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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사년만의 出道

 

 

“으하하하!”

창룡(蒼龍)의 울부짖음인가?

천지를 뒤흔드는 우렁찬 장소가 북안탕을 뒤흔들었다.

휘―― 익!

돌연, 자욱한 신무애의 신무 속에서 한 줄기 인영이 폭사되어 날아 올랐다.

그 인영은 석벽을 따라 수직으로 날아 오르는데 그 빠르기가 전광같았다.

휘――르르!

삽시에, 그 인영은 신무애의 단애 위로 치솟아 까마득히 삼십 장 허공으로 치솟았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천하에 누가 이런 경공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염연히 그 인영은 절세의 경공으로 신무애를 날아 오른 것이다.

위―― 잉!

허공에서 멈칫 하던 그 인영은 방향을 틀어 단애 위로 떨어져 내렸다.

스스스!

마침내 그 인영은 단애 위로 내려섰다.

물론, 그 인영은 제연연을 등에 업은 적연흥이었다.

“우하하핫!”

지면에 내려선 적연흥은 털썩 지면에 무릎을 꿇으며 대소를 터뜨렸다.

얼마만에 밟아 보는 지면인가?

발밑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지면의 감촉이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좀체 흥분하지 않는 적연흥이건만 이 순간만은 가슴이 터지는 듯한 감흥이 솟구침을 어쩔 수 없었다.

“흑……!”

적연흥의 등에서 내린 제연연의 눈에서 뜨거운 이슬 방울이 흘렀다.

입은 분명히 웃고 있으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이다.

“……!”

적연흥의 두 눈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상공!”

제연연이 눈물을 닦으며 다가섰다.

“누님!”

“상공!”

두 남녀는 으스러져라 서로를 끌어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슴이 크게 요동을 침을 느낄 수 있었다.

꼭 끌어 안은 두 남녀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영원히 그대로 있을 듯이,

이윽고, 적연흥은 고개를 들어 제연연을 바라보았다.

제연연은 촉촉히 젖은 맑은 눈으로 적연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상……상공…… 꿈이…… 꿈이 아니겠지요?”

제연연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다는다는 듯이 묻자 적연흥은 빙그레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누님, 꿈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 신무애를 빠져 나온 것입니다.”

제연연의 봉목에 다시 핑그르 물기가 돌았다.

“상공! 사랑해요! 상공!”

제연연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적연흥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누님!”

적연흥도 영원히 놓지 않겠다는 듯이 제연연의 교구를 끌어 안았다.

뜨거운 애정의 격류가 두 사람의 가슴을 요동치며 흘러갔다.

잠시 후, 양인은 아쉬운 표정으로 떨어졌다.

“이제 그만 내려 가셔야지요. 어머님께서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연연이 큼직한 짐보퉁이를 집어 들며 말하자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히에 찬 눈길로 신무애를 내려다보았다.

신무애에서는 여전히 꾸역꾸역 신무가 솟구치고 있었다.

‘신무애…… 너는 사년 동안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저 평범한 산촌의 아이였던 나에게 천하를 짊어질 만한 힘을 주었다.’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오리라.’

적연흥은 천천히 돌아섰다.

“누님! 가십시다.”

“네!”

두 남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파――앗!

휘――잉!

일진선풍이 부는가 싶었는데 두 남녀는 이미 백 장 밖을 달리고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공 중의 하나인 비천어기신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초춘(初春)이건만 견디지 못할 정도로 덥군요.”

제연연이 달리며 말하자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사년 동안 극음빙천의 한기를 쏘이며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다소 시간이 지나면 몸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앗!”

제연연이 맑은 일갈을 터뜨렸다.

“하하하핫!”

적연흥의 호탕한 장소가 그 뒤를 따르며 두 남녀는 오십여 장 높이의 절벽을 날아 내렸다.

“그 가죽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적연흥은 제연연이 등에 메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은 한령토황우(寒靈土黃牛)의 정수를 추출하여 만든 한령지황유(寒靈地黃油)예요. 한령토황우 천근을 써서 만든 것이에요.”

적연흥은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하하……언제 그런 것을 만드셨습니까?”

“출곡하면 은하궁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만든 것이었는데 예상 외로 빨리 출곡하게 되어 이것 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하하……역시 누님의 성품은 참으로 치밀하십니다.”

두 남녀는 밟게 웃으며 북안탕의 험준한 산령을 날아 내렸다.

 

***

 

“으음…….”

적연흥의 입에서 침중한 신음이 흘렀다.

적연흥의 앞에는 퇴락한 초옥이 한채 서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오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적연흥과 그의 어머니가 살던 초옥이었다.

“상공, 어머니께서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나신 것이 아닐까요?”

제연연이 안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밖에 생각이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셨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셨는지…….”

적연흥은 침중히 말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도 역시 오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낡을대로 낡아 있었다.

적연흥은 쓸쓸한 심정과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운 발길을 집밖으로 떼어 놓았다.

“아버님께 문안을 드려야 겠습니다.”

적연흥은 집뒤의 둔덕으로 올라갔다.

의외로 분묘만은 깨끗이 다듬어져 있었으며 전에는 없던 비석마저 서 있었다.

“아버님, 소자 연흥, 이제야 문안 드리옵니다.”

적연흥은 묘앞에 절을 올리고 꿇어 앉았다.

제연연도 적연흥을 따라 절을 올린 뒤 그의 뒤에 시립했다.

적연흥은 한동안 묘앞에 앉아 회상에 잠겼다.

옛날의 일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가며 그럴 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침중해져만 갔다.

“아니…… 웬 분들이십니까?”

문득, 한 명의 노인이 둔덕으로 올라오며 말을 건넸다.

적연흥은 천천히 일어나 돌아섰다.

그의 시선에 좀 더 주름이 늘었으나 눈에 익은 한명 노인의 모습이 띄었다.

“선우 할아버님이 아니십니까?”

적연흥이 반색을 하며 정중히 허리를 굽히자 노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신선(神仙)같이 청수한 청년이 아는 듯이 인사를 했기 때문에.

“귀인께서 뉘신데 이 늙은이를 알아보시오?”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소자, 이 아래의 초옥에서 살던 연흥이옵니다.”

적연흥의 말을 들은 노인의 두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노인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적연흥의 얼굴에서 옛날의 모습을 찾아 내었다.

노인은 덥석 적연흥의 손을 잡았다.

“그렇구먼, 우리 마을의 호신(護神)이셨구먼, 그래 그동안 어디 있었기에 마을에 한 번도 들르지 않으셨는가?”

노인이 격동에 차 말하자 적연흥도 미소를 지으며 노인의 손을 잡았다.

“소자 한곳의 절지에 빠져 이곳에 들를 수가 없었사옵니다. 하온데 저희 어머님께서는…….”

노인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잠시 잊었군. 사년 전 자네가 산중에서 변을 당했다는 소문이 난 직후, 한분의 신선께서 마을에 오셔서 자당을 어디론가 모셔가셨네.”

적연흥의 뇌리에 퍼뜩 모산독군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모산의 할아버지이시리라. 모산의 할아버지께서 모셔가셨다면……무고하시겠구나.”

“그후 일 년만에 돌아 오셔서 자네 선친의 묘에 제사를 지내셨네. 그때 보니 자당께서도 마치 여신선같이 변해 계시더구먼, 그후 매년 자네 선친의 기일에 이곳에 들르셨다네.”

적연흥의 얼굴이 펴졌다.

‘모산 독성곡(毒聖谷)에 가면 어머님을 뵐 수 있겠구나.’

그는 노인에게 포권을 했다.

“할아버지.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러자 노인이 완고하게 그의 소매를 잡았다.

“무슨 소린가? 오랜 만에 마을에 돌아와서는 금방 훌쩍 떠나려는가? 자! 마을로 가세. 마을 사람들이 자네가 무사한 모습을 보면 기뻐할 걸세.”

노인이 잡아끌자 적연흥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지. 사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구나.’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폐를 끼치겠습니다.”

“허허…… 폐라니…… 무슨 섭섭한 말인가? 자 가세 어서……”

적연흥은 노인에게 잡아끌리다시피 마을로 들어갔다.

제연연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적연흥과 노인의 뒤를 따랐다.

산중의 한촌에서는 때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

 

휘르르――

언뜻, 두 줄기 인영이 허공을 가로 질렀다.

정오 무렵이었다.

“누님. 잠깐 쉬어 가십시다.”

두 줄기 인영 중 하나가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휘르르――

뒤미처 한 줄기 왜영이 그 뒤를 따라 내려섰다.

그들은 물론 적연흥과 제연연이었다.

그들은 사년 동안 걸치고 있던 헌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삼베로 만든 검소한 의복을 걸쳤으나 두 남녀의 뛰어난 용모는 조금도 감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깨끗한 계류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계류에 담갔다.

“총망중에 만든 옷이라 엉성하지만 산을 내려갈 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제연연이 살짝 볼을 붉히며 말했다.

그들이 걸치고 있는 의복은 제연연이 지난밤에 밤을 새워 만든 것이다.

그녀는 엉성하다고 말하지만 산촌의 노부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빠르고도 정확히 만들어진 의복이다.

“하하……아닙니다 누님, 누님이 만들어 주신 이 옷이 너무도 잘 맞습니다. 평생 입고 있으라고 해도 입을 수 있습니다.”

“고마워요, 상공.”

두 남녀의 시선이 따스하게 뒤엉켰다.

두 사람은 물가에 앉아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준 건량으로 요기를 했다.

문득, 건포를 씹고 있던 제연연이 입을 열었다.

“몇년 후면 북안탕에 고수(高手)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생기겠군요.”

제연연의 말에 적연흥은 빙긋이 웃었다.

적연흥은 자신이 살던 산촌의 청년들에게 내공심법과 만절철환연(萬絶天幻連)의 초식을 가르쳐 주었다.

마을에 생길지도 모를 우환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지금 당장에야 별 성과가 없지만 몇년 지나면 청년들이 만절천환연의 초식을 능숙히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림에 나가도 일류고수로 통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은 큰 욕심이 없고 착한 사람들이라 아마 무림에 나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요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아―― 악!”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매우 멀리서 인 비명인지라 극히 낮았으나 적연흥과 제연연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런 평화스러운 곳에 혈풍(血風)이라니!”

적연흥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이곳은 아직 북안탕의 권역이다.

적연흥은 이 북안탕에서 무림인들의 분규가 이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상공! 가보시겠사옵니까?”

“가보십시다. 누님!”

“네!”

양인은 즉시 몸을 날렸다.

두 남녀의 신형은 한 줄기 선풍같이 수림 위를 날아 나갔다.

 

***

 

창! 차창……

펑…… 펑―― 펑!

“아악! 으아악!”

두 사람은 삽시에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지는 소성이 들리는 곳에 이르렀다.

“잠시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강호 경험이 많은 제연연이 적연흥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요.”

적연흥도 고개를 끄덕였다.

휘르르……

두 사람은 가지가 무성한 소나무 위로 날아 올랐다.

소나무 가까이에 여러 명의 고수들이 있었으나 누구도 두 사람이 나무 위로 날아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두 남녀의 신법이 은밀했던 것이다.

적연흥은 은신한 채 장내를 내려다보았다.

펑――펑!

“아――악……”

“크―― 윽!”

그 순간에도 몇 명의 인물이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이십여 명의 청의검수(靑衣劍手)들이 다섯 명의 혈인(血人)들과 싸우고 있었다.

한데 한눈에 보아 숫적으로 몇 배 우세한 청의검수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혈인(血人)들은 무슨 기공을 익혔는지 전신이 칙칙한 혈무(血霧)에 휩싸여 있었다.

‘저 혈무는 일종의 강기(罡氣)구나.’

적연흥은 침중한 안색으로 혈의인들을 노려보았다.

청의검수들의 검세가 혈무에 닿기만 하면 맥없이 튕겨 나가는 것을 본 것이다.

“으음!”

제연연의 몸이 문득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놀란 눈빛으로 장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님! 저들을 아십니까?”

적연흥이 전음으로 묻자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검세를 보건대 청의인들은 호남(湖南)의 명문인 신검장(神劍莊)의 제자들이예요. 그리고 저 혈무에 뒤덮여 있는 자들은 전설 속의 사파인 혈무곡(血霧谷)의 인물들이예요!”

“혈무곡!”

“네, 이백 년 전에 한번 무림에 나타나 전 무림을 혈풍으로 몰아넣었던 자들이예요.”

제연연의 말을 들은 적연흥의 눈이 번뜩였다.

“아――악!”

그 순간에도 신검장의 수하들이 혈인들에 의해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안되겠습니다. 이대로 가면 신검장의 검수들이 몰살당할 것 같으니 제가 도움을 주어야……”

적연흥이 일어서려하자 제연연이 황급히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보세요. 이 주위에 저희 말고도 또 다른 고수가 있어요. 그가 곧 몸을 드러낼 것이예요.”

제연연의 제지에 적연흥은 물러 앉으며 급히 청력을 기울였다.

“역…… 역시……”

적연흥은 감탄의 눈으로 제연연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막강한 내공을 지닌 한 명의 인물이 은신해 있었다.

분명 적연흥의 공력이 제연연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적연흥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제연연이 발견한 것이다.

“무림에서 살아 나가는 데에는 무공보다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될 경우가 많아요. 항시 주위 환경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만해요.”

“알겠습니다. 누님.”

적연흥이 전음으로 대답할 때였다.

“호호호홋!”

돌연, 한 줄기 여인의 교소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엇?”

“앗! 누구냣?”

장내의 인물들은 황급히 손을 멈추고 물러섰다.

그때,

휘――익!

한 줄기 백영이 허공을 가르며 장내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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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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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神功을 만들다

 

 

 

“이……이것은……”

제연연이 놀란 눈으로 손에 든 비급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들고 있는 비급은 양피지로 만든 것으로 매우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이 보였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

 

그것은 바로 모산독군이 적연흥에게 준 두 권의 비급 중 하나였다

“그 비급의 유래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적연흥이 담담히 묻자 제연연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림인치고 이 비급을 지으신 분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적연흥의 눈이 빛났다.

“천후독존(天候毒尊)이란 분이 그렇게 유명하신 분입니까?”

제연연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고사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연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부터 근 삼백 년 전이었어요. 무림에는 전대미문의 대마종(大魔宗)이 한명 나타났었어요.”

“대마종(大魔宗)?”

“네, 그는 사상초유의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가 된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라는 인물이었어요.”

적연흥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대단한 인물이었겠군요?”

적연흥은 크게 뛰는 가슴을 느끼며 물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

 

최초의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로서 초유의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루었던 대마웅(大魔雄)!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적연흥의 가슴은 이유도 없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어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줄이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자신과 천마대조종을 한 몸으로 묶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천마대조종의 이름이 이분을 이토록 흥분시키다니……’

제연연은 내심 놀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그는 보기 드문 대장부였어요. 비록 마도의 인물이기는 했으나 호협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어요.”

제연연은 차분히 이야기를 이었다.

마도에 내려오는 천마혈령검(天魔血靈劍)에 얽힌 전설.

천마대조종이 그 천마혈경검의 주인으로 몸을 일으케 세웠고, 만마(萬魔)와 천파(千派)가 그의 발아래 굴복했으며, 천하가 마기(魔氣)로 뒤덮이리라.

우내사존(宇內四尊)이라는 기인들이 천마대조종에 도전했으나 허무하게 패하고, 드디어 사상초유의 마도천하(魔道天下)가 십년 동안 이어지다.

천하가 마기(魔氣)에 굴복하여 신음하고 있을 때, 패주했던 우내사존이 한 명의 절대기인을 강호로 불러내었으니,

그 이름,

 

-도룡천황(屠龍天皇)!

 

전설의 문파 천황문(天皇門)의 문주 도룡천황이 천마대조종과 결투.

천지변색(天地變色)!

천붕지열(天崩地裂)!

대결전의 결과는 의외로 천마대조종의 패배로 드러나 천마대조종은 울분을 터뜨리며 십년 후를 기약,

다시 십년 후, 천마대조종과 도룡천황은 어디선가 대결전을 벌인 뒤 행방이 묘연해지고,

우내사존이 이끄는 정파연합군이 마도연맹을 괴멸시켰다.

 

제연연의 이야기가 이윽고 끝났다.

“……!”

적연흥은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천마대조종, 도룡천황, 천년후에도 잊혀지지 않은 대영웅(大英雄)들…… 기왕에 든 무공일도(武功一道), 반드시 그들에 못지않은 대종사(大宗師)가 되리라.’

적연흥은 눈을 떴다.

제연연은 적연흥의 두 눈에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결의의 빛을 보았다.

“혹시 천후독존(天候毒尊)이란 고인은 우내사존(宇內四尊)의 한 분이 아니셨습니까?”

“그렇사옵니다. 천후독존께서는 우내사존(宇內四尊) 중 한 분이셨습니다.”

“우내사존(宇內四尊)의 다른 세 분은?”

“풍운검존(風雲劍尊), 독목천존(獨目天尊), 혈룡도존(血龍刀尊) 등이 바로 그분들이예요.”

적연흥은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금 모산 할아버지께서는 당년의 우내사존보다 배 이상 강하시겠군요?”

제연연이 말을 받았다.

“모산의 노선배께서 얻으신 독경이 바로 천후독존(天候毒尊)께서 남기신 독경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마 당년의 우내사존께서 환생하신다 해도 모산 노선배님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예요.”

“오늘부터는 독공(毒功)도 익힐 것입니다. 누님께서도 마음에 있으시면 함께 익히십시오.”

“감사하옵니다. 상공.”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뒤엉켰다.

 

그날부터 두 남녀는 함께 무공을 연마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전 중에 적연흥은 무상반야금강경을 참수하고 오후에는 제연연과 함께 무공을 연마했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의 독공은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었다.

독의 사용법,

해독법, 독물(毒物)을 다루는 법,

독(毒)으로 익히는 여러가지 독공 등등……

천하를 울리던 우내사존(宇內四尊)에 독술(毒術) 한 가지로 끼어들 수 있었으니만큼 천후독존의 독술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천후독존의 독술에 놀란 두 남녀는 모산독군이 직접 지은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을 보았을 때 비로소 천외유천(天外有天)이 있음을 알았다.

만황독성진전에 기록되어 있는 독술은 독공(毒功)이 중심이었다.

가히 경천동지할 위력의 독공이 수십 가지 적혀 있었다.

그 수십 가지나 되는 독공이 하나같이 천후독존의 독공을 능가하는 데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천후독존(天候毒尊)의 최고 독공인 천후융천독강(天候隆天毒罡)은 독문사상 세번째로 강한 독공이었다.

그러나, 모산독군이 최초로 창안한 만천뢰우독강(滿天雷雨毒罡)은 천후융천독강보다 오히려 일이성 정도 강한 듯이 보였다.

모산독군이 최후로 창안한 것은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의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이름하여,

 

<만황패멸독강인(萬荒覇滅毒罡印)>

 

독공(毒功)을 한 줄기 무형의 독강인(毒罡印)으로 만들어 천지사방(天地四方)으로 발출 할 수 있다.

과연 그 위력이 미쳐지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모산독군 자신도 완전히 펼쳐본 적이 없으므로.

고금이래 만황패멸독강인에 비견될 수 있는 독공은 한 가지가 있다.

독문의 조종인 만독노조(萬毒老祖)!

그가 남긴 최고 절대의 독공(毒功)!

 

<파라살황독강류(破羅薩恍毒罡流)>

 

만황패멸도강인과 더불어 유일하게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의 경지에 이른 독공.

지금까지는 독문제일독공(毒門第一毒功)으로 공인되어 온 독공이지만 아깝게도 실전되어 전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실상 만황패멸도강인은 천하제일의 독공(毒功)이다.

두 사람은 만년화룡(萬年火龍)의 시신을 해부하여 만년화룡이 지니고 있던 화독(火毒)을 꺼내 나누어 복용하고 독공을 연마했다.

화독 한 가지로는 독공을 연마하기에 많은 부족함이 있었으나 신무애에는 달리 독물(毒物)이 없으니 별 도리 없었다.

제연연은 천후독존의 독공을 주로 연구했다.

모산독군의 허락이 없었으므로 경솔히 모산독군의 진전을 연마할 수 없기 때문에.

제연연이 독의 사용법, 해독법 등에 몰두할 때 적연흥은 독공 중심으로 연마해 나갔다.

독공을 익히는 한편 적연흥은 음산잔마가 전수해 준 천잔경(天殘經)을 연마했다.

천잔경을 지은 천잔수(天殘叟)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였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말도 못할 수모를 겪으며 살아야했다.

결국, 주위 환경이 그의 성품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극히 편협한 성품을 지니게 되었고 자신을 멸시한 모든 사람을 저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상에 한을 품은 한 기인(奇人)의 손에 거두어져 무공을 연마했다.

