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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녀문(神女門)의 성지(聖地) (1)

 

 

황의소녀 심주은도 임청우가 정신을 잃는 순간에 함께 정신을 잃었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충격을 전적으로 임청우가 몸으로 받았기에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은 차렸으나 몸이 차가우면서도 끈적거리는 것에 잠겨 있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당연히 숨도 쉴 수가 없다.

(우리가 추락한 절벽 아래에 늪이 있었구나.)

심주은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깨달았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 아래쪽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떨어진 덕분에 분신쇄골을 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살아난 것도 아니다.

늪 속으로 얼마나 깊이 잠겨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우린 늪의 뻘 속에 깊이 잠겼을 것이다.)

심주은은 정신을 잃은 임청우를 한 팔로 껴안고 남은 팔과 두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빨리 늪의 표면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질식해서 죽고 만다.)

죽음이란 말이 눈앞에 떠오르고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긴 하지만 위로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임청우의 늘어진 몸 이외에는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심주은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안돼!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두려움과 공포로 심주은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무리 영특하고 당돌하다 하더라도 그녀는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의 어린 소녀일 뿐이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있어서 남과 다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버릴 정도의 공포 속에서 심주은은 오직 팔다리만을 허둥거렸다.

한데 어느 순간 임청우를 잡고 있는 팔 위로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그 무엇이 느껴졌다.

심주은의 팔을 타고 올라온 가늘고 긴 그 물체는 목을 지나 머리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심주은의 긴 머리카락을 가는 몸으로 휘감으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지도 않은 그 물체는 믿기지 않는 힘으로 심주은과 임청우의 몸을 끌고 위쪽으로 올라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놀라던 심주은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무엇엔가 단단히 걸리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머리채를 움켜잡고 힘껏 당겼다.

슈우우욱!

심주은은 자신의 몸이 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추악!

어느 순간 시원한 공기가 그녀의 얼굴로 불어왔다.

하아! 하아!”

마침내 늪 밖으로 고개를 내민 심주은은 시원한 공기와 함께 진흙마저도 들이마셨다. 입으로 무엇이 들어가든 가릴 게제가 아니었다.

막혔던 숨통을 틔운 심주은은 서둘러 임청우를 늪 밖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서둘러 임청우의 얼굴에서 진흙을 벗겨 주었다.

얼굴에서 진흙이 제거되었음에도 임청우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인사불성이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임청우는 왼손에 든 청강사자검은 죽어라 움켜쥐어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허리춤에 걸고 있던 혈도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겨우 한숨 돌린 심주은은 자기의 머리카락이 늪지에 자라있는 키 작은 나무의 가지에 걸려있는 것을 알았다. 키는 작지만 둥치는 상당히 굵고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어서 우산이나 버섯을 연상케 하는 나무다.

(대체 무엇이 내 머리카락을 끌고 올라와 나뭇가지에 걸었을까?)

심주은은 신기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이 걸려있는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헌데 그녀가 임청우를 끌어안고 나뭇가지에 올라갔을 때였다.

쉬쉭!

그 나뭇가지 위에 붉은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그녀를 향해 새빨간 혀를 내밀었다.

!”

!

심주은은 기겁하며 일장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의 강력한 장력이 정통으로 때렸음에도 불구하고 뱀은 끄떡도 않은 채 그 자리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머리에 있는 두개의 황금빛 뿔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 붉은 뱀의 정체를 알아본 심주은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질식사를 면했다 했더니 독물들의 제왕이라는 금관혈린사를 만나고... 난 참 운이 지독하게도 없구나.)

심주은은 소매 속에 있는 천잠사를 꺼낼까 말까 망설이며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천잠사는 어떤 보검에도 잘리지 않는 보물이다.

하지만 천잠사가 금관혈린사의 독에도 견딜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심주은 앞쪽에서 오만하게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짐승은 바로 임청우의 친구라 할 수 있는 척포였다.

원래 척포는 겹쳐 말린 두 장의 몽선도를 집으로 삼아 밖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새로 생긴 집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임청우가 갑자기 절벽에서 떨어져 늪 속에 처박혔으니 척포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심 화가 났지만 몽선도에서 빠져나온 후 심주은의 머리카락을 꼬리로 말아서 늪 밖으로 끌고 나왔던 것이다.

한 때 몸길이가 삼장에 이르렀던 영물인 척포인지라 심주은과 임청우를 끌고 올라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늪에 빠진 후 심주은이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을 한 덕분에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 올라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했다. 늪의 표면에 작용하는 장력(張力)은 묽디묽은 아래쪽과 비할 바가 아닌 때문이다.

만일 척포가 끌어올려주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걸 알 리 없는 심주은은 척포를 노려보았고 느닷없이 얻어맞아서 화가 난 척포도 심주은을 마주 노려보는 묘한 대치 상황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심주은도 여자인지라 뱀이란 생물은 세상 무엇보다 끔찍하고 싫었다.

