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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 혼례식(婚禮式) (2)

 

 

신랑이 기가 막혀하는 가운데 혼례가 거행되었다.

비록 맑은 물 한잔과 수탉 한 마리만 탁자위에 올려놓고 맞절을 하는 간단한 혼례이긴 했지만 틀림없는 혼례였다.

신랑측의 혼주(婚主)도 있었고 신부측의 혼주도 있었다.

자기의 몸이 의사와는 상관없이 구부려지고 일으켜지는 데야 임청우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윽고 개방의 전대고수 부부가 주관한 거지같은 혼인이 끝났다.

첫날밤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예식을 마친 후 할머니가 황의소녀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남자는 원래 밥통 같아서 뭣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단다. 네가 잘 가르쳐야 할 거야. 우린 근처 숲에서 자고 아침에 올 테니 그렇게 알아라.”

...”

할머니의 말에 황의소녀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대범하고 뻔뻔스러운 데가 있는 소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린 소녀였던 것이다.

노부부는 밖으로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혈도가 찍힌 임청우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장승처럼 서있을 뿐 옴쭉달쭉할 수도 없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렇게 벼락 치듯이 혼례를 올리게 될 줄은 꿈엔들 생각지 못했다.

아니 혼례라는 것 자체도 아직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임청우인 것이다.

두 부부가 멀리 간 것을 확인한 황의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장승처럼 서있는 그를 한 바퀴 돌았다.

이제 부부가 되었으니 나를 때리면 아내를 때리는 천한 남자란 소리를 들을 것이고 도망친다면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겠지? 우협의 제자도 우협같은 성인군자일 테니 결코 그런 말을 듣지 않겠지? 그랬다간 우협이란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임청우는 화가 나서 속으로 말했다.

(그래, 사부님의 명성을 내가 해칠 수는 없다. 네 말대로 이미 억지로라도 천지신명에게 맹세하고 부부가 되었으니 너를 때리지도 가정을 돌보지 않는 짓도 하지 않겠다. 하지만 네게 나와 부부가 된다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해 주겠다.)

한데 황의소녀의 얼굴이 점점 침울해져갔다.

그녀는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말했다.

내가 좀 엉뚱한 짓을 한 것은 인정해. 난 가끔 이러니까. 하지만, 난 나를 지킬 필요가 있었어. 아버지의 부하들은 나를 잡아가려고 하고, 내가 피하는 것도 한도가 있어. 난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말이야. 한데... ”

소녀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기걸승(妓乞僧)... 아버지의 충실한 개인 그들이 네가 우협의 제자라는 것만으로도 모두 도망 가버리지 않았어? ... 이미 그때 결심했어. 너와 혼인하겠다고...”

임청우는 비로소 황의소녀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자신과 혼례식을 올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수하들에 대한 대비책으로 자신과 부부가 된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하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 너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좋았어.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말하긴 싫었어.”

당돌하면서도 거침없어 보였던 황의소녀였다.

한데 그녀가 지금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임청우는 가슴이 찡해왔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목이 메었다.

동시에 단전에서 한줄기 기운이 솟구쳐 오르며 막혀있던 혈도들이 순식간에 타통되어 버렸다.

임청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소녀의 어깨에 얹었다.

“...!”

황의소녀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 미안...”

임청우도 놀라 그녀의 어깨에서 급히 손을 뗐다.

... 어떻게 혈도를 풀었지?”

황의소녀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임청우와 황의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색한 순간이 계속됐다.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졌다.

임청우는 생각했다.

(이 소저, 아니...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좋은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은 데, 그래도 성미는 여간 사나운 것 같지가 않다. 어머니처럼 나를 죽이려 들지는 않겠지만... 미리 손을 써두지 않으면 안되겠다.)

어머니의 성격은 무시무시하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어쩌다가 혼인을 올리게 된 황의소녀도 자기의 뺨을 때리는 둥, 그 성미에 있어서 결코 녹녹한 것 같지가 않다.

어떤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다시 농산에서의 괴로운 생활이 반복될 수도 있는 일이다.

임청우는 어느 책에선가 본 구절을 떠올리며 혼잣말 처럼 천천히 말했다.

똑똑한 남자는 나라를 세우고 똑똑한 여자는 나라를 망친다고 하던데...”

! 나라를 세우기나 하라구. 망치는 건 그 이후의 문제니까.”

황의소녀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이런 산속에서 꼬마들이 반역을 획책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

갑자기 침실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임청우는 깜짝 놀라며 황의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누구냐!”

임청우가 막 소리치는 순간이었다.

슈우!

침실 안쪽에서 뭔가가 어른거리는 듯하더니 오척 단구에 뚱뚱한 몸을 한 중년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침실에는 거실과 연결된 방문 말고는 작은 창문 밖에 없었다.

임청우는 어떻게 뚱뚱한 중년인이 침실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헌데 뚱보 중년인은 당황하는 임청우를 보며 오히려 놀란 듯했다.

? 들은 것과는 다른데.”

사삭!

임청우는 번개처럼 자기의 얼굴을 더듬고 물러서는 손을 느꼈다.

임청우는 주춤 한 걸음 물러섰다.

뚱보 중년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뭘 칠한 것도 아닌데...”

그때 임청우 뒤에서 황의소녀가 나서며 말했다.

이봐요. 당신은 혹시 칠절 중 비객(飛客)이라 불리는 소대협(蘇大俠)이 아니신가요?”

맞아, 내가 바로 비객 소도성(蘇道盛)이다. 넌 누구길래 어린 아이 주제에 날 알고 있는 것이냐?”

중년인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키가 작고 뚱뚱해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중년인, 그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라는 칠절 중의 비객 소도성이었던 것이다.

임청우는 그 뚱뚱한 몸이 어떻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리가 길기가 하나 몸이 날렵해 보이기를 하나...

