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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피로 물들다 (3)

 

 

상청관(上靑館) 연무장은 일백년 래 가장 많은 제자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들도 어떤 언질을 받았는지 그 흔한 잔기침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쇠사슬로 온 몸을 결박당한 창허진인이 이대제자들에게 이끌려 나왔다.

상투는 풀어지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광화도장은 창허진인을 취조하겠다고 큰 소리로 말한 후에 물었다.

[창허야!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함은 너를 해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장차 네가 이 무당의 천년 위업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너는 오직 진실로 이 사부의 물음에 답해주기 바란다.]

광화도장의 말은 누가 들어도 가슴 속에 뭔가 꽉 힌 것이 있는 사람의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창허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체념하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부! 말씀하십시오. 사부께서 물으시는 것이라면 제자 창허는 어떤 것이든 다 대답하겠습니다.]

광화도장은 격동하는 듯했고 운집한 제자들이 잠시 술렁거렸다.

광화도장이 말했다.

[네가 본파의 제자가 된 지 이제 칠년이다. 그 동안 나와 네 사숙들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우리 무당에서 천하제일고수가 탄생할 것임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창허가 말했다.

[제자 부족합니다.]

광화도장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네 자질도 범상치 않을 뿐 아니라 열성으로 배워 나와 네 사숙들을 일찍이 능가했으니 아마도 무공으로 놓고 본다면 천하에 너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너는 이미 본파의 시조이신 삼봉진인에 못지않으니...]

원로들의 머리가 애석한 듯 숙여진다.

무당 최고의 인재가 애꿎은 구설수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지만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어 이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광화도장이 말했다.

[네게 대한 두 가지의 소문 중 어느 것도 이 사부는 믿기 어렵다. 너는 말해주겠느냐?]

창허가 묵묵히 있다가 물었다.

[어떤 소문입니까?]

광화도장이 말했다.

[첫째는 네가 신선이라는 소문이다.]

모여든 제자들이 모두 놀란다.

사문에 반도가 생겨 처단하는 것으로 짐작하고 왔는데 아주 엉뚱한 소리였던 것이다.

광화도장이 말했다.

[칠년 전에 네가 나를 찾아 왔을 때도 너는 지금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세월이 너를 잊어버린 것처럼 너는 조금도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구나. 혹시 예전에 주안과(朱顔果) 같은 과일을 먹은 적이라도 있느냐?]

창허가 말했다.

[주안과를 먹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자 사부께서 지난 칠년동안 베푸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모두 말씀 드리겠습니다.]

창허가 어깨를 슬쩍 흔들었다.

순간, 촤르르릉! 소리가 나면서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쇠사슬이 벗겨졌다.

옆에 있던 이대제자들이 놀라며 다시 결박하려 했지만 광화도장이 저지시켰다.

창허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에게 검을 빌려주시게 하면 말하기가 훨씬 수월하겠습니다.]

다시 술렁거렸다.

그의 손에 검이 들어간다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가 돋히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광화도장이 자기의 검을 뽑아서 창허에게 건네주었다.

옆에서 원로들도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만류했지만 광화도장은 개의치 않았다.

[그만들 하라! 창허가 불측한 마음을 품었다면 굳이 검을 쓸 필요도 없다.]

창허는 두손으로 검을 받아들며 말했다.

[제자 오직 무당산에는 사부님만이 참된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광화도장은 미소를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

창허가 받았던 검으로 자기 심장을 찔러버린 것이다.

광화도장이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창허는 가볍게 뒤로 물러서며 피해버렸다.

광화도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너는... 자결하려느냐? 이 이만한 시련도 못참고...]

광화도장의 보검은 창허의 심장을 꿰뚫고 등뒤로 가시처럼 솟아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심장이 식는 것같은 싸늘함을 느꼈다.

창허가 고개를 저었다.

[제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편안합니다.]

놀랍게도 창허의 음성은 평상시와 똑같았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으며 죽음의 기운도 풍기지 않았다.

광화도장은 말문이 막히고 맥이 탁 풀려서 도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앞에서 천하의 기문(奇聞)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창허가 말했다.

[제자는 이런 상태를 일컬어 신선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선이 죽지 않는, 또는 죽을 수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면 제자가 바로 신선입니다.]

쿠웅!

그 순간 상청관 안에는 바늘만 떨어져도 굉음으로 들렸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자가 죽지 않는 존재라니...

창허는 자기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심장에 꽂았던 검을 옆으로 밀었다.

검날이 갈비뼈를 자르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창허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을 뿐 피한방울 흐르지 않았다.

광화도장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너는... 너는 정말 신선이었구나. 그럼 이 질문에도 대답해다오. 장경각의 마공을 익혔는지.]

그는 무당파의 장문인이다. 상황이 어떻다 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큼은 해야한다.

두 번째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이미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자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창허가 말했다.

[익혔습니다.]

[? 무엇 때문에 익혔느냐?]

창허가 대답했다.

[본파의 무공은 탈속(脫俗)합니다. 그 뜻과 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동작 하나에도 탈속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자가 생각할 때 다른 도가의 문파들도 그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광화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본파는 그런 점을 중시한다. 공동파나 아미파도 마찬가지니라.]

창허가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란 원래 속된 것이고 태어날 때부터 오욕과 칠정을 가지고 나는데 어찌 그것을 모두 버리고 속되지 않은 것만 취할 수 있습니까? 이는 뿌리를 버리고 꽃이나 열매만을 좋아함과 마찬가지입니다.]

광화도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다. 도를 닦음은 먼저 몸을 청정케 하고자 하는데 그 뜻이 있다. 마침내 우화등선하는 것은 나중의 결과일 뿐이니라. 우리 도가의 청정케 할 몸은 진신(眞身)이니 몸과 정신이 분리된 것이 아니지.]

창허가 물었다.

