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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나는 가까이 있으나 먼 곳에서 왔느니 2

 

휘익!

노대가 바위를 날아 넘어 이매봉 앞에 내려섰다.

[! 숨을 죽인다고 냄새까지 없앨 수 있을 줄 알았나?]

[노대! 진양이오?]

노이와 노삼이 뒤이어 날아왔다.

이매봉은 그들이 하는 짓이 총명한 것 같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찾던 사람이나 잘 찾아봐요. 난 웬 놈도 아니고 도사도 아니니 나를 찾진 않았을 거잖아요.]

노삼이 말했다.

[그건 그렇다. 하지만 넌 우리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니 죽어야겠다.]

이매봉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야기를 다 들었으면 죽어야 하는가요? 난 몰랐어요. 미리 알았으면 귀를 막고 듣지 않는건데...]

노대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우릴 놀릴 셈이냐? 어린 계집애가 앙큼하구나.]

이매봉은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했다.

[뭐가요?]

노대가 말했다.

[이른 아침에 산정에 왔다는 것도 놀라운데 흥! 이 근처의 눈 위에 네 발자국이 없다는 건 뭘 말하느냐? 적어도 설상비(雪上飛)보다 뛰어난 경신술을 쓸 줄 안다는 얘긴데 순진한 척 시치미를 떼려하다니.]

이매봉이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

[거참! 하는 수 없군요.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하지만 당신들은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사람들이겠죠?]

노삼이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 요즘 나 다니는 강호의 시러배 잡놈들과는 다르다.]

[호호호호!]

이매봉이 깔깔 웃고 말했다.

[정말 그렇군요. 확실히 좀 달라 보여요.]

노삼이 칭찬을 듣고 우쭐하는 표정을 지었다.

노대가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물었다.

[너는 누구냐? 무엇 때문에 여기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해라.]

이매봉이 말했다.

[말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노대가 말했다.

[고통없이 죽여주마. 시체도 손상시키지 않겠다.]

노삼이 말했다.

[만약 말하지 않으면 먼저 두 눈을 파내고 배에다 구멍을 낸 후에 사지를 자르고 송곳을 귀속에 넣어 두개골을 휘저어 죽이겠다.]

노이가 말했다.

[거짓말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휴~ 무서워라.]

이매봉은 정말 겁내는 것처럼 몸을 움추렸다.

노대가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갑자기 이매봉이 울먹울먹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으왕!]

노삼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노대! 울어버리는군요. 우는 아이는 어떻게 달래야하죠? 당장 죽여버릴까요? ]

노이가 말했다.

[우는 아이는 엉덩이를 까서 볼기짝을 두들겨 주는 법이야. 나도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 그렇게 맞았네.]

이매봉이 울면서 말했다.

[난 이제 죽게 되는군요. 흑흑! 너무 슬퍼요. 얼마 살지도 못했는데 죽게 되다니...흑흑! 이건 너무 억울해요.]

노삼이 말했다.

[노대, 이 아이가 억울하다는 군요.]

노대가 말했다.

[죽을 땐 누구나 다 억울한 법이야.]

노삼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죽인 놈들 중에선 억울하다고 한 놈이 하나도 없었는데...]

노삼은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마라! 그렇게 슬퍼할 것 없다. 노부가 직접 죽이면 너도 다른 놈들처럼 억울하지 않고 잘 죽을거다.]

이매봉이 말했다.

[왜 억울하지 않겠어요? 엉엉! 난 억울해요. 정말 억울해요. 당신들 말 다 들었으면 죽어야 된다고 해놓고 다 듣지도 못한 나를 죽이려면 어떻게 해요. 엉엉, 다 들었으면 죽어도 억울하지 않는건데... 엉엉.]

노삼이 아주 당황했다.

[그건... ... 노부가 그렇게 말했었군. 으음... 노부 일백사십 평생에 처음하는 실수다.]

노대가 소리쳤다.

[노삼! 입 다물어라!]

노삼이 말했다.

[하지만 노대, 이 문제는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

노삼은 노대의 살벌한 눈초리를 대하고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노대가 말했다.

[너는 누구냐?]

이매봉은 눈물을 닦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소녀의 이름은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노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네 아비나 사부의 이름은 뭐냐?]

이매봉이 말했다.

[그 또한 아랫사람이 허락없이 함부로 들먹일 수 있는 함자가 못되는군요.]

[방자한 것!]

노대는 섭선을 모아서 찌르는 시늉을 했다.

순간 섭선의 끝에서 칼날같이 예리한 바람소리가 났다.

쉬익!