굴러다닌다면 믿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황의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천하제이(天下第二)의 경공술을 가지신 비객 소도성을 모른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않겠어요?”

하하핫! 내가, 이 비객 소도성이 천하에서 두번째라고? 그것 참 웃기는군. 그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조금은 있으니 한번 놀아보자구나. 그래 그럼 제일은 누구냐?”

소도성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임청우는 소도성이 말한 <>라는 소리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그가 누구입니까?”

? 너를 찾고 있는 검주 유소기지 누구겠나?”

그가 왜 나를 찾습니까?”

하하핫! 너는 그에게 볼일이 없겠지만 그는 아마도 단단한 볼일이 있는 모양이던데...”

소도성이 임청우의 허리에 걸려있는 혈도를 보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검주 유소기의 임청우에 대한 볼일, 두 말할 것도 없이 몽선도를 뺏으려는 일이었다.

황의소녀가 다시 나서며 말했다.

아무리 무림칠절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좋을 것이 없을 걸요?”

마면혈도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무비옹을 믿고 있는 모양이군.”

소도성이 가소롭다는 말했다.

황의소녀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당신보다 빠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세요? 그는 바로 일왕(一王), 금포염왕이라구요.”

일왕... 그라면 나보다 빠를 수도 있겠지. 설마 일왕이 저 놈의 배후에 있단 말인가?”

소도성의 음성이 무거워졌다.

아무리 빠르기로 유명한 비객이지만 감히 금포염왕보다 빠르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설마하니 일왕만 알고 있는 건 아니겠죠?”

황의소녀가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그만!”

임청우가 그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는 다시는 우협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대장부라면 자기의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임청우는 소도성에게 말했다.

칠절은 모두 강도를 일삼는 무리입니까?”

소도성의 눈이 번쩍했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 칠절이 그렇게 만만할 것 같은가?”

만만치 않다는 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같이 들리는군요.”

소도성은 임청우를 노려보다가 눈빛을 거두며 말했다.

그래, 그만두자. 나는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죽인 일이 없는데 너 때문에 굳이 살인을 하고 싶진 않다.”

황의소녀는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임청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칠절이 다 오는 모양이야. 어서 도망쳐야해. 만약에 검주 유소기와 도군(刀君), 신소(神簫) 등이 도착하면 도망칠 래야 칠 수도 없어.”

임청우의 몸이 움찔했다.

소도성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 도망치려고? 이 소도성 앞에서?”

황의소녀가 배시시 웃었다.

맞아요. 정확하게 맞췄어요.”

“...?”

그녀의 서슴없이 하는 말에 소도성이 긴가민가하는 순간이었다.

스스슷!

갑자기 임청우와 황의소녀의 몸이 안개에 휩싸인 듯이 흐릿해졌다.

내 앞에서 달아나겠다? 어림 반문어치도 없은 생각이지.”

소도성은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유있게 웃었다.

!

그리고는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번개처럼 창문을 뚫고 밖으로 날아나갔다.

으헉!”

스팟!

그러나 초가집을 뛰쳐나온 소도성은 채 삼장도 가지 못해 다급한 비명과 함께 더 빠르게 물러났다.

두 개의 나무 사이에 팽팽하게 걸려있는 눈에 보일 듯 말듯한 가는 실이 그의 앞을 가로 막았던 것이다.

황의소녀의 천잠사다.

으으...”

소도성은 식은땀이 흘렀다.

그의 빠른 속도로 말미암아 하마터면 허리가 잘릴 뻔 했다.

공력이 높아 허리를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들었기에 가까스로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천잠사에 닿은 옷은 예리한 검에 베인 듯이 잘라져 버렸고 허리에도 붉게 금이 그어졌다.

놀람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여우같은 년!”

!

소도성이 발을 한번 구르는 순간 그의 뚱뚱한 몸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허공으로 빨려 올라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헌데 소도성이 사라진 직후였다.

스스슷!

천잠사가 감겨있는 나무 뒤에서 황의소녀와 임청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도망가야 해! 비객 소도성을 잠시는 속일 수 있어도 오래 속일 순 없어. 금방 속은 줄 알고 돌아올 거야.”

황의소녀가 임청우의 손을 끌면서 말했다.

임청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무들 사이로 달렸다.

황의소녀는 그에게 손을 잡힌 채 따라가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임청우의 얼굴을 힐끗 보아도 그 검은 얼굴이 진지하게 보인다.

결코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설마... 경신술도 모른단 말인가? 우협의 제자가...)

어쩌면 우협의 제자이기에 경신술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협이라면 일왕과 나란히 일컬어지는 일협으로서의 그 가공할 무공에도 불구하고 백전백패, 만전만패의 기인이 아니던가?

!

마음이 급해진 황의소녀는 자기보다 키가 큰 임청우의 허리를 끼고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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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봉황의 살기 어린 교갈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네년도 저 암중처럼 만들어주마!"

파앗!

뜻밖에도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천면음마가 달아나기는커녕 철봉황을 덮쳐오는 게 아닌가?

그자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천면음마는 절묘한 역용술과 함께 빼어난 경신술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까지 어떤 강적에게도 잡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천면음마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철봉황이 노렸는지는 몰라도 천면음마는 한쪽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몸 상태라면 달아난다고 해도 멀리가지 못하고 철봉황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높다.

달아나지 못한다면 먼저 철봉황을 공격하여 쓰러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자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

대담하게 쇄도하는 천면음마를 향해 철봉황의 검이 벼락같이 그어졌다.

그녀의 이 일검은 빠르면서도 변화가 막측하여 천면음마가 막을 수도 피하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스슥!

헌데 쇄도하는 천면음마의 모습이 갑자기 네 개로 불어났다. 경신술과 보법을 이용한 속임수다.

스악!

