차피 우리 칠개파가 무림을 두고 한판 벌여야 한다면‥‥‥좀더 당당하게 규칙을 갖고 한곳에 모여서 싸우길 바라오. 그래서‥‥‥]

‥‥‥‥‥‥

[본좌는 학선평에 모든 세력이 결집하여 자웅을 결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오.]

청삼객은 걸음을 멈추고 사신각의 살수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물었다.

[사신(死神)형의 생각은 어떻소?]

그의 눈은 정확하게 살수들 틈에서 흑포로 전신을 가린 자를 찾아내었다.

사신이 손을 들었다.

사삭!

그러자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있던 살수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이 생겼다.

살랑살랑!

그곳으로 검은 표범이 앞장서서 나갔다.

사신의 몸은 물위를 미끄러지는 나뭇잎처럼 부드럽게 나아갔다.

그는 살수들의 가장 앞으로 나가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적으로 궁주의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오.]

청삼객이 포권했다.

[감사하오.]

사신이 손으로 임단심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데, 궁주는 그녀와 무슨 관계에 있소?]

청삼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좌는 그녀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별난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소.]

[그럼 그녀를 내게 넘게 주시오. 그녀는 본 사신각의 원수요.]

이때 임단심이 소리쳤다.

[닥쳐요!]

사신의 눈에서 횃불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당신을 알지도 못해요. 그리고 사신각과도 어떤 원수맺을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죽어서는 원수를 맺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사신은 차디차게 내뱉었다.

황군성이 말했다.

[사신!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았소. 당신이 찾는 사람은 이미 이곳에 없소. 이 사람은 내 아내요.]

사신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눈에서 흉폭한 광채가 피어올랐다.

(나를 속이다니‥‥‥눈앞에 번히 두고서 거짓말을‥‥‥)

[죽여버리겠다!]

바로 그때,

삼절일천군단쪽에서도 소리가 터져 나왔다.

[궁주! 본인은 삼절일천군단의 단주 염녹균이오. 본인도 궁주께서 그 혈룡도왕을 넘겨주기 전에는 궁주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소.]

염녹균은 금방이라도 수하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릴 듯했다.

청삼객의 냉막한 얼굴이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으하하하하하‥‥‥]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윽! 모두 귀를 막아라!]

누군가가 소리치고 황급히 귀를 막았지만 이미 적지 않은 자들이 충격을 받고 입과 코로 실날같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뚝!

[염녹균!]

청삼객은 천지가 뒤집힐 듯한 소리로 외쳤다.

윙윙윙----!

염녹균은 귓속에서 바퀴가 구르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실로 가공할 신공이었다.

[너 따위가 감히 본좌에게 협박하는 것이냐? 내가 취옥성주가 오기 전까지 단 한마디라도 입을 뗄 시에는 네놈의 목을 베어버리겠다!]

청삼객의 신위!

천하의 삼절일천군단도 순간적으로 기가 꺽여 버렸다.

청삼객이 차갑게 말했다.

[싸울 테면 싸워라. 그러나, 약화된 힘으로 본궁의 정예들 손에서 몇 수나 버티고 죽을지는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로 그때,

휘이익!

한줄기 유성처럼 백의를 걸친 청년이 청삼객의 앞으로 날아 내렸다.

등에는 철봉같은 기형괴검‥‥‥

절세준미한 얼굴‥‥‥

위지장천이었다.

[본인, 삼성혈(三聖穴)의 혈주(穴主) 위지장천은 궁주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혈주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그럼 학선평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청삼객은 포권을 해보인 후에 그곳을 떠나려 했다.

위지장천이 황군성을 보며 말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났군. 이번엔 사신각이 아니라 삼절일천군단이었다지? 머리와 몸이 따로노는 멍청한 자‥‥‥]

황군성은 그의 말이 일리있다고 생각되어 아무대꾸도 못하고,

임단심이 독기를 품고 쏘아보며 내뱉었다.

[당신이야 말로 머리를 몸에서 따로 놀게 떼어놓겠어요.]

[풋! 좋을 대로.]

위지장천은 황군성을 비웃어준 후에 몸을 돌려 사신을 보았다.

[사신! 학선평에서 은원을 종결짓자. 설마 피하진 않겠지?]

사신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쏘아보았다.

[얼마든지.]

염녹균은 대세가 학선평으로 모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만 나서보았자 오히려 그들 전부의 합공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학선평으로 돌아간다!]

그는 부하들에게 짧게 명령했다.

두두두두--------!

삼절일천군단이 가장먼저 빠져나갔다.

사신이 뒤를 돌아보며 살수들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살수들의 모습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산위의 일각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한떼의 무리들도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여섯 명의 사람과 한마리의 표범만이 남았다.

사신이 차갑게 내뱉었다.

[학선평에서 죽여주마!!]

황군성과 임단심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몸은 꺼지듯이 사라져버렸다.

표범도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럼 본인도 이만‥‥‥]

위지장천의 몸도 허공으로 까마득히 치솟아 사라졌다.

청삼객은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마치 한고비 넘겼다는 것같았다.

[몸은 좀 어떻소?]

[견딜 만하오.]

황군성은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갈수록 청삼객이 좋은 사람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을 먹으면 좀 좋아질 거요.]

청삼객은 품에서 옥병을 꺼내 건네 주었다.

황군성은 손을 저어 사양했다.

임단심이 비웃듯이 청삼객에게 말했다.

[당신을 어떻게 믿고 그 약을 먹을 수 있겠어요?]

청삼객은 그녀를 힐끗 쳐다본 후에 황군성을 향해 좌수를 펼쳐보였다.

스슷!

임단심이 재빨리 황군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혜린?]

임단심은 청삼객의 손바닥에 쓰여진 세글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내어 읽었다.

황군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신은 누구요?]

[본좌는 현현궁주 청삼객이오. 약을 들겠소 말겠소?]

[먹겠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것같으니까.]

황군성은 옥병을 받아서 한꺼번에 몽땅 입안으로 털어넣어 꿀꺽 삼켜버렸다.

임단심이 미쳐 저지할 틈도 없었다.

황군성은 약이 넘어가자 마자 전신에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청삼객이 준 약은 정말 영약이었던 것이다.

[갑시다.]

청삼객은 앞서서 몸을 날렸다.

전무옥과 임단심은 황군성의 한쪽 손을 잡고 몸을 날렸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 × ×

 

[호오! 그래? 현현궁주 청삼객이란 자가 모두 학선평에서 만나자고 했겠다?]

[그렇습니다. 이미 많은 고수들이 학선평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참 재미있는 일이야. 그럼 그자들은?]

[검신과 도신을 말씀하시는‥‥‥?]

[그렇지!]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학선평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좋다! 우리도 학선평으로 간다. 청삼객 그자가 무슨 꿍꿍이 속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구경해 보자.]

길이 십이척(十二尺)!

너비 육척(六尺)! 높이 사척의 가마가 숲속에 놓여있고,

여덟 명의 가마꾼들이 그 주변에서 호위를 서고 있는데,

한 노인이 마차에와 주고 받은 이야기였다.

잠시후 마차는 밝아오는 여명 속으로 내달리고‥‥‥

그 방향은 학선평이었다.

 

× × ×

 

황군성과 삼절일천군단의 피의 혈투를 벌였던 학선평!

이미 몇 무리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는 데,

뿌옇게 밝아오는 아침에 무수한 인마가 모여들고 있었다.

두두두두------!

삼절일천군단이 학선평의 일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른 세력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멈춰 서서 포진했다.

이신보(二神堡)의 기치가 밝아오는 동쪽에서는 높이 날리고 있고,

그 맞은 편에는 백여명의 현현궁의 인물들이 둥글게 포진하고 있다.

남쪽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세개의 대열을 이루고 있는데,

위지장천이 그 앞에 우뚝서서 삼성혈(三聖穴)이라고 씌여진 깃발을 날리고 있다.

북쪽에는 취옥성의 삼절일천군단‥‥‥

서남쪽에는 사신각의 살수들이 어둠인양 자리잡고 있다.

중앙은 텅텅 비어있는 상태인데‥‥‥

 

천하의 모든 강대세력들이 모여든 학선평은 오수부동(五獸不動)‥‥‥

어느 쪽도 섯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당할 것은 필연적인 이치,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아오는데 이곳에 모이기로 주장한 현현궁주 청삼객은 콧베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

한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학선평에는 이들 세력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당금 천하의 무림인은 거의 다 이곳 학선평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한 두 사람, 혹은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씩 까지 무리를 지어 오는 그들은 무림에 간판을 걸어놓은 모든 방파들이었다.

근래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구파일방(九派一幇)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드넓은 학선평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하여 가운데를 제외하고는 입추의 여지도 없어져 버렸다.

펑!

삼절일천군단의 단주 염녹균이 땅에 일장을 가하며 소리쳤다.

[청삼객이란 그자의 소행이다. 빠드득!]

[교활한자‥‥‥성주님께서 빨리 당도하셔야 할텐데‥‥‥거만을 떠는 꼴이란‥‥‥제기랄!]

부단주 야상인도 입에붙은 욕을 하면서 말했다.

무림인들이 대거 나타남으로 인해서 가장 궁지에 몰린 것은 삼절일천군단과 사신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군소방파에 적지않은 원성을 사고 있었으니‥‥‥

하루가 그렇게 다 지나가고 있는 데도 청삼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학선평에 모여든 사람은 모두가 일촉즉발의 기세인지라 다른 파의 사람들과는 말도 나누지 못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몰려들고 있었다.

또한 그만큼,

학선평에 천막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었다.

몰려든 인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로 어떤 상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신보의 제일 첨단에 있는 천막 안,

검신과 도신이 나란히 앉아있고,

그 주위로 황군성과 임단심, 전무옥, 제갈공지 등이 늘어서 있었다.

황군성 일행은 청삼객과 함께 학선평까지 왔으나 각자 자기들의 진영으로 헤어졌다.

전무옥은 일년 만에 부친인 전득무와 만났으나 기뻐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이 학선평이 천하의 향방을 가름할 대 결전장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데,

검신과 도신의 염려는 눈앞에 있는 적이 아니었다.

정작 염려스러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들 공통의 적‥‥‥

마왕(魔王)!

마왕인 것이다.

신검보와 신도보가 합쳐지면서 그 세력이 두배 이상으로 불어난 이신보가 다른 방파들을 두려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삼성혈이 비록 의혹속에 숨어있던 삼장(三莊)의 연합된 힘이라고 하지만 두려워할 것은 못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신과 도신은 자신들의 힘을 자신하고 있었다.

 

노을이 하늘가에 걸리게 되자 현현궁의 천막에서 한사람이 걸어 나왔다.

지리하도록 느긋한 걸음으로 그는 학선평 중간에 남아있는 공지로 걸어갔다.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미세한 변화는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은 각파의 수뇌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현궁의 궁주 청삼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각파의 수뇌들도 중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황혼에 그들의 그림자가 사람들의 머리 위까지 길게 늘어졌다.

휘이이이‥‥‥

저녁나절의 바람이 천막과 깃발들을 펄럭이게 하고,

수 많은 무림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고 있었다.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가는 청삼객!

그는 걸어갈 수록 키가 커지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때마다 마치 계단을 밟듯이 부드럽게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부공답허(浮空踏虛)!]

각파의 수뇌들의 눈에도 은은한 경악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부공답허를 일시 펼친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없지만,

청삼객처럼 부드럽게 허공을 밟으며 계속 올라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삼객의 몸은 학선평의 어느 곳에서도 볼수 있는 위치까지 높이 올라갔다.

석양이 그의 몸을 비춰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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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九 章

 

              뜻밖의 救援者

 

 

 

전무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고통을 참으며 노려보고 있는 임단심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있다.

바로 조응경인 것이다.

전무옥은 임단심으로부터 두 여자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제일 먼저 만났던 여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조응경이라는 것도‥‥‥

전무옥은 어떻게 해서 그녀가 이곳에 불숙 나타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소저‥‥‥]

조응경이 그녀를 쏘아보고 독기서린 음성으로 내뱉었다.

[흥! 알긴 아는군요. 이건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복수인가요?]

[아니오. 나는 조소저가 내게 독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소. 그리고 내 아버님도 마찬가지요.]

전무옥은 고개를 저었다.

조응경은 무엇엔가 쫒기는 듯 무척 다급한 표정이었다.

[그럼 잘됐군요. 방금 일검을 맞은 것은 다음에 갚기로 하죠.]

그녀는 전무옥의 앞을 지나 달려가려했다.

휘익!

전무옥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소저! 이곳으로 들어갈 수 없소. 미안하오.]

그는 임단심과 황군성을 위해서 호법을 서야하는 입장이다.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그로서도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남편이라는 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문지기노릇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하나,

조응경이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다.

눈으로 새파란 한광을 파릇파릇뿜으며 소리쳤다.

[정말 싸워보자는 것이로군! 좋아요.]

그녀의 쌍장이 기습적으로 전무옥을 향해 뻗어졌다.

번쩍!

전무옥이 장검으로 몇 개의 원을 그리자 장력은 다른 곳으로 흘러버렸다.

그가 급급하게 변명했다.

[조소저!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단지 조금 기다려 달라는 거요.]

조응경이 소리쳤다.

[이 황량한 계곡에서 나를 붙잡고 무슨 짓을 하려고?]

그녀는 잇달아 삼장을 뻗었다.

휙휙휙!

장력은 전무옥의 상중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전무옥은 나직히 탄식했다.

(아버님이 나를 단순하고 쉽게 어디에 빠져들기 쉬운 성격이라고 할 때 믿지 않았었는데‥‥‥이런 상황하나를 제대로 처리못하다니‥‥‥)

갑자기 그의 눈에서 광채가 폭사되었다.

그녀를 일단 제압하고 봐야 겠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다. 삼절일천군단이 곧 밀어닥칠 것이다.)

그의 장검이 발앞의 땅에 닿았다.

그리고,

번쩍!

쉬이이익!

한걸음 크게 다가들며 아래에서 부터 위로 세차게 베었다.

그를 향해서 밀려오던 조응경의 장력이 단번에 양쪽으로 절단되어 버렸다.

한데,

그 장력은 여전히 전무옥을 향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전륜법왕의 무공 중의 하나인 만상장(萬象掌)의 수법이었다.

장력은 회전하여 그의 여섯 요혈을 노리고 있었다.

전무옥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보통 매서운 장력이 아니구나.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앞에 크게 원을 그렸다.

놀랍게도,

그의 검이 지나가는 자리에 마치 푸른 벽같은 것이 생기면서 그의 전신을 가려버렸다.

장력은 그곳에 부딪혔다.

펑펑!

[검막(劍幕)!]

조응경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검막‥‥‥

검강과 필적할 수 있는 검술의 정화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전무옥의 검술 경지는 그녀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인데,

검신의 아들로서 어쩌면 그정도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그의 사부 천산일검자 사공도를 보아서라도‥‥‥

계곡 안쪽에서 임단심은 조응경의 목소리를 들었다.

음성도 그녀와 아주 흡사한 조응경이다.

임단심은 씁쓸하게 웃었다.

[오늘은 이상하군요. 당신과 만났는가 싶었는데 당신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됐으니‥‥‥]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갑자기 왔던 통증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조응경이 가까이 있은 것이다.

그녀가 부상을 당하자 통심마고의 영력에 의해 임단심마저도 똑같은 고통을 느낀 것이었다.

황군성은 그녀를 안으며 일어섰다.

이미 평범한 몸이 되어 버린 그도 갑작스런 조응경의 등장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단심을 가슴에 끌어당겨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이오.]

임단심의 얼굴에 볼그레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조응경은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깨닫고 소리쳤다.

[임단심! 이곳에 있었구나!]

그는 즉시 임단심이 근처에 있음을 눈치챘다.

그녀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이 계곡에서 전가 녀석과 뭘하고 있었지? 수치스럽지도 않아?]

임단심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렇게 변했다.

막소리치려는 데 전무옥이 차갑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소저!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그녀는 지금 남편과 함께 있소.]

조응경의 몸이 우뚝 멈춰버렸다.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라면 황군성 외에는 있을리가 없다.

(그가 그녀와 만나고 말았단 말인가? 그럼‥‥‥진실을 알아차리고 홍심련을 공격하게 한 다음에 나를 앞질러 이곳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야!)

[조소저! 이리오시오.]

황군성의 음성이 나직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다시한번 진저리를 치며 홀린 듯이 황군성을 향해 다가갔다.

전무옥은 몸을 돌려 계곡의 입구만 바라보고 묵묵히 있었다.

