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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神功을 만들다

 

 

 

“이……이것은……”

제연연이 놀란 눈으로 손에 든 비급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들고 있는 비급은 양피지로 만든 것으로 매우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이 보였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

 

그것은 바로 모산독군이 적연흥에게 준 두 권의 비급 중 하나였다

“그 비급의 유래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적연흥이 담담히 묻자 제연연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림인치고 이 비급을 지으신 분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적연흥의 눈이 빛났다.

“천후독존(天候毒尊)이란 분이 그렇게 유명하신 분입니까?”

제연연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고사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연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부터 근 삼백 년 전이었어요. 무림에는 전대미문의 대마종(大魔宗)이 한명 나타났었어요.”

“대마종(大魔宗)?”

“네, 그는 사상초유의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가 된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라는 인물이었어요.”

적연흥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대단한 인물이었겠군요?”

적연흥은 크게 뛰는 가슴을 느끼며 물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

 

최초의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로서 초유의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루었던 대마웅(大魔雄)!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적연흥의 가슴은 이유도 없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어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줄이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자신과 천마대조종을 한 몸으로 묶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천마대조종의 이름이 이분을 이토록 흥분시키다니……’

제연연은 내심 놀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그는 보기 드문 대장부였어요. 비록 마도의 인물이기는 했으나 호협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어요.”

제연연은 차분히 이야기를 이었다.

마도에 내려오는 천마혈령검(天魔血靈劍)에 얽힌 전설.

천마대조종이 그 천마혈경검의 주인으로 몸을 일으케 세웠고, 만마(萬魔)와 천파(千派)가 그의 발아래 굴복했으며, 천하가 마기(魔氣)로 뒤덮이리라.

우내사존(宇內四尊)이라는 기인들이 천마대조종에 도전했으나 허무하게 패하고, 드디어 사상초유의 마도천하(魔道天下)가 십년 동안 이어지다.

천하가 마기(魔氣)에 굴복하여 신음하고 있을 때, 패주했던 우내사존이 한 명의 절대기인을 강호로 불러내었으니,

그 이름,

 

-도룡천황(屠龍天皇)!

 

전설의 문파 천황문(天皇門)의 문주 도룡천황이 천마대조종과 결투.

천지변색(天地變色)!

천붕지열(天崩地裂)!

대결전의 결과는 의외로 천마대조종의 패배로 드러나 천마대조종은 울분을 터뜨리며 십년 후를 기약,

다시 십년 후, 천마대조종과 도룡천황은 어디선가 대결전을 벌인 뒤 행방이 묘연해지고,

우내사존이 이끄는 정파연합군이 마도연맹을 괴멸시켰다.

 

제연연의 이야기가 이윽고 끝났다.

“……!”

적연흥은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천마대조종, 도룡천황, 천년후에도 잊혀지지 않은 대영웅(大英雄)들…… 기왕에 든 무공일도(武功一道), 반드시 그들에 못지않은 대종사(大宗師)가 되리라.’

적연흥은 눈을 떴다.

제연연은 적연흥의 두 눈에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결의의 빛을 보았다.

“혹시 천후독존(天候毒尊)이란 고인은 우내사존(宇內四尊)의 한 분이 아니셨습니까?”

“그렇사옵니다. 천후독존께서는 우내사존(宇內四尊) 중 한 분이셨습니다.”

“우내사존(宇內四尊)의 다른 세 분은?”

“풍운검존(風雲劍尊), 독목천존(獨目天尊), 혈룡도존(血龍刀尊) 등이 바로 그분들이예요.”

적연흥은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금 모산 할아버지께서는 당년의 우내사존보다 배 이상 강하시겠군요?”

제연연이 말을 받았다.

“모산의 노선배께서 얻으신 독경이 바로 천후독존(天候毒尊)께서 남기신 독경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마 당년의 우내사존께서 환생하신다 해도 모산 노선배님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예요.”

“오늘부터는 독공(毒功)도 익힐 것입니다. 누님께서도 마음에 있으시면 함께 익히십시오.”

“감사하옵니다. 상공.”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뒤엉켰다.

 

그날부터 두 남녀는 함께 무공을 연마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전 중에 적연흥은 무상반야금강경을 참수하고 오후에는 제연연과 함께 무공을 연마했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의 독공은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었다.

독의 사용법,

해독법, 독물(毒物)을 다루는 법,

독(毒)으로 익히는 여러가지 독공 등등……

천하를 울리던 우내사존(宇內四尊)에 독술(毒術) 한 가지로 끼어들 수 있었으니만큼 천후독존의 독술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천후독존의 독술에 놀란 두 남녀는 모산독군이 직접 지은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을 보았을 때 비로소 천외유천(天外有天)이 있음을 알았다.

