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영웅'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20.08.26 [환락영웅] 제 43장 광통거에서의 감정정리
  2. 2020.08.25 [환락영웅] 제 42장 백인장의 다섯 도객
  3. 2020.08.23 [환락영웅] 제 41장 허무한 죽음
  4. 2020.08.21 [환락영웅] 제 40장 주소아의 협박술
  5. 2020.08.19 [환락영웅] 제 39장 원로원의 사마귀
  6. 2020.08.18 [환락영웅] 제 38장 우수를 깨트리는 독충
  7. 2020.08.16 [환락영웅] 제 37장 충성수
  8. 2020.08.15 [환락영웅] 제 36장 등천마세에 들어가다.
  9. 2020.08.14 [환락영웅] 제 35장 영원한 사랑의 맹세
  10. 2020.08.13 [환락영웅] 제 34장 엉뚱한 곳에서의 상봉
  11. 2020.08.12 [환락영웅] 제 33장 취풍녀가 주제했다.
  12. 2020.08.11 [환락영웅] 제 32장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등마제주
  13. 2020.08.10 [환락영웅] 제 31장 마차는 달린다
  14. 2020.08.08 [환락영웅] 제 30장 입 큰 놈이 먹히는가? 배 큰 놈이 먹히는가?
  15. 2020.08.06 [환락영웅] 제 29장 한 쌍이 시작하면 한 쌍이 끝을 본다.
  16. 2020.08.04 [환락영웅] 제 28장 술독 앞에서 낳지도 않은 아기로 협박하는 청탁
  17. 2020.08.03 [환락영웅] 제 27장 한천이기의 부활
  18. 2020.08.02 [환락영웅] 제 26장 마교칠십이절기
  19. 2020.08.01 [환락영웅] 제 25장 죽은 사부가 구해주다
  20. 2020.07.30 [환락영웅] 제 24장 마장탑의 붕괴
  21. 2020.07.29 [환락영웅] 제 23장 정통마교의 비사
  22. 2020.07.28 [환락영웅] 제 22장 전사후살
  23. 2020.07.27 [환락영웅] 제 21장 같은 수법에 당하다
  24. 2020.07.26 [환락영웅] 제 20장 철검으로 펼친 검공
  25. 2020.07.25 [환락영웅] 제 19장 백인장의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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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三 章

 

        廣通渠에서의 感情 整理

 

 

 

-----등천마세의 새주인 탄생했다.

 

이 소문은 무리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급속도로 번져갔다.

등천마세가 사파의 하늘이었기에 소문은 보다 확실히 중원인들의 가슴을 파고 던 것이었다.

등천마세의 새주인,

그는 무적검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적검……

그리고 그에 대해 무림에 알려진 바는 전무(全無)하다.

전무하기에 더욱 무서운 느낌을 중원인들의 가슴에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중원은 특히 정파무림인들은 등천마세의 새로운 주인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전율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 동안 등천마세의 움직임이 지극히 잔잔했기에……

정파무림은 공존했고 폭풍전야 같은 정적을 잠시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던가?

비록 등마제가 무림에 소란을 일으키기는 했으나 일부에 국한 된 사실일 뿐이었다.

한데 등천마세의 힘을 일통한 인물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무림인들은 새로운 전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등천마세의 잠재력은 이 새로운 주인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중원의 처처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필연처럼 혈겁이 발생했다.

무림은 바야흐로 풍운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무림인들은 온 신경을 무적검이라는 인물에게 쏟기 시작했으며……

그에 대해 구구한 억측이 무림을 횡행하기 시작했다.

 

-------무적검……

그는 마도 사상 최고의 기재이다.

그는 마교의 교주라고도 한다.

그의 등장은 정도무림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필연처럼 정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충천하는 상황으로 돌변하게 될 것이다.

정천보가 등천마세를 멸하고 이 땅에 정의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을 지체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정천보는 지금 등천마세를 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천하는 등천마세에 먹히고 말 것이다.

 

이것은 뜻있는 강호인들의 애절한 충고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문이 무림을 강타했다.

 

------정천보는 이미 움직였다.

정천보의 실질적인 핵심부 인물인 탕마사십사객들은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탕마사십사객들은 정천보가 탄생시킨 최고의 살수(殺手)들로서……

그들은 각자가 한 시대를 패주할 수 있으리만큼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다.

지금 그들은 무적검을 척살하기 위해 움직였다.

 

탕마사십사객……

그들은 정파무림의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들의 최후 목적이 바로 정파무림의 운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정파무림인들의 시선은 그들의 움직임에 집중이 된 것이다.

정천수호군주 왕혜려……

그녀는 등마제의 참담한 패배에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탕마사십사객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무림은 풍운대격변에 휩싸인다.

 

× × ×

 

황하에서 장강까지 이어지는 수(隋)나라 때 만든 광통거(廣通渠)라는 운하(運河)가 지금까지 존재한다.

운하를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흐른다.

돌고 도는 역사의 영고성쇠를 침묵으로 지켜온 이 천년의 운하에,

언제까지나 그래왔을 황혼(黃昏)은 다시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천지는 노을에 잠기고……

만화백초(萬花百草)가 강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지금……

한쌍의 아름다운 남녀가 흐르는 물을 보고 앉아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는 다름아닌 소일초와 주소아였다.

천천히 한 잔의 술이 그의 입술을 적시고……

다른 잔이 주소아의 입술로 흘러든다.

부드러운 미소가 서로의 눈에서 눈으로 전해지고,

감미로운 사랑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사방을 포근히 감싼다.

이미 여러 순배의 술이 돌았는 듯,

주소아의 얼굴은 발그레하다.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훔쳐내며 병을 들어 소일초의 빈잔을 채워준다.

세상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는 한 쌍이라면 바로 이들일 것이다.

술기운이 도는 듯 조금식 흔들리는 주소아의 머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게 했는데……

그녀는 자리를 살그머니 옮겨서 소일초의 옆에 와 기댄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황혼에 붉어진 물결을 쳐다보며 손을 들어 소일초의 목뒤로 보낸다.

황홀한 사랑의 감정이 두 사람을 행복으로 이끌고, 가벼운 입마춤은 그들의 영원한 사랑의 맹세였다.

소일초의 손은 비스듬히 기대고 누운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고……

주소아는 그의 품에 얼굴을 뭍은 채 나지막히 얘기한다.

[어머니 보고 싶지 않아?]

[별로……언제나 나는 작은 어머니가 돌봐 왔는 걸……]

[너는 좋겠다……나한테는 한 분도 안 계신 어머니가 둘이나 있으니……]

[우리 어머니가 네 어머니도 되잖아. 부러워할게 뭐있어?]

[내가 부모도 없이 자랐다고 좋아하지 않으시면 어떡하지?]

주소아는 머지않아서 만나게 될 소선풍과 이주용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다.

그녀로서도 어른들의 반응이 두려운 것이다.

소일초의 사랑은 오직 자기뿐이지만 어른들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특히 소일초의 친어머니 이주용은 성미가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걱정돼? 너에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배경이 있는데……]

[할아버지? 어디 계신 지도 모르는 걸……]

[어쩌면 아버지는 알고 계실 지도 몰라. 그리고 이제 세상에 정식으로 이름을 알려야겠어.]

[할아버지께서 나를 찾아오시게?]

[그래……! 그리고 나는 그분의 독문표기를 알아.]

주소아가 머리를 들면서 물었다.

[뭔데? 바로 네 개의 혈기(血旗)야. 작은 어머니께서 전에 일러주신 적이 있어. 우리가 혈기를 사용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직접 찾아오시겠지.]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서로가 껴안고 갈대에 몸을 뉘였다.

[그런데 소아, 등천마세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가공한 것같지?]

[그래, 하지만 우리가 충성수를 다 해독해버리면 한천이기는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등천마세는 간단히 해체할 수 있어.]

그렇다.

그들이 얼마동안 등천마세에 있으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실질적인 등천마세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등마제가 바로 한천녀의 손에 죽어버린 등천마세의 대교주 오공천이 주도한 것이었다.

오공천(吳恭天)……

그는 등천마세의 안으로 잠재된 내분을 억제하기 위해 그 욕망의 분출과 새로운 고수들의 영입을 위해 등마제를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세월 동안 등마제로 인해 등천마세의 힘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것이었다.

[한천이기는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모든 것은 원천기가 주도할 거야. 그는 진정한 야심가거든……]

소일초가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그의 팔을 베고 누운 주소아는 한 손을 그의 가슴에 얹고 쓰다듬었다.

[원천기는 천지파멸보다는 아무래도 요즘 무림에 뜻을 더 두고 있는 것 같지?]

[그들은 우리를 영원히 수족처럼 부리고 싶어 안달하지. 이미 등천마세에서 권력의 맛을 본 그들이야. 야망은 이제 그들의 모든 것이 되었을 거야.]

소일초는 잠시 말을 끊었다.

[강한 무공, 냉철하고 뛰어난 머리, 충분히 천하를 넘볼 만 하겠지……]

[그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소아의 말에 몸을 일으키며 옆의 갈대를 꺽었다.

[이렇게!]

그는 지금이야말로 자신과 한천이기가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등천마세의 힘……

그것을 그들의 뜻대로 천지파멸에 사용하거나 무림을 피로 씻는 야망에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

그는 호정수신(護正修身)을 외치는 백인장의 차대 장주인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와 한천이기는 서로의 뜻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혈투를 벌여야 한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천이기와 어떻든 한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들도 그다지 밉지만은 아닌 인간들인데 혈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못된다.

때문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의 처리 문제로 고심해온 것이다.

소일초가 주소아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다음 순간,

그는 어두워 오는 하늘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한천이기……이제 그만 나오너라……]

소일초와 주소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허공에서 환상같은 그림자가 소일초와 주소아의 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눈처럼 흰 백발을 표표히 날리고 있는 두 사람……

하나 그들의 얼굴은 아직 이십 대,

바로 한천이기, 칠십이기재들 중 최후로 살아남은 인물들인 것이었다.

그들은 고요하며, 죽음같은 회색으로 빛나는 눈빛으로 소일초를 한 동안이나 주시했다.

[소일초……당신은 갈등해서는 아니되오……]

원천기의 말이었다.

그리고 한천녀의 말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이 땅에……이 하늘에……천지파멸의 뜻을 칠십이기재들을 대신하여 펼칠 것! 그것이 이 땅과 하늘에 만개할 때까지 당신은 우리와 뜻을 함께 해야합니다.]

소일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너희들의 뜻이지……나의 뜻은 아니다. 나는 너희들처럼 한(恨)도 깊지 않고 세상을 저주할 생각도 없다.]

[당신의 뜻이기도 합니다……당신이 정통마교주이기에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만 것입니다.]

한천녀의 말은 어떤 강력한 힘을 함축하고 있었다.

[정통마교주는 너희들이 붙인 말에 불과하지 않느냐? 한천녀, 너희들이 정통마교를 멸망시키고도 뻔뻔스럽게 그렇게 말하다니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너희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주소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역시 우리가 만든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힌 사람, 당신도 우리의 뜻을 따라야 하오.]

한천기는 강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소일초는 눈빛을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사람은 안다.

[나는 물론 소아도 너희들을 거부한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순간,

한천이기의 전신에 가는 경련이 일어났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자 했든 정통마교주는 결코 소일초와 주소아 같은 자들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들은 철저하게 천지파멸을 위한 앞잡이 정통마교주를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다.

정통마교주라면……

그들이 만든 정통마교주라면 완전히 인간의 이성을 상실한 악마의 화신이 되어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오직 그들 한천이기의 뜻에 따르는 살아있는 도구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데,

한천이기가 처음 깨어났을 때 부터 사건은 잘못 진행되고 있었다.

뜻 밖에도 두 사람의 남녀가 마장탑에 들어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혀버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벽하게 인간의 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해서 마장탑에 서려있는 마공들의 마기와 칠십이기재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마기들에 의하여 마성(魔性)에 물들지 않았는지는 자다가 깨도 모를 일이었다.

마성이 잠재해 있으리라고 까지 자위하면서 그들을 지켜봐 왔는데……

한천이기는 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 원천기가 타이르듯 말했다.

[소일초……너는 충성수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지금 까지 우리의 뜻대로 등천마세를 장악한 이상……계속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 주기 바란다. 허용되는 한도에서 너희들에게도 원하는 모든 것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충성수 따위 약물을 너무 믿는구나 원천기……]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원천기는 입을 다물었다.

한천이기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소일초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지……]

원천기의 말은 무겁게 떨어졌다.

[이제야 오랫만에 의견일치를 보는 군, 나는 마장탑에서 부터 내 비위를 건드리는 너를 죽이고 싶은 걸 참아왔다.]

소일초가 주소아를 뒤로 보내며 한 걸음 나섰다.

그의 눈빛은 오랫만에 대하는 적수로 인하여 강렬하게 타올랐다.

한천녀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군, 충성수도 충성수지만 우리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완벽하게 익혔을 뿐만 아니라, 정통마교주를 제압할 수 있는 극성무공(極性武功)인 등천마룡을 지니고 있는데……]

주소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소일초의 무공에 대해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죽는 것은 너희들이야. 직접 싸워보면 너희들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가를 알 수 있을 거야.]

[등천마룡을 능가할 수 있는 무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원천기가 냉소를 지었다.

[저 사람은 칠 세 때 이미 무림 십이 대 고수의 하나로 꼽혔어. 마장탑에서도 마교칠십이절기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지. 너희들이 무적이니 어쩌니 떠들던 그 수법들도 저 사람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어.]

주소아의 말에 한천이기가 눈이 소일초를 향했다.

그들의 눈은 사실인가를 묻는 듯 했다.

주소아가 잘라말했다.

[너희들의 무공이 당금 무림에서 십위 안에는 들겠지. 하지만 저 사람은 삼위는 차지하고도 남아!]

[나는 천하무적이다.]

원천기가 강경한 어조로 주소아의 말을 부정했다.

[무림에 상당히 어둡군, 바른대로 말하면 너희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는 헤아릴 수 도 없이 많아. 당금 무림에는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리웠던 분이 계신데 어떻게 너희 따위가 고수로 자처할 수 있을까?]

[고금제일인? 혈기자 말이냐?]

[그렇다. 그분의 무공은 추측할 수가 없다. 이미 신선이 되셔서 불사의 생명을 얻으셨다. 그리고……]

한천이기는 주소아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기로서니 신선이 되어 불사의 생명을 얻다니……

[그분 다음으로 고강하신 분은 백인장의 장주이신 도왕 소선풍 대협이시다. 그분은 무적의 도법을 연성하셨고 내공의 깊이는 측량할 수조차 없다. 수 백 년동안 최강의 세력으로 불리워진 백인장을 이끄시는 분으로 혈기대종사 외에는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분이시다.]

[…………]

[등천마교를 없애버린 고수들인 삼수마저도 그 분을 협공하고서야 겨우 동패구상을 당했을 정도였으니, 그분은 혼자서도 등천마교의 모든 힘보다 더 강하셨다고 할 수 있다.]

주소아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비록 그녀가 자기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 만을 거론할 지라도,

한천이기는 그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이 바로 저 사람이다. 먼저 말한 두 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저 사람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직접 싸워보면 실감하게 되겠지.]

[…………]

[사위부터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많은 고수들이 존재한다. 천하를 세세히 들여다보면, 너희들 정도 되는 고수들은 백 명도 더 될 것이다. 백인장에만 해도 백인도객 중 적어도 이십 명 이상은 너희들과 겨룰 수 있는 실력이 있을 거야.]

한천이기가 정말로 무림에서 백위 정도의 고수 일 리는 없다.

그리고 백인도객 중에서도 한천이기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고수가 이십 명 이상이 있을 리도 없다.

몇 명이라면 혹시 모를까?

단지 주소아가 그들을 위축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다.

믿든 말든 백위에 거론 된 후에 삼위에 거론 된 자와 싸운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일 수밖에 없다.

주소아는 자기의 조부를 당연히 제일로 꼽았고 다음으로 소선풍을 꼽았다.

그리고는 대뜸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인 소일초를 꼽은 것인데,

소일초가 진짜 삼위에 해당될지 안될지는 그녀도 모를 일이었다.

[한천이기 시작해 보자! 공부는 그만하면 됐다.]

소일초가 주소아의 말이 대충 끝난 것 같자 나섰다.

그때,

[한천이기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 잘해보라구……진정한 고수가 어떤 것인지 잘 봐두어야지 서열 백위 고수들……]

주소아가 한천이기의 기를 마지막으로 꺽는 말을 했다.

한천이기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소일초가 판 함정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소일초의 행동을 통제하겠다고 따라나선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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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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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二 章

 

          百刃莊의 다섯 刀客

 

 

 

얼마 전부터 무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 천하의 각 세력들 사이를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의 깊이는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 였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 중의 수 명은 이미 등천마세에도 잠입해 있었다.

어깨에는 비스듬히 걸린 도(刀)……

그들은 군중 속에 숨어서 등천마세의 주인이 바뀌는 대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공천의 처참한 죽음도 목격했고 미쳐버린 마금석도 보았다.

그러다 한 흑의인이 분해되어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도 보았다.

그런데……

한천이기가 무적검이라고 알려진 젊은 고수를 향해서 무심코 불렀던 이름,

그 이름이 그들을 일제히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그곳은 등천마세의 인적이 끊긴 곳, 바로 미쳐서 떠나버린 마금석의 전각이었다.

 

[틀림없이 소일초라고 불렀소. 그리고 무적검 역시 부인하지 않았소.]

여섯 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우선 나이가 맞지 않지않습니까?]

다른 한 명이 말했다.

[이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오. 비록 장주께서 우리에게 많은 재량을 주셨지만, 일단 먼저 보고하도록 합시다. ]

[좋습니다. 그럼 대정(大鼎)형께서 보고 하십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계속 그를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때는 무심히 흘려들었는데, 그 원천기란 청년이 주소아란 이름도 부른 것 같소. 바로 무적검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작은 주모님의 사질녀(師姪女)분의 이름과 같은 거요. 이건 보통 이상한 문제가 아닌 것 같소.]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소일초라는 이름은 아주 이상해서 보통사람이 지을 이름이 아닙니다.]

숙의를 거듭한 그들 중 한 사람이 빛살처럼 빠르게 등천마세를 빠져나갔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일제히 각기 다른 방향으로해서 소일초의 전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 ×

 

[한천이기의 충성수를 어떻게 상대하시겠어요?]

취풍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소일초가 대답 않고 덥석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런 그의 태도에 취풍녀가 당황하며 주소아를 보았다.

주소아는 못본 척 가만히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잠자던 취풍녀의 욕구가 손 잡힌 것 하나에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사마귀는 마금석이 미치는 것을 본 터라 소일초의 갑작스런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제기랄……! 정말이야, 너도 몸 속에 충성수를 가지고 있어.]

소일초가 투덜거렸다.

순간 취풍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얼마 전에 본 그 처참한 광경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럼……어……어떻게……하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일초는 다시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사마귀들의 손을 차례로 짚었다.

사마귀 역시 충성수를 마신 흔적이 있었다.

[이건 생각도 못했어. 그들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을 잘 이용한 거야. 멋지게 당했어.]

주소아가 말했다.

사마귀와 취풍녀는 조심스럽게 주소아와 소일초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일초는 천천히 방안을 걸어 다니며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소아! 등천마세의 모든 놈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나 아니면 구해주어야 하나?]

사마귀와 취풍녀는 의아했다.

자기들이 중독되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소일초는 등천마세 모든 사람들의 생사를 거론하는 것이다.

역시 주소아도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소아는 그의 눈을 빤히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듯 한 번 깜짝이지도 않고 있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살려주도록 하자……하지만 잘하는 지는 결정이 서지 않아……]

소일초는 주소아의 눈에서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죽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 왠지 나는 자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두려워 져. 네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그다지 좋게 생각되지는 않아……무공은 좋지만 피와 죽음은 싫어.]

주소아는 눈에 눈물을 담고 있었다.

소일초가 고개를 저었다.

[소아 너도 많이 변했어……나 역시,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문제로 고민할 우리가 아니었는데……]

[우린 많이 자랐잖아. 변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주소아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주소아……

그녀는 지금 가장 감상이 풍부할 나이에 이른 것이다.

비록 몸은 완전한 발육을 했지만, 한 조각 낙엽을 보고도 감상에 젖어들고 작은 일에도 울고 웃는 열여덟인 것이다.

이 점은 소일초 역시 마찬가지 였다.

생각이 많아지고 깊이 생각하는 일이 요즘 들어서는 부쩍 많아졌다.

동선장에서 그가 보던 책도 원대(元代)의 희곡인 고칙성의 비파기(琵琶記)였다.

그 비파기를 읽으면서 깊이 빠져 주인공의 행동과 처지 하나하나에 자신이 희비를 경험했던 것이다.

스스로 호걸로 자처하던 그 인지라 주소아에게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렀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이다.

[충성수를 해독할 수는 있는 건가?]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투귀가 참지 못하고 그들의 감상을 깨뜨렸다.

[네……간단히요. 세째 아저씨……]

주소아가 눈물을 지우며 방긋 웃었다.

와아-------!

사마귀와 추풍녀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소일초가 원천기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등천마세의 모든 인물들의 생사를 거론하자 아예 다 죽이고 함께 죽으려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털석털석------

사마귀는 의자에서 내려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죽었구나 하다가 긴장이 다 풀린 것이다.

그때,

주소아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러자면 배를 가르고 오장을 뒤집어서 깨끗한 물로 씻어야 해요.]

그말에 취풍녀와 사마귀는 넋이 나가 버렸다.

오장을 뒤집어서 물로 씻는다니……

그냥 죽인다는 이야기 아닌가?

정말인가 싶어서 모두 소일초를 바라본다.

소일초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언니! 우릴 속였군요.]

취풍녀가 자기보다 열살은 더 적은 주소아를 언니라고 부르며 달려들어 겨드랑이를 간질렀다.

사마귀는 긴박한 상황에서 깜찍스럽게 속이는 그녀가 기가 막히는지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큰아저씨한테서 배웠을 뿐이에요.]

[하하하하……]

방안가득 웃음이 흘러넘치면서 침울하던 분위기는 완전히 가셔버렸다.

 

× × ×

 

다섯 명의 신비한 도객들은 갑작스럽게 안으로 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당황했다.

지금, 무적검의 처소는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과 분노로 가득 차 있어야 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았다.

등천마세의 삼대금역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미 이곳에 운집해 있던 고수들은 한천이기의 거처로 된 등룡각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들어가서 부딪쳐 보자. 적의를 가지지 않은 이상 다른 변고는 없을 것이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왔군! 안으로 들어오시지……]

도귀가 웃음을 그치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다섯 도객들은 흠칫 놀라며 어깨에 걸린 도를 한 번 잡아본 후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무적검을 만나러 왔소.]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대표로 말했다.

소일초와 주소아 등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서로 담소하고 있었다.

단지 도귀만이 일어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무적검을 만나려는 사람이 상당히 많군, 앞서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모두 죽었다는 걸 알고 있을 지 모르겠군.]

[우리는 단지 무적검을 한 번 만나려는 뜻 밖에 다른 의도는 없소.]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이 마주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제히 소리쳤다.

[장충보(張充寶)!]

[장아저씨!]

도귀와 말하고 있던 도객은 망연히 그 두 사람을 보았다.

[조아저씨와 진아저씨,두 분 권아저씨도 오셨군요.]

주소아가 기뻐하며 달려가는 데 다섯 도객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어깨의 도를 끌러들었다.

사마귀의 안색이 확 변했다.

[백인장(百刃莊)!]

대뜸 투귀는 도망부터 치려고 했다.

백인장의 도객들의 도(刀)는 여러 가지 였으나 그 도신(刀身)에 새겨진 문장만은 동일했다.

바로 그 도를 사용한 초대 백인도객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어린도를 포함하여 백인장에는 초상이 새겨진 백자루의 도(刀)가 있고,

그 도 하나하나 마다 고유의 전래 도법이 있었다.

백인장의 수 백 명의 사람들 중에서 백인도객은 오직 백 명 뿐,

백인도객은 백인장의 자랑이고 자부심이며 모든 것이었다.

초상이 새겨진 도는 원로들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전에는 가졌겠지만 후손에게 물러주고 자기는 다른 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백인도객들을 본 사마귀는 자신들의 무공이 높다고 하지만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치려는 투귀의 덜미를 주귀가 잡아당겼다.

[우리는 백인장의 새로운 실력자를 믿으면 돼.]

그가 다른 세 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소아는 달려가다가 그들이 도를 뽑아 들자 딱 멈추어 섰다.

[우리는 당신들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고자 합니다. 가능하면 숨기지 말고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장충보가 도를 옆으로 비켜들고 신중하게 물었다.

그들은 지금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자신들의 추측이 사실로 나타나기를……

소일초가 그들의 앞으로 격동된 모습으로 다가갔다.

[장충보, 아니, 이제는 장도객이라고 불러야겠지? 오랫만이오. 신물을 보여드리겠소.]

그는 신중하게 말하며 품에서 청옥소도, 즉 패도구룡인을 꺼내어 높이 들었다.

청옥소도에서 맑은 푸른 빛이 어른 거리며 실내를 환하게 만들었다.

[오오……]

[오…………]

다섯 명의 백인도객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백인무적(百刃無敵) 수신호정(修身護正)!]

소일초가 청옥소도를 장충보의 앞에서 보였다.

[확인해 보시오.]

무릎을 꿇고 장충보가 두 손으로 받으며 말했다.

[관례에 따라 장충보가 확인합니다.]

그는 신중히 청옥소도를 살펴보았다.

과연, 아홉마리의 용이 휘감고 있는 청옥소도는 진품이었다.

정중히 두 손으로 받쳐서 소일초에게 돌려주었다.

무릎을 꿇은 채 긴장된 눈으로 장충보를 바라보던 네 도객이 일제히 외쳤다.

[조영후가 소장주님을 뵙습니다.]

[진관평이 소장주님의 무사하심을 ……]

…………

소일초는 청옥소도를 회수하여 품속에 넣었다.

그러자 다섯도객이 일어섰다.

[소장주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진관평이 일어나자마자 물었다.

[소아! 이제 인사하도록 해.]

[장아저씨, 진아저씨, 조아저씨……저는 주소아예요. 안녕하셨어요?]

다섯 명의 백인도객,

장충보, 진관평, 조영후, 그리고 권일화와 권일수 형제……

그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마지 않았다.

그리고, 소일초와 주소아는 백인장이 파양호 밑으로 숨어 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일부 선발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백인장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소선풍 도 건강을 되찾은 지 오래로 무공은 그전 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한다.

사마귀도 멋쩍게 다섯 도객들과 인사를 하고 거듭거듭 잘 부탁한다고 했다.

진관평이 색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색……]

[그냥 색귀라 부르시오.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터인데 서로 편안하게 부르도록 하시오.]

소일초가 진관평에게 말했다. 그는 이제 백인장의 도객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어 어투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백인장의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터에,

이렇게 성장한 지금도 어린애처럼 막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사마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색귀! 그래 우리 나이도 비슷한 듯하니 모두 친구처럼 지내세. 그런데, 자네 아정(阿貞)을 기억하나?]

색귀의 얼굴이 확 변했다.

어떻게 그녀를 모를 수 있는가?

백인장에 잡혀가 갇혀 있었던 것도 모두 그녀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인데……

[아직 잊지 않고 있는 모양이군, 그녀는 아직도 자네 부인이라면서 수절하고 있다네……]

색귀의 중후한 얼굴은 바닥을 향해 수그려졌다.

모두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색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둘째야! 이젠 너도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마침 그녀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하니 정착을 하려무나……]

주귀는 술을 들이켰다.

이런 남녀간의 문제는 누구도 개입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단지 색귀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진도객! 그녀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겠소?]

색귀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그럼! 용서하고 말고……자네같이 멋진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진관평이 그의 손을 잡았다.

주소아가 웃었다.

[이제는 멋지게 술이나 마셔요. 제가 솜씨를 부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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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一 章

 

         吳恭天의 허무한 죽음

 

 

 

[오공천! 여기서 멈춰라.]

원천기가 고수들을 대동하고 오는 대교주 오공천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백발을 휘날리며 수십 명의 정예고수들과 오공천을 냉냉하게 처다보았다.

오공천이 입도 열지 않고 좌우에 있는 그의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무엄한 놈!]

[감히 누구 앞에서……]

먼저 직속호위들이 몸을 날려 한천이기를 공격했다.

순간,

그들의 벌떼처럼 날아드는 몸을 보면서 한천이기는 콧웃을 쳤다.

[가소로운 것들……참된 주인을 몰라보다니……]

한천녀의 손에서 강렬한 부채살 처럼 수영들이 뻗어나오면서 그들을 뒤덮었다.

고오오오----------

[캑------캐액------]

순식간에 숨막히는 비명과 함께 한천이기를 향해 날아들든 오공천의 수하들은 몸이 짓이개 져서 죽어버렸다.

[마왕수!]

경악에 찬 오공천의 음성이 터져나왔다.

그렇다.

한천녀는 마교칠십이절기 중 하나인 마왕수를 전개한 것이었다.

소림의 칠십이절기 중 하나인 대자비수에 대적할 수 있는 잔인수(殘忍手)가 일초에 응축되어 만들어진 천하제일의 수공,

[오공천!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그럼 이것도 한 번 구경해라!]

한천녀의 희고 가녀린 주먹이 앞으로 죽 뻗어나왔다.

한데,

그녀의 그 작고 가녀린 주먹은 그 순간 세상의 모든 파괴적인 힘을 모은 듯 잔인해 보였다.

살심을 절로 일으키는 한천녀의 주먹에 오공천을 위시한 모든 고수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간 그녀의 주먹에서 폭발하듯 권영이 폭출되었다.

우우우웅-------

기이한 음향을 동반한 한천녀의 권영은 오공천을 위시한 그의 수하들에게로 몰려가고,

퍽퍽퍽퍼퍽--------

둔중한 음향과 함께 오공천의 수하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이 부서져 죽고 말았다.

오공천은 그녀 무공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녀가 쓰고 있는 무공이 자신의 것과 같은 것이라는 데 더욱 경악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어떻게 해서 마왕수와 아수라권을 알고 있소?]

[너의 주인이다.]

오공천은 그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점차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삼수의 끄나풀이었군, 잘됐어.]

그는 마교칠십이절기의 부본을 가져갔던 삼수의 부하라고 한천이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삼수 따위가 어떻게 우리를 부릴 수 있겠나 오공천, 다시 말하지만 너의 주인이다.]

[으하하하하……두 가지의 무공을 가지고 그정도로 기고만장해 하는가? 애송이들……]

오공천은 극악한 기세를 일으키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이때는 이교주 마금석도 변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달려왔다.

[못 믿는군,]

한천기가 차갑게 말했다.

[마장탑을 아는가?]

[말은 들은 적 있다. 정통마교가 만들었다는 것을……]

오공천이 자신있는 표정으로 당당히 말했다.

[우리들은 마장탑에서 나왔다.]

꽝-------

오공천과 마금석의 머리 속에서 화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마장탑의 칠십이기재 중 가장 젊고 유능했던 우리가 살아서 나왔다.]

[그……그럴 리가……마장탑에서……왔다니……]

[증거를 보여주마.]

원천기의 두손이 모아지며 손바닥을 하늘로 보였다.

순간,

그의 손에서 선명한 묵룡이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뱀인양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등천마룡(登天魔龍)!]

오공천과 마금석이 경악을 터뜨렸다.

등천마룡(登天魔龍)……

이것은 등천마교의 상징이기도 했고 등천마세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칠십이기재가 만든 최후의 무공이기도 한 것이다.

마금석은 털석 무릎을 꿇었다.

하늘로 솟구친 묵룡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원천기가 물었다.

[믿겠느냐?]

[…………]

[너희는 등천마교의 후예! 우리는 등천마교를 만든 주역이다. 조천수와 등천구마존은 우리의 수족이었을 뿐……]

마금석은 무릎을 꿇고 있었으나 오공천은 경악하면서도 굴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이미 변했소. 당신들이 만든 등천마교는 이미 멸망하고 없소.]

[그래서?]

[등천마세는 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세력이요. 나는 당신들에게 굴복하지 않겠소.]

그는 자신의 모든 공력을 모으고 있었다.

한천녀가 말했다.

[오공천, 마교칠십이절기의 몇 가지를 익혔다고 세상이 네 야심에 굴복될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무공은 그게 그거요. 한 가지라도 충실하면 모든 무공을 다 상대할 수 있는 것이오. 마치 하나의 칼로 여러 마리의 짐승을 잡을 수 있는 것 처럼……]

오공천의 이 말은 근본적으로 검마 또는 소일초의 견해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오공천! 네 무공이 강하든 말든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없다. 우리는 너의 야망을 좋아하지 않기에 이미 너를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한천녀가 차갑게 말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공천은 위축되지 않고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무공은 비록 칠십이기재인 그들에게서 나왔을 지라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그들이 자기보다 나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오공천과 한천녀 사이에 무서운 살기가 흘렀다.

그들에게서는 넘쳐나는 마기 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오직 모든 힘이 내부에 결집되어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확실히 다른 고수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등천마룡에 의해 죽는 최초의 인물로 만들어 주마!]

한천녀의 손이 허공을 향해 올라갔다.

순간,

쇄애애애----------!

오공천의 몸이 허공에서 뒤집히며 두개의 발이 풍차처럼 돌면서 한천녀의 목과 허리를 찍어왔다.

어떤 무공에도 없었던 그만의 독특한 무공이었다.

머리를 사용한 박치기 같은 것이 위력이 강한 만큼 위험도 많지만 그의 각법은 박치기보다 더 강력하고 변화가 많았으며 안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발에서 발산되는 경력은 어떤 호신강기도 다 파괴해 버릴 것이다.

진정 기이한 괴초였고 묘초였다.

이러한 수법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몇 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러서서 피할 수도 없고 솟구쳐 피할 수 도 없으며 전후좌우상하가 완벽하게 공격권에 들어간 때문이다.

하나,

상대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직접 만든 사람들 중의 일 인이며 또한 그 무공들은 물론 최후의 무공인 등천마룡을 익힌 인물이었다.

오공천의 발이 한천녀의 허리와 목에 가까이 접근한 순간에,

아주 엉뚱하게도 한천녀의 하늘을 향한 손에서 묵룡이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등 뒤에서 나왔다.

묵룡은 그녀의 몸을 감고 돌아 나오며 오공천의 수평으로 뜬 몸을 휘감아버렸다.

 

으아악----

 

모골이 송연해 지는 비명과 함께 오공천의 몸은 묵룡에 의해 산산히 흩어져 사방으로 살점과 피가 뿌려졌다.

한천녀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비록 아슬아슬하게 오공천을 해치웠지만 오공천의 경력에 의해 턱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름 값은 하는 놈이었군!]

과연……

오공천은 이름 값을 한 것이었나?

가슴에 품은 야망을 다 펼쳐보지도 못한 채, 자신이 갈고 닦았던 절세의 무공을 다 드러내 보이지도 못한 채,

등천마교의 원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한천녀를 만나서 하늘을 원망하며 죽어버렸는데……

마금석은 넋이 빠진 듯 멍청히 있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릎을 꿇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휘청휘청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신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원천기가 소리쳤다.

[마금석! 이리와라!]

마금석은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그대로 걸어갔다.

원천기가 몸을 날려 마금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반항하려는 것이냐?]

마금석은 눈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은 누구요?]

순간, 원천기가 어리둥절했다.

그가 정상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원천기는 그에게 길을 내 주었다.

이 시대의 고수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마금석 마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미쳐버린 것이다.

마금석은 천천히 햇살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일곱 명의 남녀들 중 한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취풍녀였다.

그녀의 사형이자 첫 남자였던 오공천은 한천녀의 가공할 무공에 그 재주를 다 부려보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불과 얼마 전 등룡각 밀실에서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던 그 눈도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사형이자 한 때는 잠시나마 정을 주고받기도 했던 마금석은 오공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미쳐버렸다.

어찌 오공천의 죽음만이 그 원인이 됐으랴?

소일초의 처소를 넘보다 죽음같은 치욕을 느낀 것도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

이제 저 백발의 두 남녀는 자기들의 사부인 등천구마존 마저 없애버릴 것이다.

그녀의 몸을 번갈아가면서 유린했던 그 악마들을……

그리고 새로운 악마로 등천마세를 장악할 것이다.

아니 등천마세는 이미 그들의 손에 있었다.

[한천이기에게 마교칠십이절기 외에 다른 무공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게 되었군.]

소일초가 주소아에게 하는 말이다.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 발출 될 수도 있는 묵룡은 큰아저씨의 술로 만든 청룡보다 훨씬 고명하군요.]

주소아가 주귀를 돌아보았다.

[그 묵룡은 진기가 아니야. 강기로 만들어진 것이었어. 어떤 것으로도 그처럼 거대한 강기무공을 격파할 순 없어.]

도귀가 주귀에게 말했다.

[오공천의 무공도 저 여자에게 어떤 충격을 가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 오공천의 무공은 확실히 우리보다는 위에 있었어. 나라면 그 수법을 피할 수 없었을 거야.]

주소아가 웃었다.

[호호호……큰아저씨도 청룡을 부려서 똑 같이 처치하면 되지 않았겠어요?]

주귀는 머리를 저었다.

[그 짧은 시간에 청룡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만들었다고 해도 오공천의 회오리치는 강기에 산산히 부서져 버렸을 거야.]

그가 말하는 사이에 소일초는 성큼성큼 걸어서 한천이기에게로 다가갔다.

한천이기도 소일초 등을 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축하한다. 한천이기! 마침내 진짜 주인이 등천마세를 차지했구나.]

[우리는 나서지 않는다. 소일초! 네가 등천마세를 맡아줘야겠다.]

원천기가 말했다.

사방에서 한천이기가 끌어들인 수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모두가 충성수(忠誠水)를 마시고 충성을 맹세했던 자들이지만 오늘 진정으로 한천이기의 능력을 보고 강렬히 끌려들고 있었다.

이것이 사파의 생리였다.

강한 자를 무조건 추종하고 따르는 것……

왜 강해야 하는 지 조차 따질 필요도 없고 왜 따르는지 도 생각지 않는다.

무조건 강한 것을 좋아하고 강해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강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힘은 원초적인 무림에서 가장 강력한 법이다.

도덕도 의리도 모두 힘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무림인 것이다.

[계속 너희들의 꼭두각시를 하라고? 너희들이 등천마세를 장악했으니 이젠 서로 찢어져야지.]

소일초가 원천기의 말을 거절했다.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소일초, 그리고 주소아! 너희들은 영원히 우리의 수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모양이구나.]

[이 년놈들이……! 또 기어올라? 수족인지 아닌지 한번 해보자.]

소일초가 화가 나서 기세 등등하게 원천기의 앞으로 다가갔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소일초! 이미 너희들도 우리가 만든 충성수(忠誠水)를 마셨어. 그러니 곱게 말 듣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은 거야.]

[충성수? 그게 뭔데?]

소일초가 걸음을 멈추면서 물어보았다.

[직접 보여주지……]

원천기는 아무래도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손짓을 해서 가까이 있는 그의 추종자를 한 사람 불렀다.

[너는 충성수를 마셨느냐?]

불려온 흑의인이 충성으로 가득찬 음성으로 말했다.

[네! 저의 가슴은 주인님에 대한 충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스스로도 멋지게 아첨했다고 생각했다.

[좋아, 너는 지금 죽어야 겠다.]

원천기는 잔혹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순간, 흑의인의 안색이 확 바뀌면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원천기가 가만히 있자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흑의인은 몸을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천기의 손에서 강맹한 흡입력이 생기면서 흑의인을 다시 끌어당겨 놓았다.

흑의인은 죽기도 전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원천기의 소리없는 일 장이 기척도 없이 그를 향해 뿌려졌다.

모든 사람들이 긴장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원천기의 일장에 단번에 즉사하리라 생각했던 흑의인은 가만히 눈을 감고 서있었다.

원천기는 돌아서서 소일초에게 다가왔다.

[잘보고 결정하는게 좋을 거야. 어쩌면 네 운명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이니까?]

순간,

사방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경악에 찬 외침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앗……저……저럴 수가……]

[으으……어찌……]

원천기의 소리없는 일 장을 받았던 흑의인은 원천기가 가버리자 살았구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사람들의 비명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둘래둘래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공포에찬 모습만 보일 뿐 별 다른 것이 없었다.

[무슨……악!]

말을 하면서 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기절할 듯 놀랐다.

그의 바지 속으로 가득 흘러내린 것은 바로 그의 살이 아닌가?

그의 뼈가 허물을 벗고 있었다.

[으으으으……]

놀라움에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몸은 스스히 고통도 없이 살이 녹아내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스러졌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그의 해골은 가을 해를 내리쬐이고 있었다.

모골이 송연한 장면이었다.

고통도 없이 뼈에서 살이 분리되어 죽어가는 그 모습은 어떤 것보다 더 강한 두려움을 주었다.

주소아와 취풍녀는 얼굴을 돌렸다.

원천기가 득의 하면서 말했다.

[소일초, 우리 말을 듣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

[충성수를 마신 사람은 원래는 삼개월 후에 발작하게 되지만 나의 징벌장(懲罰掌)을 만나게 되면 즉시로 발작하게 되지……]

소일초는 치를 떨며 분노했다.

[원천기! 너를 진작 죽여버렸어야 하는 건데……아무래도 너를 살려둔 것이 나의 최대의 실수가 아닌가 싶구나……하나 지금도 늦지는 않겠지……]

소일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적할 준비를 했다.

분노했던 마음은 순간적으로 평온을 되찾았으며 몸에서는 추측할 수 없는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소일초의 표정은 결연했다.

원천기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소일초, 너 역시 충성수를 마셨다. 나의 징벌장의 기운에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분리되어 죽고 말 것이다. 잊은 것은 아니겠지?]

소일초의 결전에 임한 담담한 얼굴에는 비웃음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런 충……]

바로 그 순간이었다.

[더이상 말하지 마. 그의 요구대로 들어준다고 해.]

주소아의 빠른 전음이 그의 말을 끊었다.

소일초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주소아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음으로 말하는 경우란 거의 없는 그녀는 또다시 그의 살인을 저지한다.

금릉에서 은검삼형제를 죽일 때에도 그랬는데……

그가 가만히 있자 주소아가 나섰다.

[좋다, 너희들이 정 표면에 나서길 싫어한다면 우린 이름만 빌려주기로 하겠다. 대신, 우리의 행동을 간섭하지는 마라.]

원천기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래야지……그래야 그 아름다운 몸이 녹아내리지 않지……]

순간,

짝------!

원천기가 주춤주춤 세걸음이나 물러나며 눈에 혈광을 뛰웠다.

소일초가 그의 뺨을 때린 것이었다.

어떤 수법으로 자기의 뺨을 친 것인지 그는 보지도 못했다.

소일초의 무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까지 함부로 한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 너 따위 놈이 두려워서 양보하는 줄 알면 너는 모자라는 놈이다.]

[감히……감……]

[이미 너는 내 성미를 세번 건드렸다. 첫째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마장탑에서였고, 둘째는 우리 침실에서였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나를 협박했을 뿐만 아니라 내 마누라마저 희롱하려 했다.]

그는 등을 돌리고 주소아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자기의 전각으로 걸었다.

[세 번의 양보는 끝났다. 마장탑에서의 신세도 끝났다. 다시는 양보하지 않는다.]

한천이기의 분노는 극에 달했으나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서 소일초는 그들에게 아직까지는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소일초의 옆에는 사마귀와 취풍녀가 걱정스런 듯이 가고 있었다.

그렇든 말든,

등천마세는 그 주인이 바뀌었다.

실질적인 주인인 한천이기를 중심으로 등천마세의 힘은 결집되었으며, 표면적으로 이름만을 빌려준 무적검이 대외에 등천마세의 주인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천이기가 원래의 천지파멸의 계획을 실현할 것인지 자신들의 새로운 야망을 실현할 것인 지는 소일초등 도 모를 일이다.

주소아는 왜 그들에게 계속 양보하려 하는가?

무림은 술렁이고 있다.

등천마세는 무림의 반(半)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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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 章

 

            朱小阿의 脅迫術

 

 

 

등천마세의 삼대금역 중의 한 곳,

 

등룡각(登龍閣),

 

바로 등천대교주 오공천(吳恭天)의 처소이다.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살기가 맴돌고 있는데 등룡각 안의 지하밀실에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등룡각에 이처럼 많은 고수가 결집한 예는 등천마세가 창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등천마세 전체가 이로 말미암아 술렁이고 있었다.

등룡각에서의 살기와 긴장은 등천마세 전체로 번져나가 등천마세는 살기와 긴장이 충천하고 있덨다.

등룡각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사안(事案)은 오직 한가지였다.

무적검을 이제는 공동대항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교주 오공천에게 고수들을 소집할 것을 요구했고, 오공천은 그들의 말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등천마세의 칠할을 잠식해 버린 것은 소일초가 아닌 한천이기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낯선 자에게 등천마세를 통채로 내주기 전에 대교주를 중심으로 뭉치려는 지금의 행동은 그들의 위기감이 얼마나 고조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등천구마존과 이교주 마금석, 그리고 삼교주인 취풍녀도 있었다.

바로 금포의 삼십대 사나이 앞에……

오공천이다.

등천구마존의 제자이면서도 일찌기 스승들의 경지를 훨씬 초월해 버린 기재,

등천마세는 그가 있었기에 창설될 수 있었고,

그가 있었기에 무림을 양분하는 거대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사부인 등천구마존마저 두려워 마지않는 대효웅,

이교주 마금석도 삼교주 추풍녀도 두려워하는 인물,

그는 묵묵히 사람들을 소집해 놓고 가만히 있었다.

지금 등룡각 밖에는 오공천을 추종하는 모든 세력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는 소일초에게 몰려있는 고수들이 있다.

오공천은 활동력이 왕성한 사람이 아니다.

야망은 헤아릴 수 없이 강하다.

그러나 행동의 거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지금까지 대외적인 일은 거의 모두 취풍녀가 해왔다.

그녀는 오공천의 철저한 수족이었고 종이었다.

그만큼 오공천은 무림에 드러나지 않은 신비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등천마세는 존재할 수 있었으니……

그는 오늘 등천구마존과 그의 두 사제인 마금석과 취풍녀, 그리고 사은자(四隱者)에게 소집을 요구했으나 사은자는 불참이다.

취풍녀는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명령에 의해 참석하기는 했으나 소일초의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도 무적검의 기치는 밀실 안에서 부터 더 높아가는데……

드디어 오공천의 입이 열렸다.

[나는 오공천! 두려워 마라. 그를 만나겠다.]

오공천은 말을 끝내고 일어서 밀실을 나갔다.

(대사형! 당신의 마지막 날도 멀지 않았어요. 내 일생을 파괴한 사람……)

취풍녀는 그의 뒷모습을 강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늘 이곳에 올때 죽음을 각오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소리높여 성토할 것이고,

그녀는 오공천에게 저주를 퍼푸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공천이 직접 나서겠다고 말한 이상 어느 누구도 더이상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오공천은 오공천이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은 추측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밀실에는 한 사람 두 사람 오공천의 뒤를 따라 사라지고, 야명주만이 밝게 내리 비치고 있었다.

 

× × ×

 

그들이 긴장을 하건 해장을 하건,

지금 소일초는 자신의 전각에서 술을 퍼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쪽도 자기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사마귀와 주소아도 함께 있었다.

[기가 막힌 재주야! 제자야 나에게도 제발 좀 가르쳐다오!]

주귀가 소일초에게 무엇인지 조르고 있다.

[아 글쎄, 주귀는 가르쳐 줘도 안된다니까 그러네……]

소일초는 주귀에게 막 대놓고 반말이다.

사마귀와 자기와의 사이는 거래에 의해서 성립된 관계라는 것을 철석같이 강조하는 소일초 였다.

또한 사마귀는 어쨌던 무공을 가르쳐 준 바 있으니 사부라고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소일초는 따로 사부를 모셨으니 사마귀가 사부가 된 것은 물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사마귀가 오히려 펄쩍 뛰었다.

먼저 사부가 된 사람이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서로가 제 좋은대로 부르고 있는데……

아무튼,

주귀는 소일초가 물로써 술을 만드는 것을 보고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좋다, 은혜를 모르는 박정한 놈아, 애야 그럼 네가 그르쳐 주지 않겠니?]

주소아에게 간절한 어조로 부탁한다.

주소아는 깔깔 웃었다.

[아저씨! 정말 아저씨는 배울 수 없어요.]

[너와 저 무정한 놈만 되고 왜 나는 되지 않는단 말이냐?]

주귀는 반드시 알고야 말겠다는 신념에 차있다.

주소아는 사마귀가 어쨌던 소일초와 깊은 관계가 있으니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친절하게 대하고 있었다.

투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세째 아저씨께 부탁해서 훔쳐달라고 하셔요.]

투귀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죽고싶지 않아. 그리고 내 신조도 어기고 싶지 않고……저녀석에게 뭘 훔치려 했다간 맞아 죽고 말거야. 그리고 훔치지 못하면 사람이라도 죽여야 하는 데 자신이 서지않아.]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제자야! 너는 참으로 복도 많구나. 나는 평생 이천 명이 넘는 여자들을 만났지만 네 마누라같이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다.]

색귀가 연방 주소아를 쳐다 보면서 하는 말이다.

소일초가 술잔을 놓고 색귀를 쳐다보았다.

[색귀! 난 네가 제일 맘에 걸려, 우라질 다른 놈이 그렇게 소아를 쳐다보기만 했어도 내 손에 작살났다구……]

[휴……나도 일찍 저런 여자를 만났으면 진작 정착했을 텐데……]

색귀는 혼자말 처럼 중얼거린다.

