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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二覇滅絶

 

 

 

"흐흐흐...!"

돌연, 음침한 웃음소리가 일었다.

"!"

철문영과 여섯 노인은 흠칫 하며 몸을 멈추었다.

휘익!

동시에 두 명의 괴인이 그들 앞에 날아내렸다.

두 괴인은 일신에 적포를 걸치고 있는데 얼굴전체가 불덩어리같이 시뻘겠다.

그들을 본 여섯 노인의 안색이 홱 변했다.

"... 열화쌍괴(熱火雙怪)!"

노인들의 경악성에 철문영도 흠칫 했다.

 

열화쌍괴(熱火雙怪).

 

그자들은 삼마(三魔), 삼괴(三怪)가 활동하던 일갑자 전의 괴인들이다.

성격들이 제멋대로들이라 상대하기 극히 까다로운 자들이다.

거기다가 그들의 열화소천신공(熱火燒天神功)을 극양의 기공으로 적수가 드문 공력이다.

죽었는 줄 알았던 그 노괴물들이 돌연 구련산에 나타난 것이다.

 

"애송아, 신호하면 먼저 약속장소로 달려가거라."

한 노인이 전음을 보내자 철문영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한 노인이 열화쌍괴에게 포권을 해보이며 입을 열었다.

"두분 선배님께서는 무슨 분부가 있으셔서 후배들을 부르셨는지요?"

노인의 말에 오른쪽의 괴인이 눈을 부릅떴다.

"흐흐... 잔소리는 듣기 싫다. 순순히 말로 할 때 열양만정과를 내놓아라!"

노인은 시침을 뚝 떼었다.

"후배는 선배님들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괴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듣기 싫다. 우리는 저 애송이 놈이 열양만정과를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열양만정과는 본 어르신네들께서 독염마강(毒炎魔罡)을 익히는데 사용할 것이다. 잔말말고 내놓아라!"

괴인의 호통에 노인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빙혼신군, 그 육시를 할 놈이 이 노괴물들을 불러내었군.)

노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랏!"

뒤미처 한 노인이 철문영을 향해 일갈했다.

스스스

즉시 철문영은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이놈들!"

열화쌍괴가 대노하여 철문영을 덮쳐가려고 하였다.

"어딜!"

여섯 노인이 폭갈하며 열화쌍괴를 막았다.

그사이 철문영은 이미 맞은편 숲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모조리 태워죽이리라!"

철문영이 사라지자 열화쌍괴는 길길이 날뛰며 여섯 노인을 휘몰아쳐갔다.

 

한편, 철문영은 몇 개의 산봉을 넘어 이윽고 한 채의 다 쓰러져가는 토지묘에 이르렀다.

삐걱!

그와 함께 토지묘 안에서 두 명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한 명은 울긋불긋한 화의(花衣)를 걸친 계집같이 생긴 자였다.

비록 용모는 곱상하지만 미간사이가 거뭇한 것이 호색한(好色漢)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한 자는 팔척의 키에 떡 벌어진 체구를 한 청년이었다.

탁탑거웅(托塔巨雄)만은 못하나 우람한 체구를 지닌 자였다.

"귀하가 적화장에서 온 사자요?"

곱상한 청년이 두눈을 희번뜩이며 물었다.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들은 낙일곡에서 온 분들이오?"

곱상한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본 공자가 낙혼옥랑(落魂玉郞)이오. 그리고 이쪽은 본곡의 수석호위인 흑웅신수(黑熊神手)라고하오."

철문영은 무표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예물을 먼저 주시오."

"친구, 의심이 많구려!"

낙혼옥랑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옥함을 내밀었다.

철문영은 옥함을 받아 열어 보았다.

옥함 안에는 몇 알의 희귀한 명주가 놓여 있었다.

"좋소. 적화장의 예물은 여기있오!"

철문영이 작은 옥갑을 내밀자 낙혼옥랑은 빼듯이 옥갑을 받아들었다.

옥갑을 열어본 낙혼옥랑은 해벌쭉하니 웃었다.

"물건은 분명히 인계했오. 그럼 본인은 이만..."

철문영은 즉시 몸을 날렸다.

"매우 오만한 놈이군... 흐흐 열양만정과를 전해준 놈만 아니었다면 쓴맛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낙혼옥랑은 음침한 시선으로 사라지는 철문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철문영은 오십여 장쯤 가다가 은밀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우선 낡은 백포를 벗었다.

백포 안에서 청색 경장이 나타났다.

그것은 빙심마혼 역이한이 걸쳤던 것과 똑같은 색의 옷이었다.

이어, 그의 안면근육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변천환술(易變千幻術)을 펼치는 것이다.

곧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엉뚱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 얼굴은 바로 빙심마혼 역이한의 모습이었다.

"후훗! 누구라도 속지 않을 수 없겠지?"

철문영은 음산하게 웃었다.

그의 모습은 실제로 역이한 자신이 보아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역이한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휘익!

, 철문영은 바람같이 몸을 날려 나갔다.

잠시 후, 그는 좁은 협곡위 절벽에 몸을 숨겼다.

이곳은 낙일곡으로 들어가지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곳이다.

그때, 철문영의 눈에 협곡으로 들어서는 두 명의 청년이 보였다.

그들은 바로 낙혼옥랑과 흑웅신수였다.

"흐흐... 안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철문영은 음산하게 웃으며 천천히 공력을 끌어 모았다.

, 그의 전신은 싸늘한 기류도 뒤덮였다.

", 급히 연마하여 육성밖에 안되는 빙백음강(氷魄陰罡)이지만 한두 명 얼려 버리기에는 충분하지."

살계를 열기로 결심한 철문영의 눈에서 차가운 한광이 번뜩였다.

빙백음강(氷魄陰罡)은 음혼빙백경상 최고의 기공이다.

사실 빙혼신군 역검성도 팔성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 극음기공이다.

"하하... 아버님께서 기뻐하시겠는걸!"

낙혼옥랑이 희희낙락하여 철문영이 숨어있는 절벽 밑으로 다가왔다.

쐐애액!

순간, 철문영은 독수리가 내려덮치듯이 절벽 밑으로 덮쳐내려갔다.

퍼엉!

"끄아악!"

즉사하였다.

피하고 어쩌고 해볼 수도 없었다.

육성의 빙백음강은 낙혼옥랑의 배심을 박살내었다.

무웅!

짓이겨져 꽁꽁 얼어붙은 낙혼옥랑의 몸이 삼사 장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어느 놈이냣?"

흑웅신수가 대경하여 쌍장을 휘저었다.

파르르...

불길이 크게 일었다.

흑웅신수의 쌍장에서 화염이 일어난 것이다.

"낙일산화신공(落日散火神功)!"

철문영은 일갈하며 재차 빙백음강을 쏟아내었다.

"으흡!"

흑웅신수는 안색이 새파래져 두 걸음 물러섰다.

"역이한... ... 네놈이..."

흑웅신수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흐흐흐..."

철문영은 음소하며 덮쳐들어갔다.

"차핫!"

흑웅신수도 전력을 다해 쌍장을 떨쳤다.

파앙!

우르르

굉음이 터졌다.

흑웅신수의 몸이 쓰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 철문영의 좌수가 독사같이 흑웅신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크아!"

흑웅신수가 눈을 부릅뜨며 신음을 터뜨렸다.

파앗!

쿠웅!

철문영이 좌수를 뽑아내자 흑웅신수의 거구가 둔중하게 넘어갔다.

짙은 혈향을 풍기며 선혈이 분수같이 치솟았다.

"!"

철문영은 다소 착잡한 표정으로 흑웅신수를 바라다보았다.

(좋은 자질을 지닌 기재였었는데...)

철문영은 고개를 젓고는 급히 낙혼옥랑에게로 다가가 열양만정과를 회수했다.

휘익!

한줄기 선풍이 이는 순간 철문영의 모습은 장내에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철문영이 사라진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아아!"

돌연, 거창한 장소성이 터졌다.

그와 함께 저쪽에서 십여 줄기의 쾌영이 협곡으로 날아들었다.

선두에는 잔혹해 뵈는 인상의 초로 노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영아!"

초로의 노인은 죽어 넘어진 낙혼옥랑의 시신으로 덮쳐가며 짐승같이 부르짖었다.

그자가 사패 중 남곡 낙일곡의 곡주인 낙혼유사(落魂幽士)인 것이다.

"... 빙백음강(氷魄陰罡)! 빙혼궁 놈들이..."

낙혼유사는 대성통곡하다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낙혼옥랑을 즉사시킨 것이 빙백음강임을 알아본 것이다.

"곡주님, 홍웅신수의 숨이 붙어 있습니다."

함께 온자 중 한 명이 다급히 외쳤다.

과연, 흑웅신수는 실낱같은 숨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냣? 어느 놈이 영아를 저 모양으로 만들었느냐?"

낙혼유사는 죽어가는 흑웅신수를 붙잡고 흔들며 악을 썼다.

"... ... 마혼... 역이... ... 갑자기... ... 습을 하여... ... 양만정... 과를... 탈취..."

여기까지 들은 낙혼유사는 흑웅신수를 팽개쳤다.

"역이한! 이놈! 갈가리 찢어죽이리라! 아니... 빙혼궁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 말리라!"

낙혼유사는 길길이 악을 쓰며 협곡을 날아갔다.

"곡주님!"

나머지 인물들도 급히 그 뒤를 다라갔다.

그와 함게, 협곡 위의 절벽에서도 한 줄기 청영이 소리없이 그 뒤를 따랐다.

 

낙혼유사는 삽시에 십여 리를 날아갔다.

그때, 낙혼유사의 전면에서 한 명의 청삼청년이 수십 명의 인물들과 달려오고 있었다.

"이놈!"

청삼청년을 보자 낙혼유사는 눈이 홱 뒤집혀 미친 듯이 덮쳐 들었다.

"! 낙혼유사(落魂幽士)!"

청삼청년은 기겁을 했다.

그는 바로 진짜 빙심마혼 역이한이었던 것이다.

위잉!

콰르르

폭풍같은 극양의 경기가 밀려 들었다.

"차핫! 빙백음강!"

"차핫!"

빙심마혼 역이한과 빙혼궁도들은 사력을 다해 낙혼유사의 낙일산화신공(落日散火神功)을 막아갔다.

콰릉

"끄아악!"

"흐윽!"

칠팔 명의 빙혼궁도가 삽시에 불길에 싸여 튕겨져 나갔다.

역이한도 낭패의 기색으로 나뒹굴었다.

"육시를 내리랏!"

낙혼유사는 광란하듯이 역이한에게로 짓쳐들어갔다.

콰르릉휘익

낙혼유사의 인장이 지면을 뒤집었다.

간일발의 차이로 몸을 피한 역이한은 급급히 몸을 띄워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놈! 어딜 달아나느냐!"

낙혼유사는 폭갈하며 몸을 띄웠다.

휘익!

삽시에 장내는 텅 비게 되었다.

부스럭!

, 한 그루 고목 뒤에서 본면목을 회복한 철문영이 걸어나왔다.

"이것으로 되었다. 낙일곡과 빙혼궁은 상잔하며 쓰러지리라."

철문영은 낙혼유사 등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낙일산화경(落日散火經)을 회수해야 겠구나."

철문영은 낙일곡쪽으로 몸을 날렸다.

스스스...

그 직후, 한 개의 바위 뒤에서 한 명의 노파가 일어섰다.

그 노파는 일전 선풍마존의 손에서 빠져나간 무영괴파였다.

"놀라운걸, 그 사람에게도 이런 독한 면이 있었다니... 그보다도 그의 또 다른 분신이 바로 선풍마존(旋風魔尊)이었다니... 강호가 홀딱 뒤집힐 사실인걸."

무영괴파는 노파답지 않은 낭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은 점점 재미있게 되어가는군. 호호, 어디, 그 사람의 화좀 돋우어주어 볼까?"

스스스...

무영괴파의 모습은 안개와 같이 사라졌다.

 

은밀한 절곡, 스스스...!

한 줄기 귀신같은 인영이 질곡을 빠져나왔다.

인영은 몸을 멈추고 곡을 돌아보았다.

그의 한 손에는 낡은 비급이 한권 들려있었다.

그는 바로 철문영이었다.

"이제 돌아가서 음혼빙백경도 회수해야지."

철문영은 중얼거리며 비급을 품속에 넣고 앞으로 나갔다.

그가 좁은 소로의 모퉁이를 돌아갈 때였다.

돌연, 한 명의 촌로가 뛰어나왔다.

"어이쿠!"

철문영이 피하려고 하였으나 그는 어이없게도 노인을 피해내지 못했다.

"아이쿠! 젊은 놈이 늙은이를 친다... 아구... 나죽네..."

노인이 벌렁 나자빠지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죄송합니다. 노인다, 어디 많이 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철문영은 당황하여 얼른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노인의 손목이 이상하게 야들야들하다고 느꼈으나 경망중이라 깊이 생각지 않았다.

"아이쿠... 허리가 부러졌나?"

노인은 몇 마디 철문영에게 닥달을 놓아 철문영의 넋을 빼놓고는 소로를 따라 절뚝거리며 사라졌다.

"거참, 사람 하나 피하지 못하다니... 내가 어떻게 된 건가?"

철문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그때였다.

철문영은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 이런!"

철문영은 기겁을 했다.

어느틈엔가, 그의 가슴에서 몇 가지 기물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방금 회수한 낙일산화경은 물론이고 그가 팔절 중 사절을 스러뜨리고 회수한 비급들이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또한, 파천마륜, 옥령신필등, 무림천년기전의 고수들이 남긴 신병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무영괴파! 이 못된 늙은 도둑의 짓이군!"

철문영은 멍청한 표정으로 촌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는 촌로가 무영괴파의 환신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이제 어쩔 수 없었다.

필시 장안은신술을 펼쳐 몸을 숨겼을 터이니 아무리 철문영이라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이 늙은 할망구 다음에 만나면 죽도 살도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철문영은 땅을 구르며 사라졌다.

"호호..."

철문영이 사라지자 커다란 고목에서 한 명의 소녀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당신이 그래보았자 평생가도 날 잡지는 못해요."

여인은 교소를 지었다.

스스스

뒤미처 그녀도 장내에서 사라져갔다.

 

X X X

 

드덟은 황원(荒原).

지금, 그곳에는 한 폭의 지옥혈도(地獄血圖)가 그려져 있었다.

갈가리 찢긴 육신들이 대지를 덮고 있다.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다.

죽어 넘어진 시신은 쌓여 산을 만들었다.

부러져 나간 무리들.

잘려져 떨어진 팔다리가 핏속에 잠겨 있다.

처참,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죽음, 죽음만이 황원을 뒤덮고 있었다.

헌데, 돌연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 크으..."

쌓여진 시체 사이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모습이었다.

전신이 피로 목욕한 듯이 시뻘겋게 피칠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신의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특히 그의 옆구리는 무엇인가 예리한 것에 찢겨 꾸역꾸역 재장이 터져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자의 눈을 보라.

육신은 초죽음의 상태지만 두눈만은 무서운 빛를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끔찍한 원광이었다.

"크으..."

괴인은 일어나려다가 휘청하며 주저앉았다.

"으으..."

그때, 시체 사이에서 또다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흐흐흐..."

그 물체는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로 음소를 터뜨렸다.

놀랍게도, 그 물체도 사람이었다.

그자의 몰골은 앞서 일어난 자에 못지 않았다.

그자의 한 팔은 강맹한 힘에 짓이겨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또한 그의 눈도 앞서 일어난 자 못지 않게 원광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크크... 낙혼유사(落魂幽士)! 네놈도 살아 있었구나."

! 낙혼유사(落魂幽士)!

그럼, 팔이 짓이겨져 나간 자가 낙일곡주인 낙혼유사란 말인가?

그럼, 먼저 일어난 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때, 낙혼유사가 이를 갈며 뇌까렸다.

"빙혼신군! 네놈이 살아있는데 내가 어찌 죽겠느냐?"

빙혼신군(氷魂神君)!

사패 중 북궁 빙혼궁의 궁주.

그럼, 황원을 뒤덮은 시선들은!

그렇다. 빙혼궁과 낙일옥의 전 수하들의 시신인 것이다.

구련산에서 낙혼유랑이 격살당한 것이 십여일 전의 일이다.

그 직후, 이로인해 양파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고... 결과는 양파의 전멸로 나타났다.

아들들을 잃은 두 효웅에게 전후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

결국, 이런 처참한 결과로 결말이 난 것이다.

두 효웅도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원한의 불길이 양인의 목숨을 끈질기게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네놈을 죽이기 전에는 쓰러질 수 없다."

낙혼유사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 보도(寶刀)가 피에 젖은 채로 들려 있었다.

"크흐흐...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빙혼신군이 빠져나온 내장을 덜렁이며 일어섰다.

그의 손에도 싸늘한 빛을 발하는 소도(小刀)가 들려 있었다.

"흐흐..."

"크크..."

두 효웅은 비틀거리며 다가섰다.

그들의 두눈은 원광으로 번들거리고 꽉 거머진 무기들에서 피가 흘렀다.

"크크크... 죽어랏!"

푸욱!

조금 길이가 긴 낙혼유사의 보도가 빙혼신군의 가슴으로 박혀들었다.

그러나, 빙혼신군은 고통도 모르는 듯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든 보도를 꽉 움켜쥐어 잡아당겼다.

파악!

그러자, 낙혼유사의 몸이 힘없이 빙혼신군에게로 쓰러졌다.

그 순간, 빙혼신군의 손에 들린 소도가 낙혼유사의 목을 꿰뚫었다.

동시에 낙혼유사의 보도도 빙혼신군의 가슴을 관통했다.

"흐흐... 결국... 이렇게 끝나는가...?"

"흐흐... 아무튼 좋다. 네놈과 함께 지옥으로 갈테니..."

두 효웅은 한 치의 틈도없이 맞붙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점차 그들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갔다.

휘르르...

그때, 돌연 멀리서 한 줄기 인영이 다가왔다.

그는 커다란 피풍을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죽어가고 있는 낙혼유사와 빙혼신군의 옆으로 다가왔다.

"... 의도한 바대로 되기는 했으나, 너무나 처참하구나."

그 인물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그의 발밑에서는 두 인물이 죽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들.

그러나, 죽어가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 없었다.

휘르르

스산한 바람이 혈향(血香)을 몰고 지나갔다.

문득,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광막한 황원을 뒤흔들며 울려퍼졌다.

 

<천세(千世)의 고혼이 구천(九泉)에 떠돌다, 장검(長劍)에 이는 일진선풍(一陣旋風)으로, 잔혼(殘魂)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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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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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영약쟁탈전

 

 

 

돌연 나타난 이 서생으로 인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어갔다.

(후훗!)

주루 안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돌아본 서생은 미미하게 웃었다.

몇 명의 인물들을 본 것이다.

(후훗, 낙일곡이 빙혼궁을 견제하기 위해 깨나 고심하겠군. 이제 낙일곡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빙혼궁에서는 전력을 다해 나를 저지 하려하겠지?)

청년은 미소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철문영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빙혼궁이 집요한 추적이 있었으나 낙일곡에서 철저히 철문영을 호위하였으므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철문영은 음식을 시켜먹기 시작했다.

그의 태평한 태도에 몇 명의 인물이 안달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물론, 그들은 낙일곡의 고수들이었다.

"..."

"..."

돌연, 주루 안이 물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철문영은 식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주루 입구에 한 명의 청년이 우뚝 서 있는 것이 철문영의 눈에 들어왔다.

(빙심마혼(氷心魔魂) 역이한!)

철문영의 눈길이 한순간 강렬하게 번뜩였다.

청삼에 냉막한 표정의 청년.

그는 북궁(北宮) 빙혼궁의 소궁주인 빙심하혼 역이한이란 자였다.

빙혼궁은 본시 빙혼마신이란 자가 세운 문파였다.

건립될 당시만 하여도 빙혼궁은 구대문파를 능가하는 강대한 문파였다.

특히 그들의 비전암기인 빙호추명사(氷魂追命糸)는 강호일절(江湖一絶)이라 불릴 정도로 악랄하기 이를데 없는 암기였다.

그러나, 빙혼마신의 사후 후계자 문제로 내분이 일어 빙혼궁은 쇠토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러다가, 당대 궁주인 빙혼신군(氷魂神君) 역검성이 천세문에서 음혼빙백경(陰魂氷魄經)을 갖고 나와 지난날 보다도 더 융성해진 것이다.

음혼빙백경상의 무공은 낙일산화경상의 무공과는 상극이다.

그 때문에 같은 사패에 속하면서도 양파는 사이가 좋지를 못했다.

어느 한쪽이 강해지면 필연적으로 다른 한쪽이 움추려 들리 때문이다.

일전, 구화에서 음양정령과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낙혼곡의 끈질긴 견제로 음양령정과가 빙혼궁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양파의 반목을 더욱 심해진 것이다.

자연, 빙혼궁도 전력을 다해 열양만정과가 낙일곡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빙심하논 역이한은 냉기를 담은 시선으로 주루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일순, 그의 눈길이 철문영에게 고정되며 냉랭하게 번뜩였다.

뚜벅 뚜벅!

역이한이 곧장 철문영에게로 다가왔다.

주루 안에 진을 치고 있던 낙일곡의 고수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이봐! 친구, 자네 이름이 무언가?"

역이한 철문영의 옆에 멈춰서며 물었다.

철문영은 힐끗 역이한을 올려다 보고는 모른 척 하며 다시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역이한의 안면이 보기 흉하게 이지러 졌다.

"건방진 자군!"

역이한이 냉갈하며 철문영을 잡아갔다.

그래도 철문영은 태연했다.

그 순간, 쉬잇!

"!"

역이한은 신랄한 도세(刀勢)가 등으로 파고 들어옴을 느꼈다.

"차핫!"

역이한이 일갈하며 몸을 띄웠다.

와장창

애꿎은 식탁만이 부서져 나갔다.

휘익휘익!

그와함께 팔인의 장한이 날아들며 역이한을 포위했다.

"핫하... 잘먹고 가네."

철문영은 은자 한 조각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몸을 띄웠다.

파악!

뒤이어 창눔니 부서지며 철문영은 주루 밖으로 날아 나갔다.

위잉! 츠츠츳!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두 줄기 싸늘한 경기가 철문영을 짓쳐왔다.

"하하... 이럴 줄 알았지! 역이한 혼자 주루에 들어오더니만 쥐새끼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군."

철문영은 대소마혀 풍차처럼 몸을 휘 돌렸다.

휘익!

"!"

철문영은 단번에 오륙 장을 날아 올랐다.

위잉!

그러자, 두 명의 백포인도 전력을 다해 철문영을 따라 올라모며 장을 내쳤다.

"흐흣! 가랏!"

철문영의 얼굴에 살기가 서렸다.

그와함께 산악같은 경기가 밀려 내려갔다.

꽈릉!

"크윽!"

"!"

두 줄기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한 명은 양팔이 박살이 나서 뒹굴고 다른 한 자는 가슴이 터져 즉사했다.

와장창

그때, 창문이 부서지며 역이한이 날아 나왔다.

"흐흐... 알고 보니 숨은 고인이셨군!"

역이한이 살기로 뒤덮인 시선으로 철문영을 노려보며 덮쳐들었다.

철문영도 지체않고 일장을 내밀었다.

콰릉

"으음!"

양인은 휘청하며 내려섰다.

물론 철문영이 전력을 다했다면 역이한은 피곤죽이 되어 즉사했을 것이다.

휘익휘익!

뒤미처 주루에서 팔인의 낙일곡 고수들이 날아 나왔다.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빨리 약속 장소로 가시오."

한 장한이 역이한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하하... 잘들 해보시오."

철문영은 껄걸 웃으며 돌아섰다.

휘익!

철문영은 모습은 삽시에 멀리 사라졌다.

"크악!"

여기 저기 은신했던 빙혼궁의 궁도들이 저지하려 했으나 역부족.

철문영의 장이 허공을 가르면 일 장도 못받고 나가 떨어졌다.

 

일다경쯤 후, 철문영은 구련산 깊숙이에 이르러 있었다.

그가 막, 우거진 수림을 지날 때였다.

시잉!

돌연, 전면에서 극히 미세한 파공음이 일었다.

"!"

철문영은 대경하며 급급히 몸을 휘둘렀다.

"크윽!"

그러나, 폭사되어온 암기가 극히 미세하여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호신강기까지 단번에 꿰뚫어지며 그의 어깨에 가느다란 금속줄이 관통하였다.