하지만 물러서면 바로 죽음이라는 생각에 심주은은 조금도 눈빛을 양보하지 않고 척포를 쏘아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늪에서 멀지 않은 절벽 근처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검주 유소기가 칠절에게 각기 흩어져서 임청우를 찾으라 명령하는 소리였다.

(위험해!)

풀쩍!

심주은은 임청우를 껴안은 채 다시 늪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심주은의 몸은 이내 늪으로 잠겨 안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심주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심주은은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금붙이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쉬쉬!

척포는 긴 혀를 차며 고개를 설래 저었다.

쏴아!

그리고는 입을 쩍 벌리더니 흰 안개를 내뿜었다.

츠츠츠!

척포가 뿜어낸 하얀 안개에 닿자 심주은의 머리카락에 달려있던 금붙이 장식은 얼음처럼 녹아서 늪에 잠겨들었다.

심주은은 척포가 자신을 위해 어떤 수고를 했는지 알 리가 없다. 그저 늪에 완전히 몸을 숨긴 채 모든 신경을 돋우어 주변의 동정을 살치는 데 전념할 뿐이었다.

그녀는 곧 다급하게 들려오는 퉁소소리를 들었고 자신들 위쪽으로 유소기가 천리전음으로 말하며 날아가는 것도 알아차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숨이 턱까지 찬 심주은이 늪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한숨 돌리려는데 유소기가 다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유소기는 지존수 사마명을 베려다가 도군의 중재로 검을 거두고 몽선도를 찾기 위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뽀록!

심주은이 황급히 머리를 늪 속에 밀어 넣은 자리에 거품이 일어났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심주은은 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그러나 그녀의 바램은 한갓 바램으로 끝나고 말았다.

요망한 것!”

유소기의 대노한 음성이 늪 속에까지 들려왔다.

심주은은 낙담했다.

(틀렸다. 이미 저자는 내가 숨는 것을 본 모양이다.)

늪 속에서 검을 맞고 죽기는 싫었다.

맑은 공기라도 한 번 더 숨 쉬고 죽고 싶었다.

촤아!

자포자기한 심주은은 늪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번쩍!

순간 한줄기 백광이 그녀의 눈앞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피할래야 결코 피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죽었구나!)

심주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그 직후였다.

끼익!”

괴상한 소리가 그녀의 뒤쪽에서 울렸다.

심주은은 자신이 베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하다가 앗차! 싶었다.

유소기가 노린 것은 자신이 아닌 나무위에 똬리를 틀고 있던 금관혈린사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황급히 늪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만 앞에서 날아오던 유소기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화악!

유소기가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며 벼락같이 그녀를 향해 덮쳐들었다.

심주은은 임청우를 잡지 않은 왼손을 얼굴 앞에 세우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스스슷!

순간 그녀의 모습이 작은 바위처럼 변해버렸다.

환술(幻術)을 쓰다니... 신녀문의 제자인가?”

!

유소기는 나뭇가지 위에 내려서면서 발길질로 척포를 멀리 차날려 버림과 동시에 심주은의 머리채를 잡아서 끌어올리며 말했다.

심주은의 뇌리로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얼굴에 묻은 진흙 때문에 날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럼 구태여 나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겠다.)

그녀는 즉시 임청우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며 두 발로 임청우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바꾸어서 말했다.

그래요. 나는 신녀문의 삼십이대 제자예요. 즉시 내 머리를 놓도록 하세요.”

유소기는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삼십이대 제자... 그럼 정정(貞貞)보다 한 배분 아래인가? 한데 어째서 여기에 있느냐?”

유소기의 독백같은 말을 들은 심주은은 약간 당황했다. 정정은 그녀가 사부로 모신 여인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소기가 사부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심주은은 즉시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초면인 분이 사문의 일을 물으면 내가 대답할 것 같아요?”

심주은은 당돌하게 말은 했지만 내심 조마조마했다. 유소기가 화를 내고 손을 쓰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입안의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유소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성미까지 정정을 빼닮았구나. 그래, 혹시 이 근처로 떨어진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하나를 보지 못했느냐?”

내심 안도한 심주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절벽 위에서 떨어졌다면 아무도 살지 못해요. 이곳이 비록 늪이기는 하지만 저 절벽은 워낙 높아서 돌바닥에 떨어진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에요. 시체가 요행히 나무위에 걸쳐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이 늪은 바닥이 없어서 뭐든지 삼켜버리니까요.”

한데 넌 이곳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

유소기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심주은을 약간 의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심주은은 잘못 대답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답했다.

난 아직도 사흘 동안은 이렇게 있어야 해요. 사부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니까요.”

유소기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잠시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라.”

유소기가 잡아 올렸던 머리채를 내려놓자 심주은은 모든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늪 속으로 다시 잠겨들었다.

