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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장

 

             출세! 은세정검회 (2)

 

 

 

금사종과 장지연은 무당산으로 떠났다.

그들은 독비신검객 부부의 유골을 고검장으로 가지고 간 것이다.

석두공은 백란과 무형도객과 함께 백란의 스승을 만나기 위해 서쪽으로 갔다.

 

× × ×

 

태백산(太白山),

침엽수림의 바다가 펼쳐진 안쪽 깊숙한 곳에 한채의 석옥(石屋)이 자리잡고 있다.

무형도객과 백란은 석두공을 석옥 안으로 인도했다.

석옥의 안은 꽤 넓었으나 아무 것도 있지 않은 썰렁한 곳이었다.

[잠깐 기다리세요.]

백란은 석두공을 입구쪽에 세워 둔 후에 석옥의 안쪽으로 들어가 벽에 일장을 가했다.

펑!

벽에는 아무 손상도 없고 오직 텅빈 공간을 울리는 진동음만이 터져 나왔다.

순간,

스르르르...

석두공과 무형도객이 서있던 바닥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백란이 재빨리 돌아와 석두공의 곁에 섰다.

[여기가 은세정검회예요. 말에 조심해 주세요.]

석두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후좌우를 둘러보았다.

그가 서있는 바닥은 벌써 이십여 장 가까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사방 벽에는 커다란 검이 음각되어 있으며 그 검의 옆에는 각기 조그맣게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검법의 초식인 것같았다.

바닥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석두공의 눈앞에 열려진 문이 보였다.

석두공은 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자신이 그 내부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천정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형광의 운무가 떠있으며 하나의 도시처럼 형성되어 있는 지하의 건축...

석두공이 물었다.

[마중천과 이곳은 대체 어떤 관계요? ]

백란이 빠르게 말했다.

[마중천도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조금 후에 사부님께서 다 말씀해 주실 거예요.]

은세정검회도 마중천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석두공은 석상이 새워져 있는 원형의 광장에 이르기까지 불과 스무명 남짓한 사람을 보았을 뿐이다.

그 사람들도 대부분이 광장 근처에 몰려 있었다.

이곳의 건축은 마중천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원형 광장의 가운데에 서있는 석상이 마중천에서와 다를 뿐이었다.

마중천에는 이상하게도 폭풍무존의 석상이 서있었다.

그러나 이곳 은세정검회에는 키가 자그마한 노인의 석상이 세워져있었다.

또한 노인의 손에는 폭풍무존의 석상이 들고 있었던 별이 없었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본 은세정검회를 창설하신 시조이시네.]

[벽천검왕(劈天劍王)이신 모양이지요?]

[그렇네.]

무형도객은 원형광장에 달려있는 하나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 × ×

 

석두공은 침상에 누워있는 창백한 중년인의 눈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같았다.

중년인은 그를 보다가 가볍게 탄식했다.

[계산이 틀렸구나. 내 계산도 틀렸고 통천(通天) 사조님의 계산도 틀렸다. 사람의 재주로 하늘이 하는 것을 예측한다는 것은 이렇게 불가능하구나. 비슷하기는 하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니... ]

[천주! 고정하십시오. 건강을 생각하셔야합니다.]

무형도객이 말했다.

병색이 완연한 중년인은 전설속의 정의수호세력인 은세정검회의 천주였다.

그의 이름은 황불식(黃不息)이며 무형도객의 사형이기도 했다.

그가 말했다.

[통천사조께서는 폭풍무존께서 생존해 계시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나는 이 소협이 천신폭풍탑의 진전을 이엇으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네. 내 계산으로는 이 소협은 이미 죽은 것으로 나타났었지. 한데 이렇게 살아있을 줄이야.]

황불식은 석두공에게 말했다.

[소협은 아마도 네 군데서 인연을 맺어 무공을 완성했을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석두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협에게로 이어진 인연은 사실 이미 천년 전에 예정된 것이었네. 통천조사께서 대제자이신 폭풍무존께 명하시어 천신폭풍탑을 세우게 했고, 둘째 제자이신 섭홍장(葉弘壯)께는 고검문을 창설하시도록 하시었으며, 셋째 제자이신 동파로(董破露)께는 무림의 모든 절학을 연구하도록 하시었네. 그 셋째 제자분의 후손이 바로 동호천... 그분이시네. 또한 소림사에 정심신주를 전하여 소협에게 이어지게 했네.]

황불식의 말은 모두가 놀라울 뿐이었다.

