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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장

 

            귀산의 무림대회 (2)

 

 

 

광장에 쳐져 있는 천막들에는 각기 사람들이 나누어 들어가 있었다.

음주가효가 펼쳐져 있으며 벌써부터 얼굴이 벌건 사람들도 있었다.

하삼풍은 적당한 자리를 찾다가 한쪽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흠칫했다.

검성과 만박노조, 그리고 백검보의 전 고수들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 숙연한 표정은 주변의 공기를 가라앉히는 것같았다.

하삼풍이 포권하고 말했다.

[이정께서 먼저 와 계실 줄은 몰랐소이다. 그동안 안녕하시었소?]

만박노조와 검성이 고개만 끄덕여 인사했다.

하삼풍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검성등이 있는 천막의 맞은편으로 갔다.

[초상집같은 분위기로군. 백검보의 오만한 태도가 어딘지 달라진 것같은데...]

무심코 던진 듯한 그의 한마디가 검성과 만박노조의 귀에까지 들렸다.

“휴우....!”

검성이 탄식을 했다.

자신의 부덕함이 이에 이르렀다 싶으니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진우백의 해남검파는 이미 쳐져 있는 천막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상하는 용(龍)이 그려진 천막을 빈터에 세우고 들어갔다.

여전히 그들의 그같은 행동에 부러움과 찬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우백은 가마 속에서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오가 조금 지났다.

군웅들은 그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주최자들을 기다리며 웅성거렸다.

[무형도객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석두공이라는 자는 어떤 자야?]

[어째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지?]

 

검성의 천막과 하삼풍의 천막, 양쪽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는 천막에 있는 군웅들 사이에 아리따운 두 소녀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장지연과 백란이었다.

장지연이 소곤거렸다.

[그가 과연 어디서 나올까요? 이틀 전부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는데... 혹시 구대문파를 이곳에 부르기 위해 간게 아닐까요?]

[그렇진 않을 거야. 구대문파에 대해선 내가 단정할 수 없지만 염려하지 않아도 될거야. 그는 아마 또다른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거야.]

백란이 대답했다.

장지연이 말했다.

[난 아직도 그 숯덩어리가 석두공이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아요. 그는 무치 동호천 그분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부로 모시고 있었는데... ]

[그가 누군지는 도무지 모르겠어. 세상에 그처럼 무공이 강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어쨌든 난 그를 찾아서 빨리 데려가야만 해. 뇌주탄의 일만 끝나고 나면 함께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백란이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때였다.

둥󰠏󰠏둥󰠏󰠏둥-󰠏󰠏!

누군가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큰 북으로 달려가 두드리기 시작했다.

북소리가 번져감에 따라 좌중의 소요는 가라앉고 군웅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였다.

백란의 눈에 반가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북을 두드리던 사람이 북채를 던져버리며 북위로 날아올라갔다.

헌앙한 풍모의 백의중년인, 바로 무형도객이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지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 더 많았다.

무형도객은 내공이 충일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곳까지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무림동도 여러분, 정말 고맙소이다. 본인은 무형도객이란 허명을 얻고 있는 사람이외다.]

 

󰠏󰠏와아!

 

뭇 군웅들이 환호로써 그의 인사에 답했다.

무형도객의 말이 이어졌다.

[당금 무림은 검종맹과 잔혼각, 그리고 적룡혈운도로 말미암아 혼란스럽기 그지없소이다. 정기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도의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소. 능력이 있는 자는 나서려하지 않고 뜻이 있는자는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오.

본인이 전해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들 삼인은 무림의 모든 고수들을 제거해버릴 전문적인 척살대(刺殺隊)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하오. 백만 무림 동도가 힘을 합치지 않고는 이 무림의 존망이 걸린 난국을 타개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외다.]

[...!]

[...!]

찬물을 끼얹은 듯 군웅들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무형도객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백만 동도가 힘을 합친다면 그들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어쩔 수 없을 것이오.

뿐만 아니라! 무림에 그릇된 야욕을 품은 자는 기필코 멸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오. 이 모든 것에 무림동도 여러분의 정의를 수호하려는 붉은 의지가 필요하오.]