늪 속에 잠겨있는 이유로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둘러댄 게 정말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말을 했어도 유소기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유소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몽선도는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물건인가? 그토록 얻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 깊은 늪 속에 잠기고 말다니... 금포염왕을 대적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겠구나.”

 

잠시 후 유소기의 천리전음에 따라 모여든 칠절은 계곡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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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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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견수; [작은 아가씨!] ! 놀라며 날아오르고. 두 명의 황금수라들도 날아오르고

청풍; (저 계집아이가 장주의 둘째 딸이로구나.) 생각하며 역시 달려가고. 하지만

화악! 크왕! 크르르! 개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귀견수 일행이 따라잡지 못한다.

벽옥령; [엄마야!] 겁에 질려 뒷걸음질. 이제 개들은 벽옥령의 10여 미터 앞까지 쇄도하고 있고

귀견수; (둘째 아가씨가 위험하다!) ! 날아가며 검을 뽑아 던지려 하고. 그때

청풍; [고양이를 던져!] 귀견수를 따라 달려가며 외치고

벽옥령; [!] 깨닫는 벽옥령.

[!] [!] 귀견수와 황금수라들도 깨닫고. 검을 던지려던 귀견수의 손도 멈칫. 이어

벽옥령; [도망가 설아!] ! 고양이를 뒤로 홱 집어 던지고. ! 비명 지르며 뒤로 날아가는 고양이

휘릭! 회전하며 바닥에 내려서는 고양이. 직후

크왕! 크릉! 휘익! 파팟! 벽옥령을 지나치며 고양이를 덮쳐가는 개들. + 벽옥령; [꺄악!] 비명 지르며 웅크리는 벽옥령

하악! 고양이가 털을 세우고 등을 굽히며 맞서고

고양이를 덮치는 개들

뚱뚱한 체형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피하는 고양이

이하 네 마리 개와 한 마리 고양이의 치열하게 싸움. 개들은 고양이를 포위하며 물려고 하지만 이리저리 잘 피하는 고양이

귀견수; [아가씨!] 휘릭! 겁에 질린 벽옥령의 옆으로 날아 내리는 귀견수와 두 명의 황금수라들

귀견수; [안심하십시오. 속하들이 지켜드리겠습니다.] 벽옥령의 앞을 가로 막으며 외치고

크왕! 크르르! 하악! 그 사이에도 개들과 고양이는 치열하게 싸운다. 고양이를 에워싸고 연신 물려고 하며 돌아가는 개들. 필사적으로 피하는 고양이.

벽옥령; [설아!] 비명 지르며 그걸 보고. 그 사이에 청풍도 달려왔고. 그때

! 한 마리 개의 앞발질에 맞아 나뒹구는 고양이

벽옥령; [!] 그걸 보고 비명

! 나뒹군 고양이를 물려는 개의 입. 간발의 차이로 굴러서 피하는 고양이

벽옥령; [설아! 설아를 구해줘! 저러다 죽겠어!] 발 동동 비명

<고양이를 구하려면 미처 날뛰는 개들을 죽여야 하는데...> <엄청난 공을 들여 훈련시킨 놈들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작은 아가씨가 죽고 못 사는 고양이를 죽게 둘 수는 없지!> 검을 뽑으며 개들에게 다가서는 귀견수와 황금수라들, 그 사이에도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개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고

청풍; (개들을 죽일 생각이로군.) + [기다려주십시오.] 귀견수에게 다가가고. 돌아보는 귀견수와 황금수라들

청풍;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 [개와 고양이 모두 살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말하며 귀견수에게 손을 내밀고. 검을 달라고

[!] 눈 반짝이는 벽옥령.

귀견수; (자신이 있으니 나섰겠지.) + [그럼세.] 검을 넘겨주고

검을 들고 사납게 날뛰는 개들에게 다가가는 청풍.

[어쩌려고 저러지?] [번견들은 한번 흥분하면 통제가 안되는데...] 주변 사람들 웅성. 귀견수와 벽옥령도 긴장하며 보고.

! 청풍의 눈이 빛나고.

날뛰는 개들의 몸에 혈관과 뼈가 보이고. 그러자

청풍; (여기로군.) ! 다가가며 가까이 있는 개의 등쪽을 찌르고

! 찔린 개가 펄쩍 뛰며 비명 지르고. 다른 개들 놀라 돌아보고

털썩! 몸이 마비되어 쓰러지는 개

크르르! 크릉! 이빨 드러내며 경계하는 다른 개들. 하지만

! ! 다가가며 개들의 몸을 한 번씩 찌르는 청풍의 검. 그러자

! ! 그 개들도 퍼덕이다가

털썩! ! 몸이 마비되어 쓰러지는 개들. 고양이가 그 사이에서 놀라고

[... 저게 어떻게 된 건가?] [살짝 찔렀는데 개들이 쓰러졌어.] [요술같구만!] 사람들 놀라고. 환호하며 박수치는 사람들도 있고

벽옥령; [설아!] 울면서 달려오고. 청풍은 검을 내리고 있고

야옹! 고양이도 안심하며 마주 달려오고

벽옥령; [!] 야옹! 안고 안기며 우는 벽옥령과 고양이.

