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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불의의 사고

 

 

복우산의 서북쪽은 칼날을 세운 듯 험한 봉우리들이 병풍같이 에워싸고 있다.

그 봉우리들 남쪽에 정파백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호천무맹이 자리하고 있다.

때는 늦여름의 오후다.

음습한 비구름이 복우산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휘익!

험하기 이를 데 없는 복우산의 바위 봉우리들 사이를 나는 듯이 달리는 소년이 있었다.

헝클어진 봉두난발에 다 헤어진 남루한 의복을 입었으나 눈빛만은 영기로 총총하게 빛나고 있는 소년...

바로 고검추였다.

고검추는 신개령에서 천면음마 등천하의 임종을 지켜본 뒤 닷새 만에 복우산에 이르렀다.

열흘이 걸릴 것으로 예정했던 복우산까지 닷새 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화마의 경신술 덕분이었다.

탐화비록에 수록되어있는 축지성촌(縮地成寸)은 무림을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경실술이다.

완전히 연마하면 이름 그대로 축지법(縮地法)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게 축지성촌이다..

고검추는 복우산까지 오는 동안 꾸준히 축지성촌을 연마해왔다.

아직은 입문한 수준이지만 걷는 속도가 전과 비교했을 때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휘익! 파앗!

고검추는 복우산의 험준한 산봉우리들 사이를 마치 한 마리 표범처럼 날렵하게 치달렸다.

(거의 다 왔다. 저 봉우리만 넘으면 호천무맹이다.)

바람처럼 달리던 고검추는 앞쪽에 거대한 병풍처럼 서있는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는 도중 심마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호천무맹은 그 봉우리를 등진 채 자리하고 있다.

고검추가 호천무맹의 앞쪽이 아니라 뒷쪽에 자리한 험한 봉우리로 접근하고 있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생부 철사자 고창룡은 호천무맹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다.

물론 십칠 년 전 벌어진 그 치욕적인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개입된 듯한 심증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검추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아직은 자신이 철사자 고창룡의 아들임을 떳떳이 밝힐 상황이 못 된다.

그래서 고검추는 은밀하게 호천무맹에 잠입하여 고현경을 만나려는 것이다.

헌데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 섰던 고검추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흐윽... ... 틀렸는가?"

어디선가 여인의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와 고검추를 흠칫하게 만들었다.

(이 산중에 웬 여인의 신음소리란 말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여인의 신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잠시 후 고검추는 높은 단애로 둘러싸인 은밀한 계곡에 이르렀다.

(!)

헌데 무심코 단애 아래를 내려다보던 고검추는 눈을 치떴다.

그와 함께 그의 얼굴은 단번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에 둘러싸인 계곡 끝에는 그리 크지 않은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높이가 오장쯤인 폭포 아래에는 원형의 연못이 형성되어 있다.

"... 으으! 도저히... 못 견디겠다."

지금 그 연못에는 한 여인이 허리까지 잠긴 채 괴로운 듯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 사고(師姑)!)

몸에 연신 물을 끼얹고 있는 그 여인을 본 고검추는 숨이 턱 막혔다.

검은 옷을 걸치고 있는 여인은 바로 아버지의 사매이며 사촌누이이기도 한 철봉황 고현경이었기 때문이다.

탕음마고가 촉발한 욕화에 시달리던 고현경은 복우산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한 연못으로 와서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촤아! !

고현경은 온몸 구석구석에 물을 끼얹으며 꿇어 오르는 욕화를 식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도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는 몸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흐윽... ... 이걸로는 안돼!"

마침내 고현경은 참지 못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이성이 한계에 이르러 본능에 대항할 힘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몸 속 깊은 곳에서 치미는 열기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진 자극으로 인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는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이제...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결국 고현경은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이 되었다.

뜨거워진 몸을 식혀줄 가능성이 있는 마지막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눈이 풀린 고현경은 비틀거리며 연못 밖으로 나왔다.

(... 들키면 안된다!)

충격에 휩싸인 채 연못을 내려다보던 고검추는 급히 근처 바위 뒤로 숨었다.

연못에서 나온 고현경은 연못가에 놓여있는 널찍한 바위 위에 무너지듯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민밍한 치태를 시작했다.

(... 보면 안된다!)

고검추는 내심 부르짖었다.

그는 복우산으로 오는 동안 귀동냥을 통해서 자신의 생부 고창룡과 고현경이 단순한 동문이 아니라 사촌지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현경은 사고이기 전에 당고모(堂姑母;아버지의 사촌누이)인 집안 어른이다.

