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강'에 해당되는 글 186건

  1. 2020.07.14 [신선부] 제 34장 풀려진 오해
  2. 2020.07.13 [환락영웅] 제 9장 병상 앞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소동
  3. 2020.07.13 [천신폭풍탑] 제 33장 출세! 은세정검회 1
  4. 2020.07.13 [신선부] 제 33장 기문진법에 빠지다
  5. 2020.07.12 [환락영웅] 제 8장 무너져버린 아버지
  6. 2020.07.12 [천신폭풍탑] 제 32장 마지막 고리를 풀다 2
  7. 2020.07.12 [신선부] 제 32장 십초를 양보하다
  8. 2020.07.11 [환락영웅] 제 7장 백인장의 발원지
  9. 2020.07.11 [천신폭풍탑] 제 32장 마지막 고리를 풀다 1
  10. 2020.07.10 [신선부] 제 31장 엉겁결에 생긴 딸
  11. 2020.07.10 [환락영웅] 제 6장 아수라마검식, 고금최강의 검법!
  12. 2020.07.10 [천신폭풍탑] 제 31장 토사구팽 2
  13. 2020.07.09 [신선부] 제 30장 엇갈린 연인
  14. 2020.07.08 [환락영웅] 제 5장 검마의 동부
  15. 2020.07.08 [천신폭풍탑] 제 31장 토사구팽 1
  16. 2020.07.08 [신선부] 제 29장 납치당한 소녀
  17. 2020.07.07 [환락영웅] 제 4장 밀림 속에서의 긴 꿈
  18. 2020.07.07 [천신폭풍탑] 제 30장 수라장이 된 무림대회 2
  19. 2020.07.07 [신선부] 제 28장 떨어진 큰 별
  20. 2020.07.07 [네이버 블로그]에도 와룡강의 블로그가 있습니다.
  21. 2020.07.06 [환락영웅] 제 3장 반로환동, 신행마동에게 패하다
  22. 2020.07.06 [신선부] 제 27장 소림사의 암운
  23. 2020.07.05 [환락영웅] 제 2장 신행마동과 반로환동
  24. 2020.07.05 [천신폭풍탑] 제 29장 귀산의 무림대회 3
  25. 2020.07.05 [신선부] 제 26장 놀라운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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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우유라; (성공했다.) 슥! 바닥에 내려서며 이를 갈고. 우류라 앞에서는 청풍이 술 취한 듯 휘청거리고 있다. 연신 비틀거리는 청풍 주변에는 이십여 자루의 얇은 비수들이 박혀있는데 흐릿한 빛을 내고 있다. 그 빛들이 거미줄처럼 다른 비수들과 연결되고 있다. 비수들이 진법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우유라; (저자를 가둔 환상미혼진(幻像迷魂陣)은 끝없이 환각을 일으켜서 심력을 소진시킨다.) 청풍을 보고

우유라; (결국 저자는 지칠 대로 지쳐 정신을 놓게 될 것이다.) 생각하며 팽혼쪽으로 돌아서고. 이어

우유라; [팽공자! 많이 다치셨는가요?]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는 팽혼에게 다가가고

팽혼; [아... 아닙니다.] [마혈이 제압당한 것뿐입니다.] 수치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고

우유라; [풀어드리겠어요.] 피핑! 손가락을 튕겨서 지풍을 날리고

퍼퍽! 지풍에 상처 주위를 맞아 몸을 움찔하는 팽혼. 이어

팽혼; [고맙습니다 우부인!] 억지로 웃으며 일어나고

팽혼; [도움도 못되어 드리고 추태만 부렸습니다.] 철컹! 그때까지 쥐고 있던 칼을 칼집에 꽂고

우유라; [그런 말씀 마세요.] 고개 좀 숙이고

우유라; [팽공자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저자를 환상미혼진에 가둘 수 있었어요.] 다시 청풍을 보고. 팽혼도 청풍을 보고. 청풍은 여전히 술 취한 듯 휘청거리고 있다.

 

#151>

[저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철담패도를 간단히 쓰러트린 청년이 왜 저러는 건가?] [마치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잖은가?] 좀 떨어진 곳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그자들 눈에도 청풍이 휘청거리는 게 보이고

사내1; [아마 진법에 갇힌 걸 게야.] 한 놈이 아는 척.

[진법?] [바닥에 박힌 스무 개 남짓의 비수로 진법을 형성하는 게 가능한 건가?] 다른 사람들 믿지 못하고

사내1; [우리야 이해를 못하겠지만...] [진법을 펼친 저 여자라면 가능할 걸세.] 우유라를 가리키며 말하고

[저 여자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보기에는 그냥 기막히게 예쁜 미녀일 뿐인데...] 어리둥절하는 다른 놈들

사내1;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여자가 바로 제갈세가의 안주인인 다지관음일 걸세.] 흥분해서 말하고

[다지관음 우유라!] [정말 저 여자가 다지관음이란 말인가?] [다지관음이라면 당금 무림의 오대미인(五大美人) 중 한명이잖아.] 놀라는 다른 놈들

사내1; [다지관음은 무림오대미인에 꼽힐 뿐 아니라 기문둔갑으로 천하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재녀야.] 흥분

사내2; [하지만 박복해서 사실상 과부가 되었잖은가?] 다른 사내가 말하고

사내1;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각(諸葛覺)이 삼 년전쯤 의문의 실종을 당했지.] 끄덕

사내2; [삼 년 가까이 종적이 묘연해졌으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로 봐야해.] 역시 끄덕이고

사내1; [그럴 가능성이 큰데...]

사내1; [하여간 가주가 실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세가가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다지관음이 기문둔갑이 그만큼 탁월한 때문이야.]

 

#152>

팽혼과 나란히 서서 진법에 갇힌 청풍을 보고 있는 우유라. 청풍은 여전히 술 취한 듯 휘청거리고 있고

우유라; [저자가 누군지 모르시나요?] 청풍을 노려보고

팽혼; [저도 저런 놈이 당금 무림에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개 젓고

우유라; [이해가 안가는군요.] 찡그리고

우유라; [저 정도 실력을 지닌 자가 느닷없이 나타날 정도로 어수룩한 게 강호가 아닌데...] 갸웃

팽혼; [동감입니다.]

팽혼; [변명이 아니고... 저의 도법으로는 저자의 털 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수치스러운 표정

팽혼; [설령 구대문파 장문인들이라 해도 저자를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우유라; [하북팽가의 후계자이신 팽공자의 평가이니 틀림이 없겠지요.] + [!] 말하다가 무언가 알아차리고 눈 치뜨고

팽혼; [과찬의 말씀을...] + [!] 말하다가 우유라를 보며 흠칫! 하고

우유라; [말도 안되는...] 놀라며 앞을 보고

팽혼; [왜 그러십니까?] + [헉!] 함께 앞을 보다가 놀라고

쿵! 청풍이 우뚝 서있다. 더 이상 술 취한 듯 휘청거리지 않고

팽혼; [저... 저자의 몸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혹시...] 불신과 경악

우유라; [평정심을 되찾은 것 같군요. 환상미혼진의 환각을 극복했다고 봐야 해요.] 스릉! 소매 속에서 다시 한 자루의 얇은 비수를 뽑고

팽혼; [파진(破陣)까지 할 거로 예상하시는지요?] 창! 역시 칼을 뽑고

우유라; [환각을 극복했다면 진법을 깨트릴 가능성도 높아요.] 긴장. 끄덕

우유라; [만일 저자가 파진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즉시 공격을 해야만 제압할 가능성이 있어요.]

팽혼; [전력을 다해야겠습니다.] 징! 칼끝에서 광선검처럼 빛나는 것을 한자쯤 뽑아내며 청풍을 노려보고

 

#153>

다시 진법 내의 청풍. 콰콰쾅! 콰아! 드드드! 여전히 청풍의 주변에서는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고. 바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뒤흔들린다. 하지만 청풍은 미동도 않고 우뚝 서있다.

청풍; (황금전장의 장경각에 수장된 기문둔갑 관련 책들을 모두 읽어본 보람이 있었다.) 눈을 좀 가늘게 뜨고

청풍; (환각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각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이다.)

청풍; (기준이 되는 한 가지 감각에만 집중하고 다른 감각들은 모두 무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 감각은 모두 발바닥에 집중되어 있다.> 바닥을 굳건하게 딛고 있는 청풍의 두 발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청풍;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지면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몸이 느끼는 진동등도 모두 가짜였던 것이다.)

청풍; (비록 환각은 극복했지만 진법을 뚫고 나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슥! 창을 앞으로 찌르고. 그러자

퉁! 앞쪽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창끝을 밀어 낸다

청풍; (이 진법은 환각을 일으킬 뿐 아니라 강력한 반탄력을 일으켜서 갇힌 자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저지한다.) 슥! 다시 창을 내밀고

퉁! 이번에도 창끝을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힘

청풍;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반탄력에 속수무책이겠지만...) 슥! 웃으며 다시 창을 앞으로 내밀고

청풍; (내게는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 내 것처럼 쓰는 이화접목의 비법이 있다.) 콱! 창으로 강하게 앞을 찌르고

쾅! 퉁! 더 강한 반탄력이 창을 도로 밀어내는데

청풍; [크와왓!] 쩍! 튕겨지는 창을 옆으로 확 휘두른다. 그러자

화악! 창을 밀어내던 힘이 창끝에 이끌려 옆으로 홱 끌려가고. 그러자

 

#154>

투쾅! 펑! 바닥에 박혀있던 비수들이 몇 개가 그대로 창에 이끌려 바닥에서 빠져나온다. 이하 우유라와 팽혼의 시점

우유라; [진법이 깨졌어요!] 비수를 던질 자세로 외치고

팽혼; [크왓!] 쩡! 기합을 넣어 칼끝에서 번져 나오는 빛을 최대한으로 길게 늘인다. 그 때문에 칼의 길이가 2미터쯤으로 늘어가고

콰드득! 화악! 그때 거의 모든 비수들이 바닥에서 뽑혀 허공으로 치솟는다. 물론 청풍이 휘두르는 창을 따라서

청풍; (비수들을 이용해서 임시방편으로 설치한 진법이라 깨트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퍼퍽! 따당! 자신이 창을 휘두른 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박히거나 나뒹구는 비수들을 보며 생각할 때

우유라; [가라!] 투학! 그런 청풍을 향해 벼락같이 비수를 날리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비수. 동시에

팽혼; [크왓!] 쩍! 폭발적인 속도로 청풍에게 쇄도하며 빛나는 칼을 휘두르려 하고.

돌아보는 청풍에게 빛살처럼 날아드는 비수. 그 뒤에서 쇄도하는 팽혼. 하지만

슥! 몸을 허공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청풍.

슥! 비수가 날아오는 대로 뒤로 밀려 날아가는 청풍의 몸

우유라; (내가 날린 비수에 실린 힘을 타고 밀려난다.) 비수를 던진 자세로 경악

팽혼; (거리가 멀어진다!) 스악! 팟! 삼단뛰기 하듯 한번 도약한 후 전력으로 쇄도하며 칼로 청풍의 하체를 수평으로 베어가고. 하지만

고개를 젓는 청풍. 그러자

슈학! 비수는 방향을 틀어서 다시 우유라에게 날아가고, 그 사이에

팽혼; [크왓!] 전력을 다해 청풍의 허리를 베어간다. 하지만

슥! 휘두른 팽혼의 칼 날 위에 내려서는 청풍의 발.

팽혼; (말도 안되는...) 칼 휘두른 자세로 경악하는 팽혼

[저럴 수가...] [칼날 위로 내려섰어!] [신기다!] 보고 있던 사람들 경악

우유라; [조심하세요 팽공자!] 스륵! 힘없이 떨어지는 비수를 받으며 외칠 때

슥! 발에 힘을 주는 청풍. 그러자

팽혼; [헉!] 휘청! 칼날이 그대로 가라앉아 기겁한다.

팽혼; (칼끝에 산 하나가 올라선 것 같다.) 텅! 견디지 못하고 손잡이를 놓치며 뒤로 휙 물러서는 팽혼

쾅! 칼날 끝을 밟아서 바닥에 박히게 하며 내려서는 청풍.

우유라; (나나 팽공자의 실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수다.) 징! 절망하면서도 다시 비수를 던지려 하고

팽혼; [젠장!] 스악! 역시 소맷 속에서 작은 비수를 뽑으며 이를 갈고.

청풍; (둘 다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우유라와 팽혼을 보며 찡그리고

청풍; (아무래도 쓴맛을 한 번 보게 해야겠다.) 창을 쳐들며 생각할 때

짝짝짝! 갑자기 들리는 박수소리. 일제히 돌아보는 청풍과 우유라와 팽혼

독두신개; [잘 봤다. 잘 봤어.] [늙은 거지가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했구만.] 짝짝 박수치며 다가오는 독두신개.

청풍; (고수...) 눈 번뜩. 직후

팽혼; [독두신개님!] 반색하며 급히 포권하고

우유라; [호법님을 뵈옵니다.] 역시 안도하며 허리 숙이고

청풍; (독두신개라면...) 흠칫! 놀라고

청풍; (당금 무림에서 검성 섭노야를 제외한 최강자들로 일컬어지는 우내사절(宇內四絶)중 한명 아닌가?) 인사하는 우유라와 팽혼 사이를 지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독두신개를 보며 생각할 때

독두신개; [노화자가 누군지 아는 눈치로구만.] 청풍 앞 2미터쯤에 멈춰서며

청풍; [노선배께서 개방의 태상장로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을 내리며 고개를 좀 숙이고

독두신개; [노부를 알고 있다니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길 바라네.]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청풍; [부탁이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후배에게 분부하실 일이 있으시면 하명하시지요.] 정중하게

독두신개; [그리 말하니 편한 마음으로 말함세.] 웃고

독두신개; [이제 그만 모녀상봉을 시켜주게나.] 말하며 자기 뒤의 우유라를 돌아보고

청풍; [모녀상봉이라면 부인께서 바로...] 우유라를 돌아보고

우유라; [제 이름은 우유라예요.] [제갈세가의 살림을 맡고 있는 계집이랍니다.] 정중하지만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청풍; [실례했습니다.] 팟! 급히 창을 바닥에 꽂고. 창날이 위로 향하게

청풍; [소소의 어머니이신 줄 몰라 뵙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두 팔로 제갈소소를 우유라에게 내밀고

우유라; [별말씀을...] 다가와 두 손을 내밀고

우유라; [결례라면 오히려 제가 한 것같사옵니다.] 두 팔로 제갈소소를 받아 안고.

슥! 제갈소소를 우유라에게 건네주며 제갈소소의 등을 슬쩍 손가락으로 찍는 청풍. 그러자

제갈소소; [엄... 엄마?] 졸린 눈을 뜨며 우유라를 올려다보고

우유라; [그래 엄마란다.] 눈물 글썽이며 딸을 내려다보고

우유라; [엄마가 방심하는 바람에 소소가 고생을 했어. 미안하구나.] 딸을 끌어안고 울고

제갈소소도 엄마 품에 안겨서 울고

청풍; (잘 되었다.) 그걸 보며 미소 짓고

<강호에 나와서 한 일들 중 가장 보람된 일을 한 것 같구나.> 장내의 광경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155>

<-용문(龍門)> 정오가 지난 시간. 강 전체가 폭포로 변하는 계곡. 나이아가라폭포 같은데 높이는 절반 정도된다. 그 폭포 아래쪽 수백 미터쯤에 선착장이 있다. 더 이상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배들이 수없이 정박해 있다. 쉴 새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배들. 선착장 주변에는 제법 큰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넓직한 거리 좌우로 들어선 상가들. 단층도 있지만 2층 상가들도 있다. 각가지 업종의 상가들에 사람들이 북적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객잔. 2층 객잔인데 역시 사람들이 북적댄다. 들고 나는 사람들 많고

 

객잔의 2층 창가 자리에 앉아서 선착장 쪽을 보고 있는 귀신 가면 쓴 사내. 위진천이 가면을 쓴 모습. 이하 소지존으로 표기.

소지존 앞에는 젊은 여인이 앉아서 보고하는 중이다. 여자는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야한 차림인데 아주 육감적인 몸매를 지녔다. 반면 얼굴은 순진하게 생겼다. 전형적인 베이글 미녀. 이 여자는 쾌활림의 림주 구미호리의 세 제자 흡정삼요중 둘째인 호요희.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 나오는 구미호 <아리> 이미지. 캐릭터는 074를 좀 더 젊게 묘사. 얼굴을 066정도로 청순하게. 구미호리의 젊은 시절로 묘사해도 됨. 흡정삼요의 다른 둘은 담비 이미지인 초요희와 표범 이지미의 표요희다.

호요희; [삼문육가와 구대문파의 인간들이 속속 낙양으로 모여들고 있사옵니다.] 주변 자리에 다른 손님들이 앉아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말한다.

주변 자리의 손님들은 모두 혈세사패 소속이다. 백정같은 인상, 음침한 인상, 기생 오라비같은 인상의 사내들이 따로 따로 모여 있다. 각기 지옥갱, 백살파, 환마루 소속이다. 지옥갱의 사내들은 #68>에 나온 지옥광전사들 복장. 백살파 사내들은 복면 쓰지 않은 백일자객들 복장. 환마루 사내들은 제각각 다양한 복장이다. 쾌활림 소속은 호요희뿐이다.

호요희; [덕분에 내일 있을 호천집성연은 제법 흥청거릴 것 같사옵니다.] 배시시 웃으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쾌활림 흡정삼요(吸精三妖)의 둘째 호요희(狐妖姬)>

소지존; [호천집성연...] [하늘의 큰 뜻을 지키기 위해 여러 별들이 모이는 연회라...] 가면 속에서 피식 웃고

소지존; [하여간 존귀하신 선후(仙后)께서는 호천맹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눈물어린 노력을 기울이시는군.] 선착장 쪽을 보며 건성으로 말하고

호요희; [그래봐야 별 실속은 없을 게 분명하옵니다.] 배시시

소지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해봐라 호요희!] 여전히 선착장 쪽을 보면서 건성으로 말하고

호요희; [삼문육가에서는 가주와 장문인들이 참석하겠지만 구대문파는 이번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래도 눈웃음치며 말하고

소지존; [미적지근한 반응이라...]

호요희; [구대문파중 호천집성연에 장문인이 참석하겠다고 통보한 문파는 개방과 항산파(恒山派)뿐이옵니다.]

호요희; [다른 문파들은 예의상 장로나 호법을 보내는 정도이옵니다.]

소지존; [구대문파가 미온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어째서인 것 같으냐?] 여전히 창밖을 보며 건성으로 말하고

호요희; [구대문파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들에게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닌데 자존심을 굽히고 호천맹에 합류할 기분이 아닐 것이옵니다.] 그래도 열심히 대답하고

호요희; [물론 구대문파가 호천집성연에 비협조적인 데에는 환마루가 침투시킨 간세들이 큰 역할을 하기도 했사옵니다.]

소지존; [구대문파 수뇌부에는 예외없이 환마루의 간세들이 위장하고 있긴 하지.] 고개 끄덕이고. 이어

소지존; [그래도 조금은 의외로구나.] 호요희를 돌아보며 웃고

호요희; [무엇을 말이옵니까?] 교태로운 표정

소지존; [너희들 혈세사패는 비록 지존회에 함께 속해있긴 하지만 서로 앙숙이지 않느냐?] 주변의 다른 손님들을 보며 웃고

다른 자리의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보고 있다. 세 그룹으로 모여 있는 그자들이 모두 혈세사패 소속임을 보여주고

호요희; [혈세사패의 사이가 좋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그자들을 흘겨보며

소지존; [그런데도 환마루가 이룬 업적에 대해 깎아내리지 않는 네 태도에는 감탄했다.] 기생오라비같은 인상의 사내들을 힐끔 보며 웃고

호요희; [어여삐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교태를 부리며 고개를 숙이고

<저 여우년...> <과연 별호에 여우가 들어갈만하군!> <교태가 아주 애간장을 녹이는구만.> <저 년 사부인 쾌활림주 구미호리에 못지않은 색기를 지녔어.>> 주변 자리의 사내들이 흘겨보고

소지존; [하긴 지존회의 군림천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서로 잘 지내는 게 좋겠지.] 다시 창밖을 보고

소지존; [누가 지존회를 대신해서 무림을 다스릴지는 그 후에 결정될 테니...] 선착장을 보며 음산하게 웃고

<물론 무림을 손에 넣는 것은 우리 지옥갱이다.> <누가 마지막에 웃을지는 두고 봐야하는 것이다,> <우리 환마루가 어디까지 손을 뻗히고 있는지 알면 까무라칠 것들이...> 서로 다른 생각하는 세 무리의 사내들

호요희; (어리석은 놈들...) 그런 그자들을 힐끔

호요희; (사내는 아무리 잘나봐야 결국 여자 치마 폭 아래에서 녹아내리는 법이다.) 창밖을 보는 소지존의 뒷모습을 보며 배시시 웃고

호요희; (지존회의 후계자 소지존...)

<지존의 아들이라고 알려진 소지존만 사로잡으면 만사형통인 거야.> 창밖을 보는 소지존의 모습 배경으로 호요희의 생각 나레이션

호요희; (물론 사내를 녹여버리는 재주로는 우리 쾌활림의 자매들을 능가할 계집은 없고...) 배시시 웃는데

소지존; (꿈도 야무지지.) 창밖을 보며 피식 웃고

소지존; (손만 뻗으면 어리거나 순진한 미녀들이 널려있거늘...) (아무렴 내가 다른 놈들이 물고 빨아댄 창녀들에게 구미가 동할 것 같으냐?)

소지존; (물론 쾌활림의 계집들도 쓸 데가 없진 않지만...) + [!] 생각하다가 흠칫! 하며 고개를 창밖으로 조금 내밀고

호요희; (뭘 보는 걸까?) 호요희도 창밖을 보고. 그러다가

[!] 역시 무언가 발견하는 호요희

<찾았다!> 선착장에 도착한 여객선. 그 여객선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호요희의 생각 나레이션

<소지존의 관심을 끈 건 저것들이다.>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내리는 벽옥령과 강혜분. 둘 다 죽립을 썼는데 벽옥령은 물론 남장을 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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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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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病床 앞에서의 어처구니없는 騷動

 

 

 

당금 무림의 상황(狀況)은 걷잡을 수 없는 삼성무림청의 팽창으로 인해 난세의 격변 속에 휩싸여 있었다.

은밀히 자행되는 고수들의 실종……

그리고 혈겁……

소일초는 그의 작은 어머니의 말이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_____삼성무림청!

 

이것은 분명 아버지 도왕 소선풍을 해쳤을 혈기자의 다른 세제자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때문에,

그들을 상대하여 복수를 하고 삼성무림청이 만드는 난세를 평정키 위해 아들인 신행마동 소일초,

바로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한 순간,

소일초의 아름다운 동공에 안타까운 빛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시선은 석상처럼 누워 있는 도왕 소선풍을 주시했다.

안타까움과……

후회와 염려와 아픔을 실어 나르는 그 눈빛……

문득,

지금까지 격동하던 무심군자가 진정된 조용한 음성을 흘려냈다.

[백인장의 모든 사람이 장주님의 상세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때에……]

[…………]

[이처럼 장주님께서 차도가 있으시다는 것을 알린다면……우리 백인장의 사기는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충천할 것이 분명하오……]

무심군자의 음성에는 지금까지 움추려 있었던 백인장이 날아오를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듯 어린애 같은 희망이 가득 배어 있었다.

소일초……

나이에 비해 세상을 일찍 부터 돌아다닌 그의 영민한 눈빛에 문득 어떤 의혹이 배어나왔다.

[우리 백인장과 구파일방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갑작스런 소일초의 질문에 무심군자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말했다.

[구파일방의 힘도 엄청나기는 하나……]

[…………]

[그들이 자파의 이익과 명리를 버리고 단결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어려운 사실인 데다가……]

[…………]

[우리 백인장과는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는 처지이기에 그저 상호 방관만 하고 있는 입장이지요.]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와 친해질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겠지요.]

[그야 일를 말이겠습니까만 그들은 강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서……]

더불어 무심군자의 얼굴에 피어나는 더욱 짙은 의문,

도저히 소일초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그런 무심군자를 주시하며 소일초가 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방법(方法)은 이제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한 가지 방법뿐이라니요?]

[우리 백인장은 전부터 무림 정의를 위해서 앞장서 왔다고 했지요?]

[그렇소이다.]

[아까 봉공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지금 아버지께서 움직이지 못하시는 동안에는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두 봉공은 소일초의 고강한 무공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려는 작정이었는데,

이 철부지 천방지축, 무공만 강한 줄 알았던 소일초가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 눈이 둥그레 질 지경이었다.

조금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기는 했지만 이처럼 철이 들었을 줄은 몰랐다.

갑자기 무심군자의 손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소일초의 견정혈을 찍어갔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수혼도객과 서공화, 조예진이 깜짝 놀랐으나 저지할 틈이 없었다.

무심군자는 삼현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소일초는 무심군자의 행동을 보면서도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심군자의 손이 그의 견정혈을 쳤는가 싶었는데 그 손은 소일초의 어깨를 관통해 버렸다.

조예진의 우수는 어느새 무심군자의 천령개에 닿아있었다.

그녀는 안광을 새파랗게 빛내며 무심군자를 노려보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무심군자는 두개골이 깨어질 판이었다.

소일초의 어깨를 관통했던 무심군자의 손은 바닥을 향해 축늘어져 있었고……

무심군자는 경악해 하고 있었다.

소일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예진의 소매를 당겨 옆으로 비키게 한 후 무심군자에게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봉공께 제가 죄를 지은 것이 있어요?]

무심군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엇 때문에 저에게 살수를 썼습니까?]

무심군자는 콧웃음을 쳤다.

[혈기대종사(血旗大宗師)! 언제까지 모습을 숨기고 우리를 기만할 작정이오?]

[……?]

무심군자의 말에 좌중에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확 봐뀌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더우기,

조예진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대체 무슨 말씀이지요. 봉공! 내가 혈기자라니 말도 안돼는 소리를……]

[흥, 선배의 무공은 무림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고강하겠지만 행동하는 것은 하류잡배만도 못하구료……]

무심군자는 죽음을 각오했는지 침상에 있는 소선풍을 몸으로 가린채 당당하게 말했다.

소일초는 어떻게된 영문인지를 몰랐다.

[작은 어머니……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러나,

조예진은 파랗게 질린 채로 남편 옆으로 다가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사……사부이신가요?]

[작은 어머니……!]

[당신께서 우리 아이마저 해쳤나요? 애 아버지만으로는 부족해서요?]

아무도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소일초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예진의 말소리에는 울음이 섞이면서 점점 높아갔다.

[그렇게 제 행복을 다 파괴하고 싶으셨어요? 차라리 저를 일 장에 죽이시면 더 간단 하잖아요?]

그녀는 이제 오히려 소일초에게로 다가갔다.

[저도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식구가 모두 같은 날 죽도록 지금 당장 죽여주세요.]

무심군자와 서공화, 그리고 수혼도객이 소리치며 그녀를 막았다.

[주모……안됩니다.]

그러나 조예진은 이미 반쯤 실성했다.

두손을 내저어 순식간에 세 사람을 물리치고 소일초를 향해서 울부짖으며 다가갔다.

[우리가 사부에게서 도망쳐 나왔지만……사부께서는 어디 잘 하셨나요? 이 만 명이 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무조건 주살하게 한 사부는 잘 하셨어요?]

벽으로 튕겨져 버린 세 사람은 조예진의 무공이 경공을 펼치는 것만을 보았을 뿐,

이렇게 무공을 펼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무림의 일반 고수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혈기자의 제자의 솜씨!

진정 경악할 만 했다.

무산신의가 침상에 멍하니 누워있는 소선풍을 바라보면서 힘겹게 중얼거렸다.

[끝장이다. 이렇게 되면 장주마저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소일초는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다가서는 조예진을 보자 어쩔 줄 몰라하면서 쓰러진 무심군자를 바라본 후 그만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앙------엉엉엉 ------]

그가 언제 운 적이 있던가?

정말로 태어날 때 운 이후 처음으로 우는 소리였다.

갑작스럽게 그가 울음을 터뜨리자 조예진은 울부짖음을 뚝 멈추었고 사방에는 고요가 가득차 버렸다.

오직 그의 울음소리만이 백인장 옛터의 한 석실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소일초는 작은 어머니와 아기일 적 부터 함께 지냈던 봉공, 서공화 등이 자기를 전혀 다른 사람 취급을 하자 어쩔 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은 어머니가 죽여달라고 울부짖으며 다가들자,

무공이고 뭐고 다 소용없이 어린애 답게 겁이나서 울음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그의 울음은 한동안 계속 서럽게 울려퍼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와 무심군자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조예진이 진정을 한 후 조심스럽게 울고있는 소일초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 아기가 맞는가요?]

그녀의 물음은 조금 이상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일초가 더욱 큰 소리로 울면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으앙------작은 어머니-----엉엉------]

조예진은 그를 품에 안으며 깊은 안도를 했다.

자기가 기른 귀여운 말썽꾸러기가 확실하다는 심증을 얻은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의 사부였다면 본색을 드러냈지 정말 어린아이 처럼 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울먹이는 소일초를 품에 안고 토닥거리며 고개를 돌려 무심군자를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 보며 소리쳤다.

[좌봉공께서는 이리 오셔서 해명해 보도록 하십시오.]

[…………]

[만일, 해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경우, 소장주를 놀라게 하고 이토록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엄중히 문책하겠어요.]

조예진이 백인장에 들어온 이후 눈살 한 번 찌푸리는 법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무심군자를 노려보는 그녀의 두눈에서는 파란 광채가 뻗쳐나와 무심군자가 감히 마주볼 수 조차 없었다.

서공화와 수혼도객이 어느새 그를 좌우에서 견제하고 있었다.

무심군자의 음성이 떨렸다.

[정말……소장주란 말씀이십니까?]

[흥,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도 아이처럼 우는 재주가 있겠어요?]

[저는……소장주께서 너무 변한 듯 하여……일단 의심이 들었습니다.]

[…………]

[게다가 혈기자가 반노환동했다는 말을 듣고 어쩌면……소장주로 변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더욱 깊어갔지요……]

[…………]

[……소장주께서 그 전에도 오갑자의 공력을 지니고 계셨지만 지금의 소장주께서는 모든 공력이 깊이 안정되고 갈무리 되어서…… 천고에 보기 더문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세상에 그런 경지에 든 사람이 있다면 그가……바로 누구겠습니까?]

[혈기자……]

수혼도객이 대답했다.

[……그래도 심증 만으로는 안되겠기에 직접 손을 쓰본 것입니다.]

[…………]

[소장주께서는 날때부터 금강신(金剛身)을 가지고 계셨으니까 충격은 받아도 전혀 부상은 입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지요……그런데……]

[그런데……]

조예진이 딱딱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산신의 서공화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오……맙소사……저 분이 충격을 받지 않으셨는지……빨리 살펴보도록 하셔요.]

그녀는 소일초를 안은채 소선풍의 곁으로 가서 그를 지켜보았다.

서공화는 신중히 그의 상태를 살폈고……

무심군자는 넋이 나간듯 아무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마저 울음을 뚝 그쳐 침묵이 석실에 가득한 데,

서공화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늘이 돌보셨습니다. 장주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조예진은 소선풍의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소일초를 안고 일어서며,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세요.]

이때,

소일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눈동자가 움직였어요.]

오오……

스스로의 의지로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었던 소선풍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큰 눈이 소일초와 조예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초점이……초점이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의 눈빛은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흐릿하던 그의 눈에서는 강렬한 신광이 뻣쳐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소일초와 조예진, 그리고 무심군자가 벌인 한바탕의 어처구니 없는 소동이 겨우 공력을 모아가던 소선풍에게 자극을 준 것이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귀로는 생생하게 들려오는 말도 아닌 소리들…………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그의 아내와 수하들……

그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가득차 자기도 모르게 강하게 기를 운용했고,

그것은 뜻밖에도 그의 시신경을 다시 연결시켜 버린 것이다.

그의 눈 앞에서 무산신의가 손가락을 펴보이며 물었다.

[장주……내 말이 들리시오? 그렇다면 나를 보고 아니면 주모를 봐주시오……]

입모양을 분명하게 하며 하는 서공화였다.

 

× × ×

 

삼현자(三賢者) 중의 하나인 무심군자는 목이 달아날 뻔한 상황에서 소선풍으로 말미암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쉽게 남을 의심하고, 꾀를 부리는 자는 제 꾀에 망하기 쉽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였다.

소선풍의 상세는 이제 반 년이면 충분히 쾌유될 것이다.

그러나,

무심군자는 이전에 비해 훨씬 신중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 × ×

 

풍운만변(風雲萬變)의 무림(武林),

당금에 이르러 무림은 더더욱 돌풍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그것은 바로,

저 위대한 정의의 혼을 불태워온 백인장(百刃莊)에서 발해진 하나의 첩지로 부터,

더욱 거세어 지고 있었다.

 

___ 본 신행마동 소일초……정의와 복수의 이름으로 무림정벌을 선언한다……이 후 삼성무림청을 비롯한 사마(邪魔)는 신행마동의 손으로 그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리라……

 

경악,

몇 년 동안 잠잠하여 철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한 백인장의 꼬마 고수가 다시 무림에 풍운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의기소침하여 웅크리고 있던 백인장에 그의 선언은 찬란한 서광이었으며,

안에서만 갈고 닦던 백인장의 움추려 있던 힘이 밖으로 준동하기 시작했고,

충일하여 터지는 정(正)의 소리가 때맞추어 천하 곳곳에서 샘솟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은 알고 있었다.

이제,

맞부딪치게 되리라.

무림사상 가장 가공할 팽창력을 지닌 삼성무림청과……

수 백 년 내 최강의 문파로 알려져 왔던 힘이 집약된 백인장의 대격돌……

중원의 땅도, 바다도, 하늘도 숨죽여 긴장했다.

백인장의 겁모르는 천방지축 신행마동의 행보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 × ×

 

이상스런 물건들과……

화려한 장식……

그리고,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정실이다.

이곳은 백인장의 수 많은 정실 중 하나였으며……

황촉불이 은은히 타고 있엇다.

한데 돌연,

[…………]

어느 노느라고 지친 아이가 잠들어 있는가?

깊고 부드러운 숨소리가 한 편의 태사의에서 흘러나왔다.

또한 어디서 울려 퍼지는지 알 수 없는 낮은 휘파람 소리……

여기는……신행마동 소일초의 방,

호피로 씌워진 태사의에 깊숙이 묻혀있는 사람은 무림정벌을 선언한 소일초가 분명했다.

한데,

바로 그의 앞에는 자단목탁이 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한 가지의 물건과 책을 펼쳐보고 있는 한 소녀(少女)가 있었다.

하나의 물건은 손바닥 크기의 만년청옥(萬年靑玉)으로 된 하나의 청옥소도(靑玉小刀)였다.

그 옥검에서는 무어라 형용해 낼 길이 없는 신비한 광채가 서기마냥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한 소녀(少女)……

오오……

그 자단목탁 옆에 앉아 있는 십삼 사 세 가량의 소녀가 지닌 아름다움,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무수한 비유를 찾고 무수한 형용(形容)을 한다.

그러나 정작 아름다운 것 앞에는 아무런 비유도……아무런 형용도 못한 채……

그저 숨을 죽이고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뿐이다.

그렇다.

바로 이 소녀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은 그 어떤 비유를 거부했고……

그 어떤 형용을 불허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거기에다 눈보다 하얀 백의에 쌓인 그 소녀의 성결함과 고아함은 이 세상을 온통 그 두 가지의 기운으로 표백시켜 버릴 만큼 강렬했다.

한데 이것은 또 무엇인가?

밤하늘 천만 가지 뭇 성좌(星座)를 담아 흘려내는 듯한 그 신비로운 동공은 보석처럼 반짝이는데……

그리고 그 소녀의 신체 어디에서 인지는 몰라도 쉴 새없이 흘러나오는 낮은 휘파람소리,

마치 그 소녀의 깊은 영혼 속에서 울려나오는 듯 했으니……

[휘이휘이……휘이이……]

한 번의 멈춤이나 간격도 없이……

입술을 벌리지도 않는 그 소녀는 휘파람새 처럼 이 낮은 소리를 되풀이해 흘려내는 것이니,

그 소녀에게는 오직 이 휘파람 만 존재하는 듯 싶었다.

[으음……음냐……]

태사의에 앉아서 잠이들었던 소일초,

입을 벌리고 큰 하품을 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물끄러미 청옥소도와 정신없이 책에 빠져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뇌리에는 조예진의 말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_______ 애야…… 이 청옥소도는 패도구룡인(覇刀九龍刃)으로써……어린도와 함께 바로 백인장의 장주의 신분을 나타내는 이대(二大) 신물(信物) 중의 하나이다.

어린도는 몸에서 놓을 수도 있지만, 이 패도구룡인은 절대적으로 외부인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린도가 장주가 사용해야 할 병기라면,

이 패도구룡인은 당연히 장주를 대변하는 것…… 그 어떤 자건 백인장의 사람이라면 이 패도구룡인을 대하면 장주를 직접 대하는 것처럼 경복해야 한다.

그리고……이것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비밀이지만,

이 구룡은 하나하나가 백인장주의 독문무공인 마도구식(魔刀九式)을 담고 있다고 한다.

네 무공도 이제는 충분히 마도구식을 펼치고 남음이 있으니 틈이나는 데로 비밀을 알아내 익히도록 해라.

이것을 만든 분은 칠백 여 년 전 우리 백인장의 일대기인이었던 신수기장이라는 분으로서……

무공에 대해선 전혀 문외한 이었음에도,

그 당시 장주이셨던 네 선조의 명을 받아 패도구룡인이라는 절세의 신물을 만드신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마도구식의 원래 명칭은 패도구식이었으나,

너무나 강맹일변도이고 한 번 발출되면 기어이 피를 보고야 마는 도법이었으므로 마도(魔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조예진의 말을 생각하고 있던 소일초의 눈에서 빛이 반짝 거렸다.

그리고 그 눈빛은 인간이라 여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절새의 미소녀의 숙여진 얼굴로 옮겨졌다.

별 빛 같은 눈망울로……

오직 잔잔한 휘파람소리 만을 쉬임없이 흘려내며 책을 보고 있는 소녀(少女)……

그 소녀를 향한 소일초의 눈빛이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또다시……

떠오르는 그의 작은 어머니 조예진의 음성……

 

____ 이 소녀는 삼 년 전 네 아버지께서 엄청난 내상을 입고 돌아오셨을 당시 품에 안고 온 아이로 내 사부의 손녀인 주소아다.

그때 이 아이의 나이는 불과 열 두 살……

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역시 피투성이 몸이었고,

당시에는 이 아이 또한 어떤 정신적인 충격으로 기억이 상실된 터라 신분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다 싶었는데……바로 내가 사부밑에 있을 때 직접 돌보았던 불쌍한 소아(小阿)였던 것이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때 이 애의 체내에는 무려 삼갑자의 내공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외다.

네 내공은 이미 그당시 오갑자였으니 대단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만,

무림를 통틀어 보아도 삼갑자 이상의 무공을 지닌 자는 일백 명 내외일 것이다.

피투성이 이면서도 소아의 몸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울려나와 혹시 십이 대 고수의 하나인 취풍녀(吹風女)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대 봉공께서 자신들이 만나본 취풍녀는 이십대 여인이었다고 증언을 했다.

그러나,

소아가 취풍녀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소일초는 조예진의 말을 생각하면서 더욱 세밀히 절색의 미소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눈빛은 영롱히 반짝이고 있으며……

지금 과거의 기억을 상실하고 있기는 했으나 총명하기 이를데 없는 소녀……

(음……이 계집애는 어떻게 해서 입을 벌리지도 않고 휘파람을 부는 묘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주소아는 그녀를 판히 바라보는 소일초를 느끼고 고개를 들며 생긋 웃어보였다.

주변이 온통 환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기에 소일초는 정신이 아찔했다.

(제길……되게 예쁘군……작은 어머니 만큼 예쁜 것 같은데……참 혹시 머리가 이상해 져서 기억을 상실해 버리면 몸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닐까?)

주소아의 얼굴에서 눈을 떼면서 소일초는 중얼거렸다.

[집을 나서기 전에 꼭 서공화 영감에게 한 번 물어봐야지……]

 

조예진은 주소아가 기억을 되찾기만 하면……

그의 아버지를 그 지경으로 만든 삼수와의 어떤 갈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허나 해석하게도 그녀는 기억이 상실되어 있으니……

 

지금 주소아가 보고 있는 책은 생사보록(生死寶錄)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소선풍에게 안겨왔을 때 그녀의 품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예전에 그녀가 생사보록을 익힌 적이 있는 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주소아는 생사보록을 다시 익히고 있었다.

조예진의 말을 따르자면 그녀의 무공에 대한 자질은 소일초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글 만을 좋아하던 문사였으나, 그녀의 조부는 대기인 혈기자인 것이다.

조부의 혈통 때문인지, 그녀의 엄청난 무공에 대한 안목에 백인장의 모든 사람들이 지난 삼 년 동안 적지 않게 놀랐었다.

조예진은 소일초에게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고,

지은 죄가 많은 그는 마지못해 응락했으나 내심 불만이었다.

(겨우 나보다 두 살 많은 계집애인데……내 말을 듣지 않으면 비성성으로 혼을 내 줘야지……)

그러나……

소일초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순진 무구한 비성성들은 영악한 주소아의 꼬임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하고 하는 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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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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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出世! 隱世正劒會! (1) 

 

 

 

 

-단혼곡(斷魂谷)!

 

천연의 요새인 이곳은 단 한 사람이 지킨다 하더라도 만 명의 적을 막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계곡을 들어서면 우선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짙은 운무가 가로막는다.

바닥 곳곳에는 깊은 틈이 있었으며, 또한 칼날같은 바위들이 천연의 진세를 이루어 사람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단혼곡에서 설치한 기관진식들로 말미암아 이곳은 천군만마도 침입할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단혼곡의 이러한 지형과 사파에 치우친 문파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단혼곡의 제자들 역시 밖으로 좀 체 나오지 않았다.

단혼장(斷魂掌)과 단혼검(斷魂劒)은 이곳 단혼곡의 이대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혼장은 남아있지만 단혼검은 하삼풍의 아들이 실종되면서 함께 사라져 버렸다.

만약 하삼풍의 손에 단혼검이 쥐어지기만 한다면 그의 무공은 면모를 달리하게 될 것이다.

한데 천하의 금지(禁地)라고 할 수 있는 이곳 단혼곡 입구에 이십 여 명의 검객들과 한대의 가마가 나타났다.

화려한 치장을 한 가마는 단혼곡 입구에 멈추어섰다.

가마 안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해남검파의 진우백이 일전의 약속대로 하곡주를 뵙고자 찾아왔소. ]

그의 음성은 비록 낮았지만 내공이 충만해 있어 단혼곡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에 진우백은 다시 외쳤다.

[하곡주를 뵙고자 진우백이 찾아왔소.]

스으으으!

문득 안개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피풍의를 어깨에 걸친 하삼풍이었다.

[진문주 어서 오시오.]

그는 직접 진우백을 맞았다. 안개 속에는 보이진 않으나 그의 제자들이 서있는 것같았다.

진우백이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소이까?]

[진문주까지 해서 모두 육천 명 정도가 왔소. 그들 중에는 일파의 주인들도 상당수 있소. 이정도면 패권을 꿈꿔볼 수도 있지 않겠소?]

하삼풍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진우백은 하삼풍의 안내를 받아 단혼곡 안으로 들어갔다.

안개의 바다를 지나서 들어가니 그들의 눈앞에 별천지가 나타났다.

산중에 어찌 이런 초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다란 초지가 있고 초지의 한쪽에 웅장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단혼곡 안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척살객과 검종맹, 그리고 잔혼각 등의 손을 피해 이곳 단혼곡으로 숨어들은 자들이었다.

단혼곡주 하삼풍의 살명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은 이곳 단혼곡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삼풍은 적에겐 가혹하지만 부하들에겐 관대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들은 자들이 이제는 하나의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진문주, 우린 무림인이니 복잡하게 말할 것없이 간단하게 결정지읍시다.]

하삼풍이 말했다.

진우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오.]

[우리가 욕심을 조금만 줄인다면 우린 천하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가 서로 뜻을 합쳐서 한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면, 아무도 우릴 넘볼 수 없을 것이오. 힘을 합칩시다.]

검성의 백검보도 무너졌다.

구대문파를 제외하고는 무림에서 명맥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만약 해남검파와 단혼곡이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검종맹과 잔혼각과 천하를 삼분할 충분한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사실을 잔혼각과 검종맹에서 모르고 있다면 더욱 그 가능성은 크질 것이다.

진우백은 염두를 굴렸다.

무엇보다도 구미가 당기는 것은 하삼풍에게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진우백도 젊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이지만 하삼풍보다는 늙지 않았다.

더구나 도산검림을 걷는 무림인으로서 어찌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삼풍이 죽기만 하면 그 세력은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굴러들어올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 죽여야지.)

속으로 말한 진우백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로써 깨어지기 위한 또하나의 동맹이 탄생한 것이다.

 

***

 

송죽곡(松竹谷) 안의 정경은 섭웅평, 즉 석두공이 기억하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불타 허물어진 작은 집은 빛바랜 수풀로 무성하고, 그가 물장난하며 놀았던 작은 연못엔 물풀이 우거져 있었다.

댜행히 석두공은 집의 잔해 속에서 어머니의 유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체가 던져졌다는 서쪽 절벽의 중간에서 나무가지에 걸린 해골을 찾았다.

독비신검객의 시체는 풍우에 살이 다 섞어서 사라지고 햇빛받아 갈라진 뽀얀 백골뿐이었다.

석두공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을 상자에 넣어서 대별산을 떠났다.

그가 떠날 때 독왕동주 갈천상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단혼검을 주었다.

[이것은 원래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주기로 했었던 물건이다. 천하에 검이 많다고 하지만 이 단혼검을 능가할 보검은 많지 않다. 단혼곡의 보물이지만 어쩌다가 손에 넣게 되었다. 강적을 만났을 때 네게 힘을 더해줄 것이다.]

단혼검은 두자정도 길이의 짧은 검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뻗치는 검기는 공력이 없는 사람이 휘둘러도 다른 사람을 상하기에 족했고, 검의 날카로움은 도검과 강기를 무 베듯 할 수 있었다.

석두공은 검을 사용하기 보다는 병기를 사용해야 할 때 주로 천왕저를 사용하므로 단혼검을 금사종에게 주었다.

[형님께서 파혼검이란 외호도 쓰신 적 있으니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석두공은 웃으며 말했다.

금사종은 검을 뽑아 휘둘러 본 후에 말했다.

[이름때문에 이같은 보물을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도 종종 외호를 바꿔야겠네. 다음엔 막사, 어장, 용천 등의 이름도 사용해보아야 겠군.]

 

* * *

 

그로부터 오일 후, 석두공과 금사종은 정주(鄭州)에 도착했다.

한데 정주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한 거지가 석두공을 자꾸 훔쳐보며 따라오는 것이었다.

석두공은 무림첩을 돌릴 때 개방의 힘을 빌린 적이 있는지라 거지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

거지는 석두공을 유심히 보더니 물었다.

[혹시 석공자님이 아니신지요?]

석두공이 그렇다고 하자 거지는 환호성을 지르며 석두공에게 절했다.

[공자님은 우리 개방의 은인이십니다요. 어서 저와 함께 가시지요.]

이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가?

석두공이 만나본 바로는 개방의 방주인 낙천부개 필요금은 자신에게 유감이 있으면 있었지 은인이라고 생각할 위인은 결코 아니었다.

무림첩의 발송일을 부탁할 때 그는 제자들이 굶어죽는다면서 석두공에게 오십만냥의 거금을 울궈내 간적이 있다.

 

거지는 석두공을 떠밀다시피하여 주택가로 데려갔다.

금사종과 석두공을 데리고 커다란 저택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 거지는 거침없이 한 저택의 문안으로 들어갔다.

