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에 해당되는 글 366건

  1. 2023.08.21 [만상지존보] 제 62장 전설의 종말(완결) 2
  2. 2023.08.20 [만상지존보] 제 61장 잠룡의 부활 2
  3. 2023.08.19 [만상지존보] 제 60장 사경의 기연 3
  4. 2023.08.18 [만상지존보] 제 59장 최후의 강적
  5. 2023.08.17 [만상지존보] 제 58장 혈문의 등장
  6. 2023.08.16 [만상지존보] 제 57장 대겁풍 1
  7. 2023.08.15 [만상지존보] 제 56장 무르익는 풍운 1
  8. 2023.08.14 [만상지존보] 제 55장 천신보의 회합
  9. 2023.08.13 [만상지존보] 제 54장 선부의 후예
  10. 2023.08.12 [만상지존보] 제 53장 두 여인의 위기
  11. 2023.08.11 [만상지존보] 제 52장 마중지존 천마황의 부활 1
  12. 2023.08.10 [만상지존보] 제 51장 지옥뢰의 비밀
  13. 2023.08.09 [만상지존보] 제 50장 마궁 잠입
  14. 2023.08.08 [만상지존보] 제 49장 지옥의 밀실
  15. 2023.08.07 [만상지존보] 제 48장 독문의 성지, 만독성부
  16. 2023.08.06 [만상지존보] 제 47장 단천애의 비극
  17. 2023.08.05 [만상지존보] 제 46장 천랑동부의 기연
  18. 2023.08.04 [만상지존보] 제 45장 안타까운 여심
  19. 2023.08.03 [만상지존보] 제 44장 적룡제삼검결
  20. 2023.08.02 [만상지존보] 제 43장 대비신니
  21. 2023.08.01 [만상지존보] 제 42장 금붕도의 여걸
  22. 2023.07.31 [만상지존보] 제 41장 공포의 태양천화굉염신공
  23. 2023.07.30 [만상지존보] 제 40장 잠룡의 비상
  24. 2023.07.29 [만상지존보] 제 39장 뜨거운 재회
  25. 2023.07.28 [만상지존보] 제 38장 신기곡의 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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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十二 章

 

                    傳說終末

 

 

태산(泰山) 관일봉(觀日峯)!

 

그 준봉에 우뚝 자리한 한 채의 웅장한 장원이 있었다.

바로 혈문(血門)의 소요 분단인 소요장이었다.

잠잠하던 소요장, 갑자기 소요장에 일대혼란이 일었다.

으 악!”

크아악!”

크윽...!”

허공을 메아리치는 처절한 비명성! 그리고 섬뜩한 피보라...

뒤이어, 화 르 르...! ! 소요장 전체는 충천하는 화염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우하하하...! 혈문의 애송이들아! 노부 천마황이 여기 있다!”

천마황의 찌렁찌렁한 대소가 소요장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천궁패왕 곡강도지지 않겠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하하... 선배님! 천궁패왕도 양보할 줄 모릅니다!”

이어,

!”

와 아!”

일천(一千)의 맹호같은 군웅들이 광풍폭우같은 기세로 소요장을 휩쓸었다.

츠츠츠읏... 위 잉! 콰르릉 펑!

소요장은 뿌리째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 승산이 없다!”

치솟는 불길 속에서 한 명의 노인이 황급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대천성자! 아니, 자운형(紫雲形) 바로 소요장주였다.

그 자가 허공을 몸을 띄우는 순간,

자운형! 대비불광참(大悲佛光斬)을 받아랏!”

파파파 파악! 한 명의 여인이 교갈을 터뜨리며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림과 동시에 찬연한 강기를 내쳤다.

콰 릉! 콰콰쾅...!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름과 동시에,

크윽!”

자운형은 허공에서 피를 뿌리며 백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서랏!”

순간 여인은 재차 교갈을 내지르며 다시 그 자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나 그 순간,

하빈...!”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며 따뜻한 손이 여인의 어깨를 들러왔다.

여인 자하빈, 그녀는 가늘게 몸을 떨며 돌아섰다.

상공...!”

그녀의 뒤에 신선의 퐁모를 지닌 백의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자하빈은 군무현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

군무현은 자하빈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조금만 더 참으시오. 당신의 손으로 그 자의 목을 벨 수 있도록 해주겠소!”

... 상공!”

자하빈의 어깨가 여리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대전(大殿)!

온통 핏빛 일색의 웅장한 대전이었다.

섬뜩한 피()의 정화(精華)가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곳, 전면에는 높은 태사의 하나가 놓여 있다.

그 태사의 위, 한 명의 중년인이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선비처럼 고아하고 청수한 기품의 인물. 극히 고요한 기도에 만인을 짓누르는 위엄이 은은히 묻어나는 인물이었다.

그의 앞, 부들부들 몸을 떨며 오체복지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 ... 혈종(血宗)! 용서하소서!”

한때 대천성자(大天聖子)라고 불리우던 자, 자운형 바로 그자였다.

문득, 청수한 중년인의 눈빛이 깊숙이 빛을 발했다.

자운형... 애초에 그대를 거두지 말았어야 했다. 그대가 혈문(血門)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 무슨 말씀을...!”

자운형은 파르르 눈꼬리를 경련하며 고개를 들었다.

중년인은 조용한, 그러나 차가움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자운형의 말끝을 잘랐다.

저 소리가 안들리느냐?”

“...!”

자운형의 몸이 흠칫 떨렸다.

함성! 대지(大地)가 함몰되어 버릴 듯한 어마어마한 함성이 그의 고막을 강타했던 것이다.

와 아!”

...!”

그것은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

자운형 안색이 시커멓게 질리고 말았다.

중년인, , 혈종제(血宗帝)는 차가운 냉음을 흘렸다.

구류천종이 그대의 뒤를 따라온 것이다!”

순간,

으으...!”

자운형의 전신은 극도의 공포로 부르르 떨렸다.

혈종제는 대전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얼음같이 싸늘하게 내뱉았다.

네가 불러들인 화이니... 네가 가서 수습하라!”

이어, 그는 무섭게 자운형을 노려보며 말했다.

본문의 지금 힘은 천하에 구할 이상이 분산되어 있어... 형세를 피할 수 없다!”

... 알겠습니다!”

자운형은 피가 배이도록 깨물었다. 이어, ! 그 자는 즉시 대전 밖으로 몸을 날렸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콰르르릉! 돌연 대전의 문이 박살나며 폭음이 터져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 악!”

밖으로 몸을 날리던 자운형이 피를 뿌리며 다시 튕겨져 들어왔다.

뒤이어, ! 한 명의 백의인이 대전 안으로 날아들었다.

순간, 혈종제의 짙은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구류지존... 그대였던가?”

그는 침중한 음성으로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백의인, 군무현은 신비한 광채가 감도는 눈으로 혈종제를 주시했다.

그렇소이다. 구궁산에서 헤어진 후 두 달만이구려!”

혈종제의 청수한 얼굴에 한줄기 그림자가 덮였다.

으음... 그대를 과소평가한 것이 실수였군!”

하나, 그의 안색은 좀처럼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깊게 가라앉은 심유한 눈빛, 그 눈빛 속에 깃든 신비한 기운은 차라리 은은한 두려움을 느끼게할 정도였다.

그때,

... ...!”

전신이 피투성이로 변한 자운형은 엉금엉금 기다시피하여 대전 밖으로 달아났다. 하나, 그 자의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군무현과 혈종제, 그들은 아예 자운형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문득, 혈종제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나이로 보아... 이토록 거대한 잠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었는지 궁금하군!”

그의 어조는 마치 친한 지기(知己)와 대화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느껴졌다.

군무현, 그 역시 일점의 흔들림도 없는 물처럼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 안배가 이미 천오백 년 전에 이루어졌다면 믿겠소이까?”

그의 반문에 혈종제의 담담하던 안색이 크게 흔들렸다.

순간, 파파팍! 그가 움켜쥔 태사의의 팔걸이가 가루로 부서져 흩어졌다.

만년자단목(萬年紫丹木)으로 만들어진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태사의가, 그는 애써 격정을 눌러 참는 기색이 엿보였다.

참담할 정도로 무거운 음성,

만상자(萬像子)가 베푼 안배인가?”

그는 그렇게 군무현에게 물었다.

 

한편, 밖은 완전히 아수라의 혈전장으로 변해 있었다.

와 아!”

쳐라!”

천지를 허물어뜨릴 듯 환호하는 군웅들의 함성.

그 뒤를 잇는 것은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크아아 악!”

으으 윽!”

케 엑!”

대전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혈문의 수하들은 속속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전력(全力)을 거의 중원지각에 쏟아 넣었던 혈문, 그들로서는 너무도 뜻밖의 급습이었기 때문이다.

콰 르르릉! 퍼 엉! !

혈문은 폭음 속에 급속도로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으음... 결국 혈종일맥(血宗一脈)은 만상자 일인에게 철저히 패하는군!”

혈종제는 참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군무현, 그는 묵묵히 혈종제의 모습을 주시했다.

아직 혈종(血宗) 그대가 있지 않소?”

그의 말에 혈종제는 입가에 고소를 떠올렸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혈종일맥의 일천오백 년 심원이 이루어지자마자 어이없이 무너지다니...!)

그는 내심 암울하게 중얼거렸다.

이어, 태사의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혈종제, 그는 자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아직 본종이 남아있었지!”

군무현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우뚝 선 혈종제,

문득, 위 잉! 그의 몸 주위로 투명하고 맑은 혈기(血氣)가 일어났다.

순간, 군무현이 두 눈에 경탄의 빛이 스쳤다.

훌륭하오. 혈종천강을 극성까지 이루다니... 과거 혈천종(血天宗)보다 배는 강하구려!”

말을 마친 순간, 우 우 웅! 군무현의 주위로도 웅장하기 그지없는 무형강기가 일어났다.

그 모습에 혈종제의 깊숙이 가라앉는 두 눈이 번쩍 빛났다.

헛허... 놀랍군. 태양천제, 빙백염후가 연수하는 것 이상하군!”

과찬이외다!”

군무현은 담담히 웃어보였다.

혈종제, 그도 희미하게 웃었다.

조심하게!”

말을 마치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위 이 잉! 츠츠츠... 츠읏! 혈종천강이 마치 물속으로 퍼지는 핏방울처럼 섬뜩한 혈선을 그리며 사위를 뒤덮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 그 역시 혼신의 공력을 끌어 올렸다.

구류귀허대천강은 만상자 어른의 최후절기외다!”

한순간, 우 웅! 극히 허허로운 무형의 기운이 크게 확대되어 일어났다.

그것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기운, 어디에도 없으면서 또한 천하를 가득 메우는 지극히 큰 기운이었다.

다음 순간, 콰르르르르 릉! 콰 쾅! 거창한, 실로 가공할 굉음이 터져올랐다.

! 콰르릉... 대전의 거대한 지붕이 폭발음을 견디지 못하고 백 장 밖으로 박살나면서 날아갔다.

혈종제는 신형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으음... 대단하군!”

그 순간,, 스스스스... 그의 쌍장에서 맑디 맑아 투명하기 그지없는 혈영(血影)이 신비하게 어우러져 나왔다.

혈강대파천황절!”

혈종제의 입에서 천지를 허물어뜨릴 듯한 한소리 외침이 터져나온 것은 그와 동시였다.

쿠쿠쿠쿠 쿵! 구천지옥까지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릴 듯한 가공할 굉음.

그와 동시에, 파파파파 팍! 콰 릉... 거창한 혈강이 무려 수백 장을 치솟아 올랐다.

군무현, 그는 천천히 한 걸음을 혈종제를 향해 내밀었다.

동시에,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

낭랑한 일성이 장내를 후비고들 듯 분명히 울려퍼졌다.

그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소리도 없고, 빛도 없었으며 형체조차 없었다.

하나,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천만근의 힘이 혈강을 둘로 가르며 짓쳐들었다.

...!”

혈종제는 절망의 탄성을 발했다.

그는 보았으며 또한 느꼈다. 자신의 혈종천강, 그것으 너무도 무력하게 갈라지는 것을.

다음 순간, 스스스스... 폭음도 없는 가운데, 삼백 장 내에 있는 모든 것이 모래로 화해 쓰러졌다.

인간도, 전각도, 수목도 암석도 모두...

혈종제. 그는 무섭게 신형을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몸을 세웠다.

이것은...?”

적룡천종 최후의 절학 심극검(心極劍)이오!”

군무현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혈종제의 안면이 창백하게 질렸다.

심어초극류... 훌륭했네!”

그 말을 마치는 순간, 스스스... ! 그의 몸은 믿을 수 없게도 한점 먼지가 되어 부서지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 그는 모든 것이 사라진 폐허에 황량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문득,

끝났는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낮고 무심한 중얼거림, 그는 허탈한 눈빛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멀리 자하빈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망연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힘없이 서 있는 그녀의 발 아래, 그곳에는 전신이 난도질 당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한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자운형! 바로 그 자의 시신이었다.

하빈...!”

군무현은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말없이, 그러나 뜨겁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

자하빈은 허탈감에 쓰러질 듯한 교구를 군무현의 넓은 가슴에 파묻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깨를 들먹이며 낮게 오열했다.

그때였다.

!”

와아...!”

구류지존(九流至尊) 만세!”

문득, 천지가 떠나갈 듯한 군웅들의 우렁찬 함성이 군무현의 귓전을 흔들었다.

 

< 大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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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十一 章

 

                  潛龍復活

 

 

 

천마애(天魔崖)!

인간의 발길이 닿지않는 천고의 험지(險地). 하나, 군무현에게는 정이 들대로 든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군무현, 그는 지금 천마애를 향하고 있었다.

약속대로 신기황을 천마애의 음산한 동굴에서 구해오기 위해서였다.

하하하... 어르신네! 무현이 왔습니다!”

천마애가 온통 진동되는 엄청난 목소리.

! 이백 장의 단애를 나뭇잎같이 가볍게 떨어져 내리는 인물이 있었다.

산뜻한 백의를 차려입은 신선같은 풍모의 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때, 단애 밑의 한 음산한 동굴에서 격동에 찬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헛허... 무현! 이녀석, 기어코 돌아왔구나!”

그렇습니다. 무현이 돌아왔습니다.”

군무현은 호쾌한 음성으로 대답하며 동굴의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 안, 흐릿한 야명주 불빛이 적막하게 동굴 안을 비추고있었다.

동굴의 중앙, 지극음령수액에 몸을 담그고 있는 봉두난발의 괴인이 있었다.

신기황! 바로 그였다.

그는 온통 격동을 금치못하는 표정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어르신네!”

군무현 역시 벅찬 격동을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원한에 불타던 어린 소년을 부모처럼 훌륭하게 길러준 친인.

어르신네,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군무현은 신기황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신기황의 노안(老眼)에 축축한 물기가 고였다. 그는 대견스러운 눈으로 군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 녀석! 완벽하게 자랐구나. 천지십강(天地十强)이 무색할 강자가 되다니...!”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재회(再會), 두 노소(老少)는 오랜만에 맞는 재회의 기쁨을 마음껏 나누었다.

군무현은 정()이 어린 눈으로 신기황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르신네, 그동안 쓸쓸하셨지요?”

그 말에 신기황은 초탈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삼십년을 이렇게 살아온 노부다. 반년의 기다림이 무어 그렇게 대수냐?”

군무현, 문득 그는 품속에서 작은 옥함을 꺼내 신기황에게 내밀었다.

만년빙지로구나!”

그렇습니다. 몇 달 빨리 구해올 수 있었는데 사정이 있어 지금에야 드리게 되었습니다!”

허허... 녀석!”

신기황은 대견함을 금치못하며 인자한 눈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노안에서는 격동의 눈물이 소리없이 고여 흐르고 있었다.

“...!”

그 모습에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존경의 눈으로 신기황을 응시하며 문득 힘주어 말했다.

이제 어르신네를 편히 모셔서 은혜를 갚겠습니다!”

신기황은 초탈하게 웃었다.

허허... 이 늙은이가 무슨 덕이 있어 말년에 이같은 홍복을 누리게 되는지 모르겠군!”

하나, 그의 두 눈에는 기쁨과 감탄의 빛이 번지고 있었다.

“...!”

“...!”

두 노소는 마주 앉은 채 뜨거운 눈빛을 나누었다.

진실스러운 정()이 있는 그들의 눈빛, 콰르르... 위 잉! 천마애 주위의 천애장비대진(天崖藏秘大陣)은 여전히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며 시커먼 운무를 뿜어내고 있었다.

천마애. 이곳도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하리라.

 

X X X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

 

천하가 모르는 중에 자하곡은 대풍운(大風雲)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다.

천하무림인(天下武林人). 일만(一萬)의 정예가 자하곡을 중심으로 방대한 지역에 모여 있었다.

구류천종의 삼천정예들, 정의맹(正義盟)의 사천(四千) 의협지사들, 녹림칠십이채의 일천호걸, 독황궁(毒皇宮)의 독인(毒人) 일천 명, 그리고, 빙백궁(氷魄宮)과 대초원의 일천여파, 자하곡은 혈문에 대항하는 천하무림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석양 무렵, 문득 자하곡으로 들어서는 일노일소(一老一少)가 있었다.

허허... 제법 훌륭하구나. 네 처첩들 중에는 너만한 지혜를 가진 아이가 있다니... 노부는 이제 화초나 기르면서 살아야겠다!”

노인은 창노한 웃음을 터뜨리며 흡족한 빛을 지었다.

신기황, 바로 그였다. 일소(一少)는 물론 군무현이었다.

그들은 자하천류대진을 천천히 통과했다. 그때,

지존!”

군무현을 본 구류천종도들은 황급히 오체복지했다. 이어,

가주!”

일백적룡검대의 검수들도 급히 한쪽 무릎을 꿇며 입을 모아 외쳤다.

신기황,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허... 자하천류대진까지 완벽히 재현하였구나!”

그는 자하천류대진을 둘러보며 만면에 감탄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자하곡의 대전 쪽에서 한 명의 청포노인이 반색을 하며 달려나왔다.

하하... 이게 누구시오?”

우람한 체구의 청포노인, 그는 신기황을 보며 만면에 격동과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천마황(天魔皇)! 헛허... 이게 얼마만이오?”

신기황과 천마황, 그들은 두 손을 굳게 움켜잡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실로 얼마만의 만남인가? 그때,

상공...!”

자하곡의 대전에서 여러 명의 여인들이 걸어나왔다.

남궁혜미를 비롯하여, 자하빈과 위지사영, 극밀환후, 빙백염후 등... 한데, 그 여인들 중 한 명에게 눈길이 닿는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기품있는 자의미녀, 한데, 그녀가 입고 있는 자의(紫衣)는 몸에 딱 맞지않고 헐렁하게 커보였다.

바로 여인들이 아기를 가졌을 때 나온 배를 감추기 위해 입는 옷이 아닌가?

독황후(毒皇后)! 그렇다. 자의미녀는 바로 독황후였다.

일순 군무현과 독황후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그러자,

...!”

독황후는 얼굴을 가리며 그대로 자하전 쪽으로 달려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천마황이 문득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지존! 아무리 지존이라도 노부의 외손녀를 울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네!”

그러자, 자하빈이 얼른 군무현의 옷자락을 잡아 끌었다.

상공! 어서 약란 동생을 달래 주세요!”

상공, 어서요...!”

남궁혜미와 극밀환후도 군무현을 자하전 쪽으로 떠밀었다.

“...!”

군무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주춤주춤 하더니 못이기는 척 자하전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에 신기황은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허허... 천하의 구류지존도 무서운 것이 있었군!”

하하...!”

호호호...!”

그 말에 중인들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 군무현은 문을 닫고 자하전의 침전으로 들어섰다.

붉은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

... ...!”

독황후가 침상에 엎드린 채 낮게 흐느끼고 있었다.

“...!”

군무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뻐근해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독황후,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

몸속에 그의 작은 생명을 키우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군무현은 천천히 침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독황후의 뒤에 걸터앉으며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약란...!”

독황후 제약란의 어깨가 일순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이윽고, 그녀는 울움을 그치고 군무현을 돌아보았다.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 그것은 창백하고 초췌해 보였다.

그 모습에 군무현은 새삼 가슴이 뭉클해 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 그는 독황후를 천천히 안아 침상에 바로 눕혔다.

“...!”

독황후는 눈을 꼭 감은 채 군무현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군무현은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진정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미안하오. 당신이... 아기를 가진 줄은 미처 몰랐었소!”

“...!”

독황후의 길고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문득, 군무현은 독황후의 불룩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독황후는 다시 한차례 몸을 떨며 가볍게 얼굴을 붉혔다.

군무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손끝을 통해 전해오는 한 생명의 꿈틀거림,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의 일부요 그의 분신이었다.

군무현의 가슴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회로 뒤덮였다. 그것은 새로운 삶을 맞는 듯한 벅찬 기대감. 그리고 무한한 환희의 감정이었다.

그는 독황후가 한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약란...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는 진정어린 음성으로 말하며 독황후의 몸을 끌어안았다.

...!”

독황후는 나직한 신음을 발하며 군무현의 품에 몸을 묻었다.

군무현, 그는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독황후의 하복부에 얼굴을 묻었다. 이어, 정성스럽게 그 부분을 애무하는 것이었다.

... ...!”

독황후는 희열의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기다려온 날인가? 그녀는 군무현의 머리를 두 팔로 꼭 껴안았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자하곡 내부의 넓은 전청!

십여 명의 인물들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군무현을 비롯하여, 신기황과 천마황, 현의천신, 천궁패왕 곡강, 남궁혜미, 자하빈 등이 그들이었다.

남궁혜미, 그녀는 하나의 넓고 큰 지도 앞에 앉아 있었다.

지도(地圖). 그곳에는 수백 개의 붉은 점이 군데군데 찍혀 있었다.

남궁혜미는 지도를 일견한 후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남궁혜미는 지도를 일견한 후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혈문은 막강한 힘으로 천하를 점령하고 있어요. 모두 팔백칠십네 곳에 분단을 세워 놓았어요. 하나, 오히려 그 때문에 그들의 힘은 너무 넓게 분산되어 불리한 상태에 놓여 있지요.”

그녀의 설명을 듣고난 신기황, 그가 눈썹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 의외로 쉽게 무너뜨릴 수 있겠군!”

남궁혜미는 혜지가 가득한 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중원 전역에 퍼져있는 구류천종의 힘으로 교란시켜 놓기만 해도 단시일 내에 혈문이 벌여놓은 세력은 사상누각이 되고 말거예요. 문제는 아직도 혈문(血門)의 본부(本府)의 위치를 모른다는 점이에요!”

듣고 있던 신기황이 그녀의 뜻을 알아채고 물었다.

아이야! 네 생각은 대천성자(大天聖子)란 가짜를 이용할 생각이냐?”

남궁혜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개를 패면 주인에게로 달아나는 것이 상례지요!”

허허... 개를 팬다. 좋은 생각이다!”

신기황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마주쳤다.

남궁혜미, 이번에는 그녀가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상공께서는 달리 분부하실 일이 없으신지요?”

군무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혈문의 본부를 치는 것은 구류천종의 정예와 적룡검대, 그리고 일천독인(一千毒人)으로 충분하오. 나머지 세력어 구류천종을 도와 천하에 널려있는 혈문의 분단을 철저히 괴멸시키시오!”

알겠어요!”

남궁혜미는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신기황이 군무현을 바라보며 일렀다.

헛허... 결정이 되었으면 지체없이 시행하는 것이 병법(兵法)의 상수이니라!”

군무현은 염려말라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어르신네들께서는 이곳에서 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순간, 신기황은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내질렀다.

이녀석아! 이 늙은이가 젊은 놈들 몇 두들겨 잡지 못할 것 같으냐?”

천마황도 호쾌한 대소를 터뜨리며 맞장구를 쳤다.

하하하...! 노부는 외손녀인 독황궁주가 몸이 무거워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두 배로 손을 늘려야겠네!”

군무현은 하는 수 없이 빙그레 웃었다. 이어, 그는 좌중에서 몸을 일으켜 신기황과 천마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그럼 소생과 함께 태산(泰山) 소요장으로 가십시오!”

그 말에 신기황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냐! 진작 그랬어야 옳았다!”

천마황도 대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 어서 떠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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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十 章

 

              死境奇緣

 

 

 

황량한 단애 아래,

크으... 죽지 않은 것은... 순전히 신기황 어르신네 덕분이다. 그분이 나의 골격을 철골(鐵骨)로 만드시지 않았다면...!”

문득 고통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한 명의 인물이 풀더미 속에서 기어나왔다.

전신이 온통 흙과 피로 뒤범벅되어 형편없는 몰골.

! 군무현! 그는 바로 군무현이 아닌가?

그는 혈종제(血宗帝)와의 충돌로 인해 무너지는 지반에 쓸려 천인단애로 떨어진 것이었다.

... 우선... 어디에 가서... 운공을 해야한다!”

군무현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무너진 흙더미 사이에 묻힌 하나의 동혈(洞穴)이 빠꼼하게 뚫려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도 평범하여 언듯 지나치면 볼 수 없는 동굴이었다.

... ...!”

군무현은 전신 골격이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고통으로 안면을 이지러뜨렸다. 하나,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물며 천천히 동굴을 향해 다가갔다.

이어, 그는 거의 기다시피하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동굴 속으로 들어서던 군무현, 그는 일순 흠칫했다.

동굴의 변면, 그곳은 기이하게도 온통 기이한 문양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전체에 걸쳐 빽빽이 뒤덮여 있는 문양, 그것은 마치 올챙이와 같은 문양이었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고대...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아닌가!”

벽 전체를 가득 뒤덮고 있는 기이한 형태의 문양. 그것들은 갑골문자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고어(古語)였다.

군무현의 눈빛은 강렬한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는 곧 정신을 집중하며 고통도 잊은 채 갑골문자를 해독해 나가기 시작했다.

만상자(萬像子)... 인연있는 자를... 위해 남긴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급벽히 변화했다.

... 만상자(萬像子)! 이곳에 만상자의 손길이 미치다니...!”

그는 경악하며 흥분과 기대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구류천종(九流天宗)을 세운 인물, 그가 바로 만상자가 아닌가?

군무현은 만상자의 기묘한 안배로 인해 구류지존이 되었다. 한데, 다시 또 다른 만상자의 안배를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격탕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계속 벽면의 갑골문자를 해독해 나갔다.

 

혈종(血宗)의 야심을 막기 위해 노부는 구류천종(九流天宗)과 선부(仙府)를 세웠다...

 

군무현은 갈수록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 선부(仙府)를 세우신 분도 역시 만상자였단 말인가?”

그것은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천오백 년 전, 당시 천하는 한 명의 희대의 마종에 의해 피로 씻기고 있었다.

 

고금제일마(古今第一魔) 혈천종(血天宗)!

 

바로 그에 의해서였다.

이를 보다못한 한 명의 은거기인이 세사에 나와 혈천종(血天宗)을 무공과 기지로써 꺾어 제거했다.

그가 바로 만상자였다. 하나, 천하인들은 아무도 몰랐다.

고금제일마 혈천종이 만상자에 의해 죽었음을. 다만, 혈천종이 의문의 실종을 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고금제일마 혈천종! 그는 만상자의 손에 죽어가면서 엄청난 저주를 남겼다.

 

흐흐... 본종은 죽어도 본종(本宗)의 뿌리는 건재하다. 늙은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즉시... 본종의 후예가 천하를 혈세(血洗)하리라!

 

천기를 살핀 만상자, 그는 과연 자신으로서도 일시에 제거할 수 없는 거대한 마()의 뿌리가 박혀 있음을 깨달았다.

뭔가 지속적인 방편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생각 끝에 만상자는 극락천존(極樂天尊)으로 하여금 선부(仙府)를 세워 혈천종의 후예를 제거케 한 것이다.

 

그러나... 노부가 죽고 천오백 년이 흐른 뒤, 혈천종의 마기가 초극(招極)에 이르러 선부(仙府)마저도 무너지리라. 이를 걱정하여 노부가 만든 마지막 안배가 그대 구류지존(九流至尊)이니라. 이제, 그대를 위해 마지막 선물을 남기는 바이다...

 

그와 같은 글 아래에는 지극히 심오하고 난해한 구결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구류귀허대천결(九流歸虛大天訣)!

 

그 구결의 제목은 그러했다.

순간,

... 이것은...!”

군무현의 안면에 숨막힐 듯한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도 심오박대한 내공심법이었다.

태양천제나 빙백염후의 내공심법마저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연 그런 내공심법이 천하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들 정도였다.

군무현은 온 몸이 격심하게 떨리는 엄청난 격동에 휩싸였다.

이것이라면... 태양(太陽)과 빙백(氷魄)의 상반되는 양극기공을 합일(合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희열과 격동, 그것은 군무현이 겪은 최대의 격동이었다.

 

스스스... 신비한 적백(赤白)의 강기가 반투명한 색채로 퍼지며 사위를 뒤덮고 있었다.

스스스... 위 잉! 희고 붉은 두 가지의 상반된 강기는 서로 어울리며 주위로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데 한 순간, 우르르르... 츠츠츠읏! 상반된 두 가지 강기는 급격히 하나로 녹아들어 무형의 극강한 기류로써 합쳐지는 것이 아닌가?

스스... 파파파 팟! 그 무형강기가 뻗어나가는 곳에는 무엇하나 견디어 내는 것이 없었다.

모조리 박살나 가루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문득,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

신비한 무형경기 속에서 한 소리 정대하고 낭랑한 일성이 터져나왔다.

다음 순간, 콰르르르 릉! 우르릉... ! 오백 장 밖의 석벽이 거창한 폭음과 함께 송두리째 허물어져 내렸다.

하나의 널찍한 암반 위, 한 명의 괴인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온통 먼지와 피로 뒤범벅된 지저분한 옷차림, 봉두난발로 제멋대로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턱밑을 시커멓게 뒤덮고 있었다.

도저히 나이를 분간할 수 없는 모습. 하나, 눈빛, 괴인의 눈빛만은 실로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천하를 담을 듯 정심하고 유현하게 빛나는 눈빛,

문득,

두달... 천하를 혈문(血門)에 내준 것은 두달로써 충분하다!”

괴인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한조각 푸른 천이 가려져 있는 듯이 아스라이 먼 하늘, 바로 그때였다.

구 우! 한 마리 천리신응이 쏜살같이 괴인의 어깨 위로 꽂히듯 내려와 앉았다. 그러자, 괴인은 눈을 빛내며 천리신응의 발목에 묶여져 있는 헝겊을 끌러냈다.

 

지존께 알립니다.

감숙 일대로 일단의 여인들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대초원(大草原)과 북해(北海)에서 오는 여인들로 보입니다. 그들은 감숙 일대로 나가있는 빙백궁과 충돌한 것으로 예측됩니다!

신응(神鷹).

 

...!”

괴인의 입가에 한줄기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 푸스스... 그가 가볍게 힘을 주자 헝겊조각은 재로 화해 흩어졌다.

문득, 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묵빙현하와 말썽꾸러기 오미(娛美)가 마침내 연공을 끝낸 모양이군!”

군무현!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달 동안 이곳 절곡에서 지내왔다. 그의 형색이 말이 아닌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나, 그는 두 달동안 엄청나게 변모했다.

이제 단연코 그는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된 것이다.

천험의 단애 밑에 자리한 음침한 절곡(絶谷).

군무현은 그곳에 앉아서도 천하정세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혈문(血門)! 그동안 그들은 천하를 장악했으며 사백육십개 문파의 장문인을 자기들의 괴뢰로 세웠다.

그들은 곧 무림의 법()이었다. 그 자들의 만행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에 그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자가 오천 명, 능욕을 당하는 아녀자들은 무려 일만(一萬)에 달했다.

실로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악행을 다 일삼고 있은 것이다.

군무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문득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마기(魔氣)가 하늘에 이르렀으니... 이제 철퇴를 받을 시기가 다가왔다!”

반각 후,

우 우!”

한소리 웅후한 장소가 절곡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 환영(幻影)같은 한 줄기 그림자가 절곡을 빠져나갔다.

 

X X X

 

천마궁(天魔宮)!

정의맹의 급습으로 불탔던 천마궁은 전보다 두 배 더 증축되었다. 실로 그 규모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또한, 그 가공할 위용은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하기 이를데 없었다.

혈문(血門)의 천마단(天魔壇)!

당금 천하무림의 마도(魔道)를 지배하는 곳. 단주는 천마제군(天魔帝君)이었다.

 

천마전(天魔殿)!

 

아아... ...!”

자지러질 듯한 여인의 교성이 뜨겁고 끈끈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화의 극을 이룬 침실, 침상 위에 두 명의 남녀가 벌거벗은 채 서로 뒤엉켜 있었다.

흐흐... 역시 하북제일미(河北第一美)!”

사내는 교활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 ...!”

그 자는 미끈하게 빠진 몸매의 젊은 미부를 올라탄 채 욕정을 발산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흐윽... 아아...!”

그 밑에 깔려 몸부림치고 있는 여인, 그녀는 하북팽가(河北彭家)의 안주인이며 하북제일미(河北第一美)라 불리는 홍우비연(紅羽飛燕)이었다.

남편인 개산신권(蓋山神拳)을 천마제군의 마수에 잃고 지금은 그 자의 노리개가 되어 밤낮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흑흑... 차라리... 나를 죽여요... 아흐윽... ...!”

홍우비연은 숨넘어가는 비명을 내지르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쯧쯧... 늙은이의 꼴이 과히 보기에 좋지않군!”

문득 나직하게 혀차는 소리가 천마제군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순간,

(!)

천마제군은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듯 욕정이가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때,

... 어멋!”

홍우비연은 돌연 소스라칠 듯한 외침을 터뜨렸다.

천마제군의 어깨 너머로 누군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천마제군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죽어랏!”

쿠 쿵! 그 자는 음갈과 함께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하나,

쯧쯧... 앞이나 가릴 것이지. 그 볼품없는 물건을 굳이 구경시켜야 하겠는가?”

재차 여유있고 태연한 음성이 바로 천마제군의 머리 위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잔뜩 비웃음을 담은 모욕적인 말이었다.

대경실색하며 급히 고개를 돌리던 천마제군,

!”

일순 그 자는 아연하여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천정에 한 명의 괴인이 거미처럼 찰싹 달라붙은 채 침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지저분한 누더기 옷을 걸친 괴인, 천마제군은 일순 어이가 없었다.

하나,

이놈! 죽어랏!”

그 자는 분노하며 성난 사자처럼 무자비하게 장을 후려쳤다.

파파파 팍! 시커먼 강기가 벼락치듯 천정의 괴인을 향해 짓쳐갔다. 하나,

현천묵강수라...!”

괴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피하거나 맞받을 생각도 하지않고 날아오는 강기를 태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한순간, 쿠 쿵! 강기는 정확히 괴인의 가슴을 가격했다.

하나,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 ...!”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 쪽은 오히려 천마제군이었다.

... 나오랏!”

마침내 천마제군은 분노로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 그 자는 발악하듯 외치며 침실을 뛰쳐나갔다.

천정의 괴인, 그는 침상 위에 알몸으로 망연히 누워있는 홍우비연에게 힐끗 시선을 던진 후 몸을 움직였다.

스스스... 그때, 밖으로 뛰쳐나온 천마제군은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떴다.

... ... 이럴 수가...!”

그 자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사색이 되어 몸을 비틀거렸다.

곳곳에 널려있는 혈문의 마도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때,

세상에 있어 보았자 소용없는 쓰레기들인지라 일찌감치 처분해 버렸다. 지옥에 가면 아마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괴인이 천천히 걸어나오며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순간, 괴인은 부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 이제 알았다. 네놈은... 죽었다고알려진 구류지존!”

괴인, 즉 군무현은 그제서야 여유있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본인이 죽었다고 믿는 것은 혈문의 일방적인 생각에 불과했지!”

... ...!”

천마제군은 안색이 시커멓게 질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하나, 그 자는 일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현천마라복강쇄!”

그 자는 공포를 떨쳐버리기라도 할 듯 벼락같이 외치며 쌍수를 후려쳤다.

하나,

태양광풍륜을 아는가?”

슈슈 슉! 쐐 액! 태연하게 중얼거리던 군무현의 헐렁한 소매 속에서 검붉은 륜()이 번개같이 뻗어나왔다.

! 그 륜에서는 삽시에 천지를 불태워 버릴 듯한 극양지기가 확 폭발하는 것이 아닌가?

직후, 화르르! 콰콰 쾅!

크 악!”

거창한 폭음과 함께 단말마의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보라! 놀랍게도 주위 백장이 삽시에 재로 화해 스러져 버린 것이 아닌가?

그 속에 천마제군의 벌거벗은 몸뚱이는 불길에 휩싸여 타올랐다.

화르르! 이윽고, 츠츠읏! 군무현은 되날아온 태양광폭륜을 회수하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미(娛美)가 보고 싶은걸!”

스스스스... 한소리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신형은 삽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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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九 章

 

                    最後强敵

 

 

 

순식간에, 혈문의 수하들은 군웅들을 에워쌌다.

바로 그때,

으하하하!”

갑자기 군무현이 미친 듯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순간,

...!”

... 지독한 내공이다!”

대천성자와 천마제군은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그것은 그 자들 두 사람의 귀에만 엄청난 벽력셩이었다. 그때, 군무현은 문득 지옥뢰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노선배님! 언제까지 구경만 하실 것입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하하하...!”

군무현의 그것만큼이나 거창하고 패도적인 장소성이 지옥뢰에서부터 터져나왔다.

순간, 천마제군의 안색이 홱 돌변했다.

... 설마... 천마황 그 늙은이가...!”

그 자는 불신과 회의의 표정으로 두 눈을 한껏 부릅뜨며 지옥뢰를 노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쾅 콰콰쾅...! 콰르르 펑!

가공할 폭음과 함께 지옥뢰의 둔중한 철문이 산산조각으로 박살나 버렸다. 그와 동시에,

천마무적(天魔無敵)!”

마황재림(魔皇再臨)!”

천공을 떨어울릴 듯 우렁차고 당당한 외침이 두 차례에 걸쳐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콰르르르 릉! 쿠쿠쿵...! 지옥뢰가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우르르르! ! ! 굉음 속을 뚫고 수백줄기의 인영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들은 마치 천마(天魔)가 하늘로 용트림하며 오르듯 엄청난 위세였다.

흐흣... 제군(帝君), 이놈! 노부를 위해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천마황(天魔皇). 그는 나타나자마자 다짜고짜 천마제군을 덮쳐갔다. 그 위세는 가히 가공지경이었다.

순간,

... ...!”

천마제군은 천마황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 다급히 오십장 밖으로 물러났다.