조응경은 고개를 들어 황군성을 볼 수가 없었다.

황군성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삼절일천군단에 포위되어 있소. 어쩌면 조소저는 나와 상관이 없으니 그들이 보내 줄 거요. 빨리 돌아서 나가시오.]

조응경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악물었다.

상관이 없다‥‥‥

함께 있을 때 서로 살을 섞은 것이 몇 번인데 상관이 없다니‥‥‥

그 이유야 무슨 필요가 있는가?

단지,

그와 내가 서로 살을 섞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황군성의 완전히 남을 대하듯하는 태도는 조응경의 가슴에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주었다.

차라리 그녀를 욕하고 때리는 것만도 못했다.

조응경은 고개를 들어 원망어린 눈길로 황군성을 바라 보았다.

그 눈에는 비애가 가득차 있었다.

조응경이 이번에는 임단심을 보았다.

거울을 보는 것같이 똑같은 얼굴‥‥‥

(그래‥‥‥똑같은 건 하나만 있으면 됐지 둘은 필요없는 거야‥‥‥)

속으로 뇌까리는 그녀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푹 고개를 수그리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계곡의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임단심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조응경을 아주 싫어하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감정과 고통은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임단심이었다.

조응경의 황군성에 대한 사랑이 더없이 깊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군성을 그녀와 함께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황군성은, 그녀만의 것이다.

조응경이 높이 치솟은 암벽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그녀가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마치 주마등 처럼 지나갔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그녀를 어떤 중년인이 구해다가 현현궁이란 곳으로 데려간 것‥‥‥

그곳에서 십삼매란 이름으로 십 수년 동안 무공을 익혀서 강호에 나온 일‥‥‥

전무옥을 만나 구혼을 받았던 일과 배에서 전륜법왕과 황군성을 만난 일‥‥‥

그리고 황군성과의 강요된 정사와 그후의 관계,

그가 떠나고 난 후에 현현궁의 칠십여 외부 문파를 모아서 홍심련이란 단체를 조직한 것하며,

며칠 전에 사신각의 살수들의 침입을 받아 홍심련이 궤멸되고 이곳까지 쫓겨온 것하며‥‥‥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내는 거야!)

조응경은 암벽앞에서 삼장 정도에 이르자 힘껏 돌진했다.

[앗!]

임단심이 까무라칠 정도로 놀랐다.

황군성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으나 이미 조응경을 저지할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임단심도 죽음을 느꼈다.

조응경이 죽게 되면 그녀도 살지 못한다.

통심마고의 무서운 힘에 의해 그녀도 죽어갈 것이다.

바로 그순간,

조응경의 암벽에 부딪히려던 몸이 어떤 탄력에 의해서 뒤로 튕겨져 나왔다.

허공으로 붕떠버린 그녀의 몸을 누군가 나타나며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땅위에 내려섰다.

가경할 무공이었다.

푸른 장삼을 걸치고 얼굴은 창백한 모습의 중년인 이었다.

[사부!]

조응경이 그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녀는 마치 학질에 걸린 것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황군성과 임단심, 전무옥은 뜻밖의 사태에 어리둥절했다.

지금 쯤은 삼절일천군단이 쇄도해야 할 때인데 전혀 엉뚱한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황군성과 임단심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사부‥‥‥

조응경의 사부라면‥‥‥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괴이한 음성으로 말했다.

[열세 째! 네가 죽을 장소는 이곳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조응경은 납작 엎드려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조응경을 버려두고 황군성을 향해 다가갔다.

스슷!

임단심이 황군성의 앞을 막아섰다.

팽팽한 긴장으로 그녀는 전신의 신경이 당겨지는 것같았다.

우뚝!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녀의 일장 앞에서 멈추었다.

[본좌는 현현궁의 궁주인 청삼객(靑衫客)이오. 무림이 신성(新星)인 혈룡도왕 황군성소협을 뵙게 되어 반갑소.]

그는 임단심을 무시하고 황군성에게 말했다.

황군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현현궁의 궁주가 누군지를 전륜법왕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내색도 할 수없다.

현현궁주 청삼객이 말했다.

[본좌는 누가 감히 삼절일천군단에 맞서서 그같은 타격을 입혔는가 하고 궁금했는데 소협을 보니 모든 의문이 풀렸소. 하나, 이제보니 소협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군. 곧 들이닥칠 그들을 어떻게 막으려는지 모르겠구려.]

임단심이 손안의 구룡로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멀리 있는 이리떼보다 가까이 있는 맹호가 노리지 않을까 두렵군요.]

청삼객이 그녀를 힐끗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뚝!

[날카롭군. 내 제자와 모습이 똑같은 소저는 독봉 임소저?]

[그래요! 당신 제자 때문에 꽤나 곤욕을 치뤘죠.]

청삼객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본좌에게 유감이 아주 많은 듯한데 쓸없는 감정은 갖지 마시오. 또한 본좌는 남의 위기를 틈타는 소인배가 아니오. 물론 눈앞에서 자결하려는 사람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임단심의 얼굴이 분노로 파랗게 변했다.

청삼객이 자신들을 조롱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군성이 발작하려는 그녀의 소매를 잡아 저지하며 말했다.

[궁주께서 어떤 복안을 가지고 소생에게 접근했는지 나는 짐작할 수가 없소.]

청삼객이 그의 눈을 마주보면서 말했다.

[본좌도 황소협이 어떻게 삼절일천군단을 그것도 평원에서 단신으로 공격하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없소.]

임단심이 발끈했다.

[당신은 맞대놓고 이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는군요.]

청삼객이 말했다.

[혹시 그건 임소저의 생각이 아니오? 본좌의 말은 황소협에게 있었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뜻이었는데‥‥‥]

황군성이 다시 나섰다.

[궁주께서는 말을 흐리지 마시오. 그래 나를 죽이려 왔소?]

청삼객의 푸르띵띵한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 본좌도 삼절일천군단을 상대해 볼까 하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왔소. 한데 먼저 그들과 부딪힌 사람이 있길래 누군가 싶어서 흔적을 뒤쫓아 온 것이오. 황소협은 원래는 내 계산에 없었던 셈이지. 물론 내 제자도 말이오.]

[그말은 우리를 죽이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물론 죽이겠다고 쉽게 죽을 우리도 아니지만.]

임단심의 말이었다.

청삼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다 맞는 말이오. 본좌는 지금 당신들을 죽이지 않을 거요. 아니 오히려 돕는다고 해야 옳겠지.]

[…………?]

[…………?]

[황소협은 삼절일천군단이 아직 이 골짜기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소?]

황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단심도 그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청삼객이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곳 태행산으로 천하의 고수들이 모두 몰려들고 있다면 믿겠소?]

[그럴리가‥‥‥!!]

임단심이 입을 딱 벌렸다.

[본좌의 말은 사실이오. 아마 당금 무림의 칠개대파가 모두 이곳으로 모이고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삼절일천군단은 일곱세력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지.]

청삼객의 말이 사실이라면 태행산은 엄청난 피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 틀림없다.

일곱개의 힘이 만난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황군성은 자신들이 폭풍의 핵속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삼절일천군단을 노리고 있었군‥‥‥그들의 행로가 너무 드러나 있었어‥‥‥]

임단심의 가슴은 마치 바위를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칠개파가 모여들면 고수들의 수만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목숨을 버릴 각오가 아니면 이사람을 지키기 어렵겠구나. 아‥‥‥어째 이사람은 나와 만날땐 항상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일까?)

사실이 그러했다.

처음 그녀가 황군성을 구했을 때도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고,

철갑대망의 내단을 복용했을 때는 내공이 모조리 묶여버렸으며,

이번에는 다시 전신의 내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한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니‥‥‥

원래 황군성에게는 혈왕신공이 있지 않았던가?

어떤 경우에도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혈왕신공‥‥‥

비록 황군성의 목계신공에 융화되었지만 그 능력이 없어졌을리는 없는 것,

황군성의 내공이 잠시 흩어졌지만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구된다는 것을 그녀는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

황군성은 이미 자신의 내부에서 흩어졌던 공력이 점점 단전으로 되돌아옴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억누르고 있을 뿐‥‥‥

한편,

한쪽에 떨어져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무옥은 내심 크게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칠개파가 몰려온다면 그의 아버지 검신 전득무도 올 것이다.

신검보에는 또한 검의 달인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지 않은가?

청삼객이 엎드려 있는 조응경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열셋째 이리로 오너라.]

조응경은 두려움에 떨면서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청삼객은 그녀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누구에게 당했느냐?]

힐끗 고개를 돌려 전무옥을 바라보며,

[저자냐?]

조응경은 그의 관심에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는 결코 배신자에게 이렇게 관대하지 않은데‥‥‥혹시 더욱 가혹한 벌을‥‥‥)

번쩍!

청삼객의 몸이 순식간에 전무옥의 눈앞에 도착했다.

짝!짝!

연거푸 두번의 격타음이 들리고 전무옥은 뺨을 싸안고 두걸음이나 물러섰다.

실로 귀신을 방불케하는 빠르기였다.

전무옥의 눈이 경악과 분노로 피빛을 띠었다.

청삼객은 다시 조응경의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황군성은 간담이 서늘함을 느꼈다.

(과연 사형‥‥‥공력이 완전히 회복된다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겠구나.)

청삼객이 조응경에게 물었다.

[경천위지백인진(經天緯地百人大陣)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느냐?]

조응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삼객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조금이라도 공력을 가한다면 그녀의 머리는 손아귀에서 사과가 터져 나가듯이 터지고 말 것이다.

[네가 잘못을 용서받을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조응경의 눈이 반짝했다.

그녀는 불과 얼마 전에 자살을 하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청삼객의 손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고 싶었다.

그냥 죽기에는 행복이라는 것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그녀의 생이 억울해서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천위지백인대진은 너를 비롯한 열세번째 그놈이 사라짐으로 인해서 위력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네가 다시 가담하고 내가 빈곳을 채운다면 삼절일천군단 정도는 충분히 깰 수 있다. 하겠느냐?]

[네! 사부님, 하겠습니다.]

청삼객은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그럼 당장 학선평으로 가라. 그곳에서 네 사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조응경은 그 말에 아주 당황했다.

[사부님 제자는 현재 사신각의 살수들에게 쫓기는 몸‥‥‥]

청삼객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염려할 것없다. 그들은 제일먼저 삼절일천군단과 충돌했다. 지금 그들이나 삼절일천군단이나 총력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니 간단히 갈 수 있다. 가라!]

청삼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이 내려온 절벽쪽으로 힘껏 던졌다.

휘이익-----!

조응경의 몸이 새처럼 절벽위로 날아갔다.

청삼객은 황군성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도 나가 봅시다. 본좌가 칠개파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육개파, 아니 그건 자세히 말할 수도 없겠지. 신검보와 신도보가 합쳐 이신보가 됐듯이 다른 파도 병합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황군성이 말했다.

[무엇때문에 궁주가 나를 도우려고 하는지 모르겠소.]

청삼객이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질긴 인연때문이라 해야하지 않을까?]

황군성과 임단심은 가슴이 뜨끔함을 느꼈다.

(내가 전륜법왕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한데 왜‥‥‥?)

청삼객이 앞서 곡구 쪽으로 가며 말했다.

[본좌는 천하의 모든 종주세력이 한곳에 모이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래서, 이렇게 만난김에 아무렇게나 니전투구(泥田鬪狗)할 것이 아니라 학선평에 모여서 당당히 자웅을 결하길 원하지. 그러기 위해선 도신의 양자인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황군성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현궁주가 생각보다 비열하거나 나쁜사람 같은 인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당당함 같은 것이 있어 영웅같은 기상도 보였다.

임단심은 그를 부축하고 청삼객의 뒤를 따라갔다.

그 뒤를 전무옥이 따르고 있었다.

전무옥의 양 뺨에는 선명한 손도장이 찍혀있었다.

계곡은 좁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이었다.

삼절일천군단도 조응경을 뒤쫓아 왔다는 사신각의 살수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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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八 章

 

                 뜻밖의 만남

 

 

붉은 안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났다.

완전히 베어져 죽은 말과 사람들‥‥‥

장력에 짓이겨져 죽은 자들‥‥‥

또한,

완전히 얼음덩어리로 변해서 죽어버린 백여기의 사람과 말‥‥‥

뜻 밖에도 사상자들은 무려 이백을 헤아리고 있었다.

삼절일천군단이 전부 동원되고도 한사람을 죽이지 못한채 이백명이 죽어 삼절팔백군단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혈룡도왕‥‥‥죽인다! 으아아아아‥‥‥!]

염녹균이 미친듯이 소리쳤다.

그때 그의 옆에서 부단주 야상인이 말했다.

[단주! 진정하십시오. 제기랄‥‥‥하여튼 놈도 마지막 충돌때 겨우 숨만 붙은 상태로 빠져나갔을 것이오. 그놈도 사람인 이상‥‥‥틀림없을 것이오. 지금쯤 어디서 벌써 숨이 끊어졌는지도 모르오.]

염녹균은 새파랗게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추적한다! 놈은 이미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죽일 수있다.]

두두두두--------!

그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수습할 생각도 않고 태행산으로 달려갔다.

태행산이 깨어나고 있었다.

짐승들이 놀라서 도망치는 바람에 온 산이 시끌벅적해지고 있었다.

 

× × ×

 

휙!

임단심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는 노루를 슬쩍 피했다.

(이 밤중에 겁많은 노루가 어쩐 일로‥‥‥?)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앞에서 무엇인가 세차게 달려왔다.

[괙꽥!]

임단심은 몸을 훌쩍 날려 피했다.

멧돼지가 그녀의 발아래로 지나갔다.

[불이 났나?]

그녀는 멧돼지가 달려왔던 방향을 주시해 보았다.

그러나 산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뒤쪽을 돌아보았다.

뒤따르고 있는 전무옥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러나 전무옥은 보이지도 않았다.

바로 그때,

휙!

파르르르------!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무엇인가가 앞쪽에서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임단심이 날카롭게 교갈을 질렀다.

[멈춰라! 왠 놈이냐!]

그녀의 손이 기이하게 움직이고,

[옥인표향!]

청마수의 첫번째 초식이 옥인표향이 발출되었다.

슈슈슈슉-----!

옥인표향이 달려오는 그림자를 정면에서 가로막았다.

한데,

놀랍게도 그자가 손을 한번 휙 내젓자 옥인표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임단심은 경악했다.

청마수는 천하의 절학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데,

그렇게 간단하게 풀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아버지 임보산이라 하더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전륜법왕도 청마수를 만류귀종으로 받아들였다가 되튕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임단심이 더욱 놀랄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청마수를 간단하게 풀어버린 인영이 마치 추락하는 유성처럼 그녀의 앞에 뚝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쿵!

중심도 잡지 못하고 땅에 쳐박혀 버렸다.

[청마수를 간단히 풀어버리는 고수가 어째서‥‥‥?]

바로 그순간,

쳐박혀진 인영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임‥‥‥매‥‥‥]

임단심은 벼락을 맞은 듯이 부르르 떨었다.

임매‥‥‥

그녀를 부르는 그 목소리‥‥‥

죽어도 잊지 못하고 죽어서도 알아들을 그 음성이 아닌가?

[다‥‥‥당신‥‥‥당신인가요?]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으며 다가갔다.

그러나,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임단심은 황급히 그를 앉아 바로 눕혔다.

전신이 피투성이인 처참한 모습‥‥‥

어쨌거나 황군성이 틀림없었다.

[왁!]

임단심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황군성은 이미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뒤였다.

대충 보아도 그의 상세가 얼마나 심한 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휘익!

임단심의 뒤로 누군가가 내려섰다.

[그가 황군성이오?]

물은 사람은 전무옥이었다.

임단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겼군‥‥‥]

전무옥은 칭찬인지 무엇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빨리 이곳을 피해야 하오. 이 일대에 그를 찾는 무리들이 있소. 아마 삼절일천군단인듯하오.]

[삼절일천군단? 그들이 왜?]

임단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전무옥이 황군성을 등에 업었다.

[묻고 있을 시간도 없소. 이미 그자들은 가까이 왔소.]

임단심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잘됐군. 원수를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됐으니‥‥‥]

전무옥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들이 삼절일천군단인데도?]

임단심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군성의 상세로 보아 살아나기 어려울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원수를 하나라도 죽이고 같이 죽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든 것이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황군성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전무옥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렸다.

[그를 내려주고 가세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전소협.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의 아내인 몸이죠.]

임단심이 약간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전무옥은 그말에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같은 아픔을 느꼈다.

임단심의 말은 함께 죽겠다는 뜻이 포함되어있었던 것이다.

