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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마지막 고리를 풀다 (1)

 

 

 

숲에서 해천월이 미친 듯이 눈을 까뒤집고 두 팔을 들어올린 채 하소연 하듯이 빙빙 돌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삼십 여 명의 척살객이 원을 그리고 둘러서서 그의 기행(奇行)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천월은 한 명의 척살객에게로 상처투성이의 몸을 끌고 다가가서 말했다.

[제발 믿어주게. 내가 아니네. 심제을이란 놈의 짓이네.]

[낄낄낄... 그래 믿어주지. 믿어주지.]

척살객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해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고맙네.]

그는 감격한 듯이 눈물을 닦고 다른 척살객에게로 다가갔다.

[심제을이 한 짓이네. 자네도 잘 알고 있잖은가? 응? 믿어주게...]

[우하하하하... ]

척살객들이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해천월은 진지한 태도로 척살객에게 하소연했다.

철썩!

척살객이 뺨을 때리고 말했다.

[믿어주지.]

[고맙네. 고마워... ]

다시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는 해천월의 입에서 두 개의 이빨이 튀어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석두공과 금사종은 아연했다.

독비신검객 섭영소로 보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혈인이 된 해천월이 미쳐서 맴도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일파의 종주가 저런 최후를 맞게 되니... 적룡혈운도에 있었더라면 제자들과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자적할 터인데... ]

금사종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때 척살객들이 석두공과 금사종을 발견했다.

[백호! 이 배신자!]

쐐애액!

한명이 검을 뽑아들며 금사종을 덥쳐왔다.

금사종은 파혼검이라는 자로 위장하여 척살대에 들어갔었다.

척살대 안에서 그는 백호로 불리웠었다.

번쩍!

순간 금사종의 소매속에서 장검이 튀어나왔다.

그는 간단하게 척살객의 공격을 막아내고 말했다.

[이십일호! 신의를 따지는 자가 어찌 정의를 따지지 않는가?]

[닥쳐라! 너를 죽이고 말겠다.]

이십일호는 자신의 구가천마검법을 금사종이 간단히 막아내자 분기탱천하여 고함쳤다.

하지만 금사종은 삼마경을 익히면서 그 수법들을 숙달시키기 보다는 깨는 방법에 대해서 더 골몰했었던 사람이다.

더구나 무치무요를 통해 익힌 해박한 그의 무공은 그러한 것이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금사종은 여유있게 검을 휘둘러 이십일호의 공격을 막아내며 말했다.

[악인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악인이 되고자 하는 어리석은 자. 해천월의 말로를 눈앞에 두고서도 뉘우치는 것이 없는가? ]

금사종은 원래 명호를 혼장서생이라고 했다.

그만큼 그의 학문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고 말 또한 조리가 있으며 고금의 명구들에 대해 정통하고 있었다.

[용슬지이안(容膝之易安)이라 했거늘 헛되이 세상에 망령된 마음을 먹는단 말인가? 금비시작비시(今非是昨非示)하니 세세토록 일섭(日涉)하고 기오(寄傲)하기는 틀렸도다.]

용슬지이안이란 말은 무릎을 겨우 넣을 만한 좁은 장소에서도 편안하다는 의미이며 금비시작비시라는 말은 오늘도 틀렸고 어제도 틀렸다는 말이다.

또한 일섭한다는 것은 날마다 한가로이 산책한다는 말이며, 기오하다는 것은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산다는 뜻이다.

금사종은 훈계한다는 생각에 거침없이 문자(文字)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똑똑한 무림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석두공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척살객들이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개소리!]

석두공이 금사종을 도우려했다.

[지금은 나서지 말게. 한놈도 빠짐없이 모였을 때 몰살시켜버리도록! 혹시 자네를 알아보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얼굴을 숨기게.]

그때 금사종의 전음이 빠르게 그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문자를 써가면서 말을 하는 데에는 시간을 끌어 나머지 척살객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해천월은 멍하니 넋을 놓고 주저앉아 입을 헤 벌리고 있고 척살객들은 검과도를 뽑아들고 금사종을 향해 공격했다.

번쩍!

파파팟!

금사종은 오연히 서서 그들을 오른손의 검으로 구가천마검법인것도 같으면서도 아닌 것도 같은 기이한 검법을 펼쳤다.

또한 그 성격이 시시때때로 변하며 팔황지옥도법과 유사한 것이 되기도 했다.

한데 그 검법과 도법들은 기묘하게도 구가천마도법과 팔황지옥도법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

[놈의 무공이 이렇게 강했다니... ]

동시에 네 명의 척살객이 격퇴되었다.

금사종의 검은 검법과 도법을 섞어서 펼쳐냈고 그것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척살객들이 번갈아 공객했지만 깨뜨릴 수 없었다.

척살객들은 금사종을 금방 제압할 수 없자 석두공에게 공격했다.

[먼저 이놈부터 죽여 버리자.]

[어림없다!]

금사종이 소리치며 석두공을 보호했다.

하마터면 그의 팔이 날아갈 뻔 했다.

석두공은 금사종의 당부가 있는 지라 그의 뒤로 피하며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펑펑펑!

번쩍! 번쩍!

콰콰콰쾅!

금사종과 척살객들의 결투는 점점 치열해져 갔다.

척살객들은 더욱 심하게 날뛰었고 금사종은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하지만 금사종은 여전히 기력이 충만한 상태에서 삼십여 명의 척살객들을 상대해내고 있었다.

진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네 명의 척살객이 더 당도했다.

