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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우울한 古今第一人 (1)

 

 

 

석상(石像)이 바닥으로 내려와 있었다!

아니 석상이 아닌, 석상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곳에 서서 석상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 대충 차려입은 듯 성의없는 옷차림,

석두공은 그를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 왔습니까?]

그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추레한 백의를 입은 사람이 말했다.

[자네들 보다 조금 먼저...]

석두공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먼저 왔다면 자봉과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다 보았다는 말이 아닌가?

무림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석두공과 자봉이 전혀 기척조차 알 수 없었던 이 사람,

그는 자칭 고금제일인인 폭풍무존(暴風武尊)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 흐르듯 폭풍같은 기도는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지고 쓸쓸한 고독이 감돌고 있었다.

[사문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어째서 이곳 마중천에는...?]

석두공은 달아오른 얼굴을 빨리 지워버리려는 듯 물었다.

폭풍무존이 간단히 내뱉었다.

[여기가 바로 내 사문이었네.]

석두공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럼 저 석상이 정말로 노선배님...? ]

[아마도 그런 것같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

폭풍무존은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석상의 뒤로 걸어왔다.

[이젠 나가세.]

석두공은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폭풍무존의 모습에서 그는 인생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폭풍무존은 삼십대의 젊은이 모습이건만...

(없다. 천신폭풍탑을 만들고 이백 사십 년동안 무저갱 안에서 살면서도 죽지 않겠다고 생의 의지로 불타올랐던 그의 패기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석두공은 사람이 변해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선배님의 석상이 그곳에 서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조사이신 벽천검왕(劈天劍王)의 석상이 서있었다.]

[그럼 조사의 석상을 치우고 노선배님의 석상을 세웠단 말씀이십니까?]

[본좌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부... 아니, 우리 은세정검회(恩世正劒會)의 후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곳은 은세정검회였는데 언제부터 마중천이란 게 되었단 말인가?]

폭풍무존의 음성엔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스며있었다.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 버렸어!]

 

× × ×

 

석두공은 출구를 은밀하게 가리운 엄청난 폭포를 보고 감탄하며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구당협(瞿唐峽)!]

구당협은 장강의 물줄기가 대파산(大巴山)을 지나면서 급류가 되어 흐르는 곳이었다.

물고기가 이곳까지 오면 흐르는 물살에 배가 터져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험하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은 장강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 × ×

 

수양버들이 강물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곳에 작은 주점이 있었다.

주위에는 뙤악볕 아래서 낚시를 드리운 태공들이 여럿 보이고 우마차를 끌고 가는 소나 그 소의 고삐를 잡은 농부나 다같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석두공은 주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쉬었다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폭풍무존은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휘익!

강가에 나란히 앉아서 낚시를 드리우던 세 사람의 노옹(老翁) 중의 한사람이 휘두른 낚시바늘이 공교롭게도 폭풍무존의 옷자락에 걸렸다.

그러나,

스슥!

폭풍무존은 낚시바늘을 손가락으로 비벼버렸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낚시바늘은 쇠부스러기가 변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바늘이 옷에 걸리자마자 가루로 변해 버린 것이다.

노옹은 바늘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다시 물속으로 낚시를 던져 넣었다.

 

주점 안은 네 개의 탁자가 있을 뿐이지만 아주 정갈했다.

석두공은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같은 주인에게 술과 고기를 달라고 했다.

[우리 집에는 비늘달린 고기와 발 달린 고기가 고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주인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물었다.

석두공이 폭풍무존을 보며 눈으로 의향을 물었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묵묵히 있기만 했다.

[둘 다.]

석두공이 대답했다.

 

!

폭풍무존은 석두공이 따라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 잔을 내밀었다.

석두공은 다시 잔을 챘웠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게눈 감추듯이 입안에 들여부어버렸다.

석두공이 참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섰다.

[주인!]

[네네네... ]

[큰잔을 주시오. 그리고 술도 더 많이.]

술잔이 네배는 커졌다.

하지만 폭풍무존의 술을 마시는 속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술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이 앉은 자리에는 금방 빈 술통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폭풍무존이 폭음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주인은 속으로 금방 넘어가겠구나 했었다.

하지만 빈 술통이 하나 둘 늘어나고 급기야는 아직 익지도 않은 술을 땅에서 파왔을 때 주인은 안절부절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구! 저거 오늘 아무래도 일 치고 말지.)