[석두공 공자님을 찾았습니다요. 석두공 공자님을요!]

그는 들어서자마자 고함쳤다.

석두공은 괜히 머슥해지는 기분이었다.

저택의 넓은 마당을 지나고 안채의 문을 통과하여 거지의 목소리가 울러펴지고 있었다.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어요.]

갑자기 낭랑한 소녀의 호통소리가 안으로 부터 들려와 석두공을 당황하게 했다.

쐐애액!

작은 홍영(紅影)이 지붕을 뛰어 넘으며 석두공에게로 날아들었다.

석두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영은 장지연이 아닌가?

또한 그녀의 뒤를 이어 낯익은 얼굴이 석두공과 금사종 앞에 나타났다.

무형도객이었다.

 

× × ×

 

무형도객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돈의 힘이 세기는 세군 그래. 이렇게 금방 자네를 찾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뭐가 뭔지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석두공이 물었다.

무형도객은 장지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를 찾아다닌 사람이지. 또한 자네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기도 하고... ]

[장소저는 알고 있는 사이입니다.]

[이봐요 숯덩어리,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요?]

장지연은 입을 샐쭉하며 투덜거렸다.

석두공이 말했다.

[괜한 억지 쓰지 마시오. 내가 뭘 속였다는 것이오?]

[왜 내게는 당신 이름이 석두공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말만 해주었어도 쓸데없는 고생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장소저는 묻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름을 말해주시오? 나를 숯덩어리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궂이 이름을 가르쳐줄 이유가 뭐있겠소?]

[흥, 가르쳐줄 이유가 없다구요? 이것을 보고도 그런말이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장지연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이어 그녀는 왼주먹을 불쑥 내밀어 석두공의 코앞에 놓았다.

석두공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것으로 부족한가요? 그럼 이건 어때요?]

촤락!

장지연은 품에서 혈죽선을 꺼내 펼치며 말했다.

그것들은 무주(無酒) 동복신과 무보(無寶) 동적선의 신물들이었다.

장지연은 석두공에 대한 소유를 선포했다.

[당신은 두분 사부님이 제게 물러주신 유산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석두공이나 금사종, 그리고 무형도객은 아무래도 말이 뒤바뀐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물려진 유산인지는 천천히 판단하기로 하고, 석두공 자네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또 있다네. 만나 볼 텐가?]

석두공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왔으니 만나겠다는 사람은 다 만나야겠지요. 어떤 분이십니까?]

[소령이라는 소녀인데 자네를 꼭 만나야 겠다고 하는군.]

[소령이 이곳에 있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석두공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자신에게 그토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던 신비한 소녀 소령에 대한 생각은 줄곧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것 중의 하나였다.

그때 휘장이 걷히며 흑의면사녀가 들어왔다.

[저는 여기 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군요.]

마치 방울소리가 울리듯 맑고 고운 음성으로 그녀가 말했다.

석두공은 덥썩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뇌주탄에선 대체 어디로 사라졌었소?]

[제게 산공독을 먹여서 바다에 던진 사람이 당신은 아니었던 모양이지요?]

소령이 말했다.

석두공은 그녀의 한마디에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우백은 그에게 소령이 자신을 도와 적룡혈운도를 철저히 쳐부수라고 한 후에 떠났다고 했다.

[너구리같은 늙은이!]

석두공이 내뱉었다.

[어쨌든 무사해서 천만다행이오.]

[염려해 주시니 고맙군요. 하지만 당신이 내 본모습을 보고도 과연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하하하하! 당신이 추팔괴라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것이오. 당신의 도움이 적지 않았는데 무엇을 탓하겠소? 오히려 사례를 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석두공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면사를 벗어버림에 따라 그의 표정은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잠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당신... 이었구려! 아주 딴 사람같았는데...]

[여자가 마음먹어 바꾸지 못할게 뭐가 있어요? 당신을 만난 후 사부님께서 엄한 문책을 하셨어요.]

면사를 벗어버린 소령, 그녀는 바로 백란이었다.

숭산의 무저동 입구에서 폭풍마존을 기다리다가 대신 석두공을 만났던...!

석두공은 설마 그녀일 줄은 생각지 못했기에 할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돌하고 제멋대로이던 백란, 그녀가 어떻게 그토록 세심하면서도 석두공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그런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진정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무형도객은 말했다.

[란이는 내 딸일세. 하지만 이 아이가 자네에게 잘하고 못했는가를 따지자는 말은 아니네. 바른대로 말하면 이 아이는... ]

[아버지, 제가 직접 말하겠어요.]

백란이 말했다.

그녀는 표정이 굳어있는 석두공에게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전 사부님의 명령을 받고 당신을 데려가기 위해 무림에 나왔어요. 당신이 진정 무림의 평화를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제게 대한 감정은 어떻든지 간에 저를 따라가 주세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혹시 은세정검회와 관련이 있소?]

석두공이 물었다.

순간 무형도객과 백란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백란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앞으로 그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랬군! 사람이 바뀌었어. 정검령은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복종해야만 하는 것이겠지?]

[네.]

백란은 대답했다.

석두공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난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이 찾는 분은 내 사부요. 그분을 모셔 가도록 하시오. 그분이야말로 은세정검회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계시오.]

장지연이 물었다.

[제게 검법을 전수해 주신 그분 말이에요?]

석두공이 끄덕였다.

무형도객과 백란은 사람이 바뀌었다는 석두공의 말에 어쩔 바를 모르는 것같았다.

그때 장지연이 말했다.

[하지만 그분은 이미 세상을 등지고 유유자적하시는데 누가 움직일 수 있겠어요? 만약 그분을 무공때문에 찾는 것이라면 당신이라도 충분하지 않겠어요?]

[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모든 게 제 불찰인 것같아요. 그래도 저를 따라가 주시겠어요?]

백란이 간절한 눈빛을 석두공에게 보냈다.

석두공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께서 해야 할 일이라면 나라도 맡아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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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 원통형 망원경을 한쪽 눈에 대고 보던 혈부용의 눈이 부릅떠진다.

망원경의 둥근 화면에 잡히는 현장의 모습. 십일살주등의 시체가 널려있고 청풍은 염왕아를 다시 왼쪽 소매에 넣고 있다.

혈부용; (백... 백일자객 네 명을 순식간에 학살했다. 저런 게 가능한 건 무림을 통틀어도 열명이 채 안될 텐데...) 전율. 흥분

혈부용; (섣불리 나서지 않길 잘했다.) 식은땀

혈부용; (그 사이에 무슨 기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가놈은 나는 물론이고 소회주도 이긴다 장담할 수 없는 절세고수가 되어 있다.) 망원경으로 보며 생각하고

혈부용; (저 놈을 죽이려면 철저한 준비가...) + [!] 생각하다가 눈 치뜨고

화면에 잡히는 청풍의 모습. 고개를 돌려서 혈부용 쪽을 정면으로 보고 있다.

혈부용; (들켰다!) 팟! 뒤로 휙 날아가고

혈부용;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지만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휘익! 산 뒤로 날아가며 공포에 질리고. 산 봉우리 뒤로 날아간 때문에 청풍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혈부용; (빨리... 소회주를 만나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휘익! 날아간다

 

#145>

청풍; (계집...) 혈부용이 서있던 산봉우리를 보며 걸음을 옮기고

청풍; (저 봉우리 위에서 어떤 계집이 살의를 품은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시체들 사이를 지나 칠십이살주의 시체 쪽으로 가며 생각하고

청풍; (혈세사패중 한 세력에 속한 계집이었을까?) 생각하며 칠십이살주의 시체 옆을 지나가려다가

칠십이살주의 시체를 관통한 창이 보이고

청풍; (번개같이 빠른 창...) 창을 쥐고

청풍; (아마 이 창은 내공을 주입하면 반발력이 생겨서 폭발적인 속도로 날아가는 힘을 지녔을 것이다.) 부르르! 청풍의 손아귀에서 떨리는 창

청풍; (어검술이 특기인 내게는 칠성보도보다도 더 쓸모가 있을 것이다.) 팟! 창을 칠십이살주의 가슴에서 뽑고. 칠십이살주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친다

청풍; (아마도 전생에 악연이 있어서 내 손에 죽은 듯하지만...) (부디 극락왕생하기를...) 창을 든 채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빌어주고. 이어

청풍; (뜻밖의 방해를 만나 지체했다.)

청풍; (이 아이의 어머니가 애타게 찾아 헤매고 있을 테니 서둘러 낙양의 영빈객잔으로 가야한다.) 한손에 창을 들고 한손으로는 제갈소소를 안고 걸음을 재촉한다. 거지와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온다.

[잘 하셨소 소협!] [저런 살귀들은 죽어 마땅하오.] [무고한 희생자들을 대신해서 감사드리겠소이다.] 사람들 중 일부가 포권하며 인사하고

고개 좀 숙여서 답례하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 청풍

[겸손하기도 하고... 젊은 친구가 사람이 되었어.] [백일자객들을 네 명이나 해치웠으면 잘난 척을 할만도 한데 말이야.] [얼굴도 잘 생겼어!] 멀어지는 청풍을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그걸 보며 근처 숲으로 들어가는 거지. 잠시 후

푸드득! 숲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발목에 천을 묶고 있는 전서구다

숲에서 다시 나오며 그 비둘기를 보는 거지

이어 청풍이 간 쪽을 보는 거지. 하지만

청풍이 간 쪽에서는 사람들과 우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서 청풍은 보이지 않는다

거지; (방향을 보면 낙양쪽으로 가는 것 같다.)

거지; (저자가 어쩌다가 무슨 목적으로 다지관음의 외동딸 제갈소소를 납치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청풍이 간쪽으로 걸어가며

거지; (낙양 일대에서는 우리 개방 뿐 아니라 삼문육가의 고수들이 모두 나서서 제갈소소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이다.)

거지; (저자는 결국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셈인 것이다.) 히죽 웃고

 

#146>

넓은 강. 오가는 크고 작은 배들.

그러다가 놀라는 사공들

촤아! 배 한 척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서양의 갤리선처럼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로 길쭉하고 날렵하게 생겼다. 배에는 십여 명의 건장한 사공들이 이열로 앉아서 힘차게 노를 젓고 있다. 뱃머리에는 타노가 앉아서 앞을 보고 있다.

[어이쿠!] [피해!] [부.. 부딪힌다! 위험해!] 급히 쾌속선을 피하는 배들. 그 사이로 지나가는 타노의 쾌속선

[저 빌어먹을 놈들!] [이렇게 붐비는 강 위에서 저렇게 속도를 내면 어쩌자는 거야?] [이 수로를 세라도 낸 거야 뭐야?] [가다가 암초에나 부딪혀라.] 흔들리는 배위에서 쾌속선을 향해 주먹 감자를 먹이는 사공들

주변의 반응 상관하지 않고 나가는 쾌속선.

<남장을 하고 있긴 했지만 이 아가씨가 틀림없습니다요.> 쾌속선의 뱃머리에 앉아서 어떤 늙은 사공이 종이를 들고 보며 말하던 장면을 떠올리는 타노. 이하 회상

 

사공; [이분 아가씨는 스물 두 셋 쯤 되어 보이는 다른 소저와 함께 이 늙은이가 몰던 배를 탔었습지요.] 종이에 그려진 여자 복장의 벽옥령의 초상화를 보며 말하는 늙은 사공. 장소는 배가 많이 정박한 어느 포구다

사공; [얼핏 들은 바로는 서안쪽으로 간다고 했었습니다요.] 종이에서 눈을 떼며 말하고

회상 끝

 

<하루 정도 차이가 나지만 쾌속선을 타고 가면 서안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요.> 늙은 사공이 말하던 장면 떠올리는 타노

타노; (내 예상대로 옥령이는 북경에서 바로 서진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대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왔다가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타노; (옥령이의 종적에 대한 정보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개봉...)

타노; (잘 하면 낙양 근처에서 따라잡을 수도 있다.)

타노;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 벽옥령을 떠올리며 한숨 쉬고

타노; (강호가 어떤 곳인 줄 알고 멋대로 뛰쳐나왔단 말인가?)

타노; (청풍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따라잡을 때까지 부디 아무 일 업기를 바랄 뿐이다.) 앞을 보며 한숨

 

#147>

어느 산중에 난 관도. 오가는 사람들과 우마차들

[헉!] [이크!] [조... 조심해!] 사람들 다급한 비명과 함께 비키고

휘익! 질풍같이 달려오는 우유라. 반쯤 미친 여자 분위기. 오가던 사람들과 우마차들이 기겁하며 피하지만 신경 쓰지 못한다

<부인의 영애를 데리고 있는 자가 정주에서 낙양 쪽으로 이동하고 있소.> 청풍이 백일자객들과 싸우던 장면을 지켜보던 거지의 모습 배경으로 거지가 보낸 메시지를 떠올리는 우유라.

우유라; (죽일 놈!) 이를 갈고

우유라; (감히 소소에게 손을 대?) (네놈의 정제가 무엇이든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말겠다.) 쐐액! 속도를 더 내고.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보고. 직후

우유라의 예쁜 코가 움찔! 한다. 어떤 냄새가 맡아지는 모습

우유라;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희미하지만 익숙한 냄새가 배어있다.)

우유라; (백리향!) (소소의 몸에 배어있는 백리향이다!) 흥분. 눈 번뜩이고

우유라; (소소를 데리고 있다는 놈이 멀지 않은 앞쪽에 있다.) 쐐액! 더 속도를 내서 날아가고. 관도를 오가던 사람들 다급히 피하고

 

#148>

여전히 관도. 산속을 관통하는 길이다. 사람들과 우마차가 오가고

사람들 사이로 청풍이 제갈소소를 안고 걸어간다. 제갈소소는 여전히 청풍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어있고. 청풍의 오른손은 창을 늘어트리고 있다.

슥! 슥! 그냥 걷는 것 같은데 한 걸음에 몇 명의 사람들을 추월하는 청풍

[어떻게 한 거지?] [저 사람 언제 저렇게 앞서 간 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옆에 있었는데...] 뒤쪽의 사람들 놀라고

청풍; (낙양에 가까워질수록 관도가 붐빈다.) (그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스윽! 슥!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며 생각

청풍; (그렇다고 백주대로에서 노골적으로 경신술을 펼칠 수도 없고...)

청풍; (이 아이의 엄마가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을 텐데...) (길을 벗어나 산을 탈 걸 그랬나?) 잠이 든 제갈소소를 보고

청풍; (하지만 급하다가 질러가는 길이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고개 젓고

청풍; (낙양까지는 초행이라 자칫 길을 잃고 헤매서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청풍; (갑갑하긴 하지만 낙양으로 이어진 이 관도를 따라가는게 안전...) + [!] 생각하다가 눈 번뜩이고

길가의 바위. 높이가 5미터쯤인데 그 위에 한명의 사내가 팔짱을 끼고 우뚝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나이는 서른 살 정도. 건장한 체격에 사내다운 인상. 눈이 부리부리하다. 캐릭터는 111. 무기는 칼인데 장식이 화려하다. 이 청년은 삼문육가중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철담패도 팽혼이다. 다지관음 우류라를 짝사랑한다.

청풍; (저 인물...) 바위 위에 서서 길을 감시하는 팽혼을 본다. 오가던 다른 사람들도 팽혼을 흘깃거리는데 모두 겁에 질린 표정들이다

청풍; (상당한 실력의 고수다. 아마 내 손에 죽은 백일자객들에 못지않은 실력의 소유자일 것이다.)

청풍; (관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 같은데...) (어쩐지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같은 에감이 드는구나.) 생각하며 바위로 접근하고

[!] 팽혼의 눈이 번쩍

바위 쪽으로 다가오는 청풍의 모습 크로즈 업

청풍의 품에 안겨 잠이 든 제갈소소의 모습 크로즈 업

팽혼; (찾았다!) 팟!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힉!] [헉!] 오가던 사람들 기겁하며 도망치거나 물러선다.

휘릭! 청풍의 앞에 내려서며 가로 막는 팽혼

청풍; (역시...) 멈춰서며 한숨 쉬고.

오가던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청풍과 팽혼을 보고

팽혼; [여러 말 않겠다.] 창!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고

지징! 칼집에서 나온 칼날이 반투명하고 진동을 일으킨다

청풍; (칠성보도에 못지않게 날카로운 칼이다.) 흘깃 칼을 보며 생각

팽혼; [안고 있는 아이를 순순히 넘긴다면 피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징! 쿠오오! 진동하는 검. 온몸에서 뿜어지는 패기

청풍; (패기가 넘치는 인물이로군.) + [예의가 없는 분이로군.]

팽혼; [뭐라?]

청풍; [아무렴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이 아이를 넘길 것 같은가?] 냉소

팽혼; [본좌는...] 실룩. 화를 참는 모습

청풍; (분노하면서도 즉시 도발하지 않는 걸 보면 제법 자제력도 갖춘 자다.)

팽혼; [하북팽가(河北彭家)의 팽혼(彭昏)이다!] 거만하게

[팽혼!] [삼문육가중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철담패도(鐵膽覇刀)다.] [도법으로는 강호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든다지?] 길 좌우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놀라고

청풍; (삼문육가중 하북팽가의 소가주라...) (의외의 거물이로군.)

팽혼; [본좌가 누군지 알았으면 순순히 그 아이를 넘겨야할 것이다.]

청풍; [그렇게는 못하겠소.] 냉소

팽혼; [못하겠다?] 눈 부릅

청풍; [나는 이 아이로부터 낙양 영빈객잔으로 데려다달라는 부탁을 받았소.] [설령 귀하가 좋은 뜻을 품고 있다 해도 이 아이를 넘길 수는 없소.] 재갈소소를 다독이며

팽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칼을 쓸 수밖에 없군.] 부웅! 칼을 허공으로 한번 휘두르고

팽혼; [자초한 화이니 날 원망하진 마라!] 부악! 화악! 칼을 휘두르며 청풍을 공격하는데 칼이 여러 개로 변해서 좌우상하로부터 청풍을 베어온다

청풍; (빠르고도 강렬한 도법이다.) 휘휙! 창을 휘둘러 일일이 막는 청풍

쾅! 콰쾅! 쩌적! 팽혼의 칼에서 내뻗친 섬광이 작렬하면서 청풍 주변의 지면이 쩍쩍 갈라진다. 하지만

캉! 카캉! 청풍은 제자리에 선 채 창을 움직여 무리없이 방어하고

팽혼; (이놈...) 날고뛰며 칼을 휘둘러대면서 눈을 부릅뜨고. 팽혼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긴 칼의 형상이 일어나 청풍을 난도질한다.

<보통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내 공격을 일일이 막아내고 있다!> 텅! 텅! 청풍이 창을 대충 흔들어 팽혼의 공격을 막는 모습 배경으로 팽혼의 놀람을 나레이션으로

팽혼; (강호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인데...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부악 쩌적! 미친 듯이 칼질을 하고

청풍; (이게 하북팽가의 비전도법인 팔방풍운도법(八方風雲刀法)이로구나.) 캉! 카앙! 창을 움직여서 막아내며 생각하고

청풍; (확실히 위력적인 도법이긴 하지만 철담패도라는 저자의 화후는 대략 칠성(七成)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 때문에 도기(刀氣)를 내뻗기는 하지만 도강(刀罡)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눈을 부릅뜬 채 날고 뛰며 칼질하는 팽혼을 배경으로

청풍; (만일 도강이었다면 이 특별한 창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훼손되었을 것이다.) 캉! 캉! 캉으로 팽혼의 칼질을 막아내고

[저자는 누구지?] [아직 앳되어 보이는데 하북팽가의 후계자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무림의 신진들 중에 저런 친구가 있었나?] 관전하는 사람들 웅성대고

팽혼; (젠장!) 부악! 쩍! 칼을 휘두르며 이를 갈고

팽혼; (이 내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애송이 하나 처지하지 못하다니...)

팽혼; (자칫하다가는 도법으로 천하제일이라는 하북팽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겠다.) 캉! 청풍의 창날을 친 반동으로 뒤로 훌쩍 물러서고

청풍; (팔방풍운도법을 일순(一巡)하고도 날 어쩌지 못하자 생각을 바꾼 것 같군.) 창을 내리는데

팽혼; (아직 미숙하지만 팔방도강(八方刀罡)으로 결판을 내야한다.) 징! 칼로 청풍을 겨누고. 칼이 진동하고

쩡! 치칙! 내미는 팽혼의 칼 끝이 빛을 내며 길어진다

[오오! 칼날이 늘어난다!] [저게 도강이야!] [무엇이든 벤다는 도법의 궁극적인 경지다.] [역시 하북팽가의 후계자답다. 벌써 도강을 구사할 정도에 이르다니...] 사람들 감탄

청풍; (초보적이지만 도강을 뽑아낼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렀군.) 눈을 좀 가늘게 뜨면서 창을 수평으로 들고

팽혼; [각오...] + [!] 외치며 칼을 휘두르려다가 눈 부릅

쿵! 이미 팽혼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창의 끝. 깊이 박히진 않았지만 창날이 파고들어 피가 난다.

청풍; [그만 합시다.] 창 끝을 잡아 내밀고 있고

[헉!] [어느 틈에...] [창을 찌르는 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경악하고

팽혼; [말... 말도 안되는...] 자기 가슴에 박힌 창을 보며 신음. 피를 토하진 않는다.

치이! 팽혼의 손에 들린 칼에서 빛이 사라지고

청풍; [철천지원수지간이 아니라 혈도를 찍는 정도로 그친 거요.] 팟! 팽혼의 가슴에서 창 끝을 뽑으며 냉소하고. 푸학! 팽혼의 가슴 부위 상처에서 피가 뿜어지고 팽혼의 몸을 뒤로 넘어가려 한다.

팽혼; [지랄...] 스륵! 신음하며 뒤로 넘어가고

콰당탕! 등부터 바닥에 나뒹구는 팽혼. 청풍은 그 앞에서 창을 거두고 있고

청풍; (도강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녔다 해도 구사하는 데 굼떠서야 하등 쓸모가 없지.) 창을 내리며 팽혼의 옆을 지나가고

팽혼; [안... 안된다!] 바닥에 쓰러져 벌벌 떨며 신음하고. 칼은 쥐고 있고. 눈만 돌려서 청풍을 보고

팽혼; [그... 그 아이를 놓고 가라! 아니면 나... 나를 죽이든지...] 이를 갈며 분해하지만

청풍; [유감이지만 어느 쪽 요구도 들어줄 생각이 없소이다.] 무뚝뚝하게 말하며 팽혼의 옆을 지나는데

[악적!]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앞에서 들린다.

모든 사람들이 앞을 본다. 청풍의 앞쪽에 서있던 사람들도 돌아보고

우유라; [감히 소소에게 손을 대?] 화악! 청풍의 앞쪽에 서있던 사람들 머리 위로 폭발적으로 날아오르는 여자. 미친 여자 형상인 우유라다. 양손에는 십여 개의 얇은 비수들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다

청풍; (저 여자...) 눈 번뜩

팽혼; [우... 우부인!] 낭패와 안도

<철담패도 못지않은 고수다.> 청풍의 생각 배경으로 + 우유라; [용서할 수 없다!] 투학! 쩡! 새처럼 날아오며 양손의 비수들을 뿌린다

청풍; (비도술(飛刀術)인가?) 창을 들어 막으려 하고. 헌데

가앙! 기잉! 비수들이 제 멋대로 날면서 청풍의 주위로 날아들더니

텅! 텅! 퍽! 퍼퍽! 청풍을 가운데 두고 바닥에 원형으로 박히는 비수들.

청풍; (비수들이 나를 노린 게 아니다.) 바닥에 박힌 비수들을 보며 흠칫할 때

우유라; [감히 소소를 건드려? 그 대가로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겠다.] 피핑! 핑! 양쪽 소매에 넣었던 양손을 다시 뿌리고. 또 그녀의 양손에서 십여 개의 비수가 날아 나오고

퍼퍽! 퍽! 그 비수들이 원래 꽂혔던 비수들 사이에 박히고.

지지징! 비수들끼리 벼락으로 이어진다.

청풍; (혹시 이건...) 놀라고. 그 직후

 

#149>

쿵! 청풍의 주변이 확 변한다. 청풍은 망망대해에 솟아있는 뾰족한 바위 위에 서있다. 바위 정상은 폭이 1-2미터밖에 안되는데 바위 주변은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는 사나운 바다다. 물론 실제가 아니고 진법으로 일어나는 환각이다

청풍; (당했다!) 굳어지는 얼굴. 콰앙! 콰앙! 주변으로 집채만한 파도가 치솟고

<비수들은 직접 날 노린 게 아니라 진법을 형성한 것이다.> 콰쾅! 쾅! 자신을 강타하는 파도를 방어막으로 막으며 비틀하고. 하지만

쾅! 콰쾅! 파도들은 바위를 강타하고. 그러자

콰드득! 쩌적! 바다 위에 뾰족하게 돋아난 바위가 거센 파도에 강타당해 부서지고 금이 쩍쩍 간다.

드드드! 무너지려는 바위. 비틀거리는 청풍

청풍; (환각!) 비틀거리며

청풍; (이건 진법이 일으키는 환각이다.)

<하지만 너무도 생생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드드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는 바위. 바위를 연신 때리는 거센 파도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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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무너져 버린 아버지

 

 

복도,

진홍빛 융단이 그림처럼 덮여있는 복도였다.

그리고, 이 회랑은 어찌나 긴지 마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미로를 연상케 했다.

바로 이 미로처럼 이어진 회랑의 끝에 역대 백인장주들의 집무실이자 폐관실(閉關室)이 위치하고 있었다.

만년온옥으로 새겨진 쌍봉각이 멋들어지게 조화된 문을 들어서면 하나의 실내가 시야에 드러난다.

천정에는 야명주가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벽은 당대(當代)의 유명한 화가(畵家)들의 산수화가 걸려 있고,

바닥에는 밟고 지나기가 송구스러운 비단이 깔려있는 실내,

때문에, 실내는 장중하고 무겁고 화려하며 부귀롭다.

한데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이토록 화려한 실내가 더없이 더둡고 침울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니……

그렇다.

이 무거운 분위기는 세 사람으로부터 기인된 것이었다.

하나의 침상과……

두 개의 호피 의자에 각기 자리를 달리한 세 사람……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

삼십 오륙 세나 되었을까?

붉은 침상은 호화롭기 그지없었고,

너무도 희어서 오히려 슬프기까지 한 살결과……

손과 옷과……

치렁치렁 늘어진 흑발을 뒤로단정히 묶은 백건(白巾)과……

도대체 침상의 그에게서 선명한 것이 아닌 것을 찾아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다,

밀납처럼 희고 창백한 얼굴에 신(神)의 작품처럼 자리한 이목구비(耳目口鼻)에……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내의 아름다움……

누구든 일단 이 사내를 대하고 나면 그가 지닌 아름다움과……

그의 일신에서 은은히 풍겨나는 고아한 기품에 압도되어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리라……

한데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천정을 우러르며 치켜 떠져 있는 그의 두 눈은……

아무런 인간적(人間的)인 감정이라고는 담고있지 않은 몽롱한 것이 아니가?

마치, 모든 영혼과……

모든 심령은 이미 이 사내의 몸에서 달아나 버린 듯한……

한 마디로,

그의 동공이 힘없이 풀려 그저 의무처럼 천정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는 조각품을 연상케 했다.

바로 이 침상의 사내를 침울한 안색으로 지켜보고 있는 호피의자의 두 사람,

둘 다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노인(老人)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푸른 장삼을 입고 있었으나,

그 중의 한 노인(老人),

머리에는 와룡관(臥龍冠)을 썼으며……

심해(深海)처럼 깊고 교요한 눈빛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현기(賢氣)로움으로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에다,

이 노인을 특징지을 수 있는 미심에 박힌 푸른 반점……

허나, 그것이 오히려 고고한 대유학자를 연상케 하며 노인의 기품을 돋보이게 한다.

 

무심군자(無心君子),

 

이 하늘 아래 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자 그 누구겠는가?

이 시대의 최고의 삼 현자(賢者) 중의 하나 이며……

천하(天下)에 깔려 있는 대소사(大小事)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훤히 알고 있는 ……

지혜에 관한 한 그 능력을 견줄 사람이 더문 사람이다.

여기에다,

또한 십이 인의 절세고수 중 한사람이기도 한 그의 얼굴에 홍안은 아직도 그를 오십대의 노인으로 보이게 하나,

기실 그의 세수는 백을 훨씬 넘겼다.

그리고,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노인,

수려한 용모에 도도한 기풍을 지니고 있는 이 사람……

중원은 이 사람을 수혼도객(收魂刀客)이라고 일컫는다.

수혼도객……

그가 지닌 호 그대로 한 때 중원 십팔만리를 주유하며 마두들의 혼을 거두어들이고 다녔던 절세적인 도객이다

도객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리 속에는 천하의 무수한 무학이 담겨져 있고……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혼도객을 일컫기를,

 

____수혼도객의 도는 무서운 것이지만 그의 뇌(腦)속에 든 무학들은 그의 도 보다 더욱 가공하다. 그것들 중 백분지 일만 얻으면…… 능히 천하에 고수로서 입신할 수 있으리니……

 

이 신화적(神話的)인 두 기인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을 줄이야……

세상은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까마득한 무지(無知)가 아닌가?

아니,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삼 년전에 가출한 소일초를 잡으려 하던 그 두 노인이었으니……

당시 그들이 했던 말로 보아 백대선생같은 사람은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들은 도왕 소선풍의 좌우공봉(左右供奉)이기도 하다.……

지금도 두 사람은,

인간의 감정이라곤 하나도 드리우지 않는 채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사내를 향한 채……

질식할 것 같은 침묵과 정적이 잠겨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시간은 물흐르듯 흘렀다.

깜깜한 밤하늘의 먹장구름이 걷혔음인가?

화안히 달빛이 창문에 부딪히고 있음을 느꼈다.

바로 이때다.

자박자박……

사박사박……

조용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무서운 분위기가 젖어 있는 실내에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예진과 소일초……

그리고 내총관 독고행이었다.

때를 같이 하여,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수혼도객과 무심군자,

그들은 일제히 조예진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구부렸다.

[좌우공봉……!]

[주모께 인사드리오이다.]

조예진도 수심에 찬 얼굴에 한 줄기 미소를 피워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두 분 공봉께서는 어서 예를 거두세요……한데 무산신의께서는 안보이시는 군요.]

[아마도 지금 약실에 있을 것이외다.]

허리를 편 두 기인의 눈빛이 소일초의 한몸을 더듬었다.

동시에, 두 사람의 동공으로 언뜻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소일초가 많이 변한 듯 했기 때문이다.

어딘지 모르게 자기들을 골탕만 먹이던 그 꼬마가 조금은 변한 것 같았다.

이때, 소일초가 환한 미소를 피워 올리며 수혼도객과 무심군자를 향해 다가섰다.

[두 분 봉공께 인사드립니다.]

의젓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소일초,

두 기인도 어리둥절하며 소일초를 향해 손을 가볍게 맞잡아 보였다.

[삼가 좌우공봉도 소장주를 뵈오이다.]

소일초가 자기들에게 이처럼 인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는 묘한 대치,

그 침묵을 타고 한 소년과 두 기인의 가슴에 뜨거운 기운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더 이상 말이 필요없고……

그들에게서 서로가 무엇인가를 주고 받을 필요가 없다.

소년은 마음으로 다시는 말썽피우지 않겠다는 맹세를 보내고 있었고,

두 노인은 소일초가 확실히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말 대신 환한 미소와 가벼운 미소의 주고 받음으로 모든 것은 흡족한 것이다.

문득 수혼도객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침상의 백의사내를 가리켰다.

실내의 이 모든 상황을 아예 도외시 한 채 풀린 동공으로 그저 허공을 바라보고만 있는 조각상과 같은 사람을 ……

[장주님이십니다.]

오오……장주라니?

그렇다면 모든 신체기능이 마비된 채 허공만 멀건히 바라복 있는 식물인간과 같은 사람이 바로 도(刀)의 제왕(帝王)인 도왕 소선풍란 말인가?

한데 왜?

이 시대 최고의 도왕(刀王)인 그가 이토록 처참한 상태로 병상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소일초는 아버지의 모습을 쳐다보고 도저히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얼핏 들은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설마하고 말았다.

하기야, 어찌 선뜻 이러한 사실를 믿을 수 있겠는가?

늘 햇살처럼 찬란한 신위로 천하를 한눈에 굽어 보고 있으리라고만 생각해 왔던 자신의 부친이 아닌가?

소일초는 의혹이 넘치는 눈빛으로 조예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찰랑고여 넘치는 조예진의 눈물을 소일초는 보았다.

그리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흘러내는 음성도 들어야 했다.

[애야……너의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않으려느냐?]

소일초,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사실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소일초는 그의 뇌리에 감도는 의혹을 지울 수 없었음인가?

선 그 자세로 오랫 동안 도왕 소선풍를 바라보고만 있엇다.

[이래서……이래서……아버지가 저를 꾸짖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군요.]

이때, 대답대신 냉엄히 흐르는 조예진의 음성,

[아버지께 인사를 올리지 않고 무엇하는 것이냐?]

소일초의 작지만 탄탄한 어깨가 가는 진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그는 그 자리에서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소자 소일초……이제야 돌아와 아버님을 뵙습니다.]

하나, 소선풍는 말이 없다.

그저 풀린 동공으로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때 지켜보던 무심군자가 침중한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소장주!]

[…………]

[장주(莊主)의 신체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어 있소이다.]

[…………]

[온몸의 십육대근혈이 모두 끊기고……삼백육십주맥이 모두 어긋났으며 ……그기다가 인체 십대사혈이 막혀있으니……]

[…………]

[장주께서는 살아 있으되 모든 기능을 잃어버리신 완전한 식물인간이실 뿐입니다.]

[…………]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으며……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으니……소장주의 인사에 아무런 대답도 해 주실 수 없소이다.]

순간, 소일초의 잔등이 무섭게 떨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부친이 변을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사실로 지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전에는 몰랐던 그의 마음 속에 뜨겁게 솟아오르는 기이한 충격!

그 충격이 바로 진한 혈육으로 맺어진 감정의 교류라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이 순간,

무심군자의 무겁고 조용한 음성이 다시 흘러들었다.

[이러한 사태로 말미암아 지난 삼 년 동안 백인장의 수하들이 천하를 뒤지면서 소장주를 찾았던 이유이외다.]

찰나, 격한 감정에 떨고만 있던 소일초의 아름다운 동공에 뽀얀 물기가 서려왔다.

(그래……삼 년 전에 꾼 재수없는 사마귀 꿈은 바로 이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을 지도 몰라……내가 남황에서 사부와 지내고 있을 동안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돼있었던 거야……)

소일초는 뼈 속 깊은 후회 속에,

천천히 손을 들어 소선풍의 차고 파리한 손을 감싸쥐었다.

한데 이순간,

오오……보라……

반짝……

소선풍의 두 눈에 희미한 물기가 어리는가 싶더니……

급기야 그것은 한 방울, 두 방울 눈물로 맺혀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소일초가 움켜 쥔 소선풍의 파리한 손도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니……

부정(父情),

이 처참한 지경에도 젊은 도왕의 가슴에는 아들을 향해 흘려 줄 뜨거운 눈물이 남아 있었던가?

뜨여진 채……

두 눈을 스스로 감을 수 도 없는 소선풍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뉘라서 이 도왕의 가슴에 흐르는 처절한 부정을 모르랴?

그는 부르짖고 있으리라.

말이 되어 나올 수 없는 마음 속의 절규로 울부짖고 있으리라.

 

____ 아들아……

내 아들아……

 

소일초,

어느 새 그의 두 눈에서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두 부자(父子),

그들은 비록 아무런 말도 주고 받을 수 없으나……

마주 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정과,

그 정으로 흐르는 눈물로 그 어떤 해후(邂逅)보다 뜨거운 해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

소일초는 조용히 마음 속으로 소선풍를 부르며,

작고 차가운 손을 들어 올렸다.

도왕 소선풍의 두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서……

이때 한 동안 아름다운 두 부자의 상봉을 감동으로 지켜보고 있던 무심군자가 조용한 음성을 흘려냈다.

[소장주!]

[…………]

[더이상 장주를 격동케 해서는 아니되오. 장주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는 자체만으로도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소이다.]

순간 소일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소선풍를 향해 다시 정중히 일배를 올린 후,

소일초는 조심스럽게 소선풍의 침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무심군자를 향해 무서운 빛을 발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봉공……누가 아버지를 저렇게 만들었습니까? 열 배 백 배로 돌려주겠습니다.]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정성스럽게 두 손으로 닦아내리며 조예진이 고개를 저었다.

소일초의 예민한 반응에 무심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막 대답하려다가 조예진의 표정을 보고 가만히 있었다.

조예진이 천천히 내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삼 년 전 네가 가출했을 때부터 이야기해야 겠구나……]

[…………]

[당시 네가 어린도를 가지고 나갔을 때 내가 뒤 쫓아 간 걸 기억하겠지?]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창산의 깊숙한 곳에서 나는 그만 돌아오고 말았는데, 너는 그 이유가 궁금했겠지?]

[네……]

조예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무심군자와 수혼도객을 바라보았다.

[두 분께서는 평소에 제 내력에 대해 의문을 품어 왔겠지요?]

[어찌 저희 늙은이들이 감히……]

[오늘같은 때에 제가 밝히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나는 천하제일인 혈기자의 막내제자예요.]

순간 두 노인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경악했다.

혈기자……

혈기자라면 무림의 일반 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학의 대종사로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되는 불세출의 대기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십여 년 전에 혈기자와 그 제자들이 등천마교를 멸망시켜버렸던 그 혈기대종사의 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건은 무림사에 길이 남을 참혹한 대 사건이었던 것이다.

소일초는 내심 집히는 것이있어 두 봉공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아하! 그래서 혈기자가 작은 어머니를 알고 있었구나……)

무심군자가 경악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주모께서 바로……]

[그래요. 내가 바로 사수(四手)의 하나이고 옛날 등천마교의 무리들을 학살한 장본인 이기도 하지요.]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어셔야 합니다.]

조예진은 고개를 돌려 소일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믿을 수 있겠지?]

[네……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래, 과연 네 아버지가 너에게 모든 것을 맡길 만큼 총명하구나.]

[…………]

[나는 너를 쫓아가다가 창산 그곳에서 내 사부의 표기인 혈기(血旗)를 보았단다. 다시는 무림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믿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우리 사형제(師兄第)들은 무림에 나올 때, 실은 사부께 남에게 밝히지 못할 큰 죄를 범하고 도망쳐 나왔단다.]

[…………]

[…………]

[사부는 무서운 분이시지……우리를 단 일 장에 주살하려 하실거야. 그런데……]

…………

[삼 년 전, 우리 백인장을 방문한 청년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네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나를 한 번 볼 것을 요구했으나, 얼토당토 않은 말이라 빈축만 샀단다.]

[…………]

[멀리서 얼핏 나를 보는 데, 이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빙긋이 웃더구나……나는 무척 당황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처음보는 사람인데……]

무심군자와 수혼도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도 주모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빠진 젊은 놈이었겠지……)

[남은 부인된 몸으로 외간남자가 얼굴을 보기 청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었지. 아무튼, 그 사람은……그러고는 네 아버지와 함께 무슨 밀담을 나누고 떠나가 버렸지……]

[…………]

[…………]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내가 아무리 물어도 네 아버지는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나는 불안하기 그지없었어……]

[…………]

[혹시 내 행동에 정숙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던가를 곰곰히 되새기며 반성을 했지. 그렇지만 그 사람과 관련된 뚜렷한 어떤 것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단다. 그리고……]

[…………]

[…………]

[며칠 후에 네 아버지는 갑자기 강호에 나갈 일이 있다면서 행장을 차리시더구나……말은 하지 않았지만 찾아왔던 청년과의 밀담 때문인 것 같았지.]

…………

[어딜 가시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단지 걱정말라고만 하셨지……어린도를 가져가지 못해서 좀 아쉬운 듯 했지만 괜찮을 거라면서 그냥 떠나셨다.]

[…………]

[…………]

[그것이 건강하실 때 본 이 분의 마지막 모습이었단다.]

조예진은 모든 화(禍)가 자신으로 말미암은 듯 울먹이며 누워있는 소선풍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부덕(不德)한 탓 이라는 생각이 드는 구나……]

[주모……]

[그리고, 네 아버지가 집을 나서신지 정확히 열흘 만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내상(內傷)을 입고 간신히 되돌아온 것이니……]

[…………]

[…………]

[허나 그 때는 이미 네 아버지의 신체기능은 철저히 망가져 있어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단다.]

[그 때 우리 백인장은 초상이 난 것처럼 놀랐지요. 세상에 장주께서 중상을 입으시다니…………]

수혼도객이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즉시, 이 곳으로 옮겨 무산신의로 하여금 치료하게 한 후 나는 여러 가지 사실을 추측해 보았단다…………]

[…………]

[…………]

[세상에 네 아버지에게 중상을 입힐 만한 고수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내 사부이신 혈기자라면 물론 가능한 일이지만, 오히려 그분은 네 아버지와는 남이모르는 친분이 있어서……나를 죽이면 죽였지 결코 네 아버지를 상하게 하실 분은 아니었다.]

…………

[내가 단언하건데 그분 이외에는 천하에서 네 아버지와 당당하게 겨루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혼란에 빠져서 여러 가지 억지 추측까지 하게 되었지……]

[…………]

[…………]

[얼마전에 찾아왔던 청년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나 때문에 네 아버지와 그 청년이 다투다가 혹시 그렇게 돼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 그리고……]

[…………]

[…………]

[어쩌면, 내 사형들인 삼수(三手) 중 두 사람이 협공하면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생각은 그 당시로 조금 일리가 있는 것이기도 했지……네 아버지의 상세 중 맥이 가닥가닥 끊어진 것은 대사형의 절맥수(切脈手)의 수법 같기도 했거든……]

[…………!]

[…………!]

조예진은 얼굴에서 눈물을 훔쳤다.

[나는 몇 년 동안 흉수와 너를 찾아서 암암리에 무림을 헤매 다녔지만 전혀 종적을 발견할 수 없어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작은 어머니! 어찌 이 일이 작은 어머니 탓일 수 있겠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셔요………]

[고맙구나 애야, 그런데 어젯밤, 네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분명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단다.]

[제 이야기로요?]

[그래, 네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제가 어제 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어요.]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소일초는 조예진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우리 백인장을 찾아와 나를 만나보겠다고 했던 그 청년은 바로 내 사부인 혈기자(血旗子) 바로 그분 이셨던 거야……]

무심군자와 수혼도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 분은 이미 일백 서른 정도의 연세이실텐데……]

[일초의 말로는 그분께서 완전히 반로환동하셔서 다시 젊은이가 되셨다는 군요……]

[일시적으로 늙는 것이 고강한 내공으로 인해서 멈추는 경우야 있겠지만, 어떻게 정말로 다시 젊어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신선의 술을 닦았다면 몰라도……]

무심군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분은 무림사에 독보적인 존재이시지요. 우리가 떠날 당시 무진동에서 무엇인가 연구하고 계셨는데 어쩌면 정말로 신선의 술을 닦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 혈기자란 분은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젊어지셨어요. 나하고 내기도 하고 그랬는 걸요……]

소일초가 조예진의 말을 거들었다.

[애야, 네가 그분과 내기를 했다고 했지?]

[네! 제가 모두다 이겼어요.]

조예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두다 이긴 것은 아니란다. 마지막 내기에서 네가 진거야.]

[……?]

[그분은 정말로 그 곳에서 열흘을 기다린 후 네가 나타나지 않자 바로 이 백인장으로 찾아오셨던 거야……]

소일초는 입을 다물었다.

[네가 한 약속을 네 아버지가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겠지. 네 아버지는 감히 거절할 수가 없으셨을 테고……]

[그럼……아버지께서는 제 대신 사수(四手)와 주소아란 사람을 찾기위해?]

조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그분이 나를 보려고 했던 이유도 명백해지는 것이지……]

[…………]

[도망친 제자이지만 그리워서 한 번 볼려고 하셨던 거야……]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분은 전부터 나와 네 아버지가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내가 가 보았자 네 아버지 옆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모든 것이 제가 철없이 굴었던 때문인 것 같군요……]

소일초는 자기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말썽을 부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조예진이 머리를 흔들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구나. 애야, 네 말대로라면 사부께서는 너에게 말한 그대로 네 아버지에게도 부탁하셨을 텐데 그런 험한 일을 당할 리는 없었을 거야.]

모든 사람들이 조예진을 바라보았다.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흑막이 깔려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

[…………]

[일단 내 사형들의 짓임이 확실한 것 같으니까, 그 과정은 어찌 됐던 간에 그들을 찾아서 생사결단을 내도록 해야겠다.]

그녀는 굳은 결심을 드러내 보였다.

그녀에게는 집히는 바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길지않은 때부터______

돌연 무림에 신비(神秘)롭기 이를 데 없는 세력이 소리없이 등장했었다.

 

삼성무림청(三聖武林廳)!

 

이것은 피가 그리워 실성하는 극마집단도 아니었고,

정의를 표방하는 단체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지닌바 힘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 그들이 세력은 말 그대로 일취월장을 거듭해 왔다.

불과 출현 수년 만에 장강 일대를 기반으로 거대세력으로 성장해 버린 의문의 단체인 삼성무림청,

경악!경악!

공포!공포!

그들의 출현에 처음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던 구대문파의 청옥검궁, 그리고 백인장은 경악해 마지 않았고,

그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장강 일대의 군소방파들은 언제 뻗쳐올지 모르는 그들의 힘으로 말미암아 공포에 떨었다.

그들의 성격은 모호하여 정사(正邪)의 구분도 되지 않았다.

백인장과 청옥검궁, 그리고 구대문파가 이루고 있는 정족의 형세를 깨뜨리며,

장강변의 등천마교가 위용을 떨치고 우뚝 서있던 그 자리에 다시 선,

삼성무림청,

이들이야 말로 조예진이 가장 의심하는 곳이었다.

 

[일전에, 내가 삼성무림청에 몰래 잠입해보았지만, 그들의 행사가 워낙 은밀하여 도저히 우두머리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

[그러나, 삼성무림청 그곳이 아니고서야 무림에 그들이 웅크리고 있을 만한 곳이 없다.]

조예진은 아예 단정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잔잔한 눈빛이 가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다치게한 그녀의 사형들에 대한 분노가 엄청남을 시사하는 듯이……

이때 무심군자가 길게 호흡을 조정하고 소일초를 향해 몇 마디를 보충했다.

[소장주……!]

[…………]

[우리는 소장주께서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소이다.]

[…………]

[장주님께서 무림의 십이 대 고수 중의 한 분 이셨고, 이 늙은이 또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소이다. 적이 누가 됐던지 간에 주모께서 도우고 우리 백인장의 힘이라면 천하에 상대하지 못할 적(敵)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백년의 전통을 이어온 백인장의 저력을 그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백인장이야 말로 무림에서 가장 고수가 많은 곳 아닙니까?]

수혼도객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제 소장주께서 무사히 귀환하셨으니……장주님을 대신해 바깥의 일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제가요?]

[그렇지요. 소장주께서는 이미 무림에 널리 알려진 고수가 아닙니까? 조사를 좀더 세밀히 한 다음, 삼성무림청이 흉수로 밝혀진다면 깨끗하게 쓸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백인장이 건립된 이후로 지금까지 장주께서 이렇게 변을 당하신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결코 묵과할 수 없습니다.]

두 봉공은 번갈아 가면서 말했다.

이때,

갑자기 문앞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봉공의 말이 옳습니다. 어제 밤부터 장주님의 상세에 호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주님께서 일어나시기 전에 흉수를 처단해 버리는 것이 소장주님의 도리입니다.]

신선의 풍모를 지닌 노인,

바로 약실에 갔다던 백인장의 도객아닌 소속인 무산신의 서공화였다.

서공화는 말을 마치자 마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주모께서 오셨음에도 인사가 늦었습니다. 소장주께서도 훤앙해 지셨군요.]

[수고가 많습니다.]

