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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北雁蕩少年

 

 

 

북안탕(北雁蕩),

절강성(浙江省)의 동북단에 자리한 험산(險山)이다.

비록 중원오악과 같이 이름난 명산은 못되지만 산을 아는 사람이면 북안탕이 결코 중원오악에 못하지 않음을 안다.

산세가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마치 창날을 거꾸로 박아 놓은 듯한 첨봉(尖峯)이 연이어져 험준하기 이를 데 없다.

창끝같은 연봉이 성처럼 둘러 서 있는가하면 갑자기 끝이 보이지 않는 천인단애가 나타나곤 한다.

북안탕의 골골이 들어차 있는 원시림의 숲은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지쳐 죽을 때까지 헤매도 빠져 나오지 못하기 십상이다.

아직도 전인미답의 험지가 산재해 있는 곳이 북안탕이다.

자연히 북안탕의 심중(深中)에는 세속에서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독물(毒物) 괴수(怪獸)들이 잔생하고 있다.

또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기사회생의 효능이 있는 선약기초들이 자라고 있기도 하다.

벌려져 있는 곳곳마다 태고이래의 신비가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북안탕이다.

그때문에 선약기초를 찾는 무림인들이나 기상천외의 독물들을 구하려는 독문(毒門)의 괴인들, 그리고 채자(採者)들의 발길이 가끔 북안탕의 절지에 닿곤 한다.

 

북안탕(北雁蕩)의 아침,

자연의 순환은 한시도 쉬임이 없는 법이다.

찬연한 태양의 광휘가 북안탕 전체를 산뜻하게 비추었다.

여명에 쫓겨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의 잔영들이 찬란한 광휘에 산산이 흩어져 나갔다.

이곳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봉이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분지다.

분지에는 납작한 토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토막의 낮은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록, 모든 것이 빈한해 뵈는 산촌이지만 더 할 수 없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뵈는 산촌(山村)이다.

아침을 짓느라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토막들 사이의 공터에는 아침잠 없는 산골아이들이 모여 무엇인가 놀이를 하고 있다.

, 애들아 연홍이 형이다.”

동무들과 놀이에 열중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문득 허리를 펴며 말했다.

어디……

코흘리개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고 한쪽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앞으로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었다.

그 옥계의 옆에는 오륙 장 높이의 커다란 바위가 있으며 그 바위에 의지하여 한 채의 초옥이 서 있었다.

지금, 초옥 옆의 바위 위에 한 명의 청년이 서 있었다.

의연히 바위 위에 몸을 세우고 산봉 위로 떠오른 태양을 직시하고 있는 인물, 일견하여 범상해 보지 않는 인물이다.

햇빛에 그을려 피부가 구리빛으로 빛나고 있으나 그 용모는 이런 궁벽한 곳이 어울리지 않는 청년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청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신장이 육척 가까이 되고 가슴이 떡 벌어져 건장한 청년과같이 보이지만 그는 확실히 아직 완전히 치기를 다 못벗은 소년이었다.

십 육칠 세쯤 되었을까?

먹을 듬뿍 찍어 놓은 듯한 검미(劍眉), 서글서글하면서도 무엇인가 깊이 침잠해 있는 눈매,

더할 수 없이 곧은 코의 선과 그 밑으로 자리한 굳게 다문 입술,

마치 태산이 찍어 누른 듯이 굳게 물려 있는 두 입술은 천년세월이 지나도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오연히 태양을 직시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은 마치 웅비의 때를 기다리며 날개를 접고 있는 대붕(大鵬)의 모습과도 같았다.

때를 기다리는 고독한 대붕(大鵬),

소년은, 이 작은 산골의 우상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들과 소년들에게 있어서 이 거구의 소년은 신과같은 존재였다.

소년의 이름은 적연흥(赤燕興), 그의 아버지는 전직고관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적대인(赤大人)하면, 천하가 알아주는 청백리로 많은 백성들에게 흠모를 받았던 인물이다.

한데, 어느 해인가 신병(身病)이 심하게 일어 관직에서 물러나 북안탕 주위에 있는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그러나, 나날이 병이 중해져가고 본시 청렴한 인물로 관직에 있는 동안 재물을 모아본 적이 없는 적대인인지라 제대로 약을 써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적부인은 남편과 어린 아들을 이끌고 이곳 북안탕의 깊은 산촌으로 들어왔다.

