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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붉은 머리띠를 한 도사가 되어 (2)

 

 

새로 온 사람이 버럭 소리쳤다.

[개똥같은 도사놈아! 모가지를 비틀어야 옥황빙서를 내놓겠느냐?]

현천록이 말했다.

[난 진양진인이 아니오. 난 현천록이오. 진양진인이 나를 이렇게 해놓았소.]

장군묵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튼 수작으로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해.]

장군묵은 슬쩍 손을 흔들었다.

순간 현천록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부드러운 기운이 자기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든 검이 휘둘러졌다.

번쩍!

그의 검은 장군묵의 부드러운 장력을 베어버리고 그의 왼쪽 눈을 찌르고 있었다.

태극혜검 중의 소경심매란 초식이다.

장군묵의 붉으스레한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현천록은 앗차 했을 때 벌써 자기도 모르게 장군묵의 눈을 찌르고 있는 중이었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반격에 다시 반격을 가했다.

검이 부딪혀도 챙강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불똥이 튀고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날뿐이었다.

현천록도 울며겨자먹기로 반격에 반격을, 그 반격에 다시 반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태극혜검은 원래부터 공수를 겸한 것이기에 반격을 반격으로 맞는다.

눈부시게 검광이 흐르고 불꽃이 뛰는 가운데 순식간에 사십여 초가 지나갔다.

현천록은 장군묵과의 싸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태극혜검 중의 수법들을 쥐어짜내며 겨우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장군묵이 사용하는 검법도 역시 태극혜검이지만 현천록이 미처 모르던 수법들도 섞여 있었다.

장군묵도 현천록이 자기의 검술에 검술로 당당히 맞서고 있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자기한테 입은 중상 때문에 공력도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태극혜검을 펼치는 진양진인의 공력이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잡다한 것 보다는 공력이 순수하면 순수한 만큼 강해진다.

공력에도 양이 아니라 질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태극혜검의 수법이 지난 밤에 싸웠을 때보다 오히려 더 정치(精緻)하게 느껴진다.

장군묵은 버럭 소리쳤다.

[재주를 숨기고 있었군. 하지만 그정도의 태극혜검으로 나를 놀라게 할 수는 없지.]

장군묵의 검에서 뿜어나오는 무형의 기운이 아주 강해졌다.

현천록은 진양진인에게 초상감각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다면 단 일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운들은 느끼는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겉으로 볼 때 현천록과 장군묵의 싸움은 눈부신 검광으로 인해 사람을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 였다.

[노대! 진양진인의 검술이 아주 대단하군요.]

나중에 온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코웃음을 쳤다.

[조금 늘었군. 하지만 저 청년이 더 대단해. 나이도 젊어보이는데 완전히 압도하고 있어. 진양은 보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야. 저 보검만 아니라면 벌써 끝장났을 걸?]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노대! 조금 이상합니다. 진양진인의 검술이 싸우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군요. 저 정도라면 저도 백초를 넘기기 힘들 것 같은데요.]

세 사람은 절벽 중간의 입구로 들어왔던 천산삼로였다.

그들이 들어왔던 동굴은 여우굴처럼 여러 개의 굴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노대가 이를 부드득 갈며 욕을 했다.

[빌어먹을 도사놈! 검술이 몸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 노이!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나도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구만.]

노삼이 물었다.

[노대! 검술이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뭐요?]

노대가 말했다.

[썩어빠질 놈아! 너는 사부한테 들은 말은 전부 똥통에 쳐박아버렸냐? 말 그대로 검술이 몸속에 스며들어 사람이 검이 되고 그 사람의 움직임이 바로 검술이 되는 그런 걸 말하잖나. 어떤 검술이 위력이 아니고 수법으로서는 최고에 달한 거야. 소위 검신(劍神)이 된 거지.]

현천록은 꼼짝없이 진양진인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과 목소리가 똑같을 뿐 아니라 태극혜검까지 썼으니 아무리 자기가 아니라고 해도 알아줄 리가 없을 것 같다.

함께 싸우고 있는 장군묵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

현천록은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장군묵은 진양진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사로잡으려는 것이다.

살수를 써야할 때도 상처만 입히는 가벼운 수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현천록의 짐작은 틀림없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똑같은 검술로 상대하는 현천록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길 수 없다.

