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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나는 가까이 있으나 먼 곳에서 왔느니 (4)

 

 

진양진인이 말했다.

[가장 뛰어난 검법인 태극혜검이다. 양의신공을 익히지 않고는 입문할 엄두도 못내는 절학이지. 할 수 있겠느냐?]

현천록이 말했다.

[동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그럼 구결을 외우게. 구결에 따라 내력을 운용하며 펼친다면 이보다 더 나은 내가검법(內家劍法)이 있을 수 없네.]

무당파 최고의 절학이라는 태극혜검의 구결은 두 가지로 천결과 지결로 나뉘어 있었다.

천결(天訣)은 태극혜검을 펼치기 위해서 각 초식마다 양의신공을 따로 운용하는 특이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지결(地訣)은 각 초식이 어떤 상황에서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것이며 그 효능을 분명히 해주는 비결이다.

태극혜검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의신공을 익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마음을 두가지로 나누어 사용하지 못하면 천결과 지결 역시 동시에 운용할 수 없고 위력은 크게 떨어지고 만다.

양의신공에 포함되어 있는 양심공으로 공력을 안팎으로 함께 운용해야 되는 것이니 만큼 태극혜검은 아주 특이하고도 그 위력을 직접 보기 전에는 실감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현천록은 진양진인의 지도에 따라 태극혜검을 모두 익혔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배가 아주 고팠다.

현천록이 건져올린 물고기를 진양진인이 삼매진화로 구웠다.

현천록은 시쳇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두 가지의 절기를 지닌 고수가 되었고 그를 고수로 변모시킨 진양진인은 오히려 자기가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현천록은 백금퉁소로 검을 대신해서 태극혜검을 연습했고, 그를 보며 진양진인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 자세에 너무 치중하고 있군. 자세를 잃지는 않아야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를 염두에 두어야 하네.]

진양진인은 보검으로 현천록을 가볍게 내질렀다.

태극혜검의 첫 번째 수법인 지일고승(指日高升)이었다.

현천록은 여섯 번째 수법인 고월침강(孤月沈江)을 펼쳐 보검을 걷어냈다.

진양진인은 즉시 수법을 바꾸어 우밀휘진(羽密揮塵)의 맹렬한 수법을 사용했다.

현천록은 비홍횡강(飛鴻橫江)을 써서 진양진인의 머리를 노렸다.

진양진인은 벽죽소영(碧竹掃影)을 사용했다.

지일고승이나 고월침강, 우밀휘진, 비홍횡강, 그리고 벽죽소영에서 볼 수 있듯이 태극혜검의 열 두 초식은 모두 수비와 공격을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진양진인은 처음에 열두초식을 펼쳐 초식만으로 일곱 번 현천록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에는 세 번만이 현천록의 초식을 뚫을 수 있었고,

세 번째에는 두 번의 기회를 가졌으며, 세 번째에는 아예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네 번째에 이르자 현천록의 태극혜검은 완벽에 가까워지면 마치 다른 검법처럼 보였다.

전체가 하나의 초식처럼도 사용되고 두 초식이 하나가 되기도 하며 한 초식이 나누어져 세 초식이 되기도 했다.

진양진인은 이런 변화에 깜짝 놀랐다.

현천록을 연습을 통해 단련시킨다는 목적이었을 뿐이었는데 태극혜검을 자기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번쩍 하는 순간에 진양진인은 화석처럼 굳어졌다.

찬바람이 이마에 몰려왔다.

그보다 먼저 현천록의 퉁소가 한치 앞에 멈춰있다.

지일고승! 진양진인이 제일 먼저 펼쳤던 수법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속에서 서로가 대결했으나 이미 초상감각을 터득한 두 사람은 보지 않아도 거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진양진인은 심장이 터질 듯 급박하게 뛰기 시작했다.

보검을 휘둘러 용도천문(龍到天門)과 한망충소(寒茫沖宵)를 잇달아 펼쳤다.

그러나 현천록의 소경심매(掃徑尋梅)는 말 그대로 길을 헤치고 매화를 찾듯이 용도천문과 한망충소를 뚫고 진양진인의 목젖에 다다랐다.

진양진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왈칵 두려움이 일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족족 자기를 능가해버리는 현천록에게 경이를 넘어 공포까지 느껴 지는 것이었다.

진양진인이 음성을 떨면서 물었다.

[자넨... 자넨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자넨 정말 사람이 아닐세.]

현천록이 말했다.

[제게 남이 갖지 못한 재주가 한가지 있을 뿐입니다.]

[어떤 재주인가? 자넨... 사제(師弟)의 예를 행하진 않았지만 내게 태극혜검을 배웠으니 그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진양진인이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현천록이 말했다.

[사람과 물건을 볼 줄 아는 재주입니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적합한지가 즉시 떠오르고 물건을 보면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금방 아는 재주지요.]

진양진인이 물었다.

[그럼 검을 보면 검법이 떠오르고 퉁소를 보면 부는 법이 저절로 떠오른단 말인가?]

현천록이 말했다.

[비슷합니다.]

진양진인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자넨... 생지지자(生知之者)로군! 전생에 아마 절세고수였던 모양일세.]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리는 없습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현천록은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귓속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

현천록은 서있던 곳에서 두 번이나 굴러서 눅눅한 바위에 떨어졌다.

[생지지자도 강호의 험난함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진양진인이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양의신공을 익혔다 해도 아직 부족한 화후로는 소천성(小天星)의 중수법을 견뎌낼 수가 없네. 무림에선 항상 가까이 있는 자를 경계해야하거늘 다음에 태어나거든 그때는 좀더 현명해지도록 하게.]

현천록은 잠시 충격을 받았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구장심조를 익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상태에 있는데 다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진양진인의 말은 그가 신화병기점에 있을 때 여러 무림인들로에게 듣곤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소천성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현천록은 정신을 잃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진양진인이 그토록 공을 들여 자기를 가르치고 이제와서는 또 왜 해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백 수십 살이나 먹은 신선같은 노인이 하는 짓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인데...

진양진인은 현천록을 안아서 자기가 누웠었던 편평한 장소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자네한테 내가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아네. 하지만 노도는 아직 죽을 수 없고 자네는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사람이네. 오히려 자네같은 사람이 마음을 한 번 잘못 먹고 나면 세상을 크게 해치지. 어느 누구도 자네를 막을 수 없을 테니 그 위험이야 오히려 더 크지 않겠나?]

현천록은 겨우 그런 이유로 자기를 해치는가 싶었다.

하지만 자기를 해치고 나서 진양진인은 일곱째인 장군묵의 손아귀를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도 궁금했다.

진양진인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자네가 뭘 궁금하게 여겼는지 대충은 짐작하네. 자네를 죽게 만드는 마당에 노도가 뭘 숨기겠는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말해주겠네. 듣고 말고는 자네 문제일세.]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노도는... 먼곳에서 왔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가고싶어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네. 바로 옥황신전(玉皇神殿)일세.]

현천록은 자기의 얼굴이 진흙처럼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진양진인은 말을 하면서도 특이한 수법으로 현천록의 얼굴을 바꾸고 있는 중이었다.

