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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자금성> 자금성의 모습. 저녁 무렵

외진 곳에 자리한 음침한 건물. 건물 처마에 <東廠>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허리에 검이나 칼을 찬 환관들이 오간다.

<-동창(東廠)> 위의 건물의 모습 배경으로

 

환관1; [내각(內閣)에서 보내온 이번 전시의 급제자 명단입니다.] 젊고 건장하게 생긴 환관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담길에게 두 손으로 서류를 내밀고. 이 환관은 담길이 과거 시험장에 나왔을 때 수행했던 두 명의 젊은 환관중 한명이다.

담길; [장원은 누구냐?] 서류를 받으며 묻고. 장소는 담길의 집무실. 상당히 넓고 여러 명의 환관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다.

환관1; [남경(南京)에서 재자(才子)로 명성이 자자하던 양여생(楊如生)입니다.]

담길; [내각 수보였던 양정화의 조카 이름이 양여생이었지?] 서류를 펼치면서

환관1; [바로 그자입니다.]

담길; [양여생은 제 백부를 빼닮은 영민한 놈이니 장원급제를 했어도 뒷말은 없겠군.] 끄덕이며 서류를 넘기며 읽고. 그러다가

멈칫! 서류를 넘기던 담길의 손이 멈춰지고

담길; [탐화는 벽세황?] [이놈 이름도 어쩐지 낯설지가 않군.] 서류를 보며

환관1; [벽세황은 황금전장의 소장주입니다.]

담길; [그랬었지. 기억이 났다.] 끄덕이며 다시 서류를 넘기고

담길; [하지만 의외로군.] [조상이 백정인 놈이 과거에 급제를... 그것도 삼등급제를 하다니...]

환관1; [그래서 한림원에서도 답안을 모든 학사들에게 돌려 검토하게 했다는데...] 눈치 보며

환관1; [결론은 삼등급제가 타당한 것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담길; [백정의 후손이고 수전노의 아들인 놈이 과거에 급제라...]

담길;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로군.] 끄덕이며 서류를 넘기고

환관1; [나머지 급제자들 중에도 딱히 의심되는 자는 없었습니다.] [신원조회에서 이상이 발견된 자 역시 없습니다.]

담길; [그렇긴 한데...] 서류를 덮으며 생각에 잠기고

담길의 뇌리에 떠오르는 청풍의 모습. 고개 숙이고 요패를 두 손으로 든 모습

환관1;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으신지요?] 눈치 보며

담길; [종이!] 옆의 벼루에서 붓을 집어들고

환관1; [여기...] ! 책상 한쪽에서 종이를 집어 담길 앞쪽으로 내밀고

! ! 종이에 사람 얼굴을 그리기 시작하는 담길

환관1; (제독께서 누군가의 용모파기를 그리신다.)

환관1; (제독의 능력 중 하나가 탁월한 기억력이지.) 생각할 때

! 이윽고 그림 다 그리고 붓을 뗀다.

그림을 보며 붓은 다시 벼루에 내려놓고

환관1; [지급으로 이자를 찾아라!] ! 그림을 환관1에게 밀어주고

! 드러나는 그림. 바로 모자를 눌러쓴 청풍의 모습이다. 과거 시험장에서 담길이 본 청풍의 모습이다.

환관1; [이자가 누군지요?] 두 손으로 종이를 집어들고

담길; [이름은 모르지만 지난 번 전시를 봤던 자다.]

담길; [급제자들의 용모와 대조하고...] [일치하는 자가 나오지 않으면 탈락한 응시생들을 전수 조사해서 찾아내라.]

환관1; [존명!] 허리 숙이고

종이 들고 가는 환관1

담길; (그놈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그 반지...) 청풍이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떠올리고

담길; (워낙 특이한 모양이라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찡그리고

담길; (그리고 오랜 세월 세상의 정보를 주물러온 내 본능이 말하고 있다.)

담길; (그놈이 천하를 뒤흔들 사연을 품고 있다는 것을...) 강렬한 표정

 

#37>

<-북경 북쪽 조백하(潮白河)> 깊은 밤. 멀리 북경의 불빛이 보이는 강가.

