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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목숨을 거래하다 (2)

 

 

 

깨어났을 때 제일 먼저 하늘에 총총한 별이 보였다.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들었으면 일어나거라.]

붉은 장포를 걸친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 등을 보인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현천록은 자기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전혀 낯선 곳이었다.

물어보자고 해도 갑자기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마구 떠오르는 대로 이번엔 당신이 개대신이냐고 물을 수도 없으니까.

그때 중년인이 불쑥 말했다.

[내 제자가 되어 검법을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

현천록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 갑작스런 말씀이군요.]

[하하하하하!]

중년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부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거지 그런 애매한 대답이 어디있느냐?]

보통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의 얼굴이 계속 싱글벙글 웃고 있다.

하지만 네모난 눈에서는 광채가 어려있고 얼굴빛도 어둠속이지만 붉은 기운이 흐른다.

큼직한 얼굴에 낙천적인 웃음이 크고 부리부리한 눈과 어울려 정말 대장부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현천록이 말했다.

[소생은 대협을 처음봅니다. 한데 어찌 함부로....]

중년인이 돌아서서 빙그레 웃었다.

[어린 녀석이 억지문자는..... 집어치워라. 애들은 애들 말을 해야지.]

현천록은 조금 머슥해졌다.

장사를 하면서 상대를 추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골수에 너무 깊이 박혀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를 납치해온 장본인에게 조차 그렇게 말하는 건 확실히 너무하다.

[억지문자가 아니라 장사꾼이 의례하는 말입니다.]

현천록은 마주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하하!]

마주 앉은 중년인이 파안대소를 했다.

[나는 풍허객(風虛客)이라고 한다. 낮에 네가 어떤 영감을 상대하는 걸 보고 훔쳐야겠다고 생각했지.]

현천록의 눈이 동그라졌다.

[풍허객? 풍허객이었어요?]

하마터면 도둑이 아니고 풍허객이냐고 말할 뻔했다.

현천록이 풍허객을 직접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무림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며서 풍허객의 이름은 지겹도록 들어왔다.

풍허객은 원래 화산파(華山派)의 차대 장문인으로까지 지목되었던 기재였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화산파에서 파문을 당했다.

화산파를 나온 후, 소문에 의하면 화산에서 배운 검을 버리고 독자적인 장법을 하나 창안했다고도 하며, 전설적인 고수로 알려진 삼절오악(三絶五嶽)과도 겨루었다는 말이 있다.

그때는 또 장법이 아닌 검법을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하여간 무림의 골치덩어리로 알려져 있는 풍허객에 대한 크고 작은 소문은 항상 끊이지 않고 전설처럼 흘러다닌다.

그리고 진짠지 아닌지 모르고 전설을 더욱 전설같이 만들어 버리는게 풍허객의 또 다른 별명이 허풍객(虛風客)이란 사실이다.

현천록은 호기심에 반들거리는 눈으로 풍허객을 보았다.

[호오! 이놈봐라! 마치 내게 대해서 알 건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군. 하하하하! 이놈아! 장사꾼이라 쉽게 믿지 못하고 나를 감정하는 거냐 아니면 내가 허풍객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눈을 하는거냐?]

풍허객이 껄껄웃었다.

현천록은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석하군요. 대협께서는 정말 좋은 분이시군요.]

풍허객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내게 엉뚱한 소릴 하면 볼기짝을 때려놓을 테다.]

현천록의 말이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낼듯하자 풍허객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현천록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전 대협께서 탐낼 정도의 위인이 못됩니다.]

풍허객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현천록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했다.

[민정후(玟情候)영감이 벌써 손을 썼나? 그 영감은 벌써 삼십년 동안 제자를 받은 적이 없는데..... 아닌 것 같은데..... ]

현천록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 노야께서는 무공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풍허객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민영감한테 먼저 허락을 받아야겠군.]

현천록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민노야에게 허락을 받으려한다면 당연히 신화병기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데 갑자기 풍허객이 소리를 꽥 질렀다.

[민영감! 아직도 보고만 있을 거요?]

현천록은 깜짝 놀랐다.

[아이구 깜짝이야!]

간이 떨어지는 것처럼 손이 아래로 툭 쳐졌다.

풍허객이 쳐다보고 있는 나무 사이에서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비추어 보였다.

현천록은 그가 민노야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노야!]

현천록이 달려가며 소리쳤다.

민노야가 가볍게 소매를 저었다.

현천록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기우뚱거리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너를 해칠 사람이 아니다. 염려하지 말아라.]

풍허객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민영감은 확실히 나를 알고 있는구려!]

민노야의 키는 다리가 길어서 앉아 있을 때보다 서 있을 때 훨씬 커보인다.

노인답지 않게 몸도 꼿꼿하고 키도 클 뿐만 아니라 하얀 수염이 아주 위엄있다.

현천록은 자기도 나이를 먹는다면 언젠가는 민노야처럼 수염을 기르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민노야가 풍허객의 앞으로 다가오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무림의 말썽꾸러기인 풍허객을 어찌 모르겠나?]

풍허객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호탕하게 살 뿐이오. 그동안 잘 있었소? 어째 좋아보이지는 않소.]

[악겁이 가득한 세상에 발을 딛었는데 어찌 좋아보일 수 있겠나?]

[하하하하! 쓸데 없이 머리 굳어지는 소릴랑 맙시다. 골치아파서 뚜껑열리면 당신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으니까.]

풍허객은 다가오는 민노야를 보면서도 아주 친한 벗을 맞이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하며 웃었다.

그러는 사이 민노야는 더 다가와서 풍허객과 세자 정도의 거리에 마주 섰다.

그제서야 두 사람사이에 흐르는 어떤 미묘한 긴장이 현천록에게도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현천록의 팔다리가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민노야가 하얀 눈썹 밑은 새까만 눈을 빛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 아이를 탐내는 건 풍허객으로선가 아니면 자네의 다른 신분으로선가?]

풍허객은 재미었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거야 원~ 쩝쩝! 무림은 영감을 잘 모르는데 영감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단 말이야.]

[노부의 말에 답해주게.]

민노야는 풍허객을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응시한다.

풍허객은 수박밭을 털다가 걸린 개구쟁이같이 시큼털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하면 어떻게 할꺼요?]

민노야가 말했다.

[자네는 신룡(神龍)같은 인물이네. 구름 속에 숨은 신룡같은 숲 속에 숨은 바람같아서 흔적은 있어도 찾으려면 찾을 수가 없지. 삼절오악이 자네의 분탕질에 한숨만 쉬고 가만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하하하하하!]

풍허객이 숲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현천록은 손으로 귀를 막았다. 다리가 떨려오고 속이 미슥거리며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다.

내공이 깃든 웃음소리다.

신화병기점의 손님들도 웃을때는 억지로 공력을 끌어올려 과시하곤 했지만 풍허객의 웃음소리와는 비교조차 할수 없이 미미한 정도였었다.

현천록은 들은 말이 있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야단났다. 웃음소리로 내장을 뒤집어 죽이기도 한다는데 .....)

하지만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풍허객은 갑자기 웃었던 것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알면 됐소. 하지만 영감도 저 아이에게 좋은 뜻만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영감이 무림에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는걸?]

풍허객은 자기 말이 옳다는 듯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하긴 영감이라면 능히 그렇게 할 만도 하지.]

민노야의 눈썹 아래 눈이 차가운 빛을 발했다.

[무슨 근거로 쓸데없는 소릴 하는가?]

풍허객은 느긋하게 바위에 기대면서 말했다.

[첫째로 저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도 무공은 조금도 가르치지 않았소. 후후후. 영감이라면 저 아이가 보기드문 인재라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테고, 또 천하 고수들 중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힐 영감이 가르친다면 최소한 십오년 후에는 무림을 주름잡을 인재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소? 한 번 대답해 보시오.]

민노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겠어. 하지만 자넨 노부를 과하게 평가했네.]

풍허객이 냉소하며 또 말했다.

[둘째, 삼십년 전에 무림을 떠난 영감이 내게 대해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단 말이오. 나를 주목하고 있는 놈들은 대체로 어떤 음모를 꾸미는 놈들이거든. 후후. 영감이 저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제자로도 삼지 않는다면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결론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민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옳은 말로도 들릴 수 있겠군.]

풍허객은 팔짱을 끼며 오만하게 말했다.

[그럼 아니란 말이오?]

민노야는 현천록을 힐끗 보며 말했다.