본시 의가(醫家) 출신인 적부인은 북안탕 깊은 곳에 선약기초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의 병을 고칠만한 선약을 찾기 위해 이곳 북안탕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신병을 고칠 일념으로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북안탕을 뒤지고 다녔다.

규중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던 적부인에게는 실로 어렵디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 어려움을 남편의 병을 고칠 일념으로 감수하며 선약기초를 찾아 다녔다.

하나, 선약기초(仙藥奇草)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찾아질 수 있는 것인가?

그녀가 뜻을 이루기도 전에 적대인은 눈을 감고 말았다.

몇년 동안 전신이 만신창이 되도록 북안탕의 험봉을 헤매며 남편의 병을 고치려 했던 부인은 적대인이 이승을 떠나자 허탈감과 심화로 몸져 눕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번에는 어린 소년 적연흥이 북안탕을 헤매어야 했다.

쓰러진 어머니의 병을 고칠 약초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보낸 세월이 오 년이었던가 육 년이었던가?

소년 적연흥은 보통 소년들보다 몇 배나 빨리 자랐다.

가세가 빈한한 탓으로 병드신 어머니 봉양하기도 힘들지경이었다.

자연, 그는 주린 배를 야생의 과일이나 북안탕에 자생하는 약초들로 채워야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는 눈물이 날 정도로 쓰디쓴 약초들을 본의 아니게 장복하게 되었고……

그것이 득이 되어 소년은 누구보다도 건장하게 자랐고 어른들도 당하지 못할 신력(神力)을 지니게 되었다.

그뿐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산을 타기 시작한 소년 적연흥의 발걸음은 북안탕의 험산준령을 평지같이 내달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년 전이었다.

어느날, 한 마리 맹호가 산촌으로 내려와 아이를 물어가는 호환(虎患)이 났었다.

마을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누구하나 맹호를 쫓을 생각도 못할 때였다.

소년 적연흥이 분연히 도끼 한 자루를 들고 맹호를 쫓아갔다.

마을사람들이 만류했으나 적연흥은 아무 말없이 나는 듯한 발걸음으로 맹호를 쫓았다.

적부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하루를 보냈을 때였다.

석양을 등지고 피투성이가 된 적연흥이 돌아왔다.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정수리가 갈라져 죽은 맹호를 끌고……

마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른 열 명이 상대해도 잡기 힘든 맹호를 소년 혼자 잡은 것이었다.

소년은 맹호를 잡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이후로, 소년은 마을의 자랑이었으며 수호신적인 인물이 되었다.

또한, 소년은 어머니를 보다 잘 공양할 법을 깨달았다.

호랑이의 가죽을 벗겨 산 밑의 시진에 내다 팔아 어머니께 오랜만에 성찬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사냥에 몰두했다.

그의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말렸으나 그는 미소 지을뿐 사냥을 그만 두지 않았다.

그 후 일년, 몇 차례 맹수를 잡다가 크게 다치기도 했으나 이제 그는 한 명의 어엿한 사냥꾼이 되었다.

그것도 보통 사냥꾼이 아닌 북안탕 제일의 맹수 사냥꾼이 된 것이다.

그의 힘은 능히 거웅(巨熊)의 허리를 꺾어 죽일만하고 그의 발걸음은 맹호를 따라가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활솜씨는 백보 밖의 움직이는 표적이라도 절대 놓치지 않을 뿐더러 즐겨 쓰는 한 자루 도끼만 손에 들면 어떤 맹수라도 때려 누일 수 있었다.

그런 소년 적연흥인지라 마을의 아이들과 소년들은 그를 마치 산신(山神)과 같이 떠받들었다.

하나, 그는 언제나 고독했다.

창공을 비상할 대붕, 그에게 이곳 북안탕은 너무나 좁았던 것이다.

보시 과묵한 그는 더욱더 말수가 적어져 갔다.

비록 그가 그러한 사실을 내색치는 않았으나 적부인은 아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부인은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

적연흥은 길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돌아섰다.

흥아……

문득, 초옥 안에서 병색이 완연한 중년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 적연흥은 급히 바위를 뛰어 내렸다.

―― !

그의 몸은 마치 한 마리 비호가 날아내리듯 가볍게 바위위에서 뛰어 내렸다.

어머님, 기침하시었사옵니까?”

적연흥은 정중한 어조로 말을하고 방문을 여었다.

약초 내음이 확 풍겼다.

초옥의 방안은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방안의 천정에는 약초뭉치가 주렁주렁 걸려 있으며 방의 한쪽 벽에는 수백 권의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지금, 방문의 맞은편에는 한 좌의 침상이 놓여 있었다.

