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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의 딸

 

 

 

두 사람은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하여 사흘째 저녁 무렵에는 멀리 남악(南岳) 형산(衡山)이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헌데 형산에 도착한 두 사람은 거인같이 우뚝 솟아있는 어느 산봉우리 밑에서는 불기둥이 치솟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남산의성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자신의 집 근처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악소궁은 안색이 하얗게 변하여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 이미 늦어 버렸구나!]

막비강은 그런 그녀를 급히 부축했다.

[누님! 진정하십시오. 집에 불이 나긴 했지만 영존까지 해를 입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소제가 먼저 달려가 볼 테니 누님은 천천히 오십시오!]

악소궁을 위로한 막비강은 곧 팔보간섬을 극한까지 전개하여 불길이 치솟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어둠의 장막이 남악 형산 위로 드리워지고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쐐액!

문득 한 줄기 포물선이 밤하늘을 가르더니 한 명의 청년이 지면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물론 그 청년은 막비강이었다.

막비강이 내려선 앞쪽에는 잿더미가 되어 버린 초가집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남산의성 악불령의 거처는 몇 채의 모옥(茅屋;초가집)으로 이루어진지라 불이 붙자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해 버린 것이다.

불타 버린 초가집의 잔해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돼지, 닭 등 가축이 불에 타 죽으며 내는 고약한 악취만 풍길 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보아하니 흉사(凶邪)들은 일을 끝내고 이미 현장을 떠난 것이 분명했다.

막비강은 남산의성 악불령과 그의 식솔들이 변을 당한 것같아 자신도 모르게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는 오른 손을 저어 한 줄기 광풍을 뿜어냈다.

화르르!

그러자 그때까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던 잔불과 연기가 모두 꺼져 버렸다.

막비강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잿더미 속으로 들어가 타다 남은 잔해들을 뒤척여 보았다. 남산의성 악불령 일가의 유골이나마 찾을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타 죽은 돼지와 닭 몇 마리만 나올 뿐 사람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악 선배님 일가가 도피하면서 적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고의로 불을 지른 게 아닐까? 아니면 흉도들이 사람들을 생포해 간 다음 화풀이로 잿더미를 만들어 버린 것일까?)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며 잿더미가 된 집 근처에서 악소궁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악소궁은 나타나지 않았다.

헌데 막비강이 불안해 하고 있을 때였다.

[크하하하하!]

돌연 멀리서 심맥을 진탕시키는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려 왔다.

막비강은 이 웃음소리의 주인이 남산의성의 원수들 중 한 명일 것이라 단정하였다. 그리고 흉수가 이제야 나타난 것으로 보아 남산의성이 화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적이 안심이 되었다.

이에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뒷짐을 진 채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지금 그가 여길 떠나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면 뒤따라올 악소궁이 적의 손에 잡힐 것은 뻔한 일이다.

[카카카!]

막비강이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음산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첫 번째 웃음소리는 십여 리 밖에서 들렸는데 두 번째 웃음소리는 바로 지척에서 들린다. 그만큼 웃음소리의 주인의 경신술은 대단한 것이었다.

쐐액!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막비강은 한 줄기 흑선(黑線)이 밤하늘을 유성처럼 가르며 날아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우렁찬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거 참 시끄럽구만!]

그의 이 음성은 맑고 우렁차 음산한 웃음소리를 완전히 제압했다.

[크크크! 어린놈이 제법이로구나!]

화라락!

직후 음산한 일갈과 함께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장내에 내려섰다.

그자는 다른 곳도 아니고 잿더미 위에 내려서면서도 먼지 한 점 일으키지 않았다. 이같은 경공신법은 등봉조극(登峯造極)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하오기를 능가하는 고수다!)

막비강은 긴장하며 나타난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차림은 시골 문사 차림인데 긴 수염을 가슴까지 기르고 있었다. 머리는 백발이 희끗희끗한 반면 안색은 불그레한 것이 한창 나이의 젊은이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눈에서는 푸르스름한 녹광(綠光)이 번져 나와 사이하고 괴괴한 인상을 풍겼다.