"빙혼추명사(氷魂追命糸)!"

철문영은 이를 지그시 물며 힘껏 빙혼추명사를 뽑아내었다.

그의 손에는 싸늘한 한기를 뿜는 금속의 줄이 들렸다.

이것이 빙혼추명사다.

신체의 일부에 닿기만 해도 전신이 얼어 붙는 음란한 암기다.

(빙혼추명사가 있다는 것을 잊고 방심했군.)

철문영은 자책하며 눈을 번뜩였다.

스스스!

뒤미처 십여 가닥의 빙혼추명사들이 폭사되어 왔다.

"어림없다."

철문영은 맹렬히 몸을 휘둘렀다.

휘르르

강맹한 선풍(旋風)이 일며 날아오던 빙혼추명사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죽어랏!"

빙혼추명사를 튕겨내며 철문영을 전면의 숲을 향해 강맹한 장력을 휩쓸어 내었다.

"크악!"

"아악!"

선혈이 튀고 육신이 찢어져 나갔다.

은신하고 있던 자들은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피를 토하며 즉사한 것이다.

휘익!

단번에 십여 명을 참살한 철문영은 전광같이 전면으로 폭사되어 갔다.

"흐흐... 돌아가랏!"

그러나, 그가 채 이십 장을 못나갔을 때 전면에서 수십 줄기 경풍이 짓쳐왔다.

퍼엉콰릉!

"!"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리며 날아내렸다.

스스스...!

그와함께 철문영의 주위로 사십팔 인의 장한들이 나타났다.

"빙혼사십팔혼(氷魂四十八魂)!"

철문영이 검미를 찌푸렸다.

나타난 자들은 빙혼궁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그들 개개인이 일류고수로서 이들이 펼치는 빙백음혼살진(氷魄陰魂煞陣)은 무적이다.

"흐흐... 순순히 열양만정과를 내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발악해보아야 빙백음혼살진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음산하게 말했다.

차앙!

그러나, 철문영은 대꾸하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우두머리의 눈빛이 음랄하게 변했다.

"끌끌...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들겠단 말이지? 좋다. 네놈에게 빙혼궁의 무서움을 싫도록 맛 보여 주마."

그자는 음소를 터뜨리며 오른손을 들었다.

스스스...

철문영을 포위하고 있던 빙혼사십팔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와함께, 철문영은 골수까지 스미는 한기를 실은 암경이 밀려옴을 느끼고 흠칫 했다.

위잉... ... !

빙혼사십팔혼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아울러 무형의 암경도 점점 더 가중되어 갔다.

보통사람이라면 암경에 실린 한음지기 만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철문영에게 한음지기는 별 문제가 못 되었으나 밀려오는 암경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이 진을 깨뜨리려면 적어도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정도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신분이 드러난 위험도 있으니...)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렸다.

(별 수 없지. 곧 낙일곡의 지원군이 올터이니 그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철문영은 장검에 힘을 주었다.

"쳐랏!"

진중에서 일간이 터졌다.

위잉!

시잉!

강맹한 경기와 서너 줄기의 빙홍추명사가 파고 들었다.

"차핫!"

철문영은 맹렬히 장검을 휘둘렀다.

파파팍

파웅!

날아오던 경기가 산산이 흩어지고 빙혼추명사가 퉁겨져 나갔다.

"달마검법(達磨劍法)! 네놈은 소림의 문하였던가?"

진중에서 약간 놀란 듯한 음성이 흘렀다.

달마검은 소림칠십이예 중 한 가지다.

그리 독랄하거나 패도적인 위력은 없으나 그 웅후한 기세는 독보적이다.

위잉

스스스

빙혼사십팔혼의 공세는 파상적으로 밀려왔다.

막강한 암경에 짓눌려 있는 상태인지라 철문영은 행동하기가 거북했다.

파파팟!

 

"으음!"

철문영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미처 완전히 마지못한 빙혼추명사가 서너 군데 글고 지나간 것이다.

(제길... 낙일곡의 굼벵이들은 왜 이리도 느리지?)

철문영은 내심 투덜거렸다.

파파팍!

또 다시 십여 줄기 빙혼추명사가 튕겨져 나갔다.

그때였다.

"와아...!"

돌연, 구련산을 뒤흔드는 함성이 터졌다.

갑자기 숲속에서 수백 명의 적의인들이 몰려 나온 것이다.

"이제야 왔군!"

철문영은 쾌재를 불렀다.

빙혼사십팔혼은 갑자기 들이닥친 적의인들을 막느라 자연 빙백음혼살진을 허술히 하게되었다.

"크크크... 빙혼궁의 졸개들아, 감히 어디까지 와서 망동을 부리는 것이냐?"

특히 열 두 명의 적포노인들이 맹위를 떨치며 빙백음혼살진을 유린하여 갔다.

삽시에 빙백음혼살진의 한 모퉁이가 무너졌다.

"크흐흐... 애송아, 어서 가자!"

열두명의 적포노인 중 여섯 명이 철문영 옆으로 날아내리며 재촉했다.

휘익!

철문영은 지체않고 몸을 날렸다.

빙혼사십팔혼은 철문영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펑펑!

"아악크으..."

조용하기만 하던 숲속은 삽시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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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九絶太陰天羅經을 지닌 여인

 

 

 

"초령은 혹시 적화장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오?"

철문영의 말에 상관초령은 멋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화신검께서 적의 숙부뻘 되세요."

철문영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결국, 열양만정과의 일을 어떻게 좀 해결해 달라는 부탁이군."

"그래요. 저와 흑호채의 힘으로는 사패와 정면 충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달리 부탁할 곳도 없어 표형을 찾은 거예요."

상관초령이 초조한 빛을 띄우며 말했다.

이에 철문영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걱정하지 말아요. 열양만정과의 일은 내 해결해 주리다. 평소 사패(四覇)의 짓거리가 볼썽사나웠는데 이 기회에 한바탕 두들겨 놓겠소."

사관초령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표형 고마워요. 숙부님을 대신해서 제가 감사를 드려요."

철문영은 싱긋 웃었다.

"초령답지 않은 말이군. , 이제 교기대회가 시작될 터이니 가봅시다."

철문영이 일어서자 상관초령도 일어섰다.

"군영대회에 참여하실거예요?"

상관초령이 객실을 나서며 물었다.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오. 그저 한 바퀴 둘러볼 생각이지만 초령은 어떻소?"

상관초령이 미소를 지었다.

"표형도 잘 아시잖아요. 저는 예쁘게 차리고 사뿐사뿐 걷는 일따위하고는 담을 쌓았잖아요. 군방대회에 나가면 아마 예선에서 떨어질 거예요."

철문영이 껄걸 웃었다.

"철익비룡(鐵翼飛龍)과 비천옥호(飛天玉狐)."

두 사람이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남녀야말로 신진제일의 고수들이니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관초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철문영의 손을 흔들며 재잘거렸다.

"카아악"

돌연 전면에서 여인들의 함성이 일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전면에서 수십여 명의 여인들에 둘러싸여 한 명의 청년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옥면유협인가 무언가하는 기생오라비군요."

상관초령이 입술을 삐죽였다.

과연, 여인들에 둘러싸여 다가오고 있는 청년은 눈에 확 띄는 영준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제법이군. 이미 공력이 일갑자를 넘었는걸.)

철문영의 시선이 강령하게 빛났다.

"..."

철문영과 옥면유협 임백천의 시선이 부딪혔다.

양인은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던가?

"... 철익비룡(鐵翼飛龍)!"

여인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졌다.

커다란 피풍을 표표히 날리며 서있는 철문영의 모습은 독특한 것이었다.

여인들이 터놓은 통로로 임백천이 환희 웃으며 다가섰다.

"형께서 표형이십니까?"

"형께서는 임백천형이시겠구려."

철문영은 임백천이 내민 손을 굳게 잡았다.

"핫하..."

"하하하..."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치며 호탕히 웃었다.

금방 십년지기같이 친해진 것이다.

"핫하하... 두분 무엇이 그리 즐겁소?"

돌연 천둥치는 듯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

고개를 돌린 중인들은 입을 딱 벌렸다.

한 명의 거한이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구 척이 넘는 키에 마치 하나의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거한이었다.

거한의 등뒤로는 다섯 자가 넘는 대형의 감산도(坎山刀)가 매어있었다.

거한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두 청년에게로 다가왔다.

"형장께서 탁탑거웅(托塔巨雄)이외까?"

철문영이 묻자 거한은 철문영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는 형께선 철익비룡?"

철문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소이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소이다."

"하하... 소제 역시 마찬가지오."

탁탑거웅 맹청탁도 호탕하게 웃으며 철문영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의 손은 너무나 커서 그리 작지 않은 철문영의 손이 푹 파묻혀 버렸다.

"하하... 맹형, 이거 섭섭하외다. 소제 임모는 아니 보이십니까?"

임백천이 껄걸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하하..."

"하하..."

세 사람은 호탕하게 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해 버린 것이다.

"이것봐요! 형들께서만 기분내시기예요?"

보고있던 상관초령이 교갈을 하며 성큼 앞으로 나왔다.

"이봐요, 나는 비천옥호 상관초령이예요. 우리 인사나해요."

상관초령이 섬섬옥수를 내밀자 맹청탁은 다황한 듯이 얼굴이 시뻘개졌다.

"핫하..."

그 모습을 본 임백천과 철문영 등이 대소를 터뜨렸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임백천이 말을 꺼냈다.

"이제 절정신유(絶丁神儒)형만 빠지고 우리 오영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잠시 교기대회를 둘러보고 한잔 거나하게 나눕시다."

상관초령이 임백천을 향해 물었다.

"기생오라버니도 군영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을 모양이지요?"

임백천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상관초령이 대놓고 기생오라버니라고 부를 줄은 생갖치 못했기 때문이다.

"꺄아!"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여인들이 비난의 교성을 질렀으나 상관초령은 태연했다.

아울러, 임백천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소이다. 물론 옥호리(玉狐狸)께서도 군방대회에는 참석치 않으시겠지요?"

옥호리라는 말에 상관초령은 고운 아미를 찡긋거렸다.

"낄낄...!"

그리고는 재미있다는 듯 사내같이 낄낄대며 웃었다.

"기생오라비 답지 않군요. 내가 잘못 본 모양인걸. 제법 사내다워요."

상관초령이 손을 내밀었다.

"핫하... 상관형같은 친구도 한둘 쯤은 있어도 상관없겠지요."

두 사람이 손을 마주잡고 흔들자 보고있던 여인들의 눈길이 과히 곱지 않게 변했다.

", 두분 기분 그만내시고 교기대회나 구경하러 갑시다."

철문영이 두 사람의 어깨를 말했다.

"클클, 좋소 좋아, 우선 군방대회를 보러갑시다. 혹시 이 맹청탁에게 시집오겠다는 급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맹청탁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하하하..."

중인들은 한바탕 웃어제치고 울창한 풍림으로 다가갔다.

네 사람의 젊은이는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넓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진회하가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풍림 속의 공지로 좌측 끝에 높직한 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군방대회는 무림 여협들의 대회임에도 오히려 젊은 청년들이 관중의 차지하고 있었다.

"무림오영(武林五英)이다."

네 젊은이가 들어서자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네 사람은 개의치 않고 한쪽으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임백천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여인들은 그에게 시선을 보내며 열광하여 마지 않았다.

"호호... 누가 나중에 임형의 부인이 될 지는 모르나 고생깨나 하겠어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바람을 피울테니 말이예요."

상관초령이 임백천의 옆구리를 찌르며 놀려 대었다.

"하하... 그러는 소저의 낭군될 사람도 고생깨나 할 것이오. 부인이 호랑이 보다도 무서울테니 일평생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도 못할 것이 아니요?"

임백천이 킬킬대며 받아넘겼다.

"! 그딴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혼인같은 것 안해요."

상관초령이 뱁새눈을 하며 임백천을 흘겨보았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그녀는 빠르게 철문영을 쓸어 보았다.

철문영은 미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군방대회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외다."

문득, 철문영의 말에 임백천 등은 대위로 시선을 돌렸다.

성장을 한 한명의 절세미녀가 대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군방대회(群芳大會)를 시작하겠사옵니다. 우선 폐원의 원주께서 심사를 해주실 분들을 모시고 나오시겠습니다."

여인은 말을 하고 돌아섰다.

사르르...

이어, 나직한 패옥 부딪는 소리가 들렷다.

그와함께 한 명의 면사여인이 여러 명의 노부인들과 광장에 나타났다.

면사여인, 그녀가 바로 요지선자였다.

비록 면사로 얼굴을 가려 용모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전신에서 우아함과 부드러운 분위기가 은연중 흘러 나왔다.

과연 천하제일의 미인으로 군림해온 여인다운 기품이었다.

요지선자는 대위에 마련된 의자로 가 앉았다.

동시에 여러 노부인들도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자세히들 보세요. 요지선자 약선배님의 좌측에 앉은 노파가 누구신지 아시겠어요?"

상관초령의 지적에 세 청년은 그 노파를 주시했다.

노파는 나이를 짐작키 어렵게 얼굴 전체가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노파의 두눈에선 번갯불과도 같은 신광이 흐르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최절정의 내가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저분 노파는 화산의 명숙이신 화령신모(火靈神母)세요."

상관초령의 말에 청년들은 흠칫 했다.

"저분이 삼마(三魔), 삼괴(三怪)와 동배의 고인이신 화령모모란 말이오?"

임백천이 놀라 물었다.

"그래요. 저분은 연로하시기는 했으나 아직도 성격이 불과 같으시니 대할 기회가 있으면 십분 조심해야해요."

상관초령이 말하는데 요지선자가 일어섰다.

"이번 군방대회에도 이렇게 많은 후배들께서 참가해 주신데 대해 감사 드려요. 제가 이 군방대회를 마련한 이유는 여러 후배들께서 거치른 무림생활에 행여나 여인으로서의 섬세함을 잃지나 않을가 하는 노파심 때문이예요. 따라서 오늘 군방대회를 진행함에 있어 평가는 무예보다도 행동거지와 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재기에 큰 비중을 두겠으니 참고하세요. 그럼 오늘 군방대회를 평가해 주실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어요."

맑은 옥령이 울리듯, 청아하면서도 윤택한 목소리로 요지선자는 노부인들을 소개하였다.

노부인들은 화령모모 외에는 무림인이 없었다.

그녀들은 모두 무림세가나 명문의 안주인들이었다.

요지선자는 소개를 마친 뒤 문득 시선을 철문영 등에게 던졌다.

커다란 피풍을 걸친 철문영, 작은 동산과같이 우람한 체구의 맹청탁, 눈에 확 띄는 귀공자 임백천, 그리고 미모와 재기넘치는 상관초령, 네 젊은이는 수많은 인파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모습들이다.

"!"

철문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요지선자의 눈길을 정면으로 받자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 것이다.

(... 무섭다. 한 쌍의 봉목만으로 사람의 이지를 뒤흔들다니... 혹시 그녀가 그 기공(寄功)...)

철문영은 한 가지 가공할 기공이 생각나 등골이 서늘해져왔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정력(定力)이 굳은 그 인지라 곧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힐끗 옆을 보니 임백천 등은 정신이 나가 멍하니 요지선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순 요지선자의 눈에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림오연 중 네분 소협들께서 군방대회를 지켜봐 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감사해요."

요지선자가 말을 하자 철문영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철문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제야 임백천 등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들의 귀에는 철문영의 목소리가 천둥같이 크게 들린 것이다.

뒤미처 임백천, 맹청탁, 상관초령은 차례로 공수를 해보이고 앉았다.

"네분 소협께서 관전해 주시니 여러 후배 여협들께서 한층 힘이 나실거예요."

요지선자는 말을 하며 장중을 둘러보았다.

"이제 군방대회를 시작하겠어요."

요지선자의 선언에 청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뒤이어, 은은한 풍악소리가 들리는 중에 군방대회에 출전하는 여인들이 차레로 나와 인사를 하였다.

그때마다 청년들은 환호했다.

여인들은 한 껏 성장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차례로 자신들이 지닌바 재기들을 겨루었다.

여인 하나하나가 자신의 용모와 재기에 자신있는 재녀들이었다.

상관초령은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맹청탁은 연신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웃어제끼고 있었다.

조금 단순하면서도 직선적인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임백천은 만면에 미소를 담은 채 종종 손을 들어 보였다.

대위에 오른 여인들은 열이면 여덟, 아홉이 임백천에게 뜨거운 시선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끔 무엇인가 철문영의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출전한 여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관초령은 야릇한 감정이 섞인 시선으로 철문영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철문영은 담단한 시선으로 재기를 겨루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상관초령은 자신이 왜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알수없어 피식 웃었다.

신시초가 되자 대충 경쟁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하락(河落) 남가부(南家府)의 남하봉, 백양세가(白楊勢家)의 백리소하(百里素霞), 복마문(伏魔門) 복마곤신(伏魔棍神)의 딸이며 한산신니의 애제자 한산냉연(寒山冷燕) 염옥화, 천남일염(天南一艶) 황보연연, 중주 남궁세가(南宮勢家)의 다지신녀(多智神女) 남궁옥영 등 다섯 명의 여인들이 돋보였다.

상관초령이 문득 철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표형께선 누가 우승할 것으로 보세요?"

철문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모로는 천남일염(天南一艶) 황보낭자가 으뜸이오. 그러나 무공으로는 한산냉연 염소저가 가장 뛰어나오. 그러나 두분 소저는 다지신녀 남궁낭자의 재기에는 상대가 못되지요. 제가 보기에는 다지신녀 남궁소저가 가장 유력한 것같소."

철문영의 말에 임백천이 동조했다.

"소제의 생각도 표형과 같소이다."

상관초령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철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일어나세요?"

"잠깐 바람좀 쏘이고 오리다."

철문영은 상관초령에게 말한 뒤 장내를 벗어났다.

"!"

진회하가로 내려온 철문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노을이 깔리기 시작한 진회하가를 걷기 시작했다.

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수양버들가지가 노란 장막같이 드리워져 있다.

철문영은 붉은 저녁놀 속의 수양버들가지 사이로 진회하를 거닐었다.

사패와 사절 등에 대한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는 어느덧 한산한 강가에 이르러 있었다.

그곳은 지회하의 동쪽 끝부분이었다.

"너무 멀리왔군, 돌아가자."

철문영은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

철문영의 몸이 굳어졌다.

짜르릉

어디선가, 인간의 음()이라 믿어지지 않는 감미로운 악기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은 비파(琵琶)소리였다.

마치 맑은 샘물이 흘러나는 소리인 듯, 잔잔히 흐르는 봄의 꽃향기같은, 실로 감미롭기 이를데 없는 비파소리였다.

다만, 비파소리의 기저에는 심금을 울리는 처연함이 갈려 있는 점이 흠이었다.

"누가 이토록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내는 것일가? 인간의 손에서 나는 소리하고 믿겨지지 않는구나."

철문영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귀를 기울여 비파소리의 근원을 찾으려했다.

비파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저곳이닷!"

철문영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진회하의 외곽에 떠있는 작은 섬이었다.

비파소리는 그곳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보자!"

철문영은 누가 그토록 아름다운 비파음을 내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번 찾아가 보기로 작정했다.

"차핫!"

그는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몸은 단번에 삼십여 장 상공으로 날아 올라갔다.

파악!

진기가 막히는 순간, 붉은 노을을 받아 강렬한 빛을 내며 거대한 은빛의 철익(鐵翼)이 펼쳐졌다.

휘익!

한 바퀴 허공을 돌아본 그는 섬쪽으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진회하를 가로질러 날아간 철문영은 섬의 상공에서 몸을 멈추었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철문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척의 길쭉한 철선(鐵船)이었다.

그리고, 곧 그는 세 명의 남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섬전체가 수양버들로 들어차 있다.

지금, 버드나무 사이의 공지에는 넓은 포단이 깔려있고 그 포단 위에 일남이녀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이었다.

일신에 백포를 걸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세 자 가량의 곤방대를 들고 있었다.

두 여인은 이십 전후의 젊은 여인과 노인 정도된 나이의 노파였다.

비파는 노파의 품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젊은 여인이 타고 있었다.

"!"

여인을 바라다 보던 철문영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졌다.

여인의 미모가 너무나 뛰어난 때문이다.

특히 마치 백옥으로 빚은 듯이 시리도록 푸른 피부는 눈이 부시기까지 하였다.

다만 한 가지, 지나치도록 연약해 보이는 것이 애처로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

문득, 한 소리 높은 소리가 일며 여인의 섬섬옥수가 멈추어졌다.

여인은 지면에 생긴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누구냐?"

그제서야 노인도 누군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일갈하며 일어섰다.

순간적으로 노인의 일신에서 엄청난 잠력이 폭발하려는 것을 철문영은 보았다.

삼인은 허공을 바라보다가 아연하였다.

한 마리 신응같이 떠있는 철문영의 모습 때문이다.

휘익!

철문영은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실례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비파소리에 정신이 팔려 그만 결례되는 짓을 하였습니다."

철문영이 정중히 포권하며 사과하자 경계의 빛을 띄우던 노인의 안색이 풀어졌다.

"허허... 괜찮소이다. 소협께서는 혹시 무림오영(武林五英) 중 철익비룡 표소협이 아니오이까?"

노인의 물음에 철문영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갱아 표아무개입니다."

그때였다.

"아가씨..."

노파의 다급한 비명이 일었다.

철문영이 급히 돌아보니 젊은 여인이 축 늘어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소생이 저분 소저를 너무 놀래켜드린 모양이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철문영이 말하자 노인은 급히 품속에서 옥병을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소협 때문이 아니오. 본시 저희 아씨께서는 지병을 지니고 계셔서 종종 저러시니 미안해하지 마시오."

노인은 옥병에서 몇 알의 환약을 꺼내 여인에게 복용시켰다.

뒤이어 노부인이 급히 여인의 몸을 주물러 주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무거우면서도 신속하기 이를데 없었다.

(두 노인 모두 최절정의 고수들이구나. 내가 이제껏 만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들인걸. 이런 고수들을 종복으로 둔 저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철문영은 의아한 기색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왔다.

비단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전신에 베인 기품 또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 유모... 그분 공자님은..."

이윽고 여인은 정신을 차렸다.

여인은 정신을 차리자 마자 철문영을 찾았다.

그러다가 철문영이 그대로 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모, 나를 배로... 데려가 주어요. 그리고... 저분 공자님을 선실로 모셔주세요."

여인의 말에 노파는 여인을 안아들고 철선으로 다가갔다.

"소협, 아씨께서 뵙기를 청하시닌 괜찮으시다면 저희 배로 잠깐 올라가 주십시오."

노인이 철문영을 바라보며 청했다.

"폐를 끼치겠습니다."

철문영은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두 말않고 철선으로 올라갔다.

"들어 가시지요."

노부인이 선실에서 나오며 청하였다.

철문영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실 안은 매우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빼어난 기법의 화폭이 걸린 선실 끝에는 편안해 보이는 침상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예의 미녀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몸이 불편하여 결례를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와요."

여인이 살짝 볼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오이다. 불편하신 소저를 번거롭게해 드린 소생이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여인은 미소를 띄우며 자리를 권했다.

철문영이 침상 옆의 의자에 앉자 여인은 문득 말을 꺼냈다.

"공자께서는 진맥을 하실 수 있으신지요?"

"잘은 못하나 할줄은 압니다."

그의 말에 여인은 섬섬옥수를 철문영 앞에 내밀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소녀의 진맥을 보아주셨으면 해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여인의 손목을 잡았다.

막상 잡아보니 여인의 손목은 너무나 가냘펐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질 듯이 가냘픈 손목이었다.

헌데, 여인의 맥문을 짚은 철문영은 안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인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 ..."

철문영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그 신음소리는 경악과 안도의 의미가 뒤섞인 그런 신음성이었다.

철문영은 미미하게 떨리는 손을 여인의 맥문에서 떼었다.

"소녀의 병세가 무엇인지 알아내시었는지요."

여인이 나직이 묻자 철문영은 여인의 눈을 직시했다.

그의 눈빛은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따뜻한 정까지도 담고 있었다.

여인은 철문영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철문영의 입에서 묵직한 한 마리가 흘러나왔다.

!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천하에서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과 비견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절맥(絶脈).

이 절맥을 지닌 여인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방치해 둔다면 이십이 못되어 전신의 심맥이 얼어붙어 절명하고 만다.

이를 치료하는 갈은 단 하나.

