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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나는 가까이 있으나 먼 곳에서 왔느니 (4)

 

 

진양진인이 말했다.

[가장 뛰어난 검법인 태극혜검이다. 양의신공을 익히지 않고는 입문할 엄두도 못내는 절학이지. 할 수 있겠느냐?]

현천록이 말했다.

[동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그럼 구결을 외우게. 구결에 따라 내력을 운용하며 펼친다면 이보다 더 나은 내가검법(內家劍法)이 있을 수 없네.]

무당파 최고의 절학이라는 태극혜검의 구결은 두 가지로 천결과 지결로 나뉘어 있었다.

천결(天訣)은 태극혜검을 펼치기 위해서 각 초식마다 양의신공을 따로 운용하는 특이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지결(地訣)은 각 초식이 어떤 상황에서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것이며 그 효능을 분명히 해주는 비결이다.

태극혜검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의신공을 익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마음을 두가지로 나누어 사용하지 못하면 천결과 지결 역시 동시에 운용할 수 없고 위력은 크게 떨어지고 만다.

양의신공에 포함되어 있는 양심공으로 공력을 안팎으로 함께 운용해야 되는 것이니 만큼 태극혜검은 아주 특이하고도 그 위력을 직접 보기 전에는 실감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현천록은 진양진인의 지도에 따라 태극혜검을 모두 익혔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배가 아주 고팠다.

현천록이 건져올린 물고기를 진양진인이 삼매진화로 구웠다.

현천록은 시쳇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두 가지의 절기를 지닌 고수가 되었고 그를 고수로 변모시킨 진양진인은 오히려 자기가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현천록은 백금퉁소로 검을 대신해서 태극혜검을 연습했고, 그를 보며 진양진인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직 자세에 너무 치중하고 있군. 자세를 잃지는 않아야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를 염두에 두어야 하네.]

진양진인은 보검으로 현천록을 가볍게 내질렀다.

태극혜검의 첫 번째 수법인 지일고승(指日高升)이었다.

현천록은 여섯 번째 수법인 고월침강(孤月沈江)을 펼쳐 보검을 걷어냈다.

진양진인은 즉시 수법을 바꾸어 우밀휘진(羽密揮塵)의 맹렬한 수법을 사용했다.

현천록은 비홍횡강(飛鴻橫江)을 써서 진양진인의 머리를 노렸다.

진양진인은 벽죽소영(碧竹掃影)을 사용했다.

지일고승이나 고월침강, 우밀휘진, 비홍횡강, 그리고 벽죽소영에서 볼 수 있듯이 태극혜검의 열 두 초식은 모두 수비와 공격을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진양진인은 처음에 열두초식을 펼쳐 초식만으로 일곱 번 현천록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에는 세 번만이 현천록의 초식을 뚫을 수 있었고,

세 번째에는 두 번의 기회를 가졌으며, 세 번째에는 아예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네 번째에 이르자 현천록의 태극혜검은 완벽에 가까워지면 마치 다른 검법처럼 보였다.

전체가 하나의 초식처럼도 사용되고 두 초식이 하나가 되기도 하며 한 초식이 나누어져 세 초식이 되기도 했다.

진양진인은 이런 변화에 깜짝 놀랐다.

현천록을 연습을 통해 단련시킨다는 목적이었을 뿐이었는데 태극혜검을 자기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번쩍 하는 순간에 진양진인은 화석처럼 굳어졌다.

찬바람이 이마에 몰려왔다.

그보다 먼저 현천록의 퉁소가 한치 앞에 멈춰있다.

지일고승! 진양진인이 제일 먼저 펼쳤던 수법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속에서 서로가 대결했으나 이미 초상감각을 터득한 두 사람은 보지 않아도 거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진양진인은 심장이 터질 듯 급박하게 뛰기 시작했다.

보검을 휘둘러 용도천문(龍到天門)과 한망충소(寒茫沖宵)를 잇달아 펼쳤다.

그러나 현천록의 소경심매(掃徑尋梅)는 말 그대로 길을 헤치고 매화를 찾듯이 용도천문과 한망충소를 뚫고 진양진인의 목젖에 다다랐다.

진양진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왈칵 두려움이 일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족족 자기를 능가해버리는 현천록에게 경이를 넘어 공포까지 느껴 지는 것이었다.

진양진인이 음성을 떨면서 물었다.

[자넨... 자넨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자넨 정말 사람이 아닐세.]

현천록이 말했다.

[제게 남이 갖지 못한 재주가 한가지 있을 뿐입니다.]

[어떤 재주인가? 자넨... 사제(師弟)의 예를 행하진 않았지만 내게 태극혜검을 배웠으니 그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진양진인이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현천록이 말했다.

[사람과 물건을 볼 줄 아는 재주입니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적합한지가 즉시 떠오르고 물건을 보면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금방 아는 재주지요.]

진양진인이 물었다.

[그럼 검을 보면 검법이 떠오르고 퉁소를 보면 부는 법이 저절로 떠오른단 말인가?]

현천록이 말했다.

[비슷합니다.]

진양진인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자넨... 생지지자(生知之者)로군! 전생에 아마 절세고수였던 모양일세.]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리는 없습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현천록은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귓속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

현천록은 서있던 곳에서 두 번이나 굴러서 눅눅한 바위에 떨어졌다.

[생지지자도 강호의 험난함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진양진인이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양의신공을 익혔다 해도 아직 부족한 화후로는 소천성(小天星)의 중수법을 견뎌낼 수가 없네. 무림에선 항상 가까이 있는 자를 경계해야하거늘 다음에 태어나거든 그때는 좀더 현명해지도록 하게.]