[큰아저씨, 궂이 되지도 않은 재주를 배우려고 애써지 않아도 돼요.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면 언제든지 제가 술을 드릴께요.]

[옳다! 그래야 겠다.]

주귀는 주소아의 말에 무릎을 치다가 안색이 확바뀌었다.

[안돼! 절대 안돼……]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을 대동하고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함께 가는 것이 불가하다고 하니 놀라서 쳐다 보았다.

[왜? 왜 안된다는 거야?]

[빌어먹을 둘째 녀석과 세째 녀석 때문이야.]

주귀는 색귀와 투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색귀와 투귀는 머쓱해져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못했다.

[무슨 일인데? 내가 도와주면 되잖아?]

소일초가 연거푸 물었다.

[그놈들한테 직접 물어봐! 무슨 소리가 나오나……]

[색귀! 무슨 일이야?]

색귀는 사방에서 눈총을 받고는 마지못해 입을 연다.

[한 이십 년은 됐을 거야. 소년협객 한 분이 여종을 데리고 강호에 초행을 하는 것이었어.]

[그땐 여종을 데리고 다니는 무림인도 있었어?]

소일초의 물음에 색귀는 여전히 멋적게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그런데……그 여종이 보통 미색이 아니라서 내가 그만……]

[발동이 됐구나……]

색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년협객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주귀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어떻게 돼긴, 그 여자를 후리고 도망가려다가 소년협객에게 걸렸지……]

[그럼 그 사람은 죽었겠네? 색귀 습관이 그렇잖아?]

소일초의 말에 색귀의 그 중후하고 기품있는 얼굴이 벌개졌다.

[거꾸로 죽을 뻔하고 겨우 그 여자를 데리고 살겠다는 맹세를 하고서야 용서를 받았지……]

주귀가 또 대신 말했다.

[그 사람 무공이 아주 강했었구나, 색귀가 그렇게 당하다니……]

[색귀만이 아니야……우리 모두 죽을 뻔했지……]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주귀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정말 훌륭한 협객이었지. 여종에게 이제 색귀를 따라가서 부덕(婦德)을 다해 섬기라고 한 후에 가버렸지.]

주귀가 투귀를 보면서 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 번엔 세째놈이 또 말썽을 피운 거야. 그분에게서 한 가지 물건을 슬쩍해버린 거야. 제 딴엔 복수한다고 한 짓인데 그분이 다시 화가 단단히 나서 돌아와 저놈의 멱살을 잡고 두 손목을 꺾어버렸지.]

투귀는 아무말도 못하고 머슥해져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바라보았다.

[그럼 투귀는 한동안 밥도 제 손으로 못 먹었겠네……]

[그분이 죽여버리려고 하다가 색귀 여편네가 된 그 여자를 보아서 한 번 더 용서해 주고 물건만 찾아서 떠나셨지……]

주소아가 궁금한듯 물었다.

[그 물건은 무엇이었어요?]

투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청옥소도(靑玉小刀)!]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 소년 협객이 누군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평생 그런 물건은 그때 처음 봤어. 대단한 보물이었지. 막내의 수정검우도 대단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았어.]

투귀는 자기가 훔쳤던 최고의 보물에 대해서 감회에 젖어 자랑한다.

[투귀! 정말 간도 크구나. 우리 아버지한테서 패도구룡인을 훔치다니……그건 백인장 최고의 신물인데……죽지 않은 게 이상하군……]

주귀가 탄식했다.

[그때 용서해 줄때 우린 버릇을 고쳤어야 했어…. 한데 둘째 저놈이 그 여자를 몇 달 데리고 있다가 내쳐버렸거든, 그 여자는 울면서 백인장으로 돌아가서 그 사실을 소대협께 알렸지……]

[이 나쁜 사마귀 우리 백인장을 상대로 일을 저질렀다니 속이 뒤집힐 일이구나.]

그 소년 협객은 강호 초행이었던 소선풍이었고 사마귀는 소선풍을 건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성품이 소일초와는 달리 중후한 소선풍은 백인장의 가족인 여종을 생각해서 두 번이나 그들을 용서해 주었는데 여종이 쫓겨오자 화가 날 대로 난 것이었다.

당장,

수혼도객과 무심군자를 보내 천하를 뒤지는 일이 있더라도 그들을 생포해 오라고 시켰고,

사마귀는 도망치다 도망치다 결국은 그들의 손에 포로가 되어 백인장으로 잡혀가고 말았던 것이다.

소선풍은 자신이 장주가 되고 난 후로 최초의 행동이 그들을 상대한 것이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자 대단히 화가 났던 것이다.

백인장에 잡혀온 그들을 보고 소선풍이 색귀에게 물었었다.

[다시 당신 부인을 데리고 살겠소?]

색귀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절대로 한 여자에게 매여서는 못사는 몸이니 차라리 죽겠다고 그랬다.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자 주귀가 색귀를 때려죽일 듯 했다.

[저놈이 그때 그 여자를 다시 데리고 살겠다고만 했어도 소대협께선 다시 한번 용서해 주셨을 거야.]

결국 사마귀는 정뇌의 제일 깊은 곳에 갇혀서 소일초가 탈출의 비책을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너희들과 함께 다니다간 다시 백인장에 냉큼 잡혀가고 말거야.]

[왜? 무공이 아주 강해진 것 같은데……]

소일초가 물었다.

주귀가 손을 저었다.

[우리는 예전에 있던 무공이 좀 발전하고 내공이 깊어진 것 일 뿐이야. 백인장의 그 늙은이들은 장담할 수 없어. 이긴다 하더라도 그들을 해친다면 우리를 지켰던 원로도객들이 쫓아올텐데 반드시 죽고 말거야……]

사마귀는 백인장에서 도망쳤을 때, 무림의 정보상인(情報商人)인 녹림맹의 황녹천을 찾아갔다.

황녹천은 구파일방과 모종의 관계에 있었고 어떤 정보라도 거래하는 숨겨진 장사꾼이었던 것이다.

또한 투귀는 원래 녹림에서 성장한 사람인지라 그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황녹천에게서 천산에 가서 숨으면 백인장의 고수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천산으로 갔다.

한데 뜻 밖에도 그들은 천산에서 기연을 만나 사백자(四百字)로 된 묘한 무공요결을 얻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정체되었던 그들의 무공은 급속하게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주소아가 주귀에게 말했다.

[큰아저씨, 제가 절대로 백인장에 잡혀가지 않도록 해드리겠으니 그 사백자무공요결(四百字武功要訣)을 가르쳐 주셔요.]

[그럴까? 그게 나을까?]

주귀는 그의 아우들을 바라보았다.

투귀와 색귀, 그리고 도귀까지 어서 가르쳐 줘버리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백인장에 갇혀 있어보았기 때문에 백인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수백 년을 최강으로 이어온 문파에 대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것이다.

까짓 무공 줏어 배운 것 가르쳐 줘버려도 아까울 것 없었다.

백인장에 쫓기지 않게 된다면……

주소아가 머뭇거리는 주귀에게 다시 말했다.

[앞으로 백인장에서 제일 행세할 수 있는 사람이 저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요? 가르쳐 주신다면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백사인장(百四刃莊)으로 장을 고칠 수도 있어요.]

소일초가 그녀의 엉뚱한 말에 소리쳤다.

[소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백인장이 어떻게 백사인장이 될 수 있어?]

주소아는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아무말 하지 못하게 하고는,

[그렇지 않으면 백인장의 모든 고수가 아저씨들을 쫓게 될 거예요. 이미 백인장의 고수들이 무림에 다시 나왔는지도 모르죠.]

그녀의 협박에 주귀는 어쩔 줄 모르고, 색귀와 투귀는 안달이 나는지 빨리 줘버리라고 연방 그에게 눈짓한다.

소일초가 참지 못해서 다시 말했다.

[주소아! 안그래도 무공이 강해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으면서 어쩌자는 거야? 흥! 나는 아기 못 낳는 여자와 평생 살기는 싫어!]

[바보야! 어쩌면 무공도 강해지면서 아기도 낳을 수 있는 무공일지 어떻게 알아?]

그녀는 무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호기심때문에 스스로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주 소리친다.

그때,

[술마시고 놀시간이 없어요. 빨리 대비해야 해요.]

갑자기 문을 열고 날아들어 오면서 취풍녀가 소리친다.

[무슨 일이야?]

주소아가 안그래도 화가 나있던 참이라 그녀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저……언니, 오공천이 직접 이리로 오고있어요.]

그녀는 얼마전 부터 자기보다 훨씬 어린 주소아를 꼬박꼬박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

주소아가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오공천? 대교주 오공천? 잘됐다 화나는데 내가 상대해 버리겠어. 까짓 아기야 낳든 못 낳든 저 멍청이가 저러는데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어.]

주소아가 벌떡 일어서며 달려나가려 했다.

소일초는 기겁을 했다.

[안돼! 그러면 안돼!]

소리치며 주소아를 불끈 틀어앉아 자리에 앉혔다.

[이것 못놔?]

주소아는 길길이 뛰고……

사마귀와 취풍녀는 무슨 소린가 몰라서 어리둥절한다.

무공을 익히고 싸움을 하는 데 무슨 놈의 아기가 어떻단 말인가?

[사백자요결인지 오백자요결인지 다 익혀! 익히라구, 대신 아기는 낳을 수 있어야 돼! 알았지?]

소일초가 마침내 양보를 하고,

주소아가 배시시 웃으며 사마귀가 보든 말든 그의 목을 안았다.

[알았어……맹세할 수 있어.]

사마귀와 취풍녀는 주소아의 변덕이 얼이 빠질 지경이다.

그들에게는 소일초의 앞 날도 결코 평온할 것 만 같지는 않았다.

취풍녀가 초초하게 다시 말했다.

[오공천이 오고 있단 말예요.]

[걱정할 것 없어. 오공천을 잡을 사람은 따로 있어. 우린 구경이나 하러가면 돼.]

소일초는 느긋하게 취풍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오공천은 소일초의 전각으로 오다가 두 사람을 만나서 저지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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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九 章

 

           원로원의 사마귀

 

 

 

등천마세에는 세 개의 금역이 존재한다.

첫째는 대교주인 오공천의 전각이고, 둘째는 등천마세의 원로이자 삼교주의 사부들이 머무르는 등천원로각이며,

마지막 세번째는 최근에 생긴 것으로 바로 무적검이라고 불리는 소일초의 전각이다.

이곳들은 각기 외인들의 출입이 일체 금지되는 곳으로 그곳에 함부로 접근한다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것이 된다.

바로 얼마 전에 이교주 마금석이 세번째 금역인 소일초의 전각에 접근하다가 죽을 뻔 했었다.

그 사건으로 금역들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한데 이 밤,

두 번째의 금역으로 알려진 등천원로각에 네 사람의 흑의인이 접근하고 있다.

그들은 도둑 고양이 처럼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지도 않고 보무도 당당히 등천원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등천원로각에 소속된 무사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저지하려고 했지만 어느 틈에 소리도 없이 쓰러지고 만다.

삼십여 장을 걸어서 등천원로각의 문에 들어설 때까지 그들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일정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구층으로 된 등천원로각의 문이 열렸다.

여전히 그들은 보무도 당당히 들어섰다.

넓은 공간,

사방 벽에는 등불이 밝혀져 있어 대낯처럼 환했다.

[등천구마존을 만나러 왔다.]

네 사람의 흑의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의 허리에는 큼직한 호로병이 뚜껑없이 매달려 있었다.

[간이 부었군, 여기가 어디라고……]

희끗희끗한 머리의 초로 노인이 일층에 있다가 쳐다보지도 않고 느릿하게 말한다.

[천지인음양오행마존이 그렇게 대단한가? 우리가 만나볼 수 도 없을 정도로……]

다시 호로병을 찬 흑의인이 말했다.

[우리를 알고 있는 자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

초로의 노인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사마귀(四魔鬼)!]

[그렇다. 우릴 잊지는 않았군, 토마존(土魔尊)!]

네 사람의 흑의인……

그들은 바로 사마귀였다.

제일 좌측에 있는 호로병을 찬 사람이 주귀(酒鬼)로 언제나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는 자였다.

그의 주전신공의 뛰어남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리고, 불그스레하고 중후한 얼굴의 미남자는 색귀(色鬼)로 대자비수의 명인이며,

시원시원한 풍모의 깔끔한 사람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도둑질에 뛰어나다는 투귀이고,

가장 우측에 있는 무심한 얼굴의 사람이 철저한 도박사인 도귀(賭鬼)이다.

실질적으로 사마귀중 가장 뛰어난 무공을 소유했다고 알려진 자……

그리고 전설적인 무적검객 검마의 후손……

토마존은 갑작스런 그들의 출현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때였다.

[사마귀가 무슨 일로 야심한 밤에 우릴 찾아왔는가?]

위층에서 여덟 명의 노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주귀가 호로를 집어들며 말했다.

[천마존! 오랫만이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얼굴보기가 힘 드는군.]

[무슨 일인가 주귀! 이곳은 네가 함부로 올 곳이 못되는데.]

이때 도귀가 불숙 나섰다.

[그럼 먼저 한 판 벌여서 올 곳인가 못 올 것인가를 결정할까? 이곳이 올 곳이라는데 걸겠다.]

지마존을 얼굴을 찌푸렸다.

[도귀! 함부로 말하지 마라. 지난 정리를 보아 참고 있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지마존 너야 말로 함부로 나서지 마라. 내 아우의 말이 지당하다.]

주귀가 입에 술을 가득 물고 말했다.

[우리는 오늘 너희 구마존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

[좋다. 무엇을 묻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오늘 살려서 돌려보내지는 않겠다.]

천마존이 살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으하하하하------

갑자기 사마귀가 일제히 웃었다.

그러더니 뚝 그치고 주귀가 말했다.

[구마존! 우리에게 패해서 다시는 무림에 얼굴도 내놓지 않겠다든 너희들이 제자 잘 키워 지금 행세하려는 것이냐?]

일순 구마존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제일대 등천구마존의 뒤를 잇기 위해 이곳 서천목산에서 무공을 익히고 있던 도중 모두가 사마귀에게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는 사마귀도 백인장의 정뇌로 잡혀가기 전이었고 등천마교도 멸망하기 전이었다.

주색투 삼마귀의 무공은 그들로서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지만 도귀(賭鬼)의 수정검우(水晶劍羽)만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어 힘도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최고의 치욕이었던 것인데, 오늘 다시 그 일을 떠올리게 하자 결코 사마귀를 살려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구마존이었다.

이미 그들의 마공은 그때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고 천하의 강자로 자부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때도 수정검우만 아니었어도 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구마존은 일제히 몸을 날려 사마귀를 포위했다.

투귀가 차갑게 말했다.

[구마존, 너희들의 무공은 많이 발전했다. 아마 이전의 우리라면 아주 쉽게 이길 수도 있겠지……하지만,]

[…………!]

[우리 역시 예전의 사마귀가 아니야. 한 번 싸워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

색귀가 그의 일대 정마(情魔)로서 떨쳤던 부드럽고 중후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 만 들으면 조용히 가겠다.]

천마존이 침음성을 흘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은가?]

[삼수(三手)가 숨은 곳!]

도귀가 짧게 대답했다.

천마존은 일순어이가 없는 듯 했다.

[삼수가 어디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천마존, 바른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너희들이 삼수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온 것이다.]

주귀는 입 가득히 술을 머금고 있었다.

그 술은 어떤 조화를 부릴 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인가?]

구마존은 서서히 포위를 압축시키며 물었다.

[너희들의 등천마교는 삼수에게 멸망했다지? 그리고 나중에는 삼수가 본단에 있는 비급까지 찾아서 가 버렸다고 들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들과 철천지한이 있다.]

[우리 역시 삼수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

천마존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너희 사마귀는 백인장에 원한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만에, 백인장에는 우리가 잘못해서 잡혀간 것, 백인장에는 원한이 없다. 하나……]

[……?]

[삼수는 우리 제자를 죽였다. 이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도귀(賭鬼)의 자르듯 차가운 말에 구마존이 일제히 웃었다.

[도귀, 네 무공이 아주 독보적이라는 것은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삼수는 공포의 고수다. 누구도 대적하지 못하는 천하제일인 혈기자의 제자들이고 게다가 등천마교의 절대마공들을 익혔다.]

도귀는 코웃음을 쳤다.

[삼수는 셋, 사마귀는 넷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제자의 복수를 포기하고서는 사부의 자격이 없다.]

[아주 좋은 사부인데, 제자는 어땠는지 모르겠군.]

[우리 제자를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의 무공은 오히려 우리보다 강했다. 그리고 무림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주귀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그가 누구였는가?]

천마존이 몹시 궁금한 듯 물었다.

스승보다 강한 제자는 드문 것이다.

더우기 사마귀는 대단한 고수인데, 그들보다 강하다면 필시 무림에 이름 있는 고수였으리라 생각한 때문이다.

[먼저 삼수가 어디에 있는지 부터 말해라.]

[좋다, 우리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수하들의 소식에 의하면 삼수는 뜻밖에도 정천보에 잠입해 있는 것 같다. 자세한 소식은 전하지 못한 채 모든 수하들이 죽고 말았다.]

천마존은 사마귀 역시 삼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동질감이 느껴져서 순순히 알려 준것이다.

[음……정천보. 좋아, 우리 제자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신행마동이다.]

주귀의 자랑스런 말에 구마존은 깜짝 놀랐다.

신행마동,

무림의 골치덩어리 말썽꾼이면서도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존재가 아닌가?

최강의 세력이라고 알려져 온 백인장의 귀공자,

뛰어난 무공으로 삼수와 맞섰다가 목숨을 잃은 신행마동이 사마귀의 제자였을 줄이야……

사마귀가 제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원수를 갚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익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천마존, 고마웠다. 그럼 다음에 보자.]

사마귀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했다.

[잠깐!]

천마존이 소리쳐 불렀다.

[그냥은 못 간다. 오랫동안 묶은 감정의 빛을 갚겠다.]

사마귀가 느긋하게 웃었다.

[얼마든지……]

구마존이 사마귀를 둘러싸고 천천히 원을 그렸다.

그들의 몸이 점차 가지각색의 안개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마공을 일으킨 것이다.

치직-----

칙치익----

안개가 퍼져 나가면서 닿는 것은 무엇이거나 녹아내렸다.

사마귀는 긴장된 표정으로 다가오는 안개를 바라보았다.

도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주귀가 그를 저지시켰다.

[막내는 최후의 순간에 나서라 이 것은 내가 막겠다.]

순간 그의 입에서 뭉게뭉게 구름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언젠가 소일초가 선보인바 있는 바로 그 주정이었다.

주귀는 술이 부족한 듯 급히 더 들이키고 주정을 피워올렸다.

그의 입이 다물어지는 순간 주정은 거대한 청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색빛깔의 마기에 휩싸여 있던 구마존이 흠칫했다.

거대한 청룡은 주귀의 손끝을 따라서 사마귀를 에워싸고 돌았다.

순간,

치이이익-------

청룡과 오색의 마기가 부딪치면서 강한 마찰음이 일었다.

구마존은 경악했다.

옛날 주귀의 무공은 자기들 개개인과 비슷했는데 지금은 그들 모두를 동시에 상대해 내지 않는가?

주귀의 얼굴이 붉게 변한 것이 힘든 모양이었으나,

몰려오는 마기를 청룡이 몰아치며 막아내고 있었다.

구마존은 일제히 포위를 압출하며 들어왔다.

청룡은 감옥에 갇힌 듯 몸부림치며 돌았다.

그러나 구마존의 압력을 감당할 수 없는 듯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구마존은 점점 다가서고 청룡은 줄어들어 겨우 사마귀를 보호할 수 있을 뿐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마존도 함부로 더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귀중 남은 세마귀는 아직도 손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귀의 얼굴은 벌겋게 되어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순간, 색귀의 손이 번쩍 치켜 올라갔다.

[수강(手罡)!]

고오오오-------

구마존이 경악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색귀의 손에서 장력도 수영(手影)도 아닌 검기처럼 예리한 강기가 폭출된 것이다.

구마존은 그 상태에서 맞받을 수가 없어 마기를 수축시키며 일제히 손을 뻗어 수강을 맞이했다.

카카캉------

섬짓한 소리가 들리며 구마존과 색귀가 동시에 비틀거렸다.

[……어떻게 소림의 대자비수에서 수강이 나올 수가?]

지마존이 믿을 수 없는 듯 말했다.

[이 정도가 되지 않고 서야 삼수를 찾아갈 생각이나 했겠나?]

주귀가 청룡을 회수하고 있었다.

이제 서로의 탐색전은 끝나고 본격적이 대결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그들의 용쟁호투는 구름을 부르고 바람을 일으켰다.

도귀를 제외한 삼마귀와 구마존의 접전은 팽팽하게 치닫고 있었으며……

사마귀 중 가장 강한 도귀가 버티고 있으니 구마존은 심리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사마귀의 무공은 과연 놀라웠다.

무림에 알려져 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물론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들은 더욱 능숙하고 보완되었을 뿐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주귀의 주전신공과 색귀의 대자비수, 그리고 투귀의 매화지……

그러나, 그들의 수법은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높아져 있었다.

어떤 계기로 인하여 그들의 무공이 일제히 높아 졌음에 틀림없다.

갑자기 주귀가 소리쳤다.

[잠깐!]

그 소리에 구마존과 색귀, 투귀가 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냐?]

천마존이 붉은 안개 속에서 물었다.

주귀는 도귀를 돌아보며 말했다.

[막내야. 이제 네가 상대해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도귀는 대답하고 앞으로 나섰다.

색귀와 투귀는 물러서서 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구마존은 아연 긴장했다.

드디어 가장 염려했던 놈이 나선 것이다.

예전에도 도귀의 무공은 월등했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더욱 고강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구마존은 이미 자신들이 패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방은 자기들을 단지 무공을 실험해 보기 위한 상대 정도로 밖에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때,

[사마귀! 여기 숨어있었구나.]

갑자기 등천원로각의 문을 부수듯 열면서 날아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육척에 달한 훤칠한 키,

영준한 얼굴, 백의를 입은 소일초였다.

사마귀는 물론 구마존도 어리둥절했다.

퍽------

소일초는 구마존이 일으키고 있는 오색의 마기를 그대로 뚫고서 사마귀의 앞에 내려섰다.

구마존은 그 충격에 비틀거리며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관통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니……

사마귀도 그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을 느끼면서 공력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사마귀! 볼 때마다 어디 갇혀 있다니, 꼴좋구나.]

소일초는 신나게 떠들었다.

사마귀는 어리둥절했다.

도무지 만난 적도 없는 것 같은 청년이 눈앞에 나타나 친근감을 보이며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닌가?

[제기랄……내가 얼마나 찾았다구. 등천마세에 있다면서 이제서야 얼굴을 드러내?]

주귀가 도저히 알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 나를 몰라? 정말 기가 막히는데……]

소일초는 자신이 변한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사마귀를 갉는다.

그때,

[무적검!]

천마존이 경악하며 대답했다.

그는 수하들을 통해서 소일초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마귀도 눈이 번쩍 뛰였다.

그들 역시 등천마세에 있으면서 무적검의 소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귀가 소일초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만나서 반갑소. 언젠가 한 번 만나고 싶었소.]

[도귀! 무슨 어울리지 않는 말이야. 그리고 전보다 더 강해진 것같은데……그리고 보니 주귀 색귀 투귀다 몰라볼 정도로 강해졌는걸……]

사마귀는 입을 딱 벌렸다.

자기들을 정확하게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이 무적검이란 청년을 그들은 도무지 본 적도 없는데……

그때,

[이 멍청이! 내 이럴 줄 알았어. 저래서야 뭘 믿고 시킬 수가 있어야지……]

얼굴에 면사를 가린 늘씬한 몸매의 여인이 들어오며 넋이 빠질 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한다.

갑작스런 젊은이들의 잇따른 등장에 구마존과 사마귀가 정신을 못 차리는데,

그녀는 사마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당신들이 사마귀죠?]

[그렇소? 낭자는?]

어느 틈에 색귀가 얼굴을 돌리고 말한다.

그의 독문수법이 나온 것이다.

[호호호……]

소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데 무적검이란 청년이 색귀의 귀를 확 잡아당겼다.

[저 여자는 안돼!]

색귀가 그의 손을 의식하고 피하려 했지만 마음뿐 꼼짝없이 잡혀서 얼굴이 돌려졌다.

다른 삼마귀는 그 빠른 손놀림에 멍청해져 손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가도록 해요. 제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해드리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주소아가 상냥하게 사마귀를 향해서 말했다.

구마존은 어떻게 할 지를 정하지 못한 듯 멈칫멈칫했다.

소일초는 주소아가 이미 온지라 자신의 할 일은 길을 여는 것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구마존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신들이 구마존이라고?]

[그렇다.]

[잘됐어. 이미 당신들 주인이 이곳 어딘가에 와 있을 거야. 그가 나에게 소식을 알려 주어 이렇게 왔으니까?]

구마존은 무슨 소린 지 몰랐다.

[뭘해? 빨리 나와서 길이나 열어주지 않고?]

소일초가 소리쳤지만 사방은 조용하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당신들 주인이 나오기 싫은 모양인데……]

[……?]

[하는 수 없지 그럼, 당신들이 죽든 살든 보살피지 않는 주인을 원망하라구……]

천마존이 분노했다.

[미친 놈!]

소일초가 그를 바로 쳐다보았다.

[길을 열지 않으면 내가 저승길을 보여주겠다.]

순간, 주귀가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 말 한 번 좋구나.]

구마존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며 오색 마기가 더욱 짙어졌다.

[뭘 해! 빨리 가자.]

주소아가 독촉했다.

그러자, 소일초의 오른손이 앞으로 숙 뻗어졌다.

그의 몸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둔중한 마황검이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붉은 빛이 빛살처럼 퍼저나가며 마황검이 일 만개로 분리되는 듯 했다.

쇄애애액--------

[흐으윽……]

구마존의 몸에서 흘러나와 구름띠처럼 사마귀와 소일초를 애워싸고 있던 오색마기가 가닥가닥 잘리면서 흩어져 버렸다.

[사마귀 가자.]

하고 소리치며 구마존의 사이를 성큼 걸어나가는 소일초의 손에는 벌써 마황검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사마귀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그를 따라 갔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군……]

구마존은 지나가는 그들을 보기만 할 뿐 더이상 손을 쓰지 못했다.

자기들을 발가락 사이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소일초의 엄청난 무공에 완전히 질려버린 것이다.

천마존이 탄식을 했다.

[내일은 오공천에게 가봐야겠군……]

그것은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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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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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八 章

 

       憂愁를 깨뜨리는 毒蟲

 

 

 

등천마세,

가을을 맞은 등천마세는 이미 지난 여름의 등천마세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기적(時期的)으로는 소일초가 주소아를 안고 취풍녀와 함께 들어왔을 때부터이며,

내부적으로는 그들에게 몰래 묻어온 한천이기(恨天二奇)의 공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는 취풍녀가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소일초에게로 많은 고수들이 모여들어,

그는 등천마교 내의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삼교주인 취풍녀가 복종하는 소일초, 속을 알 수 없는 등천마세의 인물들은 그를 전혀 진정으로 무서운 인물로 생각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대교주 마저 밀고 일어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등천마세의 이교주 역시 나름대로 소일초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채 그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이란 그의 제거를 위한 움직임 일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소일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소아와 더불어 술마시고 놀며 온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데 타인에 의해 그의 주변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등천마세를 장악하는 것은 한천이기의 뜻이고,

등천마세를 이용하려는 것은 주소아의 뜻이다.

소일초의 뜻은 묵묵히 힘을 기르면서 모든 사실이 분명해질 때를 기다리고 싶은 것인데……

주변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사마귀는 아직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데……

 

× × ×

 

무적검(無敵劍),

이것이 현재의 소일초였다.

낙엽이 지는 정원의 나무 밑에서 침울한 시선으로 서천목산의 봉우리들을 올려보고 있다.

바람이 불때마다 낙엽의 그의 몸으로 떨어지며 날리는 데……

무딘 그의 감정은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 지고 있었다.

어딘가에 계실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부쩍 보고 싶어진 것이다.

주소아가 옆에 있으니 그가 신경쓰야 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취풍녀도 주소아에게 어떻게 혼이 났는지 소일초 앞에서는 전과는 달리 아주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게 대할 뿐 전과 같은 요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지내는 한천이기는 때때로 자신의 전각에서 머물고 가고,

버젓이 드러내 놓고 주소아와 소일초가 사용하는 침상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

그들도 아무튼 조금 사람같아지기는 했는데……

소일초는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그의 신분으로는 전처럼 아무에게나 시비걸고 장난친다는 것도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일 인 것이다.

도박을 하려가도 다른 놈들이 슬금슬금 피해버리고 상대를 해주지 않고,

술마시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주된 생활은 당연히 주소아와 더불은 그것이고……

소일초는 병이라도 날 것만 같다.

침울하게 일어서서 낙엽을 밟으며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온다.

그때,

윙윙윙--------

우웅웅--------

공기를 진동시키며 들려오는 소리에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잘게 흔들리고 입들이 떨어졌다.

소일초의 검미가 보일 듯 말 듯 꿈틀거렸다.

(또 뭐야? 가만 있는 날 죽이려는 놈들이 왜 이리 많아……나쁜 년놈 한천이기……나쁜 놈들……날죽이려는 것들……)

심심하면 찾아오는 자객(刺客),

이제는 귀찮을 지경이다.

지금,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려고 하는데 까마득히 하늘의 한자락을 뒤덮으며 무엇인가가 그를 향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맙소사! 저게뭐야? 이젠 별 수단 다쓰는 구나.)

구름처럼 몰려오는 것, 그것은 바로 메뚜기 비슷하기도 하고 여치같기도 한 것들로 그가 남만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독충이 아닌가?

그에게 독은 통할 리 없지만 그것들은 눈앞을 가리고 무리를 지어 행동하기 때문에 얼마나 성가신 것인 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들에 이미 오래 전에 질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독충 떼는 몰려오고

소일초는 냅다 도망쳤다.

죽여도 끝을 보기 힘들고 냄새는 또 얼마나 역겨운가?

그저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독충떼는 낙엽이고 나무가지고 스치는 순간에 앙상하게 만들어 버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일초를 알아보기라도 하듯 그것들은 소일초를 따라오는데……

소일초는 그의 전각을 향하여 날아가다가 딱 멈추어섰다.

(이렇게 되면 내 방이란 침대랑 모두 엉망이되고 말잖아. 저놈들은 어쩌면 전각까지 허물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멈추어 서는 바람에 독충들은 그에게 더욱 가까와 졌다.

더 생각 할 것도 없이 방향을 틀어 무작정 달렸다.

흰그림자를 그리면서 그의 몸은 무수한 전각들 사이로 달려갔다.

 

윙윙윙------

 

그의 뒤를 따라서 독충들이 날고……

등천마세는 발칵 뒤집혔다.

 

독충이다----

누군가 독충을 풀었다-----

 

비명과 함께 고함이 터져 나오고 소일초가 지나가는 전각마다 죽어자빠지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 가지각색이었다.

용감한 사람은 장력을 내치며 불로써 독충을 물리치려고 했고,

그 많은 독충떼에 질려서 대부분이 독충의 행로를 벗어나 도망치고 있었다.

문득,

소일초는 도망치면서 내심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그동안 너무 지겨웠는데 신나게 달리면서 법석을 떠니까 힘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우울한 마음도 갑갑함도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는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나 대교주와 이교주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을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수족이 아닌 그들인데 봐줄 것 없는 것이다.

(나쁜 놈들 잘 죽어봐라……날 죽이려다 등천마세 다 태울 것이다.낄낄낄……)

사방에서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그는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앞에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멈춰라! 이곳으로 오지마라.오……오……오지……]

소일초가 무시하고 달려들자 흑의인은 말을 하다말고 냅다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독충들을 오지 말라는 말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 흑의인이 도망치자 나머지도 덩달아 도망쳤다.

소일초는 독충들을 조금 앞서서 이끌고 달리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흑의인들은 미친 듯이 도망치지만 여전히 소일초는 자기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다.

[흩어져라, 흩어져.]

한 사람이 외치자 그제서야 방향을 달리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일초는 소리친 흑의인의 뒤를 끊질기게 쫓았다.

도망치는 흑의인은 미칠 지경이었다.

[왜 나를 쫓아 오시오? 다른 사람들도 많은 데……]

아무 대답없이 그의 뒤를 쫓기만 하자 다시 소리친다.

[오해가 있는 가 본데, 독충은 내가 풀은 것이 아니오.]

[…………]

[정말이요. 오독교(五毒敎)의 오독존자(五毒尊者)가 풀었소.]

[남만의 오독교 말인가?]

[그렇소. 빨리 그에게 가보시오. 그는 외당(外堂)에 있을 것이오.]

흑의인은 그를 떨쳐버리기 위해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대교주 휘하의 호위중의 하나요.]

[그럼 이 번에는 대교주의 수단이었군.]

소일초가 여전히 그를 바싹 쫓아가며 말하자,

[나는 말할 수 없소. 나는 그런 말 한 적은 없소.]

그는 말하면서 계속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소일초는 방향을 바꾸어 외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오독존자 이놈 당장 나와라.]

그는 외당으로 뛰어 들면서 소리쳤다.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곳으로 간다. 피해라……]

다른 사람들이 소일초의 행로를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외당에서 키가 자그마한 노인 하나가 뛰쳐나오더니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었다.

소일초는 그가 오독존자라고 생각하고 고함을 쳤다.

[이놈! 내가 너를 건드리지 않았는데 네가 나를 건드려?]

대꾸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오독존자,

소일초는 순식간에 그의 뒤를 따라잡았다.

한데,

오독존자의 앞에 언제 왔는지 까맣게 독충들이 모여 있었다.

[으왓! 속았구나.]

오독존자는 원을 그리며 도망쳐 독충들의 꼬리부분에 당도한 것이다.

오독존자의 꾀임에 빠져 그는 앞뒤로 독충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으하하하하-------]

오독존자는 득의만만하게 웃으며 작은 깃발을 움직여 그를 완전히 포위해 버렸다.

비릿한 독충의 냄새가 소일초에게 밀려왔다.

그 뒤를 독충들이 새까맣게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순간,

소일초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독충들 사이를 뚫고 오독존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끅……]

단숨에 그의 목을 꺽어버리며 깃발을 빼앗고 독충들에게 던져 버렸다.

 

오독존자는 자기가 키운 독충들에 의해 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정말 자기 한 몸 팔아서 독충 배 불린 것인데……

소일초는 깃발을 아무렇게나 휘둘러 독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깃발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수습할 수 있는지 몰랐다.

흔드는 것을 그만 두면 또다시 자기를 향해 달려 들테고……

마침내, 오독존자가 나왔던 전각 안으로 달려가 독충들을 들어오게 했다.

순식간에 전각안은 독충들로 꽉 차는 데……

소일초는 밖으로 빠져 나오면서 문을 닫고 전각에 불을 붙여버렸다.

더러 빠져 나오는 놈도 있었으나 몇 마리에 불과해서 힘을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메뚜기 꿉는 냄새를 내면서 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곤충들은 원래 불 가까이도 못가는 것이니 크지 않은 불과 연기에도 몽땅 죽어버린 것이다.

 

× × ×

 

소일초는 오래간만에 침상에 뒹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저녁 무릅에 신나게 달리고 소동피우고 거기에 불까지 질러 불구경했으니 속이 후련하고 통쾌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눈은 여럿 있었다.

바로 주소아와 한천이기 였다.

[당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불만이 적지 않소. 왜 그들까지 괴롭혔소?]

원천기가 말했다.

[누가 나를 따른다는 건가? 나를 따르는 건 불과 두 사람 뿐일텐데……그리고 지금 자네가 나에게 따지는 것인가? 많이 컸다 원천기.]

[…………]

[전에는 그래도 정통마교주니 뭐니 꼬박꼬박 붙이더니 요즘은 아예 당신이라 부르며 따지기 까지 하는 구나.]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무 핍박하지 마시오. 당신은 어차피 우리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안배에 따랐으니 우리의 뜻을 따라야 하오.]

원천기가 차갑게 말했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옆으로 다가서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원천기! 뚝하면 칠십이기재들의 뜻 이니 천지파멸의 저주니 하는데, 솔직히 네 마음에는 오히려 무림에 대한 욕망이 들끓고 있지 않느냐?]

한천녀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야망을 가지만 안된다는 말이냐?]

소일초가 얼굴을 굳히고 일어나 앉았다.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절대로 내위에 군림하려 하지 마라. 지금 내가 너희들의 뜻대로 여기에 있는 것은 나에게도 그럴 필요가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신하는 군!]

원천기가 말했다.

그들의 사이에 살기가 감돌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때 주소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한천이기! 한 번은 양보해 주마. 그렇지만 다음에 우리가 받을 것은 양보가 아닌 너희들의 목이다.]

한천이기는 어디론가 나가버렸고 소일초가 불만스러운 듯 주소아에게 말했다.

[왜 물러섰어? 그들이 대단하기는 해도 전력을 다한다면 나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그냥……이 번 만은 그러고 싶었어. 그리고 아무래도 며칠 내에 등천마세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아. 그들이 더욱 날뛰는 것으로 봐도 틀림없을 거야.]

[뭔 기미가 보여?]

[이미 전쟁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야. 취풍녀에게도 단단히 일러둬. 대교주와 대항할 때가 다 되었다고……]

소일초는 침상에 벌렁 누웠다.

[난 내키지 않아. 대교주보다 더 무서운 놈들에게 등천마세를 넘겨주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주소아가 그의 귀에 입을 대었다.

[다 계획이 있어. 조금만 기다려봐.]

 

× × ×

 

소일초의 전각을 멀리서 주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일신에 백의를 걸치고 있었다.

등에는 한 자루의 장검이 걸려있고 몸에는 달인 인양 조용한 기도를 뿌리고 있다.

바로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었다.

이때 그는 허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사형이 오독존자를 동원하고도 대실패를 하고 말았다. 오히려 수많은 수하들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는 가볍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어째서……그는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까지도 그런 방법으로 죽거나 다치게 했을까? 불안하다. 대체 이 불안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단 말인가? 무적검인가? 그가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고 있단 말인가?]

그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문득 낙엽을 밟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그 낙엽에 소일초의 우울하던 모습이 진하게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는 다시 독백하듯 중얼거린다.

[하나……이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이 되든……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미 그의 세력은 강대하다. 그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등천마세는 물론 천하도 장악할 수 있다.]

천하……

그렇다.

이 사나이 또한 그 무공 만큼이나 야망또한 강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등천마세의 이교주이므로……

[무적검……반드시 너를 내 아래에 두리라……비록 네가 강하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수수수……

낙엽은 어둠 속에서 짙붉은 빛을 뿌리며 떨어져 내리고……

마금석 눈 역시 야망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너를 굴복시키는 것이……등천마세를 장악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면……어떤 수단이라도……]

순간,

그는 주위에 감도는 진한 살기를 느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최소한 열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가공한 살기……

그것은 마금석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음……엄청나다. 이 정도의 살기를 뿜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등천마세의 인물가운데서도 사십위 이내의 무공을 지닌 인물들……)

마금석의 눈빛이 어둡게 변했다.

(무적검……그가 벌써 이 정도의 인물을 포섭했단 말인가?)

소일초가 언제 고수를 포섭할 생각이나 했던가?

단지 한천이기가 보내온 인물들일 뿐이지……

하나 어쨌든, 그에게 살기를 뿜어내는 인물들은 단지 열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 수록 잠시간에 그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상대들에 대해 새삼 경각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분명히 등천마세의 인물들이다.

아니, 어쩌면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휘하에서 고개를 조아리던 인물일런지도 모른다.

살기는 점점 진해진다.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다가는 그들은 급기야는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마금석의 얼굴에 경악과 분노가 넘치고 있었다.

언제 이런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

몸에서 폭풍같은 신형검기를 일으켰다.

(이대로 걸음을 돌릴 수는 없다. 무적검, 그 자에게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베어야 한다.)

그렇다.

그가 이런 모욕을 받고도 참는다면 등천마교내에서 어떤 소문이 나돌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죽음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어두운 하늘을 주시했다.

검을 펼치기 전에 기를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순간,

[사형! 그냥 가세요.]

소리……

영혼을 촉촉히 적시는 여인의 음성이 있었다.

한때는 그가 수시로 몸을 탐하기도 했던 여인,

바로 그의 사매인 취풍녀의 음성이었다.

순간,

환상이었듯이 사라져 버리는 살기, 순식간에 마금석을 감싸고 있던 그 무서운 살기가 걷혀져 버린 것이다.

어둠의 한 편에서 취풍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감도는 죽음보다 정막한 정적……

마금석의 눈에 진한 패배의 그늘이 드리워 졌다.

취풍녀는 손을 저어 어둠속에 있는 인물들을 흩어버렸다.

[사형! 내 행복을 깨려고 하지 말아요.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내 사랑 내 행복을 지킬 준비가 되어있어요.]

마금석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취풍녀는 옛날의 취풍녀가 아니었고 등천마세는 옛날의 등천마세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두려워졌다.

야망은 아득히 멀어지고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소일초도 멀리있었다.

사형이 범하기 전에는 그도 진정으로 취풍녀를 사랑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은 몰라도 몸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그녀마저 꿈결처럼 날아가버렸다.

마금석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순간에 그는 노인이 되어버린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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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七 章

 

         忠誠水

 

 

 

파양호 물밑에 있는 어떤 섬,

위에는 잎이 상해버린 무수한 수목이 귀신처럼 흐물거리고 숲 안쪽에는 회색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석조건물이 있다.

수초들이 그 거대한 석조건물을 뒤덮고 있고,

물고기떼가 숲사이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석조건물의 안에서도 헤엄치고 있었다.

누가 물밑에 이런 건물을 세워놓았나?

마치 고대의 유적지를 보는 듯한 이곳,

불과 몇 년 전까진 파양호위에 유유히 떠있던 섬이었다.

바로,

수백 년의 세월을 최강의 문파로 이어온 백인장의 고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처량하게 물밑에 가라앉아 수초를 몸에 감고 있는 거대한 석조건물,

어이해 이곳에 가라앉아 버렸나?

한때 소선풍이 회복하기 위해서 몸을 눕혔던 곳도 이제는 물고기떼의 보금자리가 되어버렸는데……

가라앉은 부주(浮舟)의 석조건물 밑에는 또다른 공간이 있다.

거대한 광장이 있고 무수한 방들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사라진 백인장의 모든 가족들, 그리고 청옥검궁의 핵심요인들이었다.

어느 화려한 방안,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주! 이제 우리의 힘은 예전에 못지않게 회복되었소. 하늘을 향해 도(刀)를 높이 치켜들고 소장주와 먼저간 원로들의 복수를 할 때가 왔소이다.]

소리 높여 말하는 이 사람,

절정의 도객답지 않게 지혜로 충만하여 고요로운 눈빛을 가졌던 제일원로 동평선생(東平先生)이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성격마저 변해버렸는가?

그의 음성에는 조급함이 배어있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무림에 나가 삼수(三手)의 흔적마저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주용의 검에 찔려 죽을 뻔 했던 수혼도객 역시 이대봉공의 자격으로 재청하고 나온다.

그러나,

상석에 앉아 묵묵히 듣기만하고 있는 도왕 소선풍은 이 번에 그의 작은 부인인 조예진을 바라본다.

조예진은 다시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이주용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제 의견은 간단해요. 우리가 모두 죽는다고 해도 원수는 갚아야 한다고요. 하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급하지 않아요. 모든 결정을 당신과 언니, 그리고 여러 원로들에게 맡기고 단지 따르기만 하겠어요.]

이주용이 소선풍의 눈을 바로 보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제히 나가도록 해요. 우리 태봉(소일초의 어릴때 이름)이 원수를 갚아야죠.]

표정을 굳히고 원로들을 쭉 돌아본다.

[원로들께서도 저와 생각을 같이 하시겠지요?]

그녀의 말은 강요에 가깝다.

백인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전에는 소일초였고 지금은 화해하고 돌아와 있는 이주용이다.

이 모자(母子)는 사람괴롭히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인 것이다.

백인장에서 큰 마님인 이주용에게 잘못보이면 편한 세월은 다간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잔소리 쟁이 원로들도 그녀 앞에서는 항상 찔끔한다.

무슨 수단으로 자기들을 괴롭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원로들 역시 대부분이 밖으로 나가자는 데 찬성이지만 이주용의 눈길을 받고 의견을 낼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당연히 그렇소이다.]

제일원로인 동평선생은 그들을 보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밤낮 눈총만 받으면 아첨부터 하고보는 못난 녀석들……)

그는 먼저 의견을 냈기 때문에 눈총받지 않아서 그럴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때, 소선풍이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말은 강요지 어떻게 의견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소? 그만 두시오.]

[그럼 대체 당신 생각은 어떻단 말이에요? 삼수에게 한 번 당하고 나니까 겁이라도 생겼어요?]

그녀는 발끈하는 성미를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소선풍에게 달려든다.

원로들은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하고……

동평선생은 다시 중얼거린다.

(저 못된 성미……그저 성질대로라면……저러니까 쫓겨나고 법썩을 떨었지……그저 작은 주모 반 만돼라……)

소선풍이 이주용을 진정시키면서 무심군자에게 말한다.

[좌봉공, 우리가 계획했던 것이 몇 년 이었소?]

[오 년 입니다.]

[지금은 몇 년이 되었소?]

[불과 삼 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무심군자는 그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는 듯 차분하게 말해준다.

[좌봉공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다고 생각하시오?]

[먼저 장주께서 일어나셨으니 천하에 우리가 이기지 못할 세력은 없을 것이며 원로들께서 몇 분 남지 않으셨지만 원체 고강하신 분들이니 말할 것 없으며……]

무심군자의 차분한 말에 원로들이 미소를 지었다.

[주력인 백인도객 중에서도 절정에 도달한 인물들이 다수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백 십여 명에 불과 하지만 천군만마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주용이 다시 소리쳤다.

[그것 봐요. 지금도 얼마든지 된다잖아요.]

소선풍이 벌떡 일어섰다.

[그 정도의 힘은 언제든지 있어왔다.]

그의 큰 목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당신은 우리 백인장이 어떻게 해서 소수의 사람들로도 수 백년을 무림의 최강세력으로 존재해 올 수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다.]

[…………!]

이주용은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 그와 같은 일은 있기 어려운 것이었음에도 백인장은 신화를 이룩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백인장의 장주로서 수백 명의 식구들을 이끌어가는 가장(家長)이다. 백인장의 식구 어느 누구고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수백년을 함께 내려온 형제요 피붙이나 다름없다.]

[…………!]

[한데도 나는 삼 년 전, 내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 사람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여 치정에 따른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조예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원로십팔도객이 아무도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눈물로서 그들을 보냈다. 그때 생명을 잃은 그들은 나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인해 죽은 것이다.]

일곱명의 원로도객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장주, 당치않은 말씀이외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선단 말입니까?]

소선풍은 머리를 저었다.

[다행히 열 한 분의 살신성인으로 인하여 나머지 분들이나마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음에 대해 나는 하늘에 감사했소이다.]

소선풍은 이주용을 바로 응시했다.

[당신에게 우리 백인장의 힘이 수백년 동안 조금도 위축되는 법이 없이 보전될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해 주겠소.]

[…………!]

[백인장주는 절대로 백인장의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소. 그들을 죽을 장소로 보내는 일은 없었소. 장주는 오히려 그들을 위험으로 부터 보호해 왔소.]

원로들과 봉공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는 자기를 위하여 그들을 부리지 않았소. 그것이 우리 백인장이 수 백 년을 최강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요. 희생시키지 않기에 힘은 강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오. 강요하지 않기에 그들은 따르는 것이오.]

[…………!]

소선풍은 고개를 숙였다.

[한데……삼 년 전 그때 나는 수 백 년을 내려온 장주의 율법을 어기게 되었소.]

[장주……]

원로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로 인해서 백인장의 세력은 크게 줄게 되었으며 나는 이렇듯 잠적을 감행하게 된 것이오.]

소선풍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의 나는, 장담하건데 삼수(三手)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그들을 다 감당할 수 있소. 하나,]

[…………]

[그들의 세력으로 인해서 우리 백인장의 식구들 중에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오. 그들의 수하들은 삼 년 전에도 수 만을 헤아렸소. 우리 백 여 사람들 중에는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오.]

[…………]

[나에게는 장주로서 그들을 죽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가족이라도 더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소.]

그의 어조는 아주 단호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머리에 관을 쓴 금포노인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나라도 내보내 주게.]

그는 소선풍의 장인이자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그를 맞았다.

[갑갑해서 더는 이 안에서 못 살겠네, 나는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까 지금 나가서 죽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소선풍도 선뜻 결정을 못내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조예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우리가 직접 삼수와 부딪치지는 않더라도 강호로 나가서 활동해야 할 필요는 있지 않겠어요?]

그 말에 이극송이 껄껄웃었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걸세, 자네는 잘 생각해야 하네,]

[…………]

[내 성미도 자네 큰 마누라처럼 급하고 못된 데가 있다네. 만약 나가지 못하게 하면 이 부주를 깨뜨려 버릴 지도 몰라.]

그의 말에는 소선풍이 입이 막혀버렸다.

이렇게 하여,

백인장의 숨어있던 고수들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주력은 여전히 숨어있지만 일부나마 활동하게 된 것이다.

삼수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 × ×

 

분주히 돌아다니며 공작을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파양호에서 수 천리 떨어진 서천목산에 있었다.

바로 한천이기이다.

지금 그들은 한 명의 흑의노인과 한 명의 흑의청년을 보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지금 묘한 자세로 앉아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단검의 끝을 서로 맞대고는 다른 손은 뒤로 돌려 버린 다음에 한 손으로 단검을 밀고 있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조금이라도 상대방 단검의 끝에서 자기의 단검이 벗어날 경우 자기도 죽고 상대방도 죽는 것이다.

