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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전 7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소일초는 와룡강의 다른 주인공들과는 많이 다른 성향입니다.

천방지축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지요.

복잡한 세태에 지친 일상에 청량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第 一 章

 

      운남(雲南)으로 가는 꼬마

 

 

 

강남은 물빛이 좋다.

봄 날을 즐기는 유객(遊客)들은 이리저리 몰려 다니고 있고,

대리로 향해 뻗은 길에는 마차들과 사람들이 번잡한데,

아주 기괴한 꼬마 하나가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소년의 등에는 자기의 키만큼이나 한 장도(長刀)가 매어져 있었고,

옆구리에는 머리통만한 술병이 매달려 있었다.

깔끔한 용모와 단정한 백의로 보아 명가(名家)의 자손이 분명한 듯 한데,

눈에서 반들거리는 장난기는 사람 여럿 골탕 먹일 것만 같았다.

강남의 사월 햇볕은 따갑기 조차 했는데……

따분했던지 타박타박 걸어가던 꼬마 소년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빌어먹을……]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행인들이 쳐다보자 꼬마는 기분이 조금 풀리는지 대로를 가로막고 섰다.

한대의 마차가 달려오다가 길을 막고 있는 꼬마 앞에서 황급히 멈추었다.

[아니 이 녀석이 다치면 어쩌려고……]

마차의 마부는 꼬마를 향해 소리쳤다.

꼬마는 앞으로 한걸음 내딛어서 말의 코를 작은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소일초(蘇一招)라구……자네 멋대로 부르지 마!]

마부는 갑자기 말이 막혔다.

사십이 넘은 자기를 꼬마가 자네라고 부르다니……

[이……이……]

화가 뻗혀서 막 욕이 튀어 나오려는 찰나인데 꼬마의 말이 먼저 그의 입을 막았다.

[이 마차 운남 가는 거지? 그렇지?]

행인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고 눈이 둥그레져서 이 꼬마 악당의 횡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부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얼굴마저 벌개지는데 마차 안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래! 운남 간다! 어쩔래 임마!]

역시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마차의 문을 벌컥 열면서 뛰어나왔다.

스스로 소일초라고 밝힌 꼬마는 마차에서 뛰어나온 꼬마를 보더니 다짜고짜 달려가서 소매를 꽉 잡았다.

그리고 확 잡아채더니 번쩍 들었다가 관도에 던져버렸다.

[도련님!]

[너 이놈!]

마차의 안팎에서 여자와 남자의 소리가 어우러 터져나오고……

흰옷을 입었던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어이쿠! 이놈이 기습을 해……?]

마부는 어느새 소일초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옷자락을 터는 백의소년의 옆에는 중년여인이 내려서 있었다.

소일초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건방진 녀석……감히 내게 덤벼?]

그때 마부의 우악스런 손길이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행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부는 보통사람이 아닌 듯 그의 손에서는 예리한 바람소리가 나며 마치 소일초의 머리를 깨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빡!

 

소리가 나면서 소년은 뒤로 퍽 쓰러져 버렸다.

눈동자를 까뒤집고 입을 짝 벌린 것이 영락없이 죽은 것같았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살인(殺人)이다. 살인이다!]

마부와 백의소년, 그리고 중년부인은 안색이 확 변했다.

[이……이런, 나는 아무 감각이 없었는데……]

마부는 당황하여 더듬거리며 말했다.

[빨리 마차에 태워요.]

중년부인이 마부를 향해 소리치며 먼저 소년을 데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네……네……]

마부는 어쩔 줄 몰라하며 쓰러져 있는 소일초를 안아들다가 허리를 휘청했다.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아이쿠……시체가 무겁다더니 그 말이 맞는 말이었구나. 이 꼬마마저 이렇게 무거운 것 같으니……)

[빨리 달려 의원으로 가요!]

마차 안에 소년의 시체를 들여 놓자마자 중년부인이 또 소리쳤다.

마차는 미친 듯이 달려갔고, 행인들은 술렁거리다가 제각기 걸음을 재촉했다.

소일초의 시체를 태운 마차는 관도를 따라 쉬지 않고 달렸다.

마차 안에는 한 켠으로 소일초가 눕혀져 있고 다른 쪽에 백의소년과 중년부인이 앉아 있었다.

[유모! 이젠 어떻게 하지?]

백의소년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도련님은 아무걱정 않아도 됩니다.]

중년부인이 말했다.

한데 갑자기 죽은 소일초의 목소리가 백의소년의 귀에 들려왔다.

[아니 나를 죽였으니 너도 곧 죽게 될거야………]

백의 소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유모! 이 놈이 벌써 귀신이 되었나봐? 금방 내귀에다 대고 뭔가 말했어……]

소년의 유모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금방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어, <나를 죽였으니 너도 죽게 될거야> 하고 말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소년의 귀에 소일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란 말이 빠졌군]

[그래 <곧>이란 말이 빠졌군.]

하고 소년은 따라서 말하다가 깜짝 놀랐다.

유모는 소년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시체가 곁에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지요. 그럼 내가 화골산으로 녹여 없애버리도록 하지요.]

그녀는 품에서 작은 옥병을 끄집어내서 뚜껑을 열었다.

그녀의 손이 소일초의 몸에 가까이 갔다.

막 그녀가 화골산(化骨酸)을 그의 몸에 부으려 할 때였다.

[왁!]

하고 소리치고 소일초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백의소년은 발을 들어 소일초를 걷어차려 했고,

중년부인의 손에든 화골산은 마차의 앞 벽에 쏟아져 버렸다.

[악독한 계집!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증거까지 인멸(湮滅)하려는 구나!]

소일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죽지 않았구나!]

백의소년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중년부인은 그에게 속았음을 깨닫고 코웃음을 치면서 원래의 자리에 앉았다.

소일초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마차 좀 얻어 타자는 거였지. 앞에 앉은 바보에게 내가 맞기는 왜 맞아?]

[아까 분명히 머리를 맞는 것 같았는데……?]

[내가 살짝 피하면서 입으로 <빡>하고 소리를 질렀지.]

소일초는 입으로 다시 한 번 <빡> 소리를 냈다.

영락없이 그 소리였다.

백의소년은 손뼉을 치며 재미있어했다.

[그래. 이제 생각해 보니 네 비명소리가 나지 않았어.]

소일초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소일초라고 해. 운남까지 가려고 하는 데 설마 쫓아내지는 않겠지?]

[나는 백소중(白小重)이야. 운임은 조금만 받을게.]

그의 말에 중년부인이 정색을 했다.

[도련님! 저런 불량스런 아이와 함께라니…… 안됩니다.]

소년 백소중이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말을 뱉었다.

[안되다니……? 그럼 유모가 내리도록 해!]

도저히 어린아이의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유모는 찔금하며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소일초가 백소중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보였다.

[너도 대단한데…… 최고야!]

 

마차는 남쪽으로 계속 달려가고 안에서는 두 명의 괴동(怪童)이 의기투합하여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백소중이 물었다.

[운남에는 뭘 하려 가니?]

[응, 우리 집 글 선생으로 있는 구질구질한 늙은이가 하나 있는데, 그 늙은이가 운남이란 곳에 가면 괴상한 짐승들과 맹수, 그리고 독물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군]

[…………]

[그래서, 아버지한테 불만도 좀 있고 해서 이번 기회에 운남에 가서 그것들이나 잡아오려고 도망쳐 나왔지.]

[몰래 집을 나왔다고?]

백소중의 물음에 소일초가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물론. 나같이 어린아이에게 운남까지 가라고 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걱정하실텐데……]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니까 별로 걱정은 하지 않을 거야. 어쩌면 벌써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가 나를 잡으러 오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네 아버지 작은 마누라가 무섭니?]

[그럼! 제기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를 꼽으라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여자를 꼽을 거라고. 무공도 얼마나 센지 도저히 한 번 눈에 뛰었다 하면 천하의 나도 도망칠 생각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잡혀가고 말지……]

[너보고 때리기도 해?]

[아니……그와는 정반대야 항상 나에게 잘해줘. 게다가 내가 무엇을 해도 꾸짖는 법이 없어.]

[그런데 왜 무섭다는 거지?]

백소중은 점점 더 소일초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수법이 통하지 않은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거든, 나는 매일 장난을 치지 않으면 몸에서 좀이 쑤신다고!]

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일초를 지켜보던 중년부인도 그들의 말에 점점 호기심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장난 중에 불장난이 있어.]

[…………]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작은 찻잔에다 불씨를 담아가지고 소매 속에 숨겼다가 여종들을 만나면 그들의 낡은 치마나 옷자락에 대고 살그머니 불씨를 옮겨 놓아 버리는 거지.]

[그러면……?]

[그들은 치마를 벗어 던지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나는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이 와서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

[너무 심한 것 같은데……]

백소중도 못마땅한 듯이 말했고 중년부인은 아예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그러면 아버지가 알고 난 후에는 그 여종에게 새 옷을 주거든.]

[아무래도 그건 좀 심한 것 같애. 여종에게 옷을 줄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군]

[좋아! 네 생각도 일리가 있어. 한데 그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 말이야……]

[…………]

[그 여자한테는 아무리 몰래 옷자락에 불을 붙혀도 불씨가 절로 사그라져 버리고 연기하나도 나지 않는단 말야 게다가……]

[잠깐! 너는 어느 집의 자손이지?]

중년의 유모가 소일초의 등에 있는 장도(長刀)에 눈이 닿자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물었다.

[나는 절대 말 못해!]

[네 등에 있는 그 장도는 보통 물건이 아닌 듯한데……]

소일초는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흥! 물론 보통이 아니지…… 내가 나오면서 우리 아버지 걸 훔쳐서 나온 거니까!]

유모는 어이가 없는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백소중은 큰 소리로 외쳤다.

[야! 너 집에서 나올 때 도둑질까지 했구나!]

[원래 가출할 때는 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래야 가출효과가 더 큰 거라구……]

그때 마차의 뒤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멈춰라!]

아주 큰 목소리 였다.

순간, 소일초는 욕을 했다.

[제기랄, 저 귀신같은 영감들이 벌써 이곳까지 쫓아 오다니……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잡힐 수도 있겠어……]

마차는 이내 멈추어 섰고,

뒤에서 들렸던 목소리는 마차의 앞에서 들리고 있었다.

마차 앞에는 두 사람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이 마차가 그 마차 인 듯하군……]

[내가 물어보도록 하지.]

두 노인은 서로 말을 주고받더니 그 중에서 한 사람이 마부에게 물었다.

[당신이 마차 속에 장도를 맨 꼬마를 태웠소?]

[물어볼 것 뭐 있어. 문을 열어 보면 금방 알 것가지고……]

한 노인은 성미가 급한 듯 마차 옆으로 순식간에 다가와 문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마부는 안색이 확변하며 성미급한 노인을 향해 일장을 내리쳤다.

[영감! 물러서!]

마부의 손은 허공에서 많은 그림자를 남기며 문을 여는 노인을 향해 덮쳐갔고 노인은 모른 척 하고 그냥 문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마부의 무수한 손 그림자는 다른 한 노인이 소매를 휘두르자 무산되어 버렸다.

이어 노인의 한 손이 마부의 허리띠를 잡아들고 멀리 휙 던져 버렸다.

덜컹󰠏󰠏󰠏󰠏󰠏󰠏

소리를 내며 마차문은 열렸고,

불안한 기색을 띤 중년의 유모가 백소중을 안은 채 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백소중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한 마디 툭 뱉고 문을 닫았다.

[실례했소이다. 사안이 워낙 급하다 보니 결례를 하게 되었소. 우리는 백인장(百刃莊)의 사람들이오.]

두 노인은 몸을 솟구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부는 황당한 일을 당한 듯 입을 다물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마부석에 앉았다.

마차의 천정에 매달려 있던 소일초는 그때서야 내려오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조마조마 했네……]

이때 멀리서 노인의 음성인듯한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백대선생(白大先生)에게 백인장의 두 늙은이가 안부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귀신같은 쭈그렁탱이들……]

소일초가 또 욕을 했다.

중년의 유모는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이 안되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밖에 있는 마부는 원래 백가장(白家莊)의 일급무사였다.

노인을 향해 백가장의 절기인 산수장(散手掌)을 펼쳤음에도 전혀 힘도 쓰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붙잡혀 던져지고 말았다.

게다가 백인장(百刃莊)의 사람들이라니……

천하 무림인 치고 누가 그 위대한 백인장을 모르겠는가?

백 명의 도(刀)의 달인들이 대를 이어서 소속해 있는 곳,

백인장의 사람치고 고수아닌 자 없다 했는데……

게다가 십여 년 전부터는 그 모습을 완전히 세상에 드러내 놓고 있었다.

강북에서는 청옥검궁이 최고의 문파라고 하고 있지만 강남에 웅크리고 있는 백인장이야 말로 진정 고수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장주(莊主)인 도왕(刀王) 소선풍(蘇仙風)은 무공이 신화경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도법(刀法) 뿐만이 아니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내공(內功)으로 당금 무림에서 은근히 최고수로 부상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백인장(百刃莊)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하나뿐인 아들 신행마동(神行魔童) 소일초(蘇一招)이다.

 

-신행마동 소일초!

 

그는 그의 아버지 보다 더욱 무서운 인물로 불리워 진다.

나이는 올 봄에야 겨우 십 세가 되었지만 칠 세 때 부터 무림에 이름을 떨쳐왔다.

도왕 소선풍과 그의 부인인 이씨가 함께 원영련무대법을 펼쳐서 소일초를 낳았기 때문이다.

 

-원영련무대법(元影鍊武大法)!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특이한 비법이었다.

소선풍이 창안한 것으로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대법은 산모(産母)가 이미 절정의 신공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태아가 발생한 초기부터 산모는 원영련무대법에 따라 아직 제대로 발현도 하지 않은 태아에게 운기행공을 시키게 된다.

즉 태아는 태중에서 부터 신공을 수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태아가 자란 삼개월 부터는 매일 그의 아버지가 내공을 주입하여 태아의 신공을 숙달시켜 나가고……

그렇게 하여 육개월이 지나면 태아는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이백 팔십 년에 달하는 내공을 지니고 있으며 몸은 금강체(金剛體)가 되어 있는 것이다.

태어난 후 하루가 지나면 걸으며 이틀이 지났을 때는 뛰고 달릴 수 있다.

사흘이 되면 밥을 먹을 수 있고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바로 신행마동 소일초, 그가 그 대법이 장본인이었다.

너무도 총명하여 그의 아버지가 나중에는 아예 괴물이라고 쳐다보기조차 싫어 했다는 꼬마다.

지금의 신행마동 소일초는 오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서 신행마동 소일초는 다른 두 명의 절세고수와 더불어 불리워지게 된 것이다.

 

당금 무림의 고수들을 꼽자면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일노일녀일소이왕삼현사수(一老一女一少二王三賢四手),

 

일노는 당연히 은거한 천하제일인인 혈기자를 말한다.

그리고 일녀는 취풍녀(吹風女), 일소는 바로 신행마동이다.

이왕(二王)은 신행마동의 아버지인 백인장주 도왕과 청옥검궁주 검왕 이극송(李克宋)을 말하고,

삼현은 백대선생과 혈군자, 그리고 무심군자이다.

사수는 바로 혈기자의 네 제자로 등천마교의 겁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누가 꼽더라도 혈기자가 제일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는 직접 겨루어 보지 않는 한 무공의 우열은 알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다만 도왕 소선풍의 무공이 혈기자 다음일 것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중년의 유모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꼬마가 바로 신행마동 소일초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백소중이 소일초에게 말했다.

[네 집이 백인장(百刃莊)이었구나.]

소일초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꺼덕였다.

[네가 바로 신행마동(神行魔童)이고……?]

[응.]

대답한 소일초가 백소중에게 되물었다.

[네 아버지가 백대선생이냐?]

[아니……우리 할아버지…… 그런데 너 정말 그렇게 무공이 강해?]

소일초가 씩 웃었다.

[별것 아니야. 나는 우리 아버지한테도 못 이기고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한테도 못이기는 걸……]

[…………]

[게다가 난 진짜 절학은 맛도 못봤다구……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자기 도법은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뺀단 말이야……]

[그걸 가르쳐 주고 나면 네 아버지가 너한테 질까봐서 그럴 거야!]

백소중이 틀림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내 불만이 쌓인 거지. 사실 내 사부들은 신법 말고는 쓸만한 무공이 없거든……]

[네 사부도 따로 있어?]

[물론이지 임마! 원래 무공이란 사부한테 배우는 거라고……]

[난 우리 아버지가 가르쳐 주던데……그런데 네 사부들도 유명한 사람이야?]

[별로……난 잘 모르겠어. 다들 우리 아버지가 백인장에 잡아다 놓았는 걸 내가 몰래 풀어줘 버렸지……]

[이름이 뭔데……?]

[사마귀(四魔鬼)!]

소일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백소중의 유모가 아연실색을 했다.

 

사마귀(四魔鬼)-!

 

바로 네 사람의 괴인들을 말한다.

그들은 각기 주색투도(酒色偸賭)로 악명을 날렸다.

 

주귀(酒鬼)는 불취(不醉)이고 부진언(不眞言)이었다.

그의 말에 사실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그럼에도, 들을 때는 도무지 거짓의 흔적 역시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그의 주전신공(酒箭神功)은 술 대결에서 패한 많은 주당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그가 바로 사마귀의 우두머리였다.

 

색귀(色鬼)는 남성경직증환자(男性硬直症患者)였다.

그의 남성(男性)은 언제나 팽만해 있었고 그의 눈은 향상 대상을 찾아 희번덕거렸다.

그는 여성을 언제나 정면에서 마주보지 않는다.

얼굴을 돌린 채 어떤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기에 동조하게 되는 여자는 그의 마수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고 대화하는 상대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그에게 빠져 들어가 버리게 된다.

그때 그는 얼굴을 상대편 여인에게 보여주게 되는데,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불그스레하고 중후한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는 여인으로 하여금 넋을 놓아버리게 한다.

여인이 고개를 숙이면 또한 언제나 팽만해 있는 그의 바지속의 남성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미 여인은 그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다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처녀와 유부녀를 가리지 않았으며 관계가 맺어지고 나면 매정하게 버려 버린다.

버림받은 여인은 자살하기 일쑤였고 원한을 품은 여인이나 남자는 오히려 그에게 살해당했다.

그런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색귀가 익힌 무공은 전혀 엉뚱하게도 소림의 대자비수(大慈悲手)였으니……

 

투귀(偸鬼)는 세상에서 가장 대담한 도둑이다.

그가 드나드는 장소에는 분간이 없다.

빈민가의 주방에서 부터 황실의 보고(寶庫)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바닥은 마치 기름을 칠한 듯 매끄러워 어디에서도 매이는 법이 없었고 그의 신형은 연기와 같아서 누구도 잡을 수 없었다.

그에게도 한 가지 철저한 규칙이 있었으니,

바로 살인과 절도를 동시에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장소에서 사람을 죽였다면 결코 그곳에 있는 물건을 훔치지 않으며,

한 장소에서 물건을 훔쳤다면 반대로 그곳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또 한 장소에서 물건을 훔칠 수 없었으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는 무림에서 전설적으로 전해지는 중무신법(重霧身法)을 익혔으며 화산파의 매화지를 훔쳐 배운 후 더욱 발전시켜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도귀(賭鬼)는 철저한 도박사(賭博士)다.

결코 어떠한 도박에서도 패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정말로 승부를 점칠 수 있는 절묘한 재주가 있었고 그가 손가락을 몇 개만 꼽아보면 승패는 간단하게 추론해 낸다.

그렇기에 그는 큰 도박에서는 언제나 자기의 목을 걸고 상대방의 사지 중 하나를 걸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도박이 끝날 때 까지는 상대방은 결코 도귀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도박에 대하여 불복하는 자는 그의 수정검우(水晶劍羽)에 목숨을 잃고 만다.

도귀……

사마귀의 막내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공은 그들 중 제일 높을 것이라고 추정되어 진다.

그의 무공은 전혀 내력이 알려지지 않았다.

무림사에 어느 누구도 수정검우를 무기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사마귀 중의 신비인(神秘人) 도귀……

 

백소중의 유모는 정말 까무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행마동의 사부가 사마귀라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마귀는 무림의 고수서열에서 열외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정식적인 무공대결을 하는 법이 없기에 누구도 그들을 고수에 편입시키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그들과 함부로 맞서지도 못한다.

무서운 마귀들이기 때문이다.

유모가 떠듬거리며 소일초에게 물었다.

[사마귀가 소대협(蘇大俠)에게 감금되어 있다구요?]

그녀의 어투는 어느새 변해 있었다.

[유모는 귀가 없어? 내가 풀어줬다고 했잖아!]

소일초는 거듭 말하는 것이 귀찮다는 듯이 툭 쏘아붙였다.

[야! 너 아직도 젖 먹어?]

[아니……]

백소중이 눈을 동그랗게 떠고 대답했다.

[그럼 어디다 쓸려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유모를 데리고 다니는 거야?]

백소중은 아무 말도 못하고 유모를 바라보았다.

유모도 속이 부글부글 끌었지만 상대가 워낙 무서운 십이 고수 중의 하나 인지라 역시 아무 말 못하고 있었다.

[유모는 신경쓰지 말고 이야기나 계속해봐……뭘 그런데 자꾸 신경쓰고 그래?]

백소중이 소일초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소일초는 얼굴에 무서운 표정을 한번 지으며 유모를 노려본 후 다시 말했다.

[사마귀 사부는 말이야 우리 아버지한테 죄를 지은 적이 있다고 하더군.]

[…………]

[그래서 도망 다녔는데 ……너도 보았지 아까 그 두 영감쟁이 말이야. 그 영감들이 천하를 이 잡듯이 뒤져서 붙잡아 왔지. 그런데 이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이야.]

[…………]

[우리 집에 경계가 가장 심한 곳이 정뇌(井牢)인데 우물처럼 생긴 감옥이지. 그저 밑으로만 파져 있는 곳의 제일 밑에 사마귀가 감금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아홉 개의 칸이 있는데 각 칸 마다 한 사람의 고수가 지키고 있지.]

[그렇게 되면 정말 빠져 나올 방법이 없겠는데……?]

백소중의 말이었다.

[천만에! 더욱 빠져 나오기가 쉽지.]

[어떻게……?]

[내가 사마귀한테 무공을 배운 대가로 가르쳐 줬는데, 그건 뇌옥을 무너뜨려 버리는 거야.]

[…………?]

[뇌옥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뇌옥에서 지키고 있던 고수들이 먼저 빠져 나가게 되지. 그러면 제일 밑의 뇌옥만 파괴하고 그 고수들의 뒤를 따라서 빠져 나오는 거야. 그 다음 장원을 빠져 나가는 일이지 뇌옥을 나가는 일은 아니니까 내 소관이 아니지……]

백소중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너는 너무 일을 경중(輕重) 없이 처리하는 것 같아……]

소일초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봐! 난 아직 어린아이야, 당연히 어린아이는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거라구……]

[말이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참.]

[사마귀가 정뇌에서 한 가지 좋은 일을 하기는 했어. 아버지한테서 도망가려고 그들은 특이한 신법을 한 가지 창안했더군, 그 이후로 내가 가출할 때 마다 잘 써먹고 있지……]

 

마차는 남으로 남으로 달렸는데 사방은 어둑어둑 해 오고 있었다.

소일초가 문득 말을 멈추고 벌떡 일어섰다.

[백소중, 고마웠다. 이제 나는 다시 도망쳐야겠어.]

[아까 그 영감들은 가버렸잖아?]

[그 영감들은 별 것 아니지만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는 정말 대단하거든, 실은 여기서 내가 노닥거리고 여유를 부린 것도 오늘은 그 여자가 외출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야.]

[…………]

[벌써 돌아와서 나를 잡으러 나섰을 텐데……여긴 우리 집에서 겨우 오백 리 정도 밖에 안되잖아. 이 정도라면 우리 작은 어머니 손바닥 위라고 할 수 있거든.]

[어? 너 이제는 작은 어머니라고 하는 구나.]

[짜식! 나도 스무 번에 한 번쯤은 아버지 작은 마누라 대신에 작은 어머니 라고 불러주기도 하는 효자란 말이야. 그만 갈게.]

그가 막 마차 문을 열었을 때였다.

어디서 들려오는 지 분간이 되지 않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마치 곁에서 이야기 하듯이 조용히 들려왔다.

[우리 말썽꾸러기…… 거기에 숨어있었구나.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지……]

소일초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어머니! 한 달 만 놀다 갈게요. 절 쫓아오지 마세요……]

소일초의 몸이 뿌연 안개에 휩싸이면서 빗살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아득히 사라져 갔다.

그의 끝말은 이미 먼 곳에서 들려왔다.

마부와 백소중, 그리고 유모는 멍해져 버렸다.

마차는 그대로 달리고 있는데……

마차의 열려진 문 앞에 아주 아름다운 젊은 부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마차가 달리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문 앞에서 안에 탄 백소중과 유모를 향해서 인사를 했다.

[우리애가 아직 버릇이 없어서……폐가 많았지요? 언제 백인장에 한번 들려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달칵!

마차 문은 절로 닫혔고 미부(美婦)의 모습은 소일초가 사라진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유모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인장이야 말로 무림의 용담호혈(龍潭虎穴)이구나. 일개 여주인의 무공도 초일류라고 할 만 하니……]

마차는 어둠이 깃드는 관도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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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장

 

            귀산의 무림대회 (2)

 

 

 

광장에 쳐져 있는 천막들에는 각기 사람들이 나누어 들어가 있었다.

음주가효가 펼쳐져 있으며 벌써부터 얼굴이 벌건 사람들도 있었다.

하삼풍은 적당한 자리를 찾다가 한쪽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흠칫했다.

검성과 만박노조, 그리고 백검보의 전 고수들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 숙연한 표정은 주변의 공기를 가라앉히는 것같았다.

하삼풍이 포권하고 말했다.

[이정께서 먼저 와 계실 줄은 몰랐소이다. 그동안 안녕하시었소?]

만박노조와 검성이 고개만 끄덕여 인사했다.

하삼풍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검성등이 있는 천막의 맞은편으로 갔다.

[초상집같은 분위기로군. 백검보의 오만한 태도가 어딘지 달라진 것같은데...]

무심코 던진 듯한 그의 한마디가 검성과 만박노조의 귀에까지 들렸다.

“휴우....!”

검성이 탄식을 했다.

자신의 부덕함이 이에 이르렀다 싶으니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진우백의 해남검파는 이미 쳐져 있는 천막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상하는 용(龍)이 그려진 천막을 빈터에 세우고 들어갔다.

여전히 그들의 그같은 행동에 부러움과 찬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우백은 가마 속에서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오가 조금 지났다.

군웅들은 그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주최자들을 기다리며 웅성거렸다.

[무형도객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석두공이라는 자는 어떤 자야?]

[어째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지?]

 

검성의 천막과 하삼풍의 천막, 양쪽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는 천막에 있는 군웅들 사이에 아리따운 두 소녀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장지연과 백란이었다.

장지연이 소곤거렸다.

[그가 과연 어디서 나올까요? 이틀 전부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는데... 혹시 구대문파를 이곳에 부르기 위해 간게 아닐까요?]

[그렇진 않을 거야. 구대문파에 대해선 내가 단정할 수 없지만 염려하지 않아도 될거야. 그는 아마 또다른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거야.]

백란이 대답했다.

장지연이 말했다.

[난 아직도 그 숯덩어리가 석두공이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아요. 그는 무치 동호천 그분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부로 모시고 있었는데... ]

[그가 누군지는 도무지 모르겠어. 세상에 그처럼 무공이 강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어쨌든 난 그를 찾아서 빨리 데려가야만 해. 뇌주탄의 일만 끝나고 나면 함께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백란이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때였다.

둥󰠏󰠏둥󰠏󰠏둥-󰠏󰠏!

누군가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큰 북으로 달려가 두드리기 시작했다.

북소리가 번져감에 따라 좌중의 소요는 가라앉고 군웅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였다.

백란의 눈에 반가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북을 두드리던 사람이 북채를 던져버리며 북위로 날아올라갔다.

헌앙한 풍모의 백의중년인, 바로 무형도객이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지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 더 많았다.

무형도객은 내공이 충일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곳까지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무림동도 여러분, 정말 고맙소이다. 본인은 무형도객이란 허명을 얻고 있는 사람이외다.]

 

󰠏󰠏와아!

 

뭇 군웅들이 환호로써 그의 인사에 답했다.

무형도객의 말이 이어졌다.

[당금 무림은 검종맹과 잔혼각, 그리고 적룡혈운도로 말미암아 혼란스럽기 그지없소이다. 정기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도의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소. 능력이 있는 자는 나서려하지 않고 뜻이 있는자는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오.

본인이 전해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들 삼인은 무림의 모든 고수들을 제거해버릴 전문적인 척살대(刺殺隊)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하오. 백만 무림 동도가 힘을 합치지 않고는 이 무림의 존망이 걸린 난국을 타개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외다.]

[...!]

[...!]

찬물을 끼얹은 듯 군웅들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무형도객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백만 동도가 힘을 합친다면 그들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어쩔 수 없을 것이오.

뿐만 아니라! 무림에 그릇된 야욕을 품은 자는 기필코 멸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오. 이 모든 것에 무림동도 여러분의 정의를 수호하려는 붉은 의지가 필요하오.]

[그렇소이다! 더 이상 그들의 발호를 묵과해서는 아니되오. 그들이 다른 문파를 공격할 때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방관해 온 것이 급기야는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그들이 점차 세력을 키워가면 마침내는 모두가 그들의 종이 되거나 죽게될 것이오.]

군웅들 중에서 한 노인이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는 커다란 도를 등에 맸으며 오른팔이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으나 그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무형도객이 포권하며 말했다.

[호표장의 장주이신 오호단혼도 설곽대협이시군요. 설대협의 그같은 의기를 후배는 높이 존경합니다.]

[마땅히 해야할 말을 했을 뿐이오.]

호표장주 설곽은 포권을 한 후에 앉았다.

무림과는 거의 관계를 맺지 않고 지냈지만 호표장주 설곽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군웅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까지 무림대회에 나오자 술렁이며 지금이 어려운 때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또 한사람의 노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노부는 작약을 캐서 먹고 사는 삼노장의 팽덕이란 늙은이요. 설장주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요. 그들의 검은 손은 노부가 있는 시골까지도 뻗치고 있소. 이곳에 오신 분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협박을 받거나 하신 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오. 이래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권각을 배우고 도검을 휘두를 줄 안다고 하지만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소?]

그러자 한 중년부인이 일어서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항주 장보장(藏寶莊)의 며느리로 무림의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룡혈운도와 잔혼각 등을 쳐부수기 위한 무림대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항주 장보장이라고 하면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끼인다는 갑부 무혁해의 장원임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데 그의 며느리가 무림대회에 불쑥 나타났다는 것은 아주 뜻밖의 일이었다.

또한 장보장이 얼마 전에 의문의 혈겁을 당했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사람들의 웅성임 속에 부인의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형도객이 웅혼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부인께서는 내공을 지니지 않으셨으니 동도여러분께선 모두 조용히 해주시기 바라오.]

그의 음성은 크지는 않았지만 구석구석 또릿하게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금방 광장은 조용해졌고 부인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제가 친정에서 돌아왔을 때, 집은 불에 탔으며 가족들은 물론이고 하인들도 모두 처참하게 죽어있었습니다. 호위무사들의 시체들은 모두 목이 잘려 널려있었습니다. 어린 아들도 딸도 허리가 반으로 잘려서 죽어있었고, 남편의 시체는 반쯤 불에 타 있었습니다!]

중년 부인의 음성은 슬픔마저 초월한 듯 담담했다.

하지만 그녀의 음성을 듣는 군웅들의 가슴에서는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말이 격하게 흘러나왔다.

[저희 집은 무림에 속해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 집을 멸문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은 강도의 무리입니다.

저는 관(官)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이 땅의 주인이신 황제페하께도 진언할 생각입니다. 무림인들을 관에서 간여하지 않는 대신에 무림인들은 황제의 백성인 우리들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황제께 무림을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진언할 것입니다.]

[...!]

[...!]

무부인은 스스로 격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황제에게 무림에 대한 개입을 요청한다!

 

황실과 무림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무서운 말이었다.

여인의 한이 깊어지면 능히 그럴 수도 있다.

군웅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장보장을 멸망시킨 것으로 알려진 적룡혈운도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강호의 근본적인 도의마저 무너뜨린 그들을 용서해서는 안되오!]

누군가가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옳소! 그들을 영원히 제명시켜야하오.]

누군가 소리치자 군웅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그들을 죽이자!

󰠏그들을 죽여야한다.

󰠏무림인의 터전을 없애는 그들을 죽여야한다!

 

검광과 도광이 하늘을 찌를 듯 번득거리고 군웅들의 함성이 귀산을 무너뜨릴 듯 터져 나왔다.

무부인은 군웅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장지연이 초조한 듯이 물었다.

[그는, 그는 어째서 아직까지 보이지 않을까요?]

[기다려봐, 이제 곧 이곳의 분위기는 무림맹을 결성하고 맹주를 추대하는 쪽으로 기울게 될 테니까. 어쩌면 그는 맹주가 되기 위해 나설 준비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무형도객께서 지원해준다면 그로서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백란이 군웅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지연이 놀란 듯이 말했다.

[맹주라고요?]

[짐작일 뿐이야.]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는거죠?]

백란이 미소를 지었다.

[저분은 나와 가장 가까운 분이시거든... ]

[...?]

[우리 아버지야.]

[세상에...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

장지연이 그녀의 말에 입을 짝 벌렸다.

한데 백란, 그녀가 바로 무형도객의 딸이었단 말인가?

 

어쨌든 광장의 분위기는 백란 그녀가 말한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맹주를 선출하고 그를 중심으로 뭉쳐서 삼인에 대항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에 따라 맹주감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먼저 맹주를 추대해야 하오.]

[그렇소, 맹주로 하여금 조직을 정비하고 삼인을 맞아 싸울 체계를 갖추도록 해야하오.]

[맹주를 추대합시다!]

군중들은 너도 나도 한마디씩 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무형도객이 소리쳤다.

[한분씩 말씀하도록 하시오. 이래서는 아무 의논도 되지 않소이다.]

다시 술렁임이 가라앉자 누군가가 일어서서 말했다.

[이곳에는 지금 무림의 대표적인 고수들도 몇 분 계십니다. 그리고, 이름을 숨기고 은인자중하시던 고수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분들 중에서 맹주의 대임을 맡으실 분이 나오리라 생각되기에 두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소이다.]

[빨리 말해보시오.]

[어떤 방법이오?]

군웅들이 소리쳤다.

그 사람이 말을 이었다.

[타천과 자천의 방법입니다. 추천을 받으신 분과 스스로 맹주의 대임을 맡아보시겠다고 나서시는 분 모두 맹주의 자격이 있는 것으로 합니다. 그리하여 그분들 끼리 비무를 하여 최후의 승자가 맹주가 되는 것입니다.]

[옳소! 맹주는 무엇보다도 무공이 강해야하오. 무림인이 무공으로 가리지 않으면 무엇으로 고하를 나누겠소?]

 

--옳소! 옳소!

 

군웅들이 산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다른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다.

[비무는 단지 승부만 갈라야지 서로 죽이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무림의 대적을 상대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소이다. 그러면 이제 후보를 추천하도록 합시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산동 권문의 팽전이 백검보의 보주이신 검성을 추천하외다.]

한 사람의 중년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성이라면 능히 맹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았다.

그때 다른 사람이 일어서며 또 말했다.

[해남검파의 장문인이신 진우백 문주를 추천합니다.]

진우백은 요즘 혜성처럼 부각되고 있는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환호로써 답했다.

또 다른 사람이 일어서며 말했다.

[이 대회를 주관하신 분은 바로 무형도객이십니다. 무공으로 보나 그 출중한 협기로 보나 마땅히 맹주가 되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소!]

[옳소!]

무형도객의 이름이 거론되자 군웅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때 냉막한 인상의 노인이 일어서서 하삼풍을 추천했다.

[이 자리는 무공으로 맹주를 뽑는 자리라고 제위들께서 말하셨소. 무공으로 말하자면 단혼곡의 하삼풍 곡주께서도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 믿소.]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삼풍의 살명이 높기는 하지만 그의 무공이 강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또 다른 사람이 만박노조를 추천했다.

누군가가 철사보주 맹호산도 추천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십대고수는 모두 추천된 것같았다.

그 이후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는지 잠시 거론되는 사람이 없었다.

장지연이 초조한 듯이 말했다.

[언니, 어째서 그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자천할 수 있는 기회도 있잖아.]

[난 그를 맹주로 만들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예요. 그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으니까 염려스러워서... ]

그때 호표장의 장주인 설곽이 일어났다.

“노부는 다른 분들과 달리 한분의 젊은 영웅을 추천하고 싶소이다.”

웅혼한 내공이 실린 음성이었다.

군웅들은 호표장주 설곽의 공력이 그렇게 뛰어났던가 하고 놀라워했다.

[그 젊은 영웅께서 아직 이곳에 당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먼저 추천하도록 하겠소이다. 그는 무형도객과 함께 이 대회를 주관한 석두공, 석두공 소협이외다.]

석두공...

모든 무림첩에 적혀있던 얼굴없던 이름이 결국 거론되었다.

하지만 고수들 중에서 그를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검성과 만박노조등은 고개를 떨구었고 가마속의 진우백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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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독룡간의 모습. 달빛이 독룡간을 비추고 그 때문에 지면이 갈라져 생긴 독룡간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사람들 몇이 독룡간을 내려다보며 서성인다. 평범한 무림인들

무림인1; [뭐야? 달이 중천에 떴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독룡간을 내려다보며 궁시렁

무림인2; [그러게나 말이다.] [밤마다 서기(瑞氣)가 치솟느니 보광(寶光)이 비치니 하던 강호의 풍문은 말짱 헛소문이었어.] 역시 내려다보고

무림인3; [그래도 독룡간에 접근했다가 실성하거나 심하게 다친 인간들이 있다고 하던데...] 역시 내려다보며 겁에 질리고

무림인1; [다른 일로 다치고 멋쩍으니 지어낸 말일 게야.] 코웃음

무림인1; [밤이 깊어 삼경이 다 되어 가지만...] 하늘의 반달을 보고

무림인1; [여기 독룡간에서 아무런 특이현상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있잖은가?]

무림인2; [역시 강호의 풍문 따위는 믿을게 못된다니까.]

무림인3; [내가 아는 사람도 독룡간에 들렸다가 심맥이 여러 곳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고 하네만...] 여전히 미심쩍고

무림인1; [그래서 우리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오늘 밤 들른 것 아닌가?] [헛소문이란 걸 확인했으니 이제 그만 내려가서 술이나 빨자구.] 돌아서고

무림인2; [그거 좋지] 역시 돌아서며 입맛 다시고

갸웃거리며 동료들을 따라가는 무림인3

 

#113>

달빛도 비치지 않는 독룡간 깊은 아래쪽.

동굴.

 

섭장천; [부심지독(腐心之毒)에 중독당하고 환우십보중 하나인 멸신창(滅神槍)에 심장이 궤뚫리기까지 했으니 노부는 당연히 죽었어야한다.] 가슴 섶을 다시 벌린 채 벽을 등지고 앉아서 말하고. 용각신망은 그런 섭장천의 무릎에 따리를 틀고 앉아서 섭장천의 가슴의 상처를 혀로 핥고 있다.

츠츠츠! 용각신망의 혀가 핥고 지나간 자리는 상처가 아물고 피가 멎는다

섭장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년 가까이 목숨을 부지해온 것은 바로 이놈 덕분이었다.] 용각신망을 쓰다듬고

청풍; (용각신망이라는 저 뱀의 혀가 닿은 부분은 상처가 아물고 피가 멎는다.)

청풍; (한눈에 봐도 절대 평범한 뱀은 아니다.)

섭장천; [이놈은 이무기(蟒)라는 이름에 걸 맞는 영물이다.] 용각신망을 내려다보면서 말하고

섭장천; [수천 년을 살아온 뱀들의 왕으로 온갖 독을 다스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상처라도 치유하는 신통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청풍; [지존이 영손녀를 이용해서 노야를 중독시킨 부심지독을 해독해준 게 그놈이었군요.] 용각신망을 보고

섭장천; [살접이란 계집이 널 중독시켰던 독을 해독시켜준 것도 용각신망이다.] 용각신망을 쓰다듬으며 끄덕

섭장천; [이놈은 널 해독시키려고 신망옥액(神蟒玉液)이란 이름의 타액을 먹여주었다.] [덕분에 너는 만독불침이 되어 이후로는 어떤 독에도 해를 입지 않게 될 것이다.]

청풍; [신망 네게는 너무도 큰 신세를 졌구나.] [그 은혜,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마.] 용각신망에게 포권하지만

쉭! 쉭! 청풍에게 눈을 흘기며 섭장천의 상처를 핥는 용각신망

 

<삼십여 년 전, 노부는 복우산을 지나다가 어떤 영물이 뿜어내는 영기(靈氣)를 감지하고 독룡간을 내려와 봤었다.> 높은 산봉우리에 서서 이마에 손을 댄 채 멀리를 보는 중년 시절의 섭장천. 멀리 산봉우리 너머에서 무지개같은 기운이 번진다.

<그 영기는 물론 용각신망이 뿜어내는 것이었는데 놈은 이곳 독룡간 아래에서 뱀들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승천하기 위해 수련을 쌓고 있었다.> 뱀으로 가득 찬 계곡. 중년 시절의 섭장천이 걸어가자 뱀들이 겁에 질려 좌우로 갈라지고 그 끝에 옥좌같은 바위 위에 용각신망이 고개를 쳐든 채 보고 있다.

<노부와 만났을 때 용각신망은 백여 년 만 더 수련하면 용(龍)이 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위 장면의 용각신망 모습 배경으로

<첫 만남에서 노부와 용각신망은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게 헤어졌었다.> 포권하는 중년 시절의 섭장천. 마주 고개를 숙이는 용각신망

<그후 삼십여 년이 흐른 후 노부는 지존의 함정에 빠져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노인이 된 섭장천이 지존이 찌른 멸신창에 가슴이 관통 당하던 장면

<비록 멸신창에 궤뚫려 심장이 으스러졌지만 노부는 그때까지 쌓아온 내공 덕분에 즉사는 면할 수 있었다.> 지존과 혈세사패의 패주들을 등지고 날아가는 섭장천. 가슴과 등까지 구멍이 나서 피가 뿌려진다

 

섭장천; [노부의 목숨은 천주산 은일곡에서 끊어지진 않았다.] 용각신망을 쓰다듬으며 말하고

섭장천; [그래 봤자 잠시 목숨이 연장된 것뿐,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탄식

섭장천; [하지만 지존이란 놈에게 복수를 하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었다.] 이를 부득 갈면서 말하고

섭장천; [이에 노부는 요행을 바라고 천주산에서 이곳 복우산까지 필사적으로 달려왔다.] [물론 이놈이 노부를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용각신망을 쓰다듬으며

청풍; (듣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청풍; (천주산에서 복우산까지는 이천 리 가까이 되는데 심장이 없어진 상태에서 달려왔다니...) 놀라고

섭장천; [하지만 노부의 희망은 희망으로 끝났다.] 한숨

섭장천; [비록 이놈이 상처를 치유해주는 신통력을 지니긴 했지만 부서진 심장을 원상복구 해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청풍; (그것까지 가능하다면 이무기가 아니라 진짜 용이겠지.)

섭장천;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상태로 노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격하게 움직이면 겨우 봉합된 상처가 터져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섭장천; [심지어 이 동굴에서 나가는 것도 위험한 상태였다.]

섭장천; [그래서 노부는 밤마다 독룡간 밖으로 살기를 뿜어냈다.]

청풍; (독룡간의 괴사는 그렇게 생긴 거였군.) + [지존이란 자가 흥미를 보이고 찾아오길 바라셨군요.] 깨닫고

섭장천; [그렇다.] 끄덕

섭장천; [언제고 독룡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지존의 귀에 들어갈 테고...] [호기심에 그놈이 찾아오면 동귀어진 할 생각이었다.]

청풍; [그랬는데 후배 때문에 기력을 소진하셨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고개를 조아리며 미안해하고

섭장천; [처음에는 낙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청풍을 지긋이 보며 말하고

섭장천; [노부의 목숨은 대략 열흘쯤 남았다.]

섭장천; [그 사이에 노부의 절대삼검(絶代三劍)을 전수 받아서 지존을 죽이고 혈세사패를 세상에서 없이해라!] 강렬한 표정

 

#114>

<-북경> 역시 밤. 하늘에는 반달이 떠있고

<-황금전장> 밖에서 본 모습, 문은 닫혀있고

 

황금전장 후면의 높은 담장. 담장 밖은 좁고 어둑한 골목이다.