천년을 내다보고 이루어 놓은 안배, 이 모든 것은 석두공을 위해서가 아닌, 궁극적으로는 독존패왕궁이란 가공할 세력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황불식이 말했다.

[당금 강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독존패왕궁(獨尊覇王宮)이 있네. 그들은 무림의 혈겁을 조성하여 난세로 몰고 감으로써 본 은세정검회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네. 서로의 힘은 백중지세, 먼저 움직이는 쪽이 당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하네. 하지만, 본 은세정검회로서는 그것을 알면서도 이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일세. 사람으로서 해야할 도리는 모두 끝냈으니 이제 결과를 하늘에 맞기고 나설 수 밖에 없네.]

[...!]

[...!]

석두공등은 놀라 말을 잊었다.

[안타까운 것은 본회에서는 독존패왕궁의 궁주를 상대할 만한 고수가 없다는 것일세. 원래 내가 그를 상대하게끔 되어있었지만 이렇게 내 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네. 백란 저 아이가 약간의 무공을 전수받기는 했지만 지극히 미미할 따름이고... ]

[제가 독존패왕궁의 궁주를 상대하겠습니다.]

석두공이 말했다.

황불식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주리라 믿었네. 하지만 직접 듣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군. 그럼 부천주와 란이는 나가도록 해라. 따로 석소협에게 할 말이 있다.]

무형도객과 백란이 인사하고 나갔다.

그가 나가자 황불식이 말했다.

[지금까지는 공적인 부탁이었고, 이제 내 사적인 부탁을 하나 하고 싶네. 들어주겠는가? 아니 꼭 들어주어야만 하네.]

석두공은 황불식은 눈을 바라보았다.

(저 눈빛을 보아하니 어떤 부탁이든 간에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황불식의 눈은 간절한 애원같은 것을 담고 있었다.

[어떤 것입니까?]

석두공이 물었다.

황불식은 슬픈 듯 기쁜 듯 모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침상에 딸린 작은 서랍에서 은빛화살을 꺼냈다.

[이것은 은세추혼전(隱世追魂箭)이라고 하네. 머지않아 이 은세추혼전과 똑같은 것을 가진 여인을 만나게 될 것일세. 그때...]

[...!]

[아무 것도 묻지 말고 그냥 그 여인을 죽여주게. 이것으로 죽인다면 그 여인도 피하지 않을 것일세.]

석두공은 황불식은 목소리가 떨린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은 더욱 떨린다고 생각했다.

한기(寒氣)가 폐부깊숙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은세추혼전을 가진 여자를 죽여라!

 

이것은 지상명령처럼 그의 가슴에 못박혔다.

 

***

 

무림이 아주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무림인들이 긴장했다.

천하를 장악하고 있는 검종맹과 잔혼각도 혈겁을 멈추고 잠잠했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은 고요한 가운데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은 한 사람에 의해 발해진 두 가지의 명령에 의해서였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먼저 무림에서 은인자중하던 잠자던 사자(獅子)들...

소림과 무당을 비롯한 구대문파의 은밀한 움직임은 장문인들이 한장의 서찰을 받아들면서 시작되었다.

 

<...

약속을 이행받고자 합니다.

고수들을 거느리고 각기 영역 안에 있는 검종맹과 잔혼각의 분타들을 괴멸시켜주십시오.

잔혼각의 총단을 붕괴시키고 검종맹으로 모이십시오.

... >

 

누가 보냈는지 서명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은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실상 구대문파를 빼놓고 무림을 논한다는 것이 우스운 노릇이다.

구대문파는 무리의 발상지며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구대문파의 웅크렸던 거력은 거센 폭포수처럼 그러나 아주 은밀하게 혈세무림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검종맹도 잔혼각도, 무엇인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지 설마 자신들의 분타가 소리없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둘째로 중원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을걷이를 잘하던 농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가 하면 가게의 늙은 주인이 문득 사라지기도 했다.

기루에서 술을 따르던 기녀가 갑자기 사라졌으며, 길거리에서 사기점을 쳐주던 봉사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져감에 따라서 검종맹과 잔혼각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밑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사라지게 만든 것도 단 하나의 명령이 적혀있는 첩지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

검종맹과 잔혼각의 세력을 제거하라.

가까이 있는 곳부터 은밀하게 손을 써라.

먼저 잔혼각의 총단을 멸하고 검종맹으로 향하라.

... >

 

 

첩지의 끝에는 단지 검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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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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