전력을 다해 밀고 있는 것이기에 검은 그대로 서로의 가슴을 꿰뚫어 버릴 것이다.

원천기가 그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두 사람의 뇌호혈에 올려놓았다.

[등천마세의 주인은 누구인가?]

[…………!]

[말하지 않으면……]

원천기는 두 사람의 몸을 흔들었다.

노인과 청년은 급히 검을 흔들리지 않게 조정하면서 땀을 흘렸다.

[등천마세의 주인은? 답하지 않으면 다시 흔들겠다.]

그가 다시 흔들려고 하자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대교주인데 무슨 소리야!]

화가 나서 말을 내뱉는 순간 기가 흩어지면서 그의 단검이 뒤로 밀렸다.

원천기는 이 번에는 청년의 몸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청년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듯 했다.

[바로 당신이란 말인가?]

이번에는 그의 검이 뒤로 밀리고,

원천기는 자기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노인의 몸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다급해진 노인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래 원천기다 원천기]

청년은 원천기가 자기의 몸을 흔들기도 전에 말했다.

[원천기, 원천기!]

원천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이 인정했으니 내가 어떻게 하든 내 말을 듣겠지? 그럼 당신들은 충성수(忠誠水)를 마시도록.]

그는 말을 하면서 그들의 뇌호혈에서 손을 떼고 품에서 작은 옥병을 꺼냈다.

순간,

청년과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쉭----!

쇄액---!

서로를 겨누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이 옆에서 옥병을 꺼내는 원천기의 목과 가슴을 노리고 찔러들어갔다.

근접한 거리, 빠른 공격, 예상키 어려운 상황, 기습이었다.

그러나……

원천기의 왼손이 환상처럼 움직이며 두 개의 단검을 소매로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의 발이 그들의 명치를 제각기 가격하자 그들의 입이 순간적으로 벌어지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원천기가 우수에 들었던 옥병의 충성수를 부어넣었다.

[헉!]

[윽!]

놀라는 사이에 이미 비명과 함께 충성수는 그들의 목으로 넘어가 버렸다.

짝짝……

원천기는 손을 털었다.

충성수가 목으로 넘어간 이상 일은 다 끝난 것이다.

두 사람은 무조건 그의 명령에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 달 후에는 전신이 살점이 떨어져 내려 뼈만 남은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이다.

물론 해약을 먹으면 괜찮겠지만……

원천기는 그들에게 무적검에게 복종할 것을 지시했다.

그들은 등천마세에서 서열 이십위 내에 드는 고수들이었지만 원천기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충성수……

이는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일종의 독약이다.

보통 물과 똑같이 보이고 맛도 같지만 삼 개월에 한 번씩 해약을 먹지 않으면 전신의 살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이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이미 무수한 등천마교의 고수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충성수를 마시게 했다.

그 만큼, 소일초의 밑으로 모여드는 사람의 수는 많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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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六 章

 

         登天魔勢에 들어가다.

 

 

 

등천마세------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천하의 이대세력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명성과 세력에도 불구하고 그 본거지가 알려지지 않은 신룡과 같은 단체,

이것은 뜻밖에도 절강성 서천목산(西天目山)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등천마세……

무림에 나타난 지 일년 만에 사마무림을 통일하고 천하를 양분한 초유의 잠재력을 지닌 그들……

지난 이년을 피로써 보낸 공포의 단체,그런 등천마세는 오늘 별난 손님을 맞고 있었다.

무적검이라는 이름을 지닌 덥수룩한 청년,

이 등천마세의 삼교주(三敎主)인 취풍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로 그의 정인이라 한다.

그리고,

그는 대교주의 친위처형대(親衛處刑隊)인 은검삼형제의 팔을 자른 인물로 등천마세에 새로운 강자의 한 사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처형을 명한 대교주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섰다고 했다.

이는 등천마세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림은 강자들의 땅, 특히 사마무림은 더욱 그러한 것……

등천마세 역시 강한 자가 쥐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등천마세의 많은 인물들이 오늘 찾아온 무적검이란 청년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 × ×

 

소일초,

그는 아주 천천히 청석 이루어진 길을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왼팔에는 귀여운 여아가 안겨져 있다.

이곳은 등천마세의 핵심부로 이르는 길……

그는 이미 취풍녀가 내준 한 채의 전각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전각에 이르기 까지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낯선 그에게 살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 무적검이란 청년고수가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등천마세로 들어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수한 전각들, 그리고 사람들, 등천마세는 과연 사마무림의 종주였다.

소일초가 대리고 있는 여아는 물론 역근천골공으로 몸을 줄여버린 주소아다.

주어진 전각에 들어가 탁자에 앉았다.

주소아가 맞은 편의 의자 앞으로 다가서더니 몸이 스르르 커졌다.

[엇, 옷 터져!]

소일초의 놀람에도 그녀는 생글거리며 그대로 역근천골공을 풀어버렸다.

그러나 소일초의 염려와는 달리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 걸치고 있던 작은 여아의 옷은 두겹으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몸이 커져버린 지금 두 겹의 옷은 한 겹의 크고 넓은 옷으로 변해 역시 그녀에게 꼭 맞았다.

소일초가 감탄을 발했다.

[감쪽같다. 아무도 조금전의 꼬마로 볼 수 없겠어.]

[이래야 아무데서고 몸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그때 금릉에서 네가 잘 때 잠한 숨 안자고 내 옷을 줄이고 겹쳐서 만들었던 거야.]

주소아가 말했다.

[그들도 어딘가에 들어와 있겠지?]

[그렇겠지. 그들은 이곳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소일초가 말한다.

[언제까지 그들이 하는 짓을 보고만 있어야 해?]

[아니, 그들이 이곳을 장악할 때 까지만, 그리고 이들 역시 삼수와는 철천지한이 있으니까 삼수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모르겠다. 나는 그저 소아가 시키는 대로만 하지. 도무지 귀찮아.]

주소아가 찻주전자를 흔들어보이며 말한다.

[우리 술이나 마실까?]

[좋아, 등천마세에 입성한 기념이다.]

주소아가 찻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러나, 부어지는 것은 향기로운 술이었다.

바로 백송균화의 신통력인 것이다.

이때,

취풍녀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당신, 이곳이 마음에 들어요?]

[괜찮아.]

취풍녀는 소일초의 옆으로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꼬마를 놓고 대작을 하다니 처량해 보이는 군요.]

[나에겐 가장 좋은 술상대야.]

소일초는 그녀에게 덤덤하게 말하며 주소아에게 술을 따라 준다.

취풍녀가 들어서는 순간에 다시 어린 여자아이로 변해버린 주소아는 취풍녀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술을 홀짝들이킨다.

[전에 마셔본 그 술이군요. 아주 좋아요.]

취풍녀는 술향기를 맡아보고 단번에 알아챈다.

그리고 주저않고 한 잔 마신 후 소일초에게 몽롱한 시선을 보내며 말한다.

[이곳에서 삼교주 다음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군지 아셔요?]

[……?]

[바로 사은자(四隱者)예요.]

취풍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어차피 당신은 대교주에게 도전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당신은 이 등천마세를 털도 뽑지 않고 삼키려는 지도 모르죠.]

취풍녀는 예의 퇴폐적인 어투로 말했다.

[만약 제 말이 맞다면 사은자(四隱者)를 포섭하셔요. 그들은 강해요. 그리고 우리 삼교주 외에는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르죠.]

소일초는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 이곳을 차지하고 싶은 생각 같은 것은 없어. 그리고 이 등천마세의 진짜 주인을 알고 있다. 뺏어도 그에게서 뺏지, 대교주 따윈 허수아비에 불과하게 될 걸?]

[등천마세의 진짜 주인 이라니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인데……]

취풍녀가 어리둥절한다.

[이미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야. 너도 살고 싶다면 그들의 말을 따르는게 좋아.]

[그런데 사은자는 누구지?]

주소아가 어리고 깜찍한 목소리로 물었다.

취풍녀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야 마나를 결정하려는지 소일초를 보았다.

소일초의 눈 역시 궁금하게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사마귀……]

[사마귀!]

소일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그토록 수소문 했는데 이곳에 쳐박혀 있었다니……)

사마귀(四魔鬼)……

그들은 등마제를 통하여 이곳에 들어왔다.

그러나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는 탁월한 무공으로 이곳에서 사은자를 자처하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라있었던 것이다.

사마귀……

이들은 도대체 연관이 되지 않는 곳이 별로 없다.

백인장과도 소일초를 통해 어느 정도 연관이 있으며 녹림맹과는 끊을 수 없는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등천마세에 몸을 틀고 있다니……

[그들을 알고 있어요?]

[알지. 아주 잘. 그런데 그들의 무공이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을 텐데?]

소일초가 회의적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그들은 무림에 알려진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요. 더우기 그들은 함께 행동하므로 넷이 모이면 대교주도 상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정도예요……]

[그럴리가……]

[정말이에요. 어쩌면 그들도 등천마세를 노리고 있을지 모르죠.]

등천마세 과연 사마의 인물을 끌어 모은 곳인지라 복잡다단했다.

강자가 여럿 존재하기에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는 아무래도 오합지졸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중심으로 힘이 합쳐지기만 하면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세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순간,

고오오-----!

사방을 진공상태로 만들면서 정적을 찢어 버릴 듯한 무서운 소리가 들리며 전각의 창문을 뚫고 소일초를 향해 폭사되어 오는 것이었다.

주소아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가공할 검기……)

동시에 소일초의 몸에서 무서운 검기가 일어났다.

갑자기 천지를 꿰뚫어 버릴 듯 다가오던 소리가 창문 앞에서 딱 그쳤다.

세 사람의 시선이 창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일초의 전각 밖 창문……

한 사람이 전각 안의 소일초와 일 장 간격을 둔 채 우뚝 서 있었다.

 

소일초와 대치한 채 창밖에 서있는 인물,

그는 일신에 희디흰 백의(白衣)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머리에는 질끈 흰 띠를 매고 있었으며……

등에는 비스듬히 검을 메고 있었다.

[무적검, 들어가도 되는가?]

문득 취풍녀가 몸을 일으켰다.

[이사형(二師兄)……오랜만입니다. 들어오셔요.]

창밖의 백의 중년인은 몸을 돌려 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빨아들일 듯이 소일초만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전신에 감도는 은은한 긴장의 빛……

소일초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도 않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좋아……대단하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그는 취풍녀을 향해 싱긋 웃어보인다.

[사매……훌륭한 사내를 택했군, 축하한다.]

그런 다음,

[무적검……잘해보게……]

소일초에게 한 마디 던진 그는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의 신형은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소리없이 꺼져버린다.

주소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자기의 흩어놓은 내공을 결집시키지 않으면 당해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소일초는 취풍녀를 주시하며 말했다.

[이교주 마금석이겠지?]

[맞아요……그가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지요……]

[음……]

소일초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 이교주 마금석……신형검기를 사용하고 있다. 구마존의 무공을 완벽히 보완하여 자신 만의 검공으로 만든 모양이군……그 정도면 칠십이기재의 한사람보다 처지지 않는 능력……)

신형검기(身形劍氣)……

이교주 마금석이라는 인물은 검장권지의 무공을 모두 넘어서 모든 것을 검으로 통일 해낸 것이다.

그가 장(掌)을 뻗어도 검이며 권(拳)을 뻗어도 검이다.

몸에서 발산되는 기도는 검기이며 전신이 완벽한 움직이는 검인 것이다.

그러나,

이교주 마금석은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었다.

소일초는 마교칠십이절기에는 얼렁뚱땅했지만 자신의 일초검공은 끝없이 발전시켜온 것이다.

마교칠십이절기의 장점들 마저 흡수하여 일초검공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었으니……

스스로 어느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단 일초에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몸으로 검기를 발산시키지는 않지만 바로 폭발치듯 일초검공을 펼쳐낼 수 있는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는 것이다.

이교주 마금석은 조금이라도 더 다가갔다가는 폭발해버릴 것 같은 소일초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취풍녀는 의기양양해 지고 있었다.

언제나 자기를 가볍게 보고 틈만 나면 덤벼들고 하던 마금석이 진땀을 흘리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소일초가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일어버린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분만 곁에 있으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나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의 삶을 찾는 거야.)

그녀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주소아가 긴장을 풀면서 말했다.

[대단해……무림의 열 손가락 안에 들 고수야. 당년의 사진성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야……]

소일초가 고개를 저었다.

[사진성 보다는 약해,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풍녀는 어린 주소아가 무공을 평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무지 다섯 살짜리 꼬마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은근히 그 어린 꼬마에게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알 수 없는 어떤 힘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 ×

 

[빌어먹을 사마귀 자식들……이곳에 엎드려 있었다니……천산갔다더니……]

소일초는 화를 내고 있었다.

사마귀의 도움을 받았으면 사파에 관해서는 훤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그들의 특별한 능력과 무공이었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사진성에게 역으로 당했을 때도 사마귀가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아예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마귀는 정뇌(井牢)를 탈출할 때 소일초에게 무림에 나오기만 하면 자기들을 찾으라고 했던 것이다.

녹림맹에 가면 자기들을 찾을 수 있다고 일러주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원제일의 신비인 이라는 황녹천을 찾아가 비밀을 까발리겠다고 허풍쳐서 그들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색귀는 그게 늘 서있다면서……]

주소아가 소일초의 귀에대고 묻는다.

[외간 남자 물건에 관심 갖는 건 정숙한 부인네가 할 짓이 아니야.]

[농담일 뿐이야. 그런데 사마귀가 이제 널 알아 볼 수도 없을 텐데 네말을 들으려 할까? 그리고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사부라고 큰 소리치면서 너를 부리려 할 지도 모르는데……]

소일초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한다.

[나에겐 비장의 수단이 있어, 그들은 결코 나를 거역하지 못해.]

[왜?]

[나는 백인장의 소장주(小莊主)야. 얼마든지 그들을 다시 잡아서 정뇌에 가두어 버릴 수 있어. 그들은 아버지에게 죄를 지은 게 있기 때문에 다시는 백인장 근처에 가려고도 하지 않아.]

주소아가 그의 몸위에 올라가며 말한다.

[그럼, 지금 한천이기에게 부탁해서 그들을 찾아달라고 할까?]

[나둬! 어차피 이곳은 한천이기의 손에 다 들어가게 돼, 이곳에 삼수가 없는 것을 알았으니까 빨리 다른 곳에 가볼 생각이나 해봐.]

 

× × ×

 

숭산 태실봉에 있는 정천보의 넓은 대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슬픔과 애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이런 애도의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인가?

대전에 가득 모인 무림인들은 무더위에도 아무 불평없이 모여있다.

그렇다.

그들은 단지 슬픈 것이다.

중원의 정기를 수호하고자 등마제에 잠입했던 수많은 중원의 젊은 혼이 누구를 위해 죽어갔단 말인가?

그들의 죽음이 그토록 숭고한 것이었기에……

그들의 넋은 무림인들의 뜨거운 슬픔을 받아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은 그들의 장례를 치르는 날,

각지에서 그들을 애도하기 위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 누군가가 단상에 올라서 죽어간 정천수호군의 용사들을 애도하는 애사를 낭독하고 있다.

 

------ 피끓는 협혼(俠魂)들아……

한 줄기 정의라도 지키고자 목숨마져 바쳤던 의협(義俠)들이여,

그대들은 죽었으나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있으니……

그대 죽어 슬픔 대신 영광을 얻으라……

그대은 이제 영원하 중원의 혼이 되었도다.

중원의 정의를 중토에 영원히 뿌리내리고……

살아남은 우리들은 그대들을 본받아 이 땅에서 사마(邪魔)의 무리를 영원히 제명하는데 한 목숨 다 바치리라.

 

정천수호군,

정의로 무장했던 젊은 의인(義人)들이 모였던 것……

등마제주와의 결전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칠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삼백 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등마제의 위세는 오히려 높아만 졌고,

무림인들은 정천보의 힘에 회의를 품게 하는 계기가 되기까지 했다.

허나,

그들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은 죽어서도 무림인들에게 숭고한 분향(焚香)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뜨거운 의혈(義血)을 가슴에 담은 중원의 정파인들은 아무말 없이 차례로 분향을 하고 있었다.

대전의 한쪽에 마련된 칠백여 개의 위패(位牌)……

그것은 정천수호단의 죽은 영웅들의 것이다.

대파산에서 회수해온 시신들은 그 신분을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짓이겨진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관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서로의 살점과 뼈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분향을 하는 무림인들의 표정은 허탈하고 침통한 것이었다.

한데 문득,

[소림사의 고승들께서 오셨습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과연, 서른 명 정도의 승려들이 가사차림으로 나직히 불호를 외우며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동안 분향은 중단되고,

스님들이 정천수호군의 위패 앞에서 나직하게 그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점점 그들의 합창 소리는 대전을 가득 매우고 분향객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었다.

얼마 후 분향은 다시 시작되었고 분향한 사람들은 정천수호군의 장렬함과 등마제주의 악랄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 네 사람의 영기발랄한 청년들이 단상으로 올라서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본 정천보의 위대하신 보주(堡主)님께서 잠시 후에 중대한 말씀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 분향객들께선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전안은 갑자기 조용해 졌다.

신비에 싸여있는 정천보주가 중인(衆人)들을 상대로 이야기 한 적은 지난 이 년 동안 한번 도 없었던 일이다.

일순 어디선가 잔잔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가 싶더니, 다음 말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 하고 다시 사방에서 들리기도 하는 신비로운 음성이었다.

[본좌의 불찰로 말미암아 원통하게 죽어간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신 무림의 영웅들께 감사드리오.]

물같이 잔잔한 음성, 세상을 달관한 듯한 어조……

대전의 모든 무림인들로 하여금 경복하게 하고 있었다.

[다시는 무림에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여러분 앞에 다짐하면서 본좌는 오늘 탕마사십사객(蕩魔四十四客)을 무림에 내보내겠소이다.]

그 음성은 듣는 이의 영혼을 맑게 씻어내리는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계속 들리는데……

[탕마사십사객은 오로지 피로써 악인들을 처단하게 될 것이외다.]

탕마사십사객……

대전에 있는 중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이 누군지를 모른다.

생소한 말이었다.

그러나, 신비하게 들려오는 정천보주의 음성으로 보아 그들은 일천 명의 정천수호군 보다 더 가공할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탕마사사객(蕩魔四四客)은 지금 당장 무림으로 떠나라. 마(魔)를 척결하고 이 땅의 정을 수호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라……]

더이상 정천보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분향객들은 새롭게 들려오는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명을 받듭니다.]

천지사방에서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합창하듯이 들려왔다.

탕마사사객이 출발한 것이리라……

 

정천보주……

그는 주소아의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는 인물인데……

그리고,

파양호의 깊은 호수속에서는 하나의 섬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주소아 그녀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알까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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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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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五 章

 

      영원한 사랑의 맹세

 

 

 

[호호호……그래서 취풍녀가 지금 널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고있다는 거야?]

[그럼, 보기보단 영 멍청하더라구. 믿는 듯 하기에 풍을 더 쳤더니 영락없이 넘어가더라……]

주소아가 소일초의 몸위에 엎드려 있다.

[그러면 취풍녀를 좀더 이용해야 겠어. 네가 취풍녀를 구워삼아서 그들의 본거지로 가자고 해.]

[싫다. 이제 동선장으로 돌아가자. 응! 시키는 데로 다 해줬잖아. 등마제에도 참가했고 위에도 올려줬잖아.]

주소아가 눈을 흘겼다.

[모든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어? 어쩌면 이들의 우두머리가 삼수(三手)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들어?]

[삼수면 어때, 그들이 평생 신분을 감추고 산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그때 쳐부수면 되지.]

[아이구 이 태평, 고모부하고 고모는 생각지도 않지?]

소일초는 여전히 별 걱정 하는 눈치가 아니다.

[아무도 우리 백인장을 넘보진 못해, 다들 스스로 어딘가에 숨었을 거야.]

[…………]

[아버지가 병상에 계셨다 해도 원로들이 있는 한 백인장은 난공불락이야.]

주소아는 답답했다.

소일초가 고집을 부리고 취풍녀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면 이 집단의 깊은 비밀을 알아내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일초의 귀에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소일초의 눈이 갑자기 크게 뜨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정말이야?]

주소아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만 끄덕인다.

[두 말없기다.]

[그래! 약속은 지킬 테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나 해.]

[알았어. 뭐든지 시키기만 해. 대교주이건 소교주이건 몽땅 잡아 바치라해도 할께.]

 

× × ×

 

달빛이 은가루처럼 떨어져 내리는 밤이었다.

이 어둠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그렇듯이 밤의 거래는 이루어 지고 있었다.

사내와 여인 사이에……

침실이었다.

은은히 타오르는 황촉불을 뒤로 하고 침상에 걸터앉아 마주보는 두 사람이 있다.

[정말 부인을 만나고 오셨어요?]

[나는 거짓말 하지 않아.]

(불필요할 때는……)

[당신 정말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다 잊어 버렸어. 하지만 십칠팔 년 쯤 전에는 분명히 하늘에 있었어.]

소일초의 진짜같은 거짓말이 또 시작된다.

하기사 십칠팔 년 전에는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으니 말은 된다.

[당신 나이는 그럼 얼마예요?]

[내가 형씨라고 불렀던 사람이 지금은 백 수십살이야.]

취풍녀는 더욱 더 자극적으로 소일초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다.

소일초는 가만히 묵인하고 있다.

이윽고 취풍녀는 자신의 옷을 다 벗고 면사만을 쓴 채 소일초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그녀가 소일초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소일초의 손이 취풍녀의 손을 거부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너를 사랑까지는 몰라도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대하고 있었다.…한데……]

[?]

[지금……나는 너에게 아주 싫증이 나는 중이다.]

[당신 무슨 그렇게 섭섭한 말을……제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

취풍녀가 소일초의 손을 끌면서 말했다.

[말은 잘들어. 하지만 너무 많이 숨기고 있어……이러다가 어느 날 아침 또 불쑥 날 죽이겠다고 찾아오는 놈들이 있고 너는 옆에서 구경만 하게 될 거야.]

[이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맹세할께요.]

그녀는 면사속의 커다란 눈망울로 간절히 소일초를 보았다.

[그런게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무척 기분 나쁘거든.]

소일초는 다시 그의 손을 취풍녀에게서 빼오면서 말했다.

[지난 오일 동안…… 넌 오직 나의 몸을 가지고 놀았을 뿐……나에 대해서도 그다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너에 대해서도 거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어……오늘아침에 와서는 그런 수모를 주었지……]

소일초의 말에 취풍녀은 할 말을 잃은 듯 침묵을 지킨다.

그러다, 그녀는 슬그머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버린 소일초를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간절하게 소일초에게 뭔가 호소하는 듯 했다.

소일초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이 여자는 상당히 남자를 밝히면서도 순진해 빠진 것 같을까? 연극같지도 않은데……)

대체 이 여인의 정신구조를 파악해 낼 수 없었다.

(소아에게 물어보면 대충 알겠지……)

문득, 취풍녀은 자신의 면사를 슬며시 걷어올린다.

그리고, 그녀는 독백하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좋아요……당신이 원한다면 저의 모든 것을 보여 주겠어요……]

소일초는 그녀가 이런 행동을 돌연하게 보일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도 주소아의 쪽집게 같은 예측에 감탄하고 있었다.

취풍녀는 자기 앞에서 한번도 벗지 않았던 그 면사를 벗어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제 완벽한 알몸이 된 것이다.

나이는 이십 육칠 세 정도, 보면 볼수록 얼굴에 어떤 요사스런 기운이 어려 있는 듯 사람을 잡아 끌어당기며 점점 아름답게 보였다.

이런 여인이야 말로 한 번 관계하게 되면 남자가 평생 버릴 수 없는 그런 여인인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 보다는 세 번째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취풍녀……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것을 바치겠어요. 영혼까지 다 가지셔요.]

소일초는 찔끔하면서 힐끗 눈을 들어 천정을 보았다.

[그대신 당신도 저에게 완전한 사랑을 주세요.]

완전한 사랑……

그러자면 정신과 육체 다로 하는 남녀간의 사랑을 하자는 말,

무슨 뜻인지 알아챈 소일초가 잘라말했다.

[그건 안돼, 깊이 관계를 맺어 버리면 다시는 하늘로 돌아갈 수 없어.]

그가 말하는 하늘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주소아를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자기도 모를 것이다. 거짓말이니까.

[믿기는 어렵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것까지 바라진 않겠어요. 대신 다른 때와 같이만 해줘요.]

 

소일초는 취풍녀의 몸 위에서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꾸만 뒤통수가 건질 거리는 것을 느끼며……

취풍녀의 몸 구석구석을 색귀에게 배웠던 이론과 주소아와의 무수한 장난(?)을 통해 익힌 실재 기술로서 비벼대고 있는 것이다.

취풍녀는 황홀한 열락 속에서 무엇인가를 쉴 새없이 내뱉고 있다.

[아아……저는……등천삼교주 중 세번 째로……아…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 다시 말하고 있는 취풍녀……

그녀의 무색깔 요기스린 얼굴은 이때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채 할 때와는 또 다른 걸……)

소일초는 시간이 흐를 수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절묘하게 그녀를 다루고 있었으며,

취풍녀은 신음을 섞어가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중얼거렸다.

[헉헉……제 역할은 등마제를 통하여……아아……무림의 고수들을 끌어들이는 것……우리는…헉…등천마세의 세 주인……]

그녀를 절정에 달한 손놀림과 몸놀림으로 다루고 있던 소일초의 눈에 반짝 기광이 일었다.

등천삼교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등천마세와 관련이 있을 줄은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바로 그 세력의 삼인자라니 놀라운 사실이었다.

등천마세……

이 조직은 정천보과 함께 현세의 무림을 양분한 거대 세력이 아닌가?

취풍녀의 나신은 활처럼 휘어지며 신음과 같은 중얼거림을 계속 흘려내고 있었다.

[헉헉……등천마세의 실질적인 주인은 바로 대교주이고……그는 무림을 제패하려는 원대한 야망을 지니고 무림에……헉헉……]

소일초는 그녀가 하는 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의무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따가운 뒤통수를 의식하고 있었다.

취풍녀의 말을 귀담아 들을 사람들은 여럿 일 것이기 때문이다.

취풍녀는 이런 순간에도 심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은 다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교주……헉헉……바로 나의 첫남자이며, 대사형……아흑……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

취풍녀……

그녀는 등천마세에 관한 그녀가 아는 모든 사실을 지금 이야기 한다.

 

등천대교주 그는 또한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하며 무서운 지혜를 지닌 인물이다.

그러므로 당금의 고수들 어느 누구도 그를 상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교주 역시 무서운 야망을 지닌인물이다.

그러나, 대교주와 이교주 그들은 제각기 야망을 지니고 있기에 등천마세의 힘은 분산되어 정천보를 누르지 못하고 있다.

취풍녀 그녀는 대교주 오공천(吳恭天)에게 일찌기 무공을 익히다 몸을 빼앗긴 후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여 왔다.

오공천은 그녀의 몸을 필요할 때 마다 요구했으나 그녀를 아내로 맞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린 천생적인 요기로 인해 그녀는 향상 두 사형과 심지어 사부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았으며,

오공천에게 몸을 빼앗긴 후에는 이사형인 마금석(馬金錫) 역시 몸을 요구해 왔었고 사부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그녀보다 무공이 고강했기 때문에 반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번 무너진 그녀는 그들이 요구할 때마다 몸을 제공하는 여인이 되어버렸으며,

때때로 무림에 나와서 자신이 남자를 요구할 때도 있게 변해버렸다.

꿈은 사라지고 사내들에게 짓밟히고 자신이 더럽힌 육체만 남았다.

등천마세는 등천마교의 후신이다.

기적적으로 혈기대종사의 겁을 피한 인물들이 남몰래 등천마교의 옛터에서 흩어진 비급들을 발굴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단체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대의 인물들에 비하여 월등히 뛰어난 기재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다시 엄청난 위세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의 가장 큰 원수로 삼수를 꼽고 있다.

삼수가 등천마교의 무공, 그러니까 정통마교에서 가지고 나왔던 마교칠십이절기 중 상당수를 장강 변에 있던 등천마교 본단에서 찾아내어 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혈기자가 일으킨 혈겁의 주역들이 아닌가?

그러한 사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그들은 등천마세가 삼수가 만든 세력일 것이라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천마세를 건설한 주역들은 제이대 등천구마존들이었다.

제일대 등천구마존의 뒤를 잇기 위해 절지에 보내져 무공을 익히던 중이었기에 그들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좋아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소일초도 주소아도 아닌 한천이기인 원천기와 한천녀,

그들은 자신들이 기획했다고도 할 수 있는 등천마교의 후신을 찾았으니 아마도 다시 손에 넣고 그들의 천지파멸인가 뭔가에 사용하려 할 것이다.

소일초는 취풍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말이 흘러나오도록 하면서 연방 천정으로 신경을 모았었다.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꼬투리 잡을 지 모르는 감시자를 의식하며……

그러나,

이제는 아마도 잘 했으니 상을 받게 될 것이다.

 

 

× × ×

 

[다시는 너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어.]

주소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지금 그녀는 막 취풍녀에게서 돌아온 소일초를 씻기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는 눈물이 다 나왔어, 내가 시키고도 얼마나 후회했는데……]

그녀는 소일초의 몸을 한곳도 빠뜨리지 않고 씻고 또 씻었다.

얼마후,

그들은 나란히 침상에 누워 꼭 껴안은 채 도란도란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부턴 절대로 떨어지지 말자.]

[그래 우리도 살아선 연리지가 되고 죽어선 비익조가 되자.]

주소아가 백낙천의 장한가의 한 구절로 답한다.

몇 년을 함께하며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깊이 깨닫고 있는 그들……

그들은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아침……

소일초와 취풍녀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마차 안에는 소일초가 품에 다섯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아(女兒)를 안고 있었다.

귀엽고 앙증맞으며 깨물어 터뜨리고 싶을 정도의 여아였다.

취풍녀는 소일초가 아침에 어디서 데려왔는지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 와서 함께 가야한다고 할때 어리둥절했었다.

영문을 물어보고 누구냐고 물어봐도 얼버무려 버리고 무조건 자기가 데리고 있어야 할 아이라고 했다.

심지어는 그 여아가 옆에 없으면 자기는 죽고 말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취풍녀도 예쁜 아이가 싫지 않아서 그들은 지금 함께 가고 있었다.

한데,

곳 취풍녀는 행동의 제약을 그 여아로 인해 받아야만 했다.

도무지 소일초의 옆에 다가가지도 못하게 여아가 방해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가는 마차를 주시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안개 속에서 우뚝 서 있는 그들은 바로 한천이기였다.

한천이기……

그들은 언제나 이렇듯 소일초의 그림자처럼 그의 주위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천지파멸의 뜻이 이제보터 본격적으로 이 땅에 펼쳐지는 것이다.]

원천기의 말이었다.

그러자, 한천녀가 무감정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정통마교주가 될 것이다……우리가 등천마세를 거둠으로 인해서 그는 진정한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수족이 되는 것이다……군림보다는 복종하는 정통마교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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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엉뚱한 곳에서의 相逢

 

 

 

연화정(蓮花亭),

이곳은 조그마한 연못안에 세워진 정자였다.

잔잔한 아침 여명에 반조되고 있는 호수의 수면은 신비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지금, 이 연화정에는 세사람의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다.

한 여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취풍녀이며……

세 사람의 남자는 비슷한 또래의 중년인들이었다.

나이는 사십대 전반으로 보였으며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형제들인지 그 모습이 그 모습 서로를 분간하기 힘들 만큼 닮았다.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고 있었으며 전신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잔잔하고 아늑하였다.

그들은 말없이 호수의 수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무엇인가 풀리지 않은 난제가 있는 듯 고심하는 것 처럼보였다.

문득,

취풍녀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대교주(大敎主)의 뜻이 그러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녀의 눈빛은 어두웠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으니……내 말을 들어줄 리가 없겠지……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지……]

[…………!]

[…………!]

또다시 네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때,

유삼중년인 중의 제일 우측에 앉은 사람이 신선을 더욱 깊숙이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삼교주(三敎主)……]

[무엇인가?]

[삼교주께서 말씀하신 그가 그토록 뛰어난 인물입니까?]

그의 말은 부드러웠다.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밀어처럼 달콤했다.

취풍녀은 멀리 떠도는 구름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는……내가 본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무공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정도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그는 요술장이처럼 신비한 사람이다.]

순간,

언뜻 세 사람의 눈에 놀라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정도로……]

가운데의 중년인이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무엇이 그토록 뛰어나단 말입니까? 그의 얼굴입니까? 아니면 신분을 밝히지 않아서 신비하다는 것입니까?]

한기가 풀풀 날리는 음성을 뱉어내는 그의 안색은 여전히 부드러워 모순처럼 보였다.

제일 좌측에 앉은 중년인이 취풍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진정 그가 뛰어난 인물이라면 그 배후에 대해 왜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그 역시 부드러운 얼굴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갈라져서 듣기에도 역겨웠다.

취풍녀가 대답했다.

[물론 조사해 보았다.……하나……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떻게 하는 지 모르지만 만지는 것만으로도 어떤 물건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능력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같이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직접 보신 적이 있습니까?]

[너희들은 물을 술로 술을 물로 만지기만 하여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손으로 만져서 익지않은 포도를 영글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그것은 무공과는 다른 힘이었다. 그런 그의 배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유삼중년인들의 입에서 동시에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결국……대교주께서는 그 일로 거부를 하신 것이로군요……]

우측의 중년인이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신분이 조금 더 확실하다면 대교주께서도 그의 신비한 능력을 고려하여서라도 허락하셨을 텐데……]

[…………!]

[아무튼 대교주의 결정은 내려졌으니……이제 더이상 그에 대해 거론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요.]

좌측의 갈라지는 목소리의 중년인이 말했다.

대교주의 결정……

취풍녀는 무엇을 대교주에게 부탁했기에 기에 그렇게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인가?

문득,

[그가 오고 있군……]

취풍녀은 연못에 걸쳐진 교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한 사람의 텁텁한 분위기의 사내 소일초와 그 뒤를 따라서 시비 국향이 오고있었다.

그를 주시하는 유삼중년인들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흘러갔다.

소일초는 도무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같은데

취풍녀가 그렇게 극찬을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없던 것이다.

게다가 고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기도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술주정뱅이 같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의혹이 점차 심화되어 갈 때,

소일초는 연화정의 가까이에 이르렀고 국향은 연못가에 기다리고 서 있었다.

순간,

소일초는 불규칙한 걸음으로 연화정으로 들어와 취풍녀의 곁에 주저없이 앉았다.

거동 하나하나가 도무지 교양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으음……]

[음……]

네 사람은 소일초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굳어져 버린다.

(얼굴하나로 삼교주를 침상에서 휘어잡은 모양이로군……쯧쯧 ……삼교주가 그저 행동이 방정치 못해서……)

(대체 이자의 어디에 신비가 있단 말인가? 철부지 같은 삼교주……)

문득, 그들의 얼굴에 은은히 살기가 떠오른다.

소일초는 그 살기를 느낀 것인지 아니면 못 느낀 것인지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기까지 한다.

[객이 있는 줄 몰랐는데 무슨 일로 불렀나?]

대뜸 하대로 취풍녀에게 묻는 말에 중년인들의 살기가 더욱 짙게 떠오른다.

하나, 취풍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공대한다.

[당신이 만나야 할 사람들이에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데……]

취풍녀은 눈짓으로 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 분을 소개하지요……]

[나는 무적검이다.]

세 중년인의 눈가에 비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별볼일 없을 것 같은 작자가 이름은 거창하게 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무림의 삼류잡배였군……)

우측의 중년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을 소개했다.

[반갑소, 우리는 은검삼형제요……]

그는 소일초를 별볼일 없는 인물이라 생각했기에 간단히 자기들의 밝혔다.

소일초는 시선을 취풍녀에게 돌렸다.

[한데……무슨 일이야?]

[은검삼형제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취풍녀은 우울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겨우 이들이?]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은검삼형제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가소롭기 그지없다는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진짜? 나를 죽인다고?]

그러자,

은검삼형제가 일제히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렇다! 대교주의 지엄하신 명이다.]

[무슨 거지발싸개같은 소리야? 대교주는 무슨 놈의 대교주……]

도무지 아무것도 안중에 두지 않고 하는 말에 은검삼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허풍도 경계가 없이 큰 것같았기 때문이다.

[…………!]

[내가 왜 죽어야 하는 지나 빨리 말해……]

소일초는 시선을 취풍녀의 돌린 뒷머리에 고정시키며 말했다.

[평생같이 살자고? 미친년! 하는 대로 나뒀더니 술 뺏고 몸 뺏고 이제 목숨까지 뺏으려고 해?]

소일초는 진짜 화가 나있었다.

주소아곁을 떠나 있는 것으로만도 괴로워 미칠 지경인데 잘해줘도 있을까 말까한 판에 죽이겠다니……

소일초의 물음에 취풍녀는 어쩔 줄 모르면서 대답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과의 혼인을 승락해달라고 대교주에게 간청한 저예요.……한데……]

호수의 수면은 이때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데……대교주는 당신의 정체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이렇게 처형대를 보냈어요.]

[혼인은 무슨 혼인, 내 마누라가 알면 가만있을 줄 알고? 누구 맘대로 혼인이야 혼인이……]

그녀의 말을 듣고 소일초는 더욱 길길이 뛰었다.

혹시라도 주소아가 들을까 겁날 말이었다.

취풍녀는 그의 매정한 말에 망연한 눈초리로 보며 가슴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던가요? 우리 사이에 사랑이나 애정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군요……당신은 나를 조금도 생각지 않았어요……내 몸이 이미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인가요? 그래서 한 번도 범하려 하지 않았던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소일초에 대한 깊은 정이 배어있었다.

그녀는 난간을 잡으며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침 여명을 타고 흐르는 구름이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보였다.

소일초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호수의 연꽃을 보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정을 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기울리 도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취풍녀은 돌아보며 나직이 한숨을 토한다.

[대교주의 결정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어요……]

소일초는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 정도 그 정도에 불과 했어, 내 마누라라면 결코 그렇진 않을 거야. 차라리 함께 죽길 원했을 거라고.]

빙글……

그의 몸이 은검삼형제를 향해 돌려진다.

그러고 허공을 향해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도 어쩔 수 없게 된 거야. 보고 있었으니 잘 알고 있겠지? 이제 네 부탁은 끝난 거야.]

은검삼형제와 눈물을 훔치던 취풍녀가 어리둥절했다.

[누구에게 한 말이오?]

은검삼형제 중 부드러운 목소리의 맏이가 살기를 억누르면서 물었다.

[하늘! 나는 하늘에서 왔거든.]

소일초는 고개를 내려서 그를 보며 짧게 대답했다.

순간,

[정말 하늘에서 내려왔나요? 아……아마 그럴 거예요. 당신의 모습, 당신의 신비한 능력……인간의 것이 아니었어요.]

취풍녀가 환상에 빠진 듯이 그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취풍녀는 오랫동안 살인을 저지르며 무림에 횡행했었다.

그녀의 무공은 고강했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내에게 안기고 했지만 마음은 동심이 있었다.

소일초의 신비한 능력, 물론 백송균화에서 얻은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었지만,

그리고 그의 천상의 선인 같은 용모에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하대하는 그 자연스런 태도로 말미암아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은 꿈꾸는 것 같았다.

몸에 서려있던 고독도 퇴폐적인 분위기도 일시에 걷히는 것 같았다.

[하늘……그곳은 이 무림과는 다르겠지요?]

은검삼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다르지, 다르고말고. 당신같은 사람은 결코 없는 곳이지……]

소일초는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그렇겠죠……저 같은 죄많은 사람이 어떻게 그곳으로 갈 수 있겠어요?]

취풍녀는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많은 비애와 고독을 가슴에 품었기에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말도 아닌 소리! 삼교주, 진정하시오. 이 자의 기만에 넘어가지 마시오.]

은검삼형제의 세째가 역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지. 너희들은 나를 죽이고 나는 너희들을 죽이는……]

말을 하면서,

소일초가 몸을 곧게 세우고 그들을 노려본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고 어떤 기도로 풍기지 않으며 단지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허풍장이! 대교주의 명은 곧 하늘의 명이다. 삼교주를 기만한 죄까지 물어서 죽여주마.]

은검삼형제의 둘째인 차가운 목소리가 자르듯이 내뱉었다.

 

창---촤창-----창-----!

 

그들의 어깨에서 은검이 뽑혀져 삼면에서 그를 노리고 공격해 왔다.

그들의 몸은 은검에서 발산되는 검기로 완전히 뒤덮혔으며 가까이 있던 소일초의 몸을 은막으로 뒤집어 씌웠다.

파아아아--------!

소일초의 검미가 꿈틀했다.

(은마환상검(銀魔幻想劍), 역시……)

그순간,

[죽이면 안돼……]

어디선가 들려온 전음,

아아……

그토록 보고싶었던 주소아의 음성이아닌가?

은검은 자기를 덮어씌우고 있는데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은검이 그의 전신을 할퀴듯이 꿰뚫고 지나갔다.

[악!]

취풍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은검삼형제는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검이 안개를 벤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일초의 몸은 그자리에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당신은 정말 하늘에서 왔군요……내 그럴 줄 알았어요.]

취풍녀가 기쁘하며 소일초의 가슴으로 달려 들었다.

그러나 소일초의 몸은 미끄러지듯 슬쩍 그녀를 피했다.

은검삼형제는 멍청히 검을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정말 삼교주의 말대로 하늘에서 오기라도 한 천인(天人)이란 말인가?

그들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소일초의 눈은 연못가에 여전히 서있는 국향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국향은 생긋 웃어보이더니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기쁜 표정으로 소일초는 취풍녀와 은검삼형제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소일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살수를 펼쳤는데 기쁘하며 웃고 있다니……

소일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죽였으니 이젠 내가 죽일 차롄데……]

그의 미소에 오히려 은검삼형제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허깨비처럼 검에 걸리지 않는 인간……

[…………!]

[운이 좋았어. 목숨은 살려주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우리 마누라한테서……]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손에 둔중한 검이 들려있었다.

붉은 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검은 어디에서 나와 그의 손에 쥐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의 손에 있었던 것처럼……

은검삼형제와 취풍녀는 그 하나에 대경실색했다.

순간,

은은한 붉은 빛을 띄고 있는 소일초의 마황검은 순간적으로 일만개로 분리되어 은검삼형제를 향해 폭사되었다.

으악-----!

윽---윽--!

완연히 구분되는 세 마디의 비명과 함께 은검삼형제의 팔이 하나 씩 잘라져 연못에 떨어졌다.

소일초의 손 어디에도 다시 마황검은 보이지 않았다.

은검삼형제는 잘려진 팔을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넋이 빠져 있었다.

[으……대체 그런 무공이……정말 천인이란 말인가?]

[패배를……패배를 몰랐는데……]

그들은 아직도 소일초의 믿을 수 없는 경이의 무공에 불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취풍녀는 소일초를 완전히 천인으로 믿어버렸다.

천하의 십이대 고수 중 하나로 알려진 그녀로서도 그런 무공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이 밝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어쩌면 이 분이야말로 나의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분 일지도 몰라……나를 이 세상에서 구제해 주시기 위해……)

취풍녀의 잃어버린 행복……

이순간 그녀는 소일초를 천신과 같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때,

소일초가 은검삼형제를 주시하며 여태까지와는 달리 고르고 잔잔한 음성으로 말한다.

[전하라……대교주라는 자에게……]

…………

[내가 직접 찾아가서 따지겠다고.]

은검삼형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수니 뭐니 하는 것이 이 인간같지 않은 인간에게는 말짱 헛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일초는 기분이 유쾌해져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그런 그의 모습은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고

네 사람은 그런 그의 모습에서 범할 수 없는 무한한 힘을 느끼고 있었으니……

마침내 그들 은검삼형제는 취풍녀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힌 후 몸을 날려 아득히 사라져 갔다.

소일초는 휘적휘적 정자 밖으로 걸어나갔다.

틀리없이 어딘가에서 주소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절로 몸에서 신바람이 나는 듯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는 취풍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자기가 보는 것은 어디선가 한천이기도 다 볼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들이 해결할 것이고 생각할 것이 있어도 그들이 해결할 것이다.

그는 그냥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득,

취풍녀가 교각을 지나가는 그를 뒤에서 안았다.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이 소일초의 등에 와 닿았고……

그녀 특유의 향기를 담은 입김이 소일초의 귓전에 전해진다.

[당신을……진정으로 사랑해요. 이 한 몸 바쳐서 사랑할 수 있어요.]

[놔! 지금 나는 가봐야 돼……귀찮게 하지마.]

[그렇게 말하지 마셔요. 우리는 이미 몸을……그리고 마음을 주고 받은 사이인데……]

[나는 그런 적없어 빨리 가봐야 돼……]

소일초는 달라붙는 그녀에게 짜증을 내었다.

어딘가에 주소아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안돼요. 그렇다 해도 안돼요. 나는 당신을 놓칠 수 없어요. 당신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에요.]

소일초는 급한 마음에 그대로 걸음을 옮기고 취풍녀는 아예 질질 끌려간다.

그녀가 뭐라고 하든 그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다가는 어디까지 그녀를 달고 갈지 알 수 없었다.

소일초가 걸음을 멈추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 희망이 돼 줄테니까 빨리 손이나 풀어.]

[떠나버리게요?]

[이러면 정말로 달아나버릴 거야. 빨리 풀어.]

취풍녀는 그가 진짜로 가려고 한다면 자기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키지 않지만 그를 감았던 팔을 풀면서 신신당부한다.

[금방 오셔야 해요. 꼭……당신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죠?]

[그래 알았어.]

소일초의 몸은 벌써 앞으로로 쭉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한데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거예요?]

[우리 마누라한테……]

소일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헌데 소일초가 달려가는 곳은 뜻밖에도 취풍녀의 침실이었다.

소일초를 익히 아는 사람들이라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취풍녀의 침전에 있는 시비들의 방 앞에 그가 찾던 국향이 서있었다.

다짜고짜 소일초는 그녀를 덥썩 안았다.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

갑작스럽게 소일초의 품에 꽉 안겨버린 국향은 얼굴을 붉히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밤마다 주인인 취풍녀가 데리고 자는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가 미친 듯이 사랑을 고백하며 달려든 것이다.

그녀는 황홀한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저도 당신을 생각했어요……]

순간,

소일초가 그녀를 품에서 떼면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아니, 너는 너잖아!]

그녀를 확 밀치고 다시 자기의 침전으로 달려갔다.

국향은 황당해져 있었다.

갑자기 달려와 사랑을 고백하던 왕자가 밀쳐버리고 떠나가 버린 것이다.

[쳇! 내 무슨 일인가 싶었어. 헛물만 들이켰잖아.]

소일초는 그의 침전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밀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자기가 마시다가 두고 간 술독 앞에서 등을 보이며 잔을 기울이는 또 한 명의 국향이 있었다.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날려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가만있어. 술 엎질러.]

그러나 소일초는 무시하고 그녀를 번쩍 들어서 침상에 던졌다.

그리고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 어떻게 왔어? 언제 왔어? 왜 온 거야?]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아예 없는 듯 질문하기에 바빴다.

[바보! 내가 어떻게 너 혼자만 보낼 수 있었겠어?]

소일초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래, 너 없이는 도무지 못살겠어. 밥도 넘어가지 않더라구……]

국향, 아니 주소아는 역근천골공을 풀었다.

환하게 주변을 밝힐 듯한 아름다운 얼굴이 소일초의 얼굴 밑에 있었다.

주소아는 소일초를 먼저 보낸 후 멀리서 그를 따라왔다.

소일초가 하는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습을 수십가지로 바꿔가며 그의 근처에서 지켜보았는데,

멍청한 소일초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소일초가 취풍녀에게 옷을 벗기우고 깔렸을 땐 화가 나서 당장에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세를 생각하여 꾹 참았었다.

그러면서도 소일초가 어떻게 나오나 궁금해 하며 숨어서 지켜보았었다.

만약 소일초가 정말로 취풍녀와 늘 자기에게 원하던 깊은 관계를 맺어 버린다면 다시는 소일초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일초가 기특하게도 자신이 늘 사용하곤 하던 방법을 써서 취풍녀의 마수를 피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재미도 있었지만 기뻐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도 때로는 소일초가 저돌적으로 침입하고 할 때는 역근천골공으로 문을 좁히거나 아예 폐쇄해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밤마다 같이 보내면서 마지막 처녀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소일초는 이곳에 와서도 취풍녀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자기의 몸을 지켜왔다.

며칠 동안 지켜본 그녀는 그 색마가 그처럼 자기를 생각하여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기쁘고도 자랑스러워 상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다시 정통마교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과 대교주, 그리고 취풍녀가 삼교주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자 자기의 존재를 알렸던 것이다.

[취풍녀가 너에게 보통 빠진 것이 아니던데……]

[그런말 마. 나는 아무여자도 필요없어 너만 있으면 돼. 이젠 다른 여자는 보기도 싫어.]

[그럼 정천수호군주 왕혜려에게 했던 말은 뭐야?]

[그건……정말 장난이었어. 진짜야……]

소일초는 가슴이 뜨끔하면서 급히 변명했다.

왕혜려에게 묘한 암시를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주소아는 귀신같이 그것도 놓치지 않고 들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잘한 것이 훨씬 많으니까 아무말 않겠어. 하지만 다음에 다시 그런 수작을 다른 여자한테 한다면 각오해야해.]

[맹세할게……]

 

아침부터 두 사람은 알몸이 되어 침상에 들어가 있었다.