철봉황은 흠칫 놀라면서도 그어냈던 검을 놀라운 속도로 회수한 후 비스듬히 내리쳤다.

그녀의 신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반응에 네 명으로 불어났던 천면음마의 모습 중 세 개가 갈라졌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가 철봉황의 검을 피하며 쇄도해 들어왔다.

그것이 천면음마의 실체였다.

부악!

단번에 철봉황에게 접근한 천면음마는 오른손을 비스듬이 그었다.

강철 갈고리같이 변한 그자의 손가락에 스치면 금강불괴라 해도 상처가 날 것이다.

거리가 아주 가까워 철봉황은 도저히 천면음마의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순간 철봉황의 입에서 사나운 고함이 터졌다.

!

그러자 막 철봉황의 목을 손가락으로 그으려던 천면음마는 가슴을 철퇴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휘청했다.

위기의 순간 철봉황은 소림사의 칠십이절기중 하나인 복마사자후(伏魔獅子吼)를 토해낸 것이다.

복마사자후는 일반적인 사자후와 달리 소리를 한 곳에 집중시켜 타격을 가하는 위력을 지녔다.

!”

!

복마사자후에 가슴을 강타당한 천면음마는 허공에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그자가 뿜어낸 패가 안개처럼 확 퍼진다.

!

철봉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쇄도하며 철검을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어냈다.

"케엑!"

후두둑!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확 번졌다.

퍼억! 털썩!

세 조각의 육괴가 바닥에 흩어졌다. 천면음마는 두 다리가 허벅지에서 잘린 채 나뒹군 것이다.

"...!"

헌데 철봉황의 안색도 일변하며 교구를 바르르 떨었다.

천면음마를 벤 직후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진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현기증은 이내 사라져서 철봉황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크크크! 네년은 이제 영원히 본좌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천면음마는 두 다리가 잘렸음에도 악에 바쳐 웃었다.

"헛소리는 지옥에나 가서 해라."

철봉황은 차갑게 일갈하며 검을 흔들었다.

퍼억!

케엑!”

처절한 비명과 함께 천면음마의 두 팔도 성둥 잘려 동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제 그 자는 두 팔과 두 다리는 모두 잘려나간 처참한 모습이 된 것이다.

"간단히 죽이지는 않겠다. 지옥에 이르기 전까지 네놈이 그동안 저지른 죄과를 두고두고 참회해라."

스윽! !

철봉황은 얼음같은 표정으로 철검을 어지러이 흔들었다.

퍼퍼퍽!

"케에엑!"

끔찍한 비명과 함께 천면음마의 전신 혈도에서 분수처럼 선혈이 치솟았다.

철봉황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검기로 그 자의 전신을 난자해 버린 것이다.

끄윽...”

결국 천면음마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는 혼절해버렸다.

철봉황은 그제야 분이 풀린 듯 검을 거두며 자운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휴우! 한 발 늦었구나."

자운 비구니의 알몸을 훑어본 철봉황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남녀 관계에는 문외한인 그녀였지만 자운 비구니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심 당혹한 심정이 되었다.

(자운사매의 몸에 파과의 흔적이 없는 게 의외로구나.)

자운 비구니의 몸위에서 출혈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유린당한 건 확실한데 피가 나지 않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를 수가 없다.

(조신한 척 해왔지만 사실은 남 몰래 어떤 사내와 통정을 한 것일까? 아니다. 무공 수련 과정에서 처녀의 상징이 훼손되었을 수도 있으니 예단하지 말자.)

철봉황은 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찢어진 승복으로 자운 비구니의 알몸을 대충 감쌌다.

"어쨌거나 오늘 일로 자운사매가 다른 생각은 하지 말아야할 텐데..."

자운 비구니를 안아든 철봉황은 한숨을 쉬며 토지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쏴아아!

이내 그녀의 모습은 장대 같은 빗줄기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으으..."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함께 하나의 인영이 토지묘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들어선 그 인물은 고검추였다.

고검추는 천면음마의 도룡삼첩장을 등에 맞고 순간적으로 혼절했었다.

사실 도룡곡의 비전 절기인 도룡삼첩장은 치명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다.

표적에 닿는 순간 세 번 연속 진동을 일으켜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방비하는 게 극히 어렵다.

막았다고 방심하는 순간 연이어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고검추는 그 도룡삼첩장에 무방비 상태로 가격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검추는 잠시 격심한 고통을 느꼈을 뿐 별다른 상처는 입지 않았다.

고검추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태을강기가 몸을 보호해준 덕분이었다.

도룡삼첩장의 역도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아직 불완전하긴 하지만 태을강기가 즉각 반응하며 그 역도를 밀어내었다.

고검추의 몸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멀리 튕겨져 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도룡삼첩장의 역도는 순간적으로 고검추의 내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고검추는 그 충격에 머리가 흔들려 잠시 혼절했던 것이다.

까무라쳤던 고검추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철봉황이 자운 비구니를 알고 토지묘 밖으로 날아나가고 있었다.

고검추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자운 비구니를 구해간 여인이 바로 자신이 복우산으로 찾아가던 그 철봉황임을...

고검추는 그저 그녀가 대단한 기세를 지닌 여인이라고 느꼈을 뿐이었다.

비록 정신을 차렸으나 고검추는 즉각 운신은 할 수 없었다.

도룡삼첩장에 당한 충격으로 인해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고검추는 한 동안 쏟아지는 빗속에 누워 팔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길 기다려야만 했었다.

 

"...!"

토지묘 안으로 들어서던 고검추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참혹했다!

낭자한 선혈 속에 사지가 모두 잘려나간 천면음마의 몸뚱이가 푸줏간의 고깃덩어리처럼 누워 있었다.

(... 끔찍하다. 그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솜씨인 모양이구나.)

고검추는 천면음마의 무참한 모습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헌데 그가 역겨운 피비린내를 견디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할 때였다.