만황독성진전에 기록되어 있는 독술은 독공(毒功)이 중심이었다.

가히 경천동지할 위력의 독공이 수십 가지 적혀 있었다.

그 수십 가지나 되는 독공이 하나같이 천후독존의 독공을 능가하는 데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천후독존(天候毒尊)의 최고 독공인 천후융천독강(天候隆天毒罡)은 독문사상 세번째로 강한 독공이었다.

그러나, 모산독군이 최초로 창안한 만천뢰우독강(滿天雷雨毒罡)은 천후융천독강보다 오히려 일이성 정도 강한 듯이 보였다.

모산독군이 최후로 창안한 것은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의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이름하여,

 

<만황패멸독강인(萬荒覇滅毒罡印)>

 

독공(毒功)을 한 줄기 무형의 독강인(毒罡印)으로 만들어 천지사방(天地四方)으로 발출 할 수 있다.

과연 그 위력이 미쳐지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모산독군 자신도 완전히 펼쳐본 적이 없으므로.

고금이래 만황패멸독강인에 비견될 수 있는 독공은 한 가지가 있다.

독문의 조종인 만독노조(萬毒老祖)!

그가 남긴 최고 절대의 독공(毒功)!

 

<파라살황독강류(破羅薩恍毒罡流)>

 

만황패멸도강인과 더불어 유일하게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의 경지에 이른 독공.

지금까지는 독문제일독공(毒門第一毒功)으로 공인되어 온 독공이지만 아깝게도 실전되어 전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실상 만황패멸도강인은 천하제일의 독공(毒功)이다.

두 사람은 만년화룡(萬年火龍)의 시신을 해부하여 만년화룡이 지니고 있던 화독(火毒)을 꺼내 나누어 복용하고 독공을 연마했다.

화독 한 가지로는 독공을 연마하기에 많은 부족함이 있었으나 신무애에는 달리 독물(毒物)이 없으니 별 도리 없었다.

제연연은 천후독존의 독공을 주로 연구했다.

모산독군의 허락이 없었으므로 경솔히 모산독군의 진전을 연마할 수 없기 때문에.

제연연이 독의 사용법, 해독법 등에 몰두할 때 적연흥은 독공 중심으로 연마해 나갔다.

독공을 익히는 한편 적연흥은 음산잔마가 전수해 준 천잔경(天殘經)을 연마했다.

천잔경을 지은 천잔수(天殘叟)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였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말도 못할 수모를 겪으며 살아야했다.

결국, 주위 환경이 그의 성품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극히 편협한 성품을 지니게 되었고 자신을 멸시한 모든 사람을 저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상에 한을 품은 한 기인(奇人)의 손에 거두어져 무공을 연마했다.

그의 오성은 극히 뛰어나 불구를 극복하고 일신에 뛰어난 무공을 지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불구라고 멸시하고 천대했던 세상 사람들에게 잔혹한 살수를 펼쳤다.

그의 눈에 벗어나는 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비단 그 자신뿐만 아니라 친인조차도 천잔수의 살수에 피를 뿌려야했다.

자연, 원수는 많아지고 무림전체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천잔수는 언제 어디에서 죽음의 마수가 덮쳐들지 모르는 강호를 용케도 헤집고 다녔다.

수십 차례나 죽음직전에서 빠져 나오곤 하였고 그럴 수록 그의 성품은 점점 더 편협 잔악해져갔다.

또한, 한 번의 위기를 넘길 때마다 그의 무공은 강해져만 갔다.

모두가 그의 뛰어난 오성 때문이었다.

결국, 천잔수가 강호에 발을 들여 놓기 일갑자, 무림천하에는 더 이상 천잔수의 적수될 고수가 없었다.

젊었을 때는 천방지축으로 무림을 휘젓고 다녔던 천잔수도 나이가 들며 주름살이 늘어가자 성격이 변해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무림에 벌려놓은 것이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다 천하를 뒤져도 자신과 맞설 적수도 한명 없는 그 고독감, 천잔수의 최후는 그렇게 쓸쓸히 끝이 났다.

그러한 천잔수의 무공이 담긴 천잔경(天殘經)!

자연히 극히도 실전적이며 잔혹한 수법이 기록되어져 있었다.