[임소저‥‥‥임단심‥‥‥당신은 정말 일편단심이구려‥‥‥. 나도 당신과 함께 죽고 싶소. 하나 당신이 허락하지 않겠지‥‥‥]

전무옥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절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임단심도 그말에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미안해요. 그만 가세요.]

그녀의 말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스슷!

전무옥의 몸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임단심은 품에서 구룡로를 꺼내들었다.

[구룡로라면 그들을 어느 정도 죽일 수 있겠‥‥‥]

말을 하던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 이 바보!]

그녀는 갑자기 자기의 머리를 치면서 황군성을 안아들었다.

[구룡로가 모든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을 왜 잊어버렸을까?]

그녀의 눈에 슬픔이 사라지고 생기가 돌기시작했다.

그녀는 삼불대 밑에서 늘 구룡로를 익히면서 지냈던 것이다.

한데,

그동안 구룡로의 효능 중의 하나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사용할 기회가 없었던 때문이다.

그녀는 주먹만한 구룡로를 황군성의 얼굴로 가져갔다.

구룡로를 구슬처럼 굴리자 얼굴에 났던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황군성의 전신에 난 상처를 찾아서 구룡로를 문질렀다.

외상은 삽시간에 말끔히 치유되었다.

내상을 치유하자면 구룡로에 공력을 주입하여 단전에 앉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단심은 망설였다.

지금,

황군성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삼절일천군단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그래! 내상은 후에 치료하기로 하자.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등에 업었다.

그런데,

황군성의 발이 땅에 끌리고 축 쳐진 고개가 그녀의 시야를 다 가려버렸다.

황군성의 몸이 너무 큰 것이다.

임단심에게 그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있었지만 업을 재주는 없었다.

임단심은 조급한 마음을 발을 굴렀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하는 수 없지! 일단은 살고 봐야 하니까. 이사람도 나를 탓하진 않을 거야.)

그녀는 황군성을 내려놓은 다음에 목 뒤의 철갑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렸다.

황군성의 몸이 그녀의 뒤에 연처럼 날렸다.

삑! 삑!

두두두------!

휘파람 소리와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삑!삑!

휘파람 소리는 그녀의 뒤로 계속 따라붙고 있었다.

이미 발각된 것이다.

 

임단심은 황군성과 함께 철갑대망의 내단을 하나 복용했다.

그리고 그녀의 공력은 자그마치 삼백년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이순간,

그녀는 전 공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한줄기 검은 빛이 되어 황군성의 목덜미를 잡고 허공을 가로 질러 날아갔다.

그녀는 점점 산아래로 도망치고 있었다.

한데,

그녀를 뒤쫓는 삼절일천군단의 추적도 무서웠다.

그들은 산을 마치 평지처럼 달리며 그녀를 뒤쫓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은 임단심이 우세했다.

충분한 공력의 뒷받침을 받은 그녀의 경신술은 아주 빨라서 그녀는 어느 새 산아래 계곡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뒤에서는 끝없이 삑삑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때,

임단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자신의 뒤에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새 포위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 휘파람소리!)

그렇다.

휘파람 소리가 바로 그녀를 포위하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녀가 달려가는 방향을 지적해주면서‥‥‥

그녀의 눈앞으로 세 필의 말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우측에서도 두 필의 말이 달려오고 있었다.

[차압!]

임단심은 기합을 지르며 높이 치솟았다.

그녀의 한손에 매달린 황군성의 몸이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치구룡술(治九龍術)!]

그녀의 입에서 앙칼진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조그마한 황금빛 화로에서 밝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아니,

그것은 불꽃이 아니었다.

연기처럼 가닥진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것들은 아홉마리의 황금색 용모양으로 변했다.

화로에서 나온 용들은 그녀의 뜻에따라 풍운변색의 바람을 일으키며 말들을 향해 몰려갔다.

히이이잉!

어떤 경우에도 소리하나 낼 것같지 않던 말들이 놀라 미친듯이 날뛰었다.

구룡로에서 나온 용은 마치 마술같은 위력을 보였다.

콰콰콰콰콰-------!

그것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크아악!

말도 사람도 세찬 몽둥이에 터져버린 사과조각처럼 흩어져 버렸다.

황금색 아홉마리의 용이 다섯마리의 말과 다섯명의 고수를 핏덩어리로 만들고 난 후에, 임단심의 몸이 천천히 내려왔다.

한데,

그것은 짧으나마 시간의 지체를 가져왔었다.

벌써 삼절일천군단이 그녀를 향해 삼면에서 쇄도해오고 있었다.

핑핑핑핑!

먼저 새까맣게 암기가 날아들었다.

어둠속에서도 독이묻은 암기들이 파릇파릇하게 보였다.

아홉마리의 용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암기들은 사방으로 되튕겨갔다.

나무들 사이로, 바위들 틈으로, 심지어 나무에서 나무위로 건너뛰기 까지 하면서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삼절일천군단.

그들의 다가오는 모습은 노도와 같아서 임단심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느껴지게 했다.

[절벽밑으로 내려가야하오. 저들에게 합공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되오. 임소저!]

갑자기 귓전으로 파고든 전무옥의 전음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저들은 개개인으로는 약하다. 좁은 장소에서 각개격파를 시도해야 한다.)

임단심은 용들을 거둬들이며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휙휙휙휙!

다가온 삼절일천군단의 무사들이 그녀의 등을 향해 창을 던졌다.

창들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형성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염녹균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절대 놓치지 마라! 기필코 죽여라!]

그는 발광하고 있었다.

삼절일천군단이 일 개인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창들이 임단심의 몸 가까이 접근했을 때,

절벽 쪽에서 검은 인영이 날아올랐다.

번쩍!

검광이 몇 번 이는가 싶더니 창들이 한꺼번에 베어져 버렸다.

[또 다른 놈이 있었다!]

삼절일천군단 쪽에서 소리가 나고,

두두두두두---------!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절벽아래로 달려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도 염녹균은 상대방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하여 수신호로 부하들이 가야할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물론,

절벽 위에도 오십여 기의 부하들을 남겨놓은 것을 잊지 않았다.

 

× × ×

 

휘익!

전무옥의 몸이 임단심과 황군성을 앞질러 내려갔다.

절벽의 깊이는 얼마나 될른지 알 수 없다.

전무옥은 그가 위험을 자처함으로서 임단심에게 대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행히 절벽은 이십여장 정도로 그다지 깊은 편은 아니었다.

펑펑!

전무옥은 장력을 뻗어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고 가볍게 내려섰다.

휙!

임단심은 땅이 가까워지자 황군성을 다시 높이 던져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착지하고 나서야 내려오는 황군성은 몸을 되받았다.

[으음!]

충격을 받았는지 황군성이 미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임단심은 전무옥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부탁했다.

[염치는 없지만 잠시동안 호법을 서주시겠어요?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어요.]

전무옥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곡의 입구쪽으로 걸어갔다.

계곡은 그의 생각보다도 더 좁았다.

그 정도라면 삼절일천군단도 힘을 써지 못할 것이고, 한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임단심은 황군성을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머리카락을 이어서 만든 철갑옷을 벗겨내자 황군성의 잘 발달된 상체가 드러났다.

임단심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황군성의 가슴에 붉은 손도장이 찍혀있는 것이었다.

만져보니 철갑옷의 철갑이었다.

어떻게 해서 철갑옷의 일부가 그의 가슴에 아로 새겨진 것처럼 붙어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치명적인 상처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떨쳐 버리고 황군성의 단전에 구룡로를 거꾸로 놓았다.

그리고,

그 용법에 따라 구룡로에 스스히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구룡로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기운이 황군성의 몸안으로 스며들었다.

황군성은 전신에 혈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임단심의 얼굴이 있었다.

[임‥‥‥매‥‥‥]

황군성이 힘없이 말했다.

임단심은 공력을 돋구고 있는 중이라 미소만 지어보였다.

한데,

임단심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황군성의 오장이 뒤집어지면서 공력이 완전히 흩어지고 만 것이었다.

황군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내 공력이 흩어졌겠지? 상관없소.]

그는 임단심의 손을 꼭잡았다.

[나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요. 내 삶의 방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모양이오. 임매! 당신이 떠나고 난 후에 내게는 오직 어지러운 혼란 뿐이었소. 이제 조용히 소음곡에 들어가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고싶소.]

임단심은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황군성의 흩어져 버린 내공은 임단심의 구룡로로도 어쩔 수가 없다.

내상은 이미 치유되었으나 황군성은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절세고수가 내공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멀쩡하던 사람이 수족 다 잘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인 것이다.

황군성은 임단심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이것도 결국은 내가 자초한 것의 하나에 불과하오. 아! 당신은 모를 것이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만을 해왔는지‥‥‥]

순간,

[악!]

임단심이 한쪽어깨를 움켜잡으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엔 어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곡구 쪽에서 푸른 검광이 번쩍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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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七 章

 

         삼절일천군단

 

 

두두두두󰠏󰠏󰠏󰠏󰠏󰠏!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

어디선가 부터 갑자기 퍼지기 시작한 소문이 무림을 긴장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무서운,

아주 무서운 소문‥‥‥

 

󰠏󰠏󰠏󰠏󰠏취옥성이 천하를 얻기위한 대장정을 개시했다!

 

취옥성‥‥‥

삼절일천군단으로 천하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세력으로 손꼽히는 곳,

그곳의 최정예 삼절일천군단이 무림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들이 움직임을 개시하자마자 혈풍(血風)이 일고,

그들이 간 곳마다 시산혈해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알고 있다.

취옥성의 성주가 바로 북해의 신이라고 하는 북혈마임을‥‥‥

벌써,

삼십여 개의 군소방파들이 무림에서 사라져갔다.

그들의 행진을 노도와 같아서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 × ×

 

휘이이󰠏󰠏󰠏󰠏󰠏󰠏󰠏!

붉은 황혼을 날려버릴 듯이 불어오는 바람은 황군성의 머리칼을 날렸다.

금강역사처럼 들판에 우뚝선 그의 어깨위로 삐죽이 올라온 검자루가 돋보인다.

표정없는 얼굴‥‥‥

스스로 자초한 고독일까?

다시금 모든 사람이 떠나버린 그의 전신에는 죽음같은 고독이 일렁이고,

영혼은 침체되어 버렸는가?

그의 눈동자에는 빛이 없다.

그가 이곳에 서있은 것은 어제 저녁무렵부터.

지금이 다시 황혼녁이니 그는 장장 하루동안을 미동도 하지 않고 까마득한 지평선만을 노려보고 서있었다.

실로 대단한 정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두두두󰠏󰠏󰠏󰠏󰠏󰠏!

 

지평선 저 멀리서 땅에 깔리듯이 푸른 구름이 일고 있었다.

미약하게 나마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는 그것.

바로 일천기의 명마였다.

구름떼같이 달려오는 말들은 횡으로 이십, 종으로 오십,

실로 질서정연하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한데,

갖가지 병기를 움켜잡고 마상에 앉아있는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오직 죽음.

그들의 푸른 옷과 말들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얼마나 잔인한 살상이 있었는지를 가히 짐작케하는 일‥‥‥

두두두두두󰠏󰠏󰠏󰠏󰠏󰠏󰠏󰠏!

석상처럼 평원을 가로막고 있는 황군성의 앞으로 점점 기마대는 가까워오고 있었다.

황군성의 입에서 칼로 자르듯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삼.절.일.천.군.단!]

 

기마대의 제일 선두에 섰던 자가 황군성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천하의 삼절일천군단을 단신으로 막아서는 자가 있다니.

[미친놈!]

그는 짧게 내뱉었다.

두두두두󰠏󰠏󰠏󰠏󰠏󰠏󰠏󰠏!

그 와중에도 기마대는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달리던 동료들도 황군성을 발견하고는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그러나,

조금더 다가 갔을 때,

그들은 일단 황군성의 칠척에 달하는 장대한 체구에 놀랐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풍겨나는 어떤 무형의 기운에 절로 두려움이 이는 것을 느꼈다.

목계신공,

아무런 기척도 갖지 않지만 상대로 하여금 절도 두렵게 하고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버리는 무공.

삼절일천군단의 군단주(軍團主)는 염녹균, 별호는 삼수괴(三手怪).

그는 황군성에게서 일말의 위기감을 느끼며 한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취취취칙!

말들이 소리도 없이 조용히 그자리에 멈춰섰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삼절일천군단의 군단주 염녹균의 손짓하나에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염녹균이 왼쪽에 있는 그의 부단주 야상인(夜傷人)에게 물었다.

[저자가 누구냐?]

야상인이 눈을 빛내며 살피다가 말했다.

[혈룡도왕! 제기랄 혈룡도왕입니다.]

[저자가?]

양쪽에서 놀람의 물음이 터져 나왔다.

[틀림없습니다.]

야상인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퉤! 더럽군요. 밟아주는 수밖에.]

염녹균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신을 능가한다는 도신의 양자‥‥‥어느 정도의 피해는 각오해야 겠군.]

그의 손이 황군성을 가리켰다.

그리고,

[죽여라!]

짧은 한마디가 퍼져나가자 멈추었던 기마대는 용수철에 튀기는 것처럼 달려나갔다.

[와!]

두두두두󰠏󰠏󰠏󰠏󰠏󰠏󰠏󰠏󰠏!

그들은 황군성을 에워싸듯 하면서 달려 들었다.

전면에 있는 기마대가 황군성의 앞에 당도할 때에 이미 등뒤에도 기마대의 일부가 도착하고 있었다.

완전히 황군성을 중심으로 헤쳐모여하는 것과 똑같은 형세였다.

슈슈슈슝!

화살과 암기가 하늘로 부터 떨어져 내렸다.

기마대의 후미에 위치한 자들이 허공으로 쏘아올린 것들이었다.

그리고,

접근한 자들이 쇄도하면서 장병(長兵)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창, 삼절곤, 칠절편, 철추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들의 합공은 완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리가 더욱 좁혀진 자들은 허리에서 단병, 짧은 무기를 꺼내들며,

검과, 도, 척, 판관필 따위로 공격해들어왔다.

황군성이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같았다.

한데,

바로 그순간,

삼절일천군단의 단주인 염녹균은 머리가 하애지는 충격을 받았다.

오오!

인간이 진정 저럴 수도 있단 말인가?

황군성의 몸이 물살을 가르는 배처럼 삼절일천군단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가 지나간 곳으로 잘려진 팔다리와 목이 일시에 날아오르고,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으악악󰠏󰠏󰠏󰠏󰠏󰠏!

 

누가 지른 비명인지도 알 수가 없다.

비명은 그들이 죽어간 후에 터져 나온 것이므로,

황군성의 손에는 핏방울이 굴러 떨어지는 사척반의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표정은 비정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것은 삼절일천군단에게 더욱 심한 공포를 주었다.

삽시간에 이십여명의 삼절일천군단이 죽었다.

지금까지,

삼절일천군단은 그 많은 싸움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었다.

한데 이것은‥‥‥

[모두 검을 뽑아라. 혈검천륙살진(血劍天戮殺陣)!]

염녹균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촤촤촹!

삽시간에 붉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을 듯 퍼져나갔다.

혈검천륙살진이 펼쳐진 것이다.

일천여명의 삼절일천군단이 움직이는 사이에 한치앞을 분간할 수 없는 붉은 안개가 깔렸다.

그들이 뽑아든 혈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붉은 안개속에서 마치 천둥소리처럼 번져나갔다.

황군성은 시야가 완전히 차단당한 상태에서 자신이 망망대해의 흔들리는 파도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일천대 일!

하늘이 놀라고 땅이 놀랄 무림사의 일획을 그을 대결전이 마침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 × ×

 

임단심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무옥! 너때문에 집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다.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계속 나를 쫓아다니겠다면 죽여 버리겠다.]

전무옥은 쓸쓸하게 웃었다.

[소저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지는 않소. 단지‥‥‥소저를 바라볼 수만 있으면 족할 뿐이오.]

[흥! 나는 네놈이 나를 바라보는 것도 싫다.]

임단심은 마상에서 차갑게 소리쳤다.

전무옥이 고개를 푹수그렸다.

검신 전득무의 아들 전무옥‥‥‥

그가 임단심이란 여인에게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온갖 수모를 다 받으면서도‥‥‥

다각다각다각󰠏󰠏󰠏󰠏󰠏!

전무옥이 탄 말은 임단심이 탄 말의 뒤를 묵묵히 따르고 있다.

