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제 30장

 

               수라장이 된 무림대회 (2)

 

 

 

휘이이익!

사사사삭!

만박노조와 검성은 수십리를 펼쳐진 푸른 갈대밭을 이를 악물고 달렸다.

척살대에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무슨 수가 있더라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

설사 후일을 기약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값없는 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다.

만박노조가 달려가면서 허공에 대고 물었다.

[섬쾌(閃快)! 그들은 얼마나 쫓아왔는가?]

허공에서 섬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이미 앞쪽이 막혔습니다.]

검성이 놀라며 만박노조를 바라보았다.

만박노조가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하느냐?]

[북쪽으로 가십시오.]

파앗!

만박노조는 주저하지 않고 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갈대밭을 벗어났다.

갈대밭 밖은 은신할 곳도 마땅치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섬쾌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한데 그들이 사라진 직후였다.,

휘익!

그 자리에 갑자기 한사람이 나타났다.

척살대의 이십칠호 척살객!

[후후후... 어느 누구도 우리 손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자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의 눈은 만박노조와 검성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예외는 항상 있는 법이다.]

갑자기 그의 앞쪽에 흐릿한 몽영이 생기면서 말했다.

파앗!

이십칠호는 순간적으로 팔황지옥도를 펼쳐냈다.

상대가 누구든 일단 베고 볼 일이었다.

[팔황지옥도... 본좌는 이미 이십 년 전에 그것을 익힌 바 있지.]

몽영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음성이 이십칠호의 뒤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이십칠호가 당황하며 물었다.

몽영이 차갑게 내뱉었다.

[만박노조를 쫓지 마라. 그는 너 따위가 쫓을 하찮은 분이 아니시다.]

[개소리!]

촤아아아!

이십칠호가 번개처럼 팔황지옥도를 펼쳐냈다.

도기가 하늘까지 뻗칠것 같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놈!]

몽영의 입에서 싸늘한 외침이 터져 나오더니 붉은 손바닥이 허공에 떠오르며 이십칠호의 가슴에 가서 부딪혔다.

퍼엉!

이십칠호의 몸이 기우뚱 하며 쓰러졌다. 몸에는 아무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굳어진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말했거늘...]

스스스!

몽영은 나직한 소리를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한데 그 음성은 만박노조의 비밀호위 중의 한사람인 환사(幻死)의 음성이 아닌가?

만박노조가 상대하기 어려운 척살대의 인물을 이렇듯 가볍게 죽이는 그의 비밀호위 환사...

그리고 그가 말하는 만박노조의 신분은 대체 무엇인가?

 

***

 

북쪽!

만박노조와 검성이 달려가는 방향이다.

하지만 만박노조의 충실한 수하인 섬쾌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이쪽으로는 금사종이 석두공을 안고 달려가는 바람에 그를 뒤쫓는 척살대의 인물들이 삼십 여 인이나 달려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불과 이십리도 달리지 않아서 만박노조와 검성이 알게 되었다.

그들의 앞쪽에서 네 명의 척살객이 금사종의 흔적을 찾으며 땅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성과 만박이다. 죽이자!]

척살객 중의 한 사람이 그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삐이익!]

휘파람 소리가 퍼져나가고 다시 세명의 척살객이 더 나타났다.

스르릉!

검성은 주저없이 검을 뽑았다.

[이제 죽어야할 때인 모양이오. 하나라도 죽여서 무림에 보탬이 됩시다.]

만박노조의 얼굴에도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허허허허...]

그의 입에서 괴이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슴을 후벼파는 듯 내장을 도려내는듯 아픔이 서려있는 웃음소리였다.

그에따라 주변 숲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무살소(虛無殺笑)!

만박의 절기들 중의 한가지였다.

척살객들이 허무살소의 기습에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그때였다.

[일검만검(一劒萬劒)! 섬전사일(閃電射日)!]

검성이 벼락같이 날아들며 소리쳤다.

그의 검은 갑자기 수백 개로 변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일곱 명의 척살객을 무찔러갔다.

“허억!”

“이런....!”

척살객들이 대경실색하며 물러섰다.

그 순간 수백 개의 검들이 다시 하나로 모이면서 그들 중의 한명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파앗!

척살객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상체가 날아올랐다.

베어진 허리로 피와 내장이 쏟아졌다.

검성으로서는 평생의 진력을 모두 그 한초식에 담은 것이었다.

[이런 개같은!]

다른 척살객이 분노하여 소리치며 검성을 공격했다.

[구가천마검법!]

한사람이 고함치며 검을 들어 검성을 가리켰다.

검성은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옆으로 이장이나 물러섰다.

하지만,

파앗!

어느새 가공할 검기가 그의 소매자락을 베고 지나갔다.

검성은 이를 악물고 반격을 개시했다.

[파벽뇌(破壁磊)!]

구가천마검법이 빠르기와 강함을 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검성이었다.

도저히 그 빠르기와 강함으로서 구가천마검법을 상대할 수는 없다.

검성은 느리고 둔중하지만 결코 피하기가 쉽지 않으며 부딪히게 된다면 무엇이든 깨뜨려버리는 무거운 중검(重劒)의 수법을 펼쳤다.

펑!

[헛! 이늙은이가... ]

구가천마검법을 펼쳤던 척살객이 놀라며 물러섰다.

그의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검성의 내공에 정면으로 부딪혀 오히려 손해를 본 것이었다.

쐐애액!

만박노조가 단검을 뽑아들고 한명의 척살객을 향해 돌진했다.

쩌어어엉!

