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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에 빠지다!

 

 

 

부악!

막고천은 이번 기회에 후환을 없앨 작정을 하고 전력을 기울여 장력을 날렸다. 그 기세는 처음의 일장 보다 배는 더 강력하고 악독했다.

[!]

그러나 막고천의 이번 공격은 막비강이 팔보간섬의 경신술로 슬쩍 피하는 바람에 헛것이 되고 말았다.

[불효막심한 놈! 빨리 꿇어앉아 죽음을 받아라!]

화가 치민 막고천은 이를 부드득 갈며 다시 막비강을 덮쳐왔다.

화락!

하지만 막비강은 그 순간 몸을 날려 명륜당 밖으로 내려섰다.

[막 노적! 자신 있으면 밖으로 나와라. 오늘 내 손으로 네놈을 때려죽이고 말겠다!]

뜰에 내려선 막비강이 막고천에게 삿대질을 할 때였다.

[! 날뛰지 마라!]

[호로자식이 어디서 감히...!]

휘휙! 화락!

막고천 대신 두 개의 인영이 동시에 날아 나왔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막고천 옆에 앉아 있던 고희의 노인들이었다.

두 노인 중 동홍선생(冬烘先生;서당 훈장)처럼 생긴 자가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너 같은 불효막심한 자식은 노부가 대신 벌을 주어야겠다.]

막비강은 이 노인이 막고천을 능가하는 고수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거만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하는 거요?]

동홍선생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피를 섞어 시험했으니 친혈육임이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계속 난동을 부리는 네놈은 금수나 다름없다. 예로부터 금수같은 인간은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법! 노부가 오늘 장주를 대신하여 네놈의 버릇을 고쳐 주어야겠다.]

막비강은 냉소하며 말했다.

[! 당신은 나잇살이나 쳐먹어 놓고도 방금 전의 그 혼혈친인에 거짓 수작이 숨겨져 있음도 못 알아보시오?]

그때 중인들을 이끌고 명륜당에서 달려나오던 막고천이 그 말을 듣고 고함을 질렀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이 다 똑똑히 보았는데 무슨 거짓 수작이 숨겨져 있었단 말이냐?]

막비강은 검미를 치뜨며 대답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았으니 나와 피가 혼합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는 절대 너 같은 악적의 자식이 아니다. 자신이 있으면 나와 단독으로 혼혈친인을 해보자.]

막고천은 막비강이 단독으로 시험해 보자는 제의를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터라 당황했다. 대답이 궁색해진 그는 얼굴을 붉히며 노성을 질렀다.

[아비를 악적이라 욕하는 죄만으로 죽어 마땅한데 또 무엇을 시험하잔 말이냐?]

막고천은 분노하며 또 다시 막비강에게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막비강은 미리 방비하고 있었던 터라 가볍게 피해냈다.

[어머니!]

막비강은 막고천을 상대하지 않고 다른 여인들과 명륜당 입구까지 나와있는 어머니 한경파 곁으로 날아갔다.

[이제 저 악적에게 시달리실 필요 없습니다! 소자와 함께 여길 떠납시다.]

막비강은 팔을 뻗혀 어머니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한경파는 슬픈 표정으로 물러서며 손을 저었다.

[... 너나 빨리 여길 떠나거라 강아!]

[죽일 놈!]

! 퍼엉!

그 사이에 막고천이 다시 쫓아와 연달아 장력을 쳐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을 때려죽여 버리겠다!]

하지만 막비강이 팔보간섬을 전개하자 막고천은 이번에도 그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막비강은 막고천의 공격을 피하며 냉랭히 웃었다.

[나는 네놈을 일장에 격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상을 먼저 알고 싶어 손을 쓰지 않을 뿐이니 분수를 알고 멈춰라!]

막비강의 조롱에 막고천은 대로하여 고함을 질렀다.

[짐승보다 못한 놈! 나를 아비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 부친이 누구란 말이냐?]

[그건 내가 네게 묻고 싶은 말이다.]

이때 막고천의 장남인 막불계가 덮쳐 오며 외쳤다.