청풍; (고양이도 주인도 둘 다 귀엽군.) 그걸 보며 흐뭇

귀견수; [수고했네.] 다가오고. 다른 황금수라들은 개들의 상태를 살피러 가고

청풍; [잘 썼습니다.] 검을 손잡이가 귀견수에게 향하게 내밀고

귀견수; [어떠냐?] 검을 받으며 개들을 살피는 황금수라들에게 말하고

[몸이 마비되긴 했지만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네 놈 모두 무사합니다.] 개들 살피며 대답하는 황금수라들

귀견수; [신기하구만. 통제불능으로 날뛰는 개들을 죽이지 않고 쓰러트리다니...] 검을 칼집에 꽂으며

청풍; [짐승들도 사람처럼 혈도가 있습니다.] [그 혈도를 제대로 찌르면 마비시킬 수도 있지요.]

귀견수;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놀랍군.] [사람과는 몸 구조가 전혀 다른 개들의 혈도를 제압하다니...]

청풍; [, 돼지뿐 아니라 개들도 도축해본 적이 많아서 혈도를 알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귀견수; [하여간 총관께서는 투자금의 몇 배를 단번에 뽑으셨어.] [저 개 한 마리 기르는데 들어가는 돈들이 최하 오백냥 이상이었느니...]

청풍;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웃고. 그때

벽옥령; [...] 다가오고. 고양이를 안은 채. 돌아보는 귀견수와 청풍

벽옥령; [설아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오빠.] 얼굴 발개져서 청풍을 올려다보고

벽옥령; [설아가 잘못 되었으면 옥령이는 정말 슬펐을 거예요.]

귀견수; [소개하겠네. 이분이 본장의 둘째 아가씨야.] 청풍에게 벽옥령을 소개하고

청풍; [이청풍입니다.] [내일부터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포권하고

벽옥령; [... 벽옥령이에요.] 수줍어 어쩔 줄 몰라하고

청풍; (착하고 귀여운 계집아이로군.) 웃고

귀견수; (별일도 다 있구먼.) 청풍과 벽옥령을 보며 눈 번뜩

<황금전장의 딸인데다가 귀염둥이 막내로 자라서 누구도 어려워하지 않는 둘째 아가씨가 저렇게 수줍어하다니...> 청풍을 훔쳐보며 얼굴 발개져서 좋아 죽으려는 벽옥령을 배경으로 귀견수의 생각. 그때

벽옥령; [이거...] ! 머리에 꽂고 있던 머리 핀 하나를 뽑고. 꽃 모양인데 가운데에 상당히 큰 보석이 박혀있다.

벽옥령; [받아주세요. 설아를 구해준 감사예요.] 머리핀을 내밀고

청풍;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당황

귀견수; [받아둬. 둘째 아가씨의 성의표시이니...] 옆에서 끄덕

청풍; [알겠습니다.] 두 손으로 머리핀을 받고.

청풍; [소중히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머리핀을 들고 웃고

귀견수; (소중하게 간직해야겠지. 그 머리 장식에 박힌 보석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니...) 웃고. 그때

벽옥령; [... 내일 봐요.] 다다다! 부끄러워서 고양이를 안고 달려가는 벽옥령

청풍;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멀어지는 벽옥령을 보며 생각. 오가던 사람들 급히 벽옥령에게 인사하고

청풍; (돈에 관한한 피도 눈물도 없어서 냉혈전호라 불리는 장주에게 어떻게 저토록 귀엽고 순수한 딸이 생긴 걸까?) 흐뭇하게 보고. 헌데

 

[!] 눈 부릅뜨며 노려보는 벽소소. 건물들 사이에 서있고. 그 뒤에 무사 한명이 말 고삐를 잡은 채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다.

벽소소의 시점. 귀견수와 뭐라 대화하고 있는 청풍의 모습

청풍의 모습 크로즈 업

벽소소; (그 죽일 놈이다! 낮에 거리에서 날 개망신시킨...) 이를 바득. 거리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청풍에게 창피 당한 장면 떠올리고

벽소소; (잘 걸렸다. 네놈이 어떻게 본장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만...)

벽소소;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겠다!) 마녀같이 웃고

 

#27>

. 불이 켜지기 시작한 환락가. 야한 여자들이 호객을 하고. 한량들이 기루와 술집을 드나들고

환락가의 뒷골목. 도박장이 즐비한 곳. #4>에 나온 뒷골목. 그때와 다른 점은 연신 도박장으로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고. 도박장을 지키는 건달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 새벽녘과 다르다.