[노부가 자네에 대해 많이 아는게 불만이라면 내게 대해 말해줄 수 있네. 그리고 노부는 저 아이에게 양심에 부끄러울 짓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지. 애석하게도 자네의 고심한 분석은 아무 소용없네.]

풍허객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껄껄! 영감! 서로 더 이상 잡담은 그만두고 내게 넘기시오. 영감한테 신세 한 번 진 걸로 달아놓겠소.]

현천록은 조금 우습기도 어이없기도 했다.

신화병기점에서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종의 신분도 아니다.

의식주를 모두 그곳에서 해결하고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민노야가 길러준 은혜는 있지만 지금까지 밥값을 못한 것도 아니다.

결코 그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건처럼 이리저리 건네질 그런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한데도 오늘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영감은 물건을 팔면서 죽이니 살리니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를 훔쳐와서 민노야한테 넘기라니 말라니 하고 있다.

현천록은 지금까지 물건을 넘기고 말고 하는 주체였지 그 대상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열 두 살이면 밤마다 열 두가지 꿈을 꾸지만 한 번도 그런 꿈은 없었다.

그는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영 거래가 자기 통제를 벗어나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즉시 풍허객의 말에 끼어들었다.

[두분께선 더 이상 언쟁하지 마십시오. 주인어른, 그리고 풍대협님! 두 분은 지금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장사를 궂이 하시려고 하는 중입니다.]

풍허객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일전을 각오하고 있지. 그런데 왜 남는게 없단 말이냐? 이기면 너를 얻게 되는데.]

민노야가 빙그레 웃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삼십년 전의 노부를 보는 것 같네.]

풍허객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보다 강한 사람은 있어도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당금 강호에는 존재하지 않소.]

이야기가 또 현천록을 젖혀두고 이어진다.

현천록이 다급하게 말했다.

[잠깐만! 잠깐만! 풍대협님!]

풍허객이 현천록의 이마를 툭치면서 말했다.

[아이들은 어른들 일에 낄 것 없다.]

현천록의 이마에 식은 땀이 맺혔다.

[저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지 주고 받거나 팔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민노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 말이 옳네.]

풍허객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 그말을 처음에 들었다면 조금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소. 하지만 요런 영악한 녀석이니 내 목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팔 하나쯤은 주더라도 될 성하지 않소?]

목소리가 아주 기백에 넘친다.

민노야가 현천록에게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지금 너를 강탈하려는 도적을 만났구나.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냐?]

현천록은 우물쭈물했다.

[....저는.....]

노야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하고 말하려하니까 물건을 지키는 건 주인이나 주인의 하수인이 하는 일이니까 노야를 주인으로 인정해버리는 결과가 될 것 같다.

그리고 혼자 어떻게 하려고 하니 무림의 말썽꾸러기라는 풍허객을 상대로 만만하지가 않다.

현천록이 불쑥 고개를 돌리며 풍허객에게 물었다.

[저를 제자로 삼아서 대협께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풍허객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를 제자 삼아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피곤하기만 할 따름이지.]

현천록이 말했다.

[그럼 왜 저를 제자로 삼으려하십니까?]

[왜냐고? 하하하하! 그건 저 영감이나 아까 그 삿갓 쓴 늙은이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지.]

풍허객은 아주 통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현천록은 가만히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대협의 제가가 되지 않겠다면 죽이시겠군요.]

풍허객이 말했다.

[하하! 내가 죽이기 전에 그 늙은이가 죽일 걸?]

현천록은 민노야에게 물었다.

[노야! 그 노인도 풍대협과 똑같은 이유에서입니까?]

민노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풍허객이 민노야에게 말했다.

[그 늙은이가 누군지 알고 있소?]

민노야가 조용하게 말했다.

[고독마검(孤獨魔劒) 불이태(不二台)!]

풍허객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바로 고독마검 불이태요. 저 아이는 이미 불이태의 표적이 되었으니 내가 아니면 민영감 당신도 쉽게 지킬 수 없을거요.]

현천록은 이야기가 이정도까지 나와서야 오늘의 일들이 대충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아까 그 노인이 고독마검 불이태구나. 그 사람은 세외로 나간지 팔십년이나 되었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었네. 어쨌든 고독마검이나 풍허객, 두사람 다 나를 제자로 삼으려고 이런 소동을 벌였으니 최소한 날 죽이진 않겠다.)

현천록은 처음부터 죽음에 대한 걱정 따위가 없는 낙천적인 소년이었지만 상황을 더 자세히 알게 되자 그 만큼 더 느긋하게 되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노야께서 천하에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기인이라는 건 정말 금시초문이다. 고독마검이나 풍허객보다 내게는 그 사실이 더 충격적이구나.)

그때 민노야가 말했다.

[자네 능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네.]

풍허객이 민노야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물러서시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없네. 나는 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걸세.]

민노야가 현천록에게 말했다.

[얘야. 도적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냈느냐?]

현천록은 문득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달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거품을 물며 뒤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의 등이 활처럼 휘어져 머리가 땅에 세차게 부딪혔다.

민노야와 풍허객이 가까이 있었지만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이라 잡아줄 수가 없었다.

!

둔탁한 소리가 밤공기를 울렸다.

풍허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민노야와 풍허객은 동시에 현천록을 잡았다.

그러나 머리가 이미 깨진상태였다.

민노야의 손가락이 현천록의 머리 속으로 쑥 들어갔다.

피가 샘처럼 쏟아진다.

두 사람은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현천록의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자살을 하다니! 이런 심약한 놈이었소?]

풍허객이 민노야에게 물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네. 다만 자네도 이 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뿐.]

풍허객이 냉소하며 말했다.

[내게 책임을 따지겠다면 언제든지 좋소. 영감과 한 번 싸워주겠소.]

민노야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멀쩡하던 현천록이 갑자기 거품을 물고 뒤로 쓰러져 죽다니.

암습을 받았거나 독에 당한 것도 아니고, 또 평소에 간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민노야는 탄식을 하면서 한 손을 휘둘러 땅을 팠다.

우우웅!

푸악!

민노야의 특이한 산수(散手)의 수법에 따라 땅에는 길죽한 웅덩이가 생겨났다.

풍허객은 수직으로 솟아올라서 밤하늘 속으로 숨어 버렸고,

민노야는 현천록을 묻은 후에 그곳을 떠났다.

자라면 언젠가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무수한 씨앗들이 그러하듯이, 큰 나무는커녕 싹도 튀워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인간의 씨앗들도 많은 법이다.

현천록도 그런 씨앗에 속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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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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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을 거래하다. (1)

 

 

신화병기점(神火兵器店)은 금릉(金陵)에 사는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곳이다.

크기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일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꼬마라 할지라도 모두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어느 누구도 신화병기점의 사람들이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만 무성했지 실제로 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여간 신화병기점은 낡은 중고 철검부터 시작해서 옛날 검이나 도를 모방한 물건들, 그리고 특이한 주문품에 이르기까지 무기라면 없는 것이 없다.

만약에 없다면 신화병기점 내에 있는 대장간에서 만들어서라도 준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화병기점의 병기들 품질은 그저 그렇다.

그저 그렇다는 말은 살 때는 최소한 마음에 들기 때문에 하는 말이고,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쓸 때는 실망하고 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시 병기를 구하기 위해서 금릉에 들린다면 몇 군데 병기점을 들려본 후에 한 숨을 푹 내쉬면서 다시 신화병기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곳의 병기들은 최소한 살 때는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현천록(玄天祿)은 이런 천화병기점에서 밖으로 잘 알려진 유일한 사람이다.

병기점의 주인인 민노야(玟老爺)의 이름은 한 번씩 들어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거나 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현천록이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한 사람의 몫을 충분하게 잘 해낼 수 있는 어른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이제 겨우 열 두 살이며 신화병기점의 점원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현천록의 키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주먹 하나 정도 더 크다. 그 점만 제외하고 나면 그가 다른아이들 보다 특별히 달라보이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는 무림인들 사이에 아주 잘 알려져있다. 그것은 그가 물건을 볼 줄 아는 특별한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감별안은 다른 아이는 고사하고 어른들에게 조차 없다.

현천록의 그런 특이한 재능이 발견된 것은 그가 아홉 살 때인 삼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병기점 안에서 잡심부름을 하면서 조금도 주목받지 못했던 현천록은 어느날 담당점원이 자리를 비운 한 시간 만에 진열되어 있는 병기들 중에서 삼분지 일을 팔아버렸다.