조예진은 남편의 목숨을 쥐고있는 사람인지라 그에게 신중하게 예를 취했다.

서공화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이 상태로 장주께서 점차 회복하기를 계속 하신다면……앞으로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쾌차하심은 물론 본래보다 어쩌면 더욱 무공이 고강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조예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주모…… 제가 어제밤에 장주님의 몸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생겨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아마도 장주님께서 신체를 전혀 쓰시지 못하는 중에도 마음으로 새로운 무공을 깨우치신 듯 합니다. 무림사에 유래가 없던 일이지요……]

서공화의 말에 좌우봉공과 서일초 모두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일 년……! 일 년이면 이분께서 다시 건강해 지신다고요?]

조예진은 서공화의 소매를 붙잡고 거듭물었다.

소일초의 어린 얼굴에 굴강한 빛이 떠올랐다.

[일 년……제 손으로 흉수들을 처단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어요. 작은 어머니……]

조예진은 소일초의 말은 한귀로 듣고 흘러버렸다.

남편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데 원수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에게는 남편만 있으면 세상이나 원수따위야 몽땅 그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일초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자기가 아버지의 어린도를 가지고 도망치지만 않았다면……

혈기자에게 사기도박을 걸지만 않았으도……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는 자기를 꾸짖을 생각이나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삼 년 동안 조금도 차도가 없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작은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 지 몰랐다.

소일초는 중얼거렸다.

[내가……내가 모두 처단해 버리고 말테다……이제 부터 아버지가 일어나실 그 날까지는 내가 백인장의 장주인 것이다.]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무심군자와 수혼도객은 아직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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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장

 

           마지막 고리를 풀다 (2)

 

 

 

단촐하게 꾸며진 석실(石室),

나무로 만든 탁자를 사이에 두고 갈천상과 석두공, 그리고 금사종이 앉았다.

갈천상이 물었다.

[이곳이 기억나느냐?]

[예...]

석두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갈천상이 동호천으로 부터 협박을 받았을 때 화가 나서 눌렀던 탁자는 여전히 다리가 돌바닥에 파고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으으으... 끄윽! 크륵... ]

탁자 옆쪽에는 여전히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며 해천월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금사종이 물었다.

[해천월은 어디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음... 십 년 전 이놈을 살린 뒤부터 쭉 연구해 온 게 있는데 그걸 한번 실험해 볼 생각이네.]

갈천상이 대답했다.

[그럼 죽기 전에 해야 할 게 아닙니까?]

석두공이 물었다.

갈천상은 고개를 저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지고 갔다.

[저 늙은이는 내공이 강해서 잘 죽지 않아.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충분하지.]

차를 마시고 난 후에야 그는 석두공과 금사종에게 말했다.

[나를 좀 거들어 주게나.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해천월을 들고 따라오게.]

그는 석실의 한쪽 벽으로 다가가 양손으로 밀었다.

그그긍!

갑자기 벽이 빙글 돌면서 그의 몸이 석벽안으로 사라졌다.

석두공은 십년 전 이곳에서 정신을 차렸기 때문에 석벽 안의 상황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갈천상을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소림사의 만배선사로부터 전수받은 정심신공의 효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교묘한 석벽의 장치에 신기해 하면서 그를 따라 들어갔다.

석벽 안은 어두침침한 동굴이었다. 자연석동(自然石洞)을 약간 개조한 듯, 여기저기 깎여진 바위들이 보였다.

그렇지만 동굴의 낮은 천정은 허리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약간 가다보니 향기로운 냄새가 동굴속에서 부터 풍겨져 왔다. 폐부를 시원하게 해주는 맑은 향기였다.

석두공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영약을 기르시는 모양이군요.]

[좋은 약이지. 먹기만 먹으면 네 녀석은 십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완전한 돌대가리로...]

갈천상이 앞에서 대꾸했다.

금사종이 물었다.

[무슨 약이기에 그렇습니까?]

[백송(白松)에서 채취한 망아독균(忘我毒菌)이네. 이 향기는 망아독균에서 나오는 것이고.]

갈천상이 말했다.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향기에 독은 없는 것같습니다.]

[그게 망아독균을 내가 기르는 이유이지. 망아독균은 그 자체로서는 독이라고 할 수도 없지. 하지만 복용하여 사람이나 짐승의 배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무서운 독이 되는 것이야.]

[한데 어째서 망아독균입니까?]

석두공이 물었다.

갈천상은 동굴의 두갈래로 갈라진 부분에 이르러 우측의 동굴로 들어가며 말했다.

[기가 막히는군. 이곳에 나 이외에 들어온 사람은 네 스승형제들 뿐인데 제자라는 놈들도 똑같은 질문만 하니... 아마도 십년 전에 그들도 똑같이 물었던 것같은데... ]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상궤(常軌)를 벗어나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 의문도 똑같이 일어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금사종이 말했다.

갈천상은 듣기 싫은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유식한 척하는 것은 산위에서 실컷 들었으니 더이상 말하지 말게. 독에 관해서는 노부가 세상에서 가장 유식한 사람이니까.]

그는 금사종을 머슥하게 한 후에 다시 말했다.

“망아독균을 먹는 순간부터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자신을 잊는 것은 물론이고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심지어 움직이는 것조차 잊어버리니, 한마디로 그것을 먹는 순간부터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지.”

우측 동굴의 안쪽은 커다란 석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그긍!

그 석문은 갈천상이 동굴 천정의 한곳을 지풍으로 누르자 부드럽게 열렸다.

석두공은 갈천상의 말에 기겁하며 물었다.

[그럼 해독할 수도 없습니까?]

[방법은 있지.]

[무엇입니까?]

[피를 몽땅 뽑아서 바꾸는 거다. 그렇게 한다면 정신을 차릴 수 있다.]

[그냥 죽으라는 말이군요.]

[생각은 편한 대로 하는게 편하지.]

갈천상은 믿거나 말거나는 식으로 말하고 문이 열려진 안으로 들어갔다.

가운데는 석대(石臺)가 놓여있고 사면 벽에는 선반들이 얹혀져 있는데 그 위에는 수백, 수천개에 달할 것같은 병들이 놓여 있다.

또한 선반의 아래쪽에는 괴이한 기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들과 함께 놓여 있었다.

갈래진 두 동굴 중에서 다른 하나는 독물을 기르는 곳이고 이곳은 갈천상이 무공과 독을 연구하는 장소였다.

갈천상은 석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해천월을 저기에 놓아라.]

석두공은 해천월은 석대 위에 펴놓았다.

해천월의 몸은 형체를 거의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놓는 대로 축 쳐졌다.

쪼르르...

갈천상은 구리그릇에 약물을 붓고는 손을 씻었다.

그리고 말했다.

[옷을 모두 제거해라.]

금사종이 손으로 해천월의 옷자락을 베어냈다.

붉게 물든 옷자락은 그의 터진 살에 드러붙어있었다. 옷자락이 제거되자 그 상처에서 다시 피가 베어나와 석대를 타고 흘렀다.

혈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어 석두공과 금사종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갈천상은 손가락으로 해천월의 몸을 쿡쿡 눌렀다.

그의 손가락은 해천월의 몸이 마치 두부나 되는 것처럼 파고들었다.

툭! 투툭!

해천월의 몸이 기형적으로 꿈틀거렸다. 그 꿈틀거림 뒤에는 뼈와 근육이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뼈는 여전히 부러진 상태였고 근육도 잘려진 상태였다.

갈천상은 예리한 비수를 꺼내 그의 살을 가르고 혈관을 건드리지 않은 채 근육을 잘라냈다.

교묘한 솜씨였다.

다리의 근육이 잘려졌고 팔의 근육이 잘려졌다.

해천월은 갈천상의 손에서 해부되고 있었다.

끊어진 혈관은 갈천상의 손에 의해 꿰매졌으며 잘라낸 근육들에는 약을 바른 후 제자리에 놓여졌다. 근육이 때로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석두공은 문득 기계인간이 생각나서 말했다.

[뼈나 근육을 잘라내고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도 있습니까?]

[어느 정도 가능하지. 하지만 늘 몸의 부조화로 고통받아야 하기 때문에 마약을 먹이거나 감각을 없애버려야 할 걸?]

[특이한 종류의 공력을 익혀서 감각을 통제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럴 수 있을 것같군. 하지만 누가 그런 신공까지 익히면서 괴물이 되려고 할까?]

갈천상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석두공이 말했다.

[그런 괴물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누가 그런 자들을 만들었단 말인가?]

갈천상이 놀라며 물었다.

석두공은 형산에서 기계인간들을 파괴한 일에 대하여 간단히 말했다.

[행동의 기괴함이 인간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결국 다 부수긴 했지만 그때 놀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합니다.]

갈천상은 해천월의 배를 가르면서 말했다.

[다음에 그런 괴물을 보게 되거든 이리로 하나만 가지고 오게.]

[생포하기는 쉽지 않을 것같습니다.]

[어렵지도 않아. 어떻게 만들든지 간에 완벽하게 몸과 이물질이 조화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니까. 음공을 이용하면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거네. 내부의 조화를 깨뜨리면 절로 드러누워 버릴 거야.]

대수롭지 않은듯 말하며 갈천상은 해천월의 터진 내장을 바늘로 꿰맸다.

더운 김을 내면서 내장이 꿈틀거렸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내장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갈천상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며 슬금슬금 물러섰다.

해천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숨쉬고 있었다.

[껄껄껄... 노부가 네놈을 살릴 때는 심장에 구멍을 뚫고 다섯 가지 독물을 넣었다. 이 까짓게 뭐 대단하다고 불알찬 놈들이 비위상해 하느냐? ]

갈천상은 웃으며 말했다.

금사종은 말했다.

[편작도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사람이 배를 가르고 수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배에 칼 맞고도 죽지 않는 놈이 있는데 조심해서 배를 갈랐는데도 죽는다면 그게 이상하지 않은가? 원기의 소모야 많겠지만 깨어나고 나서 독이랑 영약이랑 먹여서 원기를 보충시킨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갈천상은 해천월의 폐에 난 상처에서 피를 뽑아내고 실로 묶었다.

그리고 또 말했다.

[한데 공기 중에 어떤 기운이 있어서 사람의 배를 열어놓은 지 반각이 지나지 않아서 사람을 죽게 한단 말이야. 노부가 독물로서 그러한 기운을 몰아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시원치 않아.]

한데 해천월의 폐가 꿰매지자 그의 목에서 크럭거리는 소리가 잠시 멎었다가 왈칵 핏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갈천상은 재빨리 그릇으로 핏덩어리를 받아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했다.

해천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허... 으으... ]

흐느낌 같기도 하고 웃음같기도 했다.

갈천상이 말했다.

[이제 이놈이 조금 살만한 모양이군. 대체 이 대가리 속에는 무슨 나쁜 짓으로 가득 차있는지 살펴볼까?]

[그것 참 좋겠습니다. 검종맹이나 잔혼각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온다면 꽤 쓸만하겠지요.]

석두공은 갈천상이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궁금해하며 말했다.

갈천상은 해천월의 배를 빠른 솜씨로 기웠다.

그리고 선반에 있는 약병들 중의 하나를 꺼내서 해천월의 입에 부었다.

노르스름한 물이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입으로 흘러들어갔다.

[무슨 약입니까?]

[망아독균에다가 노부가 다른 것을 조금 섞은 것이다.]

[아니 그럼 백치가 되어버릴 텐데 무슨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금사종이 재빨리 물었다.

갈천상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독에 대해서 문외한인 자네가 아는 사실을 내가 모르고 있을것 같은가? 아무 걱정말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해천월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 주이... 으... ]

그렇지만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만큼 분명하지 않은 소리였다.

근육은 해부되어 꿈틀거리고 전신은 피에 젖어있는 고깃덩어리가 입을 여는 것은 하나의 경이였다.

[시 심제을... 심... 죽일 놈... ]

해천월은 점차 운이 있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갈천상이 흥미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잘 봐두게. 속에 있는 것을 몽땅 다 털어놓고 백치가 되는 것을... 다시는 못볼 구경일 거야. 그것도 마음에 맺혀이는 중요한 것부터 털어놓는 것을... ]

[혹시 저도 저렇게 한게 아닙니까?]

석두공이 미심쩍다는 듯이 갈천상을 바라보았다.

갈천상이 정색을 했다.

[그랬다면 노부는 이미 저승에서 네 스승에게 앙갚음 하려고 달려들었겠지. 동영감이 호랑이 눈을 뜨고 보는데 내가 무슨 수작을 부려?]

석두공과 금사종이 빙그레 웃었다.

해천월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으으... 안돼! 용서해줘... 독비신검객! 자네 아들을 죽인 건 잔혼살객 그놈이지 내가 아니야. 자네 부인을 죽인 건 심제을이고... 난 단지 시녀를 죽인 죄밖엔 없네.]

갈천상이 석두공과 금사종에게 눈을 끔벅해보이고는 짐짓 엄한 어조로 말했다.

[이 나쁜 놈 해천월! 왜 나를 죽였느냐? 그리고 아들을 죽인 게 어째서 잔혼살객이란 말이냐? 내 두 눈으로 네놈이 검으로 찔러 죽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

[아니다. 섭영소. 네가 잘못 보았다. 너의 아들은 잔혼살객 그놈이 고목나무 속에 집어넣고 눈으로 눌러 죽였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그곳이 어디냐?]

갑자기 갈천상이 크게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대별산이다. 네 아들도 부인도 그리고 너도 대별산에서 죽었지 않느냐?]

해천월은 완강하게 자신의 죄를 부인하며 말했다.

갈천상이 빠르게 석두공의 표정을 살폈다.

“....!”

그때 석두공의 표정은 애매모호했다.

해천월의 소리가 점점 그를 어떤 환상속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갈천상은 금사종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절대로 그 아이를 건드리지 말게.]

금사종도 석두공이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갈천상은 다시 해천월에게 말했다.

[내 시체는 어디에 있느냐?]

[심제을이 서쪽 절벽에서 던져버렸다. 아마 그 아래 계곡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내 아내의 시체는?]

[그녀는 네 집과 함께 불태워졌다. 이 모든 게 그 악마같은 심제을 그놈 짓이다.]

해천월은 힘없이 말했다.

죄책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같았다.

갈천상이 물었다.

[내 집은 어디에 있지?]

[송죽곡(松竹谷) 안에 있지 않았느냐?]

송죽곡은 갈천상이 있는 독왕동의 완전히 맞은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산 저쪽인 것이다.

갈천상은 대별산에서 자랐고 그 후에도 죽 대별산에서 살아왔다.

그러나송죽곡은 대충 위치만 알고 있을 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갈천상이 물었다.

[왜 나를 죽이고 가족마저 죽였느냐?]

[네가 애초부터 삼마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잘못이었다. 네가 삼마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몰랐어도 난 적룡혈운도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을... ]

해천월은 원망스린 어조로 말했다.

[아!]

갑자기 석두공의 다리가 후들거리며 풀썩 주저앉았다.

금사종이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다가 갈천상의 눈빛을 받고 거둬들였다.

석두공의 전신이 부덜부덜 떨리기 시작했다.

덜덜덜...

마치 학질에 걸리기라도 한듯이 그의 몸은 심하게 떨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과 얼굴이 얼기라도 하는 듯이 새파랗게 변했다.

웅크리고 앉은 그의 눈빛은 망연하여 별빛같이 초롱하던 석두공의 눈이 아니었다.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보는 눈빛이지 밖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석두공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격렬하게 떨었다.

돌연,

스으으으스스스...

그의 몸에서 가공할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금사종은 심장이 멎어버릴 것같은 충격을 느끼며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쿵쿵쿵!

그의 앞에 뚜렷한 발자국이 새겨졌다.

갈천상은 이미 공력을 일으켜 석두공의 살기를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석두공의 살기는 십년 전의 어렸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무공이 이미 극에 다다른 지금 그의 몸에서 살기는 폭풍같은 기세로 일어나고 있었다.

해천월의 심장이 멎어버렸다.

갈천상은 석대 뒤로 피했으며 금사종은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한발 한발 물러섰다.

펑!펑!펑!

선반위에 있던 병들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약물과 독가루가 가득 흩날렸다.

펑펑펑펑...

제법 단단하던 병들도 깨어져 나가고 서가가 삐거덕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물건에 귀신이라도 붙은 것같았다.

이때,

[으아아아아!]

갑자기 석두공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두두두두!

실내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렸다.

갈천상은 쓰러져 칠공으로 피를 흘리며 꿈틀거리고 있었고 금사종은 왁칵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으으으... ]

갈천상은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금사종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그를 일으켰다.

석두공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같았다.

모든 것이 그림을 보듯이 선명해져왔다.

그의 몸에서 폭풍같던 살기는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팔이 하나뿐인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놀던 때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머니가 머리를 감겨주며 울지 않는다고 착하구나 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난 푸른 옷의 사나이에게 일검을 맞고 쓰러지던 기억도, 집이 불타고 아버지가 자신을 안고 도망치던 생각도 났다.

아버지를 협공하던 세사람의 얼굴이 눈앞에서 잡힐 듯 떠올랐다.

[아버지가 외팔이만 아니었어도... 내가 짐만 되지 않았어도....]

석두공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그의 두 볼로 눈물이 주르르 타고 흘렀다.

그때 갈천상이 파리해진 안색으로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너를 찾게 되었구나. 너무 슬프하지 말아라. 세상의 일은 사람이 다 하는 것같아도 실상 하늘의 정한바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느니라.]

석두공은 그의 위로를 받자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 울먹였다.

풀리지 않던 기억의 고리가 해천월으로 인해 풀렸던 것이다.

갈천상이 그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도 천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무골인지라 훌륭한 무가의 자손일 줄 알았다. 과연 독비신검객같은 훌륭한 사람을 아버지로 두었구나.]

이미 죽었던 아이, 자신의 손으로 끔직한 방법을 동원하여 살렸던 아이...

그러나 정신적인 불구가 되어 버렸던 그 아이가 이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한 사람이 되어 자신의 품에 안겼다.

갈천상은 석두공에 대해 부모와 같은 정을 지니고 있었던지라 그 감회가 남달랐다.

석두공,

그는 바로 고검문의 문주인 섭군천의 손자이며, 오객 중의 한 사람인 독비신검객 섭영소의 아들인 섭웅평(葉雄枰)이었다.

그가 섭군천을 처음 만났을 때 남다른 친밀감을 가졌던 것은 서로가 혈친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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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강가로 이어지는 관도. 주변에 기암괴석이 난립한 경치 좋은 곳이다. 때는 낮이고 사람들과 우마차들이 제법 많이 다닌다.

오가는 사람들 힐끔거리고.

청풍이 제갈소소를 안고 걸어온다. 제갈소소는 청풍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자세로 잠이 들어있다. 청풍은 제갈소소를 왼 팔 하나로 안고 걸어오고 있고

청풍; (정황상 이 아이는 무가(武家)의 자손이 분명하다.) 제갈소소를 안고 천천히 걸어오며 생각하고

청풍; (성을 물어보니 잠결에 제갈(諸葛)이라고 대답했는데...)

청풍; (제갈은 무림에서도 그리 흔한 성이 아니다.)

청풍;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삼문육가중 한 가문인 제갈세가다.)

청풍; (제갈공명의 후손을 자처하는 제갈세가는 기문둔갑(奇門遁甲)으로 유명하다.)

청풍; (제갈세가가 설치한 기문진법을 깨트릴 수 있는 건 전설 속의 귀곡문(鬼谷門) 정도라던가?)

청풍; (만일 이 아이가 제갈세가의 후손이라면 납치의 표적이 될 이유는 충분하다.)

청풍; (이 아이를 통해서 제갈세가의 기문진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테니...) 생각하다가

청풍; [!] 무언가 느끼고

<살기!> 슥! 옆으로 한 걸음 피하는 청풍. 직후

썩! 갑자기 나타나 미사일처럼 청풍의 옆으로 지나치는 창. 창날 아래쪽에 붉은 수실이 달린 창인데

[크악!] [케엑!] 히히힝! 청풍을 비켜간 창은 청풍의 뒤쪽에 있던 사람 몇 명과 마차를 끓던 말과 마차를 관통하고 지나간다. 비명 지르며 죽는 사람과 말들

청풍; (아차!) 분노하며 돌아보고

창에 관통당한 사람과 말이 바닥에 쓰러지고 있고. 그 너머로 창이 날아가는데 창 앞쪽에는 집채만한 기암괴석이 있다. 헌데

쾅! 기암괴석을 그대로 박살내며 날아오르는 창

청풍;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창인데...) 분노

청풍; (어떤 자가 백주대로에서 무고한 사람들마저 무차별 죽이는 것인가?)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창을 보고

[히익!] [안돼!] [아악!] 길을 오가던 사람들 비명 지르며 길 가로 도망치거나 물로 뛰어들거나 오던 길로 도망치고.

제갈소소; [으음...] 그 소란에 깨려 하고

청풍; [더 자거라.] 쿡! 제갈소소의 등을 찍으며 자기 머리 위를 지나는 창을 보고. 그러자

제갈소소; [네 아빠...] 음냐! 입맛 다시며 다시 잠이 드는 제갈소소

청풍; (아빠라...) 쓴웃음 지으며 앞을 보고

청풍; (잠결이라지만 날 자기 아버지로 안다는 사실에 이상한 기분이 드는구나.) 생각하며 앞쪽을 보고

청풍의 앞쪽에 네 명의 복면인이 서있다. 물론 그자들은 백살파의 백일자객들이다. 가앙! 그자들을 향해 날아가는 붉은 수술이 달린 창

앞으로 나서며 손을 드는 칠십이살주. 그자를 향해 내리꽂히는 창

팟! 날아온 창을 가볍게 받는 칠십이살주.

청풍; (저자들...)

<백살파의 최정예인 백일자객들이로구나.> 그자들의 모습 크로즈 업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그때

십일살주; [이청풍!] [빚을 받으러 왔다.] 걸어오고

청풍; (십일살주! 저자가 오늘의 주재(主宰)로군.) + [빚?] 냉소

청풍; [백살파가 언제 내게 돈이라도 빌려주었다는 건가?]

십일살주; [십삼살주가 네놈 때문에 손을 하나 영영 쓸 수 없게 되었다.] [아우를 대신해서 그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야겠다.] 방패를 쳐들어 앞을 가리는 자세로 말하고.

슥! 슥! 그자 뒤에서 도끼와 망치를 든 삼십칠과 삼십팔. 창을 든 칠십이는 뒤에서 창을 던질 기회를 엿보고 있고

청풍; [나야말로 네놈들에게 빚을 받아야겠다.] 살벌

십일살주; [설마 네놈도 우리 백살파에 돈을 빌려주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냐?] 비웃고

청풍; [네놈들이 배상해야할 대상은 저들이다.] 자기 뒤쪽 길에 죽어있는 사람들과 말의 시체를 돌아보고. 다른 행인들은 이미 멀리 피해 있다.

청풍; [아무 이유도 은원도 없이 살인을 했으니 네놈들의 목숨으로 갚아줘야겠다.] 쿠오오! 청풍의 몸에서 수많은 검의 형상들이 일어나고

<몸... 몸에서 무수한 검의 형상이 일어난다!> <설마 전설 속의 검벽신공인가?> 긴장하는 십일살주들

청풍; [불문곡직하고 네놈들의 목숨을 거둘 수도 있다.] 슥! 제갈소소를 안은 왼쪽 소매에서 염왕아를 꺼내고

청풍; [그러면 실력을 펼칠 기회도 없었다고 한스러워 할 것 같아서 기회를 주겠다.] 뽑은 염왕아를 내리고

청풍; [십초를 양보할 테니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날 공격해봐라.] [만에 하나 내 몸에 작은 상처라도 낸다면 살려주겠다.]

[건방진 놈!] [뭐 십초를 양보해?] 분노하는 삼십칠과 삼십팔. 반면 십일살주는 심각하고. 칠십이는 뒤쪽에 서서 창을 던질 자세로 긴장하고 있고

청풍; [양보받기 싫다면 지금 즉시 죽여줄 수도 있다.] 징! 진동하는 염왕아로 겨누고. 순간

쿠오오! 갑자기 청풍의 몸 주변이 암흑으로 변하고 청풍의 윤곽과 강렬한 눈빛, 암흑을 배경으로 밝게 빛나는 염왕아만 보인다

<이놈!> <괴... 괴물이다!> <양보한다는 게 헛소리가 아니었다!> 소름이 돋는 십일살주 일행

청풍; (절대삼검을 익힌 내 무공이 과연 어느 수준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징! 빛을 발하는 염왕아를 내민 채 생각하고. 그러자

십일살주; [형제들!] 쩡! 말하는 그자의 방패에서 별 형상의 다섯 꼭지가 밖으로 일어나 칼날이 된다.

[예 형님!] [하명하시지요 십일살주님!] 대답하는 삼십칠과 삼십팔

십일살주; [우리 목숨은 백척간두에 걸려있다.] [각자 최선을 다해라.] 가가강! 방패에서 일어난 별의 다섯 꼭지가 맹렬히 돌아간다. 드릴처럼

[해봅시다!] [젠장!] 삼십칠과 삼십팔도 도끼와 망치를 움켜잡으며 대답하고.

꽉! 칠십이도 창을 더 세게 잡으며 긴장한다.

 

#141>

강가의 관도가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 원통형 망원경을 한쪽 눈에 대고 관도를 보고 있는 혈부용.

원통형 망원경 화면에 잡히는 모습. 왼팔로 제갈소소를 안은 청풍이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염왕아를 앞으로 내민 채 서있고 그 앞쪽에서 십일살주들이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혈부용; (자! 네 밑천을 보여라 이청풍!)

혈부용; (백일자객들은 지존께서 하사하신 신병이기로 무장하여 개개인이 구대문파 장문인도 죽일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십일살주의 무기인 오첨신패(五尖神牌)는 만년한철로 만들어져 무엇으로도 깨트릴 수 없으며 무엇이든 찢어발길 수 있다.> 십일살주가 든 방패를 배경으로

<삼십칠살주의 살천부(殺天斧)와 삼십팔살주의 열지퇴(裂地槌)는 어떤 고수라도 죽일 수 있고...> 삼십칠과 삼십팔이 들고 있는 도끼와 망치를 배경으로 나레이션

<칠십이살주의 전궁창(電弓槍)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날아가 표적을 궤뚫어 버린다.> 칠십이가 창을 던질 자세를 취한 배경으로 나레이션

혈부용;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저 네 가지 신병이기의 공격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기대해보겠다 이청풍!) 마녀처럼 웃고

 

#142>

다시 관도. 청풍이 네 명의 백일자객과 대치하고 있고. 백일자객들 뒤쪽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오가던 사람들이 서서 보고 있다.

사람들 중에 끼어있는 거지 한명. 전형적인 개방 소속의 거지

[저 놈들 백살파의 백일자객들이야.] [천벌을 받을 놈들! 백주대로에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다니...] 거지 주변의 사람들 백일자객들의 뒷모습 보며 분노하고.

[그런데 저 청년이 누군데 백일자객들이 저렇게 긴장하는 건가?] [그러게나 말일세. 백일자객들이라면 죽이지 못하는 대상이 없다고 알려졌는데...] 백일자객들 건너편의 청풍을 보며 말하는 사람들 배경으로 작은 수첩을 꺼내 보는 거지

거지가 젖히는 수첩 안쪽에 제갈소소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至急探索 諸葛素素>라는 글도 하단에 적혀있고

거지; (틀림없다!) 눈 번뜩이며 초상화에서 시선을 떼고

<백일자객들과 시비가 붙은 자가 안고 있는 아이는 제갈세가의 소가주인 제갈소소다.> 청풍이 왼팔로 안고 있는 제갈소소의 모습 배경으로 거지의 생각 나레이션. 제갈소소는 청풍의 어깨에 턱을 걸친 채 자고 있다.

거지;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 찡그리고

거지; (제갈세가의 안주인 다지관음에 의하면 제갈소소는 백살파에 의해 납치당했다고 했는데...)

<제갈소소를 데리고 있는 자가 어째서 백일자객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일까?> 청풍과 백일자객들의 모습 배경으로

거지; (내막이야 어쨌든 다지관음이 우리 개방에 딸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 건 현명한 판단이었다.) 수첩을 든 채 백일자객들 건너편의 청풍을 보는 거지

 

#143>

다시 백일자객들과 청풍의 모습. 청풍은 쳐들었던 염왕아를 내리고 있다.

이하의 전투신은 백일자객들이 먼저 10초를 공격하고 그 직후 청풍이 반격해서 백일자객들을 몰살시킨다.

십일살주; [크아!] 가가가강! 기합 지르며 내미는 방패가 맹렬히 회전하고. 앞쪽으로 일어나 칼날처럼 변한 별 형상의 다섯 꼭지가 회전하며 드릴처럼 변한다

가가강! 드릴처럼 회전하는 방패를 앞으로 밀면서 청풍에게 돌진하는 십일살주. 그 뒤에서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가 도끼와 망치를 휘두를 준비를 한다.

쾅! 청풍의 몸을 덮은 투명한 막과 충돌하는 방패 끝의 드릴

움찔! 청풍의 몸이 조금 흔들리고

콰드드드! 드릴이 맹렬히 회전하며 청풍의 몸을 덮은 투명한 막을 휘감아 찢으려 한다

[그렇지!] [죽어라!]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환호

청풍; (특이한 무기로군.) 눈 번뜩일 때

가가강! 드릴이 청풍의 몸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다. 하지만

청풍;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무기겠지만...) 눈 부릅뜨는 청풍. 그러자

드드드! 회전하던 드릴이 보이지 않는 힘에 막혀 멈추더니

<화산 창천애에서 추락하기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급증한 내공으로 펼치는 나의 은원살법에는 통하지 않는다.> 팽! 드릴의 날들이 반대방향으로 홱 돌며 부러지려 한다

십일살주; [헉!] 팽! 돌아가는 드릴과 함께 몸에 홱 돌아가며 비명 지르고. 그 뒤에서 놀라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날아오르려 하면서

칠십이살주; [형님!] 멀리서 경악하여 비명. 그때

청풍; [제1초!] 뒤로 튕겨져 날아가는 십일살주를 보며 냉소하고. 날아가는 십일살주 뒤로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가 날아오르고 있고.

거지; (저 젊은 놈,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무공을 구사한다.) 눈 번뜩. 직후

[크아!] [죽어라!] 쾅! 부악! 좌우에서 도끼와 망치로 청풍을 강타하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물론 청풍을 직접 때린 게 아니고 청풍의 몸을 덮은 투명한 막을 때렸다.

펑! 콰득! 엄청난 충격에 청풍이 서있던 지면이 사발처럼 푹 들어간다. 방어막 전체가 지면으로 푹 들어간 형상이고.

거지;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가 쓰는 도끼와 망치는 집채만한 바위도 간단히 박살내는 위력을 지녔을 텐데...) 긴장. 하지만

텅! 텅! 충격 받아 튕겨지는 도끼와 망치.

[헉!] [큭!] 튕겨지는 무기에 딸려 뒤로 날아오르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거지; (상상을 초월하는 호신강기다.) 놀라고. 주변에서는 [잘 한다!] [꼴 좋구나 인간백정들아!] 사람들이 환호하고. 그때

휘릭! 휙! 비틀거리며 내려서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청풍; [2초! 3초!] 투명한 막 속에서 차갑게 웃고

[젠장!] [요상한 호신강기를 쓴다!] 부악! 쩍! 이번에는 좌우에서 수평으로 청풍을 때리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쾅! 쾅! 이번에도 청풍의 몸을 덮은 방어막을 좌우에서 강하게 쳐서 움푹 들어가게 만드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하지만

청풍; [4초! 5초!] 눈 부릅뜨며 말하고. 그러자

텅! 부악! 엄청난 속도로 튕겨져서 주인의 뒤통수를 때리려는 도끼와 망치

십일살주; [조심해라!] 방패를 들고 비틀거리다가 외치고.

철컥! 철컥! 일어났던 별 모양의 다섯 꼭지는 다시 방패 표면으로 달라붙고

부악! 쩍! [큭!] [웃!] 팽! 스악! 몸을 뒤로 홱 젖혀서 자기 무기가 자기 뒤통수치는 걸 면하거나 함께 몸이 돌아가서 피하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십일살주; [가랏!] 팽! 방패를 수편으로 던진다. <캡틴 아메리카>처럼

텅! 텅! 날아가는 방패 모서리에서 칼날들이 튀어 나오고

가가가강! 톱니바퀴처럼 회전하며 청풍에게 날아가는 방패.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것으로 묘사. 하지만

청풍; [6초!] 텅! 눈 부릅뜨는 청풍의 몸에서 일어나는 방어막에 막혀 도로 튕겨져 나가는 방패

가가강! 맹렬히 돌면서 십일살주에게 돌아가는 방패. 눈 부릅뜨며 받으려는 십일살주

콱! 양손을 내밀어 겨우 받는 십일살주. 하지만

콰드드! 칼날에 손이 베이며 피가 튀고

[큭!] 콰드드! 뒤로 쭉 밀려가는 십일살주

칠십이살주; [크왓!] 쩡! 투창 던지듯 강하게 창을 던지는 칠십이살주. 창이 날아가는 게 아주 빠르다

눈 치뜨는 청풍. 이미 바로 앞까지 날아온 창. 하지만

텅! 방어막에 부딪혀 굴절되는 창

청풍; [7초!] 칠십이살주에게 도로 날아가는 창을 보며 냉소하고. 십일살주는 다시 방패에서 별의 다섯 꼭지를 일어나게 만들고 있고

[크아!] [죽인다!] 부악! 쩍! 사력을 다해 도끼와 망치를 좌우에서 휘두르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쾅! 쾅! 청풍의 방어막을 때려 다시 청풍이 선 바닥을 움푹 들어가게 만드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의 도끼와 망치

청풍; [8초! 9초!] 텅! 텅! 튕겨지는 도끼와 망치를 보며 냉소. 도끼와 망치를 휘두른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도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있고

십일살주; [크와앗!] 가가가강! 방패를 앞세우며 미사일처럼 청풍에게 날아간다. 방패의 앞쪽에서 돋아난 별의 다섯 꼭지들이 드릴처럼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간다. 이번에는 더 빨리 돌아서 주변의 공기도 함께 돌아간다.

칠십이살주; (십일살주형님은 이번 공격에 전력을 기울이셨다.) 팟! 도로 날아온 창을 받으며 뒤로 물러서면서 생각하고

콰콰콰! 맹렬히 돌아서 청풍의 몸을 덮은 투명한 막을 소용돌이치게 만들면서 청풍에게 쇄도하는 방패에서 돋아난 다서 별꼭지들

칠십이살주; (이번에는 혹시...) 생각할 때

콰드드! 청풍의 가슴 바로 앞에까지 뚫고 들어가는 드릴

[그렇지!] [죽어라!] 환호하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하지만

청풍; [10초!] 눈 부릅뜨며 외치고

드드드! 청풍의 몸 바로 앞에서 멈추는 드릴

십일살주; [!] 방패를 미는 자세로 청풍의 앞에서 멈춰서는 십일살주

청풍; [약속했던 10초의 양보는 끝났다!] 크와앗! 기합 지르고. 그러자

콰창! 텅! 드릴이 그대로 부러져 튀어 나가고

십일살주; [헉!] 콰드드! 드릴들이 부서진 방패로 앞을 가리며 뒤로 쭉 밀려가고.

칠십이살주; (만년한철로 만든 오첨신패의 칼날들이 깨졌다!) 경악. 그 직후

청풍; [이제 죗값을 치를 차례가 되었다.] 쩡! 앞으로 들어 내민 염왕아의 손잡이를 놓는 청풍. 그러자

투쾅! 꽝! 그대로 십일살주의 방패로 날아가는 염왕아. 빛에 덮여있다

십일살주; [어검술?] 경악하면서도 방패를 들어 막으려 하지만

꽝! 방패를 그대로 뚫고 들어가는 염왕아

푸학! 방패를 뚫고 들어간 염왕아가 십일살주의 가슴을 뚫고 등으로 빠져나와 허공으로 치솟는다

[안돼!] [형님!] 부악! 정!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가 비명 지르며 도끼와 망치로 좌우에서 청풍을 공격한다. 그 배경으로 십일살주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하지만

청풍; [잘 가라.] 손을 좌우로 젓고. 그러자

[헉! 도끼가 제멋대로...] [피하시오!] 부악! 쩍! 팽! 청풍을 공격하던 도끼와 망치가 서로에게 날아간다

퍽! 콰직! 서로의 도끼와 망치에 맞아 머리가 으스러지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

[헉!] [동료끼리 서로를 죽였다.] [저게 무슨...] 거지와 그 주변 사람들 경악

터엉! 텅! 퍼억! 털썩! 도끼와 망치를 휘두른 자세로 나뒹구는 삼십칠살주와 삼십팔살주의 시체

가앙! 그 사이에 십일살주의 가슴을 관통했던 염왕아가 청풍에게 돌아오고

칠십이살주; [으아아아!] 투학! 울부짖으면서 창을 던지고

턱! 염왕아를 잡으며 돌아보는 청풍.

미사일처럼 단번에 청풍 앞으로 날아온 창. 하지만

텅! 청풍이 염왕아를 휘두르자 염왕아에서 일어난 힘이 창을 쳐서 허공으로 치솟게 만들고. 이어

청풍; [돌려주마!] 염왕아를 휘두르고. 그러자

멈칫! 허공에서 멈칫하는 창. 이어

쩍! 단번에 칠십이살주에게 날아가는 창

칠십이살주; [크왓!] 콱! 두 손으로 창날을 잡는다. 하지만

콰직! 창은 날아온 힘에 의해 칠십이살주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지며 가슴을 궤뚫는다.

[저놈은 자기 무기인 창에 죽었다.] [잘 죽었다 이놈아!] [꼴좋구나. 백주대로에서 살인을 한 대가다!] 환호하는 거지 주변의 사람들

칠십이살주; [이... 이 괴물...]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선다. 두 손으로는 자기 가슴을 관통한 창의 날을 잡은 채. 창날은 그자의 등으로 삐져나왔고

퍼억! 뒤로 넘어져 죽는 칠십이살주

청풍; (구대문파 장문인들도 죽일 수 있다는 백일자객들...) 백일자객들의 시체를 보며 생각하고

청풍; (그 백일자객 네 명을 어렵지 않게 해치웠으니 남에게 질 일은 거의 없겠구나.) 미소. 그러다가

[!] 무언가 느끼고 눈 치뜨는 청풍.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여자의 눈 부위. 물론 혈부용인데 한쪽 눈에는 원통형의 망원경을 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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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百刃莊의 發源地

 

 

 

황혼(黃昏),

짙은 음영을 드리운 황혼이 불타는 강처럼 대지에 빛을 산란(散亂)시키고 있었다.

스스스!

바로 이 황혼의 어지러움 속에서 싱그러운 초원의 물결이 아득한 대양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대평원, 일망무제의 대평원을 이루고 있는 푸른 초원의 세계, 바로 낙안평원(洛安平原)이다.

이 광활한 수천만평의 낙안평야를 지나서 멀리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방을 에워싸듯이 우뚝 솟아이는 산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파양호(播陽湖)변의 여산(麗山)이었다.

이 여산에서 파양호를 바라보며 여산의 한 기슭을 메우듯이 솟아있는 거대한 녹색의 장원(莊園)이 하나 벌려 서있다.

헤아릴 수 없는 고루거각(高樓巨閣)과 대전(大殿), 인공호수(人工湖水)와 정자(亭子)들...

그리고, 그 엄청난 장원을 두르고 은막의 띠처럼 아스라이 둘러져 있는 십장 높이의 흑옥강석(黑玉鋼石)의 성벽(城壁),

이 장원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어찌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있겠는가?

 

<백인장(百刃莊)>

 

그렇다. 바로 이곳이 지난 삼백년내 강남무림의 패주인 백인장(百刃莊)인 것이다.

신주사패천(神州四覇天)중의 남패천(南覇天)이라고도 불리는...

중원의 평화와 정의가 아름다운 향기로 솟아나는 곳...

이곳에서는 백인장과 함께 위대한 도(刀)의 제왕인 한 인간을 기억해야 한다.

 

-도왕(刀王) 소선풍(蘇仙風)!

 

사람들은 그를 이야기할 때 그의 걸출한 용모를 극찬하고...

그의 측정할 수 없으리 만큼 높은 도법을 이야기하며... 그의 엄청난 내공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가 이루어 놓은 백인장의 찬란한 영광과 축복을 이야기하며...

중원은 마침내 그를 천하십이대고수(天下十二大高手)중에서 일노(一老) 혈기자를 제외한 제일인자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 이제 사십오세,

한 자루의 어린보도(魚鱗寶刀)와 눈같이 흰 백의에 백옥요대(白玉腰帶)를 차고 중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백인장의 장주인 이 사람, 정파무림은 이 한 사람의 출현으로 무림일천년사를 통해 최고의 성세기를 이루고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는 혈기자가 사라진 중원의 새로운 절대자였다.

그러나!

소일초가 삼 년만에 집으로 이상한 괴물들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백인장은 발칵 뒤집어졌으나 정작 그의 아버지인 도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

 

* * *

 

소일초는 남황을 떠난지 불과 사흘 만에 백인장에 도착했다.

아직도 그의 마음에는 검마와의 사별로 인한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아 우울한 표정이었다.

비성성들은 까마득한 허공에 새처럼 떠 있었고, 그는 백인장의 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문 안쪽에서 지키고 있던 젊은 도객이 그의 모습을 알아보고 기절할 듯이 놀라 인사를 한 후에 부리나케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금방, 사방에서 젊은이, 늙은이, 남자, 여자 구분없이 우르르 뛰쳐나와 그를 맞았다.

“소장주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무사하실 줄 알았습니다.”

일제히 그의 손을 잡거나 껴안기도 했고, 노인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소일초는 묵묵히 고개막이며 그들의 인사를 받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삼년 전 천방지축일 때와는 태도에서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의 태도를 본 늙은 도객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소장주님께서도 소문을 듣고 돌아오신 모양이군요?”

“...?”

“정말 잘 하셨습니다. 그러셔야지요.”

소일초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어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보니 백인장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조금 이상했다.

자기가 돌아온 것 갖고 이렇게 소란을 피울 백인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 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아아아! 초아야, 네가 돌아왔구나!”

장원 안쪽에서 소일초를 향해 질풍같이 날아오는 녹색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아름다운 옥용을 온통 눈물로 뒤덮은 삼십대초반의 절색 미소부,

바로 소선풍의 둘째 부인이고 소일초의 작은 어머니인 천외비연(天外飛燕) 조예진이었다.

“주모님!”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머리를 숙이는데,

“흐윽! 무사했구나. 우리 아기!”

조예진은 와락 소일초를 껴안았다.

“삼년만에야 돌아오다니! 우리 말썽꾸러기...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그녀는 이제 자신보다도 반뼘쯤 커진 양아들의 뺨을 쓰다듬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소일초도 절로 눈시울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며 작은 소리로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잘못했어요. 작은 어머니. 앞으로는 어머니 말씀 잘 들을께요.”

그말을 듣고 그녀는 더욱 힘주어 소일초를 안았다.

“그래, 우리 말썽꾸러기가 이제 철이 다 들었구나.”

그들을 지켜보는 백인장의 남녀노소는 일제히 눈물을 훔쳤다.

생모가 아니고 친아들이 아니지만 그들의 다정한 모습이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백인장에 변고가 발생한 지금에야 그들의 마음은 더욱 감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부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듣도록 하자꾸나.”

“저...작은 어머니!”

“왜 그러느냐?”

“제가 친구들을 데리고 왔는데 괜찮겠어요?”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소일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괜찮고 말고... 그래 어디에 있느냐? 네 친구들은?”

소일초는 손가락을 세워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작은 어머니인 조예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어리둥절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말썽꾸러기소장주가 또 무슨 엉뚱한 일을 꾸몄는가 하면서...

그러나, 하늘에는 까마득히 위에 새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것이 떠 있을 뿐 소일초의 친구로 짐작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예진의 안색에 놀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저 이상한 짐승들이 네 친구들이라고...?”

“네...”

소일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예진은 과연 한 눈에 하늘에 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본 것이었다.

그녀는 조금 주저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썽을 부리지는 않겠지?”

“네. 다들 제 말을 아주 잘 들어요. 아주 영리하거든요.”

그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면서 말했다.

백인장 내에서는 소선풍의 말보다 더 위력이 있는 것이 조예진의 말이었다.

그녀가 허락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것이다.

그녀는 소일초에게 그 친구들이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허락해 주었다.

소일초는 즉시 손바닥을 하늘로 쳐들었다.

번쩍-!

손에서는 수정검우가 저녁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그것이 신호였음인지.

꺄아악!

쐐애애액!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제히 금강하하여 백인장의 마당으로 내려왔다.

백인장의 사람들은 그 비성성들을 보자 놀라 도를 뽑고 경계자세를 취했다.

비성성들도 많은 사람을 보고 겁에 질린 듯 소일초만을 쳐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날개가 달린 원숭이... 당연히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일초의 눈빛에 겁에 질려 있는 그것들의 모습은 이내 백인장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비성성들도 소일초와 생활한 후에는 사람들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있었다.

그것들은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있을만한 곳으로 갔고, 소일초는 조예진을 따라서 내당으로 들어갔다.

 

소일초의 옷은 그의 몸이 자라는 바람에 턱없이 작아져 버렸고 온통 더러워져 있었다.

조예진은 직접 그의 몸을 씻어 주었다. 어느덧 어른 티가 나는 양아들의 몸을 씻겨주며 조예진은 얼굴을 은은한 홍조로 물들였다.

‘코흘리개였던 이 아이가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조예진은 세월의 무상함을 깨달으며 소리없이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순진하여 조예진의 마음을 알리 없는 소일초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조예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 대답하지 않고 말꼬리를 돌렸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지? 우리 아기...”

“남만에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저를 잡으러 왔다가 돌아간 후 곧장...”

소일초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신나게 이야기했다.

혈기자를 만났던 일... 전설적인 전대거마 검마를 사부로 모시고 지냈던 삼 년의 세월 등등...

조예진은 그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는 참으로 대단하신 분을 사부로 모셨구나. 너도 그분 못지않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네. 꼭 그렇게 될께요.”

소일초는 정말 철이 든 것 같았다.

조예진은 삼 년 전 보다 한 자나 더 자라버린 소일초가 정말 마음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작은 어머니는 왜 아기가 없어요?”

조예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몸 주석구석을 씻었다.

“여자는 무공이 너무 강한 것도 좋은 것이 못된단다.”

“왜요?”

“여자의 무공이 나이에 맞지 않게, 젊어서 너무 강해지면 오랫동안 미모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아기를 가질 수가 없단다.”

“이상하군요.”

“모든 것이 조물주의 섭리라고 해야겠지. 한 손에 두 물건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란다.”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우수가 배어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소일초가 말했다.

“작은 어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내가 잘 모시면 되잖아요.”

“아이쿠, 그래 우리 귀여운 말썽꾸러기야.”

그녀는 소일초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네 무공이 아주 깊어진 것 같은데... 이젠 도망가면 나라해도 못잡겠구나.”

“칫, 앞으론 도망가지 않아요. 사부님께서 어머니 말씀을 잘 들어야 된다고 했다구요.”

 

조예진은 소일초에게 새 옷을 입히다가 한 옆에 놓여있는 어린보도를 안타까운 듯이 바라보았다.

“작은 어머니 왜 그래요?”

“아니다. 일단 쉬고 나서 내일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 네 방을 깨끗이 치워놓았을 테니까 가서 쉬도록 하렴.”

소일초는 자기 방으로 갔고 그녀는 무슨 일이 있는지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의 방은 모든 것이 떠날때 그대로 였다. 아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은 어머니가 손수 청소했을 것이다.

침상에 벌렁 누워 소일초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소일초가 아주 어렸을 때 그의 생모(生母)인 이씨는 아버지와 크게 다툰 후 백인장을 나가버렸다.