직후, 콰콰콰 콰쾅! 천만근의 화약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한 무지막지한 굉음이 장내를 뒤집어 엎었다.

그와 함께,

크 악!”

으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천마황의 단 일장에 주위 삼십장이 완전히 초토화로 변하고 만 것이 아닌가? 실로 가공할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노선배님! 포위망을 뚫어야겠으니 도와주십시오!”

군무현이 천마황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그의 외침에 천마황은 달아나는 천마제군을 힐끗 바라본 후 곧 군무현에게로 몸을 날렸다.

핫하... 반각만 늦게 노부를 불러냈다면 노부는 발작하고 말았을 것이네!”

그는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것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전면의 혈문의 마도들을 향해 벼락같이 장을 내질렀다.

우 웅! 콰르르릉... 가공할 폭음이 폭죽터지듯 치솟아 올라 장내를 뒤흔들었다.

다음 순간, 혈문의 절정고수들은 비명과 함께 가랑잎처럼 맥없이 나뒹굴었다.

천마황, 그의 공세는 전무후무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가자!”

군무현은 군웅들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와 아!”

!”

군웅들은 파죽지세로 혈문의 포위일각을 무너뜨리며 돌진했다. 그 급변한 장내의 사태에 대천성자는 발악하듯 외쳤다.

막아랏!”

그 자는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물불 가리지 않고 군웅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하나, 천마황이 그것을 내버려둘리 만무했다.

이놈! 가짜야! 천마황공강이나 받아랏!”

우 웅! 그의 대갈일성과 함께 새파란 강기의 무더기가 노도같이 대천성자를 휩쓸어 갔다.

순간,

! 자전극뢰강!”

파파파팍! 대천성자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반사적으로 장을 맞받아 쳤다.

순간, 쿠 쿵! 콰릉...

!”

대천성자는 몸을 휘청 꺾으며 다급성을 발했다.

, 제법이구나!”

천마황 역시 충격을 받은 듯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그들은 똑같이 일보씩 물러섰다. 천마황은 대노하여 지채 일격을 가하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으하하...! 일백적룡검대가 여기 있다!”

십방철혈(十方鐵血)!”

천하무적(天下無敵)!”

돌연 창천을 떨어울리는 앙천대소와 함께 두 차례의 패기충천한 외침이 장내의 혼란 속을 뚫고 천둥처럼 들려왔다.

... 보라! 츠츠츠... 위 잉! 파앗... 파파파앗!

치솟아 오르는 검기의 폭풍!

군웅들의 탈출을 저지하는 혈문의 후면이 모래탑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일백적룡검대! 마침내 그들이 장내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 광경에 대천성자는 안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 만박기사! 이것도 네놈의 안배였느냐?”

그 자의 안색은 썩은 돼지 간빛으로 물들었다.

일백적룡검대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그들은 개개인이 당년의 적룡대제를 육박하는 무서운 고수들이었다.

으 아악!”

크 윽...!”

가볍게 휘두르는 그들의 검기 아래 혈문의 인물들은 연신 피보라를 뿜으며 나가 떨어졌다.

일백적룡검대가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는 동안, 그 사이로 군웅들은 아무런 장애없이 고스란히 장내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군무현, 그는 천마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선배님! 군웅들을 지휘해 주십시오. 후배는 뒤를 끊겠습니다!”

그 말에, 천마황은 군무현의 눈을 주시했다.

조심해라!”

무심하게 던지는그 한 마디에는 뜨거운 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천마황의 부리부리한 두 눈에 언뜻 스치는 한가닥 염려의 빛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걱정마십시오!”

군무현은 그런 천마황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 순간,

본황을 따르라!”

천마황은 몸을 돌림과 함께 번쩍 손을 쳐들고 군웅들을 향해 외쳤다.

!”

와 아!”

그는 천지를 진동시킬 듯 함성을 내지르는 군웅들을 이끌고 구궁산의 서쪽으로 달려나갔다.

그 순간,

쫓아랏!”

대천성자는 눈에 불똥을 튕기며 황급히 천마황을 쫓으려 했다. 하나,

대천성자! 가지 못한다!”

! 군무현이 그보다 먼저 대천성자의 앞을 막아섰다.

다음 순간, 삐 익! 멸절사뢰음의 음파가 날카롭게 울려나오며 혈문의 선봉을 막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우 우!”

!”

일백적룡검대가 함성을 내지르며 잇따라 공세를 쏟아냈다. 무려 백장까지 치뻗치는 가공할 검기의 폭풍!

그 엄청난 기세에, 수천 명의 혈문의 마도들은 일순 멈칫하며 신형을 세우고 말았다.

그 순간,

(되었다!)

군무현은 신광을 빛내며 내심 부르짖었다.

이어, ! 그는 천랑비천사식(天狼飛天四式)의 경공으로 번개같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일백적룡검대! 구궁산을 벗어난다!”

그의 입에서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

! ! 휘르르르... 일백적룡검대는 검막으로 몸을 보호하며 썰물같이 천마곡 권내를 벗어났다.

핫하! 용기가 있으면 본인을 잡아보아라!”

군무현은 허공에 붕 뜬 채 호쾌한 대소를 터뜨렸다.

이어, 스 악! 그는 군웅들이 가지 않는 북쪽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휘 잉! 귓전을 스치는 세찬 바람소리를 들으며 몸을 날리고 있는 군무현. 그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제 되었다. 일단 발톱을 드러낸 혈문은 일시에 천하를 삼키려 들 것이다. 하나 이제 그들은 밝은 곳에 서 있고 우리가 어둠 속에 있도록 사태는 역전되었다. 이백만의 구류천종도의 힘과 군웅들의 힘이 합쳐지면 천하의 혈문이라도 무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착착 일이 진행되어가는 상황에 만족했다.

한데, 바람처럼 몸을 날리던 군무현의 신형이 일순 급급히 멈추어섰다.

휘 잉! 위 이이잉! 서늘한 산풍(山風)이 옷깃을 휘날리게 만드는 곳.

! 그곳은 마치 대지가 도끼에 찍혀 쩍 갈라진 형상을 한 천상단애였다. 끝이 내려다 보이지 않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 한데, 언제부터였을까?

“...!”

한 명의 인물이 단애 앞에 우뚝 서 있지 않은가!

군무현과 그 인물과의 거리는 십장 정도였다.

산풍에 표표히 옷깃을 날리며 서 있는 인물. 그는 한 명의 중년문사였다.

그의 인상은 매우 청수했으며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하나, 그의 일신에서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가공할 무형의 기도가 상대를 질식시킬 듯 무섭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군무현의 눈빛이 일변했다.

(강적이다! 천마황보다도 몇배 강한 인물이다!)

그는 일견에 중년문사의 가공할 실력을 알아보았다.

중년문사,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그는 물처럼 담담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구류지존! 그대가 이곳으로 올줄 알았다!”

그의 어투는 어떻게 들으면 지기(知己)를 대하듯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는 첫눈에 군무현의 신분을 알아본 것이다. 하나, 군무현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귀하는?”

그는 다만 무심하고 건조한 음성으로 그렇게 물었을 뿐이었다.

중년문사는 빙긋 웃으며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본인은 혈종제(血宗帝)라는 사람일세!”

혈문(血門)의 당대문주 셨구려!”

군무현의 음성 또한 변함없이 무심하고 건조했다. 지극히 무심하고 태연한 군무현의 태도에 문득 중년문사 혈종제(血宗帝)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헛허... 안색하나 변하지 않다니... 역시 구류지존(九流至尊)이군!”

하나, 군무현, 사실 그의 내심은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으음... 혈종제(血宗帝)! 예상밖의 강자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는 내심 침중한 신음성을 발하며 염두를 굴렸다.

그때, 문득 혈종제는 신비한 눈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지극히 담담한 가운데 설득력 있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작은 물결로 닥쳐오는 해일을 막을 수는 없지. 어떤가? 본 문주의 밑으로 들어온다면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지위를 누릴 수가 있다!”

하나, 군무현의 안색은 미세한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내심 결심했다.

(일전을 피할 수 없다!)

그는 무심한 눈으로 혈종제를 주시했다. 다음 순간,

대답은 이렇소!”

위 잉! 갑자기 그의 몸 주위로 적백(赤白)의 양극강기가 맹렬히 일어났다.

우르르! 그의 내부에서 두 가지 상반되는 거대한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에 혈종제의 입가에 가벼운 실망의 빛이 스쳤다.

그런가? 안타깝군. 그대가 구류지존만 아니라도 흉금을 터놓고 술잔을 나눌 수 있었을텐데...!”

그 순간, 스스스... 문득 그의 몸 주위로 섬칫한 피구름이 일어났다.

우 웅! 스스스스...! 가공하게도 삽시에 주위 백장이 완전히 붉고 흰 정기로 뒤덮였다.

고금을 통틀어도 보기 힘들 두 절대강자(絶大强者)! 그들의 일신에서 일어나는 가공할 경기는 천지를 가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자욱한 핏빛 경기 속에서, 일순 군무현의 우렁찬 일갈이 터져나왔다.

태양천뢰폭! 만겁빙백멸공강!”

콰르르르르...! 파파파파파 팍!

아아... 보라! 그것은 실로 거대한 장관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군무현. 그의 왼손에서는 청백색의 불기둥의 화산이 터지듯 쏟아졌으며, 그의 오른손에서는 새하얀 얼음기둥이 전율처럼 갈라지듯 퍼져 올랐다.

바로 그 순간, 혈종제의 입에서도 천지를 뒤흔드는 한소리 외침이 터져나왓다.

우 우 우!”

반투명의 처절하도록 선명한 혈강! 그것은 천지사방을 뒤덮으며 섬뜩한 전율의 광채를 뿌렸다.

뒤이어, 콰콰콰 쾅! 양인의 거창한 힘이 서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아아! 그것은 천만근의 뇌정이 일시에 터지는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대폭발이었다.

우 르르 릉! 콰르릉... ! 경기의 파동은 가공스럽게도 무려 오백장을 완전히 휩쓸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을 초토화시켜 버릴 듯, 천지를 한순간에 파멸시켜 버릴 듯...

... 그 가공할 소용돌이게 휘말려 살아날 자가 과연 누구겠는가? 없다. 천하에 없을 것이다.

한데, 보라! 미친 듯 굉렬한 일대혼란이 가라앉은 단애 위, 그곳에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군무현, 그가 아니었다.

...! 그는 바로 혈종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군무현은 어찌되었단 말인가!

그가 서 있던 곳은 지반이 무너져 단애 밑으로 완전히 함몰되고 있었다.

군무현 역시 무너지는 지반에 휘말려 단애 아래로 추락했음이 분명하리라. 그의 흔적은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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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八 章

 

                  血門登場

 

 

 

해가 뜨기 직전, 천마궁(天魔宮)!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선 천마궁은 온통 음침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돌연,

케 엑!”

크아 악!”

여명의 정적을 찢으며 전율스러운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올랐다.

뒤이어, 화르르르...! 여기저기에서 엄청난 불길이 확 퍼져 올랐다.

그와 함께,

우하하하! 천마궁의 마도들아! 목을 길게 늘여랏!”

클클... 천마제군의 목은 나 천수신(千手神)의 것이다!”

순식간에 일천 명의 맹룡같은 군호들이 천마궁의 내부로 휩쓸려 들어왔다. 그 돌연한 사태에, 천마궁의 마도들은 우왕좌왕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분명 잔심염황수가 우로(右路)를 막으러 갔을 텐데...!”

... 이럴 수가...!”

그 자들은 안심하고 새벽잠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런 급습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으 아악!”

크 윽!”

!”

그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 이놈들! 죽어랏!”

대저 안에서 사멸황(死滅皇)이 눈을 부릅뜨며 미친 듯이 뛰쳐나왔다.

그 자는 나타나자 마자 막무가내로 장을 후려쳤다.

콰르릉... ! 하나, 군웅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그 자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절묘한 진세를 선풍같이 휘몰며 마도들을 휩쓸어 나갔다.

그때,

우하하... 사멸황, 종남검옹이 여기있다!”

돌연 종남검옹이 사멸황의 앞을 가로막으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파파파 파앗! 그는 수중의 검을 벼락같이 휘둘렀다.

순간,

!”

사멸황은 흠칫 몸을 피하며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천수신도 한몫 거들겠다는 듯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클클... 검옹! 사멸황의 모가지를 혼자 따시겠다니... 욕심이 과하지 않소?”

츠츠... 위 잉! 그는 개세혈강륜을 급속히 회전시키며 사멸황의 오른쪽으로 짓쳐들었다.

... 이런...!”

사멸황은 낭패함을 금치못하며 전력을 다해 잠을 후려쳤다.

우 우 웅! ... 지축을 뒤흔드는 가공할 폭음이 천지사방으로 터져올랐다.

그 순간,

크윽!”

사멸황은 신형을 휘청하며 삼보 뒤로 물러났다. 하나, 종남검옹과 천수신은 옷깃 하나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그때,

아미타불...!”

혼란의 와중에 승포조차 제대로 걸치지 못한 한 명의 라마승이 전각 안에서 뛰쳐나왔다.

그 자는 시뻘건 혈포를 대충 걸친 혈륭대법사였다.

순간,

무량수불...! 혈륭도우, 장을 받으시오!”

그 자를 발견한 무당의 청옥자가 휙 몸을 날리며 외쳤다.

우 웅! 콰릉...

!”

혈륭대법사는 창졸간의 급습에 일순 움찔했다. 하나, 이내 그 자는 대노한 표정으로 번쩍 장을 쳐들었다.

손뚜껑같이 거대한 그 자의 손, 콰르르 릉! 그 자의 손이 일순 시뻘겋게 물드는가 싶더니 섬뜩한 핏빛강기가 노도같이 쏟아졌다.

그 광경에 군무현은 대경하며 외쳤다.

장문인! 맞받지 마시오!”

그 순간, ! 청옥자는 군무현의 경고에 다급히 손을 떼고 물러났다.

직후, 콰르르릉! 콰콰 쾅... 가공할 혈강이 천지를 휩쓸며 십장 방원을 완전히 박살내는 것이 아닌가?

무량수불...!”

장권 밖으로 물러난 청옥자는 그 광경에 식은땀을 흘렸다.

군무현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그는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 군무현은 냉혹한 눈으로 혈륭대법사를 노려보았다.

(... 혈륭대법사! 혈륭대붕천마공(血隆大崩天魔功)이 극에 이르렀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품속에서 봉황옥소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는 천천히 혈륭대법사를 향해 다가갔다.

그 순간,

아미타불... 죽어랏!”

혈륭대법사는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한 채 무지막지한 쌍장을 짓쳐냈다.

쿠쿠쿵! 콰르릉... 장내는 일순 혈해(血海)로 변해버린 듯 온통 시뻘건 혈강으로 뒤덮여 버렸다.

그 가운데,

천승대법음(天乘大法音)이오!”

군무현의 낮고 담담한 일성이 흘러나왔다.

직후, 삘릴리 삘 릴 리...! 지극히 부드러운 한줄기 소성이 은은하게 장내에 울려퍼졌다.

하나, 그것은 바로 만사(萬邪)의 극성인 지극히 정심한 음률이었다. 바로 천왕오대음종의 제일음종(第一音宗).

다음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크 윽!”

거대한 체구의 혈륭대법사가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나뒹구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으 아악!”

크윽!”

...!”

오십장 내의 마도들이 일제히 귀를 틀어막으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삽시에, 장내는 지옥의 참경을 무색케하는 아수라장으로 화하고 말았다.

삘 릴 리...! 부드럽고 은은한 소성.

하나, 그것은 정도인들에게는 더없이 평화롭고 잔잔한 음률로 들렸다. 그 음률을 듣고 군웅들은 새 힘을 얻고 있었다.

그때,

크 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장내를 메아리쳤다.

사멸황, 그 자가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피보라를 뿌리고 있었다. 그런 그 자의 몸에는 세 개의 개세혈강륜이 푹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자의 복부는 검기에 찢겨 쩍 갈라져 있었다.

그 자를 상대했던 종남겅옹과 천수신, 그들 역시 타격은 컸다.

으음...!”

제법이군!”

그들은 고통스럽게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신형을 비틀거렸다.

종남검옹은 검을 쥔 호구가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천수신 역시 어깨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하나, 어쨌든 그들은 거마(巨魔) 사멸황을 처치한 것이다.

문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씩 웃었다.

그때, 군무현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거세게 치솟아 오르는 불길 속에서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신을 수습한 천마궁도들은 결사적으로 군웅들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워낙 숫적으로 우세한 그들은 일천명의 군웅들을 최대한으로 묶어두려 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의 대결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쪽은 천마궁도들이었다.

군웅들은 사방이 빽빽이 포위된 가운데에서도 일기당천의 기세로 연신 적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군무현은 내심 염두를 굴리며 기광을 번뜩였다.

(이제 곧 중로군과 우로군이 천마궁도들을 휘몰아 들이닥칠 것이다!)

하나 문득, 그는 검미를 모았다.

(천마제군... 그 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과연, 천마제군은 아직도 장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군무현은 힐끗 지옥뢰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마도의 진정한 고수 삼백 명이 천마황과 함께 군무현의 신호를 기다리며 대기중이었다.

하나,

(아직은... 천마황이 나설 때가 아니다!)

내심 염두를 굴린 군무현은 다시 시선을 장내로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와 악!”

원군이다!”

천마궁도들의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며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천마곡의 곡구, 그곳으로부터 오천명에 가까운 마도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천마궁도들은 비로소 안심한 듯 함성을 내지르며 원군을 환영했다. 하나, 그것을 본 군무현의 입가에는 한줄기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뜻대로 되어가는군!)

다음 순간,

!”

그는 웅후한 창룡후를 터뜨리며 군웅들의 선두로 나섰다.

이어,

천붕뇌명후!”

삐 이익! 한소리 찌렁한 외침과 함께 봉황옥소로부터 머리끝을 쭈뼛 곤두서게 만드는 날카로운 소성이 터져나왔다.

순간,

크 악!”

으으으 악!”

케엑!”

용기백배하여 군웅들을 몰아붙이던 천마궁도들 중 일백 명이 순식간에 피를 토하며 거꾸러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수비진형(守備陣形)으로 모이시오!”

군무현은 군웅들을 향해 웅후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와 아!”

!”

군웅들은 사기충천하여 함성을 내지르며 급격히 진세를 축소시켰다. 삽시에, 그들은 엄밀한 수비진형을 형성했다.

진세에 빈틈이 없음을 살핀 군무현, 그는 다시 봉황옥소를 입술에 갖다댔다.

멸절사뢰음!”

삐 익! 삘 릴 리! 귓청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발기는 전율적인 소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직후, 파파파팍! 위 잉! 주위 오십 장이 돌연 가공한 회오리에 휘말린 듯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그 가공할 충격에 오십장 내의 마도들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뒹굴었다.

하나, 군무현은 촌각도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는 한꺼번에 몰아쳐 마도들을 완전히 전멸시켜 버릴 듯 쉬지않고 봉황옥소를 불었다.

천승대법음!”

삘릴리 삘리... 위 잉! 츠츠츠츠읏! 가공할 음파가 방원 일백 장을 완전히 뒤덮었다.

장내는 검풍장영(劍風掌影)이 난무하는 가운데 섬뜩한 피보라가 회오리쳤다.

그때, 군무현, 그는 주위를 살피며 한 명의 인물을 찾고 있었다.

(짐작대로... 사라졌군!)

그는 대천성자의 모습을 찾았으나 그 자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데 문득,

“...!”

그의 두 눈이 강렬하게 번득였다. 천마궁의 주위로 무수한 인영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 것을 감지한 것이었다.

(나타났다. 혈문(血門)!)

다음 순간, 그는 군웅들을 향해 위엄있는 음성으로 지시했다.

좌로, 곡구를 확보하시오! 중로! 철갑세(鐵甲勢)의 진세로 전형하고 우로는 첨형대진(尖形大陣)으로 좌로의 전방을 지원하시오!”

군웅들은 영문을 몰랐으나 쾌속히 그의 뜻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

알겠습니다!”

스스스슥...! ! ! 그들의 동작은 쾌첩하고 기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특히, 군웅들의 대진의 선봉을 맡은 인물은 소림, 무당, 종남, 당문에서 각각 백명씩 선발된 최정예들이었다.

그들의 지휘하에 움직이는 수천명의 군웅들은 한몸처럼 질서정연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하하하! 만박기사!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돌연 한소리 창노한 웃음소리가 천둥처럼 군무현의 귓전을 때렸다.

뒤이어,

쳐랏!”

칼로 절단하듯 싸늘한 일갈이 터져나왔다.

순간,

와 아!”

와 쳐라!”

천마곡의 사위에서 돌연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인영들이 속출했다. 그 자들은 가공할 기세로 폭풍같이 천마곡을 휩쓸었다.

크 악!”

아악...!”

순식간에, 장내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잇따라 터지는 돌연한 사태에 우왕좌왕하던 천마궁도들은 물론이요, 치밀한 진세를 이룬 외곽의 군웅들마저 저항 한 번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때,

... 태상맹주! 당신이 배신을...!”

현의천신이 두 눈을 부릅뜨며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보라! 일단의 혈의인들을 진두지휘하여 군웅들을 짓쳐드는 인물. ! 그는 바로 정의맹의 태상맹주, 그 지고무상한 직위의 대천성자가 아닌가?

천하가 우러러 경외하며 흠모해 마지않는 기인, 그가 혈문(血門)의 주구였다니...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천마궁의 마도들은 그들대로 엄청난 회의와 불신에 사로잡혔다.

천마궁주 천마제군(天魔帝君)! 바로 그들의 궁주가 수하들에게 직접 무자비한 살수를 가하고 있지 않은가?

크윽... ... 제군이 우리를...!”

천마제군의 손에 쓰러지는 마도들은 경악과 분노, 회의와 불신으로 눈을 부릅뜬 채 죽어갔다.

이 무슨 참변이란 말인가?

대천성자, 그 자는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득의의 어조로 외쳤다.

으하하하! 어리석은 놈들! 천하는 혈문의 것이다!”

그러자, 천마제군도 장내를 휘둘러보며 살기어린 음험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흐흐...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들은 잔명(殘命)이나마 보전하게 될 것이다!”

그 자들은 이미 천하 위에 군림한 종주(宗主)처럼 그 기세가 당당하고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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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七 章

 

                   大劫風

 

 

 

연무장(鍊武場)!

천신보의 중앙에 설치된 드넓은 연무장이었다.

풍지면(風之變)!”

군무현은 낭랑하게 외치며 붉은 깃발을 번쩍 쳐들었다.

순간,

!”

수천 명의 군협들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신속히 진세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태을세현(太乙世現)! 풍뢰자명(風雷自鳴)!”

연이어 군무현의 위엄있는 외침이 연무장을 울려퍼졌다.

그에 따라, 스스슥...! 츠츠 위 잉! 군협들이 이룬 진세는 무궁무진한 변화를 일으켰다.

? 그것은 실로 일대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한편, 연무장의 뒤쪽, 정도의 명숙들이 모여 연무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헛허... 과연 신기황 노선배의 제자답군!”

허허허...! 군사가 호언한대로 열흘이 못되어 정의지력(正義之力)은 두배 강해졌소이다!”

하하... 어찌 두배 뿐이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천마궁과의 대전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허허허...!”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천 명의 군웅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군무현, 그의 신()적인 자질을 두고 그들은 한결같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군사 만박기사! 그는 곧 천신보의 태양(太陽)이었다.

그때, 중인들과 조금 떨어진 곳, 한 명의 금의미녀가 넋나간 듯 망연히 선 채 군무현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핏기가 없는 핼쓱한 얼굴, 깊고 큰 눈망울이 쓸쓸한 느낌을 준다.

금붕옥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원래 오만하고 도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나, 자신의 병을 치료해준 군무현을 알고부터 그녀의 성격은 갑자기 변화되었다.

아직 병색이 완연히 가시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사랑(), 그것을 느낀 여심(女心)은 안타깝고 고통스러웠다.

연무장 근처네은 또 한명의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음침하게 군무현을 노려보는 인물, 그는 바로 대천성자였다.

 

대정전(大正殿)!

 

여러명의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 지금은 천지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 아니.. 이 밤중에 출동하자는 말씀이시오?”

현의천신은 난색을 지으며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대정전 안에 모여있는 명숙들은 한결같이 난색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군무현, 그는 이 깊은 밤을 틈타 천마궁의 공격을 감행하자는 것이 아닌가?

하나, 그의 계획은 치밀했다.

천마궁에서는 이틀 후에 본맹이 대공세를 펼칠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오. 적이 기다리고 있을 때 공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소이다!”

군무현의 논리정연한 말에 중인들은 그제서야 납득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군무현은 완벽한 공격태세를 추진해 나갔다.

이제 여러분께 임무를 맡기겠소!”

분부를 내리시오!”

현의천신이 신광을 빛내며 힘있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군무현은 좌중의 인물들을 둘러보며 빈틈없는 작전 계획을 설명해 나갔다.

삼로(三路)로 나누어 천마궁에 육박해야 하오이다. 좌로(左路)는 맹주께서 일천 정예를 이끌고 치십시오. 가능한 급속히 진출하여 중로(中路)가 천마궁의 방어를 분쇄할 교두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오이다!”

현의천신은 그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군무현은 이번에는 대천성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중로(中路)는 태상맹주께서 정예 삼천으로 치십시오. 천마궁의 강력한 방어가 있을 것이니 쾌()보다 실()을 취하셔야 할것입니다!”

허허... 알겠네!”

대천성자는 염려말라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군무현,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도 좌중에게 설명했다.

우로(右路)는 소생이 직접 진출할 것이오. 수성(守城)은 금붕도주께서 맡아주시오!”

알겠소이다!”

금붕천왕도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가 군무현을 대하는 눈빛은 신뢰와 진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군무현은 중인들에게 재촉했다.

지체할 수 없소이다. 즉시 출발하도록 하시오!”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 ! 대전 안의 인물들은 일제히 몸을 날려 밖으로 사라졌다.

삽시에, 대전 안에는 금붕천왕 부녀(父女)와 군무현만이 남게 되었다.

문득, 군무현은 신비한 눈빛으로 금붕천왕을 바라보았다.

소생이 부탁한대로 해주십시오!”

허허허... 걱정마시오. 다행히 이 아이가 기문진학에 능통하니 군사께서 주신 진도(陣圖)대로 천신보를 감출 것이오!”

금붕천왕은 염려말라는 듯 자신있게 대답했다.

군무현은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어,

그럼...!”

스스슥... 그는 연기처럼 대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금붕옥녀, 그녀는 망연한 시선으로 군무현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금붕천왕은 내심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아가 군사에게 단단히 빠졌군... 하긴 나이가 다소 많은 것이 흠이지만 짝을 찾을 수 없느 신랑감이지!)

하나,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 금붕천왕.

두 부녀는 그렇게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정의맹에서 조금 떨어진 험로(險路)! 한 명의 백의노인이 우뚝 서 있었다.

흐흐흣... 이대로라면 천마궁이 일방적으로 당한다. 그렇게 되면 곤란하지...!”

그 자는 음험하게 웃으며 한 마리 전서구를 허공으로 날렸다.

! 전서구는 날개를 펴며 쏜살같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백의노인, 그 자는 남자가 넘는 백염을 드리운 얼굴에 청수하고 인자한 인상이었다. 하나, 지금 그 자의 두 눈은 사악하게 빛나고 있었다.

흐흐... 그 애송이가 주력을 노부에게 맡겼으니... 천마궁과 정의맹을 동귀어진 시키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음험한 중얼거림을 마친 순간, 스슥... 그 자는 유령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데, 백의노인이 사라지고난 직후, 한그루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명의 문사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대천성자... 역시...!”

그는 침중한 중얼거림을 흘리며 백의노인, 대천성자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바로 그때, 푸드득...! 문득 한 마리 천리신응이 문사의 어깨로 날아내렸다.

일순 중년문사의 무심한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천리신응! 그것의 발목에는 하나의 작은 헝겊이 메어져 있었다.

중년문사, 물론 그는 만박기사로 행세하고 있는 군무현이었다. 군무현은 급히 헝겊을 뜯어보았다.

 

<소요장에서 삼천명의 절정고수들이 떠났음. 하나같이 극()에 이른 마공을 익힌 자들. 절강 방면에서도 일천(一千)의 신비고수들이 움직였음. 혈문(血門)의 인물들로 추측됨. 목적지는 안휘(安徽)의 구궁산(九宮山).

신응(神鷹).>

 

“...!”

군무현은 안색을 굳히며 헝겊조각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푸시시... 헝겊조각은 이내 그의 손 안에서 한줌 재로 화해 흩어졌다.

다음 순간, 스슥...! 군무현의 모습은 유성(流星)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X X X

 

구궁산(九宮山)!

무림최대의 마궁(魔宮) 천마궁(天魔宮)이 자리하고 있는 곳.

구궁산 서남쪽의 산봉, 뿌옇게 터오는 여명을 등지고 수많은 인영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천명, 하나, 마치 한 명이 움직이는 듯 그들의 동작은 일사불란하고 기민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승(), (), () 등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의 선두, 스슥... 한 명의 중년문사가 바람같은 신법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한 마리 청학(靑鶴)을 연상케하는 고고하고 기품있는 모습.

문득, 중년문사는 좌우의 인물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천마궁까지는 삼십리 남았소이다!”

그는 하룻밤을 쉬지않고 달려오면서도 숨 한 번 거칠게 내쉬지 않는 기인(奇人)이었다.

한데, 그들 일행이 막 작은 산봉을 넘어섰을 때였다.

죽어랏!”

와 랏!”

돌연 엄청난 함성이 산봉을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파파파앗! ! ... 위잉! 광풍폭우가 몰아치듯 엄청난 공세와 함께 수백, 수천의 암기가 허공을 뒤덮었다.

! 그것은 모두 중년문사 한 사람을 겨눈 것이 아닌가?

일촉즉발! 도저히 피할 엄두조차 내지못할 급작스런 사태였다.

하나,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핫하... 이제야 나타나셨군!”

중년문사는 오히려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며 여유있게 슬쩍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파파파팍! 타다다닥...! 수백, 수천 개의 빛발치듯 날아든 암기는 무형의 벽에 부딪힌 듯 그대로 튕겨나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순간, 츠츠츠읏! 쐐액! 암기의 공세가 무산됨과 함께 네줄기 혈영이 번뜩 튀어나와 중인들을 찔러 왔다.

하나 그때,

크크읏! 개세혈강륜을 아느냐?”

중인들의 대열에서 한 명의 노인이 불쑥 튀어나오며 시뻘건 혈륜을 발출했다.

우 잉! 츠츠츠... 일순 허공은 온통 시뻘건 핏빛 혈기로 뒤덮였다.

직후,

!”

...!”

네명의 암습자들은 대경실색하며 다급성을 토했다.

다음 순간,

크 악!”

아악!”

처절한 비명이 허공을 회오리치며 터져나왔다.

혈륜(血輪). 그것은 결코 보통의 륜이 아니었다.

과거 혈영천종의 수라혈강마저 파해시켰던 호신강기 파해전문의 암기였다.

그때,

우하하...! 종남천류검(終南天流劍)을 아느냐?”

또 다른 한 명의 노인이 중인들의 대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파파파 파앗!

으악!”

케 엑!”

크윽...!”

그의 손에서 번갯불같은 검기가 십장을 쭉 뻗어나오며 순식간에 이십 명의 혈의인들을 두도강내고 말았다.

무량수불... 태청파옥강살이 이것이다!”

누더기를 걸친 도인도 질세라 앞으로 나섰다.

파파파팍! 콰르르릉... 그의 손에서 만년한철도 단번에 박살낼 엄청난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으으윽...!”

크 악!”

뒤이어 터져나온 것은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

눈깜짝할 순간, 오십여 명의 암습자들이 완전히 독살당하고 말았다.

갑자기 주위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장내에 제멋대로 널브러진 시신들, 미명속에서 이 한바탕 혈전은 실로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끝나 버렸다.

문득,

쯧쯧... 불쌍한 자들...!”

중년문사는 주위의 시신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의 주위로 여러명의 인물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변장을 한 천수신, 종남검옹, 청옥자, 광법선사 등이었다.

실상, 정의맹의 최정예들은 모두 군무현의 우로군(右路君)에 있었다.

좌로군과 중로군은 천마궁의 이목을 분산시키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군무현의 계획은 실로 치밀했다. 문득, 그는 사파(四派)의 장문인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천마궁의 지리는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 말에 천수신이 염려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물론이오. 천마제군 그놈이 먹여주는 밥을 몇끼 얻어먹다 보니 천마궁의 지리에는 훤하게 익숙해 버렸소!”

천수신, 그는 천마대전 때 천마궁에 갇혔던 일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가능한 천마궁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크게 소란을 피워야 좌로군과 우로군을 막으러간 마도들이 허둥지둥 회군하게 될것입니다!”

그의 말에 종남검옹은 만면에 찬탄을 금치못하는 표정이었다.

허허... 정말 절묘하외다. 그 자들이 돌아왔을때는 이미 천마궁이 함락되어 있을 것이고 돌아오던 자들도 협살당하여 전멸하고 말것이 아니오?”

군무현은 그 말에 그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모든 일에 겸손한 그는 중인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이윽고,

, 갑시다!”

군무현은 앞장서며 힘있는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스스슥... ! ! 일천 명의 인물들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비조처럼 구궁산의 북쪽을 향해 치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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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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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六 章

 

                   무르익는 風雲

 

 

 

한칸의 정실, 그곳은 은은한 향내음이 흐르는 여인의 규방이었다. 정실의 한쪽 옆, 붉은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여인의 침실이 있었다.

지금, 침상 위에는 한 명의 소녀가 파리한 안색으로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금붕옥녀(金鵬玉女)! 바로 금붕천왕의 금지옥엽인 금붕옥녀였다.

군무현은 금붕천왕의 안내를 받아 금붕옥녀의 침실로 들어섰다.

(상세가 엄중하군!)

금붕옥녀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검미를 모으며 금붕옥녀의 여윈 손목을 잡았다.

심맥이 드러나 보일 듯 가늘고 파리한 손목, 그 손목을 잡는 순간 군무현은 안스러움을 금치못했다.

(내가 몹쓸짓을 했군!)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씁쓸한 자책감을 느꼈다. 잠시 후, 그는 진맥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 어떻소이까?”

초조한 표정으로 군무현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 금붕천왕이 불안한 듯 물었다. 군무현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극고한 내가공력으로 일어난 음파(音派)에 충격을 받아 기경팔맥이 막혀버렸소이다!”

그 말에, 금붕천왕의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 그럼 치유가 불가능하단 말이오?”

군무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외다. 생사금침대법(生死金針大法)으로 끊어진 경맥을 잇고 몇가지 치료만 받으면 치유될 수 있소이다!”

...!”

그 말에 금붕천왕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생사금침대법(生死金針大法)!

신기황의 의술의 총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 모금의 숨결만 남아 있어도 능히 생명을 돌이킬 수 있는 절정의 금침술(金針術).

 

백팔개의 금침과 더운 물을 준비해 주시오. 그리고 시녀에게 일러 영애의 의복을 모두 벗기도록 하시오!”

... 알겠소이다!”

군무현의 말에 금붕천왕은 즉시 대답하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군무현, 그는 파리한 안색으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금붕옥녀를 내려다 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으나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에 선명한 윤곽, 길게 드리워진 짙은 속눈썹,

문득, 군무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원한은 원한을 낳을 뿐... 앞으로는 가급적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 놀라운 일이었다. 천하를 두고 복수를 다짐했던 군무현, 그의 철천지한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차디차게 얼어붙었던 그의 가슴, 비로소 그의 가슴 속에 더운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인가!

군무현이 그런 생각들에 젖어 있을 때였다. 문득, 방문이 열리며 은은한 향수 내음이 코끝을 감아왔다.

“...?”

군무현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방 안으로 살며시 들어선 여인, 그녀는 우아한 기품을 지닌 중년미부였다.

(쇄심선자...!)

군무현의 내심이 다시 굳어졌다.

쇄심선자는 두 손에 금침을 받쳐들고 다가왔다. 이어, 그녀는 군무현에게 금침을 내밀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신첩이 도와드리죠!”

군무현은 일순 멈칫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말과 함께, 그는 등을 돌리고 앉았다. 그 사이, 쇄심선자는 능숙하게 금붕옥녀의 의복을 벗겨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 되었어요!”

쇄심선자는 금붕옥녀의 의복을 모두 벗긴 후 한쪽으로 물러났다.

“...!”

그제서야 군무현은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드러난 뽀얗고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 하나, 군무현의 두 눈은 거울처럼 맑고 잔잔했다.

그는 일점의 동요도 없는 눈빛으로 금붕옥녀이 나신을 바라보았다.

이어, 파앗... 파앗! 그는 금붕옥녀의 나신에 금침을 꽂아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타인을 치료하는 것은 그로서는 처음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그는 너무도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백팔개의 금침, 그것은 금붕옥녀의 혈도를 따라 빽빽이 꽂혀지고 있었다.

파앗! 파앗... 파앗! 눈 깜찍할 순간, 백팔개의 금침은 모두 금붕옥녀의 나신에 꽂혔다.

“...!”

쇄심선자는 한쪽으로 물러나 기이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이번에는 군무현이 금침을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파앗! 파파앗!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 금침이 하나씩 제거될 때마다 점차 금붕옥녀의 옥안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

군무현은 마지막 하나의 금침까지 모두 뽑아낸 후 크게 숨을 내쉬었다.

금침대법은 심력의 소모가 큰 작업이었다. 그때, 쇄심선자가 문득 흰 무명천을 군무현에게 내밀었다.

군무현은 멈칫했으나 그것을 받아들였다.

고맙소이다!”

이어, 그는 쇄심선자가 내민 무영천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쇄심선자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군무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군사의 성이 혹시 군()씨가 아닌가요?”

순간,

“...!”

군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홱 고개를 돌려 쇄심선자를 노려보았다. 쇄심선자의 깊고 큰 두 눈이 축축한 물기로 젖어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군무현은 흠칫했다. 하나, 그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쇄심선자, 마침내 그녀의 두 눈에서는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랬었구나... 네가... 무현(武玄)이었구나...!)

그녀는 뜨거운 회한의 음성으로 내심 부르짖었다.

대체 그녀는 누구란 말인가?

“...!”

군무현은 아무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쇄심선자에게 눈길조차 주지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방문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던 금붕천왕이 황급히 다가서며 물었다.

... 군사! 그 아니는...?”

안심하셔도 되오. 내일 소생이 약방문을 지어드릴테니 한 달만 복용하면 완쾌될 것이오!”

군무현의 그 말에 금붕천왕은 입이 찢어질 듯 환하게 웃었다.

... 고맙소이다. 군사!”