그 중 <大慶賭場>이라는 간판이 걸린 도박장. 이산하가 돈을 잃은 그곳. 입구에 건달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서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고

도박장 내부. 벌써 손님들이 바글바글

도박장 내부의 끝. 건달들이 지키는 문이 하나 있다. 닫혀있는데 지키는 건달들이 왠지 긴장한 표정

 

[오백 냥이오!] ! 탁자에 내려놓는 묵직한 돈 주머니.

청풍; [액수 확인하고 차용증 내놓으시오.] 밀실에 서있는 청풍. 청풍의 뒤에는 귀견수와 두 명의 황금수라가 서있다. 탁자 건너편에는 도박장 책임자인 정필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 밀실 안에는 험상궂게 생긴 건달 십여명이 서있다.

건달1; [이 새끼가 철근을 삼켰나? 왜 이렇게 뻣뻣해?] 정필 뒤에서 눈 부라리는 건달1. 빈민가에도 왔던 두 명의 건달 중 한명

건달2; [누구 보고 이래라 마라야? 창자 흘러나오는 거 네놈 눈으로 봐야 정신 차리겠냐?] 차고 있는 칼에 손을 대고. 하지만

정필; [조용히 못해?] !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며 건달1, 2를 윽박지르고. 깜짝 놀라는 건달1, 2

건달1; [... 형님!] + 건달1; [우린 그냥 저 새끼가 건방져서 훈계를 한 것뿐인데...] 눈치 보는데

더 노려보는 정필

[... 죄송합니다.] 삭 죽어서 고개 떨구는 건달1, 2

정필; [돈은 세어볼 필요 없네.] 일어나고. 종이를 한 장 들면서

정필; [대부금은 확실히 변제 받았네. 차용증을 받게나.] 종이를 청풍에게 내밀며 억지로 웃고

! 종이를 낚아채서

내용을 읽어보는 청풍

청풍; [경고하는데...] ! ! 차용증을 접어서 찢기 시작하며

청풍; [내 아버지가 혹시라도 다시 찾아오면 당신네 가게에 들이지 마시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책임지지 못하니...] 찍찌! 종이를 잘게 찢으며 정필을 노려보고

정필; [알겠네. 자네 아비는 얼씬도 못하게 함세.] 비굴하게 웃고

청풍; [우리 다시 보는 일 없도록 합시다.] ! 잘게 찢은 종이를 방안에 뿌리며 돌아서고

<저 새끼가...> 분노하는 건달들. 하지만

돌아서며 손가락을 입에 대는 귀견수. 그 앞에서 다른 황금수라가 문을 열고 있고 그 문으로 청풍이 나간다.

정필; [살펴가게나.] 억지로 웃으며 포권하고.

귀견수가 청풍을 따라 나가고 문을 연 황금수라도 나가면서 문을 닫으려 한다

! 닫히는 문. 이제 밀실에는 정필과 건달들만 있고

건달1; [뭡니까 형님?] 불만을 토하고. 다른 자들도 불만스런 표정으로 정필을 보고

건달1; [저 백정 새끼가 기고만장하게 구는 걸 어째서 보고만 계신 것입니까?] 의자에 다시 앉는 정필에게 항의

정필; [앞으로 두 번 다시 이가놈 부자 주변에는 얼씬거리지도 마라.] 의자에 앉으며 침통하게 말하고

건달1; [그러니까 그 이유를 알려달라는 거 아닙니까?]

정필; [이 새끼가...] 홱 돌아보고. 찔끔하는 건달1

건달1; [... 죄송합니다 형님!]

건달1을 노려보는 정필

<이거 잘못하면 피 보겠는데...> <장웅이 놈이 이성을 잃고 정필 형님 신경을 건드렸어.> 다른 건달들 긴장할 때

정필; [그만 두자!] 고개 설레 젓고. 이어

정필; [이가놈이 데려온 자들이 누군지 아는 놈 손들어!] 건달들 둘러보며 말하지만

건달들 멀뚱하게 서로를 보고

정필; [그래, 아는 놈 없겠지.] [황금수라들을 만나고 목숨 부지한 인간은 거의 없으니...] 한숨. 그러자

[... 황금수라!] 기겁하는 건달들

건달1; [... 이가놈의 동행이 황금전장의 비밀고수들이라는 황금수라들이었습니까?] 덜덜 떨고

건달2; [황금수라들은 몸뚱이가 금강불괴라 도검과 독약이 불침하고 사용하는 병기는 신병이기라 죽이지 못하는 대상이 없다던데...] 비로소 깨닫고 덜덜 떨고

정필; [하물며 이가놈을 경호한 건 황금수라의 부단장이었다.]