[취풍녀하고 음……기분이 어땠어?]

[아무 생각 없었어. 나도 고역이었다구. 도무지 네가 머리를 꽉 채우는 데 취풍녀에게 무슨 감흥이 나겠어? 고기 먹던 사자(獅子)는 아무리 맛있는 풀이라도 고개도 돌리지 않는 거라구……]

[정말?]

[그럼!]

소일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그만 우리 술이나 마시자.]

[안돼! 좀더 있어야 해. 그동안 얼마나 쌓인 게 많은데……]

주소아가 픽 웃으며 말한다.

[네가 쌓일 게 어디 있니? 늘 장난뿐인데, 그저 주워들은 말은 있어가지고……]

[아무튼 안돼, 좀 더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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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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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吹風女가 主祭했다.

 

 

 

삘리리리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그것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 아름다왔다.

그러나,

소일초는 그 아름다운 소리에 내포되어 있는 무서운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잡아끄는 마력을 가진 피리소린 사람들을 엄청난 욕정의 바다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마장탑에서 본 바있는 다섯 번째 석실의 아홉 음공중의 하나와 비슷했다.

무엇인가 빠져 있는 듯 위력은 그곳의 오욕음(五慾音)보다 뒤쳐지는 것 같지만 틀림없이 같은 운율이었다.

 

오욕음,

마교칠십이절기의 하나인 오욕음은 인간에 존재하는 다섯가지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음공이다.

지금 피리로 연주되는 음은 오욕 중의 색욕을 증폭시키는 색욕음이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어버리고 미친 듯한 색의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무공,

그리하여 마침내는 스스로 욕정에 몸부림치다가 정기의 고갈로 죽고마는……

 

그 소리에 접하자 소일초 조차도 욕념으로 가득 차오른다.

하나,

(저 등마제주가 속한 집단은 어떤 형태로 정통마교의 배반자들과 연관이 있을까? 마교칠십이절기의 부본으로 저 오욕음을 익혔겠지……)

이 생각은 어떤 확신이었다.

동선장의 침입자들 역시 이들과 같은 집단에 속해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먼저 한천이기의 존재를 알고 동선장으로 선공을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일초는 지금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었군, 칠십이기재의 두 사람인 한천이기가 굳이 등마제에 나를 참석하라했던 이유가?)

그의 생각은 일단 이곳에서 멎어야 했다.

등마제주……

그가 소일초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일초는 그 눈망울에서 극사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등마제주라는 인물을 마주 바라보았다.

주위에서는 비명과 뜨거운 열락의 신음이 터지고……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든다.

이곳은 인간의 세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정이 해일처럼 폭발하고 있는 신의 환락지(歡樂地)였다.

눈빛……

그 욕의 환락지 사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두 쌍의 눈망울……

하나는 극사의 아름다움을 차갑게 풍기고 있었고……

하나는 무덤덤하고 광채마저 느껴지지 않는 졸리운 듯 한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등마들은 소일초를 스쳐가기는 해도 그를 덮쳐들지는 않는데……

문득, 등마제주의 면사에 가린 얼굴이 끄덕여 졌다.

순간,

스스스……

등마제주의 손이 천천히 들려져 소일초를 가리켰다.

그러자,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던 흑의복면인들의 얼굴에 언뜻 경악의 번져 흐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등마제주의 행동이 의외라는 듯 등마제주과 소일초를 번갈아 주시했다.

소일초는 자신을 가리키는 그의 손을 무심히 본 후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그때였다.

[나를 따르시오……]

소일초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음성이나 그것이 여인의 음성인지 사내의 음성인지는 구분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하나, 소일초는 그 음성의 주인이 바로 등마제주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이때,

등마제주는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우측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 자로군……)

소일초는 그의 말을 음미하며 천천히 그를 따르기 시작한다.

걷는 그의 눈으로 왕혜려가 들어왔다.

그녀와 정천수호군들은 완전히 악마화 표기를 한 악인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녀의 용모가 중원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뛰어난 절색이었기에……

그녀는 많은 인물들로부터 선호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눈으로 스쳐가는 갈등……

그녀는 정천수호군의 군주, 정천수호군이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이 등마제를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한데,

등마제주라는 인물에게 자신들은 노출 되어버렸고, 때문에 그녀는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예정대로 감행할 것인가 철수할 것인가?

철수하기에는 참혹하게 죽어갈 무림의 젊은 남녀들이 안타깝고,

예정대로 감행하자니 노출된 지금 자기들마저 몰살당할 지도 모른다.

왕혜려는 갈등하고 북궁헌은 감행할 것을 계속 주장한다.

이때, 소일초의 전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들려왔다.

 

-----함께 다 죽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너만이라도 살겠는가……너는 이미 등마제주에게 졌다……깨끗이 물러나서 예쁜 얼굴이나 잘 다듬어라……

 

소일초의 전음을 들은 왕혜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눈에 굳은 빛이 떠올랐다.

그것이 어떤 의미의 것인지는 소일초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순간,

추우우------!

파란 불꽃이 그녀의 손에서 달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때였다.

사방에서 갑자기 참혹한 비명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정천수호군은 철수하고 있었다.

소일초는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면서도 말잘 듣는 여자야.)

아무도 소일초 만은 제지하지 않았고 그는 유유히 등마제주를 따라서 숲으로 갔다.

계속하여 사방에서 비명은 들려오고 있었고……

소일초는 잠시 후,

사망림의 한 황량한 잡초림에 이르렀다.

등마제주……

그는 잡초위에 앉아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피리소리는 끊임없이 비명소리를 뚫고 이곳까지 울려오고 있었다.

지금, 소일초는 등마제주의 전신에서 진한 고독과 우수, 그리고 퇴폐를 느낄 수가 있었다.

[너에게도 이런 감상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소일초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도,

여전히 등마제주의 침묵을 지킨 채 달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일초는 앉아있는 그를 보고 등마제주는 달을 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의 강이 한동안 흐른다.

등마제주는 사방에서 울려오는 비명과 소란을 이미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태연하다.

어떤 동요의 빛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소일초에게 돌려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음성이 흘러나온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대를 이곳에 부른 진정한 뜻을 아는가?]

소일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 네 마음까지 알겠는가]

순간,

등마제주의 눈에 언뜻 묘한 기광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대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주 중대한 일이 있기는 하겠지만……]

[중대한 일이 있지……한 시라도 급하지……]

[… 그 목적은 저 정천보의 인물과는 다른 것이겠지…?]

등마제주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은근한 듯 했다.

소일초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스스스스……

한 줄기 야풍에 잡초림은 파도처럼 출렁인다.

소일초가 입을 열었다.

[취풍녀! 네가 등마제주라는 사실이 의외라면 의외지……]

갑작스런 소일초의 말,

취풍녀라니……

한데, 등마제주의 말투역시 갑자기 아주 부드러운 여인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비범하군요. 맞아요. 언제 부터 알고 있었죠?]

[등마제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등마제주, 아니 취풍녀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양양의 객점에서부터 소일초에게 관심이 있어서 접근했었다.

십이 인의 절세고수 중 일녀(一女)로서 자리하고 있는 그녀……

소일초는 그녀가 맞은편에 앉는 그 순간 이미 그녀의 몸에서 아주 미약하나마 낮은 소리가 나는 것을 알아차렸었다.

몸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는 여자,

주소아 아니면 취풍녀다.

주소아는 이미 소리가 완전히 없어져 버릴 정도로 무공이 깊어져 일부러가 아니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취풍녀, 극마지경에 이른 그녀……

주소아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을 거라고 조예진이 말했었다.

그리하여, 만사를 재쳐두고 취풍녀가 주는 미혼분을 넣은 술을 받아먹고 잠에 취해 주었던 것이다.

취풍녀는 소일초가 일부러 속아주던 진짜로 속아주던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 무적검 승취풍 이라고 부르는 그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낀 것이었다.

자기를 타겠다는 그의 말은 그녀의 의도와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던 것인데…

당연히 그로 인하여 등마제가 시작되어도 어느 누구도 소일초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던 것이다.

취풍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나요?]

[당연히 알게 되겠지……]

[당신이 일부러 응해 주었던 어쨌던 나는 당신을 이곳에 데려 왔어요.]

소일초의 힘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나를 재물로 다루길 원하나……]

취풍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그것이 이 등마제주로서의 제 뜻이죠……]

소일초는 얼굴가득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위험할 수 도 있을 텐데……]

취풍녀의 면사가 희미하게 날린다.

그녀는 웃고 있는 것이다.

[정천수호군의 소란도 무관심한 저예요……한데……당신 하나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등마제주로서 애초부터 이곳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말을 한 후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소일초를 주시한다.

[아주 준수한 얼굴이군요……]

독백처럼 중얼거린 그녀는 천천히 소일초에게 다가온다.

소일초는 피식 웃는다.

[준수하다니……취풍녀……네 눈은 껍질 속의 알을 볼 수 있는 재주가 있기라도 한 모양이군………]

[호호호호……그래요. 나의 눈은 정상인데 당신 얼굴이 비정상이지요……]

[그리고 우리 둘 다 비정상인 것이 있지……]

[그게 뭐죠?]

취풍녀가 의아하게 물어온다.

[생각! 너나 나나 생각하는 것이 아주 삐뚤어져 있지.]

[맞아요, 내 마음은 삐뚤어져 있어요. 하지만 당신 역시 그렇다니 기뻐요.]

[내 마누라가 너의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을 걸?]

[제가 당신의 부인이 아니었던 가요?]

취풍녀의 말은 은근하다.

[취풍녀는 세상에 너 혼자가 아니야!]

소일초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일순, 취풍녀의 몸이 흠칫했다.

[세상에 또 다른 취풍녀가 나타났는가요?]

[오래전에……]

말끝을 흐리면서 소일초는 역근천골공을 풀었다.

강한 매력으로 먼저 상대방의 관심을 모은 이후에 절세적인 용모를 보여준다…

이것이야 말로 여인을 사로잡는 색귀(色鬼)의 대표적인 수법이 아닌가?

소일초 그는 취풍녀를 상대로 지금까지 그 수법을 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스……

조용한 침묵 속에 서서히 변해가는 소일초의 모습……

시간이 흐르면서 등마제주의 면사는 가볍게 떨리기 시작한다.

달빛 아래……

새로운 소일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본래의 소일초의 용모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천지간에서 가장 굴강한 표정과 신비롭고 수려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방심을 흔들리게 하는 아름다운 얼굴……

순간,

[음……]

무엇인가를 물으려던 취풍녀의 입에서 신음인지 찬탄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녀의 몸이 가볍게 떨기까지 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한 듯……

그의 보석처럼 빛나는 눈망울은 희열의 빛마저 내포한 침묵으로 뿌리고 있었다.

[좋아요……아주 아름답군요……]

무슨 말인지……

그녀는 똑같은 말을 한동안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더이상 소일초를 보기가 두렵다는 듯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당신을 제물로 생각한 오늘의 등마제주는 어쩌면 이 땅에서 가장 큰 행운을 잡은 것 같군요……]

소일초는 자신의 역근천골공이 풀어지는 순간……

취풍녀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이한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여인의 몸에서 발해질 수 있는 강렬한 체향과 지분냄새였다.

취풍녀가 동요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게 감추고 있던 그 여인의 향기를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는 허무와 퇴폐가 깊이 내재된 욕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소일초는 느낄 수 있었다.

주소아에게서와는 아주 다른 느낌,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그것은 오히려 때때로 한천녀에게서 나 보여지는 것 같던 그 느낌이 소일초에게 묘한 자극으로 전해져 왔다.

이때,

취풍녀는 드디어 몸을 일으켜 바짝 소일초에게 다가왔다.

[지금 이 시간은 육욕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시간……당신과 함께 이 축제를 만끽하고 싶어요.]

[내가 결국 제물이 되는건가? 너의 짝짓기 제물이……,이렇게 해서 몇 명의 사내와 관계를 가진 후 죽였나?]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등마제에서는 세 사람 뿐이었어요……]

취풍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일초의 말에 대답한다.

(나쁜 년 그게 적어?)

[그럼 이제 네 사람이 되는 건가?]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요.]

[끔찍하게 들리는군……]

[당신은 내키지 않은가요?]

소일초는 등마제주을 뚜렷히 직시했다.

[나는 항상 여자의 신비에 감탄하고 있지. 여체에서 느껴지는 그 흥분을 즐기는 편이지……]

순간,

취풍녀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

그러다,

[나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였어요……늘 나에게도 이런 우발적으로 사내를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이편이 아는 사람보다는 더 짜릿하죠.]

그녀는 소일초에대해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 듯 했다.

달빛과 야풍 속에서……

그녀의 손은 은밀하게 소일초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오늘 밤……오늘 밤 나는 등마제주이고 당신은 내 짝이에요……그것이 우리가 만난 의미의 모든 것이죠.]

소일초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늘 밤은 내가 거꾸로 여자의 장난감이 되는구나, 어디 소아의 흉내나 한번 내 보자.)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취풍녀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소일초의 음모 속으로 그녀가 빨려드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미끼만 따먹고 도망치는 물고기가 될 것인가?

멀리서 아직도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취풍녀는 자신의 옷을 벗고 있었다.

 

× × ×

 

만월이 스러지고……

등마제는 마침내 그 막을 내렸다.

사망림에 내려진 그 저주가 그 잔인이 끝을 맺은 것이다.

여명은 찾아들고……

이 죽음의 땅은 인간들의 죽음으로 뒤덮혀 있었다.

오오……저 지천에 나뒹구는 수많은 시신들……

그들은 등마제에 제물로 바쳐진 인물들과 이 참혹한 악의 축제를 없애겠다는 원대한 뜻을 품고 들어왔던 두꺼비들,

정천수호군 역시 칠백 여 명이나 죽어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불과 삼백 정도, 그나마도 가까스로 빠져나갈 수 있었으니 등마제주의 힘은 가공할 수 밖에 없었다.

정천수호단의 출동으로 사라지리라 믿었던 등마제가 더 큰 공포의 실체로 무림에 부각된 것이다.

등마제……언제까지 십오야에 피를 뿌릴 것인가?

 

× × ×

 

금릉,

이 고도에 자리잡은 한 은밀한 무림세력이 있다.

소은(小隱)은 산에 숨고 대은(大隱)은 시장에 숨는다는 장주(壯周)의 말을 따랐기 때문인가?

이 집단은 금릉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전혀 무림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한데,

한 대의 사두마차가 소리없이 그 집단이 존재하는 장소로 은밀히 들어갔다.

 

× × ×

 

한 거대한 대전(大殿)이었다.

대전의 내부는 단아하였고 정갈했다.

몇 점의 고서화가 사면 벽에 장식이 되어 있었으며 중앙에는 하나의 태사의가 놓여 있었고……

그 태사의의 앞에는 하나의 차탁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술 독이 올려져 있었다.

아침의 여명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으며……

대전내부가 그 황금빛에 신비하게 물들어 있었다.

[술은 만들어 먹는 것보다 담아서 먹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 기분이 영 나질 않거든……]

중얼거림과 함께 큰 잔으로 술을 들이키는 사람이 있다.

눈처럼 희고 고운 손……

그 손은 여인의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흩어진 머리칼……수더분해 보이는데

백의 청년의 용모는 이 땅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바로 소일초였다.

[취풍녀를 족치면 될 것도 같은데, 나쁜 년놈들……하고 싶으면 자기가 하지 나한테 곤욕을 치루게 해? 어쨌든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끝장을 봐버려야지……]

나쁜 년놈들,

바로 한천이기인 원천기와 한천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구석에 숨어서 끝없이 그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취풍녀를 족쳐서 알아낼 것 알아내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그에게 한천이기는 이 집단의 핵심부까지 직접 파헤쳐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소아가 신신당부를 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완전히 코가 꿰였어……주소아 그 여우한테 난 잡아먹혀 버린 거야……천하의 소일초가 이따우 짓이나 하고 숨죽이고 있자니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아……]

그의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주소아의 얼굴,

사라져 버린 백인장의 작은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이 주소아다.

헤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인지……

이렇게 술로서 지내고 있는 걸 주소아는 알기나 하려는지……

그리고, 백인장의 식구들……

대체 그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다. 이런 것은 다 주소아가 알아서 해줄 일이다.

지금도 한천이기는 눈썹이 빠져라 어디론가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사주를 받던 정통마교의 배신자 조천수가 만든 등천마교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지도 모르는 잔당들 일 수도 있는 이 신비집단을 파악하기 위해 바쁜 것이다.

문득,

치미는 울화를 술로서 달래는 소일초의 앞으로 한 소녀가 다가왔다.

일신에 청의를 걸친 시비 차림의 소녀였다.

그녀는 소일초의 면전에 이르러 공손히 고개를 조아린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무적검 대협!]

[…………]

소일초는 눈도 돌리지 않고 술을 퍼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나타난 소녀가 취풍녀의 네 명의 시비 중 하나인 국향(菊香)임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자기에게 눈도 돌리지 않는 소일초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인? 취풍녀?]

[그렇사옵니다……그분은 연화정(蓮花亭)에 계십니다.]

소일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금릉의 중심가에 자리잡은 예의 그 신비집단의 내부였다.

그는 취풍녀과 함께 이곳에 온 후 오일을 보냈다.

이곳은 등마제를 주최하는 비밀세력의 근거지 중의 하나였다.

금릉의 중심가에 자리잡은 이곳은 그 세력의 수뇌들 중 취풍녀의 거처였으며,

이곳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등마제에 참석한 인물들은 모두 피리소리에 심신을 제압당하여 어디론지 가버렸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등마제를 주도하는 세력의 손발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 지난 보름,

대파산 사망림에서 취풍녀는 소일초에게 황당해져 버렸다.

그녀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도 소일초와 결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몸은 한없이 달아올랐는데……

결정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소일초의 남성이 사그라져 꼬마들 새끼손가락만큼 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허전함에 다시 보면 그것은 다시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것이었고……

취풍녀 그녀는 객점에서 소일초가 술로서 부렸던 요술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래요? 그렇게 내가 싫어요?]

취풍녀가 절박하게 소리쳤을 때,

[나는 거기까지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어……오늘도 예외일 수 없고……]

처근덕스럽게 소일초가 말했다.

[당신은 아내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글쎄, 우리 마누라가 그걸 원하지 않아. 이 정도에서 싫증나면 멈추곤 하지……]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일초의 몸은 여전히 그녀에게 강한 욕구를 일으키게 하는데,

빌어먹을 작자가 주겠다는 떡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한 번도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뭘? 늘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하여 그녀는 소일초를 끌어안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식고 말았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도무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든 말든 이 귀엽고 능청스러우며 우람한 사나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속상한 마음으로 소일초를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녀의 몸은 아름답다. 면사속의 얼굴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주소아의 몸에 익숙해져 있는 소일초로서는 도무지 아무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토록 많았던 호기심이고 뭐고간에 주소아를 떠나고 난 후에는 몽땅 없어져 버렸는지 여자에게 눈도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취풍녀는 이곳에 와서도 밤마다 소일초를 불렀지만 소일초는 여전히 그 묘한 요술을 부려 그녀를 안타깝게 했을 뿐이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어느새 그런 식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의 깎아 만든 듯한 육체미에 깊이 빠지고 그의 마음대로 줄었다 늘었다 커졌다 작았다 하는 물건에 빠져가는 것이었다.

해내든 못해내든 그녀는 밤마다 그걸 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엉뚱한 놈을 만나 이상한 중독에 걸려버린 것이다.

중증이었다.

한데,

취풍녀가 낮에 그를 부른 적은 없었다.

그녀는 바쁜 듯 했었고 소일초에겐 충분한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침 시간에 소일초를 부른 것이다.

(그 얼빠진 여자가 아침부터 발작인가……)

소일초는 연못에 있는 연화정으로 아침공기를 마시며 걷기 시작했고……

국향은 그의 뒤를 따라 가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제법이야. 좋았어. 점점 더 마음에 들고 있어……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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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正統魔敎의 武功을 익힌 登魔祭主

 

 

 

검은 사두마차의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잠을 자는 소일초……

그 얼굴은 오직 술에 절은 평범한 얼굴일 뿐이다.

하나, 그 얼굴을 주시하는 왕혜려는 내심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그 얼굴이 이끌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저자의 어디에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자신에게 묘한 회의감을 느끼기까지 하는 왕혜려……

과거 수 많은 무림의 청년을 보아 온 그녀가 아닌가?

그 중에는 북궁헌 같은 미남자도 상당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미남자들을 죽 보아오면서 아직까지 이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밤……

그녀의 마음은 이 어두움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정신없이 끌려들면서……

한데, 그녀의 생각을 홀연히 깨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스스스……

마차의 바닥에서 소리없이 꿈틀대며 일어나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흰 머리(白髮),

회색의 눈동자,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칙칙한 죽음의 기운……

절세미남자가 바로 소일초의 면전으로 솟아오르고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의 시선을 집중한 가운데……

문득,

소일초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눈은 천천히 그 백발의 절세미남자의 아름다운 손으로 향하고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이 내미는 한 장의 서찰을 받아들었다.

순간,

그 절세미남자는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리없이 스물스물 사라져 버리지 않는가?

한편,

그 백발의 미남자가 나타나자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그 에게서 풍겨지는 소름끼치는 사기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같은 가공할 사기는 그들이 일찌기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저런 엄청난 사기가 뿌려질 수 도 있다니……대체 그는 누구인가? 저 무적검이란 자의 손에 들린 서찰은 또 무엇인지?)

그들은 의혹과 경악의 표정으로 소일초를 주시했다.

이때, 소일초는 그 신비의 서찰을 천천히 읽어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천이기 중 원천기가 전한 것이었던 것이다.

 

<서략(序略)……등마제주에 대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그는 등마제를 주재하는 인물로 어떤 단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소이다. 그 단체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소이다……>

 

(등마제주……)

소일초는 그 이름을 나직이 되뇌이며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때, 그는 나직이 소리를 내어 읽고 있었으므로 주위의 인물들도 모두 서찰의 내용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신비하고 또한 엄청난 잠재력이 있소이다.……그리고……회주께서 타신 검은 사두마차는 등마제주를 제외한 삼십 육 명의 흑의복면인이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따르고 있으며……그들의 무공은 일파의 종주와 비견될 만큼 가공할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한데 놀랍게도 이 마차 외에도 수많은 마차들이 검은 포장을 한 채 대파산을 향해 질주하고 있소이다……>

 

(모두가 제물을 실은 마차겠지……)

소일초의 얼굴에 가볍게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가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 마차들은 대파산의 중심으로 사방에서 사망림(死亡林)으로 향하고 있으며……그들을 포위한 채 정천보의 정천수호군이 따르고 있습니다.>

 

소일초는 손아귀속에 서찰을 움켜쥐었다.

파지직------

연기를 내면서 서찰은 사라져 버렸다.

더이상 아무 할 일이 그에겐 없다는 듯이……

소일초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그의 진실한 정체에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으니……

무적검……

이것이 그들이 소일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지만,

이 서찰을 전한 조금 전의 신비인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존재가 자신들의 짐작보다 엄청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신비인……

그는 등마제주와 삼십 육 인의 호위들의 포위망을 교묘히 뚫고 들어 올 수 있으리만큼 대단한 무공을 소유했다.

그 정도의 인물을 수하로 거느린 소일초……

그의 존재에 대해 그들은 새삼 다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파아아아……!

돌연 마차의 천정을 뚫고 떨어지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금빛 전서구(傳書鳩)였다.

그 전서구는 곧장 왕혜려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이제야 연락이 왔군……]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수호군의 인물과의 긴밀한 연락용이었던 것이다.

그 전서구의 발에는 죽통이 매달려 있었고 한 장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정천수호군의 군주인 왕혜려는 그 서찰을 빠르게 읽어 나간다.

소일초는 눈을 감은 채 생각한다.

(정천보의 정천수호군의 능력도 보통이 아니군……전서구를 이곳으로 전할 수가 있다니……대단한데……)

소일초 역시 정천수호군의 잠재력을 인식하지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의 뇌리에는 엉뚱한 생각도 있었으니……

(등마제주……그가 등마제를 주관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이라면……그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겠지……그럼에도 불구하고……그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 자신있다는 말인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치밀하며 어떤 계획적인 신경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정천수호군……

등마제주……

그리고 자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치의 빈틈도 찾아 볼 수 없는 계획 속에 움직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한편,

서찰을 읽고 난 다음 북궁헌과 왕혜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받은 서찰의 내용이 소일초가 받은 서찰의 내용과 완벽하리만큼 일치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차는 더욱 더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으며……

대파산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사망림(死亡林),

이곳은 죽음의 숲이다.

하늘이 외면하고 인간마저 외면한 죽음의 오지(奧地),

그 버려진 땅은 광대하다.

방원 백여 리가 안개의 밭이요……

무성한 잡초만이 늘어진 황량한 광야이다.

황폐한 땅, 오직 가시덤불과 잡초들만 뒤덮혀 있다.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사목들……

독충들이 우글거리며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언젠가 부터 버림 받은 땅……

그 위에도 십오야의 만월(滿月)은 떴다.

한데,

그 만월아래……

모여드는 이 일단의 무리들……그리고 검은 마차……

모여드는 무리들의 소매에 붉은 악마화가 그려져있고, 사망림은 마두들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붉은 악마화을 그려넣고 사망림에 모여들고 있는 인물들……

오늘은 보름달이 뜬 날이다.

 

-등마제(登魔祭).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이 죽음의 땅에 인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붉은 악마화를 그려넣고 나타난 인물들은 바로 이 등마제에 초대받은 악인들이고,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잠재된 온갖 악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강렬한 기대에 사로잡히면서……

그들의 수효는 어림잡아도 이 천여 명……

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망림으로……사망림으로……

마차들도 사망림으로 다가들고,

그 가운데 한 대, 바로 소일초가 타고 있는 검은 사두마차 역시 이때 사망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일초는 느끼고 있었다.

사망림의 전체를 뒤덮고 있는 엄청난 마의 기운을……

그 기운은 광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의 폭발이요, 욕망의 분출이었다.

(등마제주……등마제……과연 여기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취풍녀가 관련이 있다는 외에는……)

소일초의 마음은 의욕보다는 회의가 더 많았다.

주소아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어 참석한 등마제,

하지만 일단 부딪쳤으니 닥치는 대로 일은 해보고 볼 일이다.

이때,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애써 긴장을 감추려 하는 태도가 역력하게 소일초의 눈에 들어왔다.

[긴장하고 있는가 흥분하고 있는가? 궂이 숨길 필요야 있나 다 사람마음에 있는 것인데.]

소일초의 말은 장난처럼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눈빛을 빛내며 잠잠히 있었다.

밖에 있는 적들도 무섭지만, 마차 안에 있는 괴상한 청년 무적검도 종잡을 수 없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소일초는 마차 밖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검은 사두마차가 사망림의 깊숙한 지점으로 진입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한천이기가 계속하여 그에게 전음으로 앞 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망림……

이곳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돌연, 검은 사두마차가 그 움직임을 멈춘다.

잡초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리는 곳이었다.

소일초는 눈을 떴다.

그러자 왕혜려의 시선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의 해맑은 동공이 가득 그를 담고 있었으며 그 어떤 기이한 감정을 풀어놓고 있지 않은가?

그런 왕혜려를 보며 소일초는 빙긋 웃음 지어 보였다.

그런 후 말했다.

[너무 늦었어……이미 임자있는 몸이야……]

순간, 왕혜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의 매정한 말에 화가 나기도 했던 것이다.

소일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드디어 구렁이 뱃속이야. 두꺼비 친구들 잘해봐……]

왕혜려 역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떻든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라겠어요……]

그녀의 말투에는 감출 수 없는 정이 깃들어 있었다.

소일초는 그런 그녀가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곳에서 만나게 되길……기왕이면 친구도 적도 아닌 사이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한데,

그 말이 막 끝나자마자,

쿠르르르------!

마차의 철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한 명의 흑의복면인이었다.

눈빛이 회색빛을 띠고 있는 그 흑의복면인은 잠시 마차 안을 살핀 후 감정없는 억양으로 말했다.

[먼길을 오느라 수고들 했다……이제 그대들은 이곳에서 가장 안락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행운이요……다시 맛볼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죽음을 행운이라고 말하는 이 흑의복면인,

[내려와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흑의복면인의 말은 죽음의 기운을 강하게 담고 있었다.

사망림에 소용돌이치는 죽음의 기운 만큼이나 진하게……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아무 말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어,

소일초 역시 검은 사두마차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안개의 소용돌이가 무섭게 사위를 휘감고 있었다.

달빛에 물든 푸른 안개……

그것은 마치 지옥을 방불케 할 만큼 사망림을 음사하게 침잠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은 사두마차를 중심으로 어둠 속 여기저기에 보이는 저 수 많은 붉은 악마화……

그것은 악마의 혓바닥처럼 사이하게 어둠 속에서 그 푸른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음……대단하군. 어떻게 되던 빨리 신나게 한판 붙어라, 어떻게 좀 정리가 되야 뭘 알아 내기도 쉽겠지……이 어르신은 어부지리를 취해주마……)

소일초의 마음은 야릇한 기대감에 차있었다.

이런 기분은 아마 마장탑에서 나온 뒤 처음으로 느껴본 것이리라.

스스스……

이 악마의 땅 위로 죽음의 기운을 뿌리며 스쳐 지나가는 일진 음풍……

소일초는 표표히 옷자락을 나부끼며 사방을 살폈다.

우선, 수십 대의 또 다른 마차 즉 검은 사두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검은 사두마차 역시 이 죽음의 제전에 쓰일 제물을 싣고 온 것이리라.

인간 제물들……

그들은 대부분이 청년들과 소녀들이었다.

용모가 준수한……

그래서 그들 대부분이 무림의 기재기녀(奇才奇女)들임을 느끼게 하는……

한데, 이때 그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곧 전개될 이 죽음의 제전에 대해 엄청난 전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공포는 무엇으로도 가다듬을 수 없는 것이다.

일단,

그들이 사망림에 들어 온 이상 그들은 체념 이외에 달리 어떤 행동을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정천수호군의 인물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소일초는 다시 시선을 돌려 방금 그들이 타고 온 검은 사두마차를 바라보았다.

붉은 악마화이 걸려 있는 검은 사두마차,

그 주위로는 정확히 삼십 육 명의 흑의인들이 마치 흔들리는 안개의 일부분인 양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즉,

그들은 검은 사두마차의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일초는 생각했다.

(한천이기의 말대로 저들의 무공은 일파종사의 경지에 올라있다. 놀라운 일이로군……등마제의 일개 주구들인 저들의 무공이 저정도라니…정천수호군은 버겁겠는데……)

한데 이때,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의 표정은 완전히 경악에 질려 잇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방금 그들이 타고 온 검은 사두마차의 지붕에……

한 마리의 독수리가 나래를 접은 채 고요히 앉아 있지 않은가?

한데 그 독수리의 날카로운 두 발 사이에 끼어있는 몇 마리의 날짐승,

그것은 바로 정천보의 인물 사이에 연락용으로 쓰이던 바로 그 금색 전서구들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 정천보의 모든 기밀이 등마제주라는 인물에게 완전히 간파당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정천수호군주 왕혜려와 나머지 정천보의 정천수호군 소속 인물들이 경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소일초는 혀를 찼다.

[그 정도는 짐작했어야지……등마제주도 합바지는 아닌데……머리나빠 고생들이 많겠어.]

그리고,소일초는 계속하여 등마제주라는 인물을 살폈다.

등마제주,

그는 쉽게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나 안광이 극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인물이라면 그를 발견할 수가 있으리라.

그는 마차의 전면에 있는 붉은 악마화 앞에 앉아있었다.

악마화와 동화가 된듯 자연스럽게 어우려져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었다.

달빛은 다시 혈응의 핏빛 깃털에 반사되어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데……

신비롭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그야말로 극사한 것이었는데 발견하기는 어려워도 보는 이들에겐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을처럼 환상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그 인물이 바로 등마제주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일이었다.

그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면사의 사이로 드러난 눈망울은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하였다.

그런 그의 눈망울을 보며 소일초는 느낄 수가 있었다.

(흔적을 다시 발견했군……한천이기가 좋아하고 있겠지……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자……)

그렇다.

극마의 경지에 이른 인물만이 지닐 수 있는 눈빛을 등마제주는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부터 소득이 있으니 빨리 동선장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등마제주의 배후 집단 만 알아내면……하지만, 그 세력을 경시해서는 안되겠는데……어쩌면……등마제주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아닐 텐데……극마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많이 있다면 옛날의 정통마교보다 오히려 더 강하다는 말……)

정통마교에서는 오직 구마존 중에 천마존 만이 극마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데,

등마제주 역시 극마의 경지에 이른 인물인 것이다.

소일초의 생각은 이즈음에 이르러 있었고……

다시 그의 생각이 이어질 즈음,

문득, 등마제주가 입을 열었다.

[시작하라!]

단 네 마디의 음성이었다.

어떤 인간의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무심무정한 음성이었다.

한데 그 음성이 막 떨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삐리리리……삐리리리……

사람의 감정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그 소리……

어쩌면 이 피리소리는 등마제주의 음성과 동일한 시간에 터졌는지도 모른다.

한데,

그 피리소리에 이끌린듯 사방의 붉은 악마화들이 움직인다.

아니, 붉은 악마화를 새긴 마인들이 등마제에 바쳐진 제물들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소일초는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보의 인물들을 쳐다보았다.

(왜 아직 움직이지 않는가? 시작하려면 지금 해야지……멍청하게 이미 들통난 판에 더 기다려서 전멸할 작정인가……)

기습과 암습은 철저히 비(秘)로 시작되고 비(秘)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한데, 바로 정천보의 이번 거사는 보안의 부족으로 완전히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등마제주는 그것에 관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그가 정천보의 비밀을 파악했다는 말에 대해서……

하나……독수리의 발가락 사이에 죽어있는 그 몇 마디의 전서구는 그가 이미 정천보의 모든 것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보여 주는 것……

아무리 천하의 기재인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라 해도 이때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비명이 들린다.

붉은 악마화를 든 수백여 명의 인물들이 제물들을 덮쳐 들면서 일어난 비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터져 오르는 신음……

그것은 욕정의 폭발이요, 광란이었다.

소용돌이 치는 안개……

뜨거운 신음과 공포에 질린 비명이 병행하여 들리고……

마침내 등마제의 제전 중 육욕(育慾)의 제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소일초를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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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馬車는 달린다.

 

 

 

휘장이 드리워진 객점의 한 방,

소일초가 정신없이 침상에 골아떨어져 있다.

그리고……

침상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홍의면사녀,

취풍녀였다.

[정말 신비한 사람이야……마치 요술장이 같아……]

그녀는 손뼉을 딱딱 쳤다.

그러자,

그 방의 한쪽 귀퉁이에서 검은 복면인이 나타났다.

[여기에 있다가 시간이 되면 이 사람을 데리고 합류해라.]

말을 마친 후 취풍녀는 창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흑의인은 해가 저물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

 

밤(夜),

달빛도 별빛도 없는 칠흑의 밤을 가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일신에 흑의를 걸친 무심냉막한 눈빛의 복면인이었다.

한데,

그의 옷 소매을 보라!

하나의 붉은 꽃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지 않은가?

여섯 개의 꽃잎을 가진 섬찟한 혈화(血花),

그것의 심에는 끔찍하게도 작은 해골이 그려져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붉은 꽃잎 속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오오……그것은 악마화(惡魔花)……

바로 악마화가 아닌가?

등마제의 신물과 같은 그것은 등마제에 참석하는 인물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지금 그 악마화는 복면인 검은 소매에 새긴듯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면인의 어깨에는 한 명의 청년이 축 늘어진 채 매어져 있었다.

바로 소일초였다.

이때,

소일초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객점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줄곧 복면인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 자가 악마화의 표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등마제를 관장하는 무리와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다.)

한데 복면인의 신법은 놀라우리만큼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발 끝이 지면에서 한 자 이상 뜬 채 허공을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절정의 내가고수가 아니면 전개할 수 없는 절정허보(絶頂虛步)였던 것이다.

(취풍녀……이자가 취풍녀의 일개 하수인이라면 등마제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인물들은 취풍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인데……)

한편,

복면인은 막 한 절곡에 이르고 있었다.

사방이 울창한 송림에 휩싸인 절곡이었다.

한데 그곳의 중앙,

한 대의 사두마차가 어둠 속에서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차 동체가 검은 빛인 마차,

그것은 얼마 전 양양의 한 대로상을 스쳐갔던 바로 그 마차였던 것이다.

(악마의 사두마차……)

소일초는 한천이기의 전음을 생각하며 복면인이 느끼지 못하게 마차를 살폈다.

이때 복면인은 마차에 바짝 접근한 후 공손히 부복했다.

[등마제주(登魔祭主)를 배알하옵니다.]

순간,

고오오------

천지사방이 일시에 멈추는 듯한 적막과 함께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어둠의 움직임은 바로 검은 사두마차로부터 시작이되고 있었으며……

어둠의 폭풍은 소일초를 휘감더니 곧장 마차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실로 놀라운 변화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송림을 울리고 차츰 어둠을 울리고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으니……

[수고했다.]

이 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음성인지 사내의 음성인지조차도 구별이 안간다.

[이제 그대는 돌아가도 좋다.]

이 말이 떨어지자……

스스스……

하나의 핏빛이 사위에 진하게 뿌려지고……

어둠을 해치며 들려오던 그 신비한 음성은 이 마차의 전면에 그려진 악마화 속의 푸른 해골에서 부터 흘러나오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흑의복면인은 더욱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더니 이내 몸을 날려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러자,

사두마차는 절곡을 빠져 나와 무서운 속도로 어디론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둠의 폭풍을 날리며……

 

× × ×

 

마차 안,

사두마차의 안은 넓었다.

사방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철창으로 완전히 막혀 있었으며……

그것은 사방이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하나의 뇌옥을 연상하리만큼 음침했고 칙칙했다.

어둠의 공간은 질주하는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떠있는 열 쌍의 눈동자가 있었으니……

그 눈빛은 모두 어둠속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단 한 쌍의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소일초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거무럭 거리고 있었다.

어둠을 대낯처럼 환하게 볼 수 있는 소일초……

그는 광채없는 눈으로도 마차의 내부를 선명하게 살필 수가 있었다.

마차 안에는 그를 포함하여 정확히 열 명의 남녀가 이리저리 쓰러져 있거나 눕혀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양양의 대로상에서 납치당한 소녀도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무심하고 초연한 표정을 짓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의 나이는 불과 약관 전후로 보였는데 그들의 용모는 천하에 짝을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수려한 것이었다.

남자가 넷, 그리고 여인이 넷……

소일초를 포함하여 열 명의 남녀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살피느라 애쓰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두두두-----

마차는 어디론가 질풍처럼 질주하고 있었고,

마차의 유리문을 통해서 흐릿한 달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소일초는 생각했다.

이들 모두가 납치당한 인물들이며 일견하여 서생과 여염집 규수들인 것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실로 절정의 고수들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군……저들에게는 제각기 가공할 무공이 있는 것 같은데……스스로의 무공을 애써 감추려 하고이다……아마도 다들 일부러 잡혔겠지……)

짧은 순간,

마차 내부의 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를 살핀 소일초는 이곳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어쩌면 자신과 같이 어떤 목적을 두고 계획적인 납치를 당한 것이라 짐작했다.

문득,

그는 마차 안에 감돌고 있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모두가 구렁이 입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두꺼비들 이었군, 같은데 몸을 두고 있으니 통성명이나 하지……]

그의 음성은 술이 들 깬 듯 일정한 높낮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눈동자가 흠칫하면서 그를 주시했다.

하나,

그의 물음과는 상관없이 없다는 듯 마차 안은 여전히 눈을 빛내는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음……구렁이가 혹시 먹지 않을까 두려운 모양인데……]

그는 더욱 더 마차 안의 인물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꼈다.

(정천보 인가 뭔가 하는 데서 파견한 놈들이겠지?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말도 못하는 겁장이들……)

이때,

그는 다시 불쾌한 듯 물었다.

[어차피 우리는 한 배를 탄 신세가 아니가? 사람이 통성명을 청했으면 무슨 말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나?]

문득 소일초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대는 이곳이 어디인지나 알고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가?]

전음이었다.

소일초는 대로상에서 납치당한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로서는 대로에서 납치를 당한 소녀인지 침실에서 납치당한 소녀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는 빙그레 웃었다.

[물론 알고 지껄이지……여기가 사두마차의 안이라는 걸 왜 모르겠나……우리를 편안히 목적지 까지 데려다 주려고 하는 마차를……]

이 말에 마차 안의 인물들은 침음성을 토했다.

은은히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떠오른다.

소녀의 음성이 다시 무게를 담고 이어졌다.

[역시 이 마차가 등마제로 가는 것을 알고 있었군, 그런 것을 알면서도 통성명을 하자는 것은……어떤 의도인가?]

그녀의 전음은 서릿발처럼 차가왔다.

그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겁장이들이야……큰 일하긴 힘들겠어, 너무 작아……]

순간,

마차 안의 인물들의 얼굴에 일제히 차가운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그대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나……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그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역시 전음으로 들려오는 이 말,

그것은 한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때 청년의 눈빛은 하늘을 닮고 있었으며 일파종사의 위엄을 담고 있었다.

소일초는 다분히 놀라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쓸만한 내공이군……단지 저 눈빛 하나만으로도 정천보에서 지위가 높은 인물이라는 걸 느끼겠는데……)

소일초는 시종일관 불규칙한 높낮이로 주사(酒邪)처럼 말했다.

[과연 정천보의 인물다운 면모가 있어 ……겁이 많은 것이 흠이지만……]

순간,

[죽으려고 환장했군……]

차가운 냉소와 함께……

파아아아------!

좌측 맨 끝에 있던 한 명의 청년이 한 손을 쭉 뻗어 소일초의 목을 노리고 덮쳐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즈음 이미 청년의 투명한 손은 소일초의 목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감히 정천보라는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다니 죽어 마땅하다.]

검미를 찌푸린 채 냉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의 눈빛은 물처럼 고요하다.

소일초……

자신의 목을 잡아오는 상대방의 손힘에서 그는 가공할 내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내심은 가소로웠다.

순간,

그의 비웃음이 터지기도 전에 소일초의 목을 잡으려던 청년의 손이 딱 멈추어지고,

[으으……이럴 수가……]

그 청년의 얼굴 위로 식은 땀이 맺힌다.

그 식은 땀은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을 타고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손……

소일초의 힘없이 늘어져 있던 손에 언제 뽑혀져 있었는지 둔중해 보이는 붉은 검이 그 청년의 가슴에 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황검(魔皇劍)이었다.

소일초 그의 몸 어디에도 검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이 순간 그는 둔중해 보이는 붉은 마황검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검에서 뻗어 나오는 미증유의 살기……

그것은 청년의 사지백해를 타고 흘러들며 무서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으아악-----!]

비명이 그의 목젖을 울리며 참혹하게 터져 나왔다.

그러자,

마차 안의 나머지 인물들은 그만 경악하고 만다.

그들은 청년의 무공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아무 기척도 흔적도 없이 검을 손에든 소일초의 무서운 쾌검에 그만 질려 버리고 있는 것이다.

소일초는 빙그레 웃었다.

[더 크게……등마제주에게는 아직 들리지 않은 모양이야…… 등마제주라는 인물이 아직까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역시 높낮이가 불규칙한 말을 하자,

청년의 비명은 더욱 크게 터져 나왔다.

청년은 아예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경악과 불신을 가득 담고 있었으며……

이런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어떤 항거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생애 최초의 회의를 뼈저리게 맛보아야 했다.

그때였다.

어둠의 신분처럼 앉아 있거나 누워있던 나머지 인물들이 만면가득 살기를 담고 소일초를 향해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마차 안은 진한 살기에 휩싸이고……

그 속에서 소일초의 음성이 살기를 억누르며 터져 나왔다.

[이제 보니……나쁜 놈들이군, 동료가 나를 죽이려 할 때는 방관하더니 내가 고통을 줬을 뿐이데 나를 죽이려 하다니…… 정천보도 확실히 썩은 곳이야……]

몰려드는 인물들은 단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그를 향해 다가설 뿐이었다.

소일초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살수를 쓰려하다니……좋아……한 발작만 더 다가온다면……아마도 이 마차 안은 아홉 개의 머리가 뒹굴게 될 거야……]

순간,

소일초의 말에 자극을 받은 듯 그들의 동작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멈추었다.

소일초의 마황검이 일렁거렸다 싶은 순간 그들의 소매자락이 일제히 베어져 나갔다.

세상에 이처럼 빠른 검이 있을 수 있는가 싶어 경악하며 그들은 꼼작도 못하고 있었다.

[좋아……그렇게 가만히 있어……그래야 겁장이 정천보의 인물들이라 실감할 수 있지……]

소일초의 말은 결코 전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조용한 것이었으나 마차 밖에서도 들을 수 있으리만큼 큰 소리였다.

한데,

마차 밖은 고요하다.

마차 안의 동태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는 전혀 모르는 듯 다만 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등마제주라는 인물이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의혹은 정천보의 인물들 역시 크게 의아해 하고 있었다.

문득,

이 의문에 답변이라도 하듯 소일초가 말했다.

[이곳은 외부와 차단이 돼 있어. 흡음판이 설치돼있어 비명소리하나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진 곳이야.]

그랬던가?

그래서 아직까지 등마제주라는 인물이 마차 안에서 일어나는 소요를 짐작하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이제 조용히 이름이나 밝혀 보시지……]

 

두두두------

마차는 어둠을 가르며 거침없이 달리고……

마차 안에서는 이제 통성명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요에 의한 통성명……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이름과 무림의 위치를 밝혔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자신을 밝혔다.

그녀 바로 대로상에서 계획적으로 납치당한 소녀와 일파 종주와 같은 기도를 풍기던 청년이었다.

먼저 청년이 입을 열었다.

[본인은 정천수호군에 소속되어 있으며……북궁헌(北穹憲)이라 하오.]

소녀의 입을 열었다.

[역시 정천수호군에 소속이 되어 있으며……왕혜려(王慧黎)라 한다.]

북궁헌과 왕혜려……

비로소 그들의 이름 석자와 소속이 밝혀졌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의 소속 또한 정천수호군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북궁헌과 왕혜려……지위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 동시에 떠오른 것은 망설임……

하나,

그들은 소일초의 검에 가슴을 갖다대고 고통에 떨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며 나직이 탄식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많은 것을 알려 하는군……대체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훗날……그것이 죽음을 재촉하는 것일지라도 후회하지 않겠는가?]

싸늘한 왕혜려의 말이었다.

그녀의 수정처럼 맑은 눈망울에 떠오른 분노의 빛은 어둠을 부르르 떨게 하고 있었다.

소일초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평범한 얼굴에 사이한 아름다움이 햇살처럼 영롱하게 피어오른다.

[너무 정중한 협박이야……그러나 죽음은 나를 피해가지. 그러니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신분이나 확실하게 밝혀.]

순간 그는 더 이상 청년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한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어둠……

그리고 그 가운데의 소일초……

평범가운데 비범을 보이고 있는 소일초의 신색에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특히,

여인이면서 만인지상의 권좌에 올라있는 왕혜려의 마음은 이 낯선 사내에게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느끼고 있었으니……

(언제 내가 이런 홀대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이 자는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한 사람이다. 또한 고수……무림에 이같은 인물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진정한 정체가 무엇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정천수호군의 ……군주(軍主)다. 이만하면 됐는가?]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왔다.

순간,

소일초는 의외라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군주? 당신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정천수호군의 군주-----

무림에 알려진 바 없는 인물이 아닌가?

그 정체가 처음으로 소일초에 의해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정천수호군이 어떤 곳이던가?

정천보의 최고의 중추세력 중 하나가 아니던가?

한데,

불과 약관의 그녀가 그 신비의 정천수호군의 군주라는 엄청난 직위에 올라있는 것이니……

더이상 그녀의 뛰어남에 대해 가타부타 논할 필요가 없으리라……

 

북궁헌 또한 정천수호군의 부군주(副軍主)였다.

소일초는 새삼 두 사람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대단한 인물들이로군……이런 곳에서 정천보의 최고 인물들 중 두 사람을 대하게 될 줄이야……그다지 나쁘지 않군.]

그는 비스듬히 마차 벽에 기대며 계속 입을 열었다.

[이젠 됐어……그 정도면 어느 정도의 통성명은 이루어진 것 같으니……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은 하지 않겠어……]

그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때였다.

부군주 북궁헌이 검미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통성명을 했다는 말은 어딘지 모순이 있는 것 같군……그대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자,

소일초는 조용히 눈을 떴다.

[나?]

그는 기이하게 웃으며 주위의 인물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나는……유명하지 않은 인물이야……말한다 해도 모를거야……]

[…………]

[하지만 그대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라도 말해야 겠지……나는……]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된다.

[……무적검(無敵劍)이라 부르지……]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성명 삼 자는 함구한 채……

한편,

소일초의 말을 듣고난 인물들의 표정에 진한 의혹의 빛이 흘렀다.

(무적검?)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 아닌가?)

그들의 의혹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쾌검으로 볼 때 적당한 이름 같기도 했다.

무적검(無敵劍)……

오직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인물은 그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 뿐이다.

바로 주소아와 취풍녀……

아무튼,

이들의 만남은 우연한 것이었고……

한 배를 탄 듯한 마차를 타고 있는 이들의 목적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었지만……

마차는 달린다.

두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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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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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입 큰 놈이 먹히는가? 배 큰 놈이 먹히는가?

