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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둘만의 樂園

 

 

 

잠시 후, 무허선사와 환영비천신의 시신을 매장하고 나자 제연연은 동굴 안을 깨끗이 손질하였다.

그리고 극음빙천에서 건진 백호피(白虎皮)를 바닥에 깔아놓자 동굴 안은 제법 아늑했다.

시장기가 돈 그들은 한두 개씩의 한령토황우를 먹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무어라할 수 없는 은은한 향기와 맛이 있었다.

두 사람은 곧 동굴 안에 들어와 마주 앉았다.

그들 앞에는 예의 옥함이 놓여 있었다.

“환영비천경(幻影飛天經)부터 보십시다.”

적연흥은 두 권의 비급 중 다소 얄팍한 환영비천신의 비급을 꺼내 들었다.

“환영비천신은 고금을 통털어 가장 경공이 뛰어났던 기인 중 한 명이예요. 환영비천경의 무공은 이 절곡을 빠져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예요.”

두 사람은 환영비천경을 펼쳐 들었다.

 

<환영미리신보(幻影迷漓神步)>

 

환영비천경의 첫머리에 적힌 무공이었다.

이는 보법(步法)으로 소위 일반인들이 말하는 분신술(分身術)이라는 것이었다.

신형(身形)을 단번에 삼십육 개로 나눌 수 있으며 일시지간 모습을 감출 수도 있는 가공한 절기였다.

본시 음흉한 환영비천신은 강호행도시 누구에게도 그 위력의 반 이상을 펼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허선사 외에는 그 누구도 환영비천신의 옷자락 하나 건들이지 못했다.

하나, 그 음흉함이 화근이 되어 신무애 위에서 무허선사에게 강력한 일장을 맞고 이곳으로 떨어져야 했다.

즉, 만일 그가 전력을 다해 환영미리신보(幻影迷漓神步)를 펼쳤다면 무허선사의 천수미허신장(千手彌虛神掌)이 아무리 천지를 뒤덮는 절기라 해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실력을 반푼 정도 숨겼고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환영미리신보 외에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무공과 잡술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 것들은 무림행도시에는 큰 도움이 되겠으나 지금 당장은 별 의미없는 잡기였다.

쓸만한 무공은 거의 끝쪽에 적혀 있는 세 가지였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무공이었다.

 

<환영분뢰강지(幻影分雷罡指)>

 

가히 천하에서 가장 빠르고 은밀한 지공(指功)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무공이다.

빠르고 은밀한 뿐만 아니라 한 자 두께 철판도 관통하는 강한 면도 있는 절세의 지공(指功)이었다.

 

<만환천영술(萬幻天影術)>

 

희대의 기만술이라할 기공(奇功)이다.

비단 얼굴 모습을 제멋대로 뒤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변성술, 변체술 등등……

상대가 누구라도 본인도 구별 못할 정도로 변환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위기 어떤 상황에서도 빠져 나올 수 있는 요결이 환영비천신의 경험으로써 기록되어 있었다.

 

<비천어기신법(飛天馭氣身法)>

 

환영비천경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최고의 경신법이다.

한 모금 진기로 백 리를 날아갈 수 있다는 절세의 경공인 것이다.

신무애를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공이다.

환영비천경(幻影飛天經)을 살펴본 두 사람은 소림사 최고선공이 실려 있다는 두툼한 경전을 집어 들었다.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

 

“이것은 불교경전 아닙니까?”

제목을 읽어본 적연흥이 고개를 갸웃 하며 제연연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군요. 금강경(金剛經)의 일종인 것 같으니…… 내용을 보시지요.”

제연연의 말에 적연흥은 경전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곤혹스런 표정은 더욱 짙어가기만 했다.

소림(少林)제일의 선공비급이라 하여 광세신공의 구결을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경전의 내용도 역시 심오한 불교의 법리가 기록된 것이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혹시 모르니 소제는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옵소서. 하여튼 소림의 제자가 되셨으니 불법(佛法)에 대해서도 아셔야 하니까요. 첩신은 잠깐 나갔다 오겠사옵니다.”

제연연은 목욕이라도 할 생각으로 조용히 동굴을 나섰다.

혼자 남은 적연흥은 정좌한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의 참수에 들어갔다.

본시 읽기를 좋아하던 적연흥인지라 곧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이해 못할 일이 일어났다.

적연흥은 경전을 넘김에 따라 점차 몸속에서 강렬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힘은 아주 극강(極强)하면서도 끝없이 넓어 그 유심(幽深)함이 가이없는 그런 힘이었다.

경전의 장을 넘김에 따라 그 기운은 더욱 성(盛)해 갔다.

그무렵 적연흥 자신은 모르고 있었으나 적연흥의 전신에서 서서히 찬연한 서광(瑞光)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서광은 어떠한 사악함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그런 것으로 처음에는 그 농도가 엷었으나 점차 적연흥의 전신을 가릴 정도로 짙어졌다.

마침내 적연흥의 일신은 완전히 서광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적연흥 자신은 이미 무아지경에 들어 그러한 사실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그의 몸이 기이한 형상을 취하고는 하였다.

자세히 보면 때로 나한(羅漢)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왕(天王), 보살(菩薩), 관음(觀音), 심지어 불존(佛尊)의 형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멋!’

일각 후 목욕을 마치고 물기젖은 촉촉한 모습으로 동굴에 들어서던 제연연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경악성을 급급히 되삼켜야 했다.

동굴 전체가 성스런 서광(瑞光)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그 광채는 부드러운 가운데 두 눈을 찌르는 강렬함을 지니고 있어 감히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또한 그 서광은 접하는 이로하여금 지극히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효능이 있었다.

‘상공께서 어떤 인연을 얻으셨음에 틀림없다. 겉보기에는 그저 불교경전에 불과한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의 어디엔가 상공을 기다리고 있던 큰 안배가 있었으리라.’

제연연은 내름대로 추측하며 조용히 동굴을 물러 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적연흥은 무심한 눈빛으로 무상반야금강경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문득, 무심하기만 하던 적연흥의 두 눈이 이채를 띄며 빛났다.

그곳에 몇 자의 글이 적혀 있음을 본 때문이다.

 

<인연있는 자만이 뜻을 얻으리라. 인연이란 석존(釋尊)께서 베푸시는 큰 빛(光明)에 이어지나니 결코 강제로 탐하지 말 것이며 서두르고 조바심 내어 얻어질 것이 아니니라.

불기(佛紀) 구백 팔 년(九百八年) 달마(達磨).>

 

미소가 번진다.

적연흥의 옥안에 더할 수 없이 맑고 부드러우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소가 감돈다.

염화미소(艶花微笑)가 이러하리라.

적연흥은 무상반야금강경을 덮었다.

점차 그의 몸에서 서광이 사라져 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완전히 사라졌다.

“얻으려하면 얻을 수 없고 얻지 않으려 하여야 얻을 수 있다니……”

적연흥은 미미하게 미소지었다.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은 한 권의 불교경전이면서 그 자체에 선공(禪功)의 묘의를 지니고 있었다.

달마(達磨)이래 수많은 고승들이 무상반야금강경을 해인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누구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경전의 자구(字句)에 연연하여 그중에서 어떤 뜻을 찾으려 한 때문이다.

하나 그런 상태에서는 백번 천번 보아도 무상반야금강경은 그저 단순한 경전일 뿐이다.

아무것도 원함이 없고 무엇인가를 얻으려 연연함이 없는 무심(無心) 무욕(無慾)의 심정으로서만 비로소 무상반야금강경의 의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적연흥은 무상반야금강경이 선공비급임을 믿지 않았으므로 단지 소림의 제자 된 몸으로서 불교경전을 접해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무상반야금강경을 참수했다.

그 때문에 그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상반야금강경에 비장된 큰 뜻을 깨달은 것이다.

그 뜻을 깨달은 것은 전체 중의 극히 일부이며 피상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연흥의 일신에 지극히 강한 힘이 충만해 있었다.

“모든 것이 조사님의 은혜이시다.”

적연흥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때, 제연연이 조용히 들어섰다.

들어오던 제연연은 아찔함을 느꼈다.

적연흥이 자신을 바라보며 극히 무심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이분, 그 능력이 대해(大海)와 같이 넓으시고 창공(蒼空)과 같이 높으신 분이 나의 지아비시다.’

제연연은 가슴 벅참을 느끼며 조용히 적연흥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적연흥은 미미하게 웃으며 제연연의 섬섬옥수를 잡았다.

제연연은 살포시 눈을 감으며 적연흥의 넓은 가슴에 기대어 갔다.

 

* * *

 

“비천어기신법(飛天馭氣身法)은 분명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는 절세경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적연흥이 제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나 적연흥은 완전히 성인(成人)같이 자라 있었다.

체구가 더 커졌음을 물론이려니와 그의 전신에서는 범접키 어려운 성스런 빛이 흐르고 있었다.

“하오면 상공께선 비천어기신법을……”

제연연이 놀란 눈빛으로 우러러보며 물었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일년 동안 저는 무상반야금강경을 참수하는 외에 비천어기신법(飛天馭氣身法)만을 익혀 이미 더 갈곳이 없는 정도로 익혔습니다.”

“아……”

제연연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녀는 경외스러움과 자랑이 담긴 눈빛으로 적연흥을 올려다보았다.

제연연에 있어서 적연흥은 태산(泰山)이며 태양(太陽)이었다.

‘이분의 능력은 어디가 끝일까? 나는 이제 겨우 사성(四成)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 비천어기신법을 극에 달하도록 연마하셨다니……’

그녀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령토황우(寒靈土黃牛)는 여인이 복용할 시에 만효(萬效)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혜지(慧智)를 극도로 높여 주는 것이다.

지금, 제연연의 혜지는 신무애에 떨어지기 전보다 십 배 이상 높아져 천하를 통틀어 가장 지혜로운 여인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연흥은 여전히 그녀보다 세 배 이상 뛰어난 것이다.

“비천어기신법이 극에 달한 지금 소제는 일시에 백여 장을 날아오를 수가 있습니다.”

제연연은 놀라운 기색을 지으면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거에 백 장을 뛰어 오를 수 있다니……

천하에 누구에게라도 물어 보아라.

누가 사람의 몸으로 백 장을 뛰어오를 수 있다고 믿겠는가?

적연흥은 침중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비천어기신법으로도 이 신무애를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제연연의 표정도 어둡게 변했다.

“신무애의 절벽이 그리도 높사옵니까?”

“그렇습니다. 누님. 가장 높은 곳이 오백 장이 족히 되고 가장 낮은 곳이라도 삼백 오십 장이 됩니다. 소제가 사력을 다해 신법을 펼친다면 이백 장이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만 그 이상은 불가능 합니다.”

“석벽 어디엔가 발을 붙일만한 곳이라도……”

적연흥은 고개를 저었다.

“석벽 전체가 강철같이 굳고 동판같이 굳은 청옥석(靑玉石)으로 이루어져 발을 붙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연연이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첩신이야 상공과 함께라면 이곳에서 백년 천년 살아도 괜찮사옵니다만 상공께서야 큰 뜻을 펴실 대붕(大鵬)이시니……”

적연흥이 미소 지으며 제연연의 어깨를 잡았다.

“하하……대붕(大鵬)이 날개가 생긴다면 이정도 절곡이야 금방 날아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걱정마십시오.”

제연연은 적연흥의 가슴으로 파고 들며 눈을 감았다.

“상……상공, 사랑받고 싶어요. 사랑해 주세요.”

제연연은 다른 사람이 보면 기겁을 할 정도로 대담하게 적연흥의 사랑을 구했다.

이곳은 두 남녀만의 세상,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무공을 익히고 서로를 사랑하는데 몰두하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두 남녀는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정열이 일며 사랑의 행위를 하였다.

세속의 인간들이 보면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짓거리라고 힐난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하하…… 누님, 누님 한 분이라면 얼마든지 사랑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의 농염한 몸을 번쩍 안아들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인 동굴로 향했다.

곧, 동굴 속에서는 제연연이 환희에 떨며 흐느끼는 교성이 흘러 나왔다.

뜨거운 열풍은 점점 거세지고 제연연의 흐느끼는 비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실, 만년화룡의 내단과 단화를 흡수한 적연흥은 그대로 불(火)의 화신(化身)이었다.

그 강렬함과 뜨거움은 제연연 혼자 몸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종종 제연연은 적연흥과의 관계 후에 한동안 운신도 못하곤 하였다.

너무나 심하게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연연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또한 늘 그렇게 당해야만 이곳 신무애 하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녀의 공력이 비록 기고하다고는 하지만 극음빙천의 한기를 오래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늘상 적연흥으로부터 전해받은 열양지기(熱陽之氣)로 극음지기(極陰之氣)를 견디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요즘 극음빙천의 중간에 솟아있는 극음(있는

극음한령석(極陰寒靈石)에서 한 가지 절대기공(絶代氣功)을 연마하고 있었다.

극음한령석은 천지간에서 가장 강한 한기를 지니고 있다.

그 한기를 몸속으로 흡수하여 한 가지 기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적연흥은 그런 그녀에게 조금도 아끼지 않고 열양지기를 전해준다.

사실 그는 만년화룡의 내단과 단화의 상당 부분을 용해하여 자신의 공력으로 삼았다.

그의 공력 이미 제연연과 비슷한 지경에 이르러 있으나 그가 용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부분은 전체 중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빙산일각(氷山一角)이랄까?

 

일각 후, 열풍은 가라앉고 아늑한 피로감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대강 몸을 가린 적연흥은 아직도 환희에서 못 깨어나는 제연연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 신무애를 빠져 나가는데 대해서 너무 조바심 내지 마십시오. 늦어도 십년 이내에는 빠져 나갈 수 있으니까.”

적연흥이 삼단같은 머릿결을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제연연은 촉촉히 젖은 눈을 떴다.

“어떤 방법이라도 있으시온지요?”

적연흥은 빙그레 웃었다.

“지금 소제는 무상반야금강경을 삼성(三成) 정도 참수한 상태입니다.”

제연연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천어기신법을 일 년만에 완성하신 상공께서 겨우 삼성 정도 밖에 못 이루실 정도로 무상반야금강경이 난해하옵니까?”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이라면 몇백 년 걸려도 그 진전이 힘든 절대선공이지요. 반면 무상의 위력도 있으나 갈 수록 난해해지니 무상반야금강경을 연성하는 데는 저라고 해도 최소한 십 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경지는……”

“심어제행(心御制行)의 경지로서 마음만으로 천 리(千里)를 날아갈 수 있는 단계입니다.”

제연연은 그저 놀란 표정으로 적연흥을 우러러 볼 뿐이다.

“억지로 서두른다 해도 진전이 빨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내일부터는 모산의 할아버지와 음산의 할아버지께서 주신 비급도 연마할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어…… 어머……상공…… 첩신은 더 이상…… 못…… 견디…… 아아……”

제연연의 자그마한 나신이 다시 적연흥의 우람한 체구에 눌려 버렸다.

“상공……그만……”

제연연이 발버둥쳤으나 적연흥은 태산같이 눌러왔다.

또다시 뜨거운 열풍이 동굴 안을 후덥지근하게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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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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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다시 창천애. 소지존, 위상영, 색목쌍교 모두 쓰러져 있다. 색목쌍교는 인사불성. 위상영은 정신을 잃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있고. 소지존은 벌벌 떨고 있다.

소지존; [끄윽!] 벌벌 떨며 자기 손으로 자기 가슴을 겨누고. 이어

파팟! 자기 가슴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몇 곳 찌르고. 그러자

소지존; [컥!] 피를 왈칵 토하고. 이어

소지존; [허억!] 막힌 숨을 토하며 일어난다. 벌벌 떨면서

소지존; [망할 년... 내공이 모두 흩어진 상태에서도 이혼비파를 탄주하다니...] 위상영을 돌아보며 헐떡이고. 독기서린 표정

소지존; [만일 저년이 내공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방금 전의 산혼탄(散魂彈)에 정말 혼백이 몸을 빠져나가 흩어질 뻔 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소지존; [감히 천하의 주인이 될 나로 하여금 피를 토하게 만들어?] 이를 갈며 위상영에게 다가가고. 비틀거리면서

위상영은 눈을 감고 있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고

소지존; [먼저 죽이고 나서 재미를 보겠다!] 콱! 두 손으로 위상영의 목을 움켜쥐고

콰득! 위상영의 목을 조이는 소지존의 손아귀, 목뼈가 부러지려 하고

위상영; [끄윽...] 눈을 까뒤집고

소지존; [크크크! 계집으로서 가장 치욕적인 일을 당하게 해주마!] 광기에 사로잡혀 위상영의 목을 조이고

위상영; (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 것일까? 여자로서의 마지막 존엄도 지키지 못하는 방식으로...) 눈을 까뒤집으며 절망하고

위상영; (천도(天道)가 존재한다면... 깨끗한 몸으로 죽게라도 할 텐데...) + [!] 생각하다가 눈 치뜨고

화악! 소지존의 머리 위로 유령같은 그림자가 덮친다. 하얀 빛이 나는 퉁소를 내리치려는 자세로, 소지존의 아래쪽에 있는 위상영의 눈에 들어오고

위상영; (설마!) 눈 치뜨는 위상영

<이청풍!> 위상영의 생각 배경으로 드러나는 그 그림자. 바로 청풍인데 소리없이 덮치며 쇠퉁소, 용봉철적으로 소지존의 머리통을 내리쳐온다

소지존; [!] 눈 부릅뜨는 소지존

눈 치뜬 위상영의 눈동자에 청풍의 모습이 비친다

소지존; [헉!] 팟! 사력을 다해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며 몸도 왼쪽으로 굴리려 하고

꽝! 청풍의 용봉철적이 간발의 차이로 소지존의 머리를 비켜서 그자의 오른쪽 목 옆 어깨뼈를 때린다.

빠직! 소지존의 오른 쪽 어깨뼈가 부러지는 모습

소지존; [크악!] 콰당탕! 어깨뼈가 부러진 채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옆으로 팽이처럼 굴려 피한다.

청풍; (기습에 실패했다.) 휘릭! 위상영 앞에 내려서며 소지존을 돌아보고

소지존; [지랄...] 휘릭! 바닥에 굴렸던 몸을 바람처럼 움직여서 날아오른다. 이후로 어깨뼈가 부러진 쪽 오른쪽 팔은 쓰지 못한다.

소지존;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가...] + [!] 내려서며 이를 갈다가 눈 치뜨고. 쩍! 그자의 눈으로 파고드는 퉁소 끝

쩍! 청풍이 바람같이 쇄도하여 용봉철적을 찌르고 있고

소지존; [헉!] 휘릭! 뒤로 몸을 홱 젖혀서 청풍의 용봉철적을 얼굴 위로 흘려보내고

휘릭! 공처럼 몸을 돌린 후 멀찍이 내려서는 소지존. 거리는 15미터 정도

청풍; (좋지 않다.) 스슷! 추격하지 않고 멈춰서며 그런 소지존을 보고

<지금의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수다. 그런데 기습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건 실패했다.> 어깨뼈가 부러진 오른팔을 늘어트린 채 비틀거리면서 청풍을 노려보는 소지존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소지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 이를 부득 갈며 다가온다. 쿠오오.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지고

빠지직! 오싹! 몸에 소름이 돋고 벼락에 맞은 기분이 되는 청풍

청풍; (내공이 최소한 삼(三)갑자...)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위상영 쪽으로

청풍; (반면 나는 내공이랄 것도 없는 미미한 수준...) 용봉철적을 앞으로 내민 채 식은땀 흘리고

청풍; (늦지 않게 도착해서 위소저를 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쓰러진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위상영을 곁눈질하고

청풍; (아무래도 끝까지 지켜주긴 힘들 것 같다.) 다시 용봉철적을 내밀며 소지존을 보고. 그때

<반각(半刻;7-8분)...> 갑자기 귀에 들리는 음성에 눈 치뜨는 청풍

청풍이 곁눈질로 돌아보니 위상영이 눈을 뜬 채 보고 있다. 입은 다문 채

청풍; (염화로 말을 건네고 있구나.) 생각할 때

<반각만 어떻게든 버텨주세요.> 청풍을 보는 위상영. 역시 입은 움직이지 않는데 말이 들린다.

청풍; (뭔가 수단이 있는 모양이다.)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 끄덕이며 다시 소지존을 보고. 그때

소지존; [이름을 말해라.] 쩌엉! 쩡! 왼손 다섯 손가락에서 30센티가 넘는 면도날 같은 섬광을 뽑아내며 다가오고. 이제 거리는 5미터 정도

소지존; [그래야 나중에 염라대왕에게 본좌가 죽인 놈이 누군지 고할 수 있을 테니...] 살벌하게 웃고

청풍; [원한다면 알려주지.] [나는 이청풍이다!] 일부러 거만하게 냉소하고

소지존; [이청풍?]

청풍; (당연히 처음 듣는 이름이겠지.) + [기억해둬라.]

청풍; [너를 죽인 게 누군지 염라대왕에게 고해야할 테니...] 비웃으며 옆으로 움직여 위상영과 떨어진다. 위상영을 보호하기 위해

소지존; [그 새끼...] 피식 웃고

소지존; [곧 죽어도 허세로구나! 내공 수위가 일, 이년 정도 밖에 안되는 주제에...] 스악! 이미 다가와 청풍을 베고 있는 소지존의 왼쪽 손에서 뻗어나온 섬광.

위상영; [!] 누운 자세로 비파를 끌어안다가 긴장. 하지만

슈악! 소지존의 공격에 실린 힘을 빌어 뒤로 휙 밀려나는 청풍.

소지존; [어!] 놀라는 소지존. 그러면서도 청풍을 추격하고

부악! 쩍! 그자의 왼손에서 내뻗친 섬광들이 사방에서 청풍을 난도질해오고. 하지만

휘익! 휙! 소지존의 공격을 흩날리는 깃털처럼 타고 나는 청풍

위상영; (쉽게 당하지는 않겠구나.) 띠리링! 작게 연주를 시작한다.

소지존; [쥐새끼 같은 놈!] [요상한 경신술을 익혔구나!] 부악! 쩍! 연달아 섬광을 긋지만 청풍은 그자의 공격이 다가오면 밀려난다.

청풍; (능파미보로 반각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겠구나.) 휘익! 휙!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생각하고. 하지만

소지존; [그렇군!] 피식 웃으며 멈춰서고

츠츠츠! 그자의 왼손 다섯 손가락에서 돋아났던 섬광이 사라지고

휘릭! 청풍도 그자의 10미터쯤 앞에 날아 내리고

소지존;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지만 네놈은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해서 몸을 보호하는 재주를 지녔구나.] 징! 손바닥으로 청풍을 겨누고

청풍; (귀견수처럼 격공장(隔空掌;거리를 두고 쏘는 장풍)을 쓰려는 모양이다.) 긴장하며 옆으로 피하려 하는데

소지존; [공격을 해도 소용없다면 끌어들이면 되겠지.] 부악! 내민 소지존의 손이 진동하고. 그러자

화악! 강한 흡인력이 청풍을 끌어들인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청풍; (아차!) 콰드드! 두 발이 바닥을 긁으며 몸이 소지존에게 끌려가자 기겁하지만

소지존; [이리 와서 죽어라! 여기가 네놈이 죽을 자리다!] 부악! 엄청난 흡인력으로 청풍을 끌어당기는 소지존의 손바닥

청풍; (공력의 격차가 워낙 커서 저항 자체가 불가능하다.) 휘익! 그대로 소지존에게 끌려가며 허우적거리고.

소지존; [모가지를 부러트려주마!] 5미터쯤 앞으로 끌려온 청풍을 향해 손아귀를 내밀며 웃고

청풍; (벗어날 수가 없다!) 허우적대며 절망. 바로 그때

따당! 강한 비파소리가 들리고.

[!] [!] 소지존과 청풍이 모두 놀랄 때

[헉!] [컥!] 막혔던 숨이 트인 듯 퍼덕이며 깨어나는 색목쌍교. 그 옆에서 위상영이 누운 채 비파를 켜고 있고

띠리링! 본격적으로 비파를 켜는 위상영. 그러자

화악! 퍼덕이는 색목쌍교의 몸에서 연기같은 것이 치솟고

소지존; [음공으로 독기를 밀어내는구나!] 경악하고. 여전히 손으로 청풍을 끌어들이면서. 그러자

청풍; (기회!) 슈학! 이전보다 빠르게 조지존에게 끌려 들어가며 용봉철적으로 소지존의 목을 찔러가고

소지존; [억!] 뒤늦게 알아차리고 돌아보며 기겁하고. 하지만

쾅! 이미 청풍의 용봉철적이 그자의 목을 찌르고 있고

소지존; [케액!] 뒤로 날아가며 비명. 그러면서도

부악! 왼손으로 장력을 뿜어내고, 그자의 손바닥 앞에서 원형의 진동이 일어나고

청풍; (격공장!) 팟! 두 팔로 앞을 가리며 피하려 하지만

꽝! 청풍과 청풍의 주변을 강타하는 원형의 충격파

청풍; [컥!] 펑!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고

소지존; [끄윽!] 목을 쥐고 휘청거리며 물러서고. 목에 원형의 자국이 생겼다.

콰당탕! 피를 토하며 등부터 바닥에 떨어지는 청풍. 절벽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소지존; [죽... 죽일 놈이...] 켁켁! 피를 토하며 청풍을 노려보고

청풍; (정확히 목젖 부분의 천돌혈(天突穴)을 찔렀는데도 치명상은 입히지 못했다.) 입과 코로 피를 토하며 일어나려 애쓰면서 보고.

청풍; (내 공력이 미약한 데다가 저자의 근골이 워낙 강인한 때문이다.) 일어나 앉으면서 보고

소지존; [찢어죽이고 말겠다.] 이를 갈며 그런 청풍에 덮쳐오려는데

펑! 펑! 지면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색목쌍교.

소지존; [아차!] 기겁할 때

[크아!] [죽인다!] 부악! 쩍! 좌우에서 도끼와 칼로 소지존을 쪼개고 베어오는 색목쌍교. 아주 막강한 힘이 실려 있게 묘사하고

청풍; (그 사이에 해독이 되었구나.) 일어나려 애쓰며 안도하고.

소지존; [큭!] 바웅! 다급히 양팔을 모으며 방어막을 일으키고

꽝! 쩡! 소지존의 방어막을 강타하는 색목쌍교의 칼과 도끼

펑! 텅! 두 여자의 도끼와 칼은 소지존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튕겨지고. 하지만

소지존; [컥!] 충격 받고 피를 토하며 휘청이는 소지존, 여전히 방어막에 덮여있긴 하지만 충격을 받았다.

위상영; [배심(背心)과 백회(百會)를 쳐요!] 띠리링! 일어나 앉아 바위에 기댄 채 말하고. 비파를 켜면서. 그러자

[존명!] [죽인다!] 부악! 쩍! 다시 소지존을 공격하는 색목쌍교. 이교의 도끼는 소지존의 정수리로 내리쳐가고 일교의 긴 칼을 옆으로 돌면서 소지존의 등을 베어간다. 그러자

펑! 이교의 도끼는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소지존의 정수리에 거의 닿을 뻔하고

쩍! 서걱! 일교의 칼은 소지존의 등으로 파고 들어가 몸을 급히 돌리는 소지존의 허리에 깊은 상처를 낸다

청풍; (위소저는 저자의 호신강기의 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구나.) 일어나며 비틀거리며 감탄하고

소지존; [크아!] 휘릭! 몸을 비스듬히 세워 팽이처럼 돌면서 색목쌍교의 협공에서 벗어나는 소지존. 꽝! 이교의 도끼는 바닥을 찍었고 일교의 칼은 소지존의 허리를 벤 후 다시 휘둘러지려 한다.

휘익! 단번에 10미터쯤 이동하며 비틀거리는 소지존

[여기가 네놈의 무덤이다.] [동강을 내주마!] 휘익! 쐐액! 폭발적으로 도약하며 소지존을 공격해가는 색목쌍교.

위상영; [직도황룡(直渡黃龍)!] [독벽화산(獨劈火山)!] 띠리링! 띠링! 비파를 연주하며 말하고. 그러자

일교; [직도황룡!] 쩍! 칼을 길게 내지르며 소지존에게 날아가고.

이교; [크아! 독벽화산!] 허공에서 비스듬히 도끼를 내리치려는 자세로 날아가고

소지존; [오늘은 내가 졌다!] 팟! 다급히 뒤로 날아오르며 외치고

소지존; [하지만 그냥은 못 가겠다!] 투캉! 손가락을 모았다가 강하게 튕긴다. 청풍을 향해서 튕기는데 그자의 손가락 끝에서 창 같은 기운이 터져 나와 날아가고

[!] 눈 부릅뜨는 청풍. 청풍의 앞으로 날아드는 투창 같은 섬광

위상영; [공자!] 비명

색목쌍교; [안돼!] [피해요!] 소지존을 공격하려다가 돌아보며 비명 지르고

청풍; (피할 수는 없고... 능파미보!) 부악! 몸이 투명한 막에 덮인다. 직후

꽝! 청풍의 가슴을 강타하는 섬광. 그러자

청풍; [컥!] 펑! 가슴에 강한 충격을 받고 뒤로 날아가는 청풍. 헌데 청풍의 뒤는 절벽 밖이다.

위상영; [안돼요!] 일어나려 하며 외치고. 하지만

휘익!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청풍.

[이런...] [이공자!] 색목쌍교도 비명 지르며 급히 멈춰서고., 그때

소지존; [이만 작별이다!] 휘익! 날아오르며 웃고

색목쌍교가 돌아볼 때

소지존; [오늘 진 빚은 다음 번에 이자까지 붙여서 확실하게 받아낼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으하하하! 쐐액! 웃으며 멀리 날아간다. 하지만

위상영; [이공자...] 비틀거리며 절벽으로 가고. 색목쌍교는 이미 절벽 끝에 내려서서 아래를 보 있고. 하지만

절벽은 너무 깊어 바닥이 안보이고 중간에는 구름까지 걸려있다

위상영; [어떻게... 어떻게 되었는가요?] 울면서 다가오고.

일교; [유감이에요 아가씨.] 한손으로 위상영의 팔을 잡아서 부축하고

일교; [계곡이 너무 깊어서 요행을 바라기는 힘들 것 같아요.] 위상영과 함께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위상영; [믿기지 않아요! 그토록 강력한 수호령의 가호를 받는 분이 이렇게 비명에 간다는 것이...] 주르르! 눈물 흘리고. 그러자

이교; [허락하시면 제가 아래로 내려가 확인을 하고 오겠사옵니다.]

위상영; [그렇게 해주세요.] [시신이라도 안장해 주어야하니...] 끄덕

이교; [다녀오겠습니다.] 도끼를 등 뒤 허리띠에 끼우고

일교; [조심해라.]

이교; [그럴게.] 휙! 뛰어내리고. 이어

탁! 탁! 절벽의 돌출 부위를 밟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강하는 이교

곧 절벽 가운데를 가린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이교

 

#72>

조금 떨어진 곳. 바위 뒤에 숨어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훔쳐보고 있는 혈부용

혈부용의 시점. 일교에게 부축받은 위상영이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울고 있다

혈부용; (결국 오늘 위가년을 해치우려던 계획은 실패했네.) 샐쭉이고

혈부용; (이청풍이라는 놈이 돌연 끼어든 때문인데...) 뒷걸음질 치면서 청풍이 소지존을 공격하던 장면을 떠올리고

혈부용; (대체 어디서 그런 벽창호같은 놈이 튀어나온 걸까?) 뒤를 돌아보며 살금 살금 현장에서 떠나고

혈부용; (정체가 뭐든 소회주님 손에 죽었으니 궁금해 할 이유도 없겠지.) 달려가기 시작하고.

혈부용; (지금 내가 할 일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울분에 떨고 있을 소회주님을 만나 위로해 드리는 일이다.) 배시시 웃고

혈부용; (이런 기회에 점수를 따두면 장차 천하무림의 안주인이 될 수도 있으니...) 날아가는 혈부용

 

#73>

종유석이 늘어진 상당히 큰 동굴. 동굴 입구에는 반투명한 유리같은 것이 쳐져 있고. 그 동굴 입구에 누군가 쓰러져있다. 청풍이다. 용봉철적을 쥔 채 반듯하게 누워있는데 입과 코로 피를 흘리고 있다. 가슴 부분에 심각한 상처가 나있다. 원형으로 움푹 들어간 자국이 있는데 그 자국 주위로 부러진 늑골들이 옷을 뚫고 삐져나와 있다. 소지존이 마지막에 날린 지풍에 맞은 상처. 헌데

탁! 동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이어

탁! 탁! 동굴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이교. 헌데

휘익! 탁! 이교는 동굴 입구를 보고도 못 본 것처럼 지나간다.

곧 이교의 모습도 사라지고.

 

#74>

해가 지려 한다. 여전히 창천애

창천애 절벽 가에 여전히 일교의 부축을 받고 서있는 위상영.

이제 울지는 않지만 위상영의 얼굴은 초췌해져 있다.

위상영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들. #63>에 나온 장면들이다.

 

청풍; [존성대명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소생의 이름은 이청풍이라고 합니다.] 포권하며 말하고

청풍; [그렇습니다.] [소생은 무림과는 인연이 없는 몸입니다.]

청풍; [아마 금시초문이실 텐데...] 쓴웃음

청풍; [명경환야곡은 소생이 최근에 만든 음률입니다.]

회상 끝

 

위상영; (스쳐가듯 만난 사이지만 마치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새겨졌던 인물...)

위상영; (그와는 가볍지 않은 인연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었다.)

위상영; (헌데 이토록 허무하게 세상을 떠날 줄이야.) 비탄에 잠긴 표정. 눈물이 그렁거리고. 그때

일교; [이교가 올라오고 있어요.] 아래를 보며 말하고

고개를 좀 더 숙여 아래를 보는 위상영

휘익! 휙! 탁탁! 절벽의 돌출 부위를 이리저리 밟으며 올라오고 있는 이교. 도끼는 등 쪽 허리띠에 끼운 모습으로

파팟! 손도 써서 절벽을 잡고 날아오르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일교; [시신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군요.] 내려다보며 말할 때

이교; [다녀왔습니다 아가씨!] 휘릭! 절벽 위로 뛰어올라오고. 젖가슴 출렁. 온몸이 땀으로 범벅

일교; [어떻게 되었어?] 대신 묻고

이교; [그게...] 난감

이교; [절벽 아래 계곡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공자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어.] 위상영의 눈치를 보며

일교; [그건 이상하네. 이공자가 추락한 건 우리 모두가 보았는데...]

이교; [나도 그게 이해가 되질 않아.] [설령 분신쇄골 했다 해도 흔적이라도 남아있어야 하는데...]

이교; [마치 하늘로 솟았던가 땅으로 꺼졌던가 하는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어.]

일교; [혹시 계곡 아래쪽에 있던 짐승들이 시신을 끌고 간 게 아닐까?]

이교; [그렇다 해도 흔적은 남아있어야 하는데...] + [!] 말하다가 흠칫! 하고

위상영이 하늘을 보며 약간 미소를 짓고 있다

<아가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어!> 놀라는 색목쌍교

위상영; (어찌 된 연유인지는 모른다.)

위상영; (하지만 더 이상 가슴이 저며지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공자를 다시 만날 것같은 예감이 든다.> 절벽 위에 서있는 세 여자 모습 배경으로 위상영의 생각 나레이션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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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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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血袍單客 (1)

 

 

 

(틀림없이 그 여인이다. 소림사로 가던 중에 만났던...!)

석두공은 혈포단객의 뒤를 유유히 쫓아가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쐐애액!

혈포단객의 앞으로는 한사람의 여인과 네 명의 흑의인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 중 여인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석두공은 자칫 그녀 때문에 죽을 뻔 한 적이 있는 것이다.

잔혼각(殘魂閣)의 절대칠살(絶代七殺)의 한명인 그녀는 그때 사내들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석두공의 평정심을 흔들어놓았었다.

난생 처음으로 보는 여체의 은밀한 구조, 게다가 사내의 흉칙한 물건이 그곳을 쑤셔대며 유린하는 장면을 보며 석두공은 그만 정신이 흐트러지고 말았고,

그 결과 잔혼살객의 사신겸(殘魂鎌)에 심장을 찔려 자칫 죽을 뻔 했었다.

헌데 그때 그 요사한 계집이 동료들과함께 혈포단객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동행하고 있는 네명의 사내는 바로 절대칠살중 살아남은 네명이었다.

 

휘이익!

청의여인과 절대칠살의 생존자들은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혈포단객은 숲으로 들어간 적은 쫓지 않는다는 강호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달려들어갔다.

여름의 숲은 입과 가지를 무성하게 펼쳐놓았고 그 사이로 다섯 사람은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 사라져 버렸다.

“...!”

혈포단객은 형형한 눈초리로 사방을 살폈다.

숲으로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에 나뭇잎들이 피로 물든 듯이 보였다.

스윽!

혈포단객은 소매를 걷어올렸다. 소매 속에서 드러난 손은 그의 옷이나 마찬가지로 피처럼 붉었다.

그것은 붉은 장갑이었다.

[혈천갑(血天匣)에 오랫만에 피를 먹이게 되었군.]

혈포단객은 살기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나무들 사이로 걸어갔다.

그의 힘찬 발걸음에서 강렬한 살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은은한 강기의 막이 그의 몸을 공처럼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혈포단객의 무공도 전보다는 훨씬 강해진 것같군.)

석두공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숲으로 스며들어갔다.

그의 청력으로도 다섯 사람은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풀은 무릎까지 자라있었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이루는 빛과 그늘은 눈앞을 아롱지게 만들었다.

혈포단객은 눈으로 사방을 살피고 귀로는 팔방을 들으며 한발한발 걸어나갔다.

스윽!스윽!

그는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하지만 풀벌레 소리들 조차 갑자기 사라져버린, 오직 고요만이 깃든 숲속은 혈포단객 같은 고수에게도 심장이 조여드는 긴장을 주었다.

긴장의 도가 높아지고 신경이 팽팽이 당겨짐에 따라서 그의 발소리도 점점 사라져갔다.

그는 무릎까지 자란 풀들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끝을 밟고 나아가고 있었다.

초상비(草上飛), 초상비의 경공술이었다.

숲 안에는 넓직한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의 한쪽에 수 백 년은 됐음직한 고목(古木)이 있었다.

“...!”

혈포단객의 눈에 번개불 같은 섬광이 비쳤다.

고목은 굵기는 수 아름이 되지만 크지는 않았다. 가지는 앙상하고 가운데는 썩어서 구멍이 파여있었다.

하지만 몇 개의 푸른 입은 아직도 그 나무가 고사목(枯死木)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번쩍!

갑자기 혈포단객의 발아래서 강렬한 백색 섬광이 한가닥 솟구쳐올랐다.

[흥!]

혈포단객은 미끄러지듯 옆으로 반보 물러서면서 왼발로 섬광을 차버렸다.

팍!

또한 그의 몸이 천근추(千斤錘)의 수법으로 뚝 떨어졌다.

푹!

[으악!]

그의 가경할 공력이 실려있는 그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나!]

혈포단객은 웅혼하게 내뱉으며 고목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스스스슷!

풀 위를 낮게 날면서 흑의복면인이 검으로 그의 다리를 베어왔다.

바다위로 배가 지나간 듯이 풀들이 갈라졌다.

혈포단객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파앗!

붉은 빛이 한순간 번쩍하고,

휘리리리!

흑의인은 풀위를 뒹굴어 혈포단객의 혈천갑에서 뿜어나온 강기를 피했다.

푸앗!

혈천갑의 강기에 격중된 풀들이 가루가 되어 날아올랐다.

쏴아아!

하지만 흑의인은 여전히 혈포단객을 향해 베어오고 있었다.

[제법....]

혈포단객은 살기어린 음성을 터뜨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핑!

깡!

흑의인의 검이 부러졌다.

스스스슷!

흑의인은 귀신처럼 빠르게 풀숲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고목 쪽으로 일부의 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바람이 그쪽으로 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차앗!]

혈포단객은 한줄기 홍영(紅影)이 되어 고목나무를 향해서 쇄도해들었다.

그 순간에 흑의인은 고목나무의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으합!]

혈포단객이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횡으로 그어졌다.

스파앗!

붉은 강기가 고목나무로 파고들었다.

그그그그... 쿵!

고목나무가 반듯하게 베어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 뒤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흑의인의 등이 보였다.

 

석두공은 공터의 다른 나무 위에서 혈포단객의 모습을 바라고 있었다.

[저 한 수는 아주 멋지군. 나무를 벨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큰 나무를 베어 그 뒤에 있는 적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순간적으로 먹기는 어려울 것인데...]

한데 흑의인이 쓰러진 그곳엔 또 다른 시체가 있었다. 마른 풀과같은 빛의 청의를 입은 가날픈 몸매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 시체의 머리는 몸에서 두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청의여인, 석두공이 소림사로 갈 때 만났던 여인이며 또한, 석두공이 객점에서 부터 쫓아온 그 여인이었다.

[...?]

석두공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혈포단객의 손에 죽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동료가 죽였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천천히 날아올라 고목의 뒤로 돌아갔다.

한데,

[헛]

석두공은 무심코 눈을 돌리다가 숲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또 하나의 머리를 볼 수가 있었다. 젊은 여인의 머리였다.

하지만 그 여인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셋인가?]

스읏!

혈포단객은 나직하게 내뱉으며 청의여인의 시체를 지나치고 있었다.

석두공은 크게 외쳤다.

[위험하오!]

그때였다.

파파팟!

혈포단객의 뒤에서 흑의인이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쐐애애액!

이미 그의 손에서 두자루의 비수(匕首)가 발출된 후였다.

혈포단객은 석두공의 외침과 흑의인의 기습에 흠칫했으나 콧웃음을 쳤다.

[가소로운... ]

카캉!

두자루의 비수가 그의 호신강기에 부딪히며 깨어졌다.

휙휙!

날아오른 흑의인은 다시 두자루의 비수를 던졌다.

혈포단객은 비수엔 신경도 쓰지않고 흑의인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와우우웅...

수 백 개의 손그림자가 생기면서 흑의인을 뒤덮었다.

흑의인은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회오리 바람처럼 움직여 허공에서 이동했다.

펑펑펑펑!

하지만 혈포단객의 손그림자는 그의 몸을 공처럼 두들겼다.

헌데 그때였다.

스팟! 찌이익!

두자루의 비수가 그의 호신강기를 찢으며 들어왔다.

혈포단객의 두눈이 부릅떠졌다.

[놈!]

그는 황급히 혈천갑을 휘둘려 비수를 쳐갔다.

퍼억!

하지만 비수는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비스듬히 틀어지며 그의 어깨에 박혔다.

그 비수는 호신강기마저 찢어버리는 특별한 병기였던 것인데 호신강기와 부딪히면서 방향이 틀어졌던 것이다.

팍!

혈포단객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붉은 그의 혈포가 더욱 검붉게 변했다.

나머지 하나의 비수는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쿵쿵!

혈포단객은 두걸음을 물러섰다.

그의 눈앞에는 자신의 혈천갑의 수공에 격중된 흑의인의 시체가 폭죽처럼 터져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하나 남았군.]

그는 어깨에 박힌 비수를 뽑았다.

헌데 바로 그 직후였다.

스읏!

그는 문득 자신의 뒤에서 무엇인가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고 옆으로 몸을 미끄러 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함정이었다.

펑!

흙더미가 눈앞에 치솟으며 그의 몸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에 혈포단객은 옆구리가 화끈해옴을 느꼈다.

청의여인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

혈포단객의 눈이 부릅떠졋다. 청의여인은 분명 몸통과 머리가 분리된 채 쓰러져 있었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혈포단객의 옆구리를 찔러오는 그녀의 몸은 온전했다. 머리만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몸과 머리가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그녀의 몸으로 생각했던 머리없는 여인의 시체는 여전히 누워있었고 청의여인의 목이 놓여있었던 곳에는 웅덩이가 파여있었다.

청의여인은 바로 그 웅덩이에 몸을 숨기고 목만 남은 시늉을 한 것이었다.

[속았구나.]

콰창!

혈포단객은 버럭 소리치며 혈천갑을 휘둘렀다.

순간 청의여인의 웃을듯 말듯하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미처 가라앉지도 않은 흙더미 속에서 또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오며 혈포단객의 팔을 찔렀다.

[멈춰라!]

쐐액!

석두공은 벼락같이 소리치며 날아갔다. 그의 손바닥에서 파란 불꽃이 발출되었다.

순간 혈포단객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모조리 죽여주마!]

꽈르릉!

그의 혈천갑이 돌연 방향을 돌려 석두공을 쳐갔다.

“헛!”

석두공은 깜짝 놀라 자신의 상화장(翔華掌)을 거둬들이며 혈천갑을 피했다.

그리고 즉시 두가닥의 지풍을 날렸다.

핑핑!

탄지신통(彈指神通)이었다.

[욱!]

[크윽! 큭!]

세마디의 비명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혈포단객은 석두공이 자신을 공격하는 줄알고 전력을 다해서 그를 방비했다.

그리하여 흙더미 속에서 튀어나온 검을 막지 않았다. 그 검은 호신강기가 흩어진 순간적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팔에 뼈가 드러나도록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또한 청의여인은 그의 옆구리에 검을 더욱 깊이 찔렀다.

그러나 그를 공격했던 두 사람도 석두공의 탄지신통에 맞아 혈도가 제압당한 상태였다.

석두공은 혈포단객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퍽!

혈포단객의 혈천갑이 흑의인의 두개골을 깨뜨려버렸다.

그리고 엽구리를 찌르고 있는 검을 뚝 부러뜨려 뽑아낸 다음에 석두공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석두공의 머리카락은 정상이 아니다. 마치 갖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노르스름하면서도 뽀송뽀송하다. 아주 잘생긴 미청년이기는 하지만 이상해 보이기는 어쩔 수 없었다.

석두공이 말했다.

[석두공입니다. 오년전 동정호에서 만난 적이 있지요. 반갑습니다.]

순간 혈포단객도 놀랐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혈도가 제압되어 화석처럼 굳어있는 청의여인이었다.

부러진 검을 들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치 동호천 노선배의 제자 석두공인가?]

혈포단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석두공이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선 몸을 돌보도록 하시지요.]

[어느 구석에 숨어있다가 이제서야 나왔는가?]

혈포단객은 스스로 혈도를 눌러 지혈시키며 물었다.

석두공이 청의여인을 보면서 대답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여인의 도움이 컸던 것같더군요.]

“...!”

청의여인은 파랗게 질린 채 눈썹을 바르르 떨었다.

혈포단객의 표정이 확 변했다.

[무슨 뜻인가?]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이 여인에게 유인되어 잔혼살객과 부운청풍객에 의해 절벽에 떨어졌다가 간신히 살아나왔으니까요.]

석두공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혈포단객이 물었다.

[지금 천하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고 있겠지?]

[대충은... 그런데 어쩌다가 이자들을 만나게 됐습니까?]

[그렇지, 깜박 잊을 뻔 했군. 그 육시를 할 세놈들이 또 다시 힘을 합쳤네. 부하들 중에서 고수들을 뽑아서 척살대(刺殺隊)를 조직한다는군. 만리어옹(萬里漁翁)이 내게 그 말을 전해주고 이놈들에게 죽었어.]

혈포단객은 흉광을 발하면서 말했다.