그의 오성은 극히 뛰어나 불구를 극복하고 일신에 뛰어난 무공을 지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불구라고 멸시하고 천대했던 세상 사람들에게 잔혹한 살수를 펼쳤다.

그의 눈에 벗어나는 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비단 그 자신뿐만 아니라 친인조차도 천잔수의 살수에 피를 뿌려야했다.

자연, 원수는 많아지고 무림전체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천잔수는 언제 어디에서 죽음의 마수가 덮쳐들지 모르는 강호를 용케도 헤집고 다녔다.

수십 차례나 죽음직전에서 빠져 나오곤 하였고 그럴 수록 그의 성품은 점점 더 편협 잔악해져갔다.

또한, 한 번의 위기를 넘길 때마다 그의 무공은 강해져만 갔다.

모두가 그의 뛰어난 오성 때문이었다.

결국, 천잔수가 강호에 발을 들여 놓기 일갑자, 무림천하에는 더 이상 천잔수의 적수될 고수가 없었다.

젊었을 때는 천방지축으로 무림을 휘젓고 다녔던 천잔수도 나이가 들며 주름살이 늘어가자 성격이 변해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무림에 벌려놓은 것이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다 천하를 뒤져도 자신과 맞설 적수도 한명 없는 그 고독감, 천잔수의 최후는 그렇게 쓸쓸히 끝이 났다.

그러한 천잔수의 무공이 담긴 천잔경(天殘經)!

자연히 극히도 실전적이며 잔혹한 수법이 기록되어져 있었다.

무공의 성격이 이러한데다가 천잔경은 외팔 외다리의 인물만이 연마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 때문에 적연흥은 천잔경의 연마를 보기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음산잔마의 배려를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는 어려움을 무릅쓰며 천잔경을 연마했다.

그러나 막상 익히려니 그 어려움은 이루 형언할 수도 없었다.

멀쩡한 팔다리를 반만 사용하려니 이것도 저것도 되지를 않았다.

그냥 남아도는 한팔 한 다리가 걸리적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좌충우돌하는 적연흥을 제연연은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멀쩡한 팔다리를 무엇 때문에 놀리시옵니까? 나머지 팔다리도 함께 사용하시면 되지 않사옵니까?”

제연연의 말을 들은 적연흥은 퍼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렇지, 이 팔다리를 쓸데없이 둘 필요 없지.”

그래서 그는 나머지 팔다리로도 다른 쪽의 팔다리가 펼치는 무공을 똑같이 펼치려 하였다.

자, 그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적연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그의 좌충우돌은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띄었다.

때로 관망하던 제연연의 두 눈이 핑핑 돌아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것은 도대체 무공인지 발광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게 되었다.

“상공, 아니되겠사옵니다. 천잔경은 접어 두시고 미천하나마 저희 은하궁 무공을 연마하시옵소서.”

보다 못한 제연연이 말렸다.

그러나, 그 무렵 적연흥은 그 미친 짓거리같은 행동 속에서 서서히 무엇인가를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연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없이 발광하는 듯한 행동을 계속했다.

원래,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은 한 가지 전무후무한 불문선공(佛門禪功)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무상반야금강선공(無常般若金剛禪功)>

 

이것이 소림(少林) 최강의 선공인 것이다.

천년 세월을 거치면서 누구에 의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절대선공(絶代禪功)!

이것이 적연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호신(護身)의 묘용이 있는 무상반야선강(無常般若禪罡)과 공격의 묘용이 있는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으로 나뉘어진다.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은 패도(覇道)적인 강맹함을 지녔다.

금강(金剛)이라 함이 본래 가장 강함(强)을 항마(降魔)란 모든 마(魔)를 누른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은 가히 무적(無敵)이라 할 만큼 강했다.

이에 반하여 무상반야선강(無常般若禪罡)은 지극히 유(柔)하며 그 심오함이 끝이 없었다.

이에는 수많은 묘용이 있어 모든 마로부터 심신을 보호해준다.

그중에 분광혜심대법(分廣慧心大法)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생각을 가능케 해주는 기상천외의 대법이었다.

적연흥은 이 분광해심대법의 묘리를 터득해감에 따라 어떤 영감이 스쳐갔다.

즉, 천잔경(天殘經)상의 무공초식은 한 팔과 한 다리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분광혜심대법으로 양팔 양 다리를 다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극히 어려웠다.

그러나 적연흥의 끈기와 뛰어난 심지에 의해 마침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적연흥의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던 제연연은 그저 탄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났을 때, 천잔수의 무공은 적연흥의 손에 의해 완전히 개편되었다.

그 위력은 천잔수가 환생한다 해도 기절초풍하고 말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 새로운 무공은 장(掌), 검(劍), 지(指), 수(手), 각(脚), 경(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이 되었다.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이라 이름붙인 이 무공수법은 천하에서 가장 복잡난해한 수법일 것이다.

적연흥은 만절천환연을 다듬으면서 제연연에게 가르쳤다.

한령토황우를 장복하여 뛰어난 혜지를 지니게 된 제연연이건만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에는 두손 들고 말았다.

자신이 최초로 창안한 무공인지라 적연흥은 만절천환연에 각별히 애정을 쏟았다.

그는 끝없이 만절천환연의 일천백사십구초(一千百四十九招)의 변화를 갈고 다듬었다.

기어코 천하제일의 복잡다단한 무공을 만들겠다는 듯,

 

***

 

‘무슨 일이 있으신 것일까?’

제연연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지금, 적연흥은 신무애의 석벽을 마주 보고 좌정한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벌써 오일 째 저 상태로 계시니 옥체에 누가 가시지나 않으실지……’

제연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기이하게도 제연연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 나날이 젊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떨어질 때 사십대로 보이던 그녀였건만 지금은 이십 오륙 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를 않았다.

모두가 한령토황우를 장복한 때문이다.

‘이미 이곳에 떨어진 지도 사 년이 흘렀다.’

제연연은 문득 가득히 운무가 낀 천공(天空)을 바라보았다.

사년(四年)!

이미 사 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적연흥의 나이 이미 이십 세가 되어 완전히 성인이 되었다.

그의 무상반야금강선공은 구성(九成)의 경지에 이르렀다.

만절천환연이란 절기를 창안한 것도 이미 이년 전의 일.

모산독군이 남긴 독문의 진전도 이미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공(內功)을 기르는 외에 미친듯이 서로를 탐하는 일밖에 없었다.

제연연으로서는 적연흥이 있는 한 이 신무애의 절지도 낙원이었다.

하지만, 적연흥은 그렇지 못한 듯, 요즈음 그는 한껏 우울해지고 말수가 적어졌다.

하기는 이제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필요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일 전, 적연흥은 돌연 신무애의 한쪽 석벽을 마주하고 앉아 면벽에 들어갔다.

이미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것이 오래이건만 적연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러니 자기 몸보다 적연흥이 소중한 제연연으로서는 안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적연흥의 면벽을 중시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일까? 무엇이 천하제일의 기재이신 저분을 저토록 고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제연연은 총명한 여인이다.

문득, 한 가지 짚이는 일이 있었다.

“무상반야금강선공은 극히 미미한 진보를 보임으로 서두를 일이 아니다. 저분이 고심할 단 한 가지 문제는 바로……이곳을 탈출하는 일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연연의 가슴은 급격히 두근거렸다.

‘저분이 혹시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는 어떤 단서라도……?’

제연연은 묘한 심정이 되어 적연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 자신도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이곳을 나간다면 사랑하는 적연흥은 더 이상 그녀의 독점물일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별 수 없는 일 아니냐?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할 것, 하루 빨리 저분의 뜻하시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빌 뿐이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으하하하핫――!”

거창한 장소가 신무애를 뒤흔들었다.

“상공!”

제연연의 환성이 터졌다.

그녀의 눈앞에, 태산같은 기개를 지닌 영준한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짓고 서 있는 인물.

바로 적연흥이었다.

“상공! 뜻을 이루셨사옵니까?”

제연연이 달려가자 적연흥은 그녀의 섬섬옥수를 꼭 쥐었다.

“그렇습니다. 누님, 드디어 이곳 신무애를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적연흥이 다소 격동에 찬 목소리를 말했다.

“역……역시……!”

제연연의 두 눈에 까닭모를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작은 가슴은 흥분으로 크게 불룩거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곳을 빠져 나갈 방법을 생각해 내셨사옵니까?”

제연연이 섬섬옥수로 눈가에 맺히는 이슬을 찍어 누르며 물었다.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을 창안할 때부터 생각하던 것입니다. 만일 허공에서 두세 번만 진기를 바꿀 수 있다면 신무애를 날아 오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연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지만 허공에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은 채로 어떻게 진기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적연흥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소제가 면벽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그럼 방법을 찾아 내셨다는 말씀……?”

“그렇습니다. 분광혜심대법(分廣慧心大法)을 응용하여 일종의 양심신공(兩心神功)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제연연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무림에는 전설적으로 심신을 양분할 수 있다는 양심신공(兩心神功)이 있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그것은단지 전설일 뿐인데 적연흥이 그것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양…… 양심신공(兩心神功)!”

“놀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무상반야금강경 중의 분광혜심대법은 양심신공보다도 더 고차원의 대법이었습니다. 소제는 단지 이를 약간 변형시켰을 따름입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을 안은 채로 절벽 위로 가리켰다.

“양심신공으로 공력을 좌우(左右)로 나눈 뒤 우선 한 쪽의 공력만으로 비천어기신법을 펼치는 것입니다.”

제연연이 그말을 받았다.

“연후에 반대편의 공력을 이용하여 다시 날아 오르고 그사이 나머지쪽의 공력을 보충하고……”

“하하……그렇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사부님께 인사 드리고 지금 당장 떠나도록 하십시다.”

제연연은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그……그렇게 해요. 첩신은 조금 준비할 것이 있사옵니다.”

“서두르십시오.”

“네!”

제연연은 눈물을 닦으며 달려갔다.

제연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어찌 생각하면 더할 수 없이 긴 사 년이었으나 이제 막상 떠나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워 지는군.’

적연흥은 신무애를 휘둘러 보았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절지였으나 너무나 정이 든 풍경이었다.

“어머님께서 그동안 어찌 지내셨는지 궁금하구나. 병환이나 심해지신 것은 아니신지……”

적연흥은 동굴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부님과 환영비천신 선배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겠다.”

적연흥의 몸도 곧 짙은 운무 사이로 사라져갔다.

 

<一卷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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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둘만의 樂園

 

 

 

잠시 후, 무허선사와 환영비천신의 시신을 매장하고 나자 제연연은 동굴 안을 깨끗이 손질하였다.

그리고 극음빙천에서 건진 백호피(白虎皮)를 바닥에 깔아놓자 동굴 안은 제법 아늑했다.

시장기가 돈 그들은 한두 개씩의 한령토황우를 먹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무어라할 수 없는 은은한 향기와 맛이 있었다.

두 사람은 곧 동굴 안에 들어와 마주 앉았다.

그들 앞에는 예의 옥함이 놓여 있었다.

“환영비천경(幻影飛天經)부터 보십시다.”

적연흥은 두 권의 비급 중 다소 얄팍한 환영비천신의 비급을 꺼내 들었다.

“환영비천신은 고금을 통털어 가장 경공이 뛰어났던 기인 중 한 명이예요. 환영비천경의 무공은 이 절곡을 빠져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예요.”

두 사람은 환영비천경을 펼쳐 들었다.

 

<환영미리신보(幻影迷漓神步)>

 

환영비천경의 첫머리에 적힌 무공이었다.

이는 보법(步法)으로 소위 일반인들이 말하는 분신술(分身術)이라는 것이었다.

신형(身形)을 단번에 삼십육 개로 나눌 수 있으며 일시지간 모습을 감출 수도 있는 가공한 절기였다.

본시 음흉한 환영비천신은 강호행도시 누구에게도 그 위력의 반 이상을 펼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허선사 외에는 그 누구도 환영비천신의 옷자락 하나 건들이지 못했다.

하나, 그 음흉함이 화근이 되어 신무애 위에서 무허선사에게 강력한 일장을 맞고 이곳으로 떨어져야 했다.

즉, 만일 그가 전력을 다해 환영미리신보(幻影迷漓神步)를 펼쳤다면 무허선사의 천수미허신장(千手彌虛神掌)이 아무리 천지를 뒤덮는 절기라 해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실력을 반푼 정도 숨겼고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환영미리신보 외에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무공과 잡술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 것들은 무림행도시에는 큰 도움이 되겠으나 지금 당장은 별 의미없는 잡기였다.

쓸만한 무공은 거의 끝쪽에 적혀 있는 세 가지였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무공이었다.

 

<환영분뢰강지(幻影分雷罡指)>

 

가히 천하에서 가장 빠르고 은밀한 지공(指功)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무공이다.

빠르고 은밀한 뿐만 아니라 한 자 두께 철판도 관통하는 강한 면도 있는 절세의 지공(指功)이었다.

 

<만환천영술(萬幻天影術)>

 

희대의 기만술이라할 기공(奇功)이다.

비단 얼굴 모습을 제멋대로 뒤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변성술, 변체술 등등……

상대가 누구라도 본인도 구별 못할 정도로 변환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위기 어떤 상황에서도 빠져 나올 수 있는 요결이 환영비천신의 경험으로써 기록되어 있었다.

 

<비천어기신법(飛天馭氣身法)>

 

환영비천경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최고의 경신법이다.

한 모금 진기로 백 리를 날아갈 수 있다는 절세의 경공인 것이다.

신무애를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공이다.

환영비천경(幻影飛天經)을 살펴본 두 사람은 소림사 최고선공이 실려 있다는 두툼한 경전을 집어 들었다.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

 

“이것은 불교경전 아닙니까?”

제목을 읽어본 적연흥이 고개를 갸웃 하며 제연연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군요. 금강경(金剛經)의 일종인 것 같으니…… 내용을 보시지요.”

제연연의 말에 적연흥은 경전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곤혹스런 표정은 더욱 짙어가기만 했다.

소림(少林)제일의 선공비급이라 하여 광세신공의 구결을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경전의 내용도 역시 심오한 불교의 법리가 기록된 것이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혹시 모르니 소제는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옵소서. 하여튼 소림의 제자가 되셨으니 불법(佛法)에 대해서도 아셔야 하니까요. 첩신은 잠깐 나갔다 오겠사옵니다.”

제연연은 목욕이라도 할 생각으로 조용히 동굴을 나섰다.

혼자 남은 적연흥은 정좌한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의 참수에 들어갔다.

본시 읽기를 좋아하던 적연흥인지라 곧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이해 못할 일이 일어났다.

적연흥은 경전을 넘김에 따라 점차 몸속에서 강렬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힘은 아주 극강(極强)하면서도 끝없이 넓어 그 유심(幽深)함이 가이없는 그런 힘이었다.

경전의 장을 넘김에 따라 그 기운은 더욱 성(盛)해 갔다.

그무렵 적연흥 자신은 모르고 있었으나 적연흥의 전신에서 서서히 찬연한 서광(瑞光)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서광은 어떠한 사악함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그런 것으로 처음에는 그 농도가 엷었으나 점차 적연흥의 전신을 가릴 정도로 짙어졌다.

마침내 적연흥의 일신은 완전히 서광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적연흥 자신은 이미 무아지경에 들어 그러한 사실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그의 몸이 기이한 형상을 취하고는 하였다.

자세히 보면 때로 나한(羅漢)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왕(天王), 보살(菩薩), 관음(觀音), 심지어 불존(佛尊)의 형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멋!’

일각 후 목욕을 마치고 물기젖은 촉촉한 모습으로 동굴에 들어서던 제연연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경악성을 급급히 되삼켜야 했다.

동굴 전체가 성스런 서광(瑞光)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그 광채는 부드러운 가운데 두 눈을 찌르는 강렬함을 지니고 있어 감히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또한 그 서광은 접하는 이로하여금 지극히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효능이 있었다.

‘상공께서 어떤 인연을 얻으셨음에 틀림없다. 겉보기에는 그저 불교경전에 불과한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의 어디엔가 상공을 기다리고 있던 큰 안배가 있었으리라.’

제연연은 내름대로 추측하며 조용히 동굴을 물러 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적연흥은 무심한 눈빛으로 무상반야금강경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문득, 무심하기만 하던 적연흥의 두 눈이 이채를 띄며 빛났다.

그곳에 몇 자의 글이 적혀 있음을 본 때문이다.

 

<인연있는 자만이 뜻을 얻으리라. 인연이란 석존(釋尊)께서 베푸시는 큰 빛(光明)에 이어지나니 결코 강제로 탐하지 말 것이며 서두르고 조바심 내어 얻어질 것이 아니니라.

불기(佛紀) 구백 팔 년(九百八年) 달마(達磨).>

 

미소가 번진다.

적연흥의 옥안에 더할 수 없이 맑고 부드러우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소가 감돈다.

염화미소(艶花微笑)가 이러하리라.

적연흥은 무상반야금강경을 덮었다.

점차 그의 몸에서 서광이 사라져 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완전히 사라졌다.

“얻으려하면 얻을 수 없고 얻지 않으려 하여야 얻을 수 있다니……”

적연흥은 미미하게 미소지었다.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은 한 권의 불교경전이면서 그 자체에 선공(禪功)의 묘의를 지니고 있었다.

달마(達磨)이래 수많은 고승들이 무상반야금강경을 해인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누구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경전의 자구(字句)에 연연하여 그중에서 어떤 뜻을 찾으려 한 때문이다.

하나 그런 상태에서는 백번 천번 보아도 무상반야금강경은 그저 단순한 경전일 뿐이다.

아무것도 원함이 없고 무엇인가를 얻으려 연연함이 없는 무심(無心) 무욕(無慾)의 심정으로서만 비로소 무상반야금강경의 의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적연흥은 무상반야금강경이 선공비급임을 믿지 않았으므로 단지 소림의 제자 된 몸으로서 불교경전을 접해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무상반야금강경을 참수했다.

그 때문에 그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상반야금강경에 비장된 큰 뜻을 깨달은 것이다.

그 뜻을 깨달은 것은 전체 중의 극히 일부이며 피상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연흥의 일신에 지극히 강한 힘이 충만해 있었다.

“모든 것이 조사님의 은혜이시다.”

적연흥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때, 제연연이 조용히 들어섰다.

들어오던 제연연은 아찔함을 느꼈다.

적연흥이 자신을 바라보며 극히 무심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이분, 그 능력이 대해(大海)와 같이 넓으시고 창공(蒼空)과 같이 높으신 분이 나의 지아비시다.’

제연연은 가슴 벅참을 느끼며 조용히 적연흥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적연흥은 미미하게 웃으며 제연연의 섬섬옥수를 잡았다.

제연연은 살포시 눈을 감으며 적연흥의 넓은 가슴에 기대어 갔다.

 

* * *

 

“비천어기신법(飛天馭氣身法)은 분명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는 절세경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적연흥이 제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나 적연흥은 완전히 성인(成人)같이 자라 있었다.

체구가 더 커졌음을 물론이려니와 그의 전신에서는 범접키 어려운 성스런 빛이 흐르고 있었다.

“하오면 상공께선 비천어기신법을……”

제연연이 놀란 눈빛으로 우러러보며 물었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일년 동안 저는 무상반야금강경을 참수하는 외에 비천어기신법(飛天馭氣身法)만을 익혀 이미 더 갈곳이 없는 정도로 익혔습니다.”

“아……”

제연연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녀는 경외스러움과 자랑이 담긴 눈빛으로 적연흥을 올려다보았다.

제연연에 있어서 적연흥은 태산(泰山)이며 태양(太陽)이었다.

‘이분의 능력은 어디가 끝일까? 나는 이제 겨우 사성(四成)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 비천어기신법을 극에 달하도록 연마하셨다니……’

그녀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령토황우(寒靈土黃牛)는 여인이 복용할 시에 만효(萬效)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혜지(慧智)를 극도로 높여 주는 것이다.

지금, 제연연의 혜지는 신무애에 떨어지기 전보다 십 배 이상 높아져 천하를 통틀어 가장 지혜로운 여인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연흥은 여전히 그녀보다 세 배 이상 뛰어난 것이다.

“비천어기신법이 극에 달한 지금 소제는 일시에 백여 장을 날아오를 수가 있습니다.”

제연연은 놀라운 기색을 지으면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거에 백 장을 뛰어 오를 수 있다니……

천하에 누구에게라도 물어 보아라.

누가 사람의 몸으로 백 장을 뛰어오를 수 있다고 믿겠는가?

적연흥은 침중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비천어기신법으로도 이 신무애를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제연연의 표정도 어둡게 변했다.

“신무애의 절벽이 그리도 높사옵니까?”