녹안(綠眼)의 괴인은 바닥에 내려서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웃음소리를 압도한 음성의 주인이 뜻밖에도 약관의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갔느냐?]

녹안괴인은 막비강의 아래 위를 살펴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막비강은 나타난 사람이 소리장도 강용이 아니면 백독서생 이량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생소한 얼굴인지라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요?]

녹안괴인은 막비강을 응시하며 말했다.

[너는 악불령 집안사람이냐?]

[집안사람일 수도 있고 집안사람이 아닐 수도 있소.]

녹안괴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악불령은 어딜 갔느냐?]

막비강은 시종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건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오.]

막비강의 무례한 대답에 녹안괴인은 화난 표정을 지었다.

[애송이놈! 보아하니 빨리 죽는 게 소원인 모양이로구나.]

막비강은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누군지부터 말하시오. 그래야만 당신이 나와 싸울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소.]

그러자 녹안괴인은 음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낄낄낄! 네가 감히 노부 낙성신마(落星神魔)에게 싸움을 청할 생각이냐?]

[인마(人魔)가 아니라 신마(神魔)란 말이지?]

막비강은 상대가 천수인마가 아닐까 생각했다가 예상이 빗나가자 검미를 모았다.

[헌데 자칭 신마 양반! 당신은 여기 무엇 하러 왔소?]

[요놈이 영특하게 생겨서 봐주려고 했더니...!]

낙성신마라는 자는 대답하려다 말고 갑자기 옆의 울창한 고목 쪽을 홱 돌아보며 외쳤다.

[거기 어떤 쥐새끼냐?]

그자는 나뭇가지 위에서 경미한 음향이 이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막비강도 악소궁이 도착한 것으로 생각하고 급히 외쳤다.

[누님이십니까?]

그러자 나뭇가지 위에서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전해 왔다.

[! 누가 네놈의 누님이란 말이냐?]

화락!

이어 하나의 인영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바로 소리장도 강용이었는데 그자의 옆구리에는 혈도가 짚인 악소궁이 축 늘어진 채 끼어 있었다.

(누님이 어떻게 그에게 생포되었지?)

악소궁이 강용에게 잡힌 것을 본 막비강은 내심 놀라면서도 버럭 노성을 질렀다.

[악적! 빨리 그분을 내려놓아라!]

강용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네놈은 누구냐?]

이년의 세월이 지난 탓에 강용은 막비강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넌 그런 걸 물을 자격이 없다. 빨리 사람이나 내려놓아라!]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네놈도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이겠지만....]

[잔말이 많다!]

!

막비강은 강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번개같이 덮쳐가며 그자의 안면을 향해 일장을 격출했다.

[!]

강용은 안면을 향해 뻗어 오는 막비강의 벼락같은 일장에 기겁하며 피하려 했다.

하지만 사실 그자의 안면으로 날린 막비강의 이 일장은 허초였다.

!

막비강은 강용이 깜짝 놀라 허둥대는 틈을 타 그자의 겨드랑에서 악소궁을 낚아채 재빨리 후퇴했다. 그의 이 같은 동작은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내놔라!]

꽈릉!

얼떨결에 악소궁을 빼앗긴 강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막비강에게 일장을 격출했다.

그때였다.

[잠깐!]

낙성신마라고 자칭한 녹안괴인이 가볍게 손을 들어 강용의 일장을 봉쇄했다.

!

강용의 공력도 매우 심후한데 의외로 녹안괴인이 아무렇게나 휘저은 일장에 비틀거리며 세 걸음이나 후퇴했다. 그는 놀란 음성으로 녹안괴인에게 물었다.

[귀하는 누군데 노부의 일을 간섭하는 거요?]

순간 녹안괴인은 두 눈에서 섬뜩한 녹망을 발산했다.