[노도가 옥황빙서(玉皇聘書)를 전달하는 옥황사자(玉皇使者)가 된 건 칠십 년 전이네. 그 이후 삼년 마다 한 장씩의 옥황빙서를 각각 주인을 찾아서 전달했네.]

진양진인은 자기의 수염을 떼서 현천록의 얼굴에 심었다.

말 그대로 진흙처럼 물러진 그의 얼굴에 수염을 하나하나 심은 것이다.

[옥황사자가 되어 옥황신전의 무공을 익히고 노도는 새로 눈을 떴었지. 하늘 밖에 존재하는 진정한 하늘에 대해서...]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머리카락마저 하얗게 만들었다.

[노도를 노리는 자들은 생각밖에 많다네. 특히 철인련맹은 유일하게 옥황신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곳이지. 그들은 옥황신전에 노골적으로 반항하며 항상 노도를 죽이려고 했네. 포두화상 그 도우가 철인련맹에 속해있네. 아마도 내가 옥황빙서를 가졌다는 소문을 낸 것도 철인련맹일 것일세.]

그가 중얼거리며 현천록을 주물럭거리는 동안에 현천록의 모습은 완전히 진양진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피부는 계수나무 껍질처럼 검버섯이 피었고 골격마저 노인의 골격으로 바뀌어버렸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하지만 여러 원인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모르겠네. 첫째는 왜 창허진인이 나를 쫓는가 하는 문제고, 둘째는 자네같은 기재들이 무엇 때문에 태어나는가 하는 거네. 세상에는 조금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지 귀재(鬼才)는 오히려 해롭다네. 수십년 동안 고수들을 만나고 옥황신전으로 초빙하는 사자의 역할을 하며 이런 저런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만 모두가 이해될 만한 사람들이었지. 하여간 자네는 죽게 되겠지만 내가 만난 최고의 인재라는 의미에서 옥황빙서를 주겠네. 이걸로 삼년 안에는 어느 누구도 옥황빙서를 얻지 못하게 됐네.]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화려한 옷을 벗기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여벌의 옷을 현천록에게 입혔다.

품에는 옥황빙서와 현천록의 소지품을 넣어주고 옷은 흐르는 물에 던져버렸다.

그런 후에 몇 개의 혈도를 찍었다.

현천록은 그 혈도들이 아혈(啞穴)과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 누르기만 하면 아무 소리도 입밖에 내지 못하는 혈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퍼퍼퍽!

가슴과 배에 세 번의 장력이 떨어졌다.

기혈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소천성의 장력이었지만 그다지 강하게 친 것 같지는 않았다.

 

현천록은 비로소 진양진인이 무슨 일을 꾸몄는지 확연하게 깨달았다.

진짜 진양진인은 가버렸지만 가짜 진양진인은 남아있다.

양의신공과 태극혜검까지 익히고 있는 가짜 진양진인이.

진양진인은 아마도 이런 상태까지는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천록이 어설픈 흉내라도 내다가 일곱째 장군묵에게 죽으면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천록에게 양의신공을 가르친 건 자기의 내공을 촉발시킬 수 있는 조력자로 만들기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태극혜검을 가르치게 된 것은 현천록이 양의신공을 익히는데 놀라운 소질을 보였기에 내친 김에 더 완벽하게 해보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정말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양의신공을 그처럼 빠르게 터득하는데 태극혜검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현천록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런 방법을 썼더라도 진양진인이 장군묵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면 아무런 할말이 없다.

내기는 이겨야 주장할 수 있으니까.

현천록은 몸을 일으켰다.

늙은이로 변해있었지만 속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마를 만져보니 천잠사로 만든 머리띠가 그대로 있다.

용의주도한 진양진인도 긴장했던지 머리띠를 벗기는 건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초상감각을 발휘해 현천록은 물에 떠내려가다가 바위에 걸려 있는 자기의 옷을 다시 찾았다.

진양진인은 벌써 멀리 갔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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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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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살성의 귀향

 

 

그날부터 막비강은 칠흑같이 어두운 우혈의 밀실 안에서 청구단서에 수록된 절예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청구상인의 무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치우강기(蚩尤罡氣)라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상고시대에 치우(蚩尤)는 황제(黃帝) 헌원씨와 세상의 지배권을 놓고 싸웠던 전설 속의 초인이다.

중원에서도 전신(戰神)으로 추앙받는 치우는 동방 청구에서는 상고시대 그들 종족이 모셨던 제왕의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청구상인의 무공 중 가장 중요한 강기신공(罡氣神功)에 치우의 이름이 붙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였다.

치우강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천하무적의 파괴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무공과 초식에도 쉽게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리 평범한 무공이라도 이 치우강기가 실리면 가공할 파괴력을 발휘한다.

청구절학의 고하(高下)는 바로 치우강기의 화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막비강은 식음도 잊고 신공수련에 몰입했다.

그와 함께 매일 한 뿌리씩의 하수오와 단호 한 병 분량의 영천석유가 사라져 갔다.

그렇게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어느 날 문득 공력을 돋우어 보니 전신이 후끈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기를 운용하는 대로 석벽에서 웅웅 울리는 소리가 일어났고, 호흡을 할 때마다 몸이 깃털처럼 허공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치우강기가 구체적으로 발현(發現)되는 수준인 오성(五成)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막비강은 자기의 공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한천을 향해 일장을 뻗어냈다.

꽈르릉!

그러자 굵은 물기둥이 공중으로 수십 장이나 치솟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

막비강은 그제서야 비로소 자기가 광세절학(曠世絶學)을 연성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막비강은 자신이 치우강기를 십 성(十成) 수준까지 올리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성의 치우강기로도 천하무적(天下無敵)은 장담할 수 없어도 충분히 강호를 호령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막비강은 청구절학의 수련을 중단하고 출도할 결심을 하였다.

사실 그때는 이미 대부분의 하수오가 사라져 석벽이 드러난 상태였다.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청구단서를 얻은 후 불과 일 년 여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러나 막비강에게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가 생겼다.

치기가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던 그는 어느덧 건장하고 영준한 청년으로 변했으며 무공도 일류 중의 일류고수가 되어 천하오기도 능가할 정도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뿌리의 하수오와 마지막 한 모금의 영천석유를 마신 그는 선사(先師) 청구상인의 유명(遺命)에 따라 비급을 옥합 속에 넣어 한천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진기를 한 모금 끌어올려 단숨에 우혈 위의 동굴에 올라섰다.

 

* * *

 

막비강은 우혈에서 나온 즉시 경신술을 전개하여 영롱탑이 있는 경지하 변에 도착했다.

때는 새벽무렵이다. 당연히 영롱탑 근처에도 인적이 없다.

막비강은 조씨부인 일가의 집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시 그곳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지난 일 년 사이 집터에 잡초만 무성해져서 한 층 더 을씨년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조씨부인의 집터에서 서성이며 막비강은 여러 가지 생각을 굴렸다.