그 강가에 세워진 음침한 장원. 불은 거의 켜있지 않다. 하지만

어둠 속에 유령같이 매복해 있는 자들이 있다. 정원의 나무나 바위, 건물 그늘등에 은신해있는 자들. 주변 사물과 동화되어 있으며 얼굴에 복면을 쓰고 있다. 백살파의 자객들이다. 그리고

그자들이 지키는 장원의 가장 큰 건물. 그 건물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문과 창문은 꼭꼭 닫혀있다.

 

#38>

건물 내부. 넓은 대청인데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장면. 바닥에 수십 개의 관이 뚜껑이 열린 채 놓여있고. 관 옆에 고급스러운 옷을 걸친 사내들이 한명씩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주문을 외우고 있다. 관속에는 속옷차림의 사내들이 눈을 감고 누워있다. 헌데

츠츠츠! 츠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자들의 얼굴이 조금씩 변하는데

그 모습이 관속에 누워있는 자들을 닮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관속에 누운 인물들의 얼굴과 가부좌를 튼 자들의 얼굴을 함께 보여주고

열심히 주문을 외우는 자들. 그에 따라

츠츠츠! 그자들의 얼굴이 움직이고

대청의 끝. 조금 높은 단상에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서 현장을 보고 있다. 한 놈은 보통 체격에 기생오라비 같은 서생이고 한 놈은 덩치가 아주 큰 데 백정같은 인상이다. 캐릭터는 394. 기생오라비같은 놈은 환마루의 부루주인 천면서생이고 덩치 큰 놈은 백살파의 부루주인 인도부다. 천면서생의 무기는 접는 부채. 인도부의 무기는 양쪽 허리에 차고 있는 두 자루의 중식 주방용 사각 칼인데 보통 주방용 칼보다 몇 배 더 크다.

인도부; [그럭저럭 막바지에 이른 것 같소 부()루주!] 팔짱 낀 채 대청 안을 보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백살파 부()파주 인도부(人屠夫)>

천면서생; [이 밤이 가기 전에 마무리가 지어질 거요.] 부채를 들고 뒷짐을 쥔 채 고개 끄덕이고.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환마루 부()루주 천면서생(千面書生)>

인도부; [하여간 지존께서 하사하셨다는 천변만화결(千變萬化訣)은 신통하기 이를 데 없소.] [가면이나 약물을 쓰지 않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얼굴이 될 수 있다니...] 감탄하며 둘러보고

천면서생; [본좌도 명색이 역용술의 달인이오만...]

천면서생; [내공으로 얼굴의 근육을 하나하나 조작해서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재주는 들어본 적이 없소.]

인도부; [역용술로는 천하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천면서생께서 그리 말하니 천변만화결이 얼마나 대단한 재주인지 알겠소.]

인도부; [지존은 대체 이런 재주를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소.]

천면서생;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재주라면 출처가 정해져 있지 않겠소?]

인도부; [전설 속의 문파들인 신선부나 마귀동이겠소.] 눈 번뜩

천면서생; [구대천마의 후손인 우리 백살파나 환마루를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문파가 신선부와 마귀동 외에 또 어디 있겠소?]

인도부; [동감이오.] 끄덕이고. 그때

! 관 옆에 있던 놈들 중 하나가 손을 쳐들며 일어난다.

천면서생; [드디어 역용이 끝난 놈이 나왔군.] 그자에게 다가가고. 인도부도 따라가고

사내1; [부루주님!] 일어나며 포권하고

천면서생; [진짜의 머리맡에 서라.] 다가가며 말하고.

사내1; [...] 대답하며 관에 누운 인물의 머리맡으로 가서 서고

인도부와 함께 관속의 인물과 그 인물 머리맡에 선 사내1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천면서생과 인도부. 관속 인물과 사내1의 얼굴은 똑같다. 다만 관속의 인물은 화려한 옷 대신 속옷차림이라는 게 차이가 나고

인도부; [허어! 같은 뱃속에서 나온 쌍둥이처럼 똑같구만.] 감탄하고

사내1; [감사합니다!] 굽신

천면서생; [얼굴은 되었고...] [네가 대역을 할 자의 신상에 대해 읊어봐라.]