담당점원이 돌아와 처음에는 강도를 당한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수북하게 쌓여있는 은자를 보고는 깜짝에 깜짝을 몇 번 곱한 만큼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현천록은 세 살 때 신화병기점에 들어오면서 본 이후 실로 육년 만에 주인인 민노야를 만나게 되었다.

민노야는 그를 묵묵히 보다가 신화병기점의 정식 점원으로 일하라고 했고, 그 이후에 신화병기점(神火兵器店)의 새로운 신화(神話)가 만들어지며 현천록은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 되었다.

어느 누구라도 현천록이 추천하는 물건을 직접 보고 만져본다면 결코 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누군가는 현천록은 병기와 사람의 인연을 잘 볼 줄 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현천록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고, 그 위에다 어떤 물건들의 특징이든간에 단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재주가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항상 즐거워하며 손님들에게도 그 즐거움을 나누어주는 재주 아닌 재주가 있기도 하다.

신화병기점의 사람들이 무공을 익혔다는 말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고, 심지어는 여러 가지 비밀기관이 점포 내에 설치되어 있다는 말도 있다.

아직 신화병기점에 뛰어들어 행패를 부린 자는 없지만 그 이유를 신화병기점에 다 돌릴 수는 없다.

신화병기점의 병기는 완벽하게 손님을 만족시키지 못할 지 몰라도 그 병기를 팔고 있는 열두살짜리 꼬마는 항상 손님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나이도 어린 그가 이마에 띠를 두르고 작은 주판을 허리춤에 차고 혼자 점포를 지키지만 주인인 민노야는 걱정도 않는다.

 

어쨌든 현천록은 신화병기점의 정식 점원이었고, 그 때문에 간단한 글과 회계를 배우기도 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현천록에게 장사를 잘 한다는 것보다 더 뿌듯한 기쁨이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면, 자기가 글을 가슴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 돈을 가득 가진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종종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남이 모르는 두근거리는 비밀을 가슴에 간직한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현천록은 간단한 글을 배웠지만 점점 더 많이 알아갔다.

그러나 그것을 감추는 것도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자기가 배운 것을 말하지 않았다.

한가지를 배우고 한가지를 알게 되면, 그것으로 그의 하루는 아주 보람되고 알찬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무엇을 배울 때 마다 자기가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신한다고 믿고 있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의 차이는 존재와 무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이고, 모르던 현천록에서 무엇인가를 더 알게 된 현천록은 분명히 서로 다르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항상 변신(變身)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손님의 발길 만큼의 매상은 항상 오르는 것이기에 장사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할뿐 그다지 염려하지는 않는다.

민노야는 현천록의 수완을 높이 사서 그에게 상당한 돈을 준적도 있다. 그러나 현천록은 단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먹는 것과 자는 것, 입는 것, 그 모든 것을 신화병기점에서 해결할 뿐만 아니라, 현천록에게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나이지만 그가 배우고 익히는 것들은 결코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들 것이며, 또한 그것들이 언젠가는 그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리라는 믿음, 바로 변신에 대한 그의 믿음이 있다.

그런 생각은 그가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즐겁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죽립(竹笠)을 써서 얼굴을 반쯤 가린 흰 수염의 노인이 점포 안으로 들어왔을 때도 그의 마음 속은 항상 즐거운 음악을 듣는 것처럼 즐거웠다.

현천록은 명랑한 목소리로 죽립노인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노대협께선 어떤 물건을 찾으시는지요?]

죽립노인은 아무 대꾸도 없이 진열되어있는 이천 종에 가까운 병기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현천록은 그 사이에 죽립노인을 찬찬이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병기를 살피던 죽립노인의 눈과 노인을 살피던 현천록의 눈이 마주쳤다.

노인의 눈은 일 순간에 칼날처럼 번득이며 현천록의 눈을 파고 드는 듯했다.

현천록은 병기점을 하면서 온갖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죽립노인같은 인물은 처음이었다.

죽립노인에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짓누르는 공포같은 것이 있었다.

현천록은 본능적으로 이 순간이 자기 평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런 느낌은 대체로 그에게 있어선 틀림없었다.

삼년 전에 정식 점원이 되는 날도 바로 이런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느낌은 세월 때문인지 오늘보다는 조금 약했었다.

현천록은 숨을 천천히 들여쉬면서 말했다.

[노대협께선 병기를 고르시는 것은 아닌 듯 하군요.]

죽립노인이 아주 탁한 음성을 내뱉었다.

[네가 병기를 볼 줄 안다는 아이 현천록이냐?]

현천록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죽립노인이 말했다.

[내게 맞는 병기를 골라라. 네가 권하는 병기면 어떤 것이든지 다 사도록 하겠다.]

노인의 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다른 손님들과 진배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현천록은 죽립아래로 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애쓰며 말했다.

[저희 가게엔 노대협께 권해드릴 만한 물건이 없습니다.]

[....!]

죽립노인의 눈이 다시 번개불처럼 번득였다.

현천록은 간담이 서늘했지만 얼굴색을 바꾸지 않았다.

[어째서냐?]

노인의 음성이 은은한 살기를 담고 있었다.

현천록은 죽립노인이 흑도의 유명한 고수일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노대협께선 제가 권해드리고 싶은 물건을 이미 가지고 계십니다.]

죽립노인은 아무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현천록이 계속 말했다.

[길이는 넉자세치, 너비는 두치반, 두께는 삼푼이고 무게는 두근반인 장검이 있다면 제가 권해드릴 테지만 안타깝게도 저희에겐 그런 물건이 없고 노대협께선 벌써 가지고 계시는군요.]

죽립노인은 한손으로 죽립을 슬쩍 만지면서 말했다.

[그럼 노부가 내 검을 네게 팔고 난 후에 다시 산다면 어떻겠는가?]

현천록이 말했다.

[파셨다가 다시 사신다면 보통은 두 배로 값을 치뤄야 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 즉 노대협의 경우에는 송구스럽지만 칠백배의 돈을 내야 됩니다. 그래도 하시겠는지요?]

스르르릉!

맑은 소리와 함께 새하얀 검날이 검갑에서 뽑혀 나왔다. 보통의 검보다 한자 가량이나 길고 한치는 더 넓은 아주 특이한 장검이다.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네 목을 베겠다.]

노인은 손목을 살짝 움직였다.

서릿발같은 한기가 현천록의 목을 파고들었다.

현천록이 담담히 말했다.

[검은 만년한철로 만들었으니 보기드문 보검입니다. 하지만 길이와 너비가 범상한 검들과는 달라서 누구나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검을 쓰는 방법도 함께 얻지 못한다면 이 검은 오히려 가진 사람을 해치는 화근이 되기 쉽습니다.]

노인은 냉소하며 말했다.

[충분한 이유가 못된다.]

현천록이 계속 말했다.

[만약에 노대협께서 이 검을 제게 파신 후에 그냥 가버리신다면 저희 병기점에서는 하는 수 없이 이 검을 녹여서 다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는 검으로서가 아니라 만년한철 한 덩어리에 해당하게 되겠지요.]

노인은 수긍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노대협께서 이런 명검을 다시 구하시려고 한다면 만년한철 한 덩어리의 값보다 최소한 일천배는 더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해서 제가 칠백배를 받고 다시 팔겠다는 것은 아주 싼 값에 제공하겠다는 저희 주인님의 의지가 이미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철컥!

노인은 흰무지개가 서린 명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현천록에게 불쑥 내밀었다.

[약속을 지켜라. 칠백배다.]

현천록은 두손으로 받으며 말했다.

[사백육십냥을 드릴 수 있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노부는 한푼도 받지 않고 팔겠다. 나중에 다시 사러오마.]

[!]

순간 현천록은 말문이 콱 막혔다.

노인이 말했다.

[보름 후에 오겠다. 그때 되사도록 하지.]

무림의 기인들이 하는 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

(당했다!)

현천록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황당하기까지 하다.

검을 팔면서 땡전한푼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그 노인이 되사러 올 때 역시 땡전한푼 받을 수가 없다.

칠백배를 버는 것은 이런 계산 앞에선 한심한 노릇이다.

현천록은 자기가 보름동안 꼼짝없이 그 검을 지키고 있어야 할 신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에 잃어버리거나 도둑맞는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에구! 검을 그냥 보관하려는 생각이었는데 그걸 읽지 못했다니.)