거의 동시에 세상에 나타난다는 천라태양신맥을 지닌 인물과 부부가 되는 길밖에 없다.

서로의 극양, 극음의 기운을 교환하여 양극단의 기운을 식혀야 하는 것이다.

 

"소녀의 구절태음천라경은 알아보셨으니 공자께서도 천라태양신맥을 지니고 계심을 아시겠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미, 운명은 지어진 것이다.

비록, 생전 처음 만나는 두 남녀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인을 만날 줄이야.)

(이제는 그 무거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구나.)

말은 않으나 두 사람의 안면에는 안도의 미소가 흘렀다.

"... ... 상공께서는 지금의 모습이... 본 모습이 아닌 듯 하옵니다만, 소녀에게 상공의 옥안을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내심 감탄했다.

지금껏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자신의 역용을 이 여인은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

철문영이 본 모습을 회복하자 여인은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너무나도 뛰어나게 영준한 철문영의 용모 때문이다.

"뛰어난 역변천환술(易變天幻術)이시군요. 소녀의 천명은 뇌벽향(雷碧香)이라 하옵니다."

"소생의 본명은 철문영이라 하외다.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소저의 증세는 이미 잘작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어떤 힘에 의해 늘려있는 것 같았소이다."

뇌벽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사옵니다. 소녀는 올해로 만 이십 사 세가 되옵니다. 구절태음천라경이 발작할 시간이 휠씬 지났지요."

철문영이 이해가 안가는 표정을 짓자 뇌벽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공께서는 백여 년 전에 활동하셨던 한분 의선을 기억하세요?"

철문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성수화타(聖手華陀)!"

철문영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수화타(聖手華陀)!

 

그는 고금이래의 모든 의술을 집대성한 기인이다.

따라서, 그의 손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어떤 난치의 병도 완치될 덩도였다.

그는 백 육십여 년 전에 강호에 출도하여 구십여 년 전까지 활동했었다.

"그분이 소녀의 의조부(義祖父)님이셨다고 하면 이해가 가시겠사옵니까?"

뇌벽향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수화타께서 손을 쓰셨으니 구절태음천라경의 발작이 지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뇌벽향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조부님께서는 구절태음천라경은 인위적인 힘으로 고쳐질 수 없다는 통설을 깨시는 약력(藥力)으로 저의 절맥을 치료하시려 하셨어요."

"성수화타시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셨겠지요."

철문영이 동조하자 뇌벽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조부님께서는 거의 완성을 하시고 그만 돌아가셨어요."

"성수화타께서 운명을 달리하셨구려."

철문영은 놀라운 기색을 띄우면서 말했다.

약력으로 구절태음천라경을 치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 조부님 당신게서도 이백 세가 넘으시자 어쩔 수 없으셨던 모양이예요."

뇌벽향은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만드시려던 영약을 재료로 연단하는 것으로 조부님께서는 생전에 백칠가지 영약을 모으셨으나 마지막 자부현청(紫府玄靑)을 얻지 못하셨어요. 그 때문에 운명하시면서도 회한의 표정을 지우지 못하셨지요."

"그래서 소저께서는 자부현청을 찾으러 강호에 나오셨구려."

철문영이 묻자 뇌벽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사옵니다."

문득, 뇌벽향이 발갛게 볼을 붉히며 말했다.

"문제라니요? 무엇이오이까?"

철문영의 물음에 뇌벽향의 볼이 더욱 붉어졌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소녀와... 상공은 음양교환... 의 수법으로... 절맥을 치료해야 하옵니다. 하온데..."

뇌벽향은 몹시도 말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제 정기적으로 서로의 음기와 양기를 교환하여야 한다.

그것은 부부사이의 은밀한 일, 처녀인 뇌벽향으로서는 입에 담기 어려운 것이다.

"어려워 마시고 말씀해 보십시오."

철문영의 재촉에 뇌벽향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상공께서는 동정지체가 아니시지요?"

철문영의 뽀얀 볼도 살짝 물들었다.

그는 천세비동에서 화희를 범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동정지체가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래 상공께서 동정지체라 하셔도 약간의 문제는 있었사옵니다. 소녀의 나이가 상공보다 많은 까닭에 소녀의 음기(陰氣)가 상공의 양기(陽氣)보다 강한 때문이지요. 자칫하면 상공의 양기가 극도로 쇠잔해져서 폐인이 될 수도 있어요. 헌데 동정...을 상실하시면서 가장 강한 원양지기(元陽之氣)가 발출된 탓으로 위험률이 더 높아진거예요. 이 상태로는 소녀의 음기를 받아 들이실 수 없으세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것이구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겠오?"

"걱정은 하지 마시와요. 조부님이 모으신 백칠 가지 영약들은 이제 상공을 뵙게 되었으니 필요없어요. 그 영약들로 상공의 원양진기를 폭증시켜 드리겠어요. 그것은 천라태양신맥의 극양지기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강하실수록 좋은 것이니까요."

말을 하면서 뇌벽향의 볼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원양지기(元陽之氣)란 사내로서의 힘을 말하는 때문이다.

"이제 소녀는 천산(天山)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상공께서는 강호의 일을 대강 마치신 후 천산으로 오시와요."

"천산에서 기거하십니까?"

", 현기곡(玄機谷)이라는 곳이예요. 전대기인이 사시던 곳인데 조부님께서 발견하시어 소녀도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아옵니다. 오시게 되면 첨인봉(尖刃峯)을 찾으셔서 소녀를 부르세요."

"알겠습니다."

철문영은 그윽한 시선으로 뇌벽향을 건너다 보았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군요. 이제 그만 일어나겠오이다. 늦어도 세달이내에 천산으로 가리다."

철문영이 일어서자 뇌벽향의 봉목이 뽀얘졌다.

"배웅하여 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세요."

뇌벽향이 고개를 떨구며 말하자 철문영은 미소를 지으며 뇌벽향의 섬섬옥수를 쥐어 주었다.

"아니... ... 공자께선..."

그가 밖으로 나가자 문밖에 서있던 두 노인은 깜짝 놀랐다.

철문영의 본 모습때문이었다.

노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노인도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분, 뇌소저를 부탁드리오."

철문영이 말하자 노인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십시오. 공자께서도 가능한한 빨리 천산으로 찾아주십시오."

"명심하리라. 자 그럼 이만..."

철문영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선수를 박찼다.

파앗!

허공에 이르자 창룡철익이 활짝 펴졌다.

"휘익!"

한 소리 긴 장소가 일었다.

그와 함께, 창룡철익을 편 철무니영의 거대한 신영은 섬을 날아넘어 진희하쪽으로 날아갔다.

진회하는 이미 환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동정호(洞庭湖)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작은 야산.

야산을 등지고 한 채의 장원(莊園)이 서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으나 제법 짜임새 있게 세워진 장원이었다.

 

적화장(赤花莊).

 

이 장원의 이름이다.

무림명숙의 한 명인 적화신검 상관형양의 거쳐였다.

 

이경무렵, 사위는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어둠 속에 묻혀있다.

휘르르...

돌연, 한 줄기 검은 인영이 소리없이 이동하였다.

그 야행인의 종적은 실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은밀했다.

무엇인가 언뜻 스친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스스스

야행인의 신영은 어느덧 적화장의 담밑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잠시 멈칫 하던 야행인은 안개와 같이 담장으로 흘러 넘어갔다.

사사삭

야행인은 여전히 귀신같은 신법으로 전진해 갔다.

그러다가, 야행인은 문득 몸을 세웠다.

멀지않은 전면에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

야행인이 나직이 헛기침을 했다.

동시에, 서 있던 인물은 흠칫 몸을 떨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표대협이시오?"

야행인은 나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표아무개입니다."

야행인이 다가서자 기다리던 인영은 야행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니요. 어려울 때에 서로 돕는 것이 무림동도로서의 도리 아닙니까?"

야행인의 말에 기다렸던 인물은 나직이 말했다.

", 우선 안으로 들어 가십시다. 빙혼궁(氷魂宮)의 흉수들이 곳곳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은밀히 한 채의 전각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간단한 탁자가 하나 있었다.

끼이익

어디를 만졌는지 무엇인가 돌아가는 소성이 일며 탁자가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탁자가 있던 곳에 비밀스런 계단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은 곧 하나의 밀실에 이르렀다.

"표형, 어서와요!"

그들이 밀실로 들어서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악!

그와함께 밝은 불빛이 일며 밀실이 환해졌다.

그러자, 밀실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야행인은 바로 철문영이었다.

그는 꼭끼는 야행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인후해 보이는 초로의 백포인이 서 있다.

그가 바로 적화장의 주인인 적화신검 상관형향이다.

그리고, 밀실 중간의 탁자 앞에 두 명의 여인이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좌측에는 검은 경장을 꼭 끼게 걸친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바로 비천옥호 상관초령이다.

그녀 옆에는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서 있었다.

천남일염이나 상관초령에 못지않은 미모의 여인이다.

아니, 오히려 잔잔한 여인다움이 상관초령보다 돋보이는 그런 미녀다.

그녀는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철문영의 지금 모습이 그다지 영준하지 못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도 철문영의 일신에서 풍기는 일대종사의 기재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사해요. 이쪽이 옥봉(玉鳳) 언니예요."

상관초령의 소개에 철문영은 포권을 해 보였다.

", 앉으십시다."

상관옥봉과 철문영이 인사를 나누자 적화신검 상관형양이 의자를 권했다.

그리고 나서 상관형양은 은밀한 곳에서 한 개의 작은 옥갑을 꺼내었다.

"열어 보십시오."

상관형양이 철무니영에게 옥갑을 내밀었다.

"이것이 열양만정과(熱陽滿精情菓)입니까?"

철문영이 받아들며 물었다.

"그렇소이다."

상관형양의 말에 철문영은 옥갑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밀실전체가 향기로운 향기로 가득찼다.

옥갑 안에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붉은 열매가 소중히 놓여 있었다.

이것이 음양정령과(陰陽精靈菓) 중 양과(陽菓)인 열양만정과인 것이다.

"이것을 소생이 당분간 빌려야 겠습니다."

철문영의 말에 적화신검은 고개를 저었다.

"빌리다니오. 약소하나마 대협께서 이번일을 맡아주신 대가로 드리겠습니다. 사양마시고, 받아주십시오."

철문영은 사양하려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품속에 집어 넣었다.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긴히 쓸곳이 있어 염치불구하고 받겠습니다."

상관형양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열양만정과는 달리 쓸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부담갖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 자 이제 빙혼궁과 낙일곡을 적화장에서 떼어놓을 계획을 짜보십시다."

철문영은 세 남녀와 머리를 맞대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우었다.

"좋습니다. 마침 낙일곡에서 독촉차 사람이 와 있으니 그자를 통해서 열양만정과를 은밀히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해놓겠습니다."

상관형양이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표형을 번거롭게 해드린 것같아 죄스러워요."

상관초령은 말에 철문영은 미미하게 웃었다.

"초령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면되오."

상관초령과 철문영은 마주 보며 웃었다.

 

X X X

 

구련산(九蓮山), 호남(湖南)과 강서(江西)의 경계에 자리한 명산이다.

그러나, 무림인들에게는 그 보다도 사패(四覇)중 낙일곡(落日谷)이 있는 곳으로 더 알려진 산이다.

 

구련산하(九蓮山下)

그리 크지 않은 시진(市鎭),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팽팽한 살기와 긴장이 전체 시진을 뒤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밀한 요소요소 마다 맹수의 그것같은 날카로운 눈길들이 번뜩이고 있다.

딸랑... 딸랑...

돌연, 방울 소리가 들리며 시진의 입구에 한 필의 나귀가 나타났다.

삐쩍 말라 볼품없는 나귀의 등에는 한 명의 서생이 앉아 있었다.

서생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래 하얀색이던 장삼은 얼마나 깁고 꿰맸는지 본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돌연, 방울 소리가 들리며 시진의 입구에 한 필의 나귀가 나타났다.

삐쩍 말라 볼품없는 나귀의 등에는 한 명의 서생이 앉아 있었다.

서생의 모습은 꾀죄죄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래 하얀색이던 장삼은 얼마나 깁고 꿰맸는지 본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과거에 낙방한 낙방문사의 모습이다.

"... 서거라."

서생은 이윽고 시진에 하나 뿐인 주루 앞에서 나귀를 세웠다.

"어이 이보게, 내 나귀좀 돌봐주게."

서생은 큰소리로 점원을 불러 나귀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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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瑤芝花園

 

 

 

당금무림.

또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중원을 한바탕 휩쓸던 선풍마존의 혈풍도 지금은 가라 앉아 있었다.

비록, 언제 다시 혈풍이 불어닥칠지는 모르나 일단은 평화가 돌아온 것이다.

그 무렵, 그들은 뛰어난 무공으로 단시일 내에 거대한 명성을 날렸다.

 

<무림오영(武林五英).>

 

무림인들은 그들을 무림오영이라 불렀다.

 

철익비룡(鐵翼飛龍) 표운(飄雲).

 

오영(五英) 중에서도 일인자.

그는 지난 일년 사이 발군의 무공으로 중원을 위진했다.

북육성 녹림도의 본거지인 녹림십팔채가 그의 한 자루 장검에 굴복했다.

그 뿐이 아니다.

청해일대를 본거지로 일단의 집단이 있었다.

청해마궁(靑海魔宮).

 

삼마(三魔), 삼괴(三怪)와 동배의 마두들인 청해삼마신(靑海三魔神)이 세운 마문(魔門)이다.

그들은 각지의 마두들을 모아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 세력이 구파에 못지 않아 어느 누구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연, 청해마궁은 청해와 감숙일대를 휩쓸며 갖은 못된 짓을 자행하였다.

살인, 방화, 약탈은 예사였고 수많은 아녀자들이 능욕을 당했다.

그러던 청해마궁이 돌연 잿더미로 화한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청년고수의 손에 말이다.

그 청년이 바로 철익비룡이었다.

청해삼마신이 철익비룡의 검에 쓰러지고 청해마궁이 무너지자 무림인들은 환호하였다.

그 일로 철익비룡은 단연 신진제일고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후에도 그는 몇 가지 커다란 일을 해치웠다.

특히 그 중에서도 무림의 두통거리이던 천효사십팔흉(天梟四十八凶)을 베어 버린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무림에는 천효방(天梟幫)이라는 단체가 있다.

천효방은 마중효신(魔中梟神) 갈천중이라는 자가 세운 방파였다.

세워진지는 십여 년밖에 되지 않은 신흥방파다.

그러나, 그들의 세력은 사패(四覇)에 못지 않은 강대한 문파였다.

그런 천효방의 주력이 바로 천효사십팔흉이었다.

그들은 뛰어난 무공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간악한 성품을 지닌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무림의 두통거리가 되었으나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그들의 만행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때, 사소한 분규가 철익비룡과 천효방 사이에 벌어졌다.

결국, 철익비룡은 단신 천효사십팔흉을 모두 베어 버리고 말았다.

이 쾌거로 철익비룡의 성가는 더욱 높아졌다.

또한 그는 특이한 철익(鐵翼)을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그의 경공 역시 중원제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은 늘 묘연하였다.

그러자 무림인들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는 어디에도 있고 아울러 어느 곳에도 없다

절정신유(絶丁神儒).

 

오영 중 두 번째 인물이다.

그는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도 무림에 나타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인이 가장 존경하고 선망하는 인물이 바로 그다.

그의 명성은 오히려 철익비룡을 능가하는 것이다.

비록 그의 정체가 구름 속의 신룡같더라도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화제가 많다.

먼저, 그는 당금의 천하제일미남자(天下第一美男子)라는 것이다.

그의 용모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한 번 대한 여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그를 찾아 다닌다.

이것은 마치 이십여 년 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과 비슷한 일이었다.

그를 한 번 대한 여인들에게 절정신유에 대해 물어보라.

그러면 즉시 그녀들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여인들은 누구도 절정신유의 용모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묘사가 절정신유의 인상을 해칠까 두려워 해서이다.

또한 그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생각이 앞서기 대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절정신유는 천하제일의 거부(巨富)이다.

그는 얼마만큼의 재산을 지녔는지 모른다.

그가 단지 부자이기만 하다면 천하인들의 존경을 받을 리 없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활불과 같은 존재이다.

큰 재난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절정신유의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그러면, 그 즉시 상상키 어려운 거금들이 난민들에게 풀어지는 것이다.

그외에도 그는 만박통지의 재사이다.

또한 그의 무공도 신비막측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옥면유협(玉面遊俠) 임백천.

 

그는 명문의 후손이다.

, 강호제일의 명문인 청룡검문(靑龍劍門)의 소문주인 것이다.

오십여 년 전까지 중원에 군림하던 쌍존(雙尊) 중 청룡검존(靑龍劍尊)이 그의 주부이다.

훌륭한 가문.

영준한 외모.

뛰어난 무공.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젊은 기재가 바로 옥면유협이다.

자연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미녀들이 들끓었다.

그것은 기분 좋은 정도를 지나쳐 골치아픈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탁탑거웅(托塔巨雄) 맹청탁.

 

천생신력을 지닌 거한.

능히 한 손으로 만 근을 든다는 신력을 지녔다고 전한다.

그는 어려서 한 이인으로부터 절정의 외공을 배웠다.

그의 외공은 극에 달해 도검(刀劍)이 통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또한, 그의 무기인 백근 대력감산도(大力坎山刀)로 펼쳐지는 진천사십팔로(震天四十八路)의 도법(刀法)은 거세무적(擧世無敵)이다.

 

비천옥호(飛天玉狐) 상관초령.

 

오영(五英)의 유일한 여인이다.

 

그녀는 미()와 재()를 겸비한 기녀(奇女)이다.

그녀의 미모는 당금 중원의 뭇 여협들 중 첫째 둘째를 가릴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그녀의 무공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아니,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다.

당금 무림네 있어서 그녀를 제압할 만한 고수는 많지 않다.

그녀의 사문이 어디인지는 자헤시 알려진바 없다.

그녀의 무공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녀는 당금의 무림여걸들 중의 일인자이다.

또한 그녀는 지금껏 단 한 번 패했을 뿐 져본적이 없다.

그 단 한 번의 패배는 철익비룡(鐵翼飛龍)에게서 맛보았다.

그녀는 녹림십팔채 중 태호(太湖)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흑호채(黑狐寨)의 주인이다.

그 때문에 철익비룡과 충돌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십초가 못되어 패배를 자인하고 무기를 버렸다.

그후, 철익비룡과 상관초룡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상이 무림오영(武林五英)이다.

무림인들은 이들 오인이 앞으로의 무림을 이끌어 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무림인들이 꿈에도 모르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철익비룡(鐵翼飛龍)과 절정신유(絶丁神儒)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몰랐다.

물론 철익비룡과 절정신유란 철문영(鐵文英)의 분신이었다.

동천목을 떠난 그는 우선 천세문의 복수에 착수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마교와 사절, 사패만 남기고 천세문의 혈한에 관계된 자들은 모조리 제거되었다.

또 한편으로 그는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을 지닌 여인을 찾아야 했다.

철익비룡이란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분신인 것이다.

하여간, 지금 그는 어느 정도 초조한 상태였다.

자신의 찬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은 이년 이내에 발작한다.

그 전에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인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가 그 여인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X X X

 

금릉(金陵).

남경(南景)으로 불리던 강남(江南)의 중심(中心).

대명(大明)의 시조 태조홍무제(太祖洪武帝)가 처음 도읍으로 정했던 고도이기도 하다.

지금은 황성(皇城)으로 도성이 바뀌었으나 금릉은 여전히 강남의 중심으로 군림하고 있는 대도(大都)이다.

중추가절(中秋佳節).

더할 수 없이 맑게 개인 날이다.

각양각색의 의복을 걸친 선남선녀들이 물결을 이루며 흘러간다.

금릉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인파 속에는 기이하게도 병장기를 지닌 무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무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금릉이다.

그러나, 이 무렵이면 금릉은 각지에서 몰려든 무림인들로 시끄러워진다.

그것은 금릉에서 벌어지는 한 가지 성회(盛會) 때문이다.

금릉에는 전체 무림인이 잘 아는 한곳의 단체가 있다.

이름하여,

 

<요지화원(瑤芝花園)>

 

이는 구성원 전부가 여인들인 특이한 문파이다.

또한, 그 여인들의 거의 전부가 기녀(妓女)들이다.

바로 진회하(秦淮河)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여인들이다.

요지화원이 성립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이십여 년 전이었다.

무림에는 한 명의 절세미녀(絶世美女)가 나타났다.

그녀의 미모는 경국지색(傾國之色),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나 뛰어난 미모였는지 전무림인이 상사병에 시달릴 지경이었다.

 

요지선자(瑤芝仙子) 약시란(若施鑾).

그 여인의 이름이다.

그녀의 미모는 완벽, 바로 그 자체였다.

그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그런 경세의 미녀였던 것이다.

자연, 그녀의 주위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들끓게 되었다.

여러 무림세가의 귀공자들이나 한 지방을 웅패하고 있던 지존들, 명문대파의 제자들이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필사적으로 경쟁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왕후장상의 귀인들과 고관거부들의 자제까지 약시란의 주위를 맴돌았다.

유사이래 어느 여인도 겪지 못한 갈 등을 약시란은 겪어야했다.

그녀는 섣불리 어느 한 사람에게 정을 주지 못했다.

만일 그녀가 어느 누구에게 지나친 정감을 표시하면 그즉시 피보라가 인다.

누구 손에 죽었는지 모르게 상대방 남자는 사살되고 마는 것이다.

자연, 그녀는 천하인의 정인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여인도 아닌 묘한 입장이 되었다.

이것은 가슴 뜨거운 젊은 여인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녀도 때로는 뜨겁게 마음을 불태울 상대를 원했다.

그러나... 그런 인물은 좀채 없었다.

천하인의 걸시를 극복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사람이라는 눈속으로 빠져들었다.

상대는 이름도 없던 백면서생이었다.

그에게는 재산도 권력도, 힘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남다른 인품의 유생일 뿐인 평범한 인물인 것이다.

아니 평범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는 고금이래의 모든 학문에 능통한 은사였다.

동시에 춘추전국시대의 송옥, 반안 등이 무색한 영준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하여튼, 약시란과 서생은 만나자마자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약시란은 자신들의 애정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은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수할 각오로 그녀는 정인과의 결혼까지를 강행하려고 했다.

불안한 속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결혼 준비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약시란은 죽음과도 같은 충격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불안한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그녀의 정인이 처참하게 난도질 당해 참살당한 것이다.

늘 경계의 눈빛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나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벌어진 참사였다.

이 사건은 약시란에게 감당키 어려운 충격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산문(山門)으로 은신했다.

강호와 인연을 끊고 죽어간 경인의 명복을 빌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다.

어느날, 그녀는 소복을 벗고 강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강호에 선언했다.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겠노라고.

그후, 그녀는 자신의 여생을 자신과 같이 불우한 여인들을 도우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웃음과 몸을 파는 불우한 여인들을 모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를 사모하던 남성들은 힘을 모아 그녀를 도와주었다.

여기에는 흑백양도 문파의 구분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회하가의 수십만 평 대지에 화려한 장원이 세워졌다.

이는 황제가 기거하는 자금성이 무색할 정도로 화려한 장원이었다.

 

요지화원(瑤芝花園).

 

바로 요지화원이 그것이다.

그후, 무림에는 한 가지 불문률이 생겼다.

, 요지화원의 십 리 이내에서는 여하한 분규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불문률은 흑백양도에 구별하지 않고 통용되는 철칠이었다.

요지선자 약시란에 대한 무림인들의 예우인 것이다.

요지황원이 자리가 잡혀가자 요지선자는 매년 가을에 한 번씩 요지화원을 전무림인들에게 개방하였다.

자연 그때만 되면 요지화원은 무림인들로 번잡하게 변한다.

아울러 약시란은 여러 가지 행사를 마련하였다.

그중 무림인들의 인기를 가장 끄는 행사는 군영대회와 군방대회(群芳大會)였다.

군영대회는 젊은 무사들이 서로의 무공을 비교하는 대회다.

그리고 군방대회는 무림여협들이 재지를 겨루는 모임인 것이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던짐에 서슴지 않을 것이다.

군영대회와 군방대회는 무림 전체가 공인하는 공인된 명예획득의 관문이다.

그러니 자연 젊고 영기 넘치는 젊은 남녀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게 마련이다.

오늘.