(복수를 먼저 할까, 아니면 신세를 먼저 조사할까? 참! 염라철장께서 말씀하신 전포(田袍)라는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그러다가 그는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지금 나의 무예로 막고천을 격살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니 직접 혈검산장으로 찾아가자! 막가 악적을 생포하여 심문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전포를 찾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지.)

그는 직접 막고천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스악!

결심을 한 막비강은 즉시 허공으로 몸을 뽑아올렸다.

다음 순간 그의 모습은 새벽의 어둠 속으로 유령같이 사라져 버렸다.

 

* * *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었을 무렵, 종남산 자락에 자리한 혈검산장 정문 앞에 한 명의 영준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의 나는 듯한 걸음걸이는 곧장 문을 박차고 뛰어들 것만 같았다.

[멈춰라!]

정문을 지키고 있던 네 명의 장한이 급히 청년의 앞을 가로 막았다.

네 명의 장한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눈이 부리부리한 장한이 청년에게 말했다.

[무슨 일로 본장을 찾아왔느냐?]

청년이 검미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서평(徐平), 너는 어찌 나를 몰라보느냐?]

서평이라 불린 건장한 장한은 어리둥절하여 청년을 아래 위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제 보니 둘째 도련님이시군요. 삼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에 이렇게 건장한 청년이 되셨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서평은 여기까지 말하더니 곧 정문 안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둘째 도련님께서 돌아오셨다! 둘째 도련님께서 돌아오셨다!]

그의 고함 소리를 들은 정문 안쪽의 사람들이 황급히 후당(後堂)으로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막비강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통보할 필요 없다. 내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어른들을 만나겠다.]

그러자 서평이 난색을 지었다.

[둘째 도련님, 지금의 본장은 지난날과 크게 달라 어느 누구도 무단히 출입할 수가 없습니다.]

막비강은 이마를 찌푸렸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그럼 장주님이라도 산장을 들고 날 때는 누군가에게 통보를 해야 한단 말이냐?]

막비강의 말에 서평은 말문이 막혀 대꾸를 못했다.

그때 문 안쪽에서 여러 사람이 이리 저리 부산히 움직이더니 몇 사람이 나는 듯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자들 중 우두머리는 살이 없는 강팍한 얼굴에 눈빛이 얼음같이 차가운 초로의 장한이었다.

그가 바로 혈검산장의 총관인 혈적수(血滴手) 원인초(元人初)란 인물이다.

원인초는 그 지닌 바 실력이 육요, 칠절에 필적한다고 알려진 흑도의 거효(巨梟)인데 막고천의 초청을 받아 혈검산장의 총관일을 맡고 있었다.

[이(二)소장주께서 드디어 돌아오셨구려. 신태비범해지신 것을 보니 이미 청구단서상의 절학을 연성하신 모양이외다. 경하드리오!]

혈적수 원인초가 손을 모으며 말했다.

공손하게 말하는 원인초를 보는 순간 막비강은 절로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삼 년 전 혈검산장을 떠나기 전까지 혈검산장의 수하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막비강을 멸시하고 천대했던 자가 바로 총관인 원인초였기 때문이다.

원인초로부터 받은 온갖 수모와 능멸이 떠오르자 막비강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하지만 막비강은 웃음을 머금으며 마주 포권을 했다.

아직 막고천의 상판도 못 봤는데 그의 졸개인 원인초와 시비를 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원총관! 내게 너무 공손하실 필요 없소. 그보다 장주께선 지금 안에 계시오?]

원인초는 얄팍한 입가에 교활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이미 통보했으니 장주께선 곧 영접하러 나오실 것이외다.]

[내가 직접 들어가서 만나면 안 되오?]

[소장주는 외인이라 자처하고 부친을 장주라 불렀으니 부자의 정이 끊어졌음이 분명하오. 그러므로 장주의 분부 없이는 장원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소.]

막비강은 원인초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장원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비록 큰 소리는 나지 않지만 급히 서두르는 발자국 소리와 나직 나직한 호령소리들이 들린다.

갑작스런 막비강의 귀향에 혈검산장의 인물들이 놀라 대응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마도 혈검산장 안에서는 유사시를 대비하여 고수들을 총 동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비강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때 대문 안에서 이십 삼, 사세쯤 된 건장한 청년이 달려나오며 외쳤다.

[둘째! 아버지께선 너를 명륜당(明倫堂)에서 만나시겠다고 하셨다.]

그 청년이 바로 막고천의 장남인 막불계(莫不戒)로 막비강보다는 네 살이 위였다.

[알겠소!]

막비강은 응답을 한 후 막불계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명륜당은 혈검산장에서 중대한 사건을 처리하는 일종의 형당(形堂)이다.

이 무렵 명륜당 주위에는 백여명의 무사들이 병기를 든 채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막비강이 막불계를 따라 명륜당 안으로 들어가니 낯 익은 얼굴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혈검산장의 장주인 금사혈검 막고천은 상좌에 놓인 호피를 깐 태사의에 거만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삼년전과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막고천의 모습을 본 순간 막비강은 가슴 속에서 살기가 불끈 치솟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구박한 것을 그렇다 쳐도 가엾은 어머니를 창녀처럼 다루던 그자의 만행이 떠오른 때문이다.

막비강은 필사적으로 살기를 억누르며 명륜당에 모인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우선은 어머니 한경파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리고 한 차례 명륜당 안을 둘러본 그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만하게 앉아있는 막고천 뒤에는 하나같이 천하절색인 중년미부 여섯 명이 시립하고 있다.

삼십대 중반에서 사십대 후반까지의 나이인 이 미녀들이 바로 막고천의 일처오첩(一妻五妾)이다.

막고천의 여섯 아내 뒤쪽에는 다시 여섯 명의 젊은 여자들이 서있다.

막고천의 아내들이 낳은 딸들이다.

그들 중 둘은 본처 소생이고 넷은 첩들의 자식이다.

헌데 막고천의 여섯 아내 중 한 명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다.

연약한 몸매에 파리한 안색을 한 그 중년미부가 바로 막비강의 생모인 한경파였다.

(어머니!)

한경파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막비강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구해 혈검산장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막고천과 그의 부인들 앞쪽에는 수십명의 인물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눈빛이 형형하고 기세가 사나워 한 지역의 패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자들!

그들이 바로 강호에 악명이 자자한 혈검산장의 십악구흉(十惡九兇)과 칠열팔준(七烈八駿)이다.

이 서른 네 명의 고수들이야말로 혈검산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막고천 외에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은 단 둘이다.

막고천 좌측에는 선풍도골의 풍모를 지닌 고희를 넘긴 노인 두 명이 앉아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 노인들은 장내에 있는 누구보다고 강한 실력의 소유자들로 보인다.

막비강은 두 노인은 처음 본다.

아마도 그가 혈검산장을 떠난 후 막고천이 초청한 강호의 기인들인 모양이다.

[흥!]

명륜당을 한 바퀴 돌아본 막비강은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막고천은 막비강이 안하무인격으로 굴자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불효자식 같으니! 빨리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하지만 막비강은 고개를 쳐들고 오만하게 대꾸했다.

[막고천! 너는 그래도 내 아버지 행세를 할 생각이냐? 오늘 나는 네놈의 목숨을 뺏으러 왔다.]

