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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장

 

                    백검보의 방문객 (2)

 

 

 

-남경(南京)!

 

장강을 건너 강북으로 가는 배위에 머리카락이 조금 이상한 미청년이 바람을 맞으며 우뚝 서있다.

호수같이 심원한 눈빛에 굳게 다문 입가에 은은히 비치는 매력, 허리에 걸려있는 거무튀튀한 방망이까지도 그렇게 잘어울릴 수가 없는 미청년이었다.

그는 석두공이었다.

진정 임풍옥수(臨風玉樹)라는 말 그대로의 모습인지라 배위의 선객(船客)들이 너도 나도 그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이정(二正)이 겨우 그런 정도의 인물이었다니! 좁쌀같은 자들...! 경우에 따라선 적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하거늘 동지마저 믿지 못하다니...]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파란 물결이 그의 발아래로 들어오는 것같았다.

그때였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졌기로서니 이정을 드러내놓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갑자기 그의 뒤에서 웅혼한 음성이 들렸다.

석두공은 고개를 돌렸다.

백의문사(白衣文士)가 입가에 훈훈한 미소를 띠고 서있었다.

[무형도객! 무형도객이시군요.]

석두공이 반색을 하면서 덥썩 그의 손을 잡았다.

백의문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난 자네를 모르네. 나를 아는가?]

[이런 멍청이!]

석두공은 자신의 머리를 쿡 쥐어박으며 소리쳤다.

전부터 인상이 좋았던 무형도객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실수를 했던 것이다.

석두공이 포권을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오년 전 동정호에서 제 사부님께서 임종하시는 것을 함께 지켜주셨지 않습니까?]

[그럼 자네는 그때 그 소년... 그러고 보니 닮았군 그래.]

무형도객은 석두공의 말을 금방 알아듣고 기뻐했다.

 

일렁이는 물결과 까마득한 수평선은 이곳 장강이 바다인지 강인지 모르게 한다.

“그 사람들을 너무 탓할 것도 없네.”

무형도객은 석두공의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무공만이 능력이 될 수는 없네.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고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 할 수 있네. 포용력이 없고 속이 좁다고 해서 원망할 수야 있는가? 그들의 그릇이 그것 뿐인 것을... 나도 일찌기 그들이 난세를 평정할 주역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저도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하여 도에 지나치게 화를 낸 듯합니다. 하지만 삼인이 만든 척살대가 무림에 나오기 전에 제거해야 할 텐데 여간 큰 일이 아니군요.]

석두공이 말했다.

무형도객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소림사에서 무림첩을 발하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와 자네, 그리고 소림사의 이름으로 발송된다면 더욱 많은 무림인들의 힘을 규합할 수 있을 것이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바는 아닙니다만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석두공의 말에 무형도객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구대문파는 움직임이 없었으며 또한 삼인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소림사에서 무림첩을 발송하고 무림대회를 연다면 그들이 구대문파를 경계하게 될 것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될 이유라도 있는가?]

무형도객이 물었다.

석두공이 머뭇머뭇하면서 말했다.

[사실 저와 저의 의형이신 일초진천수가 그동안 구대문파의 힘을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그들은 최후의 순간에 사용할 생각으로...]

무형도객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돌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그랬었군. 음... 그랬었군.]

[...?]

무형도객은 뜻모를 말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무형도객 그도 구대문파의 힘을 규합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구대문파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힘이 무엇엔가 묶여 있는듯하다는 인상이었다.

그는 그 이유를 이제서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한데 석두공이 강상으로 달려오는 두척의 쾌속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배들을 알고 계십니까?]

[이 넓은 장강에서 불쑥 나타난 배를 내가 어찌 알겠나?]

무형도객이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

[속도로 보아 부딪힐 수도 있겠습니다.]

석두공이 말했다.

그는 동정호에서 직접 배를 부렸던 사람이다. 물과 그 위로 달리는 배의 성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구 저저...]

[애그머니나! 저걸 어쩌나...]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젊은 부인이 달려드는 배를 발견하고 놀랐는지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사공! 사공! 배가 부딪히겠소!]

누군가 소리치자 사공들 중의 한사람이 선실로 뛰어 들어갓다가 징을 들고 다시 뛰쳐나왔다.

지잉! 지잉!

[부딪히겠소. 부딪히겠소!]

그 사공은 징을 두드리며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쾌속선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석두공 등이 탄 배의 허리부분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으아악!]

성질 급한 사람들은 미리 비명을 질러댔고 사공도 놀라서 징을 던져버리고 배를 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려오는 배는 쾌속선이다.

사람과 하물을 많이 실은 도선(導船)과는 그 속도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

석두공이 말했다.

[수적(水賊)입니다.]

[단순한 수적은 아니네. 저것을 보게.]

무형도객이 손을들어 뒤쪽의 쾌속선을 가리켰다.

그 배에서는 막 깃발이 올라가고 있었다. 언듯 보아도 붉은 색인 것같았다.

[적룡혈운도(赤龍血雲島)!]

석두공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으아아!]

그 무렵 배에 탄 선객들이 소동을 일으켜 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이러다간 충돌하기도 전에 가라앉고 말겠군.]

무형도객은 천근추의 공력을 운용하여 배의 중심을 잡았다.

[자네가 하나를 맞게. 내가 하나를 맞...]

무형도객은 말을 하다가 곁이 허전하여 돌아보았다.

석두공은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이미 한 마리의 비조처럼 강물위로 쏘아져 날아가고 있었다.

쾌속선과 그의 거리가 불과 오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촤아아아!

쾌속선이 갑자기 머리를 돌렸다. 달려오던 여파로 배가 완전히 돌아버렸다.

파도가 무형도객이 탄 배를 넘겨버릴 듯이 크게 떠올랐다.

콰르르르릉...

석두공의 손에서 우레 소리가 터져 나오며 다시 쌍장이 격출되었다.

꽝!

쾌속선의 허리가 벼락을 맞은 듯이 절단되어 버렸다.

[으악!]

풍덩풍덩!

살아남은 자들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그와 동시에 배는 가라앉아 버렸다.

실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석두공은 물위를 밟고 나아가며 뒤쪽의 쾌속선으로 접근해갔다. 적룡혈운도의 깃발이 올라간 그 배였다.

촤아아아!

그가 지나감에 따라 물결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삼각파도를 이루었다.

갑자기,

[크하하하하... ]

쾌속선에서 광소가 터져 나오며 황의를 입은 노인이 갑판위에 나타났다. 등에는 도(刀)를 맸으며 왼쪽 허리에는 검을 매고 있었다.

적룡혈운도주 해천월-!

바로 그자였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석두공은 물론이고 무형도객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하니 그렇게 작은 배안에 도주인 해천월이 타고 있을 줄이야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 그를 발견한 석두공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아무리 천하의 해천월이라고 하지만 석두공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야말로 호굴에 뛰어든 토끼나 다름없는 신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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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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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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