드디어, 요지화원이 개방되고 군영대회와 군방대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요지화원은 수많은 무림인들로 크게 붐비고 있었다.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문득, 흘러가는 인파 속에서 한 명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청년의 용모는 평범했다.

단지 신비롭도록 유현하게 빛아는 눈빛만이 인상적일 뿐이다.

그는 전신에 흑색경장을 하고 있으며 어깨 뒤로는 매우 넓은 피풍을 두르고 있었다.

아직 피풍을 두를 시기는 안되었다.

그러나, 피풍을 한 청년의 모습이 그렇게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또한, 알게 모르게 청년의 일신에서는 남다른 기개가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일대종사로서의 기개같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청년의 허리에 걸린 청강장검(靑剛長劍)이 인상적이다.

청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럽은 광장으로, 지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헌데 그들은 대부분 병장기를 소지한 무림인들이었다.

문득 청년의 발길이 멈추어 졌다.

"요지화원(瑤芝花園)..."

청년은 전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요지화원(瑤芝花園)!

그렇다.

이곳은 요지화원 앞의 광장이었다.

잠시 서 있던 청년은 요지화원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청년이 다가가자 정문에 서 있던 네 명의 미녀가 청년을 맞았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의 여인들이었다.

특히 그중 맨 우측의 여인은 고아한 기품까지 지닌 미녀였다.

청년의 모습을 본 여인의 눈길이 맑게 빛났다.

"저히 화원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방명록에 서명을 하시겠는지요?"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년에게서 벙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청년은 멈칫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재빨리 탁자 위의 두툼한 방명록을 청년 앞에 내밀었다.

청년은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내려썼다.

 

철익(鐵翼) 표운(飄雲).

 

여인들의 눈길이 확 변했다.

"! 철이기룡 표대협이셨군요. 대협께서 찾아주신 것을 알면 선자께서 크게 기뻐하실 거예요."

예의 여인이 환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 서 있던 무림인들은 놀란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철문영이었다.

"소녀가 안내해 드리겠아옵니다."

예의 여인이 재빨리 철문영의 앞으로 나섰다.

"폐를 끼치겠오이다."

철문영이 말하자 여인은 미소를 지었다.

"폐라니오. 소녀가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옵니다. 소녀의 천명은 도화(挑花)라고 하옵니다."

여인의 말에 철문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가시는 분. 표형(飄兄)아니세요?"

그때, 돌연 뒤쪽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철문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한 명의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눈에 확 띄는 늘씬한 미녀로 일신에 하늘색의 연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덤덤하던 철문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초령(草苓), 오랜만이오."

철문영이 환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표형, 반가와요. 이게 얼마만이예요?"

여인은 대담하게 사내같이 철문영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를 본 도화라는 여인의 눈길이 잠시 흔들렸다.

"어머, 혹시 소저께선 비천옥호 상관소저 아니신가요?"

여인의 말에 철문영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철문영과 마주 서 있는 여인은 바로 무림오영 중 유일한 여성인 비천옥호 상관초령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여인답지 않은 호협한 성품을 지닌 여장부였다.

철문영은 그녀의 그런 성품이 마음에 들어 각별한 교제를 하고 있었다.

"두분, 이리 오세요. 두 분께 저희 화원에서 특별히 마련한 객사로 안내해 드리겠어요."

도화라는 여인이 앞장섰다.

"호호... 표형과 함께 있으니 이런 대우도 받는군요."

상관초령은 매끄러운 철문영의 손을 잡고 흔들며 도화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도화라는 여인의 안내를 받아 진회하가 내려다 뵈는 관목 숲 속의 객사 앞에 이르렀다.

객사들은 관목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매우 운치있고 조용했다.

도화라는 여인은 나란히 붙어있는 두 개의 객방 앞에 섰다.

"두 분께서는 이 방들을 사용하세요.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시녀들에게 말씀하여 주세요. 그리고 교기대회는 미시부터 시작되니 참석하시려면 풍림원으로 오세요."

"수고하셨소이다."

철문영이 치하하자 도화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물러갔다.

"표형,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어요? 사실은 표형께 한 가지 부탁 드릴 것이 있어서요. 며칠 동안 표형을 찾아다녔어요."

자기방으로 들어가려던 철문영은 멈칫 했다.

"우선 안으로 들어와서 이야기합시다."

철문영이 방으로 들어서자 상관초령도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하고 마주 앉았다.

"그래, 초령이 하고 싶은 부탁이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상관초령은 생긋 웃었다.

"우선 약속해요. 제 부탁을 들어준다고 말예요."

상관초령이 어거지 스듯이 말하며 철문영의 식지에 자신의 식지를 걸었다.

"초령, 말해봐요. 아무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주지 않으려 하겠오?"

철문영의 말에 상관초령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좋아요. 말씀드릴께요. 표형도 얼마전 구화(九華)에서 음양정령과(陰陽精靈菓)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으셨을 거예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음양정령과란 음령정과(陰靈精菓)와 열양만정과(熱陽滿精菓)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들은 극양, 극음의 서로 다른 영효를 지닌 영약이면서도 한 가지에 달린다고 하지않소? 헌데 음양정령과가 어찌되었단 말씀이오?"

상관초령은 어두운 신색이 되었다.

"음양정령과는 어느 약초채집꾼에게 발견되었어잖아요. 그 직후 음양정령과는 한 분의 무림명숙이 거금을 주고 사갔어요. 그분은 바로 적화장(赤花莊)의 적화신검(赤花神劍) 상관형양대협이세요."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리며 들었다.

상관초령은 계속 이야기를 했다.

 

상관형양에게는 한 명의 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상관옥봉.

강남일미(江南一美)라 불리는 미녀였다.

헌데 그녀는 선천적으로 잔음결맥증이라는 난병을 지니고 있었다.

상관형양이 거금을 주고 음양정령과를 사들인 이유는 바로 상관옥봉의 고질을 치료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상관옥봉의 고질은 음양정령과 중의 음령정과로 치유가 되었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사패(四覇) 중의 낙일곡에서 열양만정과를 노린 것이다.

낙일곡에서 얻은 무림천년기전은 낙일산화경(落日散花經)이다.

헌데 낙일곡주인 낙혼유사(落魂幽士)는 나이가 들어 낙일산화신공(落日散花神功)의 연마에 들어간 까닭에 신공의 화후가 구성(九成) 수준에 멈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열양만정과의 극양한 양기를 빌어 신공을 대성하려고 한 것이다.

만일, 낙혼유가가 정당한 대가를 치루고 열양만정과를 요구했으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낙혼유사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 것이다.

상관옥봉을 자기 며느리로 맞을 터이니 그 예물로 열양만정과를 보내라는 것이다.

원래 낙혼유사에게는 낙혼옥랑(落魂玉郞)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자는 지독한 망나니로 자기 아버지의 위세를 빌어 수많은 양가집 규수들을 범한 색골이다.

그자가 언제인가 상관옥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음심을 품은 것이다.

낙혼옥랑같은 자에게 딸을 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는 천하를 쥐고 흔드는 사패 중 한 문파다.

그러니 정면으로 거절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낙일곡과 견원지간인 북궁(北宮) 빙혼궁에서도 압력이 왔다.

빙혼궁의 무공과 낙일곡의 무공은 상극이다.

헌데, 만일 낙혼유사가 열양만정과를 얻으면 빙혼궁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던 방법으로든 열양만정과가 낙혼유사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니 빙혼궁의 압력이 적화장에 가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되니 적화신검 상관형양은 진퇴유곡의 지경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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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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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쓰러지는 八絶

 

 

 

핏빛 선풍(旋風).

드디어 팔절(八絶)에게도 떨어지다.

무림은 술렁였다.

도대체 선풍마존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선풍마존은 얼마만큼이나 강한 것일까?

 

고죽검신(枯竹劍神).

팔절의 일인, 아울러 검법에 있어 당대 최고라는 인물.

헌데, 그런 고죽검신이 선풍마존의 검에 쓰러진 것이다.

무림인들은 떠들었다.

 

팔절(八絶)은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된다. 사폐(四覇)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대에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된다. 사퍠(四覇)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대에 선풍마존을 당할 고수는 없다. 오직 전대의 삼마(三魔), 삼괴(三怪)정도만이 선풍마존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선풍마존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런중에, 팔절(八絶)중 나머지 철인과 사패(四覇)가 급히 모임을 갖았다.

선풍마존을 상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각자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모임은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일말의 불안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정주(鄭州).

이곳은 무림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왜냐하면 이곳에 팔절(八絶) 중의 일 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천신도(驚天神刀) 제갈현.

그자이다.

그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무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몇 년 전부터 위명을 날려 팔절 중에 끼게 되었다.

그의 거처는 정주교외의 신도장(新刀莊)이었다.

경천신도, 이자는 바로 천년기전중의 폭혈참신도보(爆血斬新刀譜)를 얻었던 것이다.

이제 경천신도는 도법(刀法)에 있어서는 무림제일로 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가 경천신도의 목을 조여들어 오고 있었다.

물론, 경천신도 본인은 그것을 알리 없다.

 

이곳은 정주로 통하는 관도.

휘잉!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초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정오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그 때문에 길가의 다루(茶樓)는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대부분이 여행중인 듯한 사람들 뿐이다.

다루의 구석.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노파가 구석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파의 얼굴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고 머리결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노파에게는 한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먼저, 간간이 치켜뜨는 노파의 두눈에서 섬전같은 신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안목있는 자라면 노파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절정의 공력을 지닌...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노파의 살결이었다.

노파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노파의 왼쪽 소매가 약간 접혀 있다.

헌데, 살짝 드러난 노파의 팔목 위의 살결이 그렇게 희고 탄력이 있을 수 없었다.

도무지 주름 투성이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피부였다.

한편, 노파는 한쪽 좌석에 앉은 인물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인물은 노파와 두 개의 탁자를 격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다만, 죽립(竹笠)으로 깊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일견하기에도 그 청년의 일신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그 기운은 가슴을 섬칫하게 만드는 냉기였다.

동시에 골수까지 스미게 하는 싸늘한 살기가 풍겨지고 있었다.

그 청년은 무엇인가 길쪽한 것을 천으로 싸서 안고 있었다.

청년은 자기 앞의 찻잔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또 한편, 또 다른 구석에서는 한 명의 청삼노인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노인은 조용히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간간이 청년과 노파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언뜻 청삼노인의 눈에 살기가 흐르고 지나갔다.

두 명의 노인이 자기를 관찰하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두두두

돌연,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일었다.

노파는 고개를 들었다.

관도 저편에서 뿌연 먼지가 일면서 몇 필의 기마가 달려왔다.

노파의 두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기마의 선두에는 두 필의 준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측에는 한 명의 장한이 말을 몰고 있었다.

허리에는 묵직한 보도를 걸고 있는 그 장한은 매우 위맹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부릅뜬 한 쌍의 호안에서 전광같은 안광이 발해지고 있었다.

공력이 절정에 달한 때문이다.

중년장한의 옆에는 왜소한 노인이 말을 달리고 있었다.

일신에 회의를 걸친 노인의 두눈은 쉴새없이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그다지 심기가 바른 자는 아닌 듯한 노인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십여 필의 준마를 몰고 장한들이 따르고 있었다.

"경천신도(驚天神刀) 제갈대협이시다."

다루에 있던 몇몇 무림인들이 외쳤다.

그러자 죽립의 청년이 죽립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끔찍한 살기를 실은 안광이 번뜩임을 노파와 청삼노인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웬지 두 노인은 동시에 흠칫 몸을 떨었다.

두두두

중년장한, 즉 경천신도 제갈현 등이 탄 준마들이 다루로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돌연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 노랫소리는 어디서 들리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천세의 고혼이 구천에 떠돌다.

장검에 이는 일진 선풍으로 장혼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여기 저기서 경악성이 터졌다.

"... 선풍비가(旋風悲歌)."

무림인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히히힝

그와 함께, 경천신도 일행이 급히 말의 고삐를 당겼다.

그곳이 마침 다루의 앞이었다.

경천신도와 회의노인의 안색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뒤이어, 거창한 일갈이 터졌다.

"웨액으윽!"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폭갈에 실린 공력에 기혈이 뒤집힌 것이다.

동시에, 죽립청년이 벌떡 일어섰다.

쐐애액

청년의 손이 번뜩이자 쓰고 있던 죽립이 대기를 갈랐다.

맹렬한 기세로 경천신도를 향하여 밀려간 것이다.

단순한 죽립이지만 날아가는 기세가 엄청났다.

만일 그대로 맞는다면 몸이 두 동강나고 말 것이다.

"차핫!"

그러나, 경천신도도 어엿한 팔절 중 일인이었다.

뜻하지 않은 기습이었으나 다급히 장을 쳐들었다.

위잉!

한 줄기 산악같은 경풍이 죽립을 후려쳐간 것이다.

"흐음!"

파파팟!

죽립이 산산이 부서져 튕겨 나갔다.

그러나, 죽립에 실린 경기는 경천신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경천신도는 죽립을 후려친 우수가 부서져 나가는 듯한 통증에 신음을 터뜨렸다.

그의 손은 파열되어 선혈이 낭자했다.

츠츠츠

정신 차릴 사이도 없었다.

죽립이 부서지자 마자 금찍한 도기(刀氣)가 경천신도의 허리를 잘라왔던 것이다.

"!"

경천신도는 다급히 비명을 질렀다.

그는 촉망중에 보도를 도집채 들어, 날아오는 도세(刀勢)를 막아갔다.

카앙!

"크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피가 확 퍼졌다.

경천신도는 청년의 단 일도(一刀)에 허리가 끊어져 즉사했다.

경천신도의 보도(寶刀)는 도집채 두 동강이 나있었다.

휘익!

단번에 경천신도를 도륙낸 청년은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전광석화!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도록 일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멈춰랏! 악도!"

이내 회의노인이 폭갈을 지르며 몸을 띄웠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청년은 백여 장 밖을 달리고 있었다.

"..."

중인들의 입이 딱 벌렸다.

그사이 회의노인과 선풍마존은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중인들은 경천신도의 시신을 둘러싸고 웅성거렸다.

그 틈에서 예의 노파가 조용히 빠져나왔다.

"과연 무섭구나. 폭혈참신도법(爆血斬神刀法)을 익힌 경천신도가 손도 못써보고 당하다니... 물론 다분히 승천마라도(昇天魔羅刀)의 예리함이 있기도 했으나 역시 무서운 자다."

노파는 나직이 혼잣말로 중어거렸다.

휘이익

어느정도 중인들로부터 멀어지자 노파는 몸을 날렸다.

삽시에 노파는 십여 리를 달렸다.

쾅콰릉!

"?"

노파는 두눈을 번뜩였다.

멀지않은 곳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린 것이다.

스스스

노파는 폭음이 들리는 곳으로 소리없이 다가갔다.

그곳은 관도옆 숲 속의 공지였다.

쾅파웅!

지금, 그 공터에서 선풍마존과 회의노인이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굉렬한 폭음이 터지며 아름드리 거목들이 허리가 꺾여져 쓰러졌다.

펑콰릉!

"크윽"

요란한 폭음이 터지며 회의노인은 비칠비칠 물러났다.

아무래도 회의노인은 선풍마존의 적수가 못되었다.

노인도 팔절(八絶)중의 일인이지만 공력이나 초식 등 어느 것 하나 선풍마존에 미치지 못했다.

"차핫!"

청년, 선풍마존은 숨돌릴 틈도 주지않고 회의노인을 향해 휩쓸어 갔다.

위이잉!

회의노인은 맹렬히 장을 쪼개내었다.

노인의 공세는 선풍마존의 하복부를 짓쳐갔다.

"!"

선풍마존은 별 수 없이 장을 회수하며 몸을 휘돌려 떠올랐다.

"흐흐흐."

회의노인은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차앙!

그와함께 노인의 손에 한 쌍의 비륜(飛輪)이 들려졌다.

그것은 직경 반자 가량의 크기로 외곽에 날카로운 톱니가 파여 있었다.

(저 늙은이는 이제보니 신류비마(神輪飛魔) 정노괴였군.)

숨어서 관전하던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륜비마(神輪飛魔).

그자도 팔절의 일인이다.

그자의 비륜(飛輪) 공부는 신륜천왕(神輪天王)의 것이다.

"흐흐... 죽어랏!"

신륜비마는 음소를 터뜨렸다.

쌔앵

그와 함께 면철로 만든 비륜이 선풍마존에게로 폭사되어 갔다.

"차핫!"

쩌엉!

선풍마존은 급급히 승천마라도로 비륜을 막아갔다.

기이잉

그러나, 비륜은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그리고, 더욱 빠르게 선풍마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

선풍마존은 흠칫 몸을 떨었다.

위이잉

재차 승천마라도가 비륜을 막아갔다.

쌔애앵

그 순간, 텅빈 선풍마존의 배를 노리고 또 다른 비륜이 날아갔다.

"!"

선풍마존의 두눈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흐흐..."

신륜비마가 득의하여 웃었다.

그러나, 일순간 선풍마존의 몸은 검붉은 광채로 둘러싸였다.

창창!

두 마디 맑은 금속성이 일었다.

한 쌍의 비륜이 검붉은 호신강기에 튕겨진 것이다.

"죽어랏!"

뒤미처, 선풍마존의 승천마라도가 신륜비마의 몸을 갈라갔다.

"!"

파앗

신륜비마는 다급히 피했다.

그러나 피가 튀며 그의 옆구리가 갈라졌다.

휘청 하는 순간 한 쌍의 비륜은 다시 신륜비마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월락대지(月落大地)!"

신륜비마의 입에서 폭갈이 터졌다.

사력을 다해 신륜천왕(神輪天王) 최대의 초식을 펼친 것이다.

위잉!

츠츠츠

거대한 환형(環形)의 경기를 일으키며 한 쌍의 비륜이 떨어져 내렸다.

"()!"

선풍마존의 안면에 짙은 냉기가 깔렸다.

동시에 그의 양 소매에서 한 쌍의 검은빛 비륜이 폭사되었다.

"... 파천마륜(破天魔輪)!"

신류비마가 실색을 하며 외쳤다.

그렇다. 그 검은 비륜은 신륜천왕의 병기이던 파천마륜이었다.

!

파삭!

요란한 금속성이 일었다.

검은 기류에 부딪힌 신륜비마의 비륜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이다.

휘익!

그 순간, 신륜비마는 몸을 휘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 어딜!"

그러나, 선풍마존의 냉갈과 함께 파천마륜이 신륜비마를 쫓아갔다.

"아아악!"

신륜비마는 처절한 비명을 토했다.

전력을 다해 막아 보려고 했으나 파천마륜이 신륜비마의 목과 허리를 절단하며 날아간 것이다.

차악!

선풍마존은 되날아온 파천마륜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신륜비마늬 시신으로 다가갔다.

면 텬간 무림최고의 고수 들 중 일인으로 군림하던 신륜비마.

종국에 와서는 시신도 온전히 보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선풍마존은 신륜비마의 몸에서 한 권의 비급을 꺼냈다.

"!"

그순간, 몸을 펴려는 선뭉마존에게 신랄한 두 줄기 경기가 날아 들었다.

"차핫!"

선풍마존은 일갈하며 몸을 지면으로 바짝 붙여 암격을 스쳐 보냈다.

휘익!

뒤이어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위잉!

그가 채 몸을 바로 잡기도 전에 한 줄기 청영(靑影)이 그의 앞으로 쇄도하여 들어왔다.

지독히도 빠른 경공이었다.

선풍마존은 다급히 장을 내쳤다.

콰릉!

우렁찬 폭음이 일었다.

창졸간에 장을 쳐낸 선풍마존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사이 이미 청영은 공지를 가로 지른 후였다.

!

"흐읍!"

강맹한 경기가 선풍마존의 등을 가격했다.

다음 순간 청영과의 일장을 교환한 직후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쿵쿵!

그는 지면에 내려서서 도 삼사보 앞으로 나간 후에야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위잉!

촤웅!

또다시 골수가지 에이는 살벌한 경기가 선풍마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 줄기는 그의 목을 노렸고 또 다른 한 줄기 경기는 그의 허리를 파고 들었다.

처음맞은 일장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지라 선풍마존은 당황했다.

"환마(幻魔)!"

선풍마존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츠츠츠...

그러자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콰르릉

두 줄기 경기는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가랏!"

동시에, 예상도 못한 방위에서 선풍마존의 폭갈이 들렸다.

위이잉

폭풍같은 경기가 장내를 휩쓸었다.

그를 암습한 두 명은 최고의 경공을 지닌 자들이다.

그러나 너무나 강맹한 위력의 경풍이라, 두 사람은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맛보아야했다.

파앗!

그순간 선풍마존의 모습이 유령같이 공지의 상공에 나타났다.

그의 눈에는 두 명의 인물이 급급히 피하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은 예의 노파이고 다른 한 명은 다루에 나타났던 청삼노인이었다.

"신풍도객(神風盜客)! 무영괴파(無影怪婆)! 잘 걸렸다."

선풍마존이 살기띈 일갈을 터뜨렸다.

두 노인, 바로 팔절중의 두 사람이었다.

신풍도객(神風盜客)은 신풍무영(神風無影)의 진전을 얻은 대도(大盜)이다.

그리고, 무영괴파(無影怪婆)는 공령천존(空靈天尊)의 공령비경(空靈秘經)을 연마했다.

사실 팔절 사패중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이들 두 사람인 것이다.

"가랏!"

선풍마존은 버럭 폭갈을 터뜨렸다.

콰르릉!

거창한 장경이 양인을 휩쓸어갔다.

"차핫!"

"이얏!"

신풍도객과 무영괴파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쳐나갔다.

퍼엉!

콰르릉!

"으음... ..."

"!"

삼인은 다같이 휘청 하며 물러섰다.

"흐흐... 제법들이구나!"

한 걸음 물러선 선풍마존은 살기를 발했다.

삽시에 그의 일신에 패도적인 경기가 뒤덮였다.

(! 받을 수 없다!)

무영괴파의 안색이 홱 변했다.

선풍마존이 막강한 절공을 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

선풍마존은 벼락치듯이 쌍장을 후려패 내었다.

쿠아앙!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宏音), 파앗!

너무나 끔찍한 위력이었다.

무영괴파와 신풍도객은 전력을 다해 몸을 빼었다.

양인 모두 경공의 독보적 존재들이라 일시에 십 장 밖으로 피해갔다.

콰르릉!

"크아악!"

그러나, 무영괴파는 간신히 피했지만 신풍도객은 피하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토했다.

그의 등은 완전히 풍지박산이 되었다.

휘익!

무영괴파는 섬전같이 공터를 빠져나갔다.

"서랏!"

선풍마존이 폭갈을 지르며 쫓아갔다.

그러나, 그가 공터를 벗어 났을 때는 여디에도 무영괴파는 없었다.

"이런... 가장 까다로운 적을 놓쳤군. 장안은신술(帳眼隱身術)로 몸을 감출 여유를 주지 말았어야 할 것을...}

선풍마존은 혀를 찼다."

장안은신술은 공령천존의 공령비술중 하나이다.

일단 장안은신술이 펼쳐지면 누구도 숨은 자를 찾아낼 수 없다.

"별 수 없지."

선풍마존은 돌아서 공터로 돌아갔다.

휘익!

한 줄기 선풍과 함께 선풍마존은 사라졌다.

신륜천왕의 비급을 회수해서 사라진 것이다.

흔들!

잠시 후, 문득 바위가 움찔 하였다.

그러더니 바위사이에서 무영괴파의 모습이 유령같이 나타났다.

"... 너무 강하다. 팔절과 사패 전체가 힘을 합해야 스러뜨릴 수 있는 강적이다."

무영괴파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팔절중 고죽검신, 경천신도, 신륜비마, 신풍도객이 격살되었으니 이제 나와 천음인(天音人), 혈사신마(血沙神魔), 신필수사(神筆秀士)만이 남았구나. 무슨 방도를 취하지 않으면 팔절과 사패가 차례로 당하겠는데..."

무영괴파는 혼자 침중히 중얼거렸다.

"흐훗! 하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야 본 신분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니까. 우선은 저자의 정체부터 밝혀 보아야지."

스스스

무영괴파는 소리없이 몸을 날렸다.

그녀가 가는 방향은 선풍마존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장내는 다시 적막 속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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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旋風悲歌

 

 

 

콰르르릉

천지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우르르쾅!

그와 함께 거대한 석벽이 무너져 내렸다.

일시에 수만 근의 화약이 터진 듯한 힘이 석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핫하하..."