잠시는 재롱삼아 봐줄지 모르지만 마침내는 장군묵이 손을 크게 쓰고 말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장군묵에게 잡힌다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고 자기도 알고 싶어하지만 모르는 사실을 말하라고 강박당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현천록은 진짜 진양진인이 되어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진양진인이 되어 도망치려면, 현천록은 진양진인이 자기를 속였듯이 장군묵을 속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더 이상 저항은 하지 말아야 한다.

비스듬히 떨어지는 장군묵의 검을 억지로 막고는 검을 떨어뜨려 버렸다.

피웃!

장군묵의 검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군묵은 현천록의 목에 쌍검을 가위처럼 교차시켜 걸쳤다.

조금만 힘을 주면 현천록의 늙은(?) 목은 순식간에 잘려질 판이다.

현천록이 저절로 나오는 진양진인의 음성으로 말했다.

[일곱째! 내가 졌소. 하지만 당신도 졌소.]

투투투툭!

장군묵이 장검으로 현천록의 몸에 여섯 군데 혈도를 찍었다. 그는 이번에야 말로 단단히 작정한 한 것 같았다.

[보검인데.]

천산삼로 중의 노삼이 현천록이 떨어뜨린 진양진인의 보검을 줏어들며 말했다.

노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금석을 두부자르듯 하는 신검이야. 어지간한 보검은 무베듯이 베어버릴거야.]

노대는 장군묵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무당파의 진산지보인 진무검(眞武劍)이다. 그나저나 자네는 태극혜검을 정말 잘 쓰는군. 젊은 나이에 아주 대단하네.]

장군묵은 피식 웃었다.

노대가 말했다.

[사실 난 진양진인을 혼자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무림엔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아주 뜻밖이야. 자넨 누군가?]

장군묵이 차갑게 말했다.

[꺼져라! 네 사부 천산일괴(天山一怪)와 안면만 없었다면 그냥 죽였을 거다.]

노삼이 나서며 말했다.

[그건 우리 보고 한 소리겠지?]

노이가 물었다.

[우리 사부를 알고 있나? 죽은지 백년도 더 됐는데.]

노삼이 말했다.

[미친 소리요. 젊은 놈이 어떻게 사부를 알아.]

장군묵이 현천록을 한손으로 들어올리며 서늘하게 말했다.

[나는 젊었지. 늙지는 않았어. 세상에 있을 땐 진양의 사부의 사부의 사부가 나한테 사형이라고 불렀지.]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노삼과 노이가 미친 것처럼 웃으며 미친놈을 보듯이 장군묵을 본다.

하지만 노대는 장군묵에게 보통 사람과 다른 뭔가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진양! 그 사람 말이 정말인가?]

현천록은 동동 매달린 채 말했다.

[정말이오.]

!

노삼과 노이가 웃음을 멈췄다.

장군묵이 현천록에게 말했다.

[도장! 이제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

[잠깐!]

노대가 돌아서는 장군묵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자네가 진양의 태사숙조가 된다면 왜 진양에게 호칭을 그렇게 하는가?]

장군묵이 언찮은 표정을 지었다.

현천록이 재빨리 말했다.

[이분께선 이미 본파를 떠나셨소. 그래서 나를 대할 때도 본파의 어른으로서 나를 대하는 게 아니라 남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것이오.]

장군묵이 뜻밖인 듯 현천록을 힐끗 본다.

현천록은 빙그레 웃었다.

웃어야할 상황인지는 판단이 쓰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그 웃음은 꼭 자기가 잘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노삼이 나서며 말했다.

[그대가 옛날 도사였는지 지금도 도사였는지는 알바 없소. 우린 진양에게 물건을 얻으려고 왔는데 당신이 진양을 그냥 데려간다면 곤란하지 않겠소.]

현천록이 또 말했다.

[뭐가 곤란하다는 거요?]

노삼이 말했다.

[우린 천산에서 몇 달이나 걸려서 왔는데 헛걸음질치고 돌아가면 최소한 일년은 허송세월하는 셈이오. 우리 나이는 적지 않아서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데 일년은 적은 시간이 아니지.]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시간을 보상받고 싶으면 그 검을 가지시오.]

노삼이 말했다.