사내1; [이자는 도찰원(都察院) 정사품 첨도어사(僉都御使) 윤증(尹拯)이란 자입니다.] 관속의 인물 보며

사내1; [올해 마흔 한 살로 한명의 처와 세 명의 첩이 있으며 슬하에는 이남사녀의 자식을 두고 있습니다.]

천면서생; [잘 알고 있군.] 끄덕

천면서생; [감찰기관인 도찰원의 어사라면 우리 지존회가 천하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천면서생; [만에 하나라도 정체가 들통 나지 않도록 윤중이란 자의 언행을 모방하는 데 공을 들이도록 하라.] 돌아서고

사내1; [존명!] 포권하고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며 일어나고 있는 자들. 그자들에게 가는 천면서생. 그 뒤를 따라가 는 인도부

인도부; (하여간 지존의 철두철미함에는 소름이 돋는다.) 천면서생이 다른 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걸 보며 생각하고

인도부; (무림뿐만 아니라 황실까지 차근차근 가짜들로 채워가고 있다.)

인도부; (물론 지금 당장은 황실의 고위직까지는 건드리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천면서생이 다른 자들을 점검하는 걸 보며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황실도 완벽하게 지존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 장내의 모습 배경으로 인도부의 생각 나레이션

 

#39>

건물 밖. 여기저기 은신해있는 백살파의 복면인들. 문득

띠리링! 어디선가 비파 소리가 들리고

<비파소리!> <이 야심한 중에 누가 비파를 탄주하는 것인가?> 매복해있던 백살파의 복면인들 눈 번뜩일 때

띠리링! 띠리링! 비파소리가 점점 커지고. 그러자

두근! 두근! 매복해있던 복면인들의 심장이 급격히 빨라진다.

<...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당황하는 복면인들. 직후

띠리링! 비파 소리가 확 커지고. 그러자

[!] [케엑!] [기혈이 역류한다!] [!] 일제히 피를 토하며 나뒹구는 복면인들

 

#40>

건물 내부. 천면서생이 손을 든 자들의 용모를 진짜와 비교하는 중인데

[!] 천면서생 뒤에 서있던 인도부의 눈이 부릅떠지고

<크악!> <!> 여러 명이 동시에 터트리는 비명소리가 동시에 터지는 게 인도부의 귀에 들린다

인도부; [이런!] ! ! 양쪽 허리의 칼들을 반대편 손으로 급히 뽑으며 이를 갈고

천면서생; [!] 역시 놀라 돌아볼 때

띠리리링! 건물 안에도 비파 소리가 들리고. 그러자

[!] [!] [... 심장이...] 가짜들이 기겁하며 가슴을 누를 때

천면서생; [음공(音功)이다! 귀를 막아라!] 다급히 외치며 자신의 귀를 양손으로 막고. 하지만 그 직후

따다다당! 강한 비파소리가 터지고. 그러자

[크악!] [케엑!] [!] 가짜들이 일제히 비명 지르며 입과 코와 귀로 피를 터트린다. 관속의 인물들은 정신을 잃은 상태가 멀쩡하고.

천면서생; [!] 입과 코로 피를 토하며 비틀. 귀는 두 손으로 막고 있고

인도부; [!] 뒤늦게 칼을 들고 있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비틀하고. 입과 코, 귀로 피가 터지고.

털썩! 퍼억! 가짜들이 남김없이 쓰러지고. 직후

! ! 사방의 문과 창문을 박살내며 뛰어드는 거지들. 거지지만 덩치들이 크고 귀에는 헤드폰 같은 것을 쓰고 있고 무기는 칼이나 몽둥이, 밧줄들이다. 지휘자는 정문을 박살내며 뛰어드는 거지들을 따라 들어오는 독두신개다.

인도부; [... 개방의 거지들!]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비틀

천면서생; [호천맹이 오늘의 회합을 알아차렸구나!] 역시 귀를 막은 채 비틀하고

독두신개; [가짜들을 생포하라.] [저항하는 놈은 죽여도 무방하다!] 정문으로 들어오며 눈을 부라리면서 외치고

[존명!] [잡아라!] [잘 걸렸다 환마루의 잡것들아!] 파팟! 콰득! 우둑! 개방의 거지들이 자기 주변에 쓰러져 있는 가짜들의 혈도를 찍거나 밧줄로 묶는다.