아버지의 말로는 어머니는 친정인 청옥검궁(靑玉劍宮)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때부터 백인장과 청옥검궁이 앙숙이 되었다는 것을 소일초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청옥검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가버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금의 작은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 당시 작은 어머니는 정말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의 어머니도 아름다왔지만 작은 어머니는 훨씬 더 아름다왔다.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소일초에게 어머니에 대한 아주 깊은 정이 있지는 않았다.

더욱이 어려서 떠나버려 정들 시간이 부족했는지도 몰랐다.

지금까지도 친어머니가 그다지 보고싶다는 생각은 달지 않았다.

남황의 그 밀림 속에 있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아버지도 친어머니도 아닌 작은 어머니 조예진이었다.

조예진은 아버지에게 시집온 후, 끝없이 말썽을 부리는 자기를 한 번도 꾸짖는 법도 없이 사랑으로 돌봐왔던 것이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속을 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도 그녀는 꾸준한 사랑으로 그를 대했다.

아버지 작은 마누라라고 그렇게 놀려도 웃음으로 대하던 그녀였다.

소일초에겐 어쩌면 아버지보다도 친어머니보다도 더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 작은어머니인지도 몰랐다.

하녀가 인기척을 하면서 저녁을 가지고 들어왔다.

“작은 어머니는?”

“급한 일이 있어서 외출하셨을 겁니다.”

저녁을 혼자서 먹은 후 오랜만에 돌아온 집의 아늑함을 느끼며 소일초는 일찍 잠들고 말았다.

그러나, 남황에서 올라온 비성성들은 인간의 문명을 처음 대하고 호기심에 가득차서 백인장의 이곳저곳을 끽끽대며 밤새 기웃거렸다.

덕분에, 수비를 맡은 무사들은 성가셔서 혼이 났고...

그날 밤 백인장에서 편안하게 잘 잔 사람은 오직 소일초 한 사람 뿐이었다.

 

* * *

 

깊은 밤,

백인장의 깊은 심처에 자리 잡은 하나의 내실(內室)만이 불을 밝히고 있는데, 바닥은 푸른 청석(靑石)이고, 그 위로 눈부신 페르시아의 융단이 깔려져 있다.

내실의 사방엔 검은 빛의 휘장들이 쳐져 있고 실내에는 온갖 약초(藥草)의 향기가 가득하다. 이곳은 바로 백인장의 의약실(醫藥室)이었다.

지금, 차탁을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 부인과 백발의 노인이 마주 앉아 있었다.

만인을 압도하는 기품을 흘려내는 미소부는 백인장의 여주인인 천외비연 조예진이었다.

조예진, 정숙하면서도 도도한 기품을 지닌 그녀의 옥용은 지금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하영걸인 도왕 소선풍의 아내이며 중원최고의 명문의 안주인인 그녀였으나 그녀의 신상에 관한 것은 일체 신비와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기도 했다.

천하 그 누구에게나 물어 보더라도, 그녀의 이름이 다만 조예진이며, 금기서화(琴棋書畵)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고,

그녀가 도왕 소선풍의 둘째 부인이라는 사실 외에 더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조예진의 신분내력은 비밀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백발백염백미에 물처럼 잔잔한 눈빛을 지니고 있는 노인,

평범한 속에 칼날처럼 예리한 비범함을 지니고 있는 이 노인이 바로 무산신의(巫山神醫) 서공화(徐供華)란 인물이었다.

백인장의 일원으로서 도객이 아닌 유일한 인물이며 중원무림 최고의 의술을 지니고 있다는 신의(神醫)가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조예진과 서공화!

옥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의 벽이 드리워져 있었다.

“불행한 일입니다.”

문득 서공화의 입에서 무겁고 침중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

서공화가 흘려낸 단 일곱마디의 음성, 하지만 그 음성에 보이는 조예진의 반응은 컸다.

냉정하게 수려한 자태를 지키려고 애를 쓰고는 있으나... 그녀의 교구는 무섭게 떨리고 있었다.

입이라도 열면 금방이라도 전신이 허물어질 것 같아서인지, 한 마디의 말도 흘려내는 법이 없이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이때, 서공화의 무겁게 침중한 음성이 다시 흘러내렸다.

“장주께서는 지금까지는 전혀 차도가 없습니다. 만약 범인(凡人)이셨다면 이미 고인이 됐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상태도 도저히 살아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니...”

말을 이어가는 무산신의 서공화의 낯빛이 더욱 침중히 굳어졌다.

조예진은 백인장의 여주인답게 꿋꿋이 자신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물결처럼 떨고 있었고 얼굴은 암담한 절망의 빛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영원히 열릴 것 같지 않았던 조예진의 입술이 열렸다.

“그렇다면 그동안 더욱 상세가 악화되었음을 이르시는 것인지.!”

“그렇습니다.”

“아...!”

창망한 신음을 터뜨린 조예진의 교구가 허물어질 듯 비틀거렸다.

서공화도 어두운 낯빛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본시 인간의 힘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심한 중상이었소. 내 그동안 온갖 노력을 기울여 보았소이다만... 결국 허사로 그치고 마니...”

서공화의 허탈이 배인 음성의 여파에 밀려 조예진의 매화처럼 냉염한 얼굴에 암담한 절망이 밤꽃처럼 피어났고,

그녀의 섬연한 교구는 화석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유심히 보던 그 청년은 바로 반노환동하신 사부님이었어. 아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어도... 아니 그분에게 어린보도만 쥐어져 있었어도...’

그때 돌연 서공화의 노안에 의혹이 번져 나왔다.

“한데 기이한 것은 그분의 체내에 있는 알 수 없는 잠경(潛勁)의 정체입니다. 더 이상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고 유지시키는 그 힘은 도저히 연원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석상처럼 전신을 굳히고 있던 조예진이 고개를 들었다.

“기이한 잠경이라니요?”

무산신의 서공화는 조예진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며 음성을 흘려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그 전에는 없었던 기운이었소이다. 어쩌면 그 기운이 그분의 병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의께서는 어느쪽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서공화는 탄식을 깊이 토했다.

“길(吉)이 될지 흉(凶)이 될지는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오히려 기운이 스스로 몸을 해치는 결과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늘의 자비가 그분에게 내리기만 바랄 뿐...”

조예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의께서는 이 밤으로 다시 돌아가실 것입니까?”

서공화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해질 무렵에 소장주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건강하고 철이 들어서요.”

“오! 소장주께서 돌아오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돌아가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조예진은 소일초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밤길 조심하십시오. 내일 소장주와 함께 그곳으로 찾아가 뵙도록 하지요.”

그녀는 무산신의와 함께 일어서며 말했다.

그곳이라! !

과연 백인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호수(湖水),

시선을 들어 저 편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호수다.

바로 파양호다.

여기서 백인장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이 파양호 안에 거대한 인공부주(人工浮舟)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부주의 중앙에는 암청색으로 우거진 원시림(原始林)이 펼쳐져 있다.

까마득한 시야에 간신히 잡혀오는 신기루같은데 자세히 헤아려 보면 그것은 다분히 인공적(人工的)인 질서를 보이고 있으나……

일견해 보면 자생하여 제멋대로 자라난 자연림(自然林)을 연상케 했다.

한데 그 원시림을 둘러싸고 있는 검푸른 암초와 수초들을 보라.

백여겹,

족히 백여 겹은 되리라.

원시림을 둘러싸며 원경(遠景)을 멀리해 가는 암초와 수초의 기이한 방벽……

거기다가 암초와 수초의 겹을 따라 기이한 회오리를 일으키는 호수의 물살,

쿠우우우……

싸싸싸싸……

부딪쳐 되돌아 가는 물살의 소리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전율스러웠다.

만일 어떤 자가,

저 원시림을 목표로 하여 배를 저어간다면.

그 자는 맹세코 저 암초와 수초의 기이한 물살의 회돌이에 흔적도 없이 목숨을 잃고 말리라!

설사 그 자가 배를 모는 솜씨가 신기에 가까와 암초와 물살을 간신히 헤쳤다 해도……

부주의 중간 중간에 은밀히 숨겨진 백 팔십 곳의 기관진식(機關陣式)만은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이 모든 기관진식이 일시에 발동한다면 망망한 파양호가 한꺼번에 뒤집히고 말테니까……

 

밤(夜),

달빛도 별빛도 짙은 먹장구름 속에 숨어버린 칠흑 같은 심야,

돌연 이 파양호의 물결을 해치며 부주의 원시림에 접근하는 한 척의 배가 있었다.

스스……스스슷……

배는 회도는 물살을 헤치며 빠른 속도로 원시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노를 젓는 사공,

수초와 암초와 무수한 기관매복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알고 있는 것인가?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로 노를 저어 가고 있는데……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전형적인 어부(漁夫)의 차림이었으며,

어지럽게 흘러내리는 백발을 아무렇게나 휘날리고 있는 칠십 정도의 노인이었다.

또한 어둠 속에서 불꽃같은 안광을 발하는 노인의 몸에선 기이하게도 고기비늘 냄새가 자욱이 뻗어나고 있었으니……

무간어옹(無竿漁翁),

강호인들은 이 노인을 무간어옹이라 부른다.

장강(長江)의 험악한 물살 중에도……

태고 때부터 인간의 숨결을 거부해온 비룡폭류하(飛龍瀑流河),

바위라면 바위를 ……

태산이라면 태산을 ……

일시에 소용돌이 치는 격류로 박살을 내버릴 비룡폭류하의 물살을 유유히 하나의 돛단배로 헤치며,

신선(神仙)처럼 죽간도 없이 천잠사 한 가닥으로 낚시를 즐기고 살았다는 사람……

그리고 십 년 전 백인장이 생긴 때부터 이 파양호로 옮겨와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傳說的)인 인물이기도 한 사람이다.

스스……스스슷……

아무렇게나 노를 저음에도 배는 마치 잘 길들여진 말처럼 정확한 진로로 원시림을 다가간다.

이 속에 무간어옹의 눈빛은 한곳에 고정되어 움직일 줄 모르고 있었다.

(오……참으로 수려한 모습……장주님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그렇다.

무간어옹의 시선이 닿고 섰는 곳……

고귀함과 우아함과 성결함 속에……

수심과 우수가 가닥가닥 터져 오르는 조예진과,

그녀의 품에 평화로히 잠이 든 소일초가 안겨 있다.

조예진의 시선은 껌껌한 허공을 향하고 있으나……

그 두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 뜨릴 것 같은 수심(愁心)이 가득하다.

문득, 소일초의 수려한 얼굴을 헤아리던 무간어옹이 조예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모……참으로 소장주께서 늠늠하시지요.]

이때 망연히 허공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던 조예진의 서늘한 시선이 내려졌다.

그리고 탄식인 양 흐르는 음성,

[불쌍한 애지요.]

[…………]

탄식,

한 줄기 탄식이 조예진의 붉디붉은 입술 새로 앙금처럼 흐르는가 싶더니……

조용히 백옥(白玉)의 소수(素手)를 들어 잠들어 있는 소일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 아버지가 이 애를 무척 보고 싶어 했지요.]

[…………]

[이 애가 지금까지 피웠던 말썽도……]

[?]

[애 아버지는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탓하지 않았답니다.]

조예진의 두 눈에 서린 우수가 더욱 짙어졌다.

순간 무간어옹의 널찍한 등이 무겁게 흔들렸다.

[그렇다면 주모……혹시]

[…………]

[소장주께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조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깜깜한 야공으로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원망하듯 중얼거리는 음성,

[불쌍한 것……]

…………

[어찌 운명은 우리에게 가혹한 것인지……]

무간어옹은 허공을 향해 더욱 수심을 두리운 채 굳어 있는 조예진을 향해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슬퍼보이며……

필요 이상으로 소일초를 가련하게 여기는……

조예진의 행동에 비록 많은 의구심이 있었지만……

어둠은 더욱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고,

출렁……출렁……

뱃전에서 부딪치는 물결소리는 서러운 상심의 강(江)처럼 애닯다.

그 속에 무간어옹은 그저 묵묵히 노를 저어갈 뿐이었다.

 

× × ×

 

원시림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빽빽했다.

무릎까지 빠져드는 늪의 낙엽과……

기기묘묘한 형태로 살아있는 수목과……

아무렇게나 길을 가로막고 있는 마른 나뭇가지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일정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과연 믿어질까?

그렇다.

그 무질서 속에 질서를 감추고 있는 원시림의 모든 것은 모두 완벽한 진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모이고……

나뉘어지고……연결되어……

이백 팔십여 개의 가공할 대소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진세속에 또 진세……

이 세상에 어떤 자도 누군가의 길 안내가 없이는 이 가공할 진세에 갇혀 생명을 잃고 말리라.

한데 오오……

보라!

그 원시림 속에 솟아 있는 거대한 석조건물을!

원래는 흰 백색의 건물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검푸른 이끼가 잔뜩 드리워 있어 검은 악마의 서식처 같아 보이기도 했다.

 

<백인장(百刃莊)>

 

석조건물의 현판에 천하를 삼킬 듯 휘갈겨져 있는 세 글자,

이곳인가?

바로 이곳이란 말인가?

절정의 도객만도 일백을 헤아리고……

소속된 자 어느 누구하나 고수 아닌 사람이 없으며……

수 백 년의 장구한 세월을 지켜온 절대의 도문(刀門),

바로 백인장 그 본 근거지였단 말인가?

그렇다.

이 부주의 어마어마한 석조건물은 분명 백인장의 선조들이 면면히 이어온 진짜백인장의 뿌리였던 것이다.

그 어떤 자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일대금역(一大禁域)이며,

백인장에 의한 중원정의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쓔……슈……

슈우우우우……

배는 석조건물을 향해 곧바로 다가가고,

어느 새 눈을 뜬 것인가?

소일초는 호기심과 기대가 꽉 찬 눈빛으로 어둠 속에 움츠리고 있는 거대한 석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곳인가……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우리 선조들이 살아왔다던 곳이 바로 이곳인가?)

소일초의 몸은 강한 기대감으로 떨기조차 했다.

[작은 어머니! 어머니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어요?]

조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들어서는 자주 오지는 못했지. 장원의 일이 바쁘니까……]

[그런 일은 아버지가 다 하셨잖아요?]

[지금 우리는 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란다.]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소일초의 안색이 홱 변했다.

[아버지는 어쩌면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몰라요.]

[그런 일은 절대없을테니 안심하거라.]

불안해하는 소일초의 머리를 스다듬어주는 조예진,

그리고 안스러운 듯이 소일초를 바라보는 무간어옹……

 

× × ×

 

석전(石殿),

석전의 내부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수 십 명의 장정(壯丁)이 팔을 힘껏 버리고 붙잡아야 간신히 안을 수 있는 거대한 대리석기둥 수백 개는 석전을 받치고 있었고……

아득할 정도로 높은 천정에는 온갖 색(色)의 양명주들이 다투어 빛을 뿌려내고 있다.

뿐인가?

바닥은 어찔어찔 하도록 윤이 나는 운남의 대리석이었고……

사방에 내려진 휘장은 천축산(天竺産)의 비단이었으니……

그 장엄함과 화려함은 실로 형용을 불허했다.

바로 이 석전의 내부에서 소일초는 두 눈을 휘둥그래뜨고 사방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데 일순간,

[백인장의 내총관 독고행(獨孤行) 주모와 소장주님을 뵙습니다.]

한 소리 장중한 음성과 함께,

스슷……!

빛처럼 조예진와 소일초의 앞에 나타난 사람,

백발(白髮)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팔십 세 가량의 노인이었다.

한데 모든 것이 흰 것으로만 치장되어 있는 이 사람,

도대체 천상(天上)의 선인인가?

인세(人世)의 속인인가?

신선과 같은 단아한 풍모를 지닌 노인의 모습은 가히 어디에 비겨 볼 데가 없다.

백인장에 내총관이란 직책이 있었던가?

독고행이라는 이 노인은 쓸쓸히 비워져 있는 백인장의 본거지를 관리하고 지켜온 사람이었다.

이 순간 조예진도 같이 노인을 향해 예를 보내고 있었다.

이어 빤히 독고행을 올려다 보고 있는 소일초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독고총관을 처음보지?]

조예진의 음성에 소일초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그리고 침착하고 의연한 음성,

[오랫동안 이곳에 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총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군요. 반갑습니다.]

(오……!)

독고행은 비범한 풍도를 뿌려내는 소일초를 바라보며,

내심으로 감탄의 탄성을 터뜨렸다.

이어 조용히 소일초를 향해 마주 허리를 구부린 독고행,

[본 총관도 소장주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직접 보게 되어 기뻐군요.]

소일초의 점잖은 말에 조예진이 오히려 놀랐다.

언제나, 자기와 소선풍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하대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던 소일초였기에 지금같은 의젓한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가출했다거나 무슨 말썽피웠다는 그런 소문들 이겠지요?]

소일초의 말에 독고행은 미소를 지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소장주께서 너무 장난이 심하다 해서 걱정을 금치 못했었는데……한낱 그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오늘에야 깨달았소이다.]

독고행의 인자한 얼굴에 서린 그림자 사이로,

언뜻 참을 수 없는 기쁨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지요?]

[제가 안내를 해드리지요]

독고행은 먼저 걸음을 옮겼고,

[어차피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것이 낫겠지?]

소일초는 혼잣말 처럼 중얼거렸다.

하나 이내 그가 그토록 무서운 아버지를 만난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힐끗 조예진을 바라보았다.

조예진이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안심하라는 표시를 하면서 눈물을 글성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일초의 걸음걸이는 평소보다 훨씬 느린 것 같았다.

신행마동이란 별호를 가진 그가 그처럼 느릴 수 도 있다니 참으로 별난 일이었다.

그런 소일초를 등을 돌려 봄빛처럼 따사로운 눈길로 쓸어보던 독고행의 시선이 조예진를 향했다.

[훌륭히 키우셨습니다. 주모……]

[별 말씀을…………]

[장주님께서도 무척 만족하실 것입니다.]

순간 조예진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훌륭한 애지요……]

탄식처럼 이 말을 내뱉은 조예진이 대화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 분의 상세는 어떠신가요?]

[다행히도……오늘 아침에 들어 약간의 차도가 있는 것 같다는 무산신의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되묻는 조예진의 얼굴에 모처럼 희색이 감돌았다.

[장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겠습니다. 어서……]

조예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일초가 걷고 있는 곳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겨갔다.

소일초는 조예진과 독고행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흠칫 놀랐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의 깊은 내공을 그들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아버지가 상처를? 말도 안돼……)

소선풍의 무공의 고강함은 소일초가 잘알고 있었다.

무림의 그 누가 소선풍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 분의 상세라니……?

차도가 좋아지고 있다니?

내총관 독고행,

그 사람은 백인장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 안에드는 대고수로 이곳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해서 무산신의와 아버지가 이곳에 들어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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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마지막 고리를 풀다 (1)

 

 

 

숲에서 해천월이 미친 듯이 눈을 까뒤집고 두 팔을 들어올린 채 하소연 하듯이 빙빙 돌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삼십 여 명의 척살객이 원을 그리고 둘러서서 그의 기행(奇行)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천월은 한 명의 척살객에게로 상처투성이의 몸을 끌고 다가가서 말했다.

[제발 믿어주게. 내가 아니네. 심제을이란 놈의 짓이네.]

[낄낄낄... 그래 믿어주지. 믿어주지.]

척살객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해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고맙네.]

그는 감격한 듯이 눈물을 닦고 다른 척살객에게로 다가갔다.

[심제을이 한 짓이네. 자네도 잘 알고 있잖은가? 응? 믿어주게...]

[우하하하하... ]

척살객들이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해천월은 진지한 태도로 척살객에게 하소연했다.

철썩!

척살객이 뺨을 때리고 말했다.

[믿어주지.]

[고맙네. 고마워... ]

다시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는 해천월의 입에서 두 개의 이빨이 튀어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석두공과 금사종은 아연했다.

독비신검객 섭영소로 보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혈인이 된 해천월이 미쳐서 맴도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일파의 종주가 저런 최후를 맞게 되니... 적룡혈운도에 있었더라면 제자들과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자적할 터인데... ]

금사종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때 척살객들이 석두공과 금사종을 발견했다.

[백호! 이 배신자!]

쐐애액!

한명이 검을 뽑아들며 금사종을 덥쳐왔다.

금사종은 파혼검이라는 자로 위장하여 척살대에 들어갔었다.

척살대 안에서 그는 백호로 불리웠었다.

번쩍!

순간 금사종의 소매속에서 장검이 튀어나왔다.

그는 간단하게 척살객의 공격을 막아내고 말했다.

[이십일호! 신의를 따지는 자가 어찌 정의를 따지지 않는가?]

[닥쳐라! 너를 죽이고 말겠다.]

이십일호는 자신의 구가천마검법을 금사종이 간단히 막아내자 분기탱천하여 고함쳤다.

하지만 금사종은 삼마경을 익히면서 그 수법들을 숙달시키기 보다는 깨는 방법에 대해서 더 골몰했었던 사람이다.

더구나 무치무요를 통해 익힌 해박한 그의 무공은 그러한 것이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금사종은 여유있게 검을 휘둘러 이십일호의 공격을 막아내며 말했다.

[악인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악인이 되고자 하는 어리석은 자. 해천월의 말로를 눈앞에 두고서도 뉘우치는 것이 없는가? ]

금사종은 원래 명호를 혼장서생이라고 했다.

그만큼 그의 학문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고 말 또한 조리가 있으며 고금의 명구들에 대해 정통하고 있었다.

[용슬지이안(容膝之易安)이라 했거늘 헛되이 세상에 망령된 마음을 먹는단 말인가? 금비시작비시(今非是昨非示)하니 세세토록 일섭(日涉)하고 기오(寄傲)하기는 틀렸도다.]

용슬지이안이란 말은 무릎을 겨우 넣을 만한 좁은 장소에서도 편안하다는 의미이며 금비시작비시라는 말은 오늘도 틀렸고 어제도 틀렸다는 말이다.

또한 일섭한다는 것은 날마다 한가로이 산책한다는 말이며, 기오하다는 것은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산다는 뜻이다.

금사종은 훈계한다는 생각에 거침없이 문자(文字)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똑똑한 무림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석두공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척살객들이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개소리!]

석두공이 금사종을 도우려했다.

[지금은 나서지 말게. 한놈도 빠짐없이 모였을 때 몰살시켜버리도록! 혹시 자네를 알아보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얼굴을 숨기게.]

그때 금사종의 전음이 빠르게 그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문자를 써가면서 말을 하는 데에는 시간을 끌어 나머지 척살객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해천월은 멍하니 넋을 놓고 주저앉아 입을 헤 벌리고 있고 척살객들은 검과도를 뽑아들고 금사종을 향해 공격했다.

번쩍!

파파팟!

금사종은 오연히 서서 그들을 오른손의 검으로 구가천마검법인것도 같으면서도 아닌 것도 같은 기이한 검법을 펼쳤다.

또한 그 성격이 시시때때로 변하며 팔황지옥도법과 유사한 것이 되기도 했다.

한데 그 검법과 도법들은 기묘하게도 구가천마도법과 팔황지옥도법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

[놈의 무공이 이렇게 강했다니... ]

동시에 네 명의 척살객이 격퇴되었다.

금사종의 검은 검법과 도법을 섞어서 펼쳐냈고 그것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척살객들이 번갈아 공객했지만 깨뜨릴 수 없었다.

척살객들은 금사종을 금방 제압할 수 없자 석두공에게 공격했다.

[먼저 이놈부터 죽여 버리자.]

[어림없다!]

금사종이 소리치며 석두공을 보호했다.

하마터면 그의 팔이 날아갈 뻔 했다.

석두공은 금사종의 당부가 있는 지라 그의 뒤로 피하며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펑펑펑!

번쩍! 번쩍!

콰콰콰쾅!

금사종과 척살객들의 결투는 점점 치열해져 갔다.

척살객들은 더욱 심하게 날뛰었고 금사종은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하지만 금사종은 여전히 기력이 충만한 상태에서 삼십여 명의 척살객들을 상대해내고 있었다.

진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네 명의 척살객이 더 당도했다.

그들도 가세했지만 금사종은 여전히 그들의 공격을 다 막아내며 이따금 반격도 해냈다.

척살객 중의 하나가 소리쳤다.

[백호는 구가천마검법과 팔황지옥도의 극성이 되는 검법을 펼치고 있다. 초식으로서는 이길 수 없다. 내공을 쏟아 부어라!]

사실이 그러했다.

금사종은 구가천마검법과 팔황지옥도법의 각 초식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 초식들만을 전적으로 깨뜨릴 수 있는 초식들을 무치무요에서 찾아냈었다.

그런 후 그것들을 결합하여 한가지의 도법과 한가지의 검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척살객이 소리친 후로 다른 자들의 공격방식이 변했다.

그들은 초식을 버리고 무거운 중수법으로 열을 지어 금사종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금사종은 이미 동호천이 장담한 대로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천하제이에 버금갈만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터였다.

그는 상대방의 힘이 자신에게 미치기 전에 흩어버릴 줄 알고 있었다.

척살객들의 고심어린 공격도 그에겐 아무 소용없었다.

석두공이 칭찬했다.

[형님! 대단합니다. 오년 전에 비해 백배도 더 발전한 것같습니다.]

[발전은 자네가 했지. 무공이 말고 머리말일세.]

금사종의 농담에 석두공은 웃고 말았다.

한데 석두공의 한쪽 손바닥은 은밀하게 금사종의 명문혈에 닿아있었다.

금사종의 지칠 줄 모르는 가공할 내공의 비밀은 실상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네 명의 척살객이 당도한 후로 한 시진 가까이 흘렀지만 더 이상 오는 자가 없었다.

금사종을 공격하는 척살객들은 난공불락같은 금사종의 무공에 자신들이 지쳐버릴 지경이었다.

[더 이상 올 자가 없을 것같군.]

금사종이 말했다.

석두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다.

여전히 도검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숲의 한쪽에서는 언젠가부터 한 노인이 나무위에 앉아서 석두공과 금사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군 이상해! 어째서 이렇게 혼동이 일어날까? 닮기는 분명이 저놈이 닮았는데 정작 무공을 펼치는 놈은 또 저놈이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노인의 대머리가 석양을 받아 빛났다.

 

파파팟!

퍼퍼펑!

검기와 도광이 석두공의 몸을 작열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금사종의 석두공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훌쩍 물러서면서 전장(戰場)을 피해버렸다.

나무위에서 지켜보던 노인이 눈을 비볐다.

[저럴 수가...]

휘루루룽!

석두공의 몸에서 폭풍같은 강기가 뿜어 나오며 그의 몸으로 날아들던 검기와 도광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콰르르르...

석두공의 몸이 폭풍이 되어 움직였다.

그의 몸 주위에 다다른 것은 무엇이나 가루가 되어 날렸다.

바위가 여력에 의해서 날아가고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날아갔다.

콰드드드드!

척살객들은 피도 뿌리지 못하고 허공중에서 가루가 되어 그의 그림자처럼 폭풍에 휘말려 맴돌았다.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척살객도 그들이 입었던 옷도 그들이 들었던 검과 도도 모래처럼 분해되어 사라져버렸다.

석두공이 단 한차례 십장방원을 돌았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천신폭풍보-!

천신폭풍보의 위력을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금사종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님에도 넋이 반쯤 빠져버렸다.

그러한 사정은 나무위에서 숨어보던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연신 눈을 비비고 다시보고, 다시 비비고 보고 했다.

천하를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던 척살객들은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때였다.

짝짝짝!

멍하니 앉아있던 해천월이 박수를 쳤다.

쿠우웅!

그러더니 그의 몸이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석두공은 사십 여 명의 인명을 한순간에 살해해 버린 뒤에 찾아오는 허무를 뼈속까지 느끼면서 묵묵히 있었다.

갑자기 금사종이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차갑게 소리쳤다.

[당장 나오지 않으면 벌집이 될 것이다.]

대머리 노인은 넋을 잃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금사종의 자세를 보고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유성단천(流星斷天)은 노부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인 줄 아느냐?]

금사종은 눈앞에 내려선 노인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유성단천의 수법을 알아보는 사람은 강호에 나온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석두공은 노인을 유심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갈할아버지?]

[어랍소? 돌머리가 맞긴 맞는 모양인데 어떻게 나를 알아보지?]

노인이 석두공을 올려다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석두공이 넙죽 업드리며 절하고 말했다.

[맞습니다. 갈할아버지께서 살려주신 저 돌대가리 석두공입니다.]

그 노인은 독왕동주 갈천상이었다.

[흠흠...]

그는 석두공의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오독패혼공의 흔적이 있으니 틀림없이 맞기는 맞는데... 그럼 노부의 말이 틀린 게 되지 않나? 한데 이 젊은이는 누구인가?]

[제 의형이십니다.]

금사종이 포권하며 말했다.

[복우파의 금사종입니다.]

[한데 어떻게 동선배의 무공을 알고 있지? 이놈이 돌대가리라서 동선배가 그만 자네에게 무공을 가르쳤나?]

갈천상이 물었다.

석두공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비슷합니다.]

석두공으로부터 자세한 말을 전해들은 갈천상은 파안대소했다.

[푸하하하...!]

하지만 그의 눈가로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대별산중의 독왕동에 은거하고 있던 그는 동호천의 사망소식도 그제서야 들었던 것이다.

[날도 어두웠으니 내집으로 가자.]

갈천상은 아직도 숨이 크륵거리는 해천월의 몸을 집어들고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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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주점

주점 내부. 이제 거의 모든 자리가 손님들로 찼다.

청풍; (숭산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뒤질 수 있는 곳은 모두 뒤졌지만 막형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국수 먹으며 생각하고

청풍; (혹시 혈세사패의 속한 자들을 잡으면 단서를 잡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청풍; (개똥도 약에 쓰려면 안보인다고 혈세사패의 인간들을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찡그리고

청풍; (일단 화산까지 거꾸로 훑어보고 성과가 없으면 본격적으로 혈세사패를 찾아서...)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고. 슥! 앞쪽 대각선 자리에 누가 앉는다.

청풍; (막형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군.) 웃으며 앞을 보고

<다만 이번 손님은 막형보다 더 특이하다는 점이 다를 뿐...> 청풍의 앞쪽 의자에 앉으며 자세를 바로 하고 있는 제갈소소.

고개를 조금 숙이는 제갈소소. 의자가 높아서 발 끝이 허공에 대롱거리고

청풍; (차림새도 그렇고 몸가짐도 그렇고...) (평범한 집안 아이는 아니다.) 웃으며 역시 고개를 조금 끄덕이고.

만두를 보는 제갈소소.

침이 꼴깍! 넘어가고

청풍; [물부터 마시고 먹어라.] 슥! 자기 찻잔을 밀어주고

제갈소소; [고맙습니다.] 두 손으로 찻잔을 받으며 고개 숙이고

이어 두 손으로 찻잔을 들고 귀엽게 마시는 제갈소소

청풍; (저런 딸이라면 한번 길러보고 싶구나.) 웃으며 다시 국수를 먹고

슥! 찻잔을 내려놓는 제갈소소. 이어

젓가락 통에서 젓가락을 꺼내고

제갈소소; [잘 먹겠습니다.] 두 손으로 젓가락 든 채 고개 숙이고

청풍; [많이 먹어라.] 웃으며 국수 먹고

제갈소소도 입맛 다시며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고. 헌데

[저기 있다!] 제갈소소가 만두를 앙 벌린 입으로 가져가려는 배경으로 갑자기 외침이 들리고.

주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는데

[앙큼한 년!] [여기 숨어있었구나.] 휘익! 팟! 주점 입구로 뛰어 들어오며 제갈소소에게 삿대질하는 백살파 자객들 네 놈. 그자들은 복면을 벗고 있어서 청풍은 그자들이 백살파 자객들인 줄은 모른다.

슥!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든 상태로 의자에서 내려오는 제갈소소.

[잘 걸렸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주마.] 인상 쓰며 거친 걸음으로 청풍과 제갈소소에게 다가오는 백살파 자객들. 겁에 질리는 가게 안의 손님들. 하지만

슥! 제갈소소는 태연하게 만두를 먹으며 청풍의 옆 자리에 앉는다. 청풍이 창가에 앉아있어서 통로 쪽 의자에 앉는다. 이번에도 의자가 높아서 발끝이 대롱대롱

청풍; (정말 평범하지 않은 아이다.) 제갈소소가 자기 옆 자리에 앉으며 태연하게 만두를 먹는 걸 보며 웃는데

사내1; [이년아! 허튼 수작 마라.] 확! 제갈소소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확 뻗고. 하지만 그 직후

툭! 청풍의 젓가락이 아주 빠르게 그자의 손을 살짝 치고. 그러자

사내1; [억!] 짝!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세차게 때리며 비틀하는 사내1

뒤 따라오던 세 놈이 깜짝 놀라고

[뭐지?] [왜 자기 뺨을 때리는 건가?] 손님들 어리둥절. 그 배경으로 비틀하며 물러서는 사내1

[왜 그러는가?] [무슨 일이냐?] 뒤쪽의 사내2, 3이 묻고

사내1; [모르겠네. 갑자기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어.] 뺨을 만지며 당황.

그러거나 말거나 나란히 앉아서 국수와 만두를 먹는 청풍과 제갈소소

<저 앙큼한 년 옆에 앉아있는 놈, 실력을 감춘 고수다!> <젠장, 일이 번거롭게 되는군!> 전음을 나누며 청풍과 제갈소소를 보는 사내들. 그러다가

사내1; [친구! 피차 은원도 없는 처지이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마세.] 포권하고

뭔 소리인가 하며 그자를 보는 청풍. 국수를 먹으면서

사내1; [그 계집애는 우리가 반드시 데려가야만 하네.] [방해하지 않으면 피를 볼일도 없을 걸세.]

청풍; [저자들 지금 뭐라는 건지 알아듣겠냐?] 제갈소소에게

제갈소소; [소소도 몰라요 아빠!] 만두를 오물거리며 새침하게 말하고

청풍; (아빠?) 띠용하고

[뭐라는 거냐 저년이?] [아빠?] 어이없는 사내들. 하지만

[그러니까 뭐야? 남의 자식 데려가겠다고 저 행패인 건가?] [세상 말세로구만. 백주에 아비가 있는 계집애를 납치하려 들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작자들이야.] [누가 관부에 신고해야하는 거 아닌가?] 주점 안의 손님들 웅성거리며 사내들을 흘겨보고

당황하는 사내들

청풍; (요 맹랑한 것!) 제갈소소를 곁눈질하며 웃고. 제갈소소는 여전히 새침하게 만두를 먹고 있다.

청풍; (납치당하는 걸 모면하려고 날 아빠라 불렀구나.) 웃는데

사내들; [아가리들 닥쳐!] [저년은 저자와 아무 관계도 없다.] [관부에 신고하려면 해봐라. 아가리를 찢어줄 테니...] 주점 안 손님들에게 고함

[히익!] [엄마야!] 겁에 질리는 손님들과 종업원들

사내1; [이봐 친구! 객기 부리지 않기를 권하겠다.] 창! 칼을 뽑으며 청풍을 노려보고. 다른 놈들도 칼을 뽑고. 

사내1; [끝내 헛소리 하면 멱을 따주겠다.] 칼을 휘두르려 하고.

청풍; [아무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자들이구만.] 한숨 쉬고

청풍; (이름이 소소라고 했지?) + [소소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제갈소소에게

제갈소소; [밥 먹는데 방해돼요.] 만두를 먹으며 말하고.

청풍; [들었지?] 웃으며 사내들을 보고

청풍; [우리 밥 먹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네놈들을 멀찌감치 치워야겠다.]

[무슨 개소리를...] [쳐라!] [말로 해서 알아먹을 놈이 아니다!] 부악! 쩍! 일제히 날아오르며 청풍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네놈. 아주 살벌하다.

[악!] [꺄악!] [히익!] 비명 지르는 손님들과 점원들. 달아나려고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하지만

청풍; [머리 좀 식혀라.] 젓가락으로 뭔가를 집어서 창밖으로 던지는 시늉하고. 그러자

화악! 보이지 않는 밧줄 같은 것들이 네놈을 휘감더니

[아이쿠.] [헉!] 펑! 버둥대며 열린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날아가는 네놈.

첨벙! 첨벙! 주점에서 10여 미터 밖에 있는 강물에 쳐박히는 네놈.

[오오! 신기다!] [어떻게 한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손님들의 눈이 휘둥그래지고

짝짝! 젓가락 내려놓고 박수치는 제갈소소

[어푸!] [젠장...] [이게 무슨...] 허우적대며 물 위로 떠오르는 네놈. 그때

<두 번의 자비는 없다.> 그놈들 귀에 들리는 음성. 눈 치뜨는 네놈.

청풍; <어린 애가 보는 앞이라 살수를 쓰지 않았을 뿐이다.> 창을 통해 내다보는 청풍. 전음으로 말하고

청풍; <다음번에는 확실하게 끝을 내줄 것이다.> 슥! 음산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베는 시늉하고. 그러자

오싹! 소름이 돋는 네놈

[가... 가자!] [우... 우리가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두고 보자!] 팟! 휘익! 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네놈.

곧 멀어지는 네놈

[꼴좋구나 불한당들아!] [다신 오지 마라.] [인간이 되거라 이놈들아.] 창문을 통해 그걸 보며 박수치고 삿대질하는 손님들

청풍; [나쁜 아저씨들은 쫓아 보냈고..] 제갈소소를 돌아보며 웃고. 제갈소소는 젓가락을 내려놓은 상태인데 눈이 풀려있다.

청풍; [이제 또 뭘 해드리면 될까요 공주님?] 웃으며 묻고

제갈소소; [엄마가 낙양 영빈객잔(迎賓客棧)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눈이 좀 풀린 채 말하고

청풍; [낙양으로 데려가주면 되겠느냐?]

제갈소소; [그리고... 소소 졸려요.] 슥! 눈을 감으며 쓰러지려 하고

청풍; (이런...) 급히 제갈소소를 끌어안고

이미 까무라친 듯이 잠이 든 제갈소소

청풍; (야무지고 당찬 척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어린 아이다.) 잠이 든 제갈소소를 두 팔로 끌어안고

청풍; (밤새 두려움에 떨면서 먼 길을 온 탓에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자신의 품에 안겨 곤히 잠이 든 제갈소소를 내려다보며

청풍; (그러다가 더는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려 잠에 곯아떨어진 것이고...) 잠든 제갈소소를 내려다보며 안쓰러운 표정

청풍; (그나저나 비범한 면이 있는 아이다. 본능적으로 내가 자신을 추적자들로부터 지켜줄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보다니...)

<어쩐지 이 아이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잠이 든 제갈소소를 품에 안고 내려다보는 청풍. 주변 사람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고

 

#139>

낮. 이제 해가 제법 높게 떠올랐고. 경치 좋은 강변의 정자. 그곳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정자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 혈부용이다.

정자 주변에는 네명의 흰색 복면인이 서있다. 복면에는 <十一> <三十七> <三十八> <七十二>등의 글자가 적혀 있다. 백살파의 최고 고수들인 백일자객들인데 <十一>의 무기는 원형의 방패다. 방패에는 별이 새겨져 있고. <三十七>은 거대한 도끼. <三十八>은 망치. <七十二>는 창날 아래 붉은 수술이 달린 뾰족한 창이다.

정자 앞의 바닥에는 네 명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바로 청풍에 의해 강물에 빠졌던 백살파의 자객들. 그중 사내1이 종이를 보고 있다. 종이에는 청풍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사내1이 보고 있는 초상화 크로즈 업. 청풍의 얼굴

사내1; [틀... 틀림없습니다 혈부용님!]

사내1; [이자가 속하들로부터 다지관음의 딸년을 빼앗은 놈입니다.]

혈부용; (드디어...) 눈 번뜩

혈부용; (이청풍! 네놈이 지척에 있단 말이지?) 살벌한 표정

십일살주; [이 무능한 놈들을 어찌 할지요?] 혈부용에게

[으으!] [제발...] [살려주십시오 십일살주(十一煞主)님!] 사색이 되는 사내들

십일살주; [있으나 마나한 무능한 놈들이니 분부하시면 속하들이 처리하겠습니다.] 징! 등고 있는 방패가 진동하고

삼십칠, 삼십팔, 칠십이살주들도 무기를 잡고

[히익!] [으으으!] 공포에 질리는 사내들

혈부용; [일을 망친 죄는 크지만...] 입 열고

사색이 되어 보는 사내들

혈부용; [이청풍의 종적을 보고한 공이 있으니 사형은 면해주겠다.]

[감사... 감사합니다 혈부용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머리 바닥에 박으며 감격하는 사내들.

혈부용; [낙양으로 돌아가서 다지관음의 동향이나 파악해서 보고하라.] 귀찮다는 듯 손짓하고.

[존... 존명!] 일제히 고개 조아리는 사내들. 이어

휘익! 휙! 날아올라서 사라지는 사내들

혈부용; [십일살주!] 멀어지는 사내들 보며

십일살주; [하명하시지요.]

혈부용; [백살파 백일자객들의 위명이 사실임을 증명해보일 기회가 왔어요.]

혈부용; [힘을 다해 이청풍을 척살하세요.]

십일살주; [맡겨주십시오!] 포권하고. 이어

십일살주; [사냥이다! 가자!] 팟! 날아오르고. 다른 세놈도 따라서 날아오르고

사내들이 간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는 십일살주 일행.

혈부용; [이청풍... 이청풍...]

혈부용; [과연 소회주의 우려대로 네놈이 소회주의 천적인지 관찰해주겠다.] 사악하게 웃는 혈부용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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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阿修羅魔劍式! 古今最强의 劍法

 

 

 

어둠에 싸인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

“이 석실은 무림의 큰 죄인인 노부가 일백오십년을 참회하고 있는 곳이다.”

검마는 소일초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고의 재질을 가졌음에도 정기(正氣)가 부족한 네 녀석…… 앞으로 나와 함께 삼 년 동안 참회로 보내도록 하라! 내가 네 놈의 심성을 바로 잡아놓겠다.”

“히액! 삼……삼 년? 그것도 쇠사슬을 몸에 칭칭감고 말예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단지 여기서 노부와 함께 삼년을 지내기만 하면 된다.”

‘흐유! 하여간 악귀사신을 꿈에서 보는 것이 확실히 재수없는 일이라는 것을 일찍 짐작했어야 하는 것인데……!’

검마의 말에 소일초는 한바탕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소일초는 이내 불안한 얼굴에 애써 미소를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저…… 할아버지 사실은요.”

“무엇이냐? 그리고 앞으로는 사부라고 불러라.”

무시무시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검마의 음성에 소일초는 오히려 주저하는 듯이 웃음을 흘려냈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실은 저도 무공이 만만치 않걸랑요?”

소일초의 장난기 섞인 음성과 침착하고 조용한 태도에 검마는 어처구니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은 혹시 내가 검마라는 사실을 잊어먹은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자기 앞에서 무공을 자랑하는 놈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하나 검마는 이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나와 한번 겨루고 싶다는 말이냐?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아!”

“예!”

소일초는 큰 소리로 당당하게 대답하며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혹시 너는 나와 겨루어본 사람은 모두 땅에 누운채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소일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의 검법은 오직 일초뿐이고, 나는 또한 더이상의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일백 팔십 세에 이른 검마에게도 그 사실은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저 보고 제자가 되라고 하고도 저를 죽일 것인가요?”

“물론 그래선 안되겠지.”

“저에게도 무공을 펼칠 기회를 주세요. 그리고 나서 내가 깨끗이 승복하게 되면 앞으로 삼 년 동안 잘 모실께요.”

검마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음……이런 예는 없었지만 하는 수 없지. 네 녀석을 마음으로 부터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될테니까!”

“그럼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할아버지도 검을 뽑아요.”

소일초가 한 걸음 물러서며 등 뒤의 어린보도를 뽑았다.

츠츠츠――!

어린보도에서 새파란 도광이 일어나 어두운 고해금마옥의 내부를 스산하게 비추었다.

마치 고기비늘(魚鱗) 형태로 무지개처럼 번져나가는 삼엄한 도광(刀光)――!

“훌륭한 보도(寶刀)로구나.”

검마가 어린보도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할아버지도 어서 검을 뽑아요!”

소일초는 자기 키만한 어린보도를 꼬나들며 말했다.

“노부의 검은 필요하면 절로 나타나니까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검마는 웃으며 끄덕였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후회하지 말아요!”

쉬이잉!

소일초가 당차게 기합을 지르며 어린보도를 휘둘러 공격해왔다.

그가 펼친 제일초는 며칠 전에 혈기자에게 배운 용형삼도(龍形三刀) 중의 제 삼초인 백룡승천(白龍昇天)이었다.

파츠츠츠! 고오오오!

어린보도에서 엄청난 도기가 뻗어나오며 백룡이 하늘로 올라가듯 검마를 휘감아 왔다.

검마는 깜짝 놀랐다.

이 작은 꼬마가 어떤 기연으로 내공은 깊어졌으리라 생각했지만 절학을 능숙하게 구사해 낼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쇠사슬에 감겨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순간,

쩌러렁! 쉬이잉!

검마의 오른손에서 검은 빛이 일렁이더니 어느새 한 자루의 철검이 나타나 소일초가 일으킨 백룡승천의 초식을 마주 쳐갔다.

따다당――!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마를 덮쳐오던 백룡승천의 도세(刀勢)는 검마의 초식에 부딪히자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다.

뿐만 아니라 검마의 철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옆의 석벽으로 날아가 사라져버렸다.

“아이쿠!”

쿠당탕!

어린보도도 방향을 잃고 튕겨져 나갔으며 소일초는 소일초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검마는 검마대로 깜짝 놀랐다.

방금 소일초가 펼친 도법은 그조차도 난생 처음보는 절세적인 도법이었던 것이다.

검마가 감탄을 발했다.

“옛날에 전설적인 도문(刀門)인 백인산장의 도객들에게도 그와같은 도법은 없었다.”

“백인산장의 늙은이 따위가 무어 대단하다고 그래요. 나에게는 모두 꼼짝도 못하는데……”

소일초는 잽싸게 어린보도를 꼬나들고 제 이초를 펼치면서 말했다.

제이초 역시 혈기자가 전수해 준 육풍장(六風掌)의 수법 중 제 육초인 북풍한빙(北風寒氷)을 어린보도로서 펼친 것이었다.

검마 역시 철검을 마주 뻗으면서 말했다.

“네가 전설적인 백인산장(百刃山莊)마저 알고 있단 말이냐?”

북풍한빙의 절초가 어린보도의 끝에서 펼쳐지자 살을 에일듯한 한기가 석실안에 가득차면서 앉아있는 검마를 갈가리 찢어버릴 듯이 흉폭하게 몰려갔다.

그러나, 검마는 역시 검마였다.

고오오오!

그의 손에서 철검이 뻗어 나오자마자 북풍한빙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일초는 눈앞에서 불쑥 떠오르는 철검에 깜짝 놀라 뒤로 미끌어지 듯이 물러나며 피했다.

소일초는 이를 악물었다.

검마의 물음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 그가 알고 있는 절학이라고는 혈기자에게서 훔쳐 배운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악귀사신들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들은 무중일전신법(霧中一電身法)과 도귀(賭鬼)의 수정검우(水晶劍羽)외에는그다지 뛰어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백인산장의 도객들도 소선풍의 명을 어기지 못하여무공의 요결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오직 육갑자에 이른 공력과 금강불괴지체의 몸뚱이, 그리고 총명한 머리가 그의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소일초는 잇달아 혈기자에게서 배운 수법들을 펼쳐내었다.

검마는 모두 일초에 그 수법들을 풀어버리기는 했지만 갈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느 초식이나 듣도 보도 못했던 기초(奇招)였고, 절묘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창안한 무공인지 절로 흠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삼십여초가 지났을 때였다.

돌연 소일초가 크게 외쳤다.

“이것도 한 번 받아보시지!”

그의 손에 들려있던 길다란 어린보도가 허공으로 높이 들려졌다.

검마는 내심 긴장된 표정으로 소일초의 손에서 펼쳐질 절초를 기대했다.

그러나,

피핑! 쐐애액!

뜻밖에도 소일초의 몸이 뿌연 안개에 휩싸이면서 그대로 열려진 석문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검마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싸우다가 그렇게 도망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

촤라라락――! 콰아아!