“그렇습니다. 누님. 가장 높은 곳이 오백 장이 족히 되고 가장 낮은 곳이라도 삼백 오십 장이 됩니다. 소제가 사력을 다해 신법을 펼친다면 이백 장이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만 그 이상은 불가능 합니다.”

“석벽 어디엔가 발을 붙일만한 곳이라도……”

적연흥은 고개를 저었다.

“석벽 전체가 강철같이 굳고 동판같이 굳은 청옥석(靑玉石)으로 이루어져 발을 붙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연연이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첩신이야 상공과 함께라면 이곳에서 백년 천년 살아도 괜찮사옵니다만 상공께서야 큰 뜻을 펴실 대붕(大鵬)이시니……”

적연흥이 미소 지으며 제연연의 어깨를 잡았다.

“하하……대붕(大鵬)이 날개가 생긴다면 이정도 절곡이야 금방 날아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걱정마십시오.”

제연연은 적연흥의 가슴으로 파고 들며 눈을 감았다.

“상……상공, 사랑받고 싶어요. 사랑해 주세요.”

제연연은 다른 사람이 보면 기겁을 할 정도로 대담하게 적연흥의 사랑을 구했다.

이곳은 두 남녀만의 세상,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무공을 익히고 서로를 사랑하는데 몰두하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두 남녀는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정열이 일며 사랑의 행위를 하였다.

세속의 인간들이 보면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짓거리라고 힐난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하하…… 누님, 누님 한 분이라면 얼마든지 사랑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의 농염한 몸을 번쩍 안아들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인 동굴로 향했다.

곧, 동굴 속에서는 제연연이 환희에 떨며 흐느끼는 교성이 흘러 나왔다.

뜨거운 열풍은 점점 거세지고 제연연의 흐느끼는 비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실, 만년화룡의 내단과 단화를 흡수한 적연흥은 그대로 불(火)의 화신(化身)이었다.

그 강렬함과 뜨거움은 제연연 혼자 몸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종종 제연연은 적연흥과의 관계 후에 한동안 운신도 못하곤 하였다.

너무나 심하게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연연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또한 늘 그렇게 당해야만 이곳 신무애 하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녀의 공력이 비록 기고하다고는 하지만 극음빙천의 한기를 오래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늘상 적연흥으로부터 전해받은 열양지기(熱陽之氣)로 극음지기(極陰之氣)를 견디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요즘 극음빙천의 중간에 솟아있는 극음(있는

극음한령석(極陰寒靈石)에서 한 가지 절대기공(絶代氣功)을 연마하고 있었다.

극음한령석은 천지간에서 가장 강한 한기를 지니고 있다.

그 한기를 몸속으로 흡수하여 한 가지 기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적연흥은 그런 그녀에게 조금도 아끼지 않고 열양지기를 전해준다.

사실 그는 만년화룡의 내단과 단화의 상당 부분을 용해하여 자신의 공력으로 삼았다.

그의 공력 이미 제연연과 비슷한 지경에 이르러 있으나 그가 용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부분은 전체 중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빙산일각(氷山一角)이랄까?

 

일각 후, 열풍은 가라앉고 아늑한 피로감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대강 몸을 가린 적연흥은 아직도 환희에서 못 깨어나는 제연연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 신무애를 빠져 나가는데 대해서 너무 조바심 내지 마십시오. 늦어도 십년 이내에는 빠져 나갈 수 있으니까.”

적연흥이 삼단같은 머릿결을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제연연은 촉촉히 젖은 눈을 떴다.

“어떤 방법이라도 있으시온지요?”

적연흥은 빙그레 웃었다.

“지금 소제는 무상반야금강경을 삼성(三成) 정도 참수한 상태입니다.”

제연연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천어기신법을 일 년만에 완성하신 상공께서 겨우 삼성 정도 밖에 못 이루실 정도로 무상반야금강경이 난해하옵니까?”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이라면 몇백 년 걸려도 그 진전이 힘든 절대선공이지요. 반면 무상의 위력도 있으나 갈 수록 난해해지니 무상반야금강경을 연성하는 데는 저라고 해도 최소한 십 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경지는……”

“심어제행(心御制行)의 경지로서 마음만으로 천 리(千里)를 날아갈 수 있는 단계입니다.”

제연연은 그저 놀란 표정으로 적연흥을 우러러 볼 뿐이다.

“억지로 서두른다 해도 진전이 빨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내일부터는 모산의 할아버지와 음산의 할아버지께서 주신 비급도 연마할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어…… 어머……상공…… 첩신은 더 이상…… 못…… 견디…… 아아……”

제연연의 자그마한 나신이 다시 적연흥의 우람한 체구에 눌려 버렸다.

“상공……그만……”

제연연이 발버둥쳤으나 적연흥은 태산같이 눌러왔다.

또다시 뜨거운 열풍이 동굴 안을 후덥지근하게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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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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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奇緣을 만나다.

 

 

 

“흑흑흑……”

여인이 운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자그맣고 둥그스름한 어깨가 끝없이 파문을 일으키고, 얼굴을 파묻은 무릎으로부터 맑디맑은 이슬이 발끝으로 구른다.

‘어찌해야 하는가?’

적연흥은 안절부절 못하고 제연연의 주위만 뱅뱅 돌 뿐이다.

한바탕의 열풍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들끓던 열기도 지금은 저녁호수같이 잠들었다.

한독(寒毒)에 사경을 헤매던 제연연은 이제는 조금도 한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추위하지 않는다.

한 번의 정사가 양인에게 큰 이득을 주었다.

적연흥은 전신에서 요동치던 열기를 제연연에게 배출하고 극강한 열양지기(熱陽之氣)를 전신 심맥으로 유입시켰다.

반면, 제연연은 능히 백년공력(百年功力)에 비견되는 양기(陽氣)를 적연흥으로부터 받았다.

너무나 강렬한 적연흥의 그것에 생사현관이 녹아 버리고 전신의 기맥이 대로(大路)같이 활짝 열렸다.

무인으로서 최고의 경지가 우연한 기연(奇緣)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웬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제연연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면 그녀도 대답을 못하리라.

그저 우는 것 뿐이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통스러워 우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녀는 운신하기도 힘들게 격심한 상처를 가장 은밀한 곳에 입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가 우는 것은 그 상처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놀랍게도 삼십에 이른 제연연은 그때까지도 처녀지신(處女之身) 이었다.

지면에 묻은 붉은 앵혈의 흔적이 그것을 말해준다.

파과(破瓜)에 의한 고통은 고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환희(歡喜)이고 열락(悅樂)이다.

그 때문에 울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과 허전함이 제연연의 전신을 휘감는 것이다.

“으음……!”

적연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털―― 썩!

적연흥은 제연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누님! 소제를…… 죽여 주십시오.”

그리고는 끝이었다.

적연흥은 제연연의 발끝에 머리를 갖다대고 요지부동이었다.

“흑…… 흑…… 흑……”

제연연의 울음소리는 계속 되었다.

그러나, 점차 그 소리가 낮아지더니 마침내 뚝 끊어졌다.

기묘한 침묵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

“……!”

제여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홍조띈 상아빛 뺨과 촉촉히 젖은 두 눈, 요염하리만치 붉은 두 입술이 철석간장이라도 녹일 듯 뇌살적이다.

‘이…… 이 아이는…… 어른이구나. 나이로만 보아 아이로 믿었건만…… 내가 만난 어떤 사내보다도 훌륭한 장부(丈夫)다. 몇백, 몇천의 여인이라도 거느릴 수 있는……’

제연연의 눈길이 점차 변해갔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그것이었으나 이제는 사내를 바라보는 아낙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장차 은하궁(銀河宮)은 이 아이…… 아니 이분에 의해 크게 빛을 발하리라.’

그녀의 눈길이 다소 안타깝게 변했다.

‘이제는 나의 그이만이 될 수 없을 것이니……’

제연연은 천천히 섬섬옥수를 내밀어 적연흥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눈을 뜨고 첩신을 보시옵소서.”

제연연의 말에 적연흥은 천천히 눈을 떴다.

파―― 앗!

두 남녀의 눈길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

“……!”

이윽고, 제연연이 살포시 눈썹을 내리깔며 고개를 떨구었다.

순종(順從)의 뜻을 나타냄이리라.

제연연은 나직하고도 차분히 입술을 열었다.

“첩신은…… 상공을 탓할 수 없사옵니다. 상공께서 첩신께 또 다른 생명을 주시려 한 일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다만 소첩을 버리지만 말아주시옵기를……”

적연흥은 제연연의 뜻을 알았다.

“누님!”

그의 우람한 두 팔이 제연연의 개미허리를 힘 있게 안았다.

“아……상…… 상공……!”

제연연의 나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금 적연흥의 우람한 몸 밑에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제연연을 뒤덮었다.

그녀의 교구는 적연흥의 태산같은 힘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가냘펐다.

문득, 제연연은 곧 찍힐 엄청난 고통의 낙인이 떠오르자 두려움이 치솟았다.

“아…… 상…… 상공…… 아직은…… 아아…… 제발……”

그러나, 난폭한 군주는 여인의 의사는 아예 무시해 버렸다.

“아―― 악!”

파과(破瓜)의 그것보다 더한 고통이 제연연을 강타했다.

거의 까무러칠 듯한 고통이 하복부로 파고 들었다.

마치 예리한 보검으로 회를 치는 것같은 고통이었다.

“누님……!”

적연흥은 성난 광풍같이 몰아치고 제연연은 한 마디 애처로운 먹이가 되어 흐느끼며 학대받았다.

“아아아……”

언제부터인가?

고통의 비명은 점차 환희와 신음으로 윤색되어 가고 있었다.

검은 맹호와 아리따운 암사슴의 처절하도록 강한 움직임이 무인지경의 신무곡을 가득 메웠다.

 

* * *

 

“이 사람은 태호(太湖)의 흑사채(黑蛇寨)의 채주인 흑사신편(黑蛇神鞭) 채윤(彩潤)이란 인물이예요.”

제연연은 한 명의 흑의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적연흥과 제연연 앞에는 네 구의 시신이 뉘어져 있었다.

그들은 절벽이 무너질 때 함께 떨어진 무림인들이었다.

제연연은 날카로운 인상의 삼십대 장한의 시신에서 하나의 검은 빛이 도는 채찍을 풀어내었다.

“이것이 채윤의 성명무기인 흑사편(黑蛇鞭)으로써 그의 흑사칠십이로(黑蛇七十二路)의 편법은 강호일걸이라 불리어요.”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의 무공은 낭심수사에 비하여 어떻습니까?”

“글쎄요. 낭심수사는 장법(掌法)과 수법(手法)을 주로 익혀 흑사신편과의 비교는 어렵지만 아마 비슷할 거예요. 다만 낭심수사쪽이 공력상 다소 우세하니 결국 장기전에 들어가면 낭심수사가 이길 거예요.”

제연연은 두번째 인물 앞에 섰다.

그 인물은 청수하게 생긴 중년문사로서 등에 한 자루 보검을 메고 있었다.

“이 인물이 상공께서 말씀하신 낭심수사와 함께 무림오사(武林五士)에 드는 인물이에요.”

“흐음…… 그래요?”

“네, 신검수사(神劍秀士) 상관청(上官靑)이란 인물로서 무림오사의 두번째 고수예요.”

적연흥은 신검수사의 등에서 보검을 풀어내었다.

보검의 길이는 세자 여섯치로 손잡이 부분이 상아로 장식된 고색창연한 보검이었다.

“한번 뽑아 보시와요. 무림사대신검(武林四大神劍) 중의 하나로서 비상(飛霜)이라하는 명검(名劍)이옵니다.”

적연흥은 비상검을 잡고 힘주어 뽑았다.

스르릉――

맑은 용음(龍吟)과 함께 싸늘한 한기가 골수에 미쳤다.

“비상(飛霜)이라…… 과연 대단한 예기를 지녔습니다.”

적연흥은 감탄하며 한 차례 검을 휘둘러보았다.

그 자세가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듯한 모습인지라 제연연은 소매로 입을 가리며 미소지었다.

“그 검은 주인보다 더 유명한 보검으로 강철을 무우 베듯 하옵지요.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신검수사의 양의검법(兩儀劍法)정도 펼치는데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신검이옵니다.”

“무림사대신검(武林四大神劍)이란 어느 어느 명검을 말함입니까?”

적연흥이 비상검을 회수하며 물었다.

“먼저 사대신검의 수좌는 오백 년 전의 기인이신 태백성군(太白聖君)께서 사용하시던 태백신검(太白神劍)이옵니다. 일설에 의하면 태백신검이 한번 검집에서 나오면 방원 십장 이내가 얼음으로 뒤덮여 버린다고 하옵니다.”

적연흥이 약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제연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과장됨이 없지는 않겠지만 태백신검에 태백천음기(太白天陰氣)가 실려 있음은 천하가 인정하는 일이옵지요.”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번째는 무당파의 진산보검인 칠성신검(七星神劍)이옵고 세번째가 비상(飛霜), 네번째가 천산(天山) 용문장(龍門莊)의 비검(飛劍) 금혼(金魂)이옵니다.”

적연흥이 비상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천하에는 수많은 보검(寶劍)과 명검(名劍)이 있지 않습니까? 거궐(巨闕)이 있고 간장(干將), 막야(莫耶) 등 춘추오대명검 등이 있거늘 어찌하여 비상(飛霜) 등만으로 사대신검(四大神劍)을 칭할 수 있습니까?”

“상공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무림의 전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사대신검보다 훌륭한 보검들은 많사옵니다. 하나 사대신검을 세운 기준은 당금 천하에 존재하는 검들에서 세운 것이지요. 거궐, 간장, 막야, 어장, 태아, 경영 등의 전설 속 보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림에서 사라져 나타나고 있지 않사옵니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나머지 이들은 누구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제연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 명은 녹림인 무리이고 다른 한 명은 청성파의 속가제자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옵니다.”

“그럼 이제 이들을 매장해야 되겠습니다. 조금 물러서 계시지요.”

“네!”

제연연이 물러서자 적연흥은 극음빙천(極陰氷泉)에서 찾아낸 도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것은……?”

땅을 파던 적연흥이 고개를 갸웃 하며 무엇인가를 집어들었다.

마치 참마 갈이 생긴 덩어리인데 땅속 여기저기에 묻혀 있었다.

“줄기도 없는데 땅속에서 이런 덩이뿌리가 자라다니 이상하군요?”

제연연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적연흥은 급히 천후독존유록을 펼쳤다.

‘저 비급이 모산독군께서 상공께 주신 독경(毒經)인 모양이구나.’

제연연은 내심 생각했으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관심은 적연흥 뿐이므로……

적연흥은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한 곳에서 멈추었다.

“여기에 있군요.”

적연흥은 자신이 먼저 읽어보고 제연연에게 건네주었다.

“한령토황우(寒靈土黃牛), 지극음기(地極陰氣)가 모이는 곳에 자생한다. 지극음기를 흡수 극히 천천히 자라는데 백 년 이상 되어야 주먹만해진다.”

제연연은 비급에서 시선을 떼고 적연흥이 땅을 파내며 캐놓은 한령토황우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주먹보다 크고 깊은 곳에서 파낸 것일 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놈은 족히 몇천 년은 되었겠습니다.”

적연흥이 땅속 깊이에서 머리통만한 것을 캐내어 웃으며 말했다.

제연연은 계속 읽어갔다.

 

<이를 장복하면 백독(百毒)이 불침하게 되고 정기(精氣)를 튼튼히 해주며 특히 여인에게는 만 가지 효능(效能)이 있는바 그중의 한 가지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을 읽은 제연연은 뛸듯이 기뻐했다.

그녀 역시 미모를 생명보다 더 아끼는 여인이므로,

잠시 후, 적연흥이 네 구의 시신을 매장했을 때는 한령토황우가 수북이 쌓였다.

“이 신무애를 언제 빠져 나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이곳에서 보내야 할 지도…… 어쨌든 식량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제연연이 두 볼을 상기시키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첩신은 상공과 함께라면 이곳에서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이라도 지낼 수 있사옵니다.”

적연흥은 따스한 눈길로 제연연을 바라보다가 팔을 벌렸다.

그러자 제연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적연흥에게 안기며 스스로 적연흥의 입술을 찾았다.

두 남녀는 긴긴 입맞춤을 하며 서로를 굳게 부둥켜 안았다.

“누님, 고맙습니다.

이윽고 입술을 뗀 적연흥이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말하자 제연연은 푹 고개를 떨구었다.

적연흥은 정열이 담긴 눈으로 제연연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홀로 계신 어머님을 돌봐드릴 사람이 없음이로다. 아! 어머님께서는 불효한 이놈 때문에 걱정하심이……!”

돌연 고개를 들던 적연흥의 두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는 뚫어져라 호수의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상…… 상공, 무슨 일이시옵니까?”

제연연이 문득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누님! 저쪽 맞은편 석벽을 보십시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아연했다.

“상…… 상공께서는 저 운무너머의 석벽이 보이시옵니까?”

적연흥이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공력이 이갑자하고도 반이나 되시는 누님의 안력으로 저 운무가 장애가 되십니까?”

제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첩신의 공력이 다섯 배로 급증했다고는 하나 그저 흐릿하게 맞은편에 석벽이 있다는 정도밖에 볼 수 없사옵니다.”

적연흥의 고개가 갸웃 했다.

“흠, 그럼 내 눈이 이상해졌나?”

그런 적연흥의 모습을 보며 제연연은 혀를 내둘렀다.

‘맙소사, 무공을 익히지도 않으신 분의 시력이 이정도시라니…… 만일 이분이 무공을 익히신다면…… 무적이 되시리다.’

그녀가 생각하는데 적연흥이 제연연의 허리를 안아 등에 업었다.

“어머멋! 상공!”

제연연은 입으로는 귀성을 토했으나 몸은 적연흥의 넓은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이…… 부끄럽사옵니다.”

“하하 누님도……이곳에 누가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님은 아직 걸음을 옮기시기 불편하실 테니 소제가 저곳까지 업고 가겠습니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얼굴을 홍시같이 붉히며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이갑자 반, 즉 백 오십 년 수위의 내공을 지닌 제연연, 그녀가 왜 걸음을 걷기에 불편할까?

모를 일이다.

“하하…… 누님! 갑시다!”

적연흥은 제연연을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씨―― 잉―― 씨―― 잉!

칼날이 스치듯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어멋!”

고개를 들었던 제연연은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적연흥의 달리는 속도는 대단했다.

신무애에 추락하기 전보다 몇 배 빠른 것으로 전에 제연연이 전력을 다해 펼치던 경공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누가 믿겠는가?’

제연연이 내심 혀를 내두르는데 적연흥은 이미 오 리 정도를 달려 그들이 처음에 섰던 곳의 반대쪽에 이르렀다.

“누님 보십시오!”

적연흥의 말에 석벽을 바라보던 제연연은 깜짝 놀랐다.

“어머! 동굴(洞窟)이 있었군요.”

그렇다.

적연흥이 맞은편에서 발견한 것은 하나의 큼직한 동굴이었다.

동굴은 지면으로부터 이 장 정도 높이에 뚫려있는데 제법 컸다.

“올라가겠습니다.”

제연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뛰어올라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적연흥은 그녀의 말에 껄껄 웃었다.

“하하……이곳에 떨어지기 전에도 이 장 정도는 뛰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신에 장강대하와 같은 힘이 끝없이 솟으니 능히 오 장이라도 뛰어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분은 자꾸만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구나.’

제연연은 내심 놀라면서도 흐뭇했다.

왜냐하면 적연흥이 자신의 지아비이므로……

“갑니다!”

적연흥은 일갈하며 지면을 박찼다.

파―― 앗!

슈―― 웃!

제연연을 업은 적연흥의 몸이 가볍게 날아 올랐다.

“웃!”

돌연, 동굴로 들어서던 적연흥의 몸이 흠칫 굳었다.

“독……독물이라도 있사옵니까?”

제연연은 겁이 나서 안쪽을 바라보지도 않으며 물었다.

“아닙니다. 누님. 잠깐 내려 주십시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조심조심 바닥에 내려섰다.

대체 동굴 안쪽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제연연이 의아해 하는데 적연흥이 갑자기 동굴 안쪽을 향해 부복하는 것이었다.

“미생 적연흥 감히 두 분의 선거(仙居)에 들어 어지럽혔습니다. 두 분의 영령께서는 널리 용서해 주시옵소서.”

제연연은 적연흥의 행동에 깜짝 놀라며 시력을 돋우어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녀의 두 눈도 크게 치켜 떠졌다.

동굴은 그리 깊지 않았다.

그 깊이는 겨우 오 장 정도였는데 동굴 끝의 석벽 앞에 두 구의 좌화한 시신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적연흥은 그 시신들에게 절을 했던 것이었다.