[진신이 몸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은 것이듯이, 지금의 이 몸도 정신과 함께 있는 것인데 굳이 진신을 구해서 무엇합니까?]

광화도장이 말문이 막혔다.

창허가 말했다.

[제자가 마공을 익힌 이유는 바로 이같은 데 있습니다. 마공이란 원래 인간의 속성을 추종하여 창안된 것들이니 인간을 더욱 잘 알게 해줍니다. 제자도 인간인 이상 인간을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참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솔잎을 씹고 이슬을 받아 마신다고 해도 인간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광화도장이 힘없는 소리로 말했다.

[너는... 너는 정말 본파의 대기(大忌)를 범하는구나. 너를 파문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창허가 광화도장에게 검들 돌려주며 말했다.

[사부! 제자 창허는 오늘로 사라집니다. 무공을 쓰더라도 사부께 배운 검은 쓰지 않을 것이고, 무당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광화도장은 앞이 막막했다.

파문을 하려면 먼저 무공을 폐하는 게 순서지만 죽지도 않는 자에게 무공을 폐하려 한다는 것도 한심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도 하나의 전례로 남을 것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제자들에게 명하여 형식적으로나마 창허의 기해혈을 파괴하고 주근(主筋)을 자르게 했다.

그러나 창허에겐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피도 나지 않고 다만 칼이 지나갔다는 정도였다.

창허는 그제서야 무당에서의 일이 끝났다는 듯이 껄껄 웃고는 구름처럼 둥실 떠올라서 진짜 구름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무당의 아랫 제자들은 신선의 우화등선을 구경하고 절을 하고 야단법썩을 떨었다.

그 사이에 자기 힘으로 감당하지 못할 일을 처리했던 광화도장은 앉은 채로 영혼만 우화등선하고 말았다.

제자들이 소란을 피울 때 그의 영혼도 창허와 함께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X X X

 

[자네는 노도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는가?]

진양진인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선배들에게 이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었네. 그리고 가슴 깊이 새겨두었지. 남들이 노도를 삼백년 래 무당 최고수라고 하는 것도 사실 노도가 창허진인을 염두에 두고 수련을 했기 때문일 걸세. 한데... 허허... 노도는 그 전설 속의 창허진인을 만났네. 낭아봉을 쓴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무공들을 쓴다는 것 외에는 들었던 것과 똑같았네. 싸우고... 도망쳤지.]

진양진인이 자기가 전설속의 주인공인 창허진인과 싸웠다는 사실에 아주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현천록은 진양진인의 보검으로 자른 돌들을 쌓아서 방을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방안과 밖에 따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했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믿기 어려울 걸세.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니... 더구나 우리를 찾는 자라는 사실이...]

현천록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양진인이 말했다.

[원래 나와 만나기로 한 포두화상이 왔으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을 것이네. 애상곡은 포두화상을 부르는 소리였는데 창허진인이 왔지.]

현천록이 말했다.

[포두화상은 도장보다 무공이 높습니까?]

진양진인이 말했다.

[비슷하네. 하지만 그와 내가 손을 잡으면 최소한 패하지는 않을 걸세.]

[대단하군요.]

[포두화상은 소림사에 적을 두고 있는 중이지. 칠십이종 절기 중 서른 여덟 가지를 익혔으니 달마(達磨)와 육조(六祖) 이후로 최고수인 셈이네.]

현천록이 말했다.

[무슨 수로 포두화상을 여기까지 불러옵니까?]

진양진인이 말했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말게. 나는 양의신공을 익혔으니 그 속에 포함된 양심공(兩心功)도 당연히 알고 있네.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괜찮네만, 자네는 심력을 아끼게. 당장 양의신공을 익혀야 하니까.]

현천록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진양진인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현천록은 자기가 바로 일곱째 진양진인과 똑같은 불사신이라고 말한다면 진양진인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며 웃었다.

그는 느긋하게 마음먹고 진양진인이 하는 대로 따라갔다.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구를 신통하게도 잘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진양진인이 양의신공의 구결을 읊어주었다.

현천록은 그가 두 번째로 읊을 때 이미 구결은 완벽하게 암기해버렸다.

하지만 진양진인은 일곱 번이나 거듭 읊어주었다.

현천록은 그 사이에 양의신공의 내용을 해득하기 위해서 애쓰는 중이었다.

[첫째는 구결의 운율을 잘 들어놓아야 하네. 노랫가락처럼 운율부터 이해해야 외울 수가 있네. 외고 난 다음에는 앞에서부터 구결을 한구절씩 풀어서 실제로 연공을 해야하네.]

진양진인이 말했다.

[무당에서도 양의신공을 끝까지 익힌 사람은 불과 다섯을 넘지 않네. 양의신공을 익히지 않고는 무당의 최고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태극혜검(太極慧劍)을 익힐 수도 없지.]

현천록이 물었다.

[태극혜검은 실전되지 않았습니까?]

진양진인이 코웃음을 쳤다.

[무림에서는 노도가 태극혜검을 다시 복원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태극혜검이야말로 검술의 정화지. 창허진인도 태극혜검만큼은 나보다 못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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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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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구원의 손길

 

 

 

추명염왕은 막비강이 적수공권으로 다섯 명의 노개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보고 무공이 대단하다고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강장을 손에 끼고 발출하는 공세에 거의 일 갑자의 공력이 함유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해 흠칫 놀라며 급히 마주 일장을 뻗어냈다.

!

한차례 굉음이 울려 퍼지고 추명염왕은 몸을 약간 휘청했지만 막비강은 연달아 세 걸음이나 밀려나갔다.

[또 한 번 받아 봐라!]

그러나 막비강은 재차 여력을 돋우어 재차 일장을 발출했다.

