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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밀림 속에서의 긴 꿈

 

 

 

괴물들은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차렸다.

호수가에서 소일초가 불을 피우고 악어 한 마리를 통째로 굽고 있었다.

어른의 허벅지만큼이나 굵은 나무에 매여져 있는 악어는 아직도 살아 있는 듯 몸부림 치고 있었다.

옆에는 마른 나무가지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소일초는 입맛을 다시면서 화력을 높이고 있었다.

괴물들도 그에게 혹사를 당한 뒤라 몹시 배가 고팠다.

게다가 아직 살아 있는 악어가죽 굽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군침을 삼키며 악어를 보고 있었다.

지글지글-------

직지글---------

마침내 악어는 축 늘어져 노글노글하게 익어버렸다.

순간 소일초는 손에서 아주 밝은 빛이 반짝 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얇고 날카로운 깃털모양의 수정(水晶)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길이는 약 두치 반 정도,

너비는 한치 못되어 보였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수정검우(水晶劍羽),

 

바로 도귀(賭鬼)의 수정검우였다.

그의 손에서 다시한번 깃털 모양의 수정이 반짝 하다 사라졌는데,

악어의 살점이 뚝 떨어졌다.

냉큼 받아서 입에 넣고 씹어보니 보기보단 영 맛이 없었다.

[쳇! 이러면 헛수고 한 거잖아……]

고개를 슥 돌려 한 줄로 나란히 누워있는 괴물들을 보았다.

[저 놈들은 수(數)가 많으니까 한 마리 쯤 잡아먹어도 괜찮겠지……]

그가 입에 넣었던 고기를 뱉고 눈빛을 번뜩이며 자기들을 노려보자 괴물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일초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저놈들을 집에까지 끌고 가서 키워야 되는데 눈앞에서 동료가 잡아먹히는 것을 보게되면 자살해버릴 지도 몰라…… 맛이 좀 없더라도 오늘 저녁은 이걸로 때워야겠군……]

그는 조금 전에 악어의 질긴 가죽을 씹었던 것이다.

그것이 맛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는 석달쯤 굶은 후 일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연해 보이는 곳을 찾아서 살점을 베어먹어 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즉시 휴대했던 소금을 꺼내놓고 본격적으로 악어를 파(?)먹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그가 먹는데 열중하는 것을 보고서야 긴장을 풀고 팍 늘어졌다.

실컷 먹은 소일초는 괴물들을 힐끗 보고는 엄청나게 굵은 나무둥치 밑으로 가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하는 짓에 비하여 잠자는 모습은 여느 어린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

…………

× × ×

 

…………

정뇌(井牢),

 

무림에서 가장 험난한 뇌옥이자 백인장의 금역이다.

수백 년 전,

백인장이 무림에서 암중리에 활동하던 때부터,

무림의 최고 거마(巨魔)들을 가둬온 뇌옥이다.

수직으로 밑으로 파내려간 우물처럼 된 이 뇌옥은 모두 구층(九層)으로 되어있으며,

각 층마다 팔 명 씩의 혼세거마를 가둘 수 있다.

이 곳에 갇히는 마두들은,

그 한 명 한 명이 무림에 웅크리고 있으므로 무림은 완전한 피의 혈풍에 휩싸이게 할 수 있음은 물론,

무림천지를 사마(邪魔)의 땅으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이었다.

때문에,

정뇌를 지키는 엄중한 경비는 백인장은 물론 중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백인장의 최일류 도객들의 온 힘이 기울어져 있다는 표현이 옳았다.

십여 년 전 도(刀)의 하늘인 백인장(百刃莊)이 무림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후 에는 오히려 정뇌에 잡혀 들어오는 마두의 수가 격감했다.

아마도 백인장 도객들이 무서운 힘이 강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자 사마가 숨을 죽인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백인장의 원로도객들이 정뇌를 관리해 왔는데 각 층 마다 한 사람의 원로가 직접 거처하면서 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로 도객들은 모두가 백인장의 전대고수들로 지금은 자기의 지위를 후손에게 물러주고 오직 도법의 연구와 장원 내의 중대한 일에만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인장(百刃莊)에는 백 명(百名)의 도객들 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를 이을 젊은 도객들과 은퇴한 노도객(老刀客)들도 있기 때문에 실제의 도객 수는 수 백 명이었고,

백인장의 식구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도법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게다가 백인장의 도객들의 도법은 각기 다른 것이었으니……

백인장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절세의 도법들만 해도 백 가지나 되었던 것이다.

