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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장

 

                           사람을 찾습니다 (2)

 

 

까딱!까딱!

물살은 점점 느려지고 반대로 강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강물에 담긴 파란 하늘에는 한점 두점 구름들이 떠가고 그 구름들 위로 조그마한 나룻배가 노를 저어 가고 있었다.

물결에 배가 까닥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 따라 노를 저어 배를 조종하는 사람이나 뱃머리에 앉아서 턱을 고이고 있는 사람이나 덩달아 까닥까닥하고 있었다.

한데 배를 젓는 사람은 뽀송뽀송한 솜털같은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준수한 미청년이었다.

또한 그의 앞쪽에 앉아서 턱받침을 하고 있는 사람은 깜찍한 소녀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배도 참 잘 움직이네요. 언제 이런 것까지 배웠어요? 아참참. 무공도 한번만 보면 다 할 줄 아는 사람인데 이런 걸 묻다니... 난 하는 수 없는 가봐.]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입을 톡톡 두드리는 소녀, 그녀는 장지연이었다.

석두공은 못들은 척 그저 물위로 흘러가는 구름그림자를 보면서 노를 흔들었다.

장지연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봐요. 구결도 없이 어떻게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거죠?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휴... 정말 당신처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은 처음이오. 왜 날 그냥 좀 내버려 두지 못하오?]

석두공은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장지연이 피식 웃었다.

석두공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사부께서 당신에게 그 검법을 알 때까지 가르치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랬다면 벌써 도망쳤겠다는 말이군요.]

여전히 생글거리는 장지연이다.

[그렇소. 난 성가신 건 질색이오. 휴... 소령이 옆에 있을 땐 신경 쓸 일 하나 없었는데... ]

말하던 석두공은 무심코 소령을 생각해내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행동이 종잡기는 어려웠지만 그는 아무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소령은 그를 잘 돌봐주었다.

잠자리에서 시작해서 세숫물까지 하나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석두공은 그녀를 사랑하는지 않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없다는 것은 아주 허전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의 마음은 단 한 번의 정사를 가진 자봉에게 모두 주어버렸다고 하지만...

이때 장지연은 눈에 기이한 열기를 담고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물었다.

[소령이 누구죠? 당신의 정혼녀인가요? ]

[그렇진 않소.]

[그럼 누이인가요?]

[아니오.]

석두공은 자꾸만 묻는 그녀가 성가셔서 딱 잘라 말했다.

장지연은 잠시 있다가 그에게 또 물었다.

[그럼 그녀는 당신에게 무엇이죠?]

[...!]

[같이 잠을 자기도 했나요?]

[...!]

석두공이 대답이 없자 장지연은 발딱 일어섰다.

[그래요. 나도 당신에게 관심 없어요. 나도 지금 정혼자를 찾아다니는 중이거든요. 그도 숯덩어리 당신처럼 무슨 무공이든 한번 보기만 하면 다 배워버리는 사람이죠. 너무 기고만장할 것 없어요.]

[정혼자를 찾아다닌다고? 정혼자가 장소저를 거들떠보기나 할지 모르겠군.]

석두공은 그녀가 정혼자를 찾아다닌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장지연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왜요? 무슨 악담을 그렇게 해요?]

[별로 상관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성가시게 하니 정혼자는 얼마나 괴롭히겠소? ]

석두공은 복수할 수 있는 기회다 싶었는지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흥!]

장지연은 콧웃음을 쳤으나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었다.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석두공은 그녀가 당연히 반박할 줄 알았다가 가만히 있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사귀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활달하면서도 붙임성있는 장소저를 아주 좋아할 지도 모르겠소.]

장지연은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냐는 듯이 고개를 팩 돌렸다.

[어서 그 검법의 구결이나 알려주세요.]

[이런 걸 구결이라 하는 지는 잘 모르겠소만, 펼치려면 이렇게 해야하오.]

