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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奇人들의 배려

 

 

 

적연흥이라…… 좋은 이름이구나.”

모산독군의 말에 적연흥은 멋적게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모산독군은 그런 적연흥의 모습을 보며 더욱 마음이 끌림을 느꼈다.

볼수록 훌륭한 아이다. 마치 갈지 않은 보옥과 같도다. 한번 크게 길러볼 만한 아이지만……

적연흥은 백호피를 둘둘 말아 짊어진 뒤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께서 이 깊은 북안탕까지 오신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있으신 때문이겠지요?”

모산독군은 자애롭게 웃었다.

그렇단다. 연흥이는 북안탕에서 살았으니 이곳의 지리는 훤하겠구나.”

몇 군데 가보지 못한 험지가 있기는 하오나 대개의 지형은 알고 있사옵니다. 할아버지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만 해주시면 소자가 안내해 드리겠사옵니다.”

허허, 그래 주겠느냐? 노부는 용연곡(龍淵谷)이라는 곳을 찾고 있단다.”

갑자기, 적연흥의 안색이 침중히 변했다.

용연곡(龍淵谷)이라 하셨사옵니까?”

그렇다. 한데 네 안색을 보니 무엇인가 꺼리는 것이 있는 듯이 보이는구나.”

적연흥이 침중한 안색을 짓는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북안탕에는 몇 군데 절지가 있으며 특히 그중의 양대절지(兩大絶地)는 세상에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용연곡(龍淵谷)>

<신무애(神霧崖)>

 

이 두 곳을 일컬어 양대절지라고 한다.

용연곡은 특이하게도 방원이 수십 장이나 되는 작은 호수가 있는 계곡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호수에는 한 마리 괴물이 살고 있어 가끔 물 밖으로 나오곤 한다는 것이다.

적연흥은 아직 용연곡의 괴물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 괴물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적연흥이 사는 마을에도 몇명 있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괴물은 그 크기가 근 삼십 장이나 되어 마치 작은 동산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머리 하나가 집채만 하며 코와 입에서는 시뻘건 불을 뿜는다고 했다.

특히, 요즘은 그 괴물이 자주 연못에서 나와 용연곡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그 통에 용연곡 주위 오 리가 잿더미로 변했다는 것이다.

용연곡이 이러한 곳인 까닭에 적연흥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한 것이다.

할아버지. 용연곡에 꼭 가셔야 합니까?”

그의 어조와 안색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이를 본 모산독군은 점점더 마음이 흐뭇해짐을 느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적연흥의 어깨를 다독였다.

네가 용연곡에 사는 만년화룡(萬年火龍)에 대한 소문을 들은 때문에 노부를 걱정하는 게로구나.”

적연흥은 흠칫 했다.

만년화룡(萬年火龍)이라고 하셨사옵니까?:”

오냐. 혹시 네가 만년화룡을 알고 있지 않느냐?”

적연흥은 겸연쩍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전에 아버님께서 남겨 놓으신 고서 중에 괴이지(怪異誌)라는 책에서 만년화룡에 대한 기록을 본적이 있었사옵니다.”

모산독군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 이 아이 부모들도 그저 평범한 촌민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 괴이지에 무어라 적혀 있느냐?”

적연흥은 신중히 대답했다.

만년화룡(萬年火龍)은 상고시대에 살았던 화룡(火龍)중에서 잔존한 괴물로서 태양자기(太陽磁氣)와 지심극열(地深極熱)을 쌓는다고 합니다. 만년의 수련을 쌓은 만년화룡은 하나의 내단(內丹)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내단이 완성되고 백일이 지나면 승천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일단 승천하면 악룡(惡龍)이 되어 천하를 열기로 휩쓸어 잿더미로 만들며……

적연흥은 말을 하다가 문득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모산독군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마주 바라보았다.

혹시…… 만년화룡(萬年火龍)이 만년수련을 마친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만년화룡이 승천하기 전에 제거하시려고……

하하…… 영리한 아이로다. 그렇다, 노부가 멀리 모산에서 이곳 북안탕까지 온 것은 만년화룡이 승천하기 전에 제거하려고 온 것이다.”