임단심은 일년 동안 금족령을 받고 항산 삼불대 아래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전무옥은 금화선녀에게 포로가 된 후 삼불대에서 남자 종이나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임단심의 미모에 깊히 빠져 들어버렸다.

한때 그는 임단심과 똑같이 생긴 조응경에게 매료되어 그녀와 혼인하겠다고 까지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의 임단심에 대한 감정은 그때와 같은 달아오른 철판같은 사랑이 아니라, 무려 일년동안이나 익고 익은 것이었다.

임단심은 부모가 왜 자기를 가둬놓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황군성을 떠나오기는 했으나 시간이 지나갈 수록 그에 대한 그리움에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감시하는 전무옥과 노파의 눈을 벗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데,

이번에는 전무옥이 그녀를 도와주어 함께 도망친 것이다.

임단심은 삼불대에서 나오자마자 개봉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개봉‥‥‥

그곳에는 그녀가 구해놓은 집이 있고,

그 집에서 황군성과 꿈같이 달콤한 한때를 보내지 않았던가?

혹시 황군성이 그곳으로 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날은 어두워 오는데,

전무옥은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임단심은 속상한 생각에 말의 배를 힘껏 찼다.

[이랴!]

말이 놀라 훌쩍 뛰어나갔다.

전무옥도 황급히 말을 재촉하여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에잇! 힘도 없는 말같으니라구. 그걸 달렸다고 거품을 물고 엎어져?]

임단심이 쓰러진 말에게 화가 나서 발길질을 했다.

태행산의 밤은 깊은 데 길가에는 오직 임단심과 전무옥 두 사람 밖에 없다.

전무옥의 말은 임단심의 말보다 일찍 쓰러졌다.

그는 말이 쓰러지자 버려두고 경신술로 그녀의 뒤를 따라온 것이다.

그는 한쪽에 비켜서서 임단심이 하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임단심은 말을 버려두고 길옆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하는 수 없지. 여기서 노숙(露宿)을 하는 수밖에‥‥‥]

휘익!

전무옥은 바람처럼 빠르게 그녀를 앞질러 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번쩍! 번쩍!

검이 몇 번 휘둘러지는 가 싶더니 작은 나무가지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은 신기하게도 원을 그리며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작은 나무가지와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푹신한 침상이 만들어졌다.

[흥!]

임단심이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그곳에 앉았다.

전무옥은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바로 그때였다.

[켈켈켈‥‥‥형님들 오늘은 수입이 괜찮군요. 말 한 필에 젊은 계집이라‥‥‥]

숲속에서 음침하기 그지 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인물이 걸어 나왔다.

스스슥!

감산도(坎山刀)를 어깨에 걸치고 나무가지를 헤치며 걸어 나온 그들은 말 그대로 산도둑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같았다.

떡 하니 벌어진 체구에,

풀어 젖힌 가슴팍, 그리고 아무렇게나 동여맨 상투꼭지‥‥‥

얼굴을 반쯤 뒤덮어 버린 구롓나루‥‥‥

임단심은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그들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림인에게 강도짓 하는 자들도 있었나?)

전무옥이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산적들 중의 하나가 약간 놀란 듯이 말했다.

[어? 남자새끼도 있었네? 반질반질 한 걸 보니 기생오라비인 모양이군.]

다른 하나가 소리쳤다.

[야 이놈아! 어서 주머니를 갖다 바치지 않고 뭘하느냐? 살고 싶지 않단 말이냐?]

[꿀꺽!]

임단심을 바라보던 산적이 침을 삼켰다.

[이제 보니 이년이 아주 절색인데‥‥‥헤헤헤‥‥‥호박이 덩굴채 굴러왔군.]

다른 자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봐 네째! 자네는 순서를 어길 샘인가? 이런 일에는 응당 이 형님이 먼저 아닌가?]

그자의 덩치가 제일 컸다.

조금 전의 그자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에이! 그럼 어서 먼저 하쇼. 남의 애간장 태우지 말고.]

[헐헐헐‥‥‥물론 그래야지‥‥‥]

임단심은 눈을 까뒤집고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산적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흠!]

하며 예쁘게 헛기침을 한번 하고 팔장을 꼈다.

[빨리 꺼내놓지 못해?]

그때 세놈의 산적이 전무옥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감산도를 높이 들고 그를 협박하고 있었다.

전무옥도 기가 막힌 지 피식 웃었다.

[헤헤‥‥‥]

두목인 듯한 자가 침을 흘리며 임단심에게 달려들었다.

한데,

그가 갑자기 돌멩이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푹 꼬꾸라졌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봐 노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럼 내가 먼저 하더라도 뭐라 하지 말게.]

뒤로 밀렸던 자가 냉큼 임단심앞으로 다가섰다.

한데,

그자도 갑자기 푹 고꾸라져 일어나지 못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전무옥을 둘러쌌던 자들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니 이들은 자기들이 나타났는데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을 잘못 봤다!!)

그들 세 산적들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통했다.

엎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고,

산자들은 살고 봐야 될 일이다.

[튀자!]

그들은 냅다 숲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화살을 방불케 할 솜씨였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살맞은 기러기처럼 그 자리에 픽픽 쓰러지고 말았다.

비명도 없고 기척도 없었다.

임단심이 발딱 일어섰다.

[기분 잡쳤어. 두 시간만 걸으면 학선평(鶴旋平)일 테지.]

그녀는 산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로 전무옥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도적들은 모두 임단심의 독술에 의해 죽었다.

그들은 죽고 나서도 어떻게 독이 펼쳐졌는지 모를 것이다.

 

× × ×

 

들판에 넘실대는 붉은 안개,

어둠속에서도 마치 악마의 기운처럼 흩어지지 않고 깔려있다.

그리고,

두두두두󰠏󰠏󰠏󰠏󰠏󰠏󰠏󰠏!

그 속에서 굉음처럼 울러 퍼지는 말발굽 소리‥‥‥

(벌써 두 시진이 지났다. 이들의 진세를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다.)

황군성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흰 장삼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 날아가버렸고,

붉은 철갑옷도 비늘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목계신공의 호신강기로 근근히 버텨왔지만,

이 빌어먹을 혈검천륙살진 속에서는 적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퍽퍽!

무엇인가 둔중한 물체가 어느 새 다시 그의 등을 두드렸다.

황군성의 몸이 비틀거렸다.

번쩍!

공격을 받은 곳으로 빠르게 장검을 날려 보지만 검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삼절일천군단‥‥‥

왜 삼절일천군단을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단체라고 하는 지 황군성은 알것도 같았다.

이것은 일개 고수와의 싸움과는 비교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진의 한가운데 있겠지.)

황군성은 모종의 결심을 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우물주물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적은 강하다.

진을 어떻게 뚫어볼 방법도 없다.

[무조건 뚫고 간다!]

황군성은 자신이 생각해도 가장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오직 일신의 무공 하나만 믿고 쌍산 조자룡처럼 삼절일천군단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하는 것이다.

그것도 오직 일직선으로 달려서‥‥‥

추악!

그의 장검이 왼손에 쥐어지자마자 오른손에서 번천도가 솟아올랐다.

한번의 심호흡 후에 그는 들소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안개속을 돌진했다.

검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도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순간적으로 붉은 기운이 갈라지고 비명이 터져 올랐다.

[으아아악!]

황군성은 자신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지금은 눈을 가린 상태로 가시밭을 달려가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으아아악!]

검에 둔중한 느낌이 걸리면서 또 하나의 비명이 솟아올랐다.

그의 몸에도 무수한 상처가 생겼다.

한데,

달려갈 수록 그의 몸에 와닿는 압력이 엄청나게 강해지고 있었다.

삼절일천군단의 혈검천륙살진의 압력은 밖으로 나갈 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달리는 말들과 사람의 힘이 배합된 이 진은 바깥이 더욱 많은 고수들이 포진하고,

이로 말미암아 적은 달아날래야 달아날 수도 없이 몸이 갈갈이 찢겨죽게 되는 것인데,

삼절일천군단의 단주인 염녹균은 치를 떨고 있었다.

일 개인의 몸으로 그 무시무시한 진안에서 두 시진을 버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시간이라면 만명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살륙했을 시간인 것이다.

더구나 그자가 이번엔 필사의 탈출을 기도하고 있다.

황군성은 자신이 한걸음을 걷기가 어려움을 알았다.

육백 년에 육박하는 내공을 가진 그‥‥‥

한데 그에게 밀려드는 압력은 그로 하여금 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압력이 강해질 수록 그의 몸에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적은 힘을 합하고 있는 것이다.

황군성은 마지막 모험수를 던졌다.

자신의 힘으로 그들 전체와 충돌하는 것이다.

그는 검을 등에 꽂았다.

그리고,

전륜법왕이 전수해준 만류귀종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모든 힘을 반탄시켜 되돌리는 무공‥‥‥

그는 남아있는 전 공력을 쌍장에 모으고 만류귀종을 펼쳤다.

[만류귀종!]

우렁찬 폭갈이 터지고,

그를 향해 밀려들던 압력이 순간적으로 반탄되며 엄청난 한기를 동반하고 되돌아갔다.

그가 만류귀종에 빙백강기를 포함시킨 것이었다.

크아아악󰠏󰠏󰠏󰠏󰠏󰠏󰠏󰠏󰠏!

붉은 안개가 순간적으로 멈추며 비명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황군성의 몸이 그틈을 놓치지 않고 비상했다.

쉬이이익!

한줄기 유성처럼 그는 삼절일천군단의 붉은 안개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원래 그의 뒤에 서있던 태행산을 행해서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의 전신에서 핏물이 샘솟듯이 흐르고 있었다.

(으으‥‥‥만류귀종을 펼쳤을 때 충격으로 내장이 뒤엉켜버렸다. 어쩌면 파괴되었을 지도‥‥‥)

황군성의 몸은 삼절일천군단이 진세를 새로 정비하기도 전에 태행산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말 것같았다.

죽음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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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六 章

 

              敗北

 

 

 

사실,

임보산으로서는 황군성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오직 황군성에게 임단심의 소식을 전하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그를 데려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은 꼬여버렸다.

겨우겨우 어떻게 해서 황군성의 종적을 찾아 동정호까지 온 그가 만난 사람은 뜻밖에도,

옛날 그의 가장 강력한 적수중의 하나였던 육천태였다.

임보산은 황군성이 그곳에 있다는 확증을 갖고 왔었다.

한데,

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육천태는 완강하게 부인했다.

황군성은 이미 떠났다는 것이었다.

육천태로서는 자기의 방에 있을 진우란에 대한 근심도 되었던 것이다.

육천태와 진우란의 아버지 진섭천은 임보산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언제라도 그의 무공을 따라잡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들 두 사람일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던 임보산이다.

진우란이 진섭천의 딸임을 알게 되면 그와 악감정이 많은 임보산이 결코 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육천태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임보산은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한시가 급한 실정인데 뻔한 사실을 육천태가 잡아떼자 참을 수 없어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임보산은 확실히 임보산,

일백오십 년 만의 결투임에도 육천태는 더욱 현저해진 그와의 무공차이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진우란은 고금십대천병 중의 두 가지를 사용하는 바람에 그녀가 진섭천의 딸이라는 사실만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임보산으로서는 자신의 일을 방해했던 그 두 사람을 죽여버릴 작정이었는데 황군성이 막았으니 화가 하늘끝까지 닿을 정도로 치밀은 상태였다.

또한,

자신의 딸이 남편이라고 한 황군성이 다른 여자, 그것도 진섭천의 딸을 보호하려고 하자 그 분노는 극에 달한 것이다.

게다가,

황군성의 무공,

황군성이 자신의 신주독존공을 정면에서 맞받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긁었다.

지금 이순간,

그는 딸이고 뭐고 없었다.

오직 황군성과 적으로서 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평생동안 절대 패하지 않고 오직 승리만을 거듭해온 무제 임보산,

하늘도 오시할 수 있는 그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음에야‥‥‥

 

공격은 황군성이 먼저 시작했다.

그의 양손이 임보산을 향하는 순간에 천지를 뒤집을 듯한 기운이 그를 향해 밀려갔다.

우르르‥‥‥

은은한 뇌성이 들리고,

임보산의 하늘을 가리키고 있던 손이 내려졌다.

번쩍!

황군성의 손에서 발출된 장력이 뇌성이라면 그의 손끝에서 발출된 것은 뇌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대한 빛무더기가 황군성의 장력을 뚫고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이얍! 철인검!]

슈콰󰠏󰠏󰠏󰠏󰠏!

그의 등에서 솟아오른 사척반의 장검이 손에 쥐어지고,

검은 빛을 꿰뚫듯이 찔러갔다.

 

진우란의 눈에는 시간이 멎어버렸다.

모든 것이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인양 아득했다.

황군성의 몸이 하늘로 비상해 오르는 것도,

어느 틈에 공간을 좁힌 임보산이 그의 가슴에 일장을 가하는 것도‥‥‥

그리고,

검을 놓친 황군성의 오른 손에서 한줄기 백광이 치솟으며 임보산을 아래에서 부터 위로 베는 것도‥‥‥

 

콰콰쾅󰠏󰠏󰠏󰠏󰠏󰠏!

황군성의 몸이 실끊어진 연처럼 수십 장위의 공중에서 부터 맴돌며 추락했다.

입으로는 가는 핏줄기를 뿜고 있었다.

잘라진 임보산의 옷자락이 그의 곁으로 날아들고,

임보산은 길게 베어져 펄럭이는 옷차림으로 천신처럼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휘익!

한줄기 흰 그림자가 허공을 스치며 황군성을 안고 날아 내렸다.

진우란이었다.

임보산은 그녀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그녀의 품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황군성을 노려보면서 자르듯이 내뱉었다.

[본 무제의 몸에 손을 댄 자는 지난 이백사십 년 동안 아무도 없었다. 응당 죽여야겠으나 그 무공이 아까워서 살려준다. 하나, 네 놈은 내 딸의 일생을 망쳤으니 그 아이가 죽거나 네놈이 한번 이라도 그 아이를 본다면 눈을 뽑아서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죽이겠다.]

임보산의 몸이 신선처럼 허공으로 너울너울 떠올랐다.

그리고 밝아오는 동녘 하늘로 까마득히 사라져갔다.

 

[그 아이를 내려놓아라.]

갑자기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의기소침한 음성이 진우란의 멍한 정신을 일깨웠다.

육천태가 낙담한 표정으로 그녀앞에 서있었다.

진우란의 얼굴이 꽃처럼 확 피어났다.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

육천태가 고개를 푹 수그리면서 말했다.

[휴! 내가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도 나를 죽이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 아! 임보산‥‥‥]

또다시 임보산이란 벽을 넘지 못한데 대한 어떤 비애같은 것이 육천태에게는 느껴졌다.

진우란은 황군성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이사람이 살 수 있겠어요?]

육천태가 품속에서 납작하면서도 큰 푸른 옥병을 꺼내며 말했다.

[내가 살았는데 나보다 강한 이아이가 어찌 죽겠느냐?]

진우란은 육천태가 황군성더러 자기보다 강하다고 하자 얼굴에 기쁜 기색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보다 강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그녀로서는 하나의 기쁨인 것이다.

[쌍두금구의 정혈을 이녀석이 제일 먼저 시식해보는구나.]

육천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옥병의 마개가 열리고,

똑!

오직 한방울의 붉은 핏방울이 황군성의 입안에 떨어졌다.

 

옥병안에 든 쌍두귀갑의 정혈(精血)!

이것은 육천태가 쌍두귀갑을 잡은 후에 그 피를 모조리 뽑아서 금막대로 저어서 굳어지지 않게 한 다음,

여러가지 약물을 이용해서 수분을 증발시키고 오직 한병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천하에서 제일가는 영약이라고 할 수 있으니,

공청석유보다도 구엽자지초나 천년삼왕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화색이 돌아요.]

진우란이 기뻐소리쳤다.

과연 황군성의 백지장처럼 창백하던 얼굴이 점점 붉으스레 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뜨거운 열이 발산되었다.

양기(陽氣)로 가득찬 쌍두금구의 정혈이 내는 힘이었다.

한바탕 물에 젖은 듯이 땀을 흘리고 난 황군성은 눈을 떴다.

[진매! 무사했구려.]

진우란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챙기는 황군성의 정성에 감동되어 눈물을 왈칵쏟았다.

육천태가 그의 이마를 눌러 눕히면서 말했다.

[무리하지 말아라. 가슴의 상처를 한번 보자구나.]

훌렁!

황군성의 옷자락이 젓혀졌다.

옷안에 입고 있었던 철갑대망의 붉은 철갑옷이 나타났다.

[앗!]

진우란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육천태도 침음성을 흘렸다.

