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강의 작업실/펜릴의 양아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3.05.27 [펜릴의 양아들] 1화 신을 죽이는 늑대
728x90

1

 

                 신을 죽이는 늑대

 

 

 

투쾅! 떠엉!

용기사들의 창이 토해낸 번개가 지그재그로 날아갔다.

번개가 공기의 벽을 뚫으며 내는 천둥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흔든다.

삼키로 쯤 앞쪽을 날아가던 그리폰이 번개의 궤적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선회한다.

그리폰에 타고 있는 푸른 망토의 기사가 무어라 외치며 그리폰을 재촉한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날아간 번개들은 그리폰에게 완전한 회피를 허용하지 않았다.

! 화악!

열 한 가닥의 번개 중 다섯 개에 직격당한 그리폰의 몸뚱이가 불길에 휩싸였다.

푸른 망토의 기사 등에도 번개 한 가닥이 박히는 것을 용기사들은 확인했다.

화악!

그리폰의 몸뚱이가 불덩이가 되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잡았다!”

일천키로 넘게 추격한 보람이 있었다.”

하르켄폐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되었다!”

마나가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방금 전의 뇌격이 빗나갔으면 놓쳤을 수도 있었다.”

용기사들은 창을 높이 쳐들며 환호했다.

끼아아아!

용기사를 태운 와이번들도 주인의 환호에 동조하며 박쥐 닮은 날개를 힘차게 저었다.

와이번들이 날아가고 있는 아래쪽에는 광활한 숲이 시작되고 있다.

너무 울창해서 검게 보이는 숲은 북동쪽의 통곡산맥에서 시작되어 남서쪽 아스크제국의 강철장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대 폭 일천키로, 길이는 무려 삼천키로가 넘는 거대한 숲이다.

퍼엉!

불덩이가 된 그리폰의 거구가 그 숲 어느 곳에 처박혔다.

착지한다! 베오른 변경백의 생사를 확인해야한다!”

지휘자인 부기사단장 월백 남작은 자신의 와이번을 하강시키며 용기사들에게 외쳤다.

부단장님! 저 숲은 바르그헤임입니다!”

부관이며 윙맨인 하르츠경이 월백 남작을 따라붙으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월백 남작의 거구가 움찔하는 게 부하들의 눈에 들어왔다.

 

바르그헤임!

괴물 늑대들의 나라!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역전의 전사 월백 남작조차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되었다.

숲이 너무 울창하여 검은 숲이라고도 불리는 바르그헤임...

그 숲의 주인은 너무도 강력하고 무시무시하여 인족의 능력으로는 대적이 불가능하다.

허락 받지 않고 바르그헤임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인족은 단 한명도 없다.

무서울 게 없다 자부해온 용기사들조차 싸늘하게 피가 식는 기분이 드는 이유다.

잊지 마라! 우리에게는 베오른 변경백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멈칫했던 월백 남작이 부하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스스로 결의를 다지는 외침이기도 하다.

황자가 갖고 있는 제국의 상징 드래곤 아크를 회수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 가자!”

월백 남작은 와이번의 고삐를 강하게 당기며 외쳤다.

끼아아아!

월백 남작의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며 급강하한다.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이 된 용기사들은 상관을 따라 검은 숲을 향해 돌진했다.

 

검은 숲 일각에서 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추락한 그리폰을 태우는 연기다.

용기사들은 연기가 치솟는 곳을 향해 쇄도했다.

그들이 숲의 상공 일키로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낮지만 하늘과 땅을 함께 뒤흔드는 하울링이다.

펜리르!”

용기사들은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공포가 단번에 그들을 사로잡았다.

용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급히 와이번을 상승시키려 했다.

쩌엉!

그때 그들 주변의 공기가 진동을 일으켰다.

단 일초에 수천, 수만 번이나 대기가 떨렸다.

그 진동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세포 단위로 흔들어서 터트려 버렸다.

비명도 없었다.

퍼억! !

용기사와 그들을 태운 와이번들의 몸뚱이가 물 풍선처럼 터져 허공에 흩어졌다.