[죽일 놈들!] [개수작 마라!] 부악! 화악! 인도부와 천면서생이 몸에서 강한 기운을 터트리며 가까운 개방 제자들을 공격하려 하고. 하지만

[네놈들은 우리 몫이다!] [크아!] 쐐액! 화악! 독두신개를 날아 넘으며 천면서생과 인도부를 공격해가는 색목쌍교. 일교는 아라비아 풍의 휘어진 긴 칼을 휘두르고 이교는 거대한 도끼를 휘두른다.

[네년들은...] [호천맹 군사 병서시(病西施)의 호위 색목쌍교로구나!] 급히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인도부와 천면서생

! 일교의 칼은 천면서생을 베어가고. + 쉬악! 천면서생은 접은 부채를 휘둘러 맞서는데 부채에서 긴 섬광이 일어난다

부악! 이교의 도끼가 강력하게 날아들고 + 쉬악! ! 인도부는 양손의 거대한 식칼로 맞선다

! ! 서로의 무기가 격돌하고

콰드드! 콰득! [크윽!] [!] 이미 내상을 입은 상태인 천면서생과 인도부가 다시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난다. 그 앞에서 일교와 이교가 내려서고

독두신개; (어린 것들이 대단하구먼.) 뒤에서 보며 감탄하고

<비록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고는 해도 환마루와 백살파의 이인자들을 압도하다니...> 크아! 죽어라! 다시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천면서생과 인도부에게 쇄도하는 색목쌍교의 모습을 배경으로 독두신개의 감탄. 하지만

천면서생; [철수합시다 부파주!] ! 발로 바닥을 강하게 밟으며 외치고

인도부; [크왓!] ! 역시 발을 구르고, 그러자

! 두 놈이 서있던 바닥이 그대로 푹 꺼지고 두 놈도 함께 아래로 내려간다

쩌억! 부악! 간발의 차이로 두 놈의 머리 위로 스치는 색목쌍교의 칼과 도끼

색목쌍교; [이런 쥐새끼 같은 것들이!]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두었구나!] 휘익! ! 구멍이 난 바로 앞에 내려서며 이를 갈고

아래를 들여다보는 색목쌍교. 바닥이 꺼진 5미터쯤 아래에 옆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그러자

일교; [가자 이교(二嬌)!] 외치며 구덩이로 몸을 날리려 하고. 이교도 아래로 몸을 날리려는데

[멈추세요!]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멈칫! 하는 색목쌍교

위상영; [궁지에 몰린 적은 쫓으면 안되는 법이에요.] 부서진 정문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위상영. 비파를 안고 있는데 도도하고 여신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돌아보는 독두신개. 주변의 거지들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색목쌍교; [아가씨!] 위상영쪽으로 돌아서고

독두신개; [어서 오게나 군사.] 역시 위상영 쪽으로 돌아서고

독두신개; [군사가 이혼비파로 미리 기혈을 뒤집어놓은 덕분에 환마루와 백살파의 마귀새끼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어.] 거지들이 환마루의 가짜들을 제압하여 한쪽으로 끌고 가는 걸 보며 말하고

위상영; [인도부와 천면서생을 놓친 건 아쉽지만 이 정도만 해도 지존회에 충분히 타격을 입힌 셈이에요.] 역시 둘러보며 말하고. 색목쌍교는 서둘러 위상영에게 다가온다.

위상영; [황실에 가짜들을 심으려던 지존회의 의도를 무산 시켰으니까요.]

독두신개; [그런 셈이지.]

위상영; [납치 된 관리들과 환마루의 가짜들을 금의위에 넘겨주세요.] [지존회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를 황실이 알게 해야만 해요.]

독두신개; [그리 함세.] 끄덕이고.