조카가 되어 당고모의 치태를 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걸 알면서도 고검추는 고현경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사고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익숙하구나.)

그와 함께 고검추는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비록 도도하고 냉철해서 고현경이라는 별호까지 얻었지만 어쨌든 그녀도 젊은 여자다.

몸이 뜨거워져 견딜 수 없을 때가 있고 그럼 그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고현경의 손길이 능란하고 거리낌이 없는 데에는 그런 슬픈 사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몸을 달구고 있는 욕정은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지독한 것이었다.

(... 좋지 않다!)

철봉황 고현경의 치태를 훔쳐보는 고검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고검추도 고현경의 상태를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욕정에 사로잡혀 이성을 완전히 잃을 줄은 몰랐다.

제발... 사형... 사형! 저 좀 어떻게...!”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고현경의 입에서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짐승이 토해내는 것같은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사고는 사촌오빠이기도 한 아버지를 짝사랑했구나.)

고검추는 고현경이 토해내는 신음을 통해서 그녀가 자신의 생부 고창룡을 연모했음을 깨달았다.

그 사이에도 고현경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 저대로 방치하면 위험하다.)

그걸 확인하고 다급해진 고검추는 숨어있던 바위틈에서 벌떡 일어났다.

멀리서 보기에도 고현경의 상태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고검추는 서둘러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윽고 연못 근처에 이른 고검추는 숨이 콱 막혔다.

가까이에서 본 고현경의 치태가 너무도 민망하다.

고현경의 치태를 지근거리에서 보게 되자 고검추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침착... 침착해야한다.)

고검추는 필사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상의 속을 더듬었다.

다시 꺼낸 고검추의 손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 은제상자 안에는 수십 개의 은침(銀針)이 들어 있었다.

고검추가 복우산으로 오는 도중에 약방에 들려 구한 침이었다.

탕음마고를 제거하려면 그 은침을 정해진 순서대로 고현경의 혈도에 찔러야만 했다.

(... 우선 마혈을 찔러 진정을 시켜야만 제독술(除毒術)을 시전 할 수 있다.)

!

고검추는 떨리는 손으로 고현경의 가슴 근처에 자리한 마혈을 침으로 찔렀다.

!

하지만 고현경의 살갗에 닿는 순간 강력한 반진력이 고검추의 손가락 끝을 강타했다.

"!"

고검추는 손가락이 부러지는 듯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 정말 강하신 분이다."

고검추는 그제서야 고현경이 은발마희 옥여상 못지않은 강자임을 깨달은 것이다.

고검추는 놀라면서도 자신에게 이토록 막강한 무공을 지닌 사고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흐윽... 사형!"

돌연 고현경이 와락 고검추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

고검추는 손목이 끊어지는 듯한 격심한 통증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고현경은 고검추의 손목을 끌어당기며 뜨겁게 할딱거렸다.

"... 사형! 현경이를 제발...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악!"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고검추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아차...)

고검추는 당황했다.

고현경이 자신을 부친인 고창룡으로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부자지간이므로 고검추는 당연히 고창룡을 닮았다.

게다가 고현경은 끔찍한 욕화로 인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다.

그녀가 고검추를 고창룡으로 오인한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 사고. 저는 선부가 아닙니다."

고검추는 당황하며 고현경의 손에서 손목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목을 쥐고 있는 고현경의 손은 강철 족쇄같이 요지부동이었다.

"흐윽... ... 너무 하세요 사형!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현경이를 마다하시다니요."

그녀는 오열하며 고검추를 와락 끌어안았다.

(허억!)

얼떨결에 철봉황 고현경의 몸에 올라타게 된 고검추는 전율했다.

몸 아래 느껴지는 고현경의 알몸이 너무도 뜨거웠기 때문이다.

" 어서... 제발 현경이를... 사형의 여자로 만들어주세요!"

고현경은 뼈가 없는 듯 부드러운 사지로 고검추를 휘감으며 몸부림쳤다.

그 바람에 고검추의 몸도 의지와 상관없이 달아올랐다.

"... 이러시면 안됩니다 사고!"

당황한 고검추는 고현경에게서 떨어지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강철같은 고현경의 팔 다리에 휘감겨 있어서 저항 자체가 불가능했다.

고검추의 하의는 고현경의 손과 발에 의해 단번에 벗겨졌다.

순간 물기에 젖은 서늘한, 그러면서도 너무도 매끈하고 부드러운 고현경의 피부가 느껴졌다.

(... 안돼. 이분은 아버지의 동문 사매시다! 핏줄로는 당고모고...)