[둘째! 너는 끝까지 아버지를 모독할 테냐?]

막비강은 철이 들었을 때부터 막불계에게 수없이 괄시를 받고 매도 맞았다. 자연히 그는 지난날의 울분이 일시에 치밀어 냉랭히 대꾸했다.

[막불계! 네 모친도 이 악적이 남편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겁탈했을 텐데 뭐가 고맙다고 두둔하느냐?]

막불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무엄한 놈 같으니...! 뭐가 어쩌고 어째?]

!

막불계는 악에 바쳐 일장을 후려쳤다.

[! 그런 실력으로 내게 덤비다니!]

하지만 막비강은 어린 아이 손목 비틀 듯 그의 손목을 움켜잡아 던져 버렸다.

[어헉!]

막불계의 몸은 마치 줄이 끊어진 연처럼 삼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막불계는 비록 나이는 젊지만 혈검산장의 가전비학을 모두 연마했고 또 흑도의 거물들인 십악구흉, 칠열팔준들로부터 사사받아 젊은 층에선 제일인자라 불렸다.

그런 그가 미처 일초도 버티지 못하고 내 팽개쳐지자 중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막고천의 아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십대 후반의 중년부인이 눈에서 살기를 발산하며 한경파에게 노성을 질렀다.

[셋째 동서! 자네가 이 불효막심한 자식 놈을 따끔하게 벌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치도곤을 내리겠다.]

이 여인이 바로 막고천의 정실(正室)인 당숙경(唐淑瓊)이다.

막불계와 두 딸의 어머니인 그녀는 보통 여인들보다 체격이 큰 데다 상당히 살이 쪄서 몸매가 아주 당당하고 풍만하다.

그리고 피부도 깨끗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하여 여전히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기승스러워 보이는 것이 흠이었다.

혈검산장에서 막비강을 가장 못 살게 괴롭힌 사람이 다름 아닌 당숙경이다. 막비강이 자신의 다섯 시앗들이 낳은 아이들 중 유일한 아들인 탓인지 그녀는 노골적으로 그를 못 살게 굴었었다.

막비강은 그런 당숙경이 자신의 어머니 한경파를 윽박지르자 분노하여 이를 부득 갈았다.

[네가 날 어쩌겠다는 거냐 이 살찐 돼지야?]

[, 뭐야? 돼지?]

당숙경은 평소에도 자신이 다른 시앗들보다 살이 많이 찐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오고 있었다. 당연히 살찐 돼지라는 막비강의 욕은 그녀의 얼굴을 새빨갛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그 주둥이! 찢어버리겠다!]

당숙경이 악을 쓰며 막비강을 덮쳐왔다. 서패천 혈검산장의 안주인답게 그녀의 무공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래봤자 막고천도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는 막비강의 상대가 될 까닭이 없다.

[꺼져!]

막비강은 당숙경이 덮쳐들자마자 그녀의 하얀 손목을 잡아채 마당에 던져 버렸다.

[아이쿠!]

당숙경의 피둥피둥 살이 찐 몸뚱이가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비명과 함께 마당에 널부러졌다.

당숙경은 여러 바퀴 뒹구는 바람에 치마가 허리 위로 걷혀 올라가버렸다. 그 바람에 투실투실 살이 오른 중년여인의 허연 아랫도리가 그대로 드러나버렸다.

유달리 육덕이 좋은 그녀인지라 허벅지 하나가 한 아름이 넘어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우람한 허벅지들은 처녀같은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

당숙경은 발라당 나자빠지는 바람에 가랑이를 벌린 자세로 넘어졌는데 흐드러진 허벅지 사이에는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살이 두둑히 오른 둔덕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살진 두덩이를 가린 작은 고의는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본의 아니게 당숙경의 사타구니를 본 막비강은 민망하여 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부친을 모독하고 형을 때렸으며 부친의 정실을 욕보였으니 막비강은 이제 패륜무도라는 오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

[저 놈을 잡아라!]

[이놈! 어디서 패악질이냐?]