[음‥‥‥이럴 수가‥‥‥]

무제 임보산의 일장을 맞았던 황군성의 가슴,

그곳에는 완연한 손바닥이 새겨져 있었다.

임보산의 손이 닿은 부분의 철갑은 이미 도려낸 듯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황군성의 가슴에 문신처럼 손자국에 박혀버린 것이다.

철갑이 황군성의 가슴에 붙어버렸다.

그렇지만 황군성의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같았다.

육천태가 그의 맥문을 쥐어보고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네 공력이 너를 살렸다. 반발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네 가슴에 손자국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임보산의 신주독존공에 필적할 만한 무공이 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구나.]

황군성이 일어서서 옷을 걸치며 물었다.

[육노선배님! 그 사람은 대체 누굽니까?]

[천하제일인, 당금의 천하제일인 무제 임보산. 아니 어쩌면 고금제일인일지도 모르지.]

육천태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등이 유난히도 초라해 보였다.

[천하제일인‥‥‥?]

황군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진우란이 그의 곁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이름은 아무나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에요. 무림에서도 진짜 강자만 알고 있는 것이죠. 실상 입에 담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진매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황군성이 말했다.

진우란이 그의 손을 잡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말씀해 주셨죠.]

황군성은 육천태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도무지 나만 모르고 있는 것같아. 심지어 진매마저도 나는 알 수가 없어.]

진우란은 가슴이 섬찟해옴을 느꼈다.

그에게 그녀는 모든 것을 숨겼던 것이다.

황군성의 말에서 어떤 두려움같은 것을 그녀는 느꼈다.

그녀가 멈칫하는 사이 황군성은 육천태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내 내가‥‥‥너무‥‥‥저 저사람은‥‥‥]

진우란은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떨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 중얼거린 후 황군성의 뒤를 쫓아갔다.

 

× × ×

 

객점,

창가에 자리잡은 육천태와 황군성, 진우란은 말없이 묵묵히 있었다.

쪼르르‥‥‥

육천태가 스스로 잔을 채워 마셨다.

탁!

술잔을 내려놓고 육천태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황군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는 아무래도 황산으로 가야겠습니다. 육노선배님께선‥‥‥]

[황산? 취옥성에 갈 모양이로군.]

육천태가 고개를 들어 반문하며 말했다.

진우란의 안색이 변했다.

[안돼요. 그 홍심련인가 하는 단체의 말을 믿을 수는 없어요. 그들은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황군성이 눈을 빛냈다.

[나로서는 그들이나 진매나 모르기는 매한가지요.]

진우란이 파랗게 질렸다.

처음에,

황군성은 그녀를 일개 농사군의 딸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기인의 딸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한데,

그녀가 가공할 무공을 펼치는 것을 마침내 목격했던 것이다.

황군성의 그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지만 그의 이성(理性)이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아직도 자기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불신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불신받는 다는 것.

더우기 여자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진우란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자초한 일이야‥‥‥속였으니까‥‥‥하지만 내게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를 밝힐 수 있어‥‥‥?)

그녀는 사신각을 공격하게끔 황군성을 사주한 홍심련이란 단체에 강한 적개심을 일으켰다.

그들만 아니었다면 당당히 자신을 밝히고 황군성과 가까워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입술을 꼭 악다물었다.

(그들을 죽여버리겠어.)

진우란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객점의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황군성은 그녀를 보고도 잡지 않았다.

진우란은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속좁은 남자‥‥‥나하나를 감싸주지 못하고‥‥‥)

진우란이 나가고 나자 육천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에게 약점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

[실망일세. 자네가 찾아다닌다는 임단심인가 하는 소저도 스스로 자네를 떠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자네는 진소저마저 떠나보내는 군. 그녀에게도 어떤 말못할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황군성은 고개를 푹수그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숨기면서도 가장 가까운 척하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잘해보게. 나는 산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을 생각이네.]

육천태도 잔을 놓고 일어섰다.

황군성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육천태에 대해서 원망과 반감을 느꼈다.

그는 꿈적도 않고 앉아있고,

육천태는 휘적휘적 객점밖으로 걸어 나갔다.

황군성의 귓속으로 한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한가지만 알려주겠네. 임보산의 몸은 금강신(金剛身)이라네.]

황군성은 정신이 펏득 들었다.

그제서야 이해되지 않던 의문이 확연히 풀렸다.

그는 임보산과의 대결에서 일장을 맞았지만 자신도 임보산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번천도로 베었다.

한데,

임보산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번천도에 베이고서도‥‥‥

그것을 황군성은 줄곧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임보산의 몸이 역시 고금십대천병의 하나인 금강신이라면 능히 그러리난 생각이 들은 것이다.

 

금강신은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것으로도 죽일 수 없는 몸인 것이다.

금강신을 가진 자가 단 한가지의 무공만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그자는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고 동패구사의 방법으로 공격한다면 기필코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은 죽지 않는데 상대방은 죽게 되니까.

또한,

금강신을 지니게 되면 그때부터 몸은 늙지도 않게된다.

임보산의 몸이 바로 이 금강신이었던 것이다.

 

육천태도 떠나갔다.

진우란과 육천태가 자신의 곁을 떠나가 버리자 황군성은 천지에 오직 혼자만이 남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황산으로 가자‥‥‥그들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취옥성을 뒤져봐야 겠다.]

그는 나직이 뇌까리고 객점을 나서 북으로 방향을 잡았다.

황산은 동정호에서 북방으로 가야한다.

 

× × ×

 

어두운 밤,

달이 떠려면 아직 멀었다.

갖가지 풀벌레 소리와 밤새소리가 들리고 있는 숲속,

관제묘(關帝廟),

지붕위에 어둠의 화신인듯한 그림자가 하나 우뚝서있다.

전신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손마저 드러내지 않고 있는 자,

그리고,

그의 옆에는 고양이 보다 조금 큰 검은 표범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표범이 낮은 소리로 그르렁거렸다.

그리고,

휙휙!

휙휙휙!

흑의에 검은 복면을 한 예닐곱명의 인물이 관제묘로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헉!]

그들 중의 하나가 지붕위에 우뚝선 그림자를 보더니 짧은 경악성을 터뜨렸다.

표범의 눈동자가 불꽃처럼 보였다.

그자는 무릎을 꿇으며 낮게 소리쳤다.

[신께 충성을!]

다른 자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신께 충성을!]

지붕위의 검은 그림자가 그들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안광을 내뿜으며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애매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본 사신각은 다시 활동한다!!]

흑의인들이 머리를 납작 숙였다.

사신각‥‥‥

이들은 사신각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모든 고수들을 안경(安慶)에 집결시켜라. 그리고, 홍심련이란 단체를 찾아내고 흔적도 없이 말살하라.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다. 풀한포기 남기지 말고‥‥‥]

쿵!

일곱 명의 흑의인이 땅에 머리를 찧었다.

[이번 일에 대한 전권을 너희 칠대살객에게 맞기겠다. 실패했을 경우 너희들의 목숨으로 책임을 묻겠다.]

검은 그림자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몇 가지의 부수적인 명령을 내린 후에 차갑게 내뱉었다.

[떠나라!]

흑의인들은 기척도 없이 사라져갔다.

검은 그림자가 표범을 안으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틀림없이 안경에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에게 그처럼 빨리 정보를 주진 못했을 것이다. 철저하게‥‥‥아주 철저하게 돌려주마. 홍심련‥‥‥]

표범을 거느린 검은 그림자‥‥‥

이는 누구인가?

표범은 동정호변의 수신묘에도 나타난 적이 있는데‥‥‥

바로 사신(死神)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사신 진섭천의 뒤를 이어 새로운 사신이 되었던 진우란 바로 그녀‥‥‥

혈풍은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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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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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五 章

 

            무제 임보산과의 決鬪

 

 

어두운 수중 동굴,

반평도 채 되지 않을 그곳에 갑자기 두개의 불이 나타났다.

아니 그것은 불이 아니었다.

바로 빛나는 인간의 눈이었다.

야수의 그것인 양 빛나는 눈을 가진 사람은 황군성이다.

그가 마침내 자신을 새롭게 하고 눈을 떤 것이다.

[이제 목계신공을 중심으로 철인검과 번천도, 그리고 그밖의 무공들을 모두 일직선상에 놓았다. 이로써 나의 무공은 새로운 경지로 접어든 것이다.]

황군성은 감개가 무량한 듯 입을 열었다.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그 무공은 얼마나 깊어진 것일까?

하나만 익혀도 천하제일을 넘볼 수 있는 무공들‥‥‥

황군성은 지금 어떤 자신감이나 호승심같은 것도 있지 않았다.

목계신공을 익힌 그는 모든 것이 담담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야 진정한 자기를 찾은 것같았다.

더 이상의 혼란도 방황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이 미꾸라지 처럼 움직이며 동굴을 빠져 나왔다.

수초들이 머리에 묻었다.

그는 말굽처럼 생긴 좁은 동굴을 빠져나와 큰 동굴로 나왔다.

그리고,

스스스슷!

수면을 미끄러지며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었다.

차앗!

그의 몸은 물에서 비상하여 날아올랐다.

까마득히‥‥‥

 

× × ×

 

괴노 육천태는 이글거리는 분노를 담고 임보산을 노려보았다.

[임형! 내게 없는 사람을 내놓으라니 어디 말이나 되오?]

[하하하하‥‥‥!]

임보산은 낭낭한 웃음을 터뜨렸다.

[천하의 기인 육천태, 육형이 언제부터 거짓말장이가 되었는가? 대체 육형은 그놈과 어떤 관계요?]

부드러운 음성,

중후한 얼굴‥‥‥

사람의 마음을 사라잡는 엷은 웃음‥‥‥

이 모든 것을 갖춘 천하제일인 임보산은 육천태를 부드럽게 핍박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인시(寅時),

벌써 한시진 동안 육천태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무엇이든 자기 기분대로 하는 임보산도 괴노 육천태에 대해서는 마구잡이로 대하지는 못했다.

육천태와 자기가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큰 차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임보산이 무림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육천태가 천하제일인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육천태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그와는 단지 면식이 있는 사이일 뿐이오. 무슨 이유에서 임형이 그를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오. 이미 이곳을 떠났으니까.]

임보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저 방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 내가 과문한 탓인지 육형이 제자를 두었다는 소식은 듣지도 못했는데.]

[임형과 상관없는 사람이오. 오늘은 임형을 손님으로 맞을 수 없으니 용서하시오.]

순간,

[하하하하‥‥‥!]

하늘을 돌리고 땅을 뒤집어 엎을 듯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육천태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과연 무제(武帝)‥‥‥)

임보산이 웃음을 뚝 그치고 형형한 눈초리로 말했다.

[육천태! 무슨 이유로 감히 나와 맞서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마라. 너를 해치고 싶지는 않다.]

육천태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꿈틀거렸다.

[임보산! 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 일백오십 년 전에 한번 이겼다고 해서 지금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두 사람의 말이 거칠어졌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던 임보산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사라진지 오래다.

슈우우우‥‥‥

그의 주변에서 기류가 변하고 있었다.

그가 공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육천태의 몸 주변에서도 바람이 잠들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드드드득‥‥‥

임보산의 몸에서 몰아치는 기류로 말미암의 어부의 집이 흔들리고 있었다.

휙휙!

지붕이 뜯어지고 있었다.

우우웅‥‥‥

기류를 타고 흙과 자갈이 날아올랐다.

마치 임보산을 둘러싸고 하나의 거대한 용권풍이 형성되는 것같았다.

사방이 모두 임보산의 몸 주변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육천태의 몸 주위 이장 이내에서는 바람한 점 일지 않고 고요했다.

두 사람은 엄청난 대비를 보이고 있었다.

드드득!

쿵!

담장이 쓰러졌다.

사람들이 임보산이 등장한 이후 모두 도망쳐 버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화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보산의 몸에서 일어난 용권풍은 점점 그 세력권을 넓혀갔다.

용권풍은 어떤 무공도 아니었다.

오직 그가 자신의 내공을 끌어올리는 데 따라서 일어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었다.

급기야 육천태의 뒤에 있던 조그만 별채의 지붕도 날아올랐다.

육천태의 몸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이장 주위만이 고요하다.

그 밖에는 이미 임보산의 세력권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있는 곳은 마치 망망대해 중에 있는 한점의 섬과 같았다.

육천태의 두 손은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스다듬는 듯한 자세가 되어있었다.

임보산은 육천태 이외에 어떤 힘이 자기에게 저항하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바로 육천태의 뒤에 있는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막 넘어갈듯말듯한 곳으로 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슈욱󰠏󰠏󰠏󰠏󰠏󰠏!

갑자기 공간을 가득 메우던 모든 긴장이 사라져 버린 것같았다.

육천태의 고함이 허공을 갈랐다.

[멈춰라!]

그의 손가락에서 흔적도 없고 소리도 없으면서 빛처럼 빠른 열 줄기 힘이 뻗어나갔다.

임보산의 몸은 깨어진 유리처럼 흩어져 버렸다.

육천태의 손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음‥‥‥!]

쿵!쿵!

그는 강맹한 힘에 의해 뒤로 두걸음이나 물러났다.

발자국이 세치깊이로 선명하게 찍혔다.

임보산은 육천태의 뒤쪽에 있는 별채를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덮쳐가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임보산의 몸이 허공중에 그대로 딱 정지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땅으로 내려섰다.

그 각도가 마치 칼로 자른듯 깨끗했다.

[진섭천!]

임보산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투두둑!

툭! 쿵!

임보산의 힘에 의해 하늘로 말려올라갔던 돌멩이와 바위 등이 떨어져 내렸다.

임보산의 안색이 분노로 인해 파랗게 굳어졌다.

[육천태, 네가 진섭천마저 불러서 나를 상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미 수치심마저 잃어버린 모양이구나.]

육천태는 아무 대답없이 묵묵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쿵!

별채의 벽을 밀어뜨리며 손에 작고 괴상한 북을 든 소녀가 나왔다.

바로 진우란이었다.

임보산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진우란이 웃을듯 말듯한 표정을 지으며 임보산에게 물었다.

[육노선배가 진섭천과 손을 잡으면 왜 수치스럽지요? 힘으로 억지로 남을 핍박하는 것은 수치스럽지 않구요?]

임보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말을 막하는 막돼먹은 계집애로군. 무공으로 보아하니 진섭천의 자식인 듯한데 그가 내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막돼먹은 계집애지만 어찌 당금의 천하제일인 무제 임보산을 몰라보겠어요? 선친께서 만나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제일 주의를 준 분이시기도 한데‥‥‥]

[마침내 진섭천이 죽은 모양이군!]

임보산은 잘죽었다는 듯이 말했다.

진우란이 진섭천을 가리켜 선친(先親)이라고 하자 그가 죽었음을 안 것이다.

그가 칼날같은 눈빛으로 진우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놈과 함께 다닌다는 계집이 바로 너였던 모양이군. 육천태!]

육천태가 그에게로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첫번째 격돌에서 그는 두걸음이나 밀렸다.

진우란과 협공이라도 하지 않고는 임보산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래도 그놈이 여기를 떠났다고 할 것인가? 계집을 놓아두고?]

육천태가 싸늘한 음성으로 쏘아부쳤다.

[당신도 그러지 않았소?]

임보산의 입이 실룩거렸다.

그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오르며 주위에 있는 사람을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여자가 많이 따랐던 임보산은 실제로 여자에게 정을 주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이 그에게 짐짝처럼 버려지고 했던 것인데 육천태는 바로 그것을 비웃는 것이었다.

임보산이 중얼거렸다.

[육천태! 아무래도 오늘로 더 살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요즘은 별로 살인을 하지 않았는데 네 피를 구경해야 겠군.]

나지막하게 높낮이 없는 말로 내뱉는 임보산.

그러나‥‥‥

육천태는 그의 그런 태도에서 반드시 자기를 죽이고 말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임보산‥‥‥

하늘이 내린 최고의 무인,

무림의 일각에서는 삼불혼이란 신적인 존재로 떠받들어지기도 하는 인물‥‥‥

무림에서 그의 말은 법이나 마찬가지다.

[저승길 외롭지 않게 저 계집애와 함께 죽여주마.]

임보산이 오른 손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오직 검지 하나만이 하늘중간을 가리킬 뿐,

조금 전과는 달리 어떤 기운도 뿜어지지 않았다.

육천태가 침중한 어조로 내뱉었다.

[신주독존공(神州獨尊功)‥‥‥]

진우란의 안색이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창백하게 변했다.

