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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三老莊貴賓

 

 

 

석두공은 맞은 편 전각에서 걸어나오는 또 한명의 흑의인을 볼 수가 있었다.

그자는 이곳에 온 다른 자들과는 달라보였다.

움직임이 마치 귀신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특이한 보법을 밟아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흰머리들은 본좌가 상대하겠다. 너희들은 나머지를 죽여라!]

서로가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이 반복되어 터져나왔다.

추릿!

그 흑의인은 검을 뽑아들고 목을 찌를 듯한 자세를 취하며 조창에게 다가갔다.

파앗!

조창과의 거리가 사장 정도로 좁혀 졌을 때 갑자기 흑의인은 조창에게 쇄도하며 검을 찔러냈다.

실로 쾌속하여 한줄기 빛과 같이 보였다.

(...)

조창은 내심 소리치며 고개를 돌리며 일장을 밀었다.

한데,

화끈!

조창의 자신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흑의인은 분명히 자신의 목을 노렸는데 어떻게 허리게 베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창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흑의인의 검은 다시 그의 가슴을 찔러오고 있었다.

말도 없고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고도의 살인수법을 익힌 전문살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악!]

[으악! !]

삼노장의 무사들이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소리가 삼노장을 울렸다.

그러나 조창은 그 사이에 다시 일검을 맞았다.

흑의인의 장검은 그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을 찌르는가 싶었는데 머리를 베어오고, 다리를 벤다고 생각했는데 목을 찌르고 있었다.

조창은 자식의 절학인 화염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식은 땀을 흘렸다.

한데 팽덕과 하진은 꼼작도 하지 않고 한곳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조창은 속으로 욕을 했다.

(무정한 놈들... )

그러나 석두공은 팽덕과 하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마치 동상처럼 가만히 있었다.

(내가 도와야겠군.)

석두공은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조할아버지 거들어드릴까요? ]

허공에서 작고 흰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말했다.

조창은 크게 기쁘하며 대답했다.

[장아가씨께 번거로움을 드리는구려. !]

말하는 사이에 다시 다리에 일검을 맞았다.

나타난 것은 작고 흰그림자는 십육칠 세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였다.

깜찍하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생긋웃으며 허리의 체대를 풀었다.

휘리리릭!

긴 체대가 연검(軟劒)으로 변하며 흑의인을 베어갔다.

!

흑의인은 조창을 공격하던 검을 돌려 막았다.

그 사이에 조창은 숨을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소녀의 체대는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장원의 무사들을 살해하고 있는 흑의인들을 향했다.

휘리릭!

[크악!]

마음대로 방향을 틀면서 날아드는 긴 연검을 피하지 못한 한 흑의인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소녀는 땅으로 내려선 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길고 가는 연검만을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녀의 검술은 소박한 듯하면서도 정치(精緻)했고, 빠르면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석두공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보다 어린 것같은 데 저같은 검술을 닦는 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저런 검술은 명사(名師)의 지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창을 공격했던 그 흑의인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소리쳤다.

[퇴각해라.]

휙휙휙!

상대를 버려두고 흑의인들은 담을 넘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호호호호...]

소녀가 낭낭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휘리릭!

갑자기 그녀의 연검이 방향을 틀어 팽덕과 하진에게로 날아갔다.

[! 안돼!]

조창이 다급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연검은 두 사람의 몸을 살짝 찍고는 물러났다.

차앗!

팽덕과 하진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번쩍!

거의 동시에 그들의 뒤에서 돌연 백광이 솟구쳤다.

작약을 담은 상자 속에서 두 명의 흑의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팽덕과 하진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검을 피했던 것이다.

[크하하하... ]

흑의인들은 광소를 터뜨리며 석두공의 머리위를 지나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무공은 조창을 상대했던 그 흑의인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이엇다.

-!

콰콰쾅!

석두공은 눈앞이 섬광으로 가득차는 것을 느꼈다.

 

전각이 폭발해버렸다.

십리 밖에서도 하늘로 치솟는 불꽃을 볼 수 있었다.

전각이 있던 곳에는 큰 웅덩이가 생겨버렸다.

삼노장의 전각들 중에서 태반이 무너져버렸다.

