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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劍魔의 洞府

 

 

 

흰 그림자들은 두 마리의 흰털을 가진 박쥐원숭이같은 괴물들이었다.

소일초가 앞서 잡은 검은 색 박쥐원숭이 괴물들보다는 훨씬 인간의 모습에 근접해 있었고 나이도 많은 듯했다.

이상하게도 그 괴물들은 소일초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단지 그를 노려보다가 등을 돌려 작은 석동 안으로 더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를 따라 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소일초는 흥미를 느끼고 괴물들을 묶었던 줄을 놓아 버리고 흰 털의 괴물들 뒤를 따라갔다.

동굴은 아주 깊었고……

침묵과 고요가, 그리고 앞서가는 두 괴물의 숨소리가 긴 메아리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좁은 동굴을 따라, 두 괴물과 한 사람의 아이가 무거운 침묵으로 걷고 있었다.

박쥐와 같은 모양이면서도 학처럼 하얀 날개를 가진 온통 하얀 몸을 가진 두 괴물과 비록 호기심과 장난기가 얼굴을 덮고 있지만 단아하고 고고로운 기풍을 지닌 백의를 입은 소일초,

자박 자박……

무거운 침묵으로 음습한 동굴 통로를 해치던 두 괴물은 이윽고 하나의 석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

 

석문에는 그같은 다섯자의 글이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투박하나 패기와 강렬한 기상이 서린 서체였다.

한데,

――시체(屍體)!

고해금마옥이라 쓰여진 그 석문 앞에는 한구의 시체가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승인(僧人)은 승인이로되 전혀 승인같아 보이지 않는 한구의 시신……!

그 승려는 아주 오래전에 죽은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있는 듯이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이 백발(白髮)과 백미가 가슴까지 칭칭 늘어진 노승(老僧).

파계승이었던가?

시신의 허리춤에는 두어 개의 호리병이 매달려 있었다.

회색의 승포는 얼룩덜룩한 것이 죽기 전에 많은 술을 엎지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함부로 경시할 수 없는 웅장한 기도를 죽은 다음까지 지니고 있는 이 노승은 누구인가?

소일초는 누군가를 만날 거라는 느낌을 가졌지만 죽은 중을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었기에 어리둥절했다.

두 백색 괴물은 멈추어 서서 고해금마옥의 문을 가리키며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중의 시체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소일초는 노승의 시체를 세밀히 살펴보았다.

과연, 노승의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은색 목탁에는 손톱으로 긁어서 새긴 듯한 글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노납은 소림승으로 제십칠대 장경각주(藏經閣主)인 우광(宇廣)이다.

노납은 나이 칠십에도 깨닫지 못하는 불법에 회의를 느껴 마침내 파계를 하고 말았다. 승인이로되 승인의 법도(法度)에 따라 생활하지 않았으며 술과 고기를 주식(主食)처럼 즐기고 사는 파계승이 된 것이다.

주육(酒肉)은 고사하고 살생(殺生)도 마다하지 않으니 소림사에서 어찌 노납을 용납하랴? 마침내 소림사에서는 노납을 입적한 것으로 꾸미고는 노납에게 중원에서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에 노납은 중원을 떠나 변황을 수 없이 떠돌았지만 늙은 목숨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인생의 고해속에 머물러 있었다.

……>

 

글을 남긴 인물은 백여년전의 전설적인 소림신승(少林神僧) 우광선사(宇廣禪師)가 남긴 것이었다.

달마와 육조(六祖) 혜능(慧能)이래의 고수로 알려진 우광선사는 그 무공의 탁월함 뿐만 아니라 주육과 살생을 마다않는 괴승으로도 유명했다.

결국 그 같은 기행이 원인이 되어 소림에서 쫓겨난 그는 변황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해, 우광선사는 우연히 남황(南荒)에 내려왔다가 한명 전설속의 거마(巨魔)의 종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검마(劍魔)!

 

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이름인가?

달리 아수라마존(阿修羅魔尊)이라 불리던 백 육십여년 전의 살인마왕(殺人魔王)!