 

신주독존공,

 

임보산이 천하의 무학을 오시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그의 독문절학이 아닌가?

이 신주독존공이야 말로 임보산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니‥‥‥

임보산을 무(武)의 제왕, 무제(武帝)로 만들어준 신주독존공‥‥‥

임보산의 손이 마치 달을 가리키듯하며 육천태를 가리켰다.

순간,

번쩍!

벼락이 치는듯이 섬광이 번쩍이고,

육천태의 몸은 십여장이나 나가 떨어졌다.

쿵!

[차앗!]

진우란이 손목을 흔들면서 북을 쳤다.

둥둥둥둥둥둥󰠏󰠏󰠏󰠏󰠏󰠏󰠏!

임보산의 몸이 잠시 흔들했다.

[지멸고와 섬전사! 그것으로 나를 이기기엔 부족하지.]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진우란을 가리키고 있었다.

촤아악!

진우란의 손에서 발출된 섬전사가 임보산의 몸에 이르기도 전에 튕겨났다.

번쩍!

폭발하는 듯한 빛이 진우란의 몸을 향해 쏘아지고,

팡!

진우란은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경악하며 뒤로 날아갔다.

둥󰠏󰠏󰠏󰠏󰠏󰠏!

북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임보산이 발출한 힘을 진우란은 가까스로 지멸고로 막았던 것이다.

임보산이 상체를 휘청했다.

무형의 기운을 빨아들여 반탄시키는 힘을 가진 지멸고에서 반탄되어 나온 힘이 그를 밀어젓힌 때문이다.

지멸고‥‥‥

섬전사‥‥‥

이 두가지 모두 고금십대천병 중에 속하는 것들이다.

한데,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고금십대천병의 두가지를 맞아서도 간단하게 물리쳐버린 임보산의 신위.

그것은 그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십 여 장을 날아간 진우란은 가까스로 땅에 내려섰다.

그녀의 얼굴은 경악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임보산이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명이 길군. 그것도 이제 끝이겠지만‥‥‥]

진우란은 자신을 향해 방향을 잡는 임보산의 손끝을 보면서 화석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보산같은 자가 지멸고를 다시 사용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번쩍!

그녀를 폭발시켜 버릴 것같은 빛이 몰려왔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말았다.

팡!

지멸고가 신주독존공을 빨아들여 반탄시키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은 충격을 받고 두 발로 땅바닥에 금을 그으면서 십여장이나 밀려났다.

한데,

바로 그순간,

임보산의 손에서 두번째의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빛은 반탄되어 오는 힘의 방향을 되돌리며 더욱 강한 힘으로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지멸고로는 막을 수 없다!)

진우란은 죽음을 눈앞에 떠올렸다.

지멸고는 강한 힘을 한번 발휘한 후에는 잠시 지나서야 다시 위력을 발위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우란의 머리속에 황군성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그순간이었다.

그녀의 앞에서 측량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서로 맞부딪히는 것을 느낀 것은‥‥‥.

 

파파파파팍󰠏󰠏󰠏󰠏󰠏󰠏!

 

엄청난 충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쥐죽은 듯한 고요가 찾아왔다.

진우란은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에 커다란 사람의 등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음‥‥‥신주독존공에 맞설 수 있는 무공이 있다니 놀라운 걸. 네가 바로 황군성인가?]

임보산이 경악을 억누르며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타난 사람은 황군성이었다.

그는 동굴을 나와서 달려오다가 진우란의 위기를 발견하고 끼어든 것이다.

황군성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진우란을 죽이려고 한 자라고 만 생각할 따름이었다.

한데,

임보산이 자신을 보자마자 알아보는 듯하니 어느 정도 놀랐다.

또한,

자기는 불과 몇 각 전에 목계신공을 중심으로 자신의 무공을 모두 재편성했는데,

동굴을 나오자 마자 전력을 다한 목계신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사람을 만나자 그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의 분노만큼 크지는 않았다.

폐허로 변해버린 어부의 집,

한쪽에 쓰러져 있는 육천태‥‥‥

황군성은 임보산의 물음에 대답할 게재가 아니었다.

가슴속을 태워버릴 것같은 분노를 물같이 고요하게 조절하면서,

상대를 향한 불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서는 어떤 기도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한조각의 생명없는 돌이나 같았다.

임보산의 놀라움은 상당했다.

자신이 찾아다니던 황군성으로 보이는 청년의 무공이 자신에 비해 그다지 쳐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가 보기에 황군성은 어떤 강렬한 패기를 물처럼 잔잔한 가운데 숨기고 있었다.

임보산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의 일생일대의 최고 적수를 만났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하늘의 중앙을 가리켰다.

그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신중했다.

또한 황군성의 표정도 마치 깎아놓은 목상처럼 변화가 없다.

어떤 기운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그들의 주변에는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이 힘이 형성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지는 듯했다.

진우란은 도저히 황군성의 뒤에 서있을 수가 없어서 비척비척물러섰다.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의 질식할 듯한 고요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황군성의 어깨에 매달린 사척반의 장검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황군성은 자신의 힘이 점점 정점을 향해 상승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러한 힘은,

최고에 달했다가 다시 하강하게 될 것이다.

공격의 시점은 최고에 달한 바로 그 순간이다.

그때 비록 상대방 역시 최고에 달했다고 하더라도 놓칠 수 없다.

한번 실기(失機)하면 다시 힘을 최고로 모으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든다.

공격해야 할 때 공격하지 못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힘이 논리인 것이다.

황군성에게 느낌이 왔다.

(지금이다!)

그의 양손이 임보산을 향해 펼쳐졌다.

번쩍!

임보산의 눈에서 뇌전같은 빛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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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玄玄宮

 

 

 

미청년,

아니 미소녀 전연옥은 부덜부덜떨리는 몸으로 힘겹게 숲속을 헤맸다.

한데,

분명히 떨어져 있어야 할 황군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누가‥‥‥구해갔단 말인가‥‥‥?]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몸을 이끌고 몇 번이나 주위를 살폈는데도 황군우는 감쪽같이 종적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땅에 떨어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으‥‥‥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놈의 공력은 기이하기 짝이 없어.]

전연옥은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도 견딜 수가 없어 나무의 밑동에 바싹 다가앉았다.

나뭇잎이 어느 정도 비를 막아주기는 하나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밖으로는 한없이 춥고 안으로는 불이 치미는 것같은 괴이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황군우의 음양합일신공을 정면으로 맞받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전연옥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으로 한기와 열기를 몰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악하고 말았다.

(이런‥‥‥어느 것도 몰아낼 수 없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땀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그녀의 전신은 한기로 인해 부들부들떨고 있는데,

그녀의 내공을 모두 일으켜도 한기와 열기를 몰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한기를 몰아내려고 하면 열기가 강해진다‥‥‥열기를 몰아내려면 한기가 강해진다.)

닥닥닥‥‥‥닥닥‥‥‥

그녀는 이빨을 마주치며 떨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이 추운지 더운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오직 전신이 못견디게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가부좌를 튼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 처럼 떨린다.

어느 한 순간,

[으아아아‥‥‥!]

도저히 고통을 참지못하고 그녀는 미친듯이 소리치며 빗물속을 뒹굴었다.

쏴아아아‥‥‥!

어둠이 젖어든 가운데도 비는 하릴없이 오는데,

그녀는 숲속을 미친듯이 뒹굴며 소리친다.

[으아아아‥‥‥!]

흙과‥‥‥

그녀가 뒹굴면서 흘린 피와‥‥‥

회색털가죽옷이 범벅이 되어서 그녀는 도저히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 였다.

 

고통의 시간이 흘러간지 얼마나 되었을까?

전연옥은 솜뭉치마냥 늘어진 몸으로 실눈을 떴다.

하늘에는 구름이 벗겨지고 별만 총총했다.

비는 언제 그쳤는지도 알 수 없다.

[내 몸이 어떻게 됐을까‥‥‥?]

힘없이 중얼거린 그녀는 진기를 일주천 시켜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틀렸다. 기경팔맥 중에서 음교맥과 양유맥의 두 혈도가 굳어져 버렸다. 내공이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음교맥과 양유맥은 임맥이나 독맥만큼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이 굳어졌다면 무공에있어서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음양합일신공은 그 두개의 맥에 나누어 잠복하고 있었다.

전연옥이 이나마도 견딜 수 있는 것은 황군우의 음양합일신공이 겨우 이성정도의 수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의 음양합일신공이 삼성수준만 됐어도,

두 사람의 격돌에서 피를 뿜고 날아갔을 사람은 바로 전연옥이었다.

전연옥은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악물었다.

[황가놈들‥‥‥번번이 내게 좌절만을 안겨주다니‥‥‥]

그녀는 비칠비칠 어두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날은 달이 새로 나오는 초이틀이었다.

앞으로 그녀는 매달 이날이 다가오면 미친 듯한 고통을 겪게 되는데‥‥‥

 

× × ×

 

휘이익!

암천을 한줄기의 유성을 방불케하는 그림자가 날아갔다.

휘이이익!

그림자는 무서운 속도로 산을 넘고 내를 건너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겨드랑이에는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청년이 매달려 있었다

 

× × ×

 

[여기가 어디요?]

황군우는 가뿐해진 몸을 일으키며 약을 가지고 온 시녀에게 물었다.

녹색 옷을 곱게 차려입은 시녀는 그에게 날아갈 듯 절을 하고는 나가버렸다.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침상과 가구들은 모두 자단목으로 만든 최상의 것들이다.

황금빛 비단 이불은 그의 몸에 상쾌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같고,

창으로 들어오는 맑은 새소리와 꽃향기는 정신을 그윽하게 해준다.

천정마저도 뛰어난 장인의 솜씨로 장식되어있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방이다.

황군우는 어떻게 해서 자기가 여기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자와의 결투에서 패했는데‥‥‥)

그는 전연옥과의 결투를 잠시 떠올려 본 후 공력을 모아보았다.

기력은 넘칠 듯이 충만해 있었다.

오히려 부상을 입기전보다 나았다.

머리맡에는 한서여의선이 가지련히 접혀 놓여있다.

황군우는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누워 있는 것은 마음이 불안해서도 못 견딜 일이었다.

바로 그때,

황군우는 자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서 오고 있는 두 사람의 발소리를 들었다.

[…………?]

가벼운 걸음으로 보아 여인들인 것같았다.

한데,

[소협! 정신이 드셨소?]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황군우는 일어서며 포권을 취했다.

들어선 사람은 과연 노인과 두 시녀였다.

[저는 화산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어떻게 하여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노인은 훤칠한 키에 백발을 드리우고 수염을 짧게 깎아 구렛나루 처럼 하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협을 구해온 사람이 있으니 직접 물어보시구려.]

노인은 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혼(大魂)! 내려와 인사하게!]

순간,

스스슷!

노인의 뒤쪽으로 흑의를 걸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냉막한 인상의 삼십대 장한이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가 싶을 정도였다.

대혼이라 불린 장한이 말했다.

[화산을 지나던 중, 격투소리를 듣고 달려갔다가 날아오른 소협을 구하게 됐소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노인이 소매를 휙 저었다.

그러자 대혼은 소매에 날려가기라도 하는 듯이 문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소생 황군우,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황군우는 다시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허허허허‥‥‥]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감사할 것없네. 황소협을 구해온 것은 대혼이고 상처는 소협혼자서 치료했네. 정말 무섭도록 놀라운 치유력이었지.]

황군우는 음양합일신공을 이룬 후에 스스로 몸을 치유하는 능력마저 급격히 발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곳은‥‥‥?]

[여긴 내 궁(宮)일세.]

노인은 간단히 말했다.

[한데, 황소협의 무공은 청년으로서는 다툴자가 없을 것같은 데 대체 사문이 어디인가? 노부는 한번도 무림에 황소협같은 젊은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네.]

노인은 친근감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황군우는 문성무존의 가족이다.

그러나 문성무존이란 말은 입 밖에 내어서는 안돼는 것,

그는 적당히 얼버무려 버렸다.

[가전(家傳)의 무공을 몇 수 익혔을 뿐입니다.]

노인의 눈에 기이한 빛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밝히기 곤란하다면 굳이 물을 생각은 없네, 이곳을 자네 집처럼 여기고 오늘은 푹 쉬도록 하게. 그리고 내일 보게나.]

스슷!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황군우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황군우는 대경실색했다.

[대체 무슨 신법이기에 이처럼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시녀들이 미소를 지어보인 후에 밖으로 사라졌다.

 

× × ×

 

노인이 뒷짐을 지고 정원을 거닐면서 중얼거렸다.

[대혼, 네가 보기엔 어떤가?]

[…………]

그의 근처에는 대혼은 커녕 소혼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노인은 허깨비 씌인 것처럼 계속 주절거렸다.

[지탄없이 말해봐라. 판단은 내가 할 뿐이니까.]

문득,

나직막한, 그리고 냉혹한 음성이 공간의 한 자락에서 들려왔다.

[그는 강했습니다. 소인이 그와 괴청년의 결투를 지켜본 바, 소인으로서는 그들의 삼초지적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것 같아. 특이한 신공을 익혔더군. 대혼!]

[말씀하십시오.]

[네가 반대하지 않겠다면 그로 정하고 싶다.]

[대혼은 주인님의 종일 뿐입니다. 오직 따르기만 하겠습니다.]

노인의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이 떠올랐다.

노인에게 있어서 대혼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 × ×

 

[여기가 제일 핵심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지.]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군우는 눈앞에 있는 검은 철문을 보았다.

이곳은 지하 삼십 장 정도의 깊이에 있는 공동(空洞)이다.

노인은 이곳을 다듬고 정비하여 하나의 별세계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다른 세계와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곳,

결코 어둡지도 않았다.

높은 천정의 위에서는 푸른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연못같은 것인 듯 한데,

빛이 돋보기 처럼 모였다가 지하공동 전체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어떻게 연못의 물이 밑으로 쏟아지지 않게 건축할 수 있었을까?

정말 세상에 보기드문 장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갖가지 나무들도 자라고 있다.

또한 새들과 짐승들도 뛰어다닌다.

한마디로 바깥 세상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노인은 검은 철문으로 다가가 기묘한 각도로 일장을 가했다.

펑!

순간,

그그그긍!

철문이 뒤로 밀려가며 하나의 거대한 현판이 나타났다.

 

<현현궁(玄玄宮)>

 

[현현궁!]

황군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도 무림에 나온 후에 일곱개의 세력에 대한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노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인자스러운 얼굴‥‥‥

친밀감이 느껴지는 온화한 웃음‥‥‥

(현현궁은 강호에 야심을 품고 있다고 들었는데‥‥‥)

황군우는 혼란스러웠다.

노인이 손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잘봐두게!]

슈슝!

그의 손바닥에서 세줄기의 기운이 뻗어나왔다.

그 기운은 <玄玄宮>이라는 글자의 제일 위의 획을 동시에 찍었다.

순간,

그릉!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판은 뒤로 넘어가고,

넘어가서는 다시 뒤집어졌다.

그리고 빙글 각도를 바꾸어 하나의 교각처럼 변해버리는 것이아닌가?

노인이 말했다.

[세개의 획을 각기 구백구십아홉 근의 힘으로 동시에 눌러야만 하네, 그렇지 않으면 오직 죽음의 기관을 발동시키는 것일 뿐이지.]

그는 교각으로 먼저 발을 딛었다.

황군우는 움직이지 않고 노인을 불렀다.

[노야(老爺)! 노야께서는 대체 누구십니까?]

노인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황군우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며 물었다.

[자네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현현궁의 궁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황군우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네. 노부는 현현궁의 궁주이지. 아마도 궁금한게 많을 것이나 들어가서 모든 것을 말해 주겠네.]

황군우는 고개를 완강하게 저었다.

[아닙니다. 여기서 대답해주십시오. 먼저 제게 이런 대접을 해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야의 비밀을 엿본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번쩍!

노인의 눈이 폭발하듯 광채를 뿜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미리 말해주지. 자네에게 두가지의 길을 주기 위해서지.]

[…………]

[노부는 제자들은 있어도 후계자는 없네. 나는 자네가 후계자로는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하네. 그것이 첫번째 길이네.]

황군우가 말을 이었다.

[두번째 길은 그럼 죽음이겠군요. 이미 노야의 비밀을 거의 다 보았으니까요.]

[역시 총명하군!]

노인은 자신의 뜻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이것을 쓰도록 하게!]

노인은 품속에서 두장의 인피면구를 꺼냈다.

똑같은 모습의 창백한 중년인의 얼굴이었다.

황군우는 인피면구를 쓰고나서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이미 노인이 아닌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 되어있었다.