막비강이 형인 막불계에 이어 큰 어머니인 당숙경마저 능멸하는 것을 본 혈검산장의 무리들이 분노하며 일제히 막비강을 덮쳐왔다.

[강아!]

십악구흉, 칠열팔준등이 분노하여 사방에서 아들을 덮쳐가는 것을 본 한경파가 비명을 질렀다. 육요 칠절에 버금가는 고수 삼십여명으로부터 합공을 받는 아들이 당장이라도 피곤죽이 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한경파가 우려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삼십 명이 넘는 고수가 공격한다 해도 일시에 막비강에게 들이닥칠 수 있는 인원은 너댓명 밖에 안된다.

그리고 막비강은 이미 육요 칠절정도의 고수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절정고수가 되어있었다. 육요 칠절이 아니라 천하오기라도 지금의 막비강에게는 몇 초 견디지 못할 정도다.

[꺼져라!]

막비강은 사납게 외치며 쌍장을 후려쳤다. 그의 이 일장은 염라철장 곡강의 염라장법이다. 당연히 혈검산장의 악도들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무공이다.

하지만 막비강이 펼친 지금의 염라장법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치우강기가 실려 있었다.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버리는 치우강기가 가미된 염라장법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퍼펑! 꽈르릉!

[케엑!]

[크악!]

무쇠망치로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처참한 비명이 일시에 터졌다.

치우강기에 정면으로 가격당한 혈검산장의 고수 다섯 명이 가슴과 머리통이 으깨져 즉사했다. 요행히 정면으로 얻어맞지 않은 자들도 치우강기가 실린 염라장법의 장풍이 스치는 순간 내장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허억!]

[, 저럴 수가!]

십악구흉, 칠열팔준중 단 번에 다섯 명이 즉사하고 일곱명이 피를 토하며 나뒹굴자 장내는 공포와 전율이 휩쓸었다. 이같은 결과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막비강도 일시 넋이 나갔다. 그는 막불계나 당숙경 모자를 상대할 때는 그래도 차마 살수를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막고천의 수하들이 떼로 덮쳐오자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치밀어 치우강기를 발휘하였다.

헌데 불과 삼성의 치우강기를 염라장법에 가미했을 뿐인데도 단번에 다섯 명의 절정고수를 죽이고 일곱명을 부상 입혔다. 이것은 막비강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막비강으로서도 최초의 살인이다. 아무리 죽어 마땅한 자들을 죽인 것이라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 보다는 치우강기의 가공할 파괴력이 그를 더욱 전율하게 만들었다. 청구단서가 왜 천하제일의 비급이고 청구상인이 어째서 무성(武聖)이라 불리는지 이 일장으로 증명된 것이다.

헌데 막비강이 스스로 벌인 살육에 넋이 나가 있을 때였다.

[이 짐승같은 놈!]

[죽어라!]

동홍선생과 또 다른 한 노인이 살기 어린 고함을 지르며 동시에 막비강을 공격해왔다. 과연 그자들은 육요 칠절을 능가하는 고수라 장풍이 닿기도 전에 숨 막히는 압력이 밀려온다.

넋을 놓고 있던 막비강은 움찔하면서 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퍼펑! 콰쾅!

그 바람에 빗나간 두 노인의 장력이 지면을 강타하여 깊은 구덩이 두 개를 만들었다. 일장을 날려 깊이 석자에 폭이 일장 가까운 구덩이를 만든 두 노인의 공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자들이다!)

막비강은 두 노인이 오봉도인이나 우주도철에 그리 뒤지지 않는 실력의 소유자들임을 알고 내심 긴장했다.

[흐흐흐! 그동안 막장주로부터 후대를 받은 값을 해야겠군!]

[낄낄! 청구단서의 무공이 결코 절대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마!]

두 노인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흘리며 좌우에서 막비강에게 다가왔다.

막비강도 이번에는 방심하지 못하고 양 손에 치우강기를 운집시켰다. 그때였다.

[, 그만 두세요!]

문득 겁에 질려 물러선 사람들을 헤치고 하나의 날렵한 인영이 달려나왔다.