삼노장에는 사람의 모습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돌연,

들썩들썩!

무너진 한채의 전각의 일부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아가씨라고 불린 소녀가 하얗게 질린 채 기어나왔다.

그녀의 옷자락은 군데군데 불길에 타고 그을려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폭발의 여력에 날아가 전각속에 쳐박혔다가 전각이 무너지자 갇혀버렸던 것이다.

[팽할아버지! 조할아버지! 하 할아버지!]

장아가씨가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소리쳐 불렀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웅덩이가 마치 마귀의 입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으으으... 장아가씨... ]

미약한 신음과 함께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웅덩이가 파지면서 생긴 주위의 흙더미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장아가씨가 비틀거리며 다가가 손과 발로 흙을 치웠다.

팽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흙이 코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고서 드러누워있었다.

심한 화상으로 인해 전신에 물집이 생겼는데 그 물집에는 흙들이 파고 들어있어 끔찍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었다.

단지 그의 얼굴만은 본능적으로 가렸는지 그다지 손상을 입지 않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장아가씨는 그를 끌어내어 반듯한 곳에 눕혔다.

그때 흙더미 속에서 나온 손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

장아가씨는 깜짝 놀라며 힘껏 발을 잡아뺐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은 손은 더할 수 없이 완강했다.

장아가씨는 발목이 으스러지는 것같은 고통을 느꼈다.

쓔욱!

그녀의 발목에 이끌려 검게 탄 숯덩이같은 것이 흙더미 속에서 뽑혀나왔다.

땅 밖으로 나오자 그 숯덩이는 장아가씨의 발목을 놓았다.

장아가씨의 눈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발목의 뼈가 부러진듯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숯덩이가 누군지를 살폈지만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때 몇 사람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장주님! 장주님!]

장원의 일하던 노인들로 이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폭발에 크게 놀라 금방 다가오지 못했다가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아무 기척이 없자 다가온 것이었다.

장아가씨가 반색하며 그들을 불렀다.

[이리오세요.]

장아가씨의 지휘아래 시체들과 살아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는 일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날이 새도록 땅을 파고 전각들을 뒤지고 했지만 그들이 찾아낸 건 오직 세명의 장주와 한 구의 숯덩이 같은 인물뿐이었다.

몇 개의 타다남은 팔과 다리들을 찾아내기도 했으나 주인을 알 수도 없었다.

팽덕과 조창의 부상은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내상과 화상이 심하긴 했지만 치료하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진의 화상은 심했다.

그는 두 다리가 완전히 타버려 하체가 짧아져버린 상태였다.

장아가씨는 그들을 치료하고 녹초가 되어 벌렁 드러누웠다.

그녀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었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쉬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곁에 공교롭게도 숯덩이같은 인물이 눕혀져 있었다.

지금 그녀와 생존자들이 있는 곳은 장원의 뒤쪽에 있는 귀빈을 맞는 곳이다.

바로 현재의 그녀가 머무는 거처이기도 하다.

[... 이 사람도 살 수가 있을까?]

장아가씨는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옆에 있는 숯덩이를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숯덩어리는 숯덩어리 같은 데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진의 하체가 타서 없어진 것에 비하면 그것은 기적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장아가씨는 그의 팔에 손을 대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숯덩이 같은 인물은 숨이 멎어있었으나 기이하게도 심장의 박동이 아주 힘찬 것이 아닌가?

더구나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진력이 그 숯덩어리의 몸속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그 힘이 거대했다.

장아가씨는 세상에 그처럼 고강한 내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듣도보도 못한 것이다.

숯덩어리는 살아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삼노장에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데,

쩌쩍!

! 쩌적!

갑자기 숯덩어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장아가씨는 깜짝 놀라서 천근만근 같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제자를 구한 게 너냐?]

장아가씨는 흠칫 놀라며 뒤로 돌았다.

허무한 듯 또는 담담한 듯이 서있는 삼십세 정도의 사나이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후줄근하게 보이는 백의를 입은 사나이였다.

[당신은 누구세요?]

장아가씨가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폭풍무존이었다.

그는 허무한 듯이 말했다.