그는 저 혈기자보다도 한 시대 전에 전무림을 공포로 휩쓸었던 일대거마(一代巨魔)였다.

그가 무림에 활동한 시기는 불과 이년이었지만, 당시 그의 일검을 피한 인물도 일 검에 죽지 않은 인물도 없었다.

만일 그가 계속 무림에 남아있었다면 혈기자가 과연 천하제일인의 명예를 차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시 될 정도였다.

이년……!

그 짧은 시간동안 헤아릴 수도 없는 숱한 무림고수들이 검마의 마검(魔劍)하에서 목숨을 잃고 불귀고혼(不歸孤魂)이 되었었다.

검마의 마검식(魔劍式)에 희생당한 무림명숙들의 시체는 너무나도 참혹한 모습이었다.

검마에 의해 살해 당한 흔적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다.

검마의 마검이 머리를 스치면 스친 상처 부분이 동그랗게 파여 나갔고 가슴과 배를 스치면 그 부분에 동그란 구멍이 뚫리면서 내장이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름하여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

그 저주의 검법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하여 누구나 검마를 두려워 했다.

하지만 공포와 전률의 상징이던 검마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어 버리는 바람에 서서히 무림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 살해당한 시체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검마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납은 검마의 종적을 발견했을 때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아수라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오랫동안 삶과 불법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노납은 마지막으로 보살행(菩薩行)을 하고 해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노납이 비록 소림칠십이절기 중에서 육십삼종을 익혀 감히 달마조사와 육조 혜능께 비견된다 하나 검마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검마의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은 이미 인간의 검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각오한 노납이 아니던가?

노납은 그 길로 화기(火器)의 명가인 축융장(祝融莊)에 숨어들어가 그들 일족 최강의 화기인 축융화탄(祝融火彈)을 훔쳐내어 목탁에 가득 채웠다.

최악의 경우 그것을 터트려 검마와 동귀어진할 각오였다.

하나 노납은 검마의 얼굴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노납이 문 앞에 당도했을 때 검마는 이미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담담히 한 수의 선시(禪時)를 읊었다.

 

――방안에 가득하니 그저 지고 난 매화향(梅花香)이로구나.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도 거울에는 그 얼굴이 남았도다.

 

깜짝 놀라서 노납은 묵상에 잠겼었다.

이미 그는 검을 놓고 세상을 버렸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 검마는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에 대한 복수심으로 세상을 피보라에 잠기게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행위에 회의를 느끼고 중원에서 머나먼 이곳 남만으로 내려와 스스로를 고해금마옥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노납은 검마가 던진 시구를 되뇌이다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이요 불법(佛法)은 무상(無想)이라는 것이다.

노납은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알량한 영웅심으로 이곳 고해금마옥을 찾아왔다가 오히려 노납 자신이 구제를 받은 격이로다!

이제 노납은 비로소 해탈하여 입적하게 되나 다만 노납의 피륙을 추르려 줄 사람이 없음을 아쉬워할 뿐이로다.

 

임인년 계축월 파계승 우광 절필.>

 

우광선사의 유언은 그렇게 끝나 있었다.

햇수로 추스려 보니 그가 입적한지는 어느덧 팔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여기가 검마라는 사람의 동굴이었구나.”

우광선사가 남긴 글을 읽은 소일초는 목탁을 집어들며 중얼거렸다.

“한데, 중은 시체를 불태운다고 하던가? 밖에 악어를 굽던 나무가지가 남았으니 나도 좋은 일 한 번 해보지……”

몸을 일으킨 소일초는 힐끗 두 마리의 흰 괴물을 보고는 석문을 밀쳤다.

그가 석문을 미는것을 보고서야 두 마리의 괴물은 동굴을 되돌아 나가는 것이었다.

 

* * *

 

철그렁, 철그렁!

싸늘한 쇠사슬의 부딪침 소리와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어울어진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의 안쪽.

 

――괴인(怪人)!

 

세상에 이토록 섬뜩한 기운과 참담한 몰골을 지닌 괴인이 존재했던가?