적연흥은 우려의 빛을 띄웠다.

만년화룡의 만년수련이 끝났다면 그 난폭함이 극에 달하였을 터인데 할아버지께서 만년화룡을 제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누가 모산독군에게 모산독군의 능력을 의심하는 소리를 했다면 그 즉시 날벼락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산독군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십여 장 밖에 서 있는 높이 삼 장 정도의 암석을 가리켰다.

저 바위를 잘 보거라.”

적연흥은 고개를 돌려 그 암석을 바라보았다.

스스스――

모산독군이 가볍게 소매를 흔들었다.

그와 함께, 족히 만 근이 넘는 거석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

적연흥은 탄성을 지르며 허공에 떠오른 암석을 주시했다.

일반인이 그것을 보았다면 기절초풍을 했겠으나 적연흥은 단지 한마디 탄성으로 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스스스……!

―― !

갑자기, 만근 거석 전체가 연기를 내며 얼음이 녹듯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음……

이번에는 적연흥도 안면을 부르르 떨었다.

대단한 침착성이군. 이 아이의 정력(定力)은 가히 천하제일이겠는걸……

모산독군은 감탄하며 손을 내렸다.

이미 만근 거석은 모두 녹아버린 후였다.

어떠냐? 이 정도면 노부가 만년화룡과 싸워서 지지 않을 것을 믿겠느냐?”

적연흥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소자는 오늘에야 안목이 떠졌사옵니다. 용연곡으로 안내하겠으니 소자를 따르시옵소서.”

허허…… 신세를 지겠다.”

적연흥은 훌쩍 걸음을 옮겼다.

험산에서 능숙해진 그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는 마치 행운유수같았다.

허허 볼수록 놀랍군. 이 아이 발걸음은 같잖은 경공을 익힌 아이들보다 오히려 빠르겠는걸……

모산독군은 감탄하며 적연흥과 보조를 같이했다.

연흥이는 무슨 이유로 어린 나이에 사냥을 하게 되었느냐?”

모산독군이 넌즈시 물었다.

적연흥은 모산독군이 마치 친할아버지같이 느껴져 사실대로 집안사정을 이야기했다.

허허, 어린 나이에 정말 대견하도다. 그래 너는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느냐?”

적연흥은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작고하실 때에 남기신 서적들이 있어 사서삼경 등의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는 모두 읽었사옵니다.”

모산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모산독군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눈길로 전면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정말 신선같은 할아버지시다. 호랑이도 따라잡는 내가 힘을 다해 달리는 데도 그저 걸어서 따라오시다니……

적연흥이 염두를 굴리는데 모산독군은 품속에서 두 권의 두툼한 비단책자를 꺼내었다.

노부는 우연히 한부의 독경을 얻어 독술의 일인지가 되었다. 그후 그 독경을 연구 발전시켜 나름대로 또 한 권의 독경을 만들었느니라.”

적연흥은 의아한 신색으로 모산독군을 바라보았다.

모산독군은 미소를 지으며 두 권의 독경을 적연흥에게 내밀었다.

받거라. 너와 만난 기념으로 이 두 권의 독경을 네게 주마.”

적연흥은 엉겁결에 독경을 받아들고는 당황했다.

이 귀한 것을 어찌 소자에게……

허허, 그 두권 속에는 너무나 패도적인 독공이 수록되어 있다. 노부는 평생 제자를 두어 가르킨 적도 없으며 자칫 노부의 진전이 악인에게 전해져 무림에 해를 끼칠까 저어해 왔다.”

…… 하오면 이를 어찌 소자에게……

허허, 본시는 이번 북안탕의 일을 마치면 그 독경들은 없애버리려 했었으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독경이 유용하게 쓰일 인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너이니라.”

적연흥은 겸연쩍어 얼굴을 붉히면서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소자에게 귀한 독경을 전수하셨으니……

적연흥이 절을 하려하자 모산독군은 무형경기로 그의 몸을 떠받쳤다.

허허, 그럴 필요 없느니라. 노부는 다만 네가 독경을 바른 일에 사용하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그 독경은 무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니 절대 타인에게 보이면 안된다.”

소자 명심하겠사옵니다.”