추명염왕은 먼지가 자욱하여 상대방의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던 중 갑자기 또 한 줄기 강맹한 경기가 엄습해 오자 내심 깜짝 놀라며 급히 쌍장을 휘두르고 비석 뒤로 피했다.

헌데 그가 막 두 개의 크지 않은 비석으로 형성된 협도(夾道)까지 물러나갔을 때였다.

[차앗! 받아랏!]

돌연 머리 위에서 차가운 외침 소리와 함께 한 줄기 예리한 강풍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것은 예의 소녀가 발사한 단전이었다.

[요 망할 계집년이...!]

추명염왕은 대로하여 어깨를 비틀어 단전을 피한 후 쏜살같이 몸을 솟구쳐 큰 비석 위에 내려섰다.

이때 하나의 조그만 인영이 작은 비석 뒤로 내려서는 것이 보였다.

콰르릉!

추명염왕은 부리나케 추격하여 노성과 함께 장력을 격출했다.

그러나 그 조그만 인영은 몹시 영활하여 경기가 엄습해 오자 허리를 비틀어 비석에 몸을 바짝 붙이며 손목을 뒤집어 한 줄기 경풍을 뻗어냈다.

추명염왕은 이 일장이 반드시 격중되리라 믿었었다. 헌데 의외로 소녀가 공중에서 허리를 비틀어 몸을 석벽에 붙이며 반격을 가하자 오히려 추명염왕 자신의 몸이 허공에 뜨는 결과가 되었다.

그는 상황이 다급해지자 어쩔 수 없이 한바퀴 곤두박질을 하여 오 장 밖으로 날아 나갔다.

추명염왕은 본래 성격이 흉악한데다 연달아 기습까지 받자 더욱 화가 치밀어 만면에 짙은 살기를 가득 머금었다.

하지만 그가 바닥에 내려선 후 주위를 살폈지만 이미 그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어린 계집년이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 비석 모퉁이에 조그만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하고 급히 덮쳐 갔다.

꽈르릉!

그러나 그자가 미처 비석 모퉁이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 줄기 강맹무비한 장풍이 엄습해 왔다. 추명염왕은 깜짝 놀라 허리를 비틀어 옆으로 피했다.

다음 순간 그는 비석 모퉁이에서 기습을 가한 사람이 막비강임을 보고 괴소를 터뜨리며 재빨리 그의 퇴로를 차단했다.

[낄낄낄! 어린 녀석아, 너는 그래도 비급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말하지 않겠느냐?]

[!]

막비강은 차가운 코웃음만 날릴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추명염왕은 그를 일장에 격살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비급이 숨겨진 장소를 알아내야 하는지라 눈에서 흉망을 발산하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이놈아! 솔직히 내가 일장을 때리면 네놈은 뼈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비급이 숨겨진 장소만 말한다면 나는 너를 제자로 맞이하여...!]

헌데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킬킬, 헛소리 마라! 곽가야!]

돌연 한소리 음침한 일갈과 함께 막비강의 몸이 선 자세에서 갑자기 뒤로 확 끌려갔다. 어느 틈엔지 난쟁이 삼촌정이 나타나 막비강을 낚아챈 것이다.

[이 난쟁이놈이...!]

추명염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급히 경공신법을 전개하여 달아나는 난쟁이를 추격했다.

 

삼촌정은 비록 무예가 고절하지만 옆구리에 사람을 끼고 있는지라 곡구까지 나와선 곧 추명염왕에게 추격 당했다.

삼촌정은 할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징그럽게 웃었다.

[낄낄낄! 네가 앞으로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나는 이 어린 녀석부터 먼저 죽여 버리겠다.]

추명염왕은 어리둥절하더니 곧 뒤따라 괴소를 터뜨렸다.

[낄낄낄! 죽일 테면 죽여라. 그러면 누구도 비급을 얻지 못하게 되겠지.]

바로 그때였다.

[으핫하하! 이 교활한 늙은이들 같으니! 너희들은 나를 그 할망구와 싸우게 하고는 여기 와서 어린 녀석을 붙잡아 보물의 행방을 추궁하고 있구나!]

거석 위에서 우렁찬 광소 소리와 함께 한 명 노인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바로 소면호 고금이었다.

[참가한 사람은 누구나 비급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 소문에 의하면 청구단서는 상, , 하 세 권으로 나뉘어졌다니 우리 세 사람이 각각 한 권씩 나누어 가지자.]

추명염왕은 혼자 삼킬 수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찬성이다. 난쟁아, 너는 우선 그 어린 녀석의 혈도를 풀어 주어라! 그래야만 비급의 행방을 물을 수 있을 게 아니냐.]

[알았다.]

삼촌정이 막비강의 허리 부위를 살짝 꼬집었다.

[죽엇!]

헌데 막비강은 혈도가 풀리기 무섭게 오른손에 낀 강장으로 삼촌정의 가슴을 공격했다. 동시에 왼손의 신녀비로는 추명염왕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삼촌정은 연마혈(軟痲穴)이 찍힌 상태에서 막비강이 반항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억!]

퍼펑!

쌍방의 거리가 너무 가깝고, 또 갑작스럽게 발생한 변고인지라 삼촌정은 막비강의 일장에 왼쪽 옆구리를 격중당하고 몸을 휘청거렸다.

추명염왕도 막비강이 일초이식(一招二式)으로 자기를 공격할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해 한광이 번뜩하는 것을 보고서야 급히 뒤로 후퇴했다. 그러나 이미 신녀비 끝이 스쳐 장포 자락이 찢어졌을 뿐 아니라 허리띠까지 끊어져 급히 뒤로 일 장 가량 후퇴한 후 흘러내린 바지춤을 끌어올렸다.

화라라락!

막비강은 일초를 성공하자 수중의 신녀비로 검화를 형성한 채 급히 도주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핫하하하. 어린 녀석아, 도망칠 필요 없다.]