고검추는 이를 악물며 본능의 충동과 맞서려 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저항이었다.

고현경은 결국 고검추를 상대로 뜻을 이루었다.

쿠쿠쿵!

강제로 한 몸이 되는 순간 고검추의 귓전으로 천둥치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 끝났다!)

고검추는 자신의 일부가 더 할 수 없이 뜨거운 늪으로 빨려 들어가며 절망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고검추는 동정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첫 경험인 고현경도 고검추를 받아들이며 작살에 꿰뚤린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그러면서도 고현경은 고검추를 부여안은 채 격렬한 요분질을 일으켰다.

그녀가 일으키는 파도에 휩쓸려 고검추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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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끈질긴 추적자(追跡者)(2)

 

 

임주은은 근 한 달 동안 잠도 거의 자지 않고 탁본을 옮겨 적었었다.

탁본의 글자들은 아주 작아서 알아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구결들을 옮겨 적자니 신경의 소모가 다른 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내공을 익힌 몸인지라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헌데 오늘 밤 임청우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더해 자신의 마음까지 울적해지면서 의기소침해졌다.

그러자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덜컥 병이 되고 만 것이다.

의원을 데리고 오겠어.”

임청우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나 심주은은 그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가지마.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마.”

임청우는 애원하는 심주은의 눈동자를 보자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원하는 대로 곁에 누웠다.

맞닿은 몸이 불같이 뜨거웠다.

심주은은 갑갑한 듯이 옷을 풀어헤쳤다. 이미 정신은 거의 잃어버린 듯했다.

헉헉!”

심주은은 고열에 신음하며 임청우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거추장스러운 듯 마구 몸부림을 쳐서 몸에 걸친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풋풋한 소녀의 살 냄새가 임청우의 코를 자극했다.

임청우는 심주은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 꼭 끌어안은 채 입으로 바람을 불어주었다.

이마를 불어서 식히고, 벌겋게 상기된 가슴을 후후 불어서 식혔다.

껴안고 있는 그녀의 몸이 마치 불덩어리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고열에 신음하던 심주은이 헛것이 보이는 듯 손을 휘저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부! 약속을 꼭 지키겠어요. 꼭이요.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진 않겠어요.”

사부를 소리쳐 부르더니 이내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 제발 날 잡아가지 마세요. ... 난 아버지를 위해 희생당하고 싶진 않아요.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둬요. 난 나대로 살아가겠어요!”

고개를 연신 도리질하면서 심주은은 뱀처럼 임청우의 몸을 휘감았다.

임청우의 몸에서도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그의 몸도 어느덧 기이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 사이에 심주은의 몸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훅훅 불어서 몸을 식혀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때였다.

이봐 친구! 몹시 급한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까?”

갑자기 천장에서 굵고 힘 있는 음성이 들려왔다.

임청우는 흠칫하며 심주은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자기 몸으로 심주은의 알몸을 가려준 임청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약을 가진 게 있소? 천궁과 당귀, 구기근 등이 들어있는...”

호오! 열을 내리는 약을 말하는군. 어디 보자... ()장로가 억지로 주다시피한 약이 어디 있기는 있을 텐데...”

말소리가 다시 천장에서 들려왔다.

한데, 자네 부인인가?”

임청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렇소만... 당신은 누구요.”

!

대답대신 천장을 뚫고 무엇인가 임청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임청우는 왼손을 휘둘러 재빨리 그것을 나꿔챘다.

한 알의 단약이었다.

나 말인가? 하하하! 말하지 않겠네. 자네 부인을 훔쳐봤으니 복수하려고 할 게 뻔한데 내가 왜 말하겠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안심하게. 내가 본 건 자네 부인의 얼굴 밖에는 없으니까. 하하하!”

그 인물은 기척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공력이 충만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믿어도 될 것같았다.

임청우는 심주은을 흔들면서 입을 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주은은 이를 악다물고 숨을 쌕쌕 거리고 있었다.

임청우가 아무리 입을 열려고 해도 열 수가 없었다.

별 수 없이 임청우는 단약을 자신의 입안에 넣어 녹인 다음 심주은의 입술 속으로 침과 함께 흘려 넣어 주었다.

 

***

 

새벽이 되자 빗발이 가늘어졌다.

임청우는 곤히 잠든 심주은의 알몸에 이불을 덮어주고 일어났다.

간밤의 일이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열은 내렸지만 여전히 발그레한 심주은의 뺨을 보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창가에 서서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어도 머릿속에는 알몸으로 안겨들던 심주은의 모습이 가득했다.