슥! 높은 담장 위로 사람 그림자가 하나 돋아나더니

휘익! 담장 아래 골목으로 뛰어내리는 날렵한 사람 그림자.

골목에 내려서서 주변 두리번거리는 건 벽옥령이다. 남장을 했으며 등에 검과 봇짐을 비스듬히 짊어지고 있다. 귀여운 장돌뱅이 소년 같은 모습. 캐릭터는 214 비슷

벽옥령; (들키지 않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어!) 담장 돌아보며 걸음 옮기고

벽옥령; (엄마! 아빠! 죄송해요.) 담장을 보며 울먹이고

벽옥령; (하지만 옥령이는 청풍오빠가 죽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입술 깨물고

벽옥령; (직접 서안까지 가서 내 눈으로 사고 현장을 확인하고 돌아올게요.) 걸음 옮기고. 하지만

[!] 눈 치뜨는 벽옥령

쿵! 벽옥령이 가는 앞쪽의 다른 골목에서 걸어 나오며 길을 막는 여자. 머리에는 죽립을 썼으며 한손에는 죽립을 하나 더 들고 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다.

벽옥령; [흑!]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칠 때

강혜분; [내 이럴 줄 알았어요.] 한숨 쉬며 가로 막는 여자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인다. 바로 강혜분

벽옥령; [막... 막지마 혜분언니! 난 반드시 서안에 가고야 말 거야.] 뒷걸음질치고. 고양이처럼 강혜분을 노려보며

강혜분;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 아가씨를 막을 수 있겠어요?] 한숨 쉬며 죽립을 내밀고. 그러자

벽옥령; [혹시...] 안도하며 죽립을 받고

강혜분; [이번에 제가 말린다 해도 나중에 어떻게든 빠져나가실 거 아니에요?] [그럴 바에는 제가 함께 가서 아가씨를 보살펴드리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소 지으며 말하고. 그러자

벽옥령; [고마워 언니!] 죽립을 한손에 든 채 와락 강혜분을 끌어안고. 흠칫하지만 끌어안게 놔두는 강혜분

벽옥령; [은혜 잊지 않을게. 그리고 청풍오빠의 생사만 확인하면 바로 돌아올 거라고 약속할게.] 강혜분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 부비며 어리광 부리고

강혜분; (이 응석받이의 철없는 짓에 동조하는 게 과연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벽옥령을 다독이며 한숨 쉬고

강혜분; (이런 짓을 했으니 주인님과 마님에게 경을 칠 각오를 해야 하는데...) 몸을 숙여서 벽옥령이 머리에 쓴 죽립의 끈을 턱 아래에 매어주며

강혜분; (하지만 후회는 없다.) 벽옥령의 손을 잡고 골목을 걸어 나가며 생각하고. 그런 강혜분을 돌아보면서 웃는 벽옥령

<나 역시 확인되지 않은 청풍의 안위 때문에 속을 끓여왔으니...> 두 여자의 뒷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115>

<-독룡간> 여전히 밤.

절벽 아래 동굴

 

청풍; [일천(一天) 쌍존(雙尊) 삼성(三聖) 사극(四極)...] 섭장천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되뇌이고

청풍; [열 명 모두 후배가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섭장천; [그들이 일반 무림인들은 잘 모르는 고금십대고수(古今十大高手)다.] 용각신망이 몸을 감게 한 상태로 말한다. 용각신망은 뒤쪽에서 섭장천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민 채 청풍을 보고 있다.

청풍; [무림에는 고금십대고수로 따로 분류되는 분들이 있었군요.] 놀라고

섭장천; [일천은 무림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원시천존이고...] [이존은 신선부의 개파 조사 신선낭낭과 마귀동의 시조 마귀조종이다.]

청풍; (일천과 쌍존...) (며칠 전 혼원동천에서 알게 된 이름들을 저분을 통해 다시 듣게 되는구나.) 내색하지 않고

섭장천; [삼성은 도성(道聖), 불성(佛聖), 유성(儒聖)을 말한다.]

청풍; [도성과 불성이 누군지는 짐작이 갑니다만...] + (무당파를 창건한 장삼풍(張三豊)과 소림사의 달마대사(達磨大師)일 것이다.)

청풍; [혹시 유성이라는 분은...]

섭장천; [네가 짐작하는 대로 유성은 대성(大聖) 공자(孔子)님이다.] 끄덕이며 공자를 떠올린다.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공자의 모습을 참조

청풍; [공자님도 무공을 알고 계셨었는지요?] 놀라고

섭장천; [알고 계셨다마다!] 엄숙하게

섭장천; [천지간의 이치를 깨우치신 철인(哲人)께서 어찌 무공 정도를 모르겠느냐?] 엄숙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하며

청풍; (하긴...) + [공자께서 젊은 시절 뭇 임협(任俠;협객)들을 호령했었다는 야사가 사실이었군요.] 역시 자세를 바로 하고

 

<젊은 시절의 공자께서는 혈기(血氣)를 주체하지 못하고 종종 지닌바 힘을 드러내곤 하셨다.> 거구의 사내가 사람 보다 큰 사자 조각상 두 개를 공깃돌처럼 허공에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하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그걸 보며 놀란다.

 

섭장천;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성품이 온화해져서 무공을 쓰는 일이 거의 없으셨던 것이다.]

청풍; [공자님의 무공 방면 진전을 노야께서 얻으셨겠습니다.]

섭장천; [그놈 누가 문일지십(聞一知十) 아니랄까봐 눈치 하고는...] 껄껄

멋쩍은 표정이 되는 청풍

섭장천; [네놈 말이 맞다.] [노부는 인연이 닿아 공자께서 남기신 철인진결(哲人眞訣)을 얻었었다.]

다시 엄숙한 표정

청풍; [철인진결...] [결코 평범한 무공은 아니겠습니다.]

섭장천; [평범하지 않지.] 끄덕

섭장천; [철인진결은 내공을 길러주는 효능만으로 따지면 고금을 통틀어도 세 손가락에 충분히 드는 대단한 무공이다.]

섭장천; [다른 무공들은 참선이나 면벽폐관을 해야 내공이 쌓이지만 철인진결은 생활 속의 모든 행위를 내공수련과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청풍; [그건 정말 대단한 효능이로군요.] 흥분

청풍; [일상생활이 내공수련이라면 다른 무공보다 몇 배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겠습니다.]

섭장천; [실제로 철인진결은 일반적인 무공심법보다 최대 열배 이상 효율이 좋다.] 고개 끄덕이고

섭장천; [즉, 다른 사람들이 십년 걸릴 수련도 일년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청풍; (그게 사실이라면 철인진결을 능가하는 내공심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겠구나.) 감탄과 흥분

섭장천; [다만 철인진결에는 내공을 축적하는 비결만 있지 그걸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찡그리고

청풍; [일반적인 초식으로는 철인진결의 웅장하고 심오한 힘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겠습니다.]

섭장천; [물총의 구멍이 너무 크면 물을 세차게 뿜어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끄덕이고.

청풍; (물총이라니...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대나무로 만든 물총을 떠올리고. 뒤쪽에 끼운 손잡이를 밀어서 앞쪽의 작은 구멍으로 물을 쏘는 구조의 물총

섭장천; [그런 이유로 철인진결은 면면히 전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써서 무림에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청풍; [하지만 노야께는 다른 기연이 있었겠습니다.]

섭장천; [그놈 하여간 눈치 하고는...] 웃고

머쓱한 표정이 되는 청풍.

섭장천; [구대천마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청풍; [예!] + (구대천마를 패퇴시킨 흑백신귀가 사실상 내가 처음으로 모신 스승이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겠지.)

청풍; [번뇌혈종, 태양천후(太陽天后), 빙백마모(氷魄魔母), 파천검마, 반안독마(潘顔毒魔), 백면살조(白面煞祖), 야차서시(夜叉西施), 지옥수라(地獄修羅), 환영신마(幻影魔神)가 구대천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남삼녀의 실루엣을 떠올리며 말하고. 육남삼녀가 구대천마이고 흑백신귀를 묘사할 때 나왔었음.

섭장천; [잘 알고 있구나.] 끄덕

섭장천; [사실 구대천마는 마귀동의 후손들이다.]

청풍;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섭장천; [헌데 그들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흑백신귀에게 패한 후 마귀동으로 돌아가지 않고 각자 문파를 세워 독립했다.]

청풍; [혹시 혈세사패가...] 깨닫고

섭장천; [구대천마중 백면살조, 야차서시, 지옥수라, 환영신마의 후손들이다.]

청풍; (역시!)

섭장천; [그들 외에도 번뇌혈종은 혈궁(血宮)을, 태양천후는 태양묘(太陽廟)를, 빙백마모의 빙백전(氷魄殿)을, 반안독마는 독성부란 문파를 세웠다.]

청풍; (독공으로 천하무적이라는 독성부가 구대천마중 반안독마의 후손들이었군.) 생각하다가

청풍; [!] 무언가 깨닫고

청풍; [파천검마는 문파를 세우지 않았군요.]

섭장천; [겨우 눈치 챘구나.] 웃고

섭장천; [파천검마는 자신이 검법으로는 고금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흑백신귀와 싸울 때 몸을 사린 다른 자들과 달리 물러서려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냉철한 인상의 중년 검객이 검은 기운을 일으키는 흑신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다. 그 중년검객이 파천검마다. 한 두 번만 나올 캐릭터이므로 대충 묘사. 다른 구대천마들은 겁을 먹고 달아나거나 물러서고 있고

 

청풍; [그 결과 문파를 세우거나 후손을 남길 기회가 없었겠습니다.] + [!] 말하다가 다시 깨닫고

청풍; [혹시 파천검마의 검결을 노사께서...]

섭장천; [노부가 바로 파천검마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웃으며 끄덕이고

청풍; [아!]

 

<젊은 시절 노부는 비를 피하러 들어간 오래 된 사당에서 한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 시신의 주인은 물론 파천검마였다.> 낡은 사당 내부. 부서진 벽 안쪽의 좁은 공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죽은 중년인의 시체가 한 구 있다. 위의 회상에 나온 아주 냉철한 인상을 지닌 파천검마인데 무릎 위에는 책 한권과 검 한 자루를 얹어놓고 있다. 벽 밖에서 그걸 보는 청년 시절의 섭장천

<노부는 파천검마의 시신에서 마검파천황(魔劍破天荒)이란 검결을 얻었다. 마검파천황은 마귀동의 시조 마귀조종이 남긴 열 가지 마공중 하나였다.> 파천검마의 시체 앞에 한 무릎을 꿇고 책을 집어드는 젊은 시절의 섭장천

<마검파천황은 그걸 익힌 파천검마가 검법으로는 고금최강을 자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섭장천이 들고 있는 책의 표지에는 <魔劍破天荒 秘訣>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다만 지나치게 살기가 강하고 패도적이라 최상승의 검법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책을 펼쳐보며 갸웃하는 젊은 시절의 섭장천

<노부는 마검파천황의 그같은 단점을 보완하고 철인진결의 이치를 참조하여 세 가지 검법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세간에 알려진 절대삼검이다.> 어떤 계곡에서 기합을 넣는 표정의 젊은 시절의 섭장천. 그의 앞쪽 30미터쯤에 있던 집채만한 바위가 둘로 쩍 쪼개진다.

 

섭장천; [천리어검(千里馭劍), 검벽신공(劍壁神功), 무상심검(無常心劍)이 절대삼검이다.]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고

청풍;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지녔을지 짐작이 가는 검법들이다.) 침 꿀꺽 삼키고

섭장천; [장담하건데 철인진결로 절대삼검을 구사하면 이기지 못할 상대가 없을 것이다.] 자부심 어린 표정

섭장천; [상대가 설령 신선낭낭이나 마귀조종이라 할지라도...] 강렬한 표정

[!] 눈 치뜨는 청풍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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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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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전 7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소일초는 와룡강의 다른 주인공들과는 많이 다른 성향입니다.

천방지축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지요.

복잡한 세태에 지친 일상에 청량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序 章

 

       天下第一人의 弟子들

 

 

 

천년무림사에 일대 획(劃)을 그을 수 있는 절대무이(絶對無二)의 초고수가 당금에 있었다.

그는 전 무림인에 의해서 서슴없이 천하제일인으로 불리어졌다.

어느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그가 사용하는 무공의 연원조차 아는 자가 전혀 없었다.

 

-혈기천존(血旗天尊)!

 

바로 그였다.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대는 무학의 일대조종(一代祖宗)-!

고금을 통틀어도 그 이름 앞에 설 수 있는 인물은 고사하고 비견될 수 있는 이름조차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절대무적의 경지에 올라선 가장 강하고, 그래서 가장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

그는 인간이기보다는 무신(武神)이마 선인(仙人)으로 취급되었다.

누구도 감히 그의 신성불가침함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천하제일인은 오래 전에 은거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천하무림은 결코 그의 존재를 잊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조용히 칩거하는 이 거인(巨人)을 깨우지 않기 위하여 정사(正邪)가 모두 자중하고 있었다.

혈기천존의 별호에서 보듯이 이 천하제일인을 잘못 건드리면 어느 누구도 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실로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혈기천존의 아들 부부가 무림에 나왔다가 일단의 사파무리에 의하여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등천마교(騰天魔敎)>

 

바로 이들이 범인이었다.

저 전설속의 비밀결사인 마교(魔敎)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광폭한 무리들...!

그들이 자신들의 위세를 과신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자신들 뿐만 아니라 전 무림에 가공할 재앙을 불러들인 등천마교,

그들은 사실 당금의 강호무림을 분할하고 있는 가장 강대한 네개의 세력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름하여 신주사패천(神州四覇天)-!

등천마교는 신주사패천중에서도 연원은 가장 일천한 문파였다.

하지만 그들의 욱일승천하는 기세는 오래전부터 전 무림인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어왔었다.

등천마교내에는 고수들이 즐비했으며 교주인 등천마황(騰天魔皇) 조천수(趙千壽)는 은연중에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나,

황산(黃山)의 절곡에서 은거하며 아들 내외를 기다리고 있던 혈기천존이 돌아오지 않는 아들내외를 기다리다 못해 세상에 나선 순간 등천마교의 신화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안개가 뿌옇게 끼어 있는 어느 날 새벽,

장강을 끼고 세워져 있던 등천마교의 총단에서 갑작스런 비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안개가 완전히 걷혀져 유월(六月)의 햇살이 장강 일대를 아름답게 비추었을 때,

한명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단장을 짚고 등천마교의 본단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모두 잠에서 깨어났어도 등천마교만은 깨어날 수 없었다.

등천마교 본단에 있던 모든 인간들은 이미 머리를 보존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대살겁(大殺劫)이 바로 천하제일인 혈기천존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교주 등천마황 조천수 이하 등천마교 총단의 이천칠백여 교도들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모조리 죽음을 당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머리가 파열되어 분간할 수 없는 처참한 모습으로……

이 대살겁에서는 하물며 개와 고양이등의 미물들 마저도 벗어나지 못했으니 천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에 의한 하나 거대문파의 몰살…!

이 어찌 전율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무림의 모든 문파들은 행여나 이 전대미문의 살겁의 불똥이 자신들에게도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했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혼자 손으로 천하사대거파중의 하나인 등천마교를 멸해버린 혈기천존,

그는 그길로 다시 황산 절곡으로 돌아가 산문(山門)을 닫아 걸어버린 것이다.

다만,

혈기천존의 제자들이라고 알려진 네 명의 남녀가 머리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등천마교의 지단(支團)들마저 완전히 쓸어버렸을 뿐이다.

 

-혈기사신재(血旗四神才)!

 

천하제일인의 네제자들!

무려 이만여명에 달하는 등천마교의 교도들이 그들 혈기사신재에게 살해당함으로써 대살겁은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이 전대미문의 대살겁에 소요된 겨우 한달 남짓,

그러나 신주사패천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라던 등천마교는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등천마교가 사라진 후 혈기사신재도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강호인들은 이 끔찍한 혈겁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무림은 이를 일컬어 혈기대살겁(血機大殺劫)이라 부르며 전율로 기억했다.

어느 누구도 대적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천하제일인 혈기천존(血旗天尊)의 이름과 함께...!

 

× × ×

 

-황산(黃山)!

 

무릇 황(黃)이란 오행(五行)의 중심이며 중원의 상징 색이 아닌가?

그러기에 황산은 중원의 중심이며 도교(道敎)의 본산(本山)이다.

그 황산의 깊은 곳.

그림과 같은 두 개의 절봉사이에 이만 여 평의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세외선경같은 이 분지에는 들쑥날쑥한 수많은 석순(石筍)들과 천년노송(千年老松)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황산 제일금역인 석송림(石松林)이었다.

석송림이 금역(禁域)으로 화한 것은 이곳에 한명 신인(神人)이 은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빛의 혈기(血旗)를 신표로 삼는 천하제일인이...!

 

오후의 나른 한 햇살이 석송림을 눈부시게 비출 때,

[호호호! 재미있지 아가야?]

문득 옥슬같이 해맑은 웃음 소리가 석송림을 울렸다.

한명 아름다운 소녀가 세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아기를 안고 콧노래를 부르며 석순(石筍)들의 숲 속을 춤추듯이 걷고 있었다.

열 일곱 살 쯤 되었을까?

전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해맑은 용모의 소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 장단에 맞추어 아기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였다.

아기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도 까르르 들리고……

소녀의 청초한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때였다.

[사매, 빨리 오너라. 다들 기다리고 있지를 않느냐?]

어디선지 굵직한 사내의 음성이 소녀의 귓전으로 들려왔다.

[미안해요 사형! 지금 가요!]

소녀는 즉시 대답하며 아기를 바짝 가슴에 당겨 안고 허공으로 몸을 뽑아올렸다.

화라락!

너울너울 춤추는 나뭇잎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소녀의 자태…!

하강한 선녀의 모습이 저러할까?

오륙십장쯤 날아갔을 때,

문득 십장 높이의 거대한 돌기둥이 소녀의 눈 앞으로 다가오고,

수평으로 날아가던 그녀의 몸이 반쯤 비틀리더니 바람에 휘감기듯 수직으로 솟아올라 거대한 석순위에 올라갔다.

[제가 조금 늦었나요?]

석순(石筍)위에는 세 사람의 신태비범한 젊은 청년들이 먼저와서 앉아 있다가 그녀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왔으니 됐다. 바로 본론에 들어가기로 하자.]

중앙에 앉아 있던 흑의를 입은 청년이 말했다.

네모 반듯한 얼굴에 사자(獅子)같이 위맹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한데, 대사형! 지금 사부님께선 어디 계신지요?]

소녀가 말하자 대사형이라 불린 사자얼굴의 청년이 다시 말했다.

[묘시말에 무진동(無塵洞)에 들어가셨다.]

[마침 적당한 때로군.]

소녀의 왼쪽에 앉아 있던 청삼을 입은 영준한 청년이 대사형이란 청년의 말을 받으며 눈을 번뜩였다.

[....!]

[....!]

잠시 네 남녀 사이로 심상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눈빛은 은은한 두려움과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윽고, 대사형이라 불린 흑의청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는 사제(師弟)부부가 등천마교의 무리에게 변을 당한 이후로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리셨다.]

[…………]

[사부님은 변했다. 나쁘게 말하자면 마성(魔性)에 빠지신 게지.]

[지금 무진동(無塵洞)에 들어가 폐관(閉關)하신 것도 보다 살기가 강한 무공을 창안하기 위해서다. 만일 사부님께서 폐관을 마치고 나오시면 어떤 또 끔찍한 살겁을 자행하실 지 모르는 일이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만 하오]

네 남녀의 심각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마침내 그들은 어떤 결론에 도달한 듯 했다.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가락을 물어 나온 피로 무언가를 맹세하는 혈서(血書)를 썼다.

바야흐로 역천의 모의가 이루어진 것이련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는 그들을 방실거리면서 쳐다보았다.

 

× × ×

 

저녁무렵,

석송림의 안쪽 절벽 밑에는 아담한 석옥이 몇 채 서있다.

제일 좌측의 한 석옥,

직접 손으로 만든 듯한 나무침상과 탁자가 보이고 예의 소녀가 아기를 작은 침상에 눕혔다.

아기는 이미 깊은 잠이 들었는지 새근새근 숨소리만 내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조예진(趙藝珍),

그녀는 바로 혈기천존(血旗天尊)의 네 제자인 혈기사신재(血旗四神才)중 막내로서 별호를 천외비연(天外飛燕)이라고 했다.

이곳 석송림은 바로 혈기천존의 은거지인 것이다.

그리고 천외비연 조예진이 낮에 석순 위에서 만났던 청년들이 혈기사신재의 다른 셋이었다.

 

-사면천왕(獅面天王) 위청천(衛靑天)!

-옥기린(玉麒麟) 대성화(代成華)!

-천수마영(千手魔影) 사진성(史震聲)!

 

이들 세 청년과 조예진이란 소녀야말로 단 한달만에 등천마교(騰天魔敎)의 교도 이만여명을 척살하여 전무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장본인들이었다.

전대미문의 혈풍을 일으켰던 혈기사신재가 이제 겨우 이십전후의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천외비연 조예진,

그녀는 나직히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지난 번에 강호에 나갔을 때 그분을 만나 보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마음 속으로 한 사람을 생각해 내고는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사부님이 변하기는 했어. 대사형의 말처럼 이성을 잃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녀는 낮에 석순위에서 했던 논의를 생각해 내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혈기천존은 아들 내외가 등천마교의 무리들에게 살해당한 후에 성격이 많이 변해 버렸다.

직접 등천마교의 본단에서 대살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젊은 네 제자들로 하여금 무려 이만명에 달하는 등천마교의 교도들을 살해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진동에 들어가서 또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조예진은 자신의 세사형들의 야심(野心)이 적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당금의 강호에서는 그들 네 사형제들의 무공을 당할 수 있는 인물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사형들은 이번 기회를 빌어서 내심 사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녀로서도 사부가 요즘 들어 더욱 무서워지고 정신도 온전한 것 같지도 않아서 불안했었다.

석송림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그녀 역시도 간절했던 것이다.

아무튼 사부 혈기천존 몰래 석송림을 떠날 계책이 그들 네 사형제에 의해서 세워졌고……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사부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사부의 어린 손녀, 주소아(周小阿)를 데리고 가기로 했던 것이다.

사부의 손길도 피할 수 있을 뿐더러 어린 소아를 마성에 빠진 사부에게 맡겨 놓을 수도 없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사부님은 앞으로 영원히 이 석송림을 나오지 못하실 것이다. 휴…아무리 사부님의 정신이 이상해 졌다고 해도 꼭 이렇게 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녀는 죄책감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연세때문에 무공이나 줄어들면 아무 염려없이 모실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

혈기천존의 무공은 나이를 몰랐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고강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중얼거렸다.

[무진동을 파괴한다고 해도 사부님은 이미 금강불괴의 몸이니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고 땅을 뚫고 밖으로 나오시겠지]

그녀는 우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고 어둠이 깃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남긴 글을 보신다면 아마도 평생을 이 석송림 밖으로 나오시는 일은 없으시겠지……]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며 탁자 주위를 돌았다.

[한데……그분이 내가 사부를 배신한 것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나를 용서해 주실까……?]

그분,

과연 그분이 누구이길래,

사부를 떠나기로 작심한 그녀가 사부보다 오히려 그를 더욱 염려한단 말인가?

 

다음날,

콰르릉!

요란한 폭음과 함께 석송림 안쪽 절벽이 무너져 내렸다.

수천관의 화약이 폭발하며 절벽 아래에 자리한 작은 동굴 하나가 파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절벽이 무너지며 일어난 자욱한 먼지를 뒤로 하고 네 줄기의 인영이 석송림을 빠져 나갔다.

그것이 무림사에 다시 없을 대겁풍의 서막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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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전 7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소일초는 와룡강의 다른 주인공들과는 많이 다른 성향입니다.

천방지축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지요.

복잡한 세태에 지친 일상에 청량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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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龜山의 武林大會 (1)

 

 

 

 

[무림대회가 개최된다고? 흠... 일이 점점 재미있어 가는군.]

금포노인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그의 앞에 환요가 찻잔을 받쳐들고 꿇어앉아 있었다.

금포노인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슬금슬금 스며들었다.

금포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림대회가 펼쳐질 무창으로 가는 무림인들을 아무도 막지 못하게 해라. 세 종놈들에겐 귀산에 모든 자들이 모였을 때 공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인식시키도록... 그 자리가 무림의 무덤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존명!]

허공의 어디쯤에선가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포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피워 올렸다.

지극히 만족스러운 듯했다.

딱딱!

그가 손뼉을 쳤다.

스르르르...

그러자 천정에서 줄이 내려오며 둥근 침상의 주위에 있는 고리에 걸렸다.

줄이 당겨 올라가면서 침상이 천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간 쯤에 멈춰진 침상의 주변에도 줄들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수십 명의 미소년들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다섯 만 남고 물러가라.]

제일 앞쪽의 다섯 명이 남고 나머지는 물이 빠지듯이 나가버렸다.

[올라오라!]

다섯 명의 미소년들은 삼장 높이나 되는 침상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금포노인은 미소년들을 향해서 손을 들어올렸다.

미소년들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슬쩍!

금포노인의 손이 흔들렸다.

파아아아...

순간 다섯 명의 미소년들의 옷이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미소년들의 몸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다.

마치 옷이 저절로 분해되어 가루가 된 것같았다.

미소년들은 알몸이 된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들의 몸은 예쁘장한 얼굴과는 달리 우람한 근육질이었다.

[초훼! 일어서라.]

금포노인은 그의 뒤쪽에 있는 초훼를 불렀다.

초훼가 일어섰다.

푸스스스!

순간 그녀의 옷도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네가 만족스럽게 저들 다섯을 상대해 낸다면 네게 자유를 주겠다.]

금포노인의 말이 느긋하게 흘러나왔다.

초훼의 어깨가 순간 가늘게 떨렸다.

만족스럽게 상대해 내지 못한다면, 그 댓가로 그녀에게 주어질 것은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때때로 주어지는 이같은 시험 속에서 빠져나가 자유로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노야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초훼는 금포노인에게 날아갈 듯이 절했다.

그녀의 백옥같은 나신이 움직이자 다섯 미소년의 남성들이 우뚝 치솟아올랐다.

“...!”

“...!”

다른 여인들이 눈이 그들의 하체에 머물렀다.

초훼는 미소년들에게로 걸어갔다.

움직일 때마다 수밀도 같은 가슴이 출렁이고 옥기둥같은 두다리 사이의 검은 삼각주가 잘게 물결치는 듯했다.

초훼는 미소년 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곧 진득한 앳굥의 향연이 벌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훼의 몸이  허물어졌다.

결국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혼절해버린 것이었다.

소년들의 눈이 일제히 금포노인을 향했다.

금포노인은 여전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잘 했다! ]

금포노인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노인의 입가에 싸늘한 빛이 띄워졌다.

소년들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스읏!

금포노인이 손이 흔들렸다.

스스스슷!

순간 소년들의 몸이 모래처럼 부서지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엔 어떤 고통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놀라움과 두려움만이 피어올라 있을 뿐이었다.

그것조차도 모래처럼 부서지며 허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초훼! 넌 자유다. 영원히 이곳의 일은 잊도록 해라!]

금포노인의 손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초훼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아마도 초훼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모양이었다.

초훼가 흐릿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짝짝짝!

금포노인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 그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저 여인을 내보내라. 이곳에서의 기억은 모두 사라졌다.]

[존명!]

허공에서 소리가 들리고 이내 초훼의 몸이 사라졌다.

다른 여인들의 눈에 부려움이 가득했다.

[귀산에 모여드는 자들... 그들에게 주어질 것도 죽음 뿐... 혼란이 가득하면 은세정검회는 나타나지 않을 수 없겠지... 흐흐흐흐흐... ]

금포노인이 음산하게 웃었다.

놀랍게도 그는 여인들과의 정사 속에서 무림의 모든 일들에 대해 입안하고 있었다.

 

           ***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던가?

무창에는 두개의 명산이 있다.

하나는 황학루(黃鶴樓)가 서있는 사산(蛇山)이며, 다른 하나는 이 사산에 마주 보고 있는 귀산(龜山)이다.

전설에 의하면 하왕조의 시조 우(禹)는 홍수(洪水)를 다스린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무창에 와서 장강(長江)의 치수를 실시하려고 했을 때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근에 사는 물의 정(精)이 방해하여 몇 년 씩이나 필사적으로 노력하였지만 완성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령스러운 거북이 하늘에서 물의 정(精)을 잡아서 우의 치수는 성공하였다.

그 후 공사가 완료된 뒤에 신령스런 거북은 산으로 모습을 바꾸어 장강의 흐름을 계속 지켜본다고 하는데 그 산이 바로 귀산(龜山)인 것이다.

이 귀산은 서쪽 끝의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된다.

계단을 다 올라가보면 끝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또 그 뒤에로 완만히 뻗은 좁은 길에는 무창에서 제일가는 전망대가 있다.

왼쪽에는 장강으로 흘러드는 최대의 지류인 한수(漢水), 오른쪽에는 장강(長江), 그리고 정면으로는 무창의 강남쪽이 보이게 된다.

한데 귀산의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있는 넓은 광장에는 수백 개의 천막이 들어차 있고 오색의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귀산을 오르고 있었다.

인산인해(人山人海),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같이 병기를 휴대한 무림인들이었다.

천하의 무림인의 태반은 이곳에 모여든 것같았다.

검과 도를 든 자들,

노인들, 그리고 여인들,

심지어는 어린 소년들과 도적처럼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홀홀단신 무림의 낭인들도 있었으며, 가족이 함께온 무가(武家)도 있었고 제자들을 데리고 문파 전체가 온 곳도 있었다.

 

이날은 구월구일, 명절인 중양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귀산, 이곳은 무림대회가 열리는 곳이니...

엄청난 돈을 풀어서 귀산에는 수만 명이 숙식을 할 수 있도록 가건물들이 지어져 있었다.

극히 짧은 시간에 귀산의 풍물을 변경시켜 버린 힘,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광장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는 몇 걸음 간격으로 안내하는 자들이 검정무림(劒正武林)이란 글자가 씌여진 두건을 머리에 쓰고 안내를 했다.

크게 소리치는 사람도 없건만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온 산을 울려 서로의 대화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배들이 속속 귀산 아래에 당도했으며 그때마다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나와 귀산을 올라갔다.

군웅들의 이같은 호응만 보아도 검종맹과 잔혼각 등의 발호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으왓! 비켜라!]

[단혼곡이다!]

갑자기 돌계단의 한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면서 사람들이 물살처럼 갈라졌다.

단혼곡주 하삼풍을 필두로 그의 다섯 제자가 뒤따르고 있었다.

하삼풍의 잔혹한 성격은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는지라 어느 누구도 그들과 부딪히려 하지 않았다.

하삼풍은 차디찬 표정을 지으며 광장으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뿌아앙!

바다에서나 다니는 범선이 무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귀산이 가까워지자 뿔 나팔을 울리는 범선, 해남도의 깃발이 선수(船首)에서 펄럭였다.

[흥!]

하삼풍이 코웃음을 치고 천막들 사이로 사라졌다.

[와아!해남검파다!]

[해남검파도 참석하기 위해 왔다.]

[와와아! 진우백!]

군웅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진우백이 단 한척의 배만 가지고 적룡혈운도의 이백여 척의 대 선단을 깨뜨린 것은 신화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던 중이었다.

대부분의 군웅들은 진우백이야말로 삼인에 대적할 수 있는 진정한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군웅들 중에서 나란히 서있던 두 소녀 중 하나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군웅들을 비웃는 것인지 아니면 해남검파를 비웃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양쪽 다 비웃는 것인지...

어쨌거나, 군웅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남도의 범선에서는 작은 배들이 십여 척이나 내려지면서 뭍으로까지 부교를 만들었다.

부교위로 화려한 옷을 입은 해남검파의 무사 열두명이 보치도 당당히 걸어 나와 도열했다.

그리고 다시 청의를 입은 해남검파의 무사들이 두줄로 서서 부교위로 나오더니 양쪽으로 나누어 마주보며 섰다.

척척척!

그 가운데로 마치 훈련된 병사들처럼 해남도의 무사들이 삼열로 나란히 서서 걸어 나왔다.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나온 후 명의 건장한 무사들이 받쳐든 가마 한대가 부교위로 나왔다.

가마에는 화려한 금장식과 은장식을 붙였으며 가마를 들고 있는 무사들의 옷도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군웅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남검파의 등장은 마치 황궁의 황제같은 복잡한 격식과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는 것같았다.

누군가 말했다.

[마치 황제의 행차같군.]

또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해남검파의 진우백 문주라면 그럴 만도 하지! 혼자서 적룡혈운도의 대선단을 쳐부순 위용이니...]

군웅들의 의견이 분분해지며 수군거림이 큰 소란이 되어 주위를 스산하게 했다.

진우백이 탄 것으로 짐작되는 마차의 앞으로는 열두명의 무사들이 길을 열었고 그 뒤로는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호위하듯 뒤따랐다.

무림인들로서는 좀처럼 볼 수없는 광경이었다.

요란하게 등장한 진우백의 가마도 돌계단을 올라가 광장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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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다시 절벽 위. 드드드! 여전히 진동하고 있고

[!] 망치를 내려친 자세로 눈 부릅뜨는 살패. 망치 아래에는 물론 청풍이 없는데

휘익! 허공에서 천천히 날아 내리는 청풍.

살접; [공자님!] 안도하며 환호

독검사랑; (살패의 천근퇴(千斤槌)가 일으키는 압력을 타고 날아올랐다.) 눈 번뜩이고

독검사랑; (살접의 보고대로 까다로운 무공을 익히고 있는 놈이다.) 청풍이 바닥에 내려서는 걸 보며 생각할 때

청풍;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둔한 무기로는 백날 공격해 봐야 날 어쩌지 못할 것이오.] 콰득! 살패가 망치를 뽑는 걸 보며 웃고

살패; [과연 그럴지 보자!] 부악! 이미 청풍의 머리를 옆에서 치고 있는 살패. 준비동작도 없이 아주 빠르게 휘두른다. 하지만

휘익! 물론 이번에도 청풍의 몸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살패의 망치가 일으키는 압력에 밀려 날아오르고

살패; [크아!] 부악! 부웅! 붕! 따라붙으며 엄청난 빠르기로 망치를 휘두르는 살패. 망치가 여러 개로 변해서 청풍을 후려치고 내리치고. 하지만

휘익! 휙! 청풍의 몸은 망치가 일으키는 바람을 타고 허공을 떠다닌다

청풍; (얼마나 힘이 좋은지 저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게 잘 안보일 정도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표적이었다면 피할 틈도 없이 박살을 당했을 것이다.) 휘익! 휙! 날아다니며 생각하고. 그때

독검사랑; [살영! 가세해라.] 살영에게

살영; [봉명!] 팟! 앞으로 쇄도하며 대답하는데

스스스! 살영의 모습이 여러 개로 변해서 청풍을 덮쳐온다

청풍; (모습 여러 개로 변했다.) 살패의 망치가 일으키는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아다니다가 살영이 쇄도하는 것을 돌아보고

청풍; (살영이라는 저자는 나처럼 보법과 경신술이 특기인 자다.) 생각할 때

스악! 쩍! 여러 명의 살영이 들이닥쳐서 청풍을 갈쿠리로 베고 찌른다. 청풍은 여러 명에게 여러 방향에서 공격당하는 모습이 되고

서걱! 스악! 피하는 청풍의 머리카락과 옷이 살영의 갈쿠리에 스쳐 조금씩 베어진다.

부악! 부웅! 그 사이에도 살패의 망치도 연신 청풍을 노리고 휘둘러지고

청풍; (확실히 살영이라는 자가 상대하기 더 까다롭다.) 여러 명의 변해 공격하는 살영을 보며 몸을 날리면서 생각

청풍; (움직임이 빠를 뿐 아니라 사용하는 갈쿠리가 압력을 거의 일으키지 않아서 능파미보를 펼치는 데 곤란을 겪게 만든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여러 개의 갈쿠리들을 보며 생각하고. 그러다가

청풍; (물론 내게는 능파미보만 있는 게 아니지.) 징! 허공에 뜬 채 웃는 청풍의 몸이 엷은 막에 덮이고. 그러자

펑! 그 엷은 막을 때리는 살패의 거대한 망치와

쩍! 서걱! 그 박을 긋고 찌르는 살영의 갈쿠리. 그러자

팽! 청풍을 때린 망치가 홱 돌아가며 살패의 머리를 때려가고

투학! 서걱! 살영 양손의 갈쿠리도 방향을 틀어 자기 몸을 베려 한다

독검사랑; [조심...] 자심도 모르게 외치는데

살접; [!]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고. 하지만

부악! 간발의 차이로 몸을 뒤로 홱 젖혀서 망치를 얼굴 위로 지나가게 만드는 살패

가가강! 카캉! 자기에게 돌아오는 갈쿠리들을 교차해서 서로 부딪히게 만들며 뒤로 홱 물러서는 살영.

살접; [아!] 안도하며 손을 내릴 때

독검사랑; (괴물이로군.) 딱! 왼손으로 손가락을 튕기고. 그러자

팽! 서걱! 물러서다가 홱 몸을 돌리며 갈쿠리로 살접을 베어가는 살영. 깜짝 놀라는 표정의 살접

청풍; [무슨 짓을!] 버럭 고함지르며 돌아볼 때

살접; [악!] 서걱! 피하려던 살접의 가슴을 긋고 지나가는 살영의 갈쿠리.

푸학! 가슴에서 피를 뿜어내며 뒤로 쓰러지려는 살접. 그 옆에서 갈쿠리를 거두며 물러서는 살영

청풍; [소저!] 휙! 벼락같이 살접에게 날아가고. 살접은 뒤로 나뒹굴려 하고

청풍; [괜잖으시오?] 콱! 재빨리 살접을 두 팔로 끌어안는 청풍. 헌데 그 직후

푸훅! 갑자기 입에서 연기를 확 뿜어내 청풍의 얼굴을 덮어씌우는 살접. 눈 부릅뜨며 그 연기를 고스란히 덮어쓰는 청풍

띵! 현기증을 느끼며 눈이 풀어지는 청풍

청풍; [독...] 살접을 끌어안으려던 팔이 풀리며 눈 감으며 휘청할 때

살접; [호호오!] 쾅! 청풍의 가슴에 강력한 장풍을 날리며 뒤로 날아가는 살접

쿵! 쿵! 가슴의 옷이 터지고 손바닥 자국이 난 채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청풍. 현기증 때문에 눈은 풀린 채. 그러자

살영; [잘 했다 살접!] 멈춰서고

살패; [해치웠구나.] 망치를 움켜쥔 채 환호

청풍; [함정...] 눈이 풀린 채 비틀하다가

쿵! 결국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는 청풍.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로

청풍; [정정... 네년도 한 통속이었구나.] 독에 중독당해서 흐리게 보이는 살접을 노려보며 이를 갈고

살접; [맞아! 본녀는 살인상단 십대자객중 한명인 살접(煞蝶)이야.] 요염한 자태로 서서 웃으며 말하고

청풍; [복... 복우사흉에게 유린당할 뻔한 것도 연극이었군.] 이를 부득 갈고. 눈이 풀린 채 몸이 흔들린다.

살접; [네놈이 무공으로는 쉽게 죽일 수 없는 표적이라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중독 시킬 기회를 엿보았던 거지.] 가슴의 상처를 누르며 웃고. 가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고

살접; [물론 살영오라버니에게 내 가슴을 베라고 한 것도 고육지책이었어.] [그래야 네가 날 부축하려고 접근할 테니까.]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청풍을 보며 말하고.

청풍; [교활한 계집...] 이를 갈며 겨우 일어서고. 그때

독검사랑; [수고했다 살접!] 다가오고

살접; [별 말씀을요.] 고개 숙이며

독검사랑; [네가 피를 본 덕분에 청부를 수월하게 수행하게 되었다.] 청풍에게 다가오며 살접에게 말하고. 청풍은 눈이 풀린 채 뒷걸음친다. 절벽 쪽으로

살접; [과찬이시옵니다.]

독검사랑; [이청풍! 앞서 말했지만 네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청풍에게

독검사랑; [그래서 괴롭히지 않고 간단히 죽여주겠다.] 살패에게 끄덕이고

부악! 그 즉시 살패가 다시 빠르고 강력하게 망치로 청풍을 내리찍고

쾅! 망치가 바닥을 때리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뒤로 피하는 청풍

스악! 그 즉시 살영이 반대쪽에서 파고들며 갈쿠리를 그어 청풍을 공격하고

스악! 쩍! 몸을 다급히 돌려 피하지만 반응이 느려 허리가 깊이 베이며 피가 튄다

청풍; (독... 독 때문에 정신이 흐려져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비틀거리며 절벽 쪽으로 물러서다가

[!] 눈 치뜨는 청풍

슥! 검을 소리없이 찔러오는 독검사랑

청풍; (기척이 거의 없는 검범...) (그 때문에 능파미보로도 피하지 못한다!) 팟! 독검사랑의 검에 찔리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뒤로 몸을 날리는데

살접; [악!]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살접.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눈 치뜨는 청풍.

쿵! 뒤로 날아간 청풍의 몸은 이미 절벽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팟! 검을 찔러냈던 독검사랑이 절벽 끝에서 급정거하고 있고

청풍; (이런...) 휘익! 아래로 추락하며 한숨 쉬고

<투신자살하는 꼴이 되었구나.> 쐐애액!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검을 거두며 살접을 돌아보는 독검사랑. 독검사랑. 살접은 그때까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근처에 멈춰선 살영이 힐끔 보고 있고

살접; [죄... 죄송해요 부단주님!] 손을 입에서 떼며 눈치 보고. 그 뒤에서 살패가 긴장한 표정으로 독검사랑을 보고 있고

독검사랑; [그럴 수도 있지.] [신경 쓰지 마라.] 스릉! 검을 칼집에 꽂으며 말하고.

살접; [감사하옵니다.] 안도. 살영과 살패도 안도

독검사랑; [어쨌든 살접 네 활약 덕분에 수월하게 청부를 마칠 수가 있었다.] 돌아서고

살영; [내려가서 시체를 확인하고 올지요?] 눈치 보고

독검사랑; [괜한 위험 무릅쓸 거 없다.] [극독에 중독 당한데다가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죽은 게 확실하니...] 걸어가며 말하고

살영; (하긴...) 생각하며 독검사랑을 따라가고. 살패도 걸음 옮기고

살접은 가장 뒤에서 절벽 쪽을 보며 걸음 옮긴다.

살접; (늘 그래왔듯이 이청풍이라는 자도 그냥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한데...)

살접;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던 것은 어째서일까?) 한숨 쉬며 걸음 옮기고. 그 사이에 독검사랑을 몸을 날리고 있다

독검사랑; (이청풍...) 날아가며 찡그리고. 그 뒤로 살패, 살영이 몸을 날려 따라온다. 맨 뒤에서 살접이 따라오고 있고

독검사랑; (용모파기가 아니고 실물을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독검사랑; (나는 이전에 분명 이청풍을 닮은 자를 본 적이 있다.) (그게 누군지 당장 떠오르지는 않지만...) 날아간다.

 

#109>

<-북경> 낮

<-황금전장> 여전히 북적

 

황금전장 후원. 월동문이 있는 높은 담장으로 격리된 곳. 월동문 앞을 두 명의 여자 무사가 지키고 있고

옷가지가 얹혀진 쟁반을 들고 다가오는 강혜분

강혜분; [수고가 많네.] 다가오며 아는 척

[어서 와 혜분언니.] 여자무사들도 아는 척

강혜분; [옥령아가씨는?] 월동문 안을 보며 여자 무사들에게 묻고

여자무사들; [오늘도 별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셔.] [청풍이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고불고 하던 게 거짓말 같아.]

강혜분; [다행이네.]

여자무사들; [시간이 약인 거지 뭐.] [아가씨도 며칠 지나면서 청풍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거야.]

강혜분; [그렇기를 바라야겠지.] 월동문 안으로 들어간다

 

#110>

월동문 안쪽은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진 정원. 그 정원 가운데에 화려한 건물이 한 채 있다. 벽옥령의 거처. 월동문 안쪽에는 아무도 없다

건물 입구로 가는 강혜분. 그러다가

멈칫! 하며 걸음을 멈추다가

방향을 틀어서 건물 뒷곁으로 가는 강혜분

건물 뒤. 한적한데 창문이 있고 창문은 반쯤 열려있다

창문으로 다가가는 강혜분

창문 밖에 숨어서 안을 살피는 강혜분

 

창문 안쪽은 침실. 헌데 벽옥령이 침대 위에 옷가지들을 죽 늘어놓고 있는데 사내 옷이다.