실로, 무림에서 최강문파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정뇌……

지금은 불과 십 여 명의 마두들만 갇혀 있는데……

 

× × ×

 

쿠르르르르……

돌연 백인장의 절대금역인 정뇌의 여러 문들 중 하나가 둔중히 열렸다.

동시에,

콰아아아……

뭉타래 기운이 음습하고 사이로우며 마기로움의 구름덩이를 만들어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리고 어디선가로 부터 들려오는 전율의 호곡(乎哭),

[…으흐흐흐흐……]

한꺼번에 매케한 냄새에 실려오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괴성(怪聲),

절규,

울부짖음……

마치 저 십 팔 층 지옥유부(地獄幽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때다.

돌연,

검은 마기와……

소름이 끼치는 울부짖음이 소용돌이 치는 사이를 뚫고,

자박 자박 자박………

자그마한 인영 하나가 화섭자를 손에 들고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소리는 그의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불과 오 세가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어린아이가 아닌가?

일신에는 눈보다 흰 백의를 걸쳤고,

머리에는 두 마리의 학이 허공을 향해 날개짓을 하는 듯한 백학건을 늠름하게 쓴 이 소동(小童),

밝고 천진하며……

천상(天上)의 선동(仙童)처럼 아름다움을 지녔으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짙은 호기심이 어려 있었고 볼에는 장난기가 가득 배어 있는 듯 했다.

헌데 무슨 일로……

이토록 깨끗하고 고아하며……

그러면서도 장난꾸러기 같은 어린 아이가 이 음습한 정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적지 않는 어려움을 겪은 듯,

그의 깨끗한 백의가 먼지로 인해 몹시 더럽혀져 있었다.

헌데 일순간,

슷……!

이 어린 아이의 앞으로 한 명의 노인이 소리없이 날아내렸다.

단아한 백색장포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양 자연스럽게 장도(長刀)가 허리에 걸려있는 그의 모습은 기품이 이를 데 없었으며 눈빛은 맑고 고요했다.

거기에다 온화로운 얼굴,

마치 신선을 직접 대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노인이었다.

사실 신선 같은 노인은 날아내렸으나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에 뜬 채 유령처럼 떠있었다.

노인은 다섯 살 정도의 꼬마가 정뇌에 들어오자 아주 이상한 듯 했다.

번쩍,

그의 맑은 두 눈에서 날카로운 섬광이 작렬했다.

[애야 너는 누구냐?]

[…………]

[누구길래 감히 정뇌에 들어왔단 말이냐? 허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뭘 하기에 어린아이가 이곳까지 오게 한담……]

노인은 혀를 차면서 싸늘하게 목소리를 깔았고 어린 아이는 밝고 천진한,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짙은 얼굴을 들었다.

[영감이 원로십팔도객(元老十八刀客) 중 제일 막내 도객인 백승옥도(百勝玉刀)인가?]

비록 장난기가 들어있는 하대(下待)였지만,

조용한 미소에다 행동은 침착하고 유연했다.

백승옥도의 몸이 어이가 없는 듯 가는 진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소동을 보고는 절로 흠칫 했다.

(이 어린애……오오……저 뛰어난 기품과 아름다움……그리고 천부적인 골격……그런데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노부를 대번에 알아보는 것인가?)

백승옥도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학(鶴)처럼 단아한 기품의 소동을 세심히 살폈다.

(아무튼 간에 이 정뇌에는 기관이 없어서 탈이야……위에서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해서 이 아이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이녀석! 나는 백승옥도가 맞다마는 너는 누구길래 그처럼 어른도 몰라보고 말을 막 하느냐?]

백승옥도는 어린아이에게 크게 감탄하고 있었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겠다는 듯이 물었다.

순간 백의 소동의 얼굴에 영악한 웃음이 환하게 스쳐지나갔다.

[믿지 못하겠지만……이 정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영감처럼……나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없었지.]

[…………]

[또 나는 내가 누구라고 남들에게 한 번도 말할 필요가 없었지.]

환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가던 백의 소동이 돌연 어깨를 흔들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낭랑한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한참 후에야 그쳤다.

백의 소동은 웃느라고 빨갛게 변한 얼굴에서 애써 웃음을 흐트리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백승옥도에게 말했다.

[왜냐하면……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었고…………나에 대해 모른다는 것조차 그것은 내게 큰 죄에 해당되었고……또한 당연히 가혹한 형벌로 이어졌지……]

순간 백승옥도의 깊은 동공에서 가는 파장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너는 ?]

백의소동은 백승옥도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환한 웃음을 빨개진 얼굴에 다시 피워올렸다.