 

 

 

한천녀와 원천기는 달빛아래 가득 흩어져 있는 이십여 구의 시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신을 응시하는 그들의 얼굴에 언뜻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놀랍군……이들은 정확히 단 일초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들은 새삼 소일초의 가공할 무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소일초와 주소아가 그들의 뒤에서 걸어왔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걸고서……

원천기와 한천녀는 그의 시선을 맞받지 않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입자들의 정체에 대해 의혹을 금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원천기는 고개를 돌려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소일초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한천녀의 애써 외면하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차갑기만 하던 한천녀가 아까 그 여자였다니 신기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문득,

원천기을 향해 소일초는 긴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원천기……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가는 점이라도 있나?]

천천히 원천기는 시선을 돌렸다.

돌려진 시선은 어느듯 무심하게 변해 한천녀을 응시하다가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옮겨진다.

한 줄기 야풍에 그의 백발은 표표히 휘날리고……

그의 입을 통해 감정없는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소이다.]

[오늘밤……침입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죽음을 당한 것이지……고통없는 죽음이란……이 소일초가 내리는 최고의 선물이니……]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한천녀의 표정은 그 미소에 접하는 순간 차가운 빛을 되찾으며 무심하게 돌려졌다.

그러자,

소일초와 주소아는 몸을 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심히 던지는 말……

[달빛에 취해 잠을 못이루고……사랑에 취한 사람을 위해 정적을 선물하고……좋은 구경을 위해 피를 뿌렸으니……소아 우린 잠이나 더 자자……]

휘적휘적 주소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소일초의 등은 웬지 거대해 보였다.

한천녀와와 원천기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었군……)

그녀는 잠시 원천기을 주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지금도 분명히 느끼고 있는 것은 원천기가 자기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녀는 원천기의 손길을 영원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달빛은 수수롭고……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직도 그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한과 저주인데……

문득,

그녀의 어지러운 상념을 일깨우는 원천기의 음성이 있었다.

[으음……이들은 얼마 전 부터 장원 주변을 배회하던 그 신비인들이겠군……멀리서 돌기만 하더니 오늘은 이곳까지 들어왔군……]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시신들의 복면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히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서 이들은 모두 마공을 익혔어……]

그 어떤 잡히지 않는 사실을 찾아가며 원천기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시신들의 얼구른 달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원천기와 한처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점점 더 전해지고 있었으니……

[이럴 수가 이 자는 정통마교의 배신자들의 무공을 지녔다.]

[이 자 역시 마찬가지다.]

경악의 도를 넘어서 떨리기까지 하는 그의 음성은 한천녀에게도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니……

오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 달빛 아래 정황이 드러난 이 사건은 실로 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한 밤의 침입자들……

그들은 놀랍게도 과거 정통마교를 배신하고 사라졌던 자들 처럼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등천마교는 혈기대종사의 겁으로 인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거니 했는데……

한데……한데……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오늘 밤 이 동선장에 나타난 것이다.

정통마교는 멸망했다.

그렇다면……

정통마교의 배신자였던 조천수 등이 만든 등천마교의 잔당이 남아 있다는 말인데……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원천기와 한천녀의 전신은 가는 경련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마장탑을 나온 후 그들은,

옛날 자기들의 사주로 인해 정통마교를 멸망시키고 뛰쳐나온 조천수 등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미 조천수 등이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등천마교는 그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혈기자와 네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멸망해 버렸다는 것을 알고 경악해 마지않았었다.

등천마교야 말로,

그들 칠십이기재들이 무림에 안배한 가장 큰 힘이었는데……

또한,

그들은 이름이 비슷한 등천마세의 소문을 듣고 찾았으나,

정사를 양분하고 있는 그들이건만 그 본거지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정통마교의 무공을 쓰는 등천마교의 잔존자들인 듯한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문득,

원천기와 한천녀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올랐다.

(또 다른 인물들이 주위에 있다.)

생각과 동시에 번쩍 원천기의 신형이 좌측 수림쪽으로 날아갔다.

한천녀의 신형도 한 줄기 안개처럼 흐릿하게 화하여 그의 뒤를 따른다.

한데 다음 순간,

또다시 터져 나오는 경악성……

[이들은……]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의 사방을 살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림에도 수십여 구의 시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신들의 복장은 앞서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시신들과 동일한 점으로 보아 그들과 같은 일행임이 분명했다.

한데 이들이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엿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에 은밀하게 죽어있는 시신들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기이하게도 이들 시신에서는 어떤 외부적 상처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장도 손상을 입은 것 같지 않으니……

복면을 벗겨 본 원천기와 한천녀는 이들 시신도 역시 정통마교의 마공, 즉 구마존이 사용하던 마공을 익힌 자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 없이 많은 마공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들은 얼굴만 살피고도 알 수가 있었다.

정적,

슬프게 쏟아져 내리는 달빛 속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때 문득,

오랫 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천녀이 입을 열었다.

[이들의 죽음은 곧 정통마교주가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지요……]

원천기는 한천녀을 주시하며 물었다.

[소일초가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다니……무슨 말이오?]

한천녀는 잠시 시신을 주시하다가 원천기를 직시하며 말했다.

[내 말은 이들과 소일초가 죽인 인물들과는 영적으로 맺어져 있었다는 말이지요.]

[영적으로?]

[맞아요……이들은 영적으로 맺어져 있어 공포를 공유하게 되죠. 일단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이처럼 상처하나 없니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천녀……

그녀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이어 간다.

[즉……이들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가 죽음으로써 소수가 영적인 공포를 느껴 ……그리하여 짧은 시간에 이처럼 소리없이 죽어갔던 것이지요……]

그녀의 말은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아침에,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소일초와 주소아는 비로소 수십 구의 시신들의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서운 일인데……비밀을 지키기 위해……단지 비밀 하나를 위해 이토록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다니……누가 이렇게 겁나는 단체에 가입하려고나 할까?]

생각할수록 그것은 전율스러운 일이 아닌가?

잔인한 일이었다.

실로 무섭도록 철저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일초에 의해 동료들이 죽음을 당하자,

공포를 느끼고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심맥을 단절하고 그대로 죽음을 택한 이 철저하도록 잔인한 인간들……

그들이 다름아닌 정통마교의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새삼 놀란다.

(대체 이들의 배후에 도사린 인물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려 한단 말인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침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그들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어떠한 각도에서 이 일을 생각하든 그것은 단지 풀리지 않는 의혹일 뿐이었다.

해는 높이 솟아 오르고……

한천녀는 멀어져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무심함 가운데 알 수없는 정이 깃든 눈빛으로 주시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으로……

주소아는 자신들의 침상에서 아침부터 뒹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등천마교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고 들었는데……또 그들외에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나타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뿐이었다.

불가사의한 백인장과 청옥검궁, 그리고 삼성무림청의 실종……

그녀는 거기에 더하여 또하나의 수수께끼를 가슴에 묻고 있었다.

힐끗,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책을 잡고 있는 소일초를 보았다.

도무지 이 작자는 고민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곤혹스러운 일이더라도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듯 딴 짓을 한다.

주소아 그녀는 머리를 짜면서 궁리를 하는 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저 자식을 만난 것도 다 내 복(福)이지 복……박복(薄福)인지 행복(幸福)인지는 몰라도……)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다.

우선,

그녀는,

백인장과 삼성무림청,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진 다음 곧 출현한 등천마세와 정천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고……

그 사라진 세력들이 혹시 탈을 바꾸어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정천보과 등천마세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캐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하나의 무림의 움직임에 신경을 쓴다.

바로 등마제(登魔祭)에 대해서……

(한천이기가 등마제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제전이 현무림의 판도와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천이기는 보통 인물들이 아닌 것이다.

스스로 칠십이기재의 우두머리로 자부하는 그들의 두뇌는 어떤 분야에서는 그녀와 소일초를 앞지르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그들이 등마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그 제전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일초를 등마제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그녀는 잠을 설친 어젯밤 때문인지 깊이 생각하다가 깊이 잠이들고 있었다.

(그 후의 일은 그때 그때 알아서 하면 되겠지……)

소일초는 아침부터 침상에서 골아 떨어지는 주소아를 힐끗 본 후에도 신경도 쓰지않고 무슨 책인가를 열심히 읽는다.

 

× × ×

 

무림은 술렁이고 있었다.

등마제가 또다시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십오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오 일 후로 다가선 이 달 보름……

십오야 만월이 중천에 걸리는 그 때……

등마제는 대파산(大爬山) 사망림(死亡林)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마제에 초대받은 수많은 악인들이 대파산으로 향하고……

원인모를 실종사건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등마제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마제에 참석하는 사람은 두 종류이다.

악인으로서 제물을 들고 찾아가는 부류와,

악인에게 제물로서 잡혀가는 부류!

참석자의 수 만큼이나 많은 제물의 수……

무림혼란 속에 몸을 떨고……

이에,

정천보는 등마제를 영원히 이땅에서 사라지게 하고자 일천 명의 정천수호군(正天守護軍)을 파견했다.

정천수호군……

이 위대한 이름,

뜻있는 이들이 정의의 기치(旗幟)아래에 모여 형성된 정파무림의 최고 무인조직을 뉘라서 모르겠는가.

정천수호군은 정천보의 핵을 이루는 중추세력 중 하나이다.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단지 이 정도일 뿐……

그 진정한 힘의 실체와 정천수호군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신비였다.

다만……

정천수호군의 이름만은 더높고,

무림인들은 정천보을 믿고 있는 만큼 정천수호군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천하무림인들은 정천수호군의 움직임과 등마제에 대해서 온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며……

그것이 무림의 장래 판도에 중요한 기로였으므로……

아무튼 난세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과연 무림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이지?

 

× × ×

 

찌는 듯한 폭염(暴炎),

유월의 태양은 그 맹위를 떨치고 머리를 덮지 않으면 골이라도 익혀버릴 작정인 것 같았다.

숨 막히는 더위, 이따금 부는 바람이 없었더라면 아마 길가는 사람은 몽땅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양양(讓陽),

이곳 역시 태양은 콩깍지를 튀길 뜨거운 햇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황혼(黃昏)의 노을을 감상하며……

오래 전에서 부터 양양의 요로에 자리잡은 한 객점(客店)의 창가에 앉아 바쁘게 술잔을 기울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몸에는 백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문사건을 아무렇게나 두른 그는,

일견하기에도 지독한 술꾼같은데……

나이는 대략 이십 삼사 세 가량으로 보였고,

용모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객점에는 수십여 명의 주객들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이 청년을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의 청년은 바로 소일초였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역근천골공으로 바꾼 후 이곳 양양까지 온 것이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등마제에 참석하고자……

주소아에게 억지로 떠밀렸던 것이다.

자기가 가면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된다는 둥, 정말 가지 않겠다면 도망쳐 버리겠다는 둥,

오만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하는 수 없이 길을 나섰던 소일초,

주소아가 옆에 없으니 도무지 갈비라도 한대 빠진 듯 가슴이 허전해서 길을 나서자마자 술로 빈 가슴을 채우고 있는 그였다.

객점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정파무림인들보다 사파의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때, 그들의 화제는 모두 등마제였다.

소일초의 술먹는 귀도 그런 소리는 알아들어서,

그들 중 상당수의 인물들이 등마제에 초대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등마제가 이틀 남았던가……)

그는 술 한 모금을 삼키고 아예 눈을 감았다.

무림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더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나 뜨나 오락가락하는 것이 주소아의 얼굴인데……

옆에 있을 땐 당연했던 것들이 없으니 미칠 것 같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그래서 안 올려고 했는데……]

중얼거리며 오직 주소아의 환상만 잡고 있었다.

천하의 소일초,

결국 주소아와의 애정의 덪에 깊이 걸려들고 만 것인가?

오직 빈 속을 술로 채우기만 한다.

그때,

[함께 앉아도 되겠소?]

교태가 흐르는 듯한 여인의 음성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성가신듯 눈을 떠 보니 면사로 얼굴을 가린 홍의의 여인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무관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술을 들이키면서 다시 소일초는 눈을 감아 버린다.

맞은 편에 앉은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사연없이 마시는 주객(酒客)은 아닌 듯싶군요.]

[당신 역시 사연없는 사람은 아닌 듯 싶은데……취풍녀!]

아무렇지도 않게 주정처럼 내뱉는 소일초의 말,

취풍녀라니……

홍의의 여인의 두 눈에 경악의 빛이 지나갔다.

그러나 주위에서 떠들며 이야기 하는 소리에 소일초의 말은 거의 옆으로 퍼져나가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군요.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죠?]

소일초는 여전히 술을 들이킨다.

[제길 앞에 소아가 있어야 되는 건데……]

홍의 여인, 취풍녀는 무슨 소린 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한다.

이내,

비워진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부어 주면서 은근하게 말한다.

[당신은 무척 신비한 사람이군요. 제가 알 수 없을 까요?]

소일초의 눈이 부릅 떠졌다.

[알릴 것도 없고 알고 싶은 것도 없어.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

[집에 돌아가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어요?]

소일초의 태도에 아랑곳 없이 친근하게 취풍녀는 물어오고……

[마누라에게 쫓겨났어……]

[혼인을 하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일하러 가지 않으면 도망가 버리겠대………도망가 버리면 어떻게 나 혼자 살아……]

소일초의 목소리는 점점 처량해져 갔다.

[저런! 부인께서 무척 아름다우신 모양이죠?]

[아니 정반대야, 아무도 그녀를 쳐다보려하지 않아.]

취풍녀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데도 부인이 그렇게 좋아요?]

[그래, 나는 모자라는 사람이라 그 여자 없으면 못 살아.]

[부인 성함이 무엇이지요?]

소일초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흘렸다.

[취풍녀……]

[네?]

취풍녀는 자신의 이름을 소일초가 부른 줄 알고 의아하게 대답한다.

[취풍녀야……]

소일초는 다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고

[호호호호……]

취풍녀는 그제서야 알아듣고 교소를 터뜨렸다.

[당신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농(弄)이 아주 재미있어요.]

그녀는 다시 소일초의 빈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당신 이름은 뭐죠?]

[무적검(無敵劍) 승취풍(承吹風)!]

취풍녀가 살짝 눈을 흘기면서 말한다.

[진짜 이름 말이에요.]

[무적검…………압취풍(壓吹風)!]

[못 말릴 분이시군요. 좋아요 더 묻지 않겠어요. 술이나 마셔요.]

그녀가 어느새 비워져 있는 소일초의 잔을 가득 채워주며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술 좀더. 그리고 이 분이 지금까지 술을 얼마나 드셨지?]

[죽엽청 한 병 하고 구운 닭 한 마리입죠.]

[이 주담자는?]

[그건 물입니다. 손님께서 물을 많이 마시니까 아예 채로 갖다 달라고 하신 거죠. 벌써 두 주담자 째죠.]

[술이나 더 갖다 줘.]

점소이를 보낸 취풍녀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주담자에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은 분명히 소일초가 부어마시던 술이었다.

그런데 점소이는 물을 갖다 줬다고 하니……

(점소이가 물을 갖다 준다는 게 잘못해서 술을 갖고 왔나?)

자칭 무적검 압취풍이라고 밝힌 소일초는 여전히 주담자를 기울여 술을 마시고 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취풍녀가 잔을 들이 밀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직접 따라마셔. 나는 술을 남에게 따라주는 사람이 못돼.]

[너무 냉정하게 굴지 마세요. 잔은 주고받는 거라잖아요.]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직접 부어서 잔을 채웠는데,

아무리 봐도 죽엽청은 아니다.

향긋한, 이름도 모르는 술이었다.

맛도 착 감기는 것이 그녀는 아직 그처럼 좋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단번에 마시고 다시 따라 부었다.

[대체 무슨 술이길래 이렇게 맛이 좋죠?]

그때 점소이가 그녀가 주문한 술을 가지고 왔다.

소일초의 몸이 건들거리면서 잔을 들이키고,

[술은 무슨 술……점소이가 맹물이라지 않았나……]

취풍녀는 술을 마시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향기도 맛도 사라지고 닝닝한 맹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왠 도깨비장난인가 싶어 다시 주담자를 따라보니 분명히 맹물이다.

그런데도,

소일초는 천연덕스럽게 주담자를 기울여 잔을 채워 마시는데,

그때보니 또한 영락없이 자기가 마셨던 술이다.

[당신은 정말 신기해요. 무슨 요술이죠?]

그녀는 주담자를 기울여 나오는 물을 부어버리며 소일초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네 술이나 마셔……]

말을 끌면서 소일초는 푹석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취풍녀는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부축하여 객실(客室)로 데리고 올라갔다.

 

× × ×

 

 

객점에 있는 무림인들이 모두 사파의 인물들 만은 아니었다.

상당수의 정파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을 철저하게 감춘 채 말없이 음식과 술을 마시고 있는 인물들……

그들의 몸에서는 가공할 기도가 풍겨지고 있었으며 두 눈에 감도는 은은한 정광은 그들이 정파의 고수라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정천보에서 파견한 정천수호군에 속한 일부 인물들,

원천기와 한천녀는 시선은 황혼에 두고 있었으나, 객점의 인물들을 빠짐없이 살피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보기에, 정파인들은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원천기와 한천녀의 눈망울에 언뜻 진한 호기심의 빛이 떠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인 것은……

그들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창 밖의 대로(大路)로 향했다.

대로,

그곳에 소녀(少女)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객점의 많은 정천보의 인물들의 얼굴에 떠올라있던 초조의 빛이 사라짐을 느꼈던 것이다.

(보통 신분의 소녀가 아니겠군……)

원천기와 한천녀는 그 소녀를 유심히 살폈다.

나이는 이십여 세 안팎으로 보였으며……

녹의(綠衣)를 걸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소녀는 무림인이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하나, 원천기와 한천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자신의 기도를 감추고 있을 뿐 분명히 가공할 무림의 고수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소녀의 용모는 또 어떠한가?

결코 한천녀에 뒤지지 않는 듯하지 않은가?

그 소녀는 빠른 걸음으로 객점을 향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두두두두-----!

대로의 저쪽으로부터 뿌연 황진을 일으키며 다가서는 한 대의 사두마차가 있었으니……

시야에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 마차는 이미 대로의 중앙을 거쳐 반대편으로 아득히 사라져 갔다.

한데 마차가 사라진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놀랍게도 그 엄청난 기도를 안으로 내포하고 있던 소녀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원천기와 한천녀는 눈을 마주 보았다.

(납치?)

그것은 분명히 납치였다.

한데 객점 안의 고수들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리 없건만,

정천보의 인물들의 표정은 마치 이런 일을 예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일으켰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된 납치……!)

그 납치는 정천보의 인물들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군……)

그들은 묵묵히 객점의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상인 차림을 한 한천이기 중 원천기가 무심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먹힐 것인가? 입 큰 놈인가 배 큰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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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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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한 쌍이 시작하면 한 쌍은 끝을 본다.

 

 

 

소일초는 알몸으로 주소아의 몸위에 올라가 있었다.

침상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주소아 역시 알몸이다.

이미 완전한 성인(成人)인 그들의 몸,

소일초의 나이는 이제 십육 세, 주소아는 십팔 세이니 백송균화의 신비한 효과가 아니라도 상당히 발육했을 나이다.

주소아의 몸은 완벽한 미의 여신의 것이었고,

소일초 역시 놀랄만큼 크고 강한 남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서로의 몸을 마찰하며 흥분에 젖어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살과 살이 미끌리듯 스치면서 짜릿한 흥분을 일으킨다.

이런 순간마다 주소아는 역설적으로 심한 고통에 빠지게 된다.

강한 육체적 욕망이 끌어올라 스스로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소일초의 몸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으며 뜨거워진 부분을 마찰했다.

소일초 역시 그러한 사정은 마찬가지,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주소아의 나신에 자신의 알몸을 비벼댄다.

 

주소아와 소일초의 침실에서 십 여장 떨어진 아늑한 규방,

은은한 황촉불 불빛 아래……

한천녀는 동경(銅鏡)을 넋나간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야심한 시각,

달빛도 조용히 나래를 접는 이 시각,

왜 이 여인은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하염없이 동경 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

문득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살포시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아름답다……)

요즘엔 부쩍 자주 보게되는 자신의 얼굴인가?

그녀는 새삼 자신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심연의 충격마저 느꼈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동경에 비추인 그 아름다움은 극에 달해 있었다.

과거 얼마나 많은 사내들이 이 얼굴 하나에 울고 웃었던가?

그녀의 얼굴 자체가 슬픔이요,

환희였으며,

또한 절망이었기에……

하나, 이젠 과거의 일이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팔십 하고도 하나,

지나간 세월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월은 이미 가버렸다…… 나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이나 나는 너무나 많은 세월을 살아버린 것이다……한과 저주로……)

그녀의 길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손은 조용히 백발을 쓸고 내린다.

백발……

마장탑에 있을 당시에만도 그것은 흑발이었다.

하나 반 년 전……

마장탑의 붕괴와 더불어 밖으로 나서면서 그녀의 흑발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오랜 세월 햇빛을 볼 수 없었던 생활에서 변화하자 그녀의 흑발은 백발로 화하고 말았던 것이다.

원천기 역시 이 경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무정무심한 여인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다만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의미가 있을리 없지 않은가?

한데 보라!

치렁치렁한 백발을 쓸어 내리는 그녀의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지 않은가?

(이해할 수가 없다. 팔십 하고도 하나인 살아온 그 긴 세월 동안 스스로 여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았던가?)

그렇다.

그녀는 마장탑에 잡혀가기 전에는 남자를 우섭게 알았기에,

또한 그곳에서는 한과 저주로 세월을 보냈기에……

자신이 여자임을 느낄 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데 마장탑을 나온 후 밤마다 나는 고통에 몸부림 친다.)

그녀의 눈빛이 황촉불빛 아래서 흐려진다.

(한천녀……이래야 하는가? 진정 이래야 하는가? 너는 이 땅 이 하늘을 파멸시킬 저주의 칠십이기재의 하나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의 내심과는 달리……

온통 죽음의 기운으로 뭉쳐진 그녀의 회색빛 동공에 심한 고뇌의 빛이 떠올랐다.

한 사람……

여인이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내심에 끊임없이 여인을 깨우고 있는 사람……

바로 주소아다.

주소아가 청사무로 그들을 깨웠을 때 영혼의 깊은 연대가 구축되었다.

그리하여……

밤마다 소일초와 잠자리를 같이하며,

서로의 몸을 강렬히 애무하는 그녀로 인해,

수동적(受動的)인 영혼의 교감을 가진 한천녀는 고통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능동적인 교감을 가지는 주소아는 한천녀가 느끼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지만,

한천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주소아와 함께 흥분하고 주소아와 함께 몸을 떤다.

지금,

동경과 씨름하며 백발을 바라보고 있지만……

소일초와 주소아……

그렇다.

거울 속에서 아니 그녀의 뇌리에서 화안히 맴돌아 영혼을 적셔오는 모습은 이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한 쌍인 소일초와 주소아의 끌어안고 있는 나신이었다.

한천녀는 몸을 세차게 떤다.

환상 속에 나타나 보이는 주소아와 소일초를 느끼면서 그녀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전율하기 때문이다.

(하필이면……하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

황촉불이 흔들리고……

그녀의 마음 또한 몸처럼 무섭게 흔들린다.

몸으로 전해오는 흥분을 짓누르느라 고통스러운 것이다.

(정통마교주……그들은 우리 칠십이기재의 노예일 뿐인데…… 그는 단지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천지파멸을 대신할 이용물일 뿐인 데……)

이 밤도 소일초와 주소아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한천녀……

그녀의 아미가 무섭게 경련을 일으킨다.

(팔십이 넘은 몸으로……이렇게 육욕(肉慾)에 몸부림쳐야 하다니……)

순간,

쨍그랑……

그녀는 거칠게 동경을 집어던진다.

밤의 정적을 깨며 금속성이 여운처럼 길게 울렸고……

한천녀의 눈빛은 파도처럼 한동안이나 흔들렸다.

그녀는 다시 황촉불을 껐다.

순간 실내는 죽음과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어둠……

그녀는 밝음보다 어둠에 익숙해 있었다.

지난 세월을 그녀는 거의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속에서 그녀는 정통마교에 의하여 파괴당한 육체를 되살리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수련을 쌓았고,

온갖 마공을 익혀 왔던 것이다.

또한 죽음과 저주, 한(恨)를 온통 그녀의 영혼에 채웠던 것이다.

그래서,

육욕이 몰아치는 밤마다,

그녀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되새기곤 했다.

이 밤도 그녀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

어둠 속에서 과연 그녀의 마음은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달빛은 무심하게 실내로 흘러들고……

그녀는 달빛 만큼 자욱하게 자신의 영혼 속에 가득 차오르는 죽음과 저주의 기운을 느끼고 진한 회색빛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죽음의 미소였다.

그리고 저주의 미소였다.

한데, 문득 그녀의 영혼을 조용히 적셔오는 기운이 하나 있었다.

그 기운은 오질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무심무적의 것이었다.

(이런 기운을 풍길 수 있는 인물은 천하에 오직 한 사람 뿐이다.)

바로,

원천기다.

한천녀는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인물이 바로 원천기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어둠에 동화되어 있는 그녀의 두 눈에 강한 의혹의 빛을 떠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두 눈에 어떤 동요의 빛이 일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녀는 한 장소만을 뚫어지게 주시할 뿐이었다.

한쌍의 눈망울……

유리처럼 투명하고 심연처럼 고요한 죽음을 담고있는 회색 눈망울,

바로 그 눈망울의 주인공은 원천기다.

한데 이게 웬 일인가?

그 죽음을 담은 회색 눈망울 깊숙한 곳에서 무섭게 꿈틀거리는 저 욕정(欲情)의 물결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풍겨오는 뜨거운 유혹의 기운의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한천녀의 회색빛 눈동자에 언뜻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원천기…… 겨우 이 정도 였던가?)

다가선다.

뜨거운 음욕의 숨결을 토하며 원천기가 그녀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마장탑에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한과 저주를 가졌던 원천기가 아닌가?

한데, 그런 원천기가 발정난 짐승처럼 어둠을 헤치며 소리없이 한천녀의 곁으로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저 자도 주소아와 수동적 교감을 갖기 때문에 정욕이 다시 되살아 난 것인가?가 아니면 나의 미에 현혹이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녀의 내심 깊숙한 곳으로부터 죽음의 기운이 무섭게 솟구쳐 오른다.

그녀가 생각한 원천기란 이런 정도의 인물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최소한 자신의 미에 현혹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완벽한 육욕의 한계를 넘은 인물이리라 생각했거늘……

그래서 자신에게 언제나 무심함을 보여왔던 그이거늘……

그리하여,

그녀의 가슴에 알 수 없는 실망과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이때,

원천기의 숨결은 끈적끈적한 열기(熱氣)를 담고 가까와지고 있었다.

그에대한 대한 실망은 무서운 살기로 변해갔다.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최고 인물로 선택된 자가……이정도에 불과하다면……죽여야 한다……그것이 죽어간 칠십이기재들의 뜻일 것이다.)

살기……

그리고 그 속에서 뜨거운 숨결이 흐른다.

그리고 숨막히는 긴장이 흐른다.

 

× × ×

 

한데 언제부터인가?

한 그루의 청송(靑松)에 기대어 달빛을 벗삼아……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천녀의 방을 주시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눈보다 흰 백의에……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한 쌍의 남녀,

소일초와 주소아였다.

언제 옷입고 나왔는가?

그들은 왜 이 밤은 그 장난(?)을 일찍 멈추고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하염없이 한천녀의 방을 주시하고 있는 것인가?

소일초가 긴장을 이기지 못하는 듯 꼴깍 침을 삼켰다.

그렇다.

그는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한천녀의 방에 불빛이 사라지면서 그는 급격하게 긴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불이 꺼졌다.)

씩----!

음흉한 웃음을 얼굴가득 띄면서 주소아를 힐끗 보았다.

주소아는 가만 있으라는 듯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불이 꺼진 방,

그 방에 원천기가 들어선다.

시간이 흐른다.

웬지 숨이 가빠져 오는 것이다.

그는 숨을 가다듬으며 주소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살그머니 그녀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

 

원천기,

그의 회색 눈동자는 욕정으로 번들거리면서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우리가 최후의 두 사람으로 선택된……그때 이후로, 나는 단 한번도 그녀를 타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언제나 나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이 밤……소일초와 주소아가 침상에 누웠던 순간부터 나는 처음으로 한천녀가 나에게서 너무 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비로소 그녀를 여인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오오……내가 얼마나 한천녀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쥔다.

(한천녀……한천녀……)

부서진다.

어둠이 부서지고……

그의 모든 쌓아 올렸던 한과 저주가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다.

 

× × ×

 

원천기는 한천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불덩이였다.

턱 끝에 차오른 뜨거운 김처럼 더운 숨결이 한천녀의 얼굴에 자욱이 뿜어지고……

그의 눈빛은 더욱 혼탁하게 타오른다.

하나,

침묵으로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한천녀의 눈빛은 더욱 어둡게 가라 앉는다.

(이 자를 죽이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한과 안배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동공에 떠오르는 심한 갈등의 빛……

그때였다.

원천기가 거칠게 그녀의 몸을 끌어 아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합쳐진다.

수 십 년의 시공을 넘어서 두 개의 운명의 끈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는 것이다.

입술이 하나가 되고……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합일된다.

하나 한천녀의 입술은 차갑다.

원천기의 몸은 뜨거웠건만 그녀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이 악마의 그림자가 더욱 진하게 원천기의 전신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죽여야 한다……)

 

× × ×

 

[으……아아……악!]

비명이었다.

하나 그 비명은 죽은 자의 목에서만 감도는,

산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비명이었다.

소일초……

그가 지금 막 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검은 복면인이었다.

한데 침입자는 단지 한 명 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나 그들의 무공은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비명없이 죽여가는 소일초……

그는 얼굴에는 화가 나있었다.

(비명이 나면 안된다……저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멈춰져서는 재미적다. 그들은 그 일을 끝내야 한다.)

어둠을 적시며 자욱하게 뿌려지는 피……

벌써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소일초의 잔인한 손 속에 죽어갔다.

단 한 마디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원천기 네가 바라는 것을……빨리 해라……한천녀 원천기 어서……)

불나비처럼……

침입자는 소리없이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덮쳐들었다.

하나,

소일초의 무공은 그들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주소아는 그의 허리에 손을 감고 머리를 기댄채 꼼작도 않는데……

원천기의 무공을 직접 대하는 복면인들의 두 눈에 경악과 공포의 빛이 진하게 떠오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일초의 신경은 여전히 그들 보다는 어두운 방에 더 가있었다.

소일초는 파리떼를 쫓는 소꼬리 마냥 손을 휘둘러 그들을 소리없이 죽이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 가득 피어나는 혈화(血花)……

(합쳐져라……원천기 ……한천녀……)

소일초의 간절한 외침이 입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 × ×

 

[죽엇!]

한천녀의 좌수(左手)가 그대로 원천기의 백회혈(白會穴)로 내리쳐졌다.

실로 원천기의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문득,

원천기는 뜨거운 시선으로 아래에 누워있는 한천녀의 두 눈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한천녀의 귓전으로 뜨겁게 흘러드는 음성,

[한천녀……죽이시오……]

그 음성에……

한천녀의 좌수는 원천기의 백회혈 바로 위에서 굳어지고 만다.

[…………!]

한천녀는 볼 수 있었다.

원천기의 눈빛이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음을……

그리고 느낄 수가 있엇다.

죽음 앞에서도 원천기의 전신이 여전히 뜨겁게 피가 끓고 있음을……

한천녀에게 있어 그것은 충격이었다.

[죽어도 당신을 안고 싶소……]

그녀는 그렇게 뜨겁게 원천기가 구애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그녀는 조용히 떨리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내심에 피어오르는 기이한 욕정을 느끼며 그의 목을 휘감았다.

모든 장애가 깨끗이 제거되고……

원천기는 격렬하게 한천녀의 전신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격정이 지나고 난 자리에……

흩어진 침상 흩어진 옷가지,

두 사람은 수 십년 만에 가진 정사(情事)에 심한 허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이것이었어……늘 아슬아슬한 순간에서 끝나버려 사람의 간장을 태우는 그들과는 확실히 달라……)

주소아와 소일초를 생각하면서 그들의 미진했던 사랑을 떠올린 것이다.

잠시후,

한천녀가 한쪽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녀는 그 곳 탁자에 놓인 싸늘히 식은 찻잔을 끌어다 입술에 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을 침묵으로 보낸 두 사람 사이는 억겁처럼 긴 장막이 가로놓여져 있는 듯했다.

문득,

[미안하오……]

원천기는 탄식과 같은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그도 한 모금의 차를 마신다.

[천요무(天妖舞)를 연성하던 도중이었소……깜박잊고 저녁이 되었다는 사실마저 생각지 못했소……한데……]

원천기는 달빛이 충일한 창문을 응시하며 말끝을 흐렸다.

[돌연 참을 수 없는 욕정이 생기는 것이었소……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바로 그들 때문이었소……그리하여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당신에 대한 욕정이 폭발하고 만 것이오……]

한천녀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천요무,

이 무공은 깊은 곳에서 나체로 익히는 것이 아닌가?

이 무공은 난해와 심오의 극을 달리는 무공이었다.

원천기,

그는 이 밤에 그 가공할 무공을 수련하던 도중 주소아와 소일초로 말미암아 그 극음의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고 엄청난 욕정을 느꼈던 것이니……

한천녀의 입에서 꿈결인 듯 말이 흐른다.

[육십 년 전…… 강제로 당한 이후, 처음이었어요……]

한천녀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흐르고……

그녀의 방에 다시금 불이 꺼졌다.

 

× × ×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다시 침실로 돌아와 있었다.

주소아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소일초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봤지? 그게 정석이야……]

[누가 그렇게 하는 건 줄 몰라서 안했나? 그것만은 도저히 내키지 않아서 그랬지……]

소일초가 자신의 옷을 벗으면서 주소아의 귀에 대고 이야기 했다.

[소아……오늘은 우리도 그렇게 해보는 거야……알았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돼……차라리 날 죽여……]

[그래 죽여줄께……아까 한천녀도 죽는다고 발버둥 쳤잖아…확실히 넌 배우는데 소질이 있어.]

[안된다니까……똑 같이 해……안그러면 도망쳐버릴 거야.]

그녀의 말에 소일초가 투덜거렸다.

[밤낮……그럼 언제 그렇게 할 거야…?]

[나도 몰라……하지만 때가 되면……]

주소아는 오늘도 최후의 방어선 만은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이제 그들도 조금 사람같아지겠지?]

[두고봐야 알겠지만 변하기야 하겠지……]

[시기를 적절하게 잘 맞췄기 때문에 성사시킬 수 있었어……]

 

***

 

어둠에 잠긴 한천녀의 방,

한천녀와 원천기는 다시 욕정에 빠져 들고 있었다.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로 인해 ……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시작하면 끝을 보는데……

달빛은 교교로이 무더운 밤에 죽어있는 복면의 침입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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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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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술독 앞에서 낳지도 않은 아기로 협박하는 請託

 

 

 

유월(六月)……

때는 하늘에서는 찌는 듯한 태양이 천지를 가득채우고,

들판에는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바람이 이따금 분다.

산하(山河)는 짙푸른 색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동선장(童仙莊),

 

북경성 외곽에 얼마전 부터 자리잡고 있는 한 채의 아담한 장원이다.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동선장은 북경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의 놀이터로 제공되고 있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고관대작의 자식들로 부터 빈민의 아이들 까지,

이곳에 오면 언제나 식사를 제공받고 단정한 옷을 입을 수 있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은 아예 그곳에서 숙식을 하기도 한다.

글을 가르치는 글 선생도 있고,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아이들의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일약,

동선장은 북경성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관민이 치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도둑도 동선장에는 들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동선장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곳이다.

하나,

그런 동선장의 주이니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어디 출신이며,

나이가 얼마나 되었으며,

무슨 이유로 동선장을 창설하게 되었는지……

모든 것이 철저한 신비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신비를 애써 밝히려 하는 인물도 없었다.

이 삭막한 현실에 동선장 같은 인정의 샘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인물들이 위안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깔깔깔……!]

[핫하하……!]

[히히히……!]

동선장을 울리는 이 천진무구한 웃음소리,

이 웃음소리 하나만으로 얼마나 평화스러운 곳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십여 명의 아이들과 한 명의 청년이 어우러져 뛰어놀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이 온묘롭게 부서져 내리는 넓다란 녹지(綠地)는 더위도 잊은 그들이 뱉어내는 환호성과 웃음소리에 뒤덮여 있었고……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한 화목(花木)에 비스듬이 기대어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소녀……

그들은 어딘지 부조화스러우 보이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가?

약관의 청년과 소녀……

그들의 모습은 기이했다.

용모는 기가 막히게 준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웬지 사이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지는 까닳은 무엇일까?

또한 그들의 머리카락을 보면 더욱 기이한 느낌을 전해받는다.

백발(白髮)……

오오……

그들의 머리카락은 눈처럼 흰 백발이 아닌가?

그것은 보통의 백발이 아니라 죽음의 향기를 진하게 뿌리는 백발인 것이다.

문득, 소녀의 입술이 무겁게 떨어졌다.

[이런 무료한 생활은 일찍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그녀의 허무적인 중얼거림……

[육십 년의 세월을 한과 저주의 일념으로 살아온 우리 한천이기 아닌가? 한데 무엇이지? 이 땅에 잔혹한 저주를 뿌려야 할 우리들이 그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 천지파멸의 뜻을 점차 잃어 가고 있으니……]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건 말도 안된다. 이건 완전히 계획적이다……그 자는 우리의 가공할 저주를 이런 식으로 스러지게 하려는 것이다. 저 아이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우리 한천이기의 잔인과 저주의 심성을 없애고 있으며 우리를 자신의 완전한 수족으로 부리려 하는 것이다……무서운 사람……]

한천이기……!

그렇다.

이들 백발청년과 소녀가 바로 마장탑의 칠십이기재들 중 두 명인 한천이기인 것이다.

이들이 마장탑의 붕괴와 더불어 사라진 후 반 년 만에 북경에 나타난 것이다.

[원천기……저자는 철저하게 한으로 점철된 인간이 아닌 저주의 화신이 아닌가? 한데……불과 반 년만에 저렇듯 타락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다분히 회의적인 시선으로 원천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단 일푼도 지니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원천기……

그가 충격적이리만큼 변해 버린 것이다.

[원천기 만을 탓할 수 없다. 나 역시 칠십이기재의 한과 야망 망각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그녀의 회색 동공에 천진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렇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우리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다는 것은……죽음을 의미하는 것……더이상 이런 식의 삶을 지속할 수는 없다.]

돌연, 한천녀의 얼굴에 어떤 결연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직 죽음이라는 말 외에는 할 줄 모르던 그녀의 얼굴에……

[때가 된 것이다. 등마제가 벌어지려고 하는 지금……예정대로 우리 한천이기는 정통마교주를 이끌고 무림에 우리의 복수와 한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결단(決斷)을 누구에겐가 전하고자 화원을 가로질러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백발이 허허롭게 날리우고……

문득,

아이들과 노닐고 있던 원천기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어린다.

[때가 되었는가? 이 땅에 나의 저주를 뿌릴 때가……]

이 말은 너무 나직하여 그의 몸에 매달려 있는 어린아이들도 듣지 못한다.

[정통마교주……그는 이 원천기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런 식의 장난으로 이 원천기를 지옥에서 끌어내리려 했다면 어리석은 짓이지……]

원천기는 아이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웃었다.

[까르르……아저씨는 바보다. 혼자 중얼거리다가 혼자 웃는다.]

천진하게 웃는 아이들……

원천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바보다.…그러나 세상에서 바보는 살아남아도 똑똑한 척 정의로운 척 하는 자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어둡게 그의 몸에서 부서진다.

아이들이 목소리를 맞추어서 물었다.

[왜?]

[내 뜻 이거든……]

 

-----까르르

 

다시 터지는 귀여운 웃음들……

원천기……칠십이기재 중 가장 무서운 지혜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남을 철저하게 감추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칠십이기재 중 살아남을 수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잃어 버린 것처럼 행동하며……

은밀한 가운데 자신의 뜻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

멀리서……

원천기를 주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일신에 눈부시게 흰 백의(白衣)를 걸치고……

그 옷자락이 표표히 날리는 가운데 만상에 자욱이 내면의 신비로운 기운을 풍겨내고 있는 인물……

문사건을 단아하게 두른 그 용모는 탈속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투명하도록 맑은 동공에 가득 머금고 있는 어두운 그늘……

그는 다름 아닌 소일초였다.

그는 한천이기의 가공할 잠재력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는 소일초다.

까짓 놈들 정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리면 그만 인 것이다.

 

***

 

<정통마교주이시여……

칠십이기재의 이름으로 이제 당신에게 첫번째 임무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 임무는 바로 등마제에 참석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첫번째 저주를 내리는 것입니다.

지난 반 년의 세월을 당신들의 뜻대로 따랐으니, 이제 우리 한천이기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주소아는 서탁에 놓인 한 장의 밀지를 읽은 후 조용히 시선을 황촉불에 두었다.

서실(書室)의 창 밖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황촉불만이 은은히 서실을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주소아의 아름다운 얼굴은 타는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때가 되었는가? 일초는 어떻게 하길 원할까?)

그녀는 밀지를 들어 황촉불에 태운다.

(등마제와 함께 시작되는 칠십이기재의 첫번째 안배라……)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하나 그녀의 마음은 어둡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반 년의 세월……

그녀가 이 동선장에서 보내며 한 일은,

소일초와의 어른스런 장난도 있지만,

환상처럼 사라진 백인장의 종적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그동안에 알아 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소아와 소일초가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는 이미 백인장은 사라진지 이 년이 지난 때였다.

짐작이 가는 곳은 다 뒤졌다.

백인장의 파양호 고장(古莊)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파양호를 이 잡듯이 뒤졌건만 부주(浮舟)마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천이기의 협력을 얻어 그들은 북경에 동선장을 세웠다.

사라진 세력들을 찾기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무사들을 고용할 작정을 소일초가 했으나,

주소아가 고집을 부렸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만들자고……

그녀의 의견인 즉,

백인장이 사라진 것은 스스로의 뜻에 따른 것 같으니 궂이 힘들게 찾지 않아도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며칠을 소일초를 못살게 굴며 떼를 썼다.

침상에서도 한잠도 자지 못하게 괴롭히고,

울고 불고 하였기에 마침내 소일초가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쌍한 아이들을 꼭 도와주어야겠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에 가까웠던 것이다.

 

황촉불은 그녀의 마음처럼 고요히 흔들리고……

(문제는 등천마세와 정천보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이 신비롭다. 백인장과 삼성무림청, 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지고 그 두 세력이 출현한 것이 어찌 우연일 리가 있겠는가?)

이때,

문이 열리면서 소일초가 들어왔다.

[그들이 움직였지?]

주소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한번 미친 척 하고 시키는 대로 해줘보지……]

[그래도 될까?]

[그러다 수틀리면!]

소일초가 자신의 목을 손으로 치는 흉내를 낸다.

[등마제에 참석하라고 했어.]

[우리한테 딱 맞는 역할인데 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착한 사람은 아니야.]

갑자기 주소아가 소일초에게 바싹 다가앉는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우리 술이나 마실까?]

[또 갑자기 왜 이럴까? 불안하게……전 번에 시달린 이후로 난 너한테 학을 뗐어.]

[그러지 말고 우리 술이나 마시자. 응? 내가 가지고 올께, 잠깐만 기다려……]

소일초와 주소아는 침상 한가운데 술독을 놓고 마주 앉았다.

그들의 몸이 작지 않아서 침상이 꽉 차는 것 같았다.

술이 몇 순 배 돌고 나자 주소아가 침울한 표정으로 소일초에게 말했다.

[나……이젠 예쁜 아기를 낳겠다는 꿈은 포기해야 할까봐……]

[……?]

[네가 전에 이야기 했잖아, 고모가 말했다면서……]

[아……! 그거……]

[그래, 실은 내가 그 말을 들은 후에 불안해서 내공을 세 군데 분산시켜 놓았거든……]

[…………!]

[그러니까……내가 전력을 하려고하면 그걸 다시 단전으로 되돌려야 할 거란 말이야……]

[…………]

[그래서 말인데……너는 내가 아기를 못갖는 걸 택하겠니? 아니며 혼자서 등마제에 참석하는 걸 택하겠니?]

은근하게 물어오는 주소아의 말을 들으며 소일초의 안색이 홱 변했다.

[결국 그 소리였구나. 나 혼자 등마제에 가라고? 싫어. 절대 혼자는 안가.]

[이 바보야! 거기서 삼수 같은 고수를 만날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돼서 내가 아기를 못 낳게 되는 게 그렇게 좋아?]

소일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꼭 그렇다고 도 할 수 없잖아……]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주소아는 강경하게 나왔다.

이제 소일초는 주소아 없이는 어디에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주소아가 옆에 없으면 도무지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다 싸우면 되잖아……같이 가자, 응?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되게 해줄께…… ]

[흥, 난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단 말이야. 어쩌면 한 몸 지키기도 바쁠 텐데.]

갑자기 소일초가 술잔을 바닥에 팽개쳤다.

[좋아, 그럼 나도 등마제에 가지 않겠어. 까짓 년놈, 뭐라 하면 죽여 버리겠어.]

[그러지마……우리도 등마제에 가볼 필요는 있어. 그곳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단 말이야. 꼭 그들의 말이 아니라도 나도 생각 중이었어.]

주소아가 달랬다.

[그리고……거기 가면 무림의 여자악인들도 많이 올 거야. 너 여자 좋아하잖니?]

[그래도 너만큼 예쁜 여자는 없을 거야.]

소일초의 시무룩하게 하는 말에 주소아가 픽 웃었다.

[알긴 아는구나.]

[난, 못가겠어……어떻게 너도 없이 혼자가?]

[어린애 같은 소리말구, 네가 돌아 올 때까지 나는 아예 지하실에 들어가서 혼자서 책만 볼께……]

[좋아, 그럼 빨리 갔다 올 테니까, 아예 얼굴에 면사를 가리고 있어, 아무도 못보게……]

겨우, 소일초가 마지못해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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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恨天二奇의 復活

  

 

 

세월은 변했다.

그리고 무림도 변했다.

변해도 엄청나게 변한 것이다.

무림사대세력의 주역들 이었던……

백인장과 청옥검궁, 그리고 삼성무림청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그것은 이미 중인들의 아득한 기억의 망각 속에으로 침몰하고 마는가?

불과 일년이 지났을 뿐인데……

전설……

삼성무림청의 전설!

백인장의 전설!

청옥검궁의 전설!

오오……그렇다.

불과 일 년 전만 하여도 무림의 지배자였던 이들 세 세력이 이제는 전설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뉘라서……

대저 뉘라서 백인장을 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뉘라서 백인장주 소선풍을 전설 속에 넣을 수가 있단 말인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삼성무림청과 백인장, 그리고 청옥검궁이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현무림에 떠돌게 된 것을 누가 해석하고 설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고금 최고의 신비요, 불가사의인 것을……

그들은……

아침 안개가 따사로운 양광(陽光)아래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린 것처럼,

사라져 버린 것을……

누구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 경악과 전율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고……

그 무서운 시간이란 악마 속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충격!

삼성무림청과 백인장, 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진 후……

백가장(白家莊)과 혈군자가 이끄는 취현성이 남북을 갈랐는데,

또다시,

중원의 땅 위에 또 다른 두 개의 거대한 세력이 출현한 것이다.

 

-----등천마세(登天魔勢),

-----정천보(正天堡),

 

오오……무림인들은 말한다.

등천마세와 정천보이야말로 무림사상 완벽한 잠재력을 지닌 세력이라고……

그리고 이 두 개의 세력을 기존의 두 세력과 함께 칭하여 또다시 사대세력이라 하니……

등천마세는 사마(邪魔)의 지배자로 등장했으며,

정천보은 백도의 하늘이라……

곧,

천지간에 존재하는 온갖 사마요악(邪魔妖惡)의 기운을 중심으로 하여 거대한 마풍을 잃으키며 무림에 출현한 등천마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흩어진 사마의 무리들을 하나로 일통했다.

급기야 혈군자의 취현성마저 잡아먹어 버렸다.

그리고,

정파무림에 부상한 정천보……

자비와 선과 인의를 근원으로 탄생한 정천보은 이제 모든 정파무림인들의 성역(聖域)이 되어 있었다.

정파무림인들은 정천보을 중심으로 뭉쳤고,

정천보은 급기야는 정파연합체로 완성이 되었다.

구파일방도 정천보의 지지세력이 되었다.

오직 백가장만이 흡수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어느날 살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이 격동의 시대에 그것은 있은 듯 없은 듯 사그라져 버린 것이다.

마침내,

정사이세는 마치 환상의 신기루처럼 솟아나……

불과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림을 이분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무림사에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거대한 괴변이었던 것이다.

한데,

천하무림인들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정사이세의 진정한 내력에 대해서……

아니 굳이 무림인들은 정사이세의 신비를 풀지 않으려 하는지도 몰랐다.

신비를 푼다는 그 자체가 무림인들에게는 또 다른 공포와 전율이 될 수도 있었기에……

바람처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존재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엄청나게 강한 힘을 보유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힘……

그 가공할 잠재력!

과연 그것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그리고, 정사이세의 공존과 함께 무림은 근래 볼 수 없었던 평화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폭풍전야의 정적이 바로 이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림은 죽은 듯한 정적에 잠겨 있었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릿한 피의 바람이……

그 바람은 등마제(登魔祭)의 소문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

 

-------등마제……

그것은 악마들의 축제다.

그것은 죽음의 제전이다.

모든 살인(殺人)이 허용이 되고……

어떠한 형태의 악(惡)도 용납이 되는,

그리하여,

더이상 잔인할 수도, 더이상 악랄할 수도 없는 저주의 축제가 바로 이 등마제였던 것이다.