[... 그러고 보니...] [그자의 가면에는 부()자가 새겨져 있었지.] 덜덜 떠는 건달들

정필; [어떻게 줄이 닿았는지 모르지만 이가놈은 황금전장의 비호를 받고 있다.]

정필; [그리고 황금전장의 능력이면 우리 단지회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정필; [이가놈 부자는 액신(厄神)같은 것들이니 주변에 얼씬도 마라.] 겁에 질린 얼굴 크로즈 업

 

#28>

역시 밤. 금릉 성내의 높은 탑.

휘익! 그 탑 꼭대기에 바람처럼 나타나는 풍신장

주변을 둘러보는 풍신장. 굳은 표정. 직후

[늦었어요.] 휘익! 탑의 처마쪽에 구름 덩어리 같은 것이 서리며 말소리가 들리더니

화악! 구름이 흩어지며 드러나는 운신장.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다

풍신장; [어서 와라 운매.] ! 운신장 근처의 처마 위로 이동하고

풍신장; [보아하니 성과가 없었던 것같구나.]

운신장; [뒤질 수 있는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종이를 들어 보이고

운신장; [풍오라버니가 그려주신 이 용모파기와 일치하는 자는 발견할 수 없었어요.] 운신장이 쳐든 종이에는 청풍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풍신장; [그놈은 분명 금릉 성내에 있다.] [먼길 떠나는 차림이 아니었으니 여행객이나 뜨내기는 결코 아니었다.]

운신장; [십팔 년 전, 아연아가씨의 몸종이었던 진삼낭이 금릉 근처에서 종적이 사라졌다는 게 사실일 가능성이 높군요.]

풍신장; [진삼낭, 그년이 금릉에 숨어 용무린의 아들을 길러온 게 분명하다.] 이를 부득 갈고. 이어

풍신장; [천마의 적통이기도 한 그놈의 존재가 알려지면 무림은 다시 한번 격변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마교의 잔당들이 그놈을 중심으로 결집해서 우리 무림맹의 천하를 뒤엎으려 들 테니...]

운신장; [게다가 진삼낭에게는 천마묵장(天魔墨掌)을 얻을 수 있는 두 개의 열쇠중 하나가 있기도 하지요.]

풍신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삼낭과 그놈을 찾아내야한다.] [소맹주의 혼사 따위는 이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휘익! 날아오르고

풍신장; [성 밖을 살펴봐라.] [난 금릉의 뒷골목을 훑어볼 테니...] 날아가고

운신장; (풍신장 오라버니의 우려도 기우가 아니다.) 걱정

운신장; (맹주님은 어느덧 팔순을 넘겨 나날이 쇠약해지고 계신다.) (이럴 때 천마의 적통이기도 한 아연아가씨의 핏줄이 나타나면 마교의 잔당들이 미쳐 날뛸 테고...)

운신장; (그럼 우리 무림맹이 지난 삼십여년 간 구축해놓은 무림의 판도가 단번에 뒤집어질 수 있다.) 휘이이! 운신장의 몸 주위로 안개와 구름이 생기고

운신장; (풍오라버니 말대로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아연아가씨의 아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화악! 구름에 휘감겨 사라지는 운신장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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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무림칠절(武林七絶) (2)

 

 

!”

휘릭!

유소기는 다급성을 지르며 뒤로 몸을 뒤집으며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으로 돌아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발밑이 절벽이라는 것은 임청우가 던진 물건을 잡는 순간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도군 지청천도 폭넓은 칼에 무언가를 받아들고 벼랑 끝에 내려서고 있었다. 도군은 무공이 유소기보다는 조금 쳐져서 손이 아닌 칼로 물건을 받아낸 것이었다.

유소기는 손에 넣은 얇은 책을 펼쳐보았다. <일옹청풍일지>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 찌직!

혹시나 싶어서 몇 장 넘기던 유소기는 책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영악한 놈!”

유소기는 이를 갈며 절벽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천길 까마득한 절벽이다. 떨어진다면 제 아무리 고수라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도군도 손에 든 장자(壯子)를 들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삘릴리...

그때 그들의 뒤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퉁소소리가 들려오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입에 퉁소를 물었으며 머리에는 죽립을 쓰고 있는 중년인, 바로 칠절 중 세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소(神簫)였다.

놓쳤다.”

유소기가 돌아서면서 동료들에게 내뱉았다.

그가 서있는 곳으로 나머지 칠절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임청우와 황의소녀가 떨어진 벼랑 가에 둘러서서 묵묵히 아래를 바라보았다.

비객 소도성이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젠 어떻게 할 텐가?”

유소기가 단호하게 말했다.

절벽을 내려간다. 시체라도 뒤져서 찾아내도록 하자.”