입맛이 쓰다.

빨리 읽었으면 보관료라도 비싸게 요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여간 현천록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노인의 모습은 벌써 십여장 밖에 있었다.

그리고 현천록의 귀로 모기소리처럼 가느다란 소리가 파고 들었다.

[노부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어기는 사람은 시체가 되도록 해주기도 하는 사람이지.]

깨끗하게 한 방 먹었다고 인정한 현천록은 마음에서 툴툴 털어버리고 웃었다.

[내 속에는 내가 되길 원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아직 시체는 없는데. 하하하.]

하지만 점원은 크게 웃어서는 안된다.

 

현천록은 저녁이 되어 결산을 하고 난 후에 내원에 들어가 민노야에게 보고하며 그 사실을 알렸다.

민노야는 탁자 앞에 앉은 채 자기 손으로 그 검을 뽑아서 검날을 만져보며 말했다.

[보검이군. 금석을 무처럼 자를 수 있는 검이야. 네 목이 베어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새파란 검날에 민노야의 옆얼굴과 촛불이 함께 일렁이며 비친다.

현천록은 눈을 반짝거리며 나직하게 물었다.

[노야! 이런 보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전설상의 오대명검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보검인지....]

민노야가 말했다.

[오래된 검은 아니다. 기껏해야 일백오십년, 단 한 사람만이 사용했고 아주 많은 피를 흘렸다.]

현천록이 놀라며 물었다.

[그럼 그 노인은 일백오십살이 넘었단 말씀입니까?]

민노야가 말했다.

[그렇겠지.]

현천록은 아주 신기해하면서 물었다.

[일백오십살이면 강태공이 살았다는 나인데도 아직 정정했군요. 신선이 되지 않고도 그 만큼 살 수 있어요?]

민노야가 곱게 가꾼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지는 광활하고 인간은 헤아릴 수가 없지. 무슨 일이든 다 있는게 세상이니라.]

현천록이 불쑥 물었다.

[한데 그 노인은 대체 무슨 이유로 검을 맡기고 이런 기행을 하는 걸까요?]

검의 날은 너무도 깨끗하여 아무런 흔적도 없다. 마치 쇠가 아닌 유리같다.

뱀가죽을 감아놓은 손잡이에 상아를 깎아붙여 놓은 고독(孤獨)이란 글자가 특이할 뿐이다.

민노야는 검을 내려 놓았다.

그의 얼굴 색이 밝지 못하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져 현천록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주제넘게 너무 많이 물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현천록은 자기가 아직 어리니까 그 정도 잘못 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호기심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에겐 왕왕 성가신 법이니까.

[그만 물러가거라!]

한마디 가볍게 던진 후, 현천록의 대답을 찾는지 민노야는 깊은 사숙에 빠져들어 움직이지 않는다.

현천록은 조용히 방을 빠져 나왔다.

! ! !

태앵~ !

아직도 병기창에서는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천록은 그 소리가 자기의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무언가 불길한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워진 채 벗겨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무 죄도 지은게 없는데 왠지 가슴이 조금씩 조여드는 괴상한 기분이다.

! 한 번, 아주 오래전에 갑자기 덮친 개에 물리기 직전에도 이런 기분이 들었었다.

현천록은 혹시 또 개가 어디 숨어있다가 덮쳐들지나 않을까 싶어서 발꿈치를 들고 최대한 소리를 죽여서 살금살금 걸었다.

헌데 현천록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민노야가 정성들여 가꾼 동백나무 숲을 지날 때였다.

반짝!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하얀 손바닥 하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는 천지가 캄캄해오면서 깊은 물 속으로 끝없이 가라 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비명도 질러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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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무협소설

 

지백천년 -至白千年

 

<광고>

 

생사탄(生死灘)-!

절대자(絶對者)의 꿈을 빌어 탄생한 불생불사(不生不死)의 환계(幻界)!

생사탄에 초대된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능력을 얻는다.

인간을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주는 구장심조공(九贓心照功)은 아홉가지 신물(九大神物)에 나뉘어 생사탄 밖 세상으로 던져지고...

어이없는 인연으로 구대신물중 가장 중요한 묵심환(墨心環)을 얻은 어린 소년은 생사탄으로 불려가 불사의 힘을 얻는다.

그러나 다시 세상으로 나와 숱한 우여(迂餘)와 곡절(曲折)을 겪은 후에야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세상에서 꿈을 꾼 것이 아니고 꿈속에서 세상을 겪었음을...!

 

 

 

 

서문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신선(神仙)이다.

무릇 신선이란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꿈이요 희망이며 도피처이기도 하고 최후의 권력이기도 하다.

 

--- 신선은 영원히 죽지 않고 구름을 타고 다니며 온갖 술법을 다 사용할 수 있다.

때로는 월궁의 항아를 불러 술시중을 들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젓가락을 던져 만리 밖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며, 옥황상제의 천도 복숭아를 마음대로 따먹기도 하고 용궁에 가서 용왕과 바둑을 두기도 한다.

 

대체로 사람들이 신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신선이 만약 이런 것이라면 속세를 벗어나 청담(淸談)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온갖 세속을 쾌락(快樂)을 영원히 맛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신선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인지 역대의 황제들도 신선이 되려고 천만금을 썼는가 하면 평생을 산중에서 말똥으로 단약(丹藥)을 구워 신선이 되려한 방사(方士)와 술사(術士)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글을 읽는 자들 중에서 한 두 번쯤 기문방서(奇門方書)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자 없고, 검을 휘두르는 자 가운데 불로불사를 소원하지 않은 자가 또한 없었다.

이따금 책에 전하기로는 모처의 모모가 약을 먹고 신선이 되었는데 개와 닭도 함께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는 것도 있고,

또 어떤 책에는 무덤 속에 떨어져 웅크리고 있던 계집아이가 호흡의 비기를 터득하여 마침내 신선이 되어 대낮에 승천했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누구누구가 살았을 때 행동거지가 범상치 않았는데 죽고 난 후에 무덤을 파보니 시체는 없고 지팡이만 남아있어 시해선(尸解仙)이 된 줄 알았다는 말 하며,

심지어는 어떤 필부가 배를 탔다가 조난하여 이름 모를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바로 신선들이 사는 섬이었으며 공자가 일흔 두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유유자적하더라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살아있는 인간이기에 언젠가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살아있기 때문에 죽음이란 더욱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살아온 세월이 길면 긴 만큼, 세상에 자기의 흔적이 많으면 많은 만큼 미련도 많아지니 당연히 두려움도 많아진다.

신선은 죽음의 저편에 있다.

신선이 되어 누리는 쾌락이 좋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신선이 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되었다는 소문은 있어도 정작 신선은 드물고, 바라는 이는 많으나 그만큼 헛되이 정열과 젊음을 바치고 죽는이가 많다.

그것이 바로 신선이다.

 

그러나, 불로불사의 신선이 되는 것이 과연 그처럼 어려운 일일까?

신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무림 중에서도 실수로 불로불사가 되어버린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불로불사는 능력(能力)이 아니라 주어진 하나의 상태(狀態)에 불과하다.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죽을 것이면서 살고 있다는 상태가 계속 되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불로불사가 인간을 뛰어넘은 신비한 경지가 아니라 인간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며 시작된다.

별 것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황당하게 펼쳐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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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석을 찾아서

 

 

 

[내가 이번에도 죽지 않았구나!]

이윽고 정신을 차린 막비강은 벌떡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때는 이미 자기가 토해낸 선혈과 호로가 있을 뿐 이위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생각을 굴리던 그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깨닫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위! 개돼지 같은 놈! 네가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나를 때려 피를 토하게 했으렸다? 후일 네놈에게서 이 빚을 이자까지 합쳐 받아내고 말겠다.]

막비강은 금색 호로를 집어 허리춤에 매었다.

(이위 그 흉악한 놈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 빨리 여기를 떠나자!)

그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바닥에 쓰러진 네 구의 시체와 서로 팔이 얽혀 마주 선 채 죽은 두 노인이 생각났다.

(은혜를 입었으니 그냥 갈 수는 없지!)

그는 다시 동굴이 있는 절벽 앞으로 돌아갔다.

현장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니 두 노인은 서로의 팔을 부여잡은 채 서 있을 뿐 몸에는 아무런 상처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분들은 대체 누구일까?)

막비강은 호기심이 동하여 두 노인의 몸을 뒤져보았다.