청아한 장소성이 일었다.

휘이익

그와함께, 날리는 사석을 뚫고 한 덩의 청삼청년이 높은 듯한 절벽 위로 날아 올랐다.

여인이 무색할 정도로 고운 피부와 섬세한 선을 지닌 영준한 모습의 청년, 그는 바로 철문영이었다.

그는 지금 청색경장을 걸치고 등에는 큼직한 피풍을 달고 있었다.

"하하... 화희. 어떻소?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의 위력이?"

철문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앞에는 화희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그녀는 잠깐 사이지만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복장이 부인의 복장으로 변해 있었다.

발끝까지 끌리는 장의는 매우 고혹해 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그녀는 머리를 부인들같이 높게 틀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녀의 눈길이었다.

그녀의 눈길은 예전과 달랐다.

전에까지만 해도 그녀의 눈빛은 어린 아이를 쫓는 어머니의 눈길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눈길은 더할 수 없이 조용하며 애틋하게 변하여 있었다.

마음 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철문영의 것이 되어버린 까닭이리라.

"놀랍사옵니다. 무공이라는 것이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고는 생각해왔아오나 이 정도로 끔찍한 위력이 있을 줄은 몰랐사옵니다."

화희는 조용하면서도 약간은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문영은 환히 웃어 보였다.

"화희, 더 강하고 신기한 무공들을 보여 줄테니 잘 봐요."

화희가 살며시 미소했다.

"첩신은 굉천참살강보다도 강한 무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철문영이 껄걸 웃었다.

"하하... 그럼 잘 보오. 이제 펼쳐 보이겠오."

철문영은 돌아섰다.

"차핫!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

철문영은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휘익!

그는 단번에 삼십여 장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파악!

그와 함께, 찬연한 은광이 사위에 떨쳐졌다.

그의 피풍 밑에서 얇은 면철로 된 날개와 같은 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

바라보고 있던 화희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것은 바로 철문영이 천세신전(千世神殿)에서 발견한 창룡철익(蒼龍鐵翼)이었다.

휘르르

얇은 면철로 된 날개가 활짝 펼쳐지자 철문영은 마치 거대한 대붕(大鵬)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한 차례 철익(鐵翼)이 크게 흔들렸다.

그와함께 그의 몸은 수직으로 날아 올라갔다.

위이잉, 뒤이어 까마득히 치솟았던 철문영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아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창룡철익의 모용이었다.

단 한 모금의 진기로 허공을 마음대로 비상하거나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창룡철익으로 펼치는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의 경공은 독보적이다.

휘익!

이윽고 철문영은 절벽 아래로 날아 내렸다.

촤르르

그러자 철익은 신속히 축소되어 피풍 속으로 들어갔다.

차앙!

맑은 용음(龍吟)이 일면서 철문영의 손에 한 자루 고색창연한 고검이 들려졌다.

그 검의 검명(劍名)은 천인(天刃), 바로 검군자(劍君子)가 사용하던 호신지물이다.

철문영은 고검을 들어 양손으로 굳게 쥐었다.

위잉위잉!

그러자, 고검의 푸르스름한 검신이 황색의 검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황룡무적천하(黃龍無敵天下)!"

돌연, 절곡을 뒤흔드는 폭갈이 터졌다.

촤웅!

동시에 맹룡(猛龍)의 포효같이 굉음이 터졌다.

그리고, 천인검으로부터 황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형상의 강맹한 기류가 뻗어 나갔다.

파악! 우르르

황색의 검기가 석벽을 강타했다.

그러자, 석벽의 전면이 깊이 십여 장으로 갈라져 나갔다.

"..."

화희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

철문영은 흡족히 웃으며 검을 회수했다.

위잉위잉!

뒤미처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채들은 끊임없이 그의 몸주위를 휘돌며 점차 고형화 되어갔다.

바로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이었다.

"극강참혼(極剛斬魂)!"

우렁찬 일갈이 터졌다.

콰웅!

검붉은 광채가 충천했다.

삽시에 천지가 검붉은 광채로 뒤덮였다.

콰르릉쾅!

뒤이어 화산이 폭발하듯 엄청난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극강참혼수가 떨쳐진 것이다.

"!"

날리는 사석 속에서 약간 답답한 듯한 신음이 일었다.

화희는 바짝 긴장하여 휘날리는 사석 속을 주시했다.

그리고, 이윽고 날리던 사석들이 가라 앉았다.

아보라!

장내에는 엄청난 변괴가 일어나 있었다.

마치 항아리와 같은 모양의 절곡의 한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인간의 힘이라 믿어지지 않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상공!"

화희가 걱정스럽게 불렀다.

철문영이 창백한 신색으로 눈을 감고 서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극강참혼수는 끔찍할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그러나, 그만큼 진력의 소모가 큰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휘익

뒤미처 철문영은 한소리 청아한 장소성을 터뜨리며 날아 올랐다.

"상공, 괜찮으시와요?"

화희가 급히 다가왔다.

"핫하... 괜찮소. 힘이 좀 들었을 뿐이지."

철문영은 말을 하며 화희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다.

"화희와 떨어져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문득 철문영이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말하자 화희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첩신은... 첩신은..."

화희는 철문영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지. , 장원으로 돌아갑시다. 헤어져 있을 동안을 위해 오늘부터 화희를 놓아주지 않겠오."

철문영은 힘있게 화희를 끌어안았다.

철문영의 품에 안겨 화희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핫하... 창룡천행비(蒼龍天行飛)!"

철문영은 지면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파앗!

뒤이어 찬연한 은광을 발하며 철익이 넓게 펼쳐졌다.

휘익!

철문영은 한 줄기 선풍을 불러 일으키며 까마득한 허공으로 날아갔다.

더 없이 높고 푸른 하늘로,

 

X X X

 

천세(千世)의 고혼(孤魂)이 구천(九泉)에 떠돌다.

장검(長劍)에 이는 일진(一陣) 선풍(旋風)으로, 잔혼(殘魂)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선풍비가(旋風悲歌)>

 

전중원이 얼어 붙었다.

핏빛의 선풍(旋風)이 중원을 휩쓴 것이다.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가 울리면 누군가의 몸이 싸늘이 식어갔다.

선풍비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의 이름은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선풍마존(旋風魔尊),

 

중인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그가 혈풍을 몰고 다니는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최초로 선풍비가를 들은 것은 구대문파 중 공동(崆峒)의 장문인 청오자(靑烏子)였다.

그와 함께, 공동의 정영 일백이 삽시에 다시는 못올 길로 가고 말았다.

이로써 공동파는 완전히 구대문파에서 제명을 다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몇 달 사이에 네 개의 유수한 문파가 멸문당했다.

또한 내노라 하던 무림의 명숙 사십여 명도 선풍마존의 손에 쓰러졌다.

그들이 쓰러지기 전, 항상 한 줄기 선풍비가(旋風悲歌)가 울려 퍼지곤 하였다.

이렇게 되니 무림의 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전전긍긍하며 몸을 사렸다.

언제 죽음의 선풍비가(旋風悲歌)가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선풍마존이란 누구인가?

어떤 자이기에 흑백양도를 불문하고 무차별의 살수를 쓴단 말인가?

그리고, 십여 일 동안 선풍비가는 중원의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콰르릉, 번쩍

뇌성벽력(雷聲霹靂).

쏴아

장대발같은 빗줄기가 대지를 두드렸다.

번쩍

일섬전광(電光)이 번뜩였다.

어둠 속에 한 채의 장원이 드러나 보였다.

그 장원은 울창한 죽림(竹林)에 에워싸여 있었다.

쿠르릉쾅

재차 한 줄기 섬광이 암천을 갈랐다.

스스스

번뜩이는 섬광, 그보다도 빠르게 한 줄기 인영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내렸다.

일신에 검은 야행복을 걸친 괴인이었다.

괴인의 두눈에서 혼백을 얼릴 듯한 한광이 폭사되었다.

"고죽검신(枯竹劍神) 장학량..."

문득, 괴인의 입에서 한 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죽검신(枯竹劍神) 장학량!

 

팔절(八絶)의 일인, 강호제일검사(江湖第一劍士)로 불리는 인물이 아닌가?

헌데, 고죽검신 장학량이 어찌되었다는 얘기인가?

스스스

괴인의 신영이 뿌얘졌다.

그가 귀신같은 신법으로 죽림으로 날아들어간 것이다.

죽림 속에는 적지않은 고수들이 숨어 있었으나 누구도 괴인이 침입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웅장한 대전,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 어둠 속에 대전으로부터 밝은 불빛이 비쳐나오고 있다.

대전 안, 지금, 대전 중앙의 탁자를 마주하고 구인이 앉아있다.

상좌.

한 명의 초로의 노인이 수심에 찬 그색으로 태사의에 몸을 기대고 있다.

대체적으로 깡마른 모습이나 두눈의 안광이 날카롭다.

그 노인 옆의 탁자에는 한 자루 죽검(竹劍)이 놓여있다.

검신이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아 범사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노인, 그가 바로 고죽검신 장학량이다.

본시에도 뛰어난 검사였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제일검사의 칭호를 받고 있는 검의 달인이다.

노인 앞에는 여덟 명의 장한들이 앉아 있다.

하나같이 위맹해 보이는 자들이다.

이들도 각기 한 자루씩의 죽검을 지니고 있다.

 

고죽팔검(枯竹八劍).

 

고죽검신이 총애하는 제자들이다.

그들도 이미 강호에서 제법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문득, 맨 좌측의 장한이 입을 열었다.

그는 고죽팔검의 맏이인 사도장이라는 인물이었다.

"사부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사 그자가 천세문(千世門)의 후인이라고 해도 두려울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사부님게서는 이미 당년의 천하제일인이었던 검군자(劍君子)의 절기를 완벽히 연성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도장의 말에도 고죽검신은 안색이 풀어지지 않았다.

 

검군자(劍君子)!

 

천녀기전의 전통을 마련했던 인물, 구죽검신은 검군자의 신검경(神劍經)을 익힌 인물이다.

강호에서 가장 강한 인물 중 한 명인 고죽검신, 헌데 그의 얼굴은 짙은 암운으로 어두워져 있다.

"청오자 등은 변변히 대항도 못하고 피살되었다. 가벼이 볼 자가 아님에 틀림없다."

고죽검신이 침중히 입을 열었다.

"..."

고죽팔검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

"..."

무거운 암운이 아홉 사람을 짓눌렀다.

콰르릉번쩍,

우뢰성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대지를 밝혔다.

그순간이었다.

아홉 사람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들은 한 줄기 비장한 노랫소리를 들은 것이다.

 

천세의 고혼이 구천에 떠돌다.

장검이 이는 일진 선풍(旋風)으로, 잔혼의 외로운 넋을 달래리라.

 

고죽검신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 선풍비가(旋風悲歌)..."

그는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선풍마존(旋風魔尊)! 어디에 있느냐?"

사도장이 버럭 외치며 일어섰다.

그는 선풍비가가 들려온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죽검신 장학량, 천세의 원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선가 음산 냉혹한 음성이 들려왔다.

"... 역시..."

장학량은 부르르 떨며 외쳤다.

"에잇!"

사도장이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아! 위험하다."

장학량이 다급히 외쳤으나 사도장은 이미 대전 밖으로 날아나간 후였다.

"사부님 저희들이 나가보겠습니다."

나머지 일곱 명이 일어섰다.

"조심해라. 선풍마존은 너희들은 상대가 아니다."

"."

휘익

일곱 명은 대답을 하고 몸을 날렸다.

"크아악!"

그러나, 다음 순간 처절한 비명이 일었다.

"!"

장학량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병기인 고죽검(枯竹劍)을 집어들었다.

"이 얘들이 그자에게..."

장학량이 침중히 중얼거렸다.

번쩍다시 한 번 섬광이 번뜩였다.

"크아악아악!"

"으악!"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선풍마존! 네놈은...!"

고죽검신은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며 대전 밖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

그때, 검은 인영이 비틀거리며 대전으로 뛰쳐들어왔다.

"... 장아!"

고죽검신이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쿠웅!

그와 함께, 대전으로 들어온 인물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그자는 완전히 혈인(血人)으로 변해 있었다.

"... 이럴 수가..."

급히 다가간 고죽검신이 치를 떨었다.

그 인물은 고죽검신의 대제자인 사도장이었다.

헌데, 지금 사도장은 가슴이 완전히 부서져 숨이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고죽검신이 다가서자 사도장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피를 토하며 중얼거렸다.

"... 사부님... ... 분합... 니다. ... 그 자의... 모습도... 못보고... 당했습니다... ... 그놈은... 너무... ()..."

사도장의 목이 옆으로 떨어졌다.

"장아!"

고죽검신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그러나 사도장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놈! 선풍마존, 네놈을 각을 떠 죽이고 말리라!"

고죽검신이 벽력같이 외치며 일어섰다.

사랑하던 제자.

그 제자가 눈앞에서 죽어갔다.

고죽신검이 이성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고죽검신, 네게는 그럴 기회가 없다."

고죽검신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등뒤에서 냉혹한 일갈이 들려온 것이다.

"죽어랏!"

고죽검신은 발악하듯이 폭갈을 터뜨렸다.

쐐애액.

동시에 죽검이 태풍을 일으켰다.

"!"

그러나, 냉막한 코웃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고죽검신은 한 줄기 흑영이 귀신같이 움직이는 것을 언뜻 보았다.

그의 일검은 허공을 가르고 만 것이다.

""

고죽검신은 다급히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 네가 선풍마존(旋風魔尊)!"

고죽검신은 두 눈을 부릅떴다.

우웅!

그의 오른손에 들린 고죽검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원래부터 서 있었는 듯, 한 명의 냉막한 얼굴의 청년이 고죽검신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냉전과도 같은 눈길이 고죽검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죽검신! 각오는 되어 있겠지?"

만년빙동에서 불어 나오는 냉풍같은 일갈이 청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으드득, 좋다. 네놈의 심장을 꺼내 제자들의 원수를 갚고 말리라."

고죽검신은 이를 갈며 고죽검을 움켜 쥐었다.

우웅! 우웅

고죽검이 울리며 푸르스름한 검기가 피어 올랐다.

차앙!

냉막한 신색의 청년도 검을 뽑았다.

"... 그 검은..."

청년의 손에 들린 고검을 본 고죽검신은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 바로 검군자(劍君子)의 천인검(天刃劍)이다. 천인검으로 네 목숨을 끊어주마!"

청년, 즉 선풍마존은 냉갈하였다.

(...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많겠다. 고죽검으로 천인검(天刃劍)을 상대할 수는 없다.)

고죽검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는 수십 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노검사(老劍士).

마음을 가다듬으며 고죽검에 힘을 주었다.

"이얍!"

고죽검신은 폭갈을 치며 고죽검을 쪼개내었다.

파파팟.

검화가 피어올랐다.

신랄한 검세가 선풍마존을 쓸어갔다.

츠츠츠...

동시에 천인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악!

"크으!"

"!"

선혈이 튀었다.

고죽검신의 고죽검 끝이 갈라지며 그의 어깨가 베어진 것이다.

그러나, 고죽검신도 과연 팔절의 일인다웠다.

어느 틈엔가, 선풍마존의 소맷자락을 길게 그은 것이다.

선풍마존은 흘깃 소매 끝을 내려다 보았다.

마치 여인의 속살같이 뽀얀 손목에 발그레한 혈혼이 생겨 있었다.

츠츠츠쐐애액

고죽검신의 고죽검이 검기와 파랑을 일으켰다.

동시에 천인검이 섬칫한 광망을 그었다.

차앙!

위이잉

검기의 무더기가 대전을 가득 메웠다.

삽시에 삼십여초가 지났다.

고죽검신의 검세는 장강대하같이 쏟아졌다.

팔절 중 일절로서 손색이 없는 검세였다.

그러나, 선풍마존은 무난히 고죽검신의 검세를 받아넘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품마존은 고죽검신이 펼치고 있는 검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검칠십이로(神劍七拾二路).

 

바로, 검군자의 비전절예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제일의 겁법이라 불리던 신검칠십이로도 그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선풍마존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차악!

"크윽!"

피가 튀며 끊어진 고죽검의 한끝이 튕겨져 나갔다.

고죽검신의 장포는 피로 물들었다.

그의 가슴은 천인검에 길게 베어진 것이다.

"... 좋다. 어디 천인검강(天刃劍罡)을 받아보아라."

고죽검신이 이를 악물며 내뱉았다.

그는 고죽검을 단전에 갖다 붙였다.

츠읏!

그러자, 끊어진 고죽검 끝에서 일 장 가량의 유형검강(有形劍罡)이 쭈욱 뻗어나왔다.

"!"

이 모습을 본 선풍마존은 최초로 긴장의 빛을 띄웠다.

천인검강(天刃劍罡)이란 검군자 최후의 무공이다.

이는 너무나도 날카로워 능히 한 자 두께의 철벽은 관통할 수 있다.

우웅우웅

거의 동시에 천인검이 진동했다.

그와 함께 천인검이 휘황한 황색검기로 뒤덮였다.

"죽어랏!"

고죽검신이 발악하듯이 외쳤다.

파츠츳

유형의 검강이 대기를 갈랐다.

"황룡무적천하(黃龍無敵天下)!"

동시에, 선풍마존도 폭갈을 터뜨렸다.

콰웅!

용트림하는 듯한 소성이 일었다.

한 줄기 황색 검기가 신룡이 승천하듯 떨쳐졌다.

촤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쿠웅!

피를 뿌리며 고죽검신이 넘어졌다.

그의 가슴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져 있었다.

"으음!"

선풍마존도 휘청 하였다.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듯 하였다.

"... ... 이렇게... 허무하게 지... 다니..."

고죽검신은 고개를 쳐들려고 하다가 그대로 고개를 꺾고 말았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으음, 과연 팔절은 무엇인가 다르군."

선풍마존은 착잡한 시선으로 고죽검신의 시신을 내려다 보았다.

휘익

, 선풍마존은 내전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 있군!"

그리고, 그는 은밀한 서랍 속에서 한 권의 낡은 비급을 꺼내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스스스

그와 함께 그의 모습은 흐릿하게 변하여 갔다.

콰르릉콰릉!

뇌성과 함게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터졌다.

아마도 멀지않은 곳에서 낙뢰(落雷)가 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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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墨血破雷罡

 

 

 

"으음!"

철문영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린 철문영은 벌떡 일어났다.

"!"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음을 느끼고 흠칫 했다.

그는 자신의 전신에 거대한 잠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힘은 상상할 수도 없이 막강한 것이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철벽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 이 괴인이 왜 죽어 있지?"

몸을 일으키던 철문영은 깜짝 놀랐다.

그의 옆에는 예의 괴인이 쓰러져 있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괴인의 몸은 바싹 말라있었다.

마치 물기가 빠진 나뭇가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이 봉서는..."

그러다가 철문영은 자기 옆에 한 장의 봉서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봉서를 집어들어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노부는 바로 네 전대 문주인 수군한(手君漢)이라고 한다. (중략)... 이제 노부는 네놈에 십이성의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을 주입시켜줄 것이다. 묵혈파뢰강은 천세절전(千世絶典)중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다음가는 기공이다. 네가 이 기공의 구결만 이해하면 즉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네 일신에는 노부의 원영진기(元嬰眞氣)와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 독혈용형삼(毒血龍形蔘)등이 용해되어 있다. 이는 족히 오갑자가 넘는 막강한 힘이다. 그러나 이것을 얼마나 네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는 너의 노력여하에 달린 것이니 무공연마에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수법을 남긴다. 이는 노부가 이곳에 갇혀 비동에 침입했던 자들의 인육을 먹으며 창안한 수법으로 너무 악독하다. 이 수법의 명칭은 극강참혼수(極剛斬魂手)라는 것으로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치 말아라. 마지막으로 만일 노부의 당라이가 살아있다면 네 사람으로 만들도록 부탁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수취란(手翠蘭)이며 팔꿈치 부근에 붉은 점이 있다. 이제 천세문 이천년의 역사가 그대의 어깨에 걸려 있다. 부디 본문의 영휘를 만세에 떨치도록 노력해 주기를 부탁한다.>

 

서신의 뒷면에는 한가지 끔찍한 위력의 수법이 적혀 있었다.

만일 묵혈파뢰강으로 그 수법을 펼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으음, 이분이 전대문주셨다니..."

철문영은 경악의 표정으로 괴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괴인의 시신에 삼배를 올렸다.

"편히 잠드십시오. 본문의 혈한은 기필코 소생의 손으로 글어 보이겠습니다."

삼배 후 그는 괴인의 시신을 들었다.

얼마전이라면 불가능 했겠지만 이제는 천근거석이라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수군한의 시신을 조사전에 안치했다.

"화희(花姬)의 걱정이 태산같겠군. 빨리가서 안심시켜 주어야지."

그는 벌거벗은 모습을 가릴 생각도 않고 달려나갔다.

곧 그는 화희가 기다리는 석실에 이르렀다.

"도련님!"

그가 들어서자 초조하게 서성이던 화희가 와락 달려들었다.

철문영이 벌거벗은 채였으나 화희는 개의치 않았다.

"도련님... 도련님..."

화희는 미친 듯이 철문영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안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문영은 화희의 가슴이 격심하게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희는 진심으로 철무니영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첩신은... 첩신은..."

화희는 철문영의 얼굴을 받쳐들며 말문을 잊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주종관계이상의 강한 유대가 있었다.

그것은 친 남매의 그것보다도 강하여 마치 모자사이의 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화희, 미안해.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이상하게 강해진 느낌인걸."

철문영이 화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제야 화희는 철문영의 몸이 많이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마치 눈부신 주옥같이 아름다워졌을 뿐아니라 제법 우람해일 정도로 튼튼해져 있는 것이다.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화희의 말에 철문영은 흠칫했다.

"벌써 하루가 지났어?"

화희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했다.

", 그보다 어찌 되신 일인지 말씀해주세요."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보다 배가 몹시 고프단 말야. 먹을 것좀 주어. 옷도 좀 입혀주고."

화희는 살짝 볼을 붉혔다.

어릴 때부터 자기 손으로 길러온 철문영이지만 이제는 발가벗은 모습은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자란 것이다.

"첩신의 정신이 나갔군요. 하루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을 터인데... 자 나가세요. 빨리 음식을 장만해 드릴께요."

철문영은 화희의 팔짱을 끼고 석실을 나섰다.

 

마지막 밀실,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벽장의 뮨울 열었다.

그는 일신에 산뜻한 청색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 무복 실 한올에는 화희의 정성이 베어 있었다.

끼익!

벽장문이 열렸다.

그러자 철문영의 눈에 두 권의 두툼한 비급과 한쌍의 옥환(玉環)리 보였다.

청색과 홍색의 옥환, 그것은 천세문 문주의 신물(信物)인 동시에 비장의 무기였다.

이름하여 건곤쌍환(乾坤雙環),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철문영의 마음에 들었다.

이어 그는 두 권의 비급을 꺼내어 들고 석탁에 앉았다.

그는 우선 한 권을 집어들었다.

 

<무종중경(武宗重經)>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겉장을 넘겼다.

 

천세문주(千世門主)는 구류(九流)의 무공에 능통해야한다, 여기에 구류(九流)의 무공중 최강(最强)어거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공 아홉 가지을 적는다. 천세문주되는 자는 필히 여기에 적힌 아홉가지 신공을 연마하여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아홉가지의 기공이 적혀 있었다.

 

광령법신(光明法身).

 

불문제일신공(佛門第一神功)이다. 이를 완성하면 무적금강지체(無敵金剛之體)가 된다.

다만 한 가지 제약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단 시일내에 연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반갑자이상의 고련이 있어야 완성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연성은 못하더라도 이는 마음을 정()하는데 그 이상의 것이 없으니 필히 명심(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황룡무적검기(黃龍無敵劍氣).

 

도가제일검공(道家第一劍功)이다. 극에 이르면 검기(劍氣)만으로 백 장 밖의 적을 살상 할 수 있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

 

속가(俗家)의 제일신공이다. 광명법신(光明法身)만한 거세적인 위력은 없다. 그러나 신속한 연성이 가능하고 잔혹하게 패도적인 위력은 독보적이다.

 

표향전궁신강(飄香電弓神罡).

 

선문의 절개기공이다. 빠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독공(毒功)과는 상극의 기공으로 사악한 강기(罡氣)에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광막산영수(廣莫散影手).