회색 인영이 번뜩하더니 한 노인이 막비강의 면전에 도착하여 일장을 격출하며 대소를 터뜨렸다. 바로 소면호 고금이었다.

막비강은 부득불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노부는 너와 아무런 원한이 없으니 비급이 숨겨진 장소만 말하면 노부는 책임지고 널 보호해 주겠다.]

소면호의 말에 막비강은 화가 치밀어 노성을 질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어 신녀비를 휘두르며 앞으로 덮쳐 나갔다.

[낄낄낄!]

소면호는 괴소를 터뜨리더니 눈에서 짙은 살염을 발산하며 번개같이 일장을 반격했다.

막비강은 상대방의 징그러운 표정에서 살수를 펼쳐내려는 것을 알고 급히 강장을 마주 뻗어냈다. 그러나 그가 강장으로 내친 기운을 뚫고 여전히 한 줄기 강맹무비한 잠경이 엄습해 왔다.

(이제 끝장이구나.)

막비강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소면호의 일장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의 표정이 되었다. 바로 그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꽈르릉!

돌연 옆에서 한 줄기 강맹한 경풍이 휘감아 나와 막비강을 일 장 밖으로 날려보냈다.

[고 영감, 너는 우리 일을 방해할 생각이냐?]

막비강이 막 몸을 가누었을 때 뒤에서 우렁찬 음향과 삼촌정의 음성이 전해 왔다. 난쟁이 삼촌정이 소면호를 급습한 것이었다.

난쟁이의 외침을 들으며 막비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놈도 사람 같은 놈이 없구나! 이 틈에 달아나자!)

생각을 굴린 막비강은 즉시 몸을 솟구쳐 날아 나갔다.

[핫하하하! 또 재주를 부리려느냐?]

하지만 추명염왕이 한차례 광소를 터뜨리더니 몸을 솟구쳐 그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이어 그는 양팔을 휘둘러 열 줄기 경풍으로 막비강의 전신요혈을 공격했다.

막비강은 일년 넘게 네 명 무림 고수의 무학을 연마했는지라 이미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즉시 구로략파(鷗鷺掠派) 초식을 펼쳐 옆으로 비스듬히 삼 장 가량 날아 나가 추명염왕의 십지구혼(十指句魂) 일초를 간신히 피해냈다.

바로 그때였다.

[늙은 것들이 정말 염치가 없구나!]

화라락!

한소리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하나의 인영이 유성처럼 막비강의 면전에 내려섰다.

막비강이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인영은 한 명의 백발노부인이었다.

 

나타난 백발의 노부인은 나이는 육순이 넘어 보이고 머리카락은 눈이 내린 듯 하얗다. 하지만 얼굴에는 주름이 거의 없으며 또 이목구비는 수려하기 이를 데 없다. 젊었을 때는 대단한 미인이었던 듯 여전히 미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할머니를 전에 어디서 봤을까?)

막비강은 이 아름다운 백발의 노부인 얼굴이 왠지 눈에 익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막비강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흡사했으나 일시적으로 그게 누구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야! 노신 날수선랑(辣手仙娘)이 여기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노부인은 한 손에 괴장(拐杖;지팡이)을 들고 막비강의 앞을 가로막았다.

(날수선랑! 이분이 바로 칠절 중의 한 분인...!)

막비강은 노부인의 이름을 듣고 흠칫 놀랐다.

 

날수선랑!

 

성이 송()씨라고만 알려진 그녀는 바로 백도의 고인들인 강호칠절 중 한 명이다. 성격이 불같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아 흑도와 사마외도의 무리들은 그녀를 야차나 나찰보다도 더 무서워했다.

막비강이 놀랄 때였다.

[너희들 세 사람의 나이를 합하면 이백 살도 넘거늘 아직 약관도 안된 어린 아이를 괴롭히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

백발노파는 괴장으로 추명염왕을 가리키며 차갑게 외쳤다.

추명염왕이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노파! 노부가 노파를 무서워할 줄 아느냐? 아까는 우리 세 사람이 오랫동안 싸움을 하여 허점을 보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틀리니 내가 독수를 펼쳐내도 무정하다고 탓하지 마라!]

삼촌정이 옆에서 웃으며 부채질을 했다.

[흐흐흐, 당신들은 한 명은 선랑(仙娘)이고 한 명은 염왕(閻王)이니 고하를 가름해야 옳지. 고 노인과 노부가 증인이 되어 주겠다.]

날수선랑이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난쟁아, 노신는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이때 막비강이 얼른 말했다.

[노선배님! 그들의 간계에 걸려들지 마십시오. 염왕은 후배가 상대하겠습니다.]

[너는 그의 독장이 두렵지 않느냐?]

[후배는 백독이 불침하니 그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헌데 그때였다.

[! 허풍떨지 마! 나는 아까 네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것을 똑똑히 보았어.]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소녀가 범개선과 함께 장내에 도착하여 냉소를 날렸다.

방금 전 막비강은 추명염왕이 독장으로 개방 제자들을 살해할 것이 염려되어 비석 아래의 구멍에서 뛰어나갔었다. 소녀는 그것을 보고 막비강이 도주한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다.

막비강은 그녀의 이 말에 검미를 치켜 올렸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두고 보아라!]

이어 한 걸음 나서며 강장을 낀 손으로 한 줄기 강맹한 경풍을 격출했다.

추명염왕은 이미 막비강과 싸운 적이 있는지라 막비강의 공력이 자기보다 별로 약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자기의 진력을 보존해 두기 위해 얼른 옆으로 피했다.

[송 노파! 너는 후배를 대신 죽게 만들 생각이냐?]

날수선랑은 냉랭히 쏘아붙였다.

[노마는 이 아이가 무서우면 빨리 꼬리를 감추고 도주해라!]