시신 중 왼쪽에 있는 시신은 회색가사를 걸친 승려의 시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구의 시신은 청포를 걸친 음산해 보이는 인물의 시신이었다.

‘아! 이 신무애에 우리보다 먼저 닿았던 인물들이 있었다니……’

제연연이 놀라는데 적연흥이 조용히 돌아섰다.

“누님, 저 두 분께서 최후를 마치신 안식처이니 그냥 나갑시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이 적연흥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상공께선 저 두 분의 신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시지도 않으시옵니까?”

“궁금합니다. 하지만 저 두 분은……”

“두 분께선 어쩌면 저희들이 읽기를 바라시고 어떤 단서라도 남기셨는지 모르는 일 아니옵니까? 나가시더라도 잠시 살펴보신 뒤에 나가시옵소서.”

제연연이 이끄는 바람에 적연흥은 제연연과 동굴 깊숙이로 들어갔다.

‘놀랍구나. 좌화한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난 듯 하건만 시신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니…… 아마도 이 두 분은 생존시에 내공이 초극에 이르러 계셨을 것이다.’

제연연이 놀라는 사이 적연흥은 바닥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장방형의 옥함이었는데 옥함의 뚜껑에 글이 적혀 있었다.

적연흥과 제연연은 옥함에 상배를 한 뒤에 조심스럽게 옥함에 적힌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놀라운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노납의 법명은 무허(武虛)라고 한다. 후일 천운으로 이곳에 드는 자가 있을까하여 이글을 적는다……>

 

“무... 무허!”

옥함에 적혀있는 글을 읽은 제연연의 안색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누님께선 이 분을 아시옵니까?”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알아요. 이분은 오백 년 전에서 사백 년 전까지 생존하셨던 소림사상 최강의 고승(高僧) 중 한 분이셨어요.”

“소림사의 고승이셨군요.”

제연연의 표정은 극히 엄숙하고도 공손하게 변했다.

“이 분은 소림 십팔대 장문인이 되실 분이셨으나 스스로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시는 성품임을 깨달으시고 장문인의 보위를 자신의 사질에게 양위한 미담은 유명해요. 당시에 무림에는 절대미문의 대혈겁이 발생했었어요.”

적연흥은 침중한 표정으로 제연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천살교(天煞敎)라는 한 방파가 저지른 혈겁으로, 그들은 천하패권을 위해 중원천하를 혈란으로 몰아넣었어요. 그때 이분 노선사께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셔서 천살교를 타도하셨다고 해요.”

“으음, 승인이라기보다 대협객이 되시는 것이 어울리셨을 분이셨군요.”

“네, 당시까지만 해도 구대문파의 성망이 대단하여 이분이 주도하신 구파연합군은 천살교를 괴멸시킬 수 있었어요. 물론 그 일전으로 구파가 격심한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말예요. 그후 이분의 행방이 묘연하셨는데 이곳에서 입적하셨군요.”

적연흥은 무허선사의 좌화한 시신을 우러러 보았다.

과연 덕망있는 노선사라기보다는 마치 나한(羅漢)같이 위맹하게 생겼다.

양인은 다시 옥함 위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천살교(天煞敎)를 괴멸시키기는 했으나 구파연합군의 구축을 이루었던 본사의 타격은 극심하였다. 이에 노납은 본사의 재건에 절치부심을 하였다.

그러던 중 노납은 불사 최고최강(最高最强)의 선공(禪功)이 도적의 손에 의해 장경각에서 반출되어 무림으로 유출되었음을 알았다.

대노한 노납은 강호로 나와 그 도적을 추격하여 마침내 이곳 북안탕의 산역(山域)에서 그 자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자는 야천신투(夜天神偸)라는 자였는데 알고 보니 그 자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그 선공(禪功)을 빼내었던 것이다.>

 

적연흥과 제연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림(少林) 최강의 선공(禪功)이라면 무엇을 말함입니까?”

적연흥의 물음에 제연연은 자신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금까지 알려지기로는 광명법신(光明法身)과 불영수미선강(佛影須彌禪罡)등이었아오나 이글을 보니 그 두 가지 선공보다 더 강한 선공이 있었던 것 같사와요.”

“계속 읽어 봅시다.”

 

<…… 야천신투가 위경에 처하자 그 사주자가 나타났다. 한데 놀랍게도 그 인물은 천살교(天煞敎)에서 교주 천살마신(天煞魔神)에 이어 제 이인자이던 환영비천신(幻影飛天神)이라는 자였다.

결국 일대 이의 대격전이 벌어졌다. 노납은 야천신투는 격살하고 선공(禪功)을 회수할 수 있었으나 환영비천신과 겨루다가 어이없게 둘이 함께 이 괴곡(怪谷)으로 추락했다.

그후 노납과 환영비천신은 간신히 목숨은 구했으나 한독(寒毒)의 침습을 받아 점점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에 만일 후인이 이곳에 닿게 되면 노납이 못다 했던 일을 이루어주기 바란다.

즉 이 옥함을 소림사(少林寺)에 전해주기를 바란다. 이 안에는 본사 조사령(祖師令)과 회수한 선공비급(禪功秘笈), 그리고 환영비천신(幻影飛天神)의 절기가 수록된 환영비천경(幻影飛天經)이 들어 있다.

만일 그대가 이미 섬긴 사문이 있다면 환영비천경을 그대에게 주겠으며 만일 아직 사문이 없다면 소림(少林)의 제자로 받아줄 수도 있다. 소림을 사문으로 섬기겠다면 노납에게 배사지례를 하고 조사령을 받들도록 하라.>

 

제연연이 환히 웃었다.

“상공 잘되었습니다. 이제 무공을 익히셔야 하니 기왕에 사문을 갖는 바에야 천년전통의 소림을 사문으로 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옵니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다시금 무허선사의 시신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삼배를 올린 연후에 그는 조심스럽게 옥함을 열었다.

과연 옥함 속에는 두 권의 비급이 들어 있고 하나의 자옥불상(紫玉佛像)이 놓여 있었다.

그 자옥불상이 바로 조사령으로 소림장문인이 갖고 있는 장문령(長門令)인 녹옥불령(綠玉佛令)마저 제어할 수 있는 조사령이었다.

그 권위가 이러함으로 대개 조사령은 장문인의 일대 스승이 지니게 되어 있다.

“소림 제 십구대 속가제자 적연흥 조사령을 배알합니다.”

적연흥은 다시 조사령에게 삼배를 올린 연후에 조사령을 조심스럽게 간수했다.

‘후훗, 되었다. 당금 소림의 최고 장로의 혜자돌림이 이십 육대 제자, 장문인 법현(法賢)방장께서 이십칠대 제자이니……상공께서는 당금 천하에서 가장 배분이 높으신 분이 되셨다.’

제연연은 내심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여자들의 소견머리라니……

적연흥은 조사령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선 사부님과 이분 노선배님의 유해를 안치해야 되겠습니다.”

제연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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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絶地의 남녀

 

 

 

“위험하다!”

모산독군의 다급한 폭갈이 터졌다.

위―― 잉!

모산독군의 소매로부터 강맹한 경기가 일어 만년화룡과 내단을 잇고 있는 무형경기를 잘라갔다.

파파파팟!

눈부신 불꽃이 튀었다.

모산독군의 웅후한 공세가 만년화룡(萬年火龍)이 내단을 조종하는 경기를 차단시킨 것이다.

그러나 단화(丹火)에 둘러싸인 만년화룡의 내단은 날아가던 여진으로 적연흥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피해볼 수도 없었다.

“아!”

적연흥이 당황하여 입을 딱 벌렸다.

다음 순간,

“아―― 악!”

적연흥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한순간, 만년화룡의 단화와 내단이 고스란히 적연흥의 벌린 입안으로 날아든 것이다.

“아우님!”

제연연이 비명을 지으며 적연흥을 끌어 안았다.

“연흥아!”

막 만년화룡을 향해 독강(毒罡)을 퍼부으려던 모산독군이 대경하며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절벽이…….”

음산잔마의 경악성이 터졌다.

만년화룡의 거구가 올라서는 통에 석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쿠와아…… 앙!

콰――르릉……

“아―― 악!”

신무애 쪽으로 돌기한 암벽전체가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적연흥을 꼭 끌어안은 제연연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기우뚱하던 두 남녀는 만년화룡의 거구와 함께 신무애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이야앗!”

모산독군은 일성대갈과 함께 떨어지는 두 남녀를 노리고 날아 내렸다.

찌지직――

안타갑께도, 간일발의 차이로 모산독군의 손은 적연흥의 장삼끝을 잡아채는 것으로 그쳤다.

휘르르――!

눈 깜짝할 사이에 적연흥과 제연연은 까마득히 떨어지고 이제는 모산독군마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형님!”

그 순간 음산잔마가 떨어지는 모산독군을 향하여 나무토막을 던져내었다.

“차하압!”

모산독군은 일성대갈과 함께 나무토막을 걷어찼다.

휘르르……

그리고는 그 반진을 이용 천학(天鶴)과도 같이 단애 위로 날아 올랐다.

“연흥아……!”

절벽 위로 날아오른 모산독군은 신무애를 내려다보며 처절하게 외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적연흥과 제연연, 만년화룡, 그리고 몇 명의 무림인들을 집어 삼킨 신무애에서 여전히 꾸역꾸역 안개만이 치솟고 있었다.

털퍽 주저앉은 모산독군의 두 볼로 뜨거운 것이 흐르고 있었다.

“형님……!”

음산잔마가 침통한 표정으로 모산독군에게 다가섰다.

 

***

 

“으으……!”

적연흥은 정신을 차렸다.

괴이하게도 몸속은 마치 불덩이를 삼킨 것 같이 뜨거운데 전신의 피부는 얼음구덩이에 빠진 듯이 차가웠다.

‘으……으…… 여…… 여기가 지옥인가?’

적연흥은 뜨겁고 차가운 상반된 기운에 내외로 고통을 받으며 전신을 떨었다.

‘으…… 누…… 누가 내게 붙어 있는 모양이구나…….’

전신의 피부가 얼어붙은 듯하여 제대로 느낄 수는 없으나 분명 누구인가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눈…… 눈을 떠야 하는데…….’

적연흥은 딱 붙어있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이를 악물었다.

한동안 사력을 다해 근육을 움직여서야 비로소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헛…… 누…… 누님께서……!”

눈을 뜬 적연흥은 대경했다.

그들은 지금 넓은 호수 속에 빠져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호수 가운데에 솟아 있는 검은색의 바위로 이루어진 돌섬인 모퉁이었다.

흑옥(黑玉)같이 검은 바위로부터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솟았으며 반쯤 몸이 담긴 호수물도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얼마나 차가웠으면 몸 주위에 한 겹의 얼음이 얼었을 정도였다.

한데, 적연흥의 몸을 한 여인이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여인은 지독한 한기로 인해 전신이 얼어붙어 있었다.

미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얼어붙어 있는 여인!

그녀는 바로 제연연이었다.

“누…… 누님께서…….”

적연흥은 손을 움직여 제연연을 만지려 했다.

그러나,

파파팍…… 쩌――엉……!

제연연의 의복이 유리 부서지듯 부서져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으음…… 자칫하면 누님의 옥체마저 부서지기 십상이다. 한데……”

적연흥은 천천히 전후사정을 상기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만년화룡의 단화(丹火)와 내단(內丹)을 삼키는 순간 정신을 잃었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모든 사정이 이해가 되었다.

이곳은 신무애 밑으로서 천지(天地)의 극음지기(極陰之氣)가 모이는 곳이었다.

이름하여,

 

――극음빙천(極陰氷泉).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극음지기가 모여드는 비소(秘所)인 관계로 무엇이든지 얼려버리는 지독한 한기를 지니ㄱ조 있다.

두 남녀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수면에 만년화룡의 거구가 떠있는데 만년화룡도 전신이 얼음에 뒤덮여 있었다.

또한 함께 떨어진 몇 명의 무림인들도 꽁꽁 얼어붙은 채로 떠있었다.

“천행으로 나는 저들같이 얼어붙지 않았구나.”

적연흥은 나직이 탄성을 토했다.

그는 만년화룡이 만년동안 태양자기와 지심열극을 흡수하여 단련한 내단을 복용한 탓에 얼어 죽지 않은 것이다.

얼어 죽기는 커녕 그의 내부는 마치 용광로 같이 뜨거웠다.

어디론가 그 열기를 토해 버리지 않으면 전신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만년화룡의 내단은 천하제일인 극양지물(極陽之物)이었다.

천하제일의 극양지물인 만년화룡의 내단을 삼켜 그 극심한 열기로 내부가 한 줌의 재가 되버리려는 순간 이곳 극음빙천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천행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비록 살았으나 누님께서는 어떤 상태인지…….”

적연흥은 조심스럽게 자신과 한 몸이나 된듯이 붙어 있는 제연연의 상세를 살폈다.

“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하옵니다.”

갑자기 적연흥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또 다른 천행(天行)!

기적이라 할 일이 벌어져 있었다.

적연흥을 꼭 끌어안고 있는 제연연의 가슴 부분에 미미하게 온기가 있었던 것이다.

즉, 그녀는 태양(太陽)과도 같은 불덩어리인 적연흥을 안고 있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폭발할 듯한 열기가 적연흥과 마주 닿은 제연연의 가슴부위로 흘러들었고, 그로 인해 제연연은 동사를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누님은 간신히 한 줄기 숨이 붙어 계신 상태이다. 어떻게든지 이분을 회생시켜야 하는데…….”

격동을 가라앉힌 적연흥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독한 운무가 사방에 깔려 있다.

그런 속이건만 기이하게도 적연흥은 시야가 더할 수 없이 환했다.

모두가 만년화룡의 내단을 복용한 때문이리라.

“지면(地面)이 있다.”

그는 자기의 우축 삼십여 장 밖에 널찍한 지면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우선 뭍으로 나간 뒤에 치료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겠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으윽……!”

그 흑옥석같은 바위 위를 떠나자 내부의 열기가 미친 듯이 기승을 부렸다.

호수물도 지극히 차가왔으나 적연흥 내부의 열기를 식혀주기에는 부족했다.

하나, 멈출 수 없는 노릇,

그는 전신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천천히 물을 헤쳐 나갔다.

산곡의 거치른 물살에서 자맥질을 즐기던 그인지라 수영하는 데는 자신이 있는 그였다 .

이윽고, 적연흥은 물가에 닿았다.

제법 넓은 지면이 깎아지른 듯한 석벽에 연하여 있었다.

“으―― 흡!”

물가로 올라서던 적연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제어하는 것이 없자 몸속의 열기들이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크으……못견딜 정도다.”

적연흥은 이를 악물었다.

“내…… 내게는 고통스러우나 누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사실이었다.

적연흥의 전신에서 무지막지한 열기가 솟구치자 제연연의 전신에 뒤덮였던 얼음들이 모조리 녹아 내린 것이다.

“크…… 으…… 음……!”

적연흥은 제연연을 안고 비틀비틀 석벽 밑으로 갔다.

이미 제연연의 전신은 완전히 풀려있고 적연홍의 몸속의 열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조심해야한다. 할아버지들께서 주신 귀중한 비급들이 손상될 수도 있으니…….”

적연흥은 품속에서 세 권의 비급을 꺼냈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

<천잔경(天殘經)>

 

이것이 세 비급의 제목이었다.

세 권의 비급은 지독한 열기에 누렇게 색이 바래 있었다.

“자칫했으면 두분 할아버지의 은혜를 수포로 만들 뻔 했다.”

적연흥은 세 권의 비급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파다닥……

제일 위에 놓였던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이 미끄러지면서 활짝 펼쳐졌다.

“응?”

도로 잘 놓으려던 적연홍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는 황급히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을 집어 들었다.

 

<요상편(療傷篇)>

 

――천하만물(天下萬物)은 음양(陰陽)에서 나오고 오행(五行)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으로 유지 되나니, 훼(毁)를 보(甫)하고 상극(相克)을 해(解)함이 요상(療傷)의 요체(要體)라. 상극(相克)은……――

 

적연흥은 이미 일시의 고통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로, 오직 요상편을 읽는데 몰두했다.

 

<음양화합도전대법(陰陽和合到轉大法)>

 

적연흥의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난생처럼 해괴한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본 것이다.

남녀(男女)가 교합(交合)하고 있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흐―― 음!”

진탕되는 가슴을 진정시퀸 적연흥은 그림 아래로 적힌 설명을 읽어갔다.

 

―― 천지(天地)가 음양(陰陽)으로 나뉘니 천지간(天地間)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음양(陰陽)으로 나뉘도다.

따라서 음양의 위치에서 나오는 힘(力)이야말로 천지간에서 가장 강(强)하고 넓으며(幽) 깊음(深)이라.

요상(療傷)에 있어서 제일(第一)로 음양(陰陽)의 이치로 기(氣)를 살리며(生)…… 따라서 음양화합도전대법(陰陽和合到轉大法)은 가장 훌륭한 요상대법(療傷大法)이니라. 상대가 어머니, 누이들이 아니라면 서로에게 이로움(益)이 있는……――

 

그 아래로 자세한 시술 방법이 적혀 있었다.

이의 특징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데에서도 시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단지 그 시술이 부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다.

“휴…… 이를 어쩐다……”

적연흥은 난색을 지었다.

요상편의 다른 곳을 살펴보았으나 모두가 내공(內功)의 힘이나 정교한 침술 등으로 시전하는 요상대법들 뿐이다.

지금 당장 적연흥이 제연연에게 베풀 수 있는 요상대법은 음양화합도전대법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어찌 누님의 청결함을 더럽히랴? 하물며 나는 아직 어린 아이니…… 도저히 그런 것은……”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잠시 떼어놓은 사이에 제연연의 전신이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언제 한 줄기 숨마저 끊어질지 모를 일이다.

적연흥은 빨리 가부간의 결정을 내야만 했다.

‘별 도리 없다. 누님을 이대로 절명케 할 수 없으니…… 나중에 누님께 죽음으로 속죄하는 한이 있더라도……’

적연흥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떨리는 손길로 제연연의 몸을 바로 뉘였다.

살짝 눈을 감은 채 고요한 모습으로 몸을 뉘고 있는 여인.

더구나 그 여인의 모습이 천상선녀와 같고 농염함이 극에 달한 삼십대 여인임에야……

적연흥은 숨이 탁 막혔다.

위경에서는 몰랐으나 막상 여인을 안으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옴을 어쩔 수 없었다.

몸에 젖어 의복이 몸에 착 달라붙은 관계로 여인의 농만한 육체의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모습은……

“누님…… 용서하십시요.”

적연흥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제연연의 옷고름을 잡아 당겼다.

사르르……

옷고름이 풀어지며 저고리가 옆으로 벗겨졌다.

“으으음……”

적연흥의 눈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백설보다도 뽀얀 가슴의 속살, 둥그스름한 어깨 밑으로 불룩한 융기가 분홍빛 천에 꼬옥 눌려 있었다.

“흐…… 음!”

적연흥은 단전으로 부터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치솟음을 느끼며 제연연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뭉클!

무어라 형언할 수도 없는 탄력과 부드러움이 손바닥 가득히 느껴졌다.

입안이 탄다!

적연흥은 침을 삼키며 제연연의 젖가슴을 졸라맨 젖가리개를 풀어내었다.

출―― 렁!

물결이 인다.

천하에서 가장 넓고, 가장 부드러우며, 가장 따스한 커다란 바다!

그 바다가 출렁인다.

뽀얀 육향으로 천지를 가득 메우면서……

그 부드러운 파도의 융기 위에 분홍빛으로 수줍게 물든 두 개의 열매……

떨리고 있다.

천하에서 가장 굳건한 정력(定力), 모산독군조차 감탄했던 적연흥의 정력도 이 순간에는 허무한 모래성 같이 흩어졌다.

태초(太初)!

인간이 가장 먼저 찾았던 그 따스하며 풍요한 생명의 근원 앞에서야……

‘안고 싶다.’

순수하고도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적연흥은 양손으로 제연연의 젖가슴을 움켜 쥐었다.

뭉―― 클!

적연흥은 아찔해지는 젖가슴의 감촉을 음미하며 젖가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바르르……

죽은 듯 늘어진 제연연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적연흥은 서서히 제연연의 가슴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또르르……

발갛게 익은 유두가 굴렀다.

그 향기로움, 그 따스함……

“누님…… 당신을 갖겠습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의 가슴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의 손과 입술에 의해 제연연의 젖무덤이 끝없이 파랑을 일으켰다.

적연흥의 다른 한 손은 서서히 제연연의 몸을 탐색해 내려갔다.

바람을 잔뜩 머금은 듯 팽팽히 부푼 복부,

끊어질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잘룩한 세요(細腰).