"으으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천면음마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구나.)

천면음마가 살아있는 것을 알아차린 고검추는 갈등에 휩싸였다.

천면음마는 비구니조차 서슴없이 겁탈한 용서받지 못할 색마다.

그런 인간 말종에게 동정을 보일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

하지만 고검추는 이내 한숨을 쉬며 천면음마에게로 다가갔다.

상대가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악인이라 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매정하게 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 내가 죽어 저승에 온 것이냐?"

고검추가 다가가자 천면음마는 피에 젖은 눈을 치뜬 채 올려다보며 헐떡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자신의 도룡삼첩장에 격살되었다고 믿었던 고검추가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

"유령은 아니니 안심하시오."

고검추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면음마 옆에 앉았다.

(틀렸다. 이런 몸으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이다.)

그는 천면음마의 난도질당한 몸을 내려다보며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팔 다리가 모두 잘린 것은 치명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출혈이 심할 뿐 당장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기 때문이다.

치명상은 철봉황의 검기에 온몸의 경맥이 토막 쳐진 것이었다.

철봉황은 일격에 천면음마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중상을 입혀서 천면음마가 고통 속에 죽어가게 만든 것이다.

천면음마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경험을 한 후에야 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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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황금전장> 황금전장의 정문 모습

황금전장의 깊은 곳. 여러 개의 굴뚝이 있는 아주 긴 건물. 주방 건물인데 규모가 크고. 창고도 근처에 있고. 여러 굴뚝에서는 연기가 치솟고

건물 앞 마당의 지붕이 달린 커다란 우물에서는 여자들이 물을 길어서 큰 그릇의 식재료를 씻고 있다. 마당은 납작 돌로 덮여있다

 

길고 넓은 주방 내에서는 요리사들이 한창 요리를 만들고 있다. 불길이 치솟는 화구에 웍을 얹어놓고 돌리는 자, 기름에 튀기는 자, 썰거나 무치는 자. 요리에 장식하는 자. 주방에 있는 요리사만 수십 명이다. 이미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 즐비한 탁자들도 있고

그 주방에 딸린 접견실. 벽이 없어서 주방에서도 보이는 그곳에서 청풍이 주대육과 만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모자를 쓴 요리하던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주대육과 그 앞에 공손히 서있는 청풍

주방의 요리사들 힐끔거리며 곁눈질로 보고

요리사1; [저 놈 뭐야?] 덩치가 아주 크고 심술궂게 생긴 젊은 요리사가 웍을 돌리며 곁눈질로 청풍을 보면서 동료에게 묻고. 이놈은 몇 번 나올 캐릭터

요리사2; [몰라. 호원무사가 데려오자 총주방장님이 직접 만나고 있어.] 역시 웍을 돌리면서 대꾸

요리사3; [별일이로군. 총주방장님은 여간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데...] 탕탕! 위의 두놈 뒤에서 칼질하며

요래사4; [뭔가 기막힌 재주가 있는 놈인 모양이지.] 통통! 역시 칼질하며

 

주대육; [그런 사정이 있었군.] 끄덕

청풍; [초면이나 다름없는데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청풍; [편의를 봐주시면 보은하겠습니다.]

주대육; (간곡하지만 비굴하지는 않다.) 웃고

주대육; (확실히 평범한 놈은 아니로군.) + [오백냥이라...]

청풍; [적지 않은 금액인 건 알고 있습니다.]

주대육; [아니, 금액이 문제가 아닐세.] 고개 젓고

주대육; [오백냥이 아니라 천냥이나 이천냥이라도 융통해줄 수 있어.]

주대육; [다만 그냥 채용하는 게 아니고 적지 않은 선금(先金)을 주고 채용하려면 총관의 허락을 받아야만 해.]

청풍; [이해합니다.] 끄덕

주대육;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일어나며 앞치마를 풀면서 말하고.

주대육; [함께 가세. 총관에게 인사도 해야 하니...] 이어

앞치마와 모자를 벗어 탁자에 내려놓고

청풍과 함께 주방을 나가는 주대육

 

요리사1; [저 놈, 총주방장님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지만 특별대우를 받는구만.] 질투의 표정으로 청풍을 노려보고

요리사2; [총주방장님이 저렇게 곰살궂게 대한 놈은 본적이 없어.] 역시 궁시렁 대는데

! 만들어놓은 음식들이 놓인 탁자 아래에서 예쁜 계집아이 손이 올라온다.

접시에 수북이 쌓아놓은 경단들 중 하나를 집으며 탁자 위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소녀. 나이는 15살 정도. 이진진보다 어린데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어리고 순진하게 보인다. <신마유희> <마왕강림>등에 나온 옥령 캐릭터. 이 작품에서의 이름은 벽옥령. 냉혈전호 벽초천의 둘째딸, 즉 벽소소의 동생이다. 당연히 화려한 옷을 입었다. 공주같은 소녀 취향의 옷을 입었는데 한 팔로는 살이 쪄서 뚱뚱한 흰색의 털이 긴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다.

벽옥령은 머리에도 몇 개의 머리핀을 꽂고 있다. 대부분 꽃모양인데 가운데에는 상당히 큰 보석이 박혀있어서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머리핀들이다. 이 머리핀들은 나중에 쓰일 소품이다.

경단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주방 밖을 보는 벽옥령.

주대육과 뭐라 대화 나누며 걸어가는 청풍의 뒷모습이 보이고

청풍의 얼굴 크로즈 업

두근! 얼굴이 발개지고 가슴이 뛰는 벽옥령. 그때

야옹! 고양이가 칭얼대고. 그러자

벽옥령; [미안해 설()! 나만 먹어서...] 고양이에게 사과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냉혈전호 벽초천의 차녀 벽옥령(碧玉鈴)>

벽옥령; [보자. 설아가 좋아하는 고기가 어디 있더라?] 고개를 내밀고 탁자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

음식 접시들중 산적같은 고기가 쌓인 접시가 있다.