먼저 염라철장의 허리춤에 가죽끈으로 매달린 큼직한 쇳조각 하나가 눈에 띠었다.

그것은 사람의 손바닥 모양으로 정교하게 주조된 강장(鋼掌)이었는데 상당히 컸다. 보통 어른 손바닥의 두 배정도 넓이에 길이도 세 배 가까이 된다. 또한 다섯 손가락 끝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달려있다.

막비강은 이 강장을 이리 저리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무슨 상징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강장의 손등 쪽에 다섯 개의 구멍이 파여 있어 손가락을 끼워보니 딱 맡는다. 이 강장은 손가락을 끼워 무기처럼 휘두를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다.

만일 이 강장을 손에 끼고 장법을 펼치면 그 위력이 몇 배로 무서워질 것이다.

강장을 살펴보던 막비강의 마음은 이내 크게 격동되었다. 왜냐하면 강장의 형태가 금색 호로와 함께 품안에 들어 있었던 종이의 표식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이분 선배님께서 금색 호로를 내 품속에 넣어 주셨구나!)

막비강은 이위의 말투에서 호로 속에 담겨 있던 즙액이 바로 천고의 영약 금강옥액이었음을 확인했었다. 자연히 그것을 자신의 품에 넣어 준 염라철장에게 호감이 일어 공손히 큰절을 올렸다.

[선배님의 은혜로 금강옥액을 먹어 병약한 체질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이 은덕을 어떻게 보답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절을 올린 그는 두 노인의 시체를 매장하기로 결심하고 염라철장의 몸에 손을 대었다.

문득 염라철장의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 막비강의 손에 닿았다. 막비강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염라철장의 주머니 속에서는 한 권의 책자와 상당량의 은자가 나왔다.

 

<염라장경(閻羅掌經)>

 

책자의 표지에는 그 같은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혹시!)

막비강이 흥분하여 서둘러 책자를 펼쳐 보니 한 면에 장법(掌法)의 도식(圖式)이 하나씩 그려져 있고 그 밑에 이 장법의 변화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막비강은 꿈에도 그리던 무공비급을 얻자 뛸 듯이 기뻤다. 그는 한시바삐 이 현묘한 장법이 수록된 책자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더욱 시급히 알고 싶은 것은 이 노인의 신분과 내력이었다. 해서 책자의 맨 끝장까지 뒤적여 보니 그곳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내 능력이 모자라 당한 일초(一招)의 원한은 참을 수 있지만 아내와 자식을 빼앗긴 울분은 잊을 수 없다! 막가 짐승을 다시 만나면 기필코 복수하겠다.>

 

이것은 비록 간단한 몇 글자였지만 막비강에게는 마치 예리한 비수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막가 짐승이라면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그럼 이분 노인이 진짜 나의 부친이란 말인가?)

그는 생각을 굴리며 염라철장을 다시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대방의 용모는 비록 인자하게 생겼지만 아무리 보아도 생소한 얼굴이었다.

막비강은 아무래도 그와 자신의 관계를 추측할 수 없는지라 우선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저에겐 비록 생모는 한 분뿐이지만 의붓어머니는 다섯 분이나 더 계십니다. 만약 선배님께서 정말 저의 부친이시라면 꿈속에서라도 나타나셔서 제게 알려주십시오.)

그는 기도를 끝낸 후 책자를 품속에 넣고 강장은 자기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황씨 형제의 강추를 하나 집어 구덩이를 판 다음 염라철장의 시체를 매장해 주었다.

막비강은 무덤 앞에 무림선배염라철장지묘(武林先輩閻羅鐵掌之墓)라는 묘비를 세워 주고 큰절을 올렸다.

다음으로 그는 무협제원의 몸을 수색했다. 막비강은 곧 무협제원의 품에서 예리한 단검 한 자루와 그의 독문 무공이 수록된 비급 신녀원공보(神女猿公譜), 그리고 몇 알의 진주와 은자 꾸러미를 얻었다.

신녀비(神女匕)라는 검명이 새겨진 예리한 비수는 금석을 흙 베듯 하는 신병이기였다. 무협제원은 이 신녀비를 무협의 어느 석실에서 얻었었다.

무협제원이 발견한 그 석실에는 쇠사슬에 묶인 채 죽은 거대한 원숭이의 골격과 그 원숭이의 골격을 끌어안고 죽은 가냘픈 여자의 시신이 함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전설 속의 절세고수들인 월녀(越女)와 원공(猿公)이 아닌가 싶었지만 배움이 짧은 무협제원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신녀비와 함께 발견된 신녀원공보의 전반부가 썩어 문드러 져있었다는 점이다. 만일 신녀원공보가 온전한 상태에서 발견되었고 월녀와 원공의 독문내공심법까지 얻었다면 무협제원은 거의 천하무적이 되어 강호에 크나큰 해악을 끼쳤을 것이다.

막비강은 신녀원공보 뒷면에서 무협제원의 이름도 알아내고 그를 매장한 후 무림선배무협제원지묘(武林先輩巫峽啼猿之墓)라는 비석을 세워 주었다.

막비강이 두 노인의 시체를 매장하고 나니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자연히 몸이 피곤할 뿐 아니라 배도 매우 고팠다.

그는 나머지 네 구의 시체는 대충 매장한 다음 수림 속에 들어가 산과일로 배를 채웠다.

 

* * *

 

한 달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가을은 더욱 깊어져 웅이산은 온통 붉고 노란 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만추의 어느 저녁,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짙게 번져 만산홍엽으로 변한 웅이산을 더욱 붉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이얍! 차핫!]

문득 저녁의 적막을 깨고 맑은 소년의 함성이 웅이산 골짜기를 뒤흔들었다.

웅이산의 깊은 곳에 자리한 후미진 계곡 안쪽에서 건장한 체격을 지닌 소년이 오른손에는 커다란 강장을 끼고 왼손엔 예리한 단검을 든 채 마치 원숭이처럼 이리저리 뛰며 양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비록 체격은 다 자란 어느 어른처럼 건장하지만 얼굴에는 아직 치기가 남아있는 소년이다.

이 소년은 물론 기연으로 금강옥액을 복용하고 강호칠절과 중원육요 중에 드는 두 무림 고수의 비급을 얻은 막비강이었다.

그가 무공을 연마한 지는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병약한 대신 남달리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무공을 연마한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지났음에도 염라철장과 무협제원의 무공을 거의 다 파악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는 금강옥액을 복용하고 생사현관이 타통되어 보통 사람이 일갑자 동안 수련한 것에 해당되는 심후한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내공이나 무공초식은 어느덧 무림 일류고수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단지 지금의 그에게 모자라는 것은 실전 경험뿐이었다.

휙휙! 파파팟!

막비강이 날고 뛸 때마다 칼날 같은 경기가 사방으로 무지개처럼 뻗쳐 나가곤 했다.

[하하하! 이젠 염라장경과 신녀원공보의 무공이 모두 내것이 되었다!]

막비강은 돌연 병기를 철회하며 득의에 찬 웃음을 흘렸다. 그는 드디어 염라철장의 십팔초 염라장법(閻羅掌法)과 무협제원의 절기인 신원탈백소, 칠십이로 신녀검법(神女法)을 모두 수련해낸 것이다.

염라철장의 염라장법도 나름대로 뛰어난 점이 있는 무공이지만 그 현묘함에 있어서는 신원탈백소와 신녀검법에 미치지 못한다.

신원탈백소와 신녀검법은 무협제원이 얻은 반쪽의 신녀원공보에 남아있던 두 가지 무공이다. 둘 다 음공과 검법으로는 더 이상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무공들이지만 문제는 그것들을 운용할 수 있는 내공부분이 소실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협제원도 두 가지 무공을 본래 위력의 삼할 가량 밖에 발휘하지 못했었다.

만일 무협제원이 월녀와 원공의 내공심법마저 얻었다면 무림은 원숭이와 인간의 잡종을 천하제일인으로 모셨어야 했을 것이다.

이 점은 막비강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적합한 내공심법을 얻지 못한 관계로 신원탈백소와 신녀검법의 정수를 터득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론과 초식상으로만 완전히 이해했을 뿐이었다.

무공 수련을 마친 막비강은 곧 자신이 만든 염라철장 곡강의 무덤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소자를 보우하여 하루빨리 절예를 연성하게 해주십시오. 소자는 절예만 연성하면 막고천 그 악적을 찾아가 아버님의 원수를 갚고 어머니를 고난 속에서 구출해 내겠습니다.]