품속에서 몽선도를 꺼내 탁자위에 올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척포... 넌 오래 살았으니 아는 게 많겠지?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마 알고 있겠지?”

척포가 고개를 내밀다가 무슨 엉뚱한 소리하느냐는 듯이 다시 들어가 버렸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건달에 불과하다. 막연히 큰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임청우는 생각에 잠겼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잠룡물용(潛龍勿用), 물에 잠겨 있는 용은 쓰지 않는다 했으니 지금의 나는 승천할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길러야 하는 잠룡과 같다 할 것이다. 나 자신을 갈고 닦는데 힘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 할 일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젊었을 때는 여색(女色)을 가장 경계해야 하고 중년에는 의욕(意慾)이 과한 것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에는 욕심(慾心)이 많은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주은을 피치 못해 잠시 안았는데도 마음이 이다지도 흔들렸으니 그 말은 과연 옳다. 여색을 경계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가 없겠구나. 영웅호색이라고 하지만 자고로 영웅의 무덤은 미녀의 가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헌데 임청우가 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임청우는 무슨 일인가 해서 귀를 쫑긋했다.

아이쿠! 스님! 지금 방마다 살펴본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이러시면 저희 집은 장사를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주인의 음성이었다. 벌써 일어나서 장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셋째, 그놈이 말이 많군 그래. 알아듣게 이야기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임청우의 귀에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 든 노파의 것인데 여전히 낭랑한 느낌이 깃들어있는 목소리였다.

(그들이다!)

임청우는 벌떡 일어섰다.

귓구멍이 좁아서 그런 모양이오. 이렇게 하면 잘 알아들을 것 같소.”

음산한 사내의 음성과 함께 악! 하는 비명소리가 객점을 울렸다. 주인이 아마도 귀를 잘리거나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객점이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야한다.)

임청우는 몽선도를 품에 집어넣고 심주은 곁으로 달려갔다.

심주은은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다.

임청우는 옷가지와 함께 이불로 심주은을 둘둘 말아서 안아들었다.

이어 객점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임청우는 문득 그녀의 탁본에 생각이 미쳤다.

베개 밑을 들춘 임청우는 기름종이에 싸인 탁본과 책을 꺼내 품속에 넣고 창문을 열었다.

아래층에서 다시 노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둘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뛰쳐나오는 놈은 무조건 죽여 버려라!”

누님의 말씀대로 하겠소.”

늙은 거지의 대답이다.

 

새벽같이 객잔에 들이닥친 자들은 바로 심주은을 찾아다니고 있는 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의 우두머리는 심주은으로부터 기()라고 불린 노파였다. 이 노파는 심주은처럼 한 가닥의 천잠사를 무기로 쓰는데 수법이 잔혹, 악랄하여 적의 목을 끊어버리는 데 명수였다.

두번째는 걸()이라는 거지로 술에 내공을 불어넣어 쏘아 보내는 주전신공(酒箭神功)을 달통한 자였다. 그의 주전신공은 특이하여 술은 완전한 화살의 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세번째는 승()으로 세 사람 중에서 무공이 가장 고강한 자였다. 수십 종의 괴이한 무공을 익힌 덕분에 그의 모든 신체 부위는 하나하나가 신병이기와도 같았다.

종남산의 첫 만남에서 기, , 승은 우협의 명성에 눌려 임청우를 포기하고 도망쳤었다.

그렇긴 하지만 세 사람은 무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실제 무공에 있어서는 마면혈도나 철선동시에 비해 그다지 뒤진다고 할 수 없는 고수들이었다.

 

휘익!

임청우는 이불로 감싼 심주은을 안고 객실 밖으로 몸을 날렸다.

밖에는 가늘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창문을 통해 객실을 뛰쳐나간 임청우는 단번에 맞은 편 건물 지붕으로 도약했다.

그리고는 다른 건물들의 지붕을 밟으며 빗속을 내달렸다.

배운 적이 없어서 임청우는 경신술을 펼치지 못한다.

하지만 공력이 이미 상승의 경지에 달한지라 임청우의 달음박질은 웬만한 고수가 펼치는 경신술보다도 오히려 빨랐다.

 

기걸승의 삼인은 심주은의 종적을 쫓아서 남양의 객점까지 왔었다.

사실 심주은의 몸에서는 만리향의 향기가 끊이지 않고 풍겨나고 있었다.

덕분에 오랫동안 만리향의 향기를 맡아왔던 세 사람이 심주은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원래 심주은의 몸에서 풍겨나는 만리향은 그녀의 아버지가 하나 밖에 없는 딸이 혹시 적에 의해 유괴되거나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심어놓은 것이었다.

