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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장

 

           혈포단객 (2)

 

 

(읍!)

혈포단객은 이를 악물었다.

고통이,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그의 정신을 하얗게 표백시켜버렸다.

정말 지독한 악녀였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절세고수인 혈포단객은 그녀의 손에 의해 남성을 잃어버렸다.

[호호호호...]

청의여인은 잘라낸 것을 들고 잔혹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손은 피로서 범벅이 되어있었다.

[천천히 죽여주마!]

청의여인은 웃음을 뚝 그치며 사악한 음성을 내뱉었다.

혈포단객의 배가 길게 찢어졌다. 

풀위로 쏟아진 내장이 꿈틀거리며 더운 김을 뿜었다.

흑의인, 즉 절대칠살의 일살(一殺)이 그 내장을 불끈 밟았다.

[나도 네놈의 천근추에 배가 터져서 죽을 번 했지. 이건 공평한 복수다.]

혈포단객의 눈이 하얗게 까뒤집어졌다.

그러나 급격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은 아직도 그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청의여인은 그의 오른 팔을 잘라내며 말했다.

[본녀를 잘도 괴롭혔겠다. 하나하나 잘라내 나무기둥을 만들어주마.]

피가 그녀의 얼굴로 튀었다.

여인이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이렇게 해서는 분이 풀리지 않겠어요.]

혈포단객의 왼팔이 비틀리며 어깨에서 뽑혀나왔다.

혈포단객은 입만 짝 벌렸을 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크흐흐흐...]

일살이 즐거운듯이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청의여인이 혈포단객의 팔을 팽개치며 일살의 허리를 잡았다.

흥분으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발갛게 달아있었다.

그녀는 피를 보면서 강렬한 성욕을 느낀 것이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토하며 일살의 바지를 까내렸다.

여인에게 기습을 당한 일살이 숨을 들이마셨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에서 낮 뜨거운 장면이 벌어졌다. 

[아아! 더 빨리! 더 세게!]

여인은 일살을 힘껏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황홀한 듯 벌어진 입으로는 몸안으로 무엇이 들어오는 만큼 묘한 음률이 흘러나왔다.

한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발로 툭 찼다.

[...?]

섬찟한 느낌에 고개를 들면서도 그녀는 허리를 움직였다.

이미 피어오른 욕구는 죽더라도 풀지 않을 수 없는 그녀였다.

퍽!

일살은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밟는 것을 느꼈다.

[윽!]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사람을 죽이고 이걸로 잔치라도 벌이겠다는 거야 뭐야? 정말 못 봐주겠어.]

돌연 소녀의 투정을 부리는 듯한 낭낭한 음성이 그들의 귓전을 두들겼다.

한몸이 되어 눌린 자세가 된 청의여인과 일살은 피가 싸늘히 식는 것같았다.

[누...누구냐?]

퍽!

소녀의 발의 번쩍 들리워졌다가 일살의 등에 찍혔다.

“...!”

일살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이 턱 막히고 등판이 으스러지는 것만 같았다.

[물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닐 텐데? 이 아가씨가 묻는 대로 대답이나 하시지?]

여전히 한몸이 된 채 누워있는 두 남녀를 내려다보며 소녀는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가랑이를 벌린 자세로 사내에게 깔린 채 청의여인이 말했다.

[뭘 대답해라는 거냐?]

[이 짓이 재미있어?]

소녀가 세운 무릎에 팔을 걸치고 턱을 고이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청의여인은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계집애는 남녀간의 정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처음 구경하는 모양이구나. 이런 풋나귀들은...!)

그녀는 입가에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직접 해보기 전에는 말로 설명해줘도 모를 걸? 골이 뻥 뚫리는 것같은 느낌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어?]

[그래? 그럼 기회가 닿는 대로 나도 해봐야겠군. 하지만 넌 누구야?]

소녀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청의여인은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소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저건 누구의 시체지?]

[...!]

청의여인은 입이 얼어붙었다.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군. 골이 뻥 뚫려버려서 그런 모양이지?]

소녀는 돌아서서 혈포단객의 처참한 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한데 혈포단객의 몸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러고도 살아있다니...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녀는 혈포단객의 무참한 잔해에 눈살을 찌푸리며 보다가 감탄했다.

그때 청의여인은 일살의 혈도를 풀어주며 소리없이 일어섰다.

일살의 복면속 눈알이 악독한 빛을 뿜었다.

소녀는 한쪽에 떨어진 혈포단객의 팔을 발견했다.

[이건 혈포단객의 혈천갑... ]

바로 그 순간이다.

번쩍!

일살의 검이 소리없이 그녀의 등으로 날아들었다.

파앗!

헌데 그 직후 갑자기 소녀의 허리에서 한줄기의 빛이 폭사되었다.

그것은 마치 은뱀처럼 일살의 허리를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 빛은 더욱 멀리 뻗어나가 청의여인의 목을 꿰뚫어버렸다.

푸악!

일살의 허리가 그제서야 두동강이 나며 쓰러졌다.

바지도 입지 않은 하체가 흉칙한 모습으로 피속에 뒹굴었다.

그 악독하던 청의여인도 치마를 걷어올려 허연 하체를 고스란히 들어낸 부끄러운 자세로 숨이 끊어졌다.

추릿!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치켜드는 손목으로 연검이 휘감겨 들었다.

[허리보다 이게 좋을 것같군.]

그녀는 중얼거리며 혈포단객의 미심혈을 눌렀다.

혈포단객의 눈이 희미하나마 빛을 발했다.

[혈포단객이신가요? 안타깝지만 당신은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살아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고맙... 혈천갑... 백검보... 석두공에게... ]

혈포단객이 입술만을 달짝거렸다.

소녀는 다른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백검보와 석두공, 혈천갑, 이 말들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석두공?!]

소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혈포단객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두공을 알고 있어요? 지금 어디에 있죠?]

소녀가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는... 백...]

혈포단객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가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오객(五客) 중 한명으로 평생 다른 누구와도 상종하지 않고 외로운 늑대처럼 독행(獨行)하던 혈포단객의 어이없는 최후엿다.

소녀는 망연한 듯이 중얼거렸다.

[석두공... 석두공... 그가 살아있었어. 그렇게 찾아헤맸던 그가... 한데 왜 가슴이 이렇게 무겁고 답답할까?]

석두공을 찾아다니는 소녀, 그녀는 바로 장지연이었다.

석두공이 떠난 후 뒤따라 왔던 그녀였는데 숲에서 헤매다가 청의여인과 일살의 정사를 목격하고 다가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폭풍무존으로부터 배운 검법으로 절대칠살 중의 두 사람을 순식간에 처치해버렸다.

한데 석두공을 찾아다니면서 정작 석두공의 현재 얼굴은 알지 못하고 진짜 석두공을 만났으면서도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그녀는 혈포단객으로부터 석두공이라는 이름을 듣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뽀송뽀송한 머리털을 가진 석두공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으로 지나갔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장지연은 석두공이 살아있다는 말에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혈포단객을 묻어주고 곰곰히 생각했다.

(혈포단객이 <백>이라고 한 말은 아마도 백검보를 가리킬 것이다. 이미 백검보라는 말을 한번 한 적이 있으니까. 백검보... 석두공... 내키지는 않지만 찾아가지 않을 수 없구나. 사부님의 유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스읏!

질끈 입술을 깨문 장지연은 빠른 속도로 숲속을 빠져나가 동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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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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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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