십오야(十五夜) 만월이 뜨는 밤이면,

이 땅은 어디선가 죽음의 축제에 악마들이 혼탁한 숨결을 토해낸다.

살인과 방화……

간음, 간통, 난륜……

이런 패륜의 축제가 난무하는 등마제!

누구도 그곳에는 접근하지 말라!

접근하면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며,

어떻게 마인들의 재물로 변할 지 모른다.

 

이제,

천하의 모든 정파무림인들은 등마제을 두려워 하기에 이르렀고,

울던 아이들도 등마제라는 말만 들어도 혀가 굳어져 울음을 그쳐야 했다.

십오야 만월은 이제 무림인들에게 죽음의 대명사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만악(萬惡)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하나, 사파의 마두들에게는 등마제야 말로 꿈의 제전인 것이니……

잠재된 그들의 욕망의 유일한 분출구이며,

인간의 탈을 벗고 짐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축제이기에,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들은 등마제의 초대장이 날아 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림의 짧은 평화는 무참하게 깨어지고……

등마제라는 피의 폭풍과 함께 난세는 그 거추장스런 허울을 벗어던지니……

바야흐로,

무림은 난세지난세였다.

 

× × ×

 

쿠르르르……

일성 굉음과 함께 하나의 석문이 열렸다.

바로 마장탑 내의 여덟 개의 석실 중 마지막 여덟 번째의 석실……

즉,

마교칠십이절기라는 저주의 무학 중 마지막 아홉 절기가 비장된 석실이 열린 것이다.

그러자,

우선 사이한 운무가 해일처럼 뿜어져 나왔으며……

더불어 두 사람의 남녀가 천천히 그 최후의 석실로부터 걸어나오고 있었다.

여인의 황홀하리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사나이의 긴 장발(長髮)이 다음……

그들의 헤어질대로 헤어진 옷이 세 번째로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사악한 기운이 몰아치는 곳에서,

그들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고……

이어 서기(瑞氣)가 은은히 그들을 사악한 마기 속에서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는 도저히 발산될 수 없는 것……

그 두 사람의 손에서 부터 일어나는 것이었으니……

장엄한 서기를 전신에 뒤덮고 있는 그들은 대체 누구이겠는가?

남자……

세월 저 너머 아득한 세월……

그 세월에 존재하던 그 어떤 미남자 보다도 준수한 얼굴의 남자,

한데 문제는 그 얼굴에 함유된 고집과 심술에 있었다.

도대체 이 인물의 얼굴에 어린 저 끼(?)는 어떻게 저토록 매력을 발산하고 있단 말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매력을 지닌 이 인물,

그리고,

여인……

틀어올린 머리 밑으로 보이는 뽀얀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서기보다 더 강렬히 발해지고,

부드러워 꺼져버릴 것 같은 가날픈 몸은 오히려 사람의 영혼을 앗아갈 듯 하다.

누구겠는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지……

어린 꼬마에서 청년과 숙녀의 몸으로 완전히 변화된 그들의 모습은 물처럼 고요하고 심유한 것이었다.

물끄러미 닫히는 마지막 석실의 문을 응시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동공에 반짝 감회의 빛이 스쳤다.

[익힐 게 뭐 있다고 그 고생이람. 알고 있으면 자연히 할 줄도 알게 되지……]

소일초가 지독한 무공광(武功狂)인 주소아에게 투덜거린다.

구경만 하고 말자는 그를 억지로 붙잡고 익혀보자고 졸라대던 그녀였다.

[그래도 잘만 익히드라……]

이제……

그들은 마교칠십이절기가 남겨져 있던 여덟 개의 석실을 모두 통과했다.

뿐만 아니라 몸으로 익히기 까지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얼마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 한가지만 익혀도 인간 마물이 되어버린 다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히고도 그들은 전혀 마성(魔性)에 물들지 않은 듯 했다.

아마 언제나 손에 쥐고 있는 검마의 사리(舍利) 때문일 것이다.

사르르……

소일초와 주소아는 통로를 따라 미끌어지듯 걸음을 옮겨갔다.

걸음을 옮기는 소일초의 등을 덮고 있는 그의 긴 흑발은 아름다운 포말을 일으켰다.

걸음을 옮겨가매,

주소아의 가날픈 몸은 바람에 날려가기라도 할 듯 하늘거리고 있어 위태로워 보이기 까지 했다.

[이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여덟 개의 석실은 다 지났는데……]

[걱정할 것 없어, 그 미친 작자들이 다 알아서 챙겨 놨을 거야……침상은 하나 뿐이겠지만!]

조소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잘난 척하는 칠십이기재들은 두 사람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뭐든지 하나 씩 만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히 침상도……

성숙한 몸으로 소일초에게 짖궂은 장난을 받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욕망에 그녀도 부르르 몸을 떤적이 한 두 번도 아니었다.

소일초 역시 마찬가지,

워낙 완강하게 주소아가 최후의 선을 지키고 있어서 그렇지 다른 장난은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 였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주소아의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친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조차 없었다.

몸이 완전히 성인으로 변해 버리기 이전에도 장난을 했지만,

그것들은 호기심과 기분이 좋다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들은 이미 육체적인 욕망을 느껴오고 있었던 것이다.

몸의 성장과 더불어 그들의 마음에도 빠른 변화가 왔지만,

그들은 애써 그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여전히 본연의 행동을 하고자 노력해 왔다.

 

소일초의 말은 사실이었다.

칠십이기재들은 지금까지 치밀한 안배로 그들로 하여금 따르기만 하면 되도록 해놓았었다.

사르르르……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겨가는 소일초와 주소아,

돌연 그들의 발길이 한 곳에 우뚝 멈추어졌다.

[정말 이곳에 또 다른 석실이 있네……]

주소아가 말했다.

보라!

소일초와 주소아의 면전에 또 하나의 석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이곳이야 말로 마장탑의 최후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석실은 지금까지의 석실에 비해 실로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그 속에……

스스스스……

핏빛의 운무가 기이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넓다란 공간을 자욱이 메우고 있었다.

한데 이 넓은 석실의 공간에……

한 개의 석대(石臺)……

그리고 석대 위에는 두 개의 관(棺)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핏빛이 진하게 풍겨지는 혈옥관(血玉棺)이었으며……

또 하나는 눈보다 흰 백옥관(白玉棺)이었다.

자욱이 푸른 기운과……

붉은 빛과 흰 빛이 교차하는 광경은 실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두 개의 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기이하다. 여덟 개의 석실과 거의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저 관(棺)들은 ……)

문득, 주소아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아…… 여덟 번째 석실에서 보이지 않았던 두 명의 기재들의 관(棺)이야!]

소일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여덟 번째의 석실……

이곳은 먼저의 일곱 개의 석실과 다른 점이 하나가 있었다.

그곳에는 유독 일곱 명의 기재들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두 개의 관을 보자마자 남은 두 기재의 관(棺)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사방을 둘러본 후 바짝 석대 앞에 다가섰다.

사방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극악한 마기를 물리치기 위해 검마의 사리가 꼭 쥐어져 있었다.

[이 두 개의 관속에 최후의 비밀이 있단 말인가?]

침중하게 내뱉는 소일초였다.

이 생각 역시 확신으로 그들의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으음……)

잠시 동안 관을 살폈지만 더이상의 것은 발견하지 못했고 어떤 변화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나 보다.

돌연 두 개의 관으로부터 여운처럼 영혼의 울림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아아아…… 정통마교주이시여……

그대는 우리의 뜻에 따라 창조된 위대한 인간……

우리들 한천이기(恨天二奇)는 육십 년의 세월……오직 그대 만을 기다려 왔소이다.

우리는 칠십이기재들 중 두 명……

당신에게 천지파멸의 길을 열어드리기 위해 살아온 삶……

정통마교주이시여……

그대에게 진정으로 바라노니…… 마교칠십이절기 중 청사무(靑邪霧)를 펼쳐서 우리들의 관을 열어주기……

 

영혼의 소리……

[그 귀신같은 소리가 바로 이 관에서 나왔었군, 어째 귀신소리 같더라니……]

소일초가 중얼거렸다.

[보고싶지 않은 귀신들이지만 여기서 나가자면 하는 수 없겠지……제길……귀신을 만나게 되다니……]

관 속에서 울려나온 그 영혼의 소리가 말하는,

 

청사무(靑邪霧)--------

 

이것은 마교칠십이절기 중 하나이다.

아홉 가지의 사악한 기공이 기록되 있던 여섯 번째의 석실에 있던 절기이다.

전신을 푸른 유형의 사기(邪氣)로 두르고 인간의 악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게 하는 극사의 마공……

그것은 죽은 시신(屍身)을 일시에 깨워 강시(疆屍)로 부릴 수 있다는 ……

그야말로,

천지간에서 가장 사이한 마공 중의 하나인 것이다.

 

지금,

그 무서운 청사무는 관 속의 기재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니……

소일초와 주소아는 망설여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육십 년 전의 기재들이 아직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었다.

이미 모두 오래 전에 죽었으리라고만 생각했던 칠십이기재들이 아닌가?

[나가자면 하는 수 없지……]

주소아도 침음성을 흘리며 소일초와 같은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녀는 청사무를 양팔에 끌어 올리고 있었다.

순간,

스스스스……

놀랍게도 그녀의 양 손에서 푸른 안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빨리해! 보기에 좋지 않아!]

소일초가 마공을 쓰는 것에 불만인지 한마디 한다.

주소아의 눈은 그를 흘기고,

손에서 무럭무럭 일어난 푸른 안개는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감싸버렸다.

그리고,

쏴아아아아……

그 푸른 안개는 그대로 두 개의 관으로 몰려갔다.

순간……

덜컹----!

덜커덩--------

석실을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두 개의 관 뚜껑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관은 청사무에 완전히 뒤덮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허공에서 풍차처럼 돌던 두 개의 관 뚜껑은 바닥에 떨어지고,

녹색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소름끼치도록 살벌하게 두 개의 열려진 관에서 뿌려지고 있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

붉고, 흰 두 사람이 관으로부터 한 줄기 연기처럼 솟아나오는 것이었다.

환상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두 사람……

일신에 붉은 홍의(紅衣)를 걸친 청년과 백의(白衣)를 걸친 소녀였다.

나이는 대략 이십여 세 가량,

백납처럼 창백한 얼굴……

냉막무심한 얼굴의 눈동자에서 폭사되어 나오는 안광은 기이하게도 칙칙한 잿빛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극치의 미(美)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신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바로 한천이기(恨天二奇)이다.

이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육십 년 씩이나……관 속에 있었을 텐데 상당히 젊었네……)

면전에 소리없이 내려선 한천이기을 보며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단지 무심하고……비정하며……

잔혹한 것 뿐이었다.

특히 여인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운은 더욱 패도적이며 전율스러운 것이었다.

문득,

무심비정한 눈빛을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번갈아 두고 있던 청년이 경악의 음성으로 침묵을 깼다.

[어……어떻게 두 사람이……이럴 수가……]

그는 두 사람을 처음에 보았을 때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했었다.

그러나,

정말 두 사람이 그들의 앞에 서있자 경악하고 만 것이다.

[이럴 수가 있지!]

소일초가 단호하게 못을 박는다.

[…………]

[…………]

잠시의 침묵 속에서 두 쌍의 남녀는 서로를 노려 보았다.

[어느 분이 정통마교주이시오?]

홍의의 청년이 침중한 음색으로 묻는다.

[우리 두 사람 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다시 얼마의 침묵 뒤에 홍의 청년이 천천히 말했다.

[두 분의 정통마교주이시여……당신은 우리 한천이기를 인간으로 보지 마시오……]

그의 음성에는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담겨져 있었다.

[우린 이미 마장탑이 봉쇄 된 육십 년 전에도,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버린 몸이오……]

그의 입술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한데도 기이하게 그 음성은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엇던 것이다.

마치 영혼으로 속삭이듯……

[재미있는 복화술(腹話術)이야, 전혀 표가 나지 않아!]

그런 기이함을 주소아는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입을 열지않고 말했다.

그녀 역시 복화술을 펼쳐 온 몸으로 소리를 울려 낸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서두가 길어?]

청년이 그녀의 당돌한 물음에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정통마교주께서는 지금까지 여덟 개의 석실에 존재한 칠십이기재 중 두 명이 빠져 있음을 기억하실 것이오?]

[알아, 그게 당신 두 사람이라는 걸……]

소일초가 말했다.

[그 두 명이 바로 우리들이며 본인은 원천기(怨天奇)이고 ……이 여인은 한천녀(恨天女)라 하오.]

(원천기……한천녀……)

면전의 두 사람 한천이기……

소일초와 주소아가 그들의 한맺힌 이름을 되뇌였다.

이때 다시,

원천기의 음성이 이어졌다.

[우선……두 분 정통마교주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이오……당신들이 선택된 인간이 아니었고 절대의 자질이 없었다면 결코 이곳까지 이를 수 없었을 것이오.]

[…………]

[우린 그대들이 연성한 청사무를 대하지 못하면……영원한 잠 속에 빠져 있어야 할 운명이었소.]

원천기은 계속 입을 열었고 한천녀은 침묵을 지켰다.

얼음처럼 냉오한 그녀는 마치 말을 잃어 버린 듯했다.

[헌데 당신들은 우리의 뜻을 외면하지 않고 그 청사무를 극으로 연성한 것이오. 그리하여 우리 한천이기는 육십 년의 안배된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오.]

[…………]

[그것은 곧 당신들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뜻대로 마장탑의 모든 안배를 무사히 마쳤음을 말함이고……또한 당신들과 우리 한천이기는 청사무로 완전하게 영적인 합일을 이루었음을 말하는 것……]

원천기의 음성이 여기까지 이르자,

소일초가 안색을 굳히며 말을 끊었다.

[나는 아니야. 나는 너같은 귀신과 영적인 합일 따위 한 적이 없어. 내 마누라하고 따져 봐.]

[…………]

도무지 신비하기 그지없는 자기들을 발가락 새 때만치도 여기지 않는 소일초를 원천기와 한천녀가 어이없어 하며 바라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궂은 일 시킬 때는 언제고 의리없이 귀찮다고 혼자서 뒤로 빠질 궁리를 해? 치사하게스리……]

주소아가 소일초에게 핍박했다.

[난 몰라 아무튼 네가 시작했으니 끝도 네가 맺어.]

[좋아, 두고보자……]

주소아는 눈을 흘기고는 원천기를 돌아보았다.

[한데……먼저 이것부터 물어보자. 우리가 여기 얼마나 있었는데?]

[이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오.]

[음……내 계산이 틀리진 않았군……]

주소아는 어떻게 날짜를 계산했단 말인가?

소일초가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쳐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여인만이 가진 시계로 달 수를 헤아렸던 것이다.

그녀가 소일초에게 입을 삐죽해 보이고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육십 년 동안이나 죽지 않고 우릴 기다렸지? 그러지 않아도 웬만한 부탁은 들어 줄 텐데……]

순간 원천기의 몸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대로 하여금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천지파멸(天地破滅)의 뜻을 계속 행하게 하기 위함이었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천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 그 자체의 침묵을 고수하고……

원천기는 주소아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했다.

[우린……우리 칠십이기재들은 그대를 계속하여 우리들의 안배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오.]

일순,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싸늘한 분노가 어렸다.

[그 천지파멸인가 하는 것 말인가?]

원천기은 다소 느리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대가 정통마교주로서 이 땅을……이 하늘을 파멸시키려면……]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안배가 더 필요한 것이오.]

[말하자면 너는 나를 너희 칠십이기재들의 꼭두각시로 계속 부리기 위해 육십 년의 잠을 잔 것이란 말이로군.]

주소아의 음성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원천기의 말에 약간의 충격과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무서운 일이었다.

그들 칠십이기재들은 실로 완벽하게 소일초와 주소아를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즉,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욕망과 저주와 한(恨)을 그들을 통해 무림에 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원천기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이후……당신들의 모든 행동은 우리 한천이기의 안배에 따라야 하는 것이오.]

[…………!]

[그것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율법이기 때문이오……누구도 거역해서는 아니되는……]

소일초의 몸에서 거대한 폭풍같은 기도가 일었다.

[잡혀왔던 주재에 간만컸군……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우리를 거스르지 마시오……]

[쓸데 없는 소리, 내가 거스르겠다면?]

순간 단호히 떨어지는 음성……

[죽음!]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천녀을 응시했다.

방금의 대답은 최초로 한천녀의 입에서 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말 한 마디가 그대로 죽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만큼 잔혹비정한 음성……

그것은 철저하게 모순이었다.

이 절색의 미녀 입에서 최초로 흘러나온 음성이 이토록 잔인한 말이란는 사실이……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죽음보다도 더욱 칙칙한 기운이 풍겨나오다는 사실이……

하나,

소일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성 또한 진하게 죽음의 냄새를 풍겼다.

[대단해……단단히 미친 년놈이야.]

 

--------으핫하하하!

--------호호호호호!

 

소일초와 주소아는 석실이 떠나가라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강인하고도 당당한 절대의 위엄……

그 위엄으로,

한천이기의 신형이 그 광소가 계속이 되는 동안 거의 육안으로는 판별할 수 없으리만큼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믿을까?]

소일초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지금의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순간,

원천기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피어올랐다.

[자만을 하지 마시오. 정통마교주……]

[…………]

[우리의 안배는 한치의 틈도 있을 수 없고, 하여……그대를 죽이는 안배 또한 완벽하게 내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

[믿지 못하시겠다면 지금이라도 시험해 보도록 하시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두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곳까지 오는 중간의 헛점은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았다.]

[…………]

무서운 긴장감이 세 사람 사이에 숨막히게 흘렀다.

하나 곧,

주소아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시험은 차후해……]

[…………]

[우선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그대들의 안배가 절실하니까……]

더 이상의 말의 필요없었다.

원천기의 말 또한 어떤 안배처럼 생각없이 흘러나왔다.

[좋소……적어도 그 정도의 크기는 있어야 정통마교주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

다음 순간,

그의 손이 그들이 나왔던 관 속을 가격했다.

돌연,

쿠쿠쿠------!

천지를 울리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석실의 내부가 무겁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화산 옥녀봉 정상의 산정호수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리고 천지파멸의 욕망과 저주와 한의 시작이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한천이기의 인도를 받아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칠십이기재들의 안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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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魔敎七十二絶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소일초와 주소아는 여덟 개의 석실 중 첫번째 석실에서 아홉 가지의 무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아홉 가지의 무공은 모두가 손바닥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째 석옥에 이르러 있었다.

사실 그들이 여덟 개의 석실에 차례로 들게 되는 것은 칠십이기재들의 안배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의 손에 꼭 쥐어져 있는 일백오십여 년 참선했던 검마의 사리는 그들의 뜻이 아니었다.

칠십이기재들은 소일초가 단 한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계산에 넣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두 가지의 아주 엉뚱한 변수가 그들의 모든 계획을 무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은 계산하지 못했으리라.

 

두번 째의 석실,

이곳 역시 장방형이었다.

또한 전신을 회색빛으로 표백시킬 것 같은 가공할 마기가 흐르는 것 역시 첫번 째 석실과 같았다.

그리고,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생생한 아홉 명의 기재들의 시신이 사면 벽에 정좌하고 있는 것까지……

다른 점은,

이곳의 모든 분위기가 첫번 째의 석실에 비해 훨씬 강렬하다는 것 뿐이었다.

이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또 다른 호기심을 담고 석옥을 살피고 있었다.

한데,

이 석옥의 사면 벽과 천정에는 첫번째 석실에서 보았던 손의 조각 대신……

권(拳)……

수만 개의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주먹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오……

그 주먹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을 담고 있는 것처럼……

형용할 수 없는 꿈틀거림을 보이고 있었다.

때문에,

이 사방 십여장의 석실은 이 신비로운 생동감으로 꽉 차있는 형태였으니……

허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 일 뿐,

그것을 대하고 느끼는 소일초와 주소아는 어떠한가?

생동감 만큼이나 파괴적으로 보이는 주먹들……

꿈틀거림 만큼이나 잔인해 보이는 주먹들……

[살심(殺心)을 돋우는 주먹들이야……]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전신으로 해일처럼 밀려드는 엄청나게 사악한 기운을 검마의 사리로물리치고 있었다.

하나,

주먹들을 살피고 있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망울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해보였다.

무엇이나 부수어 버릴 것 같았다.

그 주먹들을 보면서 자신이 나약해 지는 감을 느끼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 주먹들은 모두 강인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기이한 매혹을 느끼며 그 주먹들을 살펴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였다.

고오오오---------!

돌연 석실의 사면 벽을 아득히 울리며 들려오는 이 소리는 또 무엇인가?

그 소리는 순간적으로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일깨웠다.

 

------아아아아……정통마교주여……

이 땅에 남아날 수 잇는 것은 오직 우리의 뜻으로 이룩된 한……저주……

오오……!

이제 이 땅은 우리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의 주먹에 따라 부서지……

우리의 주먹에 따라 삶이 결정되리니……

기뻐하라, 정통마교주여……

기억하라……

마교칠십이절기 중 아수라권(阿修羅拳)을……

아수라권을……

아……수……라……권……을……

 

이 영혼을 울리는 소리는 점차 흐려가고……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은 점차 맑은 상태로 회복되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고오오오-----

권영(拳影)……

무어라 형용해 낼 수 없는 수 만 개의 권영이 석벽으로부터 폭출되는 것이 아닌가?

그 저주의 아수라권의 그림자들이……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시작하여 소용돌이치듯 일어나며 석실의 허공에서 하나로 합일되는 것이 아닌가?

오오……보라!

이 세상의 모든 강함과……

이 세상의 모든 파괴가……

아수라권의 권영이 만들어낸 하나의 주먹에 넘실거리지 않는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넋을 잃고 말았다.

헌데 그렇게 느낄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

그 강렬한 힘을 가진 듯한 주먹……

아수라권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꿰뚫고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니……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검마의 사리에서 서기가 뻗어나오고,

그토록 강인할 것 같던 아수라권의 권영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미 이러한 경험은 수 차 겪었던 것!

그들은 놀라거나 불안해 하지도 않았다.

일백오십년 참수(參修)한 검마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시간은 흘러갔다.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흘러갔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석실의 아홉가지 권법을 머리 속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없었다.

석벽과 천정에 가득했던 그 수 만 개의 주먹 조각들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으며……

그 권법들의 창조자인 아홉 기재들의 시신 역시 한줌의 가루로 흩어져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깐……

이미 한 번 그와 같은 변화를 겪은 소일초와 주소아는 곧 침착을 되찾고 얼마간의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진정 마교칠십이절기의 무공은 하나하나가 지독하리만큼 가공했다.

그 가공함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끝없이 놀라고 있었다.

과연,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마교칠십이절기가 풍기는 사악함에서 어느 정도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

 

× × ×

 

제삼의 석실,

이 석실의 크기라든가 형태면에서는 처음 두 석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

이 석실이 풍기고 있는 분위기만은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으니……

보라!

사면의 벽과,

천정과 공간이 온통 붉은 검으로 꽉 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분명한 검이다.

달려있거나……

붙어있거나……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붉은 검은 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스스스스……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자광을 뿌려내고 있는 검(劍)……

소일초와 주소아는 생각했다.

(저 검들은 어떻게 해서 공중에 그냥 떠다니고 있을까? 정말 교묘하게 만들어 진 것 같은데……)

수천 개의 붉은 검……

그것의 정확한 숫자는 헤아릴 수 도 없었다.

[석실 속에 떠다니는 검이라니…… ?]

주소아는 그 신비한 검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물끄러미 사면 벽에 빙 둘러 앉은 채 죽어있는 아홉 기재들을 응시했다.

헌데 돌연,

소일초와 주소아의 아름답고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눈망울에 가는 경련이 일었다.

지금,

슈슈슈슈슛-------!

은은한 붉은 빛을 자욱이 뿌리면 내렸다가……

물보라처럼 일어나며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검들을 주시하는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이 검들이 하나하나가 서로 다름을 느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 검 하나하나에 가공할 극사, 극마의 기운이 물살처럼 퍼져오고 있었다.

뿐인가?

그 검에 실린 그 기운들은 곧 무서운 기세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밀려드는 것이었으니……

순간,

[잘못하면 가루가 돼버리겠다.]

소일초의 외침이 들리고,

스르르르……

휘스스스……

미풍처럼 가벼운 붉은 검들은 일시에 소일초와 주소아의 전신으로 폭풍처럼 밀려드는 것이니……

(……피해야 한다……)

하나 그것은 단지 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검들을 피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소일초와 주소아가 한 곳에 있을 때는 그토록 조용히 날던 검들이……

일단,

소일초와 주소아가 빠르게 움직이자 그 검들은 그들의 움직임 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들의 몸을 가격해 왔던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소일초와 주소아의 십대사혈을 향해 수백의 무리를 지어 날아드는 검……

돌연,

[마왕수……]

주소아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순간,

슈우우우-------!

시리도록 투명한 하나의 손 그림자가 그녀의 우수(右手)로부터 환상처럼 솟아나는 것이 아니가?

그 손은 저주의 마왕수,

찰나, 석실의 모든 대기가 일시에 그 마왕수에 응축되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무서운 폭발음과 함께 그 마왕수는 그대로 수천 개로 분리 확산되면서 생명을 사멸시켜버릴 수만은 변화를 담고……

그대로 저 수많은 검을 향해 터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오오……그 가공할 위력이여……!

그것을 어지 필설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한데 이게 웬일인가?

스스스르르……

거센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던 검들이 한 순간 더욱 빠른 속도로 소일초와 주소아의 전신 삼백 육십 혈을 노리고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마왕수로는 막을 수가 없다.]

소일초의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서 여덟 가지의 서로다른 수법이 잇달아 펼쳐졌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검은 다시 더욱 빠른 속도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노리고 파고 들었다.

여덟가지의 권법도 소용이 없고……

생사보록의 무공들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 왔으며,

오히려 검의 기세만 더 흉폭하게 했을 뿐이다.

소일초는 주소아의 몸을 낮추어 바닥을 앉도록했다.

그의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새파란 소도(小刀)가 들려있었다.

바로 백인장의 최고 신물이랄 수 있는 청옥소도(靑玉小刀)였다.

청옥소도가 검처럼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소일초 최후의 절초,

일초무적의 검공이 펼쳐진 것이다.

청옥소도의 끝에서 형성된 무형의 기류는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는 붉은 검들을 휘감았고……

붉은 검들은 일제히 기류속으로 휘말리며 천정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천정에 부딪치기도 전에 검들은 다시 변화를 일으키며 강렬한 저항을 했고,

소일초는 청옥소도를 이리저리 흔들어서 붉은 검들의 저항을 일소시키고 있었다.

일단,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의 검공에 붉은 검들이 더이상 두 사람에게 접근해 오지는 못하자 긴 안도감이 생겼다.

[부수어 버리자. 가루가 돼도 움직이는가 보자!]

소일초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한데,

그 순간에서도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아득히 적시며 흘러드는 소리가 있었으니……

 

------오오…… 정통마교주여……

만마검(萬魔劍)을 거역치 말라.

만마검은 어떤 것으로도 피할 수 없으며……막을 수도 없는 것……

우리의 뜻으로 인세의 모든 사악과 패륜과 부덕을 담아 만든 만마검이로다.

 

[갈갈이 찢게 죽으란 말인냐?]

소일초의 분통터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영혼을 텅비어 가듯이 떨어지던 마의 음성은 다시,

으스스한 한기를 뿌리며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 속으로 밀려들었다.

 

------만마검은 모두 일만 개이나 그것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는 천지간에서 가장 뛰어난 검이 되나니……

그를 일컬어 마황검(魔皇劍)이라 하나니……

마황검은 그 어떤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가 없으며……

그 어떤 뛰어난 보법으로도 피할 수 없고……

그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아아……마황검……천지간에서 가장 뛰어난 검이라……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일만 개의 검이 합쳐져 하나의 검을 형성하고 그것을 마황검이라고 명명(命名)한다니……

마황검……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마주보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무엇으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그 만마검이 지금 소일초의 청옥소검에 휘말려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화가 더 나면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 음성은 사기(詐欺)치고 있는 것이니……

아무튼,

음성은 자화자찬 속에 계속되고,

 

------오오…… 그리하여……우리 아홉 기재들은 마황검이 고금제일지검(古今第一之劍)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황검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홉 가지의 검식(劍式)을 창조하였으니……

이름하여 마검구식(魔劍九式)……

마황검과 더불어 이 고금제일의 검법을 마교칠십이절기 중 하나로 전하나니…

마검구식은 오직 마황검으로만 펼칠 수 있는 것으로써……

우리의 뜻에 따라……

일만 변의 검리(劍理)를 합쳐 모두 아홉 가지의 변환을 이루노라……

 

그로부터……소일초와 주소아는 마검구식의 검법요결을 들어야 했고……

소일초는와 주소아는 그 마검구식이 어쩐지 백인장의 마도구식(魔刀九式)을 의식하고 만들어 진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음성이 마검구식의 구결을 다 설명하고 났을 때,

일만 개의 가볍고 붉은 검이 서로 모이며 강렬의 빛을 뿜어내고 하나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마황검(魔皇劍)이 된 것이다.

검을 집어 들면서 소일초가 말했다.

[재미있는 곳이야……조금도 심심할 틈이 없으니……]

[이제 겨우 이십칠절기를 구경했을 뿐이야……]

그들의 뇌리 속에서 마검구식이 완벽하게 기억이 되었고……

또한 소일초는 일만 개의 검이 합쳐져 완성된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한 검……마황검을 얻었다.

무겁고 둔중함 마저 어린도를 닮은 듯한 마황검……

마황검은 이렇게 소일초와 운명의 만남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다시 네 번째의 석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손엔 여전히 검마의 사리(舍利)가 들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세월을 느낄 수 없는 곳에서,

기상천외한 마공들을 익혀가고 있었다.

바깥세상에는 해가 바뀌었는데……

 

× × ×

 

마교칠십이절기(魔敎七十二絶技)……

이 광세의 살인마학(殺人魔學)들은 아무리 하늘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선인(善人)이라 하더라도,

이 무학을 연성하노라면……

인세에서는 다시 찾아볼 수 없는 혼세의 마물(魔物)이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인성(人性)을 모두 상실해 버리고……

오직,

피와 죽음과 저주와 증오의 심성(心性)만이 가득 채워지는 마교칠십이절기……

누구라도,

그 마교칠십이절기 중 한가지만 연성한다 해도 완전히 인성을 잃어버린 마물이 되어 버리고 말리라,

그런데,

칠십이기재의 한과 저주가 깃들어 있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혀가는 소일초와 주소아……

과연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칠십이기재들의 주문대로 인성(人性)이라고는 모를 피의 마물이 되어 버린 것인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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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죽은 師父가 求해주다

 

 

 

북경(北京),

연왕(燕王) 이후로 명(明)의 황제가 거쳐하는 곳이 된 곳,

밤이 되어도 거리에는 불이 꺼질 줄 모르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어지럽다.

이 곳 북경에서도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주작로……

높은 담장의 거대한 저택은 조용하기만 한데,

깊은 곳의 서재에서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황촉불을 받아서 어른거린다.

이 저택!

혜성처럼 나타나 여러 단계의 과거를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고,

절세의 총명을 드날리며 관계(官界)에 진출해 불과 사 년 만에 한림원 시강에 오른 인물의 저택이다.

황제의 신임을 철저히 받아 어느 누구도 그의 앞에서 세도를 부릴 수 없는 그 이름은 주하운(朱河雲)이다.

지금,

그 주하운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서재에서 소요하고 있다.

[그놈들의 야심이 그렇게 컸단 말인가? 진정으로 나를 배신한 것이었던가? 자식과 다름없이 키웠건만……]

그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정말, 그 귀여운 녀석을 처참하게 죽여 버렸단 말인가? 아니……결코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어떤 경우에도 쉽게 죽을 놈이 아니야. 나마저 골탕먹인 녀석인데……]

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혈기자는 죽었다……지금 있는 것은 한림원 시강인 주하운일 뿐이다. 그녀석의 일은 그녀석이 해결해야한다……물론 나와의 약속도 지켜야 하고 ……]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거대한 흡인력에 이끌려 마장탑에 빨려 들어선 소일초와 주소아……

그는 기괴한 분위기에 전신을 으스스 떨며 눈을 떴다.

(이곳은 동굴……)

그렇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도대체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동굴이었다.

이 지하통로의 사면 벽은……

온갖 마기가 응집된 것처럼 암회색을 띠고 있었으며,

천정에 듬성듬성 박힌 야명주(夜明珠)는 피처럼 붉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뿐인가?

바닥에 낮게 깔린 붉은 안개는 스물스물 움직이고 있었고,

통로는 죽은 듯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그 정적을 깨는 것은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

그 청아한 소리는 이 극사한 분위기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길게 울리고 있었다.

(으음……이 소름 끼치는군……)

소일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소아와 함께 몸을 일으켜 보려고 하는 순간 사지로부터 얼얼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어?)

소일초와 주소아는 의외의 외침과 함께 다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상한데? 이렇게 다리가 풀리다니……나도 모르는 새 첩을 뒀나?)

말도 아닌 소리를 내뱉는 소일초를 흘겨보며 주소아는 운공을 하여 근육을 풀며 좀전의 흡인력의 가공함에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그들은 운공의 전신이 쾌청해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한데 그때였다.

고오오오-------!

통로 전체를 울리는 기이한 소리가 그들의 전신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오오……그 소리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정신을 맑게 흔들어 깨우고……

그의 팔만사천모공으로 알 수 없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환영하노라!

이 땅의 축복과 하늘의 자비 속에 탄생한 천지간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여……!

 

이 소리는……

이 영혼의 속삭임은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이란 말인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청력을 있는데로 끌어올렸다.

하나, 그 음성의 출처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그 소리는 천만 가지의 음성이 한데 어우러져 들려온다는 것만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이때, 그의 의혹을 헤아린 듯 들려오는 그 영혼의 속삭임……

 

------그대여……!

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

나는 하나가 아니고 칠십이기재 모두이며……

단지 우리 영혼의 음성을 남겼을 뿐이노라……

따라서 내 몸의 형체는 없노라……

 

고오오오---------!

음성은 멀어져 갔다가 다시 몰려들었다.

 

----그대는 우리 칠십이기재들에 의해 선택된 인간……

그대만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욕망(慾望)과 한(恨)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노라……

하여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오직 그대를 위해 일생을 살았고 오직 그대를 위해 마지막 생의 종지부를 찍어가노라.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는 눈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입가에는 참기어려운 웃음을 참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을 아는 척하며 들려오는 음성은 그들이 오직 한 사람인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를 아는 척 하지마라……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며 둘이되 하나이니라……]

소일초가 처음으로 전음을 사용하여 주소아에게 그 신비한 음성을 흉내내며 말했다.

주소아의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듯 했다.

그러나,

그 신비한 속삭임 소리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웃음 이전에 의혹이 느껴졌고……

의혹 이전에 경이로움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한편,

그 영혼을 울리는 속삭임은 다시 울려오고 있었다.

 

-------의심하지 말라……

거역하려 들지도 말라……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하늘의 낸 인간으로 하늘에 도전하는 두뇌를 지녔던 절대의 천재들,

어찌 그대가 이곳에 나타날 것을 예견하지 못했겠는가?

아는가?

정통마교란 이단의 집단에 의해 바로 우리 칠십이기재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우리 칠십이기재의 손에 의해 최초로 정통마교주라는 존재가 탄생되게됨을……

어리석은 인간들인 구마존은……

죽어서도 우리들에 의해 정통마교가 새로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오직 자신들이 정통마교를 이어왔으며 이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통의 무공을 우리가 계승하였는데 누가 과연 정통이란 말인가?

 

여기까지 듣고 있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무……무엇이?]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아닌가?

[이들……칠십이기재들이 정통마교를 이었다는 소리아니야? 뭔소리야 이게……잡혀왔던 주재에……몽땅 미쳤군……]

소일초가 거짓말 마라는 씩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이때, 소일초로 하여금 더이상 소리를 치지 못하게 하는 영혼의 울림이 가득히 전해져 나왔다.

 

-------선택된 인간이여, 놀라지 말라!

그리고 우리들의 처절한 한을 마음에 새기라.

인간이었으나……인간들에 의해 잡혀와 하늘에게마저 외면 당한 채 죽어간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응어리진 한……한……한……

그 증오와 저주 어찌 작다 할 손가?

어찌 그저 묻어 두라고 말하겠는가?

오오……저주하노라.

이 땅의 모든 정의(正義)를 증오하노라.

마의 손에서 우리를 지키지 못했던 정의를 저주하노라,

그리하여,

우리는 정통마교를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여 우리의 뜻을 세웠노라.

우리는 악의 추종자들을 이용하여 정통마교를 배반하게 했으며……

그들을 이용하여 우리를 잡아왔던 모든 인물들을 주살하게 했으며……

이제 우리의 뜻으로 칠십이기재들인 우리는 세상을 멸망시켜버릴 인물을 선택했노라……

 

소일초와 주소아의 놀라움은 갈수록 심화되어 갔고,

이 칠십이기재들의 가공한 능력과 비틀린 욕망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만든 마교칠십이종절기(魔敎七十二種絶技)……

알지어다.

마교칠십이종절기는 우리 칠십이기재의 모든 것임을……

역사에는 다시 없을 광세의 역천마공임을……

아아……마교칠십이종절기를 창안한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만족했노라.

하나, 우리의 생명은 다했노라……

우리는 이 무학을 만들기 위해 죽음마저 던져버린 것이다.

후회는 없노라.

향후 이 하늘……이 땅엔 선(善)이라 정(正)이라 이름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마(魔)라는 이름마저 영원히 사라진 후 우리의 저주인 역천의 무공 마교칠십이절기만이 영원히 찬란할 진저……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이제 마교칠십이종절기의 주인으로 선택한 그대를 정통마교주로 봉하노라.

그리고 이제 그대에게 이 미증유의 마공절예를 전하노니……

정통마교주여! 이제 그대는 모든 자비를 버려라.

남아 있는 모든 인정의 샘물도 버려라.

그리하여 오직 마(魔) 만이 충일한 마음으로 마교칠십이종절기를 받도록 하여라.

우리는 믿노라.

그대가 선을 버리고 마의 길을 가줄 것을……

그리고 마(魔) 마저 없애버릴 것을……

그대는 결코 우리의 뜻을 거역하지 않을 것을……

아니, 결코 외면하지 못하리라……

외면은 필연처럼 죽음으로 지불되리니……

이제……

그대는 우리 뜻으로 여덟 개의 석실에 들 것이고……

그석실들에서 그대는 마교칠십이종절기를 받으리라……아아아……

 

소일초는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싸늘히 냉소를 쳤다.

[불쌍하게 미친 놈들이 자부심하나는 대단하군……아무리 저주가 깊다하나 세상을 뒤엎을 수 있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인가……]

소일초의 얼굴에 피어오른 냉소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뭐 익히지 않으면 어쩌고 말듣지 않으면 어쩐다고? 감히 나 신행마동을 협박해……]

[꼭 그렇게 만은 생각할 것 없어……주는 건 받고 시키는 건 않하는 게 너잖아.]

주소아가 그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교칠십이절기가 익히기 싫으면 익히지 않아도 돼. 내가 익힐께……]

소일초는 천천히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좋아, 그들 뜻대로 모든 무공을 연성해봐……하나 결코 그 무공들로 나를 이길수는 없을 걸?]

[…………!]

[네 심보 다 알아. 어떻게 해서라도 무공이 강해져서 내위에 올라가 볼려고 하는거지. 어림없다. 나는 일초무적이야……]

한데 그의 중얼거림이 막 끝났을 때였다.

돌연,

쿠르르르------!

굉렬한 폭음이 통로의 사방을 두드리는가 했더니……

급작스레 소일초와 주소아가 서 있던 부위가 쑥 꺼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락……

끝없이 부침하는 나락 속으로 소일초와 주소아는 전신의 공력을 돋구고 몸을 보호하며 손을 잡고 꺼져들어갔다.

그들이 말한 여덟 개의 석실로……

그래서 또 다른 기연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 ×

 

석실(石室),

사방 십여 장 크기의 장방형 석실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도대체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는 너무도 평범한 석실이었으나……

누구든 이 석실에 들면 소리없이 젖어드는 소름끼치는 마기에 의해 전신이 오그라드는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엉겁결에 이 석실에 들어선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당혹함이 스치고 있었다.

(이곳이……바로 여덟 석실 중 한곳인가?)

각기 내심으로 짐작하며 석실의 사방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석실에는 아홉 명의 흑의 장발인들이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석실 사면 벽에 빙 둘러 있었으며,

도대체,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가공할 마기와 사기와 악기를 뿌리고 있지 않은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기운에 접하자 숨이 막힘을 느꼈다.

(으음……가공하다. 저들 역시 죽은 지 오래된 시신이 분명하건만……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뿐만이 아니라……저 극사극악한 기운은 가히 폭발적인 살인의 미학을 내포하고 있다. 분명히 무공을 익힐 수 없도록 몸을 파괴당했다고 했는데……)

소일초와 주소아는 생각을 하며 아홉 구의 시체 가까이 접근했다.

(이들은 칠십이기재들 중 아홉 명이 분명하리라.)

가까이 접근하자 그들 시신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운은 더욱 가공하게 그의 전신을 향해 밀려왔다.

[으음……조심해……조심하지 않으면……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마기에 감염되어 영혼이 마의 기운에 사로잡히게 될거야.]

소일초가 주소아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는 정통마교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부였던 검마 역시 무림의 대기재 였고 젊었을 때 정통마교의 손길이 뻗쳐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납치하기 위해 나왔던 정통마교의 마두들은 오히려 모조리 그에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비밀까지 털어놓으면서……

이것이 소일초가 칠십이기재를 우섭게 보는 이유의 하나였다.

칠십이기재가 진정한 기재로 강자들이었다면 결코 잡혀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의 사부인 검마가 실례(實例)지 않은가?

 

소일초는 심호흡을 하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미 주소아가 온 정신을 모으고 있는 석실의 사면 벽과 천정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오오……이럴 수가 있는가?

이 극사극악한 기운은 단지 아홉 구의 시신에게서만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사면 벽이며 천정에서도 그 가공할 기운은 몸서리치도록 끔찍하게 풍겨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전율,

그것은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서는 항거할 수 없는 절사(絶死)의 기운이었다.

한편,

사면 벽의 한 곳에는 무수히 많은 손(手)의 형태가 조각되어 있었다.

하늘을 움켜쥐는 듯……

대해를 가로지르려는 듯……

억겁의 한의 부피가 실린 듯 무거운 동작……등등……

그 수인(手印)은 수천 수만의 손이 일시에 움직이는 듯 생생했고……

엄청나게 사악한 기운이 바로 그 수인(手印)들에 의해 폭출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뿐인가!

그 수 많은 손의 조각들은 기이하게도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시작되고 종결되는 듯하니……

가히,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의 가공함과 사악함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문득, 소일초와 주소아의 수려한 동공이 믿을 수 없는 경악으로 치켜떠졌다.

(이 손조각들은 인간이 표출할 수 있는 모든 손의 행동을 묘사했다…… 거기다가……인간의 몸에서 흐르는 생명의 기를 완전하게 끊어버리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들의 놀라움은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생명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듯한 죽음의 동작들……진정 가공하다. 무섭다. 두렵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런 것들에 놀랄 여유가 없었다.

스르르……

그들의 심연한 동공이 순간적으로 풀려가는가 싶더니……

스스스……

벽의 한 쪽에 가득히 찍혀 있는 손의 움직임이 그들을 무섭게 찍어오는 것이 아닌가?

[헉……!]

소일초와 주소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순간 수 많은 변화를 보이며 찍어오던 손그림자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벽은 원래대로 였다.

[묘한데……]

소일초의 말처럼 그 손 조각들은 묘했다.

조금 응시 했다 싶으면 눈 앞으로 뛰쳐 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았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묘한 흥미를 가지고 손 조각들을 들여다보며 그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오오…… 장강의 대하(大河)가 송두리째 그의 머리 속으로 밀려 들어오듯……

천지간의 온갖 저주와 한이 그의 머리 속에 폭포수처럼 내리 퍼부어지듯……

그 엄청난 수영(手影)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뇌리로 차곡차곡 파고들기 시작했다.

보면볼수록……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그들의 뇌리에 깊이 기억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돌연, 그들의 영혼을 촉촉히 적시며 소낙비처럼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으니……

 

------아는가! 정통마교주여……

우리 아홉 기재들의 이 잔인수(殘忍手)가 그려내는 황홀함은 우리 아홉 기재들의 모든 영혼이 서로 통하고 또 통하여……

세월의 아득한 시공을 초월하여 완성한 역천의 무공임을……

그리고 또 아는가?

그 잔인수가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마왕수(魔王手)는 완성되는 것을……

기억하라!

마왕수는 마교칠십이종절기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아……절묘하다.이 모든 수영들이 저주의 마교칠십이종절기 중 하나란 말인가?]

주소아가 탄성을 질렀다.

짐작은 했지만 이것은 너무 엄청난 무공이었다.

아니, 무공보다는 저주의 손짓이요……

살의 손짓이었으며……

한의 손짓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 수영(手影)들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잔인수가 하나로 점차 합쳐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더불어 영혼을 저미는 소리……

 

-----정통마교주여……!

우리 아홉 기재들은 세상의 모든 생명을 끊을 수 있는 하나의 수공(手功)을 그대에게 주겠노라……

그리하여 그대에게 주어진 그 위대한 마왕수는……

하늘을 거역하리라……

땅을 거역하리라……

정을 외면하고 선을 부정하리라.

자비를 거부하고 인정을 짓밟아 가리라.

오오……

이제부터 위대한 마왕수는 그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게 될지니……

이후,

마왕수는 이 하늘……이 땅 사이의 공간을 다스리는 죽음의 심판자(審判者)가 되리라.

 

죽음의 심판자,

마왕수,

그것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머릿속 깊이 새겨 졌다.

그 손은 아름다웠다.

하나이면서도 수없이 갈라지는 듯 하고 그러면서도 종내는 하나로 귀일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손이었다.

하나,

그 속에 내포된 그 가공할 마기와 사기……

오오, 그것은 끔찍한 것이었고 가히 폭발적인 공포를 자아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그 마왕수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무섭도록 균열시키며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으으-------악-------]

소일초와 주소아는 느닷없이 터지는 고통에 머리를 감싸며 나뒹굴었다.

바로 그때,

소일초의 품에서 은은한 서기가 뻗어나와 두 사람을 감쌌다.

두 사람의 영혼을 파괴할 것 같던 끔찍한 사기(邪氣)와 마기(魔氣)는 그 서기(瑞氣)로 인해 절로 사그라져 버렸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사부님께서 돌보셨다.]

소일초는 품속을 빠르게 헤치고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았던---빨가벗었을 때는 빼고----사부 검마의 몸에서 나온 사리(舍利),

그 사리가 마성(魔性)에 빠져들뻔 했던 두 사람을 구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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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魔章塔의 崩壞

 

 

 

마장탑(魔藏塔)------

 

이 엄청난 석탑……

그 끝이 이 지하공동의 천정에 닿아있으며,

주위로는 오직 백골들이 흩어져 있다.

시간과 주야(晝夜)……

그리고 계절을 모르고 사이한 푸른 안개에 휩싸인 채 부유하듯 떠있는 이 마장탑은 세월의 무심한 흐름 속에서도 말없이 서있다.

전체가 푸른 이끼로 가득차 있었으며……

으스스한 마기(魔氣)를 끊임없이 삼켰다가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바로 이 마장탑 앞의 두 사람……

언제부터인가?

굳어진 석상처럼 빤히 마장탑을 바라보면서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 있는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전신에는 헤어질 대로 헤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치렁치렁한 장발은 허리를 넘었는데 낡은 천으로 질끈 묵여져 있는 청년,

그리고 헐렁한 낡은 옷을 걸치고 단정하게 머리를 틀고 있는 여인,

스스스……

한 줄기 음풍이 청년의 장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름다운 얼굴……강인한 기상……그리고 눈에 맺혀져 있는 것 같은 고집……

이 사내는 소일초다.

당연히,

그의 옆에서 도대체 인간의 몸으로 이토록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풍겨내는 이 여인……

주소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소일초와 주소아,

이때 그들의 심연처럼 맑고 그윽하게 가라앉은 눈망울은 마장탑에 고정되어 있었다.

문득 꺼질듯이 새어나오는 소일초의 한숨……

[아……틀렸어…… 도무지 이 마장탑에 들어갈 방법이 없어!]

[…………]

[제기랄, 우리가 들어왔다던 연못은 꽉 막혀있고 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그저 이 마장탑에 매달린 것이 벌써 언제야……]

소일초가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또 발작을 한다.

[여긴 남만의 검마동보다 더 지독해……그땐 그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곳인줄 알았는데……]

[가만있어봐……떠들어도 아무 소용없어. 나갈려면 오직 저 마장탑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을 거야……]

소일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해. 너무도 완벽하게 폐쇄되어……!]

그들은 벌써 자고 일어나면 마장탑에 매달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처음엔 수월하게 생각했던 이 지하공동에서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후에 더욱 그랬다.

마장탑과 정통마교,

어느 탑도 부술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그 두 탑만이 지하공동의 천정에 닿아 있는 기둥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희망이 있다면 오직 마장탑을 열고 그 속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이곳의 탈출 방법을 알아내는 것 뿐이었다.

그동안 그들의 식사는 오직 이끼와 물이었다.

이제,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난 미증유의 신비로운 체질과 생명력을 지닌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의 손은 이끼를 신선한 음식으로 만들 수 도 있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을 지닌 것이라면 그들의 손에서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독과 물마저 그 성질을 바꿀 수 있으니,

그들의 손은 기적의 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지난 얼마동안 이 지하공동을 빠져 나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으되……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했으니……

석탑을 감싸고 있는 것들은 오직 독균들 뿐이었으며……

이곳은 사방이 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곳은 절지이고……

원래부터 이 곳의 출구는 연못 하나 뿐이었다.