검마가 손에 든 철검을 쭉 뻗자 검신에서 강인한 흡입력이 생겨 문 밖으로 날아가는 소일초의 몸을 휘감았다.

바로 그때,

스팟!

소일초의 왼손에서 무엇인가 반짝했다.

“수정검우(水晶劍羽)!”

검마가 경악하며 외쳤다.

소일초는 허공에 뜬 채 수정검우를 뒤쪽으로 맹렬히 던져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휘이잉!

검마가 선뜻 소매를 젓자 소일초가 발출한 수정검우는 빨리듯 그의 손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 검마는 다시 철검을 한 번 떨쳤다.

그러자,

“아이쿠!”

콰당탕!

소일초의 날아가던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 후 검마의 앞으로 질질 끌려왔다.

콰쾅――!

뒤이어 굉렬한 소리를 내며 고해금마옥의 육중한 석문은 그대로 닫혀버렸다.

헌데,

“수정검우(水晶劍羽)! 아아! 이것이 백오십 년 만에 노부의 수중에 다시 들려지다니……!”

검마는 웬일인지 깊은 감회에 젖은 채 왼손에 들어온 수정검우를 쓰다듬고 있지를 않은가?

소일초는 검마의 검기에 혈도를 찍혔으나 이내 풀어져 있었다.

그러나, 내색할 수도 없고 그냥 정신을 잃은 척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시 후, 검마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너는 정말 이상한 아이로구나. 이 수정검우는 또 어떻게 해서 네 손에 있게 되었느냐?”

“내 사부가 준 것입니다.”

검마가 소일초에게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바른대로 말해야 한다. 원래 이 수정검우는 내가 만든 것이니까.”

소일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정검우가 검마가 만든 것이라니……

 

소일초로서는 검마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백인산장에서의 일은 물론이고 악귀사신, 그리고 최근에 만났던 혈기자에 대한 말까지도……

검마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천하의 소일초로서도 고분고분해 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말을 다한 소일초는 도망치는 것도 포기하고 풀이 죽어 바닥에 앉아서 손장난을 하고 있었다.

검마는 묵상에 들어가 전혀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사실, 도귀(賭鬼)는 검마의 후손이었다.

검마가 남황으로 들어오기 전에 남겼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도귀가 검마의 신물이었던 수정검우를 가지고 있었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검마는 천지간에서 가장 예리한 만년정모(萬年晶母)를 깎아 수정검우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그걸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날이 무딘 철검 한 자루 만으로도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마는 몇년을 걸쳐 겨우 만든 수정검우를 임신한 아내에게 주고는 이곳 남황으로 와버렸었다.

검마는 지금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한때 무림에서 검마란 이름을 얻었는데 그의 후손마저 사파의 인물로 악명을 떨친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자기가 자행한 살겁에 대한 응보인 것 같았다.

 

* * *

 

그날 이후, 소일초는 검마의 억지제자가 되어 수행을 쌓게 되었다.

그로서는 검마의 검법이 탐이 났으나 검마는 오직 바른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풀풀 뛰어다니고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 천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소일초로서는 처음에는 그같은 생활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을 하지만 검마의 곁을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곧잘 갑갑함에 발작도 했지만 이내 다시 주저앉고는 했다.

하여간 발작에서 다음 발작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은 그가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불만을 품으면서도 그는 지루하고 따분한 생활에 점차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동안 비성성이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번갈아가면서 매일 과일을 들여주어 그가 배고픈 일은 없었다.

하지만, 검마는 음식이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이미 긴 세월을 벽곡으로 지내온 것이다.

소일초도 벌써 세 달 동안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앉아있었다.

그동안 그의 마음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없어지고 튼튼해져야 할 것은 튼튼해져 왔다.

침묵과 고요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사람을 가르치는 최고의 스승인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일년이 채워지던 날이었다.

“그동안 잘 참았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쌓도록 하자.”

소일초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부터 소일초는 검마의 무적검법을 배우게 되었다.

우선 검마는 소일초에게 검을 쥐는 법 부터 가르쳤다.

그리하여 검이 손의 연장(延長)이고 마음으로 움직이는 도구(道具)라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자신이 사용했던 녹슨 철검을 쥐고 있게 했다.

소일초는 그때부터 철검을 한 시라도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노부의 검법은 검벽신공(劍壁神功)이란 것으로서 분명 단 일초뿐이다. 네 이름 역시 일초(一招)이니 천리(天理)의 오묘함이 노부와 네가 만나게 한 것 같구나.”

검마는 소일초가 전생에서부터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자신의 검법이 진정한 주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검법은 단 일초 뿐이지만 그 일초를 위해서 익혀야 할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검마의 일초검공은 내가검공(內家劍功)의 최정수였다.

이름하여 검벽신공(劍壁神功)――!

무림에서는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무적검결(無敵劍訣)이 바로 그것이었다.

검벽신공의 초식(招式)은 단 한가지지만 내공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스물 네가지의 요결에 따라서 운용되는 일초검공은 천하의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절세무적의 검공이다.

소일초는 검벽신공의 스물네 개의 요결을 익혀가면서 일곱 번의 주화입마의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섬세하고 까다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연공 도중에는 어떠한 잡념도 가질 수 없음은 물론이고 털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 과정으로만 말한다면 정통무공이라기 보다는 사공(邪功)에 가까운 것 같은 일초검공이었다.

 

다시 이년여의 세월이 꿈결같이 흘렀다.

피나는 고련끝에 소일초는 마침내 검벽신공의 이십사개의 운용검결(運用劍訣)을 모두 연성해냈다.

이제 초보적이나마 검벽신공, 즉 아수라마검식을 펼쳐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온갖 무학의 원리를 담고있는 검벽신공을 통해서 소일초가 깨달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어떤 무공이든 간단히 그 약점을 찾아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안목이 크게 성장한 것이다.

검벽신공이 완성된 후에는 소일초가 동굴밖으로 나와서 비성성들과 노는 때가 많아졌다.

뜨거운 햇살과 뜨거운 바람…… 그곳에는 계절의 분간이라고는 없었다.

푸른 거목의 숲에서 검벽신공을 연습하고 호수위에 뗏목을 띄워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소일초의 체격도 어느덧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 당당한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으니……!

그 와중에도 사부인 검마의 기력은 날이 갈수록 쇄해지고 있었다.

유수와도 같은 세월은 어느덧 검마가 약속한 삼년을 후딱 지나간 것이다.

 

“억지로라도 너에게 장안은신술(帳眼隱身術)을 가르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걸리는구나.”

어느날 소일초를 불러앉힌 검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안색은 흡사 썩은 고목(古木)과도 같았다.

이미 사신(死神)의 그림자가 이 절세무비의 검마의 몸에 그득히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장안은신술(帳眼隱身術)!

 

그것은 저 진주배교(秦州拜敎)에서 유래한 사술의 일종이었다.

그것을 완벽하게 수령하면 어떤 절정고수의 이목이라도 속여넘길 수가 있다.

검마는 소일초에게 만일을 대비하여 그 장안은신술을 가르치려고 했었으나 소일초는 질색을 했다.

무공은 오직 검벽신공만 있으면 될뿐 다른 잡술은 배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그것을 다시 떠올리고 검마는 안타까워 했다.

“지금의 네 실력이라면 무림에 나가서도 특별히 신경을 쓸 대상은 없을 것이다만, 혹시나 천년마교(千年魔敎)라는 무리들을 만나게 되면 신중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그자들은 아주 사악(邪惡)한 조직으로서 백오십년전에는 이 사부마저 납치하려고 기도한 적이 있었단다.”

검마는 감회에 잠기는데 소일초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세상에 감히 검마를 납치하려 한 자들이 있었단 말인가?

“사부를 납치해요?”

“그렇다. 물론 그자들은 모조리 사부의 손에 죽고 말았지. 하지만 그자들의 마공은 아주 기괴하고도 사이한 것이었단다.”

검마는 천년마교(千年魔敎)란 비밀결사(秘密結社)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일초는 퍼뜩 등천마교(騰天魔敎)를 떠올렸다.

그자들은 자칭 자신들을 마교(魔敎)의 후예라고 하지 않았던가?

 

“네가 신주사패천(神州四覇天) 중 백인산장의 작은 주인이라니까 달리 당부할 것은 없다만, 이 한마디는 꼭 기억하도록 해라.”

검마의 안색이 아주 엄숙해졌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의 피는 네 몸을 적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네 영혼은 이미 피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네 생명은 초개(草芥)처럼 여기더라도 남의 생명은 보배(寶盃)처럼 여겨야만 한다.”

검마는 가볍게 탄식했다.

“언젠가는 네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내가 죽거든 우광과 함께 화장하도록 해라.”

“사부님!”

소일초가 검마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돌아보니 남은 것은 악업(惡業)이고 남길 것은 씨앗(種)뿐이로구나.”

검마는 잔잔한 음성으로 내뱉은 다음 입을 다물었다.

다급히 그의 손을 잡은 소일초의 손으로 벌써 찬기운이 전해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벽곡을 하면서 시체같은 삶을 영위해 왔기에 죽음과 동시에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이다.

 

검마는 세수(歲數) 일백 팔십 오세로 기나긴 생을 마감했다.

소일초는 사부인 검마의 유해와 다비를 미루어 왔던 소림사의 파계승 우광(宇廣)의 유해를 함께 화장했다.

불법을 깨닫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 쳤던 우광의 몸에서도 사리(舍利)가 나왔고 수 많은 살행과 수 많은 고행과 수 많은 참선을 했던 검마의 몸에서도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왔다.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을 때 신행마동 소일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난 삼 년의 세월 동안 검마의 깊은 정과 가르침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죽음의 그 순간까지 감고 있었던 쇠사슬을 소일초가 검마의 몸에서 풀어내었을 때 사부인 검마의 몸은 마치 장작개비처럼 가벼웠다.

몸의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은 막혀지지도 않았었다.

그토록 깊던 내공도 흩어지고 혼자서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할 노인으로 검마는 죽었다.

검마의 마지막 수발을 들면서 소일초는 정말 자기가 이 사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부의 사리와 우광스님의 사리를 각기 나누어 품에 넣은 소일초는 검마의 동굴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뒤에는 열여덟 마리의 비성성(飛猩猩)이가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서 있었다.

“가자!”

소일초는 이제 자기의 키보다 훨씬 작아진 어린보도를 어깨에 메고 왼쪽 허리에는 사부의 유품인 닮아서 이가 빠진 철검을 매었다.

오른쪽 허리에는 술병 대신 축융화탄이 가득 든 목탁을 차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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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장

 

             토사구팽 (2)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대별산으로 오르는 두 사람의 젊은이가 있었다.

한사람은 죽립을 썼으며 죽립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삼십여세 정도로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십이 채 되지 않은 청년으로 머리카락이 고슴도치처럼 빳빳하게 자라있었다.

이들은 석두공과 금사종이었다.

[놈들의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사십 명이 넘는 자들이 천하 곳곳으로 돌아다니며 살인을 일삼으니 그것을 어떻게 찾는단 말입니까?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잖습니까?]

석두공이 금사종에게 말했다.

석두공은 누적된 피로가 회복된 후에 금사종과 함께 척살대를 찾아서 천하를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척살대가 척살대라고 이마에 써붙히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수만 명이 숨어도 감쪽같이 숨어버릴 수 있는 넓은 중원 땅에서 겨우 사십여 명의 인물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보다야 쉽겠지만 어려운 일임은 분명했다.

[나도 척살객이네. 그들의 행동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네.]

금사종이 말했다.

석두공이 물었다.

[그들이 대별산에 모이기라도 한답니까?]

[바로 그렇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미 남양(南洋)에서 그들의 표기를 발견했었네. 표기가 가리키는 곳은 줄곳 이곳 대별산이었네.]

석두공의 이마가 좁혀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살겁도 목격하지 못했는데... ]

[곧 보게 되겠지.]

금사종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문득 석두공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형님 말이 맞군요. 곧 보게 될 것같습니다.]

슈아아앙...

석두공은 갑자기 육지비행술을 펼쳐 산위로 달려갔다.

금사종의 귀에도 장력이 부딪히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봉우리의 중간 부분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절벽의 앞쪽에는 제법 넓은 암반이 있었다.

[이 이놈들... 네놈들 마저 나를 배신하다니!]

해천월은 치를 떨면서 분노했다.

그의 전신은 이미 수십 개의 검상과 도상, 그리고 여러가지 괴이한 수법에 의해 만신창이 되어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은 스무 명 남짓, 그들은 모두 신호를 보고 모여든 척살객들이었다.

척살객 중의 한 자가 말했다.

[후후후! 우리에게 금제를 한계 당신들 실수야. 당신들 세 사람의 영패가 동시에 모여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우리를 통제할 수 없어.]

[네놈들은 잔혼살객의 명령을 받지 않았느냐?]

해천월이 고함쳤다.

다른 척살객이 키들키들 웃으며 말했다.

[우린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니까. 잔혼살객의 명령을 들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뜻이 그의 말과 우연히 일치했을 뿐이지. 자 그럼 이제 팔황지옥도법의 원본을 내 놓으실까? 뭔가 빠져있는 불완전한 비급을 익히는 건 위험한 일이거든...]

[네 네놈들... ]

해천월이 검을 움켜잡았으나 손에 힘은 들어가지 않고 핏물만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척살객이 말했다.

[우리 열명의 합공을 당신은 견디지 못했어. 흐흐흐... 그렇다면 잔혼살객이나 부운청풍객도 비슷할 것 아닌가? 으하하하... 삼마경의 진본(眞本)을 모두 빼앗아 연성하게 된다면 천하에 우리를 당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으하하하하... ]

척살객들은 마치 자신들의 세상이 도래하기라도 한 듯이 웃어 제꼈다.

해천월은 내심 탄식했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고 기르던 개에게 물린다고 하더니..... 내가 심제을에게 배신당한 데 이어 이놈들에게까지 당하다니....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거듭된 척살객들의 공격으로 그의 몸은 회복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

부하들은 모조리 죽거나 흩어졌으며 지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문득 해천월의 눈에 척살객 들의 뒤에 있는 굵은 나무가 들어왔다.

사람 허리어림에서 동강이 난 거대한 소나무인데 얼마나 굵은지 장정 몇 사람이 안아도 다 못 안을 정도였다.

나무 둥치 옆에는 썩어가고 있는 거대한 소나무의 잔해가 누워있다.

“허억!”

그 소나무를 본 순간 해천월은 혼비백산했다.

(이...이곳이 바로 그곳이었구나. 그의 혼령이 있어 복수라도 하는 모양이구나!)

척살객이 손을 내밀었다.

[자 어서 내놓으시지.]

해천월은 눈을 부릅떴다.

마치 십년 전의 상황이 그의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십년 전의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도 바로 이 장소였다.

해천월은 중얼거렸다.

[똑같다. 저렇게 내미는 손까지... 똑같다. 그가 독비신검객(獨臂神劒客)의 망령이 저들에게 붙었구나.]

그는 어디서 무슨 힘이 생겼는지 버럭 고함쳤다.

[너를 죽인 것은 심제을이다! 왜 그에게 직접 복수하지 않고 나를 괴롭히느냐? ]

그의 눈은 기이한 광기가 번들거리고 이미 눈앞을 보고 있는 것같지가 않았다.

손을 내밀었던 척살객이 놀란듯 눈이 둥그레졌다가 비웃음을 지으며 내뱉었다.

[지은 죄가 많아서 미쳐버렸군.]

[푸하하하... ]

척살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난.... 난 죽지 않을 테다. 비켜라!]

쐐애액!

해천월이 갑자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토록 만신창이 된 몸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였다.

척살객들은 성급하게 잡으려고 하지도 않고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이니 금방 지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목표가 해천월이었군. 해천월이 심제을 등에 의해서 제거되었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스스스!

척살객들이 달려가는 뒤로 석두공과 금사종이 나타났다.

[잘하면 몽땅 다 한군데 몰아서 죽일 수도 있겠군요.]

[아마도 살아있는 자들은 다 모일 것같군. 후후후... 한데 그들의 말을 들었겠지.]

금사종이 웃고 말했다.

석두공이 씽긋 웃으며 말했다.

[가당찮은 꿈을 꾸고 있더군요. 명년 오늘이 제사날인 줄 모르고...]

[가만 두어도 죽을 놈들이지. 내가 저놈들에게 납과 수은을 먹였지. 아마 한 두 달 내에 다 죽게 될 거야.]

금사종은 자신이 영단에 납과 수은을 넣어 먹인 사실을 이야기했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해천월의 생사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좀더 지나서 척살객들이 더 많이 모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해천월과 척살객이 달려간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사종의 이야기를 들은 석두공이 물었다.

[흑백쌍사는 살려주었습니까?]

[반만 살려주었네.]

[...?]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석두공에게 금사종은 싱긋 웃어보이며 말햇다.

[그자들은 도저히 교화할 수 없는 자들이었지. 그렇다고 평생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그자들의 경락의 끝을 모두 잘라버렸네. 내공은 가득해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지.]

[그것 참 좋은 방법입니다. 맞을 때는 힘을 쓸 수 있지만 때릴 때는 힘을 쓰지 못할 테니까요.]

석두공은 그 같은 수법에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

얼마를 더 걸어가다가 그가 말했다.

[몇 명이 더 늘었습니다. 이제 해천월이 죽을 때인 모양입니다.]

해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비신검객(獨臂神劒客) 섭영소! 노부가 아니다. 나를 막지마라! 모든 일을 꾸민건 심제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난 우연히 알게 되어 말려들었을 뿐이다.]

[흐흐흐... 이 영감이 독비신검객까지 죽인 모양이군. 어쩐지 지난 십여년간 독비신검객이 소식이 없다 했지.]

다른 음성도 들려왔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섭영소(攝瑩宵)!

 

고검문주 섭군천의 막내아들이며 그의 유일한 희망이라던 그가 아닌가?

섭군천은 섭영소가 우연히 얻었던 삼마경이 부운청풍객 등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섭영소가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한데 지금 해천월이 독비신검객이 섭영소라고 부르면서 뭔가 변명하고 있지 않은가?

쐐애액!

서로를 마주 본 석두공과 금사종은 빛살처럼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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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정주> 새벽. 이제 동녘이 환하게 밝아온다.

정주 교외 강가의 사당. 사당 앞의 모닥불은 꺼져 있고. 백살파 자객들이 모닥불 주위에 망토를 덮고 잠이 들어있다. 빈 술병이 널려있고. 먹다 남은 통닭과 오리고기도 있다. 모닥불에서는 연기만 가늘게 치솟고 있다. 그러다가

사내1; [어이 추워!] 몸을 떨며 깨어나고

사내1; [젠장... 어쩐지 춥다 했더니 모닥불이 꺼졌구만.] 오만상 쓰며 일어나고

사내1;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다. 모닥불을 다시 피우고 한숨 더 자야겠다.] 비틀거리며 사당 쪽으로 가고

사내1; [사당 문짝은 누가 떼어갔고...] 문이 안 달린 사당으로 들어가고

사내1; [마루나 뜯어다가 땔감으로...] + [!] 눈 부릅

쿵! 사당 바닥에 아무도 없다. 마른 풀이 깔린 바닥에는 제갈소소의 손발을 묶었던 밧줄과 입에 재갈 물렸던 천만 흩어져 있고

사내1; [젠장! 전부 일어나라 일 났다.] 사당 안을 살펴보며 버럭 고함지르고.

[헉!] [뭐냐?] [다지관음이 딸년 구하려고 쳐들어오기라도 했냐?] 다른 세 놈 기겁하며 일어나고

사내1; [제갈소소, 그 맹랑한 년이 포승을 끊고 달아났다.]

[이런...] [정말이로구나!] [일곱 살 밖에 안된 어린년이 어떻게 포박을 푼 건가?] 사당으로 달려와 안을 들여다보며 놀라는 세놈

사내1;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네 방향으로 흩어져서 추적하자!] 휙! 한쪽으로 날아가고

[난 이쪽을 훑겠다.] [젠장! 다 된밥에 코 빠트린다더니...] [이년아! 어디 숨었느냐?] 휘익! 휙! 다른 세 방향으로 날아가는 사내들.

곧 사당 앞은 조용해지고. 헌데

 

사당 내부.

달칵! 사당 바닥을 이루는 마루조각이 들썩이더니

툭! 툭! 조그만 손이 마루 조각 몇 개를 젖히고

이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미는 계집아이. 물론 제갈소소다.

당차고 똘똘한 표정으로 마루 아래 공간에서 밖으로 기어나오는 제갈소소

탁탁! 손으로 몸의 먼지까지 털며 사당을 나온다.

주변 살피며 모닥불이 피워졌던 곳을 지나려 하고. 그러다가

모닥불 옆에 남아있는 먹다 남은 통닭과 오리고기들

꼬르륵! 그걸 보는 제갈소소의 배에서 소리가 나고

다가가서

통닭을 집어 드는 제갈소소.

우직! 통닭의 다리를 하나 잡아 뜯어서

그걸 우물거리며 사당을 떠나는 제갈소소.

 

#134>

아침. 정주. 이제 강에는 아침인데도 배들이 많이 떠가고.

그 중 한 척의 여객선. 돛대가 두 개에 객실이 2층인 상당히 큰 여객선. 바로 벽옥령과 강혜분이 탄 배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갑판에는 사람들이 별로 안 나와 있는데. 뱃머리에 강혜분이 서있다. 죽립은 쓰지 않았지만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다. 배의 좌우와 선미에는 사공들이 서서 장대로 물길을 가늠하고 있고.

생각이 많은 표정인 강혜분.

그런 강혜분의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 #35>의 장면이다. 파노라마처럼 회상 씬으로

 

청풍; [확실히 누님은 여전히 십대소녀처럼 보이십니다.] 달칵! 웃으며 수저를 쟁반에 내려놓고

강혜분; [얘는 농담도 잘해!] 탁! 부끄러워서 청풍의 어깨를 손으로 치고. 헌데 그 순간

휘익! 강혜분의 몸이 허공으로 홱 떠오른다. 다리가 천장을 향하게. 손은 청풍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고

강혜분; [엄마야!] 거꾸로 선 자세가 되어 비명 지르고.

청풍; [놀라셨지요?] 웃고

청풍; [내려드릴 테니 안심...] + [!] 움찔 하고

스륵! 거꾸로 서는 바람에 강혜분의 치마와 속치마가 아래로 흘러내리며 아랫도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가죽신을 신은 발과 미끈한 다리. 삼각 빤스 같은 속옷으로 가려진 사타구니 일부까지

강혜분; [꺅!] 비명 지르며 급히 나머지 한손으로 사타구니쪽의 치마를 밀어서 아랫도리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게 하고

회상 끝

 

강혜분; (개구장이 같으니...) 얼굴 발개지고

강혜분; (물론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풍이에게 속살을 보여준 것이었으니...) 좋아 죽으려 하고

이어지는 회상. 역시 #35>의 장면

 

청풍; [이화접목의 수련비결입니다.] 건네주며 웃고

청풍; [그걸 수련하시면 아무리 힘 센 상대라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혜분; [고마워! 열심히 수련할게.]

청풍;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언제고 이화접목이 누님에게 필요한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회상 끝

 

강혜분; (청풍은 지금 같은 상황을 예견한 것일까?)

강혜분; (이화접목의 비결을 전수해준 덕분에 세상에 나올 때 조금은 두려움이 덜해졌는데...) 생각할 때

달칵! 1층 객실의 문이 열리며 벽옥령이 나온다. 여전히 남장이지만 역시 죽립은 쓰지 않았다. 열린 문 안쪽에는 여자들이 잠들어 있는 게 보이고

강혜분; [일어나셨어요 아가씨?]

벽옥령; [잘 잤어 혜분언니?] 하품하며 다가오고

벽옥령; [여긴 어디쯤이야?] 눈 꼬리의 찔끔 나온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다가오고. 강혜분은 몸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는 중이다.

강혜분; [밤새 개봉(開封)을 지나서 정주 근처를 지나는 것 같아요.] 망토를 벽옥령의 몸에 둘러주면서

벽옥령; [언니도 춥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거부하진 않고

강혜분; [전 괜잖아요. 아침 바람이 쌀쌀하니 피풍의를 두르고 계셔요.] 목 앞으로 끈을 여며주고

벽옥령; [고마워.]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벽옥령; [그런데 정주에서 낙양은 그리 멀지 않지?]

강혜분; [점심때쯤이면 지나갈 거예요.] 강혜분에게 입혀준 망토를 갈무리 해주고

벽옥령; [길은 멀리 돌아왔지만 시간은 오히려 적게 걸렸을 거야.] 정주 쪽을 보고

강혜분; [순풍이 불어준 덕분에 배가 빨리 황하를 거슬러 올라올 수 있었지요.] 함께 서서 정주를 보고

강혜분; [하지만 낙양을 지나면 험하기로 악명 높은 용문협(龍門峽)이 나와요.]

벽옥령; [잉어가 거슬러 올라가는 데 성공하면 용이 된다고 해서 등용문(登龍門)이란 전설이 생긴 그 용문협!]

강혜분; [강물이 너무 급해서 이 배는 거기까지 밖에 운행을 하지 않아요.]

벽옥령; [어쩔 수 없이 용문협 부터는 육로로 가야겠네.]

강혜분; [도보로 가는 건 상당히 힘들 테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셔야할 거예요.]

벽옥령; [견딜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벽옥령; [아무리 힘들어도 청풍오빠가 무사한 걸 확인할 수만 있으면 참을 수 있어.] 당찬 모습

강혜분; (아가씨의 이 지극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청풍이가 무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벽옥령의 옆모습 보며 소리없이 한숨. 그때

벽옥령; [저기 봐 언니!] 강변을 가리키고

강변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물이 보인다. 거리는 200미터 정도.

벽옥령; [아마 길가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주점 같아.]

강혜분; [손님들이 제법 있는 게 보이네요.] 역시 강변의 건물을 보고. 건물 주변에 사람들이 오가는 게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벽옥령; [저런 곳에서 아침을 먹으면 분위기 끝내주겠어.] 입맛 다시고

강혜분; [그러게나 말이에요.] 웃고. 헌데

 

#135>

두 여자가 보고 있는 강가의 주점. 강을 따라 난 큰 길가에 서있어서 손님이 많다. 이른 아침이지만 손님들이 제법 북적이고. 길을 오가는 손님들이 아침 먹으로 들르고 있다. 말과 마차도 주점 앞 마당에 세워져 있고.

멀리 강이 보이는 창가 자리. 의자가 네 개인데 청풍이 앉아서 강을 떠가는 배들을 보고 있다. 청풍은 주점 입구가 보이는 쪽 창가 자리에 앉아있다.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이 놓여있고

청풍; (저 배들은 밤새 강을 따라 올라오고 내려왔겠구나.)

여객선의 모습. 뱃전에 사람들이 서있는 게 작게 보이고. 물론 그중에 강혜분과 벽옥령이 있지만 청풍은 알지 못한다.

청풍; (저 배에 탄 사람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 길고 험한 황하를 거슬러 온 것일까?) 생각하는데

[음식 나왔습니다.] 턱! 점원이 쟁반을 내려놓는다. 쟁반에는 국수와 만두, 고기볶음 등이 있다. 돌아보는 청풍

점원; [맛있게 드십쇼.] 쟁반을 들고 돌아가고. 탁자에는 세 가지 음식이 차려졌고

청풍; (밤길을 걸어와서 배가 고픈 김에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켰다.) 젓가락 통에서 젓가락을 집어들고

청풍; (아무래도 다 못 먹고 남길 것 같구나.) 국수를 먹기 시작하고

 

#136>

강가의 사당.

휘익! 휘익! 사내1과 2가 날아내리고

사내1; [자네도 허탕인가?] 모닥불 옆에 내려서고

사내2; [십리 넘게 뒤졌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네.]

사내1; [일곱살 짜리 계집애가 밤새 그 이상 먼 거리를 걸어갔을 리는 없고...] 오만상을 쓰고

사내1; [다른 친구들이 간 방향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년이 이 근처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봐야...] 말하다가 흠칫하며 모닥불 있던 곳을 보고. 정확히는 통닭이 놓여 있던 곳이다

사내1; [우리가 안주거리로 사온 통닭을 다 먹었던가?]

사내2; [술 마시느라 안주는 거의 안 먹었지.] 사당으로 가려다돌아보고

사내1; [그런데 통닭이 통째로 사라졌어.] 통닭이 있던 곳을 가리키고

사내2; [혹시!] 팟! 사당으로 뛰어들고

사당 바닥의 마루판이 몇 개 흩어져 있고 그 아래 빈 공간이 있는 게 보이고

사내2; [이런 젠장!] 쾅! 발을 구르고

사내1; [혹시...] 다가와서 보고

사내2; [그년이 사당 마룻바닥에 숨어서 우리가 떠나길 기다렸다가 달아났네.] [통닭은 배가 고파서 가져갔을 테고...] 홱 돌아서고

사내1; [통닭을 먹으면서 갔으면 흔적이 있을 걸세.] 주변을 살피고.

사내2; [그렇겠지.] 다른 곳을 살피고. 그러다가

사내1; [!] 눈 번득

풀숲에 난 길에 닭다리 뼈가 하나 떨어져 있다.

사내1; [이쪽일세.] 외치며 달려가고. 사내2가 돌아보고

삐익! 삑! 호각을 불며 닭 뼈가 발견된 곳으로 달려가는 사내1. 사내2도 따라가고

 

#137>

주점에서 멀지 않은 강가.

[!] 온 길을 돌아보는 제갈소소. 살이 붙어있는 닭다리 하나를 들고 있는데. 삐익! 삑! 멀리서 호각 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닭다리를 뜯으며 종종 걸음을 하는 제갈소소. 앞쪽에 주점이 보인다.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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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劍魔의 洞府

 

 

 

흰 그림자들은 두 마리의 흰털을 가진 박쥐원숭이같은 괴물들이었다.

소일초가 앞서 잡은 검은 색 박쥐원숭이 괴물들보다는 훨씬 인간의 모습에 근접해 있었고 나이도 많은 듯했다.

이상하게도 그 괴물들은 소일초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단지 그를 노려보다가 등을 돌려 작은 석동 안으로 더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를 따라 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소일초는 흥미를 느끼고 괴물들을 묶었던 줄을 놓아 버리고 흰 털의 괴물들 뒤를 따라갔다.

동굴은 아주 깊었고……

침묵과 고요가, 그리고 앞서가는 두 괴물의 숨소리가 긴 메아리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좁은 동굴을 따라, 두 괴물과 한 사람의 아이가 무거운 침묵으로 걷고 있었다.

박쥐와 같은 모양이면서도 학처럼 하얀 날개를 가진 온통 하얀 몸을 가진 두 괴물과 비록 호기심과 장난기가 얼굴을 덮고 있지만 단아하고 고고로운 기풍을 지닌 백의를 입은 소일초,

자박 자박……

무거운 침묵으로 음습한 동굴 통로를 해치던 두 괴물은 이윽고 하나의 석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

 

석문에는 그같은 다섯자의 글이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투박하나 패기와 강렬한 기상이 서린 서체였다.

한데,

――시체(屍體)!

고해금마옥이라 쓰여진 그 석문 앞에는 한구의 시체가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승인(僧人)은 승인이로되 전혀 승인같아 보이지 않는 한구의 시신……!

그 승려는 아주 오래전에 죽은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있는 듯이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이 백발(白髮)과 백미가 가슴까지 칭칭 늘어진 노승(老僧).

파계승이었던가?

시신의 허리춤에는 두어 개의 호리병이 매달려 있었다.

회색의 승포는 얼룩덜룩한 것이 죽기 전에 많은 술을 엎지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함부로 경시할 수 없는 웅장한 기도를 죽은 다음까지 지니고 있는 이 노승은 누구인가?

소일초는 누군가를 만날 거라는 느낌을 가졌지만 죽은 중을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었기에 어리둥절했다.

두 백색 괴물은 멈추어 서서 고해금마옥의 문을 가리키며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중의 시체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소일초는 노승의 시체를 세밀히 살펴보았다.

과연, 노승의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은색 목탁에는 손톱으로 긁어서 새긴 듯한 글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노납은 소림승으로 제십칠대 장경각주(藏經閣主)인 우광(宇廣)이다.

노납은 나이 칠십에도 깨닫지 못하는 불법에 회의를 느껴 마침내 파계를 하고 말았다. 승인이로되 승인의 법도(法度)에 따라 생활하지 않았으며 술과 고기를 주식(主食)처럼 즐기고 사는 파계승이 된 것이다.

주육(酒肉)은 고사하고 살생(殺生)도 마다하지 않으니 소림사에서 어찌 노납을 용납하랴? 마침내 소림사에서는 노납을 입적한 것으로 꾸미고는 노납에게 중원에서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에 노납은 중원을 떠나 변황을 수 없이 떠돌았지만 늙은 목숨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인생의 고해속에 머물러 있었다.

……>

 

글을 남긴 인물은 백여년전의 전설적인 소림신승(少林神僧) 우광선사(宇廣禪師)가 남긴 것이었다.

달마와 육조(六祖) 혜능(慧能)이래의 고수로 알려진 우광선사는 그 무공의 탁월함 뿐만 아니라 주육과 살생을 마다않는 괴승으로도 유명했다.

결국 그 같은 기행이 원인이 되어 소림에서 쫓겨난 그는 변황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해, 우광선사는 우연히 남황(南荒)에 내려왔다가 한명 전설속의 거마(巨魔)의 종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검마(劍魔)!

 

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이름인가?

달리 아수라마존(阿修羅魔尊)이라 불리던 백 육십여년 전의 살인마왕(殺人魔王)!

그는 저 혈기자보다도 한 시대 전에 전무림을 공포로 휩쓸었던 일대거마(一代巨魔)였다.

그가 무림에 활동한 시기는 불과 이년이었지만, 당시 그의 일검을 피한 인물도 일 검에 죽지 않은 인물도 없었다.

만일 그가 계속 무림에 남아있었다면 혈기자가 과연 천하제일인의 명예를 차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시 될 정도였다.

이년……!

그 짧은 시간동안 헤아릴 수도 없는 숱한 무림고수들이 검마의 마검(魔劍)하에서 목숨을 잃고 불귀고혼(不歸孤魂)이 되었었다.

검마의 마검식(魔劍式)에 희생당한 무림명숙들의 시체는 너무나도 참혹한 모습이었다.

검마에 의해 살해 당한 흔적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다.

검마의 마검이 머리를 스치면 스친 상처 부분이 동그랗게 파여 나갔고 가슴과 배를 스치면 그 부분에 동그란 구멍이 뚫리면서 내장이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름하여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

그 저주의 검법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하여 누구나 검마를 두려워 했다.

하지만 공포와 전률의 상징이던 검마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어 버리는 바람에 서서히 무림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 살해당한 시체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검마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납은 검마의 종적을 발견했을 때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아수라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오랫동안 삶과 불법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노납은 마지막으로 보살행(菩薩行)을 하고 해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노납이 비록 소림칠십이절기 중에서 육십삼종을 익혀 감히 달마조사와 육조 혜능께 비견된다 하나 검마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검마의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은 이미 인간의 검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각오한 노납이 아니던가?

노납은 그 길로 화기(火器)의 명가인 축융장(祝融莊)에 숨어들어가 그들 일족 최강의 화기인 축융화탄(祝融火彈)을 훔쳐내어 목탁에 가득 채웠다.

최악의 경우 그것을 터트려 검마와 동귀어진할 각오였다.

하나 노납은 검마의 얼굴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노납이 문 앞에 당도했을 때 검마는 이미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담담히 한 수의 선시(禪時)를 읊었다.

 

――방안에 가득하니 그저 지고 난 매화향(梅花香)이로구나.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도 거울에는 그 얼굴이 남았도다.

 

깜짝 놀라서 노납은 묵상에 잠겼었다.

이미 그는 검을 놓고 세상을 버렸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 검마는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에 대한 복수심으로 세상을 피보라에 잠기게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행위에 회의를 느끼고 중원에서 머나먼 이곳 남만으로 내려와 스스로를 고해금마옥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노납은 검마가 던진 시구를 되뇌이다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이요 불법(佛法)은 무상(無想)이라는 것이다.

노납은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알량한 영웅심으로 이곳 고해금마옥을 찾아왔다가 오히려 노납 자신이 구제를 받은 격이로다!

이제 노납은 비로소 해탈하여 입적하게 되나 다만 노납의 피륙을 추르려 줄 사람이 없음을 아쉬워할 뿐이로다.

 

임인년 계축월 파계승 우광 절필.>

 

우광선사의 유언은 그렇게 끝나 있었다.

햇수로 추스려 보니 그가 입적한지는 어느덧 팔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여기가 검마라는 사람의 동굴이었구나.”

우광선사가 남긴 글을 읽은 소일초는 목탁을 집어들며 중얼거렸다.

“한데, 중은 시체를 불태운다고 하던가? 밖에 악어를 굽던 나무가지가 남았으니 나도 좋은 일 한 번 해보지……”

몸을 일으킨 소일초는 힐끗 두 마리의 흰 괴물을 보고는 석문을 밀쳤다.

그가 석문을 미는것을 보고서야 두 마리의 괴물은 동굴을 되돌아 나가는 것이었다.

 

* * *

 

철그렁, 철그렁!

싸늘한 쇠사슬의 부딪침 소리와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어울어진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의 안쪽.

 

――괴인(怪人)!

 

세상에 이토록 섬뜩한 기운과 참담한 몰골을 지닌 괴인이 존재했던가?

장작개비처럼 앙상하게 마른 몸에 걸친 적의는 헤어질대로 헤어져 중요부분만 가렸고……

제멋대로 이지러진 괴인의 이목구비는 도대체 어떤 부위에 무엇이 박혀있는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만,

츠츠츠!

칼날처럼 예리하고 싸늘한 눈빛만이 부딪치는 것은 무엇이나 태워버릴 듯 강렬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바닥까지 치렁치렁 늘어진 적발(赤髮)과……

깡마른 몸에 십자(十字)로 비켜 꿰뚫어진 수십 개의 만년철삭(萬年鐵索)!

검푸른 쇠사슬에 비파골(琵琶骨)이든 척수(脊髓)든간에 마구 꿰뚫고 지난 괴인의 몰골은 참으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이 괴인……

그가 바로 전설적인 살인마왕인 아수라마존(阿修羅魔尊) 검마(劍魔)였다.

문득,

번쩍!

죽음같은 침묵을 흘려내던 검마의 두 눈이 벼락불 같은 광망을 일으키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렇다.

저벅저벅……

석실로 들어오고 있는 백의를 입고 키보다 큰 장도를 등 뒤에 짊어진 한 명의 소동,

바로 소일초를 발견한 것이다.

“……”

“……”

두 가닥의 눈빛이 하나로 엉키고 소일초의 영악한 얼굴에 경악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아! 정말 무서운 기도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애! 우광이란 중은 검마라는 이 늙은이가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 같다더니 전혀 아니올씨잖아!’

소일초의 눈이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을 발견했다.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경악이 걷히고 가득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불쌍한 영감이네. 저렇게 쇠사슬로 칭칭 묶여있다니……’

그는 알리가 없었다.

그 쇠사슬은 검마가 스스로를 묶은 것이라는 것을……!

검마는 세상에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쇠사슬로 자신의 요혈을 뚫어 묶어놓았던 것이다.

소일초는 겁도 없이 적발의 검마를 향해 다가가 천진하게 물었다.

“영감이 바로 검마야?”

순간, 새파란 안광을 작열시키며 소일초를 노려보던 검마의 눈빛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허허허허…… 검마라! 네가 지금 본좌가 검마냐고 물었느냐?”

“그래…… 본 신행마동께서 영감을 검마라고 불렀어.”

두려움도 없이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일초,

찰나,

“크하하하하!”

검마는 돌연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을 통째로 허물어 뜨리는 듯한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윽!”

그 광소의 엄청난 위력을 견딜 수 없는 듯 소일초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웃지마! 영감! 왜 웃는 거지? 내가 검마인 영감을 검마라고 부른 것이 무어 잘못 된 것이라도 있는가?”

티없이 맑은 동공에 분노한 기색이 가득 실리자 검마는 문득 웃음을 멈추었다.

하나 그는 곧 차갑고 날카로운 일갈을 터뜨렸다.

“네녀석은 누구냐? 엄마품에 있어야 할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까지 왔느냐?”

소일초는 검마의 싸늘한 물음에 오히려 장난기어린 웃음을 피워올렸다.

“나는 소일초야, 당금 무림에서 불세출의 악명(惡名), 아차 실수! 악명이 아니고 위명(威名)을 떨치고 있는 신행마동이 바로 나야!”

순간, 검마의 두 눈에서 새파란 광망이 사라지며 주체하지 못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 불세출의 악명을 떨치는 하하…… 신행마동이라고…… 네가?”

“물론이지. 무림에서 신행마동은 오직 나 소일초 뿐이야.”

검마가 웃음을 멈추고 소일초를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이제보니 대단한 꼬마로군, 그 나이에 내공이 이미 육갑자에 달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검마는 산더미 같은 기도(氣道)를 전신에서 폭풍처럼 흘려내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엄청난 기도는 소일초가 여태껏 그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소일초가 일전에 만났던 혈기자 외에 검마에 필적할 만한 고수는 오백년 내에 없었다.

그리고 혈기자는 반로환동한 후에는 기도마저 부드러워져 전혀 위압적이지 않았다.

자연히 지금 검마가 풍기는 압도적인 기도같은 것은 혈기자에게도 없었다.

소일초는 정말 검마가 무서운 고수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느정도 위축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까지와는 전혀 달리 저절로 아버지에게 대하듯이 말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일초는 애써 당당함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검마 할아버지를 만나보려고 남황까지 내려왔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도대체 검마라는 이름조차도 이곳의 석문 앞에서야 알게 된 그였다.

“나를?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우광선사 외에는 아무도 모를 텐데?”

“내가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분명히 할아버지를 찾아왔잖아요.”

검마로서는 이 꼬마가 천하제일의 거짓말쟁이의 제자라는 것을 알리가 없다.

소일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 꿈에 악귀사신을 만나는 꿈을 꾸었더니 이렇게 거짓말 할 일을 만나게 되는 구나.’

“너는 어떻게 이곳을 알았느냐?”

“세상에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잖아요.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구요.”

득의 만만하게 소일초는 다시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

“배우지 않고도 안다고? 푸하하하!”

검마는 또 한바탕 소용돌이치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이어,

“네 이놈! 지금 감히 노부를 우롱하려고 하는 것이냐?”

웃음을 멈춘 검마는 심장을 뜽어내는 듯한 섬뜩한 목소리로 소일초를 다그쳤다.

그러나, 소일초는 오히려 천진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할아버지! 내가 무엇을 우롱한다는 거지요?”

순간 검마의 차가운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할아버지? 저…… 쥐방울만한 녀석이 또 본좌를……’

비정(非情)과 살륙(殺戮)과 유혈(流血)로 무림을 종횡하다가 남황으로 들어와 고독하게 살아오기만 했던 검마……

그가 언제 이처럼 가까운 혈육의 호칭을 들어 본 적이 그 얼마만인가?

비록 소일초가 거짓으로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할 지라도 검마는 그의 호칭에서 심연의 깊이에서 잊혀졌던 어떤 감정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심과 달리 검마의 얼굴에는 더욱 새파란 빛이 가공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증스러운 녀석! 어려서부터 거짓부리부터 배우다니……! 네가 아무리 본좌를 속이려 해도 소용없다. 장차 네녀석으로 인해서 무림이 얼마나 소란스러워질지 모르겠구나.”

“……?”

“예전 같으면 당장 네놈을 죽여야 하겠으나…… 노부와 함께 처절한 수행을 거치도록 해서 네 놈의 심성을 바꾸어 놓겠다.”

“꽥! 수…… 수행이라니요? 무……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이놈! 내가 한때의 광기를 억제치 못해서 저지른 만행을 참회하기 위해서라도 네 녀석을 장차 무림에 복이 되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아야겠다.”

검마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하나, 소일초는 오히려 환한 미소를 검마에게 던지는 것이니…… 설마 그렇게 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고 녀석 참……!’

그런 소일초를 새파란 안광을 폭출시키며 바라보던 검마의 눈가로 따스한 정감이 스쳐갔다.

그것은 평생을 살륙과 세상에 대한 증오로 살아온 검마가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이한 감정이었다.

 

――검마!

 

일백육십여 년 전 무림천하를 한자루의 검으로 무자비하게 휩쓸어 천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일초무적(一招無敵)의 살인마!

비록 그 활동기간이 이 년이란 짧은 시기였지만 천하의 모든 명인, 고수들이 두려워 해 마지않았던 고금제일의 검수(劍手)!

소림의 불세기재로 불리웠던 우광이 동귀어진할 작정으로 축융화탄을 목탁속에 넣고서 찾아 다녔던 공포의 거마(巨魔)!

뿐인가?

당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백인산장의 도객들이 비밀리에 검마를 잡기위해 나섰으나 삼십여명의 도객들이 역시 단 일초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검마의 어마어마함을 더이상 설명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 그가, 그토록 강인함과 피와 잔인(殘忍)으로 점철되었던 그가 냉혹하고 비정한 응어리를 드리운 얼굴에 따스한 기온을 피워내다니!

백 수십여 년의 세월을 처참한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오며 참회를 한 때문인가?

그의 불성이 이미 깊은 경지에 다다랐음인가?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정이 너무 그리워서인가?

이것은 기변 중에도 경악할 기변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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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兎死狗烹 (1)

 

 

 

지리멸렬(支離滅裂),

귀산의 무림대회에 모였던 무림인들은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어버렸다.

극소수에 불과한 척살대들은 지난 열흘 동안 팔천 명이 넘는 무림인들을 살해했으며, 그들의 사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살아남은 무림인들은 그들의 살수를 피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으며 어떤 자들은 아예 검종맹이나 잔혼각, 적룡혈운도로 투신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기도 했다.

무림은 오십 명이 채 되지 않는 척살대로 인하여 혈풍에 잠겨버렸고 부운청풍객등 삼인의 세력은 그것을 기화로 무림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오직 웅크리고 있는 구대문파와 단혼곡, 그리고 해남도등의 세력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위용을 자랑하던 백검보도 귀산의 무림대회에서 멸망해버렸고, 보주인 검성 당이정과 만박노조는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다.

명실공히 검종맹과 잔혼각, 그리고 적룡혈운도의 수중으로 천하는 떨어져 버렸다.

그들의 만행이 각지에서 자행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이 야망의 세계...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삼인은 서로를 노리기 시작했는데 일시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천하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

 

[은사(隱四)가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금포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본좌가 직접 키운 은사가 죽었단 말이지? 고검문준가 하는 놈에게...]

[...!]

허공의 한 자락에선 침묵을 지켰고 금포노인은 살기를 꾹 억누르는 듯이 보였다.

그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은사의 무공을 너와 비교하면 어떠하냐?]

[오백초는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자에 대해서 다른 할 말은 없는가?]

[무림에 대해 한이 많습니다. 은오(隱五)의 전서에 의하면 무림을 멸망시킬 생각까지 갖고 있습니다.]

금포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를 건드리지 마라. 야망이 없는 자를 야망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우를 범할 순 없다. 그가 강하고 약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은육(隱六)을 만박에게 보내라. 만박을 죽이려는 자는 먼저 죽여라. 그를 철저히 보호하라. 단, 지금처럼 자유를 보장한 상태에서...]

금포노인은 이상하리만큼 만박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존명!”

허공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침묵이 실내에 흘렀다.

[화와 복은 서로 멀리 있지 않고, 기회와 위험은 항상 같이 한다! 은세정검회의 꼬리가 드러난 지금 고검문주가 나타나고 또 석두공이라는 애송이가 날뛴다. 하지만... 은세정검회만 부순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본좌가 직접 상대할 터이니... 또한 기계인간이 있지 않은가?]

노인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외쳤다.

[미사! 울어라!]

[...?]

미사는 금포노인의 엉뚱한 요구에 어리둥절했으나 즉시 그의 명령에 따랐다.