적연흥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때였다.

―― !”

멀리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일순 모산독군의 백미가 꿈틀 했다.

! 가보자꾸나!”

모산독군이 재빨리 적연흥의 팔목을 잡고 몸을 솟구쳤다.

…… !”

적연흥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미풍에 실려가는 깃털마냥 둥실 떠오름을 느꼈다.

―― !

적연흥이 놀라는 사이 그의 손목을 쥔 모산독군은 선풍같이 폭사되어 나갔다.

주위의 경물이 환상같이 홱홱 지나가고 무서운 속도감이 적연흥을 휘감았다.

 

삽시에 두 사람은 어느 협곡으로 날아들었다.

……!”

모산독군과 협곡으로 날아내린 적연흥의 검미가 깊이 찌푸려졌다.

협곡 입구에는 이십여 명의 백의몽면인들이 죽어 있었다.

한데, 그들이 죽어 있는 형상이 너무나 끔찍했다.

사지가 끊어져 나간 자가 있는가 하면 상체가 완전히 부서져 죽은자, 복부가 터지고 두상이 박살이 난자 등등 하나같이 잔혹 악랄한 수법에 절명해 있었다.

―― !

으아악…… 아악!”

그사이에도 연신 협곡 안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 음산(陰山)의 못된 애송이가 저지른 짓이군. 이십 년만에 강호에 나오자마자 후배들에게 무자비한 살수를 쓰다니…… 그 잔혹한 손속을 버리지 못했군.”

시체들을 살펴본 모산독군이 혀를 찼다.

아시는 분이 저지른 일입니까?”

적연흥이 다소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단다. 음산잔마(陰山殘魔)라는 후배인데 손 씀씀이가 무척 잔혹하다. 들어가 보자.”

모산독군과 적연흥은 협곡 안으로 들어 섰다.

크크크…… 네놈들이 감히 노부를 건드리다니…… 한놈 남기지 않고 때려 죽이리라.”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선 적연흥의 눈에 일단의 인물들이 혈전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인물은 이십여 명의 백의인들 사이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회포노인이었다.

회포노인은 불구자였다.

한 팔과 한 다리가 없을 뿐 아니라 두 눈 중 하나가 없었다.

하나, 그 노인은 비록 불구였으나 그 무공은 대단했다.

외팔과 외다리가 날아가면 칼날같은 경풍이 휘몰아쳤다.

파파팟!

―― !”

그 사이에도 한 백의몽면인이 괴인에게 죽음을 당했다.

백의인의 검이 허공을 베는 순간 귀인의 손아귀가 그자의 목뼈를 꺾어 버린 것이다.

이미 바닥에는 수십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고 남은 백의인들도 정신없이 괴인의 공세를 피하기에 바빴다.

이놈!”

모산독군이 두 눈에서 노기를 발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협곡전체가 무너질 듯이 진동하였다.

!”

으윽…… !”

적연흥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괴인과 백의몽면인들은 고막이 터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만큼 모산독군의 내공은 무서웠다.

! ……형님!”

모산독군을 발견한 괴인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졌다.

―― !

괴인은 한 다리로 껑충 뛰어 모산독군 앞으로 내려섰다.

아니 형님께서도 모산에서 예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까?”

괴인, 음산잔마의 말을 들은 백의몽면인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 모산독군!”

확실히 모산독군의 명성은 무서웠다.

음산잔마에게는 대항해서 싸우던 백의인들이건만 모산독군이 나타나자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떠는 것이었다.

―― !”

모산독군은 노여운 눈길로 음산잔마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얼굴을 폈다.

네 손속은 여전히 잔악하구나. 이제 염라전에 갈 날도 멀지 않은 것이 그 잔악한 손버릇을 못 고치다니…… 쯧쯧……

모산독군의 야단을 맞은 음산잔마는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형님, 소제도 이렇게 손을 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요. 헌데 저놈들의 하는 짓거리가 소제의 오장을 북북 긁어 놓아 그만 심하게 손을 쓰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모산독군은 음산잔마의 말을 들으며 날카로운 눈길로 한구석에 엉거주춤 물러 서 있는 백의몽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모산독군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자 백의인들의 전신은 더욱 심하게 부들부들 떨렸다.