[아니! 아니! 진양! 나는 검을 쓰지 않으니 필요가 없소. 또 가진다 해도 노이에게 주는게 최선이오. 우리 중에서 오직 노이만이 검을 쓰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검을 돌려줄테니 당신이 갖고 있는 옥황빙서를 우리한테 주시오.]

하하하하!

현천록은 그렇게 웃었지만 허허거리는 소리가 되어 나왔다.

노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왜 웃는가?]

장군묵이 버럭 소리쳤다.

[닥쳐라!]

천산삼로도 입을 다물었고 현천록도 입을 다물었다.

장군묵이 손을 이상하게 한 번 썼다.

[어어!]

그의 앞을 막았던 노삼이 둥실 떠올라 동굴 벽에 부딪혔다.

장군묵이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도 보지 못했다.

[멈추시오!]

노대가 소리쳤다.

하지만 장군묵은 환상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신법이었다.

노삼이 욕을 했다.

[빌어먹을 작자! 감히 나를 집어던지다니. 똥통에나 빠져버려라.]

노이도 사라지고 없었다.

노대가 큰소리로 불렀다.

[노이! 돌아와라! 그를 따라갈 순 없다.]

휘이이익!

노이는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노대 앞으로 날아왔다. 그는 장군묵이 신법을 펼칠 때 함께 신법을 펼쳐 뒤쫓았던 것이다.

노대는 어둠 속에 대고 물었다.

[여기에 들어온 놈은 모두 몇이냐?]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우리 일행은 칠십 명이 들어왔소. 하지만 다 죽고 지금은 여기있는 네 명만 남은 것 같소.]

노대가 말했다.

[네 놈들도 옥황빙서를 노리고 왔느냐?]

신궁 오무한이 탄식하며 말했다.

[명령을 받고 왔을 뿐이오. 진양진인을 찾으라는.]

노삼이 코웃음을 쳤다.

[노대, 저놈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오. 진양진인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찾는데 칠십 명씩이나 동굴에 집어넣을 바보 멍청이가 있겠소?]

노대가 말했다.

[네놈들의 이름은 뭐냐?]

네 사람이 각기 대답했다.

[활을 좀 쏜다고 해서 신궁이라 불러주는 오무한이오.]

[금전표(金錢鏢) 곽기(郭基).]

[수리전(袖裏箭) 형가운(衡駕雲)이오.]

[철연화(鐵蓮花) 마춘보(馬春寶).]

노이가 말했다.

[노대! 모두 질 좋는 놈들이 아니오. 암기나부랑이나 쓰는 녀석들이오. 모두 죽여버립시다.]

금전표 곽기와 수리전 형가운, 그리고 철연화 마춘보가 찬바람을 들이켰다.

자기들이 무슨 수를 써도 괴상한 세 노인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꼼짝없이 죽는구나 싶을 때 신궁 오무한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리가 죽기를 원한다면 세 분이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소. 우린 그냥 둬도 여기서 죽게 될거요.]

노삼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 우리가 죽이지 않아도 죽는단 말이냐?]

오무한이 말했다.

[이미 동굴 입구는 다 무너졌소. 여기서 우리가 무슨 방법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소?]

노삼이 펄쩍 뛰면서 말했다.

[그 때문에 네놈들이 죽는다면 우리도 그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된다. 사실이냐?]

오무한이 말했다.

[기주는 이미 동굴을 무너뜨렸소. 혹시 뚫고 나간다고 해도 기주 손에 죽고 말것이오. 당신들은 우리 때문에 죽게 된 피해자요.]

노대가 물었다.

[기주란 놈은 또 뭐냐?]

오무한이 말했다.

철연화 마춘보가 말했다.

[기주는... 기주요.]

노삼이 고함쳤다.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금전표 곽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걸 어떡하겠소?]

노대가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나머지는 여기를 나간 후에 알아보도록 하지.]

노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노대! 무슨 냄새를 맡았소?]

노대가 손을 저어 목소리를 낮추라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따라와. 이 동굴은 간단치 않아.]

노이와 노삼은 물론이고 신궁 오무한과 금전표 일행도 노대의 뒤에 따라붙었다.

노삼은 자꾸만 오무한과 금전표 등을 죽여버리고 싶은지 힐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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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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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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