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第 四 章

 

        墨血破雷罡

 

 

 

"으음!"

철문영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린 철문영은 벌떡 일어났다.

"!"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음을 느끼고 흠칫 했다.

그는 자신의 전신에 거대한 잠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힘은 상상할 수도 없이 막강한 것이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철벽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 이 괴인이 왜 죽어 있지?"

몸을 일으키던 철문영은 깜짝 놀랐다.

그의 옆에는 예의 괴인이 쓰러져 있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괴인의 몸은 바싹 말라있었다.

마치 물기가 빠진 나뭇가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이 봉서는..."

그러다가 철문영은 자기 옆에 한 장의 봉서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봉서를 집어들어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노부는 바로 네 전대 문주인 수군한(手君漢)이라고 한다. (중략)... 이제 노부는 네놈에 십이성의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을 주입시켜줄 것이다. 묵혈파뢰강은 천세절전(千世絶典)중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다음가는 기공이다. 네가 이 기공의 구결만 이해하면 즉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네 일신에는 노부의 원영진기(元嬰眞氣)와 만년지령유(萬年地靈乳), 독혈용형삼(毒血龍形蔘)등이 용해되어 있다. 이는 족히 오갑자가 넘는 막강한 힘이다. 그러나 이것을 얼마나 네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는 너의 노력여하에 달린 것이니 무공연마에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수법을 남긴다. 이는 노부가 이곳에 갇혀 비동에 침입했던 자들의 인육을 먹으며 창안한 수법으로 너무 악독하다. 이 수법의 명칭은 극강참혼수(極剛斬魂手)라는 것으로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치 말아라. 마지막으로 만일 노부의 당라이가 살아있다면 네 사람으로 만들도록 부탁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수취란(手翠蘭)이며 팔꿈치 부근에 붉은 점이 있다. 이제 천세문 이천년의 역사가 그대의 어깨에 걸려 있다. 부디 본문의 영휘를 만세에 떨치도록 노력해 주기를 부탁한다.>

 

서신의 뒷면에는 한가지 끔찍한 위력의 수법이 적혀 있었다.

만일 묵혈파뢰강으로 그 수법을 펼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으음, 이분이 전대문주셨다니..."

철문영은 경악의 표정으로 괴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괴인의 시신에 삼배를 올렸다.

"편히 잠드십시오. 본문의 혈한은 기필코 소생의 손으로 글어 보이겠습니다."

삼배 후 그는 괴인의 시신을 들었다.

얼마전이라면 불가능 했겠지만 이제는 천근거석이라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수군한의 시신을 조사전에 안치했다.

"화희(花姬)의 걱정이 태산같겠군. 빨리가서 안심시켜 주어야지."

그는 벌거벗은 모습을 가릴 생각도 않고 달려나갔다.

곧 그는 화희가 기다리는 석실에 이르렀다.

"도련님!"

그가 들어서자 초조하게 서성이던 화희가 와락 달려들었다.

철문영이 벌거벗은 채였으나 화희는 개의치 않았다.

"도련님... 도련님..."

화희는 미친 듯이 철문영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안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문영은 화희의 가슴이 격심하게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희는 진심으로 철무니영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첩신은... 첩신은..."

화희는 철문영의 얼굴을 받쳐들며 말문을 잊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주종관계이상의 강한 유대가 있었다.

그것은 친 남매의 그것보다도 강하여 마치 모자사이의 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화희, 미안해.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이상하게 강해진 느낌인걸."

철문영이 화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제야 화희는 철문영의 몸이 많이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마치 눈부신 주옥같이 아름다워졌을 뿐아니라 제법 우람해일 정도로 튼튼해져 있는 것이다.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화희의 말에 철문영은 흠칫했다.

"벌써 하루가 지났어?"

화희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했다.

", 그보다 어찌 되신 일인지 말씀해주세요."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보다 배가 몹시 고프단 말야. 먹을 것좀 주어. 옷도 좀 입혀주고."

화희는 살짝 볼을 붉혔다.

어릴 때부터 자기 손으로 길러온 철문영이지만 이제는 발가벗은 모습은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자란 것이다.

"첩신의 정신이 나갔군요. 하루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을 터인데... 자 나가세요. 빨리 음식을 장만해 드릴께요."

철문영은 화희의 팔짱을 끼고 석실을 나섰다.

 

마지막 밀실,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벽장의 뮨울 열었다.