그러자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던 한경파가 고개를 번쩍 들며 막비강을 꾸짖었다.

[강아! 너 미쳤느냐? 아버지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빨리 무릎을 꿇어라!]

낳아준 어머니가 호통을 치자 막비강은 하는 수 없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아직도 이 어미를 기억하고 있다니, 너는 역시 착한 아이구나.]

한경파는 막비강이 순순히 자기 말을 따르자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만 두시오 삼(三)부인!]

그 순간 막고천이 한경파의 팔을 거칠게 잡아채며 고함을 질렀다.

[저런 불효막심한 자식에게 당신은 아직도 사랑을 베풀 생각이오?]

어머니의 가냘픈 몸이 막고천의 손에 잡혀 비틀거리는 것을 본 막비강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며 눈을 부라렸다.

[노적! 너는 왜 나의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강제로 빼앗았느냐?]

이 말이 떨어지자 막고천 뿐 아니라 한경파도 온몸을 세차게 떨었다.

그리고 막고천의 다섯 부인들도 모두 안색이 일변했다.

하지만 한경파는 곧 격동을 가라앉히며 막비강을 꾸짖었다.

[강아! 이 무슨 무례한 언동이냐? 네 부친께서 네 아버지로부터 강제로 나를 빼앗았다니! 누가 네게 그런 헛소리를 하더냐?]

막비강은 굳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럼 어머니는 자진해서 저자에게 시집을 왔단 말입니까?]

막비강이 막고천을 가리키며 말하자 한경파의 가녀린 교구에 다시 한 번 세찬 경련이 스쳤다. 그녀의 얼굴은 보기에도 안쓰럽게 파리해졌다. 지극히 심한 충격을 받았고 심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의 이같은 반응을 본 막비강은 자신의 의심이 사실임을 확신했다. 해서 이를 악물며 생모를 몰아붙였다.

[말씀해보십시오! 어머니는 저자와 자의로 결합했습니까?]

그러자 잠시 파르르 떨던 한경파는 대답은 못하고 고개만 겨우 끄덕였다. 그녀는 두려움이 실린 표정으로 연신 막고천의 눈치를 살핀다.

막비강은 어머니가 본심을 숨기고 막고천을 지아비라고 인정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얼굴을 분노의 빛으로 물들이며 코웃음을 날렸다.

[흥! 그럼 어머니에게는 남편이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저... 저런 패륜무도한...!]

막비강의 이 무엄한 말에 장내의 인물들은 분노의 노성을 질렀다.

한경파도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가냘픈 교구는 애처롭게 떨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안색을 가다듬으며 처연하게 말했다.

[하나의 안장은 수만 마리의 말 등에 올릴 수 있지만 한 마리 말은 동시에 두 개의 안장을 올릴 수 없다. 이 어미의 남편은 네 아버지 한 분뿐인데 어찌 다른 남편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막비강은 눈에서 차가운 안광을 토하며 날카롭게 외쳤다.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진짜 나의 부친은 누굽니까?]

그러자 한경파는 서럽게 흐느끼며 대답했다.

[강아! 지난 몇 년 동안 너는 도대체 무얼 잘못 배웠기에 어미에게 그런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느냐? 너의 진짜 부친은 네 면전에 계시는 장주님이시다.]

하지만 막비강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럼 염라철장이란 분은 누굽니까?]

한경파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염라철장이라니? 어미는 그런 사람 모른다.]

다른 처첩들도 웅성대며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때 막고천이 격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불효막심한 놈! 빨리 무릎을 꿇고 사죄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네놈이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염라철장에게 속았음이 분명하구나.]

막비강은 냉소를 날렸다.

[흥! 나는 신분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 만약 내가 너의 자식이라는 것을 네가 증명한다면 나는 즉시 자진을 해서 무례한 행위에 대한 사죄를 하겠다.]

막고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앉더니 치를 바르르 떨었다.

[불효막심한 놈이 말 하는 꼴이 갈수록 가관이구나. 네 어미가 나와 결혼하여 너를 낳았음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무슨 증명이 필요하단 말이냐?]

막비강은 검미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나의 모친이 너와 결혼한 것은 사실이고 네가 나를 양육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네 자식이 아니다.]

[당치 않은 소릴 계속 지껄일 테냐?]

[내 말은 절대 당치 않은 소리가 아니다.]

막고천의 노갈에 막비강도지지 않고 마주 외쳤다.

[나는 형제자매들 중에서도 유달리 냉대를 받았다. 너는 내게 무예도 가르치지 않았고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귀여워해 주지도 않았다. 네가 정말 나의 부친이 틀림없다면 중인들 앞에서 피를 섞어 시험해볼 용기가 있느냐?]

막고천은 피를 뽑아 시험하자는 말을 듣더니 안색이 일변했다.

본래 피를 나눈 부모 자식간의 피는 무리없이 섞이지만 서로 다른 피는 완전히 혼합되지 않는 법이다.

막비강은 남산의성으로부터 이같은 이치를 배워 알고 있었다.

[이 패륜무도한 놈이 이젠 반란을 일으키려는구나!]

막고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막비강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혼혈(混血)하여 혈친 관계를 시험하자니! 삼부인! 이놈은 당신이 낳았으니 당신이 직접 사로잡으시오!]

막고천의 그 말에 한경파는 안색이 일변하여 막비강에게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강아! 너는 스스로 포박을 받지 않고 어미로 하여금 손을 쓰게 만들려느냐?]

막비강은 검미를 치켜 올리며 단호하게 대꾸했다.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는 나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막고천은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렸다.

[낄낄낄, 좋다! 혼혈친인(混血親認)의 시험을 하고 싶다면 해주겠다. 그 시험으로 사실이 밝혀지면 네놈이 또 무슨 말을 하는지 두고 보겠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비녀들에게 명령했다.

[물을 한 그릇 떠와라!]

명륜당에 운집한 사람들은 모두 긴장한 채 부자가 피를 섞어 친자 여부를 증명하는 시험을 지켜보았다.

비녀가 물을 대야에 떠오자 막고천은 한경파에게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먼저 피를 떨구시오!]

한경파는 전전긍긍하며 품속에서 비수를 뽑아 왼손 약지 끝을 찔러 선혈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붉은 피는 대야의 물 속에 떨어지자 붉은 구름처럼 신속하게 확산되었다.

막고천도 한경파에게서 비수를 받아 중지 끝을 찔러 핏방울을 물그릇에 떨구었다.

물 속에서 만난 부부의 피는 완만하게 섞이기 시작했다.

[불효막심한 놈아! 너도 와서 핏방울을 떨구어라!]

[흥!]

막비강은 코웃음을 날리더니 허리춤에서 강장을 꺼내 들며 빠르게 어머니와 막고천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두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약간의 실마리나마 찾아낼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경파는 시종 고개를 숙인 채 계속 혼합이 진행되는 피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고천이 또 흉흉하게 외쳤다.

[이놈! 빨리 피를 떨구지 않고 무엇 하느냐?]