이어 그녀는 막비강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야, 내가 여기 있는 이상 그는 너를 어떻게 하지 못할 테니 마음놓고 싸워라!]

막비강은 대답을 함과 동시에 검장(劍掌)을 동시에 발출했다. 그는 소녀 앞에서 실력을 과시하기로 결심했는지라 처음부터 염라철장과 무협제원의 절학을 펼쳐냈다. 순간 검풍이 세찬 파공성을 일으키고 장풍이 곧장 추명염왕에게로 쏘아져갔다.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추명염왕은 비록 이렇게 고함을 질렀지만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그는 즉시 쌍장을 비벼 손바닥을 암흑색으로 변하게 한 다음 장풍검영의 빈틈으로 초식을 뻗어냈다.

곧 두 노소는 치열하게 얽혀 돌아갔다.

소녀는 막비강이 추명염왕과 대등하게 싸우는 광경을 보고 만면에 부러운 빛을 띠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삼촌정과 소면호가 몇 마디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몸을 솟구쳤다.

[송 노파! 한가하게 구경만 하지 말고 같이 놀아보자!]

날수선랑은 얼굴을 굳히며 괴장을 휘둘렀다.

[연아(燕兒)! 빨리 후퇴해라!]

소면호와 삼촌정은 날수선랑의 실력을 잘 아는지라 뒤로 각각 한 걸음씩 후퇴하며 동시에 병기를 뽑아 들었다. 흑도팔흉의 실력은 아무래도 강호칠절보다 손색이 있는 것이다.

날수선랑은 상대방에게 기선을 제압당하면 손녀 연아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서 즉시 괴장을 휘두르며 상대방 두 사람에게 맹공을 가했다.

일순 편영(鞭影)이 난무하고 장풍(杖風)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세 사람은 한데 어울려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연아라 불린 소녀는 손에 길이가 한 자 가량 되는 소궁(小弓)을 들고 짧은 화살을 활줄에 걸어 소면호와 삼촌정을 겨냥했다. 하지만 세 고수가 워낙 빠르게 돌아가며 싸우는 바람에 발사하지는, 못했다.

!

그러자 연아는 갑자기 목표를 바꾸어 추명염왕에게로 화살을 발사했다.

추명염왕은 막비강을 생포하기 위해 허초만 발출한 탓에 별로 우세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위를 놓는 예리한 소리가 들리자 급히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짧은 화살이 세찬 바람을 대동한 채 간발의 차이로 그의 뱃가죽을 스치고 지나갔다.

막비강은 이 틈을 이용하여 강장으로 추명염왕의 왼쪽 어깨를 격중시켰다.

!

[크흑!]

순간 추명염왕은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일 장 가량 후퇴했다.

[요 쥐방울만한 놈이!]

일격을 당한 추명염왕은 독이 올라 한 자루 금륜(金輪)을 뽑아 들고 막비강을 향해 덮쳐 왔다.

막비강은 상대방이 금륜을 휘두르자 번뜩이는 금광과 함께 사면팔방에서 강맹한 장영이 눌러 옴을 느끼고 내심 깜짝 놀랐다.

(야단났구나!)

추명염왕은 맹공을 가하며 괴소를 터뜨렸다.

[낄낄낄. 이놈아! 빨리 병기를 버리고 항복하지 않으면 이 전륜차(轉輪車)로 네놈의 몸뚱이를 걸레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노마! 아무리 협박해도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놈이 보통 고집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네놈을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 주마!]

헌데 추명염왕이 말을 막 끝냈을 때였다.

! !

예리한 파공성과 함께 단전(短箭)이 연달아 날아오더니 이어 하나의 조그만 인영이 번개같이 덮쳐 왔다.

원래 연아는 자기가 단전을 발사한 때문에 오히려 막비강이 궁지에 몰리자 다급해진 나머지 연달아 단전을 발산한 것이다.

[어린 계집년! 너부터 수습해야겠구나!]

추명염왕은 눈에서 무서운 살염을 발산하며 연아를 향해 흉험한 일장을 격출했다.

[!]

날수선랑은 이 광경을 보고 경악의 함성을 질렀다. 그녀는 급히 수중의 괴장으로 상대방을 후퇴시킨 후 연아 곁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때 그녀보다 더욱 빠른 사람이 있었다.

[받아랏!]

위기일발의 순간 막비강이 함성을 지르며 전신의 진력을 뽑아 올려 추명염왕을 향해 일장을 격출했던 것이다.

퍼펑!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며 막비강은 추명염왕과 일장을 주고받아 몸이 허공으로 날려 나갔다.

추명염왕은 막비강이 전륜차를 돌파하고 나와 연아를 구출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하여 뒤로 세 걸음 가량 밀려났다. 다행히 연아는 부상을 입지 않고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연아! 너는 먼저 가거라!]

날수선랑은 공중에서 한바퀴 맴돌아 튕겨져 나온 막비강의 몸을 받은 후 급히 고함을 질렀다.

[크크! 가긴 어딜 가느냐?]

하지만 세 마두가 막비강 등 세 사람을 포위했다.

헌데 그 직후였다.

[개방 제자들은 모두 공격 준비를 갖추어라!]

범개선이 고함을 질러 상세가 완쾌된 십여 명의 개방 제자가 세 마두를 첩첩이 포위했다.

[!]

추명염왕은 경멸의 코웃음을 날리더니 날수선랑에게 냉랭히 말했다.

[송 노파! 몇 년 더 살고 싶거든 어린 녀석은 남겨놓고 손녀만 데리고 꺼져라!]

쌍방이 잠시 입씨름을 하며 휴식을 취하는 틈을 이용하여 막비강은 날수선랑의 품속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추명염왕을 향해 사정없이 살초를 발출했다.

날수선랑은 괴장을 휘두르며 삼촌정과 소면호를 공격했다.