쓰고 있는 보자기를 벗어라!”

모산독군이 백의인들을 노려보다가 버럭 일갈했다.

…… 예옛!”

백의인들은 깜짝 놀라며 몽면을 벗었다.

몽면 속에서 나온 얼굴들은 모두가 그다지 선하게 보이지 않는 면상들이었다.

어느 놈이 우두머리냐? 이리 나와라!”

모산독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자가 엉거주춤 걸어 나왔다.

말해랏!”

모산독군이 싸늘히 바라보며 일갈했다.

그러자 그자는 그대로 털퍽 주저앉았다.

…… 죽여 주십시오. …… 후배들은 염왕보(閻王堡)의 수하들로서…… 보주님의 명을 받들어…… 군웅들은 용연곡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계속해라.”

모산독군이 냉랭히 말하자 그자는 한 차례 부르르 떨며 말했다.

…… 모두가…… 군사이신 독…… 심제갈(毒心諸葛)께서…… 생각해내신 것으로…… 요소요소에 함정을 마련하여 용연곡으로 만년화룡의 내단을…… 노리고 오는 군웅들…… 암습……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후배들은 단지……시킨대로 했을……

알았다. 부상자를 데리고 썩 사라져랏!”

모산독군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 선배님의 은혜…… 각골난망이옵니다.”

그자는 산았다는 안도감에 수십 번이나 이마를 땅에 찍어대고는 수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헤헤…… 형님 축하합니다.”

느닷없는 음산잔마의 말에 모산독군은 영문을 몰라 백미를 찌푸렸다.

축하라니…… 난데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하, 형님두 참, 소제가 아무렴 형님제자를 빼앗기라도 할까봐 그러십니까? 이 아이같은 귀재를 얻은 것을 축하드린다는 말씀이옵니다.”

음산잔마가 신나게 떠들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무척이나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음산잔마의 말을 들은 모산독군은 피식 웃었다.

오해말게. 이 아이는 오늘 막 만난 아이일세. 자 연흥아 인사 드려라.”

적연흥이라고 하옵니다.”

적연흥이 인사를 하자 음산잔마는 유심히 그를 들여다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볼수록 훌륭한 기골입니다. 만일 무공을 익힌다면 능히 천하인(天下人)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산독군이 말을 받았다.

그것을 누가 모르는가? 하나 무공을 익히고 안 익히고는 이 아이의 마음이니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게.”

음산잔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나 뿐인 손을 품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힐끗 모산독군을 바라보자 모산독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산잔마는 한 권의 낡은 고서를 빼들었다.

이것은 전대기인이신 천잔수(天殘叟)라는 분이 남기신 무공비급이다. 본래는 천하무쌍의 무공이나 노부의 자질이 아둔하여 육성 정도 밖에 연성하지 못했다.”

음산잔마가 무공비급을 내밀자 적연흥은 움찔 했다.

허허…… 비록 노부가 너를 제자로 맞을만한 그릇은 못되나 천잔수께서 남기신 이 비급안의 내용은 가히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것이니라, 너와 만난 기념으로 주는 것이니 받거라.”

모산독군이 빙그레 미소하며 말했다.

연흥아 받아 두거라. 익혀두면 후일 큰 쓸모가 있을 것이니라.”

적연흥은 정중히 천잔수가 남겼다는 비급을 받아들었다.

감사하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하심을 잊지 않겠사오며 반드시 좋은 일에 사용 하겠사옵니다.”

음산잔마는 입이 찢어져라 헤벌쭉 웃으며 적연흥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이제 그만 용연곡으로 가보세.”

모산독군이 주의를 상기하여 삼인은 협곡을 빠져 나왔다.

노제는 무슨 욕심이 생겨 용연곡을 찾는가? 다 늙은 주제에 만년화룡의 내단이라도 얻겠다는 얘긴가?”

음산잔마가 비록 모산독군에게 하대를 받고 있으나 사실 그의 나이도 백 살이 넘은지 오래였다.

