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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우울한 고금제일인 (2)

 

 

 

삼경이 지난 깊은 밤,

쿵쿵쿵!

[누구요?]

주점 주인 왕노이는 눈을 비비면서 나가 문을 열었다.

[!]

왕노이는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헛바람을 삼켰다. 해질 무렵에 떠났던 술꾼 중의 한사람이었다.

무슨 일을 내고야 말 것같던 두 사람 중의 한사람, 그는 바로 석두공이었다.

왕노이가 물었다.

[공자님께서 무슨 일로 다시 우리집에... ]

[왕노이! 당신을 왕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소.]

석두공이 말했다.

[저녁때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었던 그 세 노인은 어디에 있는 사람들인지 말해주시오.]

[, 모릅니다. 공자님!]

왕노이는 이놈이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며 말했다.

석두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이 당신을 아는데 당신이 그들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소. 어서 말하시오.]

[정말 모릅니다. 단지 우리집에 자주 찾는 손님일 뿐입니다.]

왕노이는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석두공이 그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순간 왕노이는 석두공의 키가 작아지는 것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그는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석두공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어어... ]

석두공은 단지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는데 그의 몸은 풍선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삼노장(三老莊)의 주인들입니다. 삼노장, 하지만 삼노장은 작약장(芍藥莊)으로 더 유명하지요. 남쪽으로 십오리 정도 가면 야산 하나를 통채로 둘러싼 장원이 있는데 바로 그 곳입니다.]

왕노이는 신체의 위험을 느끼자 묻지도 않은 것까지 빠르게 말했다. 보신(保身)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아는 자였다.

석두공은 바람처럼 사라져버리고 땅으로 내려선 왕노이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만했으면 난 도리는 지킨 거야.]

 

*****

 

휘이익!

석두공은 어둠 속에서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큰 장원을 발견했다.

왕노이가 말한 그 삼노장이었다.

석두공은 삼노장의 담벽을 연기처럼 타넘었다.

작약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장원의 안은 전각들보다는 가지각색의 작약들로 뒤덮혀 있었다. 어째서 작약장이라고 하는지 알만했다.

석두공은 가장 커보이는 전각으로 소리없이 날아갔다.

삼노장은 아무도 경계를 서고 있는 것같지가 않았다. 그저 빗장만이 굳게 닫혀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아서 무림의 세력같지가 않았다.

석두공은 불이 켜져 있는 큰 전각의 지붕위에 날아내렸다.

전각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찾았군.)

그 음성들은 석두공이 만났던 세 노인의 음성이었다.

그는 박쥐처럼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활짝 열린 창을 통해서 전각 안이 환히 보였다.

 

삼노(三老)는 모두가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형제와 같은 관계이면서도 위 아래가 없었다. 모든 일은 항상 서로 의논해서 해결해왔으며 어느 누구의 독단으로 일이 좌지우지된 일은 없었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은 팽덕(彭德)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소림의 외가신공인 금강지(金剛指)를 잘 썼다.

약간 성미가 꼬인 것같은 노인은 조창(曺昌)으로 화염장(火焰掌)이라는 독문의 장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잘 웃는 노인은 하진(夏唇)이라하며 소매 속에 숨긴 비조(飛爪)를 쓰는 인물이었다.

이렇듯 삼노는 모두가 한 분야에 있어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곳 섬서성 일대에서만 활약하고 있지만 웬만한 무림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듣고 있었다.

 

조창이 분통이 터지는 듯 버럭 소리쳤다.

[오늘은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군. 낚시를 망친 데다가 일하러 갔던 놈들은 물건마저 잃어버리고 돌아왔으니...]

[원래 복은 쌍으로 오지 않고 화는 단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네. 좋지 않은 일은 늘 달아서 생기는 법일세.]

팽덕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조창이 침을 튀기며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몰라서 이러나? 내말은 화가 난단 말일세. 화가!]

[작약 이천근 정도 잃어버린 것은 큰 일이 아니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어쩌면 다른데 있는지도 모르네.]

팽덕의 말이었다.

하진이 팽덕의 말을 받았다.

[다른 데라면?]

조창도 입을 다물고 팽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팽덕은 생각이 깊은 인물이다. 그가 허튼 소리를 하는 경우란 전혀 없다. 그가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면 그것은 분명히 심각한 것이다.

팽덕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우리가 작약을 취급해온 이래로 이처럼 강도를 만났던 적이 있던가?]

그의 물음에 두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평덕이 말했다.

[작약이 이천근이면 돈으로 꽤 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거금이라고는 할 수 없네. 또한, 당장 무엇으로 바꾸기도 어렵고 양이 많아서 어디 처분하기도 쉽지 않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약을 훔쳤다면 이건 무엇을 뜻하겠는가?]