석두공은 겸염쩍어져서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검의 끝을 진기로서만 움직이려면 먼저 몸속의 진기가 혈도마다 조금씩 달라야 하오. 또한 한편으로는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를 검끝까지 뻗쳐가게 한 후에 다른 한편으로는 몸 안에서 진기를 운용해야만 하는 것이오.

몸 안의 진기의 움직임이 단전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단전에서 뻗쳐나간 진기를 유동시켜 검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오. 이기어검의 요체는 오직 여기에 있을 뿐이오.

검이 손안에 있던 없던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소. 또한 몸 안에서의 진기 움직임은 조금만 연습해 보면 스스로 터득할 수 있소. 대저 무공이란 것이 걸음마와 같아서 방법만 알게 되면 어느 정도로 느는 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오.]

장지연의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그치듯 물었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해요? 검강의 발출 말예요? 검기만 해도 웬만한 고수는 흉내도 못내는 데 어떻게 검강을 발할 수 있죠?]

석두공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기어검도 마찬가지지만, 일단은 충실한 내공이 있어야하오. 그리고, 원래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힘을 여럿으로 나누었다가 어느 순간에 합치는 것이 최고요.

일부의 내공을 먼저 검에 주입하는 것이오. 그것도 검의 표면에. 그 다음에 나머지의 공력을 모두 검의 중앙으로 내쏘는 것이오. 두개의 공력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합쳐서 내밀게 되면 검강이 될 수 있소.]

장지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럼 순수하게 한 가지 내공만 익힌 사람은 검강이나 어검술을 펼칠 수 없단 말인가요?]

[그렇진 않소. 단지 그렇게까지 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되오.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그 정도가 되면 힘을 나누었다가 합치는 방법만 터득하면 몇 배의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오.]

장지연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통검문에서 검강이나 어검술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짐작일 뿐이오.]

장지연이 또 물었다.

[초식이 필요없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가요?]

[그것은 느낀다는 것이오. 눈으로 보아서 알고 귀로 들어서 알고 직접 만져보아서 안다면 그것은 상승의 경지에 달하지 못한 것이오. 눈으로 보기 전에 귀로 듣기 전에 그리고 직접 만지기 전에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야 하는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초식이란 것은 소용이 없소.]

[...?]

장지연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개만 끄덕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경지도 직접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남들의 생각으로 머리로 끄덕이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석두공은 그녀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하자 직접 예를 들었다.

[생각해보시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경우에 처할 수는 없는 것이오. 대개 초식이란 것은 천지에 도리에 합당하게 만든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하면서 실상에 있어서는 격식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끼워놓은 것들도 적지가 않소.]

그 점에 대해서는 장지연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석두공의 말이 계속되었다.

[만약에 열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검법이 있다면 그 검법 정화의 구할은 그 중의 하나에 담겨있을 것이오. 나머지 아홉이 일할의 정화를 나눠갖는 다고 볼 수 있을 것이오.]

장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벽을 쳤다.

[과연 그렇겠군요. 보통 무공을 배울 때 한가지 초식만 익히고 나면 다른 것은 그 하나에서 발전 된 것이라 배우기가 쉬웠는데 그 때문이었군요.]

[또한, 중요한 것은 대개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장황하게 말해야 한다면 그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귀를 막아버려도 괜찮은 것이오.

검법의 정화도 그렇소. 초식이란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그 초식을 가장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소.]

 

석두공의 말은 이러했다.

어떤 초식이든 간에 실제로 사람이 처한 그 상황에 가장 맞는 초식이란 없다.

각 상황마다 그것에 맞는 초식이 따로 있는 것이다.

물론 수십 만 가지의 초식이 있다면 아주 비슷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도로(徒勞)에 불과하다.

초식을 많이 익힌다고 해서 좋은 것이 결코 아니다.