만리어옹이라면 장강의 곳곳,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노인이다. 한 자루의 묵철간(墨鐵竿)을 병기로 사용하며 구구팔십일의 팔십일초 어룡간(魚龍竿)은 일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리어옹은 우연히 잔혼각과 검종맹, 그리고 적룡혈운도가 연합하여 전문적으로 고수들만을 죽이는 척살대를 조직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잔혼각의 절대칠살에게 쫓기던 만리어옹은 혈포단객을 만나 그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리어옹은 결국 절대칠살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절명했다.

또한 절대칠살은 사실을 알고 있는 혈포단객마저 이중 삼중의 덫을 꾸며서 암살하려했던 것이다.

혈포단객이 말했다.

[무림이 단결해야만 하네. 그놈들은 악마의 무공이라는 삼마경(三魔經)을 익히고 있네. 무림첩(武林帖)이라도 띄워져야만 할 걸세.]

[척살대라면... 설마 무림에서 고수들은 다 죽여버리겠다는 그런....]

[그게 아니라면 척살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혈포단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만리어옹의 말로는 그들 척살대의 하나하나는 삼마경중에서 필요한 무공은 어떤 것이든 배울 것이라고 했네.]

실로 놀라운 말이었다.

척살대란 자들이 삼마경을 익히는게 사실이라면 그자들에게 지목되고서도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혈포단객의 말이 이어졌다.

[그자들이 연공을 끝내고 나오기 전에 검종맹 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천하는 영원히 그 마귀같은 세놈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 것일세.]

[...!]

석두공의 얼굴도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혈포단객이 두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천하제일인이셨던 무치 동호천 노선배의 유일한 제자. 만약에 자네가 무림첩을 뛰워서 무림인의 단결을 호소한다면 아마 거역할 사람이 그다지 없을 것일세.]

[...]

석두공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당장 백검보로 가게. 일초진천수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도 단독이기는 하지만 삼인에 대항하고 있네. 가능하면 그와도 힘을 합치는 것이 좋을 것일세.]

[일초진천수는 저의 의형인 금사종입니다.]

석두공의 말에 혈포단객은 희색을 띄었다.

[그래? 그렇다면 더욱 잘됐군. 어서 가보게.]

[한데 이 여인은...]

석두공이 청의여인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혈포단객이 말했다.

[작은 것에 매이지 말게. 이 계집은 내가 심문하겠네.]

혈포단객의 혈천갑을 낀 우수가 청의여인의 목을 잡아갔다.

석두공은 무언가 미진한 기분이 들엇다. 그의 비상한 본능이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혈포단객의 말이 워낙 완강한 지라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떠났다.

백검보,

백검보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부운청풍객등이 만든다는 척살대가 무림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그들을 분쇄시켜야만 한다.

쐐애액!

석두공은 한줄기 빛살처럼 동쪽으로 날아갔다.

 

혈포단객의 손아귀에 목이 잡힌 청의여인의 다리가 땅에 떠서 바둥거렸다.

[잔혼각의 살수냐?]

혈포단객은 그녀의 목을 잡고 들어올린 채 물었다.

“...!”

청의여인은 눈알이 빨갛게 되어갔다.

뚜둑!

혈포단객은 손아귀에 힘을 더욱 가하며 물었다.

[잔혼각의 살수냐?]

청의여인은 숨도 재대로 쉬지 못하고 입술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혈포단객의 창백한 얼굴은 마치 저승사자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냉혈한이기라도 하듯 혈포단객은 더욱 손아귀에 힘을 주며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다.

[잔혼각의 살수냐?]

[끄륵 끄륵!]

여인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혈포단객은 전혀 표정이 없었다. 그는 청의여인에게서 죽고싶은 의지마저 박탈해버릴 모양이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여인의 몸이 빨래줄에 걸린 빨래처럼 흐느적거렸다.

갑자기 혈포단객은 손을 풀어버렸다.

스르르...

청의여인은 뼈가 없는 사람처럼 무너져 내렸다. 눈빛은 망연하고 동자가 빛을 잃고 풀려있었다.

혈포단객의 음성이 유부(幽府)에서 흘러나오는 악마의 음성처럼 그녀의 귀로 파고들었다.

[척살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곳을 말해라.]

청의여인의 입술이 달짝거렸다.

혈포단객은 그녀의 혈도를 풀었다.

[처 척살... ]

청의여인은 완전히 이지를 잃어버리고 들릴 듯 말듯한 음성을 흘러냈다.

휘청!

한데 그 순간에 혈포단객의 몸이 갑자기 휘청했다.

[웃!]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 혈포단객은 흔들리는 몸을 바로 잡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푸른 풀밭이 그의 면전으로 다가왔다.

풀썩!

혈포단객은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같이 무거워지면서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청의여인의 얼굴과 불과 세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쓰러져 있었다.

[척살대는... 운... ]

청의여인이 실성한 듯이 우물거린다.

[일곱째! 말할 필요없다.]

돌연 혈포단객이 쓰러진 곳에서 삼정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 명의 흑의인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분명히 죽였는데... ]

혈포단객은 입밖으로 겨우 나오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흑의인이 일어난 곳은 혈포단객이 처음 암습을 받았던 그곳이었다.

혈포단객의 천근추(千斤錐)에 의하여 죽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물, 그는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듯했다. 그런 그의 손에는 뚜껑이 열려진 납작한 병이 들려져 있었다.

[혈포단객! 산공독(散功毒) 맛이 어떤가? 내 아우들을 죽인 후이니 더욱 맛이 있었을 거다.]

흑의인은 혈포단객에게로 걸어오며 말했다.

파앗!

그는 청의여인의 마혈을 풀어주고 비수를 뽑아들었다.

[크흐흐흐... 더욱 신나는 맛을 보여주마. ]

[휴우... 휘우... ]

청의여인은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 더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으왕! ]

청의여인은 눈앞에 있는 혈포단객의 코를 물어뜯었다.

[크윽!]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지 못하는 혈포단객의 코가 걸레처럼 뜯어졌다.

[퉤!]

여인은 입에든 코의 조각을 뱉어내며 새파란 살기를 발했다.

[개새끼! ×을 뽑아버리겠다.]

청의여인은 흑의인의 손에서 비수를 뺏어들며 소리쳤다.

쫘악!

혈포단객의 옷이 길게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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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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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奇緣을 만나다.

 

 

 

“흑흑흑……”

여인이 운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자그맣고 둥그스름한 어깨가 끝없이 파문을 일으키고, 얼굴을 파묻은 무릎으로부터 맑디맑은 이슬이 발끝으로 구른다.

‘어찌해야 하는가?’

적연흥은 안절부절 못하고 제연연의 주위만 뱅뱅 돌 뿐이다.

한바탕의 열풍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들끓던 열기도 지금은 저녁호수같이 잠들었다.

한독(寒毒)에 사경을 헤매던 제연연은 이제는 조금도 한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추위하지 않는다.

한 번의 정사가 양인에게 큰 이득을 주었다.

적연흥은 전신에서 요동치던 열기를 제연연에게 배출하고 극강한 열양지기(熱陽之氣)를 전신 심맥으로 유입시켰다.

반면, 제연연은 능히 백년공력(百年功力)에 비견되는 양기(陽氣)를 적연흥으로부터 받았다.

너무나 강렬한 적연흥의 그것에 생사현관이 녹아 버리고 전신의 기맥이 대로(大路)같이 활짝 열렸다.

무인으로서 최고의 경지가 우연한 기연(奇緣)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웬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제연연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면 그녀도 대답을 못하리라.

그저 우는 것 뿐이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통스러워 우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녀는 운신하기도 힘들게 격심한 상처를 가장 은밀한 곳에 입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가 우는 것은 그 상처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놀랍게도 삼십에 이른 제연연은 그때까지도 처녀지신(處女之身) 이었다.

지면에 묻은 붉은 앵혈의 흔적이 그것을 말해준다.

파과(破瓜)에 의한 고통은 고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환희(歡喜)이고 열락(悅樂)이다.

그 때문에 울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과 허전함이 제연연의 전신을 휘감는 것이다.

“으음……!”

적연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털―― 썩!

적연흥은 제연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누님! 소제를…… 죽여 주십시오.”

그리고는 끝이었다.

적연흥은 제연연의 발끝에 머리를 갖다대고 요지부동이었다.

“흑…… 흑…… 흑……”

제연연의 울음소리는 계속 되었다.

그러나, 점차 그 소리가 낮아지더니 마침내 뚝 끊어졌다.

기묘한 침묵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

“……!”

제여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홍조띈 상아빛 뺨과 촉촉히 젖은 두 눈, 요염하리만치 붉은 두 입술이 철석간장이라도 녹일 듯 뇌살적이다.

‘이…… 이 아이는…… 어른이구나. 나이로만 보아 아이로 믿었건만…… 내가 만난 어떤 사내보다도 훌륭한 장부(丈夫)다. 몇백, 몇천의 여인이라도 거느릴 수 있는……’

제연연의 눈길이 점차 변해갔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그것이었으나 이제는 사내를 바라보는 아낙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장차 은하궁(銀河宮)은 이 아이…… 아니 이분에 의해 크게 빛을 발하리라.’

그녀의 눈길이 다소 안타깝게 변했다.

‘이제는 나의 그이만이 될 수 없을 것이니……’

제연연은 천천히 섬섬옥수를 내밀어 적연흥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눈을 뜨고 첩신을 보시옵소서.”

제연연의 말에 적연흥은 천천히 눈을 떴다.

파―― 앗!

두 남녀의 눈길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

“……!”

이윽고, 제연연이 살포시 눈썹을 내리깔며 고개를 떨구었다.

순종(順從)의 뜻을 나타냄이리라.

제연연은 나직하고도 차분히 입술을 열었다.

“첩신은…… 상공을 탓할 수 없사옵니다. 상공께서 첩신께 또 다른 생명을 주시려 한 일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다만 소첩을 버리지만 말아주시옵기를……”

적연흥은 제연연의 뜻을 알았다.

“누님!”

그의 우람한 두 팔이 제연연의 개미허리를 힘 있게 안았다.

“아……상…… 상공……!”

제연연의 나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금 적연흥의 우람한 몸 밑에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제연연을 뒤덮었다.

그녀의 교구는 적연흥의 태산같은 힘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가냘펐다.

문득, 제연연은 곧 찍힐 엄청난 고통의 낙인이 떠오르자 두려움이 치솟았다.

“아…… 상…… 상공…… 아직은…… 아아…… 제발……”

그러나, 난폭한 군주는 여인의 의사는 아예 무시해 버렸다.

“아―― 악!”

파과(破瓜)의 그것보다 더한 고통이 제연연을 강타했다.

거의 까무러칠 듯한 고통이 하복부로 파고 들었다.

마치 예리한 보검으로 회를 치는 것같은 고통이었다.

“누님……!”

적연흥은 성난 광풍같이 몰아치고 제연연은 한 마디 애처로운 먹이가 되어 흐느끼며 학대받았다.

“아아아……”

언제부터인가?

고통의 비명은 점차 환희와 신음으로 윤색되어 가고 있었다.

검은 맹호와 아리따운 암사슴의 처절하도록 강한 움직임이 무인지경의 신무곡을 가득 메웠다.

 

* * *

 

“이 사람은 태호(太湖)의 흑사채(黑蛇寨)의 채주인 흑사신편(黑蛇神鞭) 채윤(彩潤)이란 인물이예요.”

제연연은 한 명의 흑의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적연흥과 제연연 앞에는 네 구의 시신이 뉘어져 있었다.

그들은 절벽이 무너질 때 함께 떨어진 무림인들이었다.

제연연은 날카로운 인상의 삼십대 장한의 시신에서 하나의 검은 빛이 도는 채찍을 풀어내었다.

“이것이 채윤의 성명무기인 흑사편(黑蛇鞭)으로써 그의 흑사칠십이로(黑蛇七十二路)의 편법은 강호일걸이라 불리어요.”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의 무공은 낭심수사에 비하여 어떻습니까?”

“글쎄요. 낭심수사는 장법(掌法)과 수법(手法)을 주로 익혀 흑사신편과의 비교는 어렵지만 아마 비슷할 거예요. 다만 낭심수사쪽이 공력상 다소 우세하니 결국 장기전에 들어가면 낭심수사가 이길 거예요.”

제연연은 두번째 인물 앞에 섰다.

그 인물은 청수하게 생긴 중년문사로서 등에 한 자루 보검을 메고 있었다.

“이 인물이 상공께서 말씀하신 낭심수사와 함께 무림오사(武林五士)에 드는 인물이에요.”

“흐음…… 그래요?”

“네, 신검수사(神劍秀士) 상관청(上官靑)이란 인물로서 무림오사의 두번째 고수예요.”

적연흥은 신검수사의 등에서 보검을 풀어내었다.

보검의 길이는 세자 여섯치로 손잡이 부분이 상아로 장식된 고색창연한 보검이었다.

“한번 뽑아 보시와요. 무림사대신검(武林四大神劍) 중의 하나로서 비상(飛霜)이라하는 명검(名劍)이옵니다.”

적연흥은 비상검을 잡고 힘주어 뽑았다.

스르릉――

맑은 용음(龍吟)과 함께 싸늘한 한기가 골수에 미쳤다.

“비상(飛霜)이라…… 과연 대단한 예기를 지녔습니다.”

적연흥은 감탄하며 한 차례 검을 휘둘러보았다.

그 자세가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듯한 모습인지라 제연연은 소매로 입을 가리며 미소지었다.

“그 검은 주인보다 더 유명한 보검으로 강철을 무우 베듯 하옵지요.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신검수사의 양의검법(兩儀劍法)정도 펼치는데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신검이옵니다.”

“무림사대신검(武林四大神劍)이란 어느 어느 명검을 말함입니까?”

적연흥이 비상검을 회수하며 물었다.

“먼저 사대신검의 수좌는 오백 년 전의 기인이신 태백성군(太白聖君)께서 사용하시던 태백신검(太白神劍)이옵니다. 일설에 의하면 태백신검이 한번 검집에서 나오면 방원 십장 이내가 얼음으로 뒤덮여 버린다고 하옵니다.”

적연흥이 약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제연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과장됨이 없지는 않겠지만 태백신검에 태백천음기(太白天陰氣)가 실려 있음은 천하가 인정하는 일이옵지요.”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번째는 무당파의 진산보검인 칠성신검(七星神劍)이옵고 세번째가 비상(飛霜), 네번째가 천산(天山) 용문장(龍門莊)의 비검(飛劍) 금혼(金魂)이옵니다.”

적연흥이 비상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천하에는 수많은 보검(寶劍)과 명검(名劍)이 있지 않습니까? 거궐(巨闕)이 있고 간장(干將), 막야(莫耶) 등 춘추오대명검 등이 있거늘 어찌하여 비상(飛霜) 등만으로 사대신검(四大神劍)을 칭할 수 있습니까?”

“상공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무림의 전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사대신검보다 훌륭한 보검들은 많사옵니다. 하나 사대신검을 세운 기준은 당금 천하에 존재하는 검들에서 세운 것이지요. 거궐, 간장, 막야, 어장, 태아, 경영 등의 전설 속 보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림에서 사라져 나타나고 있지 않사옵니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나머지 이들은 누구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제연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 명은 녹림인 무리이고 다른 한 명은 청성파의 속가제자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옵니다.”

“그럼 이제 이들을 매장해야 되겠습니다. 조금 물러서 계시지요.”

“네!”

제연연이 물러서자 적연흥은 극음빙천(極陰氷泉)에서 찾아낸 도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것은……?”

땅을 파던 적연흥이 고개를 갸웃 하며 무엇인가를 집어들었다.

마치 참마 갈이 생긴 덩어리인데 땅속 여기저기에 묻혀 있었다.

“줄기도 없는데 땅속에서 이런 덩이뿌리가 자라다니 이상하군요?”

제연연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적연흥은 급히 천후독존유록을 펼쳤다.

‘저 비급이 모산독군께서 상공께 주신 독경(毒經)인 모양이구나.’

제연연은 내심 생각했으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관심은 적연흥 뿐이므로……

적연흥은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한 곳에서 멈추었다.

“여기에 있군요.”

적연흥은 자신이 먼저 읽어보고 제연연에게 건네주었다.

“한령토황우(寒靈土黃牛), 지극음기(地極陰氣)가 모이는 곳에 자생한다. 지극음기를 흡수 극히 천천히 자라는데 백 년 이상 되어야 주먹만해진다.”

제연연은 비급에서 시선을 떼고 적연흥이 땅을 파내며 캐놓은 한령토황우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주먹보다 크고 깊은 곳에서 파낸 것일 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놈은 족히 몇천 년은 되었겠습니다.”

적연흥이 땅속 깊이에서 머리통만한 것을 캐내어 웃으며 말했다.

제연연은 계속 읽어갔다.

 

<이를 장복하면 백독(百毒)이 불침하게 되고 정기(精氣)를 튼튼히 해주며 특히 여인에게는 만 가지 효능(效能)이 있는바 그중의 한 가지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을 읽은 제연연은 뛸듯이 기뻐했다.

그녀 역시 미모를 생명보다 더 아끼는 여인이므로,

잠시 후, 적연흥이 네 구의 시신을 매장했을 때는 한령토황우가 수북이 쌓였다.

“이 신무애를 언제 빠져 나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이곳에서 보내야 할 지도…… 어쨌든 식량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제연연이 두 볼을 상기시키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첩신은 상공과 함께라면 이곳에서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이라도 지낼 수 있사옵니다.”

적연흥은 따스한 눈길로 제연연을 바라보다가 팔을 벌렸다.

그러자 제연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적연흥에게 안기며 스스로 적연흥의 입술을 찾았다.

두 남녀는 긴긴 입맞춤을 하며 서로를 굳게 부둥켜 안았다.

“누님, 고맙습니다.

이윽고 입술을 뗀 적연흥이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말하자 제연연은 푹 고개를 떨구었다.

적연흥은 정열이 담긴 눈으로 제연연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홀로 계신 어머님을 돌봐드릴 사람이 없음이로다. 아! 어머님께서는 불효한 이놈 때문에 걱정하심이……!”

돌연 고개를 들던 적연흥의 두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는 뚫어져라 호수의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상…… 상공, 무슨 일이시옵니까?”

제연연이 문득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누님! 저쪽 맞은편 석벽을 보십시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아연했다.

“상…… 상공께서는 저 운무너머의 석벽이 보이시옵니까?”

적연흥이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공력이 이갑자하고도 반이나 되시는 누님의 안력으로 저 운무가 장애가 되십니까?”

제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첩신의 공력이 다섯 배로 급증했다고는 하나 그저 흐릿하게 맞은편에 석벽이 있다는 정도밖에 볼 수 없사옵니다.”

적연흥의 고개가 갸웃 했다.

“흠, 그럼 내 눈이 이상해졌나?”

그런 적연흥의 모습을 보며 제연연은 혀를 내둘렀다.

‘맙소사, 무공을 익히지도 않으신 분의 시력이 이정도시라니…… 만일 이분이 무공을 익히신다면…… 무적이 되시리다.’

그녀가 생각하는데 적연흥이 제연연의 허리를 안아 등에 업었다.

“어머멋! 상공!”

제연연은 입으로는 귀성을 토했으나 몸은 적연흥의 넓은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이…… 부끄럽사옵니다.”

“하하 누님도……이곳에 누가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님은 아직 걸음을 옮기시기 불편하실 테니 소제가 저곳까지 업고 가겠습니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얼굴을 홍시같이 붉히며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이갑자 반, 즉 백 오십 년 수위의 내공을 지닌 제연연, 그녀가 왜 걸음을 걷기에 불편할까?

모를 일이다.

“하하…… 누님! 갑시다!”

적연흥은 제연연을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씨―― 잉―― 씨―― 잉!

칼날이 스치듯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어멋!”

고개를 들었던 제연연은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적연흥의 달리는 속도는 대단했다.

신무애에 추락하기 전보다 몇 배 빠른 것으로 전에 제연연이 전력을 다해 펼치던 경공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누가 믿겠는가?’

제연연이 내심 혀를 내두르는데 적연흥은 이미 오 리 정도를 달려 그들이 처음에 섰던 곳의 반대쪽에 이르렀다.

“누님 보십시오!”

적연흥의 말에 석벽을 바라보던 제연연은 깜짝 놀랐다.

“어머! 동굴(洞窟)이 있었군요.”

그렇다.

적연흥이 맞은편에서 발견한 것은 하나의 큼직한 동굴이었다.

동굴은 지면으로부터 이 장 정도 높이에 뚫려있는데 제법 컸다.

“올라가겠습니다.”

제연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뛰어올라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적연흥은 그녀의 말에 껄껄 웃었다.

“하하……이곳에 떨어지기 전에도 이 장 정도는 뛰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신에 장강대하와 같은 힘이 끝없이 솟으니 능히 오 장이라도 뛰어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분은 자꾸만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구나.’

제연연은 내심 놀라면서도 흐뭇했다.

왜냐하면 적연흥이 자신의 지아비이므로……

“갑니다!”

적연흥은 일갈하며 지면을 박찼다.

파―― 앗!

슈―― 웃!

제연연을 업은 적연흥의 몸이 가볍게 날아 올랐다.

“웃!”

돌연, 동굴로 들어서던 적연흥의 몸이 흠칫 굳었다.

“독……독물이라도 있사옵니까?”

제연연은 겁이 나서 안쪽을 바라보지도 않으며 물었다.

“아닙니다. 누님. 잠깐 내려 주십시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조심조심 바닥에 내려섰다.

대체 동굴 안쪽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제연연이 의아해 하는데 적연흥이 갑자기 동굴 안쪽을 향해 부복하는 것이었다.

“미생 적연흥 감히 두 분의 선거(仙居)에 들어 어지럽혔습니다. 두 분의 영령께서는 널리 용서해 주시옵소서.”

제연연은 적연흥의 행동에 깜짝 놀라며 시력을 돋우어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녀의 두 눈도 크게 치켜 떠졌다.

동굴은 그리 깊지 않았다.

그 깊이는 겨우 오 장 정도였는데 동굴 끝의 석벽 앞에 두 구의 좌화한 시신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적연흥은 그 시신들에게 절을 했던 것이었다.

시신 중 왼쪽에 있는 시신은 회색가사를 걸친 승려의 시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구의 시신은 청포를 걸친 음산해 보이는 인물의 시신이었다.

‘아! 이 신무애에 우리보다 먼저 닿았던 인물들이 있었다니……’

제연연이 놀라는데 적연흥이 조용히 돌아섰다.

“누님, 저 두 분께서 최후를 마치신 안식처이니 그냥 나갑시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이 적연흥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상공께선 저 두 분의 신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시지도 않으시옵니까?”

“궁금합니다. 하지만 저 두 분은……”

“두 분께선 어쩌면 저희들이 읽기를 바라시고 어떤 단서라도 남기셨는지 모르는 일 아니옵니까? 나가시더라도 잠시 살펴보신 뒤에 나가시옵소서.”

제연연이 이끄는 바람에 적연흥은 제연연과 동굴 깊숙이로 들어갔다.

‘놀랍구나. 좌화한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난 듯 하건만 시신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니…… 아마도 이 두 분은 생존시에 내공이 초극에 이르러 계셨을 것이다.’

제연연이 놀라는 사이 적연흥은 바닥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장방형의 옥함이었는데 옥함의 뚜껑에 글이 적혀 있었다.

적연흥과 제연연은 옥함에 상배를 한 뒤에 조심스럽게 옥함에 적힌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놀라운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노납의 법명은 무허(武虛)라고 한다. 후일 천운으로 이곳에 드는 자가 있을까하여 이글을 적는다……>

 

“무... 무허!”

옥함에 적혀있는 글을 읽은 제연연의 안색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누님께선 이 분을 아시옵니까?”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알아요. 이분은 오백 년 전에서 사백 년 전까지 생존하셨던 소림사상 최강의 고승(高僧) 중 한 분이셨어요.”

“소림사의 고승이셨군요.”

제연연의 표정은 극히 엄숙하고도 공손하게 변했다.

“이 분은 소림 십팔대 장문인이 되실 분이셨으나 스스로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시는 성품임을 깨달으시고 장문인의 보위를 자신의 사질에게 양위한 미담은 유명해요. 당시에 무림에는 절대미문의 대혈겁이 발생했었어요.”

적연흥은 침중한 표정으로 제연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천살교(天煞敎)라는 한 방파가 저지른 혈겁으로, 그들은 천하패권을 위해 중원천하를 혈란으로 몰아넣었어요. 그때 이분 노선사께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셔서 천살교를 타도하셨다고 해요.”

“으음, 승인이라기보다 대협객이 되시는 것이 어울리셨을 분이셨군요.”

“네, 당시까지만 해도 구대문파의 성망이 대단하여 이분이 주도하신 구파연합군은 천살교를 괴멸시킬 수 있었어요. 물론 그 일전으로 구파가 격심한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말예요. 그후 이분의 행방이 묘연하셨는데 이곳에서 입적하셨군요.”

적연흥은 무허선사의 좌화한 시신을 우러러 보았다.

과연 덕망있는 노선사라기보다는 마치 나한(羅漢)같이 위맹하게 생겼다.

양인은 다시 옥함 위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천살교(天煞敎)를 괴멸시키기는 했으나 구파연합군의 구축을 이루었던 본사의 타격은 극심하였다. 이에 노납은 본사의 재건에 절치부심을 하였다.

그러던 중 노납은 불사 최고최강(最高最强)의 선공(禪功)이 도적의 손에 의해 장경각에서 반출되어 무림으로 유출되었음을 알았다.

대노한 노납은 강호로 나와 그 도적을 추격하여 마침내 이곳 북안탕의 산역(山域)에서 그 자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자는 야천신투(夜天神偸)라는 자였는데 알고 보니 그 자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그 선공(禪功)을 빼내었던 것이다.>

 

적연흥과 제연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림(少林) 최강의 선공(禪功)이라면 무엇을 말함입니까?”

적연흥의 물음에 제연연은 자신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금까지 알려지기로는 광명법신(光明法身)과 불영수미선강(佛影須彌禪罡)등이었아오나 이글을 보니 그 두 가지 선공보다 더 강한 선공이 있었던 것 같사와요.”

“계속 읽어 봅시다.”

 

<…… 야천신투가 위경에 처하자 그 사주자가 나타났다. 한데 놀랍게도 그 인물은 천살교(天煞敎)에서 교주 천살마신(天煞魔神)에 이어 제 이인자이던 환영비천신(幻影飛天神)이라는 자였다.

결국 일대 이의 대격전이 벌어졌다. 노납은 야천신투는 격살하고 선공(禪功)을 회수할 수 있었으나 환영비천신과 겨루다가 어이없게 둘이 함께 이 괴곡(怪谷)으로 추락했다.

그후 노납과 환영비천신은 간신히 목숨은 구했으나 한독(寒毒)의 침습을 받아 점점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에 만일 후인이 이곳에 닿게 되면 노납이 못다 했던 일을 이루어주기 바란다.

즉 이 옥함을 소림사(少林寺)에 전해주기를 바란다. 이 안에는 본사 조사령(祖師令)과 회수한 선공비급(禪功秘笈), 그리고 환영비천신(幻影飛天神)의 절기가 수록된 환영비천경(幻影飛天經)이 들어 있다.

만일 그대가 이미 섬긴 사문이 있다면 환영비천경을 그대에게 주겠으며 만일 아직 사문이 없다면 소림(少林)의 제자로 받아줄 수도 있다. 소림을 사문으로 섬기겠다면 노납에게 배사지례를 하고 조사령을 받들도록 하라.>

 

제연연이 환히 웃었다.

“상공 잘되었습니다. 이제 무공을 익히셔야 하니 기왕에 사문을 갖는 바에야 천년전통의 소림을 사문으로 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옵니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다시금 무허선사의 시신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삼배를 올린 연후에 그는 조심스럽게 옥함을 열었다.

과연 옥함 속에는 두 권의 비급이 들어 있고 하나의 자옥불상(紫玉佛像)이 놓여 있었다.

그 자옥불상이 바로 조사령으로 소림장문인이 갖고 있는 장문령(長門令)인 녹옥불령(綠玉佛令)마저 제어할 수 있는 조사령이었다.

그 권위가 이러함으로 대개 조사령은 장문인의 일대 스승이 지니게 되어 있다.

“소림 제 십구대 속가제자 적연흥 조사령을 배알합니다.”

적연흥은 다시 조사령에게 삼배를 올린 연후에 조사령을 조심스럽게 간수했다.

‘후훗, 되었다. 당금 소림의 최고 장로의 혜자돌림이 이십 육대 제자, 장문인 법현(法賢)방장께서 이십칠대 제자이니……상공께서는 당금 천하에서 가장 배분이 높으신 분이 되셨다.’

제연연은 내심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여자들의 소견머리라니……

적연흥은 조사령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선 사부님과 이분 노선배님의 유해를 안치해야 되겠습니다.”

제연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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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험준한 봉우리들 사이에 난 고갯길. 그곳에 진을 치고 있는 네명의 사내. 넝마같은 긴 옷을 입은 험상궂은 자들인데 칼이나 도끼를 들었다. 헌데 눈에 흰자위가 없어서 전체가 새카맣다. 이렇게 새카만 눈이 지옥갱의 정예들인 지옥광전사들의 특징이다.

[!] [!] 지옥광전사들 흠칫! 하고

고갯길을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청풍. 용봉철적은 허리춤에 끼우고 있고

[저 놈...] [올라오면서 소문을 못 들은 건가?] 지옥광전사들이 눈 부라리며 볼 때

청풍; [어이구 힘들다.] 좀 헐떡이며 올라오고

청풍; [서악(西岳) 화산이 바위들로만 이루어진 악산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헐떡이며 고갯마루로 올라오는데

[멈춰라!] 청풍의 앞을 막는 한 명의 지옥광전사. 지옥광전사1로 표기. 다른 세놈은 그 뒤에 서서 보고 있고

청풍; (이자들이로군!) + [왜... 왜 그러시오?] 겁에 질린 표정

청풍; (개개인이 황금전장 황금수라들을 능가하는 고수들이다.) + [산대왕들이시오? 그럼 헛수고 하셨소.]

지옥광전사1; [산대왕?] 피식 웃는 지옥광전사1

청풍; (방심하게 한 후 기습을 해야 승산이 있다.) + [소생은 과거에 낙방한 낙척서생(落拓書生)이라 동전 몇 닢이 전 재산이라오.]

지옥광전사1; [네놈이 지닌 재물 따위에는 관심없다.] [이 길은 막혔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내려가라.] 눈 부라리고. 그러자

청풍; [아니 산대왕들도 아니면서 왜 길을 막고 있는 거요?] 두 손을 허리에 척 대면서 눈 부라리고

[뭐?] [허어! 저 놈이...] 어이없는 다른 지옥광전사들

청풍; [엄밀히 따지만 화산은 북경에 계신 황제폐하의 땅인데 이렇게 무단히 길을 막아도 되는 거요?] [당신들은 황법이 두렵지도 않소?] 삿대질까지 하고

지옥광전사1; [이놈 말하는 뽄새 보세.] 콱! 청풍의 멱살을 틀어잡고. + 청풍; [어이쿠! 왜... 왜 이러시오?] 멱살이 잡힌 채 비명

지옥광전사1; [과거에 떨어진 먹물이라더니 말이 참 많구만.] [한마디만 더 나불대면 머리통을 깨트려주겠다.]

청풍; [이... 이게 무슨 행패요? 귀하는 하늘이 무섭지도 않소?] 두 손으로 자기 멱살을 잡은 자의 손목을 잡고

청풍; (은원살법으로 이자를 해치우고 이자의 무기로 다른 자들을 공격하자.) + [내 관부에 당신들 전부 고발하고 말겠어.] 지지! 악을 쓰며 지옥광전사1의 손목을 잡은 청풍의 손이 약간의 벼락을 일으키고.

지옥광전사1; [고발 같은 소리를...] 피식 웃을 때. + [무슨 소동이냐?] 휘익! 고갯마루 위로 날아 내리며 외치는 사내의 형상

움찔! 하며 돌아보는 지옥광전사들

청풍; (한 명 더 나타났다!) 츠으! 움찔하며 손에서 일으키던 벼락을 지우고.

석헌중; [가급적 조용히 길을 통제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고갯마루에 서서 차가운 표정을 짓는 사내. 나이는 30살 정도. 사내답게 생겼고 건장하다. 무기는 큼직한 칼과 양손에 낀 강철 장갑이다. 다른 작품의 석헌중 캐릭터 차용

[소(小)갱주님!] [죄송합니다 소주!] 급히 허리 숙이며 포권하는 지옥광전사. 청풍의 멱살을 잡은 지옥광전사1도 급히 석헌중에게 고개 숙이고

청풍; (소갱주!) 눈 번뜩이며 석헌중을 보고. 석헌중은 고갯마루에서 청풍 쪽으로 오는 중이다.

청풍; (저자가 지옥갱의 소갱주인 모양인데...)

<악명 높은 지옥갱의 소갱주치고는 사내답고 진중하게 생겼다.> 다가오는 석헌중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그때

석헌중; [풀어드려라.] 멈춰서며 지옥광전사1에게

지옥광전사1; [예 소갱주님!] 급히 청풍의 목을 놔주고

석헌중; [수하들의 대접이 거칠었던 점 대신 사과하겠소.] 포권하고

청풍; [귀하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구려.] 옷을 갈무리하고

석헌중; [이 위쪽에서 우리 지옥갱이 사업을 진행중이오. 불쾌하시겠지만 돌아가주시오.] 진지하게

청풍; [그러고 싶지만 내 형편상 두 번 다시 화산에는 올 수가 없소.] [무슨 사업을 진행중인지 모르지만 올라가게 해주시오.] 포권하며 애원하고

석헌중; [그건...] 난감

청풍; [절대... 절대 귀문의 일에 방해를 놓지 않겠소이다. 사정을 봐주시오.]

석헌중; (내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무림인은 아닌데...) + [어딜 보려고 가시는 중이었소?]

청풍; [화산에 올랐으면 서악대제(西岳大帝)를 모신 도룡묘(都龍廟)를 참배해야하지 않겠소?] 진지하게

<서악대제의 묘를 참배하겠다?> <누가 먹물 아니랄까봐...> <하고 많은 명승을 두고 사당이나 구경하겠다는 건가?> 비웃는 지옥광전사들. 그러자

석헌중; [도룡묘.. 도룡묘라!] 중얼거리며 생각하다가

석헌중; [좋소. 도룡묘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지나가셔도 좋소.] 옆으로 물러서고

[소갱주님!] [지존회에서는 아무도 화산 중심부로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지옥광전사들 난감해하고

청풍; (지존회?) 눈 번득일 때

석헌중; [내가 책임지겠다. 지존회의 지시 상황은 묵살해라.] 지옥광전사들에게 말하고

[예.,..] [그리 하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지옥광전사들.

청풍; [허락해주셔서 감사하외다.] 굽신거리며 석헌중에게 포권하고

청풍; [나중에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데... 존성대명을 알 수 있을지요?]

석헌중; [내 이름은 석헌중(石憲中)이오. 강호에서는 지옥군자(地獄君子)라는 과분한 별칭으로 통하고 있소.] 마주 포권하고

청풍; [지옥군자 석대협이셨구려. 소생은 이청풍이라고 하외다.] 포권하고

석헌중; [이청풍... 이서생이셨소이다.] 마주 포권하고

청풍; [인연이 있으면 다시 뵙기를 바라겠소이다.] 연신 굽신거리며 석헌중 앞을 지나가려는데

석헌중; [잠깐 기다리시오.] 부르고

청풍; (정체가 들통났나?) + [가르침이 남았소이까?] 돌아보고

석헌중; [도룡묘에 가신다니 방향이 정반대이긴 한데...] 생각하다가

석헌중; [실수로라도 서북쪽의 창천애 쪽으로는 가지 마시오. 자칫 살신(殺身)의 화를 입는 수가 있소.] 심각한 표정으로

청풍; [고마운 말씀, 잊지 않겠소이다.] 굽신

이어 돌아서서 고갯마루를 올라간다. 그걸 뒤에서 보는 석헌중과 지옥광전사들

청풍; (도룡묘 서북쪽의 창천애!) 눈 번뜩이며 고갯마루 정상에 이르고

청풍; (그곳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생각하며 고갯마루를 내려가고

[...] 청풍이 고갯마루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는 석헌중. 뭔가 생각하고. 그런 석헌중의 안색 살피는 지옥광전사1

지옥광전사1; [지금이라도 저자를 데려올지요?] 조심스럽게 말하고

석헌중; [그럴 필요없다.] 고개 젓고. 시선은 청풍이 사라진 고갯마루를 보며

지옥광전사1; [예...] 물러서고

석헌중; (이청풍... 무림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름인데...)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인물이다. 머잖아 다시 만날 것 같은...> 석헌중이 서있는 주변 모습 배경으로 석헌중의 생각 나레이션

 

#69>

<-창천애> 여전히 낮

휘익! 허공에서 날아 내리는 세 여자. 색목쌍교가 좌우에서 위상영의 팔을 하나씩 잡고 있다. 위상영은 품에 비파를 안고 있고

비석처럼 생긴 바위 근처로 내려서는 세 여자

위상영; [고마워요.] 색목쌍교의 손에서 풀려나며 말하고.

색목쌍교는 고개 숙이며 물러서고

이어 주변을 둘러보는 위상영

위상영; (어머니가 잠영혼을 통해 보낸 편지에 의하면 아버지는 오년 전 여기에 들르셨었다.) 주변 돌아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위상영; (화산에서도 가장 험한 곳이라 인적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인데...) (아버지는 대체 무엇 때문에 여길 찾아오셨을까?) 생각. 그러다가

[!] 무언가 발견하는 위상영

절벽 가에 서있는 비석 닮은 바위. 물론 그 위에 발라진 독은 말라서 발라진 흔적이 안 보이고

위상영; (저 바위...) 눈 반짝

위상영; (어쩐지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같이 느껴진다.) 바위로 다가가고

색목쌍교도 뒤따라 다가가고

몸을 숙여서 바위를 살피는 위상영. 그러다가

위상영; [이건...] 소스라치게 놀라고

일교; [왜 그러시는가요?] 가까이 다가오고

위상영; [이... 이 바위에 나있는 문양...!]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고 오래 전에 새겨진 고대의 상형문자예요.] 가까이 얼굴 가져가며 살피고. 비파는 왼손으로 품에 안았고 오른손으로 바위 표면을 만지려 한다

색목쌍교; [글자가 새겨져 있다면...] [부주님이 이곳에 오셨던 목적과 관련이 있겠군요.] 역시 흥분하고

이교; [고대의 상형문자라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판독이 되는가요?]

위상영; [천애협로(天涯狹路)...] 슥! 바위의 윗부분에 나있는 굴곡들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흥분하고.

위상영; [처음 구절은 천애협로인 것 같아요.] 스으으! 손가락이 닿은 부분에서 연기가 조금 일어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글을 판독하는데 집중하는 위상영. 위상영이 만지는 그 굴곡이 <天涯狹路>라는 글과 비슷하다. #1>에 나온 장면을 차용

일교; [천애협로라면 우리 신선부를 상징하는 표어잖아요.]

이교; [그렇다는 건 이 바위, 아니 비석이 우리 신선부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로군요.] 역시 흥분

위상영; [그런 것 같아요.] 츠츠! 손가락으로 바위를 더듬으며 글을 읽고. 그에 따라 바위에서 연기가 점점 더 많이 피어오르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위상영; [어쩌면 이 바위에 글을 새긴 것은 흑백신귀님들일지도 몰라요.] 집중해서 다른 글들을 읽고

일교; [삼백여 년 전, 흑백신귀 조사님들은 구대천마를 패퇴시킨 후 신선부로 돌아오지 않고 실종되셨었지요.] 위극겸의 뒷모습 보며

이교; [두 분이 마지막으로 날려 보낸 전서구에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의 유적을 발견한 것 같다.>는 글이 적혀있었다고 들었어요.]

일교; [원시천존은 우리 신선부 뿐 아니라 숙적 마귀동의 시조이기도 한 고금제일인!] [그분의 유적을 발견했다면 흑백신귀께서 귀환을 미룬 것도 설명이 되어요.] 흥분한 표정으로 말하고

위상영; [그렇긴 한데... 이 바위에 적혀있는 내용은 너무 모호해요.] 바위를 만지며 찡그리고. 연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일교; [모호하다면...?] 눈치 채지 못하고 묻고

위상영; [천재지중(天在地中) 욕등투천(慾登投天)...] [하늘은 땅 속에 있으니 오르길 원하면 하늘로 몸을 던져라?] 글을 해석하며 갸웃

일교; [정말 알 수 없는 내용이군요.]

이교; [하늘이 어떻게 땅 속에 있을 수 있으며 몸을 던져야 하늘에 오른다니...] 이마 찡그리고

위상영; [확실한 것은 이 글이 결코 누군가의 장난이 아니라는 점...] + [!] 말하다가 눈을 치뜨고.

슈우우! 이제는 눈에 확 띠게 연기가 많이 일어난다.

위상영; (설마!) + [물러서요!] 비명 지르며 고개를 들지만. 그 직후

화악! 펑! 연기가 단번에 바위 전체에서 터져나와 주변을 뒤덮는다. 방심하다가 그대로 그 연기에 휩싸이는 위상영과 색목쌍교

[독...!] [내공이 흩어져요!] 털썩! 퍼억! 비명 지르며 나뒹구는 색목쌍교. 반면

털썩! 내공이 거의 없는 위상영은 증상이 덜해서 바닥에 주저앉고

[끄윽!] [끄윽!]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떠는 색목쌍교

위상영; [산... 산공독!] 헐떡이며 색목쌍교를 보고

위상영; [체온에 반응하는 산공독을 바위에 발라놓았구나.] 털썩! 등을 바위에 기대고. 바로 그때

[감탄 했소 병서시!] 짝! 짝! 박수치며 다가오는 사내. 얼굴에 뿔이 달리지 않은 귀신가면을 가면을 쓴 인물. 지존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지존의 가면에는 뿔이 두 개 달려 있다는 점. 이자는 위진천이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소지존으로 표기

소지존; [호천맹의 군사답게 본좌가 마련한 함정의 원리를 단번에 파악하시니 말이오.] 짝짝! 박수치며 다가오고

위상영; [당신... 당신은 누군데 이런 짓을 꾸미는 건가요?] 바위에 기대앉아 비파를 품에 안으면서

소지존; [내가 지존회의 소회주라면 설명이 되겠소?]

위상영; [지... 지존회 소회주!] 경악

소지존; [수하들은 본좌를 소지존(小至尊)이라 부르니 소저도 그리 불러주시구려.] 3미터쯤에 멈춰서고

위상영; [지존... 그 사람이 거둔 제자란 말인가요?]

소지존; [짐작하시는 대로요.] 끄덕

소지존; [회주께서는 바쁜 당신을 대신하여 천하를 장악하라는 사명을 제자인 본좌에게 맡기셨소.] 음산하게 눈 번뜩이고

위상영; [그렇다면 나와 지존의 관계도 알 텐데...] [나를 어찌할 생각인가요?] 소지존을 노려보고

소지존; [지존과의 관계를 들먹여서 요행을 바라진 마시오.] [지존께서는 소저의 망나니짓에 질려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셨으니...] 가면 속에서 눈 번뜩이며 비웃고

위상영; [단호한 결정리라면 설마...] 전율

소지존; [소저가 두 번 다시 지존회의 군림대업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하셨소.] 음산하게 웃고

위상영; [그런...] 전율과 불신

소지존; [그래도 안심하시오.] [소저는 물론이고 저 계집들도 처녀 귀신이 되게 하진 않을 테니...] 히죽 웃으며 손으로 자기 사타구니를 만진다. 색목쌍교를 보며

위상영; [당신은... 마귀로군요!] 노려보고. 비파를 연주할 자세를 취하면서

소지존; [찬사로 듣겠소.] 다가오고

소지존; [그 대신 저 두 년과 소저는 죽을 때까지 본좌의 노리개가 되어주셔야겠소.] 사악하게 웃으며 다가오다가

[!] 눈 부릅뜨는 소지존

찌링! 떨리는 위상영의 손이 비파의 줄을 건드린다

소지존; [설마 아직도 이혼비파를 탄주할 힘이...] 팟! 기겁하며 뒤로 날아오르고. 하지만 그 직후

위상영; [마귀답게 지옥으로 가세요!] 촤앙! 전력을 다해 비파의 현을 긋는다

꽝! 엄청난 충격을 받고 허공에서 퍼덕이는 소지존

[컥!] 푸학! 입과 코와 귀로 피를 토하는 소지존

퍼억!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다.

소지존; [지랄...] 바닥에 떨어져서 벌벌 떨고

위상영; [쿨럭!] 피를 토하고. 안고 있던 비파가 옆으로 굴러 떨어지고

따당!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비파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소지존을 보는 위상영.

소지존; [끄윽...] 피를 게워내며 벌벌 떨고 있는 소지존.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위상영; (내공이 거의 다 흩어진 상태라 숨을 끊어놓지 못했다.) 그걸 보며 절망하고

위상영; (아무래도... 하늘이 나 위상영을 버리는 것 같구나.) 스륵! 바위 옆으로 쓰러지려 하고

털썩! 비석 닮은 바위 옆으로 쓰러지며 정신을 눈을 감는다

 

#70>

휘익! 험준한 바위 능선을 달려오는 청풍.

청풍; (지옥군자 석헌중의 말대로라면 이 근처가 창천애일 텐데...) 휘익! 주변 살피며 날아오고.

청풍이 달리는 곳은 설악산의 울산바위나 공룡능선 정상처럼 험하다

청풍; (너무 험해서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거의 없어 보이는 곳이다.)

청풍;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할 때

따다당! 멀리서 들리는 비파소리

청풍; [이... 이건!] 경악하고

청풍; [위소저의 비파소리다!] 휘익! 날아가고

청풍; [헌데 하늘 끝까지 치솟는 것 같은 날카로운 한 번의 탄주로 끝났다.] 눈을 부릅뜨고

청풍; [아무래도 위소저의 신상에 변고가 생긴 것 같다.] 휘익! 날아가고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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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장

 

                           사람을 찾습니다 (2)

 

 

까딱!까딱!

물살은 점점 느려지고 반대로 강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강물에 담긴 파란 하늘에는 한점 두점 구름들이 떠가고 그 구름들 위로 조그마한 나룻배가 노를 저어 가고 있었다.

물결에 배가 까닥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 따라 노를 저어 배를 조종하는 사람이나 뱃머리에 앉아서 턱을 고이고 있는 사람이나 덩달아 까닥까닥하고 있었다.

한데 배를 젓는 사람은 뽀송뽀송한 솜털같은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준수한 미청년이었다.

또한 그의 앞쪽에 앉아서 턱받침을 하고 있는 사람은 깜찍한 소녀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배도 참 잘 움직이네요. 언제 이런 것까지 배웠어요? 아참참. 무공도 한번만 보면 다 할 줄 아는 사람인데 이런 걸 묻다니... 난 하는 수 없는 가봐.]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입을 톡톡 두드리는 소녀, 그녀는 장지연이었다.

석두공은 못들은 척 그저 물위로 흘러가는 구름그림자를 보면서 노를 흔들었다.

장지연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봐요. 구결도 없이 어떻게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거죠?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휴... 정말 당신처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은 처음이오. 왜 날 그냥 좀 내버려 두지 못하오?]

석두공은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장지연이 피식 웃었다.

석두공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사부께서 당신에게 그 검법을 알 때까지 가르치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랬다면 벌써 도망쳤겠다는 말이군요.]

여전히 생글거리는 장지연이다.

