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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붓 속에 숨겨진 財産 (1)

 

 

 

-소흥(紹興)!

 

하(夏)왕조 시대에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치수를 한 우(禹)의 무덤인 우릉(禹陵)이 있다.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이 직접 이곳을 방문했다고 전해지는 만큼 이 우릉에는 시인묵객과 영웅호걸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객점과 주루들도 근처에 적지 않게 있다.

소흥은 또 술을 장 빚는 고장으로 유명하다.

소흥주(紹興酒)가 명주임은 주당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우르릉!

우르릉! 쿠쾅!

아침부터 찌푸렸던 하늘이 기어코 무너지며 시퍼런 번개불을 토해냈다.

번쩍!

콰쾅!

오후가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공기가 무거웠다.

콰󰠏󰠏! 쏴아아아!

우르릉... 쿠쾅!

번개불이 갈라놓은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장대발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릉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서둘러서 주위의 객점이나 주루로 피해 들어갔다.

 

[에이 기분 나빠! 하필이면 비가 쏟아질게 뭐람. 조금만 빨랐어도 괜찮았을 텐데... ]

장지연은 흠뻑 젖은 옷을 공력을 돋구어 말리며 객점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객점 안에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그녀가 망설이며 두리번거리자 점소이가 달려와서 한쪽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곳도 빈자리는 아니었다.

[손님, 여기 앉으십시오. 이분은 일행이 없으니 괜찮을 겁니다.]

점소이가 권한 그 자리엔 장지연과 비슷하거나 한살 많아 보이는 소녀가 앉아있었다.

보석같이 초랑한 눈망울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로 얇은 흑의를 입었고 허리춤에는 백옥퉁소가 끼워져 있었다.

얼핏 보아도 예사로운 소녀같지는 않았다.

장지연은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시켰다.

그녀 앞의 흑의소녀는 이미 음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장지연은 침을 꼴깍 삼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화상같은 석두공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사라지려면 영영 사라져버리든가 할 것이지 사람을 이렇게 고생만 시키다니...)

한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소녀도 하필이면 그 순간에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석두공! 그는 어떻게 됐을까? 뇌주탄에서의 해전은 그가 벌인 것이 틀림없을 텐데 진우백의 이름만이 무림에 진동하고... 빨리 그를 찾아야 하는데... )

이 흑의소녀는 바로 백란(白蘭)이 아닌가?

석두공이 무저갱(無底坑)에서 올라오자마자 만났던, 그리고 석두공을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은 포기해버렸던 그 소녀 백란인 것이다.

백란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를 빨리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은데... 두발 달린 짐승이니 묶어둘 수 도 없고... )

맞은편에서 장지연도 생각하고 있다.

(이러다가 꽃같은 내 청춘이 그 얼간인가 하는 석두공 찾아다니다가 다 지나버리는 건 아닌 지 모르겠네. 만나기만 한다면 개목걸이라도 채우겠는데...)

백란의 생각은 이렇게 번져가고 있었다.

(만난다면 먼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가 나를 어떻게 대할까? 휴...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

장지연의 머릿속도 분주했다.

(한데 참, 그 숯덩어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보니 그 생각은 또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때 백란은 젓가락을 튀긴 닭고기로 가져가며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진 내가 그를 만났는데도 데려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 때려죽이려 들거야. 빨리 뇌주탄에서 이후의 행방을 찾아야돼. 내키지는 않지만 해남도의 그 늙은이 진우백에게라도 물어봐야겠어.)

장지연이 생각했다.

(쳇 그 숯덩어린 무슨 새끼방울인가 소령인가 하는 계집애를 찾아다니고 있겠지. 에이 기분...)

백란이 생각했다.

(정검령(正劒令)을 사용하여 그를 찾는 것도 한계가 있어. 아주 발이 넓은 조직이 있다면 좋을 텐데... 발이 넓은 조직?)

장지연이 생각에 몰두하여 백란의 음식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하지만 백란도 그런 사정이라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지연은 속으로 석두공을 욕했다.

(무정한 자식! 내 마음을 빤히 알면서도 모른척 했겠다. 그리고서도 뭐 소령인가 그 계집애를 찾아? 나쁜 놈... 정말 나쁜 놈... 석두공보다 더 나빠.)

백란은 자기의 말에 스스로 반문하고 있었다.