[흑흑흑... 엉엉... 흑흑흑... ]

그녀는 금포노인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큰소리로, 그리고 정말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 듯이 울었다.

그러면서도 요염하게 보이기 위해 몸을 비틀고 비통하게 몸부림쳤다.

노인은 다시 외쳤다.

[묘선(猫仙)! 웃어라!]

묘선이라는 여인은 귀여운 암코양이 같아 보였다.

어딘지 연약해보이면서도 앙칼진 데가 있었다. 또한 오밀조밀하면서도 색정을 풍겨내는 듯한 작은 둔부를 지닌, 그야말로 암코양이 같은 여자였다.

[깔깔깔깔... 호호호호...]

그녀는 코가 둘러빠질 듯이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엉엉... 흑흑흑...]

[깔깔깔... 까르르르... 호호호... ]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묘한 부조화를 이루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노인이 눈에서 기이한 광채를 띠며 명령했다.

[환사! 묘선의 둔부를 때려라. 욕을 하면서 때려라.]

[장희(薔姬), 미사를 개처럼 물어뜯어라.]

노인은 괴이한 요구를 마구 늘어놓았고, 여인들은 그의 명령을 한치도 어김없이 이행했다.

울음소리와 눈물이 배어나올 듯한 웃음소리, 그리고 욕소리와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미친 짓이었다.

침상위의 여인들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노인은 음악을 감사하듯이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울고 웃고, 개처럼 짓고 물어뜯고 때리고 욕하고...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노인은 참선하는 듯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번쩍!

노인이 감았던 눈을 떴다.

[한 달... 앞으로 한 달, 늦어도 한달 보름이면 모든 것은 끝난다. 더 빠를 수도 있다. ]

낮게 중얼거린 노인이 큰소리로 말했다.

[전 제자들을 무림으로 내보내라. 앞으로 한달 이내의 무림 동정에 대해서는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주시해라. 은세정검회가 움직일 것이다.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야 한다.]

[존명!]

허공의 일각에서 소리가 들렸다. 약간 흥분한 듯한 음성이었다.

여인들도 모두 미친 짓을 그만두고 가만히 있었다.

금포노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정말 움추려야 할 때다. 은세정검회를 멸망시키기 위해... 본궁의 천년을 기다려온 소망이 눈앞에 다다랐다.]

스으으으!

노인의 몸이 구름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놀랍게도 그동안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침상을 떠나 문을 나서고 있었다.

여인들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궁...궁주님... ]

[궁주님... ]

순간 침상에서 새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르...

지옥의 마화같은 푸른 불꽃은 침상과 그 위의 여인들까지도 동시에 재로 만들어버렸다.

푸른 불꽃 속에서 여인들이 몸부림치다가 재로 변해갔다.

침상도 여인들도 모두 재로 변하고 났을 때 불꽃은 절로 사그라졌다.

그동안에 수 없이 벌어졌던 육체의 향연이 펼쳐졌던 흔적은 이 세상에서 모두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문이 열리고 네 명의 미소년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빗자루로 재들을 쓸어담아 밖으로 가져가 버렸다.

궁주의 유일한 여인이고 싶었던 미사의 꿈도 한갓 푸른 불꽃 속에 재로서 사그라져 버렸고, 청춘과 인생의 참된 모습을 느껴보지 못하고 오직 왜곡된 정사의 도구로 살아왔던 가련한 젊음도 그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피를 먹고 영웅은 자라고, 남자의 야망은 여자의 한을 먹고 이루어진다.

오직 한 사람의 야망을 위하여,

그 야망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졌던 여인들...

그녀들의 숨결은 독존패왕궁에 연기가 되어 흘러들어갔을 것이건만...

 

× × ×

 

[크하하하하... ]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은 비분강개한 광소를 터뜨렸다.

잔혼살객과 부운청풍객 심제을이 그의 앞에 우뚝 서있었다.

[크흐흐흐... 잔혼살객! 다음 번엔 네 차례다. 심제을 저 위선자가 너를 내버려 둘 것같은가?]

해천월이 잔혼살객을 노려보며 이를 갈앗다.

[천하는 혼자서 다스리기엔 너무 넓지. 부운청풍객은 물론 나를 죽이고 싶겠지만 일인천하는 결코 오래갈 수가 없지. 통제력이 약해져서 금방 무너지고 말테니까. 후후후... ]

잔혼살객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제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셋이 나눠 갖기는 너무 좁지.]

[크하하하! 심제을 기억하느냐? 오년전에도 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 천하는 열이 갖기는 너무 좁다고... 잔혼살객, 이래도 심제을을 믿는가?]

해천월의 말에 잔혼살객은 히죽 웃었다.

[물론 믿지 않지. 후후후후! 하지만 나를 죽일 수 없지. 왜냐하면 그에겐 너를 죽일 때처럼 그를 도와서 나를 죽일 인물이 없거든. 비록, 몇 수 앞선다고 하지만 나를 죽이자면 그도 피해를 감수해야 할테니... ]

[좋다. 꼭 나를 죽여야 한다면 죽여라. 하지만 네놈들도 얼마가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고수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해천월은 포기한듯이 가슴을 내밀며 소리쳤다.

피이잉!

잔혼살객의 헐렁한 소매가 흔들리며 붉은 빛이 번쩍했다.

[당연히...]

퍼억!

해천월의 이마에 붉은 못이 박혔다.

그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너무 간단하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쩍!

갑자기 심제을의 장검이 빛을 발했다.

잔혼살객이 벼락같이 물러서며 소리쳤다.

[나마저 죽일 생각이오?]

[천만에... 일인자이면 족하지 궂이 천하를 다 거머쥐어야만 할 필요는 없지.]

철컥!

심제을이 장검을 다시 꽂았다.

죽어있는 해천월의 얼굴 가운데로 가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심제을의 장검이 만든 흔적이었다.

쩌억!

한데 해천월의 얼굴에 그어진 가는 선이 갑자기 양쪽으로 돌돌 말리는 것이 아닌가?

드러난 얼굴은 해천월이 아닌 전혀 엉뚱한 자였다.

[제기랄! 놈이 기미를 알아채고 도망쳤군.]

잔혼살객이 그자의 머리를 밟았다.

퍽!

두개골이 깨어지며 뇌수가 흘러나왔다.

[늙은 여우가 수작을 부렸어. 이놈은 부도주인 능특서(凌特瑞)라는 놈이오. 깨끗이 당했군.]

심제을이 돌아서며 말했다.

해천월은 미리 심제을의 생각을 예측하고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모든 세력이 파괴되었으니 다른 생각은 못할 거요.]

[안심하진 못하겠군. 난 그자를 뒤쫓아야 겠소.]

[좋도록 하시오.]

스으으으!

잔혼살객은 허공을 밟고 걸어가더니 잠시 후에 모습을 감추었다.

심제을이 중얼거렸다.

[너는 내 방패이지 방패... 나를 죽이려는 자는 아마도 내 수족을 자른답시고 너부터 죽이게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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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낙양(洛陽)> 거대한 도시. 저녁 무렵.

어느 객잔. 사람들 북적.

객잔의 독채. 그곳에는 인적이 없다.

쏴아! 객잔 내부.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고.

화려한 침실. 여자들의 짐이 널려있고. 한쪽은 욕실. 한쪽에는 휘장이 쳐진 침대가 놓여있다. 휘장이 쳐져 있어서 침대 안의 상황은 볼 수 없고

쏴아! 쏴! 주렴이 쳐진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고. 이윽고

촤락! 주렴을 젖히며 나타나는 여자. <무쌍일지>에 나온 우유라 캐릭터. 막 목욕을 한 촉촉한 모습. 몸에는 가운이 걸쳐져 있고 머리는 수건으로 싸매고 있다. 풍만하며 절세미녀. 나이는 좀 있어서 20대 후반이다.

우유라; [오랜만에 마음 놓고 목욕을 해서 개운하네.] 수건으로 목의 물기를 닦으며 나오고

우유라; [악양(岳陽)에서 이곳 낙양까지는 이천여리...] [그 먼 길을 오는 동안 목욕조차 마음 편하게 못했다.] 한쪽의 화장대로 가고.

우유라; [이제 목적지인 북망산(北邙山)까지는 지척이니 오늘은 편히 쉴 수 있겠구나.]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려하고. 그러다가

우유라; [!] 흠칫! 하며 뒤쪽의 침대를 보고

우유라; (소소(素素)가 어째 조용하네.) (그새를 못 기다리고 잠이 들었나?) 화장대 앞의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고.

우유라; [소소야! 엄마가 목욕하는 거 기다리다 잠들었니?] 사락! 휘장을 젖히며 미소 짓고. 하지만

쿵! 침대 안에는 아무도 없다. 대신 종이가 한 장 놓여있고

우유라; (소소가 없다.) 눈 치뜨고. 종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유라; [사봉(四鳳)!] 외치며 침실 문쪽으로 달려가고

우유라; [소소를 너희들이 데리고 있느냐?] 덜컹! 문을 열고. 하지만

쿵! 문 밖은 거실. 헌데. 거실에 네 명의 여자 무사가 죽어있다. 외상은 없는데 모두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죽어있다. 같은 복장을 하고 있고 얼굴도 비슷하고.

우유라; [사봉!] 비명 지르며 거실로 뛰어들고. 하지만 그 직후

어떤 연기 같은 것이 우유라의 코로 스며들고. 그러자

띵! 현기증이 느껴지는 우유라

우유라; [독!} 비틀하며 급히 두 손을 모으고. 숨을 멈추는 모습으로. 이어

우유라; (삼매진화(三昧眞火)!) 눈 부릅뜨고. 그러자

화악! 우유라의 몸에서 강한 열기가 뿜어지는 모습. 이어

우유라; [하악!] 참았던 숨을 토해내고

우유라; (살포된 후 제법 시간이 흐른 덕분에 독기가 옅어져서 어렵지 않게 태워버릴 수 있었다.) 서둘러 네 명의 여자무사에게 다가가고.

가장 가까운 여자의 목을 만지는 우유라

우유라; (질식해서 죽었다.) (기도에 부종을 일으키게 만드는 악독한 독에 중독당한 때문이다.) 이를 갈고

우유라; (그 때문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을 테고...) + [!] 생각하다가 깨닫고

우유라; (종이!) 팟! 다시 침실로 뛰어들고

침대로 달려가서

팟! 침대에 무릎을 꿇으며 종이를 낚아채듯 집어드는 우유라

 

<유서 깊은 제갈세가(諸葛勢家)의 안주인이신 다지관음(多智觀音) 우유라(尤乳羅) 부인께 인사드리겠소. 따님 제갈소소(諸葛素素)는 우리 백살파에서 보살피고 있소. 따님이 무사하길 바라신다면 북망산에서 열리는 호천집성연(護天集星宴)에는 참석하지 않으시기릴 바라겠소.> 종이에 적힌 글 내용

 

우유라; [안... 안돼!] 사색이 되어 덜덜 떨고. 두 손으로 종이를 든 채

우유라; [백살파! 네놈들이 감히 제갈세가의 유일한 상속자인 소소를 건드려?] [용서하지 않겠다.] 이를 갈고

 

#129>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암자. #54> #101>에 나온 암자. 위상영이 머물던. 그리 크지는 않은 절인데 비구니 암자라 비구니들만 돌아다니고 있고. 마당에는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도 한 대 서있다. 물론 위상영이 타고 다니는 마차다. 비구니들이 말을 돌보고 있고

어느 건물. 색목쌍교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위상영; [소림사...] 조금 놀란 표정. 독두신개와 마주 앉아있다.

위상영; [이청풍 그 사람...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나타났군요.]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표정으로 말하고

독두신개; [노화자도 그게 신기해서 급히 소식을 전하러 왔네.] 가는 천을 내밀고. 두 손으로 받는 위상영

독두신개; [화산에서 실종되었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놈이 이번에는 뜬금없이 소림사에 들렀다는 걸세.] 천을 펼쳐서 읽는 위상영을 보며

위상영; [무슨 목적으로 소림사에 들렀는지 궁금하군요.] 천에서 눈을 떼고

독두신개; [소림사에 파견되어있던 본방의 젊은 거지 놈이 탐문한 바에 의하면 종남파 제가 막운비의 소재를 물었다고 하네.]

위상영; [이십여 일 전 삼절곡이 의문의 멸문을 당한 것과 관련이 있겠군요.]

독두신개; [노화자도 그리 추측하고 막운비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젊은 거지들에게 지시를 해놨어.]

위상영; [소녀 역시 궁금하니 알아내신 게 있으면 알려주셨으면 해요.]

독두신개; [그리함세.]

독두신개; [그보다 호천집성연의 준비는 잘 되어가는가?]

위상영; [삼문육가뿐만 아니라 구대문파에도 초청장을 발송해놨어요.] [삼문육가의 참석은 확정적인데 구대문파중에서는 몇 개의 문파나 참석할지 모르겠어요.]

독두신개; [구대문파의 말대가리들이 제발 협조적으로 나왔으면 좋으련만...] 혀를 차고

위상영; [그분들도 조만간 저희 호천맹의 깊은 뜻을 알게 되겠지요.] 미소

독두신개; [호천집성연의 준비로 바쁠 테니 노화자는 이만 가보겠네.] 일어나고

위상영; [대접이 소홀해서 죄송해요.] 일어나고

독두신개; [대접이 소홀하다니... 거지에게 별 말을 다하는군.] 문을 열고 나가고. 문 밖에서 색목쌍교가 돌아보고

독두신개; [군사의 마음 속 정랑(精郞)은 노화자가 만나볼 테니 안심하게나.] 짓궂게 웃으며 걸어가고. 따라 나오는 위상영에게

<정랑...> 색목쌍교가 서로 눈짓을 하며 웃고.

위상영은 얼굴이 화들짝 붉어지고

휘익! 멀리 사라지는 독두신개

위상영; [짖궂은 분 같으니...] 한숨. 하지만 싫은 기색은 아니고.

위상영; (마음속의 정랑...) (하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문 밖에 서서 멀어지는 독두신개를 보며 생각하고

위상영; (큰 은혜를 입기도 해서인지 단 두 번 만났음에도 내 마음속에 새겨진 이공자의 인상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니...) 청풍을 떠올리고

 

#130>

<-위가장> 역시 저녁 무렵.

어느 건물. 음침한 인상의 무사들이 지키고 있고

 

혈부용; [...] 의자에 앉아서 편지를 읽고 있고. 그 앞에는 음침한 인상의 중년인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서있다.

혈부용; [...] 뭔가 생각하며 편지를 내려놓고

사내; [어찌 할지요?] 눈치 보고

혈부용; [이청풍... 이자의 종적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소회주님께도 했느냐?] 편지를 가리키고

사내; [혈부용님께 먼저 보고해야할 것 같아서...] 눈치 보고

혈부용; [잘 했다.] [근래 소회주님의 심기가 몹시 어지러운데 이런 일로 또 심란하게 해드릴 필요는 없다.]

혈부용; [이가놈은 내 선에서 처리하겠다.] [백살파와 지옥갱에 연락해서 준비를 시켜라.] 도도하게

사내; [존명!] 포권하고

나가는 사내

혈부용; [이청풍... 이청풍...]

혈부용; [소회주님 말씀대로 네놈이 정말 소회주님의 앞길을 막을 천적인지 나 혈부용의 손으로 확인해주겠다.] 사악하게 웃고

 

#131>

<-낙양 동쪽 정주(鄭州)> 강변의 도시. 때는 밤. 아주 깊은 밤은 아니라 도시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다 된 달이 떠있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정주가 멀리 보이는 강가. 음침한 사당이 한 채 서있고. 그 사당 앞 공터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흰옷을 입은 사내 네 명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다. 안주는 통닭과 오리등. 기름종이에 싸서 포장해온 것. 사내들의 복장은 백살파 자객들 복장. 옆에는 무기와 함께 복면을 벗어 놨다. 복면에 숫자는 적혀있지 않다.

사내1; [지령 받은 임무를 성공하긴 했지만 좀 아쉽구만.] [마침 다지관음 우유라 그년 목욕 중이었는데 말이야.] 술을 병나발로 불며 음험하게 웃고

사내2; [효과 좋은 독도 갖고 있었겠다. 그년을 쓰러트리고 재미를 볼 걸 그랬나?] 역시 입맛을 다시면서

사내3; [아서라 이것들아.] [우가년은 어쨌든 명색이 삼문육가중 한 가문의 주인이야.] 병나발 불던 술병을 입에서 떼며

사내3; [백일자객들이라면 모르지만 우리같은 하수들이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야.] 소매로 입가의 술을 쓱 닦고

사내3; [특히 그년이 익힌 태음신공(太陰神功)은 남자들과는 상극이라고 알려져 있어.] 심각한 표정

사내1; [남자들과는 상극인 무공?] [그런 게 있나?]

사내3; [있지.]

사내3; [남자가 익힌 무공에 공격당하면 타격을 입기는커녕 양기(陽氣)를 흡수해서 더 강하게 반격하는 무공들이 있어.]

사내3; [대표적인 게 구대천마중 뱅백마모의 빙극진살(氷極振煞)인데...]

사내3; [다지관음이란 년이 익힌 태음신공도 그런 계통의 무공이라고 알려져 있어.]

사내1; [자네 말이 맞다면 객기를 부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구만.]

사내3; [어쨌거나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는 다지관음이 호천맹에서 발을 빼게 하는 것이고...]

사내3; [저 어린 계집 덕분에 임무는 완수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어.] 사당을 돌아보고. 다른 놈들도 돌아보고

어둑한 사당 안쪽. 바닥은 마루 인데 마루 위에 마른 풀이 깔려있고 그 위에 7살, 즉 초등학교 1학년 쯤 된 소녀가 묶인 채 누워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고. 두 손은 뒤로 묶여있다. 두 발목도 묶여있고. 귀엽고 똘망똘망한 인상. 옷도 귀엽다. 이 소녀가 우유라의 딸인 제갈소소

사내1; [아쉽구만. 저것이 몇 살만 더 많았어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입맛 다시고

사내3; [그 인간 천벌 받을 소리를 하는구만.] 눈을 흘기고

사내2; [맞어. 어려서 아비를 잃은 불쌍한 아이를 두고 뭔 천벌 받을 소리인가?]

사내1; [그래 내가 말실수를 했네. 그만 좀 타박해.] 머쓱해서

사내3; [헛소리들 말고 술이나 마시자고...]

사내2; [그런데 제갈소소... 저 꼬맹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사내3; [우리야 모르지.]

사내3; [일단 백일자객들에게 인도하면 우리 임무는 끝인데...] [아마 총단으로 끌려가서 제갈세가를 옭아매는 인질 역할을 하게 되겠지.]

사내2; [명문가에 잘못 태어난 죄로 어린 나이부터 생고생을 하게 되었구먼.]

사내3; [그래서 인생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좋고 일방적으로 나쁜 경우는 없다고 하는 거겠지.] 술 마시고.

[...] 바닥에 누워 뭔가 생각하는 제갈소소. 헌데

슥! 슥! 뒤로 묶인 손가락이 꼼지락 거린다.

사각! 사각! 제갈소소의 가운데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데. 반지에서 작은 칼날이 돋아나 있고. 그 칼날로 밧줄을 자르고 있다.

 

#132>

<-낙양> 깊은 밤. 이제 대부분의 건물에는 불이 꺼져 있고. 달이 중천에 떠있다.

어느 절. 높은 탑이 있다. 9층으로 이루어진 중국식 탑

딱! 딱! 탑 근처에서 등을 들고 순찰 도는 두 명의 중. 한명은 등을 들고 앞장서고 한명은 딱딱이를 치며 따라온다.

[가을이 멀지 않아서인지 이제 밤만 되면 으슬으슬 해.]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울 계절이 왔어.] 딱! 딱! 대화 나누며 걸어가는 중들. 그러다가

[!]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 치뜨며 멈춰서는 등을 든 놈. 바닥을 본다

[왜 그래?] 딱딱이 치던 놈이 어리둥절하며 멈춰서고

[저... 저...] 등을 든 놈이 앞 쪽의 넓은 공토를 가리키며 덜덜 떨고. 딱딱이 치던 놈도 앞쪽을 보고

쿵! 공터에는 절 중앙의 탑이 달에 비쳐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데. 그 탑 꼭대기에 사람 그림자가 서있는 게 보인다

[사... 사람!] [탑 위에 누가 서있다.] 기겁하며 돌아보는 두 놈

쿵! 9층 탑의 꼭대기. 어떤 여자가 밤바람에 옷깃을 펄럭이며 서있다. 속 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머리는 풀어헤친 미친 년 분위기의 여자.

크로즈 업. 바로 우유라다. 양팔 벌리고 고개를 든 채 바람 냄새를 맡고 있다. 눈을 감고 있고

[히익! 요... 요괴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중들.

파삭! 들고 있던 등이 깨지며 바닥에 불이 확 일어난다. 기름에 불이 붙은 것

[부처님 관음보살님!] [제자들을 살려주십시오!] 엉금 엉금 기어 도망치는 두 중. 뒤에서는 등이 깨져 흐른 기름에 불이 붙어 활활 탄다. 하지만

 

우유라; (어디... 어디에 있느냐 소소야?) 아랑곳 하지 않고 탑 위에 서서 두 팔 벌린 채 바람을 맞고 있다.

우유라; (유괴당할 것을 우려하여 소소는 어렸을 때부터 백리향(百里香)을 조금씩 먹여왔다.) (그 때문에 소소 몸에는 백리향의 향이 배어있다.)

우유라; (바람의 방향만 맞으면 소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우유라; (제발... 제발 이 가엾을 계집을 도와다오 바람아!) 울고

<소소의 체향을 이곳으로 몰아와다오!> 탑 위에 미친 년처럼 서있는 우유라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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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밀림 속에서의 긴 꿈

 

 

 

괴물들은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차렸다.

호수가에서 소일초가 불을 피우고 악어 한 마리를 통째로 굽고 있었다.

어른의 허벅지만큼이나 굵은 나무에 매여져 있는 악어는 아직도 살아 있는 듯 몸부림 치고 있었다.

옆에는 마른 나무가지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소일초는 입맛을 다시면서 화력을 높이고 있었다.

괴물들도 그에게 혹사를 당한 뒤라 몹시 배가 고팠다.

게다가 아직 살아 있는 악어가죽 굽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군침을 삼키며 악어를 보고 있었다.

지글지글-------

직지글---------

마침내 악어는 축 늘어져 노글노글하게 익어버렸다.

순간 소일초는 손에서 아주 밝은 빛이 반짝 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얇고 날카로운 깃털모양의 수정(水晶)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길이는 약 두치 반 정도,

너비는 한치 못되어 보였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수정검우(水晶劍羽),

 

바로 도귀(賭鬼)의 수정검우였다.

그의 손에서 다시한번 깃털 모양의 수정이 반짝 하다 사라졌는데,

악어의 살점이 뚝 떨어졌다.

냉큼 받아서 입에 넣고 씹어보니 보기보단 영 맛이 없었다.

[쳇! 이러면 헛수고 한 거잖아……]

고개를 슥 돌려 한 줄로 나란히 누워있는 괴물들을 보았다.

[저 놈들은 수(數)가 많으니까 한 마리 쯤 잡아먹어도 괜찮겠지……]

그가 입에 넣었던 고기를 뱉고 눈빛을 번뜩이며 자기들을 노려보자 괴물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일초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저놈들을 집에까지 끌고 가서 키워야 되는데 눈앞에서 동료가 잡아먹히는 것을 보게되면 자살해버릴 지도 몰라…… 맛이 좀 없더라도 오늘 저녁은 이걸로 때워야겠군……]

그는 조금 전에 악어의 질긴 가죽을 씹었던 것이다.

그것이 맛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는 석달쯤 굶은 후 일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연해 보이는 곳을 찾아서 살점을 베어먹어 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즉시 휴대했던 소금을 꺼내놓고 본격적으로 악어를 파(?)먹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그가 먹는데 열중하는 것을 보고서야 긴장을 풀고 팍 늘어졌다.

실컷 먹은 소일초는 괴물들을 힐끗 보고는 엄청나게 굵은 나무둥치 밑으로 가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하는 짓에 비하여 잠자는 모습은 여느 어린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

…………

× × ×

 

…………

정뇌(井牢),

 

무림에서 가장 험난한 뇌옥이자 백인장의 금역이다.

수백 년 전,

백인장이 무림에서 암중리에 활동하던 때부터,

무림의 최고 거마(巨魔)들을 가둬온 뇌옥이다.

수직으로 밑으로 파내려간 우물처럼 된 이 뇌옥은 모두 구층(九層)으로 되어있으며,

각 층마다 팔 명 씩의 혼세거마를 가둘 수 있다.

이 곳에 갇히는 마두들은,

그 한 명 한 명이 무림에 웅크리고 있으므로 무림은 완전한 피의 혈풍에 휩싸이게 할 수 있음은 물론,

무림천지를 사마(邪魔)의 땅으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이었다.

때문에,

정뇌를 지키는 엄중한 경비는 백인장은 물론 중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백인장의 최일류 도객들의 온 힘이 기울어져 있다는 표현이 옳았다.

십여 년 전 도(刀)의 하늘인 백인장(百刃莊)이 무림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후 에는 오히려 정뇌에 잡혀 들어오는 마두의 수가 격감했다.

아마도 백인장 도객들이 무서운 힘이 강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자 사마가 숨을 죽인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백인장의 원로도객들이 정뇌를 관리해 왔는데 각 층 마다 한 사람의 원로가 직접 거처하면서 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로 도객들은 모두가 백인장의 전대고수들로 지금은 자기의 지위를 후손에게 물러주고 오직 도법의 연구와 장원 내의 중대한 일에만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인장(百刃莊)에는 백 명(百名)의 도객들 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를 이을 젊은 도객들과 은퇴한 노도객(老刀客)들도 있기 때문에 실제의 도객 수는 수 백 명이었고,

백인장의 식구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도법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게다가 백인장의 도객들의 도법은 각기 다른 것이었으니……

백인장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절세의 도법들만 해도 백 가지나 되었던 것이다.

실로, 무림에서 최강문파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정뇌……

지금은 불과 십 여 명의 마두들만 갇혀 있는데……

 

× × ×

 

쿠르르르르……

돌연 백인장의 절대금역인 정뇌의 여러 문들 중 하나가 둔중히 열렸다.

동시에,

콰아아아……

뭉타래 기운이 음습하고 사이로우며 마기로움의 구름덩이를 만들어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리고 어디선가로 부터 들려오는 전율의 호곡(乎哭),

[…으흐흐흐흐……]

한꺼번에 매케한 냄새에 실려오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괴성(怪聲),

절규,

울부짖음……

마치 저 십 팔 층 지옥유부(地獄幽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때다.

돌연,

검은 마기와……

소름이 끼치는 울부짖음이 소용돌이 치는 사이를 뚫고,

자박 자박 자박………

자그마한 인영 하나가 화섭자를 손에 들고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소리는 그의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불과 오 세가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어린아이가 아닌가?

일신에는 눈보다 흰 백의를 걸쳤고,

머리에는 두 마리의 학이 허공을 향해 날개짓을 하는 듯한 백학건을 늠름하게 쓴 이 소동(小童),

밝고 천진하며……

천상(天上)의 선동(仙童)처럼 아름다움을 지녔으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짙은 호기심이 어려 있었고 볼에는 장난기가 가득 배어 있는 듯 했다.

헌데 무슨 일로……

이토록 깨끗하고 고아하며……

그러면서도 장난꾸러기 같은 어린 아이가 이 음습한 정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적지 않는 어려움을 겪은 듯,

그의 깨끗한 백의가 먼지로 인해 몹시 더럽혀져 있었다.

헌데 일순간,

슷……!

이 어린 아이의 앞으로 한 명의 노인이 소리없이 날아내렸다.

단아한 백색장포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양 자연스럽게 장도(長刀)가 허리에 걸려있는 그의 모습은 기품이 이를 데 없었으며 눈빛은 맑고 고요했다.

거기에다 온화로운 얼굴,

마치 신선을 직접 대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노인이었다.

사실 신선 같은 노인은 날아내렸으나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에 뜬 채 유령처럼 떠있었다.

노인은 다섯 살 정도의 꼬마가 정뇌에 들어오자 아주 이상한 듯 했다.

번쩍,

그의 맑은 두 눈에서 날카로운 섬광이 작렬했다.

[애야 너는 누구냐?]

[…………]

[누구길래 감히 정뇌에 들어왔단 말이냐? 허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뭘 하기에 어린아이가 이곳까지 오게 한담……]

노인은 혀를 차면서 싸늘하게 목소리를 깔았고 어린 아이는 밝고 천진한,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짙은 얼굴을 들었다.

[영감이 원로십팔도객(元老十八刀客) 중 제일 막내 도객인 백승옥도(百勝玉刀)인가?]

비록 장난기가 들어있는 하대(下待)였지만,

조용한 미소에다 행동은 침착하고 유연했다.

백승옥도의 몸이 어이가 없는 듯 가는 진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소동을 보고는 절로 흠칫 했다.

(이 어린애……오오……저 뛰어난 기품과 아름다움……그리고 천부적인 골격……그런데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노부를 대번에 알아보는 것인가?)

백승옥도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학(鶴)처럼 단아한 기품의 소동을 세심히 살폈다.

(아무튼 간에 이 정뇌에는 기관이 없어서 탈이야……위에서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해서 이 아이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이녀석! 나는 백승옥도가 맞다마는 너는 누구길래 그처럼 어른도 몰라보고 말을 막 하느냐?]

백승옥도는 어린아이에게 크게 감탄하고 있었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겠다는 듯이 물었다.

순간 백의 소동의 얼굴에 영악한 웃음이 환하게 스쳐지나갔다.

[믿지 못하겠지만……이 정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영감처럼……나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없었지.]

[…………]

[또 나는 내가 누구라고 남들에게 한 번도 말할 필요가 없었지.]

환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가던 백의 소동이 돌연 어깨를 흔들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낭랑한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한참 후에야 그쳤다.

백의 소동은 웃느라고 빨갛게 변한 얼굴에서 애써 웃음을 흐트리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백승옥도에게 말했다.

[왜냐하면……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었고…………나에 대해 모른다는 것조차 그것은 내게 큰 죄에 해당되었고……또한 당연히 가혹한 형벌로 이어졌지……]

순간 백승옥도의 깊은 동공에서 가는 파장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너는 ?]

백의소동은 백승옥도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환한 웃음을 빨개진 얼굴에 다시 피워올렸다.

[그렇지.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군. 백인장의 모든 사람은 나를 며칠 전 부터 소일초(蘇一招)라고 부르지. 그 전에는 소태봉이라 불렀고……]

단아한 가운데 듣는 이를 압도하는 위엄이 서린 목소리……

백승옥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어 그의 얼굴에 가득히 번져오는 격동의 물결,

그는 그 자세로 소동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그 자리에 정중히 무릎을 낮추고 눈을 마주했다.

[십팔원로 중 백승옥도가 소장주(少莊主)를 뵙겠소.]

소장주……

이 아름답고 천진하며……

환한 웃음과 장난기 어린 소동은 바로 백인장의 절대고수인 도왕 소선풍의 일점혈육인 마동(魔童) 소일초였다.

이 순간,

[영감은 너무 겸양을 부리는 군.]

소일초는 하얀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어 백승옥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승옥도는 장주인 소선풍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원로도객인데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어깨를 두드려 주자 어이가 없었으나,

귀여움만 받고자란 철부지의 행동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영감이 이 정뇌에 들어왔을 테니까 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

이제 소일초의 말을 듣는 늙은 도객 백승옥도의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정뇌에 들어온 후 벌써 칠년의 세월이 흘렀다오. 앞으로 삼년이 지나면 다시 밖으로 나가 소장주를 만나게 되겠지요.]

[내가 태어나던 날 원로들이 옥소도(玉小刀)을 전해 축하해 주었다고 하는 것 같더군.]

소일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 크기의 반투명한 하나의 옥으로 된 소도(小刀)를 백승옥도에게 내밀었다.

그 소도를 받아든 백승옥도,

그의 얼굴에 짙은 감회가 서려왔고,

그는 추억에 잠기듯 소도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랬었지.……소장주의 탄생을 이 늙은이도 정뇌 안에서 소문으로 알게 되었는데…당시 후사가 없어 애태우시던 장주께서 후사를 얻으셨으니……정말 큰 경사였지……]

이때 소일초는 얼굴을 찌푸리며 재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엣취……엣취……]

백승옥도은 황망히 소일초를 부축하려 했으나,

소일초는 씩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이런 재치기쯤은…… 그런데 이 정뇌 안은 너무 환기가 안되는 것 같애. 공기가 나뻐……]

염려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소일초를 부축하려던 백승옥도,

헌데 돌연 백승옥도의 안색이 홱 변했다.

[소……소장주, 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 소도에 산공산(散功酸)을 바르셨소?]

느닷없는 백승옥도의 음성과 태도,

소일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입술을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왜 나는 아직도 영감이 반응이 없을까 걱정을 했어.]

[소……소장주……!]

백승옥도의 부처처럼 자비롭던 얼굴은 분노로 새파랗게 질렸다.

허나 소일초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시선을 환한 미소로 백승옥도의 얼굴에 던졌다.

[미안, 미안……그 산공독은 ……만지는 순간 혈맥을 타고 약효가 번진다지? 아마?]

순간 백승옥도의 얼굴이 더욱 참당하게 일그러지고,

급히 그는 내력을 돋구어 삼매진화로 산공독을 태워버렸다.

푸지지직……!

옥소도를 쥔 그의 손에서 연기가 뭉텅 피어오르는 찰나,

[헉……!]

백승옥도은 푸석한 신음성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소일초의 고사리 같은 손이 백승옥도의 마혈(麻穴)을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찍어버린 것이다.

[소……소장주……!]

아득히 정신이 달아나는 속에서도 백승옥도는 두 손을 내저었다.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환히 피어있던 미소와 천진과 장난기가 걷히고,

대신,

이제 조금 안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백인장의 다른 곳은 다 가보았지만 여기는 구경을 못했거든…… 얌전하게 구경만 하고 갈거니까 너무 화내지마. 위 층에 있는 영감들도 지금 똑 같은 신세니까……]

[소……소……]

[위층에는 마음에 드는 마두(魔頭)들이 없었어……여기서 괜찮은 마두를 만나면 잠시 놀다가 갈께……]

마음에 드는 마두라니?

마두와 놀다가 간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소일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 명만 세상에 빠져나가도 온천하가 피로 잠길 거마들과 놀다 가겠다니!

어쨌거나,

소일초는 완강한 걸음으로 음습한 뇌옥문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백승옥도는 혼절해 가는 영혼을 붙들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두 손을 휘저었다.

[소……장주……위……위험……무서운 일……제……발……]

허나,

소일초는 등을 돌리고 그를 힐끗 보면서 손을 마주 흔들어 주고 가벼운 걸음으로 지하 구층의 뇌옥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어,

소일초의 한개의 문앞에 가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두드렸다.

그런데,

퉁퉁------

그의 손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전혀 뜻 밖에도 마치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 문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관을 휙 돌려서 문을 열어보아도 텅빈 곳이었다.

대충 두드려가며 조사해본 결과 그래도 구층의 석실에는 네 명의 죄수가 있었다.

그 정도라면 어느 층 보다 많은 것이다.

위의 팔층 까지는 기껏해야 열 두 명의 마두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정뇌의 구층 석실에는 바로 무림에서 기이한 악명을 떨친 바 있는 사마귀(四魔鬼)가 감금되어 있었다.

[안에 있는 놈은 어떤 놈이냐?]

앳되지만 낭랑한 목소리가 정뇌안에 길게 울려퍼졌다.

[누군가?]

[누가 십 년 동안을…… 이 저주 받을 뇌옥에서 갇혀 지낸 우리를 부르는 건가?]

[우하하하……이 뇌옥에서 그렇게 소리치는 놈이 있다니 대체 어떤 놈이냐……누군냐?]

세 가닥의 종잡을 수 없는 음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안에 있는 네 놈들의 이름을 물었다.]

소일초가 소리쳐 물었고,

석실 안에서는 당당한 어린애의 목소리에 어리둥절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우린, 사마귀(四魔鬼)다. 너는 누구냐?]

이 음성은 먼저 들린 세 음성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귀 네 놈이라고? 그럼 너희들은 지옥에서 잡혀왔단 말이냐?]

[와하하하……이곳이 지옥이지 다른 지옥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 꼬마놈아!]

순간,

끝없이 울려퍼지는 웃음과

철컹……컹커덩……

소름이 끼치는 금속성에 불쾌함을 느낀 소일초가 고함을 쳤다.

[시끄럽다. 못된 것들……]

 

시끄럽다……

시끄럽다……

 

소일초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는 어둑어둑해 오고 있었는데 한 쪽에서 괴물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함치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길 꿈이었군……그 때가 언젠데 꿈을 꿔? 사마귀가 또 잡혀 들어왔나?]

아직 정신이 덜 들었는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때, 아버지한테 얼마나 혼났는데……씨……또 잡혀 들어와도 나는 모르는 일이야……]

 

밀림에서는 해가 지는 저녁에도 무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워있는 괴물들 옆으로 가서 발로 툭 찼다.

[일어나! 일어나!]

괴물들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다.

설사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두릅모양으로 엮인 데다가 손과 날개가 함께 묶인 상태에서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 씩 잡아 일으키자 괴물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낮의 악몽이 되살아난 때문이었다.

낮에 그 때,

소일초는 역시 괴물들을 세워놓고 차례대로 박치기를 해서 놈들을 모두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렬로 세워진 괴물들의 뒤에서 줄을 잡고 남은 자락으로 채찍질을 했다.

영특한 괴물들은 그가 집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짧은 다리로 줄지어 어둠이 깃드는 숲으로 걸어갔다.

거목이 줄지어 있는 사이를 얼마동안 걸어가자 정말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다.

장정 백 명이 손을 맞잡아도 다 두르기 힘들 정도로 굵고 큰 나무 였다.

나이가 몇이나 된 것인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적게 잡아도 수 천 년은 됐을 것 같았다.

거목의 밑동 주변에 드러나 있는 뿌리들도 무려 사 오 장의 높이가 되어 보였다.

괴물들은 그 뿌리들이 엉켜있는 사이로 차례대로 들어갔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 근처에는 흙이 오랜 시간을 두고 갈라지고 붕괴되어 천연의 동굴을 형성하고 있었다.

[제법 괴물다운 곳에 사는데……]

소일초는 어두운 동굴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는 내공이 깊어서 어둠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지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

동굴의 처음 얼마동안은 토굴이었으나 조금 더 들어가자 석굴이었다.

동굴안은 괴물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인공의 가미된 흔적마저도 보였다.

과연,

석동의 안쪽에는 사십여 평 정도 되는 넓은 곳이 나왔는데 그곳에는 수십 개의 야명주가 천정에 박혀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다.

누군가가 여기서 살았거나 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괴물들은 거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멈추어 섰는데,

소일초는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경각심을 일으켰다.

야명주가 빛을 발하고 있는 광장의 저 편,

다시 하나의 작은 석동이 있었고 흰 그림자 두 개가 눈을 반짝이면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괴물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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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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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장

 

               수라장이 된 무림대회 (2)

 

 

 

휘이이익!

사사사삭!

만박노조와 검성은 수십리를 펼쳐진 푸른 갈대밭을 이를 악물고 달렸다.

척살대에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무슨 수가 있더라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

설사 후일을 기약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값없는 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다.

만박노조가 달려가면서 허공에 대고 물었다.

[섬쾌(閃快)! 그들은 얼마나 쫓아왔는가?]

허공에서 섬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이미 앞쪽이 막혔습니다.]

검성이 놀라며 만박노조를 바라보았다.

만박노조가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하느냐?]

[북쪽으로 가십시오.]

파앗!

만박노조는 주저하지 않고 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갈대밭을 벗어났다.

갈대밭 밖은 은신할 곳도 마땅치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섬쾌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한데 그들이 사라진 직후였다.,

휘익!

그 자리에 갑자기 한사람이 나타났다.

척살대의 이십칠호 척살객!

[후후후... 어느 누구도 우리 손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자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의 눈은 만박노조와 검성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예외는 항상 있는 법이다.]

갑자기 그의 앞쪽에 흐릿한 몽영이 생기면서 말했다.

파앗!

이십칠호는 순간적으로 팔황지옥도를 펼쳐냈다.

상대가 누구든 일단 베고 볼 일이었다.

[팔황지옥도... 본좌는 이미 이십 년 전에 그것을 익힌 바 있지.]

몽영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음성이 이십칠호의 뒤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이십칠호가 당황하며 물었다.

몽영이 차갑게 내뱉었다.

[만박노조를 쫓지 마라. 그는 너 따위가 쫓을 하찮은 분이 아니시다.]

[개소리!]

촤아아아!

이십칠호가 번개처럼 팔황지옥도를 펼쳐냈다.

도기가 하늘까지 뻗칠것 같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놈!]

몽영의 입에서 싸늘한 외침이 터져 나오더니 붉은 손바닥이 허공에 떠오르며 이십칠호의 가슴에 가서 부딪혔다.

퍼엉!

이십칠호의 몸이 기우뚱 하며 쓰러졌다. 몸에는 아무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굳어진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말했거늘...]

스스스!

몽영은 나직한 소리를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한데 그 음성은 만박노조의 비밀호위 중의 한사람인 환사(幻死)의 음성이 아닌가?

만박노조가 상대하기 어려운 척살대의 인물을 이렇듯 가볍게 죽이는 그의 비밀호위 환사...

그리고 그가 말하는 만박노조의 신분은 대체 무엇인가?

 

***

 

북쪽!

만박노조와 검성이 달려가는 방향이다.

하지만 만박노조의 충실한 수하인 섬쾌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이쪽으로는 금사종이 석두공을 안고 달려가는 바람에 그를 뒤쫓는 척살대의 인물들이 삼십 여 인이나 달려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불과 이십리도 달리지 않아서 만박노조와 검성이 알게 되었다.

그들의 앞쪽에서 네 명의 척살객이 금사종의 흔적을 찾으며 땅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성과 만박이다. 죽이자!]

척살객 중의 한 사람이 그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삐이익!]

휘파람 소리가 퍼져나가고 다시 세명의 척살객이 더 나타났다.

스르릉!

검성은 주저없이 검을 뽑았다.

[이제 죽어야할 때인 모양이오. 하나라도 죽여서 무림에 보탬이 됩시다.]

만박노조의 얼굴에도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허허허허...]

그의 입에서 괴이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슴을 후벼파는 듯 내장을 도려내는듯 아픔이 서려있는 웃음소리였다.

그에따라 주변 숲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무살소(虛無殺笑)!

만박의 절기들 중의 한가지였다.

척살객들이 허무살소의 기습에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그때였다.

[일검만검(一劒萬劒)! 섬전사일(閃電射日)!]

검성이 벼락같이 날아들며 소리쳤다.

그의 검은 갑자기 수백 개로 변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일곱 명의 척살객을 무찔러갔다.

“허억!”

“이런....!”

척살객들이 대경실색하며 물러섰다.

그 순간 수백 개의 검들이 다시 하나로 모이면서 그들 중의 한명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파앗!

척살객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상체가 날아올랐다.

베어진 허리로 피와 내장이 쏟아졌다.

검성으로서는 평생의 진력을 모두 그 한초식에 담은 것이었다.

[이런 개같은!]

다른 척살객이 분노하여 소리치며 검성을 공격했다.

[구가천마검법!]

한사람이 고함치며 검을 들어 검성을 가리켰다.

검성은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옆으로 이장이나 물러섰다.

하지만,

파앗!

어느새 가공할 검기가 그의 소매자락을 베고 지나갔다.

검성은 이를 악물고 반격을 개시했다.

[파벽뇌(破壁磊)!]

구가천마검법이 빠르기와 강함을 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검성이었다.

도저히 그 빠르기와 강함으로서 구가천마검법을 상대할 수는 없다.

검성은 느리고 둔중하지만 결코 피하기가 쉽지 않으며 부딪히게 된다면 무엇이든 깨뜨려버리는 무거운 중검(重劒)의 수법을 펼쳤다.

펑!

[헛! 이늙은이가... ]

구가천마검법을 펼쳤던 척살객이 놀라며 물러섰다.

그의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검성의 내공에 정면으로 부딪혀 오히려 손해를 본 것이었다.

쐐애액!

만박노조가 단검을 뽑아들고 한명의 척살객을 향해 돌진했다.

쩌어어엉!

척살객의 도가 번득이며 그를 향해 떨어졌다. 팔황지옥도법이었다.

만박노조는 다시 번개처럼 물러났다.

스파앗!

그러나 척살객의 잔인한 도는 그를 따라붙으며 머리를 쪼개오고 있었다.

만박노조가 몸을 낮추고 빙글 돌았다.

도가 그의 이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박노조의 단검이 그자의 다리를 베었다.

파앗!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자는 고통도 모르는 듯이 다시 만박노조의 목을 베고 있었다.

(헉! 피할 수 없다!)

만박노조의 머리 속으로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이었다.

그는 죽음을 각오했다.

헌데 그때였다.

띵!

갑자기 그의 목을 베던 척살객의 도가 옆으로 튕겨나 허공을 베었다.

[...!]

[...!]

두 사람 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빨리 죽여버려!]

그때 다른 척살객들이 소리치며 만박노조와 검성에게 달려들었다.

각기 두 사람씩 더 검성과 만박에게로 달려들었다.

혼자서도 상대하기 어려운 척살객, 한꺼번에 세사람 씩 상대해야 할 경우가 되었으니 죽음은 그들의 목전에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파아아앗!

한줄기의 백광(白光)이 긴선을 그리며 숲에서 날아와 검성과 만박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피... 피해라!]

“어...어검술!”

척살객들이 경악하며 훌쩍 뒤로 물러섰다.

휘이이이!

백광은 다시 숲쪽으로 날아갔다.

이어 숲속에서 마치 신선같은 노인이 걸어 나오며 백광을 받아들었다.

백광은 한자루의 검이었다.

노인의 눈에서는 횃불같은 광채가 번득이고 몸에서 풍겨나는 기도는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압박하고 있었다.

검성이나 만박노조 등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였다.

이때 노인을 바라보는 검성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털썩!

그는 눈앞의 척살객들을 버려둔 채 무릎을 꿇었다.

[정녕... 사존(師尊)이십니까?]

[아직도 노부를 스승으로 생각하느냐?]

노인이 그의 앞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검성이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제자가 어찌 사부님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만박노조와 척살객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있었다.

검성만 하더라도 십대고수의 일인이며 당금 무림의 원로이다.

한데 그의 스승이 나타나다니...

만박노조는 검성이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눈앞에 말로만 전해지던 고검문의 문주가 서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검성의 스승인 고검문주 섭군천이 차가운 음성으로 내뱉었다.

[노부는 네게 검법을 가르쳤다. 한데 너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 검법을 갈고 닦음으로써 무림의 정기를 수호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얄팍한 지혜에 의지하는 무인(武人)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검성은 머리를 땅에 찧으며 말했다.

[제자 부족합니다. 부디 스승님께서 이끌어 주십시오.]

[지혜에 의지하면서도 너는 사제인 심제을의 간계에 빠져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무인으로 가르쳤건만 무인답지도 못하고, 지혜도 참다운 지혜를 따르지 못했으니 이래도 내 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

섭군천의 준엄한 말이었다.

만박노조가 허리를 깊히 숙이며 말했다.

[당노제가 그렇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후배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검성을 그릇되게 했습니다.]

섭군천이 차갑게 말했다.

[감히 노부 앞에서 검성을 운운하는가?]

[...!]

검성과 만박노조는 섭군천의 위세에 눌러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같았다.

여섯 명의 척살객들도 달아날 생각도 못하고 멈칫멈칫하고 있었다.

싸우지 않아도 섭군천의 무공은 그들을 몇 초 이내에 죽여버릴 능력이 있음을 그들은 느끼고있었던 것이다.

섭군천이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년 칠월까지다. 칠월이 되기 전에 심제을의 목을 내 앞에 갖다놓지 않는다면... 먼저 너희들부터 죽이겠다. 너희들을 시작으로 무림에서 칼든 자와 주먹쥔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버리겠다.]