탁자에는 검도 한 자루 올려져 있고.

벽옥령은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옷을 몸에 대어보고 있는 중인데 여자 옷이 아니라 남자 옷이다.

벽옥령; [이 색이 덜 튀어 보이겠지?] 옷을 자기 몸에 댄 채 거울 보며 혼잣말하고

벽옥령; [크기도 딱 맞고... 좋아. 이 옷으로 결정했어!] 배시시 웃고

 

강혜분; (침선방(針線房)에서 사내아이 옷이 몇 벌 없어졌다고 하더니만 아가씨 소행이었구나.) 한숨

<남장(男裝)을 하려고 저 옷들을 훔쳤다는 건데...> 침대 위에 널려있는 남자 옷. 거울 앞에서 남자 옷을 몸에 대보는 벽옥령

강혜분; (아가씨 꿍꿍이가 뭔지 대강 짐작이 가는구나.) 한숨

 

#111>

<-복우산> 밤. 하늘에는 반달이 떠있고

<-독룡간> 바닥 깊이를 알 수 없는 틈새.

절벽 아래 동굴. 동굴 입구에는 여러 자루의 낡은 검들이 널려있고. 해골들도 여러 구 뒹굴고 있다. 해골들 사이를 뱀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음산한 광경 동굴 입구에는 여러 자루의 낡은 검들이 널려있고

 

어둠 속에 누워있는 청풍. 잠이 든 모습. 문득

슥! 끝이 갈라진 뱀의 혀가 청풍의 뺨을 핥는다

움찔! 하는 청풍.

할짝! 할짝! 뱀의 혀가 청풍의 얼굴 여기저기를 핥고. 그러자

청풍; (차갑고 미끈거리는 뭔가가 내 얼굴을 핥는 것 같다.) 눈 감은 채 생각하고

청풍; (이런 감각이 느껴진다는 건...) 깨닫고

청풍; (설마 내가 죽지 않은 것인가?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천천히 눈을 뜨며 생각하고. 헌데

쿵! 청풍의 몸 위에 따리를 틀고 앉아서 내려다보는 뱀. 머리에 사슴의 뿔 같은 것이 두 개 나있다. 뿔 길이는 한뼘 정도. 몸통 굵기는 팔뚝만하다. 이 뱀의 이름은 용각신망. 이무기가 되기 직전의 신령스러운 뱀이다.

청풍; (뱀!) 기겁할 때

쉭쉭! 다시 끝이 갈라진 혀로 청풍의 얼굴을 핥으려 하는 용각신망.

청풍; [헉!] 바웅! 기겁하며 일어나며 몸을 투명한 벽으로 덮는다

끽! 펑! 그 빛에 부딪혀 뒤로 날아가며 비명 지르는 용각신망

텅! 털썩!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용각신망

청풍; [뿔이 달린 뱀이라니...] + [!] 일어나 앉다가 경악

쿵! 청풍이 누워있는 동굴. 수많은 뱀들이 머리를 세운 채 청풍을 에워싸고 있다. 뱀들의 눈이 반딧불처럼 반짝이고

청풍; [사... 사방천지에 뱀!] [여긴 뱀굴이었구나.] 경악하고 겁에 질려서 주변의 뱀들을 둘러볼 때

쉬쉭! 쉭! 화가 난 용각신망이 몸을 쳐든 채 청풍을 노려본다.

청풍; [이... 이게 대체 무슨...] 겁에 질려 물러나 앉고. 그때

[쯧쯧! 사내놈의 간담이 콩알만하구만.] 끌끌 누가 혀 차는 소리가 들리고. 흠칫 하며 돌아보는 청풍.

섭장천; [그래서야 어디 큰일을 맡겨보겠는가?] 쿵! 어둠 속에 앉아있는 섭장천. 동굴 끝의 벽을 등지고 앉아있다. 봉두난발이고 초췌한데 눈빛만은 강렬하다. 옷은 찢어지고 피로 물들어있는데 특히 가슴 부분이 피로 흥건하다.

청풍; (사... 사람이 있다.) + [뉘... 뉘신지요?]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로 앉으며 묻는다. 여차하면 달아날 자세.

섭장천; [네놈의 구명지은인(救命之恩人)이다.] 강렬한 눈빛으로 보며

청풍; (구명의 은인이라면...) 깨닫고 + [노야께서 추락하는 소생을 구해주신 것인지요?] 무릎을 꿇으며

섭장천; [그렇다.] [그 대가로 노부는 겨우 억눌러두었던 상처가 터져서 곧 세상을 하직해야만 한다.] 슥! 말하며 피로 물든 저고리를 젖혀 보이고

쿵! 저고리가 젖혀지자 드러나는 섭장천의 가슴. 심장 부위에 구멍이 나있는데 그곳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

청풍; (맙소사!) 경악

청풍; (심장 부위에 구멍이 나있다. 인간이 어떻게 저 지경이 되고도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섭장천; [노부는 원수 놈의 기습을 받아서 심장이 부서져 버렸었다.] 슥! 다시 옷자락을 여미고

청풍; (실제로 심장이 없는 상태였다.) 놀라고

섭장천; [그래도 저놈 용각신망(龍角神蟒) 덕분에 지금까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뿔 달린 뱀 용각신망을 돌아보며 말하고. 용각신망은 화가 나서 쉭쉭 대며 청풍을 노려보고 있다.

청풍; (저 괴이한 뱀의 이름이 용각신망이었구나.) 곁눈질로 용각신망을 보고

섭장천; [하지만 용각신망의 신통한 힘도 더 이상 노부의 목숨을 연장시켜주지 못하게 되었다.] 탄식

청풍; [소... 소생을 구하시느라 무리하신 때문인지요?] 깨닫고

섭장천; [네놈은 이백장이 넘는 높이에서 떨어졌다.] [반면 노부는 이 동굴을 나갈 수 없는 몸이었다.]

섭장천; [어쩔 수 없이 수십 장의 거리를 격하고 내공을 써서 받아내다 보니 온몸의 경맥이 터져버렸다.] 쓴웃음

청풍; (이백장이 넘는 높이에서 떨어진 나를 순전히 내공의 힘으로 받아내었다니...) (저분은 대체 누군데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해낸 것일까?) 경악할 때

끼이! 용각신망이 섭장천에게 다가가며 울고

섭장천; [울지 마라 신망!] [이게 노부에게 정해진 운수이니라.] 다가온 용각신망의 머리를 쓰다듬고

청풍; [죄송합니다. 소생이 노야에게 너무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절하고

섭장천; [죄를 지었다고는 할 수 없고...] [네놈이 노부에게 목숨 빚을 진 것은 사실이다.] 눈 번뜩이고

섭장천; [그리고 빚을 지었으면 마땅히 변제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지긋이 보고

청풍;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고개 들고

청풍; [소생 이청풍, 노야께서 무엇을 하명하시든 반드시 따를 것을 천지신명께 맹세하겠습니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섭장천; [그리 말할 줄 알았다.] 웃고

섭장천; [네가 자진해서 빚을 갚겠다고 하니 노부도 부담없이 변제를 요구하겠다.]

청풍; [세이경청 하겠습니다.]

섭장천; [노부가 원하는 것은 네가 노부를 대신해서 다섯 놈을 죽이고 한 명을 노부 대신 보살펴 주는 것이다.]

청풍; [다섯 명...] 긴장하고

청풍; [소생이 어떤 자들을 죽이길 원하시는지요?]

섭장천; [혈세사패의 패주들과 그놈들을 종으로 부리는 지존이라는 놈이다.] 쩡! 강렬한 눈빛. 쿠오오! 살기도 온몸에서 뿜어지고

청풍; (지독한 살기!) + [혈세사패에게 주인이 있었습니까?] 놀라고

섭장천;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노부 소개부터 해야겠지.]

섭장천; [노부의 이름은 섭장천, 강호에서는 노부를 검성(劍聖), 또는 절대검성(絶代劍聖)이라는 과분한 별호로 부를 것이다.]

청풍; (맙소사!) 경악하고

청풍; (저분이 바로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으로까지 불리는 검성 섭장천 노사셨다니...) 섭장천을 보며 놀라고

이하 검성 섭장천에 대한 설명. #15>에 나온 장면

 

<-검성 섭장천(葉長天)! 일갑자 전부터 천하무적의 위업을 유지해온 절대고수다. 사문이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섭장천과 맞서 삼초(三招)를 견딘 인물이 없다.> 다른 작품의 철면무제 섭장천 캐릭터의 인물이 검을 늘어트리고 있고. 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검을 겨누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절대삼검(絶代三劍)으로 알려진 섭장천의 검법은 신묘하면서도 막강하여 고금의 어떤 검법도 비견되지 못한다고 한다.> 위 장면의 연속. 무릎을 꿇고 머리 조아리는 사람들의 모습. 모두 피를 토하고 있고. 섭장천은 검으로 그들을 겨누고 있다.

 

청풍; (검성 섭장천!) (이론의 여지도 없는 천하제일인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흥분

<헌데 고금제일검으로까지 불리는 저분을 대체 어떤 자가 저 지경으로 만든 것일까?> 동굴 내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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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거지 소굴을 찾아온 미녀들

 

 

 

-개봉(開封)!

 

거지들의 집단인 개방(丐幇)의 총단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마디로 개봉은 거지들의 천국이라는 말이다.

물론 거지들을 먹여살리는 사람들이 더욱 많기는 하겠지만...

개봉은 서안(西安), 낙양(洛陽)과 더불어 삼대 고도(古都)의 하나인데 서주(西周) 문왕(文王)의 아들 필공(畢公)에 의해 성이 세워졌다.

그 이후 전국시대의 우, 오대시대의 양, 진, 한 , 주, 북송, 금의 칠대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거지들이란 원래 사람이 많은 곳에 살아야만 굶어죽지 않는다.

거지들의 집단인 개방의 총단이 이곳 개봉에 있는 것은 이처럼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데 그러한 거지들의 집단인 개방의 총단이 있는 곳은 역설적으로 용정(龍亭)이라고 하는 곳이다.

용정이 어떤 곳인가 하면 예전에는 궁전이 있던 곳으로 개봉의 중심지다.

거대한 토대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언젠가부터 거지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용정 앞에 있는 두개의 큰 연못은 거지들의 우물이기도 하고 목욕을 하는 곳이기도 한 다목적 적인 장소가 되었다.

 

햇살이 아직 퍼지지도 않은 이른 아침, 아리따운 두 소녀가 용정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곤 했다.

거지들의 소굴로 찾아가는 두 소녀의 모습은 도저히 거지들과 어떤 상관이 있을 것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지들은 그녀들이 오거나 말거나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여름이기에 그들은 연못가에서 아무렇게나 엎드려 자기도 하고 웃통을 훌떡 벗고 입을 헤 벌리고 자는 자들도 있었다.

또 어떤 자는 엉금엉금 기어서 일어나 아무데나 바지춤을 내리고 오줌을 누었다.

별빛 같은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개판이군. 거지들은 이렇게 질서가 없나?]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래도 거지들이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아요.]

다른 소녀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말한 소녀가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장매가 거지들을 어떻게 잘 알지?]

[저와 조금은 관계가 있지요.]

다른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였다.

[우리 거지들이 질서가 없다니 그 말은 인정하지 못하겠구려.]

두 소녀가 지나치는 옆쪽에 있던 거지가 몸을 뒤척여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러자 그 옆의 거지가 말을 받았다.

[나라의 어려운 때 가진 것이 없으니 목숨으로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충을 행한다 할 것이고 비럭질을 하더라도 부모를 갖다버리지 않으니 불효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것을 탐하지 않고 비럭질해온 것은 나눠먹으니 의리가 있으며 불쌍한 자를 보면 거지의 수법을 전수하기 망설이지 않으니 인(仁)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소녀들은 그들의 조리있는 말에 내심 감탄했다.

(이 거지들은 아주 학식이 있는 거지들이구나. 개방에 숨은 인재가 많다는 말이 헛된 소문이 아니었구나.)

먼저 말한 거지가 다시 말을 받았다.

[분수를 지켜 감히 왕좌를 넘보지 않으니 임금과 백성 간에 벼리가 있다할 것이고 비럭질 한 것도 부모에게 먼저 드리니 그 또한 벼리가 있고 처가 감히 남편의 일을 다투지 않으니 부부간에도 벼리가 있다할 것이 아닌가? 삼강(三綱)을 진실로 행하는 자가 우리 거지들 외에 또 어디 있던가?]

[삼강을 몸소 행하는 우리 거지가 오륜(五倫)은 어디 지키지 못하겠는가? 삼강과 오륜은 도의의 기본인데 이것을 지키는 우리에게 질서가 없다는 말이 과연 타당하기나 한가?]

거지를 욕했던 소녀가 졌다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제가 잘못했다고 하죠. 아니 잘못했어요. 두 분께선 명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껄껄껄... 우린 늙은 거지들일 뿐이오. 방주를 만나러 왔다면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시오.]

거지가 누운 채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들의 허리에는 팔결의 마디가 걸려있었다.

매듭의 수로써 신분의 고하를 따지는 개방에서 팔결이라고 하면 장로(長老)의 신분이다.

개방의 장로는 모두 열셋, 중원의 십삼성(十三省)의 수와 맞춘 것이다.

장로라는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제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아무렇게나 자는 것이었다.

[장로님들을 알아 뵙지 못했군요. 실례하겠어요.]

다른 소녀가 포권을 하고 용정의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릉! 드릉!]

그녀들의 뒤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있자 그게 어디 있더라? 여기 였던가 저기였던가?]

사십대의 풍채가 아주 당당한 거지가 허둥대며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었다.

거지치고는 너무 잘먹었는가? 혈색도 붉그스레하고 풍채도 마치 부호처럼 당당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은 원래의 색깔을 알아볼 수가 없다.

때가 많이 묻어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수백 개의 천조각을 이어 붙여서 손바닥보다 큰 조각이 없는 알록달록한 옷이었기 때문이다.

그 거지는 낡은 서랍을 뒤져보기도 하고 먼지가 풀썩 나는 방석을 들어보기도 하고 선반을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때 문이 덜컹 열리며 한 거지가 말했다.

[방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또 어떤 놈들이 좀도둑질을 했나? 그놈을 혼낸다고 말하고 잘 타일러 보내게.]

중년거지가 신경질이 나는지 상자를 내려 바닥에 와르르 쏟으며 말했다.

한데 방주라니...,

중년거지는 개방의 방주인 낙천부개(樂天富丐) 필요금(畢堯錦)이었던 것이다.

문 옆에 선 거지가 다시 말했다.

[방주님을 꼭 만나야겠다고 하십니다.]

[아무 소리말고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 나같은 거지를 만나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낙천부개 필요금은 상자에서 쏟아낸 물건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필방주님! 너무하시는군요. 전에는 제게 한번 놀러오라고 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문밖에서 여인의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낙천부개 필요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들어본 음성인데...?]

[보기도 본 사람일걸요?]

문으로 한소녀가 들어서면서 말했다.

낙천부개 필요금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해졌다.

[아니 장소저 아니신가? 아니지, 아니지 이제는 장장주이신가? 무슨 바람이 불어 이 거지를 다찾아 왔는가? 아무튼 잘 왔네 잘 왔어. 그렇잖아도 뭘 찾느라고 골머리를 썩히던 중이었는데.]

[필방주님을 뵙습니다.]

장소저라고 불린 소녀의 곁에선 다른 소녀가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필요금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 소저는 누구신가? 어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은 밝히지 않는단 말인가?]

방금 전의 호들갑을 떠는 것같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게가 있었다.

[그녀는 백언니라고 하는데 신분은 말할 수 없데요. 하지만 맹세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제가 보증하죠.]

이렇게 말하는 소녀는 장지연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백언니는 백란이었다.

필요금은 굳었던 얼굴을 풀면서 웃었다.

[거지는 거울과 같은 사람들이오. 더 이상 내려갈 때가 없는 밑바닥 인생이고 보니 때로는 행한 대로 돌려 비치기도 한다오.]

[괜찮습니다.]

백란은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거지들의 세상이 뭐 이리 복잡느냐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림에서 가장 방대한 조직이라는 개방이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복잡성이 자유분방함 속에 적절히 어울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개방은 무림에서도 대방파이고 개방의 방주라면 또한 그 신분에 있어서 소림사의 장문인에 전혀 못지않은 것이다.

필요금은 백란과 장지연에게 자리를 권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 이곳 개봉을 구경하고 싶어서는 아닐 텐데?]

[사람을 찾아주세요.]

장지연이 말했다.

필요금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런 일이라면 우리 개방을 능가할 곳이 없지. 아무 걱정말고 누군지나 말해보시게.]

[석두공! 석두공이라는 사람이에요. 나이는 십칠팔세 정도, 이십 일 전 쯤에 황산 백검보에 나타난 이후 흔적을 찾을 수 없어요.]

[석두공? 그를 찾는단 말인가? 에잉! 쯧쯔!]

[...?]

[...?]

필요금이 혀를 차자 장지연과 백란은 괜스레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되었다.

[대체 그는 뭣하러 찾는단 말인가?]

필요금이 오만상을 쓰면서 물었다.

백란이 재차 물었다.

[그를 아세요?]

[알다마다. 어쩌다보니 알게 되어가지고 골치만 아프게 되었지. 불과 며칠 전에 여기 왔다갔지.]

필요금은 입맛을 쩍쩍 다셨다.

석두공을 생각하기만 해도 영 쓴맛이 나는 모양이었다.

[여기를 왔었다고요?!]

“정말요?”

백란과 장지연이 동시에 소리쳤다.

필요금이 말했다.

[덕분에 지금 팔십만이 넘는 내 제자들이 발바닥에 불이 나케 돌아다니고 있지. 밥도 제대로 못빌어먹고 말이야.]

[...?]

[...?]

두 여인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무튼 거지들을 괴롭히는 건 오직 정의니 의리니 뭐니 하고 들고 나오는 협객들 밖에 없단 말이야. 나쁜 놈들은 정작 건드리지도 못하는 게 우리 거지들인데...]

필요금이 투덜거렸다.

장지연이 물었다.

[그는 어디로 갔어요?]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몰라도 어디로 올지는 알고 있지.]

필요금의 대답에 두 소녀는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이것을 보면 알수 있을 것이네.]

그는 품속에 넣어두었던 꼬깃꼬깃한 종이를 하나 꺼내 밀었다.

원래는 네모나게 접혀진 붉은 종이였다.

겉에는 굵고 강인한 필치로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무림첩(武林帖)>

 

무창의 귀산(龜山)에서 구월구일 중양절(重陽節)을 기해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무림첩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무형도객의 이름과 함께 석두공의 성명이 적혀있었다.

[보름도 남지 않았군요.]

장지연이 말했다.

필요금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내 제자들만 죽어날 지경이지.]

[빨리 가야겠어요.]

장지연이 백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때였다.

[잠깐!]

필요금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문을 가로막았다.

[...?]

[마침 이곳까지 왔으니 내 어려움을 하나만 해소해주고 가시게. 제발...]

필요금이 장지연에게 아첨하듯이 손을 비볐다.

장지연이 풋! 소리를 내며 웃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내 차림새를 보게, 뭔가 빠진 것같지 않나?]

필요금이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그리고 보니 매듭이 보이지 않는군요.]

[총명한 장소저... 아니 장장주... 과연 그렇다오. 분명히 이 방안 어디에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으니... 제자들에게 말하기엔 체면도 서지 않고... ]

필요금은 우스광스런 표정을 지었다.

장지연과 백란은 그가 일파의 지존으로서 조금도 흉허물이 없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과연 개방같은 대 방파의 주인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장지연이 물었다.

[매듭을 마지막 본 게 언제였어요?]

[어젯밤 술시경... 그때부터 이 방안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신세지.]

[그 이후에 뭘 했어요?]

[그냥 제자들이 비럭질해온 술찌끼미를 걸려 한잔 마시고 장로들과 둘러앉아 한바탕 입씨름이나 하고 잤지 뭐. 다른 건 한 것도 없다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내 죽결이 없어져 버렸지 않은가?]

[저 깨진 독에 술찌끼미가 있었어요?]

백란이 물었다.

필요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어디서 마셨어요?]

[여기서 이렇게... ]

필요금은 한쪽에 앉으며 말했다.

장지연이 웃으며 물었다.

[또 술독을 껴안고 마셨겠죠?]

[그렇지, 그렇게 마시지 않으면 술맛이 나질 않으니까...]

[술독의 오른쪽 뒤에 보세요.]

백란이 말했다.

[없다네. 내가 이미 다... 어? ]

필요금은 술독의 뒤쪽에서 죽결을 발견하고 줏어들었다.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이 두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여기 있는줄 알았지?]

[필방주님이 허리띠를 푸는 건 아마 두 가지 경우 뿐일 걸요? 하나는 측간갈 때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마 술 마실 때겠죠. 하지만 측간에서 잃어버릴 리는 없을 테고 당연히 술 마시느라고 허리띠를 풀다가 한쪽에 흘렀겠죠. 그게 술독을 밀어젖히면서 그 뒤로 밀려가지 않았다면 찾지 못할 이유가 없겠죠. 설마하니 술독 뒤에 있으랴 싶어서 술독은 차마 못 치웠을 것이고... ]

장지연이 말했다.

필요금은 파안대소를 했다.

[하하하하... 과연 그렇구나. 백소저 또한 장소저 못지않게 지혜롭구만 하하하... 거지 두목이랬자 아무 소용이 없어. 거지보다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없어. 와하하하하... ]

그는 허리에 죽결을 매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답례로 오늘은 내가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지. 따라오시게나.]

[방주님이 무슨 돈이 있어 요리를 대접한다는 거예요?]

장지연이 뒤따라 가면서 물었다.

필요금이 웃고 말했다.

[그런 말 말게. 우리 개방의 하루 수입으로 따지자면 장장주의 하루수입보다 적지는 않을 걸? 팔십만 거지가 쌀 한 홉 씩만 얻어도 그게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되는가? 또 석두공 그 친구가 내게 푼돈을 주고 가더구만.]

[푼돈?]

[한 오십만냥 정도 되더군.]

백란은 입이 딱 벌어졌다.

오십만냥!

거지 주제에 오십만냥을 푼돈이라고 말하는 낙천부개 필요금...

[음... 그럼 제게 빚을 조금 갚아도 되겠군요. ]

장지연이 말했다.

필요금이 일순 표정을 싹 바꾸면서 말했다.

[거지한테 돈을 꿔줄 때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그것도 왕거지한테는... 리어배면(鯉魚焙麵) 한 접시 사줄 테니 다른 말은 꺼내지도 말게.]

리어배면은 황하에서 잡은 잉어를 매콤달콤하게 맛을 낸 뒤, 바싹 튀긴 메밀국수에 곁들여 내는 것으로 개봉에서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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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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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위가장(威家莊)> 드넓은 평야와 강을 앞에 두고 등 뒤로는 험준한 산을 두고 있는 웅장한 장원. 마치 궁궐 같다. 평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고. 장원으로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출입한다.

위가장 내의 정원. 넓고 화려하고. 정자도 한 채 있다. 정자에 일남일녀가 앉아있다. 위진천과 혈부용이다. 위진천은 편지를 읽고 있다. 혈부용은 작은 두루마리를 하나를 두 손으로 들고 있다

위진천; [무능한 놈들...] 편지에서 눈을 떼며 찡그리고

위진천; [종남파 전체도 아니고 종남파 제자 한 놈 어쩌지 못해서 이 난리를 쳐?] 화악! 손을 뜨겁게 만들어 편지를 불태우며 화를 내고

위진천; [혈세사패를 전부 동원해서라도 막가놈이 소림사에 들어가는 걸 막으라고 해.] 종이를 태우며

혈부용;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고개 좀 숙이고

위진천; [구대문파 늙은이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난 다시 음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게 없어.] 탁 탁 손바닥을 쳐서 재를 털어버리며 오만상을 쓰고

혈부용; [검성과의 일전 후 깨달은 심득이 있다며 폐관수련에 들어가신 지존께서 머잖아 출관하실 것이옵니다.]

혈부용; [그럼 지금까지 소회주님을 귀찮게 했던 모든 일도 하찮은 것이 되지 않을런지요?] 눈치 보며 말하고

위진천; [그걸 누가 모르느냐?] 퉁명하게 말하며 옷에 손을 닦고

위진천; [문제는 아버지가 날 무능하게 보시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란 말이다.]

위진천; [가뜩이나 내가 서출(庶出)이라는 걸 꼬투리 잡는 인간들이 아버지 주변에 널려 있잖느냐?] 이를 부득 갈고

위진천; [내가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버지는 당신이 이룬 모든 걸 승천(昇天)이 놈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 해맑게 생긴 소년을 떠올린다. <무쌍일지>에 나온 위진천의 이복동생 위승천 캐릭터. 나이는 15세 정도.

위진천; [절대!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되는 것이다!] 주먹 불끈 이를 갈고

혈부용; (별 근심 없어 보이는 소회주도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다.) (그건 이복동생인 위승천(威昇天)의 존재다.)

 

<위승천은 지존의 본처 냉(冷)씨 소생이다.> 위승천과 나란히 의자에 앉은 차갑고 도도한 인상의 미녀 배경으로 나레이션

<반면 소회주는 지존이 위가장의 안주인 전(田)씨를 범해서 얻은 자식이다.> 의자에 앉은 수더분한 인상의 중년 여인 옆에 서있는 위진천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지존은 무림에 거점을 마련할 목적으로 위가장의 장주 위태무(威太武)를 죽이고 위태무로 위장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위태무의 아내 전씨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 소회주인 것이다.> 잘 차려 입고 온화하게 생긴 중년인이 의자에 앉아있고 그 앞의 놓인 침대에는 잠옷 차림의 전씨가 쿠션을 등에 댄 자세로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장소는 화려한 침실이고.

 

혈부용; (지금까지는 소회주가 장남이며 또 상당한 능력을 보여 왔기 때문에 지존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여겨져 왔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뭐라 궁시렁 대고 있는 위진천을 보며 생각하고

혈부용; (하지만 위승천이 자라면서 소회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혈부용; (지존 입장에서는 남의 호적에 올라가 있는 장남보다는 본처 소생인 차남에 더 애착일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판에 황실에 간세를 잠입시키려던 소회주의 계획은 실패했고...> 조백하 변의 장원에서 위상영과 독두신개가 가짜 관리들을 전멸시키던 장면 배경으로 나레이션

<지존께서 교묘한 수단을 써서 화산 창천애로 유인해준 위상영을 제거하지도 못했다.> 창천애에서 위진천이 위상영이 연주한 비파에 충격을 받고 퍼덕이던 장면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혈부용; (하물며 이번 밀서 건은 소회주의 색탐(色貪) 때문에 야기되었다.)

혈부용; (항마군영대의 청년들은 모두 마약(魔藥)에 중독되어 이성을 잃은 상태다.) 어떤 밀실에서 눈을 까뒤집고 침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헌데 소회주는 자신에게 연정을 드러낸 신소심만은 마약을 먹이지 않았다.> 수줍어하는 신소심을 품에 안고 뭐라 속삭이는 위진천의 모습. 어떤 밀실이다.

<신소심과 놀아나기 위해서였는데... 그 때문에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신소심이 항마동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어둑한 밀실 입구에서 밀실 내부를 들여다보며 전율하는 신소심. 밀실 내에는 청년들이 목과 손발에 족쇄가 채워진 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혈부용; (결국 신소심은 항마동천을 탈출하여 제 아비에게 진상이 적인 밀서를 보냈던 것이다.) 찡그리고

혈부용;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같은 실책으로 인해 소회주는 부친의 눈 밖에 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다.) 소리없이 한숨 쉴 때

위진천; [그건 뭐냐?] 혈부용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를 힐끔 보며

혈부용; [백살파가 보고서에 첨부한 어떤 자의 용모파기이옵니다.] 두루마리를 조금 들어올리고

위진천; [용모파기?]

혈부용; [백살파의 자객들이 막운비를 척살하려는 것을 훼방 놓은 자의 얼굴이옵니다.] 두 손으로 두루마리를 내밀고

위진천; [어떤 놈인지 상판 좀 보자.] 두루마리를 받아서

펼쳐본다.

위진천; [이놈...] 두루마리 펼쳐보며 눈 부릅

두루마리에 그려진 초상화는 청풍이다. 수염이 좀 나서 덥수룩하지만

위진천; [창천애에서 날 물 먹인 이청풍이란 놈 아니냐?] 혈부용에게

혈부용; [수염도 덥수룩하고 상당히 초췌해서 긴가민가하옵니다만...] 눈치 보며 말끝을 흐리고

위진천; [틀림없다! 이놈이 바로 이청풍이다. 내 눈은 절대 속이지 못한다.] 청풍의 초상화를 보며 이를 부득 갈고

혈부용; [한 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지니신 소회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동일인인 게 분명할 것 같사옵니다.] 아부하고

위진천; [이놈... 창천애 아래로 추락했던 이놈이 어떻게 살아났단 말인가?] 살기 어린 눈으로 청풍의 초상화를 노려보고

위진천; [혈부용!] 청풍의 초상화를 보며

혈부용; [하명하시옵소서.]

위진천; [이가놈을 찾아라! 어떤 일보다 우선해서...] 다시 두루마리를 내밀고

혈부용; [분부 받들겠사옵니다만...] 두 손으로 두루마리 받으며 말 꼬리를 흐리고

위진천;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놈은 내 앞길을 방해할 천적이다.] 이를 부득 갈면서 눈을 희번덕이고

위진천; [가급적 빨리 찾아내 제거하지 못하면 장차 크나큰 우환이 될 것이다.] 이를 가는 위진천의 얼굴 크로즈 업

 

#104>

<-북우산(伏牛山)> 낮

복우산의 험한 산속. 날듯이 걸어가는 청풍. 허리춤에는 용봉철적을 찌르고 있고. 수염은 말끔하게 깎아서 이제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청풍; (막형이 무사히 소림사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날 듯이 걸어가며 막운비를 떠올리고

청풍; (너무 걱정하지 말자.) 고개 젓고

청풍; (금석을 두부 베듯 하는 칠성보도에 이화접목까지 가르쳐주었으니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배려는 모두 한 셈이니...)

청풍; (화산에서 당한 일도 있고 해서 막형도 더욱 더 신중하게 소림사로 가고 있을 것이다.) 끄덕

청풍; (일단 소림의 영역에만 들어가면 안전해질 테지.)

청풍; (막형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내 문제에나 집중하자.)

청풍; (북경으로 가서 날 죽이라고 사주한 게 이세창인지 마님인지 확인하자.) 이세창과 마은혜를 떠올리고

청풍; (만일 마님의 지시였다면 옥령이와의 인연은 끝장이니 미련을 갖으면 안된다.) 침통한 표정이 되고

청풍; (옥령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린 인연이 아닌 것으로...) + [!] 생각하다가 눈 번뜩이고. 직후

창! 차창! 청풍의 귀에 들리는 금속성

청풍;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 달리면서 한쪽을 돌아보고

창! 창창! 연이어 들리는 금속성

청풍; (이 깊은 산중에서 누가 싸우고 있는 것일까?) 휘익! 방향을 틀어서 금속성이 들린 곳으로 날아가고

청풍; (나처럼 독룡간의 괴사를 살펴보려고 찾아온 자들끼리 싸움이 붙은 것일까?) 휘익! 날아간다.

 

#105>

어떤 계곡.

창! 차창! 두 자루의 휘어진 칼을 휘둘러서 네 명의 흉악한 사내들과 싸우고 있는 살접. 살접을 포위 공격하는 사내들은 네 쌍둥이라 비슷한 얼굴과 복장을 하고 있는데 전형적인 산적 인상이다. 무기는 큰 칼이다. 캐릭터는 343

[이년아 헛심 쓰지 말고 어르신들 품에 안겨라.] [계집은 침대에서 힘을 써야하는 법이니라.] [우리 형제들의 사랑을 받으면 극락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될 게다.] 창! 차창! 넷이 거의 같은 동작으로 칼을 휘두르며 살접을 희롱하고. 이자들의 이름은 복우사흉. 복우산 일대의 산적들인데 살인상단의 사주를 받고 살접을 희롱하는 척 하는 중

살접; [더러운 짐승들...] 휘익! 쐐액! 분노하여 얼굴 새빨개지고. 양손의 칼을 칼춤 추듯 휘둘러대고. 물론 연기다.

살접; [이 아가씨가 누군지 알고 감히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캉! 카캉! 사방에서 파고 드는 복우사흉의 칼들을 휘어진 칼로 쳐내고 막으며 악을 쓰고

복우사흉; [누군데?] [네년이 설마 황제의 딸이라도 된다는 거냐?] [황제의 딸년이라면 더 좋지. 재미 보는 기분이 기막힐 테니...] 낄낄 거리며 칼을 휘두르는 네 놈. 쌍둥이들이라 손발이 척척 맞는다.

살접; [난 화산파의 제자다.] [날 해코지 하면 화산파의 고수들이 몰려와 네놈들을 도륙해버릴 것이다.] 캉! 카캉! 악을 쓰며 칼을 휘둘러 복우사흉의 공격을 막고

복우사흉; [어이구 그러셔?] [이제 보니 대 화산파의 제자셨구만.] [몰라 뵈어서 죄송하오 소저.] [부디 이 버러지같은 인생들을 용서해주시오.] 비웃으며 칼질하고

복우사형; [...라고 겁먹을 줄 알았느냐?] [화산파니 뭐니 해봐야 여긴 복우산이다.] [우리 복우사흉(伏牛四凶)의 안방이라 이거지.] [화산파 따위 쳐들어 와보라 그래.] 칼을 신나게 휘두르고. 그러자

서걱! 찌익! 복우사흉의 칼질에 살접의 옷이 찢어지고 갈라지고

살접; [흑!] 드러나는 속살 가리려 움츠러 들고

복우사흉; [이년아 속살 좀 구경하자.] [말만 잘 들으면 우리 형제들이 돌아가며 즐긴 후 살려주마.] [여차하면 맛만 보고 산짐승 먹이로 만들어버리는 수가 있다.] 부악! 쩍! 살벌하게 칼을 휘두르는 놈들. 그러자

캉! 캉! [악!] 그자들의 칼질에 부딪힌 살접의 칼이 튕겨져 나가고

복우사흉; [그만 누워라!] [본격적으로 놀아보자!] 펑! 펑! 두 놈이 장풍을 날리고

살접; [악!] 펑! 펑! 장풍에 맞마 비명 지르고

콰당탕! 바닥에 나뒹구는 살접.

살접; [끄윽...] 바르르.. 바닥에 야하게 쓰러져서 신음하고. 장풍에 맞은 가슴 부분의 옷이 터져서 육감적인 젖가슴이 드러나고

복우사흉; [이제 좀 조용해졌구만.] [그럼 요리를 시작해볼까?] 다가서고

살접; [네놈들이...] 입으로 피를 흘리며 일어나려 하지만

슥! 그년의 목에 겨눠지는 복우사흉 중 한 놈의 칼. 눈 치뜨는 살접. 일어나 앉으려는 자세로

일흉; [잘 생각해라 이년아.] 칼을 살접의 목에 대고

일흉; [당하고 살 것인지 죽은 후 살 것인지...] 슥! 칼을 살접의 목에 더 깊이 들이밀며 흉악하게 웃고

살접; [살... 살려주세요.]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복우사흉; [그년 이제야 현실을 직시했구만.] [잘 생각했다. 눈 질끈 감고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낄낄 대는 놈들

일흉; [그럼 어디 껍질을 벗겨볼까?] 슥! 칼끝으로 살접의 저고리를 아래로 가르려 하고. 젖가슴 골이 드러나고

살접; [흐윽!] 저고리가 아래로 갈라지며 젖가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걸 보며 공포에 질리고. 바로 그때

청풍; [거기까지!] 휘익! 청풍이 복우사흉 뒤로 날아 내리고. 일제히 돌아보는 복우사흉과 살접

청풍; [추잡한 목숨이나마 부지하고 싶으면 즉시 달아나야할 것이다.] 다가오고

복유사흉; [뭐야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은?] [어이가 없네.] 코웃음 치며 돌아서는 복우사흉들

복우사흉; [사내놈에게는 볼일 없다.] [빨리 해치우고 재미 보자!] [죽어라!] [오늘 밤에는 산짐승들이 포식하겠구나.] 부악! 쩍! 일제히 몸을 날려 청풍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복우사흉. 칼질이 똑같다.

살접; [조심하세요.] 드러난 젖가슴 가리며 비명. 하지만

청풍; [자초한 화이니 날 원망하진 마라.] 스악! 휘익! 양손을 휘젓고. 그러자

텅! 쐐액! 청풍을 베어오던 복우사흉의 네 자루 칼이 그대로 방향을 틀어 주변의 동료들을 벤다

[크악!] [안돼!] [케엑!] 푸학! 쩍! 서로의 칼에 베어져 비명 지르는 복우사흉. 죽은 놈은 없지만 팔이 잘리거나 목이 깊이 베인 놈은 있다.

살접; [아!] 놀라는 시늉

[크악!] [끄윽 이게 무슨...] [칼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텅! 따앙! 상처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복우사흉들. 칼들은 바닥에 떨어지고. 잘려진 팔도 하나 함께 뒹굴고

청풍; [다음에는 다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고. 그러자

복우사흉; [히익!] [가... 가자!] [가공할 고수다!] 휘익! 휙!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그놈들

청풍; (복우사흉...) 달아나는 복우사흉을 보고

청풍; (복우산 일대에서 활개 치는 산적들이겠지.) 생각할 때

살접; [고... 고마워요 공자님!] 옷을 여미며 무릎 꿇고. 돌아보는 청풍

살접; [구해주신 덕분에 끔찍한 일을 면했어요. 구명지은, 잊지 않겠어요.] 고개 조아리며 말하지만

청풍; (이 여자...) 훑어보고

청풍; (내공을 지니고 있지만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 [과례는 거두십시오.] 살접을 내려다보며

청풍; [무림 동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 사례를 받을 일도 아닙니다.] 무뚝뚝하게 말하며 돌아서고

청풍; [무슨 일로 이 깊은 산중까지 오셨는지 모르지만 조심해서 하산하십시오.] 걸어가려는데

살접; [기... 기다려 주세요 공자님!] 바닥에 떨어진 자기 칼들을 주우며 급히 외치고

멈춰서며 돌아보는 청풍.

살접; [염... 염치없지만 공자님과 동행하게 해주세요.] 철컥! 칼들을 양쪽 허리에 찬 칼집에 꽂으며 청풍에게 다가온다. 겁에 질린 표정인데. 반면 옷이 찢기고 베어져서 젖가슴이 일부 드러나 보인다.

청풍; [도와드리고 싶어도 나는 여기보다 더 험한 곳으로 가는 길이라 곤란합니다.] 난색을 표하고

살접; [부탁드려요 공자님!] [아까 그자들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절 해코지 할지도 몰라요.] 두 손 모으며 애원하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청풍; (이거 참...) 난감, 그러다가

눈물 그렁한 살접의 얼굴

떨리는 두 손과 몸

청풍; (어쩔 수 없군.) + [알겠습니다.] 한숨

청풍; [제가 둘러볼 곳까지 함께 갔다가 하산 하도록 하지요.]

살접; [고마워요 공자님!] 와락! 청풍의 팔을 두 팔로 끌어안고. 움찔하는 청풍.

살접의 젖가슴이 청풍의 팔에 눌리고

청풍; (대담한 여자로군.) + [내가 가려는 곳은 여기보다 더 험하니 조심해야할 겁니다.] 슥! 살접의 손에서 팔을 빼며 걸어가고

살접; [명심할게요.] 배시시 웃으며 따라가고

청풍; [내상이 심하십니까?] 걸어가며 조금 돌아보고

살접; [심맥에 타격을 받긴 했지만 견딜만 해요.] 복우사흉의 장풍에 맞은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아픈 듯 찡그리며

청풍; [천천히 갈 테니 무리하지 말고 따라오십시오.] 성큼 성큼 걸어가고

살접; [예...] 배시시 웃으며 따라가고

이하 앞 뒤로 서서 날 듯이 걸어가며 대화 나누는 두 사람

살접; [인사드리는 게 늦었어요.] [제 이름은 정정(鄭貞)이고 화산파에 적을 두고 있어요.] 청풍을 따라가며

청풍; [화산파...] 중얼.

이어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인물. #15>에서 벽세황에게 검술을 가르치던 화산파 장로 풍뢰검왕이다.

청풍; (진짜 화산파 제자인지 확인해봐야겠군.) + [풍뢰검왕은 잘 계십니까?]

살접; [풍뢰검왕 장로님은 북경의 황금전장에 무술사범으로 초빙되어 가셨어요.] 즉시 대답하고

청풍; (그걸 알고 있다면 화산파 제자라고 봐야겠군.) + [그렇군요.]

살접; [풍뢰장로님을 아세요?] 눈치 보며

청풍; [만나 뵌 적은 없고...] [그분의 검법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둘러대고

살접; [풍뢰장로님의 검법은 저희 화산파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빼어나시긴 하지요.] 눈치 보며

청풍; [헌데 정소저는 무슨 일로 복우산에 오르신 것입니까?]

살접; [공자님도 혹시 독룡간의 풍문 들으셨나요?]

청풍; [독룡간을 살펴보러 복우산에 올라오신 것입니까?]

살접; [사부님의 지시로 복우산 근처를 지나다가 독룡간의 풍문이 떠올랐어요.] 청풍청풍의 눈치를 보며

살접; [그래서 별 생각없이 복우산으로 들어왔다가 복우사흉이란 불한당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거예요.]

청풍; [강호의 인심은 흉험하니 위험한 곳에는 접근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살접; [오늘 일로 저도 톡톡히 교훈을 얻었어요.] 끄덕이고

청풍; (그렇다면 다행이고...)

살접; [혹시 공자님이 가시려는 곳이...]

청풍; [나도 지나던 길에 독룡간의 풍문을 확인할 겸 복우산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고개 끄덕

살접; [잘 되었네요.] 와락! 다시 청풍의 팔을 두 팔로 안고. 당황하는 청풍

살접; [공자님 덕분에 저도 독룡간을 구경하고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젖가슴을 의식적으로 청풍의 팔에 밀착시키며 좋아하고

청풍; (무모할 뿐 아니라 당돌하기까지 한 여자다.) 쓴웃음. 이번에는 억지로 팔을 빼지 못하고

청풍; (이래 저래 복우산에서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구나.) 자기 팔을 끌어안은 살접과 함께 걸어가는 청풍

배시시 웃으며 청풍의 얼굴 살피는 살접

 

#106>

특이하고 험준한 지형. 거의 산 정상인데 평평한 바위로 이루어진 평지가 있다. 넓이는 수만평. 그 평지 가운데에 폭 100미터쯤의 균열이 있다. 바위로 이루어진 평지가 둘로 쩍 갈라진 듯한 균열은 양쪽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또 균열 아래쪽은 얼마나 깊은지 어두워서 바닥이 안보인다.

그곳으로 나타나는 청풍과 살접. 여전히 살접은 청풍의 팔을 두 팔로 끌어안고 있고

살접; [여기가 독룡간일 거예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균열을 보며 청풍과 함께 균열을 향해 걸어가고

살접; [밤이면 저 아래에서 기이한 기운이 번져 나온다고 하던데...] 청풍의 팔을 놓고 앞장 서서 균열로 가고

살접; [아직 낮이라 그런 걸까요? 딱히 특이한 현상은 안 보이네요.] 아래를 내려다보고. 청풍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깊은 계곡. 바닥은 잘 안보인다.

청풍; (정말 깊은 균열이다. 마치 저승까지 이어져 있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청풍; (위험을 무릅쓰면 못 내려갈 것도 없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는 없겠지.) 생각할 때. + 살접;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살접;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청풍; [기왕 왔으니 정말로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가야...] 말하다가 찡그리며 멈추고

살접; [왜 그러시나요?] 어리둥절하며 청풍을 보고

다른 곳을 보는 청풍.

살접도 돌아보고

쿵! 균열을 따라 걸어오는 거구의 복면인. 사람 몸통만한 머리가 달린 망치를 들고 있다. 살인상단의 자객중 한명인 살패다.

살접; [흑!]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청풍의 뒤로 숨고. 그러다가

살접; [저... 저쪽에서도 오고 있어요.] 살패의 반대쪽을 가리킨다

살패의 반대쪽에서 오는 또 다른 복면인. 보통 체구의 인물. 역시 살인상단의 자객인 살영이다. 하지만

청풍; (포위당했군.) 살영은 보지 않고 자신들이 온 쪽을 보고 있는 청풍. 그곳에서 다가오는 또 다른 복면인. 바로 독검사랑이다. 무기는 허리에 찬 검이다.