초식을 많이 알게 되면 그만큼 초식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그 상황에 가장 알맞는 적절한 방법으로 검을 휘두르고 권각을 휘두르면 그뿐, 무슨 복잡한 초식을 그 순간에 벼락같이 떠올려 펼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에 볼과하다.

한마디로 손톱으로 눌러서 죽여야 할 이(蝨)가 있는가하면 껍질을 깨뜨려서 죽여야 하는 거북(龜)도 있다는 말이다.

 

장지연은 자세히는 알 수가 없었지만 무엇인가가 어렴풋이 잡히는 것같았다.

장강을 떠가는 배위에서 그녀는 깊은 묵상에 잠겨들었고 석두공은 노를 저어 배의 방향을 조정했다.

 

× × ×

 

강변의 어느 객점이다.

밖에는 어느덧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한적한 객점 안에는 십여명의 손님이 앉아 배를 채우고 있다.

[난 벌써 삼년 째 그 사람을 찾아서 쇠신이 닳도록 천하를 헤맸어요. 하지만 아무데도 없더군요. 아마 죽었나봐요?]

장지연은 술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날이 저물자 뭍에 오른 그녀와 석두공은 때늦은 점심을 들고 있는 중이다.

창가 자리에는 네명의 흑의인이 말없이 앉아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그들은 아직 주문도 하고 있지 않다.

장지연은 반주 삼아 시킨 술을 홀짝이며 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마음이 여린 석두공인지라 그녀의 신세도 무척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소?]

장지연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 사람? 나도 잘 몰라요. 한번도 만나질 못했으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 머리를 다쳐 당신처럼 총명한 사람은 아니래요. 오히려 그 반대...]

[그럼 어떻게 그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단 말이오?]

[초상화를 가지고 있어요. 한번 보여드릴까요?]

장지연이 가슴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으며 말했다.

석두공이 당황하여 손을 저었다.

[아...아니오 됐소.]

[왜요? 사실 당신을 조금 닮기도 했어요. 당신일 리는 없지만...]

장지연은 그의 말을 묵살하고 품속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냈다.

바로 그때였다.

펑!

갑자기 객점의 문이 날아가며 청의를 입은 여인이 놀란 사슴처럼 뛰어 들어왔다.

[발각됐어요. 여길 피해요!]

그녀가 소리치며 객점의 후문으로 달려갔다.

파팟! 쐐액!

그 즉시 창가에 앉아있던 네명의 흑의인도 몸을 날려 그녀를 뒤쫓았다.

“....!”

석두공의 시선은 청의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에 못이 박혔다.

그녀를 어디선가 보았었음을 깨달은 때문이다.

(오년전의 그 여자다!)

석두공의 눈이 불을 뿜었다. 청의여인은 그에게 갚아야만 하는 빚이 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장지연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당신은 여자만 보면 눈을 못 떼는군요.]

그러나 석두공은 그녀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장지연은 그가 화가 난 줄 알고 흠칫하며 따라 일어났다.

그때였다.

휘이익!

붉은 그림자 하나가 객점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혈포단객(血袍單客)!]

장지연과 석두공의 입에서 그 붉은 그림자의 정체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그 붉은 그림자는 바로 혈포단객이었다.

오객(五客)중 한명으로서 언제나 혼자서 행동한다는 혈포단객...

“...!”

파앗!

혈포단객은 객점에 들어서자마자 즉시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그대로 객점의 뒷문으로 달려갔다.

[오객의 하나인 혈포단객이 이런 외진 곳에 나타났군요.]

장지연은 석두공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눈을 돌렸을 때 석두공은 이미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

장지연은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으나 석두공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탁자위에는 그녀가 꺼내놓은 소년의 초상화가 놓여있었다.

한데, 그 초상화는 바로 어린 시절의 석두공이 아닌가?

사람을 찾아다닌다는 장지연은 그를 찾고 있었단 말인가?

삼노에 의해서 귀빈으로 대우받던 장지연은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석두공을 찾아다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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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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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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