그는 군무현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 그보다 금붕옥녀를 보는 것이 더 급했다.

그는 허둥지둥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쇄심선자, 어느새 밖으로 나온 그녀도 말없이 군무현의 뒤를 따랐다.

시각은 벌써 삼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무현... ... 나는 네 이모란다!”

쇄심선자는 군무현의 앞에 끓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군무현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두 눈은 고통과 번민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군무현, 그는 폭발하려는 감정을 삼키며 묵묵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쇄심선자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군무현의 앞에 사죄했다.

네 어머니와 나는... 이복자매였다. 한데... 불행하게도 우리 자매는 동시에 네 아버지를 사모하게 되었다...!”

군무현의 안색은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하나 결국... 네 아버지는 나를 버리고 언니를 택했다...!”

쇄심선자는 고통의 빛으로 얼룩진 두 눈에 아련한 회상의 빛을 띄웠다.

 

이하령(李河寧)!

그녀는 군무현의 생모(生母), 즉 이유련(李庾蓮)과는 어머니를 달리하고 태어난 자매였다.

언니인 이유련(李庾蓮)!

그녀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지녔으며, 동생인 이하령(李河苓)은 쾌활하고 발랄한 성격을 지녔다.

성격은 대조적이었으나 두 자매는 마치 일심동체처럼 사이가 좋았다.

운명(運命)은 그런 그녀들의 사이를 시샘하고 말았다.

적룡대제(赤龍大帝)!

어느날 두 자매의 앞에 한 명의 젊은 효웅이 나타났다.

두 자매는 불행하게도 동싱 적룡대제를 사모하고 말았다. 적룡대제 역시 그녀들의 심중을 알아차리고 두 자매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나, 결국 그는 단안을 내렸다.

온유한 성격을 지닌 이유련을 아내로 택한 것이다.

사랑을 빼앗긴 여심(女心)은 가혹하게 상처받았다. 그때부터, 이하령은 언니 이유련과 적룡대제를 원수같이 증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적룡세가를 괴멸시키는데 가담하기까지 했으니...

하나, 쇄심선자는 원래 악한 심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적룡세가가 멸망하고 적룡대제가 죽자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고 못난 계집인가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 후 육 년의 세월, 그것은 쇄심선자에게 있어 형벌의 세월이었다. 뼈를 저미는 후회와 고통 속에서 그녀는 참회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쇄심선자는 뜨거운 회한의 눈물을 쏟으며 지난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무현! 이 못난 이모를... 왜 그냥 두느냐? 나를... 일장에 죽여다오. 너의 손에 죽는다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무현...!”

그녀는 군무현의 무릎에 매달려 오열을 터뜨렸다.

군무현. 그는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

야천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 문득 축축한 물기가 고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 아래 엎드려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쇄심선자를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그의 두 눈에 짙은 연민의 빛이 어렸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모님... 일어나십시오!”

순간, 쇄심선자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무현... ... 네가 나를 이모라고 불렀느냐?”

그렇습니다. 이모님!”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쇄심선자를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마음을 가라앉힌 듯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님께서도... 제가 이모님을 벌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 무현... !”

쇄심선자는 격동을 금치못하며 군무현을 와락 부둥켜 안았다. 군무현은 흐느낌을 멈추지 않는 쇄심선자를 가볍게 다독거려 위로했다.

그만 진정하십시오. 이모님!”

... 흐윽...!”

쇄심선자는 육 년 동안 쌓인 고통을 모두 툴어버리려는 듯 쉽게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비로소 그녀는 감정이 가라앉은 듯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그러자 군무현은 비로소 쇄심선자를 떼어 놓았다.

이어, 문득 그는 창 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러분, 어서 들어오십시오!”

순간, 쇄심선자는 흠칫하며 표정을 지었다.

그때, 스스슥... 스슥! 방안으로 소리없이 네 명의 노인이 날아들었다.

선자께서도 와 계셨구려!”

쇄심선자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는 백의노인, 그는 바로 종남파의 종남검옹이었다.

다른 세 명의 인물들, 그들오 각기 일파(一派)의 지존들이었다. 소림의 광법선사, 무당의 청옥자, 당문의 천수신이 바로 그들이었다.

소림의 광법선사, 그가 먼저 불호를 외우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군사께서는 무슨 일로 빈승들을 은밀히 소집했소이까?”

군무현은 엄숙한 안색으로 말했다.

네분께 한 가지씩의 물건을 돌려드리기 위해서이오. 또한 긴힌 부탁드릴 것이 있소이다.”

네 명의 장문인들과 쇄심선자는 의아한 시선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묵묵히 탁자 위의 책상자를 열었다. 이어, 그는 그곳에서 몇 가지의 물건을 꺼내 네 명의 장문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광법선사에게는 달마보장(達磨寶杖), 청옥자에게는 태청신홀을, 종남검옹에게는 종남연기경(終南鍊氣經), 그리고, 천수신에게는 개세혈강륜을 각각 돌려주었다.

! 그것은 바로 군무현이 수라동부(修羅洞府)와 그 지하광장에서 습득한 육대고인의 신물이 아닌가?

광법선사를 비롯한 네명의 장문인, 그들의 안색이 대변했다.

아미타불... 달마보장이 팔백년 만에 나타나다니...!”

... 태청신홀...!”

혈륜태세(血輪態世) 조사님의 개세혈강륜! 오오...!”

그들은 아연하여 입을 딱 벌렸다. 이어, 그들은 만면에 흥분과 희열의 빛을 감추지 못하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그들을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소생이 인연이 닿아 수라혈영제와 동귀어진한 육파고인들의 유해를 모시게 되었소이다.”

그것들은 그때 거둔 고인들의 신물들로 여러분 문파의 것이므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오!”

이미 팔백년 전에 사라진 사파(四派)의 진산지보. 그것을 물려받은 네 장문인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들은 격동과 희열을 금치못하며 군무현에게 거듭 감사했다.

아미타불...! 군사! 이 은공을...!”

무량수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구려!”

군사...!”

진정 고맙소이다!”

군무현은 그들의 말에 손을 내저었다.

당연한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기 바라오!”

이어, 문득 그는 진중한 안색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부탁이 있소.”

무엇이든 분부만 내리시오. 불속에 뛰어들라 하더라도 서슴치 않을 것이오!”

천수신이 호쾌한 음성으로 얼른 대꾸했다.

군무현은 진지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네분께서는 문중의 정예 각 일백 명에게 소생이 드리는 이 진세를 비밀리에 연성시켜 주셨으면 하오이다!”

말과 함께, 그는 품속에서 네 장의 종이를 꺼내들었다.

진식을 연마하는 일을 비밀리에 진행하라 하심은...!”

종남검옹은 의혹의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그 말에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궁의 제삼세력이 정의맹과 천마궁의 충돌을 노리고 있소이다. 진식을 전수함은 그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오!”

... 제삼세력!”

중인들은 그의 말에 안색이 대변하여 부르짖었다. 하나, 군무현은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그것에 관해 자세히 말씀 드리겠소!”

“...!”

“...!”

중인들의 눈빛이 심각하게 어우러졌다.

군무현은 네장의 진형도(陣形圖)를 중인들에게 각각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이어, 그는 문득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이목이 많아 네분께 긴 말씀을 드리지 못함을 이해하시오!”

사파(邪派)의 장문인들, 그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잠시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는 그들, 이윽고, 그들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군사, 편히 쉬시오!”

그들은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고 소리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스스슥... 방안에는 다시 군무현과 쇄심선자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군무현은 담담한 눈빛으로 쇄심선자를 바라보았다.

이모님께서도 그만 돌아것 쉬셔야지요!”

쇄심선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오냐! 네 건강한 모습을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그녀는 아직도 축축이 물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군무현을 응시했다. 이어, 그녀는 조용히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나자,

으음...!”

군무현은 갑자기 무너질 듯한 한숨을 내쉬며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빛, 그의 두 눈은 깊숙하게 가라앉아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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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五 章

 

                      天神堡會合

 

 

 

천신보(天神堡)!

 

사상 유래없이 천신보는 막강한 정도무림(正道武林)의 중심(中心)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천신보의 세력은 실로 엄청났다. 일백팔십개 백도 문파에서 모여든 오천 명의 의협지사들이 당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이 곧 정도무림이라 해도 될 정도로 막강한 힘이었다.

 

현의천신(玄衣天神) 위지강!

천신보주인 그는 정의맹(正義盟)의 맹주이기도 했다.

적룡대제 이후 명실상부한 중원일절(中原一絶)로 숭앙받는 강자(强者). 하나, 정의맹에는 맹주의 직위보다 더 높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상맹주(太上盟主)의 직위였다. 그 직위는 천하무림의 재생에 큰 공로를 세운 대천성자(大天聖子)에게 주어졌다.

대천성자! 그는 자신의 수하인 소요장의 기인들로만 천마궁을 유인했으며, 정파 일백 개 문파의 장문인들을 구해낸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신시(申時) 무렵,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문득, 천신보의 웅장한 보문을 향해 휘적휘적 다가오는 한 명의 중년문사가 있었다.

지극히 청수한 용모를 지닌 중년문사. 그는 한손에 길쭉한 책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는 순간, 보루 위에 서 있던 중년인의 눈빛이 번뜩 빛을 발했다.

(범인이 아니다!)

그는 종남파(終南派)의 명숙인 청검신수(靑劍神手)였다.

청검신수는 급히 달려나오며 중년문사를 맞이했다.

선생께서는 어인일로 이곳까지 험한 걸음을 하셨소이까?”

그의 태도는 지극히 정중한 가운데 위엄이 담겨 있었다.

중년문사는 걸음을 멈춰서며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생은 신기곡(神機谷)의 만박(萬搏)이라 불리는 졸부이외다!”

순간,

“...!”

천검신수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는 눈을 빛내며 빠르게 중년인을 살펴본 후 내심 중얼거렸다.

(이 인물이 바로 태상맹주께서 극찬하시던 그 기재(奇才)...!)

그는 놀라움의 눈빛을 지었다.

중년문사, 물론 그는 만박기사(萬搏奇士)로 역용한 군무현이었다. 이윽고, 청검신수는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만박기사(萬搏奇士)셨구려! 그렇지 않아도 태상맹주께서 여명을 누누이 말씀하셨소이다. ,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감사하오!”

군무현도 가볍게 예를 취했다. 문득, 고개를 드는 군무현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대천성자... 본인과 만난 것이 그대의 가장 큰 실수임을 깨닫게 되리라!)

그는 내심 기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청검신수는 몸을 돌려 앞장섰다. 그는 총총한 걸음을 옮겨 군무현은 천신보 안으로 안내했다.

천신보의 보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던 군무현, 그는 내심 경탄해 마지 않았다.

(천마궁에 못지 않는군!)

천신보 안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화려한 고루거각과 크고 작은 전각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바깥에서 볼 때 천신보의 위용은 가히 천하를 압도할 정도였다. 하나, 그 내부는 표면적인 위용보다 더 질서정연하고 엄중했다.

군무현은 그 분위기를 단번에 직감할 수 있었다.

천신보 내를 오가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정기가 헌앙한 영걸들 뿐이었다. 이윽고, 청검신수는 하나의 넓은 대전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대정전(大正殿)!>

 

대전의 입구에는 그와같은 편액이 높게 걸려 있었다. 청검신수는 군무현을 대정전(大正殿) 안으로 안내했다.

대전 안, 수십 명의 인물들이 자리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군무현과 청검신수가 대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

“...!”

대전 안의 인물들의 눈길이 일제히 군무현에게로 쏠렸다. 그러자, 청검신수는 얼른 입을 열어 군무현을 좌중에 소개했다.

여러분! 귀빈께서 오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만박기사 이십니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

만박기사...!”

좌중에서 일제히 감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들은 각기 한 분야에서 무림제일의 지존(至尊)으로 숭앙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나같이 출중한 기품과 함께 정기(正氣)가 늠염한 모습들.

그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군무현을 반겼다.

그때,

헛허... 어서 오시오! 태상맹주께 선생의 말씀을 많이 들었소이다!”

현의(玄衣)를 걸친 장대한 체구의 노인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군무현에게로 다가왔다. 순간, 군무현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현의천신...!)

그는 내심 복잡한 심정이었다.

현의천신! 그가 누군가? 바로 적룡세가를 친 주요 인물이 아닌가?

군무현에게는 불공대천지수였다. 하나, 또한 그는 위지사영의 친부로 자신의 장인이 되기도 했으니... 군무현은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하나, 그는 내심의 감정을 내색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현의천신을 향해 포권했다.

만박기사, 맹주께 인사드리오이다!”

허허...! 원로에 노고가 많았소. , 이리로 앉으시오!”

현의천신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군무현을 좌중의 상좌로 안내했다. 물론, 그를 귀빈으로 대우하여 상좌에 앉힌 이유도 있었다.

하나, 군무현은 실상 신기황의 제자로서 배분으로 치자면 이곳에서도 제일 높은 것이다.

상좌를 그에게 내줌은 마땅한 일이었다.

고맙소이다!”

군무현은 가볍게 예를 표한 후 상좌에 앉았다.

현의천신도 곧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이어, 그는 만면에 기쁜 빛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허허... 선생께 여러분의 명숙들을 소개해 드리겠소.”

그는 군무현에게 천의맹 내의 명숙들을 차례로 소개해 나갔다.

군무현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인물은 한 명의 금포노인이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바로 그였다.

중인들과는 달리 그의 안색은 왠지 몹시 어두어 보였다. 군무현에 의해 허공에서 떨어져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금지옥엽 금붕옥녀(金鵬玉女) 때문이었다.

그녀의 상세는 점점 악화되어 갈뿐 도무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금붕천왕, 그가 아무리 잔악한 심성을 지녔다고는 하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극했다. 그는 비록 몸은 좌중에 있었으나 마음은 오직 금붕옥녀의 생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얼굴에 수심의 표정이 절로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군무현은 눈길을 돌려 다시 좌중의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금붕천왕 외에 그가 알고있는 인물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소림(少林)의 방장인 광법선사(廣法禪師)를 비롯하여, 무당장문인 청옥자(靑玉子), 종남(終南)의 장문인 종남검옹(終南劍翁), 당문(唐門)의 가주(家主)인 천수신(千手神) 당가정(唐家正) ...

그리고, 장하용왕(長河龍王)과 쾌도문(快刀門)의 도천왕(刀天王)도 자리하고 있었다.

현의천신은 장내의 인물들을 거의 다 소개하고 난 후 이번에는 한 명의 중년미부를 가리켰다.

이분은 중원제일여협(中原第一女俠)이신 쇄심선자(碎心仙子)이시오!”

그녀를 일견한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가볍게 굳어졌다.

쇄심선자(碎心仙子)!

그녀가 누군가? 쫓기던 군무현에게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를 쳐내어 위경에 빠뜨리게 했던 여인이 아닌가?

그녀야말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원수였다. 그때, 문득쇄심선자가 기이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선생의 눈빛이 왠지 눈에 익은 것 같군요!”

그 말에 군무현은 내심 흠칫했다. 하나, 그는 극히 태연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눈매가 비슷한 사람은 많은 법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온화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내심은 차갑게 식고 있었다.

그때,

허허... 만박기사께서 오셨다고!”

문득 가벼운 너털웃음이 들리며 한 명의 노인이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석풍도골의 수려한 풍모에 인자하고 온후하기 그지없는 백의노인, 그가 들어서는 순간,

태상맹주! 어서 오십시오!”

좌중의 인물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백의노인, 그가 바로 정의맹 최고의 직위를 지닌 대천성자였다.

소요장의 기인, 군무현의 눈빛이 짧은 순간 예리하게 빛났다.

(음모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

그는 대천성자의 모습을 빠르게 훑어본 후 극히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는 대천성자를 향해 정중히 예를 위해 보였다.

허허... 신수가 훤해지셨군. 탕마대전(蕩魔大戰)이 임박한 때에 자네가 찾아와 주니 노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한 심정일세!”

대천성자는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덥석 군무현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인자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었으며 그 태도는 만인이 존경할 정도로 정대하고 품위가 넘쳤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무서운 인물...!)

군무현은 그런 대천성자를 주시하며 내심 차갑게 중얼거렸다. 하나, 그는 전혀 내색지 않고 겸손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거한 재간이나마 천하가 안정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소생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정심한 가운데 굳은 의지가 담긴 그의 어조, 그것은 만인이 신뢰할 수 있는 어떤 기이한 힘이 담겨 있었다.

대천성자는 그 말에 크게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허... 고맙네. 앉게나!”

군무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천성자는 좌중을 둘러본 후 군무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헛허... 그대가 올줄 알고 군사(軍師)의 자리를 비워두었지. 어떤가? 맡아 줄 수 있겠나?”

그는 모든 것을 다 예비해 놓고 좌중의 의견까지도 합일시켜 놓은 뒤 군무현의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군무현으로서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소생에게 과분한 직위이나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겸손한 가운데 당당한 자신감이 서린 어조, 그런 그를 좌중의 인물들은 이미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대천성자, 그 역시 몹시 흔쾌한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허허... 되었네. 이제 정의맹은 천마궁에 쾌승할 것이 분명하네!”

“...!”

“...!”

중인들은 그 말에 안색을 활짝 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가볍게 검미를 모으며 입을 열었다.

천마궁의 공략 계획이 임박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말의 현의천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소이다. 군사(軍師)! 앞으로 열흘 후, 본맹은 천마궁을 칠것이오!”

그의 어투는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군사(軍師). 군무현을 군사로 부르기에 서슴치 않은 것이었다.

(열흘 후라...!)

군무현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군무현에게 집중되었다.

새롭게 군사로 추대한 그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눈빛으로.

문득, 군무현은 강렬한 신광을 빛내며 자신있게 입을 열었다.

열흘 동안... 정의맹의 지휘권을 소생에게 맡겨주십시오. 지금보다 두 배 강하게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

그의 말에 각 문파의 수뇌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질을 지닌 기재라고는 하지만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한데, 군무현이 장담한 것은 그 능력 이상의 것이 아닌가!

하나, 대천성자, 그는 일점의 불신이 빛도 표시하지 않았다.

그는 의아할 정도로 군무현을 믿는 것 같았다.

허허... 신기황의 제자이니 어련하겠는가? 노부는 그대의 재질을 크게 기대해 보겠네!”

감사합니다!”

군무현은 자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때, 현의천신이 문득 안색을 바꾸며 군무현에게 권했다.

먼길을 오시느라 피곤하실텐데 오늘은 쉬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군무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소이다!”

그 말에 현의천신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군무현에게 말했다.

, 노부를 따라오시오!”

고맙소이다!”

군무현은 좌중의 중인들에게 가볍게 포권을 해보였다. 이어, 그는 현의천신을 따라 천천히 대전을 나섰다.

군무현의 거처는 천신보 후원의 조용한 전각이었다.

아담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전각, 그 앞에는 잘 가꾸어진 화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의천신은 특별히 군무현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두 명의 시녀마저 거처에 두게 했다.

군무현, 그는 탁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금방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문득 문 밖에서 시녀의 공손한 음성이 들려왔다.

군사님! 금붕도의 금붕천왕께서 오셨습니다!”

군무현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금붕천왕... 금붕옥녀 때문에 왔나보군!)

그는 달갑지 않은 심정이었으나 금붕천왕을 맞아들여야 했다.

안으로 모셔라!”

그는 밖을 향해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드르륵... 방문이 열리며 잠시 후 수척한 얼굴의 금붕천왕이 들어왔다.

야심한 시각에 찾아뵈어 폐가 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구려!”

그는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오이다. , 앉으시지요!”

군무현은 담담한 신색으로 손을 저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군무혀은 금붕천왕의 시색을 살피며 먼저 말을 꺼냈다.

도주께서는 우환이 있으신 듯 한데...!”

금붕천왕은 그제서야 잔뜩 수심의 표정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 때문에 군사를 찾아뵌 것이오. 이 늙은이게는 딸 아이가 한명 있소. 한데 얼마전 강적에게 크게 부상을 당하여 지금까지 인사불성의 상태에 빠져있소!”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절박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한가닥 기대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신기황께서는 기절(奇絶)이시자 의절(醫絶)이셨음을 알고 있소이다. 군사께서 그 아이를 좀 돌보아 주셨으면 하고...!”

그는 말끝을 흐렸다. 하나, 그의 눈빛 속에는 절실한 기대의 빛이 떠올랐다.

“...!”

그 눈빛을 접한 군무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눈앞에 앉아있는 인물, 그는 자신의 원수다. 하나, 원수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그는 동정을 느꼈다.

(어찌 되었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무엇보다 숭고한 것이니...!)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문득 그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져 천색을 살폈다.

(삼경(三更)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삼경이라니...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이윽고, 군무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려운 일이나 영애(令愛)의 상세를 한 번 보아드리겟소!”

순간, 금붕천왕의 안색이 금방 환하게 밝아졌다.

군사! 이 은혜를...!”

하나, 군무현은 손을 내저었다.

아직 영애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이니 도주의 과례를 감당할 수 없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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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四 章

 

                       仙府後裔

 

 

 

군무현이 신형을 휘청하는 순간, 우르르릉! 콰릉... 표향대운룡의 노도같은 강기가 그의 전면으로 짓쳐들었다.

군무현은 흠칫했으나 황급히 몸을 움직이며 외쳤다.

태양천뢰폭!”

직후, 파파파 팍! 청백색의 불길이 화산이 터지듯 무섭게 작렬했다. 그 기세는 가히 가공지경이었다.

콰르릉 쾅! 일순 낡은 제단이 박살나며 재로 화해 부서졌다.

순간,

크윽...! ... 태양천제의 무공이 나타나다니...!”

표향대운룡은 경악으로 눈을 부릅뜨며 부르짖었다.

! 그 자는 가슴이 시커멓게 타버린 채 토지묘 밖으로 날아나갔다.

죽이리라!”

군무현은 무서운 살기를 폭사하며 적룡검을 뽑아들었다.

다음 순간, 쐐 액! 한 줄기 눈부신 광채와 함께 적룡검이 날았다.

적룡어강살!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적룡검은 정확히 표향대운룡의 등을 향해 꽂히듯 뻗어나갔다. 직후,

케 엑!”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시뻘건 피가 확 퍼져올랐다.

삼십장 밖으로 달아나던 표향대운룡, 그 자는 허리가 양단된 채 그대로 즉사해 버린 것이 아닌가?

냉막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군무현,

문득,

크윽...!”

그는 신음을 토하며 몸을 휘청했다. 애써 억눌러왔던 표향대섭정신공의 음사지기(淫邪之氣)가 뚝이 터지듯 폭발하며 노도같은 욕정이 치솟아 오른 것이었다.

그것은 군무현으로서도 감당치 못할 강렬한 욕정이었다.

...!”

그의 이성은 급격히 무너졌다. 그의 전신은 불덩이같이 달아올랐으며 두 눈은 삽시에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그런 그의 변화에 청하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

그녀는 절망적인 신음을 발하며 탄식했다.

그때,

... ...!”

군무현이 몸을 비틀거리며 청하에게로 다가왔다. 이어, 그는 그대로 난폭하게 청하를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청하는 불문정종심법을 익힌 불제자였다. 그래도 그녀는 아직 극히 미약한 한 가닥의 이성이 남아 있었다.

... 안돼요! ... 시주...!”

그녀는 안간힘을 써서 군무현을 피하려 했다. 하나,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욕정에 휘말려버린 군무현이 그런 그녀의 저항에 물러날리 만무했다.

파팍! 한 순간 군무현의 거친 손길에 청하가 쓰고있던 죽립이 완전히 박살났다. 그러자, 욕정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 ...!”

군무현은 짐승같이 거친 신음을 발하며 그대로 청하의 몸을 덮쳤다.

...!”

청하는 무섭게 끓어오르는 본능적인 욕망과 한 가닥 남은 이성이 서로 뒤엉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찌익 찍! 군무현은 거칠게 청하의 승포를 찢어버렸다. 그러자, 터질 듯 무르익은 풍만한 젖가슴이 눈앞에 드러났다.

허억!”

군무현은 그것을 보는 순간 손으로 덥썩 움켜쥐었다.

청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뜨겁게 달아로는 육체에 사내의 손길이 닿자 한가닥 남아있던 이성마저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다.

흐윽...!”

그녀는 뜨거운 비음을 발하며 오히려 군무현에게 매달렸다. 한데 그때,

... 제발... 소녀 먼저...!”

이미 전라가 된 위지사영까지 군무현의 품에 안겨들었다.

군무현은 충혈된 눈으로 두 여인의 모습을 노려보았다.

이어, 찌 익! ! 그는 미친 듯이 자신의 의복을 찢어던졌다. 그리고, 두 여인과 한 사내는 격정적으로 서로 뒤얽혔다.

 

폭풍일과(暴風一過).

흑흑...!”

처연한 여인의 흐느낌이 토지묘 안을 가득 채우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침. 어느새 토지묘 안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문득,

...!”

군무현은 머리가 깨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눈을 떴다. 순간,

“...!”

그의 몸이 흠칫 굳어지고 말았다.

지난 밤, 한차례 악몽을 꾸고난 기분이었다. 표향대섭정신공의 음사지기에 휘말려 그는 밤새 두 여인과 정사를 벌였던 것이다.

폭풍의 밤, 그것은 온 몸의 힘을 거의 탈진시켜 놓고서야 사그러들었다. 아직 어둑어둑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토지묘의 구석 자리,

흐흐흑...!”

한 명의 여인이 쪼그리고 앉은 채 서럽게 오열하고 있었다.

삼십 전후의 기품있고 고귀한 용모를 지닌 여인. 그녀는 찢어진 승포로 대강 몸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나직한 흐느낌, 하나, 그것은 심금을 적셔낼 듯한 깊은 서러움이 배인 것이었다.

그녀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낄 때마다 그녀의 풍만한 나신이 뽀얗게 출렁거렸다.

군무현. 그의 눈빛이 어둡게 흔들렸다.

그는 문득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품에는 위지사영이 새록새록 숨을 몰아쉬며 단잠에 빠져있었다. 역시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내가 기이코...!)

군무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청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위지사영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빼냈다.

청하가 덮어 주었는지 군무현과 위지사영의 나신 위에는 군무현의 장포가 덮여져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의복을 찾아입은 군무현, 그는 조용히 청하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청하의 앞에 서슴없이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청하는 밤새 군무현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고운 피부 여기저기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뭐라고 사죄를 해야할지 모르겠구려!”

군무현은 침중한 어조로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그러자, 청하는 비로소 울음을 그치며 토지묘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빈니의 사부께서는 대비(大悲)라는 법호로 불리시는 분이에요!”

그녀는 착 가라앉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은 군무현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나, 그는 내심 의아함이 솟구쳤다.

(대비신니가 아직 열반에 들지 않았단 말인가?)

청하는 눈을 고인 눈으로 토지묘 밖의 햇살을 쫓으며 말을 이었다.

사부께서는 빈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삭발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빈니의 세속과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고 하시며...!”

그녀는 잔잔한 두 눈에 짙은 회의의 빛을 떠올렸다.

군무현은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좋을지 몰랐다. 범인도 아닌 비구니를 범한 자신의 과오를 씨슬 길이 없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스님의 청백(靑白)을 더럽혔으니...!”

그러자,

...!”

청하는 다시 오열을 터뜨리며 얼굴을 무릎사이에 파묻었다.

... 스님...!”

그녀의 그 모습에 군무현은 어쩔 줄 몰라 난색을 지었다. 하나, 뒤이어 흘러나온 청하의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 시주를 탓하는 것이 아니예요. 오히려 빈니로 인해 시주의 청렴함이 더럽혀진 것이 죄스러울 뿐이에요!”

... 슨 말씀이십니까?”

군무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이 깊고 큰 두 눈에는 번뇌와 고통의 빛이 가득했다.

문득,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번뇌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빈니의 가문은... 천외쌍비(天外雙秘) 중 선부(仙府)에요!”

순간,

... 선부(仙府)!”

군무현은 대경하며 부르짖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때, 청하는 짙은 고통에 얼룩진 음성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선부(仙府)!

 

시조는 일천오백년 전의 무명기인(武名奇人)이었다.

그는 한 명의 낙척문사에게 천외절학(天外絶學)을 전수했다. 그리고, 암중의 혈문(血門)을 제어하라는 명을 내렸다.

낙척문사. 그가 바로 선부(仙府)의 제일대 부주인 극락천존(極樂天尊)이었다.

그후 천오백 년, 선부는 천외(天外)에 몸을 감춘 채 일가(一家)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들의 임무는 호시탐탐 천하를 수중에 넣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혈문의 야심을 막는 것이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천오백년, 선부는 조사의 명을 어기지 않고 혈문의 야심을 철저히 막아왔다. 한데, 결국 당금에 이르러 파국이 일어나고 말았으니...

선부(仙府)!

바로 그들의 부중에 배신자가 생긴 것이었다. 그 자는 혈문과 손을 잡고 선부를 파멸시켜 버린 것이 아닌가!

 

비사(秘事).

청하의 입에서는 천외(天外)의 비사가 거침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무현,

“...!”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청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청하(淸河)!

그녀는 선부의 당대부주였던 자운뢰(紫雲雷)의 천금(千金)이었다.

그녀의 본명은 자하빈(紫霞嬪). 자운뢰에게는 자운형(紫雲衡)이라는 이복동생이 있었다.

그들 두 형제의 성격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인 자운뢰는 성품이 온후하고 인자했다.

하나, 자운형은 지극히 독선적이고 야심(野心)이 큰 자였다. 결국, 그 자는 자운뢰의 그늘에 있는 것으로 만족지 않고 모반(謀反)을 꾀했다.

그 자는 선부 내부의 동조자들을 모두 규합했다.

부주(府主)의 지위를 찬탈하려는 반모를 자행한 것이었다. 하나, 그 자의 반모는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결국, 자운형만 살아남고 나머지 동조자들은 모두 참수 되었다. 자운형까지 처벌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자운뢰의 인후한 성품 때문이었다.

()이 많고 자애로운 자운뢰는 차마 아우인 자운형을 죽이지 못했다. 하나, 그것이 곧 비극의 시초가 되고 말았으니...

자운형은 이번에는 은밀히 혈문과 내통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혈문이 선부를 급습하도록 내응하기에 이르렀다.

그 돌연한 사태는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선부는 혈문의 뜻밖의 기습에 여지없이 궤멸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이십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자하빈(紫霞嬪). 그녀의 나이는 열살이었다.

 

흑흑... 그때 자운형 그 자는 아버지의 시신 곁에서 어머니를 능간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능욕당하시다 혀를 물고 자진하시자... ... 빈니를...!”

청하, 아니 자하빈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서러운 오열을 터뜨렸다.

흐윽... 빈니를 덮쳐서...!”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

“...!”

군무현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자하빈에게 그렇게 참담한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자하빈은 오열을 멈추지 못하며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추악하고 이미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진 몸... 빈니로 인해 시주에게까지 누가 되었으니...!”

군무현의 두 눈에 짙은 연민의 빛이 어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가엾은 하빈...!”

문득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자하빈의 허리를 굳게 끌어안았다.

“...!”

터질 듯 무르익은 여체가 군무현의 두 팔 안에서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군무현은 농염하기 이를데 없는 자하빈의 유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어 그는 자하빈의 귓전에 얼굴을 파묻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위로했다.

하빈... 내게는 이미 내자가 있으나 한평생 하빈을 누구보다도 아끼며 보살펴 주겠소. 나를 따라주시오!”

순간, 자하빈의 교구가 다시 한차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그럴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시주... 빈니는... 으음...!”

하나, 군무현의 손이 어딘가를 더듬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군무현, 그를 연모하고 있지 않은가?

하빈...!”

군무현은 뜨겁고 부드러운 손길로 자하빈의 전신을 애무했다. 자하빈에게는 부드러운 애무가 필요했다. 부드러운 위로, 부드러운 속삭임도 필요했다.

그녀는 너무도 황량한 가슴으로 청춘을 태워버린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랑(), 부드러운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않은 여심(女心)을 따스하게 감싸줄...

군무현은 소중하게 어루만지듯 자하빈을 다루었다.

...!”

자하빈은 군무현의 능숙한 손길 아래 다시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군무현의 넓은 품에 전신을 내맡겼다.

이윽고, 군무현은 자하빈의 교구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리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자하빈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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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三 章

 

                 두 女人危機

 

 

 

복우산(伏牛山)!

 

! 한 명의 여인이 다급한 표정으로 복우산역을 날어넘고 있었다.

정의맹(正義盟)이 혈문(血門)의 술수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니...!”

여인은 믿릉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일신에 청의경장을 가뿐하게 차려입은 여인, 그녀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하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옥같은 고운 왼쪽 뺨에는 한줄기 선명한 검흔(劍痕)이 그어져 있었다.

하나 그것은 끔찍하다기 보다는 기이한 매력을 더해주는 것으로 강렬한 인상을 풍겼다.

그녀는 몹시 초조한 듯 최대한의 속도로 몸을 날리며 중얼거렸다.

막아야 한다. 천마궁과 정의맹이 부딪히면 동귀어진하고 말 것이다!”

문득, 그녀는 교수를 꼭 움켜쥐며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대천성자(大天聖子)! 그 자가 혈문의 주구라니...!”

스슥! 그녀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으하하하!”

돌연 한 소리 호탕한 대소가 주위를 울렸다.

이어, 휘 익! 한 명의 화복청년이 쾌속한 신법으로 경장여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웬놈이냐?”

경장여인은 흠칫 놀라 몸을 세우며 날카롭게 외쳤다.

화복청년, 그는 제법 준수한 용모를 지닌 자였다. 하나, 가늘게 찢어진 두 눈에는 음탕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후후... 천래검봉(天來劍鳳) 위지낭자! 걸음을 멈추어 주셔야겠소이다!”

그 자는 음침한 눈으로 경장여인을 훑어보며 말했다.

청의경장여인, 그녀는 바로 천신보(天神堡)의 천금(千金)인 위지사영이었다.

위지사영은 안색이 일변했다.

당신은 혹시...!”

그녀는 아미를 모으며 주춤 물러섰다.

화복청년은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여유있게 말했다.

후훗... 본인은 혈문(血門)의 소문주(少門主)인 표향대운룡이외다!”

순간, 위지사영은 대경한 듯 아미를 파르르 떨었다.

당신이...!”

! 그녀는 급급히 뒤로 물러나며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하나, 화복청년, 즉 표향대운룡은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섰다.

흐흣... 알아서는 안될 일을 알았으니 입을 막을 수밖에...!”

위지사영은 아미를 상큼 곤두세우며 앙칼지게 외쳤다.

어림없는 수작! 누워랏!”

위 잉! 그녀의 손에서 일순 강맹한 강기가 벼락같이 쏟아져 나왔다.

핫하... 대비신니의 무공이군!”

표향대운룡은 여유있게 웃으며 표표히 날아올랐다.

다음 순간, 휘르르! 갑자기 사위는 온통 기이한 향기로 가득차는 것이 아닌가?

위지사영은 흠칫하며황급히 호흡을 멈추었다. 하나,

...!”

이미 그녀는 몇모금의 향기를 들이킨 후였다. 순간, 그녀는 정신이 아찔해지며 눈앞이 어지러웠다.

... 비겁하게 암수를 쓰다니...!”

위지사영은 분노의 표정으로 표향대운룡을 노려 보았다. 이어 그녀는 다급히 장권 밖으로 물러나려 했다. 하나,

...!”

! 그녀의 교구가 일순 휘청하는가 싶더니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핫하... 표향대섭정신공은 여인에게는 무적이지!”

그제서야 표향대운룡은 득의의 웃음을 터뜨리며 지면으로 내려섰다.

... 표향음룡의 무공이 나타나다니...!”

위지사영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중얼거렸다. 이어,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안간힘을 써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나, 이미 그녀의 몸은 생각대로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 ...!”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나직한 비음, 위지사영은 전신이 화끈 달아오름과 함께 스르르 온몸이 녹아 버리는 듯한 무력감에 사로 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표향음룡의 색공(色功)을 이겨낸 여인이 천하게 어디 있겠는가?

 

표향음룡!

만독노조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고금제일색마(古今第一色魔).

 

천하의 계집이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게 호언한 자가 바로 그였다. 그것은 결코 그의 광언이 아니었다.

표향음룡은 평생 일만 명의 여인들을 그의 마수 아래 꺾어 소유했다. 그러니 어찌 천하의 여인들을 모두 자신의 것이라 장담하지 않겠는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궁의 왕비조차도 손쉽게 소유할 수가 있었으니... 하나,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는 만독노조의 손녀를 능욕하려다가 만독노조에 의해 한줌의 독수(毒水)로 사라졌다.

천지십강 중의 일인, 그러나 가장 명예롭지 못한 이름으로 무림사(武林史)의 한 장을 장식한 인물이었다.

그의 표향대섭정신공!

그것은 인간의 본능을 격발시키는 사이한 음공(淫功)이었다.

 

... ...!”

마침내, 위지사영은 끓어 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표향대운룡은 음탕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그냥 죽이지는 않겠다. 극락을 구경시켜 준 후에 하늘로 보내주지!”

이어, 그 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위지사영을 옆구리에 끼었다.

스스슥! 이내 그 자의 모습은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토지묘(土地墓).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하 허물어져 가는 낡은 토지묘였다.

저곳이 좋겠군!”

표향대운룡은 토지묘를 발견하고 음침하게 눈을 번득였다.이어, ! 그 자는 위지사영을 안아든 채 곧장 토지묘 안으로 날아들었다.

토지묘 안은 온통 먼지 투성이였다.

표향대운룡은 대충 주위를 치운 후 제단 위에 위지사영을 눕혔다. 그때,

... 흐윽! 어서... 어서... 어떻게 좀...!”

위지사영은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듯 전신을 비비꼬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흐흐흐... 조금만 참아라. 극락의 맛을 보여주겠다!”

표향대운룡은 음탕하게 웃으며 슬쩍 위지사영의 젖무덤을 쓰다듬었다. 순간,

... !”

위지사영은 부르르 교구를 떨며 뜨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흐흐...!”

표향대운룡은 탐욕의 눈길로 여체를 구석구석 쓸어 보았다.

이어, 그 자는 천천히, 그러나 능숙한 손길로 위지사영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상의와 하의가 차례로 벗겨지고 마지막으로 흰 비단 젖가리개와 속곳마저 남김없이 벗겨졌다.

... 그러자 드러나는 눈부신 나신, 투명할 정도로 희고 깨끗한 피부에 선명하 굴곡을 이룬 몸매, 실로 아릅답기 짝이 없었다.

하나, ()의 티랄까? 위지사영의 탐스러운 젖가슴에서부터 아랫배까지에는 한 줄기 긴 검흔이 그어져 있었다.