연아 역시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범개선에게 손짓을 했다.

[당신들은 나의 할머니를 도우세요. 나는 저 어린 녀석을 도우겠어요.]

그녀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검끝으로 추명염왕의 등뒤 명문사혈(命門死穴)을 향해 찔러 갔다.

이리하여 싸움의 국면은 두 조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한 조는 막비강과 연아가 합세하여 추명염왕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고, 또 한 조는 날수선랑과 개방 제자들이 삼촌정과 소면호를 포위 공격하는 것이었다.

추명염왕은 비록 위력이 강맹무비한 전륜차를 지니고 있지만 소년 소녀가 절묘하게 배합을 이루어 공격하자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삼촌정과 소면호는 날수선랑 한 사람을 상대할 땐 약간 우세했었다. 하지만 범개선이 이끄는 개방 제자들이 측면과 배후에서 공격을 가하자 판도가 뒤바뀌어 간신히 자기들의 몸만 보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쌍방이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화라라락!

문득 장내에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팔괘도포(八卦道袍)를 입은 노도사(老道師)가 나타났다. 이 노도사의 신법은 실로 유령 같아 장중의 고수들 누구도 그가 나타난 줄 모르고 있었다.

[...!]

그 노도인은 눈에서 형형한 광망을 발산하며 쌍방의 격전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돌연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으핫하, 여기서 여러 고인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소. 그런데 여러분은 무슨 일로 이렇게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소?]

(저자는...!)

날수선랑은 나타난 사람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오봉도인(五峯道人) 왕존일(王尊一)!)

(저 노마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니...!)

추명염왕 등 세 마두 역시 그 노도를 알아보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봉도인 왕존일!

 

그자는 오십 년 전부터 귀신이 보아도 두려워했다는 일대의 마두로 천하오대기인(天下五大奇人) 중에 드는 전설적인 고수였다.

오기(五奇)는 육요(六妖), 칠절(七絶), 팔흉(八凶)보다 한 배분 위의 고인들이었다. 비록 추명염왕 등이 알아주는 거마들이긴 하지만 오기 중의 한 명인 오봉도인의 잔인함에는 많이 부족함이 있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그가 어느 한쪽을 도우면 다른 한쪽이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은 정해진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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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단양(丹陽)> . 거대한 강과 직선의 운하가 만나는 사거리 교차점에 자리한 도시. 많은 배가 운하와 강을 오가고 있고. 부두에는 배들이 정박해있다.

부두의 배들. 배에는 인부들이 짐을 싣거나 승객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부두에서 배에 잇댄 다리 비슷한 것을 통해 오르 내린다.

승객용의 어느 배. 그 배 입구에서 선원과 얘기중인 두 여자. 진삼낭과 이진진 모녀인데 죽립을 구해 쓰고 있다. 진삼낭이 선원에게 요금을 주는 중이다.

진삼낭; [제남 근처 임청(臨淸)까지 두 사람 요금은 이거면 되지요?] 몇 닢의 동전을 선원이 내민 두 손에 떨궈 주고

선원; [승선요금은 되었소.] [하지만 식사는 알아서 해결해야만 하오.] 음험한 인상이다.

진삼낭; [알겠어요.]

선원; [이제 배에 타셔도 좋소.] 옆으로 물러서고.

진삼낭; [가자.] 앞장서서 배로 올라가고. 이진진이 따라 올라가는데

두 모녀의 뒷모습 보며 히죽 웃는 선원. 사실 이자는 흑사회 소속이다.

배로 올라가는 두 모녀. 배에는 선실도 있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이 갑판에 앉아있다. 뱃전을 등지고. 헌데

먼저 배 안으로 내려서는 진삼낭.

뒤이어 배 안으로 들어오려는 이진진. 헌데

!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는 이진진

이진진; [!] 휘청하며 쓰러지려 하고

진삼낭; [조심해라!] 급히 이진진을 부축하고. 하지만

이진진; [흐윽!]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들 힐끔거리고

진삼낭;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픈 거야?] 이진진을 뱃전에 앉히며 걱정스럽게 묻고

이진진; (...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같은 고통이 느껴졌어.) (설마... 설마...) 주르르! 가슴을 쥐어짜며 고통스러워하면서 눈물 흘리고. 그러자

[!] 무언가 깨닫는 진삼낭

진삼낭; [혹시... 혹시 네... 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덜덜 떨며 말을 잇지 못하고

이진진; [어떻게 해요 어머니? 아버지 어떻게 해요?] 애절하게 울고

진삼낭; (정말이로구나.) 털썩! 충격 받아서 주저앉고

진삼낭; (진진이는 어려서부터 먼 곳에서 벌어진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아맞히곤 했다.) 주르르 눈물 흘리고.

진삼낭; (그 능력으로... 아버지인 그이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차린 것이다.) 울고. 이진진도 그 앞에 주저앉아 울고 있고

진삼낭; (예견하긴 했지만... 막상 닥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가슴을 누르며 울고.

진삼낭; (미안해요 여보! 당신 홀로 세상을 등지게 해서 죄송해요.) 필사적으로 울음 참으며 울고. 헌데 바로 그때

[절경이로구만! 절경이야!] ! ! 누군가 박수치며 웃는 소리가 들려 기겁하는 진삼낭과 이진진

사우; [딸년 쪽이 경국지색이라는 얘긴 들었지만 어미 쪽도 만개한 꽃 같을 줄은 몰랐어!] 선실 앞에 놓인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웃고 있는 사우. 그리고 배 안에는 이십여 명의 건달들이 서서 두 모녀를 포위하고 있다. 승객들은 겁에 질려 배에서 내리고 있고. 건달들이 쫓아내는 중이다.

그런 건달들의 손에 새끼손가락이 없는 것 크로즈 업.