유소기가 앞장서자 모두 그 뒤를 따라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을 그것도 어두운 밤중에 내려간다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몽선도를 찾는다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

 

절벽으로 스스로 몸을 던진 임청우는 죽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강적을 피하기 위해 절벽을 택했을 뿐 죽으려면 그 자리에서 죽었지 비겁하게 도망치다가 죽는 길을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까마득히 떨어져 내리는 절벽에서 살아날 방법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황의소녀의 몸에서 나는 은근한 체향과 체온이 몸으로 전해온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살아날 방도가 없으니 죽을 수밖에 없다.

임청우는 내심 체념하며 소리쳐 물었다.

이름이 뭐야?”

황의소녀가 눈을 꼭 감고 있다가 반짝 뜨며 대답하고 물었다.

심주은(沈珠隱)! 네 이름은?”

슈앙!

임청우는 아래가 더욱 검어지는 것을 보면서 소리쳤다.

제기랄... 다 내려온 것 같다. 저승에서 가르쳐주마.”

그는 심주은이라는 이름의 황의소녀를 더욱 세게 껴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직후였다.

!

끈적끈적한 풀 속으로 몸이 묻히는 것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임청우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고약한 냄새...)

정신의 자락을 놓치면서도 임청우는 자신이 무언가 지독한 악취의 구덩이로 잠기는 것을 깨달았다.

 

***

 

계곡은 온통 검은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무들은 모두 땅에 기듯이 깔려있어 어깨높이에 달하는 것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이곳에서 만큼은 들리지 않았다.

넓지도 않은 계곡이고 크지도 않은 숲이다.

바위들에는 이끼와 버섯, 이름 모를 기이한 풀들이 자라있어 마치 거대한 동굴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검주(劒主) 유소기를 비롯하여 도군(刀君), 신소(神簫), 뇌문신권(雷紊神拳), 지존수(至尊手), 비객(飛客), 묵궁(墨弓) 등의 칠절은 반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내려온 절벽 아래의 기이한 풍경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가 작은 나무들이 융단처럼 땅을 덮고 있는 이런 곳에서 천길 절벽위에서 떨어진 두 사람의 시체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이 계곡에서는 절벽 위에서는 보이던 반달마저도 보이지 않아 칠흑같이 어둡다.

칠절은 유소기의 신호에 따라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유소기는 임청우와 황의소녀가 떨어졌을 만한 곳을 찾아서 계곡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휘이익!

유소기는 바람을 몰고 나지막한 나무들을 밟고 달리면서 떨어진 흔적을 찾느라고 눈을 빛냈다.

그러나 위에서 떨어진 방향으로 봐서 그 근처가 분명할 것 같은 데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추락하는 도중 바람에 휘말려서 다른 쪽으로 떨어졌는가 보다 하고 다른 쪽을 찾아보기 위해 몸을 날릴 때였다.

부웅! 부웅!

갑자기 퉁소소리가 계곡에 크게 울렸다. 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다급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리였다.

신소, 찾았는가?”

유소기는 몸을 날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퉁소소리 보다 더 넓고 잔잔하게 계곡을 메아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삭이는 듯이 낮은 음성이다.

바로 천리전음(千里傳音)이란 수법을 펼친 것이다.

부우우웅!

퉁소소리는 계곡의 남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신소를 제외한 칠절들은 긴 그림자를 끌면서 일제히 그쪽으로 날아갔다.

 

신소 강상곡(姜想曲)은 굳은 얼굴로 퉁소를 입에서 뗐다.

무슨 일인가?”

가장 먼저 달려온 비객 소도성이 물었다.

신소 강상곡이 퉁소로 자신의 뒤쪽 암벽을 가리켰다.

어둠 속의 암벽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높이 솟아 그들을 덮칠 듯이 보였다.

환상신녀(幻想神女)...!”

뒤이어 도착한 유소기가 암벽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자르듯이 내뱉었다.

암벽에는 관음보살을 연상시키며 어깨를 드러낸 절세미녀의 모습이 음각되어 있었다. 한 손에는 버드나무가지를 들었으며 다른 손에는 복숭아를 들고 있다.

지존수 사마명(司馬明)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신녀문(神女門)이 근처에 있단 말인가? 이 계곡에는 건물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데...”

환상신녀의 모습이 이곳에 있는 한 신녀문은 이곳에 있다. 모두 의견을 말해보게. 신녀문과 충돌을 불사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물러날 것인지.”

유소기가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은... 신녀문과 부딪혀서는 안돼. 신녀문을 없애는 건 별 것 아니겠지만, 그 계집들 중 단 한명이라도 살아나간다면 무산(巫山)의 할망구를 무림으로 끌어들이는 결과가 되고 만다.”

뇌문신권 방일휘(方一揮)가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산의 할망구를 제거한 후라면 모를까 그전에는 신녀문을 건드려서는 골치만 아플 뿐이야.”

묵궁 진패선(陳覇善)이 뇌문신권 방일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때 지존수 사마명이 불쑥 말했다.