그는 어느덧 염라철장 곡강을 자신의 생부로 여기게 된 것이다.

늘 자신을 냉대하고 구박하기만 하던 금사혈검 막고천과 무림 최고의 보물인 금강옥액도 서슴지 않고 자신에게 먹여준 염라철장, 둘 중 누가 더 자신의 부친에 가까운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그는 막고천이 자신의 생모를 생부 염라철장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첩으로 삼은 악적으로 믿기에 이른 것이다.

막고천이 자신의 어머니를 생부인 염라철장에서 빼앗을 것이라면 전후의 사정이 들어맞는다.

막고천은 막비강이 다른 남자의 자식이기에 무공을 가르쳐줄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막비강이 보는 앞에서 그의 생모인 한경파를 강간하는 짓도 서슴치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절대 용서 못해! 반드시 내 손으로 그 악적을 죽이고 어머니를 구해내고 말겠어!)

막비강은 막고천에게 농락당하던 어머니의 무참한 모습을 떠올리며 새삼 결의를 다졌다

당장이라도 혈검산장에 달려가 어머니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막비강 자신이 잘 안다.

분하고 조급하더라도 참아야만 한다.

(아버님과 무협제원의 무공은 이제 대충 연마했다. 이제 그만 여길 떠나야 한다!)

막비강은 떠날 결심을 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정이 든 이곳을 훌쩍 떠날 수가 없었다.

해서 하룻밤만 더 염라철장의 무덤을 지키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 * *

 

다음날 아침.

짹짹짹짹...!

자신의 처소로 삼은 커다란 고목의 가지 위에 누워 자던 막비강은 새들의 시끄러운 지저귐에 눈을 떴다.

[뭐야? 아직 해도 안 떴잖아?]

새 떼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그는 아직 해도 뜨지 않고 동녘 하늘만 약간 뿌옇게 밝아 오는 것을 보고는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것들이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떠드는구나!]

그가 중얼거리며 다시 잠을 청하려 할 때였다.

[거기 있는 게 누구냐?]

갑자기 멀리서 날카로운 외침 소리가 전해 왔다.

(이 목소리는...!)

귀에 익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막비강은 가슴속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놀라움, 분노, 미움 등이 일순 그의 전신 혈맥을 파열시킬 것만 같았다.

(... 막가 악적이다!)

막비강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방금 들려 온 음성은 바로 금사혈검 막고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 이러지 말아요! 제발! 비강이가 보고 있어요!]

막고천의 시커먼 몸 아래 깔려 바둥대며 애원하던 어머니가 떠올라 막비강의 몸 속의 피를 거꾸로 치솟게 만든다.

생각 같아선 당장 숲 밖으로 뛰쳐나가 막고천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의 울분을 참고 나뭇가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이위 등 혈검산장의 무사 십여 명이 막비강이 만든 무덤 앞에 까마귀 떼처럼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법 중후한 용모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입술이 얄팍한 초로의 사내였다. 

 

 금사혈검 막고천!

 

허리춤에 마치 뱀 모양을 한 한 자루의 사형괴검(蛇形怪劍)을 걸고 있는 금포장한! 그자가 바로 당금 무림을 장악하고 있는 사패천 중 서패천 혈검산장의 장주인 금사혈검 막고천이었다.

[장주께선 무슨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혈검산장의 무사들 중 외당 당주인 학가맹(學家盟)이란 자가 눈을 치켜 뜨며 물었다.

막고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분명 이 숲 속에서 그 어린 잡종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럴 리 없습니다. 속하는 그날 그놈이 없어졌음을 발견하고 이 일대를 여러 번 수색했습니다만 아무 흔적도 없었습니다.]

학가맹의 말에 이위도 얼른 덧붙였다.

[놈은 저의 흉맹한 일장을 맞았는데 죽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입니다. 혹시 다른 무림 고수가 이 근처에 은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막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있든 없든 우리는 이 부근을 샅샅이 수색해 보자.]

막비강은 막고천 일행의 대화를 듣고 더욱 노화가 치밀었다. 그들의 대화에서 막고천이 이미 자신을 아들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역시 그날 돌아가신 염라철장께서 내 생부셨구나!)

막비강은 당장이라도 막고천을 사로잡아 진상을 추궁하고 싶었다.

그는 혈검산장에서의 버러지같은 생활을 떠올리면서 진저리를 쳤다. 만약 생부인 염라철장이 그를 구출하지 않았다면 그는 멋도 모르고 도적을 부친으로 모실 뻔했다.

막비강은 염라철장과 막고천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막고천이 그의 집안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그의 생부에게서 모친을 빼앗아 갔을 리 만무하다.

(목숨을 걸고 복수를 할까, 아니면 도주를 해야 하나?)

짧은 시간, 상반된 생각이 그의 뇌리에서 수백 번의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결론은 역시 자신이 아직 막고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분하지만 복수는 잠시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소리 없이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어 수림에서 빠져 나와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 * *

 

막비강은 단숨에 백여 리를 달려 조그만 마을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는 염라철장이 남긴 은자로 베옷 몇 벌과 곡괭이를 사고 밥도 배불리 먹었다.

그런 다음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입고 있던 작고 낡은 옷을 벗어 불에 태우고 염라철장의 유서와 호로 뚜껑에서 나온 쪽지를 땀에 젖지 않게 초를 녹여 쌌다.

허름한 베옷을 입고 머리까지 산발하니 허리춤에 찬 금색 호로만 아니면 막비강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누가 봐도 지금의 그는 산골에서 막 자란 무지렁이 소년이다.

막비강은 계곡 물에 자기의 변한 모습을 비춰 보고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눈을 빛내며 생각했다.

(염라철장께서 나를 낳아주신 생부인 게 확실하니 이제 성을 막()씨에서 곡()씨로 고쳐야만 한다. 기왕이면 이름도 곡능천(曲凌天)으로 고쳐서 막고천, 그 악적을 놀려주어야겠다!)

능천이란 즉 하늘을 능멸(凌蔑)한다는 뜻이다. 막비강이 곡능천이라고 개명한 것은 높은 하늘(高天)이란 광오한 이름을 지닌 막고천을 놀려주기 위해서였다.

산골 소년의 모습으로 변장한 막비강은 그날부터 산속에서 마른나무를 주워 근처 도회지로 지고 내려와 팔아 밥을 사먹었다. 물론 그가 나무를 주워다 파는 것은 호구지책 때문이 아니었다.

 

 청구단서는 거대한 비석 밑에 숨겨져 있다!

 

바로 호로에서 얻은 쪽지에 적힌 대로 큰 비석이 어디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받지 않고 탐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이르면 몇 시진이고 검법과 장법을 연마했다.

 

* * *

 

그렇게 생활하는 동안 반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물처럼 흘렀다. 어느덧 겨울도 지나고 따뜻한 봄이 왔다.

막비강의 나이도 이제 열 일곱살이 되었다. 건장해진 몸 뿐만 아니라 나이로서도 어엿한 청년이 된 것이다.

그동안 막비강은 하남성 일대의 무수한 마을과 고을을 돌아다니며 큰 비석을 찾았다. 하지만 의심을 받을 것이 염려되어 사람들에게 큰 비석이 있는 곳을 직접 묻지는 못하고 혼자서 비석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낙양(洛陽)에서 멀지 않은 응봉현(應峯懸)을 지날 때였다.

(히야! 정말 큰 비석이다!)

막비강의 눈이 확 떠지는 일이 벌어졌다. 한 채 웅장한 절의 담벽을 따라 걷던 그의 눈에 담장 너머로 우뚝 솟아 있는 비석의 상층부가 들어온 것이다.

일 장 높이의 담장 밖에서 비석의 윗부분이 보이는 정도라면 그 비석은 적어도 이 장 높이는 넉넉히 될 것이다. 그 정도라면 막비강이 지난 몇 달 동안 본 여러 비석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었다.

 

<청련사(靑蓮寺)>

 

담장으로 둘러친 그곳은 절이었다.

하지만 알아본 결과 청련사는 비구니들만 기거하는 비구니 도량이었다. 그 때문에 사내는 얼씬할 수 없는 곳인지라 도저히 접근할 수단이 없었다.

(별수 없지! 밤에 월담을 기도하는 수밖에!)