그런데,그 출구는 정통마교의 제구대 구마존이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것이었다.

허나,

지금 소일초가 투덜거리고 있어도 다시 마장탑을 들여다 볼 것이고,

주소아는 눈 도 깜빡이지 않고 연구에 몰두해 있다.

(어떻게 해야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저 안 어딘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이 있을 텐데.)

하염없이……

그녀의 신비로운 동공은 석탑의 부분부분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어느 부분은 튀어오르고……

어느 부분은 꺼졌으며……

어느 부분은 각이 졌는가……

기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눈을 감고도 석탑의 형상을 훤히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하기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살펴봤으니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허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의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도,

세월모르고 마장탑를 뒤지고 또 뒤졌지만 결코 마장탑의 출구를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마장탑가 얼마만큼 완벽하게 폐쇠되어 있는 지 짐작이 가리라!

주소아 그녀의 심사도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지하공동의 아득한 천정으로 연결된 마장탑의 제일 윗 부분이……

순식간에 지하공동 전체를 붉은 마광으로 물들이는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서로 손을 잡고 태양처럼 빛을 발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수려한 몸이 가늘게 떨린다.

(변화……이 시간마저 멈춰버린 공간에서 처음 있는 변화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헌데 그때였다.

돌연,

쿠르르르……!

마장탑이 엄청난 소용돌이와 함께 무섭게 뒤틀리는 것이 아닌가?

수천만 가닥의 끔찍한 마광(魔光)이 솟아 오르고……

그 마광은 기이하게 제일 윗 부분의 태양같은 붉은 빛과 어우러져 전율스럽게 뿌려지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현상……

(우와……!)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 느닷없는 상황에 당혹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갑자기?)

쿠르르르……

그 순간 무너진다.

마장탑이 핏빛 먼지를 사방으로 뿌리며 아래에서 부터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서운 흡인력이 마장탑에서 뿜어져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휘감아 올렸다.

(으윽……이런 엄청난 힘이……!)

막을 수가 없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가공할 무공으로도 그 엄청난 흡인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들의 몸은 서로 껴안의 채 붕괴되는 마장탑의 제일 위,

붉은 광채가 쏟아지는 속으로 끌려 올라가고……

그 와중에서,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있었으니……

그 소리는 아름답고……전율스러웠으며……사이했고……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놀라지 말라……

우리는 불우했던 칠십이기재들……

그대를 위해 안배했나니……

 

그랬던가?

이 모든 것이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위해 안배한 것이었던 것인가?

(오……이 기막힌 조화가 칠십이기재들의 안배라니……)

 

----……그대의 출현은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뜻……

자, 들라……이 마장탑로 들라……아아아아……

 

이 여운과 같은 영혼의 속삭임을 들으며 소일초와 주소아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쿠쿠쿠-----!

지하공동의 기둥역할을 하던 마장탑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기둥이 무너진 그 곳 역시……

 

× × ×

 

무림은 다시 경악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무림을 강타한 소문,

 

-----천하제일의 힘을 가졌다는 백인장이 무림에서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삼수로 밝혀진 삼성무림청의 수뇌들과 싸우다 죽은 원로도객들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백인장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강북의 청옥검궁도 무림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소속된 일반 검사(劍士)들을 일제히 내보내고, 검왕과 검왕자를 비롯한 핵심 고수들이 어디론가 은거해 버렸다.

 

이제,

무림사대세력 중 삼성무림청과 청옥검궁, 그리고 백인장이 종적을 감추면서 오직 구파일방만이 남게 되었다.

강자들이 사라진 무림에 이를 기회로,

군소방파들이 빠른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팽창해 가고 있었으니……

무림은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도대체……

백인장의 사람들과 청옥검궁의 고수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들과 친분을 나누었던 수 많은 무림인들이 의혹속에 잠기는데……

 

무림에는 새로이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세력으로서 가장 강대하게 부상한 것은 삼현(三賢) 중의 일 인인 백대선생(白大先生)이 이끄는 백가장(白家莊)이다.

그리고 무시 못할 세력이 역시 삼현 중의 한 사람인 혈군자(血君子) 지장행(智長行)이 이끄는 취현성(翠賢城)며,

개인으로서는 취풍녀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취풍녀는 휘파람을 몰고 다니면서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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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正統魔敎의 秘史

 

 

 

[아아악!]

[아악!]

비명!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에서 터지는 비명은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의식을 조금이나마 찾았다가 다시 고통의 나락속에 빠져들어가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그들의 몸은 전신 뼈마디가 수 없이 이동하고,

다시 수없이 근육과 오장(五臟)이 이그러졌다가 재위치를 찾았다.

그에 따라,

그들의 몸도 백색의 찬란한 광휘를 피워냈다.

잃었던 의식이 다시 찾아들었고 의식은 다시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혼절하기를 몇 번 인가?

헌데,

지금,

스스히 그러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옷이 터져나가 버린 알몸에 돌연 지금까지의 백색 광채와는 다른 우유 빛 옥(玉)처럼 투명한 서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옥처럼 투명한 서기는 더욱 현란히 피어나더니……

급기야 그 서기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게 만들어가지 않는가?

거기에는 오오……

언제 그쳤는가?

그들의 입은 부드럽게 다물어져 있고,

언제 변해 버렸는가?

그들은 완전한 성인(成人) 남녀의 모습이 되어,

고통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얼굴이 되지 않는가?

급기야는,

그들의 나신에 강인한 서기마저 어려 신이 빚은 미녀와 미남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본시,

백송균화는 땅의 축복을 가진 영물이었으나,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영기를 지닌 것이었다.

축복이 큰 만큼 복용시의 고통 또한 컸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해 주면서……

두 사람의 전신을 엄청난 고통 속에서 재조립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설의 백송균화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완전히 다른 체질과 모습으로 바꾸어 버리는 크나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두 사람……

비록 무공과는 상관이 없지만 가장 건강한 몸을 지니게 되어 그 수명을 추측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의 손에서 생명의 조화를 전할 수 있는 땅의 축복을 지녔으니……

 

× × ×

 

[으음……!]

소일초와 주소아가 동시에 천천히 의식을 회복한 것은 백송균화을 복용한 지 얼마가 지나서 인지 알 수 없다.

눈을 뜨고 옆을 돌아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쳤다.

[살았구나!]

[누구냐!]

두사람의 몸은 역근천골공으로 어른으로 변신했을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그때는 억지로 만들어 낸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완전히 성숙해져 버린 것이다.

만약,

그들의 어리던 몸이 세월이 흘러 최전성기에 들게 된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몸은 변했지만,

여전히 어린 본모습이 남아있고 특히 목소리는 여전히 비슷했다.

[소아구나……]

[그래, 나야……]

주소아가 기뻐서 소일초를 안다가 뭉클 거리는 자기의 가슴을 인식하고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 밀쳐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전에 봐왔던 소일초의 알몸과는 느낌이 달랐다.

전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듯 부끄러움이 밀려든 것이다.

몸을 돌리고 누워서 주소아가 말했다.

[기분이 어때?]

[아주 좋아……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역근천골공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 데도 몸이 커져 버렸어.]

[아마, 백송균화 때문일 거야……]

주소아는 지금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지송목의 갈라진 틈새에는 이제 은은하던 백광도 찬란하던 백광도 없어져 버렸지만 전혀 시력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이 석동안은 이상하게도 그다지 어둡지 않았고 지금 그들의 어둠의 장애를 느끼지 않는 시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몸이 아주 편안해……마음도 아주 편안하고……]

[몸은 편하지만……마음은 조금 불안한데……]

소일초가 느긋하게 하는 말에 대한 주소아의 소감이다.

[왜?]

[잘 모르겠어……네가 옆에 있으니까 이상하게 자꾸 불안해……]

[…………]

[네가 다시 장난친다면 나는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아……지금도 자꾸 숨이 가빠져……]

여전히 소일초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주소아가 뛰엄 뛰엄 말했다.

[나도 숙쓰러운 것 같아……어른이 돼버렸나봐……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게 언제지?]

[잘모르겠어……백송균화를 먹기 전에는 한 칠일 쯤 지난 것 같았는데……]

[설마……한 십 년 정도 흘러버린 것은 아니겠지?]

돌아누운 채,

도란도란 속삭이는 그들의 전신(全身)에는 생명의 환희가 찬란히 용솟음치고 있었고,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위대한 평화와 아늑함이 깃들어 있었으며……

도저히 느낄 수 없으리 만치 몸은 가벼워져 있었다.

하나의 깃털보다 가벼워 입김만 <호> 하고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여기서 누워만 있지 말고 한 번 돌아보자……]

[혼자 갖다와……나는 근처는 대충 돌아봤어……]

주소아는 돌린 몸을 웅크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소일초는 일어서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 성숙한 아름다움에 묘한 기분이 들어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전에처럼 마음대로 그녀를 주무르고 누르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혼자간다. 여긴 완전히 지옥이군, 어디서 귀신이 나올지 모르겠어……]

밖으로 나가며 소일초가 중얼거린다.

순간,

누워있던 주소아는 부쩍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귀신이 나오기라도 할 듯 주변은 침침했고 안개마저 깔려있었다.

[같이가……]

벌떡 일어서서 소일초의 뒤를 쫓아 나갔다.

그녀의 백색 나신이 눈부시게 안개를 가로질렀다.

 

밖으로 나온 소일초는 의아심을 감추지 못하고 사방을 휘둘러 보았다.

허나,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와……

소용돌이치는 미증유의 사기와……

거대한 석순처럼 끝없이 늘어 선 지송목의 숲……

소일초는 흠칫 몸을 떨었다.

(호……혹시 여긴 진짜 지옥이 아닐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죽었다면 분명히 지옥인데……)

소일초는 급히 자신의 오른 편에 있는 주소아의 손등을 힘주어 꼬집어 보았다.

[아얏! 왜그래?]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원망스런 듯이 쳐다보았다.

소일초의 꼬집는 솜씨는 여자 못지 않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아픈 감촉이 전해진 것이다.

[음……분명 죽은 건 아니야……]

[기가막혀서……내가 살아있다고 말했잖아!]

고개를 들이대면서 소리를 지르는 주소아다.

그러나 못들은 척하며……

[음……그렇다면……이곳은 산정호수 속이란 말이지?]

주소아는 소일초가 자기를 무시하는 듯 하자 다시 대들려고 했다.

그때,

[평생 여기서 살거야?]

소이리가 들리자 마자 성질을 죽이고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소일초는 일단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우선 이곳을 살펴보자. 꼼꼼히 둘이서 살펴보면 어딘가 밖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 거야.]

그들 두 사람은 새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기이한 안개의 소용돌이를 헤치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

이 지송목의 숲을 헤매었을까?

문득,

걸음을 옮겨가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발길이 우뚝 멈추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굳어진 곳……

더이상 커질 수 없도록 크게 떠진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못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와아……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옥과 같은 이곳에 저토록 큰 두개의 석탑(石塔)이 있다니……!)

놀랍다.

두 시간을 이 주위를 헤맨 동안 그가 본 것은 오직 지송목의 숲 뿐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사방이 완전히 막힌 것 같은 이곳에,

도대체,

그 크기가 수 만년을 지냈을 지송목에 뒤지지 않는 거대한 두 개의 석탑이 웅크리고 있었으니……

언뜻 보면 석탑과 석순같은 지송목이 분간이 가지 않을 듯 했다.

그리고,

불과 이십여 장쯤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석탑은 쌍둥이 마냥 모양과 크기가 똑 같았다.

오오……

그 탑과 탑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사이한 안개,

실로 귀기롭다.

그리고 몸서리쳐지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헌데,

그 탑과 묘의 주위에 나뒹굴고 있는 저 수 많은 백골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것……

[여…… 여기도 인간이 살았던 때가 있었나봐……]

주소아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그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의혹을 참지 못하고 급히 우측에 있는 검은 석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통마교(正統魔敎)>

 

석탑에 핏빛으로 쓰여진 단 네 글자……

(정통마교?)

소일초와 주소아는 들은 듯도 만듯도 한, 하지만 생소한 그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소일초는 엄청난 악의 기운을 토한는 석탑의 문을 열었다.

쿠르르르르……

기분 나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일층 석탑의 내부,

쿠쿠쿠……

싸싸싸……

엄청난 무형의 기운이 악마의 입김처럼 이동하고 있을 뿐……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석전은 텅 비어 있었다.

허나,

석전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핀 소일초와 주소아는 실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석전의 바닥,

오오…… 그곳에 가득 널브러진 저 수 많은 백골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헉……!)

소일초와 주소아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발 끝에 닿는 백골의 섬뜩한 감촉,

그리고 밟자마자 부스스 먼지로 화하여 날리는 백골들을 보며 마음만은 아직 어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찔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으음……오래 전에 이곳에서 큰 혈전(血戰)이 벌어진 것 같구나……)

생각하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석전을 살펴나갔다.

헌데 문득,

석전을 살피던 주소아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무엇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저것은?)

가슴에 검이 박힌 채 나뒹굴어져 있는 한 구의 백골,

기이하게도,

그 백골의 한 손은 썩지 않은 채 본래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은은히 혈광(血光)을 뿌리는 손……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손을 봄으로써 알 수 없는 가공할 살기와 잔인한 무정을 느끼고 전율했다.

어느 새,

그들은 그 손 가까이에 접근해 있었다.

그리고,

그 손 주위를 살피던 중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그 손 옆의 바닥에 새겨진 몇 글자를 발견했던 것이다.

 

<부……분하도다……정통마교(魔宗會)의 처…… 천년야망(千年野望)이 배신자들에 의해 물거품……되다니……>

 

백골의 주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 글씨를 새긴 듯 손끝이 마지막 글자에 얹혀져 있었다.

[히유……천년 이래……천년이 얼마나 긴지나 알고 썼을까?]

바람 빠지는 소리를 터뜨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통마교란 이름도 생소하지만……

천년야망이란 가공할 욕망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의혹을 느끼며 또 다른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주소아와 소일초는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석탑의 위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층 석전의 구조도 일층의 석전과 구조가 비슷했다.

수 많은 백골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역시 기이하게도 한 구의 백골 만이 글을 남기고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새겨놓은 듯한 글자들에서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석전에 백골로 나뒹굴고 있는 자들이 거의 정통마교(正統魔敎)란 신비단체의 인물들이며……

글자를 남긴 인물들이 구마존(九魔尊)의 일 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정통마교의 주인인 구마존……

그들은 각층마다 한 명씩 죽어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사층……육층……팔층의 석전으로 올라갔고,

석탑의 그 팔층까지도 상황은 똑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의 사실 외에는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는 사실 또한 없었다.

마지막 십층,

쿠우우우-------!

기이한 소용돌이 만 가득찬 텅빈 석전의 내부 역시 수 많은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다.

유심히 사방을 살피던 소일초의 눈에 언뜻 경악의 빛이 스치면서 주소아를 자기의 등뒤로 끌어당겼다.

[저기……사……살아있는 사람이……]

주소아도 그 것을 보았는지 손가락을 가르쳐 보였다.

오오……

석전의 한쪽 석벽에 반듯이 기대어 앉아있는 한 사람……

백골이 아닌 완전히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은 시신이야……]

소일초가 먼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내 주소아도 그 중년인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신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시신은 시신이었으되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시신이었다.

차고 냉혹하며……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인의 모습을 한 시신,

그의 맑고 깊은 눈에는 지금도 은은한 자광이 폭사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니……

이 자가 살아 있었을 때 얼마나 가공스러운 무공을 지녔는지 가히 상상키 어려웠다.

순간,

[정통마교……정통마교……정통마교……]

딱!

소일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이마를 쳤다.

[이런 멍청이……그새 정통마교를 잊어버리다니. 사부께서 그렇게 당부했는데……에잇. 폭발로 머리가 어떻게 됐나봐!]

[정통마교를 알아?]

주소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시체를 봐! 죽은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잖아……이게 바로 극마의 경지야……그 나쁜 놈 사진성 역시 극마의 경지였어……참 기억은 찾았어?]

[응! 별 것 없었어. 나중에 이야기 해 줄께……]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동안 경이로운 시선으로 중년인의 유체를 살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는 중년인이 기댄 석벽에 피로 쓰여진 글씨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구마존 중 천마존(天魔尊)이다.

아아……그 어느 세월에 있어 본인의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날지 모르지만……나는 이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노라……

영원히 이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도……

이 원통……이 한……이 증오를 달랠 수 없기에 이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노라……

내 이제 여기에 정통마교(正統魔敎)의 탄생과 종말을 적으리니……

우선 이 글을 적을 때가 대명(大明) X 년 X 월 X 일 임을 밝히는 바이다.>

 

[대명 X 년이라고? 그렇다면 언제란 소리야?]

 

소일초의 맑은 동공에 놀라움의 빛이 가득 넘쳐났다.

허나 곧,

가슴을 추스리고 주소아와 함께 한과 원이 절절이 배인 처저란 비사(秘事)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정통마교는, 본시 천 년 전에 탄생한 마의 기본이며 본산인 십만마교의 본류이다.

이 땅에 마(魔)란 이름을 정착시킨 마의 주창자(主唱者)들……

본 정통마교에서 그분들을 제일대(第一代) 구마존이라 칭한다.

그 분들은 영원히 마가 정을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부정해 왔던 인물들이었다.

그분들은 드디어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세우기에 이르셨다.

마로써 정을 제압하려는 천 년의 대 계획……

그 위대한 계획 아래 탄생한 것이 정통마교였다.

그 분들은 천 년의 원대한 계획으로 정통마교주를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준비의 첫 단계는 천하에 산재한 모든 마공절예(魔功絶藝)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이 땅에 위대한 정통마교주가 탄생할 때까지 자신들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제이대의 구마존을 점지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잃은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 글의 광오함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얼마나 산다고 좋은 일 다 제쳐두고 이런 쓸모없는 짓을 천년 씩이나 할려고 했을까? 도무지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들이야……]

소일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 글의 광오함을 탓하면서 도 그들은 계속 읽어갔다.

 

<……이런 방법으로 구마존은 그 시대 가장 뛰어난 마공절예를 모았고……

또 그 후임자 즉 차대 구마존을 찾아 그들의 역할을 물려주는 이 장엄한 진행은 제팔대에 이르도록 철저하게 이행되었다.

헌데 제팔대에 이르러선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다.

제팔대에 구마존은 마공절예들을 더 이상 모으기만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공절예들을 체계화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천하에 산재하는 기재들을 납치해 오게 되었다.

그들은 마장탑(魔章塔)에서 거쳐하며 오직 마공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그들의 몸은 전혀 무공을 익힐 수 없도록 파괴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석벽의 비사(秘史)를 읽어 내리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천하에 산재한 기재(奇才)들을 납치하여 몸을 망가뜨리고 사악한 일에 동원하다니……

[무림에 때때로 있어왔다는 어린 기재들의 실종사건이 이들에 의한 것이었다니……기가 막히는데?]

주소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대단한 놈들이 대단한 짓을 하는군 그래. 그래봤자 자기들에게 고물도 떨어지지 않을 텐데……]

소일초도 서늘해 지는 가슴을 느끼면서 말했다.

허나, 그의 시선은 다시 석벽의 비사를 자세히 더듬기 시작했다.

 

<그들 기재들의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총 칠십이 명의 이들 기재들……

그들은 우리 제팔대에 이르는 구마존이 마장탑에서 무려 팔백 년(八百年)의 세월에 걸쳐 수집된 수백 종의 마공들………이 엄청난 마공들을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바 천재적인 두뇌로 새롭고 고강한 전혀 새로운 마공으로 통합해 가며 만들어가니……

그것은 실로 엄청나고도 거대한 작업이었다. 무림에 언제 이토록 많은 기재들의 힘이 한곳에 집결된 적이 있었던가?

무려 팔백 년의 세월에 걸쳐 난세마다 탄생한 최고의 무학들을 수집한 것에 그들의 두뇌가 결합되어……

그 작업은 무려 백 년의 세월에 걸쳐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 제팔대 구마존은 제구대 구마존을 점지하고 우리들의 모든 것을 넘겨 주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을 전하고……우리의 모든 무학마저 그들에게 전한 뒤의 그때……

오오……배반……배반이 이루어졌다.

불과 약관의 나이로 구마존으로 점지된 새로운 구마존이 일시에 배반을 한 것이다.

그 배반자들은 정통마교의 칠백 고수를 죽이고……그들을 동조한 정통마교의 삼백고수들을 이끌고 거기에 기재들이 만들고 있던 마교칠십이절기(魔敎七十二絶技)의 부본을 지닌 채……

오오……이 마의 성역(聖域)을 떠나니……

오오……이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조천수(趙千手)……제구대 천마존 조천수……에게 정통마교의 모든 정령들이 저주를 내린다……저주를……>

 

소일초와 주소아의 낯빛이 무겁게 일그러졌다.

[조천수가 정통마교의 제구대 천마존이었다니……제기랄 칭찬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일초가 주소아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조천수……

바로 등천마교주(登天魔敎主)로 주소아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의 이름이 아닌가?

비록 그 대가로 처참하게 목숨을 바치고 등천마교의 멸망까지 가지고 왔지만……

그렇다면,

등천마교는 이곳을 배반하고 떠난 제구대 구마존의 무리들에 의해 탄생된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분노한 천하제일인 혈기자의 손에 일제히 때죽음을 당했는가?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다.

배신을 하고 나간 그들이 불과 몇 십 년 되지도 않아서 시신조차 건사하지 못한채 처참하게 죽고 말았으니……

진정,

하늘은 인간의 모든 선악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있단 말인가?

주소아는 망연한 표정인데……

소일초는 도무지 끝을 짐작할 수 없는 혈기자의 무공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정통마교의 배신자인 조천수 등의 등천마교 본단을,

혈기자는 단장(短杖) 하나로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몰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무려 이천칠백여 등천마교 본단의 인물들은 저항도 못해보고 일제히 머리가 터져나갔다는 것을,

소일초는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약했던가……아니면 혈기자의 무공이 진정 신과 같단 말인가?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진짜 반로환동을 한 분이니…… )

소일초는 자기의 무공에 자만할 수 없었다.

자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구마존같은 고수들을 단 한 수에 죽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일초무적의 검공으로 죽인다고 하더라도 어찌 조금의 반항조차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소아를 보았다.

[조천수……그가 우리 집안의 모든 행복을 앗아간 장본인이야……그자만 아니었으면……부모님도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테고……할아버지도 숙백부들에게 혈겁을 일으키게 하지 않았겠지……그럼 그들도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테고……나는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주소아는 <조천수>라는 이름을 보면서 원한에 찬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소일초가 그녀의 어깨를 당겨안으며,

점점 희미해져가는 글자를 다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이로써 정통마교의 천 년 안배는 모두 깨졌다.

허나 불행 중 다행히 배신자들은 마장탑에 들어 기재들의 손에 의해 완성됐을 마교칠십이절기를 탈취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미 그들의 배반을 예감했음인가?

칠십이기재들은 미리 마장탑의 모든 통로를 완벽하게 폐쇄해 버린 것이다.

결국 마장탑은 칠십이기재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으니……

어느 세월엔가……

그 어느 세월엔가……

누구든 마장탑에 드는 자 마교칠십이절기를 얻어 진정한 정통마교주가 되리니……

바라건데……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정통마교주로서 무림 위에 군림(君臨)하기 바라노라……>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더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이 끝난 때문이다.

[친구 미안하게 됐네……이미 배신자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자네 곁에 갔다네……혈기자 그 젊은 형씨께 감사하게……]

소일초는 주소아를 웃기려는 듯 해학적으로 말했다.

주소아는 그의 말에 웃음을 띄면서 그를 밀쳤다.

[비켜봐! 어딘가에 옷이 있을 거야!]

[그대로가 더 좋은데……]

풍만하고 탄력있으며 우유빛이 어려있는 주소아의 알몸 아래위를 스윽 훑어보며 소일초가 말한다.

[색마……덩치가 클 때나 작을 때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구나……]

과연,

주소아는 석전의 이구석 저구석으로 알몸으로 뛰어다니더니 두 벌을 옷을 찾아냈다.

[쳇, 여자건 없어. 기분이 찜찜하기는 해도 별 수 없지. 우리 이제 마장탑인가 하는 데나 가보자.]

옷을 재빨리 걸쳐입으며 주소아의 얼굴에 강려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무공에 대한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무림에서 잡혀온 칠십이 명의 기재가 창안했다는 마교칠십이절기가 몹시 궁금한 것이다.

소림칠십이절기라면 몰라도 마교칠십이절기라니……

그녀의 관심은 이제 조천수 따위는 잊어 버리고 온통 마교칠십이절기로 가 있었다.

이때,

[우리 밖에 없는 데 옷은 무슨 옷이야. 지금이 가볍고 좋지……]

소일초가 이미 그녀의 성숙한 나신에 익숙해져 투덜거린다.

[너 때문에 옷을 입는 거야. 혹시 무슨 짓 하자고 달려들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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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前死後殺

 

 

 

항산(恒山),

눈덮힌 항산의 산줄기를 탄 조그만 야산을 둘러싼 거대한 성(城),

대소전각의 수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을 만큼 많은데……

눈으로 뒤덮혀 천지는 하얗게 빛나고 있다.

 

<청옥검궁(靑玉劍宮)>

 

성은 바로 청옥검궁이었다.

강북 무림을 장악하고 있는 검으로 우뚝 선 문파.

이곳은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산에서 결전을 치룬 백인장과 청옥검궁의 최고수들이 이곳으로 함께 몰려든 것이다.

대전 앞에는 십여 개의 관이 놓여져 있고 비장한 신색의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일순,

[피해가 얼마나 되느냐?]

창노한 음성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머리에는 관(冠)을 쓰고 몸에는 금포를 두른 노인(老人),

말에서 풍기는 위압감이 사위를 짓누른다.

바로 중원의 검신(劍神)이자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李克宋)이었다.

[…………]

중년의 호쾌한 인상의 문사, 검왕자 이수군(李秀君)은 침중한 안색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극송이 답답함을 느끼면서 말을 바꾸어 물었다.

[데려간 호법들은 모두 죽었느냐?]

[……네……아버님……]

[무사(武士)가 피 속에서 죽는 것은 영광인데 무얼 그리 주저한단 말이냐? 천하의 검왕 이극송은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쉬게 해라.]

이극송은 소매를 떨치며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그의 노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고 이빨을 굳게 악물고 있었다.

(삼수(三手) 이 놈들!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감히 본 검왕을 건드리다니……)

분노로 인해 몸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대전에서 팔을 싸안고 있던 이주용(李珠蓉)이 이수군에게 말했다.

[오라버니……저 때문에……미안해요. 저는 항상 집에 피해만 끼치군요……]

[너는 내 하나뿐인 여동생이고 나는 일초의 외삼촌이다. 아무말 말고들어가서 쉬어라.]

그가 이주용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백인장의 여러분께서도 내집처럼 편히 쉬십시오.]

살아남은 원로도객들이 읍하며 감사했다.

 

두 문파의 피해……

 

소일초를 살리겠다는 한가지 마음으로 이주용과 조예진,

그리고 이주용의 연락을 받은 검왕자 이수군이 일제히 고수들을 거느리고 화산 옥녀봉에 올라갔을 때,

결투 약속에 늦지 않았건만,

소일초는 보이지 않고 삼수가 진을 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일초는 이틀전에 이미 변을 당했던 것이다.

삼수는 그들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는지,

또한 두 문파의 고수가 함께 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지 몇 명의 호위만 거느리고 있었다.

삼수의 가공할 무공……

그들은 소선풍을 기다렸으나 전혀 다른 일단을 고수를 상대로 끝없이 마공을 펼쳐냈고……

여태까지 한꺼번에 출동한 유래가 없는 백인장의 최고수들인 원로십팔도객,

그들의 가공할 도법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조예진, 이주용, 이수군, 어느 누구 고수 아닌 자 없었으나,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틈을 갖지 못하고 호위들만 처치했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 싸움의 주역은 원로십팔도객이었던 것이다.

수백년을 이어온 백인장의 최고 원로들……

평소 백인장 내에서 잔소리만 할 때와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한사람 한사람의 도가 강함과 빠름과 변화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서로가 전혀 다른 도법을 구사함에도 어떤 일관성을 갖고 있어서 마치 절묘한 절진처럼 삼수를 가두고 공격했다.

도광이 하늘을 충천하고 일도 일도에 바위가 쪼개지고 땅이 갈라졌다.

삼수의 마공또한 몰아치는 폭풍처럼 원로십팔도객을 공격했고……

호위들을 다 처치한 청옥검궁의 팔대호법(八大護法)과 이주용, 조예진, 이수군은 간담이 서늘했다.

특히,

이주용과 조예진의 놀람은 지대했으니……

잔소리 쟁이 영감들의 무공이 저렇게 가공할 줄이야……

그렇다.

백인장의 저력이야 말로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한 삼수(三手),

혈기자의 무공을 배웠고 기이한 마공을 보탠 그들도 십팔명의 도객들이 합공에 갇혀 당황하고 있었다.

예전의 소선풍과 대결할 때도 그랬다.

처음엔 경시했다가 도도 들지 않은 그를 합공을 하여서야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백인장의 무공들은 마공과는 상극(相剋)인듯 했다.

그들의 강맹하기 짝이 없던 마공도 원로십팔도객의 도에는 종이짝처럼 찢겨나가는 것이었으니……

그러나,

삼수는 과연 강했다.

결국은 원로십팔도객의 합격을 꿰뚫고 말았다.

연로한 원로도객들은 근력에서 딸렸고……

그 틈이 오랫동안의 결투에서 은연중에 드러났던 것이다.

그들이 빈틈을 보이자 삼수는,

순식간에 십팔도객의 일부를 무너뜨리며 그들의 포위를 벗어났고……

그때부터 참혹한 살인이 다시 자행되었다.

먼저 청옥검궁의 팔대호법들이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고,

조예진과 이주용, 이수군 세 사람은 등을 맺대고 싸웠다.

삼수는 그들을 공격하고……

다시 그 밖에서 살아남은 원로도객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마침내,

시간이 더 길어 질수록 남는 것은 그들의 전멸이라는 것을 깨달은 원로도객들은 젊은 여주인들을 위하여 최후의 절초를 펼쳤다.

백인장의 도객들이 최후의 순간에 펼치는 마지막 도법……

 

<전사후살(前死後殺)>

 

그렇다 이름도 기괴한 전사후살이라는 도법이다.

말 그대로,

이 도법은 자기를 먼저 죽이고 후에 적을 죽이는 필사필살의 도법이다.

눈을 마주친 원로도객들 중 세 노인이 먼저 각기 삼수를 향해서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들의 몸이 삼수에게 접근하자 빙글돌면서 오히려 등을 보였다.

전혀 엉뚱한 공격에 삼수가 흠칫하며 그들을 공격하는 순간,

팡------

팡------팡------

그들의 몸이 허공에서 폭발하면서 자욱한 피보라를 사위에 뿌렸다.

그 속에서 몸을 잃은 한 팔 들려진 세 자루의 도가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기이한 마기를 뿌려내는 삼수를 찍었다.

윽---윽----

세 번의 비명이 들리며 삼수의 어깨와 다리가 도에 관통당하거나 스치면서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경실색하면서 비명만을 터뜨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어느새 다시 세 개의 던져져 오는 노인의 등……

똑같은 수법이나 피할 틈도 없다.

원로도객들은 등을 보였다 싶은 순간에 폭발하고 무서운 도가 다시 그들의 몸을 할퀴었다.

이렇게 자신을 먼저 죽이고 공격해 오는 것을 삼수는 본적이 없었다.

강호의 일반적이 동패구상의 무공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삼수가 급기야 몸을 빼어 치를 떨면서 도주했을 때,

백인장의 최고수들인 원로십팔도객은 어느새 원로칠도객으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장렬한 최후에 아무도 말을 할 수 조차 없었다.

묵묵히 그들의 흩어진 살점을 분간없이 수습하며 주인잃은 도 만을 소중하게 챙길 뿐이었다.

시신을 보전한 두 원로의 모습도 조금도 낫지 않았다.

삼수의 극악한 마공에 격중되어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들이었다.

힘 한 번 쓰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청옥검궁의 팔대호법의 허망한 죽음과는 함께 생각할 수 없는 원로도객들의 죽음……

상처를 싸매고 그들은 좀 더 가까운 청옥검궁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삼성무림청은 그 정예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삼수마저 극심한 부상을 당하자 어디론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무림에서 삼성무림청의 흔적은 다시 발견할 수 없었다.

소일초의 시신은 찾지도 못한 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는데……

 

× × ×

 

절지(絶地),

이곳은 완벽히 차단된 지하의 어느 곳이었다.

보이느니 사방은 물론 위까지 가로막은 검은 석벽이요,

자욱하게 깔려있는 구름같은 안개뿐이었다.

아니 그 지하의 공동(空洞) 한 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 마치 거대한 석순처럼 솟아있는 기이한 나무!

가지도 줄기도 입도 보이지 않고 마치 기둥처럼 위로 곧게만 자란 이상한 나무!

이 나무들의 굵기로 보아 족히 일천 년 이상은 자란 것이리라……

바로,

이 석순같은 나무의 숲에,

스스스스……

파도처럼 출렁이는 안개와 사기(邪氣)와 마기(魔氣)……

이것들은 마치 지옥의 한부분을 형성하는 귀화(鬼火)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사방이 밀폐되었기에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분명한데……

한데 돌연,

이 기괴한 나무의 숲 한 곳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약한 신음과 낮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으으……으……]

[흑흑흑----]

신음과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

그곳은 어느 나무의 뒤였다.

일견하기에,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확연히 틀린 것이었으니……

우선,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엄청나게 컸다.

거기에다,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어둠속에서도 은은한 백색의 광채가 피어나고 있는 데다가……

마치 천상의 향기(香氣)인 양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향기마저 뿌려지고 있었다.

또한,

그 나무의 주위에는 무수한 작은 나무들이 땅에서 돋아있는 것이니……

바로,

그 신음과 울음소리는 이 나무의 벌어진 틈에서 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

그렇다.

인간(人間),

두 명의 인간이 흰색으로 빛나는 나무 틈에 몸을 눕히고 있지 않은가?

한 사람,

전신(全身)은 피투성이였으며……

작고 탄탄한 몸에 귀엽기 그지없는 얼굴의……

소일초,

화산 옥녀봉에서 폭발과 함꼐 사라진 소일초가 바로 그가 아닌가?

그렇다면,

신음을 흘러내고 있는 그의 옆에 엎드려 울고있는 또 한 사람은……

하늘아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소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어떻게……

어떻게 그들이 여기에 와 있단 말인가?

주소아가 눈물을 닦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변신이 풀려 다시 어린 계집애의 몸으로 돌아간 그녀의 몸은,

산산히 찢어져 속이 여기저기 들여다보이는 풍덩한 옷 속에 파무쳐 있었다.

그녀는 소일초의 이마를 짚어보곤 안개가 자욱한 석동으로 나가 작은 연못으로 갔다.

한 입가득 물을 머금고 돌아와 다시 소일초의 입에 넣어주었다.

소일초의 낮은 신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비틀거리는 그녀 역시 정상의 몸은 아닌 듯 했다.

[벌써 칠일 은 지나갔을 거야……그런데 일초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녀는 소일초의 얼굴을 닦아 손으로 쓸어주면서 폭발당시를 회상했다.

 

철검을 던져버린 소일초가 그녀를 안고 허공으로 몸을 뽑았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들은 강렬한 폭발에 휘말려 석평과 함께 산정호수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폭발의 충격에 주소아는 칠공으로 피를 쏟았지만,

육척의 소일초가 안고서 보호하는 바람에 다른 외상은 그다지 입지 않았다.

그러나……

소일초는 온몸으로 바위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냈으니……

금강지체인 그의 몸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드디어 수중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소일초는 정신을 잃었지만 반대로 주소아는 물 속에서 더욱 정신이 맑아졌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호흡의 지장을 전혀 받지 않았던 것이다.

물 밖에는 틀림없이 사진성,

그녀를 길렀던 세 사람 중의 사진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빠르게 판단한 그녀는 소일초의 몸을 안고 가라앉는 거대한 바위를 잡고 물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한 줄기 수중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바로 이 석동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폭발 때의 충격 때문인지 그녀의 내공은 산산히 흩어져 버리고 평범한 여자아이,

그것도 상처입은 여자 아이에 불과해져 있었다.

그녀에게 안겨있는 소일초도 다시 어린 소년이 되어 신음하고 있고……

그녀는 깨어났지만 소일초는 여전히 혼수상태에서 신음만을 내뱉고 있다.

몸은 한기를 느끼는지 덜덜 떨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 역시 물에서 강렬한 한기를 느끼고 손마저 담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에게는 소일초의 입으로 물을 옮겨주는 것도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녀가 숲을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희미하게 빛나는 이곳을 발견했을 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극심한 허기로 인해 무엇이든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녀였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

한데,

향기……

지상의 향기가 아닌 듯 청아한 향기가 돌연 그녀 우울한 정신을 맑게 하며 어디선가 퍼져 나오는 것이 었으니……

오오……

이 향기는 나무의 머리 갈라진 틈, 바로 그들이 있는 곳의 한 쪽 구석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에,

조금 전에도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꽃,

도대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신비로운 꽃은 마치 버섯의 줄기를 가진 오직 한송이의 꽃이었다.

한데, 꽃은 아주 작은 버섯에 꽃을 꽂아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감히 눈이 부셔 마주 대할 수 없는 백색의 광휘!

오오……

보라!

이 거대한 나무의 몸체를 감싸고 돌던 은은한 백색 광휘는 바로 이 조그만 꽃에서 피어난 광채가 전해졌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조그만 꽃에서 피어난 광채로 인하여 그 어마어마한 나무의 갈라진 틈이 은은한 광채를 뛰고 있었던 것이니……

지금, 꽃이 땅위에 올라온 지금,

희미한 어둠 속에 있던 석동의 주위 오십여 장이 이 광채의 영향권에 들었다면 그 광채가 얼마나 극렬한 것인지 짐작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꽃은……

이 신비한 백광을 발하는 꽃은 분명 아득한 옛날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존재 했다는 지송목(地松木)이라는 거목에 기생한다는 그 백송균화(白松菌花)가 분명하다.

다만 전설일 뿐이어서……

인간이 세상에 출현한 후에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영원히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다고 이야기 되어져 왔던 백송균화……

전설이 말하는,

 

-백송균화(白松菌花)!

 

이것은 땅의 정기를 빨아서 자라는 지송목(地松木)이란 고대에 존재했던 괴목에서 다시 그 정기를 훔치면서 자란다.

오직 만년(萬年) 이상을 자란 지송목에서만 서식하며……

또한,

이것은 평소에는 그 모습이 흙속에 존재하고 오직 은은한 백색 광채만 주위에 뿌려내고 있다가,

수 만 년에 한 번 모습을 바깥의 바람에 쐬일 뿐이었다.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불과 일각(一刻),

그 일각이 지나면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고 그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

완전히 성장하여 꽃을 피우게 되면,

찬란한 백색 광채를 향기와 함께 사위에 뿌린 후,

먼지로 화해 사라지면서 사방으로 그 씨를 퍼떠린다.

이 백송균화의 영험함은 땅의 모든 축복을 훔친 것이다.

무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생명체의 본질을 전해주는 백송균화……

그러나,

신체의 구성을 생명의 영기로 가득차 주게 하는 것이니 땅위의 모든 생물들에게는 최고의 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소아의 온 몸이 백송균화를 보면서 덜덜 떨렸다.

그녀가 백송균화를 알아본 것이다.

인간으로서 백송균화를 본 최초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그녀였으니……

그 장엄한 광경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향기,

이 백송균화의 향기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백송균화에서 발산되는 백색 광휘가 더불어 찬란해지니……

천지만물은 일시에 이 향기와 광채로 젖어 들어갔다.

그런데 ,

그 향기에 따라 여태 혼수상태에 빠져 들어 있던 소일초의 정신도 그만큼 맑고 뚜렷해지고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 소일초는 최초의 의식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그 의식은 극심한 허기로 이어졌다.

[소아……배가 고파……]

주소아가 백송균화에 넋이 빠져 있다가 펏득 정신이 들었다.

소일초가 신음을 멈추고 힘없이 눈을 뜨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격동을 감추지 못하고 소일초를 얼싸안았다.

[우린 살았어……우린 살았어……]

 

세상 인간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백송균화는 나오자마자 두 남녀의 입으로 나누어져 들어가고 말았다.

순식간에 땅의 축복을 훔친 꽃 백송균화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전신에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남녀는 서서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하늘은 어쩔려고 이 골치 아픈 소년소녀에게 백송균화를 안배했단 말인가?

어쩌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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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같은 수법에 당하다.

 

 

여명,

아침의 여명 속에 화산의 옥녀봉은 그 장엄한 위엄을 드러냈다.

천야만야의 절벽이 억 년(億年) 이끼를 드리운 채 깔아 내리질러진 옥녀봉의 정상!

바로,

이 옥녀봉의 정상에 칼로 반듯이 자른 것 같은 방원 오십여 장의 석평(石平)이 놓여 있었다.

석평의 옆에는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산정호수(山頂湖水)가 이 추운 겨울에도 얼지 도 않은 채 시퍼렇게 넘실대고 있다.

스으으으……

짙은 운무가 허리를 휘감고 도는 데,

두 사람의 남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가 석평의 한 편에 서 있었다.

어제밤,

옥녀봉의 중턱에서 밤을 지새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정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지금, 소일초는 주소아의 가슴에 비스듬히 머리를 뭍고 서 있다.

결투는 아직 이틀이 남았다……

십 세의 어린 소년으로……

상대가 혈기자의 세 제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후 단신으로 도전한 천하의 당돌한 꼬마 신행마동 소일초,

어른의 모습으로 변신한 후에도 짖궂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던 소일초의 얼굴에,

지금은 진지한 표정이……

자욱한 안개마냥 드리워져 있었다.

하기야……

이 하늘 아래 어떤 자가 이 신행마동의 조그만 가슴에 담겨진 기상천외한 생각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희고 정기가 가득한 얼굴에 아주 다른 사람 인양, 진지함와 심각함을 어두움처럼 드리우고 있던 소일초……

문득,

[이젠 나도 준비를 해야지……]

무슨 준비를 말하는 가?

이 산정에서 그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소아의 성숙해진 몸을 격렬하게 포옹하며 입가에 찬연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불안한 기색으로 아무 말없이 그가 하는데로 다 내버려 두고 있던 주소아,

그녀가 면사속에서 씁쓸하게 웃으며 찬란히 움터오는 옥녀봉의 여명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점을 쳐 봤더니……그다지 좋지 않았어……재수 없이 소과괘(小過卦)가 나왔단 말이야……]

[소과괘? 그게 뭔데?]

 

소과괘(小過卦)!

이는 주역(周易)의 육십사괘(六十四卦) 중의 하나이다.

정식 명칭은 뇌산소과(雷山小過)인데 흔히 줄여서 소과괘라고만 부르고 있다.

간(艮)하 진(震)상의 형태로 간상(艮上)과 진하(震下)의 각 괘효만 양효이고 나머지는 모두 음효이다.

이 소과괘는 원래 만사형통의 괘라고 한다.

하지만,

작은 일은 할 수 있지만 큰 일은 할 수 없으며,

올라가는 것은 효를 거슬리는 것으로 마땅치 않고 내려가면 대길(大吉)하다.

강한 기운이 자리를 잃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니, 이것은 큰일을 이룰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역경(易經)의 상(象)에 기록돼 있다.

 

[지금 상황에선 가장 최악의 괘라고 할 수 있어……]

[책은 본래 부터 믿을 만 한 게 아니야……맹자라는 영감도 책이 오히려 사람을 헤치고 눈을 가린다고 했어. 그리고……]

[…………]

[공자도 언젠가 이르기를 바르면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거야……]

[공자 맹자의 말을 그렇게 잘 알면, 왜 다른 행동은 개찬반이야……공자 맹자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닌데……]

조소아가 갑자기 공자 맹자를 방패로 삼는 소일초의 귀에대고 낮은 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글은 대답이 궁할 때만 빌려오는 물건이야.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

소일초의 얼굴이 진지해 지고 몸을 옴기려 하나 주소아가 껴안은 손을 풀어주지 않는다.

츄르르르……

아침의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주렴소리를 따라,

그들의 가슴에 내려앉은 불안은 춤추듯 허공에 아름아름 흩어져 날아갈 것 만갔다.

화산 봉우리 마다 희눈이 융단처럼 깔려있는데……

소일초의 얼굴에 결연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결코 패하진 않겠다……내가 누군데……)

이내,

소일초의 얼굴에 강한 신념이 서려왔다.

그리고 그의 온 몸에 투지가 불타올랐고,

주소아의 손을 풀면서 그의 두 눈은 옥녀봉의 사방을 헤아리듯 살폈다.

그리고 중얼거림,

[비성성을 불러야겠어……여기에 준비 해야 할 게 있어……]

주소아가 허공을 향해가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를 보낸다.

휘이익----휘익-----

화산 절봉들 사이에 끝없이 메아리 치면서 멀리 멀리 소리가 퍼져나가자,

문득,

어느 산봉을 돌아서 새까맣게 날아오는 비행체들이 있었다.

휘파람소리는 여운을 남기며 멈추고,

소일초의 손바닥에 있는 수정검우가 비성성들을 인도했다.

[이곳의 지형을 바꿔야겠어……]

[……?]

[바위! 바위 알지? 돌말이야. 그래 그걸 주변에서 얼마든지 날라와. 많이 많이 그럼 나중에 술과 고기는 물론 여자까지 하나 씩 붙여줄게……]

돌을 직접 들어 보이면서 비성성들을 향해서 소일초가 소리친다

비성성들에게 무슨 여자가 필요하겠냐 마는 말이 그렇다는 소리다.

다시 옥녀봉에 두 사람만 남았는데 주소아가 물었다.

[바위들로 뭘 하려는 거지?]

소일초가 그녀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소근거리자 주소아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 바보 나한테는 미리 귀뜸을 해줬어야지……사람 속을 그렇게 태워?]

소일초가 씨익 웃는 순간,

[너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소리,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무심일체의 소리,

그 소리는 어느 새 듣는 이의 영혼을 먹물 같은 마기로 적셔내고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무감정함 속에 형언할 수 없는 마기를 담은 음성의 방향을 따라 재빨리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나 없다.

아침의 여명을 받은 채 한개의 거대한 바위가 죽음 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을 뿐……

이때 다시,

[부럽구나……도왕 소선풍이……]

이번의 무심한 음성은 정 반대편의 눈덮힌 거대한 노송이 있는 쪽에서 흘러 나왔으나,

여전히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음성이 순식간에 천지사방에 방향을 바꾸며 잇달아 흘러나오는 것이니……

[…………]

소일초는 얼굴에 긴장을 돋구며 사방을 예리하게 주시할 뿐이었다.

[후훗……놀라운 자질……상상할 수 없는 지혜……]

[…………]

[도왕 소선풍 대신할 수 있음에 결코 부족함이 없도다……하나 애석하게도……네 생명의 끈은 결코 오래 가지 않을 듯하다.]

문득, 소일초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신이 스승을 배신한 추악한 삼수인가?]

이순간,

주소아의 면사에 가려진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당돌한 녀석이군…………!]

소일초는 그의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하고 차분한 음성을 흘려냈다.

[혼자만 왔는가?]

[후훗……물론……우리 삼수가 함께 상대해야 할 존재는 없다………]

[내 아버지 도왕 소선풍을 공격할 때도 그 말을 했겠지?]

[…………!]

[이틀 후가 예정된 날이지만 당신이 이렇게 왔으니……아버지의 복수를 신행마동 소일초의 이름으로 하겠다.]

실로 당차고 오만한 말!

돌연,

[후후후훗……건방진 녀석이로군……이 땅에 본좌 사진성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영원히 존재치 않음을 본좌는 스스로 단언하거늘……]

동시에,

그 섬뜩한 무심 속에 담긴 마소와 함께,

오오……보라!

푸석푸석……

전면의 바윗덩이가 거미줄처럼 균열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바윗덩이는 가공할 용암(熔巖)의 분출처럼 이글이글 화염을 폭출시키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후후후훗……!]

싸늘한 괴소에 이어 엄청나게 치솟던 화염은 가공할 청백귀화(靑白鬼火)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화스스스------!

그 거대한 바윗덩이는 한 줌의 물로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속에,

스으으으……

뽀얀 검은 빛 수증기를 일으키며 나타난 한 사람……

그 수증기가 너무 짙어서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헤아릴 수 없으되……

아련히 투영되는 먹물 같은 흑의에 흑포……

모든 것이 검은 빛으로 치장된 사람이었다.

거기에다, 무형 중에 사위를 검은 빛 마기로 지배해 가는 저 가공할 기도!

(윽!)

소일초는 어느 새 뻗어나온 무형마기가 자신을 휘감는 것을 느끼며 경악하고 있었다.

(지금 까지 보았던 고수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렇다.

나타난 사람은 혈기자의 네 제자 중 셋째인 사진성이었다.

황혼 속에 화산의 옥녀봉으로 사라져간 소일초와 주소를 지켜보던 수증기 속의 인물……

바로 그였던 것이다.

(어떻게 혈기자의 제자가 마공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혈기자의 무공은 기이하기는 해도 광명정대한 것임을 나도 익히 알고 있건만……)

이때,

너울 너울……

뽀얀 수증기에 가려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무형마기의 사진성,

그의 날카로운 신광(神光)인가?