진삼낭; [단지회!] ! 이를 갈며 급히 양쪽 소매 속에서 휘어진 칼을 뽑으며 일어난다. 이진진을 보호하는 자세로. 이제 배 안에는 두 모녀와 단지회 건달들만 남는다.

사우; [눈치도 참 빨라.] [하긴 그렇게 영악하니까 여기까지 도망쳐올 수 있었겠지.] 거만하게 앉아서 웃고

진삼낭; (함정!) 이를 갈며 배 밖을 보고.

배 밖에는 요금을 받았던 선원이 히죽 거리며 보고 있고

진삼낭; (단지회는 우리 모녀가 배를 타기 위해 포구로 올 걸 알고 있었다.) 사우를 보고. 이어

진삼낭; (그래서 조직원들을 포구에 배치해두었다가 우릴 이 배에 타게 한 것이다.) 절망의 표정으로 선원을 노려보고

사우; [제안을 한 가지 하마.]

돌아보는 진삼낭

사우; [순순히 내 수청을 들면 딸년은 사창가가 아니라 고관대작의 첩으로 팔아주겠다.] 입맛 다시며 진삼낭의 아래 위를 훑어보고

진삼낭; [개수작 말고 덤벼라.] 칼로 사우를 겨누며 이를 갈고

진삼낭; [오늘 여기서 누가 세상 하직할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사우; [그년, 앙칼져서 더 회가 동하는군.] 히죽 웃고

사우; [그년 잡아서 내 앞에 눕혀라.] [목숨만 붙어있으면 되니까 난도질해도 상관없다.] 손짓하고

[존명!] [맡겨주십시오 사두!] 건달들이 사방에서 칼을 겨누며 진삼낭에게 다가오고

진삼낭; (여기까지로구나.) 처연한 미소

진삼낭; (진진이가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게 하지 않으려면 내 손으로 목숨을 거둬줘야할지도 모르겠다.) 비장한 표정으로 건달들을 노려보고. 그때

이진진; (달아날 수도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 절망하고. 그러다가

[!] 무언가 깨닫는 이진진

급히 자기 허리춤에 차고 있는 호리병을 돌아보고

이어 떠오르는 #47>의 장면

 

운신장; [몽운연형호(夢雲鍊形壺)라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구름같은 꿈을 이루어주는 힘을 지닌 호리병이지.]

이진진; [무척 귀한 것같은데... 왜 제게 주시는 것인지요?]

운신장; [나보다는 네게 더 유용할 것같아서 주는 것이란다.] [또 나와의 인연을 잇게 하기 위해서고...] 일어나고

이진진; [이 호리병에 어떤 쓰임이 있는지요?] 따라서 일어나고

운신장; [필요한 것이 있으면 뚜껑을 열고 간절히 원해 보거라. 그럼 몽운연형호가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슈우! 말하는 운신장의 몸이 구름에 덮이고

회상 끝

 

이진진; (몽운연형호!) 급히 허리띠에서 호리병을 끌러내고

이진진; (지금이 바로 이걸 쓸 때야.) ! 호리병의 마개를 열고. 이어

이진진; (도와주세요 선녀님!) 호리병을 잡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운신장을 떠올리면서

 

#121>

[!] 무언가 느끼는 운신장. 높고 험한 바위산 위에 서있었다. 산 아래로는 강가에 세워진 금릉의 전경이 펼쳐져 있다.

<도와주세요 선녀님!> 이진진이 애원하는 소리가 들리고

운신장; (그 아이가 위험에 처했구나!) 놀라며 두 손을 결을 지어 주문을 외우고

운신장; (구름의 주인이 명하노니... 몽운연형호는 그 힘을 드러내라!)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고

 

#122>

다시 단양의 부둣가

배 위에서 건달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고. 두 자루 칼로 맞서려는 진삼낭의 절망적인 몸짓. 그때

[!] 사우 흠칫!

진삼낭의 뒤에 주저앉은 채 호리병을 두 손으로 쥐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사우; (저 년, 뭐하는 건가?) 갸웃

사우; (천지신명에게 도와달라고 빌기라도 하는 건가?) 생각할 때

츠으! 이진진이 쥐고 있는 호리병이 빛을 발하고

사우; (호리병이 빛을 발한다!) 눈 부릅뜨고

사우; (무언가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 + [그년들을 제압하라.] 다급히 외치고. 그러자

[치자!] [살고 싶으면 순순히 잡혀라!] 건달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진삼낭에게 덤비고. 진삼낭도 맞서 칼을 휘두르려 하고. 바로 그때

! 간절히 기도하는 이진진의 두 손에 들린 호리병이 빛을 발하더니

! 호리병에서 엄청난 구름이 폭발적으로 치솟고

[!] [으헉!] [이게 무슨...] 건달들 기겁. 진삼낭도 깜짝 놀라 돌아보고. 그들을 휘감는 대량의 구름

사우; [술법이로구나!] 벌떡 일어날 때

! 화악! 배 전체를 뒤덮는 엄청난 양의 구름

[! 저게 뭐지?] [구름이 갑자기 일어나 배를 뒤덮었다.] [히익!]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나 다른 배를 오르내리던 짐꾼과 선원들 기겁하며 물러서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자들도 있고.

화악! 쿠오오! 사방으로 퍼지는 구름. 겁에 질려 강물로 뛰어드는 자들도 있고. 이윽고

휘이! 강 바람에 구름이 흩어지고

[!] 소매로 입을 가린 채 의자에서 일어나 있던 사우 눈 부릅.

! 배 안에서 진삼낭과 이진진 모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다. 건달들은 배에서 뛰어내렸거나 구석으로 물러서 겁에 질려 있고

사우; (계집들이 사라졌다.) 눈 부릅뜨고

사우; (어쩐지 건드리면 안되는 계집들을 건드린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나.) 겁에 질린 표정.