 

현문(玄門)에서도 가장 현묘(玄妙)하며 복잡한 무공이다. 모두 삼백육십식으로 이루어지며 각식에 네 가지 변화가 있어 그 변화가 끝이 없다.

 

천뢰금강지(天雷金光指).

 

유가제일신공(儒家第一神功)으로 부족함이 없는 지공이다. 이는 강기(罡氣) 파해전문의 지공이다. 특히 적의 공력이 더 강하더라도 상대의 기공을 무너뜨릴 수 있다.

 

환마잠영술(幻魔潛影術).

 

마도제일의 마공은 못된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공중 하나이며 호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법이다. 일시간에 몸을 감출 수도 있고 적에게 접근하기에는 최적인 마공이다.

 

섭심미혼대법(攝心迷魂大法).

 

사도(邪道)의 사술에서도 가장 사이한 수법이다. 상대의 심령을 제압하여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사법이다. 이 사법에서 섭심술, 통령대법 등의 사법이 파생되었다. 그 만큼 사이한 수법이니 깊이 심취하는 것운 금물이다.

 

역변천환신공(易變千幻神功).

 

기문(奇門) 제일기공은 아니다. 그러나 신체를 자유로이 변형시킬 수 있고 용모는 한모금의 진기로 바꿀 수 있는 등, 강호행동시 필요한 기공이므로 무종구대중공(武宗九大重功)에 포함시킨다.

 

"이런 무종들이 있었다니..."

철문영은 무종중경(武宗重經)을 덮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무공들인 것이다.

철문영은 무종중경을 내려놓고 두 번째 비급을 집어들었다.

 

<천세절전(千世絶典).>

 

웅후한 필체가 금박으로 쓰여있었다.

"이것이 마교에서 노렸던 비급이란 말이지?"

철문영은 중얼거리며 겉장을 열었다.

이에는 천세문이 이천여 년에 걸쳐 구류만상경을 작성하여독가적으로 창안한 몇 가지 절대신공들이 적혀 있었다.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

 

양강함과 패도적인 면에서는 이에 비할 무공이 없다. 검붉은 광채가 번뜩이면 만년한철이라도 한줌 가루로 변한다. 그만큼 패도적이다. 또한 이는 최고의 호신강기(護身罡氣)이기도 하다. 묵혈파뢰강의 호신강벽은 어떤 호신강기 보다도 강하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인 것이다.

 

건곤멸겁파(乾坤滅).

 

이것이 천세절전에 적힌 두 번째 무공이다. 그러나 이는 한 번도 사람의 손에서 펼쳐져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무공이 필쳐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천세문 문주의 신물인 건곤쌍환(乾坤雙環)으로 펼치는 무공이다. 한 번도 시전되어 본적이 없으므로 그 위력도 미지수이다.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이것이 천세문 최후의 비결(秘訣)이다. 이는 약 팔할 정도 이루어진 하나의 신공구결이다. 하지만 이천 년의 세월이 걸렸으면서도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이 신공의 막중함은 짐작할 수 있다. 천세문의 오십 자 명 문주들이 구류만상경의 방대한 무공을 참수하여 완성시키려 하던 것이 바로 이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천자가 못되는 짧은 구결이지만 그안에 이천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능히 마교(魔敎)에서 노릴만한 가치가 있는 진결(眞訣)이다.

 

"휴우천외유천(天外有天)."

철문영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종중경(武宗重經)이 무공의 최고봉이라도 여겨졌다.

그러나, 천세절전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절감해야만 했다.

천세절전의 세 가지 무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장 약할 것 같은 묵혈파뢰강이라도 무림에서 상대가 될 무공이 없을 것이다.

철문영은 다시 천세절전을 들여다 보았다.

천세절전은 아직도 반정도 분량이 남아 있었다.

철문영은 그것들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나머지 반의 분량은 역대문주들이 광무천세결을 가다듬으며 얻은 심득(心得)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에는 언급안된 분야가 없었다.

또한 무공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에서부터 자세한 언급이 되어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무공을 처음 익히려는 철문영에게는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 이 심득들만 완전히 이해한다면 여타 무공을 익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철문영은 눈을 빛냈다.

그의 생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어떤 무공이든 그 근원은 같다.

, 잠재되어 있는 잠력을 불러 일으티는 것이다.

이것이 주로 내가공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마공(魔功)이든 신공(神功)이든 이 경우는 어디에든 적용된다.

다만 신공이 정당하고 전진적인 방법으로 잠력을 키우는데 반하여 마공은 급격하고 비정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른 뿐이었다.

나머지 초식(招式)이나 변화 등은 그저 내가공력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천세절전의 심득에는 이같은 내용이 정확히 지적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세절전의 심득만 이해하면 무공이든 속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심득(心得)부터 내것으로 만들어야겠구나."

철문영은 눈을 빛내며 난해한 심결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곧 삼매경에 빠져들어갔다.

널찍한 석실.

한 명의 여인이 석탁에 앉아 무엇인가 꿰매고 있었다.

그녀는 화희였다.

그녀는 더욱더 아름답고 푸근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지금 철문영의 장삼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휴우!"

화희의 가지런한 치아사이로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그녀는 일감을 놓고 천세비동으로 통하는 석문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의 연공이 언제나 끝나려는지..."

화희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들어오신지 벌써 이년, 무공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우신지..."

화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년(二年). 그렇다.

어느덧 이 년이 지난 것이다.

한 번 무공에 몰두하자 철문영운 완전히 무공에 미치고 말았다.

식사시간만 제외하고 하루종일 무공과 씨름을 했다.

하루에 한 번 운공을 하여 피로를 풀 뿐, 잠도 한잠 자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도시 이해 못할 일들이 일어났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컴에도 철문영은 전혀 허약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더 건강해져가는 것이다.

 

"그분이 좋아서 하시는 일,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일 아닌가?"

화희는 한숨을 쉬며 다시 일감을 잡았다.

철문영의 몸이 부쩍부쩍 자라는 동안에 화희는 몇 달 사이에 의복 전부를 새로 만들곤 해야했다.

그녀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한올 한올 실이 꿰어져감에 따라 그녀의 진한 정성이 의복에 배어나갔다.

끼익!

문득 석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 한 명의 헌헌장부가 나타났다.

알맞게 벌어진 체격, 더 할수 없이 영준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산뜻한 청색무복이 매우 잘 어울렸다.

청년의 옥안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하! 화희(花姬)!"

청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제야 화희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 도련님!"

환희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 올랐다.

청년은 바로 철문영이었다.

이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허약하기만 하던 소년을 당당한 장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화희! 드디어 끝났어!"

철문영이 외치며 팔을 벌렸다.

화희의 두눈이 뿌애졌다.

"... 정말이신가요?"

"핫하... 그래 드디어 묵혈파뢰강을 극한까지 익혔어!"

철문영은 다가온 화희의 허리를 감아 높이 들어올렸다.

"고마워! 이게 모두 화희 덕이야."

철문영이 꼭 끌어 안으며 말했다.

화희는 뿌애진 시선으로 철문열을 올려다 보았다.

"도련님, 축하드려요... 이제는 첩신이 돌보아 드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화희는 말을 하며 살며시 철문영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아니야, 난 아직도 화희가 필요해."

철문영이 말하자 화희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철문영은 흠칫 했다.

무엇인가 그녀의 고개질에서 단호한 것을 본 것이다.

(... 이제 내가 저분 곁에서 떠날 때가 되어 가는구나. 더 이상 저분 곁에 있으면 저분과 빙향공주님의 관계만 더욱 악화될 뿐...)

화희가 아련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철문영의 검미가 꿈틀 했다.

"환희... 설마... 내곁을 떠나려는 것은 아니겠지?"

철문영의 물음에 화희는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 정신적 유대가 강해 상대에게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환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도련님은 더 이상 첩신의 보살핌이 필요치 않으세요, 이이상 첩신이 도련임 곁에 있다는 것은 도련님께 누가 될 뿐이예요."

"그렇치 않아. 나는... 나는 화희가 없으면 견더 나갈 수 없을 게야!"

철문영이 소리쳤다.

그의 안색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 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그림자같이 옆에 있어준 환희와 떨어져 있는 것은 철문영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환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첩신을 잊으실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제 강호로 나가셔야 하잖아요."

그녀의 결심은 굳어진 것 같았다.

"아냐! 아냐! 내가 어떻게 화희를 잊어! 그건 불가능해! 제발 떠나려는 생각은 철회해줘!"

철문영이 외치며 환희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화희는 단호하면서도 슬픈 눈길로 철문영을 올려다 보았다.

"빙향공주님을 잊으셨나요? 그분과의 사이가 벌어지신 것도 첩신이 도련님 곁에 있었다는 이유가 크잖아요? 그리고 도련님께선 어차피 빙향공주님께 돌아가셔야 할 분, 이제 첩신은 잊어 주시와요."

철문영의 눈길이 흔들렸다.

그는 잘 알고 있다.

화희의 고집도 자신에 못지 않은 것을 말이다.

평소엔 극히 온유하나 한 번 마음먹으면 흔들림이 없다.

(안돼... 화희를 놓칠 수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화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철문영의 눈길이 번뜩였다.

(마지막 수단이다. 화희를 영원히 내게 구속시켜 놓으련면...)

일순, 철문영의 눈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눈길이 무엇을 뜻하는가?

화희는 금방 알아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도련님, ... 설마 첩신을..."

화희가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와르르...

그동에 만들고 있던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화희를 보낼 수는 없어! 영원히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테야!"

철문영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화희를 훑어보며 다가섰다.

"... 제발... 안돼요. ... 첩신은 도련님의 은... 총을 받을 만한 계집이 못돼요!"

화희는 계속 물러섰다.

그러나, 곧 그녀의 등이 벽에 닿았다.

"화희!"

그와 함께 철문영이 득달같이 덤벼들었다.

"... 도련님! ... 안돼요... 아흑!"

화희는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녀의 몸직은 너무나 무력했다.

부욱찌지직!

화희의 겉옷이 거칠게 찢겨졌다.

"아흑... 아아..."

화희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강한 힘이 자신을 짓눌러 온 것이다.

뒤이어 뜨거운 열풍이 화희를 휩쓸었다.

"... 안돼요! 아아..."

화희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 몸짓은 거칠은 폭풍을 막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기만 했다.

"나낟..."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이 일시에 멈추었다.

대지(大地)가 허물어자는 처절한 고통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꽈르릉쾅!

상상할 수도 없는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광풍폭우가 몰아치고 대지는 부서질 듯이 고통을 당해야 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은 끝이 없을 듯이 이어졌다.

한차례 대지를 무너뜨리고 나면 또다시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초토화 시켰다.

또르륵

그리고 한 방울 이슬이 진한 아픔과 형엄할 수 없는 환희(歡喜)를 아로 새기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이슬로서 또다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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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千 世 秘 洞

 

 

 

천목산(天目山).

우뚝 솟은 거대한 산봉 위에 커다란 분화구가 있다.

이 분화구의 모양이 마치 눈()과 같이 생겼다.

그 때문에 천목(天目)이라는 산명(山名)이 생겼다.

또한, 이 천목산은 거대한 준봉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동쪽의 산봉을 동천목(東天目)이라 하고 서쪽의 산봉을 서천목(西天目)이라고 부른다.

동천목의 서쪽 산록.

드넓은 산록의 분지에 한 채의 거대한 장원이 세워졌다.

이곳은 그 옛날 천세문(千世門)이 있던 곳에서 십여 리밖에안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인적이 없는 심산.

자연히 많은 의혹의 눈길이 번뜩였다.

특히 일단의 무리들은 장원의 주위를 배회하여 감시의 눈길을 번뜩였다.

그러나, 장원의 건립에 관부가 개입하자 무림인들은 관가의 충돌을 의식하여 장원에 접근하지 못했다.

특히 때때로 절강성주(浙江省主)가 직접 현장에 나타나 시찰하며 이 장원이 황실의 요인을 위해 지어지고 있다고 알려지자 장원 주위에서 무림인들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해 늦가을.

드디어 장원은 완성되었다.

, 장인들이 물러가고 근 백여 명의 하인과 사녀들이 막대한 량의 짐과 함께 장원에 도착했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따각따각

한 대의 사두마차가 장원으로 통하는 석도(石道)에 나타났다.

마차에는 중요한 인물이 타고 있는 듯 수십기의 관병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곧 마차는 장원 문앞에 이르렀다.

장원 문 앞에는 백여 명의 남녀들이 시립해 있었다.

사두마차는 열려진 장원 문 사이로 달려들어 갔다.

사두마차와 관병들이 들어가자 장원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마차는 장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한 채의 전각 앞에 멈추어 섰다.

끼이익!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사르륵

비단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이십대 후반의 여인이 내려섰다.

날아갈 듯한 궁장을 곱게 차려입은 절세미녀.

그녀는 바로 화희(花姬)였다.

"조심하시옵소서."

화희가 손을 내밀자 그녀의 섬섬옥수를 의지하여 한 명의 소년이 내렸다.

물론 신궁태자(神弓太子) 철문영이다.

화희는 철문영을 부축하여 전각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물러가거라. 부를 때까지 아무도 접근시키지 말도록."

화희가 조용히 시녀들에게 명했다.

"."

시녀들은 깊이 머리를 조아리고는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시녀들이 물러가자 화희는 문을 닫았다.

"여기가 맞지?"

탁자에 기대어 서 있던 철문영이 벽에 기대어 선 침상을 가리켰다.

", 틀림없사옵니다. 이 침상 밑으로 천세비동과 연결되는 밀로가 있습니다."

화희의 대답에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선생, 선생의 심원을 헛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철문영이 중얼거렸다.

화희는 그윽한 시선으로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피곤하실터이니 오늘은 그냥 쉬시옵서서."

화희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선 한번 돌아보겠어."

철문영의 얼굴에 일별을 준 화희는 침상으로 다가섰다.

철문영의 성품은 무척 부드럽다.

그러나, 일단 마음이 정해지면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음을 화희는 잘 알고 있다.

끼기긱!

화희가 침상의 한 모서리를 돌리자 침상은 서서히 벽으로 들어갔다.

그와 함께 어두컴컴한 통로가 나타났다.

"이리 오시와요."

화희는 철문영을 부축하여 밑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어둑어둑했다.

그러나 곧 계단이 끝나고 두 사람 앞에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문고리를 좌로 삼회, 우로 오회 돌린 후 힘을 주어 밀어."

"알겠사옵니다."

화희는 철문영이 시키는대로 철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그것이 긑나자 철문영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큼직한 보석이 박힌 지환이 끼워져 있었다.

차알칵!

경쾌한 금속성이 일었다.

보석은 철문에 나 있는 홈에 적확히 박혔다.

끼익!

그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화희는 여기서 기다려. 혼자 들어갔다가 올게."

철문영이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화희는 미소를 지으며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

"혼자 보내드릴 수는 없어요. 첩신도 함께 들어가요."

"좋아, 같이 가봐."

철문영은 화희의 부축을 받으며 철문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의 안쪽은 무척이나 길고 긴 통로였다.

십여 자 간격으로 야명주가 박혀있어 걸어가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힘들지 않으시옵니까?"

일마 장 이상 걸었을 때 화희가 물었다.

철문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이 정도를 견디지 못해서야 어찌 일문을 짊어지고 나가겠어?"

두 사람은 다시 일마 장이 넘는 거리를 걸어갔다.

이윽고, 그들 앞에 제법 널찍한 석실이 나타났다.

석실에는 야명주가 환한 빛을 발하고 있어 매우 밝았다.

그러나, 석실에는 별반 시설이 없었다.

그저 큼직한 석상(石床)이 하나 덩그라니 놓여 있을 따름이었다.

"이 안쪽으로는 문주될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화희는 예서 기다려줘. 더 이상은 함께 갈 수 없어."

철문영의 말에 화희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어떤 변괴가 있을지 모르니 주의를 놓지 마시옵소서."

화희가 걱정스럽게 당부했다.

"하하, 걱정말아."

철문영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맞은편 석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도 그리 넓지 않은 통로였다.

그러나 그 통로는 짧았다.

십여 장을 걷자 또 다른 석문이 나타난 것이다.

끼이익!

석문은 별 어려움없이 열렸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다.

헌데, 그 석실에는 여러 군데로 통하는 석문들이 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왼쪽에 있는 석문으로 다가갔다.

 

조사전(祖師殿).

 

석문에는 금강지력으로 세치 깊이의 글이 적혀 있었다.

철문영은 조심스럽게 석문을 열었다.

"!"

석문을 열고 들어간 철문영은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곳은 길쭉한 장방형의 석실이었다.

석실의 한쪽으로 수십 개의 위패가 놓여 있으며 위패 뒤쪽으로 한 장씩의 화상이 걸려 있었다.

이는 역대 천세문 문주들의 위패인 것이다.

철문영은 우선 맨 좌측의 위패 앞으로 다가갔다.

 

<조사(祖師) 표운거사지위(飄雲居士之位)>

 

위패를 읽어본 철무니영은 위패 뒤의 화상을 바라보았다.

화상에는 선풍도골의 노인의 모습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철문영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위패를 향해 절을 올렸다.

"제 오십오대문주 철문영 삼가 조사님의 영전에 배알하나이다. 아울러 쇠잔해진 본 문의 부흥에 제자의 한 몸을 바칠 것을 맹세하나이다."

삼배 후 철문영은 엄숙히 축원을 올렸다.

비록 그가 지고무상(至高無常)한 부마(駙馬)의 신분이라지만 일단 천세문의 대통을 이어 받기로 한 이상 아랫 사람인 것이다.

철문영은 이어 각대문주인 위패에도 삼배씩 올렸다.

무공이란 익히지도 않은데다 본시 몸이 허약한 그인지라 절을 올리는 일도 큰 고역이었다.

그래서 오십삼대문주의 위패에 삼배를 하고났을 때 그는 허리가 부러지는 듯이 아파와 휘청거렸다.

위패는 오십삼대에서 끝이나 있었다.

철문영은 땀을 씻으며 조사전을 나섰다.

그는 조사전 옆의 석문으로 다가갔다.

 

<천세신전(千世神殿)>

 

두 번째 석실은 천세신전이라는 곳이었다.

석실로 들어선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대한 석실 전체가 수 많은 기진이물(奇珍異物)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개성을 살만한 가치를 지닌 보주(寶珠)들이 지천으로 뒹굴고 있다.

또한 속세에서는 천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영약(靈藥)들이 수도 없이 쌓여있다.

특히,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병기(兵器)들이었다.

천세신전에 비장되어 있는 병기들은 하나같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신병이기(神兵異器)들이었다.

그 중에 무림천년기인에 오른 열두 명 기인들의 병기도 있었다.

천인검(天刃劍), 옥령신필(玉靈神筆), 승천마라도(昇天魔羅刀) 등이 그것이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기진이보들이 쌓여 있었다.

피독주(避毒珠), 피수주(避水珠), 천참의() 등등 그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황궁(皇宮)의 보고가 무색할 지경이군."

철문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는 전에 황궁의 보고룰 구경해본 적이 있었다.

헌데 천세신전을 황궁의 보고에 조금도 못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또 뭐지?"

돌아 나오려던 그는 여러 가지 신병이기(神兵異器)들 사이에서 보퉁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상한 물건이군."

보통이를 펴본 철문영은 고개를 갸웃 했다.

보퉁이는 하나의 커다란 피풍이었다.

헌데 이상한 것은 피풍의 안쪽에 종이같이 얇고 가벼운 면철조각들이 차곡차곡 접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한 장의 양피지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창룡철익(蒼龍鐵翼),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기인 창룡선인(蒼龍仙人)께서 사용하시던 이기(利器)이다. 이의 사용법은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현문편(玄門篇)과 창룡선인의 무서(武書)인 창룡결원(蒼龍訣源)에 기록되어있다.>

 

"창룡철익(蒼龍鐵翼)? 이것으로 하늘을 날기라도 했단 말인가?"

철문영은 피식 웃으며 창룡철익을 내려 놓았다.

그는 천세신전을 나왔다.

그다음의 석문은 또 다른 통로였다.

그 통로를 지나니 방대한 석실이 나타났다.

"! 이것이..."

석실로 들어서던 그는 입을 딱 벌렸다.

벽면에 수십 개의 서가(書架)가 기대어 서 있다.

그리고 각 서가마다 다섯치 두께의 양피지로 만든 책자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 이것이...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철문영은 탄성을 질렀다.

그렇다.

서가에 꽂혀있는 수백, 수천의 책자들 그것 전체가 바로 구류만상경인 것이다.

무림삼대기서(武林三大奇書) 중 하나며 천세문 이천년의 심혈이 깃든 대 저술서인 것이다.

"말로는 들었으나 이토록 엄청난 분량일 줄이야..."

그는 탄성을 연발하며 그중 한권을 뽑아 들었다.

 

<현문편(玄門篇), 권십일(卷十一)>

 

표지에는 구류(九流)중 현문편인 열한번째 가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겉장을 넘기니 이시대 무공의 흐름에 대한 논평이 적혀있고 특이한 무공에 대한 지적이 적혀 있었다.

"참으로 천고에 다시 없을 대역사(大役事)구나."

철문영은 책자를 다시 꽂아 놓았다.

서가의 낮은 편에는 수천권의 비급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거기에는 하오문의 졸렬한 수법이 적힌 졸서에서 천하를 뒤흔들던 기인들의 무공비급들이 뒤섞여 있었다.

방대한 량의 비급들을 훑어본 그는 맞은편의 석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도 또한 서고(書庫)였다.

그러나, 그곳의 규모는 구류만상경이 있는 석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넓이도 수십배는 되려니와 장서의 량도 족히 백만이 넘을 듯한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름만 들었던 귀중한 고서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군. 천하의 모든 책자를 읽어보았다고 자부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구나."

철문영은 들뜬 기색으로 서가 사이를 걸었다.

본시 책을 좋아하던 그 인지라 다른 어떤 보물보다도 고서들이 좋았다.

한 동안 서고를 돌던 그는 다음 석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작은 석실로서 석실 한 쪽에 백여권의 비급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상한걸... 선생의 말대로라면 수십 명의 군웅이 이곳에 난입했다고 했는데 어찌 이리 깨끗할까?"

철문영의 눈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과연 석실은 너무도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었다.

전혀 군웅들이 난입했던 흔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무림천년기전들이 아닌가?"

철문영은 검미를 찌푸렸다.

서가에는 만든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비급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누가 있단 말인가?"

철문영은 깨끗한 태령진해를 빼어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크크크..."

돌연, 음산한 웃음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였다.

"... 누구?"

철문영은 등골이 오싹하여 홱 돌아섰다.

"!"

다음 순간 철문영은 숨넘어가는 듯한 신음을 토하며 비칠비칠 물러섰다.

어느사이엔가, 한 명의 괴인이 철문영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한 팔은 끊어져 나가고 장발이 허리까지 드리웠다.

게다가 장발사이에서 맹수의 그것같은 소름끼치는 눈길이 철문영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이 신선한 피냄새, 오늘은 포식할 수 있겠는걸."

괴인이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귀하는 누구요?"

철문영은 섬칫하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쿠웅

그러나, 그의 등은 이내 벽에 닿았다.

"크크크..."

괴인은 흉칙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다음 순간, 철문영은 거대한 흡인력에 끌려 괴인의 손으로 빨려갔다.

그리고 다음순간 그는 전신이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흐흐흐..."

괴인은 입맛을 다시며 철문영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 이럴 수가..."

그러나, 이내 괴인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어 그는 철문영의 손을 들어 보았다.

철문영의 오른 손에는 기전주가 준 지환(指環)이 빛을 발하며 끼워져 있었다.

"... 이럴수가... 천라태양신맥이 이 아이에게서 나타나다니... 기저니주도 이 아이가 구절태음천라경을 지닌 여아와 만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텐데... 어쩌자고 이 아이를 다음대의 문주로 택했단 말인가?"

괴인은 정신이 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점차 그의 눈빛은 어떤 결의의 빛으로 변해갔다.

"기전주가 사람을 보는 눈은 틀림없다. 이 아이가 결코 단명할 상은 아니었을 것이라 선택했을 것이다."

괴인의 눈빛이 강렬하게 변했다.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 절맥이라고 하면 절맥이겠으나 일단 치유되면 고금제일인이 될 수 있는 신맥이 된다. 좋다 이 아이에게 천세문의 운명을 걸어보자!"

괴인은 철문영을 안아들었다.

휘익!

그는 바람과 같이 석실을 날아 나갔다.