심각한 폭풍무존의 표정, 그리고 그와 마주 앉아 잔을 채워주고 있는 젊은 석두공...

마셔도 마셔도 술은 취하지 않는다.

성질을 풀려고 술을 마시는 게 보통인데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 성질을 풀 방법은 성질을 부리는 것(?)밖에는 없다

주점의 주인만큼 이같은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과연 주인의 우려는 금방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재수가 없으려니 원... 제기랄! 낚시도 없는 바늘을 드리우고 고기를 잡겠다고 했으니 참내...]

강변에서 낚시를 드리웠던 세 노인이 들어오면서 그 중의 한 사람이 투덜거렸다. 폭풍무존의 옷자락에 겁도 없이 바늘을 걸었던 그 노인이었다.

[낄낄낄... 낚시도 없는 바늘을 드리웠다고? 바늘없는 낚시를 드리운게 아니고?]

다른 노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먼저 말했던 사람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뻔히 보았으면서도 말꼬리를 잡나? 대충 말하면 알아들을 거지...]

그러자 또 다른 노인이 말했다.

[화풀게, 낚시를 한지 벌써 오십 년이 넘었지만 오늘에야 진짜로 강태공이 되었잖은가?]

[! 나같은 필부야 팔십까지 살지도 못할 건데 무슨 강태공은...]

투덜거리던 사람이 그래도 화가 조금 풀리는지 수그러졌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이 앉아 있는 탁자의 뒤쪽에 있는 다른 탁자에 앉으며 그 노인이 소리쳤다.

[왕노이! 술을 갖다 주게.]

주인이 뛰쳐 나오며 말했다.

[... 나으리 술이 없습니다.]

[? 저 사람들이 마시는 건 술이 아니고 뭐야?]

!

탁자를 부술 듯 세차게 두드리며 노인이 일어섰다.

주인이 쩔쩔 매면서 말했다.

[나으리! 정말 현명하십니다. 실은 바로 저 술 때문에 나으리께서 마실 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집에서 마지막 술입지요 저게...]

[당장 이리로 가져오시오. 아직 뜯지 않았으니 우리가 마시면 될 것 아니오.]

그 낚시꾼은 말하면서 털썩 앉았다. 주인이 자신의 말대로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였다.

그에게선 투덜거릴 때와는 또 다른 위엄이 우러나왔다.

하지만 주인은 손을 비비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가뜩이나 분위기를 잡고있는 폭풍무존과 석두공의 면전에서 술통을 들고 뒤쪽의 탁자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낚시꾼의 신분이 범상치 않은 듯 주인은 손바닥만 서로 비빌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화난 노인을 달랬던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말했다.

[그럼 국수나 말아주게. ]

[아이구! 나으리 감사합니다요.]

주인이 허리를 꺾으며 절하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심술기가 있는 화났던 노인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주룩주룩 문지르기 시작했다.

스륵스륵!

탁자의 한쪽이 평평하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대패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에 대한 은근한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석두공에게만 위협이 되고 있었다.

석두공은 술을 조금 마시기는 했으나 주변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환히 알고 있었다.

(이거 큰일이다. 저 노인들이 이분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텐데...)

석두공은 속이 타는 것같았다. 만약에 그들이 폭풍무존을 건드려서 폭풍무존이 분노하게 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석두공의 속을 모르는 노인은 이제 대패밥같은 깎여진 나무를 훅 하고 불어보냈다.

휘리리리리...

석두공은 날아드는 대패밥을 안주를 집는 척하면서 소매로 막았다.

노인은 석두공이 대패밥을 막는 것을 보고 콧웃음을 쳤다.

[젊은 놈이 제법 주먹질을 하는 모양이군. ]

[어허! 이사람!]

다른 노인이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탕탕탕!

노인이 탁자를 세게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내입으로 말도 내 맘대로 못하는가?]

공력을 실어서 탁자를 두드리는 바람에 바닥이 울렸고 앞쪽에 있는 석두공과 폭풍무존의 탁자도 덩달아서 진동했다.

술잔도 튀어 올랐다.

그러나 석두공도 폭풍무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술잔을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버렸다.

노인들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폭풍무존과 석두공이 범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때 그들의 귀로 석두공의 회성전음(廻聲傳音)이 들려왔다.

[화를 자초하지 마십시오. 저와 함께 있는 이분은 어르신들보다 연세가 많으십니다.]

[! 무슨 미친 소리! 그럼 반노환동(返老換童)이라도 했단 말인가?]