일교; (오늘 일로 지존회는 황실에 의해 불온한 세력으로 낙인찍히겠지.) 고개 끄덕이고. 그때

독두신개; [이놈들아! 군사의 말씀 들었지?] 거지들에게. 돌아보는 거지들

독두신개; [납치되어 온 관리 분들과 생포한 역적 놈들을 모두 북경으로 압송한다.] 거지들에게 외치고

[예 태상호법님!] [존명!] 대답하는 거지들

서둘러 포로들을 끌고 건물에서 나가는 거지들. 관속에 누워있던 관리들은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조심스럽게 일으키고

위상영; (오늘을 기점으로 지존회와의 본격적인 격돌이 시작될 것이다.) 거지들이 관리들과 포로들을 끌고 나가는 걸 보며 생각하고.

위상영;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를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잘못된 야망은 반드시 좌절시켜야만 한다.) 우울한 표정

 

#41>

<-북경> 아침.

<-황금전장> 정문이 활짝. 헌데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드나든다. 화려한 마차들도 드나들고 있고

 

황금전장 내부. 건물 사이를 발랄하게 걸어가는 벽옥령. 한손에는 찬합을 싼 보자기를 들고 있다. 오가던 하녀들과 하인들이 인사하고

벽옥령; (청풍오빠는 오늘도 장경각에서 죽치고 있을 생각일 거야.) 하녀와 하인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걸어가고.

벽옥령; (같이 간식 먹자는 핑계로 청풍 오빠와 시간을 보내야지.) 찬합을 든 채 걸어가며 입이 귀에 걸리고

벽옥령; (청풍오빠는 삼등급제를 해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어.) (이제 곧 아버지는 나와 청풍오빠의 혼례를 준비시킬 거야.) 생각하며 건물 사이에서 나와 황금전장을 가로지르는 큰 길로 나온다.

큰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화려한 차림의 중년부인들도 양산을 쓰고 오간다. 이 중년 부인들은 매파, 즉 뚜쟁이들이다.

벽옥령; (드디어 청풍오빠와 몰래 해온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는 거야.) 좋아 죽으려 하며 걸어가고.

그런 벽옥령을 보고 눈을 치뜨는 매파들

매파1; [혹시 벽옥령아가씨 아니신가요?] 다른 매파들과 함께 급히 벽옥령에게 다가오며 묻고. 그러자

벽옥령; (못 보던 얼굴들인데...) + [그래요. 내가 벽옥령이에요.] 멈춰서며 매파들을 돌아보고. 그러자

[어머나! 정말 아가씨셨군요.] [소문보다 몇 배는 더 예쁘세요.] [침어낙안, 폐월수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미녀세요.] 매파들 호들갑 떨고

벽옥령; (이 아줌마들 아부가 지나치네.) + [고마워요. 그런데 부인들은 뉘신가요?] 새침하게

매파들; [어머나 결례를 했군요.] [저희들은 여러 권문세가에서 보낸 매파(媒婆)들이랍니다.] 호들갑 떨며 자기소개를 하고

벽옥령; [매파?] 찡그리고

벽옥령; [제 오빠에게 혼담을 가져온 건가요?]

매파들; [어디 소저 오라버니만이겠어요?] [아가씨에 대한 혼담도 쇄도하고 있답니다.] 눈웃음을 치며

벽옥령; [나한테도 혼담이 들어오고 있다구요?] 눈 치뜨고

매파들; [그럼요. 권문세가들은 물론이고 왕후장상들도 아가씨를 며느리로 들이려고 안달이 났답니다.] [잘하면 아가씨는 어느 왕가의 왕비가 되실 수도 있어요.]

벽옥령; [쓸데없는 소리들 말아요.] 눈 치뜨며 버럭 외치고

매파들; [엄마야!]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용서하세요.] 매파들이 놀라며 벽옥령의 눈치를 보고. 오가던 사람들과 하녀, 하인들도 무슨 일인가 하며 보고

벽옥령; [난 권문세가든 왕후장상이든 관심없어요.] [그러니 헛물켜지 말고 혼담 따위 물어오지 마세요.] ! 돌아서는데

매파들;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마님께서는 혼담을 모두 접수하라고 하셨는 걸요?] [들어온 혼담 중에서 마음에 드는 혼처를 고르실 생각이실 거예요.] 매파들이 벽옥령의 등에 대고 눈 흘기며 말하고.