막비강은 한시라도 빨리 비석을 파보고 싶었으나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

 

그날 밤, 몸에 꼭 끼는 야행복으로 갈아입은 막비강은 청련사의 긴 담장들 중 가장 한적한 곳을 골라 월담을 했다.

자칫 들키기라도 한다면 비구니들에게 음심을 품고 침입한 음적으로 몰릴 지경이라 충분히 주위를 살핀 뒤 담을 넘었다.

이미 삼경이 넘은 늦은 시간인 탓에 절 안에는 불빛 하나 없었다.

막비강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비석이 있는 절의 후원으로 숨어들었다. 어둠 속에 비석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우뚝 서 있었다.

(제발 이번에는 허탕치지 말아야 할 텐데...!)

막비강은 내심 기원하며 준비한 곡괭이로 비석 밑을 파려 했다.

헌데 그가 막 첫번째 곡괭이질을 하려 할 때였다.

파라라락!

돌연 머리 위로 무언가 휙 하니 타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이크!)

막비강은 기겁하며 급히 몸을 웅크렸다.

쏴아!

그러면서도 흘깃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밤하늘로 한 줄기 날렵한 인영이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이상하군! 나말고도 비구니들만 사는 이 절에 용무가 있는 사람이 있었나?)

막비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나간 야행인은 너무 빨라 여자인지 남자인지 미처 분간할 틈이 없었다. 다만 그자가 허리춤에 무언가를 끼고 있음을 언뜻 발견했을 뿐이었다.

(야심한 밤중에 비구니들만 사는 절에 침입한 이유가 뭐란 말인가?)

막비강의 마음에 의구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지만 막비강은 다시 비석 쪽으로 시선을 돌려 하던 일을 계속하려 했다.

헌데 막비강이 다시 곡괭이질을 하려 할 때였다.

스악!

또 하나의 인영이 청련사의 담장을 날아 넘어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가지 않는가?

(이건 또 뭐야?)

막비강은 급히 몸을 숙이면서도 재빨리 그 야행인의 모습을 살폈다.

언뜻 긴 치맛자락이 날리고 일진의 그윽한 향기가 느껴졌다. 이로 미루어 두 번째 야행인은 여인임이 분명했다.

(야행인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막비강은 눈을 반짝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미 비석을 파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였다.

(따라가 보자!)

마침내 막비강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야행인이 사라진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막 몸을 날리는 순간 청련사의 가장 깊은 객사 쪽에서 언뜻 사람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막비강은 즉시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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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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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이른 아침. 황금전장 입구. 정문은 활짝 열려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는 않고 있고.

입구를 지키는 황금전장 무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녀. 진삼낭과 이진진이다. 말은 주로 이진진이 하고 있다.

무사1; [글쎄 우린 네 오빠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신경질 내는 무사들의 우두머리. 다른 무사들은 지켜보고

이진진; [그럴 리가 없어요.] [제 오빠는 분명 어제부터 황금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제발 제 오빠를 만나게 해주세요.] 울먹이며 애원하고. 이진진은 허리춤에 작은 호리병을 달고 있다. 물론 운신장이 준 몽운연형호다.

무사1; [황금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천 명이 넘는다.] 한숨

무사1; [그 많은 사람들 중 네 오빠가 누군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냐? 그것도 어제부터 일하기 시작했다는 신참을...]

이진진; [물론 황금전장은 식구가 많겠지요.] [하지만 오빠는 주방에서 일한다고 했어요.] 필사적으로

이진진; [주방 인원은 그리 많지 않을 거 아니에요?]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거면 주방으로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주세요.]

무사1; [좋은 말로 할 때 물러가라.] 눈 부라리고

무사1; [네 오라비란 놈이 정말 본장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면 제 발로 집에 돌아갈 게 아니냐?]

이진진; [오빠가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적은 없어요.]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니 제발 만나게 해주세요. ?] 무사1의 소매를 잡고 애원하고

무사1; [어허 이년이 정말...] 손을 들어 이진진을 때리려 하고. 그때

귀견수; [무슨 일이냐?] 안쪽에서 나오며 말하고. 모든 사람들 돌아보고

[부단장님!] [부단장님을 뵙습니다.] 급히 인사하는 무사들

귀견수;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냐? 곧 손님들이 몰려올 텐데...]

무사1; [그것이...] 난감한 표정.

 

정문 안쪽. 건물들 사이에 서서 입구쪽을 보고 있는 여자무사1

여자무사1의 시점. 정문쪽에서 무사1이 귀견수에게 무언가 설명하고. 이진진은 애원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고

<이청풍...> <누이동생...> <제발 오빠를 만나게 해주세요.> 등의 말이 여자무사1의 귀에 들리고

여자무사1; [...] 무언가 생각하며 돌아서고

 

귀견수; [네 오빠는 분명 어제부터 본장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가면 속에서 눈을 번뜩이며

이진진; [... 그렇지요?] [제 오빠 여기에 있지요?] 안도하지만

귀견수; [하지만 네 오빠는 지금 본장에 없다.] 고개 젓고

이진진; [오빠... 오빠가 어딜 간 건가요?] 놀라고. 진삼낭도 흠칫하고

귀견수; [저녁 무렵, 도축장으로 고기를 더 가지러 간다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도 걱정을 하던 중이다.]

이진진; [오빠... 오빠가 황금전장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구요?] 놀라고.

진삼낭은 무언가 생각하고

귀견수; [우리도 곧 도축장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볼 생각이었다.] [궁금하면 먼저 도축장으로 가서 확인해봐라.]

이진진; [하지만 도축장에서 잤으면 새벽같이 돌아왔거나 연락이 있었을 텐데...] + 진삼낭; [돌아가자 진진아.] 이진진의 팔을 잡고

이진진; [엄마...] 돌아보고

진삼낭; [자식 문제로 폐를 끼쳤어요. 용서해주세요.] 고개 숙이고

귀견수; [신경 쓰지 마시오.] 같이 고개 숙이는데

진삼낭은 곧 이진진고 함께 황금전장 입구를 떠난다.

이진진; [엄마! 빨리 도축장으로 가봐요.] 진삼낭의 소매를 끌지만

진삼낭; [도축장에는 내가 가보마. 진진이 넌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려라.] 이진진의 손을 자신의 소매에서 떼어내고

이진진; [나도 같이 갈래요.] 따라가려 하지만

진삼낭; [진진아.] 멈춰서며 돌아보고. 엄한 표정

이진징; [...] 움찔 하며 마주 보고

진삼낭; [엄마 말 들어라.] 진지한 표정

이진진; (... 무서워.) + [...] 주눅 들고

진삼낭;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라.] [무슨 일 생기면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서둘러 가면서 말하고

이진진; [... 다녀오세요.]

대답하지 않고 멀어지는 진삼낭

이진진; (제발 오빠가 도축장에 있어야할 텐데...)

진삼낭; (황금수라들의 부단장이란 그자...) 귀견수를 떠올리고

진삼낭; (거짓말이 서툰 자였다. 가면 속에서 눈빛이 흔들린 걸 보면...)

진삼낭; (분명 청풍이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 이를 악물고

 

#74>

황금전장 내의 벽소소 거처. 여자무사들이 지키고 있고

벽소소; [이가놈의 가족?] 화려한 탁자에 진수성천을 차려놓고 먹다가 앞쪽의 여마주사1을 보고. 잠옷 차림이다.

여자무사1; [! 누이와 어미가 새벽부터 찾아와서 이청풍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벽소소; [물론 그냥 돌려보냈겠지?]

여자무사1; [귀견수가 설득해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벽소소; [이가놈의 어미와 딸이란 말이지?] 사악하게 웃고

오싹! 소름이 돋는 여자무사1

벽소소; [식욕이 마구 생기네.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걸 생각하니...] 사악하게 웃으며 음식을 먹는다

여자무사1; (이 독한 계집이 설마...) 무언가 떠올리며 소름이 돋는 표정이 되고

 

#75>

도축장. 여전히 아침. 이제 해는 떴다. 작업 준비를 하는 백정과 백정 마을의 여자들

도축장의 건물들 중 제법 그럴 듯한 건물. 도축장 주인 추노대가 주대육에게 고기를 보여주던 그 건물이다.

추노대; [청풍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의자에 앉아서 놀라고. 그 앞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진삼낭이 앉아있다.