[그렇지.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군. 백인장의 모든 사람은 나를 며칠 전 부터 소일초(蘇一招)라고 부르지. 그 전에는 소태봉이라 불렀고……]

단아한 가운데 듣는 이를 압도하는 위엄이 서린 목소리……

백승옥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어 그의 얼굴에 가득히 번져오는 격동의 물결,

그는 그 자세로 소동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그 자리에 정중히 무릎을 낮추고 눈을 마주했다.

[십팔원로 중 백승옥도가 소장주(少莊主)를 뵙겠소.]

소장주……

이 아름답고 천진하며……

환한 웃음과 장난기 어린 소동은 바로 백인장의 절대고수인 도왕 소선풍의 일점혈육인 마동(魔童) 소일초였다.

이 순간,

[영감은 너무 겸양을 부리는 군.]

소일초는 하얀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어 백승옥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승옥도는 장주인 소선풍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원로도객인데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어깨를 두드려 주자 어이가 없었으나,

귀여움만 받고자란 철부지의 행동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영감이 이 정뇌에 들어왔을 테니까 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

이제 소일초의 말을 듣는 늙은 도객 백승옥도의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정뇌에 들어온 후 벌써 칠년의 세월이 흘렀다오. 앞으로 삼년이 지나면 다시 밖으로 나가 소장주를 만나게 되겠지요.]

[내가 태어나던 날 원로들이 옥소도(玉小刀)을 전해 축하해 주었다고 하는 것 같더군.]

소일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 크기의 반투명한 하나의 옥으로 된 소도(小刀)를 백승옥도에게 내밀었다.

그 소도를 받아든 백승옥도,

그의 얼굴에 짙은 감회가 서려왔고,

그는 추억에 잠기듯 소도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랬었지.……소장주의 탄생을 이 늙은이도 정뇌 안에서 소문으로 알게 되었는데…당시 후사가 없어 애태우시던 장주께서 후사를 얻으셨으니……정말 큰 경사였지……]

이때 소일초는 얼굴을 찌푸리며 재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엣취……엣취……]

백승옥도은 황망히 소일초를 부축하려 했으나,

소일초는 씩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이런 재치기쯤은…… 그런데 이 정뇌 안은 너무 환기가 안되는 것 같애. 공기가 나뻐……]

염려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소일초를 부축하려던 백승옥도,

헌데 돌연 백승옥도의 안색이 홱 변했다.

[소……소장주, 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 소도에 산공산(散功酸)을 바르셨소?]

느닷없는 백승옥도의 음성과 태도,

소일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입술을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왜 나는 아직도 영감이 반응이 없을까 걱정을 했어.]

[소……소장주……!]

백승옥도의 부처처럼 자비롭던 얼굴은 분노로 새파랗게 질렸다.

허나 소일초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시선을 환한 미소로 백승옥도의 얼굴에 던졌다.

[미안, 미안……그 산공독은 ……만지는 순간 혈맥을 타고 약효가 번진다지? 아마?]

순간 백승옥도의 얼굴이 더욱 참당하게 일그러지고,

급히 그는 내력을 돋구어 삼매진화로 산공독을 태워버렸다.

푸지지직……!

옥소도를 쥔 그의 손에서 연기가 뭉텅 피어오르는 찰나,

[헉……!]

백승옥도은 푸석한 신음성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소일초의 고사리 같은 손이 백승옥도의 마혈(麻穴)을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찍어버린 것이다.

[소……소장주……!]

아득히 정신이 달아나는 속에서도 백승옥도는 두 손을 내저었다.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환히 피어있던 미소와 천진과 장난기가 걷히고,

대신,

이제 조금 안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백인장의 다른 곳은 다 가보았지만 여기는 구경을 못했거든…… 얌전하게 구경만 하고 갈거니까 너무 화내지마. 위 층에 있는 영감들도 지금 똑 같은 신세니까……]

[소……소……]

[위층에는 마음에 드는 마두(魔頭)들이 없었어……여기서 괜찮은 마두를 만나면 잠시 놀다가 갈께……]

마음에 드는 마두라니?

마두와 놀다가 간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소일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 명만 세상에 빠져나가도 온천하가 피로 잠길 거마들과 놀다 가겠다니!

어쨌거나,

소일초는 완강한 걸음으로 음습한 뇌옥문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백승옥도는 혼절해 가는 영혼을 붙들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두 손을 휘저었다.