그와 반대로, 천하의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드넓게 벌어진 둔부.

오목한 배꼽 밑으로 부드럽게 부푼 하복부의 융기……

그리고……

“으음……”

적연흥의 전신이 뇌전에 맞은 듯이 경련을 일으켰다.

왜?

그의 손이 무엇을 보았기에……

적연흥은 제연연의 젖무덤에서 얼굴을 떼고 일어섰다.

이미, 제연연의 하의는 둔부까지 벗겨져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은 둔부의 전면으로 불룩이 솟은 둔덕이 있다.

긴 능선이 합쳐지는 곳에 자리한 둔덕은 분홍빛 천으로 살짝 가려져 있었다.

“으음……”

적연흥은 흥분과 두려움으로 떨며 제연연의 그곳을 쳐다보았다.

이어, 그의 떨리는 손이 제연연의 하의를 벗겨 내렸다.

천하명장(天下名匠)이라 한들 어찌 이같은 조각품을 만들랴?

미끈하고 알맞게 살이 오른 두 개의 백옥기둥이 살짝 벌어진 채 적연흥의 앞으로 드러난 것이다.

“으으으……”

적연흥의 눈에서 핏발이 돌았다.

휘릭……

그는 찢다시피 자신의 의복을 벗어 던졌다.

삽시에 적연흥은 태어 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벌거벗은 그의 나신은 마치 화신(火神)의 그것같이 보였다.

전신이 시뻘건 화기(火氣)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흐……”

강렬한 욕망을 실은 눈길로 반듯이 누운 제연연을 바라보던 적연흥은 제연연의 하의로 손을 가져갔다.

부―― 욱!

얇은 천이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적연흥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비궁(秘宮)!

적연흥은 화석같이 굳어졌다.

난생처럼 발견한 여인의 비소는 적연흥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어느 순간,

“으……누…… 누님! 용서……”

적연흥이 야수같이 부르짖으며 덮쳐 들었다.

파―― 악!

파과(破瓜).

적연흥은…… 제연연의 것이 되었다.

아니, 제연연이 적연흥의 것이 된 것이다.

천지합일(天地合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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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萬年火龍

 

 

백의염왕은 주춤 하다가 이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퍼――억!

피가 튀었다.

털퍽!

백의염왕의 왼팔이 피를 튕기며 지면에 떨어졌다.

‘으음…… 역시 할아버지의 명성이 얼마나 되는지 알만하다. 자기 스스로 자기 팔을 끊다니…….’

적연흥은 내심 경악했다.

모산독군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로 알려져 있는지 재삼 깨달은 것이다.

백의염왕은 감히 불평 한 마디 못하고 묵묵히 지혈을 하였다.

“가자!”

백의염왕은 이어 끊어진 자기 팔을 접어 들고 몸을 날려갔다.

그러자 약삭빠르게 생긴 중년인과 백의몽면인들은 어마 뜨거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잠깐 멈춰랏!”

모산독군이 돌연 냉갈을 터뜨렸다.

삼사십 장 밖으로 달려가던 백의염왕의 몸이 일순 차갑게 식었다.

‘저…… 저 노독물이 혹시 생각을 바꾼 것이 아닐까?’

백의염왕은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러 내림을 느끼며 돌아섰다.

그리고는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노선배님, 무슨 분부 계시온지요?”

모산독군은 싸늘히 말했다.

“다른 자들은 가도 좋지만 독심제갈이란 애송이는 남거라.”

백의염왕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와 함께 중인들의 시선이 약삭빠르게 생긴 중년인에게로 모아졌다.

“으으…….”

그자는 사색이 되어 주춤주춤 물러섰다.

“후…… 후배는 잘못한 일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포의 기색을 띄웠다.

그러나 모산독군의 안색은 점점 더 싸늘하게 변해갈 뿐이다.

‘여…… 여기서 개죽음을 할 수야 없다. 내게는 야심이 있거늘…… 저 노독물과의 거리가 이십 장이 넘으니…… 잘하면 달아날 수도…….’

그자는 결심하자마자 전공력을 모았다.

파――얏!

“이―― 얏!”

그자의 신형이 번뜩 허공으로 떠올라 단번에 칠팔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

‘설마 저 정도 거리면…….’

중인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리석은 놈, 살려 줄 수도 있었으나, 네놈이 감히 노부의 앞에서 달아나려 하다니…….”

냉갈과 함께 모산독군의 우수가 허공으로 들려졌다.

그리고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하지만,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크――아―― 악!”

파파파팟――!

삼십 장 밖으로 달아나던 독심제갈이 처절한 비명을 터뜨린 것이다.

그와 함께 그자의 몸은 삽시에 혈수(血水)로 녹아 내렸다.

실로 믿지 못할 일이었다.

“……!”

“……!”

장내는 물 끼얹은 듯이 조용해 졌다.

‘으…… 무섭다. 삼십 장을 격하고도 살상할 수 있다니…….’

휘―― 익――

“으아아……!”

백의염왕이 몸을 날리자 염왕보의 졸개들도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났다.

군웅들 중에서도 마음 약한 자들은 슬금슬금 사라졌다.

“핫하…… 형님 대단하십니다.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까지 완성하셨군요.”

음산잔마가 크게 웃자 모산독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은 독문(毒門)에 내려오는 전설적인 독공이었다.

살의만 품으면 백 리 밖의 적도 살해할 수 있다고 전한다.

유사이래 독문의 조종격인 만독노조(萬毒老祖)만이 이루었다는 경지로서 그 후에는 누구도 완성하지 못했었다.

그 경지를 모산독군이 이룬 것이다.

문득, 적연흥이 입을 열었다.

“이곳이 용연곡의 입구입니다. 소자는 이만 신무애 쪽으로 가보겠사옵니다.”

모산독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무애는 이곳에서 머냐?”

“그리 멀지는 않사옵니다. 이곳에서 일마장 정도 가면 되옵니다.”

“흐음……그래?”

모산독군은 고개를 돌려 중인들을 바라보았다.

중인들은 모산독군의 시선이 자기들에게 닿자 움찔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후배…… 인사드리옵니다.”

그들 중 일인이 문득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 인물은 특이한 복장을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삼십 전후의 여인으로서 궁장같으나 자세히 보면 궁장(宮裝)이 아닌 특이한 자의(紫衣)를 걸치고 있었다.

‘미인이다.’

적연흥이 여인에게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무척이나 서글서글한 눈매와 포근한 인상의 여인이다.

이미 삼십 정도 되어 뵈는 여인이 어전히 처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여인의 모습을 본 모산독군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은하궁(銀河宮)의 제자냐?”

여인은 공손히 대답했다.

“네, 소녀는 은하선자(銀河仙子) 제연연(齊淵燕)이라 하옵니다.”

“흠…… 은하여제(銀河女帝) 제여협은 너와 어떤 사이냐?”

 

-은하여제(銀河女帝).

 

그녀는 일대여걸이었다.

무명의 은하궁이라는 문파를 무림제일염파(武林第一艶派)로 만들었다.

은하궁이란 여인들만의 문파로서 기이하게도 궁도들이 모두 제씨(齊氏) 성을 갖고 있다.

은하여제는 이미 구십여 년 전에 타계했으며 당대 은하궁주는 은하여제의 증손녀였다.

“그분께서는 소녀의 증조모 되시옵니다.”

“흠 그렇게 되겠군. 제여협께서 타계하신지 이미 백여 년이 다되어 가니…….”

모산독군과 은하여제는 동시대의 인물이다.

“네게 이 아이를 부탁하고 싶구나.”

모산독군이 적연흥을 가리키자 은하선자의 봉목이 이채를 띄었다.

‘대단한 기재다. 재질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일대종사의 기개가 서려 있으니……’

언뜻 제연연의 눈에 야릇한 빛이 지나갔다.

모산독군과 음산잔마 같은 인물들이 그걸 놓칠 리 없다.

그러나 두 노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 못본 척 했다.

“해는 이미 기울어지고 이 아이는 신무애로 한 가지 약초를 찾으러 가니 아무래도 안심이 아니 되는구나.”

제연연이 뇌살적이라 할만큼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노선배님께선 심려놓으시옵소서. 소녀가 이분 공자를 모시겠습니다.”

“허허…… 그래주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제연연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소녀, 이분 공자님 모시고 가겠습니다.”

적연흥도 모산독군과 음산잔마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소자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두분 할아버지께서도 만년화룡을 상대하심에 조심하시기 비옵니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웃고 음산잔마는 헤벌쭉,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하하…… 어서 가보아라. 후일 기회 있으면 음산(陰山) 천잔곡(天殘谷)으로 놀러오거라.”

“네……그럼…….”

적연흥은 두 노인과 작별하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공자님…… 소첩이 도와드릴까요?”

제연연이 바짝 다가섰다.

진한 분내음이 확 풍겼고 적연흥으로서는 생전처음 느끼는 성숙한 여인의 살내음이 물씬 풍겼다.

거기다 처음 보는 자기에게 소첩운운하하며 다가들자 적연흥은 한바탕 가슴이 진탕 되었다.

적연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외다. 소생 혼자서도 달릴 수 있소이다.”

말을 함과 동시에 적연흥의 몸이 전면을 향해 쏘아갔다.

휘르르……

그 즉시 은하선자 제연연의 교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러는 그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적연흥은 길도 아닌 험지를 마치 질주하는 맹호와 같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대…… 대단한 주력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면서 저 정도로 달릴 수 있다니…….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제연연의 작은 가슴에서 거센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삽시에 두 사람이 사라지자 음산잔마가 걱정스러운 빛을 띄었다.

“노형님! 자칫하면 연흥이가 은하궁(銀河宮)의 씨받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어린 계집의 눈치를 보니……”

모산독군이 미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은 일 아닌가? 은하궁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쓸만한 아이들이며 저 아이의 혈통으로 보면 훌륭한 자손들이 나올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지금 두 노인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

씨받이라니…….

음산잔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적가의 자손이 못되고 제가의……”

모산독군이 손을 저었다.

“허허, 그만 두어라. 너의 속셈 모를 줄 아느냐? 훌륭한 손주 사윗감 놓칠까 보아 안달하는 게지?”

음산잔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적게 웃었다.

“인연이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조바심 낼 것도 없느니라. 자 용연곡으로 들어가자. 노형의 목적은 만년화룡을 제거하는 것이니…… 내단을 얻으면 네게 양보하마.”

“고맙습니다, 형님……”

두 노기인은 용연곡으로 들어섰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군웅들도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너무나 아름답다. 대면하기 두려울 정도로……’

적연흥의 가슴이 난생 처음으로 크게 뛰고 있었다.

바람결에 긴 머리칼을 펄럭이며 날아가는 제연연의 모습!

그것은 그대로 선녀(仙女) 바로 그것이었다.

적연흥은 이제껏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세상에 존재하리라 믿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어머니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영원히 최고지상(最高至上)의 여인임으로…….

제연연의 일보 일보의 옥보와 자그마한 움직임조차 미와 조화의 극치였다.

물론, 제연연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적연흥에게 잘 보이려 하는 때문도 있으나 사실 그녀는 천하에 내놓아도 적수가 드물 최고의 미인이었다.

휘르르……

양인은 어느덧 병풍을 세워 놓은 듯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닿았다.

절벽의 안쪽은 수직으로 깎아 세운 끝이 없는 단애였다.

단애의 밑으로 부터는 극히 음랭한 한기를 실은 운무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 한기가 얼마나 강한지 무공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제연연이건만 교구를 바르르 떨어야 했다.

“이곳이 북안탕 이대절지의 다른 한 곳인 신무애(神霧崖)입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을 향하여 말했다.

파파팟!

양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작열하며 빛을 발했다.

거의 동시에, 양인은 시선을 거두었다.

적연흥은 눈길을 절벽의 외측 경사면을 더듬었다.

어머니의 고질을 치료하기 위한 담석화(曇石花)를 찾는 것이다.

“저…… 공자의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문득, 제연연이 절벽 위에 선채 적연흥에게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집요하게 적연흥의 등쪽을 따르고 있었다.

“적연흥이라 하외다.”

적연흥이 발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소첩의 천명은 제연연이라 하옵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린 적연흥은 씩 웃어보였다.

“아름다운 이름이십니다.”

제연연의 두 볼이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감사하옵니다. 하온데 찾고 계시는 것이 무슨 약초이시온지요?”

적연흥은 담석화와 유사한 야생화를 살피며 말했다.

“담석화(曇石花)라 하는 약초외다.”

“담석화라면 기(氣)가 허해지고 심약(心弱)한 체질을 바꾸는 약초 아니옵니까?”

적연흥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제연연이 의도에도 조예가있음을 깨달은 때문이리라!

“맛소이다. 소저께서 담석화를 알고 계신 것을 보니 소저께서도 의도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이 보이외다.”

적연흥의 말을 들은 제연연은 살포시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조예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박한 것이라 부끄럽사옵니다. 하온데 담석화를 어디에 쓰시려고……?”

적연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해 주어도 괜찮겠지……’

적연흥은 천천히 자기의 주변 이야기를 했다.

본시는 그다지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성질은 아니었으나 제연연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제연연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의 눈길은 따스하게 빛나며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소생이 괜한 신변잡기를 길게 늘어 놓아 소저의 심기만 어지럽힌 것 같소이다.”

적연흥의 어투는 그대로 어른의 어투였다.

‘누가 이 소년을 십육 세의 소년이라고 볼 것인가? 저 태도하며 기개가 천인(天人)의 그것과 같으니…… 연연아. 궁을 위해서라도 저 소년을 놓치면 아니 될 것이니라.’

제연연은 눈부신 듯한 시선으로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사와요.”

여인이 두 볼을 장미빛으로 상기시키며 말하는 모습은 너무도 고혹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소생의 힘으로 할수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적연흥이 선선히 대답했다.

제연연은 바싹 긴장ㅎ며 입을 열었다.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나…… 제 나이가 공자보다 조금 많으니……”

제연연은 힘겹게 운을 떼었다.

“저를…… 저를…… 누나라고 불러 주실 수 없으세요?”

“누…… 누님으로……?”

적연흥의 몸이 휘청 했다.

제연연의 부탁이라는 것이 외남매를 맺자는 얘기인 줄은 생각도 못한 때문이다.

적연흥은 잠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제연연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제연연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흑!”

갑자기 제연연은 섬섬옥수로 옥안을 가리며 오열을 터뜨렸다.

“흑흑…… 알아요. 이 계집은 공자와 의를 맺을 정도로 잘 생기지도 못했고…… 모든 것이 형편없는 계집이라고요…… 흑흑……”

적연흥은 당황했다.

그가 언제 여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는가?

“그……그런 것이 아닙니다.”

적연흥은 얼른 제연연에게 다가가 제연연의 섬섬옥수를 얼굴에서 떼어냈다.

“누님같이 아름다운 분을 누님으로 둘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의 얼굴이 환히 펴졌다.

“정…… 정말이시옵니까?”

“그렇습니다……”

제연연의 두 눈이 이번에는 감격으로 붉게 충혈되었다.

“아우님……!”

제연연이 와락 안겨 들었다.

‘어! 어어……!’

뭉클한 여체가 가슴 가득히 안겨오자 적연흥은 기겁을 했다.

뭉클한 감촉과 향긋한 육향이 그의 가슴을 무섭게 탕진시켰다.

생전 처음 여체를 접한 때문이다.

그러나, 밀어낼 수도 없는 일, 적연흥도 굳건한 두 팔로 제연연을 마주 안았다.

“누님……!”

“아우님…… 고마워요. 아우님을 얻게되다니……”

제연연은 적연흥의 가슴에 얼굴을 깊이 파묻었다.

그녀의 두 팔은 적연흥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소 지나친 그녀의 태도다.

적연흥도 그것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떼어 놓으려하면 그녀가 무안해 할 것이므로……

두 남녀는 마주 끌어 안은 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점차, 적연흥은 단전으로부터 괴이한 열기가 솟구침을 느끼고 대경했다.

‘내가…… 음심을 품다니…… 이 무슨 추태인가?’

적연흥이 제연연에게 음심(淫心)을 일으키는 자신을 탓하며 막 제연연을 떼어 놓으려 할 때였다.

크아…… 아……앙!

북안탕 전체가 뒤흔들렸다.

용연곡쪽으로부터 천지를 뒤흔드는 괴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학!”

“으음……!”

두 남녀는 흠칫 하며 용연곡쪽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용연곡쪽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들렸다.

푸드득! 푸드득!

우―― 우!

두두두……!

일대 소란이 일었다.

용연곡쪽으로부터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산짐승들이 산지사방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맹호, 곰, 늑대, 표범 등의 맹수로부터 사슴, 노루, 토끼 등등의 짐승들까지 서로 뒤엉킨 채 달아나고 있었다.

쿵! 쿵! 쿵!

크와아…… 앙!

지축이 뒤흔들리고 심혼을 떨어 울리는 거창한 포효소리가 점점 더 가까와졌다.

화르르르――

그와 함께, 용연곡 방향이 완전히 불바다로 화했다.

시뻘건 화마가 허공을 시커먼 연기로 뒤덮으며 노도같이 번져 나갔다.

쿵―― 쿵!

불길을 헤치고, 돌연 거대한 괴물이 몸을 드러내었다.

태산이 무너져도 꿈쩍 않을 것만 같던 적연흥이건만 이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졌다.

괴물은 두 다리로 우뚝 일어선 채 두 앞발로 높이 수십 장이나 되는 거목들을 썩은 짚단같이 쓰러뜨리고 있었다.

우뚝 일어선 키만도 이십 장, 전신이 시뻘건 가죽으로 뒤덮여 있으며 머리하나 크기만도 집채만했다.

게다가, 딱 벌린 동굴같은 아가리에서는 지옥의 그것같은 불길이 토해지고 있다.

인화가 번뜩이는 한 쌍의 눈에서는 굉폭한 흉갈이 번뜩이고…… 그야말로 인세(人世)에서는 상상도 못할 그런 거대한 괴물이었다.

“꺄아악!”

여인인 제연연, 황급히 적연흥의 등뒤로 숨었다.

적연흥은 그녀의 교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절정의 무공을 지녔다고 해도 역시 아녀자이므로……

“으음…… 만년화룡(萬年火龍)!”

적연흥의 입에서 무거운 탄성이 터졌다.

“듣기보다 더욱 대단한 괴물이군.”

적연흥은 천천히 어깨에 메었던 강궁(强弓)을 풀어 손에 쥐었다.

“아…… 아우님…… 무엇을 하시려고……?”

제연연이 놀라 물었다.

“피하기는 너무 늦었습니다. 저놈이 우리를 발견못하고 지나친다면 모르나 만일 발견한다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이었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신무애의 돌출한 부분으로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게다가 운나쁘게도 만년화룡은 나머지 한 방향에서 정면으로 달려 들고 있었다.

크와……아앙!

만년화룡은 점차 신무애쪽으로 다가왔다.

만년화룡의 전신은 지독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아마도, 모산독군과 음산잔마의 극심한 공세에 당한 모양이다.

“웃!”

적연흥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만년화룡의 두 눈이 무서운 흉광을 발하는 것을 본 것이다.

‘발견 되었다!’

어지간한 적연흥이건만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삼십 장의 거구를 지닌 공룡(恐龍)이 아닌가?

크와아…… 앙!

쿵! 쿵쿵!

적연흥과 제연연을 발견한 만년화룡은 무서운 기세로 양인을 향해 돌진해왔다.

“흥아!”

멀리서 다급한 모산독군의 고함소리가 일었다.

쐐――애액!

휘―― 잉!

모산독군과 음산자마의 신형이 뇌전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쿵! 쿵!

만년화룡의 거구는 이미 오십 장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아……아우님……”

제연연이 바들바들 떨었다.

“소제 뒤에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적연흥은 침착히 말하며 강궁을 쳐들었다.

제연연은 이미 무림여걸이 아니라 연약한 한 아녀자일 뿐이었다.

패―― 앵!

강궁이 크게 부풀었다.

쿵! 쿵쿵!

만년화룡은 이미 삼십 장 안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연홍아! 활로는 안된다.”

만년화룡의 뒤로부터 모산독군의 다급한 일성이 터졌다.

파――앗!

쐐애――앵!

그 순간 강전(强箭)이 전광갈이 폭사되어 나갔다.

카―― 앙!

이럴 수가……

한 자 두께의 목판도 꿰뚫는 강전이건만 만년화룡의 가죽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크와―― 아앙!

그 화살은 만년화룡의 노기만 돋구었다.

화르르……

거창한 불기둥이 두 사람을 휩쓸어왔다.

“우웃!”

적연흥은 다급히 제연연을 끌어안고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신무애의 바로 끝에 몰렸다.

쿵…… 쿵!