[그렇소이다! 더 이상 그들의 발호를 묵과해서는 아니되오. 그들이 다른 문파를 공격할 때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방관해 온 것이 급기야는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그들이 점차 세력을 키워가면 마침내는 모두가 그들의 종이 되거나 죽게될 것이오.]

군웅들 중에서 한 노인이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는 커다란 도를 등에 맸으며 오른팔이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으나 그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무형도객이 포권하며 말했다.

[호표장의 장주이신 오호단혼도 설곽대협이시군요. 설대협의 그같은 의기를 후배는 높이 존경합니다.]

[마땅히 해야할 말을 했을 뿐이오.]

호표장주 설곽은 포권을 한 후에 앉았다.

무림과는 거의 관계를 맺지 않고 지냈지만 호표장주 설곽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군웅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까지 무림대회에 나오자 술렁이며 지금이 어려운 때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또 한사람의 노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노부는 작약을 캐서 먹고 사는 삼노장의 팽덕이란 늙은이요. 설장주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요. 그들의 검은 손은 노부가 있는 시골까지도 뻗치고 있소. 이곳에 오신 분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협박을 받거나 하신 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오. 이래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권각을 배우고 도검을 휘두를 줄 안다고 하지만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소?]

그러자 한 중년부인이 일어서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항주 장보장(藏寶莊)의 며느리로 무림의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룡혈운도와 잔혼각 등을 쳐부수기 위한 무림대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항주 장보장이라고 하면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끼인다는 갑부 무혁해의 장원임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데 그의 며느리가 무림대회에 불쑥 나타났다는 것은 아주 뜻밖의 일이었다.

또한 장보장이 얼마 전에 의문의 혈겁을 당했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사람들의 웅성임 속에 부인의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형도객이 웅혼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부인께서는 내공을 지니지 않으셨으니 동도여러분께선 모두 조용히 해주시기 바라오.]

그의 음성은 크지는 않았지만 구석구석 또릿하게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금방 광장은 조용해졌고 부인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제가 친정에서 돌아왔을 때, 집은 불에 탔으며 가족들은 물론이고 하인들도 모두 처참하게 죽어있었습니다. 호위무사들의 시체들은 모두 목이 잘려 널려있었습니다. 어린 아들도 딸도 허리가 반으로 잘려서 죽어있었고, 남편의 시체는 반쯤 불에 타 있었습니다!]

중년 부인의 음성은 슬픔마저 초월한 듯 담담했다.

하지만 그녀의 음성을 듣는 군웅들의 가슴에서는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말이 격하게 흘러나왔다.

[저희 집은 무림에 속해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 집을 멸문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은 강도의 무리입니다.

저는 관(官)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이 땅의 주인이신 황제페하께도 진언할 생각입니다. 무림인들을 관에서 간여하지 않는 대신에 무림인들은 황제의 백성인 우리들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황제께 무림을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진언할 것입니다.]

[...!]

[...!]

무부인은 스스로 격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황제에게 무림에 대한 개입을 요청한다!

 

황실과 무림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무서운 말이었다.

여인의 한이 깊어지면 능히 그럴 수도 있다.

군웅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장보장을 멸망시킨 것으로 알려진 적룡혈운도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강호의 근본적인 도의마저 무너뜨린 그들을 용서해서는 안되오!]

누군가가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옳소! 그들을 영원히 제명시켜야하오.]

누군가 소리치자 군웅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그들을 죽이자!

󰠏그들을 죽여야한다.

󰠏무림인의 터전을 없애는 그들을 죽여야한다!

 

검광과 도광이 하늘을 찌를 듯 번득거리고 군웅들의 함성이 귀산을 무너뜨릴 듯 터져 나왔다.

무부인은 군웅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장지연이 초조한 듯이 물었다.

[그는, 그는 어째서 아직까지 보이지 않을까요?]

[기다려봐, 이제 곧 이곳의 분위기는 무림맹을 결성하고 맹주를 추대하는 쪽으로 기울게 될 테니까. 어쩌면 그는 맹주가 되기 위해 나설 준비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무형도객께서 지원해준다면 그로서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백란이 군웅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지연이 놀란 듯이 말했다.

[맹주라고요?]

[짐작일 뿐이야.]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는거죠?]

백란이 미소를 지었다.