진삼낭; [황금전장에서는 청풍이가 저녁 무렵에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진삼낭이 단정하게 앉아서 말하고

추노대; [그럴 리가 없네.] 고개 젓고

추노대; [노부가 황금전장을 떠나올 때 이미 날이 어두워졌었어.] [청풍이가 다시 여길 찾아왔다면 한 밤중이어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금릉 성문이 닫혔을 시간이야.]

진삼낭; [여길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겠군요.] 눈 반짝

추노대; [청풍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겠군.] 심각

진삼낭; [혹시 짐작 가는 일이 있으신지요?]

추노대; [사실은...] 주변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추노대; [어제 아침에 청풍이가 심하게 다친 채로 여길 왔었네.] 몸을 좀 앞으로 숙이면서 속삭이듯 말하고

진삼낭; [!] 놀라 눈 치뜨는 진삼낭

 

건물을 등지고 도축장을 떠나는 진삼낭

진삼낭의 뇌리에 떠오르는 추노대의 말

<혹시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청풍이와 노부가 황금전장에 도착한 직후 무림맹의 총관도 도착했었네.> 추노대의 말

진삼낭; (소면무상 장세명...) (무림맹의 제갈량이라는 그자가 청풍이와 같은 시간에 황금전장에 있었다면...)

진삼낭; (청풍이의 정체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청풍이가 실종된 것은 그 때문일 수도 있고...)

진삼낭; (어쩌면 청풍이는 장세명에게 사로잡혀있을 수도 있다.)

진삼낭; (어떻게든 황금전장 내의 상황을 알아내야만 한다.) 강렬한 표정

 

#76>

. 황금전장의 대청 앞마당. 장세명이 떠날 준비를 한다. 냉혈전호 벽초천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타고 온 마차가 근처에 서있고. 마차를 호위하고 온 무림맹 무사들은 말고삐를 잡고 서있다.

장세명; [양가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장주께서 택일하신 날자에 혼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벽초천에게 포권하고. 벽초천 뒤에는 벽세황과 이세창과 귀견수들이 서있다. 주변에 몇 명의 황금수라들이 더 있고

벽초천; [그리 알고 딸년의 혼례식을 준비해두겠소이다.] 마주 포권하고

장세명; [그럼 무림맹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포권하고

벽초천; [먼 길, 조심해서 살펴가시오.] 마주 포권하고

마차로 가는 장세명. 무사 한명이 마차의 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고

장세명; (이청풍이란 놈...) 마차로 다가가며 곁눈질로 주변을 조고

장세명; (결국 날 찾아오지 않았다. 무공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던 것같은데...) 마차로 올라가고. 마차 내부는 작지만 화려한 거실같다.

장세명; (스승을 소개해달라고 날 찾아왔으면 가슴에 나비 모양의 반점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을...) (아쉽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 마치 진행 방향으로 놓인 의자에 앉고. 밖에서 문을 닫아주는 무사

두두두! 다각 다각! 장세명이 탄 마차가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황금전장을 떠난다. 주변의 황금전장 무사들 마차를 향해 예를 취하고

장세명; [진배(陳配)!] 마차 안에 앉아서 누군가를 부르고

[예 총관님!] 마부석에 앉아있던 두 명의 무사 중 한 명이 고개를 조금 돌려 마차를 돌아보며 대답한다. 나이는 서른 살 정도.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

장세명; [본맹의 금릉지부에 전해라. 황금전장의 숙수 이청풍에 대해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모아서 보고하라고.]

진배; [존명!] 고개 좀 숙이며 대답하고

장세명; (이청풍... 이청풍...) (처음 본 이래 한시도 머릿속에서 그놈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장세명; (아연아가씨의 아들이든 아니든 그놈이 향후 무림의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같은 예감이 드는구나.)

 

멀어지는 장세명의 마차 일행. 대청 앞에 서서 그걸 보는 벽초천과 벽세황 부자와 이세창 귀견수등

벽세황; (일단 장총관에게서 의심스러운 언행은 감지되지 않았다.) (소소가 난잡하게 논 사실을 모른다는 건데...)

벽세황; (이청풍, 그놈 주장대로 장총관과는 요리에 관한 대화만 나눈 것일까?) 찡그리고. 그때

벽초천; [한 고비는 넘겼다.] 말하고. 흠칫! 하며 벽초천을 보는 벽세황

벽초천; [하지만 소소의 혼례가 끝날 때까지 추호의 방심도 있어선 안된다.] 건물 쪽으로 돌아서고

벽초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도록!] 말하며 걸어가고. 귀견수와 황금수라들이 따라갈 준비를 하고

이세창;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멀어지는 벽초천 귀견수와 황금수라들이 경호를 한다

벽세황; [나도 무림맹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소. 뒷일은 총관에게 맡기겠소.]

이세창; [걱정 끼쳐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개 좀 숙이고

곧 멀어지는 벽세황. 벽처천이 간 곳과 반대 방향으로 간다

이세창; (중요한 일은 다 내게 떠넘기는군.) 쓴웃음

이세창; (그만큼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이지만... 덕분에 당분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어.) 다른 곳으로 가려고 걸음 옮기고. 그러다가

[!] 흠칫! 한쪽을 보는 이세창.

건물 그늘에 유령같이 서서 이세창을 보고 있는 여자무사1

이세창; (냉상아...) + [내게 용무가 있느냐?] 다가가고

여자무사1; [예 총관님!] 고개 좀 숙이고

여자무사1; [큰 아가씨께서 총관님을 긴히 뵙자고 하시옵니다.]

이세창; [큰 아가씨가?] 흠칫! 하고

 

#77>

벽소소의 거처. 지키는 여자무사들도 없다.

여자무사1의 안내를 받아 그곳으로 오는 이세창. 높은 담장에 나있는 월동문을 통해 들어온다.

이세창; (큰 아가씨의 거처를 지키는 황금나찰들이 안보이는군.) 주변 둘러보며 여자무사1을 따라가고. 그때

여자무사1; [아가씨! 총관님을 모셔왔습니다.] 건물 앞에 서서 건물에 대고 말하고

<안으로 모셔라.> 건물에서 들리는 음성

여자무사1; [...] 대답하고. 이어

여자무사1; [들어가시지요.] 이세창에게 안으로 들어가길 권하고

이세창; [수고했다.] 건물 입구로 가고

이세창; [실례하겠습니다 큰 아가씨.]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가고

[...] 돌아보며 월동문쪽으로 가는 여자무사1

 

#78>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이세창. 이세창이 들어선 곳은 거실이다. 화려의 극을 달하고. 하지만 아무도 없다.

이세창; (거실에는 없군.) ! 문을 닫으며 둘러보고. 그때

<나 여기 있어요. 이리로 들어와요.> 거실 한쪽에 달린 문이 반쯤 열려있고 그곳에서 들리는 음성

이세창; (저긴 침실인데...) 의아해하면서도 다가가고.

이세창; [무슨 일로 저를 직접 보자고 하셨...] + [!] 문을 열고 들어가던 이세창의 경악. 눈 부릅

벽소소; [어서 와요 총관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화려한 침실에 놓인 크고 화려한 침대. 그 침대 위에 속살이 거의 드러나는 야한 잠옷 차림으로 누워서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벽소소.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다. 가운형의 잠옷인데 앞자락이 거의 다 벌어져 있다. 잠옷 속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벽소소의 자태를 부분 크로즈 업. 목덜미, 젖가슴, 아랫도리

이세창; (이런...) + [... 실례했습니다!] 급히 고개 돌리며 다시 나가려 하는데

벽소소; [총관이 그 문지방을 넘어가면...] 배시시 웃고

[!] 움찔! 하며 멈춰서는 이세창

벽소소; [비명을 지를 거예요.]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이 가시지요?] 마녀처럼 사악하게 웃고

이세창; (내가 자길 범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우겠다는...) + [... 왜 이러십니까 큰 아가씨?] 비지땀. 곁눈질로 보며

이세창; [제가 부지불식중에 큰 아가씨에게 죄를 지은 게 있는지요?] 식은땀 흘리며 울상을 짓고

벽소소; [총관님이 제게 잘못 한 건 없어요.] [다만 총관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요염하게 웃고

이세창;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분부만 하시면 따랐을 텐데...] 비지땀.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벽소소를 곁눈질

벽소소; [그럴 수가 없는 사정이 있답니다.]

벽소소; [난 떳떳하지 못한... 지저분한 일을 총관에게 맡길 생각이거든요.] 요염하게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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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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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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