장작개비처럼 앙상하게 마른 몸에 걸친 적의는 헤어질대로 헤어져 중요부분만 가렸고……

제멋대로 이지러진 괴인의 이목구비는 도대체 어떤 부위에 무엇이 박혀있는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만,

츠츠츠!

칼날처럼 예리하고 싸늘한 눈빛만이 부딪치는 것은 무엇이나 태워버릴 듯 강렬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바닥까지 치렁치렁 늘어진 적발(赤髮)과……

깡마른 몸에 십자(十字)로 비켜 꿰뚫어진 수십 개의 만년철삭(萬年鐵索)!

검푸른 쇠사슬에 비파골(琵琶骨)이든 척수(脊髓)든간에 마구 꿰뚫고 지난 괴인의 몰골은 참으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이 괴인……

그가 바로 전설적인 살인마왕인 아수라마존(阿修羅魔尊) 검마(劍魔)였다.

문득,

번쩍!

죽음같은 침묵을 흘려내던 검마의 두 눈이 벼락불 같은 광망을 일으키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렇다.

저벅저벅……

석실로 들어오고 있는 백의를 입고 키보다 큰 장도를 등 뒤에 짊어진 한 명의 소동,

바로 소일초를 발견한 것이다.

“……”

“……”

두 가닥의 눈빛이 하나로 엉키고 소일초의 영악한 얼굴에 경악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아! 정말 무서운 기도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애! 우광이란 중은 검마라는 이 늙은이가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 같다더니 전혀 아니올씨잖아!’

소일초의 눈이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을 발견했다.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경악이 걷히고 가득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불쌍한 영감이네. 저렇게 쇠사슬로 칭칭 묶여있다니……’

그는 알리가 없었다.

그 쇠사슬은 검마가 스스로를 묶은 것이라는 것을……!

검마는 세상에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쇠사슬로 자신의 요혈을 뚫어 묶어놓았던 것이다.

소일초는 겁도 없이 적발의 검마를 향해 다가가 천진하게 물었다.

“영감이 바로 검마야?”

순간, 새파란 안광을 작열시키며 소일초를 노려보던 검마의 눈빛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허허허허…… 검마라! 네가 지금 본좌가 검마냐고 물었느냐?”

“그래…… 본 신행마동께서 영감을 검마라고 불렀어.”

두려움도 없이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일초,

찰나,

“크하하하하!”

검마는 돌연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을 통째로 허물어 뜨리는 듯한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윽!”

그 광소의 엄청난 위력을 견딜 수 없는 듯 소일초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웃지마! 영감! 왜 웃는 거지? 내가 검마인 영감을 검마라고 부른 것이 무어 잘못 된 것이라도 있는가?”

티없이 맑은 동공에 분노한 기색이 가득 실리자 검마는 문득 웃음을 멈추었다.

하나 그는 곧 차갑고 날카로운 일갈을 터뜨렸다.

“네녀석은 누구냐? 엄마품에 있어야 할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까지 왔느냐?”

소일초는 검마의 싸늘한 물음에 오히려 장난기어린 웃음을 피워올렸다.

“나는 소일초야, 당금 무림에서 불세출의 악명(惡名), 아차 실수! 악명이 아니고 위명(威名)을 떨치고 있는 신행마동이 바로 나야!”

순간, 검마의 두 눈에서 새파란 광망이 사라지며 주체하지 못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 불세출의 악명을 떨치는 하하…… 신행마동이라고…… 네가?”

“물론이지. 무림에서 신행마동은 오직 나 소일초 뿐이야.”

검마가 웃음을 멈추고 소일초를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이제보니 대단한 꼬마로군, 그 나이에 내공이 이미 육갑자에 달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검마는 산더미 같은 기도(氣道)를 전신에서 폭풍처럼 흘려내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엄청난 기도는 소일초가 여태껏 그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소일초가 일전에 만났던 혈기자 외에 검마에 필적할 만한 고수는 오백년 내에 없었다.

그리고 혈기자는 반로환동한 후에는 기도마저 부드러워져 전혀 위압적이지 않았다.

자연히 지금 검마가 풍기는 압도적인 기도같은 것은 혈기자에게도 없었다.