[그렇소. 난 성가신 건 질색이오. 휴... 소령이 옆에 있을 땐 신경 쓸 일 하나 없었는데... ]

말하던 석두공은 무심코 소령을 생각해내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행동이 종잡기는 어려웠지만 그는 아무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소령은 그를 잘 돌봐주었다.

잠자리에서 시작해서 세숫물까지 하나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석두공은 그녀를 사랑하는지 않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없다는 것은 아주 허전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의 마음은 단 한 번의 정사를 가진 자봉에게 모두 주어버렸다고 하지만...

이때 장지연은 눈에 기이한 열기를 담고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물었다.

[소령이 누구죠? 당신의 정혼녀인가요? ]

[그렇진 않소.]

[그럼 누이인가요?]

[아니오.]

석두공은 자꾸만 묻는 그녀가 성가셔서 딱 잘라 말했다.

장지연은 잠시 있다가 그에게 또 물었다.

[그럼 그녀는 당신에게 무엇이죠?]

[...!]

[같이 잠을 자기도 했나요?]

[...!]

석두공이 대답이 없자 장지연은 발딱 일어섰다.

[그래요. 나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요. 나도 지금 정혼자를 찾아다니는 중이거든요. 그도 숯덩어리 당신처럼 무슨 무공이든 한번 보기만 하면 다 배워버리는 사람이죠. 너무 기고만장할 것 없어요.]

[정혼자를 찾아다닌다고? 정혼자가 장소저를 거들떠보기나 할지 모르겠군.]

석두공은 그녀가 정혼자를 찾아다닌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장지연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왜요? 무슨 악담을 그렇게 해요?]

[별로 상관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성가시게 하니 정혼자는 얼마나 괴롭히겠소? ]

석두공은 복수할 수 있는 기회다 싶었는지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흥!]

장지연은 콧웃음을 쳤으나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었다.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석두공은 그녀가 당연히 반박할 줄 알았다가 가만히 있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사귀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활달하면서도 붙임성있는 장소저를 아주 좋아할 지도 모르겠소.]

장지연은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냐는 듯이 고개를 팩 돌렸다.

[어서 그 검법의 구결이나 알려주세요.]

[이런 걸 구결이라 하는 지는 잘 모르겠소만, 펼치려면 이렇게 해야하오.]

석두공은 겸염쩍어져서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검의 끝을 진기로서만 움직이려면 먼저 몸속의 진기가 혈도마다 조금씩 달라야 하오. 또한 한편으로는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를 검끝까지 뻗쳐가게 한 후에 다른 한편으로는 몸 안에서 진기를 운용해야만 하는 것이오.

몸 안의 진기의 움직임이 단전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단전에서 뻗쳐나간 진기를 유동시켜 검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오. 이기어검의 요체는 오직 여기에 있을 뿐이오.

검이 손안에 있던 없던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소. 또한 몸 안에서의 진기 움직임은 조금만 연습해 보면 스스로 터득할 수 있소. 대저 무공이란 것이 걸음마와 같아서 방법만 알게 되면 어느 정도로 느는 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오.]

장지연의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그치듯 물었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해요? 검강의 발출 말예요? 검기만 해도 웬만한 고수는 흉내도 못내는 데 어떻게 검강을 발할 수 있죠?]

석두공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기어검도 마찬가지지만, 일단은 충실한 내공이 있어야하오. 그리고, 원래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힘을 여럿으로 나누었다가 어느 순간에 합치는 것이 최고요.

일부의 내공을 먼저 검에 주입하는 것이오. 그것도 검의 표면에. 그 다음에 나머지의 공력을 모두 검의 중앙으로 내쏘는 것이오. 두개의 공력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합쳐서 내밀게 되면 검강이 될 수 있소.]

장지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럼 순수하게 한 가지 내공만 익힌 사람은 검강이나 어검술을 펼칠 수 없단 말인가요?]

[그렇진 않소. 단지 그렇게까지 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되오.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그 정도가 되면 힘을 나누었다가 합치는 방법만 터득하면 몇 배의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오.]

장지연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통검문에서 검강이나 어검술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짐작일 뿐이오.]

장지연이 또 물었다.

[초식이 필요없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가요?]

[그것은 느낀다는 것이오. 눈으로 보아서 알고 귀로 들어서 알고 직접 만져보아서 안다면 그것은 상승의 경지에 달하지 못한 것이오. 눈으로 보기 전에 귀로 듣기 전에 그리고 직접 만지기 전에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야 하는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초식이란 것은 소용이 없소.]

[...?]

장지연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개만 끄덕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경지도 직접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남들의 생각으로 머리로 끄덕이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석두공은 그녀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하자 직접 예를 들었다.

[생각해보시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경우에 처할 수는 없는 것이오. 대개 초식이란 것은 천지에 도리에 합당하게 만든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하면서 실상에 있어서는 격식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끼워놓은 것들도 적지가 않소.]

그 점에 대해서는 장지연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석두공의 말이 계속되었다.

[만약에 열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검법이 있다면 그 검법 정화의 구할은 그 중의 하나에 담겨있을 것이오. 나머지 아홉이 일할의 정화를 나눠갖는 다고 볼 수 있을 것이오.]

장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벽을 쳤다.

[과연 그렇겠군요. 보통 무공을 배울 때 한가지 초식만 익히고 나면 다른 것은 그 하나에서 발전 된 것이라 배우기가 쉬웠는데 그 때문이었군요.]

[또한, 중요한 것은 대개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장황하게 말해야 한다면 그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귀를 막아버려도 괜찮은 것이오.

검법의 정화도 그렇소. 초식이란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그 초식을 가장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소.]

 

석두공의 말은 이러했다.

어떤 초식이든 간에 실제로 사람이 처한 그 상황에 가장 맞는 초식이란 없다.

각 상황마다 그것에 맞는 초식이 따로 있는 것이다.

물론 수십 만 가지의 초식이 있다면 아주 비슷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도로(徒勞)에 불과하다.

초식을 많이 익힌다고 해서 좋은 것이 결코 아니다.

초식을 많이 알게 되면 그만큼 초식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그 상황에 가장 알맞는 적절한 방법으로 검을 휘두르고 권각을 휘두르면 그뿐, 무슨 복잡한 초식을 그 순간에 벼락같이 떠올려 펼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에 볼과하다.

한마디로 손톱으로 눌러서 죽여야 할 이(蝨)가 있는가하면 껍질을 깨뜨려서 죽여야 하는 거북(龜)도 있다는 말이다.

 

장지연은 자세히는 알 수가 없었지만 무엇인가가 어렴풋이 잡히는 것같았다.

장강을 떠가는 배위에서 그녀는 깊은 묵상에 잠겨들었고 석두공은 노를 저어 배의 방향을 조정했다.

 

× × ×

 

강변의 어느 객점이다.

밖에는 어느덧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한적한 객점 안에는 십여명의 손님이 앉아 배를 채우고 있다.

[난 벌써 삼년 째 그 사람을 찾아서 쇠신이 닳도록 천하를 헤맸어요. 하지만 아무데도 없더군요. 아마 죽었나봐요?]

장지연은 술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날이 저물자 뭍에 오른 그녀와 석두공은 때늦은 점심을 들고 있는 중이다.

창가 자리에는 네명의 흑의인이 말없이 앉아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그들은 아직 주문도 하고 있지 않다.

장지연은 반주 삼아 시킨 술을 홀짝이며 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마음이 여린 석두공인지라 그녀의 신세도 무척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소?]

장지연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 사람? 나도 잘 몰라요. 한번도 만나질 못했으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 머리를 다쳐 당신처럼 총명한 사람은 아니래요. 오히려 그 반대...]

[그럼 어떻게 그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단 말이오?]

[초상화를 가지고 있어요. 한번 보여드릴까요?]

장지연이 가슴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으며 말했다.

석두공이 당황하여 손을 저었다.

[아...아니오 됐소.]

[왜요? 사실 당신을 조금 닮기도 했어요. 당신일 리는 없지만...]

장지연은 그의 말을 묵살하고 품속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냈다.

바로 그때였다.

펑!

갑자기 객점의 문이 날아가며 청의를 입은 여인이 놀란 사슴처럼 뛰어 들어왔다.

[발각됐어요. 여길 피해요!]

그녀가 소리치며 객점의 후문으로 달려갔다.

파팟! 쐐액!

그 즉시 창가에 앉아있던 네명의 흑의인도 몸을 날려 그녀를 뒤쫓았다.

“....!”

석두공의 시선은 청의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에 못이 박혔다.

그녀를 어디선가 보았었음을 깨달은 때문이다.

(오년전의 그 여자다!)

석두공의 눈이 불을 뿜었다. 청의여인은 그에게 갚아야만 하는 빚이 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장지연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당신은 여자만 보면 눈을 못 떼는군요.]

그러나 석두공은 그녀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장지연은 그가 화가 난 줄 알고 흠칫하며 따라 일어났다.

그때였다.

휘이익!

붉은 그림자 하나가 객점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혈포단객(血袍單客)!]

장지연과 석두공의 입에서 그 붉은 그림자의 정체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그 붉은 그림자는 바로 혈포단객이었다.

오객(五客)중 한명으로서 언제나 혼자서 행동한다는 혈포단객...

“...!”

파앗!

혈포단객은 객점에 들어서자마자 즉시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그대로 객점의 뒷문으로 달려갔다.

[오객의 하나인 혈포단객이 이런 외진 곳에 나타났군요.]

장지연은 석두공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눈을 돌렸을 때 석두공은 이미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

장지연은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으나 석두공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탁자위에는 그녀가 꺼내놓은 소년의 초상화가 놓여있었다.

한데, 그 초상화는 바로 어린 시절의 석두공이 아닌가?

사람을 찾아다닌다는 장지연은 그를 찾고 있었단 말인가?

삼노에 의해서 귀빈으로 대우받던 장지연은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석두공을 찾아다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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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絶地의 남녀

 

 

 

“위험하다!”

모산독군의 다급한 폭갈이 터졌다.

위―― 잉!

모산독군의 소매로부터 강맹한 경기가 일어 만년화룡과 내단을 잇고 있는 무형경기를 잘라갔다.

파파파팟!

눈부신 불꽃이 튀었다.

모산독군의 웅후한 공세가 만년화룡(萬年火龍)이 내단을 조종하는 경기를 차단시킨 것이다.

그러나 단화(丹火)에 둘러싸인 만년화룡의 내단은 날아가던 여진으로 적연흥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피해볼 수도 없었다.

“아!”

적연흥이 당황하여 입을 딱 벌렸다.

다음 순간,

“아―― 악!”

적연흥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한순간, 만년화룡의 단화와 내단이 고스란히 적연흥의 벌린 입안으로 날아든 것이다.

“아우님!”

제연연이 비명을 지으며 적연흥을 끌어 안았다.

“연흥아!”

막 만년화룡을 향해 독강(毒罡)을 퍼부으려던 모산독군이 대경하며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절벽이…….”

음산잔마의 경악성이 터졌다.

만년화룡의 거구가 올라서는 통에 석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쿠와아…… 앙!

콰――르릉……

“아―― 악!”

신무애 쪽으로 돌기한 암벽전체가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적연흥을 꼭 끌어안은 제연연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기우뚱하던 두 남녀는 만년화룡의 거구와 함께 신무애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이야앗!”

모산독군은 일성대갈과 함께 떨어지는 두 남녀를 노리고 날아 내렸다.

찌지직――

안타갑께도, 간일발의 차이로 모산독군의 손은 적연흥의 장삼끝을 잡아채는 것으로 그쳤다.

휘르르――!

눈 깜짝할 사이에 적연흥과 제연연은 까마득히 떨어지고 이제는 모산독군마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형님!”

그 순간 음산잔마가 떨어지는 모산독군을 향하여 나무토막을 던져내었다.

“차하압!”

모산독군은 일성대갈과 함께 나무토막을 걷어찼다.

휘르르……

그리고는 그 반진을 이용 천학(天鶴)과도 같이 단애 위로 날아 올랐다.

“연흥아……!”

절벽 위로 날아오른 모산독군은 신무애를 내려다보며 처절하게 외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적연흥과 제연연, 만년화룡, 그리고 몇 명의 무림인들을 집어 삼킨 신무애에서 여전히 꾸역꾸역 안개만이 치솟고 있었다.

털퍽 주저앉은 모산독군의 두 볼로 뜨거운 것이 흐르고 있었다.

“형님……!”

음산잔마가 침통한 표정으로 모산독군에게 다가섰다.

 

***

 

“으으……!”

적연흥은 정신을 차렸다.

괴이하게도 몸속은 마치 불덩이를 삼킨 것 같이 뜨거운데 전신의 피부는 얼음구덩이에 빠진 듯이 차가웠다.

‘으……으…… 여…… 여기가 지옥인가?’

적연흥은 뜨겁고 차가운 상반된 기운에 내외로 고통을 받으며 전신을 떨었다.

‘으…… 누…… 누가 내게 붙어 있는 모양이구나…….’

전신의 피부가 얼어붙은 듯하여 제대로 느낄 수는 없으나 분명 누구인가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눈…… 눈을 떠야 하는데…….’

적연흥은 딱 붙어있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이를 악물었다.

한동안 사력을 다해 근육을 움직여서야 비로소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헛…… 누…… 누님께서……!”

눈을 뜬 적연흥은 대경했다.

그들은 지금 넓은 호수 속에 빠져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호수 가운데에 솟아 있는 검은색의 바위로 이루어진 돌섬인 모퉁이었다.

흑옥(黑玉)같이 검은 바위로부터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솟았으며 반쯤 몸이 담긴 호수물도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얼마나 차가웠으면 몸 주위에 한 겹의 얼음이 얼었을 정도였다.

한데, 적연흥의 몸을 한 여인이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여인은 지독한 한기로 인해 전신이 얼어붙어 있었다.

미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얼어붙어 있는 여인!

그녀는 바로 제연연이었다.

“누…… 누님께서…….”

적연흥은 손을 움직여 제연연을 만지려 했다.

그러나,

파파팍…… 쩌――엉……!

제연연의 의복이 유리 부서지듯 부서져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으음…… 자칫하면 누님의 옥체마저 부서지기 십상이다. 한데……”

적연흥은 천천히 전후사정을 상기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만년화룡의 단화(丹火)와 내단(內丹)을 삼키는 순간 정신을 잃었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모든 사정이 이해가 되었다.

이곳은 신무애 밑으로서 천지(天地)의 극음지기(極陰之氣)가 모이는 곳이었다.

이름하여,

 

――극음빙천(極陰氷泉).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극음지기가 모여드는 비소(秘所)인 관계로 무엇이든지 얼려버리는 지독한 한기를 지니ㄱ조 있다.

두 남녀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수면에 만년화룡의 거구가 떠있는데 만년화룡도 전신이 얼음에 뒤덮여 있었다.

또한 함께 떨어진 몇 명의 무림인들도 꽁꽁 얼어붙은 채로 떠있었다.

“천행으로 나는 저들같이 얼어붙지 않았구나.”

적연흥은 나직이 탄성을 토했다.

그는 만년화룡이 만년동안 태양자기와 지심열극을 흡수하여 단련한 내단을 복용한 탓에 얼어 죽지 않은 것이다.

얼어 죽기는 커녕 그의 내부는 마치 용광로 같이 뜨거웠다.

어디론가 그 열기를 토해 버리지 않으면 전신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만년화룡의 내단은 천하제일인 극양지물(極陽之物)이었다.

천하제일의 극양지물인 만년화룡의 내단을 삼켜 그 극심한 열기로 내부가 한 줌의 재가 되버리려는 순간 이곳 극음빙천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천행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비록 살았으나 누님께서는 어떤 상태인지…….”

적연흥은 조심스럽게 자신과 한 몸이나 된듯이 붙어 있는 제연연의 상세를 살폈다.

“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하옵니다.”

갑자기 적연흥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또 다른 천행(天行)!

기적이라 할 일이 벌어져 있었다.

적연흥을 꼭 끌어안고 있는 제연연의 가슴 부분에 미미하게 온기가 있었던 것이다.

즉, 그녀는 태양(太陽)과도 같은 불덩어리인 적연흥을 안고 있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폭발할 듯한 열기가 적연흥과 마주 닿은 제연연의 가슴부위로 흘러들었고, 그로 인해 제연연은 동사를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누님은 간신히 한 줄기 숨이 붙어 계신 상태이다. 어떻게든지 이분을 회생시켜야 하는데…….”

격동을 가라앉힌 적연흥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독한 운무가 사방에 깔려 있다.

그런 속이건만 기이하게도 적연흥은 시야가 더할 수 없이 환했다.

모두가 만년화룡의 내단을 복용한 때문이리라.

“지면(地面)이 있다.”

그는 자기의 우축 삼십여 장 밖에 널찍한 지면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우선 뭍으로 나간 뒤에 치료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겠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으윽……!”

그 흑옥석같은 바위 위를 떠나자 내부의 열기가 미친 듯이 기승을 부렸다.

호수물도 지극히 차가왔으나 적연흥 내부의 열기를 식혀주기에는 부족했다.

하나, 멈출 수 없는 노릇,

그는 전신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천천히 물을 헤쳐 나갔다.

산곡의 거치른 물살에서 자맥질을 즐기던 그인지라 수영하는 데는 자신이 있는 그였다 .

이윽고, 적연흥은 물가에 닿았다.

제법 넓은 지면이 깎아지른 듯한 석벽에 연하여 있었다.

“으―― 흡!”

물가로 올라서던 적연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제어하는 것이 없자 몸속의 열기들이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크으……못견딜 정도다.”

적연흥은 이를 악물었다.

“내…… 내게는 고통스러우나 누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사실이었다.

적연흥의 전신에서 무지막지한 열기가 솟구치자 제연연의 전신에 뒤덮였던 얼음들이 모조리 녹아 내린 것이다.

“크…… 으…… 음……!”

적연흥은 제연연을 안고 비틀비틀 석벽 밑으로 갔다.

이미 제연연의 전신은 완전히 풀려있고 적연홍의 몸속의 열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조심해야한다. 할아버지들께서 주신 귀중한 비급들이 손상될 수도 있으니…….”

적연흥은 품속에서 세 권의 비급을 꺼냈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

<천잔경(天殘經)>

 

이것이 세 비급의 제목이었다.

세 권의 비급은 지독한 열기에 누렇게 색이 바래 있었다.

“자칫했으면 두분 할아버지의 은혜를 수포로 만들 뻔 했다.”

적연흥은 세 권의 비급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파다닥……

제일 위에 놓였던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이 미끄러지면서 활짝 펼쳐졌다.

“응?”

도로 잘 놓으려던 적연홍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는 황급히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을 집어 들었다.

 

<요상편(療傷篇)>

 

――천하만물(天下萬物)은 음양(陰陽)에서 나오고 오행(五行)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으로 유지 되나니, 훼(毁)를 보(甫)하고 상극(相克)을 해(解)함이 요상(療傷)의 요체(要體)라. 상극(相克)은……――

 

적연흥은 이미 일시의 고통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로, 오직 요상편을 읽는데 몰두했다.

 

<음양화합도전대법(陰陽和合到轉大法)>

 

적연흥의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난생처럼 해괴한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본 것이다.

남녀(男女)가 교합(交合)하고 있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흐―― 음!”

진탕되는 가슴을 진정시퀸 적연흥은 그림 아래로 적힌 설명을 읽어갔다.

 

―― 천지(天地)가 음양(陰陽)으로 나뉘니 천지간(天地間)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음양(陰陽)으로 나뉘도다.

따라서 음양의 위치에서 나오는 힘(力)이야말로 천지간에서 가장 강(强)하고 넓으며(幽) 깊음(深)이라.

요상(療傷)에 있어서 제일(第一)로 음양(陰陽)의 이치로 기(氣)를 살리며(生)…… 따라서 음양화합도전대법(陰陽和合到轉大法)은 가장 훌륭한 요상대법(療傷大法)이니라. 상대가 어머니, 누이들이 아니라면 서로에게 이로움(益)이 있는……――

 

그 아래로 자세한 시술 방법이 적혀 있었다.

이의 특징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데에서도 시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단지 그 시술이 부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다.

“휴…… 이를 어쩐다……”

적연흥은 난색을 지었다.

요상편의 다른 곳을 살펴보았으나 모두가 내공(內功)의 힘이나 정교한 침술 등으로 시전하는 요상대법들 뿐이다.

지금 당장 적연흥이 제연연에게 베풀 수 있는 요상대법은 음양화합도전대법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어찌 누님의 청결함을 더럽히랴? 하물며 나는 아직 어린 아이니…… 도저히 그런 것은……”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잠시 떼어놓은 사이에 제연연의 전신이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언제 한 줄기 숨마저 끊어질지 모를 일이다.

적연흥은 빨리 가부간의 결정을 내야만 했다.

‘별 도리 없다. 누님을 이대로 절명케 할 수 없으니…… 나중에 누님께 죽음으로 속죄하는 한이 있더라도……’

적연흥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떨리는 손길로 제연연의 몸을 바로 뉘였다.

살짝 눈을 감은 채 고요한 모습으로 몸을 뉘고 있는 여인.

더구나 그 여인의 모습이 천상선녀와 같고 농염함이 극에 달한 삼십대 여인임에야……

적연흥은 숨이 탁 막혔다.

위경에서는 몰랐으나 막상 여인을 안으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옴을 어쩔 수 없었다.

몸에 젖어 의복이 몸에 착 달라붙은 관계로 여인의 농만한 육체의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모습은……

“누님…… 용서하십시요.”

적연흥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제연연의 옷고름을 잡아 당겼다.

사르르……

옷고름이 풀어지며 저고리가 옆으로 벗겨졌다.

“으으음……”

적연흥의 눈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백설보다도 뽀얀 가슴의 속살, 둥그스름한 어깨 밑으로 불룩한 융기가 분홍빛 천에 꼬옥 눌려 있었다.

“흐…… 음!”

적연흥은 단전으로 부터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치솟음을 느끼며 제연연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뭉클!

무어라 형언할 수도 없는 탄력과 부드러움이 손바닥 가득히 느껴졌다.

입안이 탄다!

적연흥은 침을 삼키며 제연연의 젖가슴을 졸라맨 젖가리개를 풀어내었다.

출―― 렁!

물결이 인다.

천하에서 가장 넓고, 가장 부드러우며, 가장 따스한 커다란 바다!

그 바다가 출렁인다.

뽀얀 육향으로 천지를 가득 메우면서……

그 부드러운 파도의 융기 위에 분홍빛으로 수줍게 물든 두 개의 열매……

떨리고 있다.

천하에서 가장 굳건한 정력(定力), 모산독군조차 감탄했던 적연흥의 정력도 이 순간에는 허무한 모래성 같이 흩어졌다.

태초(太初)!

인간이 가장 먼저 찾았던 그 따스하며 풍요한 생명의 근원 앞에서야……

‘안고 싶다.’

순수하고도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적연흥은 양손으로 제연연의 젖가슴을 움켜 쥐었다.

뭉―― 클!

적연흥은 아찔해지는 젖가슴의 감촉을 음미하며 젖가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바르르……

죽은 듯 늘어진 제연연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적연흥은 서서히 제연연의 가슴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또르르……

발갛게 익은 유두가 굴렀다.

그 향기로움, 그 따스함……

“누님…… 당신을 갖겠습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의 가슴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의 손과 입술에 의해 제연연의 젖무덤이 끝없이 파랑을 일으켰다.

적연흥의 다른 한 손은 서서히 제연연의 몸을 탐색해 내려갔다.

바람을 잔뜩 머금은 듯 팽팽히 부푼 복부,

끊어질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잘룩한 세요(細腰).

그와 반대로, 천하의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드넓게 벌어진 둔부.

오목한 배꼽 밑으로 부드럽게 부푼 하복부의 융기……

그리고……

“으음……”

적연흥의 전신이 뇌전에 맞은 듯이 경련을 일으켰다.

왜?

그의 손이 무엇을 보았기에……

적연흥은 제연연의 젖무덤에서 얼굴을 떼고 일어섰다.

이미, 제연연의 하의는 둔부까지 벗겨져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은 둔부의 전면으로 불룩이 솟은 둔덕이 있다.

긴 능선이 합쳐지는 곳에 자리한 둔덕은 분홍빛 천으로 살짝 가려져 있었다.

“으음……”

적연흥은 흥분과 두려움으로 떨며 제연연의 그곳을 쳐다보았다.

이어, 그의 떨리는 손이 제연연의 하의를 벗겨 내렸다.

천하명장(天下名匠)이라 한들 어찌 이같은 조각품을 만들랴?

미끈하고 알맞게 살이 오른 두 개의 백옥기둥이 살짝 벌어진 채 적연흥의 앞으로 드러난 것이다.

“으으으……”

적연흥의 눈에서 핏발이 돌았다.

휘릭……

그는 찢다시피 자신의 의복을 벗어 던졌다.

삽시에 적연흥은 태어 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벌거벗은 그의 나신은 마치 화신(火神)의 그것같이 보였다.

전신이 시뻘건 화기(火氣)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흐……”

강렬한 욕망을 실은 눈길로 반듯이 누운 제연연을 바라보던 적연흥은 제연연의 하의로 손을 가져갔다.

부―― 욱!

얇은 천이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적연흥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비궁(秘宮)!

적연흥은 화석같이 굳어졌다.

난생처럼 발견한 여인의 비소는 적연흥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어느 순간,

“으……누…… 누님! 용서……”

적연흥이 야수같이 부르짖으며 덮쳐 들었다.

파―― 악!

파과(破瓜).

적연흥은…… 제연연의 것이 되었다.

아니, 제연연이 적연흥의 것이 된 것이다.

천지합일(天地合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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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견수; [원래는 서안으로 가는 도중 마차 채로 절벽에서 떨어트릴 생각이었다만...] 사악하게 웃고

움찔! 상념에서 깨어나는 청풍.

귀견수; [오늘 밤 네놈이 낌새를 눈치 채고 도주하려해서 부득불 내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칼로 겨누며

청풍; (위소저의 비파소리를 찾아간 것을 내가 도주한 것으로 착각하고 마각을 드러냈구나.) 노려보고

귀견수; [제법 그럴 듯한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만...] [네놈 실력으로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귀견수; [괜한 고통 자초하지 말고 목을 늘여라. 그럼 단칼에 끝내줄 테니...] 칼을 흔들면서 다가오고

청풍; [과연 그렇게 될지 봅시다.] 냉소하며 두 손으로 용봉철적을 들어 입에 댄다

귀견수; [뭐하려는 거냐?] 피식

귀견수; [스스로를 위해 위령곡(慰靈曲)이라도 불려는 것이냐?] 웃는데

청풍; [들어보면 알 거요.] 삘릴리... 피리를 불고

귀견수;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다만...] + [!] 말하다가 경악하고

화악! 갑자기 사방이 새까매지면서 귀견수의 모습만 남는다. 그리고 당분간 이 상태가 지속된다.

귀견수; (갑... 갑자기 사방이 칠흑같이 변했다! 술법을 쓴 건가?) 경악하며 주변 두리번. 그때

삘릴리! 다시 들리는 피리소리

귀견수; (아니다! 음공에 당한 것이다!) 양손으로 귀를 막고. 한손에는 칼을 든 채

귀견수; (청풍이놈이 부는 저 피리소리에는 시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힘이 깃들어있다.) 삘릴리! 피리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으며 두리번거리며 이를 갈고

귀견수; (시력을 되찾으려면 저 피리소리를 멈춰야한다.) 다시 양손을 귀에서 떼고. 삘릴리 그 배경으로 피리소리가 들리고

귀견수; (하지만 피리소리가 사방에서 들려 방향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이를 갈며 두리번거리고.

귀견수; (심장소리... 심장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야만 한다.) 귀를 기울이고. 삘릴리 피리소리가 이어지고

두근! 두근! 귀견수의 귀에 들리는 심장소리. 그러자

귀견수; (찾았다!) + [여기냐?] 펑! 칼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한쪽을 향해 강력한 장풍을 날리고. 손바닥에서 다시 원형의 충격파가 튀어나간다.

쾅!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귀견수; (해치운 건가?) 장풍을 날린 자세로 기다리는 귀견수. 오른손의 칼도 휘두를 자세. 그때

삘릴리! 다시 들리는 피리소리.

귀견수; (실패했다!) (상대의 힘을 빌어서 몸을 날리는 요상한 무공으로 피했을 것이다.) 이를 부득 갈고. 그때

두근! 두근! 다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고

귀견수; (이번에는 이쪽!)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홱 고개 돌리고. 이어

귀견수; [같은 수작에 또 당할 것 같으냐?] 확! 발을 들었다가

귀견수; [크아!] 쾅! 발로 강력하게 바닥을 구른다. 그러자

펑! 귀견수의 구른 발 앞으로 지면이 부채꼴로 확 터져나간다. 이제 검은 화면이 아니라 원래 강변 절벽 위 화면인데 절벽 쪽으로 힘이 터져나갔다.

귀견수; (시력이 돌아왔다!) 눈 부릅뜰 때

휘익! 절벽 쪽으로 무언가 날아간다. 길쭉한 물체인데 옷자락이 펄럭인다. 귀견수는 아직 시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그게 뭔지 정확히 안보이고 뿌옇게만 보인다.

귀견수; [놈!] 부악! 칼을 길게 휘두르고. 칼에서 긴 섬광이 내뻗치고

서걱! 절벽 밖으로 날아가던 그 물체는 칼에서 내뻗친 섬광에 그어지고. 하지만

휘익!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그 물체

귀견수; (베었나?) 시력이 온전하지 않아서 비틀거리며 절벽으로 가고. 직후

첨벙! 절벽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절벽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귀견수.

30미터쯤 아래쪽에 거친 강물이 흘러내려가고 있다.

귀견수; (청풍이놈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내 칼에 베인 후 강물에 빠졌다.) 강물을 내려다보고

귀견수; (만에 하나 청풍이 놈이 살아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강변을 따라 절벽 위로 달려간다.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귀견수; (강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서 청풍이놈의 시체를 찾아야만 한다.)

<끝까지 귀찮게 하는 놈이로구나.> 멀어지는 귀견수. 헌데

 

귀견수가 발로 바닥을 밟아 터트린 장소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의 갈대숲. 겉옷을 벗어버려 반팔 차림이 된 청풍이 갈대 사이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 손에는 피리를 들고 있는데 입과 코로 피가 줄줄 흐르고 있고 목에서 상당히 깊은 상처가 나있다. 주변에는 쓰러진 고사목도 몇 개 있다.

청풍; (위기일발...) 하늘 보며 생각하고

이어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

 

한손으로 피리를 불면서 한손으로 옷을 벗는 자신의 모습. 그 근처에 굵은 고사목 토막이 하나 있다. 길이는 1미터쯤인데 굵다.

눈 뜬 장님이 된 채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귀견수.

벗은 겉옷을 나무토막에 대충 걸치는 청풍. 한손으로는 피리를 입에 물고 불면서. 시선은 귀견수에게 향한 채. 이어

휙! 한손으로 나무토막을 들고 절벽 쪽으로 몸을 날리는 청풍

알아차리는 눈 뜬 장님 귀견수

[크아!] 고함지르며 강변쪽을 향해 발을 강하게 구르는 귀견수

휙! 나무토막을 절벽 쪽으로 던지며 자신은 뒤로 날아가는 청풍. 이제 피리도 입에서 떼었고

절벽 밖으로 날아가는 나무토막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귀견수

털썩! 그 사이에 청풍은 풀숲으로 등부터 떨어지고

회상 끝

 

청풍; (다행히 위기는 모면했다.) 하늘 보며 생각

청풍; (황금전장 경호무사들의 이인자답게 귀견수의 무공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청풍; (위소저를 경호하던 두 여자에 비해도 그리 하수가 아닐 것이다.) 색목쌍교를 떠올리고

청풍; (당연히 끝까지 싸웠다면 내가 귀견수 손에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났겠지.)

청풍; (다행히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긴 했다만...)

청풍; (귀견수를 사주한 게 이세창일까 옥령이 어머니일까?) 이세창과 마은혜를 떠올리고.

청풍; (그게 누구든 옥령이와 내가 맺어지려면 숱한 역경을 넘어야만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찡그리고

청풍; (과연 우리 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반달이 떠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쉬고

 

#66>

<-화산(華山)> 낮. 험준한 산

<-창천애(蒼天崖)>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 위의 절벽. #1>에서 위극겸이 이복동생 위극존에게 암살당한 그 장소인데 두 명의 인물이 무언가 하고 있다. 한명은 위진천. 다른 한명은 추괴하고 음침한 인상의 노인. <무쌍일지>에 나온 독심마타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이름은 독심마타.

독심마타는 왼손에는 손잡이가 들린 통을 들었고 오른손에 든 붓으로 비석같이 생긴 바위에 무언가를 바르는 중이다. 물론 그 바위는 위극겸이 살펴보던 그 비석이다.

바위 크로즈 업. 평평한 앞면이 갑골문자 같은 문양들로 덮여있다. 이끼도 덮여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글자로 보이지 않는다.

독심마타; [이 바위에 바르고 있는 건 강력한 산공독(散功毒)일세.] 슥! 슥! 붓으로 바위에 투명한 액체를 바르면서 말하고

독심마타; [일단 중독되면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산송장이 된다고 봐야지.]

독심마타; [소회주는 곧 병서시란 년을 마음껏 농락할 수 있게 될 게야.] 붓칠하며 음험하게 웃고

위진천; [천하 독문들의 종가 독성부(毒聖府)의 이인자이신 독심마타(毒心魔駝) 서(西)노사의 말씀이니 믿어야하겠지만...] 경계하고

위진천; [그렇게 강력한 산공독을 방호장비도 없이 다뤄도 되는 거요?] 독심마타가 붓칠하는 걸 경계하는 표정으로 보며

독심마타; [당연히 괜잖지.] 철퍽! 웃으며 붓을 통에 담그고

독심마타; [이 독은 적당한 온도가 가해져야만 활성화된다네.] 붓을 다시 꺼내고. 붓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위진천; [적당한 온도라면...?]

독심마타; [인간의 체온이야.] 슥 슥! 붓으로 비석 같은 바위에 다시 투명한 액체를 칠하며 말하고

위진천; [허어!] 놀라고

독심마타; [뿐만 아니라 이 산공독은 강력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네.]

독심마타; [일단 누군가 맨손으로 이 바위를 만지면 모든 산공독이 폭발적으로 기화하여 일대를 휩쓸어버리는 것이지.] 히죽 웃고

위진천;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를 확인하려고 손을 대면 끝장이겠소.]

독심마타; [병서시란 년이 만독불침(萬毒不侵)이 아닌 이상 이 함정에서 무사하진 못할 테니 기대하게나.] 음험하게 웃고. 그때

[소회주님!] 휘익! 뒤로 날아 내리는 혈부용

위진천; [왔느냐?] 돌아보고. 독심마타도 힐끔

혈부용; [위상영이 화산으로 접어들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

위진천; [그년이 제때 맞춰서 도착했군.] 히죽

위진천; [호천맹의 다른 인간들은 안보이고?]

혈부용; [수신호위인 색목쌍교만 대동한 것이 확인되었사옵니다.]

위진천; [집안일이라 호천맹까지 끌어 들이고 싶진 않겠지.] 끄덕이고

위진천;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곳 창천애로 통하는 모든 길목에 혈세사패를 배치해라.] [괜한 방해가 끼어들지 않도록!]

혈부용;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허리 숙이고

휘익! 다시 날아 내려가는 혈부용

독심마타; [소회주의 첩인가?] 힐끔 혈부용의 뒷모습 보고

위진천; [첩은 아니고... 대대로 우리 집안에 봉사해온 종의 딸년이오.]

독심마타; [종의 딸년도 종...] [헌데 종년치고는 기막힌 종년을 두셨구만.] 입맛을 쩝쩝 다시고

위진천; [구미가 당기시면 혈부용 저년의 꿀단지를 한번 맛보게 해드리겠소.] 히죽 웃으며 수작 부리고

독심마타; [그거야 불감청이언정 고소언이네만...] [나같이 추하고 늙은 놈을 소회주의 종년이 받아줄지 모르겠군.] 입맛 다시고

위진천; [서노사의 자랑인 독을 쓰면 되지 않겠소?]

독심마타; [허어! 역시 소회주는 통도 참 크구만. 종년을 내놓는 것 뿐 아니라 독을 쓰는 것까지 권장하다니...] 눈 희번덕

위진천; [처녀도 아닌 계집 하나 제공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소?]

위진천; [오늘 일만 계획대로 진행되면 혈부용을 안게 해드리리다.] 사악하게 웃는 위진천의 얼굴 크로즈 업

 

#67>

화산의 어느 골짜기. 산길인데 오르막이다. 사람들이 제법 오고 간다. 대부분 봇짐을 진 장사치들이다.

그 사람들 틈에 끼어서 걸어가는 청풍. 겉옷을 새로 사서 입었고 허리춤에는 용봉철적을 끼우고 있다. 헌데 목을 붕대로 감고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본다.

청풍; (나도 모르게 발길이 이곳 화산으로 향했다.) 쓴웃음 지으며 걸어가고

그런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위상영의 말. #63>의 장면

 

위상영; [저희는 화산으로 간답니다.] 열린 창문을 통해 내다보며 말하고,

 

청풍; (위소저가 떠나면서 남긴 그 말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화산으로 향하게 된 것인데...)

청풍; (하긴 딱히 달리 갈 곳도 없는 몸이긴 하다.) 한숨

청풍; (이세창의 독단적인 결정인지, 아니면 마님이나 장주의 뜻인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황금전장이 날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청풍; (그리고 황금전장의 이목은 중원 도처에 깔려있다.)

청풍; (황금전장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분가 외진 곳으로만 다녀야한다.)

청풍; (어제 머물렀던 화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화산으로 온 건 올바른 선택이었다.)

청풍; (어떻게든 살아서 북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풍; (죽을 때 죽더라도 옥령이를 만나봐야 하니...) 생각하는데

앞쪽 고갯마루 쪽에서 사람들이 허둥대며 달려온다. 상인들로 보이고. 그러자

고갯마루 쪽으로 가던 사람들이 멈춰서고

[으으!] [히익!] 겁에 질려 달려오는 사내들

[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오?] [산대왕(山大王;산적)들이라도 나타난 거요?] 멈춰 선 사람들이 묻자

[다... 다른 길로 돌아가시오.] [고갯마루에 지옥갱의 악귀들이 진을 치고 있소.] [객기 부렸다가는 목숨 부지하기도 어렵소!] 겁에 질려 외치면서 아래로 달려 내려가는 사내들. 그러자

[지... 지옥갱!] [지옥갱의 악귀들이 진치고 있다고?] [돌... 돌아가세!] 멈춰 섰던 사람들 겁에 질려 왔던 길로 달려 내려간다. 청풍만 남아서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고

[젊은이! 그 길로 가면 안되네.] [빨리 내려오게나.] 사람들이 달려내려 가며 청풍에게 외치지만. 청풍은 멈춰 서서 고갯길 위를 보는 청풍

청풍; (지옥갱...) (삼 년전쯤부터 강호에 나타나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혈세사패중 한 세력...) 다시 앞으로 걸음 옮기고

청풍; (지옥갱의 인간들은 일단 싸움이 붙으면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나찰같이 변한다던가?)

청풍; (하지만 다른 무림인들처럼 양민들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는데...) 눈 번뜩이고

청풍; (지옥갱이 화산에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위상영을 떠올리는 청풍.

청풍; (지옥갱이 길을 막고 있는 게 어쩌면 위소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청풍;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올라가 봐야한다.)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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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사람을 찾습니다. (1)

 

 

 

석두공은 속으로 생각했다.

(잔혼각은 처음부터 그들 삼인을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수법을 사용했을 리가 없다. 왜 그들은 삼노장을 복속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아예 없애버리려 한 것일까? 혹시 그 삼노장에 와있다는 귀빈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석두공의 머리속으로 날아내리던 장아가씨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연검을 쓰는 품이 일품이었지.)

석두공은 그녀의 멋진 자태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아무도 안계셔요? 소녀 장지연이 찾아왔습니다.]

초옥의 밖에서 어떤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헉!)

석두공은 자신의 알몸을 보고 당황하여 허둥지둥했다.

급한 김에 그는 벗어던졌던 허물을 뒤집어쓰고 말했다.

[누구시오? 누구를 찾소?]

[여기에 흰옷을 입고 어깨가 넓은 서른 정도의 아저씨가 살고 계시지 않아요?]

석두공은 폭풍무존을 가리키는가 보다 생각하고 말했다.

[여기에 사시긴 하지만 지금은 계시지 않소. 잠시 기다리거나 나중에 오도록 하시오.]

[말하는 분은 누구시죠?]

[난 그분의 제자요.]

석두공은 그제서야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생각했던 그 소녀였던 것이다.

장지연이 얼기설기 만들어진 문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될까요?]

꽝!

석두공은 문을 안에서 꽉잡아당겨 열리지 않게 하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기....기다리려면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절대 안으로 들어오지 마시오.]

[이봐요! 난 당신 사부님께서 초대한 손님이에요. 그런데 나를 이렇게 대접할 수 있어요?]

장지연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석두공은 난감해하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오. 하지만 이 안으로는 절대 들어올 수 없소.]

[흥! 당신 사부님의 제자라면 행동도 그분을 닮아 의젓해야 할게 아니예요? 어째 졸장부같은 짓을 하고 있는거죠?]

화가 난 장지연은 물러서지 않고 소리쳤다.

석두공이 간청하듯이 말했다.

[사정이 있어 그러니 제발 밖에서 기다려 주시오. 사부님께선 곧 돌아오실 거요.]

[안돼요. 난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보아야겠어요.]

장지연은 약이 오를 데로 올랐다.

더구나 그녀는 호기심 많은 여자가 아닌가?

석두공은 애초부터 그녀의 호기심을 유발시킬만한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펑!

얼기설기 나무로 엮은 문이 그녀의 일장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후다닥!

석두공은 다른쪽 벽을 뚫고 뛰어나갔다.

[...?]

장지연이 방으로 들어섰을때 그녀는 석두공의 뒷모습만을 얼핏보았다.

하지만,

[흥! 어딜 도망치려고?]

그녀는 콧웃음을 치면서 석두공이 나간 구멍으로 따라갔다.

그러나 석두공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장지연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초옥을 한바퀴 돌았다.

하지만 석두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붕위로 훌쩍 뛰어올라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석두공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로 사라졌지? 금방 뒤쫓아 나왔는데... ]

그때였다.

[왜 지붕에 올라가 있는가?]

갑자기 밑에서 중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장지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뛰어내렸다.

폭풍무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언제 돌아오셨어요?]

[지금, 들어오너라.]

그는 깨어진 문을 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성미가 보기보단 급하군.]

[저 제자분이... ]

장지연은 얼버무렸다.

폭풍무존은 방에 들어서서 다른 쪽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을 보고 영 기분이 상한 듯했다.

어쨌거나 그 초옥의 그가 만든 자기 집인데 만들어진지 하루만에 이처럼 부서졌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장지연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폭풍무존을 보았다.

하나 폭풍무존은 중얼거리며 바닥에 앉았다.

[네놈은 내가 만든 건 뭐든지 부수는구나. 전에는 천신폭풍탑을 부수더니...]

[...?]

장지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선가 웅웅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부님! 그게 아닙니다. 사실은 그 장소저가... ]

장지연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며 고함쳤다.

[내가 언제 그랬어요? 저건 분명히 당신이 그랬는데.]

[당신이 갑자기 들어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랬겠소?]

석두공은 마주 고함쳤다.

그 바람에 입에서 침이 튀었다.

[응?]

장지연은 자신의 얼굴에 떨어진 침방울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순간 석두공과 장지연의 눈이 마주쳤다.

두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앗!]

원래 석두공은 밖으로 나갔다가 재빨리 돌아서 문으로 들어와 천정에 매다린 것이었다.

석두공은 장지연이 자신을 발견하자 비명을 지르며 폭풍무존의 뒤로 숨었다.

몸에 걸쳤던 숯덩어리 같은 허물이 훌렁 날아가버렸다.

장지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왜 석두공이 그처럼 숨어있으려고 했는지 알았던 것이다.

(알몸이었어!)

폭풍무존은 가져왔던 옷을 뒤에있는 석두공에게 건네주었다.

[네놈의 알몸도 벌써 몇번이나 보는구나.]

그가 말하는 의도는 분명했다.

그는 마중천에서 자봉과 정사를 벌이는 석두공을 지켜보기도 했던 것이다.

 

폭풍무존이 말했다.

[이것은 지금은 사라진 어떤 문파의 비전절기(秘傳絶技) 중의 하나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마 이것보다 뛰어난 절기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음성에는 짙은 향수(鄕愁)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연을 알고 있는 석두공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검을 다오.]

장지연이 폭풍무존에게 연검을 풀어서 주었다.

그녀의 연검은 여느 연검과는 달리 길이가 무려 사장이나 되었다.

[옛날에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사람도 이처럼 긴 연검을 좋아했었지. 지금 내가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도 실상 그가 만든 검법인데 내가 약간 고친 것이야.]

피리리릭!

폭풍무존이 말하고 있는 사이에 검은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휘익!

검의 끝이 돌아가며 폭풍무존의 뒤쪽으로 찔러갔다.

그러나 폭풍무존은 여전히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검을 잡고만 있는 중이었다.

뜻에 의해서 검을 움직이는 진정한 이기어검술(以氣馭劒術)이었다.

파파팟!

검은 살아있는 마음대로 움직였다. 검광이 사방으로 눈부시게 뻗어갔다.

돌연,

[물러서거라.]

폭풍무존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석두공과 장지연이 십여장 밖으로 물러났다.

칙! 칙!

갑자기 연검의 끝에서 백색강기가 쏘아져나갔다.

[검강이다! ]

장지연이 깜짝놀라 소리치며 더욱 물러섰다.

파파파팍!

연검의 끝이 가리킨 곳마다 바위들이 예리하게 베어져나갔다.

폭풍무존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검을 든 손을 들어올렸다.

휘리리릭!

연검이 그의 손목에 뱀처럼 휘감겼다.

[기로써 검을 움직이면서도 검강을 동시에 펼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검법의 뛰어난 점이지.]

폭풍무존은 연검을 장지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장지연이 물었다.

[원리는 그렇다 하고 초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요?]

[초식?]

폭풍무존이 오히려 반문했다.

[초식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냥 편한 대로 펼치면 되는 거지.]

[...?]

장지연은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무공이 경지에 달하면 초식이 필요없다는 말을 그녀도 들은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진짜로 초식이 없다면 마구잡이 무술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어쨌거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초식따윈 없다고 하는 데야 도리가 없다.

[그럼 구결을 가르쳐 주세요.]

[내가 다 보여주었는데 구결은 또 무슨 구결?]

폭풍무존은 그녀의 질문에 속이 터지는지 버럭 화를 냈다.

장지연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폭풍무존은 죽간을 들고 강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어서 집이나 고쳐놓고 가버려라.]

 

장지연은 한쪽에 서있는 석두공에게 소리쳤다.

[이봐요! 당신 사부님은 항상 저래요? 당신이 이런 식으로 무공을 배웠어요? 뭐 이래요? 이게 무슨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그녀의 한꺼번에 퍼붓는 소리에 석두공은 귀를 막았다.

그리고 말했다.

[난 이렇게도 배우지 못했소. 이게 뭐 어떻다고 그러시오?]

장지연은 기가 막혔다.

스승이나 제자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두공은 숲으로 나무를 베러 들어가고 있었다.

집을 고쳐놓으라 했으니 고쳐야 할게 아닌가?