곧 그는 두 개의 크고 작은 연못이 있는 광장에 이르렀다.

이어 그는 철문영을 내려놓고 다시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괴인은 얼마 안되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봉서와 옥함이 들려 있었다.

"천세문의 운명을 네 녀석에게 맡긴다."

괴인은 봉서를 내려놓고 옥함을 열었다.

옥함에는 하나의 작은 옥병 하나와 괴이한 형태의 붉은 삼왕(蔘王)이 들어 있었다.

옥병에는 우유빛의 액체가 반쯤 들어 있었다.

그리고 삼왕(蔘王)은 마치 피에 담근 듯이 시뻘건 모양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신효한 영약인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가 당분간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의 발작을 지연시켜 줄 것이다."

괴인은 옥병을 열었다.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

천지간에 가장 신효한 영약 중 하나이다.

한 방울만 복용해도 만병이 낳고 만독을 풀 수 있으며 무림인이 복용하면 지고무상한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액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극음의 영약이라는 점이다.

대지의 정기가 수만 년에 걸쳐 물과 같은 형태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다만 몇 년이라도 천라태양신맥의 발작을 지연시킬 수는 있는 것이다.

향긋한 향기가 서늘한 한기를 싣고 광장을 메웠다.

반병의 만년지령유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철문영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독혈용형삼(毒血龍形蔘)! 무쇠라도 녹이는 극독을 지녔으나 이제 너의 체질을 무쇠와 같이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괴인은 서슴없이 혈삼을 들어 터뜨렸다.

주르르

핏빛의 붉은 액체가 철문영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반인이라면 독혈용형삼이 닿기만 해도 한줌 혈수로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문영은 미리 만년지령유를 복용한 상태다.

아무리 강한 독성을 지닌 독혈용형삼이라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 독혈용형삼은 빈 껍질만 남았다.

괴인은 독혈용형삼의 껍질을 자기 입에 털어넣었다.

"천하에서 가장 영험한 지심영천(地心靈泉)이 약효를 신속하게 흡수시킬 것이다."

괴인은 철문영을 작은 연못에 담그었다.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철문영을 주시했다.

철문영의 안색은 점차 붉게 변해갔다.

그러다가 이내 우유빛의 뽀얀색으로 변해갔다.

"흐흐... 되었다. 이제 화골독천(化骨毒泉)만 견뎌내면 탈태환골(脫胎換骨)하게 된다."

일다경 정도 흐른 후 괴인은 철문영을 지심영천에서 꺼내어 옆의 새파란 물이 고인 웅덩이에 담그었다.

푸시식

그러자, 철문영의 전신에 걸쳐있던 의복이 그대로 녹아들고 말았다.

실로 지독한 독기였다.

이것이 바로 뼈조차 녹인다는 화골독천(化骨毒泉)인 것이다.

파파팍

철문영의 피부도 견디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괴인의 눈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철문영의 피부 및에서 새로운 살갗이 돋아났다.

그러자 갈라졌던 피부는 뱀의 허물과 같이 떨어져 나왔다.

파파팍

그리고, 새로 돋아난 피부도 다시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철문영의 전신에서 거무스름한 고름같은 것이 배어나왔다.

그의 전신 심맥에 끼어있던 불순물이 녹아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아홉 번이나 허물이 벗겨지자 더 이상 피부가 갈라지지 않았다.

"휴우"

괴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철문영의 피부는 마치 갓난아이의 그것같이 매끄러워졌다.

아울러 허약하기만 하던 그의 신체는 제법 튼튼한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흐흐... 이녀석이 강호에 나가면 꽤나 많은 계집아이들을 울리겠군."

괴인은 나직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쏴아

철문영의 몸은 무형의 경기에 들어올려져 화골독천에서 나왔다.

본시도 여인이 무색할 지경의 영준한 철문영이었다.

게다가 한 번 탈태환골하자 이제는 사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준하게 변했다.

아니, 차라리 아름답다고 해야 어울릴 모습이었다.

소년을 바닥에 누인 괴인은 그 옆에 앉아 운공에 들어갔다.

위잉위잉

괴인의 몸에서 검붉은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자 그 광채는 괴인의 머리 위에서 구()의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덩어리는 완전히 고형(固形)의 물체로 변하였다.

그 반면 괴인의 신색은 창백하게 변하여 비오듯 땀을 흘렸다.

이어 괴인이 천천히 쌍장을 들어 철문영 쪽으로 밀어냈다.

스스스

그러자, 검은 경기의 덩어리는 술술 끌려 철문영의 콧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지금, 괴인은 자기 일신에 쌍혀있던 한 가지 절세기공(絶世奇功)을 철문영에게 옮겨주고 있는 것이다.

스스슥!

이윽고 검붉은 기체는 완전히 철문영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

괴인은 힘없이 팔을 내려뜨렸다.

완전히 탈진한 기색이다.

"십이성의 묵혈파뢰강(墨血破雷)을 완전히 전해주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묵혈파뢰강을 네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괴인은 허탈하면서도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허허... 가는 마당에 한 모금 진원진기(眞原眞氣)라도 갖고 갈 수야 없지 않는가?"

괴인은 철문영의 기해혈(氣海穴)에 장을 붙였다.

이 방법은 공력을 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만 주화입마의 가능성도 크므로 좀체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다.

점차, 괴인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그는 지금 자신의 원영진기(元嬰眞氣)까지 끌어올려 철문영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원영진기란 무림인의 생명을 뜻한다.

연공을하여 얻을 수 있는 공력이란 모두 이 원영진기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철문영의 전신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윽고, 괴인의 안색이 검게 변하며 괴은은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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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神龍決心

 

 

 

소주(蘇州).

유유히 흐르던 장강이 크게 한 굽이 돌아가 생긴 첨형의 넓은 분지.

그 분지 위엔 한 채의 장원이 서 있다.

강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깎아 지른 듯한 절벽이다.

매우 조용하고도 아늑한 장소에 장원이 서 있는 것이다.

 

소주별원(蘇州別院).

장원의 이름이다.

소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장원의 주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신궁태자(神弓太子) 철문영(鐵文英).

 

당금 천하에서 황실을 제외하면 가장 큰 철사왕부(鐵師王府)의 소주인.

게다가 황상의 두분 공주 중 첫째 공주인 빙향공주(聘香公主)의 부마(駙馬)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신궁태자는 바깥 줄입이 극히 드물어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젊은 미공자이고 천하의 기재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때는 초하(初夏)의 오후.

이곳은 장강의 굽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이다.

울창한 수림이 들어 찬 숲속에 한 채의 정자가 서 있다.

정자 중앙에는 넓은 포단이 갈려 있었다.

포단 위에는 두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여인은 이십 육칠 세 정도 된 궁장 여인이다.

여인은 눈에 확 뛸만한 빼어난 미모로 몹시도 정이 많은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 여인은 자기 무릎 위에 한 명의 소년 공자를 누이고 있었다.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운 소년.

십 육칠 세 정도 되었을까?

한 번 본 사람이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영준한 소년이었다.

여인이 무색할 지경으로 뽀얀 피부와 섬세한 얼굴의 선 등이 마치 절세미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은 소년의 몸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이었다.

뚜렷한 병색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유약해 보였다.

소년은 궁장미인의 섬섬옥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문득 궁장미인의 입에서 조심스런 옥음이 흘렀다.

"왕부를 떠나신지 일 년이 넘었사옵니다. 왕야내외분들과 황상께서 심려 하심이 크실터이니 환부 하심이 어떠시온지요?"

소년은 잠시 무심한 시선을 강상으로 던지다가 입을 열었다.

"회희, 다른 일이라면 다 화희의 말을 따르겠으나 환부하는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줘."

소년의 말에 화희라는 여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쌍하신 분...)

여인의 눈길이 안타깝게 소년을 훑어 보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고우신 분에게 불치의 병이라니... 이분의 연세가 벌써 십칠 세. 약으로 버틴다고 해도 오년 후면...)

여인은 생각하기도 싫은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냐?"

소년이 약간 짜증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명의 시녀가 정자로 다가와 시립하였기 때문이다.

"... 사대선생께서 급히 태자(太子)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태자(太子)!

! 그럼 소년이 바로 신궁태자(神弓太子)였던가?

그렇다.

소년이 바로 소주별원의 주인인 신궁태자였다.

헌데, 부마도위(駙馬都尉)인 그가 어째서 혼자 이 소주에 내려와 있는 것일까?

 

철문영은 몸을 일으켰다.

"사대선생께서 돌아오셨단 말이냐?"

". 하오나..."

시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오나라니! 무슨 일이 있느냐?"

"사대선생께선 심하게 다치셔서 돌아오셨사옵니다. 급히 치료는 해드렸지만 매우 중하십니다."

철문영은 벌떡 일어섰다.

화희라는 여인이 따라 일어나 부축했다.

 

정자를 떠난 철문영은 곧 조용한 전각에 이르렀다.

몇 명의 시녀가 시립해 있다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철문영과 화희는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에는 수많은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책들 사이에 작은 침상이 놓여 있다.

지금, 그 침상 위에 안색이 밀랍같이 창백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

"사선생!"

철문영이 급히 다가섰다.

"... 전하..."

노인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 . 일어나 인사를 못드림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철문영은 노인의 앙상한 손을 잡으며 침상 옆의 의자에 앉았다.

"괜찮습니다. 헌데 사대선생께선 어쩌다 이 지경으로 다치셨습니까?"

철문영이 묻자 노인은 손을 저었다.

이에 방에 있던 시녀 몇 명이 밖으로 물러났다.

"전하. 언젠가 이 늙은이가 천세문(千世門)에 대해서 말슴드린 적이 있지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헌데 왜 그런 말씀을 지금...?"

소년 철문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의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노인은 철문영에게 있어 부모 다음으로 중요한 두 인물 중 하나이다.

그들은 바로 화희(花姬)라는 여인과 노인이다.

 

화희(花姬).

그녀는 고아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녀를 철문영의 생모가 거두어 길렀다.

그녀가 열살 때 철문영이 태어났다.

그리고, 철문영의 생모는 그를 낳은지 얼마 안 되어 신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생모를 잃은 철문영을 길러준 것이 화희, 그녀였다.

그런 그녀이기에 철문영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여인인 것이다.

그녀는 철문영에게 있어 누이이고 어머니이며 자기가 필요로 할 때 항상 옆에 있어주는 여인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철문영에게 있어 아버지 철사왕(鐵師王)만큼이나 소중한 여인이다.

 

사대선생(士大先生).

십여 년 전부터 철문영을 가르쳐 온 노문사였다.

그의 신분내력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그러나, 노인의 학문은 만박통지(萬博通知).

모르는 분야가 없는 기인이었다.

철문영의 끝없는 학구 의욕을 채워준 인물이 사대선생이었다.

노인은 비단 학문을 통탈했을 뿐 아니라 무림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어 종종 철문영에게 무림사를 이야기 해 주었다.

천세문(千世門)에 대해서도 언제인가 이야기 한적이 있었던 것이다.

 

"전하... 이 늙은이가 바로 당시 천세문(千世門)의 기전(奇殿)을 맡았던 늙은이옵니다."

노인의 말에 철문영은 흠칫 놀랐다.

노인이 천세문에 대해 너무도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이 의아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노인이 바로 천세문 기전전주일 줄이야,

"허허... 그동안... 전하를 본의아니게 속여... 왔습니다. 용서... 하여주십시오."

사대선생, 아니 기전주의 말에 철문영은 고개를 저었다.

"용서라니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상세가 중하시니 우선 조리를 하신 뒤에..."

기전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 니다. 지금이 아니면 말슴드릴...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늙은이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철문영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천세비동에서... 이 늙은이가... 배신자 모용인... 그자에게 암습을... 당한 것을 말씀드렸지요?"

"그렇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대 이 늙은이는 무방비 상태에서 모용인의 공격을 맏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숨을 건지기 위한 속임수였습니다."

"속임수라니요?"

철문영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허허... 기문(奇門)의 기공(奇功) 중에 쇄맥대법(鎖脈大法)이라는 것이 있지요. 이는 일시적으로 모든 신체 기능을 중단시키는 방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죽은 듯이 보이지요. 그러나 그 상태에서는 전신이 갈가리 찢기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기전주는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당시 중독되어 있던 몸인지라 모용인 그자를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주님께서 능히 천세비동을 지키실 것으로 기대하고 후일을 오모키 위해 구차한 목숨을 연명한 것입니다."

기전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대신 그의 얼굴에는 점차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졌다.

하지만 철문영으로서는 기전주의 말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

"과연 문주님께서는 천세비동을 봉쇄기키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이 늙은이 역시 목숨을 구했지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문주님께서 천세비동과 함께 최후를 같이 하신 것입니다."

철문영은 침중한 기색으로 기전주의 말을 들었다.

"그후, 노부는 천신마고 긑에 육성정도의 공력을 되찾고 강호로 나왔습니다. 강호에 나온 노부는 우연한 기회에 전하의 교육을 맡았으며 틈틈이 강호에 나가 몇 가지 일을 알아 보았습니다. 먼저 천세문이 화를 당할 때 천세문을 탈출하신 주모(主母)님과 아기씨의 행방을 찾아 보았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찾지 못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주모님과 아기씨 뿐 아니라 삼대신파와 삼십육 소녀위대의 행방마저 묘연해졌습니다."

기전주는 암울한 신색으로 말을 이었다.

"노부가 두 번째로 한 일은 본문의 뒤를 이을 인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천세문은 붕괴되었으나 천세비동이 존재하는 한 천세문의 맥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힘들군요. 천세비동은 내부에서 봉쇄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철문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인은 모르는 또 다른 밀로가 있습니다. 그 밀로는 문주와 수석전주밖에 모르며 그 밀로를 열 수 있는 것 또한 수석전주와 문주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언제라도 노부는 천세비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천세문을 이을만한 인재를 구하셨습니까?"

기전주는 암연히 고개를 저었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노부가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본문의 역대 문주님들의 영령을 어찌 뵈올지..."

기전주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세번째로 노부는 본문을 친 자들을 조사했습니다. 물론 본문을 친 자들의 주력은 마교(魔敎)였습니다만, 반수 이상은 중원무림의 고수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과가 있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철문영은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먼저 당시 본문을 친 마교는 두 가지 속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원제일의 거파인 본문을 무너뜨려 중원제패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자들은 본문의 한 가지 무공을 노렸습니다."

"마교라면 천세문과 걷는 길이 다를 터인데 무엇을 노렸단 말입니까?"

철문영이 물었다.

"본문에는 문주님만이 보실 수 있는 두 권의 비급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히 하늘을 가르고 바다를 뒤집어 엎을만한 신공절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천세절전(千世絶典)상의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은 본문 이천 년의 정화가 집결된 구결(口訣)입니다. 이는 한가지 신공의 구결로 지금은 미완성이나 완성되면 고금제일기공(古今第一奇功)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마교에서 군침을 흘릴만도 하지요."

철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알아낸 것은 당시 천세문이 붕괴될 때 탈출에 성공한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본문의 대붕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중 다른 자들은 별로 주목할 만한 자들이 못되나 열두명의 인물들은 누목할 만한 자들입니다. 그자들은 당시 천세비동에서 무림천년기전의 비급을 갖고 나와 지금은 무림의 최절정고수들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자들은 통칭하여 팔절(八絶), 사패(四覇)라 불리고 있습니다."

"팔절(八絶)과 사패(四覇)..."

철문영이 중얼거렸다.

"팔절(八絶)이란, 고죽검신(枯竹劍神), 신필수사(神筆秀士), 경천신도(驚天神刀), 혈사신마(血沙神魔), 무영괴파(無影怪婆), 천음인(天音人), 신풍도객(神風盜客), 혈륜비마(血輪飛魔)입니다. 그리고 사패(四覇)란 동보(東堡), 서장(西莊), 남곡(南谷), 북궁(北宮)이라 불리는 네 개의 문파입니다. 동보(東堡)란 산동(山東) 천양보(天楊堡), 서장(西莊)은 협서(陜西) 제왕장(帝王莊), 남곡(南谷)은 호남(湖南) 낙일곡(落日谷), 북궁은 하북(河北) 빙혼궁(氷魂宮)을 말합니다."

기전주의 얼굴은 완전히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였다.

그러나, 기전주는 말을 멈추려하지 않았다.

"노부는 이번에 동보 천양보(天楊堡)가 마교와 은밀히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천양보로 숨어들어가 천양보주인 천양신군(天楊神君)의 주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철문영이 침중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럼 천양신군이란 자가 사선생을 다치게 하셨습니까?}

기전주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노부의 공력이 육성 정도밖에 안되는 상태지만 그자 정도에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쩌다가 이런 중상을 입으셨습니까?"

철문영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천양봉 마교에서 나온 자가 있었습니다. 그자는 마교의 최고고수들인 팔대마령(八大魔靈) 중 한 자인 강령마왕(罡靈魔王)이라는 자였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검게 변했다.

이미 사신(死神)이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철문영은 안타까웠으나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었다.

"... 그자의 녹주환혼마강(碌柱換魂魔)... 정말로 강했습니다. 사력을 다했으나... 공력이 모자라... 그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기전주는 급히 가슴을 눌렀다.

""

기전주는 힘겹고 고통스런 기침과 함께 한 사발은 됨직한 사혈(死血)을 토해냈다.

"사선생"

철문영이 안색이 변해 외쳤다.

그러나, 기전주는 손을 저었다.

"이 늙은이 걱정은 마십시오. 이미 전신의 심맥이 모두 석어 문드러져 가망이 없습니다."

"사선생."

철문영은 기전주의 앙상한 손을 꼭 쥐었다.

(, 이분에게 힘든 짐을 지워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육체를 지탱하시기도 힘든 분인데...)

기전주는 착잡한 시선으로 철문영을 바라보았다.

"... , 이 늙은이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지요?"

철문영은 기전주의 말에 기전주의 야윈 손을 힘주어 쥐었다.

"말씀해 보십시오. 사선생께서는 본인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만 본인은 사선생께 아무것도 못해드렸지 않습니까? 본인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겠습니다."

철문영의 말에 기전주의 혈색가신 노안에 미소가 감돌았다.

"고맙습니다. 부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저희 천세문의 대통을 전하께서 이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철문영은 흠칫 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선생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본인은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을 지니고 있어 이십 세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철문영이 암담히 중얼거렸다.

듣고 있던 화희도 암울한 표정이 되었다.

 

천라태양신맥(天羅太陽神脈).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은 희귀한 절맥이다. 천 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할 정도로 극히 드물게 나타는 증세이기 때문이다. 이 절맥을 지닌 인물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양강지기(陽剛之氣)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하니 천하에 존재하는 어떠한 극음지기(極陰之氣)로도 치유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나이가 듬에 따라 그 양기가 더욱 강해져 이십세를 넘기지 못한다. 그 양기가 너무 강해져 전신의 심맥이 완전히 타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 이 절중을 치료하는 방법이 한가지 있기는 있다. 본시 하늘의 안배는 오묘한 것. 천라태양신맥이 세상에 나타나면 그와 함께 천고에 드문 극음지체(極陰之體)가 나타나는 것이다.

 

구절태음천라경(九絶太陰天羅經).

 

이것이다. 이 절맥만이 천라태양신맥의 양강지기를 융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넓고 넓은 천하에서 단 한 명의 상대자를 찾는다는 것은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철문영도 그런 까닭에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하... 전하께서는 단명하실 분이 아닙니다. 필시 인연이 닿아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천라태양신맥만 치유되신다면 전하께서는 능히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 되실 수 있습니다."

철문영이 괴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사선생. 지금까지 본인은 자포자기 상태로 있었습니다만 이제 마음을 바꾸겠습니다. 필히 천라태양신맥을 치유하고 천세문의 혈한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죽음이 드리운 기전주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고맙습니다, 전하. 전하께서 본문의 대통을 이어 주신다면... 이 늙은이는 안심하고 눈을... 감겠습니다."

기전주는 힘겹게 오른손에서 큼직한 보석이 박힌 지환(指環)을 뻬서 철문영의 손에 쥐어 주었다.

"... 이것이 밀로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밖의... 일에... 대해에서는 서가... 맨 아래칸의 비책(飛冊)... 기록해... 놓았으니 참고... 하십시오."

돌연 기전주의 얼굴에 반짝 하고 생기가 돌았다.

이는 생명의 불길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현상이었다.

"천세... ... 수천의... ... 령들이 전하...를 비호...하여 주시길..."

말을 하던 기전주의 머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사선생(士先生)!"

철문영이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미 기전주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

회희가 섬섬옥수로 옥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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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千世門崩壞

 

 

 

동천목산(東天目山).

기이절륜한 형상의 군봉들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눈앞의 손가락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어둠이었다.

스스스

돌연, 대지를 짓누른 암천(暗天)으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날아갔다.

그것은 놀랍게도 사람의 그림자였다.

이 깊고도 험한 천목(天目)에 웬 야행인인가?

휘르르!

! 한 명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또다시 검은 인영들이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십명... 이십명... 백명... 오백...

!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영들, 마치 소리없이 밀려드는 조수(潮水)와 같았다.

수천 명의 인영이 움직인다.

헌데,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인영들이 움직이는 데에도 조그만 소성하나 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뭇가지 하나 꺾이지 않고 조각들 하나 구르지 않았다.

이를 보아 야행인들이 모두 최상승이 내공을 지닌 인물들 임을 알 수 있었다.

휘익!

문득, 선두의 야행인이 높직한 바위 위로 날아올라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널직한 곡구였다.

헌데 허둠 속에서도 곡구전체가 부연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안개 사이사이로 수많은 돌무더기들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자연히 쌓인 돌무더기로 보일 정도로 무질서하다.

하지만, 기문진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즉시 돌무더기들이 오묘한 현기를 내포한 진을 이루고 있음을 알 것이다.

스스스

그대 십여 명의 몽면인이 앞으로 나와 조심조심 곡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반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돌연, 곡구에 깔렸던 현무가 소리없이 사라졌다.

휘익!

그와 함께 선두의 야행인이 곡구로 날아들어갔다.

스스슥스슥!

뒤이어 수천의 고수들이 곡구로 날아들어갔다.

이미 진식(陣式)은 그 힘을 잃은 듯, 야행인들의 전진에 장애가 되질 못했다.

"...!"

"...!"

곡구를 빠져나온 야행인들은 발길을 멈추었다.

휘이잉!

한 줄기 밤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야행인들 앞에 방대한 분지가 어둠에 잠긴 채로 나타났다.

헌데, 수만 장이나 되는 분지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고루거각들이 장엄하게 벌려있지 않은가?

깊디 깊은 천목산중(天目山中)에 이런 거창한 고루거각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한 일이다.

야행인들의 시선이 긴장으로 번뜩였다.

"시작하랏!"

야행인 중 한 명이 나직이 소리쳤다.

휘익휘익!

그러자 백여 명의 야행인들이 허공으로 날았다.

그들은 각기 커다란 뭉치를 안고 분지를 둘러싼 절벽 위를 달려갔다.

이를 본 중인들은 즉시 무엇인가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뒤이어, 분지의 사방절벽에서 흐릿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들은 기이하게도 불어오는 산풍에 흩날리지 않고 분지로 깔려들어갔다.

삽시에, 분지는 흐릿한 연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 연기들은 마치 악마의 손길같이 전혀 흩어지지 않으며 스물스물 분지의 곳곳으로 스며든 것이다.

"...!"

"...!"

중인들은 연기가 분지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며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이윽고, 다시 반각 정도가 지났다.

그때는 점차 연기도 사라지고 있었다.

"가랏!"

선두의 야행인이 나직이 외치며 분지로 날아들었다.

스슥스스슥!

그 뒤로 수천의 야행인들이 소리없이 분지로 뛰어들었다.

"누구냣?"

우렁찬 폭갈이 터졌다.

야행인들이 분지에 내려서는 순간 사방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여기저기서 많은 횃불들이 일어났다.

"쳐랏!"

한 소리 일갈과 함게 야행인들은 전면으로 덮쳐들었다.

"와아"

"적이닷! 적의 내습이닷!"

창창!

"크아악"

"아악!"

삽시에, 조용하기만 하던 분지는 아수라지옥으로 변해갔다.

수천의 야행인들은 질풍노도같이 휩쓸어 나갔다.

"크흑... 이럴 수가... ... 독이..."

분지를 지키던 인물들이 눈을 부릅뜨며 쓰러져갔다.

이미 자기도 모르게 중독당한 분지 내의 고수들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갔다.