만약 적이 심주은을 유괴해간다고 하더라도 만리향의 향기 때문에 금방 탄로가 나고 말 것이다.

한데, 그 만리향이 이제는 가출한 심주은에게로 그녀 아버지의 수하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걸승 세 사람은 만리향의 향기를 쫓아 객점에까지 이르렀지만 정작 그녀가 어디에 숨어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주인을 윽박질러 찾아보려 하다가 주인이 반대하는 통에 그의 한쪽 고막을 터뜨리고 객점을 수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노파는 몸을 훌쩍 날려 이층의 계단으로 올랐다.

이미 중은 객실의 방문들을 열어젖히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밖에서부터 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놈이 도망쳤소. 쫓아갈 테니 여기 일은 누님이 알아서 해주시오.”

 

***

 

새벽이지만 성문은 벌써 열려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비 때문에 발이 묶여있던 상인들을 관부에서 배려한 것이다.

거지는 일찍 열린 성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임청우를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임청우의 발걸음이 비록 빠르기는 했지만 일류고수인 거지가 볼 때에는 가소로운 수준이었다.

거지는 삽시에 임청우의 오장 뒤에까지 따라 붙으며 말했다.

흐흐흐... 성문을 나가는 순간이 네놈이 염라대왕을 만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임청우는 거지의 말을 무시하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거지는 자신의 앞쪽에서 달려가고 있는 자가 임청우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임청우가 심주은을 안고 도망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면 결코 이처럼 느긋하게 행동을 취하진 않았을 것이다.

!”

그렇긴 해도 거지는 임청우가 성문을 빠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입을 쫙 벌렸다.

슈앙!

그러자 거지의 입에서 우유빛의 술 화살, 주전(酒箭)이 가공할 기세로 쏘아져 나와 임청우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임청우는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듣는 즉시 왼손에 공력을 모아서 뒤로 휘둘렀다. 비록 공력을 발출할 수는 없지만 모으는 일은 마음을 먹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다.

용조층층공의 공력이 실린 임청우의 손이 휘둘러지면서 거지가 쏘아 보낸 주전은 퍽!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술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독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

거지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그의 주전을 맨손으로 막아낸 인물은 없었다.

거지의 주전은 강철로 만들어진 화살보다 오히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다.

(어떤 놈이기에 저다지도 공력이 강하단 말인가?)

세치 두께의 철판도 거뜬히 뚫을 수 있는 주전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둘러 흩어버리는 자가 있다는 사실에 거지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헌데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했다.

(저토록 대단한 공력을 지닌 놈이 도망은 왜 간단 말인가?)

주전을 간단히 받아내는 가공할 공력을 가진 자가 경공술은 전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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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황금전장> 아침

벽초천의 집무실. 황금수라들의 삼엄한 경비

이세창; [본장의 정보망을 총동원한 결과 놈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었습니다.] 서류를 들고 보고. 상좌에 벽초천이 앉아있고 그 앞에 벽소소가 무릎을 꿇고 있다. 벽소소 주변에는 이세창, 벽세황, 귀견수가 서있다.

이세창; [분면랑군(粉面郞君) 사우(査宇)!] [오년 전쯤 강남 일대에 나타나 엽색행각을 시작한 악명 높은 색마(色魔)입니다.] 서류를 읽으며 보고

벽세황; (소소 저것이 화류병에 걸린 이유가 있었다.) 벽소소를 흘겨보고

참담한 표정을 짓는 벽소소

이세창; [사우는 뛰어난 언변과 외모, 특히 마음을 홀리는 섭심술(攝心術)이 탁월하여 농락당한 여자의 숫자가 천여 명에 이를 정도입니다.]

부들부들 치를 떠는 벽소소

벽세황; [섭심술...] 그걸 보며 한숨 쉬는 벽세황

벽세황; [어쩐지 소소가 그 정도의 상판을 한 놈에게 농락당했다 했더니 섭심술에 당했던 것입니다..] 벽초천의 눈치를 보며 말하고

귀견수; (그래도 남매라고 역성을 들어주는군.)

찡그리며 말이 없는 벽초천

이세창; [오년여에 걸쳐 벌인 사우의 엽색행각이 저지되지 않은 것은 놈의 기괴한 무공 때문이었는데...]

이세창; [오늘 새벽 마침내 놈의 무공내력이 밝혀졌습니다.]

이세창; [사우는 마교 사대마가중 암흑마가 출신이며...] [철기산혼무를 구사한 것으로 보아 암흑마가 내에서도 상당한 고위급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서류를 내리고

벽세황; [아버지!]