[낄낄낄! 감히 내 앞에서 노부라 자칭하다니...! 네놈은 도대체 몇 살이나 처먹었느냐?]

녹안괴인의 말에 강용은 당황했다. 그는 비로소 상대가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인물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기회다!)

막비강은 녹안괴인이 강용에게 눈을 부라리는 틈을 타 재빨리 몸을 날렸다.

헌데 막비강이 막 몸을 날린 그 순간이었다.

[흐흐! 어림없다!]

꽈릉!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줄기 강맹한 경풍이 막비강의 면전을 향해 엄습해 왔다.

막비강은 흠칫 놀라며 일장을 마주쳐 냈다.

!

다음 순간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지며 한 줄기 선풍이 지면으로부터 모래먼지를 대동한 채 허공으로 뻗어 올랐다.

막비강은 기습해 온 상대의 공격에 제지당해서 다시 원래 위치에 내려섰다.

화라락!

직후 또 다른 인영이 그의 앞으로 날아 내리며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애송아! 네놈이 노부의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번에 나타난 인물은 얼굴이 유달리 하얘 음침한 인상을 주는 중년문사였는데 다름아닌 육요(六妖) 중 백독서생 이량이었다.

상대가 백독서생 이량인 것을 알아본 막비강은 화가 치밀어 악소궁을 한쪽에 내려놓으며 버럭 노성을 질렀다.

[노독물! 너도 내 일장을 받아 보아라!]

꽈르릉!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막비강의 손바닥에서 강맹무비한 장풍이 노도같이 뻗어 나갔다.

백독서생 이량은 막비강의 막강한 장풍에 안색이 대변하며 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러면서 소리쳐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자 역시 막비강을 오랜 만에 만난지라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바로 천면신룡이시다!]

막비강은 사납게 외치며 재차 장력을 날렸다.

[이제 보니 네놈이...! 커억!]

! 후두둑!

백독서생 이량은 경악성을 토해내다가 막비강이 다시 격출한 일장에 강타당해 나뒹굴었다. 육요 중 한 명인 백독서생조차 지금의 막비강에게는 적수가 못되는 것이다.

막비강은 바닥에 나뒹굴어 피를 토하고 있는 백독서생 이량을 노려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하하! 노독물! 오늘 같은 날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놈이 정말 광오하군!]

또 다른 사람이 허공에서 음험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받았다.

화라락!

그 사람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장내에 내려섰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덮여 나이를 알 수가 없는 노인인데 양팔이 유난히 길고 검었다.

(이자가 우내사마 중의 천수인마겠구나!)

막비강은 새로 나타난 노인의 정체를 간파하고 내심 긴장했다.

그때 장내에 내려선 노인, 천수인마가 뒷짐을 지며 말했다.

[후학 중에 너같은 고수가 있다니 대견하도다! 해서 특별히 삼 초를 양보해 줄 테니 실력을 발휘해보거라.]

막비강도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늙은이가 바로 악명높은 천수인마겠구나. 헌데 노마는 정말 나의 삼 장을 반격하지 않고도 받아낼 자신이 있느냐?]

천수인마는 막비강이 단번에 자신의 신분을 간파하자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 노부가 누군지 알아보다니 기특한 놈이로다!]

바로 그때였다.

[! 당신은 천수인마 사마(司馬) 형 아니오?]

자칭 낙성신마라 하던 녹안괴인이 천수인마라는 말을 듣고는 다가왔다.

[으핫하하! 낙성신마 사공(司空) 형도 왔구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이십 년도 더 되었군 그래.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소.]

천수인마도 비로소 낙성신마를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한눈에도 그자가 낙성신마를 꺼려함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본 막비강은 웃으며 말했다.

[하나는 신마(神魔)고 하나는 인마(人魔)이니 당신들 이마(二魔)가 먼저 고하를 겨루어 보시오. 이긴 사람을 내가 상대해 주겠소!]