그 무렵, 곡구부위의 절벽에는 한 명의 백포인이 나타났다.

전신에 하얀 백포를 걸친 그 인물은 초로에 접어든 중년인이었다.

그는 이미 공력이 초극에 이른 듯이 눈에서 신광이 사라져 있었다.

"천세문(千世門)... 안되었지만 그대들의 이천 년 기업은 이것으로 끝이다."

중년인이 중얼거렸다.

아 천세문(千世門)!

분지의 대장원이 바로 천세문(千世門)이란 말인가?

이천 년 동안 신비 속에 싸여있던 천하제일비문(天下第一秘門).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을 만들었다는 신비대파!

지금, 그 신비의 대파가 무너지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말이다.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나 별 수 없다. 천하제패를 위해서는 필히 무너뜨려야 할 장애물이니까... 그리고 본교가 겪은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천세문에는 안된 일이지만 그들의 이천 년 정화가 모인 천세광무결(千世廣武訣)이 필요하다."

배포인은 중얼거렸다.

효웅(梟雄)으로서의 갈등이 그자의 얼굴에 떠올랐다.

휘익한 줄기 인영이 백포인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그자는 문사차림의 중년인이었다.

심기가 깊게 생긴 모습의 인물이다.

그자는 즉시 백포인에게 한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

"제자, 교주님을 뵙습니다."

백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인, 상황은 어떤가?"

중년유사가 공손히 대답했다.

"구대전주(九大殿主)라는 늙은이들과 그들의 직속 정예들이 제법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자들도 모두 단명미심향(斷命迷心香)에 중독 되어있는지라, 오래 저항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천세비동(千世秘洞)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수석진주인 기전주(奇殿主)만이 천세비동을 열 수 있습니다."

"좋다. 본 교주가 친히 가보겠다."

백포인은 몸을 날렸다.

스스스곧 중년유사도 그 뒤를 다랐다.

 

쾅콰르릉!

"크아악"

검광이 번뜩이며 혈화가 허공을 수놓았다.

수천의 군웅들은 질풍노도같이 밀려들어갔다.

외곽의 일진(一陣) 전각군들이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크아악"

촉망중에 대항하던 천세문도들은 허공을 거머쥐며 쓰러져 갔다.

이미 중독된 상태인지라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

군웅들은 단번에 최초의 방어선을 돌파, 곧장 오십여 장의 뒤쪽으로 서 있는 전각군들을 향하여 밀려갔다.

그들이 오십여 장 넓이의 공지를 가로지를 때였다.

슉슈슉

"으아악!"

갑자기 지면으로부터 수많은 강전(强箭)들이 튕겨졌다.

지면에 함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때문에 군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단번에 수백의 고수가 쓰러져 갔다.

그러나, 공지가 시신으로 뒤덮이자 강전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천세문의 용사들이여! 죽음으로 자기 위치를 고수하라."

한 마디 창노한 일갈이 터졌다.

뒤이어 한 명의 백발동안의 노인이 날아오며 소매를 휘둘렀다.

촤르르

수백 송이 화광(火光)이 노인의 소매에서 떨쳐졌다.

"아악"

단번에 군웅들의 전열이 무너졌다.

"그자가 천세문 기전주요. 하지만 그자도 중독된 상태이니 두려워할 것 없오."

중인들 사이에서 음교한 일갈이 터졌다.

"와아"

주춤 하던 군웅들이 벌떼처럼 밀려들었다.

"!"

그러나 비록 중독된 상태라 하여도 기전주라는 노인의 공력은 무서웠다.

"케엑"

수십 줄기 강기가 노인의 소매에서 튕겨지며 군웅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갔다.

"수석전주! 저희들이 왔습니다."

기전주가 군웅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데 두 줄기 인영이 날아들었다.

칙칙한 회인과 섬칫한 혈의를 걸친 노인들이었다.

"마전주(魔殿主), 사전주(邪殿主), 다른 곳의 상황은 어떻소?"

기전주가 쌍장을 휘두르며 두 노인에게 물었다.

"어협!"

마전주가 기합을 지르며 군웅들을 휩쓸어가 기전주는 사전주와 뒤로 물러섰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유전(儒殿) 휘하 백팔유사(百八儒士)와 불전(佛殿)휘하 칠십이금강(七十二金剛)은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나머지 칠개 전 휘하의 정예들은 폐사림(廢死林)에 최후의 저지선을 펴고 있읍니다만... 아무래도 폐관중이신 문주님을 출관하시도록 하여야할 것 같습니다."

기전주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주모님과 아가씨는 어찌하고 계시오?"

[, 두 분께선 사대신파와 소녀위대(少女衛隊)의 호위를 받아 비로(秘路)로 곡을 빠져 나가셨습니다."

", 다행이구려. !"

말을 하던 기전주의 안색이 홱 변했다.

어느틈엔가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세 사람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진을 이루고 있는데 그 진세가 심상치 않았다.

"! 억겁파라진(破羅陣)!"

마전주의 인상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와함께 기전주와 사전주도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억겁파라진(破羅陣).

 

이는 마교(魔敎) 최대의 걸진이다.

소림의 백팔나한진과 버금간다고 이야기될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실전되었던 진식이었다.

실전된 줄 알았던 마교 최대의 절진이 이곳에서 재현되었던 것이다.

"... 역시 본문을 친 것은 마교였군."

사전주가 부드득 이를 갈았다.

반면 마전주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구보다도 억겁파라진의 위력을 잘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함이 많겠소. 수석전주께서는 곧 천세비동으로 가서 문주님을 출관시켜야 하겠습니다. 이 상태라면 천세비동(千世秘洞)마저 위험합니다."

마전주가 침중히 말했다.

"알겠오. 허나 억겁파라진을 뚫고 나가기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오."

기전주의 말에 마전주의 눈에 한 줄기 결연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활로는 제가 열겠습니다. 그 뒤는 사전주가 막아주십시오."

기전주는 흠칫했다.

"설마, 마전주께선 최후인..."

마전주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헛허...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면 죽어야할 때에 죽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전주의 말에 기전주는 침통한 표정이 되었다.

위잉위잉!

그무렵 삼인을 포위한 억겁파라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삼인은 무형의 압력에 몸을 떨었다.

"수석전주 가십시오! 사전주 뒤를 부탁하오."

마전주가 이를 악물고 전면으로 뛰쳐나갔다.

"마전주!"

기전주가 처연히 불렀다.

"핫하... 내세에서나 보십시다."

마전주가 우렁차게 웃으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와함께 억겁파라진의 신형이 일시에 마전주를 무찔러갔다.

"크하하핫! 옥쇄마혼(玉碎魔魂)!"

마전주의 폭갈이 터졌다.

그리고

콰르릉파우웅 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크아악"

삽시에 억겁파라진의 일부가 허물어지며 허공으로부터 뜨거운 선혈이 쏟아져 내렸다.

"마전주!"

기전주는 침통히 부르짖으면서도 무너진 억겁파라진세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의 노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우우웅

그러나, 주춤 하던 억겁파라진이 다시 이어지려 했다.

"이곳은 제게 맡기시고 어서 가십시오."

사전주가 홱 돌아서며 외쳤다.

"사전주, 미안하오! 살아 남는다면 다시"

기전주가 분루를 흘리며 진세로 부딪혀갔다.

"크하핫! 사혼광멸(邪魂狂滅)!"

사전주가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콰르릉

끔찍한 사기(邪氣)를 띄운 기류가 억겁파라진을 휩쓸었다.

"크으윽!"

단번에 십여 명의 마존이 즉사했다.

휘이익

그사이로 기전주는 쾌첩하게 전면으로 쏘아나갔다.

제 이전각군을 빠져나가면 빽빽이 들어찬 고사림(枯死林)이 나타난다.

지금 그 고사림에서 처절한 난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일곱 무더기의 무사들이 자신들보다 수십 배나 많은 군웅들을 맞아 분전하고 있었다.

휘익!

기전주는 그 모습을 부면서도 이를 지그시 물며 앞으로 나갔다.

"저자가 기전주입니다."

문득, 두 명의 인물이 폐사림 앞에 내려섰다.

그들은 폐사림을 날아넘는 기전주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교주라는 자와 모용인이라는 중년유사였다.

"저 늙은이는 아마 문주를 불러내기 위해 가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 좋다. 네가 가서 저자를 속여 비동(秘洞)의 금제를 열도록 하라."

"!"

중년유사는 쾌첩하게 쏘아나갔다.

그뒤로 교주라는 자도 신속히 따라나갔다.

 

기전주는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이곳이 천세문 이천 년 역사가 비장된 천세비동이다.

"누구냣?"

막 철문으로 다가서던 기전주는 홱 돌아섰다.

"수석전주, 접니다."

한 명의 중년유사가 기전주 앞으로 날아 내렸다.

기전주의 안면에서 긴장의 빛이 사라졌다.

", 유전주였구려. 마침 잘왔소. 빨리 비동으로 들어가 문주님을 출관시키겠오."

"걱정마십시오."

기전주는 돌아서서 문고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찰칵

이어 그는 자기 오른손에 낀 지환(指環)을 철문의 흠에 끼워넣었다.

쿠르릉

둔중한 굉음이 일며 문이 열렸다.

그들 앞에는 야명주로 환하게 밝힌 깊은 동굴이 나타났다.

"유전주, 부탁윽!"

기전주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유전주가 돌연 기전주의 등에 일장을 후려친 것이다.

"모용인... ... 네놈이..."

기전주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이를 갈았다.

"흐흐흐... 수석전주, 본인은 배신한 것이 아니오. 본인은 마교 팔대마령(八大魔靈) 중 일인일 뿐이오."

"... 네놈이 마교의 첩자..."

기전주가 실색을 하였다.

"크흐흐... 문주도 뒤따라 갈터이니 늙은이 먼저 지옥에 가 기다리시구려!"

유전주는 일장을 후려쳤다.

기전주는 속수무책으로 날아오는 장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퍼엉!

"크악!"

가슴에 일장을 맞은 기전주는 붕 떠올랐다가 모질게 나뒹굴었다.

"흐흐..."

유전주는 음악하게 웃은 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십여 장을 들어가니 또 다른 철문이 나타났다.

끼이익

그곳에는 별반 금제가 없는 듯 철문은 둔중하게 열렸다.

"으음"

모용인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곳부터는 완전히 만년한철로 주조한 길 통로였다.

사방의 벽이 모두 철벽으로 되어 있어 어떤 압력에도 견딜 수 있게 되어있다.

"흐흐... 고맙게도 금제가 모두 해체 되어있군!"

모용인은 눈알을 굴리며 긴 통로를 빠져나갔다.

곧 그는 넓은 광장에 이르렀다.

헌데, 그곳에는 두 개의 웅덩이가 있었다.

일 장 넓이의 웅덩이는 맑디맑은 옥수가 고여있고 십 장 넓이의 웅덩이에는 푸르스름한 물이 고여 있었다.

모용인은 푸르스름한 물이 극히 두려운 듯이 조심조심 그곳을 빠져나갔다.

광장 맞은편에는 또 다른 석문이 있었다.

끼익!

석문이 열리자 종이냄새가 확 끼쳤다.

그곳은 방대한 서고(書庫)였다.

족히 수백만 권은 될 듯한 분량의 서적들이 삼 장 높이의 수백 개 서가에 가득히 꽂혀 있었다.

모용인은 수백만 권의 장서에 일별도 주지않고 앞으로 나갔다.

곧 그는 또 다른 석문에 이르렀다.

그다음에 나타난 석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석실 중앙에 높은 석대가 놓여 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 십단 높이의 서가가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서가를 훑어본 모용인의 눈에 탐욕의 빛이 번뜩였다.

서가는 하나같이 천하를 울리던 인물들의 신공비급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니 유전주, 어쩐 일로 예까지 왔는가?"

문득 맞은편 석벽이 갈라지며 한 명의 중년인이 걸어나왔다.

매우 청수한 모습의 인물이다.

모용인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사태가 위급하여 대죄를 무릅쓰고 비동에 들어왔아옵니다."

중년인, 즉 천세문주의 얼굴에 가벼운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기에 사태가 급하다는 얘기인가?"

", 본문의 전 제자들이 암중에 중독된 상태에서 마교를 중심으로한 수천의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아옵니다."

천세문주는 경악의 빛을 띄웠다.

", 알겠다. 곧 금제를 발동시키고 나가보자!"

천세문주는 급히 마지막 밀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리 넓지 않은 석실이었다.

중앙에 작은 석탁이 하나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끼이익

천세문주는 벽에 난 벽장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두 권의 비급이 나타났다.

천세문주는 비급들을 한쪽으로 밀쳤다.

그러자 벽장 뒷면에 두 개의 홈이 드러났다.

천세문주는 자신의 손목에 걸린 청홍쌍환(靑紅雙環)을 그 홈에 끼우고 지그시 눌렀다.

쌍환이 반즘 들어갔을 때였다.

슈슈슈

"!"

천세문주는 골수까지 에이는 살기에 기겁을 하며 돌아섰다.

동시에 그의 우장에서 시뻘건 혈기(血氣)가 폭사되었다.

"으악!"

"흐읍!"

선혈이 튀었다.

유전주와 천세문주는 똑같이 튕겨져나갔다.

천세문주의 가슴에는 어느사이엔가 손바닥만한 륜()이 박혀있었다.

"탈명비륜(奪命飛輪)! 네놈이 감히 본문을 배신하고..."

천세문주는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대갈을 터뜨렸다.

위잉!

무지막지한 강기가 쓰러진 유전주는 박살낼 듯이 쏟아졌다.

콰릉!

간일발의 차이로 모용인은 천세문주의 일장을 피했다.

!

그자는 이어 민첩하게 두 번째 석실로 달아났다.

"능지처참하리라!"

천세문준가 이를 갈며 쫓아갔다.

위이잉!

천세문주의 장력이 두 번째 석실을 빠져나가려는 모용인의 등으로 밀려갔다.

쾅콰르릉!

다음 순간. 또 다른 장력이 밀려와 천세문주의 장력과 충돌하였다.

"으윽!"

천세문주는 둔중한 신음을 토하며 비칠비칠 물러섰다.

그의 가슴에선 끊이지 않고 선혈이 흘러내렸다.

스스스

어느사이엔가 교주라는 자가 석실에 들어와 있었다.

"미친 수작 말아라!"

천세문주는 대갈했다.

그러나 내심으로 그는 오싹한 한기가 끼침을 금치 못했다.

마교주는 결코 자기보다 하수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은 치명적인 암습을 받지 않았는가?

(어떻게 하든 마지막 금제를 발동시켜야 한다.)

천세문주는 속으로는 얼음장같이 냉정해지고 있으나 겉으로는 대노한 것같이 보였다.

"받아랏!"

한 줄기 담담한 향기를 띄운 강기가 폭사되어 갔다.

마교주도 지체않고 마주 일장을 쳐내었다.

콰르릉

석실이 뒤흔들렸다.

중앙의 석대가 박살이 나며 서가에 곶힌 비급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읏강하다.)

양인은 동시에 휘청하였다.

천세문주는 마음이 급해졌다.

"타핫! 굉천참살강(轟天斬殺罡)!"

천세문주의 쌍장에서 시퍼런 강기가 폭음을 내며 쏟아졌다.

"! 천마혈인(天魔血印)!"

마교주도 지체않고 쌍장을 쳐들었다.

콰릉파앙!

석실바닥이 움푹 패여 날아갔다.

삽시에 오십여초가 지났다.

"와아"

양인이 대치하고 있는데 수십 명의 군웅들이 밀려들어 왔다.

"! 이것은 무림천년기전(武林千年奇典)! 낙일산화경(落日散花經)이닷!"

한 무림인이 바닥에서 한 권의 비급을 줏어들고 외쳤다.

"끄악"

다음 순간 그자는 피곤죽이 되어 즉사했다.

수십 줄기 장경이 그자를 후려친 것이다.

단번에 석실을 아수라지옥으로 변했다.

무림인들은 서가를 마구 뒤지고 무림천년기전 중의 비급을 탈취하려고 서로를 죽였다.

"괘씸한 놈들!"

천세문주는 대노했다.

콰르릉!

"아악!"

막 태령진해를 집어들던 자가 가슴이 뽀개져 즉사했다.

그러나, 고수들 사이의 사움에서 한눈을 파는 것은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

"으흑!"

천세문주는 마교주의 일장을 가슴에 맞았다.

!

그는 그대로 마지막 석실로 튕겨져 들어갔다.

휘익!

그러나 천세문주는 사력을 다해 몸을 뒤집으며 반쯤 박힌 쌍환을 힘껏 눌렀다.

우르릉!

그러자 비동이 금시라도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쉬이잉

백포인은 다급하게 천세문주의 등으로 일장을 후려쳐내었다.

퍼엉!

"크윽!"

천세문주가 다급히 막았으나 그의 왼팔이 으스러져 나갔다.

"실례하오!"

마교주는 급히 허공섭물의 공력으로 두 권의 비급을 끌어당겼다.

"어림없다!"

천세문주는 사력을 다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쩡쩡

거의 고형화된 검은 강기가 폭사되었다.

콰릉

"으음!"

마교주는 쌍장이 뽀재기는 듯한 통증에 비칠비칠 물러섰다.

천세문주도 가슴이 으스러져 쓰러졌다.

우르릉

그러나, 금제가 거의 발동한지라 마교주는 다급히 석실을 빠져나갔다.

콰릉콰르릉!

천지개벽.

천세문이 서 있던 분지 전체가 뒤흔들렸다.

콰릉쩌적

기어코 지면이 갈라지고 땅이 뒤집혔다.

휘익!

그사이로 수십 줄기 인영이 암천을 가르며 분지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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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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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무림기보 소개>

 

1983년 5월 경에 전 5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박스본은 전권을 박스 하나에 포장하여 만화방에 대여용으로 출간한 형태를 말합니다.

무려 37년 전의 작품입니다.

문장은 거칠고 구성은 허술하며 이야기 전개는 고루한 면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이런 작품도 있었지 하는 마음으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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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기정무협소설

        천세무림기보(千世武林奇譜)

 

 

序 章

 

 

 

 

 

강호무림에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세 가지 기서(奇書)에 대할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름하여 삼대기서(三代奇書)라 불리는 이 삼종의 비급은 수천 년 무림사에 있어 가장 많이 인구에 희자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경총요(武經總要)>

 

삼백 년 전, 한 명의 절대기재(絶代奇才)가 있었다.

그는 한 번 본 무공은 절대 잊지않는 재주를 지녔다.

그뿐 아니라 그는 아무리 난해한 무공초식이라도 즉시 시전해 보일 수 있으며 또한 완벽해 보이는 무공이라도 단번에 파해하는 비상한 재주를 지닌 기인이었다.

 

-천안귀재(天眼鬼才) 공손무기(公孫武奇).

 

그의 이름이다.

그에게는 적이 없었다. 아니 누구도 그와 맞서려 하지 않았다.

그와 겨룬다는 것은 곧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공손무기는 고독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천하제일기재(天下第一奇才), 이런 명칭조차도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

누구 하나 그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년에 그는 한 권의 책자를 만들었다. 자신의 모든 지혜를 짜넣은 기서를!

그것이 바로 무경총요(武經總要)였다. 삼대기서 중에서도 제일의 위치에 있는.

무림인들은 무경총요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경총요를 얻으면 천하제일의 기재가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림천년기전(武林千年奇典)>

 

천 이백 년 전, 검군자(劍君子)라는 인물이 있었다.

검에 관한한 그는 무적이었다. 당시에 검군자의 십검(十劍)을 받은 인물이 전무할 정도로 그의 검술은 신인의 경지에 닿아 있었다.

그는 당시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었다.

천하제일로 군림하기 삼십 년, 그는 명예로운 봉검(封劍)을 선언하였다.

아울러, 무도를 진작시킬 숭고한 뜻을 무림에 알렸다.

 

<천하제일인의 보좌를 잇는 인물에게 본인의 검학이 담긴 신검경(神劍經)을 주겠노라.>

 

무림은 들끓었다.

보통사람들은 천하제일의 검학을 얻기 위해 날뛰었다.

그와함께 사해구주에 은거해 있던 기인이사들은 천하제일의 명예를 차지하려고 녹슨 무기를 닦았다.

무림인들은 태산(泰山)에 숭무전(崇武殿)을 세우고 그곳에서 천하제일을 가렸다.

결국, 두 번째 천하제일인이 나왔다.

곤천신필(崑天神筆)이라는 필법(筆法)의 명인이 바로 그였다.

약속대로 전대의 천하제일인 검군자는 곤천신필에게 자신의 절학이 담긴 신검경을 주었다.

그러나 곤천신필은 신검경을 한 번 본뒤에 검군자에게 정중히 반환하였다.

그 자신도 만인이 공인한 천하제일인. 검군자의 절기가 아무리 뒤어나다고 해도 그것을 익히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감탄한 검군자는 신검경과 자신의 병기인 천인검(天刃劍)을 숭무전에 기탁하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곤천신필도 명예로운 은퇴를 하였다.

그 역시 자기의 병기인 한 쌍의 옥령신필(玉靈神筆)과 곤천필보(崑天筆譜)를 숭무전에 남겼다.

이것이 전통이 되었다. 숭무전에 자신의 무공을 남기는 것이 무림인들에게 최대의 영광이 되었다.

그후 오백 년, 즉 지금부터 칠백 년 전까지 모두 열 명의 천하고수가 숭무전에 무공을 남겼다.

제 삼대 승천마도(昇天魔刀),

그는 폭혈참신도보(爆血斬新刀譜)와 승천마도(昇天魔刀)를 남겼다.

 

제 사대 낙일도룡(落日屠龍),

그는 낙일산화경(落日散花經)을 남겼다.

 

제 오대 혈천사객(血天邪客),

사도제일인(邪道第一人)이던 그의 혈천사종보(血天邪宗譜)가 숭무전에 올랐다.

 

제 육대 공령천존(空靈天尊),

고금제일의 신투였던 그는 자신의 절기가 실린 공령비경(空靈秘經)을 숭무전에 바쳤다.

 

제 칠대 천하제일인은 태령자(太靈子),

그를 주목하자! 그는 지금까지의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도가제일인(道家第一人)이었다.

그예로 제 오대 천하제일인 혈천사객이 태령자의 손에 삼십초를 못견디고 패했다.

하여튼, 그도 자신의 무공을 승무전에 남겼다.

태령진경(太靈眞經)이 그것이다.

 

제 팔대 천음자(天音子),

음률의 대가로 특히 고금(古琴)을 잘 다루었다. 그의 무공은 균천악보(龜天樂譜)로 대표된다.

 

제 구대 인물은 제왕수(帝王手),

그는 천하제일의 신공이라는 제왕신공(帝王神功)이 실린 제왕경(帝王經)을 남겼다.

 

제 십대 음혼우사(陰魂羽士),

그의 무공은 음혼빙백경(音魂氷魄經)에 실려있다.

 

제 십일대 신풍무영(神風無影),

경공의 대가로 그의 신품무영보(神風無影步)는 천하오대경공(天下五大輕功)의 하나이다.

 

마지막 제 십이대 인물은 신륜천왕(神輪天王)이라는 고수다.

그의 파천마륜(破天魔輪)은 가히 게세무적이었다.

 

이상의 십이인이 숭무전에 남긴 비급을 통틀어 무림천년기전이라고 한다.

헌데, 신륜천왕을 끝으로 숭무전은 폐허화 되었다.

숭무전이 신비의 집단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초토로 변한 것이다.

그와함께 무림천년기전은 경원히 무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삼대기서 중 마지막은 한 권의 책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실로 방대하기 이를데 없는 비급들의 총칭일 따름이다.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삼대기서중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지만 그것은 구류만상경에 대하여 별달리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천세문(千世門)이라는 신비방파의 이천 년 심원이 깃든 서술서다.

천세문이 이천 년 동안 무림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기인이사와 문파들의 무공을 수집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불(). (), (), (), (), (), (), ()의 구류(九流)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인 것이다.

 

이상이 삼대기서에 대한 전설이다.

헌데, 무림천년기전이 단절된지 칠백여 년 세월이 흐른 당금, 뜻하지 않게도 구류만상경으로 인해 거대한 혈운이 중원천지를 뒤덮게 되었으니...

이천 년 중원무림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혈풍이 한바탕 중원을 뒤흔들어 놓게된다.

구류만상경이 발단이 된 이 혈풍, 누가 있어 이 끔찍한 피바람을 멎게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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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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