침상은 손으로 정성들여 깎아 만든 것이었고 침상 위에는 호피가 깔려 있었다.

그 침상 위에 한 명의 중년여인이 힘겨운 듯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비록 병색이 완연하기는 하였으나 본 바탕은 은은한 기풍을 지닌 미부인이었다.

일견하여 적연흥의 단정한 용모는 중년부인과 매우 흡사하였다.

오냐, 네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가자꾸나.”

부인이 힘들여 몸을 일으켜 앉자 적연흥은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부인을 부축하였다.

두 사람은 방문을 나섰다.

 

맑은 아침이다.

적부인은 적연흥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두모자는 초옥 뒤의 둔덕 위로 올라섰다.

둔덕 위의 양지쪽, 잘 다듬어진 하나의 봉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첩이 왔사옵니다.”

적부인은 봉분 앞에 힘없이 앉았다.

이 봉분이 적연흥의 부친인 적대인이 묻혀 있는 것이었다.

적부인은 서글픈 눈길로 봉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길이 힘겹게 봉분을 쓸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적연흥은 공손히 시립한 채로 묵묵히 바라다 보았다.

두 모자는 한동안 굳은 듯이 묘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적부인이 나직한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흥아, 오늘도 사냥을 나갈 것이냐?”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은 신무애(神霧崖) 쪽으로 가볼 생각이옵니다. 그곳은 늘 음한지기가 깔려 있으니 어쩌면 어머님의 병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담석화(曇石花)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적부인의 눈가에 안스런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 에미 때문에 어린 네가 이 고생을 하니…… 이 모진 목숨 빨리 끊어져 네 아버님께 갔으면 좋겠구나.”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부디 오래오래 사셔야 하옵니다.”

적연흥의 말에 적부인은 아들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아마도 아들의 얼굴에서 이미 땅에 묻힌 남편의 영상을 찾으려 하는 듯한 눈길이었다.

휴우……

적부인은 이윽고 시선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만 내려 가시옵소서. 가을인지라 아침바람은 차옵니다.”

적연흥은 어머니의 가냘픈 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젖먹이 때에는 온 천지같이 넓고 이세상 무엇보다도 커보이던 어머니지만 지금은 너무나 가냘프고 작아 보였다.

특히 병마로 시달려 앙상한 적부인은 애처로울 정도로 작아 보였다.

적연흥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부축하여 초옥으로 들어갔다.

 

일각 후, 적연흥은 전통(箭筒)을 짊어지며 초옥을 나섰다.

해는 이미 중천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머님, 다녀 오겠사옵니다.”

적연흥은 열린 방문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오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라.”

적부인은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연흥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인 뒤에 초옥을 떠났다.

그의 왼쪽 허리에는 반자 정도의 폭이 좁고 날이 날카롭게 선 손도끼 한 자루가 걸려 있고 오른쪽 허리에는 약초자루가 걸려 있었다.

허허, 오늘도 사냥을 나가시는구먼. 호랑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오시게.”

마을을 지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적연흥에게 말을 건넸다.

적연흥은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이 잠깐만.”

적연흥이 막 마을을 걸어 나가려는데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적연흥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에 한 명의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마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냥꾼이었다.

그 젊은 사냥꾼은 헐떡이며 적연흥에게 다가왔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구씨 청년은 숨을 가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알려 줄 일이 있네. 요 근래 이 주위에 여러 명의 괴인들이 출몰하고 있어. 그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펄펄 나는 재주들을 지닌 인물들로서 성격들이 포악하니 주의하게.”

구씨 청년의 말을 들으며 적연흥의 검미가 찡긋 하였다.

무림인들이 북안탕에 무슨 일로 나타난 것일까?’

그는 이어 구씨청년에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구씨청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마을 주위에 나타났던 괴인들만도 이십여 인이 넘네.”

이십여 명이 넘는다고요?”

그러네……

적연흥은 내심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려서 병든 아버지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며 아버지로부터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그 때문에 잘은 모르나 무림(武林)이라는 집단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무림인들이 적잖이 북안탕에 모인 모양이구나.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아뭏든 주의하게. 그들과 충돌하는 일 없도록 하여야 하네. 그런 괴인들과 상대해서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구씨청년의 말에 적연흥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구씨청년은 사람 좋게 씨익 웃었다.

고맙기는…… , 이만 가네.”

구씨청년은 시내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잠시 자리에 서서 구씨청년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적연흥도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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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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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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