장지연은 놀림을 당한 것같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석두공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이봐요. 숯덩어리. 그럼 당신은 조금 전에 그 검법을 펼칠 수 있단 말이에요?]

[배웠는데 왜 못하겠소?]

[얼마나 연습해서 펼칠 수 있게 되었어요?]

장지연은 그에게 다가서며 붙임성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석두공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한 번도 연습하지 않았고 펼쳐보지도 않았소.]

[뭐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펼칠 수 있단 말이에요.]

장지연이 소리쳤다.

석두공도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게 그것 아니오?]

쉬익! 쉭!

순간 그의 손에 들리웠던 나뭇가지가 활처럼 휘어졌다.

쉭!쉬쉭!

나뭇가지지만 폭풍무존이 펼쳤던 그 검법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장지연은 깜짝 놀라 물러서며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언제 배운 거죠?]

휙!

석두공은 나뭇가지를 던져버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금 전에 같이 배웠잖소?]

장지연은 한쪽에 가만히 서서 입을 꼭 다물었다.

(이들 사제는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나도 무엇이든 쉽게 배워서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이사람들 앞에서는 입도 떼지 못하겠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들께서 말씀하시길, 절세적인 총명을 타고난 사람은 다른 사람이 펼치는 무공을 대충 보기만 해도 그 알맹이까지 꿰뚫고 헛점까지 보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당금 무림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직 둘 뿐이었는데, 한분은 돌아가셨으며 한 사람은 실종되었다고 했다. 한데, 이곳에서 또 그런 사람들이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구나.)

장지연은 수도로 나무들을 베어서 들고가는 석두공의 뒷모습을 가슴 깊이 새겼다.

 

석두공은 자신이 부순 벽을 다시 떼우고 장지연이 부순 문도 새로 달았다.

그리고 어제 밤에 만들지 않았던 침상과 탁자, 그리고 의자도 만들어 방안에 갖다 놓았다.

초옥은 오직 네 개의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린 것일 뿐이다.

부엌도 따로 없고 측간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폭풍무존은 집을 고쳐놓고 떠나라고 했다.

물론 그 말은 장지연에게 하는 것같았지만 석두공은 자신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입장이고 폭풍무존은 세상을 돌아다닐 낙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함께 가는 것도 함께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떠나기 전에 석두공은 조금이라도 폭풍무존이 생활하기 편하게 해놓고 가려는 것이었다.

그가 삼노장을 찾아갔던 것도 그러한 일념에서였다.

삼노장은 이 일대에서 가장 텃세가 강한 장원이다.

삼노장이 폭풍무존 근처에서 성가시게 굴지 않는다면 폭풍무존이 조용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푹!푹!푹!

석두공은 측간과 부엌을 만든 후에 집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지연이 그를 도와 울타리로 쓸 나무들을 날라다 주었다.

그녀의 태도는 고분고분했다.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태양이 붉게 변했다. 벌써 저녁때가 된 것이다.

폭풍무존이 죽간(竹竿)을 들고 초옥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가는 소나무가지가 쥐어져 있고 그 소나무가지에는 그가 낚아올린 네 마리의 물고기가 꿰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크기가 사람의 팔뚝만하고 굵기는 사람의 허벅지만한 잉어들이었다.

[아직도 안 갔느냐?]

그가 잉어들을 뒤로 감추며 말했다.

[...?]

장지연은 그의 태도에 어리둥절했고 석두공은 이마를 치면서 말했다.

[사부님! 잉어들을 낚은 게 아니라 건져올리셨군요.]

낚은 것과 건져 올린 것, 그 차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철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폭풍무존은 어색하게 웃으며 들어갔다.

장지연이 잉어들을 받아들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건져 올린 것과 낚아 올린 것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폭풍무존은 한낮이 다 가도록 고기를 낚을 수가 없자 공력으로 잉어들을 건져 올려 가져온 것이었다.

물고기들의 입에는 바늘자국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잉어를 불에 그슬러서 밥 대신 먹고 났을 때 십여 명의 사람들이 초옥으로 찾아왔다.

삼노장의 삼노와 그들을 가마에 싣고 온 하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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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萬年火龍

 

 

백의염왕은 주춤 하다가 이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퍼――억!

피가 튀었다.

털퍽!

백의염왕의 왼팔이 피를 튕기며 지면에 떨어졌다.

‘으음…… 역시 할아버지의 명성이 얼마나 되는지 알만하다. 자기 스스로 자기 팔을 끊다니…….’

적연흥은 내심 경악했다.

모산독군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로 알려져 있는지 재삼 깨달은 것이다.

백의염왕은 감히 불평 한 마디 못하고 묵묵히 지혈을 하였다.

“가자!”

백의염왕은 이어 끊어진 자기 팔을 접어 들고 몸을 날려갔다.

그러자 약삭빠르게 생긴 중년인과 백의몽면인들은 어마 뜨거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잠깐 멈춰랏!”

모산독군이 돌연 냉갈을 터뜨렸다.

삼사십 장 밖으로 달려가던 백의염왕의 몸이 일순 차갑게 식었다.

‘저…… 저 노독물이 혹시 생각을 바꾼 것이 아닐까?’

백의염왕은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러 내림을 느끼며 돌아섰다.

그리고는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노선배님, 무슨 분부 계시온지요?”

모산독군은 싸늘히 말했다.

“다른 자들은 가도 좋지만 독심제갈이란 애송이는 남거라.”

백의염왕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와 함께 중인들의 시선이 약삭빠르게 생긴 중년인에게로 모아졌다.

“으으…….”

그자는 사색이 되어 주춤주춤 물러섰다.

“후…… 후배는 잘못한 일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포의 기색을 띄웠다.

그러나 모산독군의 안색은 점점 더 싸늘하게 변해갈 뿐이다.

‘여…… 여기서 개죽음을 할 수야 없다. 내게는 야심이 있거늘…… 저 노독물과의 거리가 이십 장이 넘으니…… 잘하면 달아날 수도…….’

그자는 결심하자마자 전공력을 모았다.

파――얏!

“이―― 얏!”

그자의 신형이 번뜩 허공으로 떠올라 단번에 칠팔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

‘설마 저 정도 거리면…….’

중인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리석은 놈, 살려 줄 수도 있었으나, 네놈이 감히 노부의 앞에서 달아나려 하다니…….”

냉갈과 함께 모산독군의 우수가 허공으로 들려졌다.

그리고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하지만,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크――아―― 악!”

파파파팟――!

삼십 장 밖으로 달아나던 독심제갈이 처절한 비명을 터뜨린 것이다.

그와 함께 그자의 몸은 삽시에 혈수(血水)로 녹아 내렸다.

실로 믿지 못할 일이었다.

“……!”

“……!”

장내는 물 끼얹은 듯이 조용해 졌다.

‘으…… 무섭다. 삼십 장을 격하고도 살상할 수 있다니…….’

휘―― 익――

“으아아……!”

백의염왕이 몸을 날리자 염왕보의 졸개들도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났다.

군웅들 중에서도 마음 약한 자들은 슬금슬금 사라졌다.

“핫하…… 형님 대단하십니다.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까지 완성하셨군요.”

음산잔마가 크게 웃자 모산독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은 독문(毒門)에 내려오는 전설적인 독공이었다.

살의만 품으면 백 리 밖의 적도 살해할 수 있다고 전한다.

유사이래 독문의 조종격인 만독노조(萬毒老祖)만이 이루었다는 경지로서 그 후에는 누구도 완성하지 못했었다.

그 경지를 모산독군이 이룬 것이다.

문득, 적연흥이 입을 열었다.

“이곳이 용연곡의 입구입니다. 소자는 이만 신무애 쪽으로 가보겠사옵니다.”

모산독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무애는 이곳에서 머냐?”

“그리 멀지는 않사옵니다. 이곳에서 일마장 정도 가면 되옵니다.”

“흐음……그래?”

모산독군은 고개를 돌려 중인들을 바라보았다.

중인들은 모산독군의 시선이 자기들에게 닿자 움찔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후배…… 인사드리옵니다.”

그들 중 일인이 문득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 인물은 특이한 복장을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삼십 전후의 여인으로서 궁장같으나 자세히 보면 궁장(宮裝)이 아닌 특이한 자의(紫衣)를 걸치고 있었다.

‘미인이다.’

적연흥이 여인에게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무척이나 서글서글한 눈매와 포근한 인상의 여인이다.

이미 삼십 정도 되어 뵈는 여인이 어전히 처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여인의 모습을 본 모산독군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은하궁(銀河宮)의 제자냐?”

여인은 공손히 대답했다.

“네, 소녀는 은하선자(銀河仙子) 제연연(齊淵燕)이라 하옵니다.”

“흠…… 은하여제(銀河女帝) 제여협은 너와 어떤 사이냐?”

 

-은하여제(銀河女帝).

 

그녀는 일대여걸이었다.

무명의 은하궁이라는 문파를 무림제일염파(武林第一艶派)로 만들었다.

은하궁이란 여인들만의 문파로서 기이하게도 궁도들이 모두 제씨(齊氏) 성을 갖고 있다.

은하여제는 이미 구십여 년 전에 타계했으며 당대 은하궁주는 은하여제의 증손녀였다.

“그분께서는 소녀의 증조모 되시옵니다.”

“흠 그렇게 되겠군. 제여협께서 타계하신지 이미 백여 년이 다되어 가니…….”

모산독군과 은하여제는 동시대의 인물이다.

“네게 이 아이를 부탁하고 싶구나.”

모산독군이 적연흥을 가리키자 은하선자의 봉목이 이채를 띄었다.

‘대단한 기재다. 재질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일대종사의 기개가 서려 있으니……’

언뜻 제연연의 눈에 야릇한 빛이 지나갔다.

모산독군과 음산잔마 같은 인물들이 그걸 놓칠 리 없다.

그러나 두 노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 못본 척 했다.

“해는 이미 기울어지고 이 아이는 신무애로 한 가지 약초를 찾으러 가니 아무래도 안심이 아니 되는구나.”

제연연이 뇌살적이라 할만큼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노선배님께선 심려놓으시옵소서. 소녀가 이분 공자를 모시겠습니다.”

“허허…… 그래주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제연연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소녀, 이분 공자님 모시고 가겠습니다.”

적연흥도 모산독군과 음산잔마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소자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두분 할아버지께서도 만년화룡을 상대하심에 조심하시기 비옵니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웃고 음산잔마는 헤벌쭉,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하하…… 어서 가보아라. 후일 기회 있으면 음산(陰山) 천잔곡(天殘谷)으로 놀러오거라.”

“네……그럼…….”

적연흥은 두 노인과 작별하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공자님…… 소첩이 도와드릴까요?”

제연연이 바짝 다가섰다.

진한 분내음이 확 풍겼고 적연흥으로서는 생전처음 느끼는 성숙한 여인의 살내음이 물씬 풍겼다.

거기다 처음 보는 자기에게 소첩운운하하며 다가들자 적연흥은 한바탕 가슴이 진탕 되었다.

적연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외다. 소생 혼자서도 달릴 수 있소이다.”

말을 함과 동시에 적연흥의 몸이 전면을 향해 쏘아갔다.

휘르르……

그 즉시 은하선자 제연연의 교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러는 그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적연흥은 길도 아닌 험지를 마치 질주하는 맹호와 같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대…… 대단한 주력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면서 저 정도로 달릴 수 있다니…….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제연연의 작은 가슴에서 거센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삽시에 두 사람이 사라지자 음산잔마가 걱정스러운 빛을 띄었다.

“노형님! 자칫하면 연흥이가 은하궁(銀河宮)의 씨받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어린 계집의 눈치를 보니……”

모산독군이 미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은 일 아닌가? 은하궁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쓸만한 아이들이며 저 아이의 혈통으로 보면 훌륭한 자손들이 나올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지금 두 노인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

씨받이라니…….

음산잔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적가의 자손이 못되고 제가의……”

모산독군이 손을 저었다.

“허허, 그만 두어라. 너의 속셈 모를 줄 아느냐? 훌륭한 손주 사윗감 놓칠까 보아 안달하는 게지?”

음산잔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적게 웃었다.

“인연이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조바심 낼 것도 없느니라. 자 용연곡으로 들어가자. 노형의 목적은 만년화룡을 제거하는 것이니…… 내단을 얻으면 네게 양보하마.”

“고맙습니다, 형님……”

두 노기인은 용연곡으로 들어섰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군웅들도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너무나 아름답다. 대면하기 두려울 정도로……’

적연흥의 가슴이 난생 처음으로 크게 뛰고 있었다.

바람결에 긴 머리칼을 펄럭이며 날아가는 제연연의 모습!

그것은 그대로 선녀(仙女) 바로 그것이었다.

적연흥은 이제껏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세상에 존재하리라 믿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어머니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영원히 최고지상(最高至上)의 여인임으로…….

제연연의 일보 일보의 옥보와 자그마한 움직임조차 미와 조화의 극치였다.

물론, 제연연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적연흥에게 잘 보이려 하는 때문도 있으나 사실 그녀는 천하에 내놓아도 적수가 드물 최고의 미인이었다.

휘르르……

양인은 어느덧 병풍을 세워 놓은 듯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닿았다.

절벽의 안쪽은 수직으로 깎아 세운 끝이 없는 단애였다.

단애의 밑으로 부터는 극히 음랭한 한기를 실은 운무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 한기가 얼마나 강한지 무공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제연연이건만 교구를 바르르 떨어야 했다.

“이곳이 북안탕 이대절지의 다른 한 곳인 신무애(神霧崖)입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을 향하여 말했다.

파파팟!

양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작열하며 빛을 발했다.

거의 동시에, 양인은 시선을 거두었다.

적연흥은 눈길을 절벽의 외측 경사면을 더듬었다.

어머니의 고질을 치료하기 위한 담석화(曇石花)를 찾는 것이다.

“저…… 공자의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문득, 제연연이 절벽 위에 선채 적연흥에게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집요하게 적연흥의 등쪽을 따르고 있었다.

“적연흥이라 하외다.”

적연흥이 발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소첩의 천명은 제연연이라 하옵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린 적연흥은 씩 웃어보였다.

“아름다운 이름이십니다.”

제연연의 두 볼이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감사하옵니다. 하온데 찾고 계시는 것이 무슨 약초이시온지요?”

적연흥은 담석화와 유사한 야생화를 살피며 말했다.

“담석화(曇石花)라 하는 약초외다.”

“담석화라면 기(氣)가 허해지고 심약(心弱)한 체질을 바꾸는 약초 아니옵니까?”

적연흥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제연연이 의도에도 조예가있음을 깨달은 때문이리라!

“맛소이다. 소저께서 담석화를 알고 계신 것을 보니 소저께서도 의도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이 보이외다.”

적연흥의 말을 들은 제연연은 살포시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조예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박한 것이라 부끄럽사옵니다. 하온데 담석화를 어디에 쓰시려고……?”

적연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해 주어도 괜찮겠지……’

적연흥은 천천히 자기의 주변 이야기를 했다.

본시는 그다지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성질은 아니었으나 제연연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제연연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의 눈길은 따스하게 빛나며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소생이 괜한 신변잡기를 길게 늘어 놓아 소저의 심기만 어지럽힌 것 같소이다.”

적연흥의 어투는 그대로 어른의 어투였다.

‘누가 이 소년을 십육 세의 소년이라고 볼 것인가? 저 태도하며 기개가 천인(天人)의 그것과 같으니…… 연연아. 궁을 위해서라도 저 소년을 놓치면 아니 될 것이니라.’

제연연은 눈부신 듯한 시선으로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사와요.”

여인이 두 볼을 장미빛으로 상기시키며 말하는 모습은 너무도 고혹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소생의 힘으로 할수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적연흥이 선선히 대답했다.

제연연은 바싹 긴장ㅎ며 입을 열었다.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나…… 제 나이가 공자보다 조금 많으니……”

제연연은 힘겹게 운을 떼었다.

“저를…… 저를…… 누나라고 불러 주실 수 없으세요?”

“누…… 누님으로……?”

적연흥의 몸이 휘청 했다.

제연연의 부탁이라는 것이 외남매를 맺자는 얘기인 줄은 생각도 못한 때문이다.

적연흥은 잠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제연연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제연연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흑!”

갑자기 제연연은 섬섬옥수로 옥안을 가리며 오열을 터뜨렸다.

“흑흑…… 알아요. 이 계집은 공자와 의를 맺을 정도로 잘 생기지도 못했고…… 모든 것이 형편없는 계집이라고요…… 흑흑……”

적연흥은 당황했다.

그가 언제 여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는가?

“그……그런 것이 아닙니다.”

적연흥은 얼른 제연연에게 다가가 제연연의 섬섬옥수를 얼굴에서 떼어냈다.

“누님같이 아름다운 분을 누님으로 둘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의 얼굴이 환히 펴졌다.

“정…… 정말이시옵니까?”

“그렇습니다……”

제연연의 두 눈이 이번에는 감격으로 붉게 충혈되었다.

“아우님……!”

제연연이 와락 안겨 들었다.

‘어! 어어……!’

뭉클한 여체가 가슴 가득히 안겨오자 적연흥은 기겁을 했다.

뭉클한 감촉과 향긋한 육향이 그의 가슴을 무섭게 탕진시켰다.

생전 처음 여체를 접한 때문이다.

그러나, 밀어낼 수도 없는 일, 적연흥도 굳건한 두 팔로 제연연을 마주 안았다.

“누님……!”

“아우님…… 고마워요. 아우님을 얻게되다니……”

제연연은 적연흥의 가슴에 얼굴을 깊이 파묻었다.

그녀의 두 팔은 적연흥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소 지나친 그녀의 태도다.

적연흥도 그것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떼어 놓으려하면 그녀가 무안해 할 것이므로……

두 남녀는 마주 끌어 안은 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점차, 적연흥은 단전으로부터 괴이한 열기가 솟구침을 느끼고 대경했다.

‘내가…… 음심을 품다니…… 이 무슨 추태인가?’

적연흥이 제연연에게 음심(淫心)을 일으키는 자신을 탓하며 막 제연연을 떼어 놓으려 할 때였다.

크아…… 아……앙!

북안탕 전체가 뒤흔들렸다.

용연곡쪽으로부터 천지를 뒤흔드는 괴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학!”

“으음……!”

두 남녀는 흠칫 하며 용연곡쪽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용연곡쪽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들렸다.

푸드득! 푸드득!

우―― 우!

두두두……!

일대 소란이 일었다.

용연곡쪽으로부터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산짐승들이 산지사방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맹호, 곰, 늑대, 표범 등의 맹수로부터 사슴, 노루, 토끼 등등의 짐승들까지 서로 뒤엉킨 채 달아나고 있었다.

쿵! 쿵! 쿵!

크와아…… 앙!

지축이 뒤흔들리고 심혼을 떨어 울리는 거창한 포효소리가 점점 더 가까와졌다.

화르르르――

그와 함께, 용연곡 방향이 완전히 불바다로 화했다.

시뻘건 화마가 허공을 시커먼 연기로 뒤덮으며 노도같이 번져 나갔다.

쿵―― 쿵!

불길을 헤치고, 돌연 거대한 괴물이 몸을 드러내었다.

태산이 무너져도 꿈쩍 않을 것만 같던 적연흥이건만 이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졌다.

괴물은 두 다리로 우뚝 일어선 채 두 앞발로 높이 수십 장이나 되는 거목들을 썩은 짚단같이 쓰러뜨리고 있었다.

우뚝 일어선 키만도 이십 장, 전신이 시뻘건 가죽으로 뒤덮여 있으며 머리하나 크기만도 집채만했다.

게다가, 딱 벌린 동굴같은 아가리에서는 지옥의 그것같은 불길이 토해지고 있다.

인화가 번뜩이는 한 쌍의 눈에서는 굉폭한 흉갈이 번뜩이고…… 그야말로 인세(人世)에서는 상상도 못할 그런 거대한 괴물이었다.

“꺄아악!”

여인인 제연연, 황급히 적연흥의 등뒤로 숨었다.

적연흥은 그녀의 교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절정의 무공을 지녔다고 해도 역시 아녀자이므로……

“으음…… 만년화룡(萬年火龍)!”

적연흥의 입에서 무거운 탄성이 터졌다.

“듣기보다 더욱 대단한 괴물이군.”

적연흥은 천천히 어깨에 메었던 강궁(强弓)을 풀어 손에 쥐었다.

“아…… 아우님…… 무엇을 하시려고……?”

제연연이 놀라 물었다.

“피하기는 너무 늦었습니다. 저놈이 우리를 발견못하고 지나친다면 모르나 만일 발견한다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이었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신무애의 돌출한 부분으로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게다가 운나쁘게도 만년화룡은 나머지 한 방향에서 정면으로 달려 들고 있었다.

크와……아앙!

만년화룡은 점차 신무애쪽으로 다가왔다.

만년화룡의 전신은 지독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아마도, 모산독군과 음산잔마의 극심한 공세에 당한 모양이다.

“웃!”

적연흥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만년화룡의 두 눈이 무서운 흉광을 발하는 것을 본 것이다.

‘발견 되었다!’

어지간한 적연흥이건만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삼십 장의 거구를 지닌 공룡(恐龍)이 아닌가?

크와아…… 앙!

쿵! 쿵쿵!

적연흥과 제연연을 발견한 만년화룡은 무서운 기세로 양인을 향해 돌진해왔다.

“흥아!”

멀리서 다급한 모산독군의 고함소리가 일었다.

쐐――애액!

휘―― 잉!

모산독군과 음산자마의 신형이 뇌전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쿵! 쿵!

만년화룡의 거구는 이미 오십 장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아……아우님……”

제연연이 바들바들 떨었다.

“소제 뒤에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적연흥은 침착히 말하며 강궁을 쳐들었다.

제연연은 이미 무림여걸이 아니라 연약한 한 아녀자일 뿐이었다.

패―― 앵!

강궁이 크게 부풀었다.

쿵! 쿵쿵!

만년화룡은 이미 삼십 장 안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연홍아! 활로는 안된다.”

만년화룡의 뒤로부터 모산독군의 다급한 일성이 터졌다.

파――앗!

쐐애――앵!

그 순간 강전(强箭)이 전광갈이 폭사되어 나갔다.

카―― 앙!

이럴 수가……

한 자 두께의 목판도 꿰뚫는 강전이건만 만년화룡의 가죽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크와―― 아앙!

그 화살은 만년화룡의 노기만 돋구었다.

화르르……

거창한 불기둥이 두 사람을 휩쓸어왔다.

“우웃!”

적연흥은 다급히 제연연을 끌어안고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신무애의 바로 끝에 몰렸다.

쿵…… 쿵!

만년화룡이 다가서자 절벽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눈! 눈이라면……’

적연흥의 봉목이 신광을 발했다.

패―― 앵!

쾌첩하게 또 다른 강전이 강궁에 매겨졌다.

쉬―― 익!

전광석화(電光石火)!

다음 순간,

파――악!

크와―― 와―― 악!

강전은 정확히 괴물의 오른쪽 눈을 관통했다.

“이 노―― 옴!”

그순간 만년화룡의 등쪽으로 모산독군이 날아들며 일장을 후려쳤다.

콰―― 앙…… 콰르르……

만근 화약이 터지듯!

쿠와아아―― 악!

철판같은 만년화룡의 등판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만년화룡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지며 입을 딱 벌렸다.

콰――우웅……

화르르……

갑자기 만년화룡의 입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토해졌다.

찬연한 화광을 발하는 불덩이는 곧장 적연흥에게로 쏘아져 갔다.

아!

그것은 만년화룡이 만년 동안 태양자기(太陽磁氣)와 지심극열(地深極熱)을 흡수하여 형성한 내단(內丹)과 단화(丹火)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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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다시 청풍이 위상영과 음공 대결을 펼친 강가

색목쌍교; [아가씨!] [무사하십니까?] ! 휘익! 마차에서 날아 나온다. 손에 각자의 무기인 긴 칼과 도끼를 들고 있다. 일교가 든 칼은 칼집에 들어있다.

정자 안에 앉아있는 위상영. 한손으로 비파를 안고 한손으로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 있다. 몸이 좀 흔들리고

색목쌍교; [아가씨!] [무슨 일이옵니까?] 휘익! ! 다급히 정자 앞으로 날아내리고

위상영; [나는 괜잖아요.] 소매로 입을 가리며 말하고. 하지만

똑똑! 소매 아래쪽으로 흘러 저고리와 치마를 적시는 피

일교; [내상... 내상을 입으셨군요.] ! 사색이 되어 정자로 뛰어들고. 이교는 주변을 경계하고. 그러다가

[!] 무언가 깨닫는 일교

위상영이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린 채 한쪽을 보고 있다. 물론 청풍이 있는 바위 쪽이다.

홱 돌아보는 일교. 이교도 돌아보고

바위 위에서는 청풍이 힘겹게 일어나 앉고 있다.

일교; [죽일 놈!] ! 고함지르며 미사일처럼 바위로 날아간다. 칼을 칼집에서 뽑는 자세로. 이교도 놀라 돌아보지만 위상영을 지켜야하므로 정자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도끼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바위 확 크로즈 업. 그 위에서 청풍이 일어나 앉으며 피를 게워내고 있다. 한손에는 용봉철적을 들고 있고

일교; [감히 개수작을 부려?] 부악! 바위 위로 날아 내리며 벼락같이 칼을 몇 번 긋는다. 그러자 여러 개의 섬광이 내뻗쳐 바위와 청풍을 수직으로 쪼개려는 모습이 되고

청풍; (위험!) 휘익! 다급히 뒤로 날아오른다

! 그런 청풍에게 날아드는 긴 섬광 한 가닥. 수직으로 쪼개려는 모습.

위상영; [!] 눈 치뜨고. 이교도 흠칫하지만

청풍; (능파미보!) 화악! 눈 치뜨는 청풍의 몸이 막 같은 것에 감싸이고. 그러자

화악! 날아드는 섬광이 그 막을 밀기만 할 뿐 베고 들어오진 못하고

휘익! 그에 따라 청풍의 몸이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뒤로 확 밀려가고

[!] 놀라는 위상영

이교; [무슨...] 역시 놀라고.

일교; (내 도기를 빌어서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날아간다?) 부악! ! 경악하면서도 칼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고

쩌쩍! 콰쾅! 바위가 위에서 아래로 쪼개진다. 일교의 칼에서 내뻗친 도기가 바위를 수직으로 몇 번 쪼갠 건

청풍; (가공...) 휘익! 멀찍이 날아 내리며 놀라고. 콰콰쾅! 그 앞쪽에서 바위가 여러 개로 쪼개져 넘어지고 있고

일교; [크아!] 다시 날아오며 칼질을 하고

청풍;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절세고수다!) 용봉철적을 들어 맞서려 하고. 바로 그때

띠잉! 강한 비파소리가 현장을 울리고. 그러자

[!] 청풍을 공격하다가 뭔가 느끼고 눈 부릅뜨는 일교

휘익! ! 공격을 멈추고 허공에서 홱 팽이처럼 도는 일교. 청풍을 공격하던 칼을 거두기 위해서. 그 일교 몸에 휘말려 공기가 돌아가는 게 보이고

청풍; (비파소리를 듣고 공격을 멈췄다.) 정자 쪽을 보고.

정자 안에 앉아있는 위상영이 비파를 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교가 눈을 강렬하게 빛내며 정자 앞을 지키고 있는 것도 보이고

휘익! 허공에서 팽이처럼 몇 번 돈 일교가 청풍의 앞쪽 5미터쯤에 내려서고. 시선은 정자를 향해서. 그때

위상영; <그분을 모시고 오세요.> 입을 열지 않았는데 말소리가 들린다. 청풍 쪽을 보는 자세로 앉아서

청풍; (입을 열지 않았는데 말소리가 바로 귀에 들린다.) 위상영을 보며 놀랄 때

일교; [예 아가씨!] 정자를 향해 고개 숙이고.

청풍; (무림인들이 흔히 쓰는 전음입밀(傳音入密)은 아니고...) (정신력으로 의사를 전달한다는 염화(念話)인 모양이다.) 생각하며 놀랄 때

일교; [아가씨께서 청하신다. 함께 가자.] 칼집을 든 왼손을 마차쪽으로 뻗어서 가자고 청하는 자세를 취하고

청풍; [신세를 지겠습니다.] 고개를 조금 숙이며 대답하면서 일교에게 걸어가고

양손에 칼집과 칼을 나눠 든 일교가 앞장서고 그 뒤를 청풍이 따라간다.

쿠오오! 앞장 서 가는 일교의 뒷모습.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는 게 보이고

청풍; (내공이 최소한 이갑자(二甲子) 이상으로 보인다.) 놀라고

청풍; (나보다 잘 해야 몇 살 많은 것같은 여자가 어떻게 저토록 심후한 내공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건 저런 절세고수 두 명을 수하로 부리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일교의 앞쪽. 양손으로 도끼를 움켜쥔 이교가 역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며 서있고 그 뒤 정자 안에 위상영이 앉아있는 걸 배경으로 청풍의 놀람. 위상영은 여전히 소매로 코와 입 부분을 가리고 있어서 아직 얼굴이 완전히 청풍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사이에 정자 입구에 이르는 일교. 이교는 옆으로 물러서며 차가운 시선을 청풍에게서 떼지 않고

일교; [아가씨!] [초청하신 자를 데려왔사옵니다.] 청풍을 소개하고

위상영; [수고했어요.] 고개 조금 끄덕이고.

일교; [이리로...] 옆으로 물러서며 청풍을 보는 일교. 청풍에게 정자 입구로 오라는 시늉하며. 이교와 반대쪽으로 물러선 상태.

청풍; [고맙습니다.] 정자로 다가가는 청풍

청풍; (가까이에서 보니 더 젊다. 잘 해야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연상...) 정자로 다가가며 생각할 때

[...] 위상영의 눈이 빛나고

다가오는 청풍의 모습. 헌데. 쿠오오오! 청풍의 뒤로 황제 복장의 거인이 흐릿하게 보인다. 눈을 부라리며 위상영을 노려보는 모습. 홍무제 주원장의 혼백이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위상영에게만 보이는 혼백이다.

위상영; (이제껏 접해본 적이 없는 강력한 혼백의 가호를 받고 있다.) + [뜻밖의 장소에서 기인을 뵙게 되는군요.]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청풍; [기인이라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멈춰서며 포권하고

위상영; [겸양은 거두어주세요.] [저의 수혼몽유곡을 깨트리신 것만으로도 음공으로 일절(一絶)이란 찬사를 들으시기에 충분하니까요.] 고개 조금 숙이고

청풍; (자신의 음공에 자부심이 대단한 여자로구나.)

위상영; [실례지만 존성대명(尊姓大名)을 들을 수 있을지요?]

청풍; [존성대명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소생의 이름은 이청풍이라고 합니다.] 포권하며 말하고

위상영; [이청풍...] 되뇌이고

청풍;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중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내려는 모양이다.) 생각할 때

위상영; [무림에 몸을 담고 계신 분은 아니시로군요.]

청풍; [그렇습니다.] [소생은 무림과는 인연이 없는 몸입니다.]

위상영; [무림인이 아니면서 그토록 놀라운 음공과 경신술을 지니셨다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요.]

청풍; [인연이 닿아 잔재주를 조금 배웠을 뿐입니다.]

위상영; [저의 수혼몽유곡을 깨트린 음률이 무엇이었는지요?]

청풍; [명경환야곡이라고 합니다.]

위상영; [명경환야곡...] 되뇌이고

<그런 음공이 있었나?> 어리둥절하는 색목쌍교

청풍; [아마 금시초문이실 텐데...] 쓴웃음

청풍; [명경환야곡은 소생이 최근에 만든 음률입니다.]

[... 음공을 직접 만들었다?] [말도 안되는...] 경악하는 색목쌍교.

위상영; [손수 음공까지 만드시고... 역시 기인이시군요.] 조금 눈을 치뜨고.

청풍; [부끄럽습니다.] 쓴웃음

위상영; [올해 연세가...]

청풍; [열여덟, 곧 열아홉 살이 됩니다.] + (나도 모르게 나이를 부풀리게 되는군.)

<점입가경!> <겨우 열여덟 살짜리 애송이가 직접 음공을 만들었다고?> 색목쌍교의 경악과 불신

위상영; [젊으시군요.] ! 입과 코를 가렸던 소매를 내리고

위상영; [이래서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있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어요.] 완전히 소매를 내리고. 순간

청풍; [!] 눈 치뜨고

<... 아름답다!> 청풍의 전율을 배경으로 완전히 얼굴이 드러나는 위상영. 청초하고 여린 모습. 그러면서도 고고한 인상. 절세미녀로 묘사. 가슴 앞자락을 피로 물들어 있고

청풍;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세상에 존재했다니...) 넋이 나간 표정

<저 반응은 다른 사내들과 다를 바가 없네.> <하긴 아가씨의 미모에 넋이 나가지 않을 사내는 존재하지 않지.> 냉소하고 그러면서도 뿌듯한 표정이 되어 청풍을 흘겨보는 색목쌍교. 그때

위상영; [공자의 이름을 들었으니 제 소개도 해야겠지요.] 미소 지으며 말하고

퍼뜩! 정신을 차리는 청풍

청풍; [... 세이경청하겠습니다.] 얼굴 붉어진 채 포권하고

위상영; [저의 이름은 위상영(威霜英)이에요.]

청풍; [... 위소저셨군요.] 정신이 몽롱해져서 더듬으며 포권하고

위상영; [저를 아는 분들은 과분하게도 병서시(病西施)라는 별호로 불러주신답니다.] 얼굴 약간 붉어지고

청풍; [병서시!] 놀라며 손을 내리고

청풍; [지병이 있는지요?] 살펴보며

위상영; [타고난 고질이라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가시랍니다.] 애절하게 웃고

청풍; (저 애잔한 미소...) 욱신! 가슴이 쑤시는 청풍

청풍; (마치 송곳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위험한 미소다.) 침 꿀꺽

위상영; [아무래도 이공자와 저는 인연이 있는 듯 하군요.] ! 의자에서 일어나고

위상영; [하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작별을 고해야할 것 같아요.] 비파를 안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청풍; [아 예...] 엉겁결에 고개를 같이 숙이는데. 그 직후

[!] 놀라며 고개 드는 청풍

! 정자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그리고

청풍; (사라졌다!) 마차 쪽을 홱 돌아보는 청풍

! 어느 틈에 마차의 문 바로 앞으로 다가가고 있는 위상영. 그 뒤를 색목쌍교가 서둘러 달려가고 있다. 일교는 칼집에 넣은 칼을 허리에 차고 있고 이교는 도끼는 등에 비스듬히 짊어졌다.

청풍; (무공을 쓴 것같진 않은데... 순간적으로 마차 앞에 나타났다.) 마차로 다가가는 위상영의 뒷모습 보며 경악하고

<설마 술법을 쓴 것인가?> 청풍의 놀람 배경으로 일교의 부축을 받아 마차로 올라가는 위상영. 이교는 마부석으로 올라가고 있고.

이교; [그만 일어나라!] 찰싹! 마부석에 앉아 두 손으로 쥔 고삐를 아래위로 흔들어 말들의 엉덩이를 치고. 그러자

히힝! 푸르르! 움찔하며 깨어나는 말들

그 사이에 일교는 마차의 문을 닫아주고 있고. 마차의 문에 달린 창문은 열려있다.

청풍; [어디로 가시는지요?] 자기도 모르게 마차를 향해 가며 외치고.

돌아보는 일교와 이교. 일교는 마부석에 올라가려다가 돌아보는데

위상영; [저희는 화산으로 간답니다.] 열린 창문을 통해 내다보며 말하고,

청풍; (화산...) 생각할 때

이교; [이랴!] 철썩! 두 손으로 쥔 말고삐를 채고. 그 사이에 일교는 마부석에 올라갔고

드드드! 말들이 움직이며 마차가 가기 시작한다.

움직이는 마차 안에서 손을 들어 보이는 위상영.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보이는 청풍.

곧 멀어지는 마차

청풍; (... 이 감정은 대체 뭔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차의 뒷모습을 보고, 들었던 손을 내리며

청풍;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고 귓속에서는 수많은 벌이 윙윙거리는 것 같다.) 얼굴 벌개진 채 침 삼키고

청풍; (이건 장래를 약속한 옥령이와 있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그 사이에 완전히 멀어지는 마차

청풍; (아무래도 내가 중병에 걸린 모양이다.) 그걸 보며 한숨 쉬고.

 

#64>

달빛 아래 달려가는 마차. 색목쌍교가 마부석에 앉아있다. 이교가 고삐를 잡고 있고

창문을 통해 위상영의 모습이 보인다.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고

위상영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 정자로 다가오는 청풍의 뒤로 황제 복장을 한 거대한 인물 형상이 떠오르던 장면

위상영; (어느 왕조의 황제였을까?)

위상영; (강호에 나온 이래 지금까지 보았던 수호령(守護靈)중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나조차도 하마터면 혼백이 몸을 빠져나갈 정도의 위압감을 지닌...) 가슴을 눌러 진정시키려 하고

위상영; (이청풍이란 그 인물...) 청풍을 떠올리며 얼굴이 좀 붉어지고

<어쩌면 하늘이 나 위상영을 가엾이 여겨 보내준 신장(神將)일지도 모르겠구나.> 달려가는 마차를 배경으로 위상영의 생각 나레이션

 

#65>

달빛이 비추고 있는 강변. 한쪽이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졌는데 절벽 위는 갈대가 무성하고 나무들도 드문드문 서있다. 죽어서 쓰러진 나무들도 보이고.

그 강변을 걸어오는 청풍. 피리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데 넋이 나간 표정이고.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위상영의 모습

청풍; (꿈을 꾼 걸까? 아니면 호선(狐仙;여우 귀신)에라도 홀린 걸까?)

청풍;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인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청풍; (잠깐 스쳐간 그 여자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한숨 쉬고

청풍; (정신 차려라 이청풍! 네게는 과분하고도 과분한 약혼자가 있지 않느냐?) 벽옥령을 떠올리며 한숨 쉬고

청풍; (그 여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옥령이를 울리면 안된다.) 자신의 품에 안겨 울던 벽옥령을 떠올리고

청풍; (옥령이는 내가 천한 종의 신분인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집을 오겠다는 착한 아이인데...) 생각할 때

<여기 있었군!> 휘익! 음성과 함께 누군가 청풍의 앞으로 날아 내린다. 흠칫! 하며 멈춰서는 청풍

휘릭! 청풍의 앞쪽 5미터쯤에 내려서는 자. 물론 귀견수다.

청풍; [부영반님!] 반색하며 다가가고.

청풍; [여긴 어인 일로...] + [!] 말하다가 눈 부릅뜨고

화악! 귀견수의 몸에서 뿜어지는 날카로운 기운. 귀견수는 망토 속에서 칼의 손잡이를 잡고 있고

청풍; (살기!) ! 경악하며 뒤로 물러서려고 할 때

스악! 이미 청풍의 목을 긋고 있는 반원형의 섬광

청풍; [!] 목에서 피를 뿌리면서 비틀거리는 청풍. 상처가 그리 깊지는 않지만 피가 뿜어진다.

귀견수; (얕았다!) 쐐액! 칼을 휘두른 자세로 청풍에게 쇄도하는 귀견수

청풍; (생각지도 못한 기습이라 피하지 못했다.) + [당신 무슨 짓을...] 목의 상처를 왼손으로 누르며 고함지를 때

귀견수; [잘 가라!] 스악! ! 청풍의 바로 앞에까지 들이닥쳐서 종횡으로 칼을 긋는 귀견수. 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청풍; (날 죽이려고 한다!) 화악! 몸이 투명한 막에 덮여 뒤로 날아가고

스악! ! 휘익! 청풍의 몸을 종횡으로 베는 귀견수의 칼의 섬광과 그것에 밀려 깃털처럼 휙 날아가는 청풍

귀견수; (이게 무슨...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내 도기에 밀려 날아가다니...) ! 경악하면서도 벼락같이 다가서며 칼을 길게 찌르는 귀견수, 펜싱 하듯 내지르는 그자의 칼에서 섬광이 내뻗치고. 하지만

슈악! 이번에도 그 섬광에 밀려 휙 뒤로 날아가는 청풍. 왼손으로 목을 쥔 채

귀견수; [요상한 무공을 쓰는구나!] 쐐액! 날아가는 청풍을 벼락같이 추격하며 눈을 부릅뜨고

귀견수; [그래봤자 애들 장난일 뿐이다!] ! 날아가며 왼손으로 장풍을 날린다

청풍에게 날아가는 원형의 충격파. 직경이 3미터쯤 된다

청풍; (아차!) ! 옆으로 날아 피하려 하지만

! 그대로 청풍을 강타하는 원형의 충격파. 청풍의 몸은 얇은 막에 덮여있지만 주변 전체가 장풍에 휩쓸리면서 충격을 받는다

청풍; [!] 후두둑!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

콰당탕! 등부터 바닥에 나뒹구는 청풍

귀견수; [역시 생각했던 대로였다.] 휘익! 청풍의 앞으로 날아 내리고. 청풍은 피를 게워내면서 일어나려 애쓰고 있고

귀견수; [상대가 공격하는 힘을 빌어서 날아다니는 요상한 무공을 익혔지만 내공 자체는 형편없이 약했다.] 음산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청풍은 이제 겨우 일어났고. 입과 코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

귀견수; [그래서 주변 전체를 날려버리는 장력에는 견디지 못한 것이다.]

청풍; [... 왜 이러시는 겁니까 부영반?]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뒷걸음질치고. 오른손에 들린 피리를 앞으로 내밀어 방어 자세를 취하면서

귀견수; [누구보다 머리 좋은 놈이니 짐작 가는 게 있을 텐데...] 음산하게 웃으며 칼을 겨누며 다가오고. 순간

[!]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 #50>에 나온 장면들이다

 

마은혜; [청풍이 너, 과거시험 보러 가서 무슨 실수를 한 거냐?] 노려보고

벽옥령; [엄마! 왜 또 청풍오빠를 닦달하는 거야?]

마은혜; [지금 닦달하지 않게 되었느냐? 자칫하다가 저놈이 세황이를 대신해서 과거시험을 봤다는 게 들통 날 수도 있는데?] 청풍을 손가락질하고

벅옥령; [저놈이라니?] [그게 사위 될 사람에게 할 말이야?] 대들고

마은혜; [사위는 무슨!] [자칫하다가는 우리 가문을 풍비박산 낼 수도 있는 놈인데...] 코웃음치고

회상 끝

 

청풍; [마님...] 이를 갈고. 뒷걸음질을 치면서

청풍; [마님이 날 없애라고 한 거요?] [대리시험을 본 게 들킬지도 모르는 후환을 없앨 겸 옥령이를 좋은 혼처로 시집보내기 위해서...?] 귀견수를 노려보고

귀견수; [마님의 뜻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총관의 지령을 수행할 뿐이다.] 천천히 다가오면서

청풍; (이세창!) 이세창을 떠올리고

청풍; (그자가 마님의 사주를 받은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인 판단으로 날 없애기로 한 것인가?) 이를 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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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三老莊貴賓

 

 

 

석두공은 맞은 편 전각에서 걸어나오는 또 한명의 흑의인을 볼 수가 있었다.

그자는 이곳에 온 다른 자들과는 달라보였다.

움직임이 마치 귀신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특이한 보법을 밟아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흰머리들은 본좌가 상대하겠다. 너희들은 나머지를 죽여라!]

서로가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이 반복되어 터져나왔다.

추릿!

그 흑의인은 검을 뽑아들고 목을 찌를 듯한 자세를 취하며 조창에게 다가갔다.

파앗!

조창과의 거리가 사장 정도로 좁혀 졌을 때 갑자기 흑의인은 조창에게 쇄도하며 검을 찔러냈다.

실로 쾌속하여 한줄기 빛과 같이 보였다.

(...)

조창은 내심 소리치며 고개를 돌리며 일장을 밀었다.

한데,

화끈!

조창의 자신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흑의인은 분명히 자신의 목을 노렸는데 어떻게 허리게 베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창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흑의인의 검은 다시 그의 가슴을 찔러오고 있었다.

말도 없고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고도의 살인수법을 익힌 전문살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악!]

[으악! !]

삼노장의 무사들이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소리가 삼노장을 울렸다.

그러나 조창은 그 사이에 다시 일검을 맞았다.

흑의인의 장검은 그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을 찌르는가 싶었는데 머리를 베어오고, 다리를 벤다고 생각했는데 목을 찌르고 있었다.

조창은 자식의 절학인 화염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식은 땀을 흘렸다.

한데 팽덕과 하진은 꼼작도 하지 않고 한곳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조창은 속으로 욕을 했다.

(무정한 놈들... )

그러나 석두공은 팽덕과 하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마치 동상처럼 가만히 있었다.

(내가 도와야겠군.)

석두공은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조할아버지 거들어드릴까요? ]

허공에서 작고 흰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말했다.

조창은 크게 기쁘하며 대답했다.

[장아가씨께 번거로움을 드리는구려. !]

말하는 사이에 다시 다리에 일검을 맞았다.

나타난 것은 작고 흰그림자는 십육칠 세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였다.

깜찍하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생긋웃으며 허리의 체대를 풀었다.

휘리리릭!

긴 체대가 연검(軟劒)으로 변하며 흑의인을 베어갔다.

!

흑의인은 조창을 공격하던 검을 돌려 막았다.

그 사이에 조창은 숨을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소녀의 체대는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장원의 무사들을 살해하고 있는 흑의인들을 향했다.

휘리릭!

[크악!]

마음대로 방향을 틀면서 날아드는 긴 연검을 피하지 못한 한 흑의인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소녀는 땅으로 내려선 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길고 가는 연검만을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녀의 검술은 소박한 듯하면서도 정치(精緻)했고, 빠르면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석두공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보다 어린 것같은 데 저같은 검술을 닦는 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저런 검술은 명사(名師)의 지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창을 공격했던 그 흑의인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소리쳤다.

[퇴각해라.]

휙휙휙!

상대를 버려두고 흑의인들은 담을 넘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호호호호...]

소녀가 낭낭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휘리릭!

갑자기 그녀의 연검이 방향을 틀어 팽덕과 하진에게로 날아갔다.

[! 안돼!]

조창이 다급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연검은 두 사람의 몸을 살짝 찍고는 물러났다.

차앗!

팽덕과 하진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번쩍!

거의 동시에 그들의 뒤에서 돌연 백광이 솟구쳤다.

작약을 담은 상자 속에서 두 명의 흑의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팽덕과 하진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검을 피했던 것이다.

[크하하하... ]

흑의인들은 광소를 터뜨리며 석두공의 머리위를 지나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무공은 조창을 상대했던 그 흑의인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이엇다.

-!

콰콰쾅!

석두공은 눈앞이 섬광으로 가득차는 것을 느꼈다.

 

전각이 폭발해버렸다.

십리 밖에서도 하늘로 치솟는 불꽃을 볼 수 있었다.

전각이 있던 곳에는 큰 웅덩이가 생겨버렸다.

삼노장의 전각들 중에서 태반이 무너져버렸다.

삼노장에는 사람의 모습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돌연,

들썩들썩!

무너진 한채의 전각의 일부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아가씨라고 불린 소녀가 하얗게 질린 채 기어나왔다.

그녀의 옷자락은 군데군데 불길에 타고 그을려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폭발의 여력에 날아가 전각속에 쳐박혔다가 전각이 무너지자 갇혀버렸던 것이다.

[팽할아버지! 조할아버지! 하 할아버지!]

장아가씨가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소리쳐 불렀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웅덩이가 마치 마귀의 입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으으으... 장아가씨... ]

미약한 신음과 함께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웅덩이가 파지면서 생긴 주위의 흙더미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장아가씨가 비틀거리며 다가가 손과 발로 흙을 치웠다.