그는 일신에 산뜻한 청색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 무복 실 한올에는 화희의 정성이 베어 있었다.

끼익!

벽장문이 열렸다.

그러자 철문영의 눈에 두 권의 두툼한 비급과 한쌍의 옥환(玉環)리 보였다.

청색과 홍색의 옥환, 그것은 천세문 문주의 신물(信物)인 동시에 비장의 무기였다.

이름하여 건곤쌍환(乾坤雙環),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철문영의 마음에 들었다.

이어 그는 두 권의 비급을 꺼내어 들고 석탁에 앉았다.

그는 우선 한 권을 집어들었다.

 

<무종중경(武宗重經)>

 

철문영은 떨리는 손길로 겉장을 넘겼다.

 

천세문주(千世門主)는 구류(九流)의 무공에 능통해야한다, 여기에 구류(九流)의 무공중 최강(最强)어거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공 아홉 가지을 적는다. 천세문주되는 자는 필히 여기에 적힌 아홉가지 신공을 연마하여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아홉가지의 기공이 적혀 있었다.

 

광령법신(光明法身).

 

불문제일신공(佛門第一神功)이다. 이를 완성하면 무적금강지체(無敵金剛之體)가 된다.

다만 한 가지 제약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단 시일내에 연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반갑자이상의 고련이 있어야 완성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연성은 못하더라도 이는 마음을 정()하는데 그 이상의 것이 없으니 필히 명심(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황룡무적검기(黃龍無敵劍氣).

 

도가제일검공(道家第一劍功)이다. 극에 이르면 검기(劍氣)만으로 백 장 밖의 적을 살상 할 수 있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

 

속가(俗家)의 제일신공이다. 광명법신(光明法身)만한 거세적인 위력은 없다. 그러나 신속한 연성이 가능하고 잔혹하게 패도적인 위력은 독보적이다.

 

표향전궁신강(飄香電弓神罡).

 

선문의 절개기공이다. 빠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독공(毒功)과는 상극의 기공으로 사악한 강기(罡氣)에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광막산영수(廣莫散影手).

 

현문(玄門)에서도 가장 현묘(玄妙)하며 복잡한 무공이다. 모두 삼백육십식으로 이루어지며 각식에 네 가지 변화가 있어 그 변화가 끝이 없다.

 

천뢰금강지(天雷金光指).

 

유가제일신공(儒家第一神功)으로 부족함이 없는 지공이다. 이는 강기(罡氣) 파해전문의 지공이다. 특히 적의 공력이 더 강하더라도 상대의 기공을 무너뜨릴 수 있다.

 

환마잠영술(幻魔潛影術).

 

마도제일의 마공은 못된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공중 하나이며 호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법이다. 일시간에 몸을 감출 수도 있고 적에게 접근하기에는 최적인 마공이다.

 

섭심미혼대법(攝心迷魂大法).

 

사도(邪道)의 사술에서도 가장 사이한 수법이다. 상대의 심령을 제압하여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사법이다. 이 사법에서 섭심술, 통령대법 등의 사법이 파생되었다. 그 만큼 사이한 수법이니 깊이 심취하는 것운 금물이다.

 

역변천환신공(易變千幻神功).

 

기문(奇門) 제일기공은 아니다. 그러나 신체를 자유로이 변형시킬 수 있고 용모는 한모금의 진기로 바꿀 수 있는 등, 강호행동시 필요한 기공이므로 무종구대중공(武宗九大重功)에 포함시킨다.

 

"이런 무종들이 있었다니..."

철문영은 무종중경(武宗重經)을 덮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무공들인 것이다.

철문영은 무종중경을 내려놓고 두 번째 비급을 집어들었다.

 

<천세절전(千世絶典).>

 

웅후한 필체가 금박으로 쓰여있었다.

"이것이 마교에서 노렸던 비급이란 말이지?"

철문영은 중얼거리며 겉장을 열었다.

이에는 천세문이 이천여 년에 걸쳐 구류만상경을 작성하여독가적으로 창안한 몇 가지 절대신공들이 적혀 있었다.

 

묵혈파뢰강(墨血破雷罡).

 

양강함과 패도적인 면에서는 이에 비할 무공이 없다. 검붉은 광채가 번뜩이면 만년한철이라도 한줌 가루로 변한다. 그만큼 패도적이다. 또한 이는 최고의 호신강기(護身罡氣)이기도 하다. 묵혈파뢰강의 호신강벽은 어떤 호신강기 보다도 강하다. 굉천참살강(轟天斬煞罡)인 것이다.