청풍; (저자의 온몸에서 칙칙한 살기가 흘러넘친다.) 독검사랑을 보고

<아마도 저자가 수령일 텐데 풍기는 기도만으로 보자면 귀견수나 십삼살주에 못지 않은 고수일 것이다.> 천천히 다가오는 독검사랑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독검사랑이 뽑는 검은 검날이 검다.

살접; [우릴... 우릴 노리는 자들 같아요.] 청풍의 뒤에 숨어서 겁에 질린 표정

청풍; [안면이 있는 자들이오?] 독검사랑을 보며 살접에게 묻고

살접; [모... 모르는 자들이에요.] 고개 젓고

살접; [저같은 하수를 저런 고수들이 세 명씩이나 나서서 노릴 이유도 없구요.] 달달 떨면서 말하고

청풍; (하긴...) + [그럼 날 찾아온 손님들이겠군.] 슥! 말하며 앞으로 나서고.

그 사이에 청풍을 세 방향에서 포위한 독검사랑 일행. 각기 청풍과 5미터쯤 거리를 두고 멈춰선다.

망치를 두 손으로 꼰아든 살패,

창! 살영의 양쪽 소매 속에서는 세 개씩의 갈쿠리가 튀어나와 손에 장착된다. <울부린>의 갈쿠리 같은 형태

청풍; [내게 볼일이 있으시오?] 살패와 살영은 신경 쓰지 않고 독검사랑에게 묻고

독검사랑; [네 이름이 이청풍이 맞다면 그러하다.] 스릉! 끄덕이며 검을 뽑고. 이자의 검은 검은색이다

청풍; (검날이 먹물을 바른 듯 검다.) 눈 번뜩

청풍; (검에 독이 묻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 [백살파는 아닌 것 같고...] 독검사랑의 검을 보며

청풍; [어느 조직에 소속된 분들이오?]

독검사랑; [본좌는 살인상단 부단주 독검사랑이다.] 검을 늘어트린 채 대답

청풍; [살인상단...] 눈 번득

청풍; (들어본 적이 있는 청부살수집단이다.) + [이제 보니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삼는 조직에 속한 분들이었군.]

독검사랑; [그러하다.] 음산한 눈빛으로 끄덕

독검사랑; [우리는 널 죽여 달라는 청부를 받고 찾아왔을 뿐,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는 걸 말해두겠다.]

청풍; [청부한 자는 누구요?]

독검사랑; [살인청부가 주업인 우리가 고객의 정체를 노출시킬 것 같으냐?] 피식 웃고

청풍; [귀견수가 청부했겠지.] 냉소하고. 그러자

독검사랑; [...!] 즉답을 하지 않다가

독검사랑; [좋을 대로 생각해라.]

청풍; (대답에 아주 잠깐 공백이 있었다. 즉 내 말이 맞다는 뜻이다.)

청풍; (귀견수! 그 작자가 자기 능력으로는 날 간단히 죽일 수 없다고 판단되자 살인상단에 청부를 했구나.) 귀견수를 떠올리며 생각할 때

독검사랑; [청부자가 누군지 말해줄 수는 없지만 청부를 실행하는 담당자는 알려주는 것이 우리 살인상단의 전통이다.] [그래서 본좌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청풍; [염라대왕을 만나면 죽인 자가 누군지 대답하라는 배려인가?] 피식 웃고

독검사랑; [그렇다!] [각자 자기소개를 해라.] 살패를 보며 말하고.

살패; [살인상단 십대자객의 일인 살패(煞覇)다!] 망치를 불끈 쥐어 들어보이고

살영; [역시 십대자객에 속하는 살영(煞影)이다.] 양손의 갈쿠리를 들어 보이고

청풍; [나같은 무명소졸을 척살하기 위해 살인상단의 부단주와 십대자객 둘이 출동하다니...] [영광으로 생각해야하나?] 차갑게 웃고

독검사랑; [알면 되었다. 죽여라.] 자기는 움직이지 않고 살패를 향해 말하고.

살패; [봉명!]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청풍도 돌아보는데 직후

부악! 이미 청풍의 머리를 내리쳐오는 살패의 거대한 망치. 엄청 빠르다는 걸 보여주고

살접; [악!] 비명 지르는데

꽝! 살패의 거대한 망치가 바닥을 내리쳐 바위로 이루어진 바닥에 깊이 박힌다. 청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107>

드드드! 절벽 전체가 흔들리고

드드드! 뒤흔들리는 절벽의 바닥. 그곳에 동굴이 있고. 동굴 입구에는 여러 자루의 낡은 검들이 널려있고. 해골들도 여러 구 뒹굴고 있다. 해골들 사이를 뱀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음산한 광경

 

[!] 동굴 안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눈이 번뜩인다. 벽을 등지고 앉은 인물의 실루엣. 바로 검성 섭장천이지만 실루엣으로 보여주고. 헌데 섭장천의 어깨 너머로 뱀의 형상과 뱀의 눈도 한쌍 번뜩인다. 뱀의 형상 머리에는 뿔이 두 개 달려있다. 용의 뿔 같이 생긴. 그리고 동굴 안에는 반딧불 같은 수많은 불빛들이 보인다. 모두 뱀의 눈빛이다.

섭장천; (제법이로군.) 드드드! 흔들리는 동굴의 진동을 느끼고. 섭장천의 모습은 여전히 실루엣으로 묘사하고.

취릭! 섭장천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든 뿔 달린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눈을 번뜩이고. 화가 난 표정. 하지만

섭장천; (지금까지 독룡간을 찾아온 자들 중에서는 가장 심후한 내공을 지닌 자다.) 슥! 뱀의 머리를 쓰다듬어 진정시키며 생각하고

섭장천; (물론 지존이라는 악적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 수준이지만...) 강렬한 눈빛이 되고

<언제나 되어야 지존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굴 안의 광경 배경으로 섭장천의 생각 나레이션. 동굴 안에 수많은 뱀들이 꿈틀거리고 있고 뱀들의 눈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걸 배경으로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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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장

 

            붓 속에 숨겨진 재산 (2)

 

 

 

석두공이 객방으로 들어가자 무형도객이 무림첩을 적고 있다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글 써줄 서생들은 구했는가?]

[요즘엔 서생들이 글을 써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형도객은 기대했다가 낙심한 듯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하는 수 없이 손목이 빠지도록 적어야겠군.]

[한데...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지 않습니까? 부릴 귀신은 있는데 돈이 없습니다.]

[자네... 무슨 수단을 찾은 모양이군. 어서 말해보게.]

무형도객이 희색이 만면하며 말했다.

석두공이 요즘은 그런 글은 직접 적는 것이 아니라 인장처럼 찍어낸다고 하니까 무형도객이 무릎을 쳤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책들도 그렇게 나오는 것들이 적지 않은데...]

[그건 그렇고 곧 은자를 받으러 올 텐데 무슨 방법으로 거금을 마련합니까?]

[함께 가세.]

무형도객이 일어났다.

[...?]

[돈을 마련해야지.]

 

***

 

무형도객은 석두공을 데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로 나섰다.

[강도라도 할 생각입니까?]

[무림을 위한 일인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무형도객은 덤덤하게 말을 받았다.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형도객이 강도를 할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림을 위해서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을 것같기도 했다.

석두공이 말했다.

[그럼 부잣집을 골라서 하도록 하지요. 그 정도 돈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지금 가고 있는 중일세.]

무형도객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빗소리가 천지의 소음을 모두 쓸어가버렸다.

무형도객은 문이 닫힌 점포들 중 한곳으로 가서 두드렸다.

쿵쿵쿵!

잠시 후에 쪼글쪼글한 노파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무슨 일이오?]

[검을 팔러 왔소이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노파가 물었다.

[우린 검을 사지 않소. 여긴 골동품을 취급하는 곳이라오.]

탁!

노파가 문을 닫았다.

석두공이 물었다.

[정말 검을 파실 생각이십니까?]

무형도객이 그의 발을 쿡 밟으며 가만히 있으란 신호를 했다.

무형도객은 닫힌 문에 대고 말했다.

[내 검은 세우면 하늘에 닿고 눕히면 땅을 다 쓸 수 있으며 거두면 손바닥 안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이오.]

(세상에 그런 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선배께서도 거짓말이 상당하구나. )

석두공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한데 바로 그 순간에 닫혔던 문이 열리며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서 흥정해봅시다.]

[...!]

석두공은 무형도객을 보았다.

무형도객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골동품 점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넓었다.

더구나 손님이 편안히 앉아서 이야기 할 수 있는 큰의자가 차탁 앞에 놓여있었다.

주인 노파는 칠십이 넘어보였지만 온화한 얼굴에 어떤 기품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노파는 가운데 의자에 앉으면서 무형도객과 석두공에게 자리를 권했다.

[손님이 오셨으니 차를 가지고 오너라!]

노파는 안쪽을 향해서 말했다.

그리고 무형도객과 석두공이 앉자 탁자위에 좁고 긴 나무상자를 하나 올리면서 말했다.

[손님이 팔겠다는 검은 이 검과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노파가 나무상자의 덮개를 열었다.

순간 나무상자에서는 고색창연한 빛을 발하는 한 자루의 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보기(寶氣)가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막야(莫耶)가 뛰어난 명검임에는 틀림없지만 어찌 내가 가진 검에 비하겠소?]

무형도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노파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노파는 보검을 탁자 아래로 쓸어내려 버렸다.

그리고,

[그럼 이 검은 어떻소?]

다시 한 자루의 둔중해 보이는 기형 철검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 검은 검날의 두께만도 한치가 되고 날의 넓이는 반자나 되었다. 무게가 적어도 오십 근은 넘을 것 같은 데 노파는 종이장 들듯이 가볍게 다루었다.

[붕산검마(崩山劍魔)가 백오십 년을 연마하여 만들었다는 붕산검(崩山劒)이구려. 하지만 내 검에는 미치지 못하오.]

노파가 검을 내려놓으며 손을 내밀었다.

[보여주시오.]

무형도객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빈손이잖아? 그럼 그렇지...)

석두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데 무형도객의 손바닥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손바닥 위에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손가락만큼 작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진기를 모아 응축시켜 만든 것이었다.

석두공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 작은 검의 모습을 그는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검령...]

석두공이 나직막한 소리로 내뱉었다.

무형도객과 노파가 눈을 부릅뜨며 석두공을 노려보았다.

노파의 손바닥에도 작은 검이 떠오르고 있었다.

무형도객이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정검령을 아는가?]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누가 내 앞에서 그걸 보이며 복종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시하고 그냥 와버렸습니다.]

[...!]

[...!]

무형도객과 노파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심부름하는 소녀가 차를 다려왔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에 무형도객이 노파에게 말했다.

[당장 오백냥의 은이 필요하오.]

[이것을 가지고 가시오.]

노파가 한장의 전표를 주면서 말했다.

[천냥짜리니 여유가 있을 거요.]

 

***

 

(무림에는 드러나지 않은 조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양이다. 무림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두개나 그런 조직을 목격했으니...)

객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석두공은 생각했다.

(소령이 속해있는 조직의 힘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같았는데, 무형도객이 속해있는 조직도 전혀 그에 못지않을 것같구나. 그 노파의 무공도 놀라울 정도였다. 무형도객 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깊은 공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림은 피상에 불과할 지도 모르고 진정한 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같았다.

이런 느낌도 벌써 두번 째다.

부운청풍객 심제을과 잔혼살객 등이 삼마경을 익혀 극히 고강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강한 사람도 석두공은 여럿 알고 있다.

드러난 모든 것이 피상일 것만 같았다.

무형도객이 석두공에게 부탁했다.

[정검령에 대해서는 함구하도록 하게. 함부로 말하게 되면 사마의 세력을 돕는 것이 될 것일세.]

석두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응락하자 무형도객은 근심을 털어버린듯 껄껄 웃었다.

 

객점에 들어서자 탁자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무림첩들을 한곳으로 쓰윽 밀어버리며 석두공이 소리쳤다.

[이제 손이 해방되었군요.]

며칠 동안 무림첩을 적는 고생을 하느라고 얼마나 질렸는지 모른다.

석두공은 막힌 속이 탁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붓도 이젠 안녕을 고해야겠지요.]

뚝!

석두공은 자신이 사용했던 붓을 꺾어버렸다.

한데,

[어? 이게 뭐야?]

꺾어진 붓 속에서 돌돌말린 종이가 구겨져 있었다.

[...?]

무형도객도 그의 옆으로 왔다.

쫘라라락!

석두공 종이를 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갑자기 파안대소를 했다.

[으하하하하... ]

[와하하하... ]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문서였다.

무혁해의 재산 중의 한 가지에 대한 소유를 증명하는 문서였다.

뚝!뚝!

석두공은 다른 붓도 부러뜨렸다.

부러진 붓마다 한 장씩의 문서가 나왔다.

무혁해의 재산은 고스란히 붓 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천하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든다는 갑부 무혁해...,

그는 기묘한 방법으로 재산을 감추고 도망치고자 했으나 결국 해천월의 손에 죽고 말았다.

헌데 그의 재산은 엉뚱하게도 석두공의 손으로 굴러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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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마군영대는 혈세사패의 발호에 대항하기 위해 구대문파가 육성하고 있는 최정예 집단이다.> 어느 절. 웅장한 건물을 등지고 아홉 명의 나이 든 인물들이 단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중이 두 명, 도사가 세 명, 비구니가 한명, 나머지는 일반인데 일반인들 중에는 거지도 한명 있다. 덩치 좋은 이 거지는 개방의 방주다. 모두 나이가 들었고 고수들로 보인다. 이들이 구대문파 문주들이다. 가운데 서있는 깡마른 노승이 소림사 방장인 철목선사다. 여러 개의 고리가 달린 강철 지팡이를 들고 있다.

<구대문파는 한 문파에서 열 명씩, 총 구십 명의 후기지수들을 선발해서 공동으로 무공을 가르치기로 했었다. 그들이 항마군영대이며 육성 목적은 물론 혈세사패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단상 아래에 도열해있는 청년과 처녀들. 열명씩 종대로 서서 아홉 줄을 이룬다. 각 줄 앞에는 팻말이 서있는데 팻말에는 <少林> <武當> <華山> <峨嵋> <終南> <崑崙> <丐幇> <恒山> <衡山>등의 글이 적혀 있다. 구십명 중 여자들도 십여 명 끼어 있고 여자들 중에는 삼절신유 신현학의 딸 신소심도 끼어 있다. 물론 신소심은 <終南>이라 적힌 팻말 뒤에 서있다. 여자들 중에는 젊은 비구니도 두 명 끼어 있다. 비구니들은 <峨嵋>라는 팻말 뒤에 서있다. 또 청년들 중 한명이 위진천이다. 위진천은 <武當>이란 팻말 바로 뒤에 서있다. 자신만만한 표정

<구십 명의 항마군영대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음산(陰山)에 설치 된 항마동천(降魔洞天)에 들어가서 무공수련에 매진하고 있다. 이 항마동천에는 구대문파가 제공한 수많은 영약과 비급들이 구비되어 있다.> 어느 계곡 철문이 달린 동굴로 줄 지어 들어가는 구십 명의 청년과 처녀들. 동굴 입구에는 <降魔洞天>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구대문파 장문인들이 동굴 입구에 서서 청년과 처녀들을 격려한다.

<항마동천은 수많은 금제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금지이기도 하다.> 철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온다. 철문 밖을 지키고 있던 중과 도사와 일반인들이 돌아보고

<오직 항마군영대 중에서 선출된 영도자 항마통령(降魔統領)만이 정기적으로 항마동천 밖으로 나와 무공 수련의 진척을 구대문파에 보고하게 된다.> 철문에서 나오는 인물은 바로 위진천이다.

 

막운비; [원래는 막모도 종남파에 배정된 열 명의 항마군영대중 한명으로 선출되었었습니다.]

청풍;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마동천에 들어가지 않으신 데에는 사연이 있겠습니다.]

막운비; [소생의 사매, 즉 사부님의 외동딸 신소심(申素心)에게 항마군영대 자리를 양보했지요.] 쓴웃음

청풍; [저런...]

막운비; [소심사매는 활달하고 자질도 뛰어나 항마군영대의 일원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막운비; [하지만 여자라는 점이 결격사유였는데...] [너무도 간절히 원하기에 제가 양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청풍; [영사매가 항마군영대에 들어가려고 애쓴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의미심장하게

막운비; [역시 이형은 속일 수가 없군요.] 쓴웃음

청풍; [별 말씀을...]

막운비; [소심사매는 항마군영대로 선출된 어떤 자를 짝사랑해왔었습니다.]

청풍; [그자와 함께 있고 싶어서 항마군영대의 일원이 되려고 했군요.]

막운비; [무당파(武當派) 속가제자인 옥면신룡(玉面神龍) 위진천(威振天)이란 친구가 소심사매의 짝사랑 상대입니다.]

청풍; [옥면신룡...] [별호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미남인지 짐작이 갑니다.]

막운비; [그저 얼굴만 잘 생긴 게 아닙니다.] 씁쓸하게

막운비; [위진천은 자질도 뛰어나 항마군영대의 지휘자인 항마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한숨

청풍; (막형도 사매를 마음에 두고 있었겠지.) 쓴웃음

막운비; [어쨌거나 위진천과 가까워지고 싶어 했던 소심사매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인데...] 표정이 심각해지고

 

<사흘 전, 소심사매가 기르는 소홍조(小紅鳥)라는 애완조가 돌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깨알같은 글이 적힌 천조각을 다리에 감은 채로...> 하늘에서 날아 내리는 제비만한 작은 새. 물론 신소심이 날려 보낸 소홍조다. 소홍조의 양쪽 발목에는 천이 칭칭 묶여있다. 삼절곡의 정원에 있는 정자 입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으로 소홍조를 받으려는 삼절신유 신현학. 정자 근처에 있던 막운비도 놀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소홍조는 크기는 작아도 하루에 천리를 날 수 있으며 아주 영특한 영조입니다. 사매는 어렸을 때부터 그 소홍조를 길러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었지요.> 정자 안의 탁자. 소홍조가 지쳐 쓰러져 있고 삼절신유가 소홍조의 양쪽 발목에서 풀어낸 천을 들고 읽으며 심각한 표정이 된다. 천에는 깨알같은 글들이 적혀있고

<소홍조가 가져온 천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사부님은 소림사로 보내는 편지에 그 천을 넣고 밀봉했기 때문입니다.> 죽립을 쓰고 먼길을 떠날 차비를 한 막운비에게 밀봉된 편지를 내미는 삼절신유. 두 손으로 받는 막운비. 장소는 여전히 정자 안이다.

 

청풍; [외부와 단절된 항마동천에서 무슨 일이 생겼고 영사매가 그 사실을 소홍조를 통해서 알려왔겠습니다.]

막운비; [아마 그럴 것입니다.] 끄덕

막운비; [헌데 사부님은 그 내용을 제자인 제게 알려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종남파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밀로 했습니다.]

청풍; [문중에조차 알리지 않은 걸 보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내용이 아니겠습니다.] 눈 번뜩

막운비; [종남파와 가까운 화산파나 무당파에도 알리지 말라고 분부하신 것을 보면 틀림없습니다.] 끄덕

청풍; (그래서 백살파에 쫓기면서도 지척에 있는 화산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구나.) 깨닫고

막운비; [사부님은 누구도 믿지 말고 오직 소림사의 방장이신 철목선사에게 이 밀서를 전하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다시 편지를 보고

청풍; (점점 더 저 편지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편지를 보고

청풍; (하지만 막형도 개봉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편지를 보자고 할 수는 없지.)

막운비; [제가 떠난 직후 백살파가 삼절곡을 습격해서 사부님을 시해한 것 같습니다.] 이를 부득 갈고

막운비; [그후 백살파는 저를 집요하게 추격하고 있고...] [이로 미루어 보건데 소심사매가 보낸 밀서는 혈세사패와 관련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청풍; (혈세사패가 항마군영대 내에 간세를 잠입시켰을 수도 있겠지.) 끄덕이며 칠성보도를 집어들고

청풍; [사용하시던 검이 손상되었으니 이 칼을 쓰도록 하십시오.] 손잡이를 앞으로 해서 내밀고

막운비; [보도라고 불릴만한 대단한 칼인데 제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선뜻 받지 못하고.

청풍; [저는 도검을 쓰는 무공을 배우지 않아서 이 칼은 무용지물입니다.] 웃으며 내밀고. 그러자

막운비; [그럼 염치불구하고...] 두 손으로 칼을 받고.

청풍; [그리고 주제넘지만 막형에게 한 가지 무공을 가르쳐드릴까 하는데 괜잖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막운비; [제... 제게 무공까지...] 놀라고

청풍; [이화접목(移花椄木)이라고 적의 내공을 내 것처럼 쓸 수 있는 무공입니다.] + (은원살법은 너무 난해하니 단시간에 익혀서 쓸 수 있는 이화접목을 가르쳐주는 게 적당하겠지.) 생각하고

청풍; [그리 어렵지 않은 무공이니 속성으로 익혀서 실전에 사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막운비; [원래라면 감히 이러면 안되지만...] 무릎을 꿇고

막운비; [제 처지가 워낙 궁박한지라 이형의 신세를 거푸 지도록 하겠습니다.] 무릎 꿇고 고개 조아리고

청풍; [막형이 소림사로 가져가려는 밀서가 수많은 생명을 구할지도 모릅니다.] 마주 고개를 조금 조아리고

청풍; [무림의 일원으로서 막형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말하고

막운비; (일대종사!) 감격하며 청풍을 보고

<비록 나보다 한참 연하지만 이 친구는 장차 무림을 영도할 일대종사가 될 게 분명하다.> 마주 앉아 무어라 얘기하는 두 사람 모습 배경으로 막운비의 생각 나레이션

 

#101>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암자. #54>에 나온 암자. 위상영이 머물던. 그리 크지는 않은 절인데 비구니 암자라 비구니들만 돌아다니고 있고. 마당에는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도 한 대 서있다. 물론 위상영이 타고 다니는 마차다. 비구니들이 말을 돌보고 있고

어느 건물. 색목쌍교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 [!] 무언가 발견하는 색목쌍교

비구니 한명의 안내를 받아 다가오는 중년의 거지 한명. 거지지만 덩치가 좋고 눈매가 날카롭다. 이 거지는 개방 외당 당주인 철각개라는 자다. 나이는 40살 정도

일교; <개방의 화자(化者;거지)가 찾아왔네.> 다가오는 거지를 보며 전음으로 이교에게 말하고

<개방 외당(外堂) 당주 철각개(鐵脚丐)라는 자인데... 뭔가 급한 제보가 있는 모양이야.> 다가오는 거지를 배경으로 색목쌍교의 대화

 

#102>

위상영; [항마군영대 말씀이신지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독두신개와 차를 마시다가 찻잔을 입에서 떼며 묻는다. 비파는 옆의 의자에 얹혀져 있고

독두신개; [이번에 강호로 나온 항마통령 위진천의 장담일세.] 위상영과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며

독두신개; [항마군영대는 늦어도 반년 안에 항마동천을 나올 예정이라는 게야.] 배경으로 나레이션. <-개방 태상장로 독두신개(禿頭神丐)>

위상영; [항마군영대 전원의 심사기준 통과가 임박한 모양이로군요.] 찻잔을 손에 든 채로 말하고

독두신개; [내공은 최소한 이(二)갑자 이상, 우리 구대문파가 선정한 백팔십종의 무공중 세 가지 이상을 정통해야하는 게 심사기준이었지.] 끄덕

위상영; [그 정도면 구대문파의 장로, 아니 문주님들에 필적하는 실력일 텐데...] 미심쩍은 표정

위상영; [불과 삼년 만에 그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기재들이 무려 구십 명이나 구대문파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다시 찻잔을 입에 가져가고

독두신개; [이 늙은 거지를 포함해서 구대문파의 늙은이들 모두가 놀라고 있다네.] 쓴웃음을 짓고

독두신개; [혹자는 항마통령 위진천이 허위 보고를 한 게 아니냐? 또는 뭔가 금단(禁斷)의 수단이 사용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낼 정도야.]

위상영; (확실히 의심이 가는 정황이다.) 말없이 차를 마시고

위상영; (항마군영대처럼 쉽게 절세고수가 될 수 있다면 누가 고생하며 수십 년 씩 무공수련을 할까?) 미간이 약간 찡그려지고

위상영; (아무래도 항마군영대의 내막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찻잔을 입에서 떼고. 이어

위상영; [항마군영대의 결성을 처음 주창한 분이 무당파 장문인이셨지요?] 달각!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독두신개; [무당파의 장문인 함풍자(咸風子)가 처음 발의를 했었지.] 끄덕

위상영; [헌데 공교롭게도 무당파 속가제자인 위진천 공자가 항마군영대의 통령이 되었군요.]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독두신개; [그 말을 들으니 공교롭긴 하구먼.] 눈 번뜩이고

위상영; [위진천 공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

독두신개; [당연히 위진천에 대해 알아둬야지.] 히죽 웃고

독두신개; [군사의 자당(慈堂;남의 어머니)께서도 위진천을 서랑(壻郞;사위) 후보로 염두에 두신 것 같으니...]

위상영; [...] 미간을 살짝 모으며 대답하지 않고

독두신개; (이 혼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군.) + [위진천은 하남의 대지주(大地主)인 위가장(威家莊)의 후계자라네.] 뻘쭘해져서 위상영의 눈치를 보며

독두신개; [위가장은 수억 평의 비옥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어서 하남성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부유한 가문이야.]

독두신개; [게다가 위진천은 어미가 선대 황제의 딸, 즉 공주이기도 해.] [그 덕분에 황실의 비호도 받을 수 있는 귀한 신분이기도 하네.]

말없이 듣는 위상영

독두신개; [군사도 알다시피 우리 호천맹은 삼문육가를 주축으로 이루어졌어.] [그 때문에 구대문파와는 다소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왔지.]

위상영; [자존심이 남다른 구대문파는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걸 꺼려하지요.] [물론 호법님의 개방만은 예외지만...]

독두신개; [우리 개방이야 배불리 먹게만 해주면 간이든 쓸개든 다 내주는 게 전통이지.] 껄껄 웃고

독두신개; [하지만 개방을 제외한 다른 구대문파들 간의 알력과 견제는 옛날부터 유명했어.] [알량한 자존심을 빼면 시체나 다를 바가 없는 게 소위 말하는 명문대파들이니 말일세.] 쓴웃음을 짓고

위상영; [저희 모녀도 호천맹을 만들 때 구대문파부터 접촉했지만 개방 외의 모든 문파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웃고

위상영;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의를 보인 삼문육가를 호천맹의 주축으로 삼게 되었지요.] 한숨을 쉬고

독두신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세사패의 발호를 저지하려면 구대문파를 반드시 호천맹에 가입시켜야만 하네.]

독두신개; [그 일환으로 자당은 구대문파의 공동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위진천을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이야.]

위상영; (내 배필이라...) 소리없이 한숨.

위상영의 뇌리에 떠오르는 청풍의 모습.

위상영; (마음이 가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머니의 뜻을 따라야겠지.) 소리없이 한숨을 쉬는데

독두신개; [어쨌거나 조만간 항마군영대 통령인 위진천과의 면담이 이루어질 걸세.] 술잔을 내려놓고

독두신개; [자당의 의중도 있고 하니 위진천과의 혼담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나.] 말하며 문쪽을 보고. 직후

<호법님! 철각개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음성. 그러자

독두신개; [철각이 놈이 직접 찾아온 걸 보면 뭔 일이 있구만.] + [들여보내게.] 문밖을 향해 말하고. 그러자

<예!> 덜컹!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고

문을 열어준 것은 색목쌍교중 일교. 문 밖에는 철각개가 공손히 서있다. 앞으로 모은 두 손에는 가는 천 조각이 하나 들려있다.

위상영; [어서 오세요 당주님.] 고개 좀 숙이고

철각개; [철각이 군사님을 뵙습니다.] 포권하고

독두신개; [인사는 됐고... 보고를 해라.]

철각개; [예 사숙조(師叔祖)님!] 눈치 보며 굽신. 이어

철각개; [방금 전 화산지부 소속의 화자가 날려 보낸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얇은 천을 두 손으로 내밀고

위상영; (화산이라면 혹시!) 눈을 좀 치뜰 때

철각개; [화산 서쪽 운두령 근처의 주점에서 이청풍 공자가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말하고. 놀라는 색목쌍교

[!] 역시 놀라는 위상영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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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붓 속에 숨겨진 財産 (1)

 

 

 

-소흥(紹興)!

 

하(夏)왕조 시대에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치수를 한 우(禹)의 무덤인 우릉(禹陵)이 있다.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이 직접 이곳을 방문했다고 전해지는 만큼 이 우릉에는 시인묵객과 영웅호걸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객점과 주루들도 근처에 적지 않게 있다.

소흥은 또 술을 장 빚는 고장으로 유명하다.

소흥주(紹興酒)가 명주임은 주당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우르릉!

우르릉! 쿠쾅!

아침부터 찌푸렸던 하늘이 기어코 무너지며 시퍼런 번개불을 토해냈다.

번쩍!

콰쾅!

오후가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공기가 무거웠다.

콰󰠏󰠏! 쏴아아아!

우르릉... 쿠쾅!

번개불이 갈라놓은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장대발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릉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서둘러서 주위의 객점이나 주루로 피해 들어갔다.

 

[에이 기분 나빠! 하필이면 비가 쏟아질게 뭐람. 조금만 빨랐어도 괜찮았을 텐데... ]

장지연은 흠뻑 젖은 옷을 공력을 돋구어 말리며 객점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객점 안에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그녀가 망설이며 두리번거리자 점소이가 달려와서 한쪽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곳도 빈자리는 아니었다.

[손님, 여기 앉으십시오. 이분은 일행이 없으니 괜찮을 겁니다.]

점소이가 권한 그 자리엔 장지연과 비슷하거나 한살 많아 보이는 소녀가 앉아있었다.

보석같이 초랑한 눈망울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로 얇은 흑의를 입었고 허리춤에는 백옥퉁소가 끼워져 있었다.

얼핏 보아도 예사로운 소녀같지는 않았다.

장지연은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시켰다.

그녀 앞의 흑의소녀는 이미 음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장지연은 침을 꼴깍 삼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화상같은 석두공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사라지려면 영영 사라져버리든가 할 것이지 사람을 이렇게 고생만 시키다니...)

한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소녀도 하필이면 그 순간에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석두공! 그는 어떻게 됐을까? 뇌주탄에서의 해전은 그가 벌인 것이 틀림없을 텐데 진우백의 이름만이 무림에 진동하고... 빨리 그를 찾아야 하는데... )

이 흑의소녀는 바로 백란(白蘭)이 아닌가?

석두공이 무저갱(無底坑)에서 올라오자마자 만났던, 그리고 석두공을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은 포기해버렸던 그 소녀 백란인 것이다.

백란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를 빨리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은데... 두발 달린 짐승이니 묶어둘 수 도 없고... )

맞은편에서 장지연도 생각하고 있다.

(이러다가 꽃같은 내 청춘이 그 얼간인가 하는 석두공 찾아다니다가 다 지나버리는 건 아닌 지 모르겠네. 만나기만 한다면 개목걸이라도 채우겠는데...)

백란의 생각은 이렇게 번져가고 있었다.

(만난다면 먼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가 나를 어떻게 대할까? 휴...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

장지연의 머릿속도 분주했다.

(한데 참, 그 숯덩어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보니 그 생각은 또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때 백란은 젓가락을 튀긴 닭고기로 가져가며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진 내가 그를 만났는데도 데려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 때려죽이려 들거야. 빨리 뇌주탄에서 이후의 행방을 찾아야돼. 내키지는 않지만 해남도의 그 늙은이 진우백에게라도 물어봐야겠어.)

장지연이 생각했다.

(쳇 그 숯덩어린 무슨 새끼방울인가 소령인가 하는 계집애를 찾아다니고 있겠지. 에이 기분...)

백란이 생각했다.

(정검령(正劒令)을 사용하여 그를 찾는 것도 한계가 있어. 아주 발이 넓은 조직이 있다면 좋을 텐데... 발이 넓은 조직?)

장지연이 생각에 몰두하여 백란의 음식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하지만 백란도 그런 사정이라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지연은 속으로 석두공을 욕했다.

(무정한 자식! 내 마음을 빤히 알면서도 모른척 했겠다. 그리고서도 뭐 소령인가 그 계집애를 찾아? 나쁜 놈... 정말 나쁜 놈... 석두공보다 더 나빠.)

백란은 자기의 말에 스스로 반문하고 있었다.

(발이 넓은 조직...? 그럼 무림에서 개방을 능가할 세력이 없잖아?)

장지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쁜 놈... 하지만 어쨌든 석두공부터 찾아야 돼. 이제는 지쳐버렸어. 개방에라도 손을 벌리는 수 밖에... )

[그래! 개방이다.]

[개방!]

갑자기 백란과 장지연이 동시에 내뱉었다.

[...!]

[...!]

서로가 눈이 뚱그레져서 바라보았다.

서로의 젓가락이 음식물의 경계를 침범하고 있었다.

 

× × ×

 

쏴아아아...

콰르르릉... 쏴아아아...

[소식이 빠르기로는 개방을 능가할 곳이 없지.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손이 빠르기로써 서생(書生)들을 능가할 사람이 없겠지.]

무형도객이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석두공이 붓을 집어던졌다.

[정말이지 서생들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쓰더라도 다 못할 것같습니다.]

그의 앞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첩지들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같았다.

석두공과 무형도객이 팔이 부러질 정도로 힘들게 적은 무림첩들이었다.

[제가 근처의 학당을 알아보고 글쓸 사람을 구해오겠습니다.]

석두공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서문가(西門街)로 가면 대통학당(大通學堂)이라는 곳이 있네. 거기 가서 알아보게.]

석두공은 객점의 주인에게서 우산(雨傘)을 얻어들고 밖으로 나왔다.

진강(鎭江)가에 있는 양주(陽州)가 물에 잠겨버리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비는 많이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 × ×

 

[하하하하!]

광광광광!

학당의 새끼 서생들이 바닥을 치면서 웃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물었다.

[글을 읽는 분이 아니시죠?]

[그렇습니다.]

석두공은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했다.

책만 펴들면 잠들었던 기억이 있는 그였다.

서생들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잘 몰라서 그런 모양인데, 요즘은 그렇게 똑같은 내용을 손으로 적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적포(書籍布)에 가셔서 한 번 알아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내용인지는 몰라도 불일간에 될 것입니다.]

석두공은 하례를 하고 나왔다.

그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다니... 하하하!]

석두공은 책을 만든다는 곳으로 찾아가면서 투덜거렸다.

[글을 사람이 쓰지 않고 인장(印章)처럼 찍는다니 참... 나중엔 검도 사람이 휘두르지 않고 다른 뭐가 어떻게 할 지 모르겠군. 나야 본래부터 좀 모자랐으니까 모른다고 치더라도, 무형도객 선배도 까막눈인가? 왜 이런 것도 몰라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까?]

 

***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서적포의 점원이 물었다.

[최소한 오만 장 정도... ]

점원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오만 장의 분량이면 웬만한 서적포에서 반년 동안 주문받는 량을 다 합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빨라도 보름이상은 걸립니다. 하지만 급한 것이라면 다른 집과 일을 나누어 더 빨리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시오.]

[하지만 그럴려면 돈이 조금 더...]

점원은 석두공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얼마가 필요하오?]

[요즘 종이값이 워낙 비싸서 헤헤... 은으로 오백냥은 주셔야겠습니다.]

점원이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석두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상객점(昶翔客店)에 와서 나를 찾으시오. 돈은 그때 주겠소.]

[그럼 찍어내야 할 내용을 여기에 적어주십시오.]

점원은 백지를 내밀었다.

석두공은 먹물을 흠뻑 적신 붓으로 써내려갔다.

 

<...

무림동도...

검종맹과 잔혼각, 그리고 적룡혈운도의 발호가 극에 달하여...

강호의 도의는 땅에 떨어지고...

이에 천하 무림의 정기를 회복하고자 십대 고수 중 오객의 한분이신 무형도객과 무림말학 석두공이 감히 기치를 잡았...

의열남아라면 주저없이 나서 악의 기운을 이땅에서 몰아내는데 힘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명월 중양절(重陽節)에 무창(武昌) 귀산(龜山)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바이니 무림제위들께서는 아직도 정의가 건재함을 보여주시기 바라오.

무형도객, 석두공 서(書)>

 

[손님처럼 필적이 뛰어나신 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판을 새기고 나서 이 글은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점원이 석두공의 필체에 감탄하며 물었다.

[좋을 대로 하시오.]

석두공은 질렸다는 듯이 붓을 던져놓고 객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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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 근처 절벽 위로 내려서서 바위틈에 숨으려 하며 놀라는 살접

살접의 시점. 청풍이 막운비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날아갔다가 내려서는 모습이 보이고

살접; (십장 이상의 거리를 단번에 도약해서 막운비를 구했다.)

살접; (이청풍이란 저 놈, 예상을 뛰어넘는 실력의 소유자였다.) 긴장하며 절벽 위 바위 틈에 숨기고

 

#98>

다시 절벽 아래 쪽 상황. 휘익! 막운비의 뒷덜미를 잡고 내려서는 청풍. 돌아보며 놀라는 막운비

[저 놈이 언제...] [웬놈이냐?] 청풍의 뒤쪽 복면인들 경악하고

막운비; [이... 이형!] 놀라며 돌아보고.

청풍; [제가 도착하는 게 조금 늦었습니다.] 슥! 막운비의 뒷덜미를 놔주고

막운비; [별 말씀을...] + [!] 말하다가 놀라고

슈악! 쩍! 청풍 뒤쪽에서 쇄도하며 무기를 휘두르고 찌르는 복면인들

막운비; [뒤를 조심...] 비명 지르지만

징! 청풍의 몸이 투명한 막에 덮이고. 청풍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직후

쩍! 푹! 청풍의 몸을 베고 찌르는 복면인들의 무기. 하지만 그 직후

투쾅! 청풍을 찌른 무기는 부서져 도로 주인에게 튀어나가고

텅! 휘둘러진 무기는 홱 휘어져서 되돌아간다

[크악!] [컥!] 퍼퍽! 서걱! 부러진 무기 파편이 몸에 박히는 자, 튕겨져 돌아온 자기 무기에 베이는 자. 비명 지르고

[!] 눈 부릅 놀라는 십삼살주

퍼퍽! 털썩! 나뒹구는 복면인들. 모두 중상을 입지만 죽은 자는 없다

막운비; (무슨 무공을 쓴 건가?) 경악

<이형을 공격한 자들은 예외없이 자기 무기에 심하게 다쳤다.> 끄윽! 끅! 바닥에 쓰러져 벌벌 떨고 있는 복면인들 배경으로 막운비의 놀람

막운비; (단순히 호신강기라면 공격을 튕겨내는 게 전부일 텐데...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놀라고

십삼살주; [요사한 술수를 쓰는 놈이로군.] 복면 속에서 음산하게 눈 번뜩이고

청풍; [난 당신네 백살파와 아무런 은원도 없소.] 십삼살주에게 다가가며 고개 젓고

청풍; [굳이 피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길을 비키시오.] 몸으로 막운비를 가리며 멈춰서고

십삼살주; [그 새끼!] 흐흐흐! 복면 속에서 웃고

십삼살주; [백일자객에 들지도 못하는 하수 몇놈 해치웠다고 기고만장이구나!] 스악! 칠성보도를 긋고. 칠성보도에서 섬광이 무지개처럼 내뻗치고

청풍; (은원살법!) 징! 다시 청풍의 몸이 투명한 막에 덮이고. 하지만

쩍! 칠성보도의 섬광은 그대로 그 막을 가르고 들어온다. 간단히 가른 건 아니고 질긴 재질의 천을 벤 것 같은 느낌

청풍; [!] 휘익! 놀라며 몸을 허공에 띠우고

서걱! 칠성보도의 섬광이 뒤로 날아가는 청풍의 배를 긋고 지나간다. 옷이 갈라지고 상처도 난다. 그리 깊지는 않지만

막운비; [이형!] 놀라고.

[그 새끼 죽여버리십시오 십삼살주님!] [죽어라!] 복면인들 눕거나 일어나 앉은 채 환호하고. 하지만 그 직후

십삼살주; [!] 역시 비틀! 하는 십삼살주. 징! 청풍을 벤 칠성보도가 진동하며 방향을 틀어 십삼살주를 공격하려 한다. 돌아오는 힘이 그리 강하진 않아서 몸에 닿지는 않고

청풍; (저 자가 쓰는 칼의 도기(刀氣)가 은원살법의 힘을 그냥 가르고 들어왔다.) 휘릭! 내려서며 십삼살주를 보고. 십삼살주도 자기에게 방향을 틀려는 칠성보도를 들고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청풍; (평범한 칼이 아니다. 즉시 능파미보를 펼쳐서 피하지 않았으면 치명상을 입을 뻔 했다.) 도기가 스친 아랫배를 만지고.

십삼살주; (보이지 않는 힘이 칠성보도의 날이 내쪽으로 돌아오게 만들려고 했다.) 징! 징! 진동하는 칠성보도를 보며 놀라고

막운비; [다치셨소?] 가슴 누른 채 비틀거리며 청풍에게 다가오려는데

청풍; [별거 아닙니다. 살갗을 좀 긁혔을 뿐입니다.] 막운비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시선은 십삼살주에게 향한 채

막운비; (그렇다니 다행이긴 한데...) 멈춰서고

막운비;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저자의 칼을 상대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십삼살주를 보고. 그때

십삼살주; [네놈 누구냐?] 청풍을 노려보고

청풍; [별 볼일 없는 과객(過客)의 이름 알아서 뭐하시려고?] 웃으며 다시 십삼살주에게 다가가고

십삼살주; [건방진 놈이...] 이를 부득 갈고

청풍; [피를 좀 보긴 했지만 책임을 묻진 않겠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갈 길 가도록 하시오.]

십삼살주; [가더라도 네놈 목은 베고 가야겠다.] 슈악! 쩍! 빠르게 칠성보도를 휘두르고. 그자의 칼질에 따라 섬광들이 난무하고

청풍; (은원살법이 통하지 않으니 능파미보를 써야겠군.) 휘익! 깃털처럼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청풍. 칠성보도의 도기에 밀려서

[!] 놀라는 막운비

[저... 저럴 수가...] 말도 안되는...] 복면인들고 경악

십삼살주; [!] 부악! 쩍! 놀라면서도 칠성보도를 연신 휘둘러 긴 섬광을 마구 내뻗치게 만들고

스악! 쩍! 5미터까지 내뻗치는 칠성보도의 도기. 스치는 건 뭐든지 베어버린다. 주변의 바위들도 싹뚝 싹둑 잘리고. 하지만

청풍은 깃털이 날리듯 이리저리 날며 도기에 닿지 않는다.

막운비;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놀라고

<이형은 십삼살주의 도기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막운비의 놀람. 십삼살주는 우뚝 선 채 칠성보도를 휘두르고 있고. 그자가 휘두르는 칠성보도 끝에서 긴 섬광이 휘어지며 날아가고

막운비; (혼원문은 대체 어떤 문파이기에 저런 기이한 무공을 지닌 것인가?) 감탄하며 볼 때

스악! 쩍! 날아다니는 청풍의 옷이 여기저기 갈라진다. 그 앞에서 도기가 무지개처럼 지나가고 있고

청풍; (저자의 보도에서 내뻗치는 도기가 옷을 베고 있다.) 잘라지는 옷을 보고

청풍; (물론 능파미보 덕에 위험한 상황은 ,모면하고 있지만...) 휘익! 도기에 밀려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이 상태로는 저자에게 접근할 수가 없으니 이길 수도 없다.> 눈에 핏발이 선 채 칠성보도를 휘두르는 십삼살주

청풍;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다소의 위험은 각오하고 모험을 해야 한다.) 슥! 허리춤에서 용봉철적을 뽑고. 물론 허공을 날면서

청풍; (용봉철적이 저자의 칼을 한번은 버텨줘야 하는데...) 슈욱! 용봉철적을 휘두르며 십삼살주의 공격 안으로 뛰어들고

막운비; (승부를 걸었구나!) 손에 땀을 쥐고

십삼살주; [잘 왔다 미꾸라지 같은 놈아!] 부악! 칠성보도를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 청풍을 베고

청풍; (부탁한다 용봉철적!) 캉! 용봉철적으로 그자의 칠성보도를 막고

징! 칠성보도와 용봉철적이 맞닿으며 진동하고. 칠성보도가 용봉철적을 자르지 못한다

십삼살주; [헉!] 놀라고

막운비; [그렇지!] 안도

[칠... 칠성보도가 베지 못하는 피리라니...] [평범한 피리가 아니었다.] 놀라는 복면인들

청풍; (바위도 간단히 베는 저자의 칼을 막기도 하고...) 안도하고

청풍; (확실히 용봉철적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로구나.) 징! 용봉철적으로 진동을 일으키고. 그러자

빠카카캉! 용봉철적이 닿은 부분에서부터 가시같은 섬광들이 여러 개 돋아나며 그걸 쥐고 있는 십삼살주의 손으로 밀려간다

십삼살주; (칠성보도의 도기가 역류한다!) 경악하고. 직후

콰드득! 단번에 손잡이까지 밀려와 칠성보도를 쥔 십삼살주의 손을 난도질하는 가시같은 섬광들. 그러자

십삼살주; [크아아악!] 휘익! 피투성이가 된 손을 칼에서 떼며 뒤로 날아간다. 피가 뿌려지고

[십... 십삼살주님!] [저... 저런...] 복면인들 비명 지르고

십삼살주; [크윽!] 휘릭! 후두두둑! 10미터쯤 날아가 내려서며 신음.