얼굴의 그것과 같이 미묘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검흔, 그것은 사내의 음심을 야릇하게 충동질했다.

표향대운룡은 후끈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자는 성급히 자신의 의복을 벗어 던졌다. 이어, 그 자는 거칠게 위지사영의 전신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위지사영은 사내의 적극적인 애무에 불붙듯 전신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본능적인 쾌감에 부르르 몸을 떨며 사내의 굳건한 등을 힘껏 부여 안았다.

사내는 능숙하게 여인을 다루었다. 그 자는 집요한 손길로 여인의 민감한 부분만을 애무해 나갔다.

여인은 미칠듯한 쾌감에 몸을 떨며 소리높은 비음을 내질렀다.

... 어서...!”

그녀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마지막 행위를 재촉했다.

흐흐... 알았다.”

사내는 음탕한 웃음을 흘리며 여인의 몸 위로 올라갔다. 이어, 그 자가 막 여인지문을 침범하려 할 때였다.

아미타불...!”

돌연 정대하고 맑은 여승의 불호성이 천둥처럼 표향대운룡의 귓전을 때렸다.

동시에, 우 웅! 천지를 뒤덮는 웅장한 무형강기가 노도처럼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

표향대운룡은 질겁하며 황급히 위지사영의 몸 위로 날아올랐다.

그때, 스스스스... 토지묘 앞으로 죽립을 쓴 한 명의 회의여승이 나타났다.

! 그녀는 바로 대비신니의 직전제자인 청하가 아닌가?

아미타불... 음행을 서슴치 않다니...!”

그녀는 표향대운룡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순간, 콰 릉! 서기로운 불광(佛光)이 서린 강전이 표향대운룡을 행해 뻗어나갔다. 하나, 표향대운룡은 능글능글한 음소를 흘리며 슬쩍 몸을 피해냈다.

흐흐... 질투하지 마시오. 스님도 귀여워 해줄테니...!”

그 자는 청하의 음성이 아직 젊다닌 것을 느끼고는 음욕을 품었다.

청하의 음성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구제할 수 없는 중생!”

그녀는 분노한 듯 무섭게 손을 내저었다.

파파파 팍! 콰쾅...! 눈부신 금빛강전이 빗발치듯 표향대운룡을 향해 쏟아졌다. 하나, 표향대운룡은 여전히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흐흐... 스님도 여자이니 그 맛을 보면 미치고 말것이오!”

그 자는 음탕하게 웃으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 내뱉았다.

다음 순간, 휘르르! 돌연 그 자의 몸이 빙그르 회전했다.

그와 함께, 표향대섭정신공의 향기가 툐지묘를 확 뒤덮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

청하는 대경하며 급히 호흡을 멈추었다. 하나, 이미 한 모금의 향기를 들이마신 후였다.

으음...!”

그녀는 일순 전신이 화끈 달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신음성을 발했다. 이어, 그녀는 교구를 휘청하며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실로 표향대섭정신공의 향기는 지독한 것이었다. 표향대운룡은 쓰러진 청하의 모습을 내려다 보며 음탕한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흐흐... 대비신니의 제자라고 해서 별수 있느냐? 어차피 계집인 것을...!”

“...!”

청하늬 교구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이어,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최후의 공력을 우수에 모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

그녀는 표향대운룡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표향대운룡은 청하의 일장 앞까지 다가섰다.

그 순간,

대비불광참(大悲佛光斬)!”

쓰러져 있던 청하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파파팍 쾅! 가공할 폭음이 들썩 토지묘를 뒤흔들었다.

!”

표향대운룡은 대경실색했다. 그 자는 확급히 몸을 피하며 마주 장을 내뻗었다.

위 잉! 콰르르르... !

크 윽!”

표향대운룡은 손목을 움켜쥐고 휘청 물러났다.

청하 역시 도중에 공력이 끊어지는 바람에 급격한 충격을 받고 밀려났다.

으음...!”

그녀는 손을 떨구며 한 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과도한 공력의 사용으로 오히려 끓어 오르는 욕정을 더 뜨겁게 부채질하고 만셈이었다.

(... 공력만 이어졌다면 격살시키고 말았을 텐데...!)

그녀는 절망감을 느꼈다.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다.

표향대운룡은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청하를 노려 보았다. 하나, 곧 그 자는 음탕하게 안색을 바꾸며 청하에게로 다가섰다.

흐흐... 계집! 속썩이는군. 그 대신 네년부터 즐겨주마!”

그 자는 거칠게 청하의 승포 속으로 불쑥 손을 집어 넣었다. 순간,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힘껏 혀를 깨물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손을 떼고 일어서라!”

돌연 한 소리 무심하고도 싸늘한 음성이 토지묘 안을 울렸다. 순간,

!”

표향대운룡은 대경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청하의 교구가 일순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보았다. 토지묘의 문 앞에 우뚝 서 있는 인물을. 죽립 속에 가려진 그녀의 눈빛이 격심하게 흔들렸다.

(... 구류지존 군시주...!)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내심 부르짖었다.

! 어느새 토지묘의 밖에는 무심한 표정의 군무현이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를 발견한 표향대운룡의 안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 네놈은 혹시 구류지존!”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표향대운룡을 주시했다.

눈은 제대로 박혔군. 감히 비구니를 욕보이려 하다니... 죽이리라!”

순간,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

그 모습에 표향대운룡은 절로 몸이 떨렸다. 하나, 곧 그 자는 살기어린 눈을 번득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크흐... 구류지존! 잘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만나고 싶었다!”

그 자는 군무현을 노려보며 전신에 공력을 끌어 모았다.

위 잉! 그 자의 몸 주위로 일순 강력한 무형강기가 퍼져 일어났다. 그 모습에 군무현의 눈빛이 가볍게 변했다.

(강하군. 천마제군이나 대천성자에 못지 않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천천히 토지묘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 시주! 조심하세요! 그 자는 표향대섭정신공을...!”

보고 있던 청하가 급히 고개를 들며 군무현을 향해 외쳤다.

하나, 그녀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늦었다! 누워랏!”

꽈르릉...! 표향대운룡이 쾌속히 몸을 회전하며 장력을 짓쳐냈기 때문이었다.

강렬한 기향(奇香)을 실은 강기가 폭풍같이 군무현을 휩쓸어왔다.

군무현은 경각했다. 하나, 그는 황망중에 한 모금의 향기를 들이마시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 六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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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二 章

 

                       魔中至尊, 天魔皇復活

 

 

 

군무현, 그는 천마묵룡 혁세민에게서 시선을 떼며 괴노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인사드리겠소!”

그는 괴노인을 향해 일례를 표했다.

아아! 그렇다. 이 괴노인이야말로 그 명성이 삼산오악을 뒤흔드는 천마황(天魔皇)인 것이다.

헛허... 적룡세가(赤龍勢家)와 적룡대제(赤龍大帝)라는 후진에 대해서는 이 아이에게 들었지. , 앉으시게!”

천마황은 호쾌하고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하나, 일말의 허무한 기운은 감출 수가 없었다.

천하마도를 일통하여 호령하던 천마황의 말로가 이렇듯 비참할 줄이야... 군무현은 그런 천마황의 모습에 내심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내공이 극고한 천마황의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구나. 적어도 감금된지 삼십 년이 지났겠구나!)

천마황의 피부는 한겹이 벗겨져나간 상태에서 다시 썩어 고약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결국... 신기황과 천음황 두 어르신네를 위해한 것은 천마황 본인이 아니었다!)

군무현은 확신을 갖고 추측했다.

“...!”

“...!”

군무현과 천마황은 잠시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 무언의 대화 속에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시대를 달리한 두 노소(老少)의 영웅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윽고,

헛허! 정말 거목(巨木)이로군. 신기황과 천음황 두 노형이 거목을 길렀어!”

천마황은 군무현의 찬사로 치묵을 깨뜨렸다.

과찬이십니다. 다만 인연이 닿아 두 분의 진전을 얻었을 뿐입니다!”

그래, 두 분 노형은 무고하신가?”

천마황은 크게 궁금한 듯 군무현의 얼굴을 뚫어질 듯 바라보며 물었다.

순간, 군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기황 어르신네께서는... 비참한 생명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신기황 노형이...?”

천마황의 음성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럼 천음황 노형은?”

그 분은 타계(他界)하셨습니다!”

... 그럴 수가! 천음황 노형이...!”

천마황은 장탄식을 터뜨렸다.

일세(一世)를 진동시켰던 천마황의 최후가 그의 싸늘하게 식은 영혼을 비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군무현은 천마황의 비통한 심경을 피부로 느끼는 듯했다.

바로 노선배님의 형상을 가장한 자에게 암습 당하셨습니다!”

나의 형상!”

천마황은 두 눈 가득 경악의 빛을 지었다.

온 몸이 터져 버릴 듯한 극심한 분노. 그러나, 그는 분노를 억제시켜야 하는 자신의 입장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모두가 노부의 탓일세. 사람을 잘못 거둔 탓에 참혹한 꼴을 당하신 것이라네.”

“...!”

군무현은 묵묵히 천마황의 탄식을 듣고 있었다.

이제와서 천마황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천마제군! 모두 그 자의 짓임이 분명합니다!”

저곳에도 노부의 탓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이 계시네!”

천마황은 석실의 한쪽을 가리켰다.

석동 안의 한쪽 구석, 그곳에는 시퍼런 인광을 발하는 한무더기의 인골이 쌓여 있었다.

군무현은 인골더미를 바라보며 심중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독고을 익힌 독문고인의 유골이다. 그렇다면...!)

그의 검미가 일순 꿈틀했다. 인골이 시퍼런 인광을 발하고 있는 것은 독공을 익힌 탓이었다.

그런 그의 귓전으로 다시 천마황의 탄식성이 들렸다.

독천황(毒天皇)의 유해일세!”

! 독천황이 한무더기의 인골로 화해 군무현의 눈 앞에 나타날 줄이야... 군무현은 독천황의 인골 앞에 경건한 심정으로 구배지례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천마황은 문득 의아한 듯 물었다.

독천황 노형과는 어떤 관계인가?”

군무현은 단천애에서 떨어진 도건후가 떠올라 마음이무겁기만 했다.

바로 내자(內子)의 조부되시는 분입니다!”

그런가? 허허... 그래도 독노형은 행복하시군. 자네같은 손자사위를 두시다니...!”

천마제군이 혈문(血門)의 허수아비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군무현은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다네. 노부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만성독약이 골수까지 뻗힌 상태였지!”

천마황은 잠시 회상하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천마제군은 바로 혈문을 의도적으로 천마황에게 접근시킨 인물이었다.

천마황이 천마제군을 거둔 것은 벌써 육십 년 전의 일인 것이다.

육십 년 전, 천마황은 천마제군의 재질을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재간을 모두 전수했다. 하나, 천마제군이 노린 것은 천마황의 무학이었다.

바로 천마황의 천마궁과 모든 것을 노린 것이다. 결국, 천마황은 천마제군의 암습을 받아 지옥뇌에 갇히게 되었고... 천마궁은 혈문(血門)의 수중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천마화은 길게 탄식했다.

세인들은 모르나 혈문은 천년의 세월 동안 선부(仙府)와 암투를 벌여왔네!”

당대이전(當代以前)에 혈문이 무림에 들어오지 못했던 것은 바로 선부의 저지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다네. 한데 당대에 들어서 혈문이 암중에 천하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이지.”

천마황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휴우... 바로 팽팽하기만 했던 천외쌍비의 금형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군무현은 천마황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천외쌍비... 그 연관이 어찌되기에 천세무림(千世武林)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단 말인가?)

그때, 천마황의 침중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혈문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바로 무엇입니까?”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말을 재촉했다.

바로 천지십강(天地十强)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네!”

...!”

혈문이라해도 천지십강 만큼은 경시할 수 없는 때문이지. 그리고!”

천마황은 문득 말을 끊고 군무현을 뚫어지도록 주시했다. 문득 그의 입가에 한가닥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들의 이런 태도만큼은 옮았다. 헛허... 적룡천종의 진전을 이은 자네가 이럴진대... 천지십강의 후예가 서넛만 더 나타나도 그들은 감당치 못할 것이네!”

그는 흐뭇한 듯 통쾌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랜 세월을 지옥뇌 속에서 비참한 말로를 보내야 했던 그로서는 드물게 통쾌한 심정이었다. 하나, 군무현은 씁쓸하기만 했다.

(천마황... 이 노인은 아마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저렇게 미소를 지어볼 것이다!)

그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다. 이윽고, 그는 안색을 바꾸며 다시 입을 열었다.

노선배님께서는 무공을 회복하실 수가 없습니까?”

그런 말을 하는 자네의 눈에는 노부가 어떻게 보이나?”

천마황은 오히려 군무현에게 담담하게 물었다. 하나, 그 눈빛 속에는 한 가닥 경악의 빛을 엿볼 수 있었다.

(과연 보기드문 기재 중의 기재다. 단번에 그것을 간파해 내다니...!)

그렇다. 천마황은 이미 무공을 회복한 것이다.

헛허... 자네의 눈을 속이지 못하겠군!”

그는 유쾌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천마제군이 실수를 한 것이지. 노부가 한줌의 공력만 남았어도 소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천마지체(天魔之體)!”

그렇다네. 노부는 천마지체인 덕으로 무공을 회복할 수 있었다네!”

군무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사실을 아시는지...!”

무엇인가?”

천마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군무현은 웬일인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면 묻지 않겠네.”

다행히 천마황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혈문에 천지십강의 무공 중 최소한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 그것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이분은 천지십강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지셨다!)

군무현의 눈은 틀림없다.

천마황은 과거의 그가 아니라고 볼 정도로 무서운 무학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 문득 천마황은 깊이 탄식하며 말했다.

노부 스스로 만든 지옥뇌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신세라니...”

그렇다. 지옥뇌(地獄牢)! 이 죽음의 뇌옥은 바로 천마황 자신의 걸작이었다.

천마황의 운명은 자신도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신세였다.

자신이 만든 지옥뇌에 자신이 갇히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군무현은 천마황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이 노인의 운명은 참으로 비참하구나. 자신이 키운 천마제군에게 암습을 당하고 이제는 자신이 만든 지옥뇌에 갇히다니...!)

하나, 이내 그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 그런 것은 이미 잊었다네. 노부는 다만 죽을날만 기다릴 뿐이지!”

천마황은 허탈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나, 군무현은 그런 그에게 용기를 주려는 듯 미소와 함께 다시 말을 이었다.

지옥뇌의 안배는 이미 후배가 풀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천마황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다만, 천마황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천마묵룡 혁세민만이 크게 기뻐했을 뿐이었다.

... 정말입니까?”

그렇소.”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아! 지옥뇌를 빠져 나갈 수 있게 되다니 꿈은 아닐런지요?”

천마묵룡은 기쁨을 금치 못하며 격동했다. 하나, 천마황의 표정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천마묵룡은 의아한 빛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순간, 천마황은 버럭 노갈을 내질렀다.

너는 지옥뇌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순간, 천마묵룡의 안색이 금방 참담하게 이지러졌다.

... 그렇군요. 지옥뇌는 한 번 들어올 수는 있으되 나갈 수는 없는 곳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는 실망의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다. 지옥뇌야말로 살아 들어와 죽은 뒤 영혼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불회뇌(不廻牢)가 아니었던가?

하나,

후훗...!”

군무현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나직한 기소를 발했다.

후배가 신기황의 진전을 얻었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순간,

... 신기황...!”

천마황은 비로소 안색이 대변하며 격동하여 부르짖었다. 그는 군무현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우둔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신기황 노형의 진전을 이었다면 자네에게는 지옥뇌가 치졸하게 보일 것이네!”

핫하... 그러나 역시 노선배님의 걸작인 지옥뇌는 천하에 보기드문 곳입니다.”

군무현은 겸손하게 말하며 천마황을 추켜 세웠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나.”

천마황은 그답지 않게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후배가 지옥뇌의 모든 습독(濕毒)을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

대신 노선배님께서 당분간 지옥뇌에 계시면서 같이 계신 분들의 상세를 호전시켜 주십시오!”

따르겠네. 자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마황의 두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는 무릎을 치면서 호쾌하게 웃어댔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 왔는지 모르네. 잠시 지체된다고 싫어할리 있겠는가?”

핫하...!”

더구나 나와 인고(忍苦)를 같이해온 수하들의 상세를 치료하는 일인 것을...!”

군무현은 미소를 지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천마황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천마묵룡 또한 격정을 이기지 못했다.

아아... 이제 햇빛을 보게 되었군.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천마황은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핫하! 역시 신기황의 후예답군. 혈문은 자신들 내부에 노부가 눈을 부릅뜨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네!”

군무현은 천마황의 얼굴을 주시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벌써 나의 의도를 궤뚫어 보셨군. 과연 천마황이시다!)

그의 의도란 무엇일까? 그렇다. 천마황은 군무현의 심중에 하나의 변수(變數)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혈문을 혼란시킬 하나의 가공스럽고 상상치 못할 변수,

군무현, 그의 가슴 속에는 치밀한 계략이 이미 가득차 있었다.

조용한 그의 표정, 그의 모습이 바로 또 하나의 엄청난 계략은 아닌지...

 

으하하하핫!”

천마황은 그의 평생에 다시는 웃어 보지 못할 정도의 호쾌한 대소를 터뜨렸다.

가슴 속에 쌓이고 쌓였던 모든 울분을 토해내듯이, 그리고, 천마묵룡도 미친 듯이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이제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가 바로 눈앞에 온 것입니다!”

군무현은 천마황과 천마묵룡의 웃음을 지켜보며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아아! 때는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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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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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一 章

 

                    地獄牢秘密

 

 

 

군마대전(群魔大殿)!

 

천마궁의 중심부를 차지한 거대한 대전각, 사십팔개의 계단, 그리고 백팔개의 석주(石柱)로 이루어진 호화롭고 웅대한 대전, 그 주변은 온통 살기로 가득한 군마(群魔)들이 철통같이 둘러싸고 있었다.

청포노인, 그는 거령마신과 함께 군마대전(群魔大殿) 안으로들어섰다. 순간, 그의 두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번뜩 떠올랐다 사라졌다.

(으음... 생각 이상으로 천마궁의 위세가 엄청나군. 신중히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대사(大事)를 그르친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청포노인! 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윽고, 청포노인과 거령마신은 사십 팔개의 계단을 오르기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클클... 환령(幻靈)! 오랫동안 보지 못했네!”

돌연 대전의 문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음산한 괴소가 들려왔다. 순간, 청포노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대전의 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구루혈면마(九淚血面魔)...!)

그는 흠칫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구루혈면마(九淚血面魔)!

그 자의 모습은 마치 지옥염라부에서 금방 뛰쳐나온 듯했다. 생혈(生血)을 바른 듯 시뻘겋고 섬뜩한 얼굴, 송곳같이 예리하게 뻗어 나오는 두 눈의 괴괴한 녹광(綠光)!

그 모습은 가히 지옥나찰을 방불케 했다.

백 년 전, 천음황(天音皇)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 거마 중의 거마(巨魔). 한데, 그 자가 멀쩡히 나타난 것이었다.

 

(으음...!)

청포노인은 구루혈면마의 전신에서 풍겨져 나오는 싸늘하고 사악한 마기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하나, 그의 맑은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지극히 태연스러워 보였다. 그때,

대호법(大護法) 삼가 거령(巨靈)과 환령(幻靈)이 뵙습니다!”

구루혈면마를 발견한 거령마신이 먼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청포노인은 그 모습에 재빨리 따라 고개를 숙였다.

청포노인! 그는 바로 환령마신(幻靈魔神)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환령마신의 신분으로 위장한 군무현이었다.

마침내 그는 천마궁에 잠입한 것이었다. 그때, 구루혈면마는 대전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 거령마신과 군무현 사이를 지나갔다.

클클... 환령! 운남에서의 일은 잘 되었는가?”

!”

그 자의 물음에 군무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며 그는 심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으음... 거령마신이 왠지 의도적으로 나를 도와주는 인상이 풍기는 구나.)

그가 내심 염두를 굴리는 사이, 구루혈면마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 멀리 사라져 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군무현은 군마대전의 호화로운 내부에 저으기 놀랐다.

대전 안, 중앙으로 취의청(聚議廳)이 있었고 좌우로는 석주(石柱)가 도열해 있었다. 붉은 융단이 깔린 바닥과 현란하고 정밀한 수많은 조각상들... 실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광경이었다.

한데, 대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군무현은 정면의 상좌에 누군가 앉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저 자는...!)

군무현은 그 인물을 주시하며 일순 흠칫했다. 그때,

총관! 오제를 데려 왔습니다!”

거령마신이 상좌 앞으로 다가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상좌의 인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수고했네. 자네는 물러가 쉬도록 하게!”

!”

거령마신은 대답과 함께 즉시 대전 밖으로 물러갔다.

혼자 남게된 군무현, 그는 상좌의 인물을 향해 즉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총관을 뵙습니다!”

백포노인, 나이는 팔순 가량 되었을가? 천마궁의 총관이라면 그 무공이 필경 경지를 넘었으리라.

으음... 이곳까지 오느라고 수고했소!”

구누현이 예를 취하자 총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와 함께,

지존! 어서 속하를 따라 오십시오!”

문득 군무현의 귓전으로 총관의 전음성이 파고들었다.

군무현은 이미 그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 인물이 바로 천마궁에 파견된 구류천종의 밀사로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렇다. 천마궁의 총관으로 불리는 백포노인, 그는 바로 구류천종에게 파견된 인물이었다.

그때,

, 어서 따라오게!”

총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갔다.

“...!”

군무현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한데, 총관은 군무현을 이끌고 대전의 후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후문 밖, 그곳은 아늑하게 꾸며진 후원으로 통하고 있었다.

 

후원. 그곳은 온통 수많은 종류의 수목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수목 가운데, 한 채의 전각이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총관은 군무현을 그 전각 안으로 안내했다.

이 전각은 바로 속하가 기거하는 곳으로 은밀한 곳이니 염려를 놓으셔도 됩니다!”

그는 먼저 전각 안으로 들어서며 군무현에게 설명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총관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속하는 천마분타의 총책을 맡고 있는 잔심염황수입니다. 지존을 알현하게 되어 무상의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럼 그대가 천마궁의 구류천종도를 지휘하는 총사인가?”

군무현은 잔심염황수를 주시하며 물었다.

잔심염황수는 어느 새 군무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잔심염황수!

그는 바로 마도의 십대고수 중 한 명이 아닌가? 그는 구루혈면마, 우내사천황 등과 동대(同代)의 거마로서 염황의 일맥을 잇고 있는 인물이었다.

 

잔심염황수는 공손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전각의 주변에는 모두 구류천종도(九流天宗道)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심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으음... 그대는 본존이 천마궁까지 온 이유를 알고 있는가?”

군무현은 어느 새 구류지존으로서의 위엄을 되찾고 있었다.

모르옵니다.”

군무현의 물음에 잔심염황수는 고개를 저었다.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본존은 바로 천마황의 행방을 알려고 온 것이다. 본존이 알기로는 천마황이 천마제일궁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습니다. 천마황은 이미 수십 년 전 제거되었고 천마제군(天魔帝君)이 자리를 이었습니다.”

잔심염황수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천마제군도 제 삼의 인물에게 조종되는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순간, 군무현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삼의 인물에 대해서 아는가?”

하나, 잠심염황수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그 자는 극히 신비하여 그림자조차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인가?”

그 자는 혈문(血門)과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속하의 추측이지만...!”

혈문(血門)...!”

군무현의 입에서 나직한 경악성이 흘러 나왔다.

 

혈문(血門)!

천외쌍비(天外雙秘)의 하나, 바로 천외마도(天外魔道)의 성지라고 알려진 전설 속의 금역(禁域)이 아닌가?

 

잔심염황수는 다시 공손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천마제군 뿐만 아니라 대천성자(大天聖子)의 배후에도 혈문(血門)과 연관된 것 같습니다!”

군무현은 그의 말을 들으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문에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잔심염황수는 그런 군무현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천마대전(天魔大戰)에서 패한 백도의 세력이 대천성자에 의해 무섭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천마제군은 백도세력을 좌시하고 있습니다. 속하의 미천한 생각으로는 제 삼의 인물의 조종으로 흑백양도가 동패구상의 길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순간, 군무현의 안광이 번득 빛났다.

(그렇군. 흑백양도가 동패구상한 후에 제삼의 세력이 나타나면 너무나 쉽게 천하를 얻을 수가 있겠지.)

그것은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음... 우선 천마황이 제거된 것이 확실한 이상...”

군무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잔심염황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어딘가 감금되어 있을 것입니다!”

군무현도 그 말에는 수긍이 갔다.

마도의 지주였던 천마황, 그를 결코 쉽게 죽일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천마황이 유폐되었다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가?”

그 자가 감금될 만한 곳이라면...!”

잔심염황수는 눈을 빛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다,

있습니다!”

문득 그는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지옥뇌(地獄牢)! 바로 그곳이라면 분명히 천마황이 감금될 만한 곳입니다!”

그는 학신에 찬 음성으로 말하며 지옥뇌(地獄牢)에 대해 설명했다.

 

지옥뇌(地獄牢)!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나올 수는 없는 마()의 뇌옥, 그곳은 천마궁에서 영원히 제거되는 인물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한 번 닫히면 천만근의 화약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문과 방벽, 또한, 서른 여섯겹의 철통같은 기관은 가히 나는 새조차 침범을 불허할 정도였다.

 

잔심염황수는 조심스럽게 군무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혹시 지존께서 지옥뇌에 잠입하실 생각이십니까?”

“...!”

군무현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의 뇌리 속에는 어떤 결심이 세워진 듯했다.

(),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천마궁에서 멀지 않은 곳, 그곳에는 깎아지른 듯한 천장단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접근치 앟은 금역(禁域).

문득, 스슥! 천장단애 앞에 하나의 은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군무현! 바로 그가 아닌가?

(지옥뇌(地獄牢)...! 불회뇌(不回牢)라고도 불리는 죽음의 뇌옥... 그러나 신기황 어르신네의 재간 이상의 기관이 펼쳐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군무현은 내심 염두를 굴리며 기광을 번득였다.

그의 전면, 끔찍한 아수라의 형상을 한 지옥뇌의 문이 보였다.

고오오...! 온통 사악한 마기가 흐르고 있는 거대한 철문,

(후훗... 신기황 어르신네의 재간에 비교하면 마치 어린애 장난같군!)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철문을 노려보았다. 이어, 그는 문득 아수라의 눈 부위를 슬쩍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르르릉...! 흡사 악귀가 울부짖는 듯한 섬뜩한 음향과 함께 철문이 좌우로 쩍 갈라졌다.

스슥! 군무현은 열려진 철문 안으로 유령같이 들어섰다.

통로, 철문 안은 음랭한 기운이 가득한 음산한 통로였다.

휘이 잉... 고오...! 섬뜩한 음풍과 질식할 듯한 악취가 통로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스슥! 군무현은 미끄러지듯 통로 안을 전진해 들어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멈칫 몸을 세웠다.

그의 앞에 흑강옥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석문이 나타난 것이었다.

하나,

후훗! 어리석은 짓!”

군무현의 입가에 한가닥 기소가 피어 올랐다.

다음 순간, 파파파 팍! 그의 십지(十指)에서 뇌전과 같은 열가닥의 지력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콰르릉...! 석문의 상단이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제 저 구멍을 통해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흑강옥의 석문을 열었다.

그그긍...! 문이 열리는 순간, 휘이잉! 숨이 콱 막히는 지독한 악취와 습기가 쏟아져 나왔다.

군무현은 절로 오만상을 찌푸렸다.

(지독하군. 아무리 공력이 높아도 이 지경에서 일년만 지내면 사지가 썩고 말겠군!)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어, 스슥! 그는 유령같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르릉...! 석문은 다시 굉음을 일으키며 저절로 닫혔다. 한데 그 순간, 군무현은 흠칫하며 몸이 굳어졌다.

그의 전신으로 터질 듯 강렬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암울한 어둠, 그 속에서 마치 피에 굶주린 맹수의 눈빛과 같은 소름끼치는 안광이 무수히 뻗어 나오고 있었다.

군무현은 일순 움찔했으나 이내 태연한 신색을 회복했다.

(아마 천마황을 따르다가 함께 감금된 마도의 명숙들이겠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흑과 숨막히는 악취, 그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숨을 죽인 채 무서운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형상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참담한 몰골, 바닥까지 끌리는 머리카락과 피골이 상접한 흉직한 모습들, 군무현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외쳤다.

천마황(天魔皇) 곡노선배는 어디 계시오?”

이어, 스슥! 군무현은 서슴없이 뇌옥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하나의 석동(石洞) , 군무현은 그곳에 이르러 우뚝 멈추어 섰다. 그때,

환령(幻靈)인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문득 석동 안에서 한 줄기 창노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 창노한 음성에는 감히 범접키 어려운 기도가 실려 있었다.

(천마황(天魔皇)!)

군무현은 단번에 그 음성의 주인을 알아차렸다.

적룡천종(赤龍天宗)의 후예 군무현이 곡노선배를 뵙기를 청하오!”

그는 석동 안을 향해 정중한 어조로 외쳤다.

순간,

으음...!”

석동 안에서 경악이 깃든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하나, 석동 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문득,

들어오게!”

마침내 석동 안에서 예의 창노한 음성이 다시 흘러 나왔다.

감사하오!”

군무현은 답례와 함께 곧장 석동 안으로 들어섰다.

석동 안, 십여평 남짓한 그곳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죽음같이 암울한 어둠 속,

“...!”

한 명의 괴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칠척의 거구를 지닌 노인, 그의 일신에서는 태산같은 무형의 기도가 풍겨져 나왔다.

한데, 그 노인의 옆, 한 명의 청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굴까?)

군무현은 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일견하기데도 범상치 않은 기도의 청년, 그 순간, 군무현은 기광을 번득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청년이 바로 천마묵룡(天魔墨龍)이었군!)

그는 어렵지 않게 청년의 정체를 간파해냈다.

 

천마묵룡(天魔墨龍) 혁세민(赫世民)!

그는 바로 천마제군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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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 章

 

           魔宮潛入

 

 

 

아아... 흐윽...!”

만화천요(萬花天妖). 그녀는 이 순간에도 뜨거운 욕정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녀는 타는 듯한 욕화를 참지 못해 단내를 토하며 안타깝게 신음했다.

아씨! 아씨!”

취취는 그런 만화천요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어, 그녀는 급히 군무현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아씨는 강한 최음향에 당했어요. 기왕에 도와주셨으니... 끝까지 도와주세요!”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 말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무슨 뜻이냐?”

아씨는 아직 청백지신(淸白之身)이에요. 공자님의 처첩이 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분이지요. 어수선하지만... 이곳에서 신방을 차리세요!”

취취는 마구 재잘대더니 군무현이 미처 무어라 하기도 전에 얼른 방을 나가 버렸다.

군무현은 일순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아이로군!”

그는 씁쓰레한 표정으로 침상 위의 만화천요를 살펴 보았다.

아아... ... 으음...!”

이미 욕화가 극에 이른 듯 만화천요는 입가에 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군무현의 안색이 낭패함으로 물들었다.

(더 이상 방치해두면 위험하다!)

그는 일순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하나, 결국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할 수 없군!”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여인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는 겉옷을 벗고 침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만화천요의 사지를 묶은 끈을 가볍게 끊어냈다. 두 팔과 다리가 자유로워지는 순간,

아아... ... 어서...!”

만화천요는 뜨거운 신음성을 발하며 군무현을 뱀처럼 휘감아 왔다. 군무현은 일순 움찔했으나 이내 고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의복을 벗어던지고 침상으로 올라갔다. 그 역시 피와 살을 지닌 사내였다. 더구나 그는 한창 피끓는 나이에 건강한 사내였다.

그는 만화천요의 뜨거운 욕정에 휘말려 이내 전신이 후끈 달아 올랐다. 이미 타오르고 있는 한 육체 위에, 막 점화되어 뜨거운 또 하나의 육체가 포개어졌다.

쾌락을 동반한 구인(救人) 행위, 그것은 젊음이 있기에 더욱 강렬하고 뜨거웠다.

두 남녀, 그들은 어느 새 혼연일체가 되어 항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열락으로 출렁거리는 끝없이 먼 항해를...

 

아침(). 햇살이 청명한 아침이었다.

넓고 화려한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한 채의 전각 안,

“...!”

군무현은 뜨락을 바라보며 단좌하고 있었다.

그의 뒤, 한 명의 백의궁장 미인이 군무현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겨주고 있었다. 바로 만화천요(萬花天妖)라 불리우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젯밤까지만 해도 청백지신을 간직했던 순결한 몸이었다. 음탕한 만화부(萬花府)에서 자라나고, 선천적인 요염함이 그대로 몸에 배어 천하제일염(天下第一艶)으로 일컬어졌을 뿐 그녀는 천하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정숙한 여인이었다.

하나, 그녀가 순결을 유지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기도 했다.

 

염화잔양신강!

 

대성하기 전에 동정이 깨지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기공, 바로 그것이 만화천요의 청백지신을 구속했던 것이다.

본래, 그녀는 염화잔양신강이 십이성에 이른 상태였다. 하나, 어젯밤 군무현과의 정사로 인해 지금은 모든 공력이 전폐되고 말았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득,

다 됐어요!”

만화천요는 군무현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고맙소. 이리 앉으시오!”

...!”

군무현의 담담한 말에 만화천요는 조심스럽게 군무현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자, 군무현은 품 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받으시오. 만화성부(萬花聖符)는 그대의 것이니...!”

 

만화성부(萬花聖符)!

그것은 만화부의 창건조사인 만화성녀(萬花聖女)의 신물이었다. 만화부 최대의 절기인 만화환선무(萬花幻仙舞)가 기록되어 있는 영부.

 

만화천요. 그녀는 공손하게 삼배를 올린 후 만화성부를 받아 들었다.

군무현은 그런 만화천요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대가 취취와 함께 자하곡(紫霞谷)으로 갔으면 하오!”

하나, 그 말에 만화천요는 살래살래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해요. 앞으로의 일생은 상공의 분부에 맡기겠으나... 자하곡으로 가는 것은 천첩의 결심에 맡겨주시기를...!”

그의 말에 군무현은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자하곡행을 망설이는 것이오?”

그 말에 만화천요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제 상공께서 폐부의 수뇌들은 모두 제거하셨어요!”

“...!”

그래서... 이제 남아있는 제자들은 아직 음행(淫行)에 완전히 물든 아이들이 아니니... 천첩은 그 아이들을 계도하여 조사(祖師)께서 본부를 세우신 취지를 회복할 결심이에요!”

으음...!”

군무현은 잠시 침음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하곡의 혜미에게 도우라고 일러두리다!”

고마워요. 상공...!”

만화천요는 촉촉하고 그윽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군무현은 그녀의 눈길을 접한 순간 문득 후끈한 단전의 충동을 느꼈다.

그는 내심 고소를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대는 천마궁(天魔宮)에 자주 들렸으니... 천마황(天魔皇)의 동태를 알지도 모르겠구려?”

자세히는 모르겠고...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천마제군이 천마황을 유폐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요!”

...!”

군무현은 침음하며 화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만화천요는 그런 군무현의 준미한 옆모습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것을 확인해 보실 기회가 내일쯤 있을지도 몰라요!”

내일?”

만화천요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구령(天魔九靈) 중 환령마신(幻靈魔神)이 운남(雲南)에 갔다가 내일 이곳을 지나게 되어 있어요!”

군무현은 신광을 번득 빛냈다.

... 그 자의 입에서 천마황의 생존여부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말이오?”

, 그래요!”

문득, 군무현은 빙그레 웃었다.

하하... 그리고 나는 당신을 하루 더 안아볼 수 있고 말이오!”

어마...!”

그의 짓궂은 말에 만화천요의 옥용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군무현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만화천요의 교구를 쓸어 안았다.

...!”

만화천요는 야릇한 비음을 토해냈다. 그녀는 선천적인 염색을 타고난 여인이었다. 그녀의 육체는 아주 쉽게 달아오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만화천요의 교구를 번쩍 안아들고 걸음을 옮겼다.

침실로 가는 것이었다.

 

X X X

 

스스스스... 한 인영이 가히 빛살같은 속도로 산봉 위를 달리고 있었다. 너무도 빨라 그의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가공할 쾌영(快影).

그 자는 교활한 인상을 지닌 청포노인이었다.

한데 문득, 위이 이잉! 돌연 좌측의 산봉에서 엄청난 속도의 백영 하나가 청포노인을 향해 폭사되어 왔다.

순간,

!”

청포노인은 직감적으로 살기를 느끼며 달리던 속도를 더욱 배가했다.

그러자, 쐐 애액! 그 자의 신형은 아예 한 줄기 섬광(閃光)으로 화했다. 하나,

환령마신(幻靈魔神)! 달아날 수 없다!”

한 소리 극히 냉막한 음성과 함께, 휘르르! 접근하던 백영은 선풍이 휘몰아치듯 청포노인을 향해 덮쳐들었다.

순간,

환령산혼비(幻靈散魂飛)!”

파아 앗! 청포노인, 즉 환령마신(幻靈魔神)의 신형이 삽시간에 열여덟 개로 늘어났다.

가히 유령과도 같은 신법!

하나,

이까짓 눈속임을 믿는가? 적룡팔극(赤龍八極)!”

츠츠츠츠! 눈부시도록 찬란한 광채가 일순 온 허공을 뒤덮었다.

그것은 가공할 검기(劍氣)였다. 다음 순간,

... 구류지존(九流至尊)! 크 윽!”

십팔 개의 환영이 일시에 사라지며 환령마신의 허리에서 피를 폭출하며 나뒹굴었다.

거의 동시에, 스스슥...! 그의 전면으로 검을 든 한 명의 백의청년이 내려섰다.

군무현! 그가 아닌가?

으으... 구류지존! 나같은 하수(下手)를 무엇 때문에...?”

환령마신은 고통스럽게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두 눈을 부릅떴다. 순간, 군무현은 그 자의 목에 차가운 검날을 들이댔다.

천마황(天魔皇)의 근황에 대해 고해라!”

그 말에 환령마신은 일순 움찔하더니 이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 알지 못하오... 제군(帝君)이 손을 쓴 것은 확실하나... 그 이상은...!”

“...!”

군무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부류의 인물은 교활하기는 하나 제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할 위인은 못된다!)

내심 염두를 굴린 그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잠시 누워 있거라!”

! 그는 환령마신의 혼혈을 가격했다. 그러자 환령마신은 이내 혼절하며 축 늘어졌다.

바로 그때, 스스슥...! 문득 군무현의 위로 만화천요의 모습이 나타났다.