혹시 무산의 할망구가 늙어 죽었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

유소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육지신녀(六指神女)는 신녀문이 배출한 최고의 고수다. 신녀문의 이술(異術)을 십중팔구는 익힌 그녀를 범상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다.”

유소기의 말에도 지존수 사마명이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근년에 신녀문의 제자가 무림에 나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신녀문은 제자를 택 해지 못해서 문을 닫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소 강상곡이 그런 지존수 사마명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녀문을 없애버릴 심산이로군.”

사실대로 말하면 그렇다. 난 성결한 척하면서 온갖 잡술을 부리는 계집들을 생각만 해도 닭살이 돋는다.”

지존수 사마명이 냉소하며 대답했다.

그런 개인적인 감정에 우리 모두를 끌어들일 셈인가? 큰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르나?”

유소기가 지존수 사마명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하핫! 유소기, 너야말로 이곳에서 물러나려고 하는 것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닌가?”

지존수 사마명이 냉소하며 말했다.

모두들 생각 해보라구. 여기 어딘가에는 몽선도가 떨어져 있어. 몽선도라면 우리의 숙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신녀문인가 하는 계집들이 겁이 나서 물러난다는 게 어디 말이라도 되는가?”

신소 강상곡과 비객 소도성, 뇌문신권 방일휘등이 일제히 불안한 시선을 유소기에게 보냈다.

유소기의 관옥같은 얼굴에 싸늘한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살기(殺氣)였다.

하지만 지존수 사마명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비릿하게 웃었다.

나를 죽일 셈인가? 하지만 유소기, 나를 죽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들 중의 어느 하나라도 죽게 되면 네가 바라는 일을 이루기는 힘들어질 걸?”

유소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손이 어깨의 백금검을 잡아갔다.

화악!

유소기의 전신에서 살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지존수 사마명은 긴장된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섰다.

가슴 앞에 손을 모으고 언제라도 발출할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유소기가 백금검의 검병(劒柄;검의 손잡이)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비객 소도성도 신소 강상곡도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죽었구나!)

지존수 사마명은 등줄기로 오싹한 냉기가 치달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유소기에게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나서면 그들도 동조하여 유소기의 독주를 견제해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지존수 사마명은 미처 계산하지 못했었다. 유소기는 자신들과 같은 칠절이기는 하지만 그 무공에 있어서는 도군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합공을 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유소기가 동료가 없음으로 인해 겪는 불편은 견딜 수 있지만 수모를 받는 것은 참지 못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스르르릉!

백금검이 차디찬 검광을 뿌리며 뽑혀 나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유소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지존수 사마명의 이마로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극도의 긴장감이 장내에 팽배했다.

신소 강상곡등은 손에 땀을 쥐고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거리가 이장 이내로 좁혀졌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도군 지청천이 두 사람 사이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

이어 폭넓은 칼이 지존수 사마명의 어깨에 턱! 걸쳐졌다.

지존수 사마명은 굳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도군 지청천의 칼이 마치 만근의 무게로 그를 내리 눌렀다.

(으으으음...)

지존수 사마명은 내심 신음을 삼켰지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저항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군이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어쩌면 살려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과해라!”

문득 도군이 입을 열었다.

지존수 사마명의 눈이 크게 떠졌다.

사마명 뿐 아니라 도군을 제외한 칠절 전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순간 그들은 머리가 약간 어찔 하는 것을 느꼈다.

도군이 입을 여는 것은 적과 상대할 때뿐이다.

그런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한 것이었다.

도군의 목소리는 특이한 음공(音功)이 실려 있어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환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말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상대방에 대해서 공격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지존수 사마명은 지체없이 손을 쫙 펼쳤다.

열 개의 손가락이 오리발처럼 쫑긋해졌다.

파팟!

지존수 사마명이 이를 악무는 순간 그의 양쪽 손 무명지(無名指)가 각기 폭발하면서 떨어져 나왔다.

손가락이 터져나간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다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유소기가 검을 거두었다.

그제서야 모두들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몽선도를 찾는다. 만일 신녀문의 제자들과 부딪힌다면 가차없이 죽여라. 몽선도를 찾아내든 못 찾든 여기서 나가는 대로 무산의 육지신녀를 제거한다.”

유소기가 뒤돌아 걸어가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지존수 사마명의 사과를 받은 대가로 그의 제안도 받아들인 것이다.

칠절의 우두머리로서 손가락 두 개를 날려버린 지존수 사마명의 무거운 사과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소기도 가슴이 아프겠군. 처가(妻家)나 다름없는 신녀문을 제거하라고 했으니...)

앞서가는 유소기의 완강한 등을 보며 신소 강상곡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사마명은 유소기의 살수를 피할 순 없겠어. 어리석은 친구같으니...)

고개를 떨군 채 지혈을 하는 지존수 사마명의 옆을 지나며 신소 강상곡은 소리없이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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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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