만년화룡이 다가서자 절벽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눈! 눈이라면……’

적연흥의 봉목이 신광을 발했다.

패―― 앵!

쾌첩하게 또 다른 강전이 강궁에 매겨졌다.

쉬―― 익!

전광석화(電光石火)!

다음 순간,

파――악!

크와―― 와―― 악!

강전은 정확히 괴물의 오른쪽 눈을 관통했다.

“이 노―― 옴!”

그순간 만년화룡의 등쪽으로 모산독군이 날아들며 일장을 후려쳤다.

콰―― 앙…… 콰르르……

만근 화약이 터지듯!

쿠와아아―― 악!

철판같은 만년화룡의 등판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만년화룡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지며 입을 딱 벌렸다.

콰――우웅……

화르르……

갑자기 만년화룡의 입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토해졌다.

찬연한 화광을 발하는 불덩이는 곧장 적연흥에게로 쏘아져 갔다.

아!

그것은 만년화룡이 만년 동안 태양자기(太陽磁氣)와 지심극열(地深極熱)을 흡수하여 형성한 내단(內丹)과 단화(丹火)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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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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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奇人들의 배려

 

 

 

적연흥이라…… 좋은 이름이구나.”

모산독군의 말에 적연흥은 멋적게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모산독군은 그런 적연흥의 모습을 보며 더욱 마음이 끌림을 느꼈다.

볼수록 훌륭한 아이다. 마치 갈지 않은 보옥과 같도다. 한번 크게 길러볼 만한 아이지만……

적연흥은 백호피를 둘둘 말아 짊어진 뒤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께서 이 깊은 북안탕까지 오신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있으신 때문이겠지요?”

모산독군은 자애롭게 웃었다.

그렇단다. 연흥이는 북안탕에서 살았으니 이곳의 지리는 훤하겠구나.”

몇 군데 가보지 못한 험지가 있기는 하오나 대개의 지형은 알고 있사옵니다. 할아버지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만 해주시면 소자가 안내해 드리겠사옵니다.”

허허, 그래 주겠느냐? 노부는 용연곡(龍淵谷)이라는 곳을 찾고 있단다.”

갑자기, 적연흥의 안색이 침중히 변했다.

용연곡(龍淵谷)이라 하셨사옵니까?”

그렇다. 한데 네 안색을 보니 무엇인가 꺼리는 것이 있는 듯이 보이는구나.”

적연흥이 침중한 안색을 짓는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북안탕에는 몇 군데 절지가 있으며 특히 그중의 양대절지(兩大絶地)는 세상에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용연곡(龍淵谷)>

<신무애(神霧崖)>

 

이 두 곳을 일컬어 양대절지라고 한다.

용연곡은 특이하게도 방원이 수십 장이나 되는 작은 호수가 있는 계곡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호수에는 한 마리 괴물이 살고 있어 가끔 물 밖으로 나오곤 한다는 것이다.

적연흥은 아직 용연곡의 괴물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 괴물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적연흥이 사는 마을에도 몇명 있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괴물은 그 크기가 근 삼십 장이나 되어 마치 작은 동산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머리 하나가 집채만 하며 코와 입에서는 시뻘건 불을 뿜는다고 했다.

특히, 요즘은 그 괴물이 자주 연못에서 나와 용연곡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그 통에 용연곡 주위 오 리가 잿더미로 변했다는 것이다.

용연곡이 이러한 곳인 까닭에 적연흥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한 것이다.

할아버지. 용연곡에 꼭 가셔야 합니까?”

그의 어조와 안색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이를 본 모산독군은 점점더 마음이 흐뭇해짐을 느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적연흥의 어깨를 다독였다.

네가 용연곡에 사는 만년화룡(萬年火龍)에 대한 소문을 들은 때문에 노부를 걱정하는 게로구나.”

적연흥은 흠칫 했다.

만년화룡(萬年火龍)이라고 하셨사옵니까?:”

오냐. 혹시 네가 만년화룡을 알고 있지 않느냐?”

적연흥은 겸연쩍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전에 아버님께서 남겨 놓으신 고서 중에 괴이지(怪異誌)라는 책에서 만년화룡에 대한 기록을 본적이 있었사옵니다.”

모산독군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 이 아이 부모들도 그저 평범한 촌민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 괴이지에 무어라 적혀 있느냐?”

적연흥은 신중히 대답했다.

만년화룡(萬年火龍)은 상고시대에 살았던 화룡(火龍)중에서 잔존한 괴물로서 태양자기(太陽磁氣)와 지심극열(地深極熱)을 쌓는다고 합니다. 만년의 수련을 쌓은 만년화룡은 하나의 내단(內丹)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내단이 완성되고 백일이 지나면 승천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일단 승천하면 악룡(惡龍)이 되어 천하를 열기로 휩쓸어 잿더미로 만들며……

적연흥은 말을 하다가 문득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마주 바라보았다.

혹시…… 만년화룡(萬年火龍)이 만년수련을 마친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만년화룡이 승천하기 전에 제거하시려고……

하하…… 영리한 아이로다. 그렇다, 노부가 멀리 모산에서 이곳 북안탕까지 온 것은 만년화룡이 승천하기 전에 제거하려고 온 것이다.”

적연흥은 우려의 빛을 띄웠다.

만년화룡의 만년수련이 끝났다면 그 난폭함이 극에 달하였을 터인데 할아버지께서 만년화룡을 제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누가 모산독군에게 모산독군의 능력을 의심하는 소리를 했다면 그 즉시 날벼락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산독군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십여 장 밖에 서 있는 높이 삼 장 정도의 암석을 가리켰다.

저 바위를 잘 보거라.”

적연흥은 고개를 돌려 그 암석을 바라보았다.

스스스――

모산독군이 가볍게 소매를 흔들었다.

그와 함께, 족히 만 근이 넘는 거석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

적연흥은 탄성을 지르며 허공에 떠오른 암석을 주시했다.

일반인이 그것을 보았다면 기절초풍을 했겠으나 적연흥은 단지 한마디 탄성으로 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스스스……!

―― !

갑자기, 만근 거석 전체가 연기를 내며 얼음이 녹듯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음……

이번에는 적연흥도 안면을 부르르 떨었다.

대단한 침착성이군. 이 아이의 정력(定力)은 가히 천하제일이겠는걸……

모산독군은 감탄하며 손을 내렸다.

이미 만근 거석은 모두 녹아버린 후였다.

어떠냐? 이 정도면 노부가 만년화룡과 싸워서 지지 않을 것을 믿겠느냐?”

적연흥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소자는 오늘에야 안목이 떠졌사옵니다. 용연곡으로 안내하겠으니 소자를 따르시옵소서.”

허허…… 신세를 지겠다.”

적연흥은 훌쩍 걸음을 옮겼다.

험산에서 능숙해진 그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는 마치 행운유수같았다.

허허 볼수록 놀랍군. 이 아이 발걸음은 같잖은 경공을 익힌 아이들보다 오히려 빠르겠는걸……

모산독군은 감탄하며 적연흥과 보조를 같이했다.

연흥이는 무슨 이유로 어린 나이에 사냥을 하게 되었느냐?”

모산독군이 넌즈시 물었다.

적연흥은 모산독군이 마치 친할아버지같이 느껴져 사실대로 집안사정을 이야기했다.

허허, 어린 나이에 정말 대견하도다. 그래 너는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느냐?”

적연흥은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작고하실 때에 남기신 서적들이 있어 사서삼경 등의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는 모두 읽었사옵니다.”

모산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모산독군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눈길로 전면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정말 신선같은 할아버지시다. 호랑이도 따라잡는 내가 힘을 다해 달리는 데도 그저 걸어서 따라오시다니……

적연흥이 염두를 굴리는데 모산독군은 품속에서 두 권의 두툼한 비단책자를 꺼내었다.

노부는 우연히 한부의 독경을 얻어 독술의 일인지가 되었다. 그후 그 독경을 연구 발전시켜 나름대로 또 한 권의 독경을 만들었느니라.”

적연흥은 의아한 신색으로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모산독군은 미소를 지으며 두 권의 독경을 적연흥에게 내밀었다.

받거라. 너와 만난 기념으로 이 두 권의 독경을 네게 주마.”

적연흥은 엉겁결에 독경을 받아들고는 당황했다.

이 귀한 것을 어찌 소자에게……

허허, 그 두권 속에는 너무나 패도적인 독공이 수록되어 있다. 노부는 평생 제자를 두어 가르킨 적도 없으며 자칫 노부의 진전이 악인에게 전해져 무림에 해를 끼칠까 저어해 왔다.”

…… 하오면 이를 어찌 소자에게……

허허, 본시는 이번 북안탕의 일을 마치면 그 독경들은 없애버리려 했었으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독경이 유용하게 쓰일 인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너이니라.”

적연흥은 겸연쩍어 얼굴을 붉히면서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소자에게 귀한 독경을 전수하셨으니……

적연흥이 절을 하려하자 모산독군은 무형경기로 그의 몸을 떠받쳤다.

허허, 그럴 필요 없느니라. 노부는 다만 네가 독경을 바른 일에 사용하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그 독경은 무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니 절대 타인에게 보이면 안된다.”

소자 명심하겠사옵니다.”

적연흥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때였다.

―― !”

멀리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일순 모산독군의 백미가 꿈틀 했다.

! 가보자꾸나!”

모산독군이 재빨리 적연흥의 팔목을 잡고 몸을 솟구쳤다.

…… !”

적연흥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미풍에 실려가는 깃털마냥 둥실 떠오름을 느꼈다.

―― !

적연흥이 놀라는 사이 그의 손목을 쥔 모산독군은 선풍같이 폭사되어 나갔다.

주위의 경물이 환상같이 홱홱 지나가고 무서운 속도감이 적연흥을 휘감았다.

 

삽시에 두 사람은 어느 협곡으로 날아들었다.

……!”

모산독군과 협곡으로 날아내린 적연흥의 검미가 깊이 찌푸려졌다.

협곡 입구에는 이십여 명의 백의몽면인들이 죽어 있었다.

한데, 그들이 죽어 있는 형상이 너무나 끔찍했다.

사지가 끊어져 나간 자가 있는가 하면 상체가 완전히 부서져 죽은자, 복부가 터지고 두상이 박살이 난자 등등 하나같이 잔혹 악랄한 수법에 절명해 있었다.

―― !

으아악…… 아악!”

그사이에도 연신 협곡 안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 음산(陰山)의 못된 애송이가 저지른 짓이군. 이십 년만에 강호에 나오자마자 후배들에게 무자비한 살수를 쓰다니…… 그 잔혹한 손속을 버리지 못했군.”

시체들을 살펴본 모산독군이 혀를 찼다.

아시는 분이 저지른 일입니까?”

적연흥이 다소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단다. 음산잔마(陰山殘魔)라는 후배인데 손 씀씀이가 무척 잔혹하다. 들어가 보자.”

모산독군과 적연흥은 협곡 안으로 들어 섰다.

크크크…… 네놈들이 감히 노부를 건드리다니…… 한놈 남기지 않고 때려 죽이리라.”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선 적연흥의 눈에 일단의 인물들이 혈전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인물은 이십여 명의 백의인들 사이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회포노인이었다.

회포노인은 불구자였다.

한 팔과 한 다리가 없을 뿐 아니라 두 눈 중 하나가 없었다.

하나, 그 노인은 비록 불구였으나 그 무공은 대단했다.

외팔과 외다리가 날아가면 칼날같은 경풍이 휘몰아쳤다.

파파팟!

―― !”

그 사이에도 한 백의몽면인이 괴인에게 죽음을 당했다.

백의인의 검이 허공을 베는 순간 귀인의 손아귀가 그자의 목뼈를 꺾어 버린 것이다.

이미 바닥에는 수십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고 남은 백의인들도 정신없이 괴인의 공세를 피하기에 바빴다.

이놈!”

모산독군이 두 눈에서 노기를 발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협곡전체가 무너질 듯이 진동하였다.

!”

으윽…… !”

적연흥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괴인과 백의몽면인들은 고막이 터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만큼 모산독군의 내공은 무서웠다.

! ……형님!”

모산독군을 발견한 괴인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졌다.

―― !

괴인은 한 다리로 껑충 뛰어 모산독군 앞으로 내려섰다.

아니 형님께서도 모산에서 예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까?”

괴인, 음산잔마의 말을 들은 백의몽면인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 모산독군!”

확실히 모산독군의 명성은 무서웠다.

음산잔마에게는 대항해서 싸우던 백의인들이건만 모산독군이 나타나자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떠는 것이었다.

―― !”

모산독군은 노여운 눈길로 음산잔마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얼굴을 폈다.

네 손속은 여전히 잔악하구나. 이제 염라전에 갈 날도 멀지 않은 것이 그 잔악한 손버릇을 못 고치다니…… 쯧쯧……

모산독군의 야단을 맞은 음산잔마는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형님, 소제도 이렇게 손을 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요. 헌데 저놈들의 하는 짓거리가 소제의 오장을 북북 긁어 놓아 그만 심하게 손을 쓰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모산독군은 음산잔마의 말을 들으며 날카로운 눈길로 한구석에 엉거주춤 물러 서 있는 백의몽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모산독군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자 백의인들의 전신은 더욱 심하게 부들부들 떨렸다.

쓰고 있는 보자기를 벗어라!”

모산독군이 백의인들을 노려보다가 버럭 일갈했다.

…… 예옛!”

백의인들은 깜짝 놀라며 몽면을 벗었다.

몽면 속에서 나온 얼굴들은 모두가 그다지 선하게 보이지 않는 면상들이었다.

어느 놈이 우두머리냐? 이리 나와라!”

모산독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자가 엉거주춤 걸어 나왔다.

말해랏!”

모산독군이 싸늘히 바라보며 일갈했다.

그러자 그자는 그대로 털퍽 주저앉았다.

…… 죽여 주십시오. …… 후배들은 염왕보(閻王堡)의 수하들로서…… 보주님의 명을 받들어…… 군웅들은 용연곡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해라.”

모산독군이 냉랭히 말하자 그자는 한 차례 부르르 떨며 말했다.

…… 모두가…… 군사이신 독…… 심제갈(毒心諸葛)께서…… 생각해내신 것으로…… 요소요소에 함정을 마련하여 용연곡으로 만년화룡의 내단을…… 노리고 오는 군웅들…… 암습……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후배들은 단지……시킨대로 했을……

알았다. 부상자를 데리고 썩 사라져랏!”

모산독군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 선배님의 은혜…… 각골난망이옵니다.”

그자는 산았다는 안도감에 수십 번이나 이마를 땅에 찍어대고는 수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헤헤…… 형님 축하합니다.”

느닷없는 음산잔마의 말에 모산독군은 영문을 몰라 백미를 찌푸렸다.

축하라니…… 난데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하, 형님두 참, 소제가 아무렴 형님제자를 빼앗기라도 할까봐 그러십니까? 이 아이같은 귀재를 얻은 것을 축하드린다는 말씀이옵니다.”

음산잔마가 신나게 떠들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무척이나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음산잔마의 말을 들은 모산독군은 피식 웃었다.

오해말게. 이 아이는 오늘 막 만난 아이일세. 자 연흥아 인사 드려라.”

적연흥이라고 하옵니다.”

적연흥이 인사를 하자 음산잔마는 유심히 그를 들여다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볼수록 훌륭한 기골입니다. 만일 무공을 익힌다면 능히 천하인(天下人)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산독군이 말을 받았다.

그것을 누가 모르는가? 하나 무공을 익히고 안 익히고는 이 아이의 마음이니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게.”

음산잔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나 뿐인 손을 품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힐끗 모산독군을 바라보자 모산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산잔마는 한 권의 낡은 고서를 빼들었다.

이것은 전대기인이신 천잔수(天殘叟)라는 분이 남기신 무공비급이다. 본래는 천하무쌍의 무공이나 노부의 자질이 아둔하여 육성 정도 밖에 연성하지 못했다.”

음산잔마가 무공비급을 내밀자 적연흥은 움찔 했다.

허허…… 비록 노부가 너를 제자로 맞을만한 그릇은 못되나 천잔수께서 남기신 이 비급안의 내용은 가히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것이니라, 너와 만난 기념으로 주는 것이니 받거라.”

모산독군이 빙그레 미소하며 말했다.

연흥아 받아 두거라. 익혀두면 후일 큰 쓸모가 있을 것이니라.”

적연흥은 정중히 천잔수가 남겼다는 비급을 받아들었다.

감사하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하심을 잊지 않겠사오며 반드시 좋은 일에 사용 하겠사옵니다.”

음산잔마는 입이 찢어져라 헤벌쭉 웃으며 적연흥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이제 그만 용연곡으로 가보세.”

모산독군이 주의를 상기하여 삼인은 협곡을 빠져 나왔다.

노제는 무슨 욕심이 생겨 용연곡을 찾는가? 다 늙은 주제에 만년화룡의 내단이라도 얻겠다는 얘긴가?”

음산잔마가 비록 모산독군에게 하대를 받고 있으나 사실 그의 나이도 백 살이 넘은지 오래였다.

문득, 음산잔마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형님도 아시고 계시지요? 소제가 삼십 년 전에 아이 하나를 양자로 삼은 일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 경한이라는 아이던가? 그때 아마 열 살쯤 된 똘망똘망한 아이였지.”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다 자라서 이십여 년 전에 양가규수를 신부로 맞아 오년 만에 제게 귀여운 손녀를 안겨 주었습지요.”

모산독군은 적연흥의 팔을 잡고 행운유수(行雲流水) 같이 나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질 고약한 네게는 너무 과분한 복이군.”

음산잔마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혜미(慧美)라고 지었는데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한시도 제 손에서 놓지를 않았습죠……한데……

흠 무슨 일인가 있었군.”

음산잔마의 안색이 극히 어두워 졌다.

그 아이의 전신 경맥이 점차 한기를 띄더니…… 급기야 요즘에 와서는 운신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신이 새파래지고……

모산독군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오음절맥(五陰絶脈)이군!”

적연흥도 흠칫 했다.

부모님들이 모두 병환으로 고생하셔서 적연흥은 자연 많은 의서를 읽었다.

오음절맥이 난치의 고질이라는 사실을 그 의서들 중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저도 최근에야 그 아이의 증세가 오음절맥임을 알았습니다.”

모산독군이 혀를 찼다.

미련곰탱이 같은 네 돌 머리는 여전하구나. 그렇다면 일찌감치 노형에게 데려올 것이지…… 쯧쯧…… 그래서 혜민가 하는 손녀의 오음절맥을 고치기 위해 만년화룡(萬年火龍)의 내단이 필요하단 말이지?”

음산잔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년화룡의 내단으로도 아니 됩니까?”

만년화룡의 내단은 천하에서 가장 양강(陽强)한 기물이지. 오음절맥이 아니라 구천태음신맥(九天太陰神脈)이라도 치료할 수 있어. 다만 여아일 경우에는 그 거센 양기로 순음지기가 훼손될 수도 있으므로 직접 복용은 못할 따름이지……

음산잔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못된 놈들……

갑자기 모산독군의 동안에 냉기가 흘렀다.

음산잔마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전면을 바라보았다.

염왕보(閻王堡)와 백의염왕(白衣閻王)이란 애송이가 갈 수록 못된 짓거리만 하고 있군요.”

가보세!”

두 기인의 말에 적연흥은 의아했다.

―― ―― !

모산독군과 음산잔마의 신형이 더욱 빨라져 질풍같이 쏘아나갔다.

음산잔마는 외다리만으로도 껑충껑충 뛰어 오는대도 그 빠르기가 굉장했다.

―― !”

――차창――

―――― 아악!”

, 적연흥의 귀에 어지러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랏!”

허공에 뜬 모산독군의 일성이 북안탕을 뒤흔들었다.

!”

…… …… 저 노인은……

장내에서 여러 마디의 경악성이 터지며 중인들은 모두 손을 멈추었다.

휘르르……

모산독군은 적연흥과 함께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 모산독군!”

경악성이 장내를 메웠다.

적연흥은 장내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널찍한 곡구를 백여 명의 몽면인들이 막아 서 있었다.

몽면인들의 전면에는 한 명 거구의 노인이 왜소한 중년인과 서 있었다.

그들의 전신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모산독군의 출현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 외에 한쪽으로는 남녀노소가 뒤섞인 일단의 군웅들이 모여 있었다.

! 이리 와랏!”

모산독군이 거구의 백의노인을 가리키며 준엄하게 외쳤다.

…… 노선배님…… 무슨 하교가 계신지……

백의노인이 사색이 되어 주춤주춤 다가섰다.

사지중 하나를 자르고 떠나랏!”

모산독군의 일갈에 백의노인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 잘못 걸렸다. 저 노독물이 설마 이곳까지 올 줄이야…… 자칫하면……한 목숨 구하기도 힘들다.’