[() 노선배님! () 노선배님! 천첩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이 아이를 해치지 말아 주세요.]

달려 나온 날렵한 인영이 두 노인을 가로 막으며 애원했다. 뜻 밖에도 그 여인은 막고천의 다섯 번째 부인인 냉상영이었다.

냉상영이 가로 막자 두 노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상대는 자신들을 식객으로 맞아준 막고천의 첩인 것이다.

헌데 그들이 난감해할 때였다.

[비키지 못하겠느냐 천한 계집!]

지켜보던 막고천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냉상영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가했다.

[!]

막고천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허리를 걷어채인 냉상영이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머니!]

보고 있던 냉상영의 딸 막영란이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넘어진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허리가 걷어채여 스러진 냉상영은 충격이 컸는지 운신을 못하고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린다.

[이 간악한 악적!]

이 광경을 본 막비강은 대로하였다.

꽈릉!

그는 분노한 나머지 일장에 치우강기를 실어 막고천을 후려쳤다.

[으악!]

다음 순간 막고천은 외마디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그런 그자의 왼쪽 다리가 치우강기에 맞아 그대로 으스러져 버렸다.

[!]

[장주님!]

십악구흉등 살아남은 자들은 경악성을 지르며 막고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급히 막고천의 혈도를 찍어 지혈해 준 다음 들쳐업고 후원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홍선생과 또 한 노인은 막고천 옆에 서 있었지만 막비강의 출수가 너무도 쾌첩한 탓에 미처 막아볼 엄두도 못냈다.

[이 개잡종!]

[죽어라!]

다음 순간 두 노인은 분노의 폭갈을 터트리며 막비강을 덮쳐왔다. 과연 이 노인들의 공력은 심후하기 이를 데 없어 그들이 일단 공세를 발동하자 막비강은 숨이 콱 막히는 압력을 느꼈다.

막비강은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두 절세고수의 합공을 받자 경시할 수 없어 치우강기를 최대한 끌어내 마주 장력을 후려쳤다.

! 꽈다다당!

쌍방의 장력이 맞닥뜨리는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난무하고 바닥에 깊이가 다섯 자가 넘는 구덩이가 움푹 파였다.

[!]

[크억!]

흩날리는 폭음 속에서 세 마디의 신음과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막비강은 기혈이 요동쳐서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반면 두 노인은 피분수를 뿌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두 노인은 치우강기에 진탕되어 내장이 위치를 바꾸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 가세!]

[, 괴물같은 놈!]

겨우 바닥에 내려선 두 노인은 사색이 되어 몸을 날렸다. 단 일합의 격돌이었지만 천하오기에 필적하는 자신들조차도 막비강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달은 것이다.

막비강이 들끓는 기혈을 갈아앉혔을 때 명륜당 앞 마당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에 맞아 죽은 다섯 구의 시신만이 널려있을 뿐이었다.

혈검산장의 무리들은 막비강이 십악구흉등을 일장에 다섯 명이나 격살하고 막고천이 삼고초려하여 초빙한 두 명의 전대 기인조차도 간단히 패퇴시키자 공포에 질려 뿔불이 달아나 버린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 막비강은 그제서야 막고천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어머니 한경파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혈검산장의 무리들은 달아나면서 한경파와 냉상영등 여자들도 함게 끌고 사라진 것이다.

[막가야! 숨어도 소용없다!]

막비강은 사나운 고함과 함께 몸을 뽑아 올려 막고천 일행이 사라진 후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일단 생모 한경파를 막고천의 마수에서 구해내 혈검산장을 떠날 작정을 했다. 생모에게 상세한 내막을 물은 다음 부친 염라철장의 피맺힌 원한을 갚을 심산이었다.

 

* * *

 

(모두 어디로 사라졌지?)

헌데 후원에 들어선 막비강은 어리둥절해졌다. 그 짧은 사이에 막고천뿐만 아니라 생모를 비롯한 막고천의 처첩들도 모두 사라져 버려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주위에 내가 모르는 은밀한 밀실이 있구나!)

막비강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기다!)