돌아서다가 눈 치뜨는 벽옥령

벽옥령; [어머니가 내 혼담도 모으라고 했다구요?] 다시 홱! 돌아보고

매파들; [맞아요.] [벌써 열군데 넘는 혼담을 마님께 전해드렸답니다.] 신이 나서 말하고. 그러자

털썩! 들고 있던 찬합이 벽옥령의 손에서 떨어지고

벽옥령; (엄마... 엄마가 설마 나를 청풍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분노와 충격으로 부들부들 떨고. 매파들이 겁에 질려서 볼 때

벽옥령;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돼!) 파팟! 이를 갈며 달려간다.

매파들; [어마나!] [소문대로 조신하진 않은 아가씨잖아.] [품행이 방정한 것과는 거리가 있네.] 사슴처럼 달려가는 벽옥령의 뒷모습을 흘겨보고. 벽옥령의 앞쪽을 오가던 사람들은 황급히 비켜서고 있고

매파들; [그래도 큰 흠결은 안될 거야.] [그렇고 말고! 천하삼대 부호가문의 고명딸을 어느 집안에서 마다하겠어?] 웃는 매파들

 

#42>

황금전장의 내원. 마은혜의 거처. 여자 무사들이 지키고 있고

마은혜; [정말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어제부터 내로라하는 집안들로부터 혼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 뭐예요.] 벽초천과 마주 앉아 신이 나서 말하고.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서 다과를 나누던 중이다. 벽초천은 심각한 표정. 방안에는 강혜분과 다른 하녀 한 명이 눈치를 보며 시중을 들고 있다. 그 하녀는 강혜분보다 어려 보인다.

마은혜; [이게 다 세황이가 과거에 급제하면서 벌어진 일이에요.] 신나서 말하고

벽초천은 말없이 차를 마시며 듣고 있고

마은혜; [세황이가 당당하게 관계에 입성하면서 우리 황금전장은 더 이상 근본 없는 집안이 아니게 되었어요.]

마은혜; [그러자 지금까지는 백정의 후손이니 뭐니 하며 깔보고 비하하던 집안들이 사돈을 맺고 싶어 안달이 난 거예요.]

마은혜; [왜 그러고 싶지 않겠어요?] [사돈만 되면 우리 황금전장의 막대한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는데...]

여전히 말없이 듣고 있는 벽초천. 생각이 복잡한 표정

마은혜; [세황이 뿐만이 아니에요.] [옥령이를 며느리로 달라는 집안들도 속출하고 있어요.] 신나서 말하고

찡그리는 벽초천

[!] 깜짝 놀라는 강혜분과 하녀

강혜분; (마님은 설마 옥령아가씨를...) 불길한 예감

마은혜; [기침 꽤나 한다는 집안이 여럿인데...] [조금 더 기다리면 왕가(王家)에서도 옥령이를 달라고 할지 몰라요.] 흥분

마은혜; [우리 옥령이가 왕비가 될 수도 있다니...] [이게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두 손으로 자기 볼을 감싸며 좋아하고. 순간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엄마!] 벌컥! 문을 부서져라 열고 거실로 뛰어드는 벽옥령. 문 밖에서 여자 무사들이 당황하며 돌아보고 있고

강혜분; (일 났네.) 탁자에서 물러서며 벽옥령의 눈치를 보고

마은혜; [어서 와 우리 딸!] 반색하며 돌아보지만

벽옥령; [매파들에게 들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눈물 글썽이며 다가오고. 그 뒤에서 여자 무사들이 급히 문을 닫아주고

마은혜; [옥령아! 그건...] 당황하는데. + 벽옥령; [세황오빠 대신 과거를 보는 대가로 청풍오빠에게 나를 주기로 약속하셨잖아요.] 눈물 글썽이며 이를 갈고

찡그리는 벽초천. 얼굴 굳어지는 마은혜

벽옥령; [그런데 이제 와서 날 다른 집안에 시집을 보내겠다구요?] 악을 쓰고

마은혜; [옥령아! 엄마 말 좀 들어보렴.] 달래려 하지만

벽옥령; [나와 청풍오빠 사이를 허락하셨으면서 왜 매파들에게 혼담을 모아오라고 하신 건가요?] 두 주먹 불끈 쥐며 악을 쓰고

벽옥령; [신용을 으뜸으로 삼는 게 우리 집안의 전통 아니었나요?] [설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처럼 생각이 바뀌신 건가요?] 발 동동 구르며 쏟아내고.