척살객의 도가 번득이며 그를 향해 떨어졌다. 팔황지옥도법이었다.

만박노조는 다시 번개처럼 물러났다.

스파앗!

그러나 척살객의 잔인한 도는 그를 따라붙으며 머리를 쪼개오고 있었다.

만박노조가 몸을 낮추고 빙글 돌았다.

도가 그의 이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박노조의 단검이 그자의 다리를 베었다.

파앗!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자는 고통도 모르는 듯이 다시 만박노조의 목을 베고 있었다.

(헉! 피할 수 없다!)

만박노조의 머리 속으로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이었다.

그는 죽음을 각오했다.

헌데 그때였다.

띵!

갑자기 그의 목을 베던 척살객의 도가 옆으로 튕겨나 허공을 베었다.

[...!]

[...!]

두 사람 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빨리 죽여버려!]

그때 다른 척살객들이 소리치며 만박노조와 검성에게 달려들었다.

각기 두 사람씩 더 검성과 만박에게로 달려들었다.

혼자서도 상대하기 어려운 척살객, 한꺼번에 세사람 씩 상대해야 할 경우가 되었으니 죽음은 그들의 목전에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파아아앗!

한줄기의 백광(白光)이 긴선을 그리며 숲에서 날아와 검성과 만박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피... 피해라!]

“어...어검술!”

척살객들이 경악하며 훌쩍 뒤로 물러섰다.

휘이이이!

백광은 다시 숲쪽으로 날아갔다.

이어 숲속에서 마치 신선같은 노인이 걸어 나오며 백광을 받아들었다.

백광은 한자루의 검이었다.

노인의 눈에서는 횃불같은 광채가 번득이고 몸에서 풍겨나는 기도는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압박하고 있었다.

검성이나 만박노조 등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였다.

이때 노인을 바라보는 검성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털썩!

그는 눈앞의 척살객들을 버려둔 채 무릎을 꿇었다.

[정녕... 사존(師尊)이십니까?]

[아직도 노부를 스승으로 생각하느냐?]

노인이 그의 앞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검성이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제자가 어찌 사부님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만박노조와 척살객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있었다.

검성만 하더라도 십대고수의 일인이며 당금 무림의 원로이다.

한데 그의 스승이 나타나다니...

만박노조는 검성이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눈앞에 말로만 전해지던 고검문의 문주가 서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검성의 스승인 고검문주 섭군천이 차가운 음성으로 내뱉었다.

[노부는 네게 검법을 가르쳤다. 한데 너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 검법을 갈고 닦음으로써 무림의 정기를 수호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얄팍한 지혜에 의지하는 무인(武人)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검성은 머리를 땅에 찧으며 말했다.

[제자 부족합니다. 부디 스승님께서 이끌어 주십시오.]

[지혜에 의지하면서도 너는 사제인 심제을의 간계에 빠져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무인으로 가르쳤건만 무인답지도 못하고, 지혜도 참다운 지혜를 따르지 못했으니 이래도 내 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

섭군천의 준엄한 말이었다.

만박노조가 허리를 깊히 숙이며 말했다.

[당노제가 그렇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후배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검성을 그릇되게 했습니다.]

섭군천이 차갑게 말했다.

[감히 노부 앞에서 검성을 운운하는가?]

[...!]

검성과 만박노조는 섭군천의 위세에 눌러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같았다.

여섯 명의 척살객들도 달아날 생각도 못하고 멈칫멈칫하고 있었다.

싸우지 않아도 섭군천의 무공은 그들을 몇 초 이내에 죽여버릴 능력이 있음을 그들은 느끼고있었던 것이다.

섭군천이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년 칠월까지다. 칠월이 되기 전에 심제을의 목을 내 앞에 갖다놓지 않는다면... 먼저 너희들부터 죽이겠다. 너희들을 시작으로 무림에서 칼든 자와 주먹쥔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버리겠다.]

엄청난 살기!

초목이 벌벌 떨릴 것같은 살기였다.

검성을 비롯한 자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섭군천의 눈이 척살객들에게로 향해졌다.

부르르...

척살객들이 벼락을 맞은듯 떨었다.

섭군천이 일갈했다.

[떠나라! 내 적이 아니기에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부의 일을 방해한다면 모조리 찢어 죽이겠다.]

휘휘휙!

척살객들은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다.

자존심이 강한 무림인들이 달아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데, 그것도 능력이 엇비슷한 자들끼리의 이야기다.

고검문주 섭군천 앞에서 무공으로 맞서려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輟)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사라지자 섭군천은 돌아섰다. 허공의 일각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있었다.

순간,

[요망한 것!]

섭군천의 호통소리가 터져 나오며 백광이 긴선을 그렸다.

파악!

허공의 일각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더니 두 토막이 난 시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크윽! 이 이럴 수... 궁주께 이 사실... ]

[섬쾌!]

만박노조가 소리쳤다.

섬쾌는 눈을 까뒤집고 죽어버렸다.

그 사이에 섭군천의 모습은 그 순간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만박노조가 원망스런듯이 말했다.

[벌써 육십 년... 그동안 섬쾌는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도 없었거늘... 왜 섬쾌를... ]

푸르르르!

그러나 그 순간 숲에서 한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전서구가 매달고 가는 서찰에는 암호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

고검문주가 드디어 나타났...

가공할 무공... 은사(隱四)가 일초에 당했...

주의요합...

은세정검회의 인물로 사료되는 두 소녀가 귀산에서 모습을 드러냈...

앞으로 은세정검회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

은오(隱五)>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