그자의 오른손이 피투성이가 된 채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청풍; (은원살법으로 이 칼의 도기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용봉철적에 붙어있는 칼을 보며 안도하고. 그때

십삼살주; [두... 두고 보자.] 팟! 날아오르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움켜 쥔 채

십삼살주; [백살파와 척을 진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으아아아! 악을 쓰며 멀리 날아가고.

[가... 가자!] 복면인들도 그나마 상처가 덜한 놈들이 동료들을 부축하며 달아나고

청풍; (피를 좀 보긴 했지만 그리 손해는 보지 않은 셈이다.) 슥! 용봉철적에 붙어있는 칠성보도 손잡이를 잡고

청풍; (실전 경험을 톡톡히 한 데다가 이런 보도까지 얻었으니...) 툭! 용봉철적에서 칠성보도를 떼어내며 웃고

막운비; [또 한 번 신세를 졌소이다.] 다가오며 포권하고. 부러진 검은 칼집에 넣었다. 돌아보는 청풍.

막운비; [구명지은까지 입었으니 어찌 보은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청풍; [혹시 하는 노파심에 따라와 본 것뿐입니다. 과례는 거두십시오.] 용봉철적과 칠성보도를 쥔 채 포권하는 시늉

청풍; [그보다 백살파의 무리들이 또 몰려들지 모르니 일단 자리를 피하도록 하십시다.] 포권 풀고

막운비; [그래야겠습니다.] 역시 포권 풀고. 이어

휘익! 휙! 날아올라 멀어지는 청풍과 막운비. 청풍이 앞장선다.

곧 현장에서 멀어지는 청풍과 막운비.

 

#99>

절벽 위 바위틈에 숨어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있었던 살접의 놀란 표정

멀어지는 청풍과 막운비의 뒷모습. 물론 살접의 시점

살접; (황금전장 호위무사들중 이인자인 귀견수가 왜 직접 손을 쓰지 않았는지 알만하다.) 멀어지는 청풍의 모습 보며

<백살파의 악명 높은 백일자객중 한 놈을 간단히 농락한 저놈을 죽이려면 피해가 막심할 것이 분명한 때문이다.> 막운비를 돌아보며 뭐라 말하며 날아가는 청풍의 앞 모습 배경으로 살접의 생각 나레이션

살접; [무공만으로 저 놈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천하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슥! 일어나고

살접; [물론 우리 살인상단은 강적과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사악하게 웃고

살접; [무림에서 살아가는 데 무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곧 절감하게 해주마 이청풍!] 사악하게 웃으며 날아오른다

곧 청풍과 막운비가 사라진 곳으로 날아가는 살접

 

#100>

저녁 무렵. 깊은 산중.

계곡. 계곡 끝의 은밀한 동굴. 동굴 입구에 몇 개의 바위가 일정한 규칙으로 놓여있고

동굴 입구에 앉아서 밖을 보는 청풍. 용봉철적은 허리춤에 끼우고 있고 칠성보도는 바닥에 놓았다.

휘익! 근처를 날아 지나가는 복면인들. 흰색 옷과 흰색 복면을 한 백살파의 자객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 살피며 지나가는 자객들. 하지만

동굴 쪽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자객들. 청풍이 동굴 입구에 앉아있어서 보일만도 한데 못 본 것 같은 표정들

멀어지는 그자들. 동굴 입구에 지켜보는 청풍. 그때

[이형이 기문둔갑에도 일가견이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뒤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는 청풍

막운비; [견문이 짧은 탓에 돌 몇 개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진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가슴을 천으로 묶으며 말하고. 겉옷을 찢어 만든 천으로 가슴의 상처를 싸매는 중이다. 앞에는 벗은 상의가 놓여있다. 부러진 검이 든 칼집도 있고

청풍; [일가견이라 하기에는 민망하고... 그저 흉내를 좀 내는 정도지요.] 웃으며 막운비를 향해 돌아앉고

막운비; [과장이 아니고 이형 같은 기인은 천하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상처 싸매는 천을 단단히 묶고

청풍; [제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드시는군요.] 쓴웃음

막운비; [제가 왜 백살파에 쫓기게 되었는지 궁금하시겠습니다.] 바닥에 벗어놓은 상의를 집어들고

청풍; (드디어 마음을 여는군.) + [가볍지 않은 사연이 있겠습니다.]

막운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슥! 상의 속에서 편지를 한통 꺼낸다.

막운비가 꺼낸 편지 크로즈 업. 입구 부분에 촛농을 떨구고 도장을 찍은 게 보인다. 도장은 <申>이고 또 <鐵木禪師 親傳>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청풍; [밀납으로 봉인된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기밀을 요하는 편지 같습니다.] 편지를 보며 말하고. 받을 생각은 않는다.

막운비; [그렇습니다.] 편지를 보고

막운비; [선사(先師)는 이 밀서를 소림사 방장이신 철목선사(鐵木禪師)님께 직접 전하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청풍; [그래서 소림사까지 가야한다고 하셨군요.]

막운비; [일의 발단은 삼년 전에 있었던 항마군영대(降魔群英隊)의 결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편지를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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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江上逢敵

 

 

 

[해천월!]

석두공은 뇌성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손가락을 쭉 뻗었다.

“으헉!”

해천월은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석두공의 손가락에서 흰빛이 하늘로 치솟는가 싶더니 그것은 수백개의 유성으로 변해서 해천월에게로 떨어지고 있었다.

유성단천(流星斷天),

동정호에서 동호천에 의해서 한번 펼쳐졌던 바 있던 바로 그 무공이었다.

당시 해천월과 심제을, 그리고 잔혼살객이 이 한수에 모두 중상을 입고 달아나야 했었다.

해천월의 손에 도가 쥐어졌다.

[팔황지옥도(八荒地獄刀)!]

해천월은 비명처럼 고함치며 팔황지옥도의 수법을 잇달아 펼쳐냈다.

휘루루룽!

파도가 도기를 따라 치솟으며 벽을 이루었다.

파파파파팟!

카캉!

광풍이 몰아치는 듯 무형도객 등이 탄 배는 물결의 여세에 밀려서 이십 여 장이나 멀어져 버렸다.

[헉!]

해천월은 어깨를 꿰뚫는 화끈한 통증을 느끼면서 뒤로 물러섰다. 유성단천의 수법에 그의 도가 부러지고 어깨가 꿰뚫려버린 것이다.

순간,

꾸륵꾸륵!

뿌르륵!

그의 쾌속선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해천월! 가라!]

꽈르르릉!

석두공의 그의 면전으로 떠오르며 얼굴로 일장을 가해왔다. 실로 기이하도록 빠른 몸놀림이고 빠른 장력이었다.

해천월은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아들었다.

[지옥참렬(地獄斬裂)! 지옥혈우(地獄血雨)! 지옥멸천파(地獄滅天破)!]

그는 팔황지옥도의 최후절초들을 잇달아 세가지나 검으로 펼쳤다.

콰콰쾅!

그의 몸 주위에 푸른 검막이 생기고 이내 그 검막에서 새파란 도기가 줄기줄기 뻗어올랐다.

석두공은 그의 몸을 넘어 허공에서 멈춰섰다. 그가 펼쳤던 장법은 팔황지옥도에 의해 막혀버리고 이제는 가공할 도기가 그의 몸을 난도질해오고 있었다.

순간 그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두개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나뉘어진 그의 몸은 검막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푸앙!

갑자기 검막도 사라지고 도기도 사라졌으며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의 모습도 사라졌다.

오직 셋으로 나뉘어졌던 석두공의 몸이 천천히 합쳐지며 하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강물 위에는 부서진 배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휘이익!

무풍도객이 석두공의 곁으로 날아내리며 물었다.

[해천월은 죽었는가?]

석두공은 고개를 저었다.

[팔황지옥도법... 악마의 도법이라고 할만합니다. 제 공격을 막아내고 그 짧은 시간에 물속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때였다.

[으악!]

푸하악!

갑자기 그들이 타고 있었던 배위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한사람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스팟!

석두공의 몸이 빛살처럼 쏘아져갔다.

촤아아!

그 직후 배의 선미에서 한 가닥 붉은 빛이 일렁이더니 금방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로 해천월이었다. 그자가 석두공의 시선을 피해 배위로 올라와 살인을 하고 사라진 것이다.

석두공은 배위에 내려서며 발을 굴렀다.

[너구리같은 늙은이! 기필코 죽여버릴 테다!]

[으으으... ]

장사꾼들이 석두공의 살기에 오줌을 싸면서 덜덜 떨었다.

석두공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황급히 배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그때 무형도객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사람의 머리를 받쳐들고 그의 곁으로 떨어졌다.

[누굽니까?]

[천하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든다는 갑부 무혁해(武赫懈)네. 항주의 장보장(藏寶莊)의 장주이기도 하지. 해천월은 이 사람을 노리고 있었던 모양일세.]

무형도객이 수급을 목없는 시체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무혁해는 결코 혼자 다니지 않는 사람인데 이렇게 홀홀단신으로 배를 탔다가 죽다니 영문을 알 수 없군.]

[해천월이 황금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석두공의 말에 무형도객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 남해에선 지금 해천월의 선단이 해남도의 진우백에게 박살이 났다고 떠들썩 하니까. 아마도 새로운 선단을 만들 자금이 필요했던 게로군.]

그때 그들의 대화를 끊으면서 사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체를 그냥 배위에 두고 모두 절이라도 지내자는 거요? 함께 물속에 던져버리고 가도록 합시다.]

사공이 목이 떨어진 시체를 꺼림직해하면서도 배위에 두는 건 더욱 끔직한지라 물속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

석두공이 말했다.

[그만 두시오. 거적이나 하나 주면 내가 강북에 다다라서 묻어주겠소.]

[예예에...]

사공이 화들짝 놀라며 슬금슬금 선실로 들어갔다. 석두공과 무형도객이 마치 신선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본 후 인지라 그가 말을 거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것같았다.

석두공은 사공에게서 거적을 받아서 피에 젓은 무혁해의 시신을 쌌다.

머리도 떨어지지 않게끔 잘 고정시켜 거적을 돌돌 말은 후에 아래위로 끈으로 묵었다. 끈이 풀어지지 않는 한 시체는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의 초라한 죽음이라... 세상은 진정 알다가도 모르겠군.]

무형도객이 중얼거렸다.

석두공은 시체를 만 거적을 번쩍 들어올려 한쪽으로 가져갔다.

또르르...

그때 갑자기 그의 발에 뭔가 채였다.

황모필(黃毛筆),

아주 질 좋은 붓이었다.

그가 줏어들자 사공이 말했다.

[죽은 그 영감의 물건입니다. 붓장수지요. 저쪽에 있는 것이 모두 그의 것이지요.]

등에 질 수 있는 네모난 나무 상자 속에는 수백 개의 황모필이 담겨져 있었다.

석두공은 줏어들었던 붓을 상자 속에 넣었다.

 

× × ×

 

강을 건너 나루에 닿자마자 석두공은 거적을 들쳐들고 배를 내려갔다.

그때였다.

[무사님! 무사님!]

사공이 소리쳐 불렀다.

[이 물건은 꺼림직하니 무사님께서 가져가십시오.]

사공이 붓이 가득 든 상자를 들고 나와 석두공이 있는 쪽으로 내밀었다.

석두공을 뒤따라 내리던 무형도객이 그 상자를 받아들고 내려왔다.

[시체를 치워주는 댓가로 붓이라! 무혁해가 듣던만큼 노랭이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기왕이면 검이 더 나을 텐데... ]

무형도객이 말했다.

석두공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지금 무림첩을 만들어야 할 텐데 이 붓이 꼭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렇군! 내가 깜박했네.]

무형도객이 크게 웃었다.

석두공은 강가의 높은 언덕을 골라서 무혁해의 시체를 묻었다. 그리고 나무를 깎아 새워주며 말했다.

[가족이 살아있다면 연락해서 모셔가도록 하겠소. 하지만 해천월이 그들을 그냥 두었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군요.]

[이보게. 무림대회에 마땅한 장소가 없다면 이런 강가는 어떤가?]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던 무형도객이 석두공에게 물었다.

[괜찮겠군요. 어디 마땅한 데가 있습니까?]

[물론 있지. 객점에 가서 옷이나 갈아입고 상의하도록 하세.]

무형도객은 석두공의 어깨를 툭쳤다.

석두공의 옷은 거적에서 배어나온 피로 검붉게 물들어있었다.

 

          ***

 

붉은 장갑을 낀 깜직하고 귀여운 모습의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석두공이란 사람이 여기에 오지 않았어요? 음... 얼마 전에 말예요?]

[그런 사람은 온 적이 없소. 괜히 사람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가시오.]

백검보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번자검(飜刺劒) 표청(杓菁)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여자만 보면 마음이 흔들거려서 그것이 상대방에게 읽히기라도 할까 싶어 늘 여자에게만 퉁명스러운 남자다.

[온적이 없다구요? 그렇다면 있다가 오겠군요. 수고하셔요.]

이렇게 말하고 표청을 슬쩍 지나쳐 문안으로 들어가는 소녀는 장지연이었다. 그는 혈포단객으로부터 석두공이 백검보로 갔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응?]

표청은 장지연이 갑자기 문안으로 뛰쳐들어가자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들어갈 수 없소.]

그는 장지연의 옷자락을 잡으려고 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장지연은 간발의 차이로 문안으로 달려들어가고 말았다.

삐이익!

표청은 호각을 불었다.

[멈춰라!]

장지연의 앞쪽으로 두 사람의 검객이 날아내리며 소리쳤다.

장지연이 뾰쪽하게 소리쳤다.

[무슨 손님대접이 이래요?]

파팍!

그녀의 귀신처럼 빠르게 두 검객의 사이를 돌파해버렸다.

휘이익!

휙휙!

이번에는 네명의 검객이 다짜고짜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쾌속하고도 정확한 솜씨, 백검보의 무사로서 손색이 없는 솜씨였다.

[정말 이럴 거예요? 난 사람을 찾으러 왔단 말이에요.]

장지연은 화난 목소리고 고함치며 손으로 검들을 쳐갔다.

검객들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깡깡! 까깡!

네자루의 장검은 그녀가 둥글게 휘두른 한 수에 부딪혀 모두 잘려져 나가 버렸다.

[헛! 혈천갑이다. 넌 혈포단객과 무슨 관계냐?]

검객 중의 한 사람이 소리쳐 물었다.

장지연은 화가나서 말했다.

[왜 진작 물어보지 않아요? 백검보가 무슨 용담호혈이나 된다고 들어오자 마자 다짜고짜 칼로 찌르고 야단이에요? 검성을 만나보고 좀 따져야겠어요. 그는 어디있죠?]

그때였다.

[노부가 바로 검성이다. 무슨 일로 나를 찾느냐?]

검성이 전각을 돌아나오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쳇!]

장지연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백검보는 들어오는 사람은 무조건 죽이기로 작정한 모양이죠? 그러고도 검성이 인의대협이라고 하겠어요?]

[무례한 점이 있었다면 사과하지, 한데 소저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가?]

검성이 온화한 음성으로 물었다.

장지연이 말했다.

[난 석두공이라는 사람을 찾아왔어요. 혈포단객은 그가 이곳으로 갔다고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죠? 여기서 그를 기다려도 되겠어요?]

“...!”

순간 검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왜요? 안되요? 참 인색하군요. 이런 큰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장지연이 그의 안색을 보고 즉시 말했다.

검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여기에 오지 않을 것이오.]

장지연의 예쁜 눈썹이 상큼 찌푸려졌다.

[어째서요? 혈포단객은 이리로 갔다고 했는데...]

검성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사흘 전에 이곳에 왔다 갔소. 진짜 석두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석두공이라고 했소.]

[대체 무슨 말씀이에요? 밖에 있는 사람은 오지도 않았다고 하던데... 그리고 무슨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단 말이에요? 그는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장지연은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인즉슨 아래와 위의 말이 다르니 무슨 횡설수설이냐는 것이다.

검성은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변명할 만한 말이 없었다.

장지연은 검성이 입을 다물고 있자 다시 물었다.

[그럼 그는 어디로 갔어요?]

[모른다.]

검성은 고개를 저었고,

장지연은 벌컥 화를 냈다.

[대체 당신은 아는게 뭐예요? 들어서면서부터 부하들에게 칼질이나 하게하고...]

[무례하다!]

주위에 있던 무사들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장지연은 심통이 났는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말했다.

[부하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무슨 제왕이나 된 것같으세요? 세상에서 검성의 손님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지요?]

[흥! 어찌 없겠느냐? 하지만 너같은 어린애는 아니다.]

갑자기 검성의 뒤에서 만박노조가 나오면서 차갑게 응수했다.

장지연은 그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오호라! 세상에 모르는게 없다는 만박노조 할아버지시군요. 그럼 제가 누군지 맞춰보시겠어요?]

[넌 검성은 손님은 될 수없다.]

만박노조가 단호하게 말했다.

장지연이 입을 삐죽했다.

[그게 대답이에요? 만박노조란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네요. 하지만 그러고도 틀렸어요.]

[허허허... 그렇다면 네가 검성의 손님이 될 수 있단 말이냐?]

만박노조가 실소하며 말했다.

장지연이 돌연 차갑게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을 막하다니... 만박이란 이름이 부끄럽군요.]

만박노조가 눈을 부릅떴다.

장지연이 갑자기 검성을 향해서 주먹을 불숙 내밀며 말했다.

[이래도 내가 손님이 될 수 없어요?]

검성은 상당히 놀란 듯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검성에게로 쏠렸다.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저는 내 귀빈이오.]

그의 말투마저 정중하게 변해 있었다.

만박노조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여전히 검성을 향해서 뻗어있는 장지연의 주먹은 혈천갑속에 쌓여있고 얇디얇은 혈천갑위에는 녹옥지환(祿玉指環)이 끼워져 있었다.

검성이 정중하게 물었다.

[그분께선 아직도 정정하신지?]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소식을 듣지 못했소. 그분께서도 결국 세월을 이기시지는 못했구려. 그럼 들어가서 이야기 합시다.]

검성이 그녀에게 길을 열어주며 말했다.

장지연은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단지 석두공, 그분에 대한 것만 아는 대로 말해주시면 돼요.]

주위의 검객들이 아연 긴장했고,

검성은 탄식하며 말했다.

[휴... 소저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소.]

[제 신분을 알고도 소저라고 부르세요?]

장지연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검성은 흠칫하고 말했다.

[장주(莊主)께 실언했소이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소.]

[그는 왜 이곳에서 떠났죠? 혈포단객의 말로는 이곳에 있을 것같았는데... ]

[...!]

[...!]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장지연의 신분을 그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검성의 태도로 보아서 오히려 검성이 조심하는 듯하지 않은가?

그런 그녀의 질문이지만 석두공이 백검보에 찾아왔을 때의 상황을 말로 설명해주기는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

장지연의 안색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흥! 대충 알겠군요. 또 들어서자마자 칼질을 하고 난리를 피웠겠죠? 석두공이 제 사부님과 어떤 관계이신지 아시죠? 사부님께서 아시면 기분이 어떠하셨을까요?]

검성은 얼굴이 붉어진 채 말을 잃고 있었다.

장지연이 말했다.

[이점은 앞으로 분명히 고려하겠어요. 다시는 당보주님과 만나고 싶지 않군요.]

어린소녀지만 장지연은 아주 당찬데가 있었다. 그녀는 검성을 매섭게 쏘아본 후에 백검보를 걸어나가 버렸다.

검성은 망연히 하늘을 보다가 탄식을 거듭했다.

[노제... 저 소녀는 신분이 무엇인가?]

만박노조가 물었다.

검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말년에 이르러 내 몰골이 초라하기 그지 없구려. 사흘이 멀다하고 후배들의 공박을 받으니 참으로 부끄럽소.]

[...!]

[게다가 그 말들이 모두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더욱 나를 괴롭게 하는구려. 그동안 내가 단지 검성이란 이름에 얽매여 얼마나 나태했는지...]

[...!]

검성은 초라한 어깨를 보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음성이 뒤에 남았다.

[경계를 풀어라. 죽어도 장부로서 죽어야겠다.]

그의 말은 만박노조의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혔다.

만박노조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당노제가 저렇게 된 것은 실상 내 책임이 크다. 장부... 과연 나는 장부로 살았는가? 열근도 되지 않을 머리를 믿고서 귀계로써만 살아오지 않았을까? 장부... 대장부... 어째서 지금까지 이것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인생에 있어서 남은 것이 허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허탈감을 무슨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만박노조는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열리는 것 같음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지나온 생이 무위로 돌아가는 그 허탈감에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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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낮. 여전히 화산. 험준한 화산을 관통하는 길가의 주점. 주점 앞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우마차 행렬들이 제법 많고

주점 입구에는 거지 한명이 거적을 두르고 앉아 졸고 있다. 앞에 놓인 쭈그러진 그릇에는 동전이 몇 개 들어있고. 이 거지는 개방 소속의 거지다.

 

#92>

주점 내부. 입구가 보이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고기볶음과 국수를 먹고 있는 청풍. 탁자에는 술병과 술잔 하나도 놓여있다. 빈 접시도 몇 개 더 있고. 청풍은 이미 음식을 상당히 많이 먹은 상태. 젓가락이 들어있는 나무통도 있고

입구쪽에는 어떤 여자가 청풍에게 등을 보인 채 국수를 먹고 있다. 살접이다. 길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다. 그년이 앉은 자리 창문 밖에는 거지가 졸고 있고

곁눈질로 청풍을 보며 국수를 먹는 살접

알아차리지 못하고 국수를 먹는 청풍.

배시시 웃는 살접

그때 청풍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 #65>에서 귀견수가 한 말

 

귀견수; [마님의 뜻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총관의 지령을 수행할 뿐이다.] 천천히 다가오면서

회상 끝

 

청풍; (마님과 총관 이세창...) 국수 먹으며 생각하고

청풍; (과연 그 두 사람 중 날 죽이라고 지시한 장본인은 누구일까?) 마은혜와 이세창을 떠올리고

청풍; (깊이 생각할 거 없다. 두 사람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될 테니...) 심호흡

청풍; (마음에 걸리는 건 옥령이다.) 찡그리며 벽옥령을 떠올리고

청풍; (만일 날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 마님이라면... 옥령이와 나는 맺어지기 어렵다고 봐야한다.)

청풍; (그럼 옥령이가 입을 상처는 너무도 심각할 텐데...)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고. 슥! 청풍의 앞자리에 누가 앉는다.

긴장한 분위기의 청년인데 머리에는 죽립을 쓰고 있다. 무기는 검이고. 얼굴은 진중한 인상이며 나이는 25세 정도. 캐릭터는 005. 종남파 장로 삼절신유 신현학의 제자인 철검유협 막운비다. 옷에 흙이 좀 묻어있다. 굴을 파고 객잔을 빠져나온 흔적

[!] 입구 쪽의 살접도 막운비를 곁눈질하고

청풍; (빈자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앞에 앉았다는 건...) 무언가 깨닫고

막운비; [실례하겠소.] 작은 소리로 말하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

막운비; [잠시 합석하게 해주시오.] 곁눈질로 입구쪽을 보며 말하고

청풍; (누군가에게 쫓기는 중이로군.) + [죽립은 벗으시지요.] 말하며 술잔과 술병을 양손으로 들고

[!] 막운비가 흠칫 할 때

청풍; [실내에서도 죽립을 쓰고 있으면 주목을 받지 않겠습니까?] 쪼르르! 술잔에 술을 따르며 웃고. 그러자

막운비; (그렇군.) + [고맙소.] 서둘러 죽립을 벗고

청풍; [한잔 드시지요. 천천히...] 웃으며 술잔을 내밀고. 막운비는 죽립을 옆의 의자에 내려놓는 중이고

막운비; [신세를 지겠소.] 두 손으로 술잔을 받고.

청풍; [천천히 드십시오.] 웃으며 말하고

막운비; (천천히를 거푸 강조한다는 건...) 생각하면서도 두 손으로 든 술잔을 입에 대는 척 해서 얼굴 하단을 가리고. 직후

[헉!] [누... 누구요 당신들?] [왜... 왜 이러시오?] 입구쪽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점원들이 기겁하며 물러서고. 두 명의 복면인이 뛰듯이 주점 안으로 들어선다. 백살파의 자객들이다. 복면에 숫자는 없는 일반 자객들이다.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종업원들. 살벌한 기세로 들어오는 복면인들. 곁눈질로 복면인들을 보는 살접

막운비; (추적하는 자들이 들이닥칠 테니 술 마시는 척 해서 얼굴을 가리라는 뜻이었다.)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 코 아랫부분을 가린 채 뒤를 조금 돌아보고

주점으로 뛰어 들어온 백살파 복면인들이 눈을 번뜩이며 실내를 돌아본다

주점 안의 사람들 모두 겁에 질려 보고 있고. 구석 진 자리에 앉은 청풍과 청풍 앞에 앉은 막운비도 돌아본다. 물론 막운비는 술을 마시는 척 해서 얼굴 하단을 가려 본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사람들을 훑어보는 복면인들. 이내

복면인들; [여긴 없군!] [젠장! 주점으로 도망쳐 들어온 줄 알았는데...] 돌아서고

막운비; (동석한 게 효과가 있었군.) 안도하며 술잔을 얼굴에서 떼고.

그 사이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복면인들

[휴우!] [살았다.] [십 년 감수했어.] 안도하는 종업원과 손님들

살접; (제법이잖아.) 웃으며 청풍과 막운비를 보고.

[저 놈들 혈세사패중 백살파의 인간백정들이야.] [칼부림 날 줄 알고 식겁했어.] [누가 저 악귀들에게 쫓기고 있는 걸까?] 주변 손님들 안도하며 수군거리고

청풍; (백살파라...) 생각할 때

막운비; [고맙소 형장!] 탁!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나려 하고. 술잔의 술은 마시지 않았다.

막운비; [인연이 닿으면 오늘 진 신세를...] + 청풍; [갈 때 가더라도 술잔은 비우시지요] 웃으며 말하고. 술잔을 손으로 권하며. 그러자

흠칫! 하며 일어나던 자세로 멈추는 막운비

청풍; [보아하니 꽤 오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신 것 같습니다만...] 웃으면서 막운비를 빤히 보고

막운비; [성의는 고맙지만...] 난색 지을 때 + 청풍; [왕왕 서두르는 게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막운비; (백살파의 살귀들이 아직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니 나중에 움직이라는 얘기로군.) 깨닫고

막운비; (눈빛이 유현한 것도 그렇고...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 [그럼 기왕에 받은 술이니 마시고 가도록 하겠소이다.]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술잔을 집어들고

청풍; [안주도 드시도록 하십시오.] 슥! 자기 앞의 고기볶음을 밀어주고. 술을 마시다가 멈칫하는 막운비

청풍; [소생도 제법 오래 굶었던 터라 혼자 먹기에는 과하게 음식을 시켰습니다.] [어차피 남길 생각이었으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 국수를 먹기 시작하며 웃고

막운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 [그럼 염치없지만...] 술잔은 내려놓고

막운비; [형장이 보신 대로 벌써 이틀 째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쫓기던 중이었소이다.] 나무로 만든 통에서 젓가락을 집어든다.

청풍; [저런...] 웃고

막운비; [인사가 늦었소이다. 소생은 종남파에 적을 두고 있는 막운비라고 하외다.] 젓가락을 든 채 고개를 좀 숙이고

청풍; [구대문파중 종남파의 고제자(高第子)셨군요.] [소생은 이청풍이라 합니다.] 역시 고개 좀 숙이고

막운비; [반갑소이다 이형.]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으려 하며 마주 고개를 좀 숙이고

막운비; [비록 보는 눈은 없지만 이형은 대단한 고수이신 듯한데 어떤 고인의 문하십니까?]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며

청풍; (딱히 사문이나 사부는 없으니 대충 둘러대야겠군.) + [저는 혼원문(混元門)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막운비; [혼원문?]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고개를 좀 갸웃

살접; (혼원문? 그런 문파가 있었나?) 역시 갸웃

청풍; [일인전승(一人傳承)의 작은 문파라 들어보신 적이 없으실 것입니다.] 웃고

막운비; (확실히 들어본 적이 없는 문파다.) + [새삼 소생의 견문이 좁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쓴웃음 지으며

청풍; [저는 이번이 강호초출(江湖初出)이라 무림의 사정을 모르고 있습니다.]

청풍; [귀찮지 않으시다면 근래 일어난 흥미로운 일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막운비;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화재를 돌리는군.) + [혈세사패가 분탕질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으셨을 테고...] 고기를 먹으며 말하면서 생각하고

막운비; [근래 들어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괴사는 아무래도 독룡간(毒龍間)의 괴사일 게요.]

청풍; [독룡간의 괴사?]

막운비; [독룡간은 복우산(伏牛山) 깊은 곳에 자리한 절지요.]

막운비; [지면이 깊이 갈라진 틈새라 간(間)이란 이름이 붙은 곳인데 얼마 전부터 그곳에서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요.]

청풍; [기괴한 현상이라면...?] 흥미를 느끼고

막운비; [밤만 되면 무지개같은 기운이 독룡간 위로 뿜어져 나온다고 하오.]

청풍; [막형의 말씀대로 절대 예삿일은 아니겠습니다.] 놀라고

막운비; [그래서 어떤 신물(神物)이 출토되려는 현상이 아닌가 하고 독룡간을 기웃거리는 자들이 적지 않다는 거요.]

막운비; [하지만 독룡간에 접근했던 자들은 하나같이 내상을 입거나 미쳐버렸다지 뭐요?]

청풍; [누가 그들을 해코지하는 건지요?]

막운비; [범인이 누군지, 또 어떻게 해코지를 하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하오.] 고개를 조금 젓고

청풍; [복우산 독룡간...] 중얼거리고

청풍; (복우산은 북경으로 가는 도중에 있으니 한번 들려봐야겠다.)

살접; (이청풍, 저 작자가 독룡간의 괴사에 흥미를 보였다 이거지?) 눈 반짝

살접; (그걸 이용하면 확실하게 해치울 수가 있겠다.) 배시시 웃고

 

#93>

시간이 좀 지났고. 주점으로는 여전히 사람들이 드나든다. 주점 입구 옆에는 여전히 거지가 졸고 있고. 그때

주점에서 나오는 청풍과 막운비. 막운비는 다시 죽립을 썼다. 주점 앞의 길로 사람들과 우마차들이 오가고 있고

조는 척 하며 곁눈질로 청풍을 보는 거지.

눈치 채지 못하고 길로 나서는 청풍과 막운비.

막운비; [오늘 진 신세는 반드시 갚겠소이다.] 길가에 서서 청풍에게 포권하고

청풍; [신세랄 것도 없는 일이었으니 부담 갖지 마십시오.] 마주 포권하고

막운비; [종남산을 지날 기회가 있으면 들려주시길 바라겠소이다.] 손을 흔들며 멀어지고. 청풍도 마주 손을 쳐들고

곧 사람들에 섞여서 멀어지는 막운비

청풍; (방향을 보아하니 이 산길을 통해 화산 동쪽으로 가려는 모양인데...) 손을 내리고

청풍; (백살파가 막형의 행로를 짐작하고 있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막운비가 간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청풍; (거리를 두고 따라가 봐야겠다. 기왕 도와준 이상 모른 척 할 수는 없으니...)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막운비가 간 곳으로 간다.

곧 멀어지는 청풍.

창가 자리에 앉아서 그걸 보고 있는 살접. 거지도 청풍이 멀어지는 쪽을 보고 있고.

살접; (나도 슬슬 움직여봐야겠네.) 일어서려 하고. 그러다가

[!] 창밖 길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멈칫! 하는 살접

다시 의자에 앉으며 창밖을 보는 살접.

오가던 행인들 중 두 놈이 멈춰 서서 눈을 번뜩이며 청풍과 막운비가 사라진 쪽을 곁눈질하고 있다.

살접; (저놈들 혹시...) 눈 번뜩일 때.

청풍과 막운비가 간 방향으로 가면서 길가 숲으로 들어가려는 두 놈

숲으로 들어가며 소맷 속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그놈들. 주변 눈치 보면서. 잠시후

푸드득! 숲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 두 마리

멀어지는 비둘기들. 비둘기들을 날린 놈들도 다시 숲에서 나오고

사람들과 섞여서 가는 그놈들. 그 직후

주점에서 나오는 살접. 시선은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들을 향하고 있다. 물론 막운비가 간 쪽이기도 하다

살접; (전서구들을 날린 건 청부 살인으로는 우리 살인상단과 쌍벽을 이룬다는 백살파의 끄나풀들일 것이다.) 멀어지는 비둘기를 보며

살접; (종남파의 제자 철검유협 막운비가 왜 백살파의 표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청풍이 멀어진 곳을 보며 걸음을 옮기고

살접; (덕분에 이청풍이란 애송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배시시 웃고

곧 멀어지는 살접. 헌데

슥! 멀어지는 살접 쪽, 정확히는 청풍과 막운비가 간 쪽을 보며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는 거지

꼬질꼬질한 종이를 펴는 거지.

종이에 그려진 것은 청풍의 얼굴이다. 초상화 하단에는 <李淸風>이라는 글도 적혀있다.

[...] 청풍의 초상화를 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거지

 

#94>

깊은 산중.

휘익! 날아가는 막운비. 물론 죽립을 쓰고 있다.

막운비; (백살파 놈들이 화산을 빠져나가는 길목들을 지키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날아가며 생각하고

막운비; (험할 뿐 아니라 상당히 돌아가는 셈이 되겠지만 길이 없는 산중을 관통하는 게 최선이다.)

막운비; (소림사까지는 갈 길이 머니 가능한 백살파와는 충돌하지 않아야한다.) 날아가며 생각할 때

삐익! 삑!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리고

막운비; (호각소리!) 눈 치뜰 때

삐익! 삑! 사방에서 들리는 호각소리

막운비; (호각소리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굳어진 얼굴로 돌아보고

휘익! 휙! 삐익! 삑! 좌우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날아가며 호각을 부는 복면인들. 좌우로 세명 씩 모두 여섯 명이고. 복면 하단을 젖혀 입을 드러낸 상태로 호각을 분다.

막운비; (백살파!) 쐐액! 이를 악물며 날아가고

막운비; (이리저리 애를 썼지만 결국 저 악귀들을 떨쳐버리는 데는 실패했다.) 창! 검을 뽑으며 날아가고.

 

#95>

[!] 산중을 날아오다가 흠칫! 하는 청풍.

삐익! 삑! 앞쪽에서 호각 소리가 들리고

청풍; (일정한 곡조로 부는 호각소리!) (어떤 자들이 동료들에게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부는 호각소리다.)

청풍; (물론 막형을 쫓는 백살파의 자객들일 테고...)

청풍; (길을 벗어나는 바람에 종적을 잃어버린 막형이 이 앞쪽에서 위기에 처한 것 같다.) 삐익! 삑! 앞쪽에서 연신 호각 소리가 들리고

<서둘러야겠다!> 쐐액! 속도를 내서 날아가는 청풍. 헌데

 

스스스! 청풍이 지나간 자리로 나타나는 살접

삐익! 삑! 멀리 앞쪽에서 호각소리가 들리고 청풍이 그곳으로 날아가는 게 작게 보인다

살접; (결국 철검유협 막운비는 백살파가 친 그물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휘익! 청풍을 따라 날아가고

살접; (곧 이청풍의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엿 볼 수 있을 것 같다.) 배시시 웃으며 날아가고

 

#96>

삐익! 삑! 호각을 부는 복면인들에게 쫓기고 있는 막운비

휘익! 휙! 복면인들은 좌우에서 포위망을 좁히며 막운비를 추격하고 있다들

막운비;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모두 여섯 명...) 쐐액! 날아가며 그자들을 곁눈질하고

막운비; (비좁아서 포위당하지 않을만한 곳에 이르면 승부를 걸어보자.) (여섯 명 정도면 어찌 어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으니...) 쐐액! 생각하며 날아가고. 그러다가

삐익! 삑!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며 호각을 부는 복면인들

막운비; (이상하다!) 곁눈질하며 달리고. 찡그리고

막운비; (어쩐지 저놈들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데도 속도를 조절하며 추격하는 느낌이 든다.) 찡그리며 생각하다가

[!] 눈 부릅뜨며 앞을 보는 막운비. 앞쪽은 좌우로 깎아지른 절벽이 서있는 계곡. 헌데 그 계곡 가운데 한명의 인물이 우뚝 서있다. 바로 십삼살주다.

<十三煞>이란 글이 적힌 십삼살주가 쓴 복면 크로즈 업

막운비; (백살파 최고고수들인 백일자객 중 서열 십삼위인 자다!) 눈 부릅

막운비; (강적이지만 피할 길은 없다.) 쐐액! 이를 악물며 십삼살주에게 쇄도하고

막운비; (전력을 다해 공격해서 뚫고 나가야만 한다.) 쩍! 스악! 앞으로 쇄도하며 검을 빗발치듯 그어낸다. 막운비의 앞쪽으로 여러 가닥의 섬광이 반원형으로 일어나 십삼살주를 베어간다

[종남파의 분뢰검법(分雷劍法)!] [조... 조심하십시오 십살살주님!] 막운비를 추격하던 복면인들이 외치며 날아오고. 하지만

스앙! 칠성보도를 뽑아 그어내는 십삼살주. 그러자

쩍! 칠성보도에서 긴 섬광이 내뻗치며 그 섬광에 부딪힌 막운비가 일으킨 반월형 섬광들은 풀처럼 잘려버린다.

막운비; [!] 팟! 급정거하며

몸을 뒤로 홱 젖히는 막운비. 눈을 부릅뜨고. 그런 막운비의 얼굴 위로 섬광이 스치고 지나간다. 하마터면 얼굴이 베어질 뻔 했고. 대신 막운비가 쓰고 있던 죽립과 머리카락이 베어지고

펄럭! 서걱! 잘려진 죽립과 머릿카락이 허공에 흩날리고. 이하 막운비는 죽립을 쓰지 않은 모습이 된다.

팟! 휘익! 상체를 뒤로 홱 젖힌 상태로 백 덤블링을 하는 막운비. 앞부분이 잘려진 죽립은 완전히 벗겨져 날아가고. 이하 막운비는 죽립을 쓰지 않은 모습이 된다.

막운비; [!] 백 덤블링을 한 후 내려서다가 경악하고. 쩍! 이미 다가와 다시 칠성보도를 비스듬히 내리고 있는 십삼살주

막운비; (빠르다!) 팽! 경악하며 몸을 팽이처럼 돌려 피하려 하지만

서걱! 푸악! 막운비의 가슴을 비스듬히 긋고 지나는 섬광.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튀고

막운비; [큭!] 휘릭! 팽이처럼 돌던 몸을 멈춰서며 비틀거리고. 십삼살주는 추격하지 않고. 대신

[포기해라 막가야!] [네놈이 빠져나갈 길은 없다!] 휙! 휘익! 막운비의 뒤로 날아내리며 외치는 복면인들

막운비; (상처가 가볍지 않다.) 가슴의 상처를 왼손으로 누르며 오른손의 검은 십삼살주에게 겨누고.

막운비; (저자의 칼...) 십삼살주의 손에 들린 칠성보도를 보고

<도기(刀氣)가 나의 검기를 단번에 갈라버렸다. 절대 평범한 칼이 아니다.> 징징! 진동하는 칠성보도를 배경으로 막운비의 생각 나레이션

막운비; (백일자객들은 하나같이 신병이기를 사용하고 그 때문에 백일자객을 능가하는 고수들도 속절없이 죽임을 당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검으로 십삼살주를 겨누며 절망하고. 뒤쪽에서는 복면인들이 무기를 겨눈 채 포위하고 있고

십삼살주;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음산한 눈빛

말없이 노려보는 막운비

십삼살주; [지금이라도 순순히 밀서를 내놓는다면 굳이 목숨까지 빼앗지는 않겠다만...]

십삼살주; [끝내 버틴다면 네 사부 곁으로 보내주겠다.]

막운비; [네놈 설마!] 경악

십삼살주; [네놈이 생각하는 대로다.] 끄덕

십삼살주; [삼절신유 신현학이란 늙은이는 이 칠성보도를 써서 저 세상으로 보내주었다.] 흐흐흐! 음산하게 웃으며 칠성보도를 들어 보이고

막운비; [죽일 놈!] 팟! 악을 쓰며 폭발적으로 도약해서 십삼살주를 공격해간다

복면인들; [저 놈이...] [최후의 발악이냐?]

막운비; [혈채를 갚아라!] 쩍! 부악! 빗발치듯 검을 긋고 찔러내고. 무수한 섬광이 십삼살주를 가르고 찔러간다. 하지만

스악! 십삼살주의 칠성보도가 그어지자 그 모든 섬광이 잘려나가고

텅! 그 충격으로 도로 튕겨지는 막운비

[그렇지!] [역시 칠성보도다!] 환호하는 복면인들

십삼살주; [죽기를 원한다면 그리 해주마!] 쩍! 한번 휘둘렀던 칠성보도로 다시 휘둘러 막운비의 목을 베어오고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막는 막운비. 하지만

서걱! 그대로 잘리는 막운비의 검

막운비의 목으로 날아드는 칠성보도. 절망하는 막운비. 하지만 그 직후

콱! 막운비의 뒷덜미를 잡는 누군가의 손. 막운비가 눈 치뜨고

십삼살주; [!] 칠성보도를 휘두르며 역시 눈 치뜰 때

휘익! 막운비의 뒷덜미를 잡고 흐르듯이 뒤로 물러서는 청풍. 복면인들 앞쪽이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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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장

 

                    백검보의 방문객 (2)

 

 

 

-남경(南京)!

 

장강을 건너 강북으로 가는 배위에 머리카락이 조금 이상한 미청년이 바람을 맞으며 우뚝 서있다.

호수같이 심원한 눈빛에 굳게 다문 입가에 은은히 비치는 매력, 허리에 걸려있는 거무튀튀한 방망이까지도 그렇게 잘어울릴 수가 없는 미청년이었다.

그는 석두공이었다.

진정 임풍옥수(臨風玉樹)라는 말 그대로의 모습인지라 배위의 선객(船客)들이 너도 나도 그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이정(二正)이 겨우 그런 정도의 인물이었다니! 좁쌀같은 자들...! 경우에 따라선 적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하거늘 동지마저 믿지 못하다니...]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파란 물결이 그의 발아래로 들어오는 것같았다.

그때였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졌기로서니 이정을 드러내놓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갑자기 그의 뒤에서 웅혼한 음성이 들렸다.

석두공은 고개를 돌렸다.

백의문사(白衣文士)가 입가에 훈훈한 미소를 띠고 서있었다.

[무형도객! 무형도객이시군요.]

석두공이 반색을 하면서 덥썩 그의 손을 잡았다.

백의문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난 자네를 모르네. 나를 아는가?]

[이런 멍청이!]

석두공은 자신의 머리를 쿡 쥐어박으며 소리쳤다.

전부터 인상이 좋았던 무형도객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실수를 했던 것이다.

석두공이 포권을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오년 전 동정호에서 제 사부님께서 임종하시는 것을 함께 지켜주셨지 않습니까?]

[그럼 자네는 그때 그 소년... 그러고 보니 닮았군 그래.]

무형도객은 석두공의 말을 금방 알아듣고 기뻐했다.

 

일렁이는 물결과 까마득한 수평선은 이곳 장강이 바다인지 강인지 모르게 한다.