현천록은 잠시 충격을 받았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구장심조를 익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상태에 있는데 다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진양진인의 말은 그가 신화병기점에 있을 때 여러 무림인들로에게 듣곤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소천성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현천록은 정신을 잃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진양진인이 그토록 공을 들여 자기를 가르치고 이제와서는 또 왜 해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백 수십 살이나 먹은 신선같은 노인이 하는 짓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인데...

진양진인은 현천록을 안아서 자기가 누웠었던 편평한 장소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자네한테 내가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아네. 하지만 노도는 아직 죽을 수 없고 자네는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사람이네. 오히려 자네같은 사람이 마음을 한 번 잘못 먹고 나면 세상을 크게 해치지. 어느 누구도 자네를 막을 수 없을 테니 그 위험이야 오히려 더 크지 않겠나?]

현천록은 겨우 그런 이유로 자기를 해치는가 싶었다.

하지만 자기를 해치고 나서 진양진인은 일곱째인 장군묵의 손아귀를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도 궁금했다.

진양진인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자네가 뭘 궁금하게 여겼는지 대충은 짐작하네. 자네를 죽게 만드는 마당에 노도가 뭘 숨기겠는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말해주겠네. 듣고 말고는 자네 문제일세.]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노도는... 먼곳에서 왔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가고싶어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네. 바로 옥황신전(玉皇神殿)일세.]

현천록은 자기의 얼굴이 진흙처럼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진양진인은 말을 하면서도 특이한 수법으로 현천록의 얼굴을 바꾸고 있는 중이었다.

[노도가 옥황빙서(玉皇聘書)를 전달하는 옥황사자(玉皇使者)가 된 건 칠십 년 전이네. 그 이후 삼년 마다 한 장씩의 옥황빙서를 각각 주인을 찾아서 전달했네.]

진양진인은 자기의 수염을 떼서 현천록의 얼굴에 심었다.

말 그대로 진흙처럼 물러진 그의 얼굴에 수염을 하나하나 심은 것이다.

[옥황사자가 되어 옥황신전의 무공을 익히고 노도는 새로 눈을 떴었지. 하늘 밖에 존재하는 진정한 하늘에 대해서...]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머리카락마저 하얗게 만들었다.

[노도를 노리는 자들은 생각밖에 많다네. 특히 철인련맹은 유일하게 옥황신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곳이지. 그들은 옥황신전에 노골적으로 반항하며 항상 노도를 죽이려고 했네. 포두화상 그 도우가 철인련맹에 속해있네. 아마도 내가 옥황빙서를 가졌다는 소문을 낸 것도 철인련맹일 것일세.]

그가 중얼거리며 현천록을 주물럭거리는 동안에 현천록의 모습은 완전히 진양진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피부는 계수나무 껍질처럼 검버섯이 피었고 골격마저 노인의 골격으로 바뀌어버렸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하지만 여러 원인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모르겠네. 첫째는 왜 창허진인이 나를 쫓는가 하는 문제고, 둘째는 자네같은 기재들이 무엇 때문에 태어나는가 하는 거네. 세상에는 조금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지 귀재(鬼才)는 오히려 해롭다네. 수십년 동안 고수들을 만나고 옥황신전으로 초빙하는 사자의 역할을 하며 이런 저런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만 모두가 이해될 만한 사람들이었지. 하여간 자네는 죽게 되겠지만 내가 만난 최고의 인재라는 의미에서 옥황빙서를 주겠네. 이걸로 삼년 안에는 어느 누구도 옥황빙서를 얻지 못하게 됐네.]

진양진인은 현천록의 화려한 옷을 벗기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여벌의 옷을 현천록에게 입혔다.

품에는 옥황빙서와 현천록의 소지품을 넣어주고 옷은 흐르는 물에 던져버렸다.

그런 후에 몇 개의 혈도를 찍었다.

현천록은 그 혈도들이 아혈(啞穴)과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 누르기만 하면 아무 소리도 입밖에 내지 못하는 혈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퍼퍼퍽!

가슴과 배에 세 번의 장력이 떨어졌다.

기혈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소천성의 장력이었지만 그다지 강하게 친 것 같지는 않았다.

 

현천록은 비로소 진양진인이 무슨 일을 꾸몄는지 확연하게 깨달았다.

진짜 진양진인은 가버렸지만 가짜 진양진인은 남아있다.

양의신공과 태극혜검까지 익히고 있는 가짜 진양진인이.

진양진인은 아마도 이런 상태까지는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천록이 어설픈 흉내라도 내다가 일곱째 장군묵에게 죽으면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천록에게 양의신공을 가르친 건 자기의 내공을 촉발시킬 수 있는 조력자로 만들기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태극혜검을 가르치게 된 것은 현천록이 양의신공을 익히는데 놀라운 소질을 보였기에 내친 김에 더 완벽하게 해보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정말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양의신공을 그처럼 빠르게 터득하는데 태극혜검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현천록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런 방법을 썼더라도 진양진인이 장군묵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면 아무런 할말이 없다.

내기는 이겨야 주장할 수 있으니까.

현천록은 몸을 일으켰다.

늙은이로 변해있었지만 속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마를 만져보니 천잠사로 만든 머리띠가 그대로 있다.

용의주도한 진양진인도 긴장했던지 머리띠를 벗기는 건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초상감각을 발휘해 현천록은 물에 떠내려가다가 바위에 걸려 있는 자기의 옷을 다시 찾았다.

진양진인은 벌써 멀리 갔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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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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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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