(내 모습도 저렇겠지‥‥‥)

황군우와 노인은 마치 쌍둥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다시 품에서 검은 복면을 꺼내 황군우에게 주었다.

황군우는 두말 않고 받아서 인피면구위에 복면을 썼다.

[괜찮은 모습이군!]

노인은 등을 보이고 앞서서 교각을 건너갔다.

황군우는 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계자라면 정중히 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뭔가 이상한 데가 있다. 현현궁주‥‥‥ 좋다! 노야는 노야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그 안에서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오.)

그는 얼굴을 풀고 씽긋 웃음을 지은 후에 교각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완전한 현현궁이었다.

흰 대리석으로 건설된 지하의 궁전,

한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일백 명 정도의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현궁의 궁주인 노인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절했다.

 

제자들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모두 현현궁주의 제자들이자 진실한 현현궁의 힘인 것이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해 보이고는 높은 단상에 놓여진 태사의로 올라갔다.

[따라오게!]

황군우는 노인의 뒤를 따라 올라가 태사의 옆에 섰다.

스스스슷!

대전의 양쪽으로 남녀 제자들이 편을 나누어 일열로 도열했다.

마치 황제앞에 늘어선 만조백관들 같았다.

그들이 서는 위치도 정해져 있는 것같다.

한데,

황군우는 두군데의 빈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각기 양쪽 열에서 열 세번째에 위치하는 자리였다.

그의 눈빛을 읽었는지 현현궁주가 말했다.

[그 자리들은 두 배신자의 자리지. 언젠가 잡아와서 저 자리에 평생토록 서있게 만들 생각이네.]

현현궁주의 음성은 담담했다.

배신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지가 않았다.

하지만 황군우는 그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할 수 있는 노인이야 말로 진정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인이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부는 오늘 현현궁의 궁주자리를 후계자에게 양위하기로 결정했다!!]

들어올 때부터,

황군우를 수상스런 눈초리로 보았던 현현궁의 제자들이었다.

한데,

궁주의 갑작스런 양위발표가 뒤따르자 그들은 적의의 눈초리로 황군우를 노려보았다.

그들 중의 일부는 살기마저 띠고 있었다.

황군우도 대강 예상은 했지만 노인의 갑작스런 발표에 저으기 당황했다.

황군우를 가리키며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제 이대 현현궁주는 바로 이 사람이다! 만일.]

[…………]

[…………]

[내 뜻에 수긍이 가지 않은 자가 있다면 제 이대 궁주를 무공으로 꺾어라. 그렇다면 그가 삼대 궁주다.]

노인의 말은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강한자가 궁주가 된다.

누구든지 궁주를 꺾어라!

노인은 계속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고 황군우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이다.

(현현궁은 칠대세력의 처음에 거론되는 강한 힘을 가진 곳‥‥‥어차피 무림이란 강자의 세계가 아닌가? 아버님도 우리의 강호행을 허락하셨는데‥‥‥)

그는 자신의 입지가 어떤지 떠올랐다.

문성무존의 차대 주인은 그의 형 황군성이 될 것이다.

황군우로서는 무림에 남기를 원한다.

그도 젊은 사람,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강한 야망이 있었다.

마침내 황군우는 결심했다.

(좋다. 노야의 호의는 결코 호의가 아니다. 나를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야를 이용하겠다. 세력따위는 내가 절대강자가 될 때까지만 필요한 것일 뿐이다. 수락하자!!)

그는 지체없이 복면을 벗어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노인이 복면을 했다.

이것으로 현현궁주의 지위는 양위된 것이다.

황군우의 전신에서 태산을 압도할 것같은 기도가 일어났다.

그는 허공으로 구름처럼 떠올라 천천히 단상아래에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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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九門提督 夏厚勝

 

 

 

태산,

관일봉에서 이십여리 정도 떨어진 맞물린 듯붙어있는 두개의 절벽사이,

귀신도 모를 것같이 교묘하게 자리잡은 서천복지(西天福地)같은 곳이있다.

원래 붙어 있던 절벽의 가운데가 함몰되면서 만들어진 이곳,

병풍같은 암벽으로 둘러싸여 아름답기 그지 않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계곡에 치밀하게 짜여진 수로를 감돌아 흐르고,

어디선가 은은하게 소음(簫音)이 흐른다.

그리고 곡구에 맑은 거울처럼 펼쳐져있는 아담한 호수‥‥‥

이곳은 어디인가?

바로 문성무존이 자리잡고 있는 소음곡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한데,

휘이이이‥‥‥

놀랍게도 까마득한 절벽으로부터 한사람 표표히 옷깃을 날리며 뒷짐을 진 채 날아 내리고 있었다.

쉬이이이‥‥‥

빠르게 떨어져 내리던 그는 완전히 역학의 원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떨어질 수록 점점 빨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오히려 그는 점점 느려지더니 문성무존의 정문앞에 내려설 때에는 마치 계단을 밟고 내려서는 듯 아무 기척도 없었다.

태연히 문성무존의 열려진 문으로 걸어가는 중년인(中年人),

바로 황창설이었다.

그는 수로옆의 길을 걸어서 점점 내원으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황창설이 내려온 소음곡의 절벽 위에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천년거목인양 한사람이 우뚝 서있었다.

얼굴은 흉칙한 악마의 가면을 뒤집어썼으며,

어깨에는 흰피풍이 바람에 날린다.

손에는 검은 장갑‥‥‥

전신에서 너울너울 피어나는 악마의 사악한 기운‥‥‥

그가 나타나고 부터는 태양이 빛을 잃어버렸다.

그가 나타나고 부터는 사위가 숨을 죽여버렸다.

드러난 피부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백색으로 투영되는 유리알같은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그 눈‥‥‥

죽음과 공포와 영혼을 탈색시키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악마탈의 벌려진 입에는 붉은 송곳니가 슝슝하고‥‥‥

마침내 심장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섬찟한 웃음소리가 악마탈 뒤에서 흘러나왔다.

[흐흐흐흐‥‥‥드디어 찾았구나‥‥‥황창설‥‥‥흐흐흐흐‥‥‥네 심장의 더운 피를 맛보겠다‥‥‥흐흐흐‥‥‥으하하하하하‥‥‥]

끔찍한 말 뒤로 하늘과 땅을 마기로 가득채울 듯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이미 까마득히 먼 허공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악마탈을 쓴 자는 이미 허공에서 조차 한점으로만 남았다.

누군가가 소음곡을 발견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는 채,

소음곡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이고 있었다.

 

× × ×

 

북경(北京),

원조(元祖)에서는 세계를 다스리던 대도(大都)였으며‥‥‥

명대에 들어와서는 연경으로 호칭되었던 곳,

그리고 연왕이 등극한 후에 다시 명의 수도가 되어 북경이 된 곳,

구중궁궐 자금성(紫禁城)이 자리잡고 있는 앞쪽으로 주작대로가 길게 뻗어있고,

한적한 주택가에는 고관대작들의 고대광실같은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저택들 중의 하나‥‥‥

문전에는 마치 왕부나 되듯이 중무장을 한 무사들이 늘어서 있고,

두 명씩 짝을 지어 저택을 빙빙 돌며 순시를 하는 이곳,

 

<구문제독부(九門提督府)>

 

대명의 병권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다는 구문제독 하후승(夏厚勝)의 제독부인 것이다.

하후승‥‥‥

그의 권력은 당금에 이르러 조정의 삼인자라고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을 만치 강하다.

첫째는 당연히 황제이고 둘째는 영왕‥‥‥

그리고 세번째가 하후승인 것이니‥‥‥

경도의 백성들이 제독부 앞을 지날 때는 뒷꿈치를 들고 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도화원(桃花園)

제독부의 뒤쪽 가산곁에 마련된 도화원은 삼백여 그루의 복숭아가 심겨져있다.

지금이 성하(盛夏)이니 풍만한 여인의 가슴만큼이나 큰 복숭아들이 싱그러운 향기를 발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매달려 있다.

이곳 도화원은 제독 하후승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인데‥‥‥

복숭아나무들 사이에 큰 태사의를 갖다놓고 전라의 중년인이 비스듬히 기대앉아있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오히려 즐기는 듯,

그는 전신을 태양에 골고루 비추기 위에 몸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중년인‥‥‥

한눈에도 천하 영웅의 우두머리와 만군을 통솔하는 대장군으로 보이지 않는가?

황제일지라도 벌거벗은 몸으로는 위엄을 내비치지 못할 터인데,

중년인은 느긋하게 기대어있으면서도 사방을 압도하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

짙은 눈썹‥‥‥

백수의 왕 호랑이를 방불케하는 호안(虎眼)‥‥‥

크고 각진 얼굴‥‥‥

군살하나 붙지 않은 탄탄한 청년같은 몸‥‥‥

이 사람이 구문제독 하후승이다.

이십여년 간을 권력의 핵심부에서 살아온‥‥‥

 

하후승이 손바닥으로 태사의의 한쪽을 두드렸다.

탁탁!

그러자,

잠시 후에 사박사박 풀잎을 밟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덮개가 있는 쟁반을 바쳐든 궁장 여인이 나타났다.

궁장여인‥‥‥

황제의 후궁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같다.

전신에 폭발할 듯한 염기(艶氣)와 더불어 형언할 수 없는 기품을 갖추고,

터질 듯한 풍만한 몸매를 화려한 궁장으로 감싸고 있었다.

사라락!

궁장여인은 하후승의 앞에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접시를 내밀었다.

접시의 덮개를 열자 달콤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작은 찻잔에 황금색 꿀물이 있고,

그 위에 두덩이의 얼음이 동동 떠있었다.

하후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궁장여인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 접시를 한쪽에 내려놓은 후에 일어섰다.

한데,

그녀는 갑자기 하후승의 입으로 자기의 입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두개의 입술이 맞닿고,

궁장여인은 무너지듯 하후승에게 안겼다.

달콤한 꿀물이 궁장여인의 입에서 하후승의 입으로 넘어갔다.

하후승은 그녀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넣은 남아있는 꿀과 그녀의 타액을 함께 빨아들였다.

궁장여인의 입속엔 침이 그득한 상태였다.

젊은 여인의 타액을 옥장( )이라고 한다.

고대 도가에서 부터 여인의 침과 분비물을 장생불노의 영약으로 여겨왔다는 것은 늘리 알려진 일이다.

하후승은 꿀로서 여인의 타액을 촉진하여 그마저 빨아들인 것이다.

그들의 입맞춤(?)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여린 살과 살이 맞주치는 소리가 들리고,

궁장여인은 하후승의 품에서 비비 몸을 꼬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남녀의 접촉은 무언가 다른 것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미 하후승의 벌거벗은 몸도 어느 한곳이 경직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후승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두 눈이 마주치고, 이내 배가 맞아야 되는 것은 정한 이치일까?

찰랑찰랑!

궁장여인은 하후승의 품에서 벗어나며 장식하고 있던 패옥을 떼어내고,

요대를 풀었다.

그리고,

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자신의 옷을 벗어버렸다.

눈부신 태양아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백옥같은 나신이 복숭아들 사이에 섰다.

그녀의 가슴에는 복숭아가 얼굴을 숨길 정도로 풍만하고 탄실탄실한 두 유방이 출렁일듯하고,

우유가 엉긴 듯한 살결을 따라 내려와 모든 남성을 색의 포로로 잡아버릴 여인의 앙증맞은 배꼽과‥‥‥

그 아래로 희디흰 피부와 완전히 대조되는 검은 숲이 있었다.

그녀는 하후승의 앞으로 걸어갔다.

하후승은 그녀의 두 다리 사이로 풀밭을 보고 있었다.

묘한 대비였다.

흰 다리, 검은 숲‥‥‥

그리고 싱그러운 녹색의 풀들‥‥‥

하후승은 몸을 바르게 했다.

그의 두 다리 사이에서 구문제독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웅장한 물건이 하늘을 거역할 듯 치솟아 있었다.

다가온 여인은 무릎을 꿇고 먼저 그 장대한 물건에 입을 맞춰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두 다리로 하후승의 다리를 슬슬 비비며 자신의 몸을 하후승의 상체에 밀착시켰다.

하후승의 코앞으로 풍만한 두 유방이 다가왔다.

하후승은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부신 태양이 그의 눈을 찡그리게 했다.

여인은 하후승의 전신을 스다듬으며 태사의의 팔걸이위로 올라왔다.

양쪽의 팔걸이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그녀는 한손으로 자기의 유방을 잡고 하후승의 입으로 유두를 들이밀었다.

[하아하]

여인은 벌써부터 신음을 뱉기 시작했다.

달콤한 향기가 하후승의 코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마도 꿀냄새가 아직 남았으리라.

미동도 하지 않는 하후승의 몸을 입술로 핥고 유방으로 문지러던 그녀는 둔부를 원을 그리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둔부의 아래에는 하후승의 그것이 가까스로 닿아있었다.

그녀는 입을 기묘하게 벌리며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하후승의 그것에 마찰시켰다.

하후승의 것이 더욱 우람해졌다.

그러나 하후승은 움직일 줄 몰랐다.

여인은 자신의 몸안이 충분히 젖자 몸을 뒤로 젓혔다.

그리고 두 팔로 태사의 팔걸이의 끝을 잡았다.

묘한 자세로 여인은 한쪽 다리를 하후승의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이내 하나 남은 다리마저 걸치고 둔부를 낮추었다.

순간!

[!]

여인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체중에 의해 하후승의 그것에 의해 꼬치꿰이듯이 꿰인 것이다.

[‥‥‥너무 커요‥‥‥]

그러나 그녀는 다시 둔부를 들어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낮추며 원을 그리듯 돌렸다.

[‥‥‥‥‥‥‥‥‥]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각종의 신음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그녀는 바야흐로 절정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하후승의 목석같던 눈빛이 붉게 충혈되었다.

[!]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하늘이 거꾸로 보이는 것을 느껴야 했다.

하후승이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다.

[! 너무 아파요.]

그녀의 배에는 무엇인가가 튀어나올듯 불룩했다.

하후승의 물건이 갑자기 꺽여진 각도에 적응하지못한 것이다.

하나,

하후승은 여인의 비명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두손이 여인의 둔부를 우악스럽게 싸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악악! ‥‥‥‥‥‥악악!]

여인의 눈이 하얗게 되면서 그의 움직임에 따라 비명을 질러댔다.

여인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이 하후승의 얼굴을 찼어도 발이 머리에 닿을 듯 내려왔어도.

하후승의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아악‥‥‥]

여인은 마침내 실신하고 말았다.

하후승은 그리고 그녀의 몸을 팽개치던 던졌다.

실신한 그녀의 몸은 풀밭을 굴러 사지를 쫙 벌리고 드러누웠고,

하후승의 입에서는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흐‥‥‥황제가 데리고 놀던 계집이라서 그런지 맛이 다르군. 이것으로 나와 황제가 네 번째로 구멍동서가 된 건가?]

황제?

그럼 그 여인이 황제의 후궁 중의 하나란 말인가?

한데 벌써 네번째라니‥‥‥

가경할 일이다.

여인은 정신이 조금 돌아왔지만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 옆에 선 하후승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전신으로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짝짝!

두번의 손뼉소리가 들리자 어디선가 네 사람의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태사의를 받쳐들고와 하후승을 태우고 복숭아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슥스슷!

파김치가 되어 엎드려 있는 여인의 눈앞에 여러개의 발들이 나타났다.

불길한 예감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건장한 청년 다섯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여색에 미친 색광의 그것이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우악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후승에게서 치뤘던 것과 거의 같은 절차를 거듭 일곱 번이나 치루어야 했다.

소라면 모를까?

사람인 그녀가 배겨낼 도리가 없다.

마침내 여인은 명줄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전례에 따라 그녀의 몸뚱이는 열매가 부실한 도화나무 아래에 묻히고 말았다.

아마도 내년에는 그녀의 살과 뼈가 복숭아로 변할 것이다.

 

× × ×

 

제독부의 가산(假山) 안에는 세상사람들이 기절초풍할 것이 들어있었다.

자금성을 축소시켜 만들어 놓은 듯한 시설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한데,

황제가 앉아야 할 용상에는 구문제독 하후승이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용상 아래의 바닥에는 두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염려할 것없다. 검신과 도신은 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은 다시 내 명을 듣게 될 것이다.]

하후승은 느긋하게 말했다.

[정작 너희들이 할 것은 천하의 강자들을 어떻게 소음곡으로 몰아넣느냐 하는 것이다. 후후후후‥‥‥]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외쳤다.