유일하게 버틴 것은 월백 남작이었다.

용기사단의 부단장답게 그가 보유한 마나의 양은 아스크제국을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월백 남작은 그 막대한 마나로 몸의 주요부위를 보호했다.

덕분에 머리와 몸통이 터지는 건 면했다.

하지만 그 외의 몸 부위들은 폭죽처럼 터져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가 타고 있던 와이번의 몸뚱이도 주요 골격만 남기고 흩어져버렸다.

... 신을 죽이는 포효!”

월백 남작은 지옥같이 검은 숲으로 추락하며 정신을 잃어갔다.

그는 전설로 전해지던 <신멸의 포효>를 직접 경험한 것이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정신을 차린 월백 남작에게서 멀지 않는 곳에 그리폰의 시체가 타고 있다.

들소보다 두 배 쯤 큰 그리폰의 시체는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있다.

그리폰의 시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시체가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푸른 망토를 두르고 푸른 흉갑을 걸친 건장한 체구의 사내다.

월백 남작과도 친분이 있었던 베른백작령의 영주 베오른 변경백이다.

베오른 변경백은 하늘을 보는 자세로 죽어있는데 품에는 강보로 감싼 아이를 안고 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등부터 떨어진 것이 베오른 변경백이 발휘한 마지막 충정이었다.

(하르켄폐하의 명령을 반만 수행한 셈인가?)

월백 남작은 흐려져 가는 눈으로 베오른 변경백의 시체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베오른 변경백과 그가 보호하는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은 완수한 셈이다.

아이가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바르그헤임에 허락없이 발을 들인 이상 인족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완수하지 못한 사명은 아이가 갖고 있는 드래곤 아크, <용의 가호>를 회수하는 것이다.

용의 가호가 있어야만 아스크제국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르켄폐하의 앞날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허억!)

부르르!

팔 다리가 사라진 월백 남작의 몸뚱이가 문득 경련을 일으켰다.

쏴아!

베오른 변경백 건너편의 검은 숲이 움직이고 있다.

술렁거리는 숲의 상단에 바다처럼 깊고 푸른 한 쌍의 눈이 떠오른다.

푸른 눈을 지닌 검은 숲이 일렁거리며 다가왔다.

숲이 아니라 늑대였다.

얼마나 큰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늑대다.

머리는 하늘 끝까지 닿는 것같고 어깨는 주변의 거목들보다 더 높다.

... 리르!”

월백 남작은 쥐어짜듯 신음을 흘렸다.

괴물 늑대들의 영주,

태양을 삼키는 재앙,

신들의 왕 오딘을 죽인 라그나로크의 주역!

바르그헤임의 주인이기도 한 펜리르를 월백 남작은 직접 보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혼백은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 리르!>

 

모기가 우는 것같이 앵앵대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펜리르는 신경 쓰지 않고 베오른 변경백의 시체로 다가갔다.

슈우!

하늘 끝까지 닿을 것같던 거대한 몸뚱이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절반씩 줄어들었다.

최종적으로 들소만해진 펜리르는 베오른 변경백의 시체 옆에 멈춰 섰다.

베오른 변경백은 죽었다.

그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 인족은 아직 숨이 붙어있다.

하지만 곧 헬헤임으로 갈 것이다.

아이는 베오른 변경백과 함께 번개를 맞았을 뿐 아니라 무려 이키로 높이에서 추락했다.

베오른 변경백이 죽어가며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미 혼이 몸뚱이를 떠났을 것이다.

예외는 없다.”

펜리르의 입에서 인족과 수족 모두에게 통하는 공용어가 흘러나왔다.

바르그헤임에 발을 들인 인족은 죽는다!”

펜리르의 입이 동굴처럼 벌어졌다.

아이의 연약한 육신은 그 입에 삼켜질 것이다.

!

그때 새하얀 번개가 날아들어 펜리르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아이를 삼키려던 펜리르는 움찔하며 옆으로 밀려났다.

무슨 짓이야 마누라?”

펜리르는 오만상을 쓰며 돌아보았다.