[소……장주……위……위험……무서운 일……제……발……]

허나,

소일초는 등을 돌리고 그를 힐끗 보면서 손을 마주 흔들어 주고 가벼운 걸음으로 지하 구층의 뇌옥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어,

소일초의 한개의 문앞에 가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두드렸다.

그런데,

퉁퉁------

그의 손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전혀 뜻 밖에도 마치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 문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관을 휙 돌려서 문을 열어보아도 텅빈 곳이었다.

대충 두드려가며 조사해본 결과 그래도 구층의 석실에는 네 명의 죄수가 있었다.

그 정도라면 어느 층 보다 많은 것이다.

위의 팔층 까지는 기껏해야 열 두 명의 마두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정뇌의 구층 석실에는 바로 무림에서 기이한 악명을 떨친 바 있는 사마귀(四魔鬼)가 감금되어 있었다.

[안에 있는 놈은 어떤 놈이냐?]

앳되지만 낭랑한 목소리가 정뇌안에 길게 울려퍼졌다.

[누군가?]

[누가 십 년 동안을…… 이 저주 받을 뇌옥에서 갇혀 지낸 우리를 부르는 건가?]

[우하하하……이 뇌옥에서 그렇게 소리치는 놈이 있다니 대체 어떤 놈이냐……누군냐?]

세 가닥의 종잡을 수 없는 음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안에 있는 네 놈들의 이름을 물었다.]

소일초가 소리쳐 물었고,

석실 안에서는 당당한 어린애의 목소리에 어리둥절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우린, 사마귀(四魔鬼)다. 너는 누구냐?]

이 음성은 먼저 들린 세 음성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귀 네 놈이라고? 그럼 너희들은 지옥에서 잡혀왔단 말이냐?]

[와하하하……이곳이 지옥이지 다른 지옥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 꼬마놈아!]

순간,

끝없이 울려퍼지는 웃음과

철컹……컹커덩……

소름이 끼치는 금속성에 불쾌함을 느낀 소일초가 고함을 쳤다.

[시끄럽다. 못된 것들……]

 

시끄럽다……

시끄럽다……

 

소일초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는 어둑어둑해 오고 있었는데 한 쪽에서 괴물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함치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길 꿈이었군……그 때가 언젠데 꿈을 꿔? 사마귀가 또 잡혀 들어왔나?]

아직 정신이 덜 들었는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때, 아버지한테 얼마나 혼났는데……씨……또 잡혀 들어와도 나는 모르는 일이야……]

 

밀림에서는 해가 지는 저녁에도 무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워있는 괴물들 옆으로 가서 발로 툭 찼다.

[일어나! 일어나!]

괴물들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다.

설사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두릅모양으로 엮인 데다가 손과 날개가 함께 묶인 상태에서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 씩 잡아 일으키자 괴물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낮의 악몽이 되살아난 때문이었다.

낮에 그 때,

소일초는 역시 괴물들을 세워놓고 차례대로 박치기를 해서 놈들을 모두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렬로 세워진 괴물들의 뒤에서 줄을 잡고 남은 자락으로 채찍질을 했다.

영특한 괴물들은 그가 집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짧은 다리로 줄지어 어둠이 깃드는 숲으로 걸어갔다.

거목이 줄지어 있는 사이를 얼마동안 걸어가자 정말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다.

장정 백 명이 손을 맞잡아도 다 두르기 힘들 정도로 굵고 큰 나무 였다.

나이가 몇이나 된 것인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적게 잡아도 수 천 년은 됐을 것 같았다.

거목의 밑동 주변에 드러나 있는 뿌리들도 무려 사 오 장의 높이가 되어 보였다.

괴물들은 그 뿌리들이 엉켜있는 사이로 차례대로 들어갔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 근처에는 흙이 오랜 시간을 두고 갈라지고 붕괴되어 천연의 동굴을 형성하고 있었다.

[제법 괴물다운 곳에 사는데……]

소일초는 어두운 동굴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는 내공이 깊어서 어둠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지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

동굴의 처음 얼마동안은 토굴이었으나 조금 더 들어가자 석굴이었다.

동굴안은 괴물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인공의 가미된 흔적마저도 보였다.

과연,

석동의 안쪽에는 사십여 평 정도 되는 넓은 곳이 나왔는데 그곳에는 수십 개의 야명주가 천정에 박혀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다.

누군가가 여기서 살았거나 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괴물들은 거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멈추어 섰는데,

소일초는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경각심을 일으켰다.

야명주가 빛을 발하고 있는 광장의 저 편,

다시 하나의 작은 석동이 있었고 흰 그림자 두 개가 눈을 반짝이면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괴물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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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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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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