막비강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흥! 정말 가증스런 한 쌍의 간부음부(奸夫淫婦)군.)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이 들고 있는 강장을 보지 않는 것과 막고천이 빨리 손을 쓰라고 재촉하는 것을 본 막비강은 어머니가 본래의 남편을 배반하고 막고천과 재혼했다고 단정했다.

자연히 어머니 한경파에 대해 심한 반감이 일어났다.

그는 분노에 떨면서 강장의 날카로운 손톱 부분으로 왼손 약지를 살짝 찔렀다.

일순, 한 줄기 선혈이 흘러 그릇 속에 떨어지더니 막고천 부부의 피와 혼합되어 신속하게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피가 잘 혼합되는 것은 막고천과 막비강이 친혈육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막비강은 이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막고천은 득의의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불효막심한 놈! 그래도 할말이 있느냐?]

막고천은 고함을 치며 막비강에게 강력한 일장을 후려쳤다.

펑!

두 사람의 거리는 석 자도 되지 않았고 막비강은 또 조금도 방비하지 않고 있던 터라 막고천의 일장에 그대로 가슴을 얻어맞았다.

사패천 중 서패천 혈검산장의 장주인 금사혈검은 육요 칠절을 능가하는 고수다.

그런 그자의 일장을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고 무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쿵! 쿵!

막비강은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연달아 다섯 걸음이나 후퇴했으며 입가로는 한 줄기 피가 흘렀다.

만일 그가 금강옥액을 복용하여 몸이 무쇠처럼 단단해지지 않았다면 막고천의 이 독랄한 일장에 즉사했거나 죽지 않았다고 해도 회복 불능이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내 자식을 때리지 마세요!]

막고천의 일장에 가슴을 얻어맞은 막비강이 피를 흘리며 물러서는 것을 본 한경파가 울음을 터뜨리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두 팔을 활짝 벌려 막비강 앞을 가로막았다.

다행히 막고천은 다시 막비강을 공격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고 얼어붙어 있었다.

(저놈이 죽지 않다니...!)

전력을 기울인 자신의 일장을 정통으로 얻어맏고도 그저 몇 걸음 물러섰을 뿐인 막비강의 모습이 막고천에게는 괴물처럼 보인다.

막비강은 비록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심한 타격은 입지 않았다.

그저 일시에 기혈이 흔들여 역류했을 뿐이다.

헌데 우연히 옆으로 시선을 돌리던 막비강은 막고천의 첩 중 한 명이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바로 막고천의 다섯째 부인 냉상영(冷祥英)이었다.

냉상영은 웬일인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소생인 딸 막영란(莫英蘭)에게 부축되어 몸을 떨고 있었다.

막영란은 막비강보다 두 살 어린 열 일곱 살이다.

이것은 실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막비강이 막고천에게 맞았는데 왜 다섯째 부인인 냉상영이 괴로운 표정을 짓는 것일까?

막비강은 비록 이상하다고 느껴졌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비키시오!]

펑!

정신을 수습한 막고천이 한경파를 거칠게 밀어내고는 또 다시 일장을 날려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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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무림기보 소개>

 

1983년 5월 경에 전 5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박스본은 전권을 박스 하나에 포장하여 만화방에 대여용으로 출간한 형태를 말합니다.

무려 37년 전의 작품입니다.

문장은 거칠고 구성은 허술하며 이야기 전개는 고루한 면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이런 작품도 있었지 하는 마음으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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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기정무협소설

        천세무림기보(千世武林奇譜)

 

 

序 章

 

 

 

 

 

강호무림에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세 가지 기서(奇書)에 대할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름하여 삼대기서(三代奇書)라 불리는 이 삼종의 비급은 수천 년 무림사에 있어 가장 많이 인구에 희자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경총요(武經總要)>

 

삼백 년 전, 한 명의 절대기재(絶代奇才)가 있었다.

그는 한 번 본 무공은 절대 잊지않는 재주를 지녔다.

그뿐 아니라 그는 아무리 난해한 무공초식이라도 즉시 시전해 보일 수 있으며 또한 완벽해 보이는 무공이라도 단번에 파해하는 비상한 재주를 지닌 기인이었다.

 

-천안귀재(天眼鬼才) 공손무기(公孫武奇).

 

그의 이름이다.

그에게는 적이 없었다. 아니 누구도 그와 맞서려 하지 않았다.

그와 겨룬다는 것은 곧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공손무기는 고독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천하제일기재(天下第一奇才), 이런 명칭조차도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

누구 하나 그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년에 그는 한 권의 책자를 만들었다. 자신의 모든 지혜를 짜넣은 기서를!

그것이 바로 무경총요(武經總要)였다. 삼대기서 중에서도 제일의 위치에 있는.

무림인들은 무경총요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경총요를 얻으면 천하제일의 기재가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림천년기전(武林千年奇典)>

 

천 이백 년 전, 검군자(劍君子)라는 인물이 있었다.

검에 관한한 그는 무적이었다. 당시에 검군자의 십검(十劍)을 받은 인물이 전무할 정도로 그의 검술은 신인의 경지에 닿아 있었다.

그는 당시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었다.

천하제일로 군림하기 삼십 년, 그는 명예로운 봉검(封劍)을 선언하였다.

아울러, 무도를 진작시킬 숭고한 뜻을 무림에 알렸다.

 

<천하제일인의 보좌를 잇는 인물에게 본인의 검학이 담긴 신검경(神劍經)을 주겠노라.>

 

무림은 들끓었다.

보통사람들은 천하제일의 검학을 얻기 위해 날뛰었다.

그와함께 사해구주에 은거해 있던 기인이사들은 천하제일의 명예를 차지하려고 녹슨 무기를 닦았다.

무림인들은 태산(泰山)에 숭무전(崇武殿)을 세우고 그곳에서 천하제일을 가렸다.

결국, 두 번째 천하제일인이 나왔다.

곤천신필(崑天神筆)이라는 필법(筆法)의 명인이 바로 그였다.

약속대로 전대의 천하제일인 검군자는 곤천신필에게 자신의 절학이 담긴 신검경을 주었다.

그러나 곤천신필은 신검경을 한 번 본뒤에 검군자에게 정중히 반환하였다.

그 자신도 만인이 공인한 천하제일인. 검군자의 절기가 아무리 뒤어나다고 해도 그것을 익히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감탄한 검군자는 신검경과 자신의 병기인 천인검(天刃劍)을 숭무전에 기탁하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곤천신필도 명예로운 은퇴를 하였다.

그 역시 자기의 병기인 한 쌍의 옥령신필(玉靈神筆)과 곤천필보(崑天筆譜)를 숭무전에 남겼다.

이것이 전통이 되었다. 숭무전에 자신의 무공을 남기는 것이 무림인들에게 최대의 영광이 되었다.

그후 오백 년, 즉 지금부터 칠백 년 전까지 모두 열 명의 천하고수가 숭무전에 무공을 남겼다.

제 삼대 승천마도(昇天魔刀),

그는 폭혈참신도보(爆血斬新刀譜)와 승천마도(昇天魔刀)를 남겼다.