막비강은 그렇게 말하며 악소궁에게 다가가 재빨리 그녀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정신을 차린 악소궁은 장내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사색이 되었다. 소리장도 강용과 백독서생 이량, 거기에다가 우내사마 중 두 사람이나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절망의 표정이 되어 막비강에게 말했다.

[아우! 아우는 어서 여길 빠져나가게. 누이는 선친을 따라 지하로 가겠네.]

막비강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누님은 무슨 그런 말을 하십니까? 영존께서는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분의 뒤를 따라 지하에 가겠다는 겁니까?]

[집이 모두 타 버린 것으로 보아 가친도...!]

[뿐만 아니라 돼지도 몇 마리 타 죽었더군요.]

막비강의 말에 악소궁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네 말은 가친께서 살아 계신다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빨리 도주해야 하네.]

[조금 기다려 보십시다. 영존께서 왜 이런 계략을 세워야 했는지 저자들의 대화에서 알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막비강은 악소궁이 무사히 도주할 수 있도록 이마가 서로 싸우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마는 서로 상대방을 꺼려하는지라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고받을 뿐 싸울 의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신마! 설마 저 어린 놈과 일행은 아니겠지요?]

천수인마의 말에 낙성신마는 막비강과 악소궁을 힐끗 돌아보고 대답했다.

[노부는 악불령을 만나러 왔을 뿐 저 녀석과는 아무 관계도 없소.]

천수인마는 안도하며 다시 물었다.

[신마는 무슨 일로 악불령을 만나려 하시오?]

[늦게 얻은 딸내미의 괴질(怪疾)을 치료하기 위해서요. 보아하니 인마도 악불령을 만나러 온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오?]

낙성신마가 되묻자 천수인마는 소리장도 강용을 가리켰다.

[노부의 제자가 당년에 악불령에게 굴욕을 당했기에 빚을 갚아주기 위해 찾아왔소.]

낙성신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열흘 전 노부는 아랫사람을 통해 예물을 주며 악불령을 초빙했었소. 이런 사정으로 악불령은 현재 노부의 빈객이 된 상태니 인마는 그를 너무 난처하게 만들지 마시오.]

막비강이 옆에서 손뼉을 치며 말을 받았다.

[옳소. 사람[]은 마땅히 신()에게 양보해야 하오.]

천수인마가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애송이놈! 잠자코 있지 못할까?]

이어 그자는 다시 낙성신마를 돌아보았다.

[악불령이 집에 불을 지르고 줄행랑을 친 것은 신마가 그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군. 하지만 그의 무남독녀가 여기 있으니 이 계집만 잡아 두면 그가 아무리 멀리 도주해도 걱정할 게 없소.]

[누가 악불령의 무남독녀요?]

낙성신마가 눈을 번뜩이며 돌아보았다.

[애송이 뒤에 있는 계집이 바로 악불령의 외동딸 악소궁이란 계집이오.]

천수신마의 말에 낙성신마는 준엄한 표정으로 악소궁에게 말했다.

[악소궁! 이쪽으로 오너라!]

그러자 악소궁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려 했다.

막비강은 얼른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가면 안 됩니다, 누님.]

[잠깐!]

천수인마도 급히 낙성신마에게 말했다.

[노부는 악가 계집을 잠시 신마에게 양보하여 악불령이 영애의 병을 치료하게 하겠소. 그러니 영애의 병이 완쾌되면 그 계집을 석방하지 말고 노부에게 넘겨주시오.]

낙성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리하리다!]

악소궁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막비강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끼어들었다.

[당신네들끼리 함부로 결정하지 마시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겠소.]

[낄낄낄....]

낙성신마가 괴소를 터뜨리며 막비강을 훑어보았다.

[어린 녀석이 패기가 대단하구나! 하지만 너는 너무 늦게 세상에 태어난 탓에 일선(一仙), 이불(二佛), 삼도(三道), 사마(四魔), 오기(五奇), 육요(六妖), 칠절(七絶)의 이름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오기, 육요, 칠절은 들어 봤지만 일선, 이불, 삼도, 사마는 또 어떤 자들인가?)