벽옥령; [좋아! 오늘은 소고기다.] 웃으며 고기에 손을 내밀고. 그러다가

멈칫! 하며 주변 둘러보는 벽옥령과 고양이.

! 주변에 요리사들이 둘러서서 눈을 부라리고 있다

벽옥령; [헤헤헤! 들켰네.] 귀엽게 웃으며 일어나고

<심쿵!> <아흑!> <귀여워!> 요리사들 벽옥령의 귀여운 모습에 뿅 가지만

요리사1; (그렇다고 저 귀여움에 마음 약해지면 안되지.) + [작은 아가씨! 안돼요 안돼!] 손가락을 세워 흔들고

요리사1; [주방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훔쳐 먹는 바람에 아가씨는 물론이고 그 고양이새끼까지 돼지가 되어가고 있잖습니다.]

벽옥령; [돼지라니 말이 너무 심해.] 입술 삐죽이고

요리사1; [제발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작은 아가씨! 요즘 몸이 많이 부셨지 않습니까?] 벽옥령의 아래위를 보고

벽옥령; [유모는 통통해서 귀엽다던데...] 샐쭉

요리사1; [틀린 말은 아니지만...] 헤벌레. + 요리사2; [저희 사정 좀 봐주십쇼 작은 아가씨!] 팔꿈치로 요리사1의 옆구리를 치며

요리사2; [자꾸 이렇게 훔쳐 드시면 저희가 총관님께 혼이 납니다요.] 애원하는데

벽옥령; [튀자 설아!] ! 외치며 한 손으로 경단을 낚아채고. 고양이는 벽옥령의 품에서 뛰어내려 쇠고기 요리를 덮치고

[작은 아가씨!] [이놈의 고양이가!] [막아!] 요리사들이 기겁하며 벽옥령과 고양이를 잡으려 하지만

다다다! 입에 경단을 물고 양손에 경단을 든 벽옥령과 입에 고기를 문 고양이가 미꾸라지처럼 요리사들 사이를 빠져 도망친다.

[이런 미꾸라지같은...] [저 고양이새끼 잡아!] 요리사들 허둥대지만. 그 사이로 쪼르르 달려가는 벽옥령과 고양이.

[다시는 주방에 얼씬거리지 마십쇼!] [먹고 싶으면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잡히면 나비탕 만들어버린다 고양이새끼야!] 요리사들이 주먹질하고 건물 밖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당황하는 사이로 달아나는 벽옥령과 고양이

벽옥령; (그 오빠 누굴까?) 달려가며 청풍을 떠올리고

벽옥령; (이유를 모르겠어. 그 오빠를 보자 가슴 속이 간질간질해지는 이유를...) 얼굴 발개지고.

벽옥령; (설마 옥령이, 병에 걸린 거 아닐까?) 울상 지으며 달려가고

 

#20>

벽소소가 난리 쳤던 그 건물. 두 명의 무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고. 문은 닫혀있다.

건물 내부에 벽초천은 없고 벽세황과 이세창이 앉아서 대화중이다. 벽세황이 아버지가 앉았던 상좌에 앉아있다. 부서진 탁자는 치워졌고 새 탁자가 놓여있다.

벽세황;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아직도 모른다?] 거만한 자세로 앉아서 오만상

이세창; [큰 아가씨는 주로 한밤중에 본장을 빠져나가 그자를 만나왔습니다.] 난감한 표정으로 눈치 보며

이세창; [그때마다 미행을 붙였지만...] [큰 아가씨의 종적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번번이 놓치곤 했습니다.] 눈치 보며

벽세황;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놈이 누군지 알아내야만 하오.] [곧 무림맹에서 혼서가 도착하겠지만 추문이라도 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요.] 이를 부득 갈면서 쾅! 주먹으로 의자 손잡이를 치고

이세창; [알고 있습니다.] 고개 숙이고

이세창; [지금도 우리 황금전장의 최정예인 황금수라(黃金修羅)들이 큰 아가씨의 뒤를 밟고 있는 중입니다.]

이세창; [조만간 아가씨와 밀회를 하는 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벽세황; [죽일 놈의 정체가 밝혀지면 황금수라들을 총 동원해서라도 세상에서 지워버리시오.] 이를 부득 갈고

이세창; [!] 대답하며 건물 입구를 보고. 건물 입구는 닫혀있는데. 이어

이세창; [말해라.] 입구를 향해 말하고. 그러자

<총주방장님께서 총관님께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음성

이세창; (총주방장이 무슨 일로...) + [안으로 모셔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벽세황은 일어나지 않고

<!> 덜컹!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고

열린 문 밖에 서있는 주대육과 청풍. 무사 한명이 문을 열어주고 있다

이세창; [안으로 드시지요 총주방장!] 안으로 들어오라 권하고

주대육; [고맙소.] [들어가세.] 앞장서서 들어가며 청풍에게 말하고.

두 사람이 들어가자 밖에서 문을 닫아주는 무사1. 무사2는 옆에서 보고 있고

주대육; [소장주!] [무림맹에서 돌아오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일이 바빠서 인사드리는 게 늦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며 벽세황에게 포권하고. 청풍은 문간에 멈춰 서있고. 문은 뒤에서 닫혔다.

벽세황; [오랜만이오 주숙수!] 앉아서 대충 포권하는 시늉을 하며 거만하게 말하고

벽세황; [주숙수가 애써준 덕분에 집안 식구 모두 건강하게 지낸다고 들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말하며 전에 자신이 앉았던 우측의 자리를 손으로 권하고

주대육; [별 말씀을...] 자리에 앉고

이세창; [제게 용무가 있으시다구요?]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주대육에게 말하며 청풍을 보고. 청풍은 문간에 두 손을 앞으로 모은 공손한 자세로 서있다.