(발이 넓은 조직...? 그럼 무림에서 개방을 능가할 세력이 없잖아?)

장지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쁜 놈... 하지만 어쨌든 석두공부터 찾아야 돼. 이제는 지쳐버렸어. 개방에라도 손을 벌리는 수 밖에... )

[그래! 개방이다.]

[개방!]

갑자기 백란과 장지연이 동시에 내뱉었다.

[...!]

[...!]

서로가 눈이 뚱그레져서 바라보았다.

서로의 젓가락이 음식물의 경계를 침범하고 있었다.

 

× × ×

 

쏴아아아...

콰르르릉... 쏴아아아...

[소식이 빠르기로는 개방을 능가할 곳이 없지.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손이 빠르기로써 서생(書生)들을 능가할 사람이 없겠지.]

무형도객이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석두공이 붓을 집어던졌다.

[정말이지 서생들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쓰더라도 다 못할 것같습니다.]

그의 앞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첩지들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같았다.

석두공과 무형도객이 팔이 부러질 정도로 힘들게 적은 무림첩들이었다.

[제가 근처의 학당을 알아보고 글쓸 사람을 구해오겠습니다.]

석두공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서문가(西門街)로 가면 대통학당(大通學堂)이라는 곳이 있네. 거기 가서 알아보게.]

석두공은 객점의 주인에게서 우산(雨傘)을 얻어들고 밖으로 나왔다.

진강(鎭江)가에 있는 양주(陽州)가 물에 잠겨버리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비는 많이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 × ×

 

[하하하하!]

광광광광!

학당의 새끼 서생들이 바닥을 치면서 웃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물었다.

[글을 읽는 분이 아니시죠?]

[그렇습니다.]

석두공은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했다.

책만 펴들면 잠들었던 기억이 있는 그였다.

서생들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잘 몰라서 그런 모양인데, 요즘은 그렇게 똑같은 내용을 손으로 적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적포(書籍布)에 가셔서 한 번 알아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내용인지는 몰라도 불일간에 될 것입니다.]

석두공은 하례를 하고 나왔다.

그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다니... 하하하!]

석두공은 책을 만든다는 곳으로 찾아가면서 투덜거렸다.

[글을 사람이 쓰지 않고 인장(印章)처럼 찍는다니 참... 나중엔 검도 사람이 휘두르지 않고 다른 뭐가 어떻게 할 지 모르겠군. 나야 본래부터 좀 모자랐으니까 모른다고 치더라도, 무형도객 선배도 까막눈인가? 왜 이런 것도 몰라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까?]

 

***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서적포의 점원이 물었다.

[최소한 오만 장 정도... ]

점원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오만 장의 분량이면 웬만한 서적포에서 반년 동안 주문받는 량을 다 합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빨라도 보름이상은 걸립니다. 하지만 급한 것이라면 다른 집과 일을 나누어 더 빨리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시오.]

[하지만 그럴려면 돈이 조금 더...]

점원은 석두공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얼마가 필요하오?]

[요즘 종이값이 워낙 비싸서 헤헤... 은으로 오백냥은 주셔야겠습니다.]

점원이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석두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상객점(昶翔客店)에 와서 나를 찾으시오. 돈은 그때 주겠소.]

[그럼 찍어내야 할 내용을 여기에 적어주십시오.]

점원은 백지를 내밀었다.

석두공은 먹물을 흠뻑 적신 붓으로 써내려갔다.

 

<...

무림동도...

검종맹과 잔혼각, 그리고 적룡혈운도의 발호가 극에 달하여...

강호의 도의는 땅에 떨어지고...

이에 천하 무림의 정기를 회복하고자 십대 고수 중 오객의 한분이신 무형도객과 무림말학 석두공이 감히 기치를 잡았...

의열남아라면 주저없이 나서 악의 기운을 이땅에서 몰아내는데 힘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명월 중양절(重陽節)에 무창(武昌) 귀산(龜山)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바이니 무림제위들께서는 아직도 정의가 건재함을 보여주시기 바라오.

무형도객, 석두공 서(書)>

 

[손님처럼 필적이 뛰어나신 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판을 새기고 나서 이 글은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점원이 석두공의 필체에 감탄하며 물었다.

[좋을 대로 하시오.]

석두공은 질렸다는 듯이 붓을 던져놓고 객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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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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