팽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흙이 코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고서 드러누워있었다.

심한 화상으로 인해 전신에 물집이 생겼는데 그 물집에는 흙들이 파고 들어있어 끔찍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었다.

단지 그의 얼굴만은 본능적으로 가렸는지 그다지 손상을 입지 않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장아가씨는 그를 끌어내어 반듯한 곳에 눕혔다.

그때 흙더미 속에서 나온 손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

장아가씨는 깜짝 놀라며 힘껏 발을 잡아뺐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은 손은 더할 수 없이 완강했다.

장아가씨는 발목이 으스러지는 것같은 고통을 느꼈다.

쓔욱!

그녀의 발목에 이끌려 검게 탄 숯덩이같은 것이 흙더미 속에서 뽑혀나왔다.

땅 밖으로 나오자 그 숯덩이는 장아가씨의 발목을 놓았다.

장아가씨의 눈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발목의 뼈가 부러진듯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숯덩이가 누군지를 살폈지만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때 몇 사람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장주님! 장주님!]

장원의 일하던 노인들로 이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폭발에 크게 놀라 금방 다가오지 못했다가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아무 기척이 없자 다가온 것이었다.

장아가씨가 반색하며 그들을 불렀다.

[이리오세요.]

장아가씨의 지휘아래 시체들과 살아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는 일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날이 새도록 땅을 파고 전각들을 뒤지고 했지만 그들이 찾아낸 건 오직 세명의 장주와 한 구의 숯덩이 같은 인물뿐이었다.

몇 개의 타다남은 팔과 다리들을 찾아내기도 했으나 주인을 알 수도 없었다.

팽덕과 조창의 부상은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내상과 화상이 심하긴 했지만 치료하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진의 화상은 심했다.

그는 두 다리가 완전히 타버려 하체가 짧아져버린 상태였다.

장아가씨는 그들을 치료하고 녹초가 되어 벌렁 드러누웠다.

그녀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었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쉬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곁에 공교롭게도 숯덩이같은 인물이 눕혀져 있었다.

지금 그녀와 생존자들이 있는 곳은 장원의 뒤쪽에 있는 귀빈을 맞는 곳이다.

바로 현재의 그녀가 머무는 거처이기도 하다.

[... 이 사람도 살 수가 있을까?]

장아가씨는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옆에 있는 숯덩이를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숯덩어리는 숯덩어리 같은 데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진의 하체가 타서 없어진 것에 비하면 그것은 기적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장아가씨는 그의 팔에 손을 대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숯덩이 같은 인물은 숨이 멎어있었으나 기이하게도 심장의 박동이 아주 힘찬 것이 아닌가?

더구나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진력이 그 숯덩어리의 몸속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그 힘이 거대했다.

장아가씨는 세상에 그처럼 고강한 내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듣도보도 못한 것이다.

숯덩어리는 살아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삼노장에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데,

쩌쩍!

! 쩌적!

갑자기 숯덩어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장아가씨는 깜짝 놀라서 천근만근 같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제자를 구한 게 너냐?]

장아가씨는 흠칫 놀라며 뒤로 돌았다.

허무한 듯 또는 담담한 듯이 서있는 삼십세 정도의 사나이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후줄근하게 보이는 백의를 입은 사나이였다.

[당신은 누구세요?]

장아가씨가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폭풍무존이었다.

그는 허무한 듯이 말했다.

[나를 경계할 필요는 없다. 내 제자를 구해줬으니 노부는 저들을 치료해주도록하마.]

(노부?)

장아가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쩌적!

숯덩어리는 계속 균열이 가고 있는데 폭풍무존은 손을 내밀었다.

돌연,

슈우우우우-!

그의 손에서 흰기류가 솟아오르더니 작은 구슬처럼 뭉쳐졌다.

장아가씨는 그같은 기이한 일에 눈을 크게 떴다.

(진기가 형체를 이루다니... 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있지?)

구슬은 세개나 되었다.

그것은 폭풍무존의 손바닥에서 두둥실 떠올라 세방향으로 날아갔다.

팽덕과 조창, 그리고 하진에게로였다.

구슬은 그들의 단전으로 직접 스며들어버렸다.

폭풍무존이 장아가씨를 보면서 물었다.

[그리고 보니 정작 네게는 준 것이 없군. 이름이 무엇이냐?]

[지연(芝娟), 장지연이에요.]

장아가씨는 황급히 대답했다.

폭풍무존의 신기에 놀라서 그녀는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강변의 단애로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폭풍무존은 그녀의 눈을 보면서 말한 후에 열려진 창으로 신선처럼 날아나갔다.

쩌쩍! !

균열이 가고 있던 숯덩어리가 둥실 떠오르며 그의 뒤를 따라서 사라졌다.

장지연은 자신의 손등을 꼬집었다. 분명히 꿈은 아니었다.

[으으음... ]

그때 팽덕 등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 × ×

 

[사부님!]

[빨간 것이 영락없이 금방 태어난 아기로구나.]

폭풍무존이 말했다.

불에 탄 껍질을 벗어버린 석두공은 그야말로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빨간 몸으로 폭풍무존 앞에 엎드렸다.

[복수하러 갔느냐?]

폭풍무존이 물었다.

알같은 석두공은 고개를 저었다.

머리카락도 홀랑 타버린 후에 배냇머리처럼 부드럽고 노르스름한 솜털이 있을 뿐이고, 눈썹도 희미했다.

[아닙니다. 전 그자들에게 사부님을 부탁하려고...]

[다 부질없는 짓이다. 부질없는 짓이야.]

폭풍무존이 탄식하며 말했다.

 

단애 위에는 장강의 급류를 바라보고 한채의 초옥이 서있었다.

급하게 만들어져 초옥의 지붕으로 썬 나무들은 아직도 푸른 빛이 가시지 않았다.

그 초옥 속에 폭풍무존과 석두공이 있는 것이다.

폭풍무존이 말했다.

[너는 나를 깨우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영원히 잠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석두공은 천신폭풍탑에서 충동을 이기지 못해 천신폭풍보를 펼친 적이 있다.

천신폭풍탑은 모두 삼층이었는데 그 삼층에 폭풍무존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천신폭풍보에서 펼쳐진 힘으로 인해 탑이 파괴될 때 그 힘을 빌어서 다시 정신을 차렸었다.

폭풍무존은 석두공에게 그를 탓하는 듯 말했지만 실상 그 말은 자신을 탓하고 하늘을 탓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이 살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에게 그같은 능력이 없었더라면 살고자 해도 살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금제일의 절대강자인 폭풍무존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지금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고독을 달래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세월은 너무 변해버렸다.

폭풍무존은 스스로가 자신을 걸어다니는 시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

폭풍무존은 일어서면서 말했다.

[옷을 구해오마.]

석두공은 폭풍무존이 나간 후 알몸으로 방안을 서성였다.

방바닥은 나무들을 깎아서 깔아놓아 편편했다.

방 한쪽 구석에는 그가 허물처럼 벗어놓은 숯껍질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천왕저가 그 숯껍질에 붙어있었다.

석두공은 잔혼각의 인물들이 작약으로 위장하여 갖다 놓았던 화약이 폭발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었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있는 오독패혼공과 포연신공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는 중상을 입지도 않고 살아난 것이다.

포연신공은 그의 내공을 다시 한번 뒤집어놓았다.

그리고 석두공은 불에 탄 허물을 벗어버리고 매끈한 알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변화는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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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奇人들의 배려

 

 

 

적연흥이라…… 좋은 이름이구나.”

모산독군의 말에 적연흥은 멋적게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모산독군은 그런 적연흥의 모습을 보며 더욱 마음이 끌림을 느꼈다.

볼수록 훌륭한 아이다. 마치 갈지 않은 보옥과 같도다. 한번 크게 길러볼 만한 아이지만……

적연흥은 백호피를 둘둘 말아 짊어진 뒤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께서 이 깊은 북안탕까지 오신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있으신 때문이겠지요?”

모산독군은 자애롭게 웃었다.

그렇단다. 연흥이는 북안탕에서 살았으니 이곳의 지리는 훤하겠구나.”

몇 군데 가보지 못한 험지가 있기는 하오나 대개의 지형은 알고 있사옵니다. 할아버지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만 해주시면 소자가 안내해 드리겠사옵니다.”

허허, 그래 주겠느냐? 노부는 용연곡(龍淵谷)이라는 곳을 찾고 있단다.”

갑자기, 적연흥의 안색이 침중히 변했다.

용연곡(龍淵谷)이라 하셨사옵니까?”

그렇다. 한데 네 안색을 보니 무엇인가 꺼리는 것이 있는 듯이 보이는구나.”

적연흥이 침중한 안색을 짓는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북안탕에는 몇 군데 절지가 있으며 특히 그중의 양대절지(兩大絶地)는 세상에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용연곡(龍淵谷)>

<신무애(神霧崖)>

 

이 두 곳을 일컬어 양대절지라고 한다.

용연곡은 특이하게도 방원이 수십 장이나 되는 작은 호수가 있는 계곡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호수에는 한 마리 괴물이 살고 있어 가끔 물 밖으로 나오곤 한다는 것이다.

적연흥은 아직 용연곡의 괴물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 괴물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적연흥이 사는 마을에도 몇명 있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괴물은 그 크기가 근 삼십 장이나 되어 마치 작은 동산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머리 하나가 집채만 하며 코와 입에서는 시뻘건 불을 뿜는다고 했다.

특히, 요즘은 그 괴물이 자주 연못에서 나와 용연곡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그 통에 용연곡 주위 오 리가 잿더미로 변했다는 것이다.

용연곡이 이러한 곳인 까닭에 적연흥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한 것이다.

할아버지. 용연곡에 꼭 가셔야 합니까?”

그의 어조와 안색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이를 본 모산독군은 점점더 마음이 흐뭇해짐을 느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적연흥의 어깨를 다독였다.

네가 용연곡에 사는 만년화룡(萬年火龍)에 대한 소문을 들은 때문에 노부를 걱정하는 게로구나.”

적연흥은 흠칫 했다.

만년화룡(萬年火龍)이라고 하셨사옵니까?:”

오냐. 혹시 네가 만년화룡을 알고 있지 않느냐?”

적연흥은 겸연쩍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전에 아버님께서 남겨 놓으신 고서 중에 괴이지(怪異誌)라는 책에서 만년화룡에 대한 기록을 본적이 있었사옵니다.”

모산독군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 이 아이 부모들도 그저 평범한 촌민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 괴이지에 무어라 적혀 있느냐?”

적연흥은 신중히 대답했다.

만년화룡(萬年火龍)은 상고시대에 살았던 화룡(火龍)중에서 잔존한 괴물로서 태양자기(太陽磁氣)와 지심극열(地深極熱)을 쌓는다고 합니다. 만년의 수련을 쌓은 만년화룡은 하나의 내단(內丹)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내단이 완성되고 백일이 지나면 승천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일단 승천하면 악룡(惡龍)이 되어 천하를 열기로 휩쓸어 잿더미로 만들며……

적연흥은 말을 하다가 문득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마주 바라보았다.

혹시…… 만년화룡(萬年火龍)이 만년수련을 마친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만년화룡이 승천하기 전에 제거하시려고……

하하…… 영리한 아이로다. 그렇다, 노부가 멀리 모산에서 이곳 북안탕까지 온 것은 만년화룡이 승천하기 전에 제거하려고 온 것이다.”

적연흥은 우려의 빛을 띄웠다.

만년화룡의 만년수련이 끝났다면 그 난폭함이 극에 달하였을 터인데 할아버지께서 만년화룡을 제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누가 모산독군에게 모산독군의 능력을 의심하는 소리를 했다면 그 즉시 날벼락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산독군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십여 장 밖에 서 있는 높이 삼 장 정도의 암석을 가리켰다.

저 바위를 잘 보거라.”

적연흥은 고개를 돌려 그 암석을 바라보았다.

스스스――

모산독군이 가볍게 소매를 흔들었다.

그와 함께, 족히 만 근이 넘는 거석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

적연흥은 탄성을 지르며 허공에 떠오른 암석을 주시했다.

일반인이 그것을 보았다면 기절초풍을 했겠으나 적연흥은 단지 한마디 탄성으로 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스스스……!

―― !

갑자기, 만근 거석 전체가 연기를 내며 얼음이 녹듯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음……

이번에는 적연흥도 안면을 부르르 떨었다.

대단한 침착성이군. 이 아이의 정력(定力)은 가히 천하제일이겠는걸……

모산독군은 감탄하며 손을 내렸다.

이미 만근 거석은 모두 녹아버린 후였다.

어떠냐? 이 정도면 노부가 만년화룡과 싸워서 지지 않을 것을 믿겠느냐?”

적연흥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소자는 오늘에야 안목이 떠졌사옵니다. 용연곡으로 안내하겠으니 소자를 따르시옵소서.”

허허…… 신세를 지겠다.”

적연흥은 훌쩍 걸음을 옮겼다.

험산에서 능숙해진 그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는 마치 행운유수같았다.

허허 볼수록 놀랍군. 이 아이 발걸음은 같잖은 경공을 익힌 아이들보다 오히려 빠르겠는걸……

모산독군은 감탄하며 적연흥과 보조를 같이했다.

연흥이는 무슨 이유로 어린 나이에 사냥을 하게 되었느냐?”

모산독군이 넌즈시 물었다.

적연흥은 모산독군이 마치 친할아버지같이 느껴져 사실대로 집안사정을 이야기했다.

허허, 어린 나이에 정말 대견하도다. 그래 너는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느냐?”

적연흥은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작고하실 때에 남기신 서적들이 있어 사서삼경 등의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는 모두 읽었사옵니다.”

모산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모산독군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눈길로 전면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정말 신선같은 할아버지시다. 호랑이도 따라잡는 내가 힘을 다해 달리는 데도 그저 걸어서 따라오시다니……

적연흥이 염두를 굴리는데 모산독군은 품속에서 두 권의 두툼한 비단책자를 꺼내었다.

노부는 우연히 한부의 독경을 얻어 독술의 일인지가 되었다. 그후 그 독경을 연구 발전시켜 나름대로 또 한 권의 독경을 만들었느니라.”

적연흥은 의아한 신색으로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모산독군은 미소를 지으며 두 권의 독경을 적연흥에게 내밀었다.

받거라. 너와 만난 기념으로 이 두 권의 독경을 네게 주마.”

적연흥은 엉겁결에 독경을 받아들고는 당황했다.

이 귀한 것을 어찌 소자에게……

허허, 그 두권 속에는 너무나 패도적인 독공이 수록되어 있다. 노부는 평생 제자를 두어 가르킨 적도 없으며 자칫 노부의 진전이 악인에게 전해져 무림에 해를 끼칠까 저어해 왔다.”

…… 하오면 이를 어찌 소자에게……

허허, 본시는 이번 북안탕의 일을 마치면 그 독경들은 없애버리려 했었으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독경이 유용하게 쓰일 인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너이니라.”

적연흥은 겸연쩍어 얼굴을 붉히면서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소자에게 귀한 독경을 전수하셨으니……

적연흥이 절을 하려하자 모산독군은 무형경기로 그의 몸을 떠받쳤다.

허허, 그럴 필요 없느니라. 노부는 다만 네가 독경을 바른 일에 사용하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그 독경은 무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니 절대 타인에게 보이면 안된다.”

소자 명심하겠사옵니다.”

적연흥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때였다.

―― !”

멀리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일순 모산독군의 백미가 꿈틀 했다.

! 가보자꾸나!”

모산독군이 재빨리 적연흥의 팔목을 잡고 몸을 솟구쳤다.

…… !”

적연흥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미풍에 실려가는 깃털마냥 둥실 떠오름을 느꼈다.

―― !

적연흥이 놀라는 사이 그의 손목을 쥔 모산독군은 선풍같이 폭사되어 나갔다.

주위의 경물이 환상같이 홱홱 지나가고 무서운 속도감이 적연흥을 휘감았다.

 

삽시에 두 사람은 어느 협곡으로 날아들었다.

……!”

모산독군과 협곡으로 날아내린 적연흥의 검미가 깊이 찌푸려졌다.

협곡 입구에는 이십여 명의 백의몽면인들이 죽어 있었다.

한데, 그들이 죽어 있는 형상이 너무나 끔찍했다.

사지가 끊어져 나간 자가 있는가 하면 상체가 완전히 부서져 죽은자, 복부가 터지고 두상이 박살이 난자 등등 하나같이 잔혹 악랄한 수법에 절명해 있었다.

―― !

으아악…… 아악!”

그사이에도 연신 협곡 안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 음산(陰山)의 못된 애송이가 저지른 짓이군. 이십 년만에 강호에 나오자마자 후배들에게 무자비한 살수를 쓰다니…… 그 잔혹한 손속을 버리지 못했군.”

시체들을 살펴본 모산독군이 혀를 찼다.

아시는 분이 저지른 일입니까?”

적연흥이 다소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단다. 음산잔마(陰山殘魔)라는 후배인데 손 씀씀이가 무척 잔혹하다. 들어가 보자.”

모산독군과 적연흥은 협곡 안으로 들어 섰다.

크크크…… 네놈들이 감히 노부를 건드리다니…… 한놈 남기지 않고 때려 죽이리라.”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선 적연흥의 눈에 일단의 인물들이 혈전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인물은 이십여 명의 백의인들 사이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회포노인이었다.

회포노인은 불구자였다.

한 팔과 한 다리가 없을 뿐 아니라 두 눈 중 하나가 없었다.

하나, 그 노인은 비록 불구였으나 그 무공은 대단했다.

외팔과 외다리가 날아가면 칼날같은 경풍이 휘몰아쳤다.

파파팟!

―― !”

그 사이에도 한 백의몽면인이 괴인에게 죽음을 당했다.

백의인의 검이 허공을 베는 순간 귀인의 손아귀가 그자의 목뼈를 꺾어 버린 것이다.

이미 바닥에는 수십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고 남은 백의인들도 정신없이 괴인의 공세를 피하기에 바빴다.

이놈!”

모산독군이 두 눈에서 노기를 발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협곡전체가 무너질 듯이 진동하였다.

!”

으윽…… !”

적연흥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괴인과 백의몽면인들은 고막이 터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만큼 모산독군의 내공은 무서웠다.

! ……형님!”

모산독군을 발견한 괴인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졌다.

―― !

괴인은 한 다리로 껑충 뛰어 모산독군 앞으로 내려섰다.

아니 형님께서도 모산에서 예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까?”

괴인, 음산잔마의 말을 들은 백의몽면인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 모산독군!”

확실히 모산독군의 명성은 무서웠다.

음산잔마에게는 대항해서 싸우던 백의인들이건만 모산독군이 나타나자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떠는 것이었다.

―― !”

모산독군은 노여운 눈길로 음산잔마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얼굴을 폈다.

네 손속은 여전히 잔악하구나. 이제 염라전에 갈 날도 멀지 않은 것이 그 잔악한 손버릇을 못 고치다니…… 쯧쯧……

모산독군의 야단을 맞은 음산잔마는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형님, 소제도 이렇게 손을 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요. 헌데 저놈들의 하는 짓거리가 소제의 오장을 북북 긁어 놓아 그만 심하게 손을 쓰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모산독군은 음산잔마의 말을 들으며 날카로운 눈길로 한구석에 엉거주춤 물러 서 있는 백의몽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모산독군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자 백의인들의 전신은 더욱 심하게 부들부들 떨렸다.

쓰고 있는 보자기를 벗어라!”

모산독군이 백의인들을 노려보다가 버럭 일갈했다.

…… 예옛!”

백의인들은 깜짝 놀라며 몽면을 벗었다.

몽면 속에서 나온 얼굴들은 모두가 그다지 선하게 보이지 않는 면상들이었다.

어느 놈이 우두머리냐? 이리 나와라!”

모산독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자가 엉거주춤 걸어 나왔다.

말해랏!”

모산독군이 싸늘히 바라보며 일갈했다.

그러자 그자는 그대로 털퍽 주저앉았다.

…… 죽여 주십시오. …… 후배들은 염왕보(閻王堡)의 수하들로서…… 보주님의 명을 받들어…… 군웅들은 용연곡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해라.”

모산독군이 냉랭히 말하자 그자는 한 차례 부르르 떨며 말했다.

…… 모두가…… 군사이신 독…… 심제갈(毒心諸葛)께서…… 생각해내신 것으로…… 요소요소에 함정을 마련하여 용연곡으로 만년화룡의 내단을…… 노리고 오는 군웅들…… 암습……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후배들은 단지……시킨대로 했을……

알았다. 부상자를 데리고 썩 사라져랏!”

모산독군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 선배님의 은혜…… 각골난망이옵니다.”

그자는 산았다는 안도감에 수십 번이나 이마를 땅에 찍어대고는 수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헤헤…… 형님 축하합니다.”

느닷없는 음산잔마의 말에 모산독군은 영문을 몰라 백미를 찌푸렸다.

축하라니…… 난데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하, 형님두 참, 소제가 아무렴 형님제자를 빼앗기라도 할까봐 그러십니까? 이 아이같은 귀재를 얻은 것을 축하드린다는 말씀이옵니다.”

음산잔마가 신나게 떠들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무척이나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음산잔마의 말을 들은 모산독군은 피식 웃었다.

오해말게. 이 아이는 오늘 막 만난 아이일세. 자 연흥아 인사 드려라.”

적연흥이라고 하옵니다.”

적연흥이 인사를 하자 음산잔마는 유심히 그를 들여다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볼수록 훌륭한 기골입니다. 만일 무공을 익힌다면 능히 천하인(天下人)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산독군이 말을 받았다.

그것을 누가 모르는가? 하나 무공을 익히고 안 익히고는 이 아이의 마음이니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게.”

음산잔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나 뿐인 손을 품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힐끗 모산독군을 바라보자 모산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산잔마는 한 권의 낡은 고서를 빼들었다.

이것은 전대기인이신 천잔수(天殘叟)라는 분이 남기신 무공비급이다. 본래는 천하무쌍의 무공이나 노부의 자질이 아둔하여 육성 정도 밖에 연성하지 못했다.”

음산잔마가 무공비급을 내밀자 적연흥은 움찔 했다.

허허…… 비록 노부가 너를 제자로 맞을만한 그릇은 못되나 천잔수께서 남기신 이 비급안의 내용은 가히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것이니라, 너와 만난 기념으로 주는 것이니 받거라.”

모산독군이 빙그레 미소하며 말했다.

연흥아 받아 두거라. 익혀두면 후일 큰 쓸모가 있을 것이니라.”

적연흥은 정중히 천잔수가 남겼다는 비급을 받아들었다.

감사하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하심을 잊지 않겠사오며 반드시 좋은 일에 사용 하겠사옵니다.”

음산잔마는 입이 찢어져라 헤벌쭉 웃으며 적연흥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이제 그만 용연곡으로 가보세.”

모산독군이 주의를 상기하여 삼인은 협곡을 빠져 나왔다.

노제는 무슨 욕심이 생겨 용연곡을 찾는가? 다 늙은 주제에 만년화룡의 내단이라도 얻겠다는 얘긴가?”

음산잔마가 비록 모산독군에게 하대를 받고 있으나 사실 그의 나이도 백 살이 넘은지 오래였다.

문득, 음산잔마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형님도 아시고 계시지요? 소제가 삼십 년 전에 아이 하나를 양자로 삼은 일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 경한이라는 아이던가? 그때 아마 열 살쯤 된 똘망똘망한 아이였지.”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다 자라서 이십여 년 전에 양가규수를 신부로 맞아 오년 만에 제게 귀여운 손녀를 안겨 주었습지요.”

모산독군은 적연흥의 팔을 잡고 행운유수(行雲流水) 같이 나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질 고약한 네게는 너무 과분한 복이군.”

음산잔마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혜미(慧美)라고 지었는데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한시도 제 손에서 놓지를 않았습죠……한데……

흠 무슨 일인가 있었군.”

음산잔마의 안색이 극히 어두워 졌다.

그 아이의 전신 경맥이 점차 한기를 띄더니…… 급기야 요즘에 와서는 운신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신이 새파래지고……

모산독군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오음절맥(五陰絶脈)이군!”

적연흥도 흠칫 했다.

부모님들이 모두 병환으로 고생하셔서 적연흥은 자연 많은 의서를 읽었다.

오음절맥이 난치의 고질이라는 사실을 그 의서들 중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저도 최근에야 그 아이의 증세가 오음절맥임을 알았습니다.”

모산독군이 혀를 찼다.

미련곰탱이 같은 네 돌 머리는 여전하구나. 그렇다면 일찌감치 노형에게 데려올 것이지…… 쯧쯧…… 그래서 혜민가 하는 손녀의 오음절맥을 고치기 위해 만년화룡(萬年火龍)의 내단이 필요하단 말이지?”

음산잔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년화룡의 내단으로도 아니 됩니까?”

만년화룡의 내단은 천하에서 가장 양강(陽强)한 기물이지. 오음절맥이 아니라 구천태음신맥(九天太陰神脈)이라도 치료할 수 있어. 다만 여아일 경우에는 그 거센 양기로 순음지기가 훼손될 수도 있으므로 직접 복용은 못할 따름이지……

음산잔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못된 놈들……

갑자기 모산독군의 동안에 냉기가 흘렀다.

음산잔마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전면을 바라보았다.

염왕보(閻王堡)와 백의염왕(白衣閻王)이란 애송이가 갈 수록 못된 짓거리만 하고 있군요.”

가보세!”

두 기인의 말에 적연흥은 의아했다.

―― ―― !

모산독군과 음산잔마의 신형이 더욱 빨라져 질풍같이 쏘아나갔다.

음산잔마는 외다리만으로도 껑충껑충 뛰어 오는대도 그 빠르기가 굉장했다.

―― !”

――차창――

―――― 아악!”

, 적연흥의 귀에 어지러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랏!”

허공에 뜬 모산독군의 일성이 북안탕을 뒤흔들었다.

!”

…… …… 저 노인은……

장내에서 여러 마디의 경악성이 터지며 중인들은 모두 손을 멈추었다.

휘르르……

모산독군은 적연흥과 함께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 모산독군!”

경악성이 장내를 메웠다.

적연흥은 장내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널찍한 곡구를 백여 명의 몽면인들이 막아 서 있었다.

몽면인들의 전면에는 한 명 거구의 노인이 왜소한 중년인과 서 있었다.

그들의 전신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모산독군의 출현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 외에 한쪽으로는 남녀노소가 뒤섞인 일단의 군웅들이 모여 있었다.

! 이리 와랏!”

모산독군이 거구의 백의노인을 가리키며 준엄하게 외쳤다.

…… 노선배님…… 무슨 하교가 계신지……

백의노인이 사색이 되어 주춤주춤 다가섰다.

사지중 하나를 자르고 떠나랏!”

모산독군의 일갈에 백의노인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 잘못 걸렸다. 저 노독물이 설마 이곳까지 올 줄이야…… 자칫하면……한 목숨 구하기도 힘들다.’

백의노인은 무림사패(武林四覇)로 불리는 네 개의 큰 세력 중 하나인 염왕보(閻王堡)의 주인 백의염왕(白衣閻王)이란 자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무림사패 중 하나라 해도 모산독군과는 천양지차!

거역하다가는 한줌 혈수로 변하리라……

백의염왕의 이마에서 주르르 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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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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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열여덟 살이 되려면 아직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심호흡

청풍; (하지만 더 이상 무공 수련을 미룰 수는 없다.) (황금전장을 나온 이상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니...) 다시 눈을 감고

청풍; (아직 밤은 길게 남았으니 일주천을 한 번 더 하자.) 스스스! 스스! 청풍의 몸 여기저기에서 가는 실 같은 연기들이 빠젼오기 시작하고

청풍; (비록 내공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나는 황금전장의 장경각에 수장되어 있는 천여 권의 무공비급을 모두 깨우쳤다.) 슈우! 청풍의 몸 여기저기에서 돋아나오는 가는 연기들이 점점 짙어지고.

청풍; (천여 권의 비급들은 황금전장이 막대한 돈을 들여 수집한 것인 만큼 범상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 연기들은 다시 청풍의 코로 흘러들어가고

청풍; (다만 아버지의 분부를 따르느라 그 비급들의 무공을 익히지는 못했다.) (대신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 매진했으며...) 코로 연기들을 마시면서

청풍; (그 결과 이화접목, 능파미보등의 무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청풍; (내가 만들어낸 무공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철환구전공(轍環九轉功)이다.) 연기가 더 짙어지고

청풍; (도가, 불가, 속가, 심지어 마공까지 참조해서 만든 내공심법인데...)

청풍; (한번 운기조식하면 진기가 수레바퀴처럼 돌면서 거푸 아홉 번을 대주천(大周天; 진기가 몸 전체를 돔)한다.) 슈우! 연신 청풍의 코로 흘러들어가는 연기들

청풍; (덕분에 난 다른 사람들보다 아홉 배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다.)

청풍; (또 외부의 힘에 충격을 받으면 그 힘 역시 단번에 아홉 번 몸속을 돌게 한다.) (그 결과 날 때린 충격은 구분의 일로 위력이 줄어든다.)

청풍; (게다가 몸속을 도는 그 힘은 내 내공을 증진시키는 데 쓰여진다.)

청풍; (적의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내 공력은 높아지는 건데...) + [!] 생각하다가 흠칫! 하고.

띠리링! 띠링! 어디선가 비파 소리가 들린다.

청풍; (비파소리...) 눈 감은 채 생각하고. 띠리링! 띠링! 그 사이에도 비파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청풍; (거리가 멀고 또 그리 요란한 연주가 아니라 아주 작게 들린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청풍; (하지만 소리가 작은 것에 비해 곡조가 너무도 선명하여 바로 옆에서 연주하는 것 같다.) 생각하며 몸이 좌우로 흔들리고

청풍; (분명 음률의 명인이 연주하는 비파소리다.) 청풍의 몸이 술 취한 듯이 흔들거리고

 

#59>

월동문 밖에 눈을 감은 채 팔짱 끼고 앉아있는 귀견수

띠리링! 띠링! 귀견수의 귀에도 비파소리가 들리고

귀견수; (비파소리...) 눈 감은 채 생각하고

귀견수; (삼경도 지났는데 어떤 인간이 이렇게 청승맞은 곡조를 연주하는 건가?) 찡그리고. 하지만 그 직후

띠리링! 띠링! 귀견수의 귀에 들리는 비파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귀견수; (비파소리가 급격히 커진다.) 움찔! 하고

귀견수;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 비파소리다.) 눈을 번쩍 뜨고. 하지만 그 직후

! 강한 현기증이 엄습하는 귀견수

귀견수; (이런...) 경악하며 휘청

귀견수; (... 정신이 급격히 혼미해진다.) 일어나려 애쓰지만

띠리링! 비파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귀견수; (... 당했다!) ! 현기증도 더 강해지고

귀견수; (이 비파소리에는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 털썩! 나뒹굴고

<... 음공의 절세고수가 근처에 있다.> 부르르 떨며 기절하는 귀견수

 

#60>

다시 방안.

띠리리링! 방안에도 비파소리가 들리지만 작게 들린다. 이 비파소리는 내공이 심후하면 더 강하게 들린다. 그 비파 소리 속에서 청풍의 몸이 흔들거린다. 술에 취한 듯이

청풍; (정신이 혼미해진다.) 몸을 흔들면서 생각하고

청풍; (이건 뭐지? 왜 갑자기 어지러워지면서 졸음이 밀려오는 건가?) 찡그리며 생각하고. 바로 그때

! 근처 탁자 위에 얹혀져 있던 퉁소, 용봉철적이 진동하며 퉁소에 새겨진 용과 봉황의 형상이 밝아진다. 그러자

! 청풍의 귀를 강하게 울리는 충격

청풍; [!] 눈 치뜨며 깜짝 놀라고

청풍; [이게 무슨...] [비파소리 외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충격을 가한 소리가 들렸는데...] 부르르 몸을 떨며 정신을 차리고. 그때

지잉! 용봉철적이 진동하는 게 청풍의 눈에 들어오고

청풍; (옥령이가 준 용봉철적이 진동하고 있다.) 급히 손을 뻗고

츠으! 지잉! 청풍의 손에 들려진 용봉철적. 진동이 가라앉으면서 밝게 빛나던 용과 봉황의 형상도 다시 흐려지고 있다.

청풍; (용봉철적에 상감되어 있는 용과 봉황이 밝게 빛나다가 다시 빛이 사라지고 있다.) 놀라서 용과 봉황을 보고

청풍; (옥령이 말대로 용봉철적에 어떤 신묘한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 (주인이 내가 위험에 처하자 그 힘이 발동하여 경고를 한 것이고?) 생각할 때

띠리링! 띠링! 다시 청풍의 귀에 들리는 비파소리

청풍; (저 비파소리...) 일어나고

청풍; (듣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 같다.)

청풍; (누군가 가공할 음공을 익힌 인물이 연주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덜컹! 문을 열고 나가고. 그러다가

[!] 흠칫! 하며 월동문쪽을 보고. 귀견수가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청풍; (귀견수!) 달려가고. 문을 닫지는 않고

쓰러진 귀견수의 목을 만져보고

청풍; (다행히 정신을 잃었을 뿐이다.) 안도하며 손을 떼고

띠리링! 띠링! 비파소리가 이어지고. 돌아보는 청풍.

청풍; (이제 알겠다.) 몸을 일으키며 비파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고

청풍; (저 비파소리는 듣는 사람의 내공에 반응한다. 그 때문에 내공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강한 영향을 받는다.)

청풍; (나는 내공이 그리 심후하지 않은데다가 용봉철적이 경고를 해준 덕분에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청풍; (대체 어떤 기인이 이토록 신묘한 연주를 하는지 확인해보자!) 월동문을 등지고 달려간다.

곧 높은 담장이 나오지만

! 달려가는 기세로 도약하고

휘릭! 3미터가 넘는 담장을 그대로 뛰어넘는 청풍.

담장 밖은 골목. 그 골목으로 날아 내리는 청풍.

청풍; (일장이 넘는 담을 한 번의 도약으로 뛰어넘었다.) 돌아보며 달리고

청풍; (내공이 조금만 더 깊어지면 말보다도 빨리 달리는 게 가능하겠구나.) 골목을 따라 달려간다. 그 사이에도 띠리링! 띠링! 비파소리가 들리고

 

#60>

경치 좋은 강가. 멀리 화음의 시가지가 보인다.

휘익! 그곳으로 달려오는 청풍. 손에는 용봉철적을 들었고. 헌데

띠리링! 띠링! 점점 커지는 비파소리. 그러자

청풍; [!] 띠잉! 현기증을 느끼고 휘청하며 멈춰 선다. 근처에 상당히 큰 바위가 하나 있다. 높이는 5미터쯤

청풍; (비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눈이 풀린 채 휘청거리고

청풍; (이건 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비파가 연주되는 장소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띠링! 띠리링! 비파소리를 배경으로 술 취한 듯이 휘청거리는 청풍.

청풍; (더 이상 가까이 갔다가는 나도 귀견수처럼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심호흡을 해서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청풍;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떤 기인인지 확인 못하는 건 너무 아쉬운데...) 눈이 풀린 채 주변을 보고

근처에 있는 5미터쯤 되는 바위가 보이고

청풍; (저 바위...) 비틀거리며 다가가고

청풍; (바위 정상이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곳일 것이다. 그럼 가까이 가지 않고도 비파를 연주하는 인물을 볼 수도 있다.) ! 도약하고

! ! 몇 번 바위의 여기저기를 차며 올라가고

휘익! 마침내 바위의 정상에 올라선다. 비틀거리며

청풍; [이크!] 휘청! 하마터면 떨어질 뻔하고

청풍;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 자칫하다가는 떨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풀린 눈으로 돌아보고. 직후

청풍; (저기다!) 한쪽을 보고

100미터쯤 저편. 강가 절벽 위에 서있는 정자 한 채. 그 정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마차가 한 대 보인다. 마차는 바로 위상영이 타고 온 그 마차인데 말들은 매어져 있지만 마부석에는 아무도 없다. 말들은 고개 숙인 채 자고 있다. 정자 안에는 어떤 여자가 홀로 앉아서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물론 위상영이지만 아직 모습은 자세히 보여주지 말고. 띠리링! 정자와 마차를 배경으로 정자에서 비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고

청풍; (정자 안에 어떤 여자가 앉아서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손을 이마에 대고 정자 쪽을 보고

청풍; (모든 내공을 눈에 모으면...) 눈 부릅뜨고. 그러자

<일종의 천시지청술(天視地聽術)이 발휘되어 사물이 가까이 보인다.> 화악! 크로즈 업 되는 정자. 주변 모습 정자 안의 여자도 크게 보이고. 여자는 물론 위상영이다.

청풍; (여자...) 눈 치뜬 채 보고. 눈가로 벼락이 자잘하게 흐르고

청풍; (아직 젊은 여자로 보이는데 이토록 신비한 음공을 구사하다니...) 생각하다가

띠리링! 띠링! 비파를 연주하는 위상영

! 현기증이 느껴져 비틀하는 청풍.

청풍; (위험...) 털썩! 바위 위에 주저앉고

띠리링! 이어지는 비파소리

청풍; (이대로 비파소리에 노출되면 정신을 잃고 만다.) 피리를 입으로 가져가고

청풍; (음률에는 음률로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퉁소를 입에 가져간다. 옆으로 대고 부는 모습임을 주의

청풍; (황금전장의 장경각에 수장되어 있는 천여 권의 무공비급 중에는 음공에 관한 것도 십여 권 있었다.) 삐이. 피리를 불기 시작하고. 아직 소리가 작다.

청풍; (그 음공들을 분석하여 만든 명경환야곡(明鏡幻夜曲)을 연주해보자.) 삘릴리...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61>

정자. 띠리링! 띠링! 비파를 연주하는 위상영

위상영; (이 정도면 되었겠지.) 띠리링! 연주를 천천히 늦추면서

위상영; (색목쌍교...) 마차를 돌아보고. 말들은 내내 고개 떨군 채 자고 있다.

마차 안에 나란히 누워 잠이 든 색목쌍교. 두 여자는 곤히 자고 있는데 물론 방패와 무기들은 몸에서 떼어놨다.

<저 두 언니는 화산 근처까지 오는 동안 내 호위를 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곤히 잠이 든 색목쌍교의 모습을 배경으로 위상영의 생각

위상영; (그래서 오늘밤에는 수혼몽유곡(睡魂夢遊曲)을 연주하여 쉬게 했다.)

위상영; (수혼몽유곡은 듣는 이의 공력에 반응하여 잠이 들게 만든다.)

위상영; (, 공력이 심후한 인물일수록 더 강한 영향을 받아 정신을 잃는 것이다.)

위상영; (이제 사방 오십 리 안에 있는 무공을 지닌 모든 인물들은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위상영; (자연스럽게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자들도 없게 되었고...) (색목쌍교도 오랜만에 편히 잠을 잘 것이다.) 띠리링! 생각하며 연주를 멈추려 하고. 헌데 바로 그때

삘릴리! 어디선가 들리는 피리소리

위상영; (피리소리!) 놀라며 돌아보고

100미터쯤 떨어진 바위 위에 가부좌를 튼 채 피리를 불고 있는 청풍의 모습

위상영; (저 자 언제 저기에...) 띠리링! 놀라며 다시 연주를 시작하고

삘릴리... 위상영의 귀에 들리는 피리소리

위상영; (고수...) 긴장하고

위상영; (상당한 수준의 음공을 수련한 고수다.) 띠리링! 연주를 점점 빨리 하고

위상영; (그 때문에 내 수혼몽유곡을 듣고도 정신을 잃지 않은 모양인데...) 삘릴리... 점점 커지는 피리소리를 배경으로 비파를 연주하고. 그러자

[으음...] [으으...] 부들부들 떨며 깨어나려는 색목쌍교. 삘릴리! 피리소리를 배경으로

위상영; (저자의 피리소리가 색목쌍교를 깨우려 한다.) 띠리링! 띠링! 비파를 연주하며 청풍을 보고

위상영; (명백히 내 수혼몽유곡과 상극인 음공을 구사하는 중이다.) 띠리링! 띠링!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연주를 하고

삘릴리! 삘리! 땀을 뻘뻘 흘리며 피리를 불어서 저항하는 청풍

위상영; (음률에 실려 있는 내공은 보잘 것 없다.) 띠리리링! 띠링! 심각한 표정으로 비파를 연주하는 위상영

위상영; (하지만 음률 공부의 깊이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수준이다.) 놀라고

청풍; (이거 아무래도 내가 압도당해가는 분위기인데...) 띠리링! 띠링! 빠지직! 청풍의 몸이 벼락에 휘감기고 머리가 곤두선다. 사방에서 비파소리가 강하게 들리고

청풍; (시간을 끌면 불리해진다. 아직 여력이 남아있을 때 승부를 내야한다.) 삐이익! 강하게 피리를 불고. 그러자

빠지지직! 위상영의 몸도 벼락에 맞은 모습이 되어 머리카락이 치솟고

좌아아앙! 강하게 비파를 긋는 위상영

[!] [!] 빠카카캉! 충격 받아 펄떡이며 깨어나는 색목쌍교.

청풍; [!] 콰당탕! 피를 토하며 뒤로 벌렁 넘어지고

[!] 지징! ! 휘청하는 위상영. 비파의 줄이 두 개 끊어진다.

 

#62>

<-황금전장 화음분점> 황금전장 화음 분점의 모습. 조용한데

[!] 퍼덕! 발작하듯 깨어나는 귀견수. 빠다다당! 그자의 귀에서는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고

귀견수; [안돼!] 벌떡! 일어나고. 그러다가

귀견수; [!] ! 현기증을 느끼며 바닥을 짚고

귀견수; [이게 대체 무슨... 비파소리를 듣고 정신을 잃었었는데...] 머리 만지며 오만상. 그러다가

[!] 무언가 깨닫고 눈 부릅뜨는 귀견수

월동문 안쪽. 건물의 문이 열려있고

귀견수; [설마...] ! 건물로 달려간다

귀견수; [청풍아!]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물론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귀견수; [이청풍! 이놈이 튀었구나.] 이를 부득 갈고

귀견수; [혹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도망친 것이 아닐까?] 다시 건물에서 뛰어나오고

귀견수; [어디냐? 어디로 달아난 것이냐?] ! ! 두 눈이 빛을 발하며 주변을 살핀다.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관자노리에 댄 자세.

귀견수; (시력을 총동원하여 발자국 자국을 찾아야한다.) 징징! 눈을 빛내고. 직후

월동문 쪽으로 흐릿하게 찍혀있는 발자국이 보이고

귀견수; [찾았다!] 발자국을 따라가고

귀견수; [최근에 생긴 발자국이 내가 있던 쪽으로 이어졌다.] 월동문으로 달려가고

귀견수가 쓰러져 있던 주변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 그걸 보는 귀견수

귀견수; [내가 쓰러져 있던 곳에서 잠깐 서성이며 내 상태를 살폈다.]

다시 고개 돌려 건물 반대쪽을 보는 귀견수

발자국이 월동문을 지나 이어져 있다. 청풍이 달려간 방향이고

귀견수; [교활한 놈! 역시 기회를 봐서 달아났구나.] 이를 갈며 달려가고

곧 청풍이 뛰어넘은 담장이 귀견수의 앞에 나타나고

좀 더 깊은 발자국이 담장의 3미터쯤 앞쪽에 찍혀있다.

귀견수; [여길 강하게 딛은 후 담장 밖으로 나갔다.] 그 발자국을 보며 멈춰서고

귀견수; [그렇다는 건 놈이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담장을 보고

귀견수; [감히 나를 감쪽같이 숙여?] ! 날아오르고

귀견수; [그 대가로 예정을 앞당겨서 오늘 밤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주마!] 휘익! 청풍이 달려간 곳으로 날아간다.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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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우울한 고금제일인 (2)

 

 

 

삼경이 지난 깊은 밤,

쿵쿵쿵!

[누구요?]

주점 주인 왕노이는 눈을 비비면서 나가 문을 열었다.

[!]

왕노이는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헛바람을 삼켰다. 해질 무렵에 떠났던 술꾼 중의 한사람이었다.

무슨 일을 내고야 말 것같던 두 사람 중의 한사람, 그는 바로 석두공이었다.

왕노이가 물었다.

[공자님께서 무슨 일로 다시 우리집에... ]

[왕노이! 당신을 왕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소.]

석두공이 말했다.

[저녁때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었던 그 세 노인은 어디에 있는 사람들인지 말해주시오.]

[, 모릅니다. 공자님!]

왕노이는 이놈이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며 말했다.

석두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이 당신을 아는데 당신이 그들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소. 어서 말하시오.]

[정말 모릅니다. 단지 우리집에 자주 찾는 손님일 뿐입니다.]

왕노이는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석두공이 그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순간 왕노이는 석두공의 키가 작아지는 것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그는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석두공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어어... ]

석두공은 단지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는데 그의 몸은 풍선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삼노장(三老莊)의 주인들입니다. 삼노장, 하지만 삼노장은 작약장(芍藥莊)으로 더 유명하지요. 남쪽으로 십오리 정도 가면 야산 하나를 통채로 둘러싼 장원이 있는데 바로 그 곳입니다.]

왕노이는 신체의 위험을 느끼자 묻지도 않은 것까지 빠르게 말했다. 보신(保身)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아는 자였다.

석두공은 바람처럼 사라져버리고 땅으로 내려선 왕노이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만했으면 난 도리는 지킨 거야.]

 

*****

 

휘이익!

석두공은 어둠 속에서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큰 장원을 발견했다.

왕노이가 말한 그 삼노장이었다.

석두공은 삼노장의 담벽을 연기처럼 타넘었다.

작약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장원의 안은 전각들보다는 가지각색의 작약들로 뒤덮혀 있었다. 어째서 작약장이라고 하는지 알만했다.

석두공은 가장 커보이는 전각으로 소리없이 날아갔다.

삼노장은 아무도 경계를 서고 있는 것같지가 않았다. 그저 빗장만이 굳게 닫혀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아서 무림의 세력같지가 않았다.

석두공은 불이 켜져 있는 큰 전각의 지붕위에 날아내렸다.

전각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찾았군.)

그 음성들은 석두공이 만났던 세 노인의 음성이었다.

그는 박쥐처럼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활짝 열린 창을 통해서 전각 안이 환히 보였다.

 

삼노(三老)는 모두가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형제와 같은 관계이면서도 위 아래가 없었다. 모든 일은 항상 서로 의논해서 해결해왔으며 어느 누구의 독단으로 일이 좌지우지된 일은 없었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은 팽덕(彭德)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소림의 외가신공인 금강지(金剛指)를 잘 썼다.

약간 성미가 꼬인 것같은 노인은 조창(曺昌)으로 화염장(火焰掌)이라는 독문의 장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잘 웃는 노인은 하진(夏唇)이라하며 소매 속에 숨긴 비조(飛爪)를 쓰는 인물이었다.

이렇듯 삼노는 모두가 한 분야에 있어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곳 섬서성 일대에서만 활약하고 있지만 웬만한 무림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듣고 있었다.

 

조창이 분통이 터지는 듯 버럭 소리쳤다.

[오늘은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군. 낚시를 망친 데다가 일하러 갔던 놈들은 물건마저 잃어버리고 돌아왔으니...]

[원래 복은 쌍으로 오지 않고 화는 단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네. 좋지 않은 일은 늘 달아서 생기는 법일세.]

팽덕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조창이 침을 튀기며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몰라서 이러나? 내말은 화가 난단 말일세. 화가!]