문득, 음산잔마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형님도 아시고 계시지요? 소제가 삼십 년 전에 아이 하나를 양자로 삼은 일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 경한이라는 아이던가? 그때 아마 열 살쯤 된 똘망똘망한 아이였지.”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다 자라서 이십여 년 전에 양가규수를 신부로 맞아 오년 만에 제게 귀여운 손녀를 안겨 주었습지요.”

모산독군은 적연흥의 팔을 잡고 행운유수(行雲流水) 같이 나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질 고약한 네게는 너무 과분한 복이군.”

음산잔마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혜미(慧美)라고 지었는데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한시도 제 손에서 놓지를 않았습죠……한데……

흠 무슨 일인가 있었군.”

음산잔마의 안색이 극히 어두워 졌다.

그 아이의 전신 경맥이 점차 한기를 띄더니…… 급기야 요즘에 와서는 운신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전신이 새파래지고……

모산독군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오음절맥(五陰絶脈)이군!”

적연흥도 흠칫 했다.

부모님들이 모두 병환으로 고생하셔서 적연흥은 자연 많은 의서를 읽었다.

오음절맥이 난치의 고질이라는 사실을 그 의서들 중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저도 최근에야 그 아이의 증세가 오음절맥임을 알았습니다.”

모산독군이 혀를 찼다.

미련곰탱이 같은 네 돌 머리는 여전하구나. 그렇다면 일찌감치 노형에게 데려올 것이지…… 쯧쯧…… 그래서 혜민가 하는 손녀의 오음절맥을 고치기 위해 만년화룡(萬年火龍)의 내단이 필요하단 말이지?”

음산잔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년화룡의 내단으로도 아니 됩니까?”

만년화룡의 내단은 천하에서 가장 양강(陽强)한 기물이지. 오음절맥이 아니라 구천태음신맥(九天太陰神脈)이라도 치료할 수 있어. 다만 여아일 경우에는 그 거센 양기로 순음지기가 훼손될 수도 있으므로 직접 복용은 못할 따름이지……

음산잔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못된 놈들……

갑자기 모산독군의 동안에 냉기가 흘렀다.

음산잔마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전면을 바라보았다.

염왕보(閻王堡)와 백의염왕(白衣閻王)이란 애송이가 갈 수록 못된 짓거리만 하고 있군요.”

가보세!”

두 기인의 말에 적연흥은 의아했다.

―― ―― !

모산독군과 음산잔마의 신형이 더욱 빨라져 질풍같이 쏘아나갔다.

음산잔마는 외다리만으로도 껑충껑충 뛰어 오는대도 그 빠르기가 굉장했다.

―― !”

――차창――

―――― 아악!”

, 적연흥의 귀에 어지러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랏!”

허공에 뜬 모산독군의 일성이 북안탕을 뒤흔들었다.

!”

…… …… 저 노인은……

장내에서 여러 마디의 경악성이 터지며 중인들은 모두 손을 멈추었다.

휘르르……

모산독군은 적연흥과 함께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 모산독군!”

경악성이 장내를 메웠다.

적연흥은 장내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널찍한 곡구를 백여 명의 몽면인들이 막아 서 있었다.

몽면인들의 전면에는 한 명 거구의 노인이 왜소한 중년인과 서 있었다.

그들의 전신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모산독군의 출현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 외에 한쪽으로는 남녀노소가 뒤섞인 일단의 군웅들이 모여 있었다.

! 이리 와랏!”

모산독군이 거구의 백의노인을 가리키며 준엄하게 외쳤다.

…… 노선배님…… 무슨 하교가 계신지……

백의노인이 사색이 되어 주춤주춤 다가섰다.

사지중 하나를 자르고 떠나랏!”

모산독군의 일갈에 백의노인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 잘못 걸렸다. 저 노독물이 설마 이곳까지 올 줄이야…… 자칫하면……한 목숨 구하기도 힘들다.’

백의노인은 무림사패(武林四覇)로 불리는 네 개의 큰 세력 중 하나인 염왕보(閻王堡)의 주인 백의염왕(白衣閻王)이란 자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무림사패 중 하나라 해도 모산독군과는 천양지차!

거역하다가는 한줌 혈수로 변하리라……

백의염왕의 이마에서 주르르 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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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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