벽세황; [소소가 물론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말하다가 입을 다물고

벽초천이 손을 들어 말을 막는다. 시선은 벽소소에게 향한 채

벽세황; (이건 좋지 않은 흐름인데...) 심각

<아버지는 지금 소소를 손절(損絶)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계산하는 중이다.> 벽초천의 표정이 없지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 배경으로

벽세황; (소소 때문에 자칫 우리 황금전장이 마교의 잔당들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쓸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입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벽세황; (당장 무림맹과의 관계가 단절될 테고...) (그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다른 전장들이 무림맹을 등에 업고 우리 황금전장의 영역을 공략해올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고

벽세황; (그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경과를 무림맹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인데...)

벽세황; (그럴 경우 소소의 신세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손에 땀을 쥐고

벽세황; (최악의 경우 소소는 아버지 손에 죽을 수도 있다. 무림맹에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눈치 보고

벽소소도 깨닫고 바들바들 떨고.

그런 벽소소를 지긋이 보는 벽초천

이세창; (큰 아가씨의 목숨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이세창; (보고 있는 내가 다 피가 마르는군.) 침 꿀꺽.

잠시 침묵. 그러다가

! 벽초천이 경직되었던 몸을 의자에 좀 묻는다

벽세황; (결정을 내리셨군.) 긴장할 때

벽초천; [사우라는 놈 외에 이번 일을 아는 자는 모두 몇 명이냐?]

벽세황; [저희들과...] 이세창을 흘깃 보고

벽세황; [어제 총주방장이 특별 채용한 이청풍이란 놈이 전부입니다.]

벽초천; [이청풍이라...]

이세창; [운 나쁘게도 그놈은 새벽같이 도축장으로 가던 중에 큰 아가씨가 사우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었습니다.]

이세창; [그리고 현장에서 사라졌었는데...] [보고에 의하면 현재 도축장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벽초천; [...] 의자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이세창; [분부만 내리시면 후환이 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듣고 있던 귀견수가 깜짝 놀라고

귀견수; (이청풍을 제거하겠다는...) + [기다려주십시오.] 급히 나서고

모두 귀견수를 보고

귀견수; [속하가 그리 오래 겪어보진 않았으나 이청풍은 입이 가벼운 놈이 아닙니다.] 포권하고

귀견수; [우연히 이번 일을 목격하긴 했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내진 않을 것입니다.] 간절하게 변호

귀견수; [그러니 일단 지켜보면서...] + 이세창; [만에 하나라는 경우도 있는 법이네.] 말을 막고

이세창;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데 위험요소를 품고 갈 이유가 있는가?]

귀견수; [그렇게 처리하기에 이청풍은 너무도 아까운 인재입니다.] [총주방장이 파격적인 대우로 영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필사적으로 청풍을 변호하고

이세창; [부단장이 그놈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말하는데

! 벽초천이 손바닥으로 의자 팔걸이를 치고

입을 다물며 돌아보는 이세창과 귀견수

벽초천; [옥령이가 그놈에게 제 머리 장식을 주었다고?]

이세창; [! 그걸 흘린 덕분에 그놈이 현장에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 못해 대답

벽초천; [옥령이가 마음에 들어 한 놈이라면 간단히 치워버릴 수는 없지.] 고개 끄덕이고

귀견수; [하오면...] 안도

벽초천; [그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라.] ! 일어나고

벽초천; [저년과 위진천의 혼담이 성사될 때까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살려준다!] 말하며 옆으로 걸어가고. 벽소소를 흘겨보면서

이세창; [분부 받들겠습니다.]

귀견수; [존명!] 포권하고

안도하고 비참한 표정이 되는 벽소소

옆쪽의 문으로 나가는 벽초천. 황금수라 한 명이 문을 밖에서 열어주고

귀견수; (병주고 약 준다더니...) 안도하며 손을 내리고

귀견수; (옥령아가씨가 준 머리 장식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던 청풍이놈이 옥령아가씨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구나.)

귀견수; (이청풍, 그놈은 제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는 걸 꿈에도 모르겠지.) 안도하고. 그 반면

벽소소; (이청풍! 이청풍!) 고개 숙인 채 이를 갈고

벽소소; (그 작자를 만난 후 모든 게 잘못되기 시작했다.)

벽소소; (오늘 새벽에도 그 작자를 상대하느라 신경이 분산되지만 않았어도 오라버니 일행의 접근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벽소소; (그랬다면 내가 지금같은 수모를 당하고 있지도 않았을 테고...)