[작약 이천근 정도 잃어버린 것은 큰 일이 아니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어쩌면 다른데 있는지도 모르네.]

팽덕의 말이었다.

하진이 팽덕의 말을 받았다.

[다른 데라면?]

조창도 입을 다물고 팽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팽덕은 생각이 깊은 인물이다. 그가 허튼 소리를 하는 경우란 전혀 없다. 그가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면 그것은 분명히 심각한 것이다.

팽덕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우리가 작약을 취급해온 이래로 이처럼 강도를 만났던 적이 있던가?]

그의 물음에 두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평덕이 말했다.

[작약이 이천근이면 돈으로 꽤 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거금이라고는 할 수 없네. 또한, 당장 무엇으로 바꾸기도 어렵고 양이 많아서 어디 처분하기도 쉽지 않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약을 훔쳤다면 이건 무엇을 뜻하겠는가?]

두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하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며 음성이 탁하게 흘러나왔다.

[설마하니 우리를 노린단 말인가?]

팽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밖에는 결론이 나지 않네. 또한 저녁 무렵에 우리가 만났던 두 젊은이도 그일과 무관한 것같지가 않아. 어쩌면 우리를 염탐하기 위해 왔던 자들일 수도 있지.]

[틀림없어. 틀림없이 그놈들은 염탐꾼들일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뺨을 맞고도 그냥 갈리가 있는가?]

조창이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팽덕은 염려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귀빈께서 와 계실 동안 만이라도 좀 조용했으면 좋으련만.....]

석두공은 속으로 말했다.

(성미 못된 영감이 있는 한 원수가 생기지 않을 리 없지.)

그는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았다.

 

문득 석두공은 누군가 장원의 담장을 넘어서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휘익! 휙휙!

칠흑같이 검은 야행복을 입은 자들이 전각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한 두명이 아니었다. 적게 잡아도 이십 명은 넘을 것같았다. 그들의 등에는 상자같은 것이 얹혀있었다.

(기습(奇襲)이구나!)

석두공은 내심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처마 밑에 납작 붙었다.

쿵쿵쿵!

다가온 그들은 갑자기 등에 지고 있던 상자들을 전각을 향해 던졌다.

파앗!

휙휙휙!

조창과 팽덕, 그리고 하진이 대갈하며 뛰쳐나왔다.

[웬놈들이냐?]

이십 여명의 흑의복면인들은 이미 전각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흑의복면인들 중에서 노란 수실을 드리운 검을 맨 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물건을 돌려드리기 위해 왔소.]

번쩍!

그자는 검을 뽑아 상자를 반으로 잘랐다.

잘려진 상자에서 작약이 쏟아졌다.

우루루루...

장원의 일꾼들과 무사들이 달려왔다.

[저 저... ]

그들은 흑의인들을 보고 놀라며 소리쳤다.

[사부님! 강도들입니다!]

육백이 고함쳤다.

조창이 차갑게 응수했다.

[알고 있다.]

그때 팽덕이 나서며 말했다.

[귀하들은 아주 간이 크군. 밖에서 강도를 하고 집까지 쫓아오다니...]

[노인장들을 만나기 전에 선물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 뿐이오.]

노란수실의 검을 가진 자가 말했다.

그가 말하기는 선물이었으나 실제로는 협박물이란 소리로 들렸다.

[무엇을 노리고 왔는가?]

조창이 눈에 살기를 뛰면서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잔혼각(殘魂閣)에 가입하시오.]

[...!]

[...!]

세 노인은 가슴을 망치로 맞기나 한 듯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잔혼각...

결국 잔혼각의 힘이 이곳까지 뻗어온 것이다.

사십여 명이나 되는 장원의 무사들과 일꾼들도 잔혼각이라는 말에 파랗게 질리며 물러섰다. 잔혼각의 살수라면 그들로서는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하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싸워야겠군.]

뱀의 머리는 되어도 용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파앗!

그 순간에 흑의인은 하진의 눈앞으로 쇄도하며 아래로부터 비스듬히 허리를 베어올렸다.

스팟!

하진의 몸이 팽이처럼 돌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의 소매속에서 은빛 손이 솟아나오며 흑의인을 쳐나갔다.

하진의 병기인 비조(飛爪)였다. 쇠로 만든 손모양의 물건에 은사가 달려있어 내공으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무기였다.

!

비조는 주먹으로 변해 흑의인의 검을 쳤다.

흑의인은 원래 반발하려는 그를 단숨에 죽여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협박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는 하진의 능력을 제대로 가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이 실패하자 그가 외쳤다.

[모두 죽여버려라!]

그때 조창이 그의 뒤로 돌아가면서 일장을 내밀었다.

[네놈부터 죽여야겠다.]

[으악!]

흑의인은 조창의 화염장에 격중되어 퍽 고꾸라졌다. 시체로 변해버린 그의 몸위로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흑의인들은 흠칫하며 공격을 하지 못했다.

조창이 소리쳤다.

[장원을 불사르고 산속에 숨는 한이 있어도 잔혼각 따위에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놈들을 모두 죽여버려라.]

그의 서슬 퍼런 명령이 흑의인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며 말했다.

[...후회할 것이다.]

[나는 후회할지 모르겠지만 네놈들은 그땐 죽었을 것이다.]

조창이 냉소했다.

바로 그때였다.

[후후후후...]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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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황금전장> 저녁 무렵.

청풍과 타노의 거처. 건물 앞에 두 필의 말이 끄는 사람 타는 마차가 서있다. 마차 마부석에는 마부가 앉아 있고. 마차 옆에는 벽세황과 벽옥령, 이세창과 황금수라의 부영반 귀견수가 서있다. 귀견수는 망토를 둘렀는데 허리에는 칼을 한 자루 차고 있다. 벽옥령은 두 손으로 퉁소를 하나 들고 있다. 은빛이 나고 화려한 퉁소인데 쇠로 만들어졌다.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고. 하녀들과 하인들은 멀찍이 서서 눈치를 보고 있고

 

건물 내부. 좁은 방에 청풍이 두 손 모으고 서있다. 청풍 앞의 의자에 타노가 앉아있고. 타노 앞에는 작은 탁자가 놓여있다.

타노; [장주님의 결정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타노; [아비 생각에도 네가 당분간 북경을 떠나있어야 할 것같다.]

청풍; [예 아버지!]

타노; [서안까지는 수천 리 여정이니 가는 동안 건강에 특별히 유념하거라.] 말하며 손가락을 탁자 위에 세운다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 [!] 대답하다가 눈 번뜩이고

! 타노의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움직인다

청풍; (...!) 놀라고

청풍;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탁자에 글을 쓰고 계신다.)

청풍; (아마 밖에서 기다리는 귀견수나 총관 이세창이 엿들을까봐 그러시는 것 같은데...) 탁자에 몸을 숙여서 글을 읽는다.

<아비의 신상에 변고가 생기면 남경(南京) 서문통(西門通)의 복자(卜者;점쟁이) ()씨를 찾아가라.> ! ! 타노의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움직이는 배경으로 글 내용 나레이션

청풍; (신상에 변고...) 굳어지는 얼굴

말없이 고개 끄덕이는 타노

청풍; (아무래도 우리 부자에게는 세상이 알면 안되는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심각하게 굳어지는 얼굴

 

#53>

문을 열고 나오는 청풍

벽옥령; [오빠!] 울먹이며 건물로 다가가고. 손에 쇠퉁소를 든 채

청풍;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방 안에 대고 고개 숙인다. 한손으로 문을 잡고. 이어

! 문을 닫고 돌아서는 청풍.

벽옥령; [오빠!] 다가오며 울먹이고

청풍; [다녀오마. 씩씩하게 잘 지내거라.] 벽옥령과 마주 서며 웃고

벽옥령; [... 옥령이 걱정 말고... 오빠 건강 잘 챙겨.] 말하며 쇠퉁소를 내밀고. 금방이라도 울 듯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청풍; [웬 퉁소냐?] 받고

벅옥령; [오빠 피리 부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서 본장의 보물 창고에서 가져온 거야.] 퉁소를 건네주고

벽옥령; [용봉철적(龍鳳鐵笛)이라고 하는데... 상고시대의 물건이면서 신묘한 힘을 지녔대.] 소매로 눈가의 눈물을 닦으면서 말하고. 청풍은 퉁소를 보고

청풍의 손에 들린 퉁소의 아래위로 용과 봉황이 한 마리씩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청풍; (용과 봉황이 생생하게 상감(象嵌)되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 같다.) (확실히 평범한 물건은 아니로구나.) 퉁소를 살피고. 당분간 이 퉁소는 늘 청풍의 수중에 있게 된다.

벽옥령; [용봉철적을 볼 때마다 옥령이를 생각해야해!] 소매로 눈물 닦으면서

청풍; [그래 약속하마.] 퉁소 들지 않은 손으로 벽옥령의 어깨를 다독이고. 이어

청풍;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벽옥령과 함께 마차로 다가가며 말하고.

이세창; [어두워지기 전에 북경을 빠져나가려면 서둘러야한다.] 덜컹! 마차의 문을 열면서 재촉하고.

청풍; [...] 마차로 다가가고

벽옥령; [오빠! 몸 잘 챙겨야해.] 마차 앞에 멈춰서며 울먹이면서 청풍의 손을 잡고

청풍; [걱정하지 마라.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벽옥령의 손을 다독이고.

벽세황; [미안하다 청풍아.] 청풍에게 다가오며 한숨

벽세황; [나 때문에 네가 이런 어려움을 다 겪게 되는구나.]

청풍; [그런 말씀 마십시오 소장주님!] 포권하고

청풍; [소장주님 덕분에 천한 제가 황금전장의 서안지점장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소장주님께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벽세황;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청풍의 어깨를 다독이고. 그때

이세창; [황금수라의 부영반인 귀견수께서 서안까지 너를 경호해주실 것이다.] 마차 문 열고 서서 귀견수를 보며 말하고

청풍; [신세를 지겠습니다 부영반님.] 포권하고

귀견수; [신세는 무슨...] [이런 일이 황금수라들의 임무이거늘...] 무뚝뚝하게 고개 끄덕이고. 이어

청풍;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장주님!] 마차로 올라가며 벽세황에게 말하고

벽세황; [조심해서 가라.]

벽옥령; [빨리... 빨리 돌아와야 해 오빠!] 울먹이며 손을 들고

청풍; [잘 지내라. 무공 수련도 열심히 하고...] 웃으면서 마차의 문을 닫는다. ! 닫히는 마차의 문

마부석으로 올라가는 귀견수

마부석에 앉으며 힐끗 이세창을 보는 귀견수

의미심장하게 고개 끄덕이는 이세창

귀견수도 고개 조금 숙일 때

[이랴!] 말의 고삐를 채는 마부

드드드! 움직이는 마차

곧 멀어지는 마차. 뒤에 남아서 보는 이세창, 벽세황, 벽옥령. 벽옥령은 기어코 눈물이 터져서 손수건으로 눈물 닦고 있고

벽옥령; (불안해.) 울면서

벽옥령; (어쩐지 두 번 다시 청풍 오빠를 보지 못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울고.

벽세황;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런 벽옥령의 어깨를 다독이는 벽세황

벽세황; [청풍이는 누구보다 똑똑해서 서안에 가서도 잘 적응 할 게다.]

벽세황; [여기 북경에서의 상황만 호전되면 아버지도 청풍이를 다시 불러들이실 생각이시니 잠시만 떨어져 있으면 된다.]

이세창; (잠시만이라...) 두 남매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보는 이세창. 이어

<총관에게 맡기겠어요!> 어둑한 방안에서 마은혜가 말하던 장면 떠올리는 이세창. 이어지는 회상

 

마은혜; [나는 청풍이가 두 번 다시 옥령이와 만나지 않기를 바래요.] 도도하고 음산하게 말하고. 그 앞에 이세창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서있다.

마은혜; [일절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총관 선에서 처리하도록 하세요.] 강렬한 표정. 마녀같다.

회상 끝

 

이세창; (옥령 아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음산하게 웃고

<청풍이 놈이 황금전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현장의 모습 배경으로 이세창의 생각 나레이션

 

#54>

역시 저녁 무렵.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암자. 그리 크지는 않은 절인데 비구니 암자라 비구니들만 돌아다니고 있고. 마당에는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도 한 대 서있다. 비구니들이 말을 돌보고 있고

어느 건물. 색목쌍교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방안. 단촐.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있는 위상영. 비파는 침대에 올려져 있고. 편지를 한 장 읽고 있다.

위상영; [화산 창천애...] 편지를 읽고

위상영; [이 내용이 사실인가 잠영혼(潛影魂)?] 편지에서 시선을 떼며 바닥을 향해 묻고. 그러자

<그렇습니다 아가씨!> ! 방 바닥, 탁자의 그늘 아래 한쌍의 사람 눈이 떠오른다.

그림자; <최근 부주님의 거처에서 한권의 일지가 발견되었는데... 부주님은 오년 전 화산 창천애란 곳에 다녀오신 것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위상영; [오년 전이라면...] 굳어지는 얼굴

그림자; <부주님의 심성이 일변하여 패도적으로 변하신 것은 화산 창천애에 다녀오신 것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위상영; [확실히 충격적인 계기가 없는 한 사람의 심성이 돌변할 리가 없지요.] 끄덕이며 편지를 내려놓고

그림자; <화산 창천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라는 것이 주모님의 분부십니다.>

위상영; [알겠어요.] 끄덕

위상영; [바로 출발해서 창천애 일대를 살피고 오겠다고 어머니에게 보고 올리세요.]

그림자; <부디 옥체보중하시기를...> 스스스! 눈이 사라지고

원래의 그림자가 되는 탁자 아래 바닥

위상영; (화산 창천애...) 뭔가 생각하고

위상영; (과연 아버지는 무슨 목적으로 그곳에 가셨던 것일까?)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으셨기에 온유하던 심성이 거칠고 패도적으로 변하신 것일까?> 방안의 모습 배경으로 위상영의 생각 나레이션

 

#55>

두두두! 암자를 떠나는 마차. 마부석에는 색목쌍교가 타고 있다. 일교가 고삐를 잡고 있고. 비구니들이 뒤에서 허리 숙이거나 합장하며 배웅한다.

열려있는 마차의 창문. 그 창문을 통해 비파를 품에 안은 위상영의 모습이 보이고

멀어지는 마차

근처 산봉우리 위에 서서 원통형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여자. 혈부용

혈부용이 보고 있는 원통형 망원경에 들어오는 장면. 열린 창문을 통해 위상영의 모습이 보인다.

혈부용; [미끼를 제대로 물었네.] 배시시 웃으며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

혈부용; [소회주님께 전서구를 날려라. 표적이 화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뒤를 보며 말하고.

[예 혈부용님!] 그년의 뒤쪽 바위 뒤에는 두 명의 복면인이 숨어 있다가 고개 숙이는데 두 놈중 한놈은 비둘기가 들어있는 새장을 들고 있다

한놈이 새장에서 비둘기를 꺼내고.

후두둑! 날아오르는 비둘기

혈부용; [가엾은 위상영아!] [네년은 두 번 다시 신선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창천애가 네년의 무덤이 될 테니...] 멀어지는 비둘기를 보며 사악하게 웃고

 

#56>

<-서안 동쪽 삼백여리의 도시 화음(華陰)> 반달이 떠있는 밤. 어느 도시. 아주 크지는 않지만 번화하다. 아주 깊은 밤은 아니라 불야성을 이루고 있고

번화가의 어느 장원. 문은 닫혀있고. <黃金錢莊>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황금전장 화음분점> 정문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화음전장 내부. 잘 가꿔진 정원에 자리한 건물. 청풍이 귀견수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풍은 방문 앞에 서있고. 허리춤에는 벅옥령이 준 퉁소를 끼우고 있다.

귀견수; [이제 서안까지는 사흘 여정이네.] [며칠만 더 고생하도록 하게나.] 문을 등지고 선 청풍을 보며

청풍; [여정 내내 마차를 타고 편히 온 제가 무슨 고생을 했겠습니까?] 웃으며 포권을 하고

청풍; [고생이라면 저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오신 부영반님과 마차를 몰고 온 송() 아저씨가 했지요.]

귀견수; [우리 걱정을 하지 말고 편히 쉬도록 하게.] 돌아서고

청풍; [편히 쉬십시오 부영반님!] 돌아서며 말하고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청풍. 귀견수는 월동문쪽으로 가고

! 닫히는 문.

곁눈질로 그걸 보며 월동문으로 가는 귀견수

<서안에 도착하기 전에 마무리를 지으시오.> 이세창의 말을 떠올리는 귀견수

 

이세창; [서안까지 가는 길은 멀 뿐 아니라 험해서 불행한 사고가 종종 발생하지 않소이까?] 어둑한 건물 뒤편에서 마주 서서 말하는 이세창

이세창; [예를 들어 마차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라든지...] 사악하게 웃는 이세창의 얼굴 크로즈 업

회상 끝

 

귀견수; (이번 결정이 총관의 독단적인 것인지 윗선의 지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눈 번뜩이고

귀견수; (내가 보기에도 청풍이놈은 황금전장의 안위에 크나큰 위협이 되는 존재다.) 음산하게 웃으며 월동문을 나가고

귀견수; (서안에 도착하기까지는 사흘... 그 안에 마무리를 짓자.)

귀견수; (다행히 이곳 화음에서 서안까지는 그야말로 험로의 연속!) (도중에 불행한 사고가 나도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 사악한 웃음

 

#57>

더 깊어진 밤. 이제 화음현의 건물들에도 불은 거의 꺼졌고. 반달은 하늘 가운데에까지 올라가 있고. 반달 때문에 아주 어둡지 않는 밤이다.

황금전장 화음분점도 불이 모두 꺼졌다.

청풍의 거처인 독채. 역시 불이 꺼져 있고

월동문 밖에는 귀견수가 의자를 놓고 앉아있다. 망토를 두르고 눈을 감은 모습인데 팔짱을 끼고 있다.

 

#58>

청풍이 있는 건물.

방안.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청풍. 침대 옆의 탁자에는 벽옥령이 준 퉁소가 얹혀져 있다. 헌데

슈우! 슈우! 청풍의 몸에서 가느다란 연기들이 피어올라

슈우! ! 청풍의 호흡에 따라 청풍의 코로 스며들어간다.

우둑! 우두둑! 그런 청풍의 몸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고

온몸이 땀으로 젓는 청풍. 그러다가

[후욱!] 깊이 심호흡하는 청풍. 그러자

화악! 몸의 다른 곳에서 일어나던 연기들이 일제히 청풍의 코로 스며들어가더니

더 이상 몸에서 연기가 일어나지 않고. 이어

! 정수리로 터져 나오는 연기. 마치 핵폭탄이 터질 때처럼 작은 버섯구름을 형성한다.

휘이! 흩어지는 버섯구름

청풍; [휴우...] 천천히 눈을 뜨는 청풍.

청풍; (또 한번의 일주천(一周天;진기를 한번 돌림)이 끝났다.)

청풍; (그 과정에서 드디어 십팔경락(十八經絡)의 대부분이 타통 되었다.) 자기 몸을 살피고

청풍;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임독이맥(任督二脈), 즉 생사현관(生死玄關)도 타통할 수 있을 것이다.)

청풍; (그럼 비록 빈약한 내공이라도 끊임없이 순환시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10>의 마지막 부분의 장면.

 

타노;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서는 안된다.] [너에 대한 것이 알려지면...]

타노; [너는 물론이고 아비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심각

청풍; [...] 대답하지만 미진하고

타노;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만 기다려라.]

타노; [그때쯤이면 너도 황금전장을 나가 독립할 수 있을 테고... 그럼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마.]

회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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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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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예기치 못한 殺人

 

 

 

!”

적연흥의 눈이 번뜩였다.

이곳은 북안탕의 깊은 산중.

인적이 닿아 본적이 없는 원시림으로 꽉 들어찬 험지였다.

적연흥의 전신은 무엇 때문인지 팽팽히 긴장되어 있었다.

그는 전면의 한 지점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백여 장쯤 되는 거리일까?

한 마리 거구를 지닌 백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백호(白虎)는 호랑이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종자이다.

몸 크기가 보통 호랑이보다 한배반이나 되는 거구를 지닌 것이 보통이며 지극히 영민하면서도 사납다.

그 백호가 적연흥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일진이 좋군. 몇달 동안 찾아 다녀도 발견할 수 없었던 저놈을 산에 들어오자마자 발견하다니……

범인이라면 백호의 모습만 보고도 오금이 저려 사족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연흥은 야릇한 흥분을 느끼면서 침착하게 은신한 곳에서 움직이지를 안았다.

이윽고, 백호는 오십여 장 앞으로 다가왔다.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전통(箭筒)으로 가져갔다.

강전(强箭)을 써야겠군.’

그는 전통에 들어있는 화살 중 굵기가 가장 굵은 화살을 집어 들었다.

이는 특별히 사나운 맹수를 잡기 위해 마련한 화살이다.

화살 끝에 달린 한 치 정도의 날카로운 화살촉을 쓰다듬어본 적연흥은 화살을 강궁(强弓)에 걸었다.

이어, 그는 천천히 힘을 주어 강궁의 시위를 잡아 당겼다.

―― ――

기분 좋은 탄력감이 손끝에 느껴진다.

그는 강궁을 들어 백호의 정수리를 겨누었다.

시위는 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고 그와함께 궁은 반월형으로 굽어져 갔다.

이백보……

백오십보……

백이십보……

적연흥의 이마로 한 방울 땀이 흘렀다.

그때였다.

휘르르……!

갑자기 변덕스런 산풍(山風)의 방향이 역류(逆流)하였다.

적연흥의 검미가 꿈틀 하였다.

이런…… 이 중요한 때에……

이제 바람의 방향이 적연흥쪽에서 백호가 오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맹수 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에게 이토록 갑작스런 풍향의 역류는 치명적이다.

맹수에게 사냥꾼의 존재를 알려주는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호의 거구가 흠칫 했다.

그와 함께 백호의 호안(虎眼)이 무섭게 부릅떠졌다.

자신의 노리고 있는 자가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크르―― !

백호의 입에서 북안탕 전체가 뒤흔들리는 포효성이 터졌다.

재미없군!’

적연흥은 백호가 자신을 발견했음을 깨닫고 벌떡 일어섰다.

은신해 보아야 소용없음을 잘 아는 때문이다.

―― !

백호의 거구가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적연흥의 눈이 번뜩이며 강전의 날카로운 촉이 영민하게 떠오른 백호의 거구를 따라 이동하였다.

―― !

―― !

강전이 대지를 찢으며 허공을 날았다.

―― !

―― !

백호가 날아오는 강전을 발견하고 머리를 트는 순간 강전은 백호의 어깻죽지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 !

백호의 거구가 둔중하게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그러나,

―― !

백호는 뒤미처 용수철 튕겨지듯이 뛰쳐 일어나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대단히 강한 놈이군.’

적연흥은 그 상황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자신이 사냥꾼이긴 했으나 그는 맹수들을 사랑한다.

힘없이 거꾸러지는 놈은 맹수축에 들지도 못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손이 신속하게 전통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하나의 강전(强箭)이 시위에 매겨졌다.

그사이, 백호는 이미 오십 오보 앞으로 쇄도해 들어오고 있었다.

산역을 뒤흔드는 포효성(咆哮聲)!

부릅뜬 호안, 날카로운 송곳니, 일 장은 됨직한 거구.

아무리 수십 년간 사냥을 해온 노련한 사냥꾼이라도 오금이 저릴 상황이다.

하지만 적연흥은 너무도 침착했다.

무표정한 중에서도 신속히 시위가 당겨졌다.

―― !

―― !

또 하나의 강전이 허공을 갈랐다.

백호와 적연흥 사이의 거리는 삼십여 보.

이번의 강전만큼은 백호라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백호는 참으로 영민했다.

시위 튕겨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몸을 지면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 !

―― !

피보라가 일었다.

강전(强箭)이 백호의 등어림을 스치고 헛되이 멀리로 날아간 것이다.

―― !

지면으로 몸을 떨구었던 백호가 재차 도약했다.

정말 영민한 놈이다.’

적연흥은 감탄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도끼를 사용할 것이냐? 다시 활을 쏠 것이냐?’

이는 어쩌면 생사를 가를 중대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다시 활을 사용하여 실패한다면 목숨을 내걸고 백호와 맨손으로 싸워야 한다.

그러나, 기왕에 활로 시작한 것, 굳이 도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 !

그의 손이 다시 신속하게 전통을 더듬었다.

―― !

백호는 이미 이십여 보 앞으로 덮쳐 들어오고 있었다.

강궁에 강전이 매겨지고 시위가 크게 당겨졌다.

백호의 거구가 바로 눈앞으로 치솟아 덮쳐 들었다.

―― !

―― !

적연흥의 손이 지체없이 시위를 놓았다.

―― !”

동시에, 그는 활을 집어 던지며 덮쳐드는 백호에 마주쳐 갔다.

화살이 어찌 되었는지는 살필 겨를도 없었다.

최악의 상태로 화살이 빗나갔다는 가정하에서 백호에 마주 덮쳐간 것이다.

파파팟!

백호의 거구와 적연흥의 몸이 맞부딪혔다.

이겼다!’

백호와 맞부딪히는 순간 적연흥은 쾌재를 불렀다.

두 개의 몸이 서로 부딪히자마자 적연흥은 백호의 몸에 생명의 탄력이 없음을 느낀 것이다.

―― !

백호의 거구가 적연흥이 뻗은 일격에 둔중하게 뒤로 넘어갔다.

휴우――

적연흥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몸을 세웠다.

쓰러진 백호의 체구는 엄청나게 커보였다.

마치 거상(巨象)이 쓰러져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백설같이 하얀 백호의 복부에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혈흔이 번지고 있다.

마치 소복이 쌓인 백설 위에 빨간 물이 스며들 듯이……

적연흥이 마지막으로 날린 강전은 백호의 복부 깊숙이로 박혀 있었다.

적연흥의 팔 힘이 워낙 강한데다가 거리가 가까웠던 탓으로 강전은 반 이상이 백호의 복부로 파고 들어가 있었다.

이제껏 잡아본 그 어떤 놈보다도 훌륭한 놈이다. 족히 천 냥 이상 나가겠는걸……. 당분간 어머님 공양해드릴 걱정은없게 되었구나.’

적연흥은 집어던진 강궁을 회수하여 전통에 집어넣었다.

!”

이어 그는 백호의 몸에 팔을 뻗쳐 기합을 질렀다.

그러자, 수백근은 나갈 백호의 거구가 번쩍 들려졌다.

그는 백호의 거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걸음을 옮겼다.

, 그는 맑은 계류가 흐르는 옥계에 닿았다.

―― !

백호의 거구를 바위 위에 내려놓은 그는 계류에 손을 담그었다.

시원하군!”

한 차례 물을 끼얹어 땀을 씻은 그는 품속에서 날카로운 비수(匕首)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는 능숙한 솜씨로 백호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귀한 백호의 가죽이라도 잘못하여 흠을 내면 가치가 반감한다.

그는 세심한 주위를 기울이면서도 신속하게 비수를 움직였다.

반각 후, 드디어 백호의 가죽이 벗겨졌다.

그는 백호의 가죽을 물에 담그어 피가 빠지도록 두고 백호의 시신을 매장했다.

그는 맹수의 가죽을 얻는 것으로 만족했다.

맹수를 잡으면서도 자유롭게 사는 맹수를 사랑하는 그는 맹수의 고기만큼은 먹질 않았다.

보면 볼 수록 훌륭하군.”

백호의 가죽을 물에서 꺼내어 바위에 펼쳐 널며 적연흥은 감탄했다.

백호의 가죽은 보통의 호피보다 배나 클뿐 아니라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털로 뒤덮여 있어 지극히 훌륭했다.

팔기 아까운 물건이군. 어머님이 사용하시는 황호피(黃虎皮)와 바꾸어 어머님이 사용하시도록 해야겠군.”

적연흥은 백호피의 몇 군데를 가다듬은 뒤 한쪽 바위에 걸터 앉았다.

이미 태양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적연흥은 흘깃 올려다보았다.

백호를 만나는 통에 너무 시간을 소비했군. 자칫하면 신무애를 살펴 보지 못할지도……

적연흥은 검미를 슬쩍 모으다가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 안에는 약초캐는 호미 하나와 연잎으로 싼 건량이 들어 있었다.

적연흥은 건량을 꺼내 천천히 먹으며 발밑의 계류를 바라 보았다.

, 서둘러야겠구나.”

반각 후, 적연흥은 백호의 가죽이 어느정도 말랐으므로 걸을 심산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자리에서 일어서던 적연흥은 흠칫 했다.

예기(銳氣)!

섬칫한 예기를 느낀 것이다.

본시, 맹수사냥에 몰두해온 적연흥인지라 누구보다도 민감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주위 환경의 조그마한 변화도 극히 민감하게 감지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능력은 맹수사냥에서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으로, 이러한 능력 때문에 적연흥은 몇 번인가 맹수와 부딪히고도 결정적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데, 지금 이순간 적연흥은 자기 주위에 심상치 않은 예기(銳氣)가 번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결코 맹수가 풍기는 원시적인 살기같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흉폭함은 맹수보다 덜하나 무엇인가 섬칫한 느낌을 주는 그런 예기였다.

적연흥은 쾌첩하게 몸을 돌렸다.

일순, 적연흥의 검미가 찡긋 하였다.

어느 사이엔가?

“...!”

적연흥으로부터 오장여 떨어진 곳에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이 시커먼 털로 뒤덮이고 무척이나 험상궂게 생긴 자였다.

그자도 적연흥이 의외로 아직 치기를 못다 벗은 소년임을 알고 흠칫 했다.

이내 그자의 입가에 음악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저놈이 어떻게 저런 희귀한 백호의 가죽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나 악도부(惡屠夫)가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하겠는걸.’

그자는 탐욕스런 눈길로 바위 위에 널린 백호의 가죽을 쓸어 보았다.

백호의 가죽은 좀체 구하기 힘든 귀중한 것으로 부르는 것이 값인 물건이다.

그자는 백호의 가죽을 보자 걷잡을수 없는 탐욕이 솟았던 것이다.

흐흐…… 본래 보물 때문에 이곳 북안탕에 왔으나, 천하에 내노라하는 인물들이 모두 몰려 왔으니 내차지가 되기는 힘들다. 저 어린 놈의 백호피나 빼앗아 실속 차려야겠다.’

그자 악도부는 무림에서도 이름난 망나니였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잔악한 이를 데 없는 간교하고 음악한 자였다.

반반한 여인들을 보면 처녀이건 유부녀이건 가리지 않고 범하고, 마음에 드는 기물(奇物)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무림의 기생충 같은 자였다.

그자는 북안탕에 광세의 영물이 출현한다는 소문을 듣고 북안탕에 왔다가 적연흥이 잡아놓은 백호의 가죽을 보자 그 못된 버릇이 동한 것이다.

그자는 음충하게 웃으며 천천히 다가섰다.

무림인인 모양이군. 결코 심성이 제대로 박힌 자는 아니군.’

적연흥의 봉목에 냉기가 흘렀다.

원시적이긴 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영민하게 알아내는 능력이 적연흥에게 있었다.

귀하, 소생에게 용무가 있으시오?”

적연흥이 냉막하게 말했다.

엇 이놈 봐라. 산골 촌놈같지 않게 뻑뻑한걸……

악도부는 흠칫 했다.

그자도 무림에서 눈치보며 지금껏 살아온 인물이다.

본능적으로 적연흥의 일신에서 범상치 않은 기개가 풍김을 느낀 것이다.

아니, 그자가 지금껏 보아오지 못한 기개를 적연흥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악도부는 적연흥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음악하게 웃었다.

흐흐흐…… 이봐, 자네 백호피를 내게 팔지 않겠는가?”

그자는 영악하게 적연흥의 표정을 살폈다.

미안하오. 이것은 팔 물건이 아니외다.”

적연흥은 냉막하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백호피를 걷기 시작하였다.

악도부의 눈길이 악독하게 번뜩였다.

흐흐흐……!”

그자는 음악하게 웃으며 몸을 날려 적연흥앞으로 날아내렸다.

적연흥의 검미가 꿈틀 했다.

악도부가 백호피의 한끝을 밟고 섰던 것이다.

적연흥은 몸을 일으키며 냉막한 시선으로 그자를 바라보았다.

적연흥의 눈길을 받은 악도부는 흠칫 하다가 험악하게 웃었다.

흐흐…… 촌놈아, 네놈이 바라보면 어쩌겠단 말이냐? 감히본 악도부께서 백호피를 사주겠다는데 거절하다니……

그자는 한 술 더떠서 아예 백호피 위로 올라섰다.

내려서시오!”

적연흥이 버럭 일갈을 질렀다.

그의 일갈은 마치 맹호의 포효같이 우렁찼다.

악도부는 흉흉한 살기를 띄우며 음산하게 말했다.

본 악도부께서 사주시겠다면 네놈에게는 무상의 영광이거늘…… 감히 거역하다니…… 흐흐…… 이제는 본인이 생각을 바꾸었다. 목숨이 아까우면 순순히 백호피를 놓고 사라져랏!”

적연흥은 내심 대노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냉랭한 신색을 유지하며 침중히 입을 열었다.

억지 쓰지 마시오. 더 이상 얼굴 붉히기 싫으니 물러가시오!”

적연흥은 백호피를 잡아 당겼다.

흐흐……

악도부도 음소하며 발에 힘을 주었다.

적연흥의 검미가 꿈틀 했다.

비키시오!”

적연흥이 버럭 일갈과 함께 백호피를 뒤집었다.

!”

악도부는 기겁을 했다.

적연흥의 손힘이 상상외로 막강하여 악도부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던 것이다.

…… 이놈아. 촌놈이……

악도부의 얼굴이 썩은 돼지 간빛으로 변했다.

적연흥은 냉랭히 그자를 바라보며 백호피를 말았다.

이놈! 뒈져랏!”

악도부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일장을 후려쳤다.

―― !

한 줄기 강맹한 장풍이 적연흥을 짓쳐 왔다.

!”

적연흥도 더 이상 노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 !

적연흥의 바윗덩이 같은 주먹이 마주 날아갔다.

―― !

먼지가 확 일었다.

!”

악도부는 안색이 홱 변하여 비칠 하며 물러섰다.

!”

적연흥도 주먹을 만지작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 이놈의 주먹이 마치 돌덩이 같다니……

악도부는 경악했다.

사실, 적연흥의 주먹은 거웅(巨熊)도 일격에 쓰러뜨린 적이 있는 강한 것이었다.

악도부가 비록 무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정면으로 부딪히자 적연흥의 신력에 밀린 것이다.

이놈!”

악도부는 길길이 날뛰었다.

―― !

그자는 메고 있던 귀두도를 빼들고 적연흥에게 덮쳐들었다.

쐐애―― !

귀두도가 허공을 가르며 적연흥의 미간을 향해 날아 들었다.

!”

적연흥도 지체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 ! ―― !

불꽃이 튀었다.

!”

악도부는 호구가 찌르르 울림을 느끼고 안색이 홱 변했다.

맹수를 잡던 적연흥의 손도끼는 정확하고도 강했다.

이놈! 죽어랏!”

악도부는 흠칫 하다가 재차 미친 듯 귀두도를 휘둘렀다.

―― ――

―― ―― !

그자의 도세는 신랄하고 악독했다.

!”

적연흥은 안색이 대변했다.

그가 상대한 것은 속임수를 모르는 맹수들이다.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직선적인 맹수들을 상대하던 적연흥이었다.

사방을 뒤덮으면서 덮쳐드는 도세를 대하자 적연흥은 일시에 당황하였다.

―― !

적연흥은 다급히 도끼를 휘둘러 도세를 막아갔다.

―― !

―― !”

그러나, 어느 한순간 적연흥은 가슴이 화끈함을 느끼고 신음을 토했다.

어느 틈엔가 악도부의 귀두도가 파고 들어온 것이다.

―― !

적연흥은 가슴을 누르며 밀려났다.

뜨거운 선혈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크흐흐…… 이번엔 목을 잘라주마!”

―― !

귀두도의 도신이 악귀의 호곡성을 끌며 날아들었다.

―― !”

적연흥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도끼를 집어 던졌다.

―― !

휘르르――

손을 떠난 도끼가 맹렬하게 악도부의 정면으로 날아 들어갔다.

이얍!”

악도부는 다급히 귀두도를 쪼개 내었다.

―― !

귀두도가 부러질 듯이 휘어졌다.

―― !

귀두도에 부딪힌 도끼가 튕겨져 나가 멀리 서 있는 고목에 박혀 들었다.

흐흐…… 이놈! 이제는 네놈을……

득의하며 적연흥을 바라보던 악도부는 흠칫 했다.

어느 틈엔가, 적연흥은 한 손에 강궁(强弓)을 들고 악도부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러가시오. 더 이상 덤비면 본인의 화살이 그대의 피를 볼 것이오.”

적연흥의 말에 악도부는 냉소했다.

적연흥은 화살을 재지 않은 채 강궁을 내리고 있었던 것을 본 때문이다.

흐흐…… 네놈이 화살을 쏘기 전에 네놈의 머리를 뽀개주겠다.”

적연흥이 냉갈했다.

모험하지 마시오. 본인의 화살이 더 빠를 것이오.”

악도부의 눈길이 흔들렸다.

비록 화살을 재고 있지는 않지만 적연흥의 침착한 기세에 움찔한 것이다.

그러나 그자의 눈이 악독하게 빛났다.

뒈져랏!”

악도부가 악독한 일갈과 함께 귀두도를 쓸어 내었다.

하지만, 그자의 기세가 빠르다고 해도 백호가 덤벼드는 기세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사사삭――

적연흥의 손길이 섬전같이 전통을 더듬었다.

―― !

―― !

악도부가 십보 앞으로 쇄도하는 순간 강전이 쏘아 나갔다.

!”

악도부는 꿈에도 적연흥의 동작이 이토록 빠를 줄은 몰라 기겁을 했다.

――!

그자가 전력으로 휘두른 귀두도가 강전을 잘라 내었다.

이겼다!’

악도부는 요행히 강전을 막아내자 쾌재를 부르며 적연흥에게 쇄도하였다.

그러나 그자가 이보를 움직이기 전에 두번째 강전이 강궁에 매겨졌다.

―― !

악도부가 채 오보를 움직이기 전에 강전이 강궁을 떠났다.

!”

악도부는 기겁을 하며 귀두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 !

―― !”

피가 튀었다.

처절한 비명이 일면서 가슴에 부러진 화살이 박혀 나뒹굴었다.

거리가 너무 가깝고 화살이 날아가는 힘이 강한 탓으로 중간을 잘랐으나 그대로 가슴에 박힌 것이다.

…… …… 내가…… 네놈…… 에게……

악도부는 가슴을 부둥켜 안고 적연흥을 노려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

적연흥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가슴을 누르며 주저앉았다.

……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평생 사람을 해쳐본 적이 없는 적연흥인지라 악도부의 죽음에 망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

적연흥은 귀두도에 맞은 상처를 누르며 일어나 악도부의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본인을 원망하지 마시오. 당신 스스로 부른 화이니까.”

적연흥은 악도부의 가슴에 박힌 반도막의 화살을 뽑아내었다.

피가 확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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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황금전장>

<-장경각>

 

벽옥령; [이게 뭐야?] 손에 책을 들고 청풍과 마주 앉아있다. 장소는 청풍이 늘 있는 곳. 책상을 옆에 두고 청풍과 마주 앉은 벽옥령

청풍; [심심해서 몇 가지 무공을 만들어봤는데...] [그중 옥령이 네게 맞을만한 것을 골라서 적은 책이다.]

벽옥령; [오빠가 직접 무공까지 만들었어?] 놀라고

청풍; [완전한 창작은 아니고... 기존의 무공들을 개선한 것이라 보면 된다.] 멋쩍고

벽옥령;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정말 대단해.] [무공을 만드는 건 일대종사나 가능하다던데...] 흥분하고

청풍; [일대종사는 무슨...] [하여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라.]

벽옥령; [오빠가 날 위해 만들어준 무공인데 기대를 어떻게 안 해?] 흥분하며 책을 펼쳐 보고

벽옥령; [첫번째 무공은 능파미보(凌波迷步)라는 거네.]

청풍; [일종의 보법으로 그걸 익히면 적의 공격을 파도처럼 타는 게 가능해진다.] 설명해주고

벽옥령; [적의 공격을 이용하는 보법이라면 적에게 당할 일이 없겠네.] 놀라고 흥분해서 청풍을 보고

청풍; [정말 강한 상대라면 통하지 않겠지만 어지간한 수준의 적이라면 절대 널 해칠 수 없을 것이다.] 끄덕이며 웃고

벽옥령; [오빠는 정말 대단한 천재야.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을까?] 책을 넘기고

벽옥령; [두번째 무공은 은원살법(恩怨殺法)이란 거네.] 책을 보고

청풍; [일종의 운기법인데... 이름이 좀 섬뜩하지?]

벽옥령; [그래도 살법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겠어.] 청풍을 보고

청풍; [탄력 있는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가 놓으면 어떻게 되느냐?]

벽옥령; [쥐고 있는 사람에게 도로 날아가지.]

청풍; [바로 그런 이치의 무공이다.] 웃고

벽옥령; [!] 깨닫고

청풍; [은원살법을 쓰면 널 공격한 자의 힘이 그대로 돌아가 타격을 가하게 된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것이지.]

벽옥령; [그래서 은원에 살법이라는 단어까지 붙여서 이름을 지었구나.] 흥분하고

청풍; [그 외에도 몇 가지 무공을 더 적어놨지만... 능파미보와 은원살법만 익혀도 몸을 지키는 데 충분할 게다.]

벽옥령; [고마워 오빠. 오빠 걱정 시키기 않기 위해서라도 여기 적힌 무공들 열심히 익힐게.] 얼굴 발그레

청풍; [아무쪼록 그래다오.] + (무공수련에 집중하면 괜한 근심에 빠지지도 않겠지.) 생각하는데

벽옥령; [그런데 오빠는 왜 무공을 익히지 않는 거야?]

청풍; [내 몸이 무공을 수련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 했었던 것 같은데...] 웃고. 하지만

벽옥령; [그게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눈 흘기고

벽옥령; [왜 무공을 익히지 않는지 솔직하게 말...] 말하다가 흠칫! 하고. 청풍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벽옥령도 돌아보고.

청풍이 보고 있는 쪽 책꽂이 사이에 강혜분이 서있다.

벽옥령; (훼방꾼 같으니...) + [여긴 무슨 일이야?] 눈 흘기며 강혜분에게

강혜분; [장주님과 마님께서 청풍이를 급히 찾고 계세요.]

벽옥령; [무슨 일로?] 도끼 눈

강혜분; [쇤네도 거기까지는 모르옵니다.]

청풍; [다녀오마.] 일어나는데

벽옥령; [나도 같이 가.] 벌떡 일어나고

벽옥령; [엄마가 또 이상한 소리 하려고 오빠를 부르는 건지도 몰라.] [내가 함께 가서 방패막이 되어줄게.] 청풍의 팔을 잡아끌며 가고

청풍;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어색해하면서도 끌려가고

벽옥령; [이번에는 내 말 들어.] [모름지기 사내는 여자 말 잘 들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거야.] 청풍의 팔을 잡아끌고 간다, 그 뒤를 강혜분이 따라가고

강혜분; (가엾은 것들...) 소리없이 한숨

<잔인한 운명은 저 아이들이 쉽게 맺어지는 걸 허락하지 않는구나.> 책꽂이 사이로 청풍을 끌고 가는 벽옥령과 그 둘을 따라가는 강혜분의 모습 배경으로 강혜분의 생각 나레이션

 

#50>

황금전장 내원. 여자 무사들이 지키고 있는 마은혜의 거처

 

벽옥령; [.,.. 동창!]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린다. 의자에 앉아있다.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있는 벽초천, 마은혜, 벽세황, 청풍, 벽옥령. 벽초천과 마은혜가 문을 보는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있고 청풍과 벽옥령이 그 앞에 앉아있으며 벽세황은 네 사람을 모두 보는 자리에 앉아있다. 총관 이세창이 벽초천 뒤쪽에 서있는데 편지를 한통 들고 있다. 탁자에는 청풍의 초상화가 놓여있다.

벽초천; [동창의 책임자인 제독태감이 직접 그렸다는 용모파기다.] ! 초상화를 청풍에게 밀어주고.

말없이 초상화를 집어 들어 보는 청풍

벽초천; [어떠냐?]

청풍; [저의 얼굴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서 묘사한 용모파기로군요.] 두 손으로 초상화를 들고 보며 남 일처럼 말하고

벽초천; [본장이 황실에 심어둔 관리가 제보한 내용이니 의심의 여지는 없다.]

벽초천; [이유는 모르지만 동창에서 청풍이 너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지급한 안건으로 처리해서...] 심각

벽세황도 겁에 질린 표정. 그때

마은혜; [청풍이 너, 과거시험 보러 가서 무슨 실수를 한 거냐?] 노려보고

벽옥령; [엄마! 왜 또 청풍오빠를 닦달하는 거야?]

마은혜; [지금 닦달하지 않게 되었느냐? 자칫하다가 저놈이 세황이를 대신해서 과거시험을 봤다는 게 들통 날 수도 있는데?] 청풍을 손가락질하고

벅옥령; [저놈이라니?] [그게 사위 될 사람에게 할 말이야?] 대들고

마은혜; [사위는 무슨!] [자칫하다가는 우리 가문을 풍비박산 낼 수도 있는 놈인데...] 코웃음치고

벽옥령; [엄마!] 분노하는데

벽초천; [그만!] !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고. 큰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벽초천을 보는 마은혜와 벽옥령 모녀. 벽세황도 움찔하고

푸시시! 벽초천의 손바닥이 단단한 탁자에 깊이 박혀있다.

청풍; (장주는 무공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구나.) 생각할 때

벽초천; [가급적 빨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자리요.] ! 깊이 난 자국에서 손을 떼며 마은혜에게 말하고

벽초천; [시간 낭비하지 않게 해주시오.]

마은혜; [죄송해요 상공.] 고개 숙이고

벅옥령도 샐쭉하지만 입을 다물고

벽초천; [청풍이 네 의견을 들어보자.] 청풍을 보고

청풍; [그날 동창의 제독태감 담길이 저를 유심히 보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담길이 자신을 보던 장면 떠올리고

벽초천; [다른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담길이 널 주시했다는 것이냐?] 눈 번뜩이고

청풍; [그렇습니다.]

벽초천; [짐작 가는 건 없고?]

청풍; [...] 말하며 무의식중에 자기 왼쪽 손 가운데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오른손으로 만지고.

청풍;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담길이 이름을 물었을 때 소장주의 이름을 발설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벽세황을 보고

벽세황; [... 그러냐?] 안도하고

청풍; [혹시라도 대리시험에 관하여 심문을 받을 경우 철저하게 부인하셔야합니다.] 벽세황에게

벽세황; [기억해두마.] 안도하고

벽초천; [그 정도 조치로는 미흡하다.] 청풍을 보고

돌아보는 청풍과 벽세황

벽초천; [동창에서는 전시를 본 모든 응시생들을 네 용모파기와 대조하고 있다고 한다.] [자칫 동창의 수색이 우리 황금전장에 미칠 수도 있다.]

청풍; (장주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겠다.) + [당분간... 제가 피신을 해야겠습니다.] 고개 좀 숙이고

벽옥령; [... 피신!] 기겁하고

벽옥령; [황금전장을 나가겠다는 거야 청풍오빠?] 울상

청풍;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다.]