그들도 가세했지만 금사종은 여전히 그들의 공격을 다 막아내며 이따금 반격도 해냈다.

척살객 중의 하나가 소리쳤다.

[백호는 구가천마검법과 팔황지옥도의 극성이 되는 검법을 펼치고 있다. 초식으로서는 이길 수 없다. 내공을 쏟아 부어라!]

사실이 그러했다.

금사종은 구가천마검법과 팔황지옥도법의 각 초식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 초식들만을 전적으로 깨뜨릴 수 있는 초식들을 무치무요에서 찾아냈었다.

그런 후 그것들을 결합하여 한가지의 도법과 한가지의 검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척살객이 소리친 후로 다른 자들의 공격방식이 변했다.

그들은 초식을 버리고 무거운 중수법으로 열을 지어 금사종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금사종은 이미 동호천이 장담한 대로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천하제이에 버금갈만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터였다.

그는 상대방의 힘이 자신에게 미치기 전에 흩어버릴 줄 알고 있었다.

척살객들의 고심어린 공격도 그에겐 아무 소용없었다.

석두공이 칭찬했다.

[형님! 대단합니다. 오년 전에 비해 백배도 더 발전한 것같습니다.]

[발전은 자네가 했지. 무공이 말고 머리말일세.]

금사종의 농담에 석두공은 웃고 말았다.

한데 석두공의 한쪽 손바닥은 은밀하게 금사종의 명문혈에 닿아있었다.

금사종의 지칠 줄 모르는 가공할 내공의 비밀은 실상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네 명의 척살객이 당도한 후로 한 시진 가까이 흘렀지만 더 이상 오는 자가 없었다.

금사종을 공격하는 척살객들은 난공불락같은 금사종의 무공에 자신들이 지쳐버릴 지경이었다.

[더 이상 올 자가 없을 것같군.]

금사종이 말했다.

석두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다.

여전히 도검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숲의 한쪽에서는 언젠가부터 한 노인이 나무위에 앉아서 석두공과 금사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군 이상해! 어째서 이렇게 혼동이 일어날까? 닮기는 분명이 저놈이 닮았는데 정작 무공을 펼치는 놈은 또 저놈이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노인의 대머리가 석양을 받아 빛났다.

 

파파팟!

퍼퍼펑!

검기와 도광이 석두공의 몸을 작열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금사종의 석두공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훌쩍 물러서면서 전장(戰場)을 피해버렸다.

나무위에서 지켜보던 노인이 눈을 비볐다.

[저럴 수가...]

휘루루룽!

석두공의 몸에서 폭풍같은 강기가 뿜어 나오며 그의 몸으로 날아들던 검기와 도광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콰르르르...

석두공의 몸이 폭풍이 되어 움직였다.

그의 몸 주위에 다다른 것은 무엇이나 가루가 되어 날렸다.

바위가 여력에 의해서 날아가고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날아갔다.

콰드드드드!

척살객들은 피도 뿌리지 못하고 허공중에서 가루가 되어 그의 그림자처럼 폭풍에 휘말려 맴돌았다.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척살객도 그들이 입었던 옷도 그들이 들었던 검과 도도 모래처럼 분해되어 사라져버렸다.

석두공이 단 한차례 십장방원을 돌았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천신폭풍보-!

천신폭풍보의 위력을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금사종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님에도 넋이 반쯤 빠져버렸다.

그러한 사정은 나무위에서 숨어보던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연신 눈을 비비고 다시보고, 다시 비비고 보고 했다.

천하를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던 척살객들은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때였다.

짝짝짝!

멍하니 앉아있던 해천월이 박수를 쳤다.

쿠우웅!

그러더니 그의 몸이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석두공은 사십 여 명의 인명을 한순간에 살해해 버린 뒤에 찾아오는 허무를 뼈속까지 느끼면서 묵묵히 있었다.

갑자기 금사종이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차갑게 소리쳤다.

[당장 나오지 않으면 벌집이 될 것이다.]

대머리 노인은 넋을 잃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금사종의 자세를 보고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유성단천(流星斷天)은 노부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인 줄 아느냐?]

금사종은 눈앞에 내려선 노인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유성단천의 수법을 알아보는 사람은 강호에 나온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석두공은 노인을 유심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갈할아버지?]

[어랍소? 돌머리가 맞긴 맞는 모양인데 어떻게 나를 알아보지?]

노인이 석두공을 올려다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석두공이 넙죽 업드리며 절하고 말했다.

[맞습니다. 갈할아버지께서 살려주신 저 돌대가리 석두공입니다.]

그 노인은 독왕동주 갈천상이었다.

[흠흠...]

그는 석두공의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오독패혼공의 흔적이 있으니 틀림없이 맞기는 맞는데... 그럼 노부의 말이 틀린 게 되지 않나? 한데 이 젊은이는 누구인가?]

[제 의형이십니다.]

금사종이 포권하며 말했다.

[복우파의 금사종입니다.]

[한데 어떻게 동선배의 무공을 알고 있지? 이놈이 돌대가리라서 동선배가 그만 자네에게 무공을 가르쳤나?]

갈천상이 물었다.

석두공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비슷합니다.]

석두공으로부터 자세한 말을 전해들은 갈천상은 파안대소했다.

[푸하하하...!]

하지만 그의 눈가로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대별산중의 독왕동에 은거하고 있던 그는 동호천의 사망소식도 그제서야 들었던 것이다.

[날도 어두웠으니 내집으로 가자.]

갈천상은 아직도 숨이 크륵거리는 해천월의 몸을 집어들고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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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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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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