 

제 사대 낙일도룡(落日屠龍),

그는 낙일산화경(落日散花經)을 남겼다.

 

제 오대 혈천사객(血天邪客),

사도제일인(邪道第一人)이던 그의 혈천사종보(血天邪宗譜)가 숭무전에 올랐다.

 

제 육대 공령천존(空靈天尊),

고금제일의 신투였던 그는 자신의 절기가 실린 공령비경(空靈秘經)을 숭무전에 바쳤다.

 

제 칠대 천하제일인은 태령자(太靈子),

그를 주목하자! 그는 지금까지의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도가제일인(道家第一人)이었다.

그예로 제 오대 천하제일인 혈천사객이 태령자의 손에 삼십초를 못견디고 패했다.

하여튼, 그도 자신의 무공을 승무전에 남겼다.

태령진경(太靈眞經)이 그것이다.

 

제 팔대 천음자(天音子),

음률의 대가로 특히 고금(古琴)을 잘 다루었다. 그의 무공은 균천악보(龜天樂譜)로 대표된다.

 

제 구대 인물은 제왕수(帝王手),

그는 천하제일의 신공이라는 제왕신공(帝王神功)이 실린 제왕경(帝王經)을 남겼다.

 

제 십대 음혼우사(陰魂羽士),

그의 무공은 음혼빙백경(音魂氷魄經)에 실려있다.

 

제 십일대 신풍무영(神風無影),

경공의 대가로 그의 신품무영보(神風無影步)는 천하오대경공(天下五大輕功)의 하나이다.

 

마지막 제 십이대 인물은 신륜천왕(神輪天王)이라는 고수다.

그의 파천마륜(破天魔輪)은 가히 게세무적이었다.

 

이상의 십이인이 숭무전에 남긴 비급을 통틀어 무림천년기전이라고 한다.

헌데, 신륜천왕을 끝으로 숭무전은 폐허화 되었다.

숭무전이 신비의 집단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초토로 변한 것이다.

그와함께 무림천년기전은 경원히 무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삼대기서 중 마지막은 한 권의 책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실로 방대하기 이를데 없는 비급들의 총칭일 따름이다.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

 

삼대기서중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지만 그것은 구류만상경에 대하여 별달리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천세문(千世門)이라는 신비방파의 이천 년 심원이 깃든 서술서다.

천세문이 이천 년 동안 무림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기인이사와 문파들의 무공을 수집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불(). (), (), (), (), (), (), ()의 구류(九流)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구류만상경(九流萬象經)인 것이다.

 

이상이 삼대기서에 대한 전설이다.

헌데, 무림천년기전이 단절된지 칠백여 년 세월이 흐른 당금, 뜻하지 않게도 구류만상경으로 인해 거대한 혈운이 중원천지를 뒤덮게 되었으니...

이천 년 중원무림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혈풍이 한바탕 중원을 뒤흔들어 놓게된다.

구류만상경이 발단이 된 이 혈풍, 누가 있어 이 끔찍한 피바람을 멎게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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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긴 복도. 천장 중간 중간에 빛이 나는 구슬이 박혀 있어 밝다. 구슬들은 천장 안쪽 흠에 박혀있어서 아래쪽으로 덮개가 닫히면 빛이 사라지는 구조. 요즘의 매입 조명 같은 형태. 전체 길이는 30미터 정도. 양쪽 끝에 문이 있는데 한쪽 문은 열려있다. 천장과 벽과 바닥에 가는 선들이 수없이 나있다. 그 선들 중 일부에는 칼날들이 숨겨져 있다.

한쪽 복도 끝, 열린 문 밖에 모여 있는 청풍과 같은 조 아이들. 무기는 지니고 있지 않다. 청풍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복도를 보고 있고. 청풍의 뒤로는 정정과 철두, 다른 아이들이 있다. 여자는 정정을 포함해서 네명인데 모두 긴장한 모습. 하지만 눈빛이 강하고 자신감이 차있는 표정들이다.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복도. 하지만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있는 청풍.

! ! 청풍의 손바닥이 약간씩 진동하고.

[...] 뭔가 생각하며 손바닥을 복도 바닥에서 떼는 청풍

정정; [어때?]

청풍; [좌우의 벽과 천장 뿐 아니라 바닥에도 기관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정정; [그럼 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칼날에 맞아 죽을 수도 있네.] 휘이! 휘파람 불고. 놀라지만 두려워하진 않는 표정이고

철두; [천장, 양쪽 벽, 바닥등 네 방향에서 동시에 칼날이 튀어나오면 정신없겠는걸.] 휘파람을 불고

청풍; [그동안 매영보법을 집중적으로 익힌 보람을 느껴볼 때가 되었다.] 돌아서서 아이들을 돌아보고

끄덕이는 아이들

청풍; [매영보법의 특징은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무게를 분산시켜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복도에 설치 된 기관장치들은 바닥을 누르는 무게에 의해 가동된다.] 건너편을 보며

청풍; [, 바닥을 밟을 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무게를 가하지 않으면 기관장치는 발동하지 않는 것이다.]

정정; [제구관, 잔관(殘關)을 통과하기에는 매영보법이 최적이네.]

청풍; [그런 셈이다.] 끄덕

정정; [이번 관문에서 가장 불리한 건 철두 너겠어.] [아무리 매영보법을 펼친다 해도 남보다는 더 무게를 가하게 될 테니까.]

철두; [남 걱정 말고 정정 너나 몸에 흠집 안나도록 조심해라.] 코웃음

철두; [요즘 보니 너 살찐 것 같더라.] 곁눈질로 정정의 몸매 훑어보며 히죽

정정; [이게 감히 여자의 치명적인 비밀을...] ! 철두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치며 눈 부라리고. + 철두; [어디를 모기가 무나?] 꿈쩍도 않고 히죽거리는 철두

정정; [오냐! 어디 모기한테 실컷 물려봐라!] 퍼퍽! 연달아 철두를 때리고. 그때

청풍; [건너편까지의 거리는 십장 정도, 대략 열 걸음 정도 걸릴 것이다.] 건너편을 보며 말하고.

철두와 투닥 대던 정정도 돌아보고

청풍; [그리고 내 예상인데 건너는 도중 천장에 박혀있는 야광주(夜光珠)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천장에 매입 형태로 박혀서 빛을 내는 구슬들을 보고

정정; [... 어둠 속에서 기관장치과 발동하면 피하기 힘들 텐데...] 침 꼴깍! 다른 아이들도 긴장하고

청풍;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거 없다.] [우린 지금까지 매일 매일 죽을 고비를 넘겨오지 않았느냐?] 겁먹은 아이들을 격려하고

철두; [청풍이 말이 맞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라도 숨어 들어갈 수 있고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청풍의 말에 맞장구치고

그러자 겁먹었던 아이들 얼굴이 펴지고 끄덕이고

청풍; [내가 먼저 건너겠다.] 앞으로 조금 나가고.

청풍; [열 걸음으로 건널 테니 내가 어디를 딛고 그때 기관장치가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지 기억해둬라.] ! 몸을 나리고

! 넓이 뛰기 하듯 한쪽 발로 바닥을 찍고. 순간.