소일초는 정말 검마가 무서운 고수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느정도 위축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까지와는 전혀 달리 저절로 아버지에게 대하듯이 말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일초는 애써 당당함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검마 할아버지를 만나보려고 남황까지 내려왔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도대체 검마라는 이름조차도 이곳의 석문 앞에서야 알게 된 그였다.

“나를?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우광선사 외에는 아무도 모를 텐데?”

“내가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분명히 할아버지를 찾아왔잖아요.”

검마로서는 이 꼬마가 천하제일의 거짓말쟁이의 제자라는 것을 알리가 없다.

소일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 꿈에 악귀사신을 만나는 꿈을 꾸었더니 이렇게 거짓말 할 일을 만나게 되는 구나.’

“너는 어떻게 이곳을 알았느냐?”

“세상에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잖아요.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구요.”

득의 만만하게 소일초는 다시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

“배우지 않고도 안다고? 푸하하하!”

검마는 또 한바탕 소용돌이치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이어,

“네 이놈! 지금 감히 노부를 우롱하려고 하는 것이냐?”

웃음을 멈춘 검마는 심장을 뜽어내는 듯한 섬뜩한 목소리로 소일초를 다그쳤다.

그러나, 소일초는 오히려 천진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할아버지! 내가 무엇을 우롱한다는 거지요?”

순간 검마의 차가운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할아버지? 저…… 쥐방울만한 녀석이 또 본좌를……’

비정(非情)과 살륙(殺戮)과 유혈(流血)로 무림을 종횡하다가 남황으로 들어와 고독하게 살아오기만 했던 검마……

그가 언제 이처럼 가까운 혈육의 호칭을 들어 본 적이 그 얼마만인가?

비록 소일초가 거짓으로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할 지라도 검마는 그의 호칭에서 심연의 깊이에서 잊혀졌던 어떤 감정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심과 달리 검마의 얼굴에는 더욱 새파란 빛이 가공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증스러운 녀석! 어려서부터 거짓부리부터 배우다니……! 네가 아무리 본좌를 속이려 해도 소용없다. 장차 네녀석으로 인해서 무림이 얼마나 소란스러워질지 모르겠구나.”

“……?”

“예전 같으면 당장 네놈을 죽여야 하겠으나…… 노부와 함께 처절한 수행을 거치도록 해서 네 놈의 심성을 바꾸어 놓겠다.”

“꽥! 수…… 수행이라니요? 무……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이놈! 내가 한때의 광기를 억제치 못해서 저지른 만행을 참회하기 위해서라도 네 녀석을 장차 무림에 복이 되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아야겠다.”

검마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하나, 소일초는 오히려 환한 미소를 검마에게 던지는 것이니…… 설마 그렇게 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고 녀석 참……!’

그런 소일초를 새파란 안광을 폭출시키며 바라보던 검마의 눈가로 따스한 정감이 스쳐갔다.

그것은 평생을 살륙과 세상에 대한 증오로 살아온 검마가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이한 감정이었다.

 

――검마!

 

일백육십여 년 전 무림천하를 한자루의 검으로 무자비하게 휩쓸어 천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일초무적(一招無敵)의 살인마!

비록 그 활동기간이 이 년이란 짧은 시기였지만 천하의 모든 명인, 고수들이 두려워 해 마지않았던 고금제일의 검수(劍手)!

소림의 불세기재로 불리웠던 우광이 동귀어진할 작정으로 축융화탄을 목탁속에 넣고서 찾아 다녔던 공포의 거마(巨魔)!

뿐인가?

당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백인산장의 도객들이 비밀리에 검마를 잡기위해 나섰으나 삼십여명의 도객들이 역시 단 일초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검마의 어마어마함을 더이상 설명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 그가, 그토록 강인함과 피와 잔인(殘忍)으로 점철되었던 그가 냉혹하고 비정한 응어리를 드리운 얼굴에 따스한 기온을 피워내다니!

백 수십여 년의 세월을 처참한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오며 참회를 한 때문인가?

그의 불성이 이미 깊은 경지에 다다랐음인가?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정이 너무 그리워서인가?

이것은 기변 중에도 경악할 기변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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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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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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