타고난 염색이 뇌살적으로 흐르는 여인, 하나, 궁장 차림에 부인처럼 머리를 틀어 올린 그녀의 몸가짐은 극히 정갈하고 정숙해 보였다.

이제 어찌하실 건가요?”

그녀는 군무현의 안색을 살피며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직접 천마궁(天魔宮)으로 들어가 알아보는 수밖에...!”

군무현의 그 말에 만화천요는 옥용 가득 근심의 빛을 드리웠다.

직접... 가실건가요?”

군무현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걱정마시오. 완벽하게 준비하여 잠입할 것이니... 그리고 천마궁에도 구류천종(九流天宗)의 수하들이 잠입해 있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오!”

하나, 만화천요의 표정은 그래도 밝아지지 않았다.

군무현은 그런 만화천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문득 짙푸른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천마황의 잠적! 그것이 당금무림의 기이한 정세를 파악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는 기광을 빛내며 내심 중얼거렸다.

 

X X X

 

구궁산(九宮山).

 

스스스... 짙은 안개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구궁산의 천애험곡(天崖險谷).

문득, 스윽! 하나의 환영(幻影)이 소리도 없이 안개 속으로 날아들었다.

그는 교활한 인상을 지닌 청포노인이었다. 음산한 마기가 감도는 구궁산의 천애험곡에 유령처럼 나타난 청포토인, 그는 혹시 유귀(幽鬼)가 아닐는지...

(이곳이군...!)

청포노인은 두 눈에 형형한 광채를 뿜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교활한 신색과는 달리 강렬한 안광이었다.

그때였다.

오제(五弟)! 예정보다 하루가 늦었군!”

안개처럼 짙은 마기가 감도는 험곡 안에서 한 가닥 음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 곤두서는 음산한 음성, 이어, 스슥! 일진의 미풍과 함께 청포노인의 눈 앞에 하나의 철탑(鐵塔)이 불쑥 나타났다.

(으음... 천마구령(天魔九靈)의 넷째인 거령마신(巨靈魔神)이 나타났군!)

청포노인은 내심 재빨리 염두를 굴렸다. 눈 앞에 나타난 철탑을 방불케 하는 팔척의 거한, 그는 전신에 빛이 바랜 호피(虎皮)를 두르고 있었다.

구류천종의 졸개들과 부딪혀 잠시 지체됐습니다!”

청포노인은 거한을 향해 재빨리 일례하며 변명했다. 그러자, 거령마신의 검고 강한 얼굴에 한 가닥 기이한 미소가 감돌았다.

헛헛! 아무튼 수고했네. 우선 들어가세!”

이어, 그는 거구를 돌렸다.

거한, 그는 바로 천마구령 중 네 번째 인물인 거령마신(巨靈魔神)이었다.

스슥! 팔척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연하기 이를 데 없는 몸놀림을 보였다.

거령마신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던 청포노인, 문득 그의 두 눈에 번뜩 섬광이 일었다 사라졌다.

(으음... 엄밀한 진세(陣勢)가 펼쳐져 있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말없이 거령마신의 뒤를 따랐다.

 

거령마신과 청포노인, 그들은 하나의 절곡 끝에 이른 광대한 분지 앞에 이르러 멈춰섰다.

절곡의 끝에 자리한 광대한 분지, 그곳에는 한 채의 거대한 성채가 안개 속에 음산하게 우뚝 서 있었다.

(천마궁(天魔宮)...!)

청포노인은 눈 앞의 거대한 성채를 주시하며 두 눈에 기광을 번득였다.

천마궁(天魔宮)!

그렇다. 이 거대한 성채가 바로 전 마도의 하늘()인 천마궁이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전대마두들이 웅거하고 있는 와호잠룡(臥虎潛龍)의 복마전(伏魔殿)!

거령마신과 청포노인은 잠시 하늘을 찌를 듯한 천마궁의 당당한 위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어서 가세! 총관이 오제(五弟)를 기다리고 있네!”

거령마신이 먼저 청포노인을 재촉하여 몸을 날렸다.

스슥! 청포노인은 아무말없이 곧바로 거령마신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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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九 章

 

               地獄密室

 

 

 

소양(邵陽)!

 

동정호(洞庭湖) 남단에 위치한 아담한 시진, 소양 입구에는 자그마한 주루 하나가 있었다.

아담하나 그런대로 형식을 갖춘 주루, 그 주루의 창가, 한 명의 백의청년이 병째로 화주(火酒)를 들이키고 있었다.

몇날 며칠을 깎지 않은 듯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청년,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며칠 사이 그의 안색은 눈에 뜨이도록 핼쓱해져 있었다.

! 군무현은 탁자 위에 소리나게 술병을 내려놓았다.

퀭하게 변한 그의 두 눈, 그것은 짙은 고뇌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가엾은 황후...!”

문득 그의 입가로 미약한 탄식성이 새어 나왔다.

세상에 태어나 보이지 못하고... 천길 약수에 묻힌 나의 분신...!”

그는 갈가리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다시 독한 술을 들이켰다. 하나, 극고한 내공으로 인해 술기운은 쉽사리 오르지 않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화르르...! 문득 향긋한 한줄기 화향(花香)이 이는가 싶더니 주루 안으로 한 명의 왜소한 인영이 날아들었다.

소녀(少女). 그 왜영은 이제 십사오세 가량 되어 보이는 미소녀였다. 상당한 미모에 앙증맞은 색기(色氣)를 뇌살적으로 풍기고 있는 소녀, 그녀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다급히 주루 안을 둘러 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병째 술을 들이키고 있는 군무현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순간, 소녀의 교구가 군무현을 향해 날아갈 듯 미끄러져 갔다.

... 공자님! 소녀를 좀 숨겨주세요!”

그녀는 다급한 음성으로 군무현에게 부탁했다.

바로 그때, ! ! 주루 밖에서 분분히 옷자락 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소녀는 사색이 되어 다급히 군무현의 등 뒤로 숨어 들었다.

“...!”

군무현은 소녀의 가냘픈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주루의 입구로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시뻘건 혈포가사를 걸친 라마승들, 그들은 흉흉한 살기를 폭사하며 음침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크크... 어딜 갔나 했더니... 기껏 여기까지 달아났느냐?”

쿵쿵...! 두 명의 혈포라마는 주루 바닥을 거칠게 울리며 사나운 기세로 소녀를 향해 다가섰다.

순간,

... 공자님!”

소녀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군무현의 팔에 매달렸다. 그 모습에 혈포라마들은 군무현을 노려보며 음험하게 웃었다.

흐흐... 이놈아! 냉큼 그 계집을 본 보살에게 넘겨라!”

“...!”

군무현은 그제서야 술병을 놓으며 혈포라마들에게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순간,

“...!”

군무현과 시선이 부딪힌 혈포라마들은 안색이 일변했다.

돌아가라!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살려준다!”

군무현은 지극히 냉담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순간,

... 뭣이라고?”

... 감히 혈륭마찰의 보살들을 능멸하다니...!”

혈포라마들은 분노로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잡아먹을 듯 군무현을 노려 보았다.

이어,

죽어랏!”

꽈릉...! 그 자들은 다짜고짜 무지막지한 장을 휘둘러 군무현을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

그들의 갑작스런 공세에 소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피를 보지 않으려 했거늘...!”

군무현은 싸늘하게 안색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순간, 화르르르! 그의 우장에서 시뻘건 극양지기가 폭출했다.

직후,

케 엑!”

!”

처절한 두 마디의 비명과 함께 두 명의 혈포라마는 그대로 재로 화해 산화해 버렸다. 실로 너무도 끔찍하고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엄청난 광경에,

... 이럴 수가...!”

보고 있던 소녀는 눈망울을 한껏 확대하며 교구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 순간, 군무현은 어느 새 휘적휘적 주루 밖을 나서고 있었다.

아연하여 입을 딱 벌리고 있던 소녀, 그녀는 흠칫 정신을 차리며 다급히 군무현을 따라 나섰다.

공자님!”

그녀는 빠르게 군무현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어, 그녀는 돌연 군무현의 앞에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공자님! 우리 아씨를 구해 주세요!”

그녀는 간절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런 그의 눈길은 황폐하고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린 계집이 벌써 동정을 잃었다니...!)

그는 소녀가 이미 처녀지신이 아님을 알아보고는 내심 쓴 웃음을 지었다. 불과 십사오세의 소녀가 사내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보는 이를 결코 유쾌하게 만드는 일은 아니었다.

네 아씨가 누구냐?”

군무현은 지극히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순간, 소녀는 안색을 펴며 얼른 대답했다.

소녀는 취취(翠翠)라 하옵고... 저희 아씨는 만화천요(萬花天妖) 황보영혜(皇甫慧)라 하옵니다!”

... 화천요(萬花天妖)!”

천하제일염(天下第一艶)으로 불리우는 여인, 그녀는 천성적으로 지독한 색기를 타고 태어나 일찌감치 천하제일탕녀라는 명성을 획득한 바였다.

만화부(萬花府)의 당대부주인 만화요희(萬花妖姬)의 막내 사매가 바로 그녀였다.

 

만화천요가 네 아씨라고?”

!”

소녀 취취(翠翠)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데... 부주께서 혈륭마찰의 혈륭대법사(血隆大法師)에게 아씨를 제물로 주려고 합니다. 혈륭대붕천마공(血隆大崩天魔功)을 연마하는 제물로...!”

그녀는 애절한 눈길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제발... 아씨를 구해 주세요. 혈륭대붕천마공은 순음지기를 흡수하여 익히는 것으로 아씨는 죽고 말거예요!”

무심한 표정으로 취취의 말을 듣고 있던 군무현, 문득 그는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만화부(萬花府)로 가자!”

순간,

... 공자님!”

취취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활짝 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공자님, 고마워요!”

그녀는 진정어린 감사의 빛을 띄우며 기쁨을 금치 못했다.

군무현의 깊고 무심한 눈에 순간적으로 미세하나마 웃음기가 떠올랐다.

(아직 치기를 벗지 못한 어린 소녀다...!)

이어, 그는 취취의 가냘픈 팔을 잡았다.

동시에, 스 악!

!”

깜짝 놀라 경호성을 재니르는 취취의 교구를 안아든 채 그는 섬전같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X X X

 

한칸의 밀실, 밀실 중앙에는 화려하고 넓은 침상이 놓여 있다. 한데, 침상 위,

아아...!”

한 명의 전라여인이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며 가쁘게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침상의 네 모서리에 사지가 결박당한 상태였다.

여인이 묶여 있는 침상 옆, 하나의 커다란 향로가 놓여 있었다.

스스스... 그 향로에서는 분홍빛 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 그것은 강렬한 최음약이 아닌가?

아아... 흐윽...!”

여인은 뜨거운 신음성을 발하며 사지를 비틀고 있었다.

음약의 약효가 미미 퍼질대로 퍼진 듯... 욕화를 이기지 못해 쉴새없이 온 몸을 뒤틀며 몸부림치는 여인, 결박당한 그녀의 손목과 발목에는 참혹한 혈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한데, 전라여인, ...! 그녀는 실로 아름다웠다.

()의 완벽한 걸작품이라고나 할까? 섬세하고 아름다운 용모에 그린 듯 단아한 윤곽의 얼굴.

그녀의 피부는 대리석보다 더 희고 매끄러웠다.

가냘픈 듯 하면서도 풍만한 몸매, 그것은 놀랍도로 뇌살적인 염색(艶色)을 폭출해내고 있었다.

타고난 천성(天性)일까? 여인의 아름다움은 뇌색적이고도 아찔한 염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가히 폭발적인 매력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아... ... 제발...!”

여인은 풍염하고 미끈한 나신을 비틀며 자극적인 비음을 흘려냈다. 안타까운 욕망을 갈구하는 자극적인 몸짓, 그것은 숨막히도록 선정적이었다.

그때였다. 문득 침실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인물이 실내로 들어섰다. 일남일녀(一男一女). 삼십대의 요염한 나의미부와 일신에 혈포가사를 걸친 음악한 표정의 노라마승이었다.

그들은 음탕한 미소를 흘리며 침상의 여인에게로 다가섰다.

노라마의 팔에 매달려 걷는 나의미부, 그녀는 풍만한 둔부가 자극적으로 흔들렸다.

호호... 대법사(大法師)! 어때요?”

아미타불... 훌륭하오. 훌륭해!”

혈포라마는 음침한 시선으로 침상의 여인을 살피며 대꾸했다.

이제껏 본 어떤 여시주보다 음기(陰氣)가 강하오. 물론 아직 원음지체(元陰之體)이겠지요?”

호호호... 물론이예요!”

혈포라마의 물음에 나의미부는 탕기어린 눈웃음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 대공(大功)을 이루시면... 첩신이 사흘 밤낮을 모시겠어요!”

그녀는 혈포라마를 향해 뇌살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그녀는 혈포라마 혼자만을 남겨놓고 침실을 나갔다.

혈포라마, 그 자는 음침한 눈을 번득이며 침상가로 다가섰다.

이어,

아미타불...!”

순간,

아흑...!”

자신의 예민한 부위에 사내의 손길이 닿음을 느낀 전라여인은 숨넘어 갈 듯한 교성을 발하며 봉목을 한껏 치떴다.

그때, 화르르르... 스스스슥! 혈포라마의 전신으로 시뻘건 기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츠츠츠츠...! 전라여인의 국부에서는 극음지기(極陰之氣)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흑... 흐윽...!”

그때마다 여인의 입에서는 기묘한 쾌락성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파르르...! 그녀의 전신에 세찬 경련이 일어났다.

츠츠츠...! 혈포라마의 몸 주위로 일어나는 혈기는 더욱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아아악!”

돌연 침실 밖에서 처절한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뒤이어, 콰 당! 침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명의 인물이 당당한 자세로 들어섰다.

! 그는 바로 군무현이 아닌가? 그는 한손에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여인의 목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혈포라마를 이곳으로 안내했던 예의 마의미부의 목이 아닌가?

군무현은 두 눈에 강렬한 살광을 폭사했다.

불자(佛者)의 탈을 쓰고서도 음행(淫行)을 서슴치 않다니...!”

순간, 파파파 팟! 그의 손에서 나의미부의 수급이 재로 화해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죽어랏!”

그의 쌍장이 맹렬한 기세로 뻗었다.

콰르르르...! 시뻘건 불기둥이 가공할 위세로 혈포라마를 휩쓸어갔다.

태양천뢰폭(太陽天雷爆)! 그 가공할 열양공(熱陽功)이었다.

그 순간,

우웃!”

혈포라마는 용수철이 튕겨지듯 벌떡 일어서며 마주 쌍장을 격출했다.

직후, 콰콰 쾅! 천붕지열의 가공할 폭음이 들썩 밀실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크 윽!”

콰 쾅! 콰르르.. 혈포라마는 답답한 신음성을 발하며 침실의 뒷벽을 뚫고 날아갔다.

혈륭대법사! 살려보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임을 명심해라!”

군무현은 날아가는 혈포라마의 뒤에 대고 싸늘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때,

아씨!”

소녀 취취가 얼른 달려들어와 침상 위의 여인을 얼싸안았다.

침상 위의 전라여인, 그녀는 바로 천하제일염(天下第一艶)이라 불리는 만화천요(萬花天妖)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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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八 章

 

                    毒門聖地, 萬毒聖府

 

 

 

자욱한 운무가 백사(白蛇)처럼 뒤엉켜 있는 단천애,

... 이런...!”

군무현은 단천애 아래를 내려다 보며 낭패의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뻗어낸 일격에 단애로 밀려난 독황후가 단천애 아래로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실로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사태였다.

군무현은 망연한 표정으로 단천애를 내려다 보았다.

한데, 그때였다.

! 스슥! 문득 두 명의 인물이 군무현의 뒤로 날아내렸다.

한 명의 노인(老人)과 노파(老婆)였다. 그들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뒤덮여 있었다.

노인장들께서는...?”

군무현은 천천히 돌아서며 노인과 노파를 주시했다. 그러자, 그들 중 백염을 기른 노인이 얼른 입을 열었다.

노부들은 독황쌍려(毒皇雙侶)라 하오. 소협은 혹시 구류지존(九流至尊)이 아니시오?”

그는 그렇게 물음과 함께 눈을 빛내며 빠르게 군무현의 전신을 살폈다.

“...!”

군무현은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순간, 독황쌍려(毒皇雙侶)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들은 격동의 표정을 지으며 곧 정중한 예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독노(毒老), 독파(毒婆)! 태상부군(太上)께 인사드립니다!”

갑작스런 그들의 태도에 군무현은 당황했다.

태상부군(太上)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요?”

그 말에 독파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독황후 궁주께서는 태상부군의 아기씨를 가지셨습니다. 궁주께서 이곳에서 태상부군을 만나셔서 모두 이야기하셨을 줄 알았는데...!”

순간,

... 그런 일이...!”

군무현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쇠망치로 뒷통수를 거세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그의 눈앞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던 독황후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독황후가 나의... 아기를 갖다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망연히 중얼거렸다.

순간, 그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 모습에 독황쌍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흠칫했다.

태상부군, 궁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 그들은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안돼! 안돼!”

군무현이 갑자기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단천애 아래로 몸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 그는 독황쌍려가 미처 만류하기도 전에 단천애 아래로 몸을 던졌다.

“...!”

“...!”

독황쌍려는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군무현의 모습은 이미 자욱한 운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태상부군...!”

그들은 단천애 아래를 내려다 보며 굳어버린 듯 언제까지고 몸을 움직일 줄 몰랐다.

 

쐐 액! 군무현은 비단폭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성이 귓전을 스침을 느꼈다.

단천애 아래로 무조건 몸을 날리고 있는 그는 돌멩이로 자신의 발 등을 찧은 듯한 뼈저린 아픔을 체험했다.

독황후...! 그녀가 나의 아기를 갖다니...!”

지금으로서는 독황후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녀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휘 익! 군무현의 몸은 자연스럽게 허공을 감돌며 절벽 아래로 날아내렸다.

실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야만야한 낭떠러지, 끝조차 보이지 않는 아득한 절벽을 깃털처럼 가볍게 떨어져 내리다니...!

군무현이 펼치고 있는 신법, 그것은 바로 천랑신마(天狼神魔)의 천랑비천사대식(天狼飛天四大式)이었다.

한 순간,

안돼! 죽으면 아니되오!”

휘르르...! 군무현은 절박하게 부르짖으며 급격히 하강했다.

허공을 휘돌며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의 몸은 낙뢰가 떨어지듯 단천애의 운무를 뚫고 급격히 떨어져 내렸다.

 

단천애 아래, 흡사 지옥의 입구처럼 음습하고 퀴퀴한 악취가 풍겼다.

스으... 스으...! 주위에는 온통 자욱한 운무가 흐르고 있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한데,

... 이럴 수가...!”

운무 속에서 문득 망연하고도 허탈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군무현, 그는 습기찬 바닥에 주저앉아 넋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편없이 찢기고 더럽혀진 그의 의복, 뻐근하게 전신을 저며오는 통증, 하나,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독황후, 그녀가 없었다. 그녀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지 않은가?

군무현이 주저앉아 있는 바닥, 그 앞에는 시커먼 묵수(墨水)가 가득 고인 하나의 넓은 웅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것은 새의 깃털조차 뜨지 못한다는 지독한 약수(弱水)가 아닌가?

독황후...!”

군무현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넋나간 듯 눈 앞의 웅덩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습기로 축축한 그의 얼굴에 뜨겁고 끈끈한 것이 흘러 내렸다.

눈물, ...! 그것은 사나이의 눈물, 뜨거운 자책의 눈물이었다.

 

한편,

... ...!”

독황후는 전신이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신음했다. 이어, 문득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는 순간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리 속이 텅 비어 버린 듯했다. 하나, 돌연 그녀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몸을 떨었다.

(... 아기는...!)

그녀는 숨막힐 듯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하복부를 감쌌다. 이어, 그녀는 급히 심맥을 더듬어 몸 속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인 본능의 강렬한 모성애(母性愛)였다.

...!”

자신의 몸 속에 숨쉬고 있는 작은 생명을 느낀 독황후,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상은 없다!)

그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전신골격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통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태아가 무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족했다.

그 사실이 극심한 고통마저도 잊게 만들었다.

아가... 너만 무사하다면... 나는 어찌 되어도 좋다!”

독황후는 조심스럽게 하복부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으음...!”

그녀의 안색이 절로 고통으로 찡그려졌다. 몸을 움직이자 다시 전신골격이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엄습한 것이다.

하나,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문득, 그녀는 자신의 몸이 축축 젖어 있음을 느꼈다.

“...?”

그제서야 그녀는 아미를 모으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지금 그녀ㄴ는 차가운 동굴의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곳은 얕게 물이 고여 있는 지하수로(地下水路)가 아닌가?

독황후는 비로소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지. 나는 절벽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었다. 한데, 정신을 잃은 사이에 이곳으로 휩쓸려 들어온 모양이군!”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은 실로 천행(天幸)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독황후는 수로에 그대로 앉은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위 잉! 그녀의 몸 주위로 이내 검푸른 독강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뼈를 깎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수반되었다.

하나, 진기를 삼주천 하고나자 그녀는 전신이 가쁜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독황후는 반짝 눈을 떴다.

나를 쳐서 떨어뜨리다니... 다시 만나게 되면 용서치 않겠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원독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 앞에 무심한 표정의 군무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원독으로 가득차 있던 독황후의 마음이 갑자기 세차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태어날 아기의 아버지이니...!)

그녀의 독심(毒心)은 이내 흐려졌다.

몸 속에 자라고 있는 아기를 생각하자 도저히 악심을 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를 두고 다른 계집과 바람을 피우다니...!”

독황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군무현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하나, 그녀는 군무현의 생각을 떨쳐 버리려 고개를 흔들며 문득 주위를 둘러 보았다.

우선 이 이상한 곳을 빠져 나가자!”

이어, 그녀는 물이 흘러 내려 오는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갈수록 동굴은 점점 더 높아졌다.

그에 반해, 물줄기는 더욱 가늘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독황후는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동굴 바닥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때 문득,

“...!”

독황후의 아미가 파르르 떨림을 일으켰다.

강한 독기(毒氣)가 느껴진다!”

그녀는 독문(毒門)의 명인이었다. 그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희미한 독기까지 감지할 수 없었다.

(매우 강하다. 독성지기(毒聖之氣)에 버금가는 독기다!)

독황후의 가슴이 일순 세차게 뛰었다. 그녀는 크나큰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흥분을 금치 못하며 급히 걸음을 옮기던 독황후, 문득, 그녀의 눈앞에 하나의 동굴이 끝나고 또 다른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한데, 그 동굴의 입구에는 온통 시커먼 독무(毒霧)가 어려 있지 않은가?

독황후의 봉목이 크게 치떠졌다.

독황성령지(毒荒聖靈地)가 전면에 있다. 이것은 독황성령지(毒荒聖靈地)에서 나오는 만독응정기연(萬毒凝精氣煙)이 틀림없다!”

그녀는 온통 격동과 희열을 금치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독황성령지(毒荒聖靈地)!

천지지간(天地之間)의 만독(萬毒)이 모여 녹아드는 곳, 그곳은 독문(毒門)의 인물들이 꿈에라도 그리는 성지(聖地)였다.

독성지신(毒聖之神)! 독문의 인물들이라면 이보다 더 큰 소원이 없다.

독황성령지의 독성지기(毒聖之氣)를 흡수하면 바로 독문지상(毒門至上)의 염원인 독성지신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독황후는 세차게 가슴이 뛰는 것을 억제치 못했다.

그녀는 흥분되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만독응정기연을 뚫고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만독응정기연(萬毒凝精氣煙)!

그것의 독기(毒氣)는 실로 엄청났다.

범인이라면 설사 공력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한줌 혈수로 녹아드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 독황후, 그녀는 오히려 전신이 상쾌해지는 쾌감을 느꼈다.

독문의 절정기공을 익힌 그녀로서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동굴 안으로 얼마나 걸어들어 갔을까? 문득, 독황후는 흠칫하며 몸을 세웠다.

하나의 시커먼 석문(石門)이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아 섰기 때문이다.

 

<만독성부(萬毒聖府)!>

 

석문의 중앙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세 치 깊이로 뚜렷이 패여져 있었다.

순간,

... 만독성부...!”

독황후는 떨리는 음성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석문에는 또한 다음과 같은 글씨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다.

 

<독문(毒門)의 제자가 아니면 열지 말라!>

 

독황후는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독문의 전대고인께서 이미 이곳에 이르셨던 것 같다!”

그는 곧 석문을 향해 공손히 일배했다.

독황궁(毒皇宮)의 제자 제약란(製葯蘭), 성부에 들겠습니다!”

이어, 그르릉! 그녀는 석문을 가볍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발했다. 석문 안은 한 칸의 넓은 석실이었다.

석실의 중앙, 시커먼 액체가 가득 고여 있는 이 장 넓이의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스으... 스으... 만독응정기연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꾸역꾸역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독황후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만독성령지...!”

독문 최대의 성지(聖地)!

마침내 그녀는 만독성령지를 찾아낸 것이었다.

만독(萬毒)의 정화가 모여 드는 만독성령지. 그것은 실로 하늘이 독황후에게 내린 최대의 기연이었다.

만독성령지의 옆, 시커먼 흑옥석(黑玉石)으로 만든 하나의 석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석상 위, 하나의 큼직한 옥함이 놓여져 있었다.

독문 선배님의 유물이리라!”

독황후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어, 그녀는 석상을 향해 정중히 삼배한 후 옥함을 집어들었다.

옥함 안, 몇가지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의 양피지와 역시 양피지로 만든 한 권의 책자, 그리고 검은 가죽에 싸인 작은 보검(寶劍) 한 자루가 그것이었다.

독황후는 먼저 양피지를 집어들었다.

 

<만독노조(萬毒老祖)가 독문(毒門)의 후진에게 남긴다.>

 

양피지의 첫머리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용사비등한 서체로 적혀 있었다. 순간,

... 만독노조(萬毒老祖)!”

독황후는 대경하며 부르짖었다.

 

만독노조(萬毒老祖)!

독문 사상 최강자(最强者)로 손꼽히는 인물, 그는 천지십강 중의 당당한 일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千年) 이전의 인물, 고금을 통틀어 최초로 독성지경(毒聖之境)에 올랐던 독종지존(毒宗至尊)이었다.

 

만독노조의 유지를 접하다니...!”

독황후는 그 사실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하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이어, 그녀는 석상을 향해 황급히 구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만독노조(萬毒老祖)! 그는 바로 독문(毒門)이 조종(祖宗)으로 섬기는 지존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바친 독황후는 다시 양피지로 눈길을 돌렸다. 양피지의 글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中略... 이제 풍진(風塵)을 떠나며 본조(本祖)의 일신재학을 한 권의 독경(毒經)으로 기록하여 만독청명검(萬毒靑冥劍)과 함께 남긴다. 후진은 본조의 유지를 이어받아 독문지학(毒門之學)을 가일층 발전시키도록 노력하라!

만독노조(萬毒老祖) 절필(絶筆)!>

 

독황후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문 최대의 영광을 그녀가 이어받게 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양피지를 내려 놓고 떨리는 손으로 비급을 집어 들었다.

 

<만독살황독강경!>

 

비급의 표지에는 고전체로 그와같이 적혀 있었다.

... 만독살황독강경...! 천지십강의 유급을 얻다니...!”

독황후는 엄청난 희열과 감격에 몸을 떨었다.

스스스... 우르르! 끝없이 솟아오르는 만독응정기연, 그 속에서 또 한 명의 절대자(絶對者)가 탄생하고 있었다.

여인으로서 최초로 독성지신(毒聖之身)을 지니게될 독문최대의 절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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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七 章

 

                        斷天崖悲劇

 

 

 

꽈르르릉 릉! 콰콰쾅...!

가공할 폭발음과 함께 돌연 천랑동부(天狼洞府)의 일각이 거대한 굉음을 일으키며 붕괴 되었다.

그 돌연한 사태에 혈랑곡은 대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이냐?”

천랑동부가 무너졌다!”

혈랑곡도 때아닌 참변에 사색이 되어 우왕좌왕했다.

그때,

!”

천지를 뒤흔드는 찌렁한 장소가 혈랑곡을 울려 퍼졌다.

그 순간,

... ...!”

... 지독한 내공이다!”

혈랑곡의 마졸들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꽈르르릉... 쿠쿵!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듯 집채만한 바윗덩어리가 허공으로 마구 솟구쳐 올랐다.

혈랑곡은 일시에 파멸의 구덩이에 휘말린 듯 대진동을 일으켰다. 그 거대한 굉음 속을 뚫고, 스 악! 한 명의 인물이 장내로 날아내렸다.

일신에 먼지투성이의 백의를 걸친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만면에 냉막한 살기를 띄우며 혈랑곡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순간,

으으... ... 저놈이 죽지 않았다니...!”

한 명의 외팔이 노인이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떨며 사색이 되었다.

()의 한쪽, 군무현에게 한쪽 팔을 잃은 혈랑곡이 서 있었다.

그 자는 온통 경악과 공포에 질려 안색이 흙빛으로 질려 있었다.

그런 혈랑곡의 옆, 한 명의 흑포노인이 뒷짐을 진 채 음침하게 서 있었다. 그 자는 두 눈이 움푹 꺼져들어가 음독한 인상을 물씬 풍겼다.

장내의 광경에 흑포노인은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혈랑곡! 구류지존을 죽였다더니 대체 어찌된 일이오?”

그 자는 못마따안 표정으로 혈랑곡을 힐책했다.

... 음령마신(陰靈魔神)! 저 놈은 분명히 미로에 묻혀 붕괴되었었소!”

혈랑곡은 당혹한 얼굴로 황급히 설명했다. 하나,

어찌됐든 저 자는 멀쩡히 살아있지 않소?”

음령마신(陰靈魔神)이라 불린 흑포노인은 버럭 노성을 내질렀다.

... 그것이...!”

혈랑곡은 손을 부비며 낭패함을 금치 못했다.

그때, 장내를 둘러보던 군무현의 시선이 혈랑곡에게 고정되었다.

혈랑곡! 죽을 준비는 되어 있겠지?”

그는 두 눈에 냉혹한 살기를 번득이며 입을 열었다.

혈랑곡의 안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애송아! 너무 날뛰지 마라!”

그 자는 눈을 부라리며 버럭 폭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삐 익! 그 자는 음침하게 외치며 재차 날카로운 호각을 불었다.

그 순간, 크르르 릉! ... 크르르...! 수백 마리의 혈랑들이 일시에 시뻘건 입을 쩍 벌리며 군무현을 향해 덮쳐 들었다. 하나,

물러나랏!”

군무현은 냉혹한 일갈과 함께 번쩍 우수를 쳐들었다.

직후, 화르르!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가공할 불길이 주위 십장을 삽사에 뒤덮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케 엑! 크르릉...!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혈랑들이 숯덩이가 되어 나뒹굴었다.

...!”

그 광경에 혈랑곡의 안색이 잿빛으로 질렸다. 그 자는 사시나무 떨 듯 부르르 전신을 경련하며 불신의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군무현은 살기어린 냉혹한 눈비층로 혈랑곡을 노려 보았다.

양민에게 피해만 끼치는 미물들! 한 놈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그의 손에 일순 봉황옥소가 들려졌다.

다음 순간, 삘릴리! 삐 익! 천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케 엑! 크악... ! 일백마리의 혈랑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거꾸러졌다.

천붕뇌명후의 살인적인 소성에 내장이 파열되고 사지가 찢기는 참변을 면치 못한 것이었다.

혈랑곡은 사색이 되어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 천황음(天皇音)!”

그 자는 극도의 충격과 공포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멸절사뢰음(滅絶死雷音)도 받아랏!”

군무현은 재차 봉황옥소를 힘껏 불었다.

삐 이익...! 혈랑곡 전체가 가공할 음파로 무섭게 뒤흔들렸다. 천지만물은 가공할 멸절사뢰음의 음파에 여지없이 찢기고 박살났다.

꽈르릉... 콰쾅! 케엑! 크르릉... !

으 악!”

크아악!”

흙먼지와 폭음이 짓터져 오름과 함께 인간과 짐승의 처절한 비명이 마구 뒤섞여 장내를 메아리쳤다.

그것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극이었다.

백여 마리의 혈랑떼, 그 놈들은 완전히 머리가 박살난 채 참혹하게 나뒹굴었다.

비단 혈랑 뿐만이 아니었다. 혈랑곡의 마도들 역시 오공에서 피를 뿌리며 짚단처럼 쓰러졌다.

혈랑곡, 그 자는 엄청난 충격과 분노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으... ... 이럴 수가...!”

그 자는 한껏 부릅떠진 핏발 선 눈으로 장내를 노려보며 비틀비틀 물러났다.

그때, ! 군무현이 냉막한 살기를 폭사하며 혈랑곡의 앞으로 내려섰다.

으으...!”

혈랑곡은 공포에 질려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바로 그때,

흐흐... 네놈이 적룡대제의 자식이냐?”

혈랑곡의 옆에 서 있던 음령마신이 다른 칠인의 노인들과 함께 군무현을 에워쌌다.

늙은이는 누구냐?”

군무현은 검미를 꿈틀하며 음령마신을 노려 보았다.

음령마신은 움푹 꺼져 들어간 두 눈에 소름끼치는 살광을 폭사하며 말했다.

흐흐... 음령마신(陰靈魔神)이라면 알겠느냐?”

천마구령(天魔九靈) 중 셋째가 늙은이인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천마구령(天魔九靈)!

천마궁(天魔宮)이 휘하로 거둔 마도의 절정고수들, 그자들은 백년 내에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무림의 거물들이었다.

 

음령마신은 군무현이 반응을 보이자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귀동냥은 제법 했구나! 네놈이 감히 천마궁 휘하의 혈랑곡을 침범하였으니 흐흐... 네놈의 목을 베어 죄를 묻겠다!”

그 자의 말에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차가운 조소가 어렸다.

너희들의 실력으로 말인가?”

그의 모욕적인 어투에 음령마신의 안면이 보기싫게 일그러졌다.

다음 순간, 츠츠츠... ! 쉬 악! 군무현의 손에서 적룡검이 빗발치듯 뻗어나왔다.

거의 동시에, 음령마신은 군무현을 포위한 일곱 명의 노인을 향해 짤막하게 명했다.

현음백살진(玄陰白殺陣)을 펼쳐라!”

그 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위 잉! 음령마신을 포함한 여덟 명의 노인들은 쾌첩하게 진세를 회전시켰다.

하나,

늦었다. 적룡어강살!”

쐐 액! 군무현의 입에서 한 소리 냉혹한 외침이 터짐과 함께 번쩍 검광이 작렬했다.

직후,

케 엑!”

크으 윽!”

전면의 두 노인이 가슴이 쩍 갈라진 채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음령마신은 안색이 홱 변했다.

(... 상상 이상이다!)

그 자는 비로소 공포를 느끼며 혼비백산했다.

군무현은 잠시도 여유를 주지 않았다.

누워랏!”

... 츠츠츠! 위 잉! 적룡검의 검기가 번쩍 허공을 긋는 순간,

크 악!”

으아악...!”

!”

나머지 다섯 명의 노인도 잇따라 피거품을 물고 거꾸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는 음령마신 혼자 뿐, 그 자는 부르르 전율하며 불신의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 적룡대제 이상이라니...!”

이어, 그 자는 식은 땀을 흘리며 간신히 혈랑곡의 곁으로 다가섰다.

군무현은 묵묵히 적룡검을 거두었다. 이어, 그는 천천히 혈랑곡과 음령마신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

“...!”

혈랑곡과 음령마신은 사색이 된 채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하나, 그들은 곧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스스스... 그들은 입술을 질끈 악물더니 군무현의 양 옆으로 각각 다가섰다.

군무현의 냉막한 얼굴에 희미한 조소가 떠올랐다.

잘 생각했다. 하나씩 덤비면 번거롭기만 할 뿐이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적룡검을 치켜 들었다.

그 순간,

혈랑번신(血狼飜身)!”

쐐 애액! 파파팟! 혈랑곡의 하나밖에 없는 왼팔에서 음독한 경풍과 낭아표(娘牙剽)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음령마신도 쾌속히 양손을 떨쳐내며 혈랑곡의 공세에 합세했다.

음령파황뢰(陰靈破荒雷)!”

위 잉! 콰자작!

그 자의 손에서 심맥을 얼려버릴 듯한 극음강기가 노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적룡제뢰(赤龍帝雷)!”

꽈릉...! 군무현도 냉막한 일성과 함께 섬전처럼 적룡검을 휘둘렀다. 가공할 정도로 웅후한 검세가 육합을 뒤흔들었다.

직후, 콰콰콰 쾅! 파파파팍! 엄청난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벌컥 지축이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크 악!”

한 줄기 처절한 단말마가 폭풍 속을 회오리쳤다.

혈랑곡! 그 자가 목덜미가 정확히 반으로 쩍 갈라진 채 바닥으로 나뒹구는 것이 아닌가?

크윽!”

음령마신도 결코 무사치 못했다. 그자 역시 가슴이 온통 피로 범벅된 채 휘청 물러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가랏! 적룡파운산(赤龍破雲山)!”

파파팟 번쩍! 군무현이 재차 냉갈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검광일섬(劍光一閃)! 한 순간 장내는 온통 눈부신 검광으로 뒤덮였다.

그 가운데,

크 악!”

음령마신은 허리가 두 동강난 채 팽개쳐지듯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갑자기 장내는 죽음과도 같은 무서운 정적이 짓눌렀다.

“...!”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적룡검을 거두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두 눈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그대로 들어왔다.

수백마리의 혈랑떼들은 모조리 몰살했다. 뿐인가? 이삼백 명을 헤아리는 혈랑곡도들이 모두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 모두 전멸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원수를 갚았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하나, 무슨 까닭인가?

(원수를 죽였으나 마음은 오히려 더 무겁기만 하니...!)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비록 원수이기는 하나... 원수이기에 앞서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人間)이기에...!)

그는 탄식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이어,

!”

그는 내심의 무거운 압박감을 벗어던지려는 듯 한 소리 웅후한 장소를 터드리며 몸을 날렸다.

스스스...! 그는 허공으로 화살처럼 솟구쳐 올랐다가 수라혈잠영의 경공을 펼쳐 삽시에 연기처럼 혈랑곡을 빠져 나갔다.

혈랑곡을 빠져나가면 천야만야한 단애가 나온다. 좁은 험로의 우측으로 꺾여지며 급격히 경사를 이룬 천험의 절벽,

단천애(斷天崖)! 그곳을 일컬어 그와같이 부른다.

단천애는 사시사철 짙은 운무에 싸여 있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신비절지였다.

스스... 군무현은 그 단천애의 아슬아슬한 험로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고 있었다.