벽옥령; [그럼... 그럼 나는 어쩌라고...] 울먹

반면 샘통이다는 표정이 되는 마은혜

벽초천; [네가 그런 결론을 내릴 줄 알았다.] 말하며 뒤쪽의 이세창에게 손짓하고. 즉시 다가오는 이세창

벽초천;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북경을 떠나 있어라. 가급적 동창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으로...] 말하는데

청풍 앞으로 다가와 편지를 내미는 이세창

청풍; [그리 하겠습니다.] 두 손으로 편지를 받고

벽초천; [본장의 지점중 북경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이 서안(西安) 지점이다.]

벽초천; [너를 서안지점의 지점장으로 임명한다는 증서이니 그걸 갖고 즉시 출발하도록 해라.]

청풍; [분부 받들겠습니다.] 일어나며 고개 숙이고

벽세황과 울상인 벽옥령이 따라서 일어나고

청풍; [다시 뵈올 때까지 강녕(康寧)하시기를 빌겠습니다.] 편지 든 채 포권하고

벽초천은 말없이 고개 끄덕이고. 마은혜는 좋아 죽으려는 표정을 억지로 숨기며 도도하게 끄덕이고

방문을 나가는 청풍. 그 뒤를 벽세황과 벽옥령, 이세창이 따라 나가고

마은혜; (눈엣가시 같던 청풍이 놈을 옥령이와 멀리 떼어놓게 되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거실을 나가는 청풍과 벽세황, 벽옥령 등을 보며 냉소

! 닫히는 문

마은혜; (하지만 떼어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상황이 호전되어 청풍이 놈이 돌아오면 옥령이 그것이 또 정신 못 차릴 테니...) 사악하게 웃고

마은혜; (옥령이로 하여금 청풍이와 부부가 되는 걸 완전히 포기하게 하려면 청풍이 놈이 세상에서 사라져 줘야만 한다.) 사악하게 웃는 얼굴 크로즈 업

[...] 무언가 생각하는 벽초천. 마은혜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다.

 

#51>

<-자금성>

<-동창>

 

서류를 모아둔 도서관 같은 곳. 사람은 별로 없는데

한쪽 구석에 놓인 책상에 여러 권의 서류철을 놓고 분석하고 있는 담길

담길; (황제는 후궁들 외에 품계(品階)를 받지 않은 일반 궁녀들과도 동침할 수가 있다.) 서류를 넘기며 생각하고

담길이 보는 서류에는 각가지 장신구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비녀, 반지, 노리개, 향낭, 머리 장식등등

담길; (그럴 경우 경사방(敬事房;황제의 여자를 관리하는 환관조직)에서 동침한 날짜와 회수를 기록하고 증표를 주게 되어 있다.) 서류를 넘기고

담길; (대게 증표는 장신구나 패물이며...) (성은을 입은 궁녀에게 준 증표는 그림으로 그려서 남기게 된다.)

담길; (이 경사물목(敬事物目)이 그것이고...) 서류를 넘기고

담길; (잠깐 경사방에서 근무했을 때 경사물목에서 그 반지를 본 것 같다.) 청풍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떠올리고

담길; (워낙 특이한 반지라 기억에 남았었는데...) + [!] 생각하다가 눈 부릅뜨고

! 서류에 그려진 반지. 바로 청풍이 끼고 있던 그 반지다. 반지 옆에는 여러 가지 글이 적혀 있다. <寶林 白玲瓏> <乙酉年 十月 十七日> <巳時 酉時 承恩>이란 글이다

담길; (... 찾았다!) 극도로 흥분

담길; (금으로 만든 쌍룡패미환(雙龍敗尾環)!) (십구 년 전 당시 정육품 궁녀 보림(寶林)이었던 백영롱(白玲瓏)이 하룻밤에 두 번의 승은을 입고 그 증표로 쌍룡패미환을 받았다.) 그림과 글을 손가락으로 짚어 읽으며 흥분하고

담길; (그날 밤 백영롱은 수태했으며 즉시 품계가 올라가 정삼품 첩여(睫汝), 정이품 소의(昭儀)가 되었고...)

담길; (마침내 황자를 생산하여 정일품 현비(賢妃)가 되었다.)

담길; (하지만 현비가 된 백영롱은 황자를 생산한 후 한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물론 만귀비의 시기를 산 결과였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담길; (뿐만 아니라 백현비가 낳은 제삼(第三)황자도 그 직후 실종되어 버렸었다.)

담길; (우리 동창에서 파악한 바로는 백현비와 동향의 환관 장민이 만귀비의 독수를 피하기 위해 제삼황자를 빼돌린 것이다.)

담길; (장민은 만귀비가 보낸 자객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제삼황자의 생사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담길; (어쩌면... 전시에 나타났던 그놈이 바로 실종되었던 제삼황자일지도 모른다.)

담길; (황상과 사직을 위해서는 경사이지만...) (만귀비의 권세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있으니 은밀하게 확인을 해야만 한다.)

 

<다음 대 황제가 될 황세자(皇世子)는 원래 만귀비가 낳은 제일(第一)황자였다.> 현재 모습과 같은 모습의 만귀비가 강보에 싸인 아기를 안고 좋아하는 장면 떠올리고. 옆에 서있는 젊은 시절의 성화제도 좋아하고

<하지만 그 제일황자는 어려서 죽어버렸으며 만귀비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어린 아이의 시체. 그 여옆에서 울부짖는 만귀비. 만귀비를 달래며 함께 우는 젊은 시절의 성화제

<그 결과 만귀비에 위해 황후 자리에서 쫓겨난 폐황후(廢皇后) ()씨가 몰래 보호해온 제이(第二)황자가 황세자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15살쯤 된 청풍을 닮은 소년이 절을 하고 고개를 든다. 청풍의 어릴 적 모습을 빼닮은 이 소년이 당금의 황세자다. 물론 청풍의 이복형이다. 소년 앞에서 성화제가 반색 하며 의자에서 일어나고. 성화제 옆에 앉은 만귀비는 입술을 깨물며 노려보고 있다. 주변에는 환관과 궁녀들, 그리고 도도한 인상의 미녀가 소년 뒤에 서있다. 이 여인이 폐황후 오씨다.

 

담길; (문제는 지금의 황세자도 언제 만귀비의 독수에 희생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심각

담길; (그럴 경우 다시 황세자로 세울 다른 황자가 필요하다.)

담길; (어떻게든 그놈을 찾아내어 진짜 제삼황자인지 확인해야만 한다.) 강렬한 표정이 되고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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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우울한 古今第一人 (1)

 

 

 

석상(石像)이 바닥으로 내려와 있었다!

아니 석상이 아닌, 석상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곳에 서서 석상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 대충 차려입은 듯 성의없는 옷차림,

석두공은 그를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 왔습니까?]

그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추레한 백의를 입은 사람이 말했다.

[자네들 보다 조금 먼저...]

석두공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먼저 왔다면 자봉과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다 보았다는 말이 아닌가?

무림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석두공과 자봉이 전혀 기척조차 알 수 없었던 이 사람,

그는 자칭 고금제일인인 폭풍무존(暴風武尊)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 흐르듯 폭풍같은 기도는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지고 쓸쓸한 고독이 감돌고 있었다.

[사문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어째서 이곳 마중천에는...?]

석두공은 달아오른 얼굴을 빨리 지워버리려는 듯 물었다.

폭풍무존이 간단히 내뱉었다.

[여기가 바로 내 사문이었네.]

석두공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럼 저 석상이 정말로 노선배님...? ]

[아마도 그런 것같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

폭풍무존은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석상의 뒤로 걸어왔다.

[이젠 나가세.]

석두공은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폭풍무존의 모습에서 그는 인생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폭풍무존은 삼십대의 젊은이 모습이건만...

(없다. 천신폭풍탑을 만들고 이백 사십 년동안 무저갱 안에서 살면서도 죽지 않겠다고 생의 의지로 불타올랐던 그의 패기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석두공은 사람이 변해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선배님의 석상이 그곳에 서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조사이신 벽천검왕(劈天劍王)의 석상이 서있었다.]

[그럼 조사의 석상을 치우고 노선배님의 석상을 세웠단 말씀이십니까?]

[본좌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부... 아니, 우리 은세정검회(恩世正劒會)의 후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곳은 은세정검회였는데 언제부터 마중천이란 게 되었단 말인가?]

폭풍무존의 음성엔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스며있었다.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 버렸어!]

 

× × ×

 

석두공은 출구를 은밀하게 가리운 엄청난 폭포를 보고 감탄하며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구당협(瞿唐峽)!]

구당협은 장강의 물줄기가 대파산(大巴山)을 지나면서 급류가 되어 흐르는 곳이었다.

물고기가 이곳까지 오면 흐르는 물살에 배가 터져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험하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은 장강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 × ×

 

수양버들이 강물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곳에 작은 주점이 있었다.

주위에는 뙤악볕 아래서 낚시를 드리운 태공들이 여럿 보이고 우마차를 끌고 가는 소나 그 소의 고삐를 잡은 농부나 다같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석두공은 주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쉬었다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폭풍무존은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휘익!

강가에 나란히 앉아서 낚시를 드리우던 세 사람의 노옹(老翁) 중의 한사람이 휘두른 낚시바늘이 공교롭게도 폭풍무존의 옷자락에 걸렸다.

그러나,

스슥!

폭풍무존은 낚시바늘을 손가락으로 비벼버렸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낚시바늘은 쇠부스러기가 변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바늘이 옷에 걸리자마자 가루로 변해 버린 것이다.

노옹은 바늘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다시 물속으로 낚시를 던져 넣었다.

 

주점 안은 네 개의 탁자가 있을 뿐이지만 아주 정갈했다.

석두공은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같은 주인에게 술과 고기를 달라고 했다.

[우리 집에는 비늘달린 고기와 발 달린 고기가 고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주인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물었다.

석두공이 폭풍무존을 보며 눈으로 의향을 물었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묵묵히 있기만 했다.

[둘 다.]

석두공이 대답했다.

 

!

폭풍무존은 석두공이 따라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 잔을 내밀었다.

석두공은 다시 잔을 챘웠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게눈 감추듯이 입안에 들여부어버렸다.

석두공이 참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섰다.

[주인!]

[네네네... ]

[큰잔을 주시오. 그리고 술도 더 많이.]

술잔이 네배는 커졌다.

하지만 폭풍무존의 술을 마시는 속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술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이 앉은 자리에는 금방 빈 술통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폭풍무존이 폭음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주인은 속으로 금방 넘어가겠구나 했었다.

하지만 빈 술통이 하나 둘 늘어나고 급기야는 아직 익지도 않은 술을 땅에서 파왔을 때 주인은 안절부절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구! 저거 오늘 아무래도 일 치고 말지.)

심각한 폭풍무존의 표정, 그리고 그와 마주 앉아 잔을 채워주고 있는 젊은 석두공...

마셔도 마셔도 술은 취하지 않는다.

성질을 풀려고 술을 마시는 게 보통인데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 성질을 풀 방법은 성질을 부리는 것(?)밖에는 없다

주점의 주인만큼 이같은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과연 주인의 우려는 금방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재수가 없으려니 원... 제기랄! 낚시도 없는 바늘을 드리우고 고기를 잡겠다고 했으니 참내...]

강변에서 낚시를 드리웠던 세 노인이 들어오면서 그 중의 한 사람이 투덜거렸다. 폭풍무존의 옷자락에 겁도 없이 바늘을 걸었던 그 노인이었다.

[낄낄낄... 낚시도 없는 바늘을 드리웠다고? 바늘없는 낚시를 드리운게 아니고?]

다른 노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먼저 말했던 사람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뻔히 보았으면서도 말꼬리를 잡나? 대충 말하면 알아들을 거지...]

그러자 또 다른 노인이 말했다.

[화풀게, 낚시를 한지 벌써 오십 년이 넘었지만 오늘에야 진짜로 강태공이 되었잖은가?]

[! 나같은 필부야 팔십까지 살지도 못할 건데 무슨 강태공은...]

투덜거리던 사람이 그래도 화가 조금 풀리는지 수그러졌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이 앉아 있는 탁자의 뒤쪽에 있는 다른 탁자에 앉으며 그 노인이 소리쳤다.

[왕노이! 술을 갖다 주게.]

주인이 뛰쳐 나오며 말했다.

[... 나으리 술이 없습니다.]

[? 저 사람들이 마시는 건 술이 아니고 뭐야?]

!

탁자를 부술 듯 세차게 두드리며 노인이 일어섰다.

주인이 쩔쩔 매면서 말했다.

[나으리! 정말 현명하십니다. 실은 바로 저 술 때문에 나으리께서 마실 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집에서 마지막 술입지요 저게...]

[당장 이리로 가져오시오. 아직 뜯지 않았으니 우리가 마시면 될 것 아니오.]

그 낚시꾼은 말하면서 털썩 앉았다. 주인이 자신의 말대로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였다.

그에게선 투덜거릴 때와는 또 다른 위엄이 우러나왔다.

하지만 주인은 손을 비비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가뜩이나 분위기를 잡고있는 폭풍무존과 석두공의 면전에서 술통을 들고 뒤쪽의 탁자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낚시꾼의 신분이 범상치 않은 듯 주인은 손바닥만 서로 비빌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화난 노인을 달랬던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말했다.

[그럼 국수나 말아주게. ]

[아이구! 나으리 감사합니다요.]

주인이 허리를 꺾으며 절하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심술기가 있는 화났던 노인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주룩주룩 문지르기 시작했다.

스륵스륵!

탁자의 한쪽이 평평하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대패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에 대한 은근한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석두공에게만 위협이 되고 있었다.

석두공은 술을 조금 마시기는 했으나 주변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환히 알고 있었다.

(이거 큰일이다. 저 노인들이 이분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텐데...)

석두공은 속이 타는 것같았다. 만약에 그들이 폭풍무존을 건드려서 폭풍무존이 분노하게 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석두공의 속을 모르는 노인은 이제 대패밥같은 깎여진 나무를 훅 하고 불어보냈다.

휘리리리리...

석두공은 날아드는 대패밥을 안주를 집는 척하면서 소매로 막았다.

노인은 석두공이 대패밥을 막는 것을 보고 콧웃음을 쳤다.

[젊은 놈이 제법 주먹질을 하는 모양이군. ]

[어허! 이사람!]

다른 노인이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탕탕탕!

노인이 탁자를 세게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내입으로 말도 내 맘대로 못하는가?]

공력을 실어서 탁자를 두드리는 바람에 바닥이 울렸고 앞쪽에 있는 석두공과 폭풍무존의 탁자도 덩달아서 진동했다.

술잔도 튀어 올랐다.

그러나 석두공도 폭풍무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술잔을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버렸다.

노인들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폭풍무존과 석두공이 범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때 그들의 귀로 석두공의 회성전음(廻聲傳音)이 들려왔다.

[화를 자초하지 마십시오. 저와 함께 있는 이분은 어르신들보다 연세가 많으십니다.]

[! 무슨 미친 소리! 그럼 반노환동(返老換童)이라도 했단 말인가?]

참으려던 노인이 그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석두공은 크게 당황하여 폭풍무존을 보았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듣지도 못한 듯 술잔만 기울였다.

(휴우...)

석두공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밖에서 한명의 건장한 젊은이가 들어오며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사부님! 무슨 일이십니까?]

[글쎄 저놈이... ]

노인은 화가 난김이라 폭풍무존을 향해서 삿대질을 했다.

순간,

!

노인의 제자가 다짜고짜 폭풍무존에게 다가가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쨍그랑!

석두공은 너무 놀라서 술잔을 놓치고 말았다.

노인들도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젊은이가 그처럼 성급하게 행동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했다.

젊은이가 소리쳤다.

[사부님께 무례한 자는 본 화염장(火焰掌) 육백(陸白)이 용서하지 않는다.]

!

폭풍무존이 술잔을 놓고 일어섰다.

석두공은 주먹에 땀을 쥐며 말했다.

[사부...]

[사부? 내 무공을 배웠으니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군.]

폭풍무존의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폭풍무존은 아직 삼십이 되지 않은 듯이 보이며 오관은 반듯하고 몸은 건장하다. 석두공과 함께 있으면 형님과 동생 정도로 생각되는 정도이다.

폭풍무존은 등을 돌리고 나가며 말했다.

[가자!]

[...!]

[...?]

석두공은 일장의 피바람이 몰아치리라 생각했었다.

한데 폭풍무존이 처량한듯 말하며 주점을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석두공은 오히려 그 모습에서 진정으로 강한 자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슴을 망치로 치는 듯한 충격이었다.

[! 사부...]

먼저는 폭풍무존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부른 사부였지만 이번에는 진정으로 감복하여 부르는 소리였다.

그는 폭풍무존을 뒤쫓아 나갔다.

그때 주인이 주방에서 소리쳤다.

[공자님! 술값을 주셔야지요.]

[저런 파렴치한 놈들은 혼을 내줘야 하오. 내가 받아주겠소.]

화염장 육백이 도망치듯 나가는 폭풍무존과 석두공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무례하지마라!]

노인 중의 한사람이 외쳤다.

하지만 성질 급한 육백의 손은 벌써 폭풍무존의 가슴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석두공은 육백의 손이 다시 폭풍무존의 몸에 닿을 새라 주머니를 던지며 말했다.

[술값은 여기 있소.]

주머니가 육백의 손바닥을 쳤다.

[!]

육백은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두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실제로 손의 뼈가 깨어져버린 것이었다.

휙휙휙!

노인들이 달려나오며 소리쳤다.

[상처가 심하냐?]

[, 이자가 암습을...]

육백이 다른 손으로 석두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두공은 속에서 불덩어리같은 것이 치밀어올랐다.

(암습은 누가 했는데...)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폭풍무존이 다시 걸어가며 재촉했다.

[어서 가자.]

석두공은 주먹을 불끈 쥐고 세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주먹을 내리고 폭풍무존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폭풍무존의 등에는 짙은 고독이 드리워져 있었다.

[실수를 한 것같네.]

강을 따라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노인이 탄식을 했다.

[...!]

[...!]

[범상한 자가 결코 아닐세. 무슨 사연으로 술을 그처럼 마시는 지는 몰라도 마음이 큰 사람임에 틀림없네.]

[겨우 암습 따위나 하는 자들...]

육백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두 노인이 그를 쏘아보았다.

육백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육백의 사부인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모두 내가 책임지겠네.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목숨으로 책임지면 될 게 아닌가?]

 

× × ×

 

강변의 단애위에 노을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폭풍무존은 걸음을 멈추고 그 장엄하기 조차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깎아지른 단애는 오십 장 정도의 높이고 단애의 중간 중간에는 물새들이 집을 틀고 있었다. 둥지로 돌아오는 새들의 날개도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폭풍무존은 단애위로 올라갔다.

무협(巫峽)을 지나온 장강의 물살은 여전히 급했지만 표면에서는 잔잔함이 보였다.

폭풍무존이 석두공에게 물었다.

[자고 가겠느냐 아니면 그냥 떠나겠느냐?]

[사부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자고 가도록 해라.]

폭풍무존은 그렇게 말하고는 단애의 뒤쪽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자고 가도록 해라? 그렇다면 당신은 가지 않겠다는 말씀...!)

! !

폭풍무존은 숲에서 나무를 꺾고 있었다. 움막을 만들 생각인 모양이었다.

석두공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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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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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北雁蕩少年

 

 

 

북안탕(北雁蕩),

절강성(浙江省)의 동북단에 자리한 험산(險山)이다.

비록 중원오악과 같이 이름난 명산은 못되지만 산을 아는 사람이면 북안탕이 결코 중원오악에 못하지 않음을 안다.

산세가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마치 창날을 거꾸로 박아 놓은 듯한 첨봉(尖峯)이 연이어져 험준하기 이를 데 없다.

창끝같은 연봉이 성처럼 둘러 서 있는가하면 갑자기 끝이 보이지 않는 천인단애가 나타나곤 한다.

북안탕의 골골이 들어차 있는 원시림의 숲은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지쳐 죽을 때까지 헤매도 빠져 나오지 못하기 십상이다.

아직도 전인미답의 험지가 산재해 있는 곳이 북안탕이다.

자연히 북안탕의 심중(深中)에는 세속에서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독물(毒物) 괴수(怪獸)들이 잔생하고 있다.

또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기사회생의 효능이 있는 선약기초들이 자라고 있기도 하다.

벌려져 있는 곳곳마다 태고이래의 신비가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북안탕이다.

그때문에 선약기초를 찾는 무림인들이나 기상천외의 독물들을 구하려는 독문(毒門)의 괴인들, 그리고 채자(採者)들의 발길이 가끔 북안탕의 절지에 닿곤 한다.

 

북안탕(北雁蕩)의 아침,

자연의 순환은 한시도 쉬임이 없는 법이다.

찬연한 태양의 광휘가 북안탕 전체를 산뜻하게 비추었다.

여명에 쫓겨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의 잔영들이 찬란한 광휘에 산산이 흩어져 나갔다.

이곳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봉이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분지다.

분지에는 납작한 토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토막의 낮은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록, 모든 것이 빈한해 뵈는 산촌이지만 더 할 수 없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뵈는 산촌(山村)이다.

아침을 짓느라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토막들 사이의 공터에는 아침잠 없는 산골아이들이 모여 무엇인가 놀이를 하고 있다.

, 애들아 연홍이 형이다.”

동무들과 놀이에 열중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문득 허리를 펴며 말했다.

어디……

코흘리개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고 한쪽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앞으로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었다.

그 옥계의 옆에는 오륙 장 높이의 커다란 바위가 있으며 그 바위에 의지하여 한 채의 초옥이 서 있었다.

지금, 초옥 옆의 바위 위에 한 명의 청년이 서 있었다.

의연히 바위 위에 몸을 세우고 산봉 위로 떠오른 태양을 직시하고 있는 인물, 일견하여 범상해 보지 않는 인물이다.

햇빛에 그을려 피부가 구리빛으로 빛나고 있으나 그 용모는 이런 궁벽한 곳이 어울리지 않는 청년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청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신장이 육척 가까이 되고 가슴이 떡 벌어져 건장한 청년과같이 보이지만 그는 확실히 아직 완전히 치기를 다 못벗은 소년이었다.

십 육칠 세쯤 되었을까?

먹을 듬뿍 찍어 놓은 듯한 검미(劍眉), 서글서글하면서도 무엇인가 깊이 침잠해 있는 눈매,

더할 수 없이 곧은 코의 선과 그 밑으로 자리한 굳게 다문 입술,

마치 태산이 찍어 누른 듯이 굳게 물려 있는 두 입술은 천년세월이 지나도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오연히 태양을 직시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은 마치 웅비의 때를 기다리며 날개를 접고 있는 대붕(大鵬)의 모습과도 같았다.

때를 기다리는 고독한 대붕(大鵬),

소년은, 이 작은 산골의 우상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들과 소년들에게 있어서 이 거구의 소년은 신과같은 존재였다.

소년의 이름은 적연흥(赤燕興), 그의 아버지는 전직고관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적대인(赤大人)하면, 천하가 알아주는 청백리로 많은 백성들에게 흠모를 받았던 인물이다.

한데, 어느 해인가 신병(身病)이 심하게 일어 관직에서 물러나 북안탕 주위에 있는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그러나, 나날이 병이 중해져가고 본시 청렴한 인물로 관직에 있는 동안 재물을 모아본 적이 없는 적대인인지라 제대로 약을 써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적부인은 남편과 어린 아들을 이끌고 이곳 북안탕의 깊은 산촌으로 들어왔다.

본시 의가(醫家) 출신인 적부인은 북안탕 깊은 곳에 선약기초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의 병을 고칠만한 선약을 찾기 위해 이곳 북안탕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신병을 고칠 일념으로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북안탕을 뒤지고 다녔다.

규중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던 적부인에게는 실로 어렵디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 어려움을 남편의 병을 고칠 일념으로 감수하며 선약기초를 찾아 다녔다.

하나, 선약기초(仙藥奇草)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찾아질 수 있는 것인가?

그녀가 뜻을 이루기도 전에 적대인은 눈을 감고 말았다.

몇년 동안 전신이 만신창이 되도록 북안탕의 험봉을 헤매며 남편의 병을 고치려 했던 부인은 적대인이 이승을 떠나자 허탈감과 심화로 몸져 눕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번에는 어린 소년 적연흥이 북안탕을 헤매어야 했다.

쓰러진 어머니의 병을 고칠 약초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보낸 세월이 오 년이었던가 육 년이었던가?

소년 적연흥은 보통 소년들보다 몇 배나 빨리 자랐다.

가세가 빈한한 탓으로 병드신 어머니 봉양하기도 힘들지경이었다.

자연, 그는 주린 배를 야생의 과일이나 북안탕에 자생하는 약초들로 채워야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는 눈물이 날 정도로 쓰디쓴 약초들을 본의 아니게 장복하게 되었고……

그것이 득이 되어 소년은 누구보다도 건장하게 자랐고 어른들도 당하지 못할 신력(神力)을 지니게 되었다.

그뿐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산을 타기 시작한 소년 적연흥의 발걸음은 북안탕의 험산준령을 평지같이 내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년 전이었다.

어느날, 한 마리 맹호가 산촌으로 내려와 아이를 물어가는 호환(虎患)이 났었다.

마을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누구하나 맹호를 쫓을 생각도 못할 때였다.

소년 적연흥이 분연히 도끼 한 자루를 들고 맹호를 쫓아갔다.

마을사람들이 만류했으나 적연흥은 아무 말없이 나는 듯한 발걸음으로 맹호를 쫓았다.

적부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하루를 보냈을 때였다.

석양을 등지고 피투성이가 된 적연흥이 돌아왔다.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정수리가 갈라져 죽은 맹호를 끌고……

마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른 열 명이 상대해도 잡기 힘든 맹호를 소년 혼자 잡은 것이었다.

소년은 맹호를 잡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이후로, 소년은 마을의 자랑이었으며 수호신적인 인물이 되었다.

또한, 소년은 어머니를 보다 잘 공양할 법을 깨달았다.

호랑이의 가죽을 벗겨 산 밑의 시진에 내다 팔아 어머니께 오랜만에 성찬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사냥에 몰두했다.

그의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말렸으나 그는 미소 지을뿐 사냥을 그만 두지 않았다.

그 후 일년, 몇 차례 맹수를 잡다가 크게 다치기도 했으나 이제 그는 한 명의 어엿한 사냥꾼이 되었다.

그것도 보통 사냥꾼이 아닌 북안탕 제일의 맹수 사냥꾼이 된 것이다.

그의 힘은 능히 거웅(巨熊)의 허리를 꺾어 죽일만하고 그의 발걸음은 맹호를 따라가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활솜씨는 백보 밖의 움직이는 표적이라도 절대 놓치지 않을 뿐더러 즐겨 쓰는 한 자루 도끼만 손에 들면 어떤 맹수라도 때려 누일 수 있었다.

그런 소년 적연흥인지라 마을의 아이들과 소년들은 그를 마치 산신(山神)과 같이 떠받들었다.

하나, 그는 언제나 고독했다.

창공을 비상할 대붕, 그에게 이곳 북안탕은 너무나 좁았던 것이다.

보시 과묵한 그는 더욱더 말수가 적어져 갔다.

비록 그가 그러한 사실을 내색치는 않았으나 적부인은 아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부인은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

적연흥은 길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돌아섰다.

흥아……

문득, 초옥 안에서 병색이 완연한 중년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 적연흥은 급히 바위를 뛰어 내렸다.

―― !

그의 몸은 마치 한 마리 비호가 날아내리듯 가볍게 바위위에서 뛰어 내렸다.

어머님, 기침하시었사옵니까?”

적연흥은 정중한 어조로 말을하고 방문을 여었다.

약초 내음이 확 풍겼다.

초옥의 방안은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방안의 천정에는 약초뭉치가 주렁주렁 걸려 있으며 방의 한쪽 벽에는 수백 권의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지금, 방문의 맞은편에는 한 좌의 침상이 놓여 있었다.

침상은 손으로 정성들여 깎아 만든 것이었고 침상 위에는 호피가 깔려 있었다.

그 침상 위에 한 명의 중년여인이 힘겨운 듯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비록 병색이 완연하기는 하였으나 본 바탕은 은은한 기풍을 지닌 미부인이었다.

일견하여 적연흥의 단정한 용모는 중년부인과 매우 흡사하였다.

오냐, 네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가자꾸나.”

부인이 힘들여 몸을 일으켜 앉자 적연흥은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부인을 부축하였다.

두 사람은 방문을 나섰다.

 

맑은 아침이다.

적부인은 적연흥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두모자는 초옥 뒤의 둔덕 위로 올라섰다.

둔덕 위의 양지쪽, 잘 다듬어진 하나의 봉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첩이 왔사옵니다.”

적부인은 봉분 앞에 힘없이 앉았다.

이 봉분이 적연흥의 부친인 적대인이 묻혀 있는 것이었다.

적부인은 서글픈 눈길로 봉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길이 힘겹게 봉분을 쓸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적연흥은 공손히 시립한 채로 묵묵히 바라다 보았다.

두 모자는 한동안 굳은 듯이 묘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적부인이 나직한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흥아, 오늘도 사냥을 나갈 것이냐?”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은 신무애(神霧崖) 쪽으로 가볼 생각이옵니다. 그곳은 늘 음한지기가 깔려 있으니 어쩌면 어머님의 병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담석화(曇石花)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적부인의 눈가에 안스런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 에미 때문에 어린 네가 이 고생을 하니…… 이 모진 목숨 빨리 끊어져 네 아버님께 갔으면 좋겠구나.”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부디 오래오래 사셔야 하옵니다.”

적연흥의 말에 적부인은 아들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아마도 아들의 얼굴에서 이미 땅에 묻힌 남편의 영상을 찾으려 하는 듯한 눈길이었다.

휴우……

적부인은 이윽고 시선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만 내려 가시옵소서. 가을인지라 아침바람은 차옵니다.”

적연흥은 어머니의 가냘픈 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젖먹이 때에는 온 천지같이 넓고 이세상 무엇보다도 커보이던 어머니지만 지금은 너무나 가냘프고 작아 보였다.

특히 병마로 시달려 앙상한 적부인은 애처로울 정도로 작아 보였다.

적연흥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부축하여 초옥으로 들어갔다.

 

일각 후, 적연흥은 전통(箭筒)을 짊어지며 초옥을 나섰다.

해는 이미 중천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머님, 다녀 오겠사옵니다.”

적연흥은 열린 방문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오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라.”

적부인은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연흥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인 뒤에 초옥을 떠났다.

그의 왼쪽 허리에는 반자 정도의 폭이 좁고 날이 날카롭게 선 손도끼 한 자루가 걸려 있고 오른쪽 허리에는 약초자루가 걸려 있었다.

허허, 오늘도 사냥을 나가시는구먼. 호랑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오시게.”

마을을 지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적연흥에게 말을 건넸다.

적연흥은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이 잠깐만.”

적연흥이 막 마을을 걸어 나가려는데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적연흥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에 한 명의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마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냥꾼이었다.

그 젊은 사냥꾼은 헐떡이며 적연흥에게 다가왔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구씨 청년은 숨을 가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알려 줄 일이 있네. 요 근래 이 주위에 여러 명의 괴인들이 출몰하고 있어. 그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펄펄 나는 재주들을 지닌 인물들로서 성격들이 포악하니 주의하게.”

구씨 청년의 말을 들으며 적연흥의 검미가 찡긋 하였다.

무림인들이 북안탕에 무슨 일로 나타난 것일까?’

그는 이어 구씨청년에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구씨청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마을 주위에 나타났던 괴인들만도 이십여 인이 넘네.”

이십여 명이 넘는다고요?”

그러네……

적연흥은 내심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려서 병든 아버지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며 아버지로부터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그 때문에 잘은 모르나 무림(武林)이라는 집단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무림인들이 적잖이 북안탕에 모인 모양이구나.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아뭏든 주의하게. 그들과 충돌하는 일 없도록 하여야 하네. 그런 괴인들과 상대해서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구씨청년의 말에 적연흥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구씨청년은 사람 좋게 씨익 웃었다.

고맙기는…… , 이만 가네.”

구씨청년은 시내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잠시 자리에 서서 구씨청년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적연흥도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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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장경각> . 많지는 않지만 장경각 주변을 오가는 황금전장 사람들

삘릴리! 삘릴리... 갑자기 들리는 피리소리.

흠칫! 놀라며 돌아보는 사람들

[누가 피리를 부는 거지?] [음률은 잘 모르지만 심금을 울리는 것 같구만.] [기가막힌 피리소리야.] 사람들 장경각을 보며 황홀한 표정

 

#44>

장경각 내부. 삘릴리! 삘릴리... 피리소리가 들리고. 책을 정리하거나 책꽂이들 사이에 놓인 커다란 책상에 둘러앉아서 글을 쓰던 서생들도 흠칫! 하며 돌아보고. 그 서생들 중에는 장경각 부총사서 조무성도 있다. 조무성도 서류 정리하던 중이다. 조무성 캐릭터는 #6>에 나왔었음

조무성; [청풍이냐?] 피리 소리 들리는 쪽을 돌아보며 다른 서생들에게 묻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장경각 부() 총사서 조무상(趙無想)>

서생1; [! 청풍이는 요즘 음률 공부에 푹 빠져있습니다.] 맞은편의 서생이 대답하고., 그 배경으로도 피리소리가 들리고

서생1; [배우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늘 그렇듯이 단번에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조무성; [저놈이 피리 부는 건 몇 번 들어보지 못했는데...] 갸웃

서생1; [얼마 전 총사서께서 들어보시고는 가르칠 스승이 없겠구나 하셨을 정도입니다.]

조무성; [음률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총사서의 말씀이시니 의심의 여지도 없겠지.] 다시 서류 작업을 하고

조무성; [하여간 징그러운 놈이다.] [무엇이든 너무 쉽게 배워 우리같은 범인들을 낙담시켜버리니...] 한숨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른 서생들도 동조하며 다시 하던 일을 한다

 

#45>

높은 책꽂이들 사이에 놓여있는 커다란 책상. 청풍 혼자만의 공간인 그곳. 여전히 책상에는 책들이 많이 쌓여있는데 청풍이 책상 앞에 앉아서 피리를 불고 있다. 두 손으로 들고 옆으로 부는 피리. 시선은 책상에 놓인 몇 장의 종이에 향하고 있다.

청풍이 보는 그 종이에는 일정 간격으로 글이 적혀있다. <> <> <> <> <>의 다섯 글자가 뒤섞여서 죽 적혀있다.

청풍; (음률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직접 작용한다.) 피리 불며 생각하고

청풍; (그래서 옛 성현들은 음률을 중요시 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하늘도 움직이니...) 이마가 조금 찡그려지고

청풍; (하지만 오늘은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고

청풍;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일 텐데... 물론 이 불안의 근원은 옥령이다.)

청풍;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청풍;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과연 인간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배가 고팠을 때와 배가 불렀을 때의 생각이 같을 수 있을까?)

청풍; (유감스럽게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생각하며 피리에서 입을 떼고. 이어

청풍; [왔어?] 한쪽 책 꽂이 사이를 보고. 어둑한 그곳에 여자가 서있다.

울고 있는 여자는 물론 벽옥령이고

청풍; [왔으면 기척을 내야지. 옥령이 너 답지 않구나.] 웃으며 피리를 책상에 얹어놓고. 그러자

벽옥령; [흐윽!] 와락 청풍의 품에 안기는 벽옥령. 약간 놀라지만 끌어안는 청풍.

벽옥령; [어떻게 해 오빠? 우리 어떻게 해?] 청풍의 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우는 벽옥령,

벽옥령; [엄마가... 엄마가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해! 날 다른 혼처로 시집보내겠다는 거야.] 청풍의 무릎 위에 옆으로 걸터앉는 자세로 안기며 울고

청풍; (역시...) 한숨 쉬며 다독이고

벽옥령; [난 절대 다른 데로 시집 안가! 그럴 바에는 혀를 칵 깨물고 죽어버릴 거야!] 청풍의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치고

청풍; [그런 말 하면 못쓴다 옥령아.] 벽옥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

벽옥령; [그럼... 그럼 날 데리고 도망쳐줘!] 고개 들고

벽옥령; [끝내 엄마가 날 다른 사내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면 나와 함께 야반도주하겠다고 약속해줘.] 눈물 가득한 눈으로 청풍을 올려다보고

청풍; [그래 약속하마.] 벽옥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고

청풍; [나도 널 절대 다른 놈에게 뺏길 생각이 없으니 안심하거라.] 벽옥령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벽옥령; [지금 그 말 잊으면 안돼! 날 절대 포기하면 안되는 거야.] 다시 청풍의 품에 안기며 울고

청풍; [장주님... 아버님은 뭐라고 하시더냐?]

벽옥령;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 나하고 엄마만 언쟁을 벌였고...]

청풍; [그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게다.]

청풍; [아버님은 무엇보다 신용을 중시하시는 분이니 나와의 약속도 결코 깨지 않으실 게다.] 달래고

벽옥령; [옥령이도 그렇게 믿고 싶어.] 진정하며 청풍의 가슴에 뺨을 대고

청풍; (옥령이를 달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소리없이 한숨 쉬고

청풍;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조석(朝夕)으로 변하는 존재라 안심할 수가 없구나.)

<과연 옥령이와 내가 순조롭게 맺어질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게 솔직한 지금의 내 심정이다.> 끌어안고 있는 청풍과 벽옥령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그리고 좀 떨어진 곳의 책꽂이 사이에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강혜분

강혜분의 시점. 청풍과 벽옥령의 모습

강혜분; (가엾은 아이들...) 소리없이 한숨

강혜분; (아무쪼록 운명이 저 아이들을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숨 쉬며 돌아서고

 

#46>

<-천주산>

<-은일곡> 은일곡의 폐허. 중앙 광장에서 대련 중인 위진천과 섭아연. 섭아연은 두 자루의 휘어진 칼을 들고 있고 위진천은 검을 한 자루 들고 있다

중앙에 선 위진천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면서 양손의 칼을 놀리는 섭아연.

츠츠츠! 츠츠! 섭아연의 칼에서 아지랑이같은 기운이 번져 오르고

섭아연의 눈은 마녀처럼 섬뜩하게 변했다.

위진천; (이거 섬뜩한 걸!) 웃고 있지만 내심 긴장하고

<섭아연... 저 계집의 칼과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다.> 마녀같은 분위기의 섭아연

위진천; (수라칠식을 며칠 수련했다고 저토록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는 건가?) 긴장하며 생각할 때

스악! 양손의 칼을 휘두르며 쇄도하는 섭아연. 마치 팔이 여러 개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고. 인도의 여신 칼리처럼 보인다.

위진천; (검기가 들이닥치기 전에 살기가 먼저 폭풍같이 엄습해서 몸을 얼려버린다.) 스악! 마주 검으로 칼춤을 추며 생각하고

위진천; (그 때문에 상대는 대응이 늦어져서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 ! 여러 개로 변해서 여러 개로 보이는 섭아연의 칼을 막는 위진천의 검

카캉! 스악! 막은 위진천의 검을 타고 흐르며 파고 드는 섭아연의 칼들

위진천; (저년의 검이 내 검과 검기를 타고 파고든다.) ! 카캉! 휘익! 몸을 맹렬히 돌리면서 검을 휘둘러 섭아연의 공격을 막고 피하는 위진천

독사같이 파고 드는 섭아연의 칼들. 위진천의 검을 타고 올라오기도 하고

스악! 서걱! 바람처럼 파 고든 섭아연의 칼들이 위진천의 옷을 베고 피부에 깊지 않지만 상처도 내고

위진천; (방심하면 안되겠다.) 부르르! 휘두르는 검이 진동하며 떨리고

! ! 위진천의 진동하는 검에 부딪힌 섭아연의 칼들이 튕겨지고

그 바람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섭아연

위진천;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다.) 스악! 섭아연의 목으로 파고드는 위진천의 검. 섭아연은 양손이 벌어져 피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직후

위진천; [!] 경악하는 위진천. 눈 옆으로 파고 드는 섭아연의 칼 끝

섭아연의 팔이 휘어지며 칼을 옆에서 안으로 찌르고 있다

위진천; (위험!) 스악! 공격을 포기하고 몸을 돌리면서 검을 휘두르고

! 위진천의 진동하는 검에 부딪힌 섭아연의 칼이 튕겨져 나가고.

칼을 놓치며 물러서는 섭아연. 추격하지 않는 위진천

퍼억! 한쪽 바닥에 박히는 섭아연의 칼

주르르! 뺨에 상처가 생겨서 피가 흐르는 위진천의 얼굴

섭아연; [다치셨나요?] 물러서던 몸을 세우며 묻고. 차가운 표정

위진천; [걱정하지 마시오. 살짝 긁힌 것 뿐이오.] 뺨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손가락으로 닦고

위진천; [하여간 놀랍소. 과연 검성의 손녀는 달라도 뭐가 다르구려.] 피를 닦으며 과장되게 웃고

위진천; [수라칠식을 불과 삼초만 익히고도 내게 상처를 입힐 줄은 꿈에도 몰랐소.] 상처에서 손가락을 떼고

섭아연; [공자께서 여러모로 지도를 해주신 덕분이지요. 감사드려요.] 고개 숙이고

위진천; [지도는 무슨...] 말하다가 고개 돌리고

섭아연도 돌아보고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있는 여자. 30살쯤인데 웃는 얼굴. 요부 분위기. <무쌍일지>에 나온 <혈부용>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이름은 혈부용

고개 조금 숙이는 혈부용

섭아연; [손님이 오셨군요.] 혈부용을 보고

위진천; [혈부용(血芙蓉)이라고... 우리 가문의 일원이오.] 혈부용을 소개하고

섭아연에게 고개 숙이며 웃는 혈부용

섭아연도 마주 고개 숙이고

위진천; [내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온 듯 하니 잠시 실례하겠소.] 철컹! 검을 칼집에 꽂으며 말하고

섭아연; [전 상관 마시고 일을 보도록 하세요.] 고개 조금 숙이고

위진천; [그럼 다녀오겠소.] 혈부용에게 가고.

다가오는 위진천에게 다시 인사하는 혈부용

곧 함께 멀어지는 위진천과 혈부용

섭아연; (위진천...) 멀어지는 위진천의 뒷모습 보는 섭아연의 시선이 싸늘해진다.

섭아연; (몇 번 출신 내력을 물어보았지만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섭아연; (그 때문에 확실한 정체를 알 수 없는데...) (분명한 것은 대단한 배후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쪽으로 가고. 그곳에는 위진천의 반격에 의해 튕겨진 칼이 꽂혀있다.

섭아연; (수라칠식의 비급을 서슴없이 준 것도 그렇고...) ! 바닥에 꽂혀있던 칼을 뽑아들고

섭아연; (방금 전 내 공격을 튕겨버린 무공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뽑아든 칼을 살피고.

칼날이 조금 깨져 있다.

섭아연; (잘 해야 일천대고수에 들 정도라고 겸양했지만... 내가 보기에 위공자는 백대고수에 들고도 남는 실력자다.)

섭아연; (숨기는 게 많은 인물이라 찜찜하지만 상관없다.) ! 다시 두 자루의 칼을 쳐들어서 칼춤을 출 준비하고

섭아연; (우리 집안의 원수가 정파백도의 인간들이라는 건 분명하고... 위공자의 도움 덕분에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 스윽! ! 양손의 칼을 움직여서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몸에서 살기가 번져 나오고

섭아연; (무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복수를 할 수만 있으면 마귀와도 동침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심정이니...) 이를 갈며 칼춤을 추는 섭아연

 

#47>

은일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위진천이 혈부용과 마주 앉아있다. 작은 바위를 의자 삼아서

위진천; [호천맹이 급습을 했다?] 찡그리고

혈부용; [그 바람에 환마루주가 납치한 관리들의 대역이 모두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고 하옵니다.] 눈치 보며 보고하고

위진천; [쯧쯧! 얼마나 방비가 허술했으면 기습을 당해 전멸한단 말인가?] 혀를 차고

혈부용; [대비는 나름대로 했다고 하옵니다.] [백살파에서 부파주인 인도부가 직접 자객들을 이끌고 합류해서 경호를 하기도 했고...]

혈부용; [하지만 위상영이 이혼비파로 백살파의 자객들을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바람에 변변한 저항도 못했다고 하옵니다.]

위진천; [위상영! 위상영!] 눈 번뜩

위진천; [그 망할 년이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군.] 살기. 이를 부득

혈부용; [황실을 대상으로 추진하던 이번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후유증이 만만하지 않게 되었사옵니다.]

위진천; [황실을 건드린 게 들통 났으니 동창과 금의위가 우리 지존회를 가만 두려고 하지 않겠지.]

혈부용; [회주님께서도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시고 대비책을 강구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위진천; [회주님이 직접 나서신다면 어떻게든 수습이 되겠지만...]

위진천; [위상영, 그년을 방치하면 앞으로도 이번 같은 피해가 이어질 텐데...]

혈부용; [그래서 회주님께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기에 이르셨사옵니다.]

위진천; [특단의 조치?]

혈부용; [위상영을 화산(華山) 창천애(蒼天崖)로 유인하기 위한 밑밥을 뿌려두었으니 소회주님께서 마무리를 지으시라는 분부가 계셨사옵니다.] 요사하게 웃고

[!] 놀라는 위진천

 

#48>

<-북경>

<-자금성>

어느 건물. 관리들이 드나들고 있고. 화려한 복장의 금의위 위사들과 환관들도 드나든다.

 

관리1; [!] 종이를 들고 앉아서 놀라는 관리1. 이자는 #29>에서 과거 보려는 청풍의 신분을 확인했던 그자. 이자는 황금전장에 매수되었다. 장소는 사무실 분위기의 넓은 실내. 수많은 관리들과 환관들이 책상을 둘러싸고 앉아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다.

관리1이 보고 있는 종이에는 청풍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관리1; [... 그러니까 이 용모파기의 당사자를 찾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는 건가?] 같은 책상에 앉은 다른 관리들에게 묻고. 관리들은 서류를 넘기며 책상 위에 놓인 몇장의 용모파기를 대조하고 있다.

관리2; [동창의 제독태감께서 직접 내리신 지급의 명령일세.] 서류를 보며

관리2; [지난 번 전시에 참가한 모든 응시자를 만나서 그 용모파기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라는 거야.]

관리1; [...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긴장. 공포

관리1; [동창의 수령인 제독태감께서 왜 이자에게 관심을 두시는 건데?]

관리2; [우리야 모르지. 제독태감은 절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능구렁이로 소문이 나있잖은가?]

관리3; [분명한 건 그 용모파기의 주인이 큰일 났다는 사실이야.] 다른 놈이 끼어들고. 그자를 보는 관리1

관리3; [동창에 찍히는 건 대부분 역모나 대역죄를 저질렀기 때문 아닌가?]

관리1; [... 그렇지.] 식은 땀. 억지 웃음

관리3; [과거 시험장에서 제독태감이 목격했다니까 잡히는 건 시간문제인데...] [일단 그자가 잡힐 경우 터럭만한 관련이 있는 인간도 큰일 나는 거지.]

관리3; [가벼우면 몇 대 맞고 끝날 수도 있지만 심각한 사안이면 삼족이 주멸 당할 수도 있어.] 음산하게 웃고

관리1; (... 삼족 주멸!) 사색이 되고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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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력>

 

1983년 7월, 정확히 37년 전에 전5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와룡강이란 필명으로 출간한 3번째 작품이기도 하지요.