[나를 경계할 필요는 없다. 내 제자를 구해줬으니 노부는 저들을 치료해주도록하마.]

(노부?)

장아가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쩌적!

숯덩어리는 계속 균열이 가고 있는데 폭풍무존은 손을 내밀었다.

돌연,

슈우우우우-!

그의 손에서 흰기류가 솟아오르더니 작은 구슬처럼 뭉쳐졌다.

장아가씨는 그같은 기이한 일에 눈을 크게 떴다.

(진기가 형체를 이루다니... 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있지?)

구슬은 세개나 되었다.

그것은 폭풍무존의 손바닥에서 두둥실 떠올라 세방향으로 날아갔다.

팽덕과 조창, 그리고 하진에게로였다.

구슬은 그들의 단전으로 직접 스며들어버렸다.

폭풍무존이 장아가씨를 보면서 물었다.

[그리고 보니 정작 네게는 준 것이 없군. 이름이 무엇이냐?]

[지연(芝娟), 장지연이에요.]

장아가씨는 황급히 대답했다.

폭풍무존의 신기에 놀라서 그녀는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강변의 단애로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폭풍무존은 그녀의 눈을 보면서 말한 후에 열려진 창으로 신선처럼 날아나갔다.

쩌쩍! !

균열이 가고 있던 숯덩어리가 둥실 떠오르며 그의 뒤를 따라서 사라졌다.

장지연은 자신의 손등을 꼬집었다. 분명히 꿈은 아니었다.

[으으음... ]

그때 팽덕 등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 × ×

 

[사부님!]

[빨간 것이 영락없이 금방 태어난 아기로구나.]

폭풍무존이 말했다.

불에 탄 껍질을 벗어버린 석두공은 그야말로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빨간 몸으로 폭풍무존 앞에 엎드렸다.

[복수하러 갔느냐?]

폭풍무존이 물었다.

알같은 석두공은 고개를 저었다.

머리카락도 홀랑 타버린 후에 배냇머리처럼 부드럽고 노르스름한 솜털이 있을 뿐이고, 눈썹도 희미했다.

[아닙니다. 전 그자들에게 사부님을 부탁하려고...]

[다 부질없는 짓이다. 부질없는 짓이야.]

폭풍무존이 탄식하며 말했다.

 

단애 위에는 장강의 급류를 바라보고 한채의 초옥이 서있었다.

급하게 만들어져 초옥의 지붕으로 썬 나무들은 아직도 푸른 빛이 가시지 않았다.

그 초옥 속에 폭풍무존과 석두공이 있는 것이다.

폭풍무존이 말했다.

[너는 나를 깨우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영원히 잠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석두공은 천신폭풍탑에서 충동을 이기지 못해 천신폭풍보를 펼친 적이 있다.

천신폭풍탑은 모두 삼층이었는데 그 삼층에 폭풍무존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천신폭풍보에서 펼쳐진 힘으로 인해 탑이 파괴될 때 그 힘을 빌어서 다시 정신을 차렸었다.

폭풍무존은 석두공에게 그를 탓하는 듯 말했지만 실상 그 말은 자신을 탓하고 하늘을 탓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이 살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에게 그같은 능력이 없었더라면 살고자 해도 살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금제일의 절대강자인 폭풍무존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지금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고독을 달래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세월은 너무 변해버렸다.

폭풍무존은 스스로가 자신을 걸어다니는 시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

폭풍무존은 일어서면서 말했다.

[옷을 구해오마.]

석두공은 폭풍무존이 나간 후 알몸으로 방안을 서성였다.

방바닥은 나무들을 깎아서 깔아놓아 편편했다.

방 한쪽 구석에는 그가 허물처럼 벗어놓은 숯껍질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천왕저가 그 숯껍질에 붙어있었다.

석두공은 잔혼각의 인물들이 작약으로 위장하여 갖다 놓았던 화약이 폭발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었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있는 오독패혼공과 포연신공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는 중상을 입지도 않고 살아난 것이다.

포연신공은 그의 내공을 다시 한번 뒤집어놓았다.

그리고 석두공은 불에 탄 허물을 벗어버리고 매끈한 알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변화는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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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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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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