두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하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며 음성이 탁하게 흘러나왔다.

[설마하니 우리를 노린단 말인가?]

팽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밖에는 결론이 나지 않네. 또한 저녁 무렵에 우리가 만났던 두 젊은이도 그일과 무관한 것같지가 않아. 어쩌면 우리를 염탐하기 위해 왔던 자들일 수도 있지.]

[틀림없어. 틀림없이 그놈들은 염탐꾼들일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뺨을 맞고도 그냥 갈리가 있는가?]

조창이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팽덕은 염려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귀빈께서 와 계실 동안 만이라도 좀 조용했으면 좋으련만.....]

석두공은 속으로 말했다.

(성미 못된 영감이 있는 한 원수가 생기지 않을 리 없지.)

그는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았다.

 

문득 석두공은 누군가 장원의 담장을 넘어서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휘익! 휙휙!

칠흑같이 검은 야행복을 입은 자들이 전각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한 두명이 아니었다. 적게 잡아도 이십 명은 넘을 것같았다. 그들의 등에는 상자같은 것이 얹혀있었다.

(기습(奇襲)이구나!)

석두공은 내심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처마 밑에 납작 붙었다.

쿵쿵쿵!

다가온 그들은 갑자기 등에 지고 있던 상자들을 전각을 향해 던졌다.

파앗!

휙휙휙!

조창과 팽덕, 그리고 하진이 대갈하며 뛰쳐나왔다.

[웬놈들이냐?]

이십 여명의 흑의복면인들은 이미 전각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흑의복면인들 중에서 노란 수실을 드리운 검을 맨 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물건을 돌려드리기 위해 왔소.]

번쩍!

그자는 검을 뽑아 상자를 반으로 잘랐다.

잘려진 상자에서 작약이 쏟아졌다.

우루루루...

장원의 일꾼들과 무사들이 달려왔다.

[저 저... ]

그들은 흑의인들을 보고 놀라며 소리쳤다.

[사부님! 강도들입니다!]

육백이 고함쳤다.

조창이 차갑게 응수했다.

[알고 있다.]

그때 팽덕이 나서며 말했다.

[귀하들은 아주 간이 크군. 밖에서 강도를 하고 집까지 쫓아오다니...]

[노인장들을 만나기 전에 선물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 뿐이오.]

노란수실의 검을 가진 자가 말했다.

그가 말하기는 선물이었으나 실제로는 협박물이란 소리로 들렸다.

[무엇을 노리고 왔는가?]

조창이 눈에 살기를 뛰면서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잔혼각(殘魂閣)에 가입하시오.]

[...!]

[...!]

세 노인은 가슴을 망치로 맞기나 한 듯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잔혼각...

결국 잔혼각의 힘이 이곳까지 뻗어온 것이다.

사십여 명이나 되는 장원의 무사들과 일꾼들도 잔혼각이라는 말에 파랗게 질리며 물러섰다. 잔혼각의 살수라면 그들로서는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하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싸워야겠군.]

뱀의 머리는 되어도 용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파앗!

그 순간에 흑의인은 하진의 눈앞으로 쇄도하며 아래로부터 비스듬히 허리를 베어올렸다.

스팟!

하진의 몸이 팽이처럼 돌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의 소매속에서 은빛 손이 솟아나오며 흑의인을 쳐나갔다.

하진의 병기인 비조(飛爪)였다. 쇠로 만든 손모양의 물건에 은사가 달려있어 내공으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무기였다.

!

비조는 주먹으로 변해 흑의인의 검을 쳤다.

흑의인은 원래 반발하려는 그를 단숨에 죽여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협박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는 하진의 능력을 제대로 가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이 실패하자 그가 외쳤다.

[모두 죽여버려라!]

그때 조창이 그의 뒤로 돌아가면서 일장을 내밀었다.

[네놈부터 죽여야겠다.]

[으악!]

흑의인은 조창의 화염장에 격중되어 퍽 고꾸라졌다. 시체로 변해버린 그의 몸위로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흑의인들은 흠칫하며 공격을 하지 못했다.

조창이 소리쳤다.

[장원을 불사르고 산속에 숨는 한이 있어도 잔혼각 따위에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놈들을 모두 죽여버려라.]

그의 서슬 퍼런 명령이 흑의인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며 말했다.

[...후회할 것이다.]

[나는 후회할지 모르겠지만 네놈들은 그땐 죽었을 것이다.]

조창이 냉소했다.

바로 그때였다.

[후후후후...]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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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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