벽소소; (반드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이청풍!) (날 시궁창으로 굴러 떨어지게 만든 대가를...) 이를 갈고

 

#45>

. 도축장. 평소와 같고

가건물. 청풍이 다른 백정들과 함께 소고기를 정형하고 있다. 천장에 매단 소의 시체에서 살을 발라내고 있고. 옷을 껴입었다. 상처를 숨기기 위해

(독한 놈!)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도축을 하고 있어.) 다른 백정들 곁눈질로 청풍이 일하는 걸 보고

(왜 저렇게 죽기 살기로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출혈이 상당해서 나 같았으면 며칠을 싸고 누웠을 텐데...) 혀를 차며 일하는 다른 백정들

일하면서 곁눈질로 입구를 보는 청풍

상인차림의 사내가 건물 밖에서 힐끔거리고 있다.

청풍; (아무래도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청풍; (내가 벽소소의 야합 장면을 목격한 걸 황금전장에서 알아차린 것일까?)

청풍; (벽옥령이 준 머리 장식을 잃어버린 것도 마음에 걸리고...) 벽옥령이 머리핀을 주던 장면 떠올리고

청풍; (일단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멀쩡한 척해야한다.)

청풍; (정 안되면 뭘 봤는지 이실직고 해야겠지.)

[...] 일하는 청풍을 보며 뭔가 생각하는 사인 차림의 사내

 

#46>

해가 지려는 저녁 무렵. 금릉 성 밖의 빈민가

휘익! 빈민가 근처의 큰 나무. 그 위로 구름 같은 것이 서리더니

구름이 흩어지며 모습 드러내는 운신장

운신장; (오늘도 성과가 없었다.)

운신장; (하긴 백만 명 가까이 사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사람 한명 찾아내는 일이 쉬울 수가 없지.)

운신장; (내일 총관이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아연아가씨의 아들로 보이는 놈을 찾아내고 싶었는데...) + [!] 생각하다가 흠칫! 하고

빈민가 입구.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데. 길가의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있는 소녀가 보인다.

크로즈 업. 이진진이다. 멀리 보이는 금릉성문쪽을 보고 있다

운신장; (저 아이...) 눈 번뜩

운신장; (도무지 빈민가에 살 것같지 않은 자태와 분위기를 지녔다.) 눈을 좀 가늘게 하고 보고

슈우! 이진진의 몸에서 아지랑이같은 기운이 흐르고

운신장; (신약정강(身弱精强)...) 눈 다시 크게 뜨며 놀라고

운신장; (몸이 약한 것에 비례하여 정기가 강해지는 보기 드문 체질을 지닌 아이다.) 흥분하고

운신장; (아연아가씨의 아들을 찾는 일이 급하긴 하지만 만나보지 않을 수가 없구나.) 휘익! 몸을 날리고

 

#47>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하염없이 멀리 금릉성문 쪽을 보고 있는 이진진

이진진; (해가 곧 질 텐데... 오늘도 오빠는 늦을 모양이네.) 한숨

이진진; (황금전장은 대우는 좋을지 모르지만 일은 혹독하게 시킨다고 소문나있어.)

이진진; (오빠가 과연 황금전장에서 잘 적응할지 모르겠다.) 한숨

운신장;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 옆으로 다가서며 묻고. 놀라 돌아보는 이진진

운신장; [부모님?] [아니면 남자친구?] 웃으며 내려다보고

이진진; (엄청난 미인!) + 이진진; [... 아니에요.] 얼굴 붉히며

이진진; (몸에서 전에는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로운 냄새도 느껴져.) + [금릉 성내로 일을 하러 간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훔쳐보며.

오가던 빈민가 사람들도 뿅 가서 운신장을 보고 있고

운신장; [동구 밖까지 나와서 오빠를 기다리는 누이동생이라니...] [사이가 좋은 남매로구나.] 이진진의 앞쪽으로 가고

이진진; [... 동기라고는 단 둘뿐이거든요.] 수줍

운신장; [착한 누이동생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미소

이진진; [이진진이라고 해요.]

운신장; [진진... 예쁘면서도 심오한 이름이로구나.] ! 말하며 바닥에 손바닥을 향하고. 그러자

슈욱! 바닥이 올라와 원형의 의자처럼 변한다.

이진진; (... 바닥이 솟구쳐서 의자가 되고 있어!) 놀라고

지나던 사람들도 기겁하며 놀라고

운신장; [진진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오라버니의 이름은 뭐지?] 바닥에서 돋아난 의자에 앉으며

이진진; (... 기인, 아니 선녀로구나.) + [이청풍이라고 해요.] 억지로 흥분을 누르며 대답하고

운신장; [아버지의 함자는?]