“그 사람들을 너무 탓할 것도 없네.”

무형도객은 석두공의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무공만이 능력이 될 수는 없네.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고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 할 수 있네. 포용력이 없고 속이 좁다고 해서 원망할 수야 있는가? 그들의 그릇이 그것 뿐인 것을... 나도 일찌기 그들이 난세를 평정할 주역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저도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하여 도에 지나치게 화를 낸 듯합니다. 하지만 삼인이 만든 척살대가 무림에 나오기 전에 제거해야 할 텐데 여간 큰 일이 아니군요.]

석두공이 말했다.

무형도객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소림사에서 무림첩을 발하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와 자네, 그리고 소림사의 이름으로 발송된다면 더욱 많은 무림인들의 힘을 규합할 수 있을 것이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바는 아닙니다만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석두공의 말에 무형도객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구대문파는 움직임이 없었으며 또한 삼인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소림사에서 무림첩을 발송하고 무림대회를 연다면 그들이 구대문파를 경계하게 될 것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될 이유라도 있는가?]

무형도객이 물었다.

석두공이 머뭇머뭇하면서 말했다.

[사실 저와 저의 의형이신 일초진천수가 그동안 구대문파의 힘을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그들은 최후의 순간에 사용할 생각으로...]

무형도객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돌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그랬었군. 음... 그랬었군.]

[...?]

무형도객은 뜻모를 말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무형도객 그도 구대문파의 힘을 규합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구대문파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힘이 무엇엔가 묶여 있는듯하다는 인상이었다.

그는 그 이유를 이제서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한데 석두공이 강상으로 달려오는 두척의 쾌속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배들을 알고 계십니까?]

[이 넓은 장강에서 불쑥 나타난 배를 내가 어찌 알겠나?]

무형도객이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

[속도로 보아 부딪힐 수도 있겠습니다.]

석두공이 말했다.

그는 동정호에서 직접 배를 부렸던 사람이다. 물과 그 위로 달리는 배의 성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구 저저...]

[애그머니나! 저걸 어쩌나...]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젊은 부인이 달려드는 배를 발견하고 놀랐는지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사공! 사공! 배가 부딪히겠소!]

누군가 소리치자 사공들 중의 한사람이 선실로 뛰어 들어갓다가 징을 들고 다시 뛰쳐나왔다.

지잉! 지잉!

[부딪히겠소. 부딪히겠소!]

그 사공은 징을 두드리며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쾌속선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석두공 등이 탄 배의 허리부분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으아악!]

성질 급한 사람들은 미리 비명을 질러댔고 사공도 놀라서 징을 던져버리고 배를 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려오는 배는 쾌속선이다.

사람과 하물을 많이 실은 도선(導船)과는 그 속도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

석두공이 말했다.

[수적(水賊)입니다.]

[단순한 수적은 아니네. 저것을 보게.]

무형도객이 손을들어 뒤쪽의 쾌속선을 가리켰다.

그 배에서는 막 깃발이 올라가고 있었다. 언듯 보아도 붉은 색인 것같았다.

[적룡혈운도(赤龍血雲島)!]

석두공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으아아!]

그 무렵 배에 탄 선객들이 소동을 일으켜 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이러다간 충돌하기도 전에 가라앉고 말겠군.]

무형도객은 천근추의 공력을 운용하여 배의 중심을 잡았다.

[자네가 하나를 맞게. 내가 하나를 맞...]

무형도객은 말을 하다가 곁이 허전하여 돌아보았다.

석두공은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이미 한 마리의 비조처럼 강물위로 쏘아져 날아가고 있었다.

쾌속선과 그의 거리가 불과 오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촤아아아!

쾌속선이 갑자기 머리를 돌렸다. 달려오던 여파로 배가 완전히 돌아버렸다.

파도가 무형도객이 탄 배를 넘겨버릴 듯이 크게 떠올랐다.

콰르르르릉...

석두공의 손에서 우레 소리가 터져 나오며 다시 쌍장이 격출되었다.

꽝!

쾌속선의 허리가 벼락을 맞은 듯이 절단되어 버렸다.

[으악!]

풍덩풍덩!

살아남은 자들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그와 동시에 배는 가라앉아 버렸다.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석두공은 물위를 밟고 나아가며 뒤쪽의 쾌속선으로 접근해갔다. 적룡혈운도의 깃발이 올라간 그 배였다.

촤아아아!

그가 지나감에 따라 물결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삼각파도를 이루었다.

갑자기,

[크하하하하... ]

쾌속선에서 광소가 터져 나오며 황의를 입은 노인이 갑판위에 나타났다. 등에는 도(刀)를 맸으며 왼쪽 허리에는 검을 매고 있었다.

적룡혈운도주 해천월-!

바로 그자였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석두공은 물론이고 무형도객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하니 그렇게 작은 배안에 도주인 해천월이 타고 있을 줄이야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 그를 발견한 석두공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아무리 천하의 해천월이라고 하지만 석두공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야말로 호굴에 뛰어든 토끼나 다름없는 신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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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부의 시조는 신선낭낭(神仙娘娘)이란 여인이었으며...> 무릉도원 같은 곳에 설치 된 단상에 서서 선녀같은 모습으로 설교하는 신선낭낭. 단상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 꿇고 앉아서 신선낭낭을 우러러 본다.

<마귀동을 세운 인물은 마귀조종(魔鬼祖宗)이라는 인물이었다.> 웅장한 신전. 화려한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서 웃는 마귀조종의 모습. 그 앞에 사람들이 머리를 박고 오체 복지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청풍; (무림의 역사는 사실상 그 두 사람이 세운 신선부와 마귀동의 각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앞에 놓인 책 <黑白神鬼 遺稿>를 집어들고

청풍; (무림의 정세를 뒤흔든 큰 사건 뒤에는 늘 신선부와 마귀동의 입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책 <黑白神鬼 遺稿>를 펼치며

청풍;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경천동지할 사건은 이 책 흑백신귀(黑白神鬼) 유고(遺稿)를 남긴 흑백신귀가 구대천마를 격퇴한 일이었다.) 책을 읽어 보며 생각하고

 

<흑백신귀는 신선부를 이루는 칠단(七段)중 무력을 담당하는 제삼단(第三段) 신귀천(神鬼天)의 수령들이었다.> 청풍 앞에 수정구슬을 가운데 두고 앉아있는 흑백신귀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삼백여 년 전, 신선부는 마귀동의 후예들인 구대천마가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자 흑백신귀로 하여금 철퇴를 가하게 했다.> #1>의 장면. 흑백신귀가 웃고 있고 삼녀 육남의 인물들이 사방으로 달아나는 모습

<흑백신귀는 신선부의 무력을 담당하는 신귀천의 수령들답게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구대천마를 격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대천마의 마공도 만만하지 않아서 흑백신귀 역시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되었다.> 위 장면의 연속. 웃고 있지만 입과 코로 피를 흘리는 흑백신귀의 얼굴을 자세히

<비록 내상이 심각했지만 서둘러 신선부로 돌아가면 치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백신귀는 끝내 신선부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원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 구대천마의 첫째인 번뇌혈종(煩惱血宗)이 쳐놓은 함정에 걸려든 때문이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종이를 보는 흑백신귀. 멀리 달아나며 돌아보는 선비 차림의 노인이 날린 종이다.

<번뇌혈종이 달아나면서 <원시천존의 유적이 화산 창천애에 있다.>라는 글이 적힌 오래 된 양피지를 남겼던 것이다.> 함께 종이를 보며 흥분하는 흑백신귀

<호기심을 참지 못한 흑백신귀는 신선부로 귀환하는 대신 화산의 창천애로 달려왔다. 신선부와 마귀동의 시조인 원시천존의 유적을 찾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이다.> 비석 같은 바위가 있는 화산 창천애로 날아 내리는 흑백신귀의 모습. 병색이 완연하게 묘사.

<결국 흑백신귀는 원시천존의 유적을 발견했지만 그 대가로 내상이 도져 혼원동천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 혼원동천 안으로 들어서며 수정 구슬을 보고 놀라는 흑백신귀. 병색이 완연하다.

<흑백신귀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신선부로 전서구를 날려 자신들의 행적을 알렸다. 하지만 신선부의 후손이 혼원동천에 이른 것은 무려 삼백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것도 죽어가는 몸으로...> 등에 염왕가가 박힌 위극겸이 혼원동천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청풍; (기대했던 것과 달리 흑백신귀 유고에는 무공과 관련된 내용이 단 한 줄도 없었다.) 책을 보면서 생각하고

청풍; (대신 이 책에는 흑백신귀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까지 남아있었던 원시천존의 유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보고

청풍; (덕분에 나도 혼원소와 혼원조화결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책을 펼쳐서 읽으며 생각하고

청풍; (이 책에는 원시천존의 유서 뿐 아니라 흑백신귀가 이곳에서 깨우친 심득도 수록되어 있다.) 책을 보면서

청풍; (흑백신귀는 죽기 직전까지 원시천존이 남겨놓은 혼원조화결을 연구했었다.)

청풍; (하지만 혼원조화결은 너무도 난해하여 흑백신귀쯤 되는 인물들도 깨우칠 수가 없었다.) 책을 넘기고

청풍; (대신 그들은 명이 다하기 전, 그때까지 알아낸 심득을 모두 이 책에 남겼던 것이다.)

청풍; (그 심득을 연구하면 혼원조화결을 깨우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꼬르르륵! 생각할 때 배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

청풍;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 오만상. 한손으로 배를 만지고

청풍; (생각 같아서는 혼원조화결을 깨우칠 때까지 이곳에 머물고 싶지만...) 책을 품속에 넣으며 주변 돌아보고

청풍; (더 이상 공복을 참을 수 없다.) 꼬르르! 오만상 쓰는 청풍의 배에서 또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고

청풍; (나는 혼원동천 앞에서 죽은 인물 덕분에 내공이 비약적으로 증진되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청풍; (하지만 아무리 내공이 제 아무리 심후하다 해도 배고픔을 견딜 수는 없다.) 바로 서서 흑백신귀들에게 포권을 하고

청풍; [후배는 이만 물러가야겠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다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고개 숙이고. 이어

청풍; (서둘러야겠다.)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문쪽으로 가는 청풍

<자칫하다가는 천지창조의 흔적을 발견하고도 아사(餓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철문을 열고 나가는 청풍의 뒷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88>

<-창천애> 여전히 낮. 비석 같은 바위가 있는 곳

휘익! 절벽 아래에서 절벽 위로 날아오르는 청풍. 허리춤에 용봉철적을 끼우고 있는데 염왕아는 보이지 않는다. 소매 속에 숨기고 있다.

비틀거리며 절벽 위에 내려서는 청풍.

청풍; [배가 너무 고프니 현기증이 나는군.] 머리 만지며 비틀거리고

청풍; [빨리 어디 가서 배를 채우지 않으면 뭔 일 나겠다.] 비석 옆으로 걸음 옮기고. 그러다가

지나가려던 비석을 돌아보는 청풍.

청풍; [천재지중(天在地中) 욕등투천(慾登投天)...] [하늘은 땅 속에 있으니 오르길 원하면 하늘로 몸을 던져라!]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해석한다.

청풍; (물론 이 글에서 말하는 하늘은 혼원동천이다.)

청풍; (원시천존은 혼원동천 입구에는 술법이 걸어놓았으며 그 때문에 절벽을 타고 내려가도 동굴 입구를 발견하지는 못한다.)

청풍; (하지만 이 글에 적힌 대로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혼원동천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청풍; (흑백신귀는 그 이치를 알아차리고 몸을 던졌으며...) (나와 염왕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물은 타의에 의해 절벽에서 떨어졌다가 혼원동천에 들어갔다.)

청풍;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연이었는데...) 꼬르륵! 생각하던 청풍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

청풍;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비틀거리며 돌아서고

청풍; [빨리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한다.] 휘익! 몸을 날리고

곧 멀어지는 청풍.

헌데 그 직후

슥!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 뒤에서 몸을 일으키는 여자 복면인. 살인상단 부단주 독검사랑의 부하들 중 한명인 살접이다. 손에는 종이를 한 장 들고 있다

바위 뒤에서 나오며 종이를 보는 살접

종이에 그려진 것은 물론 청풍의 초상화다. 귀견수가 준 원본은 아니고 옮겨 그린 것

살접; [틀림없다.] 종이에서 눈을 떼고

살접; [비록 몰골이 초췌하지만 귀견수가 죽여 달라고 의뢰한 이청풍이라는 자다.] 청풍이 날아간 곳을 보고

살접; [화산을 샅샅이 뒤진 보람이 있구나. 드디어 저놈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슥! 종이를 품속에 넣고. 이어

살접; [기대해라 이청풍!] 슥! 쓰고 있던 복면을 벗는다.

그러자 드러나는 얼굴. 눈 꼬리가 올라간 고양이 인상의 미녀. 늘 웃는 표정. 캐릭터는 066. 이하도 살접으로 표기

살접; [우리 살인상단의 명성이 헛되이 전해진 게 아니라는 걸 몸으로 깨닫게 해줄 테니...] 사악하게 웃는 얼굴 크로즈 업. 이어

살접; [호호호!] 휘익! 날아간다. 청풍이 간 쪽으로

 

#89>

<-화산 서쪽> 멀리 화산의 웅장한 바위 봉우리들이 보이는 산 아래 마을이 있다. 화산을 관통하는 길 초입에 위치하고 있어 제법 큰 마을. 가게도 있을 만한 가게는 다 있다.

마을 크로즈 업. 중앙 대로에 사람들과 우마차들이 제법 많이 오간다.

마을 내의 어느 객잔. 그리 크지 않다. 헌데

사람들이 겁을 먹고 객잔에서 나오고 있다. 종업원들도 도망쳐 나오고

[왜 그래?] [무슨 일인가?] 오가던 마을 사람들이 종업원들에게 묻고. 손님들은 겁에 질려 떠나지만 종업원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입구에 모여있다.

[아... 아무래도 사단이 날 것 같소.] [무림인들이 우리 객잔에서 일을 벌일 모양이오.] 겁에 질리는 종업원들

[무림인들이 객잔 안에서 한바탕 하려는 건가?] [백주 대낮에 이게 뭔 짓이래? 장사를 훼방이나 놓고...] 사람들 혀를 차고

[별일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구만.] [살인이라도 나면 관부에 시달릴 텐데 말이지.] [그러게 말일세.] 마을 사람들도 종업원들과 함께 객잔 내부를 기웃 거리고

 

#90>

객잔 내부. 방이 여럿 있는 길쭉한 건물. 그 건물을 에워싼 십여 명의 복면인들. 흰 옷에 흰 복면을 쓴 백살파의 자객들이다. 모두 무기를 뽑아든 채 건물을 포위하고 있다. 긴장한 모습인데. 그때

[여기냐?] 휘익! 말과 함께 날아 내리는 복면인. 복면에 <十三煞>이란 글자가 적혀있다. 백일자객중 한명인 십삼살주.

[십삼살주님!] [어서 오십시오.] 바닥에 내려서는 십삼살주에게 인사하는 복면인들

복면인들; [새벽 무렵 막운비가 이 객잔에 투숙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점원들의 말에 의하면 새벽에 저 객실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건물 중 한 객실을 가리키며 보고하는 복면인들

십삼살주; [뒷곁으로 빠져나가거나 하진 않았겠지?] 객실 입구를 보며

복면인들; [놈이 투숙한 직후 속하들이 도착해서 포위했습니다.] [속하들의 눈을 속이고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복면인들; [속하들만으로도 막가놈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만전을 기하기 위해 포위만 한 채 십삼살주님께서 도착하시길 기다렸습니다.]

십삼살주; [잘 했다.] 스릉! 칼을 뽑는다. 칼날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고 칼날이 밝게 번쩍거린다.

십삼살주; [막다른 곳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물 수 있는 법!] [불필요한 피해를 볼 이유는 없다.] 객실 입구로 다가가고

십삼살주; [철검유협 막운비!] [좋은 말로 할 때 밖으로 나와라.] 문 앞에 멈춰선 채 일갈하고.

십삼살주; [네 사부 삼절신유가 맡긴 밀서만 내놓는다면 굳이 죽일 생각은 없다.] 칼로 문을 겨누며 말하고. 하지만

객실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고. 그러자

[어리석은 놈! 죽기를 자청하는 것이냐?] [소원이라면 죽여주마!] 복면인들이 눈을 부라리며 건물에 대고 외치고. 반면.

슥! 찡그리며 왼손을 드는 십삼살주. 그러자

일제히 입을 다무는 복면인들

십삼살주; (객실 안에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눈 부릅뜨며

십삼살주; (혹시...) 스악! 칼 끝을 객실 문을 향해 빙글 원형으로 돌린다. 그러자

펑! 객실의 문과 그 주변의 벽이 원형으로 박살나서 안으로 터지고. 헌데

쿵! 원형으로 구멍이 생긴 벽 안쪽. 그리 넓지 않은 객실인데 아무도 없다. 침대는 비어있고. 대신 객실 바닥에 흙이 많이 쌓여있다.

복면인들; [헉! 아무도 없다!] [객실 바닥에 웬 흙이 저렇게 쌓여있는 건가?] 놀랄 때

십삼살주; [이런...] 휙! 객실 안으로 뛰어들고

쿵! 십삼살주가 내려선 바닥. 방 바닥에 사람 하나가 들어갈 구멍이 나있다. 흙은 그 구멍을 파낸 흔적이고

십삼살주; [바닥에 굴을 파고 빠져나갔다.] 팟! 이를 갈며 천장으로 솟구치고. 복면인들 깜짝 놀라고

펑! 객실 지붕을 뚫고 치솟는 십삼살주

허공으로 10 미터쯤 날아오르며 주변을 홱 둘러보고

객실 뒤의 담이 있고. 그 담 너머는 숲인데 그곳에도 흙 무더기가 있다.

휘익! 담장 밖의 그 흙 무더기 옆으로 날아 내리는 십삼살주

흙무더기 옆에 구멍이 나있고

[십삼살주님!] [무슨 일입니까?] 휙! 휙! 뒤따라 날아내리는 복면인들. 그러자

십삼살주; [멍청한 놈들!] 철썩! 팍! 번개처럼 복면인들의 뺨을 후려치는 십삼살주. 손이 여러개처럼 보이고. [컥!] [큭!] 뺨을 맞고 얼굴이 돌아가는 자들은 먼저 도착한 자들. 뒤따라오던 자들은 기겁하며 거리를 두고 내려서고

털썩! 퍼억! 나뒹구는 복면인들. 다른 자들은 뒷걸음질하고

십삼살주; [막가놈이 객실에서 이곳까지 굴을 파고 탈출하는 걸 몰랐단 말이냐?] 칼로 구멍을 가리키며 화를 내고

[죄... 죄송합니다 십삼살주님!] [놈이 객실을 나오는 것만 신경쓰다보니...] 복면 속에서 피를 흘리며 일어나는 나뒹굴었던 놈들

십삼살주; [놈을 찾아내라.] [만일 한번만 더 본좌를 실망시킨다면...] 살벌. 빠지직! 몸에서 벼락이 일어나고

[히익!] [으으으!] 공포에 질리는 복면인들

십삼살주; [본좌의 손으로 네놈들의 인생 종치게 만들어주겠다.] 부득! 복면 속에서 이를 갈고

[존... 존명!] [막가놈을 찾아내겠습니다.] 휙! 휘익! 날아오르는 복면인들

십삼살주; [막운비! 막운비!] 멀어지는 복면인들 노려보며 살기를 뿜어내고

십삼살주; [본좌를 우롱한 대가는 목숨으로 치르게 해주겠다.] 살벌한 모습으로 이를 갈고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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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百劒堡의 訪問客 (1)

 

 

 

금포노인이 말했다.

[그놈들이 만든 척살대가 빨리 가동할 수 있도록 도와라. 일백 개의 마정단(魔精丹)을 심제을에게 보내라.]

(이 일백 개의 마종단을...! 한개에 각기 일백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는 보물을... )

그의 근처에 있던 여인들의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존명!]

스스슷!

금포노인의 앞에 서있던 흑봉(黑鳳)은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보이고 사라졌다.

금포노인은 몸을 뒤로 젓히고 누워 눈을 감았다.

[흐흐흐! 척살대... 그놈들만 세상으로 뛰쳐나오면 몸을 도사리던 은세정검회도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흐흐흐! 그때가 천지가 뒤바뀌는 때...!]

금포노인이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누구냐?]

[십구은(十九隱)의 급보입니다. 척살대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자가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금포노인의 이마가 좁혀졌다.

[제거해버릴까요?]

조심스러운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그만두어라. 척살대에 첩자가 있든 말든 상관없다. 척살대는 단지 은세정검회를 끌어내기만 하면된다. 사은(四隱)에게 명해서 백검보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라고 해라. 어쩌면 놈들은 백검보 주변에서 은밀히 서성일지도 모른다.]

[존명!]

그 목소리는 사라졌다.

금포노인은 중얼거렸다.

[은세정검회! 그들이나 본궁이나 힘은 백중지세! 먼저 움직이는 쪽이 필연적으로 멸망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처럼...!]

노인은 고개를 돌리고 미사를 바라보았다.

미사가 흠칫하면서도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벗고 올라와라!]

사라락!

미사의 옷이 요염한 율동에 따라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미끈한 알몸이 된 미사는 금포노인에게로 걸어가 그의 금포를 벗겼다.

노인의 남성이 꿈틀대며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거대한 남성, 미사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았다.

그녀가 입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순간 그녀의 은밀한 곳이 마치 동굴처럼 넓어졌다. 특이한 방중술을 익힌 것이다.

노인의 무지막지한 남성은 아무 저항없이 그녀의 몸속으로 받아들여졌다.

노인은 엄지손가락으로 미사의 은밀한 부위의 앞쪽을 쓰다듬었다.

미사가 맷돌을 돌리듯이 둔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흥분이 고조되자 미사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봉사를 받는 노인의 눈빛은 고요했다.

그의 눈동자는 아무런 사심도 없는 수행자의 그것인 것같았다.

어느 순간 미사는 혼자 발버둥치다가 고개를 뒤로 젓히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흰자위로 드러나 있었다. 정사로 인해 가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금포노인은 중얼거렸다.

[이젠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겠지. 움직여야만 할 상황이 만들어진 이상...]

 

× × ×

 

[본궁에서 보내온 영단이오. 이번에 본궁에 흡수된 약성문(藥聖門)에서 수 백년에 걸쳐 만든 것이라 하오.]

백사 마소악이 파혼검, 즉 신분을 감춘 금사종에게 말했다.

금사종이 물었다.

[모두 몇 개요? 어떤 효력을 지녔소?]

[정확하게 일백개요. 그리고 효력은 실로 놀랄만 하오. 일백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소.]

백사 미소악 대신 흑사 우문추가 말했다.

순간 금사종의 눈이 크게 떠였다.

[일백년의 공력? 그렇다면 우리가 당장 무림에 나갈 수도 있겠군.]

[그것 때문에 파혼검 당신을 찾아온 것이오.]

백사 마소악이 풀이 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

금사종의 눈에 차가운 한망이 스쳐지나갔다.

백사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주저주저 말을 이었다.

[우...우린 이곳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뿐이라는 것을 알았소. 다른 자들은 그 속을 전혀 드러내지 않소.]

[백사, 말을 돌리지 말게!]

듣고 있던 흑사 우문추가 답답했는지 성을 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우리를 살려주시오. 약속만 한다면 당신의 종이라도 되겠소.”

흑사 우문추는 금사종 앞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말햇다.

백사 미소악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함게 무릎을 꿇었다.

“....!”

금사종은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문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볼때 파혼검 당신도 겨우 척살대의 일원으로 만족할 그런 사람은 아니오. 당신도 뜻을 펴고자 하면 우리같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오.]

탕!

금사종이 탁자를 치고 일어섰다.

[...!]

[...!]

흑백쌍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금사종을 올려다 보았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 말에 복종하라!]

금사종이 가공할 기도를 발하며 말했다.

(우리가 잘못 보지 않았다. 이자는 엄청나다.)

흑백쌍사는 무릎을 꿇은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견...견마지로를 다하겠소이다.]

금사종은 그들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일단 단약을 이곳에 두고 나가라. 다른 자들이 눈치채면 안되니....!]

 

흑백쌍사는 단약이 들어있는 옥병을 놓고 나갔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금사종은 단약을 눈앞에 두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당장 이것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지 않은가? 저들은 이 단약이 없어도 앞으로 몇 개월만 지나면 무공을 거의 다 이루게 될 것인데... 그렇다고 이것을 그대로 저들에게 다 줄 수도 없다. 그랬다간 당장 무림에 혈풍이 휘몰아친다. 내 능력으로는 이미 삼마경을 어느 정도 터득한 저들을 다 죽일 수도 없고... )

이곳에 있는 자들의 무공은 모두가 흑백쌍사보다 강하다.

조금 강한 자들도 있지만 훨씬 강한 자들도 있다.

삼마경을 어느 정도 익혔는가에 따른 차이였다.

흑백쌍사는 삼마경을 보기는 했으되 익히지는 못했다.

익히자면 필연적으로 내공을 파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즉시 목이 달아나고 말 것이기에...!

무림인답지 않게 죽음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흑백쌍사이기에 삼마경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금사종의 무공으로도 삼마경을 익히고 있는 그들은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아직 화후가 약해서 단신으로는 그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없다고 하지만 셋 넷만 모이면 금사종도 그들을 당할 수 없다.

금사종의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금사종은 한가지 결심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마경을 연성하자. 이 영단의 위력을 빌린다면 내공이 폐쇄되어도 금방 복원될 수 있다. 삼마경의 무공으로 삼마경의 무공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부운청풍객 등은 모두 하나의 마경만을 익혔다. 내가 삼마경을 모두 익힌다면 그들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그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금제를 받아서 그들에게 복종해야만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일지도 모른다.”

 

금사종은 자신의 방을 나가 흑백쌍사를 찾아갔다.

[납과 수은을 가지고 있소?]

[...?]

[있기는 합니다만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백사가 물었다.

금사종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유는 묻지 마시오.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니...!]

 

금사종은 납과 수은을 가지고 돌아왔다.

옥병을 열어서 밀납속에 든 영단들을 모두 꺼낸 후 자신이 복용할 한알만을 따로 챙겼다.

그리고 바늘로 밀납에 작은 구멍을 뚫고 납과 수은을 혼합하여 나머지 영단들의 가운데로 흘러넣었다.

구십아홉개의 영단에 은밀하게 납과 수은이 들어갔다.

금사종은 옥병속으로 하나하나 다시 넣으며 중얼거렸다.

[영단을 주기는 해야겠지. 하지만 삼 개월 이내에 모두 몸이 썩어나갈 것이다. 단전에서 부터...]

 

× × ×

 

-황산(黃山) 백검보(百劍堡)!

 

부운청풍객등에게 패한 검성 당이정이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이곳은 석두공이 들어서면서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검종맹이나 잔혼각, 적룡혈운도의 공격에 대비하여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는데 석두공은 사십 여 명의 검객들이 둘러싸인 채 연무장에서 검성과 만박노조를 만났다.

[동호천 노선배의 제자라고? 소협이 말이오?]

태사의에 앉은 검성이 말했다.

만박노조는 석두공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석두공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조금 이상하군. 자네는 닮기는 했지만 그는 아니네.]

만박노조가 말했다.

순간,

척!척척!척!

주위에 있는 검객들의 손이 일제히 검을 잡았다.

눈을 빛내는 그들의 검은 금방이라도 뽑혀나올 것만 같았다.

석두공이 물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노부는 오년 전 동정호에서 동호천 노선배와 그 제자를 만난 적이 있다. 너는 분명히 동호천 노선배의 제자이름은 알고 있다. 석두공, 바로 네가 말한 그 이름이지. 하지만, 진짜 석두공에겐 고질이 있어 자네처럼 똑똑할 수가 없네. 내가 보기에 그는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는 듯이 보였지. 또한 노선배도 그렇게 말했고...]

[전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석두공은 만박노조의 눈을 쏘아보면서 말했다.

[궂이 내가 나라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나가려했다.

검성이 웅혼한 음성으로 외쳤다.

[멈추게. 무슨 일 때문에 나를 찾아왔는지는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야 겨우 묻는군요. 혈포단객의 부탁을 받고 백검보에 찾아왔는데 정말 실망입니다. 말만 전해주고 가도록 하지요.]

석두공은 화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모든 검객들이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삼인이 척살대를 만들어 무림의 고수들을 모두 죽이려한다. 척살대가 뛰쳐나오기 전에 부운청풍객 등을 깨뜨려야 한다. 그러려면 무림첩을 뛰워 모든 무림인의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 대충 이런 말이었소.]

석두공은 시를 읊듯이 혈포단객의 말을 전한 후에 성큼 걸음을 옮겼다.

만박노조의 손이 기이한 신호를 만들었다.

순간,

휙! 휘휙!

무사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석두공을 포위했다.

만박노조가 말했다.

[그것은 천강검진(天綱劒陣)이다. 만약 동호천 노선배의 제자가 분명하다면 그것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증명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소.]

석두공이 딱딱하게 말했다.

만박노조는 그의 말을 묵살하고 소리쳤다.

[공격해라!]

창! 차차차창!

삼십 육인의 검객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한데 그들이 뽑은 검은 뽑는 기세로 그들의 검끼리 부딪히며 파란 불꽃을 일으켰다. 눈이 부시게 할 정도였다.

석두공은 눈에 은은한 분노가 어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문을 향해 걸었다.

살기가, 그동안 억눌러 있던 살기가 폭발하듯이 그의 몸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동복신과 동적선마저 질리게 했던 그 가공할 살기가...

[헉!]

[저 저럴 수가... ]

천강검진을 형성했던 자들이 그의 걸음에 밀리기라도 하듯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숨이 막힐 듯한 살기였다.

검성 당이정도 벌떡 일어섰다.

그와 만박노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만박노조가 삼인을 상대하겠다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천강검진은 석두공 앞에서 공격한 번 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석두공은 벌써 연무장의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진저리치는 살기에 억눌러 그를 저지할 수가 없었다.

석두공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살기어린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검성! 당세의 협객이라고? 스스로 적을 만드는 졸장부에 불과한 것을... 섭군천노선배가 불쌍하다. 저런 자를 제자라고 믿고 길렀다니...]

순간 검성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번쩍!

그는 한달음에 석두공의 앞으로 날아내리며 소리쳤다.

[네... 네가 사부님을 아느냐?]

석두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앞뒤도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의심부터 하는 만박노조와 그를 방관하는 검성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던 것이다.

휘루루루룽!

갑자기 그의 몸 주위에 강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검성은 경악하며 물러섰다.

순간,

[으하하하... ]

석두공은 분노에 찬 광소를 터뜨리며 까마득히 사라져갔다.

[윽!]

[으윽!]

백검보의 검객들이 귀를 막으며 비틀거렸다.

석두공의 모습은 벌써 완전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석두공이 마지막 순간에 펼쳐보인 천신폭풍보는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무공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은 하나의 경이였다.

연무장에 죽음같은 침묵이 흘렀다. 모두 얼이 빠져 버린 듯했다.

한참 후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인간의 무공이 아니다! 오직 신만이 저런 무공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검성의 눈이 만박노조를 찾았다.

만박노조는 축 쳐진 어깨로 돌아서서 걸었다.

검성이 따라가며 물었다.

[어떤 무공이오? 동호천 선배의 무공이오?]

만박노조가 고개를 저었다.

[동호천 선배에게도 저같은 무공은 없었을 것이네. 인간의 무공이 아니야!]

[그럼 우리 고검문의 무공이란 말인가?]

검성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혼란스러웠다.

 

비둘기 한마리가 백검보에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비둘기는 황산에서 멀지 않은 구화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 × ×

 

<동호천의 제자라는 자가 백검보를 찾아왔었음.

하지만 만박과 검성의 인정을 받지 못함.

척살대에 관한 말을 했음.

엄청난 무공을 소유, 만박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천강검진을 손 한번 쓰지않고 깨뜨렸음.

검성이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음.

동호천의 제자라고 하는 자는 가공할 신위를 보이며 날아갔음. 인간의 무공이 아님. 오직 궁주님 만이 그를 이길 수 있을 것!

그자를 주시해야만 함.

사은(四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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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서안> 밤. 깊은 밤이라 성내의 건물들에는 불이 거의 다 꺼져 있고 거리에는 사람들의 왕래도 없다.

장안 외곽의 강변. 정자가 있다. 누군가 그 정자 중앙에 놓여있는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있다. 팔짱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인물. 황금전장 황금수라대의 부영반인 귀견수다.

눈 감고 앉아있는 귀견수의 모습 크로즈 업.

귀견수 앞의 탁자에는 묵직한 주머니 한 개와 접은 종이가 놓여있다. 주머니는 크기가 야구공 서너 개가 들어있는 정도다.

움찔! 귀견수의 귀가 무언가를 느끼고.

귀견수; (왔군.) 눈을 뜨는 귀견수

쿵! 정자 밖 어둠 속에 유령처럼 서있는 복면인. 눈만 번뜩인다. 이자는 #2>에서 환관 장민을 추격했던 복면 쓴 자객들의 우두머리다. 복면을 쓴 얼굴의 미간에 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동일인임을 표시. 살수조직 살인상단의 부단주 중 한명으로 별호는 독검사랑이다.

귀견수; [기다리고 있었소.] 팔짱 풀며 말하고

귀견수; [본인의 청부의뢰를 접수해주어서 고맙소.] 포권하고

독검사랑; [살다보니 황금전장으로부터 의뢰를 받는 일도 벌어지는군.] 정자 밖에 서서 음산하게 말하고. 처음으로 얼굴 자세히 보여주는데 미간 사이에 점이 있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독검사랑; [황금전장의 호위무사들인 황금수라 개개인이 일류고수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그래서 황금전장과 관련된 문제는 황금수라들이 해결해오지 않았소?]

독검사랑; [대체 어떤 곤란한 일이 벌어졌기에 우리 살인상단(殺人商團)같은 하천한 조직에까지 손을 내밀게 된 거요?]

귀견수; [더 늦기 전에, 그리고 세상이 알기 전에 확실하게 제거해야할 놈이 있소.] 슥! 접은 종이를 집어들고

독검사랑; [황금전장이 대놓고 손을 쓸 수 없는 대상이겠군.] 눈 번뜩

귀견수; [청부를 받아들이려면 이 건에 대해서는 절대 기밀을 유지해주어야만 하오.] 종이를 쳐들어 보이며

독검사랑; [우리 살인상단을 뭘로 보는 거요?] 불쾌한 듯 눈 번뜩이고

독검사랑; [사람을 죽이는 장사가 본단의 생업!] [설령 귀하가 황제를 죽여 달라는 청부를 한다 해도 기밀은 유지될 것이오.]

귀견수; [그리 말하니 안심이 되는군.] 팅! 말하며 접은 종이를 튕기듯 던지고.

독검사랑에게 철판처럼 날아드는 접은 종이. 하지만

고개를 까닥이는 독검사랑. 그러자

멈칫! 독검사랑 바로 앞에서 딱 멈추는 접은 종이

귀견수; (내가 전 공력을 실어 날린 종이를 간단히 멈췄다.) 눈 번뜩

<뭔가 수작을 부렸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다.> 독검사랑이 허공에 뜬 종이를 두 손으로 잡고 펼치는 걸 배경으로 귀견수의 생각 나레이션

슥! 종이를 펼치는 독검사랑. 펼쳐지는 종이에 그려진 것은 물론 청풍의 용모파기다.

독검사랑; [아직 어린 놈이로군.] 청풍의 초상화를 보며 중얼거리고

귀견수; [이름은 이청풍,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열흘 전 화산의 도룡묘 근처였소.] 철컹! 말하며 집어드는 묵직한 주머니에서 금속성이 들리고

독검사랑; [열흘 전이라면 이미 다른 곳으로 샜을 수도 있겠는데...] 종이를 접으며 중얼거리고

귀견수; [화산을 들고 나는 모든 길은 우리 황금전장과 개방에서 지키고 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청풍의 종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소.]

독검사랑; [이청풍이란 놈이 여전히 화산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소.] 접은 종이를 품속에 넣으며 말하고

귀견수; [금으로 천냥이오.] 휙! 주머니를 던지고

독검사랑; [은자(銀子)가 아니라 금원보(金元寶)라...] 팟! 손을 내밀어 주머니를 받고

귀견수; [흔적을 남기면 귀찮아지는 사안이라 본장이 발행한 전표(錢票) 대신 금으로 대금을 준비했소.]

독검사랑; [금의 가치는 은자의 스무 배...] 손으로 무게를 대중하고

독검사랑; [은자로 무려 이만 냥이나 되는 거금을 들여 청부한 걸 보면 이청풍이란 놈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거물이겠소.] 눈 번뜩이고

귀견수; [내막은 알 거 없고... 확실히 죽여주기나 하시오.] 무뚝뚝하게

독검사랑; [기대해도 좋소. 우리 살인상단의 표적이 되어 목숨을 부지한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으니...] 돌아서고

귀견수; [가기 전에 귀하의 소개 정도는 해야 하지 않소?]

독검사랑; [본좌의 별호는 독검사랑(毒劍死狼)!] [살인상단에서 부(副) 단주 노릇을 하고 있소.] 걸음 옮기고

귀견수; (어쩐지 범상치 않다 했더니...) + [부단주가 직접 청부를 받으러 와 주셔서 영광이오.] 앉은 채 포권하고

독검사랑; [다른 분도 아니고 황금전장 호위무사단의 부영반께서 청부를 했는데 본좌 정도가 접대를 해야 격이 맞지 않겠소?] 돌아보며 웃고

독검사랑; [앞으로도 종종 우리 살인상단을 이용해주시길 바라겠소.] [가자!] 팟! 날아오르며 누군가에게 말하고

귀견수; (가자?) 흠칫할 때

휘익! 스슥! 정자 주변의 어둠 속 여기저기에서 세 명의 남녀가 날아올라 독검사랑의 뒤를 따라간다. 이남일녀인데 여자는 몸에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었다. 얼굴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지만 육감적인 몸매로 여자임을 알 수 있다. 무기는 양쪽 허리에 찬 두 자루의 휘어진 칼 두 자루다. 다른 두 놈은 보디 빌더같은 체격의 거인과 보통 몸매의 사내. 거인은 거대한 망치가 무기고 보통 체격의 사내는 겉으로 드러난 무기가 없다. 이 년놈들은 살인상단 십대자객중 살접, 살패, 살영이다.

귀견수; (언제!) 오싹한 표정이 되고

휘익! 멀어지는 독검사랑과 세 명의 복면인들

귀견수; (저자들이 이 정자 주변에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식은땀을 흘리고

귀견수; (만일 내가 표적이었다면 목숨을 부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귀견수; (역시 살인상단이 천하제일의 살수조직이라는 평판은 헛된 게 아니었다.) 감탄하고 두려워한다.

 

#84>

여전히 서안.

휘익! 휘리릭! 서안 성내의 어느 건물 지붕 위로 날아 내리는 독검사랑. 주변으로 세 복면인들도 날아 내리고. 이어

독검사랑; [확인해봐라 살접(殺蝶)!] 휙! 들고 있던 주머니를 여자 복면인 살접에게 던지는 독검사랑

살접; [예 부단주님!] 철컹! 두 손으로 그 주머니를 받는 살접

품속에서 다시 종이를 꺼내는 독검사랑. 살패와 살영은 주변을 경계하고 살접은 주머니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한다.

종이를 펼쳐서 청풍의 초상화를 보는 독검사랑

청풍의 초상화

독검사랑; (이청풍... 이청풍...) 그걸 보며 눈 번뜩이면서 생각하고

독검사랑; (분명 오늘 처음 용모파기를 보는 놈인데...) 복면 속에서 미간 찡그리고

독검사랑;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본좌가 아는 어떤 인물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대체 이놈의 얼굴이 눈에 익은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청풍의 초상화를 배경으로 독검사랑의 생각

 

#85>

<-종남산(終南山)> 험준한 산. 역시 밤. 하늘에는 반달

어둠에 덮인 계곡. 계곡 끝에 그리 크지 않은 장원이 있다. 장원 앞은 잘 가꿔진 밭과 과수원이 있고. <무쌍일지>에 나온 삼절곡의 모습과 유사하다

장원의 정문. 닫혀있는데 정문 처마에 <三絶谷>이란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장원 내부. 수십 명의 남녀가 죽어있다. 무사들 몇 명 빼고는 모두 잠옷 차림이다. 잠자다가 기습당해 죽은 모습. 건물 안에서 죽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건물들 사이에서 죽었다.

 

털썩! 나뒹구는 노인. 꼬장꼬장한 인상의 선비 차림인데 온몸이 피투성이다. 치명상은 가슴이 갈라진 상처. 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고. 이 노인은 종남파의 장로인 삼절신유 신현학. 손에는 부러진 검을 들고 있었지만

[끄윽...] 입과 코로 피를 게워내는 삼절신유 신현학. 죽기 직전

툭! 삼절신유의 손에서 떨어지는 부러진 검

십삼살주; [겨우 끝났군.] 슥! 삼절신유 옆에서 빛이 나는 칼을 거두는 복면인. 다른 장면의 복면인들과 달리 옷과 복면이 흰색이다. 복면 이마에는 <十三煞>이란 글이 적혀 있다. 이 복장은 혈세사패중 백살파의 자객들 복장이다. 복면에 새겨진 숫자는 서열을 나타낸다. 이하 십삼살주로 표기. 그자가 들고 있는 칼은 형태는 평범한데 칼날이 눈이 부시게 희고 그 칼날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칼의 이름은 칠성보도

십삼살주 주변에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더 있지만 그자들은 복면에 숫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 다쳐서 몸에서 피를 흘리는 자도 있다. #37>에 처음 나온 백살파 복면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 장소는 대청 건물 앞의 마당. 마당에는 몇 명의 무사들이 죽어 있다.

십삼살주; [어떠냐? 죽을 만큼 다친 놈은 없느냐?] 동료들을 둘러보고

[괜잖습니다 십삼살주(十三煞主)님!] [그냥 피를 좀 본 정도입니다.] 복면인들 대답하고. 다친 놈들은 상처를 누른 채

십삼살주; [삼절곡(三絶谷) 곡주 삼절신유(三絶神儒) 신현학(申鉉學)!] [과연 종남파(終南派) 오대고수중 한명다운 실력자였다.] 죽어가는 삼절신유를 내려다보고.

복면인1; [그래봤자 백살파 백일자객 서열 십삼위인 십삼살주님의 수하에서는 삼십초를 못 버텼지요.] 아부하는 복면인들 중 한 놈

십삼살주; [파주님께서 하사하신 이 칠성보도(七星寶刀) 덕분이었다.] 칼을 들어 보이고. 칼날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는 걸 자세리 보여준다.

십삼살주; [칠성보도의 도기가 이 늙은이의 호신강기를 깨트리지 않았다면 누가 죽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삼절신유를 내려다보는데

[끄윽...] 피를 게워내며 헐떡이는 삼절신유.

[이 늙은이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분명 십삼살주님의 보도에 심장이 갈라졌을 텐데...] 놀라는 복면인들

삼절신유; [백... 백살파의 악귀들...] 헐떡이며 십삼살주를 노려보고

삼절신유; [노부를 죽였다고... 안심하지 마라.] [네놈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는... 곧 세상이 알게 될 테니...] 주루루! 입에서 피를 흘리고

십삼살주; (혹시...) 흠칫! 할 때

삼절신유; [인과... 응보가 어떤 것인지 곧 깨닫게 될 것이다.] 툭! 말하며 고개를 떨구고

[신가가 뒈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숨이 붙어있었던 게 기적이었지.] 복면인들이 삼절신유의 시체를 보며 무기를 거두고. 그때

십삼살주; [뒤져봐라.] 칼을 칼집에 넣으며 삼절신유의 시체를 턱으로 가리키고. 그러자

복면인1; [예!] 대답하며 한쪽 무릎 꿇고 삼절신유의 시체를 뒤진다. 하지만

복면인1; [이럴 리가 없는데...] 시체 뒤지며 갸웃하는 그놈

십삼살주; [그 늙은이가 딸년이 보낸 밀서(密書)를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이냐?]