 

건곤멸겁파(乾坤滅).

 

이것이 천세절전에 적힌 두 번째 무공이다. 그러나 이는 한 번도 사람의 손에서 펼쳐져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무공이 필쳐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천세문 문주의 신물인 건곤쌍환(乾坤雙環)으로 펼치는 무공이다. 한 번도 시전되어 본적이 없으므로 그 위력도 미지수이다.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

 

이것이 천세문 최후의 비결(秘訣)이다. 이는 약 팔할 정도 이루어진 하나의 신공구결이다. 하지만 이천 년의 세월이 걸렸으면서도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이 신공의 막중함은 짐작할 수 있다. 천세문의 오십 자 명 문주들이 구류만상경의 방대한 무공을 참수하여 완성시키려 하던 것이 바로 이 광무천세결(廣武千世訣)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천자가 못되는 짧은 구결이지만 그안에 이천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능히 마교(魔敎)에서 노릴만한 가치가 있는 진결(眞訣)이다.

 

"휴우천외유천(天外有天)."

철문영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종중경(武宗重經)이 무공의 최고봉이라도 여겨졌다.

그러나, 천세절전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절감해야만 했다.

천세절전의 세 가지 무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장 약할 것 같은 묵혈파뢰강이라도 무림에서 상대가 될 무공이 없을 것이다.

철문영은 다시 천세절전을 들여다 보았다.

천세절전은 아직도 반정도 분량이 남아 있었다.

철문영은 그것들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나머지 반의 분량은 역대문주들이 광무천세결을 가다듬으며 얻은 심득(心得)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에는 언급안된 분야가 없었다.

또한 무공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에서부터 자세한 언급이 되어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무공을 처음 익히려는 철문영에게는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 이 심득들만 완전히 이해한다면 여타 무공을 익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철문영은 눈을 빛냈다.

그의 생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어떤 무공이든 그 근원은 같다.

, 잠재되어 있는 잠력을 불러 일으티는 것이다.

이것이 주로 내가공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마공(魔功)이든 신공(神功)이든 이 경우는 어디에든 적용된다.

다만 신공이 정당하고 전진적인 방법으로 잠력을 키우는데 반하여 마공은 급격하고 비정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른 뿐이었다.

나머지 초식(招式)이나 변화 등은 그저 내가공력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천세절전의 심득에는 이같은 내용이 정확히 지적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세절전의 심득만 이해하면 무공이든 속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심득(心得)부터 내것으로 만들어야겠구나."

철문영은 눈을 빛내며 난해한 심결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곧 삼매경에 빠져들어갔다.

널찍한 석실.

한 명의 여인이 석탁에 앉아 무엇인가 꿰매고 있었다.

그녀는 화희였다.

그녀는 더욱더 아름답고 푸근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지금 철문영의 장삼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휴우!"

화희의 가지런한 치아사이로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그녀는 일감을 놓고 천세비동으로 통하는 석문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의 연공이 언제나 끝나려는지..."

화희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들어오신지 벌써 이년, 무공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우신지..."

화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년(二年). 그렇다.

어느덧 이 년이 지난 것이다.

한 번 무공에 몰두하자 철문영운 완전히 무공에 미치고 말았다.

식사시간만 제외하고 하루종일 무공과 씨름을 했다.

하루에 한 번 운공을 하여 피로를 풀 뿐, 잠도 한잠 자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도시 이해 못할 일들이 일어났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컴에도 철문영은 전혀 허약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더 건강해져가는 것이다.

 

"그분이 좋아서 하시는 일,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일 아닌가?"

화희는 한숨을 쉬며 다시 일감을 잡았다.

철문영의 몸이 부쩍부쩍 자라는 동안에 화희는 몇 달 사이에 의복 전부를 새로 만들곤 해야했다.

그녀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한올 한올 실이 꿰어져감에 따라 그녀의 진한 정성이 의복에 배어나갔다.

끼익!

문득 석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 한 명의 헌헌장부가 나타났다.

알맞게 벌어진 체격, 더 할수 없이 영준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산뜻한 청색무복이 매우 잘 어울렸다.

청년의 옥안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하! 화희(花姬)!"

청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제야 화희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 도련님!"

환희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 올랐다.

청년은 바로 철문영이었다.

이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허약하기만 하던 소년을 당당한 장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화희! 드디어 끝났어!"