[저분은 나와 가장 가까운 분이시거든... ]

[...?]

[우리 아버지야.]

[세상에...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

장지연이 그녀의 말에 입을 짝 벌렸다.

한데 백란, 그녀가 바로 무형도객의 딸이었단 말인가?

 

어쨌든 광장의 분위기는 백란 그녀가 말한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맹주를 선출하고 그를 중심으로 뭉쳐서 삼인에 대항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에 따라 맹주감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먼저 맹주를 추대해야 하오.]

[그렇소, 맹주로 하여금 조직을 정비하고 삼인을 맞아 싸울 체계를 갖추도록 해야하오.]

[맹주를 추대합시다!]

군중들은 너도 나도 한마디씩 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무형도객이 소리쳤다.

[한분씩 말씀하도록 하시오. 이래서는 아무 의논도 되지 않소이다.]

다시 술렁임이 가라앉자 누군가가 일어서서 말했다.

[이곳에는 지금 무림의 대표적인 고수들도 몇 분 계십니다. 그리고, 이름을 숨기고 은인자중하시던 고수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분들 중에서 맹주의 대임을 맡으실 분이 나오리라 생각되기에 두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소이다.]

[빨리 말해보시오.]

[어떤 방법이오?]

군웅들이 소리쳤다.

그 사람이 말을 이었다.

[타천과 자천의 방법입니다. 추천을 받으신 분과 스스로 맹주의 대임을 맡아보시겠다고 나서시는 분 모두 맹주의 자격이 있는 것으로 합니다. 그리하여 그분들 끼리 비무를 하여 최후의 승자가 맹주가 되는 것입니다.]

[옳소! 맹주는 무엇보다도 무공이 강해야하오. 무림인이 무공으로 가리지 않으면 무엇으로 고하를 나누겠소?]

 

--옳소! 옳소!

 

군웅들이 산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다른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다.

[비무는 단지 승부만 갈라야지 서로 죽이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무림의 대적을 상대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소이다. 그러면 이제 후보를 추천하도록 합시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산동 권문의 팽전이 백검보의 보주이신 검성을 추천하외다.]

한 사람의 중년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성이라면 능히 맹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았다.

그때 다른 사람이 일어서며 또 말했다.

[해남검파의 장문인이신 진우백 문주를 추천합니다.]

진우백은 요즘 혜성처럼 부각되고 있는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환호로써 답했다.

또 다른 사람이 일어서며 말했다.

[이 대회를 주관하신 분은 바로 무형도객이십니다. 무공으로 보나 그 출중한 협기로 보나 마땅히 맹주가 되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소!]

[옳소!]

무형도객의 이름이 거론되자 군웅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때 냉막한 인상의 노인이 일어서서 하삼풍을 추천했다.

[이 자리는 무공으로 맹주를 뽑는 자리라고 제위들께서 말하셨소. 무공으로 말하자면 단혼곡의 하삼풍 곡주께서도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 믿소.]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삼풍의 살명이 높기는 하지만 그의 무공이 강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또 다른 사람이 만박노조를 추천했다.

누군가가 철사보주 맹호산도 추천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십대고수는 모두 추천된 것같았다.

그 이후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는지 잠시 거론되는 사람이 없었다.

장지연이 초조한 듯이 말했다.

[언니, 어째서 그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자천할 수 있는 기회도 있잖아.]

[난 그를 맹주로 만들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예요. 그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으니까 염려스러워서... ]

그때 호표장의 장주인 설곽이 일어났다.

“노부는 다른 분들과 달리 한분의 젊은 영웅을 추천하고 싶소이다.”

웅혼한 내공이 실린 음성이었다.

군웅들은 호표장주 설곽의 공력이 그렇게 뛰어났던가 하고 놀라워했다.

[그 젊은 영웅께서 아직 이곳에 당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먼저 추천하도록 하겠소이다. 그는 무형도객과 함께 이 대회를 주관한 석두공, 석두공 소협이외다.]

석두공...

모든 무림첩에 적혀있던 얼굴없던 이름이 결국 거론되었다.

하지만 고수들 중에서 그를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검성과 만박노조등은 고개를 떨구었고 가마속의 진우백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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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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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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