복면인1; [그런 것 같습니다 십삼살주님.] 시체를 뒤지며 말하고. 그때

[십삼살주님!] 휘익! 타탁! 건물 사이에서 달려오며 외치는 몇 명의 복면인들. 돌아보는 십삼살주와 다른 복면인들

[보고 드립니다.] [삼절신유의 제자 철검유협(鐵劍儒俠) 막운비(漠雲飛)의 종적이 묘연합니다.] [우리 백살파가 기습하기 전에 삼절곡을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포권하며 보고하는 복면인들

십삼살주; [그럼 막운비, 그놈이 밀서를 갖고 있겠군.] 눈 번득

복면인2;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달려온 복면인들 중 한 놈이 대답하고

십삼살주; [즉시 추격한다.] [놈의 목적지는 소림사(少林寺)일 테니 동쪽을 집중적으로 수색한다.] 휘익! 날아오르고. 그러자

[존명!] [가자!] 휙! 휘익! 다른 놈들도 날아오르고

십삼살주; (소회주가 방심하여 정체를 들킨 대가로 우리가 개고생을 하게 되었다.) 날아가며 이를 부득 갈고.

십삼살주; (이유야 어쨌든 막운비가 갖고 갔을 밀서를 반드시 회수해야만 한다.)

<자칫 지난 몇 년 간 들인 공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삼절곡을 등지고 날아가는 복면인들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86>

<-화산> 낮

<-창천애> 비석 닮은 바위가 여전히 절벽 끝에 서있고

중간에 구름이 걸려있는 절벽

 

#87>

<-혼원동천> 혼원동천 입구. 문은 굳게 닫혀있고 문 앞쪽 바닥에는 위극겸이 입었던 옷이 널려있다

혼원동천 내부. 청풍이 앉아서 둥근 수정 구슬을 보고 있다. 수정 구슬 좌우에는 흑백신귀의 시신이 앉아있고. 청풍 앞에는 흑백신귀가 남긴 책 <黑白神鬼 遺稿>가 놓여있다.

초췌한 청풍. 수염이 조금 나있고 눈이 퀭하다. 하지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수정 구슬을 보는 청풍

지잉! 수정 구슬 속의 은하수 같은 것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청풍; (혼원벽(混元璧)!) 초췌한 표정으로 수정 구슬을 보고

청풍; (저 수정 구슬에는 천지만물의 근원인 혼원소(混元素)가 들어있다.) 수정 구슬을 배경으로. 이하 나레이션으로 표기

 

<혼돈(混沌)이라고도 불리는 혼원소에서 삼라만상이 생성되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의 씨앗이 혼원소인 것이다.> 구슬 속의 은하수 같은 것을 크로즈 업

<혼원소는 천지를 창조한 후 대부분 소멸되었는데 그 중 극히 일부가 발아(發芽)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인물이 원시천존(元始天尊)이다.> 종유동으로 들어서다가 놀라는 신선같은 풍모의 노인. 원시천존인데 그가 보는 앞쪽에는 동굴의 아래 위를 있는 굵은 돌기둥이 있고 그 돌기둥 안쪽에서 무언가 빛을 뿜어낸다.

<도교(道敎)의 교조(敎祖), 또는 도교의 최고위 신(神)으로 추앙받는 원시천존은 사실 상고시대에 존재했던 현자였다.> 종유석 기둥의 중간이 원시천존의 손에 부서지며 그 안쪽에서 혼원소가 든 수정구슬이 나타난다. 그걸 보며 놀라는 원시천존.

<오랜 세월 천지의 생성 원리를 연구하던 원시천존은 우연히 화산 창천애에서 혼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수정 구슬에 든 은하수 같은 것을 들여다보며 흥분하는 원시천존

<혼원소는 비록 그 양은 적어도 무게는 화산 전체보다 무거워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이에 원신천존은 혼원소를 발견한 곳에 혼원동천을 만들고 혼원소를 연구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돌로 이루어진 단상에 놓인 수정 구슬. 그 앞에 놓인 돌 의자 앉아서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는 원시천존. 이제 동굴은 종유동이 아니라 지금처럼 거대한 공 내부처럼 매끈하게 변해 있다. 다만 매끈한 벽과 천장에는 아무 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원시천존은 혼원소의 신비한 힘 덕분에 수백 년을 살았으며 그 장구한 세월동안 혼원소를 연구하여 무수한 무공과 술법을 창안했다.> 두 손을 모아 결을 쥔 원시천존. 몸에서 벼락같은 것이 수없이 일어나서 벽과 천장에 문양들을 새기고 있다.

<그 결정체가 혼원동천 내부에 새겨져 있는 문양들이다. 혼원조화결(混元造化訣)이라는 그 비결을 깨우치면 천지조화를 뜻대로 할 수 있다고 한다.> 벽과 천장에 새겨지는 문양들. 지금과 같다

<하지만 혼원조화결은 너무도 난해하여 평범한 인간들은 수백 년을 노력한다 해도 깨우칠 수가 없다.> 일어나서 자신이 새긴 문양들을 올려다보는 원시천존

<이에 원시천존은 혼원조화결의 일부를 발췌하여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비결을 만드니 그것이 혼원천자결이다.> 두 장의 천을 보는 원시천존. 두 장의 천에는 <混元千字訣>이란 제목이 적혀 있다.

<혼원천자결은 상(上), 하(下)로 이루어졌는 바 상편에는 술법(術法)과 내공(內功)의 이치가, 하편에는 마법(魔法)과 초식(招式)의 비결이 담겨져 있다.> 두 장의 원천자결의 모습을 배경으로

<원시천존은 자신의 뒤를 이어 혼원조화결을 완성해줄 인재를 기대하고 혼원천자결 상, 하편을 세상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날개가 달린 것처럼 펄럭이며 동굴 밖으로 날아가는 두 장의 천. 그걸 동굴 입구에 서서 보고 있는 원시천존

<하지만 원시천존의 의도와 달리 혼원천자결은 무림에 거대한 두 개의 세력을 태동시켰을 뿐 혼원조화결을 완성시킬 인재를 유인하지는 못했다.> 화산 밖으로 새처럼 날아가는 두 장의 천 조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다.

<혼원천자결에 의해 세워진 세력이 바로 신선부와 마귀동이다.> 꽃밭에 서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여자가 신선부의 창시자인 신선낭낭이다.

<신선부는 술법과 내공의 비결을 담고 있는 혼원천자결 상편을 바탕으로 창건되었으며...> 신선낭낭이 두 손을 들어 하늘에서 날아 내려오는 천을 받으려는 모습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마귀동은 마법과 초식을 숨기고 있는 혼원천자결 하편에 의해 탄생되었다.> 지옥같은 전쟁터. 온몸이 피에 젖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군 복장의 사내가 역시 두 손을 들어 천조각을 받으려는 모습. 칼이 바닥에 꽂혀있고 사내 주변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있다. 이 자가 마귀동의 시조인 마귀조종이다.

<신선부와 마귀동은 대조적인 성격의 비결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때문에 필연적으로 서로를 적대할 수밖에 없었다.> 위 장면에 나온 신선낭낭과 마귀조종이 대치하는 모습. 두 사람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있다. 신선낭낭 뒤의 사람들은 모두 선비같은 모습인 반면 마귀조종 뒤쪽의 사람들은 흉악한 인상이고 무기를 들었다.

 

청풍; (신선부와 마귀동은 그 내실을 아는 사람들이 없는 전설 속의 문파들이다.)

청풍; (헌데 그 두 문파의 뿌리가 원시천존, 정확히는 이곳 혼원동천이었던 것이다.) 수정구슬을 보며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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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高手刺殺隊

 

 

 

섬서성에서 발원되어 대별산맥을 따라 호북성으로 흘러드는 물이 있다.

한수(漢水)라고 불리는 이 강은 호북성에서 크게 돌아 흐르는데 그 바람에 물의 흐름이 느려져서 굴곡이 심한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산 줄기를 따라 흐르는 한수는 곳곳에 만(灣)을 이루고 있고 그러한 곳마다 대개 하나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이 밖에서 보아 쉽게 찾기 어렵기 때문에 바람을 피하기도 좋고 도적의 피해도 적기 때문이다.

또한 물살이 느리니 고기를 잡기도 좋은 강이 한수였다.

다른 곳에서는 어황이 좋지 않을 때가 있어도 이 한수는 늘 물고기가 풍족하다.

장마철이 되어 장강의 물이 역류하면 물고기들이 맑은 물을 따라서 한수로 거슬러 올라오기 때문이다.

올라올 때는 올라오지만 한수의 물은 완만하기에 그 고기들은 쉽게 장강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물살이 완만하고 굴곡이 심한 이 한수에서도 유독 한곳만은 배들이 근처에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어찌나 빠른지 물이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흑성소(黑星沼),

 

맑은 물위에 있는 단 한 곳의 검은 점처럼 존재하는 곳이기에 어부들이 흑성소라고 부르는 곳...

이곳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흑성소를 지나서 있는 좁은 만은 바퀴처럼 휘어져 있으며 그속에는 무림에서 전설적인 악명을 날리고 있는 어떤 세력의 특별한 목적을 위한 시설이 있을 줄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구우우우!

비둘기 한마리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흑성소 위를 지나 그 뒤쪽의 좁은 골짜기로 날아들어갔다.

 

× × ×

 

[오늘 또 한놈을 보낸다고 하는군.]

[그럼 마지막 놈이로군.]

[이번놈은 자질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

방금 전해진 전서를 탁자위로 휙 던져버리며 세모난 얼굴의 노인이 말했다.

그러자 그의 맞은 편에 있는 새까만 얼굴에 흰수염이 가득하고 눈만 반짝이는 노인이 말했다.

[이곳에 오는 놈들 중에서 대단하지 않다는 놈들이 있기나 했나? 실제로는 모두 그저 그런 정도일 뿐이었지만... ]

[다르다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다 못해 물건이라도 말이야. 흐흐흐...]

세모난 얼굴이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끼익!

깜둥이 노인이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갔다.

[오늘 보냈다고 했으니 며칠 후에야 도착하겠군. 난 놈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나 살펴보겠네.]

 

밖에는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깜둥이 노인이 나온 그 집만이 제법 클 뿐, 그 아래로는 마당이 하나씩 달린 작은 집들이 백여 개나 늘어서 있었다.

그 아래쪽은 강물이 들어와 있었고...

한데 노인이 나온 집을 제외하곤 어느 집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또한 그 집들은 작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모두가 불에 구운 기와를 얹었으며 역시 불에 구운 벽돌과 돌을 사용해서 벽을 만든 것들이었다.

바람도 직접 받지 않는 곳에 지어졌으니 수백 년, 또는 천년을 지난다 하더라도 허물어지지 않을 것같았다.

스으...

노인은 허깨비처럼 둥둥 날아서 한채의 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치 나비가 그렇게 하듯이 그집의 울타리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쓰륵!쓰륵!

풀벌레 소리만이 이따금씩 들릴 뿐 사방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휘익!

노인은 울타리 밖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길고 가느다란 풀잎 하나가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후우욱!

노인은 손바닥에 풀잎을 올리고 살그머니 불었다. 풀잎은 바람을 타고서 집으로 날아갔다.

한데 풀잎이 막 창을 넘어가는 순간,

파파팍!

백색도광이 솟구치며 풀잎이 수백조각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쌀알같은 크기로 변한 풀잎의 잔해들이 무서운 속도로 반탄되어 나왔다.

쇄애애액!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매를 슬쩍 흔들었다.

스스스!

풀잎의 잔해들은 집을 찾아 날아드는 벌들처럼 그의 소매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검은 얼굴의 노인은 다시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여기가 연백곡(鍊魄谷)이오?]

갑자기 그의 삼장 앞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휘리리릭!

흑면노인은 허공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며 십여 장 밖으로 물러섰다.

[웬놈이냐?]

노인이 준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데 그가 단번에 십여 장을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 삼장 쯤에 검은 인영이 서있었다.

(이런....!)

노인은 다시 오장을 더 물러났다.

스읏!

그러나 검은 인영은 다시 똑같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아직 연락을 받지 않았소? 지금 쯤 연락이 됐으리라 생각했는데...]

[네... 네놈이 파혼검(破魂劒)이란 놈이냐?]

노인은 경악하며 물었다.

그 순간이다.

파앗!

그의 눈앞에서 은빛이 번득였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당신은 나를 놈이라고 할 자격이 없소.]

철컥!

검이 칼집을 찾아서 꽂히는 소리가 났다.

노인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앞가슴 옷이 반으로 베어져 있었다.

(무... 무서운 놈이다.)

그는 식은 땀을 흘렸다.

[내가 있을 곳은 어디오?]

노인은 엉겁결에 제일 아래쪽, 그리고 구석진 곳에 있는 집을 가리켰다.

검은 인영이 흰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잘해봅시다.]

노인은 그제서야 검은 인영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각진 얼굴에 눈에서 턱까지 두 가닥의 검상이 있는 자였다.

검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파혼검은 터벅 터벅 자신이 배정받은 집으로 걸어갔다.

노인은 화석이 된듯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파혼검... 흑백쌍사(黑白雙邪)의 흑사(黑邪)인 나 우문추(于文秋)가 그의 단 일검을 피하지 못했다. 무서운 놈이다.)

 

-흑백쌍사(黑白雙邪),

 

이들은 백여 년 전 무림에서 활동했던 사파(邪派)의 절정고수들이었다.

석년의 그들은 지금의 십대 고수들에 비해서 그 성명에서 떨어지지 않던 인물들이었다.

흑사 우문추는 축쳐진 어깨로 제일 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파혼검(破魂劒),

 

그는 자기의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슴을 헤치고 무엇인가를 꺼냈다.

새까만 오죽패(烏竹牌)였다.

 

<검종(劒宗)>

 

오죽패에 홈을 파고 은(銀)을 먹여 만든 글씨, 그것은 검종맹의 신물이었다.

(후후! 석아우의 뜻과 달리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고 말았군. 하지만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파혼검은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강함을 추구하는 자들...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마!]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 × ×

 

 

[이것은 마지막 남은 필사본(筆寫本)이다. 얼마나 익히는가는 전적으로 네게 달렸다.]

세모난 얼굴을 가진 백사(白邪) 마소악(馬掃惡)이 세권의 얇은 책을 주며 말했다.

파혼검은 무심한 듯이 말했다.

[거기에 놓고 가시오.]

마소악의 눈이 새파란 살기를 뿜었다.

[네가 강하다는 말은 흑사로 부터 들었다. 하지만, 겨우 우리같은 늙은이 하나를 이길 수 있다고 해서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이곳엔 너 못지 않은 자들이 적지 않다. 경거망동은 하지않는게 좋을 거다.]

[나도 한마디 하겠소. 흑백쌍사가 악독하다는 말은 들었소. 하지만, 내 행동에 대해선 간섭하지 않는게 좋을 거요. 간밤에 이곳의 규칙을 읽어보니까 당신들은 쓸모없는 존재더군.]

파혼검이 냉소하며 말했다.

마소악이 살기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무슨 뜻이냐?]

[후후후! 당신들은 우리가 무공을 연성할때까지 뒷바라지나 하는 역할에 불과하더군.]

파혼검의 음산한 어조가 이어졌다.

[명목상의 지위야 그럴듯하지만... 아마도 우리의 무공이 연성되고 난 후엔 무용지물이 될 사람들이 당신들이지. 어쩌면 맹주는 당신들을 제거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마소악은 흠칫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맹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린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수도 있다. 맹주는 서로간의 약속에 의해 다른 무공들을 익힐 수 없지만 우리는 삼마경을 다 보았다. 훗날, 아니 훗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금의 공력을 폐하고 삼마경을 익히기만 한다면 그들을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맹주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파혼검이 그의 속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를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는 게 좋을 거요. 더불어, 늙은 개같은 목숨이지만 살아서 나갈 궁리도 하는게 좋겠지.]

마소악은 간이 떨리는 것같았다.

그는 아무소리도 못하고 돌아서서 나갔다.

파혼검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속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자들은 모두 세상에서 보기 드문 기재들이다.

또한 그들은 저주받은 악마의 무공이라는 삼마경을 익히고 있다.

삼마경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때까지의 내공을 완전히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직 초보적인 지금은 그렇게 강하다고 할 수 없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강해질 것이다.

검종맹주인 부운청풍객 심제을의 밀명을 받은 자가 있다면 마소악과 우문추, 두 껄끄러운 존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마소악의 마음속에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었다.

 

파혼객은 삼마경을 펼치지 않았다.

그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가장 무서운 적은 삼마경이다. 어느 누구든 한번 빠지기만 하면 결코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악마의 무공... 이것을 익히기 보다는 파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이것을 익히기 위해 지금 공력을 폐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무치무요를 익혔으니 다른사람보다 유혹에 잘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삼마경 앞에서는 나도 장담할 수없다.)

무치무요를 익혔다!

그렇다면 파혼검은 바로 금사종이란 말인가?

어쨌든 파혼검은 자신의 혈도를 스스로 눌렀다.

앞으로 세 시간 동안 그의 혈도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책장만 넘길 수 있게 된 그는 그제서야 삼마경 중 제일 위에 놓여있는 검마경(劒魔經)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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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사년만의 出道

 

 

“으하하하!”

창룡(蒼龍)의 울부짖음인가?

천지를 뒤흔드는 우렁찬 장소가 북안탕을 뒤흔들었다.

휘―― 익!

돌연, 자욱한 신무애의 신무 속에서 한 줄기 인영이 폭사되어 날아 올랐다.

그 인영은 석벽을 따라 수직으로 날아 오르는데 그 빠르기가 전광같았다.

휘――르르!

삽시에, 그 인영은 신무애의 단애 위로 치솟아 까마득히 삼십 장 허공으로 치솟았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천하에 누가 이런 경공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염연히 그 인영은 절세의 경공으로 신무애를 날아 오른 것이다.

위―― 잉!

허공에서 멈칫 하던 그 인영은 방향을 틀어 단애 위로 떨어져 내렸다.

스스스!

마침내 그 인영은 단애 위로 내려섰다.

물론, 그 인영은 제연연을 등에 업은 적연흥이었다.

“우하하핫!”

지면에 내려선 적연흥은 털썩 지면에 무릎을 꿇으며 대소를 터뜨렸다.

얼마만에 밟아 보는 지면인가?

발밑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지면의 감촉이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좀체 흥분하지 않는 적연흥이건만 이 순간만은 가슴이 터지는 듯한 감흥이 솟구침을 어쩔 수 없었다.

“흑……!”

적연흥의 등에서 내린 제연연의 눈에서 뜨거운 이슬 방울이 흘렀다.

입은 분명히 웃고 있으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이다.

“……!”

적연흥의 두 눈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상공!”

제연연이 눈물을 닦으며 다가섰다.

“누님!”

“상공!”

두 남녀는 으스러져라 서로를 끌어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슴이 크게 요동을 침을 느낄 수 있었다.

꼭 끌어 안은 두 남녀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영원히 그대로 있을 듯이,

이윽고, 적연흥은 고개를 들어 제연연을 바라보았다.

제연연은 촉촉히 젖은 맑은 눈으로 적연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상……상공…… 꿈이…… 꿈이 아니겠지요?”

제연연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다는다는 듯이 묻자 적연흥은 빙그레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누님, 꿈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 신무애를 빠져 나온 것입니다.”

제연연의 봉목에 다시 핑그르 물기가 돌았다.

“상공! 사랑해요! 상공!”

제연연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적연흥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누님!”

적연흥도 영원히 놓지 않겠다는 듯이 제연연의 교구를 끌어 안았다.

뜨거운 애정의 격류가 두 사람의 가슴을 요동치며 흘러갔다.

잠시 후, 양인은 아쉬운 표정으로 떨어졌다.

“이제 그만 내려 가셔야지요. 어머님께서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연연이 큼직한 짐보퉁이를 집어 들며 말하자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히에 찬 눈길로 신무애를 내려다보았다.

신무애에서는 여전히 꾸역꾸역 신무가 솟구치고 있었다.

‘신무애…… 너는 사년 동안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저 평범한 산촌의 아이였던 나에게 천하를 짊어질 만한 힘을 주었다.’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오리라.’

적연흥은 천천히 돌아섰다.

“누님! 가십시다.”

“네!”

두 남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파――앗!

휘――잉!

일진선풍이 부는가 싶었는데 두 남녀는 이미 백 장 밖을 달리고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공 중의 하나인 비천어기신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초춘(初春)이건만 견디지 못할 정도로 덥군요.”

제연연이 달리며 말하자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사년 동안 극음빙천의 한기를 쏘이며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다소 시간이 지나면 몸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적연흥의 말에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앗!”

제연연이 맑은 일갈을 터뜨렸다.

“하하하핫!”

적연흥의 호탕한 장소가 그 뒤를 따르며 두 남녀는 오십여 장 높이의 절벽을 날아 내렸다.

“그 가죽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적연흥은 제연연이 등에 메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은 한령토황우(寒靈土黃牛)의 정수를 추출하여 만든 한령지황유(寒靈地黃油)예요. 한령토황우 천근을 써서 만든 것이에요.”

적연흥은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하하……언제 그런 것을 만드셨습니까?”

“출곡하면 은하궁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만든 것이었는데 예상 외로 빨리 출곡하게 되어 이것 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하하……역시 누님의 성품은 참으로 치밀하십니다.”

두 남녀는 밟게 웃으며 북안탕의 험준한 산령을 날아 내렸다.

 

***

 

“으음…….”

적연흥의 입에서 침중한 신음이 흘렀다.

적연흥의 앞에는 퇴락한 초옥이 한채 서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오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적연흥과 그의 어머니가 살던 초옥이었다.

“상공, 어머니께서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나신 것이 아닐까요?”

제연연이 안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밖에 생각이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셨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셨는지…….”

적연흥은 침중히 말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도 역시 오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낡을대로 낡아 있었다.

적연흥은 쓸쓸한 심정과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운 발길을 집밖으로 떼어 놓았다.

“아버님께 문안을 드려야 겠습니다.”

적연흥은 집뒤의 둔덕으로 올라갔다.

의외로 분묘만은 깨끗이 다듬어져 있었으며 전에는 없던 비석마저 서 있었다.

“아버님, 소자 연흥, 이제야 문안 드리옵니다.”

적연흥은 묘앞에 절을 올리고 꿇어 앉았다.

제연연도 적연흥을 따라 절을 올린 뒤 그의 뒤에 시립했다.

적연흥은 한동안 묘앞에 앉아 회상에 잠겼다.

옛날의 일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가며 그럴 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침중해져만 갔다.

“아니…… 웬 분들이십니까?”

문득, 한 명의 노인이 둔덕으로 올라오며 말을 건넸다.

적연흥은 천천히 일어나 돌아섰다.

그의 시선에 좀 더 주름이 늘었으나 눈에 익은 한명 노인의 모습이 띄었다.

“선우 할아버님이 아니십니까?”

적연흥이 반색을 하며 정중히 허리를 굽히자 노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신선(神仙)같이 청수한 청년이 아는 듯이 인사를 했기 때문에.

“귀인께서 뉘신데 이 늙은이를 알아보시오?”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소자, 이 아래의 초옥에서 살던 연흥이옵니다.”

적연흥의 말을 들은 노인의 두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노인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적연흥의 얼굴에서 옛날의 모습을 찾아 내었다.

노인은 덥석 적연흥의 손을 잡았다.

“그렇구먼, 우리 마을의 호신(護神)이셨구먼, 그래 그동안 어디 있었기에 마을에 한 번도 들르지 않으셨는가?”

노인이 격동에 차 말하자 적연흥도 미소를 지으며 노인의 손을 잡았다.

“소자 한곳의 절지에 빠져 이곳에 들를 수가 없었사옵니다. 하온데 저희 어머님께서는…….”

노인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잠시 잊었군. 사년 전 자네가 산중에서 변을 당했다는 소문이 난 직후, 한분의 신선께서 마을에 오셔서 자당을 어디론가 모셔가셨네.”

적연흥의 뇌리에 퍼뜩 모산독군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모산의 할아버지이시리라. 모산의 할아버지께서 모셔가셨다면……무고하시겠구나.”

“그후 일 년만에 돌아 오셔서 자네 선친의 묘에 제사를 지내셨네. 그때 보니 자당께서도 마치 여신선같이 변해 계시더구먼, 그후 매년 자네 선친의 기일에 이곳에 들르셨다네.”

적연흥의 얼굴이 펴졌다.

‘모산 독성곡(毒聖谷)에 가면 어머님을 뵐 수 있겠구나.’

그는 노인에게 포권을 했다.

“할아버지.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러자 노인이 완고하게 그의 소매를 잡았다.

“무슨 소린가? 오랜 만에 마을에 돌아와서는 금방 훌쩍 떠나려는가? 자! 마을로 가세. 마을 사람들이 자네가 무사한 모습을 보면 기뻐할 걸세.”

노인이 잡아끌자 적연흥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지. 사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구나.’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폐를 끼치겠습니다.”

“허허…… 폐라니…… 무슨 섭섭한 말인가? 자 가세 어서……”

적연흥은 노인에게 잡아끌리다시피 마을로 들어갔다.

제연연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적연흥과 노인의 뒤를 따랐다.

산중의 한촌에서는 때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

 

휘르르――

언뜻, 두 줄기 인영이 허공을 가로 질렀다.

정오 무렵이었다.

“누님. 잠깐 쉬어 가십시다.”

두 줄기 인영 중 하나가 표표히 지면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휘르르――

뒤미처 한 줄기 왜영이 그 뒤를 따라 내려섰다.

그들은 물론 적연흥과 제연연이었다.

그들은 사년 동안 걸치고 있던 헌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삼베로 만든 검소한 의복을 걸쳤으나 두 남녀의 뛰어난 용모는 조금도 감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깨끗한 계류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계류에 담갔다.

“총망중에 만든 옷이라 엉성하지만 산을 내려갈 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제연연이 살짝 볼을 붉히며 말했다.

그들이 걸치고 있는 의복은 제연연이 지난밤에 밤을 새워 만든 것이다.

그녀는 엉성하다고 말하지만 산촌의 노부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빠르고도 정확히 만들어진 의복이다.

“하하……아닙니다 누님, 누님이 만들어 주신 이 옷이 너무도 잘 맞습니다. 평생 입고 있으라고 해도 입을 수 있습니다.”

“고마워요, 상공.”

두 남녀의 시선이 따스하게 뒤엉켰다.

두 사람은 물가에 앉아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준 건량으로 요기를 했다.

문득, 건포를 씹고 있던 제연연이 입을 열었다.

“몇년 후면 북안탕에 고수(高手)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생기겠군요.”

제연연의 말에 적연흥은 빙긋이 웃었다.

적연흥은 자신이 살던 산촌의 청년들에게 내공심법과 만절철환연(萬絶天幻連)의 초식을 가르쳐 주었다.

마을에 생길지도 모를 우환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지금 당장에야 별 성과가 없지만 몇년 지나면 청년들이 만절천환연의 초식을 능숙히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림에 나가도 일류고수로 통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은 큰 욕심이 없고 착한 사람들이라 아마 무림에 나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요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아―― 악!”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매우 멀리서 인 비명인지라 극히 낮았으나 적연흥과 제연연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런 평화스러운 곳에 혈풍(血風)이라니!”

적연흥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이곳은 아직 북안탕의 권역이다.

적연흥은 이 북안탕에서 무림인들의 분규가 이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다.

“상공! 가보시겠사옵니까?”

“가보십시다. 누님!”

“네!”

양인은 즉시 몸을 날렸다.

두 남녀의 신형은 한 줄기 선풍같이 수림 위를 날아 나갔다.

 

***

 

창! 차창……

펑…… 펑―― 펑!

“아악! 으아악!”

두 사람은 삽시에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지는 소성이 들리는 곳에 이르렀다.

“잠시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강호 경험이 많은 제연연이 적연흥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요.”

적연흥도 고개를 끄덕였다.

휘르르……

두 사람은 가지가 무성한 소나무 위로 날아 올랐다.

소나무 가까이에 여러 명의 고수들이 있었으나 누구도 두 사람이 나무 위로 날아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두 남녀의 신법이 은밀했던 것이다.

적연흥은 은신한 채 장내를 내려다보았다.

펑――펑!

“아――악……”

“크―― 윽!”

그 순간에도 몇 명의 인물이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이십여 명의 청의검수(靑衣劍手)들이 다섯 명의 혈인(血人)들과 싸우고 있었다.

한데 한눈에 보아 숫적으로 몇 배 우세한 청의검수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혈인(血人)들은 무슨 기공을 익혔는지 전신이 칙칙한 혈무(血霧)에 휩싸여 있었다.

‘저 혈무는 일종의 강기(罡氣)구나.’

적연흥은 침중한 안색으로 혈의인들을 노려보았다.

청의검수들의 검세가 혈무에 닿기만 하면 맥없이 튕겨 나가는 것을 본 것이다.

“으음!”

제연연의 몸이 문득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놀란 눈빛으로 장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님! 저들을 아십니까?”

적연흥이 전음으로 묻자 제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검세를 보건대 청의인들은 호남(湖南)의 명문인 신검장(神劍莊)의 제자들이예요. 그리고 저 혈무에 뒤덮여 있는 자들은 전설 속의 사파인 혈무곡(血霧谷)의 인물들이예요!”

“혈무곡!”

“네, 이백 년 전에 한번 무림에 나타나 전 무림을 혈풍으로 몰아넣었던 자들이예요.”

제연연의 말을 들은 적연흥의 눈이 번뜩였다.

“아――악!”

그 순간에도 신검장의 수하들이 혈인들에 의해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안되겠습니다. 이대로 가면 신검장의 검수들이 몰살당할 것 같으니 제가 도움을 주어야……”

적연흥이 일어서려하자 제연연이 황급히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보세요. 이 주위에 저희 말고도 또 다른 고수가 있어요. 그가 곧 몸을 드러낼 것이예요.”

제연연의 제지에 적연흥은 물러 앉으며 급히 청력을 기울였다.

“역…… 역시……”

적연흥은 감탄의 눈으로 제연연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막강한 내공을 지닌 한 명의 인물이 은신해 있었다.

분명 적연흥의 공력이 제연연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적연흥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제연연이 발견한 것이다.

“무림에서 살아 나가는 데에는 무공보다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될 경우가 많아요. 항시 주위 환경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만해요.”

“알겠습니다. 누님.”

적연흥이 전음으로 대답할 때였다.

“호호호홋!”

돌연, 한 줄기 여인의 교소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엇?”

“앗! 누구냣?”

장내의 인물들은 황급히 손을 멈추고 물러섰다.

그때,

휘――익!

한 줄기 백영이 허공을 가르며 장내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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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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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가슴에 나있던 치명적인 상처가 완전히 나았다. 마치 환골탈태한 것처럼 상처의 흔적도 사라졌고...)

청풍;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랫배를 만지고

청풍; (아랫배 단전에 상상을 초월하는 잠력이 도사리고 있다.) (내공이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막강해진 원인이 이 잠력인 모양인데...) 아랫배 만지며 흥분

청풍; (잠력의 극히 일부만 내 것이 되었음에도 내공이 거의 일갑자 수준이 된 것 같다.) 생각하다가

자신이 위극겸의 시체를 끌어안다가 감전되던 장면 떠올리고

청풍; (바로 그게 원인이었다.) 돌아보고. 하지만

위극겸의 시체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옷과 신발, 염왕아만 남았다.

청풍;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저 인물은 자신의 시신에 바로 뉘어주려는 사람이 자신의 내공을 얻을 수 있게 안배를 해놓고 죽었다.) (시신은 그 과정에서 소멸되었을 테고...) 옷과 염왕아가 있는 쪽으로 가고

청풍; (점점 더 이 인물의 정체와 사연이 궁금해진다.) 옷가지 옆에 한 무릎을 꿇고

청풍; (이 옷 어딘가에 이 인물이 누군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으면 좋겠는데...) 슥! 먼저 위극겸의 등에 꽂혀있던 염왕아를 집어든다

두 손으로 염왕아를 들고 보는 청풍. 전체가 검고 손잡이 끝에 귀신 머리 장식이 달려있고 칼날에도 귀신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閻王牙>라는 글이 손잡이에 새겨져 있다.

청풍; [염왕아(閻王牙)! 염라대왕의 송곳니...] 글을 읽으며 놀라고

청풍; [너무도 무서운 이름을 지닌 비수다.] [이름에 어울리게 무시무시한 살기를 품고 있는 것도 느껴지고...] 징징! 약간 진동하는 염왕아를 보며 침 삼키고

청풍; [절세의 신병인 건 분명하지만 어쩐지 사용하기는 꺼려지는 물건이다.] 슥! 염왕아를 조심스럽게 옆에 내려놓고

청풍; [부디 옷 속에 이 인물의 신세 내력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있길 바랄 뿐이다.] 옷을 조심스럽게 들추고. 겉옷과 속옷이 함께 들어있다. 헌데

들추는 옷 아래쪽에 또 글이 있다.

청풍; [또 글이 있다.] 놀라며 옷을 완전히 치우고. 그곳에도 피로 쓴 글이 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필시 마음이 바르고 정이 많은 의인(義人)일 것이다. 그리고 의인이기에 나의 시신에 연민을 느껴 인정을 베풀려고 했을 것이다.> 바닥에 적린 한자를 배경으로 글의 내용을 나레이션으로

 

청풍; [의인이라니... 쑥스럽구만.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 멋쩍게 웃고. 이어 글을 읽는다.

 

<염치없지만 그대에게 한 가지 간절한 부탁이 있다. 훗날 나의 등에 꽂혔던 비수 염왕아를 알아보는 자를 만나면 불문곡직 죽여 달라는 게 그것이다.> 이어지는 글의 내용 나레이션

 

청풍; [사람을 죽여 달라고?] 당황

청풍; [이건 좀 가볍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닌데...] 다시 글을 읽고

 

<그자는 천하를 망칠 극악한 악인이니 죽이는 데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또한 그자를 죽일 수 있는 힘은 이미 그대의 몸에 깃들어 있다. 본인이 평생 수련한 내공을 이체전령(異體傳靈)의 술법으로 이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글의 내용을 나레이션으로 표기

 

청풍; [나를 감전시킨 그 술법이 이체전령이라는 것이었구나.] 자신이 위극겸의 시체를 안으려다가 감전되었던 장면 떠올리고

청풍; [대체 어떤 술법이기에 자신의 내공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이전시켜줄 수 있는 것일까?] 눈 반짝

청풍; [가장 효율이 좋다는 불문의 개정대법(開頂大法)으로도 전체 내공의 일할 남짓 밖에는 이전해주지 못한다고 하는데...] 갸웃하며 글을 읽고

 

<악적을 죽일 방도가 본인의 옷 속에 숨겨져 있으니 확인하기 바란다. 아울러 노파심에서 다시 한 번 부탁하는 바이다. 악적을 죽이는 일은 비단 본인 개인의 원한을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임을 명심하라.> 글의 내용을 나레이션으로. 더 이상은 글이 없다.

 

청풍; [죽음을 앞두고도 이렇게 신신당부를 한 걸 보면 이분을 시해한 자는 정말 용서받지 못할 악인일 것이다.] 끄덕, 이어

청풍; [고인의 유언은 소생 이청풍이 확실하게 접수했습니다.] 무릎 꿇고. 글을 향해 절을 한다.

청풍; [염왕아를 알아보는 자는 반드시 제 손으로 처단할 것을 맹세드리니 영면하십시오.] 절하고 고개 들고. 이어

청풍; (이 옷 속에 그 범인을 처단할 방도가 숨겨져 있단 말이지?) 옷을 들어 뒤지고 그러다가

흠칫! 하며 겉옷 안쪽을 보고.

등 부분인 그곳에 손수건만한 천이 붙어있다. 글이 적혀있는 천이다.

청풍; [찾았다.] 옷을 바닥에 펼치고. 온 안쪽에 붙어있는 천이 보이도록

그 천은 옷 안쪽에 대충 꿰매 놨다.

청풍; (워낙 중요한 것이라 늘 몸에 지니고 다니기 위해 옷 안쪽에 대충 꿰매 놓은 것 같다.) 툭! 툭! 조심스럽게 천을 떼어내고

천에는 갑골문자 같은 것이 가득 적혀있다

청풍; (이건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는 고전체(古篆體)다.) 두 손으로 천을 들어서 읽고

청풍; (물론 나는 고전체를 해독 하는 게 가능하다.) 눈 빛내며 읽고

청풍; [혼원천자결(混元千字訣)?] 갸웃

청풍; [혼원의 이치를 일천자로 설명하는 진결이라는 건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갸웃거리면서도 읽고. 그러다가

청풍; [이럴 수가...]

청풍; [불과 일천자이지만 종횡으로 연결하면 무수한 문장이 된다.] [일천자로 혼원의 이치를 설명하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것 같다.]

청풍; [이건 특정한 무공이 아니라 온감 무공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는 비결이다.]

청풍; [과연 누가 이토록 심오한 비결을 만들어냈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어 <混元洞天>이라는 글이 새겨진 문을 보고

청풍; [그 해답이 혼원동천이라는 저 문 안에 있을 것 같다.] 일어나려 하고. 그러다가

바닥에 내려놓은 염왕아를 돌아보고

징! 징! 약간 진동하는 염왕아.

청풍; [두고 가지 말라고 칭얼대는 건가?] 피식 웃으며 염왕아를 집어들고

청풍; [불길한 기분이 드는 칼이긴 하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사용해주마.] 염왕아를 허리띠에 끼우고.

청풍; [그럼 하늘이라 불리는 혼원동천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해볼까?] 석문으로 다가가고. 그러자

덜컹! 석문이 조금 움직이고

청풍이 흠칫! 하며 멈출 때

그그긍! 두 쪽으로 이루어진 석문이 안쪽으로 천천히 열린다. 열리는 문 안쪽에서는 신비로운 빛이 흘러나오고

청풍; (문이 저절로 열린다.) 놀라며 문으로 다가가고

청풍; (내가 자격이 있으니 들어오라는 것일까?) 문 안쪽으로 들어가고.

청풍; [오오오!] 문 안쪽으로 들어서다가 두눈 휘둥그래져서 놀라고

 

#80>

쿵! 청풍이 들어선 장소는 마치 공같이 생긴 공간. 내부는 완전한 원형이라 공의 안에 들어간 것 같은데 바닥만은 평평하다. 천장의 정 중앙에는 태양같은 형상이 그려져 있고. 그 외에도 공 같은 공간 내부에는 무수한 선과 문양이 가득 그려져 있어 어지럽다. 또한 바닥 정 중앙에는 원형의 단상이 하나 있는데 그 단상에는 완벽란 구형의 수정구슬이 얹혀져 있다. 농구공만한 그 수정 구슬 안에서는 우리 은하같은 것이 들어있는데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단상을 가운데 두고 두 명의 노인이 마주 앉아있다.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노인. 바로 #1>에 나온 신선부의 두 고수 흑백신귀다.

공간 내의 이런 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청풍; (화산 깊은 곳에 이런 공간이 존재했다니...) 놀라며 천장과 벽을 보고. 천장과 벽에 무수히 그려진 선과 문양들

청풍; (어떤 기인이 이토록 방대하고도 정교한 문양을 새겨놓은 것일까?) 벽과 천장 보며 중앙으로 가고.

중앙에 수정 구슬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흑백신귀

청풍; (저 두 노인이 이곳을 만든 장본인들일까?) 흑백신귀에게 다가가고

청풍. (오래 전에 죽은 인물들인데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한 걸 보면 절세고수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생각하다가

[!] 눈 번쩍이는 청풍.

구슬이 놓인 단상에 책이 한권 놓여있다. 책의 표지에는 <黑白神鬼 遺稿>라는 제목이 적혀있고

청풍; (이 책...) 집어들고

청풍; (저 두 노인이 후세를 위해 남긴 것일까?) 표지를 보고.

표지에 적힌 <黑白神鬼 遺稿>라는 제목 크로즈 업

청풍; [흑백신귀(黑白神鬼) 유고(遺稿)...] [흑백신귀라는 인물들이 죽기 전에 남긴 글이라는 건데...] 표지를 넘기고

청풍; [흑백신귀... 어느 책에선가 본 것같은 이름인데...] 중얼거리며 책을 읽고. 직후

청풍; [맙소사!] 경악하며 책을 읽고

 

<신선부 제삼단(第三段)의 수령 흑백신귀가 유감을 남기고 죽으며 이 글을 남긴다. 부디 신선부의 후손들이 노부들의 족적을 밟아 이곳 원시천존의 유적에 이르기를 바랄 뿐이다.> 책에 적힌 글의 내용 나레이션

 

청풍; [이... 이제 생각났다.] 책에서 눈을 떼며 흑백신귀를 돌아보고

<이분들이 바로 삼백여 년 전 전설적인 마두들인 구대천마의 발호로부터 세상을 구했던 신선부의 기인 흑백신귀였다!> 실내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놀람 나레이션

 

#81>

<-열흘후> 북경의 모습. 낮

<-북경> 북경의 번화가 모습 배경으로

<-황금전장> 번화가에 자리한 황금전장. 여전히 사람들 북적

 

탁탁! 월동문으로 노루처럼 달려오는 벽옥령.

벽초천의 집무실인 건물을 지키다가 놀라는 황금수라들

[아가씨!] [어서 오십시오.] 급히 인사하지만

벽옥령; [비켜! 비켜!] 휘익! 외치며 정문으로 달려가고. 앞쪽에 있던 황금수라들 급히 물러서고

벽옥령; [아버지!] 덜컹! 문을 거칠게 열고 안으로 뛰어드는 벽옥령

거실에 탁자를 둘러싸고 앉고 서있다가 돌아보는 사람들. 벽초천과 마은혜가 상좌에 나란히 앉아있고 그 옆에 직각으로 벽세황이 앉아있고. 이세창과 타노가 벽초천 앞에 서있다가 돌아본다.

마은혜; [네가 여긴 왠 일이냐 옥령아.] 찡그리며 말하지만

벽옥령; [정말... 소문이 정말이에요?] 마은혜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벽초천에게 외치고

벽옥령; [서안으로 가던 마차가 강물로 추락해서 청풍오빠가 실종된 게 사실이냐구요?] 울상을 짓고

벽세황; [진정해라 옥령아.] 달래려 하지만

벽옥령; [어떻게 진정을 해? 청풍오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발을 동동 구르고.

쓴웃음 지으며 입 다무는 벽세황

벽초천은 찡그리며 말하지 않고. 마은혜는 벽옥령을 찡그리며 흘겨보고

벽옥령; [어떻게 된 건지 말해 봐요 총관!] [소문이 사실이에요?] 이세창에게

이세창; [지금까지 보고가 들어온 바에 의하면 사실이다.] 끄덕

벽옥령; [흐윽!]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이세창; [화를 면한 귀견수가 관부와 개방의 도움을 받아서 수색을 하고 있다고 하니 기다려보자.]

마은혜; [하지만 벌써 열흘 넘게 시간이 흘렀다.] 냉소하듯

벽옥령; [엄마!] 돌아보고

마은혜; [유감이지만 청풍이가 살아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타노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고.

한숨 쉬는 타노. 반면

벽옥령; [안돼요 청풍오빠! 이럴 수는 없어요.] 울면서 휘청하고

마은혜; [옥령아!] 급히 일어나 부축하고

벽옥령; [옥령이는 어쩌라고... 죽으면 안돼요 청풍오빠!] 정신을 놓으며 흐느끼고. 마은혜의 품에 안겨서

마은혜; [이것아 정신 차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벽옥령을 안고 의자에 앉으며 다독이고

마은혜; [하여간 청풍이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아이야.] [요절을 해서 옥령이와 짝이 될 기회도 날려버렸으니...] 짐짓 한숨 쉬고

타노;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런 마은혜를 보며 눈빛이 차가워지고

타노; (만에 하나 청풍이가 당한 변에 관여했다면...)

<마은혜! 당신이라 해도 내 복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실내의 모습 배경으로 타노의 생각 나레이션

 

#82>

#82>

<-만리장성 근처의 음산(陰山)> 험준한 산맥. 나무가 거의 나지 않아 황량하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헉! 헉! 상처 입은 배를 끌어안고 헐떡이며 달리는 여자. <무쌍일지>등에 나온 신소심 캐릭터. 내상을 입은 모습이다. 입과 코로도 피를 흘리고

배에서 흐르는 피.

지친 얼굴. 그때

삐익! 삑! 뒤에서 호각소리가 들리고

신소심; [멀지 않은 호각소리... 곧 따라잡히겠다.] 힐끔 뒤를 보며 중얼.

신소심; [역시 지존회 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는 건데...]

신소심; [하지만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비틀거리며 달려간다. 당찬 표정이고. 하지만

[!] 급히 멈추는 신소심. 앞쪽이 절벽이다.

절벽 끝으로 다가가 아래를 보는 신소심.

절벽 아래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계곡

신소심; [길을 잘못 들었다.] 내려다보고

신소심; [설령 길이 끊어지지 않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뒤를 돌아보고

삐익! 삑! 휘익! 호각소리 배경으로 멀리서 사람들이 날아오는 게 작게 보인다

신소심; [나 신소심(申素心)의 도주극은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웃으며 소매 속에 손을 집어넣고

신소심; [그렇다 해도 지존회, 네놈들의 간악한 음모를 밝히려는 시도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다시 꺼내는 신소심의 손에는 작은 새가 들려있다. 붉은색인데 부리가 좀 크다. 앵무새를 닮았고. 이 새의 이름은 소홍조. 헌데 양쪽 발목이 천으로 칭칭 감겨 있다.