주대육; [저 아이는 이청풍이라고 하는데 내일부터 주방에서 일을 시켰으면 하외다.] 청풍을 가리키며

이세창; [아직 어린놈이오만...] 청풍을 마뜩찮은 표정으로 훑어보고

이세창; [총주방장께서 직접 인사 시키러 데려온 걸 보면 재주가 비상하겠습니다.]

주대육; [고기 다루는 재주가 포정의 재림이라 할만한 아이지요.]

이세창; [허어... 전설 속의 백정인 포정의 재림이라...] 감탄하며 새삼 청풍을 보고

벽세황; [주숙수의 눈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겠소.] 비웃고

주대육; [저 아이 솜씨는 믿으셔도 될 것입니다.] 웃고

이세창; [요리사를 채용하는 건 총주방장의 재량인데...] [그럼에도 굳이 인사를 시키러 오신 데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주대육; [사실 저 아이에게 천냥 정도 선금을 주었으면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세창; [선금으로 천냥이나?] 놀라고

청풍; (내가 원한 액수의 두 배를...) 긴장

벽세황; [천냥이면 몇 년 동안 일 하지 않고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액수인데...] [젊은 놈이 어디에 쓰려고 그런 거금을 달라는 거요?] 청풍을 흘겨보고

주대육; [그게...] 좀 난감한 표정으로 청풍을 보고

청풍; [저는 괜잖습니다.] 고개 숙이고

주대육; [알겠네.] 끄덕

주대육; [사실 돈은 저 아이가 필요한 게 아니고...] 벽세황과 이세창에게 설명하고

 

#21>

건물 밖의 모습. 무사들이 지키고 있는데

그러다가 흠칫! 하며 한쪽을 보는 무사들.

정원의 관목 뒤에 숨어있는 벽옥령과 고양이. 털이 긴 흰 고양이는 그루밍을 하고 있고 벽옥령은 잎이 많이 달린 나뭇가지 두 개를 들어서 머리를 가린 채 쪼그려 앉아 있다. 그 자세로 건물 쪽을 보고 있다.

무사1; (작은 아가씨가 왜 저기에...) 벽옥령이 숨은 곳으로 가려 하지만

무사2가 무사1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젓고

무사2; <혼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계시는 것같으니까 모른 척 하게.> 전음을 보내며 웃고

무사1; <하긴 놀아줄 또래 친구가 없으니 오죽 심심하실까?> 혀를 차며 곁눈질로 벽옥령을 보고

숨어서 건물을 보는 백옥령

벽옥령의 시점. 닫혀있는 문

벽옥령; (내가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걸까?) 얼굴 발개진 채

두근! 청풍의 얼굴 떠올리자 가슴이 뛰는 벽옥령

벽옥령;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이 마치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그 오빠에게 저절로 끌리고 있어.)

벽옥령; (차림새도 볼품없고 그렇게 미남도 아닌데 자꾸만 얼굴이 떠올라.)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벽옥령; (지금까지 본 다른 집의 귀한 도련님들과 분위기가 다른 때문일까?) (아니면 운명적인 상대인 때문일까?) 이마를 귀엽게 찡그리고

벽옥령; (아무래도 내가 중증의 상사병에 걸린 모양이야.) 한숨 쉬고

 

#22>

다시 건물 내부. 주대육의 설명이 끝났다.

이세창; [네놈도 참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한다.] 혀를 차며 청풍을 보고

청풍; [그러게 말입니다.] 쓴웃음

이세창; (간이 비정상적으로 큰 놈이로군. 보통 인간들이라면 오줌을 질질 싸도 시원잖을 상황에서 장단을 맞추다니...) 청풍을 흘겨보고

벽세황; [단지회란 놈들, 어떻게 평가하시오?] 이세창에게

이세창; [흑사회 인간들이 대개 그렇듯 무공은 별 볼일 없는 무리들입니다.]

이세창; [하지만 갈 데까지 간 밑바닥 인생들이라 눈에 뵈는 게 없다는 점이 제법 귀찮은 것들이지요.]

벽세황; [그렇다고 들었소.] 끄덕

이세창; [물론 그래봐야 우리 황금전장이 나서면 열명쯤의 황금수라로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자신만만

벽세황; [온갖 영약으로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졌을 뿐 아니라 신병이기로 무장하고 있는 황금수라!]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천하를 통틀어도 몇 없을 거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

이세창; [사실 단지회를 없애려면 황금수라들을 동원할 것도 없습니다.] [다른 조직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산하게 웃으며 말하고

벽세황; [들었지?] 웃으며 청풍을 보고

벽세황; [혹시라도 단지회 놈들이 귀찮게 굴면 말만해.] [황금전장의 식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세상 흑사회 놈들 모두가 알게 해줄 테니까.] 음산하게 웃고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조금 숙이고

주대육; [이 아이의 채용을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세창과 벽세황에게 포권

벽세황; [고맙긴 뭘...] 거만하게. 이어

벽세황; [그보다 무림맹 총관이 이틀 후면 소소에게 건넬 혼서를 갖고 도착할 예정이오.] 주대육을 보며

벽세황; [그 양반은 무림맹 내에서도 유명한 미식가이니 총주방장이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셔야할 것이오.]

주대육;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벽세황; [나는 그저 총주방장만 믿을 뿐이오.] 호탕하게 웃고

청풍; (교만하고 자신감이 지나친 성격이다.) 주대육과 뭐라 대화하는 벽세황을 보며 생각하고

<하지만 자기 식구는 확실하게 챙긴다는 사실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벽세황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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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달단족의 여왕

 

 

여명 무렵이다.