스악! ! 천장, 바닥, 좌의 벽에서 휘어진 얇고 긴 칼날들이 벼락같이 튀어나와 청풍의 몸을 벤다

[!] [!] 정정과 아이들 아연긴장 할 때

! ! 몸을 순간적으로 틀고 걸음을 자잘하게 해서 칼날들을 피하는 청풍

! 다시 도약해서

! 또 한 발로 바닥을 찍는 청풍, 공격했던 칼날들은 다시 벽으로 들어가고 있고

스악! ! 이번에도 또 칼날들이 튀어나오는데 처음과 방향이나 각도가 다르다

휘익! 물론 이번에도 피하는 청풍

정정; [칼날이 공격하는 방향과 각도를 잘 기억해둬라!] 외치며 자신도 눈을 치뜨며 보고

! ! 연달아 건너 뛰어가는 청풍. 그때마다 여기저기서 벽에서 칼날들이 튀어나와 청풍을 공공격한다.

정정; (청풍이라면 바닥을 거의 누르지 않고 매영보법을 펼칠 수 있다.) 긴장해서 보며 생각하고

<하지만 일부러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건너가고 있다. 우리들에게 기관장치가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난무하는 칼날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몸을 날리는 청풍을 배경으로 정정의 생각.

정정; (역시 청풍이에게 빌붙은 게 탁월한 선택이었어!) 배시시 웃고. 그때

! 휘익! 마지막 한 걸음으로 도약해서 건너편 문 앞에 이르는 청풍. 헌데

스악! ! 문에서도 칼날이 튀어나와 청풍을 공격하고

정정; [조심...] 자기도 모르게 외치고. 철두와 아이들도 기겁하지만

! 자연스럽게 피하며 문을 손바닥으로 치는 청풍.

그긍! 문이 좌우로 열리며 또 다른 복도가 나타난다.

[!] [휴우!] [그러면 그렇지!] 안도하는 정정과 아이들. 그때

청풍; [내가 건너는 동안에는 조명이 꺼지지 않았다.] 열린 문 앞에서 돌아서며 건너편을 보며 말하고

흠칫! 하는 아이들

청풍; [하지만 언제 조명이 꺼질지 모르니 조심해서 건너와라.]

정정; [!] 손을 들며 외치고

정정; [그럼 이 언니가 먼저 건넌다. 잘 봐라.] 뒤쪽의 여자 아이들에게 말하고.

세명의 여자 아이들 끄덕이고

정정; [차핫!] ! 과장되게 날아오르고.

! 청풍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을 밟는 정정

똑같이 칼날들이 튀어나오고.

휘익! 청풍이 했던 대로 피하며 다시 날아오르고

여자 아이들과 철두가 긴장하며 보고

! ! 연달아 건너뛰는 정정. 사방에서 칼날들이 난무하지만 요리조리 피하며 건너뛰고.

손에 땀을 쥐며 보는 여자 아이들. 헌데

! 정정이 중간쯤에 이르러 바닥을 찍었을 때

스악! 야광주가 박혀있는 구멍들 하단에서 가림막이 일제히 튀어나와 구슬들을 가려버린다. 단번에 깜깜해지고

[조명이 사라진다!] [조심해!]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외치고

[!] ! 놀라면서도 몸을 날리는 정정

[제발...] [... 어떻게 된 거지?] 철두와 아이들 어둠 속에서 긴장할 때

스륵! ! 조명을 가렸던 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며 밝아진다.

건너편에는 정정이 서서 휘청거리고 있고. 청풍이 정정의 팔을 잡아 부축한다.

[!] [무사히 건너갔다!] 안도하고

청풍이 정정의 팔을 잡아 뒤로 끌고 있고. 정정은 옆구리를 잡고 비틀거리며 몸을 바로 세우고 있다. 옆구리 부분의 옷이 갈라져 있고 피가 좀 비친다

철두; [다쳤냐?] 걱정되어서 외치고

정정; [괜잖아. 그냥 좀 긁힌 것뿐이야.] 돌아보며 외치고

[!] [!] 안도하는 아이들. 이어

철두; [사내놈들부터 건너라. 난 맨 나중에 건너겠다.] 돌아보며 말하고

[그러자.] [내가 먼저 간다.] ! 나서는 사내 아이들. 그중 한놈이 먼저 건너뛰고

칼날이 난무하지만 잘 피한다.

연달아 건너뛰는 아이들. 한 번에 여럿이 건너간다. 이번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143>

위의 장면이 비치는 모니터.

의자에 앉아서 보고 있는 소수마녀. 소수마녀 앞쪽에는 조종장치가 죽 달린 길쭉한 탁자가 있고 그 건너편 벽에 여러 장의 얇은 수정판이 붙어있다. 수정판에는 비밀거점의 여기저기가 비치는데 그 중 하나가 청풍 일행을 비추고 있다. 소수마녀 뒤에는 파면살주, 귀파파, 천살로, 독검사랑등이 서서 보고 있다.

파면살주; [지금 본 것 같은 과정이 지난 반년 간 반복되었네.] 소수마녀의 뒤에서 말하고

파면살주; [이청풍은 자신이 먼저 깨우치고 알아내서 시범을 보이는 방식으로 동료들을 이끌어왔어.] [그 덕분에 무조에서는 낙오자가 한명도 생기지 않았지.]

귀파파; [그에 반해 다른 조의 놈들은 영도자도 없고 화합도 이루어지 않았네.] [그 때문에 절반, 혹은 그 이상이 죽거나 심하게 다쳐서 수련을 중단했어.]

천살로;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청풍이 자신들 조원들이 약을 복용하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이야.]

천살로; [단기간에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그 약들에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안 때문일 텐데...]

천살로; [약의 도움을 받지 않고 불과 반년만에 저 정도 성취를 보인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야.]

귀파파; [어쩌면 우린 살인상단 역사상 최강의 자객이 탄생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천살로에게 동의

소수마녀;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어요.]

소수마녀;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지옥십관의 최후 관문인 단정관(斷情關)을 통과하지 못하면 자객으로서는 실격이에요.]

파면살주; [그렇긴 하지.] 끄덕. 다른 사람들도 끄덕이고

파면살주; [과연 이청풍에게 자객의 자질이 있는지 여부가 곧 결정 나겠지요.] 무표정하게 말하고

독검사랑; (내가 우려했던 바다.) 맨 뒤에 서서 끄덕이고

독검사랑; (자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암살 실력도 뭐도 아니고 냉혹비정한 성격이다.)

독검사랑; (단정관은 바로 자객으로서의 그 자질을 증명해야하는 관문이다.) (만일 단정관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독검사랑; (자객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되어 제거될 것이다.) (화근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음산하게 웃고

 

#144>

어느 복도. 그 복도 끝의 문 앞에 모여있는 청풍과 동료들. 문 앞에는 <>자가 적힌 복면을 쓴 사내 두 명이 서있다. 이자들은 물론 지자급 자객이다.

