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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검룡난무 (3)

 

 

 

 

카아아아!

묵령신조가 괴성을 지르며 석두공이 있는 곳을 향해 내려꽂혔다.

그 가공할 기세에 바다물이 밀렸다.

(엄청난 고수다!)

석두공은 무림에 재출도한 이후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묵령신조보다도 묵령신조를 타고 온 천상의 선녀같은 여인이 그의 마음에 은은한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석두공은 검룡을 팽개치며 번개처럼 천왕저를 뽑아들었다.

(금강일타(金剛一打)!)

파아앗!

그의 몸이 묵령신조를 마주쳐가면서 빗살처럼 치솟아 올랐다.

크아아아!

묵령신조가 괴성을 지르며 강철같은 검은 발톱을 휘둘렀다.

휘우우웅!

발톱사이에서 일어나는 경풍만으로도 철판을 갈가리 찢어버릴 듯했다.

카카캉!

석두공의 천왕저는 묵령신조의 발톱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천왕저는 과연 천고의 보물,

끼아아악!

묵령신조가 돌연 흉폭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랐다.

천왕저에 의해 그의 쇠기둥 같은 발톱 두개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

묵령신조 위의 여인은 석두공의 그같은 행동에 상당히 놀란 듯했다.

묵령신조로 말하면 도검불침의 영물일 뿐만 아니라 직접 초식을 배워서 그 강함에 있어 인간이 대적하기 힘들었다.

한데 단 한번의 충돌에 묵령신조의 발톱이 부려질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묵령신조가 갑자기 날아오름으로 인해 하마터면 그녀는 자칫 떨어질 뻔 했다.

석두공은 묵령신조를 뒤쫓아오르면서 고함쳤다.

[노도파암(怒濤破岩)! ]

천왕저가 노도장(怒濤杖)의 수법으로 휘둘러졌다.

고오오오!

파형(波形)의 강기가 묵령신조를 향해 뻗어갔다.

꽤액!

묵령신조는 위기를 느꼈으나 미쳐 피할 수 없는 듯 괴성을 질렀다.

바로 그 순간 묵령신조위의 여인이 뒤를 돌아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명공강(冥空罡)!]

파츠츠츠!

그녀의 손바닥에서 어둠처럼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석두공은 천지가 암흑속에 뒤덥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팟!

헌데 검은 기운이 그의 몸을 덮어씨우는 순간 석두공의 몸은 두개로 나뉘어졌다.

분신둔형술(分身遁形術),

동호천이 고대에 존재했었다는 전설상의 무공을 본 따서 스스로 복원시켜 만든 바로 그 무공이었다.

그 놀라운 위력은 이미 석두공이 몇 번이나 펼쳐봄으로써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여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어둠같은 검은 기운도 그의 갈라진 몸을 스쳐지나갔다.

쐐액!

여인이 놀라는 사이에 분신은 다시 합쳐지며 순식간에 그녀의 눈앞에 다다랐다.

그곳은 바로 묵령신조의 등이었다.

파직!

여인의 손가락이 부채살처럼 펴지면서 열줄기의 백광이 석두공을 향해 뻗어갔다.

석두공은 그녀의 공격을 마주 치지 않고 묵령신조의 깃털을 움켜쥐며 돌아서 피했다.

묵령신조는 수직으로 치솟고 있었다.

새애애앵!

하루에 만리를 난다는 묵령신조는 하늘을 향해 똑 바로 솟구쳤다.

석두공은 숨이 가빠옴을 느꼈다.

여인은 묵령신조의 등에서도 마치 평지처럼 움직이며 석두공을 공격해왔다.

석두공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다라는 말이 있다.

달팽이의 한쪽 뿔에 있는 나라가 있는데 영토에 욕심을 가져 다른 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공격하여 수십 만이 죽고 수백 만이 부상을 당했으며 말과 전차가 들판에 나뒹굴었다는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전국책(戰國冊)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로 한갓 비유에 불과하다.