무공의 성격이 이러한데다가 천잔경은 외팔 외다리의 인물만이 연마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 때문에 적연흥은 천잔경의 연마를 보기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음산잔마의 배려를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는 어려움을 무릅쓰며 천잔경을 연마했다.

그러나 막상 익히려니 그 어려움은 이루 형언할 수도 없었다.

멀쩡한 팔다리를 반만 사용하려니 이것도 저것도 되지를 않았다.

그냥 남아도는 한팔 한 다리가 걸리적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좌충우돌하는 적연흥을 제연연은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멀쩡한 팔다리를 무엇 때문에 놀리시옵니까? 나머지 팔다리도 함께 사용하시면 되지 않사옵니까?”

제연연의 말을 들은 적연흥은 퍼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렇지, 이 팔다리를 쓸데없이 둘 필요 없지.”

그래서 그는 나머지 팔다리로도 다른 쪽의 팔다리가 펼치는 무공을 똑같이 펼치려 하였다.

자, 그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적연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그의 좌충우돌은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띄었다.

때로 관망하던 제연연의 두 눈이 핑핑 돌아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것은 도대체 무공인지 발광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게 되었다.

“상공, 아니되겠사옵니다. 천잔경은 접어 두시고 미천하나마 저희 은하궁 무공을 연마하시옵소서.”

보다 못한 제연연이 말렸다.

그러나, 그 무렵 적연흥은 그 미친 짓거리같은 행동 속에서 서서히 무엇인가를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연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없이 발광하는 듯한 행동을 계속했다.

원래,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은 한 가지 전무후무한 불문선공(佛門禪功)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무상반야금강선공(無常般若金剛禪功)>

 

이것이 소림(少林) 최강의 선공인 것이다.

천년 세월을 거치면서 누구에 의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절대선공(絶代禪功)!

이것이 적연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호신(護身)의 묘용이 있는 무상반야선강(無常般若禪罡)과 공격의 묘용이 있는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으로 나뉘어진다.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은 패도(覇道)적인 강맹함을 지녔다.

금강(金剛)이라 함이 본래 가장 강함(强)을 항마(降魔)란 모든 마(魔)를 누른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은 가히 무적(無敵)이라 할 만큼 강했다.

이에 반하여 무상반야선강(無常般若禪罡)은 지극히 유(柔)하며 그 심오함이 끝이 없었다.

이에는 수많은 묘용이 있어 모든 마로부터 심신을 보호해준다.

그중에 분광혜심대법(分廣慧心大法)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생각을 가능케 해주는 기상천외의 대법이었다.

적연흥은 이 분광해심대법의 묘리를 터득해감에 따라 어떤 영감이 스쳐갔다.

즉, 천잔경(天殘經)상의 무공초식은 한 팔과 한 다리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분광혜심대법으로 양팔 양 다리를 다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극히 어려웠다.

그러나 적연흥의 끈기와 뛰어난 심지에 의해 마침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적연흥의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던 제연연은 그저 탄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났을 때, 천잔수의 무공은 적연흥의 손에 의해 완전히 개편되었다.

그 위력은 천잔수가 환생한다 해도 기절초풍하고 말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 새로운 무공은 장(掌), 검(劍), 지(指), 수(手), 각(脚), 경(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이 되었다.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이라 이름붙인 이 무공수법은 천하에서 가장 복잡난해한 수법일 것이다.

적연흥은 만절천환연을 다듬으면서 제연연에게 가르쳤다.

한령토황우를 장복하여 뛰어난 혜지를 지니게 된 제연연이건만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에는 두손 들고 말았다.

자신이 최초로 창안한 무공인지라 적연흥은 만절천환연에 각별히 애정을 쏟았다.

그는 끝없이 만절천환연의 일천백사십구초(一千百四十九招)의 변화를 갈고 다듬었다.

기어코 천하제일의 복잡다단한 무공을 만들겠다는 듯,

 

***

 

‘무슨 일이 있으신 것일까?’

제연연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지금, 적연흥은 신무애의 석벽을 마주 보고 좌정한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벌써 오일 째 저 상태로 계시니 옥체에 누가 가시지나 않으실지……’

제연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기이하게도 제연연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 나날이 젊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떨어질 때 사십대로 보이던 그녀였건만 지금은 이십 오륙 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를 않았다.

모두가 한령토황우를 장복한 때문이다.

‘이미 이곳에 떨어진 지도 사 년이 흘렀다.’

제연연은 문득 가득히 운무가 낀 천공(天空)을 바라보았다.

사년(四年)!

이미 사 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적연흥의 나이 이미 이십 세가 되어 완전히 성인이 되었다.