 

#123>

다시 운신장이 있는 산 정상

지지지! 눈 감고 주문을 외우는 운신장의 몸 주위로 벼락이 흐르고. 그러다가

[!] 무언가 느끼는 운신장

운신장; [성공했구나.] 안도하며 눈을 뜨고

운신장; [그 아이가 몽운연형호의 힘을 제대로 깨워서 위기를 벗어났다.] 결을 지었던 손을 풀고

운신장; [역시 이진진이란 아이가 우리 신녀문을 천마의 족쇄에서 풀어줄 열쇠였던 것이다.] 만족하며 웃고

<아연아가씨의 아들은 찾지 못했지만 내 사문을 위해서는 큰 성과가 있었다.> 운신장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124>

<-무산(巫山)> 깎아지른 바위산과 깊고 거친 계곡으로 이루어진 산

그 산 깊은 곳에 자리한 고대 유적같은 폐허. <아랑힐월>에 나온 신녀문의 폐허다.

그 폐허가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에 서있는 서양풍의 정자.

화악! ! 갑자기 정자 안에서 구름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화악! 스스스! 흩어지는 구름 속에 두 여자의 실루엣이 보이고

! 드러나는 정자 안의 상황.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손으로 호리병을 쥐고 있는 이진진. 그 앞에서 양손에 칼을 든 손으로 앞으로 가리고 있는 진삼낭. 두 모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천천히 눈을 뜨는 진삼낭. 직후

[!] 경악하는 진삼낭

진삼낭의 시점. 눈 아래 펼펴진 광활한 신녀문의 폐허

진삼낭; [... 이럴 수가...] 놀라 비틀

이진진; [어머니!] 눈을 뜨고

이진진; [무사하세요?] 일어나려 하며 묻고

진삼낭; [... 난 괜잖다.] 돌아보고

진삼낭;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영 이해가 안되는구나.] 정자 밖을 보며 말하고

[!] 일어나서 역시 정자 밖을 보다가 놀라는 이진진

진삼낭; [대체 그 호리병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이냐?] 이진진이 여전히 들고 있는 호리병을 보며

이진진;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고개 저으며 호리병을 보고

이진진; [그냥 가장 안전한 곳으로 어머니와 저를 보내달라고 기원했는데...] [이 호리병의 판단으로는 이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던 것같아요.]

진삼낭; [대체 여기가 어디기에...] + [!] 말하며 정자 천장 쪽을 보다가 눈 치뜨고

<巫山 神女門>이란 글이 적힌 현판이 천장 끝 쪽에 걸려있다.

진삼낭; [... 무산 신녀문(神女門)!] 흥분하며 현판을 올려다보고. 이진진도 놀라서 올려다보고

진삼낭; [여긴... 여긴 아무래도 무산인 것같다. 무산신녀(巫山神女)의 전설이 서려 있는...] 흥분하며 다시 신녀문의 유적을 내려다보고

이진진; (이곳이 정말 무산이라면 금릉과는 오천 리 이상 떨어진 곳인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손에 든 몽운연형호를 보고

이진진; (이 작은 호리병에 상상도 못할 힘이 숨겨져 있었구나.) 몽운연형호를 보며 생각하고

 

#125>

<-황금전장>

벽초천의 집무실. 황금수라들이 경비 서고 있고

이세창; [그후 사흘 동안 단양 일대를 철저히 수색했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탁자에 앉아있는 벽초천에게 보고 하는 중이다. 탁자 건너편에 서있고. 벽초천의 앞쪽 옆에는 벽세황이 앉아있다.

이세창; [이청풍은 물론이고 그놈의 가족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이세창; [빈민가의 이청풍 집도 수색해봤는데 살림살이가 바늘 하나 남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손을 쓴 게 분명합니다.]

벽초천; [네 생각을 말해봐라.] 벽세황에게

벽세황; [아무래도 암흑마가가 개입한 것같습니다.] 조심스럽게

벽초천; [암흑마가라...]

벽세황; [삼십여 년 전 마교가 무림맹에 궤멸당하면서 마교를 이루는 마교사가는 지하로 잠적했었습니다.]

벽세황; [헌데 마교사가중 암흑마가가 암약하고 있는 정황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벽초천; [암흑마가가 이청풍의 가족을 보호하고 있다?]

벽세황; [보호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번 일에 개입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청풍을 추적하던 황금수라들 중 두 명이 암흑마가의 마공 소수인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벽초천; [암흑마가가 왜 이청풍을 비호한다고 생각하느냐?] 이세창에게

이세창; [큰 아가씨가 무림맹 소맹주와 결혼을 한 후 추문을 퍼트리면 본장은 물론이고 무림맹도 심대한 타격을 입지 않을런지요?] 조심스럽게

벽초천; [일리가 있군.] 끄덕

벽세황; [이청풍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소소의 결혼을 미루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눈치 보며

벽초천; [혼례는 예정대로 진행한다.] [대신...]

벽초천; [소소에 대한 온갖 추문과 비방을 퍼트리도록 해라.]

벽세황; [우리 측에서 오히려 추문을 살포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놀라고. 듣고 있던 이세창도 놀라고

벽초천; [소소와 위진천의 혼례가 발표된 후 동시다발적으로 추문과 비방이 난무하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벽세황; [그 혼례로 불이익을 받을 세력들이 시기 질투해서 험담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흥분하고

벽초천; [그후에 암흑마가가 이청풍을 이용해서 추문을 퍼트려봤자 전혀 주목을 끌지 못할 것이다.]

벽세황; [혼수모어(混手謀漁)!] [절묘한 물타기가 되겠습니다.] 흥분하고. 이세창도 동감하여 끄덕이고

벽초천; [한편으로는 암흑마가에 대한 추적을 지속해라.] [본장을 적대한 그놈들을 용납해서는 안되니...] 강렬한 표정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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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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