신소심; [소홍조(小紅鳥)! 내 귀염둥이...] 두 손으로 새를 들어서 눈을 맞추고

신소심; [내 한은 네가 대신 풀어주어야만 한다. 할 수 있겠지?]

삐이! 고개 끄덕이며 우는 새

신소심; [힘차게 아버지에게 날아가거라! 도중에 사나운 매를 조심하고...] 휘익! 허공으로 새를 던지고. 그러자

화악!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새

[!] [!] 날아오다가 놀라는 두 명의 노인. 똑같이 생긴 쌍둥이. 무기는 검. 이자들은 다른 작품에 나온 동심쌍로. 위진천의 심복들이다. 추격자들 중 가장 앞쪽에서 날아오던 중이다. 그 뒤로 멀찍이 떨어져서 십여 명의 사내들이 따라오고 있고. 호각을 부는 자도 있다.

동심쌍로의 시점. 절벽 끝에 서서 두 팔을 허공으로 쳐들고 있는 신소심. 그 위로 날아오르는 작은 새의 모습

[이런!] [저 년이 기르던 애완조를 날려 보냈다.] 쌔액! 이를 갈며 속도를 높이고. 아직 거리는 100미터 이상 남았다.

삐이이! 허공으로 높이 날아올라 울면서 날개짓하는 새

[저 새 새끼를 살려 보내면 안되네!] [크왁!] 투학! 쩡! 검을 뽑아 던지는 동심쌍로. 날아오는 자세로. 그러자

쩡! 쐐액! 미사일처럼 새를 향해 날아가는 두 자루의 검.

삐이! 깜짝 놀라며 돌아보는 새. 바로 뒤까지 날아오는 검들. 하지만

휘익! 재빨리 몸을 뒤집는 새. 쐐액! 번쩍! 새가 원래 있던 곳으로 날아지나가는 두 자루의 검들. 이어

삐이! 급강하해서 절벽 아래로 날아 내려가는 작은 새. 두 자루의 검은 멀리 허공으로 치솟고 있고

동심쌍로; [지랄...] [놓쳤다!] 휘익! 휙! 신소심 뒤에 멈춰서며 동시에 손을 쳐드는 동심쌍로. 신소심은 쳐들었던 손을 내리고 있고.

기잉! 가앙! 도로 날아오는 두 자루의 검. 그걸 보면서도 태연한 신소심.

팟! 팟! 쳐든 손으로 검을 받으며 절벽 끝으로 가는 동심쌍로. 그 사이에 다른 놈들도 주변에 도착하고. 하지만

절벽 아래 어디에도 작은 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놓쳤네.] [어디 숨었는지 멀리 날아갔는지 안보이는군.] 절벽 아래를 살피며 이를 갈고

신소심; [안되었네요 동심쌍로(同心雙老)!] [결국 날 막지 못한 셈이 되었으니...] 웃고. 돌아보는 동심쌍로

신소심; [당신들이 항마동천(降魔洞天)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는 곧 세상이 다 알게 될 거예요.] 호호호! 웃고

일로; [망할 년!] 짝! 신소심의 뺨을 후려치고. 얼굴이 홱 돌아가는 신소심

콰당탕! 나뒹구는 신소심. 뺨이 벌개지고 입에서 피가 흐른다.

신소심; [죽일 테면 죽여라.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일어나려 하며 웃고

일로; [너무 좋아하지 마라 망할 년아.] [네년이 소회주의 배려로 길러온 새 새끼가 어디로 가려는지는 알고 있으니...] 냉소하며 돌아서고.

신소심; (이자들이...) 불길한 표정으로 앉고.

이로; [종남산(終南山) 근처에 머물고 있는 혈세사패에게 전서구를 날려보내라.] 주변에 멈춰선 다른 자들에게 외치고

이로; [이년의 집안인 삼절곡(三絶谷)으로 쳐들어가서 개새끼 한 마리 살려두지 말라고...]

신소심; [네... 네놈들이...] 사색이 될 때

[존명!] [분부 받들겠습니다 동심쌍로님!] 대답하는 사내들.

이어 몇 놈은 소매 속에서 비둘기를 한 마리씩 꺼내고. 다른 놈들은 글을 쓴다. 한 놈의 등에 다른 놈이 천을 대고 연필 같은 것으로 쓰고

푸드득! 곧 날아오르는 몇 마리의 비둘기들

동심쌍로; [기대해도 좋다 신소심!] [네년의 허튼 짓으로 피붙이들이 몰살을 당하게 될 테니...] 날아가는 비둘기들을 보며 웃고. 신소심은 주저앉은 채 절망의 표정으로 보고 있고

신소심; (저 악귀들 말 대로 나 때문에 아버지의 안위가 위태로워졌지만 후회는 없다.)

신소심; (천하창생을 위해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니...)

<그저 천지신명의 가호가 우리 집안을 보호해주길 바랄 뿐이다.> 현장의 모습 배경으로 신소심의 생각 나레이션

절벽 중간쯤.

바위틈에 숨어서 위를 기웃거리는 작은 소홍조. 이어

휘익! 날아오르는 소홍조.

절벽 그늘에 숨어 날아가는 소홍조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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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장

 

           혈포단객 (2)

 

 

(읍!)

혈포단객은 이를 악물었다.

고통이,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그의 정신을 하얗게 표백시켜버렸다.

정말 지독한 악녀였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절세고수인 혈포단객은 그녀의 손에 의해 남성을 잃어버렸다.

[호호호호...]

청의여인은 잘라낸 것을 들고 잔혹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손은 피로서 범벅이 되어있었다.

[천천히 죽여주마!]

청의여인은 웃음을 뚝 그치며 사악한 음성을 내뱉었다.

혈포단객의 배가 길게 찢어졌다. 

풀위로 쏟아진 내장이 꿈틀거리며 더운 김을 뿜었다.

흑의인, 즉 절대칠살의 일살(一殺)이 그 내장을 불끈 밟았다.

[나도 네놈의 천근추에 배가 터져서 죽을 번 했지. 이건 공평한 복수다.]

혈포단객의 눈이 하얗게 까뒤집어졌다.

그러나 급격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은 아직도 그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청의여인은 그의 오른 팔을 잘라내며 말했다.

[본녀를 잘도 괴롭혔겠다. 하나하나 잘라내 나무기둥을 만들어주마.]

피가 그녀의 얼굴로 튀었다.

여인이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이렇게 해서는 분이 풀리지 않겠어요.]

혈포단객의 왼팔이 비틀리며 어깨에서 뽑혀나왔다.

혈포단객은 입만 짝 벌렸을 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크흐흐흐...]

일살이 즐거운듯이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청의여인이 혈포단객의 팔을 팽개치며 일살의 허리를 잡았다.

흥분으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발갛게 달아있었다.

그녀는 피를 보면서 강렬한 성욕을 느낀 것이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토하며 일살의 바지를 까내렸다.

여인에게 기습을 당한 일살이 숨을 들이마셨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에서 낮 뜨거운 장면이 벌어졌다. 

[아아! 더 빨리! 더 세게!]

여인은 일살을 힘껏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황홀한 듯 벌어진 입으로는 몸안으로 무엇이 들어오는 만큼 묘한 음률이 흘러나왔다.

한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발로 툭 찼다.

[...?]

섬찟한 느낌에 고개를 들면서도 그녀는 허리를 움직였다.

이미 피어오른 욕구는 죽더라도 풀지 않을 수 없는 그녀였다.

퍽!

일살은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밟는 것을 느꼈다.

[윽!]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사람을 죽이고 이걸로 잔치라도 벌이겠다는 거야 뭐야? 정말 못 봐주겠어.]

돌연 소녀의 투정을 부리는 듯한 낭낭한 음성이 그들의 귓전을 두들겼다.

한몸이 되어 눌린 자세가 된 청의여인과 일살은 피가 싸늘히 식는 것같았다.

[누...누구냐?]

퍽!

소녀의 발의 번쩍 들리워졌다가 일살의 등에 찍혔다.

“...!”

일살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이 턱 막히고 등판이 으스러지는 것만 같았다.

[물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닐 텐데? 이 아가씨가 묻는 대로 대답이나 하시지?]

여전히 한몸이 된 채 누워있는 두 남녀를 내려다보며 소녀는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가랑이를 벌린 자세로 사내에게 깔린 채 청의여인이 말했다.

[뭘 대답해라는 거냐?]

[이 짓이 재미있어?]

소녀가 세운 무릎에 팔을 걸치고 턱을 고이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청의여인은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계집애는 남녀간의 정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처음 구경하는 모양이구나. 이런 풋나귀들은...!)

그녀는 입가에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직접 해보기 전에는 말로 설명해줘도 모를 걸? 골이 뻥 뚫리는 것같은 느낌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어?]

[그래? 그럼 기회가 닿는 대로 나도 해봐야겠군. 하지만 넌 누구야?]

소녀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청의여인은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소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저건 누구의 시체지?]

[...!]

청의여인은 입이 얼어붙었다.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군. 골이 뻥 뚫려버려서 그런 모양이지?]

소녀는 돌아서서 혈포단객의 처참한 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한데 혈포단객의 몸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러고도 살아있다니...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녀는 혈포단객의 무참한 잔해에 눈살을 찌푸리며 보다가 감탄했다.

그때 청의여인은 일살의 혈도를 풀어주며 소리없이 일어섰다.

일살의 복면속 눈알이 악독한 빛을 뿜었다.

소녀는 한쪽에 떨어진 혈포단객의 팔을 발견했다.

[이건 혈포단객의 혈천갑... ]

바로 그 순간이다.

번쩍!

일살의 검이 소리없이 그녀의 등으로 날아들었다.

파앗!

헌데 그 직후 갑자기 소녀의 허리에서 한줄기의 빛이 폭사되었다.

그것은 마치 은뱀처럼 일살의 허리를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 빛은 더욱 멀리 뻗어나가 청의여인의 목을 꿰뚫어버렸다.

푸악!

일살의 허리가 그제서야 두동강이 나며 쓰러졌다.

바지도 입지 않은 하체가 흉칙한 모습으로 피속에 뒹굴었다.

그 악독하던 청의여인도 치마를 걷어올려 허연 하체를 고스란히 들어낸 부끄러운 자세로 숨이 끊어졌다.

추릿!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치켜드는 손목으로 연검이 휘감겨 들었다.

[허리보다 이게 좋을 것같군.]

그녀는 중얼거리며 혈포단객의 미심혈을 눌렀다.

혈포단객의 눈이 희미하나마 빛을 발했다.

[혈포단객이신가요? 안타깝지만 당신은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살아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고맙... 혈천갑... 백검보... 석두공에게... ]

혈포단객이 입술만을 달짝거렸다.

소녀는 다른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백검보와 석두공, 혈천갑, 이 말들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석두공?!]

소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혈포단객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두공을 알고 있어요? 지금 어디에 있죠?]

소녀가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는... 백...]

혈포단객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가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오객(五客) 중 한명으로 평생 다른 누구와도 상종하지 않고 외로운 늑대처럼 독행(獨行)하던 혈포단객의 어이없는 최후엿다.

소녀는 망연한 듯이 중얼거렸다.

[석두공... 석두공... 그가 살아있었어. 그렇게 찾아헤맸던 그가... 한데 왜 가슴이 이렇게 무겁고 답답할까?]

석두공을 찾아다니는 소녀, 그녀는 바로 장지연이었다.

석두공이 떠난 후 뒤따라 왔던 그녀였는데 숲에서 헤매다가 청의여인과 일살의 정사를 목격하고 다가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폭풍무존으로부터 배운 검법으로 절대칠살 중의 두 사람을 순식간에 처치해버렸다.

한데 석두공을 찾아다니면서 정작 석두공의 현재 얼굴은 알지 못하고 진짜 석두공을 만났으면서도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그녀는 혈포단객으로부터 석두공이라는 이름을 듣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뽀송뽀송한 머리털을 가진 석두공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으로 지나갔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장지연은 석두공이 살아있다는 말에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혈포단객을 묻어주고 곰곰히 생각했다.

(혈포단객이 <백>이라고 한 말은 아마도 백검보를 가리킬 것이다. 이미 백검보라는 말을 한번 한 적이 있으니까. 백검보... 석두공... 내키지는 않지만 찾아가지 않을 수 없구나. 사부님의 유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스읏!

질끈 입술을 깨문 장지연은 빠른 속도로 숲속을 빠져나가 동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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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神功을 만들다

 

 

 

“이……이것은……”

제연연이 놀란 눈으로 손에 든 비급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들고 있는 비급은 양피지로 만든 것으로 매우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이 보였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

 

그것은 바로 모산독군이 적연흥에게 준 두 권의 비급 중 하나였다

“그 비급의 유래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적연흥이 담담히 묻자 제연연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림인치고 이 비급을 지으신 분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적연흥의 눈이 빛났다.

“천후독존(天候毒尊)이란 분이 그렇게 유명하신 분입니까?”

제연연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고사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적연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연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부터 근 삼백 년 전이었어요. 무림에는 전대미문의 대마종(大魔宗)이 한명 나타났었어요.”

“대마종(大魔宗)?”

“네, 그는 사상초유의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가 된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라는 인물이었어요.”

적연흥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대단한 인물이었겠군요?”

적연흥은 크게 뛰는 가슴을 느끼며 물었다.

 

천마대조종(天魔大祖宗) 강무(康武)!

 

최초의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로서 초유의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루었던 대마웅(大魔雄)!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적연흥의 가슴은 이유도 없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어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줄이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자신과 천마대조종을 한 몸으로 묶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천마대조종의 이름이 이분을 이토록 흥분시키다니……’

제연연은 내심 놀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그는 보기 드문 대장부였어요. 비록 마도의 인물이기는 했으나 호협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어요.”

제연연은 차분히 이야기를 이었다.

마도에 내려오는 천마혈령검(天魔血靈劍)에 얽힌 전설.

천마대조종이 그 천마혈경검의 주인으로 몸을 일으케 세웠고, 만마(萬魔)와 천파(千派)가 그의 발아래 굴복했으며, 천하가 마기(魔氣)로 뒤덮이리라.

우내사존(宇內四尊)이라는 기인들이 천마대조종에 도전했으나 허무하게 패하고, 드디어 사상초유의 마도천하(魔道天下)가 십년 동안 이어지다.

천하가 마기(魔氣)에 굴복하여 신음하고 있을 때, 패주했던 우내사존이 한 명의 절대기인을 강호로 불러내었으니,

그 이름,

 

-도룡천황(屠龍天皇)!

 

전설의 문파 천황문(天皇門)의 문주 도룡천황이 천마대조종과 결투.

천지변색(天地變色)!

천붕지열(天崩地裂)!

대결전의 결과는 의외로 천마대조종의 패배로 드러나 천마대조종은 울분을 터뜨리며 십년 후를 기약,

다시 십년 후, 천마대조종과 도룡천황은 어디선가 대결전을 벌인 뒤 행방이 묘연해지고,

우내사존이 이끄는 정파연합군이 마도연맹을 괴멸시켰다.

 

제연연의 이야기가 이윽고 끝났다.

“……!”

적연흥은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천마대조종, 도룡천황, 천년후에도 잊혀지지 않은 대영웅(大英雄)들…… 기왕에 든 무공일도(武功一道), 반드시 그들에 못지않은 대종사(大宗師)가 되리라.’

적연흥은 눈을 떴다.

제연연은 적연흥의 두 눈에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결의의 빛을 보았다.

“혹시 천후독존(天候毒尊)이란 고인은 우내사존(宇內四尊)의 한 분이 아니셨습니까?”

“그렇사옵니다. 천후독존께서는 우내사존(宇內四尊) 중 한 분이셨습니다.”

“우내사존(宇內四尊)의 다른 세 분은?”

“풍운검존(風雲劍尊), 독목천존(獨目天尊), 혈룡도존(血龍刀尊) 등이 바로 그분들이예요.”

적연흥은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금 모산 할아버지께서는 당년의 우내사존보다 배 이상 강하시겠군요?”

제연연이 말을 받았다.

“모산의 노선배께서 얻으신 독경이 바로 천후독존(天候毒尊)께서 남기신 독경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마 당년의 우내사존께서 환생하신다 해도 모산 노선배님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예요.”

“오늘부터는 독공(毒功)도 익힐 것입니다. 누님께서도 마음에 있으시면 함께 익히십시오.”

“감사하옵니다. 상공.”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뒤엉켰다.

 

그날부터 두 남녀는 함께 무공을 연마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전 중에 적연흥은 무상반야금강경을 참수하고 오후에는 제연연과 함께 무공을 연마했다.

천후독존유록(天候毒尊遺錄)의 독공은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었다.

독의 사용법,

해독법, 독물(毒物)을 다루는 법,

독(毒)으로 익히는 여러가지 독공 등등……

천하를 울리던 우내사존(宇內四尊)에 독술(毒術) 한 가지로 끼어들 수 있었으니만큼 천후독존의 독술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천후독존의 독술에 놀란 두 남녀는 모산독군이 직접 지은 만황독성진전(萬荒毒聖眞典)을 보았을 때 비로소 천외유천(天外有天)이 있음을 알았다.

만황독성진전에 기록되어 있는 독술은 독공(毒功)이 중심이었다.

가히 경천동지할 위력의 독공이 수십 가지 적혀 있었다.

그 수십 가지나 되는 독공이 하나같이 천후독존의 독공을 능가하는 데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천후독존(天候毒尊)의 최고 독공인 천후융천독강(天候隆天毒罡)은 독문사상 세번째로 강한 독공이었다.

그러나, 모산독군이 최초로 창안한 만천뢰우독강(滿天雷雨毒罡)은 천후융천독강보다 오히려 일이성 정도 강한 듯이 보였다.

모산독군이 최후로 창안한 것은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의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이름하여,

 

<만황패멸독강인(萬荒覇滅毒罡印)>

 

독공(毒功)을 한 줄기 무형의 독강인(毒罡印)으로 만들어 천지사방(天地四方)으로 발출 할 수 있다.

과연 그 위력이 미쳐지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모산독군 자신도 완전히 펼쳐본 적이 없으므로.

고금이래 만황패멸독강인에 비견될 수 있는 독공은 한 가지가 있다.

독문의 조종인 만독노조(萬毒老祖)!

그가 남긴 최고 절대의 독공(毒功)!

 

<파라살황독강류(破羅薩恍毒罡流)>

 

만황패멸도강인과 더불어 유일하게 무형심독강(無形心毒罡)의 경지에 이른 독공.

지금까지는 독문제일독공(毒門第一毒功)으로 공인되어 온 독공이지만 아깝게도 실전되어 전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실상 만황패멸도강인은 천하제일의 독공(毒功)이다.

두 사람은 만년화룡(萬年火龍)의 시신을 해부하여 만년화룡이 지니고 있던 화독(火毒)을 꺼내 나누어 복용하고 독공을 연마했다.

화독 한 가지로는 독공을 연마하기에 많은 부족함이 있었으나 신무애에는 달리 독물(毒物)이 없으니 별 도리 없었다.

제연연은 천후독존의 독공을 주로 연구했다.

모산독군의 허락이 없었으므로 경솔히 모산독군의 진전을 연마할 수 없기 때문에.

제연연이 독의 사용법, 해독법 등에 몰두할 때 적연흥은 독공 중심으로 연마해 나갔다.

독공을 익히는 한편 적연흥은 음산잔마가 전수해 준 천잔경(天殘經)을 연마했다.

천잔경을 지은 천잔수(天殘叟)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였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말도 못할 수모를 겪으며 살아야했다.

결국, 주위 환경이 그의 성품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극히 편협한 성품을 지니게 되었고 자신을 멸시한 모든 사람을 저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상에 한을 품은 한 기인(奇人)의 손에 거두어져 무공을 연마했다.

그의 오성은 극히 뛰어나 불구를 극복하고 일신에 뛰어난 무공을 지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불구라고 멸시하고 천대했던 세상 사람들에게 잔혹한 살수를 펼쳤다.

그의 눈에 벗어나는 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비단 그 자신뿐만 아니라 친인조차도 천잔수의 살수에 피를 뿌려야했다.

자연, 원수는 많아지고 무림전체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천잔수는 언제 어디에서 죽음의 마수가 덮쳐들지 모르는 강호를 용케도 헤집고 다녔다.

수십 차례나 죽음직전에서 빠져 나오곤 하였고 그럴 수록 그의 성품은 점점 더 편협 잔악해져갔다.

또한, 한 번의 위기를 넘길 때마다 그의 무공은 강해져만 갔다.

모두가 그의 뛰어난 오성 때문이었다.

결국, 천잔수가 강호에 발을 들여 놓기 일갑자, 무림천하에는 더 이상 천잔수의 적수될 고수가 없었다.

젊었을 때는 천방지축으로 무림을 휘젓고 다녔던 천잔수도 나이가 들며 주름살이 늘어가자 성격이 변해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무림에 벌려놓은 것이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다 천하를 뒤져도 자신과 맞설 적수도 한명 없는 그 고독감, 천잔수의 최후는 그렇게 쓸쓸히 끝이 났다.

그러한 천잔수의 무공이 담긴 천잔경(天殘經)!

자연히 극히도 실전적이며 잔혹한 수법이 기록되어져 있었다.

무공의 성격이 이러한데다가 천잔경은 외팔 외다리의 인물만이 연마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 때문에 적연흥은 천잔경의 연마를 보기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음산잔마의 배려를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는 어려움을 무릅쓰며 천잔경을 연마했다.

그러나 막상 익히려니 그 어려움은 이루 형언할 수도 없었다.

멀쩡한 팔다리를 반만 사용하려니 이것도 저것도 되지를 않았다.

그냥 남아도는 한팔 한 다리가 걸리적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좌충우돌하는 적연흥을 제연연은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멀쩡한 팔다리를 무엇 때문에 놀리시옵니까? 나머지 팔다리도 함께 사용하시면 되지 않사옵니까?”

제연연의 말을 들은 적연흥은 퍼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렇지, 이 팔다리를 쓸데없이 둘 필요 없지.”

그래서 그는 나머지 팔다리로도 다른 쪽의 팔다리가 펼치는 무공을 똑같이 펼치려 하였다.

자, 그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적연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그의 좌충우돌은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띄었다.

때로 관망하던 제연연의 두 눈이 핑핑 돌아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것은 도대체 무공인지 발광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게 되었다.

“상공, 아니되겠사옵니다. 천잔경은 접어 두시고 미천하나마 저희 은하궁 무공을 연마하시옵소서.”

보다 못한 제연연이 말렸다.

그러나, 그 무렵 적연흥은 그 미친 짓거리같은 행동 속에서 서서히 무엇인가를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연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없이 발광하는 듯한 행동을 계속했다.

원래, 무상반야금강경(無常般若金剛經)은 한 가지 전무후무한 불문선공(佛門禪功)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무상반야금강선공(無常般若金剛禪功)>

 

이것이 소림(少林) 최강의 선공인 것이다.

천년 세월을 거치면서 누구에 의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절대선공(絶代禪功)!

이것이 적연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호신(護身)의 묘용이 있는 무상반야선강(無常般若禪罡)과 공격의 묘용이 있는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으로 나뉘어진다.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은 패도(覇道)적인 강맹함을 지녔다.

금강(金剛)이라 함이 본래 가장 강함(强)을 항마(降魔)란 모든 마(魔)를 누른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금강항마신강(金剛降魔神罡)은 가히 무적(無敵)이라 할 만큼 강했다.

이에 반하여 무상반야선강(無常般若禪罡)은 지극히 유(柔)하며 그 심오함이 끝이 없었다.

이에는 수많은 묘용이 있어 모든 마로부터 심신을 보호해준다.

그중에 분광혜심대법(分廣慧心大法)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생각을 가능케 해주는 기상천외의 대법이었다.

적연흥은 이 분광해심대법의 묘리를 터득해감에 따라 어떤 영감이 스쳐갔다.

즉, 천잔경(天殘經)상의 무공초식은 한 팔과 한 다리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분광혜심대법으로 양팔 양 다리를 다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극히 어려웠다.

그러나 적연흥의 끈기와 뛰어난 심지에 의해 마침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적연흥의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던 제연연은 그저 탄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났을 때, 천잔수의 무공은 적연흥의 손에 의해 완전히 개편되었다.

그 위력은 천잔수가 환생한다 해도 기절초풍하고 말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 새로운 무공은 장(掌), 검(劍), 지(指), 수(手), 각(脚), 경(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이 되었다.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이라 이름붙인 이 무공수법은 천하에서 가장 복잡난해한 수법일 것이다.

적연흥은 만절천환연을 다듬으면서 제연연에게 가르쳤다.

한령토황우를 장복하여 뛰어난 혜지를 지니게 된 제연연이건만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에는 두손 들고 말았다.

자신이 최초로 창안한 무공인지라 적연흥은 만절천환연에 각별히 애정을 쏟았다.

그는 끝없이 만절천환연의 일천백사십구초(一千百四十九招)의 변화를 갈고 다듬었다.

기어코 천하제일의 복잡다단한 무공을 만들겠다는 듯,

 

***

 

‘무슨 일이 있으신 것일까?’

제연연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적연흥을 바라보았다.

지금, 적연흥은 신무애의 석벽을 마주 보고 좌정한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벌써 오일 째 저 상태로 계시니 옥체에 누가 가시지나 않으실지……’

제연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기이하게도 제연연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 나날이 젊어지고 있었다.

이곳에 떨어질 때 사십대로 보이던 그녀였건만 지금은 이십 오륙 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를 않았다.

모두가 한령토황우를 장복한 때문이다.

‘이미 이곳에 떨어진 지도 사 년이 흘렀다.’

제연연은 문득 가득히 운무가 낀 천공(天空)을 바라보았다.

사년(四年)!

이미 사 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적연흥의 나이 이미 이십 세가 되어 완전히 성인이 되었다.

그의 무상반야금강선공은 구성(九成)의 경지에 이르렀다.

만절천환연이란 절기를 창안한 것도 이미 이년 전의 일.

모산독군이 남긴 독문의 진전도 이미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공(內功)을 기르는 외에 미친듯이 서로를 탐하는 일밖에 없었다.

제연연으로서는 적연흥이 있는 한 이 신무애의 절지도 낙원이었다.

하지만, 적연흥은 그렇지 못한 듯, 요즈음 그는 한껏 우울해지고 말수가 적어졌다.

하기는 이제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필요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일 전, 적연흥은 돌연 신무애의 한쪽 석벽을 마주하고 앉아 면벽에 들어갔다.

이미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것이 오래이건만 적연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러니 자기 몸보다 적연흥이 소중한 제연연으로서는 안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적연흥의 면벽을 중시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일까? 무엇이 천하제일의 기재이신 저분을 저토록 고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제연연은 총명한 여인이다.

문득, 한 가지 짚이는 일이 있었다.

“무상반야금강선공은 극히 미미한 진보를 보임으로 서두를 일이 아니다. 저분이 고심할 단 한 가지 문제는 바로……이곳을 탈출하는 일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연연의 가슴은 급격히 두근거렸다.

‘저분이 혹시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는 어떤 단서라도……?’

제연연은 묘한 심정이 되어 적연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 자신도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이곳을 나간다면 사랑하는 적연흥은 더 이상 그녀의 독점물일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별 수 없는 일 아니냐?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할 것, 하루 빨리 저분의 뜻하시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빌 뿐이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으하하하핫――!”

거창한 장소가 신무애를 뒤흔들었다.

“상공!”

제연연의 환성이 터졌다.

그녀의 눈앞에, 태산같은 기개를 지닌 영준한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짓고 서 있는 인물.

바로 적연흥이었다.

“상공! 뜻을 이루셨사옵니까?”

제연연이 달려가자 적연흥은 그녀의 섬섬옥수를 꼭 쥐었다.

“그렇습니다. 누님, 드디어 이곳 신무애를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적연흥이 다소 격동에 찬 목소리를 말했다.

“역……역시……!”

제연연의 두 눈에 까닭모를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작은 가슴은 흥분으로 크게 불룩거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곳을 빠져 나갈 방법을 생각해 내셨사옵니까?”

제연연이 섬섬옥수로 눈가에 맺히는 이슬을 찍어 누르며 물었다.

“만절천환연(萬絶天幻連)을 창안할 때부터 생각하던 것입니다. 만일 허공에서 두세 번만 진기를 바꿀 수 있다면 신무애를 날아 오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제연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지만 허공에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은 채로 어떻게 진기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적연흥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소제가 면벽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그럼 방법을 찾아 내셨다는 말씀……?”

“그렇습니다. 분광혜심대법(分廣慧心大法)을 응용하여 일종의 양심신공(兩心神功)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제연연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무림에는 전설적으로 심신을 양분할 수 있다는 양심신공(兩心神功)이 있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그것은단지 전설일 뿐인데 적연흥이 그것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양…… 양심신공(兩心神功)!”

“놀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무상반야금강경 중의 분광혜심대법은 양심신공보다도 더 고차원의 대법이었습니다. 소제는 단지 이를 약간 변형시켰을 따름입니다.”

적연흥은 제연연을 안은 채로 절벽 위로 가리켰다.

“양심신공으로 공력을 좌우(左右)로 나눈 뒤 우선 한 쪽의 공력만으로 비천어기신법을 펼치는 것입니다.”

제연연이 그말을 받았다.

“연후에 반대편의 공력을 이용하여 다시 날아 오르고 그사이 나머지쪽의 공력을 보충하고……”

“하하……그렇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사부님께 인사 드리고 지금 당장 떠나도록 하십시다.”

제연연은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그……그렇게 해요. 첩신은 조금 준비할 것이 있사옵니다.”

“서두르십시오.”

“네!”

제연연은 눈물을 닦으며 달려갔다.

제연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적연흥은 미소를 지었다.

‘어찌 생각하면 더할 수 없이 긴 사 년이었으나 이제 막상 떠나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워 지는군.’

적연흥은 신무애를 휘둘러 보았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절지였으나 너무나 정이 든 풍경이었다.

“어머님께서 그동안 어찌 지내셨는지 궁금하구나. 병환이나 심해지신 것은 아니신지……”

적연흥은 동굴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부님과 환영비천신 선배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겠다.”

적연흥의 몸도 곧 짙은 운무 사이로 사라져갔다.

 

<一卷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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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다시 청풍이 있는 동굴.

움찔! 청풍의 손이 조금 움직이더니

청풍; [컥!] 피를 토하며 깨어난다.

청풍; [끄윽!] 고통에 벌벌 떨며 고개를 들어 자기 가슴을 보고

가슴의 상처 크로즈 업

청풍; (살... 살았다!) 헉헉 대며 다시 눕고

청풍; (그자가 달아나며 날린 지력(指力)에 가슴을 맞았었지.) 소지존이 날린 투창 같은 섬광이 자신의 가슴을 때리던 장면 떠올리고

청풍; (능파미보를 전력으로 구사하며 뒤로 몸을 날린 덕분에 가슴이 관통당하는 건 면했지만...)

 

<문제는 뒤쪽이 절벽이었다는 점이다.> 하늘 보는 자세로 절벽에서 추락하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당연히 절벽 아래로 처박혀서 분신쇄골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헌데 추락 도중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었다.> 펑! 절벽 중간에 걸린 구름을 뚫고 등이 바닥을 향하게 떨어지는 청풍의 모습

<갑자기 절벽에서 투명한 밧줄 같은 것이 뻗어나와 나를 휘감은 것이다.> 절벽에서 돋아난 투명한 촉수같은 것이 청풍의 몸을 휘감는 장면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끌려들어가는 절벽이 사라지면서 동굴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절벽처럼 보이던 곳이 동굴 입구로 변하며 투명한 촉수가 청풍의 몸을 끌고 들어간다. 물론 청풍이 지금 누워있는 동굴이다.

 

청풍; (아마 술법일 것이다.) 동굴 입구를 보고.

지잉! 동굴 입구를 가리고 있는 반투명한 막에 오로라같은 빛이 스치고 지나간다.

청풍; (지금은 잊혀진 고대의 술법이 시전되어 있어서 동굴의 존재를 사람들의 눈에서 숨기고 있으며...)

청풍;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동굴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 같다.)

청풍; (누가 설치했는지 모르는 이 신묘한 술법 덕분에 즉사는 면했지만...) 고통스러운 표정

욱신 욱신 가슴의 상처에서 고통이 느껴지고

청풍; (가슴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아무래도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체념의 표정

청풍; (부러진 늑골이 폐와 심장의 일부를 찌르고 있다.) 상처를 보고

청풍;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나기를 바라는 건 불합리한 일이다.) 쓴웃음

청풍; (아버지에게 죄송하고 옥령이에게 미안하지만...) (내 삶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쓴 웃음 지으며 천장을 보고. 그러다가

[!] 흠칫! 하며 옆을 보고

동굴 바닥에 넓고 검은 선이 불규칙하게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풍; (뭐지?) 고개만 돌려 그걸 보고

청풍; (검은 물감 같은 것이 동굴 안쪽으로 칠해져 있다.)

청풍; (나보다 먼저 이 동굴에 들어왔던 인물의 흔적일까?) + [!] 생각하다가 눈 번뜩

길게 이어진 검은 선 좌우에 손바닥 자국이 일정한 간격으로 찍혀있다.

청풍; (손바닥 자국도 있다.) 놀라며 벌떡! 일어나지만

빠직! 가슴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통증

청풍; [큭!] 가슴의 상처를 누르고. 그러면서도

청풍; [어떤...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간다.] 주저앉아서 검은 선과 검은 선 좌우에 일정한 간격으로 찍혀 있는 손바닥 자국을 보고

청풍; [누군가 중상을 입은 몸으로 기어서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검은 선으로 보인 것 그 인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말라붙은 것이었고...]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필사적으로 일어나고

청풍; [대체 어떤 인물이 이 신비한 동굴에 들어와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비틀거리며 선을 따라 걸어가고

청풍; [죽을 때 죽더라도 궁금증은 해결하고 죽자.] 비틀거리며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76>

어둑한 동굴. 어둑해졌지만 더 넓고 높아졌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청풍. 바닥을 보며 걸어온다. 가슴 누르고 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청풍; (피의 마른 상태를 보면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십년 이상은 지나지 않았다.) 눈이 풀린 채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청풍; (그리고 피를 흘린 거리는 거의 백여 장은 된다.) (이 정도면 몸속의 피가 거의 다 빠져나왔을 텐데...)

청풍;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 지경이 되고도 움직일 수 있었던 걸까?) + [!] 생각하다가 흠칫하며 앞을 보고

쿵! 청풍이 들어선 곳은 광장. 광장 끝에는 육중해 보이는 석문이 있다. 두쪽으로 이루어진 그 석문에는 <混元洞天>이라는 글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데. 그 문 앞에 누군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자세로 이마를 바닥에 댄 채 앉아있다. 그 인물의 등에는 작게 돋아난 게 있다. 비수다.

그 사람의 모습 크로즈 업

청풍; (사람!)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청풍이 따라온 검은 선이 그 사람에게 이어진다.

청풍; (아니, 시체로구나!) 안도하며 다가가고. 이하의 장면에서 청풍의 표정은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로 묘사

청풍; (내가 따라온 혈흔을 남긴 장본인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펴보고

쿵! 석문 앞에 무릎 꿇고 죽어있는 인물. 바로 #1>에 나온 신선부 부주 위극겸이다. 등에는 이복동생 위극존이 찔러 넣은 검은 비수, 염왕아가 박혀있다. 염왕아는 전체가 검은 색이고 손잡이는 귀신 머리 모양이라는 점 주의. 손잡이 옆면에 <閻王牙>라는 글도 적혀있지만 어두워서 잘 안보인다.

청풍; (한눈에 봐도 평범한 인물이 아닌데...) 살펴보고

위극겸의 등에 박혀있는 비수 염왕아 크로즈 업. 염왕아의 손잡이가 귀신머리 형상인 것 잘 묘사

청풍; (검은색의 비수가 등에 깊이 박혀있다. 그렇다는 건 이 인물이 누군가에 암살을 당했다는 뜻이다.)

청풍; (어떤 사연이 있기에 화산의 깊은 곳에까지 와서 암살을 당한 것일까?) 위극겸의 모습 살펴보며 생각하다가

[!] 흠칫! 하며 위극겸의 앞쪽 바닥을 본다. 그곳에 글이 적혀있다

청풍; (바닥에 피로 쓴 글이 적혀있다.) 글 옆에 무릎을 꿇고

청풍; (아마 이 인물이 죽기 전에 남긴 유서일 것이다.) 글을 읽는다

 

<조사(祖師)들이시여! 못난 제자를 용서하소서. 본문의 천년기업이 제자의 불민함으로 인해 훼멸(毁滅;망침) 당하게 되었으니... 너무나 죄스러워 차마 하늘(天)에 들어가 조사님들의 영전에서 죽지 못하나이다. 제자를 용서... 본문을... 지켜 주옵소서.> 바닥에 적힌 한자를 배경으로 글의 내용을 나레이션으로 표기

 

청풍; (그러니까 저 문 안에 이 인물의 조사들이 있다는 건데...) 문을 돌아보고

<混元洞天>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석문 크로즈 업

청풍; (혼원동천(混元洞天)...) 석문에 새겨져 있는 글을 읽고

청풍; (저 석문 안쪽이 혼원동천이라는 곳이구나. 그래서 이 인물이 하늘(天)이라 칭했을 테고...)

청풍; (혼원(混元)이란 천지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문에 새겨진 글을 보며 생각하고

청풍; (혼돈(混沌)의 다른 이름인데...) (저 문 안쪽에 바로 그 혼돈과 관련이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청풍; (쓸데없는 관심이다.) 쓴웃음 지으며 다시 바닥에 적힌 유서를 보고

청풍; (명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천지창조의 비밀을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다시 바닥의 글을 읽고

 

<만에 하나 인연이 닿아서 본인의 시신을 발견하는 자가 있다면 부탁을 하겠다. 본인은 사문에 지은 죄가 너무도 커 죽어서도 안식(安息)을 취할 자격이 없노라. 그러니 부디 본인의 시신은 이 상태로 두기를 바라노라.> 이어지는 글의 내용

 

청풍;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처절하게 자책을 하며 죽음을 맞이했을까?) 찡그리며 생각하고.

청풍; (지은 죄가 무거워 오체복지한 채 죽어 영원히 속죄하겠다는 것인데...) 위극겸의 시체를 돌아보고

청풍; (인지상정! 차마 두고 볼 수가 없다.) 두 손으로 위극겸의 시체를 끌어안고

청풍; (최소한 옆으로라도 눕게 해드리자.) 슥! 두 손으로 위극겸의 시체를 안아서 옆으로 누이려 하고. 헌데 그 순간

빠지직! 화악! 갑자기 위극겸의 시체에서 강력한 벼락이 일어나 청풍의 몸을 휘감는다

청풍; [끄아아악!] 벼락에 감전되며 비명을 지르고

청풍; (이... 이게 무슨...) 눈을 까뒤집으며 감전된 모습이 되고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몸 속으로 스며들어온다!> 끄으으으! 눈을 까뒤집으며 신음하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청풍; (정신을 잃으면 안되는데...) 시야가 좁아지며 <混元洞天>이라는 글이 적힌 석문이 보이고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스으! 그의 시야가 더 좁아지다가

팟! 암전되는 현상. 화면이 검어진다.

 

#77>

<-서안(西安)> 거대한 성곽 도시. 저녁 무렵.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번화가. 사람들 많이 오가고

번화가의 웅장하고 화려한 장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고 있고. 정문 처마 아래에는 <黃金錢莊 西安支店>이라는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황금전장(黃金錢莊) 서안지점(西安支店)> 위 정문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황금전장 내의 어느 건물. 무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고

중년인; [지... 지점장으로 부임하시던 이청풍 공자가 실종되셨단 말입니까?] 사색이 되는 중년인. 살이 찐 전형적인 은행원 분위기. 한번 나올 조연이므로 적당히 묘사. 건물 내의 거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귀견수와 마주 앉아있다

귀견수; [불행하게도 동관(潼關) 근처의 험한 길을 지나던 마차가 황하로 추락했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고

귀견수; [나는 겨우 빠져나왔지만 마차를 몰던 송씨와 마차에 타고 있던 이공자는 강물에 휩쓸렸소.]

중년인;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초조하게 두 손을 비비고

귀견수; [혹시나 해서 하류로 내려가며 수색해봤지만 마부 송씨의 시신만 수습할 수 있었소.]

중년인; [이... 이공자는 시신도 찾지 못하셨단 말씀이신지요?] 비지땀을 흘리고

귀견수; [그렇소 부(副)점장!]

귀견수; [하지만 천운이라는 것도 있으니 이공자가 살아있을 수도 있소.] 품속에 오른손을 넣고

귀견수; [서안 일대의 관부와 개방등을 동원해서 이공자의 행방을 찾아주시오.] 접은 종이를 한 장 품속에서 꺼내고

귀견수; [이건 이공자의 용모파기요.] 종이를 건네주고

펼쳐보는 중년인

종이에 그려진 건 동창 제독태감 담길이 그린 청풍의 초상화다.

중년인; [이분이 이청풍 공자...] 초상화를 보며 일어나고

중년인; [즉시 수색 요청을 하겠습니다.] 종이를 들고 입구로 간다

귀견수; [수고해주시오.] 거실을 나가는 중년인에게 말하고.

중년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가 굽신거리며 문을 닫고

탁! 닫히는 문. 혼자 남는 귀견수

귀견수; (교활한 새끼!) 이를 부득 갈고

 

<어젯밤 강을 따라 십여 리쯤 내려가다가 발견한 것은 청풍이 놈의 겉옷이 감겨있던 통나무였다.> 강가에서 청풍의 겉옷이 감싸고 있는 통나무를 보고 분노하는 귀견수 모습

 

귀견수; (청풍이 놈은 강물에 빠진 것으로 위장하고 다른 길로 도망쳤던 것이다.) 우둑! 주먹에 힘을 주고

귀견수; (우리 황금전장에서 자신을 제거하려 했다는 것을 청풍이 놈이 알아버린 것은 크나큰 우환이 될 수 있다.)

귀견수; (만일 그놈이 소장주 대리로 과거를 본 것을 관부에 고변하기라도 하면 황금전장은 황실을 능멸한 죄로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다.)

귀견수;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종놈을 잡아 죽여야만 한다.) 강렬한 표정

 

#78>

밤. 창천애의 모습. 하늘에는 반달이 떠있고

창천애 절벽 중간에 걸린 구름

그 구름 아래쪽 절벽. 그냥 절벽으로 보이지만

동굴 안쪽에서 밖을 본 모습. 동굴 입구가 반투명한 막에 가려있고. 그 동굴 입구를 통해 달빛이 흘러들어와 바닥을 일부 비춘다

 

#79>

다시 혼원동천 입구. 헌데 위극겸의 시체가 사라졌다. 청풍이 벌렁 누워있고. 청풍의 주변에는 위극겸이 입었던 옷과 위극겸의 등에 박혀있던 단검 염왕아만 놓여있다.

청풍의 모습. 기절했다. 헌데 가슴이 멀쩡해졌다. 옷을 뚫고 나왔던 늑골도 사라져있고

움찔! 하는 청풍의 손. 이어

천천히 눈을 뜨는 청풍

동굴이 환하다.

청풍; (이게 무슨 조화인가?) (어둡던 동굴이 대낮같이 환하게 보이다니...) 천장을 보며 놀라고. 그러다가

흠칫! 하고

청풍; (아직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슴에서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휙! 급히 일어나려는데

휘익!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져 올라간다.

청풍; [헉!] 기겁할 때

확 다가오는 천장의 종유석. 청풍의 머리가 그 종유석으로 치솟는다

청풍; [안돼!] 기겁하며 머리를 가리려는데

파삭! 청풍의 머리에 부딪힌 종유석이 그대로 유리처럼 깨진다

청풍; [엇!] 휘릭! 후두둑! 놀라며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깨진 종유석 조각들도 함께 떨어지고

청풍; [이럴 수가...] 슥! 가볍게 내려서고. 따당! 퍼퍽! 부서진 종유석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흩어지고

청풍; [슬쩍 움직였는데 삼장 넘게 도약했고 머리가 단단한 종유석을 유리처럼 깨트렸다.] 머리 만지며 어리둥절

청풍; [종유석에 부딪힌 머리에서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서둘러 상의를 벌려본다.

쿵! 가슴에 나있던 상처가 완전히 나아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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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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