그의 무상반야금강선공은 구성(九成)의 경지에 이르렀다.

만절천환연이란 절기를 창안한 것도 이미 이년 전의 일.

모산독군이 남긴 독문의 진전도 이미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공(內功)을 기르는 외에 미친듯이 서로를 탐하는 일밖에 없었다.

제연연으로서는 적연흥이 있는 한 이 신무애의 절지도 낙원이었다.

하지만, 적연흥은 그렇지 못한 듯, 요즈음 그는 한껏 우울해지고 말수가 적어졌다.

하기는 이제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필요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일 전, 적연흥은 돌연 신무애의 한쪽 석벽을 마주하고 앉아 면벽에 들어갔다.

이미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것이 오래이건만 적연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러니 자기 몸보다 적연흥이 소중한 제연연으로서는 안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적연흥의 면벽을 중시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일까? 무엇이 천하제일의 기재이신 저분을 저토록 고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제연연은 총명한 여인이다.

문득, 한 가지 짚이는 일이 있었다.

“무상반야금강선공은 극히 미미한 진보를 보임으로 서두를 일이 아니다. 저분이 고심할 단 한 가지 문제는 바로……이곳을 탈출하는 일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연연의 가슴은 급격히 두근거렸다.

‘저분이 혹시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는 어떤 단서라도……?’

제연연은 묘한 심정이 되어 적연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 자신도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이곳을 나간다면 사랑하는 적연흥은 더 이상 그녀의 독점물일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별 수 없는 일 아니냐?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할 것, 하루 빨리 저분의 뜻하시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빌 뿐이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으하하하핫――!”

거창한 장소가 신무애를 뒤흔들었다.

“상공!”

제연연의 환성이 터졌다.

그녀의 눈앞에, 태산같은 기개를 지닌 영준한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짓고 서 있는 인물.

바로 적연흥이었다.

“상공! 뜻을 이루셨사옵니까?”

제연연이 달려가자 적연흥은 그녀의 섬섬옥수를 꼭 쥐었다.

“그렇습니다. 누님, 드디어 이곳 신무애를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적연흥이 다소 격동에 찬 목소리를 말했다.

“역……역시……!”

제연연의 두 눈에 까닭모를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작은 가슴은 흥분으로 크게 불룩거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곳을 빠져 나갈 방법을 생각해 내셨사옵니까?”

제연연이 섬섬옥수로 눈가에 맺히는 이슬을 찍어 누르며 물었다.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을 창안할 때부터 생각하던 것입니다. 만일 허공에서 두세 번만 진기를 바꿀 수 있다면 신무애를 날아 오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연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지만 허공에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은 채로 어떻게 진기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적연흥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소제가 면벽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그럼 방법을 찾아 내셨다는 말씀……?”

“그렇습니다. 분광혜심대법(分廣慧心大法)을 응용하여 일종의 양심신공(兩心神功)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제연연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무림에는 전설적으로 심신을 양분할 수 있다는 양심신공(兩心神功)이 있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그것은단지 전설일 뿐인데 적연흥이 그것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양…… 양심신공(兩心神功)!”

“놀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무상반야금강경 중의 분광혜심대법은 양심신공보다도 더 고차원의 대법이었습니다. 소제는 단지 이를 약간 변형시켰을 따름입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을 안은 채로 절벽 위로 가리켰다.

“양심신공으로 공력을 좌우(左右)로 나눈 뒤 우선 한 쪽의 공력만으로 비천어기신법을 펼치는 것입니다.”

제연연이 그말을 받았다.

“연후에 반대편의 공력을 이용하여 다시 날아 오르고 그사이 나머지쪽의 공력을 보충하고……”

“하하……그렇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사부님께 인사 드리고 지금 당장 떠나도록 하십시다.”

제연연은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그……그렇게 해요. 첩신은 조금 준비할 것이 있사옵니다.”

“서두르십시오.”

“네!”

제연연은 눈물을 닦으며 달려갔다.

제연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어찌 생각하면 더할 수 없이 긴 사 년이었으나 이제 막상 떠나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워 지는군.’

적연흥은 신무애를 휘둘러 보았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절지였으나 너무나 정이 든 풍경이었다.

“어머님께서 그동안 어찌 지내셨는지 궁금하구나. 병환이나 심해지신 것은 아니신지……”

적연흥은 동굴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부님과 환영비천신 선배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겠다.”

적연흥의 몸도 곧 짙은 운무 사이로 사라져갔다.

 

<一卷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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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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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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