한데 그와 비슷한 상황이 땅에서 수십리나 높이 날아오른 묵령신조의 등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전쟁터는 달팽이가 아니라 묵령신조의 등이었으며 적은 서로가 한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실로 수십 만 수백 만이 죽고 부상하는 전장에 비하여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다.

펑펑!

꾸에에엑!

두 남녀의 장력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묵령신조는 고통에 겨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석두공과 여인은 평지에서 싸우듯이 묵령신조의 날개위와 등위를 날아다니며 싸웠다.

팽팽한 접전이었다.

활시위를 당긴 듯이 팽팽하면서도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치열한 접전 속에서 두 사람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온 정신을 싸움에 쏟느라 두 남녀는 자신들을 태운 묵령신조가 어디로 날아가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석두공은 삼권칠각(三拳七脚)을 날리며 생각했다.

(천왕저를 가지고도 이 여인을 제압할 수가 없다. 이 여인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다. 이미 초식의 제한을 벗어난 자...)

여인은 양강음유(陽剛陰柔)의 모든 종류의 수법을 전혀 충돌없이 펼쳐내며 석두공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는 현문정종의 무공과 함께 마공도 흘러나왔으며 그것들은 그녀의 손에서 절묘한 배합을 이루어 원래의 힘보다 몇 배나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공방에 있어서 석두공도 그 여인도 한치의 빈틈이 없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모두가 간발의 차이이상 되지 않았으며 공격을 함에도 치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혀 힘의 손실 없이 뻗을 만큼 뻗고 거둘만큼 거둘 뿐이었다.

상대를 묵령신조의 등에서 밀어낼 수만 있어도 이기는 반면에 조금이라도 밀렸다간 아득한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도 긴장으로 인해 땀이 배어져 나올 정도였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의 움직임이 천천히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느리게 움직이며 춤을 추듯이 무공을 펼쳐냈다.

하지만 그 흉흉함은 빠를 때에 비해서 십배는 더했다.

서릿발 같은 여인의 얼굴엔 장엄한 노을빛 기운이 서려있었고 석두공의 몸에서는 천신같은 기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츠으으!

여인이 일장을 천천히 밀었다.

석두공은 그 일장을 받는 자신의 초식이나 내공, 그 무엇에 있어서나 조금의 틈만 있어도 여인은 가공할 빠르기로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처하는 방법은 자신도 여인처럼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는 장력을 밀어내는 것 뿐이었다.

장풍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

석두공과 여인의 손바닥이 직접 마주쳤다.

그렇지만 석두공도 여인도 상대방의 손바닥에 실린 힘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힘을 완전히 안으로 갈무리 한 상태이기 때문에 발해지기 전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공기가 서로 부딪힌다 하더라도 그들의 일장이 부딪힌 것보다는 격렬하다.

두사람의 허깨비같은 쌍장은 점차 빨라지다가 다시 느려졌다.

그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솟고 있었다.

고수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석두공도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그녀의 마음을 느끼려 하고 그녀 또한 마음을 비우고 석두공의 마음을 읽고자 한다.

한데 이 와중에서 아주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지 느낌으로 상대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공의 정점에 거의 달해 있는 두 사람이 진정한 적수를 만남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복연(復緣)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로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읽혀지고 있었다.

서로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다가 마침내 멈춰버렸다.

“....!”

“....!”

말없이 묵령신조의 등에서 마주보며 입을 다물고 화석처럼 되어갔다.

서로가 상대방을 죽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이한 공감대의 형성이었다.

쏴아아!

그 사이에도 쉬지 않고 날아가던 묵령신조는 바람을 타고 어느 깊은 산곡(山谷)으로 날아내리고 있었다.

천고의 영물이라는 그놈으로서도 너무도 피곤한 비행이었기에 잠시 쉬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덧 해도 서산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시작해서 하루 낮을 꼬박 싸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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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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