길고 길었던 사막의 밤이 지나가고 동쪽 지평선이 불그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쐐애애액!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이 뿌려대는 눈부신 햇빛을 헤치며 한 명의 여인이 사막을 가로질러 질풍같이 달리고 있었다.

바득! 산산이의 머리털 한 올이라도 건드렸다면 오이라트(衛拉), 네놈들의 씨를 말려버릴 것이다!”

여인은 분노와 초조로 가득 찬 표정인 채 몸을 날리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화사한 비단옷 위에 두터운 피풍을 두른 이 여인의 머릿결은 찬연한 금발(金髮)이다.

그리고 깊고 그윽한 눈동자는 바다처럼 푸른 벽안(碧眼)이다.

여인의 금발과 벽안은 옥같이 흰 살결과 대비되어 신비롭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실로 대단한 미모를 지닌 여인인데 한 가지 흠이라면 인상이 지나치게 도도하고 차가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이 금발벽안의 여인이 본래 일국(一國)의 공주(公主)라는 고귀한 몸으로 태어나 최상의 공경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모두가 떠받드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다보니 여인은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을 눈 아래로 보는 도도함이 몸에 배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금발벽안의 여인이 대단한 미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나이였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쇠락하지 않은 눈부신 아름다움이 있었다. 젊고 싱싱한 분위기 대신 그녀에게는 난숙하고 농염한 육감적인 풍미가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비단 옷에 감싸인 터질 듯 농염한 육체에는 젊은 여인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완숙한 관능이 숨 쉬고 있다. 땅을 박차고 도약할 때마다 세차게 출렁이는 가슴의 융기는 절로 숨을 막히게 만든다.

금발미부는 한 자루 활을 들고 있으며 등에는 강철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화살이 든 전통을 짊어지고 있다.

허리에는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반월도도 한 자루 차고 있다.

쐐애애액!

그같이 중무장한 몸이건만 금발미부가 질주하는 속도는 섬전 같았다.

그로 미루어 보건데 그녀의 일신 무공은 결코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제발 무사하거라 산산아!)

도도하고 차가운 여인의 봉목은 근심의 빛이 가득했다. 그것은 자식을 지닌 여자라면 누구나 지니게 되는 모성애였다.

산산!

그렇다. 여인은 바로 철산산의 생모였다.

 

-달단여왕(韃靼女王) 나유라(羅維羅)!

 

몽고의 양대 부족 중 하나인 달단(韃靼)부의 젊은 여왕이 바로 그녀다.

금발벽안으로 알 수 있듯이 나유라는 몽고족 출신이 아니다. 그녀는 머나먼 서역 대식국(大食國)의 공주였다.

대식국의 황제는 비단길을 장악하고 있는 달단부와의 우호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공주들 중 한 명을 달단왕과 정략결혼 시켰다.

그때 불운하게도 선택된 것이 나유라였다.

당시 열여섯 살에 불과했던 나유라는 순전히 정략적인 필요에 의해 머나먼 몽고로 달단왕 철고륜(鐵古倫)에게 시집왔었다.

그녀는 철고륜과의 사이에 일남일녀(一男一女)의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순전히 정략적인 필요에 의해 맺어진 부부 사이에 애정이 깊어질 수는 없었다.

비록 두 명의 자녀를 두기는 했으나 부부 사이는 늘 냉랭하고 의례적인 것에 불과했다.

달단왕 철고륜은 나유라의 몸에 밴 도도함과 당찬 기도에 이내 싫증내어 따로 이궁(離宮)을 짓고 그곳에 각지의 미녀들을 모아 쾌락을 즐겼다.

나유라는 스무 살도 채 안된 젊은 나이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질 상 떠나간 남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를 부린다든지 애원을 하는 짓 따위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나유라는 아들과 딸을 정성들여 양육하는 한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공연마에 몰두했다.

그 결과 그녀는 달단부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될 수 있었다.

헌데 오 년 전, 그나마 남편이라고 있던 달단왕 철고륜이 급사하고 말았다.

나유라는 여자로서는 한창인 이십대 후반에 미망인이 되고 만 것이다.

철고륜은 수치스럽게도 여자와 방사를 즐기던 도중에 죽음을 당했다.

그의 복상사를 두고 한때 독살이라는 소문도 분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철고륜을 복상사시킨 여자는 달단부의 숙적인 오이라트부 출신이었고 철고륜이 죽은 직후 실종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왕이 급사해 버리자 달단부는 일대혼란에 휩싸였다. 대원제국 후계자의 자리를 놓고 오이라트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달단부로서는 영도자의 부재는 심각한 위기일 수밖에 없는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혼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까지 칩거하고 있던 나유라가 전면에 등장하여 압도적인 영도력과 기도로 사태를 수습한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열두 살에 불과했던 어린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달단부를 자신이 직접 통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적지 않은 반발도 있었다. 몽고족에 지금껏 여왕은 없었고 또 나유라는 몽고족 출신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나유라는 교묘한 협박과 회유로 내부의 저항을 일소시키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의 일이었다.

지난 오 년의 세월 동안 나유라는 뛰어난 통솔력으로 달단부를 지배해왔으며 급기야 달단여왕이라 불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철혈(鐵血)의 간담(肝膽)을 지녔다는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였다.

딸인 철산산이 피납 되자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단신으로 포대붕을 추적해 온 것이었다.

 

헌데 달단여왕 나유라가 막 하나의 모래 언덕을 날아 넘을 때였다.

파앗!

돌연 측면에서 한 자루 창이 날아와 나유라 앞에 꽂혔다.

누구냐?”

나유라는 교갈을 내지르며 급히 멈춰섰다.

흐흐흐! 오랜만이오 여왕!”

그런 그녀의 귓전으로 한 가닥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스슥!

이어 모래 언덕 뒤에서 한 명의 청포인이 날아올랐다가 나유라 앞에 내려섰다. 음침하고 교활한 이상을 지닌 사십대 중반의 장한이었다.