참으려던 노인이 그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석두공은 크게 당황하여 폭풍무존을 보았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듣지도 못한 듯 술잔만 기울였다.

(휴우...)

석두공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밖에서 한명의 건장한 젊은이가 들어오며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사부님! 무슨 일이십니까?]

[글쎄 저놈이... ]

노인은 화가 난김이라 폭풍무존을 향해서 삿대질을 했다.

순간,

!

노인의 제자가 다짜고짜 폭풍무존에게 다가가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쨍그랑!

석두공은 너무 놀라서 술잔을 놓치고 말았다.

노인들도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젊은이가 그처럼 성급하게 행동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했다.

젊은이가 소리쳤다.

[사부님께 무례한 자는 본 화염장(火焰掌) 육백(陸白)이 용서하지 않는다.]

!

폭풍무존이 술잔을 놓고 일어섰다.

석두공은 주먹에 땀을 쥐며 말했다.

[사부...]

[사부? 내 무공을 배웠으니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군.]

폭풍무존의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폭풍무존은 아직 삼십이 되지 않은 듯이 보이며 오관은 반듯하고 몸은 건장하다. 석두공과 함께 있으면 형님과 동생 정도로 생각되는 정도이다.

폭풍무존은 등을 돌리고 나가며 말했다.

[가자!]

[...!]

[...?]

석두공은 일장의 피바람이 몰아치리라 생각했었다.

한데 폭풍무존이 처량한듯 말하며 주점을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석두공은 오히려 그 모습에서 진정으로 강한 자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슴을 망치로 치는 듯한 충격이었다.

[! 사부...]

먼저는 폭풍무존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부른 사부였지만 이번에는 진정으로 감복하여 부르는 소리였다.

그는 폭풍무존을 뒤쫓아 나갔다.

그때 주인이 주방에서 소리쳤다.

[공자님! 술값을 주셔야지요.]

[저런 파렴치한 놈들은 혼을 내줘야 하오. 내가 받아주겠소.]

화염장 육백이 도망치듯 나가는 폭풍무존과 석두공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무례하지마라!]

노인 중의 한사람이 외쳤다.

하지만 성질 급한 육백의 손은 벌써 폭풍무존의 가슴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석두공은 육백의 손이 다시 폭풍무존의 몸에 닿을 새라 주머니를 던지며 말했다.

[술값은 여기 있소.]

주머니가 육백의 손바닥을 쳤다.

[!]

육백은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두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실제로 손의 뼈가 깨어져버린 것이었다.

휙휙휙!

노인들이 달려나오며 소리쳤다.

[상처가 심하냐?]

[, 이자가 암습을...]

육백이 다른 손으로 석두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두공은 속에서 불덩어리같은 것이 치밀어올랐다.

(암습은 누가 했는데...)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폭풍무존이 다시 걸어가며 재촉했다.

[어서 가자.]

석두공은 주먹을 불끈 쥐고 세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주먹을 내리고 폭풍무존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폭풍무존의 등에는 짙은 고독이 드리워져 있었다.

[실수를 한 것같네.]

강을 따라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노인이 탄식을 했다.

[...!]

[...!]

[범상한 자가 결코 아닐세. 무슨 사연으로 술을 그처럼 마시는 지는 몰라도 마음이 큰 사람임에 틀림없네.]

[겨우 암습 따위나 하는 자들...]

육백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두 노인이 그를 쏘아보았다.

육백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육백의 사부인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모두 내가 책임지겠네.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목숨으로 책임지면 될 게 아닌가?]

 

× × ×

 

강변의 단애위에 노을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폭풍무존은 걸음을 멈추고 그 장엄하기 조차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깎아지른 단애는 오십 장 정도의 높이고 단애의 중간 중간에는 물새들이 집을 틀고 있었다. 둥지로 돌아오는 새들의 날개도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폭풍무존은 단애위로 올라갔다.

무협(巫峽)을 지나온 장강의 물살은 여전히 급했지만 표면에서는 잔잔함이 보였다.

폭풍무존이 석두공에게 물었다.

[자고 가겠느냐 아니면 그냥 떠나겠느냐?]

[사부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자고 가도록 해라.]

폭풍무존은 그렇게 말하고는 단애의 뒤쪽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자고 가도록 해라? 그렇다면 당신은 가지 않겠다는 말씀...!)

! !

폭풍무존은 숲에서 나무를 꺾고 있었다. 움막을 만들 생각인 모양이었다.

석두공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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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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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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