철문영이 외치며 팔을 벌렸다.

화희의 두눈이 뿌애졌다.

"... 정말이신가요?"

"핫하... 그래 드디어 묵혈파뢰강을 극한까지 익혔어!"

철문영은 다가온 화희의 허리를 감아 높이 들어올렸다.

"고마워! 이게 모두 화희 덕이야."

철문영이 꼭 끌어 안으며 말했다.

화희는 뿌애진 시선으로 철문열을 올려다 보았다.

"도련님, 축하드려요... 이제는 첩신이 돌보아 드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화희는 말을 하며 살며시 철문영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아니야, 난 아직도 화희가 필요해."

철문영이 말하자 화희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철문영은 흠칫 했다.

무엇인가 그녀의 고개질에서 단호한 것을 본 것이다.

(... 이제 내가 저분 곁에서 떠날 때가 되어 가는구나. 더 이상 저분 곁에 있으면 저분과 빙향공주님의 관계만 더욱 악화될 뿐...)

화희가 아련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철문영의 검미가 꿈틀 했다.

"환희... 설마... 내곁을 떠나려는 것은 아니겠지?"

철문영의 물음에 화희는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 정신적 유대가 강해 상대에게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환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도련님은 더 이상 첩신의 보살핌이 필요치 않으세요, 이이상 첩신이 도련임 곁에 있다는 것은 도련님께 누가 될 뿐이예요."

"그렇치 않아. 나는... 나는 화희가 없으면 견더 나갈 수 없을 게야!"

철문영이 소리쳤다.

그의 안색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 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그림자같이 옆에 있어준 환희와 떨어져 있는 것은 철문영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환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첩신을 잊으실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제 강호로 나가셔야 하잖아요."

그녀의 결심은 굳어진 것 같았다.

"아냐! 아냐! 내가 어떻게 화희를 잊어! 그건 불가능해! 제발 떠나려는 생각은 철회해줘!"

철문영이 외치며 환희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화희는 단호하면서도 슬픈 눈길로 철문영을 올려다 보았다.

"빙향공주님을 잊으셨나요? 그분과의 사이가 벌어지신 것도 첩신이 도련님 곁에 있었다는 이유가 크잖아요? 그리고 도련님께선 어차피 빙향공주님께 돌아가셔야 할 분, 이제 첩신은 잊어 주시와요."

철문영의 눈길이 흔들렸다.

그는 잘 알고 있다.

화희의 고집도 자신에 못지 않은 것을 말이다.

평소엔 극히 온유하나 한 번 마음먹으면 흔들림이 없다.

(안돼... 화희를 놓칠 수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화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철문영의 눈길이 번뜩였다.

(마지막 수단이다. 화희를 영원히 내게 구속시켜 놓으련면...)

일순, 철문영의 눈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눈길이 무엇을 뜻하는가?

화희는 금방 알아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도련님, ... 설마 첩신을..."

화희가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와르르...

그동에 만들고 있던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화희를 보낼 수는 없어! 영원히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테야!"

철문영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화희를 훑어보며 다가섰다.

"... 제발... 안돼요. ... 첩신은 도련님의 은... 총을 받을 만한 계집이 못돼요!"

화희는 계속 물러섰다.

그러나, 곧 그녀의 등이 벽에 닿았다.

"화희!"

그와 함께 철문영이 득달같이 덤벼들었다.

"... 도련님! ... 안돼요... 아흑!"

화희는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녀의 몸직은 너무나 무력했다.

부욱찌지직!

화희의 겉옷이 거칠게 찢겨졌다.

"아흑... 아아..."

화희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강한 힘이 자신을 짓눌러 온 것이다.

뒤이어 뜨거운 열풍이 화희를 휩쓸었다.

"... 안돼요! 아아..."

화희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 몸짓은 거칠은 폭풍을 막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기만 했다.

"나낟..."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이 일시에 멈추었다.

대지(大地)가 허물어자는 처절한 고통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꽈르릉쾅!

상상할 수도 없는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광풍폭우가 몰아치고 대지는 부서질 듯이 고통을 당해야 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은 끝이 없을 듯이 이어졌다.

한차례 대지를 무너뜨리고 나면 또다시 강대한 해일이 대지를 초토화 시켰다.

또르륵

그리고 한 방울 이슬이 진한 아픔과 형엄할 수 없는 환희(歡喜)를 아로 새기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이슬로서 또다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