마은혜; [무슨 말 버릇이냐 옥령아?] 당황하며 벽초천의 눈치를 보지만

벽초천은 여전히 이마 찡그리며 듣고만 있다.

마은혜; [너도 어미 입장이 되어봐라!] [겨우 대리시험 한 번 봤다고 귀한 딸을 종놈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느냐?]

벽옥령; [... 뭐라구요?] 기가 막히고

강혜분의 얼굴도 굳어지고

벽초천은 찡그리고

마은혜; [청풍이에게는 서운하지 않게 보상을 할 것이다.] [면천을 시켜줄 뿐 아니라 돈이든 땅이든 원하는 대로 줄 생각을 하고 있다.] 달래려 하고

마은혜; [대신 너는 가장 좋은 혼처로 시집을 보내야겠다.] [그러니 여러 말 말고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

벽옥령; [그렇게는 못해요!] 악을 쓰고

벽옥령; [엄마가 뭐라 해도 난 청풍오빠에게 시집 갈 거예요.] 주먹 불끈 쥐며 악을 쓰고. 눈물도 흘리면서

마은혜; [닥치지 못해?] 버럭 고함지르며 일어나고

벽옥령; [막으려면 막아보세요. 청풍오빠하고 야반도주라도 해버릴 테니...] 홱 돌아서며 악을 쓰고

벽옥령; [어른이 되어서 이러면 안되는 거 알잖아요.] [엄마 아빠 미워요!] ! 울면서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간다. 밖에 있던 여자 무사들이 당황하고

마은혜; [이 못된 년! 당장 돌아오지 못해?] 발 구르며 화를 내지만

[으아아아!] 악을 쓰며 월동문 밖으로 달려가는 벽옥령

마은혜; [... 저 년이 정말...] 씨근덕대고

마은혜; [혜분아! 종종아!] [옥령이 년을 쫓아가봐라. 정말 청풍이와 야반도주할지도 모르니...] 강혜분과 하녀에게

강혜분; [예 마님!] 다른 하녀와 함께 고개 숙이고

서둘러 거실에서 나가는 두 하녀.

강혜분과 하녀가 나가자 밖에서 여자 무사들이 문을 닫고

! 닫히는 문. 이제 방안에는 벽초천과 마은혜 부부만 남는다.

마은혜; [상공께서도 한 마디 하셨어야지요.] 씨근거리며 다시 벽초천과 마주 앉고

마은혜; [따끔하게 혼내지 않으면 옥령이 저것은 청풍이와의 혼인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구요.]

벽초천; [이번 건에 관해서는 옥령이가 옳소.] 처음으로 입을 열고

마은혜; [상공!] 기겁하고

벽초천; [우리 황금전장이 불과 삼대 만에 거만의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신용 덕분이었소.] [일단 한 약속은 지켜야만 하오.]

마은혜; [물론 사업에서 신용은 지켜야지요.]

마은혜; [하지만 이건 사업이 아니라 우리 딸년의 장래가 걸린 집 안 일이잖아요.] 눈을 희번덕이고

마은혜; [신첩은 죽었다 깨어나도 옥령이를 종놈에게 시집은 못 보내겠어요.] 새침하게 토라지고

벽초천; [이 건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지 마시오.] 엄숙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마은혜; [상공!] 사색이 되어 올려다보고

벽초천; [청풍이가 우리 집안을 위해 세운 공은 다른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는 게 아니오.] 돌아서고

벽초천; [가급적 빨리 옥령이를 청풍이와 짝 지어줄 생각이니 길일을 택하도록 하시오.] 문쪽으로 가고.

마은혜; [하지만...] 말하지만.

덜컹!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벽초천. 여자 무사들이 돌아보고

! 다시 닫히는 문. 혼자 남는 마은혜

마은혜; (기어코 청풍, 그 종놈에게 옥령이를 시집보내시겠다?) 닫힌 문을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고

마은혜; (절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표독한 얼굴 크로즈 업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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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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