이진진; [산자 하자를 쓰셔요.]

운신장; (이산하...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 [손을 잠시 줘보겠니?] 손을 앞으로 내밀고

이진진; [...] 손을 내밀고

운신장; [이 언니는 진맥을 하는 재주가 있단다.] [이렇게 만난 김에 네 몸 상태가 어떤지 살펴봐주마.] 자기 손에 이진진의 작은 손을 얹으며 웃고

이진진; [부탁드려요.] 수줍어하고. 그러다가

! 운신장의 손바닥에 약간 빛나고

이진진; (이분의 손바닥에서 따뜻한 기운이 일어나 온몸으로 번지고 있어.) 놀라고

이진진; (따스한 봄볕을 쬐는 것처럼 나른해져.) 졸린 표정이 되고. 그때

운신장; (역시...) 눈 번뜩

운신장; (아까 본 대로 신약정강의 체질이 확실하다.) (마음이 순수해서인지 탁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운신장; (이 아이라면 우리 신녀문(神女門)의 오랜 숙원을 이루어줄지 모르겠구나.) + [수고했다.] 이진진의 손을 놔주고

퍼뜩 정신 차리고

이진진; [제 몸이 남보다 약한 건 알고 있어요.] 눈치 살피며

운신장; [몸은 약하지만 그 대신 정기는 누구보다 맑고 풍부하구나.] [좋은 인연을 만나면 믿기지 않는 성취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진진; [제가... 선도(仙道)나 현문(玄門)과 인연이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놀라고

운신장; [나의 수련은 아직 다른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단정할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단다.] 말하며 왼쪽 소매 속에 오른손을 넣고

운신장; [하지만 나 자신과 관련된 인연에 대해서는 조금 짐작할 수 있는데...] 다시 꺼내는 운신장의 오른손에는 채 한 뼘이 안되는 작은 병이 하나 들어있다. 호로병처럼 생겼고 잘룩한 곳에 끈도 달려있다.

운신장; [진진이 너는 나와 가볍지 않은 인연이 있구나.] 호리병을 이진진의 손에 쥐어주고

이진진; [이게 무엇인지요?] 두 손으로 호리병을 받으며

운신장; [몽운연형호(夢雲鍊形壺)라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구름같은 꿈을 이루어주는 힘을 지닌 호리병이지.]

이진진; [무척 귀한 것같은데... 왜 제게 주시는 것인지요?]

운신장; [나보다는 네게 더 유용할 것같아서 주는 것이란다.] [또 나와의 인연을 잇게 하기 위해서고...] 일어나고

이진진; [이 호리병에 어떤 쓰임이 있는지요?] 따라서 일어나고

운신장; [필요한 것이 있으면 뚜껑을 열고 간절히 원해 보거라. 그럼 몽운연형호가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슈우! 말하는 운신장의 몸이 구름에 덮이고

이진진; [!] 놀랄 때. 주변을 오가던 사람들도 놀라고

<우리는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것같구나. 그동안 씩씩하게 잘 지내렴.> 슈우! 구름이 짙어지는 안쪽에서 운신장의 음성이 들리고.

이진진; (음성이 멀어지고 있어.) 놀랄 때

휘이! 구름이 사라지고. 운신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운신장이 만들었던 의자도 사라지고 없다.

이진진; (사라지셨어. 땅에서 솟아올랐던 의자도 없어졌고...)

이진진; (이 호리병만 없었다면 꿈을 꾸었다고 착각했을 거야.) 작은 호리병을 두 손으로 들고 보고

이진진; (과연 그분은 누구였을까? 정말 내가 선녀님을 만났던 것일까?)

 

#48>

높은 나무 위에 서서 이진진을 내려다보는 운신장

운신장; (생각같아서는 저 아이를 당장 무산의 신녀문으로 데려가고 싶다.)

운신장; (하지만 지금은 진력해야할 일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

운신장; (문제는 머잖아 저 아이 신변에 풍파가 몰아닥칠 것 같다는 점인데...) 이마를 모으고

운신장; (아무쪼록 몽운연형로가 그 풍파에서 저 아이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휘이! 운신장의 몸이 구름에 휘감기기 시작하고

<우리 신녀문을 천마가 채워놓은 족쇄에서 풀려나게 해줄 가능성이 있는 아이이니...> 화악! 구름에 덮여 사라지는 운신장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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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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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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