아직도 무거운 표정을 벗어던지지 못한 얼굴, 한데, 그가 막 하나의 큼직한 바위 옆을 지날 때였다.

죽어랏!”

돌연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여인의 한맺힌 교갈이 그의 귓전을 찔렀다.

그와 동시에, ! ...! 갑자기 주위가 온통 시커먼 독무(毒霧)로 뒤덮이는 것이 아닌가?

뒤미처, 꽈르릉...! 독무 속을 뚫고 강맹한 강기가 폭풍같이 군무현을 휩쓸어왔다.

순간,

... 독황후!”

군무현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일순 신형을 휘청하며 부르짖었다. 그것은 실로 너무도 갑작스런 사태였다.

하나, 콰르릉...! 군무현은 본능적으로 태양천화굉염신공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에서 일순 불덩이처럼 강렬한 극양강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직후, 콰콰 쾅! 천붕지열의 굉음이 들썩 단천애를 뒤흔들었다. 그 순간,

!”

여인의 처절한 비명이 폭음 속에 회오리쳤다.

군무현은 흠칫 놀라 부르짖었다.

독황후!”

! 그는 대경하여 황급히 허공으로 솟아 올랐다. 하나,

아 악!”

그가 본 것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단천애의 운무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여인의 옷자락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뇌리에 선명한 기억을 심어준 자의궁장이었다.

자의궁장여인, 그녀는 바로 독황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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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六 章

 

                  天狼洞府奇緣

 

 

 

군무현의 앞을 가로막은 열 세 명의 인물들, 그들의 선두에 선 인물은 지극히 음독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었다.

일신에는 피처럼 섬뜩한 혈포를 걸쳤으며 한 손에는 낭아곤(郎牙棍)을 들고 있었다.

그 자의 두 눈은 끔찍하게도 시뻘건 핏빛을 띠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잔인하고 흉폭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모습, 그 자의 뒤로, 역시 혈포를 걸친 열 두 명의 노인들이 음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결같이 음독하고 잔악한 인상을 지닌 자들, 군무현은 서늘한 한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선두의 혈포노인을 주시했다.

그대가 혈랑왕(血狼王)인가?”

그 말에 혈포노인, 즉 혈랑왕은 물씬 살기가 풍기는 기괴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크... 구류지존이란 놈이 어떤 놈인가 했더니 겨우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였군!”

그 자는 군무현이 아직 약관에 불과한 것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하나, 군무현을 혈랑왕의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혈랑왕이 틀림없는 듯 하군! 그렇다면 죽어주어야겠다!”

말을 마치는 순간, ... 츠츠츠! 시뻘건 수라혈도가 혈광을 그으며 번쩍 날았다.

순간,

!”

여유만만하던 혈랑왕은 대경실색했다.

군무현의 발도(拔刀)가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었다.

위잉! 그 자는 일수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낭아봉을 휘둘러 수라혈도를 막아갔다.

직후, 콰 쾅! 카가각! 격렬한 파열음과 폭음이 뒤섞여 터져 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윽...!”

혈랑왕은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휘청 물러섰다. 그 순간을 놓칠 군무현이 아니었다.

죽어랏!”

그는 숨돌릴틈도 없이 재차 수라혈도를 휘둘렀다.

츠츠츠...! 가공할 혈기(血氣)가 온통 주위를 휘감아 올랐다.

그 순간,

어딜!”

받아랏!”

혈랑왕의 뒤에 대치하고 있던 열 두 명의 혈포노인들이 일제히 군무현을 덮쳐들었다.

그 자들은 바로 혈랑십이살(血狼十二殺)로 불리는 혈랑곡의 최고 고수들이었다.

직후, 콰콰콰 쾅! 따다당! 군무현의 수라혈도는 혈랑십이살의 낭아곤에 부딪혀 공격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순간, 스스슥...! 혈랑십이살은 기민하게 몸을 움직여 군무현을 포위했다.

그 모습에 혈랑왕은 시뻘건 눈을 희번덕이며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애송아, 혈랑혈살진(血狼血殺陣)을 아느냐?”

그 자는 진속에 포위된 군무현을 주시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위 잉! 츠츠츠... 진세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쐐 액! 사위에서 벼락같이 낭아곤의 공세가 짓쳐들었다.

군무현은 대노했다.

물러나랏!”

번 쩍! 일순 수라혈도가 섬뜩한 혈선(血線)을 그으며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파파팍! 콰릉...! 열 두 개의 낭아곤은 거대한 쇳덩이리에 부딪힌 듯 급격히 튕겨졌다.

하나,

(!)

군무현도 일순 신형을 휘청했다. 그의 수라혈도 역시 강력한 반진력에 의해 튕겨지는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혈랑왕은 그 광경에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혈랑혈산진에 갇히고도 살아난 자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그 자는 득의만면하여 자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본인이 그 전례를 깨어주지!”

군무현은 냉혹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위 잉! 돌연 혈랑혈산진 속에서 창창한 핏빛 강기가 퍼져 올랐다.

그 광경에 혈랑왕은 흠칫했다. 그 자는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그것을 느낀 순간 그 자는 혈랑십이살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위험하다!”

하나, 그 자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라혈영파천무!”

이미 진속을 뒤덮은 혈강 속에서 군무현의 대갈이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콰르르릉! 쿠쿵...! 거대한 폭죽이 터지듯 뇌성벽력이 천지를 벌컥 뒤집어 엎었다.

그와 함께,

으 악!”

크윽... !”

케 엑!”

회오리치는 핏빛 그림자 속에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올랐다.

오오... 보라! 끔찍하게도 혈랑십이살의 몸뚱이는 갈가리 찢겨 사방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 아닌가?

그 자들은 흔적조차 없이 처참하게 허공에서 분시되고 말았다. 그 충격적인 사태에 혈랑왕은 안색이 시커멓게 질렸다.

... ...!”

그자는 공포에 질린 안색으로 사시나무 떨 듯 전신을 떨었다.

다음 순간, ! 그 자는 죽을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혈랑곡의 끝에는 절벽이 가로놓여 있었으며 그 절벽 중앙에는 하나의 석동(石洞)이 뚫려 있었다.

혈랑왕은 허공을 가로질러 벼락같이 그 석동 안으로 뛰어 들었다.

군무현은 그런 그 자를 차갑게 노려 보았다.

후훗...!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는 막 석동 안으로 뛰어드는 혈랑왕을 향해 수라혈도를 겨누었다.

순간,

수라도천파(修羅刀天破)!”

파파팟! 한소리 냉혹한 외침과 함께 핏빛 그림자가 번쩍 혈랑왕을 쫓았다.

어검술과 일백상통하는 이기어도술!

혈랑왕은 사색이 되어 다급히 몸을 피했다.

하나 그 순간,

!”

피보라가 확 퍼져오르며 그 자의 오른쪽 팔이 어깨에서부터 싹둑 잘려나갔다.

파파 팍! 수라혈도는 그 여력에 못이겨 절벽의 석벽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 혈랑왕은 팔이 잘린 채 그대로 동부 안으로 달아났다.

교활한 놈!”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하며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다음 순간, ! 그는 망설임없이 석벽 중앙의 동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천랑동부(天狼洞府)!

 

절벽의 중앙에 뚫려 있는 동굴, 그 입구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굵은 서체로 새겨져 있었다.

천랑노인(天狼老人)이 적룡천종에 패하고 자결한 후 그의 제자였던 천랑신마(天狼神魔)가 천랑노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만들었다는 동부,

어디로 달아나든 놓치지 않는다!”

천랑동부의 입구에 내려선 군무현, 그는 냉막한 안색으로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 그는 망설임없이 천랑동부 안으로 날아들었다. 동굴 안은 어두운 통로로 이어졌다.

군무현은 신광을 빛내며 동부의 암로를 따라 들어갔다.

오십여 장 장도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몸을 멈추었다. 그곳에서부터 통로는 십여 갈래의 복잡한 미로(迷路)로 갈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무현은 미로의 입구에 우뚝 선 채 잠시 멈칫했다. 하나, 이내 그는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청각으로 집중했다.

천이통(天耳通)의 공력을 펼치는 것이었다. 순간,

(이쪽이군!)

군무현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중얼거렸다.

삼십 장 밖에서 미약한 호흡소리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측의 한 미로를 택했다.

순간, 스스... 그는 수라혈잠영의 경공을 펼쳐 연기처럼 그곳으로 빨려들어 갔다. 하나,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가 막 한 굽이의 통로를 꺾어 도는 순간, 그의 코 끝에 매캐한 화약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것이 아닌가?

(아차!)

군무현은 흠칫하며 급급히 몸을 되돌리려 했다. 하나,

크크... 늦었다!”

혈랑왕의 음악한 괴소가 그의 귓전을 때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혈랑왕! 네놈이...!”

군무현의 눈썹이 휙 거슬러 올라갔다. 하나, 그의 노성은 뒤이어 터져 오른 굉렬한 폭음 속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꽈르르 릉... 쿠쿠쿵...! 거대한 화약이 일시에 폭발하는 가공할 붕괴음,

그와 동시에, 콰콰쾅 퍼엉! 군무현이 들어간 석동은 완전히 박살나며 무너져 내렸다.

그때,

크크크... 제놈이 죽지 않는다면 인간도 아니지!”

무너진 암동 옆의 동굴에서 혈랑왕이 득의의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문득, 우르릉... 콰쾅! 집채만한 바위가 박살나며 그 틈에서 한 명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온통 먼지투성이의 백의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비록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쓰기는 했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는 분노의 표정으로 안색을 이지러뜨렸다. 하나, 이미 혈랑왕의 모습은 그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주위에는 온통 부서진 바윗덩이와 흙먼지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군무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일시의 실수로 꼼짝없이 갇혀 버렸으니...!”

그는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딘가 출로(出路)가 있겠지!”

이윽고, 그는 몸을 돌려 동굴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흙먼지를 헤치며 통로의 두 굽이를 돌았을 때였다.

그의 앞에 이끼 낀 하나의 석벽이 가로막아 섰다.

막다른 길이란 말인가?”

군무현은 낭패함을 금치 못했다. 다음 순간, 그는 발길로 석벽을 힘것 걷어차 보았다.

! 하는 음향이 석동 안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우 웅! 석벽 안쪽에 또 다른 공간이 있음을 알려주는 미미한 진동음이 전해오는 것이 아닌가?

또 다른 동굴이 있나보군!”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번쩍 우수를 쳐들었다.

순간, 콰르릉! 쿠쿵! 가공할 폭음이 터져 오르며 석벽은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그 순간, 음습한 습기가 군무현의 얼굴로 확 끼쳐들었다.

군무현은 가볍게 미간을 모으며 석벽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 놓았다. 뜻밖에도 그곳은 하나의 넓은 석실이었다.

사면 벽이 온통 이끼로 뒤덮여 있는 밀폐된 공간,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석실의 중앙, 잔뜩 이끼 낀 하나의 석상(石床)이 놓여 있었다.

그 석상 위, ! 끔찍하게도 그곳에는 이미 썩어 부폐해 버린 인골(人骨)이 한 무더기 쌓여 있지 않은가?

천랑신마(天狼神魔)가 만든 석실인가?”

군무현은 무심코 중얼거리며 천천히 석상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중 한구의 시신, 그것은 지극히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워낙 석실 안이 습하여 거의 뼈의 형태마저 흩어질 정도로 부폐되어 있었다.

한데, 그 시체의 옆, 기형(奇形)의 채찍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검은 교룡근(交龍筋)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기이하게도 채찍 끝에는 여러개의 낭아(郎牙)가 박혀 있어 섬뜩한 느낌을 풍겼다.

그것을 본 순간, 군무현은 짐작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군. 이것은 천랑신마의 독문병기인 천랑신편(天狼神鞭)이 분명하다!”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 보았다.

석상의 밑에는 역시 다 문드러진 우람한 골격의 짐승의 뼈가 뒹굴고 있었다.

이것은 천랑노조와 천랑신마 사제(師弟)를 모시던 천년백랑(千年白狼)의 뼈이겠군!”

군무현은 나름대로 추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는 별다른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무엇인가 남겨놓은 것이 있을 텐데...!”

군무현은 무심히 중얼거리며 면밀히 석실 안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이끼 낀 사면의 벽에 고정되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석상 뒤의 석벽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그곳의 무성한 이끼를 손으로 뜯어냈다. 이끼가 벗겨지자 드러나는 광경,

! 그 속에서는 석벽을 깎아만든 조각품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한 마리의 핏빛 늑대가 네 다리를 엇갈려 뻗은 채 하늘을 나는 모습이었다.

비랑(飛狼)! 그것은 너무도 생생하여 실제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순간,

(현기가 있다!)

군무현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는 급히 나머지 세 벽면의 이끼도 모두 뜯어내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세 벽면의 이끼를 모두 뜯어내고 나자, 그곳에는 역시 생생한 비랑도(飛狼圖)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광경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훌륭하다. 하나같이 초절한 경공절기들이다!”

군무현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네폭의 비랑도, 그것은 모두 초절정의 경공신법을 나타낸 도해임을, 그것은 천랑신마가 창안한 경공이었다.

그는 사부 천랑노조가 적룡천종에 패한 원한을 갚기 위해 무려 일갑자 동안 고심참담하여 마침내 네폭의 비랑도를 완성했다.

주로 경공을 위주로 창안한 그것은 경공 속에 잔독흉랄한 공격수법을 내포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감탄과 함께 기쁨을 금치 못했다.

경공으로서는 단연 일절(一絶)이다. 천랑비천사대식(天狼飛天四大式)이라 이름 짓자!”

그는 당장 네폭의 비랑도에 이름을 붙였다. 실로 뜻하지 않은 기연을 얻은 그는 다소 흥분되는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 이내 그는 네폭의 비랑도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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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五 章

 

                     안타까운 女心

 

 

 

(), 만물(萬物)은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한데, 스스스...! 문득 파향객잔으로 은밀하게 스며드는 한 줄기 인영이 있었다. 유령처럼 은밀히 객잔의 후원으로 스며드는 인영, 그는 바로 군무현의 거처를 향해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문득, 흐릿한 달빛이 인영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희끗하게 드러나는 인영의 모습, 자의미녀(紫衣美女).

그 인영은 기품있고 고귀한 인상을 주는 여인이었다. 하나, 그녀의 안색은 다소 창백했으며 초췌하게 보였다.

군무현이 거처하고 있는 전각, 자의미녀는 그 앞에 이르러 우뚝 몸을 세웠다.

“...!”

일순 그녀는 복잡한 시선으로 전각을 바라보았다.

자의미녀, 그녀는 독황후(毒皇后)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독황후는 갈등이 엇갈리는 눈빛으로 전각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비록 창졸간에 욕을 당하듯 몸을 허락했으나 이제는 그이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잉태하였다...)

그녀는 살며시 자신의 하복부를 어루만졌다. 문득, 창백한 그녀의 두 볼에 홍조가 어리는 듯했다. 하나, 그녀의 표정은 왠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 복잡해 보였다.

(단 한 번의 관계로 아이를 잉태할 줄이야...!)

갈등과 수치, 그리고 은은한 자부심이 그녀의 입가에 떠올랐다. 이어, 그녀는 결심한 듯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그이에게 안길 수밖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결심이 선 순간, 스스스... 독황후는 소리없이 몸을 움직여 전각의 창문가로 다가섰다.

실로 귀신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신법, 문득 독황후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있다. 그이가 나 이외의 여인에게는 곁눈질도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다...!)

그녀는 자신에 찬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살아온 여인이었다.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다 했으며 소유하고 싶은 것 또한 부족함없이 소유하며 살아왔다. 또한, 그녀는 여인으로서는 지나칠 정도로 강한 기()와 고집을 지녔다.

한데, 그런 그녀가 모든 자존심을 꺾고 지금 군무현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공교롭게도 너무나 때가 좋지 않았으니...

일순,

(!)

독황후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틀어 막으며 봉목을 치켜 떴다.

반쯤 열려진 전각의 창문, 그 앞으로 다가서자 방 안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예... 화예...!”

아아...!”

숨가쁘게 어울려 나오는 뜨겁고 거친 남녀(男女)의 신음성, 독황후의 치떠진 눈에 뜨겁게 서로를 탐하고 있는 군무현과 빙백염후의 모습이 들어왔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상을 뒹굴고 있는 두 남녀, 그것은 너무도 아찔하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독황후, 그녀의 교구가 일순 휘청했다.

... 이럴 수가...!”

지독한 배신감과 모멸감에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상상하던 분홍빛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계집을 안고 있다니...!)

그녀의 교구는 무섭게 부들부들 떨렸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살아온 독황후, 그녀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오직 자신의 남자(男子)여야만 하는 군무현이 다른 여인을 품에 안고 있다니... 그것은 독황후로 하여금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질투는 곧 엄청난 배신감으로 바뀌었고 배신감은 또 처절한 분노와 증오로 남았다.

(... 죽이리라! 두 년놈들!)

일순 그녀의 두 눈에 강렬한 살기가 떠올랐다.

! 그녀는 질끈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에 잇!”

꽈릉...! 그녀는 일진광풍을 몰아 다짜고짜 군무현의 등을 후려쳤다. 순간,

!”

군무현은 그 돌연한 사태에 다급성을 터뜨렸다.

! 그는 촉망중에 빙백염후를 안은 채 그대로 바닥으로 나둥굴었다.

그 순간, 콰 쾅! 폭음과 함께 침상이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누구냐?”

군무현은 노갈을 터뜨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독황후는 원독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노려보며 교갈을 터뜨렸다.

죽여버릴테다!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딴 계집과 놀아나다니...!”

말을 마침과 함께, 위 잉! 꽈릉... 그녀는 재차 벼락같이 교수를 휘둘렀다.

지독한 맹독이 실린 독강이 무자비하게 군무현을 짓쳐들었다.

감히 암습을 하다니...!”

군무현은 짙은 검미를 꿈틀했다.

그 순간, 우르릉! 그의 우장(右掌)이 태양같은 극양지기를 몰아 벼락같이 떨쳐냈다.

인정사정을 두지 않은 양인의 공격이 일순 극렬하게 충돌했다.

직후, 콰르릉 퍼펑!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전각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순간,

!”

폭음 속을 뚫고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독황후, 그녀는 울컥 선혈을 토하며 비틀 물러섰다. 하나, 군무현은 상체를 휘청했을 뿐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그는 한밤 중에 침실을 기습한 무례한에 대한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어떤 계집이 감히...!”

이불을 끌어 엉겁결에 몸을 가리던 군무현, 그의 안색이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온통 분노와 원독의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서 있는 여인, ! 그녀는 군무현의 뇌리 속에 너무도 깊이 박혀 있는 여인이 아닌가?

본의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동정을 취한 여인이었다.

대파산의 어느 산동(山洞).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같이 했던 여인, 어떤 사유로든 독황후는 군무현의 첫여인임이 분명했다.

비록 하룻밤의 인연만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그 후 군무현은 한 번도 독황후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첫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 그대는 독황후(毒皇后)...!”

군무현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독황후는 입술을 악물며 원독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노려 보았다. 크고 맑은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이윽고,

...!”

독황후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몸을 날렸다. ! 이내 그녀는 전각의 담을 넘어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간,

소저!”

군무현은 그제서야 흠칫 정신을 치리며 급히 창가로 다가섰다. 하나, 이미 독황후의 모습은 그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 두고봐! 반드시 복수하고 말 것이다!”

문득 멀리서 독황후의 울음섞인 교갈이 들려왔다.

으음...!”

군무현은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그때,

... 지존! 무슨 일이십니까?”

한밤중의 느닷없이 소란에 놀라 잠이 깬 객잔의 주인이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별일 아닐세. 돌아가게!”

군무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의 말에 객잔의 주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허리를 숙이며 물러갔다.

그녀가 독황후... 그래서 구류곡(九流谷)에서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군...!”

군무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빙백염후는 벌거벗은 채 다가와 군무현의 등에 가만히 얼굴을 묻었다.

 

X X X

 

혈랑곡(血狼谷)!

 

혈랑곡의 역사는 깊다.

오백 년 전, 적룡천종(赤龍天宗)에 분패하고 자진한 것으로 알려진 천랑노인(天狼老人)이 바로 혈랑곡의 조사(祖師)였다.

당금의 혈랑곡주는 혈랑왕(血狼王) 호목광(胡目光)이라는 자였다. 그 자는 반금강지체인 혈랑(血狼)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 자의 혈랑비천십삼세(血狼飛天十三勢)는 무림일절(武林一絶)로 정평이 나있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장강방(長江幇)의 방주인 장하용왕(長河龍王), 그리고 쾌도문(快刀門)의 도천왕(刀天王)등과 함께 신주오왕(神州五王)에 드는 절정고수였다.

아울러, 그 자는 흑도십팔절의 수뇌인물이기도 했다.

혈랑곡(血狼谷)! 그곳은 동정호에서 이백리 떨어진 호남(湖南)에 위치하고 있었다.

석광산(錫鑛山)! 바로 그 험지에 혈랑곡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마궁의 비호를 받아 호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패는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약탈과 폭행, 살인, 방화 등... 무고한 사람을 산채로 혈랑의 먹이로 던져주는 끔찍한 만행도 서슴치 않는 자들이었다.

 

오시(午時) 무렵, 쐐 애액! 문득 석광산의 준봉 위로 거대한 대천붕이 날아올랐다.

대천붕의 등, 군무현이 빙백염후를 가볍게 안은 채 앉아 있었다.

몸을 허락했기 때문일까? 빙백염후는 수줍은 중에 요염한 교태를 피우고 있었다.

군무현은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석광산을 내려다 보았다. 문득, 그의 눈에 운무에 둘러싸인 하나의 절곡이 보였다.

운무를 뚫고 많은 전각들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혈랑곡...!”

군무현은 그것을 내려다 보며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의 두 눈에서 일순 섬칫한 한광이 뻗어나왔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목을 졸라 주려했으나... 그 발호가 극심하니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그는 결심한 듯 안색을 굳혔다. 이어, 그는 빙백염후를 바라보며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화예... 천웅과 함께 자하곡으로 돌아가 있으시오!”

그 말에 빙백염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군무현을 올려다 보았다. 군무현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빙백염후가 아닌가?

하나, 상황이 상황인만큼 군무현은 빙백염후를 조용히 타이르듯이 설득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일이 끝나는대로 곧 자하곡으로 돌아가겠소. 그동안 혜미(慧美)와 함께 지내면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

빙백염후는 뭔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녀는 떨어지기 싫다는 군무현의 옷깃을 잡는 것이 아닌가? 하나, 군무현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자 그만 힘없이 손을 놓는 것이었다.

문득, ...!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이 그녀의 옷깃에 떨어져 내렸다.

눈물! 그것은 눈물이었다.

군무현은 흠칫했다.

(눈물이 있다니... 완전한 여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과연 빙백염후는 여인으로서 완벽했다.

비록 분명하지는 않지만 감정의 표현도 할줄 알았으며 다소곳이 순종할 줄도 알았다.

이윽고, 군무현은 고개를 돌리며 대천붕의 등을 가볍게 쳤다.

천웅! 자하곡으로 돌아가라!”

꾸륵...! 대천붕은 군무현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울부짖었다.

다음 순간, ! 군무현은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혈랑곡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섬전보다 쾌속한 속도, 그 순간 잠잠하던 혈랑곡은 벌컥 뒤집히고 말았다.

... 대천붕이다!”

구류지존(九流至尊)이 나타났다.”

혈랑곡의 인물들은 허공을 올려다 보며 대경성을 터뜨렸다.

대천붕(大天鵬)! 그것은 곧 구류지존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 패해랏!”

위험하다!”

그들은 우왕좌왕하며 급급히 몸을 날렸다.

하나 그때,

!”

한 소리 웅후한 장소와 함께 군무현이 깃털처럼 가볍게 혈랑곡으로 날아내렸다.

천하를 어지럽힌 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대가를 받아라!”

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냉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츠츠츠... ! 시뻘건 도광(刀光)이 송두리째 혈랑곡을 휩쓸었다.

직후,

크 악!”

으윽...!”

!”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도광속에 난도질하듯 터져 올랐다.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그 가공할 돗가 사방에 엄청난 혈풍을 일으키며 난무했다.

군무현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훌쩍 지면으로 내려선 그는 무차별하게 혈랑곡의 마도들을 휘몰아쳤다.

파파팟! ... ! 대기를 발기발기 찢어내는 가공할 도세가 온통 핏빛으로 출렁거렸다.

군무현은 계속 손을 멈추지 않으며 벼락같이 외쳤다.

혈랑왕! 어디에 있느냐? 나와서 검을 받아랏!”

그 순간,

받아랏!”

적은 하나다! 죽여랏!”

돌연한 사태에 잠시 주춤하던 혈랑곡도들은 발악하듯 군무현을 향해 덮쳐들었다.

!”

죽여라!”

우 웅! ... 츠츠츠! 그들은 죽기 살기로 분별없이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 우웅...! 한 순간 군무현의 수중에 들려있던 수라혈도가 길게 도명(刀鳴)을 말했다.

그와 동시에, 번 쩍! 전율의 혈광(血光)이 허공을 난도질했다.

직후,

크으윽!”

케 엑!”

으악...!”

섬뜩한 피보라와 함께 선혈의 분수가 터져 올랐다.

추풍낙엽(秋風落葉)! 혈랑곡들은 군무현의 냉혹한 살수 아래 가랑잎처럼 나가 떨어졌다.

이대로 간다면 순식간에 혈랑곡은 개미새끼 한 마리 남지 않고 전멸을 당하고 말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멈추어라!”

혼란스러운 장내를 뚫고 음독한 일갈이 쩌렁하게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 ! ! 군무현의 앞으로 십여 명의 인물들이 날아내렸다.

나타났군!”

군무현은 싸늘하게 중얼거리며 전면의 인물들을 노려 보았다. 그들의 숫자는 정확히 열 세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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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四 章

 

                  赤龍第三劍訣

 

 

 

큰일이군. 아버님의 유품을 망치다니...!”

군무현은 대천붕의 등 위에 앉은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쐐 애 액! 대천붕은 거대한 날개를 저으며 그림같이 수려한 백수호 위를 날고 있었다.

군무현의 오른손을 피가 엉겨붙어 엉망이었다. 그 모습에 빙백염후는 안색을 기이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초점이 없는 그녀의 두 눈에 안타까운 빛이 어리고 있지 않은가? 하나, 군무현은 지금 자신의 상처에 신경 쓸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적룡검을 바라보았다.

적룡검의 손잡이 부분의 온옥(溫玉)이 길게 금이 가 비틀려 있었다.

청하의 모니항마강수와 격돌할 때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간 것이었다.

적룡검은 아버님께서 남기신 유품이거늘 함부로하여 손상을 입혔으니...!”

군무현은 죄책감을 느끼며 안타까운 기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그것을 어떻게든 원상태로 해보려는 마음으로 적룡검의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비틀었다.

그 순간, ! 온옥의 손작이가 쩍 갈라지며 부서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 이런...!”

군무현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한데, ! 무엇인가 그의 무릎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온옥 속에서 떨어진 양피지 조각이 아닌가?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군무현은 눈썹을 모으며 조심스럽게 양피지 조각을 펼쳐 보았다.

순간,

... 이것은...!”

그의 안색은 일변했다. 적룡검의 손잡이 속에서 떨어진 양피지 조각, 그 속에는 깨알보다 작은 글씨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강적(强敵)을 만나야 적룡제삼검결(赤龍第三劍訣)을 얻으리라...!

 

글의 첫 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군무현은 경악과 흥분을 금치못했다.

... 적룡제삼검결(赤龍第三劍訣)! 온옥이 부서진 것은 적룡천종의 안배였단 말인가?”

그는 심하게 가슴이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양피지에 적힌 글의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본 천종(天宗)은 검()으로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을 능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팔만사천검종(八萬四天劍宗)을 연구하게 되었고, 시험적으로 만든 것이 바로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이었다.

 

군무현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이 시험적으로 만든 초식에 불과하다고...”

그것은 실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

그 두 가지 검결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적룡대제를 존재하게 했으며, 그 무명(武名)을 만방에 떨쳐 역사(歷史)의 한 기록을 장식하게 만들었다.

한데, 그 위력적인 검법이 적룡천종의 시험작에 불과한 것이라니...!

군무현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곧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양피지의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中略... 본종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천하무림은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마저도 견디지 못했다. 강적을 찾아나선 본종은 크게 실망하여 은거지로 되돌아 왔다. 그후 본종은 다시 천외삼대천을 능가할 검공절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이른 것은 전설상의 심검(心劍)이다.

 

심검(心劍)!

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마음()만으로 천리(千里) 밖의 적을 격살할 수 있다는 전설의 절학, 이는 다만 전설로만 내려오는 상상의 무학이었다.

살심(殺心)이 이는 순간 마음의 검(心劍)이 적을 살상해 버리는 가공할 검학, 그것은 이미 인간의 한계와 형()이라는 무학의 궤()를 벗어난 신인(神人)의 경지였다.

양피지의 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 이는 천외삼대천조차도 이르지 못한 경지였다. 본종은 백 년을 고심참담했으나 심검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인간의 수명이란 인위로 어쩔 수 없는 것... 마침내 본종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들었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적을 대하자 본종은 체념에 가까운 허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불현 듯 심득(心得)이 일어나며 일평생 동안 찾아온 현의(玄意)가 확연히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군무현은 침음성을 발했다.

죽음을 맞이하여 심득을 얻으시다니...!”

그는 절로 숙연한 신색이 되었다. 그는 기대와 흥분이 앞서던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었다.

양피지의 글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본종은 급히 깨달은 바를 적어 애검(愛劍) 적룡검(赤龍劍) 안에 비장한다. 아마 그대는 적룡어강살의 검법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강적과 겨룬후에야 이 글을 보게 되리라. 이제 신검의 검결을 기록하거니와 부디 심검(心劍)으로 인해 하늘의 호생지덕을 거스리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그 글 밑으로, 양피지의 아래 부분에 깨알보다 작은 글이 일천자나 적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검(心劍)의 구결이었다.

“...!”

군무현은 흥분과 격동의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기대의 눈빛으로 심검의 구결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

 

이것으 그 심검의 이름이었다.

이는 사상 초유의 심극검(心極劍)이었다. 마음() 하나로 천리 밖의 적을 살상할 수 있는 절학의 검학,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의 구결을 살펴 본 군무현, 그는 감탄을 금치못하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적룡천종께서는 천외삼대천 이상이시다. 비록 그 경지가 죽음을 직면했을 때 도래했지만...!”

그는 적룡천종에 대해 절로 경외감이 일어났다.

천외삼대천은 형()이 극()에 달했을 뿐이다. 하나, 적룡천종께서는 형()을 넘어 의()가 극의 경지에 이르셨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그는 점점 강렬한 의욕과 함께 흥분이 고조됨을 느꼈다.

그의 눈빛이 이순간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

빙백염후는 흥분된 표정을 짓고있는 군무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군무현은 벅찬 격동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참수해야겠군!”

그는 빙백염후의 가는 허리를 굳게 끌어 안았다. 이어, 그는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웅! 서둘러라!”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구 워억! 대천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 길게 울부짖었다.

군무현의 귓전에 대천붕의 울부짖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큭 느껴짐은 무슨 까닭일까?

 

X X X

 

백파진(白波鎭), 백수호(白水湖) 연안의 작은 어촌, 얼마 되지 않은 촌가(村家)들이 듬성듬성하게 늘려 있다.

그 광경은 지극히 평화스럽고 운치있는 느낌을 준다. 또한, 백파진에는 풍광이 수려한 백수호를 연하고 있어 제법 여러개의 객잔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파향객잔(派香客棧).

 

백파진에 있는 주루와 객잔 중 가장 크고 깨끗한 객잔, 특히, 이곳은 싱싱한 어물(魚物)로 만든 요리가 유명하여 백파진을 찾는 풍류객들은 반드시 파향객잔에 들르기를 잊지 않았다.

파향객잔의 가장 깊은 곳, 월동문(月洞門)을 지나면 이런 한촌답지 않게 잘 정돈된 정원이 나타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화이초들이 다투어 방향(芳香)을 뿌려대는 정원, 그곳에 서면 멀리 백수호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잘 정돈된 정원의 중앙, 그곳에는 한 채의 화려한 누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백파진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호화로운 누각이었다.

누각 안, 한 명의 백삼문사가 단정히 탁자에 앉아 있다.

깎은 듯 수려한 얼굴, 잔잔하고도 무심한 눈빛, 그는 하나의 작은 양피지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내용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그의 눈빛은 일점 흔들림도 없이 진지하고 신중해 보였다.

백삼문사!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이곳 파향객잔은 다름아닌 구류천종 소속이었다.

천하각지에 구류천종의 세력이 분포되어 있지 않은 곳이란 한군데도 없었다.

이미 밖은 어둑어둑해 지고 있었다. 군무현은 꼬박 반나절을 양피지와 씨름한 터였다.

문득, 사르르...! 가볍게 옷자락 끌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미끄러지듯 방 안으로 들어섰다.

빙백염후, 바로 두 손에 단정히 향차를 받쳐든 그녀였다.

비록 영혼이 없는 그녀이건만 여인의 본능 때문인지 군무현의 시중을 드는 일만은 치밀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윽고, 빙백염후는 조심스럽게 군무현의 앞에 향차를 내려놓았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고개를 들었다.

염후, 고맙소!”

그는 비로소 양피지에서 눈을 떼며 향차를 들었다. 그런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는 인간 능력 이상의 바탕을 요구한다. 내공이 십갑자를 넘어 심령이 천지(天地)를 교회(交會)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연마가 가능하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또한 그 중의 이치는 대해(大海)와 같아서 도저히 깊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다. 결코 일시에 깨달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득, 화르르...! 군무현의 손 끝에서 한줄기 불길이일어났다.

그와 함께, 스스스... 그가 들고 있던 양피지는 한줌의 재로 부서져 내렸다. 군무현은 문득 고개를 흔들며 내심 중얼거렸다.

(나의 내공은 겨우 오갑자(五甲子)... 천지현관(天地玄關)을 타통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태양천화굉염신공과 만겁빙백명공강을 합일시키기 전에는 감히 익힐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빙백염후도 따라 일어났다.

군무현은 문득 피로감을 느꼈다. 심어초극류의 구결에 너무 몰두해 있었던 까닭이다.

염후, 오늘은 일찍 쉬고 싶소. 자리를 부탁하오!”

“...!”

군무현의 말에 빙백염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어, 그녀는 거실에 연한 침실로 들어갔다.

은은한 연청빛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 그것은 넓고 안락하게 꾸며져 있었다.

빙백염후는 정성스러운 손길로 침상 위에 비단금침을 깔기 시작했다.

“...!”

군무현은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문득 그는 빙백염후가 다정한 아내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자리가 다 정돈된 것을 본 그는 침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사르르... 빙백염후도 걸치고 있던 백의를 벗고 속이 은은히 비쳐보이는 나삼 차림이 되었다.

군무현은 무심코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다가 흠칫했다.

나삼 속으로 드러나 보이는 빙백염후의 완벽한 몸매, 그것은 너무도 선명한 굴곡을 이루고 있어 후끈한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과연... 고금일미(古今一美)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몸매다...!)

군무현은 내심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빙백염후의 그 완벽한 몸매를 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염후는 영혼이 없는 염시일 뿐이다!)

그는 이내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빙백염후도 조심스럽게 침상으로 올라왔다.

염후, 잘자오!”

군무현은 자신의 옆에 눕는 빙백염후에게 한쪽 팔을 내어준 후 고개를 돌렸다.

한데 그때,

으음...!”

문득 빙백염후가 나직한 비음을 발하며 군무현의 가슴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뭉클한 여체의 감각이 가득 느껴졌다.

군무현은 일순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염후, 불편하오?”

고개를 돌려 빙백염후를 바라보던 군무현, 그는 흠칫했다.

빙백염후의 봉목이 뜨겁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무엇인가 강하게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설마... 염후가...?)

군무현은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나, 빙백염후의 몸은 이미 뜨거워지고 있었다.

“...!”

그녀는 뜨거운 교성을 발하며 그대로 군무현의 품을 파고 들었다.

뜨겁게 호소하듯 몸을 비벼대는 여체, 순간, 군무현의 젊은 피가 후끈 끓어 올랐다.

염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빙백염후의 끊어질 듯 가는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

빙백염후는 오랫동안 갈증을 견디며 목말라왔던 사막처럼 뜨겁게 군무현을 받아 들였다.

군무현은 그녀의 풍염한 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으며 입술을 더듬었다. 그러자, 빙백염후도 백사같은 팔을 뻗어 군무현의 목을 굳게 끌어 안았다.

한 순간, 스르르...! 매미껍질처럼 얇은 빙백염후의 나삼이 침상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와 함께, ...! 침상 위에 밝혀둔 황촉이 꺼지며 침실 안에는 어둠이 찾아들었다.

 

< 五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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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三 章

 

                    大悲神尼

 

 

 

으 윽!”

금붕천왕이 걸치고 있던 화려한 금포는 완전히 시커멓게 타버렸다.

그자는 안색이 시뻘겋게 변한 채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군무현 역시 충격을 받은 듯 나직한 신음성을 발했다.

금붕천왕 한 사람만의 공격이 아니라 위지사영까지 합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경악의 눈으로 위지사영을 바라보았다.

대비불광참(大悲佛光斬)...! 대비신니(大悲神尼)의 무공이 나타나다니...!”

그는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대비신니(大悲神尼)!

공문제일인(空門第一人), 전 무림의 추앙을 받은 희대의 여고수였다. 그녀는 천축(天竺), 중원(中原), 서역(西域)의 불공을 통합하여 광대하고 현오한 불문선공으로 집대성했다.

그 업적이 길이 무림사(武林史)에 남을만한 공문(空門)의 재녀(才女),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 전부터 백 오십 년 전까지 무림을 행로하다가 소리없이 잠적했다.

천지십강(天地十强) 중 최근세의 인물이기도 하다.

 

군무현이 놀라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천지십강 중 일인인 대비신지(大悲神尼), 백 오십 년 전에 실종된 그녀의 무공이 위지사영의 손에 의해 펼쳐진 것이 아닌가?

그때, 위지사영은 차가운 살기가 이는 눈으로 군무현을 쏘아보았다.

눈은 제대로 박혀 알아보는군! 하나 죽어줘야겠다!”

그녀는 냉갈과 함께 재차 번쩍 교수를 쳐들었다.

순간, 위 잉! 눈부신 금광이 회오리치듯 장내를 휩쓸었다.

그 광경에 금붕천왕도 신속히 합세했다.

죽어랏! 금붕뢰(金鵬雷)!”

꽈 릉! 실로 가공할 압력을 지닌 공격이었다.