철목풍!”

청포장한을 본 나유라의 푸른 벽안에 격렬한 분노와 노기가 번득였다.

그렇다. 청포장한은 바로 대과벽에서 이검한에게 혼이 나서 쫓겨 갔던 철목풍이었다.

철목풍은 장포 속의 가슴부분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데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붕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간덩이가 부었구나, 철목풍!”

나유라는 손에 든 강궁을 불끈 움켜쥐며 노성을 내질렀다.

철목풍은 다름 아닌 오이라트부의 신왕(新王)이다. 그자는 숙부인 전대 오이라트부의 왕 철납아(鐵拉兒)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간웅이다.

철목풍은 나유라의 남편이었던 달단왕 철고륜을 독살했다고 의심 받기도 했었다. 철목풍이 달단부와 오이라트부를 통합하여 대원(大元)제국의 부활을 노리고 있음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흥분하지 마시오 여왕! 화내시는 모습도 한층 매력적이기는 하오만...!”

철목풍은 노기로 파르르 아미를 떠는 나유라를 바라보며 음흉한 표정으로 말했다.

육시를 할 놈! 산산은 어찌했느냐?”

나유라는 그런 철목풍을 향해 노성을 질렀다.

스악!

그러면서 한 자루 철시(鐵矢)를 빠르게 활시위에 걸었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나유라는 신궁(神弓)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활 솜씨를 지녔다.

진정하시오. 그렇잖아도 따님 문제로 여왕폐하 앞에 나타난 것이니...!”

짝짝!

철목풍은 능글맞게 웃으며 뒤를 향해 손뻑을 쳤다.

스읏!

그러자 철목풍의 뒤쪽 사구(砂丘) 너머에서 한 명의 거한이 나타났다. 흉악한 인상을 지닌 그 거한의 옆구리에는 한 명의 금발소녀가 축 늘어진 채 끼어져 있었다.

산산아!”

금발소녀를 본 나유라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록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소녀의 의복과 체형으로 보아 영락없는 철산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산이를 내놓아랏!”

쐐애애액!

활과 화살을 팽개친 나유라는 득달같이 거한을 향해 덮쳐갔다.

어딜!”

꽈릉!

철목풍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냉소를 터뜨리며 나유라를 향해 장력을 후려쳤다. 그자가 손을 휘두르자 은은한 노을빛이 확 주위를 물들였다.

잔양강살!

바로 그것이 시전된 것이다.

네놈이...”

거한을 덮쳐가던 나유라는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어 일장을 마주 쳐냈다.

퍼엉!

으음!”

요란한 폭음과 함께 나유라는 강렬한 잠경에 밀려 신음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철목풍도 순간적으로 상체를 휘청했다. 나유라의 무공은 철목풍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저 계집이 철고륜의 무공과 서천 신월동맹(新月同盟)의 절기를 연마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철목풍은 내심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음흉한 눈빛으로 나유라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흐흐흐! 여왕께서 지니고 있는 한 가지 물건을 내놓으면 따님을 돌려드리겠소! 최근에 얻으신 장보도(藏寶圖) 말이오!”

철목풍의 말에 나유라는 움찔했다.

그자의 말대로 나유라는 얼마 전 한 장의 장보도를 얻었었다. 그 사실은 달단부 내에서도 최고비밀로 되어 있었는데 철목풍이 어떻게 알아낸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장보도라니?”

나유라는 내심의 동요를 감추며 냉랭하게 일갈했다.

하지만 철목풍은 음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시치미 떼어도 소용없소! 여왕께서 최근 세조(世祖) 홀필열(忽必烈=쿠빌라이)님이 세우신 보고(寶庫)의 장보도를 얻었음을 알고 있으니까!”

그 자의 구체적인 말에 나유라는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떤 작자가 그 사실을 저놈에게 알렸단 말인가?)

비로소 자신의 측근 중에 철목풍과 내통자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분통을 터뜨려봐야 소용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장보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딸의 안전과 바꿀만한 것은 못된다.

좋다. 장보도를 주겠다. 그러니 먼저 산산이를 이리 던져라!”

나유라는 차갑게 말하며 품 속에서 한 장의 낡은 양피지를 꺼냈다.

흐흐흐! 그럴 수야 있나? 따님을 돌려받고 싶으면 장보도부터 내놓으셔야지!”

나유라가 꺼낸 양피지를 본 철목풍은 두 눈을 탐욕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나유라는 치미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철목풍을 노려보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장보도를 던질 테니 동시에 산산이도 이쪽으로 보내라!”

그 말에는 철목풍도 동의했다.

좋소. 그럼 공평하겠지!”

이어 철목풍은 뒤에 서있는 거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라!”

피잉!

나유라는 교갈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낡은 양피지를 철목풍을 향해 던졌다.

화라락!

동시에 거한도 안고 있던 금발소녀를 나유라 쪽으로 던져 보냈다.

산산아!”

!

나유라는 즉시 몸을 날려 금발소녀를 받아갔다.

스읏!

두 팔로 금발소녀를 받아 안은 나유라는 급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산산아! 이제 안심... !”

헌데 두 팔로 금발소녀를 안아들고 내려서던 나유라는 두 눈을 부릅떴다. 금발소녀의 머리카락이 갈라지며 나타나는 것은 철산산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철산산보다 한 두 살 많아 보이는 그 소녀는 철산산 못지 않게 아름답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철산산과 달리 소녀는 아주 표독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소녀의 금발도 가짜였다. 흩어지는 가발 속에서 나타나는 것은 칠흑같이 검은 흑발(黑髮)이었다.

너는 산산이 아니구나. !”

경악하던 나유라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콰당탕!

이어 나유라의 풍만한 교구가 뒤로 나뒹굴었다.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가짜 철산산이 마혈을 찍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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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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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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