엄청난 살기!

초목이 벌벌 떨릴 것같은 살기였다.

검성을 비롯한 자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섭군천의 눈이 척살객들에게로 향해졌다.

부르르...

척살객들이 벼락을 맞은듯 떨었다.

섭군천이 일갈했다.

[떠나라! 내 적이 아니기에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부의 일을 방해한다면 모조리 찢어 죽이겠다.]

휘휘휙!

척살객들은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다.

자존심이 강한 무림인들이 달아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데, 그것도 능력이 엇비슷한 자들끼리의 이야기다.

고검문주 섭군천 앞에서 무공으로 맞서려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輟)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사라지자 섭군천은 돌아섰다. 허공의 일각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있었다.

순간,

[요망한 것!]

섭군천의 호통소리가 터져 나오며 백광이 긴선을 그렸다.

파악!

허공의 일각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더니 두 토막이 난 시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크윽! 이 이럴 수... 궁주께 이 사실... ]

[섬쾌!]

만박노조가 소리쳤다.

섬쾌는 눈을 까뒤집고 죽어버렸다.

그 사이에 섭군천의 모습은 그 순간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만박노조가 원망스런듯이 말했다.

[벌써 육십 년... 그동안 섬쾌는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도 없었거늘... 왜 섬쾌를... ]

푸르르르!

그러나 그 순간 숲에서 한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전서구가 매달고 가는 서찰에는 암호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

고검문주가 드디어 나타났...

가공할 무공... 은사(隱四)가 일초에 당했...

주의요합...

은세정검회의 인물로 사료되는 두 소녀가 귀산에서 모습을 드러냈...

앞으로 은세정검회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

은오(隱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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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독룡간> 낮

절벽 아래에 자리한 동굴. 헌데 수많은 뱀들이 동굴 입구에 모여서 고개를 들고 동굴 안을 보고 있다. 뱀들은 크기가 제 각각이다

 

동굴 내부. 끝 쪽에 섭장천이 누워있다. 청풍이 그 옆에 무릎 꿇고 앉아있고. 용각신망은 섭장천의 머리맡에 따리를 틀고 앉아서 섭장천을 내려다본다.

섭장천; [지난 열흘 동안 고생이 많았다.] 죽어가는 얼굴로 청풍을 올려다보고

섭장천; [네가 철인진결과 절대삼검의 비결을 모두 숙지한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구나.]

청풍; [아직... 후배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눈물 글썽

섭장천; [그렇지 않다. 네게는 부족한 면이 전혀 없어.] 웃고

섭장천; [노부도 나름대로 재주가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문일지십인 너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섭장천; [철인진결과 절대삼검의 비결을 확실하게 깨우쳤으니 이제 수련하여 네 것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섭장천; [노부의 평생 성취가 남김없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으니 그저 기쁠 뿐이다.] 평온한 표정이 되고

청풍은 말없이 울고

꾸우! 용각신망도 울고

섭장천; [노파심으로... 다시 한 번 부탁을 하마.] [노부의 손녀... 유일한 핏줄인... 아연이를 찾아내 보살펴다오.]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섭장천; [아연이... 그 가엾은 것은 지존의 마수에 떨어져 무슨 수난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끝내 노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구나.] 탄식

청풍; [천지신명께 맹세컨대 아연소저는 반드시 찾아내 지켜드리겠습니다.]

섭장천; [고맙구나. 고마워.] 미소 짓고

섭장천; [아연이의 가슴 부분에... 나비 형상의 점이 있다는 걸 잊지 말거라.] 말할 때

꾸우! 용각신망이 섭장천의 이마를 핥으며 운다

섭장천; [오냐!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라.] [노부의 정기(精氣)를 먹게 해줄 테니...] 자애롭게 웃고

청풍; (정기를 먹게 해주신다니...) 놀랄 때

섭장천; [용각신망은 죽을 운명이었던 노부의 목숨을 연장시켜주었다.] [그 대가로 노부는 용각신망에게 노부가 평생 닦아온 정기를 주기로 했다.]

섭장천; [노부의 정기를 흡수하면 용각신망은 용이 되기 위한 수련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섭장천; [잘하면 몇 년 내로 용이 되어 승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풍; (섭노사와 용각신망 사이에 그런 계약이 있었구나.) 생각할 때

섭장천; [손을 다오.] 힘겹게 손을 하나 세우고

청풍; [예...] 두 손으로 섭장천의 그 손을 잡고. 직후

쩡! 마주 쥔 청풍과 섭장천의 손 사이에서 강한 빛이 뿜어진다

청풍; (이건...) 경악과 고통을 느끼는 표정

청풍; (섭노사의 손을 통해서 얼음같이 서늘한 기운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지잉! 청풍의 양손이 투명하게 빛나고

섭장천; [노부가 평생 수련한 검기(劍氣)다.]

섭장천; [이 검기를 물려받으면 검벽신공 단계까지는 수월하게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지잉! 손에서 나는 빛이 더 강해지고

청풍; [노사님...] 감격

섭장천; [항상... 천도(天道)를 생각하거라.] [아연이를 부탁하고...] 화악! 빛에 휩싸이는 섭장천과 청풍의 모습

 

#123>

저녁 무렵. 여전히 독룡간

독룡간 아래 절벽. 동굴 옆에 돌로 쌓은 무덤이 생겼다. 그 무덤 앞에는 녹슨 검이 세 자루 꽂혀있다. 무덤 앞에 청풍이 서서 보고 있다. 떠날 준비. 허리에는 용봉철적을 끼우고 있다. 무덤 앞에는 많은 뱀들이 모여서 조문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풍; (노야께서 주입시켜주는 검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이미 영면하신 후였다.)

청풍; (용각신망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아마 내가 정신을 잃었던 사이에 노야의 시신에서 정기를 흡수하고 떠났을 것이다.) 생각하다가

청풍; [소생은 이만 떠나겠습니다 노야! 부디 모든 근심 내려놓고 영면하십시오.] 무덤에 대고 포권하며 고개 숙이고

청풍; [노야는 저 이청풍의 사실상 스승이십니다. 베풀어주신 큰 은혜와 가르침,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청풍; [영손녀... 아연소저를 찾아내는 대로 데려와서 선영(先塋)으로 모시겠습니다.] 포권을 풀고. 이어

주변을 둘러보는 청풍.

뱀들이 조문하듯 모여 있고

청풍; [다시 돌아올 때까지 노야의 무덤을 잘 지켜다오.] 뱀들에게 말하고

고개를 숙이는 뱀들

청풍; (용각신망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쉽구나.) 두리번거리며 걸음 옮기다가

파앗! 날아오르는 청풍. 올려다보는 뱀들

곧 새처럼 까마득히 날아올라 사라지는 청풍. 헌데

슥! 청풍이 사라지자 동굴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용각신망. 헌데

쿵! 다리가 네 개 달리고 등에는 갈기, 주둥이 주변에는 수염이 나있다. 완전히 용의 모습이 되었다. 다만 크기는 오히려 줄어들어서 50센티가 안된다.

용각신망이 나타나자 일제히 고개 조아리며 영접하는 뱀들

[..] 동굴 밖으로 나오며 청풍이 올라간 절벽 쪽을 보는 용각신망. 뭔가 생각한다.

 

#124>

<-북경> 낮

<-자금성>

 

어느 건물. 관리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고.

[이걸 지금 품의서(稟議書)라고 올린 것이냐?] 건물 안에서 들리는 고함소리

관리; [누가 잡기(雜記)나 패관(稗官;소설)을 써오라고 했느냐?] [국가대사를 운영하는 중차대한 사안을 뜬 구름 잡는 잡설로 채우는 게 말이 돼?] 탕! 탕! 불같이 화를 내는 중년의 관리. 염소 수염을 길렀고 아주 꼬장꼬장한 인상이다.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서류 뭉치로 책상을 연신 내려치고 있다.

일이 벌어지는 장소는 전형적인 사무실. 정부의 어느 부처 같다. 사방에 놓인 책상에서 관리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 관리에게 혼이 나는 것은 벽세황이다. 관리 앞에 두 손 모으고 서있다.

관리;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이부(吏部)에 들어온 것이냐?] [너 정말 과거 보고 자금성에 들어온 게 맞긴 한 거냐?]

벽세황; [죄송합니다. 다시 작성하여 올리겠습니다.] 굴욕적인 표정. 필사적으로 치욕을 참으면서

관리; [필요 없다!] 팟! 서류를 벽세황의 얼굴에 확 뿌리고

주변 관리들 기겁하며 움츠리고

후두둑! 자기 얼굴에 맞고 떨어지는 서류들을 보며 필사적으로 굴욕감과 분노를 참는 벽세황

관리; [네놈이 품의 올리는 거 기다리다가는 상서(尙書;장관)님에게 불호령을 맞기 십상이다.] [이번 건은 다른 부서에 맡길 테니 네놈은 글 쓰는 공부나 더해!] 다른 서류 집어들고 식식 대고

벽세황; [...] 입술 깨물며 돌아서고

구석진 자리로 가는 벽세황. 다른 관리들 그런 벽세황의 눈치를 보고

벽세황; (젠장...) 구석진 자리에 앉으며 분노를 참고

벽세황; (관계에서 자리를 잡아야한다는 아버지의 엄명만 없었어도 저 염소 새끼 수염을 확 뽑아버리는 건데...) 서류 정리하며 자기 혼낸 관리를 곁눈질로 노려보고

벽세황; (천하삼대 부호가문중 하나인 황금전장의 후계자인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만 하다니...)

벽세황; (오냐 두고 보자!) (날 비웃는 놈들 전부 곡소리 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신경질 적으로 서류 넘기며 화를 삭이고. 헌데

 

문 밖에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두 명의 환관. 동창제독 담길과 담길의 심복인 환관1이다.

담길; [저놈이 틀림없느냐?] 구석 진 자리의 벽세황을 보며

환관1; [예! 시험 감독관이었던 필유담(弼由膽)을 국문(鞠問;취조)해서 확인했습니다.] 과거 시험 감독관이었던 관리1을 떠올리고

환관1; [황금전장 장주 벽초천은 영특한 하인 이청풍에게 벽세황의 대리 시험을 치게 했습니다.]

환관1; [그 결과 벽세황은 전시에서 삼등급제를 해서 이부에 배속된 것입니다.]

환관1; [혐의와 가담자가 모두 확인되었으니 분부만 내리시면 벽초천을 추포해 오겠습니다.]

담길; [그럴 거 없다.] 고개 젓고

담길; [대리시험 건은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더 이상 파지 말고 기다려라.]

환관1; [예...]

담길; [대신 전력을 기울여서 이청풍이란 자의 행적을 추적해서 보고해라.]

환관1; [봉명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가는 환관1

담길; (이청풍... 황금전장의 하인...)

담길; (제삼황자께서 천한 종의 신분으로 살아왔다 이거지?)

담길; (그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해왔으니 주실(朱室;명나라 황실)의 열조들께서 보우하셨다고 봐야할 것이다.)

담길; (덕분에 황실의 핏줄이 끊길 위험도 줄어들었고...)

 

#125>

<-소림사> 낮

<-지객당> 주변을 중들과 향화객들이 많이 오가고

 

지객당 내부.

중2; [불제자인 소승이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청풍과 마주 앉아 억지웃음 짓는 젊은 중. #119>에 나왔던 지객당의 두 명의 젊은 중 중 한명. 다른 젊은 중 중1은 막운비에게 죽었고. 청풍과 탁자를 사이데 두고 마주 앉아 합장하고 있다.

중2; [종남파의 막운비시주는 폐사에 들른 적이 없습니다.]

청풍; [화산 근처에서 헤어질 때 막형은 분명 소림사로 직행할 예정이라 했었습니다만...] 지긋이 중2를 보고. 청풍은 수염을 깔끔하게 깎은 모습이다. 허리춤에는 용봉철적을 끼우고 있고

중2; [시주와 막시주의 관계를 폐사에서야 알 도리가 없지요.]

중2;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막시주는 단 한 번도 폐사를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단호하게

[...] 말없이 중2를 보고

중2도 어색하게 웃으며 청풍을 마주 보고

청풍;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면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청풍; (하지만 의심만 갖고 다른 사람도 아닌 소림사의 제자를 닦달할 수야 없지.) + [스님 법호가...]

중2; [소림사의 삼대(三代) 제자 율천(律川)입니다.] 합장하며

청풍; [율천스님이셨군요.] 일어나고. 중2도 일어나고

청풍; [조만간 다시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포권하고

중2; (협박이냐?) + [언제든지 방문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속으로는 화가 나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마주 합장하고

입구로 나가는 청풍. 합장 풀며 청풍의 뒷모습 보는 중2. 이어

고개 조금 돌려 뒤쪽 벽에 그려진 불화를 보는 중2

불화에 그려진 부처의 눈이 하나 반짝인다.

 

#126>

불화가 그려진 벽 안쪽. 천면서생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밖을 보고 있다. 손에는 작은 노트같은 것을 하나 들었고

청풍이 나가는 뒷모습이 보이고. 천면서생의 시점

천면서생; (성이 이씨라는 저 놈...) 구멍에서 눈을 떼고.

천면서생;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작은 노트를 뒤지며 생각하는 천면서생. 그러다가

천면서생; (찾았다!) 눈 번득

그자가 보는 노트에 그려진 청풍의 초상화. 초상화 하단에 <李淸風 至急手配>라는 글이 적혀 있다.

천면서생; (이청풍!) (소회주의 최측근인 혈부용이 지급으로 찾으라는 지시를 내린 이청풍이란 놈이다.)

천면서생; (막운비가 철목선사에게 밀서를 전하지 못하게 막은 것에 이어 나 천면서생이 또 한 번 공을 세우게 되었구나.) 흐흐흐! 웃고

 

#127>

지객당을 등지고 걸어가는 청풍. 생각에 잠긴 표정. 주변에 향화객과 중들이 오가지만 신경쓰지 않고

청풍; (막형에게 무언가 불상사가 생긴 게 분명하다.) 걸음 옮기고.

청풍; (막형은 예정대로라면 나보다 열흘쯤 전에 소림사에 도착했어야한다.)

청풍; (화산에서 소림사로 오는 도중 혈세사패의 그물에 걸려든 것일까?)

청풍; (이럴 줄 알았으면 복우산에 들리지 말고 막형과 소림사까지 동행할 것을...) 후회하고.

청풍; (물론 그랬다가는 검성 섭노야와 인연을 맺지 못했겠지만...) 쓴웃음

청풍; (북경으로 가서 내 일신상의 은원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막형의 행방부터 찾아봐야겠다.) 결심. 그리고

후두둑! 후둑! 그런 청풍의 머리 위로 몇 마리 비둘기가 날아간다. 발목에 천을 묶은 채. 헌데

 

향화객들 사이에 끼어서 청풍을 살펴보는 거지 한명.

구석진 곳으로 가며 청풍을 보는 거지. 소매 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고

종이를 펴보는 거지. 접혀있던 종이에는 청풍의 초상화와 <李淸風>이란 글이 적혀 있다

거지; (찾았다!) 눈 번뜩이고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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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返老還童, 神行魔童에게 敗하다.

 

 

 

[좋다. 그러면 어떻게 내기를 할까?]

혈기자는 소일초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일곱 살 짜리 꼬마가 내기를 하면 어떻게 할까 싶어서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설마 사마귀가 이 꼬마의 사부들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기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소일초의 눈에서는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다.

사마귀는 탈출의 일념으로 그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서 자신들의 절기를 전수해 주었다.

그렇기에 사마귀의 막내인 도귀(賭鬼)로부터 소일초는 온갖 종류의 도박과 승부를 점치는 기술을 배웠던 것이다.

[지금 형씨 품속에 은전(銀錢)이 네 개 이상이 있으면 내가 진 걸로 하고 네 개가 되지 않으면 내가 이긴 걸로 하면 어때?]

혈기자는 소일초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자기 품속에 은전이 몇 개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무학의 대종사인 그가 언제 자기 품속의 은전이나 헤아려 볼 생각이나 했겠는가?

머리를 숙이고 며칠 동안의 출납상황을 이리저리 점검해 봤다.

소일초는 고심하는 그의 옆에 와서 재미있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마 후 혈기자는 대충 계산을 해낼 수 있었는데, 세 개인지 네 개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좋다. 두 말 하기 없기다.]

혈기자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자 소일초가 소리쳤다.

[잠깐! 공평을 기하기 위해서 함께 봐야 될 게 아니겠어?]

[물론,그렇지.]

[하지만 형씨의 무공이 너무 고강하니까 어떤 속임수를 쓸 지도 모른단 말이야……]

[…………]

[그러니까 주머니를 열지 말고 손으로 주물러서 몇 개 인지를 돌아가며 확인해 보는 게 어때?]

[좋다. 네가 먼저 확인해 봐라.]

혈기자는 주머니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소일초는 몇 번 주물럭거리다가 혈기자에게 다시 던져주면서 말했다.

[첫 판은 형씨가 이긴 것 같은 데……]

혈기자는 내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주머니를 받아들자마자 표정이 확 바뀌어져 버렸다.

주머니의 무게가 조금 전과 다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소일초가 무슨 술수를 부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두눈을 똑 바로 떠고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손으로 만져보니 은화는 세 개 밖에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현장을 잡지 못했으니 사기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흥! 내가 졌군, 단 한 번 만 이환공(移環功)의 구결을 들려주겠다. 익히고 못 익히고는 네게 달렸다.]

말을 마치자 마자 혈기자는 몹시 빠른 속도로 구결을 읊었고 소일초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얼마나 기억했지?]

[십중일이(十中一二)!]

[그럼 다시 시작하자. 내기 조건은 먼저와 같다.]

[…………]

[단, 내기의 종류는 내가 정한다.]

[하지만 무공을 겨루거나 누구 나이가 많은가 하는 따위는 절대로 안된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들은 날이 훤 하게 밝을 때 까지 무려 열 세 가지의 각기 다른 내기를 했고 그때 마다 번번히 소일초가 이겼다.

소일초가 내기의 종류를 지정했으면 이긴 후에 혈기자가 임의로 한 가지 무공을 가르쳐 주고,

혈기자가 내기의 종류를 지정하면 소일초가 이긴 다음에 자기가 원하는 무공을 선택해서 요구했다.

그리하여 소일초는 자기가 원하는 여섯가지의 절학을 배울 수 있었다.

총명한 그는 한 번씩 밖에 그 무공들의 구결을 듣지 않았지만 이미 머리 속에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에 혈기자는 속이 탈대로 다 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소일초가 내기의 종류를 지정했다.

[내가 금방 형씨한테서 배운 무공들로 공격하면 형씨는 가만히 앉아서 방어만 하는 거야.]

[…………]

[만약 일어서거나 자리를 옮기게 되면 형씨가 진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긴 걸로 하면 어떻겠어?]

혈기자는 이미 그의 무공을 한 번 보았기 때문에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좋아! 만약 이번에 내가 이기게 되면 너는 내 제자들을 만나서 내 근황을 모두 일러주고 아무 염려말라고 전해줘야 하고 내 손녀와 나를 한 번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

[아무 염려 말고 이기기나 해. 형씨의 제자가 바로 사수(四手)라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그럼 바로 시작 할까?]

혈기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일초는 조금 전에 그에게서 들은 수법들을 동원해서 공격을 퍼부어 댔다.

그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혈기자도 처음에 깜짝 놀랐다.

(요놈이 일이할 정도 밖에 기억하지 못했다더니 나를 속였구나……)

소일초의 수법들은 점점 능숙해져갔다.

혈기자는 과연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되는 인물인 만큼 꿈적도 않고 그 자리에서 태연하게 다 받아 넘겼다.

열 두 가지의 초식을 번갈아 사용하던 소일초는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열 세 가지 중에서 열 두 가지는 사용했고 나머지 한 가지는 열 흘 후에 와서 사용해 보기로 하지. 만약 열흘 후에 내가 오지 않으면 그때는 내가 패한 것으로 하고……]

말을 마치자 마자 그는 홱 돌아서더니 낄낄 대면서 날아가 버렸다.

혈기자는 말문이 꽉 막혀버렸다.

완전히 골탕만 먹은 것이다.

그러나, 이내 이번이야 말로 내기에서 한 번 이라도 이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흘 동안 앉아있기로 했다.

그놈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면 승리는 자기 것이다.

이겨 놓기만 하면 여산(廬山)에 있는 백인장으로 찾아가 소일초가 아니면 그의 아비 소선풍에게라도 윽박지르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일 것 같았다.

소선풍이라면 자기 제자들에 뒤지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소일초 보다 나은 것이다.

더우기 자기의 막내제자인 조예진이 소선풍의 작은 마누라니까 도저히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반노환동한 천하제일인 혈기자는 무려 십일을 뙤악볕과 소나기를 맞아가며 창산의 이름모를 산곡에서 보내게 되었다.

 

× × ×

 

한편 소일초는 기다란 어린도를 등에 매고 남만의 밀림 속을 헤매 다니고 있었다.

[제길, 되게 덮군.]

그의 손에는 난도질이 된 표범의 가죽이 들려있었다.

아마 가죽 좋은 줄 알고 벗기다가 다 찢어 버린 모양이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빽빽한 밀림 속을 그는 벌써 며칠 째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저 괜찮은 짐승 한 마리 잡아서 돌아갈 생각으로……

몇 번 인가 사람 같지도 않은 만족(蠻族)을 만났으나 오히려 그를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 버렸다.

커다란 비단뱀도 그를 만나자마자 몸뚱아리가 토막토막 나버렸고 사자(獅子)도 목이 짤린 후 탐스러운 갈퀴를 소일초에게 바쳐야만 했다.

그의 행로에 돌아가는 길은 없었다.

무조건 길도 없는 밀림속을 직진(直進)해 나갔다.

독충들이 그의 몸을 무는 경우도 있었으나 오갑자의 내공을 가진 그는 날 때부터 금강체(金剛體) 였고 만독불침(萬毒不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몇 시간을 똑 바로 걸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그 흔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맹수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밀림은 마치 죽은 듯이 고요했다.

어디에도 짐승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숲은 다른 곳 보다 더욱 우거져 있었다.

갑갑함을 느낀 그는 호신강기를 강하게 일으킨 후 그대로 돌진해 버렸다.

[와아아……]

잡목들은 칼에 베인듯 잘려져 나가 버리고 큰나무에 그의 몸이 부딪혔을 때는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부러져 나갔다.

쾅! 우두두둑-----

한데 갑자기 그의 눈 앞이 탁 터이면서 밀림이 끝나고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그러나 전력으로 질주하던 중인지라 멈추지 않고 호수 위를 그대로 날아넘어 건너편에 내려섰다.

역시 그곳에도 숨막힐 듯한 적요가 감돌고 있었지만 나무들은 여태까지 봐 왔던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어린 소일초는 고개를 들어 까마득히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거목들을 바라보았다.

작아 보이는 것도 높이가 삼십 장은 족히 될 것 같았고 큰 나무들은 오십 장 정도 돼 보였다.

밑동도 장정 오십 명은 서로 손을 맞잡아야 될 정도로 굵었다.

그가 감탄을 하면서 입을 딱 벌리고 있다가,

갑자기 입을 <딱> 소리가 나도록 다물면서 오른 팔을 홱 돌렸다.

순간,

캑-------끄륵-------!

고개를 돌리고 보니 난 생 처음보는 해괴한 동물이 자기의 작은 손에 매달려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동물이 뒤에서 기습하는 것을 소일초가 먼저 알아채고 목을 잡아버렸던 것이다.

꽥------!

소일초는 그 괴물의 너무도 이상한 모습에 기성을 지르며 땅에 패대기를 쳐버렸다.

그놈은 윤기가 반지르르 도는 검은 털을 가졌는데,

겨드랑이에는 자기 몸 만한 날개를 달려있고 사람을 닮은 얼굴에 손과 발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박쥐와 원숭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 같은 괴상한 동물이었다.

땅에 패대기 쳐졌던 그 괴물은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그놈의 동료들로 보이는 것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괴물들의 눈에서는 파란 불꽃이 이는 것 같아서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놀랐던 소일초,

그러나 이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남만까지 온 보람을 이제서야 느끼는 것이다.

자기를 둘러싼 검은 괴물들을 오히려 음흉스런 눈초리로 처다보았다.

 

날개 달린 검은 괴물들,

키는 큰 놈도 넉 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등치로 본다면 열 한 두 살 짜리 애들만 했다.

그리고 키에 비해서 유달리 다리가 짧은데 팔은 반데로 길었다.

헤아려 보니 널부러져 있는 놈까지 해서 모두 열여섯이었다.

 

소일초가 천천히 다가서자 오히려 그놈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착각일 뿐이었다.

놈들은 아주 영리했다.

동료중의 하나가 그에게 단번에 당하는 것을 보았는지라 정면 대결을 피하고 차륜전을 펼치려 하는 것 같았다.

끽끽-------

한 놈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자 다른 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날개짓을 했다.

원래 놈들은 이 밀림일대에서 흉폭한 성격과 강한 힘, 그리고 영리한 두뇌로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사자도 그들을 보면 도망가기에 바빴고 열 놈이면 코끼리 마저도 죽여버리는 맹수들이었다.

그들의 날개바람은 무척이나 강해서 주변에 가득 흙먼지가 일었다.

뿌연 먼지 속에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게 되자,

그 놈들은 날개와 긴 팔을 이용해서 소일초를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소일초에게는 단지 신기한 장면의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었으니……

덤벼드는 놈마다 소일초의 손아귀에 목을 틀어잡혀서 땅에 패대기 쳐지고 말았다.

캑------

끽-----끄윽------

금방 주변에는 밀림의 왕으로 군림하던 괴물들이 일제히 손 발을 허공으로 올린 채 바르르 떨고 있었다.

[하하하하……]

쓰러진 괴물들 사이에서 소일초는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품속에서 가늘고 긴 줄을 꺼냈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괴물들의 손과 날개를 한꺼번에 묶어서 일렬로 죽 눕혔다.

손바닥을 탁탁 턴 다음 제일 앞에 누워있는 괴물의 배위로 풀쩍 뛰어 올라가며 노래를 불렀다.

 

----일 년은 삼백 오십 육일, 봄 여름 가을 겨울,

남자는 배를 타고 여자는 파도친다.

일 년은 열 두 달, 달거리도 열두 번……

 

꽥-------!

꽥-------!

소일초가 노래를 부르며 괴물들의 배에서 배로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 다니자 정신을 잃었던 놈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떴다.

그놈들에게는 이처럼 재수 없는 날은 평생 처음 이었다.

골치덩어리 신행마동에게 걸렸으니 껍질이 벗기지 않으면 조상님 은덕이라고 제사라도 지내야 할 판이었다.

소일초의 무게야 열 살 짜리 아이가 몇 근 이나 나가겠냐 만서도 그의 등에 매어져 있는 어린도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칼 이었다.

어린도 전체가 하나의 만년한철로 돼 있는데 무려 칠십 근이나 되었다.

소일초는 한 놈을 건너 뛰기도 하고 두 놈을 건너뛰기도 하며,

어떨 때는 한 놈을 죽으라고 밟아 대기도 했다.

괴물들은 손과 날개가 동시에 뒤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두려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자기의 배를 밟지 않고 지나가면 안도의 눈빛을 보냈고 여러 번 밟힐라 치면 죽는 소리를 냈다.

소일초의 노래소리에 맞춘 괴물들의 효과음향은 한 동안 계속 되었고,

그놈들은 이제 아예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어떤 놈은 까무라치기도 하고 비명소리 마저 잘 세어나오지 않았다.

소일초는 신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괴물들은 밟혀 죽을 지경이었다.

괴물들이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려 더 이상 신나는 비명이 나오지 않자 소일초는 그 장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제일 끝에서 부터 하나 씩 하나 씩 차례대로 잡아 일으켜 세웠다.

괴물들은 눈초리는 아예 공포에 젖어 있었다.

진짜 괴물 같은 꼬마놈이 또 무슨 짓을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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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독룡간> 낮

 

절벽 아래. 청풍과 섭장천이 동굴 밖에 나와 있다. 섭장천이 바위에 앉아있고 청풍이 옆에 서있다. 섭장천은 낡은 검을 한 자루 들고 손으로 쓰다듬고 있는데 용각신망이 옆에 따리를 틀고 앉아있다.

섭장천; [철인진결의 요체는 포용(包容)이다.] 슥! 오른손으로 낡은 검을 쥐고 왼손으로 검날을 쓰다듬는다. 이 낡은 검은 독룡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들 중 한 자루다.

섭장천; [인간을 포함한 천지간의 모든 사물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어야 철인(哲人)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징! 섭장천의 손이 쓸고 지나가면 낡은 검의 날이 빛을 발한다.

청풍; (검이 섭노사의 손길에 반응한다.) 그걸 보며 생각

섭장천; [그리고 사물을 자신의 뜻과 동화시킬 수 있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왼손은 떼고 오른손도 검을 놓으려 하고. 그러자

지잉! 검이 혼자 경련하면서 허공으로 떠오른다.

청풍; (검이 스스로 허공에 떠오른다. 저건 내공으로 조종하는 게 아니다.) 놀라며 검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걸 보고

섭장천; [성심(誠心), 즉 지극한 마음이면 하늘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슥! 오른 손을 앞으로 조금 밀고. 그러자

슥! 허공에서 앞으로 밀리는 검. 그러다가

투학! 공간 이동하듯이 단번에 계곡 끝으로 날아가는 검

청풍; [아!] 자기도 모르게 놀라고

가앙! 계곡의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지는 검. 직후

섭장천; [돌아와라.] 손바닥을 자기 쪽으로 하며 부르는 시늉하고. 그러자

번쩍! 이미 청풍과 섭장천의 바로 앞에 번개같이 나타나는 검.

청풍; [!] 움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데

팟! 검은 섭장천의 얼굴 바로 앞에서 딱 멈춘다.

청풍; (직접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걸 보고 경악하고

청풍; (검이 가고 오는 게 너무도 빨라서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섭장천이 손을 조금 움직이자 검이 허공에서 움직여 손잡이가 섭장천 쪽으로 오고. 그걸 보며 놀라는 청풍

청풍; (섭노사께서 구사하는 천리어검은 무림에서 소위 말하는 어검술과는 전혀 격이 다르다.) 섭장천이 검의 손잡이를 잡는 걸 보며

청풍; (섭노사의 의지와 동화된 검은 빠를 뿐 아니라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래서 천리어검이라는 이름을 붙이셨을 것이다.) 다시 검을 쓰다듬는 섭장천을 보며 생각하고

청풍; (섭노사께서 구사하신 천리어검을 보았으니 이제 단순히 내공으로 검을 조종하는 건 어검술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섭장천; [천리어검을 구사할 수 있어야 그 다음 단계인 검벽신공으로 넘어갈 수 있다.] 검을 쓰다듬고

섭장천; [사물과 동화되는 것을 넘어 몸 자체를 검으로 만드는 것이 검벽신공이다.] 징! 징! 섭장천의 몸에서 투명한 검의 형상들이 죽순처럼 돋아난다.

청풍; (섭노사의 몸에서 수많은 검의 형상들이 돋아난다.)

청풍; (마치 온몸이 검으로 이루어진 벽에 둘러싸인 것 같다. 검벽신공이라는 이름은 그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섭장천; [하지만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면 유형이건 무형이건 검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스스스! 몸에서 돋아난 검의 형상들을 소멸시키고

섭장천; [그것이 절대삼검의 마지막 단계인 무상심검인 데...] 찡그리고

섭장천; [사실을 말하자면 노부도 완전한 무상심검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숨을 쉬고

섭장천; [그랬다면 천주산 은일곡에서 지존과 혈세사패의 패주들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섭장천; [무상심검은 살기로 적을 죽이는 재주이기 때문이다.] 이를 부득 갈고

청풍; (살기만으로 적을 죽일 수 있다면 사실상 막는 게 불가능하겠구나.) 끄덕이고

섭장천; [오늘부터 철인진결의 수련을 시작해라.]

섭장천; [삼라만상과 융화할 수 있는 철인진결의 이치를 깨우쳐야만 절대삼검을 구사할 수 있다.]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섭장천; (하늘이 마냥 무심하지만은 않구나.) 절벽 위로 좁게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하고

<명이 다하기 전에 제 대로 된 후계자를 이 늙은이에게 보내주신 것을 보면...> 장내의 모습 배경으로 섭장천의 생각 나레이션

 

#119>

<-소림사(少林寺)> 웅장한 산의 웅장한 절

소림사 내부 모습. 경내를 향화객들이 오가고. 무술을 연마하는 중들도 있고

웅장한 건물. <知客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중들이 드나들고

<-지객당(知客堂)> 위 건물 배경으로 나레이션

 

막운비; [아무쪼록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탁자를 앞에 두고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고. 허리에는 검 대신 청풍이 준 칠성보도를 차고 있다. 칠성보도는 칼집을 구해서 칼집에 넣은 상태

막운비; [사부님은 반드시 장문방장님을 뵙고 밀서를 전하라 분부하셨습니다.] 탁자를 섭장천사이에 두고 자기 앞쪽에 앉아있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노승에게 말하고. 이 노승이 지객당 당주인 철비대사다.

막운비가 있는 장소는 상당히 넓고 화려한 불당. 지객당 내부인데 젊은 중들도 두 명 입구 쪽에 서있다.

철비대사; [영사 삼절신유와는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장문방장을 뵙게 해드려야겠으나...] 난색을 표하는 철비대사. 그 배경으로 나레이션. <-소림사 지객당 당주 철비대사(鐵臂大師)>

철비대사; [장문방장께서는 백일 기한으로 면벽수행중이시라 일체 외부의 접촉을 불허하고 계신다네.]

철비대사; [영사께서 보내신 밀서를 노납에게 맡기면 대신 전해드리도록 하겠네.] 손을 내밀지만

막운비; [죄송합니다.] 고개 좀 숙이고

막운비; [사부님은 밀서를 오직 철목선사님께만 보여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단호한 표정을 짓고

철비대사;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장문방장의 면벽수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하는데...] 난감

막운비; [철목선사님의 면벽수련은 얼마나 더 남았는지요?]

철비대사; [한 달 가량은 기다려야 끝나실 걸세.]

막운비; [한 달...]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인데...] 난감

철비대사; [알겠네.] 일어나고. 막운비도 일어나려 하고

철비대사; [사정이 급한 것 같으니 일단 노납이 장문방장께 말씀을 넣어보긴 하겠네.] 입구로 가고. 막운비는 일어섰고

막운비; [부탁드리겠습니다.] 철비대사에게 포권하고

철비대사; [차라도 마시면서 잠시 기다리시게.] 입구로 나가고. 입구쪽에 있던 젊은 중들도 따라 나가고

밖으로 나오며 야릇한 표정으로 지객당 안쪽을 곁눈질하는 철비대사. 그 뒤에서 따라나온 젊은 중들이 문을 닫는다.

 

탁! 밖에서 닫히는 문. 이제 막운비는 지객당에 혼자 남게 되고

막운비; (무사히 소림사에는 도착했다.) 다시 의자에 앉고

막운비; (이형이 거푸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덕분인데...) 청풍을 떠올리고

막운비; (정작 소림사에 도착하자 난관에 봉착했다.) (하필이면 철목선사께서 면벽수련중이시라니...) 찡그리고

막운비; (혈세사패가 필사적으로 방해한 걸 보면 밀서의 내용은 긴박하고도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막운비; (밀서를 철목선사에게 전하는 게 늦어질 경우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초조하고

막운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목선사를 만나야하는 이유다.) 지객당 내에 홀로 남아 생각에 잠긴 막운비

 

#120>

지객당을 밖에서 보여주고. 시간이 좀 지났다.

덜컹! 닫혔던 문이 열려 돌아보는 막운비

중1;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시주.] 철비대사를 따라갔던 젊은 중 중 한명이 밖에서 문을 연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는 막운비

중1; [장문방장께서 접견을 허락하셨으니 함께 가시지요.]

막운비; [감사합니다.] 입구로 가고

막운비; (다행히 날 만나주시기로 했구나.) 지객당을 나오고. 젊은 중이 기다리고 있고

중1; [이리로 모시겠습니다.] 앞장서서 가고. + 막운비; [신세를 지겠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는 막운비

중1; [별 말씀을...] 청풍을 안내하며 야릇한 표정이 되는 중1

 

#121>

<-소림사 내 탑림(塔林)> 수많은 탑과 비석이 서있는 곳. 인적은 없다.

탑과 비석 사이를 지나는 중1과 막운비

막운비; (여기가 그 유명한 탑림일 텐데...) 주변의 탑과 비석들을 보며

막운비; (철목선사의 면벽수련 장소가 탑림 안에 있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막운비; [!] 흠칫! 하며 앞을 보고

탑림 사이의 공터. 쓰러진 비석이 하나 있고. 그 비석에 노승이 한명 앉아있다. 바로 철목선사다. 철목선사 캐릭터는 #100>에 나왔었음. 막운비의 회상에서. 하지만 이 장면에서 나온 철목선사는 가짜다.

막운비; (저분이 소림사의 당대 방장인 철목선사...) 중1을 따라 공터로 들어가며 생각하고. 아직 철목선사가 깔고 앉은 게 비석인 줄 모른다. 그냥 바위인 줄 알고

중1; [장문방장님! 막시주를 모셔왔습니다.] 합장하고

철목선사; [수고했다.] 비석에 걸터앉은 채 끄덕이고.

막운비; [종남파 제자 막운비가 선사를 뵙습니다.] 포권하고. 중1은 막운비의 뒤에 멈춰서서 보고 있고

철목선사; [막시주가 삼절신유께서 아끼는 제자라는 얘기는 전부터 듣고 있었네.]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철목선사; [막시주도 항마군영대의 일원으로 선출되었었지만 동문에게 양보를 했다지?] 훑어보며

막운비; [사실은 후배 대신 항마동천에 들어간 사매가 보낸 밀서 건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고

철목선사; [밀서라...] 눈 번뜩

막운비의 뒤에 서있던 중1도 눈 번뜩

막운비; [열흘 전쯤 저의 사매가 기르던 애완조를 통해서 가사(家師)에게 보낸 밀서입니다.] 편지를 두 손으로 들고 철목선사에게 다가가고

철목선사; [어떤 내용인지 읽어 보았는가?] 손 내밀어 받으려 하며

막운비; [아닙니다.] 아직 거리는 2미터쯤 남았고

막운비; [가사의 엄명이 계셔서 내용은 보지 못...] + [!] 말하다가 눈 부릅뜨고

철목선사가 걸터앉아있는 비석 크로즈 업.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다

막운비; (철목선사가 걸터앉아있는 게 바위가 아니라 비석이었다.) 눈 부릅

막운비; (소림사의 장문인쯤 되는 인물이 선조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을 깔고 앉는 무례를 범할 리 없다.) + [당신 누구요?] 팟! 내밀던 밀서를 급히 거두며 뒤로 물러선다.

[!] 뒤쪽의 중1의 눈이 번쩍

철목선사;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하는 표정을 짓고

철목선사; [노납이 바로 철목선사라고 하지 않았는가?] 웃고

막운비; [개소리!] 이를 부득 갈며 급히 밀서를 품에 넣고

막운비; [소림사의 방장이 선조의 비석을 깔고 앉는 개망나니 짓을 할 리가 없다!] 창! 칠성보도를 뽑아들고. 그러자

철목선사; [이런... 이런...] 자기가 깔고 앉은 비석을 보고

철목선사; [어이없게 틈을 보이고 말았구만.] 혀를 차고

철목선사; [어쩔 수 없이 밀서는 강제로 빼앗아야겠어.] 딱! 손가락을 튕기고. 그러자

화악! 뒤에서 막운비를 덮치는 중1. 허리띠에서 얇은 검을 뽑아내 휘두른다. 발검이 아주 빠르다

파라랑! 쉬앙! 중1의 검 끝이 흔들리며 검이 여러 개로 변해서 막운비를 베고 찔러온다. 하지만

막운비; [크아!] 스악! 돌아서며 칠성보도를 그어내고. 칠성보도에서 긴 섬광이 내뻗혀 중1을 베어가고

[크악!] 중1이 휘두른 검의 그림자들과 중1의 몸뚱이까지 일거에 그 섬광에 잘려버린다. 비명 지르며 죽는 중1.

철목선사; [조심해라! 백살파가 빼앗긴 칠성보도를 쓴다!] 놀라며 벌떡 일어서고. 바로 그 직후

화악! 부악! 허공에서 내리 덮치며 막운비를 공격하는 네 명의 건장한 중. 얼굴이 비슷하고 보디빌더같은 체형을 지닌 자들인데 각기 긴 쇠 몽둥이, 거대한 삽, 철퇴, 작두같은 칼들은 써서 막운비를 공격한다.

막운비; [꺼져라!] 부악! 쩍! 칠성보도를 현란하게 휘두르고. 그러자

서걱! 쩍! 네 자루의 무기중 쇠몽둥이와 거대한 삽은 그대로 칠성보도의 섬광에 스쳐 잘려나간다. 하지만

꽝! 철퇴는 방향 때문에 미처 자르지 못해서 바닥을 후려치고. 겨우 몸을 틀어 철퇴를 피하는 막운비

쩍! 그런 막운비에게 작두칼이 비스듬히 날아들고. 아주 빠르고 강력한데 피하기에는 너무 가깝다

막운비; (피할 수도 베어버릴 수도 없다.) 스악! 칠성보도를 위쪽으로 쳐들어서 작두칼을 막으려 하고

[잘한다!] [무기의 중량 차이로 밀어붙여!] [토막을 내버려라.] 보고 있던 다른 놈들이 환호하고

스악! 부악! 칠성보도와 그것의 몇 배는 되는 크기의 작두칼이 충돌하려 하고. 하지만 그 직후

막운비; (이화접목!) 징! 눈을 부릅뜨며 칠성보도를 휘두르고. 그러자

[헉!] 부악! 작두칼을 휘두른 놈은 작두칼이 칠성보도에 달라붙은 채 돌아가는데 그 작두칼에 딸려서 홱 날아오른다

막운비; (통한다!) 쐐액! 휘익! 칠성보도를 뿌리치듯 휘두르는 막운비의 손짓에 따라 작두칼과 그것을 쓰는 자는 동료들 두명에게 세차게 날아간다. 잘려진 쇠몽둥이와 삽을 들고 있던 자들이다

[헉!] [조심...] 콰당탕! 퍽! 두 놈과 충돌하는 작두칼을 쓰는 자. 철퇴를 휘두른 자가 옆에서 돌아보고

콰당탕! 두 놈과 작두칼을 쓰는 놈이 한 덩이가 되어 나뒹굴고. 그 앞에서 칠성보도를 휘두른 자세인 막운비

철목선사; [제법이로구만.] 감탄. 그때

[죽어라!] 부악! 철퇴를 휘두르며 막운비를 공격하는 놈. 하지만

막운비; [크아!] 쩍! 휘두르는 칠성보도에서 내뻗치는 섬광이 철퇴와 그것을 쓰는 놈의 몸뚱이를 함께 잘라버린다.

철목선사; [허어!] 놀라고

[안돼!] [왕삼!] 충돌했다가 나뒹군 세 놈의 비명

털석! 따당! 토막 난 작두칼과 그걸 쓰던 놈의 시체가 나뒹굴고

막운비; (칠성보도의 위력은 역시 가공하구나.) (사부님이 십삼살주에게 어이없이 당하실만 하다.) 흥분.

[조... 조심해라!] [저놈이 쓰는 건 전설 속의 칠성보도다.] [칠성보도의 도기는 무엇이든 잘라버린다더니 사실이었다.!] 살아남은 세 놈도 겁에 질려 감히 덤비지 못하고

막운비; (칠성보도와 이형이 전수해준 이화접목만 적절히 사용하면 여길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칠성보도로 살아남은 세 놈을 겨누며 다가가고. 세 놈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고. 그때

짝짝! 박수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는 막운비

철목선사; [훌륭하다! 과연 종남파 제일의 후기지수다운 솜씨고 임기응변이다.] 짝짝 박수치고 있는 철목선사

막운비; [늙은이는 누구냐?] [혈세사패의 마귀냐?] 칠성보도로 겨누며

철목선사; [칭찬하는 의미로 노부의 본 모습을 보여주마.] 슥!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그러자

쿵! 철목선사의 얼굴이 철비대사의 얼굴로 변한다. 이하 철비대사로 표기

막운비; [지객당 당주 철비대사!] 놀라고

막운비; [당신이 장문방장으로 위장하다니...] [사문인 소림사를 배신한 거요?] 칠성보도로 겨누며 이를 갈고

철비대사; [배신?] [번거롭게 그런 걸 할 리가 있는가?] 히죽 웃으며 다시 두 손을 얼굴에 대고

철비대사; [사실 철비대사도 본좌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슥! 이번에는 두 손을 모두 써서 얼굴을 쓸어내리고. 그러자

쿵! 전혀 다른 일반인의 얼굴이 된다. 바로 #38>에 나온 천면서생의 모습이다.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은 가사지만 얼굴은 천면서생이 된 것. 이하 천면서생으로 표기

막운비; [철비대사로도 위장하고 있었구나.] 놀라고

막운비; [네놈 정체가 대체 뭐냐?] 칠성보도로 겨누며

천면서생; [무림의 후배가 궁금해 하니 알려주는 게 선배의 도리겠지?] [본좌는 환마루의 부루주인 천면서생(千面書生)이란 분이시다.] 얼굴 아래를 만지며

막운비; [천면서생!] 놀랄 때

천면서생; [소림사에 잠입하기 위해 탁발을 나왔던 철비대사를 제거하고 대신 중노릇을 해왔지.] 징! 말하는 천면서생의 눈이 빛을 발하고. 이어

지잉! 징! 천면서생의 두 눈 눈동자가 소용돌이처럼 변한다. 그러자

[!] 띵! 현기증 느끼며 경악하는 막운비. 막운비의 뒤로 원형의 파문이 일어나 막운비가 최면술에 걸려들었음을 보여주고

막운비; (당... 당했다! 몸이 갑자기 마비된다!) 벌벌 떨고

천면서생; [흐흐흐! 역시 애송이는 어쩔 수 없구만. 간단히 섭혼술에 걸려들고...] 지지징! 징! 사악하게 웃는 그자의 양쪽 눈에서 일어나는 소용돌리

막운비; (실... 실수다!) 사색

막운비; (저자의 역용술에 홀려서 눈을 바라보는 바람에 어이없이 섭혼술에 걸려들고 말았다.) 식은땀 흘릴 때

[죽일 놈!] 파팟! 잘려진 쇠몽둥이의 뾰족한 끝으로 막운비의 등을 몇 군데 강하게 찌르는 쇠몽둥이 든 놈

막운비; (혈... 혈도가 짚였다!) 휘청! 충격 받아 앞으로 쓰러지려 하고

콰당탕! 땅! 나뒹굴며 칠성보도로 놓치는 막운비. 옆으로 쓰러졌다가

털썩! 하늘 보는 자세로 눕는 막운비. 눈에 초점이 없고

[부루주님! 막가를 해치웠습니다.] 쇠몽둥이 든 놈이 쇠몽둥이의 뾰족한 끝을 막운비의 목에 대며 천면서생에게

천면서생; [수고했다.] 다가와서

천면서생; [그럼 삼절신유가 철목땡중에게 보내려고 한 밀서가 무슨 내용인지 확인해 볼까?] 슥! 몸을 숙여서 막운비의 품속에 손을 넣고

막운비; (안... 안돼!) 절망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슥1 막운비의 품에서 밀서를 꺼내는 천면서생. 이어

찍! 밀봉을 제거하고

편지를 꺼내는 천면서생. 편지와 함께 두 개의 가는 천 조각도 일부 나오고

편지를 펼쳐서 읽는 천면서생. 그 사이에 삽을 쓰던 놈이 바닥에 떨어진 칠성보도를 줍고 있다.