하나,

어리석은 짓!”

군무현은 안면을 냉혹하게 굳히며 번개같이 손을 휘둘렀다.

수라혈영파천무!”

그 순간, 실로 가공할 일이 벌어졌다.

파파파 팟! 콰 콰쾅...! 천지사방이 온통 아수라(阿修羅)의 혈기(血氣)로 뒤덮이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은 실로 섬뜩한 전율의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직후,

!”

위지사영은 자신의 호신강기가 여지없이 깨짐을 느끼며 뾰족한 비명을 토했다.

그녀가 아무리 대비신니의 무공을 지녔다고는 하나 결코 군무현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절대절명의 순간,

아미타불...!”

돌연 나직하나 한소리 청렴한 불호성이 장내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콰콰콰 쾅! 폭죽 터지듯 대폭발음이 장내를 뒤집어 엎었다.

마치 천지의 종말을 예고하듯... 쿠쿠쿵... 꽈릉...!

경기가 충돌하며 생긴 거대한 돌풍은 무려 백 장을 치솟아 올랐다.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으음...!)

군무현은 일순 해연히 놀란 기색을 지었다.

그의 앞, 어느새 한 명의 승포여인이 바람처럼 조용히 서 있지 않은가?

그녀는 머리에 죽립을 눌러쓰고 있어 용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나, 일점도 흔들림없는 잔잔한 자태와 은은한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기도를 느끼게 했다.

그때,

사저!”

승포여인을 발견한 위지사영은 반갑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군무현은 그제서야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 여인이 대비신니(大悲神尼)의 직전 전인이겠군...!)

문득, 승포여인은 죽립을 살짝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 워억! 대천붕의 쩌렁쩌렁한 붕명이 장헌령을 온통 뒤흔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케 엑! 한 마리 금붕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지면으로 내리박히듯 떨어졌다.

대천붕의 억센 발톱이 금붕의 등판을 박살낸 것이었다.

쿠 우...! 쐐 애 액! 대천붕의 활약은 실로 찬탄할 정도였다.

그 놈은 만금지왕(萬金之王)답게 십여 마리의 금붕을 힘들이지 않고 압도해가고 있었다.

대천붕과 금붕의 싸움! 그것은 마치 독수리와 참새의 싸움처럼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쐐 액! 대천붕은 거대한 날개를 떨치며 전면으로 덮쳐오는 금붕을 잡아챘다.

그 순간, 파파파 팍! 대천붕의 등에 타고 있던 빙백염후의 옥수(玉手)에서도 새하얀 빙백강기가 쏟아졌다.

직후, 꽈르릉... 콰쾅! 허공은 대폭발을 일으키며 벌컥 뒤집혔다.

그 가공할 폭음에 이어, 카 악! 크악... 마지막 안감힘을 쓰듯 금붕의 처절한 비명이 잇달아 터져올랐다.

검붉은 선혈은 무지개같이 허공으로 퍼져 오르고... 한 마리 금붕이 대천붕에 의해 머리가 박살났으며, 또 한 마리의 금붕은 얼음덩이가 되어 급속히 떨어져 내렸다.

금붕천왕은 그 광경에 안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 저럴 수가...!”

그자는 부르르 몸을 떨며 진저리를 쳤다. 그때,

아미타불...!”

회의여승의 입에서 문득 크고 해맑은 불호성이 터졌다.

순간,

(...!)

군무현은 안색이 일변했다. 그는 마치 일만 개의 범종이 한꺼번에 귓전을 두드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대비범자후(大悲梵慈吼)!”

그의 입에서 놀라움에 찬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때, 실로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허공을 온통 수라장으로 뒤덮었던 대천붕과 금붕이 즉시 싸움을 멈추며 갈라서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회의여승을 주시하며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비범자후가 만생(萬生)의 살기를 없앤다더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군!”

아미타불...!”

호의여승은 다시 마음을 씻어낼 듯 청정한 불호를 외었다.

그때, 위지사영이 회의여승의 승포를 잡아끌며 분노의 음성으로 말했다.

사저! 저자예요. 저자가 소매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살인귀(殺人鬼)예요!”

그녀는 온통 원한과 분노가 뒤엉킨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았다.

회의여승, 그녀는 잔잔하고 조용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아미타불... 빈니는 보타암(菩陀庵)의 청하입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그 음성으로 미루어 나이가 젊은 여승임을 알 수 있었다.

군무현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외사천(世外四天) 중 동천(東天)의 대비신니(大悲神尼)의 후예였군...!)

이어, 그는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본인은 군무현이오!”

그 말에 회의여승, 청하의 고개가 아래 위로 끄덕여졌다.

문득 그녀는 청아하고도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시주께서 사영 사매에게 독수를 쓴 까닭은 시주의 가문과 천신보(天神堡) 사이의 원한 때문이었군요!”

아셨으면 되었소!”

군무현은 무심한 어조로 짤막하게 대꾸했다. 이어, 그는 힐끗 금붕천왕을 주시했다.

(...!)

금붕천왕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일보 뒤로 물러났다. 군무현은 그런 그 자를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본인의 실수로 계집을 다치에 하였으니 더 이상 손을 쓰지는 않겠다. 하나,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같이 끝나지 않을 것이을 명심하라!”

말을 마침과 함께, 그는 무심히 몸을 돌렸다.

하나 그때, 스슥! 위지사영이 재빨리 몸을 날려 군무현의 앞을 막아섰다.

못간다! 내 얼굴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무사할 줄 알았느냐?”

그녀는앙칼지게 소리치며 군무현을 쏘아 보았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는 구슬같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비켜랏!”

군무현은 차가운 음성으로 일갈했다.

순간,

“...!”

그의 냉담한 태도에 위지사영은 움찔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회의여승 청하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시주... 잠깐만!”

스슥! 그녀도 가볍게 몸을 날려 군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스님까지...?”

군무현은 눈썹을 꿈틀했다. 하나, 청하는 군무현에게 정중히 합장하며 말했다.

시주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오!”

군무현은 뜻밖이었으나 무심한 어조로 대꾸했다.

청하는 맑고 잔잔한 음성으로 설득력있게 말을 꺼냈다.

세속의 여인들에게 있어 용모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

그의 말에 군무현은 일순 움찔했다.

(설마 이 여승은...!)

청하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사주께서는 물론 본의는 아니셨겠으나 사영 자매의 용모를 손상시켰어요.”

스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오?”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청하는 나직한 불호성을 외우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미타불... 사영 사매의 장래를 시주께서 책임져 주셔야겠어요!”

“...!”

군무현의 안색이 일순 굳어졌다.

(역시 그렇군!)

그는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은 것을 깨달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위지사영, 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미움과 갈등, 그리고 안타까운 갈망이 마구 뒤엉켜 떠올랐다.

여심(女心)! 실로 오묘하기 이를데 없는 여심이었다.

하나, 군무현은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며 고개를 저었다.

스님께서는 현의천신(玄衣天神)과 본인이 세불양립(世不兩立)의 처지임을 잊으셨구려!”

하나, 청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원한이란 풀어야지 맺어서는 아니되는 법, ()는 피를,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지요!”

하지만 군무현은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스님은 지나친 요구를 하고 계시오. 겁멸의 화()를 당해보지 못한 스님께서 어찌 본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소?”

순간,

“...!”

갑자기 승포에 싸인 청하의 교구가 격렬한 떨림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그녀의 몸에서 강맹한 강기가 회오리치듯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말을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이 여승도 무엇인가 깊은 한()을 간직한 신세란 말인가?)

한순간 죽음같은 침묵이 무겁게 장내를 짓눌렀다.

군무현과 청하, 그들은 아무말없이 서로를 주시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금붕천왕과 위지사영, 그들 역시 목이 조여드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문득, 청하가 먼저 침묵을 깨며 입을 떼었다.

시주께서 기절하신다 해도... 빈니는 사영 사매를 시주께 맡기고 말 것입니다!”

그녀의 의사는 분명하여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하나, 군무현 역시 그녀에 못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시오?”

혈영천종의 마공을 너무 믿으시는군요!”

청하의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냉담하게 변했다.

본인이 믿는 것은 혈영천종의 마공이 아니라 이 적룡검(赤龍劍)과 삼천적룡지혼의 투혼일 뿐이오!”

쩌 엉! 일순 삼엄한 검망이 일며 적룡검이 군무현의 손에 들려졌다.

그 순간, 우 웅! 청하의 일신에서도 지극히 강하고 웅장한 경기가 일어났다.

군무현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대비신니의 신공은 장중함이 특징이다. 불완전한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절기로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위 잉! 츠츠츠... 적룡검의 검신에서는 찬란한 검강이 전율처럼 퍼져 일어났다.

그 검강의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파파파팟! 콰릉...! 십장 내의 모든 것을 삽시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지켜보던 금붕천왕, 그자는 전권 밖으로 물러나 관전하며 내심 경악을 금치못했다.

(... 적룡검제 만큼 강하다!)

그는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때, 위 이 잉! 청하의 교수가 번쩍 쳐들리며 그녀의 교수에서 반투명한 강기가 엄청난 진동을 일으키며 회오리쳤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모니항마강수!)

그와 함께,

조심하시오!”

... 츠츠츠! 번 쩍! 적룡검이 벼락같이 휘둘러지며 천지를 밝힐 듯한 눈부신 검광이 작렬했다.

직후,

아미타불...!”

대비범자후의 범창이 뇌성같이 장내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우 웅! 꽈르릉... 청하가 쪼개내는 교수에서 반투명한 항마강기가 노도처럼 쏟아졌다.

다음 순간, 콰콰 쾅! 쿠쿵... 양인의 공세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천번지복의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와 함께,

!”

아악...!”

금붕천왕과 위지사영은 노도같은 경기의 파동에 휘청 밀려났다.

군무현과 청하, 그들 역시 충격을 받고 서로 물러났다.

!”

...!”

휘몰아치는 흙먼지 속에서 문득 두 마디의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스스스... 위 잉! 흙먼지가 가라앉자 양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은 각각 일보씩 물러나 있었다.

군무현, 적룡검을 쥔 그의 우수에서 한줄기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반면, 청하는 쓰고 있던 죽립이 박살난 채 벗겨져 있었다.

죽립 속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 ! 실로 아름다웠다.

경국경성(傾國傾城)의 절륜하고 그지없는 용모, ()으로 조각한 듯 섬세하고 뚜렷한 윤곽을 지닌 그녀의 얼굴은 희디 희어 슬프기까지 했다.

그녀의 나이는 삼십 전후 정도, 완숙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데, 촤르르...! 문득 그녀의 머리를 맨 끈이 풀어지며 삼단같은 머리가 물결치듯 그녀의 어깨위로 흘러내렸다.

뜻밖에도 그녀는 걸치고 있는 승포와는 달리 삭발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승포 아래로 치렁치렁하게 드리워진 수발, 그것은 기이한 매력과 함께 슬프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청하는 깊고 그윽한 눈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녀의 맑은 시선이 복잡한 빛으로 흔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때, 철 컥!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묵묵히 적룡검을 거두어 들였다.

이어,

!”

한차례 무심하게 장내의 인물들을 일견한 그는 이내 몸을 돌렸다. 천공을 떨어 울리는 웅후한 창룡음,

그와 함께, 스슥! 군무현의 신형은 화살처럼 허공으로 쏘아졌다.

바로 그때, 구워억! 상공(上空) 백여 장에서 군무현을 기다리고 있던 대천붕이 크게 울부짖으며 그를 맞이했다.

쐐 애 액! 군무현을 태운 대천붕은 순식간에 백수호 쪽으로 까마득히 사라져갔다.

“...!”

청하는 망연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주시했다. 문득, 그녀의 눈빛이 아득하게 변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지극히 인자한 인상의 노니(老尼)의 모습이 떠올랐다.

 

청하야... 사부가 네 머리를 깎아주지 않는 이유는 아직 세속광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설마... 내가...!”

청하는 그 말을 떠올리며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어찌하랴? 군무현의 차갑고 무심한 얼굴, 그러나 지극히 영준하고 인상적인 그 얼굴은 이미 그녀의 뇌리 속에 가득차 버리고 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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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二 章

 

                 金鵬島女傑

 

 

 

군무현은 천천히 난설홍예를 향해 다가갔다.

...!”

난설홍예는 교구를 휘청거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만년빙지를 내놓고 대죄하라!”

군무현은 그런 그녀를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항거할 수 없는 위압감이 서린 음성, 순간,

죽어랏!”

난설홍예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돌연 맹렬한 기세로 양소매를 떨쳐냈다.

파파파 팍! 얼음이 갈라지는 섬칫한 소성이 귓전을 찢었다.

그와 동시에, 삽시에 주위 삼십 장이 지독한 극음강기로 뒤덮이는 것이 아닌가?

제법이군. 만겁빙백명공강을 이루다니...!”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난설홍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화르르! 돌연 그의 몸에서 시뻘건 불길이 열풍처럼 일어났다.

그것은 상극의 극음강기와 격돌하며 거센 열기로 얼음을 녹여버렸다.

직후, 치지직... 쿠 쿵!

!”

난설홍예는 송곳으로 찔린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 그녀는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가는 그 순간을 이용하여 그대로 백 장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빙백궁 비전의 최고 경공, 바로 빙하천절류(氷河天絶流)였다.

달아나다니...!”

군무현은 차갑게 냉소하며 몸을 날리려 했다.

하나 그때,

구류지존! 용서하시오!”

허공으로 떠올르는 군무현의 등을 향해 곡강의 진천패왕뢰(震天覇王雷)의 공격이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위 잉! 꽈릉... 엄청난 압력이 담긴 맹공이었다.

군무현의 검미가 일순 무섭게 꿈틀 치켜 올라갔다.

돌아가랏!”

파파파 콰쾅! 그는 몸을 홱 돌리며 벽력같은 강기를 내리쳤다.

직후,

크 윽!”

사위를 들썩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곡강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난설홍예는 구릉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사라지는 난설홍예의 뒷 모습을 주시했다.

천하가 넓으니 본인의 그물이 천하를 덮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는 냉담한 어조로 나직히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쓰러져 있는 곡강을 향해 다가섰다.

순간, 곡강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그는 군무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무사(武士)된 자로 암습을 했으니... 살아있을 가치가 없소이다. 죽이시오!”

그는 군무현의 앞에 고개를 처박으며 그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화룡거사(火龍居士)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겠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 그는 품 속에서 한 권의 양피지 책자를 꺼내 곡강의 앞에 내던졌다.

 

태양천화경(太陽天火經)!

 

그것은 바로 태양천제(太陽天帝)의 전진비급이었다.

순간, 곡강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 무슨 뜻이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동천목(東天目) 광양곡(廣陽谷)으로 가서 그것을 익히시오. 태양일맥(太陽一脈)을 잇는 것으로 그대가 암습한 죄를 묻겠소!”

“...!”

곡강의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 격심하게 떨렸다.

그의 두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떠올랐다. 이어, 그는 질끈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손으로 태양천화경을 집어들었다.

그 순간, 스슥! 군무현은 빛살처럼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백여 장 위의 허공에는 대천붕이 날개를 펴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현은 단번에 백여 장을 솟구쳐 올라 대천붕이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오. 천마제군(天魔帝君)은 현천신모(玄天神母)의 진전을 이은 자요. 잘 생각하여 행동하시오!”

그는 지면을 내려다보며 곡강에게 일러주었다.

그 말에 곡강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천마제군이 현천신문(玄天神門)...!”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때, 구 워억! 군무현을 태운 대천붕은 거구를 돌려 남()으로 날아가 버렸다.

곡강, 그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군무현, 그는 대천붕의 등에 앉은 채 나직한 기소를 발했다.

후훗... 태양일맥(太陽一脈)이 천이백 년만에 천하를 떨어울리게 되리라!”

그는 화룡거사의 유명(遺命)을 들어준 사실이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군무현의 가슴에는 빙백염후가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빙백염후의 고운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하하... 염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오. 염후의 후손인 묵빙현하 소저도 빙백천후보를 수련하고 있으니... 묵빙현하와 천궁패왕은 좋은 적수가 될 것이오!”

“...!”

아는지 모르는지, 빙백염후는 여전히 예의 그 의미없는 미소를 띈 채 군무현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하하... 기왕 출곡(出谷)하였으니 잠시 유람이나 하고 갑시다. , 천웅(天雄)! ()으로 가자! 염후에게 강남(江南)의 절경을 보여 주어야겠다!”

군무현은 대천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순간, 쿠 우! 대천붕은 길게 울부짖으며 창공 더 높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그들의 모습은 끝없는 창공의 구름 속에 묻혀 버렸다.

 

황혼 무렵, 군무현과 빙백염후를 태운 대천붕은 붉은 노을 속을 날고 있었다.

 

장헌령(長軒嶺)!

호북(湖北)과 백수호(白水湖)로 들어서는 관문, 황혼 무렵의 장헌령은 전설 속의 신비한 정경처럼 아름다웠다.

한데, 구워억! 갑자기 대천붕이 흠칫하더니 나직한 경호성을 발했다.

“...!”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삼마장 밖, 휘 익! 한 마리 거조(巨鳥)가 찬란한 금우(金雨)를 빛내며 날고 있었다.

양 날개의 편 길이가 무려 칠팔장에 이르는 거대한 금붕(金鵬). 하나, 아무리 크다고는 하지만 대천붕에 비하면 반도 안되는 크기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순간,

금붕(金鵬)!”

군무현의 두 눈에 번득 살기가 일었다.

필경 금붕도(金鵬島)의 금붕이리라!”

그런 그의 뇌리 속에 너무도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적룡세가(赤龍勢家)!

그 웅장한 대장원의 멸겁, 수십마리의 금붕들이 적룡검사들을 습격하던 당시의 상황이 군무현의 눈 앞에 생생하게 떠 올랐다.

그것을 떠올린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천웅! 쫓아라! 금붕도의 금붕이라면 살려두지 않겠다!”

그는 전면을 노려보며 살기띤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 워억! 대천붕은 길게 울부짖으며 속도를 배가시켰다.

눈 깜짝할 순간, 대천붕은 금붕과의 거리를 이마장으로 좁혀들었다.

그러자, 크아! 앞서 달리던 금붕은 그제서야 대천붕을 발견했는지 공포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쐐액! 그놈은 전력을 다해 쏜살같이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날아갔다.

그 순간,

“...!”

군무현의 두 눈이 번득 빛났다.

금붕의 등에 앉아 있는 한 명의 인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신에 화려한 금포를 걸친 여인, 그녀는 멀리서도 경악의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살려두지 않겠다!”

군무현은 싸늘한 한광을 발산하며 냉혹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삐 익! 그는 품 속의 봉황옥소를 꺼내 힘껏 불었다.

천붕뇌명후(天鵬雷鳴吼)의 가공할 살인음이 허공을 찢어 발겼다.

그 순간, 크 악!

!”

금붕과 함께 그 위의 금포여인마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휘 익! 금붕은 머리를 아래로 떨군 채 빙글빙글 돌며 나선형으로 떨어져 내렸다.

천웅! 내려가자!”

군무현은 그것을 노려보며 대천붕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순간, 쿠우! 대천붕은 길게 울부짖으며 광풍을 몰고 장헌령으로 날아내렸다.

이윽고,

이곳에서 기다려라!”

휘 익! 군무현은 대천붕이 장헌령의 백장 상공에 이르자 깃털같이 가벼운 신법으로 아래로 날아 내렸다.

장헌령의 주위는 관목이 무성한 숲이었다.

한데, 무성한 관목 사이, 피투성이가 된 금붕이 사지를 뻗고 거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놈은 머리 속이 박살났음에도 한쪽 날개를 바들바들 떨고 있지 않은가?

그 금붕의 시신 옆, 금의여인이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나이는 이십세 전후 정도, 조각으로 빚은 듯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미인이었다.

하나, 그녀의 얼굴에는 오만함이 배어 도도한 인상을 풍겼다. 지금 그녀의 형색은 실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일신에 걸친 금의는 갈가리 찢겨 전신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문득, 군무현의 눈에 여인의 왼쪽 가슴에 인두로 지진 듯한 끔찍한 상처가 보였다.

그것을 본 군무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계집까지 해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는 금의여인의 옆에 앉아 그녀의 상세를 살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구 워억! 돌연 허공으로부터 대천붕의 급박한 경호성이 들려왔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홱 돌아섰다.

휘 익! 쐐 애 액!

장헌령 서쪽 산봉을 너머 십여마리의 금붕이 사나운 깃로 대천붕을 향해 쇄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염후! 천웅을 도와주시오!”

군무현은 허공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하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네놈의 목이나 잘 간수해라!”

차갑고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위 잉! 돌연 군무현의 좌측으로부터 노도같은 강기가 짓쳐들었다.

(!)

군무현은 흠칫 놀랐다.

하나, 스슷...! 가볍게 몸을 흔드는 순간 어느새 그는 오장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한데,

흉수!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재차 앙칼진 교갈이 군무현의 귓전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파파파 팟! 꽈릉... 눈을 멀게하는 찬란한 광휘가 일며 웅후한 경력이 폭풍같이 군무현을 휩쓸었다.

순간,

가랏!”

군무현은 싸늘한 냉갈과 함께 벼락같이 손을 휘둘렀다.

짜자작! 그의 손끝에서 번갯불이 작렬하듯 혈광(血光)이 튀었다. 바로 수라혈강수였다.

직후, 꽈르릉... ! 암습자와 군무현의 사이에 지축이 들썩 뒤흔들리는 폭음이 일었다.

군무현은 내심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강하다!)

이윽고, 스스스... 장내를 뒤덮었던 흙먼지가 모두 가라앉았다. 그러자 드러나는 광경, 군무현의 전면, 한명의 여인이 우뚝 서 있었다.

그녀는 온통 원한에 얼룩진 눈으로 군무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희고 깨끗한 피부에 또렷한 윤곽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 한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한줄기 선명한 검흔(劍痕)이 길게 그어져 있지 않은가?

그것은 실로 옥()의 티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나, 그 한가닥 검흔이 끔찍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기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야릇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으음...!”

여인을 본 순간 군무현의 입에서 절로 둔중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눈앞의 금의소녀, 그녀는 바로 천신보(天神堡)의 천금(千金)이 아닌가?

 

천래검봉(天來劍鳳) 위지사영!

바로 그녀였다. 군무현의 검()에 의해 옥같은 얼굴에 치명적인 검흔을 입은 소녀.

 

위지사영은 온통 원한과 분노로 교구를 파르르 떨며 군무현을 노려보았다. 크고 맑은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내 일생을 망쳐놓은 원수! 네놈의 목을 베어 그 보상을 받아내겠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앙칼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어, ! 그녀는 허리춤에서 하나의 검을 뽑아들었다.

동시에,

죽어랏!”

츠츠... 위 잉!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군무현을 향해 검을 휘둘러냈다.

일순 수천 개의 검영(劍影)이 꽃송이처럼 확 퍼져오르며 위지사영의 모습을 가렸다.

으음...!”

군무현은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침음성을 발했다.

자신이 한순간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한 소녀의 일생이 타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는 위지사영의 정면 공격을 받지 않고 가볍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쐐 액! 돌연 전신을 후벼팔 듯한 날카로운 경기가 측면에서 군무현의 옆구리를 노리고 쇄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너무도 창졸간에 벌어진 쾌속한 암습이었다.

!”

군무현은 고통스럽게 옆구리를 움켜쥐고 비틀 물러났다.

그런 그의 옆구리, 어느 새 찬란한 금우(金羽)가 달린 하나의 강전이 박혀 있었다.

으득... 이놈! 감히 옥화(玉花)를 다치게 하다니...!”

위 잉! 이를 가는 분노의 음성과 함께 재차 측면에서 광풍노도같은 가공할 경기가 휩쓸려 왔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득 살광을 폭사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그는 냉혹한 일성을 터뜨리며 반사적으로 장을 후려쳤다.

순간, 꽈르릉! 콰 쾅! 각기 다른 세 가지 공세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

군무현은 옆구리를 움켜쥐며 휘청 한 걸음 물러났다.

물러서며 그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런 그의 눈에 한 명의 금포노인이 신형을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다.

금붕(金鵬)으로 이름을 떨친 금붕도(金鵬島)!

금포노인은 바로 금붕도주(金鵬島主)인 금붕천왕(今鵬天王)이었다.

군무현의 두 눈에서 가공할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금붕천왕! 잘 만났다!”

다음 순간, 화르르! 그의 몸 주위로 시뻘건 극양지기가 불꽃처럼 일어났다.

순간,

우웃!”

...!”

금붕천왕과 위지사영은 안색을 일변하며 휘청 뒤로 물러났다. 군무현은 냉혹한 눈으로 금붕천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에 금붕천왕의 안색이 흑빛으로 질렸다.

... 그렇다면... ... 네놈이... 군가(君家)...!”

그자는 대경실색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다! 본인이 바로 군무현이다! 죽어랏!”

콰르르 릉! 일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듯 강렬한 극양강기가 금붕천왕을 휩쓸어왔다.

!”

금붕천왕은 다급성을 발하며 본능적으로 금붕강기를 발출했다.

파파파 팍! 눈부신 금광이 작렬하며 군무현의 저닌을 짓쳐들었다.

그 순간,

대비불광참(大悲佛光斬)!”

위지사영도 쾌속히 손을 저으며 금붕천왕과 합세했다.

번 쩍! 파파팟! 찬연한 불광(佛光)이 장엄하게 일며 군무현을 뒤덮어왔다.

이 대 일의 공격, 그들의 공격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직후, 콰콰 콰쾅! 쿠쿠쿠...! 경천동지의 대폭음이 십장 방원을 온통 휩쓸었다.

군무현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은 사방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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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一 章

 

                    恐怖太陽天火宏炎神功

 

 

 

천궁패왕(天弓覇王) 곡강, 향차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일순 미묘한 갈등으로 흔들렸다.

하나,

궁주! 그동안 안녕하셨소?”

그는 이내 향차를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강직했다.

그 순간, 촤르르... 옥구슬이 갈라지는 매끄러운 음향과 함께 향차의 주렴이 걷혀졌다.

이어, 화사한 분홍궁장을 차려입은 한 명의 여인이 사뿐 지면으로 내려섰다.

...! 천상(天上)의 선녀가 하강한 것일까? 향차 속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주위마저 화사한 빛으로 물들었다.

화려하고도 요염한 미태를 지닌 여인, 그녀의 뇌살적인 자태는 사내의 철석간담을 녹이고도 남을 정도였다.

난설홍예! 궁장여인은 바로 난설홍예가 아닌가?

공석(公席)중에 있는 빙백궁주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한 빙백궁의 제일공주(第一公主)!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

천궁패왕 곡강의 강직한 얼굴에 걷잡을 수 없는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아름답다. 수많은 녹림의 미희(美姬)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나 곡강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그는 내심 기이한 흥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드는 마력(魔力)과도 같았다.

그때, 난설홍예는 춘풍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곡강을 응시했다.

호호... 맹주께서 내일이나 되어야 도착할줄 알았는데 뜻밖이군요!”

고혹하기 이를데 없는 자태, 한마디 한마디에 달콤한 교태가 뚝뚝 흘러내렸다.

곡강은 그제서야 흠칫 정신을 차렸다.

밤을 도와 달려온 덕분에 이 시각에 이를 수 있었소. 강적의 소굴로 궁주를 보내고 어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겠소?”

그의 말에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

난설홍예는 부드럽고 달콤한 눈빛으로 곡강을 응시했다.

(마음에 드는 사내야. 하지만... 본궁주의 미래를 맡질만큼 큰 그릇은 되지 못하다!)

그녀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하나, 곡강의 마음은 뜨거웠다. 그는 진심으로 난설홍예의 일신을 염려했다.

녹림칠십이채의 사십팔걸(四十八傑)과 오백(五百)의 용사들이 이미 천신보의 보하(堡下)로 집결했소. 내일이면 혈륭마찰과 흑도십팔절의 후원군이 도착할 것이오!”

곡강의 말에 난설홍예는 고혹적인 자태로 살짝 머리를 쓸어 올렸다.

천신보의 정의맹(正義盟) 따위를 치는데 제국(帝君)께서는 너무 조심하시는군요. 정의맹 정도는 본 빙백궁의 힘으로도 괴멸시킬 수 있거늘...!”

그녀는 오만한 여인이었다. 그녀 특유의 오만함으로 곡강의 신중성을 비웃는 것이었다.

하나, 곡강은 안색을 침중하게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정의맹을 경시해서는 아니되오. 정의맹도들의 수는 얼마 안되지만 하나같이 백도의 최절정을 달리는 정예들이오. 특히, 정의맹을 이끄는 자는 자전신군(紫電神君)의 무공을 지녔음을 경각해야 하오!”

그 말에 난설홍예는 느닷없이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맹주께서도 한 가지 잊고 계신 것이 있군요!”

“...?”

곡강은 미간을 모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난설홍예는 자부심이 깃든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본궁의 조상께서는 바로 천외삼대천(天外三大天)의 일인이신 빙백염후(氷魄艶后)세요. 자전신군의 무공 따위가 빙백무공을 능가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알고 있소. 하나...!”

바로 그때였다.

구 워억! 돌연 한소리 거창한 붕명이 사위를 뒤흔들었다.

순간,

... 대천붕(大天鵬)!”

난설홍예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다급히 부르짖었다.

그때, 쐐 액! 남천일천(南天一天)을 가리며 한 마리 거대한 붕조가 난설홍예를 향해 곧바로 쏘아져 왔다.

... 설마... 그자가...!”

난설홍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두 눈앞에 한 명의 미청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희디 흰 피부에 조각같이 단아한 용모를 지닌 미청년, 그의 모습은 너무도 선명하여 결코 뇌리 속에서 지울 수 없을 정도였다.

난설홍예는 그 모습을 떨쳐버리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

대천붕...!”

곡강의 강인한 얼굴도 일순 굳어졌다.

콰르르... 휘 잉! 대천붕이 날개를 휘저을 때마다 가공할 소용돌이가 사위를 휩쓸었다.

순간,

어멋!”

!”

곡강과 난설홍예는 비명을 발하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궁주! 조심하시오!”

곡강은 난설홍예를 향해 황급히 외쳤다.

바로 그때, 휘 익! 대천붕의 등에서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바람처럼 날아내렸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천신(天神)이 하강하듯 표표히 날아내리는 그 모습은 실로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대천붕은 허공 백여 장 높이에 떠 있었다. 하나, 군무현은 허공 백 장 위에서 깃털이 떨어져 내리듯 유유히 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군무현의 얼굴을 확인한 난설홍예, 그녀는 교구를 부르르 떨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 역시...!”

그때, 스스슥...!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장내를 내려섰다.

난설홍예와 곡강의 앞에 우뚝 내려선 군무현, 그를 일견한 순간 난설홍예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강해졌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해(北海)에서 처음 군무현을 만났을 때로 그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데, 지금 도저히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군무현의 시선은 제일 먼저 곡강을 향했다. 그는 곡강의 인물됨을 첫눈에 파악했다.

(장부다운 친구다. ()을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궁패왕이겠군!)

한순간,

“...!”

“...!”

군무현과 곡강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파팟...! 불꽃을 튀기듯 강렬하게 부딪히는 눈빛,

순간,

(으음...!)

곡강은 내심 무거운 신음성을 발했다. 그는 마치 군무현의 눈빛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것은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강렬한 마력(魔力)같은 것이었다.

한데 그때, 스스스...! 삼인의 주위로 빙백궁의 여인들이 소리없이 모여들었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힐끗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난설홍예에게 눈길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길이 닿는 순간 난설홍예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이내 그녀는 안색을 부드럽게 바꾸며 고혹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당신이 구류지존(九流至尊)인 줄은 몰랐어요!”

그녀의 말에 군무현의 눈빛이 가볍게 변했다.

(구류지존(九流至尊)의 전설을 알다니... 의외로군!)

하나 그의 시선이 차갑게 식으며 서늘한 한기가 뻗어 나왔다.

나의 신분이 무엇이든지 상관치마라. 본인은 그대에게 두 가지 볼일이 있을 뿐이다!”

그는 냉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설홍예는 보통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군무현의 차가운 태도에도 관여치 않고 더욱 교태로운 모습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호호...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요!”

교태가 뚝뚝 흐르는 요염한 자태, 그 모습에 곡강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그는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불끈 치밀어 오르는 것을 눌러 삼켰다.

군무현은 다시 냉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첫째는 빙백궁의 궁규를 어긴 죄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만년빙지(萬年氷芝)를 가져가기 위해서다!”

그 순간, 보고 있던 곡강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섰다.

구류지존! 너무 광망스럽지 않은가?”

군무현은 힐끗 곡강을 응시했다.

실망했군. 천궁패왕이 그래도 대장부(大丈夫)인줄 알았더니 소사(小事)에 얽매이고 감정에 날뛰는 졸장부였다니...!”

... 무엇이...?”

곡강은 분노와 수치를 참지 못하며 안색이 시뻘겋게 변했다.

무기를 들어라! 천궁파(天弓派)의 절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리라!”

군무현은 일점의 동요도 없는 무심한 눈으로 곡강을 응시했다. 오히려 그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좌절을 당해보아야 더욱 강해지리라!)

이어, 그는 냉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보잘 것 없는 실력으로 본존에 도전하려 하는가?”

으으...!”

곡강의 강인한 얼굴이 무섭게 씰룩거렸다. 그는 극심한 분노와 모멸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나, 그러면서도 그는 명망되어 군무현에게 먼저 덤비지는 않았다.

그것을 본 군무현의 눈빛이 일순 빛났다.

(되었다. 향후 백년의 녹림을 짊어질 재목감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는 짐짓 싸늘한 눈빛으로 곡강을 주시했다.

소원이라면 한 수 가르쳐 주지!”

다음 순간, ! 한무리 눈부신 광휘가 장내를 뒤덮었다.

! 어느새 군무현의 손에는 적룡검이 들려있지 않은가?

그것을 본 곡강의 눈빛이 일순 격력하게 흔들렸다.

으음... 적룡검(赤龍劍)! 그대는 바로...!”

군무현은 서늘한 한광이 이는 눈으로 곡강을 주시했다.

적룡어강살을 아는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위 잉! 적룡검의 검신에서 감히 마주볼 수 없는 강렬한 광채가 번쩍 폭사되었다.

동시에, 우르릉! 파파팟! 낙뢰같은 검강이 그의 가슴을 질타했다.

우 웃! 진천패왕뢰(震天覇王雷)!”

곡강은 다급한 신음을 발하며 반사적으로 궁()을 당겼다.

진천신궁의 위력은 가히 엄청났다.

콰릉 위잉! 폭풍같은 경기가 일시에 사위를 뒤집어 엎을 듯 몰아쳤다.

다음 순간, 양인의 공격이 벼락치듯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르릉... ! 파파파팍! 천붕지열의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크 윽!”

곡강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하며 뒤로 나뒹굴었다.

그의 가슴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군무현, 그는 옷깃 하나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겨우 이 정도인가? 그러고도 녹림칠십이채를 이끌어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지극히 무심한 눈빛으로 곡강을 주시하며 말했다.

...!”

곡강의 안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호목(虎目)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군무현의 지극히 무심한 한 마디 한 마디가 화살이 되어 그의 가슴에 박히는 것이었다.

그때,

호호... 정말 대단하군요!”

문득 난설홍예가 요염한 교소를 터뜨려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렸다. 그녀는 이미 전권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또한, 군무현의 주위에는 어느 새 일백여 명의 빙백궁도들이 빙 둘러선 채 포위해 있지 않은가?

하나, 군무현은 그녀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힐끗 난설홍예를 응시했다. 그 눈빛을 접하는 순간 난설홍예는 내심 뜨끔했다.

(이자는 도대체...!)

그녀는 은은한 두려움을 느끼며 가볍게 아미를 찌푸렸다.

난설홍예! 구유현대진(九幽玄大陣) 정도로 본인을 어쩔 수 있다고 믿는가?”

군무현의 지극히 무심한 그 태도에 난설홍예는 고혹적인 표정으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글쎄요?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알겠죠!”

이어, 그녀는 군무현을 포위한 백여 명의 여인들을 향해 말했다.

호호... 구류지존(九流至尊)을 모셔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위 잉! 스스스... 진세가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지극히 강맹하고 음유한 경기가 소름끼치듯 일어났다. 범인이라면 그 음산한 경기에 여지없이 심맥이 얼어붙고 말 것이다.

츠츠츠... 위잉! 삽시에 주위는 온통 뼈를 얼릴 듯한 투명한 얼음으로 뒤덮혀 버렸다.

하나, 군무현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맹렬히 회전하는 진세 안에 우뚝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진세는 극()에 이르렀다.

꽈르 릉! ... !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가공할 극음기류가 방원 오십 장을 뒤덮었다.

순간,

천외천(天外天)이 있음을 보여주리라!”

위 잉! 화르르...! 군무현의 입에서 차가운 일성이 떨어짐과 함께 그의 몸이 맹렬히 회전했다.

직후,

... 아니...!”

난설홍예는 눈을 크게 뜨며 소스라치듯 놀랐다.

보라! 군무현의 전신으로 태양같은 열기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전신이 불덩어리에 휩싸여 버린 것 같은 엄청난 광경!

태양천화굉염신공이다!”

그 속에서 군무현의 싸늘한 일성이 터져나왔다.

순간, 화르르... 파파파 팍! 노도같은 태양지기가 온통 사위를 집어삼킬 듯 거세게 회오리쳤다.

난설홍예는 일순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며 다급히 외쳤다.

안돼! 극성(極性)이다! 물러나라!”

하나,

늦었다!”

화르르... ! 콰콰 쾅...! 군무현의 전신이 일순 화산처럼 폭발하며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그와 함께,

!”

아 악!”

높고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이 잇따라 터져 올랐다.

천만 개의 화산이 일시에 폭발하듯 가공할 극양지류가 한순간 천지를 뒤덮었다.

그때,

!”

...!”

전권 밖으로 물러서 있던 곡강과 난설홍예도 그 여파에 휩쓸렸다. 그들은 전신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비틀 뒤로 물러섰다.

태양천화굉염신공의 위력! 그것은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 펼칠 수 없는 신위(神威)였다.

삽시에, 태양천화굉염신공의 극양지기는 오십 장 내의 모든 것을 휩쓸어 태워버렸다.

그 엄청난 광경에 난설홍예는 새파랗게 질려 사색이 되었다.

... 태양천제의 태양무공이 나타나다니...!”

그녀는 흡사 벼락을 맞은 듯 교구를 부르르 떨었다.

요요하던 그녀의 안색은 안전히 흑빛으로 질려 버렸다.

한 순간,

“...!”

“...!”