이매봉은 깜짝 놀랐다.

(무형강기(無形罡氣)!)

몸속의 내공을 뭉쳐서 밖으로 발출하되 그것이 형체는 없으면서도 칼날처럼 예리하고 단단하다면 무형강기라고 부른다.

무형강기를 발할 수 있는 고수는 천하를 통틀어도 몇 명이 나올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물다.

피하지 않으면 금강불괴라 해도 온전하기가 힘들다.

이매봉은 즉시 옆으로 두걸음 비켜섰다.

한데,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서 번득하더니 어느새엔가 노삼이 그의 앞을 막아서 있었다.

!

무형강기는 노삼의 가슴에 격중했다.

[!]

노삼이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노대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죽고 싶어 환장했어?]

노삼이 말했다.

[노대! 생각해보니 이 아이가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소. 게다가 이 아이가 억울하면 우리가 우리 얼굴에 똥칠한 꼴이 되지 않겠소. 죽일 때 죽이더라도 듣고 싶은 말은 다 듣게해줍시다.]

노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삼 말이 옳은 것 같소. 노대 그렇게 합시다. 그래야 죽는 저 아이는 편안하게 죽을 거고 우리도 신용을 지키지 않겠소?]

노대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너희 둘은 완전한 바보 멍청이들이야. 그런다고 죽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을 것 같나?]

이매봉이 소리쳤다.

[그럴 것 같아요.]

노이와 노삼이 그것보라는 듯이 노대를 본다.

노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우린 여기에 있지만 먼곳에서 왔다. 이런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러 온게 아니란 걸 명심해라.]

이매봉이 말했다.

[어디서 왔는데요?]

노대가 말했다.

[바보짓을 하려면 천산(天山)도 족하지. 그 먼곳에서 여기까지 와서 바보짓을 할 건 뭐란 말이냐?]

노삼이 물었다.

[노대! 우리가 정말 바보짓을 한 거요? 억울함을 풀어주고 신용을 지켜 명예를 보전하려 했을 뿐인데...]

이매봉이 맞장구를 쳤다.

[옳아요!]

노대가 이매봉을 흘겨보았다.

이매봉은 슬그머니 노삼의 등뒤에 숨었다.

그녀는 노삼의 몸이 호리호리하긴 하지만 무형강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로 금강불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대가 말했다.

[강호가 험난 한 건 이래서 험난하다. 노인을 조심해야 하고, 어린아이를 조심해야 하고, 특히 이런 젊은 여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얼굴이 예쁘면 더욱 조심해야되지.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강호로 잘 나오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매봉이 말했다.

[당신은 예쁜 여자한테 속은 적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왜 예쁜 여자를 나쁘게 말하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다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데.]

노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노대는 절대로 남에게 속지 않는다. 노대도 우리같은 바본 줄 알면 안돼.]

노삼이 말했다.

[맞다. 노대는 바보가 아니지. 우리와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정말 똑똑해. 물론 우리한테 화를 잘 내고 짜증부리지만.]

이매봉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세 사람이 작당해서 나 하나를 괴롭히려 하는군요. 남자가 치사하지도 않아요? 비겁하게 여자 하나를 괴롭히려 하다니. !]

노삼이 머리를 긁으면 어쩔 줄 몰라했다.

[정말 야단났군. 이건 어른이 아이를 괴롭한다는 말에도 해당되고 남자가 여자를 괴롭힌다는 말에도 해당되는군. 역시 노대말씀이 옳아. 여자를 상대하는 건 머리가 아파.]

이매봉이 다그쳐 물었다.

[말해봐요. 당신들은 누구죠? 난 당신들 같은 사람이 있다는 소릴 못들었어요.]

노이가 이매봉을 상대하기로 결심한 듯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린 천산삼로(天山三老). 좋은 사람이라곤 할 수 없지만 딱히 나쁜 사람이랄 수도 없다.]

이매봉은 생각했다.

(천산삼로라? 덜 떨어진 것 같은 이들이 천산삼로라구? 세상에나... 멀쩡한 사람들은 다 뭘하고 이 사람들이 천산삼로야? 어쩐지 무형강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고 했더니...)

천산삼로는 오래 전부터 천산에 출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이름이 알려져 왔다.

천산일대의 녹림을 장악하고 있을 뿐아니라 개개인의 무공이 아주 특이하고 고강하여 천산에 갈 때는 항상 그들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해진다.

중원의 유명한 고수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낭패를 보거나 살해당한 인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구십년 전쯤에 무당의 탁월한 고수인 진양진인이 그들의 우두머리와 싸워 이겼다는 말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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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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