이내 막비강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한쪽 옆의 담벼락 밑에 몇 방울의 핏자국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

콰쾅!

막비강은 즉시 그 담장을 향해 일장을 갈겼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담장이 왈칵 무너지며 과연 그 뒤쪽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 이젠 독 안에 든 쥐다! 막가 노적아!]

막비강은 온몸으로 살기를 토해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이 곧 끝나고 한 칸의 밀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출구가 없는 그 밀실은 텅 비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밀로가 있는 것일까?)

막비강은 갸웃하며 사방의 벽을 두드려 보았다.

텅텅!

헌데 벽을 두드리자 둔중한 금속성이 나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방이로군! 사방 벽이 철벽(鐵壁)이라니...! 만일 누가 이 안에 들어왔을 때 문을 봉쇄해 버린다면 꼼짝없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막비강은 갑자기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을 느꼈다.

(설마 함정(陷穽)?)

막비강은 질겁하며 다급히 밀실 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한걸음 늦고 말았다.

쿠쿠쿵!

돌연 육중한 굉음과 함께 입구가 다섯 치 두께의 철문으로 막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야앗!]

막비강은 사색이 되어 맹렬히 장풍을 날렸다.

꽈릉!

하지만 굉음과 함께 먼지가 우수수 떨어질 뿐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이런!]

막비강은 비로소 자신이 막고천이 판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고 신음했다. 그때였다.

[크크크! 꼴좋구나, 망나니 녀석!]

어디선가 악에 받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막고천이었다.

막비강은 분노하여 외쳤다.

[이 악적!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나서라!]

[흐흐! 네놈은 죽어 마땅한 패륜아다! 그 안에서 아사 직전이 되면 꺼내 주마!]

[닥쳐라!]

콰르르릉!

막비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맹렬히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철실 전체가 무너질 듯이 진동하며 요동을 쳤지만 벽은 깨어지지 않았다.

[크크크! 발악해 봐야 소용없다! 그 방은 사면이 한철(寒鐵)로 주조되어 만 근의 화약으로도 깨뜨릴 수가...!]

꽈르르릉!

막고천의 득의에 찬 음성은 다음 순간 요란한 폭음에 묻혀 버렸다. 막비강이 이번에는 치우강기를 최대한 일으켜 철문을 후려친 것이다.

우두둑!

그러자 굉음과 함께 철문의 중앙이 움푹 우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십여 번만 더 치면 무너뜨릴 수 있다!)

막비강은 새삼 치우강기의 위력에 놀라며 재차 장력을 날렸다.

콰드득!

이번에는 좀더 큰 폭음이 터지며 문의 형상이 이지러졌다.

[... 괴물 같은 놈!]

어디선가 지켜보던 막고천의 음성이 공포로 물들었다.

[독무! 독무(毒霧)를 안쪽으로 내뿜어라!]

푸스스스! 쉬익!

막고천의 두려움에 질린 일갈에 이어 철실의 사방 모서리에서 자욱한 운무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비강은 천오주를 지닌 탓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헛수고라는 걸 알려 주마! 곧 나가서 죽여 주마!]

꽈르릉!

막비강은 독무는 무시하고 다시 철문을 부수는 데 전념했다.

[으으으! 만독불침이란 말이냐? ... 가자!]

겁에 질린 막고천의 음성이 급히 멀어졌다. 독도 무서워하지 않는 막비강의 모습에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으하하하! 지옥 밑구멍이라도 널 숨겨 두지 못한다!]

! 콰쾅!

막비강은 살기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연신 장력을 후려쳤다.

헌데 그때였다.

(허억!)

막비강은 돌연 부르르르 몸을 떨었다. 갑자기 아랫배 깊은 곳에서 무서운 열기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 아차! 이놈이 다급한 김에 최음제(催淫劑)도 독무에 섞어 흘려보냈구나!)

막비강이 대경실색하여 호흡을 멈추었으나 이미 늦었다. 방심하는 사이 다량의 최음제를 들이마신 그의 전신은 삽시에 불덩이처럼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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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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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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