막비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낙성신마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일선(一仙) 음양선옹(陰陽仙翁)은 은거해 버렸고 이불(二佛)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삼도(三道) 역시 오래전 부터 강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당연히 당금 무림에서 우리 사마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 사마 중 이마(二魔)가 이곳에 있는데도 네놈은 큰소릴 치느냐?]

막비강은 상대방이 천하오기를 다섯 번째 서열에 두자 내심 놀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오만한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은 한 사람을 빠뜨렸소. 마땅히 나 일룡(一龍) 천면신룡도 서열에 끼워야 했소.]

낙성신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부는 천면신룡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다.]

백독서생은 막비강의 일장에 격중되어 쓰러졌다가 지금까지 운기조식을 하여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운기조식하면서도 세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었는지라 몸을 일으키며 참견을 했다.

[저 어린 놈은 악불령의 기명제자이며 또한 우주도철의 양자이기도 합니다. 본명은 막비강이고 별명은 천면신룡입니다.]

그 말에 낙성신마가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렸다.

[껄껄껄, 악불령의 기명제자라면 더욱 놓아줄 수 없지.]

막비강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내가 여길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악 누님을 여기 두면 너희들이 행패를 부릴 것이 뻔하므로 먼저 누님부터 보낸 다음 다시 얘기를 하겠다.]

낙성신마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노부는 너희 둘을 모두 잡아 두겠다.]

막비강은 냉랭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날 잡아 두고 싶으면 어디 잡아봐라. 그러나 악 누님은 연약한 아녀자니 손대지 마라!]

낙성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마라. 누구든지 그녀에게 손을 대면 노부가 가만두지 않겠다.]

[남아 일언 중천금이다.]

막비강은 이렇게 말한 후 악소궁에게 전음으로 속삭였다.

[누님을 숲 속으로 던져 넣을 테니 제 걱정은 말고 전력을 다해 도주하십시오.]

악소궁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 평범한 자신은 이곳에 남아봤자 막비강에게 짐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때문이다.

흉사들은 막비강이 악소궁과 전음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지만 몇 마디 당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버려두었다.

[가십시오.]

그런데 막비강은 갑자기 악소궁의 몸을 번쩍 들더니 옆의 숲 속으로 힘껏 던졌다.

쐐액!

막비강이 전력을 다해 던진지라 악소궁의 풍만한 교구는 마치 유성처럼 숲 안쪽으로 날아들어갔다.

그것을 본 낙성신마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 감히 노부 앞에서 속임수를 써?]

그자는 분노하여 외치며 숲으로 날아드는 악소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핫하하! 노마의 상대는 나란 걸 잊었나?]

막비강은 대소를 터뜨리며 날아올라 쌍장을 밀어냈다.

[애송이놈! 죽고 싶으냐?]

대노한 낙성신마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마주 일장을 후려쳤다.

퍼펑!

다음 순간 막비강의 장력과 낙성신마가 쳐낸 장력이 충돌하며 요란한 폭음을 일으켰다.

쐐액!

헌데 서로의 장력이 부딪히는 순간 막비강의 몸은 쏘아진 화살처럼 뒤로 날아갔다. 막비강은 낙성신마와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자의 장력을 빌어 현장에서 이탈한 것이다.

[!]

낙성신마는 자신이 상대방을 전송해준 꼴이 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 놈은 청구상인의 문인이다. 저놈에게 감쪽같이 속았구나!]

천수인마가 급히 외쳤다. 그자는 언 듯 막비강의 장심에서 허연 강기가 번뜩이는 것을 본 것이다. 장력에 자유자재로 강기를 실을 수 있는 신공은 청구상인의 치우강기 외에는 없다.

[빨리 추격합시다!]

쐐액!

천수인마는 즉시 경공신법을 전개하여 막비강의 뒤를 쫓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낙성신마도 이를 부득 갈며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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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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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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