지자급1; [이곳이 지옥십관의 마지막 관문인 단정관이다.] 지자급 중 한명이 말하고

지자급1; [단정관을 통과하면 너희들은 한명의 어엿한 자객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지자급1; [우리 살인상단의 자객이 되면 처음에는 무()자급의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무자급이라 해도 매달 백냥의 기본 급료와 함께 실적에 따른 포상을 받게 된다.]

<한 달 급료가 최소 백냥!> <어마어마하네.> <백냥이면 우리 가족이 일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거금인데...> 흥분하는 아이들. 청풍과 정정과 철두는 표정의 변화가 없고

지자급1; [()자급이 되면 기본 급료가 월 오백냥으로 오르고 우리들 지()자급은 천냥을 받는다.] [물론 성과급은 별도다.]

<한 달에 오백냥, 천냥이 기본적으로 들어온다니...> <역시 자객이 되길 잘 했어.> <다른 일 해서는 결코 만질 수 없는 거금을 벌 수 있겠다.> 아이들 흥분하지만

청풍; (의도가 있는 발언이다.) 말없이 듣고 있고

청풍; (저자는 자객이 되면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대우를 거론해서 우리들을 흥분시키려 하고 있다.) 무어라 말하는 지자급1을 노려보고

청풍; (단정관에서 시험 받을 때 망설임을 없애기 위해서일 텐데...)

청풍; (과연 어떤 관문을 준비해놨기에 사전에 밑밥까지 깔아놓는 것일까?) 찡그리며 생각할 때

지자급1; [마지막 관문, 단정관만 통과하면 너희들은 어엿한 자객이다.] [자신에게 살인상단 자객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느냐?]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청풍과 정정과 철두를 제외한 아이들 일제히 대답하고

지자급1; [그럼 지옥십관의 제십관 단정관으로 들어가라!] 기깅! 끼이! 동료와 함께 문을 안쪽으로 밀어 열면서 말하고

청풍이 선두에 서서 그 문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145>

[!] [!] 문 안쪽으로 들어서다가 흠칫! 하는 청풍과 아이들. 그 뒤에서 지자급들이 따라 들어오며 문을 닫고 있고

! 청풍 일행이 들어선 곳은 상당히 넓은 밀실. 천장에 네 개의 상당히 큰 등이 걸려있어 빛을 내고 있고. 헌데 사방의 벽을 등지고 이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칼을 들고 서있다. 복면인들은 이마에 <>자가 적힌 인자급 자객들이다. 그리고 밀실 중앙에는 긴 탁자가 놓여있는데 탁자에는 비수 한 자루가 얹혀진 접시 이십여 개가 죽 놓여있다.

청풍; (인자급 자객들이 우릴 포위하고 있다.) 지자급1을 따라 탁자쪽으로 가며 밀실 벽을 따라 죽 늘어서 있는 인자급들을 곁눈질하고, 다른 아이들도 초긴장하고.

청풍; (만일 반발하거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우린 저자들에게 척살당할 것이다.) 생각하는 사이에 긴 탁자 앞에 이르는 지자급1

지자급1; [각자 접시와 비수를 하나씩 챙겨라.] [그것이 너희들이 치러야할 마지막 시험의 준비물이다.] 탁자 한쪽 끝에 서서 말하고

청풍; (비수와 접시...)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드는 조합이다.) 생각하면서도 중앙에 놓인 비수와 접시를 집어든다.

다른 아이들도 긴장한 채 비수와 접시를 집어들고

지자급1; [준비가 되었으면 이제 과제물을 보여주겠다.] ! 손가락을 튕기고. 그러자

덜컹! 탁자 건너편 바닥이 좌우로 갈라져 아래로 젖혀진다. 2미터, 너비 1미터쯤인 직사각형의 틈새가 나타나고. 이어

끼리릭! 기관장치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떤 여자의 머리가 그 틈새로부터 올라온다. 직후

[!] [!] 경악하는 청풍과 아이들

! 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은 치부만 겨우 가린 발가벗겨진 여자다. 십자가 형태의 틀에 두 팔을 벌린 채 묶여있다. 목과 발목과 허리도 십자가 형태의 틀에 묶여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헌데

그 여자는 바로 지옥십관의 통과를 포기한 난향이라는 소녀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고

[... 난향아!] [흐윽!] [... 난향이가 왜...] 청풍과 정정과 철두를 제외한 아이들 비명 지르고. 특히 여자 아이들은 자지러지고

[으으으!] 난향은 공포에 질려 눈물 콧물 흘리며 벌벌 떤다. 사타구니로도 오줌이 흘러내리고. 그러자

청풍; [지금 뭐하자는 거요?] 버럭 지자급1에게 고함 지르고. 다른 아이들도 지자급1을 돌아보고

지자급1; [이청풍! 네가 상상하는 바로 그것이다.] 웃으며 난향에게 다가가고

지자급1; [이 계집의 부모는 거금 천냥에 딸을 팔았다.] 난향의 팔을 쓰다듬고. 겁에 질려 진저리를 치는 난향

지자급1; [우리도 이 계집이 제법 자질이 있어 보여서 거금을 주고 사들였는데...] [아쉽게도 이 계집은 심약해서 지옥십관의 수련을 거부했다.]

지자급1; [어쩔 수 없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이 계집을 지옥십관의 마지막 관문인 단정관의 제물로 쓰게 되었다.]

정정; [그 아이... 난향을 우리 보고 죽이라는 건가요?] 노려보고

지자급1; [단순히 죽이면 단정관이 아니지.] 웃으며 고개 젓고

지자급1; [너희들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동고동락해서 이 계집과 제법 정이 쌓였을 것이다.] 난향의 몸을 쓰다듬으며 말하고. 달달 떠는 난향

지자급1; [아주 깊지는 않다고 해도 그 정을 단호히 끊을 수 있어야만 너희들은 한 명의 자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난향의 얼굴 뒤에서 아이들을 보며 속삭이고

지자급1; [지금부터 너희들은 자신이 정을 끊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한다.] 난향에게서 떨어지고

지자급1; [지급받은 비수를 써서 이 계집의 몸에서 손바닥만한 살점 열점씩을 베어내라.] 음산한 눈빛으로

[흐윽!] [... 안돼!] 여자들 비명. 사내아이들도 사색이 되고

난향; [... 살려주세요!] 비명

지자급1; [, 마지막 사람이 살점을 다 발라낼 때까지 이 계집이 살아 있어야한다.]

지나급1; [만일 도중에 이 계집이 죽어버리거나 살점 베어내는 것을 거부하는 놈이 생기면...] 밀실의 사방 벽을 등지고 빙 둘러서있는 복면인들을 둘러보고

그자들이 일제히 칼 손잡이를 잡는다

지자급1; [불량품으로 판단하고 모두 처분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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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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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세무림기보(千世武林奇譜)

 

 

1983년 5월 경에 전 5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박스본은 전권을 박스 하나에 포장하여 만화방에 대여용으로 출간한 형태를 말합니다.

무려 37년 전의 작품입니다.

문장은 거칠고 구성은 허술하며 이야기 전개는 고루한 면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이런 작품도 있었지 하는 마음으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2020년 4월 24일 와룡강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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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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