갑자기 장내에는 정적이 찾아들었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구유현현대진을 이루던 일백 명의 여인들, 그녀들의 자위는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모두 한 줌의 재로 화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 폐허, 주위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

군무현, 장내를 바라보던 그의 안색이 일순 무겁게 굳어졌다.

(지나쳤다. 육성(六成)의 태양천화굉염신공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그것은 그로서도 미처 상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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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 章

 

                     潛龍飛翔

 

 

 

군무현의 안색이 역시 엄숙했다.

적룡어강살은 일반 어검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신의 강기를 화산이 터지는 듯 일시에 폭출시키므로 뇌전(雷電)보다 빠르며 검강기공보다 배 이상 강하고 날카롭다. 먼저 진기를 단전(丹田)에서 이끌어 내어...!”

그는 적룡어강살의 구결을 강술하기 시작했다.

“...!”

“...!”

일백적룡검대는 눈빛하나 흐트리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온 정신을 모아 경청하는 그 자세는 엄숙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이 어떤 인물들인가? 적룡세가의 투혼을 다시 천하에 불러일으킬 적룡검사들이었다. 또한 , 무공이라면 밥 먹기보다 더 좋아하는 인물들이 아닌가?

군무현이 구결을 두 번 강술하자 그들은 각자 그 오의(奧義)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군무현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신뢰의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룡어강살까지 익힌다면 적룡검대 만으로도 과거 적룡세가의 성세를 능가할 수 있다!)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휘 익! ... 돌연 곡구(谷口)에서 초색화전(五色火箭)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천용학은 급히 몸을 날리려 했다. 하나,

천대장! 본인이 가보겠소.”

군무현이 그를 막으며 말했다.

다음 순간, ! 그는 곡구를 향해 가볍게 몸을 날렸다.

거의 동시에, ! 스슥! 군무현의 뒤를 따라 두 명의 인영이 몸을 날렸다. 남궁혜미와 빙백염후였다.

군무현 등은 순식간에 자하천류대진을 벗어났다. 그러자, 곡구의 광경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뜻밖에도 곡구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것이 아닌가?

삼천여에 달하는 인물들, 그들의 선두에는 몸에 꼭 끼는 흑색경자을 입은 한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첫눈에 상대의 전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미인.

군무현이 나타나는 순간,

지존!”

그녀는 황급히 부복하여 외쳤다. 그에 이어,

지존!”

삼천 명의 장한들이 일제히 외치며 군무현의 앞에 부복하는 것이 아닌가?

흑의경장녀. 그녀는 바로 환밀부주인 극밀환후(極密歡后)였다. 그리고, 그녀가 이끌고 온 삼천 명의 장한들은 바로 구류천종 칠십이파에서 선발되어 온 정예들이었다.

일어나라!”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감사합니다!”

극밀환후를 비롯한 삼천 명의 장한들은 입을 모아 외치며 다시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그때,

상공... 이분들은...!”

남궁혜미가 의아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군무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혜미가 다시 수고를 해주어야 하겠소. 자하별부의 영약들과 신공비급으로 이들을 초정예화시켜 주시오!”

...!”

남궁혜미는 지혜로운 혜안을 빛내며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군무현은 문득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우리가 상대해야할 적은 천마궁의 십배가 넘는 강적일지도 모르오. 그들을 상대하려면 매우 강한 힘이 필요하오!”

명심하겠어요. 천첩의 미천한 재간을 모두 쏟아넣어 상공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어요!”

남궁혜미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군무현은 신뢰어린 눈빛으로 남궁혜미를 주시했다. 이어, 그는 문득 극밀환후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부주(府主)! 이 쪽은 본존의 내자(內子)이네!”

순간, 극밀환후의 아들다운 봉목에 언뜻 실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 이내 그녀는 그런 눈빛을 지우며 남궁혜미를 향해 예를 취했다.

천비, 주모(主母)를 배알합니다!”

그녀의 인사에 이어,

주모를 뵙습니다!”

삼천 명의 장한들도 남궁혜미를 향해 정중히 대례를 올렸다.

구류지존(九流至尊)!

구류천종의 수하들에게 있어 구류지존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그런 군무현의 아내인 남궁혜미 역시 그들의 눈에는 하늘처럼 보이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남궁혜미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여러분의 예를 감당할 수 없어요. 일어들 나세요!”

그녀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장한들은 입을 모아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군무현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어, 그는 극밀환후를 향해 지시했다.

자하곡은 삼천 명의 인물들을 수용할 수 없다. 자하곡 뒤에 대둔곡(大屯谷)에 연무장을 설치하도록 하라!”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극밀환후는 즉시 대답하며 허리를 굽혔다.

삼천정영을 이곳까지 집결시키는 데는 천하의 이목을 속였을 줄 믿는다. 대둔곡에 연무관을 세우는 일도 극히 은밀히 행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의 당부에 극밀환후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군무현은 이번에는 남궁혜미를 바라보았다.

혜미가 부주 일행을 대둔곡으로 안내해 주겠소?”

!”

남궁혜미는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극밀환후를 비롯한 삼천 명의 장한들은 다시 군무현에게 예를 취했다. 이어, 그들은 앞장서는 남궁혜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군무현은 몸을 돌렸다.

“...!”

빙백염후가 모호한 미소를 띄운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실로 기이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도 했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의미없는 표정인 것 같기도 했다.

군무현은 그녀의 그런 미소를 대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한다.

이지를 상실한 실혼녀, 그녀가 늘 입가에 머금고 있는 미소는 너무도 황홀했기 때문이다.

염후! 들어갑시다!”

군무현은 빙백염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말했다.

그러자, 빙백염후는 군무현의 넓은 가슴에 사르르 몸을 기대오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고소를 지었다.

(누가 염후를 영혼이 없는 강시라고 믿겠는가?)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가볍게 빙백염후의 어깨를 안은 채 자하천류대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구 우! 문득 허공에서 한소리 새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신응방의 연락인가?)

군무현은 내심 중얼거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휘 익! 허공으로부터 한 마리 신응이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천리신응(千里神應)! 역시 신응방의 전서구였다.

천리신응은 가볍게 날개를 접으며 군무현의 어깨에 날아 내렸다. 군무현은 천리신응의 다리에서 하나의 천조각을 풀어냈다.

 

지존께 아뢰옵니다.

천마궁에서 천신보(天神堡)의 정의맹(正義盟)을 공격할 기세입니다. 그 선봉은 빙백궁(氷魄宮)으로 노산(魯山)의 사하(沙河)로 접근 중입니다.

신응(神應).

 

천조각에는 간략한 서체로 그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빙백궁!”

군무현의 두 눈이 번득 빛났다.

문득, 그의 무심한 두 눈에 차가운 한광이 솟았다.

난설홍예...!”

그는 간교한 계책으로 자신을 함정으로 몰아 넣은 난설홍예의 요염한 모습을 떠올렸다.

난설홍예... 만년빙지를 얻지 못해서가 아니다. 한 번은 따끔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계집이다!”

그는 차가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난설홍예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교묘한 술책으로 군무현을 이용한 다음 빙백궁을 떠나 중원으로 들어갔다.

물론, 만년빙지는 그녀가 모두 취하여 지니고 온 것을 말할 나위도 없었다.

문득, 군무현은 품 속에서 봉황옥소를 꺼내들었다.

삐 익! 다음 순간 높고 날카로운 소성이 천공을 찢으며 멀리 메아리쳤다.

그 직후, 구워 억! 대천붕의 웅후한 붕명이 자하곡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콰아아...! 창천의 일각을 가리며 거대한 대천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

군무현은 그 순간 힘찬 장소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그러자, ! 빙백염후 역시 그림자처럼 뒤따라 몸을 띄웠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대천붕의 등에 올라탔다.

그때, 걸음을 옮기던 남궁혜미는 문득 아미를 모으며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어디로 가시는 걸까?”

군웅들 역시 한 개 점으로 화해 사라지는 군무현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 순간 남궁혜미는 들을 수 있었다.

노산(魯山)에 다녀오겠소!”

그녀의 귓전에 파고 드는 군무현의 전음을,

 

X X X

 

천신보(天神堡)!

 

적룡세가의 겁멸 후 중원일패(中原一覇)로 군림하는 대파(大派), 삼척동자라 해도 천신보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정도였다.

 

현의천신(玄衣天神) 위지강(慰遲岡)!

 

이것이 당금 천신보의 보주(堡主)의 이름이었다.

그의 나이 육십(六十), 호신기공의 제일로 손꼽히는 천신강기를 십이성까지 익혔다.

천신보는 천마궁과 싸워 패하지 않은 단 하나의 문파였다.

 

천신군림신강(天神君臨神强)!

천신풍뢰검세(天神風雷劍勢)!

 

천신보 비전의 그 두 가지 무공은 천지십강의 무공에 육박한다고 알려졌다. 하나, 천신군림신강은 이미 백년 이전에 실전되어 위력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신보의 성세는 중주(中州)를 떨어울릴 정도였다.

 

노산(魯産)!

강서성(江西省)에 위치한 험산, 그 산을 끼고 도는 황하(黃河)의 지류가 있다.

사하(沙河)! 그 지류를 일컬어 그와 같이 부른다.

사하(沙河)는 노산의 험봉 사이를 가르며 넓은 백사장을 만들어 돌고 있다.

사하 연변, 멀리 노산의 최고봉인 강신봉(降神峯)이 바라다 보이는 곳이었다.

평소 그곳은 인적이 거이 없는 절지(絶地)였다.

한데, 넓은 구릉 위, 때아니게 수많은 인영들이 모여 있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군웅들, 그들 중에는 사내들도 있었다. 하나, 대부분 그들은 여인들이었다.

얼음처럼 싸늘한 안색을 지닌 이십대 전후의 미인들, 그녀들의 수는 족히 천여 명이 넘어 보였다.

그녀들은 일신에 모두 백의를 걸쳤으며 키가 훤칠하게 컸다.

지금, 그녀들은 거대한 환원(環圓)을 이루며 포진하고 있는 상태였다.

환원의 중앙, 호환의 극을 달한 한 대의 향차가 서 있었다. 향차를 장식한 것은 온통 눈부시도록 화려한 보옥(寶玉)들이었다.

황후(皇后)의 마차인들 이처럼 호화로울까? 향차는 잡털하나 섞이지 않은 눈부신 백설총이 끌고 있었다.

그때, 스슥... 문득 한줄기 선풍이 일며 향차의 앞으로 한 명의 인물이 날아내렸다.

삼십대로 보이는 장항, 그는 일신에 가쁜한 청색경장을 걸쳤으며 출중한 용모에 강인한 인상이 물씬 풍기는 인물이었다.

첫눈에도 그는 뛰어난 호웅(豪雄)처럼 보였다.

그는 오른손에 한 자루의 강궁(强弓)을 들고 있었다.

그 장한이 나타나는 순간,

호호... 천궁패왕(天弓覇王) 곡맹주께서 이곳에는 웬일이시죠?”

문득 향차 안에서 농염하기 이를데 없는 여인의 교성이 울려나왔다.

철석간강을 녹이는 교태로운 옥성, 한데, ! 천궁패왕(天弓覇王)!

이 장한이 바로 천궁패왕이란 말인가?

 

천궁패왕(天弓覇王) 곡강(曲剛)!

약관의 나이로 남북녹림(南北綠林)을 일통한 대호웅(大豪雄), 한 자루 진천신궁(震天神弓)으로 숱한 녹림거효들을 굴복시키고 당당한 녹림칠십이채를 수하로 거둔 인물이었다.

그의 사문(師門)은 어떤가?

진천궁신(震天弓神)!

사백 년 전 천지십강 중 일대천인 현천신모(玄天神母)와 마지막까지 맞서 싸우다 장렬히 분사한 진천궁신의 후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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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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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九 章

 

            뜨거운 再會

 

 

 

“...!”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대천성자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그때, 문득 천현우사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숙께서 직접 정의맹(正義盟)의 내실을 탐색하시려는 것입니까?”

그 말에 군무현은 의미모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의맹이라기보다 대천성자의 주위를 주시하려는 것이오.”

이어, 그는 뒤쪽을 향해 문득 가볍게 손짓을 해보였다.

순간, 스슥...! 한명의 여인이 바람처럼 나타나 군무현의 앞에 부복했다.

지존(至尊)!”

그녀는 일신에 착 달라붙은 짙은 흑색경장 차림이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 하나, 가시를 품은 흑장미랄까?

그녀의 전신은 칼날같은 예기가 어려있어 감히 범접지 못할 정도였다.

군무현은 흑의경장녀를 향해 지시했다.

소요장을 감시하라. 명심할 것은 절대 소요장의 인물들과 충돌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흑의경장녀는 짧고 명확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물러가라!”

!”

스스스...! 흑의경장녀는 군무현에게 예를 취한 후 몸을 돌렸다.

그녀의 자취는 삽시에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천현우사는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뛰어난 경공이군요!”

“...!”

군무현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밀부(歡密府)!

구류천종의 칠십이파 중 일파(一派), 이는 모두 여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뛰어난 인술(刃術)과 미모로 천하의 기밀을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흑의경장녀는 바로 환밀부주(歡密府主)였다. 그녀의 이름은 극밀환후(極密歡后)였다.

 

군무현은 천현우사를 향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였다.

몇가지 진세로 신기곡을 세상과 단절시켜 드리겠소. 이후로는 누구도 신기곡을 귀찮게하지 못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숙께서는 때때로 들르셔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천현우사는 진정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물론이오. 신기황 어르신네께 얻은 지식이니 신기곡에 들려줌이 마땅하오!”

군무현의 그 말에 천현우사는 천하를 얻은 것 보다 더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며 흡족함과 함께 진정으로 경외지심을 느꼈다.

(태산이시다. 이런 분을 존장으로 모신 것을 실로 신기곡의 흥복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감탄과 신뢰의 표정으로 내신 그렇게 중얼거렸다.

 

X X X

 

자하곡(紫霞谷)!

천중산(天中山)의 깊은 곳에 자리한 신비절곡, 스으... 스으... 신비한 자하(紫霞)가 온통 곡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고 있었다.

석양 무렵, 문득, 구워어 억! 한소리 거창한 붕명이 석양의 자하곡을 울려퍼졌다.

이어, 쐐 애액! 한차례 엄청난 폭풍이 일며 거대한 대천붕이 자하곡으로 쏜살같이 내려왔다.

자하곡의 방대한 분지, 콰콰콰... 대천붕은 가볍게 날개를 접으며 분지로 날아내렸다.

순간,

...!”

... 아니...!”

분지 중앙에서 수련에 열중하고 있던 백여 명의 장한들은 아연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때, 스슥...! 대천붕의 등에서 일남일녀가 가볍게 지면으로 내려섰다.

군무현과 빙백염후, 바로 그들이었다.

그 순간,

가주(家主)!”

군무현을 발견한 장한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입을 모아 외쳤다.

일백명의 웅맹한 기상의 장한들, 그들은 바로 일백적룡검대(一百赤龍劍隊)였다.

그들은 군무현의 지시대로 이곳 자하곡으로 와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 태원(太原)에서 만났을 때보다 세 배 이상 강해졌다.)

군무현은 첫눈에 일백적룡검대의 놀라운 진보를 꿰뚫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들 나시오!”

그의 한 마디에 일백적룡검대는 일사불란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그때,

형님!”

문득 한소리 맑은 소년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이어, ! 자하별부 쪽에서 한 명의 다삼소년이 뛰듯이 달려나왔다.

남궁준하 바로 그였다. 그는 반가움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준하, 잘 있었느냐?”

군무현도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그 말에 남궁준하는 문득 짓궂게 웃었다.

헤헤... 준하는 잘 있었지만 누나가...”

그때,

준하야!”

가볍게 꾸짖는 듯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어, 한 명의 자의궁장소부가 사뿐사뿐 다가왔다.

남궁혜미 그녀였다. 그녀는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다.

하나,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두 눈에는 온통 반가움과 기쁨의 빛이 가득했다.

상공을 뵈옵니다!”

그녀는 군무현을 향해 날아갈 듯 절을 올렸다.

혜미! 초췌해졌구려!”

군무현은 미미하게 웃으며 남궁혜미의 몸을 부축해 일으켰다.

“...!”

그의 깊은 잔잔한 눈빛을 대하는 순간 남궁혜미와 작은 가슴은 갑자기 세차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정인(情人)이시여... 진정 보고 싶었답니다!)

그녀의 눈망울이 어느 새 촉촉히 젖어들었다.

 

자하곡에는 그동안 여러 채의 전각이 늘어나 있었다.

일백 명의 적룡검대가 자하곡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칸의 아늑한 정실, 남궁혜미는 시선을 내리깐 채 군무현의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무척 조심스러웠으며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쪼르르...! 찻잔이 가득차자 남궁혜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군무현에게 받쳐 올렸다. 군무현은 단정히 찻잔을 받아들었다.

탁자를 마주한 두 사람, 하나, 방 안에는 그들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군무현을 따르는 빙백염후,

그녀가 여전히 의미없는 표정으로 다소곳이 군무현의 뒤에 앉아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담담하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검혈사(天劍血師), 천대장은 왜 보이지 않소?”

천대장께서는 무림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출곡(出谷)하셨어요!”

남궁혜미는 지혜로운 혜안을 빛내며 청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그럼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은 혜미도 알고 있겠군!”

.”

군무현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보오?”

남궁혜미는 그의 물음에 보석같은 두 눈을 지혜로 반짝였다.

대천성자가 천마궁에서 무림명숙들을 구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것 같아요.”

혜미의 생각도 역시 그렇군!”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천마궁조차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오!”

천첩의 생각도 그래요. 천마제군의 뒤에는 아주 큰 암영(暗影)이 도사리고 있는 듯 해요!”

남궁혜미 역시 동감이라는 듯 어두운 안색을 지었다. 두 사람의 추측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천핮일의 기남아(奇男兒)와 천하제일재녀(天下第一才女)가 아닌가?

군무현은 문득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밤()이었다. 문득 그는 피로감을 느꼈다.

이제 그만 쉬고 싶구려.”

그말에 남궁혜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첩신은 이만...!”

하나, 일어서는 그녀의 손목을 군무현이 잡았다.

혜미도 이 방에서 자구려!”

그 말에 남궁혜미는 화들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화예 언니와... 주무세요.”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간신히 말했다.

화예와는 혜미같은 사이가 아니오!”

군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남궁혜미 역시 빙백염후가 염시(艶屍)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예 언니가 계시는데 어찌...!”

그녀는 고개를 푹 떨구며 옷깃만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말에 군무현도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염후가 한시도 본인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으니...!”

“...!”

남궁혜미는 안색을 붉히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군무현이 남궁혜미의 몸을 번쩍 안아들었다.

... 어멋!”

남궁혜미는 당황성을 터뜨렸으나 이내 눈을 꼭 감고 말았다.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 군무현은 남궁혜미의 교구를 침상에 뉘였다.

...!”

남궁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세차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빙백염후, 그녀는 여전히 침상 밖의 의자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형처럼,

(), 그런 가운데 밤은 깊고 있었다. 그리고... 비단 휘장이 차츰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을(), 어느새 자하곡에 가을이 찾아들었다.

자하곡 중앙의 분지, 십만평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이곳은 본래 기화이초가 만발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연무장으로 완전히 개조되어 사방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연무장의 뒤쪽은 우거진 수림(樹林)이었다. 그리고, 수림 사이로 십수 채의 그림같은 전각들이 보였다.

하나의 거대한 전각 앞, 대천붕이 거대한 날개를 접은 채 앉아 있다. 그놈은 홍옥처럼 투명한 눈을 껌벅이며 연무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연무장에서는 일백적룡검대의 무공수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천강대라검진을 펼쳐라!”

웅맹한 사자(獅子)를 연상케 하는 한 명의 장한이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순간,

차 핫!”

!”

일백적룡검대는 일제히 웅후한 기압성을 발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스스스... 삽시에 십명 일조(一條)의 검진이 엷게 펼쳐졌다.

그들이 펼치는 진세는 가공지경이었다.

우르릉! 츠츠츠... 육합을 가득 메우며 무섭게 충천하는 검기(劍氣)! 그것은 천지사방으로 퍼졌다가 한순간 폭포수같이 일제히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우 우웅! 심혼을 울리는 검명(劍鳴)이 뇌성처럼 사위를 진동했다.

실로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검진(劍陣)이었다.

군무현, 그는 연무장의 우측에 마련되어 있는 삼장 높이의 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천강대라검진은 완벽하군!”

그는 뒷짐을 진 채 연무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바로 뒤, 두명의 여인이 다소곳이 서있다.

자의궁장 차림의 남궁혜미, 그리고 군무현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빙백염후였다.

연무장에서 일백적룡검대를 지휘하고 있는 인물은 천검혈사 천용학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남궁혜미를 향해 지시했다.

십방철혈대진(十方鐵血大陣)으로 연결시켜 보시오!”

!”

남궁혜미는 다소곳이 대답하며 교수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 천용학은 군무현과 남궁혜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이어, 그는 일백적룡검대를 향해 웅장한 음성으로 외쳤다.

십방(十方)이 검영(劍影)으로 덮이니!”

그의 외침을 받아 일백적룡검대가 일시에 소리쳤다.

철혈(鐵血) 이 폭풍(暴風)을 일으킨다!”

다음 순간, 우르 릉! 위 잉! 열 개의 천강대라검진이 일시에 확 퍼지며 합일(合一)된 거대한 진세를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 실로 엄청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콰르르 릉... 파파파팟! 섬전같은 검기가 창천을 난도질하듯 갈랐다.

천지간을 질타하고 가공할 소용돌이, 위 잉! 파파파 팍! 그 속에 휘말려 대기는 갈가리 찢겨 몸부림친다.

저돌적인 선풍! 아니, 그것은 검기(劍氣)의 폭풍이었다.

그와 함께, 찬란한 검화(劍花)가 무지개처럼 확 퍼져오르며 천라지망을 형성했다.

아아! 그것은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장관이었다.

십방철혈대진(十方鐵血大陣)! 그것은 신기황의 필생의 병진(兵陣)이었다.

백인(百人)으로 능히 일만인(一萬人)을 제압할 수 있는 절세병진!

그때,

어떠신지요?”

남궁혜미가 조심스럽게 군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군무현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미세한 허점이 몇군데 보이나 짧은 기간의 수련에 비하면 훌륭한 성취하고 할수 있소.”

이어, 그는 천용학을 향해 번쩍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적룡검대의 대장인 천용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백적룡검대를 향해 외쳤다.

해진(解陣)!”

그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

일백적룡검대는 일제히 대답하며 진세를 거두었다. 이어, 그들은 일사불란한 태도로 그 자리에 도열했다.

군무현은 엄숙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제군들! 수고했다.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의 수련은 마친 것으로 알고 오늘은 적룡어강살을 전수하겠다!”

순간,

...!”

일백적룡검대의 호한(虎漢)들은 만면에 격동의 빛을 띄웠다.

적룡어강살! 그것은 과거 적룡대제를 있게 한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의 검학이 아닌가?

적룡세가의 혼()이 이어받은 일백적룡검대! 그들이 벅찬 감격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순간 그들의 강철같은 눈빛은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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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八 章

 

              神機谷一戰

 

 

 

황산(黃山),

안휘성(安徽省)에 위치한 명산(名山)이다.

시신봉(視神峯)!

황산칠십이봉(黃山七十二峯) 중에서도 특히 그 웅장함이 돋보이는 거봉이다.

한데,

스스스...!

정적을 깨며 시산봉 밑으로 메뚜기같이 밀려드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회의장한들, 하나같이 사기(邪氣)가 물씬 풍기는 음침한 인상들이었다.

그들의 선두, 역시 회포를 걸친 오순 정도의 노인이 귀광을 번득이며 몸을 날리고 있었다.

크크크... 신기곡 샌님들의 안색이 똥빛이 되겠군!”

그자는 음험한 음성으로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 그자는 바로 사멸황(死滅皇)이 아닌가?

세외사천 중 남천(南天)이 사망림(死亡林)의 천주(天主),

크흐흐... 신기곡을 치는데 본 사멸황이 직접 나서는 것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하나 그 대가를 신기곡 샌님들에게서 갑절로 받아내리라!”

사멸황은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사망림의 마도들을 이끌고 분분히 옷자락을 날렸다.

신기곡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스슥... ! 회의장한들은 일사불란한 태도로 삽시에 빨려들 듯 시신봉의 우측으로 꺾어져 사라졌다.

 

시신봉의 정상(頂上)!

, 이제야 오는군!”

한명의 흑의청년이 무심한 표정으로 시신봉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군무현! 바로 그였다.

그는 대천봉을 타고 사망림의 인물들 보다 한걸음 빨리 황산에 도착한 것이다.

그때,

사숙! 천마제국의 저 무지막지한 마도들만 보낸 것이 기이하군요. 저자들은 간단한 반오행진(返五行陣)도 통과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자들인데 말입니다!”

군무현의 뒤에서 한 명의 중년인이 의아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청수한 인상을 지닌 신선풍의 중년인,

 

천현우사(天玄羽士)!

그는 바로 당대의 신기곡주(神機谷主)였다.

신기황의 사손(師孫)뻘 되는 인물, 군무현은 신기황을 정식 사부로 모시지는 않았다.

하나, 천현우사는 군무현을 신기황의 제자로 기꺼이 받들어 모셨다. 군무현은 천현우사(天玄羽士)의 말에 기광을 번득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이 일에는 음모(陰謀)의 냄새가 나오. 천마제군(天魔帝君)이 제자들만 보낸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오!”

“...!”

하나 그자가 무슨 꿍꿍이속을 지니고 있든 상관할 것 없소. 천마궁(天魔宮)은 크게 좌절을 맛볼 것이오!”

군무현은 두 눈에 강렬한 신광을 발산하며 말했다.

천현우사는 신뢰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는 염려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자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그의 물음에 군무현은 무어라 대답을 하려 했다.

하나 그 순간, 그는 갑자기 검미를 꿈틀하며 고개를 돌렸다.

구 우! 돌연 허공으로부터 한 마리 천리신응(天里神應)이 빛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것이 아닌가?

천리신응은 삽시에 군무현의 어깨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군무현은 눈을 번득 빛내며 이내 천리신응의 다리에 묶여있는 천조각을 끌러냈다.

 

대천성자(大天聖子)의 종적이 황산(黃山) 근역에 나타났습니다!

신응(神應).

 

천조각에는 간략한 서체로 그와 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구류천종(九流天宗)의 칠십이파와 연락을 담당하고 있는 신응방에서 보내온 소식이었다.

대천성자가 황산근역에 나타났다고...?”

군무현은 검미를 꿈틀하며 중얼거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가 뇌리에 순간적으로 천마제군(天魔帝君)과 대천성자(大天聖子)의 이름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군무현은 잠시 침음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어, 그는 무엇인가 짐작한 듯 안색이 일변했다.

어쩌면...!”

그의 뇌리로 한줄기 직감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사숙! 무엇입니까?”

그의 그런 모습에 천현우사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군무현은 천현우사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상태였다.

문득, 그는 가볍게 자신의 얼굴을 쓱 문질렀다. 이어 몸을 돌리는 군무현,

이 얼굴은 어떻소이까?”

그는 천현우사를 향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순간,

...!”

천현우사는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군무현, 그는 어느새 청수한 중년인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것이 아닌가?

... 대단한 역용술이십니다!”

천형우사는 이내 감탄을 금치못하며 탄성을 발했다.

군무현의 입가에 한줄기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청수한 중년인으로서의 그 미소는 고아하고 기품있게 느껴졌다.

당분간 만박기사(萬博奇士)라는 이름으로 사용할 것이오!”

만박기사... 실로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천현우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의 눈빛을 지었다.

군무현은 한가닥 신비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시신봉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나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천하는 철저히 우롱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의미모를 중얼거림을 발하며 두 눈을 강렬하게 빛냈다.

 

스스슥... 스스... 사멸황이 이끄는 사망림의 마도들은 이윽고 넓은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사멸황은 선두를 지휘하면서 계곡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끝이 신기곡의 입구다! , 어서 가자!”

!”

회의장한들은 모두 힘있게 대답하며 최대한의 경곡을 발휘했다. 하나, 사멸황은 미처 주의하며 보지 못했다.

절곡의 주위 여기저기에 난석(亂石)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것을 발견치 못한 그자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막 계곡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

사멸황은 일순 몸을 멈추며 대경성을 발했다.

갑자기 천지사방이 짙은 운무로 뒤덮이며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 아닌가?

... 이게 어찌된 일이냐?”

!”

... 아니...!”

사망림의 마도들은 눈을 부릅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자욱한 운무 뿐이었다.

그들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방향의 중심을 잃은 그들은 일시지간 혼란지경에 빠져들었다.

한데, 그때였다.

우르르릉! 콰 쾅...! 돌연 멀쩡하던 하늘이 온통 시커먼 먹장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뇌성벽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꽈르르릉... 쏴 아!

때마침 광풍폭우가 천지간을 질타했다. 그것은 실로 예기치 못했던 돌연한 사태였다.

사멸황은 당황을 금치못했던 수하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정신들 차려라! 자기 위치를 고수하라!”

하나,

...!”

크 악!”

마도들은 갈팡질팡하며 서로 부딪쳐 충돌하며 나가 떨어지는 등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히히히...!”

켈켈켈!”

돌연 광풍속에서 끔찍한 형상의 악귀들이 미친 듯이 너울거리며 그들을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에 잇!”

... 비켜랏!”

콰릉... ! 회의장한들은 앞 뒤 분간도 없이 마구 장을 휘둘러댔다.

하나, 눈앞을 어지럽히는 악귀들이 사라지기는커녕 그럴수록 더욱 더 극심하게 달려들었다.

으아 악!”

크윽...!”

사망림의 수하들은 미친듯한 혼란 속에서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기문진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나, 경력이 일천한 사망림의 마도들은 걷잡을 수 없는 심마(心魔)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처절한 비명, 자욱한 피보라가 허공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사멸황은 그 광경에 벼락같은 노성을 내질렀다.

병신같은 놈들!”

그자는 눈을 부릅뜨며 발을 굴렀다. 하나,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그때였다.

죽어랏!”

돌연 한명의 회의장한이 미친 듯이 사멸황에게 덤벼들었다.

빌어먹을...!”

사멸황은 어이가 없었다.

콰릉! 그자는 신경질적으로 일장을 떨쳐내며 물러섰다.

다음 순간, !

케 엑!”

달려들던 회의장한은 피곤죽이 되어 나뒹굴었다.

사멸황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어느 놈이냐? 어떤 놈이 이따위 수작을 부리느냐?”

그자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주위를 향해 폭갈을 내질렀다.

그 순간,

그대가 사멸황(死滅皇)인가?”

갑자기 사멸황의 등 뒤에서 지극히 무심하고 차가운 일성이 들려왔다.

순간,

!”

사멸황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자는 반사적으로 홱 돌아섰다. 언제부터였을까?

지극히 초탈하고 기품있는 용모의 한 명의 중년문사가 사멸황의 일장 뒤에 표표히 서 있지 않은가?

... 네놈이냐?”

사멸황은 안면을 씰룩이며 눈을 부릅떴다.

다음 순간, 쿠 쿵! 그자의 손에서 벼락같이 강맹한 강기가 쏟아졌다.

그것은 중년문사의 가슴을 향해 정통으로 가격되었다.

직후, 콰쾅! 요란한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었다.

(죽였다!)

사멸황은 그것을 확인하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나, 그 짧은 순간의 쾌감은 느낄 때보다 더 빨리 내던져야 했다.

그 정도로 세외사천에 들다니... 쯧쯧...!”

문득 차갑고 냉혹한 일성이 사멸황의 귓전을 울렸다.

그와 함께, 스스슥... 사멸황의 눈앞에 서 있던 중년문사의 모습이 돌연 둘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중년문사, 물론 그는 만박기사로 변신한 군무현이었다.

... ... 귀신이냐?”

사멸황은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며 공포에 질린 음성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신기곡은 너희들같이 하찮은 마도가 드나들 곳이 아니다!”

군무현은 냉혹한 눈빛으로 사멸황을 직시하며 잘라 말했다.

... 이놈! 없어져랏!”

콰쾅 펑! 사멸황은 안면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미친 듯이 쌍장을 휘둘렀다.

하나, 이것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사멸황이 일장을 후려칠 때마다 군무현의 모습이 점점 하나씩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 으아아!”

사멸황은 미친 듯이 발악했다.

어느새 군무현의 모습은 수십명으로 늘어나 사멸황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지 않은가?

더 쳐보아라!”

피를 식히는 싸늘한 군무현의 일성이 주위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스스슥...! 군무현의 분신들은 유령같이 사멸황을 포위해 왔다.

으아... 다가오지 마라!”

사멸황은 온 몸이 쇠사슬에 조여지는 듯한 극심한 공포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군무현의 분신들 역시 환상에 불과했다.

그는 보법(步法)과 기문진의 원리를 이용하여 환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 그럼에도 절정고수인 사멸황은 쉽사리 그 함정이 휘말려 들었다.

그 자는 마도(魔道)에 빠져 심력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으으... ...!”

그자는 식은땀을 비오듯 흘리며 연신 뒤로 밀려났다.

한데 어느 순간, 스스스... 모든 것이 깨끗이 사라졌다.

...!”

사멸황은 공포에 짓눌려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채 사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 살려줘...!”

그자는 부르르 전신을 떨며 애원하듯 외쳤다. 그자의 두 눈에 들어온 광경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지옥도(地獄圖)! 그곳에는 한폭의 지옥도가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다.

온통 죽고 다치고 극도의 공포에 넋이 나간 사망림의 마도들이 주위에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한 명도 온전한 자가 없었다.

그때,

사멸황!”

한소리 싸늘한 음성이 사멸황의 귓전을 때렸다.

사멸황은 질검하며 황급히 돌아섰다.

!”

그자의 두 눈이 한껏 부릅떠지며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협곡의 절벽 뒤, 군무현이 표표히 옷자락을 날리며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돌아가서 천마제군에게 전하라! 신기곡은 무림의 세파에 들기를 원치 않노라고!”

그는 사멸황을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사멸황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니, 대꾸를 하고 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군무현은 그런 그자를 바로보며 냉담한 어조로 덧붙였다.

그대를 죽일 수도 있으나 살려보내는 이유는 천마궁과 굳이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 !”

돌연 사멸황은 미친 듯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발했다.

그와 함께, 휘 익! 그 자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네놈과 상종하느니 차라리 지옥의 악귀들과 살겠다!”

달아나면서 그자는 저주스러운 음성으로 그렇게 외쳤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긴 것일까? 사멸황은 세상에 난 이후 가장 빠른 경공으로 달아났다.

그자가 미친 듯이 곡구를 빠져나가자, 넋을 잃고 멍하니 굳어있던 사망림의 마도들은 그제서야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으악...!”

우우...!”

살아 남은 인물들은 정신을 차린 순간 꽁무니가 빠져라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군무현은 이윽고 천천히 돌아섰다. 문득 그는 절벽 뒤쪽에 있는 바위를 주시했다.

귀하! 이제 그만 나오시는 것이 어떻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허허... 신기곡에 잠룡(潛龍)이 도사리고 있었을줄은 몰랐구려!”

스슥...! 한줄기 창노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득 한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바위 뒤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군무현의 앞으로 다가서는 인물, 그는 도골선풍의 백의노인이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군무현의 무심한 두 눈에 일순 기광이 스쳤다.

백의노인, 그는 나타나자마자 겸연쩍은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노부는 대천성자(大天聖子)라는 늙은이오!”

그 말에 군무현은 짐짓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소용장주셨군요! 후배가 실례한 점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는 포권을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허허... 용서라니 당치않소!”

백의노인 대천성자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아한 기품이 흐르는 청수한 용모, 부드러운 눈빛과 호인다운 웃음, 어디를 보아도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내심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무서운 인물...! 한올의 예기도 흘러나오지 않다니...!)

그는무심한 표정이었으나 대천성자의 모습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문득, 대천성자는 관심있는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고 물었다.

젊은이는 신기황과 어찌되는가?”

어느새 그의 어조는 자연스럽게 변해 있었다.

군무현은 정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기황께서는... 후배의 선사(先師) 되십니다!”

... 그렇군!”

짧은 순간 대천성자의 잔잔한 두 눈에 한줄기 기광이 스쳤다. 한데, 그때였다.

스슥! 문득 두 사람의 옆으로 천현우사가 다가왔다.

사숙! 사망림도들은...!”

군무현을 향해 말을 꺼내던 그는 대천성자를 발견하고는 이내 입을 닫았다. 그러자 군무현은 그를 대천성자에게 소개했다.

사질! 인사하시게, 이분이 바로 선사님과 동대에 영명을 날리시던 소요장주시네!”

그 말에 천현우사는 짐짓 놀라는 기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대천성자를 향해 정중한 태도로 예를 취했다.

수배 황보인(皇補仁), 노선배님을 뵙습니다!”

허허! 예를 거두게!”

대천성자는 턱 밑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천현우사는 존경의 눈빛으로 대천성자를 주시하며 정중한 어조로 권했다.

바쁘시지 않다면 폐곡에 들어가심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대천성자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노부는 급히 볼일이 있다네. 그보다...!”

문득 그는 말끝을 흐리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젊은이는 당금 천하의 정세를 어떻게 보는가?”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군무현은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이내 그는 정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천마궁의 발호가 심하다고는 들었으나 자세히 알지 못하오이다!”

대천성자는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가 도탄에 빠져있네, 천마궁이 오랑캐들까지 끌어들여 천하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네!”

그는 누가에 근심의 빛을 드리우며 슬쩍 군무현의 안색을 살폈다.

군무현 역시 묵묵히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이어, 그는 대천성자의 뜻을 헤아린 듯 입을 열었다.

선배님께서도 신기곡이 천마궁의 예봉을 제지하여 주시기를 분부하시는 것이오이까?”

그 말에 대천성자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분부라니 당치않네. 다만 천하를 안정시키는데 힘을 써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네!”

그의 어조는 지극히 정대하고 겸허했다. 하나, 군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기곡은 강호정세에 관여치 않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소이다!”

허허... 그것은 모르는 바 아니나 그대 선사이신 신기황께서 평생 천하의 안위를 염려하셨네!”

군무현이 뜻을 굽힐 의사를 보이지 않자 대천성자는 설득력 있는 어조로 말했다. 하나, 군무현의 의사는 분명했다.

후배 개인이라면 모르는 일이나 신기곡의 강호사(江湖史)에 개입할 수는 없소이다!”

헛허... 아무튼 기다리겠네. 천신보(天神堡)에 정의맹(正義盟)의 총단이 있으니 언제라도 찾아주게!”

대천성자는 인자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당부했다.

그 말을 마침과 함께, 스슥...! 그는 한줄기 연기처럼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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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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