(데뷔작이 무림군웅보, 두 번째 작품이 천세무림기보입니다.)

훗날 <나한대협>으로 확장증보판이 발간되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序 章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과 도룡천황(屠龍天皇)

 

 

 

――복종하라!

불연(不然)이면, 혈령(血靈)을 만나리라!――

 

일성대갈(一聲大喝)이 천지(天地)를 뒤흔든다.

한 명의 효웅(梟雄)이 몸을 일으켰다.

육 척 거구, 검은 장포, 구만 리 장천을 꿰뚫는 무서운 안광, 그는 단신(單身)이었다.

아니, 단신이라 할 수 없었다.

한 자루 검이 한시도 그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으므로――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선홍(鮮紅)의 검신을 지닌……

 

<천마검(天魔劍) 혈령(血靈)>

 

검명(劍名)이다.

천하가 떨었다.

일시에 중원뿐 아니라 대막(大漠), 새외(塞外), 관외(關外), 안남(安南), 심지어 천축(天竺)에 이르기까지 모든 마()의 추종자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엎드려 머리를 대지에 처박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오오, 조종(祖宗)이시여. 영원한 마의 조종이시여――

 

 

그 이름,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마도(魔道)에 있어서 전설같이 내려오는 절대마종(絶代魔宗).

본래 마도에는 한 가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혈령(血靈)이 주인을 찾으리라. 그가 바로 조종(祖宗)이시니라――

 

혈령(血靈)!

이는 한 자루 검의 이름이다.

끔찍하고도 처절한 비사를 지닌 마도 제일기보(第一奇寶).

이는 스스로 영성(靈性)을 지녀 주인을 찾는다고 전한다.

천마혈령검(天魔血靈劍)이라 불리는 이 마검을 다스리는 자!

그가 바로 영원한 마의 조종인 절대마종이 된다는 것이다.

한데, 천여 년 간 잠들었던 천마혈령검이 나타난 것이다.

천마혈령검이 주인으로 택한 인물,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

 

바로 이 인물!

수천 년 무림사에서 항시 정도(正道)에 패하여 짓눌려 있던 마()를 부활시킨 인물,

 

――으하핫! ()란 곧 도()이며 본 조종은 곧 법()이니라. 무릎을 꿇어라. 아니면, 혈령(血靈)의 제물로 만드리라.――

 

그의 일성에 중원이 몸서리를 쳤다.

삽시에 그의 휘하로 수만 명의 마도고수들이 모여들었다.

 

――십만지존충사(十萬至尊忠士),

 

천마대조종 수하로 모여든 마인들이 스스로 칭한 이름이다.

광풍노도!

중원뿐 아니라, 천하가 일시에 마풍에 휩쓸려 들어갔다.

당시는 중원 무림 최대의 번영기,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최강의 고수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마의 세력은 너무나 가공했다.

천마혈령검(天魔血靈劍)의 혈기가 천지를 뒤덮으니 등천할 무공을 지녔다던 천하의 고수들이 짚단 쓰러지듯이 쓰러졌다.

 

――하늘이시여! 이대로…… 이대로 정도의 정기가 허물어져야 하오니까?

 

태산 관일봉(觀日峯)에서의 최후결전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한 정파의 최고기인들.

 

우내사존(宇內四尊)!

 

그들은 치욕스런 도주를 하며 피눈물을 뿌렸다.

 

――으하하, 그대들의 목숨만은 거두지 않겠다. 이는 본 조종이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룬 기념으로 베푸는 단 한 번의 은혜이니라――

 

달아나는 우내사존을 바라보며 천마대조종은 천지를 뒤흔드는 광소를 터뜨렸다.

치욕(恥辱)!

무인으로서, 그것도 백년 내 최고기인들이라던 우내사존(宇內四尊)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스런 도주였다.

그러나, 그들은 피눈물을 삼키며 만천하의 조롱을 짊어진 채 관일봉을 떠났다.

오로지 회천대업(回天大業)을 꿈꾸며……

그리고, 천하는 혈령(血靈)의 혈기(血氣) 아래 굴복하였다.

 

마도천하(魔道天下)!

 

마도인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영광이었고 반면 정도인(正道人)들에게는 죽음의 암흑기였다.

일말의 서광도 비치지 않는……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정파기인들이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돌연, 관일봉에서 천마대조종의 광소를 등에하고 도주했던 네 명의 고수,

우내사존(宇內四尊)!

그들이 돌아왔다.

그들의 노안은 비장하게 빛나고, 그들은 한 명의 인물 뒤에 시립하고 있었다.

그 인물, 붉은 장포, 학발동안, 그리고, 그의 한 손에는 길이 일 장이나 되는 한 폭의 깃발이 들려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도룡천황(屠龍天皇)>

 

도룡천황(屠龍天皇)이시다!

몸을 숨기고 칼을 갈던 정파기인, 고수들이 환성을 터뜨렸다.

마치, 천마대조종이 처음 강호에 나타났을 때 마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룡천황(屠龍天皇)!

그는 전설적 인물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미 백여 년 전에 죽었어야할 인물이다.

한데, 이미 우화등선(羽化登仙)했을 것이라 믿어졌던 전설의 전대기인이 무림에 나온 것이다.

이는 모두, 우내사존(宇內四尊)이 십년 동안 뼈를 깎는 고생으로 얻은 결과였다.

관일봉에서 패한 후 우내사존은 천마대조종을 제어할 인물은 단 한명, 전설상의 고금제일비문 천황문(天皇門) 문주인 도룡천황(屠龍天皇) 뿐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날로 우내사존은 도룡천황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천하를 주유한 끝에 도룡천황의 은거지를 찾아내고 간곡한 청을 넣어 도룡천황을 무림으로 불러 내었던 것이다.

 

――아이야! 노부와 일전을 치를 자신이 있느냐?――

 

도룡천황이 천마대조종을 불렀다.

거절할 천마대조종이 아니었다.

마침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일전이 벌어졌다.

한쪽은 최초의 마도조종사의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다른 한쪽은 천마대조종보다 다섯 배나 더 나이가 많으며 고금제일비문 천황문(天皇門)의 주인 도룡천황(屠龍天皇),

대격전.

양인의 절대고수는 십주십야를 쉬지않고 격돌했다.

그들의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그들의 격전이 있었던 태산 관일봉이 그후 백 자(百尺)나 낮아졌다던가?

드디어, 십일의 격전 끝에 결판이 났다.

 

――크하하…… 본 조종이 패했오! 그러나, 본 조종은 이번의 패배에 설복할 수 없오.

십년 후, 십년 후에 다시 한번 가르침을 받겠오――

 

!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그가……

영원히 패하지 않을 것으로 믿어졌던 그가 패했다.

비록, 무엇인가 지극히 원통한 안색이었으나 천마대조종은 패한 것이다.

―― ―― !

천마혈령검이 주인의 심정을 안듯 통한의 검명(劍鳴)을 울렸다.

휘르르……

천마대조종은 사라졌다.

도룡천황은 한 손에 쥔 도룡천황혈기(屠龍天皇血旗)를 늘어뜨린 채로 망연히 사라지는 천마대조종을 바라 보았다.

결국, 이렇게 하여 다시 천하는 마의 기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중인들이 환호하였으나 도룡천황은 쓸쓸한 표정으로 태산을 떠났다.

그후,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천마대조종은 도룡천황을 모종의 장소로 불러 들여 도전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도룡천황(屠龍天皇)……

모든 것이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양대 거두가 사라진 무림에서는 마도와 정파의 대혈전이 벌어졌으며 마침내 정파가 승리하여 마도는 몰락하고 말았다.

세월은 바람과 같은 것.

쉬임없이 흘러 지나갔다.

십년……

백년……

이백 년……

드디어,

삼백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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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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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무려 37년 전에 전 5권으로 출간한 박스본 무협지입니다.

한자 제목은 <魔宗天皇譜>

<보(譜)>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며 와룡강의 첫 히트작이기도 합니다.

그 전에 출간한 <무림군웅보>, <천세무림기보> 보다 판매량이 압도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득한 37년 전의 작품이라 실소가 나오는 구성과 문장이 도처에 보일 것입니다.

그래도 추억 삼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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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장

 

             마음을 가두는 기이한 성형진 (2)

 

 

땅속이 분명하지만 이곳의 모든 것은 마치 해가 뜨기 전의 여명처럼 훤하다.

복도와 대전의 천정 부근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형광(螢光)의 구름덩어리가 엷게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석두공은 지하에 이같은 건축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만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치 죽어버린 어둠의 성시(盛市)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대전들을 지났으며 무수한 석실들과 회랑을 지났다.

하지만 황폐한 마중천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커녕 시체 하나 널려있지 않았다.

석두공은 마중천 안에서 숨쉬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 그리고 함께 들어온 그 여인 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요...

음산...

그리고 죽음이 마중천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같았다.

(마중천은 오백 년 전에 무림을 독패하다 시피했던 절대적인 세력이다. 한데 그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입구에 쓰여있는 대로 그들이 자중지란을 당해 죽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시체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석두공에게는 이것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점점 마중천의 중심부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기물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득 석두공은 걸음을 멈추었다.

막다른 곳이었다.

그의 앞을 악마의 형상이 생생하게 새겨진 황동으로 만들어진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를 기관장치를 주의하면서 석두공은 공간을 격하고 황동의 문을 밀었다.

문은 그 육중함과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소리없이 열렸다.

스르르릉...

천정의 높이는 삼십여 장,

넓이가 족히 오천 평에 달할 것같은 원형의 둥근 광장이 문사이로 드러났다.

원형 광장의 가운데에는 이장 정도 높이의 석상(石像)이 하나 서있었다.

거인의 형상을 한 그 석상의 모습은 뜻밖에도 석두공이 알고 있는 그 누군가와 아주 닮아 있었다. 오연히 고개를 들고 천하를 좌시하듯이 서있는 석상...

(폭풍무존!)

석두공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석상의 모습은 영락없는 폭풍무존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철봉을 이어서 만든 별모양의 기구가 들려있었다.

석두공은 천천히 석상을 향해서 다가갔다.

석상 앞에는 이미 선객(先客)이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멍하니 서서 석상의 손에 들려진 별모양의 기구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석두공은 석상을 뒤로 돌았다.

(아무리 보아도 폭풍무존이다. 그렇다면 폭풍무존은 마중천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는 스스로 은세정검회라는 곳의 정통을 이어갈 제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천신폭풍탑에서 읽었던 것을 상기해 내고는 치밀어 오르는 의문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석두공은 소림사에서 만배선사에게서 정심신주를 배운 이후 점차 머리가 무엇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의 기억력은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기억력을 십배 뛰어넘은 것이다.

매를 맞으며 죽음의 고통 속에서 살기 위해 기억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능력이다.

그때였다.

[아아아! ]

석상의 손에 들리워진 별모양의 기구를 바라보던 여인이 갑자기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인의 무공은 이미 경지를 벗어난 것이기에 어떤 기관으로 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같은 데 갑자기 혼자서 쓰러진다니...

석두공은 그녀가 쓰러진 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끈끈한 느낌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은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고 있었다.

[풀어야 하는데... 저것을 풀어야만 하는데... ]

그녀는 혼수상태에서 손을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은 별모양의 기구를 향하고 있었다.

석두공은 생각했다.

(저 성형(星形)의 기구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말인가? 능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곳는 마중천의 가장 중심지가 아닌가?)

스스로 그럴 것이란 결론을 내린 석두공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여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꿈을 꾸는 듯 몽롱한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의 심장을 풀쩍 뛰게했다.

석두공은 별모양을 보기도 전에 여인의 미모에 정신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여인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살며시 여인의 도화꽃 같은 볼을 손가락 끝으로 건드려 보았다. 짜릿한 흥분이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

석두공은 고개를 들고 일어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행동이 그야말로 소인배의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고개를 든 그의 눈으로 성형의 기구가 가득 차서 들어왔다.

[...!]

석두공은 그 별모양이 마치 자신의 정신을 옭아매는 듯한 것을 느꼈다. 별모양은 눈을 통해 들어와서 그의 마음에 낙인처럼 찍혀지는 것같았다.

다섯 개의 뿔을 가진 별이었다.

석두공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그의 정신에 납덩어리라도 올려놓은 듯 생각하기가 힘들어지는 것같았다.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것같자 석두공은 즉시 마음속으로 정심신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 )

그의 정신에 파고들던 별모양의 낙인은 점차 흐려지며 사라져버렸다.

석두공의 이마에 식은 땀이 맺혔다.

어쩌면 자신도 여자처럼 당해버렸을 수도 있었다.

[만배선사님께서 나를 살려주셨구나!]

석두공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여인은 저 성형이 머리 속에 파고 든 후에 억지로 깨뜨리려다가 당했다. 어떻게 한사람의 절세고수를 이런 간단한 것이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성형의 기구는 여전히 무서운 마력으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마중천의 힘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는가? 어떤 고수라도 옭아매는 간단한 도형의 힘... ]

석두공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부좌를 틀었다.

성형의 기구가 마중천의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든 아니든, 그 안에 있는 어떤 비밀을 풀어내야만 할 것같았다.

 

별은 석두공의 마음에 낙인되었다가 정심신주에 의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물처럼 흘러갔다.

석두공의 옆에서 여인은 입을 굳게 다물고 화석처럼 누워있고 그는 온 정신을 모아서 별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릅뜬 눈에는 핏발이 섰으며 긴장으로 인해 그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변해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 석두공은 낙인되어다가 사라지는 별에 다른 별이 겹치는 것을 보았다.

별안간 그의 머리 속으로 섬전같은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석두공은 벌떡 일어서며 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는 미친 말처럼 풀풀 뛰고 눈을 본 강아지처럼 뒹굴며 소리쳤다.

[그랬구나, 그랬어! 으하하하하...]

그리고 그는 정신을 잃고 있는 여인의 곁으로 다가가 세차게 뺨을 쳤다.

짝짝!

[!]

여인이 입가로 피를 흘리며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흐릿했으며 아주 피곤해 보였다.

[잘보시오! ...]

짝짝!

석두공은 다시 그녀의 뺨을 두대나 더 때리고 석상의 손에 들려있는 별모양의 기구를 가리켰다.

여인의 눈이 흐릿하나마 그곳으로 촛점을 모으고 있었다.

이미 신()과 지()가 혼돈된 것이 분명했다.

석두공은 별모양의 기구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슈우욱!

갑자기 별의 뿔들이 실에 걸린 듯이 석두공의 손을 향해서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부분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한데 별의 모습이 변화함에 따라서 여인의 눈동자가 점점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별의 뿔들은 점점 더 딸려왔다.

그리고 마치 불가사리가 발을 오무리듯이 그것들은 한곳에 모였고 그 순간에 방향을 바꾸어 중심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

쿠르르르...

쿠르르릉...

별모양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갑자기 마중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여인이 눈을 부릅뜨면서 덜덜 떨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그릉그릉...

마중천 전체에서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끝없이 터져나오고 어디에나 가득하던 먼지들이 날아올랐다.

그같은 상황에 석두공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방금 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떠올랐다.

[이런 바보!]

석두공은 자신을 향해 소리쳤다.

별의 비밀을 깨닫게 되자 너무 기쁘서 자신도 모르게 여인에게 알려줘 버렸던 것이다.

하나...

[흑흑흑흑...]

여인은 갑자기 주저앉으며 무릎을 감싸안고 울기 시작했다.

얼음장 처럼 싸늘하던 그녀는 봄눈처럼 허물어져 버린 것같았다.

[엉엉... 으흑흑흑흑... ]

그녀는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방성대곡을 했다.

쿠쿠쿠!

사방에서는 아직도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석두공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자신의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울지 마시오. 왜 왜이러는 거요?]

[으왕!]

갑자기 여인은 석두공의 목을 와락 껴안으며 울부짖었다.

향긋한 지분냄새가 진한 체향과 함께 석두공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두공은 눈앞이 보라빛으로 아롱아롱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황홀...

그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속에서 이성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또 바보짓을... 금방 후회를 하고도...)

장미꽃 같은 여인의 입술이 그의 입을 덮어버렸다.

석두공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달콤함과 함께 짭짤한 눈물의 맛이 느껴졌다.

여인의 농염한 몸에서 훅훅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석두공에게 전염되었다.

뼈가 없는 듯 여리고 보드라운 섬섬옥수가 석두공의 옷을 잡아벌렸고 석두공의 손도 어느덧 여인의 몸에서 껍질을 벗겨내고 있엇다.

마치 허물처럼 검은 섬유질이 벗겨지는 안쪽에서 너무도 싱그럽고 뽀얀 몸둥이가 들어난다.

여인의 알몸을 본 적은 있지만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다.

단순히 보는 것이 직접 만져보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싱겁고 하잘 것 없는 것인지를 석두공은 절감했다.

젊은 육체는 너무도 쉽게 달아올랐다.

거칠게 찍어누르는 석두공의 학대에 여인은 암코양이처럼 가릉거리며 다리를 벌린다.

떨리는 손이 여인의 가랑이 사이로 더듬어간다.

보드랍고 까실한 섬모가 만져지고 이내 뜨겁게 달아오른 상구(傷口)가 손 끝에 느껴졌다.

그곳은 열탕이고 늪이었다.

아니 용암을 머금은 채 들끓는 분화구(噴火口).

난생 처음 사내의 손길을 느낀 여인의 몸이 자지러진다.

그러면서도 여인은 복수라도 하듯 손을 뻗어 석두공의 하체를 더듬어왔다.

그녀의 뼈가 없는 듯한 손아귀에 쥐켜지며 석두공은 완벽하게 패배햇다.

그는 명줄이 여인에게 잡혔으며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엇다.

...어서....!”

석두공을 자신의 늪지 입구에 잇댄 여인이 간절하게 애원하며 둔부를 일렁인다.

첫경험인 숫총각의 어설픈 허리질이 이어졋다.

비록 어설픈 몸짓이었지만 여체는 너무도 뜨겁게 만개해잇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뜻을 이룰 수가 잇었다.

석두공은 여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갓다.

마치 기름칠이 되어있는 듯한 그 미끈덩한 점막은 단번에 석두공을 깊이 깊이 흡입해들었다.

도중에 진저리치는 여체의 경련이 있엇지만 석두공은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완전히 깊은 동굴 속으로 자신을 몰입시켰다.

그런 쾌감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햇다.

혼백이 육체와 괴리되고 몸의 모든 부분이 남김없이 여자의 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흐느끼며 벌벌 떠는 석두공의 몸을 미끈덩한 뱀같은 여체가 마구 휘감아온다.

자신을 머금은 주인의 그 재촉에 못 이겨 석두공은 불맞은 짐승처럼 펄쩍 펄쩍 뛰기 시작했다.

 

× × ×

 

여인은 몸을 돌리고 옷을 입었다.

석두공도 그녀도 입을 열지 않았다.

원형의 대전 바닥엔 붉은 핏자국이 남아있는데...

석두공은 일어서서 그녀를 살며시 끌어당겨 안았다.

여인은 못이기는 척 그의 품에 기댔다.

말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석두공은 여인의 볼에 얼룩진 눈물자국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이윽고 석두공이 입을 열었다.

[... 석두공이오. 이름이 무엇이오?]

[흑봉... 아니 자봉... ]

서로가 적인 두사람, 정체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적이 분명했다.

하지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그 끈끈한 흐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름을 묻고 나자 물을 말도 없어져 버렸다. 서로가 밝힐 수 없는 것을 물을 수도 없는 일...

찌이익!

석두공은 돌연 소매를 길게 찢어내며 말했다.

[자봉... 뜻하지 않게 우리가 맺어졌지만,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사람이오. 영원토록...]

“....!”

자봉의 어깨가 가는 떨림을 보였다.

석두공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혈풍강호에 던져진 몸...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소. 운명이... 운명이 기어코 당신과 나를 괴롭게 하여 서로가 검을 겨누게 되더라도, 난 난 영원히 당신을...]

그는 격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자봉이 그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긴 입맞춤...

그리고 자봉은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젠... 죽어도 아무 한이 없어요. 죽어도... ]

자봉은 물기어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석두공이 떨리는 음성으로 불렀다.

[자봉...]

석상의 뒤에는 기관이 움직이며 열려진 감춰져 있던 계단이 있었다.

자봉은 한떨기 백합처럼 처연한 웃음을 짓고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고마워요.]

[자봉!]

석두공은 한달음에 자봉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

자봉은 연기처럼 꺼져버렸다.

석두공의 손에는 빈 허공만이 들어왔다.

[자봉...]

그는 망연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계단의 아래에서 찬바람만이 올라왔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석두공은 왠지 낯설지 않은 어떤 분위기를 느끼며 문득 고개를 돌렸다.

 

× × ×

 

! ... 또독...

계단이 끝난 곳에는 천연의 종류동굴이 어지럽게 뻗어있었다. 종류석들 끝에서는 석회암을 녹인 물방울이 떨어졌다.

자봉...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운명에 의해 자신을 잃어버렸던 그녀는 애써 눈물을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너무 성숙한 몸으로 인해 나이보다 더 많아보이는 그녀는 이제 이십세, 그녀를 위해 안배되었던 저주가 풀리는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녀는 목이 잠긴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원망하진 않겠어요. 어차피 산다는 게 치열하기만 할 뿐 그리 즐거운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이젠 두려워요. 두공... 그 사람곁에서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문득 그녀는 눈물을 닦고 중얼거렸다.

[제 한몸 희생하겠어요. 하지만... 석두공 그 사람은 아버지께서 안배하신 사람이 아니길 바래요. 만약... 그의 희생까지 요구한다면... 무림의 영원한 평화고 뭐고 다 팽개쳐 버리겠어요. 그것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녀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동굴 속으로 걸어갔다.

전에는 양심의 갈등 속에 괴로워 했으며 안배에 의해 기억을 되찾은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사명에 괴로워하는 여인, 그녀는 자봉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출구가 표시되어 있는 미로같은 동굴을 빠져나간 그녀는 폭포수 밑으로 나왔다.

꾸워!

폭포수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데 묵령신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묵령신조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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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살인상단> . 입구에 소수마녀를 비롯한 살인상단 수뇌부가 나와 있다. 독검사랑, 천살로, 귀파파, 지자급 살수들과 인자급 살수들도 십여명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고. 늪지에는 다리가 올라와 있다..

천살로; [오는군.] 천살로가 말하고. 모두 앞을 보고

다각 다각 안개 너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마차 한 대가 나타난다. 두 필의 말이 끄는 사람이 타는 마차인데. 마부석에는 용신장과 호신장이 타고 있다.

용신장과 호신장의 모습 크로즈 업. 호신장이 말고삐를 잡고 있다.

독검사랑; (용신장과 호신장...) 눈 번득이며 긴장하고

귀파파; [오래 살다보니 무림맹의 인간들이 찾아오는 일도 생기는구먼.] 불편한 기색.

다각 다각! 그 사이에 마차는 다가오고

천살로; [귀빈께서 도착하셨다. 예의를 갖춰서 영접하라.] 주변의 지자급과 인자급들에게 말하고.

모두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 하는 지자급과 인자급

드드드! 이윽고 입구에 멈추는 마차

! 용신장이 마부석에서 뛰어내리고.

앞으로 나가는 소수마녀.

용신장; [나단주!] 포권하며 다가오고

용신장; [용청풍 공자의 지시로 귀빈을 귀단으로 모셔오게 되었소.]

소수마녀; [원로에 노고가 많으셨어요.] 고개 조금 숙이고

소수마녀; [귀빈을 어서 안으로 모시도록 하세요.] 마차를 보며 말하고

용신장; [환대해주셔서 고맙소이다.] 대답하며 마차로 가고

용신장; [도착했네.] 덜컥! 밖에서 마차의 문을 열고. 그러자

마차에서 먼저 나오는 건 화접이다. 옷을 조신하게 입었는데 품에는 고양이만한 암흑철사자를 안고 있고

귀파파; (화접!) 눈 번뜩

귀파파; (저년이 팔자 고칠 기회를 제대로 잡았구먼.) 화접이 문을 열고 옆으로 물러서는 걸 보며 생각할 때

마차에서 나오는 세 여자. 진상파와 위상영이 섭아연을 좌우에서 부축하여 내리고 있다. 위상영은 초췌하지만 아름답고.

진상파; [도착했어요 어머니!] 섭아연을 부축해서 마차 밖으로 내려서며 말하고

섭아연; [고맙다 상파야.] 억지로 웃고

화접; (어머니...) 샐쭉하며 진상파를 흘겨보고

화접; (사흘 전, 느닷없이 홍택호에 나타나 합류하더니만 선수를 치네.) (역시 요주의대상이야.) 샐쭉거리면서 진상파가 섭아연을 부축해서 살인상단 입구쪽으로 가는 걸 보며 생각할 때. 살인상단 입구에서는 소수마녀가 다가온다.

화접; (진가년은 한때 섭부인의 양녀였었어.) (자칫하다가는 단주님이 청풍공자님의 정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견제를 해야만 해.) 생각할 때

! 진상파와 위상영에게 부축되어 다가오는 섭아연 앞에 갑자기 무릎 꿇고 절하는 소수마녀.

[!] [!] 모든 사람들 깜짝 놀라고

섭아연도 의아해할 때

소수마녀; [어서 오셔요 어머님!] 고개 숙여 절하고

소수마녀; [누추한 곳이지만 모실 수 있게 되어 한없이 기쁘옵니다.] 고개 들며 얼굴 약간 붉히고. 그러자

섭아연; [자네 혹시...] 야릇한 표정으로 소수마녀를 내려다보고

소수마녀; [어머님의 허락도 없이 죄를 지었으니 꾸짖어주시옵소서!] 얼굴 살짝 붉히며 다기 고개 조아리고

화접; (... 그러니까 뭐야?) 놀라고 좋아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단주님은 이미 청풍공자님과 동침을 한 사이라는 거잖아.> 수줍어하는 소수마녀

귀파파; (뭐 단주가 용청풍을 자기 침실에 재웠으니 동침한 것이나 다름없긴 하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모르고...) 히죽거리고. 쓴웃음 짓는 천살로

화접; (쌤통이다 여우년아!) 눈 흘기며 진상파를 보고. 진상파는 복잡한 표정이고. 위상영은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때

! 진상파와 위상영의 손에서 떨어지며 몸을 앞으로 숙이는 섭아연. 진상파와 위상영이 흠칫! 할 때

섭아연; [일어나게.] 소수마녀의 팔을 잡아 부축하고

소수마녀; [어머님...] 감격

섭아연; [오는 도중에 상파로부터 들었네.] [어미 없이 자란 청풍이를 자네가 사람 구실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고...]

소수마녀; [과찬이옵니다.] 일어나고

소수마녀; [그저 아드님... 상공께서 천부지자(天賦之資;하늘이 준 빼어난 자질)를 타고 나신 덕분이었사옵니다.]

섭아연; [청풍이는 빼어난 아이지. 누구 핏줄인데...] 일어선 소수마녀를 마주 보며

섭아연; [하지만 자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자가 상봉하는 일도 없었을 게야.] [자네의 공은 내 잊지 않음세.] 소수마녀의 팔을 다독이고

소수마녀; [과분한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수줍어하며 좋아하고

진상파; (어쩔 수 없네.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한숨

진상파; (청풍공자와 함께 지낸 시간이 누구보다 많은 저 여자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지.) 섭아연과 대화나누는 소수마녀를 보며 한숨

화접; (됐어!) 암흑철사자를 쓰다듬으며 좋아 죽으려 하고

화접; (이걸로 단주님이 청풍공자님의 정실이 되는 건 기정사실로 굳어졌어.) (단주님이 존귀해졌으니 수하인 내게도 종종 청풍공자님을 모실 기회가 올 테지.)

화접; (그나저나 청풍공자님은 무사하실지 모르겠다.) 온 길을 돌아보고

화접; (어딘가 사람 같지 않은 구석이 있는 저 여자는 청풍공자님의 운세가 전화위복일 거라고 말했지만...) 소수마녀와 인사하는 진상파를 보며

<단주님의 강적이긴 하지만 진상파, 저 여자의 말대로 청풍공자님께 기연이 있길 바랄 뿐이다.> 현장 배경으로 화접의 생각 나레이션

 

#346>

<-태산>

휘익! 날아오는 네 사람. 풍신장이 앞장 서고. 그 뒤에서 운신장과 이진진이 진삼낭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날아온다.

운신장; (늦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운신장; (광명륜과 생사교가 패륵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진진이는 무림맹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곁눈질로 진삼낭 건너편의 이진진을 보고. 이진진은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고

운신장; (진진이 말대로 패륵이 천마묵장을 얻었다면 가장 먼저 맹주님을 시해하려 들 것이다.)

운신장; (그리고 맹주님은 연로하신 데다가 오래전부터 중병을 앓아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다.)

운신장; (전성기 때라면 모르지만 천마묵장을 쓰는 패륵과 싸울 경우 오래 견디지 못하실 것이다.) 생각할 때

[!] 무언가 느끼는 이진진. 찌릿! 감전당하는 것 같고

이진진; [저 산 봉우리 너머가 무림맹인가요?] 앞쪽의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묻고. 물론 날아가면서

돌아보는 풍신장

운신장; [그런데... 왜 그러냐?] 긴장

이진진; [폭음과 함께 누군가의 득의에 찬 웃음소리가 산봉우리 너머에서 들렸어요.]

[!] [!] 놀라고 긴장하며 귀를 기울이는 운신장과 풍신장. 직후

<으하하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정말로 작게 들리고.

운신장; [정말이구나!] 놀라고

풍신장; (아직 십 리 넘게 남아서 나라고 해도 공력을 모두 귀에 집중시켜야 들을 수 있는 웃음소리를 듣다니...) 놀라며 곁눈질로 이진진을 보고.

풍신장; (저 아이가 이미 맹주님을 능가하는 고수가 되었다는 운매의 장담이 과장이 아니었구나.) 감탄. 그때

이진진; [어머니를 부탁드려요.] 진삼낭의 팔을 놓으며 말하고. 이어

이진진; [상황이 급박한 것 같으니 저 먼저 가볼게요!] 쐐액! 한번의 도약으로 단번에 앞쪽으로 멀리 날아가며 외치고

풍신장; [허어!] 놀라고

풍신장; [경신술이 특기인 나보다도 배 이상은 빠르구먼.] [풍신장이라는 별호는 더 이상 쓰면 안되겠어.]

운신장; (역시 진진이의 무공은 경이적인 수준이 이르렀다.) 이미 산봉우리를 넘어가고 있는 이진진의 뒷모습 보며 감탄하고

운신장; (그나저나 별일 없으면 좋으련만...) 진삼낭의 팔을 잡고 날아가며 찡그리고

 

#347>

<-무림맹> 무림맹의 모습. 정문과 성벽에 지키는 사람이 없다.

[으하하하!] 그 배경으로 웃음소리가 들리고.

무림맹 중앙의 광장.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으하하하!] 그 배경으로 들리는 누군가의 웃음소리

[으하하하!] 광장 중앙. 기절초괴가 우뚝 서서 하늘 보며 웃고 있다. 오른손에는 천마묵장을 끼고 있고. 기절초괴의 앞쪽에는 섭장천이 주저앉아있고 그 뒤에는 섭채천이 쓰러져 있다. 두 형제 주변에는 장세명과 쌍뇌신로를 포함한 몇 명의 노인들이 쓰러져 있고. 진무륜이 쌍뇌신로를 보살피며 돌아보고 있다. 기절초괴의 뒤에는 혈인원과 비파희가 서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광장을 가득 메운 무림맹 사람들 분노하고 놀라는 표정. 하지만 겁에 질려 앞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 웃음 그치는 기절초괴.

기절초괴; [섭장천, 섭장천...] [당신은 마침내 완전한 패배자가 된 거요.]

기절초괴; [하나뿐인 딸의 인생을 망쳐놓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무림맹도 마침내 오늘자로 문을 닫게 되었으니 말이오.]

섭장천; [...] 주저앉은 채 기절초괴를 보고 있고.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면서

기절초괴; [당신의 유일한 핏줄이던 이청풍... 아니 용청풍도 내 손에 제 아비 곁으로 같소.] 히죽

[... 그런...] [아연아가씨의 아들까지 변을 당했다니...] 무림맹 사람들 절망하고

기절초괴; [당신은 그저 모든 걸 잃고 완전히 실패한 가엾은 늙은이일 뿐이오.] 섭장천을 조롱하고

기절초괴; [나같으면 자살을 해버리겠지만...] [당신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는 것같소.] 비웃고

기절초괴; [자비를 베풀어서 내 손으로 당신의 고통을 끝내드리겠소!] ! 천마묵장을 내밀어 섭장천을 겨누고. 천마묵장에서 진동이 일어나고

[... 안돼!] [멈춰라 패륵!] 패륵 뒤쪽의 무림맹 무사들이 패륵을 덮쳐오지만

비파희; [너희들은 구경이나 해라!] 따다당! 비파를 강하게 긋고. 그러자

[크악!] [!] 피를 토하며 퍼덕이는 무림맹 무사들.

털썩! 퍼억! 나뒹구는 무림맹 무사들. 뒤따라 덮쳐오려던 다른 무림맹 무사들은 겁에 질려 급히 멈춰서고

혈인원; [크크크! 버러지들은 닥치고 구경이나 해라. 세상의 주인이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니...] 이빨 드러내며 웃고.

[으으!] [맹주님...] 무림맹 사람들 분노하면서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그때

[!] 무언가 느끼는 비파희. 휘익! 유령같은 그림자가 비파희와 혈인원의 머리 위를 날아 넘고.

기절초괴; [그럼 잘 가시오 섭노야. 극락왕생은 빌어드리겠소.] 부악! 천마묵장에서 원형의 파문이 일어나 섭장천에게 날아가고

[안돼!] [맹주님!] 무림맹 사람들 비명.

진무륜도 쌍뇌신로를 치료하다가 돌아보며 눈 치뜨고. 다음 순간

! 엄청난 폭음이 일어나며 섭장천이 있던 곳이 폭발에 휘말린다.

[흐윽!] [맹주님!] 무림맹 사람들 비명. 하지만

기절초괴; [!] 천마묵장을 낀 손을 내민 채 찡그린다. 무언가 느끼고

화악! 흩어지는 폭발의 여파. 먼지가 흩어지는데 그 먼지 속에 사람 형상이 서있다

! 드러나는 장면. 섭장천 앞에 서서 구리거울을 내밀고 있는 이진진. 옷과 머리카락이 펄럭이지만 밀리지는 않았다. 섭장천이 놀라 이진진을 보고. 그 뒤쪽에서 진무륜도 놀라서 보고 있고

기절초괴; [!] 놀라고

[저 소녀 누구지?] [천마묵장의 힘을 막아냈다.] 모든 사람들 놀라고. 비파희와 혈인원도 놀라며 돌아보고

이진진;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 고개 조금 돌려 섭장천을 보고

기절초괴; [재미있어! 역시 세상 일은 재미가 있어.] 웃고. 돌아보는 이진진

기절초괴; [사타구니에 날 것도 안 난 년이 천마묵장을 공격을 막아내기도 하고...] [이래서 매 순간 가슴이 뛰는 거야.] 지지징! 천마묵장으로 진동을 일으키며 웃고

기절초괴; [네년이 누군지는 묻지 않겠다.] [대신 선택권을 주겠다.]

기절초괴; [순순히 투항하면 내 첩으로 삼아 귀여워해주겠지만...] 음험

기절초괴; [끝내 버릇없이 굴면 오늘 이 자리에서 찢어죽이겠다.] 살벌

이진진; [말 한마디 한마디로도 죄를 쌓는 재주를 지니셨군요.] 한숨 쉬고

기절초괴; [?] 어이없고

이진진; [천망회회 소이불루!] [인간이 짓는 죄는 결코 하늘의 심판을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라고 배웠어요.] 혼천경을 내밀며 말하고

비파희; (당찬 아이네.) 감탄

기절초괴; [흐흐흐! 맹랑한 년이로군.] 이를 드러내며 웃고

기절초괴; [과연 천도라는 게 있는지 네년을 통해서 시험해보겠다.] 바웅! 천마묵장에서 원형의 파문이 일어나 이진진에게 날아들고

! 이진진이 내미는 혼천경에서 빛이 일어나 그 원형의 파문을 막고.

지지직! 가가강! 천마묵장의 진동과 혼천경의 빛이 격돌하며 그 부분에서 벼락과 불꽃이 튄다. 쇠와 쇠가 맞닿아 갈리는 것같고

파카캉! 카카캉! 회전하는 불꽃과 벼락이 바닥을 깊이 파고 들어간다. 거대한 드릴이 허공에 생긴 것같다.

[... 대단하군.] [저 소녀, 천마묵장과 맞서고 있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건가?] 무림맹 사람들 놀라고

혈인원; [신녀문의 혼천경인 것 같지?] 기절초괴 뒤에서 이진진을 보며 비파희에게 묻고

비파희; [천마께서 금천마장으로 봉인해두었다던 그 혼천경일 거예요.] 끄덕

혈인원; [금천마장을 뚫고 들어가 혼천경을 꺼내왔다는 것만으로도 저 어린 계집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짐작이 가는군.]

비파희; (그렇긴 하지만...) 우려의 표정

<역시 혼천경으로도 천마묵장의 마력을 감당하긴 어려울 것같다.> 가가강! 천마묵장의 힘과 혼천경의 힘이 격돌하며 생긴 드릴 같은 기운이 점점 이진진에게 밀려가는 걸 배경으로 비파희의 생각

비파희; (유감스럽지만 세상은 패륵에 의해 지옥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한숨

가가가강! 카카캉! 그 사이에 드릴 같은 기운은 급격히 이진진에게 다가간다.

사력을 다하지만 혼전경에서 뿜어내는 빛이 드릴의 접근을 막지 못하고

[... 안돼!] [저 소녀의 거울이 뿜어내는 빚도 천마묵장의 마력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역시 천마묵장을 막을 수 있는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같다.] 무림맹 사람들 안타까워하고. 그 사이에

콰드드! 카카캉! 드릴같은 기운은 이제 이진진의 2미터쯤 앞에까지 밀려왔다.

기절초괴; [카카카! 본좌를 원망하진 마라. 네년이 자초한 화근이니...] 지지징! 천마묵장을 진동시키며 웃고.

이진진; (안되는 건가?) 다가오는 드릴같은 기운을 보며 절망. 바로 그때

! 하늘에서 강력한 벼락이 떨어져 기절초괴를 강타하고.

기절초괴; [!]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비틀하고. 그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반구형의 방어막에 덮여 벼락을 막았다.

[!] [!] 놀라는 혈인원과 비파희

바웅! 가가강! 드릴이 흩어져 안도하면서도 놀라는 이진진. 그 뒤의 섭장천도 놀라고

[무슨 일인가?] [갑자기 허공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누가 기절초괴를 공격한 건가?] 모든 사람들 놀라고. 직후

[애썼다 진진아!] 휘익! 이진진 앞쪽 허공에서 천천이 내려오며 말하는 누군가의 뒷모습. 놀라 올려다보는 이진진. 직후

기절초괴; [... 네놈은...] 눈 부릅

[!] [!] 놀라는 혈인원과 비파희. 비파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이청풍!] 기절초괴의 경악성을 배경으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이청풍.

[!] 놀라는 섭장천. 진무륜도 놀라고

이진진; [오빠!] 안도하며 혼천경을 내리고

[!] [!] 날아오다가 놀라는 운신장과 풍신장. 둘이 함께 진삼낭의 양팔을 잡고 날아온다.

청풍; [물러나 있거라. 마무리는 내가 지으마.] ! 바닥에 내려서며

이진진; [...] 안도하며 물러선다. 혼천경을 내리면서

풍신장; <저 애송이가 바로...?> 휘익! 현장에 날아내리며 전음으로 운신장에게 묻고

운신장; <아연아가씨의 아들이에요.> 끄덕

진삼낭; (무사했구나 청풍아!) 눈물 글썽. 그때

기절초괴; [이해가 안되는구만. 이해가 안돼.] 갸웃

돌아보는 청풍

기절초괴; [너 정말 이청풍이냐?] 눈 희번득

청풍; [그럼 내가 유령인 것 같소?] 웃으며 다가가고

기절초괴; [천마뢰에서 어떤 기연을 만난 것이냐?] 눈 번뜩

청풍; [짐작하시는 대로요.] 5미터쯤 거리를 두고 멈춰서고

청풍; [난 천마뢰 안에서 천마묵장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얻었소.]

비파희; (거짓말이 아닌 것 같네.)

혈인원; (저 여유로운 모습은 허세가 아니다.) 끄덕

청풍; [그래서 하는 제안이오만... 지금이라도 천마묵장을 내게 넘기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소.] 손을 내밀고

기절초괴; [그 새끼 허풍은...] 피식 웃고

청풍; [허풍으로 보이오?] 웃고

기절초괴; [천마묵장을 깨트릴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는 건 믿을 수 없다.] [죽어라!] 바웅! 천마묵장으로 진동을 일으켜 청풍을 공격하고

비파희; [조심...]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데

청풍; [고맙소.] 웃으며 고개 끄덕일 뿐 피할 생각을 않고

기절초괴; (비파희! 네년이 저놈 걱정을 해?) 눈 흘기며 뒤쪽의 비파희를 볼 때

! 청풍의 몸을 때리는 원형의 파문.

[!] 놀라 입을 손으로 가리는 이진진.

진삼낭; [!] 역시 놀라고. 직후

기절초괴; [와라!] 과득! 천마묵장을 웅크리자

화악! 청풍의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 천마묵장으로 스며들어간다. 세 가지 빛으로 이루어진 힘이다.

비파희; (저항도 못한 건가?) 당혹할 때

콰드드! 지지징! 청풍의 몸에서 빠져나간 세 가지 색의 기운들이 천마묵장으로 스며들어가고

[... 안돼!] [저 청년의 내공이 천마묵장에 흡수된다.] [피하시오 소협!] 사람들 비명. 손에 땀을 쥐고.

진삼낭; [피해라 청풍아!] 다급히 외치지만

청풍; [걱정마십시오 어머니.] 웃으며 끄덕. 쿠오오! 그 사이에도 청풍의 몸에서는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기운이 빨려나가고 있고.

기절초괴; [애송이놈!] [언제까지 허세를 부릴 수 있을지...] + [!] 말하다가 눈 부릅

기절초괴; [끄윽!] 갑가지 몸을 비틀며 휘청

<왜 저러지?> 놀라는 사람들. 그때

지지지! 콰득! 천마묵장이 벼락에 휘감기고 기절초괴의 팔이 뒤틀리며 부풀어 오른다.

기절초괴; (이게 무슨... 뼈와 근육이 다 뒤틀리며 터지려 한다.) 고통스럽게 얼굴 이지러트리며 비틀거리고. 그러다가

기절초괴; (당했다!) 웃고 있는 청풍과 청풍의 몸에서 빨려나오는 세 가지 색의 기운을 보고

<저놈의 몸에서 흡수한 내공이 내 몸속의 다른 내공들과 충돌하며 뼈와 근육을 파괴하고 있다.> 콰직! 우두둑! 몸이 마구 뒤틀리며 비틀거리는 기절초괴의 모습 배경으로 기절초괴의 생각 나레이션

청풍; [모두 잘 봐두시오.] 둘러보며 외치고

청풍; [저것이 천마묵장의 쓰면 생기는 위험성이오.] 몸이 뒤틀리며 비틀거리는 기절초괴를 가리키며 말하고.

모든 사람들 긴장해서 보고

청풍; [천마묵장은 상대의 힘을 흡수하지만 결국 이질적인 힘들이 충돌하며 몸을 으스러트려버리는 거요.]

기절초괴; [... 너 새끼... 무슨 수작을...] 얼굴도 이지러진 채 청풍을 보며 이를 갈지만

청풍; [당신 스스로 자초한 화근이며 업보이니 날 탓하지 마시오.] ! 손가락 튕기고. 그러자

부악! 우두둑! 기절초괴의 온몸이 부풀어 오르며 부러진 뼈가 튀어나오려 하고

기절초괴; [... 안돼!] 콰드득! 우두둑! 몸이 부풀어 오르고 뒤틀리며 비명 지르다가

! 마침내 풍선처럼 터지는 기절초괴의 몸뚱이

[!] [!] [기절초괴의 몸뚱이가 폭발했다!] 사람들 기겁하며 물러서고. 여자들은 고개 돌리고. 비파희와 혈인원은 호신강기를 펼쳐서 자신들에게 튀는 피와 살점들을 막고

이진진도 고개 돌리고

! 바닥에 구르는 기절초괴의 머리통. 머리통도 흉칙하게 이지러져있고. 이어

따당! 바닥에 떨어지는 천마묵장

[... 저주다!] [천마의 저주다!] [천마의 후손이 아니면서 천마묵장을 쓰면 기절초괴처럼 될 것이다.] 사람들 공포에 질리고

청풍; (이 정도면 되었겠지!) ! 달아오른 손으로 천마묵장을 겨누고

화악! 청풍의 손에서 강한 열기가 뿜어져 천마묵장을 덮어씌우고

! ! 달아오르며 깨끗해지는 천마묵장

청풍; (기절초괴의 끔찍한 최후를 목격한 사람들이 많으니 앞으로 천마묵장에 욕심을 내는 자는 없게 될 것이다.) 천마묵장을 집어들고. 그때

[오빠!] 뒤에서 부르는 소리. 돌아보는 청풍.

이진진; [맹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해요.] 섭장천이 앉아있고 그 옆에 이진진이 무릎 꿇고 앉아서 섭장천의 팔을 잡아 쓰러지지 않게 부축하고 있다.

청풍; (외조부...) 복잡한 표정으로 섭장천에게 다가가고.

섭장천; [무궁아...] 청풍을 올려다보고. 병색이 완연하고

말없이 서서 내려다보는 청풍

섭장천; [너를...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부디... 할애비를 용서하거라.] 주르르! 섭장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대답하지 않고 섭장천을 내려다보는 청풍

긴장해서 보는 사신장과 진삼낭과 비파희와 혈인원등등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1>의 아버지 용무린이 고문당하던 장면.

주먹 꽉 쥐는 청풍.

긴장하는 사신장. 하지만

청풍; (어쩔 수 없다.) 한숨

청풍;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이분을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섭장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청풍; (어쨌든 이분의 피도 내 몸에 흐르고 있으니...) + [외조부님!] 한쪽 무릎 꿇고

청풍; [소손은 선대(先代)의 은원을 모두 잊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마음을 편히 하시기 바랍니다.] 포권하며 고개 숙이고

안도하는 사신장과 진삼낭

섭장천; [고맙구나.] 주르르! 눈물 흘리며 울고.

섭장천; [회한 속에서도 모진 목숨을 부여잡고 버텨온 보람이 있었어.] 일어나려 하고.

이진진이 부축해서 섭장천을 일어나게 하고. 청풍도 일어나고

섭장천; [모두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이진진에게 부축된 채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고

모든 사람들 긴장해서 보고

섭장천; [이 아이가 노부의 유일한 핏줄이고 상속자이니라.] 청풍을 가리키며 외치고. 그러자

[경하드립니다 맹주님!] [소맹주님께 충성을!] [무림맹 만세!] 비파희, 혈인원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포권하며 외치고. 여자들은 무릎 꿇고 울기도 하고

진삼낭; (보고 계시지요 상공?) 소매로 눔물 닦으며 이산하를 떠올리는 진삼낭

<우리 아들이... 드디어 천하의 주인이 되었답니다.> 사람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진삼낭의 생각 나레이션. 청풍의 뒤에는 이진진이 섭장천을 부축한 채 서있다.

 

<2018731일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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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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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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