천면서생; [이런 이런...] 편지를 읽으며 혀를 차고

천면서생; [소회주의 방심으로 하마터면 다 된 죽에 코를 빠트릴 뻔했구만.] 편지를 읽으며 혀를 차고

막운비; (대체 소심사매가 알아낸 비밀이란 게 무엇인데 저자가 저리 놀라는 것일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천면서생을 올려다보고

천면서생; [천우신조로 이 밀서를 회수했기에 망정이지 철목 땡중 손에 들어가기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화르르! 손을 달궈서 편지를 태우는 천면서생

막운비; (안... 안돼!) 재가 되어 자기 얼굴 옆으로 떨어지는 편지를 보며 절망하고

천면서생; [소림사까지 밀서를 운반해오느라 고생했다 막가야.] 탁! 탁! 손에 묻은 재를 털면서 웃고

천면서생; [그 대가로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마.] 사악하게 웃고

천면서생; [혹시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 죽이지는 마라.] [대신 뇌옥에 가둬서 두 번 다시 해를 보지 못하게 만들어줘라.] 살아남은 세놈에게 말하고

[존명!] 포권하는 세놈.

[가자!] [살아있는 걸 저주하게 될 게다.] 좌우에서 막운비의 팔을 잡아 부축하는 철퇴와 쇠몽둥이 쓰던 놈. 삽을 쓰던 놈은 칠성보도를 천면서생에게 바친다. 손잡이가 천면서생에게 향하도록

휘익! 막운비의 양팔을 잡고 날아오르는 두 놈

막운비; (미안하오 이형!) 두 놈에게 끌려가며 고개 떨구며 절망하는 막운비. 청풍을 떠올리면서

<이형이 거푸 구해주었음에도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말았소.> 두 놈에게 팔이 잡혀 날아가는 막운비의 모습 배경으로 막운비의 절망 나레이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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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神行魔童과 반로환동

 

 

 

소일초는 깜깜한 밤 어둠에 잠긴 산속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키 만큼이나 큰 아버지의 애도(愛刀) 어린도(魚鱗刀)가 꽤나 거추장스러웠다.

그가 말하는 아버지의 작은 마누라는 신통방통하여 어디에서 소리도 없이 나타날지 몰랐다.

사마귀가 정뇌(井牢) 속에서 창안한 무중일전신법(霧中一電身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라서 소일초는 벌써 수백 리를 달려왔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그를 추격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다.

숲으로도 들어가고 강물위로도 달리고 마침내는 자기도 모르는 산 속으로 깊이 들어와 버렸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작은 어머니 눈에 한 번 띈 이상, 숨이라도 한 번 돌렸다 하면 어느새 냉큼 그의 목덜미는 그녀의 손에 쥐어지곤 했다.

이번에 잡혀서 돌아가면 아버지가 무슨 벌을 줄 지도 모른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무조건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인 것이다.

(사마귀의 무공 중에서 이것 하나는 정말 쓸만해……)

그는 암중에 자신의 경공에 만족하면서 중얼거렸다.

그가 무중일전신법을 배우기 전에는 아무리 잘 도망을 쳐도 그의 작은 어머니 눈에 띄자 마자 잡혀 가곤 했는데……

무중일전신법을 배운 후에는 멈추지만 않으면 신통력이 대단한 그의 작은 어머니도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손가락이라도 닿는 다면 만사는 모두 끝장이다.

오갑자에 이르는 그의 공력도 그녀에게 한번 붙잡히기만 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도저히 힘을 못쓰는 것이었다.

그녀야 말로 천방지축 신행마동인 소일초의 최고 천적(天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소선풍에게도 그녀와 같은 재주는 없었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어린도까지 훔쳐왔으니 아버지는 정말로 날 죽이려고 덤빌지도 몰라……)

아버지의 화난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지만, 누가 뭐 마도구식(魔刀九式)을 혼자만 알고 있으랬나?)

그가 이번에 가출한 동기는 백인장의 최고도법인 마도구식(魔刀九式)을 그의 아버지가 가르쳐 주려 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소선풍은 그에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일초가 무공을 배운 것은 백인장의 구십구 도객(刀客)들에게 떼를 써서 얻어 배운 것에다 사마귀의 무공을 더한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백인장의 고수들마저도 그를 설설 피하기만 할 뿐 무공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다.

어제 밤이었다,

소일초는 잠이 오지 않아 정원의 나무위에 올라가 애꿋은 나뭇잎을 하나씩 하나씩 따서 땅으로 떨어뜨리고 있았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의 침실 앞에서 한 줄기 백광이 번쩍 이는 것이 보였다.

지붕위로 살며시 올라가서 살펴보니 소선풍이 도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옳지! 저것이 바로 천하제일의 도법이라는 마도구식이구나.)

그는 쾌재를 불렀다.

훔쳐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영 실망이었다.

도무지 그 도법의 원리를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 소선풍은 몇 번이고 거듭 펼쳐보이지만 그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여태까지 자기가 보았던 것과는 격이 다른 무시무시한 도법이라는 것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도대체 흉내마저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다.

소일초는 어떤 난해한 무공도 한 번 보기만 하면 척척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불가사리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살그머니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벌떡 일어나서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자고 있는 침전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선풍과 그의 작은 어머니는 갑작스런 침입자에 허둥지둥하며 그를 맞았고,

그는 다짜고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도구식(魔刀九式)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한밤중에 한바탕 꾸지람만 듣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는 심통이 날 대로 났다.

아침에 틈을 보고 있는데 작은 어머니가 어딘가에 잠시 외출한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아버지도 잠시 동안 침실을 비울 것이다.

옳다구나 싶은 그는 즉시 아버지의 침실로 가서 어린도를 가지고 줄행랑 놓아버렸던 것이다.

 

(지독한 우리 아버지……어쩌면 나는 주워온 자식인지도 몰라……친 아들에게 그렇게 인색한 아버지가 세상에 또 있을라구……)

나무들 위로 스치고 날아가며 소일초는 계속 아버지를 원망하고 지금 쫓아오고 있을 작은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는 작은 어머니가 쫓아 오고 있는가를 실험해 보기 위해서 옆구리에 차고 있던 술병을 뒤로 휙 집어 던지고 귀를 모았다.

과연 술병이 땅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작은 어머니가 허공에서 받아들고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쳇! 내가 무림의 십이대 고수 중 하나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우리 작은 어머니만도 못한데 고수는 무슨 고수……작은 어머니야 말로 일대고수(一大高手)이고 일등고수(一等高手)다 일등고수……)

그의 몸은 큰 나무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 나무에는 어둠속에도 뚜렷이 분간이 되는 붉은 천조각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는 그는 그 천조각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갑자기, 그의 뒤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악!]

그의 작은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분명했다.

소일초는 그녀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도망칠 만큼 나쁜 악당은 아니었다.

기실, 그와 그녀의 작은 어머니는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려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작은 어머니의 술수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빙 돌았다.

하지만, 그는 어리둥절해 지고 말았다.

갑자기 작은 어머니의 전음이 귀에 들리는데,

그녀는 이미 방향을 바꾸어 왔던 멀리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깜짝할 사이에 이미 사라져 버렸는데 그녀의 전음은 귀에서 맴돌고 있었다.

[조금만 놀다가 돌아오너라. 너무 위험한 곳엘랑 가지 말고……]

그녀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군, 저 여자는 저렇게 포기하고 갈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이제 아무튼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일단 밤이 늦었으니 잠이나 자고 볼 일이다.

(아이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부모들의 귀여움을 받는다는데……내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 다 밤에 잠을 잘 자지 않아서 그런지도 몰라……)

주변에는 나무들이 둘러쳐져 있는데 그가 내려선 곳은 큰 바위가 있는 곳 이었다.

그가 바위 위로 올라가 편편한 부분을 찾아 척하니 드러누웠을 때였다.

[이상한 놈이군……]

아주 낭낭한 목소리가 그가 누운 바위 속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소일초는 누운 자세에서 그대로 허공으로 껑충 솟아오르며 등 뒤에서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어린도를 뽑아 들었다.

[웬 놈이냐?]

어린도의 가늘고 긴 도신(刀身)은 그의 몸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놈이군……]

바위 속의 목소리는 조금도 어조를 바꾸지 않고 울려나왔다.

소일초는 바짝 긴장했다.

무림에서 자기보다 무공이 고강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지금 저 바위 덩어리는 도무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몸이 설설 떨려오기 시작했다.

등골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귀……귀신……이냐?]

[도무지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 같은 놈이군……]

바위 속에서는 그의 질문에는 아랑곳 없는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소일초는 그의 표현대로 아직 어린 아이였다.

귀신에 대해서는 여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겁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큰 용기를 냈다.

[에잇! 내가 이놈의 바위를 베어버려야지……]

그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어린도에 결집시킨 후에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면서 바위를 베어갔다.

어린도가 갑자기 쭉 늘어나면서 도신이 삼장이나 되어버리며 바위에 통째로 부딪혔다.

바로 강기였다.

큰 바위는 소리도 없이 베어져 옆으로 쩍 벌어지는데 갑작스런 비명이 울려나왔다.

[아이쿠!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놈이구나……]

갈라진 바위 속에서 흰 그림자가 바위 위로 튀어나왔다.

소일초는 내친 김에 그 그림자를 향해 다시 전력을 다해 어린도로 베어나갔다.

백인장의 백인도객들에게서 배운 절초 중의 한 가지 수법이었다.

삼장으로 늘어난 어린도의 도신이 수백 개의 환영을 만들며 흰 그림자를 베었다.

그림자는 흩어지듯 흐릿해졌고 소일초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이제 공격할 만큼 해 보았으니 여차하면 삼십육계인 것이다.

그는 이름처럼 언제나 일초 이상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의 원래 이름은 소선풍이 지어준 태봉(太峰)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라 자기가 마음대로 일초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지금 일초를 공격했으니 저 귀신이 죽지 않았다면 자신의 규칙대로 무조건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흰 그림자는 다시 뚜렷해지면서 말을 내뱉었다.

[이 수법은 백인장에서 흘러나온 듯 한데……]

소일초는 흰 그림자가 귀신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도로 분명히 베었는데도 죽지 않고 말하다니 귀신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당장 자신을 향해 덮쳐오지 않으니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도망치는 데야 그야말로 신행마동(神行魔童)인 자신이 아닌가?

흰 그림자는 쪼개진 바위에 턱 걸터앉으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애야! 이리와 앉거라.]

그러나 소일초는 도망칠 준비만 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이 녀석!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어……]

흰 그림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형씨. 당신 귀신은 아니겠지? 나 같은 애들은 모두 귀신을 무서워한단 말이야……]

소일초의 주저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흰 그림자는 파안대소를 했다.

[으하하하. 야 이놈에 너같은 놈이야 말로 남들이 귀신같은 꼬마라고 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나보고 형씨라니…… 마음에 쏙 드는 놈이군 그래.]

그의 웃음소리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긴 메아리가 온 산속에 울려 퍼졌다.

소일초는 그에게 적의가 없음을 알았으나 웃음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제길, 웃는 소리 한 번 젠장 맞게 크군……]

그러나 그는 어린도를 등 뒤에 꽂고 쪼개진 바위 중 흰 그림자가 앉지 않은 쪽에 걸터앉았다.

그가 본대로 흰 그림자는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준수한 얼굴의 이십 대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서는 은은한 금광(金光)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대체 누가 너같은 꼬마를 길러냈는지 궁금하군!]

[대체 누가 형씨같은 청년을 길러냈는지 궁금하군!]

소일초는 백의청년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백의청년은 어이가 없는지 잠시 그를 바라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못 말릴 말썽꾸러기로군, 백인장 소영감 작품인가?]

[백인장에 영감은 아니지만 영감 못지않게 고리타분한 소씨가 한 분 계시기는 하지, 소선풍이라고……]

소일초는 냉큼 말을 받아 대답했다.

[소선풍? 그는 소영감 아들인데? 그럼 소영감은 언제 죽었지?]

[우리 할아버지를 말하는 모양인데 언제 죽었는지 나는 알 수 없지. 아직 어린아이니까……그리고 형씨도 우리 할아버지를 알 수 없지. 아직 젊으니까……]

백의청년의 눈에서 금광이 폭사되었다.

그의 무서운 안광에 소일초는 찔끔했다.

[바로 소선풍의 자식이었군, 네 엄마는 조씨(趙氏)지?]

[반 만 맞았어. 아버지는 맞추었지만 어머니는 이씨(李氏)라구……]

백의청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 같았다.

소일초가 그의 불신에 찬 표정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이봐! 내 사부는 거짓말장이지만 나는 꼭 필요할 때 외에는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이야.]

백의 청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그의 말투가 영 맘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치를 읽었는지 소일초가 다시 한마디 한다.

[내 나이도 겉보기보다는 꽤 많다구. 내가 반말 좀 하기로서니 그렇게 안좋은 얼굴까지 할 건 없잖아.]

백의청년 완전히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이 녀석! 대체 몇 살이길래……]

[열살!]

소일초가 당당하게 큰 소리로 외쳤고 백의청년은 기가 막혀 버렸다.

그는 입맛을 쩍쩍 다셨다.

[허참! 허참……]

[형씨도 나보다 겨우 몇 살 연상인 듯 한데 말투는 완전히 노인네 티를 물씬 풍기는군.]

[너 보기엔 노부가 몇 살로 보이는가?]

소일초는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한 열 네살쯤……]

백의청년은 오히려 이제는 그와의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는지 자꾸 질문을 했다.

[내가 누구인것 같은가?]

[글세…… 무공이 나보다 훨씬 강한 것으니까 이름없는 사람은 아닐 것 같고……]

그는 백의청년의 아래위를 쭉 훑어보았다.

몸에는 아무런 병장기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사수(四手) 중의 하난가?]

백의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남들이 혈기자라고 하지……]

그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일초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어찌나 웃는지 그가 배를 잡고 데굴데굴 바위 밑으로 굴러 버렸다.

그래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지 한창 웃고 난 뒤에 숨을 헉헉거리며 말했다.

[형씨가 혈기자라고? 형씨가?]

[물론……]

[대체 혈기자의 나이를 알기나 하고 거짓부렁을 하는 거야?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 이름을 들었으니까 지금쯤 그는 백 살 이백 살 아니 천 살 쯤 됐을 거야……그런데 혈기자라고?]

[네가 지금 몇 살 인데?]

[열살!]

대답하고 보니 소일초 자신도 조금 이상했다.

너무 어른들이 하는 말을 흉내 내서 말한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백의청년의 말이 들렸다.

[나는 물론 혈기자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올해로 일백 이십 칠 세지.]

[그런데 어떻게 형씨가 혈기자란 영감이 될 수가 있어?]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소일초가 물었다.

스스로 혈기자라고 밝힌 청년은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반로환동(返老還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군.]

[무가(武家)의 자식이 그걸 모를 리가 없지. 그럼…… 형씨가 반로환동했단 말이야?]

혈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럼 정말로 우리 할아버지도 알겠네?]

소일초는 어느덧 그의 말을 진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늙었을 때 가끔 만나던 친구였지. 우린 다들 무학에 정신이 팔려서 혼인이 아주 늦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아들을 낳고 그 후에 내가 아들을 낳았지.]

[형씨하고 우리 할아버지 하고 싸우면 누가 이겼어?]

소일초는 여전히 그를 형씨라고 부르고 있었다.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혈기자가 말했다.

[소영감의 마도구식은 대단하지. 그 당시에 그의 내공이 오갑자만 됐어도 내가 패했을 거야.]

 

백의청년,

그는 정말로 반로환동한 천하제일인 혈기자였다.

여러 해 전, 그러니까 소일초가 태어나기도 전에 혈기대종사의 겁으로 등천마교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 그해에 그의 제자들은 혈기자가 연공실로 사용하던 무진동을 파괴해 버렸다.

그 당시 혈기자는 자식과 며느리를 잃은 슬픔과 분노 때문에 정신이 약간 이상해져 있었는데……

그는 자식과 며느리가 일찍 죽었으니 자기가 그 몫까지 다 살아야겠다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고 무진동 속으로 들어가 반로환동의 술법을 닦기 시작한 중이었다.

무진동 속에서 동굴이 무너지는 것을 알았으나 그것이 제자들의 소행인지는 모르고 묵묵히 술법만을 닦았다.

당세의 무학대종사로 불리던 그 인지라 과연 얼마의 연구 후에는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서 큰 성과를 볼 수가 있었다.

먼저 얼굴에서 주름이 사라지고 피부가 다시 부드러워지며 동안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백발과 백염,백미가 뿌리부터 새롭게 검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검게 되어버렸다.

목소리도 부드럽고 윤기가 있어져 젊은이의 음성이 되어버렸다.

수 년 동안 증진 하자 몸은 완전히 이십 대의 청년 시절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는 무너진 무진동의 동굴을 뚫고 나오면서 제자들이 성의가 없어서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무진동 밖에 세워진 석비를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부! 저희 제자들이 느끼건 데 요즘 사부께서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비록 사부 밑에서 다년간 무공을 닦았다 하나 아직 사부의 일초을 감당할 수조차 없습니다.

제자들은 마땅히 사부가 죽이시면 달게 죽음을 받아야 하지만, 저희들을 죽이는 것이 사부의 참뜻은 아닐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사부의 일거수 일투족에 불안을 느껴 감히 사부 곁을 떠나고자 의견을 모았습니다. 무진동을 파괴하는 것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부의 추격을 잠시라도 늦추고자 함입니다. 부디 석송림에서 편안히 여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어린 소아(小阿)는 우리가 데려가 잘 키우겠습니다. 우리가 소아를 잘 키우게 사부께서는 절대로 석송림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불초한 제자들이 간절히 바랍니다.>

<석송림을 나오지 마십시오. 소아를 훌륭히 키우겠습니다. 혹시 사부께서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신다면 이월(二月) 보름달이 떨때 석송림에서 연기를 올려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 제자들이 안심하고 사부를 다시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소아는 우리가 잘 키우겠습니다.

제자일동 >

 

비석을 본 혈기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간이 콩만한 놈들. 네가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공들여 키운 제 놈들을 죽일까봐 도망을 쳐? 흥 이놈들 좋다. 어디 두고 보자. 나도 이제 네놈들 못지않게 젊은데 내가 네 놈들이 주는 밥만 차려먹을 줄 알고……)

석비는 석송림의 여기저기에 서 있었다.

아마도 혈기자가 다른 곳으로 뚫고 나올까 싶어서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혈기자는 비석의 글씨들을 유심히 살폈다.

(요건 셋째 진성(震聲)이 놈 글씨고……이건 큰 놈인 청천(靑川)이……이건 예진(藝珍)이 그년……그리고 요건 성화(成華) 놈……흥! 성화 이놈이 제일 많이 만들어다 세웠구나. 겁장이 같은 놈 어디 두고 보자……)

동굴 속에서 반로환동이란 신선의 술법을 닦고 나온 혈기자의 마음은 맑고 깨끗해져 있었다.

이미 예전의 슬픔이나 분노 같은 것은 깨끗이 사라지고 마치 어린 아이 같은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게다가 요놈들이 감히 소아(小阿)를 가지고 은근히 인질로 삼아? 못된 놈들……)

그러나 비석의 글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가 불쑥 찾아가면 젊은 놈들이 겁먹고 무슨 짓을 할 지 몰랐다.

그렇다고 비석에 적힌 대로 이월 보름을 기다려서 <나 미치지 않았소>하고 광고하는 것도 자존심상 내키지 않았다.

며칠을 어떻게 할까 고심을 하다가 문득 기막힌 생각이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비석에는 석송림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가 있는 곳은 석송림 안이 아닌 절벽 밑의 석옥 이었던 것이다.

석송림을 지나가지 않고 뒤쪽 절벽으로 해서 분지를 나가버린다면 석비의 경고를 어긴 것이 아닐것 같았다.

그는 이마를 탁 쳤다.

(역시 젊다는 것은 좋은 거야? 내가 늙었을 때는 도저히 생각해 내지 못할 계책이지……만약 놈들이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면 무조건 몰랐다고 잡아떼야지……)

그렇게 해서 천하제일인 혈기자는 청년으로 둔갑하여 다시 세상에 나와 버렸다.

강호를 돌아다니며 소문을 들어도 제자들의 종적은 묘연했다.

그러다 그는 십이 고수 중의 사수(四手)가 자기의 제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바람 같아서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멀리 남황까지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막내인 조예진이 자기의 옛날 친구의 소호연(蘇昊硯)의 아들과 연인이었음을 생각해 내고 백인장에 들르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이곳 창산(蒼山)에서 백인장의 어린 꼬마를 만난 것이었다.

 

[그런데 네 내공이 오갑자가 되는 것 같으니 그 영문을 모르겠구나]

[응,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심심하니까 해본 짓 일 거야. 난 날 때부터 그랬어.]

[한데, 무슨 일로 집을 나왔지? 그리고 아까 너를 쫓아 왔던 그 여자는 누구?]

[어? 그것까지 알아? 우리 작은 어머니……]

혈기자의 눈이 반짝 하고 빛이 났고 소일초는 또다시 불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 싶어 투덜대기 시작했다.

[글쎄,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무공을 가르쳐줄려고 하지 않아. 그래서 가출했더니 작은 어머니가 잡으러 온 거야. 그런데 어째서 그냥 돌아갔는지 모르겠어. 여태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그건 나의 표기를 보았기 때문이지. 그걸 보아도 네 작은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이 틀림없을 거야.]

[누군데?]

[조예진!]

[이름은 맞지만 성은 틀렸는 걸. 누구나 소부인(蘇夫人)이라고 하더라……]

[이 녀석아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거야.]

[정말 세상에 그런 법이 있었나?]

혈기자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짙은 우수가 그의 얼굴에 깔리고 분위기가 무거워져서 천하의 신행마동도 감히 함부로 떠들 수 없었다.

소일초는 혈기자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만 바위에 기대어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혈기자는 몸도 마음도 다 젊어졌고 무엇 하나 맘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오직하나 제자들과 손녀 소아(小阿)는 보고 싶었다.

소일초의 말로 짐작해 보건데 조금 전에 소일초를 쫓아왔다가 부리나케 돌아가버린 여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제자인 조예진이 분명했다.

혈기자로서는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표기를 붙쳐둔 것이 오히려 나쁜 효과를 불러온 것이었다.

그는 두 손을 허공으로 번쩍 들었다.

그러자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부터 붉은 빛줄기가 날아와 그의 소매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바로, 그의 독문표기인 혈기(血旗)였다.

그의 혈기가 꽂혀있는 영역 내에서는 무림인이라면 결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에게는 제자들이 자기가 있는 동굴을 무너뜨렸다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제자들에게도 큰 악의는 없었고 단지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한 정도 일 뿐이었다.

동굴 따위가 무너져서 혈기자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제자들도 자기도 우수운 정도의 일이었다.

제자들은 자기를 실제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아들마저 죽어버린 지금에야 제자들이 친자식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아무튼 중간에서 화해를 성사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야 손녀도 만나고 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 자기는 젊어져 버렸는데 자기가 아무리 혈기자라고 해도 제자들이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제자들의 속이 좁은 것 같아 화가 벌컥 치밀었다.

[못된 것들……]

하고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잠들었던 소일초가 깜짝 놀라 공중제비를 넘으며 뒤로 날아가 큰 나무 뒤에서 눈을 비비며 쳐다보았다.

과연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가 철저하게 되어 있는 녀석이었다.

혈기자에게는 순간적으로 소일초를 이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네 이름이 뭐지?]

소일초는 잠이 들깬 표정으로 말했다.

[소일초. 신행마동이 바로 나지.]

혈기자는 소일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절세무공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했다고 했지?]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마. 그 대신 너는 몇 가지 일을 내 대신 해주는 거지……어때?]

혈기자는 소일초가 단번에 응락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일초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우리 내기로 결정하자. 내가 지면 형씨 일을 대신 해 주기로 하고 형씨가 지면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기로…]

[……?]

[특히 아까 내 어린도를 맞고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그 무공을 배우고 싶어……]

혈기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린애라서 예의 같은 것 따지지 않고 이것저것 다 받아주었더니 이제는 숫제 자기 친구처럼 대하려 한다.

아무리 자기가 변했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소일초가 어느새 그의 눈치를 긁었는지 재빠르게 말했다.

[형씨 분명히 반노환동한 혈기자지?]

[…………]

[잘 생각 해보라구. 나는 신행마동(神行魔童), 형씨는 반노환동(返勞還童) 뭐가 어떻게 됐던지 간에 다같은 어린아이 인데 굳이 어른인척 하지 말라구.]

나름대로의 일리는 있었다.

혈기자는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저놈은 아예 내놘 놈이니 무시하고 사는 것이 수명에 보탬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는 대로 받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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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장

 

             귀산의 무림대회 (3)

 

 

누군가가 소리쳐 물었다.

[석두공이 누구요?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오. 돌대가리라는 그 말이 이름이오 아니면 외호요?]

[와하하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설곽이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말했다.

[이름이오. 조금 남다른 이름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무공으로 그를 능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오. 만약...]

[...!]

[...!]

설곽이 잠시 말을 끊자 장내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들엇다.

[이 자리에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노부는 자천을 해서 다른 분들과 비무하도록 하겠소. 사실대로 말하자면 노부는 석두공 소협 이외에 지금 추천된 어느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소.]

웅웅웅...

내공이 엄청나게 깃든 그의 음성은 소용돌이 치듯이 귀산을 울렸다.

군웅들의 안색이 변했다.

또한 설곽의 무공을 잘 모르던 하삼풍 등도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곽의 공력은 그들에 비해서 손색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삼노장의 팽덕이 일어나서 말했다.

[노부의 생각도 근본적으로 설문주와 같소이다. 석두공 소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노부도 다른 분들과 비무를 해볼 생각이오.]

석두공... 석두공...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너도 나도 석두공하는가?

그만 없다면 검성이고 십대고수고 간에 나서서 맹주의 자리를 노려보겠다고 말하는 고수들이 잇달아 나오지 않는가?

군웅들의 관심은 온통 석두공이라는 사람에게로 쏠렸다.

그때 무형도객이 말했다.

[사실 본인도 석두공 소협을 추천할 생각이었소. 그는 작고하신 천하제일인이신 무치 동호천 노선배의 직전제자이시오.]

술렁술렁...

동호천의 제자라는 말에 군중들은 앞뒤를 돌아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림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오년 전, 동호천이 작고하면서 부터였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살아있을 때는 풍진기인으로 천하를 유람하며 지냈던 그였지만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했던가 하는 것을 모든 무림인들은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치 동호천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천하는 여전히 태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동호천의 제자가 이번 무림대회를 주관했으며 고수들이 추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워 할 뿐이었다.

동호천의 제자, 무치 동호천은 제자를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검성이 조용히 일어서며 말했다.

[무형도객의 말이나 호표문의 설문주의 말이나 삼노장의 팽장주 말이나 모두 옳소이다. 노부는 단언하건데 이 자리에 석두공 소협보다 무공이 더 강한 분은 없으리라 생각하오.]

[노부의 의견도 검성과 같소이다.]

만박노조도 검성의 말에 찬동했다.

군웅들은 더욱 술렁거렸다.

누군가가 소리쳐 물었다.

[그럼 그 석두공 소협은 지금 어디 계시오? 어째서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소?]

군웅들 모두의 궁금함이었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우리가 이곳 귀산에서 무림대회를 연다는 것은 천하에 널리 알려진 일이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도들께선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검종맹이나 잔혼각, 적룡혈운도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을 것이오.]

[그렇소.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군. 나도 집에서 나올 때 검을 갈아서 나왔는데 오는 중에 한번도 써보지 못했소.]

누군가가 소리쳤다.

무형도객의 말이 이어졌다.

[석두공 소협은 여러분들이 이곳에 무사히 당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검종맹과 잔혼각, 그리고 적룡혈운도의 총단을 단신으로 공격했었소. 그들은 그 피해로 인해 이곳으로 올 여력이 없었던 것이오.]

군웅들 중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혼자서 세 곳의 총단을 공격했단 말이오? 그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농간이다. 석두공이란 자에게 우리를 고스란히 바치려는 농간이다.]

누군가 술병을 던지며 농간이라고 고함쳤다.

순간,

취릿!

은색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던져진 허공을 휘감았다.

한 소녀가 가늘고 긴 연검을 뻗쳐들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허공에서 순식간에 열여덟 번의 자세를 바꾸며 옆으로 움직여갔다. 마치 선녀가 하늘을 나는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술병이 던져진 곳을 정확하게 찾아내서 내려섰다.

그녀는 장지연이었다.

화가 잔뜩 난 듯한 그녀가 털보장한의 목에 연검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뭐가 농간이라는 것이냐? 농간이라면 그것을 증명해라. 그렇지 못한다면 즉시 목을 베어버리겠다.]

검이 살짝 흔들리자 연검에 매달렸던 술병이 소리없이 베어져 떨어졌다.

털보장한은 싸늘한 감촉이 목으로 전해지자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인간의 무공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농간이라고 생각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오.]

[그것을 증명이라고 하느냐?]

장지연이 서릿발같이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인간의 무공이 그렇게 강하면 안되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때였다.

[어린 계집애가 검을 너무 함부로 쓰는 구나. 본 곡주가 버릇을 가르쳐 주겠다.]

하삼풍이 둥실 떠오르면서 나직하게 소리쳤다.

장지연이 차갑게 내뱉었다.

[이제 보니 저 능구렁이를 추천한 자였군. 아마도 능구렁이의 제자중 하나겠지?]

[다... 닥쳐라! 난 하곡주님을 모른다.]

털보장한이 당황하여 외쳤다.

[흥!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맹주로 추천해? 웃기는 일이군!]

털보장한의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그때 하삼풍이 그녀의 뒤로 이르며 소리쳤다.

[버릇을 고쳐주마!]

그의 손에서 백광이 번쩍였다.

[장매! 조심해 단혼장(斷魂掌)이야!]

백란이 고함치며 몸을 날렸다.

스읏!

순간 장지연의 연검이 살아있는 듯이 백광을 뿌리며 뒤로 향했다. 손은 여전히 앞을 향한 그대로인데 연검만이 휘어지며 하삼풍을 공격해나간 것이었다.

연검의 빠름은 실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어검술이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파파팍!

하삼풍은 손을 거두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장지연은 그의 단혼장을 깨끗하게 막아낸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폭풍무존에게 배운 검법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화라라락!

중인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녀의 위기를 보고 몸을 날렸던 백란이 그녀의 곁으로 내려섰다.

[아주 훌륭한 검법이야! 장매!]

장지연은 생긋웃고 말했다.

[이건 내가 석두공 소협으로부터 배운 거예요. 만약 그가 직접 펼쳤더라면 하곡주께선 이미 지옥을 구경하고 게실 걸요?]

그녀는 비웃음을 던지고 백란과 함께 자기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

하삼풍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더 싸우게 된다면 그가 패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초에서 그녀에게 밀렸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휘이익!

한줄기 흰 그림자가 포물선을 그리며 광장의 중간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줄근하게 보이는 백의는 핏물로 얼룩져 있었으며 짧고 노르스름한 머리는 귀에도 닿지 않을 듯하고 그러면서도 호수같이 심원한 눈빛을 가진 미청년이 거무튀튀한 방망이를 들고 서있었다.

얼굴에는 지치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몇 사람이 벌떡 일어섰고 장지연과 백란이 동시에 소리쳤다.

[석두공!]

군웅들은 저자가 석두공이구나 하면서도 내심 못미더워했다. 

그렇게 고수같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형도객이 반색하며 그를 맞았다.

[이제 왔는가? 수고했네. 정말 애썼네.]

하지만 석두공의 그의 말을 듣지 못하는 듯 말했다.

[빨리 이곳을 피해야합니다. 척살대가... 척살대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무형도객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들이 벌써 나왔단 말인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소이다. 전멸당하지 않으려면 모두 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석두공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을 만났는가?]

[그들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의형인 일초진천수의 전갈을 받았습니다.]

석두공은 말을 하면서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부상을 당했는가?]

[아닙니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서 저들을 피신시켜야 합니다. 척살대는 모두 삼마경을 익혔습니다.]

석두공은 양주를 떠난 이후 단 한번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동분서주했던 것이다.

무형도객은 북위로 뛰어올라가 소리쳤다.

[여러분들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돌아가도록 하시오. 어서!]

그의 말에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갑자기 돌아가라니 무슨 말이오? 영문을 말하시오!]

[적들의 척살대가 이곳으로 오고 있소. 빨리 피해야하오.]

[물은 제방을 쌓아서 막고 적은 적은 병사로써 응한다고 했소. 적이 온다면 맞서 싸워야지 그 무슨 말씀이시오?]

군웅들이 아우성을 쳐대었다.

[말씨름하고 있을 시간이 없소이다.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무형도객이 다시 외쳤다.

웅성웅성...

광장은 질서를 잃고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소리 높여 무형도객을 욕하는 자들도 있었고 무슨 영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슬금슬금 내빼기 시작하는 자들도 있었다.

석두공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발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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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북경> 아침.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황금전장> 정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황금전장 안쪽에서는 하인과 하녀들이 등을 들고 분주히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는다. 모두 사색이 되어 있고

아직 어두운 건물 안을 등으로 비추며 찾는 하인과 하녀들

 

#117>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씨부리는 것이냐?]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대청에서 터져 나온다. 대청 앞 마당에는 황금수라들과 여자무사들 전원이 모여 있는데 모두 초긴장하여 얼어붙어 있다. 숫자는 백여명

벽초천; [황금수라! 황금나찰!] [수많은 영약을 처먹여서 네놈들을 일류고수로 만들어준 이유를 잊어 처먹었느냐?] 쾅! 쾅! 앉아있는 화려한 의자의 손잡이를 연신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벽초천. 단단한 의자 손잡이는 벽초천의 손이 내리칠 때마다 개져서 파편이 튄다.

벽초천 옆의 의자에는 마은혜가 앉아서 울고 있다. 손수건으로 눈물 닦으며. 마은혜 옆에는 벽세황이 굳은 표정으로 서있다. 벽세황은 손에 종이를 한 장 들고 있고.

문간에는 이세창이 초긴장한 표정으로 서있는데 서류철을 하나 들고 있다.

대청에는 중년의 황금수라 세 명과 역시 나이 든 여자 무사 세 명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서있다. 이들이 황금나찰과 황금수라 지휘관들

벽초천; [네놈들의 존재이유는 우리 벽씨 집안 식솔들의 보위가 아니냐?] 이를 갈며 황금수라들을 노려보고

벽초천; [헌데 옥령이가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해?] [네놈들이 그러고도 본장의 녹을 먹을 염치가 있느냐?]

[죄송합니다 장주님!] [면목이 없습니다.] 고개 숙이는 황금나찰과 황금수라 지휘관들. 겁에 질렸고

벽초천; [죄송! 면목!] [그 따위 말 들으려고 네놈들 부른 거 아니다.]

벽초천; [당장 나가서 옥령이를 붙잡아 와라!] [만일 옥령이 신변에 변고가 생기라도 하면...] 살벌

초긴장하는 황금나찰과 황금수라 지휘관들

벽초천; [네놈들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저주하게 될 것이다.] 이를 갈며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고

오싹! 소름이 돋는 황금나찰과 황금수라 지휘관들. 이어

[존명!] [반드시 아가씨를 모셔오겠습니다!] 일제히 포권하는 황금나찰과 황금수라 지휘관들. 이어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황금나찰과 황금수라 지휘관들. 문간에 서있다가 옆으로 비켜서는 이세창

[최소한의 경비요원만 남고 모두 출동한다!] [관부에 협조를 구해 아가씨의 행방을 찾아라!] [서안으로 가신다고 했으니 서쪽을 집중적으로 뒤진다.] 외치며 대청 앞을 떠나는 황금나찰과 황금수라 지휘관들. 그 뒤를 젊은 황금나찰과 황금수라들이 뒤따르고

벽초천; [밥버러지 같은 놈들...] 열린 문을 통해 그걸 보며 이를 부득 갈고

벽세황; (옥령이 이년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한숨 쉬며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보고.

 

<서안까지 다녀올게요. 조심할 테니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불효녀 옥령 올림> 종이를 배경으로 벽옥령의 얼굴 떠올리는 벽세황

 

벽세황; (세상이 얼마나 험한 데 계집년이 혼자 서안까지 다녀온단 말인가?) 소리없이 한숨을 쉬고

벽세황; (이래 저래 청풍 그놈이 우리 집안에 우환을 몰고 오는구나.) 입술 깨물며 청풍을 떠올리고. 그때

마은혜; [상공! 우리 옥령이에게 별일 없겠지요?] 손수건으로 눈물 닦으며 벽초천에게 묻고. 그러자

벽초천; [너무 걱정 마시오.]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테니 곧 잡혀올 거요.] 돌아보지 않고 무뚝뚝하게

마은혜; [그 어리석은 것이... 세상 물정도 모르면서 대체 무슨 배짱으로 집 밖으로 나간 건지...] 눈물 닦으며 울고

벽초천; [옥령이는 무공에 제법 자질이 있소.]

벽초천; [본장의 무술사범인 풍뢰검왕이 말하길 옥령이의 무공은 제 몸 하나쯤은 충분히 지킬 수준이라고 했소.] 안심시키려 말하고

마은혜; [어린 계집애가 무공을 익혔으면 얼마나 익혔겠어요?] [제발... 제발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셔야할 텐데...]

이세창;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끼어들고

벽초천; [뭔가?] 무뚝뚝하게

이세창; [하녀장(下女長)의 보고에 의하면 하녀 강혜분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눈치 보며 서류철을 읽은 시늉하고

마은혜; [혜분이 년이 사라져?] [그년은 나와 옥령이의 시중을 드는 게 주임무잖아요?] 놀라서 묻고. 벽초천은 찡그리고

벽세황; [혹시...] 흠칫! 하며 이세창을 보고

이세창; [내 추측으로는 강혜분이 옥령아가씨와 동행한 게 아닌가 싶네.] 벽세황에게 대답하고

마은혜; [그...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 되는군요.] [혜분이 년은 제법 세상 물정에 정통하니...] 안도하는데

벽초천; [총관!] [가서 타노를 불러오게.]

이세창; [청풍이 아비 타노를 말씀이십니까?] 의아해서 묻지만

손을 흔들어 귀찮다는 시늉하며 대답하지 않는 벽초천

이세창; [분부 받들겠습니다.] 급히 허리 숙이고

밖으로 나가는 이세창. 헌데

끼익! 이세창이 나가자 갑자기 대청의 문이 저절로 닫히기 시작한다.

벽세황; (대청 문이 저절로 닫히기 시작한다.) 놀랄 때

밖으로 나가던 이세창도 흠칫 하며 돌아보지만

이세창에게 가라고 손짓하는 벽초천. 마은혜도 다소 놀라지만 아주 크게 놀라는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고개 숙이고 멀어지는 이세창

탁! 이윽고 닫히는 문. 이제 대청 안에는 벽초천과 마은혜 부부, 벽세황만 남는데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대청 안이 어둑하다.

벽세황; (문이 저절로 닫히기도 하고... 어째 으스스 한 걸.) 침 꿀꺽. 마은혜도 긴장한 표정으로 두리번. 그러다가

마은혜; [상... 상공! 혹시...] 무언가 짐작하고 벽초천에게 물을 때

벽초천; [그만 나오시오.] 누군가에게 말하고. 그러자

[놀라셨다면 죄송하외다.] 슥! 한쪽 구석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선다. 깜짝 놀라 돌아보는 벽세황과 마은혜. 반면 벽초천은 그리 놀라지 않는 표정이고

타노; [부르실 줄 알고 미리 와있었소이다.] 쿵! 어둠 속에서 나서는 것은 타노다.

벽세황; (타... 타노!) 경악과 불신

벽세황; (이미 오래 전부터 대청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도 황금나찰과 황금수라의 수뇌부를 포함해서 아무도 타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건...)

<타노가 사실은 절세고수라는 뜻이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어 벽초천과 마은혜 앞으로 나오는 타노를 배경으로 벽세황의 생각 나레이션

벽초천; [어서 오시오 영반(領班)!] 슥! 자리에서 일어나고. 마은혜도 마지못해서 일어나고. 마은혜는 타노의 정체를 알고 있다.

벽세황; (영반!) 경악하고

벽세황; (맙소사 그렇다면 타노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황금수라와 황금나찰들의 영반이란 말인가?) 경악할 때

타노; [장주!] [마님!] 포권하고

타노; [소인이 불편하니 착석하시지요.]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지만

벽초천; [신경쓰지 마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는 우리 벽씨 집안사람들만 있으니...] 고개 저으며 말하고. 이어

벽초천; [세황이 너도 이제 알 때가 되었으니 정식으로 소개하마.] 벽세황을 돌아보고

벽초천; [타노는 사실 우리 집안사람이다.] [황금수라와 황금나찰들의 수령이기도 한데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하인들과 어울려 지내왔다.]

벽세황; [그... 그렇습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타노의 눈치를 보고

타노; [솔직하게 말하마.] 벽세황에게

타노; [내 이름은 이산하(李山河)가 아니고 벽산하(碧山河)이며 네게는 백부(伯父)가 된다.]

벽세황; [황... 황금수라들의 영반일 뿐 아니라 저의 큰 아버지이기시도 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경악하고

벽초천; [사실이다.] 억지웃음. 마은혜는 못마땅한 표정

벽초천; [타노... 형님은 네 조부가 처음 얻은 아들이었다.]

벽세황;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소자가 몰랐는지요?]

타노; [내 어미는 천한 백정(白丁)의 딸이었고 또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의 몸이었다.] 벽초천 대신 말하고

타노; [말 그대로 집안의 수치...] 쓴웃음

타노; [그래서 네 조부는 날 자식으로 인지하지 않고 종처럼 대했었다.]

벽세황;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억지웃음. 그러다가

벽세황; [그럼 청풍이도 우리 집안사람...] 경악하여 눈 부릅뜨고

타노; [그건 아니다.] 고개 젓고

타노; [나는 불구인 탓에 여자를 접해본 적이 없다.]

벽세황; [청풍이는 백부님의 양자였군요.] 깨닫고

타노; [십팔 년 전, 우연히 길에서 주운 고아를 아들 삼아 길러온 것이다.] 고개를 조금 끄덕이고

타노; [물론 장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정체를 숨겨주기 위해 청풍이에 대해서는 일체 모른 척 해온 것이다.] 벽초천을 보며

벽세황; [그... 그랬군요.] 억지웃음 + (잠깐이나마 등골이 서늘했다.)

벽세황; (괴물같은 능력을 지닌 청풍이 놈이 만일 벽씨였다면 황금전장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청풍을 떠올리며 침 꿀꺽 삼키고.

벽세황; (그리고 비로소 이해가 가는 점이 있기도 하다.)

벽세황;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종놈에게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시겠다고 한 아버지의 결정은 말이 안되었었다.)

벽세황; (아버지가 그런 결정을 내리셨고 어머니가 탐탁치 않아 하시면서도 결사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은 건 청풍이의 신분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생각할 때

타노; [장주가 날 보자고 한 이유는 알고 있네.] 벽초천에게

벽초천; [아랫것들은 믿음이 안 가니 형님께서 직접 나가셔서 옥령이를 찾아와주셨으면 합니다.] 고개 좀 숙이고

마은혜; [부탁드려요 아주버니.] 역시 고개 숙이고

벽세황; (자존심 강한 어머니까지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면 타노, 백부의 무공은 절대 평범하지 않겠구나.)

타노; [옥령이는 조카이기도 하니 당연히 수색에 나서야겠지만...]

타노; [대신 장주와 마님도 내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해줘야겠네.] 말하며 벽초천과 마은혜를 보고

벽초천은 무표정. 하지만 타노의 시선을 접한 마은혜는 찔끔

벽초천; [말씀하시지요.]

타노; [청풍이가 당했다는 변에 장주 부부는 책임이 없는가?] 벽초천과 마은혜를 지긋이 보며 묻고

벽초천; [없습니다.] 즉시 대답

타노; [마님은?] 마은혜에게.

움찔 놀라는 마은혜. 하지만

마은혜; [아주버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새침하게

말없이 마은혜를 보는 타노

마은혜; [제가 어찌 감히 아주버니가 아끼시는 양자를 해코지 할 생각을 하겠어요?:] 새침한 표정으로 마주 보며 말하고. 그러자

타노; [마님께서 지금 하신 말씀 잊지 않겠소이다.] 고개 숙이고. 이어

타노; [옥령아가씨의 행로에 대해서는 집히는 바가 있으니 곧 찾아내서 모셔오겠소이다.] 돌아서고

벽초천; [부탁드리겠소이다.] 고개 숙이는데

스스스!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타노의 모습이 흐려지더니

퍼억! 사라지는 타노

벽세황; (사라졌다!) 놀랄 때

마은혜; [휴우!] 털썩! 의자에 다시 주저앉는 마은혜. 벽초천도 앉으려 하고

벽세황; (사람의 몸이 연기처럼 꺼지는 저런 경신술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놀라고.

마은혜; [정말 불편해요.] 새침. 궁시렁. 벽초천도 옆에 앉고. 찡그리며

마은혜; [아주버니는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조여 와요.] [앞으로도 가급적 제 눈에 띠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벽초천; [불편하더라도 참도록 하시오.] [어쨌거나 우리 집안사람이고 무엇보다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분이니...]

대답하지 않고 샐쭉거리는 마은혜

벽세황; (천한 종인 줄 알았던 타노가 내 백부이기도 하고...) 벽초천과 마은혜를 곁눈질하고

<우리 황금전장에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비밀과 사연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구나.> 실내의 모습 배경으로 벽세황의 생각 나레이션

 

#117>

<-북경과 항주를 잇는 경항운하(京杭運河)> 좌우로 강둑이 똑같은 넓은 강. 강이 아니고 운하다. 수많은 배들이 오간다. 주로 바닥이 평평한 화물선들이다. 화물선들은 아주 길고 넓다.

짐을 가득 싣고 오가는 거대한 화물선들 사이로 홀수선이 높은 여객선들도 오가고

그중 한 여객선. 상당히 크다. 돛대가 두 개에 선실도 2층이나 되고. 돛과 노를 함께 써서 움직이는 배다.

그 여객선 뱃머리에 함께 서서 오가는 배들을 구경하는 벽옥령과 강혜분. 둘 다 죽립을 썼고 벽옥령은 남장을 한 상태다. 벽옥령은 들뜨고 신나는 표정

벽옥령; [저기 봐 언니! 저렇게 큰 배가 있어.] 근처를 지나는 거대한 화물선을 가리키며 신나 하고

벽옥령; [마치 집 몇 채가 한꺼번에 떠다니는 것 같애.] [저렇게 무거운 게 어떻게 물 위에 떠있는 걸까?] 흥분하고. 주변의 승객들이 왜 저러나 하고 힐끔거린다.

강혜분; (아가씨는 세상에 태어난 후 사실상 처음 황금전장을 나온 셈이다.) 그런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생각하고

강혜분; (물론 종종 바깥나들이를 하긴 했어도 하녀들과 호위무사들에게 둘러싸여 정해진 곳만 다녔었다.) 좋아하는 벽옥령을 보고

강혜분; (그 때문에 난생 처음 하는 바깥세상 구경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강혜분; (저런 철부지를 혼자 여행하게 했으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여객선에 함께 타고 있는 음침한 인상의 사내들이 자신들을 보는 걸 곁눈질로 살피며 생각하고

강혜분; (나 역시 세상 물정에는 그다지 밝지 못하지만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만 한다.) 심호흡

강혜분; (그렇긴 해도 아가씨가 머리 쓰는 건 제법이다.)

강혜분; (아가씨의 가출을 알아차린 장주님께서는 모든 호위무사들을 내보내 추적하게 하셨을 텐데...) 화내는 벽초천을 떠올리고

강혜분; (서안으로 간다고 적어놓은 아가씨의 편지 때문에 대부분 서쪽을 수색하고 있을 것이다.)

강혜분; (하지만 아가씨는 경항운하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행로를 택했다.)

강혜분; (운하를 따라 황하까지 내려간 후 서쪽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인데...) (멀리 돌아가긴 하지만 추적을 따돌릴 가능성은 높아졌다.)

<기왕에 벌어진 일이니 아가씨가 무사히 서안까지 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만 한다.> 뱃전에 서있는 두 여자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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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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