소일초는 이따금씩 실처럼 가는 안광이 주소아의 면사를 꿰뚫어 보고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그녀의 몸 구석구석마저 더듬어가는 듯한 눈빛!

(소아를 알아보았구나……)

주소아는 마기가 철철 넘치는 사진성의 눈빛을 받고 몸을 떨고 있었다.

소일초의 놀라움은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소아도 알아보고 있다……)

그는 주소아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사진성의 마안을 마주 대항했다.

이 순간,

소일초의 마음에는 짙은 불안이 깔려들었다.

(저 사진성의 무공은 사부께서 전에 말한 바 있는 정통마교의 극마(極魔)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어쩌면……사부님의 일초검공만이 유일한 수단일지 모르겠다……)

이때 돌연,

뽀얀 수증막 속에서 사진성의 음성이 울려나왔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네가 아니라 도왕 소선풍이었다.]

[…………]

[그를 완전히 죽임으로 백인장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현재의 정세를 뒤바꿀 수 있음은 물론 강남을 우리 수중에 넣을 수 있 없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

[사실……네가 아무리 날뛰어도 무림의 고수들은 애들로 밖에 생각지 않거든……]

[하지만 오늘 당신은 여기서 죽게돼.]

너울 너울……

먹빛 일색의 사진성을 삼키고 있는 수증기가 한 바탕 어지럽게 흔들렸다.

[이틀 후에는 아마 소선풍과 조예진도 여기에 나타나겠지……오늘은 너를! 그리고 그때는 그들을 죽이겠다.]

[당신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사부인 혈기자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수 도 있어…………]

사진성의 몸이 움찔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내 무공은 이미 그를 넘어섰다. 천하의 어느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하물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 정도야……]

너울 너울……

무형마기의 수증기에 둘러싸인 희뿌연 사진성의 몸이,

안개가 확산되어 오듯 소일초의 몸에 가까와졌다.

이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인가?

소일초의 뒤에있는 주소아의 가느다란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래……바로 사숙부(史叔父)였어……나에게 여러 가지 비급들을 주던……이제 기억나……그 마공들……아아……고모부와 싸울 때도 저 마공을……이제 기억나……이제……)

주소아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혼절해버렸다.

황급히 그녀를 안으면서 소일초는 다가오는 사진성의 몸을 향해 검을 뽑아들었다.

(하필……이런 때……)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을 지 자신할 수 없는 상태인데,

주소아까지 짐으로 맡게 되었으니……

하나, 소일초는 피처럼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쨌던……죽여주겠다! 사진성……!)

동시에, 소일초는 가까이 접근한 사진성을 향해 어제밤 그토록 놀라운 신위를 보였던 철검이 뻗어나갔다.

순간,

쉬이잇-----

철검에서 백색 검기가 엄청난 기세로 뻗어나오며 백룡이 하늘로 올라가듯 사진성을 휘감아갔다.

사진성의 눈동자가 잠시 어지럽게 흔들리고,

오오……이런 일이라니?

슈우우우……

번------쩍-------

철검에서 나온 백룡은 살아있는 듯이 사진성을 유린하려 했다.

백색의 용형(龍形)검기가,

사진성의 몸앞에서 폭발하듯 흩어지며 그를 뒤덮는데……

오오……그렇다……

백룡승천(白龍承天)!

이것은 바로 혈기자에게 배운 용형삼도(龍形三刀) 중 제일초인 백룡승천을 검으로 펼쳐낸 것이다.

이 백룡승천의 백색검기는 일단 스치기만 해도 그 무엇이건 한줌의 가루로 바수어 버리고 만다.

스치는 물체가 돌덩이든 쇳덩이든 아무래도 좋다.

스치는 순간 강한 파열음과 함께 바수어 버리는 백룡승천!

그러나,

사진성의 무심한 시선은 힐끗 그것을 바라만 볼 뿐 조금도 피할 생각을 않는다.

[후후훗……백룡승천! 과연 일세를 주름잡을 가공할 도법이지!]

이어,

휘스스스……

사진성을 휘감고 도는 기이한 수증기가 상하좌우 팔십 방위에 싸늘한 빛을 흘려내는 게 아닌가?

순간,

콰콰콰……

콰스스스……

주위 방원 삼십여 장의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가 싶더니……

오오……

무수한 백색검기가 용의 비늘처럼 힘을 잃고 흩어져내리는 것이니……

[크크큿……꼬마야……그 백룡승천은 과거엔 힘을 발휘했을지 모르나 현세에 이르러선 무용지물!]

이때,

[음!]

소일초는 허파가 타는 듯한 침음성을 내뱉으며,

재빨리 또다시 검을 휘둘러 하나의 초식을 구사했다.

동시에,

슈-----우-------웃------슈슈슝--------

기이한 음향을 흘려내며 철검이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곧바로,

휘이이이……

찬란한 아침의 여명 속에 그의 형체가 소멸되는가 싶더니……

스읏……스스스……

살을 에일듯한 찬바람이 사진성을 갈갈이 찢어버릴 듯 사방에서 흉폭하게 몰려갔다.

우르릉---------!

은은한 뇌성마저 동반한 엄청난 강기의 폭풍(暴風),

그것은 천지사방을 가득히 메우는가 싶더니 일시에 사진성의 전신요혈(全身要血)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하나, 사진성은 예의 그 자리에서 다시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수증기의 가닥을 소리없이 움직일 뿐이다.

[육풍장인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는데……]

곧 바로,

피시시시싯------!

수증기와 검으로 펼쳐진 육풍장의 폭풍이 부딪침과 함께 매케한 냄새가 사위를 진동하는가 싶더니,

허공에 가득히 난무하던 북풍한빙의 강기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이어,

주춤주춤 물러나는 소일초!

[음!]

(사진성, 저 놈도 역시 내가 혈기자에게서 배운 무공에 대하여 철저히 알고 있어! 하나……그것으로 말미암아 너는 죽게 될 것이다……)

소일초의 땀으로 흥건한 얼굴에 무서운 광망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차례로 혈기자에게서 배운 무공을 숨쉴 틈을 주지 않고 펼쳐냈다.

이미 극마의 경지에 접어든 일대(一代)의 거마(巨魔) 사진성과,

혈기자에게 배운 무공들을 무서운 검력(劍力)에 실어서 펼치는 소일초와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처음에,

사진성은 담담하고 여유롭기만 했다.

그러나,

초식이 거듭될 수록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환히 아는 초식들 임에도 불구하고 시꺼먼 철검으로 펼쳐지는 그 무공들은 자신을 위협할 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실로 무서운 놈이다. 당년의 도왕 소선풍에 전혀 못지않은 실력이다.)

수증기에 휩싸여 있던 그의 눈에서 차가운 살기가 일었다.

순간,

소일초의 검이 물러나며 그의 왼손에서 새파란 빛이 그물처럼 뻗어나와 순식간에 희뿌연 수증기 속의 사진성의 두 손을 휘감아 버리는 것이니……

[음!]

처음으로 경악에 찬 사진성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때,

소일초의 득의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하핫……이번의 한 수는 이 소일초가 마누라에게 훔쳐 배운 무슨 환상도라는 수법이다.]

[…………]

[당신은 내 철검을 너무 의식하고 있었어……]

[…………]

[그 방심 때문에 내가 왼손으로 펼친 체대에 당한 거야.]

파란 빛,

그것은 주소아의 체대였다.

그것은 천잠사로 만들어져 있어,

그 어떤 도검(刀劍)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데 바로 이때였다.

희뿌연 수증기 속에서 사진성의 웃음이 섬뜩하게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크하하핫……훌륭하다! 꼬마……]

[…………]

[하나 그럴수록 살려둘 수 없는 놈……]

슈우우우……

오오 환상인가?

사진성의 몸이 연기가 빨려들 듯이 소일초를 향해 부딛쳐 오는가 싶더니……

슈---슛------슈------슛------

묶여진 두 손이 사르르 흩어지면서 풀려나왔다.

[헉……또 저 손이……!]

소일초 품에서 막 정신을 차린 주소아가 경악에 찬 외침을 발하고,

[기다렸다! 사진성.]

주소아를 몸 뒤로 보내며 소일초의 철검이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갔다.

바로 비장의 절초 일초검공이었다.

순간,

사진성의 몸이 까마득히 허공으로 솟구치며

 

꽈꽈꽝-------

 

장렬한 폭음과 함께 석평이 폭발해버렸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느낄 것도 없었다.

눈 앞에서 번쩍 하는 순간,

일초검공을 펼치던 소일초는 미처 검을 다 뻗기도 전에,

(앗차! 똑 같이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바로 온 힘을 다해서 철검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앞서서 주소아의 몸을 안고 땅을 박찼다.

 

쿠르르르--------

옥녀봉의 석평은 통채로 부서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산정호수로 무너져 내렸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렬한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화산 봉우리마다 폭음의 여운이 남아서 여기저기 눈사태를 일으켰다.

그리고,

정적!

이제 정적만이 가득 남아도는 옥녀봉의 정상,

한 순간,

너울 너울……

기이한 수증기에 쌓여있던 사진성의 입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무서운 녀석…그토록 뛰어난 ……놈은 처음이었다……어쩌면 도왕 소선풍를 처치한 것보다 저 놈을 처치한 것이 훨씬 행운이었을지도……]

이어,

푸스스스스……

사진성을 둘러싸고 있는 수증기가 더욱 짙어졌다.

[놈은 비장의 절초를 숨기고 나를 유인했었다……선수를 쳐서 어제밤에 미리 설치한 화탄을 터뜨리지 않았더라면 어찌되었을까?]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너울너울……

푸스스스……

[어쨌던, 그놈은 죽었고 나는 살았다.]

바로,

이것이 무림이다.

비열한 수단이니 뭐니 하는 것은 결국 잠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승리는 영원히 남는다.

너울너울……

사진성의 몸은 하늘 아득히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저 천공에 가득한 햇살에 섞여 흔적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죽음 같은 정적 만이 가득한 이곳,

휘이이이잉--------!

한 바탕 북풍이 옥녀봉의 정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주인을 찾아서 작은 바위들을 안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끽끽 대는 비성성들의 아무것도 모르는 외침만 옥녀봉을 감돌았다.

 

× × ×

 

충격!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중원의 이대 방파인 백인장과 청옥검궁의 분노한 최고수들,

그리고,

신흥방파인 삼성무림청의 세 주인인 천하제일인의 제자였던 혈기자의 제자 삼수(三手)와의,

하늘이 놀라고 땅이 일어날 대 결투……!

절경을 자랑하던 화산 옥녀봉 정상은 황폐하게 어지럽혀졌다.

서로가 처참한 피해를 당한 상황에서 삼수는 도망쳐버렸고……

중원최강을 자랑하던 이대문파의 최고수들은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다.

 

중원을 완전히 돌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신행마동 소일초의 죽음,

그리고 그 이틀 후의 대 격돌,

무림은 어디로 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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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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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鐵劍으로 펼친 劍功

 

 

 

은파하(銀波河),

서안의 교외(郊外)를 감싸고 흐르는 그리 크다고 말할 수 없는 강이다.

이 은파하의 맑은 물 위로……

휘영청 밝은 만월이 은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는 밤이었다.

바로 이 아름다운 은파의 강변을 따라……

훤칠한 키에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소일초와 달빛이 무색할 아름다운 자태의 주소아가 거닐고 있었다.

이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돌연,

영롱한 주소아의 음성이 소일초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어떻게 아침의 그 거진 우리를 한 눈에 알아봤을까?]

[그 기분나쁜 자식 애기는 꺼내지도 마!]

[그 거지 애기를 하자는게 아니고……]

소일초가 몸을 돌려 주소아를 바로 응시했다.

[너도 참 멍청해 졌구나.]

[……?]

[이 바보야! 네 귀를 잠시 막았다가 열어봐.]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주소아는 손을 귀로 가져가다가 소리쳤다.

[너나 나나……계속 같이 있다 보니까 네 몸에서 나는 소리에 익숙해져서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거야……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다르겠지, 소리가 갈 수 록 약해지고는 있지만 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어……]

[쳇, 소리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진 변신해도 말짱 헛고생이겠군, 그래도 얼마 전에 기가 막힌 미행자는 따돌렸었는데……]

주소아가 돌멩이를 발로 차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지?]

[이제 다왔어……]

소일초의 말에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강변의 갈대만 보일 뿐 색다른 것은 눈에 뛰지 않는다.

[설마……여기서 이상한 장난이나 치자고 온 것은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불안한 듯이 소일초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주소아가 화석처럼 굳었다.

허공,

달빛이 찬란히 쏟아져 내리는 휘황한 허공,

일렁일렁……

무엇일까?

몹시 완만하게 선회하며 네 곳의 방위에서 맴돌고 있는 네 개의 물체,

그것도 피빛 광휘를 사위로 흩뿌리는 소름이 끼치는 등(燈)이 아닌가?

일렁일렁……

이 네 개의 핏빛 등은 언제 나타났는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네 방위를 좁혀오고 있기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죽음의 살수(殺手)……사등객(死燈客)!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사등을 부리는 자야.]

소일초의 음성이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사등……

사등객이라니?

그렇다면 핏빛 혈등(血燈)을 이끌고 다닌다는 팔십 년 전의 대환상 살수인 사등객이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저 세상을 조롱하는 한 살수로 남고 싶었노라……그리하여 나는 네 개의 등을 이끌고 천하를 뒤지는 살수가 되었노니……울어라……울어라……피야……짖어라……짖어라……내 싸늘한 검날아……

 

그렇다.

바로 이 초유의 살수인 사등객(死燈客),

그가 바로 네 개의 등을 이끌고 소일초와 주소아를 목표로 팔십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 순간,

스스스스……

네 개의 등이 허공에서 찬란한 이동을 하는가 싶더니,

콰아아아……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하나로 합쳐지는 게 아닌가?

아니 합쳐졌다 싶을 순간 이미,

고오오오……

번쩍!

분명히 장엄한 빛이었되 육안으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속도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꽂혀갔다.

이 엄청난 빛!

그것이 하나의 검광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검은 두 사람을 목표로 하여 일 장 앞을 꿰뚫고 있는 중이었으니……

이제,

주소아와 소일초의 몸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고 말 판국이었다.

한데,

이때 돌연,

주소아의 교갈이 터져나왔다.

[천풍환상도!]

순간,

그녀의 손에서 파란 빛줄기가 어지럽게 뻗쳐나갔다.

치익-----칙------!

두사람을 향해서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던 검은 둥실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고,

주소아의 손에 있던 파란 빛줄기가 변화를 계속했다.

다시,

[작열광풍(灼熱狂風)……!]

그녀의 짤막한 음성이 터졌다 싶을 순간,

쏴아아아……

그녀의 손에서 변화를 계속하던 파란 빛줄기가 허공으로 그물처럼 뻗어나가는가 싶더니……

그대로 핏빛 혈등에 싸인 검광을 휘몰아쳤다.

[크흑……!]

핏빛 혈등 속에 목젖이 타는 신음이 터지는가 싶더니……

그 엄청난 사등의 광휘가 급작스럽게 흩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

파팍-----

섬연한 피보라와 함께 박살난 검이 허공에 흩어지고……

동시에,

파아아……

핏빛 기류가 완전히 흩어지고 피의 비와 분해된 살점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급기야,

팍!

사등 마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리고,

희대의 대살수는 이렇게 주소아의 기괴한 초식에 의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때,

[이름을 불패도라기 보다는 필살도(必殺刀)라고 해야겠는데……그처럼 잔인한 무공은 처음이야.]

[내가 마음대로 만든 것 중의 하나일 뿐이야……]

주소아의 낮은 음성이 사위를 때리고,

[볼 일 끝났으면 가서 잠이나 자자……한데 너 아는 것도 많다. 어떻게 너같이 어린애가 사등객 같은 살수를 다 알지?]

[신행마동이 그 정도도 몰라서야……알고 있다는 걸 남들이 알아버리면 귀찮은 일이 상당이 많이 생겨서 아예 모른 척 할 뿐이지……]

스스스……

두 사람은 갈대를 헤지고 객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성가신 미행자를 처치해 버린 개운함을 가지고……

 

× × ×

 

화산,

그 화산에 퍼부어지는 황혼은 아름다웠다.

그 황혼빛 속에서……

화산과 인접해 있는 넓다란 평야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주소아와 소일초,

바로 이들이었다.

[나도 같이 싸울까?]

[그럴 필요없어. 넌 그 삼수나 눈여겨 봐. 그래야 빨리 기억을 되찾지……]

[이제 그딴 것은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럼? 내 몸이 깊이 알고 싶어?]

[또 엉뚱한 소리……남은 심각한데……]

[오늘은 아무래도 산에서 자게 될것 같은데……흠흠……]

소일초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흥, 아무리 졸라대도 오늘은 안돼……오늘 부터 칠 일간은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어……]

[왜?]

[여자가 이렇게 말하며 안된다고 하면 그대로 들어주는 법이야.]

[법 네맘대로 잘도 만드네. 내겐 내가 법이야.]

[꼭 이유를 말해야 알아 듣는다면 넌 아직도 남자자격이 없다는 말 밖에 안돼.]

짝-----!

소일초가 손뼉을 쳤다.

[월경(月經)이구나……]

[바보같이……더크게 소리치지 그래……]

주소아가 화를 내면서 톡 쏘아부쳤다.

[그런데 너 앞으로 큰 일이다.]

[왜?]

소일초가 염려스러운 듯이 하는 말에 주소아도 불안한 듯 물었다.

[우리 작은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

[여자는 아기를 낳기 전에 무공이 너무 고강해져 버리면 아기를 낳을 수 없데……무가(武家)에 자식이 귀한 이유가 다 그 때문이래……]

[…………!]

[우리 작은 어머니를 봐! 얼마나 예쁘고 무공도 고강해? 그런데도 아기를 못 낳잖아……]

[…………!]

[너도 무공이 나이답지 않게 고강하니까 어쩌면 앞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다분해……]

[그럼……어떻게 해야 되지?]

주소아가 심각하게 물었다.

아기가 얼마나 귀여운데……그 아기를 낳을 수 없다면 무척 슬플 것 같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

[……?]

[하나는 더 이상 무공을 연마하지 않고 있다가 후에 아기를 낳은 다음에 다시 연마하는 거야……]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한 가지는 좀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울 거야.]

[뭔데? 난 다 할 수 있어.]

[음……그건……]

[빨리 말해. 속 태우지 말고……]

[무공이 더 강해지기 전에 아기를 낳아버리는 거야.]

[너……또 나를 놀렸구나……]

주소아가 손을 들어 소일초를 때리려 했다.

[아니야, 모두 사실이라구……의심나면 우리 작은 어머니한테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소일초는 짐짓 진지한 척 말을 했고,

주소아는 진짜이면 어떡하나 싶어 불안해 졌다.

[네 무공은 날마다 달라지니까 내일이면 늦을 지도 몰라……]

오늘 당장 뭐 달라는 식의 소일초의 말에도 주소아는 여전히 불안해하면서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돌연,

겨울 들판에 가득한 갈대꽃 속에서……

순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보……]

동시에,

스슷……

갈대꽃 속에서 솟아난 소녀(少女),

뼈가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피부를 지녔으며……

눈보다 흰 백의를 걸친……

마치 순수와 아름다움의 요정을 연상케 하는 소녀,

그렇다.

장강의 강변에서 시체 위를 누비고 다녔던 사옥상,

바로 그녀였다.

찰랑찰랑……

그 아름다운 사옥상의 몽롱한 동공에 눈물이 가득했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배인 음성,

[바보……가면 안돼……]

순간,

얼굴……

기이할 정도로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사옥상의 얼굴에 동그란 눈물이 보석처럼 부서져 내렸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녀를 발견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바보……]

[…………]

[네가 아무리 모습을 바꿔도 나를 속이지는 못해……]

[…………]

[내가 주었던 의정패는 언니가 가지고 있던 의정패와 서로 교감을 가지는 것이야. 아무리 네 모습이 바뀌어도 의정패를 버리지 않는 한 소용없어.]

소일초가 나직한 침음성을 터뜨렸다.

[음!]

하나 이내,

[오랬만이다. 사옥상……네 말이 맞아 나는 바보야!]

[바보, 가지마. 가서는 안된단 말이야.]

[사옥상 너는 지금 적으로서 내 앞에 서 있는 거야…아니면 친구로서 서있는 거야? 설마 전에 푸른 계곡에서 했던 우리 경고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몰라. 내가 아는 건 저 옥녀봉을 올라가면 안된다는 거야.]

소일초의 음성이 싸늘하게 변했다.

[약속……이것은 내 이름으로 한 약속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누구도 내 일에 간섭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설사 내 결정이 잘못되어 죽는다고 하더라도……]

[…………]

[남의 결정에 따라서 사는 것 보다는 낫다.]

하자,

더욱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지는 사옥상의 얼굴-----

[바보……가지 말아, 제발……지금 언니 은상도 병이 들었어……마음의 병이야……네게 인질로 잡혔다가 돌아온 후부터……]

[…………]

[한데……그 언니가 더욱 더 심한 병을 앓고 있어 ……그런 언니가 나를 붙들고 울었어……그리고 말했어……]

[…………]

[너를 살려야 한대……너를 화산의 옥녀봉에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대……]

[옥상언니……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얘는 결코 듣지 않아요. 대신 내가 감사할게요.]

문득,

사옥상의 얼굴에 조급한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엔가 쫓기고 있는 것처럼……

이어,

쉴새없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입을 여는 사옥상,

[어서 도망가……우리 사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

[…………]

[설사 하늘의 신이라도 우리 사부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이때였다.

돌연,

무엇을 느낀 것인가?

사옥상의 얼굴이 무서운 두려움에 떨었다.

동시에,

화르륵……!

허공으로 솟구쳐 섬광처럼 사라지는 사옥상,

[어서 가……어서 도망가란 말이야……바보야……그렇지 않으면 넌 죽는단 말이야……]

소일초는 멀어지는 그녀의 음성에서 눈물을 읽을 수 있었다.

[흥, 옛날의 첫 여자를 만나서 기분이 좋겠네.]

주소아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것 같았다.

이때,

이번엔 아득한 곳에서 천리전음(千里傳音)이 소일초의 귀에 흘러들었다.

[죽어……이 바보야……지금 네가 있는 곳도 완전히 포위되었단 말이야!]

[…………]

[본 삼성무림청의 살수각(殺手閣)의 삼십 육 명의 살수(殺手)들이 내리는 죽음은 중원천하가 함께 덤빈다 해도 피해낼 수 없단 말이야……피해…… 어서 피하란 말이야!]

(살수각의 삼십 육명의 살수!)

[계집애가 쓸데없는 걱정까지 다해주네……제길……전에는 몸도 편하게 해주더니……]

소일초의 얼굴은 그다지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살수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바보같이 구는 사옥상 때문에 느껴진 이상한 기분 탓이었다.

이제 더이상 사옥상의 애절한 전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소아는 그의 안색 만 살피고 있었다.

황혼,

황혼만이 무성한 갈대숲에 어지럽게 쏟아져 내리고 있을 뿐……

한데 돌연,

흑의인,

흑두건에 강철처럼 차갑고 냉혹한 기운 속에 음충맞도록 꿈틀거리는 가공할 사기를 동반한 여섯 명의 흑의인들이 맞은편의 갈대숲에서 소리없이 솟아났다.

여섯 명의 소름끼치는 살기를 동반한 흑의인,

이들은 분명 사옥상이 말한 살수각의 삼십 육 살수들 중 일부이리라!

일순,

[크크……]

흑두건 속에 휩싸인 공포스런 시선이 소일초와 주소아를 꿰뚫었다 싶을 순간 그들의 몸은 이미 허공을 날았다.

번쩍------------!

콰아아……

여섯 줄기 벼락불 같은 검광이 수 천 가닥의 검망을 치며 공간과 공간을 잇는 최단거리로 덮쳐들자,

소일초의 얼굴에 맹렬한 전의가 용솟음쳐 올랐다.

이어,

옷자락을 헤치고 철검을 잡았다.

동시에,

[호흡을 죽여!]

주소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외치면서 철검을 떨쳤다.

슛!

소일초의 철검에서는 한 가닥의 기류가 형성되어 덮쳐오는 여섯 명의 살수들을 휘감았고,

크아악-----!

참혹한 비명과 함께 기류에 휘말렸던 여섯 살수들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떨어져 내렸다.

이때 다시,

슈우숫------!

갈대숲의 여섯 방향에서 시퍼런 검날을 폭출시키며 여섯 명의 흑의인이 뛰어올랐고,

이 여섯 명의 흑의인은 최초의 흑의인들이 쓰러지는 틈을 타서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덮쳐들었다.

일검에 천지를 박살낼 듯한 가공할 검광!

순간,

슈웃------!

주소아가 미처 그녀의 체대를 발출하기도 전에,

소일초의 빠른 철검이 회오리를 일으켰다.

찰나,

오오……

슈우웃------!

철검의 끝에서 여섯 줄기의 회오리가 흑의인들을 향해 각기 하나씩 몰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 크기가 철검의 끝을 떠나는 순간부터 무서운 속도로 자라면서……

다음 순간,

[으----악!]

[크-------아악!]

황혼빛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리고 정확히 여섯 개의 시체가 회오리를 타고 허공에 솟구쳐 올랐다.

소일초는 주소아의 손을 잡고 미끌어뜨리듯 신형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스스스스……

순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서 있던 곳을 비롯하여 열두 곳에서 열두 명의 흑의인이 벼락처럼 솟구쳐 올랐다.

번----쩍------번---------쩍-------!

천지폭멸의 가공할 검세가 십자로 비켜 소일초와 주소아를 천참만륙할 찰나,

슈아아앙--------!

소일초의 철검이 다시 빠르게 그들을 찔러나갔고,

시꺼먼 철검의 끝에서 하얀 실같은 검기가 가늘게 뻗어나오며 파도처럼 밀려갔다.

콰아아앙-------!

퓨퓨퓨------퓨----!

우주를 통째로 꿰뚫는 것 같은 엄청난 열두 개의 가공할 섬륜이 일었다 싶을 순간,

[크아아악!]

[크------악!]

흑의인들의 검은 산산히 박살난 채 그 주인들의 몸과 함께 처참히 허공에 비산(飛散)되어야 했다.

오오……

직접 보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일초의 철검의 위력!

순간,

푸----퓨슈슈슈----슛-----

주변에 있는갈대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면서 창살처럼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웅웅웅------

이번엔 땅 위를 완전히 점거하면서 무서운 바람소리와 함께 철추들이 그들의 몸을 짓이갤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과 땅……

가히 완벽한 공격,

그러나, 소일초의 철검은 다시 허공을 가리켰고 철검의 끝에서 형성된 기류 속으로 갈대들이 빠르게 빨려들어 갔고,

이내 철검이 휘둘러지자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쇄애액!

츠츠------촤……!

크아악------

크악--------

비명이 팔방에서 터져 나오는데……

오오……이 처참함……

여덟 명의 겸(鎌)과 철추를 쥔 흑의인들이 전신에 갈대를 꽂은 채 참혹하게 으깨져 있지 않은가?

[네 명!]

소일초가 소리를 지르며 이 번에는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

슈욱-----!

소일초의 몸이 주소아를 안은 채 허공으로 떠오르고 동시에 그의 철검이 네 개의 원을 그렸다.

순간,

캐액------

큭--------

허공에서 네 마디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곳에서 네 개의 검은 시체가 떨어졌다.

그들의 가슴은 일제히 동그랗게 뚫려져 내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쿵! 꽈당!

정확히 서른 여섯 명의 목이 떨어져 나간 이 황혼의 갈대숲!

천천히 주소아를 안은 소일초가 기괴한 정적처럼 내려섰다.

한 순간,

[이젠 끝났어……굉장한 검공이야……그 무시무시한 자들을 단 네 초식으로 몰살시켜 버리다니……]

주소아의 놀람이 가시지 않은 음성이 들렸다.

[늦었어……오늘은 화산에서 자기로 했잖아……]

슈우우-------

자욱한 안개에 파뭍치며 소일초와 주소아의 신형이 아득한 화산의 옥녀봉으로 멀어졌다.

바로 이때,

너울너울……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돌연,

기괴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한데 오오……

그 기괴한 운무가 뽀얀 수증기가 되는 가 싶자,

주이는 온통 마의 기운으로 표백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음성,

[살려둬서는 안될 놈이야!]

한 올의 감정도……한 올의 인간적인 냄새도 느낄 수 없는 무색인간의 음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스으으으……

그 뽀얀 수증기 속에 환상처럼 나타나는 한 사람……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너무 짙어서인가?

그의 용모를 자세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흑포(黑袍)에 흑의(黑衣)가 환상처럼 어른거리는 사이로,

섬뜩하리만큼 가공할 무심일색의 기운과 삼라만상을 순식간에 표백시켜 버리는 무형마기가 물살처럼 터지는 것이니……

문득,

그 수증기 속의 무감정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소선풍의 자식이 저토록 뛰어나다니……저런 아이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기재는 우리가 길렀던 주소아 뿐인 줄 알았는데……]

아아……

이 무슨 소린가?

주소아를 직접 길렀다니……

그렇다면 이 마기가 풀풀 흘러넘치는 인물이 바로 삼수 중의 하나란 말인가?

어째거나,

그 짙은 수증기 속에 쌓인 인영은 사위를 무형마기로 표백시키며,

오랫동안……

참으로 오랫 동안 소일초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그렇게 일다경이 흘렀을까?

돌연, 무심한 음성이 흘렀다.

[모두 가서 준비하라……!]

순간,

오오……

스스스스……

아무것도 헤아릴 수 없었던 허공에서 돌연 수백 가닥의 검은 기운들이 밀물처럼 삼백 육십 방위로 흩어져 나가는 게 아닌가?

형체도 없는 그림자들로 존재했다가……

환상의 너울처럼 사라져 버린 수백의 무리들……

실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이때,

수수수수수……

그 마기에 뒤덮인 인영이 허공에 치솟는가 싶더니……

슈--------슈웃----

화산의 옥녀봉을 향해 빛처럼 날았다.

그리고,

그가 나는 뒤로 뿌려지는 죽어버린 음성,

[반드시…… 죽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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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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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百刃莊의 哭聲

 

 

 

손(手),

떨리는 손이다.

더할 나위없이 희고 아름다왔으며……

고결해 보이기까지 한 이 손에는 짤막한 서찰(書札)이 들려있는데……

이 손의 임자는 조예진였다.

굵은 황촉불이 사방을 밝히는 이곳은,

백인장 중에도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도왕 소선풍의 침실이다.

그녀의 앞에는,

영문을 모르고 그녀의 얼굴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는 도왕 소선풍이 침상에 누워있다.

한 순간,

서찰을 바라보던 조예진의 동공에,

애써 참으려하던 고통스러운 눈물이 솟아났다.

그리고 뚝뚝……

두 방울의 눈물이 서찰에 떨어졌다.

[여보……무슨 일이오?]

아내의 눈물을 보고 불길함을 느낀 소선풍이 고개만을 움직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서찰,

서찰을 보낸 사람은 주소아였다.

그리고,

그 서찰의 내용은 바로 소일초가 삼성무림청의 수뇌부인 삼수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눈……

조예진의 그 아름다운 두 눈은 솟은 눈물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소아가 보낸 것이에요.]

그리고,

그 눈물로 가득한 시선으로 서찰을 소선풍에게 읽어 주었다.

 

<고모부!

이제는 말씀도 잘 하신다고요? 고모도 잘 계시겠지요?

일초와 나도 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일초가 삼수에게 직접 도전을 했답니다.

일초는 자신있으니까 아무 염려 마시라고 하는 군요.

제가 말렸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 말로는 검마의 제자는 일초무적이라나요?

빨리 나으셔요.

주소아 올림 >

 

조예진의 두 눈에 동글동글 솟아 오는 눈물은 닦을 틈도 없이 두 볼을 타고 흐르고……

소선풍은 아무말 없이 묵묵히 있다.

조예진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뭍고 터뜨리는 오열은 더욱 짙어지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서찰의 위를 힘겹게 움직인다.

그리고,

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조예진을 부른다.

[여보……삼수의 무공이 가공할 것이기는 하지만 일초역시 그다지 뒤질 것은 없지 않소? 일초가 검마의 진전을 완전히 이었다면 승산도 점칠 수 있고……]

[흑흑……우리 일초는 아직 어린 말썽꾸러기 라구요.흑…… 어떻게 진짜로 사형들 같은 고수들과 싸울수 있겠어요?흑흑……]

흐느끼면서 조예진이 말했다.

[어쨌든, 백인장을 나가 삼성무림청을 상대한 다고 할 때부터 예정되어진 일이 아니겠소?]

[누가……흑…… 직접 그들과 싸우랬나요? 단지……삼성무림청이 정말 사형들이 만든 것인가만 ……흑흑……확인해 주길 바랐죠……]

조예진의 말이 모순됨을 그녀도 알고 있다.

소일초가 무림에서 승승장구할 때는 아무 걱정도 없다가 갑자기 진짜 고수인 그녀의 사형들과 결투하기로 했다니까 걱정이 되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의 가슴은 부풀어 터질 것처럼 안타까운 연민에 가슴이 아렸다.

이 백인장에 오직 소선풍만 바라보고 들어와서……

그의 전처였던 이주용이 낳은 두 살 박이 괴물같은 아기……

온갖 저질을 다 해대는 그 천하의 말썽꾸러기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던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그녀였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서 길렀는데……

이제는 자기가 낳은 아기나 조금도 다름없는 일초인데,

그 아들이 수 천리 타향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직접 계획하고 있다.

그의 적이 얼마나 고강한 고수인지도 모르면서 겁없이 직접 겨루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위가 모두 잠든 것 같은 깊은 밤,

소선풍은 시선을 천정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도대체

조예진은 지금까지 주소아의 서찰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서른 번……

적어도 서른 번은 읽었으리라.

그리고 그녀가 터뜨린 눈물과 오열은 또 얼마나 했던가?

그러나 지금도……

그녀는 또다시 서찰을 읽기 시작했고,

새롭게 솟구치는 눈물로 오열한다.

(안돼……일초는 내 아들이야……! 비록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났지만 분명히 내 아들이야. 일초도 자기 생모보다는 나를 훨씬 더 좋아 할 거야. 내가 결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돌연,

서찰을 읽다 말고 조예진은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와락 서찰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그 서찰이 소일초이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침상에 누워있는 남편 소선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

절규처럼 터지는 처절한 음성,

[제가 가겠어요……차라리 제가 사형들과 싸우겠어요……]

하나,

[당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 사형들의 상대가 될 수 없어……삼년 전에 그들은 두 사람이 합공을 해서야 나를 이길 수 있었지……당시에 어린도만 손에 있었어도 내가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저 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이대로 일초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으란 말이에요?]

그녀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태도로 소선풍에게 반박했다.

[원로십팔도객을 모두 동원해. 정뇌(井牢) 따위는 팽개쳐 버리라구. 당신 사형들의 무공은 그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었어.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 지 짐작할 수 도 없어.]

소선풍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고마와요. 그리고 미안해요……당신한테 화를 내서……]

조예진이 소선풍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아들인걸……오히려 내가 고맙지……두 달, 두 달 만 더있어도 내가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원로십팔도객 중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하겠지……)

 

× × ×

 

이튿날 아침,

백인장은 발칵 뒤집혀 버렸다.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미친 듯이 소리쳐 소선풍을 부르면서 백영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소선풍! 소선풍……이 미친 작자……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놈아……]

어슴푸레한 가운 백영이 소리치며 백인장을 날아들자,

파수보던 젊은 도객이 깜짝 놀라며 가로막았으나 일검에 튕겨 나가 떨어지고…

잇따라 연무장에서 새벽 연무를 하던 도객들이 고함치면서 백영을 막았으나,

이 검을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적이다!]

[적이다!]

휘이익------휘이익-------

길고 날카로운 휘파람 경보와 아우성으로 백인장은 떠들썩해졌다.

[소선풍! 이 나쁜 놈……어디 있느냐……당장 기나와라……]

마구 욕을 해대며 검을 떨쳐내는 그 백영은 얼마나 빠른지 모습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때,

[모두 손을 멈춰라!]

우렁찬 고함이 울려퍼지며 두 노인이 연무장에 내려섰다.

[좌우봉공이 주모(主母)님을 뵙습니다.]

[흥, 수혼도객, 무심군자! 나를 알아보기는 하는 구나. 잔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소선풍을 나오라해라.]

백영이 멈추어 서자 그때서야 다른 도객들도 백영을 알아보았다.

바로,

소선풍의 전처인 이주용(李珠蓉)이었던 것이다.

[주모를 뵙습니다.]

일제히 우렁찬 소리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시끄럽다. 당장 소선풍, 그 파름치한 놈이나 나오라고 해라.]

[주군께서는 나오실 수 없습니다. 자중하십시오 주모……]

수혼도객은 음성이 침중하게 흘렀다.

[뭐라고? 자식은 죽도록 밖에 내보내 놓고 아직도 여우같은 계집이나 끼고 누웠단 말이냐?]

이주용이 서릿발처럼 얼굴을 굳히며 거친 음성을 칼날처럼 내뱉었다.

[주모!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수혼도객이 고개를 바로 들면서 소선풍을 욕하는 이주용을 쳐다보았다.

[수혼도객! 네가 감히 나에게 대들다니……간덩이가 부었구나. 에잇!]

이주용의 검이 수혼도객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다.

[윽!]

그러나 수혼도객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심군자와 다른 도객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이주용이 검을 뽑자 수혼도객의 오른쪽 가슴에서 피가 샘솟듯이 쏟아지며 그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좋다. 소선풍이 나오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 비켜라……]

[못들어가십니다. 주모.]

무심군자가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고,

다른 도객들도 일제히 도를 뽑아들고 그녀를 포위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어려있었다.

[이것들이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나. 좋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

[…………]

[네 놈들을 몽땅 죽이면 설마 소선풍이 기나오지 않고는 못배기겠지……]

[…………]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소선풍과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이주용,

그녀는 강북의 제일 세력인 청옥검궁의 공주(公主)다.

그녀의 검 역시 적수를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

 

이야압------!

 

날카로운 기합을 지르면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심군자를 찔러갔다.

무심군자의 소매속에서 파란 도가 튀어나오며 그녀의 검을 가로막는 순간,

이주용은 벌써 몸을 돌려 그 옆의 젊은 도객을 찌르고 있었다.

으악------!

젊은 도객이 그녀의 빠른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에 검을 맞으며 쓰러졌다.

무심군자가 재빨리 이주용을 공격해 갔으나 그녀는 그와 마주치지 않고 다른 도객을 공격하면서 양떼속의 이리처럼 날뛰었다.

여기저기서 젊은 도객들의 비명이 터져나오고……

무심군자는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른 채 이주용을 쫓아다녔다.

이주용은 백인장의 도법들의 대부분 초식들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다.

그야말로 백인장 도객들의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자신들의 주모인지라 마음대로 공격도 펴지 못하는 백인장의 도객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때,

[멈춰라!]

나지막 하면서도 깊은 공력이 깃든 목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아리쳤다.

조예진이었다.

[언니께서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말을 하면서 연무장에 쓰러져 나뒹구는 도객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흥, 소선풍. 그 매정한 놈은 어디있는가?]

[꼭……만나보시겠습니까?]

조예진이 손짓을 하여 도객들을 물러가게 하면서 주저하듯이 말했다.

[나는 오늘 그 작자와 사생결단을 내려왔다.]

조예진은 그녀를 판히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 그렇다면 따라오십시오.]

이주용은 검을 공중으로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조예진을 따라 걸음을 옮겼는데 그녀의 표정에는 결연한 빛이 어려 있었다.

철컥-----!

검은 아슬아슬하게 검집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고……

연무장은 부상자들을 메고 가는 도객들로 부산해졌다.

 

× × ×

 

소선풍의 침실 앞에서,

[여보! 이(李)언니께서 오셨어요.]

조예진이 안으로 전갈했다.

[비키게. 바로 들어가겠네……]

차갑게 말하며 이주용이 문을 밀쳤다.

창-------!

그녀의 청강검은 어느새 손에 쥐어졌고,

[소선풍! 나와 사생결단을 내자.]

흉악하게 소리치며 침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찾은 소선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흥, 상당히 게을러 졌군. 아직도 일어나지 않다니……]

쏴악-----!

침상의 휘장이 그녀의 일검에 베어져 나갔다.

이주용의 청강검이 누워있는 소선풍의 목을 겨누었다.

[소선풍! 일어나라. 나 따위는 누워서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냐?]

[부인, 오랬만이요.]

소선풍의 목소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부드럽게 울려나왔다.

[닥쳐라! 누가 네 부인이란 말이냐?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찌르겠다.]

서릿발 처럼 차가운 눈빛을 쏘아내며 이주용이 소리쳤다.

[나는……나는…… 나흘 밤낯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네놈을 죽이겠다는 심정하나로……어떻게……어떻게! 하나뿐인 어린 자식을 사지로 내몰고 편안히 누워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녀의 눈에서는 주루루 눈물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용서할 수 있다. 네가 열 처(妻)를 거느리든 백 첩(妾)을 거느리든 상관하지 않겠다.……그러나, 어떻게 하나 뿐인 아들을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누가 삼성무림청의 수뇌가 수 만명을 쳐죽였던 사수(四手)라는 걸 모를 줄아느냐? 이놈아……]

그녀의 마지막 말은 차라리 절규였다.

소선풍은 입을 굳게 다물고 천정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인한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할 말을 다했는데……네놈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대로 죽여주마.]

이주용은 실성한 듯이 낮게 중얼거리며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

[언니! 그분은 삼 년 전부터 일어날 수 없었어요.]

조예진 역시 쌍장을 치켜올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순간,

[뭐? 뭐라고?]

[그분은 침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몸이라구요.]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는 겨우 말했다.

소선풍의 두 눈에도 마침내 구슬같은 눈물이 뚜르르 굴러내리고……

이주용은 넋을 잃고 바닥에 검을 떨어뜨렸다.

[천하에……누가……누가……이 사람을……이길 수……있단 말인가? 그토록 강한 사람을?]

목소리가 덜덜떨려 나왔다.

이주용의 눈이 누워있는 소선풍을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정말……어떻게 그럴 수가?]

누구도 대답이 없다.

[아니라고……아니라고 말해요. 벌떡 일어나 보란 말이에요. 벌떡 일어나서 옛날처럼 못된 계집이라고 뺨이라도 쳐보란 말이에요!]

그녀는 소선풍의 목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한순간,

어린 마음에 다른 여자를 맞이하겠다는데 화가나서 집을 나간 그녀였지만,

어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지 않았겠는가?

야속하고 무정하여 원망한 날이 더 많았던 지난 세월이지만,

한 시도 잊을 수 없었던 남편이고 아들이었다.

너무도 강하여 절대로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남편이 전신불구가 되어 병상이나 지키고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지금,

소선풍의 침실 안팎에는 때아닌 울음소리는 가득찼다.

소선풍을 염려하여 원로십팔도객들과 백인장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백인도객이 일제히 연락을 받는 즉시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주군의 비참한 신세가, 울부짖는 주모들……

울지 않을 수 없는 정경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아예 목을 놓아 큰 소리로 엉엉 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인장의 모든 식구들이 이 소리를 듣고 소선풍이 사망하기라도 한 줄 알고 일제히 땅을 치고 통곡하여 백인장은,

울부짖는 곡성으로 아무 말도 주고 받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떠났던 큰 주모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자 곡성이 터졌으니 틀림없이 소선풍이 죽었다고 단정지은 것인데……

한 두 사람, 앞에 왔던 사람들로 부터 사실을 전해 듣고 다른 사람에게 입에서 입으로 사실이 모두 전해지자,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던 곡성은 스르르 잦아지고……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 싶어 숙스러워 하면서 슬금슬금 자기들 처소로 돌아가고 말았다.

 

[동생! 동생이 말해보게. 대체 누가 이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눈물을 씻어내며 이주용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훌쩍! 다 저 때문이랍니다. 제가 박복해서…… 훌쩍…… 그분을 다치게 한 것입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그때,

[누구 탓도 아니야. 내 몸을 부수어 놓은 것은 바로 자네가 말한 삼수고…… 다 내 무공이 모자란 때문이지……]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소선풍의 말이 흘러나왔다.

 

× × ×

 

백인장에서 피가 튀고 눈물이 쏟아지고 급기야 응어리졌던 한(恨)이 풀리고 있는 이 아침,

그 커다란 말썽의 원인이었던 소일초와 주소아는 서안(西安)에서 객점을 찾고 있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사람보다 멋진 용모와 훤칠한 키의 무적검으로 변신한 소일초,

그리고, 소일초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면사를 쓰게 됐으나,

그 몸 맵시만으로도 천하 사내들의 넋을 빼버릴 것같은 미녀인 주소아,

지난밤에도 몇 번이고 다듬고 다듬어 창출한 그녀의 최고 걸작이 지금의 몸매였다.

 

<풍운루(風雲樓)>

 

서안의 대로변에 자리한 거대한 객점(客店),

바로 이 객점의 문을 밀치고 막 그들이 들어서는 순간,

시선!

수십 쌍의 시선이 일제히 소일초의 얼굴에 꽂혔다.

[오……!]

[아름다운 젊은이……]

[천상(天上)의 선인(仙人)같지 않은가?]

객점에서 술이나 음식을 들고 있던 객손들은 아예 두 눈이 부신 듯 치켜뜬 눈을 도대체 거둘 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다시 경악으로 부풀고 또 다른 탄성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아……!]

[저 여인의 자태……]

[넋……넋이 빨려드는군……!]

[오오……저런……!]

한데 이때였다.

돌연,

비틀비틀……

경악으로 굳은 객손들의 사이를 뚫고 갈지자걸음을 바람처럼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움직였다 싶을 순간 주소아의 곁에 이르러 있더니……

[이리와……빌어먹을……아무리 둔갑해도 너희들인 줄 알고 있다고……이 무슨 꼴인가……제기랄……]

확!

술기운을 풍겨내며 소일초와 주소아를 이끌고 가는 사람,

홍건개……

개방 일천 년 사상 가장 뛰어난 기재(奇才)인 바로 그였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변신한 자기들의 모습을 아무도 알아보리라 생각지 못했다.

한데,

홍건개가 대뜸 알아차리자 내심 크게 놀랐다.

벌컥벌컥……

이어,

비틀비틀……

객석을 누비던 홍건개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하나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턱!

[자……한 잔 받아……]

순간,

[엇……저런……!]

[저 거지는 누구야……!]

객석의 손님들은 이 광경이 흥미진진한 듯 숨소리마저 죽이며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데?

이것은 또 무슨 기변인가?

무어라 화를 낼 줄 알았던 저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는 아무 말 않고 주는 술을 받아서 단숨에 마셔 버리는 것이 아닌가?

(별일……)

(별……희안한 일도 다 있군……!)

[그 잔은 본 홍건개가 타인(他人)에게 주는 최초의 술……제기랄……운도 좋군……!]

홍건개,

이 개방 천 년의 기재는 오늘 무슨 일로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술을 권하는가?

[…………!]

[술이란 말이야……마시면 마실수록 느는 거라구……그러니 앞으로 영웅행세를 하자면 남 부끄럽지 않게 술 실력을 키워야 한다구……]

[…………!]

[어이 친구………빌어먹을 무슨 표정이 그래……아름다운 부인을 얻었으면 기뻐해야 할 게 아냐……우라질……]

소일초의 표정은 더욱 어이없게 변했다.

술잔을 손에 쥐자 주소아가 한 잔 가득 부어주었다.

[아무튼 좋아, 이 홍건개가 염려해서 하는 말인데……화산 옥녀봉의 약속은 취소해 버려……]

[…………]

[어린 네가……빌어먹을 ……그를 상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

이때,

어이없는 표정이로 술을 들이키던 소일초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이어, 술잔 가득히 술을 부어 주소아에게 건네주며,

[너는 남의 일에 무조건 간섭하는 악취미가 있군……]

순간, 홍건개의 두 눈이 파릇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벌컥벌컥……

[끄윽……빌어먹을……저놈의 고집……제기랄……제기랄……]

[그리고……우리를 어떻게 알아 보았는지는 묻지 않게다.그러나……]

벌컥벌컥……

[우라질……빌어먹을……]

[나의 일에 이번에도 귀찮게 간섭하고 나선 다면, 먼저 네놈의 목을 베겠다.]

벌떡,

소일초는 몸을 일으켰다.

[…가자……!]

순간, 주소아는 손에든 잔을 재빨리 비우고 소일초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벌컥벌컥……

[바보……끄윽……멍청……이 같은 자식……!]

소일초의 귀에 꽂히는 홍건개의 음성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자비감(自卑感)이 느껴졌다.

[미친 놈!]

순간, 홍건개의 몸이 격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타깝게 터지는 전음,

[충고한다……화산에 가게 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내가 건방진 애송이 네가 좋아서 이런 줄 아느냐? 다 네 녀석의 약혼녀라는 주소저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순간, 주소아와 함께 객점을 나서던 소일초의 얼굴에 무서운 기색이 피어났다.

그의 손이 어느새 백의장삼 속의 철검을 거머잡는데,

주소아가 눈치를 채고 그의 소매를 잡아서 저지시킨다.

[마지막 경고다……다시는 우리들 앞에 보이기만 해도 죽여버리겠다.]

차가운 음성이 전음으로 홍건개의 귓속을 파고들고……

홍건개는 목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닦아내고 있었다.

귀신도 곡할 솜씨로 소일초가 수정검우를 발출하여 그의 목에 상처만 낸 것이었다.

객점에서 멀어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보면서 홍건개는 몸을 떨었다.

(죽이려는 마음만 있었으면……죽고도 남았다. 저 꼬마의 무공은 이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다……)

홍건개는 주소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꿈결처럼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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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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