백의노인은 무림사패(武林四覇)로 불리는 네 개의 큰 세력 중 하나인 염왕보(閻王堡)의 주인 백의염왕(白衣閻王)이란 자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무림사패 중 하나라 해도 모산독군과는 천양지차!

거역하다가는 한줌 혈수로 변하리라……

백의염왕의 이마에서 주르르 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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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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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예기치 못한 殺人

 

 

 

!”

적연흥의 눈이 번뜩였다.

이곳은 북안탕의 깊은 산중.

인적이 닿아 본적이 없는 원시림으로 꽉 들어찬 험지였다.

적연흥의 전신은 무엇 때문인지 팽팽히 긴장되어 있었다.

그는 전면의 한 지점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백여 장쯤 되는 거리일까?

한 마리 거구를 지닌 백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백호(白虎)는 호랑이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종자이다.

몸 크기가 보통 호랑이보다 한배반이나 되는 거구를 지닌 것이 보통이며 지극히 영민하면서도 사납다.

그 백호가 적연흥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일진이 좋군. 몇달 동안 찾아 다녀도 발견할 수 없었던 저놈을 산에 들어오자마자 발견하다니……

범인이라면 백호의 모습만 보고도 오금이 저려 사족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연흥은 야릇한 흥분을 느끼면서 침착하게 은신한 곳에서 움직이지를 안았다.

이윽고, 백호는 오십여 장 앞으로 다가왔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전통(箭筒)으로 가져갔다.

강전(强箭)을 써야겠군.’

그는 전통에 들어있는 화살 중 굵기가 가장 굵은 화살을 집어 들었다.

이는 특별히 사나운 맹수를 잡기 위해 마련한 화살이다.

화살 끝에 달린 한 치 정도의 날카로운 화살촉을 쓰다듬어본 적연흥은 화살을 강궁(强弓)에 걸었다.

이어, 그는 천천히 힘을 주어 강궁의 시위를 잡아 당겼다.

―― ――

기분 좋은 탄력감이 손끝에 느껴진다.

그는 강궁을 들어 백호의 정수리를 겨누었다.

시위는 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고 그와함께 궁은 반월형으로 굽어져 갔다.

이백보……

백오십보……

백이십보……

적연흥의 이마로 한 방울 땀이 흘렀다.

그때였다.

휘르르……!

갑자기 변덕스런 산풍(山風)의 방향이 역류(逆流)하였다.

적연흥의 검미가 꿈틀 하였다.

이런…… 이 중요한 때에……

이제 바람의 방향이 적연흥쪽에서 백호가 오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맹수 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에게 이토록 갑작스런 풍향의 역류는 치명적이다.

맹수에게 사냥꾼의 존재를 알려주는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호의 거구가 흠칫 했다.

그와 함께 백호의 호안(虎眼)이 무섭게 부릅떠졌다.

자신의 노리고 있는 자가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크르―― !

백호의 입에서 북안탕 전체가 뒤흔들리는 포효성이 터졌다.

재미없군!’

적연흥은 백호가 자신을 발견했음을 깨닫고 벌떡 일어섰다.

은신해 보아야 소용없음을 잘 아는 때문이다.

―― !

백호의 거구가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적연흥의 눈이 번뜩이며 강전의 날카로운 촉이 영민하게 떠오른 백호의 거구를 따라 이동하였다.

―― !

―― !

강전이 대지를 찢으며 허공을 날았다.

―― !

―― !

백호가 날아오는 강전을 발견하고 머리를 트는 순간 강전은 백호의 어깻죽지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 !

백호의 거구가 둔중하게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그러나,

―― !

백호는 뒤미처 용수철 튕겨지듯이 뛰쳐 일어나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대단히 강한 놈이군.’

적연흥은 그 상황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자신이 사냥꾼이긴 했으나 그는 맹수들을 사랑한다.

힘없이 거꾸러지는 놈은 맹수축에 들지도 못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손이 신속하게 전통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하나의 강전(强箭)이 시위에 매겨졌다.

그사이, 백호는 이미 오십 오보 앞으로 쇄도해 들어오고 있었다.

산역을 뒤흔드는 포효성(咆哮聲)!

부릅뜬 호안, 날카로운 송곳니, 일 장은 됨직한 거구.

아무리 수십 년간 사냥을 해온 노련한 사냥꾼이라도 오금이 저릴 상황이다.

하지만 적연흥은 너무도 침착했다.

무표정한 중에서도 신속히 시위가 당겨졌다.

―― !

―― !

또 하나의 강전이 허공을 갈랐다.

백호와 적연흥 사이의 거리는 삼십여 보.

이번의 강전만큼은 백호라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백호는 참으로 영민했다.

시위 튕겨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몸을 지면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 !

―― !

피보라가 일었다.

강전(强箭)이 백호의 등어림을 스치고 헛되이 멀리로 날아간 것이다.

―― !

지면으로 몸을 떨구었던 백호가 재차 도약했다.

정말 영민한 놈이다.’

적연흥은 감탄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도끼를 사용할 것이냐? 다시 활을 쏠 것이냐?’

이는 어쩌면 생사를 가를 중대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다시 활을 사용하여 실패한다면 목숨을 내걸고 백호와 맨손으로 싸워야 한다.

그러나, 기왕에 활로 시작한 것, 굳이 도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 !

그의 손이 다시 신속하게 전통을 더듬었다.

―― !

백호는 이미 이십여 보 앞으로 덮쳐 들어오고 있었다.

강궁에 강전이 매겨지고 시위가 크게 당겨졌다.

백호의 거구가 바로 눈앞으로 치솟아 덮쳐 들었다.

―― !

―― !

적연흥의 손이 지체없이 시위를 놓았다.

―― !”

동시에, 그는 활을 집어 던지며 덮쳐드는 백호에 마주쳐 갔다.

화살이 어찌 되었는지는 살필 겨를도 없었다.

최악의 상태로 화살이 빗나갔다는 가정하에서 백호에 마주 덮쳐간 것이다.

파파팟!

백호의 거구와 적연흥의 몸이 맞부딪혔다.

이겼다!’

백호와 맞부딪히는 순간 적연흥은 쾌재를 불렀다.

두 개의 몸이 서로 부딪히자마자 적연흥은 백호의 몸에 생명의 탄력이 없음을 느낀 것이다.

―― !

백호의 거구가 적연흥이 뻗은 일격에 둔중하게 뒤로 넘어갔다.

휴우――

적연흥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몸을 세웠다.

쓰러진 백호의 체구는 엄청나게 커보였다.

마치 거상(巨象)이 쓰러져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백설같이 하얀 백호의 복부에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혈흔이 번지고 있다.

마치 소복이 쌓인 백설 위에 빨간 물이 스며들 듯이……

적연흥이 마지막으로 날린 강전은 백호의 복부 깊숙이로 박혀 있었다.

적연흥의 팔 힘이 워낙 강한데다가 거리가 가까웠던 탓으로 강전은 반 이상이 백호의 복부로 파고 들어가 있었다.

이제껏 잡아본 그 어떤 놈보다도 훌륭한 놈이다. 족히 천 냥 이상 나가겠는걸……. 당분간 어머님 공양해드릴 걱정은없게 되었구나.’

적연흥은 집어던진 강궁을 회수하여 전통에 집어넣었다.

!”

이어 그는 백호의 몸에 팔을 뻗쳐 기합을 질렀다.

그러자, 수백근은 나갈 백호의 거구가 번쩍 들려졌다.

그는 백호의 거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걸음을 옮겼다.

, 그는 맑은 계류가 흐르는 옥계에 닿았다.

―― !

백호의 거구를 바위 위에 내려놓은 그는 계류에 손을 담그었다.

시원하군!”

한 차례 물을 끼얹어 땀을 씻은 그는 품속에서 날카로운 비수(匕首)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는 능숙한 솜씨로 백호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귀한 백호의 가죽이라도 잘못하여 흠을 내면 가치가 반감한다.

그는 세심한 주위를 기울이면서도 신속하게 비수를 움직였다.

반각 후, 드디어 백호의 가죽이 벗겨졌다.

그는 백호의 가죽을 물에 담그어 피가 빠지도록 두고 백호의 시신을 매장했다.

그는 맹수의 가죽을 얻는 것으로 만족했다.

맹수를 잡으면서도 자유롭게 사는 맹수를 사랑하는 그는 맹수의 고기만큼은 먹질 않았다.

보면 볼 수록 훌륭하군.”

백호의 가죽을 물에서 꺼내어 바위에 펼쳐 널며 적연흥은 감탄했다.

백호의 가죽은 보통의 호피보다 배나 클뿐 아니라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털로 뒤덮여 있어 지극히 훌륭했다.

팔기 아까운 물건이군. 어머님이 사용하시는 황호피(黃虎皮)와 바꾸어 어머님이 사용하시도록 해야겠군.”

적연흥은 백호피의 몇 군데를 가다듬은 뒤 한쪽 바위에 걸터 앉았다.

이미 태양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적연흥은 흘깃 올려다보았다.

백호를 만나는 통에 너무 시간을 소비했군. 자칫하면 신무애를 살펴 보지 못할지도……

적연흥은 검미를 슬쩍 모으다가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 안에는 약초캐는 호미 하나와 연잎으로 싼 건량이 들어 있었다.

적연흥은 건량을 꺼내 천천히 먹으며 발밑의 계류를 바라 보았다.

, 서둘러야겠구나.”

반각 후, 적연흥은 백호의 가죽이 어느정도 말랐으므로 걸을 심산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자리에서 일어서던 적연흥은 흠칫 했다.

예기(銳氣)!

섬칫한 예기를 느낀 것이다.

본시, 맹수사냥에 몰두해온 적연흥인지라 누구보다도 민감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주위 환경의 조그마한 변화도 극히 민감하게 감지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능력은 맹수사냥에서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으로, 이러한 능력 때문에 적연흥은 몇 번인가 맹수와 부딪히고도 결정적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데, 지금 이순간 적연흥은 자기 주위에 심상치 않은 예기(銳氣)가 번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결코 맹수가 풍기는 원시적인 살기같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흉폭함은 맹수보다 덜하나 무엇인가 섬칫한 느낌을 주는 그런 예기였다.

적연흥은 쾌첩하게 몸을 돌렸다.

일순, 적연흥의 검미가 찡긋 하였다.

어느 사이엔가?

“...!”

적연흥으로부터 오장여 떨어진 곳에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이 시커먼 털로 뒤덮이고 무척이나 험상궂게 생긴 자였다.

그자도 적연흥이 의외로 아직 치기를 못다 벗은 소년임을 알고 흠칫 했다.

이내 그자의 입가에 음악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저놈이 어떻게 저런 희귀한 백호의 가죽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나 악도부(惡屠夫)가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하겠는걸.’

그자는 탐욕스런 눈길로 바위 위에 널린 백호의 가죽을 쓸어 보았다.

백호의 가죽은 좀체 구하기 힘든 귀중한 것으로 부르는 것이 값인 물건이다.

그자는 백호의 가죽을 보자 걷잡을수 없는 탐욕이 솟았던 것이다.

흐흐…… 본래 보물 때문에 이곳 북안탕에 왔으나, 천하에 내노라하는 인물들이 모두 몰려 왔으니 내차지가 되기는 힘들다. 저 어린 놈의 백호피나 빼앗아 실속 차려야겠다.’

그자 악도부는 무림에서도 이름난 망나니였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잔악한 이를 데 없는 간교하고 음악한 자였다.

반반한 여인들을 보면 처녀이건 유부녀이건 가리지 않고 범하고, 마음에 드는 기물(奇物)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무림의 기생충 같은 자였다.

그자는 북안탕에 광세의 영물이 출현한다는 소문을 듣고 북안탕에 왔다가 적연흥이 잡아놓은 백호의 가죽을 보자 그 못된 버릇이 동한 것이다.

그자는 음충하게 웃으며 천천히 다가섰다.

무림인인 모양이군. 결코 심성이 제대로 박힌 자는 아니군.’

적연흥의 봉목에 냉기가 흘렀다.

원시적이긴 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영민하게 알아내는 능력이 적연흥에게 있었다.

귀하, 소생에게 용무가 있으시오?”

적연흥이 냉막하게 말했다.

엇 이놈 봐라. 산골 촌놈같지 않게 뻑뻑한걸……

악도부는 흠칫 했다.

그자도 무림에서 눈치보며 지금껏 살아온 인물이다.

본능적으로 적연흥의 일신에서 범상치 않은 기개가 풍김을 느낀 것이다.

아니, 그자가 지금껏 보아오지 못한 기개를 적연흥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악도부는 적연흥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음악하게 웃었다.

흐흐흐…… 이봐, 자네 백호피를 내게 팔지 않겠는가?”

그자는 영악하게 적연흥의 표정을 살폈다.

미안하오. 이것은 팔 물건이 아니외다.”

적연흥은 냉막하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백호피를 걷기 시작하였다.

악도부의 눈길이 악독하게 번뜩였다.

흐흐흐……!”

그자는 음악하게 웃으며 몸을 날려 적연흥앞으로 날아내렸다.

적연흥의 검미가 꿈틀 했다.

악도부가 백호피의 한끝을 밟고 섰던 것이다.

적연흥은 몸을 일으키며 냉막한 시선으로 그자를 바라보았다.

적연흥의 눈길을 받은 악도부는 흠칫 하다가 험악하게 웃었다.

흐흐…… 촌놈아, 네놈이 바라보면 어쩌겠단 말이냐? 감히본 악도부께서 백호피를 사주겠다는데 거절하다니……

그자는 한 술 더떠서 아예 백호피 위로 올라섰다.

내려서시오!”

적연흥이 버럭 일갈을 질렀다.

그의 일갈은 마치 맹호의 포효같이 우렁찼다.

악도부는 흉흉한 살기를 띄우며 음산하게 말했다.

본 악도부께서 사주시겠다면 네놈에게는 무상의 영광이거늘…… 감히 거역하다니…… 흐흐…… 이제는 본인이 생각을 바꾸었다. 목숨이 아까우면 순순히 백호피를 놓고 사라져랏!”

적연흥은 내심 대노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냉랭한 신색을 유지하며 침중히 입을 열었다.

억지 쓰지 마시오. 더 이상 얼굴 붉히기 싫으니 물러가시오!”

적연흥은 백호피를 잡아 당겼다.

흐흐……

악도부도 음소하며 발에 힘을 주었다.

적연흥의 검미가 꿈틀 했다.

비키시오!”

적연흥이 버럭 일갈과 함께 백호피를 뒤집었다.

!”

악도부는 기겁을 했다.

적연흥의 손힘이 상상외로 막강하여 악도부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던 것이다.

…… 이놈아. 촌놈이……

악도부의 얼굴이 썩은 돼지 간빛으로 변했다.

적연흥은 냉랭히 그자를 바라보며 백호피를 말았다.

이놈! 뒈져랏!”

악도부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일장을 후려쳤다.

―― !

한 줄기 강맹한 장풍이 적연흥을 짓쳐 왔다.

!”

적연흥도 더 이상 노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 !

적연흥의 바윗덩이 같은 주먹이 마주 날아갔다.

―― !

먼지가 확 일었다.

!”

악도부는 안색이 홱 변하여 비칠 하며 물러섰다.

!”

적연흥도 주먹을 만지작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 이놈의 주먹이 마치 돌덩이 같다니……

악도부는 경악했다.

사실, 적연흥의 주먹은 거웅(巨熊)도 일격에 쓰러뜨린 적이 있는 강한 것이었다.

악도부가 비록 무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정면으로 부딪히자 적연흥의 신력에 밀린 것이다.

이놈!”

악도부는 길길이 날뛰었다.

―― !

그자는 메고 있던 귀두도를 빼들고 적연흥에게 덮쳐들었다.

쐐애―― !

귀두도가 허공을 가르며 적연흥의 미간을 향해 날아 들었다.

!”

적연흥도 지체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 ! ―― !

불꽃이 튀었다.

!”

악도부는 호구가 찌르르 울림을 느끼고 안색이 홱 변했다.

맹수를 잡던 적연흥의 손도끼는 정확하고도 강했다.

이놈! 죽어랏!”

악도부는 흠칫 하다가 재차 미친 듯 귀두도를 휘둘렀다.

―― ――

―― ―― !

그자의 도세는 신랄하고 악독했다.

!”

적연흥은 안색이 대변했다.

그가 상대한 것은 속임수를 모르는 맹수들이다.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직선적인 맹수들을 상대하던 적연흥이었다.

사방을 뒤덮으면서 덮쳐드는 도세를 대하자 적연흥은 일시에 당황하였다.

―― !

적연흥은 다급히 도끼를 휘둘러 도세를 막아갔다.

―― !

―― !”

그러나, 어느 한순간 적연흥은 가슴이 화끈함을 느끼고 신음을 토했다.

어느 틈엔가 악도부의 귀두도가 파고 들어온 것이다.

―― !

적연흥은 가슴을 누르며 밀려났다.

뜨거운 선혈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크흐흐…… 이번엔 목을 잘라주마!”

―― !

귀두도의 도신이 악귀의 호곡성을 끌며 날아들었다.

―― !”

적연흥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도끼를 집어 던졌다.

―― !

휘르르――

손을 떠난 도끼가 맹렬하게 악도부의 정면으로 날아 들어갔다.

이얍!”

악도부는 다급히 귀두도를 쪼개 내었다.

―― !

귀두도가 부러질 듯이 휘어졌다.

―― !

귀두도에 부딪힌 도끼가 튕겨져 나가 멀리 서 있는 고목에 박혀 들었다.

흐흐…… 이놈! 이제는 네놈을……

득의하며 적연흥을 바라보던 악도부는 흠칫 했다.

어느 틈엔가, 적연흥은 한 손에 강궁(强弓)을 들고 악도부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러가시오. 더 이상 덤비면 본인의 화살이 그대의 피를 볼 것이오.”

적연흥의 말에 악도부는 냉소했다.

적연흥은 화살을 재지 않은 채 강궁을 내리고 있었던 것을 본 때문이다.

흐흐…… 네놈이 화살을 쏘기 전에 네놈의 머리를 뽀개주겠다.”

적연흥이 냉갈했다.

모험하지 마시오. 본인의 화살이 더 빠를 것이오.”

악도부의 눈길이 흔들렸다.

비록 화살을 재고 있지는 않지만 적연흥의 침착한 기세에 움찔한 것이다.

그러나 그자의 눈이 악독하게 빛났다.

뒈져랏!”

악도부가 악독한 일갈과 함께 귀두도를 쓸어 내었다.

하지만, 그자의 기세가 빠르다고 해도 백호가 덤벼드는 기세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사사삭――

적연흥의 손길이 섬전같이 전통을 더듬었다.

―― !

―― !

악도부가 십보 앞으로 쇄도하는 순간 강전이 쏘아 나갔다.

!”

악도부는 꿈에도 적연흥의 동작이 이토록 빠를 줄은 몰라 기겁을 했다.

――!

그자가 전력으로 휘두른 귀두도가 강전을 잘라 내었다.

이겼다!’

악도부는 요행히 강전을 막아내자 쾌재를 부르며 적연흥에게 쇄도하였다.

그러나 그자가 이보를 움직이기 전에 두번째 강전이 강궁에 매겨졌다.

―― !

악도부가 채 오보를 움직이기 전에 강전이 강궁을 떠났다.

!”

악도부는 기겁을 하며 귀두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 !

―― !”

피가 튀었다.

처절한 비명이 일면서 가슴에 부러진 화살이 박혀 나뒹굴었다.

거리가 너무 가깝고 화살이 날아가는 힘이 강한 탓으로 중간을 잘랐으나 그대로 가슴에 박힌 것이다.

…… …… 내가…… 네놈…… 에게……

악도부는 가슴을 부둥켜 안고 적연흥을 노려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

적연흥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가슴을 누르며 주저앉았다.

……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평생 사람을 해쳐본 적이 없는 적연흥인지라 악도부의 죽음에 망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

적연흥은 귀두도에 맞은 상처를 누르며 일어나 악도부의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본인을 원망하지 마시오. 당신 스스로 부른 화이니까.”

적연흥은 악도부의 가슴에 박힌 반도막의 화살을 뽑아내었다.

피가 확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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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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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北雁蕩少年

 

 

 

북안탕(北雁蕩),

절강성(浙江省)의 동북단에 자리한 험산(險山)이다.

비록 중원오악과 같이 이름난 명산은 못되지만 산을 아는 사람이면 북안탕이 결코 중원오악에 못하지 않음을 안다.

산세가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마치 창날을 거꾸로 박아 놓은 듯한 첨봉(尖峯)이 연이어져 험준하기 이를 데 없다.