[으하하하하‥‥‥]

하후승은 경천동지할 웃음을 터뜨렸고,

그의 눈은 동자가 사라지며 하얀 유리알 처럼 변해버렸다.

소음곡 위에 나타났던 악마탈의 사나이‥‥‥

바로 하후승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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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落日劍의 出現

 

 

 

쏴아아아!

콰아아아!

하늘이 문득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여름 날씨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뒷짐을 쥐고 여유있는 자세로 산을 올라가던 서생(書生)이 소나기에 저으기 당황했는가 보다.

촤악!

섭선을 펼쳐 머리를 가리고 나무 밑으로 피했다.

바로 그순간,

번쩍󰠏󰠏󰠏󰠏󰠏󰠏!

꽈르르르󰠏󰠏󰠏󰠏󰠏󰠏꽝!

벼락이 그가 숨어들었던 나무로 떨어졌다.

[차앗!]

나약해 보이기까지 한던 서생은 놀랍게도 쓰러지는 나무를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번쩍!

번개의 그의 등 뒤에서 길개 허공을 찢고 지나갔다.

서생의 몸은 제비처럼 허공을 스치듯이 맴돌며 높이 솟은 벼랑 밑으로 내려섰다.

놀라운 경신술이었다.

[나참 이게 무슨 꼴이람! 하마터면 숯덩어리가 될번 했잖아.]

서생은 섭선을 접어 옷자락을 툭툭 털며 투덜거렸다.

쏴아아아󰠏󰠏󰠏󰠏󰠏󰠏!

비속에서 중얼거리는 그는 영락없이 비맞은 중이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그는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벼랑의 한쪽에서 연기가 낮게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휙!

서생은 제법 큼직한 동굴앞에 내려섰다.

연기는 그곳으로 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또한 침이 넘어가게하는 구수한 고기냄새도 흘러나왔다.

서생은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그때,

휘리리릭!

동굴 안의 모닥불 쪽에서 작은 물체가 나선형으로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촤락!

그는 섭선을 펼쳐 한번 밀었다 당기는 시늉을 했다.

날아들던 물체가 그의 섭선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서생이 안쪽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소생은 황군우라고 하오. 초면에 인사 잘 받았소이다.]

[솜씨가 제법이군!]

맑으면서도 한기가 서린 음성이 들려왔다.

침침한 동굴 속에서 밝게 빛나는 모닥불,

그곳에는 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이 고기를 구운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황군우가 섭선으로 받았던 것도 꿩의 뼛조각이었던 것이다.

한데,

등을 보이고 있는 그 사람,

묶지도 않은 머리는 등을 거의 다 덮고 있었다.

또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전신을 회색털가죽으로 감싸고 있었다.

(참 괴상한 사람이군. 머리만 언듯 보아서는 형님으로 착각하기 꼭 알맞겠군. 몸집은 작지만‥‥‥)

황군우는 목소리로 짐작해 보아 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가가며 말했다.

[주인이 있는 줄은 몰랐소. 잠시 피를 피한 후에 곧 떠나겠소.]

회색 털옷을 입은 사람은 아무 대답도 없이 닭만 뜯고 있었다.

쩝쩝󰠏󰠏󰠏󰠏!

꼬로록!

황군우의 배속에서 밥벌레가 요동을 쳤다.

지금은 오후도 늦은 시간,

이때까지 그는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 갔으나 체면이 있지 구걸은 죽어도 못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객을 홀대하는 주인을 원망하고 있었다.

(야박하군. 야만인이 따로 없어. 그 좀 나눠주면 어디 덧나나?)

쏴아아아!

야박하기는 날씨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나가버렸으면 좋겠는데 비는 억수같이 쏟아진다.

불쪽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힐끗 보다가 밖을 보다가 하던 그는 체념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섭선을 사이에 끼고 합장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요 며칠 사이에 크게 성과를 올린 음양을 겸비한 내공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한서여의선(寒曙如意扇),

음양의 이기(二氣)를 간직하고 있는 세상에 다시 없는 보물이었다.

(형님이 전수해주신 빙백강기는 아주 유용한 것이다. 하지만‥‥‥한서여의선으로 음양합일신공을 이루는 데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는 황군성을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음양합일신공(陰陽合一神功)‥‥‥그것의 비밀은 바로 한서여의선 자체였다. 쌍장으로 동시에 한서여의선으로 부터 기운을 받아들여 내 몸을 통해서 서로 교류하게 한 후에 세개의 단전(丹田)에 나누어 저장한다면‥‥‥)

세개의 단전‥‥‥

배꼽아래 한치 부근의 하단전과 가슴가운데의 전중혈과 눈썹사이의 미심혈을 말하는 것이다.

한데,

한서여의선의 비밀은 바로 그 부채 자체였으니,

음양합일의 신공이 있어야만 부채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부채가 음양합일의 신공을 이루도록 도와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한서여의선의 한쪽은 천산한옥이고,

다른 한쪽은 만년온옥을 다듬어 가히 신의 솜씨라고 할 만큼 뛰어난 솜씨로 만들었다.

천산한옥이 있는 쪽이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만년온옥이 있는 쪽이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황군우의 양쪽 장심(掌心)을 통해서 두가지의 기운이 그의 체내로 섞여들어갔다.

두 기운의 힘은 완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의 몸속,

전중혈에서 만나자 마자 조화를 이루어 세배로 강해지면서 그의 하단전으로 내려가 갈무리 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몸 주변에는 기현상(奇現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그의 몸에서 반자 정도 떨어진 곳에 엷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뭉게뭉게‥‥‥

희미한 연무와 함께 서리는 점차 하나의 벽을 이루고 높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서리의 벽은 두께 두치 정도로 계란 껍질처럼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동굴 안으로 한기가 휘몰아쳤다.

서리는 점점 강하고 두껍게 되어가며 얼음이 되어버렸고,

회색털가죽을 입은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눈을 반짝이며 그 신비한 장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리는 완전한 결빙으로 파란 유리알처럼 변해버렸다.

한데,

놀라움이 이것이 시작이었다.

붉으스레한 주황색 광채가 황군우를 둘러싼 유리알 같은 벽을 뚫고 나와 한자쯤 되는 거리에서 또 하나의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의 빛도 여렸으나 점차 강해지며 뜨거운 화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쪽의 파란 유리벽같은 것은 전혀 녹아내리지 않았다.

주황색의 벽은 완전한 불의 벽이 되었다.

동굴의 안은 화기(火氣)로 가득차버렸다.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불이 얼음을 뚫고 나와 하나의 벽을 이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음은 조금도 녹지 않다니‥‥‥

회색털옷의 괴인은 눈도깜짝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두자정도 길이의 백색검(白色劍)이 놓여있었다.

한편,

황군우는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몰아지경에 빠져들어간 그는,

자신이 마침내 한서여의선의 기운을 전중으로 받아들여 조화시키고,

하단전에서 단련시킨 후,

미심혈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것으로 음양합일신공은 이루어졌고,

그 수위는 이성(二成) 정도로 직접 운용할 수 있게된 상태였다.

갑자기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불꽃과 얼음막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르르르‥‥‥

그것들이 점차 압축되면서 황군우의 몸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먼저,

불꽃의 벽과 얼음의 막이 부딪혔다.

쉬이이익!

얼음이 순식간에 증기로 변해 사라지고 불꽃도 사라졌다.

하지만,

얼음을 이루었던 빙기(氷氣)와,

불을 이루었던 화기(火氣)의 정화가 서로 합쳐지며 밝은 빛을 발산하고는 황군우의 전신으로 스며들어갔다.

황군우의 전신은 흠뻑젖어있었다.

그러나,

번쩍!

그는 어느때 보다 깨운한 심신의 상태로 눈을떴다.

그의 눈에서는 범접하지 못할 것같은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눈을 한번 깜짝거리자 그 신광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완전히 안으로 갈무리 된 것이다.

황군우는 축축히 젖은 자신의 몸을 느끼고는 한서여의선으로 살랑살랑 부치기 시작했다.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화한 바람이 일어나며 그의 옷을 금방 뾰송뾰송하게 말려버렸다.

황군우는 흠칫했다.

회색털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색털옷을 입은 사람‥‥‥

비록 차림새는 괴상했지만 얼굴은 오히려 황군우보다 뛰어난 미남이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어떤 서릿발같은 기상이 서려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갑자기 회색털옷의 사나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황군성‥‥‥황군우‥‥‥황군성‥‥‥황군우‥‥‥얼굴까지 닮았군.]

그는 눈알을 빛내면서 말했다.

[황군성! 그를 아시오?]

황군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자가 설마 형님을 잘 알고 있는 자란 말인가? 닮았다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분은 소생의 형님 되시오.]

괴인의 눈에서 살기가 번쩍였다.

[그랬군! 어쩐지 닮았다했어.]

그가 백색의 검을 집어들며 일어섰다.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황군우는 그가 황군성의 원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파파팟󰠏󰠏󰠏󰠏󰠏󰠏󰠏!

두 사람의 눈빛이 치열하게 얽혔다.

황군우도 천천히 일어섰다.

(결코‥‥‥내 아래가 아니다. 어쩌면 패할지도‥‥‥)

황군우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비록 방금 전에 음양합일신공을 터득했다고는 하지만 눈앞이 상대에게 자신할 수가 없었다.

뽑지도 않은 백색검집을 들고 서있는 미청년,

그에게서는 검의 제왕같은 기운이 풍겨나고 있었다.

황군우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미 기도에서 뒤지고 있었다.

상대방이 검을 뽑기만 하면 자신을 일검에 베어버리고 말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검처럼‥‥‥

방패처럼‥‥‥

가슴앞에 비스듬히 세운 한서여의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눈앞의 미청년은 그에게 어떤 공포를 던져주고 있었다.

쏴아아아󰠏󰠏󰠏󰠏󰠏󰠏!

소나기가 장마로 이어지는 것인가?

비는 해질 무렵인데도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황군우는 음양합일신공을 모두 끌어올려 한서여의선에 실었다.

그의 몸 주변에 푸르스름한 한겹의 강기막이 형성되었다.

(움직여야 한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단 일초에 승부를 걸어야‥‥‥)

[직도황룡(直刀黃龍)!]

황군우는 우렁차게 고함치며 한서여의선을 종(縱)으로 그었다.

직도황룡‥‥‥

강호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있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초식,

황군우는 직도황룡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알고있는 초식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음양합일신공을 펼쳐내기에는 적당치 않았던 것이다.

가장 간단한 것‥‥‥

어쩌면 그것은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번쩍!

한서여의선에서 발출된 한줄기 강기가 미청년의 몸을 쪼갤듯이 날아갔다.

미청년의 몸이 미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하나 바로 그 순간,

황군우는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드는 회색그림자를 볼 수있었다.

(죽음‥‥‥)

순간적으로 그는 죽음이란 말을 떠올렸다.

뽑지도 않은 백색의 검이 그의 목으로 환상처럼 다가왔다.

황군우는 이를 악물었다.

[으앗!]

마지막으로 전력을 쏟아 한서여의선을 쳐올렸다.

한데,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한서여의선에서 폭발하듯 강기가 뻗어나가며 회색그림자와 백색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쉬악! 싹!

강기가 동굴안을 휘몰아치는 순간,

반듯하게 잘려질 바위들이 떨어지면서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차압!]

황군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동굴밖으로 뛰쳐나갔다.

쏴아아아‥‥‥

컴컴한 중에 비는 솟아지고,

쿠쿵!

동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버렸다.

쏴아아아‥‥‥

황군우는 머리로 젖어드는 비와,

고비를 넘긴 후의 식은 땀을 소매로 씻어내렸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회색털옷의 미청년은 동굴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빙백강기의 수법을 음양합일신공으로 펼친 것이 주효했다. 무서운‥‥‥무공이었다.]

황군우는 미청년의 무시무시한 검법을 떠올리며 부르르 치를 떨었다.

세상에 그런 검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음양합일신공의 강기는 어떤 것이라도 벤다.

한데,

그 강기를 허깨비처럼 뚫고 환상처럼 미청년은 검법을 펼쳐 그의 목을 노렸다.

피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은 차단되어 있었다.

맞받아치는 외에는 어떤 수법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초식이었다.

황군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등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대체 그자가 누구였을까? 어떻게 형님과 원한을 맺었을까‥‥‥?]

불헌듯,

황군우는 이상한 느낌을 가지며 딱 멈춰서고 말았다.

그의 눈은 경악으로 크게 뜨졌다.

[황가는 그렇게 하나같이 다 무공이 고강한가?]

한기가 풀풀 날리는 차가운 음성이 그의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

상대의 검은 이미 자신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미청년이 자신의 뒤로 돌아와 검을 겨누고 있었는지 황군우는 알 수 없었다.

[황군성! 그자는 어디있는가?]

[…………]

미청년이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황군우의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배여나며 빗물에 씻겨내려갔다.

그러나.

황군우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없었다.

죽음따위는 초월한 듯 담담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독봉 임단심이라는 계집과 함께 싸돌아다니고 있겠지?]

황군우가 미청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누군지 나는 모르오. 또한 패했으니 죽이든 살리든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내 형님께 대해 그렇게 경박한 말을 쓰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오.]

미청년의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

[용서하지 못하면? 다시 싸워보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황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어느정도 확률을 점치고 있었다.

조금 전, 그는 빙백강기의 수법으로 음양합일신공을 펼쳐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가 아버지 황창설로 부터 전수받은 철인검을 써볼 차례인 것이다.

철인검은 내공이나 육체의 제약따위는 거의 받지 않는다.

한마디로 혈도가 제압된 상태에서도 펼칠 수 있는 정신력의 무공인 것이다.

심(心)을 단련하고 지(志)로써 심을 움직이는 철인검‥‥‥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무림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이길 수 없다.]

미청년이 오만하게 말했다.

한데,

그 오만이 황군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오만이라면 또한 황군우도 남에게 지지않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상대방의 승리를 일축해버렸다.

[괴상한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고서 마치 천하제일인처럼 행세하는 군!]

미청년의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

[좋다. 다시한번 기회를 준다. 이번에는 바로 죽여비리고 말겠다.]

[기회를 주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다.]

황군우는 상대방을 활활태워버릴 것같은 눈으로 응시하며 얼음같이 차갑게 내뱉었다.

미청년이 흔들하는 순간 이장밖으로 물러났다.

황군우를 다시 패배시키고 죽여버리려는 것이다.

하나,

착!

황군우는 그가 물러나는 순간에 한서여의선을 접었다.

그리고‥‥‥

[철인검!]

강철을 자르듯 단호한 외침과 함께 모아진 한서여의선으로 미청년을 찔러갔다.

번󰠏󰠏󰠏󰠏󰠏󰠏󰠏쩍!

미청년은 순간적으로 빗줄기 소리가 멎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자신의 모든 것마저 정지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정지해버린 시간속에,

황군우의 섭선이 그의 몸을 찔러오고 있었다.

미청년의 머리속으로 번개처럼 네 군데의 혈도가 떠올랐다.

(선기(旋機), 영허(靈墟), 주영(周榮), 태일(太一)‥‥‥)

그의 손에 들리워진 백색검이 흰무지개를 만들었다.

번쩍!

아!

진정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백색검의 끝이 불과 두자정도 이동했는데 흰무지개가 일어나며 황군우의 몸을 맞는 것이 아닌가?

카카카캉!

[우욱!]

한서여의선과 백색검이 맞부딪치고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황군우는 천지가 아득해짐을 느끼며 칠공으로 피를 뿜었다.

그의 몸은 튕겨져 숲속으로 날아갔다.

미청년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은 학질에 걸린 것처럼 덜덜 떨고있었다.

[가경하다‥‥‥왁!]

한덩어리의 피를 토해냈다.

[세상에‥‥‥고금십대천병의 서열 일위인‥‥‥낙일검(落日劍)에 필적할 수 있는 무공이 있다니‥‥‥]

울컥!

그는 다시 한덩어리의 피를 토해냈다.

한데,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서열 제일위의 낙일검이 출현했다.

그리고,

비속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얼굴‥‥‥

미청년은 바로 신검보의 무적십이검 중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였다.

아니 그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곳 화산의 절벽아래에서 기연을 얻었던 그녀‥‥‥

그녀가 황군우의 철인검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녀가 절벽 중간의 동굴에서 얻었던 심법때문이었으니.

그 심법이야 말로 상대의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나 전연옥(全燕玉)‥‥‥기필코 너를 죽여버리겠다.]

덜덜떠는 그녀의 몸으로 살기가 구름처럼 피어났다.

그녀는 황군우가 떨어진 숲속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과연 황군우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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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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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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