아프지는 않지만 짜증이 난다.

눈같이 흰 늑대 한 마리가 펜리르는 본 척도 않고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들소만한 몸집의 새하얀 늑대는 너무 희어서 마주 보기가 힘들 정도다.

하얀 늑대에게서 유일하게 색이 있는 부위는 온화한 노란색 눈동자뿐이다.

그놈은 빌어먹을 인족이야. 방해하지마.”

펜리르는 입으로만 궁시렁대었다.

하얀 늑대는 이 세상에서 펜리르가 유일하게 눈치를 보는 대상이다.

하얀 늑대는 펜리르의 짝이다.

아무리 인족이라 해도 핏덩이까지 삼킬 생각을 해요?”

펜리르의 아내 네페리가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이런 못된 짓까지 하니까 당신과 나 사이에 자식이 생기지 않는 거라구요.”

네페리는 아이의 뺨에 묻은 피를 핥았다.

펜리르와 네페리가 부부가 된 후로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자식은 없다.

펜리르는 네페리 이전의 아내들에게서도 자식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자식이 생기지 않는 건 불사의 능력을 지닌 신수의 운명이라 체념하고 있었다.

악담을 해도...”

펜리르는 궁시렁거렸지만 딱히 반박은 못했다.

마누라가 자식이 생기지 않아서 얼마나 애태우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 아이를 삼켰으면 당신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었을 거예요.”

네페리가 말했다.

후회? 나 펜리르가...?”

어이없어하던 펜리르의 몸이 굳어졌다.

네페리가 아이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발톱으로 걸어 올려서 보여주고 있다.

길이 십오 센티 정도에 초승달처럼 휘어졌으며 한쪽 끝이 날카로운 목걸이다.

어떤 짐승의 이빨인 그 목걸이는 너무 검어 공간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인다.

드래곤 아크!”

펜리르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이제 이 아이가 누군지 짐작이 가시지요?”

네페리는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아이 몸에 다시 내려놓았다.

지크프리트! 그놈은 지크프리트의 후손이었군!”

펜리르는 털썩 주저앉았다.

오래 전 함께 마왕을 쓰러트렸던 맹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람의 정령 실프가 속삭이더군요. 지크프리트가 세운 아스크제국에서 큰 슬픔이 있었다고...”

네페리는 연민의 눈빛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인족은 필멸의 존재야. 백년도 못 사는 하찮은 것들이 슬픔의 대상이 될 수는 없어.”

펜리르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옛 맹우의 후손을 죽게 놔둘 건가요?”

네페리가 살짝 웃었다.

그놈은 이미 한 발을 헬헤임에 담그고 있어.”

펜리르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헬헤임은 죽음의 여신 헬라가 다스리는 저승세계다.

신조차 죽이는 당신의 가호라면 이 아이를 헬라의 손아귀에서 빼낼 수 있지 않나요?”

?”

펜리르는 펄쩍 뛰어 일어났다.

마누라! 내 가호를 그놈에게 불어넣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잖아!”

평범한 늑대였던 저처럼 불사에 가까운 몸이 되겠지요.”

네페리는 별일 아닌 듯 말했다.

네페리가 오백 년 넘게 살아온 건 펜리르가 가호를 나눠준 덕분이다.

필멸의 운명인 인족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 건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야!”

펜리르가 마지막 항변을 했다.

늑대면서 신인 당신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잖아요.”

네페리의 반론에 펜리르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아이를 살려서 양자로 삼든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삶을 후회로 채우든지 결정하세요.”

젠장할...”

마누라의 압박을 못 이긴 늑대들의 왕은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

지크프리트의 후손이니 네놈을 지크라 부르마!”

펜리르는 죽어가는 아이의 코와 입에 자신의 가호를 불어넣어주었다.

지크 펜리르손! 펜리르의 아들 지크의 이름을 하늘과 땅과 지하의 모든 존재들이 알게 될 것이다.”

아아앙!”

헬헤임에서 빠져나온 아이, 지크 펜리르손이 양아버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힘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