창끝같은 연봉이 성처럼 둘러 서 있는가하면 갑자기 끝이 보이지 않는 천인단애가 나타나곤 한다.

북안탕의 골골이 들어차 있는 원시림의 숲은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지쳐 죽을 때까지 헤매도 빠져 나오지 못하기 십상이다.

아직도 전인미답의 험지가 산재해 있는 곳이 북안탕이다.

자연히 북안탕의 심중(深中)에는 세속에서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독물(毒物) 괴수(怪獸)들이 잔생하고 있다.

또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기사회생의 효능이 있는 선약기초들이 자라고 있기도 하다.

벌려져 있는 곳곳마다 태고이래의 신비가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북안탕이다.

그때문에 선약기초를 찾는 무림인들이나 기상천외의 독물들을 구하려는 독문(毒門)의 괴인들, 그리고 채자(採者)들의 발길이 가끔 북안탕의 절지에 닿곤 한다.

 

북안탕(北雁蕩)의 아침,

자연의 순환은 한시도 쉬임이 없는 법이다.

찬연한 태양의 광휘가 북안탕 전체를 산뜻하게 비추었다.

여명에 쫓겨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의 잔영들이 찬란한 광휘에 산산이 흩어져 나갔다.

이곳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봉이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분지다.

분지에는 납작한 토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토막의 낮은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록, 모든 것이 빈한해 뵈는 산촌이지만 더 할 수 없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뵈는 산촌(山村)이다.

아침을 짓느라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토막들 사이의 공터에는 아침잠 없는 산골아이들이 모여 무엇인가 놀이를 하고 있다.

, 애들아 연홍이 형이다.”

동무들과 놀이에 열중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문득 허리를 펴며 말했다.

어디……

코흘리개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고 한쪽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앞으로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었다.

그 옥계의 옆에는 오륙 장 높이의 커다란 바위가 있으며 그 바위에 의지하여 한 채의 초옥이 서 있었다.

지금, 초옥 옆의 바위 위에 한 명의 청년이 서 있었다.

의연히 바위 위에 몸을 세우고 산봉 위로 떠오른 태양을 직시하고 있는 인물, 일견하여 범상해 보지 않는 인물이다.

햇빛에 그을려 피부가 구리빛으로 빛나고 있으나 그 용모는 이런 궁벽한 곳이 어울리지 않는 청년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청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신장이 육척 가까이 되고 가슴이 떡 벌어져 건장한 청년과같이 보이지만 그는 확실히 아직 완전히 치기를 다 못벗은 소년이었다.

십 육칠 세쯤 되었을까?

먹을 듬뿍 찍어 놓은 듯한 검미(劍眉), 서글서글하면서도 무엇인가 깊이 침잠해 있는 눈매,

더할 수 없이 곧은 코의 선과 그 밑으로 자리한 굳게 다문 입술,

마치 태산이 찍어 누른 듯이 굳게 물려 있는 두 입술은 천년세월이 지나도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오연히 태양을 직시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은 마치 웅비의 때를 기다리며 날개를 접고 있는 대붕(大鵬)의 모습과도 같았다.

때를 기다리는 고독한 대붕(大鵬),

소년은, 이 작은 산골의 우상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들과 소년들에게 있어서 이 거구의 소년은 신과같은 존재였다.

소년의 이름은 적연흥(赤燕興), 그의 아버지는 전직고관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적대인(赤大人)하면, 천하가 알아주는 청백리로 많은 백성들에게 흠모를 받았던 인물이다.

한데, 어느 해인가 신병(身病)이 심하게 일어 관직에서 물러나 북안탕 주위에 있는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그러나, 나날이 병이 중해져가고 본시 청렴한 인물로 관직에 있는 동안 재물을 모아본 적이 없는 적대인인지라 제대로 약을 써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적부인은 남편과 어린 아들을 이끌고 이곳 북안탕의 깊은 산촌으로 들어왔다.

본시 의가(醫家) 출신인 적부인은 북안탕 깊은 곳에 선약기초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의 병을 고칠만한 선약을 찾기 위해 이곳 북안탕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신병을 고칠 일념으로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북안탕을 뒤지고 다녔다.

규중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던 적부인에게는 실로 어렵디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 어려움을 남편의 병을 고칠 일념으로 감수하며 선약기초를 찾아 다녔다.

하나, 선약기초(仙藥奇草)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찾아질 수 있는 것인가?

그녀가 뜻을 이루기도 전에 적대인은 눈을 감고 말았다.

몇년 동안 전신이 만신창이 되도록 북안탕의 험봉을 헤매며 남편의 병을 고치려 했던 부인은 적대인이 이승을 떠나자 허탈감과 심화로 몸져 눕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번에는 어린 소년 적연흥이 북안탕을 헤매어야 했다.

쓰러진 어머니의 병을 고칠 약초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보낸 세월이 오 년이었던가 육 년이었던가?

소년 적연흥은 보통 소년들보다 몇 배나 빨리 자랐다.

가세가 빈한한 탓으로 병드신 어머니 봉양하기도 힘들지경이었다.

자연, 그는 주린 배를 야생의 과일이나 북안탕에 자생하는 약초들로 채워야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는 눈물이 날 정도로 쓰디쓴 약초들을 본의 아니게 장복하게 되었고……

그것이 득이 되어 소년은 누구보다도 건장하게 자랐고 어른들도 당하지 못할 신력(神力)을 지니게 되었다.

그뿐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산을 타기 시작한 소년 적연흥의 발걸음은 북안탕의 험산준령을 평지같이 내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년 전이었다.

어느날, 한 마리 맹호가 산촌으로 내려와 아이를 물어가는 호환(虎患)이 났었다.

마을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누구하나 맹호를 쫓을 생각도 못할 때였다.

소년 적연흥이 분연히 도끼 한 자루를 들고 맹호를 쫓아갔다.

마을사람들이 만류했으나 적연흥은 아무 말없이 나는 듯한 발걸음으로 맹호를 쫓았다.

적부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하루를 보냈을 때였다.

석양을 등지고 피투성이가 된 적연흥이 돌아왔다.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정수리가 갈라져 죽은 맹호를 끌고……

마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른 열 명이 상대해도 잡기 힘든 맹호를 소년 혼자 잡은 것이었다.

소년은 맹호를 잡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이후로, 소년은 마을의 자랑이었으며 수호신적인 인물이 되었다.

또한, 소년은 어머니를 보다 잘 공양할 법을 깨달았다.

호랑이의 가죽을 벗겨 산 밑의 시진에 내다 팔아 어머니께 오랜만에 성찬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사냥에 몰두했다.

그의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말렸으나 그는 미소 지을뿐 사냥을 그만 두지 않았다.

그 후 일년, 몇 차례 맹수를 잡다가 크게 다치기도 했으나 이제 그는 한 명의 어엿한 사냥꾼이 되었다.

그것도 보통 사냥꾼이 아닌 북안탕 제일의 맹수 사냥꾼이 된 것이다.

그의 힘은 능히 거웅(巨熊)의 허리를 꺾어 죽일만하고 그의 발걸음은 맹호를 따라가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활솜씨는 백보 밖의 움직이는 표적이라도 절대 놓치지 않을 뿐더러 즐겨 쓰는 한 자루 도끼만 손에 들면 어떤 맹수라도 때려 누일 수 있었다.

그런 소년 적연흥인지라 마을의 아이들과 소년들은 그를 마치 산신(山神)과 같이 떠받들었다.

하나, 그는 언제나 고독했다.

창공을 비상할 대붕, 그에게 이곳 북안탕은 너무나 좁았던 것이다.

보시 과묵한 그는 더욱더 말수가 적어져 갔다.

비록 그가 그러한 사실을 내색치는 않았으나 적부인은 아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부인은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

적연흥은 길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돌아섰다.

흥아……

문득, 초옥 안에서 병색이 완연한 중년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 적연흥은 급히 바위를 뛰어 내렸다.

―― !

그의 몸은 마치 한 마리 비호가 날아내리듯 가볍게 바위위에서 뛰어 내렸다.

어머님, 기침하시었사옵니까?”

적연흥은 정중한 어조로 말을하고 방문을 여었다.

약초 내음이 확 풍겼다.

초옥의 방안은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방안의 천정에는 약초뭉치가 주렁주렁 걸려 있으며 방의 한쪽 벽에는 수백 권의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지금, 방문의 맞은편에는 한 좌의 침상이 놓여 있었다.

침상은 손으로 정성들여 깎아 만든 것이었고 침상 위에는 호피가 깔려 있었다.

그 침상 위에 한 명의 중년여인이 힘겨운 듯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비록 병색이 완연하기는 하였으나 본 바탕은 은은한 기풍을 지닌 미부인이었다.

일견하여 적연흥의 단정한 용모는 중년부인과 매우 흡사하였다.

오냐, 네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가자꾸나.”

부인이 힘들여 몸을 일으켜 앉자 적연흥은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부인을 부축하였다.

두 사람은 방문을 나섰다.

 

맑은 아침이다.

적부인은 적연흥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두모자는 초옥 뒤의 둔덕 위로 올라섰다.

둔덕 위의 양지쪽, 잘 다듬어진 하나의 봉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첩이 왔사옵니다.”

적부인은 봉분 앞에 힘없이 앉았다.

이 봉분이 적연흥의 부친인 적대인이 묻혀 있는 것이었다.

적부인은 서글픈 눈길로 봉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길이 힘겹게 봉분을 쓸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적연흥은 공손히 시립한 채로 묵묵히 바라다 보았다.

두 모자는 한동안 굳은 듯이 묘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적부인이 나직한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흥아, 오늘도 사냥을 나갈 것이냐?”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은 신무애(神霧崖) 쪽으로 가볼 생각이옵니다. 그곳은 늘 음한지기가 깔려 있으니 어쩌면 어머님의 병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담석화(曇石花)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적부인의 눈가에 안스런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 에미 때문에 어린 네가 이 고생을 하니…… 이 모진 목숨 빨리 끊어져 네 아버님께 갔으면 좋겠구나.”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부디 오래오래 사셔야 하옵니다.”

적연흥의 말에 적부인은 아들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아마도 아들의 얼굴에서 이미 땅에 묻힌 남편의 영상을 찾으려 하는 듯한 눈길이었다.

휴우……

적부인은 이윽고 시선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만 내려 가시옵소서. 가을인지라 아침바람은 차옵니다.”

적연흥은 어머니의 가냘픈 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젖먹이 때에는 온 천지같이 넓고 이세상 무엇보다도 커보이던 어머니지만 지금은 너무나 가냘프고 작아 보였다.

특히 병마로 시달려 앙상한 적부인은 애처로울 정도로 작아 보였다.

적연흥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부축하여 초옥으로 들어갔다.

 

일각 후, 적연흥은 전통(箭筒)을 짊어지며 초옥을 나섰다.

해는 이미 중천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머님, 다녀 오겠사옵니다.”

적연흥은 열린 방문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오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라.”

적부인은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연흥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인 뒤에 초옥을 떠났다.

그의 왼쪽 허리에는 반자 정도의 폭이 좁고 날이 날카롭게 선 손도끼 한 자루가 걸려 있고 오른쪽 허리에는 약초자루가 걸려 있었다.

허허, 오늘도 사냥을 나가시는구먼. 호랑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오시게.”

마을을 지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적연흥에게 말을 건넸다.

적연흥은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이 잠깐만.”

적연흥이 막 마을을 걸어 나가려는데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적연흥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에 한 명의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마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냥꾼이었다.

그 젊은 사냥꾼은 헐떡이며 적연흥에게 다가왔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구씨 청년은 숨을 가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알려 줄 일이 있네. 요 근래 이 주위에 여러 명의 괴인들이 출몰하고 있어. 그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펄펄 나는 재주들을 지닌 인물들로서 성격들이 포악하니 주의하게.”

구씨 청년의 말을 들으며 적연흥의 검미가 찡긋 하였다.

무림인들이 북안탕에 무슨 일로 나타난 것일까?’

그는 이어 구씨청년에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구씨청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마을 주위에 나타났던 괴인들만도 이십여 인이 넘네.”

이십여 명이 넘는다고요?”

그러네……

적연흥은 내심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려서 병든 아버지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며 아버지로부터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그 때문에 잘은 모르나 무림(武林)이라는 집단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무림인들이 적잖이 북안탕에 모인 모양이구나.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아뭏든 주의하게. 그들과 충돌하는 일 없도록 하여야 하네. 그런 괴인들과 상대해서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구씨청년의 말에 적연흥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구씨청년은 사람 좋게 씨익 웃었다.

고맙기는…… , 이만 가네.”

구씨청년은 시내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잠시 자리에 서서 구씨청년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적연흥도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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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력>

 

1983년 7월, 정확히 37년 전에 전5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와룡강이란 필명으로 출간한 3번째 작품이기도 하지요.

(데뷔작이 무림군웅보, 두 번째 작품이 천세무림기보입니다.)

훗날 <나한대협>으로 확장증보판이 발간되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序 章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과 도룡천황(屠龍天皇)

 

 

 

――복종하라!

불연(不然)이면, 혈령(血靈)을 만나리라!――

 

일성대갈(一聲大喝)이 천지(天地)를 뒤흔든다.

한 명의 효웅(梟雄)이 몸을 일으켰다.

육 척 거구, 검은 장포, 구만 리 장천을 꿰뚫는 무서운 안광, 그는 단신(單身)이었다.

아니, 단신이라 할 수 없었다.

한 자루 검이 한시도 그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으므로――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선홍(鮮紅)의 검신을 지닌……

 

<천마검(天魔劍) 혈령(血靈)>

 

검명(劍名)이다.

천하가 떨었다.

일시에 중원뿐 아니라 대막(大漠), 새외(塞外), 관외(關外), 안남(安南), 심지어 천축(天竺)에 이르기까지 모든 마()의 추종자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엎드려 머리를 대지에 처박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오오, 조종(祖宗)이시여. 영원한 마의 조종이시여――

 

 

그 이름,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마도(魔道)에 있어서 전설같이 내려오는 절대마종(絶代魔宗).

본래 마도에는 한 가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혈령(血靈)이 주인을 찾으리라. 그가 바로 조종(祖宗)이시니라――

 

혈령(血靈)!

이는 한 자루 검의 이름이다.

끔찍하고도 처절한 비사를 지닌 마도 제일기보(第一奇寶).

이는 스스로 영성(靈性)을 지녀 주인을 찾는다고 전한다.

천마혈령검(天魔血靈劍)이라 불리는 이 마검을 다스리는 자!

그가 바로 영원한 마의 조종인 절대마종이 된다는 것이다.

한데, 천여 년 간 잠들었던 천마혈령검이 나타난 것이다.

천마혈령검이 주인으로 택한 인물,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

 

바로 이 인물!

수천 년 무림사에서 항시 정도(正道)에 패하여 짓눌려 있던 마()를 부활시킨 인물,

 

――으하핫! ()란 곧 도()이며 본 조종은 곧 법()이니라. 무릎을 꿇어라. 아니면, 혈령(血靈)의 제물로 만드리라.――

 

그의 일성에 중원이 몸서리를 쳤다.

삽시에 그의 휘하로 수만 명의 마도고수들이 모여들었다.

 

――십만지존충사(十萬至尊忠士),

 

천마대조종 수하로 모여든 마인들이 스스로 칭한 이름이다.

광풍노도!

중원뿐 아니라, 천하가 일시에 마풍에 휩쓸려 들어갔다.

당시는 중원 무림 최대의 번영기,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최강의 고수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마의 세력은 너무나 가공했다.

천마혈령검(天魔血靈劍)의 혈기가 천지를 뒤덮으니 등천할 무공을 지녔다던 천하의 고수들이 짚단 쓰러지듯이 쓰러졌다.

 

――하늘이시여! 이대로…… 이대로 정도의 정기가 허물어져야 하오니까?

 

태산 관일봉(觀日峯)에서의 최후결전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한 정파의 최고기인들.

 

우내사존(宇內四尊)!

 

그들은 치욕스런 도주를 하며 피눈물을 뿌렸다.

 

――으하하, 그대들의 목숨만은 거두지 않겠다. 이는 본 조종이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룬 기념으로 베푸는 단 한 번의 은혜이니라――

 

달아나는 우내사존을 바라보며 천마대조종은 천지를 뒤흔드는 광소를 터뜨렸다.

치욕(恥辱)!

무인으로서, 그것도 백년 내 최고기인들이라던 우내사존(宇內四尊)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스런 도주였다.

그러나, 그들은 피눈물을 삼키며 만천하의 조롱을 짊어진 채 관일봉을 떠났다.

오로지 회천대업(回天大業)을 꿈꾸며……

그리고, 천하는 혈령(血靈)의 혈기(血氣) 아래 굴복하였다.

 

마도천하(魔道天下)!

 

마도인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영광이었고 반면 정도인(正道人)들에게는 죽음의 암흑기였다.

일말의 서광도 비치지 않는……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정파기인들이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돌연, 관일봉에서 천마대조종의 광소를 등에하고 도주했던 네 명의 고수,

우내사존(宇內四尊)!

그들이 돌아왔다.

그들의 노안은 비장하게 빛나고, 그들은 한 명의 인물 뒤에 시립하고 있었다.

그 인물, 붉은 장포, 학발동안, 그리고, 그의 한 손에는 길이 일 장이나 되는 한 폭의 깃발이 들려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도룡천황(屠龍天皇)>

 

도룡천황(屠龍天皇)이시다!

몸을 숨기고 칼을 갈던 정파기인, 고수들이 환성을 터뜨렸다.

마치, 천마대조종이 처음 강호에 나타났을 때 마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룡천황(屠龍天皇)!

그는 전설적 인물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미 백여 년 전에 죽었어야할 인물이다.

한데, 이미 우화등선(羽化登仙)했을 것이라 믿어졌던 전설의 전대기인이 무림에 나온 것이다.

이는 모두, 우내사존(宇內四尊)이 십년 동안 뼈를 깎는 고생으로 얻은 결과였다.

관일봉에서 패한 후 우내사존은 천마대조종을 제어할 인물은 단 한명, 전설상의 고금제일비문 천황문(天皇門) 문주인 도룡천황(屠龍天皇) 뿐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날로 우내사존은 도룡천황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천하를 주유한 끝에 도룡천황의 은거지를 찾아내고 간곡한 청을 넣어 도룡천황을 무림으로 불러 내었던 것이다.

 

――아이야! 노부와 일전을 치를 자신이 있느냐?――

 

도룡천황이 천마대조종을 불렀다.

거절할 천마대조종이 아니었다.

마침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일전이 벌어졌다.

한쪽은 최초의 마도조종사의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다른 한쪽은 천마대조종보다 다섯 배나 더 나이가 많으며 고금제일비문 천황문(天皇門)의 주인 도룡천황(屠龍天皇),

대격전.

양인의 절대고수는 십주십야를 쉬지않고 격돌했다.

그들의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그들의 격전이 있었던 태산 관일봉이 그후 백 자(百尺)나 낮아졌다던가?

드디어, 십일의 격전 끝에 결판이 났다.

 

――크하하…… 본 조종이 패했오! 그러나, 본 조종은 이번의 패배에 설복할 수 없오.

십년 후, 십년 후에 다시 한번 가르침을 받겠오――

 

!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그가……

영원히 패하지 않을 것으로 믿어졌던 그가 패했다.

비록, 무엇인가 지극히 원통한 안색이었으나 천마대조종은 패한 것이다.

―― ―― !

천마혈령검이 주인의 심정을 안듯 통한의 검명(劍鳴)을 울렸다.

휘르르……

천마대조종은 사라졌다.

도룡천황은 한 손에 쥔 도룡천황혈기(屠龍天皇血旗)를 늘어뜨린 채로 망연히 사라지는 천마대조종을 바라 보았다.

결국, 이렇게 하여 다시 천하는 마의 기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중인들이 환호하였으나 도룡천황은 쓸쓸한 표정으로 태산을 떠났다.

그후,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천마대조종은 도룡천황을 모종의 장소로 불러 들여 도전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도룡천황(屠龍天皇)……

모든 것이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양대 거두가 사라진 무림에서는 마도와 정파의 대혈전이 벌어졌으며 마침내 정파가 승리하여 마도는 몰락하고 말았다.

세월은 바람과 같은 것.

쉬임없이 흘러 지나갔다.

십년……

백년……

이백 년……

드디어,

삼백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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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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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무려 37년 전에 전 5권으로 출간한 박스본 무협지입니다.

한자 제목은 <魔宗天皇譜>

<보(譜)>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며 와룡강의 첫 히트작이기도 합니다.

그 전에 출간한 <무림군웅보>, <천세무림기보> 보다 판매량이 압도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득한 37년 전의 작품이라 실소가 나오는 구성과 문장이 도처에 보일 것입니다.

그래도 추억 삼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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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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